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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6년 동안 국내 청년 인구(만 15∼29세)는 91만 명 줄었다. 하지만 일할 의사 없이 구직 활동을 하지 않는 ‘쉬었음’ 청년은 오히려 늘어나는 중이다. 고학력 청년이라고 해서 이런 현상에서 예외가 아니다. 서울 소재 대학의 디스플레이 학과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인 노모 씨(27)는 불투명한 미래에 불안해하고 있다. 주요 대기업 디스플레이 업체는 몇 년 동안 학사 공채가 없었다. 석박사로 졸업하더라도 채용 연계 외에는 모집이 거의 없다. 노 씨는 “공채가 뜸해 졸업 후 취업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전했다. 경력직 위주 채용 시장에 좌절감을 토로하는 취업자들도 늘고 있다. 지난해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졸업한 김모 씨(28)는 “기업의 경력직 선호에 신입이 설 자리가 없다”며 “중소·중견기업으로 눈높이를 낮춰도 취업 문을 뚫기 어려운 것은 매한가지”라고 전했다.● 청년 감소에도 늘어나는 ‘쉬었음’ 청년 18일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청년 인구(만 15∼29세)는 2019년 906만 명에서 지난해 815만 명으로 약 91만 명 줄었다. 문제는 청년이 이렇게 줄어들어도 취업 경쟁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운영하는 온라인 고용서비스 플랫폼 ‘고용24’의 지난달 구인배수는 0.40으로 2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구인배수는 신규 구직 인원 대비 구인 인원의 비율로, 구직자 1명당 일자리가 0.4개에 불과하다는 뜻이다.일자리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취업 활동에 나서지 않는, 이른바 쉬었음 청년이 늘고 있다. 2019년 36만 명에서 지난해 42만1000명으로 6만1000명 증가했다. 특히 대졸 이상의 쉬었음 청년 비중이 빠르게 늘었다. 지난해 전체 쉬었음 청년 중 41.3%가 대졸자였다. 이는 사상 최대치다. 가장 큰 원인은 국내외 경기 침체로 인해 일자리가 전반적으로 줄고 있는 점이 꼽힌다. 특히 300인 이상 대형 사업체가 늘리는 양질의 일자리 개수가 빠르게 줄고 있다. 이 일자리를 노리는 고학력자들이 아예 취업 활동을 그만두는 것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올 5월 발표한 ‘청년층 쉬었음 인구 증가 원인과 최근의 특징’ 보고서는 최근 대졸 이상 고학력 쉬었음 인구 비중이 크게 증가한 이유에 대해 “고학력 청년층의 눈높이에 맞는 양질의 일자리가 점점 부족해지면서 일자리 미스매치가 강화되었기 때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기업들의 경력직 선호 현상도 대졸 이상 쉬었음 청년 증가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대학 졸업 후에 취업 활동 대신 기업들이 원하는 경험을 쌓으면서, 취직을 준비하는 시기가 길어진다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국내 전체 채용 공고 중 경력직만을 대상으로 한 채용 공고 비율이 10건 중 8건이 넘는 82.0%에 달했다. 신입과 경력 직원을 모두 뽑겠다는 채용 공고는 15.4%, 신입 직원만 뽑겠다는 공고는 2.6%였다.● 대통령실 “청년 창업·취업 장벽 낮춰야” 전문가들은 청년층의 취업 문제가 잠재 성장률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고학력자들이 취업을 미루면 가뜩이나 열악한 한국의 노동생산성이 더 악화될 수 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이날 최근 5년 동안 쉬었음 청년으로 생긴 경제적 비용이 44조5000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날 수석보좌관회의에서 “2030 청년들이 경력이 없어 취업이 안 되고, 취업을 못 해 경력이 없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며 “창업과 취업의 장벽을 낮추고 주거 안정과 복지 확대에 더해 청년들이 직접 정책 수립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문을 넓힐 때”라고 말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청년층에서 구직에 대한 희망이 꺾이면서 국가 경쟁력이 하락하고 있다”고 말했다.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세종=주애진 기자 jaj@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조국혁신당 당원 간담회에서 폭행이 발생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서울 영등포경찰서는 2일 조국혁신당 관계자 4명을 상해 등 혐의로 고소하는 내용의 고소장이 접수돼 조사에 들어갔다고 8일 밝혔다. 고소인인 60대 A 씨는 지난달 3일 국회에서 열린 혁신당 주권 당원 간담회에 참석했다가 이들로부터 세 차례 폭행을 당해 손목과 무릎 등을 다쳤다고 주장했다.이날 간담회는 당내 성추행 사건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으나, A 씨가 주제와 무관한 개인적인 발언을 하자 사회자 등이 이를 제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고소인 조사와 관계자 진술 청취 등 절차를 순차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이에 대해 조국혁신당 측은 “대관 시간이 끝나 모두 퇴장해야 하는 상황에서 해당 남성이 ‘수십억 원 사기를 당했고 검찰 피해자’라는 취지로 발언을 이어갔다”며 “출입구로 안내하는 과정에서 바닥에 드러누우며 피해를 호소했지만, 물리적 폭행은 전혀 없었다”고 반박했다.경찰은 앞서 지난 4월에도 조국혁신당 소속 여성 당직자가 상급자에게 강제로 성추행을 당했다는 내용의 고소장을 접수한 바 있다. 이후 7월에는 가해자로 지목된 고위 당직자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는 등 관련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당구장에 있는 지인을 만나러 왔다가 그만….”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의 한 도로에 사설 구급차를 불법 정차한 운전자는 지난달 17일 오후 9시 반경 경찰관에게 이렇게 실토했다. 그는 ‘응급’이라고 적힌 사설 구급차에 환자도 태우지 않은 채 인도 위에 세워둔 참이었다. 관악경찰서 소속 권민형 경사(32)는 “이런 용도로 구급차를 쓰면 안 된다”고 경고하고 이 운전자로부터 진술서를 받았다.환자 이송 같은 긴급 상황이 아닌데도 인도 등에 불법 주정차하거나 사이렌을 울리며 도로를 질주하는 이른바 ‘비긴급 구급차’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사설 구급차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기록을 확인해 불법 운행 여부를 단속하기로 했다. ● “요금 2, 3배 주겠다” 택시처럼 호출구급차는 119 구급차와 사설 구급차로 나뉜다. 둘 다 응급환자 이송 등 정해진 목적을 어겨 사적으로 이용하면 응급의료법 위반으로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거나 구급차 운행 면허가 취소될 수 있다. 또 긴급 출동이 아닌데도 경광등을 켜거나 사이렌을 작동하면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20만 원 이하 벌금 등에 처하게 된다.하지만 119안전센터와 시도 소방상황실이 움직임을 통제하는 119 구급차와 달리, 사설 구급차는 비긴급 상황에서 운행해도 단속이 어렵다. 사설 구급차의 불법 운행이 빈번한 배경이다. 경남에서 10년 넘게 사설 구급차를 운행한 50대 운전자는 “일주일에 한 번은 정확한 증상도 말하지 않고 ‘(요금을) 2, 3배도 쳐줄 테니 그냥 가자’는 식의 연락이 온다”고 말했다. 실제로 2021년 한 사설 구급차 업체 대표는 식당 등을 방문하려고 구급차를 수차례 사용하다 적발돼 1심에서 벌금 90만 원을 선고받았다. 또 다른 운전자는 2021년부터 2022년까지 “교통체증 없이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며 행사 대행사, 연예기획사 관계자들로부터 30만 원을 받고 유명 가수를 공연장 등에 이송한 혐의로 2023년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 구급차 허위 운행, GPS로 잡기로이재명 대통령이 6월 “허위 구급차 등 기초질서 위반에 대한 계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자 전국 지자체는 7월 교육을 거쳐 이달부터 본격적인 단속에 나섰다. 특히 운행기록대장만 확인하던 기존 방식과 달리, 이번 단속에선 최초로 전국에 있는 사설 구급차 업체의 GPS 기반 운행기록장치 데이터를 운행기록대장과 대조해 병원 왕복 외 다른 경로로 차를 몬 경우 등을 잡아낼 예정이다.그동안은 지자체에 사설 구급차의 기록장치 데이터를 읽을 권한이 없었다. 그러나 사설 구급차 남용 문제가 심각해짐에 따라 보건복지부 등에서는 해당 권한을 지자체에 부여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아직 법적 권한은 없지만 특별 점검인 만큼 자치구가 업체에 데이터 제출을 요청했고, 이미 다수가 협조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향후 비긴급 구급차 단속을 강화할 방침이다.의료 현장에선 미국, 영국의 사례 등을 참고해 허위 구급차 단속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은 구급차 이송 비용을 허위로 청구할 경우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 2019년에는 미국 메릴랜드주 기반의 민간 구급차 업체가 앉거나 걸을 수 있는 환자들의 상태를 실제보다 심각한 것처럼 보고해 구급차를 운영했다는 사실이 직원들의 내부 고발로 밝혀졌고, 이 업체는 정부에 약 18억 원을 배상했다. 영국의 경우 공공기관인 보건의료품질위원회(CQC)에 구급차를 등록하도록 하고, 주기적인 현장 실사 및 불시 점검으로 등급을 부여하는 등의 방식으로 사설 구급차를 관리하고 있다.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최근 스토킹 신고를 하고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여성이 살해되는 사건이 잇따르는 가운데, 수사당국이 휴대전화로 보내는 집착성 문자나 전화 등 ‘전조 증상’을 사전에 감지해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경찰 등에 따르면 스토킹이나 데이트폭력 등 관계성 범죄는 강력범죄로 이어지기 전 뚜렷한 징후가 나타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울산 북구 사건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28일 오후 스토킹 피해로 신변 보호를 받고 있던 20대 여성이 직장 앞에서 전 연인이었던 30대 남성의 흉기에 여러 차례 찔려 중태에 빠졌다. 이에 앞서 ‘휴대전화 스토킹’이 먼저 시작됐다. 가해자는 7월 초 피해자가 “헤어지자”고 하자 엿새 동안 전화 168통, 문자메시지 400여 통을 보냈다. 지난달 26일 경기 의정부시의 한 노인보호센터에서 발생한 스토킹 살인 사건도 유사하다. 가해자인 60대 남성은 직장 동료였던 50대 여성에게 ‘밥해달라’는 등 문자를 여러 차례 보냈다가 스토킹 경고장을 받았다. 같은 달 8일엔 전 연인인 60대 여성을 스토킹해 접근금지 처분을 받자 분노해 폭행한 가해자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해당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그는 2023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전화 88통, 영상통화 9통, 문자메시지 395통을 시도하며 피해자를 괴롭혔다. 현행 스토킹처벌법은 불안과 공포를 유발하는 문자 등을 보내는 행위도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 하지만 피해자를 직접 찾아가는 등 물리적 행위에 비해 눈에 띄지 않아 간과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따라서 스토킹 신고 이력 등이 있는 가해자의 경우 통신 추적을 통해 범죄를 사전에 막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휴대전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원치 않는 연락의 지속은 전조 증상이 분명하다”며 “스토킹 재범 이력이 있는 가해자를 대상으로 통신 기록을 조회해 추적하는 방안도 잠정조치로 포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선 다양한 방식으로 스토킹 위험성을 평가하고 있다. 영국은 경찰과 국민보건서비스(NHS)가 함께 운영하는 ‘고착 위협 평가 센터’(FTAC)에서 정신건강 전문가가 스토킹 초기 위협을 평가한다. 한국에 비유하자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빅데이터를 활용해 가해 위험도를 평가하는 셈이다. 미국은 경찰, 임상심리사 등이 SNS 접근 기록, 정신질환 유무 등을 통해 스토킹 동기를 파악하고 ‘낮음-중간-높음’ 3단계로 위험군을 분류해 스토킹 재범 가능성 예측에 활용한다. 한편 관계성 범죄가 반복되자 경찰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와 협의해 현행 스토킹처벌법에 ‘지속성과 반복성’ 개념을 명확히 규정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피해자가 상대방에게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스토킹을 계속하면 횟수에 상관없이 지속성과 반복성을 인정하는 게 골자다. 또 경찰에 신고된 이후 스토킹 행위를 반복하면 ‘보복성 스토킹’으로 규정해 가중처벌하는 법안도 신설을 추진 중이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최근 스토킹 신고를 하고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여성이 살해되는 사건이 잇따르는 가운데, 수사당국이 휴대전화로 보내는 집착성 문자나 전화 등 ‘전조 증상’을 사전에 감지해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31일 경찰 등에 따르면 스토킹이나 데이트폭력 등 관계성 범죄는 강력범죄로 이어지기 전 뚜렷한 징후가 나타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울산 북구 사건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28일 오후 스토킹 피해로 신변 보호를 받고 있던 20대 여성이 직장 앞에서 전 연인이었던 30대 남성의 흉기에 여러 차례 찔려 중태에 빠졌다. 이에 앞서 ‘휴대전화 스토킹’이 먼저 시작됐다. 가해자는 7월 초 피해자가 “헤어지자”고 하자, 엿새 동안 전화 168통, 문자메시지 400여 통을 보냈다.지난달 26일 경기 의정부시의 한 노인보호센터에서 발생한 스토킹 살인 사건도 유사하다. 가해자인 60대 남성은 직장 동료였던 50대 여성에게 ‘밥해달라’는 등 문자를 여러 차례 보냈다가 스토킹 경고장을 받았다. 같은 달 8일엔 전 연인인 60대 여성을 스토킹해 접근금지 처분을 받자 분노해 폭행한 가해자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해당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그는 2023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전화 88통, 영상통화 9통, 문자메시지 395통을 시도하며 피해자를 괴롭혔다.현행 스토킹처벌법은 불안과 공포를 유발하는 문자 등을 보내는 행위도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 하지만 피해자를 직접 찾아가는 등 물리적 행위에 비해 눈에 띄지 않아, 간과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따라서 스토킹 신고 이력 등이 있는 가해자의 경우 통신 추적을 통해 범죄를 사전에 막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휴대전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원치 않는 연락의 지속은 전조 증상이 분명하다”며 “스토킹 재범 이력이 있는 가해자를 대상으로 통신 기록을 조회해 추적하는 방안도 잠정조치로 포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해외에선 다양한 방식으로 스토킹 위험성을 평가하고 있다. 영국은 경찰과 국민보건서비스(NHS)가 함께 운영하는 ‘고착 위협 평가 센터’(FTAC)에서 정신건강 전문가가 스토킹 초기 위협을 평가한다. 한국에 비유하자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빅데이터를 활용해 가해 위험도를 평가하는 셈이다. 미국은 경찰, 임상심리사 등이 SNS 접근 기록, 정신질환 유무 등을 통해 스토킹 동기를 파악하고 ‘낮음-중간-높음’ 3단계로 위험군을 분류해 스토킹 재범 가능성 예측에 활용한다.한편 관계성 범죄가 반복되자 경찰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와 협의해 현행 스토킹처벌법에 ‘지속성과 반복성’ 개념을 명확히 규정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피해자가 상대방에게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스토킹을 계속하면 횟수에 상관없이 지속성과 반복성을 인정하는 게 골자다. 또 경찰에 신고된 이후 스토킹 행위를 반복하면 ‘보복성 스토킹’으로 규정해 가중처벌하는 법안도 신설을 추진 중이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사제 총기로 아들을 살해한 60대 남성 사건이 충격을 안긴 가운데, 비슷한 세대 남성의 강력 범죄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생계형이나 경범죄 위주였던 범죄 성격도 최근엔 폭력, 방화, 성범죄 등으로 거칠어지고 있다. 이른바 ‘육대남’으로 불리는 60대 남성들이 은퇴 후 겪는 사회적 고립과 경제적 불안 등이 대인관계 문제 등 사소한 갈등과 맞물려 범죄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4년 새 12% 증가… 늘어나는 60대 범죄경찰청에 따르면 강력·폭력 범죄를 저지른 60대 남성 피의자는 2018년 2만6587명(강력 2024명, 폭력 2만4563명)에서 2022년 2만9788명(강력 2373명, 폭력 2만7415명)으로 12% 늘었다. 법무부 조사를 보면 전체 수형자 중 6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2015년 9.5%에서 지난해 17.5%로 증가했다. 수형자 중 남성 비중은 약 90%에 달한다. 60대 이상 인구는 2015년 약 460만 명에서 2022년 약 700만 명으로 52.2% 증가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수형자 수는 2배 가까이로 늘었다. 성범죄도 예외는 아니다. 경찰 조사 결과 2018년 1756명이던 60대 남성 성범죄자는 2022년 2042명으로 증가했다. 올해 사회적 논란이 된 사건 중 60대가 피의자인 경우가 적지 않다. ‘서울 봉천동 화염방사기 사건’은 4월 21일 층간소음 갈등 끝에 60대 남성이 직접 제작한 화염방사기로 이웃집에 불을 지른 케이스다. 5월 ‘지하철 방화 사건’ 역시 60대 원모 씨가 서울 지하철 5호선 객차에 불을 지른 것으로,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다. 이달 12일에는 전 여자친구에 대한 스토킹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60대 남성이 전 연인을 다시 찾아가 살해하려다 경찰에 붙잡혔다.● “은퇴 이후 상실감, 좌절이 공격성으로 전이” 전문가들은 60대 남성의 범죄 증가 원인으로 ‘상실감’을 공통적으로 지목한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과 교수는 “60대 남성은 베이비붐 세대의 일원으로 한국 사회의 중추였지만, 은퇴 후 사회적 지위를 잃고 역할이 사라졌다는 생각에 쉽게 무력감을 느낀다. 지위 변화에 따른 심리적 충격이 클 수 있다”고 분석했다.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60대 남성 인구는 약 387만 명으로, 젊고 사회적으로도 가장 왕성한 나이인 30대 남성(347만 명)보다 많다. 현재의 60대는 1958∼1963년생인 베이비붐 세대다. 이들은 1990년대 경제 호황기에 사회 핵심층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경제 기반이 흔들렸다. 이후 2010년대에 접어들며 본격적인 은퇴 시기를 맞았고, 다수는 무직이 되거나 비정규·단기 일자리로 옮겨갔다. 은퇴 후 남은 삶의 시간도 60대들에게 부담이 된다고 한다. ‘건강한 60대’라는 인식이 오히려 심리적 괴리감을 키운다는 것. 김 교수는 “‘몸은 멀쩡한데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없다’는 생각이 고립감과 공격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생존한 부모와 독립하지 못한 자녀를 동시에 부양하는 역할도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21일 발생한 조모 씨(62)의 사제 총기 살인 사건도 60대 남성의 심리적 박탈감이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 씨는 20여 년 전 이혼한 전처가 사업적으로 성공한 데 대해 열등감을 느꼈으며, 가족 갈등이 범행으로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하철 5호선에 불을 지른 원 씨 역시 “이혼 소송에 불만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60대는 사회적 역할 변화가 본격화되는 시기”라며 “이런 전환에 적응하지 못할 경우 사소한 갈등도 자존심 문제로 비화돼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대다수 60대는 심리건강 지켜내, 지원책은 강화해야” 하지만 이 같은 60대의 상실감을 범죄와 관련된 ‘위험 신호’로만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60대 대다수는 상실감을 겪어도 자기 관리를 통해 심리적 건강을 지켜내고 일자리를 찾는 등 어떻게든 가족과 사회에 기여하려 한다”며 “일부의 문제를 전체로 보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일부 60대 남성들의 범죄가 부각되고 있는 만큼, 이들 세대의 심리적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복지 및 일자리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는 “은퇴 후에도 사회와 연결될 수 있는 관계망이 절실하다”며 “단순한 일자리 제공이 아니라, 대화하고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 중심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60대 남성의 심리 상태를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는 상담 인프라 구축과 심층 연구도 시급하다”고 덧붙였다.정서영 기자 cero@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산사태로 쏟아진 토사가 논 700평을 덮쳤어요.” 21일 경남 산청군 산청읍 부리마을에서 만난 주민 김진한 씨(79)는 눈물부터 훔쳤다. 그는 “자식처럼 키운 콩과 벼가 망가져 언제 피해 복구가 가능할지 막막하기만 하다”고 했다. 한반도를 덮친 ‘괴물 폭우’로 1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산청군에선 농업·축산업 종사자들의 재산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3명이 사망하고 4명이 실종된 경기 가평군 역시 여름철 성수기에 수해 피해를 입어 관광산업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전 군민 대피령이 내려졌던 19일 이후 산청군에서는 호우로 인한 농가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시천면 주민 손경모 씨는 “(이번 수해로) 1200평 딸기밭을 모두 날리고 곶감 농사가 수해를 입는 등 한 해 농사를 망쳤다. 추석에 팔 작물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라고 했다. 전봇대 파손으로 인한 단전 피해도 이어지고 있다. 21일 현재도 비가 계속 내리면서 전력 복구가 지연됐다. 같은 마을에서 양봉업을 하는 정기호 씨(61)는 “양봉장 냉장시설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벌에게 줄 먹이가 모두 상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산청군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지역 전체 취업자의 56%가 농업·임업·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가평군은 여름철 수입의 약 20%를 차지하는 관광산업에서 직격탄을 맞았다. 대학 MT, 수상레저, 골프장 등 여름철에 수익이 집중되는 업종이 많은 만큼, 피해 규모는 단순한 재산 피해를 넘어 지역 경제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행정안전부는 21일 광주시, 전북도, 전남도, 경남도에 재난안전관리 특별교부세(특교세) 55억 원을 추가 지원한다고 밝혔다. 앞서 17일에는 경기도와 충남도에 25억 원을 지원한 바 있다. 특교세는 재난 등으로 갑작스럽게 발생한 재정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에 지원되는 예산이다. 행안부는 지자체에 예비비와 재난관리기금 등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재원을 활용해 구호 물품 지원과 임시 주거시설 마련에 적극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피해 지원은 세제 감면을 중심으로 추진된다. 침수되거나 파손된 자동차에 대해서는 자동차세가 면제되며, 멸실·파손된 주택·축사·농기계·차량을 새로 취득할 경우 취득세와 등록면허세가 면제된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된 지역의 주민은 지방세 감면 혜택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지방소득세와 취득세 납부 기한이 최대 1년까지 연장되고, 지방세 체납액에 대한 징수도 유예된다. 도시가스와 상하수도 요금 등 생활요금 감면도 가능하다. 금융 지원도 병행된다. 행안부는 지역 새마을금고와 협력해 피해 가구와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대출 만기 연장(1년 이내) △원리금 상환 유예(6개월 이내) △긴급자금 대출 등을 시행할 예정이다. 자원봉사단도 현장에 투입된다.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와 지역 자원봉사센터는 ‘통합자원봉사지원단’을 구성해 이재민 지원과 피해 복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정부는 전날 ‘범정부 복구대책지원본부’를 가동하며 대응 체계를 복구 중심으로 전환했다. 새마을운동중앙회, 한국자유총연맹,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등 3대 국민운동 단체와도 협력해 피해 지역의 복구와 이재민 구호에 나설 계획이다.산청=정서영 기자 cero@donga.com산청=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가평=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송진호 기자 jino@donga.com}

“산사태로 쏟아진 토사가 논 700평을 덮쳤어요.”21일 경남 산청군 산청읍 부리마을에서 만난 주민 김진한 씨(79)는 눈물부터 훔쳤다. 그는 “자식처럼 키운 콩과 벼가 망가져 언제 피해 복구가 가능할지 막막하기만 하다”고 했다.한반도를 덮친 ‘괴물 폭우’로 1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산청군에선 농업·축산업 종사자들의 재산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3명이 사망하고 4명이 실종된 경기 가평군 역시 여름철 성수기에 수해 피해를 입어 관광산업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전 군민 대피령이 내려졌던 19일 이후 산청군에서는 호우로 인한 농가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시천면 주민 손경모 씨는 “(이번 수해로)1200평 딸기밭을 모두 날리거나 곶감 농사가 수해를 입는 등 한 해 농사를 망쳤다. 추석에 팔 작물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라고 했다.전봇대 파손으로 인한 단전 피해도 이어지고 있다. 21일 현재도 비가 계속되면서 전력 복구가 지연됐다. 같은 마을에서 양봉업을 하는 정기호 씨(61)는 “양봉장 냉장시설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벌에게 줄 먹이가 모두 상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산청군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지역 전체 취업자의 56%가 농업·임업·어업에 종사하고 있다.가평군은 여름철 수입의 약 20%를 차지하는 관광산업에서 직격탄을 맞았다. 대학 MT, 수상레저, 골프장 등 여름철에 수익이 집중되는 업종이 많은 만큼, 피해 규모는 단순한 재산 피해를 넘어 지역 경제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한편 행정안전부는 21일 광주시, 전북도, 전남도, 경남도에 재난안전관리 특별교부세(특교세) 55억 원을 추가 지원한다고 밝혔다. 앞서 17일에는 경기도와 충남도에 25억 원을 지원한 바 있다. 특교세는 재난 등으로 갑작스럽게 발생한 재정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에 지원되는 예산이다.행안부는 지자체에 예비비와 재난관리기금 등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재원을 활용해 구호 물품 지원과 임시 주거시설 마련에 적극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피해 지원은 세제 감면을 중심으로 추진된다. 침수되거나 파손된 자동차에 대해서는 자동차세가 면제되며, 멸실·파손된 주택·축사·농기계·차량을 새로 취득할 경우 취득세와 등록면허세가 면제된다.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된 지역의 주민은 지방세 감면 혜택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지방소득세와 취득세 납부 기한이 최대 1년까지 연장되고, 지방세 체납액에 대한 징수도 유예된다. 도시가스와 상·하수도 요금 등 생활요금 감면도 가능하다.금융 지원도 병행된다. 행안부는 지역 새마을금고와 협력해 피해 가구와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대출 만기 연장(1년 이내) △원리금 상환 유예(6개월 이내) △긴급자금 대출 등을 시행할 예정이다.자원봉사단도 현장에 투입된다.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와 지역 자원봉사센터는 ‘통합자원봉사지원단’을 구성해 이재민 지원과 피해 복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정부는 전날 ‘범정부 복구대책지원본부’를 가동하며 대응 체계를 복구 중심으로 전환했다. 새마을운동중앙회, 한국자유총연맹,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등 3대 국민운동단체와도 협력해 피해 지역의 복구와 이재민 구호에 나설 계획이다.산청=정서영 기자 cero@donga.com산청=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가평=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송진호 기자 jino@donga.com}

“30m 앞에서 ‘살려주이소, 좀 살려주이소’ 소리쳐서 어찌든 도울라꼬 움직이려는 찰나에 산 한 개만 한 흙더미하고 바위가 확 몰아쳐서 계곡 따라 쏟아지더니 그 자리 집을 그냥 통째로 쓸어가뿌리는기라.” 20일 오전 8시 반경 경남 산청군 산청읍 내리마을 산사태 현장 인근에서 만난 황산 스님(62)이 전날 산사태로 이웃 주민들을 상당수 잃었다며 망연자실했다. 그는 “장대비가 쏟아진 지 5분도 안 돼 암자 옆 컨테이너와 집채만 한 바윗덩어리가 토사에 휩쓸려 수십 m 떠내려갔다”며 “좀 시간이 있었다면 이웃들이 그렇게 허망하게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산청에선 이번 폭우로 총 10명이 사망하고 4명이 실종됐다.● 눈앞에서 ‘살려 달라’고 하는데도 못 구해 이날 오전 찾은 내리마을은 산사태 당시 처참한 상황 그대로였다. 매몰 주택 마당에는 흰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1대가 찌그러져 있었고, 집은 포탄을 맞은 듯이 한중간이 움푹 파인 상태였다. 마당엔 성인 무릎 높이의 펄이 가득해 발이 쉬이 빠지지 않을 정도였다. 내리마을에선 전날 오전 10시 46분경 산사태로 주택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해 40대 남성 1명과 7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한 여성의 남편인 70대 남성만 대피할 곳을 찾기 위해 이동했다가 구조됐다. 사망자는 장모와 사위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자들은 갑자기 벌어진 산사태에 미처 피할 새도 없이 휩쓸렸다. 한 주민은 “1명은 화장실을 향하던 길에, 마당에 있던 다른 1명은 허리 높이까지 몸이 빠친 채로 빠져나오려다 미처 움직일 수 없게 돼 매몰됐다”고 말했다. 산사태로 도로 곳곳이 끊기며 소방당국이 제때 출동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주민들은 “소방대원들이 우회로로 빙빙 돌아오는 동안 살아남은 사람들은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한 주민은 “‘살려 달라’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구할 수 없어 마음이 찢어졌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759mm 비, 사상 첫 ‘전 군민 대피령’ 내렸지만… 이날 역시 산사태 피해를 입은 산청읍 부리 내부마을도 곳곳에 진흙과 건물 잔해가 가득했다. 도로와 교량은 끊겨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이 마을에서는 축사를 운영하던 70대 부부가 사망했다. 인근 부모님 식당에서 부모님을 도우며 작가를 꿈꾸던 20대 여성도 숨졌다. 강민정 씨(53)는 “돌아가신 분들 모두 들어봤거나 아는 사람들이다. 특히 한 분은 어제까지도 ‘옷이 예쁘다’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던 사람인데 갑작스레 돌아가시니까 너무 허탈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산청에는 16일부터 4일간 지난해 전체 강수량의 절반이 넘는 759mm의 비가 내렸다. 군은 산청읍에서 산사태가 난 직후인 오후 ‘전 군민 대피령’을 내렸다. 단일 지방자치단체가 관할 전 지역을 대상으로 대피를 권고한 것은 처음이다. 소방당국은 전날 오전 10시 20분에 대응 1단계를 발령했다가 1시간 뒤 2단계를, 같은 날 오후 1시부터는 국가소방동원령을 발령해 피해 수습에 나서고 있다. 일각에선 전 군민 대피령을 내리기 전에 이미 사망자 및 실종자 다수가 발생한 상황인 점을 근거로 늑장 대응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주민 대피령은 19일 오후 1시 50분경 내려졌지만 이미 산청읍에선 산사태로 사망자가 발생한 이후였다.● 3월 화마-7월 수마 겹친 산청군 3월 역대 최악의 산불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산청군은 넉 달 만에 수마로 큰 피해를 입으면서 군 전체가 큰 실의에 빠졌다. 1600여 가구, 2100여 명이 임시 대피소에 머물고 있다. 산불로 산림이 훼손되고 나무를 베어내면서 수마 피해가 커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시천면에서 만난 주민 손경모 씨는 “올봄 산불 때문에 마을 전체가 아직도 난리도 아닌 상황인데 비 피해까지 갑작스레 닥치니 마을 주민 전체가 한마디로 ‘멘붕’(멘털 붕괴)인 상태”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산청읍 내리마을 앞에서 만난 60대 주민은 “산청에 평생 살면서 한 해에 불난리와 물난리가 동시에 난 것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은 것도 처음”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산청읍 주민 송모 씨(63)는 “눈앞에서 사람이 살려 달라고 하는 걸 보고 트라우마에 걸려서 정신안정센터로 가신 분도 계시고 지체장애인인 주민이 가까스로 소방대원의 도움을 받아 탈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산청=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산청=정서영 기자 cero@donga.com산청=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30미터 앞에서 ‘살려주이소, 좀 살려주이소’ 소리쳐서 어찌든 도울라꼬 움직이려는 찰나에 산 한 개만한 흙더미하고 바위가 확 몰아쳐서 계곡 따라 쏟아지더니 그 자리 집을 그냥 통째로 쓸어가뿌리는기라.”20일 오전 8시 반경 경남 산청군 산청읍 내리 마을 산사태 현장 인근에서 만난 황산 스님(62)이 전날 산사태로 이웃주민들을 상당수 잃었다며 망연자실해하고 말했다. 그는 “장대비가 쏟아진 지 5분도 안 돼 암자 옆 컨테이너와 집 채만한 바위덩어리가 토사에 휩쓸려 수십 미터 떠내려 갔다”며 “좀 시간이 있었다면 이웃들이 그렇게 허망하게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산청에선 이번 폭우로 총 10명이 사망하고 4명 실종됐다.● 눈 앞에서 ‘살려달라’고 하는데도 못 구해이날 오전 찾은 내리 마을은 산사태 당시 처참한 상황 그대로였다. 매몰 주택 마당에는 흰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1대가 찌그러져 있었고, 집은 포탄을 맞은 듯이 한중간이 움푹 패인 상태였다. 마당엔 성인 무릎 높이의 뻘이 가득해 발이 쉬이 빠지지 않을 정도였다.내리 마을에선 전날 오전 10시 46분경 산사태로 주택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해 40대 남성 1명과 7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한 여성의 남편인 70대 남성만 대피할 곳을 찾기 위해 이동했다가 구조됐다. 사망자는 장모와 사위 사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자들은 갑자기 벌어진 산사태에 미처 피할 새도 없이 휩쓸렸다. 한 주민은 “1명은 화장실을 향하던 길에, 마당에 있던 다른 1명은 허리 높이까지 몸이 빠친 채로 빠져 나오려다 미처 움직일 수 없었던 상황에 매몰됐다”라고 말했다. 산사태로 도로 곳곳이 끊기며 소방당국이 제때 출동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주민들은 “소방대원들이 우회로로 빙빙 돌아오는 동안 살아남은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한 주민은 “‘살려달라’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구할 수 없어 마음이 찢어졌다”고 눈시울을 붉혔다.●759mm 비, 사상 첫 ‘전 군민 대피령’ 내렸지만…이날 역시 산사태 피해를 입은 산청읍 부리 내부 마을도 곳곳에 진흙과 건물 잔해가 가득했다. 도로와 교량은 끊겨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이 마을에서는 축사를 운영하던 70대 부부가 사망했다. 인근 부모님 식당에서 부모님을 도우며 작가를 꿈꾸던 20대 여성도 숨졌다. 강민정 씨(53)는 “돌아가신 분을 모두 들어봤거나 아는 사람들이다. 특히 한 분은 어제까지도 ‘옷이 예쁘다’라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던 사람들인데 갑작스레 돌아가니까 너무 허탈할 따름”이라고 말했다.산청에는 16일부터 4일간 지난해 전체 강수량의 절반이 넘는 759mm의 비가 내렸다. 군은 산청읍에서 산사태가 난 직후인 오후 ‘전 군민 대피령’을 내렸다. 단일 지방자치단체가 관할 전 지역을 대상으로 대피를 권고한 것은 처음이다. 소방당국은 전날 오전 10시 20분에 대응 1단계를 발령했다가 1시간 뒤 2단계를, 같은 날 오후 1시부터는 국가소방동원령을 발령해 피해 수습에 나서고 있다.일각에선 전 군민 대피령을 내리기 전 이미 사망자 및 실종자 다수가 발생한 상황인 점을 근거로 늑장 대응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주민 대피령은 19일 오후 1시 50분 경 내려졌지만, 이미 산청읍에서 산사태로 사망자가 발생한 이후였다.● 3월 화마-7월 수마, “어떻게 살란 말인가” 3월 역대 최악 산불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산청군은 넉 달만에 수마로 큰 피해를 입으면서 군 전체가 큰 실의에 빠졌다. 1600여 가구, 2100여 명이 임시 대피한 대피소에서는 “우리는 어떻게 살라는 말이냐”는 탄식이 곳곳에서 새어나왔다. 산불로 산림이 훼손되고 나무를 베어내면서 수마 피해가 커졌다는 지적도 나왔다.시천면에서 만난 주민 손경모 씨는 “올 봄 산불 때문에 마을 전체가 아직도 난리도 아닌 상황인데 비 피해까지 갑작스레 닥치니 마을 주민 전체가 한 마디로 ‘멘붕’(멘탈붕괴)인 상태”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산청읍 내리 마을 앞에서 만난 60대 주민은 “산청에 평생 살면서 한 해에 불난리와 물난리가 동시에 난 것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은 것도 처음”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산청읍 주민 송모 씨(63)는 “눈 앞에서 사람이 살려달라고 하는 걸 보고 트라우마에 걸려서 정신안정센터로 가신 분도 계시고 지체장애인인 주민이 가까스로 소방대원의 도움을 받아 탈출하기도 했다”라며 “하늘이 참 무심하다”고 말했다.산청=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산청=정서영 기자 cero@donga.com산청=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논란 속에서 상처받았을 보좌진들께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14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가 개최한 인사청문회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제기된 ‘갑질 논란’에 대해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강 후보자는 쓰레기 분리배출 지시 여부에 대해 “전날 먹던 음식을 먹으려다 차에 남겨 놓은 것”이라고 했고, 비데 수리 지시 의혹에 대해선 “조언을 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의혹을 부인하던 기존 입장과는 달라진 해명을 내놓은 것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갑질 여왕’은 즉각 사퇴하라”며 총공세를 펼쳤다.● 姜 “전날 먹던 것 차에 남긴 것”이날 국민의힘 의원들은 강 후보자의 갑질 의혹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이달희 의원은 강 후보자가 보좌진에게 분리배출을 지시했다는 쓰레기가 찍힌 사진을 공개하며 “음식물 쓰레기, 일반 쓰레기가 뒤범벅이 돼 있다. 증거 사진 속 엘리베이터가 후보 자택이 맞느냐”고 물었다. 이 의원은 음식물과 쓰레기가 담긴 봉지를 가져와 강 후보자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이에 대해 강 후보자는 “전날 밤에 먹던 것(음식)을 아침으로 차를 타고 가면서 먹으려고 가지고 내려갔던 적이 있다. 그것을 다 먹지 못하고 차에 남겨 놓고 내린 건 제 잘못”이라고 해명했다. 음식물 쓰레기가 아닌 아침 식사였다는 취지다. 이에 앞서 전직 보좌진은 “집에 쓰레기가 모이면 (강 후보자가) 그냥 일상적으로 갖고 내려온다. 상자를 보면 치킨 먹고 남은 것, 만두 시켜 먹고 남은 것, 일반 쓰레기들이 다 섞여 있었다”고 주장했다.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당시 강 후보자 측은 “가사도우미가 있어 쓰레기 정리 등 집안일을 보좌진에게 시킬 필요가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하지만 이날 청문회에선 보좌진이 쓰레기를 처리한 사실관계는 인정한 것이다. 강 후보자가 보좌진에게 자택의 비데를 수리토록 지시했다는 의혹도 문제가 됐다. 강 후보자는 “지역 사무소 보좌진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조언을 구하고 부탁을 드렸던 사안”이라며 “(비데) 부품은 관련 업체를 통해 교체했다”고 했다. 이 역시 “‘집이 물바다가 됐다’고 한 보좌진에게 말한 적은 있지만 수리를 부탁한 적은 없다”고 했던 당초 해명과 달라진 것이다. 강 후보자는 “그런 것이 부당한 업무 지시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은 차마 생각을 못 했다. 보좌진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보좌진 고발 여부 놓고 위증 공방도 강 후보자의 갑질 의혹을 제보한 것으로 알려진 전직 보좌진 2명에 대한 강 후보자 측의 법적 대응 여부도 논란이 됐다. 국민의힘 서범수 의원이 “보좌진 2명에 대해 고발 조치를 하겠다고 ‘입틀막’을 하고 계시다”라고 지적하자 강 후보자는 “한 적 없다. 예고한 적도 없다”고 반박했고,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은 “저 고운 얼굴, 고운 목소리로 거짓말을 하고 계시다”라면서 위증 의혹을 제기했다. 전날 강 후보자 측 관계자가 여당 의원실에 배포한 것으로 알려진 문건에 “악의적으로 허위 사실을 제보하고 있는 전직 보좌진 2명으로 파악. 모두 법적 조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는 것이 근거였다. 그러나 강 후보자는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고 맞섰다. 강 후보자가 퇴직한 보좌진에게 불이익을 줬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한 의원은 “(사직하는 보좌진에게) 권고사직 처리를 안 해줘 실업급여도 받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퇴직 후 취업 방해까지 했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강 후보자는 “본인이 원하는 형식으로 사직이 됐다”고 반박했다. 강 후보자가 서울 종로구에 거주하면서 지역구인 강서구로 위장전입을 했다는 의혹도 논란이 됐다. 강 후보자는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가 기존 친구들과 자주 만날 수 있고 본인이 익숙한 환경에서 조금씩 적응할 수 있도록 광화문 집을 그대로 유지했다”고 해명했다. 이 과정에서 강 후보자는 감정에 복받친 듯 울먹이며 몇 초간 말을 잇지 못했다.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서 “감정 잡는다”는 비난이 터져 나오자 민주당 백승아 의원은 “그러지 말라”며 반발하기도 했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아이 하굣길이 불안해서 사설 경호업체를 알아볼까 고민 중입니다.” 서울 서초구에서 7세 자녀를 키우는 양수찬 씨(43)는 최근 자녀가 귀가하는 시간마다 불안하다며 14일 이렇게 말했다. 최근 서초구에서 한 70대 여성이 초등학생에게 현금을 제안하며 집으로 유인하려 한 사건 이후 학부모 사이에서 불안이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양 씨는 “맞벌이 부부라 아이의 등하굣길을 직접 챙기지 못할 때가 많다. 돈이 들더라도 믿고 맡길 만한 곳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하루 20만 원’ 경호 서비스에도 문의 최근 서울에서 약취(납치) 및 유인(유괴) 관련 신고가 잇달아 접수되면서 일부 학부모들은 사설 경호업체를 통한 ‘등하교 동행 서비스’까지 알아보는 등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2일 서초구에 있는 초등학교 인근에서는 70대 여성이 “내 부탁을 들어주면 현금 1만 원을 주겠다”며 한 초등학생을 집으로 데리고 가려 했다. 아이의 거부로 무산됐지만, 학부모는 해당 여성을 신고했다. 경찰 조사에서 이 여성은 거동이 불편해 아이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납치나 유괴 등 범죄가 성립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강압이나 고의성이 있었는지 등을 살펴보고 있다. 14일 동아일보가 접촉한 6곳의 사설 경호업체들은 최근 학부모 문의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전했다. 경호업체 대표 윤문기 씨(57)는 “최근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 일대에서 자녀 등하굣길에 동행해 달라는 요청이 하루에도 여러 건씩 들어온다”며 “하루 최소 20만 원이라는 비용에도 불구하고 경호를 의뢰하겠다는 학부모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호업체 대표 김형진 씨(45)에 따르면 전체 의뢰 중 70∼80%는 서울 강남 지역에서 왔다고 한다. 특히 학부모 사이에선 아이의 동선을 따라가며 눈에 띄지 않게 보호하는 방식의 ‘밀착 동행 경호’가 인기를 끌고 있다. 경호업체 대표 이현석 씨(45)는 “아무래도 학부모나 아이들 모두 부담스럽지 않도록 잘 드러나지 않게 보호받는 것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납치·유괴 사건 4년 새 1.5배로미성년자 납치 및 유괴 사건은 증가 추세다. 경찰청 범죄 통계에 따르면 미성년자 납치·유괴 사건은 2019년 171건에서 2023년 258건으로 4년 새 1.5배로 증가했다. 이달 1일 경기 남양주시에서는 초등학생 여아를 간식 등으로 유인해 자신의 차에 태워 유괴하려 한 혐의로 70대 남성이 붙잡혔다. 올 4월 강남구 역삼동에서는 남성 2명이 “음료수 사줄까”라며 초등학교 남학생을 유인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해당 사건은 범죄 혐의점이 없어 마무리됐지만, 일대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컸다. 같은 달 인천 연수구의 한 초등학교 인근에선 초등학생 2명을 차량으로 유인한 뒤 성추행한 혐의로 20대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남성이 긴급 체포되기도 했다.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미성년자 납치·유괴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가정통신문을 배포하고 있다. 가정통신문에는 ‘낯선 사람의 말에 응하지 않기’ ‘음식이나 선물 등 받지 않기’ 등의 예방책이 안내됐다. 전문가들은 “범행 의도가 뚜렷하지 않더라도, 판단 능력이 부족한 아동을 보호자 동의 없이 데려가려 한 행위는 상황에 따라 납치나 유괴로 간주될 수 있다”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실제 납치 및 유괴 상황을 상정한 시나리오 기반의 교육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생의 경우 ‘낯선 사람’이라는 개념 자체가 정립되지 않아 쉽게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며 “수상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주변의 어른이 도울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 학교 등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한 납치·유괴 아동 구출 매뉴얼 등을 마련해 배포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논란 속에서 상처받았을 보좌진들께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14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가 개최한 인사청문회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제기된 ‘갑질 논란’에 대해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강 후보자는 쓰레기 분리배출 지시 여부에 대해 “전날 먹던 음식을 먹으려다 차에 남겨 놓은 것”이라고 했고, 비데 수리 지시 의혹에 대해선 “조언을 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의혹을 부인하던 기존 입장과는 달라진 해명을 내놓은 것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갑질 여왕’은 즉각 사퇴하라”며 총공세를 펼쳤다.● 姜 “전날 먹던 것 차에 남긴 것”이날 국민의힘 의원들은 강 후보자의 갑질 의혹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이달희 의원은 강 후보자가 보좌진에게 분리배출을 지시했다는 쓰레기가 찍힌 사진을 공개하며 “음식물 쓰레기, 일반 쓰레기가 뒤범벅이 돼 있다. 증거 사진 속 엘리베이터가 후보 자택이 맞느냐”고 물었다. 이 의원은 음식물과 쓰레기가 담긴 봉지를 가져와 강 후보자에게 보여주기도 했다.이에 대해 강 후보자는 “전날 밤에 먹던 것(음식)을 아침으로 차를 타고 가면서 먹으려고 가지고 내려갔던 적 있다. 그것을 다 먹지 못하고 차에 남겨 놓고 내린 건 제 잘못”이라고 해명했다. 본인이 들고 나온 음식을 차에 남긴 탓에 보좌진이 처리하게 됐다는 취지다.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당시 강 후보자 측은 “가사도우미가 있어 쓰레기 정리 등 집안일을 보좌진에 시킬 필요가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하지만 이날 청문회에선 보좌진이 쓰레기를 처리한 사실관계는 인정한 것이다. 국민의힘 한지아 의원은 “가사도우미가 없으면 보좌진이 해야 하는 일인가. 논점을 흐리는 내용”이라고 비판했다.강 후보자가 보좌진에게 자택의 비데를 수리토록 지시했다는 의혹도 문제가 됐다. 강 후보자는 “지역 사무소 보좌진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조언을 구하고 부탁을 드렸던 사안”이라며 “(비데) 부품은 관련 업체를 통해 교체했다”고 했다. 이 역시 “‘집이 물바다가 됐다’고 한 보좌진에게 말한 적은 있지만 수리를 부탁한 적은 없다”고 했던 당초 해명과 달라진 것이다. 강 후보자는 “그런 것이 부당한 업무 지시로 보여질 수 있다는 것은 차마 생각을 못 했다. 보좌진께 사과드린다”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보좌진 고발 여부 놓고 위증 공방도강 후보자의 갑질 의혹을 제보한 것으로 알려진 전직 보좌진 2명에 대한 강 후보자 측의 법적 대응 여부도 논란이 됐다. 국민의힘 서범수 의원이 “보좌진 2명에 대해 고발 조치를 하겠다고 ‘입틀막’을 하고 계시다”라고 지적하자 강 후보자는 “한 적 없다. 예고한 적도 없다”고 반박했고,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은 “저 고운 얼굴, 고운 목소리로 거짓말을 하고 계시다”라면서 위증 의혹을 제기했다. 전날 강 후보자 측 관계자가 여당 의원실에 배포한 것으로 알려진 문건에 “악의적으로 허위사실을 제보하고 있는 전직 보좌진 2명으로 파악. 모두 법적 조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는 것이 근거였다. 그러나 강 후보자는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며 “청문 준비단 내부에서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디어를 모았던 것”이라고 맞섰다.강 후보자가 퇴직한 보좌진에게 불이익을 줬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한 의원은 “(사직하는 보좌진에게) 권고사직 처리를 안 해줘 실업급여도 받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퇴직 후 취업 방해까지 했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강 후보자는 “본인이 원하는 형식으로 사직이 됐다”고 반박했다. 강 후보자가 서울 종로구에 거주하면서 지역구인 강서구로 위장전입을 했다는 의혹도 논란이 됐다. 강 후보자는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가 기존 친구들과 자주 만날 수 있고 본인이 익숙한 환경에서 조금씩 적응할 수 있도록 광화문 집을 그대로 유지했다”고 해명했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위장전입 의혹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고 14일 밝혔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아이 하굣길이 불안해서 사설 경호업체를 알아볼까 고민 중입니다.”서울 서초구에서 7세 자녀를 키우는 양수찬 씨(43)는 최근 자녀가 귀가하는 시간마다 불안하다며 14일 이렇게 말했다. 최근 서초구에서 한 70대 여성이 초등학생에게 현금을 제안하며 집으로 유인하려 한 사건 이후 학부모 사이에서 불안이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양 씨는 “맞벌이 부부라 아이의 등하굣길을 직접 챙기지 못할 때가 많다. 돈이 들더라도 믿고 맡길 만한 곳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하루 20만 원’ 경호 서비스에도 문의 최근 서울에서 약취(납치) 유인(유괴) 관련 신고가 잇달아 접수되면서 일부 학부모들은 사설 경호업체를 통한 ‘등하교 동행 서비스’까지 알아보는 등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2일 서초구에 있는 초등학교 인근에서는 70대 여성이 “내 부탁을 들어주면 현금 1만 원을 주겠다”며 한 초등학생을 집으로 데리고 가려 했다. 아이의 거부로 무산됐지만, 학부모는 해당 여성을 신고했다. 경찰조사에서 이 여성은 거동이 불편해 아이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납치나 유괴 등 범죄가 성립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강압이나 고의성 여부 등을 살펴보고 있다. 14일 동아일보가 접촉한 6곳의 사설 경호업체들은 최근 학부모 문의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전했다. 경호업체 대표 윤문기 씨(57)는 “최근 강남구와 서초구 일대에서 자녀 등하굣길에 동행해 달라는 요청이 하루에도 여러 건씩 들어온다”며 “하루 최소 20만 원이라는 비용에도 불구하고 경호를 의뢰하겠다는 학부모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호업체 대표 김형진 씨(45)에 따르면 전체 의뢰 중 70~80%는 서울 강남 지역에서 왔다고 한다.특히 학부모 사이에선 아이의 동선을 따라가며 눈에 띄지 않게 보호하는 방식의 ‘밀착 동행 경호’가 인기를 끌고 있다. 경호업체 대표 이현석 씨(45)는 “아무래도 학부모나 아이들 모두 부담스럽지 않도록 잘 드러나지 않게 보호받는 것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 납치·유괴 사건 4년 새 1.5배로미성년자 납치 및 유괴 사건은 증가 추세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미성년자 납치·유괴 사건은 2019년 171건에서 2023년 258건으로 4년 새 1.5배로 증가했다. 이달 1일 경기 남양주시에서는 초등학생 여아를 간식 등으로 유인해 자신의 차에 태워 유괴하려 한 혐의로 70대 남성이 붙잡혔다. 올 4월 강남구 역삼동에서는 남성 2명이 “음료수 사줄까”라며 초등학교 남학생을 유인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해당 사건은 범죄 혐의점이 없어 마무리됐지만, 일대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컸다. 같은달 인천 연수구의 한 초등학교 인근에선 초등학생 2명을 차량으로 유인한 뒤 성추행한 혐의로 20대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남성이 긴급 체포되기도 했다.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미성년자 납치·유괴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가정통신문을 배포하고 있다. 가정통신문에는 ‘낯선 사람의 말에 응하지 않기’ ‘음식이나 선물 등 받지 않기’ 등이 예방책이 안내됐다.전문가들은 “범행 의도가 뚜렷하지 않더라도, 판단 능력이 부족한 아동을 보호자 동의 없이 데려가려 한 행위는 상황에 따라 납치나 유괴로 간주될 수 있다”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실제 납치 유괴 상황을 가장한 시나리오 기반의 교육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생의 경우 ‘낯선 사람’이라는 개념 자체가 정립되지 않아 쉽게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며 “수상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주변의 어른이 도울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 학교 등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한 납치 유괴 아동 구출 매뉴얼 등을 마련해 배포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법원이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의혹을 부정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첫 변론’ 제작자들에게 상영 금지와 함께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을 명령했다.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15부(재판장 윤찬영)는 박 전 시장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영화 ‘첫 변론’의 김대현 감독과 단체 ‘박원순을 믿는 사람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재판부는 피고들이 공동으로 피해자에게 1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또한 2023년 11월 29일부터 판결 선고일인 2025년 7월 3일까지는 연 5%, 이후 완제일까지는 연 12%의 이자를 붙여 지급하라고 판시했다.아울러 영화 ‘첫 변론’의 유·무선 상영과 스트리밍, 다운로드 서비스 제공은 물론, 이를 위한 광고 집행도 모두 금지됐다. DVD, 비디오 CD, 카세트테이프 등의 방식으로 제작·판매·배포하는 행위도 금지됐다. 이를 위반할 경우 위반 행위 1회당 2000만 원을 피해자에게 지급해야 한다.재판부는 영화에 대해 “피해자가 여성단체나 변호인의 영향을 받아 왜곡된 기억으로 고인을 허위로 고소했고, 그 결과 고인이 사망에 이르렀다는 비난을 담고 있다”며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인격권을 중대하게 침해했다”고 판단했다.피고 측은 영화가 국민적 관심사였던 사건을 다룬 공익적 표현이라며 위법성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공공의 이익보다는 고인의 가해 사실을 축소·부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첫 변론’은 박 전 시장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손병관 오마이뉴스 기자의 저서 ‘비극의 탄생’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해당 도서와 영화는 피해자의 ‘피해자다움’을 문제 삼는 등의 내용으로 2차 가해 논란을 불렀다.이 영화는 앞서 2023년 9월 20일에도 서울시와 피해자 측의 신청에 따라 법원에서 상영·판매·배포 금지 결정이 내려진 바 있다. 당시 법원은 “영화의 주요 내용이 사실이라고 보기 어렵고 피해자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다”며, “피해자에 대한 성희롱은 국가인권위원회와 행정법원의 판단으로도 반복적으로 인정된 사안”이라고 밝혔다.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이진숙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교수 재직 시절 논문 130개를 분석한 결과 최소 논문 11개에서 ‘제자 논문 표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10일 확인됐다. 제자 논문에 쓰인 ‘초례(초래)하다’라는 오타까지 그대로 자기 논문에 옮겨 쓴 사례마저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이 후보자가 여러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면 (임명 강행이)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제자 학위 논문 오타 “초례하다” 그대로 써10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이 후보자가 1저자로 등록된 논문 130개를 표절 검사 서비스 ‘카피킬러’를 통해 분석한 결과 이 중 최소 11개는 먼저 발표되거나 지도교수인 이 후보자에게 이미 제출된 제자들의 논문과 내용이 상당히 겹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후보자의 해당 논문들은 제자들의 논문과 20∼45%의 표절률을 보였다. 학계에선 표절률이 20% 이상이면 표절 의혹을 둘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본다.표절 의혹이 있는 논문 중엔 오탈자를 그대로 적은 논문도 있었다. 이 후보자가 지도한 대학원생 A 씨는 2008년 10월 제출한 석사학위 논문 서론에 “역효과를 초례하고 있다”는 오자를 냈다. 그런데 이듬해 2월 이 후보자가 대한건축학회에 발표한 논문 ‘특화가로 조성을 위한 환경디자인 요소의 영향분석’의 서론에도 똑같이 “역효과를 초례하고 있다”는 오타가 발견됐다.이 후보자와 A 씨의 논문은 제목, 서론 부분이 거의 유사할 뿐 아니라 카피킬러 표절률도 45%에 달했다. 그럼에도 이 후보자는 제자 대신 본인의 이름을 1저자로 올렸다. 전문가들은 “이 후보자가 이미 제자의 논문 내용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가로채기했다는 의혹 제기가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 후보자는 표절 대상이 된 다른 제자의 논문에서 나온 오타 ‘10m wjd(정)도’를 그대로 베껴 쓰기도 했고, 또 다른 논문에선 “사용하고 않았으며”라는 비문도 똑같이 썼다.● 제자 논문과 서론-결론 상당히 유사제자의 논문과 결론이 거의 똑같은 경우도 있었다. 이 후보자가 2004년 3월 대한건축학회에 발표한 ‘1970년대 이후 한국 주택 거실의 시대별 실내구성 특성 및 이미지 경향분석’ 논문은 2002년 발행된 제자 B 씨의 석사학위 논문과 결론 부분이 상당히 유사했다. 카피킬러로 비교하니 표절률 37%로 내용이 겹쳤다. 두 논문은 결론 부분이 통째로 거의 똑같았다.전문가들은 이 후보자의 이러한 ‘제자 논문 가로채기’가 연구 윤리 위반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학계 관계자는 “제자의 학위논문과 비슷한 내용을 학술논문으로 발표할 때 제1저자는 통상 학위논문의 저자인 제자가 되는 것이 원칙이자 관례”라고 설명했다. 이어 “연구 목적이 나오는 서론이나 결과물이 포함된 결론이 상당 부분 유사하다면 데이터 중복 사용 등으로 표절 의심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후보자 측은 “2007∼2019년 (발표된) 논문들은 충남대 내외의 전문가로 구성된 연구윤리위원회의 세밀한 검증을 거쳐 연구 부정행위 없음이 밝혀진 것들”이라며 “개별 논문에 대한 구체적인 소명은 인사청문회를 통해 소상히 밝히겠다”고 해명했다. 교육부 인사청문회 준비단은 “자꾸 제1저자 이야기하는데, 이공계 쪽에선 이런 게 관행이라 문제없다고 한다”고 밝혔다.● 與 “청문회서 의혹 해소 못 하면 어려울 수도”여권 내부에서도 이 후보자의 각종 의혹과 관련해 “위험한 상황”이라며 “청문회에서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면 어려울 수 있다”며 손절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대통령실과 민주당도 이 후보자의 각종 의혹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통화에서 “여당에서도 이 후보자에게 자료를 성실하게 제출하라고 지적했다”며 “일방적으로 봐주지 않고 엄격하게 청문회에서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논문 표절, 자녀 유학 의혹에 대해 국민의 의구심을 풀어주지 못하면 낙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당 당권 주자인 박찬대 의원도 “그분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좀 있는 것 같다. 국민과 함께 눈높이에 맞는지를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10년 넘게 살았는데 이렇게까지 메마른 적은 없었어요. 여기가 강릉의 주 취수원인데 식수까지 고갈되는 거 아닐까 걱정입니다.” 8일 강원 강릉시 오봉저수지에서 카페 겸 식당을 운영하는 최성우 씨(54)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봉저수지는 강릉 일대에 농업용수는 물론이고 식수 등 생활용수까지 공급한다. 하지만 이날 저수율은 32%에 그쳤다. 하루 뒤인 9일에는 30.9%까지 떨어졌다. 여름철 평년 저수율(60%대)의 절반 수준이다. 문제는 이런 물 부족이 오봉저수지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국이 마른장마와 폭염으로 인해 ‘여름 가뭄’을 겪고 있다.● 장마철인데 물 바닥… 때 아닌 ‘여름 가뭄’이날 오봉저수지에는 황톳빛 맨바닥이 군데군데 드러나 있었다. 물이 마른 지 오래돼 풀까지 자란 곳도 눈에 띄었다. 저수지 인근 마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원예영 씨(61)는 “물이 안 들어오니 고인물이 썩어서 냄새까지 난다”고 했다. 당분간 비 소식도 없어 저수율 반등은 기대하기 어렵다. 오봉저수지를 관리하는 한국농어촌공사 강릉지사 관계자는 “저수율이 얼마나 더 떨어질지 가늠할 수 없다”며 “지금 상태로는 마을 하천 등으로 물을 방류할 여유가 없다”고 전했다. 강릉시는 지난달 13일부터 대형 건축물에서 나오는 유출 지하수를 하루 1000t가량 보조 수원으로 확보해 사용하고 있다. 이틀은 급수, 이틀은 단수를 하는 제한 공급을 시작한 데 이어 이달 1일부터는 이틀 급수, 삼일 단수를 시행 중이다. 저수율이 25% 밑으로 떨어질 경우 인근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아 저수지에 물을 채우는 ‘비상 급수’도 고려하고 있다. 문제는 다른 지역도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농어촌공사의 농업용 저수지 저수율 현황 자료에 따르면 9일 기준 각 지역 평균 저수율은 강원 49.5%, 제주 53.9%, 전남 57.8%, 전북 58.9%로, 평년 평균(64.2%)보다 많게는 15% 가까이 낮았다. 강릉 사천저수지 저수율은 20.6%, 전남 완도군 노화면 넙도저수지는 26%에 그쳤다. 한 해 중 비가 가장 많이 내리는 장마철에 때 아닌 가뭄이 찾아온 건 장마전선이 평년보다 빨리 북상하면서 ‘비 없는 장마’, 이른바 마른장마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일부 지역의 강수량은 예년 대비 크게 줄었다. 남부지방은 지난달 19일 장마가 시작돼 불과 12일 만인 이달 1일 끝났다. 제주는 14일 만인 지난달 26일 장마가 종료됐다. 두 지역 모두 역대 두 번째로 짧은 장마다. 특히 제주에선 장마 기간 중 비가 온 날이 8.5일뿐이었고, 강수량도 117.8mm로 역대 네 번째로 적었다. 강릉의 올해 누적 강수량은 234.9mm로 평년의 절반에 불과하다. 여기에 이달 상순부터 전국에 기록적인 폭염까지 겹치면서 가뭄이 더 심해졌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김준일 강릉시 구정면 어단2리 이장(72)은 “귀농해서 농사지은 지 18년째인데 이런 가뭄은 처음 본다”고 했다. ● 농가들 “기우제라도 지내고 싶은 마음”폭염과 가뭄이 장기화되며 농민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제주에서 30년 가까이 수박을 재배해 온 김수한 제주시 신엄리 이장은 “작년보다 비가 현저히 적게 내리고, 저수지까지 마르다 보니 수확량 감소가 우려된다”고 했다. 그는 “과실이 햇빛에 타는 일소 피해를 막기 위해 중간 이상 자란 수박에 신문지를 씌워놨다”며 “물을 실컷 뿌리고 싶지만 여건이 안 되니 기우제라도 지내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농업용 저수지 외에도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저수지의 수위가 계속 낮아질 경우 식수 공급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강릉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TV 자막, 출퇴근길 홍보 등을 통해 시민들에게 물 절약을 당부하고 있다. 대형 숙박업소와 공공기관 등에도 협조를 요청했다. 완도군은 해수를 식수로 바꾸는 해수 담수화 시설을 가동해 섬 지역에 물을 공급할 예정이다.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한국은 비가 집중되는 3개월 동안 물을 모아 1년을 사용하는 구조여서, 지금처럼 강수량이 부족하면 다음 해 농사와 식수 공급에도 영향이 간다”고 말했다. 이어 “댐에 모인 물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동시에 풍수 지역의 물을 가뭄 지역으로 보낼 수 있도록 수로를 연결하는 등 중장기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강릉=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강릉=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제주=송은범 기자 seb1119@donga.com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이번 여름 ‘모기 습격’에 대비해 기피제를 세 개나 사뒀어요.” 지난달 30일 경기 파주시 문산읍에서 만난 농민 김명하 씨(64)는 분무기로 하수구와 물웅덩이에 살충제를 뿌리며 이렇게 말했다. 파주시는 하루 평균 말라리아 매개 모기 개체 수가 정부 기준을 넘어 지난달 20일 말라리아 주의보가 발령됐다. 김 씨는 “밭에 작업을 나갈 때는 반드시 긴 옷을 입고, 온몸에 모기 기피제를 뿌린다”고 말했다.최근 수도권에서 붉은등우단털파리(러브버그)가 대량 발생한 가운데 말라리아를 매개하는 얼룩날개모기도 늘어나면서 피해가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21년 294명이었던 국내 말라리아 환자는 2022년 420명, 2023년 747명, 지난해 713명 등으로 늘어났다. 올해는 6월 말까지 총 201명이 말라리아에 감염됐다. 통상 7∼9월에 본격 유행하는 것을 감안하면 연내 환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최근 말라리아 환자는 북한 접경지뿐 아니라 서울 인천 등 수도권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올해 들어 이달 5일까지 서울에서는 26명, 인천에서는 39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질병청은 서울 13개구, 인천 10개구를 ‘말라리아 위험 지역’으로 선정했다. 방제 환경이 열악한 북한에서 말라리아 감염 모기가 넘어와 수도권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서 감염 모기가 넘어올 가능성이 높은 휴전선 인근 일부 지역과 최근 3년간 말라리아 환자가 보고된 적 있는 지역이 말라리아 위험지역으로 선정된다. 전문가들은 남북 협력 방역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질병청이 2030년 국내 말라리아 퇴치를 목표로 모기 감시를 강화하고 세계보건기구(WHO)와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말라리아에 대한 남북 공동 방역이 실시됐던 2008년에서 2011년에는 말라리아 환자 수가 감소 추세를 보였으나 남북 관계가 경색돼 사업이 중단된 2012년 이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전문가들은 야외 활동 시 개인 방역을 당부했다. 이동규 고신대 보건환경학과 교수는 “짧은 옷뿐만 아니라 몸에 달라붙는 옷도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몸에 달라붙는 옷은 2.5mm 정도 길이의 모기침에 의해 뚫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여름철 야외 활동을 하고 싶다면 방충망이 달린 텐트 등을 활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양영철 을지대 보건환경안전학과 겸임교수는 “말라리아 매개 모기는 최종 숙주인 사람 특유의 냄새를 좋아한다. 모기 기피제가 이 냄새를 교란할 수 있기 때문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파주=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이번 여름 ‘모기 습격’에 대비해 기피제를 세 개나 사뒀어요.”지난달 30일 경기 파주시 문산읍에서 만난 농민 김명하 씨(64)는 분무기로 하수구와 물웅덩이에 살충제를 뿌리며 이렇게 말했다. 파주시는 하루평균 말라리아 매개 모기 개체 수가 정부 기준을 넘어 지난달 20일 말라리아 주의보가 발령됐다. 김 씨는 “밭에 작업을 나갈 때는 반드시 긴 옷을 입고, 온몸에 모기 기피제를 뿌린다”고 말했다.최근 수도권에서 붉은등우단털파리(러브버그)가 대량 발생한 가운데 말라리아를 매개하는 얼룩날개모기도 늘어나면서 피해가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21년 294명이었던 국내 말라리아 환자는 2022년 420명, 2023년 747명, 지난해 713명 등으로 늘어났다. 올해는 6월 말까지 총 201명이 말라리아에 감염됐다. 통상 7~9월에 본격 유행하는 것을 감안하면 연내 환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최근 말라리아 환자는 북한 접경지뿐 아니라 서울·인천 등 수도권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올해 들어 이달 5일까지 서울에서는 26명, 인천에서는 39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질병청은 서울 13개구, 인천 10개구를 ‘말라리아 위험 지역’으로 선정했다. 방제 환경이 열악한 북한에서 말라리아 감염 모기가 넘어와 수도권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으로부터 감염 모기가 넘어올 가능성이 높은 휴전선 인근 일부 지역과 최근 3년간 말라리아 환자가 보고된 적 있는 지역이 말라리아 위험지역으로 선정된다.전문가들은 남북 협력 방역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질병청이 2030년 국내 말라리아 퇴치를 목표로 모기 감시를 강화하고 세계보건기구(WHO)와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말라리아에 대한 남북 공동방역이 실시됐던 2008년에서 2011년에는 말라리아 환자 수가 감소 추세를 보였으나 남북 관계가 경색돼 사업이 중단된 2012년 이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전문가들은 야외 활동 시 개인 방역을 당부했다. 이동규 고신대 보건환경학과 교수는 “짧은 옷뿐만 아니라 몸에 달라붙는 옷도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몸에 달라붙는 옷은 2.5mm 정도 길이의 모기침에 의해 뚫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여름철 야외활동을 하고 싶다면 방충망이 달린 텐트 등을 활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양영철 을지대 보건환경안전학과 겸임교수는 “말라리아 매개 모기는 최종 숙주인 사람 특유의 냄새를 좋아한다. 모기 기피제가 이 냄새를 교란할 수 있기 때문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주=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지난해 7월 1일 서울 시청역 앞에서 차량 역주행 사고로 시민 9명이 사망한 참사가 발생한 지 1년 되는 날, 서울에서 또다시 차량 돌진으로 시민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서울시는 시청역 사고 이후 차량과의 충돌 사고에서 보행자를 보호할 수 있는 수준의 가드레일(방호 울타리)을 추가 설치하는 등 보행자 안전을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경찰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4시경 서울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역 인근 도로에서 50대 여성이 운전하는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갑자기 인도로 돌진해 벤치에 앉아 있던 40대 남성이 치여 숨졌다. 경찰은 운전자가 ‘페달을 잘못 조작했다’고 진술한 점을 토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음주나 약물 복용 정황은 없었다고 한다. 사고 현장에는 가드레일이 설치돼 있었지만, 1년 전 시청역 참사 때처럼 차량용이 아니어서 돌진하는 차량을 막지 못했다. 2일 찾은 현장에는 전날 차량 충돌로 쓰러진 가드레일 자리에 ‘안전제일’ 문구가 적힌 띠가 대신 설치돼 있었다. 인근 가드레일들 역시 충격의 여파로 휘어진 채였다.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고 무단횡단을 막는 ‘보행자용 가드레일’이 설치돼 있었다. 시청 참사 후 1년이 지났지만 서울 시내 차량용 가드레일은 여전히 부족하거나 부실하다. 서울시는 지난해 시청 참사를 계기로 취약 구간 101곳에 8t 차량이 시속 55km로, 15도 각도로 충돌해도 보행자를 보호할 수 있는 차량용 가드레일을 설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기준으로 서울 전체에 설치된 가드레일 중 80%가 보행자용이고 관리가 부실한 곳이 적지 않았다. 이날 오전 찾은 서울 마포구 아현동 아현시장 일대 사거리에는 보행자용 가드레일은 있었지만 차량용은 없었다. 관악산 자연공원 인근 일부 가드레일은 지지대 부분이 붉게 녹슬어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시청역 사고 현장에도 차량용 가드레일이 설치돼 있긴 했지만, 사고가 난 30m 구간에만 설치돼 있었고, 건너편 도로나 인근 구역에는 여전히 보행자용 가드레일만 있었다. 국명훈 한국교통안전공단 교수는 “차량용 방호 울타리 설치를 빠르게 확대해야 하고, 최소한 인구와 차량이 많이 몰리는 곳에 우선적으로 설치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