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

유윤종 전문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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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음악 분야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푸치니:토스카나의 새벽을 무대에 올린 오페라의 제왕' '클래식, 비밀과 거짓말' 등의 책을 썼습니다.

gustav@donga.com

취재분야

2025-11-07~2025-12-07
음악67%
칼럼10%
문학/출판10%
문화 일반7%
연극3%
기타3%
  • [책의 향기]17세기 조선서 유행한 지도엔 ‘소인국’ 있었다

    1621년 조위한이 쓴 소설 ‘최척전’은 전쟁으로 뿔뿔이 흩어진 가족이 기적적으로 재회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에는 조선 외에 일본, 중국, 베트남, 만주까지 무대로 등장한다. 광해군 때 작가가 이 먼 곳들을 어떻게 상상하고 소설에 담아냈을까. 전국의 국립박물관에서 고지도와 지리지를 연구해온 저자는 1600년대 조선에서 유행한 ‘천하도’를 불러낸다. 하나의 원 안에 담아낸 세계지도다. 동아시아 일대는 제법 정확히 그렸지만 세계의 변방은 눈이 하나인 사람들이 사는 일목국, 작은 사람들이 사는 소인국 등으로 상상을 담아 그렸다. 저자는 당시 제작된 수많은 천하도를 ‘유럽의 지도가 유입되면서 지리 정보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가 확대된 결과’로 해석한다. 이 책은 고지도에 관한 스무 편의 에세이를 담았다. 막사발처럼 소박한 동람도부터 저잣거리에 만발한 복사꽃과 나룻배 안에서 대화하는 사내들을 담은 전라도 무장현 지도까지 고지도의 갖가지 매력이 가득하다. 증조부부터 4대째 지도 전문가로, 고산자 김정호에게 영향을 준 ‘동국대지도’ 제작자 정상기의 존재는 선인들의 지리 지식에 대해 한층 깊은 관점을 보여준다. 1637년 구제역이 돌자 몽골까지 가서 담배를 팔아 소 181마리를 사온 관리 성익의 이야기 등 역사와 지리가 얽힌 일화가 눈길을 끈다. 오늘날에는 스마트폰만 꺼내면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다. 옛 사람들은 어땠을까. 저자는 19세기 중반에 제작된 ‘동판수진일용방’을 소개한다. 옷소매에 휴대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여행용 소형 지도로 스마트폰보다 작았다. 지도 외에 제사 축문 쓰는 법, 위급 시 응급 처치법, 관공서 이름과 별칭 정리 등 다양한 생활지식도 담았다. 급한 일이 있을 때 검색할 수 있도록 만든 것도 스마트폰을 연상시킨다. 이 책은 우리 고서를 연상시키는 사철(실 묶음) 방식으로 제본됐다. 옛 지식인들의 세계를 탐험하는 기분 좋은 환상을 선사할 뿐 아니라, 책을 펼쳐놓아 두기도 좋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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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콩쿠르 심사하며 흥분… 수준 매우 높아”

    “올해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참가자들의 연주 수준은 매우 높습니다. 1, 2차 예선과 준결선을 심사하는 동안 흥분을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아비람 라이헤르트 서울대 피아노과 교수(50)는 올해 16회째를 맞은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 임종필 전 한양대 교수, 유영욱 연세대 교수와 함께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올해 피아노 부문으로 열리는 이 대회는 16, 17일 서울 종로구 상명아트센터 계당홀에서 결선 경연을 갖고 다음 주 우승자를 비롯한 입상자를 발표한다. 이스라엘인인 라이헤르트는 25년 전인 1996년 12월 ‘동아국제음악콩쿠르’ 이름으로 열린 이 콩쿠르 첫 번째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이듬해 미국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3위에 올랐다. 그는 “2009년 서울대 교수로 임용된 뒤 줄곧 이 대회 운영에 참여하는 날을 기다려 왔다”며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영광”이라고 말했다. “우승 당시 기억이 뚜렷합니다. 콩쿠르가 열린 서울 예술의전당은 개관한 지 오래되지 않아 반짝반짝 빛이 났죠.” 결선에 진출한 6명이 무대 위에 앉은 가운데 열린 시상식에선 6위부터 수상자가 호명되었다. 두 명이 남고 심장이 터질 듯한 긴장 속에 그의 이름이 불리자 ‘아! 우승을 놓쳤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걸어 나가 상을 받고서야 ‘1위’라는 제목과 금빛 메달이 눈에 들어왔다. 한 세대가 지나 운영위원으로 참여한 이번 콩쿠르에는 아쉬움도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대회는 예정보다 1년 9개월(결선 기준) 미뤄졌다. 1차 예선에서 준결선까지는 참가자가 제출한 동영상을 파스칼 로제(스위스)를 비롯한 심사위원 11명이 자국에서 보고 심사하는 방식으로 열렸다. “이 길이 최선이라는 데 모두가 동의했죠. 결선까지 모두 온라인으로 치른 유명 콩쿠르도 많았으니 오히려 운이 좋은 셈입니다.” 무대 위의 공포나 실수를 극복하는 과정은 동영상으로 짚어낼 수 없지만 연주 수준은 세계 무대의 기성 연주자들 못지않다며 그는 혀를 내둘렀다. 2009년 서울대에 임용될 당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최고의 학생들을 찾아 서울에 왔다”고 말했었다. 기대는 충족되었을까. “물론입니다. 한국이 최고의 음악가들을 배출하는 이유는 한 가지가 아닙니다. 매일 부지런히 연습하는 정진의 문화가 있고, 자신의 모든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정열적인 기질이 있습니다. 사회는 이런 예술적인 열의를 존중해 줍니다. 이 세 가지가 ‘패키지’로 한국의 음악 천재들을 만듭니다.” 올해 서울국제음악콩쿠르 결선 연주는 장윤성 지휘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협연한다. 최종 결과는 각국 심사위원의 심사 결과 취합을 거쳐 12월 21일 이후 발표된다. 입상자는 1위 5만 달러(약 5900만 원) 등 상금을 받는다. 결선 영상은 12월 말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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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사때 흥분 억누를 수 없었어”…25년전 콩쿠르 우승자 운영위원으로

    “올해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참가자들의 연주 수준은 매우 높습니다. 1, 2차 예선과 준결선을 심사하는 동안 흥분을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아비람 라이헤르트 서울대 피아노과 교수(50)는 올해 16회째를 맞은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 임종필 전 한양대 교수, 유영욱 연세대 교수와 함께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올해 피아노 부문으로 열리는 이 대회는 16, 17일 서울 종로구 상명아트센터 계당홀에서 결선 경연을 갖고 다음주 우승자를 비롯한 입상자를 발표한다. 이스라엘인인 라이헤르트는 25년 전인 1996년 12월 ‘동아국제음악콩쿠르’ 이름으로 열린 이 콩쿠르 첫 번째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이듬해 미국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3위에 올랐다. 그는 “2009년 서울대 교수로 임용된 뒤 줄곧 이 대회 운영에 참여하는 날을 기다려 왔다”며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영광”이라고 말했다.“우승 당시 기억이 뚜렷합니다. 콩쿠르가 열린 서울 예술의전당은 개관한지 오래 되지 않아 반짝반짝 빛이 났죠.” 결선에 진출한 6명이 무대 위에 앉은 가운데 열린 시상식에선 6위부터 수상자가 호명되었다. 두 명이 남고 심장이 터질 듯한 긴장 속에 그의 이름이 불리자 “아! 우승을 놓쳤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걸어 나가 상을 받고서야 ‘1위’라는 제목과 금빛 메달이 눈에 들어왔다. 한 세대가 지나 운영위원으로 참여한 이번 콩쿠르에는 아쉬움도 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대회는 예정보다 1년 9개월(결선 기준) 미뤄졌다. 1차예선에서 준결선까지는 참가자가 제출한 동영상을 파스칼 로제(스위스)를 비롯한 심사위원 11명이 자국에서 보고 심사하는 방식으로 열렸다. “이 길이 최선이라는 데 모두가 동의했죠. 결선까지 모두 온라인으로 치른 유명 콩쿠르도 많았으니 오히려 운이 좋은 셈입니다.” 무대 위의 공포나 실수를 극복하는 과정은 동영상으로 짚어낼 수 없지만 연주 수준은 세계무대의 기성 연주자들 못지않다며 그는 혀를 내둘렀다. 2009년 서울대에 임용될 당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최고의 학생들을 찾아 서울에 왔다”고 말했었다. 기대는 충족되었을까. “물론입니다. 한국이 최고의 음악가들을 배출하는 이유는 한 가지가 아닙니다. 매일 부지런히 연습하는 정진의 문화가 있고, 자신의 모든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정열적인 기질이 있습니다. 사회는 이런 예술적인 열의를 존중해줍니다. 이 세 가지가 ‘패키지’로 한국의 음악 천재들을 만듭니다.” 올해 서울국제음악콩쿠르 결선 연주는 장윤성 지휘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협연한다. 최종 결과는 각국 심사위원의 심사결과 취합을 거쳐 12월 21일 이후 발표된다. 입상자는 1위 5만 달러(약 5900만 원) 등 상금을 받는다. 결선 영상은 12월 말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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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롯데콘서트홀’ 대표 얼굴에 문태국-신창용

    롯데콘서트홀과 금호아트홀 연세. 두 민간 클래식 공연장이 2022년을 대표할 얼굴을 최근 발표했다. 세계 주요 공연장과 연주단체가 운영하는 이른바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상주음악가)’다. 이는 공연장이나 연주단체의 프로그램 구성 일부를 맡아 특정 시즌의 ‘얼굴’로 활동하는 연주가를 뜻한다. 롯데콘서트홀은 내년의 ‘인 하우스 아티스트’로 첼리스트 문태국과 피아니스트 신창용을 선정했다. 문태국(27)은 2014년 파블로 카살스 국제 첼로 콩쿠르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우승했고, 이로부터 2년 뒤 세계적 첼리스트 야노스 슈타커를 기리는 슈타커 재단이 30세 이하 첼리스트에게 수여하는 야노스 슈타커상 첫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는 내년 3월 18일 피아니스트 박종해, 9월 16일 기타리스트 박규희·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시콥스키와 각각 리사이틀을 연다. 문태국과 동갑내기인 신창용은 2017년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 1위를 수상했고, 이듬해 지나 바카우어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다. 내년 3월 28일 차웅 지휘 성남시립교향악단과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0번, 프로코피예프 피아노협주곡 2번 등 협주곡 두 곡을 한 무대에서 협연한다. 이어 11월 26일에는 비올리스트 신경식, 첼리스트 심준호,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과 실내악 무대를 펼칠 예정이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22)은 2013년 상주음악가 제도를 시작한 금호아트홀이 열 번째로 내년의 상주음악가로 선정한 주인공이다. 그는 신창용이 우승한 다음 해인 2018년 바이올린 부문으로 열린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했다. 두 사람은 지난달 처음으로 듀오 콘서트를 갖기도 했다. 김동현은 내년 금호아트홀에서 네 차례의 ‘온도’ 시리즈 콘서트를 선보인다. 다음 달 13일 ‘22°C의 산뜻함’이라는 제목으로 피아니스트 서형민과 모차르트, 시벨리우스 등의 작품을 연주한다. 이후 협연자를 달리하며 4월 14일 ‘100°C의 뜨거움’, 8월 25일 ‘0°C의 차가움’, 12월 15일 ‘36.5°C의 포근함’으로 이어간다. 마지막 무대에는 피아니스트 김다솔과 롯데콘서트홀 인 하우스 아티스트 문태국이 출연한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내년도 ‘올해의 음악가’로 트럼펫 연주자 호칸 하르덴베리에르와 바이올리니스트 아우구스틴 하델리히를 선정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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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샹떼 자듀 합창단, 17일 ‘크리스마스 기념 바흐 칸타타 연주회’ 개최

    샹떼 자듀 합창단(음악감독 김혜옥·연세대 교회음악과 교수)이 17일 서울 영등포구 영산아트홀에서 크리스마스 기념 바흐 칸타타 연주회를 연다. 바흐의 칸타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의 영광’ BWV 191, ‘오소서 이방인의 구세주여’ BWV 62, ‘믿는 자여 이 날을 새겨라’ BWV 63 등 세 곡을 바로크 음악 전문 연주단체 알테 무지크 서울(음악감독 강효정) 협연으로 연주한다. 카운터테너 장정권, 테너 유종훈, 베이스 김우진이 솔로이스트를 맡는다. 프랑스어로 ‘주님을 찬양하라’(Chantez a Dieu)는 뜻인 샹떼 자듀 합창단은 2006년 20, 30대 전문 성악가들이 모여 창단했다. 성악, 기악, 작곡, 합창 지휘 등 다양한 배경을 지닌 음악가들이 모여 르네상스, 바로크, 고전, 낭만시대의 작품들을 연구하고 콘서트로 선보여 왔다. 김혜옥 음악감독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긴 터널을 헤쳐 온 우리 사회에 위로와 회복의 메시지를 주는 바흐의 칸타타 작품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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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수정, ‘베토벤의 50분 대곡’ 50년만에 무대로

    “작품에 대한 성찰은 더 생겼죠. 하지만 악보를 들여다볼수록 ‘이 어려운 곡을 어떻게 시작했었나. 젊었으니까 했구나’ 싶습니다.” 피아니스트 신수정(79·서울대 명예교수)이 베토벤의 50분짜리 대곡 ‘디아벨리 변주곡’을 국내 초연 반세기 만에 무대에 올린다. 베토벤 생일인 12월 16일에 맞춰 서울 서초구 모차르트홀에서 여는 ‘이야기가 있는 음악회: 베토벤’에서다. 그를 3일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만났다. 그는 1971년 3월 5일 서울 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에서 동아일보사 주최로 열린 독주회에서 국내 최초로 ‘디아벨리 변주곡’을 연주했다. 서울대 김순열 교수(피아니스트)는 다음 날 동아일보에 기고한 리뷰에서 “치밀한 구성과 섬세한 터치로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22번과 23번 변주에서는 경쾌한 리듬과 정확한 기교를 보였고 32번 변주에서는 헨델풍의 장대한 푸가를 능숙한 솜씨로 처리했다”고 평했다.신 교수는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를 졸업한 뒤 1967년 귀국하기에 앞서 빈 무지크페라인 브람스홀에서 디아벨리 변주곡으로 독주회를 열었고 그해 일본 도쿄에서도 같은 곡으로 데뷔 연주를 가졌다. 같은 해 동아일보 주최로 열린 귀국독주회에서는 이 곡을 연주하지 않았다. 한국 청중에게 낯설고 긴 곡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제가 초연한 뒤에는 여러 피아니스트가 연주했죠. 연주계를 돌아보면 ‘우리가 이렇게 발전했구나’ 하는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지난해 베토벤 탄생 250주년에 맞춰 연주할까 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늦춰졌어요. 덕분에 한국 초연 50주년이라는 의미가 생겼네요.” 그는 1967년 처음 이 곡을 연주했던 빈 브람스홀을 올해 10월에 찾았다. 빈 베토벤 콩쿠르 심사위원으로였다. 한국 피아니스트 김다솔이 공동 2위, 박연민이 6위에 올랐다. “개인적으로 의미 깊은 공간에서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기량을 겨루는 것을 보니 감회가 깊었죠.” 그는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 조성진을 비롯한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을 키워냈다. 제자들 얘기를 꺼내자 그는 손사래를 쳤다. “아유, ‘조성진의 스승’ 같은 말은 부끄럽습니다. 워즈워드의 시에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말이 나오듯이 ‘제자가 곧 선생’이죠. 다들 자기가 가진 재능으로 알아서 큰 거예요.” 그는 2014년 동아일보사에 기금 5000만 원을 기탁했다. 고 일민 김상만 전 동아일보 명예회장을 기려 내놓은 이 기금으로 동아음악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고전주의 소나타를 가장 잘 연주한 참가자에게 주는 ‘클래식소나타 상’, 서울국제음악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베토벤 소나타를 가장 잘 연주한 참가자에게 주는 특별상이 신설됐다. 신 교수는 지난해 서울대 총동창회장직을 마쳤다. “훌륭한 후임자(이희범 전 산업자원부 장관)에게 자리를 물려준 게 가장 큰 성과”라며 웃었다. 늘 그렇듯 지금은 ‘음악을 살고 있다’고, 연주하고 강연하고 가르친다고 했다. 그는 매년 바리톤 박흥우와 열어온 슈베르트 ‘겨울나그네’ 연주회를 26일 모차르트홀에서 갖는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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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아니스트 신수정, 국내 초연 반세기만에 ‘디아벨리 변주곡’ 연주

    “작품에 대한 성찰은 더 생겼죠. 하지만 악보를 들여다볼수록 ‘이 어려운 곡을 어떻게 시작했었나. 젊었으니까 했구나’ 싶습니다.” 피아니스트 신수정(79·서울대 명예교수)이 베토벤의 50분짜리 대곡 ‘디아벨리 변주곡’을 국내 초연 반세기만에 무대에 올린다. 베토벤 생일인 12월 16일에 맞춰 서울 서초구 모차르트홀에서 여는 ‘이야기가 있는 음악회:베토벤’에서다. 그는 1971년 3월 5일 서울 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에서 동아일보사 주최로 열린 독주회에서 국내 최초로 ‘디아벨리 변주곡’을 연주했다. 서울대 김순열 교수(피아니스트)는 다음날 동아일보에 기고한 리뷰에서 “치밀한 구성과 섬세한 터치로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22번과 23번 변주에서는 경쾌한 리듬과 정확한 기교를 보였고 32번 변주에서는 헨델 풍의 장대한 푸가를 능숙한 솜씨로 처리했다”고 평했다. 신 교수는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를 졸업한 뒤 1967년 귀국하기에 앞서 빈 무지크페라인 브람스홀에서 디아벨리 변주곡으로 독주회를 열었고 같은 해 일본 도쿄에서도 같은 곡으로 데뷔연주를 가졌다. 같은 해 동아일보 주최로 열린 귀국독주회에서는 이 곡을 연주하지 않았다. 한국 청중에게 낯설고 긴 곡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제가 초연한 뒤에는 여러 피아니스트가 연주했죠. 연주계를 돌아보면 ‘우리가 이렇게 발전했구나’ 라는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지난해 베토벤 탄생 250주년에 맞춰 연주할까 했는데,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늦춰졌어요. 덕분에 한국초연 50주년이라는 의미가 생겼네요.” 그는 1967년 처음 이 곡을 연주했던 빈 브람스홀을 올해 10월에 찾았다. 빈 베토벤 콩쿠르 심사위원으로였다. 한국 피아니스트 김다솔이 공동 2위, 박연민이 6위에 올랐다. “개인적으로 의미 깊은 공간에서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기량을 겨루는 것을 보니 감회가 깊었죠.” 그는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 조성진을 비롯한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을 키워냈다. 제자들 얘기를 꺼내자 그는 손사래를 쳤다. “아유, ‘조성진의 스승’ 같은 말은 부끄럽습니다. 워즈워드의 시에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말이 나오듯이 ‘제자가 곧 선생’이죠. 다들 자기가 가진 재능으로 알아서 큰 거예요.” 그는 2014년 동아일보사에 기금 5000만원을 기탁했다. 고 일민 김상만 전 동아일보 명예회장을 기려 내놓은 이 기금으로 동아음악콩쿠르 피아노부문에서 고전주의 소나타를 가장 잘 연주한 참가자에게 주는 ‘클래식소나타 상’, 서울국제음악콩쿠르 피아노부문에서 베토벤 소나타를 가장 잘 연주한 참가자에게 주는 특별상이 신설됐다. 신수정은 지난해 서울대 총동창회장 직을 마쳤다. “훌륭한 후임자(이희범)에게 자리를 물려준 게 가장 큰 성과”라며 웃었다. 늘 그렇듯 지금은 ‘음악을 살고 있다’고, 연주하고 강연하고 가르친다고 했다. 그는 매년 바리톤 박흥우와 열어온 슈베르트 ‘겨울나그네’ 연주회를 26일 모차르트홀에서 갖는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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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古음악의 아름다운 선율 들려드릴게요”

    “슬픔에 잠긴 성모께서 울며 십자가 가까이 서 계시네. 어둡고 아프신 마음을 칼이 뚫고 지나갔네.”(스타바트 마테르) “커피는 얼마나 달콤한가. 천 번의 키스보다 사랑스럽고 무스카텔 와인보다 부드럽구나.”(커피 칸타타) 올해 한화클래식은 바로크의 성(聖)과 속(俗)을 모두 맛볼 수 있는 무대다. 이탈리아 교회음악의 걸작인 페르골레시의 ‘스타바트 마테르(서 계신 성모)’와 바흐 세속 칸타타의 대표작인 ‘커피 칸타타’가 대비를 이룬다. 소프라노 서예리와 ‘한화 바로크 프로젝트’가 화음을 맞추고 카운터테너 정민호, 테너 홍민섭, 베이스 김승동이 출연한다. 7, 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서예리는 “이번 연주곡은 고(古)음악을 잘 모르시는 음악팬들이 가장 듣기 좋은 작품들”이라고 동아일보와의 문자 교신에서 밝혔다. 고음악이란 대체로 바로크 시대 이전 옛 음악을 당대 악기와 기법으로 연주하는 것을 뜻한다. “페르골레시의 스타바트 마테르는 교회음악이지만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선율이 돋보이죠. 바흐 ‘커피 칸타타’는 재미있고 흥겨워요. 오페라를 쓰지 않은 바흐가 자신의 유머러스한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타바트 마테르는 예수의 처형을 보며 고통을 함께하는 성모를 표현한 13세기 종교시. 로시니와 드보르자크 등 여러 작곡가가 곡을 붙였지만 천재 작곡가 페르골레시가 26세로 요절하기 직전 쓴 곡이 가장 널리 연주된다. 바흐 ‘커피 칸타타’는 커피에 집착하는 딸과 이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신경전을 유머러스하게 그린 작품. 이날 바흐의 ‘바이올린과 오보에를 위한 협주곡’도 연주된다. 올해 9회째인 한화 클래식은 헬무트 릴링, 마르크 민코프스키, 윌리엄 크리스티, 조르디 사발 등 고음악 거장들을 초청해 매년 공연을 가져왔다. ‘바로크 프로젝트’는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 김나연, 첼리스트 강효정 등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고음악 연주자들이 모인 오케스트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벨링크 음악원 교수인 바이올리니스트 요하네스 레이르타우어르가 악장을 맡는다. 서예리는 요스 판 이메르세일, 레네 야콥스, 필리프 헤레베허 등 고음악 거장들과 호흡을 맞추며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해 왔고 현대음악 해석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아 왔다. 그는 이번 콘서트 이후 독일로 돌아가 뒤셀도르프에서 애덤 피셔가 지휘하는 베토벤 9번 교향곡 콘서트와 신년음악회에 출연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올해 한화클래식은 네이버TV로 중계한다. 현장공연 2만∼5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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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튜브]동경과 좌절과 구원의 계절, 12월의 음악들

    첫눈이란 기록되었으나 경험하지 못한 그 무엇, 또는 영원히 지연되는 그 무엇 사이에 있는 것. 그리하여 예전의 첫눈은 그 이름 뿐, 우리에겐 그 이름들만 남아있을 뿐(Stat prima nix pristina nomine, nomina nuda tenemus).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친구와 연인들은 대개 곤경을 겪기 마련이다. 차라리 첫눈의 이데아는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6번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작곡가 자신은 “이 곡의 시작은 내게 첫 눈의 냄새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시벨리우스의 음악은 늘 겨울의 냄새를 떠올리게 한다. 한 곡 뿐인 바이올린 협주곡도 그렇다. 느린 2악장의 한없이 긴 선율은 어둠과 고독 속에 선 사람이 자연과 자신만을 대면하는 끝없는 명상을 떠올리게 한다. 겨울의 작곡가로 북방의 대국 러시아의 차이콥스키를 떠올리는 데 어색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벨리우스에게도 짙은 영향을 끼친 그의 작품 중 잘 알려지지 않은 극음악 ‘눈 아가씨’ 중에서 ‘곡예사의 춤’을 먼저 떠올려 본다. 관현악의 신나는 전체 합주가 텀블링처럼 울려대고, 트럼펫은 설원을 질주하고, 탬버린과 트라이앵글이 신나게 찰랑거린다. 차이콥스키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은 크리스마스 이브가 배경이다. 유명한 ‘꽃의 왈츠’에 이어지는 왕자와 설탕과자 요정의 2인무를 듣는다. 나지막하게 내려가는 선율로 시작되어 마침내 폭풍처럼 휘몰아친다. 장엄하게 무너져 내리는 금관의 장엄한 합주는 해질녘 그늘의 커다란 얼음 폭포처럼 막막하게 가슴을 친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을 빼놓을 수 없다. 파리의 하숙촌, 혼자 사는 처녀는 촛불이 꺼져서 위층 시인이 사는 방으로 불을 빌리러 오고, 그만 자기 방 열쇠를 잃어버린 가운데 바람이 불어 두 사람의 초가 꺼져버린다. 더듬거리며 열쇠를 찾다가 그만 두 사람의 손이 맞닿고, 처녀의 손을 잡은 시인은 이 여인에게 이끌리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도둑 둘이 들어와 내 마음 속의 보물들을 훔쳐가 버렸어요. 그 도둑들은 바로 당신의 두 눈이죠.” 닭살이 돋을 만큼 전형적이지만 이해해주기로 한다. 달달한 수사학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인의 대본 아닌가. 이 파리 커플의 겨울은 사랑이 덥혀 주겠지만 겨울에 좌초한 사랑은 참혹하다. 슈베르트의 가곡집 겨울나그네 첫 곡 ‘밤인사’에서 주인공은 연인과 그의 마을에 작별을 고하고 먼 방랑을 떠난다. 무엇이 연인의 마음을 차갑게 돌아서게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가곡집의 네 번째 곡은 ‘동결’(Erstarrung)이다. 얼어붙었다는 뜻이다. 연인의 모습은 그의 마음속에 얼어붙어 있고, 그의 마음이 녹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흘려보낼 수 없을 것이다. 영국 작곡가 홀스트는 관현악 모음곡 ‘행성(The planets)’로 친숙한 작곡가. 그의 성가곡 ‘음산한 한겨울에’(in the bleak midwinter)‘도 만물이 얼어붙은 풍경을 그린다. “음산한 한겨울, 얼어붙은 바람은 신음하네/ 땅은 쇳덩이처럼 굳었고, 물은 돌덩이와 같네/ 눈이 내려, 눈 위에 다시 쌓였네…” 그러나 그 신음이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이어지는 가사는 인간의 구원을 예감한다. 한 해를 마무리할 즈음이면 곳곳에서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이 연주된다. 한국과 일본에만 유독 두드러지는 특이한 전통이라고 하지만, 한 해의 다짐을 상기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기에는 인류의 하나 됨을 다짐하는 이 작품만한 것이 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가 머릿속에 남아있고 아직 달력이 완전히 넘어가지 않았을 때, 자연과 벗해 한층 차가워진 공기 속을 걸으며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30번을 들어본다. 대략 스무 해 전, 베토벤의 산책지였던 칼렌베르크 언덕을 찬 바람 속에 걸었던 때를 회상한다. 마지막 악장의 나지막한 주제 선율은 마치 ’그대는 올 한 해를 의미 있게 살았는가, 다시 오는 한 해를 어떻게 맞이하려 하는가‘라고 묻는 듯하다. 우리 모두 의미 있게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이 떠오르는 해를 희망의 눈길로 맞이할 수 있기를.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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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감 얻는 작곡, 음악활동 질리지 않게 하는 힘이죠”

    피아노의 분산화음 위에 사람 목소리 같은 나직한 비올라의 선율이 흐른다. 가만히 말을 거는 것 같기도, 위안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점차 고조돼 두 현으로 한층 열정적인 호소를 펼친다. 비올리스트 김상진(49·연세대 교수·사진)의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로망스’다. “작곡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습니다. 제가 진행하는 방송이나 해설음악회가 그렇듯, 스스로 음악에 ‘질리지’ 않고 활동해 나가는 데 힘이 되어 주죠.” 자주 리사이틀 무대에 올려 온 이 곡을 김상진은 12월 16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피아니스트 문지영과의 듀오 리사이틀 ‘로망스’에서 연주한다. 이 곡 외에 슈만의 ‘아다지오와 알레그로’, 류재준과 클라크의 비올라 소나타 등 각각의 시대가 표현한 ‘로망스’를 펼쳐 보인다. 27일 만난 그는 “알려드릴 소식이 또 하나 있는데…”라고 했다. 리사이틀에 맞춰 ‘김상진 작품집’이 출간된다. ‘로망스’를 비롯해 그가 지금까지 쓴 작품 13곡을 싣는다. 콘서트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그의 작품이 비올라 곡만은 아니다. 첼로 곡으로 자주 연주되는 ‘체인징 러브’는 본래 바순 곡으로 썼다. 플루트를 위한 ‘문샤인 라이드’도 자주 연주된다. “제 작곡 작업은 ‘사용음악(Gebrauchsmusik·독일 작곡가 힌데미트가 사회적 요구에 맞춘다는 뜻으로 만든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엔 ‘실용음악’으로 알려졌지만 힌데미트의 의도는 ‘필요한 곳을 위해 음악을 쓴다’는 거였죠. 저도 의뢰가 있을 때 곡을 써왔습니다.” ‘체인징 러브’는 원주시립교향악단 바순 수석 이지현의 ‘독주회에서 연주할 수 있게 사랑에 관한 곡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고 작곡했다. 이달 18일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열린 첼리스트 심준호 리사이틀에서 연주되는 등 인기를 얻고 있다. ‘문샤인 라이드’는 플루티스트 안명주(영남대 교수)의 위촉으로 썼다. 플루티스트 조성현 유재아 등이 리사이틀에서 연주해 호평을 받았다. 김상진은 “베토벤을 비롯한 여러 작곡가가 비올라를 연주했다”고 말했다. 선율이나 베이스 라인보다 중간 성부를 채워 넣는 데 높은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연주를 통해 그 실제를 느꼈다는 설명이다. 작곡가 류재준(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은 “김상진의 곡은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전문적인 작곡가들이 빠지기 쉬운 틀에 박힌 정형화와 거리가 멉니다. 아름다운 선율과 화성의 매력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음악 어법(語法)을 충실히 구현하고 있습니다.” 이번 리사이틀 협연자인 2015년 부소니 콩쿠르 우승자 문지영에 대해 김상진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서울스프링페스티벌 등에서 연주를 접했다. 기술이 뛰어난 연주자도 실내악에서 호흡을 맞출 때는 부족하기 쉬운데, 문지영은 처음부터 잘했다”고 했다. “이번 리사이틀에선 피아노가 비올라와 동등하거나 더 역할이 큽니다. 피아노 반주가 아니라 ‘듀오 리사이틀’입니다.” 3만∼7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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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국경없는 학문 공동체… 세상의 지식은 여기서 싹텄다

    유럽이 동아시아와 이슬람 세계를 제치고 지식계의 챔피언으로 근대를 열어간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르네상스와 계몽주의에 대해 배워왔다. 그러나 ‘과문(寡聞)한 탓’이라는 표현이 이럴 때 적절할까. 이 책은 ‘편지 공화국(Res publica literatum)’이라는, 얼마간 낯선 개념을 소개한다. 라이프니츠와 뉴턴은 미적분학과 현대물리학을 확립한 과학자다. 하지만 라이프니츠는 역사학자이기도 했고 언어의 기원과 발전을 연구했다. 뉴턴은 고대 역사를 탐구하고 성서의 예언들을 해석했다. 이런 넓은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었던 토대가 편지 공화국이었다. 여기서 지식인들은 라틴어 어법부터 세계의 개혁까지 모든 것을 논의했다. 학문은 개인의 서재를 넘어 세계를 연결하는 공동 프로젝트였다. 이 공화국은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사이, 16∼18세기 유럽과 북미에 존재했다. 국경도 정부도 수도도 없이 관습과 시스템으로 유지되는 지식인들의 연결망이었다. 저자가 마음대로 해석해 붙인 이름이 아니라 당대 학자들이 실제 사용한 표현이었다. 이 네트워크에는 엄격한 규칙이 적용됐다. 편지에 대한 답신에는 상대방이 제시한 조언을 받아들이겠으며 친구로 부르겠다는 다짐이 있어야 했다. 상대가 학문적인 적으로 간주되더라도 우애와 관심의 표현을 빼놓아선 안 되었다. ‘우신예찬’ 저자 에라스뮈스가 ‘상대의 편지에 감사하는 수백 가지 방법’을 정리해 출간할 정도였다. 의견이 다르면 상대방을 삭제해버리는 오늘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환경과 사뭇 비교된다. 이 편지 공화국의 공용어는 라틴어였고 후에 프랑스어가 추가됐다. 시민들은 대부분 여러 분야에 박식한 전인적 지식인이었다. 국경과 언어를 뛰어넘어 지식을 교류했을 뿐 아니라 학문의 경계도 뛰어넘었다. 갈릴레이는 지동설 때문에 고국인 이탈리아에서 사면초가에 몰렸지만 먼 프라하에서 케플러가 보낸 편지로부터 든든한 지원을 얻었다. 실제의 인적 교류도 따랐다. 젊은 학자가 선배 학자의 추천서를 들고 고명한 학자를 찾아가 라틴어로 인사를 건넨 뒤 고전 문헌에서 토성의 고리까지 어떤 주제든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이 공화국에 단일한 이데올로기나 믿음 체계는 없었다. 견해가 다르다고 의사소통 자체를 끊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지적으로도 잘못된 일로 여겨졌다. 16세기 프랑스 신학자 카스텔리오가 교황청의 이단 박해를 반대하자 수많은 편지 공화국 시민들이 그를 따라 절대주의에 반대하는 깃발을 들었다. 저자는 “편지 공화국과 관련된, 복잡하지만 흥미로운 역사는 아직도 쓰여야 할 것이 많다”며 한층 치열한 연구를 다짐한다. 아쉬움도 남는다. 지식사학자인 저자가 여러 매체에 발표한 에세이와 논고를 모았기에 책의 체제가 단일하지 않다. ‘편지 공화국’에 대한 내용은 앞부분, 특히 1장에 집약된다. 마지막 15장은 ‘구글 제국 시대 책의 운명’이라는, 앞의 장들과 사뭇 다른 내용을 다룬다. 절판된 모든 책을 디지털화하는 ‘구글 라이브러리 프로젝트’에 대해 저자는 “제3세계 소도시에도 인터넷 카페들이 생기고 구글이 견실한 텍스트로 채우면 지식의 지도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자본의 논리에 따라 방대한 분량의 중요한 책들이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모든 책을 담아내는 ‘보편 도서관’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라며 그 한계를 지적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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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성정문화재단 40주년 음악회… 성정인상에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성정문화재단(이사장 김정자)이 2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창립 40주년 기념음악회 ‘아름다운 동행’을 연다. 성정문화재단은 1981년 난파소년소녀합창단을 창단한 뒤 성정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청소년 교향악단, 성정음악콩쿠르, 성정청소년열린음악회, 찾아가는 음악여행 등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펼쳐 왔다. 음악회 ‘아름다운 동행’은 정치용 지휘 수원시립교향악단과 소프라노 캐슬린 김, 테너 김우경, 바리톤 김기훈, 첼리스트 문태국, 바이올리니스트 서유민, 피아니스트 이재영이 출연한다. 1부에서는 차이콥스키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 중 왈츠와 베토벤 3중 협주곡, 2부에서는 한국 가곡과 오페라 아리아들을 연주한다. 콘서트와 함께 제4회 성정예술인상 시상식도 열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상을 받는다. 성정문화재단은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추구해온 바이올린의 거장으로 세계 음악 애호가들의 찬사를 받아왔다”고 정경화의 수상 이유를 밝혔다. 이 상은 제1회 작곡가 최영섭, 2회 테너 안형일, 3회 피아니스트 정진우가 각각 수상했다. 상금은 3000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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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어선 화려한 음악… 이젠 담백한 작품에 더 공감”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게 바통을 넘겨주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너무 빨리 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면서요. 종종 욕심과 열정을 혼동했습니다. 꼭 쥔 손을 조금 풀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46세. 늘 ‘교회 오빠’ 같던 피아니스트 김정원이 한국 데뷔 20주년 콘서트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다음 달 10일 연다. 15세 때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2001년 LG아트센터에서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과 쇼팽 스케르초 3곡으로 국내 데뷔 연주를 열었다. “젊어서는 화려한 음악에 빠졌죠. 나이 들수록 기교로 음악을 덮어버리는 곡보다는 담백한 작품에 더 공감이 갑니다.” 이번 콘서트에서는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과 브람스의 피아노협주곡 1번을 연주한다. 두 협주곡 사이엔 임동혁과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환상곡’을 연주한다.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이 ‘베토벤 교향곡 10번’으로 불리듯, 브람스의 피아노협주곡 1번도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5곡을 계승하죠. 프로그램에도 ‘미래의 나에게 넘겨주는’ 느낌을 담았습니다.”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지낸 아드리엘 김이 올해 창단한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이 두 협주곡을 협연한다. 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 한 아드리엘 김은 빈 국립음대 재학 당시 후배. 김정원은 “새로운 출발을 새 악단과 함께해서 의미가 크다”고 했다.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은 콘서트 첫 곡으로 오스트리아 작곡가 바이어가 1895년 작곡한 발레곡 ‘코레아의 신부’ 중 두 곡을 선보인다. 김정원은 해외 연주를 더 자유롭게 이어가고자 2017년 경희대 교수직을 내려놓은 뒤 서울 예술의전당과 아트센터 인천 등에서 공연 기획과 해설에 참여해왔다. 클래식 스트리밍 서비스인 ‘네이버 V 살롱콘서트’의 예술감독도 맡고 있다. 그는 “큐레이터처럼 ‘이 사람 정말 좋은 연주자야’라고 소개하는 일이 좋다”고 했다. 이번에 함께 연주하는 임동혁과는 10년 전 처음 만난 날부터 마음이 꼭 맞아 와인을 네 병이나 따고 ‘집에 기어 들어갔다’며 그는 웃었다. 이번 연주곡인 슈베르트의 환상곡도 두 사람이 자주 ‘취중 연주’하는 곡이다. 그는 솔직히 나이를 느낀다고 고백했다. 길고 힘이 많이 필요한 곡은 ‘끝까지 방전되지 않고 칠 수 있을지’ 걱정이다. 하지만 어머니(드라마 작가 이금림)를 비롯한 여러 예술가들에게서 ‘나이와 함께 깊어짐’을 보게 된다고 그는 말했다. “저와 음악은 애증의 관계였습니다. 어떤 관계든지 늘 사랑만 하고 살 수 없죠. 질리기도 하고 미워지기도 하지만 그게 더 끈끈한 관계를 만들어 갑니다. 저와 음악도 그렇게 깊어지기를 기대합니다.” 5만∼11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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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대 바이올린의 향연, 보석 같은 울림-떨림

    “바이올린만으로 이루어진 앙상블 곡을 남긴 작곡가는 생각보다 많습니다. 보석 같은 곡들을 찾아내 선보이겠습니다. 고전에서 현대까지 바이올린만의 매력에 빠져드실 겁니다.”(김혜란·앙상블 S 리더) 바이올린 8대만으로 합주를 이루는 콘서트가 열린다. 25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리는 ‘앙상블 S’ 창단 연주회(사진). 바이올리니스트 김혜란 이경원 이정아 김정수 설지영 이주혜 강지혜 이수진이 출연한다. 바이올린은 현악기족(族)의 대표 악기지만 바이올린만의 합주는 첼로 앙상블에 비해 주목을 덜 받아 온 편이다. 앙상블 S는 지난해 결성됐다. 바이올린에서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하프까지 현악기 5종 연주자 34명이 참여하고 있지만 창단 연주회는 바이올린만으로 화음을 이룬다. ‘S’는 ‘서울, String(현), 선화’의 영문 첫 글자를 딴 것. 이름대로 선화예중·고 동문들로 이뤄진 앙상블이다. 콘서트는 바로크 작곡가 텔레만의 네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2번으로 시작해 비에니아프스키, 이자이 등의 낭만주의 곡을 거쳐 프로코피예프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로 이어진다. 3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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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아니스트 이유현, 슈베르트 전곡 연주 두번째 무대

    피아니스트 이유현(울산대 겸임교수·사진)이 슈베르트 피아노 작품 전곡을 무대에 올리는 ‘슈베르트 시리즈’ 두 번째 무대를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갖는다. 지난해 5월 1일 같은 곳에서 시리즈 첫 번째 무대를 연 그는 이번 리사이틀에서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E플랫장조 D 568, 미완성 소나타 D 571, 네 개의 즉흥곡 D 899 등을 연주한다. 이유현은 독일 뮌헨음대 최고연주자과정을 졸업했고 게르하르트 오피츠 교수를 사사했다. 슈베르트의 작품을 꾸준히 연구하며 2017년 슈베르트의 마지막 두 소나타인 20번, 21번 소나타 기획 콘서트를 열었다. 3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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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우승자 듀오 ‘신창용&김동현’ “동네 선후배…서로의 색깔 잘 맞춰야죠”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 22세.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독일 뮌헨음대 석사과정 재학 중. 피아니스트 신창용. 27세. 미국 커티스음대와 줄리아드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졸업. 겹치는 부분이 적다. 연배도 살짝 차이 난다. “좋은 친구 같은 사이죠.”(창용) “창용 형이 온화하고 성격이 좋아요. 크게 형 같지 않아요.”(동현) 공통점은? 집이 가깝다는 것. 그리고?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우승요? 잘 알고 있지만 너무 표를 내기도 멋쩍어서….”(웃음)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우승자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춘다. 신창용은 2017년 피아노 부문으로 열린 이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이듬해 미국 지나 바카우어 국제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1위를 차지했다. 김동현은 2018년 바이올린 부문으로 열린 이 콩쿠르에서 19세 나이로 20, 30대 연주자들을 제치고 우승했다. 두 사람은 2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체임버홀에서 열리는 ‘세종 체임버시리즈 3―신창용 김동현 듀오’ 콘서트에 출연한다. 슈베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 브람스 소나타 1번, 슈만 ‘3개의 로망스’, 프랑크 소나타 A장조를 연주한다. 이번 무대의 기둥을 이루는 브람스와 프랑크의 소나타는 시쳇말로 ‘낭만낭만한’, 겨울 초입의 감성과도 맞는 곡들이다. “계절감을 강조하려는 생각은 아니었고, 둘 다 좋아하는 곡을 고르다 서로 취향이 맞는 곡들로 선곡하게 됐죠.”(창용) “콘서트 오프닝으로 느낌 좋은 곡을 찾아보다가 슈베르트의 소나타 1번을 첫 곡으로 선택했어요. 독일 특유의 감성이 담겨 있으면서 무겁지 않아 첫 곡으로 살짝 느낌 내기 좋죠.”(동현) 대화에서 ‘티키타카’가 잘 맞는 두 사람이 연주에서의 호흡은 어떨까. “둘 다 연주가 많아서, 엊그제까지 각자 오케스트라와 협주곡 협연을 했거든요. 연습을 시작하는 첫 단계지만 느낌은 좋습니다.”(창용)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역할이나 표현이 서로 비등한 작품들입니다. 서로의 색깔을 강조하기보다는 서로의 색깔이 조화롭게 우러나오는 데 초점을 맞추겠습니다.”(동현) 연도와 분야는 다르지만 두 사람의 공통분모인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 대한 기억은 어떨까. 신창용은 “이 콩쿠르를 계기로 여러 가지 기회가 열렸고 함께 겨룬 참가자들도 좋은 자극이 되었다”고 회상했다. 김동현은 “당시 여러 콩쿠르에서 기대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했는데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영예를 얻어 계속 큰 도전을 이어갈 계기가 되었다. 고마운 대회였다”고 말했다. 김동현은 뮌헨음대에서 지휘자 겸 바이올린 명교사 크리스토프 포펜을 사사하고 있다. 포펜이 예술감독을 맡은 8월 롯데콘서트홀 ‘클래식 레볼루션’에선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했다. 그는 “포펜 선생님이 지휘자인 만큼 레슨받을 때는 오케스트라 리허설을 하는 느낌이다. 관현악 총보에 실린 아이디어까지 전달받게 된다”고 말했다. 신창용은 내년 독일로 유학해 박사과정을 밟을 계획을 갖고 있다. 4만∼5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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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래식 한국 빛낼 차세대 스타 20명

    동아일보사가 주최하고 서울교대가 후원하는 제61회 동아음악콩쿠르 시상식이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교대 음악관 콘서트홀에서 열렸다. 부문별 격년제로 열리는 이 콩쿠르는 올해 8개 부문에 337명이 참가했다. 1, 2차 예선을 거쳐 37명이 본선에 올랐고 각 부문 1위 5명을 비롯한 20명이 입상의 영예를 안았다. 피아노 부문 1위는 올해 17세의 고등학생 피아니스트 김동주 군(선화예고 2학년)에게 돌아갔다. 김 군은 한인하기념상을 함께 받았다. 그는 “지난해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학교를 자주 가지 못했고 그 결과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어려운 가운데 얻은 성과여서 더욱 값지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피아노 부문 3위 임기욱 씨(32·독일 뮌스터국립음대 졸업)는 클래식소나타상을 받았다. 이 상은 신수정 서울대 음대 명예교수가 기탁한 기금으로 피아노 2차 예선에서 클래식(고전주의) 소나타를 가장 잘 연주한 참가자에게 주는 상이다. 남자 성악 1위 정인호 씨(30·서울대 대학원)는 이인범기념상을 받았다. 바순 1위에게 주어지는 이종오바순상은 김우아 씨(22·서울대 4학년)에게 돌아갔다. 올해 신설된 이임수클라리넷상은 클라리넷 1위 이준형 씨(23·서울대 4학년)가 받았다. 여자 성악 1위에게 주는 정훈모기념상과 오보에 1위에게 주는 로뎀우드윈드상은 올해 해당자가 없어 수상자를 내지 못했다. 19일 오후 1시부터 동아음악콩쿠르 홈페이지(www.donga.com/concours/music)에서 심사위원별 채점표를 확인할 수 있다. 심사평은 다음 주에 게재되며 본선 연주 동영상은 12월 13일부터 유료로 서비스한다. 다음은 입상자 명단. ▽작곡 △2위 김태호(22·서울대 대학원) ▽피아노 △1위 김동주 △2위 최이삭(17·홈스쿨링) △3위 임기욱 ▽여자 성악 △2위 이혜지(27·연세대 졸업) △3위 이유진(22·서울대 4학년) ▽남자 성악 △1위 정인호 △2위 김석준(28·연세대 졸업) △3위 오영광(26·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플루트 △1위 이현주(17·한예종 2학년) △2위 김보영(22·서울대 4학년) △3위 김다빈 (21·서울대 3학년) ▽오보에 △2위 김주혁(20·서울대 2학년) △3위 김성경(21·한예종 3학년) ▽클라리넷 △1위 이준형 △2위 이극찬(17·한예종 1학년) △3위 신예은(21·한예종 4학년) ▽바순 △1위 김우아 △2위 김황희(21·한양대 3학년) △3위 유제빈(19·서울대 2학년)후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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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구나 음악 앞에 편할 자유… 행복 전해지면 나도 행복”

    피아니스트 알리스 사라 오트(32). 일본인 어머니를 둔 독일인인 그는 음반사 도이체 그라모폰(DG)에서 앨범을 내놓으며 세계 최고의 악단들과 협연해 왔다. 2019년 1월, 그는 왼손이 근육의 통제력을 잃는 ‘다발성 경화증’에 걸렸다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밝혔다. 그리고 2년. 오트는 새 앨범 ‘삶의 메아리(Echos of life)’에 완벽한 연주를 선보이며 돌아왔다. 그가 1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협주곡’을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지휘 KBS교향악단과 협연한다. 그를 KBS교향악단 대기실에서 16일 만났다. ―이번에 연주할 라벨의 협주곡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른손을 잃은 피아니스트를 위해 작곡된 곡입니다. 고난을 극복하는 메시지를 담고자 했는지요. “이 협주곡은 시종일관 어둡고 시니컬합니다. 피아노가 유희적인 선율을 연주하고 불협화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마치 ‘오징어 게임’에서 연상되는 분위기와 같습니다. 겉보기에 순진무구하지만 실제는 야만을 묘사하죠. 이런 분위기가 이 시대를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안한 극단의 시대죠. 라벨의 협주곡 중 한층 ‘즐거운’ G장조 협주곡은 자주 연주해 왔습니다만, 이 곡은 이번이 불과 두 번째입니다.” ―이번에 피아니스트 출신 지휘자 에셴바흐와 협연하는데….(에셴바흐 지휘 KBS교향악단은 후반부에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을 연주한다.) “피아니스트로서, 한 사람의 음악가로서 꼭 함께해보고 싶은 분이었습니다. 설레고 있어요!” ―올해 앨범 ‘삶의 메아리’에 쇼팽의 전주곡집 사이사이 현대 작품들을 넣었습니다. (오트 자신이 모차르트 ‘눈물의 날’을 편곡한 ‘영원에의 자장가’도 들어있다) ‘삶의 메아리’란 무슨 뜻인가요. “삶은 예측 불가이고 늘 새로운 일에 직면합니다. 쇼팽의 전주곡집에 들어있는 24곡과 중간의 현대곡들은 각각 개성이 강하지만 서로 다음 것과 연결됩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경험하는 것들과 비슷합니다.” ―쇼팽 전주곡 20번 C단조에 특히 중요한 의미를 두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2년 전, 다른 C단조 곡을 치던 중 왼팔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몇 초 동안 광대한 주변의 공간이 정지하는 느낌이었습니다. C단조 곡을 칠 때마다 그 일이 떠오릅니다. 다행히 훌륭한 의사를 만나 좋은 치료를 받았고, 병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습니다.” ―‘맨발의 피아니스트’로 알려졌고, 연주 중의 미소가 푸근하다는 평도 있습니다. “10여 년 전, 옛 피아노로 연주할 기회가 있었는데 피아노가 낮아 신고 있던 하이힐을 벗었죠. 편하더군요. 그 뒤로 신발을 신지 않고 연주하게 되었어요. 누구나 음악 앞에서 편할 자유가 있습니다. (웃음) 거울을 놓고 연주하지 않아서 제 표정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음악이 주는 행복이 관객에게 전해진다면 저도 행복한 일이죠.” ―일러스트레이터 겸 디자이너로도 알려졌는데…. “독일 요스트(Jost)사의 여행용 백을 디자인합니다. 여행이 많은 연주가의 경험을 반영하죠. 여러 사람에게 편함을 안겨 드리는 일이어서 즐겁습니다.” 한국 청중들을 위해 그림을 그려 달라고 하자 그는 순식간에 피아노 앞에 선 여성을 그리고 “한국의 여러분, 한국에 온 것이 즐겁습니다. 곧 봬요”라고 영어로 적었다. 피아노 앞의 여성은 곧은 머릿결에 맨발인 그 자신이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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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팔레스타인-이스라엘 갈등은 식민주의 결과”

    최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에 3000가구 이상의 새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밀어붙여 양측 사이의 긴장이 높아졌다. 언제 평화가 찾아올 것인가.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야 할까.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인 저자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의 성격을 ‘식민주의’로 규정한다. 유럽인이 아메리카 원주민을 몰아내고 땅을 차지한 것처럼, 이스라엘이 건국된 과정 역시 식민주의와 다름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영국이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의 민족적 권리를 약속한 1917년 밸푸어 선언부터 한 세기의 역사를 여섯 개의 장으로 정리한다. 그의 서술은 ‘유대 식민주의’와 나란히 ‘서사의 중요성’에 방점이 찍힌다. 팔레스타인은 자기 민족의 처지를 밝히고 호소하는 이야기에서 이스라엘에 패배해 왔다는 시각이다. 이스라엘 국가를 회복하자는 시온주의 주창자들은 ‘수천 년 동안 핍박받은 끝에 고향에 돌아가려는 민족’이라는 서사를 강조했고, 이는 개신교 영향력이 강한 미국과 영국 지배층을 매혹시켰다. ‘팔레스타인 민족이란 없었으며, 이 지역에는 낙후된 유목민만이 거주했다’는 서사도 만들어졌다. 팔레스타인의 저항이 본격화된 뒤엔 ‘이스라엘은 평화를 바라지만 상대방은 폭력을 야기하는 테러세력’이라는 서사가 더해졌다.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평론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표현을 빌리면 ‘관념과 이미지가 문제되는 국제사회’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한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절망을 말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식민주의는 역사에서 너무 ‘늦게’ 찾아왔기 때문이다. 탈식민 시대에 식민 현실을 강요할수록 서구 민주주의의 이상과 모순에 빠지며, 팔레스타인을 탄압할수록 비난과 고립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세계 여론에 호소하면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미국 내에선 풀뿌리 정치활동과 비공식 활동들을 통해 현실을 호소하고, 이스라엘 안에서도 팔레스타인을 향한 폭력과 억압 이외 다른 방안이 존재한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역설한다. 내부에 대한 질타와 자성도 빼놓지 않는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와 하마스 등 지도부가 국제 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해 내부 분열과 무모한 저항으로 일관해왔다고 질타한다. 팔레스타인을 조종하고 대리인으로 삼으려 했던 아랍 독재자들에 대한 비판도 이어진다. 저자의 가계와 개인적 체험은 이 책의 흥미와 신뢰도를 높여준다. 그의 종고조부(고조부의 형제)와 큰아버지는 각각 19세기 말과 1930년대에 예루살렘 시장을 지내며 시온주의와 대결했다. 그의 아버지는 유엔에서 일하며 아랍권과 이스라엘이 충돌할 때마다 안보리 회의 실무를 담당했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그는 “1960년대 아버지를 따라 3년간 서울에서 지냈다. 일본 식민지배와 한국인의 저항에 대한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고 밝혔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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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아니스트 6인의 마지막 배틀… 12월 서울이 달아오른다

    ‘K클래식의 수도’ 서울의 유일한 국제음악콩쿠르인 ‘LG와 함께하는 제16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서울국제음악콩쿠르) 결선 경연이 동아일보사와 서울시 주최로 12월 16, 17일 서울 종로구 상명아트센터 계당홀에서 열린다. 이달 1∼7일 온라인 영상심사로 열린 준결선에서 12명이 실력을 겨뤄 김준형(24·독일 뮌헨음대) 예수아(21·독일 하노버음대) 유성호(25·한국예술종합학교) 이승현(27·독일 베를린 한스아이슬러음대 석사과정) 이택기(25·미국 커티스음악원) 한규호(28·독일 뮌스터음대) 등 6명이 결선에 진출했다(가나다순). 해외 여러 국제 콩쿠르와 마찬가지로 올해 서울국제음악콩쿠르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지난해 3월 개최 예정이던 일정은 결선 기준 1년 9개월 연기됐고, 올해 10월 5일 시작된 1차 예선부터 2차 예선, 준결선까지의 경연은 온라인 연주와 심사로 진행됐다. 결선 진출자 중 김준형은 2017년 독일 ARD 콩쿠르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는 “중학생 시절 서울국제음악콩쿠르를 관람하러 경연장을 오가던 기억이 생생하다. 최선을 다해 결선을 준비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예수아는 2차 예선에서 베토벤 소나타를 가장 잘 연주한 참가자에게 원로 피아니스트 신수정(서울대 명예교수)이 제공한 기금으로 시상하는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는 “베토벤의 작품을 더 열심히 연구해 인정받는 피아니스트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유성호는 10월 서울국제음악제 ‘신진음악가 초대석’에 초청돼 주목을 받았다. 그는 “순위에 대한 욕심보다 결선을 하나의 공연으로 생각하고 곡이 가진 메시지를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이승현은 2013년 동아음악콩쿠르 1위, 2018년 독일 ‘새로운 별’ 콩쿠르 1위를 수상했다. 그는 “8년 전 동아음악콩쿠르를 치른 장소에서 결선을 해 반갑다”고 감회를 밝혔다. 이택기는 2017년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3위를 차지했고 KBS교향악단,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등과 활발한 협연을 펼쳐왔다. 그는 “4년 전보다 더 성숙해진 모습을 결선에서 보여드리겠다”고 밝혔다. 2016년 체코 프라하의 봄 콩쿠르 3등 수상자인 한규호는 “최근 코로나19로 큰 무대에 대한 갈증이 컸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서울국제음악콩쿠르는 임종필 전 한양대 교수, 유영욱 연세대 교수, 아비람 라이케르트 서울대 교수(이스라엘)와 프랑스 피아노음악 해석의 최고봉으로 불리는 파스칼 로제(스위스), 연주계와 교육계에서 명성을 떨쳐온 알렉산드르 코브린(미국·러시아) 블라디미르 옵치니코프(러시아) 안티 시랄라(핀란드) 아르눌프 폰 아르님(독일) 나가이 요시카즈(미국) 장진(중국), 피아니스트 겸 유명 작곡가 로웰 리버먼(미국)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라이케르트는 1996년 피아노 부문으로 처음 열린 이 대회에서 1등을, 시랄라는 4등을 수상했다. 로제와 임종필 등 심사위원들은 “참가자들의 수준이 최고의 레벨이었다. 심사 자체가 즐거움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결선 연주는 장윤성 지휘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협연한다. 최종 결과는 각국 심사위원 심사결과 취합을 거쳐 12월 20일경 발표된다. 입상자는 1위 5만 달러(약 5900만 원) 등 상금을 받는다. 결선 영상은 12월 말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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