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이정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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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안보 현장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정책의 흐름을 정확하고 빠르게 따라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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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5-11-06~2025-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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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3%
미국/북미3%
  • [횡설수설/이정은]“SNS로 교실 붕괴”… 집단소송 나선 美 200개 교육청

    미국의 양대 교원단체 중 하나인 미국교사연맹(AFT)은 5월 “우리의 학교가 위기에 처했다”로 시작하는 15쪽의 보고서를 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교육 생태계를 무너뜨리고 학생들의 정신건강에 해를 끼친’ 사례들과 교사들의 증언은 생생하다. 보고서는 SNS 운영업체들의 대응을 촉구하며 “이는 어린이 보호를 위해 자동차 안전벨트 설치를 의무화하고 장난감에 납 페인트 사용을 금지해 달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SNS에서 유행한 각종 챌린지는 대표적 부작용으로 거론된다. ‘악마의 도둑질(Devious Licks)’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학교 기물을 훔치거나 파손하는 동영상들이 올라왔다. ‘선생님 때리기(Slap a Teacher)’ 챌린지를 한다며 교사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이를 촬영해 SNS에 올린 학생들도 있었다. ‘스와팅(swatting)’으로 불리는 허위 신고나 장난 전화로 학교들은 매번 비상이 걸렸다. 학생들의 SNS 중독과 집중력 저하, 사이버 괴롭힘, 우울증 같은 문제들도 적잖다. ▷미국 각지의 200개 교육청이 최근 틱톡과 페이스북, 유튜브, 스냅챗 운영업체들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냈다. 이들은 “SNS가 통제 불능 상태가 됐다”며 학급 붕괴의 책임을 운영업체들도 함께 져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학생들의 우울증 상담과 관리, 학부모 대응, 휴대전화 관리, SNS 관련 교육, 가짜뉴스 검증과 차단 등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이 급증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소송에 참여하는 교육청 수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SNS에 질린다”는 교사들의 하소연이 행동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교육청의 소송이 학교와 교사의 의무를 SNS 업체들에 떠넘기는 게 아니냐는 반론도 없지는 않다. 업체들은 “정보와 콘텐츠를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역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우군은 찾기 어려운 분위기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SNS의 영향 분석을 위한 TF 구성 계획을 밝혔고, 의회에서도 “틱톡은 디지털 마약”이라는 등의 강경 발언이 터져 나오고 있다. 상원에서 초당적으로 발의된 법안 중에는 13세 미만인 경우 아예 SNS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내용도 있다. ▷10대들의 과도한 SNS 사용 문제는 한국에서도 다르지 않다. 청소년 3명 중 2명이 하루 평균 3시간 이상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이 중 유튜브 시청과 SNS 사용을 가장 많이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못잖은 각종 챌린지 경쟁에 자극적인 쇼트폼 영상도 늘어나는 추세다. 교권 추락과 함께 심화해 온 공교육 붕괴의 또 다른 뇌관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아직 본격적 논의 움직임조차 없다. 교사들이 집단 대응에 나섰을 때는 이미 늦을지도 모른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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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세계 안보의 최대 위협은 우리” 美 외교전략 대가의 한탄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저를 압수수색하자 트위터에서 ‘내전’을 언급한 횟수가 30배 급증했다.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기소되면 내전이 일어날 것”이라며 “봉기를 준비하라”고 외쳐댔다. 반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지지자의 FBI 사무실 습격과 폭탄 테러 위협이 이어졌다. 트럼프 정부의 이너서클에 속했던 인사들은 사석에서 “내년 선거에서 정권을 되찾으면 반드시 보복할 것”이라고 벼르고 있다고 한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다음 대선은 미국 역사상 마지막 민주주의 선거가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망가진 정치 시스템과 극심한 양극화, 사회 분열 등이 ‘민주주의의 죽음’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 역사학자의 충격적인 예고에도 이미 트럼프의 대선 불복, 1·6 의회 난입 사태를 연달아 겪은 미국 내에서는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 나왔다. 인공지능(AI)이 만들어내는 가짜 뉴스와 허위 정보, 음모론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벌써부터 꿈틀거리는 상황이다. ▷초강대국 미국의 정치, 사회적 혼란은 내부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국내 현안에 발목 잡힌 미국의 리더십 약화는 곧바로 대외정책을 흔드는 변수로 작용한다. 급기야 “세계 안보의 가장 큰 위협은 바로 우리(미국)”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미국 외교안보 전략의 구루로 평가받아온 리처드 하스 미국 외교협회(CFR) 회장의 입에서다. 20년간 최장수 CFR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같은 대외적 위협 요인들을 분석해왔던 그가 ‘미국’을 최대 위협으로 지목한 건 처음이다. ▷불안정한 정치를 비롯한 미국의 내부 위험 요인들은 이제 외부 위협을 넘어서는 수준까지 악화했다는 게 하스 회장의 진단이다. 그는 이미 6년 전 저서 ‘혼돈의 세계’에서 미국 정치의 ‘기능 장애’가 악화하면서 대외적으로 치러야 할 대가가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잦은 대규모 정책 변화가 우방국들을 불안케 하고 적들을 대담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은 2020년 이후 중동 내 영향력 약화, 유럽의 대중(對中) 전선 이탈 조짐, 자국에 맞선 중국과 러시아의 밀착 등으로 대외정책에 고심이 깊다. ▷다극화를 넘어 무극화 경향까지 나타나는 국제질서의 변동 속에서 미국의 외교 영향력 약화는 글로벌 불안정성을 높일 주요 요인이다. “미국의 국내 혼돈은 세계의 혼돈과도 불가분하게 연계돼 있다”는 하스의 경고를 흘려듣기 어렵다. 대미 안보 의존도가 큰 동맹국 한국으로서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 우려에 앞서 ‘내부 분열이 가장 큰 안보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부터 다시 한번 새겨야 할 듯하지만 말이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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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정은]日오염수를 다루는 야당의 외교적 무지함

    “유엔… 유엔요? 어디에 어떻게 낸다는 거예요?” 더불어민주당이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를 유엔총회에서 다뤄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던 초기, 전직 외교부 고위당국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부 공식 루트가 아닌 정당 차원에서, 그것도 정부의 입장과는 다른 내용을 유엔총회에 어떻게 올리겠다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요즘 외교가 인사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민주당의 외교 행보가 자주 화제에 오른다. “주변에 외교 이슈에 대해 조언하거나 방향을 잡아주는 사람이 그렇게 없느냐”고 묻는 이들이 많다. 후쿠시마 오염수 건만 해도 유엔이라는 국제기구의 성격과 절차를 제대로 안다면 이런 식으로 밀어붙이기는 어렵다. 외교부가 지적했듯 ‘국가 외교행위의 단일성’ 측면에서도 맞지 않는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지난달 말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문제의 유엔총회 안건 채택 결의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결의안은 이 문제를 ‘긴급하고 중요한 의제’로 다루자는데, 일본이 벌써 2년 전 발표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지속적인 모니터링하에 준비해온 방류 건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 2021년에 이미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이 “철저히 살펴보겠다”고 공언했던 사안이다. 벌써 6차례 IAEA 중간보고서가 나왔다. 결의안에 서명한 민주당 의원 52명은 IAEA 평가를 뛰어넘는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단 말일까. 민주당 일부 의원이 “IAEA는 오염수의 안전성을 검증하는 기관이 아니다”라며 “IAEA가 아니라 유엔을 통해 객관적 검증 노력을 해야 한다”고 한 것에도 전문가들은 실소하고 있다. IAEA가 유엔 기구이고, 헌장에 명시된 3대 책무에는 ‘핵확산방지’, ‘핵안보’와 함께 방사능 유출을 다루는 ‘핵안전’이 들어간다. 국회를 움직이는 거대 야당이 민감한 외교 쟁점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하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부족한 외교적 식견을 채우고 잡아줄 안전판도 보이지 않는다. 사실관계나 맥락과는 상관없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겠다는 계산이 앞서는 모양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만나 15분간의 일장 훈계를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전랑(戰狼·늑대 전사) 외교’에 앞장서온 싱 대사의 그간 행보, 거칠어지는 중국의 외교 기조와 사례들을 알고 있었다면 그런 민망한 장면이 연출될 것임을 예상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민주당 의원들의 티베트 방문과 “인권 탄압은 70년 전 일” 같은 발언도 다르지 않다. 그것이 부를 대외적 파장을 알았다면 이보다는 신중했을 것이다. 정치인들이 국내 현안에만 집중해도 되는 시대는 지났다. 후쿠시마 같은 환경 이슈부터 보건, 기술, 일자리 등까지 외부적 요인에 대한 검토 없이 다룰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국제 정세의 변화 틀에서 내용을 꼼꼼히 들여다보지 않고는 국내 정치 또한 제대로 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말이다. 외교에 직접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 야당이라고 해서 몰라도 된다는 식의, 혹은 알아도 대놓고 무시하는 식의 접근은 무책임하다. 일본의 오염수 방류가 가져올 문제들에 대해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것은 맞다. 당사국인 일본 내부는 물론이고 태평양 섬나라들에서도 우려가 제기된 사안이다. 그렇더라도 이를 글로벌 이슈화하려는 한국 야당의 시도는 방법도 시점도 틀렸다. 결과적으로 분열된 정치 현실만 드러내며 국제무대에서 망신당할 판이다. 한국은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서 본격 활동을 앞두고 있다. 그런 나라의 국정 파트너인 야당이 외교적으로 무지, 무모하다는 손가락질을 받아서는 안 될 일이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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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100세 과학자가 남긴 조언 “너무 이른 은퇴 말라”

    “죽기 전에 고속도로에서 배기가스가 사라지는 걸 보고 싶소. 나는 지금 96세이니 아직 시간이 있어요.” ‘전기차 배터리의 아버지’로 불리는 존 구디너프 미국 텍사스대 교수의 과거 인터뷰들에는 나이를 잊은 열정과 여유가 가득하다. 2019년 97세 나이로 최고령 노벨상 수상자 기록을 쓴 그는 25일 100세를 일기로 타계하기까지 ‘슈퍼 배터리’ 연구를 계속했다. “오랜 연구의 비결을 공유해 달라”는 요청에 그가 내놨던 답변은 “너무 일찍 은퇴하지 말라”였다. ▷80대, 90대에도 일을 계속하는 현역들은 고령화에 접어드는 현대사회에서 주목받는다. 올해 3월 타임지는 ‘왜 그만둬요?’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95세 변호사, 85세 엔지니어를 조명했다. 노익장을 과시하는 유명인들에겐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다. 배우 해리슨 포드는 81세 나이에 액션 연기를 선보였고,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93세 나이에 최고령 감독이자 배우로 여전히 활동 중이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인공지능(AI)을 연구해 책을 썼다. ▷일본 언론에 소개된 한 90대 스시집 셰프는 “아침마다 생선과 쌀, 물, 직원, 손님들에게 감사하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다. 일본에서 히트 친 게임을 개발한 87세 프로그래머가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60세에 은행을 은퇴한 뒤였다고 한다. 초고령화사회인 일본에서는 90세 이상 취업자가 5000명에 이른다. 고령에도 “일을 즐긴다”는 이들은 “배우고 일하는 데 늦은 나이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일이 주는 일상의 긴장감과 자극 덕분에 늙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구(老軀)의 한계를 극복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최근 96세 연방판사가 “일을 그만두라”는 동료의 소송에 맞서 법정싸움을 벌이는 상황이 벌어졌다. 업무 역량과 처리 속도, 기억력 등이 모두 떨어지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한 이 종신직 판사는 “아직 충분히 기여할 수 있다”며 완강히 버티고 있다. 정반대로, 일을 내려놓고 싶어도 경제적 이유로 은퇴를 미뤄야 하는 생계형 현역들도 적잖다. 직종과 분야, 근무 환경에 따라 정년에도 차이가 있다. ▷정년은커녕 ‘파이어(FIRE)족’을 꿈꾸며 조기 은퇴를 준비하는 젊은이들도 속출하는 세상이다. 젊은 날의 고단한 근무를 황혼기 이후까지 계속한다는 게 어쩌면 막막하다. 그래도 자아실현과 삶의 의미를 찾는 데는 일만 한 것도 없다고 앞서 걸어간 사람들은 증언한다. 국내에도 95세까지 마이크를 잡았던 MC 송해부터 91세에 말춤을 춘 현직 대학총장까지 수많은 사례가 있다. 진정 하고픈 일이라면 못 할 것도 없다. 직장, 직업을 넘어 천직을 찾아나갈 때 가능한 일들이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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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모디 총리에 레드 카펫을… ” 印 향한 美의 구애

    “그때 나는 할 수 없었으나 당신은 반복해서 물었던 것, 그렇게 열망했던 바람을 오늘 제가 채워드리죠.” 22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백악관 국빈만찬에서 내놓은 발언에 만찬장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9년 전 워싱턴 방문 땐 힌두교 금식 기간이라 아무것도 먹지 못했지만 이번 만찬에서는 기꺼이 포식하겠다는 뜻의 농담이었다. 인도산 실크 위에 오른 사프란 리소토와 포토벨로 버섯 요리는 채식주의자인 그를 위해 백악관이 특별히 공들인 메뉴였다. ▷제3세계 국가들의 맹주를 자처하는 인도는 비동맹 외교 정책을 고수해온 나라다. 쿼드(Quad) 회원국으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정책에 적극 올라타면서도 러시아로부터는 싼값에 원유를 4배 넘게 사들이며 미국의 대(對)러 제재망에 구멍을 뚫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는 “깰 수 없는 우정”을 강조했다. 이런 인도를 가까이 끌어들이기 위해 미국은 모디 총리를 국빈으로 초청해 초특급으로 환대했다. ▷미국과 인도를 ‘베프’ 관계로 만든 공통분모는 중국이다. 중국과의 국경 분쟁 등으로 잔뜩 날이 서 있는 인도, 중국 견제를 위해 우군이 필요한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양국이 협력 강화를 다짐한 분야는 인공지능(AI) 개발과 글로벌 공급망 확보, 방산 등 첨단 기술과 안보다. 미국이 대중 견제의 고삐를 죄는 분야들이다. 중국에서 제재받은 마이크론은 인도에 8억 달러 넘게 투자한다. 양국 정부와 기업 모두 중국 보란 듯 밀착하고 있는 것이다. CNN은 모디 총리의 국빈 방문 기간에 “(중국이라는) 초대받지 않은 유령 손님이 워싱턴을 맴돌았다”고 썼다. ▷“두 위대한 국가, 두 위대한 친구, 두 위대한 파워를 위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국빈만찬 건배사는 의미심장하다. 주요 2개국(G2)으로 불렸던 미중 관계 대신 인도와 손잡고 세계질서를 재편해 나가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인도가 어디까지 호응할지가 관건이지만, 이번 회담만으로도 기존의 지정학 구도를 흔들 “역사를 썼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은 이를 위해 인도의 인권 탄압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모디 총리는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두 민주주의 국가 간의 연대”를 외쳤다. ▷14억 인구를 둔 세계 최대 시장, 첨단기술 수준과 젊은 정보기술(IT) 인력들, 6%대 경제성장률을 이끄는 중산층 파워로 인도의 몸값은 한껏 높아져 있기도 하다. 미중 갈등 속에서의 ‘어부지리’ 수혜로 신흥 거대 시장 인도의 성장세는 더 가팔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원칙과 국익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속에서 주요국들의 합종연횡이 끌어내는 변화 속도가 숨 가쁘다. 대외적 역할 확대와 수출시장의 다변화를 노리는 한국이 놓치지 말고 따라가야 할 흐름임이 분명하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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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움직입시다”[횡설수설/이정은]

    고령에 근육질을 자랑하는 ‘몸짱 어르신’의 상당수는 건강이 크게 나빠져 고생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통증을 줄이려 시작한 운동이 회복을 넘어 건강미까지 얻게 해준 사례들이다. 각종 매체를 통해 소개된 79세 임종소, 72세 강현숙 할머니도 그랬다. 허리협착증으로 고생하던 임 할머니는 일주일에 5번씩 헬스장을 찾는 노력 끝에 세계 피트니스 대회에서 우승한 보디빌더가 됐다. ▷젊었을 때부터 꾸준히 관리하지 않으면 어느 한순간에 망가질 수 있는 게 건강이다. 특히 3년간의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우리 몸에는 보이지 않는 경고등이 여기저기 켜진 상태다. 비만 상태인 한국인의 비중이 늘어났고 당뇨병, 고콜레스테롤혈증 같은 만성질환 유병률도 높아진 게 실태조사 수치로 확인된다. 일상생활의 움직임이 줄어든 데다 운동 습관까지 무너진 영향이 컸다. 앉아있는 시간은 하루 평균 8.9시간까지 늘어난 반면 하루 30분 이상씩 걷는 사람의 수는 감소했다. ▷최근 몸을 소재로 한 이른바 ‘피지컬 예능’들은 코로나가 잠재웠던 운동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이런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헬스장 문의와 등록이 늘어났다고 한다. 문제는 지속성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운동은 작심삼일의 악순환을 끊기 어려운 도전이다. 결심이 필요한 단계를 넘어 운동을 일상의 습관으로 만들어 버리는 게 해법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소셜미디어에서 열풍이 불었던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 챌린지처럼 여럿이 함께 만들어가는 게 좀 더 쉽다. ▷운동 루틴을 돕는 디지털 기기의 역할 또한 주목할 만하다. 정해진 운동시간을 알려주는 기능부터 운동량 기록, 심박수와 혈당 측정, 3D 체형 분석 같은 기능들이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모니터 속 헬스 강사의 일대일 지도와 격려의 외침, 인터넷으로 연결된 다른 회원들과의 운동 목표 공유가 도움이 됐다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기능을 장착한 미국 운동용 자전거 업체의 매출 증가세는 폭발적이었다. 업체 이름을 따서 ‘펠로톤 효과’라는 조어까지 나왔다. 건강을 챙기려는 사람들의 의지와 ICT가 접목되면서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의 성장을 이끈 사례다. ▷인터넷에는 ‘일주일 만에 뱃살 폭파’ ‘한 달 만에 올챙이배 없애기’ 같은 콘텐츠가 넘쳐난다. 운동의 효과를 그렇게 단기간에 보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도 일단 시작하고 보는 게 답이다. 꼭 초콜릿 복근을 만들 필요도 없다. 건강한 땀으로 군살을 빼 나가면서 일상의 탄력과 에너지를 높이는 것만으로도 효과는 차고 넘칠 것이다. 집에서 혼자 하는 ‘홈트’부터 테니스, 수영, 요가까지 다양한 운동은 고령화시대 안티에이징의 비법이기도 하다. 지금, 움직입시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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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톈안먼 사태 34주년… 中 ‘역사 지우기’[횡설수설/이정은]

    홍콩의 공공도서관에서 책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알음알음 알려진 건 지난달 중순쯤이었다. 없어진 수백 권의 책은 중국 톈안먼(天安門) 사태와 민주화 시위 등 중국 당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잡지와 영상자료도 예외가 아니었다. 홍콩 당국은 “불온한 사상을 담은 불법 자료들이 유포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도서관의 당연한 임무”라고 했다. ▷양초, 꽃다발, 노란색 티셔츠…. 톈안먼 사태 34주년을 맞은 이달 4일에는 금지 품목이 책 외에도 많아졌다. 톈안먼 사태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사에 쓰일 것으로 의심되는 물건이나 홍콩 ‘우산혁명’의 상징이었던 노란색 의류 같은 것들이 모두 문제가 됐다. 빅토리아 공원에 깔린 경찰들이 삼엄한 경비 속에 행인들의 소지품을 검색했고 일부는 연행, 체포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났건만, 해마다 최대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참가했던 톈안먼 사태 추모 집회의 열기는 되살아나지 못했다. ▷1989년 톈안먼 사태는 중국 본토에서는 언급 자체가 금기시되는 역사다. 수많은 대학생의 목숨을 앗아간 중국군의 유혈진압은 “반사회주의 폭도 진압을 위한 단호한 조치”로 포장돼 있다. 인터넷에서 검색조차 되지 않게 통제돼 온 이 민주화 시위의 기억은 이제 유일한 추모 공간으로 열려 있던 홍콩에서마저 지워질 위기에 처했다. 2020년 제정된 홍콩 국가보안법, 더 크게는 중국 당국의 통제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비판할 홍콩 언론사들은 지난 3년간 벌써 12곳이 문을 닫은 상태다. ▷중국의 ‘역사 지우기’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을 계기로 점차 강화되는 분위기다. 중국 당국은 공산당의 역사를 수정한 내용을 새롭게 학습하도록 하는 전국 단위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교육기관에 배포된 자료에는 대약진운동이 최대 수천만 명의 아사자를 냈다는 사실은 빠져 있고, 문화대혁명도 ‘부패에 맞선 조치’로 평가했을 뿐 그 폐해에 대한 설명은 없다고 외신들은 전한다. 중국 당국이 ‘모든 공작의 생명선’으로 여기며 지속적으로 시도해 온 사상·정치 공작의 일환일 것이다. ▷중국과 홍콩이 닫힌 대신 대만, 호주, 캐나다, 유럽 등 10여 곳의 다른 도시에서 톈안먼 사태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작은 집회들이 열렸다. “우리도 34년 전과 똑같은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우리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베이징에 전달해야 한다”는 해외 주재 중국 청년들의 결기는 비장하다. 해외 소셜미디어에서는 톈안먼 해시태그를 달고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라는 글도 이어졌다. 중국의 검열이 닿지 않는 온라인 공간은 훨씬 넓고 깊다. 억지로 바꿔 쓰려 한다고 해서 바뀌거나 지워지지 않는 게 역사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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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美 대학진학률 ‘뚝’… “일자리 많은데 뭐 하러 가?”

    ‘지성의 전당’으로 불리는 대학의 진학률이 미국에서 최고점에 달했던 때는 2009년이었다.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이 속속 가세하면서 20년간 꾸준히 늘어온 입학생 수는 이때 1800만 명(진학률 70.1%)에 육박했다. 대학 졸업장은 중산층 이상의 삶을 보장하는 티켓으로 통했다. 하버드, 예일, 스탠퍼드, MIT…. 해마다 발표되는 ‘톱 100’ 대학의 입시 정보를 얻으려고 고교생과 학부모들은 애를 태웠다. ▷그랬던 미국 대학의 몸값이 예전 같지 않다. “인생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졸업장 한 장 받으려고 그 많은 등록금과 시간을 써야 하느냐”며 시큰둥해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안 그래도 하락세였던 진학률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더 가팔라지면서 지난해 62%까지 떨어졌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대학은 들이는 돈만큼의 가치가 없다’는 응답이 56%까지 치솟았다. 출산율 하락, 억대 학자금 대출 부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학위 없이도 얻을 수 있는 일자리가 많아진 게 주된 이유로 꼽힌다. ▷팬데믹 기간에 심해진 미국 내 노동력 부족 현상은 인력의 수요와 임금을 동시에 밀어 올리는 결정적 요인이다. ‘메이드 인 아메리카’ 기조에 따라 대규모 생산시설이 들어서고 있는 지역들은 특히 블루칼라 일손 부족으로 아우성이다. 구글, 델타항공, IBM과 같은 기업들도 일부 분야에서 대졸 여부를 따지지 않는 채용을 시작했다. 미국 언론들은 “대졸자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대학을 거부하는 새 세대의 출현” 같은 제목의 분석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대학을 외면하는 청년들의 선택이 마냥 환영받는 분위기는 아닌 듯하다. 미국 경제학자들은 “대학 위기를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한다. 고졸자들의 연간 평균 수입은 대졸자보다 2만4900달러 적고, 실직 확률은 40% 높으며, 수명은 더 짧고 이혼율은 더 높다는 통계 수치들이 여전히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의 청년들이 매년 4500만 명씩 대학에 들어가고 있다는 점도 미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미국 대학들은 “고등교육 방식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며 해법을 고심 중이다. ▷문화, 인식, 교육, 경제 환경이 나라마다 다르니 미국 대학가의 변화가 당장 해외로도 확산될 현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대학 간판보다는 능력을 추구하는 청년들의 실용주의와 이들을 기꺼이 모셔가는 기업들의 선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를 가능케 하는 미국의 견고한 노동시장 또한 이런 유연한 접근에 바탕을 둔 기술, 경제 혁신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일 것이다. 너도나도 대학 입시에 목을 매고 있는 한국이 깊이 들여다볼 움직임이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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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여행 수요 폭발… 여행수지는 적자 시름[횡설수설/이정은]

    ‘대자연의 절경으로 떠나는 여름 힐링여행’, ‘놓치면 후회할 특가, 완판주의’…. 요즘 온·오프라인 매체를 통해 부쩍 노출이 늘어난 해외여행 광고들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이국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외국 관광지의 사진과 동영상은 당초 여행계획이 없던 이들까지 설레게 만든다. 올해 초 한 여행사가 내놓은 북유럽 여행 패키지 상품들은 홈쇼핑에서 한 달 동안 1000억 원 가까이 팔려 나갔다. ▷올해 1분기 해외로 나간 한국인 관광객은 498만 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000% 이상 많아졌다. 공항 이용객이 10배 늘었고, 관광객들이 면세점 등에서 쓰는 신용카드 결제액도 급증세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억눌렸던 ‘보복 여행’이 증가한 결과라지만 증가세가 예상보다 폭발적이다.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인 관광객 수도 5배 늘어나기는 했지만(1분기 171만 명), 해외로 떠나는 여행객 증가 폭에는 못 미친다. 여행수지 적자 규모는 그만큼 확대되고 있다. 32억 달러를 넘어서며 3년 반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국내 여행객들을 끌어들이는 주요 관광지는 단연 일본이다. 벌써 200만 명 넘는 한국인이 일본으로 향했다. 가까운 이동 거리와 부담이 적은 저비용항공 인프라, 엔저 효과까지 겹치면서 오사카와 후쿠오카 등지의 관광 명소는 최대 80%까지 한국인들로 채워지고 있다고 한다. 베트남과 태국, 필리핀도 인기 여행지다. 여름 휴가철에는 해외여행객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어 가을 상품으로는 북유럽과 캐나다의 단풍을 즐기는 상품들이 이미 광고를 타고 있다. ▷떠나는 이를 붙잡을 일은 아니지만 들어오는 이가 턱없이 적은 상황은 문제가 된다. 여행수지 적자가 서비스수지 적자를 키우면서 경상수지 악화 요인으로 작용하는 상황이다. 재정 당국의 근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의 주요 관광 손님이었던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의 발을 묶어놓은 중국 정부의 조치는 언제 풀릴지 알 수 없다. 중국은 벌써 두 달 전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40개 국가에 대한 단체관광 금지 조치를 풀면서도 한국은 쏙 빼놨다. 금지령이 풀린다고 해도 ‘애국소비’ 바람이 부는 중국에서 방한 여행객이 금방 늘어난다는 보장도 없다. ▷해외 관광객의 발걸음을 국내로 돌리자니 이미 치솟은 가격에 바가지 상술까지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이 가격이면 차라리 일본이나 동남아를 가겠다”는 사람들 앞에서 국내 대표 관광지 제주도는 울상이다. 한국의 볼거리, 놀거리, 먹거리 강점을 키우지 못하는 사이 외국행 비행기표를 예약하는 여행객들의 클릭 손길은 더 바빠지고 있다. 지친 일상을 벗어나 여행의 즐거움에 푹 빠지고픈 이들을 붙잡을 우리만의 매력을 더 찾아내야 할 때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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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납 세금 안내려고 로또 1등 당첨금까지 빼돌린 철면피들[횡설수설/이정은]

    “신도 있고 왕도 있지만 더 무서운 건 세금징수관이다.” 고대 수메르인의 격언 중 하나였다는 이 한 문장은 세금 납부가 얼마나 오래된 인류의 숙제였는지를 보여준다. 세금을 걷으려는 국가와 어떻게든 이를 피해 보려는 납세자들의 숨바꼭질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다. 그 과정에서 세금을 회피하기 위한 각종 ‘창의적 능력’이 발현됐다지만, 탈세가 처벌 대상인 범죄라는 사실 또한 역사적으로 예외가 없었다. ▷로또 1등에 당첨되고도 연체된 세금을 납부하지 않고 버티던 체납자가 최근 국세청에 적발됐다. 그는 20억 원이 넘는 당첨금을 받고도 내야 할 수억 원의 연체 세금을 처리하지 않았다. 대신 돈을 가족 계좌로 이체하거나 현금, 수표 등으로 인출하며 빼돌리려 했다고 한다. 이처럼 1등 혹은 2등 거액 로또에 당첨됐는데도 밀린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가 적발된 이는 36명에 달한다. 없던 돈이 하늘에서 떨어졌는데도 그걸로 세금은 내기 싫다는 심보다. ▷국내 세금 체납자는 현재 132만 명, 밀린 체납액은 100조 원이 넘는다. 내야 할 세금이 1억 원 이상 쌓여있는 사람만 16만 명에 달한다. 사업 실패 등 안타까운 사연도 없지는 않겠으나 체납자 중에는 고의로 재산을 은닉하고 호화 생활을 누리는 사람도 상당수다. 고액 체납자이면서도 개인금고에 현금 4억 원을 숨겨놨거나, 배우자 명의로 재산을 돌려놓고 부촌의 고급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례가 이번 국세청 조사에서 줄줄이 나왔다. 하루 단위로 늘어나는 연체료 따위는 신경 안 써도 되는 부자들이 아니고서야 보이기 힘든 배짱이다. ▷‘유리지갑’ 직장인들이야 고민할 여지조차 없다지만 숨길 구멍이 있는 경우엔 절세와 탈세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올 초에는 유명 웹툰 작가와 프로게이머, 운동선수 등이 줄줄이 세무조사를 받았다. 법인 명의로 산 고가의 슈퍼카를 사적으로 굴리고, 친인척을 직원으로 등록해 허위 인건비를 지급하는 등 각종 수법이 총동원되다시피 했다. 헌법에 명시되고 교과서로 가르치는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를 우습게 본다. 탈세범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의 전례들은 이들을 더 대담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최근엔 해외 암호화폐 시장 등을 이용해 조세당국의 추적을 빠져나가는 지능범들도 많아지는 추세다. 조세 정의가 무너지면 “성실한 사람들만 세금을 뜯긴다”는 반발이 커질 수밖에 없다. 혈세 징수에 앞서 효율적으로 투명하게 쓰이는지부터 입증하라는 항변은 정부도 한번 더 들여다볼 부분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문제점들이 악의적 체납이나 탈세의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사람이 피할 수 없는 두 가지가 죽음과 세금’이라고 했던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처럼 누구도 세금을 회피하지 못하는 세상이 돼야 한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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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차 세계대전 막을 시간 5~10년뿐”… 키신저의 경고[횡설수설/이정은]

    이달 말 100세 생일을 맞는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지금까지 중국 방문 횟수가 50회를 넘는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방중 성사를 위한 잠행 등 역사적 행보가 포함된 기록이다. 그는 마오쩌둥이 현안 질문에 대해 “나는 철학자여서 그런 주제는 안 다룬다”며 피하다가도 대만에 대해서는 단호한 화법을 구사하던 순간을 아직 기억한다. 저우언라이와 함께 ‘상하이 공동성명’의 마지막 한 줄을 놓고 밤을 꼴딱 새우며 끙끙대던 때도 잊지 않고 있다. ▷키신저는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1차 세계대전 발발 전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며 강 대 강 충돌로 치닫는 미중 갈등을 진단했다. 3차 세계대전 가능성을 경고하며 “이를 막을 시한이 5∼10년에 불과하다”고 전망했다. 미국의 역대 최고령 내각 고위 인사로 한 세기 동안 미중 관계를 지켜봐온 그의 분석은 군사 전문가들이 전쟁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것과는 다른 무게감을 갖는다. 역사의 산증인인 그가 1차 세계대전 상황을 근거로 대는 것에 토를 달 수 있는 이도 많지 않을 것이다. ▷키신저가 보는 미중 관계의 뇌관은 역시나 대만이다. 대만을 우크라이나처럼 다루다간 결국 전 세계 경제가 붕괴할 것이라는 그의 지적은 매섭다. 양국 간 충돌이 이르면 5년 안에 벌어질 수 있다고 보는 근거는 인공지능(AI)이다. 지리적, (타격)정확성 한계 등으로 적군을 궤멸할 능력이 없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AI가 모든 군사적 한계를 빠르게 없애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미중 양국이 참여하는 ‘AI 군축’ 논의를 제언한다. 고령에도 ‘AI의 시대’라는 책을 쓰며 첨단기술 공부를 지속해온 키신저다. ▷미중 데탕트 시대를 주도했던 그답게 해법은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는 게 우선’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중국 지도자들의 목표는 세계 지배라기보다는 자국의 이익 극대화로, 히틀러의 야욕과는 다르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마르크스주의가 아닌 유교 사상에 바탕을 두고 중국의 대내외 정책을 이해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신뢰 구축과 협력을 강조하는 접근법은 매파 일색인 미국 행정부, 의회와는 결이 다르다. ▷이번 인터뷰는 이틀에 걸쳐 총 8시간 동안 진행됐다고 한다. 키신저는 앞서 CBS방송과도 ‘100세 기념 인터뷰’를 하고 포럼 연사로 나서는 등 대외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미중 충돌 외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가져올 악영향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발신하고 있다. 이젠 거동이 불편하고 말조차 어눌하지만 시대와 영역을 넘나드는 그의 통찰은 울림이 있다. “파괴적 충돌을 막을 방법은 단호한 외교뿐”이라는 키신저의 고언에 백악관과 중난하이도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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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확인한 ‘G8’의 높은 문턱[횡설수설/이정은]

    “G7은 죽었다. 현재와 같은 구성으로는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유럽의 한 싱크탱크는 2018년 내놓은 보고서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맹폭했다. “오늘날의 G7은 과거의 유물”이라며 더 대표성을 띤 새 멤버들의 가입을 촉구했다. 캐나다 샤를부아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보호무역주의와 관세장벽 등을 놓고 회원국 간 갈등이 여과 없이 노출된 직후였다. ▷기존의 G7에 한국과 인도, 호주, 러시아를 참여시켜 G11으로 키우는 방안이 거론되기 시작한 게 이때였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G7은 낡았다”며 새로 참여할 후보국으로 4개 나라를 콕 찍어 언급했다. 당시 그의 발언은 한때 G8 멤버였다가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침공으로 퇴출당한 러시아를 복귀시키는 데 방점이 찍혀 있었다는 게 정설이다. 다른 회원국들의 공개 반대로 G7 확대 논의는 흐지부지됐지만, 한국의 가입 가능성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다. ▷G7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을 회원국으로 둔 비공식 국가 협의체다. 자유민주주의, 인권 등의 가치를 공유하는 ‘선진국 클럽’으로 국제 경제 및 외교 규범을 논의하는 리더 그룹이라는 점에서 가입 시 그 상징성은 대단하다. 신흥 경제국들이 포함된 G20에 주도권을 빼앗기는 듯 보이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G20는 몸집이 비대하다는 지적과 함께 회원국인 러시아, 중국과의 갈등으로 한계에 봉착해 있다. 유엔마저 무력화한 상태에서 결국 서구 선진국들은 다시 G7 중심으로 뭉치는 분위기다. ▷급변하는 글로벌 지형을 반영해 G7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요구는 커지고 있다. 브라질까지 포함해 G12로 만들자는 식으로 다양한 조합과 후보 국가가 거론된다. 민주주의 국가 10개국을 모은 ‘D10(Democracy10)’ 창설이 대안으로 논의되기도 했다. 다만 소수 결속으로 국제사회의 주도권을 유지하려는 기존 회원국들의 벽은 여전히 공고하다. 한국의 G7 가입을 놓고는 특히 일본의 견제가 만만찮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시아 유일 회원국으로서의 영향력이 약화할 것이라는 일본의 우려가 작용했을 것이다. ▷한국은 19∼21일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에 옵서버 국가로 초청됐다. 한국 정상으로는 역대 네 번째 참석인 데다 한일 관계의 훈풍까지 더해져 G8로의 확대 기대감이 커졌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 국무부는 “회원국 변화와 관련한 어떤 논의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고 선을 그었다. 아직은 높은 국제사회의 문턱을 절감하는 순간이다. 보다 긴 호흡으로 준비 전략을 다시 다듬어야 할 때이기도 하다. 단독 드리블보다는 다른 후보국들과 연대해 ‘G 멤버’ 가입의 문을 넓히는 식으로 전략을 다양화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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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SKY 10명 중 6명은 ‘A’… 학점 인플레의 함정

    대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교수들의 상당수는 ‘A 폭격기’라고 불리는 이들이다. A 학점을 후하게 뿌려주는 교수나 강사의 과목은 늘 수강 신청이 쇄도한다. 학점에 한 단계 높은 플러스(+)를 몰아주는 ‘쁠몰’ 강의는 학생들의 평가에서 상위권에 올라 있다. 이런 강의를 듣기 위해 학생들은 새벽부터 인터넷 수강신청 시스템에서 ‘광클 전쟁’을 벌인다. “점수가 사해보다 짜다”는 불만을 듣는 교수들은 설 자리를 찾기도 힘들 정도다. ▷성적표에서 ‘A’의 몸값이 예전 같지 않다. 교육부 대학알리미 등에 따르면 이른바 SKY로 불리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서 지난해 2학기 전공과목 A 학점을 받은 학생의 비율은 57∼59%에 달했다. 재학생 5000명 이상 4년제 대학을 기준으로 A 학점이 가장 많은 이화여대의 경우 그 비율이 60.8%였다. 10명 중 6명 가까이 A 학점을 받은 것이니 융단폭격 수준이다. 온라인 비대면 수업이 이뤄진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평가 시스템이 기존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뀐 영향이 컸다. ▷학점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는 지적에 교수들은 난감한 표정이다. 학점이 장학금과 편입, 취직 등에 직결되는 현실에서 평가의 엄정성만 외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평가 이의신청 기간이면 “내 인생 책임져 주실 거냐”는 학생부터 장학금이 얼마나 절실한지 읍소하는 학생들의 방문과 이메일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0.1점이라도 더 받으려고 신입생들도 고3처럼 공부하는 게 요즘 대학가 풍경이기도 하다. 치열해지는 경쟁이 학점 부풀리기 현상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학점에 민감해지는 건 해외 대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미국 뉴욕대에서는 화학 분야의 저명한 노교수가 “강의가 어렵고 학점도 낮게 준다”는 수강생들의 집단 항의로 학교에서 해고된 일도 있었다. 당시 350명의 수강생 중 80여 명이 “지나치게 엄격한 평가가 학생들의 배움과 행복을 저해한다”는 내용의 탄원서에 서명했다. 평가 기준과 학점의 문제를 떠나 팬데믹 기간 저하된 교육의 질 문제에서 Z세대를 교육하는 방식까지 간단치 않은 고민거리들을 대학가에 던졌다. ▷평가는 결국 변별력의 문제다. A 학점으로 도배된 성적표만으로 인재 감별이 어려워진 구인 기업이나 기관들은 결국 다른 기준을 요구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학생들은 이미 공모전과 자격증, 각종 대외활동 등 또 다른 스펙 쌓기에 한창이다. 성적 줄 세우기를 넘어 활동 분야를 다양화하는 장점이 있다지만 이 또한 경쟁 부담이 작을 리 없다. 상아탑에서 학문 연구에 몰입해보는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모든 인플레이션이 그렇듯 학점 또한 결과적으로는 더 큰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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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로움, 매일 담배 15개비만큼 해롭다”[횡설수설/이정은]

    “외로움, 그것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영국의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저서 ‘고립의 시대’에서 외로움을 ‘몸과 마음에 깊은 상흔을 남기는 질병’으로 정의한다. 고독함은 만성적 염증과 같아서 몸의 면역력을 약화시키고 회복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영미권 의학계에서는 알약 형태의 외로움 치료제를 개발하려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감정 상태인 외로움을 병리적 차원에서 연구, 개선하려는 시도다. ▷미국 공중보건서비스단이 최근 “외로움이 하루 담배 15개비만큼 해롭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이에 따르면 외로움과 고립에 시달리는 이들은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29% 더 높고, 뇌졸중은 32%, 치매는 50% 더 크다.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비벡 머시 단장은 외로움의 문제를 공중보건 정책의 우선순위에 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주치의’로 불리는 그는 현장에서 다뤄 온 여러 질병의 공통 요인이 외로움이라는 점을 발견한 뒤 심각성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내면의 배고픔이라는 외로움은 특히 육체적으로 노쇠하고 경제적으로 취약한 고령층을 쉽게 무너뜨린다. 고령층을 10년 이상 추적 관찰한 조사에서 외로운 사람들은 노화 속도가 1년 8개월 더 빨랐다. 인지능력은 20% 더 빨리 저하됐다. 하루 종일 찾아오는 이 없이 우두커니 하루를 보내면서 삶의 자극을 찾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일본에서는 2주 동안 한마디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는 노인이 15%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말동무가 돼 줄 AI 로봇이 개발됐다지만 기계음에는 온기가 없다. ▷‘21세기의 감염병’인 외로움을 극복하려면 정부와 기업, 의료계, 미디어, 시민단체 등이 모두 함께 나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이번에 나온 미국 보고서에도 6개 분야별 권고 사항이 빼곡히 담겼다. 머시 단장은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하루 15분씩 전화하라. 캘린더에 적어 놓고 하라”고 조언한다. 자신도 1년 넘게 지독한 고립감에 고통받던 시절 매일같이 전화를 걸어준 부모와 여동생, 정기적으로 연락해준 2명의 친구 덕분에 이를 극복해냈다고 한다. ▷급속한 도시화와 1인 가구의 증가, 저출산, 고령화, 노인 빈곤 등의 문제가 총체적으로 얽혀 있는 한국에도 외로움은 사회적 숙제다. 지금도 누군가는 차마 남들에게 말 못하는 절절한 외로움에 몸부림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럴수록 함께하는 따뜻한 밥 한 끼, 서로에게 건네는 다정한 한마디 안부가 강력한 치유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내 옆의 가족과 친구에게 연락 한 번 더 해보는 건 어떨까. 늘 “괜찮다”고만 하는 어머니, 아버지에게도. 가정의 달 5월은 손을 내밀기에 더없이 좋은 때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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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말은 이제 그만”… 폭스도, CNN도 간판 앵커 내쳤다[횡설수설/이정은]

    “대법원을 모욕하고 격하시키는 인사다. 미국을 르완다처럼 만들려는 것인가.” 폭스뉴스의 간판 앵커인 터커 칼슨이 지난해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여성 대법관 임명을 두고 내놓은 논평이다. 성 차별주의자, 인종주의자라는 비판에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첫 무슬림 여성 하원의원이 탄생했을 때는 “(민주당) 이민 정책이 국가에 위험이 된다는 증거”라고 했고, 불법 이민자들에 대해서는 “미국을 불결하게 오염시키는 이들”이라고 했다. ▷케이블 뉴스 채널의 후발주자였던 폭스뉴스의 시청률을 끌어올린 것은 보수층을 집중 공략하는 극단적 편향성이었다. 거친 입담의 앵커들이 선봉에 섰다. ‘터커 칼슨 투나이트’는 매일 평균 320만 명이 시청하는 간판 프로그램이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7년간 승승장구했던 그를 무너뜨린 것도 본인의 입이었다. 폭스뉴스는 24일 그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2020년 대선 결과가 조작됐다는 가짜뉴스를 퍼뜨렸다가 1조 원대 배상금을 물어주기로 합의한 지 6일 만이다. ▷같은 날 폭스뉴스와 정반대 진영인 CNN의 간판 앵커 돈 레몬도 해고 통보를 받았다. “여성은 잘해야 40대까지가 전성기”라는 최근 발언이 문제가 됐지만 그는 이전에도 남녀 스포츠 선수의 연봉 격차를 당연하게 해석하는 등 수차례 여성 비하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전력이 있다. 흑인 성소수자 앵커로 민주당 정부의 진보 정책을 노골적으로 옹호해 온 그는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생방송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런 그의 프로그램을 거부하는 인사들이 늘면서 CNN은 출연자 섭외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고 한다.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막말이 사회 분열을 부추기고, 이는 다시 미디어를 양극단으로 몰아가는 악순환이 되풀이돼 온 게 미국의 현실이다. 인종과 여성, 낙태, 총기 규제 등 양쪽 진영의 지지층을 각각 결집할 첨예한 사회 이슈들도 늘었다. 인종차별 항의 시위를 촉발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레몬이 격분하는 사이 칼슨은 “플로이드는 경찰의 과잉 진압 때문에 사망한 게 아니다”는 허위 주장을 버젓이 반복했다. 트럼프 열성 지지자들의 난입으로 의회가 쑥대밭이 돼 있을 때는 “온순하고 정돈된 의회 관광객들”이라고 옹호했다. ▷‘폭스 효과(Fox effect)’란 표현은 매체의 편향성이 언론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뜻하는 부정적 표현이다. 자극적 주장에는 가짜뉴스나 음모론이 따라붙는다. 막말이 판치는 환경은 팩트를 지루하고 유약한 것으로 왜곡시켜 버리기 십상이다. 정치권 인사부터 1인 미디어 유튜버까지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이들이 국내에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 대가를 결국 어떻게 치르게 되는지를 추락한 간판 앵커들이 보여주고 있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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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자극적 장면에 은밀한 사생활, 고객 영상 돌려본 테슬라”

    테슬라 전기차는 ‘바퀴 달린 컴퓨터’로 불린다. 전 세계에서 운행 중인 테슬라 차량을 통해 도로, 교통, 지리 정보를 모으고 축적하는 시스템의 경쟁력은 특히 압도적이다. 1시간에 최대 25GB(기가바이트)의 정보를 수집하는 카메라와 센서, 인공지능(AI) 반도체와 첨단 소프트웨어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테슬라는 무선으로 상시 업데이트되는 이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율주행 체계인 ‘오토파일럿’을 완성하겠다고 큰소리치고 있다. ▷테슬라 모델X의 경우 모니터링을 위해 중앙과 뒤, 양옆에 모두 8대의 소형 카메라가 장착돼 있다. 주행정보 수집 외에 사고 시 증거자료 확보, 차량 절도 방지 등에 다목적으로 활용된다. 유용하지만 함정이 있다. 촬영된 영상의 유출이나 무단 공유, 이로 인한 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이다. 이 위험성이 현실화한 것으로 우려되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테슬라 직원들이 2019∼2022년 고객 차량의 카메라에 찍힌 영상들을 내부 메신저로 함께 돌려 봤다는 것이다. ▷로이터통신이 전한 전직 테슬라 직원 9명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이 채팅방에서 공유한 영상에는 알몸으로 차량에 접근하는 남성, 자전거를 타던 어린이가 테슬라 차량에 치여 튕겨져 나가는 영상 등이 포함돼 있다. 은밀한 사생활이나 자극적인 장면을 담은 영상들이다. 심지어 시동을 끈 상태에서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영상들도 있다고 한다. 이를 본 직원들끼리 “나라면 테슬라를 안 사겠다”는 농담을 주고받았다니 노출된 개인정보 수위가 상당히 높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미국 언론은 보도가 사실이라면 ‘스파이 행위’라고 지적한다. 테슬라는 “고객의 동의를 받아 데이터를 공유받으며, 이 데이터들은 개인 계정이나 차량번호와 연결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영상을 보면 대략적인 위치나 장소를 파악할 수 있는 경우가 적잖다. 테슬라의 영상 수집은 중국과 독일, 네덜란드 등에서도 문제가 됐다. 지나가는 행인까지 상시 촬영하는 기능을 놓고 “사생활 침해”라며 시민단체들이 소송을 냈다. 중국에서 논란이 됐을 때는 일론 머스크 CEO가 “테슬라가 스파이 활동에 이용된다면 우리는 문을 닫겠다”는 약속까지 내놔야 했다. ▷테크기업들의 영상과 이미지 공유, 활용 과정에서 제기되는 프라이버시 문제는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테슬라뿐일까. 아마존의 AI 음성인식 서비스인 ‘알렉사’는 성능 향상을 위해 제품 주변의 소리를 녹음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상 곳곳에 포진한 카메라와 센서, 음향 장치들이 언제라도 감시 장비로 악용될 여지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해킹 위험도 상존한다. 안전을 위해 설치한 장비들이 사생활을 위협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니…. 첨단 IT 시대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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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OPEC+ 기습 감산에 油價 출렁… 美 골칫거리 된 사우디

    “이건 하이틴 로맨스 같은 게 아니다.” 존 커비 미국 백악관 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를 묻는 언론의 질문을 냉랭하게 받아쳤다. OPEC+가 지난해 10월 하루 200만 배럴의 원유 감산을 결정한 것을 놓고 이를 주도한 사우디와 미국의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던 때였다. 미국 중간선거가 임박한 시점에 사우디가 조 바이든 행정부의 “면전에 일격을 가했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워싱턴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OPEC+가 그제 추가 감산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에도 사우디가 주도한 것으로, 하루 116만 배럴 규모다. 미국이 애써 시도해온 인플레이션 대응을 보란 듯이 무력화시키는 결정이다. 그새 러시아, 중국과 더 밀착한 사우디는 미국의 에너지 정책에 정면으로 맞설 태세다. 사우디는 가스프롬을 비롯한 러시아의 주요 국영기업들에 5억 달러를 투자했고, 중국과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준회원 가입과 ‘룽성 석유화학’ 투자 등을 통해 접점을 늘려가고 있다. ▷오랜 동맹인 미-사우디의 밀월관계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미국이 셰일오일, 셰일가스 개발로 대(對)중동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는 상황에서 이란과의 핵협상에 나선 것을 사우디는 ‘배신’으로 받아들였다.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을 놓고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는 ‘왕따(pariah)’가 될 것”이라고 공언하면서 양국은 인권 문제로도 충돌했다. 미국 의회가 사우디에 대한 군사지원 중단 논의에 나섰을 때는 ‘미국 국채 매각’ 카드로 맞섰다. 사우디가 국부펀드(PIF) 등을 통해 보유하고 있는 미국 국채는 1200억 달러가 넘는다. ▷사우디를 향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발끈했던 미국은 현재까지 마땅한 대응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OPEC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의 ‘오일 파워’를 무시할 수 없는 탓이다. 미국의 강경 대응이 사우디와 중국, 러시아와의 연대만 되레 강화해 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아프가니스탄 철군 이후 중동에서의 영향력이 약해진 미국으로서는 아랍의 맹주인 사우디와의 협력 또한 절실하다. 경제와 군사, 외교 변수들이 뒤엉켜 있는 국면이다. ▷미국과 사우디의 갈등으로 기름값은 다시 치솟기 시작했다. 환율 변동 폭이 커지고 인플레이션도 재차 심화할 조짐이다. 사우디가 원유 대금의 위안화 결제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외신 보도도 나온다. 원유 거래가 달러만으로 이뤄져 온 ‘페트로 달러’ 체제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의미다. 새 전선 짜기에 바쁜 사우디의 행보에 미국도 손대지 못하는 사이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 안보 지형까지 바뀌는 판이다. 고유가의 유탄을 맞는 비산유국들의 주름살도 늘어간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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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앞선 민주 국가들도”… 트럼프 기소로 소환된 韓·佛·伊[횡설수설/이정은]

    “이것은 국가에 대한 공격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형사 기소 결정이 나오자 소셜미디어와 성명을 통해 분노를 쏟아냈다. “극좌파 괴물과 폭력배들이 유력 대선 주자에게 사상 초유의 공격을 감행했다”며 미국이 정치적 박해를 일삼는 제3세계 권위주의 후진국처럼 됐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기소 뉴스에 충격을 받았지만 곧이어 “싸울 준비가 됐다”며 방어 총력전에 들어간 상태라고 측근들은 전한다. ▷트럼프의 지지율은 계속 오르는 중이다. 폭스뉴스 조사에 따르면 그는 기소 직전 공화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2위와의 격차를 한 달 전의 두 배로 벌렸다. 그를 지지한다는 응답이 54%로,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주 주지사(24%)를 30%포인트 따돌렸다. 기소 당일에는 하루 만에 400만 달러(약 52억 원)의 후원금을 모금했다. “금액은 상관없으니 마녀사냥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2024년 백악관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트럼프 명의의 이메일이 뿌려진 뒤였다. 여전히 건재한 그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결과다. ▷트럼프 측에서는 기소 결정이 오히려 “정치적 황금”이라는 말도 나온다. 대선에 최대한 활용하자는 전략이 공공연하게 거론된다. 정치 탄압에 맞서는 ‘투사’이자 ‘순교자’ 이미지를 극대화해 지지층을 결집시키겠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머그샷(범인 식별용 사진)을 공개하지 않고, 수갑을 채우지 않기로 한 검찰의 결정은 상징적 장면을 연출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를 막겠다는 의도 또한 작용했을 것이다. 기소 국면을 내년 말까지 끌고 가기 위해 변호인단이 재판 지연 작전을 반복할 것이라는 관측도 파다하다. ▷트럼프 기소를 주도한 앨빈 브래그 맨해튼 지검장은 집중 공격의 타깃이 됐다. 살해 협박 편지와 백색가루 봉투가 배달됐다. 그가 진보 진영의 큰손 후원자인 조지 소로스로부터 검은돈을 받았다는 식의 음모론도 난무한다. 트럼프 본인이 브래그 검사장을 ‘타락한 사이코패스’로 부르며 “기소 시 죽음과 파멸이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브래그 검사장은 “근거 없는 선동적 공격이자 부당한 수사 개입”이라고 맞서고 있다. 친(親)트럼프 대 반(反)트럼프의 충돌 가능성으로 미국 사회는 일촉즉발 분위기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형사 처벌을 자제해온 미국의 금기는 깨졌다. 정치적 보복의 악순환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기소 결정은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다. 뉴욕타임스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기소 사례를 프랑스, 이탈리아 등과 함께 소환하며 “가장 앞선 민주주의 국가들도 전직 대통령 기소를 피해 가지 않았다”고 했다. 첫 전직 대통령 기소가 야기할 혼란과 분열을 얼마나 빨리, 어떻게 극복할지가 미국 민주주의의 운명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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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표 던지는 중앙부처 공무원 1년에 3000명 [횡설수설/이정은]

    “우리가 국가의 산업을 책임진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국뽕’에 취해 살았던 시절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근무하는 20년 차 공무원 A 씨는 초임 시절을 이렇게 회고한다. 정책 프로젝트가 떨어지면 밥 먹듯이 야근을 하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나라 살림살이부터 일자리, 복지, 안보 등 부처별로 대한민국을 끌고 간다는 긍지와 사명감이 각 부처 공무원들에겐 넘쳤다. ▷요즘 관가 분위기는 달라졌다. 18개 중앙부처 소속 일반직 공무원 중 사표를 던지는 이가 한 해 3000명에 육박한다. 인사혁신처와 국회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일을 그만둔 공무원이 2995명으로 2017년에 비해 57% 늘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법무부, 고용노동부 순으로 많았다. 과기정통부는 산하 우정사업본부의 우정직, 법무부는 교정직 공무원들이 그만둔 사례가 상대적으로 많다. 그외 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의 사표 행렬도 부쩍 늘고 있는 추세다. ▷중앙부처의 허리급이라고 할 수 있는 과장급 이상의 탈(脫)공직이 특히 눈에 띈다. 국토교통부는 2021년 한 해에만 3급과 4급 공무원 26명이, 산업통상자원부는 21명이 사표를 쓰고 기업, 연구소 등으로 옮겼다. 민간 분야의 인력 수요가 늘어나기도 했지만 ‘더 늦기 전에 새로운 기회를 붙잡자’는 분위기가 강해졌다고 한다. 공직이 과거만큼 안정적이지 않고 보상 등 유인책도 떨어진다며 공무원들은 한숨이다. 고위공무원단으로 승진해 봤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코드 인사’에 휘둘리거나 인사 유탄을 맞을 것이란 불안감도 적지 않다. ▷스스로 떠나는 공무원들 앞에서 ‘철밥통’은 옛말이다. MZ세대를 비롯한 청년 공무원들의 조기 퇴직도 두드러진다. 연공서열을 비롯한 구시대적 조직문화와 낮은 처우, 미래에 대한 회의감과 비전 부재 등 문제들이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 탓이다. 외무직 공무원 중에서는 시험에 수석 합격했던 30대 외교관이 구글로 가겠다며 돌연 사표를 냈다. “시험에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깝다”면서도 이에 매달리지는 않는 게 요즘 젊은이들이다. 공무원시험 응시율도 계속 떨어져 9급 공무원 경쟁률은 31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공직사회의 인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해외에서는 인공지능(AI) 도입, 자동화 등을 통한 시스템 효율화 작업을 시도하는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딜로이트컨설팅은 공무에 AI 기술을 도입할 경우 미국에서만 연간 업무시간은 12억 시간, 예산은 411억 달러 아낄 수 있다는 계산을 내놓기도 했다. 기계가 대신해줄 수 없는 게 국민을 위하는 공복(公僕)들의 헌신과 피땀이다. 이런 인재 양성에 많은 국가 예산과 노력이 투입된다. 한 명씩 떠날 때마다 국가적 손실이 쌓여간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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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늦으면 어때’…20대 초반보다 많아진 40대 초반 신부 [횡설수설/이정은]

    한국에도 꽤 알려진 일본 작가 다카기 나오코의 책 ‘서로 40대에 결혼’은 출판 당시 화제가 됐다. ‘혼자 살아보니 괜찮아’, ‘독신의 날들’ 같은 책을 연달아 냈던 그의 갑작스러운 결혼에 “배신감을 느꼈다”는 여성들도 있었다. 그래도 그는 “안 해 봤다고 후회할 것 같으면 일단 저질러 보자!”며 결혼에 이어 임신, 출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한다. 세계적 현상이라는 만혼(晩婚) 트렌드가 보수적인 일본에서도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국내 40대 초반 여성의 지난해 혼인 건수가 20대 초반 여성보다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혼인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90년 이후 처음으로 40대 초 혼인이 20대 초를 추월한 2021년부터 2년째다. 40대 여성의 혼인 건수는 해마다 늘어나는 반면 20대 여성의 혼인은 줄어든 결과다. 한국에서도 여성들의 결혼이 그만큼 늦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40대 결혼은 절반 이상이 초혼이다. 여성이 연상인 부부 비중 또한 역대 가장 높다. ‘누난 내 여자니까∼’라는 노래 가사가 낯설지 않은 시대다. ▷‘노처녀, 노총각 히스테리’라는 말은 사라지는 분위기다. 이제는 늦은 나이까지 싱글 라이프를 여유롭게 즐기는 사례가 더 많다. 초혼 연령은 남성(33.7세)과 여성(31.3세) 모두 역대 최고다. 주택 마련의 어려움 등 주변 여건 탓도 있지만 결혼을 ‘필수 아닌 선택’으로 여기는 인식의 확산도 영향을 미쳤다. 만혼의 장점을 앞세우는 이들은 역으로 ‘젊을 때 결혼하면 안 되는 10가지 이유’ 같은 논거를 들이대기도 한다. 결혼 실패 확률이 더 높고, 경제적으로 불안정하며, 아직 자기계발이 진행 중인 만큼 기회비용이 크고, 가족과 사회로부터의 압박이 더 심하다는 등의 이유다. ▷온라인 데이팅 앱의 발달로 40대 이상 중장년층이 서로의 관심사와 배경을 맞춰 만나기가 쉬워지고 있다. 고령화 추세 속에 짝을 찾을 수 있는 모집단 자체도 늘었다. 40, 50대의 만남은 웨딩 문화도 바꿔놓고 있다. 성숙미와 세련미를 강조한 ‘작은 결혼식’이 열리고, 순백이 아닌 다채로운 색깔과 무늬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등장한다. 꼭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생각은 없지만 늦결혼에 대비해 난자를 냉동하는 여성들도 많아졌다. ▷저출산 대책 마련에 머리를 싸매고 있는 정부 관계자들은 만혼 현상에 한숨이 나올 법도 하다. 결혼이 늦어지는 만큼 출산을 늦추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적잖다. 그렇다고 100세 시대의 인생 반려자를 찾는 데 적령기를 따질 일은 아니다. 독신이었던 제임스 매티스 전 미국 국방장관은 72세였던 지난해 50대 여성과 결혼식을 올렸다. 사랑에 나이가 어디 있으랴. “결혼, 미룬다고 아예 안 하는 게 아니다”라는 싱글들의 외침이 울린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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