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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감독’ 이승엽이 이끄는 두산이 후반기 첫 경기에서 승리하며 역대 팀 최다인 10연승을 달렸다. 두산의 연승 기록에는 올해 두산 유니폼을 입은 ‘복덩이’ 박준영이 있었다. 두산은 21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와의 방문경기에서 선발 투수 알칸타라의 호투와 쐐기 3타점 3루타를 때린 박준형의 활약을 앞세워 5-2로 승리했다. 이달 들어 치른 10경기에서 모두 승리한 두산은 김인식 전 감독 시절인 2000년과 김태형 전 감독 시절인 2018년에 이어 세 번째로 10연승을 작성했다.올해 처음 두산 지휘봉을 잡은 이 감독은 새내기 사령탑으로 역대 4번째로 부임 첫해 10연승을 달성했다. 그에 앞서 감독 첫 해 10연승을 거둔 사람은 천보성 전 LG(1997년), 이희수 전 한화 감독(1999년), 이광은 전 LG 감독(2000년)이 있다.외국인 감독까지 따지면 제리 로이스터 전 롯데 감독이 부임 첫해이던 2008년 11연승을 거둔 바 있다. 두산이 22일 KIA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면 이 감독은 로이스터 감독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두산은 0-1로 뒤진 5회 초 1사 후 호세 로하스가 KIA 선발 산체스로부터 우월 홈런을 쳐 동점을 만들었다. 6회에는 허경민이 2사 후 역전 좌월 솔로 아치를 그렸다. 승부의 쐐기를 박은 선수는 지난 시즌 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으로 NC로 이적한 포수 박세혁의 보상 선수로 두산 유니폼을 입은 박준영이었다. 9번 타자 유격수로 출전한 박준영은 2-1로 앞서던 7회 초 2사 만루에서 KIA 구원 투수 최지민을 상대로 9구까지 끈질긴 승부 끝에 우중간을 가르는 싹쓸이 3루타를 쳐냈다. 박준영은 3루 베이스에서 손으로 하트를 그리는 세리머니를 했고, 승기를 잡은 이 감독은 주먹을 불끈 쥐며 기쁨을 표현했다. 이달 7일 키움전부터 1군에 합류한 박준영은 이날까지 5경기에서 타율 0.467(12타수 7안타) 8타점의 만점 활약을 펼치고 있다. 두산 선발 라울 알칸타라는 6이닝 1실점의 위력적인 투구로 시즌 10승(3패) 고지에 올랐다. 43승 1무 36패가 된 두산은 3위 자리를 굳게 지켰다. 2위 SSG는 잠실구장에서 선두 LG 트윈스를 6-4로 꺾고 승차를 1.5경기 차로 줄였다. SSG는 2-2 동점이던 5회 초 최정의 좌중간 2루타로 한 점 앞서 나간 뒤 최주환의 우월 2점 홈런으로 5-2로 달아났다. 5-4로 쫓긴 7회 초에는 최정이 다시 우익선상 적시타로 스코어를 벌렸다. 9회말 등판한 마무리 서진용은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26세이브째를 따냈다. KT는 대구 원정에서 삼성을 7-2로 꺾고 6위로 올라섰다. 최하위 삼성은 가장 먼저 50패(31승)째를 당했다. 선발 등판 예정이던 외국인 투수 뷰캐넌은 갑작스런 무릎 통증으로 등판하지 못했다. 대신 선발로 나선 장필준은 2회를 버티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KT 선발 쿠에바스는 삼진을 10개나 잡아내며 8이닝을 1실점으로 막고 3승째를 수확했다.4위 NC는 대전 원정에서 에이스 에릭 페디의 역투와 파괴력 넘친 타선의 장타를 묶어 한화 이글스를 9-3으로 대파하고 시즌 40승 고지를 밟았다.롯데는 부산 홈경기에서 키움을 2-0으로 꺾었다. 8연패를 당한 키움은 2009년 기록한 팀 최다 연패(9연패)의 불명예 기록에 몰리게 됐다. 키움 에이스 안우진은 6이닝 2실점으로 비교적 잘 던졌으나 3회말 전준우에게 좌월 2점 홈런을 허용하며 패전 투수가 됐다. 이헌재기자 uni@donga.com}
내년부터 한국 프로야구 1군 리그에도 연장 승부치기 제도가 도입된다. 이에 따라 호우나 지진, 태풍 등 천재지변으로 경기가 중단되지 않는 한 무승부는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0일 이런 내용을 담은 ‘KBO리그·팀코리아 레벨 업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KBO 사무국은 리그 경기 수준과 야구 국가대표팀 전력을 동시에 높이고 야구 저변을 확대할 장기적인 종합대책이라고 설명했다. 큰 줄기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 시행 중인 여러 조치를 국내 프로야구에도 적용하는 것이다. MLB는 올해 연장 승부치기를 도입했는데 정규 이닝(9이닝) 동안 승부가 나지 않을 경우 연장 10회부터는 무사 2루에 주자를 둔 상황에서 공격을 시작한다. KBO 관계자는 “주자를 2루에 둘지, 아니면 1, 2루에 두고 시작할지 등 세부사항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승부에 박진감을 더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다양하게 시뮬레이션을 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도 2군 리그인 퓨처스리그에서는 지난해부터 연장 승부치기를 적용하고 있는데 주자를 1, 2루에 두고 시작한다. MLB가 경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 올해 도입한 피치클록은 내년부터 퓨처스리그에 먼저 도입된다. 올 하반기 KBO는 1, 2군 리그 경기가 열리는 모든 야구장에 피치클록 운영 장비를 설치할 예정이다. KBO는 내년에 퓨처스리그 운영을 거쳐 1군 리그에서도 이른 시일 내에 피치클록을 도입할 계획이다. 야구의 역동성을 살리기 위해 MLB가 올해 채택한 수비 시프트 제한도 내년부터 퓨처스리그에 적용된다. 1군 리그에는 2025년 도입이 목표다. 투수 1명이 최소 세 타자는 상대하도록 하는 규정도 퓨처스리그에 2024년, 1군 리그엔 2025년 도입된다. MLB와 WBC에서는 이미 시행 중인 규정이다. KBO는 로봇 심판이 볼과 스트라이크를 판정하는 ‘볼·스트라이크 자동 판정 시스템’ 도입을 장기적인 안목에서 검토하기로 했다. 도입 여부와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다. KBO는 또 한국 야구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임 감독제를 부활시키기로 했다. 감독을 보좌할 코치도 전임으로 뽑는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16일 끝난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에서 극적인 역전 우승을 차지한 로리 매킬로이(34·북아일랜드)는 최고의 남자 선수 중 한 명이다. 18세에 프로에 데뷔한 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통산 24승을 거뒀다. 이번 시즌에도 두 차례 우승하며 세계랭킹 2위, 페덱스컵 포인트 3위에 올라 있다. 20일부터 나흘간 영국에서 열리는 올해 남자 골프 마지막 메이저대회 디 오픈을 앞두고 매킬로이의 이름이 현지 언론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유독 매킬로이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것은 올해 대회가 잉글랜드 호일레이크 로열 리버풀 골프클럽(파71)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바닷가에 위치한 링크스 코스인 이 골프장은 올해까지 13차례 디 오픈을 개최하는 명문 코스다. 가장 최근 대회는 9년 전인 2014년에 열렸는데 당시 우승자는 25세의 매킬로이였다. 매킬로이는 그해 PGA챔피언십까지 우승하며 25세의 나이에 4차례나 메이저대회 챔피언이 됐다. 그에 앞서 이 기록을 세운 것은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8)와 ‘전설’ 잭 니클라우스(83·이상 미국) 두 명뿐이었다. 하지만 매킬로이가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한 건 그해가 마지막이었다. 매킬로이는 9년 전 좋은 기억이 있는 코스에서 메이저대회 우승 가뭄을 끊어낼 각오다. 스코티시 오픈 우승 후 그는 “경기의 일관성이 그 어느 때보다 좋다. 이제는 메이저대회 우승을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PGA투어 역시 파워 랭킹에서 그를 1위에 올려놨다. 4월 마스터스에서 컷 탈락했던 그는 PGA챔피언십에서 공동 7위, US 오픈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지난해 우승자 캐머런 스미스(호주)가 대회 2연패에 도전하는 가운데 세계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미국)도 우승 후보로 꼽힌다. 한국 선수로는 임성재, 김주형, 김시우, 이경훈, 안병훈, 강경남, 김비오 등이 출전한다. 한편 고진영은 이날 발표된 여자 골프 세계랭킹에서 넬리 코르다(미국)를 0.02점 차로 제치고 자신이 갖고 있는 최장 기간 1위 기록을 162주로 늘렸다. 20일부터 시작되는 그레이트 레이크 베이 오픈은 세계랭킹 포인트를 주지 않는 대회라 고진영은 163주간 1위 자리를 지키게 된다. 2인 1조로 경기를 하는 이 대회에 고진영과 코르다는 모두 출전하지 않는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나는 그냥 동물이야. 근데 얘는 괴물이야.” 유도 국가대표 출신 종합격투기 선수 추성훈(48)이 올 초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아이언맨’ 윤성빈(29)에 대해서 한 말이다. 평생 운동을 하며 살아왔고, 각종 방송을 통해 수많은 스포츠인들을 겪었던 추성훈에게도 윤성빈은 그렇게 특별했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스켈레톤에서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썰매 종목 금메달을 딴 윤성빈은 요즘 ‘건강의 아이콘’으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스켈레톤 슈트 속에 감춰져 있던 그의 탄탄한 육체는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단순히 몸만 좋은 게 아니다. 보통 사람들은 물론이고 엘리트 선수들도 범접하기 힘든 운동 능력까지 갖췄다.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한 그는 요즘 인기 유튜버이자 방송인으로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진정한 피지컬이란 무엇인가’를 말이 아닌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윤성빈을 서울 강남구 올댓스포츠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유튜브 채널 ‘아이언빈’을 개설한 지 1년이 좀 넘었는데 57만 명 이상의 구독자가 생겼다. “선수 때 잘 보여드리지 못한 ‘윤성빈’의 모습을 보여드리려 유튜브를 시작했다. 딱히 인기를 얻으려고 한 건 아닌데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감사하다. 선수 때는 경기하는 모습이 내가 보여드릴 수 있는 전부였다. 요즘은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감춰져 있던 저의 본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무척 재미있다.” ―웃통을 벗고 멋진 몸매를 과시하는 장면이 꽤 있던데…. “사실 벗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그런데 아무래도 운동하는 모습 촬영을 많이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되는 것 같다. 함께 촬영하는 PD가 요청할 때도 있고, 구독자분들이 좋아해 주시기도 하니까(웃음). 개인적으로는 벗은 몸을 딱히 드러내고 싶진 않다.” ―은퇴하고도 여전히 운동으로 시작해 운동으로 마무리하는 하루를 사는 것 같다. “방송이나 유튜브 촬영이 없는 때는 매일 똑같은 루틴대로 지낸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낮 12시쯤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두 시간가량 운동을 한다. 주 6일 헬스를 하는데 월요일엔 가슴과 삼두, 화요일에 등과 이두, 수요일엔 하체와 어깨를 중심으로 운동한다. 목~토요일엔 월~수요일에 했던 걸 반복한다. 일요일엔 예전 동네 친구들과 모여 축구를 한다. 요즘엔 골프에도 재미를 들여 골프 연습장도 꾸준히 간다.” ―“힘들다”, “운동하러 가기 싫다” 등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하더라. “선수 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운동을 하러 가는 건 싫은데 하고 나면 정말 개운하다. 운동을 쉬면 잠시 기분이 좋을지 몰라도 금방 후회하게 된다. 하기 싫은 걸 이기고 견뎌내야 한다. 어릴 때부터 운동 자체를 워낙 좋아했다. 헬스뿐 아니라 다른 스포츠도 다 좋아한다.” ―선수 때 했던 운동과 일반인이 된 지금 하는 운동은 어떻게 다른가. “요즘 하는 웨이트트레이닝 위주의 운동이 딱히 힘들진 않다. 그냥 무거운 기구 좀 드는 정도니까. 선수 때는 정말 힘들었다. 순간적인 스피드를 내기 위한 전력 질주 같은 운동을 많이 했다. 매일매일 ‘오늘만 버티자’는 생각밖에 없었다.” ―올 초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 ‘피지컬100’ 통해 ‘건강의 아이콘’이 됐다. 주변에서 많이 알아봐 주시나. “그렇다. 스켈레톤을 했을 땐 올림픽 때 보여드린 게 거의 전부였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은 스포츠에 관심이 있는 분들뿐 아니라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이 본다. 많이들 좋게 봐주신 것 같다. 그렇다고 딱히 그 프로그램을 위해 운동을 더 열심히 했거나, 건강한 이미지를 만들고자 한 건 아니다. 운동은 그냥 내겐 생활이나 마찬가지다.” ―‘헬창’(헬스를 통해 몸 불리기에 열중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3대 500’(스쾃, 데드리프트, 벤치프레스 중량을 합쳐 500kg의 무게를 드는 것)이 유행인데…. “저는 진짜로 그런 것들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해본 적이 있긴 하다. 잘 기억도 안 나지만 스쾃 240kg, 데드리프트 230kg, 벤치프레스 150kg 정도 들었던 것 같다. 620kg 내외였던 것 같다.” ―무게가 아니면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운동을 하나. “오늘도 할 일을 했다는 자기만족이다. 그리고 몸의 변화다. 선수 때만 해도 객관적으로 좋은 몸은 아니었다. 스켈레톤은 하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상체 운동을 거의 하지 않고 하체만 집중적으로 했다. 은퇴 후 본격적으로 웨이트트레이닝을 한 지 이제 1년이 좀 넘었는데 이제는 상하체 균형이 좀 맞는 것 같다. 시각적으로도 확연히 좋아졌다.” ―해외나 지방 촬영을 갈 때도 운동을 거르지 않나. “해외나 지방을 갈 때 숙소에 웨이트트레이닝 시설이 갖춰져 있는가를 가장 우선적으로 알아본다. 꽤 이름 있는 호텔인데도 의외로 시설이 제대로 안 되어 있는 곳도 있다. 정 안 되면 못하는 거지만 가능한 한 운동은 거르지 않고 하려고 한다.” ―각종 프로그램에 나와 남다른 운동 신경을 자랑했다. 다양한 종목을 접하며 재밌었거나 어려웠던 운동이 있었나. “의외로 수영이 너무 재미있었다. 레슬링도 당하니까 재미있었다. 상대방이 안 아프게 잘해 주셨던 것 같다. 롤러스케이팅은 많이 어려웠다. 그리고 스포츠 클라이밍도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 몸무게를 버텨야 하는 종목들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른 은퇴가 아쉽지는 않나. “썰매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은 맞다. 금메달을 땄을 땐 정말 좋았다. 하지만 그건 모두 흘러간 과거다. 사실 평창이 끝나고 은퇴하고 싶었다. 남은 인생에서 다른 걸 경험해 보고 싶었다. 어쩌다 보니 2022 베이징까지 했지만(12위로 마감) 자연스럽게 썰매에서 떠나게 됐다. 몸이 힘든 건 괜찮은데 정신적으로 힘든 건 회복하기가 쉽지 않았다. 후배 선수들을 열심히 응원하는 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 -유튜버이자 방송인으로 살고 있는 현재 생활에 만족하고 있나. “크게 스트레스 받는 게 없으니까 좋다. 선수 때는 누군가와 경쟁해서 이겨야 했다. 축구하는 걸 좋아하는데 선수 때는 축구를 하면서도 ‘다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먼저 했다. 지금은 ‘다치면 다치는 거지’라는 생각이다. 사소한 데서 오는 느끼는 행복감이 크다.” ―‘몸짱’ 윤성빈의 모습을 보고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다. 건강해지길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운동 팁을 주자면…. “많은 사람들이 빠른 시간 안에 뭔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운동은 꾸준히 하는 게 정답이다. 뻔한 말이지만 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뭐든 꾸준히 하면 결과물이 나온다. 하루 이틀 운동하고 거울을 들여다볼 게 아니다. 시작할 때부터 멀리 보고 꾸준히 운동하면 자신도 모르게 달라진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쉽게 오는 건 쉽게 가기 마련이다.” ―식단 조절은 어떤 식으로 하는지. “딱히 가리지 않고 다 잘 먹는 편이다. 탄산음료나 튀김도 다 먹는다. 먹는 만큼 운동하면 된다. 다만 주중에는 패스트푸드는 잘 먹지 않는다. 치팅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패스트푸드는 일요일에만 먹는 편이다. 그리고 단백질이 많은 닭가슴살을 꾸준히 섭취한다. 맛으로 먹는 건 아니지만 근육을 만드는 데는 확실히 도움이 된다.” ―친구들과 어울릴 땐 주로 어떤 것들을 하나. “나라는 사람 자체가 유흥이나 노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클럽도 가본 적이 없다. 흡연은 하지 않는다. 술은 1년에 한 번 정도 어쩔 수 없을 때 마시는데 그래 봐야 맥주 한 캔 정도다. 술은 칼로리가 있고 술을 마시면 안주도 먹게 되니까 피하게 된다. 그냥 집에서 쉬거나 친구들 만나서 수다를 떨거나 한다.” ―딱히 재미있어 보이진 않는데…. “스스로도 참 재미없게 산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런데 내 주변에는 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뿐이다. 술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저 같은 사람은 운동하고 축구하면서 푼다. 이렇게 재미없게 사는 게 재미있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내줘야 한다. 운동으로 건강을 얻으려면 술을 포기해야 한다. 술도 먹고, 건강도 지킨다? 그건 욕심이다.” ―앞으로의 인생은 어떻게 살 계획인가. “아마 내년 이맘때도 지금처럼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보디빌딩 대회를 나가 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 다시 경쟁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일반인 중에도 정말 몸이 좋은 사람들이 많다. 난 그럭저럭 몸이 괜찮은 사람 중 한 명일 뿐이다. 지금처럼 걱정 없이, 스트레스 받지 않고 꾸준히 운동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살고 싶다.”윤성빈△1994년 경남 남해 출생△남서울중-신림고-한국체대△2012년 스켈레톤 입문△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16위△2016년 2월 IBSF 월드컵 7차 대회 금메달△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금메달△2022년 베이징 겨울올림픽 12위△2022년 5월 유튜브 채널 ‘아이언빈’ 개설△2023년 넷플릭스 ‘피지컬100’ 출연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미국프로농구(NBA)에서 두 차례나 최우수선수(MVP)를 수상한 슈퍼스타 스테픈 커리(35·골든스테이트)가 미국 유명인 골프 대회에서 홀인원을 했다. 커리는 16일 미국 네바다주 스테이트라인의 에지우드 타호 골프코스(파72)에서 열린 아메리칸 센추리 챔피언십 2라운드 7번홀(파3)에서 티샷 한 번으로 공을 홀 안에 넣었다. ‘3점슛의 달인’으로 종종 하프라인 근처에서도 골을 넣곤 하는 커리가 골프에서도 자신의 주특기를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 152야드 거리에서 친 티샷은 홀 약 1m 앞에 떨어져 한 번 튀어 오른 뒤 거짓말처럼 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홀인원을 확인한 커리는 페어웨이를 가로질러 그린까지 전력으로 내달린 뒤 깃대에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쁨을 만끽했다. 그는 “농구장보다 긴 거리를 달려 숨이 차지만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내 생애 두 번째 홀인원”이라며 즐거워했다. 커리는 하루 전 1라운드에서는 6m 거리의 급경사 내리막 퍼트를 성공시키기도 했다. 각 종목 셀럽들이 골프 실력을 겨루는 이 대회는 3라운드 54홀 변형 스테이블퍼드 방식으로 열린다. 매 홀 성적에 따라 앨버트로스 10점, 홀인원 8점, 이글 6점, 버디 3점, 파에 1점을 주고, 더블보기 이하는 2점을 깎는 식이다. 홀인원 한 방으로 단숨에 8점을 더한 커리는 2라운드 현재 50점으로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골프광으로 유명한 커리는 지난해 이 대회에서는 공동 16위를 했다. 지난해 우승은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출신 토니 로모가 차지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팀 감독(53)은 1991년부터 1996년까지 ‘짧고 굵은’ 선수 생활을 했다. 1991년 영국 셰필드 유니버시아드에서 우승했고, 1992년에는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육상 종목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아경기에서도 금메달을 땄다. 하지만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자 미련 없이 은퇴를 선택했다. 겨우 26세 때의 일이다. 그는 “뛰는 게 너무 싫었다. 너무 힘들어서 하루라도 빨리 은퇴하고 싶었다”고 했다. 혹독한 훈련에 그의 몸은 이미 성한 곳이 없었다. 족저근막염부터 아킬레스힘줄 부상, 대퇴부와 고관절 염증 등으로 고생하면서 몇 차례 수술대에도 올랐다. 은퇴 후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그는 운동과는 거의 담을 쌓고 지냈다. 100m 안팎의 짧은 거리도 잘 걷지 않으려 했다. 그는 “운동에 아주 질려 버렸던 것 같다”고 했다. 선수 때 50kg대 후반이던 몸무게가 한창 때는 90kg 가까이 나갔다. 그랬던 그가 얼마 전부터 다시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인생에 새로운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의 인생 버킷리스트는 다시 한 번 42.195km를 완주하는 것이다. 그는 “죽기 전에 마라톤 완주를 다시 한 번 해보고 싶은 꿈이 생겼다. 마라톤이 위대한 종목인 이유는 제 아무리 과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 하더라도 준비가 없으면 절대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35km, 40km를 넘어가면서 가쁜 숨을 몰아쉴 때의 고통과 그 속에서의 희열을 한 번 더 느껴보고 싶다”고 말했다. 최우선 과제는 체중 감량이다. 선수 은퇴 후 반주를 즐기던 그는 2021년 가을부터 술을 완전히 끊었다. 올해부터는 집이 있는 18층을 걸어서 오르고 있다. 황 감독은 10일부터 소속팀을 이끌고 강원 평창 대관령에서 전지훈련을 시작했다. 예전과 달리 선수들과 함께 뛰면서 페이스를 끌어올리고 있다. 현재 80kg대 초반인 몸무게를 70kg대 초반으로 줄여야 풀코스를 뛸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서서히 거리를 늘려가며 뛰고 있다. 음식 조절을 하면서 운동을 병행하면 몸무게는 쭉쭉 빠질 것”이라고 했다. 마음속으로 정한 마라톤 풀코스 복귀 무대는 내년 2월 일본에서 열리는 벳부오이타 마라톤이다. 1992년 2시간8분47초에 골인하며 당시 한국 마라톤의 꿈이던 ‘2시간 10분의 벽’을 깼던 기분 좋은 대회다. 자신의 풀코스 데뷔 무대(1991년)이자 은퇴 무대(1996년)였던 동아마라톤 복귀도 생각하고 있다. 그는 “언젠간 동아마라톤에서 페이스메이커로 뛰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마라톤 완주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그는 “자신의 몸을 보석처럼 다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자신의 몸을 귀하게 여기면서 페이스를 올려야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조급한 마음에 몸을 빨리 굴리려 한다. 그러다 한 번에 망가진다”라며 “마라톤이라는 운동은 한 발 한 발 앞을 향해 단계적으로 가는 운동이다. 꾸준함이야말로 마라토너가 갖춰야 할 가장 큰 덕목”이라고 말했다. 이헌재 스포츠전문기자 uni@donga.com}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팀 감독(53)의 첫 풀코스 마라톤 완주는 1991년 3월에 열린 제62회 동아마라톤이었다. 소속팀 선배 이창우의 페이스메이커로 출전한 그 대회에서 그는 2시간12분35초로 깜짝 3위를 차지했다. 이 대회가 그의 인생은 물론 한국 마라톤, 더 나아가 한국 육상의 역사를 바꿔놓았다. 첫 풀코스 도전에서 3위를 차지한 그는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자신감을 얻었다. 단숨에 한국 마라톤의 ‘간판’으로 떠오른 그는 그해 7월 영국 셰필드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에서 2시간12분40초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후 황영조의 가는 길엔 거칠 것이 없었다. 이듬해인 1992년 2월 일본에서 열린 벳푸오이타 마라톤에서 그는 2시간8분47초에 골인하며 당시 한국 마라톤의 꿈이던 ‘2시간 10분의 벽’을 깼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그해 8월 9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몬주익 언덕을 넘어 올림픽 금메달(2시간13분23초)을 따냈다. 8월 9일은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생이 일장기를 달고 마라톤을 제패했던 날이기도 했다. 마침 경기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두 마라톤 영웅은 서로를 끌어안았다. 그는 이후부터 ‘몬주익의 영웅’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성기는 길지 않았다. 1994년 일본 히로시마 아시아경기에서 다시 금메달을 딴 기쁨도 잠시. 혹독한 훈련과 지옥 같은 레이스가 이어지며 그의 몸은 이미 성한 곳이 별로 없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대표 선발전으로 열린 제67회 동아마라톤이 그의 은퇴 무대가 됐다. 26km 지점에서 발바닥이 찢어졌고, 거의 걷다시피 29위로 겨우 골인했다. 3명만 출전할 수 있는 올림픽에 갈 수 없게 되자 그는 미련 없이 은퇴를 선택했다. 그의 나이 겨우 26살 때였다. 하지만 짧고도 굵었던 6년간의 활약만으로도 그는 여전히 대한민국 육상 역사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너무나 이른 은퇴가 아쉽지는 않았을까. 그는 “그동안 뛰는 게 너무 싫었다. 너무 힘들어서 하루라도 빨리 은퇴하는 게 목표였다. 그 힘든 것이 너무 가혹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은 날 보고 ‘타고난 천재’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한 노력을 알면 그런 얘기를 할 수 없을 것이다. 매일 훈련을 할 때마다 불구덩이 지옥에 들어가는 것처럼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사선을 넘나든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보통 선수들이 느끼는 고통지수가 1이라고 하면 나는 그걸 10까지 올렸다. 7, 8까지만 가도 죽을 판인데 그걸 10까지 올리려 했다. 지옥의 불구덩이가 매일 눈앞에 왔다갔다했다”고 말했다. 악조건 속에서 치러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당시 대회가 열린 바르셀로나는 마라톤을 뛰기엔 적당하지 않은 섭씨 30도 안팎의 기온 속에서 치러졌다. 더구나 결승선을 앞둔 몬주익 언덕은 서울 남산과 비슷한 급오르막이었다. ‘죽음의 언덕’으로 불린 몬주익 언덕에서 그는 오히려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며 뒤따라오던 모리시타 고이치(일본)를 따돌렸다. 그는 “평소 극한의 고통을 이겨왔다. 더운 날씨와 오르막 난코스를 넘을 수 있었던 것도 그런 환경에서 자신을 단련해 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은퇴 후 지도자가 된 후 그의 일상은 선수 때와는 180도 달라졌다. 선수 시절 그는 뛰면서 얻을 수 있는 병이나 질환은 거의 다 겪었다. 발톱이 10개 다 빠지기도 했고 족저근막염부터 아킬레스건 부상, 대퇴부와 고관절 염증 등으로 고생했다. 몇 차례 수술대에도 올랐다. 운동에 질려버린 탓인지 그는 운동과 거의 담을 쌓고 지냈다. 100m 안팎의 짧은 거리도 잘 걷지 않으려 했다. 행사 등을 통해 가끔 5km나 10km 마라톤에 출전했지만 기본 실력으로 가볍게 뛰었다. 선수 시절 50kg대 후반이던 몸무게가 무지막지하게 늘었다. 예전에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엄청난 훈련량 때문에 살찔 겨를이 없었지만 이제는 먹는 대로 살로 갔다. 몇 해 전까지 몸무게가 90kg에 육박하기까지 했다. 그랬던 그가 얼마 전부터 다시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인생에 새로운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그의 인생 버킷리스트는 다시 한 번 42.195km를 완주하는 것이다. 그는 “죽기 전에 마라톤 완주를 다시 한 번 해보고 싶은 꿈이 생겼다. 마라톤이 위대한 종목인 이유는 제 아무리 과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 하더라도 준비가 없으면 절대 허락하지 않는 종목이기 때문”이라며 “30km를 넘어 35km, 40km를 넘어가면서 가쁜 숨을 몰아쉴 때의 고통과 그 속에서의 즐거움을 한 번 더 느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선수 시절에는 1등을 위해서 뛰었다면 지금은 완주 자체를 위해서 뛰어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최우선 과제는 체중 감량이다. 선수 은퇴 후 반주를 즐기던 그는 2021년 가을부터 술을 완전히 끊었다. 급하게 몸무게를 줄이기보다는 천천히 몸을 만들고 있다. 올해부터는 집이 있는 18층을 걸어서 오르고 있다. 황 감독은 10일부터 소속팀을 이끌고 강원도 평창 대관령에서 전지훈련을 시작했는데 이 역시 몸 관리에 큰 도움이 된다. 그는 “마라톤 풀코스 완주를 하려면 먼저 자기 몸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지금 몸으로 풀코스를 뛰면 무릎 등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며 “천천히 체중을 줄이면서 거기에 맞게 페이스를 맞춰가고 있다”고 말했다. 몸무게가 70kg대 초반은 되어야 풀코스를 뛸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현재 몸무게는 80kg대 초반이다. 그는 “이제 서서히 거리를 늘려가며 뛰고 있다. 이런 식으로 운동을 병행하면 몸무게는 쭉쭉 빠질 것”이라고 했다. 마음속으로 정한 마라톤 풀코스 복귀 무대는 내년 2월 일본에서 열리는 벳부오이타 마라톤이다. 이 대회는 그가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2시간 10분대 벽을 깼던 기분 좋은 대회다. 그는 “날씨나 평탄한 코스 등을 고려해서 벳부오이타에서 뛰어보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동아마라톤 코스도 세계 최고의 코스 중 하나다. 당장 내년은 아닐 수 있지만 동아마라톤 무대에도 복귀하고 싶다. 내 데뷔전과 은퇴전을 치렀던 동아마라톤에서 언젠가 페이스메이커로 뛰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마라톤 풀코스 완주는 많은 사람들의 버킷리스트이기도 하다. 마라톤 완주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팁을 달라는 요청에 그는 “자신의 몸을 보석처럼 다뤄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보석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에게 몸은 보석이나 마찬가지”라며 “자신의 몸상태에 맞게 몸을 귀하게 여기면서 페이스를 올려야 한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조급한 마음에 몸을 빨리 굴리려 한다. 그러다가 한 번에 망가지기 일쑤”라고 했다. 그는 또 “마라톤이라는 운동은 한 번에 멀리 가는 점프 운동이 아니다. 한발 한발 앞을 향해 단계적으로 가는 운동이다. 차근차근 준비하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쉬어야 한다. 꾸준함이야말로 마라토너가 갖춰야 할 가장 큰 덕목”이라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국내 야구팬들이 클레이턴 커쇼(LA 다저스)가 던지는 공을 김하성(샌디에이고)이 치는 모습을 눈앞에서 직접 볼 수 있게 됐다. 내년 서울에서 사상 처음으로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정규리그 공식 경기가 열리기 때문이다. MLB 사무국과 선수 노동조합은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가 내년 3월 20, 21일 서울에서 2024시즌 개막전을 벌인다고 13일 발표했다. 경기장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한국 유일의 돔구장인 서울 고척스카이돔이 유력하다. ‘서울 시리즈’라고 명명된 두 팀의 2연전은 MLB 역사상 역대 9번째 해외 개막전이다. MLB는 ‘야구의 세계화’를 위해 북미를 벗어난 전 세계 곳곳에서 정규리그를 진행하는 ‘월드 투어’를 추진해 오고 있다. MLB 공식 개막전이 북미를 제외한 지역에서 열리는 건 스즈키 이치로(50)의 은퇴 무대였던 2019년 일본 도쿄 시리즈(오클랜드-시애틀) 이후 5년 만이다. 서울 시리즈에서 맞붙는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소속의 두 팀은 ‘스타 군단’으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샌디에이고에는 팀의 주축으로 성장한 내야수 김하성을 비롯해 매니 마차도, 후안 소토,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 등 강타자가 즐비하다. 에릭 그룹너 샌디에이고 구단 최고경영자는 “한국은 풍부한 전통과 열정적인 팬들, 그리고 재능 있는 선수들이 있는 위대한 야구의 나라”라며 “역사적인 2024 서울 시리즈를 통해 지구촌 야구 홍보대사로 나서게 돼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김하성은 구단 소셜미디어를 통해 “(2021년) 처음 샌디에이고에 입단했을 때 한국에서 샌디에이고와 함께 MLB를 대표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며 “샌디에이고 유니폼을 입고 한국에서 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팀 동료와 코칭스태프를 우리나라에 초대하고 좋은 기회를 같이 경험할 수 있게 돼 저에게 무척 특별하고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인 메이저리그 개척자 박찬호(은퇴)가 몸담았던 다저스는 국내 팬들에게는 가장 친숙한 MLB 팀 중 하나다. 박찬호를 시작으로 최희섭(KIA 타격코치), 서재응(KIA 투수코치), 류현진(토론토) 등이 푸른색 다저스 유니폼을 입었다. 다저스는 최근 들어 매년 좋은 성적을 올렸고, 뛰어난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부활한 왼손 에이스 커쇼를 비롯해 무키 베츠, 프레드 프리먼, J D 마르티네스 등이 팬 투표 올스타에 선정됐다. 다저스는 올해도 51승 38패(승률 0.573)로 서부지구 선두를 달리고 있다. 내년 MLB 월드 투어는 서울 시리즈를 시작으로 4월 28, 29일 멕시코 시리즈(휴스턴-콜로라도), 6월 9, 10일 런던 시리즈(뉴욕 메츠-필라델피아)가 이어진다. 시범경기 기간인 3월 10, 11일에는 도미니카공화국 산토도밍고에서 보스턴과 탬파베이가 맞붙는 도미니카공화국 시리즈가 열린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한국프로야구에서 통산 328개의 홈런을 기록한 심정수(48)의 둘째 아들 심종현(케빈 심·21·사진)이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애리조나 유니폼을 입게 됐다. 애리조나 구단은 11일 MLB 드래프트 2일 차 지명에서 심종현을 5라운드 전체 148순위로 뽑았다. MLB.com은 “심종현은 KBO리그에서 15년 동안 300홈런 이상을 터뜨리며 ‘헤라클레스’라는 별명을 가진 유명 선수의 아들”이라며 “심종현 역시 대학에서 남다른 장타력을 과시했다”고 전했다. 심종현은 드래프트 콤바인에서 탁월한 운동능력으로 일찌감치 스카우트들의 눈도장을 받았다. 심종현은 타구 속도 시속 153km 이상의 하드 히트(hard hit·16개)와 정확한 타격을 의미하는 스위트 스폿(sweet spot·16개), 그리고 400피트(약 122m) 이상의 장타(4개) 개수 등에서 모두 1위에 올랐다. 미국 샌디에이고대 1루수와 외야수로 뛴 그는 지난 2년간 타율 0.295, 25홈런, 97타점을 기록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선수 때 연승도 좋았지만 감독으로 경험하는 연승은 더 기분 좋네요.” 프로야구 두산 이승엽 감독(사진)은 9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키움과의 안방경기를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두산은 이날도 키움을 9-2로 대파하고 최근 연승 기록을 ‘8’로 늘렸다. 이달 들어 1일 롯데전을 시작으로 이날 키움전까지 8번 싸워 8번 모두 이겼다. 선발 최원준이 5이닝 2실점으로 호투한 가운데 양석환(13호)과 박준영(1호) 등이 홈런포를 쏘아 올리며 주말 3연전을 모두 쓸어 담았다. 8연승은 이 감독 부임 후 최다 연승이다. 두산이 8연승을 거둔 것은 2018년 6월 이후 5년 1개월 만이다. 이번 시즌 개막 전 하위권으로 분류됐지만 5할대 승률을 유지하던 두산은 6월 하순부터 힘이 떨어진 듯했다. 6월 말까지 33승 1무 36패(승률 0.478)로 6위에 머물렀다. 가장 큰 반전의 계기는 새 외국인 투수 브랜든 와델(등록명 브랜든)의 합류다. 잇단 부상 속에 2경기밖에 등판하지 못한 딜런 파일을 방출한 두산은 지난해 대체 외국인 투수로 데려왔던 왼손 투수 브랜든을 다시 영입했다. 대만프로야구 라쿠텐에서 뛰던 브랜든은 이후 알칸타라와 함께 두산의 강력한 ‘원투 펀치’를 형성하고 있다. 브랜든은 지난달 24일 키움전을 시작으로 3경기에 등판해 1승 1패 평균자책점 0.90을 기록 중이다. 두산 관계자는 “브랜든의 투구를 보고 야수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 정도 투수면 ‘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전했다. 두산은 현재 외국인 투수 2명에 국내 선발 곽빈, 최원준, 김동주 등으로 탄탄한 선발진 구성을 마쳤다. 김명신, 정철원, 이영하, 박치국, 최승용 등이 버티는 중간 계투진도 짜임새가 좋다. 시즌 초 부진했던 외국인 타자 호세 로하스도 2군을 다녀온 후 살아나고 있다. 이날 3번 타자로 나선 로하스는 1회말 1사 3루에서 1루수 앞 땅볼로 첫 타점을 올린 데 이어 4회에는 적시타로 타점을 추가했다. 최근 10경기 타율은 3할을 훌쩍 뛰어넘는다. 투타가 안정되면서 수비진의 집중력도 좋아졌다. 개막 후 66경기에서 60개의 실책을 기록하며 팀 최다 실책 3위였던 두산은 최근 12경기에서는 단 한 개의 실책도 없었다. 두산은 11∼13일 2위 SSG와의 3연전을 끝으로 전반기를 마무리한다. 이 감독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전반기 남은 경기에서 총력전으로 가능한 한 많은 승수를 벌어 두고 싶다”고 말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팔색조’ 조계현 한국야구위원회(KBO) 전력강화위원장(59)은 ‘우승 복’이 많은 사람이다. 해태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한국시리즈 정상에 5번 올랐고, 선수 시절 마지막 해인 2001년 두산에서 여섯 번째로 우승했다. 지도자가 된 후에도 삼성 2군 코치 시절 2번, KIA 코치로 한 차례 우승했다. 한국 야구대표팀이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는 투수 코치로 힘을 보탰다. 성공적인 야구 인생을 살았지만 대신 건강을 잃었다. 이기면 좋아서 한 잔, 지면 졌다고 한 잔, 경기 내용을 복기하면서 또 한 잔씩 했다. 담배도 입에 달고 살았다. 승부 세계의 스트레스까지 쌓였으니 몸이 버티질 못했다. KIA 수석코치이던 2017년 1월 1일은 그가 다시 태어난 날이다. 팀의 스프링캠프 출발을 앞두고 그는 금주와 금연을 선언했다. 생존을 위해 내린 결심이었다. 그는 “건강검진 결과도 좋지 않았는데 거울을 보다 깜짝 놀랐다. 생기 없이 까만 얼굴은 죽어 있는 사람 같았다”고 했다. 금주와 금연으로 다시 태어난 후 새로운 인생 2막이 열렸다. 그해 KIA가 다시 우승을 차지한 후 그는 프런트의 수장인 단장으로 임명돼 2021년까지 일했다. 작년부터는 협성대 에이블아트·스포츠학과 특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스타 교수님 강의라 인기도 많다. 그는 “어린 학생들과 함께 얘기하고 교감하는 게 너무 재미있다. 강의가 있는 수요일이 너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그는 또 KBO 재능기부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전국을 돌며 유소년 선수들에게 재능기부를 한다. 올 초에는 KBO 전력강화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다. 9월 열리는 항저우 아시아경기 대표 선수 선발부터 한국 야구 국제 경쟁력 강화까지 맡은 중요한 자리다. 대한민국국가대표선수회에서 하는 봉사활동에도 열심이다. 그는 “최근 들어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 새로운 걸 배우고 접하는 게 무척 즐겁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바쁘게 살려고 한다”고 말했다. 요즘 그의 건강을 뒷받침하는 두 가지는 등산과 골프다. 코치 시절부터 가까운 산을 오르며 머리를 식히곤 했던 그는 요즘도 집에서 가까운 서울 아차산이나 용마산을 자주 오른다. 시간이 좀 더 있을 때는 관악산이나 도봉산도 간다. 그는 “좋아하는 야구를 생각하면서 혼자 묵묵히 걷는다. 등산은 내게 힐링”이라고 했다. 최근에는 골프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파란 하늘을 공이 가로지를 때의 시원함과 통쾌함이 매력이라고 한다. 얼마 전에는 처음으로 싱글(70대 타수)도 쳐 봤다. 그는 “술과 담배를 하지 않으니 근력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몸으로 느낀다. 힘을 써야 할 때 여전히 예전의 파워가 나온다”고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스트레칭도 거르지 않는다. 침대 위에서 이런저런 동작을 하면서 몸을 풀어주면 하루를 보다 상쾌하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그는 “힘과 열정이 있으니 바쁘게 살게 된다. 고마운 야구 덕분에 내가 이곳까지 오지 않았나. 재능기부든 봉사활동이든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는 언제나 달려갈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헌재 스포츠전문기자 uni@donga.com}

선수 시절 초반 그의 별명은 ‘싸움닭’이었다. 상대 타자가 누구건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자신의 공을 믿고 공격적으로 타자를 밀어붙였다. 30대가 넘어가면서 그는 변화를 꾀했다. 패스트볼 위주로 윽박지르는 스타일에서 다양한 변화구와 경기운영 능력을 활용하는 패턴으로 바꿨다. 이후 그의 이름 앞에는 ‘팔색조’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조계현 한국야구위원회(KBO) 전력강화위원장(59)은 ‘실력’이 뛰어난 선수였다. 전성기를 보낸 해태 타이거즈 시절부터 은퇴를 한 두산 베어스 시절까지 13시즌 동안 320경기에 출전해 126승 92패 17세이브 평균자책점 3.17을 기록했다. 1993년과 1994년엔 다승왕을 했고, 이듬해인 1995년에는 평균자책점 1위를 했다. 통산 64경기를 완투했고, 17경기에선 완봉승을 거뒀다. 그는 ‘운’이 무척 좋은 선수이기도 했다. 해태에 입단한 1989년에 팀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다. 선수 생활의 마지막이었던 2001년에는 두산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는 그는 남들은 한 번도 하기 어렵다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여섯 번(해태 5번, 두산 1번)이나 경험했다. 지도자가 된 후에도 여전히 ‘우승 복’이 있었다. 삼성 2군 코치 시절 2번 우승했고, KIA 수석코치로 일하던 2017년에도 또 한 번 우승했다. 그리고 한국 야구 역사에 영원히 기억될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그는 투수 코치로 9전 전승 금메달에 기여했다. 조 위원장은 “큰 경기에 운이 좀 따르는 편이다. 큰 경기라고 해서 쫄거나 긴장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며 웃었다. ‘싸움닭’의 모습 그대로다. 다만 그가 선수 및 지도자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는 동안 포기 또는 방치한 게 있다. 바로 ‘건강’이었다. 그는 타고난 재능을 바탕으로 쉽고 편하게 야구를 했다는 오해를 많이 받는다. 하지만 그의 야구 인생은 수면 위에서는 편안해 보이지만 물 아래에서는 쉬지 않고 발을 휘젓는 백조와도 같았다. 불같은 강속구의 시절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어깨와 팔꿈치 상태가 예전 같지 않자 그는 생존을 위해 변화구 투수로 변신해야 했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변화구 숫자를 늘리다 보니 ‘팔색조’가 됐을 뿐이다. 그는 “공이 빠르지 않으니까 잔수만 늘었다. 운영으로 이겨내야 하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을 제대로 못 자는 날이 많았다”며 “경기를 마치고 나면 그날 경기 내용이 계속 머릿속에서 돌고 또 돌았다. 그걸 잊고 잠들기 위해 술을 마셨다. 그러다가 좋지 않은 습관이 돼 버렸다”고 했다. 지도자가 된 뒤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수단 관리부터 감독과 선수단의 가교 역할까지 신경 쓸 게 너무 많았다. 이기면 좋아서 한 잔, 지면 졌다고 한 잔, 경기 복기하면서 또 한 잔… 그렇게 술과 담배, 스트레스가 쌓여 갔다. KIA 수석코치였던 2017년 1월 1일은 그가 다시 태어난 날이다. 팀의 스프링캠프 출발을 앞두고 그는 모든 사람들 앞에게 금주와 금연을 선언했다. 한 해 전 겨울 받았던 건강검진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검진 결과 면역력이 크게 저하되어 있었다. 병이 발병한 건 아니지만 어떤 병이라도 걸릴 경우엔 그 결과가 상당히 치명적일 수 있었다. 건강검진을 떠나 그는 거울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생기 없이 까매진 얼굴이 떠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죽어 있는 얼굴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단호하게 실천하려 했다”며 “처음엔 쉽지 않았다. 경기 후 집에 돌아오면 금단 현상에 시달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맑은 정신으로 야구를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해 KIA는 모처럼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이전까지 술과 담배, 그라운드가 인생의 모든 것이었다면 금주와 금연으로 다시 태어난 후 그의 인생 2막은 이후 좀 더 다채로워졌다. 2017년 우승 후 그는 KIA 단장으로 선임돼 2021년까지 프런트의 수장으로 일했다. 2022년부터는 협성대학교 에이블아트·스포츠학과 특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올해는 일주일에 한 차례 티볼과 게이트볼, 파크 골프 등 뉴 스포츠에 관한 수업을 한다. 야구 선수 출신인 만큼 티볼은 실기 수업으로도 진행한다. 스타 교수님 강의인지라 인기도 많다. 그는 “처음에는 교수님 소리가 낯설기도 했지만 어린 학생들과 함께 얘기하고 교감하는 게 너무 재미있다. 수업이 있는 수요일이 너무 기다려진다. 다행히 학생들도 내 수업에 들어오는 걸 너무 좋아해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KBO 재능기부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전국 각지를 돌며 유소년 선수들에게 재능기부를 한다. 올 초에는 KBO 전력강화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다. 9월 열리는 항저우 아시아경기 대표 선수 선발부터 한국 야구 국제 경쟁력 강화까지 모두 관할하는 중요한 자리다. 대한민국국가대표선수회에서 하는 봉사활동에도 열심이다. 그는 “지금까지 야구 선수 및 지도자로 외길을 걸어왔는데 최근 들어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 새로운 걸 배우고 접하는 게 무척 즐겁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바쁘게 살려고 한다”고 말했다. 요즘 그의 건강을 뒷받침하는 두 가지는 등산과 골프다. 코치 시절부터 가까운 산을 오르며 머리를 식히곤 했던 그는 요즘도 집에서 가까운 서울 아차산이나 용마산을 자주 오른다. 시간이 좀 더 있을 때는 관악산이나 도봉산도 간다. 친구들과는 강원 설악산을 찾기도 한다. 그는 “좋아하는 야구를 생각하고 리뷰하면서 혼자 묵묵히 걷는다. 등산은 내게 힐링이나 마찬가지다”라고 했다. 최근에는 골프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공이 파란 하늘을 가로지를 때의 시원함과 통쾌함이 매력이라고 한다. 얼마 전에는 처음으로 싱글(70대 타수)도 쳐 봤다. 그는 “술과 담배를 하지 않으니 근력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힘을 써야 할 때 여전히 현역 때와 비슷한 파워가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스트레칭도 거르지 않는다. 침대 위에서 이런저런 동작을 하면서 몸을 풀어주면 하루를 보다 상쾌하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힘과 열정이 있으니 바쁘게 살게 된다. 고마운 야구 덕분에 내가 이곳까지 오지 않았나. 재능기부이든 봉사활동이든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는 언제나 달려갈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페블비치에서 경기를 할 수 있다니 꽤 괜찮은 인생이다.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선수라고 생각한다.” 여자 골프 역대 최장인 누적 160주 동안 세계랭킹 1위를 지키고 있는 고진영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메이저대회 US여자오픈 개막을 하루 앞둔 5일 공식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LPGA투어에서 뛰는 선수들은 대회가 열리는 주 월요일에 대개 대회장으로 이동한다. 그런데 고진영은 한 주 먼저 도착했다. 이유는 단 하나. 올해 US여자오픈이 열리는 곳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페블비치 골프링크스(파71)이기 때문이다. 고진영은 “이 코스에 대한 많은 역사적인 일들에 대해 듣고, 2000년 타이거 우즈가 US오픈에서 우승하는 것도 봤다”며 “페블비치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일찍 오지 않았을 것이다. 경치도 즐기고 이 일대에서 유명한 굴도 먹고 싶어 일찍 왔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 사이의 태평양 연안에 있는 페블비치는 미국 매체 골프다이제스트가 선정하는 미국 100대 퍼블릭 코스에 단골 1위로 꼽히는 골프장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코스’ ‘신이 만든 코스’ 등으로 불린다. 1919년 개장한 페블비치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1972년을 시작으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메이저대회 US오픈이 6번, 또 다른 메이저대회 PGA챔피언십도 1977년 한 차례 열렸다. 1947년부터는 프로 선수와 스포츠 스타, 연예인 등이 함께 출전하는 AT&T 페블비치 프로암도 열리고 있다. 그리고 올해 처음으로 US여자오픈을 개최하며 여자 선수들에게도 문을 열었다. 전 세계 수많은 골프장을 다니며 경기를 치렀던 여자 선수들 대부분이 페블비치 코스를 처음 밟았다. 박성현과 박민지 등 한국 선수들은 물론이고 외국 선수들도 연습 라운드를 돌며 이곳저곳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다. 2035년과 2040년, 2048년 US여자오픈도 이곳에서 열린다. 올해 대회 총상금은 역대 최다인 1100만 달러(약 143억 원)로 작년보다 100만 달러가 늘었다. 페블비치는 대중제 골프장이어서 평소엔 일반인도 돈만 내면 이용할 수 있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린피만 625달러(약 81만 원)이고, 카트비는 55달러(약 7만 원)다. 캐디를 동반하면 150달러(약 20만 원) 안팎을 더 내야 한다. 가장 아름다운 골프장인 동시에 가장 비싼 골프장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로날드 아쿠냐 주니어(26·애틀랜타)가 타석에 있을 때는 절대 자리를 비우지 말아라. ‘맥주 한 잔 사 오는 건 괜찮겠지’, ‘화장실에 다녀와도 되겠지’라고 생각했다가는 역사의 한 장면을 놓치게 된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애틀랜타의 브라이언 스닛커 감독은 4일 클리블랜드와의 방문경기에서 4-2로 승리한 뒤 이렇게 말했다. 스닛커 감독의 말대로 이 경기 3회초에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졌다. 아쿠냐 주니어가 안타를 치고 나간 후 곧바로 2루를 훔친 것이다. 시즌 40번째 이 도루로 아쿠냐 주니어는 MLB 역사상 처음으로 올스타 휴식기 이전에 20홈런-40도루-50타점을 기록한 선수가 됐다. 아쿠냐 주니어는 팀이 5-6으로 패한 5일 클리블랜드와의 경기에도 톱타자로 출전해 4타수 2안타를 때려냈고, 5회에는 2루 도루도 성공시켰다. 이날까지 그의 시즌 성적은 타율 0.337, 21홈런, 41도루, 54타점, OPS(출루율+장타율) 1.013이다. 도루와 OPS는 내셔널리그(NL) 1위, 타율은 2위, 홈런은 7위다. 5일 경기는 애틀랜타의 시즌 85번째 경기였다. 팀 85번째 경기를 기준으로 20홈런-40도루를 달성한 선수 역시 이전까지 아무도 없었다. 가장 비슷한 활약을 펼친 선수로는 개인 통산 최다 도루 기록(1406개) 보유자인 리키 헨더슨(65)을 꼽을 수 있다. 헨더슨은 1986년에 15홈런-50도루, 1990년에 17홈런-41도루를 각각 기록했다. 지금 페이스대로면 아쿠냐 주니어는 MLB 역사상 최초로 30홈런-60도루 클럽 가입도 가능하다. 이전까지 한 시즌에 30홈런-50도루 이상을 기록한 선수도 단 두 명뿐이었다. MLB 통산 최다 홈런 기록(762개) 보유자인 배리 본즈(59)가 피츠버그에서 뛰던 1990년 33홈런-52도루를 기록한 적이 있고, 에릭 데이비스(61)도 1987년 신시내티에서 37홈런-50도루를 남겼다. 베네수엘라 출신의 아쿠냐 주니어는 ‘흙에서 건진 진주’와도 같은 선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마이너리거였던 야구 집안에서 태어난 아쿠냐 주니어는 17세이던 2014년 국제 프리에이전트(FA) 자격으로 단 10만 달러(약 1억3000만 원)에 애틀랜타와 계약했다. 2015년부터 3년간 마이너리그를 거친 그는 2018년 빅리그에 데뷔하자마자 타율 0.293, 26홈런 64타점 16도루를 기록하며 신인왕에 올랐다. 애틀랜타는 이듬해 4월 MLB에서 1년도 채 뛰지 않은 아쿠냐 주니어와 8년간 1억 달러(약 1300억 원)에 장기 계약을 맺었다. 아쿠냐 주니어는 그해 41홈런-37도루로 40홈런-40도루 클럽에 근접한 기록을 남겼다. 5일까지 MLB 통산 성적은 141홈런-148도루로 본즈(762홈런-514도루) 이후 역대 두 번째 통산 500홈런-500도루 클럽 가입을 노리고 있다. 공격과 수비, 주루 능력을 모두 갖춘 아쿠냐 주니어의 활약 속에 애틀랜타는 현재 57승 28패(승률 0.671)로 MLB 전체 30개 팀 중 승률 1위를 질주하고 있다. 이변이 없는 한 아쿠냐 주니어의 올 시즌 NL 최우수선수(MVP) 선정도 떼어 놓은 당상이다. 아쿠냐 주니어는 “올 시즌 나와 우리 팀에 펼쳐지고 있는 상황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메이저대회 US오픈 시즌이 되면 어김없이 거론되는 이름이 있다. US오픈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승부 끝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던 박세리(46)가 주인공이다. 1998년 US오픈에서 박세리는 동갑내기 제니 추아시리폰(미국)과 92번째 홀까지 가는 스릴러 같은 맞대결 끝에 우승했다. 정규 4라운드를 같은 타수로 마친 두 선수는 18홀 연장 라운드에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바로 그 연장 라운드 15번홀에서 박세리는 양말까지 벗고 연못 안으로 들어가 공을 쳐 내는 ‘맨발 투혼’을 보여주며 승부를 서든데스로 끌고 갔다. 길었던 승부는 서든데스 두 번째 홀에서 박세리의 승리로 끝났다. 그날 이후 US오픈은 유독 한국 선수들과 인연이 깊은 대회가 됐다. US여자오픈을 주관하는 미국골프협회(USGA)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페블비치 골프링크스(파72)에서 열리는 제78회 대회를 이틀 앞둔 4일 홈페이지를 통해 박세리와 그가 한국 선수들에게 끼친 영향을 소개했다. USGA는 “박세리의 우승은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수많은 아이들에게 영감을 줬다”며 “박세리를 포함해 작년까지 10명의 한국 선수가 US오픈에서 우승했다. ‘세리 키즈’ 박인비는 두 차례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고 전했다. 박세리 다음으로 김주연이 2005년에 우승했고, 박인비는 2008년과 2013년 정상에 올랐다. 지은희(2009년), 유소연(2011년), 최나연(2012년), 전인지(2015년), 박성현(2017년), 이정은6(2019년), 김아림(2020년)도 차례로 우승 트로피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LPGA투어는 박세리의 US오픈 우승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대회 개막 하루 전인 5일 공개한다. USGA는 1998년 대회에서 박세리와 우승을 다퉜던 추아시리폰의 근황도 전했다. 대회 당시 듀크대 학생이던 그는 이후 메릴랜드대에서 간호학을 공부했다. 버지니아 커먼웰스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두 아들의 엄마이기도 한 그는 “내겐 꿈만 같은 시절이었다. 요즘은 골프를 거의 치지 않는다.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연습장에 가는 정도”라고 말했다. 총상금 1000만 달러(약 130억 원)가 걸린 올해 대회에는 22명의 한국 선수를 포함해 모두 156명이 출전한다. 이번 주 발표된 세계랭킹에서 1위를 유지하며 역대 최장 기간인 160주 동안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진영은 US오픈 첫 우승이자 메이저대회 세 번째 정상에 도전한다. 이 대회 역대 챔피언인 유소연과 지은희, 전인지, 박성현, 이정은, 김아림은 두 번째 우승 트로피를 노린다. 지난달 말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 어스 몬다민컵 정상을 차지하며 한국, 미국, 일본 등에서 통산 64승을 거둔 신지애도 2019년 이후 4년 만에 출사표를 냈다. 지난달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즈와 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 등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두 대회를 제패한 박민지는 US오픈 무대를 처음 밟는다. 세계랭킹 2위 넬리 코르다(미국), 3위 리디아 고(뉴질랜드), 디펜딩 챔피언 이민지(6위·호주) 등 세계 톱랭커들도 출전한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살아 있는 전설’ 베른하르트 랑거(66·독일)가 미국프로골프(PGA) 챔피언스투어 최고령, 최다승 기록을 한꺼번에 갈아 치웠다. 랑거는 3일 미국 위스콘신주 스티븐스 포인트의 센트리월드 골프클럽(파71)에서 열린 챔피언스투어 메이저대회 시니어 US오픈 최종 4라운드에서 1언더파 70타를 쳐 최종 합계 7언더파 277타로 정상에 올랐다. 우승 상금은 72만 달러(약 9억4000만 원)다. 이날 65세 10개월 5일이 된 랑거는 자신이 갖고 있던 챔피언스투어 최고령 기록을 또 한 번 연장했다. 아울러 통산 46번째 우승으로 헤일 어윈(45승)을 넘어 챔피언스투어 최다승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랑거는 또 메이저대회 12번째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며 이 부문 최다 기록도 이어갔다. 랑거는 50세 이상 선수가 출전하는 챔피언스투어에 데뷔한 2007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17년 연속 우승을 거두고 있다. 또 11년 연속으로 한 해에 2승 이상씩 쌓았다. 60세 이후 차지한 우승만 13차례이고, 64세 이후에도 5승을 챙겼다. 그는 챔피언스투어에서 64세 이후 우승한 유일한 선수다. 군 복무 중이던 19세에 척추 골절상을 당한 뒤 디스크로 고생한 랑거는 지금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피트니스를 하며 근력과 유연성을 유지하고 있다. 역사적인 우승을 달성한 이날 랑거는 “8월이 되면 어머니가 100세가 된다. 부모님으로부터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 같다”며 “10년 전부터 몸 이곳저곳이 아프지만 지금도 경기에 나서는 게 즐겁다. 앞으로 몇 년은 더 선수로 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스티브 스트리커(56·미국)가 2타 차 2위에 올랐고, 제리 켈리(57·미국)가 3타 뒤진 3위를 했다. PGA투어 메이저대회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했던 양용은(51)은 이븐파 284타로 알렉스 체카(53·독일)와 함께 9위를 했다. 양용은은 올 시즌 다섯 번째이자 딕스 스포팅 굿즈 오픈 9위에 이어 두 대회 연속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최경주(53)는 1오버파 285타로 11위를 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지난해 신인왕 부문 2위에 오른 고지우(21)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 데뷔하자마자 ‘버디 폭격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공격적인 플레이로 336개의 버디를 잡아내 유해란과 함께 이 부문 공동 1위에 올랐다. 라운드당 버디 수를 따지는 버디율은 21%로 윤이나(21.7%)에 이어 2위였다. 이렇게 버디를 많이 잡고도 우승 한 번 못 했던 건 보기도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뷔 후 첫 우승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보기 수를 최소화한 2년 차 고지우는 2일 KLPGA투어 맥콜·모나 용평오픈 최종 3라운드에서 4타 차의 열세를 딛고 44번째 출전 만에 처음으로 우승했다. 고지우는 이날 강원 평창 버치힐 컨트리클럽(파72)에서 열린 최종 라운드에서 이글 1개와 버디 6개, 보기 1개를 묶어 7언더파 65타를 쳤다. 최종 합계 14언더파 202타를 기록한 그는 공동 2위 안선주와 이제영(이상 11언더파 205타)을 3타 차로 제쳤다. 우승 상금은 1억4400만 원. 2라운드까지 선두 송가은에게 4타 뒤진 6위로 최종 라운드를 시작한 고지우는 4번홀까지 버디를 3개나 몰아 치며 우승 경쟁에 뛰어들었다. 5번홀(파4) 보기로 주춤했지만 8번홀(파5)에서 버디로 만회했다. 후반 9개 홀은 고지우를 위한 무대였다. 250야드 이상의 드라이브를 날리는 장타자인 고지우는 10번홀(파5)에서 296야드짜리 드라이브샷에 이어 세컨드샷으로 공을 홀 3m에 붙였다. 그리고 침착하게 이글 퍼트를 집어넣으며 단숨에 단독 선두로 뛰어올랐다. 이날 단 3명의 선수만 버디를 잡아낸 15번홀(파4)에서도 그의 버디 본능이 빛났다. 고지우는 10m 남짓한 거리의 내리막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며 선두를 굳게 지켰다. 운도 그의 편이었다. 16번홀(파4)에서 그는 드라이버샷을 잘못 쳐 오른쪽 숲으로 보냈다. 로스트 볼이라고 판단해 잠정구를 꺼내 들기 직전에 공이 발견되면서 그는 타수를 잃을 뻔한 위기를 벗어났다. 세컨드샷으로 공을 페어웨이 쪽으로 보낸 뒤 세 번째 샷은 소나무 숲을 넘겨 쳐 그린 위에 올리면서 파 세이브를 했다. 17번홀(파3)에서도 그린을 놓치고 5m 파퍼트를 남겼지만 파를 지켰다. 고지우는 “작년에는 버디를 많이 잡았지만 중요한 순간에 큰 실수를 많이 했다. 그런 실수들 덕에 많이 배워 올해는 한 번 생각하고 난 뒤에 신중하게 친다”고 말했다. 그는 “1승을 했으니 더 많이 우승하고 싶다. 고향인 제주도 대회에서도 우승하고 싶고, 메이저대회 우승도 하고 싶다. 최종 목표는 미국에 진출해 세계 랭킹 1위에 오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합기도 도장을 운영한 아버지 아래에서 2단을 딴 그는 “태생적으로 힘이 좋은 것 같다. 운동을 좋아해 연습도 많이 하고 열심히 한다”며 “라운드를 끝낸 날에도 잘 안 된 것들을 생각하면서 공을 100개 가까이 치고, 퍼트 연습까지 한 뒤 퇴근한다”고 했다. 고지우는 두 살 터울의 동생 고지원(19)과 함께 ‘투어 자매’이기도 하다. KLPGA투어에 올해 데뷔한 고지원은 이번 대회에선 2라운드까지 1오버파 145타를 쳐 컷 오프됐다. 고지우는 “동생을 믿는다. 지금까지 열심히 해 왔으니 앞으로도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덕담을 건넸다. 1, 2라운드 단독 선두였던 송가은은 이날 1오버파 73타로 부진하며 4위(최종 합계 10언더파 206타)로 밀렸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박항서 전 베트남 축구 대표팀 감독(66)은 베트남의 ‘국민 영웅’이다. 2017년 10월 베트남 성인 대표팀 및 23세 이하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그는 올해 1월 열린 동남아시아축구선수권까지 5년 4개월 동안 베트남 축구를 이끌며 2018년 동남아시아축구선수권 우승, 2019년 동남아시아경기 금메달 등 많은 성과를 냈다. 베트남에서는 가는 곳마다 팬들로부터 사인과 사진 촬영 요청을 받는다. 베트남 국영 항공사 베트남항공은 박 감독에게 한국∼베트남 노선 비즈니스석 평생 이용권을 선물하기도 했다. 나이 예순에 선택한 베트남행은 그에겐 마지막 도전과도 같았다. 베트남 문화에 대한 존중과 아들뻘 선수들과의 소통을 통해 그는 다시 한번 축구 인생의 꽃을 화려하게 피울 수 있었다. 그의 성공 비결은 ‘파파 리더십’으로 정리할 수 있다. 상징적인 장면은 그가 트레이너실에서 선수의 발을 직접 마사지해주는 모습이었다. 그가 트레이너실을 자주 찾은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말이 잘 통하지 않아서였다. 그는 “말이 잘 통하지 않으니 몸으로 스킨십을 하면서 선수들을 이해하려고 했다”며 “선수들의 부상 부위와 치료 정도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운동장에서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체력관리를 했다. 선수들이 웨이트트레이닝을 할 때 옆에서 같이 했고, 선수들이 러닝을 할 때 함께 그라운드를 뛰곤 했다. 그는 “신경 쓸 데가 많은 한국에서와 달리 베트남에서는 오직 축구와 선수들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다”고 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 생긴 에피소드도 있다. 베트남 대표팀 감독 초기 선수단 식사 때 그는 통역에게 “가위를 좀 가져다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정작 식당 직원이 들고 온 것은 서슬 퍼런 칼이었다. 박 전 감독은 “손에 들린 칼을 보고 나도 깜짝 놀랐다. 내 경상도 사투리 때문에 뜻이 잘못 전달된 것 같았다. 이후로는 가능한 한 말을 짧고 정확하게 하려고 신경 썼다”며 웃었다. 선수들과 서로 인간적으로 이해하게 된 후 말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선수들과의 대화에는 베트남어와 영어 그리고 손짓, 발짓을 모두 동원했다. 그는 “가끔 전화로 얘기할 때 옆 사람이 ‘대체 그렇게 얘기하면 어떻게 알아듣느냐’고 하는데 축구에 관한 얘기라면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평소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 박 전 감독이지만 그는 ‘원 팀’의 원칙을 어긴 선수들은 두 번 다시 대표팀에 선발하지 않는 무서운 감독이기도 했다. 그는 지금도 베트남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얼마 전 베트남 하노이에 자신의 이름을 딴 유소년 축구 아카데미를 세웠다. 그는 “5년 넘게 베트남 팬들과 협회로부터 큰 사랑과 지원을 받았다. 베트남 축구 발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돼야겠다는 생각에 아카데미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60대 중반의 나이에 그는 또 한 번의 ‘마지막 도전’을 위해 몸과 마음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2, 3년은 더 감독직을 수행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과 베트남이 아닌 제3국에서 제안이 온다면 대표팀이든 클럽팀이든 가리지 않고 맡을 생각이 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워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헌재 스포츠전문기자 uni@donga.com}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 자리는 ‘독이 든 성배’라고 불린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엄청난 비난에 시달린다. 성적이 괜찮아도 선수 선발이나 경기 운영 등에서 뒷말이 나오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동남아시아의 ‘축구 변방’이던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직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객관적인 전력은 그리 강하지 않았지만 국민들의 기대치는 높았다. 감독 임명 후 채 1년을 채우는 게 쉽지 않았다. 그렇게 감독들이 차례차례 갈려 나가면서 평균 감독 수명은 8개월여밖에 되지 않았다. 이 모든 상황을 한 번에 바꾼 사람은 박항서 감독(65)이다. 2017년 10월 베트남 성인 대표팀 및 23세 이하 대표팀(U-23) 감독에 부임한 박 감독은 올해 1월 열린 동남아시아축구선수권(미쓰비시컵)까지 무려 5년 4개월 동안 베트남 대표팀을 이끌었다. 박 전 감독은 “처음엔 나도 8개월도 못하고 쫓겨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더 물러설 곳도, 더 나아갈 곳도 없었다. 개인적인 욕심은 버리고 딱 1년만 버티자는 마음가짐으로 베트남 감독 직을 수락했다”고 말했다. 이 결정이 베트남 축구의 역사를 바꿨다. 베트남 축구대표팀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에서는 역대 최고 성적인 4강에 진출했고, 그해 동남아시아축구선수권(당시 스즈키컵)에서는 10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약체였던 베트남은 박 전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후 동남아의 ‘다크호스’가 됐다. 2019년 AFC 아시안컵 8강에 오르며 역대 최고 성적(2007년 8강)과 타이를 이뤘고, 같은해 12월 동남아시아경기에서는 처음으로 축구 금메달을 땄다. 박 전 감독은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도 베트남을 사상 첫 최종예선 진출로 이끌었다. 그리고 자신의 ‘라스트 댄스’였던 올해 1월 동남아시아축구선수권(미쓰비시컵) 태국과의 결승에서 베트남은 1, 2차전 합계 2-3으로 준우승을 했다. 박 전 감독 부임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30위였던 베트남은 6월 말 현재 95위에 올라 있다. 박 전 감독은 어릴 적 작은 신장 탓에 남들보다 늦게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84년 럭키금성 황소의 창단 멤버로 프로에 데뷔했지만 4년 만에 은퇴했다. 국가대표로 뛴 A매치 경기는 1981년 3월 한일정기전에 교체 멤버로 뛴 게 유일하다. 지도자가 된 후엔 2002년 한일월드컵 한국 대표팀 수석 코치로 4강 신화에 기여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과 선수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제대로 해내며 체육훈장 맹호장도 받았다. 하지만 그해 부산 아시아경기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으나 동메달에 그쳤고, 이후 프로축구 경남 FC, 전남, 상주 상무 FC 감독으로서도 눈에 드러나는 성적을 내지 못했다. 2017년 베트남행은 그에게는 ‘마지막 도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베트남에서의 성공 후 그는 베트남에서 ‘국민 영웅’ 대접을 받는다. 가는 곳마다 팬들의 사인 요청과 사진 촬영 요청을 받는다. 베트남 국영 항공사 베트남항공은 박 감독에게 한국∼베트남 노선 비즈니스석 평생 이용권을 선물하기도 했다. 예순에 시도한 도전이 그의 축구 인생의 꽃을 다시 한번 화려하게 피웠다고 할 수 있다. 박 감독의 성공 비결은 ‘파파 리더십’이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베트남 문화에 대한 존중과 자식뻘 선수들과의 소통이 빛을 발했다는 것이다. 박 감독이 트레이너실에서 선수의 발을 직접 마사지해주는 장면을 선수가 직접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린 게 대표적이다. 박 감독은 2018년 스즈키컵 결승 1차전을 위해 말레이시아로 이동하던 중 부상 선수에게 자신의 비즈니스석을 양보하기도 했다. 박 감독은 “선수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내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선수들과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최적의 장소는 바로 트레이너실이었다”며 “선수들에게 트레이너실은 사랑방 같은 곳이다. 치료도 받고 마사지도 하면서 가벼운 농담부터 사생활까지 각종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고 말했다. 그가 트레이너실을 자주 찾은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말이 잘 통하지 않아서였다. 그는 “말이 잘 통하지 않으니 몸으로 스킨십을 하면서 선수들을 이해하고자 했다”며 “선수들의 부상 부위와 치료 정도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고 말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 생긴 에피소드도 있다. U-23 대표팀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선수단은 한 식당에서 단체 식사를 했다. 식단이 제대로 나오는지 확인 차 그 식당을 찾은 박 감독은 통역을 통해 “가위를 좀 가져다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정작 직원이 들고 온 것은 서슬 퍼런 칼이었다. 박 감독은 “직원의 손에 들린 칼을 보고 나도 깜짝 놀랐다. 내가 경상도 출신이라 사투리가 심해 통역이 이해를 잘못한 것 같았다. 이후 가능한 한 말을 짧고 정확하게 하려고 신경썼다”며 웃었다. 하지만 선수들과 서로 인간적으로 통하게 된 이후 말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선수들과의 대화는 베트남어와 영어, 그리고 손짓, 발짓을 모두 동원했다. 그는 “가끔 선수들과 전화로도 이야기를 한다. 옆에 사람이 ‘대체 그렇게 얘기하면 어떻게 알아듣느냐’고 하는데 축구에 관한 얘기라면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평소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선수들을 자식처럼 대한 박 감독이지만 그는 동시에 굉장히 엄하고 무서운 감독이기도 했다. 그는 “선수를 뽑을 때 축구 실력만 보지 않았다. 슬로건으로 정한 ‘원 팀’의 일원이 될 수 있느냐를 더 유심히 봤다”며 “베트남 축구대표팀이 선수 하나로 좌우되는 걸 원치 않았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팀과 하나가 될 수 없으면 그 선수를 선발하지 않았다”고 했다. 박 감독은 요즘 스스로를 ‘실업자’라고 부른다. 하지만 재충전을 하는 와중에도 베트남과의 인연의 끈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며 지내고 있는 그는 얼마 전 베트남 하노이에 자신의 이름을 딴 축구 아카데미를 세웠다. 현재 13세와 11세, 9세 등 어린 유소년 선수들을 중심으로 시범 운영 중이다. 그는 “5년 4개월간 베트남 팬들과 협회로부터 큰 사랑과 지원을 받았다. 조금이나마 베트남 축구 발전에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축구 아카데미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60대 중반의 나이지만 그는 또 한 번의 ‘마지막 도전’을 위해 몸과 마음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2~3년간은 더 감독직을 수행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차례 이야기했던 것처럼 한국이나 베트남에 있는 팀은 가지 않는다”며 “그 외 제3국에서 제안이 온다면 대표팀이건 클럽팀을 가리지 않고 맡을 용의가 있다.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워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지난해까지 프로야구 NC의 에이스는 드류 루친스키였다. 2019년부터 작년까지 4년간 121경기에 등판해 53승 36패 평균자책점 3.06의 기록을 남겼다. 2020년 NC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그는 국내 리그 활약을 발판 삼아 올해부터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오클랜드에서 뛰고 있다. 하지만 NC는 루친스키의 공백이 아쉽지 않다. 지난해까지 MLB 워싱턴에서 풀타임 선발로 뛰었던 에릭 페디가 루친스키의 빈자리를 너끈하게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한국 무대에 데뷔한 페디는 28일 두산과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 6이닝 1피안타 1볼넷 6탈삼진 무실점으로 팀의 4-1 승리를 이끌었다. 전날까지 5연패 중이던 NC는 ‘뉴 에이스’ 페디의 호투로 연패 사슬을 끊었다. 이날 승리투수가 되면서 시즌 11승(1패)째를 거둔 페디는 평균자책점을 1.61로 낮추며 다승과 평균자책점 부문에서 모두 1위에 올랐다. 전완근 부상으로 등판 로테이션을 한 차례 거른 뒤 돌아온 첫 경기에서 승리를 따낸 페디는 “이런 성적을 내는 게 야구 선수로서의 꿈이자 목표였다”며 “NC의 모든 동료와 스태프 덕분이다. 무엇보다 1점대 평균자책점을 끝까지 유지하고 싶다. 현재 기록에 자부심을 느끼고 욕심도 난다”고 말했다. 페디는 이날 5회 1사까지 두산 타선을 퍼펙트로 막았다. 양석환에게 첫 안타를 내줬지만 후속 두 타자를 범타로 처리했다. 6회 첫 볼넷을 내준 뒤 송구 실책으로 맞은 1사 1, 2루 위기에선 허경민과 김재환을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위기를 벗어났다. 페디는 이날 최고 시속 153km의 빠른 공에 컷 패스트볼, 체인지업, 커브 등 여러 변화구를 던졌다. 페디가 국내 리그 최고 투수로 순항하고 있는 데 대해 NC 포수 박세혁은 “똑바로 오는 공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페디는 강속구 투수 대부분이 던지는 포심 패스트볼 대신 싱커를 던진다. 시속 143∼153km로 조절해서 던지는 싱커는 아래 위 움직임이 좋다. 박세혁은 “시속 150km의 빠른 공이라도 한가운데로 들어오면 맞아 나간다. 하지만 페디의 싱커는 무브먼트가 좋은 데다 제구도 잘된다”고 말했다. 투구 분석에 따르면 이날 페디가 던진 공 79개 중엔 커브가 28개로 가장 많았다. 이 중에는 수직으로 떨어지는 일반적인 커브도 있었지만 MLB에서 유행하는 스위퍼(옆으로 많이 휘는 변형 슬라이더)도 있었다. 2014년 MLB 신인 드래프트 전체 18번째 지명을 받아 워싱턴에 입단한 페디는 지난해까지 워싱턴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이었다. 2019년 워싱턴의 월드시리즈 우승 멤버이기도 하다. MLB 통산 성적은 102경기 21승 33패 평균자책점 5.41이다. 페디는 지난 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선수(FA)가 됐는데 MLB 다른 팀들은 그에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워싱턴의 제5선발이긴 했지만 승리(6승)보다는 패배(13패)가 2배 이상 많았고 내구성에도 의문 부호가 따랐기 때문이다. 잔부상이 잦았던 페디는 한 시즌 최다 이닝 투구가 2021년 기록한 29경기 133과 3분의 1이닝에 그쳤다. 선발투수인데 경기당 평균 5이닝을 채우지 못한 것이다. 페디가 외국인 선수 시장에 나오자 NC를 포함한 몇몇 국내 구단이 영입전에 뛰어들었다. 그의 에이전트인 스콧 보라스 측은 “NC가 가장 먼저 영입 제안을 했고 협상을 거쳐 입단을 결정했다”고 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