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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일용직 노동자인 이모 씨(41)는 신상정보가 공개된 성범죄자다. 여중생을 성폭행해 2년간 복역한 뒤 지난해 출소해 1년째 전자발찌를 달고 산다. 앞으로 2년 더 전자발찌를 차야 한다. 이 씨는 27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날씨가 푹푹 찌는 요즘에도 외출할 땐 꼭 모자를 쓴다”고 했다. 마주 오는 사람들이 다 자기를 알아보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 격리효과 크지만 치료도 병행해야전자발찌는 이 씨의 재범 충동을 억제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일을 나갈 때 외에는 대부분 집에서 혼자 지낸다. 그는 “지하철에서 짧은 치마를 입었거나 교복을 예쁘게 입은 여학생을 보면 마음이 꿈틀거릴 때가 있지만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마음을 접는다”고 했다. 한국보호관찰학회가 전자발찌 부착자 215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전자발찌 착용 후 일찍 귀가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답한 비율이 88.4%에 이른다. 죄를 지으면 쉽게 걸리고 가중 처벌된다는 부담 때문에 자신을 범죄로 끌어들일 가능성이 있는 위험인물들을 피한다는 응답도 88.3%였다. 2008년 9월 전자발찌제 시행 후 3년간 성범죄자의 재범률은 0.9%로 제도 시행 이전의 14.5%와 비교해 크게 낮아졌다.전자발찌는 성범죄 전과자의 일상 전체를 지배한다. 이 씨는 지하철에서 자리가 나도 앉지 않는다. 바짓단이 올라가 발목에 달린 전자발찌가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사장 식당에서도 구석에 앉아 후다닥 식사를 한다. 양말을 최대한 끌어 올려 전자발찌를 가리더라도 불룩 튀어나온 모양을 수상하게 보는 시선을 의식해서다. 작업장에서 반바지를 입는 건 엄두도 못 낸다. 술에 취하면 주체할 수 없는 욕망과 싸워야 해 술자리도 피한다.하지만 전자발찌 부착과 더불어 적절한 정신과 치료가 병행되지 않으면 성범죄 전과자들이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취업이나 결혼 등 재기의 발판을 찾기가 어려워 극단적 욕구 불만 세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주관하는 성범죄자 상담치료를 받고 있는 최모 씨(37)는 성욕 해결을 가장 큰 고민거리로 꼽는다. 최 씨는 출소 후 택시 운전사로 일하다 동료 운전사에게 여성을 소개받은 적이 있다. 세 번째 데이트 때 전자발찌를 찬 게 탄로 난 뒤 연락이 끊겼다. 이 사실이 만남을 주선한 동료에게 전해져 택시 운전사 일도 그만뒀다. 그는 “안마방에 있는 여성마저 발찌를 보면 기겁을 하고 ‘재수없다’며 나가버린다”고 했다. 보름마다 상담을 하는 정신과 의사는 그에게 “참기 힘들 땐 자위행위를 하라”는 처방을 내렸다. 성범죄자들에게 상담치료를 해온 탁틴내일성폭력상담소 이혜란 실장은 “음란물로 성욕을 해소하는 게 버릇이 되면 왜곡된 성 관념이 더 굳어진다”며 “이들을 양지로 끌어내려면 전문적인 심리치료가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범죄자는 지인은 물론이고 가족과도 멀어져 심적으로 고립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역시 위험한 요인이다. 전자발찌를 4년째 달고 사는 류모 씨(45)는 연락을 하고 지내는 가족이 누나뿐이다. 지방 소도시에 살던 류 씨는 6년간 복역하고 나온 뒤 ‘여중생 성폭행범’이라는 주변의 시선을 피해 도망치듯 상경했다. 누나는 류 씨가 사는 고시원 주변 공용주차장에서 한 달에 한 번 만나 밑반찬만 주고 떠난다. 지금 사는 고시원도 1년 새 세 번째 옮긴 곳이다. 경찰이 한두 달마다 찾아와 집주인이나 고시원 총무에게 그의 동향을 묻는다. 그러고 나면 금세 소문이 나 주변 눈길이 따가워진다.○ 아동을 연애 상대로 보는 그들의 심리아동 대상 성범죄자에 대한 심리 분석을 통해 이들의 반사회성을 없애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아동 대상 성범죄자 중에는 부모의 가출이나 자살 등 비정상적인 가정환경에서 성장해 타인과 교류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성인 여성과의 관계 형성에 실패하고 자신이 쉽게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을 찾는 과정에서 아동을 표적으로 삼는다. 이들에게 피해자는 어린이가 아니라 성인 여성을 대체하는 ‘여자’인 것이다. 이혜란 실장이 최근 상담한 50대 아동 성범죄자는 “나는 그 아이와 호감을 느껴 연애를 한 것”이라며 “나에게 관심을 보이며 유혹해와 성교육을 시켜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동 성범죄로 재범을 해 8년간 복역한 40대 남성은 정신과 의사와 면담하며 “일반인의 성매매는 묵인하면서 내가 어린애와 성관계를 가진 것은 왜 문제 삼느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이웅혁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아동 성범죄자들은 피해자가 강하게 거부하지 않았다고 착각해 성폭행이 아니라고 여기는 인지왜곡 현상을 보인다”며 “피해 아동의 고통과 상처를 거의 공감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사회 부적응에 따른 좌절과 위축된 남성성을 회복하기 위해 어린이를 제물로 삼는다는 분석도 있다. 아이를 성적으로 소유하면서 성욕을 해소할 뿐 아니라 억눌렸던 자존감을 세운다는 것이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최지연 인턴기자 이화여대 영문과 4학년 }

여중생 강간 미수범이 컴퓨터학원을 차려 미성년 여자 수강생들과 자유롭게 대면하고 있다는 본보 보도가 나가자 부모들은 정부의 무책임을 한목소리로 비난했다. 정부의 탁상행정으로 성범죄자 취업 제한에 큰 구멍이 뚫려 있었던 것이다. 정부는 2006년 6월 ‘아동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면서 청소년 이용시설에 대한 아동 성범죄자의 취업제한 조항을 신설했다. 영어 수학 등 학교 교과를 가르치는 일반 보습학원에 성범죄자의 취업을 금지시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그런데 일부 학원은 ‘평생직업교육학원’으로 분류해 취업제한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성인이 주로 다닌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평생직업교육학원에는 웅변 주산 컴퓨터 서예 만화 바둑학원 등 청소년이 많이 이용하는 학원이 대거 포함돼 있다. 웅변 주산학원에는 10세 미만 어린이도 많이 다닌다. 강간미수범 A 씨(35)가 여중고교생을 수강생으로 받아온 경기 수원시의 컴퓨터학원은 그런 사유로 성범죄자 취업제한 대상에서 제외됐다. 현행 규정대로라면 아동 성범죄 전력자가 이들 학원에 취업하는 데 별다른 제약이 없는 것이다. 평생직업교육학원으로 분류된 학원들의 이용자 상당수가 청소년이라는,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을 정부만 몰랐던 걸까. 물론 정부의 보완조치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평생직업교육학원에 초중고교생이 다니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을 지난해 7월 추가했다. 평생직업교육학원으로 분류된 학원 운영주가 초중고교 수강생을 모집하려면 일반 입시 보습학원과 같은 ‘학교교과교습학원’으로 재등록해 성범죄자 취업제한 규정의 적용을 받도록 했다. 하지만 거기엔 두 가지 구멍이 있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 미성년자는 얼마든지 다닐 수 있다. 실제 초중고교생이 다니지 않는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초중고교생을 가르치면서도 평생직업교육학원이란 문패를 유지해 정부의 감시를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수원의 컴퓨터학원도 중학생 2명과 고교생 6명 등 청소년 8명이 다니는 것으로 확인됐다. 수원교육지원청은 26일 해당 학원 측에 이들 전원을 내보내라고 명령했다. 교육지원청 관계자는 “학원생을 일일이 확인해 보지 않고서는 평생직업교육학원에 다니는 초중고교생을 가려내기가 매우 힘들다”며 “성범죄자가 이런 학원을 운영하는 걸 막을 법적 장치가 없다 보니 그런 사례를 적발해도 행정지도 외엔 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평생직업교육학원도 성범죄자 취업제한 대상에 넣기 위해 이달 초 법제처에 관련 법령 검토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뒷북만 치는 모양새가 됐다. 성범죄자들이 우리 딸들을 추악한 성욕의 제물로 삼기까지는 이런 근시안적 행정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신광영 사회부 기자 neo@donga.com}

등굣길에 참혹한 성폭행을 당한 여덟 살 나영이(2008년), 살해돼 물탱크에 버려진 열세 살 유리(2010년)…. 피지도 못하고 스러진 소녀들에 대한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변태성욕자의 반인륜적 범죄에 우리의 딸을 무력하게 빼앗기고 말았다. 부모들이 불안에 떨며 딸을 집밖으로 내보낼 수 없는 세상이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가. 동아일보는 24일 딸을 가진 부모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부모들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소리만 요란했던 당국의 백화점식 대책에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이번에도 흐지부지 넘어가면 김점덕처럼 흉악한 ‘동네 아저씨’가 언제든 우리의 딸 곁에 나타날 수 있다는 부모들의 걱정을 덜어줄 방법은 없을까.신광영 기자 neo@donga.com}

7년이란 세월도 김점덕(45)의 추악한 성욕을 잠재우지 못했다. 그는 2005년 62세 여성을 성폭행하려다 중상을 입혀 4년을 복역했다. 당시에는 전자발찌 제도가 도입되지 않아 출소 후 별다른 감시 없이 3년을 지냈다. 평범하고 성실한 가장이라는 가면을 쓴 채 잠복해 있던 그의 수욕(獸慾)은 자신을 아저씨라며 따르던 이웃 열 살 소녀를 향해 분출됐다.이제 더는 백화점식의 구호만 요란한 대책은 필요 없다. 하나라도 실효성 있는 대책을 확실하게 실행에 옮겨야 한다. 전자발찌 부착 대상을 제도 도입 이전 이후를 따지지 말고 성폭력 전과자 전체로 확대하는 게 그 첫 번째 단계가 될 것이다. 일각에서 ‘소급 적용’이며 ‘이중 처벌’이라고 지적하지만 전자발찌 부착 확대는 소급 처벌이 아닌, 흉악 범죄 예방 정책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전자발찌 착용 확대해야김점덕과 같은 성범죄자는 두 명 가운데 한 명꼴로 재범을 한다. 제대로 된 재발 방지 장치가 없어 성폭력 범죄자를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는 하루 3번꼴로 아동 성범죄가 일어나는 나라에 살고 있다.현재 전국에는 경남 통영 초등생 성폭행 살해 피의자인 김점덕처럼 신상정보 공개 대상에서 제외되고 전자발찌도 차지 않은 성범죄 전과자가 2만 명에 달한다. 경찰은 현재 신상정보 공개 대상은 아니지만 재범 확률이 높은 성범죄 우범자 2만여 명의 명단을 작성해 관리하고 있다. 성범죄로 최근 15년 안에 5년 이상 또는 최근 10년 안에 3년 이상 실형을 선고받거나 최근 5년 안에 세 차례 이상 입건된 사람들이다. 하지만 경찰은 이들을 감시할 법적 근거가 없어 1∼3개월에 한 차례 주변인을 통해 동향을 파악하는 정도에 그친다. 또 이 중 누가 아동 성범죄자인지도 모르고 있다. 감시 대상자가 추가 성범죄를 저질러도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관리가 허술하다. 경찰은 김점덕을 성범죄 우범자로 분류해 사건 발생 이틀 전 동향을 점검하고도 특이점을 찾지 못해 범행을 방치한 꼴이 됐다.○ 유명무실 신상정보 공개성범죄 우범자에 대한 신상정보 공개 소급 적용만으로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24일 취재팀이 성범죄자 신상정보가 공개돼 있는 정부의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에 들어가 봤다. 특정 읍면동을 검색하면 그 안에 사는 성범죄자의 이름과 얼굴, 간략한 범죄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자녀 학교명으로 검색하면 학교를 중심으로 반경 1km 안에 사는 성범죄 전과자의 신상정보가 뜬다. 하지만 읍면동까지만 공개되고 세부 주소는 안 나온다.부모들은 “도시의 동이라는 게 얼마나 큰 행정구역인데 어느 동에 산다는 정보만으로 성범죄자를 어떻게 식별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또 신상정보가 공개돼도 주민들이 성범죄자의 얼굴과 이름을 일일이 외우고 다니지 않는 한 예방효과가 크지 않다는 게 문제다.이 때문에 신상정보 공개를 강화하고 동시에 전자발찌 착용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13세 미만 아동을 성폭행하거나, 2회 이상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 형기를 마친 후에도 발목에 전자발찌를 채우는 이 제도는 성범죄 전력자의 동선을 실시간 추적 감시할 수 있어 실효성이 높다. 법무부 조사 결과 2008년 9월 제도 시행 이후 3년간 전자발찌 착용자의 재범률은 0.9%에 불과했다. 제도 시행 전인 2005∼2008년 검거된 성폭력 전과자의 재범률이 14.5%에 이르렀던 것과 비교하면 많이 낮아진 수치다. 조윤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전자발찌 착용자에 대한 설문 결과 83%가 발찌 부착 기간에 불법 행동을 피하려 노력했다고 답했다”며 “범행을 하면 바로 수사선상에 오를 것에 심적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물론 전자발찌 제도 도입 전 범행을 저지른 성범죄 우범자들에게까지 전자발찌를 채우는 것은 소급 적용이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전자발찌를 형벌의 차원이 아니라 범죄 예방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소급 적용 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의견도 많다.전자발찌 제도에 대한 사법부의 적극적인 의지도 필요하다. 올 1월부터 지난달 30일까지 법원이 검찰의 전자발찌 명령 청구를 기각한 비율은 40.9%다. 이영란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판사들이 법 이론에 얽매여 피고인 인권보장에 무게를 두고 성범죄의 높은 재범률은 간과하고 있다”며 “사법부가 2차 피해를 막는다는 의지를 갖고 전자발찌 착용 대상을 적극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전자발찌제의 내실 있는 운영을 위해 인력 확충도 시급하다. 현재 전자발찌 착용자는 982명으로 2008년 151명에서 6.5배로 늘었다. 하지만 위치추적 관제센터 요원과 현장 보호관찰관 등 관리 인력은 64명에서 102명으로 1.6배로 느는 데 그쳤다.○ 화학적 거세 실효성 논란 결론내야지난해 7월 대대적인 토론 끝에 도입됐지만 실제론 유명무실해진 ‘화학적 거세(성충동 억제 약물치료)’ 제도를 이대로 방치할 것인지도 논의해야 한다. 화학적 거세 제도가 지난해 7월 도입된 이후 실제 집행 건수는 1건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약물치료의 실효성을 입증할 연구 결과가 미흡해 법원이 집행에 소극적이라고 지적한다.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약물치료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연구와 조사 결과가 서둘러 뒷받침돼야만 제도를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강제로 남성성을 억제하면 스트레스를 받은 성범죄자가 또 다른 범죄를 일으킬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며 “성폭력 가해자들의 심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뒤 이를 토대로 지속적인 심리치료를 병행해야 근본적 해결이 가능하다”고 조언했다.충격적 사건이 발생하면 백화점식으로 숱한 제도를 도입한 뒤 어느 하나도 제대로 시행하지 않는 당국의 무관심이 어린이 성폭행 사건의 재발을 불러오고 있다는 지적이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16일 경남 통영에서 한아름 양(10)을 성폭행하려 끌고 가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점덕(45)은 기존 아동 강간살해범들과 공통점이 있다. 2008년 안양 초등생 살인사건의 범인 정성현은 780편의 포르노 영화와 미성년자의 누드 사진 441장을 소장한 포르노광이었다. 대낮에 초등학교에 들어가 1학년 여학생을 납치한 뒤 강간 살해한 김수철도 범행 전날 아동 포르노를 52편이나 봤다. 김점덕 역시 집 컴퓨터에 보관 중인 '야동' 70여 편 중 상당수가 아동 포르노인 것으로 23일 확인됐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한 양이 학교까지 태워 달라고 해 트럭에 태웠는데 분홍색 짧은 치마를 입고 있어 성관계를 갖고 싶었다"고 했다. 아동 음란물 탐닉으로 생긴 변태적 욕구가 범행 동기로 작용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 아동 포르노는 범람하지만 처벌은 솜방망이 아동 포르노는 범죄를 유발하는 반사회적 콘텐츠임에도 인터넷을 통해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다. 온라인 웹하드나 자료 공유(P2P) 사이트에 가면 10대 청소년들이 나오는 음란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아동 포르노를 노골적으로 암시하는 '아동' '롤리타' '초딩' 등의 낱말은 금지어로 지정해 놓았지만 누구나 쉽게 편법으로 검색이 가능한 게 현실이다.성인용 PC방에도 아동 음란물을 찾는 40, 50대가 몰린다. 23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한 PC방을 취재팀이 찾았다. 손님들이 원할 경우 각자 밀폐된 방에 들어가 손쉽게 아동 포르노를 시청할 수 있었다. 컴퓨터를 이용해 '로리타 카테고리'에 들어가면 '꼬맹이와의 섹스' '청순중학생 체감기' 등의 제목이 달린 음란물이 다수 올라왔다. 영국 인터넷감시기구인 IWF(Internet Watch Foundation)는 한국을 세계에서 5번째로 아동 음란물이 많이 유통되는 나라로 분류하고 있다. 경찰이 2010년 국내 웹하드 업체 3곳을 음란물 유포 혐의로 수사했을 때도 누리꾼들이 이 업체들에서 아동 음란물을 내려받은 건수가 4만 회에 이르렀다.현행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아동 음란물은 만 19세 미만 청소년이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동영상 또는 사진을 뜻한다. 이 법에 따르면 아동이나 청소년이 나오는 음란물을 제작하거나 수출입한 자에 대해 5년 이상의 징역, 배포하거나 전시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단순 소지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성인 음란물을 배포한 경우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것과 비교해 아동 포르노를 더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하지만 이 처벌 조항이 실제로 적용된 적은 거의 없다. 경찰이 아동 음란물 유포 혐의로 수사에 착수한 건 2010년 파일공유 사이트 6곳을 적발한 게 유일하다. 개인이 아동 포르노를 내려받은 혐의로 처벌받은 사례는 한 건도 없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이원상 연구원은 "살인이나 성폭행 등 강력범을 조사하다 우연히 드러나는 경우는 있지만 아동 포르노를 소지한 사람을 직접 적발하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말했다. ● 미국에선 아동 음란물 내려받기만 해도 무기징역미국은 지난해 11월 아동 포르노를 내려받은 20대 남성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될 정도로 처벌 의지가 강하다. 아동 포르노를 컴퓨터에 내려받기만 해도 통상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있다. 성인 음란물에는 비교적 관대하지만 아동 포르노는 아동 성폭력으로 이어져 치명적인 해악을 끼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알카에다 지도자였던 오사마 빈라덴 사살 이후 그가 차지하고 있던 FBI의 '10대 중대 수배자' 명단에 아동 포르노를 만들어 유포한 전직 교사를 올리기도 했다. 캐나다는 강력한 처벌은 물론이고 아동 음란물 사건 담당 경찰관을 대상으로 두세 달에 한 차례씩 정신과 상담을 받도록 하는 등 불가피하게 아동 포르노를 접하는 직업군까지 철저하게 관리한다. ● 아동 포르노가 아동 성범죄를 불러 아동 성범죄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아동 포르노라는 점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견이 없다. 아동 음란물은 성인 남성이 교복 입은 10대 청소년을 성추행하면 처음엔 여성이 거부하다 나중에는 자발적으로 응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런 콘텐츠에 길들여지면 상대의 고통을 감지하는 공감 능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웅혁 경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아동 음란물 중독자들은 '피해 청소년도 결국엔 성폭행 상황을 즐길 것이고 내심 성관계에 호기심이 많다'는 왜곡된 믿음을 갖는다"고 설명했다.아동 음란물 애호가 중 상당수가 성인과의 관계 맺기에 실패한 사회적 낙오자여서 범죄 유혹에 취약하다는 분석도 있다. 김종갑 건국대 몸문화연구소장은 "아동에게 성적 욕망을 느끼는 성인은 자기 또래의 이성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지 못해 자기방어 능력이 없는 어린이나 노인을 성적 파트너로 여긴다"고 지적했다. 이번에 붙잡힌 김점덕도 2005년 62세 여성을 성폭행하려다 피해자가 반항하자 돌로 내리쳐 부상을 입힌 적이 있다. 성범죄 전력자에 대한 소홀한 사후 관리가 아동 성범죄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김점덕은 강간상해죄로 4년을 복역하고 2009년 5월 출소했지만 신상정보 공개 대상이 아니었다. 성인 상대 성범죄자는 지난해 4월 이후 확정 판결을 받은 자부터, 아동 상대 성범죄자는 2010년 1월 이후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에만 신상을 공개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성범죄 유죄 판결자 가운데 신상정보 공개 대상은 35%에 불과했다.김점덕은 단순 우범자로 분류돼 경찰이 3개월에 한 번씩 동향을 점검해 왔다. 경찰은 범행 이틀 전 김점덕의 동태를 파악하고도 특이점을 찾지 못하고 방치해 성폭력 우범자 관리 시스템이 허술하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

40년간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남편을 살해한 A 씨(65·여)는 항소심에서도 중형을 피하지 못했다. 서울고법은 20일 피고와 원고의 항소를 모두 기각해 A 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2심 재판부 역시 가정폭력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남편이 잠들어 있을 때 살해한 것은 정당방위가 아니라고 판시했다. 상대의 목숨을 빼앗을 만큼 급박한 위협이 없었다는 것이다. 사건이 일어난 지난해 8월 남편은 A 씨에게 “눈을 찔러 소경을 만들까, 배를 난도질할까”라며 부엌칼을 휘둘렀다. A 씨가 애원한 끝에 남편은 방 돗자리 아래에 칼을 넣고 그 위에서 잠들었다. 다리 한쪽을 아내 배 위에 올려놓은 채였다. A 씨는 ‘나가면 죽인다’는 협박을 받은 터라 한동안 가만히 있다 넥타이로 남편의 목을 졸랐다.남편이 칼부림을 멈추고 잠자는 무방비상태였기 때문에 A 씨의 행위는 정당방위가 아닌 명백한 살인이라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정 불안하면 이웃이나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는 등 합법적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는 점도 고려됐다. 하지만 가정폭력 전문가들은 ‘침해의 현재성’이란 정당방위의 일반적 기준을 가정폭력 사건에 그대로 적용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남편이 폭행하는 동안 아내가 물리적 저항을 하는 건 죽을 각오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장기간 학대를 당한 여성은 남편 눈빛 하나에도 과거 폭력의 기억이 되살아나 극도의 공포를 느낀다”며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실제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피해자는 주변의 무관심 속에 외롭게 폭력에 시달려왔기 때문에 ‘사적 구제’가 아니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절박감에 극단적 선택을 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법원은 당장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정당방위가 쉽게 인정되면 범죄자들이 고의로 살인하고도 ‘그러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게 뻔해 어쩔 수 없었다’며 합리화하는 부작용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하지만 이번 재판이 가정폭력 사건의 특수성을 충분히 감안해 이뤄졌는지는 의심스럽다. 1, 2심을 거치면서 A 씨 변호인은 재판부에 가정폭력 전문가가 재판에 참여하도록 여러 번 건의했지만 번번이 기각됐다. A 씨의 딸은 판사와 검사로부터 “왜 아버지의 폭력에 적극 대처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말문이 막혔다고 했다. “아버지의 주먹질이 시작되면 숨죽인 채 맞아야 하고 경찰에 신고했다간 끔찍한 보복을 당하는 게 어릴 때 터득한 이치인데 뭘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요.”신광영 기자 neo@donga.com}

20일 경기 안성시의 한 곰 사육장. 기자가 들어서자 곰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발바닥으로 철창을 두드렸다. 가슴에 흰 줄이 선명한 반달가슴곰이었다. 날카로운 발톱이 철창에 부딪쳐 ‘딱딱’ 소리가 났다. 농장주인 윤모 씨는 “사람이 반가워서 이런다”고 했다. 3.3m²(약 1평) 남짓한 곰 우리는 사방과 천장이 붉은 철창으로 돼 있었다. 방 하나에 한두 마리씩 30여 개의 우리가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그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났다. 성인 남성만 한 곰 두 마리가 앞발을 들고 서로의 얼굴을 후려치고 있었다. 근처에 있던 올 1월생 새끼 곰은 겁에 질려 눈만 껌벅였다. 넓은 곳에서 혼자 사는 야생의 습성 때문에 곰은 좁은 곳에 오래 있으면 쉽게 예민해진다. 한 4년생 곰은 새끼 때 옆방 곰에게 물려 왼쪽 앞다리가 아예 없다. 그 곰은 자꾸 넘어지는데도 절뚝거리며 우리 안을 빙빙 돌았다. 사육장 앞에서는 목줄에 묶인 누런 개 한 마리가 ‘보초’를 서고 있었다. ○ “10년 키운 곰 버릴 수도 없고…”이곳 곰들은 동남아시아에서 팔려 오던 1981년만 해도 주인의 기대주였다. 당시 정부는 국정홍보영화 ‘대한늬우스’를 통해 “곰의 웅담과 가죽 등은 국내 수요가 많고 수입 대체 효과도 있다”며 농가 소득 증대를 위해 곰을 키우라고 권장했다. 하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 윤 씨의 곰 27마리는 오도 가도 못 하는 애물단지가 됐다. 윤 씨가 돈을 벌려면 10년 이상 된 곰을 도축해 웅담을 팔아야 한다. 정부는 야생 곰 평균 수명이 25년임을 고려해 당초 24년이 넘은 곰만 도축을 허락했지만 농가 반발로 2005년 도축 연한을 10년으로 낮췄다. 10년 미만 곰에게서 웅담을 빼거나 도축 곰의 쓸개가 아닌 다른 부위를 팔면 불법이다. 마리당 10g 정도가 나오는 웅담을 얻기 위해 최소 10년을 기르다 보니 한 마리의 웅담 값이 2000만∼3000만 원 선이다. 비싼 데다 동물 복지 논란이 일면서 최근 웅담 수요가 급감했다. 우리 정부가 1993년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가입해 곰을 외국에 팔 수도 없다.판로가 막히면서 윤 씨는 10년 넘은 곰을 최근 4년간 한 마리도 못 잡았다. 전체 27마리 중 10년을 넘긴 곰이 20마리다. 사료비로 하루 8만 원씩, 27마리를 키우는 데 매달 240여 만 원이 필요하다. 벼농사 수입을 대부분 쏟아 붓는다. 윤 씨는 “당장 사육장을 없애고 싶지만 살아 있는 곰을 버릴 수도 없고 10년 넘게 키운 정이 있어 굶겨 죽이지도 못한다”고 했다.국내에서 사육되는 곰은 모두 1000마리. 전국 곰 사육장 50여 곳이 윤 씨와 비슷한 처지다. 수익이 적다 보니 일부에선 산 채로 쓸개즙을 빼내 파는 불법을 저지른다. 시설 투자에도 소홀할 수밖에 없다. 15일 곰 두 마리가 탈출한 경기 용인시의 농장은 철창 문고리가 녹슬어 곰들이 조금만 힘을 줘도 열릴 만큼 노후했다. 같은 종인 지리산 반달가슴곰은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돼 특급 대우를 받지만 이들은 야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외돼 웅담 채취용 ‘마루타’로 산다. ○ “대책 안 나오면 곰 풀겠다”사육 농가들은 정부가 곰 사육을 권장한 책임이 있는 만큼 곰을 모두 사들이라고 요구하고 있다. 일부 농가와 동물단체는 “정부가 곰을 수매한 뒤 10년 이상 된 곰은 안락사시키면 300억 원 정도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환경부는 “사육 곰을 매입하려면 사후 관리 및 처리 비용을 포함할 경우 1000억 원가량이 필요해 예산 확보가 쉽지 않다”며 “국가가 곰을 매입해 죽이면 비난 여론이 일 수 있어 안락사시키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곰은 국내 웅담 수요가 살아나면 예전처럼 도축되고, 정부가 농가 요구대로 수매 후 안락사를 결정해도 죽게 될 운명이다. 철창에 갇힌 사형수 신세와 다를 바 없다. 농가들은 마땅한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정부과천청사 앞에 곰 수백 마리를 풀어 놓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관규 강원대 조경학과 교수는 “정부가 국내 곰 테마파크에 비용을 일부 대 주며 20∼30마리씩 맡기거나 수의대 학술림에 보내 연구용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안성=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신무경 인턴기자 고려대 철학과 4학년 }

지난달 11일 새벽 인천공항고속도로에서 일가족 4명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휴일 야근을 마친 40대 가장이 일터까지 마중 나온 부인과 12세 8세 딸을 태우고 귀가하던 길이었다. 뒤차에 받힌 피해차량은 가드레일과 충돌해 순식간에 전소됐다. 가해 운전자는 면허 취소 수준인 혈중 알코올농도 0.101%의 만취 상태에서 시속 100km 이상으로 달리다 앞차를 들이받았다. 지난해 음주운전 적발 건수는 25만8000여 건에 이른다. 세 번 넘게 걸린 사람은 서울에서만도 지난해 952명이나 된다. 음주운전자 특별사면이 최근 15년간 6차례나 단행될 만큼 음주운전이란 ‘반사회적 선택’에 관대한 사회가 낳은 현주소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최근 음주운전으로 세 번 적발되면 차를 빼앗아 국고에 환수한다는 강경책을 들고 나왔다. 음주운전으로 매년 700∼800명이 숨지는 현실을 고려하면 환영할 만하다. 수백 명의 목숨을 좌우할 중요한 정책인데 내용은 허점투성이라는 게 문제다. 우선 상습 음주운전이란 똑같은 죄를 짓고도 처벌이 제각각이다. 100만 원짜리 중고차 운전자와 1억 원짜리 외제차 운전자는 몰수되는 재산 가치에 100배 차이가 난다. 또 렌트나 리스 차량 등 타인 명의 차는 몰수 대상에서 제외된다. 술에 취해 남의 차를 운전한 죄가 더 가벼울 리 없는데도 말이다. 서울에서 적발되면 꼼짝없이 차량 몰수지만 다른 지역에선 예외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형평성 지적에 대해 “상습 음주운전을 강력 처벌한다는 경각심을 심어주는 데 목표가 있다”며 “비싼 차를 모는 운전자는 그만큼 형편이 넉넉하다고 볼 수 있어 가난한 운전자보다 경제적 불이익을 많이 줘도 문제가 안 된다”는 안이한 반응을 보였다. 음주운전처럼 뿌리 깊은 범죄는 정교한 정책이 아니면 실효성을 기대할 수 없다. 차량 몰수에 대한 합리적 기준이 없는 경찰의 ‘엄포성’ 방침은 법망을 피해온 음주운전자의 비웃음만 살뿐이다. 몰수 차량을 국가가 처분한 뒤 행정비용을 뺀 매각대금을 차 주인에게 돌려주고 그 운전자가 다시는 차를 갖거나 빌릴 수 없게 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만하다. 빌린 차량도 몰수하고 운전자가 차 주인에게 보상하도록 할 수도 있다. 지역 간 형평성 문제를 풀기 위해선 제도 보완 후 전국적으로 시행하면 될 것이다. 아무리 과격한 경고도 현실성이 떨어지면 아무도 겁먹지 않는다. 악덕 운전자들이 두려워하는 건 한 번 시작하면 멈추지 않을 각오로 대책에 빈틈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신광영 사회부 기자 neo@donga.com}

검찰의 비협조로 경찰이 수사하지 못하고 내사종결한 박종기 전 태백시장 뇌물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1년 뒤 관련 혐의를 확인해 구속기소하면서 수사 외압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은 당초 박 전 시장의 혐의 확인을 위해 검찰에 압수수색을 건의했지만 반려됐다. 이 과정에서 검찰 고위 간부의 수사 무마 외압이 있었다고 경찰은 주장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해당 간부가 김병화 대법관 후보자라고 지목했다. 하지만 검찰은 “박 전 시장을 구속 기소한 것은 추가 증거가 나왔기 때문”이라며 “경찰 내사 과정에서 검사의 부당한 지휘는 없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11일 경찰청에 따르면 강원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2010년 박 전 시장이 시장으로 재직하던 2008년 6월 6급 직원 A 씨(여)에게서 승진청탁과 함께 1000만 원을, 건설업자에게 인허가 대가로 3000만 원을 각각 받았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내사에 들어갔다. 경찰은 A 씨 남편에게서 “박 전 시장 부인에게 돈을 줬다”는 진술을 확보한 데 이어 건설업자 명의의 수표 일부가 박 전 시장 계좌로 옮겨간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수상한 자금 흐름이 포착된 만큼 대가성 유무를 입증할 증거를 찾기 위해 소관 검찰인 춘천지검 영월지청에 박 전 시장 자택과 사무실 차량에 대한 압수수색을 두 차례 건의했지만 묵살됐다. 경찰은 추가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고 지난해 4월 이 사건을 내사종결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통합당 최재천 의원은 이날 김 후보자 임명동의 인사청문회에서 “당시 의정부지검장이었던 김 후보자가 박 전 시장 사건에 외압을 행사한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그러나 김 후보자는 “그런 적이 없다”고 답변했다. 김 후보자는 박 전 시장의 핵심 측근인 김진만 전 태백시 부시장과 태백중학교 동창이다. 한편 이날 인사청문회에서는 1400억 원대 불법대출 비리로 구속 기속된 유동천 제일저축은행 회장과 김 후보자 간 유착 의혹이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

“이렇게 안 입으면 일은 안 하고 튀려고만 한다고 소문나요.”(J공단 박모 과장)“무늬 들어간 거 입으면 왠지 프로페셔널해 보이지 않아서요.”(A회계법인 이모 차장)“업무상 미팅이 많아 사람들에게 부담 안 주려면 이게 제일 나아요.”(H해운 심모 대리)10일 낮 12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한 횡단보도 앞에 나란히 선 3명은 모두 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흰색 반팔 드레스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 넥타이는 아무도 하지 않았다. 구두는 모두 검은색. 직장은 제각각이었지만 마치 같은 유니폼을 입은 듯했다. 이들을 포함해 점심식사를 하러 나온 남자 20여 명도 비슷한 차림으로 횡단보도 앞에 도열해 있었다. 2명은 셔츠가 하늘색, 4명은 바지가 남색이었다. 나머지는 몸에 붙는 정도가 약간 다를 뿐 ‘흰색 반팔 상의+검은색 하의’ 공식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 천편일률적인 ‘쿨비즈’ 바람서울시가 최근 에너지 절감을 위해 반바지 착용을 권장하는 등 ‘쿨비즈(Cool-Biz)’ 운동을 시작했다. 일부 기업은 몇 년 전부터 복장 자유화를 도입했다. 하지만 직장 남성의 복장에는 별 변화가 없다는 게 의류업계의 분석이다. 삼성패션연구소가 지난해 제일모직 계열사가 판매한 남성 드레스셔츠의 색상을 분석한 결과 흰색과 파란색이 각각 73.7%와 13.4%를 차지했고 회색 등 기타 색상은 12.9%에 불과했다. 신세계백화점 영등포점 ‘갤럭시’ 매장에서 근무하는 박재상 매니저는 “요즘 쿨비즈란 말이 유행하지만 실제 고객의 소비 패턴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봄과 가을에는 셔츠 위에 다양한 색상의 넥타이를 매고 재킷을 입어 약간의 차별화가 가능하지만 셔츠와 바지만 입는 여름이 되면 출근 패션의 획일성이 더욱 부각된다.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주처럼 청바지에 터틀넥 셔츠를 입거나 말단 직원들이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회의하는 모습은 아직 먼 나라 얘기인 것이다.남성의 옷차림이 정형화돼 있다 보니 의류업체들은 흰색이나 푸른색 셔츠와 검정색 남색 바지 등 ‘기본형 상품’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국내 남성 고객은 여전히 무난하고 남들이 많이 입는 옷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상품 기획을 할 때 기본 스타일의 물량을 70% 이상 준비하고 나머지는 유행을 고려해 색상이나 체크무늬로 차별화한다”고 설명했다.○ ‘교복패션’에 집착하는 이유는?직장 남성들의 천편일률적인 ‘드레스코드’가 깨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나 혼자 튀면 손해 본다’는 내면화된 집단주의를 가장 큰 요인으로 꼽는다. 패션에 무감각했던 기성세대가 만든 무형의 복장 기준에서 일부 직원이 이탈할 경우 다수가 불편해하고 그런 시선이 심적 압박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한림대 사회학과 유팔무 교수는 “다수 안에 묻혀있을 때 안전함을 느끼는 게 한국 조직문화”라며 “개성이 강한 젊은이들도 어렵게 취업하기 때문에 직장 내 복장문화를 ‘2차 사회화’로 여기고 순응한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D건설에 입사한 윤모 씨는 “회사에서 흰색이나 파란색이 아닌 다른 셔츠를 입으면 조직 융화에 악영향을 주는 느낌이 든다”며 “상사가 지나가면서 ‘요즘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고 넌지시 얘기하면 왠지 불성실한 사람으로 비칠까 봐 불안하다”고 털어놨다.자신이 화이트칼라 종사자라는 직업적 특성을 드러내려는 생각도 담겨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연세대 인간행동연구소 이명신 연구원은 “흰 셔츠에 검은 바지를 매치하는 게 사무직 남성의 세련된 옷차림이라는 인식이 오래 지속돼 왔다”며 “그렇게 입어야 괜찮은 직업군에 속한다는 정체성을 확인하게 되는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옷 색깔이 화려하면 전문성이 떨어지고 반바지 등 편한 복장은 업무 긴장도를 떨어뜨린다는 선입견도 무시 못할 요인이다.남들이 많이 입는 옷은 대충 입어도 중간은 간다는 안도감도 남성 직장인의 새로운 시도를 가로막는 요인이다. 여성에 비해 쇼핑에 관심이 적은 대부분의 남성은 몇 벌만 가지고도 한 계절을 보낼 수 있는 옷을 선호한다. 자주 입어도 스스로 질리지 않고 ‘옷을 못 입는다’는 남들의 시선을 피하려면 주변 동료들과 잘 동화될 수 있는 옷을 고르는 게 안전하다는 것이다.중앙대 사회학과 신광영 교수는 “특정 집단이 얼마나 유연하고 개방적인지를 보여주는 복장문화가 획일화되면 사고가 경직되고 집단의 틀에 갇히기 쉽다”며 “혁신을 중요시하는 기업이라면 직원들에게 다양한 옷차림을 장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김종기 인턴기자 서강대 경영학과 4학년 김성모 인턴기자 중앙대 경제학과 4학년 }
경기 평택시에서 미군 헌병의 민간인 불법 연행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우리 경찰의 대응이 적절했는지를 놓고 경찰이 자체 조사에 들어갔다. 9일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이 7일 오후 8시 39분 현장에 도착했을 때 미군 헌병 7명은 양모 씨(35) 등 시민 3명에게 수갑을 채워 연행하려던 참이었다. 경찰이 이들의 신병을 넘겨 달라고 요청했지만 미군은 공무집행 중이라며 거부했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은 미군이 안전에 위협을 느낄 경우 한국 민간인을 연행할 수 있지만 한국 경찰관이 현장에 도착하는 즉시 인계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 헌병이 합당한 이유 없이 경찰의 인계 요구를 거부하거나 한국 민간인에게 수갑을 채우면 형법상 불법 체포죄로 처벌할 수도 있다. 미군의 인계 거부 자체가 SOFA 위반에 해당하지만 경찰은 10분 넘게 구두로 인계 요청만 반복했다. 결국 미군은 연행자들을 미군 부대 방향으로 150m가량 끌고 간 뒤 경찰에 인계했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한 지 22분 만인 오후 9시 1분이었다. 경찰은 “당시 시민 30여 명이 현장을 둘러싸고 욕설을 하는 상황이어서 미군 헌병이 위축돼 있었다”며 “수갑을 바로 풀어 주면 시민과 미군이 충돌할 수 있어 우리 측 제안에 따라 장소를 옮긴 것”이라고 설명했다.경찰은 미 헌병이 직권을 남용해 시민을 함부로 체포했다고 보고 형법상 불법 체포죄(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평택=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
정부 허가 없이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노수희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이 7일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노 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에서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노 씨는 3월 김정일 추모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무단 방북했다. 석 달가량 북한에 머무르며 김정일을 찬양하는 등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다. 노 씨는 경찰 조사에서 북한에서의 일부 행적은 시인했지만 구체적인 친북행위에 대해서는 답변을 회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노 씨의 방북을 도운 혐의로 범민련 간부 원모 씨도 같은 날 구속했다. 경찰은 노 씨의 방북에 범민련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

국내 유일의 여자교도소인 청주여자교도소엔 164명의 여성이 살인 혐의로 수감돼 있다. 그 가운데 무려 81%인 133명(2006년 기준)은 남편을 죽인 수감자다. 이들은 대부분 남편 살해 이전엔 형사입건 한 번 된 적 없는 평범한 시민이었다. 경기대 이수정 교수의 조사 결과 그들 가운데 82.9%가 남편한테 학대를 당했고 이 중 44.5%는 ‘안 맞고 살기 위해’ 남편을 살해했다.가정폭력이 심했다고 해도 남편을 살해한 여성에게 정당방위가 인정된 적은 없다. 당장 생명에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이뤄진 반격이 아니었던 탓이다. 남편 눈빛 하나에 숨을 죽이곤 했던 아내들은 남편이 칼을 내려놓거나 잠들었을 때 비로소 ‘용기’를 내고 최후의 수단을 택했다.아내가 남편을 죽이면 살인이지만 남편이 아내를 죽이면 과실치사로 간주될 때가 많다. ‘평소 때리던 수준으로 때렸을 뿐 죽이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남편의 주장은 대부분 받아들여진다. 반면에 아내는 살해할 마음을 먹고 실행에 옮긴 ‘확신범’의 범주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상습적 구타 끝에 아내를 살해한 남성은 3년 이하 징역이나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범행한 여성은 5년∼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이런 부조리를 막아야 할 공권력은 무능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 여성의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출동하던 경찰이 가해 남성에게 전화를 걸어 ‘신고한 적 없다’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피해여성이 피를 흘리고 있는데도 남편을 처벌해 달라고 하지 않으면 ‘별수 없다’며 돌아서는 경찰관도 있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합법적으로는 ‘지옥’에서 탈출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져 있다. 경찰을 부른 후엔 남편의 보복 폭행이 이어지고 학대의 기술이 더 교묘해진다는 게 그들이 터득한 ‘신고의 법칙’이다. 좌절을 반복하다 그들은 ‘죽느냐 죽이느냐’의 갈림길에 선다.미국에선 ‘가정폭력 피해여성은 남편의 처벌을 반대한다’는 전제 위에 정책을 만든다. 출동한 경찰관은 도착 즉시 남편과 아내를 완전히 분리한 뒤 피해를 조사한다. 남편을 체포하거나 접근금지명령을 내릴 때도 아내의 동의 여부는 따지지 않는다. 검사는 아내의 비협조로 남편의 유죄를 입증하기 어려우면 ‘기소를 안 하는 대신 접근금지명령을 수락하라’는 조건으로 남편과 플리바기닝(유죄협상제)을 해 어떻게든 피해자를 보호한다.가정폭력은 모든 폭력의 시작이다. 얼마 전 서울 신촌에서 대학생을 살해한 10대들 역시 아버지한테 오래 학대를 받아온 자녀들이었다. 가정폭력을 가볍게 여기는 사회에서 가정은 폭력을 잉태하는 공간이 될 수밖에 없다.신광영 사회부 기자 neo@donga.com}

살인 강간 등 긴급 신고가 들어왔을 때 경찰관이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가 현장을 확인할 수 있도록 ‘긴급출입권’이 신설된다. 경찰관이 출입문을 뜯는 등 가택수색 과정에서 생긴 손실을 정부가 보상하는 규정도 생긴다. 주거침입과 기물파손 논란을 우려해 경찰이 긴급신고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다. 4월 발생한 수원 20대 여성 피살 사건이 이번 개선조치의 직접적 계기가 됐다. 경찰청은 1일 이 같은 내용의 ‘경찰관 직무집행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9월 정기국회에 정부 입법 형태로 상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긴급출입권’은 강력사건 신고가 들어왔을 때 의심이 가는 주택에 강제로 출입해 현장에 있는 사람이나 상황을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다. 수원 사건 당시 경찰은 범인 오원춘의 옆집을 수상하게 보고 탐문하려 했지만 집주인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1시간 반가량을 허비했다. 이튿날 발생한 평택 여대생 성폭행 사건에서도 경찰은 신고 여성의 위치를 추적해 94가구를 특정하고 탐문수색을 했는데 인기척이 없어 내부를 확인하지 않은 12가구 중 한 곳에서 범행이 이뤄졌다.경찰관계자는 “사생활 침해나 야간주거침입을 이유로 경찰의 수색 요구를 거부하면 더이상 경찰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112 위치추적은 수십∼수백 가구 범위로만 위치를 압축할 수 있어 정밀한 가택수색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긴급출입권’을 행사한 이후 소속 경찰관서장에게 지체 없이 보고해야 하는 의무를 넣어 사후 검증 절차도 강화했다. 경찰은 또 적법하게 직무를 집행하다 발생한 물적 인적 피해를 정부가 보상한다는 내용도 개정안에 포함시켰다. 현재는 문을 뜯고 들어갔다가 허탕일 경우 경찰관 개인이 보상해야 해 적극적인 가택수색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적돼왔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범죄 피의자를 유치장이나 구치소로 옮기는 호송 인치 문제로 검찰과 경찰이 다시 갈등을 빚고 있다. 국무총리실은 이달까지 두 기관이 호송 인치 관련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라고 권고했지만 29일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경찰은 올해 초 이 MOU가 체결되지 않으면 다음 달부터 검찰 사건에 대한 호송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밝혀 피의자 호송대란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경찰은 이날 검찰과의 협상 시한을 잠정 연기하고 당분간 검찰 사건 피의자 호송 인치를 현행대로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호송 인치는 체포한 피의자를 재판기간에 수감하는 구치소로 보내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그동안 이 업무를 경찰이 전담해왔다. 하지만 앞으론 검찰 사건 피의자에 대해선 검찰이 독자적으로 호송 업무를 해야 한다는 게 경찰 측 주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의 신병을 단순히 옮기는 행위는 수사가 아닌 행정지원에 속하기 때문에 검사의 수사지휘 대상이 아니다”라며 “개정 형사소송법과 대통령령에도 호송지휘 관련 규정이 없어 검사가 경찰에 호송을 요구하는 건 법적 근거가 없는 불합리한 관행”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호송 인치가 범인 확보나 증거 보전을 위한 행위로 수사에 해당하는 만큼 지휘 대상에 포함된다고 본다. 호송지휘가 수사지휘의 일환임을 인정한 법원 판례도 있다. 하지만 경찰은 수사 및 수사와 관련된 행정업무까지 검사에게 복종하도록 규정한 검찰청법 제53조가 폐지돼 기존 판례는 변경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한다. 대통령령인 호송규칙 2조에 대한 해석도 엇갈린다. 검찰은 ‘교도소와 교도소 사이의 호송은 교도관이 행하며 그 밖의 호송은 경찰관이 행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호송은 경찰업무라고 주장한다. 반면 이 조항에 나온 ‘경찰관’에는 검찰청 소속 일반사법경찰관리(검찰수사관)도 포함된다는 게 경찰 측 시각이다. 실제로 출입국 관리 세관 등 특별사법경찰관리는 자체적으로 호송 업무를 하고 있다. 검찰은 무술 능력을 갖춘 호송 인력이 부족하고 호송 차량 등 장비 관련 예산이 확보돼 있지 않은 점도 호송 인치를 맡기 어려운 이유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경찰 역시 호송을 위한 인력과 예산이 별도로 편성돼 있지 않고 수사 관련 예산과 장비를 대신 투입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검찰 수사 인력은 경찰의 3분의 1 수준이고 1인당 수사예산도 경찰보다 2배 많으면서도 처리하는 사건은 경찰보다 18배나 적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는 “만약 경찰이 업무 부담이 커서 피의자 호송 인치를 중단해야 한다면 호송 인치를 담당하는 검찰 수사관이 무기를 소지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고 검찰 인력을 증원하는 방안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엄마는 감옥에서 더 평온해 보였다. 연녹색 수의(囚衣)를 입고 오늘도 ‘괜찮다’는 말만 계속했다. “밥은 먹을 만해?” “그럼, 잘 먹지.” 김경숙(가명·64) 씨가 하얗게 센 머리를 긁적였다. 손등의 검버섯이 더 짙어져 있었다. 수감된 지 이제 9개월. 면회 때마다 반복되는 엄마의 ‘괜찮은 척’에 딸 은희(가명) 씨는 화가 치민다. 그는 ‘아버지가 엄마를 죽일지 모른다’는 걱정을 놓은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구치소에 갇히는 상상을 수없이 했는데 창 너머에 수의를 입은 사람은 엄마다. 김 씨가 딸을 다독인다. “정말 괜찮아. 여긴 안전하잖아.”》○ 엄마의 선택지난해 8월 그날도 남편 정재만(가명·68) 씨는 싱크대 서랍을 열었다. 그러곤 25cm 길이의 식칼을 빼들었다. 집 안 청소를 몇 시간째 하는데 도와주지 않는다고 부인이 불평을 한 직후였다. 김 씨는 집안 곳곳으로 도망치다 안방 장롱 앞에서 남편이 든 칼과 맞닥뜨렸다. 정 씨는 발로 부인의 무릎을 차 주저앉혔다. 칼끝은 김 씨 눈앞에 와 있었다.“눈을 찔러 소경을 만들까, 배때기에 난도질을 할까.” 김 씨는 바닥에 누워 사정했다. “나 이빨 나가도, 연골 찢어져도 절대 신고 안 할게. 제발 살려줘.” 남편은 몇 분간 칼로 찌르는 시늉을 하다 서서히 지치는 듯했다. “나가면 죽여 버린다.” 남편은 방바닥에 누우며 다리를 김 씨 허벅지에 올려놓았다. 칼은 바로 꺼낼 수 있도록 칼자루가 보이게 장판 안에 넣었다.얼마 뒤 남편은 잠들었다. 칼로 찌른다는 말은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다. 김 씨의 손가락과 왼팔 가슴 등에는 칼에 찔린 상처가 여럿 있었다. 김 씨는 자포자기 상태로 한동안 멍하니 있다 뭔가를 보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대청소를 하느라 열어놓은 장롱에 넥타이 3개가 있었다. 김 씨는 숨을 멈춘 채 팔을 뻗어 그중 한 개를 빼냈다.○ 아버지의 발소리아버지는 유명 공기업에 다녔다. 은희 씨는 아버지가 출근한 직후 1시간이 가장 좋았다. 하루 중 긴장이 풀리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점심부턴 마음이 무거워지고 저녁이 되면 집 주변 발소리에 귀가 쏠렸다. 아버지는 술을 싫어해 대부분 맑은 정신으로 귀가했다. 그의 구두 소리는 점점 커지다 문 앞에서 ‘딱’ 소리를 내며 멎었다. 열쇠를 찔러 넣는 ‘드르륵’ 소리는 은희 씨의 심장을 관통했다.가족들은 함께 식사를 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식사를 하면 밥상이 뒤집히는 일이 많았다. 누군가가 젓가락질을 서툴게 하거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무심코 얘기하다 기습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이었다. 아버지는 ‘애들 교육을 왜 이 따위로 시키느냐’며 의자나 혁대로 엄마를 때렸다. 선인장 화분을 던져 엄마 얼굴에 가시가 수북이 박히기도 했다. 집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상 하나하나가 아버지에겐 폭행의 핑계였다. 은희 씨는 초등학교 때 쓴 일기에 “아빠가 한 달에 한 번만 때렸으면 좋겠다”고 소원을 빌었다. 아버지가 엄마를 때리는 이유가 늘 궁금했지만 어느 순간부턴 주먹질이 빨리 끝나기만 바랄 뿐이었다.가족들은 정 씨가 차라리 술자리를 즐기길 간절히 원했다. 집에 늦게 들어오면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술에 취했을 때만 폭력적이 된다면 언제 방어가 필요할지 예측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폭력은 언제나 느닷없었다. 연탄을 옮기며 달궈진 집게로 허벅지를 찌를 듯 휘둘렀고 펜치로 생니를 뽑았다. 방문을 잠그고 숨으면 손도끼로 문고리를 내려치고 들어왔다. 성한 문이 없어 언제부턴가 숨을 곳이 없었다. 엄마는 딸들이 집에 있을 땐 아버지 손을 잡고 안방에 들어갔다. 그 안에선 ‘퍽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헉헉’ 하며 신음을 삭이는 소리가 났다. 아버지가 나오면 얼마 뒤 엄마가 피 묻은 수건을 들고 나왔다. 엄마는 그때마다 “이제 괜찮으니까 공부해”라고 했다.은희 씨는 부모가 욕실에서 반나체로 있는 장면을 종종 목격했다. 엄마에겐 가장 몸서리쳐지는 시간이었다. 식당일을 하는 김 씨가 귀가 예정시간을 넘겨 집에 오면 남편은 “어떤 놈이랑 있다가 왔느냐”며 표백제로 하체를 씻게 했다. 기계를 잘 다뤘던 남편은 집 전화에 도청장치를 설치해 통화 내용을 수시로 엿들었다.○ 반향 없는 SOS“경찰입니다. 말씀하세요.” “아빠가 엄마를 때려요.” “어떻게 때리니?” “엄마를 칼로 찌르려고 해요.” “그래, 경찰 아저씨 보내 줄게.” “엄마 얼굴에 피나요. 살려 주세요.”은희 씨가 경찰에 처음 신고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다. 엄마에게 칼을 휘두르는 아버지의 팔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 그 손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30분쯤 뒤 도착한 경찰은 초인종을 눌렀다. 아버지가 인터폰 수화기를 들었다. “네? 부부싸움이라뇨. 지금 집에 혼자 있어요. 여자애요? 우리 집에 딸이 없는데….” 인터폰 화면이 꺼지자 은희 씨의 반바지가 소변으로 젖기 시작했다.몇 년 뒤 은희 씨는 다시 용기를 냈다. 그날 엄마는 안방에서 생니를 뽑히기 직전 욕실로 도망을 쳤다. 아버지는 펜치를 손에 쥐고 욕실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경찰에게 이번엔 집에 꼭 들어와 달라고 했다. 경찰관은 초인종을 누르는 대신 현관문을 두드렸다. 아버지는 욕실 문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중간에 나오면 알지.” 아버지는 지갑을 꺼내 쥔 채 현관문을 열었다.“추운데 고생이 많으시죠?” 경찰관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애들 교육 문제로 아내와 언성이 좀 높아졌습니다. 제가 잘 타이를게요.” 경찰관은 현관문 앞에 선 채 집 안을 둘러봤다. 아버지는 경찰관을 집 밖으로 잡아끌더니 지갑 속 사원증을 꺼내보였다. “내가 이 회사 차장으로 있습니다. 내 친구가 지방의원이고….” 경찰관은 몇 마디를 더 나누더니 거수경례를 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이때 은희 씨가 맨발로 달려 나가 경찰관의 허리춤을 붙들었다.“신고는 제가 했는데 왜 저한테는 아무것도 안 물어보세요. 아빠가 엄마를 때렸다고요.” 경찰관은 발길을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가 점잖으신 분 같은데 좀 더 지켜보자. 당장 칼부림 난 것도 아닌데 우리가 남의 집안일에 끼어들기도 그렇고….”‘쾅 쾅 쾅.’ 세 번째 신고를 받고 온 경찰이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예사롭지 않았다. “문 빨리 여세요.” 그날 아버지는 컴퓨터 책상을 고치다 대형 드라이버로 엄마 머리를 내리쳤다. 거실 바닥에 피가 뚝뚝 떨어져 있었다. 아버지도 오늘은 어찌하지 못하리라. 은희 씨는 기대했다. 그런데 그때 엄마가 넘어진 의자를 일으켜 세우고 물걸레로 핏자국을 닦기 시작했다.은희 씨는 황급히 뛰어나가 현관문을 열었다. 아버지는 평소처럼 경찰관에게 깍듯이 인사한 뒤 나가서 얘기하자며 어깨를 감쌌다. 경찰은 “가만히 계세요”라며 뿌리쳤다. 경찰은 머리에 피딱지가 앉은 엄마를 보며 자초지종을 물었다. 경찰 옆에 서 있던 아버지가 엄마의 눈을 노려봤다.“괜찮은데….” 엄마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줌마 정말 괜찮아요?”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은희 씨가 가슴을 치며 끼어들었다. “아저씨 지금 가면 우리 엄마 정말 죽어요.” 경찰관은 한숨을 쉬다 “잘 화해하라”며 돌아갔다. 엄마는 그날 처음으로 은희 씨 앞에서 눈물을 쏟았다. “나 이러고 사는 거 너무 치욕스러워서 남한테 알리고 싶지 않아. 그리고 네 아빠, 너 결혼식장 들어갈 때 네 손 잡아줄 사람이잖아. 나중에 늙으면 못 때릴 거야.” 엄마가 아버지를 떠나지 못하는 건 ‘도망가면 지구 끝까지 쫓아와 죽일 것’이란 공포 때문만은 아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저항김 씨가 자신에게 다리를 올린 채 잠든 남편의 얼굴을 봤을 때 그간 폭력의 통증들이 생생히 되살아났다. 남편이 눈을 떴을 때 시작될 고통을 떠올리니 넥타이를 쥔 손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김 씨는 넥타이로 원 모양 매듭을 만든 뒤 남편 목에 걸고 잡아당겼다. 남편이 화들짝 놀라 깨 몸을 일으키자 김 씨는 남편의 등 쪽으로 몸을 피해 뒤에서 목을 졸랐다. 김 씨는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수박색 어둠이 깔린 하늘에 형광색 직선이 여러 개 그어지는 환영을 보았다.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새들이 지저귀는 환청까지 들리며 몸에는 힘이 솟구쳤다.부모와 따로 사는 은희 씨는 이튿날 경찰서에서 온 전화에 잠에서 깼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경찰은 잠시 머뭇했다. “어머니가 용의자로 잡혀 있습니다.”딱 1년 전인 2010년 8월, 은희 씨는 국민권익위원회 홈페이지 신문고에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40년간 아버지의 폭행으로 무릎 연골이 찢어져 걸을 때마다 통증을 느끼고 이가 부서져 음식을 갈아서 드시면서도 자식들 상처받을까 봐 숨기시는 우리 엄마를 구해 주세요. 법은 예방과 보호가 아닌 판결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인가요.” 민원담당자는 무료 상담소에 문의하라며 전화번호 몇 개를 적은 답변을 보냈다. 은희 씨가 이미 여러 번 상담했던 곳이었다.1심 재판이 열린 2월 어느 날, 증인석에 선 은희 씨에게 검사가 물었다. “학벌도 좋고 유학까지 다녀온 성인인데 이런 일이 벌어질 때까지 그동안 뭘 하셨습니까.” 은희 씨는 오래전 엄마가 출동한 경찰관 앞에서 ‘괜찮다’고 말할 때 느꼈던 무력감이 떠올라 몸을 떨었다.“이 지경까지 견뎌낸 게 나의 죄입니다. 언젠가 벗어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가진 게 죄일 테죠.” 은희 씨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이 말을 내뱉지 못했다. 피고인 최후진술을 하던 엄마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제가 저지른 끔찍한 잘못 사죄합니다. 스물두 살에 시집와 예순넷. 그래도 이젠 휴대전화로 누구와도 통화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어 마음이 가볍습니다.”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저항은 살인으로 끝이 났다. 법원은 김 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남편이 칼을 휘두르다 잠든 상태에서 범행이 이뤄졌기 때문에 ‘현재의 부당한 침해’에 해당하지 않아 정당방위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남편이 흉기를 휘두르는 동안 반격을 했어야 정당방위가 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서울고등법원은 다음 달 김 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를 한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경기지방경찰청은 ‘수원 112신고 묵살 사건’을 계기로 112 신고자에게 출동하면서 전화나 문자로 알려주는 사전통보제를 폐지키로 했다고 26일 밝혔다. 사전통보제는 경찰 출동 지연이나 출동하는 사이 신고자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현장상황에 대한 사전정보를 취득하기 위해 2010년 3월 경기경찰청이 자체 특수시책으로 도입했다. 다만 납치 감금 범행진행 중인 사안 등은 제외했다. 전화를 걸었다가 오히려 신고자의 피해가 커지거나 경찰 출동 사실이 범인에게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수원중부서 경찰관들이 피해여성의 112신고를 받고 출동하면서 전화를 걸었다가 폭력 가해자의 말만 믿고 현장 확인을 하지 않아 물의를 빚자 아예 제도 자체를 폐기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물론 이번 112신고 묵살 사건은 가정 내 폭력 사건으로 범행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사전통보제 대상이 아니었는데도 경찰관이 부적절한 대응을 한 것이었다. 경기청 관계자는 “신고자에 대한 서비스 차원에서 사전통보제를 도입했던 것인데 긍정적 효과도 있었지만 만에 하나 이번 같은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도 있을 것 같아 이같이 결정했다”며 “이중 통화와 신고자가 반복 설명해야 하는 번거로움 등도 폐지의 원인”이라고 밝혔다. 다만 신고자 위치 파악과 심리적 안정이 필요할 때는 해당 경찰관이 자체 판단해 예외적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했다. 경기청은 경찰관의 치안만족도 분야 성과 평가 항목에서도 사전통보제를 제외하기로 했다. 또 112 지령을 내릴 때 여성, 아동,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가 신고했을 때는 이를 반드시 출동 경찰관들에게 알리도록 의무화할 방침이다. 경찰청도 112신고 접수 내용이 일선 출동 경찰관들에게 곧바로 전해질 수 있도록 신고 내용을 녹음파일로 만들어 순찰차로 바로 보내는 시스템을 올해 말까지 구축해 시행하기로 했다. 수원=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해외 30개국 경찰관들이 한국의 사이버 수사 기법을 배우러 한국에 온다. 경찰청은 25∼27일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인터폴 등 국제기구와 30개국 대표단 등 500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가 사이버안보 위협과 대응전략’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한다고 24일 밝혔다. 이날 행사는 세계 각국 경찰관들이 모여 한국의 사이버 수사 노하우와 각국의 성공사례를 공유하는 자리로 한국 경찰이 인터폴에 제안해 성사됐다.}

경찰은 서울의 공원 50곳을 범죄 가능성이 높은 위험 공원으로 분류하고 있다. 시내 공원 2143곳의 운영실태를 조사한 뒤 위험도 평가를 한 결과다. 서울지방경찰청은 폐쇄회로(CC)TV 등 방범시설 설치 여부와 주변 환경, 주민 이용 정도를 기준으로 취약 공원 226곳을 고른 뒤 이 중 범죄 신고가 많은 50곳을 특별관리 대상으로 정했다.○ 어린이공원이 범죄에 가장 취약 서울 용산구 새꿈공원과 중랑구 봉화공원, 중구 서소문공원 등은 노숙인들이 공원에 상주하며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사례가 많아 위험 공원에 포함됐다. 매달 112 신고 건수가 50건까지 접수될 정도다. 경찰은 서울 시내 공원 가운데 CCTV가 1개 이상 설치된 곳이 3곳 중 1곳꼴인 715개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관리사무소가 있는 공원도 223개로 10%에 그쳤다. 또 취약 공원 226곳 중 어린이공원이 118곳(52%)으로 근린공원(23%)이나 마을공원(9%)보다 월등히 많았다. 자치구별로는 강남구 서초구 방배구는 취약 공원이 1곳에 불과했다. 생활수준이 높은 지역의 공원이 대체로 안전한 것이다. 반면 송파구(33곳) 강서구(28곳) 중랑구(16곳)에는 취약 공원이 밀집해 있었다. ○ 공원만 늘리고 관리엔 소홀 서울 공원의 상당수가 우범지대로 전락한 데에는 서울시가 무분별하게 공원 수만 늘리고 관리에 소홀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2006년 서울시장에 취임한 오세훈 시장이 ‘디자인 서울’을 정책적으로 추진하면서 서울의 공원은 급속도로 늘었다. 2005년 1812곳이던 공원은 이후 44%가 증가해 지난해 2605곳으로 늘었다. 문제는 관리 부실. 서울시나 자치구별로 공원 관리에 대한 통일된 규정이 아직 없는 상태다. 가로등이나 CCTV 같은 방범시설 설치에 대한 별도의 지침이 없고 공원 규모나 특성에 따른 인력 배치 규정도 없다. 공원 내 CCTV 설치 규정이 없어 자치구의 재정자립도나 민원 유무에 따라 설치 대수가 달라지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중구는 8개뿐이지만 관악구는 107개, 서대문구는 154개나 된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

“우리 동네에 공원이 하나 있는데 밤에 거기서 죽이면 아무도 몰라. 시체는 공원 숲에 버리면 아침에 청소 아줌마가 치워줄 거야.”4월 30일 서울 신촌 바람산공원에서 대학생 김모 씨(20)를 살해한 이모 군(16)은 범행 전 공범 윤모 군(19)에게 카카오톡으로 이런 문자를 보냈다. 이 군은 경찰 조사에서 “집 근처 바람산공원에 자주 갔는데 밤이 되면 사람도 없고 폐쇄회로(CC)TV도 없는 것 같아 김 씨를 공원으로 유인했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원룸 주택가 끝 고지대에 위치한 이 공원은 밤이 되면 어둠에 잠겨 주민들이 찾지 않는 곳이다. 이들이 김 씨를 살해한 곳은 공원 초입 가로등 아래였다. 아직 암흑이 찾아오지 않은 오후 8시 15분경 흉기를 휘둘렀다. 이 군은 “초저녁만 돼도 사람이 안 지나다녀 밝은 데서 죽여도 안 들킬 것 같았다”고 했다. 어두워지면 인적이 끊기는 공원의 으슥함이 이 군에게 살인의 ‘영감’을 준 셈이다.○ 시민 안식처가 강력범죄 온상으로시민의 안전한 휴식처가 돼야 할 도심 공원이 강력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 공원이 방치돼 발길이 끊기면 누구의 감시도 받지 않는 최적의 범행 장소가 되는 것이다. 무더위를 피해 공원을 찾고 싶은 시민들은 혹시나 범죄 피해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발길을 돌리고 있다. 외국에선 공원이 우범지대가 되지 않도록 공원 내 수목의 조밀도와 조명, CCTV 배치 기준 등을 상세히 규정하는데 우리는 무분별하게 공원만 늘려왔다는 지적도 많다. 전문가들은 “이대로 가면 동네 공원들이 범죄의 섬으로 고립될 것”이라고 경고한다.서울지방경찰청은 조만간 공원 치안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정하고 ‘공원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할 계획이다. 공원이 살인이나 강간, 시신 암매장 장소로 이용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14일 오전 1시 전북 전주시 평화생태공원에서는 외삼촌이 여섯 살 된 조카딸을 벤치에 눕혀놓고 성폭행을 한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지난달 28일에는 50대 남성이 내연녀를 목 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부산 맥도생태공원으로 옮겨 암매장한 사건이 있었다. 서울 한강 주변 공원들은 자살 카페 회원들이 집단 자살을 시도하기 전 회합을 갖는 ‘죽음의 광장’으로 활용된다.2009년부터 지난달까지 서울시내 공원 2143곳에서 발생한 살인 강간 강도 절도 폭력 마약 방화 등 7대 범죄 발생 건수는 3618건에 이른다. 서울에서만 하루 3건의 범죄가 공원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범죄의 절반은 밤에 일어나지만 낮 12시∼오후 8시에 발생한 범죄도 36.8%를 차지할 만큼 공원은 대낮에도 치안의 사각지대다.○ 공원의 무법자들 만나 보니동아일보 취재팀이 찾은 서울의 공원들은 노숙인 집단 거주지로 변질돼 있었다. 14일 오후 10시경 서울 중랑구 봉화공원에는 노숙인 11명이 공원 입구에 돗자리를 깔고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오른팔에 잉어 문신을 한 노숙인 박모 씨(61)는 “여기서 노숙인 13명이 객사했어. 다 술 마시고 자다 죽었지. 여긴 원혼이 깃든 곳이랄까”라고 했다. 그는 운동기구 주변에 옷가지가 든 박스를 쌓아두고 그 옆에 취침용 리어카까지 설치하는 등 아예 ‘살림’을 차렸다. 그는 “복지관에는 계급도 있고 끼워주지도 않아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고 했다.서울 중구 서소문공원은 주변에 무료 급식시설들이 있어 여름이 되면 서울역 노숙인들의 ‘성지’로 변한다. 15일 오후 기자가 이곳을 찾았을 때는 노숙인 김모 씨(52)와 30대 여성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김 씨가 산책을 나온 이 여성에게 신발을 던진 것. 김 씨는 운동을 하던 노인들에게도 “얼마나 오래 살려고 운동을 하느냐”며 시비를 걸었다.14일 저녁 서울 도봉구 생잇돌공원에는 교복 차림의 청소년 8명이 모여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남학생 3명이 벤치에 앉아 있는 일행 한 명의 뒤통수와 뺨을 여러 번 때렸다. 기자가 ‘무슨 일이냐’고 말을 걸자 “좋은 말로 할 때 가던 길 가라”며 노려봤다. 15일 서울 금천구 쌈지어린이공원에서는 주민 윤모 씨(37)가 담배를 피우는 고교생 4명을 나무라다 싸움이 났다. 윤 씨가 집에서 몽둥이를 들고 나오자 고교생들은 욕설을 하며 달아났다. 윤 씨는 “그놈들이 가로등에 돌을 던져 계속 깨뜨리는 바람에 밤에는 아예 불을 못 켜 더 위험해졌다”며 “매일같이 몰려와 오토바이로 굉음을 내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공원에서 만난 고교생 성모 군(17)은 “PC방이나 노래방을 가면 돈 내라고 하는데 여긴 공짜고 아무도 간섭을 안 해 최고의 아지트”라고 말했다.동네 술판으로 변질된 공원도 많았다. 15일 저녁 서울 용산구 새꿈어린이공원은 입구 30m 전부터 음식물 썩는 냄새와 술 냄새가 났다. 곳곳에서 구린내와 지린내가 진동했다. 주민들은 이곳을 ‘술 공원’으로 불렀다. 어린이용 미끄럼틀 앞에선 50대 남성 6명이 팩소주를 놓고 담배를 피우며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어린이 두 명이 그네를 타고 있는데 주민 이모 씨(49)가 그 옆 미끄럼틀에서 비틀거리며 소변을 봤다. 그는 “여기(공원)는 우리 집이다. 집에서 술 마시는데 이유가 있느냐”며 횡설수설했다.○ 각목 들고 장사하는 공원 주변 상인들공원 주변 상인들은 수시로 몰려드는 무법자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봉화공원 앞에서 편의점을 하는 김모 씨는 계산대 뒤에 각목을 세워둔 채 장사를 했다. 공원에서 술을 마시는 노숙인들이 깨진 술병을 휘두르며 돈이나 술을 달라고 위협하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김 씨는 “노숙인도 손님인데 경찰에 신고하면 손님이 떨어질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방어 차원에서 각목을 옆에 끼고 산다”고 했다. 새꿈공원 앞 슈퍼마켓은 외상으로 술을 달라고 떼를 쓰는 사람들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었다. 주인이 외상장부를 넘겨 보며 취객들과 말씨름을 하는 사이 한 50대 남성은 냉장고에서 맥주 2병을 꺼내 달아났다.새꿈공원 옆에서 음식점을 하는 임모 씨는 “인근에 사는 쪽방촌 사람들이 공중화장실이 조금 멀다는 이유로 공원 바닥에 변을 보는데 가게 쪽으로 오는 손님들이 냄새에 기겁을 하고 발길을 돌린다”며 “냄새가 심해 ‘저리 좀 가라’고 했더니 ‘불을 질러버리겠다’고 협박을 하더라”라고 말했다. 서울 은평구 물빛공원 앞 포장마차는 공원 내 노숙인과 취객이 막무가내로 음식을 집어 간다. 주인 우모 씨는 “달라는 음식을 안 주면 손님들 안주 접시를 뒤엎으며 행패를 부려 할 수 없이 몇 개 쥐여준 뒤 보낸다”고 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