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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친구들이 입양 부모들은 다 나쁘대. 입양된 애들은 불쌍하대.” 어깨가 축 처진 딸아이의 눈빛이 몹시도 흔들렸다. 조용히 아이를 안아준 심모 씨(51)는 울컥 목이 멨다. 가슴으로 낳은 딸. 심 씨는 2007년 공개 입양한 딸을 누구보다 사랑으로 키웠다고 자부한다. 딸도 어디서든 입양아라고 당당히 얘기해왔다. 하지만 최근 아이는 부쩍 움츠러들었다. ‘정인이 사건’ 이후 차갑게 식어버린 주위의 시선 때문이다. “딸이 앞으로는 친구나 주변에 뭐라고 말해야 하느냐고 묻더라고요. 말문이 막혔어요. 나도 정인이 사건에 누구보다 슬프고 분노했지만 그게 입양을 색안경 끼고 보게 만들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13일 아동학대로 세상을 떠난 정인이 양부모에 대한 첫 공판이 열렸다. 최근 정인이의 해맑던 얼굴이 공개되며 사회적 공분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 하지만 요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불똥이 튀고 있다. 양부모가 정인이를 학대한 사실이 부각되며 입양 자체를 문제시하는 사회적 편견이 일고 있다. 설마 싶겠지만 입양 가족들은 최근 이를 크게 체감하고 있다고 한다. 자녀를 입양한 정모 씨(60)는 “입양 가족이란 이유로 이렇게 위축되는 기분은 처음”이라고 할 정도다. “갑자기 지인들한테 전화가 자주 와요. 그런데 뜬금없이 ‘아이는 어떻게 지내느냐’는 질문을 합니다. 뉘앙스만 들어봐도 알잖아요. 갑자기 무슨 죄라도 지은 듯한 느낌이었어요.”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가자 전국입양가족연대는 7일 “사회적 냉대를 멈춰 달라”는 호소문도 발표했다. 오창화 연대 대표는 “주위 시선이나 다른 가족들의 반대로 ‘입양을 보류하고 싶다’는 예비 입양 부모들이 늘고 있다”며 “입양이 필요한 아이들은 계속 늘고 있는데 이렇게 편견이 확산되면 심각한 입양 공백이 생길 수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정인이 양부모에 대한 분노와 별개로 현실을 냉정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9년 아동학대로 판단된 3만45건 가운데 양부모가 학대를 저지른 경우는 94건이었다. 전체 학대 가운데 0.3% 정도다. 3만여 건 가운데 72.3%는 ‘친부모’가 저질렀다. 오히려 정인이 사건에 대해 더 아파했던 건 입양 부모들이었다. 아이 셋을 입양한 신모 씨(59)는 “남의 일로 느껴지지 않았다. 입양 부모들은 정인이가 ‘내게 올 수도 있었던 아이’로 여겨진다. 더 분하고 더 속상하다”고 했다. 물론 입양 과정에서 예비부모들을 꼼꼼하게 검증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입양 절차 전반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자’가 아동학대를 막을 해법으로 논의되는 건 입양에 대한 편견만 키울 뿐 실효성이 없다. 입양은 “한 아이는 물론이고 한 가족의 삶과 영혼을 살리는 숭고한 일”(오창화 대표)이란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김태성 사회부 기자 kts5710@donga.com}

약 300억 원 규모로 허위세금계산서를 발행해 수배가 내려졌던 60대 남성이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하려다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지난해 5월부터 조세범처벌법 위반 혐의로 수배가 내려졌던 A 씨(62)를 8일 검거해 수사하고 있다”고 13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2014년부터 약 2년 동안 인천에서 농수산물 납품업체를 운영하며 300억 원 가량의 매출에 대한 세금계산서를 허위로 작성한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서인천세무서는 지난해 초 A 씨를 경찰에 고발했으나 행적을 찾기 어려웠다. 행방이 묘연했던 A 씨는 8일 서울 양천구에 있는 한 은행에서 덜미가 잡혔다. 오후 1시경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현금 인출을 시도했는데, 신고 접수 3분 만에 출동한 경찰이 현장에서 A 씨를 검거했다. 경찰 관계자는 “은행 내부 고객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어 피의자 특정이 쉽지 않았는데, A 씨의 머리 스타일이 다소 특이해 붙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A 씨는 현재 전북 무주경찰서에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 등으로도 입건된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A 씨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무주서로 신병을 인계했다”고 전했다.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우리가 정인이 엄마 아빠다. 살인자가 어딜 가냐, 절대 못 간다.” 13일 오전 11시 반경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 앞에선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 시민단체와 시민들이 법무부 호송차량에 몸을 던지며 달려들었다. “살인자” “악마”라는 고성이 끝없이 들려왔고, 일부 시민들은 호송차량 앞에 드러눕기도 했다. 이 차량에는 막 첫 공판을 마치고 나온 정인이의 양모가 타고 있었다. 이날 남부지법 앞은 이른 아침부터 크게 붐볐다. 재판을 보러온 방청객은 물론이고 시민단체와 시민들, 취재진 수백 명이 몰려들었다. 어린 자녀와 함께 찾아온 시민들도 있었다. 방청객 김나은 씨(38)는 “양부모가 과연 반성을 하고 있는지 직접 보고 들으려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방청객 황지영 씨(38)는 “무슨 생각으로 16개월 된 아이를 그렇게 했는지 얼굴이라도 보려고 왔다”며 “꼭 살인죄로 처벌받아야 한다”며 분개했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과 시민 150여 명은 법원 정문 앞에서 “양부모는 살인자” 등의 피켓을 들고 릴레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한소리 씨(40)는 “방청 기회는 얻지 못했지만 우리의 분노를 보여주기 위해서, 정인이를 위해서 모였다”고 말했다. 앞서 오전 10시 40분경에는 검찰이 공소장 변경을 신청해 양모에게 살인죄를 적용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크게 술렁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반갑다는 의사 표현보다는 “양부에게도 살인죄를 적용하라”며 더 크게 목소리를 냈다. 김연수 씨(33)는 “남편도 똑같은 공범인데, 왜 살인죄를 적용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소영 씨(39)는 “같은 살인자인 양부가 불구속 상태라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정인이 양모를 태운 호송차량이 출발하고 10분쯤 뒤에 양부도 법원을 빠져나갔다. 양부 쪽으로도 욕설과 비난이 쏟아졌으나, 재빨리 변호사의 차량에 탑승해 출발했다. 몇몇 시민들은 이 차량에도 달려들며 대치했다. 변호사는 “양모의 학대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 양부의 입장”이라고 전했다.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통장에 있는 6200만 원을 전부 5만 원권으로 뽑아 줘요.” 5일 오전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 있는 강동농협 본점을 찾은 60대 여성 노모 씨는 왠지 모르게 불안해 보였다. 계속해서 손을 덜덜 떨었고, 현금 사용처를 물어봐도 횡설수설하며 제대로 답하질 못했다. 당시 고객을 응대하던 주민정 대리(39)는 한눈에 ‘보이스피싱이구나’ 직감했다고 한다. “스마트폰을 잠깐 보여 달라고 말씀드려도 한사코 거부하시는 게 더 이상했어요. 일단 ‘5만 원권 지폐가 그만큼 없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씀드린 뒤 안쪽에 편한 공간으로 모시고 갔어요. 그리고 살짝 틈을 봐서 경찰에 신고했죠.” 하지만 노 씨는 여전히 가만있질 못했다. 급기야 “만 원짜리 지폐로라도 당장 인출해 달라”고 요구했다. 다행히 신고 접수 약 3분 만에 경찰이 은행에 도착했고, 경찰이 노 씨를 만나 안심을 시켰다. 주 대리의 직감은 정확했다. 경찰에 따르면 노 씨는 경찰청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에 속아 돈을 인출하기 위해 은행을 찾았다. 경찰 관계자는 “사기범이 계좌가 해킹됐다며 현금을 인출해 다른 계좌로 입금하라고 속였다”며 “은행 측이 기지를 발휘해 큰 피해를 막았다”고 전했다.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여동생이 ‘찾지 말라’고 한 뒤 연락을 안 받아요.” 6일 오전 서울의 한 호텔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던 여성을 경찰이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해 위험한 시도를 하기 직전에 무사히 구출했다. 다급한 목소리로 119 신고가 들어온 건 6일 오전 9시 10분경. A 씨(27)의 가족이 “새벽에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하는 말을 한 뒤 연락이 끊겨버렸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은 A 씨의 스마트폰 위치를 추적해 3시간가량 강남구 일대를 수색하다 A 씨가 청담동에 있는 한 호텔에 투숙한 기록을 찾아냈다. 경찰과 동행해 방문을 두드린 호텔 직원에게 A 씨는 완강히 저항했다고 한다. 호텔 관계자는 “객실 체크아웃 시간이 다 됐다고 하니 ‘문밖에 경찰이랑 같이 있는 거 다 안다. 가까이 오지 마라’며 날카롭게 반응했다”고 전했다. 시간을 더 끌면 위험하겠다고 판단한 경찰은 소방과 공조해 출입문을 강제로 뜯고 방으로 들어갔다. A 씨는 별다른 부상 없이 구조됐다. 경찰 관계자는 “A 씨가 격렬하게 저항했다. 다행히 ‘도와주러 왔다’고 천천히 설득했더니 마음을 풀었다”고 전했다.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왜 (눈을 치우는) 공무원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 거죠?” 6일 오후 10시경 서울 서초구 신원지하차도. 왕복 4차선 도로는 차량 100여 대가 몇 시간째 눈이 내려앉아 얼어붙은 길을 오도 가도 못한 채 멈춰 있었다. 3시간 이상 고립됐던 운전자 1명은 차의 전기까지 방전돼 난방이 꺼지며 저체온증 증상을 호소하는 위급한 상황. 신고를 받은 119구조대는 인근에 도착했지만 차량에 막혀 눈길을 뛰어가 운전자를 구해냈다. 하지만 이 현장에는 서울시 제설차량도, 담당 공무원도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구조대 29명은 차량들을 뒤에서 손으로 밀어가며 차들을 안전지역으로 이동시켰다. 도로 위에 차들이 고립됐다는 신고가 이뤄진 뒤 약 4시간 만이었다. 소방 관계자는 “눈이 쌓인 데다 도로가 결빙돼 접근 자체가 매우 어려웠다”고 전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총체적 부실 대응 이날 폭설은 어느 정도 예견됐던 상황이었다. 기상청은 6일 오전 11시 수도권의 예상 적설량을 3∼10cm로 예보했다. 10분 뒤 서울 지역을 특정해 대설특보를 내리겠다는 ‘예비특보’도 발표했다. 심지어 기상청 관계자는 오후 1시 20분경 서울시 도로관리과 등 제설담당 부서에 전화를 걸어 대비를 당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기상청 예보가 5시간이 지난 오후 4시경에야 제설대책 1단계 근무 조치를 내렸다. 제설차량도 준비했으나 시내 33곳에 위치한 대기소로 보내고, 결빙 위험 도로에는 미리 대기시키지 않았다. 오후 6시 반경부터 제설차량을 투입했지만, 이미 도심 주요 도로는 정체가 빚어진 뒤였다. 결국 제설차량은 비교적 눈이 적게 내린 강북 지역에선 작업을 진행했으나, 피해가 막심했던 강남 지역은 진입조차 하지 못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상청에서 6일 눈이 1∼4cm 온다고 발표해 기준에 맞춰 대응한 것”이라며 “예보보다 눈이 많이 내려서 제설 과정에서 한계에 이르렀다”고 해명했다. 서울경찰청도 서초구와 강남구 지역에 6일 오후 9시부터 추가 인원을 투입했지만 이미 도로는 완전히 얼어붙어 차량은 제자리걸음 중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폭설을 확인한 뒤에 주요 경찰서 교통 담당 인력 50%를 투입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올겨울 제설작업 체계를 가동 중이었지만 폭설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2월 11일 관계기관 합동으로 제설작업 준비체계 가동을 위한 점검회의를 가졌다. 이후 도로 제설작업을 상시적으로 진행했지만, 정작 폭설에는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119에 신고해도 해결책 없다고 해”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6일 오후부터 7일 오전까지 서초구와 강남구 일대를 관할하는 강남·방배·수서 경찰서에는 폭설 관련 신고만 850여 건이 밀려들었다. 경찰 관계자는 “오후 7시경부터 청담대교와 반포대교 등에서 폭설 관련 신고가 동시다발적으로 접수됐다”며 “경찰차도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어서 모두 대응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피해는 시민들이 온전히 떠안았다. 6일 오후 8시경 경기 성남의 한 도로에서 11시간 동안 멈춰 있었던 택배기사 이효섭 씨(34)는 “눈 속에 혼자 갇혀 재난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 두려웠다”고 토로했다. 이 씨는 112와 119에 여러 차례 신고했지만, 경찰과 소방당국은 “현재로선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경기에서 견인차업체를 운영하는 김모 씨는 “6일 오후 차량 견인 요청이 100건 넘게 들어왔다. 정부와 지자체가 대응을 못 하니 민간업체까지 찾은 건데 우리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고 했다. 제설작업은 7일 오전에도 마무리되지 않아 시민들이 출근길에 큰 불편을 겪었다. 일부 시내 구간은 오후에도 정체가 이어졌다. 강남구 청담사거리에선 이날 오전 9시 40분경 택시 2대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내리막길에서 신호 대기 중인 택시 1대가 미끄러져 앞 택시에 부딪쳤다. 사고를 낸 택시 기사 A 씨(66)는 “아침까지도 제설작업 상태가 완전히 엉망이라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강남구는 6일 오후 폭설 상황과 관련해 아무런 안내를 하지 않다가 7일 오전 6시 46분경 도로 결빙에 유의해 달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처음으로 보냈다.지민구 warum@donga.com·박창규·김태성 기자}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아줌마도 너만 한 딸이 있는데….” 40대 여성 A 씨는 지난해 5월 경남 창녕의 한 길거리에서 B 양(9)과 마주쳤다. B 양의 옷 곳곳엔 얼룩이 가득했고 신발도 신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챈 A 씨는 B 양에게 다가가 인사말을 건넸다. “배가 고프다”는 B 양과 인근 편의점에 들러 먹을 걸 사주며 가벼운 얘기를 주고받았다. 적잖이 경계심을 푼 B 양이 부모의 학대를 털어놓은 건 한참 뒤부터였다. 바로 지난해 불에 달궈진 프라이팬으로 손발을 지지는 등 극심한 학대를 당하다 4층 아파트 베란다로 탈출했던 아이였다. 아동보호기관 전문가는 “A 씨가 차분하게 대처하지 않았다면 B 양은 또다시 지옥으로 끌려갔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10월 학대로 숨진 16개월 여아 정인이의 양부모가 재판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경찰이나 아동기관은 물론이고 일반시민 모두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어린이의 ‘학대 시그널’을 눈여겨봐야 제2, 제3의 정인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반성이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학대 의심 아동들이 직접 학대 사실을 말하지 않더라도 행동이나 말투, 옷차림 등을 보면 어느 정도 추정이 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학대 아동들은 작은 기척에도 깜짝 놀라는 경향이 있다. 별일 아닌데도 위축되는 아이들도 의심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붕년 서울대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는 “일단 가벼운 신체적 접촉조차 두려워하거나 경계하면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볼 수 없다. 영양 상태가 매우 부실해 보이거나 계절에 맞지 않는 옷차림도 학대 시그널 가운데 하나”라고 전했다. 또 다른 학대 아동들의 전형적인 특성은 ‘무기력’이다. 호기심이 많은 나이대에 어떤 것에도 호기심을 보이지 않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박명숙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또래 아이들보다 눈에 띄게 무기력하다는 건 위험 신호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영훈 의정부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꼭 정서적인 측면이 아니더라도 학대를 당해 뇌를 다쳐 전체적으로 몸이 처지고 말이 어눌해진 아동들이 있다”며 “표정이나 행동 변화를 잘 살피는 게 무척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의사 표현이 서투른 영·유아들은 신체 구석구석을 잘 살펴봐야 한다. 상대적으로 대화나 옷차림으로 파악이 어렵기 때문에 더욱 세심한 관찰이 요구된다. 김붕년 교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영·유아들이 상해까지 당하는 사고는 드물다”며 “의심스러운 타박상이나 골절이 있다면 일단 의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아가 잘 울지 않는 것도 이상 행동이다. 아이가 학대를 받았다는 의심이 든다면 다음 단계로 아이가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확실한 정황이나 증거를 찾았다고 직설적으로 ‘학대’를 언급하면 오히려 아이는 움츠러들어 진실을 밝히기 어려워진다. 황옥경 서울신학대 보육학과 교수는 “자칫 아이가 ‘네가 문제가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면 학대 아동은 현실을 회피하거나 부정하는 경향이 있다”며 “편안하게 사소한 이슈로 말을 건네며 따뜻하게 대화를 나누는 자체가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다짜고짜 ‘누가 널 때렸니’라고 물었다간 아이는 그 자리에서 도망쳐 버릴 수도 있다. 창녕에서 발견한 B 양이 처음 만난 A 씨에게 학대를 털어놓은 것도 이런 자연스러운 접근 때문이었다. 마음을 열고 털어 놓는 상황이 왔더라도 표현이 신중해야 한다. 정운선 경북대 소아청소년정신의학과 교수는 “학대 아동은 부모 같은 가까운 어른에게 당하는 경우가 잦다. 질문을 할 땐 학대 주체를 단정 짓지 말고 ‘누가 널 아프게 했니’처럼 포괄적으로 물어봐야 한다”고 했다.강승현 byhuman@donga.com·김태성·이소연 기자}

“병원에 오래 있느라 고생했어. 너희가 다시 와서 우린 너무 기뻐!” 지난해 11월 24일 아침 강원 홍천군 오안초등학교. 당시 학교 현관에는 다채로운 색깔의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삐뚤빼뚤 서툰 글씨와 그림이었지만 정성만은 가득했다. 그 근처에서 6학년 학생들이 쌀쌀한 날씨에도 바깥에서 호호 손을 불어가며 누군가를 기다렸다고 한다. 바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뒤 치료하고 돌아오는 후배들을 맞으러 나온 것이었다. 코로나19 여파로 갈수록 사회 분위기가 삭막해지는 가운데 따뜻한 정(情)을 보여줬던 초등학생들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4일 정례브리핑에서 “(코로나19에서) 회복해 학교와 일터로 복귀하는 분들을 편견 없이 반겨주는 배려가 우리 사회에 더 확산되길 바란다”며 오안초를 소개했다. 전교생이 50명도 안 되는 이 자그마한 학교는 지난해 10월 안타까운 일을 겪었다. 재학생 3명이 한꺼번에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들은 남매간으로 경기 광주에서 손주들을 보러온 할머니에게 감염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교직원과 학생 전원이 전수 검사를 받아야 했다. 다행히 추가 확진자는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확진된 가족에게 원망이 돌아갈 수도 있었던 상황. 실제로 완치된 아이들이 2주 격리까지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 다가오자 마을과 학교에선 다소 우려 섞인 얘기가 돌기도 했다고 한다. 오안초의 최고봉 교사(42)는 “누구라도 그런 상황이면 불안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다. 혹시나 다른 아이들이 철없이 삼남매를 놀릴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런 상황을 눈치채기라도 한 걸까. 6학년 학생들은 어른들과 교사들 몰래 ‘후배 맞이 대작전’을 준비했다. 9명이 며칠 동안 머리를 맞댄 끝에 아이들이 다시 등교하는 날 아침 일찍 학교에 모였다. 미리 준비한 도화지 등에 ‘고생 많았어’ ‘앞으로 더 힘차게 생활하자’ 등의 응원 문구를 썼다. 아이들에게 주려고 환영 케이크와 간식 등 먹을 것도 직접 준비했다고 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어요. 아이들은 혹시라도 고생한 후배들이 마음을 다칠까 봐 고민했다고 해요.”(최 교사) 깜짝 환영식은 대성공이었다. 당시 한눈에 봐도 긴장한 티가 역력하던 삼남매는 플래카드와 선물 등을 보고 놀라면서도 적잖이 안심하는 눈치였다고 한다. 최 교사는 “돌아온 학생들이 ‘형 누나들 덕분에 가슴이 뭉클했다’며 고마워했다”고 전했다. 친구들과 함께 플래카드 등을 준비했던 강보름 양(13)은 “‘조금이라도 불안한 티 내지 말자’고 서로 다짐하면서 깜짝 선물을 마련했다”면서 “이제 코로나19 확진은 옛날이야기 같다. (확진됐던) 아이들 역시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잘 어울려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내년 1월 1일부터 서울과 경기남부, 부산 등 주요 지방경찰청 3곳에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가 신설된다. 개정된 형사소송법에 따라 경찰의 직접 수사 범위가 넓어지면서 일선 경찰청에 검찰의 반부패수사부와 유사한 수사부서가 생기는 것이다. 정부는 29일 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대통령령인 ‘경찰청과 그 소속기관 직제 시행령’을 의결했다. 이 시행령에 따라 경찰은 국가수사본부와 자치경찰제 등으로 직제가 개편된다.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국가수사본부 산하에는 2관(수사기획조정관 과학수사관리관), 4국(수사국 형사국 사이버수사국 안보수사국), 1담당관(수사인권담당관)을 둔다. 안보수사국은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이관될 예정인 대공수사 업무 등을 맡는다. 지방경찰청 수사대가 확대 개편될 예정인데, 서울과 경기남부, 부산 등 3개 지방경찰청에는 기존에 없던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가 별도로 신설된다. 이들은 기존 지능범죄수사대가 담당하던 선거사범, 공무원 반부패 범죄 등과 함께 검찰이 손을 뗄 반부패 수사 영역을 담당하게 된다. 내년부터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는 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산, 대형 참사 등 6대 범죄로 제한된다. 특히 뇌물 액수 3000만 원 이상, 4급 이상 공무원의 부패 범죄만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이하의 사건은 경찰이 수사해야 한다. 경찰 관계자는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늘어난 경찰의 수사 범위에 따라 인력을 늘리고 조직을 재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2개 시도 경찰청에는 사건 종결 적정성, 추가 수사 필요성 등을 심사하는 수사심사담당관이 신설된다.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사건심사심의위원회나 반부패협의회 등도 공정수사 강화를 위한 장치라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강승현 byhuman@donga.com·김태성 기자}
“약속한 대로 앞으로도 상금을 받으면 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쓰겠습니다.” 10월 대형 화재가 발생했던 울산 삼환아르누보 주상복합아파트에서 이웃 주민 18명의 구조에 기여했던 ‘2802호 의인’ 구창식 씨(51) 가족이 경찰청 등에서 받은 상금 전액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내놓았다. 구 씨 가족은 10월에도 포스코청암재단이 수여한 딸의 장학금을 기부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구 씨 가족은 상금으로 받은 1000만 원 가운데 세금을 공제한 780만 원 전액을 경북 청도군에 기탁했다”고 28일 밝혔다. 경찰청과 BG리테일은 이달 17일 구 씨를 ‘아동안전시민상’ 시민영웅 부문 수상자로 선정해 상금을 전했다. 구 씨는 자신의 고향인 청도군에 “어려운 형편의 어르신들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다”며 상금을 내놓았다. 청도군은 구 씨의 뜻을 존중해 기탁금을 지역 저소득 노인 39가구에 20만 원씩 지원할 예정이다. 구 씨와 부인 장 씨, 아들 모선 씨(25)는 화재 당시 28층 자택에서 대피하던 도중 29층에서 아기를 안고 도움을 요청하는 임산부 등 18명을 구해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달 10일 국무총리 표창을 수여하며 “헌신적 희생정신을 발휘했다”고 했다.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음주 폭행 사건 당시 경찰은 해당 사안을 청와대에 따로 보고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28일 기자간담회 서면 답변에서 “(이 차관 사건은) 11월 6일 발생해 12일 내사 종결한 사안으로 당시 서울지방경찰청과 경찰청에 보고되지 않았다. 청와대에도 보고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달 2일 이 차관이 임명되기 전에 마무리된 사안이라 별도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 차관이 변호사에서 고위공직자로 신분이 바뀐 만큼, 임명 직후에라도 관련 보고가 있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선 유력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 후보로 꼽혔던 이 차관이 사건 발생 3일 뒤인 9일 법무부 추천 후보에서 제외된 배경도 이 사건이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정차 중이었던 택시지만 시동이 걸려있던 상황에서 폭행이 벌어졌는데 입건하지 않은 것도 논란이다. 경찰은 이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 대신 폭행죄를 적용해 내사 종결한 서울 서초경찰서의 판단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특가법 적용 여부를 판단하려면 운전 여부가 중요한데 2008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공중의 교통안전을 저해할 우려가 없는 장소에서 운행 의사 없이 자동차를 주·정차한 경우에는 운행 중으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사건이 발생한 장소 역시 “통행량이나 보행자 수 등을 고려할 때 교통 방해나 안전을 위협할 만한 곳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사 종결 과정도 “규정상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관할서가 판례와 규정 등을 검토했고, 입건 전에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확인해 공소권이 없는 사안이었다는 의견이다. 경찰 관계자는 “(관할서의) 판단을 존중하며 별도로 감찰을 진행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다만 수사 주체로서 국민의 신뢰와 수사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내사 처리 규정을 개정하겠다”고 했다. 피해자인 택시기사 A 씨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택시기사 등 운수 종사자들의 안전 운행을 위한 기준이 명확히 정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A 씨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운전자 폭행은 전국의 택시기사들이 모두 한두 번씩은 겪어본 일일 것”이라면서 “앞으로는 운전석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손대면 무조건 특가법을 적용해 운전자 안전을 보장해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강승현 byhuman@donga.com·김태성 기자}

이용구 법무부차관의 택시기사 음주 폭행 사건 당시 경찰은 해당 사안을 청와대에 따로 보고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28일 기자간담회 서면 답변에서 “(이 차관 사건은) 11월 6일 발생해 12일 내사 종결한 사안으로 당시 서울지방경찰청과 경찰청에 보고 되지 않았다. 청와대에도 보고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달 2일 이 차관이 임명되기 전에 마무리 된 사안이라 별도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 차관이 변호사에서 고위공직자로 신분이 바뀐 만큼, 임명 직후에라도 관련 보고를 있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 정차 중이었던 택시지만 시동이 걸려있던 상황에서 폭행이 벌어졌는데 입건하지 않은 것도 논란이다. 경찰은 이에 대해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 대신 폭행죄를 적용해 내사 종결한 서울 서초경찰서의 판단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특가법 적용 여부를 판단하려면 운전 여부가 중요한데 2008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공중의 교통안전을 저해할 우려가 없는 장소에서 운행 의사 없이 자동차를 주·정차한 경우에는 운행 중으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사건이 발생한 장소 역시 “통행량이나 보행자 수 등을 고려할 때 교통 방해나 안전을 위협할 만한 곳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사 종결 과정도 “규정상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관할서가 판례와 규정 등을 검토했고, 입건 전에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를 확인해 공소권이 없는 사안이었단 의견이다. 경찰 관계자는 “(관할서의) 판단을 존중하며 별도로 감찰을 진행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다만 수사 주체로서 국민의 신뢰와 수사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내사 처리 규정을 개정하겠다”고 했다. 이 차관 사건 당일에 출동한 경찰이 택시의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직접 분리해 영상이 훼손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문제제기도 있다. 택시 기사 A 씨는 27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일 차량 시동이 걸려 있는 상태에서 경찰이 영상 확인을 위해 메모리 카드를 직접 분리했다”고 전했다. 해당 경찰은 메모리카드에서 영상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한다. A 씨는 “이틀 뒤인 8일 업체에 갔더니 블랙박스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며 “업체에서 ‘시동이 걸려있는 상태에서 메모리카드를 넣었다 뺐다 하면 영상이 날아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이용구 법무부 차관에게 욕설을 듣고 멱살을 잡혔던 택시 운전사가 “이 차관이 폭행 등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합의금을 제시해 합의를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지난달 6일 벌어진 이 차관의 폭행 사건에 연루된 택시 운전사 A 씨는 24일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이 차관이 (사건 이틀 뒤인) 지난달 8일 ‘술 취한 사람을 잘 데려다줘서 고맙다. 실수를 했는데 해코지 안 한 게 고맙고 죄송하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고 밝혔다. 이 차관은 택시 호출 앱에서 A 씨의 휴대전화 번호를 확인해 연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에 따르면 이 차관과 A 씨는 8일 직접 만났으며, 이 차관은 그 자리에서 폭행에 대해 시인하고 사과했다고 한다. A 씨는 “이 차관이 ‘사람에게 손을 댄 것은 처음이다. 정말 죄송하다’고 했다”며 “진정성을 느껴 이 차관이 제시한 합의금을 받고 합의했다”고 전했다. A 씨는 이 차관을 만난 다음 날 경찰에 처벌 불원서를 제출했다. A 씨는 사건 당시 상황도 설명했다. A 씨는 “이 차관에게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하자 갑자기 ‘너 누구야’라며 오른손으로 멱살을 잡았다”며 “이 차관에게 ‘이러다 큰일 난다. (블랙박스에) 다 찍힌다’고 하자 잡은 손을 놓고 뒷좌석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고 했다. 당시 택시는 시동이 걸려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시동이 켜져 있는지와 관계없이 당시 정차 중이었기에 단순 폭행죄를 적용해 내사 종결했다”고 말했다.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박건영 채널A기자}

이용구 법무부 차관에게 욕설을 듣고 멱살을 잡혔던 택시 기사가 “이 차관이 폭행 등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합의금을 제시해 합의를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지난달 6일 벌어진 이 차관의 폭행 사건에 연루된 택시 기사 A 씨는 24일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이 차관이 (사건 이틀 뒤인) 지난달 8일 ‘술 취한 사람을 잘 데려다 줘서 고맙다. 실수를 했는데 해코지 안 한 게 고맙고 죄송하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밝혔다. 이 차관은 택시 호출 앱에서 A 씨의 휴대전화 번호를 확인해 연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에 따르면 이 차관과 A 씨는 8일 직접 만났으며, 이 차관은 그 자리에서 욕설과 폭행에 대해 시인하고 사과했다고 한다. A 씨는 “이 차관이 ‘사람에게 손을 댄 것은 처음이다. 원하는 합의금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며 “이 차관이 제시한 합의금을 받아 합의했다”고 전했다. A 씨는 이 차관을 만난 다음날 경찰에 처벌 불원서를 제출했다. A 씨는 사건 당시 상황도 설명했다. A 씨는 “이 차관에게 ‘목적지에 다 왔다’고 하자 갑자기 욕을 하며 오른손으로 멱살을 잡았다”며 “이 차관에게 ‘멱살 잡으면 큰일 난다. 다 찍힌다고 하자, 잡은 손을 놓았고 뒷좌석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고 했다. 당시 택시는 시동이 걸려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시동이 켜져 있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당시 정차 중이었기에 단순 폭행죄를 적용해 내사 종결했다”고 말했다. 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이용구 법무부 차관(사진)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는 택시 기사가 사건 당일 첫 경찰 진술에선 “이 차관이 (주행 중에) 자신의 목을 잡았고 문을 열려다 제지하니 욕설을 했다”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이 차관을 태웠던 택시 기사가 지난달 6일 밤 경찰에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목을 잡았다’고 최초 진술했다”고 22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해당 택시 기사는 당일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서초파출소 경찰에게 이같이 말했다고 한다. 만약 이 진술대로 아직 이동 중이던 차량의 운전자에게 폭행을 저질렀다면 피의자 의사와 상관없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을 적용할 수 있다. 택시 기사는 또 “(주행 중에) 강남역 사거리에서 뒷문을 열려고 해서 제지했더니 욕설을 했다”며 “블랙박스에 다 찍혀 있다”고도 진술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경찰과 함께 확인한 블랙박스에는 녹화 영상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흘 뒤 서초경찰서에 출석한 택시 기사는 “당시 진술이 과장됐다”며 태도를 바꿨다고 한다. “목적지에 정차한 뒤에 깨우려고 할 때 멱살을 잡았다”며 “문을 열려고 했을 때는 신호 대기 중이었고, 제지하자 혼잣말처럼 욕설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고 첫 진술을 번복했다. 경찰 관계자는 “정식 조사에서 진술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 차관에게 단순 폭행죄를 적용했으며, 택시 기사가 처벌 불원서를 제출해 해당 사건을 내사 종결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22일 “아무 잘못도 없는 택시 기사의 멱살을 잡고 폭행한다는 것은 일반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은 이 차관을 경질해주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대검은 “이 차관이 택시 기사를 폭행했다는 의혹에 대한 시민단체의 고발 건을 서울중앙지검이 수사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검은 조만간 해당 사건을 형사부에 맡길 예정이다. 검찰은 이 사건을 경찰에 맡기지 않고 직접 수사할 가능성도 있다.김태성 kts5710@donga.com·고도예 기자}

경찰이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 운전사 음주 폭행 사건을 입건하지 않고 내사 종결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정차 중일 때 택시 운전사를 폭행하면 무겁게 처벌하도록 한 특별법 대신 피해자 합의로 처벌을 피할 수 있는 일반법을 적용한 경찰은 “사건 처리에 문제없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선 “현 정부의 ‘도로 위 폭행 엄단’ 기조와 상반된 봐주기 처분”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파출소→특가법, 경찰서→형법’ 적용20일 경찰 등에 따르면 이 차관은 지난달 초 서울 서초구 자택 부근에 도착한 택시 안에서 잠든 자신을 깨우던 운전사의 멱살을 잡았다.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서초파출소 직원들은 피해자인 택시 운전사로부터 “술에 취한 승객을 깨우다가 멱살을 잡혔다”는 진술을 듣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운행 중인 운전자 폭행’ 혐의로 경찰서에 보고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 서초경찰서는 형법상 단순폭행 혐의에 해당한다고 보고 피해자를 조사했다. 택시 운전사는 며칠 뒤 ‘처벌 불원서’를 제출했고, 경찰은 단순 폭행 혐의는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반의사 불벌죄’라는 이유로 입건하지 않고 내사 종결했다. 경찰의 처분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교통사건을 담당해온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폭행당한 택시 운전사가 시동을 끄지 않았다면 특가법 유죄가 확실하고, 시동을 껐더라도 승객을 하차시키고 계속 영업을 할 의사가 있었다면 ‘운행 중’으로 봐서 특가법이 적용된다”고 했다. 올해 수십 건의 운전자 폭행 사건을 처리한 한 검사는 “정차 중인 택시 내부 폭행은 특가법에 따라 가중 처벌돼야 한다. 단순 폭행죄도 파출소에서 경찰서로 넘어갔다면 입건 뒤 처벌 불원에 따른 ‘공소권 없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어야 맞다”고 했다. 시민단체들은 19일 대검찰청에 이 차관을 고발했다.○ “특가법 개정 취지에 어긋나”특가법상 운전자 폭행은 차량의 위험한 작동으로 보행자 등에 대한 2차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된다. 국회는 특가법의 법 조항 중 ‘운행 중인 운전자를 폭행한 경우’가 실제 주행 중일 때로 좁게 해석돼 기사 폭행사범 중 0.69%만 구속되는 상황이라며 2015년 6월 ‘승하차 등을 위해 일시 정차한 경우’를 포함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이 차관이 법무부 법무실장으로 재직하던 지난해 8월 법무부는 “도로 위 폭력행위에 대해 검찰에 철저한 수사와 엄정한 대응을 지시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광주지법은 지난해 2월 아파트 앞에서 하차를 위해 정차 중인 택시 운전사의 멱살을 흔들어 전치 2주 상해를 입힌 50대 승객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당시 “택시가 운행 중이 아니었다”는 승객 측 주장에 대해 법원은 “또다시 택시 운행에 나갈 계획이었던 이상 피해자가 운행을 종료할 의사였다고 볼 수 없다”며 ‘운행 중인 상황’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경찰은 ‘공중의 교통안전 등을 저해할 우려가 없는 장소에서 계속적인 운행 의사 없이 자동차를 주·정차한 상태는 운행 중으로 볼 수 없다’는 2008년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택시가 목적지에 도착해 운전사에게 계속적 주행 의사가 없다고 봤다”고 반박했다.○ 야당 “재수사 필요”… 여당과 이 차관, 침묵여야 반응은 엇갈렸다. 국민의힘 배준영 대변인은 “시민단체가 이 차관을 고발했다고 한다. 공수처의 1호 사건이 될지도 모르는데, 혹시 사건을 끌어와서 맡으려면 특가법을 참고하길 바란다”고 논평했다. 같은 당 박민식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 “서초경찰서장, 경찰청장, 대통령민정수석실 등은 이 사건에 관한 보고를 전혀 받은 적이 없는지, 언제 보고받았는지 스스로 밝혀야 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 이용구를 살렸나”라고 적었다. 여당은 논평을 내지 않았고, 법무부는 “이 차관은 별도의 입장이 없다”고 했다.박상준 speakup@donga.com·김태성·강성휘 기자}
경기 평택에 있는 한 물류창고 공사 현장에서 천장이 무너지며 작업 중이던 근로자들이 아래로 추락해 3명이 숨지고 2명이 크게 다쳤다. 경기 평택경찰서 등에 따르면 20일 오전 7시 32분경 청북읍에 있는 지상 7층, 지하 1층 높이 물류창고 건물 공사현장의 5층 자동차 진입 램프 구간에서 콘크리트 재질의 천장 상판이 무너져 내렸다. 이로 인해 위층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8명 가운데 5명이 바닥이 무너지며 5층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고 지점에서 추락한 높이는 10m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추락 사고로 현장에서 일하던 곽모 씨(53) 등 3명은 목숨을 잃었으며, 조모 씨(56) 등 2명은 크게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다. 조 씨 등 부상자들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에서 일하던 근로자 8명은 모두 중국 동포라고 한다. 경찰은 현장 진술 등을 바탕으로 이날 사고가 5층 천장 상판을 지탱하던 기둥이 무너지며 벌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장 근로자들은 모두 안전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경찰은 시공업체 등을 대상으로 현장에 관리자가 있었는지, 안전관리가 잘 이뤄졌는지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정확한 원인 파악을 위해서 다음 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합동 현장 감식도 실시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업체 측은 현장에 관리자가 상주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현장 근로자들은 누가 관리자인지 잘 모르겠다고 진술해 명확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김태성 kts5710@donga.com·김소영 기자}

경찰이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음주 폭행 사건을 입건하지 않고 내사 종결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정차 중일 때 택시 기사를 폭행하면 무겁게 처벌하도록 한 특별법 대신 피해자 합의로 처벌을 피할 수 있는 일반법을 적용한 경찰은 “사건 처리에 문제없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선 “현 정부의 ‘도로 위 폭행 엄단’ 기조와 상반된 봐주기 처분”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파출소→특가법, 경찰서→형법’ 적용20일 경찰 등에 따르면 이 차관은 지난달 초 서울 서초구 자택 부근에 도착한 택시 안에서 잠든 자신을 깨우던 기사의 멱살을 잡았다.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서초파출소 직원들은 피해자인 택시기사로부터 “술에 취한 승객을 깨우다가 멱살을 잡혔다”는 진술을 듣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운행 중인 운전자 폭행’ 혐의로 경찰서에 보고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 서초경찰서는 형법상 단순폭행 혐의에 해당한다고 보고 피해자를 조사했다. 택시기사는 며칠 뒤 ‘처벌 불원서’를 제출했고, 경찰은 단순 폭행 혐의는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반의사 불벌죄’라는 이유로 입건하지 않고 내사 종결했다. 경찰의 처분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교통사건을 담당해온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폭행당한 택시 기사가 시동을 끄지 않았다면 특가법 유죄가 확실하고, 시동을 껐더라도 승객을 하차시키고 계속 영업을 할 의사가 있었다면 ‘운행 중’으로 봐서 특가법이 적용된다”고 했다. 올해 수십 건의 운전자 폭행 사건을 처리한 한 검사는 “정차 중인 택시 내부 폭행은 특가법에 따라 가중처벌돼야 한다. 단순 폭행죄도 파출소에서 경찰서로 넘어갔다면 입건 뒤 처벌불원에 따른 ‘공소권 없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어야 맞다”고 했다. 시민단체들은 19일 대검찰청에 이 차관을 고발했다. ● “특가법 개정 취지에 어긋나”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은 차량의 위험한 작동으로 보행자 등에 대한 2차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된다. 국회는 특가법의 법 조항 중 ‘운행 중인 운전자를 폭행한 경우’가 실제 주행 중일 때로 좁게 해석돼 기사 폭행사범 중 0.69%만 구속되는 상황이라며 2015년 6월 ‘승하차 등을 위해 일시 정차한 경우’를 포함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이 차관이 법무부 법무실장으로 재직하던 지난해 8월 법무부는 “도로 위 폭력행위에 대해 검찰에 철저 수사와 엄정 대응을 지시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광주지법은 지난해 2월 아파트 앞에서 하차를 위해 정차 중인 택시기사의 멱살을 흔들어 전치 2주 상해를 입힌 50대 승객에게 징역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당시 “택시가 운행 중이 아니었다”는 승객 측 주장에 대해 법원은 “또 다시 택시 운행에 나갈 계획이었던 이상 피해자가 운행을 종료할 의사였다고 볼 수 없다”며 ‘주행 중인 상황’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경찰은 ‘공중의 교통안전 등을 저해할 우려가 없는 장소에서 계속적인 운행 의사 없이 자동차를 주·정차한 상태는 운행 중으로 볼 수 없다’는 2008년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택시가 목적지에 도착해 기사에게 계속적 주행의사가 없다고 봤다”고 반박했다.● 야당 “재수사 필요”…여당과 이 차관, 침묵여야 반응은 엇갈렸다. 국민의힘 배준영 대변인은 “시민단체가 이 차관을 고발했다고 한다. 공수처의 1호 사건이 될지도 모르는데, 혹시 사건을 끌어와서 맡으려면 특가법을 참고하길 바란다”고 논평했다. 같은 당 박민식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 “서초경찰서장, 경찰청장, 대통령민정수석실 등은 이 사건에 관한 보고를 전혀 받은 적이 없는지, 언제 보고 받았는지 스스로 밝혀야 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 이용구를 살렸나”라고 적었다. 여당은 논평을 내지 않았고, 법무부는 “이 차관은 별도의 입장이 없다”고 했다.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킥보드에서 내려 끌고 가야 합니다. 위반 사항은 인도 주행과 보행자 통행 방해입니다.” 10일 오후 2시 30분경 서울 동대문구 회기역사거리 인근. 교통경찰관은 헬멧도 없이 전동킥보드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넌 한 20대 남성을 멈춰 세웠다. 경찰은 “전동킥보드를 탄 채 인도나 녹색불이 들어온 횡단보도로 주행하는 것은 범칙금 3만 원 부과 대상”이라고 경고했다. 다만 “아직 이런 규정을 제대로 모르는 시민들이 대부분”이라며 해당 남성은 주의만 주고 돌려보냈다. 10일부터 전동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장치(PM) 관련 규제를 ‘오토바이에서 자전거 수준으로’ 완화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운전면허를 소지한 만 16세 이상만 탑승이 가능하던 전동킥보드를 만 13세 이상이면 누구나 탈 수 있다. 차도는 물론 자전거도로에서도 주행할 수 있고, 헬멧 미착용 시 부과되던 범칙금 2만 원도 사라졌다. 일반 국민의 일상을 조금이라도 살폈다면 이런 현실과 동떨어진 법안이 만들어지진 않았을 테다. ‘신산업 육성’이란 취지 아래 법안 통과까지 국민들의 안전은 별일 아닌 듯 무시됐다. 전동킥보드 등과 관련된 교통사고는 올해 10월까지 688건 발생해 2017년 117건에 비해 6배 가까이로 늘었다. 지난해엔 473명이 다치고 8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학생 강모 씨(25)도 지난달 인도에서 걸어가다 부상을 입었다. 젊은 남녀가 함께 탑승한 전동킥보드가 쌩하고 달려오더니 그대로 강 씨를 들이받았다. 강 씨는 “그 뒤 멀리서 보이기만 해도 몸이 움츠러들 정도”며 “안 그래도 위험한데 규제를 풀어주는 게 말이 되느냐. 중학생도 탄다니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음주운전 단속도 문제다. 원래 차량 음주운전과 동일한 처벌을 받았으나, 10일부터 범칙금 3만 원으로 대폭 낮아졌다. 실제로 9일 밤 서울 왕십리를 둘러봤더니, 불콰해진 얼굴로 공유 전동킥보드에 올라타는 이들이 상당했다. 대학생 박모 씨(25)는 “술 마시고 자주 이용한다. 음주 단속에 걸린 적은 없다”고 했다. 물론 정부도 손만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부정적 여론이 커지자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30일 ‘전동킥보드 안전관리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개정안이 시행되는 10일부터 공유 전동킥보드는 대여 연령을 만 18세 이상으로 높이고 단속도 강화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개인 소유 전동킥보드는 여전히 만 13세 이상이면 탈 수 있다. 결국 국회는 다시 법을 바꿨다. 이달 9일 면허를 가진 사람만 전동킥보드를 타도록 ‘도로교통법 재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재개정안이 유예 기간을 거쳐 내년 4월 시행되는 걸 감안하면, 지금부터 3∼4개월만 중학생이 전동킥보드를 타도 합법인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는 셈이다. 그들의 갈팡질팡 헛발질에 국민만 애를 먹게 됐다. 김태성 사회부 기자 kts5710@donga.com}

“아이를 계속 봐달라고 사정하는데 우리도 별 도리가 없어서요.” 8일 오전 11시경 서울 중구에 있는 한 영어유치원. 이날부터 원생들의 등원이 중지된 이곳은 유치원 교사들만 모여 대책회의를 하고 있었다. 한 교사는 “정부 입장에선 어쩔 수 없다지만, 수시로 방역지침이 바뀌니 너무 힘들다”며 “금전적 손해는 둘째 치고 학부모에게 일일이 양해를 구하느라 스트레스가 심각하다”고 하소연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매일 600명 안팎으로 쏟아지며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이날 0시부터 2.5단계로 격상됐다. 일상 통제가 다시 강화되자 곳곳에선 크고 작은 잡음이 들려왔다. 특히 3단계 조치에 해당하는 ‘학원 집합금지’가 함께 시행돼 규정상 학원으로 등록한 놀이학교나 영어유치원 등은 모두 휴원에 들어가 학부모들이 돌봄 공백을 호소하고 있다. 반면 실내 이용이 가능한 다중이용시설엔 사람들이 몰려들며 ‘풍선 효과’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갈 곳 없는 아이들, 애타는 학부모 동아일보가 이날 서울 중구와 마포구, 성동구에 있는 놀이학교 및 영어유치원 등 10곳을 살펴봤더니, 모두가 방역수칙을 따라 문을 닫으면서도 볼멘소리가 거셌다. 중구에서 원생 60여 명 규모의 영어유치원을 운영하는 A 원장(55)은 “대다수 원생 학부모들이 맞벌이라 갑작스러운 조치에 어제부터 ‘멘붕’에 빠졌다”며 “공부 안 시켜도 좋으니 며칠이라도 맡아만 달라고 사정하는데 상황을 설명하기 너무 힘들다”고 전했다. 방역수칙이 너무 자주 바뀌는 탓에 대응하기 힘들었다는 불만도 있었다. 성동구에 있는 한 놀이학교의 교사는 “처음부터 강력한 결정을 내렸으면 일일이 대처하느라 애먹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찔끔찔끔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더 힘들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한 영어유치원 측도 “사회적 거리 두기가 2.5단계로 격상돼도 휴원할 필요는 없다는 기존 정부 지침을 믿고 지난달 개원했다”면서 “갑자기 지침을 바꿔 문을 닫으라고 하면 이번 달 임대료와 교사 월급 등 손해는 누가 보상해 주느냐”고 항의했다. 가장 힘든 건 아이들과 부모들이다. 경기 수원에 사는 조모 씨(31)는 3세 자녀의 놀이학교 휴원에 어쩔 수 없이 회사에 휴가를 냈다. 조 씨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원생을 받게 하면서, 같은 목적의 시설인 놀이학교 등은 안 된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며 “회사에서 휴가를 허용하면서도 영 마뜩잖은 눈치라 이래저래 힘이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에서 자녀들을 키우는 B 씨(35)는 “영어유치원이 모두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한다는데 그럼 왜 다니나 싶어서 관둘까 고민 중”이라며 한숨지었다.○ 카페 이용 못 하게 하니 다른 데 몰려 카페 등 대다수 다중이용시설이 이용을 제한하고 있지만, 틈새는 남아 있다. 일반관리시설로 분류된 ‘스터디 카페’나 분류 기준이 명확지 않은 ‘만화 카페’ 등 실내에 머물 수 있는 업소들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상황이다. 이들 시설도 오후 9시면 영업을 마치지만 이전까지는 실내에 있을 수 있다. 8일 한양대 인근에 있는 한 스터디 카페를 찾았더니 전체 71석 가운데 50석 가까이가 차 있었다. 좌석 거리가 좁고 상당히 밀폐된 분위기였으며, 환기가 제대로 안 된 듯 공기가 답답했다. 이용객이나 종업원들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긴 했으나, ‘턱스크’ 상태로 음료를 마시는 이도 적지 않았다. 신촌에 있는 한 만화 카페도 평소보다 훨씬 북적거렸다. 칸막이로 가려진 공간에서 만화책 대신 노트북을 보던 대학생 C 씨(26)는 “기말과제 기간인데 도서관 등 학교 시설은 문을 닫고 스터디 카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여기 왔다”고 말했다. 이날은 마침 연세대에서 논술고사를 시행해 1만여 명이 신촌 일대에 몰리며 극심한 혼잡을 빚기도 했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방역 기준을 지키되 현장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을 고려해 유연하게 조정해야 한다”며 “방역 구멍을 막기 위한 현장 단속과 점검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영어유치원 논란은 기준과 현장의 괴리로 생기는 부작용”이라며 “정책의 신뢰성을 위해서라도 방역 조치의 적용을 세심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신지환 jhshin93@donga.com·김태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