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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시작한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이 처음으로 2차 심사 과정을 공개한다. 미술관은 ‘올해의 작가상 2023’의 후원 작가 4인과 국내외 심사위원 4인의 대담인 ‘작가 & 심사위원 대화’를 사전 신청을 통해 참석한 일반 관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한다고 29일 밝혔다. 다음 달 6일 오후 1시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MMCA 다원공간에서 열리는 ‘작가 & 심사위원 대화’는 권병준, 갈라 포라스-김, 이강승, 전소정 등 후원 작가 4인의 발표와 심사위원 질의응답, 관객 질의응답으로 구성된다. 관객 질의응답은 전시 기간에 관객이 남긴 질문 500여 건 중 일부를 선정해 학예연구사가 묻는다. 심사위원은 최빛나 2025 하와이트리엔날레 예술감독, 에런 시저 델피나 파운데이션 총괄 디렉터, 나브 하크 벨기에 안트베르펜 현대미술관 부디렉터, 우에마쓰 유카 오사카 국립현대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다. ‘올해의 작가상 2023’ 최종 선정작가는 ‘작가 & 심사위원 대화’ 개최 이후 발표된다. 참여 신청은 국립현대미술관 누리집에서 할 수 있으며 현재 250석이 조기 마감된 상태다. 예약 변경에 따른 추가 예약은 2월 5일까지 계속되며, 노쇼 청중석에 한해 현장 접수가 가능하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4일 명품 쇼핑몰과 고급 호텔이 늘어선 홍콩 ‘퀸스 로드 센트럴’가에서 중국 전통 사자춤이 펼쳐졌다. 도로 옆 인도에서 춤을 시작한 사자 두 마리는 이날 이전·개관한 갤러리 ‘하우저 앤드 워스’로 향했다. 이후 입구에 서 있는 두 명의 갤러리 대표, 아이반·마누엘라 워스에게 부(富)를 상징하는 상추를 던졌다. 복(福)을 기원하는 붉은색 옷을 입은 갤러리 직원들은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갤러리 벽에는 개관전 작가로 선택된 중국 출신 장언리의 신작 회화가 걸려 있었다. 글로벌 갤러리 하우저 앤드 워스의 새 홍콩 갤러리가 문을 여는 현장을 국내 일간지 중 유일하게 찾아 취재했다. ● 15층에서 명품 거리 1층으로 하우저 앤드 워스는 1992년 스위스에서 설립돼 전 세계 18개 지점을 거느리고 있는 ‘메가 갤러리’로, 루이즈 부르주아(1911∼2010), 알렉산더 콜더(1898∼1976), 필립 거스턴(1913∼1980), 헨리 무어(1898∼1986) 등 20세기 서양 미술 거장 작가의 작품 여럿을 관리하고 있다. 지난해 아트바젤 홍콩에서는 부르주아의 거미 조각 작품을 2250만 달러(약 300억 원)에 팔아 그해 페어 최고가를 기록했다. 아시아 유일 지점인 홍콩 갤러리를 6년 만에 이전한 새 공간이 개관 하루 전인 23일 글로벌 미디어에 공개됐다. 새 갤러리를 가보니 고급 쇼핑거리 1층에 자리해 월등해진 접근성이 돋보였다. 2018년 개관 당시 하우저 앤드 워스 홍콩은 센트럴 구역의 H퀸스 빌딩 15·16층에 있었다. 이곳은 서울옥션도 홍콩 지점을 냈던 곳이다. 아트페어 기간 컬렉터들은 여러 갤러리를 한 번에 방문하는데, 엘리베이터의 긴 대기 시간이 단점으로 꼽혀왔다. 갤러리 측은 이전을 결정하는 데 있어 접근성은 물론이고 눈에 잘 띄는 ‘홍보 효과’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일레인 곽 하우저 앤드 워스 아시아 경영 파트너는 “갤러리 바로 맞은편이 고급 쇼핑몰 랜드마크와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이라며 “입구에서 택시를 기다리는 고객에게 갤러리가 자연스럽게 노출될 것”이라고 했다. 새 공간은 929m²(약 280평) 규모로, 전시 공간은 388m²(약 117평)다. 특히 1층 전시 공간은 223m²(약 67평)로 이전보다 두 배 확장됐다. 곽 파트너는 “1층이 기둥 없이 4m 층고로 넓게 펼쳐진 것도 달라진 점”이라며 “대로변으로 큰 창을 내 자연 채광을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인근 미술대학 학생들의 전시 관람 등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아시아 미술시장 견인할 것” 글로벌 경매사인 크리스티와 소더비도 올해 이 지역에 자체 경매장과 전시장 개관을 앞두고 있다. 그간 두 경매사는 완차이구의 홍콩컨벤션센터를 임대해 경매를 열었는데, 북미와 유럽처럼 이제는 아시아 컬렉터를 겨냥해 자체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한때 팬데믹과 정치 불안정으로 홍콩의 아시아 미술 허브 역할이 위태로운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글로벌 미술 시장 관계자들은 구매력 높은 중국 부유층에 여전히 베팅하는 모습이다. 곽 파트너는 “중국 경제 규모가 아시아 최대인 것은 확실하다”며 “중국이 앞으로도 아시아 미술 시장을 견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아트바젤과 스위스 금융사 UBS가 글로벌 고소득자 컬렉터 28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중국 컬렉터의 68%가 2024년에도 예술 작품 구매를 하겠다고 답한 것도 눈길을 끈다. 뒤이어 일본(63%), 이탈리아(62%) 순이었다. 미국은 58%, 영국은 50%였다.홍콩=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국내 건축가 25명의 드로잉 작업을 모은 전시가 열린다. 24일 서울 종로구 토포하우스에서 개막한 ‘2024 건축가드로잉전-사유(思惟)’다. 건축가들이 주로 설계를 위해서 그리는 드로잉이 아니라 자유롭게 상상하고 영감을 얻으면서 제작한 드로잉을 보여줌으로써 건축가들의 사유 방식에 접근하기 위해 기획된 전시다. 전시에는 곽데오도르, 곽희수, 구영민, 김동진, 김석환, 김효영, 문훈, 박기준, 박준호, 방철린, 백문기, 오섬훈, 오호근, 우경국, 이관직, 이은석, 이형재, 임지택, 임진후, 임형남, 전이서, 전인호, 최두남, 최성희, 홍재승 등 25명의 건축가가 각각 2∼3점씩 작품을 내놓았다. 이들의 드로잉 작업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거나 소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는 건축적 가치관과 철학을 기호화된 형식으로 드러내기 위한 목적이 주를 이룬다. 각 작품은 크게 두 가지 유형, ‘구축으로의 사유’와 ‘심상으로의 사유’으로 나뉘었다. 건축물이 들어설 대상지, 쓰일 기능, 그 건물을 사용할 사람 등에 따라 다양한 논리로 발현되는 사고방식은 ‘구축으로의 사유’에 해당한다. 예술적 사유에 의한 작업물은 ‘심상으로의 사유’에 담았다. 건축가가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현실 속에 존재하는 건축물을 만들어 내기까지 생각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2월 8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은하철도 999’의 원작 동화 ‘은하철도의 밤’을 그림자극으로 만든 일본의 그림자 회화(影繪·가게에) 작가 후지시로 세이지(藤城淸治·100)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가 한국에서 열린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1·2관에서 26일 개막한 ‘오사카 파노라마’전은 후지시로의 작품 200여 점을 소개한다. 그림자 회화는 종이를 오려낸 여백에 트레싱지를 더하고, 그 뒤에 조명을 설치해 통과되는 빛에 의해 완성된다. 각 종이에 선을 연결해 형태가 움직이도록 만들어서 마치 인형극과 같은 ‘그림자극’을 상영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후지시로는 게이오대 경제학부에 다닐 때 그림 동아리와 ‘아동문학연구회’에서 인형극을 접했다. 이 인형극이 그림자극으로 발전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였다. 전쟁이 끝난 뒤 물자가 부족해 철사나 굴러다니는 물건을 이용해 형태를 만들고, 잦은 정전에 어두운 곳에서 빛을 활용하는 그림자극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대학 졸업 후 영화배급사에서 일하던 그가 1948년부터 여성지 ‘구라시노테초’(삶의 수첩)에 연재하던 그림자 회화가 이때의 시대적 배경을 여실히 보여준다.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잘려 나간 선에서 손맛이 느껴지는 작품들이 인기를 끌어 1988년까지 40년간 총 220여 편이 연재됐다. 1974년부터는 컬러로 연재됐다. 25일 미술관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작가는 “흰색과 검은색만을 이용한 초기 작업은 기술적으로는 미숙하지만 소박한 감상이 들어 있는 내 작품 세계의 원점”이라고 설명했다. 후지시로는 또 ‘선녀와 나무꾼’ 연작을 주목해 달라고 말했다. 1958년 구라시노테초에 연재한 것으로, 작가가 조선시대 설화를 듣고 제작한 것이다. 당시 만들었던 것들은 분실했지만, 한국 전시에 소개하고 싶어 총 14점을 다시 제작하여 지난해 12월 완성해 이번 전시에 출품했다. 미야자와 겐지의 소설 ‘은하철도의 밤’은 물론이고 ‘첼로 켜는 고슈’, ‘구스코 부도리의 전기’ 등을 소재로 한 그림자 회화도 전시된다. ‘은하철도의 밤’을 소재로 한 그림책은 1983년 브라티슬라바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BIB) 황금사과상, 2014년 미야자와 겐지상을 수상했다. 작가는 “그 바탕에 평화를 향한 깊은 기원과 기도가 담겨 있는 미야자와의 동화를 만나고 가게에 작가로서 눈을 떴다”고 했다. 전시는 4월 7일까지. 1만∼2만 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고금리 기조와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미술 시장의 전망도 암울하다. 19일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한국 미술 시장 결산 및 전망 세미나’를 통해 발표한 한국 미술 시장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미술 시장 거래 규모는 6675억 원. ‘미술 시장 규모 1조 원’을 돌파했다는 2022년에 비해 17% 감소한 수준이다. 화랑가에서도 일부 초고가 작품을 제외하고 대부분 작품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줄면서 당분간 어려운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이런 가운데 국내 갤러리들이 전속 계약을 맺은 30, 40대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는 그룹전을 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사회·문화 구조에 대한 관심 서울 성북구 BB&M 갤러리는 30일부터 그룹전 ‘언센티멘탈 에듀케이션’에서 젊은 전속 작가 4인 김희천(35), 성시경(33), 우정수(38), 탁영준(35)의 작품 10여 점을 선보인다. 갤러리는 이 작가들이 마주하고 있는 시대의 감수성과 미감을 이성적 사고와 논리를 통해 풀어낸다고 소개한다. 전시 제목은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소설 ‘감정 교육(Sentimental Education)’을 비튼 것으로, 작가들의 새로운 미학적 전략과 경향을 뜻한다. 탁영준 작가는 작품을 통해 종교적 도그마와 젠더 다양성 등 세계 곳곳에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양극단의 가치를 결합하려 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Wohin?(어디로 가니?)’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백미러에 비친 두 남성의 얼굴과 그 아래에 걸린 십자가를 함께 보여준다. 배경 음악으로는 종교 음악을 떠올리게 하는 웅장한 화음이 울려 퍼지는 식이다.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는 지난해 미디어아트 컬렉션인 율리아 슈토셰크 재단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서울 아틀리에 에르메스에서도 28일까지 국내 첫 개인전 ‘목요일은 네 정결한 발을 사랑하리’를 연다. 이 밖에 서양의 신화적 이미지와 만화 속 캐릭터, 판화 기법 등 시대와 장소를 넘나드는 이미지를 혼합하는 우정수, 자유롭고 즉흥적인 드로잉으로 만들어 낸 추상 회화를 선보이는 성시경의 신작 회화를 볼 수 있다. 최근 영국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 김희천 작가의 초기 작품 ‘바벨’(2015년)도 상영된다. 3월 9일까지. 무료.● 청년·신진 작가들의 다음 스텝은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은 전속 작가인 구지윤(42), 안지산(45), 이지현(45)을 비롯해 1970∼1990년대생 작가 13명의 작품 48점을 갤러리 전관에 걸쳐 선보인다. 모든 작품이 회화로 구성된 이번 전시의 제목 ‘착륙지점’은 이들 작가가 현재 머무르는 시점을 고찰함으로써 미래에 어떻게 도약하게 될지를 살펴본다는 의미다. 안지산의 ‘유영’(2023년)은 먹구름 속 튀어나온 하반신과 양손만 보이는 형상을 담았다. 어두운 색채가 불안감을 조성하지만, 구름을 헤쳐 나가려는 인물의 의지가 역설적이다. 구지윤의 ‘그레이 투 옐로우’(2023년)는 도시의 회색 건물과 차가운 벽면, 그 위에 내리쬐는 빛을 추상적으로 담아 도시를 마치 생명체처럼 묘사했다. 이 밖에 안경수, 엄유정, 임노식, 좌혜선 등 청년 작가와 신진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박미란 아라리오갤러리 팀장은 “갤러리 전속 작가와 함께 현장에서 주목할 만한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폭넓게 조명하고자 마련한 자리”라고 설명했다. 2월 17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지난해 9월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취임한 뒤 100여 일 만에 언론 인터뷰에 나선 김성희 관장과의 대화를 소개합니다. 김 관장은 9일 2024∼2026년 미술관 운영 계획에 관한 밑그림을 밝히기도 했는데요. 그 저변에 김 관장의 어떤 구상이 있는지, 또 그러한 계획은 어떤 경험에서 나오게 된 것인지 들었습니다. 미술관, 계급장 떼고 공부하는 기관으로김 관장은 대학 졸업 직후 백남준의 가족이 하던 갤러리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곳에서 ‘이 커리어로는 부족하니 유학을 다녀오라’는 백남준의 조언으로 미국 뉴욕으로 가서 현대미술관(MoMA), 디아 비컨 등에서 인턴으로 일합니다. 수십 년 뒤 국립현대미술관장이 된 그는 미국과 한국, 대학 강단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술 이론과 미술사가 근간이 되어야 한다’고 봤습니다. ―신년 인사에서 ‘연구’와 ‘출간’을 중심으로 하는 기관을 만들겠다고 언급했습니다. “한국 미술에 대한 높은 관심이 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결국 본질적인 콘텐츠가 뒷받침이 되어야 하고, 미술에서는 미술 이론과 미술사가 이 역할을 합니다. 학예사든 학예관이든 ‘계급장’을 떼고 실험미술이라면 1970·80년대, 혹은 1990년대, 2000년대까지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담론을 활성화하려는 것입니다. 이런 연구가 토대가 되어야 해외 석학을 한국에 초청하는 ‘MMCA 리서치 펠로우십’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겠죠.” ―‘계급장을 떼고’라는 표현은 수평적 조직 문화를 강조하려는 취지인가요? “미술관이 그간 관장과 학예실장이 공석이었고, 젊은 학예사와 학예관 사이의 소통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은 단호히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신형상’ 등 세부 사조 들여다봐야”김 관장의 구상은 한국 미술사를 다시 제대로 연구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단색화’를 언급하며 “전시도 열리고 박서보 작가도 열심히 뛰었지만, 그것을 세계에 알린 건 결국 조앤 키 같은 연구자들이 저명한 출판사에서 출간한 연구서”라며 “이제는 다른 담론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국내 미술계에서는 미술관의 국내 작품 소장 기준이 궁금할 것 같습니다. “우리 미술계 여러 사조에 대한 정확한 연구가 부족합니다. 1980·90년대 민중미술도 있지만 ‘신형상’이라는 디테일한 사조가 있었어요. 이런 분야에 대한 연구를 기반으로 책이 나오고, 전시가 열려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작품은 미술관이 소장하는 순서가 되겠지요.” ―결국은 모든 바탕에 연구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군요. “반짝반짝한 기획사 전시, 관객들이 줄 서서 보는 전시는 그런 분야에서 풀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국현’만이 할 수 있는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전시를 보여 주는 것이 저는 참다운 대국민 서비스라고 생각합니다.” ―‘MMCA 리서치 펠로우십’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해외 석학을 초청하고 한국에 3∼6개월 머물게 하면서 한국 미술을 연구하게 한다는 프로젝트입니다. 여기서 염두에 두고 있는 해외 석학은 어떤 정도의 인물인가요? “이미 관심을 표한 인물도 있지만 ‘빅 네임’을 모시기 위해 신중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해외 유력 대학의 미술사 교수, 혹은 유명한 출판사에서 관련 저서를 5∼10권 출간해 미술사에 언급이 된 분을 말합니다. 국제적 전시 기획을 맡았던 큐레이터도 가능하고요.” ―미술관의 연구와 해외 교류 두 축을 중요하게 보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1969년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이 만든 역사적 전시 ‘태도가 형식이 될 때’는 미국 필립 모리스와 정부가 기금을 댔어요. 참여 작가의 50%가 미국 출신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자국 미술을 전략적으로 알려야 합니다.”“작가와의 협업이 더 편하고 즐거워”―상업 화랑에서도 일한 경험이 있습니다. “네. 그런데 상업 갤러리에서 젊은 작가는 돈이 안 되어서 현실적으로 전시가 불가능했어요. 수백만 원 하는 작품을 팔아서 갤러리를 유지하기는 어렵거든요. 뉴욕 대안공간들의 실험적 전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1999년 ‘사루비아 다방’을 만들었어요. 그러다 건강 악화(암 투병)로 손을 놓고 치료를 받은 뒤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비영리 대안공간인 ‘캔 파운데이션’을 만들었죠.” ―비영리기관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 눈에는 갤러리 오너의 삶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어요. 화려하지만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하고…. 작품을 사라고 설득하는 것보다 작가와 대화하고 일하는 게 만족도가 커서 ‘아 나는 이쪽이구나’ 했어요. 친구들이 갤러리를 열면 밀어주겠다고 했지만, 저는 ‘야, 가방 하나 살 바에 작가 도와’라고 하는 게 더 좋아요. 그래서 제 선택에 후회는 없습니다. 물론 사루비아 다방을 하다가 몸이 아플 때 조금 후회했지만 아마 화랑 했으면 더 아팠을 거예요.(웃음)” ―미술관이 낯선 일반 관객에게 국립현대미술관은 어떤 기관이 될까요? “세대를 아우르는 전시를 꼭 해보고 싶습니다. 영화를 보고 감동해서 울고 웃듯, 그런 감동이 있는 전시를 해보고 싶어요. 그러려면 전시 서문과 설명글도 쉬워져야 하고 더 친절해져야겠죠. 관객이 전시장에 오래 머물 수 있는 전시를 만들 생각입니다.”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금요일 오전 7시 발송됩니다. QR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하시면 이메일로 먼저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일본의 화가 노마타 미노루(野又穫·68)가 한 평 남짓한 크기의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릴 때였다. 비좁은 작업 공간은 물리적 한계가 되지만 그곳에 앉은 작가의 상상력은 무한했다. 일본의 다도에서 작은 차실을 우주라고 일컫듯, 작가는 작은 작업실에서 우주의 저 먼 곳까지 내다보고 싶었다. 그 결과물은 ‘먼 광경을 투영하다’라는 뜻의 ‘영원(映遠·Far Sights)’ 연작으로 탄생했다. 이 시리즈를 비롯해 1996∼2018년에 그린 회화와 드로잉 20여 점을 소개하는 노마타의 개인전 ‘영원(映遠)―Far Sights’가 서울 강남구 화이트큐브 서울에서 열린다. 1990년대 초기작 ‘Eastbound’ 연작 및 중세와 르네상스 회화에서 영감을 얻은 ‘Seeds’ 연작, 철거돼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건물들을 담은 ‘Ghost’ 연작 등을 볼 수 있다. 이들 작품에서는 황량한 풍경 속에서 외롭게 우뚝 솟은 건축물들이 주를 이룬다. 건물들은 미묘하게 기울어지거나, 가느다란 받침대 위에 놓여 아슬아슬한 감각을 자아낸다. 견고하게 세워진 줄 알았지만 여기저기 부서지고 고장 나 불안을 느끼기 시작한 현대 문명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 풍경을 건축을 통해 드러낸 듯하다. 3월 2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서예가 초당 이무호(76)의 개인전 ‘청룡비등 기세충천(靑龍飛騰 氣勢衝天)’이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 1층 전시실에서 19일 개막했다. 동아일보사가 주최하고 국회의원서도회와 세계문화 예술발전중심이 주관하는 이번 전시는 ‘입룡(立龍)’ ‘비룡(飛龍)’ ‘와룡(臥龍)’ 등 2024년 갑진년 청룡의 해를 맞아 최근 제작한 글씨 신작과 1998년 방영된 KBS 드라마 ‘용의 눈물’에 등장했던 ‘64개 용자 병풍’ 등 30여 점을 23일까지 선보인다. 초당 이무호는 “붓을 잡은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용’을 주제로 꾸준히 글씨를 써왔다”며 “작품을 통해 기를 모으는 ‘기운집’ 서예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지난해 얼룩말 ‘세로’가 서울 어린이대공원을 탈출했을 때 일이다. 단순히 동물원의 관리 실수로 탈출한 줄 알았던 세로가 최근 몇 년 새 부모를 차례로 잃고 외로움에 시달리다, 이웃 캥거루와 싸우는 문제 행동을 벌였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어린 얼룩말의 슬픈 방황에 공감이 쏟아졌고, 세로가 동물원에 돌아간 뒤에도 그의 근황에 관심이 쏠렸다. 동물에게도 감정과 마음이 있음을 우리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일시적 감정을 넘어 동물도 깊은 내면세계를 갖고 있고, 정신질환을 앓는다는 주장은 어떨까. 이 책은 반려견이 4층 집에서 뛰어내리는 것을 목격한 뒤 동물 정신의 역사를 연구하게 된 과학사학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의 반려견 올리버는 투신 장면을 목격한 이웃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산다. 그러나 수의사는 저자에게 “1층으로 이사하고 동물행동심리 전문의를 만나라”고 조언한다. 심각한 분리불안을 겪은 올리버는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2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죄책감과 상실에 시달린 저자는 정신병을 앓는 동물과 전문가의 사연을 기록한다. 6년간 고릴라, 보노보, 고양이, 돌고래, 앵무새, 코끼리를 만났고 이를 돌보는 정신과 의사, 수의사, 사육사, 훈련사와 반려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간에 의해 미쳐 버린 동물들에 관한 150년의 역사도 추적한다. 역사 속 동물은 인간을 대신하는 실험 대상이었다. ‘파블로프의 개’들은 정신착란을 일으킬 정도의 자극에 시달렸고, 모성 실험 대상이 된 원숭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어미로부터 분리됐다. 결국 인간의 불안정한 마음에 대해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이 동물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 얻게 된 지식임이 드러난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아픔을 겪는 동물들이 놀라운 회복력으로 다시 일어서는 것은 결국 종을 뛰어넘는 우정과 사랑이다. 그것은 반려동물과 사람 사이의 애정일 수도, 동물과 동물간의 위로일 수도 있다. 상대가 어떤 존재이든 그에 대한 애정과 친절이 희망을 안겨줄 수 있음을 책은 보여준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오늘은 지난해 9월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취임한 뒤 100여 일 만에 언론 인터뷰에 나선 김성희 관장과의 대화를 소개합니다. 김 관장은 일주일 전 2024~2026년 미술관 운영 계획에 관한 밑그림을 밝히기도 했는데요.그 저변에 김 관장의 어떤 구상이 있는지, 또 그러한 계획은 어떤 경험에서 나오게 된 것인지 들었습니다. 요약하면 ‘미술관은 계급장 떼고 공부하는 기관’으로 만들고, ‘해외 석학을 초청해 한국 미술을 국제적으로 알린다’는 것을 김 관장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미술관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궁금한 분들을 위해 최대한 자세히 소개합니다.“국립현대미술관, 계급장 떼고 공부하는 기관으로”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이 대학을 갓 졸업한 큐레이터였을 때 입니다. 김 관장은 백남준의 누님이 하던 ‘미건 갤러리’에서 일을 시작했죠. 이 갤러리에서는 백남준의 일도 맡았고, 그가 한국에 오면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백남준은 김 관장에게 이렇게 말합니다.“김 선생, 이 커리어 갖고 안돼. 내 전시를 하려해도 그렇고 말이야. 유학을 다녀와.”김 관장은 “제가 지금 결혼도 했고 애도 낳아야 해서 외국에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라며 난처한 기색을 표했습니다. 그러자 백남준은 다시 “단기간 인턴이라도 하라”며 그 자리에서 뉴욕 현대미술관(MoMA) 큐레이터 바바라 런던에게 추천서를 보내줍니다. 백남준의 독려로 김 관장은 모마에서 인턴을 하고, 이것이 뉴욕대에서 공부와 디아 센터 인턴십으로 이어집니다.수십 년 뒤 국립현대미술관장이 된 그는 미국과 한국, 또 대학 강단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술 이론과 미술사가 근간이 되어야한다’고 보고 있었습니다.― 신년 인사에서 ‘연구’와 ‘출간’을 중심으로 하는 기관을 만들겠다고 언급했습니다.“미술관에 오고 한국에 대한 뜨거운 관심에 놀랐습니다. 현장에서 큐레이터로 일할 때 ‘어떻게 한 번 만날 수 없을까, 명함이라도 건네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이제 미술관으로 찾아오고 있어요. 이런 관심이 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결국 본질적인 컨텐츠가 뒷받침이 되어야하고, 미술에서는 미술 이론과 미술사가 이 역할을 합니다.”― 중·장기 프로젝트에서 ‘한국 근현대미술 Re-프로젝트’를 가장 먼저 발표한 것도 그러한 중요성 때문인가요?“미술관에 연구 분과가 있었는데 그간 약화되어 있었죠. 학예사든 학예관이든 ‘계급장’을 떼고 실험미술이라면 1970·80년대, 혹은 1990년대, 2000년대까지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담론을 활성화하려는 것입니다. 이런 연구가 토대가 되어야 해외 석학을 한국에 초청하는 ‘MMCA 리서치 펠로우십’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겠죠.”― ‘계급장을 떼고’라는 표현은 수평적 조직 문화를 강조하려는 취지인가요?“미술관이 그간 관장과 학예실장이 공석이었고, 젊은 학예사와 학예관 사이 소통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은 단호히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한국 미술, ‘신형상’ 등 세부 사조 들여다봐야”김 관장의 구상은 결국 한국 미술사를 다시 제대로 연구해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단색화’를 언급하면서 “전시도 열리고 박서보 작가도 열심히 뛰었지만, 그것을 세계에 알린 건 결국 조앤 키 같은 연구자들이 저명한 출판사에서 출간한 연구서”라며 “이제는 단색화가 아닌 다른 담론을 연구해 제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그렇다면 단색화 말고 어떤 사조가 있을까? 인터뷰 과정에서 김 관장은 ‘신형상’과 ‘개념미술’, 그리고 1993년 한국에서 열린 휘트니 비엔날레와 그것이 미친 파급효과 등을 언급했습니다.― 지난주 중기 운영 계획을 발표하고 ‘해외 미술품 소장 강화’가 가장 주목을 받았는데, 아직은 실현 단계까지 많은 과정이 필요해보입니다. 국내 미술계에서는 국내 작품 소장 기준도 궁금할 것 같습니다.“우리 미술계에서 이뤄졌던 여러 사조에 대한 정확한 연구가 부족합니다. 단색화도 아직 담론이 나온지 얼마 안 됐고, 6·70년대 이후 8·90년대 민중미술도 있지만 ‘신형상’이라는 디테일한 사조가 있었어요. 또 개념미술도 많이 나왔고 이런 것들에 대한 연구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런 연구를 기반으로 책이 나오고 전시가 이뤄지면서, 중요한 활동에 관련된 작품은 미술관이 소장하는 순서가 되겠지요.― 결국은 모든 바탕에 연구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시군요.“네 사실은 모든 것이 서로 연관되어 있어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전시 보셨나요? 담당 학예사가 이론을 공부했습니다. 이론이 뒷받침되면 전시가 다릅니다. 단순히 작품이 좋다는 느낌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학예사가 책을 읽고 공부하면 알찬 전시가 만들어지죠. 상업화랑도 대안공간도 아닌 미술관에서는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반짝반짝한 기획사 전시, 관객들이 줄 서서 보는 전시는 그런 분야에서 풀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건 정말 국현만 할 수 있다’거나, 아이들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전시를 보여줘야 하고, 그런 것들이 저는 참다운 대국민 서비스라고 생각합니다.”― ‘MMCA 리서치 펠로우십’은 이름을 들어도 알만한 해외 석학을 초청하고 한국에 3~6개월 머물게 하면서 한국 미술을 연구하게 한다는 프로젝트입니다. 여기서 염두에 두고 있는 해외 석학은 어떤 정도의 인물인가요?“이미 관심을 표한 인물도 있지만, ‘빅 네임’을 모시기 위해 신중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올해 봄쯤이면 윤곽이 나올텐데, 두 가지 조건 ‘빅 네임’과 ‘한국 미술에 관심이 있는 학자’를 충족시키려고 합니다.”― ‘빅 네임’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의 급을 이야기하는 것인가요?“해외 유력 대학의 미술사 교수들, 혹은 유명한 출판사에서 미술사 관련 저서를 5~10권 출간해서 미술사에 언급이 된 분을 말합니다. 국제적으로 큰 전시의 기획을 맡았던 큐레이터 중에서도 가능하고요. 다시 말하면 책으로 영향력이 크거나, 중요한 전시를 기획했던 인물이죠.”“한국 기업, 자국 미술에도 관심을”― 미술관의 연구와 해외 교류, 두 축이 중요해 보이는데 이렇게 보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스위스 베른에서 1969년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이 ‘태도가 형식이 될 때’라는 역사적인 전시를 만들었어요. 작가의 작업실을 미술관에 가져와 보여주는 전시였는데, 참신한 방식이었지만 그만큼 돈이 많이 들었죠. 그런데 당시 유럽의 경제 상황이 열악했거든요. 이 전시를 미국 필립모리스와 정부가 펀딩을 해서 히트를 했어요여기에 요셉 보이스 같은 유럽 중요 작가와 함께한 참여 작가의 50%가 미국 작가였습니다. 미국 미술을 프로모션하는 장이 됐다는 의미죠. 우리도 자국 미술을 전략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업 후원은 어떻게 이뤄지나요?“국가기관이기 때문에 직접 받을 수는 없고, 국립현대미술관 문화재단을 통해 기부를 받습니다. 다만 국내 기업의 해외 미술관 후원은 활발한데 국내는 아직 미술관에서 더 아쉬운 상황입니다. 해외에도 세일즈를 해야 하니 당연한 것이지만 이제는 집에서도 잘 먹고 살아야죠.”― 미술 시장에는 기업 후원이나 이벤트가 활발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2회까지 열린 프리즈에 브랜드들의 엄청난 마케팅도 화제였고요.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미술 시장도 중요하지만 국내 참여자나 기업도 더 장기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프리즈와 해외 갤러리는 결국 자신들이 갖고 있는 걸 팔기 위해서 온 것이거든요. 작품을 팔고 파티를 하면서 세련된 선진 미술 문화를 보여준 것으로 그들은 책임을 다 했고, 그걸 뭐라 할 수도 없죠.다만 우리는 무엇을 얻을 것이냐를 생각해야 됩니다. 프리즈 아트페어가 아직 초반이니 기업들도 많이 신경을 쓴 것 같기는 하지만, 지속적으로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은 듭니다. 한국 작가의 해외 진출, 한국 미술을 알리는 것에 대한 요구도 해야죠.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 미술을 해외에 알리는 것이 역할이지만 국가 예산은 갑자기 크게 키울 수가 없는 한정된 것이거든요. 그런 점에서 미술관이 전시 컨텐츠를 만들거나, 이런 것을 해외로 보낼 때 기업이 역할을 해 준다면 훨씬 더 좋겠죠. 해외 작가와 콘텐츠 후원도 중요하지만, 같은 비중으로 한국 미술의 해외 교류를 조금 더 신경 써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작가와 협업이 더 편하고 즐거워”― 상업 화랑에서도 일한 경험이 있습니다.“네. 그런데 상업 갤러리에서 일을 하면서 보니, 젊은 작가는 돈이 안 되어서 현실적으로 전시가 불가능했어요. 수백만 원하는 작품을 팔아서 갤러리를 유지하기는 어렵거든요.그러다 뉴욕 대안공간에서 열리는 실험적 전시들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1999년 ‘사루비아 다방’을 만들었어요. 그러다 건강 악화(암 투병)로 손을 놓고 치료를 받은 뒤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다시 비영리 대안공간인 ‘캔 파운데이션’을 만들었죠.”― 갤러리에서 비영리기관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제 눈에는 갤러리 오너의 삶이 행복해보이지 않았어요. 화려하지만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하고…. 작품을 사라고 설득하는 것보다는 작가와 대화하고 일하는 게 더 재미있고 만족도도 커서 ‘아 나는 이쪽이구나’ 했어요.물론 저도 비싼 옷 입고 최신형 차 몰고 그렇게도 하면 좋겠지만 관심이 잘 안가요. 지금 입고 있는 옷도 남성용 셔츠에요. 그냥 단정하게만 입고, 홈쇼핑에서 3+3 주는 옷 사는 게 좋고요.친구들이 갤러리를 열면 밀어주겠다고 했지만, 저는 ‘야 백 하나 살 바에 작가 도와’라고 하는게 더 좋아요. 그래서 제 선택에 후회는 없습니다. 물론 사루비아 다방을 하다가 몸이 아플 때 조금 후회했지만 아마 화랑했으면 더 아팠을 거예요.(웃음)― 미술관이 낯선 일반 관객에게 국립현대미술관은 어떤 기관이 될까요?“세대를 아우르는 전시를 꼭 해보고 싶습니다. 영화를 보고 감동해서 울고 웃듯, 그런 감동이 있는 전시를 해보고 싶어요. 그러려면 전시 서문과 설명글도 쉬워져야 하고 더 친절해져야겠죠. 그리고 관객이 전시장에 오래 머물 수 있는 전시를 만들 생각입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기찻길의 침목, 폐자재, 고철 등 쓸모를 다한 재료를 다룬 조각을 선보여 온 작가 정현(68)의 개인전 ‘덩어리’가 서울 관악구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여수의 섬 장도 레지던시에 머물며 영감을 얻은 신작을 포함해 1990년대부터 작품 30여 점을 선보인다. 지난해 장도에서 3개월가량 머물던 작가는 바닷가에서 각양각색의 돌을 주웠다. 이 돌들을 3차원(3D) 스캔으로 형태를 추출한 다음 확대하고 변형해 3D 프린팅으로 만들어낸 신작 조각 ‘무제’ 등이 전시의 중심을 이룬다. 작가가 바닷가에서 주운 돌은 일련번호가 새겨진 형태로 조각 옆 테이블에 함께 놓여 있어 비교해볼 수 있다. 이 밖에 흰 철판에 흠집을 낸 뒤 비 오는 날 녹이 슬도록 만든 작품, 의료기 회사에서 폐기한 엑스레이용 필름을 수집해 석유 찌꺼기(콜타르)로 드로잉한 작품을 볼 수 있다. 버려진 재료들의 물성과 가능성을 탐구하는 과정이 작품에서 드러난다. 전시 제목에 대해 이보배 학예연구사는 “최소한의 개입으로 재료의 ‘덩어리적’ 물성을 극대화해 그것이 살아내고 견뎌온 역사를 강조하는 작가의 접근 방식을 함축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술관 1층에서 열리는 권진규 상설전과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관람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3월 17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태양 빛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풍경, 굽이치는 형형색색의 바람과 들판의 총천연색 식물들은 어릴 적 할머니 집에서 덮었던 솜이불의 화려한 자수와 미국 캘리포니아의 자연 그 가운데 어딘가를 떠올리게 한다. 그림의 가장 낮은 곳에 죽어 있는 호랑이의 배에는 아픈 상처를 가리듯 예쁜 자수가 놓여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작업하고 있는 켄건민의 작품 ‘1988-2012’를 비롯해 한국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작가 4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 ‘원더랜드’가 서울 용산구 리만머핀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또 두산아트센터가 시각예술 분야 신진 작가를 발굴해 매년 선보이는 ‘두산아트랩 전시 2024’도 17일 개막해 동시대 작가들의 다채로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낯설고 아름다운 세계‘원더랜드’전은 켄건민, 유귀미, 현남, 임미애 등 한국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한국계 작가 4명의 작품 10여 점을 소개한다. 전시 제목 ‘원더랜드’는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착안한 것으로, 한국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연령, 성별의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각자 꿈꾸는 이상 세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현남과 유귀미는 한국에서, 임미애와 켄건민은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켄건민, 임미애, 유귀미의 국내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켄건민의 ‘1988-2012’는 작가의 어릴 적 한국과 미국에서의 경험을 담은 작품이다. 11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초등학생이던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 행사에 동원돼 수업도 듣지 못하고 연습을 했다”며 “당시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 위한 행사에 참가하는 것이니 영광으로 생각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커서 생각해 보니 어린이들의 교육권은 고려하지 않는 무서운 이야기였다”고 회고했다. 작가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도심의 그리피스 공원에 살다 발견된 퓨마 ‘P-22’를 보며 어릴 적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P-22는 미디어의 관심을 받으며 일거수일투족이 중계되다 2022년 생을 마감한다. 당시 언론은 P-22의 죽음을 부고 기사로 다루며 “거대 도시의 너무 좁은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한 존재”라고 표현했다. 그림 속 호랑이는 본성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개인과 국가나 사회라는 조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구성원 사이의 고통을 담고 있다. 전시는 2월 24일까지. 무료.● 젊은 작가가 본 세계서울 종로구 두산갤러리의 ‘두산아트랩 전시 2024’는 두산아트센터가 공모를 통해 선정한 35세 이하 작가 5명의 작품 9점을 소개한다. 송예환의 ‘(누구의) World (얼마나) Wide Web’(2024년)은 방대한 정보가 넘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대부분의 정보가 영어이고, 컴퓨터를 쓸 수 있는 극소수만 접근할 수 있는 온라인 세상의 한계를 꼬집는다. 임정수의 ‘욕망이 도착했다는 소문을 들었다’는 각목, 실, 털, 철사, 커튼 고리 등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잡동사니를 이용한 조각 작품이다. 작가는 동물, 식물, 사물을 종류에 관계없이 섞어서 새로운 조형성을 만들어 내고자 한다. 이 밖에 일상에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반복적인 행위를 조명하는 김영미, 전통적 동양 회화의 요소를 동시대적으로 해석한 박지은, 장소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기억을 추적하는 정여름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박소언 두산갤러리 큐레이터는 “현실에 대한 작가들의 면밀한 관찰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체된 현실’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2월 24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한국의 돌탑에서 영감을 얻어 ‘쌓기’ 중심의 조각 작품을 선보여 온 박석원(82)의 개인전 ‘비유비공(非有非空)’이 서울 성동구 더페이지갤러리에서 11일 개막했다. 이번 전시는 1980년대 전후로 시작된 작가의 ‘적의(積意)’ 시리즈를 중심으로 조각 16점과 평면 작품 14점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은 ‘있지도 아니하고 없지도 아니한 유(有)와 무(無) 사이의 상태’라는 뜻으로,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으려는 작가의 태도를 담았다. ‘적의’ 시리즈는 돌이나 스테인리스, 나무를 기하학 형태로 자른 뒤 다시 쌓아 올리는 행위가 중심이 된다. 자연의 형태를 묘사하는 전통적 방식이 아니라 ‘절단’과 ‘축적’을 이용해 재료 그 자체의 물성을 강조하는 추상 조각으로, ‘뜻을 쌓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적의’ 시리즈는 조각뿐만 아니라 자른 한지를 수평·수직으로 중첩한 회화 작업으로도 이어진다. 이것 역시 한지 자체의 물성을 강조한 작업이다. 박석원은 1968년과 1969년 ‘초토’와 ‘비우’로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국회의장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이후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 창립 멤버로 활동하며 제5회 파리 비엔날레(1966년), 제10회 상파울루 비엔날레(1969년)에 참여했다. 전시는 2월 24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영감 한 스푼’은 이번 주에 볼 만한 전시를 소개합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자연을 보는 여러 가지 시선의 의미아시아 젊은 컬렉터가 주목하는 일본 출신 작가 유이치 히라코(42)의 작품을 2월 4일까지 서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코오롱의 문화예술 나눔 공간 ‘스페이스K 서울’(서울 강서구)에서 열리는 개인전 ‘여행’을 통해서인데요. 작가의 회화 조각 설치 등 작품 30여 점이 소개됩니다.2013년 일본 신진 예술가를 위한 VOCA(Vision of Contemporary Art)상을 받고, 같은 해 도쿄도미술관 단체전을 비롯한 아시아 미술관 그룹전에 참가한 히라코는 2022년 도쿄 네리마 구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해외 미술관 개인전은 이번 스페이스K 서울이 처음입니다.사람의 몸에 나무 형태의 머리를 달고 있는 ‘트리맨’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이번 전시에서도 ‘트리맨’이 곳곳에 등장합니다. 일본 작가 특유의 감미로운 색감을 가진 그의 작품들은 판타지 속 세계를 여행하는 것 같은 즐거움을 줍니다.특히 주로 자연을 주제로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작가는 이 계기를 영국에서 유학하던 시절의 일화로 설명합니다.“자연이 풍부한 오카야마에서 태어나 자랐다가 대학시절 런던으로 이사해 도시 생활을 4~5년간 경험했습니다. 제가 나고 자란 장소와 많은 차이를 느끼고 있을 때였죠. 그때 리젠트 파크에 함께 간 친구가 ‘역시 자연이 좋아’라고 하는데 그게 너무 마음에 걸렸어요. (작가의 눈에 리젠트 파크는 도심 속 공원이지, 자연으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제가 생각한 자연과 친구가 생각한 자연이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죠. 또 저와 친구뿐 아니라 사람들마다 자연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자연은 항상 존재했지만 그것과 인간의 관계는 어떻게 변해왔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15년 간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그림 속에 등장하는 ‘트리맨’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공통 언어처럼 갖고 있는 자연에 대한 감각을 표현하려는 생각으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꽃을 보고 예쁘다고 하고, 자연 속에서 힐링이 되는 경험을 합니다. 그런 감각들을 자연을 처음으로 만지고 경험하는 사람도 가질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는데,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비슷한 감각을 갖게 되죠.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는 알 수 없지만 신기한 상황이라고 생각해 이런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전시장 가장 깊은 곳에는 폭 10m, 높이 3m 대작 ‘여행’이 눈길을 끄는데요. 4개로 분할된 화면에는 왼쪽부터 씨앗이 경계를 넘어 여행하고, 서로 다른 자연에 뿌리를 내리고 번성하는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가장 오른쪽 마지막 장면에는 찌르레기 떼가 그려져 있는데요. 이 찌르레기는 일본 도심에서 자주 발견되며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작가는 “찌르레기는 인간과 공존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놓여 있는 곳에서 살아가는 것일 뿐”이라며 “인간 사회에서도 자연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중간적 존재로서 그려 넣었다”고 설명했습니다.또 전시장 바깥에 나무로 만든 핀볼 머신도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입니다. 스페이스K는 미술관의 위치 특성상 주변 직장인들이 자주 찾는데, 전시장까지 들어가지 않고 커피만 마시는 관객도 많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작가가 미술관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을 위해 마련한 장치입니다.“미술관이 일반인의 입장에서 일상적으로 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미술을 접하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작가로서 더 많은 분들이 미술을 접하고 즐기길 바라는 마음에서 핀볼 머신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핀볼 머신 안에는 제 작품에 등장하는 등장인물(트리맨)의 작은 피규어가 있습니다. 그 피규어를 여러분이 집에 놓고 보면서 어떤 변화가 있을지 궁금합니다.”📌전시 정보유이치 히라코 개인전, ‘여행’스페이스K 서울2024년 2월 4일까지윤형근의 색면 추상을 볼 수 있는 전시윤형근(1928~2007) 작가는 직물이나 한지에 먹색을 번지게 한 무채색의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그가 1969년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 작가로 참가했을 때는 강한 색채가 눈에 띄는 색면 추상화를 출품했었는데요.이 작품은 작가가 옆에 서 있는 사진으로만 남아있었는데, 2021년 유족이 작업실을 정리하며 이 그림을 발견했습니다. 지금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이 된 ‘69-E8’(1969)을 과천관 전시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에서 볼 수 있습니다.이 전시는 1920~1970년대 한국 추상미술가 47명의 기하학적 추상 작품 150여 점, 아카이브 100여 점을 소개합니다.한국에서 기하학적 추상은 1920~30년대에 등장해 1960~70년대에는 전방위적으로 확산됐습니다. 김환기, 유영국, 류경채, 이준 등 1세대 추상미술가와 이기원 전성우 하인두 등 2세대 추상미술가들의 기하학적 추상화를 한 자리에 모았습니다.특히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건축이나 디자인 등 연관 분야와 접점을 형성했다는 점을 이 전시는 주목합니다. 이를테면 1930년대 단성사와 조선극장에서 제작한 영화 주보, 시사 종합지의 표지나 시인 이상이 디자인한 잡지 ‘중성’(1929)의 표지를 함께 볼 수 있는데요또 바우하우스를 모델로 해 1957년 한국에서 결성된 건축가, 디자이너 연합 그룹 ‘신조형파’의 활동상과 전시 출품작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그룹은 현대사회에 적합한 미술은 합리적인 기준과 질서를 바탕으로 제작된 기하학적 추상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산업 생산품에도 적용해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이상도 품었죠.1960년대에는 청년 미술로서 등장한 기하학적 추상 작품들을 조명합니다. 이승조 작가가 1970년 ‘제4회 오리진’전에 출품했던 작품이 50여 년 만에 다시 공개되고, 1969년 우주선 아폴로 11호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달에 착륙하는 장면이 생중계된 역사적 사건과 미술과의 관련성도 돌아봅니다.📌전시 정보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국립현대미술관 과천 1,2 전시실 및 중앙홀2024년 5월 19일까지※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한국을 오래 알고 보니 ‘한국은 미래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건축가로서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준 한국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 강남구 교보타워, 경기 남양성모성지 대성당 등을 설계한 스위스 출신 건축가 마리오 보타(81·사진)가 제20회 한국이미지상 징검다리상 수상 소감을 밝혔다. 10일 서울 강남구 인터컨티넨탈서울코엑스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보타는 영상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말했다.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이사장 최정화)이 주최하는 한국이미지상은 한국 문화를 알리고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힘쓴 개인과 단체에 수여한다. 보타가 받은 ‘한국이미지상 징검다리상’은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가교 역할을 한 외국인이나 기업에 주어진다. 보타는 “여행으로 1970년대 처음 한국을 방문했고 한만원 건축가와 교보타워 프로젝트를 함께하며 어느새 서른 번 넘게 한국을 찾았다”며 “한국의 도시들이 탈바꿈하며 ‘르네상스’를 맞이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 이미지를 세계에 알리는 데 지속적으로 기여한 공로를 인정하는 ‘디딤돌상’은 현대차그룹의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가 받았다. 또 한 분야의 초석 역할을 했다는 의미의 ‘머릿돌상’은 팝페라 가수 임형주 씨, 한국 이미지를 꽃피우는 데 이바지한 공로로 주는 ‘꽃돌상’은 판소리를 프랑스어로 번역해 부른 마포 로르 씨에게 주어졌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국립현대미술관이 올해부터 국제미술 작품 수집을 대폭 강화할 방침이다. 9일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2024∼2026년 중기 운영 방향 및 주요 사업 언론공개회를 열고 “미술관이 세계 미술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소장품 경쟁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현재 미술관 전체 소장품 중 국제 미술품 비중은 8.5%도 안 되는데, 매년 단계적으로 예산을 증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관장은 연간 수집 예산의 최대 20%까지 국제 미술품 소장에 사용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다만 “미술품 소장 구입 예산은 연 47억 원으로 해외 미술품을 구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중장기 수집 계획을 수립할 때 미술관 후원회와 협력해 후원이나 기증을 적극 유도하고 특별 예산을 활용하는 방법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기 중에 국제 소장품 비중을 전체의 8.5%에서 9%로만 올려도 다행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술관은 향후 3년간 ‘국제미술 작품 수집 대폭 강화’와 더불어 △연구 기반 한국 근현대미술 Re-프로젝트(한국 근현대 미술사 체계적 연구, 담론 활성화) △MMCA 리서치 펠로십(국제미술 연구자 교류 프로그램) △지능형 미술관(인공지능을 활용한 전시실·작품 관리) △무장애 미술관, 모두의 미술관(배리어프리 서비스 제공) △에콜로지 플랫폼(탄소배출 관리 및 친환경 미술관 만들기) 등 6개 핵심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2014년 이불 작가를 시작으로 매년 중견 작가 1인을 선정해 신작 제작을 후원한 ‘MMCA 현대차 시리즈’는 지난해 정연두 작가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임대근 학예실장 직무대리는 “현대차 시리즈는 서울관 출범 당시 현대자동차와 10년간 진행하기로 논의됐고 지난해 마감됐다”며 “현대자동차가 후원하는 해시태그 프로젝트 역시 올해를 마지막으로 종료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간의 성과를 재점검해 후원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어떤 방식으로 이어 나갈 수 있을지 연구할 계획”이라고 했다. 취임 후 첫 언론 공개회를 가진 김 관장은 1년 넘게 공석이었던 학예실장 문제와 조직 안정화에 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김 관장은 “지난해 12월 학예실장 채용 공고를 냈고 2월 중에는 최종 합격자를 발표하고 3월에 임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서울 강남구 보자르갤러리는 다음달 3일까지 ‘반드시 기억되어야 할 아티스트’전을 연다. 고영훈 김종학 김창열 김환기 김흥수 박서보 신철 윤병락 윤형근 이건용 이배 이석주 이세현 이왈종 이우환 이희돈 주태석 천경자 최영욱 하태임 한만영 등 21명 작가의 작품을 선보인다.달항아리를 그리는 고영훈, 설악산의 화가 김종학, 물방울 화가 김창열, 한국 실험 미술 작가 이건용, 숯의 작가 이배 등 인기 국내 작가의 원화와 판화를 한 자리에 모았다. 허성미 관장은 “단순히 유명한 작품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작품의 의미와 작가의 가치관을 알리고자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오늘 ‘영감 한 스푼’은 처음으로 미술관 초대 기획전을 열고, 자신이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를 철학자 김동훈과 함께 설명한 책 ‘제4의 벽’(민음사)를 최근 펴낸 배우 박신양 씨 인터뷰를 자세히 소개합니다.그럼 시작하겠습니다.-사회인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가면을 전 국민이 잘 알고 있고, 모두가 나를 그 가면으로 대한다면 어떨까요? 진짜 ‘나’의 자리가 없어지며 숨 막힌다는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오랫동안 명품 연기로 사랑받은 배우 박신양 씨를 만났습니다. 10년 전부터 그림을 그렸다는 그가 경기 평택시의 자동차 부품 공장을 개조한 미술관에서 전시를 열고 있습니다. “진심을 나눌 사람을 찾고 싶어 그림을 그린다”는 그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먹고살기 바쁜 세상, 그래도 ‘나는 누구인가’ 고민에 괴로워”― 미술관 기획 초대전은 처음입니다. 이곳에서 전시하는 이유가 뭔가요?“제가 그리는 이유는 연기를 공부할 때 예술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했던 시간이 그리워서입니다. 그런데 그간 그림으로 사업을 하자거나 판매하라는 압박이 생겼어요. 나는 그림으로 진심을 전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 트럭을 몰고 전국을 다니며 그림을 보여드릴까 하는 생각까지 했죠. 그러다 그림을 팔지 않는 미술관에서 초청을 해주셔서 전시하게 됐습니다.”― 전시 개막과 함께 출간한 책 ‘제4의 벽’에는 배우와 인간 박신양 사이의 괴리에서 고민한 흔적이 진솔하게 담겨있습니다.“그림을 그리는 10년 동안은 그 이유를 잘 몰랐어요. 요즘 세상에 “내게 그리움이 있다”고 말할 기회가 흔치 않죠. 그럼에도 마음속엔 계속 질문이 남았고, 그 답을 찾으려 신학대학원 철학과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런 질문을 만들고 분석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성찰은 하기도, 피드백을 받기도 어렵죠.“사실 모두 먹고살기 바쁜 세상이고, 그런 생각은 한가하다는 눈총을 받기 쉬우니까요. 그런데 그게 불필요한 질문이냐? 절대 그렇지 않아요. 꼭 필요한 질문인데, 건너뛴 채 살고 있는 거예요. 그렇지만 내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고, 이대로는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연기하는 사람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으면 버티기가 쉽지 않고 그래서 아팠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내 껍데기만을 본다는 느낌인가요?“껍데기를 ‘만들어서’ 본다는 느낌이죠. 저는 미디어에서 일하니까 그게 당연한 것이지만, 때로는 허상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런데 어디다 그 불만을 토로하겠어요?”― ‘이미지를 소비 당한다’는 생각도 들겠어요.“그렇죠. 만들어진 이미지가 소비를 당한다. 그럼 내가 만들어지기 위해 노력했나? 사실 저는 사람들이 힘을 내기를 바라며 열심히 연기하고 표현하고 있었지만, 껍데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니었어요. 미디어를 통과하며 껍데기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소비되면서 저보다 엄청나게 커진 거죠.”― 그게 전시와 어떻게 연결이 됐나요?“제가 연기할 때 몰입도가 다른 사람들보다 강한 편이라고 생각해요. 그 이유는 제게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목표는 전파를 통해 어딘가에 있는 선한 사람들에게 나의 진심이 닿았으면, 그리고 그 사람들이 힘을 냈으면 하는 것이었어요. 그림도 그런 마음에서 그렸어요. 내 진심이 닿았으면 좋겠다.”“있는 그대로 나를 드러내는 것, 식은땀 나는 일”― 책 ‘제4의 벽’에서 투우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누군가 광야에 홀로 서서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면 어울리는 장면이겠지만, 원형경기장에서 투우사가 그런 질문을 한다면 이상하고 희한한 광경일 것이다’라고 했죠. 배우로서 겪는 감정을 솔직하게 풀어냈고, 그림도 그걸 정직하게 담았어요.“솔직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아니면 가짜잖아요. ‘그럴듯해야 한다’는 강박을, 특히 연기하는 사람은 갖기 쉽고, 자기 이야기를 솔직히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인 것 같아요.”― 배우가 아니라도 자기를 드러내는 건 두려운 일이잖아요.“식은땀 나는 일이죠. 저도 30년 동안 연기하는 후배들을 봐왔지만, 자기 자신의 표현에 솔직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그런데 연기도 그렇고 미술사를 봐도 그렇고 예술의 기본 조건은 스스로에게 정직함인 것 같아요. 저는 그 방향을 믿고 나아가는 거죠.”― ‘당나귀 22’라는 작품은 밝은 분위기가 느껴집니다.“저희 아버지를 보며 당나귀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어요. 어릴 적 아버지가 항상 온 가족이 함께 살 집을 그려서 이야기 해주셨고, 그 집을 짓고 싶은 땅도 위치를 정해 놓으셨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대단한 꿈도 아닌데 그러셨던 게 왠지 당나귀 같고, 그런데 나이를 먹고 보니 저도 점점 아버지를 닮아가고….”― 어찌 됐든 아버지의 꿈과 그 집은 좋은 기억이니 이렇게 그린 거군요.“네. 또 철학자 김동훈 선생님과 책을 쓰며 ‘상상’이라는 것이 큰 주제가 됐어요. 상상은 과연 나쁜 걸까? 그것이 때로는 공상이나 망상처럼 취급되잖아요. 원시 시대로 돌아가면 상상과 현실의 구분이 없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시간, 돈, 언어, 이런 복잡한 개념이 생기면서 현실은 굉장히 구체화했지만, 상상은 취급을 받지 못하게 됐죠. 물론 상상을 영화와 같은 사업으로 옮기면 큰 돈이 되죠. 시나리오, 소설, 시를 쓰거나 사업하지 않으면 상상할 자격을 얻지 못해요. 그런데 상상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주어진 권리라고 생각을 해요.― 상상이나 꿈이 욕망과도 연결이 되죠. 20세기 이전 철학에서 욕망은 절제하고 다스려야만 하는 것이었잖아요.“재밌네요. 저는 어떻게 보면 상상을 빼앗기는 것에 대해 반항을 시작했고, 나만의 행복을 꿈꾸기를 물러서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비록 아버지의 이상한 꿈일지라도, 저는 그 집을 생각할 때 정말 행복해요. 그래서 이 그림들은 아버지의 좌절된 꿈에 대한 처절한 심정에서 시작하지만, 내가 꿈꾸는 것을 실행하고 실천하고 행동하는 것에 대한 긍정이기도 해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겠다는 욕망과 의지에 관한 것이겠죠.“네. 그것이 만약 세상을 전복하고 다른 사람을 못 살게 군다면 안 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얼마든지 이야기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해야죠. 사회에서는 돈이 안 되고 경제적인 이유에 합당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취급받지 못하지만요.”관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림을 그리는 이유― 그 상상에 대한 생각이 결국 전시장의 구조와도 연결되는군요. 전시 기간 내내 전시장에서 그림 작업을 할 계획이라고요.“연극에서 무대와 객석을 구분하는 가상의 벽을 ‘제4의 벽’이라고 해요. 그림을 그리면서 저는 그 벽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어요. 상상이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인지, 우리가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은 꼭 거대 산업이 상품화한 것으로만 이뤄져야 하는지 그런 질문들을 하고 있습니다. 혹시 지금까지 받아 온 감정과 감동이 혹시 주입 받은 것은 아닐까? 원점에서 생각하는 거죠.‘나’라는 개인의 진짜 감정과 감각은 무엇인지. 그것이 다른 방식으로 상상을 만들어 낸다면 어떤 것이 가능할지, 그 감정이 나를 어디로 이끌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그림과 철학은 제가 그런 탐구를 하는 통로입니다.― 관객이 2층에서 박신양 씨를 지켜보는 구조는 어떤 의미인가요. 관객분들이 2층에서 아래를 보며 가상의 ‘제4의 벽’을 보지만, 그 너머에 있는 저는 연기자가 아니라 감각하고 느끼는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거기서 재밌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1층 층고가 6m가 넘어 그 광경이 영화의 ‘부감샷’처럼 보이는 것도 재밌어요. 제 표정이 너무 자세히 보이면 사소한 감정에 집중하게 돼요. 그것이 아니라 공간의 이동, 시간의 이동처럼 큰 개념을 표현할 때 부감샷을 쓰는데 이 전시의 기획 의도도 그런 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요.제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 한 번도 가지 않았던 러시아로 무작정 떠나 선생님과 친구를 찾아냈듯 그런 기회를 다시 찾을 것이라는 꿈을 저는 매일 꿉니다. 예술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기회, 그리고 진심을 서로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리라는 기대와 가능성.그런 진심을 전시장에서 함께 나누기를 기대합니다.-물감이 묻은 청바지와 운동화,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박신양 씨는 2시간 넘는 인터뷰에서 ‘진심’을 쏟아 놓은 뒤 그림을 그리러 전시장으로 향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고민은 누구나 맞닥뜨리지만 회피하거나 잊어버리기 마련이죠. 이 질문을 물고 늘어졌던 박신양 씨는 철학과 예술에서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전시가 막을 내리는 4월 30일까지 그는 이곳에서 작업을 이어 나갈 예정입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손가락을 몇 번만 움직이면 스마트폰으로 안부를 주고받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대다. 상대가 메시지를 읽었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고, 빠르게 답변하는 가운데 우리는 서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런 메시지 대신 1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나눈 이야기를 토대로 구성된 전시가 서울 서초구 페리지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가 고성, 미술기획자 홍예지가 협업한 전시 ‘Sincerely,’다. 페리지갤러리가 매년 젊은 작가와 기획자를 선발해 팀을 꾸리고, 협력해 전시를 만드는 ‘페리지 팀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전시장에는 두 사람의 작업 공간이 좌우로 배치됐고, 가운데에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 이해하게 된 상징들이 놓여 있다. 편지 속에서 짐 자무시의 영화 ‘패터슨’(2016년)을 통해 예술과 삶의 균형에 관해 이야기했다면, 가운데 공간에 영화 속에 등장하는 버스 모형이 놓이는 식이다. 전시장에서 1년간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서간집이 제공된다. 이 책을 보면 전시장에 놓인 각 사물의 의미를 좀 더 자세하게 유추해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서로를 잘 알지 못했던 두 사람이 편지에 써 내려간 글로 각자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또 각자의 예술 작업에 대해 확신을 얻어가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다. 2월 3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진공청소기 호스를 타고 나온 바람이 탁구공을 흔들어 북소리를 내고, 천장에서 떨어진 물방울과 고무 튜브로 흘러나온 공기 방울 소리는 마이크를 타고 울려 퍼진다.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 2층 전시장 ‘스페이스 1’에 가면 레바논 출신 예술가 타렉 아투이(44)가 만든 독특한 소리의 세계, ‘더 레인’(비·The Rain)이 펼쳐진다. 이 세계는 북, 꽹과리 등 한국 전통 악기부터 청자, 옹기, 서양 악기와 일상 속 물건까지 소리를 낼 수 있는 다양한 것들로 이뤄졌다. 비어 있어야 할 꽹과리 속에 물이 고이고, 북을 쳐야 할 채는 청자 파편을 문지르는 등 평소라면 섞이지 않을 이질적인 것들이 만나 새로운 소리를 만든다. 아투이는 “전시장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가 빗소리로, 또 오브제 하나하나는 빗방울 소리로 들리기를 바랐다”고 설명했다. ‘더 레인’이라는 제목은 작업실에서 작곡하고 악기를 실험하는 과정에서 빗소리가 떠올라 붙인 제목이다. 전시장 속 여러 오브제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시차를 두고 저절로 소리를 내, 마치 비가 내리는 풍경 속에 있는 듯하다. 2019년부터 아트선재센터와 협력해 한국의 전통음악을 연구하며 신작을 만든 아투이는 “타악기를 연주하는 방법에 대한 환상이 있었고, 그것을 한국에서 발전시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장구와 북을 만드는 전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 서인석 악기장을 만나며 타악기에 집중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 악기장과 북피, 틀 등 북을 구성하는 요소를 재해석할 방법을 논의하면서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또 정희창 옹기장, 도예가 강지향 등과 협업해 도자기, 한지, 짚 등의 재료를 사용했다. 이러한 제작 과정과 결과물은 서로 다른 문화가 섞여서 만들어내는 새로운 연결 고리를 보여준다. 작곡가이자 DJ로도 활동하는 아투이는 기성 음악으로는 들을 수 없는 소리를 찾는 데 집중해왔다. 세계의 전통 악기와 지역 음악사를 인류학적 방법론으로 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악기와 도구를 제작해 소리를 만든다. 이런 작업을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2016년), 프랑스 파리 루이뷔통 파운데이션(2015년) 등에서 선보인 그가 한국에서 개인전을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0년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에 참가한 적은 있다.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은 “그때는 가방 하나만 들고 사운드 퍼포먼스를 하러 다녔는데, 당시 카셀 도쿠멘타 감독의 눈에 띄어 최근 10여 년간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여러 미술관에서 전시를 선보였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21일까지. 5000∼1만 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