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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BTS)의 맏형 진(사진)이 12일 군에서 제대해 팬들 곁으로 돌아온다. 진은 전역 다음 날이자 방탄소년단 데뷔 기념일인 13일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일대에서 팬들과 만나는 ‘2024 페스타(FESTA)’에 참석한다. BTS의 소속사 빅히트뮤직은 “이번 팬 이벤트가 방탄소년단의 팬덤인 아미와 가까운 거리에서 뜻깊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진의 제안으로 마련됐다”고 밝혔다. 팬 이벤트는 1부 ‘진’s Greetings’와 2부 ‘2024년 6월 13일의 석진, 날씨 맑음’으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팬 1000명을 대상으로 한 ‘허그회’가 진행되고, 2부는 BTS의 팬덤인 ‘아미’가 보고 싶었던 진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코너로 만들어진다. 현재 BTS 멤버 7명은 전원 군 복무 중이다. 이번에 진이 가장 먼저 제대하고, 제이홉은 올해 10월 전역한다. 내년 6월에는 나머지 멤버 슈가, RM, 뷔, 지민, 정국 등 5명이 모두 전역 및 소집 해제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방탄소년단(BTS)의 맏형 진이 12일 군에서 제대해 팬들 곁으로 돌아온다. 진은 전역 다음날이자 방탄소년단 데뷔 기념일인 13일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일대에서 팬들과 만나는 ‘2024 페스타(FESTA)’에 참석한다. BTS의 소속사 빅히트뮤직은 “이번 팬 이벤트가 방탄소년단의 팬덤인 아미와 가까운 거리에서 뜻깊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진의 제안으로 마련됐다”고 밝혔다. 팬 이벤트는 1부 ‘진’s Greetings’와 2부 ‘2024년 6월 13일의 석진, 날씨 맑음’으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팬 1000명을 대상으로 한 ‘허그회’가 진행되고, 2부는 BTS의 팬덤인 ‘아미’가 보고 싶었던 진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코너로 만들어진다. 현재 BTS멤버 7명은 전원 군 복무 중이다. 이번에 진이 가장 먼저 제대하고, 제이홉은 올해 10월 전역한다. 내년 6월에는 나머지 멤버 슈가, RM, 뷔, 지민, 정국 등 5명이 모두 전역 및 소집 해제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세 번의 결혼을 하고 마지막 남편을 떠나보낸 노년의 버나는 크루즈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마주친 남자와 대화를 나누다가 그의 이름을 듣는 순간 그녀는 얼어 버린다. 밥 고엄. 고등학교 동문이자 50년 전 자신에게 성폭력을 가하고 인생을 크게 비틀어 버린 남자다. 순간 버나는 여행을 취소하고 돌아가야 하나, 도망가야 하나 고민한다. 그러다가 ‘이번에도 내가 왜 도망가야 하지?’라는 생각을 한다. ‘처음에 버나는 아무도 죽일 생각이 없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마거릿 애트우드의 단편 ‘스톤 매트리스’다. 줄리앤 무어와 샌드라 오가 출연하는 영화로도 만들어질 예정인 이 소설에서 애트우드는 중년 버나의 결코 평온하지 않은, 욕망과 외로움과 복수심이 불타는 심리를 가차 없이 묘사하며 묻는다. 새로운 인생을 잘 살고 있다면 해묵은 과거는 돌려보낼 수 있을까? 나이가 들면 모든 것에 초연해지고 평온을 찾을 수 있을까? 이 단편집의 다른 소설 ‘먼지 더미 불태우기’는 노인들이 거주하는 양로 시설 ‘암브로시아 매너’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월마는 “나이가 들면 몸을 초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몸에 초연하고 비육체적인 고요의 왕국으로 갈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것은 황홀경을 통해서만 가능하고 황홀경은 몸으로만 경험할 수 있다”고 혼잣말을 한다. 그런가 하면 ‘죽은 손의 사랑’은 학생 시절 룸메이트들에게 빌붙어 사는 대가로 성공하면 인세를 나눠 갖기로 계약한 작가 잭의 이야기를 다룬다. 잭은 결국 룸메이트들에게서 영감을 얻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소설로 큰 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예전에 한 계약 때문에 수십 년간 착취를 당한다고 여기다가, 룸메이트들과 재회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또 이번 단편집에서 애트우드는 현실의 제약에서 벗어나 환상과 은유의 기법을 과감하게 다룬다. 판타지 소설가가 과거의 연인을 작품 속에 봉인하고, 여자 괴물이 등장하며, 잘린 손이 스스로 움직이기도 한다. 애트우드 특유의 거침없는 신랄함과 유머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단편으로 좀 더 경쾌한 즐거움을 선사할 듯하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팝 아트의 제왕’ 앤디 워홀의 작품이 타데우스 로팍 서울 포트힐 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워홀의 작품이라고 하면 메릴린 먼로, 믹 재거 같은 팝 스타나 캠벨 수프 등 대중문화를 떠올리게 되는데요.이번 전시는 독특하게도 워홀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현대 미술가 요셉 보이스의 초상만을 여러 점 공개해 눈길을 끕니다.워홀과 보이스의 첫 만남, 그리고 그가 어떻게 보이스를 작품에서 풀어냈는지. 타데우스 로팍 대표와의 인터뷰를 곁들여 소개합니다. 역사적 첫 만남, 사진으로 남긴 워홀워홀이 보이스를 그렸다는 점이 독특한 이유는, 제겐 두 작가의 작업 방향이 서로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보이스는 나무 7000그루를 심도록 독려하는 캠페인을 퍼포먼스 작품으로 승화하거나, 누구나 교육받을 수 있는 ‘자유국제대학’을 설립하고 강의 자체를 퍼포먼스 예술로 승화하고, 또 강의를 한 칠판을 작품으로 남긴 바 있는데요.이런 그의 작업들은 과거 예술가가 회화나 조각을 만들었듯, 이제는 예술가가 사회와 시스템도 하나의 창의적인 작품으로 빚을 수 있다는 ‘사회 조각’ 개념을 제시했습니다.이를테면 독일 카셀에서 선보인 ‘7000 오크’ 작품은, 광장에 현무암 더미 7000개를 쌓아 놓고 나무를 심을 때마다 돌을 같이 세워 7000그루를 채우도록 한 것입니다.지방 정부에서 나무 7000그루를 심으려면 거쳐야 하는 관료제 등의 복잡한 절차를 떠나 인류가 자연에 대해 가져야 하는 책임감을 ‘현무암 더미’가 보여준 것은 물론,수십 년이 지나 현무암보다 나무가 점점 더 커지는. 살아있는 자연의 힘을 보여준 보이스의 대표작입니다.이렇게 예술을 화이트큐브에서 벗어나 사회와 정치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킨 보이스의 영향은 지금도 수많은 동시대 예술가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에 그를 ‘20세기의 다빈치‘라고도 부릅니다. 그런가 하면 워홀은 미국의 상업 문화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예술가죠. 대중문화, 소비문화, 상품을 캔버스에 가져와 공장에서 찍어내듯 작품을 제작한 또 다른 거장입니다. 타데우스 로팍 대표는 둘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앤디 워홀은 예술을 거울삼아 세상(미국)의 과잉을 비췄고, 요셉 보이스는 예술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죠.”가장 궁금했던 건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분위기였는데요. 로팍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1979년 두 작가가 처음 만났을 때 보이스가 워홀에게 다가가 ‘정말 만나기 어려웠네요. 다름슈타트에서 거의 마주칠 뻔 했다는데’라고 인사를 건넸다고 합니다.워홀은 몇 마디 인사 후 ‘당신의 사진을 찍어도 되나요?’라고 물었고, 보이스가 ‘그럼요’(sure)라고 하자 바로 카메라를 꺼내 들어 역사적인 사진을 남겼습니다.“이때 남긴 사진을 바탕으로 워홀은 보이스의 초상을 여러 점 제작합니다. 펠트와 다이아몬드 가루갤러리에 가면 워홀이 이 때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어떤 고민을 거쳐 보이스를 표현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특히 전시장 깊은 곳에 정식 판화를 찍기 전 테스트해 보는 시험 판화(Trial Proof) 연작을 8점 볼 수 있는데,워홀이 보이스의 상징인 펠트의 느낌을 내기 위해 레이온 플록(rayon flock)을 사용한 작품들이 눈에 띕니다. 로팍 대표는 “완성도가 높은 대형 캔버스 작품들도 웅장하고 신비롭지만, 그런 작품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색으로 여러분 실험했던 워홀의 고심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 해 시험 판화에 애착이 간다”고 말했습니다.그런데 트라이얼 프루프에 사용된 펠트 재료들은 정식 캔버스와 종이 작업으로 오면 다이아몬드 가루로 변합니다.제 느낌엔 다이아몬드 가루는 자본주의의 절정을 상징하는 듯한데, 보이스는 지극히 유럽적이고 인문적인 작가라서 독특한 재료의 선택이었습니다.로팍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미국 대중문화와 사회적 소비의 과잉을 드러내는 다이아몬드 가루는 워홀의 하이힐 시리즈에서 큰 주목을 받았죠.그런 재료가 보이스의 이미지에도 사용된 것은 이례적이라고 느껴집니다. 한편으론 적합하다고 느껴지기도 하고요.“그런데 전시장을 보면 다이아몬드 가루뿐 아니라 각기 다른 색깔의 실크 스크린은 물론 종이 드로잉으로도 초상을 그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그런 점에서 보면 워홀이 보이스에 매료됐고, 두 작가가 서로를 존중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워홀의 작품에서 추측할 때 그가 보이스를 어떻게 생각했을 것 같냐는 질문에 로팍 대표는 이렇게 답했습니다.“워홀은 보이스를 예술의 살아있는 전설로 여겼습니다.”(As a living icon of art)서로를 알아본 예술인들의 네트워크로팍 대표는 인터뷰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요. 오스트리아 출신인 그는 처음에 작가가 되고 싶어 요셉 보이스의 스튜디오에서 일하며 미술계에 발을 들였습니다.“저는 원래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당시 유럽 최고의 예술가였던 보이스는 비엔나와 인디애나를 오가며 강의를 했고 그걸 들으려는 학생들이 들끓었죠. 저 또한 그랬고요.처음 강의를 들으러 간 날 이미 수용인원이 넘어 들어갈 수 없다고 했지만, 제가 간절해 보였는지 겨우 끄트머리에 자리를 내줘 들어갈 수 있었어요.처음 마주한 보이스는. 낚시 조끼와 펠트 모자를 쓰고 있었고 그 모습만으로 압도되는 경험이었습니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내 인생이 바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그런 다음 20대 초반인 1982년 로팍 대표는 보이스 스튜디오의 문을 두드렸습니다.“독일 뒤셀도르프에 그가 작업하고 거주하는 건물이 있었어요. 무작정 가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급으로도 일하고 싶다고 했죠.그때 이미 인력은 꽉 찼는데 마침 큰 프로젝트가 있어 운 좋게 일을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작가가 되기엔 부족하단 생각이 들었고, 근무 기간이 끝날 무렵 ‘뭘 할 계획이냐’는 보이스의 말에 ‘오스트리아에 갤러리를 열고 싶다’고 했죠.이때 보이스와 워홀은 아주 깊은 유대를 나눈, 서로 존중하는 사이였고. 보이스가 저를 워홀에게 소개하는 추천 편지를 써주었어요.그렇게 떠난 뉴욕에서 워홀을 만났고, 워홀은 제게 ‘이 작가는 꼭 전시해야 한다’며 젊은 작가를 소개시켜 줬어요. 워홀의 말을 믿고 그 젊은 작가의 종이 작품 20점을 가져와 오스트리아에서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의 첫 전시를 열었습니다. 그 작가는 장 미셸 바스키아 였습니다.“워홀과 보이스, 바스키아로 이어지는 흐름이 놀랍습니다.시대를 앞서간 작가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나와는 방향이 다르더라도 좋은 예술이라면 길을 열어주기도 했다는, 예술인들의 동료 의식도 느낄 수 있는 멋진 이야기였습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980년 이탈리아 나폴리 배경의 한 사진.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불린 요셉(요제프) 보이스(1921∼1986)와 ‘팝 아트의 제왕’ 앤디 워홀(1928∼1987)이 사자상 앞에 나란히 섰다. 보이스는 ‘트레이드마크’인 낚시 조끼에 펠트 모자 차림으로 정면을 응시한다. 흥미로운 건 워홀의 두 손. 한 손은 보이스를 잡고, 다른 한 손은 사자 조각상의 입속에 넣고 있다. 마치 “나는 지금 현대미술의 사자를 만나고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워홀이 1980년부터 1986년까지 그린 보이스의 초상화가 29일 타데우스 로팍 서울에서 개막하는 전시 ‘빛나는 그림자: 요셉 보이스의 초상’전을 통해 공개된다. 워홀의 보이스 초상화 연작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는 1980년대 이후 처음 기획된 것이다. 전시장에서는 보통 한두 차례 초상을 그렸던 워홀이 ‘현대미술의 사자’를 만나고 신난 듯 연필 드로잉부터 실크스크린 판화까지 다양한 매체로 보이스의 얼굴을 수차례 그린 것을 볼 수 있다. 타데우스 로팍 대표는 23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워홀과 보이스의 첫 만남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두 사람은 1979년 독일 한스마이어 갤러리에서 처음 마주쳤습니다. 보이스가 워홀에게 다가가 ‘정말 만나기 어렵네요. 다름슈타트에서 거의 마주칠 뻔했다던데’라고 인사를 건넸죠. 워홀은 몇 마디 나눈 후 ‘당신 사진을 찍어도 되냐’ 물었고, 바로 카메라를 꺼내 역사적 첫 사진을 남겼습니다.” 둘의 만남을 지켜본 미국의 저술가 데이비드 갤러웨이는 “마치 아비뇽에서 두 명의 라이벌 교황이 마주한 것 같은 아우라가 감돌았다”고 설명했다. 이유는 두 작가가 대척점에 선 듯 다른 방향으로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보이스는 예술가가 회화나 조각을 만들듯, 사회와 시스템도 하나의 창의적 작품으로 빚을 수 있다는 ‘사회 조각’ 개념을 제시했다. 독일에 참나무 7000그루를 심는 퍼포먼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강의 퍼포먼스’가 유명하다. 이에 반해 워홀은 대중문화를 예술로 끌어들이고, 공장에서 찍어내는 상품처럼 예술 작품을 만들어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로팍 대표는 “워홀은 예술을 거울 삼아 세상(미국)의 과잉을 비췄고, 보이스는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둘은 서로의 예술을 존중했다고 로팍 대표는 말했다. 그는 “워홀이 보이스를 현대 미술의 ‘살아 있는 전설’로 여겼던 것 같다”며 “사진 하나로 선 드로잉, 다이아몬드 가루를 활용한 실험, 색상 실험 등 다양한 형태로 여러 차례 작업했는데 이는 워홀이 보이스에게 매료됐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로팍 대표는 20대였던 1982년 보이스 스튜디오에 “무급으로라도 일하게 해 달라”고 해 받아들여진 자신의 경험도 소개했다. “당시 스튜디오 직원은 꽉 찬 상태였는데, 제가 간 1982년 카셀 도큐멘타나 마르틴 그로피우스 바우 같은 큰 프로젝트에서 일할 임시 인력이 필요했죠. 그래서 한 해 일했고 인생을 바꿀 경험을 했습니다. 근무 기간이 끝날 무렵 고향인 오스트리아에서 갤러리를 열고 싶다 했더니 보이스가 워홀에게 저를 소개하는 추천 편지를 써주었어요.” 그 후 뉴욕으로 떠난 로팍 대표는 워홀이 ‘이건 해야 한다’며 추천해 한 젊은 작가의 드로잉 20점을 가지고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타데우스 로팍의 첫 전시를 열었다. 이 작가는 장미셸 바스키아(1960∼1988)였다. 전시는 7월 27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오스트리아 출신 작가 에바 아푸스가 1980년대 이스라엘을 여행한 후 폭력과 분쟁을 떠올리며 만든 ‘철조망 브로치’(1982년), 에바 슈마이저차디아가 18k 금으로 굽을 만들어 일부러 닳게 만든 구두 ‘금과의 소통’(1987년), 왼쪽 가슴을 가리키는 삼각형 펜던트가 달린 브리기테 랑의 목걸이 ‘심장’(1982년)…. 오스트리아와 한국 장신구 디자이너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장식 너머 발언’전이 28일 서울 종로구 서울공예박물관에서 개막했다. 유럽 현대 장신구를 이끈 1세대 작가부터 현재 활발하게 활동 중인 젊은 작가들까지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오스트리아 57명(팀), 한국 54명(팀)의 작품 675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선 작가들이 장신구를 예술적, 철학적,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표현 매체’로 삼은 경향을 소개한다. 유럽의 선구적 디자이너로 꼽히는 엘리자베트 J Gu 데프너가 새의 해골을 이용해 만든 ‘되부리장다리물떼새 해골’(2003년), 핏줄과 검버섯이 보이는 피부처럼 느껴지는 기괴한 목걸이 ‘배짱이 있나요?’(2011년) 등이 눈길을 끈다. 한국에서는 동물의 내장이나 도금한 머리카락을 재료로 하는 전은미, 쌀을 가공해 나뭇가지에 매달린 열매 같은 형태를 만드는 공새롬 등의 작품이 소개된다. 7월 28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이탈리아 북부 소도시 발렌차는 19세기부터 금세공과 장신구 제작의 중심지였다. 불가리, 카르티에 등 명품 브랜드도 이곳에 제작 시설을 두고 있다. 발렌차에서 역시 유명했던 장인 엔리코 다미아니가 만들고 100년 동안 수공예 기술을 발전시켜온 다미아니의 주얼리들이 한국을 찾는다. 30일 개막하는 ‘다미아니 100 × 100 이탈리아니’전은 다이아몬드는 물론이고 에메랄드, 사파이어 등 희귀 원석을 재료로 한 장신구 100점을 선보인다. 3월 이탈리아 밀라노 이후 해외 전시는 한국이 처음이다. 23일 한국을 찾은 조르조 그라시 다미아니 부회장(53)은 “100점 전부 세상에 단 하나만 존재하는 디자인”이라며 “크기와 색채 면에서 희귀한 것으로 구성했다”고 했다. 다미아니는 할리우드 배우 제니퍼 애니스톤과 결혼할 때 브래드 피트가 디자인에 참여해 만든 결혼반지 ‘D사이드링’ 시리즈가 유명하다. 소피아 로렌, 제시카 채스테인 등 할리우드 셀러브리티와 중동 왕족들이 찾는 작품들이다. 그는 “기계를 사용하면 마감이나 착용감이 다르기 때문에 100년 전과 비슷한 수작업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고 했다. 케링그룹이나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 같은 글로벌 대기업에 소속되지 않고 가족 기업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도 특징. 원석 확보 등 노하우가 이 기업의 강점이다. “11, 12세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인도와 태국 등 여러 곳을 다녔다. 좋은 원석을 고르는 법, 가격 협상하는 방법을 어깨너머로 배웠다.” 이번 전시 대표작 ‘마르게리타 데저트 가든’은 20여 캐럿의 다이아몬드와 에메랄드, 금을 조합한 색채로 빈센트 반 고흐의 붓 터치를 연상케 하는 디자인이다. 그는 “필요한 원석을 구하는 데 2년, 수공예로 제작하는 데 6개월이 걸렸다”고 했다. 전시장에서는 다미아니 소속 장인인 엘레오노라 미타가 수작업 제작 시연을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한국에 우리 고객이 많다. 다이내믹한 한국에서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 큰 행사를 서울에서 꼭 치르고 싶었다.” 한국에 이어 일본과 아랍에미리트(UAE)도 찾는다. 한국 전시는 6월 9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그룹 세븐틴이 25, 26일 일본 닛산스타디움에서 ‘FOLLOW AGAIN TO JAPAN’ 콘서트를 열었다. 일본 최대 규모 공연장인 닛산스타디움에서 한국 가수가 단독 콘서트를 연 것은 동방신기 이후 세븐틴이 두 번째다. 26일 소속사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이번 공연은 세븐틴이 올 3월부터 한국과 일본에서 연 앙코르 투어의 마지막 행사다. 닛산스타디움은 약 7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일본 최대 공연장으로, 앞서 동방신기가 2013, 2018년 이곳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세븐틴의 멤버 정한은 25일 공연 마무리 발언에서 “2018년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공연할 때 ‘더 열심히 해서 나중에 닛산스타디움에서 공연하자’고 했는데 오늘 의미 있는 공연장에서 추억을 만들어 기분이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공연은 일본 영화관과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해 생중계됐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년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리는 ‘가장 오래된 국제 미술 전시’, 베니스 비엔날레가 4월 20일 개막했습니다.요즘 미술인들은 만나면 “베니스 비엔날레 어땠냐”는 질문을 인사처럼 나누고 있는데요.프리뷰 기간인 4월 16~19일 찾은 베네치아에서는 마리아 발쇼 영국 테이트 미술관장, 아담 와인버그 미국 뉴욕 휘트니미술관장 등 국제 미술사를 이끄는 기관장들은 물론 비엔날레에 각국을 대표해 참가한 수많은 큐레이터와 작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이번 비엔날레의 본전시는 역사상 첫 남미 출신 예술 감독인 아드리아누 페드로자가 기획을 맡아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를 주제로 펼쳐졌습니다.지난주에는 화제의 국가관과 병행 전시를 소개했는데, 오늘은 메인 전시인 국제전 리뷰를 보내드립니다.점잖은 큐레이팅, 돋보인 작품베니스 비엔날레 국제전은 자르디니 정원 내 중앙 파빌리온 전시장, 과거 조선소 겸 무기공장인 아르세날레 전시장 두 곳에서 나눠서 열립니다.중앙 파빌리온은 화이트 큐브의 성격이 강하고, 아르세날레는 층고도 공간도 넓어 좀 더 과감한 설치 작품을 펼칠 수 있는 장입니다.우선 중앙 파빌리온부터 둘러보기 시작했는데, 20세기 미술을 조명한 섹션에서 처음에는 당혹감을 느꼈습니다.이 섹션을 페드로사 감독은 크게 추상화, 초상화 등 장르로 구분했는데 미국과 유럽 중심의 20세기 미술사에 기록되지 못한 작가들로 채운 것이 특징이었습니다.그런데 처음 추상화 전시장에 들어서면 ‘이거 피카소 같은데?’, ‘이건 몬드리안 같은데?’ 하는 기분이 들어 당황스러웠던 것입니다.이런 시각은 전통적인 미술사 교육을 받은 관객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현상입니다. 전통 미술사는 ‘유명 작가’를 중심으로 수직적인 계보를 설정하듯 좋은 작품과 나쁜 작품을 가려내고 분류했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설치를 과하게 드러내지 않고 비교적 전통적인 미술관 방법론으로 작품을 전시한 페드로사의 큐레이팅은 오히려 작품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었고,덕분에 개별 작품을 들여다보면서 미술사에 가졌던 편견을 깨는 계기가 생기는 것을 느꼈습니다.즉 어떤 사조를 따라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 작가가 처한 삶이나 사회적 맥락에서 자신만이 느낀 바를 표현했다는 것에 더 집중하면서 작품을 그 자체로 이해하는 경험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이런 전통적 미술관 방법론 때문에 어떤 관객들은 ‘실험적인 전시를 기대했는데 실망이다’라는 반응도 있었습니다.그러나 오히려 서로 비슷하거나 장르를 공유하는 작품을 모아준 것은 적절한 큐레이팅이라고 제게는 느껴졌습니다.또 추상화, 초상화 섹션을 지나 동시대 미술 전시 섹션으로 향하면 퀴어 작가를 모은 방이나 자연을 소재로 한 작가들,또 사이즈가 너무 작아 코앞에서 봐야 하는 작품들을 모아 놓은 전시장이 이어졌습니다.전시장을 보면서 ‘미술사 밖에도 재밌는 작품이 많구나’하는 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우리는 아직 세계 미술을 모른다”아르세날레 전시장으로 발을 옮기면, 입구에 페드로사가 하고 싶은 말을 함축해 놓은 두 작품이 관객을 맞이합니다.클레르 퐁텐의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 네온 사진 작품과 잉카 쇼니바레의 ‘난민 우주인’이 그것입니다.특히 ‘난민 우주인’은 낡은 그물로 된 봇짐을 짊어지고 화려한 패턴이 그려진 천 옷을 입고 있습니다.고도로 발달한 줄 알았지만 아직도 수많은 결점을 가진 인류의 ‘허름한 문명’을 상징한 작품은 “우리는 문명뿐 아니라 세계 미술도 아직 잘 모른다”고 말하는 듯 했습니다.전시장으로 들어서면 마타아호 컬렉티브의 대형 설치 작품, 또 퀴어 시각 언어를 초대형 패널로 펼쳐낸 프리에다 토란소 하에헤르의 회화나 남미 선주민들의 자수 작품이 감탄을 자아냅니다.단순하지만 강렬한 시각 언어가 연이어 펼쳐지면서 보는 즐거움이 가득했습니다.그러다 20세기 이탈리아 디아스포라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한 방에 가면 적극적인 큐레이팅이 나타났는데요.작품을 유리 판 위에 걸고, 캡션은 뒷면에 부착해 앞에서 보면 그림만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었습니다.이런 설치 방법이 제시하는 메시지는 분명하죠. ‘다른 정보 없이 그림만 봐달라. 그래도 훌륭하지 않느냐’.이밖에 남미 선주민 예술가들의 다양한 작품들도 펼쳐졌습니다.아르세날레 전시장의 3분의 2 지점을 지나면 반복되는 조형 언어 스타일에 다소 지루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규모에 비해 꽤 오랫동안 집중력을 갖고 작품을 볼 수 있도록 만든 세심한 큐레이팅이 보였습니다.전시를 다 보고 나서 남는 생각은 있었습니다. 이렇게 미술사에서 배제된 작품을 조명하는 경향은 최근 수십 년간 유럽과 미국 주요 미술 기관에서도 활발하게 실천해오고 있는 것인데요.앞으로 이렇게 미술사를 확장하기만 할 수 있을까? 그럴 순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이런 관점에서 향후 미술사에서 펼쳐질 관건은, 확장된 미술사 속에서 좋은 작품을 골라낼 새로운 기준을 찾는 것이 될 듯합니다.그러니까 미국 유럽 중심 미술사가 찬양했던 ‘사조’가 아니라 세계 미술에서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남을 ‘클래식’을 어떻게 판별할 것인지가 관건이 될 듯합니다. 앞으로 ‘역사적인 작품’의 기준은 무엇이 될까? 여러분의 의견도 들려주세요.-※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국 사진가 신디 셔먼(70)의 두 작품이 전시장 한쪽 벽에 나란히 걸려 있다. 왼쪽 작품에선 셔먼이 광대 분장을 하고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다. 오른쪽은 화려하게 차려입었지만 어딘가 불안하고 움츠린 듯한 중년 여성의 모습이다. 안혜령 리안갤러리 대표는 “어떤 날은 마구 기쁘다가 또 다른 날엔 온갖 치장을 해도 한없이 초라해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지 않느냐”며 “셔먼은 여성의 다양한 자아와 심리를 표현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라고 설명했다. 셔먼을 비롯해 국내외 유명 사진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 ‘A Brink of Infinity(무한함의 끝)’가 서울 종로구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열린다. 폴란드 출신 프랑스 작가 로만 오파우카가 같은 촬영 조건에서 시간차를 두고 여러 차례 자화상을 기록한 연작 중 1965년 작품 두 점, 칸디다 회퍼가 독일 함부르크 엘브필하모니를 담은 ‘Elbphilharmonie Hamburg’(2016년), 볼프강 틸만스의 정물 ‘Blumenfrau’(2007년) 등이 눈길을 끈다. 토마스 루프의 인터넷 누드 연작 사진, 로니 혼의 아이슬란드 풍경 사진, ‘성형수술 프로젝트’로 자신의 몸을 변형시켜 가며 사진을 찍는 오를랑 등 작가 15인의 다양한 작품을 통해 현대 사진가들이 사진 장르를 예술로 끌어올리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을 비교해볼 수 있다. 6월 29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996년 9월 6일 충북 괴산군의 백봉초등학교. 운동장에는 ‘백봉 어린이 그림잔치’ 현수막이 걸려 있고, 아이들은 잔디밭에서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 잔치는 1990년 이화여대 동양화과 교수직을 내려놓고 괴산 작업실에서 그림에 열중하던 황창배 작가(1947∼2001)가 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1년 뒤 자녀들이 7회까지 열고 멈췄던 ‘백봉 어린이 그림잔치’가 22년 만에 다시 열렸다. 황창배가 어린이 그림 잔치를 열었다는 사실은 유족의 기억에만 남아 있었다. 황창배의 아내 이재온 황창배미술관장은 “황창배는 그림에서 기교만 앞서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고 순수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며 일부러 왼손으로 그림도 그렸다”며 “아이들을 위해 잔치를 열어주는 것은 물론 본인도 아이들의 그림에서 배우려 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림 잔치가 다시 열린 건 이근우 중원대 교수가 학교에서 관련 기록을 찾아낸 것이 계기였다. 학교 자료실에는 당시 사진과 팸플릿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최인숙 백봉초 교장은 “유명 화가가 지역 학교를 찾아와 학용품을 나누어주고 그림 잔치를 열어준 것은 지금도 흔치 않은 일”이라고 했다. 과거 기록을 토대로 올해 열린 ‘제8회 백봉 어린이 그림 잔치’에는 유치부 학생 10명을 포함한 백봉초 전교생 56명이 참가했다. 14∼17일 학교 체육관에서 전시를 열었고, 20일부터 다음 달 15일까지 서울 서대문구 황창배미술관에서 전시가 이어진다. 20일 전시장에서 만난 황창배의 작업실 이웃 이처용 씨(69)는 “그림 대회를 열자 하니 황창배가 ‘아이들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데 왜 순위를 매기냐’며 잔치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회고했다. 3∼6회에 자녀들이 참여한 한석호 씨(64)는 “아이들을 칭찬하고 때로 진심으로 감탄하는 표정을 짓던 황창배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조각, 부조, 유리 등 입체 작품을 중심으로 하는 아트페어 ‘조형아트서울 2024’(PLAS)이 23일 사전 공개를 시작으로 26일까지 서울 강남구 코엑스 B홀에서 열린다. 올해로 9회를 맞는 조형아트서울은 회화 위주인 국내 미술시장에서 입체작품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참가 갤러리에게 입체 작품 1점 이상을 출품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올해 페어에는 ‘뉴 웨이브’를 주제로 국내 85개 해외 20개 등 105개 갤러리가 참여해 작가 850여 명의 작품3800여 점을 선보인다. 국내에서는 청작화랑, 금산갤러리, 갤러리 위, 갤러리 가이아 등이 참가하며 해외는 대만 더 홍 아트 갤러리, 일본 야마키 아트 갤러리 등이 참여한다.입체 작품을 크기와 가격별로 나눠 ‘대형 조각 특별전’, ‘신진 작가 조각전’, ‘캐릭터 조각전’ 등 3개 특별전이 열린다. 대형 조각전에는 세종대왕상으로 잘 알려진 조각가 김영원 등 11명이 참여해 3m가 넘는 조각을 전시한다. 신진 작가 특별전에는 20개 대학 교수가 추천한 작품이, 캐릭터 조각 특별전에는 75만원 이하의 작품이 출품됐다.신준원 조형아트서울 대표는 “가정의 달인 5월을 맞아 관람객이 큰 부담 없이 작품을 감상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말했다. 또 조형아트서울이 10주년을 맞는 내년에는 “일본 오사카 엑스포 기간에 오사카 아트페어인 ‘스터디’와 협업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애플의 본사 건물인 미국 캘리포이나주 쿠퍼티노의 ‘애플 파크’, 오이 피클(gherkin) 모양을 닮아서 ‘거킨 빌딩’이란 애칭이 붙은 영국 런던의 ‘30 세인트 메리 엑스’ 등을 만든 세계 유명 건축가 노먼 포스터(89)를 소개하는 전시가 국내에서 처음 선을 보인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미래긍정: 노먼 포스터, 포스터+파트너스’에선 1999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포스터의 건축 철학과 대표작 모형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서울시립미술관과 포스터가 설립한 회사인 ‘포스터+파트너스’가 공동 기획한 전시로 아시아 최대 규모다. 전시에선 포스터가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진행한 500여 건의 프로젝트 중 대표작 50건의 건축 모형과 드로잉, 영상 등 30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는 1960, 70년대 포스터가 고안한 도시 계획이나 파빌리온 프로젝트로 시작된다. 포스터가 노르웨이 선박 회사를 운영하는 프레드 올센의 의뢰를 받아 만든 ‘고메라 지역 연구 프로젝트’ ‘프레드 올센을 위한 숲속 파빌리온’ 등이다. 두 프로젝트는 주변 자연과 최대한 공생하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한 것이 특징이다. ‘고메라 지역…’에서는 “자연을 최대한 해치지 않고 광산업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올센의 의뢰에 따라 태양광과 풍력을 이용한 자율 에너지 시스템, 폐기물 재활용 등의 방법을 제안했다. 또 ‘숲속 파빌리온’은 그늘진 숲 아래에서 차가운 공기를 끌어 올려 통풍을 유도하는 등의 방식이 돋보인다. 전시는 이렇게 유명 건축가가 되기 전부터 ‘지속가능성’을 고민했던 포스터를 적극 조명한다. 초기 작업을 보여준 ‘지속가능성에 대한 사유’ 섹션 이후 전시는 ‘현재로 연결되고 확장되는 과거’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기술’ ‘공공을 위한 장소 만들기’ ‘미래건축’으로 이어진다. 각각 오래된 건물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프로젝트, 고도의 기술을 활용한 대형 프로젝트, 사용자 경험을 중시한 디자인, 우주와 관련된 건축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유명 건축물의 모형을 볼 수 있는 가운데 각 프로젝트에 대한 포스터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드로잉도 눈길을 끈다. 1935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태어난 포스터는 지역 건축 사무소에서 계약사원으로 일하다 드로잉 실력을 인정받아 정식으로 일하게 됐다. 대학생 때도 드로잉으로 왕립영국건축가회(RIBA)로부터 은메달을 받았다. 그런 그의 드로잉을 통해 포스터가 어떻게 환경을 해석하고 그것을 바꾸려고 했는지 전반적인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기술’ 전시장에서는 최첨단 기술을 이용한 건물은 물론이고 도시 계획까지 이어진다. 특히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진행 중인 ‘자이드 국립 박물관’과 마스다르 시티 프로젝트는 전통 사우디 건축물을 토대로 에어컨이나 공조 시스템 없이 건물이 자체적으로 공기 순환을 유도하도록 설계했다. 영국 런던 블룸버그 유럽 헤드쿼터 빌딩도 자체 공기 순환이 되도록 만들었는데, 영상을 통해 건물의 모형을 물속에 넣은 뒤 공기가 흐르는 과정을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날개 등의 장치를 이용해 공기 순환을 조절하는 복잡한 과정이 펼쳐진다. 전시를 보고 나오면 미술관 공용 공간에서 상영되는 ‘노먼 포스터-건축의 무게’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는데, 포스터가 설명하는 여러 건축 프로젝트의 배경에 대해 들을 수 있다. 7월 21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당신이 원하는 삶과 살고 있는 삶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는 기분’(오즈유리). ‘눈앞을 지나가는 익명의 사람들 모두가 자신의 삶에서 주인공이고, 나는 엑스트라일 뿐이라는 깨달음’(산더). 살다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순간을 마주한다. 이 순간은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보다 마음속 감정과 연관될 때가 많다. 우리가 쓰는 언어는 단순하고 확실하며 말하기 쉬운 개념을 중심으로 형성됐기 때문이다. “새나 배를 가리키는 단어는 수천 개나 있지만 인간 경험의 미묘함을 포착하는 어휘는 초보적 단계에 머물렀다”는 저자는 일상에서 누구나 느끼는 아픔, 분위기, 충동, 혹은 기쁨을 새롭게 정의했다. 책 제목의 ‘슬픔’은 우리가 흔히 아는 기쁨의 반대말로서 ‘슬픔(sadness)’이 아니라 어원인 라틴어 ‘satis(충분한, 만족스러운)’의 의미를 살려 강렬한 경험으로 마음이 차오르는 순간을 뜻한다. 부정적 감정이 아닌 인생이 얼마나 찰나적이고 신비로운지 깨닫는 활기찬 솟구침이다. 저자는 이런 순간을 2009년부터 블로그를 통해 ‘이름 붙이기’ 했는데 책에서는 300여 개 단어를 만날 수 있다. 영어뿐 아니라 프랑스어, 덴마크어부터 라틴어까지 넘나들며 책은 그간 우리의 사고를 제한했던 틀을 깨고자 노력한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단어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더욱 즐거움을 느낀다. ‘맞아, 나도 이런 감정을 느꼈어’ 하고 공감하거나 위안을 받기 때문이다. 저자는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 평범한 인간일 뿐임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 바로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이유라고 말한다. 블로그에서 시작한 작업은 동명의 유튜브 계정으로도 이어졌고, ‘산더’를 주제로 한 영상은 142만 조회수를, ‘독창성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두려움’을 뜻하는 ‘베이모달렌’은 101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번역 불가능한 감정’은 없다며 감정으로 사람들을 연결시키려는 저자의 노력은 호응을 얻고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인공지능(AI)이 미치는 영향은 미술계에서도 뜨거운 화두입니다.이에 관해 최근 ‘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의 저자 마틴 푸크너 하버드대 교수의 대담을 들었는데요.‘AI와 창의성’을 주제로 한 대담에서 푸크너 교수는 ‘문화’를 아래의 말로 정의했습니다. “문화는 의미를 만드는 행위죠.인류가 자연을 변화시키며 축적해온 과학, 기술적 지식이 ‘노하우’(know-how)라면,문화는 ‘노와이’(know-why)입니다. 우리는 왜 지구에 있고, 어떤 상황에 처해 있으며, 왜 사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이라는 것입니다.”AI에 관한 담론도 흥미롭지만 문화에 관한 정의가 제겐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예술도 이미 100년 전부터 ‘노와이’의 영역으로 확장됐는데 종종 ‘노하우’만 있는 것으로 오해받기 때문입니다.오늘은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주목받은 두 전시로 최전선의 현대미술이 제시한 ‘노와이’는 어떤 모습인지 소개합니다.2시간 기다려 관람한독일관 전시 ‘문턱들’아주 복잡한 구조로 경계를 흐리며 독일관 전시는 묻습니다.왜 누군가는 과거를 향한 맹목적인 노스탤지어에 기대고, 또 다른 쪽은 올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환상으로 대립하는지. 그 가운데 문턱에 서서 양쪽의 복잡함을 이해하는 것이 지금 필요한 태도가 아닌지를 말입니다.베니스 비엔날레 개막 직전 관계자와 미디어에만 공개되는 프리뷰 기간 내내 길게 줄이 늘어선 곳 중 하나는 독일관이었습니다.줄을 서서 2시간을 기다린 뒤에야 보게 된 독일관 전시는 ‘문턱들(Thresholds)’이라는 제목의 그룹전이었는데요.특히 안과 밖, 과거와 미래, 중심과 주변 등 상반되는 개념의 경계를 흐리려는 시도가 돋보였습니다.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난 건 야엘 바르타나와 에르산 몬타크의 두 작품이었습니다.전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바르타나의 작품을 만납니다. 작품들은 인류가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우주로 떠난다는 설정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그다음 전시장 가운데 지어진 작은 건물로 들어가면 몬타크의 설치, 퍼포먼스가 펼쳐집니다. 튀르키예에서 독일로 이주해 석면 공장에서 일하다가 사망한 노동자의 삶을 그렸습니다.바르타나의 작품은 우주를 다루니 미래 같고, 몬타크의 작품은 20세기 노동자 삶이니 과거 같지만 직접 보면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바르타나의 영상 작품은 수백 년 전 만들어진 유대교 신비주의 사상 ‘카발라’를 토대로 합니다.그런가 하면 몬타크의 작품은 살아있는 배우들의 퍼포먼스로 이뤄져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일처럼 생생하게 전달됩니다.이를 통해 관객은 우주를 향한 인류의 꿈은 새로워 보이지만 결국 오래된 환상이 아닌지, 또 희망을 품고 타지로 이주했다가 덫에 걸린 노동자의 삶은 지금도 미래에도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건 아닌지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게다가 ‘문턱들’ 전시는 독일관 밖 세토사섬으로도 이어집니다. 이렇게 아주 복잡한 구조로 경계를 흐리며 전시는 묻습니다.왜 누군가는 과거를 향한 맹목적인 노스탤지어에 기대고, 또 다른 쪽은 올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환상으로 대립하는지. 그 가운데 문턱에 서서 양쪽의 복잡함을 이해하는 것이 지금 필요한 태도가 아닌지를 말입니다.시적 언어 돋보인베를린드 드 브뤼케르죽은 자를 보호하고 안전한 곳으로 옮겨줘야 할 천사들이 지독한 슬픔에 잠겨 울음을 터뜨리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입니다. 이 천사의 뒤로는 커다란 거울이 세워져, 슬프고 불안한 천사의 모습과 견고하고 화려한 성당을 대비시킵니다.이런 연출을 통해 드 브뤼케르는 견고한 확신이 아닌 기울어진 불안이, 영원이 아니라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일시성이 때로는 더 큰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독일관이 큐레이터의 견고한 설계로 이 시대에 관한 ‘노와이’를 보여줬다면,벨기에 작가 베를린드 드 브뤼케르의 개인전은 이런 ‘노와이’를 작가의 뛰어난 감각과 ‘노하우’가 뒷받침한 전시였습니다.‘도피성(城) III(City of Refuge III)’이라는 제목의 전시는 16세기에 지어진 베네치아의 성당 산 조르조 마조레가 배경이었습니다.드 브뤼케르는 이 성당의 메인 공간인 네이브에 거대한 고철 덩어리 위에 선 천사(archangel) 조각을 설치했습니다.천사가 서 있는 철판은 오랜 시간 비바람을 맞은 듯 녹슬었고, 조금만 균형이 무너지면 앞으로 넘어질 듯 기울었습니다.가장 충격적인 연출은 천사들이 동물의 가죽 같은 모포를 여러 겹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입니다.얼굴이 다 가려지도록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것처럼 고개를 숙인 천사들은 섬뜩한 느낌을 자아내는데요.죽은 자를 보호하고 안전한 곳으로 옮겨줘야 할 천사들이 지독한 슬픔에 잠겨 울음을 터뜨리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 천사의 뒤로는 커다란 거울이 세워져, 슬프고 불안한 천사의 모습과 견고하고 화려한 성당을 대비시킵니다.이런 연출을 통해 드 브뤼케르는 견고한 확신이 아닌 기울어진 불안이, 영원이 아니라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일시성이 때로는 더 큰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네이브를 떠나 수도원 갤러리로 향해 가장 깊은 방에 들어서면 관람객은 시체처럼 누워 있는 인물 조각을 만납니다.이 조각 역시 얼굴과 상반신은 보이지 않고, 동물의 가죽처럼 털이 난 모포를 뒤집어쓴 다리와 발만 보입니다.자칫하면 두려움을 자아낼 수 있지만 세심한 재료 선택과 색채의 조절로 그 감각은 날 선 매혹으로 다가옵니다. 죽음은 가까이서 보면 두렵지만 멀리서 보면 아름다울 수 있다는 듯 말이죠.“육신은 한없이 연약하고 이는 두려움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는 드 브뤼케르.“정해진 공간이 아니라 문턱에 서 보자”고 제안한 독일관.섣불리 확신을 구하기 전에 우선 불확실함 자체를 받아들이고 끌어안아 보자고, 현대미술 최전선의 작가와 큐레이터들은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하늘을 상징하는 청색과 땅을 뜻하는 다색(암갈색)이 가공하지 않은 천 위에 그대로 스며들어 번져 나간다. 가장 진한 곳은 검은색으로, 옆으로 퍼질수록 푸른색이 보이던 윤형근(1928∼2007)의 색채 스펙트럼은 한지를 만나 더욱 극적으로 펼쳐진다. 그가 1980년대 초 프랑스 파리에 머물 때 한지에 그린 작품들이 전시에 나왔다. 서울 종로구 PKM갤러리는 윤형근이 파리에서 그린 작품들을 선보이는 ‘윤형근/파리/윤형근’전을 연다. 1980년대 파리 체류 당시 한지 작업과 그 전후 시점의 리넨 회화, 2002년 장 브롤리 갤러리 개인전에 출품한 작품 등 27점이 소개된다. 윤형근은 생애 두 번 파리를 찾았다. 첫 번째는 1980년 12월, 5·18민주화운동 직후 군사 독재의 억압에 환멸을 느꼈을 무렵이다. 이때 잠시 한국을 떠난 윤형근은 1년 반 동안 파리 작업실에서 자신이 탐구해 온 ‘천지문’ 회화를 실험한다. 그다음엔 2002년, 한국을 방문한 화상 장 브롤리가 윤형근에게 파리에서 머물 곳을 마련해 주었고, 이때 3개월 동안 대형 회화를 제작해 가을 장 브롤리 갤러리에서 전시했다. 6월 29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인공지능(AI)이 미치는 영향은 미술계에서도 뜨거운 화두입니다. 이에 관해 최근 ‘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의 저자 마틴 푸크너 하버드대 교수의 대담을 들었는데요. ‘AI와 창의성’을 주제로 한 대담에서 푸크너 교수는 ‘문화’를 아래의 말로 정의했습니다. “문화는 의미를 만드는 행위죠. 인류가 자연을 변화시키며 축적해온 과학, 기술적 지식이 ‘노하우(know-how)’라면, 문화는 ‘노와이(know-why)’입니다. 우리는 왜 지구에 있고, 어떤 상황에 처해 있으며, 왜 사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이라는 것입니다.” AI에 관한 담론도 흥미롭지만 문화에 관한 정의가 제겐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예술도 이미 100년 전부터 ‘노와이’의 영역으로 확장됐는데 종종 ‘노하우’만 있는 것으로 오해받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주목받은 두 전시로 최전선의 현대미술이 제시한 ‘노와이’는 어떤 모습인지 소개합니다.2시간 기다려 본 독일관 ‘문턱들’ 베니스 비엔날레 개막 직전 관계자와 미디어에만 공개되는 프리뷰 기간 내내 길게 줄이 늘어선 곳 중 하나는 독일관이었습니다. 2시간을 기다려 본 독일관 전시는 ‘문턱들(Thresholds)’이라는 제목의 그룹전이었는데요. 특히 안과 밖, 과거와 미래, 중심과 주변 등 상반되는 개념의 경계를 흐리려는 시도가 돋보였습니다.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난 건 야엘 바르타나와 에르산 몬타크의 두 작품이었습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바르타나의 작품을 만납니다. 작품들은 인류가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우주로 떠난다는 설정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그다음 전시장 가운데 지어진 작은 건물로 들어가면 몬타크의 설치, 퍼포먼스가 펼쳐집니다. 튀르키예에서 독일로 이주해 석면 공장에서 일하다가 사망한 노동자의 삶을 그렸습니다. 바르타나의 작품은 우주를 다루니 미래 같고, 몬타크의 작품은 20세기 노동자 삶이니 과거 같지만 직접 보면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바르타나의 영상 작품은 수백 년 전 만들어진 유대교 신비주의 사상 ‘카발라’를 토대로 합니다. 그런가 하면 몬타크의 작품은 살아있는 배우들의 퍼포먼스로 이뤄져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일처럼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이를 통해 관객은 우주를 향한 인류의 꿈은 새로워 보이지만 결국 오래된 환상이 아닌지, 또 희망을 품고 타지로 이주했다가 덫에 걸린 노동자의 삶은 지금도 미래에도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건 아닌지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게다가 ‘문턱들’ 전시는 독일관 밖 세토사섬으로도 이어집니다. 이렇게 아주 복잡한 구조로 경계를 흐리며 전시는 묻습니다. 왜 누군가는 과거를 향한 맹목적인 노스탤지어에 기대고, 또 다른 쪽은 올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환상으로 대립하는지. 그 가운데 문턱에 서서 양쪽의 복잡함을 이해하는 것이 지금 필요한 태도가 아닌지를 말입니다. 시적 언어 돋보인 드 브뤼케르 독일관이 큐레이터의 견고한 설계로 이 시대에 관한 ‘노와이’를 보여줬다면, 벨기에 작가 베를린드 드 브뤼케르의 개인전은 이런 ‘노와이’를 작가의 뛰어난 감각과 ‘노하우’가 뒷받침한 전시였습니다. ‘도피성(城) III(City of Refuge III)’이라는 제목의 전시는 16세기에 지어진 베네치아의 성당 산 조르조 마조레가 배경이었습니다. 드 브뤼케르는 이 성당의 메인 공간인 네이브에 거대한 고철 덩어리 위에 선 천사(archangel) 조각을 설치했습니다. 천사가 서 있는 철판은 오랜 시간 비바람을 맞은 듯 녹슬었고, 조금만 균형이 무너지면 앞으로 넘어질 듯 기울었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연출은 천사들이 동물의 가죽 같은 모포를 여러 겹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입니다. 얼굴이 다 가려지도록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것처럼 고개를 숙인 천사들은 섬뜩한 느낌을 자아내는데요. 죽은 자를 보호하고 안전한 곳으로 옮겨줘야 할 천사들이 지독한 슬픔에 잠겨 울음을 터뜨리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 천사의 뒤로는 커다란 거울이 세워져, 슬프고 불안한 천사의 모습과 견고하고 화려한 성당을 대비시킵니다. 이런 연출을 통해 드 브뤼케르는 견고한 확신이 아닌 기울어진 불안이, 영원이 아니라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일시성이 때로는 더 큰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네이브를 떠나 수도원 갤러리로 향해 가장 깊은 방에 들어서면 관람객은 시체처럼 누워 있는 인물 조각을 만납니다. 이 조각 역시 얼굴과 상반신은 보이지 않고, 동물의 가죽처럼 털이 난 모포를 뒤집어쓴 다리와 발만 보입니다. 자칫하면 두려움을 자아낼 수 있지만 세심한 재료 선택과 색채의 조절로 그 감각은 날 선 매혹으로 다가옵니다. 죽음은 가까이서 보면 두렵지만 멀리서 보면 아름다울 수 있다는 듯 말이죠. “육신은 한없이 연약하고 이는 두려움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는 드 브뤼케르. “정해진 공간이 아니라 문턱에 서 보자”고 제안한 독일관. 섣불리 확신을 구하기 전에 우선 불확실함 자체를 받아들이고 끌어안아 보자고, 현대미술 최전선의 작가와 큐레이터들은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발송됩니다. QR 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을 하시면 e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한국인 최초로 스타워즈 시리즈에 입성한 배우 이정재(52)가 이번엔 디자이너 가구 전시를 연다. SF 고전인 ‘스타트렉’과 제임스 본드 시리즈, ‘아이언맨’ 등 다수 영화에 디자인 제품이 등장했고, 프랑수아 미테랑 등 여러 대통령의 집무실과 관저 실내 인테리어를 맡은 프랑스 디자이너 피에르 폴랭(1927∼2009)의 작품을 국내에 소개하는 데 앞장선 것. 폴랭의 아들 뱅자맹 폴랭(46)과 협업한 전시 ‘Starring Pierre Paulin(주연 피에르 폴랭)’이 개막한 9일 두 사람을 만났다. 이번 전시는 폴랭의 아내 마이아, 아들 뱅자맹, 며느리 알리스가 설립한 회사 ‘폴랭, 폴랭, 폴랭’이 주최했다. 자신의 회사인 아티스트컴퍼니의 서울 강남구 사옥 1층과 지하 1층을 전시 공간으로 내준 이정재는 “지난해 가을 첫 제안을 받고 영상 통화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전시를 만들었다”며 “잡지나 영화로 유명 작품은 봤지만, 다른 디자인도 실제로 어떨지 굉장히 궁금했다”고 말했다. 전시장 1층에서는 ‘그루비 체어’(1964년), ‘텅 체어’(1963년) 등 폴랭이 1960년대에 만든 의자 디자인을 감상할 수 있다. 뱅자맹은 “튜브 모양의 구조 위에 신축성 있는 천을 양말처럼 씌워 의자의 뼈대가 보이지 않는다”며 “어떻게 만든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워 공상과학 영화에 자주 사용된다”고 했다. 폴랭의 디자인은 최근에도 영화 ‘바비’나 ‘어벤져스’처럼 상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 등장했다. 폴랭이 1983년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의 집무실 인테리어를 맡았을 때 만든 의자도 전시됐다. 뱅자맹은 “폴랭이 60세가 넘은 나이에 디자인한 것으로, 과거에는 곡선적인 형태에 집중했다면 이번엔 프랑스의 육각형 지형을 본떠 각진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라며 “국가에 헌신한다는 마음이 담긴 특별한 디자인”이라고 했다. 지하 1층으로 가면 모래 언덕에서 영감을 얻은 ‘듄 앙상블’, 필요에 따라 등받이를 접었다 펼 수 있는 ‘타피 시에주’ 등 최근 생산되는 디자인 제품이 전시됐다. 이정재는 다음 달 스타워즈 시리즈 ‘애콜라이트’ 공개를 앞두고 전 세계로 홍보 행사를 다니고 있다. 그는 “영화 역사상 가장 오래 이어진 시리즈에 참여해 감격스러운 일이고 ‘오징어 게임 2’도 촬영이 거의 끝나가고 있는데 기대하셔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전시를 연 것에 대해서는 “사실 이전에도 기업과 협업해 디지털 아트 전시를 했고 이번이 두 번째”라며 “앞으로도 (사옥 공간을) 서울의 다양한 전시 문화를 즐기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정재는 배우가 되기 전에 공간 디자이너가 되기를 꿈꿨을 정도로 디자인에 관심이 많다. 그는 폴랭의 디자인에 대해 “전통을 중요시하는 프랑스에서 1960년대부터 현대적인 디자인에 새로운 재료로 만들었다는 점이 놀라웠다”며 “특히 이렇게나 많은 영화나 드라마 장면에 나온 디자인이 있을까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영화에도 이렇게 세계적 디자이너를 비롯한 더 많은 분이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전시는 9월 8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998년 8월 영국 브리스틀. 주말 이틀간 유럽의 그라피티(상가나 담벼락에 몰래 스프레이 페인트를 뿌려 빨리 완성하는 그림) 예술가들이 모여 365m 길이의 벽면에 마음껏 예술 활동을 펼쳤다. 그라피티는 통상 불법인 경우가 많지만 이날 행사는 시청 승인을 받아 치러진 공식 행사였다. 이 행사를 주최한 예술가는 바로 뱅크시. 영국 최대 규모의 합법 그라피티 행사였던 ‘월스 온 파이어’를 연 1998년부터 최근까지 20여 년간 그의 작품세계를 돌아볼 수 있는 전시 ‘리얼 뱅크시(REAL BANKSY: Banksy is NOWHERE)’가 10일 서울 종로구 그라운드서울(옛 아라아트센터)에서 개막했다. 이번 전시에선 2019년 소더비 경매로 유명해진 ‘풍선을 든 소녀’(2004∼2005년)의 파쇄되지 않은 버전은 물론 ‘꽃 던지는 소년’(Love is in the air·2003년), ‘몽키 퀸’(2003년) 등 대표작을 선보인다. ‘디즈멀랜드’(2015년), ‘월드 오프 호텔’(2017년)처럼 뱅크시가 주도한 대규모 프로젝트도 영상과 기록으로 만날 수 있다. 또 브리스틀 미술관에서 열렸던 개인전 포스터, 1995년과 2000년대 초에 진행된 뱅크시 인터뷰 영상도 전시됐다. 총 4개 섹션으로 구성된 전시는 지하 4층에서 뱅크시의 작품 활동을 다룬 연표로 시작한다. ‘월스 온 파이어’부터 브리스틀 수상 레스토랑에서의 첫 개인전(1999년), 소더비 첫 경매(2007년), 영화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 개봉(2010년), 영국 글래스고 미술관 개인전 ‘컷 앤드 런’(2023년)까지 뱅크시의 주요 작품 활동을 짚어 볼 수 있다. 첫 번째 섹션에서는 뱅크시가 요르단강 서안 팔레스타인 지역에 세운 ‘월드 오프 호텔(Walled Off Hotel·벽에 가로막힌 호텔)’ 영상과 영국에 만든 ‘디즈멀랜드’ 영상을 볼 수 있다. ‘월드 오프 호텔’은 가자지구의 분리 장벽 바로 옆에 뱅크시가 세운 숙박시설로 ‘세상 최악의 뷰를 자랑하는 호텔’이라고 홍보하며 지난해까지 운영됐다. ‘디즈멀랜드’는 뱅크시가 만든 놀이공원으로 파파라치에게 둘러싸인 신데렐라, 아름다운 호수 위 난민 보트 등을 설치해 디즈니랜드를 풍자했다. 두 작품은 세계적 분쟁에 뛰어들어 폭력과 권위, 차별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를 보여 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2∼4섹션에서도 사진과 판화, 영상을 중심으로 뱅크시의 활동상을 엿볼 수 있다. 이 전시는 2022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뱅크시, 하늘에 성을 쌓다(Banksy, Building Castles in the Sky)’전을 한국 관객에게 맞게 변형한 것도 특징이다. 기존 전시가 뱅크시의 활동을 학술적으로 연구하고 관련 작품을 모은 것이라면, 한국 전시는 그라운드서울의 거대한 공간에 맞게 각종 조형물이나 포토존을 추가했다. 지하 4층의 개방된 공간에 14m 높이로 디즈멀랜드 드로잉이 그려져 있고, 그 옆에 회전목마가 설치됐다. 회전목마는 뱅크시의 작품이 아닌 디즈멀랜드의 분위기에 맞춰 전시팀이 특별 제작한 조형물이다. 이 밖에 전시장을 오가는 계단에도 뱅크시의 작품을 모티프로 한 벽화와 그라피티가 장식돼 있다. 윤재갑 그라운드서울 관장은 “예술이 불안한 이들을 위로하고 편안한 자들을 방해해야 한다는 뱅크시즘과 늘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전시는 10월 20일까지. 1만5000∼2만 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지난주에 이어 프란시스 모리스 전 테이트모던 관장 인터뷰를 소개합니다.모리스 관장의 학창 시절과 젊은 큐레이터였을 때 일화,그리고 테이트 모던 터빈홀을 커다란 거미로 채운 루이스 부르주아와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가 준비되어있습니다.오늘 평소보다 분량이 약 1.5배 정도 되는데요. 궁금할 독자분들이 분명히 계실 것 같아 자세히 소개드립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금지를 금지한다”68혁명과 저항의 시대가 낳은 변화제가 대학을 다녔던 1970년대 캠퍼스에서는 세계를 향해 과거와는 달라져야 한다는 아우성이 빗발쳤어요. 학자들도 미술관이 바뀌어야 한다고 보았죠.탈식민주의, 페미니즘 담론을 비롯해 인문학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캐논’을 의심하고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지난 뉴스레터에서 모리스의 이야기를 통해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이 2000년대 초반 처음 문을 열 때,시대와 사조에 따라 이뤄지는 큐레이팅 방법론을 버리게 된 과정을 전해드렸는데요.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이어지는 문답은 현장에서 벌어지는 동시대 미술의 흐름에 미술기관이 반응하는 과정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관장님은 1980년대부터 큐레이터로 일을 해오셨잖아요?“네. 더 정확히 말하면 1980년대 후반부터 일을 했죠.”- 그렇다면 당연히 전통 아카데믹 미술사 교육을 받았을 텐데, 그렇게 배워 온 프레임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제가 대학을 다녔던 1970년대 캠퍼스에서는 세계를 향해 과거와는 달라져야 한다는 아우성이 빗발쳤어요. 학자들도 미술관이 바뀌어야 한다고 보았죠.탈식민주의, 페미니즘 담론을 비롯해 인문학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캐논’을 의심하고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제가 이 답변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197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입니다.조금만 생각을 더 해본다면, 이 때는 1968년 프랑스 학생운동을 시작으로 유럽은 물론 전 세계로 반권위주의, 반제국주의,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환경운동 등 실로 다양한 억눌린 목소리가 터져 나온 시기였습니다.‘68혁명’이라고도 불리는 이 운동을 대표하는 구호는 바로‘금지를 금지한다 (Il est interdit d‘interdire)이런 분위기에 푹 젖어 있는 대학 분위기를 상상해보면, 전통 미술사를 버린다는 귀결은 당연한 선택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물론 그것이 현실로 오기까지는 1968년에서 테이트모던이 문을 연 2000년까지, 30년이 걸린 셈입니다. 계속해서 모리스의 이야기를 들어 보겠습니다.1970년대에는 존 버거의 ‘다르게 보기’ 같은 중요한 책들이 있었어요. 이 내용을 BBC 다큐멘터리로 처음 봤을 때 저도 충격을 받았죠.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 굉장히 편협했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러니까 프레임을 벗어날 수 있었던 첫 번째 계기는 (존 버거와 같은) 인문학적 성취들이었어요.뿐만 아니라 1970년대에는 영국의 흑인 지성인들도 눈부신 결과를 내며 문화를 확장하는 데 힘썼습니다.”(특강에서 모리스는 존 버거의 ‘다르게 보기’ 외에도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린다 노클린의 ‘왜 위대한 여성 예술가는 없었는가’ 등의 저서를 언급했고, 스튜어트 홀도 이런 분위기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학자로 꼽았습니다.)- 학계뿐 아니라 예술에서도 그런 움직임이 많았죠?“흑인뿐 아니라 비백인 예술가들, 여성 예술가들 등등 미술기관의 테두리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고 느끼는 예술가들이 많았습니다.그 경계에는 특히 젠더와 인종이 작용했는데요.두 가지 예를 들어 볼게요. 두 명의 훌륭한 여성 예술가가 있었어요.한 명은 40대에 세상을 떠난 헬렌 채드윅이에요. 페미니스트이자 영리한 예술가였고, 제 기억에는 그녀가 했던 미니멀한 조각 연작이 남아 있어요. 그러니까 채드윅의 작업은 미니멀리즘과 분명한 연결점이 있었는데, 미니멀리즘은 미국 남성 예술가들의 영역이었거든요. 채드윅은 이런 조각을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가구를 재료로 했어요.채드윅의 예술 작업을 구성하는 또 다른 줄기 하나는 사진이었는데요.제가 테이트에서 일하기 전부터 저는 채드윅을 알았고, 그녀의 작업 세계가 훌륭하다고 생각했었죠.그래서 테이트에 채드윅의 작품을 소장해야 한다고 제안했는데, 당시 시니어 큐레이터가 바로 ‘No!’라고 하는거에요. 그 이유는? 우리는 ‘사진’을 소장하지 않는다는 거였죠!그런데 그녀가 세상을 떠난지 이제 25년 30년이 되었나요? 이제서야 내년 런던 화이트채플 미술관에서 그녀의 첫 회고전이 열린답니다.또 다른 예술가는 소니아 보이스에요. 작년에 베니스비엔날레 영국관 작가로 황금사자상을 받았죠.사회 구조를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 그걸 아주 훌륭한 방식으로 표현해내는 작가에요. 테이트는 보이스의 작품을 소장했지만, 그녀 역시 알려지기 까지는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했죠.그러니까 이렇게 채드윅, 보이스 같은 작가들을 1970년대에 만난 것이 또 제가 프레임을 깰 수 있었던 계기에요.여기에 휘트니 비엔날레와 파리 퐁피두센터의 대지의 마법사들(Magiciens de la Terre) 같은 전시를 보고. 이렇게 캐논 밖에서 훌륭한 일을 해내는 사람들을 이미 보고 듣고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테이트 모던을 준비할 때 한 일은 그냥 미술 기관이 굳게 걸어 잠그고 있었던 문을 활짝 열고, 그 시대를 받아들이는 것이었네요?맞아요. 게다가 유럽뿐 아니라 남미,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 동유럽 같은 곳에서 뛰어난 현대미술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있었죠.그런 다양한 곳을 방문하면서, ‘아 이건 새로운 역사가 아니라 각 지역마다 고유의 훌륭한 역사가 존재하고 있는 거구나’를 깨달았어요. 캐논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요.루이스 부르주아,내겐 늘 두려웠던 존재부르주아는 어린시절의 기억을 보물을 캐내듯 계속해서 끄집어내면서 작업을 했고. 정신분석학을 진지하게 연구하기도 했잖아요. 그런데 저는 부르주아가 그런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치유되길 바라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되짚어보고 고민하고 곱씹는 과정 자체가 그녀에겐 아주 중요했던 거죠.이런 가운데 모리스는 루이스 부르주아, 야요이 쿠사마, 힐마 아프 클린트 처럼 미술사에서 배제된 여성 예술가를 재조명 하는 데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그 중에서도 루이스 부르주아는 테이트 모던이 개관할 때 터빈홀에 대형 거미 설치 작품을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그래서 부르주아와 함께 일한 경험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우선 1995년에 부르주아와 전시를 한 적이 있어요. 이 때 그녀의 작품 일부도 테이트 소장품이 되었고요.부르주아가 초현실주의부터 추상표현주의 등등 20세기 수많은 사조와 연결 고리를 맺고 있으며 당시 나이가 많았음에도 왕성하게, 신선한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터빈홀 커미션에 그녀를 초청했죠.또 회고전을 같이 준비하며 그녀가 머무르던 뉴욕을 정말 여러 차례 오가면서 만났어요.- 직접 만나 일할 때 부르주아는 어떤 사람이었나요?아. 무서운, 무서운 사람이었어요.- 어떤 점에서요?아주 까다로운 사람이었거든요. 당신이 원하는 바를 늘 구체적으로 말했고 또 반대 의견도 서슴지 않고 말했어요.제 질문을 단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죠. 그래서 무서웠어요. 제가 하자는 거의 모든 일에 항상 ‘노’라고 했고, 1도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었거든요.만약 제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이야기를 한다? 당장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죠.그러다가 갑자기 돌변해 아주 따뜻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어요. 제가 선물로 포트넘 앤 메이슨에서 영국 딸기잼을 사갔을 때의 일이에요.그 잼을 보고 부르주아가 어시스턴트를 불러요. ‘제리, 숟가락 좀 가져와 봐’ 하고요. 그러면 저와 부르주아, 제리 이렇게 세명이 작은 의자에 쪼그려 앉아 나란히 잼을 스푼으로 떠서 나눠 먹었어요. (웃음)-아니, 빵도 없이 그냥 잼을?빵도 뭣도 없이 그냥 잼을요. 이상하죠. (웃음).그러니까 부르주아는 항상 제게 두려운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저는 꿋꿋이 20년 동안 뉴욕에 갈 때마다 부르주아를 만났어요. 마치 명절에 꼭 해야할 일을 하는 것처럼요.그 결과 부르주아의 회고전뿐 아니라 첫 번째 패브릭 작품 전시도 할 수 있었으니 아주 보람찬 노력이었죠.제 커리어에서 부르주아를 만난 건 손에 꼽을 만큼 멋진 일이고, 저도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뿌듯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힘든. 곤혹스러운 경험이기도 했어요. -그랬겠어요. 그런데, 예술 작품을 보면 그 작가가 어떤 사람이겠다, 이런 상상도 하잖아요. 그러니까 관장님이 개인적으로 경험한 부르주아의 모습을 작품에서 찾는 다면 어떤 측면이 있을지도 궁금해지네요.음. 부르주아가 거미를 보고 자기 엄마라고 이야기 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느끼기에는 그 커다랗고 무서운 거미가 부르주아 그녀 자신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러네요. 때로는 연약하지만 때로는 강철만큼 단단한 그런…그렇죠. 물론 그것뿐 아니라 패브릭 작업도 있고, 또 부르주아가 같은 주제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그러면서 실마리를 풀어가는 측면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부르주아는 아주 강한 열망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런 측면이 작품에 드러났다고 생각해요.- 부르주아가 자신의 유년기가 보물 창고라고 했잖아요. 그 때의 기억을 계속해서 다시 곱씹으며 작업을 했기도 하고…네 그 때의 기억을 보물을 캐내듯 계속해서 끄집어내면서 작업을 했고. 정신분석학을 진지하게 연구하기도 했잖아요.그런데 저는 부르주아가 그런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치유되길 바라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되짚어보고 고민하고 곱씹는 과정 자체가 그녀에겐 아주 중요했던 거죠.-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문제’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부르주아에겐 그런 복잡한 문제들이 하나의 단위였어요. 그녀가 ‘내가 하는 말을 믿지 말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말이 아니라 복잡하게 꼬인 문제들. 그것을 이리저리 상징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이 예술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던 거죠.-모리스와의 이날 대화는 강릉 솔올미술관에서 예정된 아그네스 마틴 개인전, 또 이화여대에서 9월 열릴 예정인 국제 미디어아트 페스티벌 이마프(EMAP)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아그네스 마틴 개인전에 관한 내용은 링크된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