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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8일 검찰은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하면서 “대장동 개발 과정에서 (민간업자들과) 유착관계를 맺고 금품 제공과 선거 지원에 따른 사업상 특혜를 주고받았다”고 했다. 김 전 부원장은 “(검찰이) 창작 소설을 쓰고 있다. 절필시키고 반드시 진실을 밝히겠다”고 맞받았다. 열흘 후 정진상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검찰이 “대장동 업자들에게 특혜를 몰아주고 수익을 뇌물로 받았다”고 했을 때도 정 전 실장 측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 등의 진술에 의존한 완벽한 소설”이라고 반박했다.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반응도 비슷했다. 이 대표는 정 전 실장 뇌물 수수 의혹을 두고 “검찰이 훌륭한 소설가가 되긴 쉽지 않겠다. 창작 완성도가 매우 낮은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달 30일 선고된 김 전 부원장 1심 판결에서는 김 전 부원장과 민주당 측이 소설이라며 부인했던 내용이 상당수 인정됐다. 첫째,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김 전 부원장이 정 전 실장 및 유 전 직무대리와 “이 대표의 정치적 성공을 바라는 동지이자 의형제라 할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했다. 유 전 직무대리는 물론 정 전 실장과도 “친분 관계일 뿐 의형제는 아니었다”고 한 김 전 부원장의 발언과 거리가 있는 대목이다. 둘째, 김 전 부원장 측은 검찰이 돈을 받았다고 지목한 2021년 5월 3일 “다른 곳에 있었다”며 전직 경기도 공공기관 대표 증언을 알리바이로 제시했지만 재판부는 “믿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그날 유원홀딩스 사무실에서 1억 원을 건넸다는 유 전 직무대리 증언을 인정했다. 셋째, 재판부는 2021년 6월 8일 경기 수원시 광교 버스정류장에서 3억 원을 전달하고 6, 7월 2억 원을 더 건넸다는 유 전 직무대리의 진술도 인정했다. 김 전 부원장 측은 “날짜가 오락가락한다”며 이의를 제기했지만 재판부는 “다소의 차이는 비본질적”이라며 일축했다. 넷째, 유 전 직무대리의 진술이 검찰의 회유·압박으로 이뤄져 신빙성이 낮다는 김 전 부원장 측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검사의 협박·회유 등이 행해졌다고 볼 사정은 안 보인다”고 했다. 다섯째, 김 전 부원장 측은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시기는 이미 전국 조직 완성 후였고 그 준비 과정 역시 자원봉사자가 갹출했다”고 했지만 재판부는 “경선 대비 문건 등을 볼 때 자원봉사로 해결될 정도가 아니었다”며 “조직 구성과 준비 등을 위한 자금 필요가 있었다”고 했다. 판결 후 이 대표는 “아직 재판이 끝난 게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1심에서 범죄사실이 대부분 인정된 이상 경천동지할 새 증거가 없다면 2, 3심에서 무죄가 선고되긴 힘들다는 게 법조계의 상식이다. 특히 정진상-김용-유동규 및 대장동 일당의 유착 관계(첫째)와 유 전 직무대리 진술의 신빙성(둘째∼넷째)이 인정된 건 이 대표와 민주당에 뼈아픈 대목이다. 진행 중인 정 전 실장 및 이 대표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이 대표와 민주당은 대장동 의혹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기보다 ‘소설’, ‘야당 탄압’, ‘정치 보복’이란 구호로 일관했다. 잘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알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이 대표가 스스로 ‘분신’이라고 했던 측근의 일탈이 드러났다. 이 대표는 이제라도 대장동 의혹에 대해 아는 만큼 설명하고, 측근 관리를 제대로 못했던 것에 유감이라도 표해야 한다. 그게 2년 넘게 이어진 대장동 스캔들로 분노하거나 실망했던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장원재 사회부장 peacechaos@donga.com}

최근 만난 서울의 한 현직 구청장은 “서울과 인접한 경기 기초단체장들이 서울시에 편입하겠다고들 하는데 속마음은 그러고 싶지 않을 것”이라며 “주민 표심을 고려한 오버 액션”이라고 했다. 이유를 묻자 시장 권한이 구청장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란 답이 돌아왔다. 실제로 지방자치법을 보면 시장은 도시계획을 수립하고 재개발을 진행할 권한이 있지만 구청장은 그렇지 않다. 상하수도를 만들거나 도시공원을 만들 권한도 시장에겐 있지만 구청장에겐 없다. 경기 성남시장이 대장동 사업을 주도할 순 있지만, 서울 용산구청장이 용산정비창 사업을 주도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렇게 시장은 행사할 수 있지만 구청장은 행사할 수 없는 권한이 42개나 된다. 지금까지 지자체장이 서울 편입론에 긍정적 태도를 보인 곳은 김포·구리·고양시 정도다. 그런데 시장직을 포기할 수 있다고 밝힌 사람은 김병수 김포시장뿐이다. 김포시의 경우 서울과 인천 사이에 끼어 있다. 또 김동연 경기지사의 경기북부특별자치도 구상이 현실화되면 한강 남쪽임에도 경기북도로 가든가, 서울 인천 경기북도에 둘러싸여 섬처럼 남아야 한다. 김포에 사는 지인은 “서울에 편입된다고 크게 달라질 건 없겠지만 경기북도나 경기남도, 인천이 되는 것보단 낫다”고 했다. 결국 김 시장은 이달 6일 오세훈 서울시장과 만나 “시장 권한을 내려놓을 수 있다”고 했다. 반면 백경현 구리시장은 이달 13일 오 시장을 만나 “특별자치시 형태로 편입을 희망한다”고 했다. 서울 편입은 원하지만 시장 권한을 포기하진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는 일정 기간은 자치시를 유지할 수 있지만 6∼10년 후엔 자치구로 완전히 편입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고양시는 인구 100만 명 이상인 특례시로 시장이 지방연구원을 만들 수 있고, 택지개발지구 지정도 가능하다. 주민 수가 서울 자치구 중 가장 많은 송파구(약 65만 명)의 1.6배여서 자치구 하나로 편입되긴 규모가 지나치게 크다. 이동환 고양시장이 이달 21일 오 시장을 만나 “종속적 편입이 아니라 대등하게 수도권 재편을 논의하자”고 한 것도 단순 편입에는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이처럼 서울 편입에 긍정적인 기초단체에서도 각자 생각하는 ‘메가시티 서울’의 청사진은 다르고 이해관계도 다르다. 또 서울 인접 경기 기초단체 중 김포·구리·고양시를 제외한 9곳 단체장들은 일부 주민의 편입 주장에도 유보적이거나 부정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각자 사정이 다른 건 시야를 전국으로 넓혀도 마찬가지다. 최근 여권에서 거론하는 부산-경남 행정 통합은 지난해 10월 부울경 메가시티 추진이 공식 무산된 직후 부산·경남 지자체장이 밝혔던 구상이다. 당시 “주민 의견을 수렴해 진행하겠다”고 했는데 최근 주민 여론조사에서 10%포인트 차이로 부정적 의견이 더 많았다. 주민 투표 방식으로 통합을 진행할 경우 통과를 장담하기 어렵단 뜻이다. 대전·세종·충남북 등 충청권 통합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일제히 국민의힘 소속 단체장들이 당선되며 힘을 얻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종시는 충청권 메가시티보다 명실상부한 ‘행정수도’ 위상 정립에 관심이 더 많다. 최근 4개 광역지자체 시도의회에서 충청권 초광역의회 구성을 위해 만났다가 의원 배분 방식에서 이견을 드러내는 등 주도권 경쟁도 만만치 않다. 메가시티가 세계적 흐름인 건 맞고, 통합을 통해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말에도 타당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지자체의 개별적 상황과 지역 주민들 의사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닥치고 메가시티’를 외치는 건 공허하고, 그래서 총선용이란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장원재 사회부장 peacechaos@donga.com}

지난달 19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국감에선 김진욱 처장 자리에 붙은 포스트잇 하나가 카메라에 잡혔다. ‘장차관 수십 명 기소하면 나라 망한다’는 내용이었다. 여야 공히 공수처 실적이 부진하단 지적을 쏟아내다 보니 실무진에서 억지 대응 논리를 만들었구나 싶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여운국 차장이 직접 작성해 붙인 메모라고 했다. 또 김 처장은 실제로 국감장에서 “공수처가 일을 잘하면 나라가 안 돌아간다”고 했다. 김 처장과 여 차장은 2021년 1월 임명된 공수처 초대 처·차장으로 곧 3년 임기를 마친다. 그런데 사석도 아니고 국회에서 ‘월급은 받지만 일은 안 하겠다’는 논리를 펴는 걸 보고 저런 생각으로 잘도 조직을 운영해 왔구나 싶었다. 같은 논리라면 감사원이 일을 잘하면 정부가 안 돌아가고, 금융감독원이 일을 잘하면 금융권이 마비되니 둘 다 너무 열심히 일하면 안 된다. 연간 200억 원의 예산이 배정된 공수처의 역할은 권력을 견제하고 고위공직자 범죄를 엄정하게 수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적은 초라하기만 하다. 출범 후 2년 8개월 동안 직접 기소는 3건, 공소제기 요구는 4건뿐이다. 청구한 체포영장 5건, 구속영장 3건은 모두 기각됐다. 해외 유사기관과 비교해도 부진한 실적이다. 공수처의 롤모델인 홍콩의 염정공서(ICAC)는 2021년 200명을 기소했고, 싱가포르의 탐오조사국(CPIB)은 같은 해 165명을 기소했다. 또 그해 두 기관의 기소 사건 유죄판결 비율은 70∼90% 수준이었다. 인구도 적은 홍콩과 싱가포르가 한국보다 더 부패해 그런 건 아닐 것이다. 김 처장은 실적 부진이 인력 부족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신규 조직은 원래 초반에 작게 시작해 성과를 내며 몸집을 키우는 법이다. CPIB는 1960년 설립 직후 인원이 8명뿐이었다. 공수처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74명이다. 문제는 사람이다. 신규 조직일수록 역량과 의지가 있는 리더가 기틀을 잡아야 하는데 김 처장과 여 차장 모두 판사 출신으로 수사 경험이 없다. 또 김 처장은 황제 조사, 통신자료 조회 논란 등을 자초했으며 시무식에서 찬송가를 부르다 소리 내 우는 언행 등으로 여러 차례 도마에 올랐다. 3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 보면 국회에서 추천한 초대 처장 후보는 검찰 출신으로 당시 국민권익위원회 부패방지 부위원장을 지내던 이건리 변호사와 김 처장, 이렇게 둘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김 처장을 택했는데 ‘검찰 출신이 아니기 때문’이란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문 전 대통령은 당선 전 “대한민국 주류를 교체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취임 후 일의 본질을 모르는 인물을 발탁하는 일이 반복됐다. 법원 행정을 모르는 김명수 전 대법원장을 임명해 재판 지연 문제를 심화시켰고, 부동산을 모르는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을 임명해 집값대란을 자초했다. 수사기관의 장으로 수사 경험이 없는 인물을 임명한 것도 ‘주류 검찰을 견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김 처장은 임기 내내 언론 탓, 검찰 탓을 하며 실적 부진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다 최근에야 “수사가 이렇게 어려운지 이제 알았다”고 주변에 털어놨다고 한다. 그동안 의욕을 보였던 이들은 조직을 떠났고, 공수처는 ‘법조인의 무덤’으로 불리게 됐다. 지금 상태라면 김 처장 임기가 끝나고 수장 공백 사태가 빚어져도 우려할 국민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다음 공수처장은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인물을 찾아 임명해야 한다. 대놓고 ‘일 안 하고 월급은 받겠다’는 고위공직자를 더 참아줄 국민은 없을 것이다. 장원재 사회부장 peacechaos@donga.com}

1974년 7월 미국 연방대법원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게 워터게이트 스캔들 관련 녹음테이프를 제출하라고 판결했다. 닉슨 대통령은 소식을 들은 뒤 먼저 “전원일치냐”고 물었다. 보좌관이 “그렇다”고 하자 저항을 포기하고 17일 후 사임했다. 워터게이트 특종 주역인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기자는 미 연방대법원에 대해 쓴 ‘지혜의 아홉 기둥’에서 당시 판결 과정을 다뤘다. 그때 연방대법원에는 워런 버거 대법원장을 포함해 닉슨 대통령이 지명한 대법관이 4명 있었다. 하지만 설득과 합의, 절충 끝에 모두가 동의한 판결문이 나왔다. 우드워드 기자는 “(닉슨은) 반대의견 하나는 있을 걸로 믿었다”고 썼다. 버거 대법원장의 전임자는 얼 워런 전 대법원장이었다. 그는 병상에서 후배 대법관에게 워터게이트 선고를 물었고 “전원일치로 닉슨이 패소했다”는 말을 듣고 안도한 후 당일 세상을 떠났다. 워런 전 대법원장은 1954년 공립학교의 인종 분리는 위헌이란 ‘브라운 판결’로 1960년대 민권운동의 토대를 마련한 인물이다. 당시 그는 “만장일치가 아니면 남부가 승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첨예하게 나뉜 대법관들의 의견을 조율해 전원일치 판결을 이끌었다. 워터게이트 판결과 브라운 판결은 최고 법원에서 내려진 전원일치 판결의 무게를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 대법원에서 통상적인 재판은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小部)가 담당한다. 소부에서 합의가 안 되거나 사회적으로 의미가 큰 사건만 대법관 13명으로 구성된 전원합의체(전합)가 맡는다. 전합 재판장은 대법원장이다. 전합 판결은 높은 법적 권위를 갖고 우리 사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현재 대법원장 공백 사태에서 전합 개최 가능 여부가 논란이 된 것도 그 막중한 무게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동아일보가 김명수 전 대법원장 재임 6년간 나온 전합 판결을 전수조사한 결과 전원일치 판결은 14.7%에 불과했다. 이용훈 사법부(36.8%), 양승태 사법부(33.6%)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물론 대법관 간 의견은 얼마든 다를 수 있다. 다양한 목소리도 필요하다. 일본처럼 최고재판소 결정 대부분이 전원일치인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대법원이 사회적 갈등과 분쟁의 법적인 최종 해결을 담당한다는 걸 감안하면 설득과 토론, 타협으로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참고로 미 연방대법원의 1946∼2009년 판결 중 전원일치 비중은 30%가량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과거엔 대법관들이 토론과 설득 과정에서 처음 가졌던 입장을 변경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입장을 잘 바꾸지 않는다”고 했다. 그만큼 대법관들이 양극화됐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7 대 6처럼 패소한 쪽이 승복하기 쉽지 않은 판결이 되풀이되고 있다. 2019년 11월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방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 제재가 정당한지 심의할 때도 막판에 김 전 대법원장이 진보 성향 대법관들의 손을 들어 7 대 6 판결이 나왔다. 사회적·역사적으로 중요한 판결일수록 전원일치로 결정해야 갈등과 분열의 여지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쉬운 대목이다. 민일영 전 대법관은 퇴임 후 학술대회에서 미국 사례를 들며 “대법관들이 정치적 진영에 따라 자동판매기 같은 5 대 4 판결을 되풀이하면 사회 분쟁과 이념 갈등을 해결하는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다음 대법원장이 누가 되든 전합을 운영할 때 새겨야 할 지적일 것이다.장원재 사회부장 peacechaos@donga.com}

“김명수 대법원에선 빨리 사건을 처리하라고 압박하는 일이 사라졌다. 오히려 야근을 하거나 사건을 많이 처리하는 판사들이 같이 일하기 힘들어할까 봐 배석판사나 법원 직원들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 지방의 한 부장판사는 김명수 대법원 6년 동안 달라진 게 있는지 묻자 이렇게 답했다. 야근이 줄고 일하기 좋은 법원이 됐다고도 했다. 그런데 그게 과연 국민들에게 좋은 걸까. 대법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김명수 대법원장은 취임 후 공개석상에서 연설을 91차례 했다. 여러분, 국민 등 의례적 단어를 빼면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좋은 재판’이었다. 무려 218번 나왔는데 이는 연설당 2.4회다. 그렇게 입이 닳도록 강조한 ‘좋은 재판’은 뭘까. 김 대법원장은 한마디로 ‘양질의 재판’이고 ‘국민을 중심에 둔 재판’이라고 했다. 또 임기 초 판사들에게 “재판은 계량화된 수치로만 평가할 수 없다. 속도에만 지나치게 매달리지 말고 재판의 질적 수준을 끌어올려 달라”고 주문했다. 좋은 재판의 토대는 ‘좋은 법원’이라고도 했다. “구성원이 즐겁고 넉넉한 마음으로 업무에 임할 때 국민 만족이 높아지고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향상된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속도에 매달리지 않을 것’과 ‘즐겁고 넉넉한 마음’을 주문한 결과는 재판 지연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헌법 27조는 국민에게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한다. ‘신속함’은 공개성 등과 함께 헌법에서 규정한 몇 안 되는 재판의 요건이다. 김 대법원장은 좋은 재판의 요건으로 투명하고 공정할 것, 적정하고 충실할 것, 쉽고 편안할 것 등을 강조했지만 정작 이런 내용은 헌법에 없다. 재판 지연은 법관 3000여 명, 법원 직원 1만5000여 명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계량화를 등한시한 대가이기도 했다. 김 대법원장이 강조한 적정성과 충실성, 투명성과 공정성 등은 듣기에 그럴듯하지만 추상적이고 자의적이어서 평가의 잣대로 삼기 어렵다. 이런 지적에 김 대법원장은 여러 차례 “어떤 재판이 좋은 재판인지는 국민만이 온전히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측정할 수 없다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는 조직운영의 상식과 정반대였다. 결국 그가 6년 내내 강조한 ‘좋은 재판’이 어떤 건지, 어느 정도 실현되는지 법원 내부에서 누구도 답하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 법원 일각에선 ‘어쩔 수 없었을 것’이란 옹호론도 나온다. 사법농단 논란 국면에서 임명된 대법원장이다 보니 재판 개입 논란을 피하는 게 우선이었고, 그러다 보니 일부 판사들의 태업과 도 넘은 언행에도 개입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취지다. 하지만 재판 개입과 관리자의 적법한 관리는 전혀 다르다. 헌법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그게 관리자의 당연한 역할을 포기하는 근거가 될 순 없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사에서 좋은 재판에 대해 “독립된 법관이 공정하고 충실한 심리로 정의로운 결론에 이르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올 초 신년사에선 “독립된 법관이 충실한 심리를 통해 적시에 정의로운 결론에 이르는 것”이라며 ‘적시성’을 강조했다. 임기 마지막에야 좋은 재판에 대한 견해를 바꾼 것이다. 22일 퇴임식에서도 재판 지연을 거론하며 “국민의 기대에 못 미쳤다는 점을 받아들인다”며 고개를 숙였다. 김 대법원장 임기가 24일 끝나는 만큼 이제 공은 다음 대법원장에게 넘어갔다. 다음 대법원장이 정당한 관리자의 역할을 하면서 헌법에 명시된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국민들에게 돌려주길 기대한다. 장원재 사회부장 peacechaos@donga.com}

충청권에선 지난해 6·1지방선거 때 증평군수 선거가 화제가 됐다. 유명 배우 출신인 국민의힘 송기윤 후보가 부군수를 지낸 더불어민주당 이재영 후보에게 301표, 불과 1.8%포인트 차이로 패한 것이다. 당선 가능성 설문조사에서 한때 15%포인트 가까이 앞질렀던 송 후보의 패인을 두고 지역사회에선 ‘군부대 이전 공약 때문’이란 말이 나왔다. 송 후보는 출마할 때 “증평에 있는 육군 37보병사단을 이전하고 그 자리에 대기업을 유치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송 후보가 간과했던 건 수도권에서 ‘기피시설’인 군부대가 지역사회에선 ‘필수시설’이란 것이었다. 상대 후보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군부대와 군인 가족은 지역 버팀목이자 상공인 경제를 살리는 축이다. 오히려 군악대 축제를 유치해 명품 군사도시로 발전시키겠다”며 역공을 펴 판세를 뒤집었다. 필자에게 이 얘기를 전해 준 중앙부처 고위 공직자는 “전국 지자체 상당수는 이제 기피시설이 없다”고 했다. 기피시설을 두지 않을 만큼 힘 있는 지자체가 많다는 뜻이 아니다. 반대로 소멸 위기에서 어떤 시설이든 유치해야 하는,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닌 다급한 지자체가 늘고 있다는 뜻이다. 소멸 위기에 처한 지자체에 군부대는 ‘가뭄의 단비’이기도 하다. 지난해 말 대구시가 군부대 통합 이전 방침을 밝히자 경북 상주·영천시와 칠곡·군위·의성군 등 무려 5개 지자체가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 중 4곳이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인구 감소 지역이다. 강원도 접경 지자체도 최근 인구 감소 때문에 통폐합이 진행 중인 군부대 지키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X사단과 계속 함께하고 싶다’는 주민들의 손팻말이 군부대 철조망을 장식할 정도다. 대표적 기피시설로 꼽히는 교도소나 소각장도 마찬가지다. 경북 청송군은 여자교도소 유치를 위해 법무부를 설득 중이고, 강원 태백시와 전북 남원시도 교도소 건립을 확정했거나 추진 중이다. 역시 모두 인구 감소 지역이다. 광주시에선 올 7월 마감한 쓰레기소각장 이전에 6곳이 신청했다. 그렇다고 기피시설을 인구 감소 지역에 몰아넣는 게 지방 살리기 해법이 될 순 없다. 기껏해야 급한 불을 끄는 정도일 것이다. 신공항을 짓거나 고속도로를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역이 살아날 수 있는 근본 해법은 청년들이 돌아오고, 신혼부부들이 자리 잡고 아이를 키울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인 지역을 만드는 것이다. 매력의 상당 부분은 진심에서 나온다. 지난달 충남 태안군 이원면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부부가 둘째를 낳았을 때 마을 곳곳에는 ‘우리가 너를 지켜주겠다’는 플래카드가 나붙었다. 2년 전 첫째에 이어 둘째까지 낳자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내건 것이다. 서로에게 감동한 부부와 주민들이 쉽게 헤어지긴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어느 지자체가 매력적인지 도시에선 알기 어렵다. 그렇기에 일단 인연을 맺고 경험해 보는 게 중요하다. 정부는 올해 일시 체류자까지 포함하는 생활인구 개념을 도입했고, 거주 외 지자체에 기부하면 세금 공제와 답례품 혜택을 주는 고향사랑기부제를 시작했다. 둘 다 지역이 도시민들과 인연을 맺고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게 만드는 제도들이다. 마침 이번 주말(1∼3일)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선 ‘2023 A Farm Show―창농·귀농 고향사랑 박람회’가 열린다. 광역 및 기초지자체 243곳이 저마다 발산하는 매력을 한자리에서 경험하기 위해 주말 한나절을 투자하는 게 결코 밑지는 장사는 아닐 것이다. 장원재 사회부장 peacechaos@donga.com}

이달 3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에서 차량 및 흉기 난동으로 14명의 사상자를 낸 최원종(22)에 대해 알려졌을 때 눈길이 간 건 ‘3년 전 조현성 인격장애(분열성 성격장애) 진단을 받고도 치료를 안 받았다’는 대목이었다. 2020년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초기 온 국민이 외출을 삼가던 시기였다. 당시 병원 내 감염을 우려해 내원을 기피하면서 어린이·청소년 정신질환자 65%의 증상이 악화됐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그리고 경찰에 따르면 최원종의 휴대전화 포렌식에선 지인들과 유의미하게 교류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정신적 문제를 지닌 채 고립됐던 건 올 5월 부산에서 20대 여성을 살해한 정유정도 마찬가지였다. 정유정은 최원종보다 두 살 위였지만 고교 졸업 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며 틀어박혔고, 역시 연락하고 지낸 친구가 거의 없었을 정도로 사회적 관계가 단절돼 있었다. 최근 신상이 공개된 2030 흉악범의 공통점은 열등감이나 피해망상에 시달리다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특정 조직이 나를 스토킹한다’고 했던 최원종, ‘영어 실력이 안 좋아 스트레스를 받았다’던 정유정,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는 조선 모두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자포자기 상태에서 범행 은폐를 안 했거나, 현실감이 떨어져 금방 잡힐 정도로 대충 했다는 점이었다. 물론 은둔형 외톨이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이들 중 범죄자는 극소수다. 또 유사 범죄를 막기 위해서라도 최원종 정유정 조선 모두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코로나19 기간 고립을 당연시하고 각자도생하느라 사회와 단절된 이들에게 유의미한 관계나 적절한 치료를 지원하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많은 이들의 지적처럼 한국은 다이내믹하지만 그만큼 피곤한 사회다. 경쟁이 치열하고 속도가 빨라 뒤처진 이들이 조바심과 스트레스, 열등감을 느끼기 쉽다. 특히 코로나19 기간 타인과 소통·교류하지 못한 청년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오는 화려한 일상을 보면서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청년층 삶의 질 저하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본 내각부의 ‘국민 생활에 관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019년 86%였던 만 29세 이하 청년층의 생활 만족도는 지난해 61%로 급락했다. 통계 조사 방식이 바뀐 영향을 일부 감안하더라도, 2011년 출간돼 화제가 된 책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에서 소개한 이른바 ‘사토리 세대’(욕심을 버리고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는 세대)가 더 이상 대세가 아니란 뜻이다. 한국의 경우 높아진 집값과 물가 때문에 청년들이 안분지족의 삶을 누리기 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사회적 만남과 관계에서 의미와 보람을 느껴본 적 없는 청년들에게 ‘이제 방역 조치가 완화됐으니 알아서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고 필요하면 병원에 가 치료를 받으라’란 말은 ‘새만금 잼버리에 고생하러 왔으니 각자 알아서 고생하다 가라’는 말만큼이나 무책임하다. 올 초 발표된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전국에서 고립된 청년은 61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사회의 불안을 키우는 상황을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면 지금이라도 방치하는 대신 사회가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혹시 은둔 중이거나 고립된 청년이 이 글을 읽는다면 두 가지만 얘기해 주고 싶다. SNS에서 보이는 화려한 일상은 허구이고 누구든 각자의 불안 속에 살고 있다고, 그리고 손을 내밀면 잡아줄 사람은 분명 어딘가 있으니 포기하지 말라고. 장원재 사회부장 peacechaos@donga.com}

15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 지하차도 참사 발생 직후 충북도는 “매뉴얼상 지하차도 중심에 물이 50cm 이상 차올라야 교통 통제를 하는데 제방 붕괴 전 그런 징후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제방이 무너지고 순식간에 강물이 밀려들면서 미처 통행을 제한할 수 없었단 취지였다. 나중에야 50cm 침수 규정이 통제 요건 5개 중 1개일 뿐이며 다른 요건 일부를 충족해도 교통 통제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필자에겐 충북도의 해명에 포함된 50cm라는 수치가 공직사회의 적당주의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 충북도는 논란이 되자 “승용차 타이어 반 바퀴인 50cm를 교통 통제 기준으로 정했다. 그 이상이면 차량 운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설명은 엉터리였다. 국내 승용차 타이어의 최대 지름(외경)은 60∼70cm이고, 그 절반은 30∼35cm다. 또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는 타이어 ‘절반’이 아니라 ‘3분의 2 이상’ 물이 차면 엔진룸으로 물이 들어가기 때문에 운전이 어렵다고 설명하고 있다. 충북도 기준대로 50cm 침수될 경우 이미 승용차 대부분 엔진룸에 물이 들어간 다음이라 대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필자와 통화한 35년 경력의 재난 전문가도 “옆 차를 보고 타이어 절반(30∼35cm)이 잠기면 대피 준비를 하고, 3분의 2(40∼46cm)가 잠기면 차를 버리고 나와야 한다”고 했다. 둘째, 수심이 50cm인 경우 이미 지하차도로 진입한 자동차 운전자들이 차를 버리고 대피하기 어렵다. 재난안전관리본부에 따르면 성인 기준으로 남성은 수심 70cm, 여성은 50cm, 그리고 초등학교 5∼6학년은 20cm 이상이면 보행이 곤란하다. 이 때문에 수심이 20cm 이하일 때 대피를 권고한다. 이번처럼 경사진 지하차도 위에서 대량의 물이 세차게 밀려드는 경우 보행 가능 수심은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2014년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실험에선 무릎 높이에 해당하는 45.5cm 이상 침수된 상태에서 계단을 오를 경우 남녀를 불문하고 대피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참사가 난 지하차도는 상습 범람 하천인 미호강과 불과 300∼400m 떨어져 있다. 이번처럼 미호강이 범람할 경우 지대가 낮은 해당 지하차도는 급속히 침수될 수밖에 없는데, 다른 지하차도처럼 50cm 침수 여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지자체가 교통 통제 기준을 정하더라도 하천 인근 지하차도에는 별도 기준을 적용하는 게 맞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충북도의 50cm 규정은 합리적이지도 않지만 보편적이지도 않다. 지하차도 통행 제한 수심은 서울은 10cm, 부산은 10∼15cm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은 인구가 많은 만큼 피해를 줄이기 위해 선제적 기준을 정한 것”이라고 했다. 이번 참사를 두고 지난해 경북 포항 아파트 지하주차장 참사, 3년 전 부산 초량지하차도 참사와 판박이란 말이 나온다. 제 역할을 못 한 관리자, 급속히 유입된 물, 부실했던 방재 설비 등 공통점이 많기 때문이다. 차이가 있다면 희생자 수가 3명, 7명, 14명으로 갈수록 커졌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지하공간 침수 사고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하공간 활용이 늘어나는 동시에 극한호우 등 이상기후가 일상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지하에서 대형 참사가 벌어지는 걸 막기 위한 시작은 50cm 침수 규정에서 보여지는 적당주의를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면밀한 검토를 통해 보다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재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장원재 사회부장 peacechaos@donga.com}

대구퀴어문화축제(퀴어축제)가 처음 열린 건 2009년이다. 서울에 이어 국내 주요 도시 중 두 번째였다. 대구 동성로에서 하다 2019년부터 현재의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옮겼는데, 14년 동안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2014년에는 기독교 단체가 거리를 막고 연좌 농성을 했다. 당시 경찰은 “신고된 집회를 방해하면 집회방해죄로 체포될 수 있다”고 했으나 이들은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주최 측이 코스를 변경했다. 이듬해에는 경찰 측에서 먼저 “시위 장소가 주요 도로여서 심각한 교통 불편을 줄 게 명백하다”며 금지를 결정했다. 주최 측은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고, 신청이 받아들여져 예정대로 열렸다. 2018년에도 기독교 단체와 충돌이 이어졌다. 이후 주최 측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고, 인권위는 경찰에 “제3자 방해로 집회 자유가 제한되지 않도록 적극 보호하라”고 했다. 경찰은 “법 절차에 따르겠다”며 이를 수용했다. 사실 질서 유지 책임이 있는 경찰로선 매년 논란과 충돌을 부르는 퀴어축제가 반가울 리 없다. 하지만 금지해도 법원이 허용하고, 주최 측을 보호하란 권고까지 나오니 진퇴양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질서 유지에 나선 것에 가깝다. 올해도 기독교 단체와 상인회가 집회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지만 법원이 기각했다. 그런데 지난달 16일 퀴어축제를 둘러싼 가장 극적인 충돌이 발생했다. 대구시 공무원들이 경찰을 막으며 약 40분간 몸싸움을 벌인 것이다. 법원은 신고된 집회·시위의 경우 별도 도로 점용 허가 없이도 일정 부분 도로 사용이 불가피하다고 인정한다. 다만 “도로 점용은 지자체 허가 사항”이란 홍준표 대구시장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집회를 신고한다고 도로 점용이 자동 허용되는 건 아니다. 장시간 도로 점용을 정당화하는 판례도 없다”고 했다. 시민 불편을 야기하며 주요 도로를 막는 시위가 일상화되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홍 시장이 “공공성 있는 집회로 보기 어렵다” “1%도 안 되는 성소수자 권익만 중요하냐”고 말한 건 자칫 시위 성격을 규정하려는 것으로 보여 우려스럽다. 정부·지자체가 공공성이나 대표성을 따지기 시작하면 반대 세력의 집회에 대한 억압이나 법에서 금지한 ‘시위 허가제’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참고로 퀴어축제가 진행된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열린 첫 집회는 2016년 촛불집회였다. 당시 집회도 박근혜 정부에서 보기엔 공공성 없는 반정부 시위였을 것이다. 시 공무원과 경찰이 대낮에 몸싸움을 벌인 것도 볼썽사납다. 공권력이 제 살 깎아먹기식 대응으로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키는 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문제는 ‘퀴어 축제냐 아니냐’가 아니라 ‘집회의 자유와 시민의 권리 침해를 어떻게 조화시킬지’다. 이와 관련해선 대통령실에서 의견을 취합 중이고, 홍 시장도 법제처에 유권 해석을 의뢰했다니 합리적 결론이 나오길 기대한다. 물론 교통 불편 등을 이유로 퀴어축제에 반대하는 것도 자유다. 원한다면 손팻말 들고 반대 시위를 하거나 SNS 등을 통해 의견을 밝히면 된다. 집회·시위 등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고 여론을 형성하는 건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오늘(1일)은 서울퀴어축제 퍼레이드가 중구 을지로 일대에서 열린다. 공권력끼리는 물론 시민 간 충돌도 없이 서로의 목소리를 내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장원재 사회부장 peacechaos@donga.com}

도쿄 특파원 시절 손꼽히는 지진 전문가 히라타 나오시 도쿄대 교수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경북 경주시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난 직후였는데 히라타 교수는 “일본인이라고 대형 지진에 익숙할 거라는 건 오해”라며 “일본인 중에도 일생 동안 대형 지진을 경험하지 않는 이들이 더 많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1995년 고베 대지진, 2011년 동일본 대지진, 2016년 구마모토 대지진 등은 상당한 거리를 두고 발생했다. 히라타 교수는 “결국 일본이든 한국이든 경험을 통해 대형 지진에 대비하는 건 어렵다는 뜻”이라며 “그래서 간접 경험을 제공하는 방재교육과 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31일 서울시의 경계경보 발령을 둘러싸고 ‘오발령’이란 지적과 ‘과잉 대응이 낫다’는 반론이 나온다. 하지만 명백한 건 행정안전부와 서울시가 비상 상황에 제대로 준비돼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행안부의 경우 ‘경보 미수신 지역은 자체 경계경보를 발령하라’고 해놓고 서울시 문의전화를 받지 않아 오발령 소동을 자초했다. 서울시에서 경계경보를 발령하고 재난 문자를 보내자 그제야 부랴부랴 서울시에 5차례 연락했고 정정 조치가 안 취해지자 ‘오발령’이란 재난 문자를 보내 혼란을 가중시켰다. 서울시는 더 어설펐다. 경계경보는 오전 6시 32분에 발령해 놓고 정작 재난 문자는 9분 이후 보내 북한 발사체가 서해에 떨어진 다음에 시민들이 대피하게 했다. 매뉴얼대로 보낸 재난 문자에는 경계경보 발령 이유와 대피 방법도 안 나와 있었다. 오전 7시 25분 경계경보를 해제할 때는 재난 문자 대신 일반 안내 문자로 보냈고, 해제 사이렌도 안 켰는데 모두 규정 위반이다. 서울에서 경계경보가 발령된 건 1996년 미그기 귀순 후 27년 만이다. 당시 경보 발령을 제때 내보내지 않아 서울시 경보통제소장 등 4명이 구속됐는데 당시를 기억하는 서울시 민방위경보통제소 입장에선 일단 경보를 발령하고 보자는 식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경계경보 발령 시 사이렌이 울리고 방송이 나왔지만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기 어려웠다는 지적도 많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북한이 미사일을 43차례나 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을 이유로 민방위 훈련을 건너뛰면서 서울시도 6년 동안 사이렌 가청률(실제로 들리는 정도) 조사를 안 한 탓이다. 준비돼 있지 않았던 건 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주변에도 많은 이들이 경보를 받고 머리가 하얗게 변하면서 발만 동동 굴렀다고 했다. 북한의 거듭된 경고와 도발에 무감각해진 나머지 공격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지운 것이다. 북한 도발 수위가 점차 올라간 것과 대조적으로 사재기가 자취를 감춘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2016년 구마모토 대지진 당일 현장에 있었다. 한밤중에 한국 기준 진도 9의 강진으로 침대가 롤러코스터처럼 흔들리는 걸 경험하며 재난 대비 훈련의 중요성을 느꼈고 도쿄로 돌아와선 지자체 재난 훈련에도 참가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우왕좌왕하면서 미사일 공격은 또 다르다는 걸 실감했다. 결국 답은 히라타 교수의 말처럼 ‘교육’과 ‘훈련’뿐이다. 행안부와 서울시는 실전 같은 훈련을 되풀이하며 이번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게 해야 한다. 국민들도 귀찮아하는 대신 인근 대피소를 파악하고 기회가 있으면 훈련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일본에서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게 신속한 통보만큼 ‘자조(自助·스스로 구함)’와 ‘공조(共助·이웃을 도움)’가 중요하단 말이었다. 정부와 지자체 탓만 해선 안 된다. 결국 경계경보 사이렌은 국민을 위해 울리는 것이고 이를 듣고 어떻게 행동할지는 각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장원재 사회부장 peacechaos@donga.com}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7일 취임 1년을 맞았다. 한 장관의 1년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는 ‘전사(戰士)’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 상당수는 국회에서 야당 의원의 지적을 거침없이 받아치던 모습으로 한 장관을 기억한다. 전투력도 입증했다. 한 장관과 원색적 표현까지 동원하며 치고받았던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은 대변인 자리에서 물러났다. 한 장관 인사청문회 당시 ‘이모(某) 교수’를 ‘이모(姨母)’로 이해하고 질문했던 김남국 의원은 가상화폐 대량 보유 논란에 휩싸여 한 장관으로부터 “몰래 코인하다 금융당국에 걸린 게 왜 ‘제 작품’이냐”는 비아냥을 듣는 처지가 됐다. 하지만 최근 참여연대와의 공방처럼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 경우도 있었다. 참여연대가 10일 홈페이지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교체 대상 고위 공직자 1위가 한 장관”이라고 발표하자 한 장관은 당일 곧장 “특정 진영을 대변하는 정치단체가 왜 중립적 시민단체인 척하느냐”고 맞받았다. 이후 일주일 동안 한 장관과 참여연대는 네 차례씩 추가로 공방을 주고받았다. 한 장관은 1년 동안 지난 정부의 유산과도 싸웠다. 비록 헌법재판소가 한 장관의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각하하긴 했지만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구) 시행령을 주도하며 검찰의 수사 범위를 대폭 확대했다. 서울남부지검에 금융증권범죄합수단을, 대검찰청에 마약·조직범죄부를 부활시키며 금융범죄와 마약사범, 조폭 단속에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다만 어떤 장관이든 지난 정부에서 했던 일을 지웠다거나 야당 의원과 싸웠다는 이유로 후대에 좋은 평가를 받긴 어렵다. 한 장관이 남은 임기 동안 본격적으로 자신의 레거시 만들기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이라도 국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법무부 장관과 그렇지 않은 법무부 장관 사례를 돌아볼 것을 권하고 싶다. 해외 사례를 보면 미국에는 타임지가 소개한 ‘역대 최고의 각료 10’에 법무장관으로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로버트 케네디 전 장관이 있다. 만 35세에 장관이 된 그는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동생으로 한 장관처럼 “지고 못 사는 성격”이란 평가를 받았다. 재임한 3년 8개월 동안 부패한 노조 지도자 지미 호퍼를 몰아붙였고, 마피아 등 조직범죄와 전면에서 싸웠다. 동시에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시민인권법 통과를 주도했고, 흑인 학생을 대학에 입학시키라는 연방법원 결정을 이행하기 위해 앨라배마주립대에 연방 보안관을 파견해 보호했다. 주지사가 “학교를 모독하는 행위”라고 하자 그는 “이 학생들은 학교에 다닐 자격이 있다. 막으면 밀어붙일 수밖에 없다”며 거칠게 맞섰다. (타임지가 ‘역대 최악의 각료 10’으로 소개한 법무장관도 3명 있으니 이는 직접 찾아보면 좋겠다.) 국내에선 2020년 한 일간지가 법조인을 대상으로 ‘역대 최고의 법무부 장관’을 물었을 때 김대중 정부 시절 임명된 최경원 전 장관이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 최 전 장관은 정치적 이슈와 거리를 두며 외풍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법무부 내 인권 부서를 확대했고, 검찰인사위원회에 외부 인사를 참여시키는 등 개혁도 시도했다. 이들 사례를 참고하면 한 장관이 누구를 위해,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에 시사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역시 미국에서 존경받는 법무장관으로 꼽히는 로버트 잭슨 전 장관의 연설 ‘연방검사’ 중 한 대목을 한 장관에게 상기시켜 주고 싶다. “지역 경찰이 교통규칙을 엄격하게 적용할 경우 하루아침에 운전자 절반을 체포하게 될 것이다. 모든 검사는 극악하고, 공공에 미치는 해악이 크며, 증거가 매우 명백한 사건만을 골라 기소해야(다퉈야) 한다.” 장원재 사회부장 peacechaos@donga.com}

오래전 신혼집을 구할 때였다. 부동산에서 만난 공인중개사는 “곧 아파트 인근 군부대가 이전하고 터널이 뚫리면 집값이 크게 오를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가격이 안 맞아 자리를 뜨자 여러 번 전화해 “집주인과 오늘 오후 6시까지만 이 가격으로 팔기로 했다”고 압박했다. 결국 계약했지만 10년 후 집을 팔 때까지도 터널은 뚫리지 않았고 ‘공인중개사는 누구 편인가’란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최근 당시 기억이 되살아난 건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일당 공소장을 읽으면서였다. 공소장에는 주범 남모 씨(61) 외 공인중개사 6명이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나와 있다. 이들은 남 씨의 중개팀에 소속돼 급여와 상여금을 받았고, 일부는 자신의 명의를 빌려줘 남 씨가 주택을 사들이게 하는 대가로 매달 돈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부동산을 찾은 사회 초년생들이 망설이면 “집주인이 건물 여러 채를 보유해 보증금을 충분히 돌려줄 수 있다”고 설득했다. 근저당권이 설정된 점을 지적하면 “한 번도 문제 생긴 적 없으니 걱정 말라. 전세금을 못 돌려주는 경우 책임지겠다”고 했다. 공인중개사사무소 명의의 이행각서나 공제증서도 써 줬는데 이 역시 남 씨의 지시였다고 한다. 본보가 입수한 공제증서에는 한국공인중개사협회장 명의로 ‘중개 사고가 발생한 경우 협회에 요구하면 1억 원 내에서 배상해 주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다만 중개사들이 설명하지 않은 건 배상 한도가 그해 해당 중개업소에서 발생한 모든 사고에 적용된다는 것이었다. 예컨대 해당 중개업소에서 한 해 100건의 사고가 났다면 피해자 1명이 받을 수 있는 돈은 100만 원에 불과하다. 공소장에 따르면 남 씨 일당에 소속된 공인중개사들은 한 명당 남 씨의 주택을 25∼85회 거래했다. 주모자는 남 씨였지만 일당 61명의 중심에는 공인중개사 6명이 있었다. 그 결과 20, 30대 청년 3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인천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경기 구리에선 경찰이 전세사기 혐의를 받는 공인중개사 약 40명을 입건해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당 수백만 원씩 뒷돈을 받은 공인중개사는 300명이 넘는다고 한다. 동탄에서도 전세사기에 가담한 혐의로 공인중개사가 출국금지 상태에서 수사를 받고 있다. 피해 주택을 중개했던 부동산의 공인중개사는 본보 기자에게 “넘겨받은 사무소인데 전임자가 사고 거래를 하도 많이 해 고소한 상태”라고 했다. 공인중개사법에 따르면 공인중개사는 ‘전문직업인으로서 신의와 성실로 공정하게 중개 관련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공소장에 따르면 미추홀구에서 집을 구하던 사회 초년생들이 공정한 중재자를 기대하며 부동산을 찾았을 때 이들을 맞이한 건 범죄조직의 하수인이었다. 그럼에도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협회 차원의 사과 한번 하지 않았다. 대신 공인중개사협회를 법정단체로 만들어 달라는 서명을 대통령실과 국회 등에 전달하는 등 이번 기회를 숙원 사업 해결에 활용하려 시도 중이다. 부동산 업계의 일탈은 하루 이틀 된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규모와 정도가 도를 넘었다. 전국에서 유사한 일이 발생했다면 11만 중개사 중 일부의 일탈로 치부할 게 아니라 고개를 숙이고 뼈를 깎는 자정 노력을 하겠다고 밝혀야 한다.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공인중개사는 바가지 씌우기의 대명사였던 ‘용팔이’와 다를 게 없다. 수사당국과 사법부도 국가 공인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의 일탈을 더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 최근 권경애 변호사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전문 자격증 소지자의 과실은 국민에게 치명적인 피해로 돌아오고, 사회 전체의 신뢰를 저하시키기 때문이다.장원재 사회부장 peacechaos@donga.com}

4남매의 비극이 시작된 곳은 현관 앞에 있던 멀티탭이었다. 지난달 27일 오전 3시 반경 TV와 냉장고가 연결돼 있던 멀티탭에서 발생한 스파크는 금세 불길로 번졌다. 아버지(55)는 연기 속을 뚫고 빠져나와 구조를 요청했지만 안방에서 자던 네 남매는 끝내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지난달 31일 경기 안산시의 한 장례식장에선 이들 남매의 발인식이 열렸다. 탈출 과정에서 양발에 화상을 입은 아버지는 휠체어에 탄 채 내내 침통한 모습이었다. 막내딸(2)을 던진 후 본인이 뛰어내리는 과정에서 허리를 다친 어머니(41)는 보조기를 찬 채 현실이 믿기지 않는 듯 연신 아이들 이름을 불러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번 사고를 되짚어보면 한국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이 어떤 현실에 처해 있는지 알 수 있다. 먼저 사고를 당한 나이지리아인 가족 7명은 21㎡(약 6.4평) 크기 빌라에서 지냈다. 다섯 남매가 2∼11세라는 점을 감안해도 1인당 1평이 채 안 되는 면적이다. 서울 시내 고시원 평균이 7.2㎡(약 2.2평)라는 걸 감안하면 얼마나 열악한지 알 수 있다. 이 가족만 특별히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이 빌라에는 비슷한 면적의 집에 나이지리아인,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등 총 11가구, 41명이 거주했다. 더 안타까운 건 전조가 여러 차례 있었음에도 비극을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들 가족은 2021년 1월에도 지내던 반지하 집 벽면 스위치에서 불이 나 집이 전소되고 둘째 아들이 화상을 입었다. 시민단체 등의 도움으로 간신히 수술비를 해결했지만 이후에도 스프링클러 없는 좁고 노후화된 안산 일대 빌라를 벗어나지 못했다. 아버지는 본보 기자에게 “예전에도 멀티탭에서 불꽃이 난 적 있었지만 그냥 넘겼다”고 했다. 이들 가족은 2017년 2월부터 모든 주택에 소화기와 화재경보기가 의무화됐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고, 화재를 방지하거나 확산을 막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안산소방서가 화재 발생 2주 전 재난 취약계층에게 소화기와 화재경보기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 역시 남의 얘기였다. 불법체류자가 아니었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사회복지망에서도 배제됐다. 15년 전 한국에 온 아버지는 나이지리아에 중고 물품을 수출하는 일을 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최근 벌이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 중 내국인이 적어도 1명 있어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또 2년 전 사고로 화상을 입은 둘째는 자폐성 장애가 심했지만 적절한 교육이나 복지 지원을 받지 못했다. 학교도 못 간 채 방치됐는데, 외국인이라 의무교육 대상도 아니었다. 이들 가족을 아는 한 지인은 “둘째가 자폐 때문에 집에 있으니 어머니가 다른 자녀를 데리고 병원에 가면 큰딸(11)이 학교를 쉬고 둘째를 돌보곤 했다”고 말했다. 큰딸과 셋째 아들(5)은 이주민 공동체에서 후원금 등으로 운영하는 대안학교에 다녔다. 이번 사고를 개인의 부주의 탓으로 돌리긴 쉽다. 2년 전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그럴 경우 유사한 비극은 어딘가에서 반복될 수밖에 없다. 최근 정부는 이민청을 설립한다며 한창 준비 중이다. 하지만 합계출산율 0.78명 시대에 고학력 엘리트 이민자만 곶감 빼먹듯 받아선 인구를 보전할 수 없다. 정부 당국자 누군가는 한국 사회의 미래와 보편적 인권 보장을 위해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주민들에게 최소한의 삶을 보장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 당국자가 나이지리아 4남매의 비극을 한 번 더 생각해 봤으면 하는 마음에 조금 늦었지만 글을 남긴다.장원재 사회부장 peacechaos@donga.com}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3년 필자는 막내 기자로 대통령직인수위와 청와대 취재를 담당했다. 새 정부 출범 직전 한 친박 관계자가 사석에서 “청와대 로고를 바꾼다”며 새 로고를 보여줬다. “옛날 거랑 비슷하다”고 하자 펄쩍 뛰면서 “지금까진 ‘청와대’ 아래 ‘대한민국’ 표기가 있었는데 ‘대한민국’을 ‘청와대’ 위로 올렸다. 새 정부 철학을 보여주는 엄청난 변화”라고 했다. 이어 “인턴이 디자인해 돈 한 푼 안 들었다”고 덧붙였다. 결국 로고는 바뀌었지만 필자 마음속엔 ‘정말 엄청난 변화라면 전문가 심의 등 제대로 절차를 거쳤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의문이 남았다. 나중에 돌아보니 다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한 건 올리기’에 혈안이 돼 있던 시기였다. 정권 재창출을 해도 주요 보직이 모두 바뀌는 청와대에서 제대로 된 인수인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됐다. 얼마 전 국가수사본부장 후보자로 지명됐던 정순신 변호사의 사퇴를 지켜보며 당시 생각이 났다. 정부는 정 변호사가 “본인·배우자·직계존비속이 관계된 민사·행정소송이 있느냐”는 검증 질문에 “아니요”라고 답해 자녀 학교폭력 내용을 알 수 없었다고 했다. 지난 정부에서 이 항목의 질문은 “민사소송에 연루된 적 있거나, 현재 당사자로 진행 중인 재판이 있느냐”였다. 행정소송을 추가한 것까진 좋았는데 과거 소송 경험을 묻는 표현을 제외해 정 변호사가 “진행 중인 소송만 묻는 줄 알았다”며 법꾸라지처럼 빠져나갈 길을 터줬다. 정권 재창출을 해도 인수인계가 어려운데 정권이 교체된 경우는 오죽할까. 하지만 국민을 위해서라도 이어갈 건 이어가고, 배울 건 배워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잘한 일을 이어가는 것만큼이나, 잘못한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 간 협력 등을 제외하면 가급적 여론의 지지를 얻기 어려운 일에는 손대지 않았다. 연금 개혁, 노동시장 개혁 등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를 담당했던 필자가 장기 개혁 과제를 언급하면 “현안이 산더미인데 지지율 깎아 먹을 일 있나” “여론 지지 없이는 어차피 실현 불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첫해 노동·연금·교육 개혁을 들고나왔다. 하나하나 정권의 명운을 좌우할 민감한 주제이고 국가적으로 꼭 풀어야 할 과제다. 그런데 연금 개혁안 준비는 계속 미뤄지고 있고, 노동시장 개혁은 여소야대 국회에 막혀 있다. 이를 보며 지금까지 안 된 이유를 충분히 스터디한 후 실행에 착수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지난 정부에서 개혁이 안 된 건 중요한지 몰라서가 아니라, 그만큼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이었다. 의욕만큼이나 치밀한 복습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한일 관계도 마찬가지다. 일본군 위안부 합의가 ‘무효’라던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공식 합의임을 인정한다”며 입장을 바꿨다. 하지만 후속 조치는 없었고 강제징용 문제도 건드리지 않았다. 반면 현 정부는 의욕을 갖고 해법을 내놨다. 하지만 과거사는 더더욱 의욕만으론 해결되지 않는다. 필자는 도쿄특파원으로 위안부 합의를 옆에서 지켜보며 역사적 문제에 대한 해법은 피해자에 대한 존중과 역사에 대한 겸허함이 바탕이 돼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그 위에서 상대를 정확히 파악하고 정교한 전략을 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필자가 경험한 일본은 통 큰 상응 조치를 취하는 나라가 아니라 서명한 협약서의 한 단어, 한 표현의 해석을 두고 집요하게 매달리는 나라였다. 그런 나라를 상대로 개문발차(開門發車)한 것이 옳은 판단이었는지, 윤 대통령의 방일이 마무리된 지금도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장원재 사회부장 peacechaos@donga.com}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검찰의 자신감과 확신이 곳곳에 묻어난다. 20쪽가량 되는 구속 필요 사유에 “삼척동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명백하다”는 대목을 포함해 ‘명백하다’는 표현만 7차례 등장한다. “다툼의 여지가 없다”, “자명하다” 등 비슷한 표현을 합치면 그 횟수는 훨씬 늘어난다. 하지만 왜 명백한지 근거는 충분히 나오지 않는다. 만약 사회부 기자가 이렇게 기사를 써 왔다면 “명백하다는 표현을 빼고 대신 명백한 이유를 설득력 있게 나열하기만 하면 판단은 독자가 할 것”이라고 조언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충분한 물적 인적 증거가 있으며 하나씩 재판에서 보여주겠다”는 입장이다. 역량을 총동원해 수사한 만큼 아무 근거 없이 자신감을 보이진 않았을 거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대목은 있다. 검찰은 청구서에서 “녹음파일, 지시·보고문건, 이메일 등 객관적 증거와 관계인들의 일관되고 일치된 진술”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가장 먼저 언급한 녹음파일, 이른바 ‘정영학 녹취록’에 의존했던 검찰이 어떤 결과를 받아들었는지 ‘곽상도 재판’을 지켜본 사람들은 알고 있다. 곽상도 전 의원의 ‘50억 클럽’ 재판 기록을 보면 재판부가 “증거능력이 부여될 것인지 미정”이라며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대목이 나온다. 또 녹취록의 특정 표현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신문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해 검사가 ‘당황스럽다’고도 했다. 결국 녹취록 내용 중 상당 부분은 ‘전문진술’(제3자에게서 전해 들은 내용을 진술한 것)로 판단돼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재판 기록을 보면 검찰의 주장이 전문진술에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이 초기부터 재판부와 피고 측 변호인으로부터 여러 차례 나왔지만 검찰이 이를 대신할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반면 발언 당사자로 지목된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는 녹취록 내용을 부인하거나 ‘허언’이라며 검찰 주장의 토대를 무너뜨렸다. 재판 과정에선 곽 전 의원 아들이 함께 뇌물을 받은 ‘공범’인지 제3자 뇌물죄에 해당하는 ‘제3자’인지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법적으로 직접 금품을 받은 행위와 제3자에게 주게 한 행위는 구분되는데 검사는 직접 받은 뇌물로 공소를 제기했다”며 “이 경우 받은 사람의 생활비를 부담하고 있거나 당사자의 지출 경감 등 사유가 있어야 직접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친분이 있는 한 판사는 “여러 차례 재판부가 시그널을 줬을 텐데 검찰이 왜 공소장 변경을 안 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법조계에선 “검찰 측이 제3자 뇌물죄 입증 요건인 ‘부정한 청탁’과 ‘대가성’을 제대로 밝히지 못한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대장동 사건을 뒷받침하는 토대가 ‘정영학 녹취록’과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 및 남욱 변호사의 진술이란 것이다. 향후 진행될 이 대표 재판에서도 녹취록과 유동규 남욱 진술에만 의존하면서 핵심 피의자 김만배 씨의 입을 열지 못하면 비슷한 양상이 반복될 수 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지난해 12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수사를 두고 “오로지 증거가 가리키는 곳만을 찾아가서 진실만을 밝혀내는 방식으로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검찰이 똑같이 ‘증거가 가리키는 곳’만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했는지 앞으로 이어질 재판에서 가려질 것이다. 그리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7일 국회에 나가 할 체포동의요청 이유 설명에서도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장원재 사회부장 peacechaos@donga.com}

최근 서울 시내에서 우회전을 기다리던 중 사거리 오른쪽에 설치된 우회전 신호등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달 경찰이 “우회전 신호등이 설치된 곳에선 녹색 화살표 신호에만 우회전할 수 있다”고 발표한 터라 기다리고 있었는데 ‘녹색 화살표’ 대신 ‘녹색 원’이 나타났다. 순간 당황했다. 녹색 화살표가 아닌데 가도 되나…. 나중에 물어보니 필자가 본 신호등은 ‘우회전 신호등’이 아니라 ‘보조 신호등’이라고 했다. 또 경찰이 발표한 ‘우회전 신호등’은 현재 서울에 1개뿐이라고 했다. 시내 곳곳에 있는 우회전 전용 신호등이 우회전 신호등이 아니라는 게 이해가 안 갔다.(찾아보니 몇 년 전에는 경찰도 ‘보조 신호등’을 ‘우회전 신호등’이라고 불렀다.) 도쿄 특파원 시절 차를 운전하면서 애를 먹었던 것 중 하나가 좌회전(한국의 우회전에 해당)이었다. 전방 신호등이 적색일 때 습관적으로 핸들을 돌렸다가 눈총을 받곤 했다. 일본에선 전방 신호등이 적색인 경우 직진은 물론 우회전 좌회전이 모두 금지된다. 그런데 익숙해진 다음부턴 한국보다 편했다. 일본의 좌회전 규제는 간단하다. 신호등이 적색이면 모두 멈춰야 하고, 녹색이면 우회전 좌회전 직진이 모두 가능하다. ‘멈춰’라는 표지판 앞에 잠시 멈춰야 하고, 녹색 화살표 신호등이 켜지면 그 방향에 따라 운전하면 된다. 경찰은 지난달 보도자료를 내고 강화된 우회전 규제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전방 신호가 적색인 경우 우회전하기 전 의무적으로 일시 정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우회전 신호등이 설치된 곳에선 녹색 화살표 신호에만 우회전할 수 있다고 했다. 발표를 보고 의문이 생겼다. 전방이 적색이고 녹색 화살표 신호가 들어온 경우 일시 정지해야 하나, 전방이 녹색이고 녹색 화살표 신호가 안 켜진 경우 우회전이 가능한가 등. 여기에 ‘우회전 신호등’과 ‘보조 신호등’의 차이까지 알게 되면서 새로 생긴 규제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싶었다. 또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의욕이 앞서 섣불리 새 규제를 도입한 것 아닌가 의문이 들었다.(참고로 경찰이 말하는 ‘우회전 신호등’이 설치된 곳은 전국 15곳뿐이다.) 경찰은 지난해에도 우회전 규제를 강화했다. 우회전 후 마주치는 횡단보도에 ‘건너는 사람’이 있을 때는 물론 ‘건너려는 사람’이 있을 때도 일시 정지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건너려는 사람’의 기준으로는 ‘횡단보도 인근에서 주위를 살피는 경우’ 등을 제시했다. 운전자들 사이에선 “독심술이라도 배우라는 말이냐”는 비판이 쏟아졌고 금방이라도 대대적 단속을 실시할 것 같았던 경찰은 조용해졌다. 경찰의 선의를 모르는 건 아니다. 2020년 기준으로 전체 교통사고 보행 사상자 중 10.4%가 우회전 관련 사상자였다. 한국은 미국 캐나다와 함께 전방 적색 신호 시 우회전을 허용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여서 우회전 시 사고 위험이 높은 것도 맞다. 그렇다고 국민들이 이해하기도, 지키기도 어려운 규제를 남발해선 안 된다. 필자 주변에도 “우회전 규제가 너무 복잡해 이해를 포기했다”고 말하는 이들이 여럿 있다. 실효성 없는 규제를 남발하는 것보다 꼭 필요한 규제를 정해 시행하고 철저히 단속해야 국가 정책에 신뢰가 생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법무부 등의 업무보고를 받고 “선진국 수준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규제를 과감하게 바꿔 달라”고 주문했다. 지금의 우회전 규제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지 경찰 스스로 자문자답해 보면 답은 어렵지 않게 나올 것 같다.장원재 사회부장 peacechaos@donga.com}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13일 수사 결과 발표를 며칠 앞두고 “서울시와 행정안전부에 이태원 핼러윈 참사의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밝혔을 때 딱히 놀라진 않았다. 지난해 11월 2일 출범 후 상급기관으로 갈수록 소극적이었던 특수본의 모습을 봐 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을 근거로 내세운 건 다소 의외였다. 특수본은 재난안전법상으로 볼 때 이태원 참사의 경우 이태원동에 한정된 사고라 대비와 대응 책임이 기초자치단체인 용산구와 용산경찰서, 용산소방서에 있다고 밝혔다. 반면 광역자치단체(서울시)와 중앙행정기관(행안부)의 경우 “구체적 주의 의무가 부여돼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책임을 묻기 힘들다고 했다. 이런 법리 해석이 특수본 출범 직후 나왔다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출범 때는 “성역 없이 수사하겠다”고 하더니 73일 동안의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법리적 한계를 지적한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처음부터 한계를 알고도 성역 운운하며 국민을 기만했거나, 결론을 내 놓고 막판에 법리를 동원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재난안전법에 대한 특수본의 해석에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재난안전법 시행령은 ‘인명이나 재산의 피해가 매우 크고 영향이 광범위한 경우’ 광역단체장이 재난 응급조치를 할 수 있게 했다. 그런데 특수본은 이태원 참사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영향이 광범위하다는 게 어느 정도까지를 말하는지 모르지만 이태원 사고는 2000년 이후 3번째로 많은 사망자를 낸 참사다. 필자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필자가 통화한 재난안전법 전문가들은 모두 “특수본이 법 규정을 소극적으로 해석했다”고 입을 모았다. 2011년 우면산 산사태 때 서초구를 상대로 배상을 이끌어낸 김영희 변호사는 “핼러윈 이벤트처럼 매년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행사에서 예방 조치를 취할 법적 책임은 당연히 서울시와 행안부에도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이태원 참사 피해자 지원을 맡고 있는 홍지백 변호사는 ‘개인적 견해’임을 전제로 “서울시의 경우 이태원역과 서울교통공사 등을 통해 사태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걸로 보인다. 서울시에도 일부 지휘 감독 책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라고 했다. 또 “특수본 수사 결과가 피해자들의 국가배상 소송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2017년 69명의 사상자를 낸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때도 검찰이 관련자에게 불기소 처분을 내린 후 유족들이 충북도를 대상으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졌다. 또 다른 변호사도 “재난안전법은 재난을 예방하고 피해를 복구하기 위한 법인 만큼 취지를 생각하면 소극적으로 해석하기보다 폭넓게 해석하는 게 맞다”고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특수본의 면책 시도가 성공할 것으로 보는 이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먼저 검찰이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유족들도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뜻이 확고하다. 해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책임의 정도는 두 손으로 치명적 살해 도구를 사용한 사람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증가한다”고 했다. 인명이 희생되는 구조와 시스템을 만든 사람이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마지막에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건 국민들이다. 특수본이 줄 수 있는 건 면죄부가 아니라 잠깐의 안도감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장원재 사회부장 peacechaos@donga.com}

오세훈 서울시장(사진)이 서울시 산하 공공기관 26곳 중 최소 3, 4곳을 통폐합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오 시장은 11일 서울 중구 집무실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전임 시장이) 공공기관을 많이 늘렸다. 현재 26곳이고 인원도 (10년 동안) 2만 명에서 3만 명까지 늘었다”며 “기능이 비슷하거나 중복된 곳을 중심으로 최소 3, 4개는 통폐합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 시장이 구체적인 통폐합 목표를 밝힌 건 처음이다. 산하 기관 중 120다산콜재단 등 10개가 박원순 전 시장 재임 때 생겼다. 다만 “고용안정성 차원에서 인원을 줄이긴 쉽지 않다”며 인원 감축에는 선을 그었다. TBS교통방송에 대해선 “독립재단을 추구한다면 재정적으로도 독립하는 게 맞다”며 재정 지원 중단 의지를 분명히 했다. 오 시장은 “시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면 정치적으로 객관적·중립적이어야 하는데 방송을 어떻게 했는지 돌아보라. 아무도 TBS 편을 안 든다”며 “편향성을 자제하는 기미조차 안 보인 채 끊임없이 불평만 한다”고 비판했다. 여당 상황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오 시장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오늘(11일) 아침 통화하면서 ‘당 중앙윤리위원회 결정은 났고, 지금은 참고 인내해야 할 때’라고 했다”고 전했다. 동아일보는 오 시장을 시작으로 이달 1일 임기를 시작한 광역 자치단체장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한다.“서울 집값 훨씬 더 떨어져야… 재건축 규제 완화 정부와 공감” “광화문광장에 나무 5000그루… 도심속 울창한 숲으로 만들 것서울 새 슬로건 연말까지 선정… 시민-공무원 아이디어 함께 수렴산업은행 전부 이전은 어려워… 여의도, 핀테크 금융허브로” 오세훈 서울시장(61)은 1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 달 재개장을 앞둔 광화문광장에 대해 “5∼10년 뒤에는 (도심 속에) 울창한 숲이 생긴다”며 “세종문화회관 등 인근 건물 1층에 카페와 식당 등 휴게시설을 만들어 사랑받는 공원 같은 광장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하락세로 돌아선 집값에 대해선 “훨씬 더 떨어져야 한다”며 “신규 주택 공급에 모든 에너지를 투입하겠다는 정책 기조에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또 TBS교통방송을 포함한 공공기관 개혁과 시 슬로건 ‘아이 서울 유(I·SEOUL·U)’ 교체 등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다음은 일문일답.○ “선거 결과, 무섭고 두렵다는 생각”―선거에서 426개 서울 모든 동에서 이겼다. “426개 전체 동에서 승리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무섭고 두렵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만큼 저한테 기대하는 바가 크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4년 동안 기대에 부응해 서울시민이 원하는 서울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크고 엄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여당이 시의회 112석 중 78석을 차지했다. “국민의힘 소속 시의원이 전체의 3분의 2를 약간 넘었다. 구청장도 17명이 국민의힘 소속이고 8명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이 정도면 서울시 비전을 설정한 대로 제가 일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본다.”○ “광화문광장, 도심 속 울창한 숲으로”―다음 달 광화문광장이 재개장한다. “다음 달 6일 재개장 예정인데, 휴식공간을 갖춘 공원 같은 광장을 만들 거다. 기존 광장엔 그늘이 없어 많은 비판을 받았다. 키 큰 나무 300그루를 포함한 수목 5000그루를 심었다. 5∼10년이 지나면 (도심 속에) 울창한 숲이 생겨 햇빛을 피할 수 있게 된다. 또 인접 건물에 식음료 판매점 등 휴게시설이 있어야 사랑받는 광장이 된다. 세종문화회관을 시작으로 인근 건물에 협조를 구해 적어도 1층에는 카페나 음식점이 자리 잡도록 할 거다. 일부 건물과는 이미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개방된 청와대와 연계 계획이 있나. “청와대에는 이미 많은 국민이 방문하고 있다. 또 이달 ‘종묘∼창경궁 원형 복원사업’이 마무리되면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종묘가 이어진다. 이렇게 되면 청와대와 광화문광장, 각종 박물관과 미술관, 송현동 녹지광장과 향후 들어설 ‘이건희 기증관’까지 이어지면서 문화·예술·역사가 어우러지는 서울의 대표 명소가 될 거다.”○ “집값 훨씬 더 떨어져야, 신규주택 공급 계속” ―서울 집값이 하락세로 돌아섰다. “지금까지 너무 많이 올랐기 때문에 훨씬 더 떨어져야 한다. 신규 주택 공급에 모든 에너지를 투입하겠다고 했던 기존 정책 기조에 변화가 없다. 원래 계획대로 신규 주택을 최대한 빠르게 공급하겠다는 목표하에 신속통합기획, 재건축·재개발, 모아타운 등을 계속 추진할 것이다.” ―국토교통부와 재건축 규제 완화 등 협의하나.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가장 큰 관건은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와 분양가 상한제다. 어떻게든 주택 공급이 원활하게 될 수 있도록 (현 제도를) 바꾸자는 것에 (국토부와) 공감대를 이뤘다.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선 협의를 진행하고 있어서 지금 밝히긴 어렵다.”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사업이 두 달 넘게 중단 상태다. “참 답답하다. (협상이) 될 듯 될 듯하면서 한 달 가까이 지났다. 하지만 곧 타결이 될 것으로 보이긴 한다.”○ “올해 말까지 새 슬로건 선정”―서울시 슬로건 ‘아이 서울 유(I·SEOUL·U)’를 바꾸겠다고 했다. “축제처럼 시민 참여를 거쳐 선정될 수 있게 할 것이다. 시민 아이디어를 수렴하면서, 공무원 아이디어도 받는 ‘투트랙’으로 진행한다. 의견이 모아지면 브랜드 전문가들이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심도 있게 관여해 세계인을 감동시킬 슬로건을 만들 예정이다. 서두르지 않고 연말까지 ‘최고 중의 최고’를 선정할 것이다.” ―어떤 요건을 갖춘 슬로건이 바람직한가. “일단 목표가 뚜렷해야 한다. 국제사회에 선보였을 때 서울에 꼭 와 보고 싶게 할 수 있는 슬로건이 필요하다. 브랜딩 원칙에 따르면 메시지가 있으면서도 매력 있고, 호기심을 자극하고, 재미있고, 쉬우면서, 짧아야 한다. 지금 슬로건은 짧다는 것 외에는 브랜딩 원칙에 안 맞는다.”○ “산업은행 이전 대신 핀테크 육성”―현 정부 방침인 KDB산업은행 이전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정부에 여러 차례 서울시 입장을 전달했다. 그런데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이미 방침을 정했고 부산시라는 상대가 있어서 서울시 뜻대로만 하긴 어려울 것 같다. 대안을 찾아야 한다.” ―어떤 대안이 있나. “핀테크(Fintech·금융과 기술의 합성어)다. 지금은 핀테크가 금융산업의 중심 기능을 한다. 이런 기능을 여의도에 유치하고 발전시키는 게 금융허브 조성의 관건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산은이 전부 이전하기도 어렵다. 산은의 본질적 기능은 기업과의 협업이다. 기업 본사가 다 서울에 있는데 어떻게 부산으로 모두 이전할 수 있겠나. 본점이 내려가도 많은 인력이 서울에 남지 않겠나.”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데 임기 후 구상을 말해 달라. “서울시 챙기기에도 여력이 없다. 현재에 충실하지 않고 어떻게 미래가 있겠나. 압도적 지지를 보내주신 시민들께 보답하기 위해 분골쇄신하는 마음으로 시정에 최선을 다하겠다.”오세훈 서울시장 프로필△서울 출생(61) △대일고, 고려대 법학과 졸업 △사법연수원 17기 △제16대 국회의원(2000∼2004년) △제33·34대 서울시장(2006년 7월∼2011년 8월) △제38·39대 서울시장(2021년 4월∼현재)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사지원 기자 4g1@donga.com인터뷰=장원재 사회부장 peacechaos@donga.com 정리=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사진)이 4일 “지난 정권에서 수사가 됐어야 할 것들 중 수사가 안 된 것들이 사실 꽤 있다”며 “(정치보복으로) 볼 소지도 없지 않지만 뻔한 잘못을 가만 놔두는 것은 정말 불공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등 문재인 정부에서 묻혔던 사건들에 대한 수사의 필요성을 처음 언급한 것이다. 이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수사의 정치적 중립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고 누가 수사에 관여하는 것도 생각하기 힘들다”고 전제한 후 “굉장히 예민한 문제지만, 정치보복이란 프레임을 씌워서 원천적으로 수사를 못 하게 하는 건 정의롭지 못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또 이 장관은 “이것(수사가 안 된 것)이 가능했던 건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경찰을 직접 쥐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잘못하면 처벌받는 게 마땅하다. 처벌을 어떻게 할 거냐에 대해선 정치적 고려를 하더라도 국민 입장에서 드러나야 하는 팩트 자체는 수사를 통해 밝혀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5일 발표되는 차기 경찰청장에 대해 “(지난주) 후보들을 개별 면담했다”며 “인사제청을 하면 책임도 제가 져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께서 ‘이 사람 어떠냐’고 했을 때 서류만 보고 말할 수 없으니 안 만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야당은 이 장관이 지난달 치안정감 내정자 6명을 면담한 사실이 알려지자 “경찰 길들이기를 중단하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 장관은 면담한 후보들이 행안부 내 경찰국 신설 등을 권고한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의 권고안에 대해 “다들 공감하는 태도였다”고 전했다. “靑이 경찰 장악한 대표적 사건이 서해 공무원 피살… 팩트 밝혀야” 이상민 행안부 장관 본보 인터뷰 “경찰직협 ‘경찰국 반대’ 삭발… 활동 한도 넘어선 정치적 행위지난주 경찰청장 후보들 면담… 경찰제도개선안에 모두 공감경찰, 인사번복 잘못 대통령에 미뤄… 징계나 적절한 인사조치 있을 것”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역대 정부에선 청와대가 경찰 수뇌부와 밀실에서 거래해온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며 “대통령이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이나 치안비서관 또는 청와대 국정상황실을 통해 경찰을 장악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데 그 대표적 사례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둘러싼 논란이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해양경찰을 장악해 빚어진 사건이란 뜻이다. 이른바 ‘치안감 인사 번복’ 논란을 두고 윤석열 대통령이 ‘중대한 국기문란’이라고 밝힌 것에 대해선 “경찰이 자신들의 잘못을 대통령에게 미루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사실관계 조사 후 징계 및 인사 조치를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서해 공무원 피살, 靑 행정관이 해경과 ‘직거래’”―전국경찰직장협의회(직협)가 삭발과 단식에 나섰다. “직협은 현 정부가 경찰을 장악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현 정부는 경찰에 대한 직접 통제를 내려놓고, 대통령실에서 이른바 ‘경찰 장악’을 위한 조직을 완전히 없앴다. 대통령이 직접 (권한을) 행사하면 경찰 장악이 아니고, 법에 따라 행안부 장관이 지휘하면 경찰 장악이라는 논리는 도무지 세상에 없는 논리다. 야당의 정치적 공세에 편승하려는 듯한 태도는 직협의 한도를 넘어선 정치적 행위다.” ―‘경찰국’ 규모와 구성은 어떻게 할 건가. “총인원은 15∼20명으로 3개 과를 두려 하고 있다. 국장은 당연히 경찰 출신으로 임명할 것이고, 전체의 80∼90%는 경찰로 충원할 생각이다. 주된 업무가 인사일 텐데, 행안부 공무원이 경찰 조직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인사과는 100% 경찰로 채울 생각이다. 나머지 2개 과도 행안부 공무원은 한두 명만 둘 계획이다.” ―경찰국을 통해 경찰을 통제하려 한다는 지적이 있다. “역대 정부에서 ‘BH(청와대)’와 경찰 수뇌부가 밀실에서 (인사 등을) 거래해온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행안부 장관은 법에 규정된 권한을 행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 정부는 경찰에 대한 대통령의 직접 통제를 내려놓겠다는 것이다. 문서로 모든 근거가 남도록 행안부 장관을 거쳐서 경찰을 지휘한다면 오히려 (경찰을) 장악할 수 없다. 대표적인 게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이다. 일명 ‘해경왕’으로 불리는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 행정관이 해양수산부 장관을 제치고 (해경과) ‘직거래’한 걸로 보인다. 불법인 만큼 아무 근거도 안 남아 국민 입장에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수사 독립’은 어떤 식으로 지킬 것인가. “‘독립’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중립’이 맞다. 수사의 정치적 중립에 대해선 의문의 여지가 없고, 누군가 수사에 관여한다는 것도 생각하기 힘들다. 다만 지난 정권에서 수사되어야 할 것들 중 수사가 안 된 게 꽤 있다. 그런 게 가능했던 것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경찰을 직접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당은 문재인 정부 수사를 ‘정치보복’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뻔한 잘못을 가만 놔두는 것도 정말 불공정한 것 아니겠나. 잘못을 밝혀내고 처벌을 어떻게 할 거냐에 대해선 정치적 고려를 하더라도 팩트 자체는 수사해서 밝혀내야 한다.”○ “경찰청장 후보 개별 면담 했다”―경찰청장 후보를 개별적으로 만났나. “(지난주) 개별 면담을 했다. (인사 제청을 할 때) 대통령께 보고를 드리는데, 서류만 보고 ‘이 사람에 대해 이렇게 쓰여 있다’고 이야기할 순 없지 않겠나. 안 만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봤나. “14만 경찰을 이끌 만한 리더십이 있는지와 조직을 이끌어본 전문성, 투철한 국가관, 사명감 등이 기초 체크사항 아닌가 싶다.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 권고안에 대해서도) 다들 공감하는 태도였다.” ―대통령과도 새 청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나. “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러 차례 윤석열 정부 초대 경찰청장이 갖춰야 될 인성, 인품, 리더십 등에 대해 대통령께서 생각하시는 바를 들었다.”○ 인사 번복 논란에 “징계 등 인사 조치”―‘인사 번복’ 논란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경찰청 등에서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조사가 그렇게 복잡하지 않으니 곧 결과가 나올 거라 예상하고 있다. (잘못이 드러나면) 징계라든지 그 밖의 적절한 인사 조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윤 대통령은 ‘중대한 국기문란’이라고 했다. “사안은 심플하다. 지난달 15일 해외 출장 갈 때 인사안은 확정돼 있었다. 다만 지방경찰청장은 자치경찰위원회 동의가 필요해 발표를 미룬 것이다. 절차가 마무리돼 귀국 후 제청하고 대통령이 결재하셨다. 그런데 인사 번복이 있었다고 해서 상황을 파악해 보니 실무자들 실수가 있었던 거 같더라. 일부 언론에서 대통령 재가 전 인사안을 공개한 걸 두고 ‘국기문란’이라고 했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다. (논란 이후) 경찰 내부에서 대통령이 두 번 (인사안을) 결재한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브리핑이 있었다. 대통령 또는 행안부 장관이 뭔가 잘못했거나, 유력 정치인 입김이 작용한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기자회견이 계속됐다. 그래서 국기문란이란 표현을 쓴 거다. 자신들의 잘못을 대통령에게 미룬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윤 대통령은 순경 출신 고위직 비율 확대를 공약했다. “윤 대통령께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를 마치고 귀국한 직후 ‘경찰 관련 공약을 지키겠다’고 다시 한 번 확인해 줬다. 복수직급제 도입, 경찰의 공안직 전환, 승진구조 개선 등은 경찰 (혼자) 힘으로 절대 못 한다. 행안부 장관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된다. 예산을 확보하려면 기획재정부와의 협상이 가장 중요한데 행안부 장관과 경찰청장 중 누가 협상 파트너일 때 더 역할을 하겠나.”인터뷰=장원재 사회부장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약력△전북 익산 출생(57) △충암고, 서울대 법학과 졸업 △사법연수원 18기 △춘천지법 원주 지원장 △대법원 재판연구관 △박근혜 정부 국민권익위 부위원장 △법무법인 김장리 대표 △행정안전부 장관(2022년 5월∼현재)정리=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인터뷰=장원재 사회부장 peacechaos@donga.com}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이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등 추진 중인 정비사업에 영향을 주진 않을 겁니다.” 취임 1년을 앞둔 오세훈 서울시장(사진)은 22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집무실 예정지 반경 1km 안에 삼각맨션 등 정비사업 예정지가 있고, 2km 안에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지와 한강변 재건축 예정지가 있다”며 “19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만나 경호 때문에 이들 사업에 제한이 가해질 일은 없다는 입장을 확인했다”고 했다. 오 시장에 따르면 19일 오전 류훈 서울시 행정2부시장 등과 만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경호책임자 역시 “이미 국방부 때문에 보호가 이뤄지고 있어 그 이상의 건축 제한은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했다고 한다. 다만 오 시장은 “윤 당선인에게 6개월∼1년 정도 숙성 기간을 거쳐 옮기는 게 안전하지 않겠냐는 여론을 전달했다”고 전했다. 윤 당선인이 5월 10일 청와대 개방을 약속한 것에 대해선 “7월에 광화문 광장이 달라진 모습으로 재개장한다. (광화문 광장과) 청와대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시의회 비협조로 시정운영 한계… 재선 땐 미래지향적 수도 만들 것”오세훈 서울시장 인터뷰 정체불명 ‘I SEOUL YOU’ 슬로건조례로 규정해 놓아 바꿀 수 없고…관변 단체 위탁사업도 절반만 고쳐시의원-구청장 등 특정당 장악 땐…대등한 협조안돼 소모적 갈등 유발 “1년 동안 아쉬움이 많았다. 더불어민주당이 시의회의 압도적 다수인 90%(110석 중 99석)를 차지하고 있어 의회 동의 없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했다.” 지난해 4월 취임 후 1년 가까이 서울시정을 이끌어 온 오세훈 서울시장(61)은 22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아쉬움을 드러냈다. 오 시장은 현재 서울 슬로건인 ‘아이 서울 유(I SEOUL U)’를 예로 들며 “초기부터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강한 비판이 있었다. 바꾸고 싶었는데 조례로 돼 있어 바꾸려면 시의회 과반수 찬성이 필요하다 보니 시작도 못 했다”고 돌이켰다. 6월 지방선거에서 재선되고 시의회 구성이 바뀌면 “당연히 바꾸겠다”고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 1년을 어떻게 평가하나. “보람도 있고 아쉬움도 있는데 아쉬움이 크다. (지난 10년 동안) 서울시는 과거 지향적 시정을 펼쳤다. 시민단체를 표방하는 관변 기득권 단체가 위탁사업을 독점하며 상당한 예산을 썼다. 잘못된 관행을 고치는 ‘서울시 바로세우기’ 작업을 했는데 시의회에서 다시 (해당 단체) 예산 절반을 복원시켜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반면 서울비전 2030 등 도시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좌표를 설정하고 구체적 방법을 설계한 것은 의미가 있다.” ―재선에 도전하는데 서울시민이 왜 다시 오 시장을 뽑아야 하나. “이제 막 미래 지향적 시정으로 좌표 설정을 했다. 시의회 등이 민주당 일색이어서 펼쳐보지 못한 비전과 정책이 많다. (지방선거 후) 마음껏 한번 펼쳐보고 싶다. 젊은이들에게 꿈을 주려면 도시 경쟁력을 끌어올려 지속 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제가 세운 ‘서울비전2030’이라는 중장기 계획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 계획이 차근차근 실행돼 나가는 모습이 (재선될 경우) 앞으로 4년간 이뤄질 변화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시의회 구성에 변화가 있을까. “시의원·구청장·구의원의 80∼100%가 한 당으로 돼 있는 건 사실 바람직하지 않다. 서로 대등한 권한을 가져야 협조도 이뤄지는 거다. 지금 상황은 자칫 잘못하면 소모적 갈등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걸 시민 여러분이 감안해주시면 좋겠다. 이번에 대선 득표율을 보면 (지방선거 당선 비율이) 절반 정도나 되려나…. 과반수는 넘겼으면 좋겠는데.” ―지난해 시장선거와 비교할 때 대선에서 서울 지역 표 차이가 줄었다. 민심을 어떻게 보나. “득표 숫자를 한두 가지 원인으로 분석하는 건 의미가 없다. 다만 시민들이 지금도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건 ‘부동산 시장 안정’이라고 생각한다. 1년 동안 부동산 가격을 자극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신속통합기획 도입 등 여러 규제 완화를 했다. 재건축·재개발 활성화에도 상당 부분 진도가 나가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에 부동산 담당 시 공무원을 파견했다. 어떤 의견을 전달하나. “재건축·재개발 활성화를 위해 서울시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이제 국토교통부가 고집스럽게 유지하는 강화된 안전진단 기준이나 초과이익환수 등에 대해 실효성 있는 변화가 필요하다. 종합부동산세 폐지 등 부동산 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인수위에 전달하기 위해 정리를 마쳤다.” ―부동산 외에 인수위에 전달할 의견은…. “뉴욕 런던 도쿄(東京) 베이징(北京) 등 라이벌 도시와 비교하면 서울은 제약이 많다. 법인세·소득세 등이 과도하고 수도권 규제가 많아 외국 기업이 오지 않는다. 수도권 규제 완화에 대해서도 건의할 예정이다. 국내 다른 도시와의 균형발전도 중요하지만 해외 도시와의 경쟁에서 뒤처지게 만드는 규제는 안 된다.” ―이전 재임 기간 추진했던 세빛섬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전임 시장께서 절차적 하자 등을 문제 삼아 3년 동안 문을 닫아 놨다. 민간투자사업이기 때문에 수익을 거둘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투자자 입장에서 굉장히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이다. 최근에 다시 주목을 받으며 핫 플레이스가 된 건 다행이다.” ―새 정부와 어떻게 보조를 맞출 건가. “서울시장은 국무회의 배석자이고 필요할 때 참석한다. 규제 완화 등 앞서 인수위에 전달하겠다고 한 것들을 비롯해 사안별로 정부와 원활하게 협조하길 기대하고 있다.”오세훈 서울시장 약력△서울 출생(61) △대일고, 고려대 법학과 졸업 △제26회 사법시험 합격 △제16대 국회의원(2000∼2004년) △제33·34대 서울시장(2006년 7월∼2011년 8월) △제38대 서울시장(2021년 4월∼현재) 인터뷰=장원재 사회부장 peacechaos@donga.com 정리=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