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이정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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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안보 현장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정책의 흐름을 정확하고 빠르게 따라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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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4-03-26~2024-04-25
칼럼100%
  • [횡설수설/이정은]원수에서 핵심 파트너로… 손잡은 美-베트남

    “고통스러운 (과거의) 유산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 수십 년간 애를 써왔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베트남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진행한 지난주 브리핑에서 베트남전의 상흔 치유와 화해 노력을 강조했다. 베트남전 영웅이었던 고(故) 존 매케인 전 공화당 상원의원과 조 바이든 대통령의 우정도 거론했다. 같은 날 백악관에서는 참전용사 래리 테일러 예비역 대위에게 명예훈장을 수여하는 행사가 열렸다. ▷미국과 베트남이 10일 하노이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외교관계를 최상위 단계인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높였다. 10년 전 맺은 ‘포괄적 동반자’ 관계에서 한꺼번에 두 단계를 높인 파격적 격상이다. 베트남은 미군 철수 이후 50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을 초청했고, 미국은 대규모 투자와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지원 방안이 담긴 선물 보따리를 풀며 화답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도 미국의 금수 조치에 묶여 있던 공산주의 국가 베트남에 애플과 인텔, 보잉 같은 기업들이 몰려가는 격세지감의 변화다. ▷양국 밀착의 공통분모는 중국이다.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을 규합하며 대중 전선 구축에 공을 들여온 미국은 베트남을 그 마지막 고리 중 하나로 보고 있다. 대미 수출 규모가 146조 원에 달하는 베트남은 탈중국에 나선 미국 기업들의 제조 시설을 옮길 매력적인 대안 국가이기도 하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으로 중국과 날을 세우고 있는 베트남으로서도 미국과 손잡을 이유는 충분하다. 중국이 일방적으로 그은 해상경계선인 구단선(九段線)이 그려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바비’를 비롯한 영화들과 넷플릭스 드라마 상영을 금지한 나라가 베트남이다. ▷베트남이 미국 편에 완전히 붙어버릴 것으로 예상하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베트남은 중국과의 관계 악화 속에서도 팜민찐 총리가 6월 베이징을 찾아 리창 총리와 회담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이 확정된 이후에는 베트남이 가장 먼저 정상 간 축하 전화를 했다. 그런가 하면 냉전 시대의 맹방이었던 러시아와는 무기 거래를 지속하고 있다. “단단한 뿌리 위에서 유연하게 가지가 휘는” 대나무처럼 강대국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는 이른바 ‘대나무 외교(bamboo diplomacy)’라고 베트남 당국자들은 말한다. ▷전쟁에서 총을 겨누던 적이 친구가 되고, 실리 앞에서는 숭고한 이념도 한순간에 팽개치는 게 냉엄한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한때 서로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불렀던 미국과 베트남이 손을 맞잡으며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중요한 순간의 핵심 파트너”라고 강조하는 장면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어디 이 두 나라뿐일까. 국익이라는 대전제 앞에서는 그 어느 국가도 예외가 없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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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SK하이닉스칩 몰래 심은 中 화웨이 ‘7나노’ 최신폰

    요즘 중국의 소셜미디어에는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을 화웨이 대변인 혹은 홍보대사로 묘사하는 밈(meme)이 넘쳐난다. 그가 화웨이 최신폰인 ‘메이트 60 프로’를 손에 들고 홍보하는 것처럼 사진을 합성하거나 브리핑 동영상에 끼워넣은 콘텐츠들이다. 중국 누리꾼들은 자국 기업이 미국의 고강도 제재에도 불구하고 첨단 7nm(나노미터) 반도체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생산해냈다는 자부심을 한껏 표출하는 듯하다. 화웨이가 보란 듯이 이 제품을 선보인 것은 지난주 러몬도 장관의 방중 기간이었다. ▷‘중국 기술의 승리’로 치켜세워진 화웨이 최신폰에서 한국 기업의 부품이 나왔다. 반도체 조사업체인 테크인사이트가 제품을 해체해 본 결과 SK하이닉스의 D램과 낸드플래시가 들어 있었다. 휴대전화의 두뇌에 해당하는 AP인 7나노 반도체를 비롯해 부품의 90%가 중국산으로 채워진 제품에서 예외적으로 나온 해외 기업 제품이다. SK하이닉스는 “화웨이와 거래한 사실이 없다”며 경위 파악에 들어간 상태다. 미국 상무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는 화웨이는 어떻게 이 칩을 확보했는지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화웨이가 2020년 전후 미국의 수출통제 강화에 앞서 반도체를 미리 대량으로 매입해놨던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중국 안팎의 중개업체들을 통해 여러 단계를 거친 뒤 화웨이로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인공지능(AI) 개발 경쟁이 불붙으면서 중동 등지에선 “반도체값이 금값보다 비싸졌다”고 할 정도로 사재기 현상이 벌어진 시점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한미 반도체 공급망 협력을 이간질하기 위해 일부러 넣었다”는 음모론까지 나왔다. ▷화웨이는 휴대전화 판매 목표량을 최근 4000만 대까지 늘려 잡았다. 9월 10일부터 오프라인 판매가 시작되는 ‘메이트 60 프로’는 중국의 ‘애국 소비’ 열풍이 가세하면서 온라인에서는 벌써 80만 대가 넘게 팔려나갔다고 한다. 수요는 급증하는데 미국의 수출통제를 따르는 해외기업들의 제품을 공급받을 길은 막혀 있는 상황이다. 한국 제품만 썼겠느냐는 의구심과 함께 외신들은 미국 마이크론 등 다른 이름들을 조심스럽게 거론하고 있다. ▷“미국의 대중 제재가 실패한 게 아니냐”는 워싱턴 정치권의 질타 속에 미국 정부는 더 강력한 수출통제를 벼르는 중이다. 화웨이 휴대전화에 내장된 7나노 반도체의 생산 공정 조사에도 착수했다. 미중 간 충돌 속에 반도체 기술 견제와 공급망 확보전이 더 치열해질 것임을 예고하는 움직임들이다. 그 과정에서 튀는 불똥에 애꿎은 한국 기업이 피해를 입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제재를 뚫었다고 큰소리치면서 판매가 금지된 남의 회사 부품을 몰래 쓰는 것부터가 민망한 일이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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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범인 아닌 희생자가 기억되길” 혜빈씨 유가족의 신원공개

    만화 캐릭터 포켓몬을 좋아하던 밝고 장난기 많던 미대생.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으려 미술학원 아르바이트를 해오던 착실하고 책임감 있는 딸…. 길게 땋아내린 머리에 환한 미소를 띤, 영정 사진 속 고 김혜빈 씨의 눈동자에는 아직도 생기가 가득하다. 분당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으로 끝내 스러진 스무 살 청춘이 세상에 각인시킨 마지막 모습이다. ▷‘20대 여성 피해자’로만 보도돼온 혜빈 씨의 이름과 얼굴이 공개됐다.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기억되는 세상이었으면…”이라는 유가족의 뜻에 따른 것이다. 앞서 사건 당일 숨진 60대 여성 이희남 씨의 유족도 고인의 실명과 사진을 공개했다. 슬픔을 추스를 여력조차 없는 유가족에게 또 다른 상처이자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남은 이들의 사생활 공개와 이로 인한 삶의 변화들도 각오해야 한다. 이런 부담을 무릅쓰고 내린 공개 결심이라 보는 이를 더 숙연하게 한다. ▷흉악범죄가 벌어질 때마다 가해자의 신상은 언론에 도배된다. 서현역 흉기난동범인 최원종에 대해서도 범행 동기와 성장 배경, 정신상태 등에 대한 정보와 전문가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묻지 마 칼부림’을 비롯한 잇단 흉악범죄로 가해자 신상 공개에 대한 여론의 요구 또한 어느 때보다 높아진 시점이다. 불우한 가정환경 같은 내용이 의도치 않게 범죄자에게 서사(敍事)를 부여하는 경우마저 있다. 결과적으로 피해자는 그 시끌벅적함 속에 묻히거나 가려지곤 한다. 억울한 피해를 초래한 문제점들에 대해 목소리를 낼 기회를 놓치게 되는 수도 있다. ▷여론의 관심이 집중됐던 사건, 사고 피해자의 이름은 이를 딴 법안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윤창호법, 민식이법, 정인이법 등은 각각 음주운전과 스쿨존 과속, 아동학대 처벌 강화와 재발 방지 내용을 담은 법에 희생자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이들의 이름과 얼굴은 그 누구라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현실 자각을 하게 만든다. 안타까움과 공분이 제2, 제3의 희생자를 막기 위한 제도 개선을 끌어내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예쁜 구름을 보면 혜빈 씨가 하늘에서 그렸다고 생각할게요.” “범죄 없는 곳에서 편히 쉬세요.” 인터넷에는 혜빈 씨의 이름과 얼굴을 접한 이들의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범죄자 응징 같은 사회적 메시지에 앞서 사랑스러웠던 외동딸, 소중한 친구를 조금이라도 더 기억하고 함께 추억을 나누고자 하는 게 유가족의 뜻이 아닐까. 더 이상의 희생이 없도록 마음을 모으는 모든 이가 오늘 함께 혜빈 씨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보면서 그를 기리고 또 애도할 것이다. 유가족과 지인뿐 아니라 온 사회가 기억해야 할 이름이고 얼굴이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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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당신의 모든 걸 알고 있다”… 소름 돋는 빅테크 표적광고

    ‘그들은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같은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이들은 자동추천 콘텐츠나 광고를 보면서 깜짝 놀라는 경험을 반복하게 된다. 딱 한 번 검색했거나 클릭했을 뿐인데 내 취향을 정확히 저격한 연관 내용들이 곧바로 따라붙는다. “뜬금없이 당뇨약 광고가 뜨기에 무심히 넘겼는데 며칠 뒤 병원에서 당뇨병 진단을 받았다”며 혀를 내두른 사람도 있다. 이쯤 되면 사용자들의 반응대로 “소름이 돋는, 무서운 수준”이다.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추천 알고리즘의 수준은 날로 진화하고 있다. 각종 검색과 시청 등을 통해 입력되는 사용자 정보가 그 바탕이 된다. 연령과 성별, 직업, 거주지역 같은 정보는 물론이고 식습관과 패션 스타일, 정치 성향 등까지 세세히 수집, 분석되고 이용된다. 이를 바탕으로 40대 여성에게 “20대처럼 보인대요∼”라며 화장품과 의류 구매, 피부과 추천 광고가 줄줄이 날아드는 식이다. 이 중에는 업체들이 동의 없이 확보해 상업적으로 이용하거나 동의를 사실상 강제해 얻어내는 사적인 정보들도 적잖다. 개인정보 유출과 사생활 침해 등 우려가 커진다. ▷해외에선 이념적 편향성을 강화하는 정치 광고나 증오 연설이 문제가 된다. 불법 이민자 유입, 흑백 인종차별, 선거 때마다 심화하는 정치·사회적 양극화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미국과 유럽에서 더 심하게 나타나는 확증편향이다. 미국에서는 올해 초 10대 학생들 사이에서 극단적 여성혐오 성향을 가진 극단주의자 앤드루 테이트의 유튜브 영상이 퍼지면서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주요 플랫폼들의 추천은 집요해서 ‘연관 게시물’ 사이클에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도 쉽지 않다. ▷빅테크 기업들의 ‘맞춤형’ 콘텐츠 제공을 제한하는 유럽연합(EU)의 규제법이 25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디지털서비스법(DSA)에 따라 기업들은 앞으로 개인의 종교나 정치 성향에 근거한 맞춤형 광고를 내보내지 못한다. 사용자가 추천 기능을 원하지 않으면 이를 끌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세계 디지털 시장 2위인 유럽의 강력한 규제에 메타와 알파벳 같은 기업들은 부랴부랴 대응에 나선 상황이다. EU 규제에 맞춘 제한조치들이 곧 아시아 등 다른 지역에서도 적용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맞춤형 게시물 규제가 장점까지 약화시키게 될 것이라는 반발도 없지는 않다. 소비자 욕구는 점점 다양해지고 정보가 범람하면서 효율성도 그만큼 요구되는 시대다. 필요한 이에게 필요한 내용만 취합해 제때 제공하는 알고리즘에 대한 비즈니스 업계의 수요는 늘고 있다. 강점을 살리고자 한다면 정보의 무단 수집과 편식 같은 부작용부터 줄여나가야 할 것이다. 최근 규제 논의를 시작한 한국에도 던져진 숙제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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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대 굴복 안 해”… 트럼프 ‘분노의 머그샷’ 연출[횡설수설/이정은]

    미국 도박꾼들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머그샷(피의자 식별 사진)을 놓고 각종 내기를 걸었다. 그가 입고 나올 옷, 그가 지을 표정 등이 모두 초미의 관심사였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가장 남자답고 잘생긴 머그샷이 될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어제 공개된 실제 머그샷 속 트럼프는 입술을 꾹 다문 채 매서운 눈매로 카메라를 노려보고 있다. 치밀하게 계산해 사전에 연습, 연출한 각도와 표정일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전직 대통령이 형사 기소된 것도 전례가 없거니와 그의 얼굴을 머그샷으로 접하는 것은 미국인들에게 사상 초유의 일이다. 앞서 인공지능(AI)으로 합성한 주황색 죄수복 차림의 가짜 머그샷이 온라인에 퍼졌지만, 실제 사진이 주는 충격은 상당하다. 그를 2020년 대선 방해 혐의로 기소한 조지아주 풀턴카운티 지방검찰의 워터마크가 선명하게 찍혀 있다. 기소장에서는 나올 수 없는 시각적 각인 효과가 작용한다. “미국 대통령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는 한탄이 쏟아졌다. ▷머그샷은 최대한 무표정하게 찍는 것이 재판 전략상 유리하다. 밝은 표정은 진지하지 않다는, 성난 표정은 죄를 뉘우치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기 쉽다. 그래도 공인들은 머그샷 공개를 염두에 두고 특정 메시지 발신을 시도하기도 한다.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은 양복에 성조기 핀을 달았는데, 이는 9·11테러 당시 자신의 위기 대응 활약을 상기시키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분석됐다. 트럼프의 측근으로 함께 기소된 여성 변호사는 립스틱을 바르고 미소 띤 얼굴로 머그샷을 찍었다. 트럼프가 담고자 한 이미지는 그가 SNS에 썼듯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는 강함이다. ▷머그샷 굴욕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현지 언론은 전한다. 풀턴 카운티 교도소는 화이트칼라 범죄자보다는 살인, 강간 등을 저지른 흉악범들이 많이 수감돼 있는 곳이다. 노후한 시설과 위생 불량으로 악명이 높다. 4월 사망한 수감자의 유가족이 “감방에서 빈대에게 뜯어먹혔다”며 소송을 내기도 했다. 이런 교도소 안에서 트럼프는 다른 수감자와 똑같은 취급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검찰은 공언했다. 트럼프는 20만 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20분 만에 석방됐지만, 재판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트럼프의 현재 지지율은 51.6%로 공화당 대선 후보 중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성추행 입막음부터 간첩 혐의까지 4차례 기소 때마다 “정치적 마녀사냥”이라고 주장하며 지지층을 결집시켰다. 그의 머그샷을 앞세워 후원금을 모금하고, 티셔츠와 기념품을 만들어 팔려는 시도들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머그샷 활용법이 비판자와 지지자 양쪽에 각각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쏠리는 관심도 그만큼 커진다. 차기 대통령 선택을 넘어 미국 민주주의의 미래까지 함께 걸린 문제여서일 것이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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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원조 한미동맹’… 광복군-OSS 합동 독수리작전

    1941년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을 계기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은 군사·첩보작전에 주로 새 이름을 붙였다. 한국광복군과 손잡고 일본이 장악 중이던 한반도에 은밀히 침투하려던 ‘독수리 작전(The Eagle Project)’이 그중 하나였다. 미 중앙정보국(CIA)의 전신인 전략사무국(OSS) 요원으로 이 작전에 참여했던 로버트 마이어스의 증언에 따르면 “독수리는 가장 매력적인 이름”이었고 “(작전이) 한미 두 나라의 신화로 남기를 바라는 측면”도 있었다. ▷OSS는 당시 ‘불사조 작전’, ‘냅코(NAPKO) 작전’ 등 재외 한국인과 함께 여러 경로로 한반도에 진입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 중 1945년 독수리 작전에 참여한 한국광복군이 OSS 교관들로부터 받은 훈련은 강도가 셌다. 중국 시안의 한 사원을 기지 삼아 오전 6시부터 사격술과 폭파술, 무선통신술, 지도 해독, 야전술에 영어 교육까지 이어졌다. 독수리 작전의 미국 측 책임자였던 클라이드 사전트 대위는 한국 청년들이 보여준 훈련 성과에 고무돼 워싱턴 OSS 본부의 작전들을 그대로 복사해 진행할 태세였다고 한다. ▷독수리 작전의 훈련 과정과 내용을 기록한 사전트 대위의 회고록이 최근 공개됐다. 참가자들의 증언이나 흑백 기록사진 외에 책임자가 직접 쓴 회고 내용이 국내에 알려지는 것은 처음이다. 사전트 대위는 “평등, 존중, 협동의 분위기 속에 뛰어난 정신을 지닌 하나의 군단이 힘을 얻었다”고 썼다. 그가 앞서 본부에 보고한 문건에서 광복군에 대해 “내가 지금까지 봤던 가장 지적인 군사집단으로, 미국 청년 장교들과 알맞게 비교될 것 같다”고 한 것과 다르지 않은 평가다. ▷사전트 대위와 당시 광복군 제2지대장을 맡고 있던 이범석 장군 등 양국 지휘부가 함께 찍은 사진에는 영어로 ‘첫 번째 한미동맹(FIRST KOREAN AND AMERICAN ALLIANCE)을 기념하며’, 한국말로는 ‘두 나라의 힘 있는 합작이 실현되는 날’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옅은 미소 속에 비장한 결기가 어려 있는 듯한 표정은 양쪽 지휘부가 다르지 않다. 작전이 실행 직전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와 일본의 항복으로 무산되지 않았더라면 함께 피 흘리며 싸웠을 전우들이었다. ▷최초의 한미 연합작전 성격을 띤 독수리 작전은 오늘날 한미동맹의 초석을 마련한 원류로 볼 수 있다. 양국이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기 이전에 이미 일제에 맞서 손을 맞잡았던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제국주의, 6·25전쟁 후에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공산주의 확산을 함께 막아낸 혈맹이다. 한미동맹 70주년에 맞이한 올해 광복절은 선조들의 독립정신과 함께 동맹의 가치도 되새기게 해줬다는 점에서 더 뜻깊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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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민원 공화국’의 자구책… ‘내 몸의 블랙박스’

    공무원이나 경찰을 향한 요즘 민원인들의 폭언이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고 현장 관계자들은 말한다. “이××” “어디서 ××이야” 같은 욕설이 무뎌질 정도로 난무한다는 것이다. 무례한 생떼는 때로 멱살잡이와 손찌검, 주먹질, 기물 파손 같은 폭력 행위로 이어진다. 포항에서는 민원인이 공무원 얼굴에 제초제로 추정되는 화학약품을 뿌렸고, 경주 시청에서는 손도끼를 치켜드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런 민원인들의 위법 행위는 2021년 5만 건을 넘어섰다. ▷도를 넘은 악성 민원에 시달려온 이들 사이에선 보디캠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지난달 서이초 교사의 자살 사건 이후엔 교사들도 “보디캠이라도 달고 싶다”고 하소연하는 지경이다. 이런 수요를 겨냥해 시중에서는 20만, 30만 원대에서 80만 원짜리 고급형까지 다양한 보디캠이 쏟아지고 있다. 네모난 소형 녹음기 모양이 일반적이지만 라이터형, 손목시계형, 보조배터리형, 안경형, 넥타이형, 목밴드형 등도 나와 있다. 업체들은 선명한 화질, 초소형 사이즈 등을 앞세우며 “억울한 누명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라”고 홍보한다. ▷‘내 몸의 블랙박스’로 불리는 보디캠의 착용은 책임을 다투거나 법정싸움을 벌일 때 자기를 방어할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민원 공화국’이라는 자조적인 말까지 나오는 한국에서 공복(公僕)에 대한 요구는 많고, 악성 민원인에 대한 처벌은 상대적으로 경미하다. 정당방위 인정 범위는 좁다. 그러니 반복, 악화하는 행패를 영상으로 남겨놓지 않으면 언제라도 적반하장의 상황에 몰릴 수 있다는 게 공무원들의 문제 제기다. 보디캠 촬영을 할 때는 상대방에게 미리 알리는데, 이는 난폭한 행동을 자제시키는 예방 효과도 있다고 한다. ▷대리운전 기사, 숙박업 종사자 등도 보디캠을 달기 시작했다. 취객의 폭행과 성추행 등 범죄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해외에서는 스포츠 심판들의 보디캠도 등장했다. 선수나 코치는 물론 아마추어 유소년 경기의 경우 부모들의 폭언, 폭행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갑질’ 피해를 볼 수 있는 누구라도 보디캠의 기록이 필요한 상황에 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보디캠은 찍히는 자의 프라이버시 침해, 영상 유출 피해와 악용 가능성 등의 문제점도 안고 있다. 경찰청이 아직까지 장비 사용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지 못하는 이유다. 교사들의 보디캠 착용을 놓고는 “학생들을 감시하는 감옥으로 만들려는 거냐”는 반발이 나온다. 논란 속에서도 보디캠 구매가 늘어나는 것은 한국 사회가 고단한 ‘불신의 늪’에 빠지고 있다는 경고일 것이다. 각자도생의 해법에 앞서 악성 민원인 처벌 강화를 비롯해 ‘을’들을 보호할 근본 예방책 마련이 절실하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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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SNS로 교실 붕괴”… 집단소송 나선 美 200개 교육청

    미국의 양대 교원단체 중 하나인 미국교사연맹(AFT)은 5월 “우리의 학교가 위기에 처했다”로 시작하는 15쪽의 보고서를 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교육 생태계를 무너뜨리고 학생들의 정신건강에 해를 끼친’ 사례들과 교사들의 증언은 생생하다. 보고서는 SNS 운영업체들의 대응을 촉구하며 “이는 어린이 보호를 위해 자동차 안전벨트 설치를 의무화하고 장난감에 납 페인트 사용을 금지해 달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SNS에서 유행한 각종 챌린지는 대표적 부작용으로 거론된다. ‘악마의 도둑질(Devious Licks)’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학교 기물을 훔치거나 파손하는 동영상들이 올라왔다. ‘선생님 때리기(Slap a Teacher)’ 챌린지를 한다며 교사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이를 촬영해 SNS에 올린 학생들도 있었다. ‘스와팅(swatting)’으로 불리는 허위 신고나 장난 전화로 학교들은 매번 비상이 걸렸다. 학생들의 SNS 중독과 집중력 저하, 사이버 괴롭힘, 우울증 같은 문제들도 적잖다. ▷미국 각지의 200개 교육청이 최근 틱톡과 페이스북, 유튜브, 스냅챗 운영업체들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냈다. 이들은 “SNS가 통제 불능 상태가 됐다”며 학급 붕괴의 책임을 운영업체들도 함께 져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학생들의 우울증 상담과 관리, 학부모 대응, 휴대전화 관리, SNS 관련 교육, 가짜뉴스 검증과 차단 등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이 급증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소송에 참여하는 교육청 수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SNS에 질린다”는 교사들의 하소연이 행동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교육청의 소송이 학교와 교사의 의무를 SNS 업체들에 떠넘기는 게 아니냐는 반론도 없지는 않다. 업체들은 “정보와 콘텐츠를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역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우군은 찾기 어려운 분위기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SNS의 영향 분석을 위한 TF 구성 계획을 밝혔고, 의회에서도 “틱톡은 디지털 마약”이라는 등의 강경 발언이 터져 나오고 있다. 상원에서 초당적으로 발의된 법안 중에는 13세 미만인 경우 아예 SNS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내용도 있다. ▷10대들의 과도한 SNS 사용 문제는 한국에서도 다르지 않다. 청소년 3명 중 2명이 하루 평균 3시간 이상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이 중 유튜브 시청과 SNS 사용을 가장 많이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못잖은 각종 챌린지 경쟁에 자극적인 쇼트폼 영상도 늘어나는 추세다. 교권 추락과 함께 심화해 온 공교육 붕괴의 또 다른 뇌관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아직 본격적 논의 움직임조차 없다. 교사들이 집단 대응에 나섰을 때는 이미 늦을지도 모른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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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세계 안보의 최대 위협은 우리” 美 외교전략 대가의 한탄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저를 압수수색하자 트위터에서 ‘내전’을 언급한 횟수가 30배 급증했다.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기소되면 내전이 일어날 것”이라며 “봉기를 준비하라”고 외쳐댔다. 반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지지자의 FBI 사무실 습격과 폭탄 테러 위협이 이어졌다. 트럼프 정부의 이너서클에 속했던 인사들은 사석에서 “내년 선거에서 정권을 되찾으면 반드시 보복할 것”이라고 벼르고 있다고 한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다음 대선은 미국 역사상 마지막 민주주의 선거가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망가진 정치 시스템과 극심한 양극화, 사회 분열 등이 ‘민주주의의 죽음’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 역사학자의 충격적인 예고에도 이미 트럼프의 대선 불복, 1·6 의회 난입 사태를 연달아 겪은 미국 내에서는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 나왔다. 인공지능(AI)이 만들어내는 가짜 뉴스와 허위 정보, 음모론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벌써부터 꿈틀거리는 상황이다. ▷초강대국 미국의 정치, 사회적 혼란은 내부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국내 현안에 발목 잡힌 미국의 리더십 약화는 곧바로 대외정책을 흔드는 변수로 작용한다. 급기야 “세계 안보의 가장 큰 위협은 바로 우리(미국)”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미국 외교안보 전략의 구루로 평가받아온 리처드 하스 미국 외교협회(CFR) 회장의 입에서다. 20년간 최장수 CFR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같은 대외적 위협 요인들을 분석해왔던 그가 ‘미국’을 최대 위협으로 지목한 건 처음이다. ▷불안정한 정치를 비롯한 미국의 내부 위험 요인들은 이제 외부 위협을 넘어서는 수준까지 악화했다는 게 하스 회장의 진단이다. 그는 이미 6년 전 저서 ‘혼돈의 세계’에서 미국 정치의 ‘기능 장애’가 악화하면서 대외적으로 치러야 할 대가가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잦은 대규모 정책 변화가 우방국들을 불안케 하고 적들을 대담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은 2020년 이후 중동 내 영향력 약화, 유럽의 대중(對中) 전선 이탈 조짐, 자국에 맞선 중국과 러시아의 밀착 등으로 대외정책에 고심이 깊다. ▷다극화를 넘어 무극화 경향까지 나타나는 국제질서의 변동 속에서 미국의 외교 영향력 약화는 글로벌 불안정성을 높일 주요 요인이다. “미국의 국내 혼돈은 세계의 혼돈과도 불가분하게 연계돼 있다”는 하스의 경고를 흘려듣기 어렵다. 대미 안보 의존도가 큰 동맹국 한국으로서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 우려에 앞서 ‘내부 분열이 가장 큰 안보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부터 다시 한번 새겨야 할 듯하지만 말이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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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정은]日오염수를 다루는 야당의 외교적 무지함

    “유엔… 유엔요? 어디에 어떻게 낸다는 거예요?” 더불어민주당이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를 유엔총회에서 다뤄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던 초기, 전직 외교부 고위당국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부 공식 루트가 아닌 정당 차원에서, 그것도 정부의 입장과는 다른 내용을 유엔총회에 어떻게 올리겠다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요즘 외교가 인사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민주당의 외교 행보가 자주 화제에 오른다. “주변에 외교 이슈에 대해 조언하거나 방향을 잡아주는 사람이 그렇게 없느냐”고 묻는 이들이 많다. 후쿠시마 오염수 건만 해도 유엔이라는 국제기구의 성격과 절차를 제대로 안다면 이런 식으로 밀어붙이기는 어렵다. 외교부가 지적했듯 ‘국가 외교행위의 단일성’ 측면에서도 맞지 않는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지난달 말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문제의 유엔총회 안건 채택 결의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결의안은 이 문제를 ‘긴급하고 중요한 의제’로 다루자는데, 일본이 벌써 2년 전 발표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지속적인 모니터링하에 준비해온 방류 건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 2021년에 이미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이 “철저히 살펴보겠다”고 공언했던 사안이다. 벌써 6차례 IAEA 중간보고서가 나왔다. 결의안에 서명한 민주당 의원 52명은 IAEA 평가를 뛰어넘는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단 말일까. 민주당 일부 의원이 “IAEA는 오염수의 안전성을 검증하는 기관이 아니다”라며 “IAEA가 아니라 유엔을 통해 객관적 검증 노력을 해야 한다”고 한 것에도 전문가들은 실소하고 있다. IAEA가 유엔 기구이고, 헌장에 명시된 3대 책무에는 ‘핵확산방지’, ‘핵안보’와 함께 방사능 유출을 다루는 ‘핵안전’이 들어간다. 국회를 움직이는 거대 야당이 민감한 외교 쟁점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하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부족한 외교적 식견을 채우고 잡아줄 안전판도 보이지 않는다. 사실관계나 맥락과는 상관없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겠다는 계산이 앞서는 모양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만나 15분간의 일장 훈계를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전랑(戰狼·늑대 전사) 외교’에 앞장서온 싱 대사의 그간 행보, 거칠어지는 중국의 외교 기조와 사례들을 알고 있었다면 그런 민망한 장면이 연출될 것임을 예상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민주당 의원들의 티베트 방문과 “인권 탄압은 70년 전 일” 같은 발언도 다르지 않다. 그것이 부를 대외적 파장을 알았다면 이보다는 신중했을 것이다. 정치인들이 국내 현안에만 집중해도 되는 시대는 지났다. 후쿠시마 같은 환경 이슈부터 보건, 기술, 일자리 등까지 외부적 요인에 대한 검토 없이 다룰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국제 정세의 변화 틀에서 내용을 꼼꼼히 들여다보지 않고는 국내 정치 또한 제대로 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말이다. 외교에 직접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 야당이라고 해서 몰라도 된다는 식의, 혹은 알아도 대놓고 무시하는 식의 접근은 무책임하다. 일본의 오염수 방류가 가져올 문제들에 대해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것은 맞다. 당사국인 일본 내부는 물론이고 태평양 섬나라들에서도 우려가 제기된 사안이다. 그렇더라도 이를 글로벌 이슈화하려는 한국 야당의 시도는 방법도 시점도 틀렸다. 결과적으로 분열된 정치 현실만 드러내며 국제무대에서 망신당할 판이다. 한국은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서 본격 활동을 앞두고 있다. 그런 나라의 국정 파트너인 야당이 외교적으로 무지, 무모하다는 손가락질을 받아서는 안 될 일이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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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100세 과학자가 남긴 조언 “너무 이른 은퇴 말라”

    “죽기 전에 고속도로에서 배기가스가 사라지는 걸 보고 싶소. 나는 지금 96세이니 아직 시간이 있어요.” ‘전기차 배터리의 아버지’로 불리는 존 구디너프 미국 텍사스대 교수의 과거 인터뷰들에는 나이를 잊은 열정과 여유가 가득하다. 2019년 97세 나이로 최고령 노벨상 수상자 기록을 쓴 그는 25일 100세를 일기로 타계하기까지 ‘슈퍼 배터리’ 연구를 계속했다. “오랜 연구의 비결을 공유해 달라”는 요청에 그가 내놨던 답변은 “너무 일찍 은퇴하지 말라”였다. ▷80대, 90대에도 일을 계속하는 현역들은 고령화에 접어드는 현대사회에서 주목받는다. 올해 3월 타임지는 ‘왜 그만둬요?’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95세 변호사, 85세 엔지니어를 조명했다. 노익장을 과시하는 유명인들에겐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다. 배우 해리슨 포드는 81세 나이에 액션 연기를 선보였고,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93세 나이에 최고령 감독이자 배우로 여전히 활동 중이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인공지능(AI)을 연구해 책을 썼다. ▷일본 언론에 소개된 한 90대 스시집 셰프는 “아침마다 생선과 쌀, 물, 직원, 손님들에게 감사하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다. 일본에서 히트 친 게임을 개발한 87세 프로그래머가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60세에 은행을 은퇴한 뒤였다고 한다. 초고령화사회인 일본에서는 90세 이상 취업자가 5000명에 이른다. 고령에도 “일을 즐긴다”는 이들은 “배우고 일하는 데 늦은 나이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일이 주는 일상의 긴장감과 자극 덕분에 늙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구(老軀)의 한계를 극복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최근 96세 연방판사가 “일을 그만두라”는 동료의 소송에 맞서 법정싸움을 벌이는 상황이 벌어졌다. 업무 역량과 처리 속도, 기억력 등이 모두 떨어지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한 이 종신직 판사는 “아직 충분히 기여할 수 있다”며 완강히 버티고 있다. 정반대로, 일을 내려놓고 싶어도 경제적 이유로 은퇴를 미뤄야 하는 생계형 현역들도 적잖다. 직종과 분야, 근무 환경에 따라 정년에도 차이가 있다. ▷정년은커녕 ‘파이어(FIRE)족’을 꿈꾸며 조기 은퇴를 준비하는 젊은이들도 속출하는 세상이다. 젊은 날의 고단한 근무를 황혼기 이후까지 계속한다는 게 어쩌면 막막하다. 그래도 자아실현과 삶의 의미를 찾는 데는 일만 한 것도 없다고 앞서 걸어간 사람들은 증언한다. 국내에도 95세까지 마이크를 잡았던 MC 송해부터 91세에 말춤을 춘 현직 대학총장까지 수많은 사례가 있다. 진정 하고픈 일이라면 못 할 것도 없다. 직장, 직업을 넘어 천직을 찾아나갈 때 가능한 일들이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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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모디 총리에 레드 카펫을… ” 印 향한 美의 구애

    “그때 나는 할 수 없었으나 당신은 반복해서 물었던 것, 그렇게 열망했던 바람을 오늘 제가 채워드리죠.” 22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백악관 국빈만찬에서 내놓은 발언에 만찬장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9년 전 워싱턴 방문 땐 힌두교 금식 기간이라 아무것도 먹지 못했지만 이번 만찬에서는 기꺼이 포식하겠다는 뜻의 농담이었다. 인도산 실크 위에 오른 사프란 리소토와 포토벨로 버섯 요리는 채식주의자인 그를 위해 백악관이 특별히 공들인 메뉴였다. ▷제3세계 국가들의 맹주를 자처하는 인도는 비동맹 외교 정책을 고수해온 나라다. 쿼드(Quad) 회원국으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정책에 적극 올라타면서도 러시아로부터는 싼값에 원유를 4배 넘게 사들이며 미국의 대(對)러 제재망에 구멍을 뚫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는 “깰 수 없는 우정”을 강조했다. 이런 인도를 가까이 끌어들이기 위해 미국은 모디 총리를 국빈으로 초청해 초특급으로 환대했다. ▷미국과 인도를 ‘베프’ 관계로 만든 공통분모는 중국이다. 중국과의 국경 분쟁 등으로 잔뜩 날이 서 있는 인도, 중국 견제를 위해 우군이 필요한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양국이 협력 강화를 다짐한 분야는 인공지능(AI) 개발과 글로벌 공급망 확보, 방산 등 첨단 기술과 안보다. 미국이 대중 견제의 고삐를 죄는 분야들이다. 중국에서 제재받은 마이크론은 인도에 8억 달러 넘게 투자한다. 양국 정부와 기업 모두 중국 보란 듯 밀착하고 있는 것이다. CNN은 모디 총리의 국빈 방문 기간에 “(중국이라는) 초대받지 않은 유령 손님이 워싱턴을 맴돌았다”고 썼다. ▷“두 위대한 국가, 두 위대한 친구, 두 위대한 파워를 위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국빈만찬 건배사는 의미심장하다. 주요 2개국(G2)으로 불렸던 미중 관계 대신 인도와 손잡고 세계질서를 재편해 나가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인도가 어디까지 호응할지가 관건이지만, 이번 회담만으로도 기존의 지정학 구도를 흔들 “역사를 썼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은 이를 위해 인도의 인권 탄압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모디 총리는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두 민주주의 국가 간의 연대”를 외쳤다. ▷14억 인구를 둔 세계 최대 시장, 첨단기술 수준과 젊은 정보기술(IT) 인력들, 6%대 경제성장률을 이끄는 중산층 파워로 인도의 몸값은 한껏 높아져 있기도 하다. 미중 갈등 속에서의 ‘어부지리’ 수혜로 신흥 거대 시장 인도의 성장세는 더 가팔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원칙과 국익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속에서 주요국들의 합종연횡이 끌어내는 변화 속도가 숨 가쁘다. 대외적 역할 확대와 수출시장의 다변화를 노리는 한국이 놓치지 말고 따라가야 할 흐름임이 분명하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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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움직입시다”[횡설수설/이정은]

    고령에 근육질을 자랑하는 ‘몸짱 어르신’의 상당수는 건강이 크게 나빠져 고생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통증을 줄이려 시작한 운동이 회복을 넘어 건강미까지 얻게 해준 사례들이다. 각종 매체를 통해 소개된 79세 임종소, 72세 강현숙 할머니도 그랬다. 허리협착증으로 고생하던 임 할머니는 일주일에 5번씩 헬스장을 찾는 노력 끝에 세계 피트니스 대회에서 우승한 보디빌더가 됐다. ▷젊었을 때부터 꾸준히 관리하지 않으면 어느 한순간에 망가질 수 있는 게 건강이다. 특히 3년간의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우리 몸에는 보이지 않는 경고등이 여기저기 켜진 상태다. 비만 상태인 한국인의 비중이 늘어났고 당뇨병, 고콜레스테롤혈증 같은 만성질환 유병률도 높아진 게 실태조사 수치로 확인된다. 일상생활의 움직임이 줄어든 데다 운동 습관까지 무너진 영향이 컸다. 앉아있는 시간은 하루 평균 8.9시간까지 늘어난 반면 하루 30분 이상씩 걷는 사람의 수는 감소했다. ▷최근 몸을 소재로 한 이른바 ‘피지컬 예능’들은 코로나가 잠재웠던 운동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이런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헬스장 문의와 등록이 늘어났다고 한다. 문제는 지속성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운동은 작심삼일의 악순환을 끊기 어려운 도전이다. 결심이 필요한 단계를 넘어 운동을 일상의 습관으로 만들어 버리는 게 해법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소셜미디어에서 열풍이 불었던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 챌린지처럼 여럿이 함께 만들어가는 게 좀 더 쉽다. ▷운동 루틴을 돕는 디지털 기기의 역할 또한 주목할 만하다. 정해진 운동시간을 알려주는 기능부터 운동량 기록, 심박수와 혈당 측정, 3D 체형 분석 같은 기능들이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모니터 속 헬스 강사의 일대일 지도와 격려의 외침, 인터넷으로 연결된 다른 회원들과의 운동 목표 공유가 도움이 됐다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기능을 장착한 미국 운동용 자전거 업체의 매출 증가세는 폭발적이었다. 업체 이름을 따서 ‘펠로톤 효과’라는 조어까지 나왔다. 건강을 챙기려는 사람들의 의지와 ICT가 접목되면서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의 성장을 이끈 사례다. ▷인터넷에는 ‘일주일 만에 뱃살 폭파’ ‘한 달 만에 올챙이배 없애기’ 같은 콘텐츠가 넘쳐난다. 운동의 효과를 그렇게 단기간에 보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도 일단 시작하고 보는 게 답이다. 꼭 초콜릿 복근을 만들 필요도 없다. 건강한 땀으로 군살을 빼 나가면서 일상의 탄력과 에너지를 높이는 것만으로도 효과는 차고 넘칠 것이다. 집에서 혼자 하는 ‘홈트’부터 테니스, 수영, 요가까지 다양한 운동은 고령화시대 안티에이징의 비법이기도 하다. 지금, 움직입시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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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톈안먼 사태 34주년… 中 ‘역사 지우기’[횡설수설/이정은]

    홍콩의 공공도서관에서 책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알음알음 알려진 건 지난달 중순쯤이었다. 없어진 수백 권의 책은 중국 톈안먼(天安門) 사태와 민주화 시위 등 중국 당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잡지와 영상자료도 예외가 아니었다. 홍콩 당국은 “불온한 사상을 담은 불법 자료들이 유포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도서관의 당연한 임무”라고 했다. ▷양초, 꽃다발, 노란색 티셔츠…. 톈안먼 사태 34주년을 맞은 이달 4일에는 금지 품목이 책 외에도 많아졌다. 톈안먼 사태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사에 쓰일 것으로 의심되는 물건이나 홍콩 ‘우산혁명’의 상징이었던 노란색 의류 같은 것들이 모두 문제가 됐다. 빅토리아 공원에 깔린 경찰들이 삼엄한 경비 속에 행인들의 소지품을 검색했고 일부는 연행, 체포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났건만, 해마다 최대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참가했던 톈안먼 사태 추모 집회의 열기는 되살아나지 못했다. ▷1989년 톈안먼 사태는 중국 본토에서는 언급 자체가 금기시되는 역사다. 수많은 대학생의 목숨을 앗아간 중국군의 유혈진압은 “반사회주의 폭도 진압을 위한 단호한 조치”로 포장돼 있다. 인터넷에서 검색조차 되지 않게 통제돼 온 이 민주화 시위의 기억은 이제 유일한 추모 공간으로 열려 있던 홍콩에서마저 지워질 위기에 처했다. 2020년 제정된 홍콩 국가보안법, 더 크게는 중국 당국의 통제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비판할 홍콩 언론사들은 지난 3년간 벌써 12곳이 문을 닫은 상태다. ▷중국의 ‘역사 지우기’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을 계기로 점차 강화되는 분위기다. 중국 당국은 공산당의 역사를 수정한 내용을 새롭게 학습하도록 하는 전국 단위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교육기관에 배포된 자료에는 대약진운동이 최대 수천만 명의 아사자를 냈다는 사실은 빠져 있고, 문화대혁명도 ‘부패에 맞선 조치’로 평가했을 뿐 그 폐해에 대한 설명은 없다고 외신들은 전한다. 중국 당국이 ‘모든 공작의 생명선’으로 여기며 지속적으로 시도해 온 사상·정치 공작의 일환일 것이다. ▷중국과 홍콩이 닫힌 대신 대만, 호주, 캐나다, 유럽 등 10여 곳의 다른 도시에서 톈안먼 사태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작은 집회들이 열렸다. “우리도 34년 전과 똑같은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우리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베이징에 전달해야 한다”는 해외 주재 중국 청년들의 결기는 비장하다. 해외 소셜미디어에서는 톈안먼 해시태그를 달고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라는 글도 이어졌다. 중국의 검열이 닿지 않는 온라인 공간은 훨씬 넓고 깊다. 억지로 바꿔 쓰려 한다고 해서 바뀌거나 지워지지 않는 게 역사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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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美 대학진학률 ‘뚝’… “일자리 많은데 뭐 하러 가?”

    ‘지성의 전당’으로 불리는 대학의 진학률이 미국에서 최고점에 달했던 때는 2009년이었다.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이 속속 가세하면서 20년간 꾸준히 늘어온 입학생 수는 이때 1800만 명(진학률 70.1%)에 육박했다. 대학 졸업장은 중산층 이상의 삶을 보장하는 티켓으로 통했다. 하버드, 예일, 스탠퍼드, MIT…. 해마다 발표되는 ‘톱 100’ 대학의 입시 정보를 얻으려고 고교생과 학부모들은 애를 태웠다. ▷그랬던 미국 대학의 몸값이 예전 같지 않다. “인생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졸업장 한 장 받으려고 그 많은 등록금과 시간을 써야 하느냐”며 시큰둥해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안 그래도 하락세였던 진학률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더 가팔라지면서 지난해 62%까지 떨어졌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대학은 들이는 돈만큼의 가치가 없다’는 응답이 56%까지 치솟았다. 출산율 하락, 억대 학자금 대출 부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학위 없이도 얻을 수 있는 일자리가 많아진 게 주된 이유로 꼽힌다. ▷팬데믹 기간에 심해진 미국 내 노동력 부족 현상은 인력의 수요와 임금을 동시에 밀어 올리는 결정적 요인이다. ‘메이드 인 아메리카’ 기조에 따라 대규모 생산시설이 들어서고 있는 지역들은 특히 블루칼라 일손 부족으로 아우성이다. 구글, 델타항공, IBM과 같은 기업들도 일부 분야에서 대졸 여부를 따지지 않는 채용을 시작했다. 미국 언론들은 “대졸자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대학을 거부하는 새 세대의 출현” 같은 제목의 분석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대학을 외면하는 청년들의 선택이 마냥 환영받는 분위기는 아닌 듯하다. 미국 경제학자들은 “대학 위기를 넘어 사회, 경제적으로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한다. 고졸자들의 연간 평균 수입은 대졸자보다 2만4900달러 적고, 실직 확률은 40% 높으며, 수명은 더 짧고 이혼율은 더 높다는 통계 수치들이 여전히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의 청년들이 매년 4500만 명씩 대학에 들어가고 있다는 점도 미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미국 대학들은 “고등교육 방식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며 해법을 고심 중이다. ▷문화, 인식, 교육, 경제 환경이 나라마다 다르니 미국 대학가의 변화가 당장 해외로도 확산될 현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대학 간판보다는 능력을 추구하는 청년들의 실용주의와 이들을 기꺼이 모셔가는 기업들의 선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를 가능케 하는 미국의 견고한 노동시장 또한 이런 유연한 접근에 바탕을 둔 기술, 경제 혁신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일 것이다. 너도나도 대학 입시에 목을 매고 있는 한국이 깊이 들여다볼 움직임이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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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여행 수요 폭발… 여행수지는 적자 시름[횡설수설/이정은]

    ‘대자연의 절경으로 떠나는 여름 힐링여행’, ‘놓치면 후회할 특가, 완판주의’…. 요즘 온·오프라인 매체를 통해 부쩍 노출이 늘어난 해외여행 광고들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이국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외국 관광지의 사진과 동영상은 당초 여행계획이 없던 이들까지 설레게 만든다. 올해 초 한 여행사가 내놓은 북유럽 여행 패키지 상품들은 홈쇼핑에서 한 달 동안 1000억 원 가까이 팔려 나갔다. ▷올해 1분기 해외로 나간 한국인 관광객은 498만 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000% 이상 많아졌다. 공항 이용객이 10배 늘었고, 관광객들이 면세점 등에서 쓰는 신용카드 결제액도 급증세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억눌렸던 ‘보복 여행’이 증가한 결과라지만 증가세가 예상보다 폭발적이다.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인 관광객 수도 5배 늘어나기는 했지만(1분기 171만 명), 해외로 떠나는 여행객 증가 폭에는 못 미친다. 여행수지 적자 규모는 그만큼 확대되고 있다. 32억 달러를 넘어서며 3년 반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국내 여행객들을 끌어들이는 주요 관광지는 단연 일본이다. 벌써 200만 명 넘는 한국인이 일본으로 향했다. 가까운 이동 거리와 부담이 적은 저비용항공 인프라, 엔저 효과까지 겹치면서 오사카와 후쿠오카 등지의 관광 명소는 최대 80%까지 한국인들로 채워지고 있다고 한다. 베트남과 태국, 필리핀도 인기 여행지다. 여름 휴가철에는 해외여행객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어 가을 상품으로는 북유럽과 캐나다의 단풍을 즐기는 상품들이 이미 광고를 타고 있다. ▷떠나는 이를 붙잡을 일은 아니지만 들어오는 이가 턱없이 적은 상황은 문제가 된다. 여행수지 적자가 서비스수지 적자를 키우면서 경상수지 악화 요인으로 작용하는 상황이다. 재정 당국의 근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의 주요 관광 손님이었던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의 발을 묶어놓은 중국 정부의 조치는 언제 풀릴지 알 수 없다. 중국은 벌써 두 달 전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40개 국가에 대한 단체관광 금지 조치를 풀면서도 한국은 쏙 빼놨다. 금지령이 풀린다고 해도 ‘애국소비’ 바람이 부는 중국에서 방한 여행객이 금방 늘어난다는 보장도 없다. ▷해외 관광객의 발걸음을 국내로 돌리자니 이미 치솟은 가격에 바가지 상술까지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이 가격이면 차라리 일본이나 동남아를 가겠다”는 사람들 앞에서 국내 대표 관광지 제주도는 울상이다. 한국의 볼거리, 놀거리, 먹거리 강점을 키우지 못하는 사이 외국행 비행기표를 예약하는 여행객들의 클릭 손길은 더 바빠지고 있다. 지친 일상을 벗어나 여행의 즐거움에 푹 빠지고픈 이들을 붙잡을 우리만의 매력을 더 찾아내야 할 때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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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납 세금 안내려고 로또 1등 당첨금까지 빼돌린 철면피들[횡설수설/이정은]

    “신도 있고 왕도 있지만 더 무서운 건 세금징수관이다.” 고대 수메르인의 격언 중 하나였다는 이 한 문장은 세금 납부가 얼마나 오래된 인류의 숙제였는지를 보여준다. 세금을 걷으려는 국가와 어떻게든 이를 피해 보려는 납세자들의 숨바꼭질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다. 그 과정에서 세금을 회피하기 위한 각종 ‘창의적 능력’이 발현됐다지만, 탈세가 처벌 대상인 범죄라는 사실 또한 역사적으로 예외가 없었다. ▷로또 1등에 당첨되고도 연체된 세금을 납부하지 않고 버티던 체납자가 최근 국세청에 적발됐다. 그는 20억 원이 넘는 당첨금을 받고도 내야 할 수억 원의 연체 세금을 처리하지 않았다. 대신 돈을 가족 계좌로 이체하거나 현금, 수표 등으로 인출하며 빼돌리려 했다고 한다. 이처럼 1등 혹은 2등 거액 로또에 당첨됐는데도 밀린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가 적발된 이는 36명에 달한다. 없던 돈이 하늘에서 떨어졌는데도 그걸로 세금은 내기 싫다는 심보다. ▷국내 세금 체납자는 현재 132만 명, 밀린 체납액은 100조 원이 넘는다. 내야 할 세금이 1억 원 이상 쌓여있는 사람만 16만 명에 달한다. 사업 실패 등 안타까운 사연도 없지는 않겠으나 체납자 중에는 고의로 재산을 은닉하고 호화 생활을 누리는 사람도 상당수다. 고액 체납자이면서도 개인금고에 현금 4억 원을 숨겨놨거나, 배우자 명의로 재산을 돌려놓고 부촌의 고급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례가 이번 국세청 조사에서 줄줄이 나왔다. 하루 단위로 늘어나는 연체료 따위는 신경 안 써도 되는 부자들이 아니고서야 보이기 힘든 배짱이다. ▷‘유리지갑’ 직장인들이야 고민할 여지조차 없다지만 숨길 구멍이 있는 경우엔 절세와 탈세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올 초에는 유명 웹툰 작가와 프로게이머, 운동선수 등이 줄줄이 세무조사를 받았다. 법인 명의로 산 고가의 슈퍼카를 사적으로 굴리고, 친인척을 직원으로 등록해 허위 인건비를 지급하는 등 각종 수법이 총동원되다시피 했다. 헌법에 명시되고 교과서로 가르치는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를 우습게 본다. 탈세범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의 전례들은 이들을 더 대담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최근엔 해외 암호화폐 시장 등을 이용해 조세당국의 추적을 빠져나가는 지능범들도 많아지는 추세다. 조세 정의가 무너지면 “성실한 사람들만 세금을 뜯긴다”는 반발이 커질 수밖에 없다. 혈세 징수에 앞서 효율적으로 투명하게 쓰이는지부터 입증하라는 항변은 정부도 한번 더 들여다볼 부분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문제점들이 악의적 체납이나 탈세의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사람이 피할 수 없는 두 가지가 죽음과 세금’이라고 했던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처럼 누구도 세금을 회피하지 못하는 세상이 돼야 한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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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차 세계대전 막을 시간 5~10년뿐”… 키신저의 경고[횡설수설/이정은]

    이달 말 100세 생일을 맞는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지금까지 중국 방문 횟수가 50회를 넘는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방중 성사를 위한 잠행 등 역사적 행보가 포함된 기록이다. 그는 마오쩌둥이 현안 질문에 대해 “나는 철학자여서 그런 주제는 안 다룬다”며 피하다가도 대만에 대해서는 단호한 화법을 구사하던 순간을 아직 기억한다. 저우언라이와 함께 ‘상하이 공동성명’의 마지막 한 줄을 놓고 밤을 꼴딱 새우며 끙끙대던 때도 잊지 않고 있다. ▷키신저는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1차 세계대전 발발 전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며 강 대 강 충돌로 치닫는 미중 갈등을 진단했다. 3차 세계대전 가능성을 경고하며 “이를 막을 시한이 5∼10년에 불과하다”고 전망했다. 미국의 역대 최고령 내각 고위 인사로 한 세기 동안 미중 관계를 지켜봐온 그의 분석은 군사 전문가들이 전쟁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것과는 다른 무게감을 갖는다. 역사의 산증인인 그가 1차 세계대전 상황을 근거로 대는 것에 토를 달 수 있는 이도 많지 않을 것이다. ▷키신저가 보는 미중 관계의 뇌관은 역시나 대만이다. 대만을 우크라이나처럼 다루다간 결국 전 세계 경제가 붕괴할 것이라는 그의 지적은 매섭다. 양국 간 충돌이 이르면 5년 안에 벌어질 수 있다고 보는 근거는 인공지능(AI)이다. 지리적, (타격)정확성 한계 등으로 적군을 궤멸할 능력이 없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AI가 모든 군사적 한계를 빠르게 없애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미중 양국이 참여하는 ‘AI 군축’ 논의를 제언한다. 고령에도 ‘AI의 시대’라는 책을 쓰며 첨단기술 공부를 지속해온 키신저다. ▷미중 데탕트 시대를 주도했던 그답게 해법은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는 게 우선’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중국 지도자들의 목표는 세계 지배라기보다는 자국의 이익 극대화로, 히틀러의 야욕과는 다르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마르크스주의가 아닌 유교 사상에 바탕을 두고 중국의 대내외 정책을 이해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신뢰 구축과 협력을 강조하는 접근법은 매파 일색인 미국 행정부, 의회와는 결이 다르다. ▷이번 인터뷰는 이틀에 걸쳐 총 8시간 동안 진행됐다고 한다. 키신저는 앞서 CBS방송과도 ‘100세 기념 인터뷰’를 하고 포럼 연사로 나서는 등 대외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미중 충돌 외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가져올 악영향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발신하고 있다. 이젠 거동이 불편하고 말조차 어눌하지만 시대와 영역을 넘나드는 그의 통찰은 울림이 있다. “파괴적 충돌을 막을 방법은 단호한 외교뿐”이라는 키신저의 고언에 백악관과 중난하이도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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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확인한 ‘G8’의 높은 문턱[횡설수설/이정은]

    “G7은 죽었다. 현재와 같은 구성으로는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유럽의 한 싱크탱크는 2018년 내놓은 보고서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맹폭했다. “오늘날의 G7은 과거의 유물”이라며 더 대표성을 띤 새 멤버들의 가입을 촉구했다. 캐나다 샤를부아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보호무역주의와 관세장벽 등을 놓고 회원국 간 갈등이 여과 없이 노출된 직후였다. ▷기존의 G7에 한국과 인도, 호주, 러시아를 참여시켜 G11으로 키우는 방안이 거론되기 시작한 게 이때였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G7은 낡았다”며 새로 참여할 후보국으로 4개 나라를 콕 찍어 언급했다. 당시 그의 발언은 한때 G8 멤버였다가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침공으로 퇴출당한 러시아를 복귀시키는 데 방점이 찍혀 있었다는 게 정설이다. 다른 회원국들의 공개 반대로 G7 확대 논의는 흐지부지됐지만, 한국의 가입 가능성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다. ▷G7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을 회원국으로 둔 비공식 국가 협의체다. 자유민주주의, 인권 등의 가치를 공유하는 ‘선진국 클럽’으로 국제 경제 및 외교 규범을 논의하는 리더 그룹이라는 점에서 가입 시 그 상징성은 대단하다. 신흥 경제국들이 포함된 G20에 주도권을 빼앗기는 듯 보이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G20는 몸집이 비대하다는 지적과 함께 회원국인 러시아, 중국과의 갈등으로 한계에 봉착해 있다. 유엔마저 무력화한 상태에서 결국 서구 선진국들은 다시 G7 중심으로 뭉치는 분위기다. ▷급변하는 글로벌 지형을 반영해 G7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요구는 커지고 있다. 브라질까지 포함해 G12로 만들자는 식으로 다양한 조합과 후보 국가가 거론된다. 민주주의 국가 10개국을 모은 ‘D10(Democracy10)’ 창설이 대안으로 논의되기도 했다. 다만 소수 결속으로 국제사회의 주도권을 유지하려는 기존 회원국들의 벽은 여전히 공고하다. 한국의 G7 가입을 놓고는 특히 일본의 견제가 만만찮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시아 유일 회원국으로서의 영향력이 약화할 것이라는 일본의 우려가 작용했을 것이다. ▷한국은 19∼21일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에 옵서버 국가로 초청됐다. 한국 정상으로는 역대 네 번째 참석인 데다 한일 관계의 훈풍까지 더해져 G8로의 확대 기대감이 커졌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 국무부는 “회원국 변화와 관련한 어떤 논의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고 선을 그었다. 아직은 높은 국제사회의 문턱을 절감하는 순간이다. 보다 긴 호흡으로 준비 전략을 다시 다듬어야 할 때이기도 하다. 단독 드리블보다는 다른 후보국들과 연대해 ‘G 멤버’ 가입의 문을 넓히는 식으로 전략을 다양화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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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이정은]SKY 10명 중 6명은 ‘A’… 학점 인플레의 함정

    대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교수들의 상당수는 ‘A 폭격기’라고 불리는 이들이다. A 학점을 후하게 뿌려주는 교수나 강사의 과목은 늘 수강 신청이 쇄도한다. 학점에 한 단계 높은 플러스(+)를 몰아주는 ‘쁠몰’ 강의는 학생들의 평가에서 상위권에 올라 있다. 이런 강의를 듣기 위해 학생들은 새벽부터 인터넷 수강신청 시스템에서 ‘광클 전쟁’을 벌인다. “점수가 사해보다 짜다”는 불만을 듣는 교수들은 설 자리를 찾기도 힘들 정도다. ▷성적표에서 ‘A’의 몸값이 예전 같지 않다. 교육부 대학알리미 등에 따르면 이른바 SKY로 불리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서 지난해 2학기 전공과목 A 학점을 받은 학생의 비율은 57∼59%에 달했다. 재학생 5000명 이상 4년제 대학을 기준으로 A 학점이 가장 많은 이화여대의 경우 그 비율이 60.8%였다. 10명 중 6명 가까이 A 학점을 받은 것이니 융단폭격 수준이다. 온라인 비대면 수업이 이뤄진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평가 시스템이 기존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뀐 영향이 컸다. ▷학점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는 지적에 교수들은 난감한 표정이다. 학점이 장학금과 편입, 취직 등에 직결되는 현실에서 평가의 엄정성만 외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평가 이의신청 기간이면 “내 인생 책임져 주실 거냐”는 학생부터 장학금이 얼마나 절실한지 읍소하는 학생들의 방문과 이메일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0.1점이라도 더 받으려고 신입생들도 고3처럼 공부하는 게 요즘 대학가 풍경이기도 하다. 치열해지는 경쟁이 학점 부풀리기 현상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학점에 민감해지는 건 해외 대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미국 뉴욕대에서는 화학 분야의 저명한 노교수가 “강의가 어렵고 학점도 낮게 준다”는 수강생들의 집단 항의로 학교에서 해고된 일도 있었다. 당시 350명의 수강생 중 80여 명이 “지나치게 엄격한 평가가 학생들의 배움과 행복을 저해한다”는 내용의 탄원서에 서명했다. 평가 기준과 학점의 문제를 떠나 팬데믹 기간 저하된 교육의 질 문제에서 Z세대를 교육하는 방식까지 간단치 않은 고민거리들을 대학가에 던졌다. ▷평가는 결국 변별력의 문제다. A 학점으로 도배된 성적표만으로 인재 감별이 어려워진 구인 기업이나 기관들은 결국 다른 기준을 요구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학생들은 이미 공모전과 자격증, 각종 대외활동 등 또 다른 스펙 쌓기에 한창이다. 성적 줄 세우기를 넘어 활동 분야를 다양화하는 장점이 있다지만 이 또한 경쟁 부담이 작을 리 없다. 상아탑에서 학문 연구에 몰입해보는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모든 인플레이션이 그렇듯 학점 또한 결과적으로는 더 큰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

    • 2023-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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