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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의 의미를 강경하게 조정하고 북한이 폐기해야 하는 무기의 범위를 확대하더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정의에 대해서도 정밀한 선 긋기에 나섰다. 5일(현지 시간) 미 국무부는 미국의소리(VOA)에 북한이 시험발사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ICBM에는 인공위성도 포함됨을 분명히 밝혔다. VOA는 국무부 대변인실이 “북한이 지난달 말 발표한 ICBM 시험발사 중단에 ‘위성 발사 중단 약속’도 담긴 것으로 이해하느냐”는 VOA의 질의에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어떤 위성 발사도 유엔 안보리 결의에 명백히 위반된다”고 답변했다고 VOA는 보도했다.○ 美 진보-보수 모두, “북한 불신하며 검증해야” 트럼프 행정부는 비핵화 표를 ‘완전한 비핵화(CVID)’에서 ‘영구적 비핵화(PVID)’로 강화하고, 핵무기와 생화학무기를 포함하는 대량살상무기(WMD)의 총체적 폐기를 주장하더니 ‘평화적 우주개발’을 명분으로 한 ICBM 시험발사도 불가하다는 입장도 분명히 한 셈이다. 북한은 2012년 북-미 간 2·29 합의에서 식량 지원을 대가로 “장거리미사일 발사와 우라늄 농축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로부터 두 달 뒤 ‘광명성 3호’를 발사해 합의가 깨졌다. 당시 북한은 ‘우주개발용 로켓’이라고 주장했지만 미국은 “장거리 미사일인 만큼 합의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북한의 이런 전력(前歷) 때문에 전문가들의 대북 의견은 “‘Distrust everything and verify, verify, verify’(북한의 모든 것을 불신하며 검증, 검증, 검증하라)로 모아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6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NYT는 “북한의 핵무기 관련 시설은 광범위하고, 북한이 자신들의 핵시설을 정직하게 공개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며 “북한 핵시설이 워낙 방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검증 인력은 부족하기 때문에 ‘검증’이 아니라 ‘모니터링’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고 경고했다. IAEA 검증 인력이 직접 검증 작업을 하지 않고 북한 전문가들이 검증을 하는 것을 지켜보는 데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라크 핵폐기 작업에 참여했던 데이비드 케이 포토맥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모니터링 정도만 해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타고도 남는다. 그렇지만 그건 진정한 의미의 비핵화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김정은이 트럼프 갖고 놀면 종말 맞을 것” 미 상·하원의 중진들은 방송에 출연해 북한에 대한 압박 수위를 한층 높였다. 의회 내 대표적 대북 초강경파인 공화당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사우스캐롤라이나)은 6일(현지 시간) 뉴욕AM970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미국의) 전직 대통령 모두를 갖고 놀았지만, 트럼프를 갖고 놀려 한다면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과 얼굴을 맞대 앉고서도 거래에서 빠져나오려고 한다면 (이는) 북한 정권의 종말을 뜻한다”고 경고했다. “내가 김정은이라면 트럼프에게 함부로 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미 하원 군사위원장인 공화당 맥 손버리 의원은 같은 날 폭스뉴스에 출연해 핵탄두와 핵연료, 미사일을 북한 밖으로 반출하는 방식으로 비핵화가 가능하겠냐는 질문에 “매우 회의적이다”라며 “(북-미 협상이 깨지는)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북한의 미국에 대한) 미사일 공격 대비 태세도 강화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패트릭 크로닌 미국신안보센터(CNAS) 아시아태평양안보소장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외무성이 최근 “(미국의 대북 압박이)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밝힌 것에 대해 “본격 협상을 앞두고 트럼프 정부의 대북 기조를 흔들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이어 “북한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며 미국에 (항의할) 명분을 쌓아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워싱턴=박정훈 특파원 sunshade@donga.com / 정미경 전문기자·한기재 기자}

“소련은 핵을 포기하겠습니다. 그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미하일 고르바초프) “조건이 뭔가요?”(로널드 레이건) “미국은 ‘스타워즈’로 불리는 ‘전략방어구상(SDI)’을 폐기하세요.”(고르바초프) 1986년 10월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조금 떨어진 숲속 별장에서 ‘세기의 회담’이 열렸다.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고르비’라는 애칭으로 잘 알려진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만나 ‘핵무기 제거’를 주제로 피 말리는 48시간 회담에 돌입했다. 레이건 대통령이 최종 순간에 고르비의 SDI 폐기 제안을 거부하면서 회담은 결렬됐다.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는데도 ‘레이캬비크 회담’은 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정상회담 중 하나로 꼽힌다. 이후 소련이 몰락하고 냉전이 종말을 고하는데 이 회담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 시사 잡지 ‘애틀랜틱’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회담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레이캬비크 회담의 3대 교훈을 제시했다. ①상대방의 아픈 곳을 찔러라 원래 회담 주제는 핵 문제였지만 레이건 대통령이 먼저 입에 올린 것은 소련의 인권 탄압이었다. 그러더니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문제로 주제를 바꿨다. 상대방의 약점을 파고들어 기선을 제압하는 전술이다. 데이비드 호프먼 델라웨어대 외교학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에만 매달리면 지는 게임”이라며 “북한은 약점이 많은 나라다. 인권 유린, 사이버 해킹, 불법무기 확산, 위조화폐 거래 등을 먼저 주제로 올려 북한을 코너로 몰아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②담당자의 말을 들어라 부하들의 충고를 무시하는 독불장군 스타일의 트럼프 대통령이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할 충고다. 레이건 대통령은 처음에는 소련의 SDI 폐기 제안에 솔깃했다. 그는 미국에 있는 윌리엄 크로 합참의장을 전화로 긴급 호출해 SDI 폐기에 대해 물었다. 크로 합참의장은 “소련이 놓은 덫이다. SDI는 미국 안보의 핵심이다. 포기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직언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이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고르비에게 ‘노’(No)라고 했다. ③회담을 서둘지 말라 레이캬비크 회담은 레이건 대통령 취임 6년 뒤 열렸다. 그 긴 시간 동안 미국은 군사력을 세계 최강으로 끌어올렸고, 고르바초프와 같은 개혁적 리더가 집권할 수 있도록 소련에 압력을 넣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2년도 안 돼 김정은에게 떠밀려 회담에 나가야 한다. 윌리엄 인보든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국장은 “성과를 내려는 조급증은 버려라”고 충고했다. 아무런 성과 없이 걸어 나오는 것이야말로 더 훌륭한 업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정미경 전문기자 mickey@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45대)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 위기에 몰리자 자진 사임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37대)과 종종 비교돼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이 ‘제2의 워터게이트’가 될지 모른다는 불길한 전망 때문이다. 그런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정책에서도 ‘제2의 닉슨’이 될 수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 중인 그가 1972년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중국을 방문한 닉슨 전 대통령과 비슷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정은 만나는 트럼프’와 ‘마오쩌둥 만난 닉슨’ ‘Mr. Trump Goes to Korea(트럼프 씨, 한국에 가다).’ 요즘 미 언론이 즐겨 쓰는 표현이다. 이는 미 대통령이 역사적 흐름을 바꿀 만한 회담을 하기 위해 외국을 방문할 때 사용되곤 했다. 1972년 닉슨 전 대통령과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 국가주석 간 첫 회담 때도 ‘Mr. Nixon goes to China(닉슨 씨, 중국에 가다)’라는 말이 유행했다. 두 대통령의 상황은 여러모로 닮았다. 국내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거나 희석시킬 외교적 업적이 필요할 때 역사적 회담에 나선 모양새가 됐다. 또 상대국(닉슨의 중국, 트럼프의 북한)이 경제난과 외교적 고립을 피하고자 먼저 화해의 제스처를 보낸 형국이다. 협상능력이 검증된 외교 충신(忠臣)의 존재와 활약상도 비슷하다. 닉슨 때는 ‘외교의 달인’ 헨리 키신저 당시 국무장관이 사전에 중국을 비밀 방문했고, 북-미 회담의 경우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한을 극비 방문해 김정은과 먼저 만났다. 닉슨 전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폐쇄적 공산국가를 국제사회의 주요 구성원으로 이끌었던 것처럼 트럼프-김정은 회담에서도 그런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 닉슨의 미중은 ‘윈윈’ vs 트럼프의 북-미는 ‘제로섬’? 전문가들은 “1972년 중국을 방문했던 닉슨 전 대통령과 (판문점에서든 평양에서든) 김정은과 만나는 트럼프 대통령을 단순 비교하기 힘들지만 당시 중국과 지금 북한이 처한 국내외 상황은 많이 다르다”고 말한다. 미국 시사잡지 뉴리퍼블릭은 “1970년대 초 국제정세는 닉슨-마오쩌둥 회담이 성공하는 데 유리한 토대를 제공했던 반면, 트럼프-김정은 회담은 성공을 장담하기 힘든 대결 구도로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옛 소련과의 영토분쟁에서 패하고 문화대혁명의 여파로 국내외적 비난을 받던 마오쩌둥은 닉슨과의 회담을 통해 자본주의 수용이라는 역사적인 결정을 내리며 ‘국가 번영의 설계자’ ‘세계적 리더’라는 호평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김정은이 그와 같은 길을 갈 것인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적지 않다. 마이클 오스틴 후버연구소 연구원은 “마오쩌둥이 자본주의 수용을 통한 미중관계의 ‘윈윈’을 꾀했다면 김정은은 이번 회담을 ‘제로섬’ 게임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정은의 경우 ‘정상국가의 리더’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있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완전한 핵 포기라는 최후의 결단을 할 것인지는 여전히 미지수란 설명이다. 반면 핵 포기 없이는 ‘비이성적 독재자’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기 때문에, 일종의 딜레마에 봉착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정치전문 매체 액시오스는 “김정은은 서구식 협상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트럼프 대통령처럼 ‘give-and-take(주고받는)’ 원칙에 충실한 사람은 얻기만 하려는 김정은의 속마음을 꿰뚫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정미경 전문기자 mickey@donga.com}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밝힌 뒤 북한 내부에서 ‘핵 프라이드’가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를 핵으로 위협한 덕분에 ‘월드 파워’(세계적인 강대국)가 됐다는 삐뚤어진 자신감 말입니다.” 진 리 전 AP통신 평양 지국장(사진)은 1일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북한 지인들로부터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은 자신들의 지도자가 미국 대통령과 만날 정도의 위치까지 오른 것을 필연적인 결과로 여기고 있다”고 밝혔다. 최강대국 미국이라도 자주적인 핵능력을 확보한 북한에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 워싱턴 싱크탱크인 우드로윌슨센터 한국센터장으로 있는 리 전 국장은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다. 북-미 정상회담은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핵무장국으로서 북한의 지위를 확인하는 자리라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그런 식으로 주민들에게 이번 회담의 의미를 주입시켰다는 것이다. 그는 “김정은 프로파간다(선전선동) 전술의 핵심 문구는 ‘아무도 우리를 건드리지 못한다(We are untouchable)’”라며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아무도 우리의 핵을 건드리지 못한다’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핵 포기가 아닌 핵 보존이 북한의 정상회담 전략이며 김정은이 생각하는 비핵화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리 전 국장은 김정은이 제안한 북한 핵시설 폐쇄와 검증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북한이 보여줄 핵시설은 북한이 보유한 전체 핵시설의 10%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국제 검증단에 노후화한 플루토늄 생산 공장만 ‘투어’시켜 주고 자신들의 핵심투자 시설인 우라늄 농축은 고이 숨겨둘 것으로 내다봤다. 리 전 국장은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란 이벤트가 김정은 권력 공고화에 ‘보난자(bananza·노다지)’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평양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북한 지도부의 부패상과 일반 주민의 빈곤을 수없이 목격했다. 리 전 국장은 북한 주민들은 자신들이 못사는 것을 전쟁 때문으로 여기고 있다며 “한국에서는 평화협정의 의미가 그다지 와 닿지 않지만 북한은 완전 다르다. 전쟁을 끝내준 김정은 동지에 대한 주민들의 경외심과 충성심이 하늘을 찌를 것”이라고 말했다.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양국 정상이 생각하는 비핵화의 의미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큰 성과를 내기 힘들다”고 내다봤다. 북한은 한반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핵우산 제거를 염두에 두고 있고, 미국은 북한의 핵위협 버르장머리를 고칠 생각만 하고 있으니 서로 주파수가 맞을 리 없다는 것이다. 자신을 비롯한 많은 미국인이 잘되기를 바라지만 회담의 종착지는 밝은 미래가 아닐 것이라고 전망했다. 리 전 국장은 “멀리 뒤돌아 볼 것도 없이 7년 전만 생각해보라”며 “2011년 합의에서 북한은 미국에 비핵화를 약속했지만 얼마 안 지나서 위성 발사라고 우기며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회고했다. 당시 평양에서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북한은 북한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북한 지도자의 최고 목적은 권력 유지이며 이 목적에 따라 북한은 움직인다는 것도 깨달았다고 그는 설명했다.정미경 전문기자 mickey@donga.com}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주로 북한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 전직 정부 관리들이 이 회담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기 힘들다는 회의론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성과가 없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사람들도 있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고 싶은 욕심에 북한에 유리한 합의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런 우려를 덮어버리기 위해 치열한 홍보전에 나서고 있습니다. 고위 관리들이 총출동해 ‘걱정 말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The administration has its eyes wide open.”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겠다”고 말했다고 한국 언론에도 많이 등장했습니다. ABC방송에 출연한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이 정말 비핵화 행동에 나설 것으로 보느냐”는 앵커의 질문에 이 말을 수차례 반복했습니다. 북한에 속지 않도록 ‘면밀하게 감시하겠다(closely watch)’라는 외교적 표현 대신 일상회화에 등장하는 쉬운 표현을 썼습니다. 트럼프 핵심 지지층인 백인 블루칼라 시청자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입니다.○ “There’s no one starry-eyed.” 폭스뉴스에 등장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이 말을 듣고 놀랐습니다. ‘starry-eyed’라는 서정적인 단어를 쓰는 사람이 대북 슈퍼강경파 볼턴 맞나요? 별처럼 초롱초롱 빛나는 눈, 즉 미래에 대한 기대로 가득한 눈을 말합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기대입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김정은이 쉽사리 비핵화에 나설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는 사람은 없다.” 볼턴 보좌관은 이렇게 소프트하게 얘기를 시작하더니 북한이 질색하는 리비아식 ‘선 폐기 후 보상’ 해법으로 마무리합니다. 역시 볼턴입니다.○ “‘North Korea expert’ is an oxymoron, isn’t it?”(‘북한전문가’라는 단어는 모순 아니냐) 장소는 백악관 브리핑룸. 기자들이 “북한 전문가들은 회의적인데 왜 대통령은 매일 김정은을 칭찬하느냐”는 질문을 퍼붓자 발끈한 세라 허커비 샌더스 대변인이 “‘북한 전문가’라는 단어는 이율배반적이지 않으냐”라고 쏘아댑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북한은 외부와 단절된 폐쇄국가인데 어떻게 북한을 잘 아는 전문가가 있을 수 있느냐라는 겁니다. 앞뒤가 안 맞는 말이라는 거죠. ‘oxymoron’은 바로 그 뜻입니다.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前 워싱턴 특파원}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주로 북한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 전직 정부 관리들이 이 회담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기 힘들다는 회의론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성과가 없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사람들도 있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고 싶은 욕심에 북한에 유리한 합의라도 하지 않을까하는 걱정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런 우려를 덮어버리기 위해 치열한 홍보전에 나서고 있습니다. 고위관리들이 총출동해 ‘걱정 말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The administration has its eyes wide open.”: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겠다”고 말했다고 한국 언론에도 많이 등장했습니다. ABC방송에 출연한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이 정말 비핵화 행동에 나설 것으로 보느냐”는 앵커의 질문에 이 말을 수차례 반복했습니다. 북한에 속지 않도록 ‘면밀하게 감시하겠다’(closely watch)라는 외교적 표현 대신 일상회화에 등장하는 쉬운 표현을 썼습니다. 트럼프 핵심지지층인 백인 블루칼라 시청자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입니다. ▽“There‘s no one starry-eyed.”: 폭스뉴스에 등장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이 말을 하는 것을 듣고 놀랐습니다. ’starry-eyed‘라는 서정적인 단어를 쓰는 사람이 대북 슈퍼강경파 볼턴 맞나요? 별처럼 초롱초롱 빛나는 눈, 즉 미래에 대한 기대로 가득한 눈을 말합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기대입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김정은이 쉽사리 비핵화에 나설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는 사람은 없다.” 볼턴 보좌관은 이렇게 소프트하게 얘기를 시작하더니 북한이 질색하는 리비아식 ’선 폐기 후 보상‘ 해법으로 마무리합니다. 역시 볼턴입니다. ▽“’North Korea expert‘ is an oxymoron, isn’t it?”(‘북한전문가’라는 단어는 모순 아니냐): 장소는 백악관 브리핑룸. 기자들이 “북한 전문가들은 회의적인데 왜 대통령은 매일 김정은을 칭찬하느냐”는 질문을 퍼붓자 발끈한 사라 샌더스 대변인이 “‘북한 전문가’라는 단어는 이율배반적이지 않느냐”라고 쏘아댑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북한은 외부와 단절된 폐쇄국가인데 어떻게 북한을 잘 아는 전문가가 있을 수 있느냐라는 겁니다. 앞뒤가 안 맞는 말이라는 거죠. ‘Oxymoron’은 바로 그 뜻입니다.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전 워싱턴 특파원 mickey@donga.com}

“북한이 변했다고? 나는 회의적이다.”(니컬러스 크리스토프) “한국이 운전대를 잡았다고? 잡은 것은 북한이다.”(웬디 셔먼) 미국 뉴욕타임스(NYT)의 저명 칼럼니스트 크리스토프와 워싱턴포스트(WP)의 객원 칼럼니스트 셔먼이 남북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회담 성과를 평가하는 칼럼을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게재했다. 크리스토프는 30여 년 경력의 언론인 출신이고 셔먼은 국무부 차관까지 지낸 정부 관리 출신으로 배경은 다르지만 결론은 약속이나 한 듯 똑같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비핵화라는 통 큰 결단을 내린 듯하지만 결코 그의 말을 믿으면 안 된다는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타고 싶은 욕심에 섣불리 북-미 정상회담에 임한다면 김정은에게 백전백패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았다. 한국에서는 남북 정상회담이 역사적인 성공을 이뤘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인 가운데 미국의 양대 여론 주도 신문이 회담 성과에 회의론을 제기하는 칼럼을 내놓은 것은 이례적이다. 크리스토프는 칼럼에서 ‘회의적(skeptical)’이라는 단어를 5번이나 사용하면서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완전한 비핵화’는 큰 의미가 없는 ‘레토릭’(수사)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완전한 비핵화’와 북-미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불가역적 비핵화’는 서로 다른 문제이며, 전자는 후자에 그 어떤 동력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크리스토프는 “한국과 중국이 북한에 대한 제재를 풀고 대규모 지원을 할 날이 머지않았다”며 “북한은 드디어 원하는 것을 다 얻었다. 핵무장 국가로서의 지위를 확보했고 경제도 살아나게 됐다”고 평가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국무부 정무차관으로 대북협상을 담당했던 셔먼 역시 ‘기대는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운전자론을 주장했지만 “실상 운전석에 앉은 것은 북한이며, 지금 한반도 주변 정세를 보면 북한의 의중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셔먼이 강조하는 것은 북한에 대한 비핵화 검증이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는 것. 그는 “북한의 핵시설 검증은 가파른 절벽을 오르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라고 비유했다. 이어 “미국이 북핵 문제를 다룰 때는 정밀함과 인내가 요구된다”고 당부했다.정미경 전문기자 mickey@donga.com}

“북한이 변했다고? 나는 회의적이다.”(니콜라스 크리스토프) “한국이 운전대를 잡았다고? 잡은 것은 북한이다.”(웬디 셔먼) 미국 뉴욕타임스(NYT)의 저명 칼럼니스트 크리스토프와 워싱턴포스트(WP)의 객원 칼럼니스트 셔먼이 29일 남북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회담 성과를 평가하는 칼럼을 게재했다. 크리스토프는 30여년 경력의 언론인 출신이고 셔먼은 국무부 차관까지 지낸 정부관리 출신으로 배경은 다르지만 결론은 약속이나 한 듯 똑같았다. 김정은이 비핵화라는 통 큰 결단을 내린 듯 하지만 결코 그의 말을 믿으면 안 된다는 것.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타고 싶은 욕심에 섣불리 북미 정상회담에 임한다면 김정은에게 백전백패 당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았다. 한국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이 역사적인 성공을 이뤘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인 가운데 미국의 양대 여론주도 신문이 회담 성과에 회의론을 제기하는 칼럼을 내놓은 것은 이례적이다. 크리스토프는 칼럼에서 ‘회의적’(skeptical)이라는 단어를 5번이나 사용하면서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완전한 비핵화’는 큰 의미가 없는 ‘레토릭’(수사)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란 한미동맹 해체를 말하는 것인데 결코 미국은 한국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도 북한대로 ‘핵무력 완성’이라는 국가적 대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완전한 비핵화’와 북미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불가역적 비핵화’는 서로 다른 문제이며, 전자는 후자에 그 어떤 동력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크리스토프는 “한국과 중국이 북한에 대한 재제를 풀고 대규모 지원을 할 날이 멀지 않았다”며 “북한은 드디어 원하는 것을 다 얻었다. 핵무장 국가로서의 지위를 확보했고 경제도 살아나게 됐다”고 평가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국무부 정무차관으로 대북협상을 담당했던 셔먼 역시 ‘기대는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과 화기애애하게 대화했다고 해서 북한이 변했다는 섣부른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셔먼은 문재인 정부가 운전자론을 주장했지만 “실상 운전석에 앉은 것은 북한이며, 지금 한반도 주변 정세를 보면 북한의 의중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셔먼이 강조하는 것은 북한에 대한 비핵화 검증이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는 것. 그는 “북한의 핵시설 검증은 가파른 절벽을 오르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라고 비유했다. 이어 “미국이 북한 핵문제를 다룰 때는 정밀함과 인내가 요구된다”고 당부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처럼 보여주기식 대북 협상은 근사해 보일지는 모르지만 비핵화 로드맵의 세밀한 부분은 건드리지 않을 위험이 크다. 크리스토프와 셔먼은 “김정은의 속마음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미국과 화해하고 싶다고 해서 다행”이라며 “그래도 전쟁보다는 나은 것 아니겠냐”는 위안반 포기반의 메시지로 칼럼을 마무리했다. 정미경 전문기자 mickey@donga.com}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 합의가 발표된 뒤 미국 워싱턴 조야에선 ‘과연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믿을 수 있느냐’는 것을 놓고 심각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미 행정부는 “‘완전한 비핵화’의 순간까지 압박을 풀지 않겠다”면서도 북한의 진의에 대해 신뢰하는 기류가 강하다. 하지만 싱크탱크 전문가들과 언론, 의회 일각에선 “지금 샴페인을 터뜨릴 때인가”라면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약속에 강한 회의론을 제기하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은 성공적이었지만 미국의 최대 관심사인 북한 비핵화 문제는 거의 진전이 없었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오히려 한국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에 초점을 맞추면서 비핵화 논의의 공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담판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완전히 넘겨버린 데 대해 섭섭함을 넘어 불신 분위기까지 조성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현지 시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김정은이 미국을 속이고 있다고 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가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이렇게 멀리 진전돼 온 적이 없다”며 “북한이 협상을 타결하는 데 있어 지금처럼 열정을 가진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29일 ABC방송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과 만났을 때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방법론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김 위원장이 우리가 비핵화를 달성하도록 지도를 펼쳐줄 준비가 돼 있다. 매우 잘 준비돼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반면 북한의 핵 개발 역사를 지켜봐온 한반도 안보전문가들은 북한에 대한 불신과 함께 다양한 신중론을 쏟아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언론 인터뷰에서 “남북 정상회담은 비핵화와 관련해 어떤 새로운 진전도 이루지 못했다”고 혹평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합의를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 특사도 “이번 (판문점) 선언은 매우 애매모호한 구절이 많다”며 “군사적 행동과 관련해 도발 중단을 포함해 남북이 서로 적대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일부 구절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의 중단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딘 청 헤리티지재단 연구원은 “남북 정상회담 성공 후 한국은 축제 분위기지만 아직 샴페인을 터뜨려서는 안 된다. 북-미 정상회담은 낙관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우려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 세기의 담판이 열릴 북-미 정상회담 개최지는 일단 2곳으로 압축됐다. 27일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매우 좋은 일들이 생길 수 있다. 두 개 나라까지 줄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루 전까지만 해도 5곳이라고 언급해 스위스 제네바, 스웨덴 스톡홀름, 싱가포르, 몽골, 괌 등이 유력한 후보지로 떠올랐는데 이 중 3곳이 배제됐다는 뜻이다. 미 언론들은 싱가포르와 몽골이 유력하다고 보도하고 있다. 유럽 도시들은 김정은 위원장의 전용기가 논스톱으로 갈 수 없다는 점이 걸림돌이 된 것으로 보인다. 괌은 미국령이라 북한이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기차로도 갈 수 있는 몽골을, 미국은 싱가포르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워싱턴=박정훈 특파원 sunshade@donga.com / 정미경 전문기자}
“그(김정은)의 당당함에 감탄했다.” 미국 정부 관계자와 학자들은 27일 판문점에서 보여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거침없고 호탕한 모습에 ‘놀라다 못해 감탄했다(shocked and even awed)’고 미 언론이 전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전 세계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던 김정은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여유롭게 문재인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야말로 그가 가진 탁월한 쇼맨십의 증거라는 것이다. 미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당당한 행보 뒤에는 자신이 정상국가 지도자임을 전 세계에 보여주고자 하는 과시욕과, 합법적 통치력을 가진 리더임을 북한 주민들에게 증명하고 싶은 조급한 마음이 종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국방부 차관보였던 에이브러햄 덴마크 워싱턴 우드로윌슨센터 아시아센터장은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판문점 배치부터 소품까지 철저히 준비한 것은 김정은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처음부터 기획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정은은 잘 준비된 무대에 등장해 훌륭한 연기를 했다. 그의 말투와 농담, 제스처야말로 화해 장소에 등장한 분단국가 정상으로서 ‘퍼펙트(완벽)’에 가까웠다”고 높이 평가했다. 덴마크 센터장은 “이번 회담을 통해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닮은꼴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며 “비슷한 성격과 협상전술을 가진 김정은-트럼프 조합의 만남이 파국으로 치닫지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정미경 전문기자 mickey@donga.com}

“여러분, 속보입니다. 전 미국 프로농구 선수 데니스 로드먼의 요청에 따라 북-미 정상회담이 김정은-도널드 트럼프-로드먼의 3자회담으로 열릴 예정입니다. 이 3명은 기행을 일삼아 일명 ‘정신 나간 삼총사(weird musketeers)’로 불립니다.”(‘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의 ‘위켄드 업데이츠’ 코너) 세기의 대결로 주목받는 북-미 정상회담이 미국 TV 오락프로그램에선 조롱의 대상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북-미 회담의 주제나 성과보다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외모나 성격을 부각시켜 시청자의 웃음을 자아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NBC방송의 간판 코미디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는 키가 작아 잘 보이지도 않는 김정은이 인민군에 묻혀서 트럼프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가 하면, 회담장을 찾아온 로드먼과 김정은이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는 장면을 방영했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아무도 찾지 않는 로드먼의 링크트인(페이스북과 비슷한 SNS) 계정에 몰래 들어가 ‘친구맺기’ 버튼을 살짝 누르는 장면도 시청자들의 웃음을 샀다. ABC방송의 심야 토크쇼 ‘지미 키멜쇼’는 북-미 회담을 앞두고 북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시청자들을 상대로 ‘북한이 지리적으로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묻는 코너를 진행했다. 북한의 위치뿐 아니라 북-미 회담 자체를 아는 사람이 없어 폭소를 자아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회담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은 웃음거리 소재로밖에 미국인들에게 어필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예측 불가능한 성격의 트럼프 대통령과 희극적 외모와 포악한 성격의 김정은은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미 시사잡지 애틀랜틱 최근호는 “미국인들은 북-미 회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트럼프와 김정은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싶어서 벌이는 ‘어리석은 행동’(folly)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한껏 조롱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정미경 전문기자 mickey@donga.com}

“고맙네, 폴 의원.”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후보자 인준안이 23일 상원 외교관계위원회를 통과하자마자 문 밖에서 기다리던 폼페이오 후보자는 회의장으로 달려 들어와 랜드 폴 공화당 상원의원에게 악수를 청했다. 폼페이오 인준안은 당초 통과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으나 폴 의원이 극적으로 찬성표를 던지면서 외교위를 통과하게 됐다. 표결 결과는 11(공화) 대 10(민주)으로 아슬아슬했다. 폴 의원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폼페이오를 지명한 직후부터 줄곧 반대 의사를 밝혀 왔다. 폼페이오가 전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혼란을 막지 못하면서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공화당 소속이지만 반전 풀뿌리운동에 참여해 온 ‘리버테리언(자유주의자)’ 성향의 폴 의원은 그동안 미국의 전쟁 개입을 강하게 반대해 왔다. 이라크 증파, 아프가니스탄 철수 등 전쟁 관련 표결이 있을 때마다 폴 의원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당론과 반대되는 표를 던져 공화당의 ‘미운 오리 새끼’로 통했다. 폴 의원은 이번 표결에서 입장을 바꾼 것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수차례 전화를 걸어와 부탁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폼페이오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다. 북한을 설득할 적임자”라고 끈질기게 부탁했다는 것이다. 폴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후보자가 ‘이라크전쟁은 실수였다’고 공식 인정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 철수하기로 약속했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폴 의원만 믿고 있다가 허를 찔린 민주당은 결속력이 무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상당수 민주당 의원이 폼페이오 찬성 의사를 밝히면서 이번 주 중에 열리는 상원 전체회의에서는 통과가 확실시된다.정미경 전문기자 mickey@donga.com}

“이번 회담의 성패는 평화협정 의제가 언제 등장하느냐에 달렸다.” 브루스 클링너 미국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사진)은 다음 달 말 또는 6월 초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에서 평화협정과 종전선언을 둘러싸고 팽팽한 줄다리기가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김정은은 회담이 시작되고 30분 내에 평화협정 체결을 들고나올 것이고 협정이 체결돼야만 비핵화 조치에 나설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클링너 연구원은 21, 22일 본보와의 전화 및 서면 인터뷰에서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종전선언, 북-미관계 정상화, 평양에 미국대표부 설치, 주한미군 철수 또는 대폭 감축 등이 줄줄이 논의 대상에 오르게 된다”며 “북한은 협상장에서 이 모든 이슈를 ‘원샷’에 해결하려 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미국 협상팀은 북한의 요구에 확답을 주지 않으면서 최대한 회담 말미 쪽으로 평화협정 의제를 밀어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의 협상 방식을 아는 노련한 미국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나서야 북한을 설득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이는 틀린 얘기”라며 “미국 대통령이라는 위치는 협상을 하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클링너 연구원은 2000년 김정일 당시 북한 국방위원장이 빌 클린턴 대통령을 초청했을 때 자신의 경험에 대해 얘기했다. 당시 미 중앙정보국(CIA) 분석관으로 일했던 그는 백악관-국무부-CIA 합동 방북 추진팀에서 활동했다. “북한이 처음 방북을 제안했을 때 추진팀의 분위기는 찬성 쪽으로 흘렀다. 클린턴 대통령의 달변이 김정일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분위기는 점점 바뀌었다. ‘미국은 대통령을 협상하러 보내지 않는다’ ‘미국은 대통령을 사진이나 찍으러 보내지 않는다’는 의견이 대세가 됐다.” 클링너 연구원은 “협상은 고위 관리와 실무자들이 하는 것이고 대통령의 몫은 합의 내용을 확인하고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고 결정자는 협상의 주제에 대해 전문적으로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직접 협상에 나서 실패했을 경우 엄청난 권력 누수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정미경 전문기자 mickey@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응은 신속했다. 북한이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 중지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발표한 지 1시간여 만에 트위터로 환영 입장을 내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 시간) 트위터에 “북한과 세계에 매우 좋은 소식이자 큰 진전이다. 우리의 정상회담을 고대한다”고 적었다. 북-미 정상회담 전망을 밝게 하는 긍정적 신호로 평가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약 5시간 뒤 한 번 더 트위터에 “모든 이들을 위한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글을 올리며 공개적으로 칭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환영과는 달리 한반도 문제를 오랫동안 다뤄왔던 백악관 관리들의 반응은 회의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포스트(WP)는 “백악관 인사들이 이번 발표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놓은 덫일 수 있다는 경계감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북한의 발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1999년 북한을 방문해 핵실험 중단과 경제 지원을 골자로 하는 ‘페리 프로세스’를 만들어냈던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은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온갖 비난과 굴욕 속에서도 완성시킨 핵능력인데 이를 쉽게 포기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김정은은 비핵화 일정을 크게 늦춰 나중에는 흐지부지되는 것을 노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벤저민 실버스타인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외교학)는 WP와의 인터뷰에서 “핵을 쉽게 포기하지 않겠다는 김정은의 자신감과 능력 과시가 이번 발표의 숨은 의미”라고 지적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 국가안보회의(NSC) 비확산국장이었던 존 울프스탈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은 뉴욕타임스에 “북-미 대화 의도를 밝힌 뒤부터 김정은은 타협과 양보의 제안을 줄지어 하고 있고, 미국은 그냥 받는 입장이다”며 “이는 북-미 정상회담 실패 시 책임은 자신이 아니라 미국에 있다는 것을 공고히 하려는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내 회의론 확산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22일 오전 트위터에 “일들(북한 비핵화)이 잘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오래전에 해야 했던 것”이라며 전임 행정부들을 비난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북한 발표에 대해 환영한다면서도 충분하지 않다는 복잡한 반응을 보였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21일 기자들에게 “긍정적인 움직임”이라면서도 “중요한 것은 핵과 대량살상무기, 그리고 미사일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로 이어질 것인지 여부다. 확실히 주시하겠다”고 강조했다. 미국을 방문 중인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방위상은 “최대한의 압력으로 북한이 핵·미사일을 포기하게 하겠다는 일본의 자세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외교부는 21일 “북한의 결정은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고 동북아시아에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중요한 한 단계가 될 것”이라며 환영했다.정미경 전문기자 mickey@donga.com / 뉴욕=박용 / 도쿄=서영아 특파원}

Who has Donald Trump’s ear?(누가 도널드 트럼프의 귀를 가지고 있는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미국 언론에서 자주 등장한 기사 제목입니다. CNN도, ABC방송도, USA투데이도 비슷한 제목의 기사를 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 문장 아닌가요. ‘누가 귀를 가지고 있느냐’고 물어보다니. 트럼프 대통령이 귀를 잃어버렸나요? 트럼프 대통령 사진을 보니 귀는 잘 붙어있습니다. ‘Have someone’s ear’(귀를 가지고 있다)는 ‘상대방이 (내 얘기를) 귀 기울여 듣게 하다’는 뜻입니다.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관심의 표현입니다. ‘He has my ear’라고 한다면 ‘나는 그가 하는 말에 관심이 많다’ ‘나는 그의 말을 주목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표현에는 상하관계가 포함돼 있습니다. 듣는 사람은 윗사람이고, 말하는 사람은 부하입니다. 대통령은 누구의 말을 주의 깊게 들을까요. 자신의 측근입니다. 위 문장을 해석하면 “누가 트럼프 대통령이 귀 기울여 들을 만큼 가까운 사람이냐”는 뜻입니다. ‘측근’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그렇듯 ‘have someone‘s ear’도 그다지 바람직한 관계에서 쓰는 말은 아닙니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을 때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썼습니다. ‘Choi was in fact the only person who could have President Park’s ear.’ ‘최순실은 사실 박 대통령이 귀 기울일 만한 유일한 측근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귀를 가진 사람, 트럼프 대통령이 귀 기울여 들을 만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트럼프 대통령과 골프를 칠 때 그린피를 부담하는 사람이다’라는 얘기가 한동안 나돌았습니다. 부자이지만 약간 자린고비 습성이 있는 트럼프는 돈을 내주는 사람에게 무한한 애정을 보내며 그의 말에 귀 기울여 주지 않을까요. 농담입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측근이 별로 없다는 의미입니다. 올곧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의 곁에는 측근을 키울 만한 환경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독불장군 성격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은 가차 없이 해고하니까 그의 곁에는 신뢰할 만한 부하가 없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유력 정치인들은 트럼프와 가까워지기를 꺼립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친하게 지내면 유권자들이 이상한 사람으로 보고 지지율이 떨어지기 때문이지요. ‘측근 기근’ 현상에 시달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최근 희소식이 있습니다. ‘슈퍼 매파’ 존 볼턴이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백악관에 입성했습니다. 이들의 궁합이 한국을 비롯한 세계 정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 같아 걱정됩니다.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前 워싱턴 특파원}

미국 외교가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전격적인 시리아 공습이 적절했다고 보는 의견이 우세했다.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회장은 “미국 주도의 연합세력이 공습 강도와 지역 등을 결정하는 데 있어 절제된 모습을 보인 것은 매우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번 공습 결정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외 지지도는 상승할 것이 확실시된다”고 진단했다.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은 “연합군이 공습 강도를 최대한 낮췄기 때문에 러시아와 이란 등 친(親) 바샤르 알 아사드 동맹은 보복 공격을 할 명분이 없다”고 강조했다. 대신 “러시아와 이란은 미국을 다양한 공격 대상으로 삼을 것인 만큼 러시아와의 사이버공격 협상, 이란과의 핵협상이 앞으로 난관에 부딪칠 것이라는 점을 미국은 각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이번 공습으로 미국이 ‘시리아 딜레마’에 빠질 것이란 회의론도 없지 않다. 미국은 시리아 문제에서 언제나 갈팡질팡해왔기 때문이다. 레베카 허스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국가안보국장은 “최종 목표가 아사드 정권을 축출하는 것인지, 아사드 정권의 화학무기 사용에 대해서만 ‘레드라인(한계선)’을 긋는 것인지 미국 대통령조차도 잘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시리아 개입의 목표를 확실히 설정하고 이를 국제사회에 공표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재커리 러브 CFR 연구원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레드라인’에만 집중해 오히려 아사드의 화학무기 기술만 키우는 결과만 낳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렇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레짐 체인지’를 내걸고 아사드 정권 몰락에만 집중한다면 시리아가 ‘제2의 아프가니스탄’ ‘제2의 이라크’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지적했다. 하스 회장은 앞으로 추가 공습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공습 문제에서는 이상하리만치 미국, 영국, 프랑스가 의견 일치를 보고 있다”며 “연합군은 다시 한번 전략자산들의 능력을 시험하려 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브레머 회장은 “핵심은 미국의 지상군 투입”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1000여 명의 지상군을 철수하려다 갑자기 방향을 바꿔 이번에 시리아를 공습한 것이다. 전례로 볼 때 미국은 중동에서 전쟁을 할 때 공격 개시 보름 전까지는 지상군 투입을 완료한다. 즉 지상군 투입 여부, 투입 시기를 보면 미국의 시리아 전략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공습이 인도주의적 위기에서 개시된 것으로 볼 때 미국은 시리아에 지상군을 투입할 경우 국제사회의 엄청난 비난에 직면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브레머 회장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든, 미국이 시리아에서 전선을 확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강조했다. 정미경 전문기자 mickey@donga.com}

“We must as a nation be more unpredictable. We are totally predictable. We have to be unpredictable. And we have to be unpredictable, starting now.” 흔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가리켜 ‘예측할 수 없는(unpredictable)’ 지도자라고 합니다. 오늘 얘기와 내일 얘기가 다르고,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성격 때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당신, 정말 예측 불가능한 사람이야”라고 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아마 기뻐할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이 칭찬이기 때문입니다. 위 글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대선 유세 때 자신의 정책방향을 설명한 중요한 연설의 한 부분입니다. 짧은 두 줄 문장에서 ‘(un)predictable’이라는 단어가 4번이나 등장합니다. 과거 미국은 누구나 예측 가능한, 뻔한 정책을 내놓았기 때문에 다른 나라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없었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입니다. 앞으로 미국이 다른 나라들의 존경을 받으려면 예측하기 힘든 나라가 돼야 한다는 겁니다. 당시 트럼프를 지지하는 언론은 ‘예측 불가능성’을 트럼프의 ‘외교 독트린(doctrine)’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얘기는 아닙니다. ‘Unpredictability(예측 불가능성)’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업가 시절 성공의 신조였습니다. 그의 저서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을 보면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제안을 해서 거래를 성사시켰다는 무용담이 한가득 나옵니다. 그러나 사업적 거래에서는 통했을지 모를 예측 불가능성이 국가 경영과 외교에 적용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미국의 유명한 정치학자 하워드 진은 “국가 경영의 지식이 하나도 없는 트럼프의 헛소리(nonsense)”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미국이 다른 나라들에 예측 불가능의 답안지를 건네준다면 미국이 얻는 것은 ‘존경’이 아니라 ‘야유’가 될 것이라면서요. 우리나라도 얼마 전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대통령을 경험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타결을 “great deal(멋진 협상)”이라고 축하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에는 한미 FTA를 북한 협상과 연계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북한과의 협상이 성공해야만 한미 FTA의 최종 타결에 응하겠다는 조건부 승인입니다. 중요한 외교 협상에서 상대국이 예측하기 힘든 답변을 주는 미국 대통령, 야유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존경할 수 없는 건 분명합니다.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前 워싱턴 특파원}

미국의 정치문화 중 가장 부러운 건 전직 대통령들의 평온하다 못해 지루한 퇴직 생활입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자선활동에 열심입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화가가 돼서 전시회까지 열었습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인권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들은 퇴임 후 정치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정치적인 발언도 삼가는 전통이 있습니다. 이런 전통을 ‘deserve silence(전직 대통령의 침묵)’라고 합니다. 1933년 대통령 선거에서 허버트 후버 당시 대통령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후보에게 패했습니다. 후버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는 루스벨트 후보를 맹렬히 비난했지만 루스벨트가 대통령이 된 뒤에는 침묵했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아무런 의견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기자들이 물으니 “He deserves my silence”라고 답했습니다. “그(루스벨트 대통령)는 내 침묵을 누릴 자격이 있다.” 현직 대통령만이 국가를 이끌 자격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후 ‘전직 대통령의 침묵’ 전통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요즘 미국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충동적 정책 결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전직 대통령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실정(失政)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 이런 국민적 요구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집중되고 있습니다. 많은 미국인들이 오바마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니까요. 오바마 전 대통령도 고민이 많을 겁니다. 딸들과 함께 조용한 퇴임 생활을 보내고 싶을 텐데 ‘전임 대통령의 침묵’ 전통을 깨는 역할을 하라고들 하니까요.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지난해 좌충우돌 헤매는 트럼프 행정부에 대해 별다른 비판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바뀌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잘못을 지적하는 데 적극 나서겠다는 거지요.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자신의 의지를 어떤 식으로 표현했을까요. 그는 지난달 민주당 의원 모임에 초대돼 이런 말을 했습니다. “I won’t go quietly.” ‘조용히 가지 않겠다’는 것은 ‘순순히 물러나지 않겠다’는 겁니다. ‘전임 대통령들처럼 정치무대에서 조용히 퇴장하지 않겠다’는 말이지요. “이제부터 당신의 잘못에 태클을 걸겠다. 각오하라”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경고하는 겁니다. 다른 전임 대통령들과 달리 오바마 전 대통령은 계속 워싱턴에 살고 있으니 트럼프 대통령에게 비판의 목소리를 높일 유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뉴욕타임스가 적극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Obama Shouldn’t Go Quietly(오바마는 조용히 퇴장하면 안 된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신의 업적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다. 당신은 조용히 사라질 것인가?”(Are you going to go quietly?)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 前 워싱턴 특파원}

6일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 주최로 북한 관련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상원 군사위 청문회는 언제나 관심을 끕니다. 존 매케인처럼 지명도 높은 의원들이 군사위에 몰려 있을 뿐만 아니라 청문회에 나오는 증인들도 고위급 정부 관리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일정이 바쁜 국방장관, 국무장관,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군사위 증인으로 나오라면 군말 없이 나와야 합니다. 이번 청문회에는 여느 때보다 더 많은 관심이 쏠렸습니다. 북한 김정은이 한국 특사단에 미국과 대화하고 싶다는 의향을 밝힌 다음 날 열렸기 때문이죠. 북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일을 담당하는 국가정보국 수장인 댄 코츠 국장이 첫 증인으로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북한은 과거에 미국과 체결한 합의를 수차례 깨버렸다.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할 것 같은가.” 북한의 대화 제의를 호락호락 받아줄 분위기가 아닙니다. 사실 별로 놀랄 일도 아닙니다. 워싱턴 특파원 시절 북한 얘기만 나오면 흥분하는 미국 정부 인사들을 많이 봤습니다. “Hope springs eternal.” 증언이 절반쯤 끝날 무렵 코츠 국장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귀에 확 들어왔습니다. 날선 비판이 난무하는 북한 청문회에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운 문구 아닙니까. 이 문구는 ‘희망은 영원히 솟아난다’는 뜻입니다. 좀 더 자연스럽게 표현한다면 ‘인간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우리는 희망 속에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코츠 국장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북한을 다시 한번 믿어보자’ ‘북한이 변할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말자’는 겁니다. 북한의 대화 제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는 것이 그의 결론인 것이죠. 이 문구는 알렉산더 포프라는 18세기 영국의 저명 시인이 쓴 ‘인간론’이라는 시에 등장합니다. 이 시는 미국 중고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합니다. 특히 이 문구는 정치인들이 즐겨 사용합니다. 정치와 희망은 서로 안 어울리는 듯하지만 사실 정치만큼 희망이 필요한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애용한 문구였습니다. 의회의 대치로 인해 자신이 야심 차게 내놓은 정책이 흐지부지될 위기에 처했을 때 “Hope springs eternal”(나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이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미국인이 줄줄 외울 만큼 유명한 시라고 하니 읽어볼 가치가 있습니다. Hope springs eternal in the human breast/Man never is, but always to be blessed/The soul, uneasy and confined from home/Rests and expatiates in a life to come. (희망은 사람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샘솟는다/인간은 항상 현재 행복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행복해지는 것이다/아무리 불행하고 떠도는 영혼이라도/앞으로 다가올 삶 속에서 휴식한다).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 前 워싱턴 특파원}

“북한 김정은이 미국과 대화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북한이 근본적으로 변했다고 보는가? 아니다. 미국은 아직 북한을 믿지 못한다.” 미국 워싱턴의 대표적 정치외교 싱크탱크(민간연구소)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5월로 예정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간의 만남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담은 보고서를 9일(현지 시간) 내놨다. 수미 테리 한국담당 선임연구원(사진) 등이 작성한 이 보고서는 북-미 정상회담의 난관들을 질의응답식으로 정리했다. ―북-미 정상회담 테이블의 최우선 의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회담에 나오기로 결정한 가장 중요한 계기는 북한의 비핵화 수용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김정은이 말하는 비핵화가 미국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비핵화와 동일한 것인지 숙고해야 한다. 미국이 요구해온 것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다. 과거 국제사회의 핵 모니터링과 검증 요구를 별다른 이유도 대지 않고 거부해온 북한이 미국이 요구하는 높은 수준의 비핵화에 응할 것으로 생각한다면 너무 순진한 것이다.” ―미국은 북한과의 회담 결과를 낙관하나, 비관하나. “트럼프 행정부에 엄청나게 힘든 회담이 될 것이다. 성공하건 실패하건 미국은 많은 과제를 안게 된다. 우선 성공했다고 치자. 북한이 평화협정이건 비핵화건 합의했다고 치자. 미국은 북한이 약속을 잘 지킬 것이라고 어떻게 검증할 수 있는가. 미국은 북한이 얼마나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고 핵시설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정확하게 모르는 처지다. 북한에 대해 무지한데 어떻게 검증하나. 반대로 합의에 실패했을 경우 백악관은 북한이 도저히 대화 상대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북한이 바로 이 시점에서 미국에 대화를 제의한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문제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미국에 대한 북한의 대화 제의도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북한은 봄과 가을에 열리는 한미 연합훈련의 제약을 피하기 위해 지금 대화를 제시한 것이다. 북한은 5월에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고 6∼8월 후속 논의가 있을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 김정은은 가을 한미 훈련 시즌 전에 미국과 친해지고 싶은 것이다.” ―왜 북한은 한국 특사를 통해 미국에 대화를 요청했는가. 북한이 미국에 직접 요구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를 성사시키기 위해 취임 초부터 엄청난 노력을 해왔다. 김정은은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를 활용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북한은 한국에 북-미 대화에 중개자로 나서 줄 것을 요청하면서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선물을 준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한국과 대화해 크게 얻을 것은 없지만 미국과 대화하면 얻을 것이 많다. 트럼프와 마주 보고 한 테이블에서 대화한다는 것만으로도 정상국가로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정미경 전문기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