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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선수 최초로 아시안게임 야구 국가대표팀에 뽑힌 투수 장현석(19·마산용마고)이 한국프로야구에서 뛰는 대신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도전을 택했다. 장현석의 매니지먼트사인 리코스포츠에이전시는 “장현석이 오랜 고민 끝에 국내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 신청서를 내지 않고 MLB에 도전하기로 했다”고 1일 알렸다. 장현석은 매니지먼트사를 통해 “국내 프로야구와 MLB 모두 꿈꾸던 무대였기 때문에 결정하기가 매우 어려웠다”며 “세계 최고 무대에서 뛰고 싶어 MLB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장현석은 9월 15일 열리는 2024 한국야구위원회(KBO)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하지 않고 그에게 관심을 보인 MLB 구단들과 협상할 예정이다. 오른손 투수인 장현석은 키 190cm, 몸무게 90kg으로 시속 150km대의 강속구와 다양한 변화구를 던져 올해 신인 드래프트 최대어로 평가받았다. 장현석은 올해 고교야구 7경기에 등판해 27과 3분의 1이닝을 던졌는데 3승 무패, 평균자책점 0.33의 빼어난 성적을 올렸다. 특히 투구 이닝보다 훨씬 많은 49개의 삼진을 잡았다. 장현석은 아마추어 선수로는 유일하게 9월 개막하는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 엔트리(24명)에 이름을 올렸다. 야구 대표팀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면 장현석은 병역특례를 적용받는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여자 골프 역대 최장인 163주 동안 세계 랭킹 1위를 지켰던 고진영(사진)이 2위로 내려왔다. 지난주 8위였던 김효주도 11위로 떨어지면서 세계 랭킹 톱10에는 고진영만 남게 됐다. 지난달 31일 발표된 여자 골프 세계 랭킹에서 고진영은 랭킹포인트 7.54점으로 2위가 됐다. 지난주 2위였던 넬리 코르다(미국)가 7.75점으로 고진영에 0.21점 앞선 1위로 올라섰다. 이날 프랑스 에비앙레뱅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메이저대회 아문디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코르다가 공동 9위, 고진영은 공동 20위를 하면서 두 선수의 순위가 바뀌었다.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셀린 부티에(프랑스)가 15위에서 4위로 11계단이나 뛰어올랐다. 3위는 리디아 고(뉴질랜드), 5위는 인뤄닝(중국)으로 랭킹 변화가 없었다. 한국 여자 골프는 1년이 채 남지 않은 2024 파리 올림픽 출전권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남녀 선수 각 60명이 참가하는 파리 올림픽 골프에는 한 국가당 남녀 2명씩 출전할 수 있다. 다만 세계 랭킹 15위까지는 최대 4명이 나갈 수 있다. 한국 여자 골프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과 2021년 도쿄 올림픽에 각각 4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하지만 현재 랭킹대로면 내년 파리 올림픽에는 고진영과 김효주 등 2명만 나갈 수 있다. 전인지가 22위, 신지애 25위, 박민지 27위, 최혜진이 30위다. 파리 올림픽 출전권은 내년 6월 24일 랭킹을 기준으로 부여한다. 고진영은 3일부터 나흘간 제주시 블랙스톤 제주(파72)에서 열리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삼다수 마스터스에 출전한다. 고진영이 국내에서 열리는 대회에 출전하는 건 KLPGA가 로컬 파트너로 참여했던 2021년 10월 LPGA투어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이후 22개월 만이다. 고진영은 당시 대회 정상에 오르며 한국 선수의 LPGA투어 통산 200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고진영은 “오랜만에 KLPGA투어에 참가하는 것 자체만으로 기분이 남다르다. 무엇보다 팬분들을 직접 만날 생각에 굉장히 설레고 행복하다”고 말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31일 프랑스 에비앙레뱅의 에비앙 리조트 골프클럽(파71)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메이저대회 아문디 에비앙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에서는 하루 종일 삼색의 프랑스 국기가 휘날렸다. 셀린 부티에(30·프랑스)가 이날 3언더파 68타를 기록하며 최종 합계 14언더파 270타로 대회 정상에 올랐다. 3타 차 단독 선두로 최종 라운드에 나선 부티에는 첫 5개 홀에서 버디 3개를 잡아내며 일찌감치 승기를 굳혔고, 2위 브룩 헨더슨(캐나다)을 6타 차로 여유 있게 따돌렸다. 6타 차 우승은 2015년 리디아 고(뉴질랜드)가 기록한 대회 최다 타수 차 우승과 타이다. 부티에가 챔피언 퍼트를 성공시키자 18번홀 그린을 에워싼 프랑스 관중은 일제히 프랑스 국기를 흔들며 환호했다. 부티에도 시상식 때 프랑스 국기를 몸에 두른 채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췄다. 우승 상금은 100만 달러(약 12억7000만 원)다. 1994년 창설된 에비앙 챔피언십은 프랑스에서 열리는 유일한 LPGA투어 대회다. 2014년 메이저대회로 승격됐다. 부티에는 이 대회에서 우승한 최초의 프랑스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LPGA투어에서 2019년 처음 정상에 올랐던 부티에는 자신의 통산 4번째 우승을 자국에서 열린 메이저대회 우승으로 장식했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부티에는 이민자의 딸이다. 부모가 태국에서 프랑스로 건너왔다. 프랑스 선수의 메이저대회 제패는 1967년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카트린 라코스테, 2003년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현 셰브론 챔피언십) 정상을 차지한 파트리시아 뫼니에르부에 이어 부티에가 세 번째다. 부티에는 “골프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이 대회를 보며 꿈을 키웠다. 에비앙 챔피언십 우승은 내게 전부나 다름없다”며 “내가 우승자 명단에 프랑스 국기를 추가했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내 우승으로 더 많은 프랑스 선수가 같은 무대에서 뛸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 선수 중에서는 김아림이 공동 3위(최종 합계 7언더파 277타)로 가장 높은 순위에 올랐다. 이번 시즌 최고 성적이자 4월 셰브론 챔피언십 공동 4위에 이어 시즌 두 번째 톱10이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뛰는 김수지는 최종 합계 5언더파 279타로 공동 9위를 했다. 세계랭킹 1위 고진영과 KLPGA투어 최강자 박민지는 나란히 공동 20위(최종 합계 2언더파 282타)로 대회를 마쳤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야구선수 시절 투지와 끼가 넘쳤던 ‘오버맨’ 홍성흔(46)은 요즘 ‘스포테이너’(스포츠+엔터테이너)로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특히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 단골손님으로 종목을 넘나들며 얼굴을 비추고 있다. 얼마 전까지 축구와 농구, 골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최근엔 채널A 씨름 예능 프로그램 ‘천하제일장사2’에서 야구팀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그는 “‘몸 쓰는 예능’에 잇달아 출연하다 보니 야구선수 때보다 몸이 훨씬 좋아진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요즘 일주일에 4∼5회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몸무게는 선수 때와 비슷하게 95∼96kg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상체와 하체 등을 고루 단련한다. 가슴 근육이 나오면서 배가 쏙 들어가 보인다”며 “야구만 하고 끝났다면 다른 종목의 재미를 못 느껴볼 뻔했다. 다른 세계를 알아가는 게 무척 재미있다”고 했다. 야구를 할 때도 그는 훈련을 열심히 하는 선수였다. 예능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농구 예능에 출연했을 때 그는 경기 하남에 있는 농구 아카데미에 등록해 하루에 슛을 400개 이상 던졌다. 골프 예능을 찍을 때는 수도권의 한 골프 연습장에서 한 달간 합숙하면서 샷을 연마했다. 씨름 예능 ‘천하제일장사2’를 준비할 때는 아예 경기대 씨름부의 지방 전지훈련에 동행했다. 모텔에서 먹고 자며 조카뻘 선수들과 함께 산을 오르고, 체력 훈련을 하고, 기술을 배웠다. 그는 “스쾃과 데드리프트 운동을 정말 많이 했다”며 “샅바 싸움을 위해 전완근도 집중해서 키웠다”고 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놀랍게 성장한 그는 씨름인들로부터 “생활체육대회 일반인 부문에 한번 도전해 보라”는 말도 들었다. 운동과 함께 그의 건강을 지탱해주는 건 식생활과 명상이다. 그는 아침은 단백질 셰이크, 점심은 야채와 샐러드 등으로 간단히 먹는다. 저녁은 먹고 싶은 것을 편안하게 먹는 편이다. 그는 “모임이나 만남이 있으면 외식도 하지만 아내가 워낙 요리를 잘해 가능한 한 집에서 먹는 편”이라고 했다. 그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15분가량 명상을 하며 자신에게 긍정적인 암시를 준다. 그는 “뭔가 거창한 걸 하는 게 아니라 호흡을 하며 ‘나는 행복하다’ ‘나는 뭐든지 이겨낼 수 있다’ 같은 주문을 건다”며 “하루를 명상과 함께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이 생기고 나 자신이 반듯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은퇴한 뒤 미국으로 야구 연수를 떠난 그는 샌디에이고 산하 마이너리그 팀의 정식 코치가 됐다. 하지만 세계를 덮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2020년 초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 덕분에 그는 결혼 후 처음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는 “지금은 아이들이 어느 때보다 아빠를 필요로 하는 때라 아이들을 돌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했다. 큰딸 화리는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고, 야구를 하는 아들 화철이는 내년에 고교에 진학한다. 그는 “아이들이 조금 더 자란 후 다시 야구계로 돌아가 바닥부터 다시 시작할 생각이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번 투지 있게 부딪쳐 보겠다”고 말했다. 이헌재 스포츠전문기자 uni@donga.com}

야구 선수 시절 홍성흔(46)은 목소리가 큰 포수였다. 투수가 던진 공을 받을 때면 그라운드가 떠나갈 듯이 “나이스 볼”을 외쳤다. 타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멋진 타구를 날린 뒤엔 보란 듯이 ‘빠던(배트 플립)’을 했고, 슬라이딩으로 베이스를 터치한 뒤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포효를 하곤 했다. 그래서 생긴 별명이 ‘오버맨’이다. 항상 투지가 넘쳤던 그는 야구도 잘했다. 1999년 두산에서 입단해 2016년 은퇴할 때까지 통산 타율이 3할이 넘는 0.301이다. 오른손 타자로는 사상 처음으로 2000안타 고지(2046개)에 올랐고, 통산 208개의 홈런과 1120타점을 올렸다. 포수로 2번, 지명타자로 4차례 골든글러브도 수상했다. 그는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출범 40주년을 기념해 뽑은 KBO리그 레전드 40명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라운드 밖에서도 끼가 넘쳤다. 잘생긴 외모의 그는 가무에도 능해 행사 때마다 팬들 앞에서 춤과 노래를 선보이곤 했다. 팬들과 함께 하는 축제 무대인 올스타전은 그를 위한 무대나 마찬가지였다. 2009년 올스타전 때는 금색 가발을 쓰고 나와 팬들을 웃기더니 최다득표로 올스타 무대를 밟은 2010년에는 수염까지 달고 나왔다. 쇼맨십이 강한 그는 2006년과 2010년에는 올스타전 최우수선수(MVP)로도 선정됐다. 홍성흔은 요즘 자신의 캐릭터에 꼭 들어맞는 ‘스포테이너(스포츠+엔터테이너)’로 선수 때보다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투지와 끼로 무장한 그는 특히 스포츠 예능프로그램의 단골손님이다. 얼마 전까지 그는 축구와 농구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데 이어 골프 예능에도 얼굴을 비췄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채널A에서 큰 화제를 모았던 씨름 예능프로그램 ‘천하제일장사2’에서 야구팀의 주역으로 맹활약했다. 그는 “‘몸 쓰는 예능’ 프로그램에 잇달아 출연하다 보니 몸을 만들지 않을 수가 없다”며 “야구선수를 할 때보다 몸이 훨씬 크고 좋아졌다”며 웃었다. 그는 요즘 일주일에 4~5회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야구선수를 할 때와 비슷하게 몸무게는 95~96kg을 유지하고 있다. 한 눈에 보기에도 몸이 훨씬 좋아진 것은 체계적인 부위별 운동 덕분이다. 그는 “야구를 할 때는 야구에 필요한 운동만 했지만 지금은 상체와 하체 등 고루 운동을 한다. 가슴 근육이 나오면서 배가 쏙 들어가 보인다”며 “야구 선수 때와 비교하면 체지방을 빠지고 근육은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야구만 하고 끝났다면 다른 종목들의 재미를 못 느껴볼 뻔했다. 사회생활을 경험하고 공부하는 것도 무척 재미있다”고 덧붙였다. 야구를 할 때도 그는 훈련을 열심히 하는 선수였다. 예능인이 된 지금도 그 모습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는 “내 성격상 장점이자 단점이 중간이 없다는 것이다. 이왕 하기로 했으면 뭐든지 열심히 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고 했다. 스포츠 예능프로그램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준비한다. 농구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그는 경기 하남 미사리에 있는 농구아카데미에 등록해 하루에 슛을 400개 이상 쐈다. 그는 “아무리 예능프로그램이라 하더라도 백업으로 벤치를 지키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그는 주전 포워드 자리를 차지했다. 골프 예능을 찍을 때는 수도권 한 골프 연습장에서 한 달 간 합숙하면서 샷을 연마했다. 90대 후반이던 스코어를 요즘엔 80대 초반까지 끌어내렸다. 최근에는 76타를 친 적도 있다. 드라이버는 온 힘을 다해 때리면 300m를 보낼 수 있지만 안정적으로 250~260m 정도를 친다고 한다. 씨름 프로그램 ‘천하제일장사2’을 준비했을 때는 아예 경기대 씨름부의 지방 전지훈련에도 동행했다. 조카뻘 선수들과 함께 대구 영남대와 공주 공주생명고를 돌며 체력 훈련을 하고 기술을 배웠다. 그는 “어린 선수들과 함께 산도 오르고 웨이트 트레이닝도 했다. 정말 오래간만에 모텔 생활을 했다. 옛날 생각도 나면서 어린 선수들의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는 “씨름은 오른쪽 중심을 잡는 게 아주 중요하더라. 그래서 하체 위주의 스쾃과 데드리프트 운동을 정말 많이 했다”며 “샅바 싸움 역시 씨름의 중요한 부분이다. 샅바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전완근을 집중적으로 키웠다”고 설명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놀랍게 성장한 그는 “생활체육 대회 일반인 부문에 한 번 도전해보라”는 추천도 받았다. 그는 건강을 위해 먹는 것에도 신경을 쓴다. 아침은 아내 김정임 씨가 만든 단백질 셰이크로 간단히 먹는다. 모델 출신인 김 씨는 곡물 등을 넣은 식물성 단백질을 위주로 한 단백질 셰이크를 직접 제조한다. 그는 점심도 야채와 샐러드 등을 중심으로 과하지 않게 먹는다. 대신 저녁은 먹고 싶은 것을 편안하게 먹는 편이다. 그는 “모임이나 만남이 있으면 외식을 하기도 하지만 아내가 워낙 요리를 잘해 가능하면 집에서 먹는 편”이라고 했다. 운동, 식습관과 함께 그의 건강을 지탱해주는 또 하나의 버팀목은 바로 명상이다. 그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15분가량 명상을 하며 자기 자신에게 긍정적인 암시를 준다. 그는 “뭔가 거창한 걸 하는 게 아니라 호흡을 하며 ‘나는 행복하다’, ‘나는 뭐든지 이겨낼 수 있다’ 등등의 주문을 건다”며 “하루를 명상과 함께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이 생기고 나 자신이 반듯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그가 대학생 때 했던 108배의 연장선이다. 경희대 재학 시절 소심한 성격이었다는 그는 한 스님의 조언에 따라 108배를 꾸준히 한 뒤 체력과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그는 “108배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끈기가 없던 내가 유일하게 끈기 있게 한 게 108배였다. 7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108배를 하면서 하체를 키우면서 인내를 배웠다. 지금은 108배 대신 명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누구보다 바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홍성흔이지만 전 세계를 덮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없었다면 그는 여전히 야구장을 누비고 있었을 터였다. 은퇴 후 박찬호의 도움으로 미국 프로야구 샌디에이고 산하로 코치 연수를 떠났던 그는 특유의 성실함과 파이팅으로 샌디에이고 산하 마이너리그 팀의 정식 코치가 됐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리그가 축소 운영되면서 2020년 초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그는 결혼 뒤 처음으로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게 됐다. 그는 “선수 때는 시합을 다녔고, 은퇴 후엔 곧바로 미국으로 연수를 떠나면서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했다”며 “지금은 어느 때보다 아빠가 필요한 때라 아이들을 뒷바라지 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했다. 큰 딸 화리는 대입을 앞두고 있고, 야구를 하는 아들 화철 군은 내년에 고교에 진학한다. 그는 “모처럼 가족과 함께 하는 요즘이 정말 행복하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고향과도 같은 야구를 바라보고 있다”며 “아이들이 조금 더 자란 후 다시 야구계로 돌아가 바닥부터 다시 시작할 생각을 갖고 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번 투지 있게 부딪쳐 보겠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최근 5연패의 수렁에 빠졌던 선두 LG가 천신만고 끝에 가장 먼저 50승 고지에 올랐다. LG는 27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열린 KT와의 방문경기에서 경기 초반 5점차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6-6 동점을 허용한 뒤 8회초 3점을 더하며 9-6으로 이겼다. 최근 5연패 후 첫 승이자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3연패 뒤 첫 승리다. LG는 이달 8일 롯데전에서 승리하며 49승 째를 거뒀다. 하지만 이후 장마와 올스타 브레이크로 여러 경기를 치르지 못했고, 그나마 경기를 한 5경기에서는 모두 졌다. 이 때문에 40승에서 50승이 되는데 19일이나 걸렸다. LG가 50승 고지를 가장 먼저 밟은 건 1995년 이후 처음이다.LG는 2회 KT 이호연에게 선제 홈런을 허용해 선취점을 내줬지만 곧 이은 3회초 KT 선발 쿠에바스를 상대로 빅이닝을 만들어냈다. 오지환의 적시타와 상대 실책, 문보경의 2점 홈런 등으로 대거 6득점한 것. 하지만 전반기 막판부터 상승세를 타고 있는 KT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3회부터 5회까지 매 이닝 1점씩 추격하더니 7회말 2사 1, 2루에서 대타 박병호의 우익선상 2타점 2루타로 동점을 만들었다. 박병호는 KBO 역대 14번째로 1100타점을 달성했다.다시 연패의 그림자가 엄습하려는 순간 문성주가 해결사로 나섰다. 문성주는 1사 1, 2루에서 7-6으로 달아나는 좌익수 앞 적시타를 쳐냈다. 문성주는 이날 5타수 3안타 1타점 2득점으로 팀 공격을 이끌었다. 계속된 1사 2, 3루에서는 김현수가 2타점 적시타를 때렸다. LG는 9-6으로 앞선 9회말 전날까지 2연투 한 고우석을 대신해 함덕주를 마운드에 올려 경기를 마무리했다. 염경엽 감독은 경기 후 “경기 후반 정우영와 함덕주 등 필승조가 마지막 이닝들을 잘 막아주며 승리할 수 있었다. 오늘 승리가 반전을 기할 수 있는 승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롯데는 서울 잠실구장에서 선발 투수 찰리 반즈의 7이닝 1실점 호투와 12안타를 합작한 타선의 힘을 앞세워 두산을 9-1로 대파했다. 2연승을 달린 롯데는 이날 패한 KT를 제치고 이틀 만에 5위에 복귀했다. 이달 들어 11연승 행진을 이어가던 두산은 연이틀 롯데에 덜미를 잡혔다. 팽팽한 투수전이 펼쳐진 한화-키움의 고척 경기에서는 키움이 2-0으로 승리하며 안방 6연패의 사슬을 끊었다. 키움 에이스 안우진은 최고 시속 158㎞의 강속구를 앞세워 8회까지 삼진 10개를 뽑으며 2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7승째를 수확했다. 한화 선발 리카르도 산체스도 7이닝 2안타 4볼넷으로 2실점(1자책)으로 호투했다. 양 팀 선발이 명품 투수전을 펼치면서 이날 경기는 올 시즌 최단인 2시간 12분 만에 끝났다. 역시 에이스들이 맞붙은 창원 경기에서는 NC가 KIA를 4-0으로 꺾었다. NC 에이스 에릭 페디는 7이닝 5안타 무실점 호투로 14승(2패)째를 수확하며 다승 단독 선두를 굳게 지켰다. KIA 선발 양현종은 5와 3분의2이닝 8안타 5볼넷 4실점으로 6패(5승)째를 당했다. 삼성은 대구 안방 경기에서 SSG에 6-5로 승리했다. 삼성 중심타자 구자욱은 3타수 3안타 4타점으로 활약했다. SSG 최정은 9회 삼성 마무리 오승환을 상대로 20호 홈런을 쳐내며 8시즌 연속 20홈런 기록을 세웠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인 이은철(56)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했다. 한국 선수 최초로 올림픽에 5회 연속 출전한 그는 은퇴 후 미국으로 건너가 사업가로 변신했다. 정보기술(IT) 분야가 제2의 인생 무대였다. 중학교 시절 미국으로 사격 유학을 떠나 텍사스루서런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그는 “내성적이었던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게 사격이었고, 그다음 사랑하는 게 프로그램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IT 기업들의 한국 지사장을 지냈고 자신의 회사도 창업하며 사업으로도 성공을 거뒀다. 그랬던 그가 지난해 말 ‘두 번째 은퇴’를 했다.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다시 사격계로 돌아온 것이다. 그는 올해부터 대한사격연맹 경쟁력강화위원장을 맡고 있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선수 및 코칭스태프 선발과 선수들의 국제 경쟁력 향상 방안 등을 책임지는 중요한 자리다. 풍부한 현장 경험에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그는 국제사격연맹(ISSF)에서도 여러 직을 맡았다. 9월 열리는 항저우 아시안게임 기술총괄로 선임됐고, 내년 파리 올림픽엔 심판으로 참가한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면서 나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서”라고 복귀 이유를 밝혔다. 그의 오랜 꿈은 소년소녀 가장을 위한 재단을 만드는 것이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이 계기였다. 그 대회에서 은메달을 땄던 강초현의 존재가 그의 인생에 새로운 목표를 만들어줬다. 그는 “초현이가 당시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딛고 선수 생활을 해 나가는 초현이를 보면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사업으로 크게 성공했다면 이미 꿈을 이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정도까진 되지 않았다. 재단을 만들고 싶은 꿈은 여전히 있다. 다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봉사부터 시작하자는 생각으로 사격계에 돌아오게 됐다”고 했다. 그는 “사격에서 더 이상 재미를 느끼지 못할 때 누군가를 돕겠다는 생각이 나를 다시 움직이는 원동력이 됐다. 오히려 소년소녀 가장들이 나를 살려준 셈”이라고도 했다. 해외를 오가는 바쁜 일정 속에 그는 가벼운 등산으로 몸을 관리한다. 그는 작년까지는 집 근처 서울 강남구 대모산을 자주 다녔다. 최근 경기 용인으로 이사한 뒤엔 광교산을 오르곤 한다. 그는 선수 시절에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 단골 코스이던 서울 태릉선수촌 인근 불암산을 자주 올라갔다. 그는 “일주일에 세 번은 불암산 정상에 올랐다. 하산할 때는 불암사를 들러 단전호흡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그의 오른쪽 손바닥에는 아직도 큰 흉터가 남아 있는데 불암산 등산 때 생긴 ‘영광의 상처’다. 그는 “그날도 불암산을 오르려 했는데 비가 많이 내려 선수촌에서 문을 폐쇄했다. 철조망을 뛰어넘다가 걸려서 오른손을 크게 다쳤다. 그런데 그때도 피를 철철 흘리면서 불암산 정상을 밟고서야 다시 내려와 치료를 받았다. 아마 하늘이 그런 걸 가상히 여겨 올림픽 금메달을 주신 것 같다”며 웃었다. 이헌재 스포츠전문기자 uni@donga.com}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사격 50m 소총 복사에서 금메달을 딴 이은철(56)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정들었던 총을 내려놨다. 어릴 때부터 ‘사격왕’으로 두각을 나타냈던 이은철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를 시작으로 1988년 서울, 1992년 바르셀로나, 1996년 애틀랜타, 2000년 시드니까지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5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했다. 선수 생활 동안 올림픽 금메달 1개, 세계선수권 금메달 2개, 아시안게임 금메달 5개, 아시아선수권 금메달 4개를 획득하며 ‘사격 그랜드슬램’도 달성했다. 2000년 홀연히 사격을 떠난 그는 사업가로 변신했다. 운동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정보통신(IT) 분야가 그의 새 일터였다. 중학교 시절 미국으로 사격 유학을 떠난 그는 현지에서 운동과 학업을 병행했다. 고교 졸업 후엔 선수 생활을 이어가면서 미국 텍사스 루스런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그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게 사격이었다. 사격 다음으로 사랑했던 게 프로그램이었다. 한창 선수 생활을 할 때도 훈련을 마친 뒤 숙소에서 컴퓨터 책을 읽곤 했다”고 말했다. 2000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그는 한 통신장비 회사에 엔지니어로 취직했다. 운도 따랐다. 그의 선수 시절 소속팀은 통신회사인 KT였는데 그 미국 회사는 그가 KT에서 오랫동안 기술자로 일한 걸로 알고 있었다. 대학 시절 배운 관련 지식도 있었기에 그는 무난히 미국 기업에도 적응할 수 있었다. 몇 년 경력을 쌓은 뒤 그는 한국에 진출한 한 미국 벤처회사의 한국 지사장을 맡았다. 그곳에서 그는 회사 매출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능력을 발휘했다.모든 일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기술로 창업을 했다가 큰 성공과 큰 실패를 맛보기도 했다. 이후엔 다시 미국의 한 빅테이터 회사와 블록체인 회사의 한국 지사장을 연달아 맡아 재기에 성공했다. 그랬던 그가 지난 연말 ‘두 번째 은퇴’를 했다. 그동안의 해 온 사업을 모두 접고 다시 사격계로 돌아온 것이다.그는 올해부터 대한사격연맹 경쟁력강화위원장을 맡고 있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선수 및 코칭스태프 선발과 선수들의 국제 경쟁력 향상 방안 등을 책임지는 중요한 자리다.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으로 풍부한 현장 경험과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그는 국제사격연맹(ISSF)에서도 ‘귀하신 몸’ 대접을 받는다. ISSF 소총위원회 위원인 그는 당장 9월 열리는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테크니컬 델리게이션(기술총괄)로 임명됐다. 내년 열리는 2024 파리 올림픽 때는 소총 심판으로 참가한다. 파리 올림픽 출전권이 결린 2023 바쿠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심판위원장으로 선임됐다. 그는 “예전에도 ISSF로부터 직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회사를 오래 비울 수 없어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며 “앞으로 여러 대회에 참가하게 된 만큼 한국 선수들이 심판 판정 등으로 불이익을 받는 일이 절대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잘 나가던 사업을 접고 다시 사격계로 복귀한 이유에 대해 “후배들을 위해서 봉사하고 나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서”라고 했다.세 번째 올림픽 출전이던 1992년 바르셀로나에서 금메달을 딴 뒤 그는 선수에서 은퇴하고 지도자로 변신해 후배들을 도우려 했다. 하지만 사격계에서는 그를 대체할 선수가 거의 없었다. 연맹과 소속팀의 권유로 그는 계속 선수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올림픽 5회 출전이 좋아 보일 수 있지만 스스로는 전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다. 더 이상 사격 선수로서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서 운동선수가 갖춰야 할 날카로움을 잃어버렸다. 내 마음속에 예전 같은 불꽃이 없는데 어린 선수들의 자리를 빼앗으면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그런 그의 마음에 다시금 불꽃을 일으켜 세운 건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이었다. 그 때 소녀 가장으로 은메달을 따며 국민 여동생으로 등극했던 강초현의 존재가 그의 인생에 새로운 목표를 만들어줬다. 그는 “당시 초현이가 집안 형편이 어려운 상황에서 사격을 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딛고 선수 생활을 해나가는 초현이를 보면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IT 관련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 소년 소녀 가장을 돕는 재단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다”고 말했다.그는 “사업으로 정말 크게 성공했다면 이미 꿈을 이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정도까진 이루지 못했다. 여전히 재단을 만들고 싶은 꿈은 버리지 않았다. 다만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봉사부터 시작하자는 생각으로 사격계에 돌아오게 됐다”고 했다. 그는 “따지고 보면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삶의 낙이 없어졌을 때 그런 생각들이 내가 다시 열심히 뛸 수 있는 원동력이 돼 줬다. 거꾸로 소년 소녀 가장들이 나를 살린 셈”이라고 했다. 각종 국제대회와 국내 대회를 오가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그가 체력을 유지하는 가벼운 등산이다. 선수 시절부터 유독 산을 좋아했다는 그는 사업가이던 작년까지는 집 근처이던 서울 강남구 대모산을 자주 다녔다. 최근 경기 용인으로 이사를 간 뒤엔 집 인근의 광교산을 오르곤 한다.그는 선수 시절에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단골 훈련 코스이던 서울 태릉선수촌 인근 불암산을 자주 올라갔다. 그는 “다른 종목 선수들에게 불암산 등반은 무척 힘든 훈련이었지만 사격 선수들은 지구력 강화를 위해 천천히 올라가곤 했다”며 “일주일에 세 번은 불암산에 가서 그 안에 있는 불암사에 들러 단전호흡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그의 오른쪽 손바닥에는 아직도 큰 흉터가 남아 있는데 이 역시 불암산 등산 때 생긴 ‘영광의 상처’다. 그는 “그날도 불암산을 오르려 했는데 비가 많이 내려 선수촌에서 문을 폐쇄했다. 마음먹은 일은 꼭 해내야 했기에 철조망을 뛰어넘다가 걸려서 오른손을 크게 다쳤다. 그런데 그때도 피를 철철 흘리면서 불암산 정상을 밟고서야 다시 내려와서야 치료를 받았다. 아마 하늘이 그런 걸 가상히 여겨 올림픽 금메달을 주신 것 같다”며 웃었다. 선수로서 그의 사격 전성기는 1985년~1988년 즈음이었다. 1988년 한국에서 열린 서울 올림픽 금메달은 당연히 그의 차지인 것처럼 보였다. 당시 그는 올림픽 금메달을 향해 탄산음료는 물론 커피도 입에 대지 않는 수도승 같은 생활을 했다. 그의 모든 생활은 사격에만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기대를 모았던 그 대회에서 그는 충격의 노메달에 그쳤다.4년 뒤인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정반대였다. 그 대회에서 그는 8명이 출전하는 결선에 꼴찌인 8위로 가까스로 진출한 뒤 역전 금메달이라는 반전 드라마를 완성했다. 그는 “돌이켜보면 19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모든 걸 쏟아부은 3년이 이후 10년의 영광을 준 것 같다”며 “지금도 후배들에게는 ‘3년만 모든 걸 포기하고 한 곳에 집중하면 어떤 일이든 성공할 수 있다’고 얘기해 준다”고 말했다. 이헌재기자 uni@donga.com}

‘초보 감독’ 이승엽이 이끄는 두산이 후반기 첫 경기에서 승리하며 역대 팀 최다인 10연승을 달렸다. 두산의 연승 기록에는 올해 두산 유니폼을 입은 ‘복덩이’ 박준영이 있었다. 두산은 21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와의 방문경기에서 선발 투수 알칸타라의 호투와 쐐기 3타점 3루타를 때린 박준형의 활약을 앞세워 5-2로 승리했다. 이달 들어 치른 10경기에서 모두 승리한 두산은 김인식 전 감독 시절인 2000년과 김태형 전 감독 시절인 2018년에 이어 세 번째로 10연승을 작성했다.올해 처음 두산 지휘봉을 잡은 이 감독은 새내기 사령탑으로 역대 4번째로 부임 첫해 10연승을 달성했다. 그에 앞서 감독 첫 해 10연승을 거둔 사람은 천보성 전 LG(1997년), 이희수 전 한화 감독(1999년), 이광은 전 LG 감독(2000년)이 있다.외국인 감독까지 따지면 제리 로이스터 전 롯데 감독이 부임 첫해이던 2008년 11연승을 거둔 바 있다. 두산이 22일 KIA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면 이 감독은 로이스터 감독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두산은 0-1로 뒤진 5회 초 1사 후 호세 로하스가 KIA 선발 산체스로부터 우월 홈런을 쳐 동점을 만들었다. 6회에는 허경민이 2사 후 역전 좌월 솔로 아치를 그렸다. 승부의 쐐기를 박은 선수는 지난 시즌 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으로 NC로 이적한 포수 박세혁의 보상 선수로 두산 유니폼을 입은 박준영이었다. 9번 타자 유격수로 출전한 박준영은 2-1로 앞서던 7회 초 2사 만루에서 KIA 구원 투수 최지민을 상대로 9구까지 끈질긴 승부 끝에 우중간을 가르는 싹쓸이 3루타를 쳐냈다. 박준영은 3루 베이스에서 손으로 하트를 그리는 세리머니를 했고, 승기를 잡은 이 감독은 주먹을 불끈 쥐며 기쁨을 표현했다. 이달 7일 키움전부터 1군에 합류한 박준영은 이날까지 5경기에서 타율 0.467(12타수 7안타) 8타점의 만점 활약을 펼치고 있다. 두산 선발 라울 알칸타라는 6이닝 1실점의 위력적인 투구로 시즌 10승(3패) 고지에 올랐다. 43승 1무 36패가 된 두산은 3위 자리를 굳게 지켰다. 2위 SSG는 잠실구장에서 선두 LG 트윈스를 6-4로 꺾고 승차를 1.5경기 차로 줄였다. SSG는 2-2 동점이던 5회 초 최정의 좌중간 2루타로 한 점 앞서 나간 뒤 최주환의 우월 2점 홈런으로 5-2로 달아났다. 5-4로 쫓긴 7회 초에는 최정이 다시 우익선상 적시타로 스코어를 벌렸다. 9회말 등판한 마무리 서진용은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26세이브째를 따냈다. KT는 대구 원정에서 삼성을 7-2로 꺾고 6위로 올라섰다. 최하위 삼성은 가장 먼저 50패(31승)째를 당했다. 선발 등판 예정이던 외국인 투수 뷰캐넌은 갑작스런 무릎 통증으로 등판하지 못했다. 대신 선발로 나선 장필준은 2회를 버티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KT 선발 쿠에바스는 삼진을 10개나 잡아내며 8이닝을 1실점으로 막고 3승째를 수확했다.4위 NC는 대전 원정에서 에이스 에릭 페디의 역투와 파괴력 넘친 타선의 장타를 묶어 한화 이글스를 9-3으로 대파하고 시즌 40승 고지를 밟았다.롯데는 부산 홈경기에서 키움을 2-0으로 꺾었다. 8연패를 당한 키움은 2009년 기록한 팀 최다 연패(9연패)의 불명예 기록에 몰리게 됐다. 키움 에이스 안우진은 6이닝 2실점으로 비교적 잘 던졌으나 3회말 전준우에게 좌월 2점 홈런을 허용하며 패전 투수가 됐다. 이헌재기자 uni@donga.com}
내년부터 한국 프로야구 1군 리그에도 연장 승부치기 제도가 도입된다. 이에 따라 호우나 지진, 태풍 등 천재지변으로 경기가 중단되지 않는 한 무승부는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0일 이런 내용을 담은 ‘KBO리그·팀코리아 레벨 업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KBO 사무국은 리그 경기 수준과 야구 국가대표팀 전력을 동시에 높이고 야구 저변을 확대할 장기적인 종합대책이라고 설명했다. 큰 줄기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 시행 중인 여러 조치를 국내 프로야구에도 적용하는 것이다. MLB는 올해 연장 승부치기를 도입했는데 정규 이닝(9이닝) 동안 승부가 나지 않을 경우 연장 10회부터는 무사 2루에 주자를 둔 상황에서 공격을 시작한다. KBO 관계자는 “주자를 2루에 둘지, 아니면 1, 2루에 두고 시작할지 등 세부사항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승부에 박진감을 더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다양하게 시뮬레이션을 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도 2군 리그인 퓨처스리그에서는 지난해부터 연장 승부치기를 적용하고 있는데 주자를 1, 2루에 두고 시작한다. MLB가 경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 올해 도입한 피치클록은 내년부터 퓨처스리그에 먼저 도입된다. 올 하반기 KBO는 1, 2군 리그 경기가 열리는 모든 야구장에 피치클록 운영 장비를 설치할 예정이다. KBO는 내년에 퓨처스리그 운영을 거쳐 1군 리그에서도 이른 시일 내에 피치클록을 도입할 계획이다. 야구의 역동성을 살리기 위해 MLB가 올해 채택한 수비 시프트 제한도 내년부터 퓨처스리그에 적용된다. 1군 리그에는 2025년 도입이 목표다. 투수 1명이 최소 세 타자는 상대하도록 하는 규정도 퓨처스리그에 2024년, 1군 리그엔 2025년 도입된다. MLB와 WBC에서는 이미 시행 중인 규정이다. KBO는 로봇 심판이 볼과 스트라이크를 판정하는 ‘볼·스트라이크 자동 판정 시스템’ 도입을 장기적인 안목에서 검토하기로 했다. 도입 여부와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다. KBO는 또 한국 야구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임 감독제를 부활시키기로 했다. 감독을 보좌할 코치도 전임으로 뽑는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16일 끝난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에서 극적인 역전 우승을 차지한 로리 매킬로이(34·북아일랜드)는 최고의 남자 선수 중 한 명이다. 18세에 프로에 데뷔한 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통산 24승을 거뒀다. 이번 시즌에도 두 차례 우승하며 세계랭킹 2위, 페덱스컵 포인트 3위에 올라 있다. 20일부터 나흘간 영국에서 열리는 올해 남자 골프 마지막 메이저대회 디 오픈을 앞두고 매킬로이의 이름이 현지 언론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유독 매킬로이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것은 올해 대회가 잉글랜드 호일레이크 로열 리버풀 골프클럽(파71)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바닷가에 위치한 링크스 코스인 이 골프장은 올해까지 13차례 디 오픈을 개최하는 명문 코스다. 가장 최근 대회는 9년 전인 2014년에 열렸는데 당시 우승자는 25세의 매킬로이였다. 매킬로이는 그해 PGA챔피언십까지 우승하며 25세의 나이에 4차례나 메이저대회 챔피언이 됐다. 그에 앞서 이 기록을 세운 것은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8)와 ‘전설’ 잭 니클라우스(83·이상 미국) 두 명뿐이었다. 하지만 매킬로이가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한 건 그해가 마지막이었다. 매킬로이는 9년 전 좋은 기억이 있는 코스에서 메이저대회 우승 가뭄을 끊어낼 각오다. 스코티시 오픈 우승 후 그는 “경기의 일관성이 그 어느 때보다 좋다. 이제는 메이저대회 우승을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PGA투어 역시 파워 랭킹에서 그를 1위에 올려놨다. 4월 마스터스에서 컷 탈락했던 그는 PGA챔피언십에서 공동 7위, US 오픈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지난해 우승자 캐머런 스미스(호주)가 대회 2연패에 도전하는 가운데 세계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미국)도 우승 후보로 꼽힌다. 한국 선수로는 임성재, 김주형, 김시우, 이경훈, 안병훈, 강경남, 김비오 등이 출전한다. 한편 고진영은 이날 발표된 여자 골프 세계랭킹에서 넬리 코르다(미국)를 0.02점 차로 제치고 자신이 갖고 있는 최장 기간 1위 기록을 162주로 늘렸다. 20일부터 시작되는 그레이트 레이크 베이 오픈은 세계랭킹 포인트를 주지 않는 대회라 고진영은 163주간 1위 자리를 지키게 된다. 2인 1조로 경기를 하는 이 대회에 고진영과 코르다는 모두 출전하지 않는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나는 그냥 동물이야. 근데 얘는 괴물이야.” 유도 국가대표 출신 종합격투기 선수 추성훈(48)이 올 초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아이언맨’ 윤성빈(29)에 대해서 한 말이다. 평생 운동을 하며 살아왔고, 각종 방송을 통해 수많은 스포츠인들을 겪었던 추성훈에게도 윤성빈은 그렇게 특별했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스켈레톤에서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썰매 종목 금메달을 딴 윤성빈은 요즘 ‘건강의 아이콘’으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스켈레톤 슈트 속에 감춰져 있던 그의 탄탄한 육체는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단순히 몸만 좋은 게 아니다. 보통 사람들은 물론이고 엘리트 선수들도 범접하기 힘든 운동 능력까지 갖췄다.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한 그는 요즘 인기 유튜버이자 방송인으로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진정한 피지컬이란 무엇인가’를 말이 아닌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윤성빈을 서울 강남구 올댓스포츠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유튜브 채널 ‘아이언빈’을 개설한 지 1년이 좀 넘었는데 57만 명 이상의 구독자가 생겼다. “선수 때 잘 보여드리지 못한 ‘윤성빈’의 모습을 보여드리려 유튜브를 시작했다. 딱히 인기를 얻으려고 한 건 아닌데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감사하다. 선수 때는 경기하는 모습이 내가 보여드릴 수 있는 전부였다. 요즘은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감춰져 있던 저의 본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무척 재미있다.” ―웃통을 벗고 멋진 몸매를 과시하는 장면이 꽤 있던데…. “사실 벗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그런데 아무래도 운동하는 모습 촬영을 많이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되는 것 같다. 함께 촬영하는 PD가 요청할 때도 있고, 구독자분들이 좋아해 주시기도 하니까(웃음). 개인적으로는 벗은 몸을 딱히 드러내고 싶진 않다.” ―은퇴하고도 여전히 운동으로 시작해 운동으로 마무리하는 하루를 사는 것 같다. “방송이나 유튜브 촬영이 없는 때는 매일 똑같은 루틴대로 지낸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낮 12시쯤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두 시간가량 운동을 한다. 주 6일 헬스를 하는데 월요일엔 가슴과 삼두, 화요일에 등과 이두, 수요일엔 하체와 어깨를 중심으로 운동한다. 목~토요일엔 월~수요일에 했던 걸 반복한다. 일요일엔 예전 동네 친구들과 모여 축구를 한다. 요즘엔 골프에도 재미를 들여 골프 연습장도 꾸준히 간다.” ―“힘들다”, “운동하러 가기 싫다” 등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하더라. “선수 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운동을 하러 가는 건 싫은데 하고 나면 정말 개운하다. 운동을 쉬면 잠시 기분이 좋을지 몰라도 금방 후회하게 된다. 하기 싫은 걸 이기고 견뎌내야 한다. 어릴 때부터 운동 자체를 워낙 좋아했다. 헬스뿐 아니라 다른 스포츠도 다 좋아한다.” ―선수 때 했던 운동과 일반인이 된 지금 하는 운동은 어떻게 다른가. “요즘 하는 웨이트트레이닝 위주의 운동이 딱히 힘들진 않다. 그냥 무거운 기구 좀 드는 정도니까. 선수 때는 정말 힘들었다. 순간적인 스피드를 내기 위한 전력 질주 같은 운동을 많이 했다. 매일매일 ‘오늘만 버티자’는 생각밖에 없었다.” ―올 초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 ‘피지컬100’ 통해 ‘건강의 아이콘’이 됐다. 주변에서 많이 알아봐 주시나. “그렇다. 스켈레톤을 했을 땐 올림픽 때 보여드린 게 거의 전부였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은 스포츠에 관심이 있는 분들뿐 아니라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이 본다. 많이들 좋게 봐주신 것 같다. 그렇다고 딱히 그 프로그램을 위해 운동을 더 열심히 했거나, 건강한 이미지를 만들고자 한 건 아니다. 운동은 그냥 내겐 생활이나 마찬가지다.” ―‘헬창’(헬스를 통해 몸 불리기에 열중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3대 500’(스쾃, 데드리프트, 벤치프레스 중량을 합쳐 500kg의 무게를 드는 것)이 유행인데…. “저는 진짜로 그런 것들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해본 적이 있긴 하다. 잘 기억도 안 나지만 스쾃 240kg, 데드리프트 230kg, 벤치프레스 150kg 정도 들었던 것 같다. 620kg 내외였던 것 같다.” ―무게가 아니면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운동을 하나. “오늘도 할 일을 했다는 자기만족이다. 그리고 몸의 변화다. 선수 때만 해도 객관적으로 좋은 몸은 아니었다. 스켈레톤은 하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상체 운동을 거의 하지 않고 하체만 집중적으로 했다. 은퇴 후 본격적으로 웨이트트레이닝을 한 지 이제 1년이 좀 넘었는데 이제는 상하체 균형이 좀 맞는 것 같다. 시각적으로도 확연히 좋아졌다.” ―해외나 지방 촬영을 갈 때도 운동을 거르지 않나. “해외나 지방을 갈 때 숙소에 웨이트트레이닝 시설이 갖춰져 있는가를 가장 우선적으로 알아본다. 꽤 이름 있는 호텔인데도 의외로 시설이 제대로 안 되어 있는 곳도 있다. 정 안 되면 못하는 거지만 가능한 한 운동은 거르지 않고 하려고 한다.” ―각종 프로그램에 나와 남다른 운동 신경을 자랑했다. 다양한 종목을 접하며 재밌었거나 어려웠던 운동이 있었나. “의외로 수영이 너무 재미있었다. 레슬링도 당하니까 재미있었다. 상대방이 안 아프게 잘해 주셨던 것 같다. 롤러스케이팅은 많이 어려웠다. 그리고 스포츠 클라이밍도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 몸무게를 버텨야 하는 종목들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른 은퇴가 아쉽지는 않나. “썰매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은 맞다. 금메달을 땄을 땐 정말 좋았다. 하지만 그건 모두 흘러간 과거다. 사실 평창이 끝나고 은퇴하고 싶었다. 남은 인생에서 다른 걸 경험해 보고 싶었다. 어쩌다 보니 2022 베이징까지 했지만(12위로 마감) 자연스럽게 썰매에서 떠나게 됐다. 몸이 힘든 건 괜찮은데 정신적으로 힘든 건 회복하기가 쉽지 않았다. 후배 선수들을 열심히 응원하는 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 -유튜버이자 방송인으로 살고 있는 현재 생활에 만족하고 있나. “크게 스트레스 받는 게 없으니까 좋다. 선수 때는 누군가와 경쟁해서 이겨야 했다. 축구하는 걸 좋아하는데 선수 때는 축구를 하면서도 ‘다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먼저 했다. 지금은 ‘다치면 다치는 거지’라는 생각이다. 사소한 데서 오는 느끼는 행복감이 크다.” ―‘몸짱’ 윤성빈의 모습을 보고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다. 건강해지길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운동 팁을 주자면…. “많은 사람들이 빠른 시간 안에 뭔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운동은 꾸준히 하는 게 정답이다. 뻔한 말이지만 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뭐든 꾸준히 하면 결과물이 나온다. 하루 이틀 운동하고 거울을 들여다볼 게 아니다. 시작할 때부터 멀리 보고 꾸준히 운동하면 자신도 모르게 달라진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쉽게 오는 건 쉽게 가기 마련이다.” ―식단 조절은 어떤 식으로 하는지. “딱히 가리지 않고 다 잘 먹는 편이다. 탄산음료나 튀김도 다 먹는다. 먹는 만큼 운동하면 된다. 다만 주중에는 패스트푸드는 잘 먹지 않는다. 치팅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패스트푸드는 일요일에만 먹는 편이다. 그리고 단백질이 많은 닭가슴살을 꾸준히 섭취한다. 맛으로 먹는 건 아니지만 근육을 만드는 데는 확실히 도움이 된다.” ―친구들과 어울릴 땐 주로 어떤 것들을 하나. “나라는 사람 자체가 유흥이나 노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클럽도 가본 적이 없다. 흡연은 하지 않는다. 술은 1년에 한 번 정도 어쩔 수 없을 때 마시는데 그래 봐야 맥주 한 캔 정도다. 술은 칼로리가 있고 술을 마시면 안주도 먹게 되니까 피하게 된다. 그냥 집에서 쉬거나 친구들 만나서 수다를 떨거나 한다.” ―딱히 재미있어 보이진 않는데…. “스스로도 참 재미없게 산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런데 내 주변에는 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뿐이다. 술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저 같은 사람은 운동하고 축구하면서 푼다. 이렇게 재미없게 사는 게 재미있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내줘야 한다. 운동으로 건강을 얻으려면 술을 포기해야 한다. 술도 먹고, 건강도 지킨다? 그건 욕심이다.” ―앞으로의 인생은 어떻게 살 계획인가. “아마 내년 이맘때도 지금처럼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보디빌딩 대회를 나가 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 다시 경쟁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일반인 중에도 정말 몸이 좋은 사람들이 많다. 난 그럭저럭 몸이 괜찮은 사람 중 한 명일 뿐이다. 지금처럼 걱정 없이, 스트레스 받지 않고 꾸준히 운동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살고 싶다.”윤성빈△1994년 경남 남해 출생△남서울중-신림고-한국체대△2012년 스켈레톤 입문△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16위△2016년 2월 IBSF 월드컵 7차 대회 금메달△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금메달△2022년 베이징 겨울올림픽 12위△2022년 5월 유튜브 채널 ‘아이언빈’ 개설△2023년 넷플릭스 ‘피지컬100’ 출연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미국프로농구(NBA)에서 두 차례나 최우수선수(MVP)를 수상한 슈퍼스타 스테픈 커리(35·골든스테이트)가 미국 유명인 골프 대회에서 홀인원을 했다. 커리는 16일 미국 네바다주 스테이트라인의 에지우드 타호 골프코스(파72)에서 열린 아메리칸 센추리 챔피언십 2라운드 7번홀(파3)에서 티샷 한 번으로 공을 홀 안에 넣었다. ‘3점슛의 달인’으로 종종 하프라인 근처에서도 골을 넣곤 하는 커리가 골프에서도 자신의 주특기를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 152야드 거리에서 친 티샷은 홀 약 1m 앞에 떨어져 한 번 튀어 오른 뒤 거짓말처럼 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홀인원을 확인한 커리는 페어웨이를 가로질러 그린까지 전력으로 내달린 뒤 깃대에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쁨을 만끽했다. 그는 “농구장보다 긴 거리를 달려 숨이 차지만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내 생애 두 번째 홀인원”이라며 즐거워했다. 커리는 하루 전 1라운드에서는 6m 거리의 급경사 내리막 퍼트를 성공시키기도 했다. 각 종목 셀럽들이 골프 실력을 겨루는 이 대회는 3라운드 54홀 변형 스테이블퍼드 방식으로 열린다. 매 홀 성적에 따라 앨버트로스 10점, 홀인원 8점, 이글 6점, 버디 3점, 파에 1점을 주고, 더블보기 이하는 2점을 깎는 식이다. 홀인원 한 방으로 단숨에 8점을 더한 커리는 2라운드 현재 50점으로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골프광으로 유명한 커리는 지난해 이 대회에서는 공동 16위를 했다. 지난해 우승은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출신 토니 로모가 차지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팀 감독(53)은 1991년부터 1996년까지 ‘짧고 굵은’ 선수 생활을 했다. 1991년 영국 셰필드 유니버시아드에서 우승했고, 1992년에는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육상 종목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아경기에서도 금메달을 땄다. 하지만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자 미련 없이 은퇴를 선택했다. 겨우 26세 때의 일이다. 그는 “뛰는 게 너무 싫었다. 너무 힘들어서 하루라도 빨리 은퇴하고 싶었다”고 했다. 혹독한 훈련에 그의 몸은 이미 성한 곳이 없었다. 족저근막염부터 아킬레스힘줄 부상, 대퇴부와 고관절 염증 등으로 고생하면서 몇 차례 수술대에도 올랐다. 은퇴 후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그는 운동과는 거의 담을 쌓고 지냈다. 100m 안팎의 짧은 거리도 잘 걷지 않으려 했다. 그는 “운동에 아주 질려 버렸던 것 같다”고 했다. 선수 때 50kg대 후반이던 몸무게가 한창 때는 90kg 가까이 나갔다. 그랬던 그가 얼마 전부터 다시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인생에 새로운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의 인생 버킷리스트는 다시 한 번 42.195km를 완주하는 것이다. 그는 “죽기 전에 마라톤 완주를 다시 한 번 해보고 싶은 꿈이 생겼다. 마라톤이 위대한 종목인 이유는 제 아무리 과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 하더라도 준비가 없으면 절대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35km, 40km를 넘어가면서 가쁜 숨을 몰아쉴 때의 고통과 그 속에서의 희열을 한 번 더 느껴보고 싶다”고 말했다. 최우선 과제는 체중 감량이다. 선수 은퇴 후 반주를 즐기던 그는 2021년 가을부터 술을 완전히 끊었다. 올해부터는 집이 있는 18층을 걸어서 오르고 있다. 황 감독은 10일부터 소속팀을 이끌고 강원 평창 대관령에서 전지훈련을 시작했다. 예전과 달리 선수들과 함께 뛰면서 페이스를 끌어올리고 있다. 현재 80kg대 초반인 몸무게를 70kg대 초반으로 줄여야 풀코스를 뛸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서서히 거리를 늘려가며 뛰고 있다. 음식 조절을 하면서 운동을 병행하면 몸무게는 쭉쭉 빠질 것”이라고 했다. 마음속으로 정한 마라톤 풀코스 복귀 무대는 내년 2월 일본에서 열리는 벳부오이타 마라톤이다. 1992년 2시간8분47초에 골인하며 당시 한국 마라톤의 꿈이던 ‘2시간 10분의 벽’을 깼던 기분 좋은 대회다. 자신의 풀코스 데뷔 무대(1991년)이자 은퇴 무대(1996년)였던 동아마라톤 복귀도 생각하고 있다. 그는 “언젠간 동아마라톤에서 페이스메이커로 뛰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마라톤 완주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그는 “자신의 몸을 보석처럼 다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자신의 몸을 귀하게 여기면서 페이스를 올려야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조급한 마음에 몸을 빨리 굴리려 한다. 그러다 한 번에 망가진다”라며 “마라톤이라는 운동은 한 발 한 발 앞을 향해 단계적으로 가는 운동이다. 꾸준함이야말로 마라토너가 갖춰야 할 가장 큰 덕목”이라고 말했다. 이헌재 스포츠전문기자 uni@donga.com}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팀 감독(53)의 첫 풀코스 마라톤 완주는 1991년 3월에 열린 제62회 동아마라톤이었다. 소속팀 선배 이창우의 페이스메이커로 출전한 그 대회에서 그는 2시간12분35초로 깜짝 3위를 차지했다. 이 대회가 그의 인생은 물론 한국 마라톤, 더 나아가 한국 육상의 역사를 바꿔놓았다. 첫 풀코스 도전에서 3위를 차지한 그는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자신감을 얻었다. 단숨에 한국 마라톤의 ‘간판’으로 떠오른 그는 그해 7월 영국 셰필드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에서 2시간12분40초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후 황영조의 가는 길엔 거칠 것이 없었다. 이듬해인 1992년 2월 일본에서 열린 벳푸오이타 마라톤에서 그는 2시간8분47초에 골인하며 당시 한국 마라톤의 꿈이던 ‘2시간 10분의 벽’을 깼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그해 8월 9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몬주익 언덕을 넘어 올림픽 금메달(2시간13분23초)을 따냈다. 8월 9일은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생이 일장기를 달고 마라톤을 제패했던 날이기도 했다. 마침 경기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두 마라톤 영웅은 서로를 끌어안았다. 그는 이후부터 ‘몬주익의 영웅’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성기는 길지 않았다. 1994년 일본 히로시마 아시아경기에서 다시 금메달을 딴 기쁨도 잠시. 혹독한 훈련과 지옥 같은 레이스가 이어지며 그의 몸은 이미 성한 곳이 별로 없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대표 선발전으로 열린 제67회 동아마라톤이 그의 은퇴 무대가 됐다. 26km 지점에서 발바닥이 찢어졌고, 거의 걷다시피 29위로 겨우 골인했다. 3명만 출전할 수 있는 올림픽에 갈 수 없게 되자 그는 미련 없이 은퇴를 선택했다. 그의 나이 겨우 26살 때였다. 하지만 짧고도 굵었던 6년간의 활약만으로도 그는 여전히 대한민국 육상 역사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너무나 이른 은퇴가 아쉽지는 않았을까. 그는 “그동안 뛰는 게 너무 싫었다. 너무 힘들어서 하루라도 빨리 은퇴하는 게 목표였다. 그 힘든 것이 너무 가혹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은 날 보고 ‘타고난 천재’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한 노력을 알면 그런 얘기를 할 수 없을 것이다. 매일 훈련을 할 때마다 불구덩이 지옥에 들어가는 것처럼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사선을 넘나든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보통 선수들이 느끼는 고통지수가 1이라고 하면 나는 그걸 10까지 올렸다. 7, 8까지만 가도 죽을 판인데 그걸 10까지 올리려 했다. 지옥의 불구덩이가 매일 눈앞에 왔다갔다했다”고 말했다. 악조건 속에서 치러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당시 대회가 열린 바르셀로나는 마라톤을 뛰기엔 적당하지 않은 섭씨 30도 안팎의 기온 속에서 치러졌다. 더구나 결승선을 앞둔 몬주익 언덕은 서울 남산과 비슷한 급오르막이었다. ‘죽음의 언덕’으로 불린 몬주익 언덕에서 그는 오히려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며 뒤따라오던 모리시타 고이치(일본)를 따돌렸다. 그는 “평소 극한의 고통을 이겨왔다. 더운 날씨와 오르막 난코스를 넘을 수 있었던 것도 그런 환경에서 자신을 단련해 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은퇴 후 지도자가 된 후 그의 일상은 선수 때와는 180도 달라졌다. 선수 시절 그는 뛰면서 얻을 수 있는 병이나 질환은 거의 다 겪었다. 발톱이 10개 다 빠지기도 했고 족저근막염부터 아킬레스건 부상, 대퇴부와 고관절 염증 등으로 고생했다. 몇 차례 수술대에도 올랐다. 운동에 질려버린 탓인지 그는 운동과 거의 담을 쌓고 지냈다. 100m 안팎의 짧은 거리도 잘 걷지 않으려 했다. 행사 등을 통해 가끔 5km나 10km 마라톤에 출전했지만 기본 실력으로 가볍게 뛰었다. 선수 시절 50kg대 후반이던 몸무게가 무지막지하게 늘었다. 예전에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엄청난 훈련량 때문에 살찔 겨를이 없었지만 이제는 먹는 대로 살로 갔다. 몇 해 전까지 몸무게가 90kg에 육박하기까지 했다. 그랬던 그가 얼마 전부터 다시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인생에 새로운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그의 인생 버킷리스트는 다시 한 번 42.195km를 완주하는 것이다. 그는 “죽기 전에 마라톤 완주를 다시 한 번 해보고 싶은 꿈이 생겼다. 마라톤이 위대한 종목인 이유는 제 아무리 과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 하더라도 준비가 없으면 절대 허락하지 않는 종목이기 때문”이라며 “30km를 넘어 35km, 40km를 넘어가면서 가쁜 숨을 몰아쉴 때의 고통과 그 속에서의 즐거움을 한 번 더 느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선수 시절에는 1등을 위해서 뛰었다면 지금은 완주 자체를 위해서 뛰어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최우선 과제는 체중 감량이다. 선수 은퇴 후 반주를 즐기던 그는 2021년 가을부터 술을 완전히 끊었다. 급하게 몸무게를 줄이기보다는 천천히 몸을 만들고 있다. 올해부터는 집이 있는 18층을 걸어서 오르고 있다. 황 감독은 10일부터 소속팀을 이끌고 강원도 평창 대관령에서 전지훈련을 시작했는데 이 역시 몸 관리에 큰 도움이 된다. 그는 “마라톤 풀코스 완주를 하려면 먼저 자기 몸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지금 몸으로 풀코스를 뛰면 무릎 등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며 “천천히 체중을 줄이면서 거기에 맞게 페이스를 맞춰가고 있다”고 말했다. 몸무게가 70kg대 초반은 되어야 풀코스를 뛸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현재 몸무게는 80kg대 초반이다. 그는 “이제 서서히 거리를 늘려가며 뛰고 있다. 이런 식으로 운동을 병행하면 몸무게는 쭉쭉 빠질 것”이라고 했다. 마음속으로 정한 마라톤 풀코스 복귀 무대는 내년 2월 일본에서 열리는 벳부오이타 마라톤이다. 이 대회는 그가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2시간 10분대 벽을 깼던 기분 좋은 대회다. 그는 “날씨나 평탄한 코스 등을 고려해서 벳부오이타에서 뛰어보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동아마라톤 코스도 세계 최고의 코스 중 하나다. 당장 내년은 아닐 수 있지만 동아마라톤 무대에도 복귀하고 싶다. 내 데뷔전과 은퇴전을 치렀던 동아마라톤에서 언젠가 페이스메이커로 뛰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마라톤 풀코스 완주는 많은 사람들의 버킷리스트이기도 하다. 마라톤 완주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팁을 달라는 요청에 그는 “자신의 몸을 보석처럼 다뤄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보석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에게 몸은 보석이나 마찬가지”라며 “자신의 몸상태에 맞게 몸을 귀하게 여기면서 페이스를 올려야 한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조급한 마음에 몸을 빨리 굴리려 한다. 그러다가 한 번에 망가지기 일쑤”라고 했다. 그는 또 “마라톤이라는 운동은 한 번에 멀리 가는 점프 운동이 아니다. 한발 한발 앞을 향해 단계적으로 가는 운동이다. 차근차근 준비하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쉬어야 한다. 꾸준함이야말로 마라토너가 갖춰야 할 가장 큰 덕목”이라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국내 야구팬들이 클레이턴 커쇼(LA 다저스)가 던지는 공을 김하성(샌디에이고)이 치는 모습을 눈앞에서 직접 볼 수 있게 됐다. 내년 서울에서 사상 처음으로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정규리그 공식 경기가 열리기 때문이다. MLB 사무국과 선수 노동조합은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가 내년 3월 20, 21일 서울에서 2024시즌 개막전을 벌인다고 13일 발표했다. 경기장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한국 유일의 돔구장인 서울 고척스카이돔이 유력하다. ‘서울 시리즈’라고 명명된 두 팀의 2연전은 MLB 역사상 역대 9번째 해외 개막전이다. MLB는 ‘야구의 세계화’를 위해 북미를 벗어난 전 세계 곳곳에서 정규리그를 진행하는 ‘월드 투어’를 추진해 오고 있다. MLB 공식 개막전이 북미를 제외한 지역에서 열리는 건 스즈키 이치로(50)의 은퇴 무대였던 2019년 일본 도쿄 시리즈(오클랜드-시애틀) 이후 5년 만이다. 서울 시리즈에서 맞붙는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소속의 두 팀은 ‘스타 군단’으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샌디에이고에는 팀의 주축으로 성장한 내야수 김하성을 비롯해 매니 마차도, 후안 소토,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 등 강타자가 즐비하다. 에릭 그룹너 샌디에이고 구단 최고경영자는 “한국은 풍부한 전통과 열정적인 팬들, 그리고 재능 있는 선수들이 있는 위대한 야구의 나라”라며 “역사적인 2024 서울 시리즈를 통해 지구촌 야구 홍보대사로 나서게 돼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김하성은 구단 소셜미디어를 통해 “(2021년) 처음 샌디에이고에 입단했을 때 한국에서 샌디에이고와 함께 MLB를 대표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며 “샌디에이고 유니폼을 입고 한국에서 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팀 동료와 코칭스태프를 우리나라에 초대하고 좋은 기회를 같이 경험할 수 있게 돼 저에게 무척 특별하고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인 메이저리그 개척자 박찬호(은퇴)가 몸담았던 다저스는 국내 팬들에게는 가장 친숙한 MLB 팀 중 하나다. 박찬호를 시작으로 최희섭(KIA 타격코치), 서재응(KIA 투수코치), 류현진(토론토) 등이 푸른색 다저스 유니폼을 입었다. 다저스는 최근 들어 매년 좋은 성적을 올렸고, 뛰어난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부활한 왼손 에이스 커쇼를 비롯해 무키 베츠, 프레드 프리먼, J D 마르티네스 등이 팬 투표 올스타에 선정됐다. 다저스는 올해도 51승 38패(승률 0.573)로 서부지구 선두를 달리고 있다. 내년 MLB 월드 투어는 서울 시리즈를 시작으로 4월 28, 29일 멕시코 시리즈(휴스턴-콜로라도), 6월 9, 10일 런던 시리즈(뉴욕 메츠-필라델피아)가 이어진다. 시범경기 기간인 3월 10, 11일에는 도미니카공화국 산토도밍고에서 보스턴과 탬파베이가 맞붙는 도미니카공화국 시리즈가 열린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한국프로야구에서 통산 328개의 홈런을 기록한 심정수(48)의 둘째 아들 심종현(케빈 심·21·사진)이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애리조나 유니폼을 입게 됐다. 애리조나 구단은 11일 MLB 드래프트 2일 차 지명에서 심종현을 5라운드 전체 148순위로 뽑았다. MLB.com은 “심종현은 KBO리그에서 15년 동안 300홈런 이상을 터뜨리며 ‘헤라클레스’라는 별명을 가진 유명 선수의 아들”이라며 “심종현 역시 대학에서 남다른 장타력을 과시했다”고 전했다. 심종현은 드래프트 콤바인에서 탁월한 운동능력으로 일찌감치 스카우트들의 눈도장을 받았다. 심종현은 타구 속도 시속 153km 이상의 하드 히트(hard hit·16개)와 정확한 타격을 의미하는 스위트 스폿(sweet spot·16개), 그리고 400피트(약 122m) 이상의 장타(4개) 개수 등에서 모두 1위에 올랐다. 미국 샌디에이고대 1루수와 외야수로 뛴 그는 지난 2년간 타율 0.295, 25홈런, 97타점을 기록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선수 때 연승도 좋았지만 감독으로 경험하는 연승은 더 기분 좋네요.” 프로야구 두산 이승엽 감독(사진)은 9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키움과의 안방경기를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두산은 이날도 키움을 9-2로 대파하고 최근 연승 기록을 ‘8’로 늘렸다. 이달 들어 1일 롯데전을 시작으로 이날 키움전까지 8번 싸워 8번 모두 이겼다. 선발 최원준이 5이닝 2실점으로 호투한 가운데 양석환(13호)과 박준영(1호) 등이 홈런포를 쏘아 올리며 주말 3연전을 모두 쓸어 담았다. 8연승은 이 감독 부임 후 최다 연승이다. 두산이 8연승을 거둔 것은 2018년 6월 이후 5년 1개월 만이다. 이번 시즌 개막 전 하위권으로 분류됐지만 5할대 승률을 유지하던 두산은 6월 하순부터 힘이 떨어진 듯했다. 6월 말까지 33승 1무 36패(승률 0.478)로 6위에 머물렀다. 가장 큰 반전의 계기는 새 외국인 투수 브랜든 와델(등록명 브랜든)의 합류다. 잇단 부상 속에 2경기밖에 등판하지 못한 딜런 파일을 방출한 두산은 지난해 대체 외국인 투수로 데려왔던 왼손 투수 브랜든을 다시 영입했다. 대만프로야구 라쿠텐에서 뛰던 브랜든은 이후 알칸타라와 함께 두산의 강력한 ‘원투 펀치’를 형성하고 있다. 브랜든은 지난달 24일 키움전을 시작으로 3경기에 등판해 1승 1패 평균자책점 0.90을 기록 중이다. 두산 관계자는 “브랜든의 투구를 보고 야수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 정도 투수면 ‘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전했다. 두산은 현재 외국인 투수 2명에 국내 선발 곽빈, 최원준, 김동주 등으로 탄탄한 선발진 구성을 마쳤다. 김명신, 정철원, 이영하, 박치국, 최승용 등이 버티는 중간 계투진도 짜임새가 좋다. 시즌 초 부진했던 외국인 타자 호세 로하스도 2군을 다녀온 후 살아나고 있다. 이날 3번 타자로 나선 로하스는 1회말 1사 3루에서 1루수 앞 땅볼로 첫 타점을 올린 데 이어 4회에는 적시타로 타점을 추가했다. 최근 10경기 타율은 3할을 훌쩍 뛰어넘는다. 투타가 안정되면서 수비진의 집중력도 좋아졌다. 개막 후 66경기에서 60개의 실책을 기록하며 팀 최다 실책 3위였던 두산은 최근 12경기에서는 단 한 개의 실책도 없었다. 두산은 11∼13일 2위 SSG와의 3연전을 끝으로 전반기를 마무리한다. 이 감독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전반기 남은 경기에서 총력전으로 가능한 한 많은 승수를 벌어 두고 싶다”고 말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팔색조’ 조계현 한국야구위원회(KBO) 전력강화위원장(59)은 ‘우승 복’이 많은 사람이다. 해태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한국시리즈 정상에 5번 올랐고, 선수 시절 마지막 해인 2001년 두산에서 여섯 번째로 우승했다. 지도자가 된 후에도 삼성 2군 코치 시절 2번, KIA 코치로 한 차례 우승했다. 한국 야구대표팀이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는 투수 코치로 힘을 보탰다. 성공적인 야구 인생을 살았지만 대신 건강을 잃었다. 이기면 좋아서 한 잔, 지면 졌다고 한 잔, 경기 내용을 복기하면서 또 한 잔씩 했다. 담배도 입에 달고 살았다. 승부 세계의 스트레스까지 쌓였으니 몸이 버티질 못했다. KIA 수석코치이던 2017년 1월 1일은 그가 다시 태어난 날이다. 팀의 스프링캠프 출발을 앞두고 그는 금주와 금연을 선언했다. 생존을 위해 내린 결심이었다. 그는 “건강검진 결과도 좋지 않았는데 거울을 보다 깜짝 놀랐다. 생기 없이 까만 얼굴은 죽어 있는 사람 같았다”고 했다. 금주와 금연으로 다시 태어난 후 새로운 인생 2막이 열렸다. 그해 KIA가 다시 우승을 차지한 후 그는 프런트의 수장인 단장으로 임명돼 2021년까지 일했다. 작년부터는 협성대 에이블아트·스포츠학과 특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스타 교수님 강의라 인기도 많다. 그는 “어린 학생들과 함께 얘기하고 교감하는 게 너무 재미있다. 강의가 있는 수요일이 너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그는 또 KBO 재능기부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전국을 돌며 유소년 선수들에게 재능기부를 한다. 올 초에는 KBO 전력강화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다. 9월 열리는 항저우 아시아경기 대표 선수 선발부터 한국 야구 국제 경쟁력 강화까지 맡은 중요한 자리다. 대한민국국가대표선수회에서 하는 봉사활동에도 열심이다. 그는 “최근 들어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 새로운 걸 배우고 접하는 게 무척 즐겁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바쁘게 살려고 한다”고 말했다. 요즘 그의 건강을 뒷받침하는 두 가지는 등산과 골프다. 코치 시절부터 가까운 산을 오르며 머리를 식히곤 했던 그는 요즘도 집에서 가까운 서울 아차산이나 용마산을 자주 오른다. 시간이 좀 더 있을 때는 관악산이나 도봉산도 간다. 그는 “좋아하는 야구를 생각하면서 혼자 묵묵히 걷는다. 등산은 내게 힐링”이라고 했다. 최근에는 골프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파란 하늘을 공이 가로지를 때의 시원함과 통쾌함이 매력이라고 한다. 얼마 전에는 처음으로 싱글(70대 타수)도 쳐 봤다. 그는 “술과 담배를 하지 않으니 근력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몸으로 느낀다. 힘을 써야 할 때 여전히 예전의 파워가 나온다”고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스트레칭도 거르지 않는다. 침대 위에서 이런저런 동작을 하면서 몸을 풀어주면 하루를 보다 상쾌하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그는 “힘과 열정이 있으니 바쁘게 살게 된다. 고마운 야구 덕분에 내가 이곳까지 오지 않았나. 재능기부든 봉사활동이든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는 언제나 달려갈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헌재 스포츠전문기자 uni@donga.com}

선수 시절 초반 그의 별명은 ‘싸움닭’이었다. 상대 타자가 누구건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자신의 공을 믿고 공격적으로 타자를 밀어붙였다. 30대가 넘어가면서 그는 변화를 꾀했다. 패스트볼 위주로 윽박지르는 스타일에서 다양한 변화구와 경기운영 능력을 활용하는 패턴으로 바꿨다. 이후 그의 이름 앞에는 ‘팔색조’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조계현 한국야구위원회(KBO) 전력강화위원장(59)은 ‘실력’이 뛰어난 선수였다. 전성기를 보낸 해태 타이거즈 시절부터 은퇴를 한 두산 베어스 시절까지 13시즌 동안 320경기에 출전해 126승 92패 17세이브 평균자책점 3.17을 기록했다. 1993년과 1994년엔 다승왕을 했고, 이듬해인 1995년에는 평균자책점 1위를 했다. 통산 64경기를 완투했고, 17경기에선 완봉승을 거뒀다. 그는 ‘운’이 무척 좋은 선수이기도 했다. 해태에 입단한 1989년에 팀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다. 선수 생활의 마지막이었던 2001년에는 두산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는 그는 남들은 한 번도 하기 어렵다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여섯 번(해태 5번, 두산 1번)이나 경험했다. 지도자가 된 후에도 여전히 ‘우승 복’이 있었다. 삼성 2군 코치 시절 2번 우승했고, KIA 수석코치로 일하던 2017년에도 또 한 번 우승했다. 그리고 한국 야구 역사에 영원히 기억될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그는 투수 코치로 9전 전승 금메달에 기여했다. 조 위원장은 “큰 경기에 운이 좀 따르는 편이다. 큰 경기라고 해서 쫄거나 긴장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며 웃었다. ‘싸움닭’의 모습 그대로다. 다만 그가 선수 및 지도자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는 동안 포기 또는 방치한 게 있다. 바로 ‘건강’이었다. 그는 타고난 재능을 바탕으로 쉽고 편하게 야구를 했다는 오해를 많이 받는다. 하지만 그의 야구 인생은 수면 위에서는 편안해 보이지만 물 아래에서는 쉬지 않고 발을 휘젓는 백조와도 같았다. 불같은 강속구의 시절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어깨와 팔꿈치 상태가 예전 같지 않자 그는 생존을 위해 변화구 투수로 변신해야 했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변화구 숫자를 늘리다 보니 ‘팔색조’가 됐을 뿐이다. 그는 “공이 빠르지 않으니까 잔수만 늘었다. 운영으로 이겨내야 하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을 제대로 못 자는 날이 많았다”며 “경기를 마치고 나면 그날 경기 내용이 계속 머릿속에서 돌고 또 돌았다. 그걸 잊고 잠들기 위해 술을 마셨다. 그러다가 좋지 않은 습관이 돼 버렸다”고 했다. 지도자가 된 뒤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수단 관리부터 감독과 선수단의 가교 역할까지 신경 쓸 게 너무 많았다. 이기면 좋아서 한 잔, 지면 졌다고 한 잔, 경기 복기하면서 또 한 잔… 그렇게 술과 담배, 스트레스가 쌓여 갔다. KIA 수석코치였던 2017년 1월 1일은 그가 다시 태어난 날이다. 팀의 스프링캠프 출발을 앞두고 그는 모든 사람들 앞에게 금주와 금연을 선언했다. 한 해 전 겨울 받았던 건강검진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검진 결과 면역력이 크게 저하되어 있었다. 병이 발병한 건 아니지만 어떤 병이라도 걸릴 경우엔 그 결과가 상당히 치명적일 수 있었다. 건강검진을 떠나 그는 거울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생기 없이 까매진 얼굴이 떠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죽어 있는 얼굴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단호하게 실천하려 했다”며 “처음엔 쉽지 않았다. 경기 후 집에 돌아오면 금단 현상에 시달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맑은 정신으로 야구를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해 KIA는 모처럼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이전까지 술과 담배, 그라운드가 인생의 모든 것이었다면 금주와 금연으로 다시 태어난 후 그의 인생 2막은 이후 좀 더 다채로워졌다. 2017년 우승 후 그는 KIA 단장으로 선임돼 2021년까지 프런트의 수장으로 일했다. 2022년부터는 협성대학교 에이블아트·스포츠학과 특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올해는 일주일에 한 차례 티볼과 게이트볼, 파크 골프 등 뉴 스포츠에 관한 수업을 한다. 야구 선수 출신인 만큼 티볼은 실기 수업으로도 진행한다. 스타 교수님 강의인지라 인기도 많다. 그는 “처음에는 교수님 소리가 낯설기도 했지만 어린 학생들과 함께 얘기하고 교감하는 게 너무 재미있다. 수업이 있는 수요일이 너무 기다려진다. 다행히 학생들도 내 수업에 들어오는 걸 너무 좋아해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KBO 재능기부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전국 각지를 돌며 유소년 선수들에게 재능기부를 한다. 올 초에는 KBO 전력강화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다. 9월 열리는 항저우 아시아경기 대표 선수 선발부터 한국 야구 국제 경쟁력 강화까지 모두 관할하는 중요한 자리다. 대한민국국가대표선수회에서 하는 봉사활동에도 열심이다. 그는 “지금까지 야구 선수 및 지도자로 외길을 걸어왔는데 최근 들어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 새로운 걸 배우고 접하는 게 무척 즐겁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바쁘게 살려고 한다”고 말했다. 요즘 그의 건강을 뒷받침하는 두 가지는 등산과 골프다. 코치 시절부터 가까운 산을 오르며 머리를 식히곤 했던 그는 요즘도 집에서 가까운 서울 아차산이나 용마산을 자주 오른다. 시간이 좀 더 있을 때는 관악산이나 도봉산도 간다. 친구들과는 강원 설악산을 찾기도 한다. 그는 “좋아하는 야구를 생각하고 리뷰하면서 혼자 묵묵히 걷는다. 등산은 내게 힐링이나 마찬가지다”라고 했다. 최근에는 골프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공이 파란 하늘을 가로지를 때의 시원함과 통쾌함이 매력이라고 한다. 얼마 전에는 처음으로 싱글(70대 타수)도 쳐 봤다. 그는 “술과 담배를 하지 않으니 근력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힘을 써야 할 때 여전히 현역 때와 비슷한 파워가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스트레칭도 거르지 않는다. 침대 위에서 이런저런 동작을 하면서 몸을 풀어주면 하루를 보다 상쾌하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힘과 열정이 있으니 바쁘게 살게 된다. 고마운 야구 덕분에 내가 이곳까지 오지 않았나. 재능기부이든 봉사활동이든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는 언제나 달려갈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