김민

김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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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국제부 기자입니다. 예술가의 이야기를 따로 모아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kimmin@donga.com

취재분야

2025-11-25~2025-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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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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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깥’으로 눈 돌린 미술사가 찾고 있는 것들 [영감 한 스푼]

    11월 1일 개막한 스웨덴 영화제에서 북유럽 사미족 출신 예술가 브리타 마라카트 라바의 예술과, 기후 변화에 저항하는 그녀의 싸움을 그린 영화 ‘사미 스티치’를 보고 왔습니다. 영화제는 서울에서 11월 7일까지, 또 그 후 부산 인천 광주 대구로 이어져 11월 19일까지 열립니다. 자세한 일정표는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스웨덴 영화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최신 영화 9편이 상영되는 가운데, 미술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흥미로울 영화가 두 편 있습니다. 바로 ‘사미 스티치’와 ‘힐마’ 인데요. 두 영화는 특히 르네상스에서 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단선적 미술사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면서, 세계적 미술 기관들이 ‘대안’을 찾는 와중에 발견된 흐름을 보여준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 그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겠습니다.“미술사는 시대에 따라 항상 변하는 것”영화를 살펴보기 전, 두 가지 인터뷰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관장인 이고, 나머지 하나는 입니다.두 사람은 국제 미술사를 주도하는 기관의 수장인데, 공통적으로 해 준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르네상스, 바로크, 인상주의, 피카소, 모더니즘 등 한 가지 선으로 이어지는 ‘단선적 미술사’가 틀렸다는 것입니다.MoMA는 30, 40년 동안 (미국과 유럽 중심의) 특정한 역사와 연결지어 생각되어 왔다. 앞으로는 이러한 절대적 역사를 이해시키려 하기 보다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할 것이다. (…) 미술관이 기존에 보여줬던 단선적 미술사는 아주 간단해서 강력했지만 그것이 예술을 대표하지는 못했다. 이해하기 쉽지만 진실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MoMA가 모든 미술사를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가능한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내려고 한다.(글렌 로리)미술사는 절대 고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시대에 맞춰 항상 변한다. 21세기 초반까지 우리가 알았던 미술사는 남성 미국인 유럽인을 중심으로 한다. 그러나 이것은 완벽하지도, 절대적이지도 않다.지금 런던만 봐도 거주자 50%가 흑인과 소수 인종이다. 게다가 항상 열심히 활동해왔지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여성 예술가는 물론 한국 일본 이집트 케냐 인도 등 정말 다양한 곳에 예술가들이 있다. 우리 미술관이 피카소를 내다 버리진 않겠지만, 과거의 좁은 미술사에서 더 넓은 범위로 확장하려고 하는 것이다.(마리아 발쇼)두 기관장의 발언은 개인의 의견이 아닌, 국제 미술사의 대다수가 수년 전부터 공통으로 갖고 있는 문제의식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미술사는 유럽의 몇몇 국가에서만 이뤄졌던 것이지, 그것이 세계 미술사는 아니니까요.이런 흐름에서 미술사는 ‘백인 남성’이 아닌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가운데 주목받은 것이 ‘선주민 예술’과 ‘여성 예술가’입니다.북유럽 사미족의 이야기를 실로 그리다사미족은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와 러시아에 걸쳐 살고 있는 선주민들입니다. 영화의 주인공 브리타는 핀란드와 덴마크 지역을 중심으로 사는 사미족으로, 순록을 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위 1980년대 그림은 사미족이 살던 지역이 댐 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을 때의 상황을 담았습니다.이 지역의 사미족들은 집에 쇠사슬로 몸을 묶고 반대했지만, ‘까마귀’처럼 헬리콥터를 타고 날아온 스웨덴 경찰들이 이들을 연행해 강제 이주시켰죠. 브리타는 이 집회에 직접 참여했던 기억을 자수로 남겼습니다.그녀는 이렇게 스웨덴에서도 노르웨이에서도 정식 역사로 기록되지 않은 사미족의 이야기를 자수를 통해 기록해 나갔습니다. 어린 시절 스웨덴의 선주민 기숙 학교로 보내져서 스웨덴어를 ‘모국어’라고 강제로 교육하며 자신이 나고 자란 문화를 지우려는 정책을 보고 ‘싸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그녀는 회고합니다.그래서 어릴 적 엄마와 할머니의 이야기로 전해진 사미족의 신화를 긴 자수 작품으로 남겼고, 이것이 2017년 카셀 도큐멘타에 전시되고 주목받으면서 사미족의 이야기도 유럽 사회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작품에서 유럽 사회가 주목한 것은, 자연을 자원을 가져오는 소스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이야기를 듣고 대화하며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미족의 문화입니다. 댐 건설 반대 시위를 했을 때 사미족들은 함께 살아가는 강이 파괴되는 것을 우려했습니다. 자연에게 오만한 태도를 보이면,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서 말이죠.영화 ‘사미 스티치’에서는 기후 변화로 순록의 개체수가 감소하고, 이로 인해 오래전부터 내려온 문화를 포기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미족의 젊은 세대 이야기까지 보여줍니다. 즉 사미족 신화와 예술보다 기후 위기와 이에 대한 저항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선주민 문화가 왜 주목을 받는 것인지, 그들의 문화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살펴보면서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였습니다.칸딘스키보다 먼저 추상화를 그린 화가라세 할스트룀 감독이 만든 영화 ‘힐마’는 스웨덴의 여성 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1862~1944)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힐마 아프 클린트는 2013년 스웨덴 스톡홀름 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리고, 이 전시가 노르웨이 스페인 덴마크를 거쳐 독일 베를린까지 순회하며 100만 명이 전시를 보는 열풍을 일으킨 작가입니다.그녀가 주목받은 이유. 힐마는 추상 미술의 개척자로 여겨지는 칸딘스키보다 먼저 추상화를 그렸습니다. 그런데도 미술계에 그 이름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 미술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동안 미술사가 얼마나 남성을 중심으로 쓰여왔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였죠.독일의 미술사가 율리아 포스는 일간지 프랑크프루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에 ‘미술사는 다시 쓰여야한다’는 도발적인 제목으로 힐마 아프 클린트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힐마가 추상화를 그릴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유럽 지식인 사이에 널리 퍼진 ‘신지학’에 심취한 덕분이었습니다. 신지학은 상대성 이론 등 과학의 발전에 영향을 받아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탐구하고자 했던 학문으로, 힐마는 그러한 세상을 그림에 담고자 했습니다.그 결과 칸딘스키가 처음 추상화를 그린 1911년보다 조금 앞선 1906년 첫 추상 작품인 ‘원시적 혼동’을 그립니다. 그러나 신지학자인 루돌프 슈타이너로부터 ‘이 그림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테니 향후 50년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는 충격을 받습니다. 1944년 세상을 떠날 때 자신의 추상 작품은 20년 동안 공개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맙니다.그녀의 그림을 물려받은 조카는 20년이 지나 작품을 세상에 보이기 위해 미술관을 찾아가지만 전시 이력도 없고 처음 들어보는 작가라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합니다. 처음 빛을 본 것은 198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그룹전에 포함되면서 부터 입니다.그리고 약 30년이 지나고 미술사가 ‘바깥’으로 눈을 돌리고 나서야 그녀의 작품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시작합니다. 그러한 그의 예술 세계를 영화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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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화홍련전-아랑전설 떠올리며”… 이화자 화백 개인전

    초승달 뜬 밤하늘에 수양버들 가지가 드리우고 연못에 흰 치마가 펼쳐졌다. 서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영남루의 전설’(1985년)은 이화자 작가(80)가 장화홍련전과 경남 밀양군의 영남루에 얽힌 아랑전설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더해 그린 작품이다. “으스스한 달밤, 누군가 물에 빠지고 속치마만 둥둥 떠 있는 모습”이라고 작가는 설명했다. 이 작가의 개인전 ‘창연’이 서울 중구 스페이스 소포라 갤러리에서 12월 9일까지 열린다. 작가의 초기부터 최근작까지 20점을 소개한다.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이 작가는 박생광(1904∼1985), 천경자(1924∼2015)에게 그림을 배운 채색화 2세대다. 2001년 미국 뉴욕에서 박생광과 2인전을 열었지만, 개막 며칠 전 9·11테러가 발생해 뉴욕이 아수라장이 되면서 제대로 작품을 선보이지 못했다. 이후 우울증 등 어려움을 겪으며 활동을 중단했다. 그러다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그의 작품 ‘회고’(1968년)를 소장했고 이후 국공립미술관 그룹전에 초청받으며 조금씩 활동을 재개했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을 꾸준히 탐구한 이 작가는 부산의 풍어제나 한국의 산 곳곳에 있는 서낭당을 소재로 한 ‘기원 시리즈’를 그렸다. 이는 단순히 무속·토속 신앙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서민들 사이에서 내려온 문화로 이들을 바라보자는 취지였다. 물가에서 노니는 청둥오리를 그린 ‘4월’(1980년)은 물바램 기법을 활용했다. 동양화는 두 세 겹을 붙인 종이를 사용하는데 가운데 풀이 있어 물감이 깨끗하게 번지기가 어렵다. 이에 물을 묻힌 붓으로 경계를 긋는다. 이는 부드럽고 섬세함이 필요한 기술이다. 최근작에서는 경기 가평의 한 카페에서 바라본 노을을 그린 ‘회상’(2018년), 집 근처 공원에서 그린 ‘강변공원의 가을’(2022, 2023년), ‘겨울 두물머리’(2003년) 등 일상 속 풍경이 드러난다. 이 작가는 “요즘 들어 자연의 위대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며 “자연을 존중하는 것에서 우리 산수화가 시작했듯 풍경을 좀 더 연구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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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벽뚫고 설치한 미술작품… 물위에서 듣는 바다소리

    강물이 바다를 만나는 길목, 파도가 들이치는 해안, 리모델링을 앞두고 바닥과 벽을 뚫은 미술관…. 부산에서 색다른 장소의 맛을 살린 전시가 각각 기장군 일광해수욕장과 해운대구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2023 바다미술제’와 ‘극장’전이다. 14일 개막한 2023 바다미술제는 ‘깜빡이는 해안, 상상하는 바다’를 주제로 20개국의 31개 팀 예술가 43명의 작품을 일광해수욕장 일대에서 선보인다. 현대 사회에서 자원의 보고인 바다와 인간의 관계를 대안적 차원에서 돌아보고 상상해보자는 의미로, 그리스 출신 큐레이터 이리니 파파디미트리우가 기획을 맡았다. 전시에서는 지역 일대의 지형을 다각도로 활용한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프랑스 출신 작가 펠릭스 블룸의 ‘바다의 풍문’은 덱을 따라 바다로 걸어 나가면 물속에 설치된 대나무에 들이치는 파도의 움직임에 따라 소리가 나는 설치 작품으로, 바다의 목소리를 듣는 듯하다. 영국 작가 게리 젝시 장의 ‘오션 브리핑’은 바다로 흘러 나가는 강물 위에 전광판을 설치하고, 그 위에 바다와 환경에 관한 긴박한 메시지를 담은 자막을 내보낸다. 옛 일광교회 공간 전체에 가느다란 실을 설치해 빛이 뿜어 나오는 듯한 효과를 낸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무한나드 쇼노의 ‘바다에서의 달콤한 허우적거림’도 돋보였다. 파파디미트리우 감독은 “모든 작품은 재료 대부분을 부산에서 조달하고 제작과 설치도 부산에서 진행했다”고 밝혔다. 바다미술제는 11월 19일까지 무료로 열린다. 부산시립미술관 ‘극장’전은 2024년 리모델링을 앞둔 미술관에서 마지막으로 열리는 전시다. 이 기회를 십분 활용해 미술관 바닥을 뜯고, 벽을 뚫는 과감한 설치가 돋보인다. 미술관을 극장에, 전시장을 무대에 비유한 전시는 작품이 미술관에 설치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또 그 작품이 어떻게 관객과 상호 작용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김동희 작가의 ‘호로 이어진 계단’은 미술관 1층 로비와 2층, 2층과 3층을 이어 설치한 계단식 구조물이다. 직선으로 된 난간에 동그랗게 튀어나와 있는 공간에 관객이 직접 서볼 수 있어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느낌을 체험할 수 있다. 김 작가는 미술관 벽을 깎아 내거나, 바닥재를 드러내는 등 공간 디자이너로도 전시에 참여했다. 이 밖에 전시장 가운데에 건축물 조각을 설치하고, 이 조각 내부에 설치된 소형 카메라에 기록되는 영상을 벽면에 투사해 여러 시점을 체험하게 하는 정정주의 ‘일루미너리’, 기억을 공간의 형태로 만든 홍범의 움직이는 설치 조각 ‘기억의 광장’, 미술관 벽면이나 바닥 속에서 신체 장기의 소리가 나도록 만든 최윤석의 ‘허기’, 미술관에 전시되는 작품의 의미를 시니컬하게 조명한 무진형제의 ‘미래의 환영’을 만날 수 있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두고 예술가들이 얼마나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다양하게 맛볼 수 있는 전시다. 12월 17일까지. 무료.부산=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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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밑바닥의 아픔이 결국은 달콤한 인생을 만든다[영감 한 스푼]

    화가 정복수(66)의 개인전이 열리는 서울 종로구 갤러리 올미아트스페이스에 들어서면 47년 만에 다시 공개되는 작품이 있습니다. 정 작가가 부산 현대화랑에서 안창홍 작가와 1976년 함께 열었던 ‘2인전’에 단 한 번 전시됐던 작품, ‘청춘의 슬픔’입니다. 슬픈 표정을 하고 있는 여자. 그녀의 머리카락은 실처럼 굽이치고, 입은 옷의 무늬는 무언가에 베인 상처처럼 보입니다. 그녀의 주변을 간질이듯 눈물처럼 흐르는 실 가닥은 붙잡으면 허무할 지푸라기 같지만, 허공에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습니다.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듯 말입니다.가장 힘들었던 순간의 기록‘청춘의 슬픔’은 어떻게 47년 만에 이 전시장에 걸리게 된 걸까. 이번 전시 ‘자궁으로 가는 지도―I’은 정 작가가 지난 3, 4년간 그린 신작을 발표하는 자리입니다. 마지막 개인전을 3년 전 열었던 정 작가는 팬데믹을 지나며 “조용히 생각을 정리한다는 마음으로 작업해 왔다”고 했습니다. 전시는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작업에만 몰두하고 싶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그가 고민 끝에 갤러리 제안으로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작품을 세상에 보이라는 가족의 적극적 권유도 있었다고 합니다. 초기 작품을 함께 보여주면 좋겠다는 갤러리 요청으로 정 작가는 1970년대 작품 두 점, ‘청춘의 슬픔’(1976년)과 ‘자화상―아픔의 힘’(1975년)을 걸었습니다. 두 작품은 판매하지 않는 조건으로 말이죠. 작품의 사연이 궁금해졌고 정 작가에게 이 그림을 그릴 때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물었습니다. “물감을 살 돈도 부족했고 하루 한 끼로 버티면서 독학으로 그림을 그릴 때였죠.” 이때 그의 나이는 스무 살. 이 무렵 화구만 챙겨 무작정 상경한 그는 서울 동작구 흑석동 판자촌에 살게 됩니다. 어릴 적부터 함께 그림을 그린 친구의 배려로 마련한 거처였죠. 여러 가구가 함께 수도를 사용하는 허름한 집에서 그림만 그리던 시절 탄생한 것이 바로 두 작품입니다. ‘청춘의 슬픔’에서 굳은 여자의 얼굴 위편엔 ‘남여 직업알선’이라는 광고가 붙어 있습니다. 광고 속엔 ‘접대부’, ‘공장부’ 같은 직업 설명이 적혀 있습니다. 사회라는 건 무엇이고 그 속에서 부속품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의 인간성은 무엇일지 생각하게 만드는 배치입니다. 사회 속에서 타협되는 개개인의 맥락과 감정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로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회 전체를 부정하는 메시지는 아닙니다. 그의 자화상은 ‘아픔의 힘’을 이야기합니다. 사회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되새기며 느끼는 아픔이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달콤한 삶에 치러야 할 대가흑석동 판자촌 집에서 정 작가를 미술계에 강력하게 각인시킨 작품도 탄생했습니다. 바로 1979년 서울 종로구 동숭동 청년작가회관에서 열린 ‘바닥畵(화)―밟아주세요’에 선보인 바닥화입니다. 전시장 바닥에 벌거벗은 채 고함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고, 관객들은 그 위를 밟고 지나가면서 그림을 감상했습니다. 지금은 작가들이 다양한 설치 방식을 구사하지만, 당시에는 ‘신기한 그림’으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지역 상인들에게 “요상한 그림이 있다더라”는 입소문이 나 구경꾼이 몰리기도 하고, 수상한 분위기가 난다고 여긴 경찰이 전시장에 와 감시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이상한 그림’, ‘기괴한 그림’이라는 반응은 여전히 정복수 작품에 붙는 수식어이자,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해’입니다. 정 작가가 바닥화를 그린 것은 신기함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처절한 아픔이 담긴 현실’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서양 미술의 아류가 되고 싶지 않았다”고 바닥화를 그린 이유를 설명합니다. 천장화가 신을 위한 것이라면 벽에 거는 그림은 권력자를 위한 것이기에 평범한 사람을 위한 그림으로 바닥화를 그렸다는 것입니다. 그 후로 이어진 정복수의 ‘몸 그림’들은 기존에 없던 시각 언어를 찾아가려는 노력의 결과물들이었습니다. 머리카락도 없고, 장기가 드러나고, 때로는 팔다리도 없는 몸 그림을 처음 보면 놀라고 당황스러운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선입견을 버리고 가만히 보면 이 몸들은 결국 인간의 삶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를테면 잘린 손가락, 알록달록한 응어리, 구불거리는 뱀은 살면서 모든 사람이 겪는 아픔입니다. 중요한 건 그 아픔들은 외면하고 감춰야 할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그랬을 때 온전한 아름다움인 ‘자궁’으로 향할 수 있다는 것을 그의 작품은 말하고 있습니다. 정 작가는 그것을 ‘달콤한 삶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라고 설명합니다. “산다는 게 아름답고 좋고 달콤한 것도 많죠. 그러나 이를 위해 우리 모두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잘린 손가락과 그림 속 몸에 새겨진 각오와 다짐들은 그런 삶의 고통, 어마어마한 대가를 담아낸 것입니다. 그 모든 과정이 자궁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청춘을 지나 그것을 더 넓은 눈으로 담아내고 있는 것을 1970년대와 2020년대의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 작가의 신선한 작품과 함께 ‘자궁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가 보세요. 전시는 11월 1일까지입니다.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금요일 오전 7시 발송됩니다. QR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하시면 이메일로 먼저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 2023-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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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노력이 유전자를 바꾼다

    인간의 유전자는 우리가 살게 될 운명을 그려 놓은 지도일까, 아니면 노력과 극복으로 바꿀 수 있는 밑그림일까. 기존 유전학은 찰스 다윈(1809∼1882)의 진화론에 근거해 모든 것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고 봤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후성유전학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판도가 바뀌었다. 모든 생명체는 마주한 환경 요인을 극복하려 한다. 이는 유전자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저자는 개개인의 노력이 유전자는 물론이고 인간의 운명까지 바꿀수 있다는 매력적인 담론을 소개한다. 후성유전학은 타고난 유전자가 환경과 경험에 따라 그 형질이 달라지고 심지어 유전까지 되는 현상을 연구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 몸에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시스템이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우리 몸에 저장된 수많은 유전 정보를 필요에 따라 활성, 비활성화하는 이 시스템을 ‘유전자 스위치’라고 설명한다. 이 스위치를 끄고 켜는 것에 따라 유전 형질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총 12개의 장으로 구성된 책은 다윈의 후광에 밀렸던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1744∼1829)의 획득형질 유전설(후천적으로 획득한 형질이 후대에 유전된다는 주장)을 재조명하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매우 높은 가지에만 나뭇잎이 남아 있어 위협을 받는 기린 집단이 있을 때, 다윈의 진화론은 목이 길게 태어난 돌연변이 기린이 살아남아 유전적 형질을 전해준다고 본다. 이에 반해 라마르크는 일부 기린이 살아남기 위해 유전자 스위치를 켜서 긴 목이라는 유전적 형질을 획득하고 이를 자손에게 전달한다는 식이다. 같은 유전자를 타고난 일란성 쌍둥이의 삶이 왜 달라지는지 등 후성 유전의 여러 가지 예도 소개한다. 특히 유아기에 겪은 경험으로 생긴 후성유전적 변화가 뇌에 각인되고 이것이 자손에게까지 유전될 수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성장 환경이 미치는 막대한 영향이 유전학적으로 확인되는 대목이다. 저자는 연세대 시스템생물학과 교수로 1998년 후성유전학 연구를 시작해 2002년부터 국립암센터에서 후성유전조절과 암 발생 관련성을 연구했다.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상세한 설명과 함께 도표를 곁들였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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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밑바닥 인생, 잘린 손가락…아픔과 슬픔이 달콤한 인생을 만든다 [영감 한 스푼]

    화가 정복수(66)의 개인전이 열리는 서울 종로구 갤러리 올미아트스페이스에 들어서면 4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작품이 있습니다. 정복수가 부산 현대화랑에서 안창홍 작가와 1976년 함께 열었던 ‘2인전’에 단 한 번 전시됐던 작품, ‘청춘의 슬픔’입니다.슬픈 표정을 하고 있는 여자. 그녀의 머리카락은 실처럼 굽이치고, 입은 옷의 무늬는 마치 무언가에 베어 벌어진 상처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주변을 간질이듯 눈물처럼 흐르는 실 가닥들은 붙잡으면 허무할 지푸라기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허공에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습니다.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가장 힘들었던 순간의 기록‘청춘의 슬픔’은 어떻게 40여 년 만에 이 전시장에 걸리게 된 걸까. 이번 전시 ‘자궁으로 가는 지도 - I’는 정복수 작가가 지난 3-4년간 그려온 신작을 발표하는 자리입니다. 마지막 개인전이 3년 전이었던 정복수 작가는 팬데믹을 지나며 “조용히 생각을 정리한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해왔다”고 했습니다. 전시를 염두에 두면 다른 생각들이 많아지니, 그런 것들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작업만 몰두하고 싶었다는 이야기입니다.그런 그가 고민 끝에 갤러리의 제안으로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작품을 세상에 보이라는 가족의 적극적 권유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가운데 초기 작품을 함께 보여주면 좋겠다는 갤러리 요청으로 정 작가는 70년대 작품 두 점, ‘청춘의 슬픔’(1976년)과 ‘자화상 - 아픔의 힘’(1975년)을 걸었습니다. 이 두 작품은 판매하지 않는 조건으로 말이죠.모든 작가가 약간은 그런 생각을 하겠지만, 정 작가는 특히 작품이 판매되는 것을 평소 불편하게 느껴오곤 했습니다. 그런데다 아예 판매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특별한 애착이 있기 때문으로 짐작됩니다. 작품의 사연이 궁금해졌고 정 작가에게 이 그림을 그릴 때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물었습니다.물감을 살 돈도 부족했고 하루 한 끼로 버티면서 독학으로 그림을 그릴 때였죠.이때 그의 나이는 스무 살이었습니다. 주변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이 무렵 화구만 챙겨 무작정 상경한 그는 흑석동 판자촌에 살게 됩니다. 어릴 적부터 함께 그림을 그려 온 친구의 배려로 마련한 거처였죠.수도를 여러 가구가 함께 사용했던 허름한 집에서 하루 종일 그림만 그리던 시절 탄생한 것이 바로 두 작품인 셈입니다. ‘청춘의 슬픔’에서 굳은 여자의 얼굴 위편엔 ‘남여 직업알선’이라는 광고가 붙어 있습니다. 광고 속엔 ‘접대부’, ‘공장부’ 같은 직업 설명이 적혀 있습니다.사회라는 건 무엇이고 그 속에서 부속품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의 인간성은 무엇일지 생각하게 만드는 배치입니다. 사회 속에서 타협되고 마는 개개인의 천차만별인 맥락과 감정들도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로 느껴집니다.그러나 이것이 사회 전체를 부정하는 메시지는 아닙니다. 그의 자화상은 ‘아픔의 힘’을 이야기합니다. 사회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되새기며 느끼는 아픔이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 달콤한 삶에 치러야 할 대가이 집에서 정 작가를 미술계에 강력하게 각인시킨 작품도 탄생했습니다. 바로 1979년 서울 종로구 동숭동 청년작가회관에서 열린 ‘바닥畵(화)―밟아주세요’에 선보인 바닥화입니다. 전시장 바닥에 벌거벗은 채 고함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고, 관객들은 그 위를 밟고 지나가면서 그림을 감상했습니다.지금은 작가들이 다양한 설치 방식을 구사하지만, 당시에는 ‘신기한 그림’으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지역 상인들에게 “요상한 그림이 있다더라”는 입소문이 나서 구경꾼이 몰리기도 하고, 수상한 분위기가 난다고 여긴 경찰이 전시장에 와 감시를 하고 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이상한 그림’, ‘기괴한 그림’이라는 반응은 여전히 정복수 작품에 붙는 수식어이자,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해’입니다.정 작가가 바닥화를 그린 것은 신기함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처절한 아픔이 담긴 현실’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서양 미술의 아류가 되고 싶지 않았다”고 바닥화를 그린 이유를 설명합니다. 천장화가 신을 위한 것이라면 벽에 거는 그림은 권력자를 위한 것이기에 평범한 사람을 위한 그림으로 바닥화를 그렸다는 것입니다.그리고 그 후로 이어진 정복수의 ‘몸 그림’들은 기존에 없던 시각 언어를 찾아가려는 노력의 결과물들이었습니다. 머리카락도 없고, 장기가 드러나고, 때로는 팔·다리도 없는 몸 그림을 처음 보면 놀라고 당황스러운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선입견을 버리고 가만히 보면 이 몸들은 결국 인간의 삶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이를테면 잘린 손가락, 알록달록한 응어리, 구불거리는 뱀은 살면서 모든 사람이 겪는 아픔입니다. 중요한 건 그 아픔들은 외면하고 감춰야 할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그랬을 때 온전한 아름다움인 ‘자궁’으로 향할 수 있다는 것을 그의 작품은 말하고 있습니다.정 작가는 그것을 ‘달콤한 삶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라고 설명합니다.산다는 게 아름답고 좋고 달콤한 것도 많죠. 그러나 이를 위해 우리 모두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잘린 손가락과 그림 속 몸에 새겨진 각오와 다짐들은 그런 삶의 고통, 어마어마한 대가를 담아낸 것입니다. 그 모든 과정이 자궁으로 향하는 길입니다.고통스럽고 힘들었던 청춘을 지나 그것을 더 넓은 눈으로 담아내고 있는 것을 1970년대와 2020년대의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정 작가의 신선한 작품과 함께 ‘자궁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가 보세요.※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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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 그리기를 밥보다 즐긴 소년, 알지만 몰랐던 장욱진을 만나다

    장욱진(1917∼1990)은 작고 소박한 그림을 그린 화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그의 회고전이 열린 적은 없었다. 2014년 개관한 경기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에서 여러 차례 기획전이 열렸고, 2017년에는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과 가나아트센터에서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 개최됐다. 서울 중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지난달 14일 개막한 첫 장욱진 회고전 ‘가장 진지한 고백’은 그간 축적된 장욱진 연구와 전시를 되짚는다. 1920년대 학창 시절부터 1990년 작고 때까지 60여 년간 시기별 장욱진의 미술 활동을 총망라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이 공동 주최하는 이번 전시는 유화 먹그림 판화 삽화 등 270여 점으로 구성됐다. 전시 준비 과정에서 밝혀진 장욱진에 관한 새로운 사실들도 알 수 있다.● “그림 그리기를 밥보다 즐겨”장욱진은 스물한 살이었던 1938년 10월 조선일보 주최 공모전에서 수상한 사실이 잘 알려져 있는데, 이전에도 최소 네 차례 유명 학생작품전에서 입선과 수상을 한 것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장욱진은 1932년 9월 동아일보 주최 학생작품전에 ‘야채’와 ‘풍경’을 출품해 입선했고, 같은 해 10월에는 ‘제4회 선만중등미술전’에서도 입선했다. 1933년 9월 경성 제2보고 3학년 재학 중에는 동아일보 주최 ‘제4회 작품전’에서 ‘다알리아’로 입선했다. 1938년 6월 동아일보 주최 ‘제7회 학생작품전’에서도 ‘정물’로 입상했다. ‘정물’은 동아일보 신문에 흑백 도판으로 실린 것이 확인돼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됐다. 이때 장욱진의 어머니가 아들에 대해 “그림 그리기를 밥보다 즐겼다”고 말한 것이 수상 인터뷰 기사에 실리기도 했다. 배원정 학예연구사는 “여러 자료를 통해 장욱진이 청·장년기 적극적으로 화단에서 활동했음을 알 수 있었다”며 “다양한 전람회와 단체에 성실히 참가하며 동시대의 보편성을 토대로 독자적 창작 세계를 모색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까치와 마을’, ‘가족’ 최초 공개전시는 크게 4부로 구성된다. 1부 ‘내 자신의 저항 속에 살며’에서 앞서 언급한 새롭게 밝혀진 초기 행적들을 확인할 수 있다. 2부 ‘발상과 방법: 하나 속에 전체가 있다’, 3부 ‘진眞.진眞.묘妙’, 4부 ‘내 마음으로 그리는 그림’으로 이어진다. 각각 장욱진 회화의 소재, 불교적 세계관과 철학적 사유, 1970년대 이후 노년기 그림 작업을 조명한다. 2부 전시에서 장욱진의 생전 마지막 작품인 ‘까치와 마을’(1990년)이 최초로 전시되며, 6·25전쟁 이후 가족의 생계를 위해 국제신보에 연재했던 ‘새울림’(글 염상섭, 삽화 장욱진) 삽화 56점도 처음 공개됐다. 또 장욱진 최초의 가족 그림으로 행방이 묘연했으나 전시 준비 과정에서 일본에서 발견된 ‘가족’(1955년)은 3부 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 장욱진 그림에서 ‘까치’는 그의 분신, ‘나무’는 온 세상을 품는 우주, ‘해와 달’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성의 매개체였다는 해석을 비롯해 작품에 담긴 불교적 주제를 조명한 것도 흥미롭다. 장욱진 작품 소장가 중 여러 명이 “불교 ‘금강경’을 알면 그의 그림을 다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미술 애호가로 알려진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이 소장한 작품 6점도 전시에 포함됐다. 다만, 본인의 요청으로 어떤 작품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전시는 ‘동심 가득한 예쁜 그림’이라는 평가를 넘어 작품 속에 담긴 진지한 고백을 전달하고자 애쓴다. 내년 2월 12일까지. 2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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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가운 유리 속에, 따뜻한 기억을 채워 넣다

    유리 위에 찍힌 손자국, 활자,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표면은 기억을 담고 있다. 한국 유리 공예 1세대 작가인 고성희 남서울대 유리세라믹디자인과 교수(62)의 개인전이 서울 강남구 청작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에서는 고 작가의 ‘기억 연습’ 연작 20여 점을 선보인다. 고 작가는 기억을 상상력의 원천으로 보고, 그것을 표현할 매개체로 활자를 선택했다. 처음에는 유럽 고물상에서 구한 납 활자를 활용했다. 그는 “납 활자를 처음 보면 차갑다는 느낌이 들지만 활자를 통해 텍스트를 생성하는 과정에서 더없이 따뜻한 감성과 감흥이 생겨난다. 그것이 대화의 매개체가 되기 때문이다. 활자는 조형적으로도 완결성을 지닌 데다 서사성까지 가져 완벽한 작품의 소재가 됐다”고 했다. 초기 납 활자들은 프랑스 파리 국립미술학교를 거쳐 체코, 독일 등의 여러 공방을 돌며 유리 조형을 배울 때 수집한 서너 주먹이 전부였다. 이를 모두 사용하고 더 이상 납 활자를 구하지 못했는데, 최근 경기 파주출판단지에서 새롭게 납 활자를 구하면서 이 시리즈가 이어질 수 있었다. 이 밖에도 작가는 유리에 손이나 천 조각으로 흔적을 남기거나, 자연적으로 갈라진 흙의 모습을 살려내는 방식으로 유리 속에 기억을 심어 넣는다. 그 과정은 유리 공예 기법인 ‘슬럼핑’ ‘캐스팅’으로 주로 이뤄진다. 우선 흙과 납 활자, 오브제 등으로 기본 형태를 제작한 다음, 이를 기반으로 석고 틀을 만든다. 이 틀에 다시 석고를 넣어 속 틀을 만든 뒤, 그 위에 유리를 올리고 700∼900도에 소성(燒成)한다. 3∼7일이 지나면 작품을 꺼낸 후 연마해 완성한다. 완성된 유리 작품의 아랫부분에 조명을 비춰 특유의 물성을 살리도록 연출하기도 한다. 국내에 유리 조형을 들여온 고 작가는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한 뒤 새로운 재료 연구를 하고 싶어 유럽으로 향했다. 프랑스 파리 국립미술학교 초청 학생을 거쳐 1990년대 중반 귀국해 홍익대 조소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남서울대 유리조형연구소장도 맡고 있다. 25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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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괴하고 낯설지만… 인간의 몸에 시대상 담아

    고통에 몸부림치는 형상, 고함치는 입, 장기가 훤히 보이는 몸까지…. 화가 정복수(66)는 독자적 조형 언어로 인간의 몸에 시대상을 담은 작품을 선보여왔지만, 미술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기괴함과 낯섦으로 다가오곤 했다. 그런 그가 3년 만에 서울 종로구 올미아트스페이스에서 연 개인전 ‘자궁으로 가는 지도―I’에서는 관객에게 좀 더 부드럽게 손짓하는 모습이 보였다. 40여 점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는 3년간 작업한 신작들이 처음 공개된다. ‘청춘의 슬픔’(1976년)은 과거 한 차례 전시된 후 40여 년 만에 공개돼 눈길을 끈다. 정 화백은 “전시를 여는 것도 스트레스니 조용히 생각을 정리해 보자고 마음먹고 작업해 왔다”며 “다시 작품을 보니 너무 부드럽게 됐다. 물감도 많이 쓰고 거칠게 하고 싶은데 작업은 언제나 내 맘대로 안 된다”며 웃었다. 그런데도 그의 작품들은 편하다기보다는 날 서 있는 쪽에 가깝다. 잘린 손가락, 손발 없는 몸, 리드미컬하게 반복되는 눈동자와 구불거리며 움직이는 뱀 등을 그림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작품의 제목은 역설적인, ‘자궁으로 가는 지도’다. 이에 대해 그는 “자궁은 모든 인간이 갈구하는 세계”라고 했다. “산다는 게 아름답고 좋고 달콤한 것도 많지만 그러기 위해 우리 모두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잖아요. 그 모든 과정이 자궁으로 향하는 길이라는 거죠. 잘린 손가락과 그림 속 몸에 새겨진 각오와 다짐들은 그런 삶의 고통, 어마어마한 대가를 담아낸 것입니다.” 최근 작품들은 그가 60여 년을 살아오며 겪은 희로애락을 ‘아름다운 자궁으로 향하는 길’로 표현하고 있다. 이에 비해 1970년대 작품 ‘청춘의 슬픔’과 ‘자화상―아픔의 힘’(1975년)은 그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그린 것으로, 그의 작품 세계에서 일종의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 이 무렵 정 화백은 찢어지게 가난해 물감도 부족하고, 하루 한 끼로 버티며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다. 1976년 화구만 챙겨 그림을 그리겠다고 무작정 서울로 왔던 그는 3년 뒤 서울 종로구 동숭동 청년작가회관에서 ‘바닥畵(화)―밟아주세요’를 연다. 이때 관객은 바닥의 그림을 밟고 그 위에 담배꽁초를 버리기도 했고, 동네 상인들은 ‘희한한 그림이 있다더라’며 몰려와 구경했다. 정 화백은 “과거 작품은 갤러리의 요청으로 몇 점 가져와 봤는데, 전시하고 보니 부드러운 가운데 나의 고통스러웠던 순간이 포인트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30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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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릉의 도전 정신… 숨은 매력의 발견

    시작도 끝도, 안도 밖도 없는 사막에 어느 날 검은 기름이 솟아난다. 이 기름을 탐내는 이들이 몰려와 모래 위에 선을 긋고, 사막은 우스꽝스러운 땅따먹기의 장이 된다. 이라크 모술 인근 어느 마을 어린이들의 연기와 목소리로 만들어진 이 영상은 벨기에 출신의 세계적 작가 프란시스 알리스의 ‘모래 위 선’(2018∼2020년)이다. 국내에서 처음 공개된 이 작품을 지난달 22일 서울도, 미술관도 아닌 강원 강릉의 신영극장에서 감상했다. 신영극장은 2012년 개관한 강원 지역 내 유일한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이다. 이 극장을 비롯한 강릉 곳곳에서 재단법인 파마리서치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제2회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GIAF) ‘서유록’이 열리고 있다. 서유록은 1913년 강릉에 살던 52세 여성 김모 씨가 서울을 돌아본 37일간의 여정에 대한 한글 기록이다. 박소희 예술감독은 “김 씨가 특히 여성 교육의 필요성을 언급해 인상 깊었다”며 “서유록의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전시를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올해 페스티벌에는 제55회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자인 티노 세갈을 비롯해 홍순명, 이우성, 고등어, 양자주, 로사 바바, 박선민, 임호경, 송신규, 흑표범 등이 참가한다. 강릉시립미술관은 물론이고 국립대관령치유의숲, 옥천동의 1950년대 양곡 창고, 동부시장 등 관광객이 알기 어려운 매력적 장소에 작품이 설치됐다. 29일까지. 무료.강릉=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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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라인 라운지]윤영경 개인전 ‘윈도 시너리’展

    윤영경 작가의 개인전 ‘윈도 시너리’(Window Scenery, 창문 밖 풍경)가 이달 17일부터 30일까지 서울 마포구 극동갤러리에서 열린다. 2020년 ‘비욘드’를 주제로 개인전을 열었던 작가는 올해에는 작업실 창문 밖 풍경을 소재로 시점과 구성을 변화해 여러 회화를 제작했고 그 중 16점을 선보인다.먹빛으로 그려진 그림 속 기둥처럼 뻗어 오른 나무는 오랜 세월을 이겨낸 강인함을, 사방에 흐트러진 풀은 생의 기운을 의미한다. 때로 나무와 풀이 실내로 들어와 초현실적 풍경을 만들기도 한다. 보통 먹그림은 종이를 흔히 사용하는데 캔버스를 이용한 작품도 볼 수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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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상미술 ‘단색화’ 이끈 박서보 화백 별세

    추상미술 ‘단색화’를 이끌며 한국 현대 미술에 획을 그은 박서보(본명 박재홍) 화백이 14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고인은 올해 2월 폐암 3기 진단을 받은 뒤에도 “캔버스에 한 줄이라도 더 긋고 싶다”며 작업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박서보재단(전 기지재단)의 이유진 상임이사는 “박 화백은 건강 악화로 이달 12일 입원한 뒤에도 ‘작업실에 쌓아 둔 캔버스에 배접(褙接)을 해두라’고 했다”고 말했다. 193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4년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1956년 당시 작가들의 등용문인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 반기를 드는 ‘반(反)국전 선언’을 하고 독립 전시를 열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유럽의 전후 추상미술인 앵포르멜 회화의 영향을 받은 연작 ‘원형질’, ‘유전질’을 발표하면서 추상 회화를 본격적으로 선보였다. 1975년 일본 도쿄화랑의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개의 흰색 전’을 전후로 단색조 작품을 잇달아 발표했다. 이 무렵 선을 긋는 행위를 되풀이한 대표작인 ‘묘법(描法·Ecriture)’ 시리즈도 시작해 재료와 색채를 바꾸며 40여 년간 작업을 이어갔다. 박 화백이 이끌었던 단색화는 2010년대 이후 국내 미술시장에서 주목받는 대표적인 장르가 됐다.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은 “한국의 단색화를 세계 미술계에 각인하는 작업은 박 화백이 있었기에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현대미술관과 일본 도쿄도 현대미술관,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 고인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윤진섭 미술평론가는 “장년에도 하루에 서너 시간만 자고 작업했던 박 화백은 삶 자체가 기(氣)였다”며 “장강(長江)과도 같은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고인은 1962∼1997년 홍익대 회화과 교수로 일했고, 1986∼1990년 미술대 학장을 지냈다. ‘홍대 미대 사단의 대부’로도 불렸다. 1970∼1977년 한국미술협회(미협) 부이사장, 1977∼1980년 미협 이사장을 지내며 미술 행정가로도 활동했다. 지난해 12월 박서보장학재단을 설립했고, 제주도에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건립되고 있다. 유족으로 부인 윤명숙 씨, 아들 승조 전 강원대 교수, 승호 박서보재단 이사장, 딸 승숙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17일 오전 7시. 02-2072-0292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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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색화’ 이끈 박서보 화백 별세… 90세까지 활동했던 그의 열정

    “나를 만나기 전에 ‘뿔 난 도깨비’ 같은 사람이라는 풍문을 들었을 겁니다.”빳빳한 중절모자에 위아래 색을 맞춘 양복. 두툼한 알반지를 낀 손에 쥐어진 지팡이 하나. 생전 박서보 화백의 존재감은 어디서든 상당했다. ‘화단의 멋쟁이’로 불린 고인의 맵시는 매번 달랐지만, 부리부리한 눈으로 좌중을 둘러보며 큰소리치는 도깨비 같은 카리스마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기지재단은 최근 폐암 3기 판정받고 투병 중이던 박 화백이 14일 오전 별세했다고 밝혔다. 향년 92세.193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4년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추상미술을 이끌었다. 1956년, 25살에 기존의 가치와 형식을 부정하면서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고인은 “반(反) 국전 선언을 신호탄으로 현대미술 운동을 벌이면서 별의별 ‘낮도깨비 짓’을 했다. 도깨비라 별명 불러주는 건 양반이었다. ‘천하의 몹쓸 놈’부터 ‘빨갱이’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서보(본명 박재홍)라는 예명은 이 즈음부터 함께였다. 1955년, 동료이자 한학에 조예가 깊었던 맹인재(93)가 두 개의 아호를 가져왔다. 수헌(樹軒)과 서보(栖甫). 회화과 동료였던 이원용(93)이 수헌을 골랐다. 서보로서의 인생이 시작됐다.국전과의 결별을 선언한 후 고인은 서울 종로구 관훈동에 작은 화실을 열었다. 가장 처음 화실을 찾은 학생은 서울올림픽 미술감독으로 잘 알려진 이만익(1938~2012). 그 후로도 김종학(86), 윤명로(87), 방혜자(1937~2022) 등 유능한 제자들이 고인을 스승으로 모셨다. 고인의 제자였던 이태현 화백(83)은 “예나 지금이나 아주 칼 같고 촌철살인이었다. 그러나 제자를 위하는 말이란 걸 다들 알고 있었기에 미워하기보다는 존경했다”고 말했다.축적된 시간만큼 예술적 사유도 깊어갔다. 1970년대, 고인의 ‘묘법’(描法·Ecriture) 시리즈가 세상에 나왔다. 말 그대로 선을 긋는 행위의 결과물이다. 고인은 캔버스에 물감으로 밑칠하고 그것이 채 마르기 전에 연필로 선을 긋고 또 물감을 지우고 다시 그 위에 선을 긋는 행위를 되풀이해 작품을 완성했다. 1980년대 이후 본격화된 ‘후기 묘법’에서는 종이 대신 한지 위에 고도의 절제된 세계를 표현했다.“나는 그림 그리기가 수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색칠과 선 긋기를 반복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내는 깊은 맛은 서양인들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것입니다.”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단색화는 박 화백 회화 인생의 정점을 열었다. 고인의 소속 갤러리인 국제갤러리는 “도쿄도 현대미술관, 프랑스 퐁피두센터, 아랍에미리트 구겐하임 아부다비, 홍콩 M+미술관 등이 소장하고, 해외 유수의 비엔날레와 아트페어의 러브콜을 받는 등 한국 미술의 국제화를 이끌었다”고 평가했다.고인은 오랫동안 홍대 미대 교수로 재직해 ‘홍대 미대 사단의 대부’로도 불렸다. 1962년 처음 강단에 선 후 1997년까지 홍익대 미술대 교수로 있었으며, 홍익대 미술대 학장(1986~1990)을 역임했다. 예술가이자 교육자, 행정가로 두루 활동해온 그는 1984년 국민훈장 석류장, 1994년 옥관 문화훈장, 2011년 은관 문화훈장에 이어 2021년 금관 문화훈장을 받았다.자화자찬 화법의 일인자기도 한 고인은 “외국에서는 나를 한국 현대미술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사뭇 뻔뻔해 보이지만, 그의 숨은 노력이 자랑의 근거다. 아흔이 넘어서도 매년 국내외 개인전을 열 정도였다. 고인은 아흔을 앞둔 당시 “지금 한창 숙성 중”이라고 자신을 표현했다. “지구에 살아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며 최선을, “앉아서 추락할 수는 없다”며 변화를 꾀하면서 말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윤명숙 씨와 2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이다. 02-2072-2020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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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 유영국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한 공예가[영감 한 스푼]

    단단한 석회석으로 만든 항아리. 은으로 만든 뚜껑에는 바람 무늬와 용 조각이 얹혀있고, 이 항아리를 담은 참죽나무 상자의 네 귀퉁이에는 구름 장식이 달려 있습니다. 용, 바람과 구름. 이 장식들은 세상을 떠난 이를 추모하고, 생을 다한 육신이 하늘로 잘 올라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이 물건은 장례 의식에 사용되는 뼈 항아리, 골호(骨壺) 입니다. 이것을 정성스레 만든 사람은 1세대 공예가 유리지(1945~2013)이며, 아버지 유영국(1916~2002)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건강이 좋지 않았던 아버지의 마지막을 위해 직접 만들었던 것이지요.생각만 해도 마음 아플 부모의 마지막을 담담하게 준비했던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 작품 세계를 소개합니다.아픔을 치유하는 아름다움1960년대 미술대학을 다니고 1970년대 미국 유학 생활을 했던 유리지는 1세대 모더니즘 공예가로 꼽힙니다. 그런 그가 장례용품을 제작하기 시작한 것은 아버지 유영국이 말년을 준비하던 2000년 무렵이라고 합니다.이전까지는 금속을 재료로 한 일상용품이나 서정적인 오브제를 만들었던 그는, 한국 전통 장례문화를 근거로 한 골호, 상여, 사리구, 부도 등의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대해 2007년 ‘유영국저널’에 실린 이인범 상명대 교수와의 대담에서 유리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경의를 표한다기보다도 아버지가 오래 편찮으신데 사람이 죽는 건 다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너무 안타까운데 뭘 해드릴 것 없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시작이 된 거지요.”1977년에는 다리가 아픈 아버지를 위해 ‘지팡이’도 제작했던 그녀가 장례용품에 도전한 건 단순히 가족에 대한 사랑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골호와 사리함은 죽은 자가 현세에서 마지막으로 사용하는 그릇이므로 그 시대의 가장 정교한 공예 수준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습니다.즉 마지막인 만큼 슬픔과 아쉬움을 담아 정성을 다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또 다른 차원의 공예를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해 작업 노트에서는 이렇게 언급합니다.“장례는 죽은 자를 위한 의례이지만 산 자의 손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죽은 자와 산 자의 관계를 보여준다. 공예가는 이러한 절차에 개입해 각자의 정서적, 심미적 욕구를 충족시키며 산 자가 떠나는 자를 아름답게 보냄으로써 그 죽음을 치유하도록 도울 수 있다.”삶 그 자체였던 공예그런 그의 대표작 중 하나는 1987년 작품 ‘바람에 기대어’입니다. 1980~90년대 구름, 바람, 바다 등 자연의 모습을 추상적으로 형상화한 장신구, 은기, 조각 등을 그는 제작했습니다. 자연 중에서도 바람을 가장 좋아했다는 유리지는 작품을 통해 산들 바람을 맞는 것 같은 부드럽고 평화로운 정서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그녀가 자연을 영감의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자연 풍경에서 출발해 추상화로 나아간 유영국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에 대해 생전 유리지는 “아버지 작품과 제 것을 의식적으로 연결시켜 생각해본 적은 없다”면서도 “아버지가 색과 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나 역시 자연과 사람의 삶을 연관시켜 작품을 구성할 때 공간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고 말합니다. 그런 것을 배웠다기보다는 자연스레 몸에 밴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1980~90년대 무렵 유리지의 작품은 생활용품보다는 서양의 현대 공예, 즉 예술품에 가까운 공예 개념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다 2000년대부터 생활에 눈을 돌려 장례용품을 새롭게 재해석하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합니다.그뿐만 아니라 1980년대 후반부터는 동생 유자야에게 칠보 은기 제작 사업을 권하고, 유자야는 금속 공예 전문점인 ‘고은보석’을 2014년까지 운영합니다. 1978년 동료 금속 공예가 김승희와 함께 ‘금사랑’이라는 금속공예 갤러리 겸 상점을 개점한 적도 있고요. 1987년 그는 개인전 도록에서 “나의 작품이 현대의 생활공간에서 존재할 수 있는 의식을 위한 소도구가 되기를 원한다”고 밝혔습니다.또 2004년에는 자신의 작업실 일부를 ‘치우금속공예관’으로 만들어 금속 공예를 알리는 데 힘썼습니다. 그러다 2013년 2월 백혈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젊은 공예가를 양성하겠다는 그녀의 꿈은 갑자기 중단되기에 이르렀습니다.그런 유리지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그의 모친 김기순 씨와 동생 유자야 유진 유건 씨가 뜻을 모았습니다. 서울시에 30년간 9억 원을 기증해 ‘서울시 유리지공예상’을 제정하기로 했습니다. 유리지공예상 기자간담회에서 유자야 씨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언니는 현대 금속 공예의 개척자이면서 교육자였습니다. 예술가의 길에 너무나도 철저했던 저의 아버지는 그 시절 여성은 예술가와 결혼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언니는 예술가의 길을 택했고 그러니까 공예와 결혼을 한 셈입니다.그런 언니는 불우한 학생들을 보면 늘 도와주고 싶어 했고, 젊은 공예가를 양성하는 것이 큰 꿈이었습니다. 그 꿈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 것을 애석하게 생각해 상을 제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이 땅의 공예인들이 이 상의 제정 취지를 이해하고 공모에 응해주시길 바랍니다.“최근 서울시에서 공고를 시작한 유리지공예상은 12월 11일부터 내년 1월 15일까지 공모를 받습니다. 전국 단위 격년으로 운영되며 1회 시상식은 내년 8월 17일(유리지 작가의 생일)에 열립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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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품 명화’ 생생한 거장 손길에 36만명 발길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의 소장품을 한국에서 만날 수 있었던 국립중앙박물관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전이 누적 관람객 36만1866명을 기록하며 마무리됐다. 9일 막을 내린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이 개최한 특별전 중 세 번째로 많은 관람객이 찾은 것으로 확인됐다. ‘책에서만 보던 명화를 실제로 보는 기회’, ‘서양 미술사 교과서를 보는 듯하다’는 호평을 받은 전시는 이제 홍콩 고궁박물관으로 이동해 11월 22일부터 순회전을 이어간다.● 회차별 입장 제한에도 역대 3위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는 6월 2일 개막해 10월 9일까지 129일간 이어졌다. 하루 평균 2800명이 방문했다. 당초 이번 전시는 2016년 ‘이집트 보물전―이집트 미라 한국에 오다’전(34만3547명) 이후 최다 관객을 기록해 역대 4위를 할 것으로 전망됐다. 실제 결과는 ‘이집트 보물전…’을 뛰어넘어 국립중앙박물관이 개최한 특별전 중 세 번째로 많은 관객이 찾은 전시가 됐다. 현재까지 가장 많은 관객이 찾은 특별전은 2009년 열린 ‘이집트 문명전―파라오와 미라’(44만8208명)전이다. 그다음으로는 2014년 ‘오르세미술관전: 근대 도시 파리의 삶과 예술―인상주의, 그 빛을 넘어’전(37만3831 명)이 2위에 올랐다.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이 회차별 입장 가능한 관람객 수를 제한하는 상황에서 열린 것을 감안하면 반응이 더욱 뜨거웠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30분 회차당 관람객 수를 최대 200명으로 제한했다. 최근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최신 기술을 활용한 몰입형 전시나 미디어 아트 전시가 많아지고 있지만, 걸작을 원화로 감상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여기에 카라바조, 모네, 렘브란트 등 국내에 오기 어려운 주요 거장의 작품은 전시가 끝나면 다시 보기 어렵다는 점도 관객을 모은 요인으로 보인다.● N차·장시간 관람객 많아내셔널갤러리 명화전을 기획한 선유이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를 찾은 관객의 특징으로 N차 관람 및 장시간 관람객이 많았다는 점을 꼽았다. 선 학예연구사는 “관객 데이터를 추가 분석해 봐야 하지만, 개별 관객 후기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작품 수가 52점으로 많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3시간 넘게 관람했으니 관람 시간을 넉넉히 잡아야 한다’거나 ‘여러 번 반복해 관람했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했다. 친절한 작품 해설과 관람에 도움을 주는 영상 해설도 호평을 받았다. 통상 전시에서 일부 작품에만 해설이 있고 나머지 작품에는 작품 제목과 연도 등 간단한 정보만 표기하는 것과 달리, 이번 전시는 모든 작품에 해설을 표기했다. 도박 빚을 갚기 위해 그림을 그려야 했던 귀도 레니의 사연, 폴 세잔과 에밀 졸라의 우정이 담긴 그림 등 뒷이야기를 담은 ‘추가 설명 카드’까지 덧붙여져 자세한 감상을 원하는 관객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했다. 무엇보다 ‘작은 내셔널갤러리를 보여주겠다’는 콘셉트에 따라 서양미술사에 충실한 전시 흐름의 교육적 효과도 컸다. 선 학예연구사는 “유럽 거장의 명화를 통해 중세 이후 500여 년간 그림이 권력자를 위한 수단에서 모두가 즐기는 예술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했다”며 “결국은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관람객이 공감하고 찾아줬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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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폴 고갱의 이상한 맥주잔이 주는 무한한 감동[영감 한 스푼]

    남태평양 타히티섬으로 간 후기 인상파 화가로 익숙한 폴 고갱(1848∼1903)은 원래 프랑스 파리에서 고소득을 올리는 주식 중개인이었습니다. 부업이었던 예술 작품 거래로도 짭짤한 수익을 내고 있었죠. 그러다 1882년 파리 증권거래소가 폐쇄 직전까지 가는 등 프랑스 경제가 최악의 상황을 맞으면서 그도 위기에 처합니다. 이런저런 일을 해봤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고, 결국 고갱은 1885년 덴마크에서 함께 있던 가족을 뒤로하고 홀로 파리로 떠나 전업 화가가 됩니다. 5년 뒤 고갱이 그린 정물, ‘창문 앞 과일 그릇과 맥주잔’은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수수께끼 가득한 그림가장 먼저 거슬리는 건 오른쪽 아래 그려진 맥주잔과 칼입니다. 그 옆 과일은 입체감을 뽐내며 그림 밖으로 쏟아질 듯 묘사되어 있는데, 맥주잔 혼자 어두운 방 안에 놓인 듯 짙은 색입니다. 빛이 전혀 없어 마치 종이를 오려서 세워 놓은 듯 납작하게 그려져 있죠. 그 옆 칼 역시 기울어진 각도가 아니었다면 입체감을 전혀 느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과일이 있는 부분은 앞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보이는 반면 칼과 잔이 놓인 부분은 푹 꺼져 낯선 느낌을 자아냅니다. 게다가 테이블 바닥을 보면 그림은 더욱 이상해집니다. 맥주잔은 납작해서 같은 눈높이에서 본 모양인데, 테이블은 상판을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입니다. 만약 이 그림이 사진이라면 낭떠러지처럼 그려진 상판에 놓인 모든 것은 아래로 흘러내려야만 합니다. 또 이렇게 테이블 뒤편에 바로 창이 있다면 테이블 위에 놓인 사물들은 역광을 받고 있겠죠. 맥주잔처럼 시커멓게 칠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사과는 오른쪽 위에서 빛을 받아 양감을 마음껏 뽐내고 있습니다. 마치 ‘빛이 어디에서 오든 난 이 각도가 제일 예뻐’ 하고 주장하는 것처럼 말이죠. 고갱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었던 걸까요?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세잔고갱보다 10년 앞서 폴 세잔(1839∼1906)은 ‘과일 접시가 있는 정물’(1879∼1880년)을 그립니다. 이 그림도 재밌는 포인트가 여러 가지 있습니다. 쏟아질 것 같은 테이블의 각도, 그 위 제멋대로 눈높이에서 그려진 사물들, 그림 아래 중앙에 굵게 그려진 검은 선까지. 균형 맞추기 게임을 하듯 치밀한 계산 위에 놓여 있습니다. 고갱 정물과 공통점을 찾자면 비스듬히 놓여 시선을 앞으로 잡아당기는 나이프, 납작해 벽지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유리잔이 눈에 띕니다. 고갱은 주식 중개인으로 일하던 1880년대 세잔의 작품 6점을 구입합니다. 그중 하나가 앞서 언급된 정물이었는데, 이 작품에 대해 ‘최고의 보석,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작품’이라고 표현했다고 합니다. 고갱은 1883년 이혼하면서 갖고 있던 많은 작품을 팔았는데, 이 작품만큼은 계속해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식 중개인으로 사는 삶을 버리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브르타뉴로 떠난 뒤 우리가 지금 만나는 정물을 그리게 된 것이죠. 고갱의 또 다른 초상화에서도 이 정물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칼과 유리잔의 정반합은 이 그림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죠. 고갱은 세잔의 균형 게임에 커다란 인물을 더해 자신만의 버전으로 더욱 확장해 재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고갱과 세잔이 왜 인상주의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후기 인상주의를 열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클로드 모네를 비롯한 인상주의 작가들은 우리의 눈을 ‘빛을 받아들이는 기관’으로 보고, 빛의 변화에 따라 바뀌는 시각적 색채와 이미지를 그대로 표현하고자 했죠. 여기서 더 나아가 세잔은 우리의 눈을 ‘마음의 창’이라고 보았습니다. 빛이 역광으로 비치더라도 내 마음속 사과는 오른쪽 위가 반짝이는 예쁜 사과일 수 있다는 것. 유리잔을 테이블 위에 놓고 보면 동그란 윗부분만 보일지라도, 내 마음속에서는 옆선이 선명하게 보이는 납작한 도형일 수도 있다는 것이죠. 이렇게 세잔이 과감하게 내디딘 걸음을 고갱은 마음으로 느끼고 있었기에, 작품을 진심으로 즐기고 또 나아가 더 이상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던 오래된 일상을 뒤로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열어젖힐 수 있었습니다.사소한 것이 주는 무한한 감동영화 ‘마지막 4중주’(2013년)에는 첼로 거장 파블로 카살스(1876∼1973)가 젊은 연주자에게 울림 있는 말을 전한 일화가 나옵니다. 자신이 무능력하다고 생각하는 젊은 연주자가 “내가 학생일 때 당신 앞에서 연주를 했고, 칭찬까지 해주었다”고 말하고는, 카살스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그때 왜 그런 무책임한 말을 했느냐”고 항의합니다. 그러자 카살스는 곧바로 오래전 젊은이의 연주를 재현하며 “당신의 이 부분이 좋았다는 걸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며 “나는 작은 것에서도 감동과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이상하게 놓인 나이프, 테이블 아래 시커먼 선, 납작한 맥주잔…. 그림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은 이런 사소한 것들입니다. 비록 사소하고 이상해 보여도 고갱이 그랬던 것처럼, 마음의 문을 열고 보면 그곳에서 무한한 감동과 기쁨이 쏟아져 나올 수 있으니까요. 고갱의 납작한 맥주잔에서 오늘은 그런 즐거움을 느껴보는 것 어떨까요?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금요일 오전 7시 발송됩니다. QR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하시면 이메일로 먼저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 2023-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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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족 뜻 모아… ‘서울시 유리지공예상’ 제정

    한국의 1세대 금속공예가 유리지(1945∼2013)는 오랫동안 편찮았던 아버지 유영국(1916∼2002)의 마지막을 준비하며 ‘골호―용띠를 위한, 골호상자’를 2001년 만든다. 은과 석회석으로 만든 골호와 참죽나무로 된 골호상자 위에는 구름 모양의 장식이 있다. 망자를 좋은 곳으로 인도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아버지 유영국이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추상화를 그려냈다면, 유리지는 구름과 바람을 토대로 현대 금속공예의 장을 열었다. 1981년 모교인 서울대에서 교편을 잡고 30년간 후학을 양성했다. 2004년에는 작업실 한쪽에 ‘치우금속공예관’을 열어 금속공예를 알리는 데 힘썼다. 2013년 2월 백혈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를 기리는 ‘서울시 유리지공예상’이 제정됐다고 서울공예박물관이 8일 밝혔다. ‘유리지공예상’ 제정에는 젊은 공예가를 양성하려 한 고인의 꿈을 이뤄주자는 유족의 뜻이 반영됐다. 모친 김기순 씨와 동생 유자야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이사, 유진 KAIST 명예교수, 유건 시상건축 대표가 뜻을 모아 서울시에 30년간 9억 원을 기증하기로 했다. 유자야 이사(75)는 “언니가 떠나고 형제들이 언니를 위해 무언가 하고 싶다는 의견을 모았다”며 “공예 발전을 위해, 작은 물건이라도 사람들이 한국의 것을 썼으면 하는 마음에 상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유리지 공예상’은 12월 11일부터 내년 1월 15일까지 공모를 받는다. 1차 서류심사로 결선 진출작 20건을 선정하고, 2차 심사에서 우승작을 선정한다. 전국 단위 격년으로 운영되며 홀수 연도에 모집 공고와 서류 접수를, 짝수 연도에 심사 및 시상식과 기념 전시를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연다. 1회 시상식은 내년 8월 17일(유리지 작가의 생일)에 열린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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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계 큐레이터가 맡은 몬트리올 비엔날레 현장 가보니[영감 한 스푼]

    현대미술을 비롯한 문화·예술의 다양한 영역에서 ‘정체성’이라는 주제는 끊임없이 다뤄지고 있습니다.‘세계에서 가장 비싼 사진’을 찍는 부터, 에서 영감을 얻은 거대한 거미 엄마, 흑인 여성이 겪은 차별의 역사에 자신의 모습을 겹친 카라 워커의 설탕 조각까지.많은 예술가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삶의 많은 문제를 이해하는 실마리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출발점이 되고 있습니다.그런데 거의 모든 사람이 비슷한 얼굴을 하고, 같은 문화를 공유하며, 동일한 정체성을 가졌다고 여겨지는 한국 사회에서 ‘정체성’이라는 말은 다소 멀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 역시 그랬다는 걸 이번 캐나다 몬트리올에 다녀오면서 알게 되었는데요.한국계 큐레이터인 한지윤 씨가 예술 감독을 맡은 제18회 모멘타 비엔날레를 지난달 25일부터 29일까지 다녀왔습니다. 현장 분위기를 소개합니다.약탈한 땅 위 이민자의 나라우리 미술관은 동의 없이 넘겨진 토착민의 땅 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모인 곳의 땅과 물은 카니엔‘케하’카(Kanien’kehá:ka Nation)가 주인이었습니다. (…) 우리는 토착민과 다른 여러 사람들이 이 땅과 맺은 과거, 현재, 미래의 연결 고리를 존중합니다.”몬트리올의 한 대학 미술관에서 열리는 영화 상영회에 참가했습니다. 진행자가 마치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듯 저 말을 읊고 난 뒤에야 행사가 시작됐습니다. 상영회는 물론 전시 개막, 강연 등 많은 공공 행사에서 진행자들은 이러한 ‘선언문’으로 행사를 시작했습니다.‘땅에 관한 인사’(Territorial Acknowledgment)로 불리는 이 선언문은 캐나다에서 과거 자행된 토착민에 대한 차별과 박해가 사회적 문제가 된 2015년경부터 퍼져나갔다고 합니다. 이 문장 속에서 토착민, 프랑스인, 영국인 그리고 아시아인과 남·북·미 대륙 출신까지 실로 다양한 사람들에 모여 사는 캐나다의 상황을 그려볼 수가 있죠.이런 몬트리올에서 올해 열리는 모멘타 비엔날레의 주제는 ‘가면극: 변신에 끌리다’였습니다. 한지윤 예술 감독은 이 주제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가면극은 사회의 정해진 질서를 잠시 동안 거꾸로 뒤집어 버린다. 가면극은 관습을 바꾸고, 차이를 유보하며, 경계를 허문다. 고대 관습에서 계절이 바뀔 때와 같은 기간에 열린 가면극은 사람들을 ‘가장’하도록 만든다. 메이크업을 하고, 위장하며,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그 역시 이런 주제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한지윤 씨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캐나다 몬트리올대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1920, 1930년대 초현실주의 사진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습니다. 지금은 프랑스 퐁피두센터 사진 부문 초청 연구원으로 파리와 몬트리올을 오가며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으로 태어났지만, 한국에서 살아본 경험은 없습니다.고정된 관념에서 벗어난 이야기들그녀의 말에서 이해할 수 있는 주제 의식은 결국 고정된 관념에서 벗어나 ‘다른 존재가 되기’를 시도하는 여러 예술적 시도를 보여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주제 아래 몬트리올 시내 16곳에서 23명의 예술가가 개인전 형태로 작품을 선보였습니다.그중 일부 작품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국주의에 희생된 백인 공동체- 레미 벨리보 ‘역사의 피부 속에서. 조앙 뒬라지 되기’(2023)프랑스 출신 캐나다 이주민이지만, 프랑스와 영국이 캐나다에서 식민지 쟁탈전을 벌일 때 어느 국가의 전선에도 참여하지 않기로 해 강제 이주와 박해를 당한 ‘아카디아인’을 소재로 한 작품. 그들이 1960년대 만들었지만 지금은 잊힌 ‘아카디안 록’을 작가가 상상력을 더해 복원.* 세네갈로 건너온 베트남 여성들의 사연-투안 앤드루 응우옌 ‘조상의 유령이 되다’(2019)20세기 초 베트남에 주둔했던 세네갈 병사와 베트남 여성들이 이룬 가정 내 사연을 다룬 작품. 이때 세네갈은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당했고, 세네갈의 젊은이들이 프랑스군에 징병 돼 베트남으로 가야 했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혼혈 후손들은 차별과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작가는 세네갈 다카르에서 이들을 만나 취재한 이야기를 4채널 영상 픽션으로 재구성했다.이밖에 공권력의 차별적 폭력을 풍자한 히토 슈타이얼의 설치 작품 ‘소셜심’(2020), 환경·정체성 이슈를 다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일부가 전시됐던 나오미 링콘 가야르도의 ‘예감, 종말의 가면극 3부작’, 앵무새의 말소리를 대사로 활용한 마라 이글의 애니메이션 ‘프리티 토크’ 등이 있었습니다.대부분 작품들은 잊힌 존재,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공동체의 입장이 되어서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 형태의 것이었습니다. 유연한 태도가 ‘우리’를 엮어준다그 중엔 한국 작가의 개인전도 있었습니다. 여성 국극을 소재로 한 연작으로 잘 알려진 정은영의 ‘여성 국극 프로젝트, 젠더를 빼앗아라!’가 몬트리올 콩코르디아대 ‘레너드 & 비나 엘런 갤러리’에서 열렸습니다. 정은영 작가의 북미 천 개인전이었죠.2019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선보였던 작품,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을 때 작품은 물론 신작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우선 전시장 입구로 가면 사진 작품 ‘웨딩’을 만나는데요. 여성 국극 배우와 팬들이 가상의 결혼식을 하는 장면을 기록한 사진으로, 그들 사이의 끈끈한 연대와 과감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이 사진을 본 다음 통로를 따라 가면 내부 전시 공간에 여성 국극에 관한 기록물을 되살린 ‘지연된 아카이브’(2018~2023)가 등장합니다. 전시장 벽면에는 여성 국극 기록물 속 이미지들을 거친 질감과 색채로 표현한 작품도 함께 전시됐습니다.마지막 전시장에서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전시했던 ‘섬광, 잔상, 속도와 소음의 공연’(2019)이 펼쳐집니다. 플래시 라이트, 커다란 화면,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외면되곤 했던 사람들을 아주 강렬하게 전면에 드러내고 있었습니다.그런데 이번 전시에서 새로 공개한 신작은 사뭇 다른 분위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이전 작업들이 거칠고 강렬함을 담고 있었다면, 신작 ‘먼지’는 부드럽고 감성적인 시각 언어가 등장했습니다. 여성 국극 배우와 정 작가가 오래된 사진과 기록을 보며 대화하는 장면인데, 추억을 더듬는 듯 아련한 화면이 이어졌습니다.한지윤 씨에게 이 점을 이야기하자, 그녀도 흥미롭게 생각했다며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결국 다른 공동체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인정하고 보듬는, 그런 부드러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닐까요.”고정된 관념 속 나를 벗어나 가면을 쓰고 다른 사람이 되어보고 이해하는 것. 유연함으로 언제든지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것. 그런 태도로 무수히 다양한 것들이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이번 비엔날레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구나, 생각하게 만드는 대화였습니다.한국인으로 태어나 프랑스와 캐나다를 오가며 다양한 문화적·지리적 맥락 속에서 자란 그녀의 경험이 녹아들어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오늘은 한국을 벗어나 세상 속 다양한 정체성들을 상상해보는 것 어떨까요?※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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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식의 저편에서 만나는 ‘나체가 된 시공간’

    “왕 형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눈앞의 풍경이 흔들리거나 일그러지면서 멀어져 가는 듯합니다. 그림을 본다는 것은 때론 현실을 되새기는 일이기도 하지요.” 서울 종로구 학고재에서 열리고 있는 왕수예(王舒野·60) 개인전 ‘인식의 저편’에 화가 이우환(87)이 서문을 써 눈길을 끈다. 왕수예는 중국 헤이룽장성 출신이지만 1990년부터 일본 가마쿠라에 정착해 활동하고 있다. 일본에서 주로 활동하는 이우환과도 교류하며 지내고 있다. 이우환이 나이가 더 많음에도 ‘형’이라고 하는 것은 중국에서 나이 구분 없이 부르는 호칭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왕수예는 인식이 개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상의 본질적 실체를 마주한 결과물을 회화로 표현하고자 한다. ‘시공간의 나체와 직접 마주하는 것’이 목표라고 하는 작가는 ‘시공나체(視空裸體)’란 제목 아래 연작을 만들었다. 그중 19점을 이번 전시에 선보이며, 한국 첫 개인전을 위해 경복궁과 학고재 갤러리 전경, 압구정 거리, 조선 민화 속 풍경을 담은 작품도 선보인다. 10월 28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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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을 보듬다

    캐나다 몬트리올 콩코르디아대 ‘레너드 & 비나 엘런 갤러리’에서는 ‘모멘타 비엔날레’(9월 5일∼10월 28일)의 일환으로 한국 작가 정은영의 북미 첫 개인전 ‘여성 국극 프로젝트, 젠더를 빼앗아라!’가 열렸다. 정은영은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선정됐고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이탈리아 베네치아 한국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선보였던 작품은 물론이고 신작 ‘먼지’, ‘깃발’도 선보였다. 전시장은 외부 윈도 갤러리를 비롯해 5개 공간으로 구성돼, 모멘타 비엔날레 내 개인전 중 비중이 큰 편이었다. 전시는 2011년 작품 ‘웨딩’에서 시작해 역사에서 지워진 여성 국극에 관한 기록물을 되살린 ‘지연된 아카이브’(2018∼2023년)로 이어졌다. 벽면에는 여성 국극의 역사 속 이미지들을 강렬한 색채와 거친 질감으로 표현한 평면 작품도 함께 전시됐다. 여성 국극은 창극의 한 갈래로 여성들만 무대에 설 수 있는 장르다. 1950년대 인기를 끌다가 1960년대 말부터 서서히 잊혀졌다. 정 작가는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주체들을 플래시 라이트, 커다란 화면, 극단적인 클로즈업 등으로 강렬하게 드러내 왔다. ‘먼지’에선 여성 국극 배우와 정 작가가 오래된 사진과 기록을 보며 대화하는 장면을 부드럽고 감성적으로 풀어내 눈길을 끈다. 한지윤 모멘타 비엔날레 예술감독은 “소외된 커뮤니티가 생존하는 방법은 결국 그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보듬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했다. 최근 여성 국극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연된 아카이브’ 작업에는 여성 국극을 소재로 한 웹툰, 창작 뮤지컬 등 새로운 내용이 추가됐다. 정 작가가 처음 작업을 선보일 때만 해도 여성 국극이 관객에게 생소했지만 이젠 대중문화의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그가 여성 국극을 소재로 한 기획에 조언하는 전문가로 초청되는 경우도 많아졌다. 몬트리올에선 대부분의 공공장소에 영어와 프랑스어가 함께 기재되는데, 이 전시장에선 한국어도 볼 수 있었다. 모멘타 비엔날레에서는 정 작가를 비롯한 일부 해외 작가들의 전시장에 출신 국가의 언어를 병기했다. 한 감독은 “한국어 번역 때 프랑스 파리에서 30여 년간 큐레이터로 활동한 어머니의 도움을 받았다”며 웃었다. 윈도 갤러리에선 여성 국극 배우가 남성 인물로 분장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학생들이 관람하고 있었다. 엘런 갤러리 관장 미셸 테리오는 “K팝이나 드라마로만 익숙한 한국 문화의 새로운 맥락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전시가 상당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몬트리올=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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