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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본보를 통해 부모 빚을 대물림 받는 아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졌다. 빚 상속은 영·유아를 가리지 않았고, 성인이 돼 월급 통장이 압류된 후에야 빚의 존재를 알게 된 경우도 있었다. 상속과 관련된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여론이 들끓자 국회에서는 한 달여 만에 몇 건의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그뿐. 각 당이 대선 경선에 들어가면서 해를 넘긴 지금까지 아무 소식이 없다. 지난해 1억 원이 넘는 빚을 대물림 받은 유철이(가명·당시 18세)의 개인파산을 신청한 대한법률구조공단 정경원 변호사(38)는 “엊그제도 8개월 된 갓난아기가 엄마 빚을 떠안은 건이 들어왔다”며 “대법원도 법을 고치라고 했는데 국회는 뭐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8개월 된 아기가 어떻게 빚을 떠안게 된 건가. “엄마가 지난해 12월에 사망해서….” (아빠는….) “작년 4월에 태어났는데, 서류상 아버지가 없는 걸 보면 미혼모인 것 같다. 그러니까 이 갓난아기가 상속인이 된 거지. 자녀가 있으면 나이에 상관없이 법상 그 아이가 모든 재산과 채무를 승계하는 1순위자다. 8개월여 만에 엄마를 잃고 상속인이 된 건데, 지자체에서 상황을 파악하다가 빚이 있어 보여서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지금 파악 중이다.” (엄마는 나이가….) “스물일곱….” ―도와줄 방법이 있나. “물려받은 재산 안에서만 빚을 갚는 상속 한정승인을 신청할 생각이다. 재산과 빚을 모두 포기하는 상속포기도 있지만 혹시라도 나중에 모르는 재산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그것보다는 한정승인으로 해주는 게 낫다. 그래도 이렇게 알게 되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어떻게든 도와줄 수 있으니까. 파악이 안 돼서 그렇지 성인이 돼 갚을 때까지 족쇄를 차고 살아야 할 아이들도 많을 거다.” ※미성년자가 빚을 대물림 받지 않으려면 상속포기, 한정승인, 특별한정승인을 신청해야 한다. 특별한정승인은 한정승인 신청 기간(3개월)이 지난 뒤 빚을 알게 됐을 때 이용할 수 있다. ―구제 제도는 있지만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던데. “미성년자는 직접 법률 행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법정대리인이 신청해야 한다. 친권자가 있으면 다행이지만 없는 경우도 있고, 있어도 오래전에 헤어져서 이제는 나 몰라라 하는 부모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누군가가 친권 정지 재판을 해서 이기지 못하면 법정대리인도 세울 수 없다. 친권 정지 재판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상속포기, 한정승인 신청기간이 3개월로 너무 짧은 것도 문제다. 남편이나 아내의 장례를 치르고, 마음을 추스르기도 부족한 시간인데 그 안에 재산 정리를 다 해보고 신청하라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하는 거다. 없는 사람들에게 이런 지난한 법 절차까지 밟게 하는 건 한참 잘못된 것 아닌가.” ※상속 한정승인을 잘 활용한 사람 중 하나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다. 조 전 장관의 부친은 웅동학원을 설립하며 진 빚을 다 갚지 못하고 2013년 사망했는데 남긴 재산은 21원이었다. 법원은 조 전 장관의 모친 18억 원, 조 전 장관 형제는 각각 12억 원을 채권자인 캠코에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조 전 장관 일가는 물려받은 재산 안에서만 빚을 갚는 한정승인을 신청했기 때문에 갚지 않아도 됐다. 그는 2014년 6월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란 책을 출간했다. ―채권자들이 신생아에게까지 빚 독촉장을 보낸다던데, 갚지 못하는 걸 뻔히 알면서 왜 보내는 건가. “그게 내막이… 금융권에서 채권을 대량으로 사온 회사들이 무조건 기계적으로 뿌리기 때문이다.” (채권을 산 회사들?) “회수 가능성이 거의 없는 채권을 금융권에서 아주 싼값에 대량으로 사들이는 회사나 개인들이 있다. 채권의 5∼10%, 심지어 1∼2% 가격으로도 산다. 금융권에서는 회수 가능성이 거의 없으니까 얼마라도 손실을 보전하려고 그렇게 판다. 대량으로 사와서 일괄적으로 뿌리기 때문에 대상이 어른인지 청소년인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안 한다.” ―그런 채권을 사면 이득이 있나. “전액은 아니지만 다만 얼마라도 갚겠다는 사람이 나온다. 1000만 원짜리 채권을 20만∼30만 원에 사왔는데 채무자가 100만 원이라도 갚으면 엄청나게 남는 장사 아닌가. 이런 일을 하는 회사와 개인들이 엄청 많다. 일괄 독촉장을 보낸 뒤 반응이 없으면 소송을 건다.” (돈을 받아내기 위해서?) “그런 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일단 채권 시효를 늘리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상행위로 인한 채권은 소멸시효가 5년이다. 그런데 소송을 하면 확정된 날부터 10년이 더 늘어난다.” ―유철이는 불이익이 큰 개인파산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던데. “기초생활수급자인 유철이 어머니는 남편이 사망하고 5개월 후에 찾아왔다. 상속포기나 한정승인 신청기간은 지났기 때문에 처음에는 특별한정승인을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문제?) “아버지가 생전에 빚 소송을 당했는데 그때 어머니도 공동 피고였던 사실을 모른 거다. 그래서 특별한정승인도 신청할 수 없었다.” (남편이 다 처리했다면 살림만 하는 아내는 모를 수도 있지 않나.) “실제로 몰랐던 것 같기는 한데, 입증할 방법은 없으니….” ―담당 판사조차 개인파산 말고 다른 방법이 없냐고 물었다던데. “유철이 경우에는 설사 특별한정승인을 받더라도 채권자가 다시 소송을 걸 게 분명했다. 어머니가 과거에 공동 피고였는데 어떻게 특별한정승인이 나올 수 있냐며 효력을 없애 버릴 수가 있다. 문제는 채권자가 언제 소송을 걸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유철이가 개인파산을 신청하고 면책을 받는 데 1년 정도 걸렸다. 그러고 나면 5년간 신용정보원에 신용불량자로 등재된다. 신용거래가 아예 안 되는 거지. 작년에 유철이가 고3이었다. 만약 채권자가 몇 년 후에 소송을 걸고, 그 결과가 나온 후에 파산·면책을 받으면 빨라도 20대 중후반까지 신용불량자가 된다. 신용불량자는 휴대전화도 개통할 수 없다.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할 때 그런 일이 벌어지기보다는 차라리 대학생 때 겪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휴대전화도 개통을 못 하나. “파산·면책을 받으면 신용등급이 최하위로 떨어지고 신용카드, 대출 등 모든 신용 거래가 제한된다. 휴대전화는 보통 단말기를 할부로 사니까 못하는 거지. 물론 일시불로 다 주고 사면 개통할 수 있지만 파산 신청을 하는 사람이 그럴 돈이 어디 있나.” ―프랑스는 빚의 대물림이 발생하지 않는다던데. “프랑스는 미성년 상속인의 법정대리인은 한정승인만 가능하고, 상속 재산이 빚보다 많은 게 명백한 경우에만 법원의 허가를 얻어 단순승인을 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러니 대를 물려 빚이 이어질 수가 없다. 프랑스였다면 유철이는 상속 즉시 한정승인이 되기 때문에 파산 신청을 할 필요도 없고, 당연히 신용불량자가 될 일도 없었을 거다.” ―앞서 말했지만 3개월인 신청 기간은 너무 짧은 것 같다. “독일은 빚이 있는 걸 모르고 재산을 상속했다면 이를 취소할 수 있는 기간이 30년이나 된다. 또 미성년자가 빚을 물려받아도 성인이 된 시점에 가진 재산만큼만 갚도록 하고 있다.” (우리도 10년 정도로 늘려주면 안 되나.) “안 될 건 없다고 본다. 단지 채권자 입장에서는 빨리 결정이 나야 포기든, 법적 조치든 할 텐데 그게 10년 정도 어정쩡한 상태로 있으면 좀 곤란하기는 할 거다. 돈을 받아야 할 사람의 권리도 있으니까.” ―그럼 독일은 왜 30년이나 주는 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쪽에 더 방점을 둬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는 거지. 달리 선진국일까. 우리도 프랑스, 독일처럼 가야 하지 않나 싶다. 미성년자는 빚이 생기는 과정에 아무것도 한 게 없다. 빚이 생기는데도, 구제 신청을 기간 내에 못 한 것도 본인 탓이 아니다. 책임의 원칙에도 반하는데 법적으로 빚을 갚아야 하는 건 너무너무 억울하지 않나. 흙수저 무(無)수저 이런 말을 하는데…, 이 아이들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족쇄를 차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런 상황을 어른들이 방치하면 어떻게 하나.”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지난해 12월 중순 청년정의당 강민진(27) 대표를 인터뷰했습니다. 청년정의당은 정의당 내 35세 미만의 당원들로 구성된 당 내 당이지요. 강 대표를 인터뷰 한 것은 그가 지금 주목받는 청년 청년정치인 중의 한 명인데다, 거대 양당 대선후보들의 비호감도가 역대 최고라면서도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반사이익조차 못 받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독자여러분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각 대선 후보들은 자신들의 지지율이 왜 오르지 않는지, 왜 내려가는지 정말 모르는 걸까요. 저는 안다고 확신합니다. 남의 지지율이 내려가는 이유를 물으면 이래서 그렇다고 말을 하니까요. 유권자의 선택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배우거나, 양자 역학을 이해하거나, 빅뱅이론을 공부해야만 알 수 있는 난해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상식만 있으면 알 수 있는 문제죠. 강 대표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정의당이 양념 같은 역할을 하는데 만족한다면 지금처럼 이념성향이 강해도 무방하지만, 대선에서 다수 유권자의 표를 얻으려면 당의 이념성향이 좀 더 대중적이 돼야하지 않느냐고요. 강 대표 자신도 언급했지만 정의당이 중점을 두는 분야는 다소 범위가 제한된 면이 있습니다. 과문한 탓인지는 모릅니다만 노동, 여성, 인권, 환경 같은 분야는 목소리가 높은데, 상대적으로 경제, 외교, 국방 등의 분야에 대해서는 잘 듣기 어렵지요. 선입관일수도 있습니다만 노조나 노동자 보호에는 앞장서도, 어떻게 하면 기업이 자유롭게, 막말로 돈을 더 잘 벌 수 있게 도와 줄 수 있을까하는 고민은 적은 것 같습니다. 이 기업이라는 단어를 재벌로 바꾸면 아마 더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것입니다. 5~10석 정도의 소수정당에 그친다면 소금 같은 역할로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국가를 운영하겠다면 달라져야하지 않겠습니까. 일반 국민에게 ‘정의당이 집권한다면 기업하기 더 좋은 나라가 될까요’라고 묻는다면 어떤 답이 더 많이 나올까요. 그렇다고 지금 정의당에서 기업 규제를 풀어주고, 경영자가 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자는 주장이 대세가 될 수 있을까요?저는 여기에 정의당의 딜레마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의당은 당원 충성도가 매우 강한 집단입니다. 더군다나 노동·민주화·시민사회운동이 출신 배경인 사람들이 다수인 곳이죠. 그런 특성 때문인지 선거 공약에도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면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것도 많습니다. 2020년 총선 공약으로 발표한 최고임금제가 그런 경우죠. 공공기관의 최고임금은 최저임금의 7배, 민간기업은 30배로 제한한다는 내용입니다. 국회의원은 5배입니다. 물론 이런 고민이 왜 나왔는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정의당은 이 공약을 발표하면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능력과 성과에 따른 임금의 차이를 인정하는 제도이고, 정의당은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체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월 250만 원을 못 벌고 있는데, 민간기업, 공공기관, 금융기관의 최고경영자들이 수십 배에서 수백 배에 이르는 임금을 받는 것은 건전한 시장경제하의 정당한 임금격차로 볼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공약의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묻고 싶은 것은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공약을 지지하고, 이 공약에서 자신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볼 수 있을까하는 점입니다. 부도덕한 경영진의 월급을 깎으면 화는 풀리겠지만 그렇다고 내 월급이 오르는 것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민간기업의 월급을 국가가 어떤 이유로 제한 할 수 있다면, 같은 논리로 다른 모든 분야도 이유만 있으면 제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도한 임금을 받는 부도적한 경영진을 근절한다는 시각에서 보면 그럴듯하지만, 이런 시각이면 빌게이츠나 스티브 잡스는 나올 수 없겠지요.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최저임금의 30배 밖에 못 받는다면 잡스가 회사를 차리겠습니까. 그런 규제를 안 받는 ‘잡(job)’을 찾거나 규제가 없는 나라에 가서 하겠지요. 강 대표는 인터뷰에서 지금 정의당에 필요한 것은 의외성이라고 했습니다. 정의당하면 늘 떠오르는 것 말고 국민이 보기에 신선한, 그 무엇을 얘기해야한다는 것이죠. 저도 동의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에도 마찬가지로 통용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굳어온 습관이, 소위 말하는 정체성이란 것이, 그 습관에 굳어진 당원들이, ‘의외성’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해오던 것과 다른 말과 행동을 하면 “정체성이 흐려진다” “그런 말하려면 국민의힘으로 가라” “집토끼가 도망간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또 한 편으로 외연을 넓혀야한다, 중도를 잡아야한다고 합니다. ‘웃프다’는 말은 이럴 때 써야하지 않을까요? 아무런 마찰과 아픔 없이 정체성도 지키면서 외연도 넓힐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왜 고민이겠습니까. 다수 유권자의 표를 받고 싶다면 자신들의 생각이 다수 유권자의 보편적인 생각을 따라가야지요.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지키고 싶다면 그 정체성을 지지하는 사람들끼리만 모이면 됩니다. 정체성은 유지한 채 표는 얻고 싶으니 이상한 공약을 남발하게 되고, 결국 당선 후에 지키지 못합니다. 이런 일이 너무 만연하다보니 이제는 아예 취임 초에 지킬 수 없는 것은 지킬 수 없다고 확실하게 말하는 것이 좋은 정치의 모습처럼 됐습니다. 좋은 정치는 애초에 이상한 공약을 남발하지 않는 것이죠. 질러놓고 못하겠다고 선언하는 게 아니고요. 대통령 당선자에게 우리가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는 특정 정당의 후보가 아니라 전 국민의 대통령이 돼달라는 것이지요. 이 말의 진정한 의미는 선거는 비록 특정 정당을 기반으로 해 치렀지만 이제부터는 생각과 행동을 전체 국민과 국가 입장에서 해달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특정 정당의 후보로 당선됐다고 그 정당의 가치관과 지향점을 전 국민에게 강요하는 것은 전체 국민과 국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선거는 특정 정당을 기반으로 치렀지만 당선 후에는 그 좁은 그릇을 털고 나와야지요. 그런데 각 정당 대선 후보 중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정의당은 늘 거대 양당 프레임 때문에 지지율이 안 나온다고 말합니다. 그런 면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이 되겠다고 합니다. 엄청난 자기모순이지요. 마크롱이 4~5% 지지층 입맛에 맞는 얘기만 했다면 마크롱이 됐겠습니까? 4~5%만 좋아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왜 지지율이 안 오를까를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 좀 안타깝기도 합니다. 비호감도가 역대 최대라는 거대 양당 후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상한 말과 행동을 계속하니까 비호감도가 높아지는 것이지요. 이상한 말과 행동을 하지 않으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을, 그것은 하지 않고 엉뚱하게 토론을 하자고 하고, 신발을 벗고 절을 합니다. 이제부터는 정신을 차리고 모든 것을 바꾸겠다는데 왜 모든 것을 바꿀까요? 자신들만 바뀌면 나머지는 자동으로 바뀔 텐데요.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1993년 8월 20일, 처음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암기 위주인 학력고사의 한계를 극복하고, 비정상적인 교육 풍토를 쇄신하려는 의지가 담겼다”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몇 년 안돼 사교육비 증가의 주범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문제 오류와 난이도 조절 실패로 해마다 논란에 휩싸였다. 수능 창시자로 불리는 박도순 초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79·고려대 명예교수)은 “대학이 수능 점수로 줄을 세워 뽑으면서 모든 것이 변질됐다”고 말했다.》 ―수능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게 잘못됐다는 건가. “원래 목적은 이 학생이 대학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만 평가하고, 학생 선발은 대학이 스스로 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학별고사(본고사)도 치를 수 있게 했다. 그런데 대부분 대학이 본고사 대신 수능으로 뽑으면서, 수능 점수는 수험생을 줄 세우는 도구가 됐다. 그게 비극의 시작이었다.” ※1994학년도 입시에서 대학은 △내신 △내신+수능 △내신+본고사 △내신+수능+본고사 중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별 본고사를 치른 대학은 9곳뿐이다. 나머지 129곳은 내신+수능으로 선발했다. ―비극의 시작? “늘 문제가 되는 난이도라는 건 처음 만들 때는 고려하지도 않았다.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해한 학생이면 누구나 풀 수 있는 문제를 낸다고 했으니까.” (그러면 변별력이 없지 않나.) “학생을 줄 세우기 위해 만든 시험이 아니니까. 수능은 고교과정을 충실히 이수했는지를 보는 거고, 충실히 배웠으면 좋은 점수를 받는 게 당연하다.” ―대학은 늘 학생 선발에 정부가 관여하지 말라고 하는데. “말은 그렇게 하는데 실제로는 아니다. 돈도 많이 드는 데다 보안 등의 문제가 생기면 감당이 안 되니까. 제대로 시험을 치를 능력이 안 되는 곳도 많다. 또 능력이 되는 대학도 수능으로 뽑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있다.” (좋은 곳은 왜?) “전국에서 몇 등이나 되는 학생을 뽑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수능뿐이니까.” ―올해도 평가원장이 사퇴했는데, 왜 출제 오류가 끊이지 않는 건가. “해당 과목 교수·교사들이 출제와 검토를 맡지만 어떤 과목을 많이 안다고 좋은 문제를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문항 출제는 그 자체로 별도의 공부와 경험이 필요한데 우리는 그런 전문 인력이 없다. 미국에서 대학입학자격시험(SAT)이 생긴 이유도 그런 고민 때문이었다.” (하버드, 예일대 교수들이 좋은 문제를 못 낸다고?) “미국 대학들은 해당 분야를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로 학생을 선발하지 않는다. 학문을 배울 능력이 있는가를 본다. 그래서 SAT를 대학입학자격시험이라고 부르는 거다. 최고의 석학들은 수두룩하지만 그들은 이런 문제를 내본 경험이 없다. 그래서 몇 개 대학이 공동으로 SAT를 만들었는데, 해보니까 유익해서 ETS를 만들어 주관하게 한 거다.”※SAT는 1926년 처음 시행됐다. ―SAT라고 오류가 없을 수는 없지 않나. “SAT는 우리 수능처럼 단기간에 출제하고 시험 보지 않는다. 문제은행식이라 평상시에 문제를 만드는데, 전문 연구원들이 10가지가 넘는 검토 과정을 거친 뒤 문제로 확정한다. 그래서 오류도 적지만 만에 하나 오류가 있어도 큰 의미가 없는 게 참고자료로만 쓰지, 그걸로 당락을 결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평상시에 출제하면 문제 유출 등 보안 문제는 없나.) “그 사람들은 걱정 안 한다. 물론 출제자가 비밀엄수 각서는 쓴다. 하지만 별 의미가 없는 게 자신이 출제한 문제가 5년 후에 쓰일지, 10년 후에 쓰일지 모른다. 보통 5년 정도 후에 출제되기 때문에 지금 빼내 봐야 소용이 없고 문항 추출을 컴퓨터가 무작위로 하기 때문에 빼낸 문제가 나올지 알 수도 없다.” ―늘 물수능, 불수능 논란이 이는데 난이도 맞추기가 그렇게 어렵나. “난이도가 높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어렵다는 뜻 아닌가?) “다들 그렇게 아는데 학문적으로는 반대로 문제가 쉽다는 뜻이다. 난이도를 말할 때 기준은 정답률이다. 정답자가 많으면 정답률이 높으니 난이도는 쉬운 거고, 적으면 어려운 거고. 수능처럼 수 십만 명이 시험을 보면 점수가 거의 정상 분포에 가깝게 나온다. 전체 수험생 점수가 정상 분포를 보였다면 난이도 논란은 무의미하다. 그런데 왜 늘 불수능, 물수능 논란이 벌어지냐 하면 상위권 학생들에게 쉬웠느냐, 어려웠느냐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럼 왜 평가원은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늘 난이도 조절 실패를 자인하나. “그게 참 어렵다. 화가 나 있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에게 ‘당신들이 잘못 알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내가 평가원장(1998∼2000년) 할 때 이런 항의도 있었다. 문제를 주고 ‘다음 중 X의 값은?’이라고 물었는데 그게 어디에 나온 질문이라는 거다.” (X값이 뭐냐는 건 그냥 물음일 뿐인데.) “그렇지. 그런데도 항의를 한다. 평가원장을 할 때는 화형식을 당한 적도 있다. 당시 평가원이 서울 삼청동에 있었는데 그 앞에서 수능 반대 단체가 내 화형식을 했다.” ―그래도 만든 당신이 수능이 없어져야 한다고 하는 건 좀…. “처음 설계했던 수능이 아니니까. 단순 암기력만 측정하는 학력고사를 탈피하기 위해 만들었는데 수없이 변질되더니 결국 똑같아졌다. 이런 수능은 없애야 한다. 다시 학력고사로 돌아가든지.” (처음에는 언어, 수리 두 분야만 보겠다고 발표했던데.) “대학 수업을 듣고 이해하는 능력과 논리적으로 사고하는지만 평가하려 했으니까. 그래서 제도 설계 때는 대학교육적성검사라고 불렀다. 당연히 언어는 국어시험이 아니고, 수리도 수학시험이 아닌 일종의 지능검사와 비슷했다. 그렇게 새 대입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는데 바로 과학계에서 밀고 들어왔다. 과학 한국을 만들자면서 어떻게 과학을 뺄 수 있냐고. 그래서 정원식 문교부 장관에게 ‘노태우 대통령에게 꺾이지 말고 처음 계획대로 해야 한다고 말해 달라’고 했더니 ‘알았다’고 하고 갔다.” ―결과는 우리가 아는 바대로 인가. “대통령도 못 막더라. 정 장관이 다녀오더니 ‘과학은 좀 넣어주자’고 했다. 과학이 들어가니까 이번에는 사회 쪽에서 밀고 들어왔다. ‘사회를 빼고 탐구를 논할 수 있느냐’ 이러면서.” (탐구?) “처음 수능제도 계획을 발표할 때 ‘언어, 수리’만 한다고 했기 때문에 대분류를 늘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수리’ 옆에 점을 찍고 ‘탐구’를 붙인 뒤 탐구 안에 과학 영역을 넣는 고육책을 썼다. ‘언어, 수리·탐구’ 이렇게. 그 탐구 안에 과학과 사회 문제를 낸 거다.” (영어가 가장 먼저 들고 일어났을 것 같은데 의외다.) “영어는 영어 쪽이 아니라 대학들이 요구했다. 원서를 많이 보는데 독해능력은 측정해줘야 한다고. 한 번 무너지니까 막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독해 평가를 넣었는데 조금 지나니까 의사소통이 중요하다며 듣기 평가를 요구했다. 그렇게 모든게 다 바뀌어 갔다.” ―수능으로 사교육도 잡겠다고 했다. “사교육 감소는 처음부터 정책 목표로 두지 않았다. 수능을 도입한 목적은 암기 위주 교육 탈피였다. 그런데 정치가 개입하더니 교육부에서 있지도 않던 사교육 감소 효과도 있다고 발표했다. 나는 그런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거짓말?) “사교육은 경쟁이 사라지지 않으면 없어지지 않는다. 제도가 바뀐다고 경쟁이 없어지는 게 아니지 않나.” ―수능은 최소한 공정하다는 믿음이라도 있지 않나.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 사건, 조국 사태, 정유라의 이대 입학 등 입시 부정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온 국민이 분노했다. “그건 강한 처벌로 응징해야지. 부정행위가 발생할 때마다 제도를 바꾸면 남아날 제도가 어디 있겠나. 그런데 참 어이없는 게, 힘 있는 사람들을 막을 방법은 애초에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수능은 아니고 과거에 석사장교 선발심사위원장을 했을 때인데 커트라인 밑에 있던 지원자가 합격하는 일도 있었으니까.” (누가 점수를 올려준 건가?) “그건 범죄니까 못하고 그 지원자가 속한 분야 정원이 기존보다 두 배로 늘었다. 다른 분야는 줄이고.” ※석사 학위자를 선발해 장교로 6개월 임관시키고 전역시키는 제도. 1982년에 생겨 1991년 없어졌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정치가 다양해지길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우리 정치에서 거대 양당을 제외한 나머지 정당의 존재감은 작은 편이다. 대부분 선거 때마다 명멸을 거듭하고, 그 중 오래됐다는 정의당도 대선후보 지지율이 5% 정도에 그치고 있다. 강민진(26) 청년정의당 대표는 “거대 양당 체제가 워낙 공고한데다, 국민들이 심상정 후보를 궁금해 하지 않다보니 지지율이 정체된 것 같다”고 말했다. 청년정의당은 정의당 내 35세 미만의 당원들로 구성된 당 내 당이다.―국민들이 왜 심 후보를 궁금해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나.“솔직히 말해 국민들이 심 후보에 대한 거의 고정된 이미지를 갖고 있다. 늘 해왔던 얘기를 똑같이 반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궁금해 하지 않는다.” (그런 얘기해도 되나?) “청년정의당을 만든 이유가 그런 말을 자유롭게 하라는 건데…. 그래서 지금 심 후보와 정의당에는 의외성이 필요하다. 물론 지금의 정체성을 모두 버리고 완전히 다른 길로 가자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보기에 ‘어? 지금까지와는 다른 말을 하네?’ ‘어? 좀 신선하네?’ 이런 게 없으면 존재감을 키우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외성을 말하는 건가?) “지금까지 진보 정당이 주로 이야기해온 영역은 좀 한정된 면이 있다. 노동, 복지, 인권, 여성 등…. 반면에 성장이나 국제사회에서의 우리의 역할, 과학기술 이런 부분은 덜 이야기해온 게 사실이다. ‘정의당이 그런 얘기도?’ 이렇게 평가받는 부분이 있어야 할 것 같다.”―그건 완주를 전제로 한 말 아닌가.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함께 ‘위성정당방지법’을 만들자며 단일화 구애를 하고 있고, 진보진영 안에서도 단일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급하니까 후보 단일화를 위해 자꾸 찌르는데…한마디로 (거대 정당의) ‘갑질’이고, 단일화 압박 수단이라고 본다. 안 그러면 총선이 2024년인데 왜 지금 갑자기 얘기를 꺼내겠나. 만약 위성정당 창당이 진심으로 잘못한 일이라 생각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한다. 그때 당선된 의원들을 그대로 두고 입으로만 잘못됐다고 하면 뭐하나. 그리고 나는 정의당이 더 이상 민주당과의 단일화 프레임에 말려들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단일화 프레임?) “여전히 선거를 민주 대 반민주의 대결로 보는 세대가 많다. 그런 세대 입장에서 보면 정의당이 무슨 말을 하던 간에 일단 국민의힘이 집권하는 걸 막기 위해서는 민주당을 찍어야하는 거다. 세상은 민주 대 반민주의 대결이니까. 하지만 그런 프레임은 이미 시효가 다했다. 문재인 정권을 거치면서 조국 사태, 안희정 박원순 오거돈 성폭력 사건 등 무수한 사안을 봤지만 민주당이 국민의힘보다 나은 게 뭐가 있나. 이제는 민주 대 반민주라는 프레임이 정당의 우열을 가르는 제대로 된 도구가 아닌 거다. 그 생각을 버릴 수 없는 세대에게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정의당은 2019년 말 민주당과 함께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제도로 20석 가까이 확보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비례대표 선출용 위성정당을 만듦으로써 비례대표 5석에 그쳤다.―정의당이 최근 ‘김어준의 뉴스공장’ 출연 보이콧을 선언했던데.“김 씨는 자기 유투브 채널에 이재명 후보 지지를 표명한 사회심리학자를 불러 심 후보가 단일화를 하지 않는 이유가 심리에 문제가 있어서라는 식으로 인신공격을 했다. 선동을 해도 어떻게 그렇게 질 나쁘게 선동하는지….” ※김어준은 지난달 19일 자신의 유투브(다스뵈이다)에 ‘2020·2022 이재명론’ 공동 저자인 김태형 사회심리학자를 초대해 이재명 후보와 단일화 하지 않는 심 후보의 심리를 분석했다. 이 자리에서 김태형 씨는 심 후보가 ‘2남2녀 막내딸이라 인정 욕구가 강해서’ ‘성공욕, 명예욕, 인정욕구에 사로잡힌 인물’이라고 말했다. 김어준은 “진보 유권자 입장에서 누구에게 표를 줘야하나”고 물었고, 김태형 씨는 “적폐의 부활을 막으려는 쪽으로”라고 답했다. ―그런데 진짜 단일화를 원한다면 심 후보와 정의당 지지층을 회유해도 모자란 판에 왜 화가 나게 했을까?“실력 행사… 우리를 구슬려서 단일화 하려는 게 아니라 민주당 지지층의 조직적 압박을 통해 굴복시키려는…. 민주당 지지자가 우리보다 월등히 많으니까 그런 공세가 가능하다고 본 것 같다.”―일부 정치인들이 여성을 위한 정책을 폐지해서 ‘이대남’ 표심을 잡으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던데.“일부 정치인들이 여성 할당제 폐지, 여성가족부 폐지, 군 가산점 부활 이런 걸 주장하고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좀 ‘남초’커뮤니티의 목소리가 실제보다 과잉 대표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정치권에서 보니 실제로 평범한 청년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데가 많지 않더라. 평범한 청년들이 목소리를 낼 공간도 마땅치 않고. 과거처럼 청년들이 학생회, 운동권, 노조 이런데 묶이는 시대도 아니다보니 청년들이 다 개별화, 파편화돼있다. 그런 중에 거의 유일하게 조직력을 보이고 있는 집단이 남초 커뮤니티다. 모든 20대 남자들이 다 그들처럼 여자도 군대 보내야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않겠나.” ―정의당도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 초기에는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고 지칭했던데. “그 단어가… 사실 운동권이나 시민사회단체에서는 많이 쓰던 말이다.” (원래 쓰던 말이라고?) “시민사회, 운동권 내에도 성폭력 사건들이 있었다. 그래서 어떤 공동체적 해결이 필요할 때 피해자, 가해자, 또 공동체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한 담론들이 만들어져 온 역사가 있다. 거기서 일단 피해 사실을 누군가가 이야기를 했는데, 아직은 확정적인 조사까지는 안 갔을 때는 ‘피해호소인’ ‘가해지목인’ 이렇게 불러왔다. 민주당이 그때 처음 만든 게 아니라 그들도 운동권에 있었기 때문에 그 단어를 아는 거다.”※지난해 7월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빈소에서 당시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피해호소인에 대한 신상 털기나 2차 가해는 절대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심 후보는 올 9월 정의당 대선후보 경선 토론회에서 “피해호소인은 피해자 변호인이 등장하기 전까지 당 내에서 그렇게 정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강 대표는 처음부터 ‘피해자’로 불렀다. ―의외로 진보계열에서 성문제에 이상한 논리를 들이미는 경우가 있다. 당신은 ‘해일이 밀려오는데 조개 줍고 있느냐’는 말이 가능했던 시대도 있었다고 비판했던데.“그게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했다고 알려진 말인데, 본인은 안했다고 하지만…. 그런데 그 말이 진보 진영에서 좀 광범위하게 쓰인 건 사실이다.” (무슨 뜻인가?) “큰 문제가 앞에 닥쳤는데 진보진영 안에서 일어난 성폭력 문제를 제기하는 건 해일이 몰려오는데 조개를 줍는 행위 같은 거란 의미다. 성폭력 문제 같은 건 사소한 문제로 취급하는 게 과거 86세대들이 가졌던 관점이다.” ※이 발언은 2003년 당시 유시민 개혁국민정당 집행위원이 당 내 성폭력 사건 해결을 요구하는 당원들에게 한 말로 알려졌다. 당 내 여성위원회가 2003년 4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지도부의 미진한 조치를 문제 삼은 데 대한 것이다. 유시민은 이 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06년 보건복지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그는 “여러 일정을 제쳐두고 당내의 작은 일로 시간이 소모되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해변에서 조개껍질 들고 놀고 있는 아이와 같다’고 한 것이 왜곡됐다”고 해명했다. ―최근 벌어진 각 당의 영입인사 낙마는 정당이 사람을 키우지 않고, 선거 때만 갑자기 스펙이 화려한 사람을 갖다 쓰는 행태가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그게 진짜 문제다. 조동연 전 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의 사생활을 문제 삼는 건 반대한다. 하지만 원래 정치를 하던 분도 아닌 사람을 송영길 민주당 대표와 함께 공동 상임선대위원장을 시켰는데… 솔직히 뭔가 스펙도 그럴듯해 보이고, 데리고 오면 이재명 후보 이미지에 훨씬 더 좋을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 영입한 거 아닌가. 오직 선거를 위해 갑자기 ‘픽업’한…. 그건 이 사람을 정치적 동료로 맞이하는 게 아니고 선거를 위한 장식품으로 쓰는 행태다. 그러다보니 그런 참사가 벌어지는 거지. 지금 민주당과 국민의힘에서 청년 인재영입을 많이 하고 있는데 다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당 안에서 성장하려는 청년 정치인들한테 굉장한 박탈감을 준다.”―박탈감?“어차피 외부 인사를 고르는 권력은 어느 당이든 당 내 기득권, 기성세대에게 있다. 그들이 선거 때만 되면 청년 인재영입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기준과 입맛에 맞는 청년들을, 반짝반짝해 보이는 청년들을 데려온다. 당 안의 청년정치인들은 소외되는 거지. 그런데 또 선거가 없는 평상시에는 당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이 크는 걸 직간접적으로 막는 현상이 벌어진다.” (평상시에는 청년들이 크는 걸 막는다는 게 무슨 말인가.) “어느 당이든 자리가 한정돼있으니까. 새로 진입하는 청년들이 당 안에서 성장해서 자기 자리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길 바라지 않는 거다. 그래서 청년정치인들이 성장하는 걸 억제하거나, 벽에 부딪히게 하는 현상들이 발생하는데… 그러다가 또 선거가 닥치면 청년 표를 얻어야한다고 외부에서 갑자기 데려오는 일이 반복된다.”―정의당은 다른가.“없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 당 안에도 그런 세대 갈등이 있다. 지난해 총선에서 비례대표 1, 2번을 청년에게 할당해 류호정, 장혜영 의원이 당선됐다. 그런데 이 일에 대해 찬반양론이 굉장히 격돌했다. 청년할당제가 잘한 것이냐, 아니냐 하는….” (당시에 그랬다는 건가.) “아니, 지금까지도 여전히…. 청년들에게 자리와 기회를 주는 조치를 했을 때 이게 반대로 기존에 당에서 오래 활동해온 사람들에게는 자원분배의 문제가 되니까.” (일종의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것 같은 건가?) “그런 셈이다. 2018년 지방선거 비례대표 경선 때 청년후보들에게는 60%의 가산점을 줬다. 자신이 받은 표의 60%를 가산해 주는데 사실 청년들은 기본적으로 받는 표가 적기 때문에 가산점을 줘도 대부분 떨어진다. 가산점 비율을 더 올리지는 못하고 같은 규정을 내년 지방선거 비례 경선에 적용하자는 안을 전국위원회에 올렸는데 간신히 통과됐다.”※가산점 60%란 100표를 받으면 160표로 환산해주는 것이다. 청년들은 인지도가 부족으로 애초에 받는 표가 적기 때문에 가산점을 받아도 당선되는 경우가 드물다.―간신히? 전과 같은 안인데?“그만큼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청년들에게 그렇게 과도한 가산점을 주는 게 과연 맞느냐는 거다.” (60%도 실효성이 적다면 가산점을 더 올린 안을 올렸어야하는 거 아닌가.) “우리 청년정의당 안에서는 더 센 안을 논의하기는 했는데 어쨌든 그 안을 올렸다. 정의당 안에서도 청년할당제가 아니면 사실상 청년들이 스스로 크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에게 정치를 저질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나라의 장관을 하고, 집권여당 당 대표도 하고, 대선후보 경선에도 나온 분이 다른 정당 대선후보 부인의 확인도 안 된 과거나 공격을 하고 있다는 게, 우리 정치가 얼마나 후진적인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 아닐까. 그렇게까지 정치를 저질로 만들어야하는지. 추 전 장관은 윤 후보 부인에 대해 언급하면서 ‘대선 후보는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주변 친인척, 친구관계 모두 다 깨끗해야한다’고도 했다. 타 후보 부인에게 ‘깨끗하지 못하다’는 걸 암시하는 발언이 더 지저분한 것 같다. 대통령의 부인이라는 자리가 공직자도 아니고 국모는 더더욱 아니지 않나. 정치인이나 공직자 가족에 대한 검증은 범위를 한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가족이 어떤 비리나 부정부패에 관련돼있을 경우 등으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부처럼….” (그 분은 참 안 걸리는 데가 없다.) “하하하. 조 전 장관 부인은 자녀의 입시와 관련해 역할을 한 게 문제가 됐으니까 그런 부분은 당연히 검증해야한다. 후보 본인에 대해서도 검증할 게 많은데 민주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이 왜 후보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배우자의 과거를, 그것도 여성의 성적인 부분을 이용해 공격하는 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런 저질 공격은 하면할수록 하는 쪽은 손해, 받는 쪽이 이득이라는 걸 정말 모르는 걸까.”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대선이 희망을 보는 장이 아니라, 거대 양당의 복수혈전에 그친다면 나라에 미래가 있을까. 후보들은 저마다 자신이 대통령이 돼야한다지만 누가 되든 대선 후가 더 걱정이라는 사람들도 상당수다.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승패에만 관심을 갖지 말고 어떻게 하면 선거 이후에 우리 사회가 한 걸음이라도 나아질 수 있을지 고민하고 행동해야한다”고 말했다.―2년 전 한창 당에 쓴 소리 할 때 “공천은 걱정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걱정 안 한다”고 했다.“하하하, 그때는 진짜 걱정하지 않았다. 경쟁자도 없고, 지역구 관리도 자신이 있었으니까. 내가 떨어지면 큰일 난다고 걱정해주는 사람도 당에 많았다. 예뻐서라기보다는 내가 공천에 탈락하면 중도층이 이반해 당 전체가 타격을 입을 거라는 분위기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걱정 안 했는데, 내 생각과는 달리 당은 중도층 포용이 아니라 지지층만 보고 가는 전략을 썼다. 그런 전략으로 갈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2019년 9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가 끝난 직후 당시 민주당 소속이던 그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조 전 장관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이로 인해 지지층으로부터 3000여 통이 넘는 문자폭탄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그 전략으로 민주당이 이겼는데.“그게 결국 독이 됐다. 이후로는 당 내에서 건전한 비판의 목소리가 쑥 들어갔으니까. 그 뒤에 민주당이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보지 않았나.” (당에서는 당신이 지역구 관리를 안 해서 진거라 하던데.) “하하하, 결과적으로 졌으니까 지금 와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해봐야 다 핑계처럼 보이겠지만…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사람이 나를 이겼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는 그때 아직 이사도 못 온 상태였다.”※2020년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163석,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이 17석, 유사 위성정당인 열린민주당 3석으로 범여권이 183석을 얻었다. 당시 미래통합당은 84석, 비례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19석으로 103석을 얻었다. 경선에서 금 전 의원을 이긴 강선우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실제 경선 운동을 7일 밖에 못했다고 밝혔다.―입을 좀 다물었다면 인생이 많이 달라졌을 텐데 후회하지는 않나.“그럴 리가. 우리 사회에 이런 습성이 있는데… 학생 때 집회나 시위를 하려고 하면 주변에서 ‘지금은 공부를 하고 나중에 해라’라고 한다. 회사 초년병 때 부조리를 보고 말하려고 하면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니 좀 더 익히고 힘을 가진 뒤에 해라’라고 한다. 그렇게 어… 하다가 은퇴하는 순간이 온다. 조국 사태나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 주변에서 재선도 해야 하니까 이제 그만하는 게 어떠냐고 조언을 많이 했다. 그런데 국회의원조차도 ‘아직은 초선이니까…’이런 생각으로 입을 닫으면 누가 제대로 된 말을 할 수 있나. 3선, 4선이 된 후에? 국민의 대표라면, 국민이 느끼는 것을 그대로 대변해야지 이거 재고, 저거 재고, 자기 재선 고려하고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윗사람이 밥까지 사주면서 부탁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하더라.”―윗사람? “공수처법 투표 전날 이해찬 대표가 나와 조응천 의원을 불러 함께 식사를 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이 대표는 ‘공수처법에 찬성해 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공수처의 문제점을 말하면 ‘그런 면이 있었네’하는 정도였다.” (그걸 꼭 말을 해야 아나?) “당 대표가 소속 의원에게 명시적으로 찬성하라고 한다는 건, 책임을 함께 나눠지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당 대표가 끝까지 그런 말을 안 하는데 밥 얻어먹고 내가 찬성으로 돌아서면 알아서 기는 것이 된다. 나는 그런 정치를 할 생각이 없고, 그건 내가 알던 민주당 모습도 아니다. 알아서 기기 시작하면 그게 무슨 민주정당인가.” (대놓고 부탁했다면 찬성했을 건가.) “하하하, 그때는 총선 공천 전이라… 아마 ‘대단히 미안합니다’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당신이 반대해도 통과에 지장은 없었는데 이후에 징계까지 주면서 왜 그렇게 야박하게 몰아댔을까.) “그게 더 정치적으로 얻을 게 많으니까.”―당신을 몰아붙이면 당이 더 정치적으로 이득을 본다고? “강성 지지층이 그걸 좋아하니까. 국회의원들이 실력이 없는 것 같아도 정치적인 감각은 다 있다. 민주당이 변한 걸 내가 처음 느낀 게… 김경수 경남지사가 1심에서 예상 밖으로 유죄 판결 받고 법정 구속됐을 때였다. 핵심인사에게 판결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있는데 판사를 공격해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그랬더니 오히려 지금은 공격을 해야 된다는 거다. 지지층 마음을 달래줘야 된다고…. 너무 기가 막혀서 전화통을 붙잡고 한 시간을 싸웠다.”―조국 전 법무부 장관, 윤미향 의원,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부산시장 문제가 발생했을 때 민주당이 보인 모습은 상식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뭐가 민주당을 그렇게 변하게 만든 건가. “성공했으니까. 예전에는 그렇게 이상한 행동을 하면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행정부도 차지하고, 국회도 개헌 선에 가까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지지율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 그러니까 승리에 취해서 계속 이상해지고 있는 거다. 파병된 청해 부대원들이 코로나19에 집단 감염됐는데,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문재인 대통령이 보고를 받으시자마자 참모회의에서 바로 누구도 정말 생각하지 못했던 공중급유 수송기를 급파하라고 지시했다’고 자랑하는 거는 정상이 아니다. 대장동 사건 같은 경우는 정말 사과해야 되는 거다. 본인이 설계했다고 해 놓고, 설사 뇌물을 받은 사람 중에 국민의힘 쪽이 많다고 해도 그게 어떻게 자신을 면책시키는 논리가 되나.” (민주당은 국민의힘 게이트라고 주장한다.) “그런 진짜 이상한 말을 당 대표, 원내대표라는 사람들이 받아서 우기니…. 어찌어찌 해서 민주당이 대선에서 또 이기면 진짜 괴물이 될 거다.”―국민의힘이 집권하면 달라질까. “하… 그게… 그래서 선거 후가 더 걱정이 되기는 한다. 정권교체는 필요한데 국민의힘도 전국 단위선거에서 4연패를 하고 비상대책위원회가 4번이나 들어섰는데도 별로 변한 건 없지 않나. 지도부가 추석 전에 곽상도 전 의원 아들이 화천대유에서 50억 원 받은 걸 알았다 면서도 아무 말 안한 걸 보면…. 당연히 밝히는 게 상식 아닌가? 그래서 리더들의 자각이 정말 중요한데… 그런 걸 밝히는 게 정치적으로 손해 보는 것 같지만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당신은 정권 교체가 필요하다고 보는 쪽 같은데.“김대중 대통령은 DJP연합으로 간신히 대통령이 됐지만,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들에게도 대통령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경상도 출신인 김중권 비서실장을 기용하고, 자신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전두환 전 대통령을 청와대로 불러 밥도 먹었다. 그런 게 한 나라의 대통령다운 모습이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 때부터 점점 그런 모습이 사라지더니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을 거쳐 지금은 완전히 없어졌다. 문 대통령도 취임사에서는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들도 섬기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정말 철저하게 편 가르기를 했다. 한 명이라도 우리 편이 많아서 이기면, 다른 쪽은 신경도 안 쓴다. 청와대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과 견해가 다르다고 국민을 친일파, 토착왜구로 모는데… 그런 말을 어떻게 국민에게 쓰나. 하면 안 되는 행동을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해서. 오직 그것만 생각한다.” (그런 탓인지 우리 사회가 굉장히 안 좋아졌다.) “출세하기 위해 안달하는 정치인들이 롤 모델이 되고 있으니…. 당 내에서 눈치를 보다가, 뉴스공장에서 김어준이 뭐라고 하는 지 듣고, 댓글 보고 따라가는 식이다. 정치인들이 국민의 모범이 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도록 이끌어야하는데 되레 강성 추종자들을 따라만 가고 있다. 이런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라도 억지로라도 새 피를 수혈해야하는데, 오히려 조국 수호 집회 다녀온 사람, 무슨 시민단체 이런 쪽에서만 끌어당기니… 그래서 바뀌기는 해야 할 것 같다.”―당신의 생각이 올바른 건 맞는데… 미안하지만 사람들은 비난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흑석’ 김의겸, 김남국 의원 같은 사람을 부러워한다. “그래서 책임감이 생겼다.” (책임감?) “조국 집회 몇 번 나가서 옹호발언한 사람들이 국회의원 되는 걸 보고 젊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할까. ‘저렇게 해야 성공하는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내가 쓰러지면 그들의 잘못된 성공방식이 맞다는 걸 되레 증명해주는 꼴이 될 수 있다. 그럴 수는 없으니까. 옳은 것이 이긴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다.” (그렇게 믿고 싶지만…정말 될까?) “나는 이긴다고 믿는다. 역사를 보면 항상 옳고 합리적이고 열린 쪽이 이겨왔다. 편협하고 편 가르기 하는 쪽은 잠시 기세를 올리더라도 결국 패배하고 역사에서 사라졌다.”※김남국 의원은 2019년 10월 5일 8차 조국 수호 집회 연단에서 “검찰이 조국을 장관에 임명하지 말라고 대통령에게 협박했다”고 말했다. 수차례 강성발언으로 인지도를 높인 그는 이듬해 민주당 공천을 받고 국회의원이 됐다.―민주당은 못 들어가고, 국민의힘은 안 들어간다 했고, 제3지대는 안 모이는데 무슨 힘으로 당신이 생각하는 정치를 구현할 수 있나.“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는데, 마크롱 같은 경우도 있고….” (정치인들이 툭하면 마크롱을 예로 드는데 세계사적으로 유래 없는 희귀 케이스를 너무 쉽게 갖다 붙인다.) “하하하, 그렇긴 하다. 2013년에 제 3당(새정치연합) 창당 작업을 하다가 안철수 대표가 갑자기 민주당으로 불쑥 합당해 버려가지고 무너졌는데, 그때를 생각해 보면 제3지대를 만드는 건 정말 어렵다. 좀 노골적으로 말하면 1, 2등은 민주당, 국민의힘으로 가고 3등이 오는데 안받으면 오만하다고 하고, 받으면 새 정치한다면서 왜 그런 사람들을 받느냐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정치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가 보수 정당의 혁신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무튼 선거 때가 정치를 변화시키는 에너지가 가장 많을 때니까 어떤 식으로 대선에서 역할을 하는 게 도움이 될지 고민하고 있다.”―진중권 전 교수, 권경애 변호사와 ‘선후포럼’을 만든 게 그런 이유인가.“선거 이후를 생각하는 모임이란 뜻인데… 우리가 선거 때만 되면 늘 승패에만 관심을 갖는데 더 중요한 건 선거 이후에 사회가 한 발이라도 더 좋아지도록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대선 후보들도 불러서 얘기도 듣고, 비판도 하고, 조언도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었다.” (지금 경청하고 명심하겠다고 하는 건 다 공수표 아닌가.) “그렇더라도. 포럼에서 대선 후보들에게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와 그 해법이 무엇인지를 강력하게 물을 생각이다.” (지금까지 각 당 경선도 보고, 포럼에 출연도 시켰는데 그런 해법을 가진 사람이 있던가.) “하하하.” (하하하?) “그동안은 경선이니까 당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본선에서는 대통령답게 생각하시기를 바란다.” (미루어 짐작이 가는데….) “하하하.”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1일 ‘위드 코로나’ 시작 직전 정기석 전 질병관리본부장을 인터뷰했습니다. 대비가 너무 부족한 상태에서 서둘러 시작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결국 위드 코로나 보름여 만에 입원 병상 가동률이 75%를 넘었습니다. 정부는 입원 병상 가동율이 75%가 넘으면 ‘서킷 브레이크(긴급방역강화제도)’를 발동하겠다고 했지요. 하지만 서킷 브레이크는 발동되지 않고 있고, 정부는 아직은 견딜만하다고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백신 접종률이 늘고 있다는 점만 강조합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11월 18일 0시 기준으로 전 국민의 78.5%가 접종을 완료했습니다. 1차 접종을 받은 사람까지 포함하면 누적 접종률은 82%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독자 여러분, 절대로 이 누적 접종률 수치에 현혹되면 안 됩니다. 이 수치에는 백신은 맞았지만 이제는 백신 효과가 상당히 떨어진 ‘무늬만 접종자’가 굉장히 많이 포함돼있으니까요. 우리가 부스터 샷을 맞고 있다는 점이 그 반증입니다. 국내 코로나 백신 접종은 올 2월부터 시작됐습니다. 벌써 9개월 전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최근 추가 접종(부스터샷)의 접종 간격을 4~5개월로 단축했지요.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2~4월에 백신을 맞은 사람들은 접종자이긴 하지만 백신 효과는 굉장히 떨어진 상태입니다. 11월 18일 0시 기준 일일 신규 확진자는 3292명입니다. 위드 코로나 직전인 10월 31일 0시 기준으로는 2052명이었지요. 보름 새 1000여명이 넘게 폭증했는데 여전히 정부는 백신 누적 접종자 수만 강조합니다. 아마 내년 이맘때도 올 2월에 맞은 사람까지 포함 시켜 90%가 넘었다고 자랑할지 모르겠습니다. 정부가 또 말하지 않고 있는 게 있습니다. 일일 위중증 환자 발생 수치입니다. 질병청에 따르면 국내 재원 중 위중증 환자는 17일(0시 기준) 522명에서 18일 506명으로 16명이 줄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마치 위중증 환자가 감소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같은 기간 누적 사망자가 3158명에서 3187명으로 29명이 늘었으니까요. 조금 이해하기 어렵다면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사망자가 29명이 아니라 16명이라면? 위중증 환자 발생이 줄어서 준 게 아니라 죽어서 준 것이죠.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려면 확진자수도 필요하지만, 위중증 환자가 매일 얼마나 발생하는 지가 중요합니다. 위드 코로나를 시작하면서 정부는 앞으로 증상이 경미한 확진자는 집에서 치료하고, 위중증 환자 위주로 전환하겠다고 했지요, 그런데 하루에 위중증 환자가 얼마나 발생하는 지는 공개하지 않습니다. 위드 코로나 시작 전인 10월 31일 입원 중인 위중증 환자는 332명이었습니다. 지금(18일)은 506명이지요. 이걸 보고 ‘그동안 174명이 늘었네’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병이 나아 퇴원한 사람과 사망자까지 더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질병청은 당연히 일일 위중증 환자 발생수를 알고 있습니다. 왜 공개를 안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알리는 게 유리하고. 정부의 방역 대응을 자랑할 수 있는 수치라면 안 할 리가 있겠습니까? 백신 누적 접종률처럼. 지난 할로윈데이 때 이태원은 100m를 걸어가는데 10여분이 걸릴 정도로 붐볐습니다. 마스크만 쓰고 다닐 뿐 거리두기나 방역에 대한 경각심이 사라진 모습도 이제는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위드 코로나를 하더라도 방역에 대한 경각심을 풀어서는 안 되지요. 그런데 정부부터 불리한 통계는 알리지 않고, 자랑하고 싶은 수치만 공개하니 정말 안타깝습니다. 위드 코로나도 당초 11월 9일 경쯤이면 가능할 거라고 했다가 이유도 모른 채 1일로 앞당겼지요. 국민을 위한 방역 정책을 해야 지, 권력과 선거를 위한 방역 정책을 해서는 안 됩니다. 질병청장은 현미경으로 바이러스를 연구하거나 확진자를 모니터링하는 직책이 아닙니다. 위에서 잘못된 정책을 펴면 전문가로서 바로 잡으려고 말을 해야지요. 방역이 정치에 좌지우지되면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입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1막 1장 연극이 끝난 분장실. 거울 앞에서 한 노인이 분장을 지우고 있다. 무대를 호령하던 왕의 얼굴이 조금씩 백발의 평범한 노인으로 바뀌어 간다.(이 인터뷰는 배우 이순재가 거울 속의 자신과 대화하는 형식을 차용했습니다.)거울: 천천히 지워주게. 조금 더 함께하고 싶으니.순재: (흠칫 놀라며) 누구…?거울: 이런… 꽤 섭섭하군. 그렇게 오래 함께했는데. 나는 무대 위의 자네라네. 65년 전 캡틴 닉스코터(지평선 너머)부터 윌리 로먼(세일즈맨의 죽음), 돈키호테, 야동 순재… 지금은 리어왕이구먼. 순재: 왜 이제서야 말을 건네는 건가.거울: 지난 60여 년간 나는 자네의 결정을 따랐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하지만 이제는 알고 싶군.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제 우리의 해도 저물어 가고 있지 않나. 왜 무대를 선택한 건가. 자네는 좋았겠지만 나는 무척 춥고 힘들었다네. 순재: (깊은 한숨을 쉬며) 그랬겠지. 아내가 애들 돌반지 팔아 만두가게를 연 적도 있으니까. 이대 무용과 나온 사람을 데려와서는…. 그때가 시작이었을까? 피란 시절 우연히 한 여고 예술제에서 본 그 연극. 까까머리 고등학생의 가슴이 왜 그리 뛰던지. 그 길로 학교로 뛰어가 선생님을 붙잡고 연극 한 번 만들어 보자고 졸랐지. 그때 대전고에서 청강을 했는데 그분이 마침 ‘햄릿’을 가르쳐 주셨거든. 거울: 연극이 뭔지는 알았나.순재: 몰랐지. 선생님이 작품을 쓰고 내가 기획을 했는데, 정작 난 출연은 안 했어. 그 작품이 뭐더라…. 잘 생각이 안 나는구먼. 재미있는 친구가 끼어 있던 건 기억해. 김창준이라고. 혹시 아나? ※1993∼99년 미 연방하원의원을 한 김창준 씨(3선·공화당)다. 거울: 서울대 다닐 때는 해체된 연극부를 재건했지? 그렇게 내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구먼. 순재: 이 사람들이 연극에 몰두하다 보니 영수증 처리를 제대로 못해 학교에서 예산 남용으로 없앤 거야. 하루에 계란을 150개나 먹은 식으로 올렸으니…. 다시는 그런 일 없게 하겠다고 내가 대표로 각서를 쓰고, 단과대별로 흩어진 연극부를 하나로 모아 공연을 했지. 동랑 유치진 선생의 ‘조국’이었어.거울: 작품 이름이 하필….순재: 응?거울: 아, 아닐세. 그런데 취미로 해도 되지 않았나. 직업으로는 좀….순재: 처음 연극할 때는 한 10년 정도 거의 돈을 벌지 못했지. TV를 한 것도 먹고살기 위해서였으니까. 집안의 반대는 말도 못했고. 10여 년을 거의 쉬지도 못하고 드라마, 영화를 쉴 새 없이 찍고 간신히 25평짜리 집하나 마련했으니까. 거울: 요즘 애들이 들으면 화나네.순재: 응? 이 분야가 묘한 마력이 있어. 한 번 물들면 못 헤어 나온다고. 어떻게 하겠어. 이 길이 아니면 안 되겠는데. 거울: 직업 때문에 헤어진 사람도 있었지. 말이 나와서인데 자네와 달리 난 그녀가 참 마음에 들었다네. 집도 부자고. 순재: 그 사람은 내가 방송국에 다니는 것만 알고 배우인 줄은 몰랐지. 그런데 만난 지 몇 달 지나 TV에서 날 본 거야. 얼굴이 새파래져서 배우는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고, 생활에 절제가 없어 안 된다고 하더군. 일류가 되면 밥은 굶지 않을 거고, 우리는 아직 아니었지만 외국에서는 당당한 직업이라고 반박했지. 사생활은… 잘사는 사람도 많다고 했지만 자존심이 무척 상했던 것 같아. 그 뒤로 연기든, 생활이든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려고 이를 악물었어. 그 상처가 지금의 나를 만든 셈이 됐구먼.2막 1장거울 뒤로 보이는 ‘리어왕’ 포스터거울: 그런데 자네 나 몰래 보약 먹나? 3시간 20분 공연을 월요일 하루 쉬고 어떻게 20일을 매일 하나? 토요일은 두 번하고. 나 죽겠네.순재: 이거?거울: 그건 박카스고. 체력은 둘째 치고 사람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지 않나. 더군다나 코로나 시국인데 대역도 없으면 어떻게 하나. 자네는 걱정도 없나. 순재: 속으로야 많이 걱정했지. 내가 쓰러지면 끝이니까. 극단 망하는 거지. 그런데 내 이름을 단 공연인데 다른 사람이 하는 걸 보여줄 수는 없지 않나. 아직은 체력적으로도 감당할 수 있겠다 싶었고.거울: 하긴 자네는 어머니 상중에도 공연을 했으니까. 그런데 ‘이순재의 리어왕’이라고 이름 붙인 건 자네 생각인가?※연극(Life in the Theatre) 공연 중이던 2008년 7월 30일 오전 그의 모친이 돌아가셨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보러오는 관객들과의 약속이라며 이날 두 차례의 공연을 예정대로 진행했다. 순재: 내가 하자고 한 건 아니고 기획사에서 한 건데…. 겸손이 아니라 난 사실 무척 부담스러웠다고. 그냥 ‘리어왕’이라고 하면 도망갈 구석이 있잖아? 그런데 내 이름을 떡 붙여놓으니까 모든 걸 내가 책임져야 할 입장이 된 거지. 다행히 잘 돼서 모두에게 고마워.거울: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고 했는데, 다른 이의 리어왕과 다른 점이 뭔가.순재: 미안한데 사실 내가 다른 리어를 본 적이 별로 없어.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원전 그대로 3시간이 넘는 리어왕을 한 적이 거의 없으니까. 단지 관객들에게 이 말은 하고 싶군. 셰익스피어의 진수는 줄거리가 아니라 대사에 있다고. 물론 처음 보는 관객들도 대사의 맛을 느낄 수 있게 배우들이 잘 전달해야 하는 게 맞지. 그런데 워낙 대사가 길고 어려운 말이 많다 보니 쉽지는 않아. 3막 4장테이블 위에 놓인 소품용 왕관.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순재거울: 셰익스피어는 리어왕을 통해 뭘 말하고 싶었을까.순재: 하하하. 자식들에게 먼저 재산을 물려주지 말라는 거? 아주 실감나는 교훈이야. 죽을 때까지 갖고 있어야지 절대로 먼저 주면 안돼. 내가 천만다행으로 생각하는 게… 우리 어머니가 96세로 돌아가셨는데 만약 내가 일을 안 하고 내 아들들이 뒷바라지를 했다면 우리 어머니 입장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 그 다음에는… 흔히 이 부분을 많이 놓치는데, 통치자는 늘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고 배려해야 한다는 거지. 회사 사장이든, 자영업자든, 리더 역할을 하는 사람은 다 마찬가지야. 거울: 리어는 모든 것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진 후에야 비로소 백성의 어려움을 깨닫더군.순재: (벌떡 일어나며 대사를 읊는다.) 너희, 집도 없는 가난한 이들이여. 어디서든 이 잔인한 폭풍우를 견디고 있을 가난하고 헐벗은 자들아, 머리 눕힐 집 한 칸 없이,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창문같이 숭숭 뚫린 누더기를 걸치고, 어떻게 이런 험한 날씨를 감당하려느냐. 오, 나는 이들에게 너무도 무관심했구나. 부자들아! 가난뱅이의 고통을 스스로 겪어봐라. 그리하여 넘치는 것을 그들과 나누고, 하늘의 정의를 실천하여라.거울: 자네 갑자기 왜 흥분하나.순재: 이 대사가 셰익스피어가 리어왕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이지. 나도 국회의원을 해봤지만 권력은 국민이 위임한 거라네. 그런데 위정자들은 마치 자신들이 원래부터 갖고 있었던 것처럼 착각하지. 지금도 비슷하지 않나? 리어가 외치는 ‘잔인한 폭풍우’는 포악한 권력이라네. 셰익스피어는 리어왕을 통해 포악한 권력에 시달리고 억눌린 백성의 어려움을 대변하고 있는 거지. 안타깝게도 리어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직언하는 충신을 물리치고, 끔찍한 경솔함을 거듭한 뒤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그것을 깨닫지만. 거울: 인간은 왜 늘 잃은 뒤에야 소중함을 알고, 앞이 보이지 않게 된 뒤에야 비로소 진실의 눈이 떠질까.순재: 그 양반들이 꼭 이 공연을 보고 너무 늦기 전에 깨달았으면 좋겠구먼. 대사 곳곳에 새겨 들을 말이 많은데.거울: 그 양반들? 대통령과 대선 후보들을 말하나. 이미 늦었네. 전 회, 전석 매진이라. 그건 그렇고, 자네 언제까지 연기를 할 건가. 자네 위로 송해 선생님밖에 없다네. 순재: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죽는 그날까지. 나는 아직도 지금보다 더 나은 연기를 보여주는 꿈을 꾼다네. 하하하. 미쳤다고? 꿈꾸는 자와 꿈꾸지 않는 자, 도대체 누가 미친 건가? 인생이 한 편의 연극이라면 공연을 마치는 곳은 병원이 아니라 무대 위가 돼야 하지 않겠나.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1일부터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가 시작된다. 하루라도 빨리 일상을 회복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우리에게 충분한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위드 코로나는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정기석 전 질병관리본부장(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은 “아직 치명률도 높고, 재택치료 시스템도 미비한데 어떻게 위드 코로나를 한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며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너무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 정은경 질병청장의 직전 전임자였다.》 ―위험한 게임이라니…. “위드 코로나는 코로나19 대응을 확진자보다 위중증, 사망자 중심으로 전환한다는 의미다. 지금까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확진자는 생활치료센터나 병원으로 보냈지만 앞으로는 모든 확진자를 집에 머무르게 한 뒤 심한 사람만 병원으로 보내겠다는 거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각 병원 중환자실이 어디가 비고 찼는지, 갑자기 증상이 악화된 중환자를 당장 보낼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시스템이 없다.” (선후가 바뀌었다는 건가.) “재택치료로 전환한다기에 정부 관계자에게 물어봤다. 왜 이렇게 서두르느냐고…. 불과 며칠 전에 재택치료 중인 확진자가 이송이 늦어져 숨졌다. 중환자 병실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시스템이 없으면 구급차가 빙빙 도는 사이에 사망할 확률이 굉장히 높다.”※10월 21일 재택치료 중인 A 씨가 갑자기 증상이 악화돼 119에 신고했으나 이송 중 숨졌다. 이송에 1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일반구급대가 도착했지만 코로나 확진자란 사실을 모르고 출동해 이송할 수 없었고, 전담 구급차는 방역조치를 완료하고 출발하느라 지체됐다. ―재택치료란 건 사실상 없다고 했는데…. “말이 좋아 재택치료지 실제로는 모두 자택 격리다. 이건 치료가 아니다.” (정부는 ‘치료’라고 했다.) “위드 코로나가 시작되면 확진자가 더 늘 가능성이 높다. 1만 명, 2만 명 이야기도 나오니까. 재택치료로 전환한다고 선언을 안 하면 확진자를 모두 생활치료센터나 병원으로 보내야 하는데 감당할 수 없으니까 머리를 쓴 거지.” (의사가 일일이 왕진 다닐 수는 없지 않나.) 모니터링을 통해 전화로 상태를 듣는 게 전부일 거다. 청진기 한 번 못 대면 진찰도 안 되는데 치료라니…. 아직은 치료약도 없는데 자택 격리 상태에서 무슨 치료를 하나? 타이레놀이나 주는 게 고작이지. 더군다나 지자체에 재택치료 업무를 넘겼으니 제대로 운영이 안 되는 곳이 속출할 거다.” ―보건소 인력은 완전 탈진 상태 아닌가. “일이 너무 힘들다 보니 휴직자가 많다. 직원을 모집해도 오는 사람이 없다. 특별한 대접을 해주는 것도 아니니까.” (같은 질문을 또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미비점을 보완한 뒤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재택치료로 전환하면서 또 지자체에 진료반과 격리반 두 개를 만들게 했다. 업무가 가중된 거지. 격리반은 행정에서 한다지만 진료반은 보건소 인력이 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탈진인데 앞으로는 집집마다 찾아다녀야 한다. 제대로 된 대응이 가능할까? 그리고 진짜 큰 문제가 있다.” ―진짜 큰 문제라니…. “혼자 있다가 코로나로 저산소증에 빠지면 환자가 자기 상태를 알리지도 못하고 죽을 수 있다.” (숨쉬기 힘들면 알 것 같은데.) “저산소증에 빠지면 당장 숨이 찰 것 같지만 증상이 그렇지 않다. 서서히 몽롱해지다가 임계점이 넘으면 그냥 죽는다. 환자가 자신의 몸에서 산소 농도가 떨어지는 걸 모를 수 있다는 말이다. 정부에서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준다지만 그 상태에 빠지면 스스로 측정할 생각조차 못할 수 있다. 늘 손에 끼고 있는 게 아니니까. 그냥 죽은 채로 발견될 수 있는 거지. 도대체 무슨 준비가 돼 있다는 건지. 지금 코로나 치명률이 0.78% 정도다. 앞으로 좀 떨어지기는 하겠지만 아직은 어마어마한 수치다.” (0.78%면 얼마나 위험한 건가?) “신종플루 치명률이 0.032%였다. 독감은 0.03%이고….” ―병상보다 중환자가 많으면 어떻게 되나. “그걸 의료체계 붕괴라고 하는 거다. 일단은 중환자실과 일반병실 사이인 준중환자실로 보낼 거다. 전국에 500개 정도가 있는데 당연히 진료의 질은 중환자실보다 떨어진다. 말이 500개지 여기까지 중환자를 보내는 상황이면 더 줄여야 한다. 기계를 설치할 공간이 필요하니까. 지금 중환자실 1000개 중에 400여 개가 차 있는데 돌볼 의료 인력이 모자라 탈진 상태다. 그런데 중환자실이 다 차서 준증환자실까지 넘어온 중환자들을 치료한다? 침대만 있으면 뭐하나.” ―그렇다고 아무도 안 돌볼 수는 없지 않나. “지금은 중환자실 환자는 다 교수가 보게 돼 있다. 그래서 의료의 질이 아주 높다. 그런데 앞서 말한 상태가 되면 교수로는 안 되고 대학병원 같으면 경험이 적은 전공의들까지 매달리게 될 거다. 중환자는 늘고, 의료의 질은 낮아지면 당연히 죽는 사람이 많아지지 않겠나. 정부에서 입원병상 가동률이 80%를 넘으면 ‘서킷 브레이크(긴급방역강화제도)’를 한다고 하는데 어이가 없는 게… 80% 됐을 때 스톱시키면 한두 주 지나면 100%가 된다. 병이 악화되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나. 내용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처럼 자꾸 왜 저러는지….” ※서킷브레이크는 당초 80%였으나 시행을 앞두고 75%로 변경됐다.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 방역당국에 의사가 많은데. “방역정책에 참여하는 전문가들 중에 제목소리를 안 내는 사람들이 많다. 또 의사라도 한 번도 중환자실에서 자기 환자를 치료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중환자실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피상적으로만 안다. 그래서 작년부터 긴급 상황을 대비해 평소에 중환자를 보던 전문의가 아니더라도 가정의학과, 일반외과, 심장내과 의사 등으로 일종의 의료 예비군을 양성해 놓자고 했는데 전혀 안 됐다.” ―당신 말을 들으면, 위드 코로나를 결정한 의학적 근거는 오직 백신 접종률 70% 달성뿐인 것 같은데…. “그런 것 같다. 정부는 전 국민의 70% 이상이 접종한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고 자화자찬하지만 70%란 수치에 속으면 안 된다. 누적 수치니까. 지금 무늬만 접종 상태인 사람도 많을 거다.” (무늬만 접종자라니?) “최근에 나오는 델타변이 바이러스 자료를 보면 2차 접종을 한 뒤 4, 5개월이 지나면 효과가 50% 밑으로 떨어진다. 모두 일시에 맞은 게 아니라 2월부터 시작해서 지금 8개월이 지났기 때문에 초기에 맞은 사람들은 백신 효과가 크게 떨어졌다. 얀센은 접종 후 두 달 지나면 부스터샷을 맞게 하지 않나. 70% 접종했다고 축하할 일이 아니다. 중환자수와 치명률이 더 떨어지는 걸 확인하고 가야 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부스터샷을 얼마 만에 맞아야 하는지 정확한 자료도 없다.”※10월 31일 0시 기준 2차 접종 완료자는 75.3%다. ―얀센은 두 달, 다른 건 6개 월 정도라고 하던데…. “그건 남의 나라 자료고…. 이미 전 국민의 70%가 백신을 맞았다. 그러면 접종자 혈액을 뽑아서 우리나라 국민의 항체 형성률이 어느 정도인지, 효과가 떨어지는 데 어느 정도 기간이 걸리는지, 그중에 돌파 감염은 어느 정도인지 등 우리만의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발표된 자료가 없다. 그런 일을 하라고 국립보건연구원 내 감염병연구소를 만들었는데도.” (여력이 없는 걸까.) “생각이 없는 거지. 접종자가 동의만 하면 검사 결과는 하루면 나온다. 그걸 계속 축적해 분석해야 언제 부스터샷을 맞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는 거다. 그냥 미국이 하는 거 보고 6개월이라고 하는데… 내가 아는 자료로는 6개월은 늦다.” ―분명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11월 9일경이라고 했는데 갑자기 앞당겨졌다. “뭔가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건지… 기간을 앞당긴 의학적 근거는 없다. 왜 이렇게 과격하게 갑자기 푸는지 모르겠다. 사실 그동안 해 왔던 거리 두기 단계가 엉터리였다는 걸 자인하는 건데… 지금까지 했던 거리 두기 단계가 제대로 만들어진 거라면 그걸 한 단계씩 낮춰 가면 점진적 일상회복이 되는 거 아닌가. 방역은 절대로 이렇게 갑작스럽게 선언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왜 그렇게 갑자기 한다고 생각하나. 선거?) “그 외에 달리 뭐가….”※10월 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은경 질병청장은 “11월 9일부터 단계적 일상회복이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에 “시작해볼 수 있겠다”고 답했다. 70% 접종 예상일이 10월 25일이고, 항체 형성 기간 2주를 감안한 날짜다. 하지만 왜 11월 1일로 당겨졌고, 근거가 뭔지 알려진 것은 없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오영수 선생님과의 인터뷰는 이달 중순 선생님 자택 앞 공원 벤치에서 진행됐습니다. 볕이 따뜻한, 날이 아주 좋은 오후였지요. 오징어게임이 개봉한지 얼추 한 달 가까이 되던 시점이었습니다. 뵙자마자 가장 궁금한 것부터 여쭤봤습니다. 전 세계가 오징어게임에 빠졌는데 어떻게 그동안 인터뷰 기사가 없는지 이해가 안 갔거든요.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이 없을 리가 없을 텐데 말입니다. 알고 보니 홍보 쪽에서 개봉 한 달 정도까지는 인터뷰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더군요. 인터뷰를 하다보면 아무래도 작품 내용이 언급될 수밖에 없고, ‘오일남’이 어떤 인물인지 알려지면 재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다른 배우들의 인터뷰가 거의 없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고 합니다. 저는 어떻게 할 수 있었냐고요? 재수가 좋았지요. 인터뷰 날이 개봉한 지 얼추 한 달 가까이 된데다, 기사가 나가는 날도 한 달이 지난 이달 18일이어서 괜찮았다고 합니다. 오징어게임은 지난달 17일 공개됐습니다.선생님이 모 치킨 광고를 거절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입니다. 오징어게임의 주제를 함축한 ‘깐부’란 말의 의미가 훼손되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하셨죠. 그런데 선생님의 작품에 대한 애정은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만 인터뷰 사진촬영을 위해 저는 마른 오징어와 소주 한 병, 라면을 소품으로 준비해갔습니다. 첫 번째 게임(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후 게임이 무산된 뒤에 편의점 앞에서 일남과 기훈이 생라면 안주에 소주를 마시는 장면처럼 사진을 찍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서로 소주 한잔 기울이며 안주로 오징어 다리를 들고 있는 모습을 찍으면 작품 제목과도 어우러져 괜찮은 사진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부탁을 드렸는데 완곡하게 “조금 진지하게 했으면 싶은데…”라고 하시더군요.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나중에 치킨 광고 거절 이유를 듣고 나니 이해가 갔습니다. 선생님이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건 아니지만 자신의 모습이 다소 희화화되는 것이 작품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개봉 이후에도 작품의 이미지를 위해 일거수일투족을 조심한다고 할까요. 진심을 다하는 모습은 팬들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잘 드러났습니다. 인터뷰가 끝날 때 쯤 주변을 보니 산책 중인 주민들이 선생님을 알아보고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서있더군요. 10여 명 쯤 됐는데, 선생님은 모든 사인에 緣(인연 연)자를 써주셨습니다. 이렇게 만난 것이 다 인연이기 때문이라고 하시더군요. 인터뷰 기사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작품을 위해 거액의 광고를 거절한 것을 칭찬하신분도 계셨고, 조금이라도 더 갖기 위해 아옹다옹하는 세상에서 뭔가 더 숭고한 가치를 지향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참된 어른을 만난 것 같다고 하신 분도 계셨고, 연기력을 칭찬한 분도 계셨지요. 선생님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받았기 때문에 앞으로는 당신도 남들에게 주면서 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우리 모두가 선생님께 이미 아주 큰 것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서있는 자리에서 편법과 술수를 쓰지 않고, 묵묵히 성실하게 한 길을 걷는 것은 결코 바보짓이 아니라는 믿음이지요.주위를 돌아보면 온통 어지럽고, 암울한 모습뿐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하루아침에 수천억원을 꿀꺽하고도, 고작 6년 일하고 퇴직금으로 50억원을 받고도 정당한 노력의 대가라고 우기지요. 자기 자식 의사 만들기 위해 대학 교수라는 부모가 허위 경력에 표창장까지 위조해주고도 부끄러운 줄 모릅니다. 모 국 사태가 한창일 때 아주 유명한 한 대학교수분이 제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자녀들끼리의 논문 품앗이는 대학 교수 사회에서는 얘깃거리도 안 될 정도로 만연된 현상이라고.선생님도 사람인데 성공과 인기, 돈을 싫어할 리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에게 인기와 부는 연기를 하는 이유가 아니라 그 길을 다 걷고 난 뒤에 따라오면 좋고 아니면 할 수 없는 것 정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걸 못 견디지요. 노력한 만큼 얻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시작을 안 합니다. 노력한 만큼 얻는 것은 당연하고, 그 이상 얻어야 정당한 노력의 대가를 받았다고 여기지요. 적은 노력으로 큰 성과를 얻는 게 잘하는 것이라는 그릇된 믿음. 최근 뉴스를 도배하는 대장동 사태, 모 국 교수 부부의 파렴치한 행동 등이 다 이런 생각에서 비롯된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사람들이 배우 오영수에게 감동을 받은 것은 단순히 대박 난 작품에 출연해서도, 연기력이 탁월해서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도 있을 것입니다만 더 큰 것은, 우리가 믿고 싶지만, 나만 손해볼까봐 꺼려했던 어떤 삶에 대한 자세가 사실은 맞는 것이고, 충분히 걸을 만한 길이라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믿음은 자신이 있다는 것을 아주 드물게, 간간히만 알려주지만… 그때마다 우리에게 그래도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는 위안과 살아갈 힘을 주지요. 누군가에게 그런 위안을 줄 수 있는 삶이 많아진다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깐부 천지인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어두운 방 안(자정 무렵)의문의 초대를 받은 기훈. 그곳에 죽은 줄 알았던 일남이 있다. 놀라 다가가는 기훈. 얼굴 C.U.(Close Up) 괘종시계의 분침이 12시를 향한다. (※ 이 인터뷰는 오징어게임 기훈-일남의 마지막 만남 장면을 차용했습니다.)기훈=당신… 살아… 있었습니까.일남=물 좀… 주겠나.기훈=(물을 건네주며) 당신은… 누구입니까. S#1. 오영수가 되던 날일남=나? 오…세강. 그동안은 오영수로 불렸지. 지금은 오일남으로 더 알지만….기훈=오…세…강?일남=그게 내 본명이야. 영수는 예명이고. 젊을 적 막 연극을 시작했을 때 돌아가신 오세강 선생이 형, 아우 하자며 지어줬지. 그 시절에는 연극 하는 게 그리 환영받는 일이 아니라서 본명을 안 쓰는 경우가 많았거든. 배우로서의 인생이 시작된 날인 셈이지.기훈=배우는 어떻게 하게 된 겁니까. 연극영화과를 나왔던데….일남=대학에서 연극영화과를 다녔다는 건 사실이 아니야. 어디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정말 모르겠어. 연기를 시작한 건 제대하고 1967년 극단 광장에 들어가면서였으니까. 20대 초반이었을 때지.기훈=그 전에는 연기를 안 했습니까. 일남=그때는 경험이 없어도 극단에 들어갈 수 있었어. 물론 쉽게 무대에 오를 수는 없었지만…. 몇 년을 청소하고, 잡일 하고 그랬지.기훈=50여 년을 주로 연극만 고집한 이유가 있습니까.일남=순수성이라고 할까? 우리 세대 때는 그런 게 있었지. TV나 영화 이런 데를 기웃거리면 순수성을 잃는다고 보는…. 대배우인 고 장민호 선생조차 칠성사이다 광고를 찍었더니 스승인 이해랑 선생이 거기까지만 하고 더는 하지 말라고 혼을 내던 시절이니까. 그렇다고 내가 TV나 영화를 전혀 안 한 건 아니야. 40, 50대 때는 ‘나는 왜 연극만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을 했으니까. 경제적으로도 좀 어려웠고…. 그래서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교육방송에서 성우도 몇 년 했어.기훈=절충할 수도 있지 않았습니까.일남=고민을 하긴 했는데 마침 그때 국립극단에 들어가게 됐거든. 공무원 신분이 되니까 경제적으로 좀 안정이 됐고 다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지, 허허허. 지금 생각하면 잘한 선택 같아. 사실 그동안도 TV나 영화 제의는 꽤 있었어. 그런데 배역에 대한 생각이 서로 좀 안 맞아서 못 한 게 많지. 좀 너무하다 싶은 것도 있었고….기훈=너무하다니요.일남=그래도 내가 연극판에서 50여 년을 있었는데 단역 한두 마디 하는 걸 하라고 하니… 자존심이 좀 상했던 것 같아. 그런데 또 상대방은 나를 ‘알려지지도 않았으면서…’ 이렇게 보는 것 같고… 그래서 못 한 게 많아. 서로 좀 맞았으면 좀 더 빨리 했을 거야. 하지만 지금까지 거의 한길을 걸었으니 이제는 이것저것 그동안 안 해본 걸 좀 해보고 싶어.S#2. 영수에서 일남으로기훈=그래서 이 게임에 참여한 겁니까.일남=꼭 그런 건 아닌데…. 전에 황동혁 감독이 영화 ‘남한산성’을 하자고 했는데 일이 있어서 거절을 했어. 황 감독이 기분이 안 좋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다 잊고 오징어게임을 하자며 연락하더라고. 대본을 봤는데 말도 살아 있고 참 좋았지. 그래서 나도 내 연기를 보여주고 싶어서 마침 그때 하고 있던 연극(‘노부인의 방문’)을 보러 올 수 있냐고 했어. 정말 오더라고? 그렇게 인연이 된 거지.기훈=‘무궁화 …’ 게임에서 혼자만 즐거워하는 건 감독이 요청한 겁니까.일남=그 장면에서 웃으면서 게임 하라는 말은 없었어. 황 감독이 ‘옆에서 사람들이 죽어도 선생님은 좀 다르게 할 수 있다’고는 했지. 일남 역에 대해서도 특별한 주문은 없었어. 그냥 ‘어떤 인물인지 아시죠?’ 그러더라고? 문제 되는 게 있으면 현장에서 말하겠다면서. 그런데 별로 말이 없었던 걸 보면 내 연기가 감독 생각이랑 별 차이가 없었던 것 같아.기훈=‘무궁화 …’ 게임은 해봤습니까.일남=우리 어릴 땐 없던 게임이라…. 구슬치기, 딱지치기는 잘했지. 깐부도 있었고. 내게도 동네 딱지 우리가 다 따먹자고 맺었던 깐부가 있었어. 누구였을까…. (과거를 회상하며 눈을 감는 일남. 멀리서 아이들 노랫소리가 들린다.) 이제는 누군지 기억도 안 나지만….기훈=일남 역을 위해 준비한 건 없었습니까.일남=따로 준비할 게 별로 없는 게… 지금 내가 약간 치매기가 있어서 돌아다니면 그냥 일남이랑 비슷할걸? 허허허. 나이도 그렇고….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변신을 잘하냐고 하는데 별로 변신한 게 없어. 맨 꼭대기 침대 위에서 ‘그만해, 이러다가 다 죽어’라고 절규하는 장면이 좀 힘들기는 했지. 고소공포증이 있거든. 그래도 한번 해보려고 올라갔는데 아이쿠… 안 되겠더라고. 그래서 몸에 안전장치를 매고 했지. S#3. 깐부는 치킨이 아닙니다.기훈=치킨 광고는 왜 거절한 겁니까. 배우로서의 자리를 지키고 싶다고?일남=(손사래를 치며) 아니야, 아니야. 완곡히 고사를 하기는 했지만 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어. 내가 한 말이 아니야. 억울해…. 그 말 때문에 마치 내가 상업적인 것은 전혀 안 하고, 마치 순수 예술만 추구하는 사람처럼 보인 것 같은데…. 전에도 이동통신 광고도 찍고 TV나 영화도 다 했는데 무슨…. 이순재, 신구 선배가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도 들고…. 그분들도 다 광고 찍고 하는데 내가 뭐라고. 그렇게 써서 내가 아주 이상해졌어. 기훈=그럼 왜 거절한 겁니까.일남=이유가… 구슬치기할 때 자네가 나를 속여서 거의 다 땄잖아. 그걸 알면서도 나는 자네에게 마지막 구슬을 주고 죽음을 선택했지. ‘우린 깐부잖아’ 하며…. 깐부끼리는 내 것, 네 것이 없는 거니까. 서로 간의 신뢰와 배신, 인간성 상실과 애정 이런 인간관계를 모두 녹여 함축한 말이 ‘깐부’야. 작품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고. 난 사람들에게 그 의미를 전달하고 싶어서 혼신의 힘을 다해 깐부 연기를 했어. 그런데 내가 닭다리를 들고 ‘○○치킨 맛있어요’라고 하면 사람들이 깐부에서 뭘 연상하겠어? 그건 작품이 지향하고자 하는 뜻도 훼손시키는 것이고…. 그래서 안 한다고 한 거지. 내가 광고니 뭐니 아무것도 안 하고 오직 배우로서의 길만 걷기 위해서 안 하겠다는 게 아니거든.기훈=당신은… 돈이 아쉽지 않습니까. 쉽게 벌어온 삶도 아닐 텐데.일남=자네도 벌어봤으니 알 테지. 그게 쉽던가? 내가 왜 돈을 생각하지 않겠나. 집사람이 그러더군. ‘좀 너무하는 거 아니냐’고.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내 뜻을 이해해줘 다행이지. 요 근래에는 광고가 많이 들어오긴 해. 그래도 할 만한 걸 해야지 들어온다고 다 할 수는 없잖아? 좀 가벼운 광고가 많았거든. 그래서 ‘콘티를 좀 보고 얘기하자’ 이런 식으로 완곡하게 고사한 것도 여러 편이 있어. 지금 얘기가 오가는 것도 있지만…. 내가 광고는 다 안 한다고 한 게 아니야. 단지 내 손으로 ‘깐부’의 의미를 훼손시킬 수는 없다는 거지. 기훈=꼭 해보고 싶은 역이 있습니까.일남=파우스트 박사 역. 30대 중반에 한 번 하고 지금껏 못 했는데, 그때 내가 죽을 쒔거든. 젊을 땐데도 지쳐서 공연 중에 잠깐 의식을 잃었지. 한 30초 정도 멈췄을 거야. 사실 파우스트라는 인물을 30대 중반에 연기한다는 게 무리한 거지. 인생에 대해 뭘 안다고…. 이 나이가 되니까 좀 알 것 같은데 아직 기회가 없어. 죽기 전에 꼭 한번 해보고 싶은 바람이지. 그리고 지금껏 받은 걸 사람들에게 돌려주고도 싶고…. 나는 아직도 사람을 믿으니까.기훈=사람을… 믿는다?일남=내가 지금껏 존재할 수 있는 건 크든 작든 사람들에게 뭐든 받았기 때문이겠지. 나를 믿으니까 줬을 테고…. 지금 이렇게 인터뷰 자리가 생긴 것도 다 내가 받는 거 아닌가? 이제는 나도 그동안 받은 것만큼 뭔가를 줘야겠지. (저무는 노을을 바라보는 일남.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얼굴 C.U.)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제73주년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군 혁신의 핵심은 인권”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올해처럼 군 인권이 참담하게 무너진 적이 또 있을까. 육해공군을 돌아가며 연이어 성범죄가 벌어졌고, 피해자의 절규를 무시한 결과는 여성 부사관들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졌다. 14년간 육군 법무관을 지낸 이지훈 변호사(44·예비역 소령)는 “밑바닥에 곪아 있는 문제들을 수술하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은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군에 꽤 오래 있었는데 혹시 당신은 성 차별이나 피해를 겪은 적이 있나. “법무관이다 보니 신체적으로 당한 적은 없다. 언어적 성희롱을 겪은 적은 있는데… 소령 때 육군본부 헬스장에서 리모컨을 잘못 눌러 옆 사람 트레드밀(러닝머신) TV채널이 돌아갔다. 그랬더니 화를 내며 ‘어디 여자가 감히’라고 하더라. 체육복 차림이라 낮은 계급의 여군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너무 화가 났는데 법무장교인 나 자신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참을 만해서 그런 건가. “문제 삼고 싶었지만 그 이후에 일어날 일을 생각하니 하기 힘들었다. 문제를 삼으려면 일단 알려야 하지 않나. 그러다 보면 소문이 날 수 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나한테 이런저런 걸 물어보는 데 시달려야 하고…. 그 과정에서 또 이상한 시선을 받을 테고…. 그런 게 싫고 부담스러웠다. 언어적 성희롱도 알려졌을 때 벌어질 상황이 고민스러운데 더 심각한 피해를 입은, 계급도 나보다 낮은 여군들은 어떨까. 여군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는 군 시설만 봐도 알 수 있다.” ―여군을 위한 시설이 많이 열악한가. “2005년 입대해 유격훈련을 받는데 남자들과 같은 목욕탕을 시차만 두고 썼다. 언제 씻으라고 시간도 안 정해줘서 남자들이 오기 전에 다들 굉장히 허겁지겁 씻고 나왔다.” (1980년대도 아닌데… 항의는 안 했나.) “나도 그렇고 다들 사회 경험도 없이 들어와서 그때는 미처 생각을 못 했다. 사단급 등 상급부대는 시설이 좀 나았지만 연대나 대대급에는 본관 건물에도 여자 화장실이 따로 없는 곳이 수두룩했다. 야외 시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런 거 개선하라고 군 양성평등센터가 있는 것 아닌가. “국가인권위원회가 여군 화장실 인프라를 개선하라고 한 게 언제인지 아나?” (당신 입대 시절인가?) “2018년이다.” (최근까지도 그런 상태였다는 건가?) “모 부대 유격장에서 벌어진 일인데, 주임원사가 여군 화장실은 대대장이 쓰게 하고, 여군에게는 차로 이동해야 할 거리에 있는 화장실을 쓰도록 했다. 물론 차량 지원은 없었고. 해당 여군이 이 사실을 육군본부 양성평등상담관에게 알렸더니 ‘성 문제가 아니라 도와주기 힘들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서 다시 국가인권위에 진정한 거다. 시설이라는 게 여군에 대한 배려나 생각이 있어야 개선하는 것 아닌가. 군 내 성범죄가 끊이지 않는 게 우연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해당 여군은 열악한 부대환경 때문에 급할 때는 탄약통을 요강으로 사용한 뒤 세면대에 버린 적도 있다고 한다. ―폐쇄적인 근무문화 때문에 군 사법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2사단 법무실장 할 때인데 우리 사무실에 군 검사, 국선변호장교, 징계장교, 군법원 서기가 다 함께 있었다. 민간으로 치면 검찰과 법원이 함께 있는 셈이다. 군 검사가 사건을 올리면 내가 같이 검토한 뒤 사단장에게 보고한다. 심판관제도에 따라 재판관이 될 일반 장교는 누구를 시키겠다고 결재도 올리고…. 최근에 폐지됐지만 전에는 지휘관 감경권이 있었으니까 판결 결과를 보고하면서 필요하면 감형 의견도 상신한다.” ―사단장이 검사에게 보고받고, 재판관 중 한 명을 지정하고, 감형까지 해줄 수 있으면 견제가 불가능하지 않나. “그래서 늘 재판의 독립성이 문제가 되니까 이번에 감경권과 심판관제도는 폐지했는데, 그 외에도 문제가 많은 게 한둘이 아니다. 특히 재판이 필요 없는 징계는 정말 ‘노(NO)답’이다.” ―징계는 일정한 기준에 따라 내리는 것 아닌가. “언론에 알려져 커지면 세게 내리고 아니면 그냥 묻히고…. 한 번은 모 장군이 징계위원장으로 들어온 적이 있는데 장군이 위원장을 할 정도면 피의자 계급도 높고 큰 사건이다. 그런데 그분 말 한마디로 징계가 ‘휙휙’ 좌우됐다. 이런 징계를 왜 하느냐 이러면서…. 군 감찰도 진짜 문제가 많다. 마음만 먹으면 사건을 키울 수도, 줄일 수도 있다.” ―군사경찰이나 법무관들이 지켜보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사건이 들어오면 항상 수사보다 먼저 감찰 조사를 시작하고 지휘관에게 모두 보고한다. 지휘관이 거의 100을 안 상태에서 수사가 시작되는 거지. 지휘관 판단에 따라 감찰 내용을 모두 수사에 넘길 수도 있고, 선별해 넘길 수도 있다. 사건을 줄이고 싶다면 선별해 수사에 넘기고, 수사가 다시 몇 개를 추려서 법무로 보낸다. 수사하는 데는 규율도 많고 권한도 한계가 있지만 감찰은 그런 게 없다. 모든 걸 다 할 수 있으니 수사기관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이미 갖게 되고, 그게 그대로 지휘관에게 보고된다. 체계상으로는 법무가 뭘 결정하는 위치 같지만 사실은 법무가 가장 조금 안다.” ―군 내 성범죄를 줄이기 위해 여성 지휘관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글쎄… 남성 중심 조직에서 상위 직급에 올라간 여성 중에는 오히려 더 남성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여군 대령이 유부남 소령과 미혼 여성 대위의 불륜 사건 징계위원으로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이분이 징계위에서 여군 대위에게 뭐라고 했냐면 방문을 왜 열어줬냐는 거다. 네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이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이분이 위촉된 이유가 징계위원이 다 남성이라 여성의 시각에서 들어보라는 취지였다. 여군 대령이 그러니까 남자 위원들도 자유롭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징계위 결정은 남자는 정직, 여자는 해임이었다.” (헐….) “여성이 국방부에 항고해서 최종적으로는 정직으로 내려왔지만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그런 말이 징계위 속기록에 적히면 곤란할 텐데.) “징계위 속기록은 취지만 적고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까지 기록하지는 않는다. 공개하지도 않고. 그래서 그 안에서 엄청난 인권유린이 벌어진다.” ―지금 군에 2차 가해로 엮이는 게 두려워 피해자의 불법을 묵인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했는데…. “최근 모 부대에서 남자 부사관이 여자 부사관에게 언어적 성희롱을 한 사건이 있었다. 가해자가 전출되는 걸로 끝났는데 이후에 피해자가 가해자를 찾아가 일과시간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그게 불법인가?) “우리나라 법은 사적 제재를 금지하고 있다. 군인복무기본법도 사적 제재를 금하고 있고, 이를 알았을 때는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 피해자는 당연히 보호돼야 하지만 그렇다고 피해자에게 사적 제재 권한을 준 건 아니다. 마침 지나가다 그 상황을 본 상사가 중지시키니까 피해자가 ‘내가 피해자인데 이 정도도 못하냐’며 화를 냈다. 그런데 문제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공교롭게 그 직후에 성 관련 2차 가해 실태에 대한 전군 전수조사가 벌어졌다. 올해 성추행 공군 부사관 사망사건이 워낙 커서 그 후속 조치의 일환이었다. 그런데 피해자가 자신의 사과 요구를 중지시킨 상사를 2차 가해자로 지목했고, 그 상사는 징계위에 회부돼 서면 경고를 받았다.” (불법을 막았는데 왜 징계를 받나?) “해당 상사가 너무 황당해서 피해자의 사적 제재 행위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었더니 위에서 ‘그건 불문에 부친다’고 했다. 공군, 해군에서 2명이 죽은 뒤다. 피해자의 잘못을 문제 삼았다가 만에 하나라도 또 무슨 일이 벌어지면 정말 큰일이 나니까 그냥 넘어간 거다. 군 내부에 소문이 파다하게 나서 이제는 문제가 있어도 아무도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다.” ―일반 장교야 조직논리 때문에 문제를 지적할 수 없다고 해도 법무관은 그럴 필요가 없지 않나. “예전에는 법무관들이 기개가 있었다고 하는데…. 진급은 당연히 신경도 안 썼고. 그런데 요즘은 변호사 시장이 어렵다 보니까 웬만하면 안 나가려 하고, 안 나가려면 진급을 해야 한다. 계급 정년이 있으니까. 그러려면 인사고과가 좋아야 하는데 그걸 주는 사람이 지휘관이니 똑같아지는 거지….”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해마다 명절을 앞두고 빼놓지 않고 인터뷰 기사가 나는 분이 있습니다. 퇴계 이황 선생님의 17대 종손인 이치억 공주대 윤리교육과 교수지요. 네, 1000원 짜리 지폐에 나오시는 그 이황 선생님 맞습니다. 이황 선생님 제사상은 과일 몇 개에 전, 포 정도가 전부입니다. 명절 스트레스란 말이 나올 정도로 변질된 우리의 제사 모습과는 많이 다르지요. 오죽하면 몇 년 전에는 한 여대생이 30여 년간 수십 명 친인척의 명절 뒤치다꺼리를 도맡아온 어머니를 위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명절 폐지를 간청합니다’란 글까지 올렸겠습니까. 재작년 추석을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이 교수는 “주자가례에도 ‘홍동백서 조율이시(紅東白西 棗栗梨枾)’란 말을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제사상에 통닭을 올린 적도 있다고 합니다. 명절을 앞두고 언론이 이 교수를 찾는 것은 마음보다 형식에 더 치우친 우리 제사문화를 바꾸자는 취지지요.문득 코로나19 시대에 퇴계 선생 집안은 어떻게 제사를 지내고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코로나19로 ‘올해는 내려오지 않는 게 효도다’라는 플래카드까지 붙는 세상이니까요. 원래도 간소했지만 코로나는 역시 종가집의 제사도 바꿔놓았습니다. 올 설 제사도 평소에는 최소 20여명은 모였는데 3명 정도만 참석하고, 대신 화상회의 시스템인 ‘줌(zoom)’을 이용해 비대면 제사로 지냈다고 하더군요. 모였다가 병에 걸리면 그게 불효라는 생각 때문이지요.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 종류는 원래부터 간단했지만 코로나 시대에는 참석자가 적다보니 양도 확 줄었다고 합니다. 덩달아 그에게 쇄도했던 언론 인터뷰도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줄었다네요. 코로나19 때문에 안 내려가도 되는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명절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도 줄어서 굳이 그런 기사를 쓸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겠지요. 아, 참고로 퇴계 선생 가문에서는 추석 때는 차례를 지내지 않고, 설 명절에만 차례를 지냅니다. 원래 아주 옛날에는 계절의 변화에 맞춰 지내는 사시제(四時祭)가 더 중요해서 돌아가신 날에 각각 맞춰 제사를 지내지 않고 사시제에 맞춰 함께 차례를 지냈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추석 차례 대신 중양절(음력 9월9일)에 시제를 지내는데, 중양절은 연휴가 아니다보니 매년 10월 셋째 주 일요일에 한다고 합니다. 코로나19로 많은 것이 바뀌고 있습니다만 관혼상제도 그런 부분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모임이 줄면 당연히 그로 인한 스트레스도 함께 줄 수밖에 없으니까요. 명절 스트레스 때문에 이혼까지 생각하는 며느리들이 만든 음식을 드시는 조상님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증조할아버지 성함은 모르면서 제사상 홍동백서를 따지는 건 코미디지요. 우스개 소리입니다만, 저 자신도 간혹 차례를 지낼 때마다 ‘우리 증조할아버지 체하시는 거 아니야?’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며칠 전부터 음식 준비하고, 예법에 신경을 쓰는 것에 비하면 너무 빨리 수저를 거두니까요. 마음보다 형식에 더 신경을 쓴다는 반증이겠지요. 그럴 바에는 할아버지 생전의 사진이라도 한 장 꺼내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이 교수가 늘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제사는 미풍양속인데 그걸 지키기 위해서라도 제사가 변해야한다고요. 지키기 힘든 형식을 계속 유지하려다보면 가족간에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고 결국 ‘이럴 바엔 차라리 없애는 게 낫다’는 쪽으로 갈 것이라는 것이죠. 코로나 때문이라는 게 유쾌하지는 않습니다만, 제사가 간소화되고 그로인해 가족간의 갈등이 준다면 그 자체는 바람직하지 않나 싶습니다.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장례 문화도 코로나로 인해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감염 우려 때문에 과거와 달리 가족끼리만 치르는 경우가 많아졌으니까요. 슬픔을 나눈다는 취지는 아름답지만 솔직히 그동안 슬픔을 나누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사회생활, 회사 생활을 위해 참석한 적이 더 많지 않았는지요. 한 때는 신문의 부고란에 망자가 자신의 이름이 아닌 누구의 부(父), 누구의 모(母)로 명기된 적도 있었으니까요. 장례식장에 즐비하게 늘어선 사람들과 화환이 망자가 아닌 그의 성공한 자식들 때문에 온 것이라면 그런 장례문화는 바뀌는 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이 교수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습니다. 중학생인 장남은 퇴계 이황 선생님의 18대 종손이 되겠지요. 당시 인터뷰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엉겁결에 “아… 괜찮겠습니까?”라고 물었지요. 2년 전이니까 코로나가 발생하기 한 참 전인데 이 교수는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르지 않겠습니까?”라고 반문하더군요. 퇴계 이황 선생님의 18대 종손이 결혼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 세상이 온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 제사 문화가 바람직하게 바뀌었다는 바로미터가 아닐 런지요.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오죽하면 원조받은 돈의 절반만 제대로 썼어도 카불은 두바이가 됐을 거란 말이 나왔을까. 미국이 국익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을 버렸다는 비난도 있지만, 지켜주려야 지켜줄 수 없을 정도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면…. 진기훈 전 주아프간 대사는 “20년간 그 많은 돈을 지원받고도 작은 공장 하나 없을 정도로 아프간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 10월∼2018년 1월 아프간 대사, 이후 지난해 말까지 인접한 투르크메니스탄 대사를 지내며 아프간이 곪아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거두절미하고, 얼마나 부패했던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 미국에서 특별검사가 와서 지원한 돈과 물자가 제대로 집행되는지 감사한 적이 있다. 그런데 주유소 하나 짓는 데 통상 드는 비용의 140배를 빼먹었다고 하더라. 주유소 140개 지을 돈으로 한 개 지은 거지. 고스트 폴리스(ghost police)라고는 들어봤나?” (군인의 태반이 유령군인이라고 하던데 경찰도 그런가.) “아이고, 경찰이 더하다. 우리 같은 경찰이라기보다는 준군인에 가까운데, 아프간 사람들은 군인은 전방에서 싸우는 사람, 경찰은 후방에서 싸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탈레반과 싸운다는 명목으로 엄청난 지원을 받았는데 거의 다 허투루 쓴 거지. 내무부 차관이 만날 때마다 어떻게 하면 경찰개혁을 할 수 있냐고 고민을 토로할 정도였다. 그리고 우리가 잘 모르는 부분인데… 국제사회의 엄청난 원조에도 불구하고 아프간 국민 중에는 원조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등록된 군인 30만 명 중 25만 명이 유령군인이라고 한다. ―미국이 지원한 돈만 2조 달러가 넘는데 못 느낀다니…. “미국이 그러더라. 아무리 지원해줘도 아프간 중앙은행에 달러가 안 쌓인다고. 예를 들면 국제기금에서 들어온 돈으로 월급을 주는데 그걸 자루에 넣어 인출한 뒤 외국으로 보낸다. 돈이 다시 은행으로 돌아와야 그 돈으로 공장도 만들고 산업을 일으킬 텐데 다 증발해 없어지는 거다. 아프간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 철도도, 고속도로도, 기업도…. 수도에 중앙역이 없으니까. 그리고 원조 방식도 구조적으로 누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중간에서 떼먹는 경우가 많은가. “워낙 위험한 곳이다 보니 각 나라가 국제기구로 돈과 물자를 보내면, 국제기구는 그걸 아프간 현지 NGO로 내려보내고, NGO가 집행하는 방식으로 원조가 이뤄진다. 그러다 보니 아래에서 새는 게 굉장히 많다.” (국제기구에서 모니터링을 안 하나.) “너무 위험해서 현장까지 직접 가서 확인하는 게 쉽지 않다. 그리고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국제사회도 그렇게 철저하게 모니터링을 하려고 하지는 않더라.” (우리도 20년간 1조 원이 넘게 지원했는데….) “나름대로 확인해 보려고 애를 많이 썼는데… 우리 국민 세금이니까 당연히 확인할 권리도 있고. 그런데 각 나라가 지원한 돈을 합쳐서 주다 보니 우리 돈만 어떻게 쓰였는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 현장에 가본 적도 있지만 그 정도로는 파악하기가 어렵다.” ―아프간 정부 고위층은 20년 동안 뭘 한 건가. 탈레반이 들어오면 제일 먼저 죽는 게 자신들인 걸 모를 리가 없지 않나. “보면서도 안타까웠던 게… 장관이나 고위 관료들을 만나 보면 의식 수준이 받쳐 주지 못했다. 힘들고 어려워도 어쨌든 작은 공장이라도 만들어 스스로 먹고살길을 찾아야 하는데 그냥 원조 받아 나눠 먹는 식이니까. 지방은 사병을 거느린 군벌들과 탈레반 때문에 행정력이 안 미친다. 행정력이 안 미치는데 원조를 해봐야 무슨 소용인가.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나라를 바꿔 보고 싶어 했지만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돈 싸들고 해외로 도망갔다고 욕을 먹던데….) “그런 뉴스가 나오긴 하던데 정확하게 확인된 건 아닌 것 같고… 대통령 한 사람 힘으로 상황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지 않나 싶다.” ※가니 대통령의 전임자인 하미드 카르자이 전 대통령은 재임 중 파키스탄 대통령에게 마약 단속을 요구했다가 “당신 동생이나 잘 단속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의 동생 별명이 ‘마약왕’이었다. ―당신은 국제사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했다. “자립할 수 있게 산업화 기반을 마련해 주는 노력을 했어야 하는데 그냥 밥을 먹여주는 식이 많았으니까. 미국도 엄청난 돈을 퍼부었지만 군사 부분을 제외하면 주로 민주주의 보급, 인권, 여성의 지위 향상 이런 분야에 지원을 많이 했다.” (필요한 지원 아닌가?) “중요한 분야지만 먼저 먹고사는 것부터 해결하는 게 순서 아닌가. 아프간 여성들의 처지가 워낙 참혹하다 보니 여성 인권도 중요하고, 민주주의를 보급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걸 넘어서는 뭔가를 했어야 했는데 그걸 못했다. 그래서 미국에 물어봤다. 너희들 왜 그러냐고. 그랬더니 ‘이래야 워싱턴에서 먹힌다’고 하더라. 그래야 사인을 받을 수 있다고….” ―혹시 연락되는 아프간 고위층이 있나. “얼마 전 친하게 지냈던 여성 국회의원이 비서를 통해 메일을 보냈다. 지금 카불에 숨어 있는데 탈출하는 걸 도와달라고…. 국회의원 교류 프로그램으로 한국에도 왔던 사람이다. 안타깝기는 한데 내가 어떻게 해줄 방법이 없어서 일단 파키스탄으로 피신한 뒤에 연락하라고 했다. 아프간 사람들은 파키스탄에 뭔가 하나씩은 끈이 있다. 그러면 우리나라로 오는 방문 비자 정도는 알아봐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재직 시 알던 다른 고위층 인사들에게도 전화를 해봤는데 신호는 가는데 받지는 않았다.” (우리는 전투병을 파병한 것도 아니고 원조만 했는데 왜 우리를 도운 현지인들까지 목숨이 위험한 건가.) “내가 있을 때도 요리사, 운전기사, 비서 등 대사관에서 일하는 아프간 직원들은 늘 협박 전화를 받았다. 외세에 부역했으니 가만 두지 않겠다는 거지. 미국과 가까운 나라는 더 그렇게 여긴다.” ―우리 대사관에서 6월 20일까지 우리 국민은 모두 철수해 달라고 공지를 했는데 왜 아프간 협력자들은 두 달 후에야 데리고 들어온 건가. “지금 상황은 나도 잘 모르는데… 내가 있을 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철수하는 매뉴얼은 있었지만 협력자들까지 단계적으로 어떻게 대피시킨다는 계획은 없었다.” (협박까지 받는 걸 안다고 하지 않았나.)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갑자기 붕괴될 거라 예상하지는 못했다. 미국이 탈레반과 협상해 어느 정도 평화가 보장되는 상태는 만들어 놓고 나갈 거라 생각했다. 그러니 우리도 우리 협력자들까지 어떻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못한 거지. 내 입으로 현지 직원들에게 한국은 전투도 안 하고 원조만 했으니 탈레반이 들어와도 당신들은 안전할 거라고 말했으니까.” ―대사관 직원들은 어떻게 생활을 했나. 외출도 힘들었을 것 같은데…. “우리를 직접 대상으로 한 테러는 없지만 묻지 마 테러를 당할 수 있어 외출은 거의 안 한다. 갑자기 옆에서 폭탄 조끼를 입은 사람이 터지거나, 양 몸통에 폭탄을 감은 뒤 터뜨리는 일이 종종 있으니까. 미 대사관에서 주재하는 회의나 외부 행사에 참석하는 정도가 전부다. 사실 갈 데도 없다. 일본 대사는 허리띠에 여권하고 3000달러를 차고 있더라. 외부에 있다가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공항으로 가라는 거지. 대사관 외부는 아프간 경호업체와 경찰이 경비를 서고, 내부는 무장한 한국 민간경호회사가 지켰다.” (무장? 테러범을 가스총으로 막을 수는 없을 텐데….) “파병됐던 오쉬노 부대원 20여 명이 잠시 대사관을 지킨 적이 있는데 철수하면서 두고 간 총과 실탄이 있었다.” ―군대가 총과 실탄을 두고 갔다는 건가. “군용기가 아니라 민항기로 귀국하기 때문에 총기 반입이 안 돼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 내가 부임하니까 그 상태였다. 대사관 경비를 위해서는 무기가 필요한데 한국에서 총을 가져올 수도 없고, 현지에서 사려면 너무 비싸서 감당이 안 됐다. 그래서 국방부, 외교부, 경찰청 등과 협의해서 그 총을 경호회사에 무상 임대하는 방식으로 제공했다.” (로켓 포탄은 어떻게 대비하나.) “한 달에 한두 번은 늘 대피 경보가 울렸다. 미국이 카불 상공에 레이다가 설치된 대형 풍선을 띄운 게 있다. 그걸로 로켓 발사를 파악해 각 대사관에 경보해 준다. 그러면 지하실로 대피하는 거지. 그런데 경보음이 울리면 우리나 다른 나라 대사관에서 더 겁냈다.” (우리에게 쏘는 건 아닐텐데….) “우리랑 미국 대사관은 200m 정도밖에 안 떨어져 있다. 그런데 탈레반의 로켓 거치대가 정교하지 않아서 늘 엉뚱한 데 떨어진다. 일본 대사관 유리창에 맞았는데 방탄유리라 뚫지는 못하고 마당에 떨어진 적도 있다.” (미국·일본대사관 유리창은 방탄인가?) “방탄이다.” (우리도?) “우리는 아니고….”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21세에 떠오르는 신성이라며 국가대표에 선발됐다. 하지만 바로 이듬해 도핑테스트에 걸려 1년간 자격 정지. 세계 랭킹은 184위까지 곤두박질쳤고, 급기야 정신적 지주였던 아버지마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너무 안 풀려서 ‘군대나 가자’ 하고 입대했는데 제대하니 서른. 도쿄 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 김정환(38·국민체육진흥공단)은 “남들은 운동을 접을 나이인데 그때야 비로소 펜싱이 뭔지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실례지만 메달을 많이 따서 군 면제를 받은 줄 알았습니다. “올림픽 금메달은 제대한 뒤 딴 거라…. 대학 졸업하고 실업팀에 있다가 2010년 국군체육부대(상무)에 입대했지요. 마침 그해 광저우 아시아경기가 열렸는데 금메달을 따면 조기 제대할 수 있었지만 1점 차로 져서 못 했습니다. 그 당시 너무 안 풀려서 운동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러면 상무에서 일반 부대로 이동되기 때문에 못했어요. 20대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도핑검사에 걸려 자격정지 받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선발전에서 탈락하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조기 제대도 실패하고…. 운동을 그만두려 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런 일들을 오래 겪어서인지 지금은 경기에서 이기건 지건 별로 슬퍼하지도, 기뻐하지도 않습니다.” (도핑테스트에는 왜….) “2005년 SK텔레콤 서울 국제그랑프리에서 우승했는데 경기 후 도핑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와 메달이 박탈되고 1년간 선수 자격 정지를 받았어요. 불안감 때문에 잠을 거의 못 자서 수면제를 먹었는데 그게 탈이 된 거죠.”※그는 우리 나이로 서른인 2012년 런던 올림픽 사브르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후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개인전 동,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개인전 동, 단체전 금을 땄다. ―은퇴한 선수가 복귀 결심을 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나이도 출전 선수들 중 두 번째로 많았다고…. “그렇게 거룩한 이유 때문에 한 건 아닌데… 은퇴하고 1년 몇 개월 정도 지났는데 성취감도 없고 좀 무료했어요. 왠지 저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그러던 어느 날 TV를 보던 아내가 ‘오빠는 저 정도는 해?’라고 묻더군요. 후배인 (오)상욱이, (김)준호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는 뉴스였어요. ‘당연하지’라고 했는데 ‘아∼ 그래?’ 하면서 안 믿는 눈치더군요. 아내는 제가 국가대표 할 때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 말이 사나이 가슴에 불을 지르는데… ‘왕년의 선수’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주려고 ‘컴백’했습니다.” (그냥 하는 말 아닙니까?) “제가 지고는 못 살 정도로 승부욕이 좀 과해요. 다트 500점 깨려고 한 달 넘게 다트장을 드나든 적도 있으니까요. 수십만 번을 던지다 보니 나중에는 숟가락도 못 들 정도로 팔이 아프더군요. 나중에는 아예 다트 기기를 샀습니다. 사람들이 들으면 유치하다고 웃지요.” ―펜싱이 유럽 국가들의 텃세와 편파 판정이 굉장히 심한 종목이라고 하던데 도쿄에서는 어땠습니까. “펜싱이 그런 게 좀 심한 편이에요.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15점(개인전 점수) 내고 이길 생각하지 말고 아예 20점 낸다고 생각하고 경기하라고 합니다.” (개인전 4강에서 이탈리아 루이지 사멜레에게 역전패하지 않았습니까?) “판정으로 진 부분 중에는 제가 이긴 부분도 있는 것 같기는 한데, 항의는 못했어요. 그러다 보니 분위기가 상대 쪽으로 넘어갔고, 그 기세를 이기지 못했지요. 그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왜 항의를 안 한 겁니까. 보통 감독이 작전 차원에서라도 항의하며 흐름을 끊지 않습니까?) “올림픽에서는 항의할 수 없는 게 룰이에요. 다른 국제대회에서는 판정에 불만이 있으면 감독들이 의자도 집어던지고 강하게 항의하는데, 올림픽은 전 세계에 중계되기 때문에 조직위에서 아예 못 하게 해요.”※그는 12―6으로 앞서다가 연거푸 9점을 내줘 역전패했다. 누가 득점했는지 따져보는 부분에서 심판은 모두 사멜레 손을 들어줬다. ―코로나19 때문에 훈련도 전과는 많이 달랐을 것 같은데요. “선수촌이 아주 고급스러운 감옥이 됐다고 할까요? 하하하. 전에는 선수촌 앞에 마트라도 다녀올 수 있었어요. 주말에는 외박도 되고. 그런데 이번에는 5개월 정도 진짜 한 발자국도 나갈 수가 없었지요. 전 아직 신혼인데….” (밤이 힘들었습니까.) “하하하, 뭘 그런 걸…. 도쿄에서는 재수 없게 자동 기권으로 쫓겨나면 어떡하나가 가장 걱정이었지요.” (자동 기권요?) “매일 아침 긴 플라스틱 통에 침을 뱉어서 제출했는데 만약 코로나바이러스가 검출되면 자동 기권으로 처리되고 나와야 해요. 그래서 아침마다 굉장히 떨렸어요. 침도 물로 입 막 헹구고 뱉고…. 외국 선수 중에 검출돼서 중간에 나간 사람이 실제로 있었으니까요.” ―일부 비인기 종목은 국가대표도 아르바이트하며 훈련해야 한다고 하던데… 비인기 종목이라 겪은 서러움은 없었습니까. “비인기 종목이라서는 아닌데…. 런던 올림픽 때 함께 출전한 오은석 선수는 침대가 없어서 소파에서 잤지요. 제가 생각해도 올림픽 규정이 좀 이상한데…. 단체전은 3명까지만 TO(table of organization·규정으로 정한 인원)로 보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에요.” (도쿄에서 4명이 뛰고 모두 메달을 받지 않았습니까.) “쉽게 말하면 주전은 3명이고 나머지 한 명은 교체 선수로 보는 거죠. 만약 교체 없이 경기를 치르면 시상대에 3명만 올라가요. 나머지 한 명은 메달을 안 주는 거죠. 그래서인지 선수촌도 3명만 들어가고, 나머지 한 명은 외부 숙소에서 자면서 훈련장으로 출퇴근해야 해요.” (함께 갔는데 입장이 곤란했겠습니다.) “그래서… 인정상도 그렇고, 팀워크 문제도 있고 해서 대회조직위에 제발 입촌만이라도 허락해 달라고 사정했지요. 그랬더니 정말 들어오게만 해주더라고요. 침대는 안 주고.” ―일본에서는 어땠습니까. “규정대로 하면 준호가 외부 호텔에 머물러야 하는데 요청했더니 입촌시켜줬어요. 골판지 침대라 (싸서) 그런지 침대도 주고.”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본인이 펜싱 선수 출신 아닙니까?)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외국, 특히 유럽 선수들은 우리처럼 팀워크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단체전 4명이 각자 코치가 다르니까요. 그래서 어떨 때는 경기 중에 자기들끼리 싸우더라고요.”※바흐 위원장은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 플뢰레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메달을 못 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까. “런던 올림픽에 출전한 16개국 중 우리 랭킹이 꼴등이었어요. 그런데 1등을 했지요. 올림픽은 그런 곳이에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만약에 동메달 결정전에서 지면 4등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인천공항에서 집까지 어떻게 가지?’였어요. 눈앞이 캄캄해지고…. 후배들도 경험이 적으니 ‘형, 지면 어떻게 하죠?’라며 걱정이 많았지요. 그래서 후배들에게 ‘지금 사람들이 어펜저스(어벤저스+펜싱)라며 띄워주는 거에 취하지 마라’고 했어요. 은메달 따면 오히려 비난이 쏟아질 수도 있다고. 우린 잘해야 본전이니 이집트도 쉽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다그쳤지요.” (이집트가 좀 못합니까.) “보통 외국에 나가면 미리 몸 안 풀고 이집트랑 경기하면서 몸 푼다고 생각하니까요. 런던 올림픽에서 독일이 우리를 그렇게 대했다가 우리에게 졌지요. 자만은 정말 무서워요.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 예상외로 이집트와 초반에 5―6, 6―6 이렇게 가면서 고전했어요.” ―쟁쟁한 프로그램들에서 방송 출연 요청이 쇄도하던데, ‘도시어부’도 나가더군요. “낚시를 엄청 좋아해서…, 올림픽이 끝난 직후라 출연 요청이 많기는 해요. 그런 면에서 나잇값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후배들에게 이것도 다 한때의 바람이니 너무 취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제가 어릴 때 어쩌다가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고 ‘어? 국제무대 별것 아니네?’ 하고 자만했어요. 그 뒤로 앞서 말했듯이 안 좋은 일이 막 겹치면서 곤두박질쳤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기까지 7, 8년이 걸렸지요. 그래서 좀 진부하지만 후배들에게 늘 ‘일찍 피는 꽃은 일찍 진다’고 얘기합니다. 펜싱 선수는 경기장 밖이 아니라 ‘피스트(piste·펜싱 경기대)’ 위에서 검으로 빛나야 한다고….”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지난 5월 말 김재섭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을 인터뷰 했습니다. 열흘 후면 그가 속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가 활동을 종료하는데다, 한창 화두가 된 청년정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올해 34살인 그는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 이동학 더불어민주당 청년최고위원 등과 함께 여의도에서 주목받는 청년 정치인중 한 명입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독자여러분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청년정치’란 과연 무엇일까요. 왜 우리 정치에 청년정치인들이 필요한 걸까요. 답을 찾기 위해 그동안 많은 청년정치인들을 만났습니다. 앞서 말한 이 대표. 이 최고위원은 물론이고 ‘박근혜 키드’로 불렸던 손수조 전 새누리당 부산 사상 당협위원장, 김창인 정의당 혁신위원, 국민의힘 최연소 당협위원장인 박진호 경기 김포갑 위원장, 박성민 청와대 청년비서관, 강명구 전 국민의힘 영등포갑 당협위원장 등 모두 정치권에서 ‘괜찮은’ 청년 정치인들로 불린 사람들입니다. ‘청년정치가 무엇이냐’는 것은 ‘왜 청년 정치가 필요 한가’와 사실은 같은 말입니다. 만약 기성 정치인들이 청와대와 당, 실세 정치인들 눈치를 보지 않고 양심에 따라 정치를 했다면, 의원 배지에 연연해하지 않고 소신껏 할 말을 해왔다면, 극렬지지층과 지역 정서가 아닌 전체 국민을 보고 정치를 했다면, 정치인들의 나이가 90, 100살이 넘어도 청년정치가 필요하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청년정치의 목적은 ‘좋은 정치’지, 정치인들의 평균 연령을 낮추자는 게 아니니까요. 그런데 기성 정치인들은 국민의 기대에 부합하지 못했습니다. 배지를 오래 달기 위해 실세와 권력에 줄을 섰고, 찍힐 까봐 입을 닫았고, 심지어는 ‘박비어천가’ ‘문비어천가’를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친박·진박, 친문·비문 이런 말이 존재한다는 게 그 반증이지요.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고 하지만 의회가 제 기능을 했다면 ‘제왕 같은 대통령’은 나타날 수 없습니다. 기성 정치인들이 사리사욕을 위해 입을 닫고. 양심을 팔며 스스로 권력 앞에 기었기에 제왕적 대통령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청년정치’는 아직은 때 묻지 않고, 정의와 신념이 살아있는 청년들이 이런 잘못된 정치를 바꿔줬으면 하는 국민의 기대입니다. 청년들이 기성세대보다 전문지식과 경험이 더 월등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민들이 기성정치인들보다 청년정치인들에게 더 희망을 갖는 것은, 제아무리 해박한 지식과 경륜을 가졌더라도 마음이 올바르지 않으면 그 지식과 경륜은 오히려 국민에게 피해를 주는 도구가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 감방에 있는 박근혜 정부의 고위직들, 영화 ‘기생충’ 뺨치는 조국 전 법부무 장관 부부, 서민을 위한 부동산 정책을 편다면서 뒤로는 자신들 배를 불린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아직 검증되지 않은 36살의 ‘0선 의원’이 제1야당 당 대표로 뽑힌 것은 이런 국민의 마음이 뒤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청년 정치 바람 탓인지 청년정치인들은 전에 비해 많이 늘었습니다. 청와대는 25살 여대생을 1급 청년비서관으로 임명했고, 각 대선 예비후보 캠프에는 인지도 있는 청년 정치인들을 모셔가기 바쁩니다. 방송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하는 평론가 중에도 청년들이 많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여당 최고위원 중에도 청년이 있고, 제1야당 대표도 30대 입니다.그런데 이상합니다. 청년 정치인들은 곳곳에 있는데, 당연히 함께 보여야할 ‘청년정신’은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대선 승리를 위해, 우리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당을 감싸기 위해 편을 드는 젊은 정치인들만 보입니다. 일부는 자기편에 대해 쓴 소리도 합니다. 그러나 ‘젊은 애들이 그 정도는 말 할 수 있지’라고 넘어갈 수 있는 선에서 그칩니다. 그들이 과연 소속 정당과 자신이 몸담은 캠프의 후보에게 정말 약이 되는 아픈 말이 무엇인지 몰라서 안하는 걸까요? 말이 길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김재섭 전 비대위원으로 다시 돌아가지요. 당시 그에게 “젊은 비대위원들이 김종인 위원장 눈치를 보느라 할 말을 못한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가 비대위원에 임명됐을 때 “정의롭지 않다고 느낀 것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내겠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국민의힘은 4·7재·보궐선거를 이기기 위해 자신들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결정했던 김해신공항 확장을 뒤집고 부산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여당보다도 먼저 발의해줬지요. 그는 “무리한 공약이 맞지만 선거에 영향을 줄까봐 말을 못했다. 좀 비겁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할 말을 하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과문한 탓인지는 모릅니다만 잘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디선가 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리 큰 소리는 아닌 것 같군요. 대신 그가 출연하는 시사방송에서 “다만~” “단지~”란 말은 많이 듣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에 문제가 있어 지적받을 때 앞에 약간 잘못을 인정하면서 “다만 이런 점도 있습니다”라며 사실은 옹호하는 화법이죠. 제가 본 모든 청년정치인들이, 스스로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어느새 그런 화법을 쓰고 있었습니다. 정당과 캠프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우리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게 중요하겠지만, 일반 국민에게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되던, 이재명 경기지사가 되던 아무 상관없습니다. 국민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보다 나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캠프와 정당은 상대 후보를 이기기 위한 전투 조직이 아니라, 우리 후보를 더 나은 사람으로, 더 나은 정당으로 만드는 ‘인큐베이터’가 돼야합니다. 그러려면 필요한 게 적의에 불타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애정을 가지고 우리 후보에게 쓴 소리를 하는 것이겠습니까. 나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유불리를 떠나 공동체를 위해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이 청년입니다. 나이가 80이어도 그가 청년입니다. 그런데 잘못된 정치에 대해 가장 분노해야할 청년정치인들이 친해서, 우리 당이라, 우리 후보라… 이런 이유로 상대방만 공격하고 우리 편 잘못은 눈을 감습니다. 정치권과 청년정치인들이 착각하는 게 있습니다. 아이디어, 이벤트의 참신성이 마치 청년정치인 것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 캠프에 등장했던 청년유세단, 셀프디스 마케팅 등은 기성 정치인들 머리에서는 나오기 힘든 작품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so what?’이라고 묻고 싶군요. 아이디어의 참신성과 기획 성공은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을 따라갈 사람이 없겠지요. 아이디어, 이벤트는 도구일 뿐이지 정치의 목적이 아닙니다. 탁 비서관의 이벤트는 탁월하지만 지금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어떻습니까. 청년정신은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면, 네 편 내편을 따지지 않고 기성 체제에 저항하는 것입니다. 내편은 눈 감고. 남만 공격하며 마음과 철학의 부재를 이벤트로 메우는 사람은 비록 나이가 20살이어도 꼰대입니다. 지금 청년정치인들은 이구동성으로 “기성정치권이 청년들에게 문을 더 열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스스로 ‘젊은 정치’를 보여주지 못하고, ‘청년의 탈을 쓴 기성정치’를 한다면 그것은 뒤에 올 후배 청년정치인들의 길을 스스로 막는 배신이 될 것입니다. 청년정치인들에게 묻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자기가 속한 당과 대선 후보의 승리, 정권 탈환과 연장을 위한 것 외에 국민을 위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감염병 방역은 정말 어렵다. 병만 생각하면 강하게 통제하고 싶지만 자영업자 등 직격탄을 맞는 이들을 생각하면 그러기도 어렵다. 죄면 생활고로 쓰러지는 사람이 속출하고, 풀면 확진자가 늘어난다. 그래서 완급을 조절하면 이제는 오락가락 행정이라고 한다. 윤태호 전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방역총괄반장은 4일 “방역과 일상의 균형을 어떻게 잡느냐가 가장 큰 고민이었지만 정말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지난해 1월부터 방역총괄반장을 맡은 그는 올 6월 말 퇴임해 학교로 돌아갔다.》 ―고생한 사람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정부 방역이 주먹구구식이라는 지적이 많다. “처음부터 가장 큰 고민이 방역과 일상생활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였다. 질병관리청이 중심인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와 복지부가 중심인 중수본이 사회적 거리 두기에 대해 엄청나게 논의하고 결정했는데… 질병청은 방역 강화 입장이 강하고, 중수본은 여러 부처에서 올라오는 의견과 항의를 종합해 조정하다보니 솔직히 균형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항의가 많은 곳이 어디인가.)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의견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다. 공연, 영화, 스포츠는 물론이고 종교도 문체부 관할이니까. 왜 예배를 못 보게 하느냐는…. 중소벤처기업부에서는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지만 자영업자들의 피해가 너무 큰데….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많이 아팠다. 굶어죽을 바에야 차라리 장사하다가 코로나에 걸려 죽는 게 낫다고…. 왜 방역을 단체기합 방식으로 하냐고 할 때도….” (단체기합 방식이라니?) “어디 한군데 노래방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하면 모든 노래방의 영업을 금지하는 식으로 하는 걸 단체기합이라고 말하더라. 솔직히 말해 일부 현장에 있는 분들을 만나기는 하지만 중수본 안에 있다보면 실제로 그분들이 (사회적 거리 두기로) 어떤 일을 겪는 지 세세하게 알기는 어렵다. 그런 와중에도 의사결정은 해야 하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고…. 언론을 통해 그런 보도를 볼 때마다 많이 아팠다. 미안하고 죄송스럽고….” ―풀었다 놨다 하는 방역 대응이 혼선만 일으킨 건 아닌가. “그런 지적도 있는데… 방역 피로감에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방역수칙만 계속 요구하면 오히려 더 큰 저항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 외국에서 벌어진 마스크 착용 거부 시위가 그렇다. 그러면 방역 수칙을 어긴 데 대해 강력하게 처벌해야 하는데 공포 분위기 조성으로는 대규모 감염병이 통제되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처벌을 너무 강조하면 ‘에라, 난 모르겠다’는 식으로 이탈하는 사람들이 생길 수 있는데 감염병이란 게 따라오는 사람만 데리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조금 완화하면 ‘왜 그렇게밖에 못하느냐’고 질타하지만 모두가 함께 가려면 강하게만 하기는 어렵다.” ―7월 1일부터 완화된 새 거리 두기로 전환한다고 했는데 하루 전날 입장을 바꾼 이유가 뭔가. “알려진 대로 몇 달 전부터 7월 1일부터 완화된 새 거리 두기로 전환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6월 말쯤 확진자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동안의 거리 두기는 전국이 다 똑같았던 게 아니다. 전남처럼 인원제한이 없는 곳도 있고, 경북처럼 완화된 새 거리 두기를 미리 시범 적용한 곳도 있었다. 지역별로 상황이 다르니까. 그래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서 이미 공표한 대로 새 거리 두기를 적용하는 게 나을지, 아니면 조금 중간 단계를 둬서 연착륙을 하는 게 나을지 각 시도의 의견을 취합 중이었다. 그게 다 모인 게 6월 29, 30일 쯤이다. 서울은 원래는 완화된 새 거리 두기를 할 생각이었는데 그 무렵 환자가 많이 발생하자 부담스러운지 기존 거리 두기를 연장하기로 했다. 서울이 그러니 같은 생활권인 수도권 지자체들은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거고.” (정부는 기존 방침을 고수하려 했는데 지자체들이 반발한 것처럼 보였는데.) “그렇게 보인 면이 있는데… 거리 두기는 사회적인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에 정부가 지자체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따라오라고 할 수 없다. 매일 하는 온라인 회의에 기초자치단체까지 300여 곳이 넘게 참여하는데….” ―정은경 질병청장에게 실권이 별로 없다는 지적이 있다. “아마 방대본 위에 중수본, 그 위에 중대본 이런 조직들이 있다보니 그렇게 보이는 것 같은데… 방역은 질병청이 중심이 된 방대본이 책임지고 하지만 질병청 힘으로 안 되는 부분들이 있다. 병상 확보 같은 문제는 질병청이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복지부가 중심이 된 중수본이 지원을 한다. 코로나처럼 대규모 감염병은 복지부 차원을 넘는 범부처 일도 많기 때문에 그런 경우에는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중대본에서 지원해주는 거고. 수직관계로 보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수평적인 관계다.” (당신 위치에서야 당연히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닌가.) “중대본에서 결정한 사안도 시작은 질병청이 만든 안을 각 부처 의견을 들은 뒤 조정해 결정하는 것이다. 내 기억에는 질병청이 반대했는데 중수본, 중대본이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끌고 간 경우는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중요 방역 대책은 방대본이 초안을 만들면 중수본이 각 부처 의견을 취합해 조정한 뒤 중대본에서 결정한다. 그의 역할 중 가장 큰 부분이 중수본에 취합된 의견을 질병청과 조정하는 것이다. ―백신 도입은 왜 늦어진 건가. “백신 부분은 별도 조직으로 움직여서 정확히는 잘 모르는데….” (알 것 같은데….) “중수본 안에서 우리끼리도 ‘백신 도입은 어떻게 되고 있는 거지?’ 하고 궁금해서 묻고 다녔으니까.” (작년 7월에 화이자에서 먼저 우리 정부에 구매 의사를 물었는데 우리가 거절했다는 말이 있다.) “그 부분은 나도 잘 모른다. 백신은 질병청이 각 부처에서 필요인력을 지원받아 진행했다. 접종 계획을 수립하고 구매계약서에 사인하는 사람도 질병청장이고. 단지 백신 도입 부분은 질병청 업무가 너무 많다보니 올 초에 복지부 장관에게 권한이 위임된 걸로 안다.” (치료제는 어떻게 되고 있나.) “혈장 치료제가 있기는 한데… 완치된 사람들의 혈장에는 항체가 있으니까 그걸 뽑아서 치료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사람의 피를 뽑는 방식이라 대량생산은 어렵다. 보통은 특별한 처치를 하지 않아도 증상이 악화되지 않고 나아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만약 호흡기 증상이 있으면 산소치료, 열이 나면 해열제를 주는 식으로 하고 있다.” ―거리 두기를 그토록 강조하는데 왜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 내 집단 감염은 아직 없나. “지하철이 대표적인 3밀(밀폐, 밀접, 밀집) 공간이기는 한데… 지하철 역사 내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걸린 경우는 있지만 객차 내에서 감염이 확산됐다는 사례는 나도 아직은 보지 못했다. 역학 조사가 세밀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지만, 지하철 안에서는 대부분 말을 안 하고 조용히 있으니까 바이러스를 배출할 가능성이 적어서가 아닌가 싶다. 같은 3밀 공간도 장소에 따라 특성이 좀 다른데, 말을 하는 등 행위가 결합되지 않으면 단순히 (3밀)공간 안에 있다고 감염력이 높아지는 건 아니다. 버스도 사람은 많지만 그리 말을 많이 하는 공간은 아니니까….” ―내년 대선이 취약한 공공병원의 역량을 강화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했는데…. “대학병원도 있지만 공공병원이라고 하면 주로 지방 의료원, 적십자병원 등을 말하는데, 공공병원의 책무 중 하나가 감염병 대응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만한 역량을 갖추지 못한 게 사실이다. 이번에 지방 의료원들이 기존 입원 환자들을 다 퇴원시키면서 코로나 환자를 위한 병상을 확보했는데 사실 시설과 인력이 제대로 갖춰져 있었다면 그러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모든 건물이 하나의 공조시설로 돼 있어 코로나 환자를 돌보기 위해서는 일반 환자를 다 내보낼 수밖에 없는 곳도 있었으니까. 사스(SARS),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등을 겪으며 감염병 대응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그동안 이런 쪽으로는 투자가 없었던 거다. 코로나19보다 더 독한 대규모 감염병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지 않나. 지금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적인 투자를 하지 않으면 지금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내년 대선이 대규모 감염병에 취약한 사회 시스템을 장기적인 플랜을 갖고 정비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그게 국가 지도자를 하겠다는 사람들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윤태호(50)부산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2018년부터 3년 임기의 개방형 직위인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으로 일하다 지난해 1월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 중수본 방역총괄반장을 맡았다. 각 부처의 의견을 종합해 질병관리청과 함께 방역대책의 뼈대를 만드는 역할을 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방송에서는 어떻게 참았나 싶었다. 만약 이 인터뷰를 방송에 그대로 내보내면 2, 3분마다 ‘삐∼’ 처리를 해야 했으니까. 그만큼 그는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 정책에 분노했고, 특히 월세로 사는 청년임대주택과 무책임한 정치인들을 말할 때는 이마에서 핏대가 솟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를 예견해 유명해졌던 유현준 홍익대 건축도시대학 교수는 “부동산 문제를 조언해 달라고 하는 정치인들을 만나보면 당장의 선거를 위한 것일 뿐 장기적인 정책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월세에 특히 분노하는 이유가 뭔가. “오래 살아 봐서 결과가 어떤지 아니까. 미국에서 유학을 포함해 7년 정도 살았는데 미국은 집값의 10% 정도만 있으면 대출받아 집을 살 수 있다. 당시 좋은 집이 우리 돈으로 5억 원 정도라 5000만 원만 있었으면 살 수 있었는데 없어서 매달 100만 원 좀 넘는 돈을 월세로 냈다. 7년이니 1억 원 가까이 되는데 만약 그때 샀으면 1억 원이 내 자산으로 남았을 거다. 월세로 산다는 건 그런 거다. 내 부동산 자산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반대로 내 노동의 대가가 사라지고, 내가 낸 돈은 부동산을 소유한 사람의 자산으로 축적된다. 그래서 내가 월세는 21세기형 소작농을 만드는 제도라고 하는 거다. 월급의 일정액을 월세로 내는 게 소작농이 매년 일정분을 소출로 내는 것과 뭐가 다른가.” (귀국 후에도 월세 살았나.) “집에서 도와줄 형편은 되지 않았으니까. 2005년 귀국했는데 너무 비싸 살 수가 없었다.” ―당시에는 어느 정도였기에…. “내가 살고 싶은 아파트가 7억 원 정도 했다. 근데 그때 사람들이 다 집값이 떨어질 테니 사지 말라고 했다.” (근거가 뭔가?) “인구가 줄기 때문에 집값도 내려간다는 거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때는 조금 내려가는 추세를 보였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4억 원까지는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했고, 내 연봉이 그때 5000만 원 정도였으니까 어떻게든 2억 원 정도를 모으면 대출받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내려가지는 않았고 결국 못 샀다.” (그 집은 지금은 얼마나 하나.) “5배 뛰었다.” ※그는 다른 곳에 집을 샀는데 최근 몇 년 사이 갑자기 유명해져 수입이 늘어난 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 같은 특별한 행운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청년임대주택이 젊은층의 주거 부담을 줄여 주는 효과는 있지 않나. “임대주택에서 월세로 살던 청년이 중장년이 되면 돈을 모은다 해도 그 사이에 집값이 너무 올라 집 사는 걸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또 다른 형태의 임대주택을 정치인들에게 요구하게 되고 경제적 자립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정부가 임대주택을 공급하면서 청년주택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청년들에게 임대주택을 주는 건 2030세대를 영원히 가난하게 만드는 정책이다. 그리고 이미 부작용도 생기고 있고…. 작더라도 청년들이 자기 집을 가질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한다. 그런데, 부동산 얘기는 이제 안 하면 안 되나?” (이제 시작인데 안 한다고 하면 난 어떻게 하나.) “하도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잘 알지 않나. 내용은 안 보고 무조건 저놈이 우리 편인지 아닌지로만 판단해 공격하는 사람들. 뭐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고… 그런 사람들을 상대하기가 점점 더 싫어지다 보니 이제는 말하기가 싫어진다. 할 만큼 말하기도 했고.” ―그러면 안 되고…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건가. “공급이 부족해 생긴 과도한 압력(가격 상승)을 빼줘야 한다. 지금 집값이 엄청나게 뛴 이유가 공급이 부족하니 좋은 집 가격이 오르고, 순차적으로 그 압력이 아래로 전가돼 별로 안 좋은 집, 작은 집까지 10억 원이 넘게 된 거다. 그 압력을 빼줘야 집값도 내릴 수 있고 청년층이 나중에라도 자기 집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나는 정부가 1, 2인 가구를 위한 15, 20평 정도의 중소형 아파트를 대량으로 공급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가구 수를 늘리는 방향으로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지금 나이 드신 분들 중에는 40평대 집에 혼자 또는 부부만 사는 분이 많다. 이 분들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1, 2인 가구용 주택을 제대로 잘 만들어 공급하면 이분들이 나온 40평대 집에는 그 아래에서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순차적으로 숨통이 트여 고인 압력이 빠지면 지금처럼 비정상적으로 집값이 오르지 않을 테고, 결과적으로 청년층도 그 혜택을 보게 될 거다.”“우리는 (부동산)악당을 잡으면 세상이 좋아진다고 믿지만, 세상에는 그 악당을 손가락질하며 자신의 권력과 이익을 챙기는 위선자도 있다. 악당과 위선자 사이에서 국민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 ― 유현준 교수 ―그러려면 시간이 꽤 걸리지 않나. “그래서 정치인들이 나쁜 사람들이라는 거다. 장기적으로 정책을 펴지 않고 늘 당장 다음번 선거만 생각하지 않나.” ―만나자는 정치인들이 많던데…. “4·7 재·보궐선거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만나기는 하는데… 부동산 정책이나 이런 걸 나한테 그렇게 관심 있게 물어본 사람은 없었다.” (부동산 문제 때문에 만나자고 하는 게 아니었나?) “부동산 얘기를 하기는 하는데… 그분들의 관심은 선거지 장기적인 정책에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얘기를 하다 보면 ‘미래에 대한 생각은 안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여야를 떠나서 모든 정치인이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정치인들을 믿지 않는다.” (부담스럽지는 않았나. 재·보궐선거도 있었고 대선도 있는데….) “그래서 만나서 얘기는 할 수 있는데 정치적으로 이용하지는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함께 사진을 안 찍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러고 나서 건축에 대한 내 소신을 얘기한다.” ―요즘은 집을 안 사고 자유롭게 사는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도 꽤 있다. “그건 개인의 자유니까. 단지 청년들에게 젊을 때 집을 사지 않는 게 40, 50대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알려줘야 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집이 없다는 건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것이고, 또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자본을 포기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만큼 경제적 자립이 어려워지고 정부와 정치가에게 더 의존하는 사람으로 남게 된다. 많은 국민이 부동산을 갖지 못하면 결국 그 부동산 자산은 정부나 대자본가들이 갖게 된다. 점점 더 많은 국민이 국가 소유의 임대주택에 살게 된다는 것은 점점 더 많은 권력을 정치인들에게 넘겨준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한편에서는 공유경제도 늘고 있지 않나. “나도 처음에는 공유경제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 이거 되게 괜찮네?’ 하고 생각했다. 모든 걸 가질 수는 없으니까 빌려 쓰는 것도 좋다고 봤다. 그런데 순진했을 때 생각이었다. 자본가들은 ‘앞으로는 소유할 필요 없어. 이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야’라고 공유경제가 마치 굉장히 ‘쿨’한 시스템인 것처럼 말하면서 정작 자기들은 빌딩을 소유하지 않나. 가격이 오르는 혜택은 다 자기들이 가져가는 거지. 셰어하우스도 공동체를 향유하는 멋진 공간으로 포장하지만 결국 월세다. 평범한 직장인들에게는 치명적이다.” ―부동산이 워낙 문제다 보니 대선을 앞두고 반값 아파트류의 공약도 나온다. “반값 등록금부터 시작해서 어디서부터 반값 타령이 나왔는지 모르지만, 사기 좀 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난 불가능할 거라고 보는데 그게 결국 시장을 교란하는 것 아닌가? 만약 땅은 공공이 갖고, 건물만 분양하는 아파트가 있다면 그런 곳은 나중에 슬럼화될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택지조성원가 연동제로 12억 원 아파트를 5억 원에 공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홍준표 의원은 강북 대개발로 토지는 국가가 갖고, 건물만 분양해 반값 아파트를 넘는 4분의 1(쿼터) 아파트를 공급할 수 있다고 했다. ―LH 사태 등 그들만의 리그가 생긴 게 건축법 규제가 너무 많고 복잡한 탓도 있다고 했는데…. “내가 건축 분야에서 일한 지가 거의 30년이 됐는데 나도 잘 모르고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규정이 너무 많고 복잡하다. 심지어 허가권자조차 검토할 때 자기도 몰라서 넘어갔다가 다른 사람이 지적하니까 알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규정에 대한 해석을 놓고도 서로 다르고…. LH 출신들은 그걸 다 꿰고 있고, 규정 해석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건축 관련 회사들에 LH 출신들이 없으면 일이 안 되는 거지.” (LH 같은 곳이 규모만 작을 뿐 대구 대전 울산 평택 등 지자체마다 다 있던데….) “지자체마다 거의 다 있다. 대부분 LH와 비슷할 거다. 건축 토목 쪽을 보면… 하… 나라에 도둑이 너무 많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코로나19 발생 초기인 지난해 3월 정기석 전 질병관리본부장을 인터뷰했습니다. 사스(SARS),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같은 감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지적됐던 문제들이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또 드러났기 때문이지요. 대규모 감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역학조사관 부족, 컨트롤타워 부재 등 문제가 지적됐고, 정부는 그때마다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는데 왜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될 수 있는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호흡기 내과 전문의이면서 현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직전 전임자였던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요. 그는 2016년 2월~2017년 7월 재임했습니다. 감염병 발생은 천재(天災)지만 대응은 사람의 몫입니다. 그리고 그 대응의 가장 중추적 역할을 하는 곳이 지난해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된 질병관리본부지요. 하지만 그가 들려준 질병관리본부의 실상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가장 큰 힘을 가지고 모든 방역 대책을 진두지휘해야할 질병관리본부장에게 사실상 실권이 거의 없다는 것이죠. 그는 기관장인데도 취임 1년이 지나서야 겨우 6급 이하의 인사를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규정에는 6급 이하 인사는 소속 기관의 장이 한다고 돼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보건복지부가 안 놔줬다고 하더군요. 그나마도 문제점을 계속 지적하고 언론에서도 떠드니까 줬다고 합니다. 5급 이상은 여전히 사전에 의논도 하지 않고 그냥 내리 꽂았고요. 5급 사무관 인사도 할 수 없는 기관장이 대규모 감염병 상황에서 무슨 힘을 쓸 수 있겠습니까. 2015년 메르스 때도 그랬고, 대규모 감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늘 역학조사관 부족 문제가 제기됐고. 그때마다 정부는 확충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공염불이었죠. 그가 재임 시 역학조사관은 정규직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처음에 3년 계약하고 2년을 연장할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정해진 것이 없다고 하더군요. 재계약을 계속 할 수는 있지만 누가, 그것도 의사 출신이 2, 3년마다 재계약을 반복하는 불안한 직장생활을 하겠습니까. 그래서 역학조사관을 하다가 중간에 정년이 보장되는 복지부 5급 사무관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경력이 조금 쌓이면 이렇게 이직을 하기 때문에 베테랑 역학조사관이 적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질병관리청으로 바뀐 뒤에는 얼마나 달라질지 모르지만 과거 질병관리본부를 복지부 고위직 인사적체를 해소하는 곳으로 이용했던 행태도 문제입니다. 인터뷰를 했던 지난해 3월은 앞서도 말했듯이 코로나19가 확산되던 시기입니다. 감염병 대응에 가장 중요한 곳이 긴급상황센터와 감염병관리센터인데 어처구니없게도 당시 이 두 곳의 센터장은 복지부에서 온 지 1년도 안된 행정고시 출신들이었습니다. 문과생들이라는 것이죠. 당시 국민들은 매일 코로나19 브리핑에 나서는 정은경 당시 질병관리본부장을 보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하얗게 센 그의 머리가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물론 그의 책임감도 있었을 것입니다만 의료계에서는 의학적 지식이 없는 문과 출신 고위관료들이 기자들의 여러 질문에 답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 본부장이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니냐는 시각도 많았습니다. 질병관리본부 사람들이 안타까운 것은 실권도, 인력도 없는데 방역 실패의 책임은 져왔다는 점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본인이 2015년 메르스 사태로 중징계를 받았지요. 당시 감사원은 질본이 초기에 병원 이름을 비공개로 해 감염을 확산시켰다는 이유로 양병국 본부장, 정 청장(당시 긴급상황센터장) 등 질본 간부들의 중징계를 건의했습니다. 그때 질본 내 많은 의사 출신 간부들이 정부의 행태에 실망해 떠났다고 하는군요. 책임을 지우려면 그에 합당한 권한을 주던지, 권한을 안 주면 책임을 지우지 말던지 그러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된 후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별로 변한 것이 없다는 걸 반증하는 일이 최근 벌어졌습니다. 3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서울 도심 대규모 집회를 앞두고 2일 김부겸 국무총리가 정은경 청장을 대동하고 민주노총을 찾았지요. 집회 자제를 요청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의료계에서는 이 엄중한 시기에 방역의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질병관리청장을 대동하고 가는 게 과연 적절한 것이냐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집회 금지를 통고하고 위반하면 그에 따라 대응하면 될 일을 밤잠도 못자고 사투를 벌이고 있는 정 청장을 데리고 가 읍소하는 게 과연 맞느냐는 것이죠. 일종의 코스프레를 한 것인데 힘들게 일하는 정 청장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국가의 위신을 떨어트린 행동이라는 지적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더욱이 민주노총은 정부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집회를 강행했지요. 방역의 최고 사령탑인 질병관리청장을 데리고 가 읍소를 했는데도 소용이 없으니 도대체 누가 앞으로 정부의 방역 지침을 따를지 걱정입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정치권에 청년 정치 바람이 불면서 청년 정치인들이 귀한 몸이 됐다. 과거에는 말석 한 자리도 얻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위원회 구성이나 회의에 이들이 없으면 “왜 안 불렀느냐”며 먼저 찾는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일각에서는 신념과 실력, 자질보다 ‘나이’가 더 우선시되는 부작용도 벌어지고 있다. 이동학 더불어민주당 청년최고위원(39)은 “청년들의 정치 참여는 바람직하지만, 동시에 과연 연공서열형 문화를 깰 만큼 괜찮은 사람인지 증명해 내야 하는 숙제도 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5월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취임하며 지명직 청년최고위원에 임명됐다.》 ―당신 자신은 어떻게 증명해낼 건가. “시작하자마자 ‘훅’ 들어오시네요. 하하하. 지금 당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못 나오고 있다. 아킬레스건이 찔리는 걸 보면서도 아픔을 못 느끼는 거대한 공룡 같은 상태라고 할까. 이달 중 청년미래연석회의라는 기구가 발족되는데 그곳을 통해 당내 ‘레드팀(Red Team)’ 역할을 하려고 한다. 내가 의장을 맡았는데 파열음이 나더라도 한번 세게 할 생각이다.” (대부분 그렇게 시작하지만 용두사미가 됐다.) “민주당이 지금까지 견지해온 것을 지켜내야 정권을 연장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 강력한 의지가 다양한 목소리들을 계속해서 쳐내고 있는데 나는 우리가 좀 더 품이 넓어지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야 한다는 쪽이다. 내가 정치적 출세에 연연해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거라 본다.” ※레드팀은 조직 내 취약점을 찾아서 공격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팀을 말한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검증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나. “검찰총장 임명 때는 옹호하다가 지금은 왜 의혹을 제기하느냐는 건가?” (앞뒤가 안 맞지 않나.) “그때는 우리 편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실드(shield·방패)’ 쳐준 거지. 그래 놓고 지금은 입장이 달라져서 다르게 얘기하는데, 당연히 좋아 보이지 않는다. 나는 당시에 당이 ‘실드’ 쳤던 걸 사과해야 한다고 본다. 대부분 당시에도 나온 이야기들이어서 검증 과정에서 모르지는 않았을 거다. 당시 검증에서 문제가 없었다면 지금 공격하는 건 안 맞는 거고, 지금 공격하는 게 맞다면 당시 검증 소홀에 실드 친 건 사과하는 게 상식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의 비정규직 제로 시대가 실현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는데…. “그게 어떻게 현실에서 가능한지 방법을 모르겠다. 대기업은 노조가 있으면 10년 정도, 없으면 6, 7년 정도 근속한다. 중소기업은 노조가 있으면 6년 정도, 없으면 3, 4년 정도고. 통계가 이렇게 나오는데 이 모두를 정규직으로 만들자는 주장은 소설에나 나올 수 있는 얘기다. 생산가능인구가 3500만 명 정도 되는데 이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만들려면 아마 우리나라가 전 지구를 장악할 수 있을 정도의 시장 지배력을 갖고 있어야 할 거다.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지 않나. 우리 당도 사회를 보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 ―당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관점을 어떻게 바꿔야 한다는 건가. “존재 자체를 없애려 하지 말고, 비정규직이어도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게 더 현실적이라고 본다. 비정규직이라도 보수나 안전 이런 부분에서 걱정 없이 일하고 살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을 실질적으로 까는 것.” (안에서 그런 말을 하면 국민의힘 가라고 하지 않나?) “그러더라. 가라고…. 하지만 난 할 수 있는 말이고, 또 해야 한다고 본다.” ―정치는 어떻게 하게 된 건가. “의자 나르다가….” (의자?) “제대하고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대회에서 의자 나르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런데 대기 중에 누가 연설을 하는데 ‘깨끗한 정치로 잘 사는 나라를 만들자’ 이런 말들이 가슴에 꽂히더라. 이후 내 상황과 겹쳐서 많은 생각이 들면서 입당했다.” (어떤 상황과 겹쳤기에….) “아르바이트만으로는 살기 힘들어서 좀 무리해 생과일주스를 파는 트럭 노점상을 했다. 그런데 영화에서나 보던 일들이 벌어졌다. 동네 깡패가 돈 뜯으러 오고, 노점 단속반, 주차단속 요원도 수시로 오고, 가끔은 경찰도 왔다. 노점이 불법인 건 안다. 그런데 나처럼 낭떠러지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당시 고졸인 내가 취직을 하기는 어렵고, 살기 위해 하는 행동은 불법이니…. 그런 고민이 확장되면서, 그러면 국가는 이들에게 어떻게 해줘야 하는 건가를 생각하다 보니 정치가 보이게 된 것 같다.” ―집안 형편이 많이 어려웠나. “초등학생 때 군인이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어머니께 부담을 안 드리려고 6학년 때부터 신문 배달 등 아르바이트를 했다. 공업고등학교를 간 것도 인문계와 달리 일찍 끝나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는 다행히 국가장학금을 받아서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게 늘 감사해서 국가유공자 자녀라 6개월 공익 가면 되는데 해병대에 자원했다. 뭔가 사회에 기여하고 싶기도 했고.” (꼭 해병대 입대로 기여할 필요는 없지 않나.) “하하하, 어린 마음도 있었고…. 입대 첫날 ‘잘못 왔다’는 생각은 들었다. 정말 힘들더라. 훈련도, 내무생활도.” (기간이?) “2년 2개월.” ―정의당은 생각하지 않았나. “정의당은 아직 많은 것을 담기에는 그릇이 협소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점이 그렇다는 건가.) “기업과 노동자를 대결주의로 보는 시각 같은 것…. 우리 당에서도 일정 부분은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저쪽은 더 심하니까. 대변하려는 계층을 정확히 대변하려다 보니 생기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양쪽을 다 봐야 하지 않을까? 나도 노동자들의 처우 문제는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주 조그만 수준이지만 사업을 해봤기 때문에 사람을 고용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안다.” ―노점 말고 다른 것도 했나. “노점을 접고 대전역 근처 지하상가에 카페를 냈는데 아르바이트생을 8명이나 썼다. 그런데 인건비 주는 게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내 월급도 다 챙겨가지 못했으니까. 나는 주인이니 적게 가져가도 할 수 없지만 직원들에게는 그럴 수가 없지 않나. 그런 상황에서 자꾸 자영업자, 기업가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노동자 권리만 주장하면 사장 입장에서는 문 닫는 게 편하지. 그런 고민의 폭이 정의당은 작은 것 같다. 우리 당도 양자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데 더 노력해야 한다. 상대를 적으로 모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입장을 바꿔 적으로 몰리면 나는 가만히 있겠나. 그러면 남는 건 싸움밖에 없다.” ―대학생 때부터 정치활동을 했는데 뭐가 힘들던가. “시작하자마자 벌금 맞고 쓰러져서….” (벌금?)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열린우리당이 깨끗한 정치, 아래로부터의 공천을 표방하면서 후보 경선에 선거인단 투표를 처음 도입했다. 그런데 누군가 동의도 받지 않고 내 개인정보를 알아내 선거인단에 등록시킨 거다. 불법 선거인단인 셈이지. 그때 22세였는데 정말 아무것도 모를 때였다. 그냥 당에서 투표하라고 해 투표를 했는데 그게 정당한 투표를 방해한 업무방해죄라고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나왔다.” (형량이 엄청 센데?) “국선변호인과 상의해서 항소를 했고 덕분에 벌금 300만 원으로 떨어졌지만 그때는 모든 게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첫 재판 받은 날 대전현충원 아버지 묘소에 갔는데… 함께 간 친구에게 ‘아무리 억울하다고 해도 남들은 나를 범법자로 볼 텐데 내가 깨끗한 정치를 말할 수 있을까?’라고 말하며 엄청 울었다. 정치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깨끗한 정치로 잘 사는 나라를 만들자는 말이 멋있어서 들어왔는데, 현실은 술수가 난무했고 처참했다. 많은 고민 끝에 나는 그래도 정치를 바꾸기 위해 남기로 했지만, 함께 시작했던 친구들 중에는 떠난 사람도 많다.” ―17년이 지났는데, 지금은 정치가 달라졌다고 생각하나. “지금도 아래쪽, 밑바닥 정치를 보면… 변했다고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이동학의 말·말·말“당원들도, 국민들도 586세대에 대한 기대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고 있다.” (2015년 페이스북에 올린 ‘586전상서’ 중)“(당이) 임금피크제 수용하고 노조 설득해야.”(2015년 당 혁신위원 시절)“비정규직 제로? 아름다운 구호지만 현실에서 가능할까?”(본보 인터뷰 중) 이동학82년생. 제대 후인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행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게 계기가 돼 정치권에 입문했다. 2015년 당 혁신위원일 때 만든 혁신안이 바로 당 소속 공직자 잘못으로 재·보선을 치를 경우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이다. 현재 인천 영종도에 살고 있는데 쓰레기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뤄보고 싶어서라고 한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정치판은 참으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곳입니다. 불과 두 달 전 더불어민주당 박성민 전 최고위원을 인터뷰했었지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로 촉발된 4·7 재보궐이 여당의 참패로 끝난 후였습니다. 25살의 여대생이 최고위원이 돼 본 집권 여당의 모습은 어땠을지 궁금했지요. 젊음만큼이나 그의 말은 패기만만했고, 아무튼 인터뷰는 잘 끝났습니다. 그도 학교로 돌아갔고, 그래서 인터뷰도 그가 다니는 학교 교정에서 했으니까요. 그 뒤로 저녁을 한 번 같이 했고, 나름 기성세대랍시고 청년 정치인으로서 앞으로 겪을 힘든 일에 대해 제 나름으로는 걱정과 조언도 해줬습니다. 그런데 제 걱정은 기우였나 봅니다. 물론 그 자신도 예상했던 일은 아니겠습니다만 불과 얼마 후 1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청와대 청년비서관에 임명됐으니까요. 박 비서관의 임명은 상당한 논쟁을 불러왔습니다. 청년비서관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산하로 별정직 1급 공무원에 해당하지요. 9급 출신은 꿈도 꿀 수 없는 자리이고, 5급 행정고시 출신도 20년 이상 해야 바라볼까 말까한 자리입니다. 사실 5급 출신이라도 3급으로 나오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자리에 약 8개월간의 당 최고위원 경력 외에는 사실상 특별한 사회경험이 없는 25살 여대생을 임명하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는 것이지요. 특히 좁은 취업문을 뚫기도 힘든 데 코로나19 직격탄까지 맞은 청년층의 상대적 박탈감은 상당한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공부의 신’ 대표인 강성태 씨가 자신의 유투브에서 “매년 전국 수석이나 공공기관 합격자를 모셔 합격비결을 들어 왔지만 이 분이 탑인 것 같다”고 했겠습니까. 논란이 커지자 청와대는 “박 비서관은 민주당 최고위원 등을 지내며 현안에 대해 소신 있게 의견을 제기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하는 균형감을 보여줬다. 청년 입장에서 청년의 어려움을 더 잘 이해하고 청년과 소통할 것으로 기대 한다”고 밝혔습니다. 정무직이라 일반직 공무원과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도 했지요. 하지만 청와대와 민주당의 해명이 불을 끌 정도로 충분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정무직 공무원을 놓고 ‘1급까지 올라가려면 몇 십 년이 걸리는데 벼락출세 아니냐’, ‘낙하산이다’ 는 식으로 비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회 경험이 적다는 부분도 굉장히 포괄적인 비판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야를 떠나 선거의 공신이라는 이유로 벼락출세를 하는 사람들이 숱하게 있으니까요. 하지만 박 비서관이 해당 직무를 수행할 만큼의 능력이 있느냐는 지적은 문재인 대통령이나 청와대 참모들, 그리고 박 비서관 자신이 새겨들어야할 대목입니다. 물론 청년들은 중장년층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세대간 비교를 할 때 그렇다는 것이지 업무를 수행할 능력이 부족해도 청년이면 괜찮다는 뜻은 아닙니다. 정치권이 흔히 하는 나쁜 행태가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할 본질적인 고민은 하지 않고 ‘해결하려는 척’하고 넘어가려는 것이지요. 박 비서관은 물론이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김재섭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 등 청년 정치인들이 저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있습니다. 다른 청년 정치인들도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입니다. 세상에 청년 문제만 따로 있는 것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죠. 청년들의 취업난은 전체 일자리가 줄기 때문에 파생된 것입니다. 청년 주거 문제도 전체 주택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죠. 다른 세대의 일자리는 넉넉한데 오직 청년 일자리만 부족해 문제가 생긴 게 아니지 않습니까? 따라서 청년 일자리 문제만 콕 집어서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대학생 주거 문제 해소를 위해 기숙사를 늘릴 수 있습니다. 정부에서 지원을 해줄 수도 있겠지요. 과거에 그런 적도 있습니다. 그러자 대학가 하숙집 주인들이 아우성을 쳤습니다. 세상일은 그물코처럼 얽혀있기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부작용이 언제든 벌어질 수 있습니다. 병은 나았는데 환자는 죽는 일도 다반사지요. 그래서 국정을 책임지고 정책을 다루는 사람들은, 완벽할 수는 없지만 가능한 많은 고려를 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대상이 청년일 뿐이지 청년 문제에는 취업, 주거, 복지, 교육 등 우리가 사는 세상의 거의 모든 문제가 들어있습니다. 청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안별로 국토교통부, 교육부, 보건복지부 등 숱한 부처는 물론이고 수많은 지자체 담당자들과도 협의하고 논쟁하고 싸워야 합니다. 모두 박 비서관보다는 훨씬 더 해당 분야의 전문성은 물론이고 왜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지 꿰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이겨내려면 그들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준비돼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쪽방촌이라고 부르는 동네가 있습니다. 주거 환경이 매우 열악한 곳이지요. 한 평 남짓에 화장실, 세면장은 공용이고 들어가는 길마저 아주 좁아 소방차는 갈 수도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화재 등 사고가 나면 인명피해가 크게 납니다. 사고로 뉴스가 날 때마다 해당 지자체에서는 정비하겠다고 하지만 잘 개선되지 않습니다. 하도 답답해 지자체 담당 공무원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나라에서 지원해주면 평수도 늘리고, 길도 넓히고, 집마다 화장실도 놔줄 수 있지 않느냐고요.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왜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하면 주거환경은 개선되지만 지금 사는 사람 중의 태반은 쫓겨난다고 하더군요. 평수를 늘리면 한 건물에 10방 있던 게 5방으로 줄지 않겠습니까? 주거 환경이 개선됐으니 월세도 오르겠지요. 쪽방촌은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 사는 곳입니다. 오른 값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은 전에 내던 가격에 살 수 있는 곳으로 옮길 수밖에 없습니다. 쫓겨난 사람들이 다른 곳에서 여전히 열악한 처지로 살아야한다면 그 동네 주거환경개선사업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쪽방촌은 열악한 곳이고 사람이 그런 곳에서 살면 안 된다. 그래서 주거개선사업을 해야 한다’ 이런 단편적인 생각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책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능력과 시야가 중요합니다. 박 비서관은 저와의 인터뷰에서 20대 남성들의 표를 얻기 위해 군 가산점을 부활하고, 여성도 군대가게 하자는 식으로 대응하는 여당의 행태를 지적했습니다. 정치를 참 단편적으로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신도 그 단편적인 정치의 덕을 안 봤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지난해 8월 여당 지명직 최고위원이 된 것도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이 터지지 않았다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민주당이 진심으로 반성했다면 당헌대로 후보를 안내면 될 일입니다. 그러기는 싫고, 뭔가 반성하고 변하는 것처럼은 보이고 싶은데 20대 여대생을 최고위원에 올리면 효과가 크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의 말대로 참 단편적인 정치지요. 물론 박 비서관이 최고위원을 맡아 역할을 잘 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박 비서관이 실력으로 세간의 오해를 불식시키는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반대와 난관을 뚫고 가야합니다. 난관이 첩첩이 쌓여있으니 우리가 ‘문제’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이겨낼 실력은 없는데 오직 청와대의 권위로 끌고 가려 한다면 그게 바로 ‘꼰대’입니다. 자신의 역할을 청년들과의 소통 창구, 청년 문제를 위로 전달하는 것으로 한정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정도라면 굳이 1급 자리까지는 필요 없을 것 같군요. 청와대 국민청원 옆에 ‘청년청원’ 코너를 만들면 되지 않겠습니까.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