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모

김성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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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사회부를 시작으로 소비자경제부와 경제부, 산업부 등을 거쳤습니다. 신문과 방송, 매거진(동아비즈니스리뷰)에서 경험을 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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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플은 왜 접는 폰을 안 만들까?[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 “이 폰은 다른 브랜드의 고객을 끌어올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4세대 폴더블폰 ‘갤럭시 Z폴드4’와 ‘갤럭시 Z플립4’를 26일 내놓았다. 수첩처럼 가로로 접는 폴드4의 무게는 263g으로, 폴드3보다 8g 가량 몸무게가 가벼워졌다. 크기는 줄고 화면은 커졌다. 전작보다 세로는 3.1㎜ 짧아졌고, 두께는 0.2㎜ 얇아졌다. 휴대전화의 경첩 역할을 하는 힌지의 크기가 줄었다. 화면 테두리(베젤)는 전작보다 좌우 3㎜씩 작게 만들어, 폰을 펼쳤을 때 더 넓은 화면을 볼 수 있게 했다. 기능도 보완했다. 폴드4는 5000만 화소의 후면 카메라를 탑재했다.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AP칩은 퀄컴의 스냅드래곤 8플러스 1세대가 들어갔다. 화장품 콤팩트 파우더 형태의 플립4는 전작보다 가로 길이가 0.3㎜ 줄었다. 손에 착 감기는 그립감을 높였다. 그동안 약점으로 꼽혔던 배터리도 개선했다. Z플립4는 배터리 용량을 기존 3300mAh(밀리암페어)에서 3700mAh로 늘렸다. 대신에, 무게가 전작 대비 4g 늘었다. 기존보다 65% 더 밝은 이미지센서도 장착했다. 폴드4와 플립4 모두 접히는 부분의 화면 주름이 기존 제품보다 덜했다. 삼성은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신제품의 가격 인상을 최소화했다. 올해를 폴더블폰 대중화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의지다.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장(사장)은 “갤럭시 폴더블 시리즈는 삼성의 혁신 철학을 구현한 제품”이라며 “삼성은 업계의 리더로 폴더블을 전 세계 수백만 명이 사용하는 카테고리로 성장시켰다”고 자평했다. 삼성은 폴더블폰이 경쟁사의 고객(아마도, 아이폰 이용자)을 뺏어오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3세대 폴더블폰에서 가능성을 본 듯하다. 노 사장은 “지난해 삼성 폴더블폰 출하량에서 신규 고객이 두 자릿수 비중을 차지했다”며 “이는 갤럭시 사용자가 다른 갤럭시 기기(폴더블폰)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스위칭 한다는 긍정적인 신호”라고 밝혔다. 갤럭시S 시리즈 이용자가 폴드·플립으로 넘어가는 카니발라이제이션(신제품이 기존 주력 제품 시장을 잠식하는 현상)보다 타 브랜드 제품의 이용자를 끌어오는 효과가 더 크다는 의미다. 아이폰이나 애플이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하진 않았다. ● 스카이·아이스크림·롤리팝…폴더폰 시대의 귀환? 이전까지 스마트폰은 매년 혁신을 거듭해왔지만, 감동까지 안기진 못했다. 10여 년 간 조금 더 넓어진 화면, 약간 빨라진 속도, 늘어난 카메라 화소 수로 사람들의 흥미를 유도했다. 카메라 100배 줌이 달까지 끌어당길 때 잠깐 신기하기는 했다. 그러다가 삼성이 2019년 ‘바’가 아닌 접는 형태의 스마트폰을 선보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영화에서만 보던 화면을 구부릴 수 있는(플렉서블) 디스플레이 패널이 스마트폰에 적용된 것이다. 하드웨어에서의 굉장히 큰 변화다. 디스플레이 패널을 접을 수 있다면 성능과 휴대성(크기)이 시소게임을 하지 않아도 된다. 과거 스카이 2G폰, 모토로라 레이저와 같은 휴대성을 갖추면서 넓은 화면까지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기술은 태블릿, 노트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모토로라, 화웨이, 오포 등도 폴더블폰을 선보이면서 시장은 커지는 분위기다. 글로벌 폴더블폰 출하량은 올해 1600만 대로 예측된다. 업계는 2026년 6000만 대까지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DSCC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기준 삼성전자의 글로벌 폴더블폰 시장 점유율은 74%. 삼성전자는 올해 안에 폴더블폰으로만 1000만대 이상을 판매해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계획이다. 폴더블폰 시장을 이끌고 있는 삼성은 사용자경험(UX)를 끌어올리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플립4는 화면을 구부린 상태로 촬영할 수 있는 플렉스 모드를 고도화했고, 폴드4에는 PC처럼 화면 하단에 여러 개의 아이콘을 배치했다. 동시에 여러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멀티태스킹 기능(태스크바)을 도입한 것이다. 폴더블폰만의 차별화 요소다. ● 애플 ‘아이폰14’에 자신감, 생산 주문 안 줄여 애플은 아이폰 새 버전 출시를 앞두고 있다. 폴더블폰과의 경쟁이 예상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애플은 다음달 7일 행사에서 아이폰14를 선보이고 16일부터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다. 2016년 이후 연내 가장 빠른 출시다. 지난해에는 9월 14일 아이폰13을 발표하고, 24일 제품을 시장에 내놨다. 일주일 앞당기는 것이 뭐 특별하냐고 할 수도 있지만, 회사의 장부를 관리하는 사람과 주주들에게는 큰 의미를 지닌다. 블룸버그는 “9월까지 진행되는 회계연도에 아이폰14 판매가 한 주 더 늘어나는 것”이라며 “아이폰14의 판매는 회사의 지난해 매출을 경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업계는 애플이 이번 행사에서 아이폰14와 함께 새 노트북 맥, 태블릿PC 아이패드, 3개의 애플워치 모델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이폰14에는 5.4인치 화면의 미니 모델이 사라지고, 6.7인치 모델이 추가된다. 아이폰14프로는 화면 상단의 ‘M자형 테두리’(노치) 대신 원형의 ‘펀치홀’ 디자인이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카메라는 1200만 화소 초광각, 4800만 화소 광각이 탑재될 전망이다. 애플이 새 애플워치에 체온 센서, 여성 건강 기능을 추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최근 애플은 업그레이드된 운영체제(iOS 16)를 선보인 바 있다. 잠금화면 편집 및 다중 잠금화면 배치, 실시간 번역, 메시지 편집 등 다양한 기능이 추가됐다. 애플은 경기 침체 우려에도 흥행을 자신하는 듯하다. 애플은 아이폰14의 조립 업체들에게 지난해와 동일한 9000만 대의 생산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의 올해 아이폰 생산량은 지난해와 비슷한 2억2000만 개 수준으로 전망된다. 블룸버그 분석가들은 올해 초 2억4000만 개로 예상했지만, 전쟁과 공급망 문제 등으로 전망치를 소폭 낮췄다. ● PC의 길 걷기 시작한 스마트폰? 애플이 한 해 2억 대가 넘는 아이폰을 판매하고 있지만, 성장의 한계에 대한 지적도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말 ‘애플은 이미 모든 사람에게 아이폰을 판매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글에서 “전성기에는 아이폰이 애플 매출의 3분의 2를 차지했지만, 최근 분기에는 기여도가 절반에 못 미쳤다”며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애플은 스마트폰 뒤를 이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장치를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교체 주기도 길어지고 있다. 컴퓨터 산업과 비슷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개인용 컴퓨터 판매는 가정마다 충분히 공급된 2011년 정점을 찍었고, 교체 주기가 길어졌다. 휴대전화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글로벌 분석기업 CCS 인사이트(CCS Insight)는 유럽에서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기간이 2010년 26개월에서 최근 39개월까지 늘었다고 추정했다. 새 버전도 기존 틀에서 외형상 큰 변화를 취하지 않았던 애플이 삼성처럼 화면을 접고 또 다른 고객을 찾아 나설 일은 없을까. 총 1920억 달러(약 258조 원)의 현금을 보유한 애플은 지난해 연구개발(R&D)에만 220억 달러(약 29조5000억 원)를 쏟아 부었다. 돈이 없어서 못 하는 것은 절대 아닐 듯하다. 사실, 애플도 폴더블 관련 특허를 계속 내놓고 있긴 하다. 애플은 미 특허청에 화면을 구부릴 수 있는 폴더블 디스플레이에 대한 특허를 2018년 1월 제출했다. 이후에도 폴더블폰의 접이식 장치, 힌지 곡면부문의 디스플레이, 상소문처럼 화면을 말아 올리는 방식 등 다양한 특허들을 등록했다. 그래서 애플이 폴더블폰을 곧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잊을 만하면 나왔다. 그런데, 예상 출시일이 점점 뒤로 밀리고 있다. 최근 애플 제품 분석가로 잘 알려진 궈밍치 대만 TF인터내셔널증권 연구원은 애플의 폴더블폰 시장 진입 시점을 2023년에서 2025년으로 수정했다. 폴더블 맥북부터 공개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 “폰을 왜 접어야 하지?” 애플은 과연 폴더블폰을 내놓을까. 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라면 왜 이렇게 늦어지는 것일까. 매끄러운 사용자 경험, 높은 완성도 등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심어 놓은 애플의 철학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정보기술(IT) 리뷰 전문 매체인 씨넷(CNET)은 13일 ‘왜 애플의 폴더블폰은 아직 존재하지 않을까’라는 글에서 “기본적으로 스마트폰을 노트북처럼 ‘L’자 모양으로 접으면 소프트웨어가 앱을 화면 상단으로 이동시키고 하단에는 다른 기능을 제공한다. 멋지고 여러 가능성이 많을 것 같지만 올해까지는 기능이 제한적이었다”고 했다. 애플이 스마트폰을 접어야만 하는 이유(고객의 놀라운 이용 경험)를 아직 찾지 못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삼성이 플렉스 모드 같은 기능을 강화하고 있지만, 폴더블폰에 최적화된 소프트웨어를 더 만들어야 한다는 분석이 많다. 스마트폰 화면을 접을 수 있으면 휴대전화 크기가 작아진다는 이점은 있다. 스티브 잡스가 작은 스마트폰을 원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IT전문매체 더버지가 입수한 이메일, 문서 등에 따르면 잡스가 2010년 10월 보낸 ‘아이폰 나노 계획’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에는 ‘비용 목표’, ‘조니가 렌더링 모델을 제시할 것’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조니는 조니 아이브 애플 전 최고디자인책임자(CDO)를 뜻한다. 잡스가 언급한 ‘아이폰 나노’의 의미가 확실하지는 않다. 당시 애플은 이미 아이폰3GS보다 작은 아이폰4를 판매하고 있었다. 나노의 의미를 두고 ‘아이폰4보다 30% 더 작은 아이폰’, ‘저가형 아이폰 모델’ 등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애플에서 전 세계에 파는 아이폰 수가 워낙 많다보니 생산 문제를 우려할 수도 있다. 씨넷은 “연 수억 대의 아이폰을 파는 애플이 폴더블 아이폰을 만든다면 충분히 많은 양을 같은 품질로 생산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며 “2014년 아이폰6플러스처럼 하드웨어가 급격하게 변경될 때 빠르게 매진되기 때문에 출시 시점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했다.● “신을 실망시키지 마세요” 애플에 녹아있는 완벽주의가 폴더블폰 개발의 발목을 잡았을 수도 있다. 잡스의 완벽에 대한 집착은 널리 알려져 있다. 여러 일화가 있다. 아이맥 G5를 개발하던 시절 잡스는 컴퓨터 케이스에 나사가 하나도 보이지 않도록 디자인하라고 지시했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 나사 수를 줄였지만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했다. 디자이너 중 한 명은 제품 아래 부분에 단 하나의 나사를 달아 모형을 잡스에게 보였는데, 그는 곧바로 해고됐다. 2007년 아이폰 출시를 한 달 앞두고 시제품을 써본 잡스가 개발자들에게 화를 낸 일화도 유명하다. 청바지 주머니에서 열쇠와 함께 꺼낸 아이폰의 플라스틱 화면에 흠집이 선명하게 난 것. 잡스는 “나는 흠집 나는 제품은 안 판다”며 6주 안에 완벽하게 유리 화면으로 설계를 바꿀 것을 지시했다. 공장들이 뒤집어졌다. 결국 그의 뜻대로 유리 화면으로 제품이 바뀌었다. 단순함으로 궁극의 정교함을 표현해내는 잡스에게 과연 폴더블폰의 화면 주름이 용납됐을까. 지난달 애플과 결별한 전설적 디자이너 조니 아이브조차 설득하지 못했을 듯하다. 뉴욕타임스(NYT)의 기술 담당 기자인 트립 미클은 자신의 책 ‘애프터 스티브’에서 “디자이너들은 제품을 어떻게 선보일지 결정했고, 디자인 뿐 아니라 제품 기능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냈다”며 “직원들은 ‘신을 실망시키지 말라’는 한마디로 디자이너들의 힘을 정의했다”고 했다. 아이브를 포함한 애플의 디자이너들이 신과 같은 위치에 있다는 표현이 흥미롭다. 팀 쿡 현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안정지향형 경영스타일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잡스의 역할을 물려받은 쿡은 회사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면서 생태계 확장에 집중했다. 잡스처럼 세상이 놀랄만한 무엇을 내놓기보다는 기존 제품의 성능이나 편의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이어왔다. 애플이 지난해 출시한 아이폰13의 처리속도는 쿡이 CEO를 맡은 직후 발표한 아이폰4S에 비해 50배나 빠르다. 쿡이 10여 년 전 CEO에 오르고 애플의 시가총액은 2조 달러(약 2690조 원) 이상 증가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8월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가 24년 쌓은 가치를, 버크셔해서웨이를 45년 운영한 워런 버핏의 업적을 넘어섰다”며 “쿡은 1997년 잡스가 애플로 복귀했을 때처럼 차기작을 쫓거나 조직을 재조정하는 대신 지속적인 개선을 추진했다”고 했다. PC제조사 컴팩에서 공급망을 관리했던 쿡은 1998년 애플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같은 일을 했는데, 꼼꼼하고 세밀하게 일하는 타입이라는 평이 많다. NYT에 따르면 어느 날 한 직원이 재고 회전과 관련해 쿡에게 비용을 줄일 계획을 제시했다. 이 장면을 전 애플 임원인 조 오설리반(전 임원)이 목격했다. 그는 NYT에 “쿡은 정말 경이적인 수준으로 디테일하게 파고들었다. 나는 어른이 우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94조 규모의 블랙박스 물론, 애플은 큰 변화를 가져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정말 돈을 많이, 잘 번다. 지난해 애플은 글로벌 반도체 부족 사태에도 3783억 달러(약 507조2000억 원)의 연 매출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1169억 달러(약 156조7000억 원)였다. 쿡이 애플을 맡은 2011년(1080억 달러)보다 연 매출이 3배 이상으로 늘었다. 쿡은 애플을 수익성이 가장 높은 회사로 이끌었다. 지난해 애플의 영업이익률은 연 30.9%에 달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전 세계에 10억 대 이상의 아이폰이 사용되고 있다”며 “지구인 7명 당 1대 수준”이라고 했다. 쿡은 아이폰을 외계인이 만든 듯한 제품으로 바꿔놓진 못했지만, 지구인들을 애플 생태계 안에서 똘똘 뭉치게 만들었다. 애플의 애플리케이션 플랫폼인 앱스토어는 많은 앱 제조사들을 끌어 모았고, 이는 더 많은 사용자들과 개발자들을 끌어들였다. 이 끊임없는 선순환 구조는 고객들이 200만 개(2020년 기준)의 앱을 고를 수 있게 만들었다. 애플의 앱스토어 매출은 2012년 75억 달러(약 10조700억 원)에서 지난해 684억 달러(91조8300억 원)로 늘었다. 지난해 매출은 앱스토어에 애플뮤직, 애플TV플러스, 애플케어, 클라우드 등 10개 부분이 합쳐진 수치이지만, 앱스토어의 매출은 꾸준히 상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애플은 앱스토어의 별도 매출을 2015년부터 공개하지 않았다. 글로벌 리서치 회사인 아레트리서치의 선임 기술 분석가 리차드 크레이머는 이를 “10개의 서로 다른 비즈니스의 700억 달러(약 93조9500억 원)짜리 블랙박스”이라고 평했다. 블룸버그는 최근 애플의 앱스토어 이익이 둔화되고 있다고 분석했지만, 애플은 아무튼 매년 다양한 분야에서 어마어마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애플은 구글을 아이폰의 기본 검색 엔진으로 지정하는 대가로 연 80억~120억 달러(10조7400억~16조1100억 원)를 청구하고 있다”며 “이는 2020년 애플 순이익의 14~21%에 해당하는 수치”라고 했다. ● 보청기 에어팟, 치매 체크하는 아이폰 아이폰보다 매출 비중은 작지만 애플워치, 에어팟 같은 주변기기들의 역할도 상당하다. 지난해 애플워치, 에어팟 등 애플의 기타 사업 매출은 108억5000만 달러(약 14조5700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25% 증가했다. 이코노미스트는 “2020년에 팔린 에어팟들은 1억 명의 귀에 꽂혔고, 애플워치는 3400만 명의 손목에 채워졌다”며 “이는 다른 모든 고급 이어버드(무선 이어폰)와 모든 스위스 시계를 합친 것보다 많은 수치”라고 평했다. 스마트폰에서 디지털 생태계와 웨어러블 기기로 사업을 꾸준히 확장한 결과다. 애플은 아이폰과 에어팟, 애플워치 등의 디지털 기기를 건강 체크 장치로 활용하는 방안을 꾸준히 연구 중이다. 지난해 10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애플은 에어팟을 건강 장치로 만드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현재 알려진 것은 에어팟의 청력 향상과 체온 측정 기능이다. 에어팟을 이어폰 겸 보청기로 만들겠다는 것. 체온을 점검하는 것은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다. 애플워치 신제품에는 체온 측정 기능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WSJ은 “약 28만 명의 미국인이 경미한 청력 손실로 고통 받고 있지만 보청기를 사용하는 사람은 5%에 불과하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착용하는 보청기 역할을 하려면 배터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등도 해결해야 한다. 이외에 에어팟에 움직임 감지 기술을 도입해 자세를 교정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애플은 또 미 캘리포니아대, 글로벌 제약사 바이오젠과 아이폰으로 인지기능 저하를 발견해내는 기술을 연구 중이다. 듀크대와는 아이폰의 카메라를 이용해 (촬영 대상의 초점을 어떻게 맞추는지 보고) 어린 아이들이 자폐증상을 탐지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다. 현 아이폰 운영 체제인 iOS 15에는 보행 안정도(보행 비대칭, 걸음 길이 및 보행 속도 등)를 평가하는 기능이 이미 도입돼 있다. 애플은 이를 일종의 낙상 방지 기능으로 보고 있다. WSJ은 “이용자가 걸어 다닐 때나 아이폰을 엉덩이(주머니)에 휴대하고 움직일 때 보행 안정도가 낮으면 알림을 받게 된다”며 “그렇다고 해서 넘어질 위험이 임박했는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1년 내에 낙상 위험에 대한 조언을 해준다”고 했다. ● PC-스마트폰-? 애플의 비즈니스 방식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속도 개선, 새로운 기능 도입 등 고객들을 묶어두기 위한 노력들이 진정한 혁신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다. WSJ은 “애플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생태계는 훌륭하지만, 회사의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은 혁신을 방해한다”고 했다. 애플의 디지털 세계에 갇힌 고객은 비용을 더 지불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덧붙였다. 애플도 세상을 바꾸는 ‘한 방’을 준비하고 있기는 하다. 대표적인 것이 자율주행 전기차와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을 기반으로 한 메타버스다. 애플의 전기차는 신비월드 13화(애플이 만든 자동차 과연 나올까)에서 상세하게 소개한 바 있다. 현실화 단계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이보다는 디지털과 현실을 실시간으로 잇는 AR·VR 기기의 출시가 더 빠를 듯하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애플은 올해 5월 이사회에서 새로운 혼합현실(MR) 헤드셋을 선보였다. 애플은 2011년 인공지능(AI) 비서 ‘시리’가 시장에 나오기 수 주 전에도 이사회에서 시제품을 보여주고 검토한 바 있다. 애플 이사회는 쿡과 사외이사 8명으로 이뤄져 있다. 사실상 개발이 마무리돼 출시가 임박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MR은 현실 세계에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을 덧씌워 실시간으로 양 쪽을 상호작용하게 만드는 기술을 뜻한다. VR, AR 기능을 합친 애플의 제품은 초고해상도 화면과 사용자의 눈동자 움직임이나 손동작을 추적하는 기능이 포함될 것으로 전해졌다. 애플은 헤드셋용 아이폰 앱도 출시할 것으로 보인다. ● 메타와 애플의 메타버스 철학 대결 구글, 메타(페이스북) 같은 미국의 ‘IT 공룡’들도 가상현실 기기를 차세대 기술 플랫폼으로 꼽고 있다.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하드웨어 개발까지 나선 이유다. 메타는 현재 VR 기기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오큘러스퀘스트2를 판매하고 있다. 페이스북에서 사명까지 바꾸며 메타버스에 사활을 건 이 회사의 CEO는 최근 대놓고 애플에 견제구를 날렸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지난달 초 직원들과 대화하는 자리에서 “애플과 우리는 메타버스 구축을 위해 심오한 철학적 경쟁을 하고 있다”고 했다. 메타는 메타버스가 특정 회사에 종속되기보다 인터넷처럼 개방되거나, 적어도 구글 운영체제처럼 유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커버그가 자사의 기기들을 중심으로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한 애플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다. 애플이 MR 기기를 선보인 이후 메타버스 시대가 애플의 생태계 확장으로 이어질까 우려하는 듯하다. 메타는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 에픽게임스, 엔비디아 등과 메타버스 표준 포럼까지 결성했다. 블룸버그는 애플이 MR 기기를 올 연말이나 내년에 출시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전 예측은 2019년 공개, 2020년 출시였다. 또 미뤄질 수도 있다. 애플의 헤드셋은 스마트폰처럼 세상을 확 바꿔놓을 수 있을까. 스마트폰은 과연 PC처럼 백오피스로 밀려나게 될까. 궁금한 점이 많지만 제품이 나올 때까지는 답을 들을 수 없을 듯하다. 애플은 향후 내놓을 제품에 대해 먼저 언급하는 법이 없다. 수많은 애플 관련 해외 기사마다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코멘트가 있었다. “애플 대변인은 논평을 거부했다.”김성모 기자 mo@donga.com}

    • 2022-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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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미국이 경기침체인지 아무도 모른다[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 다시 불붙은 미국 ‘경기침체’ 논란 미국 경제가 알쏭달쏭하다. 최근 며칠 동안 국내총생산(GDP), 고용, 물가 등 주요 경제 지표들이 공개됐지만, 금융 시장과 경제 전반에 안개가 자욱하다. 미국이 경기침체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쏟아진 상황에서 미국 고용이 호조를 보이면서 경기 전망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경기침체’와 ‘완전한 고용’이 동반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발(發) 금리 인상이 경기를 억눌렀다.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41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은 소비자물가를 낮추기 위해 ‘분노의 질주’를 펼치고 있다. 두 달 연속 기준금리를 0.75%포인트나 올렸다. 하반기에 금리를 더 인상하겠다고도 했다. 금리가 올라가면서 경기는 급속도로 식었다. 미 상무부는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2분기 GDP 증가율이 ―0.9%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1분기(―1.6%)에 이어 2분기마저 GDP가 후퇴하면서 미국 경제가 ‘기술적 경기 침체’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런데, 이후 나온 지표들이 경제학자들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 노동통계국은 지난달 비농업부문 일자리가 52만8000개 늘었다고 5일 발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전문가 전망치(25만8000개)의 2배 이상이었으며, 전월 수치(37만2000개)도 큰 폭으로 웃돌았다. 실업률 역시 3.5%로, 사실상 완전고용에 가까웠다. 경기를 비틀게 만든 인플레이션도 돌아섰다. 노동통계국은 10일 지난달 미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8.5% 상승했다고 밝혔다. 전월 9.1%보다 낮은 수치다. 통상 2개 분기 연속 GDP가 역성장하면 경기침체로 불렀지만, 이번에는 이를 부정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실업률이 이렇게 낮은데 무슨 경기침체냐”는 것이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경기 침체 국면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고, 경제학 바이블인 ‘맨큐 경제학’의 저자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실직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침체에 빠졌다고 한다면 나는 매우 놀랄 것”이라고 했다. 물가 오름세가 꺾였다는 점도 하나의 반박 근거로 꼽히고 있다. 물가가 정점을 찍은 만큼 연준이 금리 인상 속도를 낮춰 경기를 되살리지 않겠느냐는 주장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달 27일 기자회견에서 “미국 경기가 둔화될 수 있지만 침체에 빠지진 않을 것”이라며 전문가들의 경기침체 의견을 반박했다. 그러자 한 기자가 “당신이 생각하는 경기침체의 정의가 무엇이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파월 의장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우리는 경기침체의 정의에 대해 판단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경기침체인지를 정하는 것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 경기침체란 무엇인가 미국 경기침체의 공식 판정은 경제학자 연구 모임인 ‘전미경제연구소’(NBER)에서 한다. NBER에 속한 경제학 교수 8명이 ‘경기순환위원회’(BCDC)를 열고 경기침체 여부를 결정하는데 민간기구라 회의가 언제 어디서 열리는지, 공표를 언제 할지 등을 공개할 의무가 없다. 논란을 일으킨 것은 이들이 정한 추상적인 경기침체의 정의다. NBER은 경기침체를 ‘경제 활동의 현저한 감소가 경제 전반에 확산되고 몇 달간 지속할 때’로 규정하고 있다. 경제 활동이 얼마나 감소해야 현저한 것인지, 몇 달 지속돼야 하는지 등이 정해진 바가 없다. 그렇다보니 최근에는 ‘위키피디아’에서 경기침체의 정의를 두고 싸움까지 붙었다. 이용자들이 자신이 찾은 정보로 기존 내용을 계속 수정해 버린 것이다. 위키피디아는 참여형 온라인 백과사전으로 이용자들이 서로 내용을 고칠 수 있다. 논란이 커지자 위키피디아 측은 이달 3일까지 경기침체 내용을 수정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경기침체를 선언하는 시기도 문제다. 그동안 NBER은 경기침체가 시작되고 5개월에서 1년이 지난 뒤에야 경기침체 시작을 공식선언했다. 각종 통계를 확인하는데 시간이 걸려서다. 전 세계 공장이 문을 닫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때도 경기침체에 들어서고 4개월이 지나서야 경기침체를 발표했다. WSJ은 “경기침체가 왔다고 해도 몇 달 동안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모를 것”이라고 지난달 30일 보도했다. 특히, 이번에는 경기침체 결정을 내리기가 더욱 어려울 것 같다. 실업률이 낮은 상황에서 경기가 침체되는 일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총 12번의 경기침체가 있었는데, 이 기간 실업률은 모두 6%를 넘어섰다. 인플레이션이 이처럼 높은 상황에서 실업률이 낮게 나오는 것도 드문 일이다. 물가가 높을 때는 공격적인 금리 인상 때문에 경기가 가라앉고, 실업률이 늘어난다. 연구소도 현재의 논란이 당황스러운 모양새다. 1978년 NBER 창립 멤버이자 현재도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로버트 홀 스탠퍼드대 교수는 지난달 26일 “경기 침체인지 아닌지에 대해 논란이 된 적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뉴욕타임스(NYT)에 밝혔다. ● 선언자들이 보는 지표들 NBER 측은 미국이 1, 2분기 GDP가 마이너스를 기록하자 “우리는 GDP로만 판단하지 않는다. 생산과 고용과 소득 등 여러 수치를 전반적으로 본다”고 했다. 그렇다면 NBER은 구체적으로 어떤 통계를 보고 있을까. 블룸버그가 NBER이 경기침체를 결정하기 위해 확인하는 월별 지표 6가지를 2일 소개했다. 개인소득과 고용 및 비(非)농업 급여, 개인소비지출, 제조 및 무역 판매, 가사 고용, 산업생산지수 등의 올해 6월 수치다. 6월 한 달 동안 미국의 개인소득은 주춤했다. 0.3% 감소했다. 고용 분야는 ‘역대급’인 상황. 블룸버그 기사가 나오고 발표된 7월 고용 수치까지 포함하면 미국은 올해 320만 개가 넘는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코로나19 사태로 잃었던 일자리 숫자를 벌써 회복했다. 블룸버그는 “급여 증가율은 둔화됐지만 긍정적인 편”이라고 언급했다. 개인소비지출도 괜찮은 편이다. 올해 상반기 중 한 달을 제외하고는 계속 증가했다. 6월에는 전월 대비 0.1% 상승했다. 소비자 지출은 미국 경제 성장에서 70%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다. 미국을 ‘소비의 나라’로 부르는 이유다. 제조와 무역 분야는 다소 부진했다. 블룸버그는 “공급망 손상과 소비자 지출 둔화에 따른 주문 감소, 달러 강세에 따른 수출 가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가사도우미, 정원사 같은 가사 고용은 1분기에는 꾸준히 상승했지만 2분기에는 4월과 6월에 감소했다. 산업생산지수는 연초 몇 달 간 우상향을 보이다가, 최근에는 그래프가 평평해졌다. 6월에는 약간 감소했다. 모두 인플레이션을 반영한 지표다. 수치만 놓고 보면 좋고 나쁨이 반반이었지만, 그래프가 전반적으로 평평해지거나, 꺾였다는 점이 눈에 띈다. 경제학자들이 전망을 어둡게 보는 이유다. ● 자동차 판매와 경기침체 전조 현상 미국의 올해 1분기 GDP 수치(―1.6%)가 부정확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국내총생산(GDP)은 한 국가 내에서 생산된 상품과 서비스의 합계다. 이론적으로는 국가 내에서 발생한 소득의 총합인 국내총소득(GDI)과 동일해야 한다. 일단 생산을 하면 누구에게든 소득(분배 측면)으로 잡히기 때문이다. 그런데, 1분기 미국의 GDI는 GDP와는 반대로 1.8% 증가했다. 보라안 아루오바 미 메릴랜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는 미국 경제가 1분기에 전혀 위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며 “생산(GDP)이 소득 데이터(GDI)에 가깝게 수정될 것이라 믿는다”고 NYT에 전했다. 제임스 불라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도 “두 숫자는 최근 경제 상황에 대한 상반된 관점을 제공한다”며 “GDP는 경기침체를 나타내고 GDI는 경제 성장을 나타낸다. GDI는 노동 시장과 더 일치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는 경제가 성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언급했다. 실제 GDI에는 GDP에 교역 조건에 따른 변화와 무역손실을 고려한다. 통계 조사 방식도 달라 두 수치가 다르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교역 조건에 있어서 달러 강세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경제학자들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제를 읽는 것이 어려워졌다고 털어놓는다. 캐런 다이넌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는 여전히 이상한 시기에 있기 때문에 경제를 읽는 것이 평소보다 어렵다”고 했다. 그는 자동차 판매를 예로 들었다. 자동차 판매는 경기를 판단할 때 쓰이는 신뢰할만한 신호 중 하나다. 소비자들이 직장이 잃을 것을 걱정할 때 가장 먼저 구매를 미루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공급망 문제가 생기면서 데이터를 해석하기 어려워졌다. 다이넌 교수는 “향후 몇 달 안에 차가 많이 팔린다면 소비자신뢰지수의 회복을 의미할까, 아니면 단순히 (공급망 개선으로) 차량 구입이 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할까”라고 NYT에 말했다. 자동차 판매가 늘어도 소비자 심리가 좋아져서인지, 아니면 차량 구입이 꼭 필요했는데 공급망 문제로 못 샀던 사람들이 한 번에 몰린 것인지 확실치 않다는 뜻이다. 미국 금융 시장에서는 이미 경기침체 전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년 만기 국채 금리와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역전되더니, 2000년 이후 최대치로 벌어졌다. 보통 채권은 만기가 길수록 인플레이션이나 상환 위험 때문에 금리가 높다. 시장에 불안 심리가 팽배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쉽게 설명해 친구한테 100만 원을 빌려준다고 치자. 5년 빌려줄 때보다 한 달 빌려줄 때가 마음이 더 편할 것이다. 기간이 짧으면 이자도 적게 받을 것이다. 그런데 친구가 하는 사업이 위태로워 보여서 한 달도 못 버틸 것 같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자를 더 많이 요구하지 않을까. 짧은 기간에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 장기 채권을 가진 사람에게 기회손실이 발생해 채권 가격이 떨어지는 것도 있다. 손해를 보고서라도 중간에 팔겠다는 사람이 늘어 가격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금리가 오르면 보통 채권 가격은 떨어진다. 또, 채권 만기가 길수록 수익률 변동에 따른 가격 변동폭도 커진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따르면 과거 미국의 13차례 경기 침체 중 10차례가 금리 역전 이후 찾아왔다. 소비자 심리도 급랭한 상태다. 6월 미국 미시간대 소비자심리지수는 50.2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오일쇼크 후폭풍이 상당했던 1980년 5월(51.7)보다도 낮았다. 100을 기준점으로 이보다 높으면 향후 소비 심리가 강하고, 낮으면 약하다는 점을 의미한다.● 코로나19보다 무서운 비관론 바이러스 이는 당연한 수순이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빠르게 올렸다. 공급망 병목과 전쟁이라는 공급 측면을 어찌할 수 없으니, 수요를 억제하는 방법을 택했다. 물건값이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사람들의 소비 심리를 위축되도록 만든 것이다. 대출이 있는 사람은 이자를 더 내야하니 쓸 돈도 줄어들었다. 인플레이션이 7월 고점을 찍고 소폭 내려왔지만, 하산의 시작인지 숫자가 구름 위를 떠다닐지는 아무도 모른다. 기름값은 꽤 떨어졌지만, 계약 기간이 긴 주거비(렌트비) 등이 쉽게 빠지지 않아 물가가 천천히 떨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경기를 훼손하더라도 금리 인상의 기조를 바꿔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은 경기침체에 대한 논란이 치열하지만, 사람들의 심리가 한쪽으로 기울면 어떻게 될까. 기업은 투자와 고용을 미룰 것이고, 사람들은 지갑을 열지 않을 것이다. 갑자기 대출 원금을 상환해야 한다는 은행 전화를 받게 될 수도 있다. 팽창하던 경제가 수축한다. 이코노미스트는 ‘경기침체는 돈도 돈이지만 기분(mood)의 문제다’라는 글에서 “금융 시장의 붕괴 없이, 재정적 혼란 없이 경기침체가 발생할 수 있다. 경기침체는 마치, 갑자기, 어느새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유가나 통화정책이 방아쇠가 될 수는 있지만, 결국 사람들의 심리에 따라 경기침체가 결정될 수 있다는 뜻이다. 경기는 통상 하강할 때 속도가 붙는다. 공포 심리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주식하고 똑같다. 이코노미스트는 “파국적인 금융 위기의 깊숙한 곳에서는 워런 버핏을 제외하고는 돈을 쓸 배짱과 수단이 있는 사람이 드물 것”이라고 했다. 경제는 숫자보다 심리의 영역에 가깝다. 현재의 상황이 유지될 것이라는 기대를 기반으로 수입과 지출이 거대한 사슬처럼 묶여 돌아간다. 월급날을 믿고 장도 보고 옷도 사고 한다는 의미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 경제 성장(GDP)의 70%가 ‘소비’로 결정된다. 현재의 상황이 유지될 것이라는 믿음이 깨지고 비관론이 전염병처럼 퍼지면, 경제는 한 순간에 슬럼프에 빠질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신중한 소비자가 지출을 줄이고 고용과 투자가 감소하면 비관론의 초기 발생이 입증된다”며 “충격은 거대한 사슬의 연결 고리를 약화시키고, 감정의 전환을 촉진한다”고 했다. ● 스트라이샌드 효과와 바나나에 대한 걱정 백악관까지 나서서 경기침체를 극구 부인하는 것도 여기서 비롯된다. 경기침체로 갈 상황이 아닌데(고용이 좋아서) 비관론 때문에 경기침체 늪에 빠질까봐 염려하는 것이다. 연준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Recession’(경기침체)이란 단어를 3월 4번, 5월 9번, 6월 6번, 7월 26번 언급했다. “경기침체까지는 안 갈 것”, “경기침체가 가더라도 덜컹거리는 수준의 ‘준 연착륙’(softish landing) 수준에 그칠 것”이라며 안심시켰다.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자세가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WSJ은 28일 “바이든 행정부 누구도 ‘스트라이샌드 효과’(Streisand effect)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경제적 위기에서 돌파구를 찾는 정부가 오히려 부정적 뉴스를 증폭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트라이샌드 효과는 온라인상에서 어떤 정보를 숨기거나 삭제하려다가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돼 처음 기대와 반대로 정보의 확산을 가져오는 역효과를 의미한다. 경제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마저 정부의 언급 때마다 쏟아지는 뉴스에 노출돼 ‘지금이 경기침체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미국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쓴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책이 생각난다. 제목만 들으면 코끼리부터 떠오른다. 프레임의 힘이다. 1978년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이 인플레이션과 싸울 때 코넬대의 경제학자 알프레드 칸이 태스크포스(TF)를 맡았다. 당시 칸은 “가격을 통제하지 못하면 깊고 깊은 불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는데, 칸과 보좌진들은 경기침체를 언급했다는 이유로 윗분들로부터 한소리를 들었다. 다시는 경기침체를 꺼내지 말라는 지시도 받았다. 칸은 기자들과의 다음 회의에서 재치를 발휘했다. “국가가 45년 만에 최악의 바나나(경기침체)를 가질 위험에 처해 있다”고 퍽퍽하게 말했다. WSJ은 지난달 28일 “백악관이 경제를 개선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유리한 설명을 마케팅 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어 실망스럽다”며 “칸의 유산을 고려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꼬집었다. ● 경기침체냐, 아니냐가 왜 중요한가 지금이 경기침체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일부 조짐들은 나타나고 있다. 먼저 고용에서 미묘한 분위기 변화가 감지된다. 주요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인력을 줄이고 있다. 5일 WSJ에 따르면 빅테크 기업인 오라클이 최근 수백 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주식거래 플랫폼 로빈후드는 업무 도구인 슬랙과 이메일로 직원 23%에게 해고 통보를 하겠다고 밝혔고, 마이크로소프트, 트위터, 쇼피파이 등도 인력을 줄이겠다고 언급한 상태다. IT 회사 이외에 미국 최대 고용주인 월마트 역시 최근 직원 일부를 줄였다. 지난달 고용(52만8000명) 중 레저 및 호스피탈리티 산업의 일자리가 9만6000명으로 가장 높았는데, 휴가철이 지나고 이 추세가 이어질지도 의문이다. 외신을 보면 현지 레스토랑, 호텔 등에서 아직까지 사람 구하기가 힘들다는 내용이 많기는 하다. 소비 동력도 떨어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6월 미국의 개인 저축률은 5.1%로 2007년 경기침체 수준까지 떨어졌고, 개인 신용카드 부채는 2007년 수준을 넘어섰다. 하반기에 금리가 더 오르면 가계 부담이 커질 것이 분명하다. 연준과 일부 전문가들이 얕은 경기침체를 예고하고 있지만, 경미한 경기침체도 경제에 상처를 준다는 점이 문제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실업률이 2%포인트 증가했을 때 약 300만 명의 미국인이 일자리를 잃는다. 바다 건너 일이라고 남의 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블룸버그는 2일 “1975년, 1982년, 1991년, 2009년 글로벌 경기침체가 있었는데, 각각의 경우 미국의 경기침체가 앞서 있었다”고 전했다. 미국이 불황에 빠진 이후에는 항상 글로벌 경기침체가 뒤따랐다는 이야기다. ● 인플레이션은 나쁘지만, 실업률은 더 나쁘다 경기침체는 짧게 스쳐지나가더라도 긴 후유증을 안긴다. 한 연구에 따르면 경기침체 시기에 대학을 졸업한 학생은 경기가 좋을 때 사회생활을 시작한 학생보다 수년 동안 적은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스웨스턴대와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은 1976~2015년 미국 인구 조사 데이터를 활용해 경기침체 기간 미국에서 취업한 근로자가 사회생활 초기에 평균 대비 11% 임금을 덜 받는다는 점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수익 감소는 10년 간 지속되며 1년 급여의 60% 가량의 누적 손실을 일으킨다”고 했다. 이 같은 영향은 고등학교 중퇴자나 비(非)백인 노동자에게 특히 컸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전 세계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으로 고통 받고 있지만, 직장 잃는 슬픔보단 덜할 수 있다. NYT는 경제분야 국제학술지 JMCB(Journal of Money, Credit and Banking)에 곧 게재될 논문을 지난달 20일 소개했다. 연구는 2005년부터 2019년까지 141개국 150만 명을 대상으로 한 갤럽 조사를 활용했다. 이에 따르면 사람들은 실업률이 1%포인트 증가했을 때, 인플레이션이 1%포인트 늘어났을 때보다 슬픔이나 육체적 고통을 호소할 가능성이 9~13배 더 높았다. 사람들은 실업률이 늘어나는 시기에 자신의 삶에 대해 낮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이는 인플레이션이 늘어날 때의 반응보다 6배나 더 암울했다. NYT는 “응답자들은 자신의 답이 인플레이션과 실업이 자신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데 사용될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편견이 작용하지 않았다는 점이 이 연구의 장점”이라고 평했다. 스탠포드대에서도 2003년 비슷한 연구가 발표된 바 있다. 논문은 실업률이 1%포인트 증가하면 인플레이션이 1%포인트 늘어나는 것보다 사람들이 5배 더 불행해진다고 밝혔다. 당장은 체감되지 않을 수 있다. 인플레이션은 모든 쇼핑객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실업률은 잘리기 전까진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웃이나 가족 또는 내가 직장을 잃게 된다면 가격표가 눈에나 들어올까. NYT는 20일 “인플레이션이 높을수록 나쁘다고 생각한다면 금리를 거세게 올리는 것이 합리적이다. 실업률이 높을수록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면 신중하게 움직이는 편이 나은 선택”이라고 전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경기침체의 위험을 일정부분 감수해야 한다는 연준과 경제학자들의 의견은 과연 합리적일까. 혹시나 처방전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김성모 기자mo@donga.com}

    • 2022-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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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가 간절하지만 험난한 해외여행을 떠나고 있다[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 비싼 비행기표도 못 말린 ‘보복 여행’ 3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에게 여름은 여행을 의미했다. 7, 8월이 되면 공항은 캐리어를 끄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2020년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하늘길이 봉쇄되기 전까지 매년 그랬다. 올해 초부터 각국 정부가 입국 제한 조치들을 잇달아 완화했다. 마스크 착용과 감염 검사 요건 등을 해제했다. 미 정부는 지난달 12일 미국에 입국하는 여행객들이 비행기 탑승 전 코로나19 음성 테스트 결과를 제출해야 하는 규정을 없앴다. 높은 백신 접종률과 감염에 따른 면역 생성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를 기다렸다는 듯 미국과 유럽에서는 해외여행자가 폭증했다. 미국 독립기념일 연휴(7월 1~4일)가 시작된 이달 1일 교통안전청(TSA)의 공항 검색대를 통과한 인원은 249만 명으로 올해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3년 전 같은 날인 218만 명을 넘어섰다. 2019년 연휴가 시작된 7월 4일 목요일(275만 명)과 비교해도 크게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동안 억눌렸던 ‘보복 여행’이 시작된 듯하다. 사실, 한두 달 전만 해도 다수의 여행 계획이 취소될 수 있다는 예측이 꽤 있었다.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우려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6월 연간 소비자물가지수(CPI)가 9.1%를 기록하면서 5월(8.6%) 고점 기록을 넘어섰다. 유럽과 신흥국도 비슷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비행기표 값이 많이 올랐다. 6월 CPI에서 항공료는 전년 대비 34% 뛰었다. 강한 수요와 항공사 직원 부족 등에 따른 공급 차질, 항공유 가격 상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는 한국 통계청 지표에서도 드러난다. 통계청의 지난달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국제 항공료는 전년 동월 대비 21.4% 올랐다. 인천과 유럽 주요 도시(런던·파리 등)의 왕복 항공권 가격(직항 기준)은 140만~200만 원대에서 최근 180만~350만 원까지 올랐다. 각종 교통비와 외식 물가까지 안 오른 것이 없는 상황에서 쉽사리 해외여행을 갈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런데도 하늘을 날고자 하는 MZ세대(밀레니얼, Z세대)의 의지가 강렬했다. 미 차량 공유 업체 어베일이 최근 미국인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Z세대 중 72%가 올해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답했다. 밀레니얼 세대도 68%나 됐다. X세대(60%), 60대 이상 베이비부머 세대(51%)와 차이를 보였다. Z세대 여행자 중 51%는 해외여행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휴가철이 오면서 계획을 실행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글로벌 신용카드사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스티브 스쿼리 최고경영자(CEO)는 22일 2분기(4~6월) 실적발표에서 “글로벌 여행과 엔터테인먼트에서의 강한 소비가 매출에 반영됐다. 특히 밀레니얼과 Z세대 카드 회원의 지출이 48% 증가했다”고 전했다. ● 험난한 출발과 좌초된 캐리어들 문제는 여행 업계가 여행객들의 마음만큼 준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최근 한 달 동안 유럽의 주요 공항에서는 매일 수백 편의 항공편이 취소되거나 지연됐다. 영국 런던 히스로(히드로) 공항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히폴(스키폴) 공항에서는 탑승객들이 보안 검색대에서 최대 6시간을 기다렸다. 체크인을 기다리는 승객들이 터미널 밖 주차장까지 넘쳐흘렀다. 캐나다 토론토행 비행기가 취소된 것을 확인하러 히스로 공항을 찾은 엘리자 글래스 씨(28)는 “정보가 없어서 혼란스럽고, (비행편 취소로) 좌절한 사람들로 공항이 가득 찼다. 한 시간 동안 빙글빙글 돌다가 가방에 걸터앉아 펑펑 울었다”고 지난달 14일 뉴욕타임스(NYT)에 전했다. 항적 정보제공 사이트 ‘플라이트어웨어’에 따르면 이달 2, 3일 미국에서 2800편 이상의 항공편이 취소됐고, 2만644편이 지연됐다. 플라이트웨어는 5월 26일부터 이달 19일까지 주요 공항의 예정 항공편 지연 비율을 집계했다. 최악은 52.5%가 지연된 캐나다 토론토 피어슨 공항이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45.4%)과 프랑스 파리 샤를 드골 공항(43.2%),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41.5%)도 10대 중 4대 넘는 비행기가 제때 출발·도착을 하지 못했다. 런던 개트윅(41.1%)과 히스로(40.5%) 등 영국의 2개 공항도 상위권에 올랐다. 승무원도 하루하루가 악몽 같다. 한 지상직 승무원은 “20년 업무 동안 이렇게 힘든 적이 없었다”며 “많은 사람이 결혼식과 장례식, 크루즈 여행 등 중요한 일을 놓치며 우는 것을 봤다. 그 눈물은 정말, 거짓 없는 ‘진짜’였지만,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NYT에 털어놨다. 비행기에 무사히 탑승했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캐리어가 못 탔을 수 있다. 최근 온라인에는 각국 공항에 방치돼 있는 수천 개의 수하물(캐리어)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에어마겟돈’(에어포트+아마겟돈) 공항이 이처럼 혼란스러운 이유는 인력 부족 탓이다. 보안을 담당하는 공항 직원과 지상직·객실승무원, 조종사 등 모두 부족한 상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진행된 구조조정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당장 지상직이 부족해 가방을 검색하거나 탑승권을 확인하는데 시간이 지체되고 있다. 객실승무원 부족은 항공편 취소까지 불러오고 있다. NYT는 “승무원은 안전 때문에 법적으로 한 번에 12~16시간의 업무 시간제한이 있다”며 “현재 상황에서는 백업 승무원이 많지 않아 항공편이 취소될 수 있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비행기를 조종할 사람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올리버와이먼은 올해 말까지 북미에서만 8000명 이상의 조종사가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스콧 커비 유나이티드항공 CEO는 “대부분의 항공사가 조종사 부족을 겪고 있어서 항공편을 얼마나 제공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면서 “최소 5년 동안 부족이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항공사들도 이 같은 상황을 예측 못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 항공사들은 올해 4월 전달보다 관련 인력을 5000명 이상 더 고용했다. 2019년 4월보다는 1만6000명을 늘렸다. 항공사들은 인력을 더 뽑고 싶었지만, 규정이 문제였다. CNN에 따르면 미국에서 항공 관련 직원을 고용하려면 최대 4개월의 신원 조회와 허가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조종사는 18개월 이상의 교육 과정도 필요하다. 말라키 블랙 미국 지역항공사연합 대표는 “항공기 조종사는 자격증 취득이 어려운 데다 훈련비용도 비싸 바로바로 구하기 어렵다”며 “들어오는 조종사보다 나가는 조종사가 더 많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참다못한 영국 히스로 공항이 12일 출발 승객 수를 하루 10만 명으로 제한했다. 항공사에는 여름철 항공권 판매를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장시간 대기와 결항, 수하물 분실 등으로 대혼란을 겪는 ‘에어마겟돈’(에어포트+아마겟돈)에 대한 대응책이었다. 존 홀랜드 케이 히스로 공항 CEO는 “승객들이 안전한 여행을 하기 위해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며 “9월까지 승객 수 상한제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항공사들은 크게 반발했다. 14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에미레이트항공은 “하루 10만 명의 출발 승객 한도는 허공에서 뽑아낸 말도 안 되는 수치”라며 “요구를 거절한다”고 밝혔다. 항공편 운항을 예정대로 강행하겠다는 것이다. FT는 “주요 항공사와 공항이 운항 여부에 이견을 보이는 건 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평했다.● 미국인들의 인플레이션으로부터의 휴식 운항편을 줄인 것은 히스로 공항만이 아니다. 스히폴 공항도 2019년 대비 승객 수를 약 16% 줄였고, 프랑크푸르트 공항 역시 피크 타임의 항공편을 시간당 104회에서 94회로 축소했다. 유럽 주요 공항 대부분이 난리다.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여행객들이 유럽에 더 몰렸을 가능성이 크다. 대다수 국가가 해외 입국자의 격리 의무 조치를 해제했지만, 아직 많은 나라들이 PCR 음성 확인서와 백신 접종 증명서 등을 요구하고 있다. 싱가포르, 태국 등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는 코로나19와 관련된 여행보험에 가입하게 하거나, 백신 접종 증명서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이탈리아나 프랑스, 스웨덴, 노르웨이 등 유럽 주요 국가들은 이런 규정을 전면 해제했다. 여행객들이 백신 접종이나 검사 결과 등을 증빙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가뜩이나 오랜만에 떠나는 해외여행. 코로나19 관련 서류까지 신경 쓰기보다는 익숙한 유럽을 목적지로 택했을 수 있어 보인다. 특히, ‘킹달러’를 지닌 미국인들이 유럽으로 많이 향했을 수 있다. 최근 유로화의 화폐 가치가 떨어지면서 미국인들이 과거보다 저렴하게 유럽에서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달 12일 유로·달러 환율은 1대1 패리티(1유로=1달러)를 기록했다. 유로화 가치가 한때 1달러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유로와 달러의 화폐 가치는 1대 1.1 수준을 유지해왔는데, 유로화 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진 것이다. 이 같은 패리티는 2002년 이후 20년 만이다. 유로화는 1999년 처음 도입됐고, 2002년 유로존에서 공식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2000년 초반 미국 경제는 좋은 반면 유로존 경기가 침체해 1유로의 가치가 0.83달러까지 하락했었지만, 이후 유로화가 적극적으로 쓰이면서 2002년 말 이후부터는 1유로의 가치가 1달러를 웃돌았다. 금융 위기로 미국 경제가 주저앉은 2008년에는 1유로의 가치가 1.6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최근의 패리티가 미국 사람들에게는 유럽 여행하기 유리한 여건인 셈이다. 미국 시카고에 사는 디자이너 알리사 브라운 씨(26)는 “파리에서 생로랑 브랜드의 선셋 미디엄 체인백을 사는데 1833달러(약 240만 원)를 썼다. 미국 가격인 2550달러(약 333만 원)보다 700달러(약 93만 원) 이상 저렴했다”고 WSJ에 말했다. 미 부가가치세(VAT) 환급 제공업체인 플래닛에 따르면 올해 6월 미국 여행객들이 유럽에서 쓴 금액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6월보다 56% 증가했다. 주로, 명품 가방과 보석, 시계 등을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WSJ은 “미국인들의 유럽 여행은 인플레이션으로부터의 휴식을 제공한다”며 “달러의 강세가 유럽의 높은 비용 중 일부를 상쇄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18일 전했다. NYT는 ‘해외여행 중 최대한 돈 벌기’라는 기사에서 “2008년에는 로마에서 5유로(약 6700원)짜리 와인 한 잔이 8달러(약 1만500원) 정도였는데, 현재 화폐 비율로는 5.2달러(약 6800원)면 마실 수 있다. 올해 여름 파리의 100유로(약 13만3000원)짜리 임대 아파트는 104달러(약 13만7000원)면 묵을 수 있지만, 유로 화폐가치가 정점이었을 때는 158달러(약 20만7000원)였을 수 있다”고 했다. ● 달러, 왜 강할까? 달러는 왜 강하고, 유로화는 왜 약할까.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매파적 움직임 때문이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1980년대 초반 이후 가장 가파른 통화긴축에 돌입했다. (인플레이션은 신비월드 15화, “치솟은 주가가 지구로 돌아왔다. 파티는 끝났다”에서 자세히 소개한 바 있다.) 최근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을 연이어 단행했다. 이자율은 환율의 중요한 결정 요소다. 다른 조건이 동일할 때 돈은 더 높은 이자율을 쫓아 국경을 넘는다. 해당 국가의 자산이 더 높은 수익률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즉, 미국이 급격하게 금리를 올리면서 달러 가치가 올라간 것이다. 강(强)달러는 미국 내 수입 물가를 낮추는 효과도 있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경기 침체 전망이 더해지면서 안전자산을 찾는 투자자의 심리도 더해졌다. 참다못한 유럽중앙은행(ECB)도 21일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인상했다. 유럽중앙은행의 11년 만의 금리 인상이었다. 유럽의 기준금리는 이제야 0.50%가 됐다. 현재 미국 기준금리는 2.25~2.50%다. 아직 격차가 크다. 유럽도 미국만큼 인플레이션이 심각하지만, 금리를 따라 올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금리를 올려봐야 금리 인상 목적인 ‘인플레이션’이 잡힐 것 같지도 않다. 물가의 큰 축을 차지하는 에너지 때문이다. 러시아에서 천연가스의 40%를 수입하던 EU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천연가스 가격 급등과 수급 차질에 직면해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가스 공급을 점점 더 무기로 삼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 공급이 중단될 경우 헝가리, 슬로바키아, 체코, 이탈리아의 내년 GDP가 5% 이상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모두 러시아 가스에 대한 수입의존도가 70%가 넘는 국가들이다. 유럽의 에너지 위기에 따른 경제 붕괴 우려가 유로화의 약세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 더블룸 가격의 싱글룸 숙박 미국인들이 달러 강세를 누리더라도 코로나19 이전보다 험난한 해외여행을 각오해야 할지 모른다. 비행기 티켓값의 급격한 상승과 혼잡한 공항 관문을 버텨도 숙박 문제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수요가 몰려 방을 구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 여행사 지카소의 직원인 탄 씨는 “이탈리아의 로마, 피렌체 같이 인기 있는 목적지는 객실이 완전히 예약돼 있다”며 “포르투갈이나 크로아티아처럼 덜 인기 있는 곳으로 가야 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올해 여름에는 호텔 예약이 주말에 더 몰릴 가능성이 있다. 코로나19 이후 출장 수요가 제대로 회복되지 않으면서 여행객들 위주로 고객이 구성됐기 때문이다. 스테파니 린나츠 메리어트 인터내셔널 사장은 “비즈니스 여행객이 집으로 돌아가는 목요일을 매니저들이 ‘체크아웃의 밤’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주말 휴가가 길어진 여행객들로 목요일이 ‘체크인의 밤’으로 뒤집혔다”고 했다. 이는 요일과 시즌별로 수요에 맞춰 가격을 책정하는 호텔에게 주말 객실 요금을 더 비싸게 받을 요인이 된다. 올해 들어 호텔 운영비가 급격하게 오른 것도 있다. WSJ은 “인건비와 인플레이션에 따른 용품 가격 상승으로 호텔 운영비용이 상승했다. 숙박비용이 높아졌지만, 더 나은 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글로벌 호텔 데이터 분석 회사 STR에 따르면 6월 중순부터 7월 초까지 유럽의 호텔 객실의 일평균 요금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4%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 세계로 퍼진 인플레이션이 여행객들의 들뜬 마음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탄 씨는 “지난해 크로아티아의 미쉐린(미슐랭)가이드 등급을 받은 레스토랑에서 식사했는데 이후 메뉴 가격이 20% 상승했다”고 WSJ에 말했다. 여행 플랫폼 투어리스트져니는 “이탈리아 여행비가 지난해 여름보다 60%가량 증가했다”고 밝혔다. ● 코로나19가 바꿔 놓은 해외여행 설레고 즐거운 해외여행을 앞두고 머릿속 숫자 계산을 잠시 내려놨다고 치자. 그래도 최악의 시나리오들이 남아 있다. 현지에서의 이동 수단을 면밀하게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해외에서는 렌터카 업계에서 공항과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고객도 모르게 예약이 취소되는 일이 더러 발생해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사모펀드에서 일하는 에릭 라이트 씨는 “필라델피아에 예약한 렌터카가 나도 모르게 예약이 취소돼 있었다. 우버에서 세 배 많은 돈을 써야 했다”고 했다. 국가에 따라 지하철 등 대중교통 이용에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최근 미국 뉴욕의 지하철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의 3분의 2 정도만 운영되고 있다. 오클랜드의 버스도 3년 전의 절반만 돌고 있다. 영국은 파업과 기록적인 폭염으로 열차 운행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식당, 가게에서 현금을 안 받는 곳이 있을 수 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비대면 주문·결제를 도입한 곳이 늘었기 때문이다. 한 여행객은 “영국 지방의 작은 술집에서도 카드를 받았다. 한 인도 식당에서도 ‘이제 더 이상 현금을 받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고 NYT에 전했다. 현금보다 해외 결제가 가능한 카드를 준비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 실제로, 기자가 지난달 터키로 취재를 하러 갔을 때 메뉴판이 없는 식당이 꽤 있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QR코드를 사진 찍어 스마트폰으로 메뉴를 보게 바꿔놓은 것이다. 직원이나 물건과의 접촉을 최대한 줄이려는 이유에서다. 고객 숫자가 감소한 만큼 직원 숫자를 최소화하려는 목적도 있었을 것 같다. 처음 메뉴 글자를 영문으로 바꾸는 방법을 찾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 여정이 끝나갈 무렵 코로나19 증세가 나타난다면, 그것보다 심각한 상황이 없을 것이다. 집에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나라마다 다르지만, 한국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두고 돌아와야 한다. ● 아직은 요원한 여행 산업의 회복 2018년 전 세계 사람들은 14억 번의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2000년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들이 쓴 돈도 어마어마하다. 코로나19 이전에 전 세계 관광객들은 매년 1조6000억 달러(약 2100조 원)를 지출했다. 스페인 GDP보다 큰 규모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비행기 조종사부터 여행 가이드, 리조트에서 일하는 청소부까지 전 세계 약 3억3000만 개의 일자리가 여행 산업에서 비롯됐다. 이코노미스트는 “독일인 관광객에게 상그리아를 파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술집은 수출업자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주류를 수출한 것과 맞먹을 수 있다”며 “관광산업은 전 세계 수출 수익의 원천이며 식품, 자동차 산업보다 규모가 크다”고 했다. 각국이 뜨거운 관광객 유치전을 펼치는 이유다. 과거 18세기 귀족들은 ‘그랜드 투어’를 떠났다. 마차에 가방과 가구 등을 가득 싣고, 하인을 태워 갔다고 한다. 19세기에는 일부 부유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여행이 유행처럼 번졌고, 1970년대부터 일부 관광객과 출장을 떠나는 경영진들로 공항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바퀴 달린 가방(캐리어)은 ‘대중 여행의 시대’를 상징한다”고 평했다. 대중 여행의 시대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추억을 쌓는 기회를 안겼다. 기업과 공급망을 연결한 측면도 있었다. 사람(직원)과 물건을 빠르게, 대량으로 옮길 수 있게 만들었다. 글로벌 산업 생태계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의미다. 2020년 3월 전 세계 5분의 4가 국경을 닫으면서 중단됐던 해외여행이 올해 들어 본격화하고 있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코로나19 이전과 다른 느낌이다. 돈도 문제지만, 바이러스에 걸릴 것 같은 불안감이 남아있다. 국가별로 요구하는 여행 조건들도 신경이 쓰인다. 간절하지만 험난한 해외여행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김성모 기자 mo@donga.com}

    • 2022-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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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현대차가 달라졌어요[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 4년 만의 응답: “현대차, 잘하고 있어” 2018년 3월 스위스에서 열린 제네바 모터쇼. 현대차는 행사장 건물 외벽에 아이오닉과 코나, 넥쏘 등 전기차를 홍보하는 대형 광고를 내걸었다. 그런데, 광고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끈 것은 차량이 아닌 도발적인 문구였다. “일론, 이제 당신 차례야.(Your turn, Elon.)”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이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그럴 만하다. 테슬라는 이미 북미에서 전기차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현대차그룹(이하 현대차)은 10위 안팎으로 존재감이 미미했다. 광고에 담긴 차량들 디자인도 테슬라에 비해 어딘가 촌스러워 보였다. 당시 현대차가 내연기관 차량의 뼈대를 가져다가 전기차를 만들다보니 기존의 자동차들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지난달 17일(현지 시간) 머스크가 트위터에서 현대차를 언급했다. 미국의 올해 1분기(1~3월) 전기차 점유율 순위 관련 게시물에 “현대차, 잘하고 있다(Hyundai is doing pretty well)”는 댓글을 단 것. 게시물에 따르면 테슬라는 1분기 미 전기차 시장에서 점유율 75.8%로 독보적인 1위를 기록했다. 2위가 9.0%의 현대차였고, 폭스바겐(4.6%)과 포드(5.4%)가 뒤를 이었다. 1, 2위의 격차는 컸지만, 머스크의 ‘칭찬 댓글’로 현대차가 주목을 받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블룸버그통신은 25일 ‘미안해요 일론 머스크, 현대차가 조용히 전기차 시장을 지배 중입니다(Sorry Elon Musk. Hyundai Is Quietly Dominating the EV Race)’라는 제목의 기사로 한 술 더 떴다. 블룸버그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핫한 전기차는 테슬라 공장에서 나오고 있지 않으며, 모든 시선은 현대 아이오닉5와 기아 EV6에 쏠려 있다”고 했다. 이어 “현대차와 기아가 미국에서 선보인 전기차들이 순식간에 포드·닛산·쉐보레 등 주요 전기차 모델을 제치고 5월까지 총 2만1467대의 판매기록을 올렸다”며 “같은 기간 미국 포드의 순수 전기차 머스탱 마하-E의 판매량(1만5718대)을 가볍게 뛰어넘었다”고 덧붙였다. 리서치기관 에드먼즈의 애널리스트 조셉 윤 부사장은 “그들(현대차·기아)이 EV(전기차)시장을 싹쓸이하고 있다. 솔직히 주변 딜러들이 재고를 확보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테슬라의 압도적인 점유율보다 현대기아차의 빠른 성장세에 주목한 것이다. ● 머스크의 칭찬은 진심이었을까? 현대차가 분발하고 있지만, 테슬라와의 점유율 격차가 상당한 상황. 경쟁사에 대한 머스크의 칭찬은 과연 ‘진심’이었을까. 일각에서는 이번 언급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조롱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머스크는 지난달 2일 경영진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경기가 나빠질 것 같아 직원 10%를 줄이겠다”고 했다. 곧바로 한 기자가 바이든 대통령에게 이에 대한 의견을 묻자 “포드는 사람 더 뽑는다는데? 달나라 잘 다녀와 머스크”라고 비꼬았다. 한 달 동안 꿍해 있던 머스크가 이번에 포드의 1분기 미 전기차 점유율(5.4%)이 4위로 쳐진 것을 보고, 이때다 싶어 바이든 대통령을 공격했다는 것이다. 현대차를 이용해서 말이다. ‘지나친 해석 아니냐’고 물을 수 있지만, 친노조 성향인 바이든 대통령과 무노조 경영을 내세우는 머스크는 그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다. 미 CNBC는 지난달 “대통령의 발언은 그간 반복해서 바이든을 비판해 온 머스크와의 가장 최근의 마찰”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머스크의 칭찬이 진심이든 아니든 최근 현대차의 해외 성과는 주목할 만하다. 현대차와 기아의 미국 전기차 판매량은 2018년 1493대에서 2020년 7410대, 지난해 1만9590대로 늘었다. 올해 5월까지는 2만 대가 넘는 전기차를 미국에서 팔았다. 내연기관 차량도 잘 팔렸다. 올해 상반기 현대차와 기아(제네시스 포함)는 미국에서 61만2184대를 판매했다. 미 제너럴모터스(GM)와 일본 도요타, 미 포드, 스텔란티스에 이은 다섯 번째 실적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일본 혼다를 약 3만 대 차이로 6위로 밀어낸 뒤 올해 그 격차를 더 벌렸다. 미국에서 현대차와 기아, 제네시스의 경쟁력이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물론, 전기차도 포함이다. 현대차는 올해 역대 최대 영업이익을 전망하고 있다. 증권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는 올해 2분기(4~6월) 각각 2조1399억 원, 1조7100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합계 영업이익이 4조 원을 돌파하며 분기 기준 역대 최고치를 넘어설 전망이다. 현대차·기아의 올해 전체 영업이익도 역대 최대치를 경신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에게는 삼성만큼이나 친숙한 현대차. 해외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해외 주요 언론들을 살펴봤다. ● “저렴하지만 흥미롭지 않은 차” 3~4년 전만해도 현대차에 대한 해외 평가는 좋은 편이 아니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2019년 3월 기사에서 “현대차는 일본, 서구 경쟁사들보다 저렴하면서도 흥미롭지 않은 차량을 대량으로 생산해 세계 5위의 완성차 업체에 올랐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평했다. 당시 이코노미스트는 현대차가 인건비 상승으로 더 어려움을 겪게 됐다고 우려했다. 현대차가 전체 차량 중 40%를 한국에서 생산하는데, 국내 인건비가 올라가면서 가격 경쟁에서 뒤쳐지게 됐다는 분석이었다. 이는 현대차의 성장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소라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폭스바겐은 연 매출의 6%를, 도요타는 4%를 연구개발(R&D)에 사용하는데 현대차는 3%만을 쓰고 있다”며 “일부 분석가들은 (현대차의) R&D 부족이 인건비 때문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이 같은 비용 상승과 소비자들의 기대치는 정반대에 위치해 있었다. 이코노미스트는 “고객들은 여전히 우리 차가 폭스바겐보다 저렴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현대차 수석 전략가의 코멘트를 인용했다. ‘무색무취의 저가 자동차 제조업체’가 현대차의 이미지였다. 실제로 현대차는 해외 진출 이후 고급차로 평가받지 못하면서 주로 일본, 미국 등의 중저가 차량들과 경쟁했다. 2008~2009년 미국 시장에서의 현대차 점유율은 4% 수준에 불과했다. 2010년대 중반 이후에는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위주로 재편된 미국 시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고전했다. 2018년 현대, 기아차의 연간 영업이익은 3조 원대로 추락했다. 올해 1개 분기에 올린 영업이익을 1년 동안에도 벌어들이지 못한 것이다. ● 방탄소년단(BTS)이 선보인 현대차 2018년 11월, 분위기가 바뀌었다. 현대차가 2018년 3월 제네바 모터쇼에서 머스크를 소환하고 8개월이 흐른 뒤 ‘2018 로스앤젤레스(LA) 오토쇼’가 열렸다. 이곳에서 현대차는 8인승 SUV 차량인 ‘팰리세이드’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SUV가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가운데 내놓은 현대차의 야심작이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당시 수석총괄부회장)도 행사를 참관했다. 현대차는 팰리세이드 개발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2016년 4월 개발팀은 3주 동안 경쟁사 SUV 차량의 제일 뒤쪽 3열 좌석에만 앉아 미국 대륙을 돌았다. 디자이너를 데리고 미국 곳곳을 다니기도 했다. 북미시장 고객이 마트에서 짐을 어떻게 싣고 내리는지, 3열 공간의 크기가 왜 충분히 확보돼야 하는지 등을 함께 살피면서 공감대를 조성했다. 현대차가 3열 좌석에 집착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미 SUV 잠재 고객들의 요구 때문이었다. 현대차가 팰리세이드 개발 전 수요층에 대한 사전조사를 했는데, 개발팀은 ‘가족을 위해 공간이 넓은 SUV를 찾는 아빠’라는 키워드를 찾아냈다. 다자녀인 집이 많고, 여행 등 여가활동이 늘면서 사람들이 널찍한 3열 공간을 원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인 편이었다. 현대차는 방탄소년단(BTS)을 팰리세이드 글로벌 브랜드 홍보대사로 선정하고, 2019년 6월 미국에 선보였는데, 출시 첫 달에 383대가 팔렸다. 이후 7월 4464대, 8월 5115대로 판매량이 수직 상승했다. 비슷한 시기에 기아가 출시한 대형 SUV 텔루라이드까지 미국에서 흥행하면서 현대차는 분위기 전환에 성공했다. 2019년 미국에서 5만8604대가 팔린 텔루라이드는 미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2020 북미 올해의 차’ SUV 부문에서 우승했다. 후보였던 팰리세이드와 링컨 애비에이터를 제쳤다. 기아는 텔루라이드 인기 덕분에 2019년 매출(58조1460억 원)이 시장전망치를 상회하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73.6% 뛴 2조97억 원이었다. ● 달라진 제네시스, 달라진 현대차 이미지 펠리세이드 출시 이후에 나온 제네시스도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현대차는 2007년 말 럭셔리 세단인 제네시스를 처음 선보였다. 시장 반응은 미지근했다. 4년 동안 열심히 연구해 만들었지만 소비자들은 크게 감동받지 못했다. ‘악플’보다는 ‘무플’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현대차는 제네시스를 고급 승용차로 내세우면서도 BMW 5시리즈보다 1만 달러 이상 저렴한 가격에 판매했다. 일각에선 이 같은 애매한 가격 포지셔닝이 소비자의 선택을 주저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현대차는 2015년 말 도요타의 렉서스처럼 제네시스를 독립 브랜드로 발표했다. 이 역시 처음에는 흥미를 끌지 못했다. 국내에서도 ‘어르신차’, ‘회장님차’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다가 2020년 1월 현대차가 GV80을 시작으로 G80, G70, GV70을 잇달아 선보였는데, 세련된 디자인으로 호평이 쏟아졌다. 현대차에 대한 ‘외모 지적’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2015년 530대가 판매됐던 제네시스의 글로벌 연 판매량은 2020년과 지난해 각각 10만 대와 20만 대를 넘어섰다. 특히 미국에서 잘 팔렸다. 지난해 제네시스의 미국 판매량은 4만9621대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혼다의 고급차 브랜드 아큐라를 처음으로 추월했다. 물론, 차 디자인이 예뻐서만은 아니었다. 이 같은 판매량은 품질이 기반이 됐다. 제네시스는 올해 미국 시장조사업체 제이디파워의 신차품질조사(IQS)에서 156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렉서스(157점)와 캐딜락(163점)을 제쳤다. 이는 1987년부터 시작된 세계 최고 권위의 품질조사다. 고객이 차량구입 후 3개월 동안 경험한 품질불만 사례를 집계해 100대당 불만건수를 점수로 나타낸다. 점수가 낮을수록 품질만족도가 높다는 의미다. 프로골프 선수인 타이거 우즈는 지난해 2월 주행 중 9m 언덕 아래로 구르는 전복 사고를 당했다. 차량 내부가 거의 파손되지 않았고, 우즈의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자연스럽게 그가 탔던 차 모델에 관심이 쏠렸다. 당시 ‘골프 황제’가 타고 있던 차가 GV80이었다. ● ‘유니크’한 전기차 ‘아이오닉5’ 그런데, 정작 현대차를 머스크 입에 올리게 만든 것은 제네시스가 아니었다. 2018년 촌스러운 모습으로 그를 도발했던 아이오닉이었다. 현대차는 친환경 전용 모델이었던 아이오닉 브랜드를 순수 전기차로 개발해 ‘아이오닉5’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2월 처음 공개했는데, 돌풍을 일으켰다. 출시 전, 계약이 역대 최다를 기록했고 상을 휩쓸며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아이오닉5가 확 달라진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사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현대차가 이와 함께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내놓았다는 점이다. 아이오닉5는 현대차가 만든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장착했다. 2000년대 이후 자동차 완성차 업체들은 차체에 레고 블록을 조립하는 것처럼 부품을 조합해 차량을 만드는 플랫폼 기반의 생산 방식을 택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차량 모델은 다르지만, 처음 만들 때 기본 틀은 같다는 것이다. 이 같은 방식은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춘 대형 회사일수록 유리하다. 재료비나 생산비, 개발기간 모두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요타나 폭스바겐 모두 이 전략을 쓰고 있다. 현대차는 2019년 3세대 플랫폼을 도입해 원가를 절감했다. 6개 플랫폼으로 생산하던 것을 3개 정도로 줄였다. 세단이나 SUV 구분 없이, 대형 중형 소형으로 통일했다. 제네시스 등 별도의 방식을 택하는 모델도 있다. 기존 내연기관 차량과 전혀 다른 전기차가 등장하면서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테슬라가 이를 주도했다. 배터리와 구동모터를 핵심으로 삼는 전기차는 엔진, 변속기 등을 중심으로 설계된 내연기관차와 플랫폼이 다를 수밖에 없다. 플랫폼 바닥이 스케이트보드처럼 평평하게 생긴(이 부분에 배터리가 들어간다) 전기차는 내부에 들어가는 부품 숫자가 기존의 절반도 안 된다. 엔진이 들어갈 공간이 필요 없다보니 전기차 보닛 안은 트렁크 공간으로 활용한다. 무게도 가벼워지고 배선도 단순해졌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 생겼기 때문에 아이오닉5의 디자인도 확 바뀔 수 있었던 것이다. ● “이 차를 두고 테슬라를 살 이유가 없다” 아이오닉5는 사전계약 첫 날 2만 대 계약을 돌파하는 등 국내에서 인기를 끌었다. 해외에서의 평가는 더 뜨거웠다. 아이오닉5를 시승한 미 뉴욕타임스(NYT) 기자는 4월 “현대차가 전기차의 진정한 다크호스가 될 수 있음을 느꼈다”며 “한국의 성장은 도요타, 혼다 같은 일본 자동차 제조사들의 부상을 되풀이한다. 이들은 50년 전 ‘헝그리 정신’으로 미국, 유럽 경쟁사보다 민첩하게 움직였다”고 했다. NYT에 따르면 아이오닉5의 주행거리(사륜구동 옵션 기준)는 256마일(약 422㎞), 연비는 98MPGe로 테슬라 모델Y에 못 미친다. 모델Y의 주행거리와 효율은 각각 330마일, 122MPGe다. MPGe는 전기에너지를 갤런(1갤런=3.785L)당 마일(1마일=1.609㎞)로 환산한 미국식 연비주행 표시다. 반면, 아이오닉5는 충전 속도에서 강점을 보인다. 아이오닉5의 배터리를 10%에서 80%까지 충전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18분 정도다. 아이오닉5는 800V(볼트) 충전 시스템을 갖췄는데 이는 테슬라의 2배다. NYT는 “아이오닉5를 5분 충전하면 최대 109㎞를 더 달릴 수 있다”며 “아이오닉5의 초고속 공공 충전은 가장 큰 기술적 성취”라고 했다. 미 자동차 전문지 모터트렌드는 지난해 말 “아이오닉5는 (테슬라) 모델Y보다 수만 달러 저렴하고, 충전 시 멀리 갈 수 있고, 더 빨리 충전되고, 더 나은 인테리어를 가지고 있다”며 극찬했다. “테슬라 배지와 충전 네트워크를 제외하면 아이오닉5를 두고 모델Y와 모델3을 살 이유가 없다”고까지 했다. 물론, 속도는 테슬라의 차가 아이오닉5보다 더 빠르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경주에 나설 계획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이오닉5도 충분하다”고 표현했다. 아이오닉5는 유럽에서도 잘 팔렸다. 출시 3개월 만에 유럽에서 1만 대를 넘게 팔았다. 콧대 높은 독일 브랜드들마저 긴장하게 만들었다. 독일 자동차 전문지 ‘아우토 모토 운트 슈포트(AMS)’는 자사가 최근 진행한 4개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비교 평가에서 아이오닉5가 가장 경쟁력 있는 차로 선정됐다고 지난달 말 밝혔다. AMS는 유럽 전역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독일 3대 자동차 매거진 중 하나다. 아이오닉5와 메르세데스-벤츠 EQA 250, 아우디 Q4 e트론, 르노 메간 E-테크 등을 대상으로 바디, 안전성, 컴포트, 파워트레인, 주행거동, 환경, 경제성 등 7가지 평가 항목을 비교한 결과였다. 아이오닉5는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2022 월드카 어워즈’에서 독일의 메르세데스-벤츠의 EQS와 아우디 e-트론 GT 등을 누르고 올해의 전기차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대차 내부에서도 예상 못한 결과였을 듯하다. 해외 언론들이 모든 차를 좋게만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블룸버그는 지난달 28일 “(미 자동차 브랜드) 캐딜락 리릭 SUV 전기차는 기다릴 가치가 없다”고 평했다. “경쟁사의 전기 SUV 차량이 더 먼저 나올 예정이니 기다려보자”고 했다. ● 방황 끝난 도요타와의 본격적인 경쟁 사실, 기아 전기차 EV6의 흥행도 아이오닉5 못지않았다. 현대차만 언급하기 미안할 정도로 소리 없이 강했다. 아이오닉5는 본격적으로 판매가 시작된 올해 2월부터 5월까지 미국에서 1만 대가 팔렸다. EV6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5월까지 유럽에서 2만1852대가 팔렸다. 아이오닉5와 EV6가 두 대륙에서만 3만 대가 넘게 팔렸다. EV6는 영국 자동차 전문 매체인 왓카가 주최하는 ‘2022 왓카 어워즈’에서 ‘올해의 차’에 선정되기도 했다. 1978년 시작된 이 상은 유럽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최근 현대차가 선보인 두 번째 전용 전기차이자 첫 세단형 전기차인 ‘아이오닉6’에도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유선형 디자인이 특징이다. 영국 자동차 전문 매체 탑기어는 “유선형 디자인은 미적으로 훌륭하지만, 제작이 어렵다”며 “아이오닉6의 디자인은 유선형을 잘 유지하면서 뛰어난 공기저항 계수까지 자랑한다”고 평했다. 현대차는 일본에서 아이오닉5, 넥쏘 등을 온라인으로 지난달부터 판매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국민들이 자국차를 선호해 ‘수입차의 무덤’으로 꼽혀온 곳이다. 그런데, 전기차에서는 유독 수입차 비중이 높은 편이다. 닛산이 1만 여대를 팔며 점유율 50%를 넘겼지만, 도요타(758대)와 혼다(723대)는 저조했다. 나머지 40% 가량인 8605대는 수입차였다. 일본의 전기차 인식이 아직 떨어져 있고, 도요타 등 완성차 브랜드들이 뒤늦게 전기차 시장에 뛰어든 것이 영향을 미쳤다. 도요타는 첫 전기차 bZ4X를 올해 4월에서야 일본과 미국 시장에 출시했다. 렉서스의 첫 전기차 UX 300e 역시 최근에 나왔다. 전기차 진출이 늦어지긴 했지만, 도요타의 저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도요타는 세계 신차 판매 시장에서 2년 연속 1위를 기록했고, 지난해 미 자동차 시장에서 최초로 GM을 제치고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약 857만 대 생산량 중 233만2000대가 미국에서 팔렸다. GM의 미국 판매량은 221만8000대였다. 현대차는 전년 대비 19% 늘었지만 73만8081대로 격차를 보였다. 도요타는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 시장에선 압도적인 성적을 보이고 있다. ● 현대차는 빠르게 달리는 ‘후발주자’ 전기차에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던 도요타가 지난해 9월 전기차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전기차 배터리의 개발과 생산에 1조5000억 엔(약 16조 원)을 쏟아붓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도요타 측은 “2030년까지 연간 200GWh(기가와트시) 이상의 배터리 생산능력을 갖출 것”이라고 했다. 도요타가 연 200GWh의 배터리 생산규모를 갖추면 연 300만~400만 대의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전기차 대량보급을 체계를 갖추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배터리 생산의 내재화를 통해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도요타의 전략이다. 일각에서는 도요타의 전기차 진출이 늦어진 것이 배터리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국에는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메이저 배터리 제조사들을 여럿 보유하고 있지만, 일본에는 파나소닉이 이를 주로 생산하다보니 계약 관계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해외에 맡기려니 정치적 이슈나 공급망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자국의 업체와 계약하면 가격 결정권이 흔들리는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도요타도 이러한 점을 종합해 막대한 투자를 해서라도 배터리 생산능력을 직접 갖추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 ● 차만 만들까, 차도 만들까… 최근 관심을 받고 있지만 현대차 역시 전기차 시장에서는 ‘후발주자’다. 테슬라는 2012년 대형 전기차 세단인 모델S부터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적용했다. 현대차보다 8년 이상 빠른 셈이다. 현대차가 열심히 테슬라에 따라 붙으려는 상황에서 내연기관 강자였던 도요타의 전기차 올인 전략은 여러모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전기차를 잘 만드는 것을 넘어서서, (도요타의 경쟁을 고려했을 때) 저렴하게 만들어야 하는 숙제까지 떠안게 됐다. 게다가 테슬라를 따라 잡으려면 자동차만 잘 만들어서는 부족하다. 자동차를 만든다는 발상부터 버려야 할지 모른다. 테슬라가 인정받는 이유는 전기차 전용 전자 플랫폼과 소프트웨어(SW) 때문이다. 아직 결함이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자율주행까지 장착하기에 한 참 걸릴 것으로 보이지만,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에 맞춰 소프트웨어를 계속 업데이트 시키고 있다. 테슬라는 점점 더 똑똑해질 가능성이 크다. 컴퓨터, 스마트폰처럼 말이다. 현재의 자동차 산업은 어떻게 보면 애플이 아이폰을 처음 내놨을 때와 유사해 보인다. 당시 전화만 잘 터지는 휴대전화를 만들었던 회사들은 현재 모두 자취를 감췄다. 전통의 완성차 업체들도 현재의 상황을 잘 알고 있다. 폴크스바겐과 벤츠 등은 2025년 전후로 테슬라와 같은 소프트웨어 기반의 차량을 내놓을 계획이다. 현대차도 2030년까지 전기차, 자율주행 등 미래 전략 사업에 95조5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올해 3월 밝힌 바 있다. 현대차는 10년 내에 올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첫 발을 잘 내디딘 현대차의 내일이 궁금하다.김성모 기자mo@donga.com}

    • 2022-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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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시국에 금리를 내리는 나라가 있다고? [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무서운 속도로 금리를 올리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지난달 17일 단행했다. 이달에도 0.5¤0.75%포인트 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영국 중앙은행(BOE)도 기준금리를 1.25%로 0.25%포인트 올렸다. 스위스 중앙은행(SNB)은 무려 15년 만에 금리를 0.5%포인트 끌어올렸다. 신흥국도 비슷한 상황이다. 멕시코는 최근 기준금리를 7.75%로 한 번에 0.75%포인트 인상했다. 브라질은 11번 연속으로 금리를 올렸다. 지난해 3월 2.0%였던 기준금리를 11%포인트 넘게 인상했는데, 더 올리겠다고 밝힌 상태다. 아르헨티나의 현재 기준금리는 연 52%나 된다. 최근 3%포인트를 한 번에 올려버렸다. 전 세계가 물가를 잡기 위해 ‘돌격 앞으로’를 외치고 있다. 은행을 찾는 것이 치과에 가는 것만큼이나 무서울 것 같다. 그런데, 홀로 ‘백스텝’을 밟고 있는 국가가 있다. 바로, 터키(튀르키예)다. 터키는 지난해 9월부터 꾸준히 기준금리를 인하해 당시 19%였던 기준금리가 14%까지 떨어진 상태다. 최근 6개월 동안은 금리를 동결했다. 미국 등 주요 국가들과 금리가 반대로 가다보니 터키 화폐(리라화) 가치는 연일 떨어졌고, 인플레이션은 치솟았다. CNBC방송에 따르면 5월 터키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73.5% 상승했다. 베네수엘라(222.30%), 수단(220.70%), 레바논(206.24%), 시리아(139.0%), 짐바브웨(131.7%) 다음으로 높았다. 터키인들은 현재 물가 수준을 얼마나 체감하고 있을까. 터키 정부는 왜 금리를 올리지 않고 있는 것일까. 지난달 9일 이스탄불에 직접 가봤다. ● “미사일만큼 물가가 무섭다” 도착 후 공항 바로 앞 모스크(이슬람 예배당) 둥근 지붕부터 눈에 띄었다. 곳곳에서는 예배 시간을 알리는 ‘아잔’ 소리가 퍼졌다. 도심으로 이동하자 보스포러스 해안에 정박한 페리가 보였다. 유럽과 아랍의 교차점에 있는 이스탄불을 실감했다. 이스탄불은 중동의 서쪽 끝에 자리해 유럽과 아랍을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한다. 서민들의 물가 체감을 느끼기 위해 이스탄불에서 서쪽으로 10㎞ 떨어진 에센레르를 찾았다. 이곳은 중·저소득층이 주로 살고 있는 지역이다. 도심과 다르게 대부분의 여성이 히잡을 쓰고 있었고, 외국인이 낯설었는지 기자를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출발 전, “인터뷰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현지인의 조언이 있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친 이슬람’ 정책으로 신앙심이 강한 서민들의 표심을 꽉 잡고 있다고 했다. 고(高)물가로 힘들어도 싫은 내색을 안 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실제로 에르도안 대통령은 공공장소에서 금지됐던 히잡을 쓰게 허락하는 등 임기 동안 이슬람주의를 강화해왔다. 예상외로 현지인들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불만을 감추지 못했다. 각종 원자재값부터 월세, 인건비, 전기세 등 안 오른 게 없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에센레르에서 20년째 찻집을 운영 중인 이미라 티피티크 씨(53)는 반년 전 225리라(1만6800원)에 샀던 5kg짜리 찻잎이 현재 500리라(3만7400원)까지 올랐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차 한 잔 가격을 2.5리라(187원)에서 3리라(224원)로 0.5리라(37원)만 올렸다. 그는 “지난해보다 고객이 70%나 줄어 가격을 더 올릴 수 없었다”며 “지금도 모은 돈을 써가며 가게를 열고 있다. 월세를 1년 사이 2번이나 올려줬는데 또 인상 요청을 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주마 픈드크자데 시장에서 가게를 하는 에르도안 벨칸 씨(57)도 “가게 운영비가 1년 만에 3배가 됐다”며 “지난해 175리라(1만3000원)였던 레몬 25kg이 현재 1016리라(7만6000원)다. 내일은 얼마일지 모른다”고 했다. 이 시장 역시 이스탄불 서민들이 주로 찾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한 식당 주인은 “반년 전 7000리라(약 52만3000원)였던 월 전기요금이 지금은 1만9000리라(약 142만 원)까지 나왔다”고 전했다. 베이자 쇤메즈 씨(25)는 스마트폰에서 한 마트의 카이막(우유로 만든 크림) 200g 가격을 보여줬다. 지난해 10월 29일 9.75리라(728원)였던 이 제품의 가격은 11월 3일 10.9리라(813원), 12월 10일 15.9리라(1186원), 올해 3월 10일 14.75리라(1100원), 4월 28일 18.25리라(1362원)로 수차례 바뀌었다. ‘가격표를 수정할 직원을 뽑는다’는 문구를 내건 한 가게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사람을 정말 뽑는 것인지, 현실을 풍자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만큼 물가 상황이 심각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전문직도 하늘로 치솟은 물가 수준이 버거운 듯하다. 이스탄불에서 19년째 약국을 운영 중인 약사 아이셰 페이한 튀르케르 씨(48)는 “‘마시모두띠’ 옷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자라’도 못산다”고 한탄했다. 다른 한 50대 남성은 다른 국가와 다르게 금리를 내리는 정부를 언급하면서 “우리는 노벨 경제학상에 도전 중”이라고 비꼬았다. 그는 “우리도 전쟁 중인 것 같다”며 “미사일 못지않게 물가가 무섭다”고 했다. ● 터키는 왜 ‘금리’를 포기하지 못할까 이 같은 상황에서도 터키가 금리를 올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에르도안 대통령이다. 그는 “고금리는 만악의 근원”이라고 공개적으로 발언할 만큼 금리 인상에 부정적이다. 고금리가 국민을 빈곤과 실업, 기아에 몰아넣는다는 이유에서다. 2019년에는 금리 인하를 거부한 중앙은행 총재를 해고하기까지 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금리 정책이 물가상승을 억제하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고금리가 고물가를 유발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어 “고금리와 저환율의 악순환 대신 투자와 생산, 수출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주장은 금리를 높이면 시장에 풀리는 돈이 제한되고, 지출과 투자가 축소돼 물가를 낮추는데 도움이 된다는 경제학 이론과 배치된다. 이를 두고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에르도안의 주장은 경제학자의 머리카락을 쭈뼛 서게 만들기 충분하다”고 비판했다. 터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타격을 입은 국가 중 하나다. 관광이 국내총생산(GDP)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경제가 선방했다. 팬데믹이 한창이었던 2020년 터키의 경제성장률은 전년 대비 1.8%였고, 지난해에는 11%까지 치고 올라왔다. 기저 효과로 보기에는 올해 1분기(1~3월) 성장률도 7.3%로 높은 편에 속했다. 인플레이션 ‘숫자’만 보면 터키 상황이 엉망으로 보이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경제가 그만큼 나쁘지는 않은 셈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투자와 생산, 수출에 집중하겠다고 밝힌 것도 금리 인상으로 경기 불씨를 꺼뜨리기보다 인플레이션을 감내해서라도 경제 성장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도 비슷한 의견을 내비쳤다. 메흐메트 파티흐 차크르 터키 산업기술부 차관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터키는 현재 산업 패러다임이 바뀌는 중요한 기점에 있다”면서 “글로벌 상황 못지않게 터키 내부 경제에 정책을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 세계의 중심에 서고 싶은 ‘터키’ 그렇다면 터키 정부가 말하는 산업 패러다임 전환은 무엇이고, 글로벌 경기 침체의 위기 속에 터키 경제는 어떻게 선방할 수 있었을까. 터키는 유럽과 중동, 넓게는 아시아까지 사업 영역을 넓힐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갖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회사들이 2000년 전후로 공급망 관리를 위해 터키를 거점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BMW 벤츠 현대차 등 자동차 제조사들이 잇달아 터키에 진출했다. 터키는 자동차 말고도 기계, 철강, 의류 등 제조업 중심으로 산업을 키웠다. 제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 터키 정부는 부품 등 중간재 제조산업을 집중육성산업으로 지정하고, 투자 인센티브를 제공해왔다. 터키투자청에 따르면 터키의 연 자동차 생산량은 2020년 기준 129만 대로 세계 14위권이다. 자동차 분야의 수출 규모는 전체 산업 수출액의 15%를 차지하고 있으며, 자동차 수출액 중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비중은 63%다. 국내 한 중소기업은 현대차에 부품을 납품하기 위해 터키를 찾았다가, 포드와 르노 등 다른 완성차 업체의 수주를 따내기도 했다. 포드오토산(미 포드자동차와 터키 코치홀딩의 합작법인)의 쉔예네르 바리쉬 경영 총괄은 “자동차로 1~2시간 거리에 대부분의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부품회사가 있다. 터키에 자리를 잡는 것 자체가 ‘세일즈’”라고 했다. “공장이 항구에 인접해 있는 것도 큰 장점”이라며 “우리 공장에서 배까지 500m만 움직이면 차를 실을 수 있다”고도 했다. 터키 정부는 이 같은 ‘허브 DNA’를 정보기술(IT)에도 적용하고자 고군분투 중이다.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모빌리티 전기차 게임 등 신사업을 중점적으로 육성 중이다. 선진국들이 자국의 스타트업을 키우려는 것과는 다르게 터키는 국내외 스타트업과 기업들의 연구개발(R&D) 센터를 터키 안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을 쓰고 있다. 부락 다을로을루 터키투자청장은 “터키는 우리나라 기업과 해외 기업에 동일한 혜택을 제공한다”고 했다. 미국 실리콘밸리 같은 공간도 마련했다. 터키 정부와 은행 등 민간 기업은 IT 산업을 본격적으로 키우기 위해 2019년 게브제 지역에 IT 센터 ‘빌리심바디시’를 열었다. 350만 m²(106만여 평) 부지의 11개 빌딩에 300여 개 회사가 입주한 상태다. 미국 일본 독일 등의 기업들도 이곳에 사무실과 연구개발(R&D) 센터를 열었다. 세르다르 이브라힘지을루 빌리심바디시 총괄본부장은 이곳을 “터키와 실리콘밸리를 합친 ‘튀르키밸리’”라고 소개했다. 터키 정부는 빌리심바디시와 별도로 주요 대학에 테크노파크를 조성해 산학 협력도 유도하고 있다. 법인세·소득세 면제 등으로 창업을 독려하고 있다. ● 실리콘밸리 꿈꾸는 ‘튀르키밸리’ 그간 노력에 대한 성과도 있었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글로벌 자금이 모였다. 2017년 1억1400만 달러(1473억 원)였던 터키 벤처 투자 규모는 2020년 1억4800만 달러(1913억 원)로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15억5000만 달러(2조32억 원)로 10배 이상으로 뛰었다. 코로나19 이후 풍부해진 글로벌 유동 자금이 IT 산업을 집중 지원하기 시작한 터키에 몰린 것이다. 터키도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최근 3년 내 6개의 ‘유니콘 기업’(기업가치가 10억 달러가 넘는 스타트업)이 탄생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비중은 1%로, 5년 전에 비해 2배로 늘어났다. 기업용 서비스형 소프트웨어(B2B SaaS) 스타트업 ‘인사이더’가 대표적인 사례다. 2012년 설립된 인사이더는 올해 ‘첫 터키산 유니콘’에 등극했다. 이 회사는 기업들이 소비자 행동과 각종 정보를 분석해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고객이 특정 제품을 온라인상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잊고 있으면, 며칠 뒤 “상품이 아직 장바구니에 있는데 구매하시겠습니까?” 등의 알림을 보내준다. 고객의 선호도를 파악해 맞춤형 상품을 추천하기도 한다. 차을라르 이체르 인사이더 COS(Chief of Staff)는 “굉장히 단순한 사례를 언급한 것”이라며 “우리의 인공지능은 훨씬 더 정교하게 분석하고 고객에게 맞춤형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 인사이더의 고객사에는 삼성 유니클로 이케아 CNN 토요타 에스티로더 등 글로벌 대기업들이 즐비하다. 500여 명의 직원들이 800곳이 넘는 고객사들에게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신선한 아이디어를 들고 나온 스타트업들도 있다. 터키 스타트업 모비큐(MOBIQU)는 오토바이 뒤에 부착하는 배달용 스마트박스를 개발했다. 박스 내부를 두 칸으로 나눠서 각각 더운 공기와 찬 공기가 내부에 순환하도록 개발했다. 음식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찬 음식과 뜨거운 음식을 동시에 배달하는 것이 가능하다. 모비큐 관계자는 “한 번 전기로 충전하면 이틀은 간다”고 했다. 코모디프(Comodif)는 전기차의 운전자 정보를 활용하는 모빌리티 스타트업이다. 코모디프는 현재 연료로 주행 가능한 거리 등 전기차에서 받은 데이터들을 운전자에게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보여준다. 차에 타고 있지 않을 때는 도난 경보도 해준다. 보험사에는 운전자가 얼마나 안전하게 주행을 했는지 등의 정보를 제공해 보험료를 할인받을 수 있게 해준다. 이들은 완성차 업체인 피아트와 협력해 전기차 모델에 관련 서비스를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LG전자의 식물생활가전 ‘틔운’과 비슷한 제품을 개발하는 스타트업도 있다. 터키 스타트업 바하(Vahaa)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집에서 각종 작물을 키울 수 있는 제품을 개발했다. 식물이 잘 자랄 수 있게 하는 조명 구성과 온도와 산소 등을 체크하는 센서가 핵심 기술이다. ● 터키 자랑은 케밥·카이막 아닌 ‘이것’ 글로벌 벤처캐피탈(VC) 500스타트업 터키 지사의 훌리 이니스 파트너는 “유럽에서 영국과 프랑스 독일 스타트업들이 주로 주목받았는데, 최근에는 터키에 자리한 스타트업들이 빠르게 성장 중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 받은 바이오 회사도 있다”고 했다. 그는 “터키는 유럽 전체를 공략할 수 있다는 지리적 장점도 있지만, 인구 구성이나 정부 지원 같은 요소들도 무시할 수 없다”며 터키의 잠재력을 언급했다. 인구 8400만 명인 터키는 평균 연령은 32세로 유럽보다 12세, 독일보다 15세 젊다. 젊은 인구 구성만큼 무서운 것이 교육열이다. 메르트잔 캅타노을루 에닥 매니징디렉터는 “터키 대학 졸업자는 연 110만 명으로 독일에 이어 가장 많고, 이 중 절반이 기술을 전공한다”고 말했다. 독일을 대표하는 자동차 엔지니어링 회사 에닥은 2020년 터키에 R&D 사무실을 열었다. 현지에서 만난 학원강사 아슬란 치라이 씨(38)는 “인플레이션이 이렇게 높은데 학원 수강생은 줄지 않았다”며 “학부모들이 구멍 난 양말은 못 바꿔도, 애 학원은 보낼 정도로 터키 교육열은 높은 편”이라고 했다. 기자가 “인드라 누이(펩시콜라의 최장수 CEO) 같은 인도 출신뿐만 아니라, 터키 개발자들이 앞으로 글로벌 기업의 CEO를 맡게 될 것 같다”고 하자, 한 터키 정부 관계자가 “코카콜라 CEO가 누구였는지 살펴보라”며 웃었다. 터키 출신인 무타르 켄트 전 코카콜라 CEO를 언급한 것. 켄트 CEO는 2007년 12월부터 2017년 5월까지 코카콜라를 이끌었다. 현지에 있는 글로벌 기업들은 “정부의 강한 드라이브”를 터키의 강점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터키가 국가 산업으로 탄생시킨 전기차 업체 토그(TOGG)가 대표적이다. 토그는 터키 손으로 만든 첫 ‘국민 자동차’다. 올해 전기차 양산에 돌입하는 토그는 유럽 외 북미, 아시아 등 글로벌 시장에서 연간 17만대 이상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1000여 명의 직원들이 내년 3월 제품 출시를 준비 중이다. 한국의 현대모비스가 토그에 부품을 납품하고 있다. ● 터키의 ‘마이웨이’와 인플레이션 터키의 잠재력과 팬데믹 이후의 빠른 회복세에도 인플레이션과 환율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70%가 넘는 인플레이션을 보면, ‘경제 상황이 불안정한 나라에 투자해도 괜찮은 것일까’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과도한 인플레이션에 대해 차크르 터키 산업기술부 차관은 “흑해에서 발견된 천연가스와 관련해 가스관 착공이 오늘(지난달 13일) 시작됐다”며 에너지 공급을 늘려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플레이션은 글로벌 문제”라고도 했다. 부락 다을로을루 터키투자청장은 “환율 등을 안정화시킬 여러 정책들을 준비 중”이라며 대응책을 예고했다. 터키는 코로나19 전후로 불이 붙은 경제 성장의 흐름을 놓치고 싶지 않은 눈치다. 금리를 올리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금리를 낮게 유지한다고 경제에 마냥 좋은 것은 아니라는 예측도 있다. 터키 최대 경제인연합(TUSIAD)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기젬 오즈토크 알틴작는 이코노미스트에 “터키에서의 가격 인상(인플레이션)이 수요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언급했다. 금리를 낮게 유지한다고 해도 지나친 물가 상승이 사람들의 소비를 줄여 기업 실적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여러모로 터키 정부도 고민이 많을 듯하다. 그럼에도 차크르 차관은 “연 평균 5%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터키는 경제를 지키면서 물가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전 세계가 터키의 실험에 주목하고 있다. 이스탄불=김성모 기자 mo@donga.com}

    • 2022-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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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프간에 규모 5.9 강진 “1000명 이상 사망”

    지난해 9월 탈레반이 재집권한 뒤 심각한 경제난에 직면한 아프가니스탄 남동부에서 22일(현지 시간) 새벽 규모 5.9의 강진이 발생해 1000명 이상이 숨지고 최소 1500명이 다쳤다. 또 사상자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외신은 전했다. 이날 지진은 2002년 이후 아프간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낳았다. 정부를 장악한 탈레반 행정력이 변경 지역에까지 미치지 못한 데다 경제는 수렁에 빠져 개선될 여지가 없던 흙벽돌집 같은 취약한 거주시설이 직격탄을 맞아 피해가 커졌다. 로이터통신을 비롯한 외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1시 24분 아프간 남부 파키스탄 국경 인근 파크티카주에서 규모 5.9(유럽지중해지진센터·EMSC 기준)의 지진이 발생했다. 진원은 깊이 10km 정도였지만 아프간 수도 카불과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 등 수백 km 떨어진 곳에서도 흔들림이 감지될 정도로 위력이 컸다. EMSC는 아프간 파키스탄 인도에서 약 1억1900만 명이 떨림을 느꼈다고 밝혔다. 진앙은 인구 9만6000명 규모의 도시인 호스트에서 남서쪽으로 37km 떨어진 곳이다. 이날 지진은 2002년 3월 아프가니스탄에서 규모 7.2의 지진이 발생해 1800여 명이 숨진 참사 이후 가장 많은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집들이 무너져 돌무더기가 된 현장 사진이 속속 올라왔다. 대부분 가옥이 흙벽돌로 엉성하게 벽을 이은 것이어서 홍수나 지진에 쉽게 무너져 내린다. 수습된 시신은 담요에 덮인 채 그대로 놓여 있었다. 무너져 내린 집 안에는 아직 많은 사람이 깔려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특히 파크티카주와 호스트에서 심각한 피해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파크티카주 탈레반 정부 문화공보국장 아민 후자이파는 러시아 관영 스푸트니크통신에 “이번 지진으로 1000명 이상이 숨졌고 1500여 명이 다쳤다. 많은 마을이 파괴됐다”고 말했다. 인명 피해 상황은 수시로 바뀌고 있다. 탈레반 정부 행정력이 촘촘하게 미치지 못한 지역이 많은 데다 최근 언론과 국제구호단체 활동이 크게 위축됐기 때문이다. 살라후딘 아유비 내무부 관계자는 “일부 마을은 산간벽지여서 사망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자세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에 전했다. 탈레반 당국은 헬리콥터 등을 동원해 구조와 수색에 나섰고 피해 지역에 의약품 같은 구호물품을 전달하고 있다.김성모 기자 mo@donga.com}

    • 202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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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재료값 반년새 5배… ‘73% 인플레’에 신음 하는 터키

    “며칠간 먹을 아침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산 계란 오이 소시지 가격이 총 100리라(약 7500원)에서 500리라(약 3만7500원)로 5배로 올랐어요. 불과 반년 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믿기시나요.” 11일(현지 시간) 터키(튀르키예) 이스탄불 외곽의 에센레르 지역에 사는 이미라 티피티크(53), 알리 오스만 티피티크 씨(66) 부부는 기자에게 “내일 어떤 제품이 얼마나 오를지 아무도 모른다”며 치솟는 물가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고 털어놓았다. 터키는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73.5% 상승했다. 물가상승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전 세계에서 올해 처음 국가부도를 선언한 스리랑카도 물가상승률은 45.3%다. 티피티크 씨 부부는 터키인들 밥상에 올라가는 주요 식료품 가격이 1년 사이 2∼6배로 뛰었다고 전했다. 지난해 175리라(약 1만3000원)였던 레몬 25kg은 6배 가까이로 치솟아 1016리라(약 7만5900원)에 팔린다. 올리브 1kg 가격도 25리라(약 1870원)에서 3배로 오른 75리라(약 5600원)가 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식당 주인은 “반년 전 7000리라(약 52만3000원)였던 월 전기요금이 지금은 1만9000리라(약 142만 원)까지 나왔다”고 전했다. 터키 정부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팬데믹에 대처하겠다며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계속 내리다가 리라화 가치가 하락해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졌다. 지난해 12월 이미 물가상승률이 36.08%에 달했다. 올해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공급난과 이에 따른 고유가, 원자재·곡물 가격 폭등이라는 글로벌 복합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주요 국가들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 인상과 긴축으로 대처한 반면 터키는 관광 수입 급감으로 위축된 경기를 살리겠다며 저금리 기조를 고집하고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리라화 가치가 더욱 폭락해 ‘70% 인플레이션’이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식료품뿐 아니라 약값도 지난해에 비해 37% 올랐다고 약사 아이셰 페이한 튀르케르 씨가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20대 터키 여성은 월급이 물가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해 “희망이 없다”며 해외로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高물가 터키, 약값 통제해도 37% 급등… 월세 1년새 3번 올려” ‘세계 최고 인플레이션’ 터키 르포… 오믈렛 10배 뛰고 월세 2배로 올라음식 찾아 쓰레기 뒤지는 사람도… 찻집 사장 “손님 작년보다 70% 감소”약국 약사 “돈 없다기에 외상으로 줘… 정부 “코로나 경기부양” 저금리 고수리라화 가치 폭락… 인플레 부추겨 11일(현지 시간) 터키(튀르키예) 최대 도시 이스탄불 도심에서 만난 학원강사 아슬란 치라이 씨(38·여)는 기자가 경제난에 관한 질문을 하려 하자 “대답을 하려다 울지도 모르겠다”는 말부터 꺼냈다. 그는 지난해 3리라(약 225원)였던 오믈렛 가격이 현재 30리라(약 2250원)라고 했다. 3000리라(약 22만5000원)였던 주택의 월 임차료도 6000리라(약 45만 원)로 2배 올랐다. “(식료품값 폭등을 감당하지 못해) 쓰레기통을 뒤지며 음식을 찾는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고 토로했다. 이스탄불에서 19년째 약국을 운영 중인 약사 아이셰 페이한 튀르케르 씨는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는 약값도 전년 대비 37% 올랐다. 서민들에게는 치명타”라고 했다. 그는 “최근 열이 심하게 나는 아이가 찾아와 돈이 없다기에 약사 생활 처음 약을 ‘외상’으로 줬다”고 전했다.○ 메뉴판엔 가격 수정용 견출지 덕지덕지 터키 곳곳에서 물가상승률이 70%를 넘은 살인적 고물가의 실상을 쉽게 체감할 수 있었다. 이스탄불 외곽의 에센레르 지역에서 20년째 찻집을 운영 중인 이미라 티피티크 씨(53)는 “경제난으로 작년보다 손님이 70% 줄었는데 월세는 1년간 두 번이나 올랐다. 그런데도 건물 주인이 또 올려 달라고 한다”며 세 번째 인상 요구에 대처할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임차료 외에 전기요금, 원재료 가격 등도 치솟아 더 이상 가게를 운영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호소했다. 티피티크 씨는 반년 전 5kg짜리 찻잎을 225리라(약 1만6800원)에 사들여 차 한 잔에 2.5리라(약 187원)에 판매했다. 최근 찻잎 가격은 2배가 넘는 500리라(약 3만7400원)로 올랐다. 같은 기간 그는 차 한 잔 가격을 0.5리라(약 37원)만 인상했다. 재료값 인상분을 그대로 반영하면 서민이 대부분인 고객들이 떨어져나갈 것이 분명한 탓이다. 그는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사람들이 차 소비부터 줄이고 있다. 장사가 이렇게 안 되는 것은 처음”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기자가 찾은 한 식당의 메뉴판 곳곳에는 견출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음식값이 오를 때마다 새 가격을 써 붙인 자국이 고스란히 남았다. 아예 메뉴판을 없애고 가게 한쪽에 메모판을 건 식당도 있었다. 현지 소셜미디어에서는 ‘가격표를 수정할 직원을 뽑는다’는 문구를 내건 한 가게의 사진이 화제가 되고 있다. “살인적인 물가 상승을 비꼬려는 의도”라는 반응과 “그만큼 가격 인상이 빈번하니 실제로 필요해서 뽑으려는 것”이라는 반응이 엇갈렸다.○ “이곳엔 희망이 없다. 떠나고 싶다”현지에서 만난 20, 30대 젊은층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방치한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익명을 요구한 한 20대 여성은 월급으로는 생계가 유지되지 않아 프리랜서로 몰래 ‘투잡’을 뛰고 있다며 “터키를 떠나고 싶다. 이곳에는 희망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터키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올해 1월 48.69%였다. 불과 4개월 만인 지난달 73.5%로 치솟았다. 기름값 역시 3월 L당 18.2달러에서 이달 20일 27.6달러로 올랐다. 초유의 고물가 상황은 글로벌 공급난과 이로 인한 에너지·원자재·곡물 가격 폭등 등 글로벌 복합위기, 세계 각국의 대처와 반대로 가는 터키 정부의 저금리 정책이 겹쳐 더욱 악화되고 있다. 터키는 지난해 9월부터 꾸준히 기준금리를 인하해 당시 19%였던 금리가 14%까지 떨어졌다. 금리를 낮추면 경기 부양에 도움이 되지만 리라화 가치가 떨어지고 수입 물가가 상승해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된다. 메흐메트 파티흐 차크르 터키 산업기술부 차관은 “인플레이션은 터키만의 현상이 아닌 전 세계적인 문제”라고 주장했다.이스탄불=김성모 기자 mo@donga.com}

    • 202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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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企-글로벌 기업 협업 통해 IT허브 꿈꾸는 ‘튀르키밸리’

    16일 터키(튀르키예) 이스탄불 도심에서 둥근 지붕의 이슬람교 예배당들을 지나 차로 30분가량 달리자 눈앞에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350만 m²(106만여 평) 부지에 여유 있게 늘어선 13개 빌딩이 마르마라해를 마주하고 있었다. 한국의 ‘판교’를 연상케 하는 이곳은 터키에서 가장 큰 정보기술(IT) 센터 ‘빌리심바디시’. 센터 안에 있는 한 건물에 들어서자 20, 30대 직원들이 개방된 공간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아이디어를 나누고 있었다.○ 유럽-아시아 길목에 있는 터키 스타트업 성지터키 정부와 은행 등 민간 기업은 IT 산업을 본격적으로 키우기 위해 2011년 빌리심바디시를 기획했다. 2015년 공사를 시작해 2019년 문을 열었다. 현재는 모빌리티·게임·디자인·스마트시티 등 다양한 분야의 300여 개 회사가 입주한 상태다. 미국 일본 독일 등의 기업들도 이곳에 사무실과 연구개발(R&D) 센터를 열었다. 현장에서 만난 세르다르 이브라힘지을루 빌리심바디시 총괄본부장은 기자에게 “빌리심바디시는 터키와 실리콘밸리를 합친 ‘튀르키밸리’”라며 웃었다. 빌리심바디시에서는 서로 다른 스타트업과 중소기업, 글로벌 기업들이 모여 시너지를 내고 있다. 독일을 대표하는 자동차 엔지니어링 회사 에닥은 2020년 이곳에 R&D 사무실을 열고, 다른 입주사인 토그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토그는 터키산 최초의 전기차 업체로 내년 3월 첫 출시를 앞두고 있다.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스타트업 에어카는 빌리심바디시에 들어온 디자인센터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UAM 모델 디자이너를 발굴했다. 미국 텍사스에 본사가 있는 메타버스 회사 고아트는 직원 200명 중 150명이 터키인이다. 이들 터키인 직원은 모두 빌리심바디시에서 근무하고 있다. 엠레 쿠틀루 고아트 마케팅 디렉터는 “영국과 미국, 한국 등에서 사업을 하는데 비유하자면 그 지역들로 ‘요리’가 나간다면 여기는 ‘키친’”이라고 소개했다. 터키는 유럽과 중동, 넓게는 아시아까지 사업 영역을 넓힐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갖고 있다. 2000년 전후로 BMW, 벤츠, 현대자동차 같은 자동차 제조업체가 공급망 관리 등에 용이하다는 이점을 살려 터키에 터전을 마련했다. 현재는 스타트업과 글로벌 기업의 연구센터 등이 잇달아 터키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들은 터키의 잠재력에 특히 주목한다. 인구 8400만 명인 터키는 평균 연령이 32세로 유럽보다 12세, 독일보다 15세 젊다. 메르트잔 캅타노을루 에닥 매니징디렉터는 “터키 대학 졸업자는 연 110만 명으로 독일에 이어 가장 많고, 이 중 절반이 기술을 전공한다”고 말했다. ○ 산학협력 통해 ‘IT 허브’ 도약 야심 터키 정부는 빌리심바디시와는 별도로 주요 대학에 테크노파크를 조성해 산학 협력을 유도하고 법인세·소득세 면제 등으로 창업을 독려하고 있다. 그 결과 최근 3년 내 6개의 ‘유니콘 기업’(기업가치가 10억 달러가 넘는 스타트업)이 탄생했다. 메흐메트 파티흐 카시르 터키 산업기술부 차관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비중도 1%로 아직 한국에 비해 낮은 편이지만 5년 전에 비해 2배로 늘어났다”고 했다. 터키 정부는 한국 등 글로벌 기업들이 해외 진출 시 터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부락 다을로을루 터키투자청장은 “터키는 자국 회사와 해외 기업에 동일한 혜택을 제공한다”며 “터키는 연평균 5% 경제가 성장할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고, 팬데믹(대유행) 시기에도 11% 성장하는 회복 탄력성을 지녔다”고 했다.글·사진 게브제=김성모 기자 mo@donga.com}

    • 2022-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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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원들의 재택근무 반란과 회사의 역습[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 로켓맨과 대통령의 설전 “경기가 아주 나빠질 것 같다. 직원 10% 줄일 것.”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포드는 사람 더 뽑는다는데? 달나라 잘 다녀와 머스크.” (조 바이든 미 대통령) ‘파랑새’(트위터 상징)로 시장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또 한번 전 세계를 뜨겁게 달궜다. 머스크가 2일(현지 시간) 경영진들에게 보낸 이메일이 공개되면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그는 이메일에서 “미국 경기가 매우 안 좋은 느낌”이라며 전체 직원 중 10%를 감축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테슬라의 임직원이 약 10만 명인 것을 고려하면 1만여 명을 자르겠다는 폭탄 발언이었다. 미국 뉴욕증시에서 3일 테슬라 주가는 9% 넘게 폭락했다. 회사 대표의 비관적 경기 전망이 주가에 고스란히 반영된 듯하다. 논란이 커지자 머스크는 말을 바꿨다. 그는 “직원이 줄지 않을 것”이라며 “테슬라의 많은 영역이 인력 과잉 상태다. 정규 급여를 받는 사무직 수가 줄고 시간제는 늘 것”이라고 언급했다. 하루 뒤에는 “테슬라 직원 수는 향후 12개월 동안 증가할 것이다. 정규 급여를 받는 직원 수도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진땀을 뺐다. 불난 집에 부채질한 ‘대통령’도 있었다. 이날 미국 노동부는 5월 한 달 39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실업률은 3.6% 수준이었다는 일자리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고용 시장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강력하다”고 자평했다. 그러자 한 기자가 머스크의 이메일 내용에 대해 물었고, 바이든 대통령은 “(테슬라 경쟁사인) 포드와 스텔란티스는 투자를 압도적으로 늘리고 있다”며 재치 있게 받아쳤다. “그의 달나라 여행에 많은 행운이 따르길”이라며 머스크의 우주 탐사 사업을 비꼬기도 했다. 가만히 있을 머스크가 아니다. 트위터에 “감사합니다 대통령님!”(Thanks. Mr President!)이라고 적어 올렸다. 둘이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미국 사람 아니어도 안다. 오죽하면 미 CNBC는 “대통령의 간결한 발언은 그간 반복해서 바이든을 비판해 온 머스크와의 가장 최근의 마찰”이라고 평했다. 대통령과 괴짜 억만장자의 기싸움이 꽤나 흥미롭다.● 테슬라 감원은 직원 불만 잠재우기?그런데, 머스크의 감원 언급으로 잊혀진 것이 있다. 바로, 테슬라의 재택근무 종료다. 머스크는 지난달 말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원격근무를 하더라도 누구나 주당 최소 40시간은 사무실에서 일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무실은 원격 사무실이 아닌 실제 동료가 근무하는 사무실을 뜻한다”고 했다. 주당 40시간이면 하루 8시간씩 5일은 회사에 나와야 한다. 사실상 재택근무의 종료를 선포한 셈이다. “사무실에 안 나올 생각이면 회사를 떠나야 할 것”이라고까지 했다. 머스크는 사무실 출근에 대한 생각도 자세히 늘어놨다. 그는 “테슬라는 지구에서 가장 흥미롭고 의미 있는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은 원격으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내가 공장에서 살다시피 하지 않았으면 테슬라는 일찍이 파산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혁신과 생산성은 사무실에서 나온다는 설명으로 보인다. 이 역시 전 세계 언론을 뜨겁게 달궜는데, 일주일도 안 돼 머스크가 “직원 10% 감축”을 언급하면서 이야기가 쏙 들어갔다. 어떤 직원이 사무실 복귀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어, 나오기 힘들면 영영 집에서 쉬어~”라는 답변을 듣지 않을까. 머스크의 감원 발상이 진심이든, 진심이 아니든 결과적으로 이슈를 덮어버렸다. ‘머스크가 생각보다 꼰대였네’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실제로 테슬라의 근무 여건은 머스크 아이디어만큼 빛나진 않는 것 같다. 뉴욕타임스(NYT)는 1일 ‘머스크가 꿈을 꿀 때, 직원들은 악몽을 꾼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NYT는 “머스크는 팀과 상의하지 않고 새로운 기능을 발표하면서 직원들에게 그의 꿈과 기술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도록 강요한다”고 했다. 멋진 아이디어를 일단 세상에 내놓고, 직원들을 닦달한다는 의미다. 머스크가 2016년에 발표했던 완전 자율주행 기능과 완전 자동화 공장이 그 예다. NYT는 “이 발표는 엔지니어들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며 “이후 머스크는 이 주장의 다른 버전을 매해 반복했다”고 꼬집었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이 부분이다. NYT는 “테슬라 직원을 인터뷰하는 것은 때때로 내가 기자라기보다 치료사였던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 美 기업들의 감원과 하이브리드 근무 시대올해 초만 해도 미국에서는 구인난이 심각해지면서 기업들이 직원들의 눈치를 많이 보는 분위기였다. 회사들은 서로 사람을 데려가려고 했고, 직원들은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사표를 던지겠다는 각오였다. 각 기업들은 코로나19가 잠잠해지고 일상 활동이 재개(리오프닝)됐음에도 재택근무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신비월드 8화’(재택근무 중단? 차라리 떠난다…코로나 후 사무실 다시 붐빌까)에서 상세하게 다뤘다. 그런데, 최근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공격적인 금리인상으로 미국 경기가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로 기업들이 잇달아 감원에 나서면서 직원들이 재택근무 유지를 강하게 요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가입자 감소 쇼크를 기록한 넷플릭스는 최근 직원 1만1000명 중 150명을 감원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미 온라인 증권거래 플랫폼 로빈후드는 9% 감원을 예고했고,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도 사람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감원까지는 아니어도 신규 고용을 중단한 업체는 수두룩하다. 소셜미디어 스냅은 지난달 말 신규 고용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페이스북(메타)과 엔비디아, 우버, 마이크로소프트(MS) 등도 신규 채용을 연기하거나 동결하기로 했다. 애플은 소매점과 기술지원 분야에서 충원을 보류했다. 기업들이 감원을 무기로 군기를 잡는다고 해서 재택근무라는 단어가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재택과 사무실 근무를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업무’(사무실 근무와 재택근무의 혼합형)는 일정 부분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기업들이 서로 데려가려고 하는 개발자 등 전문직들이 이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닉 블룸 미 스탠포드대 경제학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직원들은 대면 근무와 원격 근무를 병행하는 것을 월급의 8% 정도를 올려주는 혜택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집에서 일하는 날의 가장 큰 매력은 출퇴근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사무실에 갈 준비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고 했다. 통근을 하지 않으면 새 옷을 사 입는 사람들의 비율이 20% 포인트 감소한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미국계 구직 사이트 플렉스잡스는 직장인들이 원격으로 일하면 교통비, 의류비, 식비 등 평균 연 4000달러(약 500만 원)를 절약할 수 있다고 밝혔다. ● 5000만 명의 직원, 5000만 개의 사무실 미국에서는 2년 전에 약 5000만 명의 직원이 사무실을 떠났다. 코로나19 감염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일반 직장인에 비해 ‘화이트칼라’(전문직 노동자)가 코로나19 확산 기간 동안 재택근무를 더 많이 했다. 컨설팅 기업 갤럽에 따르면 팬데믹(대유행) 이전인 2019년 미국에서는 취업자의 4% 가량이 재택근무를 했는데, 2020년 5월 이 수치가 43%까지 증가했다. 같은 기간 화이트칼라는 6%에서 65%까지 재택근무가 늘었다. 어떻게 보면 이는 당연한 일이다. 화이트칼라들이 하는 일의 대부분은 PC에서 이뤄진다. 지난해만 해도 기업 입장에서는 직원이 질병에 걸려서 아예 일을 못하는 것 보다는, 집에 가둬놓고서라도 일을 하게 하는 편이 나았다. 생각보다 효율성도 그렇게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재택근무로 팀원들이 회의실에서 모이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줌’ 같은 화상회의 플랫폼이 빠르게 이를 대체했다. 영국 더타임스는 최근 사무실에 복귀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내용이 흥미롭다. 직원들은 햇빛이나 편한 옷차림, 고양이와 보내는 시간, 불안감을 숨길 수 있는 공간 등을 재택근무를 선호하는 이유로 들었다. 그런데 이런 온갖 이유보다 가장 우선적으로 꼽힌 재택의 장점은 ‘근무 환경’이었다. 다양한 사례가 있을 수 있다. 직원마다 선호하는 사무실 온도가 있을 수 있다. 누군가는 당장 복사기 작동법을 매번 물어보는 동료가 떠오를 것이다. 직전 주말 있었던 축구 경기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사람은 직장 상사라 피할 수도 없다. 정보·기술 분야에서 일하는 37세 직장인 케렌 기포드는 NYT에 “다른 사람을 위해 지어진 공간에서 내 경력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재택근무를 하면서) 깨달았다”고 했다. 5000만 명의 직원이 5000만 개의 사무실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육아 등으로 일과 삶의 경계가 필요한 사람들은 출근을 희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퓨처포럼이 지난해 전 세계 직장인 1만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워킹맘’의 50%가 대부분 또는 항상 원격으로 일하기를 원한다고 답했다. ‘워킹파더’는 43%였다. 절반 정도는 출근을 희망하고 있다는 의미다. 조사에서 이들은 단순히 명확한 일상의 구분을 원했을 수도 있지만, 전면 재택근무 시 부하직원 관리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고려했을 듯하다. 응답자의 연령대를 고려하면 중간 관리자 이상일 가능성이 크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다수의 직장인이 재택근무 또는 적어도 하이브리드를 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까지 재택근무를 하는 이들에게는 이른 아침 지옥철과 딱딱한 구두, 면전에서 당하는 냉혹한 업무 평가가 유물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 회사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회사는 고민이 많다. 직원들이 일에 집중은 할 수 있을까, 소속감은 어떻게 만들지, 직원 간 유대감은 생기기나 할까. 생산성보다 이런 것들이 더 걱정일 수 있다. 팀 쿡 애플 CEO는 “방금 가졌던 아이디어는 하루 종일 서로 부딪히며 발전된다”고 했고, ‘월가 황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CEO도 “재택근무는 자발적인 아이디어 창출에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자리에서 일어선 뒤 화이트보드로 가서 직원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보도록 하는 회의가 그립다”고 했다.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일을 하는 것이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핵심 무기인 IT 기업들이 사무실을 주기적으로 귀엽고 예쁘고 깜찍하게 바꾸는 것은 직원들의 창의성이 샘솟게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예 새로운 곳에 업무 환경을 꾸려서 일하게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에단 번스타인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서로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공간에 사람들을 배치하면 대화를 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에는 신빙성이 있다. 하지만 그 대화가 혁신, 창의성에 도움이 될 지는 (관련) 데이터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작위적인 우연(만남)이 생산적이라는 생각은 현실보다 동화에 더 가깝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였다. 업무 속도가 떨어진다는 연구는 있다. NYT는 “상위 50대 비디오 게임 회사를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팬데믹 기간 동안 원격 근무로 전환한 회사는 대유행 이전보다 신제품 출시가 지연된 반면, 사무실에서 일한 회사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재택근무의 업무별 가능성을 구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아르빈드 크리슈나 IBM 대표는 “당신이 하려는 작업이 개별적인 성격이라면 원격으로도 가능하다. 그런데 리더십이라면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했다. 하이브리드 시대에 일부 직원의 고립을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의자계의 에르메스’로 불리는 허먼 밀러의 앤디 오웬 CEO는 “사무실로 복귀하기를 거부하는 누군가가 불이익을 받거나 고립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하이브리드 근무를 도입한 일부 기업들은 업무를 나누는 것을 곤란해 하고 있다. 일을 시킬 때 사무실에서 눈에 보이는 직원부터 떠오르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워 보인다. 직원들끼리의 유대감과 회사의 소속감 형성을 위해 사무실 출근을 고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글로벌 운용사인 해리슨 스트리트의 크리스토퍼 메릴 설립자는 “사무실에서는 누군가 눈을 쳐다보고 악수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앉아서 듣고 있을 수 있다. 이는 줌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 지루한 회의실에 작별 인사팬데믹 기간에 회사 사무실들도 격변했다. 책상이나 회의실 위의 손 소독제는 노트북만큼이나 익숙하다. 좌석 별로 칸막이가 생긴 곳도 있을 것이다. 최근 모습은 어떨까. NYT는 지난달 10일 ‘지루한 회의실에 작별 인사’라는 글에서 “코로나19 초기 회사는 급히 사회적 거리두기용 회의실을 마련했다”며 “이제는 직원을 사무실로 다시 끌어들이기 위해 협업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NYT가 꼽은 4가지 변화상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모양과 크기의 변화다. 부장님이 ‘왕 자리’에 앉는 직사각형 형태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한다. 물리적으로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이 줄면서 규모가 작아졌다. NYT는 공간을 쉽게 넓히고 줄일 수 있도록 회의실이 유연성을 갖추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두 번째는 달라진 모습이다. 주거용 인테리어를 뉴욕 사무실에 도입한 벤처캐피탈도 있다. 안락함을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세 번째는 새로운 위치다. 최근 미국에서는 회의실이나 건물 편의 시설 등을 야외에 조성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코로나19 전염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듯하다. 마지막은 신기술이다. 일부 회의 참여자가 가상인간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온·오프라인 회의가 동시에 가능하도록 회의실을 조성하고 있다. 미국 부동산 전문업체 CBRE의 최근 설문에서 응답자 중 76%가 사무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꼽은 것이 화상회의 도구였다. 회의실 내부에 원격 마이크나 360도 카메라를 설치한 곳도 있다. ‘디지털 화이트보드’ 등도 새로운 기술로 언급됐다. ● “스마일~” 초감시 사무실 시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예쁘게 신경 써서 만든 회의실에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회사의 ‘랜선 감시’를 받아들일 각오를 해야 할지 모른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 4월 직원 감시 소프트웨어에 대한 전 세계 수요가 1년 전에 비해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위원회는 2020년 3월 팬데믹 초기 직장 폐쇄 이후 몇 주 만에 감시 도구에 대한 검색이 18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14일 “감시 소프트웨어 제조업체의 매출이 코로나19 이후 급증했다”고 했다. 사용자의 화면을 동영상으로 녹화하거나 주기적으로 사진을 찍어 컴퓨터에 있는지 확인하는 타임닥터는 2020년 4월 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3배나 뛰었다. 업무에 걸리는 시간을 추적하는 데스크타임의 직원은 같은 기간 4배 증가했다. 지난해 미국의 1000개 이상의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60%가 “특정 모니터링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17%는 “도입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기업이 직원을 감시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직원들의 안전과 기업의 중요한 정보 보호, 생산성 측정 등을 위해서다. 이코노미스트는 “JP모건은 통화, 채팅 기록, 이메일 등을 검색하고 직원이 건물에 있는 시간까지 추적한다. 일부 스타트업은 데이터나 회사 기밀 유출 등을 우려해 근로자를 감시한다”고 했다. 생산성 측정을 위한 목적도 있다. 기업은 생각보다 직원의 활동을 섬세하게 측정할 수 있다. 기술이 뒷받침되면서다. 직원들의 모든 키 입력이나 마우스 움직임을 추적하고 이메일을 스캔할 수 있다. ‘게으름뱅이’를 잡아내는 인공지능(AI)도 있다. 지난해 일본 기술 회사인 후지쯔는 직원의 표정으로 집중력을 측정하는 소프트웨어를 공개했다. 이는 직원이 작업 중 음식을 먹는 경우 관리자에게 알린다. 상사가 자리 주변에 왔을 때 PC 화면을 바꾸는 ‘알트(Alt)+탭(Tab)’으로 도피할 수 없는 상황이 온 것이다. 잔인하다. 국내에서도 일부 스타트업이 전면 재택근무를 허용하고 있다. 한 회사는 사무실 자체를 없애버렸다. 이 회사는 원격 근무를 허용한 대신에, 업무 시간에는 카메라를 켜놓게 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 “재택근무가 유일한 장점인 회사”라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수직적인 분위기”라는 평이 많았지만, 재택근무 조건만큼은 반기는 듯하다. ● 하이브리드 근무 시대, 기업들의 룰 만들기 최근 국내 기업 중에 재택근무 때문에 진통을 겪고 있는 회사가 있다. 카카오다. 이 회사는 7월부터 적용하는 새 근무제를 30일 발표했다. 재택근무를 하는 대신에, 업무시간에 음성으로 팀원과 연결돼야 하고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반드시 근무해야 한다고 공지했다. 직원들은 “지나친 감시이며 공통 근무 시간으로 유연근무제가 사실상 무너졌다”고 반발했다. 카카오는 31일 집중근무시간을 재검토하고, 조직별로 근무제와 관련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현재의 분위기로 봐서는 카카오가 매를 먼저 맞는 것일 뿐, 다른 기업들도 마주해야 할 상황으로 보인다. 하이브리드 근무가 시행되고, 회사와 직원들이 세부적인 항목을 조율하다가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해외에서는 하이브리드 업무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방법에 대한 논의가 꽤 활발한 편이다. 서로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적절한 합의점을 함께 고민해보자는 분위기다. 이코노미스트는 ‘명확성’을 우선순위에 놓고 논의하라고 조언한다. 사무실에 나오는 날과 나오지 않는 날, 회의가 있는 요일 등을 선명하게 공유하라는 것이다. 이외에 이메일을 보내는 방법이나, 하이브리드 회의를 진행할 때의 요령 등을 만들어 놓는 것도 방법이다. 영국 런던시티대 로라 엠프슨 교수는 최근의 근무 제도의 변화와 관련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변화를 반대한다는 말을 들을 때면 은퇴할 때가 된 것처럼 들린다”며 “변화를 막거나 통제하려고 하기보다 이 같은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물론, 언제 그랬냐는 듯 모두가 사무실에 돌아와 지루한 회의실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수 있다. 무릎 위 스마트폰을 엿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더라도 하이브리드 근무 시대를 대비할 필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 또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면 말이다.김성모 기자 mo@donga.com}

    • 2022-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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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은행 “최악땐 세계성장률 2년간 제로 가까이 떨어질수도”

    “최악의 결과가 현실화되면 세계 경제성장률은 앞으로 2년간 제로에 가깝게(close to zero) 떨어질 것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세계 경제가 1970년대와 같은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위험에 빠졌다고 경고한 보고서를 낸 7일(현지 시간) 데이비드 맬패스 세계은행 총재가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밝혔다고 전했다. 올해 세계 성장률(2.9%)이 지난해(5.7%)의 반 토막에 그칠 것이라는 세계은행의 경고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공급망 교란 여파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세계은행은 이런 경기 둔화가 80여 년 만에 가장 가파른 속도라고 지적했다. 특히 세계은행은 향후 세계 경제의 성장 전망치가 더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미국의 긴축 정책이 신흥국에 충격을 주고 유럽이 러시아 제재로 에너지 수입을 갑자기 중단하거나 중국이 다시 대규모 봉쇄에 나서면 올해 세계 성장률이 2.1%까지 더 떨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3%에서 1.5%로 더 내려갈 수 있다고 예상했다. ○ “50년 전 오일쇼크 때와 닮았다”세계은행은 이날 보고서에서 현재 세계 경제가 3가지 측면에서 1970년대와 닮았다고 분석했다. △장기간의 부양책 이후 공급 측면의 문제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성장률 전망치가 약화됐으며 △물가 억제를 위한 통화 긴축으로 신흥국이 위기에 몰렸다는 점이다.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주요 산유국의 감산으로 전 세계 원유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급격한 물가 오름세가 나타났다. 이에 미국 등 주요국이 강도 높은 금리 인상 정책을 폈고 세계 경제가 고물가와 저성장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을 겪었다. 현재도 공급 부문에서 예기치 못한 충격이 왔다는 점이 비슷하다. 미국 등 주요국이 강도 높은 통화긴축 정책을 펴고 있다는 점도 같다. 보고서는 “1970년대에 주요 선진국들이 스태그플레이션 대처를 위해 가파른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이는 신흥시장과 개도국에 일련의 금융위기를 발생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50년 전과 마찬가지로 통화긴축 여파가 상당하다고 진단했다. ○ “일부 국가 1980년대식 부채 위기 내몰릴 것”주요국들은 이미 스태그플레이션 징후가 뚜렷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8일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미국의 올해 성장률을 지난해 12월 3.7%에서 2.5%로, 중국은 5.1%에서 4.4%로 하향 조정했다. 일본은 기존(3.4%)의 반 토막 수준인 1.7%로 낮췄다. 그러면서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일제히 올렸다. 미국 상승률을 4.4%에서 7%로, 중국은 1.7%에서 2%로, 일본은 0.8%에서 1.9%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은 2.7%에서 7%나 올렸다. 월가는 10일 발표될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 전망치를 8.2%로 예상하고 있다. 3월(8.5%), 4월(8.3%)에 이어 3개월 연속 8%대 고물가가 지속된다는 의미다. 유로존의 5월 소비자물가도 8.1%로 1997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았다. 주요국들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긴축에 나서면서 신흥국과 각국 저소득층이 특히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세계은행은 지적했다. 올해 개발도상국의 1인당 소득이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에 비해 5%포인트 낮은 수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곡물 및 비료 생산 차질로 전 세계의 식품 부족이 심각해지고 있어 코로나19 이전보다 최소 7500만 명 이상이 극도의 빈곤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이한 코세 세계은행 국장은 “일부 국가가 1980년대에 경험한 부채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 이는 실재하는 위협”이라고 진단했다.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경기 침체(stagnation)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이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경제 불황 속 경제성장률이 계속 떨어지는데도 물가가 오르는 저성장 고물가 상태를 가리킨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김성모 기자 mo@donga.com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 2022-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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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지는 ‘S 공포’…“세계성장률 2년간 제로 가까이 떨어질수도”

    세계은행이 7일(현지 시간)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월 4.1%에서 2.9%로 크게(1.2%포인트) 낮추면서 1970년대에 겪은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이 50년 만에 다시 찾아올 가능성을 경고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8일 올해 세계 성장률 전망치를 4.5%(지난해 12월)에서 3.0%로 1.5%포인트 낮춰 하락 폭이 세계은행보다 컸다. 특히 OECD는 회원국들의 올해 평균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지난해 12월 예상했던 4.4%의 2배인 8.8%로 대폭 올렸다. 세계은행과 OECD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에 따른 공급망 불안정, 각국의 통화긴축 정책, 중국의 강도 높은 봉쇄 정책을 스태그플레이션을 야기하는 복합적인 악재로 지목했다. 세계은행이 제시한 올해 세계 성장률 전망치는 지난해(5.7%)의 절반에 불과하다. 미국 성장률 전망치는 3.7%에서 2.5%로 낮췄고, 중국도 5.1%에서 4.3%로 하향 조정했다. 세계은행은 내년과 2024년에도 세계 경제가 각각 3.0% 성장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은행은 “전 세계적 투자 약화 등으로 향후 10년간 저성장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OECD 회원국들의 올해 평균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지난해 연간 상승률(3.7%)의 2배가 넘는다. OECD는 올해 미국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4.4%에서 7%로, 중국은 1.7%에서 2.0%로, 일본은 0.8%에서 1.9%로 올렸다. 데이비드 맬패스 세계은행 총재는 7일 기자회견에서 “평균 이상의 인플레이션과 평균 이하의 성장세가 수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이 상당하다”며 많은 나라가 경기 침체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최악의 경우 앞으로 2년간 경제성장률이 “제로(0)에 가까울 것”이라고 했다. 2021∼2024년 세계 경제의 성장 속도가 2.7%포인트 둔화할 것이라며 2차 오일쇼크가 발생했던 1976∼1979년 경기 둔화 속도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각국 정부에 무역 장벽을 없애고 제품 생산을 늘릴 것을 권고했다. OECD는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에서 2.7%로 내렸고,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2.1%에서 4.8%로 올렸다. 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한국 경제는 0.6% 성장하는 데 그쳤다. 4월 발표된 성장률 속보치(0.7%)보다 낮아졌다. ‘50년만의 글로벌 S’ 경고음전쟁-감염병 따른 공급망 불안에물가 상승-성장률 약화-통화 긴축 1970년대 ‘경기침체속 고물가’ 닮아 세계銀 “올 성장률 작년의 반토막”…OECD “물가상승률 작년의 두배” 1980년대 수준 부채위기 올수도“최악의 결과가 현실화되면 세계 경제성장률은 앞으로 2년간 제로에 가깝게(close to zero) 떨어질 것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세계 경제가 1970년대와 같은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위험에 빠졌다고 경고한 보고서를 낸 7일(현지 시간) 데이비드 맬패스 세계은행 총재가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밝혔다고 전했다. 올해 세계 성장률(2.9%)이 지난해(5.7%)의 반 토막에 그칠 것이라는 세계은행의 경고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공급망 교란 여파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세계은행은 이런 경기 둔화가 80여 년 만에 가장 가파른 속도라고 지적했다. 특히 세계은행은 향후 세계 경제의 성장 전망치가 더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미국의 긴축 정책이 신흥국에 충격을 주고 유럽이 러시아 제재로 에너지 수입을 갑자기 중단하거나 중국이 다시 대규모 봉쇄에 나서면 올해 세계 성장률이 2.1%까지 더 떨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3%에서 1.5%로 더 내려갈 수 있다고 예상했다. ○ “50년 전 오일쇼크 때와 닮았다”세계은행은 이날 보고서에서 현재 세계 경제가 3가지 측면에서 1970년대와 닮았다고 분석했다. △장기간의 부양책 이후 공급 측면의 문제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성장률 전망치가 약화됐으며 △물가 억제를 위한 통화 긴축으로 신흥국이 위기에 몰렸다는 점이다.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주요 산유국의 감산으로 전 세계 원유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급격한 물가 오름세가 나타났다. 이에 미국 등 주요국이 강도 높은 금리 인상 정책을 폈고 세계 경제가 고물가와 저성장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을 겪었다. 현재도 공급 부문에서 예기치 못한 충격이 왔다는 점이 비슷하다. 미국 등 주요국이 강도 높은 통화긴축 정책을 펴고 있다는 점도 같다. 보고서는 “1970년대에 주요 선진국들이 스태그플레이션 대처를 위해 가파른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이는 신흥시장과 개도국에 일련의 금융위기를 발생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50년 전과 마찬가지로 통화긴축 여파가 상당하다고 진단했다. ○ “일부 국가 1980년대식 부채 위기 내몰릴 것”주요국들은 이미 스태그플레이션 징후가 뚜렷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8일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미국의 올해 성장률을 지난해 12월 3.7%에서 2.5%로, 중국은 5.1%에서 4.4%로 하향 조정했다. 일본은 기존(3.4%)의 반 토막 수준인 1.7%로 낮췄다. 그러면서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일제히 올렸다. 미국 상승률을 4.4%에서 7%로, 중국은 1.7%에서 2%로, 일본은 0.8%에서 1.9%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은 2.7%에서 7%나 올렸다. 월가는 10일 발표될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 전망치를 8.2%로 예상하고 있다. 3월(8.5%), 4월(8.3%)에 이어 3개월 연속 8%대 고물가가 지속된다는 의미다. 유로존의 5월 소비자물가도 8.1%로 1997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았다. 주요국들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긴축에 나서면서 신흥국과 각국 저소득층이 특히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세계은행은 지적했다. 올해 개발도상국의 1인당 소득이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에 비해 5%포인트 낮은 수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곡물 및 비료 생산 차질로 전 세계의 식품 부족이 심각해지고 있어 코로나19 이전보다 최소 7500만 명 이상이 극도의 빈곤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이한 코세 세계은행 국장은 “일부 국가가 1980년대에 경험한 부채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 이는 실재하는 위협”이라고 진단했다.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세종=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김성모 기자 mo@donga.com}

    • 2022-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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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 매코너헤이, 백악관서 “총기 규제” 호소 연설

    “생명을 잃었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합시다.” 지난달 초등학생 19명 등 21명이 숨진 총기 참사가 벌어진 미국 텍사스주 유밸디에서 태어난 인기 배우 매슈 매코너헤이(53)는 7일(현지 시간)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참담한 심정을 이렇게 드러냈다. 이날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 총기 규제 강화를 논의한 매코너헤이는 희생된 아이들 사진을 들고 브리핑룸 연단에 섰다. 그는 약 20분 동안 연설하며 아이들 사진을 한 장씩 들어 보였다. 이어 희생된 한 학생이 누구인지 식별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가 됐던 녹색 운동화를 보여줬다. “부모는 아이들의 꿈이 계속 이어지길 바랍니다. 이 아이들이 떠난 이후에도 무언가 이뤄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매코너헤이는 총기 구매자 신원 조사, 반자동소총 구매 허용 연령을 18세에서 21세로 상향, 위험인물의 총기 소지를 금지하는 ‘레드플래그법’ 시행을 촉구했다. 그는 “책임 있는 총기 소유자들은 (총기 보유의 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2조를 일부 정신 나간 사람들이 남용하는 것에 질렸다”며 “총기 규제 강화는 (자유에서) 한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와 수정헌법 2조를 위해 한발 나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연설을 하다 눈시울이 붉어지며 안경을 벗고는 눈을 감은 채 한동안 고개를 숙이는 등 감정이 북받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영화 ‘댈러스 바이어스 클럽’에서 금지된 에이즈 치료약을 밀수해 오는 인물을 연기해 2014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매코너헤이는 정치, 사회 이슈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왔다. 텍사스 주지사 선거 출마도 검토했다가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김성모 기자 mo@donga.com}

    • 2022-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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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북 광고 성공 주역” vs “혐오 콘텐츠 묵인”

    미국 소셜미디어 페이스북(현 메타)의 2인자로 꼽혀온 셰릴 샌드버그 최고운영책임자(COO·53)가 1일(현지 시간) 페이스북 합류 14년 만에 “올가을 사퇴하겠다”고 밝힌 후 그의 주식 처분 또한 주목받고 있다. 2일 미 CNBC는 샌드버그가 지난 10년간 총 2200만 주 이상의 페이스북 주식을 매도해 최소 17억 달러(약 2조1116억 원)를 벌었다고 전했다. 포브스가 추정한 그의 재산 16억 달러보다 많은 규모다. 이날 메타에서 인공지능(AI) 그룹 부사장을 지낸 제롬 페센티 또한 이달 퇴사한다고 밝혀 페북 고위 임원의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샌드버그의 공과(功過) 논란 또한 뜨겁다. 그의 합류 때만 해도 신생 스타트업에 불과했던 페이스북에 광고 사업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켜 세계적 대기업으로 키워냈다는 호평과 돈벌이를 위해 알고리즘 및 혐오 콘텐츠의 폐해를 알고도 묵인했다는 비판이 엇갈린다. 하버드대 학·석사를 졸업하고 맥킨지 컨설팅, 미 재무부, 구글 등에서 일했던 커리어우먼 샌드버그는 2008년 페이스북에 합류했다. 당시 페이스북은 무려 5600만 달러(약 700억 원)의 적자에 시달렸고 24세였던 마크 저커버그 창업자 또한 노련한 조력자가 절실했다. 샌드버그는 페이스북에 합류하자마자 ‘사용자 기반 맞춤형 광고’ 모델을 선보이며 이를 회사의 핵심 사업으로 만들었다. 지난해 페이스북의 광고 매출은 약 1150억 달러(약 144조 원)로 전체 매출의 97%에 달했다. 샌드버그의 사퇴 발표가 최근 몇 년간 페이스북이 플랫폼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것과 연관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증오와 혐오를 조장하는 게시물이 올라와도 수익을 위해 방치했다는 비난이 거세진 가운데 광고 수익 둔화, 틱톡 등 다른 소셜미디어와의 경쟁 심화 등으로 압박이 커지자 샌드버그가 사실상 경영 악화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는 의미다. 빅테크 기업의 폐해 논란으로 지난해 미 의회가 청문회까지 개최하자 저커버그 창업자는 회사 이름을 메타로 바꾸고 향후 주력 사업으로 ‘메타버스’를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 핵심 인력인 샌드버그의 입지가 줄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김성모 기자 mo@donga.com}

    • 2022-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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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북 성공 일등공신’ 샌드버그 14년 만에 사임…저커버그 “한 시대 끝나”

    글로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의 2인자로 꼽혀온 셰릴 샌드버그(53) 최고운영책임자(COO)가 1일(현재 시간) 14년 만에 사임한 것을 두고 엇갈린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적자를 기록하는 등 ‘미래만 장밋빛’이었던 신생 스타트업 페이스북(현 회사명 메타)에 광고 사업을 안착시켜 수백 조 원의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냈다는 샌드버그의 공(功)이 회자되고 있다. 반면, “알고리즘과 혐오 콘텐츠의 폐해를 알고도 묵인했다”며 수익성에 지나치게 치중했다는 과(過)에 대한 의견도 적지 않다. ● 젊은 천재와 노련한 경영자의 결별 구글 운영 부사장이었던 샌드버그가 2008년 3월 페이스북에 합류할 당시 미 실리콘밸리에서는 ‘젊은 천재’와 ‘노련한 경영자’가 만났다며 기대감을 키웠다. 당시 페이스북의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와 샌드버그의 나이는 각각 23세, 38세였다. 2004년 창업한 페이스북은 마이크로소프트가 2억4000만 달러(약 3000억 원)를 투자할 정도로 ‘떠오르는 샛별’이었지만, 2008년 5600만 달러(약 7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마땅한 수익 모델이 없어서 투자자들의 압박을 받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저커버그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대기업의 부사장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당시 미 뉴욕타임스(NYT)는 “샌드버그는 구글에서 수익성 높은 온라인 광고 프로그램의 개발을 주도했다”며 “관련 부서의 규모는 직원 4명에서 수천 명으로 증가했다”고 했다. 샌드버그는 페이스북에 합류해 PC형 광고 모델부터 구축하는 등 구글의 수익 모델을 회사에 녹여내기 시작했다. 2015년에는 모바일에 최적화한 새 화면을 선보였는데, 최상단에 제품을 노출할 수 있도록 ‘숍’(Shop)과 ‘서비스’ 섹션을 구성했다. 소규모 사업자들이 비용을 들여 홈페이지를 만들기보다 페이스북에서 간편하게 상품을 홍보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때 샌드버그는 “홈페이지 운영비는 너무 비쌌다”면서 “페이스북은 홈페이지를 따로 제작하지 않고도 쉽게 고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 페이스북의 광고 매출은 약 1150억 달러(약 144조 원)로 전체 매출의 97%에 달했다. NYT는 샌드버그의 사임과 관련해 “방 안의 어른이었다”며 업적을 높게 평했다. 저커버그도 “회사를 어떻게 운영하는지 가르쳐줬다. 한 시대가 끝났다”며 찬사를 보냈다.● 플랫폼 본연의 역할 못했다 샌드버그의 사임은 최근 몇 년 간 페이스북이 플랫폼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이라는 반론도 있다. 지난해 페이스북의 내부 직원은 “페이스북이 알고리즘과 혐오 콘텐츠의 폐해를 알고도 묵인했다”고 폭로했다. 지난해 1월 미 국회 의사당 습격사건 당시 시위대가 SNS 등을 통해 가짜 정보를 퍼뜨렸는데, 페이스북이 이를 알고도 방치했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이 이용자 감소를 우려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잇달았다. 미 의회에서 청문회가 열리고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되면서 샌드버그에게도 비난의 화살이 향했다. 맞춤형 광고 수익 모델이 개인 정보를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소샤나 주보프 하버드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샌드버그는 사용자의 개인 데이터를 수익화 하는 방법을 찾는다”며 “프라이버시 파괴에 대한 책임이 그에게 있다고 생각한다”고 CNN에 전했다. 일각에서는 샌드버그의 사임은 예정된 수순이라는 분석도 있다. 페이스북이 메타로 사명을 바꾸는 등 향후 주력 사업으로 ‘메타버스’를 꼽으면서 샌드버그의 역할이 위축되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해외에선 그의 주식 처분도 눈길을 끌고 있다. 미국 경제매체 CNBC는 2일 샌드버그가 지난 10년간 총 2200만 주 이상의 회사 주식을 매도해 17억 달러(약 2조1116억 원) 이상을 벌었다고 보도했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 2022-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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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솟은 주가가 지구로 돌아왔다. 파티는 끝났다”[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 인플레이션 ‘타깃’된 슈퍼마켓들 지난달 중순 전 세계 주식 투자자들은 섬뜩한 한 주를 보냈다. 미국의 대형 유통업체들의 1분기 실적발표 이후 주가가 추락하면서 시장이 주저앉아버렸다. 지난달 18일(현지 시간) 뉴욕 증시에서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이 각각 3.57%, 4.04% 급락했다. 두 지수의 하루 하락 폭은 2020년 6월 이후 가장 컸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도 4.73% 떨어졌다. ‘어닝쇼크’ 수준의 실적이 빌미가 됐다. 소매유통업체인 타깃의 1분기 순이익이 반 토막 났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주가가 이날 24.9% 폭락했다. 미국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도 유가와 인건비 등을 이유로 올해 순이익 전망치를 마이너스로 대폭 낮췄다. 월마트의 주가 역시 11% 떨어졌다. 하루 뒤, 7%가 추가로 빠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블랙먼데이(주가 대폭락 사건) 직전인 1987년 10월 16일 이후 하루 만에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고 했다. 이틀 동안 두 회사는 시가 총액 650억 달러(약 80조5600억 원)를 잃었다. 가뜩이나 시장에 공포 심리가 가득한 상태였다. 당시 다우지수는 6주 연속 떨어지고 있었고, 스탠더S&P500과 나스닥도 4주 연속 하락세였다. 이후에도 다우지수는 2주 간 하락 추세가 이어지면서 1923년 이후 99년 만에 최장 하락세를 기록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주식시장이 몇 년 동안 치솟았다가 지구로 돌아왔다”며 “파티는 끝났다”고 평가했다. ● 값싸고 풍요로운 시대의 종말 두 업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이어진 공급망 문제와 인건비, 운송비 상승 등을 실적 부진의 원인으로 꼽았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영향이 컸다는 의미다. 고개가 갸우뚱해질 수 있다. 인플레이션은 종종 유통업체에게는 긍정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마트나 슈퍼마켓은 주로 필수품을 팔기 때문에 비용 상승분을 고객에게 떠넘길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비(非)필수품의 가격을 덩달아 올려 수익을 남기기도 한다. 문제는 현재의 물가 수준이 이러한 전략으로 비용을 상쇄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다는 것이다. 올해 3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8.5%를 기록했다. 40년 만에 최고 수준의 상승폭이다. 영국 역시 4월 CPI가 9% 올랐다. 1982년 3월(9.1%) 이후 상승폭이 가장 높았다. 5월 유럽(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8.1%를 기록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전월 7.4%의 기록을 재차 깼다. 스리랑카 등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0%를 넘긴 개발도상국도 속속 등장했다. 체감이 잘 안 된다면 기름값을 떠올리면 된다. 지난달 21일 서울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2046.5원이었다. 30%의 유류세(246원) 인하가 없었다면 2300원에 육박했을 것이다. 올해 초 1600원대에 기름을 넣었던 것을 떠올리면 무시무시한 상승세다.● 무엇이 고(高) 물가를 일으켰나 인플레이션은 돈의 가치 하락이나 제품 가격의 광범위한 상승을 반영한다. 당장 코로나19로 각국이 풀어놓은 돈부터 떠오를 것이다. ‘헬리콥터 머니’(막대한 통화공급 확대)로 불리는 중앙은행의 양적완화 정책이 물가 상승의 원인이 됐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미국은 정말 많은 돈을 뿌렸다. 2020년 4월과 12월 각각 2조2000억 달러(약 2668조 원), 9000억 달러(약 1091조 원)를, 지난해 3월 1조9000억 달러(약 2304조 원)의 돈을 풀며 강력한 재정 부양에 나섰다. 미국은 경기 부양책마다 소비를 장려하기 위해 개인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방식을 썼다. 이에 따른 소비 폭발이 물가를 자극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쉽게 말해 수요가 공급을 앞질러 각종 제품들의 가격을 끌어 올렸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이와 관련한 논란이 있었다. “너무 돈을 많이 푸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해 “우리가 한 세대 동안 보지 못했던 인플레이션 압력이 촉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기 부양책 규모가 코로나19에 따른 국내총생산(GDP) 부족분의 2배에 달한다”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인플레이션이 ‘돈 풀기’ 때문만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클라우디아 샘은 “샌프란시스코 연방 준비 은행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구제 계획은 인플레이션의 3%포인트만을 차지했다”고 지난달 이코노미스트에 밝혔다. 영향은 미쳤는데, 결정타는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 과잉 수요와 공급 부족, 그리고 전쟁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전 세계적 위기 상황을 일으킨 코로나19 대유행을 물가 상승의 원인으로 꼽았다. 다만, 수요보다 공급에 주목했다. 공장 폐쇄, 인력 부족 등 공급망 혼란으로 제품이 제 때 조달되지 못하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차량 반도체 부족으로 여러 자동차공장이 일시 폐쇄된 것이 단적인 예다. 수요가 공장이 가동되는 곳으로 몰리면서 가격을 상승시켰다. 공급망 관리에서 비용 문제도 크게 작용했다. WSJ은 최근 “트럭 운전사나 항구의 창고 공간이 모두 공급 부족 사태”라며 “제품을 보관하고 운반하는 비용이 전반적으로 올라갔다”고 전했다. 인건비 영향도 핵심으로 꼽히고 있다. 미국에서는 올해 초부터 인력난이 심각했다. 코로나19에 걸릴 것을 두려워하거나, 가족 중 발생한 확진자로 돌봄이 필요해서 등을 이유로 사람들이 일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정부 지원금과 지난해 가격이 뛴 주식·부동산 자산을 믿고 일을 쉬는 이들도 꽤 된다고 한다.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보니 기업들은 연봉 인상에 나섰다. 인건비 인상(기업 입장에서는 비용)은 제품·서비스 가격 상승(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고, 물가 상승으로 직원들은 월급을 더 올려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악순환이다. 여기에 가격이 앞으로 더 오를 수 있다는 기대 심리(기대 인플레이션)가 작용하면서,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까지 사는 이들도 합세했다. 경제는 ‘심리’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방아쇠’는 따로 있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다. 산유국 러시아가 주요 곡물 수출국인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글로벌 에너지·식량 가격이 치솟았다. 우크라이나 침공 전 러시아는 유럽연합(EU) 가스 공급량의 약 40%를 담당했다. 현재 다수 유럽 국가들은 전쟁에 따른 제재로 기존에 러시아로부터 공급받던 물량을 비싼 값을 주고서라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하고 있다. 공급은 줄어들었는데, 수요는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경제활동 재개로 늘어나면서 가격이 껑충 뛰게 된 것이다. 두 국가가 세계 밀 수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9%나 된다. 우크라이나 생산 곡물이 현지에 묶였고, 인도 등 다른 주요 공급처들도 자국부터 공급하겠다면서 공급량을 줄이고 있다. 전 세계 식량 가격이 뛰는 이유다.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해오던 중국이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봉쇄 조치를 단행한 것도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 100조 달러로 살 수 있는 ‘계란 세 개’ 인플레이션이 경제에 그렇게 중요할까. 물가 상승은 사람들의 저축을 잠식하고, 쓸 수 있는 돈의 한도(가처분소득)를 쪼그라들게 만든다. 예금 금리가 4, 5% 돼도 물가가 연 10%씩 오르면 은행에 돈을 묶어 둘수록 손해인 셈이다. 대안으로 현물을 산다면, 물가가 더 오르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그래서 인플레이션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 심리가 작용해 상황이 심각해진다. 역사적으로 물가 때문에 경제가 무릎 꿇은 적이 종종 있었다. 이코노미스트는 “1920년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초인플레이션 기간 동안 사람들의 저축이 증발해 중산층이 사라졌다”며 인플레이션이 파시즘 부상의 초석이 됐다고 평가했다. 짐바브웨도 2000년대 들어서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었다. 2008년 짐바브웨의 물가상승률은 2억 퍼센트가 넘었다. 1달러 짜리를 2억 달러 주고 사야 하는 상황이 온 것. 짐바브웨에서는 ‘100조 짐바브웨 달러’ 지폐까지 발행했는데, 이 종이 한 장으로 살 수 있는 것은 계란 세 개 정도였다. 로버트 무가베 정권의 국가 재정이 어려워지자 화폐를 많이 찍어낸 것이 발단이 됐다. 결국 짐바브웨는 자국 화폐 사용을 금지하고 미 달러를 통용 화폐로 썼다. 천하무적 ‘달러’를 지닌 미국도 물가 때문에 고생한 적이 있다. 베트남 전쟁과 석유 파동을 겪은 미국은 물가를 잡기 위해 1979년 10월 한 번에 4%포인트 금리를 끌어 올렸다. ‘킹왕짱 빅스텝’이라고 불러야 할까.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올리는 것을 빅스텝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후 꾸준히 금리를 올려 1981년 기준금리가 21.5%에 달했다. 뒷골목 사채(私債)가 아니라 기준금리가 20%를 넘긴 것이다. 당시 물가와의 전쟁을 벌였던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은 “오늘 1달러로 살 수 있는 만큼을 내일도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유지하는 게 통화정책의 근본적인 의무”라고 회고록에서 강조했다. 각국 중앙은행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지난달 미 연준은 2000년 이후 22년 만에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올렸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제롬 파월 연준 의장까지 직접 만났다. 바이든 대통령은 “나는 그들의 작업(연준의 인플레이션 억제)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외신들은 이들의 만남 자체가 인플레이션의 심각성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WSJ은 “역대 대통령들이 연준 의장과의 만남이 잦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회동이 이례적”이라고 평했다. 이 미팅은 방탄소년단(BTS)의 백악관 방문 약 2시간 전에 이뤄졌다. 11월 미 중간선거 때 영향을 미칠 핵심 변수 중 하나로 인플레이션이 꼽히면서 바이든 대통령도 해법 찾기에 고심하고 있는 듯하다. 한국은행 또한 26일 두 달 연속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2016년 이후 6년간 제로 금리를 유지했던 유럽중앙은행(ECB)도 이르면 7월 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인다. 29일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주요국 중앙은행은 최근 3개월간 금리를 60회 이상 올렸다. 향후 6개월 안에 세계 주요 20개 중앙은행 중 16곳(80%)이 추가로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FT는 “최근의 인상은 전 세계 긴축 사이클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평했다. ● “나는 모든 것을 계획하지만, 인플레이션이 오는 것은 계획하지 못했다”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추세는 사람들이 주머니 사정을 더 면밀하게 고민하게 만든다. 특히 지금과 같은 경제 상황을 경험한 적 없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는 마트에서 찍힌 식료품 영수증 내역이 당황스러울 수 있다. 어쩌면 이들은 코로나19 이후 고려했던 여행 계획을 취소해야 할지 모른다. WSJ은 “평생 높은 인플레이션을 경험한 적 없는 이들은 소비를 줄이는 것 이상의 대처 방법을 정말 모를 수 있다”고 했다. 또 “2008년 금융 위기, 전염병, 인플레이션과 주택 가격의 상승을 겪은 이 세대는 쉴 틈이 없는 것 같다”며 “그래서 그들이 느끼는 좌절감은 정당하다”고도 했다. 값싸고 풍요로운 시대의 종말은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부자들은 여전히 여유가 넘치는 듯 하다. 월마트 등 대형마트의 실적 발표 이후 미국의 백화점들이 기대 이상의 성적을 공개했다. 미 백화점 체인인 메이시스는 1분기 매출이 53억4800만 달러(약 6조6400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14% 늘었다고 지난달 26일 발표했다. 같은 기간 순이익도 2억8600만 달러(약 3500억 원)로 178% 급증했다. 다른 미 백화점 체인 노드스트롬도 1분기 매출이 시장 추정치를 웃돌았다. 이날 메이시스와 노드스트롬 주가는 각각 19.3%, 5.3% 상승했다. 저가할인점들의 실적 선전도 눈에 띄었다. ‘미국판 다이소’로 불리는 1달러 매장 달러트리의 1분기 순이익은 5억3600만 달러(약 6700억 원)로 전년 동기보다 43% 늘었다. 또 다른 저가 할인점 달러제너럴은 올해 매출 증가율 전망치를 기존 2.5%에서 3.0~3.5%로 올렸다. 26일 두 기업 주가 역시 각각 21.9%, 13.7% 뛰었다. 중간 가격대의 대형마트의 실적은 고꾸라졌지만, ‘소비 양극화’로 백화점과 저가할인점만 선방한 것이다. 씁쓸한 성적표다. ● 누가 롤러코스터의 맨 앞자리에 타고 있나 인플레이션은 공평하지 않다. 급격한 물가 상승에 따른 부작용은 극빈국이나 개발도상국에게 특히 가혹하다. 대체적으로 외화가 부족하고, 식량과 연료 등 필수 품목 가격 상승에 영향을 받는 계층이 많기 때문이다. 현재 이들 국가에서는 식량과 에너지 가격은 계속 올라가고, 주요국 금리 인상으로 화폐 가치가 떨어지면서 외화 유출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스리랑카는 지난달 19일 7800만 달러(약 998억 원)의 대외 채무를 갚지 못하고 결국 채무 불이행을 선언했다. 1948년 건국 후 최초의 ‘국가부도(디폴트)’ 선언이다. 가장 큰 원인은 중국의 경제영토 확장 사업 ‘일대일로(一帶一路)’에 참여하며 생긴 막대한 빚이었다. 코로나19로 핵심 산업인 관광업이 무너졌고, 외화 유출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스리랑카의 4월 전년 대비 물가상승률은 33.8%였다. 전문가들은 구매력 평가 기법 등을 활용해 이를 다시 측정할 경우 전년 대비 122%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스리랑카의 통화는 한 달 만에 40%나 곤두박질쳤다. 스리랑카만큼은 아니지만, 반정부 시위나 폭동이 일어나는 등 아슬아슬해 보이는 국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4월 기준으로 전년 보다 물가가 58%나 올랐다. 한 달에 물가가 6%씩 오르는 상황이다. 미 블룸버그통신은 “아르헨티나의 누구도 상품 가격을 정확히 모른다”며 인플레이션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반정부 시위로 유혈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의 빈곤층은 40%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페루에서도 석유와 비료 가격이 급등하자 농민과 운송업 종사자들이 반정부 시위에 나섰다. 시위 진압으로 6명이 사망했다. 밀 의존도가 80%에 이르는 레바논 경제는 붕괴 직전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경기 ‘둔화’냐, ‘침체’냐…연준의 ‘멜론 껍질 까기’ 금융 시장의 투자자들은 현재의 국면이 경제 성장률이 줄어드는 ‘경기 둔화’냐, 아니면 성장 자체가 꺾이는 ‘경기 침체’냐에 주목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거세게 올렸다가 기업들의 실적이 쪼그라들면서 경기가 차갑게 식어버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주가는 금리 인상에 따른 소비 위축과 기업의 미래 이익 감소를 반영한다. “곧 침체에 돌입할 것이다”, “잠시 둔화됐다가 다시 정상화될 것이다” 등 의견이 엇갈린다. 지금은 모두가 연준만 바라보고 있다. 연준이 금리를 얼마나, 언제까지 올릴지, 향후 경제 전망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등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각국 경제에 그만큼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달러 가치가 올라가고, 경제 체력이 약한 나라일수록 달러가 빠르게 빠져나간다. 그래서 자국 화폐 가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금리를 따라 올린다. 기업들의 수출입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관심을 놓을 수 없다. 연준은 경기를 최대한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금리를 올리겠다는 전략이다. 전쟁이나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등 공급 측면은 어떻게 손 댈 방법이 없으니, 수요(소비)를 어느 정도 줄여서라도(경기를 훼손해서라도)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것이다. 대신, 인플레이션만 잡히면 다시 금리를 내려서 경기를 끌어 올리겠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최근 라파엘 보스틱 애틀랜타 연은 총재가 “9월 금리 인상을 일시 중단할 수 있다”고 밝혔고, 연준 대표 ‘매파’인 제임스 불라드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는 “내년에 금리를 내릴 수 있다”고까지 했다. 불라드 총재는 “금리를 선제적으로 올릴수록 인플레이션과 기대 인플레이션을 더 잘 잡게 돼 유리한 여건이 된다”며 “2023, 2024년에 기준금리를 다시 인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연준의 ‘인플레이션 잡기’는 맛있는 부분을 최대한 남기는 ‘멜론 껍질 까기’를 연상케 한다. 시장은 연준이 멜론 알맹이까지 홀라당 깎아 먹을까 두려워하는 분위기다. 주식 시장만 보면 대다수가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는 듯하다. 지난해 연준이 “현재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인 것”이라고 여러 차례 언급하면서 시장의 신뢰를 잃은 것이 영향을 미친 것일까. “경기는 크게 훼손되지 않을 거야”라고 여러 번 말해도 잘 믿지를 못하는 분위기다. ● 인플레이션 엔데믹 경기 침체는 과도한 우려라는 분석도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OECD 국가들의 가계에 팬데믹 기간 동안 축적된 (GDP의 8%에 달하는) 4조 달러의 저축이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생각과 달리 이 금액은 부자의 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저소득 가정의 은행 계좌는 2019년보다 지난해 말에 여전히 65% 더 두둑했다”고 했다. 금리 인상 등으로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이 팍팍해지고 있지만, 아직 통장에 돈이 많이 남아 있다는 설명이다. 해외에서는 이 여력이 상품 구매 대신 여행, 레스토랑 예약 등 서비스 수요로 분산돼 인플레이션 진정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29일 “지출이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며 “최근 데이터에 따르면 상품 지출은 4월까지 감소했으며 서비스 지출은 같은 기간 7% 늘었다”고 했다. “다만, 소비자 지출의 변화가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지, 이를 통해 인플레이션을 낮출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고도 했다. 각국 정부의 고군분투에도 과거처럼 낮은 물가로 돌아가긴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러시아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이미 건너버렸고, 미국과 중국이 예전처럼 친하게 지낼 것 같지도 않아서다. 수년 간의 러시아의 에너지 공급을 없던 일로 쳐야 한다는 의미다. 미·중 갈등 등 탈세계화 조짐에 따른 공급망 재편도 비용 상승의 요인이 될 것이 분명하다. 설마 팬데믹이 가져온 인플레이션마저 ‘엔데믹’이 되는 것은 아닐까.김성모 기자 mo@donga.com}

    • 2022-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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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대 최대 수출에도 수입 더 늘어… 두달째 무역적자

    한국의 지난달 수출이 역대 두 번째로 많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공급망 정체와 중국의 경기 둔화 국면에서도 한국의 수출은 견고한 성장세를 보인 것이다. 하지만 수출보다 수입이 더 크게 늘어나며 무역수지는 두 달 연속 적자를 보였다. 글로벌 에너지 가격 급등 등 외부 요인으로 수입액이 급격히 늘다 보니 무역수지 적자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의 ‘5월 수출입 동향(잠정치)’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액은 615억2000만 달러(약 76조8000억 원)로 지난해 같은 달(507억3000만 달러) 대비 21.3% 늘었다. 5월 기준으로는 역대 가장 많은 수출액이다. 모든 월로 넓혀도 올해 3월(637억9000만 달러)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많다. 수출은 지난해 3월 이후 15개월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가장 큰 수출액을 차지하는 반도체(115억5000만 달러)는 15.0% 증가해 역대 5월 중 가장 높은 실적을 보였다. 고유가로 정제마진이 높아진 석유제품의 수출은 107.2% 급증했다. 석유화학 14.0%, 철강 26.9%, 바이오헬스 24.6% 등도 고루 증가했다. 싱가포르 대화은행(UOB) 호웨이첸 이코노미스트는 1일(현지 시간) 미국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수출에 대해 “(우크라이나) 전쟁 영향과 중국 봉쇄로 인한 원자재 가격 급등에도 팬데믹에서의 회복이 이어져 세계 무역이 예상보다 더 잘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라고 평가했다. 지난달 수입액은 632억2000만 달러로 전년 동월(479억1000만 달러)보다 32% 늘었다. 특히 5월 원유 가스 석탄 등 3대 에너지 수입액은 147억5000만 달러로 1년 전(80억 달러)보다 84.4% 급등했다. 국제 유가와 액화천연가스(LNG), 석탄 가격이 각각 1년 전보다 97%, 369%, 281%나 치솟은 영향을 받았다. 식량 보호주의가 확산되며 밀과 옥수수 등 농산물 수입액도 올랐다. 농산물 수입액은 5월 24억2000만 달러로 3개월 연속 20억 달러를 넘었다. 무역수지는 17억1000만 달러 적자를 보여 두 달 연속 적자를 이어갔다. 3월 무역수지는 당초 잠정치를 발표할 때 1억4000만 달러 적자였지만, 최근 집계된 확정치에서 2억1000만 달러 흑자로 정정돼 3개월 연속 적자를 피했다. 만약 6월 무역수지도 적자로 집계되면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14년 만에 처음으로 3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가 된다. 무역수지는 경상수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무역수지 적자가 지속되면 2020년 5월 이후 흑자 행진을 이어온 경상수지도 적자로 돌아설 수 있다. 그로 인해 외국인 투자가 한국 시장을 떠난다면 원화 가치 하락, 물가 불안 등 경제 충격이 올 수 있다. 산업부는 한국과 같이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 등도 무역적자가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금융·물류 상황을 면밀히 분석하고 업종별 특화 지원 등 수출 지원에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4월 제조업 생산능력지수는 105.0(2015년=100)으로 지난달 대비 0.4% 줄어 1년 8개월 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제조업 생산능력지수는 설비나 인력 등 조업 환경이 정상적인 상태로 가정했을 때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생산량 지수다. 이 지수가 떨어지는 것은 제조업 성장 동력이 후퇴하고 있다는 의미다. 세종=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세종=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김성모 기자 mo@donga.com}

    • 2022-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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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주요국, 금리 석달간 60회 올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물가 급등이 심각해지면서 주요국 중앙은행이 최근 3개월간 금리를 60회 올리는 등 20년 만에 가장 공격적인 긴축 정책에 나서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29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특히 향후 6개월 안에 세계 주요 20개 중앙은행 중 16곳(80%)이 추가로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후 저금리 기조를 유지했던 각국 중앙은행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발 후 제로(0) 혹은 마이너스(―) 수준으로 금리를 낮췄다. 그러나 산유국 러시아가 주요 곡물 수출국인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세계 식량 및 에너지 가격이 치솟고 공급망 교란 등이 가속화하자 글로벌 초저금리 시대가 사실상 끝났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앞서 4일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2000년 이후 22년 만에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올렸다. 한국은행 또한 26일 두 달 연속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2016년 이후 6년간 제로 금리를 유지했던 유럽중앙은행(ECB)도 이르면 7월 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FT는 각국이 금리 인상을 서두르고 있지만 여전히 금리는 과거 수준보다 낮다며 “최근의 인상은 전 세계 긴축 사이클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평했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 2022-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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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주얼 서스펙트’ 케빈 스페이시, 영국서 성폭력 혐의로 기소

    영국 검찰이 26일(현지 시간) 미국 유명 배우 케빈 스페이시(63·사진)를 성폭력 혐의로 기소했다고 CNN 등이 보도했다. 그는 2005년 3월~2013년 4월 중 런던, 글로스터셔 등에서 30, 40대 남성 3명을 상대로 4건의 성폭력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상대 동의 없이 강제로 성관계를 가진 혐의가 있다고 검찰 측은 밝혔다. 2017년 미 배우 앤서니 랩이 “14살이던 1986년 스페이시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후 스페이시에게는 비슷한 의혹이 잇따라 제기됐다. 같은 해 스페이시가 2004~2015년 예술감독으로 지낸 런던의 ‘올드빅’ 극장 역시 “스페이시로부터 부적절한 행동을 당했다는 제보를 20명으로부터 받았다”고 공개했다. 랩은 2020년 “스페이시의 성추행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며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했다. 스페이시는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1995년)와 ‘아메리칸 뷰티’(1999년)로 각각 아카데미남우조연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성추문이 불거진 후 넷플릭스의 인기 드라마 ‘하우스오브카드’에서 퇴출당했고, 이미 출연한 영화에서도 출연 분량이 사라지는 등 사실상 할리우드에서 퇴출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김성모 기자 mo@donga.com}

    • 2022-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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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악관 “원숭이두창, 이런 규모-범위는 본 적 없다” 긴장

    미국 보건당국이 26일(현지 시간)까지 미 7개 주(州)에서 총 9건의 원숭이두창(monkeypox) 발병을 확인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주로 아프리카에서 유행해 온 바이러스성 질환인 원숭이두창이 최근 유럽과 중동으로 퍼지더니 미국에서도 속속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미 백악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전 세계적으로 이런 규모와 범위의 원숭이두창은 이전엔 본 적이 없다”며 긴장감을 내비쳤다. 로셸 월렌스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원숭이두창의 미국 내 발병과 관련해 “지역 의료진에 의해 의심사례가 발견된 뒤 실험실에서 확인됐다”고 밝혔다. CDC는 해당 샘플을 자체적으로 추가 검사한 뒤 확진 판정을 내렸다. 그는 “접촉 가능성이 있는 이들에 대한 관리와 치료를 돕기 위해 공중보건 조치를 한 상태”라고 했다. 확진자가 발생한 주는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 매사추세츠 뉴욕 유타 버지니아 워싱턴이다. 이는 해외를 다녀온 이들로부터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월렌스키 국장은 감염자 일부가 원숭이두창 감염이 진행 중인 지역을 여행한 사람들과 관련이 있었다고 밝혔다. 외신들은 미국 감염 사례가 남성 간 성관계에서 발견됐다고 전했지만, 월렌스키 국장은 원숭이 두창 노출 위험이 “특정 그룹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중 보건에서의 낙인과 차별은 치료에 대한 접근성 감소, 지속적인 질병 전파, 발병 및 위협에 대한 무딘 대응으로 이어진다”며 “사람들이 그러한 낙인과 차별 없이 접근하길 촉구한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잠잠해지고 사람들의 국가 간 이동이 늘면서 원숭이두창의 확산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숭이두창은 7일 영국을 시작으로 유럽과 북미, 중동, 호주 등으로 퍼지면서 경고음이 울린 상태다. CDC는 최근 국제 여행자들이 원숭이두창을 조심해야 한다면서 경계 수준을 2단계로 높였다. 한국에선 아직 발병 사례가 보고되지 않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날까지 원숭이두창 비풍토병 지역으로 분류된 20여 개국에서 200여 건의 누진 확진 사례가 나왔고, 의심 건수는 100건 이상이라며 각국에 감시 수준을 올려달라고 요청했다. CDC에 따르면 원숭이두창은 1958년 처음 발견됐다. 실험실 원숭이에게서 천연두와 비슷한 증상이 관찰돼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사람이 감염된 사례는 1970년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처음 나왔고, 이후 줄곧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발병해 왔다. 원숭이두창은 주로 감염자 특유의 피부 병변을 통해 퍼진다. 이 병변이 치료될 때까지는 전염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염되면 발열이나 두통, 근육통, 임파선염, 피로감 등 천연두와 유사한 초기 증상이 나타난다. 이후 피부에는 물집과 딱지가 생긴다. 통상 수주 내 회복되지만, 중증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CDC 전염병 전문가인 제니퍼 맥퀴스턴은 “원숭이두창이 반드시 성적 접촉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피부 접촉을 통해 얼굴과 온 몸 전체로 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김성모 기자 mo@donga.com}

    • 2022-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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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18세 고등학생, 집에서 할머니 쏜 뒤 초등 교실 돌며 난사

    미국 텍사스주의 초등학교에서 무차별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어린이 19명과 교사 2명 등 최소 21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범인은 인근 고등학교에 다니는 18세 남성으로 범행 현장에서 경찰에 사살됐다. 24일(현지 시간) CNN 방송과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살바도르 라모스는 텍사스주의 소도시 유밸디의 롭 초등학교 앞까지 차를 몰고 가 교내로 진입한 뒤 한 4학년 교실에 있던 학생들을 향해 소총과 권총을 쐈다. 총격으로 학생 19명과 4학년 담당 여교사 등 성인 2명이 목숨을 잃었다. 피해자 전원이 한 교실에서 나왔다. 다른 학생 여러 명이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져 사망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 1만5000여 명이 사는 유밸디는 멕시코 접경지대에 있다. 주민 대부분이 히스패닉 계열이다. 라모스는 경찰이 출동하자 바리케이드를 치고 대치하다 총에 맞아 사망했다. 경찰은 범행 동기를 조사 중이며 단독 범행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범인은 범행 전 소총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주변에 “이제 막 하려고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등 사실상 참극을 예고했지만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 이번 참사는 2012년 어린이 20명을 포함해 총 26명이 사망한 코네티컷주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이후 10년 만에 가장 큰 피해가 난 초등학교 총격 사건이다. 이달 14일 뉴욕주 버펄로 흑인 주거지역의 한 슈퍼마켓에서 18세 백인이 총기를 난사해 10명이 사망한 지 불과 열흘 만에 이 같은 참극이 발생하자 미국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미국은 총기규제법상 18세 이상이면 총을 구매할 수 있다. 공화당 텃밭인 텍사스주는 총기 소지 권리가 광범위하게 보장된다.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27일 전미총기협회(NRA) 후원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4일 한일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백악관 연설에서 “아이를 잃는다는 것은 영혼의 한 조각을 영원히 빼앗기는 것이다. 우리는 왜 이런 대학살과 함께 살려고 하는가. 이 문제에 맞설 용기를 주는 우리 사회의 중추는 어디 있는가”라며 의회에 총기규제 법안 처리를 강력히 촉구했다. 초등생 19명 포함 최소 21명 숨져, 교실 곳곳 피로 흥건… 현장 참혹일부 학생 깨진 창으로 간신히 탈출… 범인, 어눌한 말투 때문에 놀림 받아총기 살 수 있는 18세 되자 참극벌여, 방탄복 입고 경찰과 대치… 사살돼 24일 오전 11시 반경(현지 시간) 미국 텍사스주 유밸디에 있는 롭 초등학교 앞 도랑에 회색 포드 트럭 한 대가 멈춰 섰다. 인근 장례식장에서 일하던 직원 두 명이 트럭 운전석에 있던 살바도르 라모스(18)에게 “차를 빼도록 도와주겠다”며 다가갔다. 그러자 라모스는 갑자기 권총을 꺼내 이들에게 난사했다. 그는 이 초등학교에 오기 전 자신의 할머니(66·중태)를 총으로 쏜 뒤 집을 나선 참이었다.○ “10세 조카, 교실 곳곳 튄 피 보고 충격”라모스는 학교 옆문을 통해 진입해 교실 복도를 돌아다녔다. 이날 학생들은 3일 뒤 시작되는 방학을 앞두고 ‘자유롭고 멋진 날(footloose and fancy day)’을 맞아 예쁜 옷을 차려입고 등교한 상태였다. 라모스는 학생들을 향해 소총과 권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비명이 터졌고 교실 바닥은 순식간에 피로 흥건해졌다. 일부 학생들은 깨진 유리창 틈으로 기어 나와 탈출했다. 목격자들은 뉴욕타임스(NYT) 등에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이 학교 학생인 10세 조카를 둔 에리카 에스카미야 씨(26)에 따르면 조카가 쉬는 시간 후 교실로 돌아오던 중 한 남자가 소리치고 욕하는 것을 들었으며, 곧 총소리가 났다고 전했다. 그러자 교사가 아이들을 교실 안으로 황급히 밀어 넣고 전등을 모두 끈 뒤 창문을 종이로 가려 화를 면했다. 그는 “조카가 대피하면서 교실 안 모든 곳에 피가 튀어 있는 것을 보고 심장마비가 온 것 같은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 인근에 사는 로먼 버두스코 씨는 “갑자기 학교에서 공사장 못 박는 기계 소리 같은 게 들려왔고, 곧 경찰이 학교로 몰려갔다”고 했다. 데릭 소텔로 씨(26)는 “총소리를 들은 학부모들이 학교 밖으로 몰려들자 범인이 학교에 바리케이드를 쳤다”고 전했다. 방탄복까지 챙겨 입은 라모스는 바리케이드 뒤에 숨어 경찰과 대치하다 범행 시작 약 45분 만에 사살됐다. 학부모들은 자녀의 생사를 확인하느라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딸의 사망을 확인한 한 부모는 페이스북에 ‘비가 내리는 걸 보니 네가 하늘에 도착했나 보다. 아가야, 영원히 사랑한다’는 글을 올렸다.○ 사흘 전 총기 사진 올리며 범행 예고 라모스는 미국 총기규제법상 총기 구매가 가능한 하한 연령인 18세가 되자마자 참극을 벌였다. 주변인들에 따르면 그는 중학교 시절 어눌한 말투 때문에 놀림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학교에는 거의 안 가고 햄버거 체인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해당 햄버거 가게 매니저는 CNN방송에 “라모스는 조용했고 다른 종업원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냥 일하고 월급만 받아 갔다”고 말했다. 라모스의 지인들은 라모스가 최근 재미 삼아 칼로 얼굴을 긁고, 행인들에게 비비탄 총을 쏘거나 차량에 달걀을 던지는 등 이상한 행동을 했다고 뉴욕포스트에 밝혔다. 그는 마약을 하는 친모와 갈등을 빚다 몇 달 전부터 할머니 집에서 지내 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총격 사흘 전 소총 두 자루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범행을 예고했다. 사건 당일 오전 5시 43분경에는 일면식도 없는 여성에게 “이제 막 하려고 한다(I am about to)”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 여성이 “뭘 하려고 하느냐”고 묻자 “한 시간 안에 말해주겠다. 그 대신 반드시 답장해야 한다”고 답했다.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김성모 기자 mo@donga.com}

    • 2022-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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