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스페인 출신 감독은 뭔가 묘한 색깔을 지녔다. 영화사에 초현실주의를 도입한 루이스 부뉴엘 감독(1900∼1983)의 나라답게 몽환적 정서도 자연스레 표현한다. 국내에도 팬이 많은 ‘그녀에게’(2002년)의 페드로 알모도바르나 ‘오픈 유어 아이즈’(1997년)의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도 마찬가지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대중에게 친숙한 주류영화 문법을 지키면서도 강렬한 색감과 독특한 설정으로 독창적인 세계를 구현한다”고 평했다. 23일 선보이는 ‘마인드스케이프’와 30일 개봉하는 ‘리턴드’는 이런 전통을 잘 이은 스페인 차세대 감독들의 작품. 마인드스케이프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연출부 출신인 호르헤 도라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고, 리턴드는 2007년 데뷔한 마누엘 카르바요 감독의 3번째 영화다. 모두 북미지역을 배경으로 영어 대사로 촬영했다.○ 마인드스케이프(Mindscape) 제목을 번역하면 ‘마음의 경치’쯤 된다. 인간의 뇌에 저장된 기억을 보는 수사 기술이 개발돼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다는 설정. 100% 할리우드 자본 작품으로, 지난해 ‘스토커’를 찍은 박찬욱이나 ‘라스트 스탠드’의 김지운 감독처럼 감독만 미국에 건너가 찍었다. 기억수사관 존(마크 스트롱)은 아내가 자살한 아픔을 가진 중년. 어느 날 죽은 아내와 이름이 같은 재벌 딸 애나(터이사 파미가)가 곡기를 끊은 이유를 찾아달란 의뢰를 받는다. 열여섯 살 애나는 천재적 두뇌를 지녔는데 가족에게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다. 존은 그의 기억을 살펴보다 충격적인 과거를 마주한다. 이 작품은 스릴러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꽤나 철학적이다. 인간의 뇌란 얼마나 믿을 만할까. 어쩌면 기억도 조작이 가능하지 않을까. 게다가 타인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건 얼마나 큰 책임이 따르는 일인지 슬며시 질문을 던진다. 마인드스케이프는 반전이 기가 막힌 영화는 아니다. 허나 미묘한 표정을 낚아채는 클로즈업과 비린내를 머금은 듯 찌릿한 색채가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뭣보다 안달루시아 언덕에서 꺾어 든 검붉은 들장미 같은 애나의 눈빛이란. 사랑을 잃고 사랑의 감정까지 잊어버린 중년 존의 메마른 말투와 근사한 앙상블을 이룬다.○ 리턴드(The Returned) 역시 제목에 많은 뜻이 담겼다. 말 그대로 ‘돌아온 사람들’. 갑작스러운 좀비바이러스에 감염됐다가 치료제를 맞고 인성을 유지한 이들을 일컫는다. 하지만 완치는 아니고 매일 주사를 맞아야만 좀비가 되지 않는다. 스페인과 캐나다 합작영화로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캐나다 배우들이 출연했다. 케이트(에밀리 햄프셔)는 리턴드 관리 병동에서 일하는 의사. 하지만 남편 알렉스(크리스 홀든리드)도 환자란 비밀은 숨긴 채 산다. 갈수록 사회적으로 리턴드 찬반 여론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만든 치료제 재고량이 얼마 남지 않았단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다. 스릴러와 ‘썸’을 타는 마인드스케이프처럼, 리턴드 역시 전형적인 좀비물과 거리를 둔다. 소재만 갖다 썼을 뿐 딱히 끔찍한 장면도 거의 없다. 영화가 좀비 자체가 아닌, 세상의 반응에 주목했기 때문. 두 영화 모두 독특한 비틀기를 통해 어떤 실체의 이면을 드러내는 데 주력한다. 리턴드는 치료제가 떨어지며 점점 바닥을 보이는 인간의 추악한 도덕심을 제대로 까발린다. 평소엔 우정 사랑 평화를 외치다가도 급할 땐 돌아서는 이들이 얼마나 많나. 감독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감정의 과잉 없이 표현한다. 그게 바로 인간이라고.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솔직히 이 책은 표지만 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그간 무슨 책이 많이 팔렸나가 그리 흥미로울까. 저자 말마따나 서구 위주 이야긴데. 프랑스 파리 제5대학 공법(公法) 교수가 16세기부터 현대까지 400권의 풍부한 사례를 들어 베스트셀러를 파악했다는 설명도 거창하지만 하품 난다. 아, 근데 예상 밖으로 이 책 재밌다. 웬 헌법학자가 글을 이렇게 야무지게 쓰는지. 좋은 번역자를 만난 덕도 있겠으나, 딱딱한 소재를 꽤나 위트 있게 풀어간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나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같은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과정을 들려주는 대목은 옛이야기처럼 흥미진진하다. 책의 뼈대라 할 수 있는, 베스트셀러를 바라보는 3가지 관점 역시 상당히 인상적이다. 1부에선 베스트셀러를 정의하는 기준을 살펴봄으로써 역사적으로 베스트셀러라고 불린 작품들의 실체를 조목조목 헤집는다. 2부는 다양한 마케팅과 시대상의 변화들이 어떻게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내는지에 주목한다. 마지막으로 출판이 산업화되며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주체인 독자의 취향은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고받는지도 들여다본다. 한 가지 재밌는 건 역사적 베스트셀러 1∼15위 목록이다. 누구나 예상 가능한 ‘성서’가 톱인 가운데 ‘꾸란’(3위) ‘모르몬경’(10위) ‘영생으로 이끄는 진리’(11위·여호와의 증인 경전) 등 종교서적이 네 권이다. ‘마오쩌둥 어록’(2위)을 비롯한 정치서적도 네 권이나 된다. “사람들이 책을 읽는 데는, 이 세상에서든 저 세상에서든, 구원을 얻기 위해서 혹은 성공을 일궈내기 위해서 책을 강요당하는 것도 이유가 된다”는 저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읽는 이에 따라 비율은 다르겠지만, 이 책이 다루는 베스트셀러는 익히 우리가 아는 것과 생소한 것들이 뒤섞여 있다. 당연히 낯익은 책들이 더 반갑긴 하지만, 딱히 모르는 책이라도 구성지게 풀어내 책장 넘기는 맛이 좋다. 뭣보다 그간 책을 고를 때 베스트셀러 목록부터 들여다봤던 습관을 반성하게 만들어줘서 고맙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 8일 개봉한 ‘5일의 마중’과 16일 선보일 ‘황금시대’는 중국발(發) 거함이다. 장이머우 감독-궁리 대 쉬안화 감독-탕웨이. 더 이상 말이 필요한가. 올해 칸영화제에 초청됐던 5일의 마중과 베니스영화제 폐막작인 황금시대는 11일 막을 내린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에도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둘 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나 색깔은 다르다. 5일의 마중이 1960∼70년대 문화대혁명의 광풍에 휩쓸려 생이별한 가족의 삶을 시리도록 청량하게 담아냈다면, 황금시대는 1930∼40년대 혼란기 젊은 생을 마감한 여성 작가 샤오훙(蕭紅·1911∼1942)을 담담해서 먹먹한 눈길로 쫓아간다. 》○궁리 vs 탕웨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가 100% 컨디션으로 맞붙으면 이런 형국일까. 두 배우는 중국 전·현직 챔피언의 타이틀 매치처럼 엄청난 공력을 내뿜는다. 굳이 따지자면, 황금시대의 탕웨이는 레알의 화려한 호날두를 닮았다. 꼬질꼬질한 모양새로 걸신처럼 먹어대도 스타일이 살아 있다. 어떤 장면에서 어떤 자세로 나와도 존재감이 뚜렷하다. 고통 속에서도 자신만의 문학을 짊어진 작가의 회한을 이토록 강렬하게 표현하다니. 유부녀야, 유부녀야 몇 번씩 되뇌다가도 입을 헤 벌리고 바라보게 된다. 올해 한국 나이로 쉰인 궁리는 바르샤의 메시에 가깝다. 완벽한 무게중심을 바탕으로 별 기술 쓰지도 않았는데 수비수들을 제친다. 남편 루옌스(천다오밍·陳道明)와의 헤어짐을 안으로 삭이며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아내 펑완위를 그가 아니면 누가 소화했을까. 그 세월을 살아낸 이들만 아는 깊은 맛이 우러난다. “니들이 게 맛(연기)을 알아”라며 쓰윽 찔러온다. 눈빛도 대단하지만 두 배우의 입매와 몸짓을 주목하길. 거친 풍파를 온몸으로 버텨내면서도 처연하다 못해 순진하기까지 한 입가의 변화는 가히 천의무봉(天衣無縫·선녀 옷처럼 완벽하고 자연스럽다)이다. 또한 아이를 가져 불룩한 배로 땅바닥에 너부러진 샤오훙의 양 다리, 읽지도 못하는 남편의 편지를 쥐어짜듯 들여다보는 펑완위의 어깨는 두고두고 여운이 짙다.○ 장이머우 vs 쉬안화 역시 쉽게 어느 쪽 손을 들어주기 힘들다. 알렉스 퍼거슨과 거스 히딩크 감독이 나섰는데 누구한테 돈을 걸겠나. 다만 한동안 무협물에 매진하던 장이머우 감독이 ‘색감부터 근사한’ 작품으로 돌아와 반가움이 더하다. 2010년 잔잔한 소품 ‘산사나무 아래’가 부활의 신호탄이었다면, 5일의 마중은 밤하늘을 가득 채운 유성비 같다. 5일의 마중은 섬세하고 진중한 화면도 놀랍지만, 박주영의 따봉을 외치게 만드는 건 ‘출전선수 명단’이다. 황금시대가 탕웨이란 원톱 플레이어에 기댄 반면 장 감독은 대형 스트라이커 궁리를 중심으로 천다오밍 같은 걸출한 패스마스터와 딸 단단 역을 맡은 신예 장후이원(張慧雯)이란 날렵한 측면공격수까지 포진시켰다. 역시 인사가 만사다. 중국을 대표하는 여성감독 쉬안화는 전술적 포메이션에 힘을 줬다. 페이크 다큐멘터리처럼 등장인물이 샤오훙을 이야기하는 인터뷰 방식을 썼는데, 지인에게 남은 기억이 켜켜이 짜깁기가 되며 주인공의 다양한 면모를 드러낸다. 또한 이를 시간의 흐름에 얽매이지 않고 교차 편집해 좀더 인물의 내면 자체에 몰입하도록 만든다. 다만 상영시간이 3시간이나 되니 미리 볼일을 봐두길. 자칫하면 골 장면 놓친다. 하나 더. 두 작품 모두 ‘펑펑 내리는 눈’이 근사하다. 황금시대가 온갖 상념과 잡음까지 묻어버린 푸른 눈밭이라면, 5일의 마중은 세월의 생채기가 먼지처럼 뒤엉킨 진회색 눈발이다. 그 속엔 함박눈마저 비집고 나오는 탕웨이, 설경 속에 풍경처럼 동화된 궁리가 관객들을 맞이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1000만 한국 영화가 10편이나 쏟아질 수 있었던 건 영화인들이 전하려는 메시지와 상업영화가 결합해 관객과 소통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세계 어느 영화 시장에서도 볼 수 없던 전대미문의 일입니다.”(영화 ‘명량’의 김한민 감독) 8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선 영화계에서 쉽게 볼 수 없던 광경이 연출됐다. 한국 영화의 ‘천만클럽’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필름마켓이 개최한 포럼 ‘천만 영화를 통해 바라본 한국영화 제작의 현실과 전망’ 참석자들이었다. 천만 영화 10편 가운데 촬영 일정이 있는 ‘왕의 남자’(2005년)와 ‘도둑들’(2012년) 관계자만 빼고 8명의 감독과 제작자가 참석했다. 진행자인 ‘실미도’(2003년)의 제작자 김형준 한맥문화대표를 포함하면 9명이다. 김 대표는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때 이후 이렇게 모인 건 처음 봤다”고 농담했다. 포럼의 열기는 뜨거웠다. 천만 영화란 대박을 내고도 안정된 제작 환경을 누릴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얘기가 많았다. ‘실미도’의 강우석 감독은 “천만 영화 찍어 돈 많이 번 줄 아는데 2, 3년 후엔 다시 적자를 보는 게 영화 시장”이라고 했다.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의 강제규 감독도 “천만을 돌파했을 때 (빚을 갚는단) 안도감이 컸다. 하지만 ‘마이웨이’(2011년) 이후엔 더이상 영화 못한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털어놨다.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년)를 제작한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는 “투자 배급사와 극장이 너무 많은 수익을 가져가는 게 문제”라며 △대기업과 제작사의 공정한 이윤 배분 △스크린 독과점 방지 △표준계약서 문화 정착 △투명한 온·오프라인 통합전산망 구축을 과제로 꼽았다. ‘7번방의 선물’(2013년)의 김민기 화인웍스 대표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창의적인 시나리오 개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영화계의 불안한 고용 시스템도 화제에 올랐다. 포럼을 듣던 한 여성은 “영화 현장에서 일할 때 월급으로 20만 원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해운대’(2009년)의 윤제균 감독은 “영화가 흥행해도 스태프에게 돌아가는 이득은 크지 않다. 영화 종사자 모두 안정적으로 가계를 꾸릴 수 있는 ‘직장’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한민 감독도 “천만 영화에 기뻐하기보다는 무거운 숙제와 짐을 잔뜩 짊어진 기분”이라고 했다. 중국 영화시장에 대한 기대와 우려도 나왔다. ‘괴물’(2006년)의 최용배 청어람 대표는 “중국 투자자들이 ‘괴물2’ 제작에 관심이 크다. 괴물을 리메이크하자는 제안도 한다”며 “중국은 할리우드 이상의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므로 상호협력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원 대표는 “몇몇 감독이나 배우를 통한 활로 개척으로는 중국과 평등한 파트너 관계를 맺기 어렵다. 한국 영화계가 힘을 합쳐 시스템을 만들지 않으면 중국의 머니파워에 휘둘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 천만 영화의 저력에 대해 강우석 감독은 ‘뻔뻔함’이라고 정리했다. 그는 “흥행 자체보다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겠다는 뻔뻔한 의지가 필요하다. 영화계와 관객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요구한다. 천만 영화들은 새로운 무언가를 건드렸기 때문에 탄생했다”고 자평했다. ‘변호인(2013년)’의 최재원 위더스필름 대표는 “(내용의 질보다는) 외형 중심의 제작이 만연하고 자본의 논리가 강화된 점은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부산=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의 적절성을 놓고 논란이 일었던 다큐멘터리영화 ‘다이빙벨’이 6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CGV에서 상영됐다. 영화관 주변에 경찰까지 투입되며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불상사는 없었다. 영화는 세월호 참사 당시 논란을 일으켰던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의 잠수기구 다이빙벨 투입 과정을 중심으로 세월호 구조작업의 뒷이야기를 다뤘다.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와 안해룡 다큐멘터리 감독이 공동 연출했으며 다이빙벨의 구조 실패가 정부 외압에 따른 지속적 방해 탓이란 주장을 담았다. 이 기자는 영화 상영 후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정부와 언론이 자신들의 과오를 덮기 위해 숨겨 왔던 진실을 고발하려 영화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안 감독은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보고 세월호에 대한 관심을 되살릴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대표 변호에만 치중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정확한 답을 하지 않았다. 영화에도 정부 측 반론이나 당시 다이빙벨 투입 실패에 분개했던 유가족 반응 등은 담기지 않았다. 이 영화는 영화제에 초청됐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부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부산영화제 측은 전날 “지금까지 외압에 의해 상영을 취소한 사례가 없다”며 “비판할 수 있으나 작품도 보지 않고 그런 요구를 하는 건 영화제의 정체성과 존립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부산=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이 영화에서 제보자는 이장환 박사(이경영)의 비리를 폭로하는 심민호 팀장(유연석)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윤민철 PD(박해일)처럼 세상의 거친 파도 속에서도 진실을 붙잡을 수 있는 사람은 모두가 제보자가 아닐까.” ‘황우석 사태’를 소재로 한 ‘제보자’가 개천절 연휴인 3∼5일 56만여 명을 동원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2일 개봉해 누적 관객 수는 69만2549명. 최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에서 만난 임순례 감독은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여서인지 “누군가를 겨냥한 비난보단 정의를 찾으려는 노력과 그 과정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라며 조심스러워했다. ―당시 사건이 안 떠오를 수가 없다. “그냥 옛일을 얘기하려 했다면 다큐멘터리를 찍었겠지. 굳이 따지자면 실제가 6, 허구가 4 정도?” ―처음엔 감독 맡기를 망설였다고 들었다. “이런 민감한 소재를 덥석 물 성격이 아니다. 하하. 어떻게 만들어도 시끄러울 텐데. 근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당시 사실을 밝힌 이들은 진실을 알리려 큰 희생을 치렀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영화로 인해 짊어질 짐은 그에 비하면 하찮은 것이었다. 어떤 특정 사안보다 이를 통해 함께 공감할 보편타당한 얘길 하고 싶었다.” ―이 영화가 전하려는 보편성은 무엇인가.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며 가끔 과연 무엇이 진실인지 혼탁해진다. 그렇다고 거짓이 진실 위에 군림할 순 없다. 극영화가 리얼리티를 확보하는 순간도 그런 진정성이 깔려 있을 때가 아닌가. 한국사회는 참 많은 일이 벌어진다. 어쩌면 20세기 성과주의가 임계치에 다다르며 벌어지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이 작품 역시 그런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함께 고민해보자는 취지였다. 거기에 진실이 담겨 있지 않나.” ―이 박사 캐릭터는 입체적인데, 윤 PD와 심 팀장은 다소 평면적이다. “이 박사는 악인인데, 그런 흑백의 잣대로 접근하고 싶지 않았다. 내적 면모를 드러냄으로써 동전의 양면을 두루 보여주고 싶었다. 반면 나머지 둘은 이 영화의 주인공 아닌가. 관객 입장에선 기본적으로 ‘우리 편’이라고 믿고 가는 측면이 있다. 그 시선이 그들의 고민과 갈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것이라고 봐서 다소 심플하게 표현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102번째 영화 ‘화장’은 지금까지 해오던 것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심정으로 찍었습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차곡차곡 쌓여온 무언가를 돌이켜보는 작업이었다고나 할까요.” 여든을 바라보는 거장의 눈빛이 어찌 그리 새근할 수 있을까. 5일 부산 해운대구 월석아트홀에서 만난 ‘한국의 대표 감독’ 임권택 감독(78)은 영화 101편을 찍었다는 사실을 잊기라도 한 것 같았다. 감독 자신도 “이렇게 관객 반응이 궁금했던 적은 처음”이라면서 “일일이 묻고 싶을 정도”라며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이날 언론에 공개한 ‘화장’은 2004년 이상문학상을 받은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투병하는 아내(김호정)에게 헌신하면서도 젊은 부하 직원(김규리)에게 흔들리는 오상무(안성기)의 내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죽음과 욕망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담았다는 평을 받으며 올해 베니스와 토론토, 밴쿠버 등 여러 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임 감독은 “칸에서도 제의가 왔는데 당시 시간적 제약으로 완성된 편집본을 보내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그간 찍은 영화에선 언제나 ‘한국적인 것’을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어디서 상이라도 받으면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을 거란 욕심도 있었죠. 나이 들어 보니 인생에서 욕심이란 끝이 없어요. 하지만 이번엔 훌훌 털어버렸습니다. 살아온 나이만큼 보이는 세상을 담담하게 담으려 했습니다. 편집도 이전과 달리 아주 젊은 전문가와 함께 공을 들였죠.” 작업은 쉽지 않았다. 임 감독은 “촬영 때 아픈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한 달 정도 앓아누웠다”며 “뭣보다 작가가 만든 문장의 힘을 영상으로 옮기는 게 녹록지 않았다”고 말했다. 차기작에 대해서는 “흥행도 안 되는 감독이 맘대로 찍을 수 있겠냐”며 웃어넘겼다. 이날 기자회견엔 배우 안성기 김규리 김호정 씨도 참석했다. 안 씨는 ‘취화선’(2002년) 이후 12년 만, ‘하류인생’(2004년)에 출연한 김규리 씨는 10년 만에 임 감독과 다시 작업했다. 두 사람은 “안 불러줄까 걱정이지 누구라도 영광스럽게 응할 것”이라며 “촬영이 쉽지 않지만 임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배우고 얻는 게 있다”고 말했다. 한편 시한부 아내 역을 소화한 김호정 씨는 회견 도중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는 2001년 영화 ‘나비’로 스위스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청동표범상(여우주연상)을 받았던 배우. 이후 활동이 뜸했던 이유가 건강 문제였다고 털어놓았다. 김 씨는 “오랫동안 아팠던 기억 탓에 출연을 고사하려다 운명인가 싶어 받아들였다”며 “투병 장면을 찍으며 노출이 상당했지만 영화적 완성도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여겼다”고 말했다.부산=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태용과는 정말 행복합니다. 우리의 만남은 큰 행운이에요. 특히 저에게 그렇죠. 관객들까지 아끼고 성원해 주시니 저의 ‘황금시대’는 지금입니다.” 대륙의 여신은 부산에서도 여신이었다. 김태용 감독(45)과 경기 성남시 분당에 신접살림을 차려 국내 팬들에게 ‘분당댁’으로 불리는 탕웨이(35)는 2일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때부터 가장 주목받았다. 3일 오후 그가 출연한 쉬안화 감독의 ‘황금시대’ 기자회견이 열린 부산 해운대구 우동 월석아트홀엔 몇 시간 전부터 기자들이 몰렸다. “안녕하세요. 탕웨이입니다”란 한국어 인사를 건넨 그는 기자들의 다양한 질문을 여유롭게 받아넘겼다. 특히 최고 관심사인 결혼생활에 대해선 구체적 답변은 피하되 솔직한 감정을 드러냈다. 영화 속 주인공인 여성작가 샤오훙(蕭紅·1911∼1942)이 1930년대 혼란기에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31세에 폐결핵으로 요절한 것과 비교해 가며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란 말을 여러 차례 되뇌었다. 영화 ‘만추’(2010년)에서 배우와 감독으로 만난 새신랑과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하고 같은 영화인으로서도 많은 교감을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인기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엔 잠깐 머리를 긁적인 뒤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라며 말을 골랐다. “전 작품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아이’일 뿐이에요. 1979년생이 애라고 말해서 죄송하지만, 그저 연기를 좋아하는 배우입니다. 제게 영화는 꿈이자 신앙이죠. 영화 현장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팬들의 사랑까지 받으니 더 바랄 게 없어요.” ‘황금시대’에선 작가 샤오훙이 “나는 정치를 모른다. 오직 글쓰기만을 바란다”고 말하는 내용이 나온다. 탕웨이도 2007년 찍은 ‘색, 계’가 정치적 소재를 다뤘다는 이유로 정부의 외압을 받았다. 그는 “배우는 좋은 작품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영화를 찍을 수 있다면 다른 어려움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쉬안화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가 처음부터 탕웨이를 염두에 뒀다. 나 역시 그의 눈빛과 움직임이 샤오훙 역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평가했다. 올해 부산영화제는 과거 신인 여배우들이 노출 경쟁을 벌였던 레드카펫을 폐지하는 등 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다소 산만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개막작인 대만 영화 ‘군중낙원’은 매춘부를 직접적으로 다룬 성인물이었는데 청소년도 볼 수 있는 야외상영을 해 비판을 받았다.부산=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2∼11일 부산의 밤을 환하게 밝힌다. 지난해보다 11편이 늘어난 79개국 314편이 상영된다. 지난달 25일 시작된 온라인 예매에서 개막작인 ‘군중낙원’(대만·도제 니우 감독)과 폐막작 ‘갱스터의 월급날’(홍콩·리포청 감독)은 각각 2분 32초, 5분 58초 만에 매진됐다. 거장의 신작을 소개하는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초대된 △쉬안화 감독의 ‘황금시대’(탕웨이가 나온다) △임권택의 ‘화장’ △장이머우의 ‘5일의 마중’ △모흐센 마흐말바프 ‘대통령’의 표도 순식간에 동이 났다. 가장 인기인 개·폐막작과 갈라 말고 어떤 작품에 관객이 몰렸을까. 영화제 사무국의 도움을 얻어 예매 마감속도를 기준으로 7편을 골랐다. 거장의 신작이나 해외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작품이 주를 이뤘다.○ 언어와의 작별(프랑스)=프랑스 누벨바그의 상징인 장 뤼크 고다르 감독이 올해 선보인 작품. ‘당연하게도’ 실험적이고 난해하다. 해외 평단에 따르면 ‘인간과 예술의 역사에 대한 성찰’이 담겼단다. 3차원(3D)으로 제작됐는데 할리우드의 매끈한 영상과 사운드는 기대하지 말길.○ 마미(캐나다)=1989년생 배우 출신 자비에 돌란 감독의 작품으로 올해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이다. 부모가 문제 있는 자식을 병원에 버릴 수 있는 가상세계가 배경. 정신장애를 지닌 아들과 홀어머니, 의문의 이웃집 여자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을 그렸다.○ 내 남자(일본)=올해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최우수작품상과 남우주연상을 탔다. 데뷔작 ‘귀축대연회’(1997년)부터 단단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구마키리 가즈요시 감독의 영화. 일본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한 남성이 고아가 된 여아를 딸처럼 키우다 관계가 이상야릇해진다고. 주연을 맡은 남녀 배우의 연기가 끝내준다는 소문이다.○ 위플래쉬(미국)=데미언 차젤 감독의 영화로 올해 선댄스영화제 대상작. 유명 드러머가 되고 싶은 음대 신입생과 기이한 교수의 관계가 뼈대인데, 흔한 음악 영재 성장기를 따르지 않는다. 재즈음악의 진수가 가득한 작품으로 특히 마지막 드럼 연주는 영화의 백미란다.○ 사랑이 이긴다(한국)=명문학교 진학에 대한 부담과 부모의 사랑 결핍으로 고뇌하는 여고생과 가족 이야기. 배우 장현성과 최정원이 나오며 1998년 ‘벌이 날다’로 이탈리아 토리노영화제 대상을 받았던 민병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전작 ‘터치’(2012년)에 이어 가족에 대한 진지한 메시지를 담았다.○ 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일본)=여성 감독 가와세 나오미는 1997년 첫 장편 ‘수자쿠’로 칸국제영화제 황금촬영상, 2007년엔 ‘너를 보내는 숲’으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소년…’은 신비로운 섬 아마미의 해변에 떠오른 시체를 우연히 발견한 소년과 소녀가 주인공. 삶과 죽음의 과정을 겪으며 인생의 의미를 깨달아 가는 과정을 담았다.○ 카트(한국)=대형마트 비정규직 사원들이 사측의 해고 통보에 맞서 싸우는 내용. 인권 문제에 관심을 쏟아온 부지영 감독 작품으로 염정아 문정희 김영애 김강우에 ‘한공주’의 천우희도 나온다. 특히 신인배우 도경수가 초미의 관심사. 아이돌 ‘엑소’의 멤버 디오이다. 초기 예매 사이트가 먹통이 됐던 이유가 엑소의 힘이었다는 소문도 돌았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영화 ‘슬로우 비디오’는 한 장의 스틸사진 같아요. 옛 수첩을 꺼내들었을 때 마주한 빛바랜 사진. 아련하지만 반가운,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머금어지는 작품이에요.” 배우 남상미(30)는 ‘의외로’ 말솜씨가 상당했다. 부담스럽지 않은 가벼운 톤인데 정곡을 콕 집는 표현을 찾을 줄 알았다. 다음 달 2일 개봉하는 ‘슬로우 비디오’는 남다른 동체시력(빠르게 움직이는 사물을 식별해내는 능력) 탓에 정상생활이 어려운 여장부(차태현)와 생활고에 허덕이는 첫사랑 수미의 사랑 이야기. 수미 역을 맡은 그는 “(수미에게) 내 몸을 빌려줬다”고 표현했다. ‘측은한 현실도 내려놓고 웃을 줄 아는 친구’라고 했다. ―코미디보단 따뜻함이 살아 있는 영화다. “촬영장에 갈 때마다 가슴이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요즘 다작을 한 편인데 이 작품이 치유제가 됐다. 수미는 사채가 잔뜩 밀린 계약직이란 현실에도 뮤지컬 배우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 긍정의 화신이다. 연기하며 배우는 게 많았다.” ―본인 성격과 잘 맞아 보인다. “최근 참하고 여성스러운 역할을 줄곧 했는데, 원래 성격은 초긍정적이다. 가진 것이 적음에도 주위 사람들 덕에 이만큼 왔다고 생각한다. 20대 후반에 연기가 내 길이 맞나 고민한 적도 있다. 하지만 30대가 되니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 시사회를 보면서도 들떴다.” ―관객이 즐겨야지, 배우가 신나면 어떡하나. “팔불출 같긴 하다. 그래도 배우와 스태프가 느낀 감동이 잘 전해지면 좋겠다. 장부는 세상이 슬로 비디오로 보이는 캐릭터다. 그게 이 영화에 담긴 메시지다.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다들 휴대전화만 들여다보는 삶에서 벗어나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을 보자고 손짓하는. 이 영화가 그런 쉼표가 될 수 있길. 다만 한 장면 한 대사라도.” ―본인에겐 어떤 장면이 그랬나. “길거리에서 전화로 노래 오디션을 보는 신이 그랬다. 뭔가를 간절히 바라는 절박함에 먹먹해졌다. 처음 오디션을 봤을 때의 기억도 떠오르고. 바쁘게 살다 잠깐 숨을 고르며 뒤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최근 드라마 ‘조선총잡이’에선 “바다 끝까지 가고 싶다”란 대사가 탁 가슴에 꽂혔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러고 싶은 순간, 누구나 있지 않나.” ―주로 착한 역할만 해왔다. “운동신경이 좋아서 액션도 잘할 수 있는데. 뭣보다 악역이 너무 탐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악한 인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살인마(하비에르 바르뎀)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태연하게 살인을 저지르는.”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잘 커줘서 고마워.” “이대로만 자라다오.” 요즘 인터넷에선 유독 이런 글이 많이 달리는 배우들이 있다. 김유정 김소현 김새론이 대표적이다. 올해 열다섯, 열여섯이 되며 폭풍 성장해 숙녀 티가 물씬하다. 18일 개봉한 영화 ‘메이즈 러너’와 25일 선보이는 ‘베리 굿 걸’엔 이들에게 모범사례 격인 두 배우가 등장한다. 올해 딱 스무 살인 다코타 패닝과 스물두 살인 카야 스코델라리오. 다코타는 아역 때부터 명성이 자자했고, 카야는 2007년 영국 드라마 ‘스킨스’로 데뷔해 국내에선 배우 김수현이 이상형으로 꼽아 화제가 됐다. 미인을 향한 찬사를 뜻하는 중국 사자성어에 빗대 두 여배우를 비교해 봤다. 》카야 〈 다코타 꽃처럼 아름답기야 막상막하지만, 하얀 피부는 단연 다코타가 우위다. 백인치고도 너무 멀게서 백반증 환자가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너무 어릴 때부터 스타가 돼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않았던 탓일까. 허나 아기 같은 뽀얀 얼굴은 이번 작품의 릴리 역엔 너무나 잘 맞는다. ‘베리 굿 걸’은 고교 졸업식을 앞둔 단짝 릴리와 제리(엘리자베스 올슨)가 우연히 만난 데이브(보이드 홀브록)에게 동시에 마음을 뺏기며 벌어지는 청춘 러브스토리. 다코타는 부잣집에서 잘 자라 예일대 입학을 앞둔 예비 처녀의 명모호치(明眸皓齒·맑은 눈동자와 깨끗한 이) 그 자체다. 남자 경험이 한 번도 없다는 설정도 왠지 믿어주고 싶다. 반면 영국 출신으로 엄마가 브라질 사람인 카야는 아무리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해도 거짓말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심지어 14세 때도 퇴폐적 미모란 평가를 받았다. 애한테 심하다 싶지만 스크린에서 마주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메이즈 러너’에선 정말 이름밖에 기억 못하는 트리사를 맡았는데, 왠지 눈빛은 “나 다 알아”다. 카야 〉 다코타평범한 고교생(베리 굿 걸)과 미로감옥 수감자(메이즈 러너)가 꾸며봤자 얼마나 되겠나. 하지만 낭중지추(囊中之錐·주머니 속 송곳)는 결국 삐져나오는 법. 카야가 그렇다. 청바지에 티 하나 걸쳤는데 168cm의 늘씬함을 숨길 수 없다. ‘메이즈 러너’는 누군가에 의해 기억을 잃은 청년들이 미로의 숨겨진 비밀을 찾아 탈출을 감행하는 내용. 함께 갇힌 배우가 카야 빼곤 모두 남성이다. 반면 다코타는 과감한 장면이 많은데 이상하게 후끈하질 않다. 첫 신부터 시원하게 뒤태를 까더니, 데이브와 콩닥콩닥한 정사신도 펼친다. 아, 근데 왜 우리 딸이 저러면 속상하겠단 생각만 들까. 오히려 절친 제리가 참 묘한 입술을 지녔다. 7월 개봉한 ‘테레즈 라캥’에서 바람난 유부녀 역할을 소화했던 그는 10대 소녀 역인데 교태가 넘친다. 카야 〈 다코타맞다. 그들은 말도 하는 꽃이다. 근데 연기까지 출중하다. 다코타야 여덟 살에 이미 천재 소릴 들었고, 카야는 스킨스에서 불량청소년 연기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냈다. 두 배우는 2012년 영국 영화 ‘나우 이즈 굿’에서 친구로 함께 출연한 적 있다. 다코타는 ‘나우 이즈 굿’ ‘베리 굿 걸’에서 보여주듯 이미 ‘원 톱’으로서도 검증을 끝마쳤다. 연기의 강약도 노련하게 조절해 이미 믿고 보는 배우의 반열에 올랐다. 다만 문근영처럼 나이를 먹어도 앳된 외모 탓에 연기 변신이 쉬워 보이진 않는다. 카야는 강렬했던 데뷔작에 비해 영화에선 인상적이지 않다. ‘메이즈 러너’에서도 다소 천편일률적이다. 이전처럼 발랑 까진 역이나 악역에 도전해보면 어떨까. 앤젤리나 졸리가 될 눈빛을 갖췄는데 너무 심심한 역할만 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미리 말하지만, 솔직히 이런 스타일의 책은 싫어한다. 인생철학이나 자기계발을 다룬 책들은 서점가에서 꾸준히 사랑받지만, 딱히 속 시원한 정답을 들려주는 경우를 그다지 본 적이 없다. 이 책 겉표지에도 나오는 ‘오늘 하루를 잘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따위 잠언이야 누군들 몰라서 실천을 안 하나. 하지만 이 책은 ‘조금’ 결이 다르다. 철학자와 심리학자가 20개의 주제를 놓고 함께 고민했기 때문이다. 사실 철학과 심리학은 우리네 장삼이사에겐 그 밥에 그 나물 같지만, 서로 완전히 다른 분야다. 19세기까진 엇비슷했지만, ‘과학이 인간의 마음을 객관적인 척도로 측정하려고 시도’하면서 두 학문은 서로 다른 길을 갔다. 그런데 이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답을 찾는다? 꽤나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다. 두 ‘조합’은 묘하게 엇갈려서 더 흥미진진하다. 예를 들어, 책 제목이기도 한 ‘최고가 아니면 다 실패한 삶일까’란 명제에 대한 두 학자의 의견을 들어보자. 둘 다 완벽주의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는다는 공통점은 있다. 그런데 심리학자는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노력이니 과정 자체에 만족하라고 조언한다. 반면 철학자는 완벽해질 수 있다는 허상을 떨쳐버리고 그간 자신이 살아온 삶 자체가 자신임을 받아들이라고 제안한다. 어떤가. 최고가 아니어도 좋다고 어깨를 다독이긴 마찬가지인데 시각이 전혀 다르다. 누구 말이 더 끌리는지 판단하는 건 역시 독자의 몫이다. 사실 뭔가 뚜렷한 해결책을 바랐던 이들이라면 이 책 또한 실망스러울 것이다. ‘범인은 바로 너’라고 콕 찍어주는 일은 여기서도 벌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삶을 고민하는 철학과 심리학의 입장을 엿보고 싶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07년 ‘원스’로 화제를 모았던 존 카니 감독의 차기작 ‘비긴 어게인’이 개봉 한 달여 만에 관객 200만 명을 돌파했다.비긴 어게인은 올여름 ‘명량’과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 휩쓸고 간 극장가에서 단연 주목받는 다양성영화다. 블록버스터의 강세가 뚜렷했던 지난달 13일 개봉해 조금씩 입소문을 타더니, 추석이 지난 12일부터 박스오피스 2위로 뛰어올랐다. 》 15일 역대 다양성영화 흥행순위 3위였던 ‘색, 계’(2007년·191만784명)를 제쳤고, 17일 누적 관객이 202만318명을 기록했다. 비긴 어게인은 다양성영화 최대관객 기록에 도전하고 있다. 역대 1, 2위는 2009년 개봉했던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293만4409명)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2004년 일본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243만3298명)이다. 비긴 어게인이 선전함에 따라 다양성영화를 선정하는 기준에도 새삼 관심이 쏠린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에 따르면 다양성영화란 상업영화와 달리 독립된 자본이나 저예산으로 찍은 예술영화와 독립영화를 말한다. 영진위는 2007년부터 다양성영화를 뽑아 지원해 왔다. 다양성영화로 선정되면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 심사비용을 면제받고, 예술영화 전용관에 걸릴 수 있어 안정적 상영 기회를 얻게 된다. 비긴 어게인이 다양성영화로 분류된 데 대해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이 많은 이유는 이 영화가 키라 나이틀리와 마크 러펄로, ‘마룬5’의 보컬 애덤 러빈이란 초호화판 배우들이 출연하는 미국 할리우드 영화이기 때문이다. 제작비도 2500만 달러(약 259억 원)로 190억여 원을 들인 ‘명량’보다 훨씬 많이 들었다. 왜 이런 작품이 다양성영화로 선정됐을까. 다양성영화라고 반드시 저예산 영화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다양성영화를 정의하는 기준은 이름처럼 다양하다. 예술영화나 독립영화 어느 쪽으로건 조건이 맞으면 다양성영화로 분류돼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비긴 어게인은 음악을 다룬 예술영화로 평가받아 다양성영화 자격을 얻었다. 다양성영화가 되려면 개봉관 기준도 충족해야 한다. 200개관이나 하루 840회 이상 상영하는 작품은 신청을 할 수 없다. 비긴 어게인은 185개관(482회)에서 개봉했다. 국내 시장점유율이 1% 이내인 국가의 작품도 다양성영화가 될 수 있다. 보통 한국과 미국 프랑스 일본을 제외한 나라의 영화가 이에 해당한다. ‘색, 계’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영진위 국내진흥부 주성충 팀장은 “이 작품은 대만 자본으로 제작했다는 자료를 제출해 다양성영화 기준을 충족시켰다”고 설명했다. ‘명량’ 같은 대형 배급사들의 작품이 영화 독과점 논란을 일으키는 상황에서, 그나마 작은 영화들을 돕기 위한 다양성영화 혜택에 비긴 어게인 같은 할리우드 영화까지 숟가락을 얹어야 할까. 올해 상반기 화제를 모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편의상 다양성영화로 불렸지만 실제로는 신청하지 않았다. 편장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은 “상영관 확보가 쉽지 않은 저예산 영화들을 좀 더 챙길 수 있는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진위도 이런 현실을 감안해 정책 보완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다큐멘터리란 사람들이 봐야만 하는 것들을 보게 해주는 것입니다.” 최근 방한한 러시아 거장 빅토르 코사콥스키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이렇게 정의했다. ‘60만 번의 트라이’(18일 개봉)와 ‘순천’(25일 개봉)은 딱 그런 작품이다. 허나 같은 장르지만 색깔은 다르다. 60만 번의 트라이가 청춘이란 눈부신 태양의 여명을 담았다면, 순천은 누구라도 책 몇 권은 쓴다는 우리네 부모의 인생 황혼을 끌어안았다.○ 60만 번의 트라이 재일동포 취재를 전담하던 리포터였던 박사유 감독과 재일동포 3세인 박돈사 감독이 공동 연출한 영화로 일본 오사카조선고급학교(조고)의 럭비부를 조명했다. 학교명에서 짐작했겠지만 축구선수 정대세 덕분에 익숙해진 ‘재일 조선인’ 학생들이다. 제목의 60만은 일본에 사는 조선인 수. 트라이는 미식축구 터치다운처럼 상대 진영에 공을 가져가 점수를 따는 걸 뜻한다. 오사카조고는 2010년 일본 최고 고교럭비대회인 하나조노(花園)에서 4강에 들며 현지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영화는 여기서 시작한다. 변변한 샤워장 하나 없고 시의 학교보조금 지원도 끊긴 상황. 그들은 다시 전국우승을 노릴 수 있을까. 1년 동안 카메라에 담긴 부원들은, 진부하나 가장 적확한 표현인 ‘땀과 눈물’을 한없이 쏟아낸다. 정치적 이념이나 민족애 때문에 뛰는 게 아니다. 꿈이 있기에, 함께 부대끼는 게 좋아서, 그저 행복하니까 럭비를 할 뿐이다. 사실 이 작품은 웰 메이드 다큐멘터리에 익숙한 관객들의 성을 채우기엔 짜임새가 헐겁다. 감독의 시선을 너무 대놓고 드러내는 것도 다소 불편하다. 내레이션 역시 굳이 연예인(문정희)이 맡았어야 했나 싶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의 본질인 ‘실제 현장’이 지닌 에너지가 너무나 강렬하다. 필드를 꽉 채우는 경기 자체만으로도 빛을 발한다. 게다가 유쾌한 기운을 내뿜는 후보 ‘황상현’은 유해진에 버금가는 신 스틸러(scene stealer). 영화에 나오는 노사이드(No Side)는 럭비의 경기 종료를 일컫는 용어. ‘편이 없어지고 친구가 된다’는 의미다. 작품을 줄곧 관통하는 주제도 여기에 있다.○ 순천 전남 순천만엔 할머니 어부 윤우숙이 산다. 일흔이 넘도록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억세게 일만 해온 그가 바라는 건 남편의 금주와 자식의 안녕뿐. 하지만 평생 밥벌이에 무심했던 남편은 갈수록 병약해지며 모든 걸 아내에게 의지한다. 할머니는 50년 뱃일에 전국구(온몸)가 아프다며 푸념이 끊이지 않으면서도 남편 뒷바라지에 지극정성인데…. 현각 스님의 구도를 담은 다큐 ‘만행(卍行)―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1997년)를 연출한 이홍기 감독의 ‘순천’은 개봉 전부터 입소문이 난 작품이다. 지난해 한국PD대상 작품상과 한국독립PD상 대상을 받았다. 한국 다큐로는 처음으로 캐나다 몬트리올 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됐다. ‘순천’은 공전의 히트작 ‘워낭소리’를 떠올리게 만든다. 워낭소리에서 최원균 옹이 소달구지를 몰던 모습은 윤 할머니가 조각배 노를 젓는 모습에서 스르륵 겹친다. 큰 욕심도 없이 순박하게 평생을 살아온 이 땅의 아버지 어머니는, 땅을 파건 그물을 던지건 어느 풍광에 담아도 가슴이 먹먹하다. 뭣보다 영화는 순천(順天·하늘의 뜻을 따른다)이란 제목 그대로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카메라는 적당한 거리에서 관여하지 않고, 차분히 절제하며 켜켜이 세월을 쌓는다. 그 속엔 비릿하게 꿀렁이는 활어(活魚)의 정취, 삶과 죽음이 뒤섞이는 생태의 울림이 깃들어 있다. 영화는 묻는다. 저 뉘엿뉘엿 지는 해를 누구라서 붙잡겠는가. 허나 그 터전이 없었다면 우린 존재나 했을까. 생명의 어머니 자연은 그 섭리를 살포시 속삭인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오늘 밤 8시까지 마감 못하면 손가락 하나 자를 수 있어?”팀장 이선과 신입사원 세영은 결재서류를 두고 홧김에 손가락을 건 내기를 벌인다. 그런데 팀장은 세영에 대한 오싹한 소문을 듣는다. 서류를 마무리한 세영의 손엔 가위가 들려 있다….11일 개봉한 영화 ‘마녀’(감독 유영선·청소년관람불가)는 독특한 지점을 건드리는 작품이다. 이 땅에 2500만 명이나 된다는 직장인들이 집만큼 오래 머무는 회사란 공간에 공포를 덧칠했기 때문이다. 가위나 스테이플러, 심지어 머그컵과 연필깎이마저 비릿한 피 냄새를 풍기는 설정은 ‘일상의 섬뜩함’을 전하는 데 단단한 역할을 한다. 제작비 3000만 원을 들인 저예산 영화라기엔 짜임새가 헐겁지 않고, 주인공 세영(박주영)의 서늘한 눈빛도 여운이 짙다.허나 진짜 뒷목 찌릿한 대목은 ‘손가락 내기’가 아니다. 오히려 심장은 극중 사무실의 평범한 대화에서 쿵쾅거린다. 현실이 그렇지 않나. 상사나 동료의 무신경한 언행이 때론 마음을 할퀴는 칼날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20∼40대 직장인 5명에게 ‘상사나 동료가 마녀로 보였던 순간’을 물어봤다. 첨엔 모두 미적거리더니 익명을 보장하자 무섭게 달려들었다. 》 ○ 그 상사 “대학을 나오면 뭐해” A 대리=영화 속 팀장의 막말은 아무것도 아냐. 초등학교, 가정교육까지 들먹이는 상사도 많아. 옆 부서 부장은 명문대 나왔다고 얼마나 거들먹거리는데. 또 연애까지 간섭하는 인간도 있어. 아니 남의 애인이 살을 빼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고. B 사원=우리 팀장은 결재 올리면 일단 불러서 옆에 세워둬요. 10분 넘게 한마디 없이 한숨만 쉬어. 차라리 욕을 하든지, 미쳐버리겠어요. 그러곤 기껏 하는 한마디가 “다시 올려”예요. 가끔 하는 칭찬도 짜증 나. “간만에 제대로 했네”가 뭐야. C 과장=전 직장 선배는 내 듀○ 라이터에 눈독을 엄청 들였어. 담배 피울 때마다 가져가 한참 뒤에 돌려줘. 결국 비슷한 걸 선물로 줬어. 그랬더니 하는 말이 “뭐가 더 비싼 거야?” A 대리=근무시간 잔소리는 일이니 참을 만해. 제발 휴일에 등산 가자고 안 부르면 좋겠어. 이번 추석 때 고향이 같은 과장이 술 먹자고 전화했어. 핑계 대고 안 갔는데, 연휴 끝나고 보니 눈빛이 냉랭하네. D 팀장=쉰 다 된 부장이 요즘 술집 마담한테 꽂혔어. 자꾸 꽃이니 뭐니 선물 배달을 시켜. 여자들이 좋아하는 속옷 스타일이 뭔지도 알아 오래.○ 그 후배 “팀장님, 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B 사원=회식만 잡히면 쏙 빠지는 후배는 정말 얄미워. 누군 좋아서 가나. 근데 한우나 뭐 비싼 거 먹을 땐 와. 걔 외근 핑계대고 피부 관리 받으러 다니는 것도 여직원들은 다 알아. E 대리=신입이 들어왔는데 뭘 시켜도 심드렁한 거야. 심지어 일 마무리 못해서 딴 선배가 야근하는데 퇴근해버려. 어느 날 술 좀 먹였더니, 자긴 여기서 썩을 인재가 아니라나. 6개월쯤 지나 이제 일 좀 한다 싶으니 사표 내더라. A 대리=몇 번씩 기한 어길 땐 환장하겠어. 설명을 해도 알아듣는 거 같지도 않고…. 그래놓고 술자리에선 훌쩍거리며 왜 자기만 미워하냐고 하네. 뭣도 모르는 과장은 나보고 뭐라 그러고.○ 그 동료 “○○ 씨에 대해 들은 얘기가…” D 팀장=팀에 ‘배트맨’이라 불리는 친구가 있어. 영웅이 아니라 박쥐라서. 여기선 후배 모략, 저기선 상사 험담하느라 바쁜 스타일. 첨엔 싹싹해서 다들 좋아했는데, 갈수록 실체를 알게 됐지. 한번은 어느 과장이 처제한데 용돈 주는 걸 보고 원조교제로 소문냈다가 엄청 곤욕 치렀지. E 대리=예전에 사내소문만 듣고 무심결에 말 옮긴 적 있는데, 당사자가 결국 관뒀어. 근데 알고 보니 사실이 아니더라고. 어찌나 미안하던지…. 조직에서 마녀는 사람이 아니라 ‘세치 혀’야. C 과장=영화에서 마녀가 “사랑받는 것들은 다 죽어야 해”라고 말하잖아. 조직에선 결국 업무능력이 선악의 기준이지. 일 잘하면 사랑받고, 못하면 마녀 되는 거야. 진짜 무서운 건 영화가 아니라 현실 같아.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제71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은 스웨덴 영화 ‘비둘기, 가지에 앉아 존재를 성찰하다’가 차지했다. 6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리도 섬에서 열린 폐막식에서 경쟁부문 최고상을 받은 ‘비둘기…’는 스웨덴 노장감독 로이 안데르손(71·사진)이 자국의 현실을 담은 코미디 영화다. 스웨덴 작품이 황금사자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감독상에 해당하는 은사자상은 안드레이 콘찰롭스키 감독의 러시아 영화 ‘더 포스트맨스 화이트 나이츠’가 수상했다.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은 이탈리아 사베리오 코스탄초 감독의 ‘헝그리 하츠’에서 부부로 나온 할리우드의 애덤 드라이버와 이탈리아 여배우 알바 로르바케르가 받았다. 올해 새롭게 신설됐던 오리종티 장편 경쟁부문 대상은 차이타니아 탐하네 감독의 인도 영화 ‘코트’가 차지했다. 이 부문에 진출했던 홍상수 감독의 ‘자유의 언덕’은 수상에 실패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3일 개봉한 ‘타짜-신의 손’(타짜2)이 6일째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며 추석 연휴 200만 명 관객 돌파를 눈앞에 뒀다. 9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타짜2’는 8일까지 누적 관객 약 160만 명을 기록했다. 주말 들어 일일 30만 명을 넘어서더니 추석 당일엔 40만7152명이 관람했다. 이 기세대로라면 9일 200만 명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최민식이 출연해 화제를 모은 할리우드 영화 ‘루시’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타짜2와 같은 날 개봉해 110만 명을 넘어서 2위에 올랐다. 루시는 세계 흥행 수익도 3억 달러(약 3075억 원)를 돌파했다. 3위는 강동원 송혜교가 주연한 가족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으로 8일까지 82만4325명이 관람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의 뒷심이다. 지난달 31일 700만 명을 넘어서며 올여름 ‘명량’에 이어 제2의 승자가 된 ‘해적…’은 추석 연휴 다시 박스오피스 4위로 뛰어올랐다. 8일 현재 총 관객 약 767만 명을 기록했다. 명량은 박스오피스 7, 8위에 머무르며 1724만 명을 넘어섰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조선시대, 전설의 피리 만파식적 반쪽이 사라지자…전우치(EBS 8일 오후 10시 50분) 최동훈 감독. 강동원 김윤석 임수정 유해진 주연. 때는 조선시대. 전설의 피리인 만파식적이 요괴의 손에 넘어가자 신선들은 당대 최고의 도인인 천관대사와 화담에게 도와줄 것을 부탁한다. 어렵사리 요괴를 봉인한 도인들이 만파식적을 둘로 나누어 두 사람에게 맡긴 것. 천관대사의 제자인 전우치가 둔갑술로 왕을 희롱하는 소동을 벌이자 신선들은 화담과 함께 천관대사를 찾아간다. 하지만 천관대사는 살해당하고 만파식적 반쪽은 이미 사라져버렸는데….▼홍콩서 로마로 날아온 쿵푸달인, 폭력배 혼내줘▼맹룡과강(KBS1 8일 밤 12시 50분) 리샤오룽 감독. 리샤오룽, 노라 미아오, 척 노리스 주연. 이탈리아 로마에서 중국식당을 차린 진청화는 폭력조직에 당하다 삼촌에게 도움을 청한다. 이에 당룡이란 쿵푸 달인이 홍콩에서 날아와 폭력배들을 혼내준다. 폭력배 두목은 진청화를 납치해 불법 계약서 서명을 강요하나 이 역시 당룡 덕분에 위기를 모면한다. 폭력배들은 미국과 유럽, 일본에서 무술 고수들을 불러들지만 당룡이 모두 제압한다. 결국 당룡은 최고수인 콜트와 콜로세움에서 피할 수 없는 일전을 벌인다.}

북한 엘리트 남파 요원들에게 맡겨진 뜻밖의 임무은밀하게 위대하게(OCN 9일 오전 8시 40분) 장철수 감독. 김수현 박기웅 이현우 주연. 북한에는 2000 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하는 특수공작부대가 있다. 최고 엘리트 요원 원류환과 그에 못지않은 실력을 지닌 최고위층 간부의 아들 리해랑, 그리고 사상 최연소 남파간첩인 리해진은 이 부대의 전설 같은 존재. 하지만 조국통일이란 사명을 띠고 남파된 이들이 맡은 임무는 어이없게도 달동네 바보와 가수 지망생, 고등학생이다. 시간이 갈수록 달동네 주민들과의 일상에 익숙해지던 셋에게 뜻밖의 임무가 내려지는데….▼풍운아 3명, 만주서 비밀 지도 차지하려고 각축전▼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EBS 9일 오후 10시 50분)김지운 감독. 송강호 정우성 이병헌 주연. 1930년대 무법천지 만주에서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풍운아 3명이 운명처럼 뒤엉킨다. 돈이 되면 누구든 붙잡는 현상금사냥꾼 박도원과 최고가 아니면 참을 수 없는 잔인한 마적단 두목 박창이, 잡초처럼 불가사의한 생명력을 지닌 열차털이범 윤태구가 그들. 이들은 태구가 우연히 열차에서 발견한 비밀 지도를 차지하려 각축전을 벌인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대혼전 속에 과연 최후의 승자는 누구일까.}

칩거하던 관상가, 한양 갔다가 수양대군 역모에 휩쓸려관상(SBS 6일 오후 8시 45분) 한재림 감독. 송강호 이정재 백윤식 김혜수 조정석 주연. 사람의 얼굴만 봐도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명관상가 내경. 깊은 산속에서 아들 처남과 칩거하던 그는 관상에 조예가 있는 기생 연홍의 제안을 받고 한양으로 간다. 기방에서 관상을 봐주기 시작하자마자 용하다는 소문이 저잣거리에 퍼지고, 이를 알게 된 김종서는 내경에게 인재를 등용하는 국사를 도우라는 명을 내린다. 궁에 들어간 내경은 우연한 기회에 수양대군이 역모를 꾀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채는데….▼퇴역장교의 자살 계획과 그의 비밀을 알게 된 모범생▼여인의 향기(EBS 6일 밤 12시) 마틴 브레스트 감독. 알 파치노, 크리스 오도넬, 제임스 레브혼, 가브리엘 앤워 주연. 모범생 찰리는 크리스마스 때 고향에 갈 여비를 마련하려고 시각장애인 퇴역장교인 프랭크를 돌보는 일을 한다. 추수감사절 프랭크는 찰리와 뉴욕으로 데려가 자신의 비밀 계획에 동참시키려 한다. 바로 친형을 방문해 놀라게 해준 다음 아름다운 여성과 하룻밤을 보낸 뒤 자살하려는 것. 영문도 모른 채 뉴욕에 가게 된 찰리는 프랭크 형 집에서 조카를 만나 그가 시력을 잃은 원인을 알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