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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은 한 끗이에요. 미세한 차이로 막장이 되기도, 명품 드라마가 되기도 하죠.” 27일 제9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이 시작된다. 개막작은 라벨라오페라단(단장 이강호)이 선보이는 베르디의 대표작 ‘가면무도회’. 연출을 맡은 이회수 씨(44)는 “연출을 할 때 대본 해석에 가장 무게를 둔다. 가면무도회는 섬세한 감정 연출이 극의 분위기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고 했다. 가면무도회 줄거리는 얼핏 막장 드라마를 닮았다. 총독 리카르도는 둘도 없는 충신인 레나토의 아내 아멜리아를 남몰래 사랑한다. 아멜리아도 리카르도에게 마음이 이끌린다. 서로의 감정을 우연히 알게 된 둘은 연정을 주고받고, 리카르도는 결국 이 사실을 알게 된 레나토의 손에 죽는다. “주역을 맡은 배우들과 감정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눠요. 아멜리아의 경우 리카르도 쪽으로 감정이 치우치면 악녀가 되고, 둘의 관계가 너무 무덤덤하면 리카르도의 죽음에 수긍하기 힘들거든요. 연출의 의도는 배우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돼요. 좋은 연출의 8할은 소통이라고 봅니다.” 이 씨는 정확하고 섬세한 연출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각본, 대사, 의상, 무대디자인…. 관객이 최대한 몰입할 수 있도록 장면 하나하나를 새롭게 다듬는다. 한데 가면무도회는 손을 거의 대지 않았다. 그는 “작품이 완벽에 가까워 변화를 거의 주지 않았다. 무대 구조만 조금씩 틀어서 인물들 간의 긴장감을 극대화했다”고 말했다. 성악가 출신인 그는 이탈리아 로마 국립예술원을 무대 디자인과 연출 논문으로 수석 졸업한 뒤 유럽 무대에서 활약했다. 2008년 귀국해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며 2013년 제6회 대한민국 오페라대상 창작 부문에서 ‘손양원’으로 작품대상 연출대상을 받았다. 그는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참가는 올해로 4번째인데, 올해는 여성 연출가가 4명이나 포함돼 깜짝 놀랐다. 섬세한 감각이 여성 연출의 장점”이라며 “관람하기 전 리플릿과 검색으로 간단한 ‘공부’를 하고 오면 재미지수가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어느 날 아내가 쓰러졌다. 병원에서도 원인을 찾지 못했다. 퍼뜩 ‘일-야근-외식’의 쳇바퀴에 몸이 시위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길로 경남 통영으로 내려왔다. 딱 1년만 속없이 놀고먹으며 건강을 다스리자는 심산이었다. 1년이 2년이 되고… 2018년 봄 어쩌다 9년 차 통영 주민이 됐다. 이따금 극한의 도시 생활이 그립지만 통영을 만나 행운이다 싶다. 이곳에선 도시와 시골을 반반 섞은 ‘어반추리 라이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통영의 봄… 특별한 뭔가가 있다“… 뒤돌아서면 그리워 끙끙대는 ‘통영앓이’를 하게 된다.” 얼마나 대단하기에 ‘통비어천가(통영+용비어천가)’가 이리 요란할까. 통영의 봄날엔 정말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걸까. 아침 공기마저 훈훈해진 7일 아침 통영으로 향했다. 차로 4시간을 달리자 통영 입성을 알리는 간판이 보였다. 창밖으로 시리게 푸른 바다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벚꽃은 만개했고 땅에는 핏빛 동백꽃잎이 수북했다. 날은 좋지 않았다. 미세먼지에 황사가 겹쳤고 바람도 거셌다. 활짝 핀 벚나무 꽃잎이 바람에 실려 어지럽게 흩날렸다. 꿈인가 싶은 꽃비 사이로 패딩 조끼를 걸친 남자가 걷는 듯 뛰는 듯 다가왔다. 경남 통영시 봉수1길에서 ‘봄날의 책방’을 운영하는 강용상 씨(49)다. “통영은 봄이 유명하지만 사실 가을이 가장 예뻐요. 바다는 시리게 푸르고 산은 ‘초록초록’하고. 모든 게 제 색을 힘껏 보여주거든요. 먹는 건 1, 2월이 제철이죠.” 서울 토박이인 강 씨는 2010년 아내와 함께 통영에 정착했다. 최근 그의 집과 사무실이 있는 봉수1길에는 슬로 라이프를 꿈꾸며 둥지를 튼 외지인이 늘었다. 5, 6월은 일본 홋카이도에서, 겨울은 태국 치앙마이에서 보내던 이웃도 있고, 국내외에서 스노보드 사진을 찍던 이웃도 있다. 통영이 제주에 이어 느리게 살기의 성지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왜 통영일까. 바로 답을 듣기보단 일단 함께 걷기로 했다. 이곳저곳 장소를 넘나들다 보면 통영에 얽힌 그의 이야기도 스르륵 봉인 해제될 것 같았다. 바다와 나란히 걷다통영에 내려온 후로 강 씨는 자주 걷는다. 서울에선 아니었다. 각각 건축과 홍보 일을 하던 남편과 아내는 일중독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 주말에나 겨우 한강변을 산책할 짬이 났다. 이곳에선 걷지 않을 이유가 없어서 걷는다. 시공간의 밀도가 높지 않고 어디를 향하든 기가 막힌 풍경에 걷고 또 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부가 운영하는 출판사와 서점은 통영의 대표 명소인 전혁림미술관과 이웃해 있다. 그는 올해 봉숫길골목상인회 회장을 맡았다. 통영 생활 9년 차, 반쯤 통영 사람이 된 셈이다. 통영의 매력을 묻자 강 씨는 잠시 정색하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곤 멋쩍게 입을 열었다. “예전엔 통영의 모든 게 신선했어요. ‘통영을 잘 아는 이방인’이라는 점이 저의 비교우위였죠. 한데 오늘은 ‘통영에 특별한 게 있나’ 싶어요. 이곳이 익숙해졌나 봐요.” ‘초심’을 떠올리려 애쓰던 그가 기억을 꺼냈다. 부동산중개업소를 찾은 부부는 바다가 잘 보이는 아파트를 찾아달라고 했다. 중개업소 대표는 “나가면 천지가 바다인데 굳이 흐릿한 창문 너머로 거실에서 바다를 봐야 하느냐”며 말렸다. 끝내 ‘바다 전망’을 고집한 부부는 바닷가 아파트에 입성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다 코빼기도 안 보이는 곳으로 이사했다. 기를 쓰고 피해도 바다를 볼 수밖에 없는 곳이란 걸 그때는 몰랐다. 그의 단골 산책로는 책방에서 충무교를 건너 강구안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느린 걸음으로 딱 1시간이 걸린다. 통영에서 가장 큰 섬인 미륵도에서 뭍으로 가려면 충무교 통영대교 해저터널 중 한 곳을 통해야 한다. 강 씨는 앞장서서 충무교를 건넌 다음 오른편 골목으로 빠졌다. 냉큼 뒤를 쫓아가니 실핏줄 같은 골목이 뻗어 있었다. 간신히 지날 만큼 좁다랗다. 시간이 멈춘 듯한 뒷골목 풍경에 감탄하다 보니 슬그머니 드는 생각. “이런 골목은 다른 도시에서도 볼 수 있지 않나요?” 기자의 질문에 그가 기다렸다는 듯 맞받아쳤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바다와 만났다 헤어졌다 하잖아요. 그게 포인트죠.” 정말 그랬다. 미로 같은 골목을 지나 해안길로 나가자 다시 바다가 나왔다. 해안길 이면도로에서 적산가옥과 나전칠기공방을 구경하며 걷다 보니 또 바다가 인사했다. 그런데 바다가 다르다. 청록색 파란색 남색 노란색…. 황홀한 색의 축제가 펼쳐졌다. “처음 통영 바다를 은빛 금빛으로 그린 그림을 보고 의아했는데 이젠 압니다. 진짜 은빛바다 황금빛바다가 있다는 걸요. 햇빛의 각도와 수온에 따라 바다색이 달리 보이는 겁니다.” 바다 위 반짝이는 물고기 비늘 같은 걸 ‘윤슬’이라고 한다. 눈이 부셨다. 강 씨가 가장 좋아하는 건 해뜰 무렵의 윤슬. 다홍 보라 노랑이 섞인 오묘한 빛깔이 예술이란다. “눈으로 봐야 자연이 자아내는 신비로운 색을 이해할 수 있어요. 해뜰 무렵에 꼭 바다에 나가 보세요.” 예술의 DNA 흐르는 통영사람들걷다 보니 반듯하고 소담한 공원이 나왔다. 통영 출신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 선생(1917∼1995)을 기리기 위한 윤이상기념공원이다. 지난해까지 이곳은 도천테마파크로 불렸다. 이름이 바뀐 사정은 아프고 복잡하다. 올해 통영은 ‘윤이상 이슈’로 속을 끓였다. 독일에 묻힌 그의 유해 이장을 놓고 전국적으로 여론이 갈린 것. 유해는 우여곡절 끝에 올 2월 고향땅을 밟았고, 지금은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 보세요. 죄다 윤이상, 유치환이지요? 통영의 웬만한 교가는 모두 선생들 손에서 탄생했습니다.” 강 씨가 이끄는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닥엔 음표 그림이, 벽면엔 교가가 가득했다. 대부분 교가가 ‘유치환 작사, 윤이상 작곡’이었다. 두 거장이 어깨동무를 하고 골목 귀퉁이에서 걸어 나올 것만 같았다. 이들뿐 아니다.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사랑하는 여인 이영도와 20년간 편지를 주고받은 청마 유치환, 그의 형인 극작가 유치진, 한국의 피카소 전혁림, 미국에서 더 유명한 소설가 김용익 등이 통영 출신이다. 백석 이중섭 등 이곳에서 영감을 받은 예인도 적지 않다. 조선시대 통영은 삼도수군통제영이라는 특별자치구였다. 군수품 제작을 위해 8도 각지에서 12공방 장인들이 모여 살았다. 통영의 ‘컨추리’가 하늘이 내린 자연환경이라면, ‘어반’은 예향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예부터 통영 장인의 나전칠기와 소반은 바라만 봐도 마음에 바람이 이는 명품이었다. 추영호 소반장의 공방엔 과거 장인들의 숨결이 그대로 깃들어 있다. 2평 남짓한 그의 공방은 박효자길의 윤이상 생가와 나란히 붙어 있다. 한데 공방 앞뒤로 길이 뚝 끊겼다. 강 씨는 “새 길을 내기 위해 시에서 공방을 허물려고 한다. 최근 토목행정으로 후퇴하는 시의 행보가 안타깝다”고 했다. 특히 문학계 큰 별들은 통영 문화력의 주춧돌이다. 최근 이들의 흔적을 찾아 성지 순례하듯 통영을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별은 졌지만 통영에 대한 애달픈 그리움은 주옥같은 문장으로 남았다.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만큼 바다빛은 맑고 푸르다.’(박경리 ‘김약국의 딸들’ 에서) ‘통영과 한산도 일대의 풍경 자연미를 나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 … 위로 보릿빛 아래로 물빛 아울리기 이야말로 금수강산 중에서도 모란꽃 한 송이다. 햇빛 바르기 눈이 부시고 공기가 향기롭기 모세관마다 스미어든다.’(정지용 ‘통영5’ 에서) 조선업이 쇠락한 이후 통영은 관광지로 이름을 알렸다. 버스를 대절해 단체로 다니던 관광객들은 이제 뒷골목을 누비며 작은 이야기를 찾는다. 어느새 다다른 강구안 뒷골목 카페거리는 이야기의 성지 격이다. 과거 유치환 박경리 전혁림 윤이상 김상옥이 새벽까지 이 골목에서 시대와 예술을 논했다. 요즘 통영 문화인들의 아지트인 ‘커피로스터스 수다’의 윤덕현 대표(42)는 “통영은 다시 한번 도약할 준비를 하는 중이다. 조선소 자리에 문화·관광·레저를 결합한 복합시설을 공모하고 있다”고 했다. 수줍은 ‘통영의 속살’통영 여행의 화룡점정은 발개로의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다. 강풍에 창밖의 바다가 뒤뚱거렸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미륵산 정상에 올랐다. 올록볼록 여성스러운 통영의 지형, 아기자기한 어항들, 구도심, 크고 작은 섬이 한눈에 들어왔다. “통영은 자연과 도심을 동시에 품고 있어요. 섬에선 자연의 원시미를, 강구안 도심에선 도회적인 기운을, 통영국제음악당에서는 정갈한 문화의 기운을 느낄 수 있죠.” 오후 9시 반, 큰발개1길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열리는 ‘2018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일정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일본의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미도리가 눈을 감은 채 윤이상의 ‘바라’를 연주했다. 외국인, 외지인, 통영 주민이 객석에서 가만히 귀를 열었다. 윤이상이 그린 음표들이 미도리의 활 끝에서 조용하고도 격렬하게 뛰놀았다. 어느새 통영의 달뜬 밤이 저물었다. “통영에는 통영만의 분위기가 있어요. 평온하지만 지루하지 않고 소박한 듯 화려하죠. 저도 아직 통영의 속살을 다 보진 못했어요. 보여줄 듯 말 듯한 신비함도 통영의 매력입니다.” 통영=이설 기자 snow@donga.com}

‘오페라(Opera)’는 꼭 문화생활의 핸디캡 같다. 친숙한 듯 낯설고, ‘한번 볼까’ 하다가도 이내 마음을 접게 된다. 때마침 오페라의 계절이다. “오페라는 꼭 한번 경험해볼 만한 인류 문화사의 정수”라고 말하는 이경재 서울시오페라단 단장(45)으로부터 오페라를 쉽게 즐기는 법을 들어보았다. △초급반 ―오페라라는 단어가 주는 부담이 있습니다. “영화 드라마가 등장하기 전 서양 사람들은 오페라를 보고 즐겼습니다. 1900년 초반까지 오페라 스타를 두고 팬끼리 다투기도 했죠. 마치 아이돌 스타에 대한 팬덤처럼요. 오페라도 즐기기 위한 장르입니다.” ―지루한 장르 아닌가요. “일단 그 매력에 빠지면 오페라만큼 격렬한 예술적 감동을 주는 장르가 없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오페라 400년 역사상 레퍼토리 2만여 개 가운데 200여 개가 살아남았다면 그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어떻게 그 매력에 빠질 수 있을까요. “최근 우연히 스킨스쿠버를 했는데, 처음 본 심해에 전율이 일더군요. 그 풍경은 바다가 탄생한 태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겠지요. 오페라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경이로운 순간을 위해 바다에 풍덩 빠지듯 마음을 열어볼 만하지 않을까요?” △중급반 ―오페라를 보기 전에 준비할 것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죠. 관련 정보를 수집하세요. 검색도 좋고 원작소설을 읽거나 유튜브 동영상을 찾아봐도 좋습니다. 국내에선 ‘투란도트’ ‘라 트라비아타’ 등이 잘 알려졌죠. 의상 음악 배우 등 뒤지다 보면 관심 분야가 생길 거예요.” ―자리에 앉았는데 벌써 졸음이 밀려옵니다. “편견입니다. 마음과 귀와 눈을 활짝 열어젖히세요. 오페라는 4차원(4D) 예술이에요. 첫째, 발성을 통해 수백 석 홀에 음색이 울려 퍼지는 게 신기하지 않나요? 둘째, 오케스트라 음악이 나를 향해 돌진합니다. 귀를 열고 아는 악기의 소리를 찾아보세요. 셋째, 무대장치도 또 다른 관전 포인트죠.” ―외국어로 부르는 노래가 생소한데요. “알고 보면 당신이 아는 오페라 곡이 상당할 겁니다. ‘카르멘’의 투우사의 노래, 하바네라, 서곡은 휴대전화 단골 벨소리예요. 영화 ‘쇼생크의 탈출’에서 주인공이 죄수들에게 들려주는 아리아는 ‘피가로의 결혼’ 속 편지의 이중창이죠. 정 답답하면 자막을 보세요.” △고급반 ―최근 극의 시대 배경 등을 바꿔 연출하는 레지테아터(Regie-Theater)가 두드러집니다. “기호의 시대예요. 오페라도 다양한 장르로 변해야 한다고 봐요. 서울시오페라단이 4월 26∼29일 선보이는 ‘투란도트’의 배경은 중국이 아닌 폐허로 변한 미래예요. 제9회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에 오르는 ‘썸타는 박사장 길들이기’도 ‘피가로의 결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습니다.” ―한국에서 오페라가 더 인기를 얻을까요. “한국 오페라 역사는 이제 70년입니다.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왔다면 이제 바로 설 차례라고 생각해요. 최근 국내 연출가들의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클래식의 깊이와 전율이 갖는 힘은 생각보다 강력합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요즘 서울에서 즐길 수 있는 다국적 맛은 더 넓고 깊어졌다. 중동 아프리카 남미 등으로 지역을 넓히는 동시에 마라탕(중국) 바인쌔오(베트남) 그린커리(태국)처럼 더 민속적인 맛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른바 ‘에스닉(Ethnic) 푸드’의 약진이다.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외식산업 경기전망지수’에 따르면 중식, 일식, 서양식을 제외한 기타 외국식 음식점의 3분기(7∼9월) 경기전망지수는 96.39로 외식업을 통틀어 가장 높았다. 같은 기간 외식업 전체 경기전망지수가 68.91인 것을 감안하면 두드러진 성과다. 에스닉 푸드를 배우거나 직접 요리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요리가 취미인 김세나 씨(37)는 “인스타그램의 ‘요리그램’ 영상을 보고 솜땀, 그린커리, 훔무스 등을 만들었다. 쿠킹클래스에서 에스닉 푸드를 가르치는 곳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입맛의 세계화.’ 에스닉 푸드가 주목받는 이유에 대해 황교익 맛칼럼니스트는 “한동안 세계화에 맞서 ‘우리의 맛’을 지키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 물건 문화가 쉽게 국경을 넘나들면서 세계화의 흐름 안에 우리의 입맛이 정면으로 들어왔다. 한마디로 입맛이 세계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한 경험에 지갑을 여는 ‘경험소비’의 영향이라는 의견도 있다. 음악 그릇 인테리어 종업원까지 현지 느낌을 살린 외국 음식점이 일종의 문화체험의 공간이란 것이다. 다만 민속적인 맛이 ‘핫’해 보이는 건 착시효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예종석 한양대 교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영향으로 최근 에스닉 푸드 바람이 부는 것 같지만 아직 일부만 즐기는 정도다. 어쨌거나 지구 반대편의 음식이 한국까지 온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최근 대중화에 성공한 중국 마라탕, 베트남 바인쌔오, 분짜와 이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요르단과 모로코의 음식 세계를 소개한다. ● 짬뽕같은… 라면같은… 중국의 매운맛자장면 비켜! “나도 있다” 마라탕“라면 같기도 하고 짬뽕 맛도 나고 매운 칼국수 같기도 하고. 먹어도 모를 맛이 마라탕의 매력 같아요.” 5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의 ‘손오공마라탕’. 인근 회사 직장인 김미리 씨(39)가 손으로 연신 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식사 시간을 피해서 방문했는데도 가게 안 테이블 3분의 2가 차 있었다. 마라탕은 중국에서 가장 매운 요리다. 향만 맡아도 코가 얼얼해지는 마라향유에 육수를 부은 다음 각종 식재료를 넣고 끓여 만든다. 쓰촨성 전통 요리로, 지금은 중국 배달음식 1위에 오를 만큼 보편화됐다. 서울 영등포구 디지털로의 ‘마부 마라탕’에서 만난 청진 씨(31)는 “마라탕은 한국의 떡볶이 자장면쯤 되는 요리다. 중국 전역에서 맛볼 수 있다”고 했다. 대부분 가게에선 원하는 식재료를 골라 담은 뒤 매운맛 정도를 선택해야 한다. 청경채 시금치 숙주 건두부 흰버섯 문어볼 새우 창자 등 식재료 30, 40가지 중에서 고를 수 있다. 손오공마라탕을 운영하는 진하이난 씨(34)는 “중국 현지 마라탕 가게의 재료는 60, 70가지가 넘는다”고 귀띔했다. 4단계 매운맛 중 가장 매운 맛을 선택하자 진 사장이 “혀가 얼얼해 말을 못할 것”이라고 말려 2단계를 택했다. 국물 맛은 곰탕 라면 짬뽕 국물을 섞은 것 같았다. 얼얼한 고추기름의 뒷맛이 그릇을 비운 뒤에도 자꾸 생각났다. 볶음요리인 마라샹궈를 먹던 20대 한국 여성은 “매운맛은 오직 음식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했다. 영등포구 대림동과 건국대 일대에 즐비하던 마라탕 전문점은 1, 2년 사이 광화문 여의도 강남은 물론이고 동네 상권으로까지 진출했다. 중국 유학생인 왕인시 씨(25)는 “유명한 마라탕집 육수 레시피는 1급 비밀이다. 육수를 만들기 힘들어 중국인들도 보통 밖에서 사먹는다”고 했다. ● 채소-해산물 넣은 베트남식 부침개꿈에도 못 잊을 바인쌔오·분짜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베트남 음식 전문점 ‘랑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국적이지만 익숙한 디자인의 의자들이 눈에 띄었다. 베트남 여행에서 본 의자였다. 랑만의 사장 이길우 씨(41)는 “베트남인들은 길가에 자그마한 접이식 의자를 놓고 커피 마시길 즐긴다”며 “의자는 물론이고 그릇 식기 탁자 등 모든 인테리어 용품을 베트남에서 가져왔다”고 했다. 랑만의 콘셉트는 프랑스 식민지 시대 막바지인 1940년대 베트남의 분위기. 그는 “베트남이라면 후진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한데 실제론 그렇지 않다. 프랑스의 영향으로 식문화가 고급스럽고 와인 커피도 훌륭하다”며 “요리뿐 아니라 베트남 문화를 체험하는 공간으로 꾸미고 싶었다”고 했다. 2000년대 쌀국수가 세상을 호령한 뒤 잠시 주춤하던 베트남 음식은 최근 날개를 달았다. 신부흥을 이끄는 건 바인쌔오와 분짜. 바인쌔오는 채소 해산물을 넣어 쌀가루에 부쳐낸 베트남식 부침개이고, 하노이 지방 대표 음식인 분짜는 차가운 소스에 돼지고기와 쌀국수 채소 등을 적셔 먹는 요리다. 바인쌔오와 분짜는 최근 다낭 등 베트남 여행 붐을 타고 국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대학원에 다니는 최은형 씨(26)는 “다낭 여행에서 맛본 바인쌔오가 자꾸 생각나 국내에서도 즐겨 먹고 있다. 2년 전만 해도 생소한 요리였는데 이젠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남미 음식도 여행의 영향으로 최근 찾는 이가 부쩍 늘었다. 서울 마포구 동교로에서 남미 음식점 ‘까를로스’를 운영하는 민재웅 씨(46)는 “남미 여행을 다녀와 치차론, 로모살타도가 그리워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이 많다. 쇠고기 감자튀김 등을 간장소스와 볶은 로모살타도는 특히 한국인 입맛에 잘 맞아 인기가 많다”며 “과거 중국인이 많이 살아서 페루 음식은 중국 음식과 비슷하다”고 했다. ● 양고기 얹혀진 찜밥… 원조 중동음식요르단 대표 요리 ‘만사프’ 한번 맛볼까“중동에 가면 밥 위에 양고기가 얹혀 나오는 이른바 ‘양고기 밥’을 많이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지역에 따라 요리법과 맛이 다 달라요. 지역마다 자기네 양고기 밥이 최고라고 주장하죠.” 5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에서 중동 음식점 ‘아라베스크’를 운영하는 피라스 알코파히 씨는 요르단의 대표 요리인 ‘만사프’를 주방에서 내오며 이렇게 강조했다. 만사프는 요르단식 ‘양고기 찜밥’. 어린 양의 어깨살을 염소치즈와 함께 끓인 뒤 향신료를 넣어 찐 밥 위에 얹는다. 그리고 크림수프같이 생긴 ‘자미드’라는 양젖 요구르트를 소스처럼 고기와 밥에 뿌려서 먹는다.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중동에서 밥 위에 양고기가 놓여 나오는 음식을 경험해 본 사람들 사이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이 원조로 알려진 ‘캅사’와도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엄연히 다르다. 한중일 모두 쇠고기찜 요리가 있지만 재료, 요리법, 맛에서 차이가 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요르단 사람들은 캅사보다 만사프가 더 유명하다고 강조한다.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지정학적으로 중동의 중앙에 위치해 있고, 사우디와 예멘보다 개방적인 요르단의 사회 분위기와 문화가 있다. 중동 외 지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요르단을 방문했기 때문에 만사프가 캅사보다 알려지기 좋은 조건을 갖췄다는 것. 다음 달 15일부터 시작돼 6월 14일로 예정된(달의 모양에 따라 약간 변경 가능) ‘라마단(이슬람 성월·해가 떠 있는 시간 중에는 금식과 금욕을 해야 함)’ 기간은 중동 음식과 문화를 즐기기 가장 좋은 시기다. 이 무렵 이태원 모스크(이슬람 사원)를 중심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중동 음식점은 저녁 음식을 즐기는 무슬림(이슬람 교인)들로 평소보다 더욱 북적이고,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 닭고기-새우로 만든 ‘할랄 샌드위치’성큼 다가온 아프리카 음식모로코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음식 문화가 발달한 나라로 꼽힌다. 아랍 국가답게 중동 음식을 기본으로 유럽과 아프리카 음식이 공존해 왔다. 중동, 유럽, 아프리카의 문화가 혼합된 음식들도 탄생했다.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의 후손으로 인정받는 왕가의 고급스러운 ‘궁중요리’부터 일반인들이 언제든지 쉽게 즐길 수 있는 ‘길거리 음식’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도 모로코의 탄탄한 음식 문화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서울 용산구 신흥로(해방촌)의 모로코 음식점인 ‘카사블랑카 샌드위치’에서는 다양한 모로코식 샌드위치를 맛볼 수 있다. 캐주얼한 모로코 음식을 편하게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모로코식 샌드위치는 프랑스의 바게트 빵을 쓰지만 내용물은 다르다. 미국과 유럽식 샌드위치와 달리 돼지고기를 이용해 만든 햄, 소시지, 베이컨은 전혀 안 들어간다. 그 대신 닭고기, 양고기, 새우 등이 주인공이다. 소스는 모로코식 토마토소스가 핵심이다. 가장 인기 있는 샌드위치는 ‘모로코식 치킨 샌드위치’와 ‘매운 양념 새우 샌드위치’. 모로코 출신으로 7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와히드 나시리 씨는 “과거에는 한국 고객 중 고수를 빼달라고 하거나 소스를 약하게 쳐달라는 이들도 있었지만 요즘은 고수와 소스를 더 달라고 하는 이들도 많다”며 웃었다.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경리단길)에는 세네갈과 감비아 음식을 맛볼 수 있는 ‘J.A.K 졸로프 아프리카 코리아’가 있다. 한국에선 맛보기 힘든 ‘블랙 아프리카’(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을 의미)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땅콩버터와 토마토로 만든 소스에 쇠고기와 양고기를 넣고 끓여 밥과 함께 먹는 ‘도모다’가 대표 메뉴다. 식당 측은 도모다를 ‘세네갈과 감비아식 스튜’라고 설명한다. 한국인들 눈에는 카레와도 비슷하게 보인다.이설 snow@donga.com·이세형 기자사진=김재명 base@donga.com·김동주 기자}

첫인상은 불친절했다. ‘바나나 제국의 몰락’이라는 제목에서 갸우뚱. 해골을 새긴 바나나 그림 표지에서 또 한번 갸우뚱. 한데 첫 문장에 바로 마음이 눈 녹듯 풀렸다. ‘털벌레의 허기가 잎의 모양을 바꾸듯 우리의 허기는 지구의 모양을 바꿨다.’ 식량, 탐욕, 자연, 생태계 등을 솜씨 좋게 요리한 책일 거란 예감이 들었다. 기대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응용생태학자인 저자는 바나나 감자 초콜릿 등 친근한 먹거리를 주제로 생물 다양성의 중요성을 짚어 나간다. 책은 바나나로 시작된다. 1950년 중앙아메리카의 한 바나나 농장주는 맛과 크기가 똑같은 단일 품종 바나나를 재배했다. 품질이 예측 가능해지자 사업은 날개를 달았다. 경제적으로 천재적인 이 발상은 그러나 생물학적으론 낙제점이었다. 1890년 바나나덩굴쪼김병균이 일으키는 파나마병이 한 농장을 덮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일대 농장 바나나 전부가 검게 변했다. 단일 품종의 비극은 1950년 전 세계로 퍼졌고, 한때 바나나계를 호령하던 그로미셸 품종은 결국 식탁에서 사라졌다. 일부 전문가들은 파나마병을 해결하지 못하면 5∼10년 후에는 바나나가 멸종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1845년 아일랜드에서도 비슷한 참사가 벌어졌다. 1843년 난균류로 감염되는 감자 역병으로 아일랜드에서만 1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거리에는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했고, 엉겨 붙은 시체를 떼어내는 기술이 개발됐다. ‘가난뱅이의 반찬은 큰 감자에 곁들인 작은 감자’였다고 할 정도로 감자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실수를 반복했다. 파나마병에 저항력이 있는 유일한 바나나라는 이유로 또 다시 단일 품종인 캐번디시를 경작해 이윤을 쌓았다. 그러나 새로운 바나나덩굴쪼김병균의 확산이 계속되고 있어 우려스러운 상황을 맞고 있다. 인간의 탐욕은 멈출 줄 몰랐고, 지금도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모양 좋고 맛난 먹거리를 위해 자연 질서를 해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끔찍한 식탁 잔혹사에 숙연해질 즈음 저자는 넌지시 말한다. ‘야생의 자연이 주는 혜택은 야생의 땅을 보전할 때에만 누릴 수 있다. 문제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종이 어느 야생의 땅에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일찍이 종의 중요성을 눈치 챈 이들도 있다. 러시아 식물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와 연구진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적군과 굶주린 아군으로부터 목숨을 걸고 17만 종의 작물 품종을 지켜냈다. 연구원 30여 명이 종자를 먹지 않기로 결심하고 쌀, 땅콩, 감자 옆에서 굶어 죽는 길을 선택한 것. 이들의 고귀한 사명감으로 러시아 작물 재배는 눈부시게 발전했다. 노르웨이의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는 핵폭탄이 터져도, 전기가 끊겨도 끄떡없다. 생물학을 쉽게 풀어내고 바람직한 생명관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생물과 무생물 사이’ 등을 펴낸 후쿠오카 신이치의 팬이라면 만족도가 높을 듯하다. 단단한 번역도 책의 품격을 높였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평양에서 공연한 남측 예술단과의 만남에서 걸그룹 레드벨벳을 평소 알고 있었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방북단에 함께한 밴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기타리스트 최희선 씨는 4일 본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이 1일 레드벨벳 멤버들과 악수를 하면서 ‘제가 같은 동포인데 레드벨벳을 왜 모르겠느냐’고 말했다”고 전했다. 25년째 ‘위대한 탄생’의 기타리스트이자 리더로 활약 중인 최 씨는 이번 공연에서 윤상 예술감독이 이끈 남측 예술단의 사실상 악단장 역할을 했다. 그는 가수 조용필과 함께 다니면서 북측 예술단으로부터 높은 관심의 대상이 됐다. 최 씨는 김 위원장의 부인인 리설주도 ‘가왕’ 조용필에 대한 관심이 컸다고 전했다. 그는 “리설주 씨는 ‘우리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도 남조선에 가서 감기에 걸렸는데 이번엔 조용필 선생이 감기에 걸리셔서 안타깝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렇게 노래를 잘하시냐’고 물었다”고 말했다. 현 단장은 조용필에게 사인도 받았다. 최 씨는 “준비해간 제 기타 솔로 앨범 CD를 건넸는데 현 단장이 거기에 조용필 사인을 받고 같이 사진도 찍었다. 음악인 출신이어서인지 전기기타 연주에도 관심이 많아 이것저것 물었다”고 말했다. 3일 저녁 공연 뒤풀이에서는 현 단장이 한시도 가만있지 않고 술병을 들고 다니며 남측 가수들에게 일일이 술을 따라줬다고 한다. 가수 최진희 씨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술을 못하는데 30도짜리 ‘평양주’를 현 단장이 계속해 따라줘 혼났다”면서 “가수들과 일일이 ‘인증 샷’까지 찍는 현 단장의 붙임성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최진희 씨의 평양 방문은 2002년 이후 16년 만이다. 그는 “‘사랑의 미로’ 등 한국 노래가 나올 때마다 관객들이 함성을 질렀는데, 단순히 박수만 길게 치던 예전과는 눈에 띄게 달라진 태도”라면서 “시차를 두고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아들인 김정은 위원장을 모두 만난 셈이 됐다. 세월의 흐름을 느꼈다”고 했다. 이번이 네 번째 방북이었던 최 씨는 평양의 달라진 면모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최 씨는 “평양 순안공항에서 고려호텔로 이동하면서 70층짜리 아파트들이 늘어선 것을 봤다. 평양의 스카이라인이 달라졌다. 전기 사정도 훨씬 좋아졌는지 어딜 가든 훤했고 야경도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부모가 함경도 출신 실향민인 가수 강산에 씨는 “만찬 참석자 가운데 함경도 출신들이 계셨는데, 그들과 함경도 특산물을 다룬 제 노래 ‘명태’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면서 “그분들이 명태에 등장하는 함경도 사투리 내레이션 부분을 ‘랩’이라고 표현하더라. 서로 술을 권하며 노래 ‘라구요’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고 전했다.임희윤 imi@donga.com·이설 기자}

“70년 전 대한민국 오페라가 허름한 무대에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오늘날 세계무대에서 국내 성악가, 연출가가 대한민국의 이름을 알리고 있습니다.” 정찬희 ‘2018년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 조직위원장은 서울 중구 을지로 프레지던트호텔에서 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행사의 의미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은 27일부터 5월 27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내 오페라극장, 자유소극장, 신세계스퀘어 야외무대 등에서 펼쳐진다. 조직위원회와 서울 예술의전당이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후원한다. 국내 첫 오페라는 1948년 명동 시공관에서 공연된 베르디 오페라 ‘춘희’였다. 현재 국내 오페라단은 110여 개. 정 위원장은 “힘든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한 예술가들의 노력으로 한국 오페라의 토양이 풍부해졌다”며 “오페라는 소수의 문화라는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대중과 더 가까워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티켓 가격도 지난해보다 3만 원가량 낮췄다. 오페라극장 공연은 1만∼15만 원 선. 한정 수량으로 판매하는 페스티벌석은 2만5000∼3만 원이다. 올해 9회에 접어든 축제에는 6개 단체가 참여한다. 라벨라오페라단 ‘가면무도회’, 서울오페라앙상블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누오바오페라단 ‘여우뎐’, 국립오페라단 ‘오페라갈라’가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다. 자유소극장에서는 울산싱어즈오페라단 ‘썸타는 박사장 길들이기’, 코리아아르츠그룹 ‘판오페라 흥부와 놀부’가 관객과 만난다. 개막작인 ‘가면무도회’는 베르디의 대표작으로 남성 주인공이 극을 이끈다. 바로크 오페라 걸작인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는 서울 광화문 지하철역을 배경으로 각색했다. 창작극도 다수다. ‘여우뎐’은 한국 전래설화 ‘구미호’를 현대로 소환해 사랑을 주제로 연출했다. ‘썸타는 박사장 길들이기’는 모차르트의 대표작 ‘피가로의 결혼’을 현대 무대로 옮겼다. ‘흥부와 놀부’는 구전동화에 판소리와 오페라 형식을 섞어 만들었다. 02-580-1300 이설 기자 snow@donga.com}

“‘레 방 프랑세(Les Vents Fran¤ais·LVF)’는 한마디로 상호 존중과 배움이죠.”(플루티스트 에마누엘 파후드) “믿을 수 없는 실력의 친구들과 함께하는 환상적 순간입니다.”(클라리네티스트 폴 메이어) 1990년대 중·후반 야심만만한 프랑스 목관 연주자 다섯은 파리 곳곳에서 자주 어울렸다. 자주 모여 공연을 하던 이들은 어느 날 머리를 맞댔다. “만나면 이렇게 즐거운데 아예 팀을 꾸리면 어떨까?” 이렇게 탄생한 목관 앙상블 LVF는 2002년 일본에서 데뷔한 뒤 줄곧 세계 정상의 자리를 지켜왔다. ‘프랑스의 바람’이란 뜻의 LVF가 17일 오후 8시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을 한다. 팀원은 1992년부터 베를린필하모닉 수석으로 활동해 온 파후드(48)와 2007∼2008년 서울시향에서 부지휘자 겸 목관 트레이너로 활동한 메이어(53)를 비롯해 프랑수아 를뢰(오보에), 질베르 오댕(바순), 라도반 블라트코비치(호른)로 구성돼 있다. 파후드와 메이어를 이메일로 만났다. “베를린필 외에 고정 멤버로 활동하는 앙상블은 LVF가 유일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롤모델이에요. LVF 활동을 하면서 독주나 오케스트라 활동에 필요한 영감을 얻기도 하죠.”(파후드) “테크닉적인 면에서 하나로 맞춰가기란 고강도의 훈련을 필요로 합니다. 결국 LVF를 해내면 다른 모든 걸 잘 해낼 수 있다는 뜻이죠.”(메이어) LVF는 이번 공연에서 글린카의 ‘클라리넷, 바순, 피아노를 위한 3중주 라단조 ‘비창’, 투일레의 ‘피아노와 목관 5중주를 위한 6중주 내림 나장조, 작품번호 6’, 풀랑크의 ‘피아노와 목관 5중주를 위한 6중주’ 등을 선보인다. 피아니스트 에리크 르 사주가 함께한다. “글린카와 투일레 등 로맨틱한 곡이 많아요. 강렬하고 흥미로운 음악 여행을 기대하셔도 좋습니다.”(파후드) “풀랑크의 6중주는 LVF의 ‘국가’와 같은 곡입니다. 귀담아 감상해 주세요.”(메이어)이설 기자 snow@donga.com}

혁명, 전쟁, 화합…. 역사의 중요한 순간을 이끈 인물들을 떠올려 보자. 그는 여성인가 남성인가. 머릿속을 헤집어 여성을 찾으려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당연하다. 역사서에 기록된 인물 대부분이 남성이니까! 이번엔 아는 이들을 남녀 그룹으로 나눈 뒤 따져보자. 남성이 여성보다 뛰어난가? 여성은 남성만큼의 업적을 이루지 못할 열등한 동물인가? 역사에 관심이 많은 작가 케르스틴 뤼커와 교사 우테 댄셸은 이 지점에 의문을 품었다. ‘여성과 남성은 결코 다르지 않은데 역사서에는 왜 여성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걸까.’ 그리고 세계사를 다시 써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는 역사 속 여성의 자리를 치열하게 복원한 ‘역사 바로잡기’다. 책은 지각 있는 인류가 탄생한 시점부터 최근까지 역사 속 여성들의 행적을 되짚어낸다. 구석기시대 전시 대부분은 ‘사냥하는 남성과 밥 짓는 여성’을 전제로 구성됐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책에 따르면 진주와 남성이, 무기와 여성이 함께 출토된 사례가 적지 않다.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비범한 인물도 늘 존재해 왔다. 뛰어난 치적으로 ‘대제’ 칭호를 받은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 하지만 그를 설득해 콘스탄티노플을 지킬 것을 관철한 이는 황후 테오도라였다. 허나 역사는 테오도라를 ‘무희 출신 신데렐라’로 그렸다. 아예 여성을 남성으로 둔갑한 사례도 있다. 초기 기독교 시절 이베리아 왕국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인 니노가 대표적이다. “여성이 비범한 일을 하면 올바르지 않다”는 편견과 혐오가 여성을 역사에서 통째로 들어냈다. 책을 덮고 ‘말 잘 듣는 여자아이’에 대한 강박에 대해 생각해 봤다. 그간 절름발이 역사에 길들여져 탐욕스럽고 불손한 여성이 되지 않으려 알게 모르게 애썼는지 모르겠다. 미투 운동에 더해 페미니즘 독서로 예전보다 마음이 당당해졌다. 역사와 여성에 관심이 있다면 편하게 읽기에 좋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일부러 편한 옷으로 골라 입었어요. 늘 드레스 차림만 보여 드려서요.” 27일 서울 강남구 언주로의 커피숍.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에서 ‘올림픽 찬가’를 불렀던 소프라노 황수미 씨(32)를 만났다. 가죽 재킷에 청바지 차림이 경쾌했다. 지난달 9일 개막식 무대를 마치고 곧장 독일행 비행기에 오른 그가 최근 한국을 찾았다. 31일과 다음 달 1일, 7일 통영국제음악제 무대에 오른 뒤 바로 독일로 돌아가는 빠듯한 일정이다. 올림픽의 힘일까. 그는 소프라노계 샛별에서 단박에 유명 스타가 됐다. 대중은 새로운 소프라노의 출현에 목말라했고, 적절한 타이밍에 실력과 스타성을 갖춘 황수미가 등장했다. 그는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개막식 공연을 마치고 독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들이 사진 요청을 해왔어요. 현지 교민들도 자주 알아봐 주시고요. 감사한 일이지만 변한 건 없습니다. 여전히 더 많은 무대를 경험하고 싶은 욕심뿐입니다.” 덤덤하던 목소리가 본업 얘기를 꺼내자 한 톤 높아졌다. 독일 본 오페라극장 단원인 그는 7월에 극단 생활을 마무리한다. 지난해 11월 결정한 일이다. 그는 “소속 가수로 일하면 정기적으로 공연할 수 있고 안정적인 수입도 보장된다. 하지만 스스로 다시 흔들고 싶어서 과감하게 둥지를 떠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남편이 말하길 ‘넌 참 싫증을 잘 내는 것 같다. 나는 지겹지 않냐’라고 해요. 대학교 1학년 때 만나 2016년에 결혼했거든요. 한데 저는 정체된 상태가 싫을 뿐입니다. 다양한 무대에서 노래하며 성장하고 싶습니다.” 그는 소프라노로서 풍부한 감정 표현이 강점으로 꼽힌다. 공연마다 표정과 음색에 기쁨 슬픔 고독 등이 절절이 묻어난다는 평. 하지만 본인은 “이성적이고 계획적인 편”이라고 자평했다. 서울예고 시절부터 고향 경북 안동시를 떠나 혼자 자취할 정도로 독립적인 성격. 유학 자금도 콩쿠르 상금, 서울시립합창단 근무, 동요 레슨 아르바이트 등으로 스스로 마련했다. 황수미는 “2년 안에 길이 보이지 않으면 귀국한다는 마음으로 유학을 떠났다. 한데 운이 따라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좋은 극단에 들어갈 수 있었다”며 “후배들도 진지하게 꿈꾸되 마냥 ‘무대 위’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올해 국내 팬과 자주 만난다. 다음 달 27, 28일 서울시향 정기연주회를 시작으로 8월 롯데콘서트홀 개관 2주년 기념 공연 무대에도 오른다. 연말엔 오스트리아 피아니스트 헬무트 도이치와 데뷔 앨범을 녹음한다. 리스트의 ‘페트라르카의 3개 소네트’, 슈트라우스의 ‘네 개의 마지막 노래’, 브리튼의 가곡 등이 수록된다. 내년엔 기념 리사이틀을 한국에서 연다. 인터뷰 말미 그가 ‘가화만사성’이란 말을 꺼냈다. 마음이 평온해야 좋은 음악이 나오는데, 평온하려면 가까운 이들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 17세 때부터 인생의 반 이상을 가족과 떨어져 살아서 소소한 기쁨을 곁에서 나누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고 한다. “개막식 공연 당일이 남편 생일이라 공연을 생일 선물이라고 생각하라고 했죠. 둘 다 성악을 해서 의지도 하고 자극도 받습니다. 음악가는 평생 평가받는 ‘무대 서바이벌’의 삶을 살아요.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할 수 있는 직업인 것 같습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바이올리니스트 설민경 씨(26·사진)가 독일 명문 밤베르크 교향악단에 입단했다. 28일 전화로 만난 그는 “이달 15, 16일 이틀간 오디션을 거쳐 바로 합격 통보를 받았다”며 “첫 오디션이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좋은 결과를 얻게 돼 ‘멍’하다”고 했다. 밤베르크 교향악단은 독일 중견 악단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명문 악단. 9월 정식 활동을 시작해 1년 뒤 단원 투표를 거쳐 종신단원 여부가 결정된다. 4세에 바이올린을 시작한 그는 예원학교 서울예고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뒤 독일로 건너가 한스아이슬러 국립음대에서 수학했다. 현재 라이프치히 국립음대에서 최고연주자과정을 밟으며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멘델스존 아카데미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다. 설 씨는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어머니를 꼽았다. 어머니 김미경 씨(55)는 1985년부터 서울시립교향악단 바이올린 파트에서 활동한 베테랑. 그는 “어머니로부터 다양한 지휘자 동료 음악과 함께해 즐겁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며 “어머니처럼 음악을 즐기는 단원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솔직히 ‘레전드’란 얘기를 들으면 어쩔 줄 모르겠어요. 음악은 여전히 힘들어요. 아니, 점점 더 어렵습니다.” 27일 서울 종로구 문호아트홀에서 열린 정경화(70)의 ‘아름다운 저녁(Beau Soir)’ 앨범 발매 기자간담회는 숫자 ‘70’ 장식물이 꽂힌 케이크의 등장으로 시작했다.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난 정경화는 26일 칠순을 맞았다. 33번째 정규앨범을 소개하는 자리였건만 ‘바이올린의 거장’은 긴 세월 그가 걸어온 길을 반추하는 듯했다. 6세 때부터 바이올린을 켜온 그는 “30대에 두 아들을 낳으면서 음악행보에 제약에 생겼지만 음반작업은 꾸준히 했다”며 “매번 혼을 다하다보니 어느새 33번째다. 음반은 녹음할 때마다 새롭고 힘들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저녁’은 프랑크, 드뷔시, 포레 등 프랑스 대표 작곡가의 작품으로만 구성했다. 7년간 정경화와 음악적으로 동고동락해온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와 함께했다. 프랑스 작곡가 곡으로 완성한 음반은 이번이 세 번째. 정경화는 “포레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은 처음으로 녹음했다. 어릴 때부터 접근하기 어려웠던 곡인데 케빈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한국판 앨범에는 특별히 엘가의 ‘사랑의 인사’가 실렸다. 1987년 발매한 앨범 ‘콘 아모레’에 수록해 국내에서 사랑받았던 곡을 31년 만에 다시 녹음한 것. 그는 “모든 연주에는 연주자의 감정과 상황이 그대로 녹아 있다”며 “30대와 70대의 정경화가 들려주는 ‘사랑의 인사’가 어떤지 비교해 보시라”고 제안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과거의 연주는 정열적이고 이번 연주는 안정적이고 편하게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음악은 위로예요. 위로를 잘하려면 오로지 듣는 귀, 즉 관중만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관중을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관중을 위로하기 위해 1만 % 최선을 다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솔직히 ‘레전드’란 얘기를 들으면 어쩔 줄 모르겠어요. 음악은 여전히 힘들어요. 아니, 점점 더 어렵습니다.” 27일 서울 종로구 문호아트홀에서 열린 정경화(70)의 ‘아름다운 저녁(Beau Soir)’ 앨범 발매 기자간담회는 숫자 ‘70’ 장식물이 꽂힌 케이크의 등장으로 시작했다.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난 정경화는 25일 칠순을 맞았다. 33번째 정규앨범을 소개하는 자리였건만 ‘바이올린의 거장’은 긴 세월 그가 걸어온 길을 반추하는 듯했다. 6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켜온 그는 “30대에 두 아들을 낳으면서 음악행보에 제약에 생겼지만 음반작업은 꾸준히 했다”며 “매번 혼을 다하다보니 어느새 33번째다. 음반은 녹음할 때마다 새롭고 힘들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저녁’은 프랑크, 드뷔시, 포레 등 프랑스 대표 작곡가의 작품으로만 구성했다. 7년 간 정경화와 음악적으로 동고동락해온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와 함께 했다. 프랑스 작곡가 곡으로 완성한 음반은 이번이 세 번째. 정경화는 “포레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은 처음으로 녹음했다. 어릴 때부터 접근하기 어려웠던 곡인데 케빈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한국판 앨범에는 특별히 엘가의 ‘사랑의 인사’가 실렸다. 1987년 발매한 앨범 ‘콘 아모레’에 수록해 국내에서 사랑받았던 곡을 32년 만에 다시 녹음한 것. 그는 “모든 연주에는 연주자의 감정과 상황이 그대로 녹아있다”며 “30대와 70대의 정경화가 들려주는 ‘사랑의 인사’가 어떤지 비교해보시라”고 제안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과거의 연주는 정열적이고 이번 연주는 안정적이고 편하게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음악은 위로예요. 위로를 잘 하려면 오로지 듣는 귀, 즉 관중만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관중을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관중을 위로하기 위해 1만% 최선을 다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문화를 알기 전과 후의 삶이 많이 다릅니다. 문화는 우리의 ‘혼줄’입니다. 국민 대부분이 문화를 즐기는 문화 선진국이 됐으면 합니다.” 초허당(草墟堂) 권오춘 씨(81)는 문화계에서 오랫동안 ‘가난한 예술가들의 벗’이라 불려 왔다. 크고 작은 사업을 하며 모은 돈으로 1980년부터 37년간 예술가 350여 명에게 생활비와 자녀 학비 등을 후원했다. 지금까지 지원한 액수가 8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최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도 3000만 원을 기부했다. 이전에도 2억 원 상당의 객석 40석을 기부했다. 그는 20일 고학찬 예술의전당 사장을 만나 “이탈리아 5대 오페라 작곡가의 작품을 기획해 달라”고 제안했는데, 이를 수락하자 공연 예산으로 3000만 원을 지원한 것이다. 초허당이 지난해 말 모교인 동국대에 기증한 그림 도자기 등 미술작품 312점이 다음 달 동국대 일산 바이오메디캠퍼스에 전시된다. 그는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37년간 모은 작품이 새로운 둥지를 찾아 기쁘다”며 “알고 지내던 작가들에게 정성(후원금)을 건네고 받은 작품들”이라고 전했다. 그는 왜 이렇게 문화계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을까. 시작은 1980년대 우연히 목격한 부부싸움이었다. “화가인 남편은 ‘예술이 얼마나 중요한데’라며, 아내는 ‘그거 하면 쌀이 나오느냐’며 다투는 모습을 봤어요. 사연을 들어보니 양쪽 모두 일리가 있더군요.” 이후 화가 도예가 조각가들과 교류하며 차츰 예술에 눈을 떴다. 가난한 시골에서 6남매 막내로 태어나 남매 넷을 둔 가장이 되기까지 예술이라고는 모르고 살았던 그였다. 초허당은 “정갈한 마음과 힘든 상황에도 작업을 이어가는 의지에 매료됐다. 작게나마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남이 볼 땐 부러운 여유였겠지만, 그의 생활이 늘 풍족한 것도 아니었다. 부도 위기도 여러 차례 겪었고 생활비가 쪼들리는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조차도 수입의 20%를 늘 후원자금으로 따로 모았다. 큰돈이 아니더라도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가 항상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가 후원한 예술가 가운데 유명 작가나 대학교수가 된 이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런 이들을 만날 때마다 초허당은 늘 잔소리를 한다고 한다. “세속과 다소 동떨어진 삶에서 참된 감동을 주는 작품이 탄생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교수가 되면 금전적 심리적인 이유로 동료들이 하지 못하는 도전적인 작품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초허당은 예술가 후원 외에도 ‘D학점 이상 지방 출신 이공계 학생’을 위한 장학금으로 동국대에 26억 원을 기탁하기도 했다. 나눔은 숨 쉬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건강 악화와 교통사고를 겪으며 어쩌면 덤으로 얻은 인생”이라며 “꿈이 있으나 경제적인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가진 걸 모두 돌려주고 떠나겠다”고 약속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LG와 함께하는 제14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 바이올린 부문 심사를 맡은 10명의 심사위원은 “각 단계마다 참가자들이 고루 뛰어난 실력을 보여줬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무대였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의 1세대 영재 바이올리니스트로 유명한 강동석 심사위원장(연세대 음대 교수·사진)은 “모든 단계마다 연주자들이 다른 개성과 역량을 보여줬다”며 “참가자들이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이번 콩쿠르를 좋은 배움의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고 했다. 2009년 국내 최초로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10곡)을 5시간 동안 마라톤 연주한 이성주 심사위원(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은 “본선 진출자 6명을 포함해 모든 참가자의 수준이 무척 높았다”며 “이렇게 수준 높은 콩쿠르에 세계의 젊은 음악인들이 더 많이 참가하길 추천한다”고 말했다. 이번 콩쿠르에는 강 교수와 이 교수를 비롯해 피호영 성신여대 음대 교수, 쉬잔 게스네 프랑스 파리 시립음악원 교수, 일리야 그루베르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음악원 교수, 후쿤 영국 왕립음악원 교수, 올레흐 크리사 미국 뉴욕 이스트먼 음대 교수, 대니얼 필립스 미 줄리아드 음악원 교수, 슈테판 피카르트 독일 베를린 한스아이슬러 음대 교수, 시미즈 다카시 일본 도쿄예술대학 음악학부 교수 등 총 10명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바이올린의 마스터’라 불리는 크리사 심사위원은 1∼5위를 차지한 한국 연주자에 대해 “재직하고 있는 이스트먼 음대에도 한국 학생이 많다. 모든 일에 성실하고 뛰어나다”며 “이번 결과에 두 배로 기쁘다”고 밝혔다. 후쿤 심사위원은 “참가자들의 연주는 모두 우수한 편이지만 상대적으로 개성 없는 무대 매너는 다소 아쉽다”고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24, 2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LG와 함께하는 제14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 바이올린 부문에서 김동현 씨(19·한국예술종합학교)가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1위로 호명되자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기쁨을 드러냈다. 김 씨는 “아쉬움이 많은 무대인데 큰 상을 주셔서 감사하다”며 “최근 여러 가지 정신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는데 그간의 심적 부담이 싹 날아가는 기분이다. 더욱 정진하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클래식 애호가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7세에 바이올린을 시작한 김 씨는 11세부터 본격적으로 바이올리니스트의 길을 걸었다. 당시 멋모르고 나간 콩쿠르 예선에서 탈락한 뒤 싹튼 승부욕이 바이올린에 대한 열정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예원학교를 거쳐 현재 영재 입학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3학년 학생이다. 그는 수상 발표 뒤 어머니와 한참을 부둥켜안고 기쁨을 나눴다. 김 씨는 “지난해 참가한 콩쿠르에서 잇따라 수상에 실패하면서 마음고생을 좀 했다. 어머니도 의기소침한 아들의 모습에 덩달아 힘들어하셨다”며 “어머니께 상을 바치고 싶다”고 했다. 이어 “이번 서울국제음악콩쿠르를 준비하면서 음악을 대하는 태도와 마인드컨트롤에 대해 깨달은 바가 크다”며 “곡에 대한 해석과 연습을 충분히 선행하면 무대에서의 평정심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 같다”고 했다. 김 씨는 2012년 금호영재 콘테스트로 데뷔한 뒤 각종 콩쿠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2016년 루마니아 제오르제에네스쿠국제바이올린콩쿠르 2위, 2015년 러시아 차이콥스키청소년국제콩쿠르 1위, 2014년 러시아 레오폴트아우어국제바이올린콩쿠르 1위에 오르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그는 “솔리스트, 실내악, 오케스트라 등을 두루 좋아한다”며 “능력이 닿는 범위 안에서 여러 포지셔닝을 경험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강동석 심사위원장은 김 씨의 연주에 대해 “어린 나이답지 않게 완벽한 기교와 성숙하고 여유 넘치는 연주가 돋보였다. 앞으로 가능성이 기대되는 연주자”라고 평가했다. 2위는 이유진(23·커티스음악원), 3위는 김지인(23·연세대), 4위는 정주은(22·한국예술종합학교), 5위는 이유진(20·한국예술종합학교), 6위는 알렉산드라 티르수(26·루마니아·빈시립음대)가 차지했다. 이번 콩쿠르에는 총 10개국 77명이 참가했다. 예비심사를 통과한 9개국 36명(국내 20명, 해외 16명)이 1차를, 24명이 2차 예선을 거쳤다. 준결선에 올라온 12명 가운데 6명이 결선에 올랐다. 결선은 지휘자 장윤성과 인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펼쳐졌다. 입상자에게는 1위 5만 달러(약 5400만 원), 2위 3만 달러, 3위 2만 달러 등 6위까지 상금이 주어지고 국내외 정상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리사이틀 등 다양한 특전이 제공된다. 1, 2위 한국인 남성 입상자에게는 병역특례 혜택이 주어진다. 이날 시상식에는 서정협 서울시 문화본부장, 정창훈 LG아트센터 대표, 김순덕 동아일보 논설주간이 시상자로 참석했다. 서울국제음악콩쿠르의 1, 2차 예선과 준결선은 유튜브(검색어 ‘seoulcompetition’)에 공개됐으며 결선은 26일 공개된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한국에서 내추럴 시드르(사과 스파클링 와인)를 만들면 어떨까?” 2003년 공대 출신의 프랑스인 남자와 작가인 한국인 여자가 프랑스에서 만나 결혼했다. 엔지니어로 일하던 도미니크 에어케 씨(59)는 농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뒤늦게 프랑스농업학교에서 와인양조를 공부했다. 그리고 아내 신이현 씨(53)와 프랑스 북부 알자스 와이너리에서 내추럴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보다 수준 높은 내추럴와인을 만들기 위해 유럽 전역의 와이너리를 찾아 배움을 청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한국에서 내추럴와인을 만들면 어떨까?” “좋아, 그러면 사과 스파클링 와인인 시드르는 어때? 시드르는 한국 시장에서 많이 알려지지 않았어.” 부부는 2016년 한국에 건너와 반년 동안 전국 농가를 돌며 사과 품종을 연구했다. 즙이 풍부하고 당도가 높은 부사와 새콤하면서 산도가 높은 홍옥을 섞으면 뭔가 특별한 시드르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에어케 씨는 “한국에서 시드르를 만들어보자고 아내에게 강력히 권했다”고 했다. 2016년 말 사과 산지로 유명한 충북 충주시 엄정면에 정착한 두 사람은 남편의 이름을 딴 와인회사 ‘레돔(LESDOM)’을 세웠다. 1년 내내 자연의 변화에 따르는 생명역동 농법으로 사과 농사를 지어 2017년 시험작인 사과 시드르를 완성했다. 동시에 한국 포도 품종인 캠벨로 로제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었다. 신 씨는 “캠벨을 자연 발효해 로제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었는데 꽃향기 가득한 와인이 탄생했다”며 “7.5도라 술이 약한 이들도 가볍게 즐기기 좋을 것“이라고 했다. 이들의 실험은 현재 진행형이다. 한국에는 머루 캠벨 등 식용 포도가 대부분인데 이들은 와인을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 프랑스의 와인용 포도 품종 10여 가지를 사과밭 한 모퉁이에 심은 뒤 결과를 보고 있다. “포도를 재배한 뒤 와인용으로 가장 적합한 품종을 가려내 내추럴와인을 만들 거예요. 아울러 사과 품종을 늘려가는 작업도 계획 중입니다.” 레돔 스파클링 로제와인 3만8000원. 레돔 내추럴 시드르 3만2000원.이설 기자 snow@donga.com}

‘미끈하고 럭셔리한 와인을 기대하지 마라. 이것은 진짜 땅에서 키운 진짜 포도로 만든 날것의 와인이다.’(2017 뉴욕 내추럴와인페어) 맛과 멋의 대명사 와인계에 별종이 나타났다. 유기농으로 키운 포도로 화학첨가물을 배제해 만든 내추럴와인이다. 독립영화처럼 기존 평가 잣대를 부정하는 내추럴와인에 기성 와인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전 세계 힙스터들 사이에서 조용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내추럴와인의 세계를 소개한다. #1 서툴지만 당돌한 매력와인1. 시큼하고 달달한 파인애플향이 난다. 와인2. 커피향이 감돈다. 와인3. 알갱이 같은 게 씹힌다. 와인4. 기존에 마시던 와인과 비슷하다. 16일 오후 1시 서울 서초구 봉은사로의 한 빌딩 지하에서 ‘낮술파티’가 열렸다. 주종은 내추럴와인, 행사명은 ‘제2회 살롱오(Salon O)―내추럴와인의 모든 것’. 와인 수입사, 외국인 생산자 19명, 와인 애호가가 함께한 내추럴와인 부흥의 장이었다. 이날 맛본 30여 종의 내추럴와인은 처음엔 아리송하다가 나중엔 설렜다. 향과 맛이 그동안 마시던 와인과 다른데? ‘이게 뭔가’ 싶다가 이내 다음 와인은 어떻게 말을 걸어올지 궁금해졌다. 같은 공간에 있던 이들의 소감도 비슷했다. “재미있고 당돌해서 좋아요. 집술처럼 푸근한 느낌도 들고요. 누구는 ‘마구간 와인’이라고 폄훼하지만 ‘뻔한 맛’의 틀을 깬 시도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김준태 씨·31·직장인) “내추럴와인은 레드, 화이트, 스파클링 모두 목 넘김이 부드러워요. 12∼13도로 기존 와인(13∼15도)보다 도수가 낮고 화학첨가물이 적어서 그런지 술술 넘어갑니다. 숙취도 확실히 덜하고요.”(김수옥 씨·37·레스토랑 ‘주옥’ 매니저)#2 “오직 포도뿐”“포도, 포도, 포도.” 프랑스 아르데슈주에서 와인을 만드는 제랄드 오스트리치 씨(56)는 내추럴와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내추럴와인은 1970년 처음 알려졌지만 10년 전부터 유럽의 힙스터들에게 사랑받기 시작했다. 포도 재배와 양조 과정에서 비료 농약 당분 이산화황 등을 최대한 배제한 와인을 뜻한다. 수천 년 전 포도를 자연 발효시켜 만들던 와인의 원형을 지향하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생산과 유통 모두 쉽지 않다. 포도나무에 벌레가 쉽게 끓고 순간 방심하면 식초로 변하기 일쑤라고 한다. 그럼에도 생산자들은 “실패도, 맛의 변화도 자연스러운 과정의 일부”라고 말한다. 오스트리치 씨는 “내추럴와인 한 병을 얻기까지 손이 많이 가고 장애물도 많다. 그럼에도 화학첨가물을 쓰는 건 반대”라며 “인간이 바라는 하나의 맛을 위해 다른 가능성을 닫아버려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3 新와인 문화운동해질 무렵 뺨에 홍조가 오른 참가자들이 베레모를 눌러 쓴 남성에게 ‘와인병 사인’을 청했다. 기존 와인계에 맞서며 이름을 알린 프랑스 생산자 알렉상드르 뱅 씨였다. 그의 별명은 ‘내추럴와인 전사(戰士)’. 프랑스 배우이자 감독인 기욤 카네와 함께 영화(‘땅의 아들’)도 촬영 중이다. 뱅 씨 외에 필리프 장봉, 장클로드 라팔뤼, 앙리 밀랑, 세바스티앵 리포 등의 생산자가 유명하다. 내추럴와인은 단순한 와인이 아닌 ‘신(新)와인 문화운동’이라 불린다. 기존 와인계 문법을 무너뜨리는 태도 때문이다. 이들은 환경 파괴, 규격화, 대량화를 반대한다. 트랙터 대신 쟁기와 손으로 농사를 짓고, 생산지와 시간에 따라 순위를 매기는 품평을 비판하며, 기업자본의 대량생산을 배척한다. 뱅 씨는 “소믈리에들은 기계를 해체하듯 심각하게 와인을 맛본 뒤 작은 흠집을 찾는다”며 “와인도 사람처럼 장단점이 있는 생물이다. 자연스러운 흠집을 가리려 황을 먹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덴마크 와인 생산자 안데르스 프레데리크 스텐 씨(36)는 “우리가 지향하는 건 건강한 먹거리, 지구, 사회”라며 “다양한 환경(테루아)을 충실히 반영한 와인이 다양한 취향을 존중하는 사회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했다. #4 “실체 없는 사기”내추럴와인에 대한 반대 여론도 거세다. 반대론자들이 내세우는 가장 주된 이유는 맛이 이상한 데다 근거 없이 도덕적 우월감을 내세운다는 것. 미국의 와인전문지 ‘와인 스펙테이터’는 “이미 훌륭한 와인들은 최소한의 화학첨가물을 사용한다. 또 필터링 과정에서 화학첨가물은 대부분 사라진다”고 했다. 미국의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는 과거 자신의 트위터에서 “내추럴와인은 실체 없는 사기”라고 혹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추럴와인의 기세는 만만치 않다. 전 세계 소비량은 전체의 2%에 불과하지만 파리 런던 코펜하겐 등에선 내추럴와인 전문 바가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한국에서도 내추럴와인 붐이 시작됐다. 정식바, 쿠촐로 테라짜, 주옥, 밍글스, 빅나이트, 제로컴플렉스, 라피네 등에서 내추럴와인을 맛볼 수 있다. 가격은 와인숍 3만, 4만 원, 와인바 7만, 8만 원 선. 살롱오 행사를 주관한 파리에서 활동 중인 와인에이전시 비노필 최영선 대표(50)는 “내추럴와인을 마시면서 몸이 건강해졌다. 숙취도 없다”며 “지난 1년간 한국 내추럴와인 소비량이 두 배로 뛰었는데, 향후 시장 점유율이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5 와인 패러다임 전환상당수 내추럴와인 생산자는 청년층이다. 보르도나 부르고뉴 같은 기득권 생산지에 구애받지 않고 시장에 진입할 수 있어서다. 이들은 “내추럴와인은 삶에 대한 태도다. 올바르게 생산된 와인을 마시는 사람이 돼라”고 소비자를 유혹한다. 프랑스와 일본에서 지난 10여 년간 안착한 내추럴와인 시장은 더 커질까.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와인을 만드는 필리포 오 씨(38)는 “내추럴와인은 온도와 진동에 특히 민감해 수출과 수입 과정에서 맛이 변하는 일이 잦다. 날씨가 따뜻한 3∼9월엔 수입을 거의 하지 않을 정도”라며 “유통 과정의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국의 와인 매거진 ‘디캔터’는 “내추럴와인의 가장 절묘한 전략은 부모 세대가 이해하지 못하되 적당히 팔릴 정도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날 만난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어쨌거나 내추럴와인은 단순한 와인이 아니다. 콧대 높은 와인계에 일침을 가하는 패러다임 전환이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손지혜 선생요? 외모는 순수하지만 연기는 마농 이상으로 농염해요.” “국윤종 선생님은 인상도, 마음도, 소리도 치명적으로 푸근합니다.” 테너 국윤종 씨(42)와 소프라노 손지혜 씨(37)는 “오페라 주역답지 않게 까다롭지 않고 털털한 파트너”라고 서로를 칭찬했다. 두 사람은 다음 달 5∼8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오르는 프랑스 오페라 ‘마농’의 주인공을 맡았다. 이들을 19일 만났다. 프랑스 소설가 아베 프레보의 ‘기사 데 그리외와 마농 레스코의 진실한 이야기’가 원작인 이 오페라는 프랑스 작곡가 쥘 마스네의 대표작. 국립오페라 창단 이래 첫 공연이자 1989년 김자경오페라단 공연 이후 29년 만의 전막(5막) 공연이다. 두 사람은 “마농은 힘들지만 매력 넘치는 작품”이라고 입을 모았다. “극한에 다다른 인간의 정념을 실감나게 묘사하고”(손 씨) “사회 각지의 부정과 비리의 축약판 같은 작품”(국 씨)이라고 했다. 이야기는 소녀 마농이 수녀원을 향하던 중 젊은 귀족 기사 데 그리외를 만나 사랑에 빠지며 시작된다. 데 그리외 아버지의 반대로 두 사람은 ‘사랑의 도피’를 꾀하지만 마농이 부유한 귀족 브레티니를 만나 데 그리외를 버린다. 충격을 받은 데 그리외가 신부가 됐다는 소식에 다시 그의 곁으로 돌아가는 마농. 하지만 생활고가 닥치자 마농은 데 그리외를 도박장으로 이끌고 둘은 감옥에 가게 된다. 데 그리외는 아버지의 힘으로 풀려나지만 마농은 죽음을 맞는다. 국 씨는 자신과 데 그리외가 많이 닮았다고 했다. “아버지, 마농, 신 등 믿음이 생기면 상대에게 대책 없이 빠져버리는 점이 비슷해요. 하지만 저는 가정을 이뤄 데 그리외처럼 모든 걸 던질 자신은 없습니다.” 반면 손 씨는 거대한 욕망에 이끌려 사치와 향락에 중독된 마농과 자신은 거리가 멀다고 했다. 이에 국 씨가 반문했다. “지혜 씨는 음악적으로 굉장히 용기가 있어요. 치열하게 연구한 뒤 자신 있게 새로운 길에 도전하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마농과 닮았어요.” 두 사람은 해외 무대에서 활약하는 정상의 테너와 소프라노. 하지만 걸어온 길은 정반대다. 손 씨는 12세에 성악을 시작해 예원학교와 서울대 성악과를 거친 정통파다. 국 씨는 공대에 진학한 후 군대에 다녀와 뒤늦게 연세대 성악과에 들어갔다. 국 씨는 “시작이 늦다는 불안감에 하루 10시간 넘게 열정적으로 연습했다. 지난 10년간 운이 좋아 해외 무대 등에서 주역을 맡았지만 최근에야 불안감을 조금씩 내려놓게 됐다”고 했다. 손 씨는 “어려서부터 음악만 해 왔기에 열정이 다소 부족했다”며 “서른 살이 넘어 슬럼프를 겪은 후에야 오페라에 재미를 느끼며 열정을 되찾았다”고 했다. 오페라를 준비하다 보면 각종 갈등이 불거지는데 이렇게 분위기 좋은 팀은 처음이라고 한다. 이들은 “연출자 뱅상 부사르가 연주자들의 의견을 귀담아듣고 역량을 최대치로 이끌어낸다. 한 번 무대에 올리고 말기엔 아까운 공연”이라며 “우리도 해외처럼 의상, 무대 장식 등을 보관한 뒤 다시 공연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바로 무대에서 ‘짠’ 하고 나타나는 단독 공연보다 조금씩 연습하며 동료들과 알아가는 오페라가 좋아요. 살짝 내성적인 면이 있거든요. 어떤 무대에 서든 관객들에게 진심으로 가닿고 싶어요.”(손 씨) “20대에는 ‘화’가 많았는데 노래를 통해 발산했어요. 무대에 서고 노래하고 사색하며 얻은 단상들을 노트에 기록하고 있어요. 후배들에게 작은 도움을 주고자 책으로 펴낼 생각입니다.”(국 씨) 4월 5∼8일 목·금 오후 7시 반, 토·일 오후 3시. 1만∼15만 원. 1588-2514 이설 기자 snow@donga.com}

“참가자들이 기교 면에서 모두 높은 수준을 보여줘 놀랐습니다. 다만 개성을 좀 더 살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동양권 참가자들이 기교가 훌륭한 반면 유럽이나 미국 쪽 참가자들은 개성이 좀 더 뚜렷한 느낌입니다.” ‘LG와 함께하는 제14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심사위원장을 맡은 강동석 연세대 음악대 교수(64)는 예선 심사를 끝낸 뒤 콩쿠르 수준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올해 바이올린 부문에서 경연을 진행하는 콩쿠르는 14∼17일 열린 1차 예선에서 24명이 2차 예선에 진출했다. 19, 20일 열린 2차 예선에서는 12명이 준결선(21, 22일)에 올랐다. ‘1세대 영재 바이올리니스트’인 강동석 교수 역시 동아음악콩쿠르 출신이다. 8세에 첫 연주회를 가진 뒤 12세에 동아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았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줄리아드 음악원을 거쳐 커티스음악원에서 ‘바이올린계 미다스의 손’ 이반 갈라미안을 사사했다. “동아음악콩쿠르가 가장 권위 있고 규모가 큰 콩쿠르였어요. 대학생들이 주로 입상했는데 나이가 어려서 주목 받은 기억이 납니다. 무대 위 참가자들을 보면 당시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2003년부터 연세대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학생을 가르치는 일과 콩쿠르 심사를 가장 보람 있는 작업으로 꼽았다. 그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당차게 연주하는 젊은 후배들을 보는 것은 큰 기쁨”이라며 “학생을 가르치거나 심사를 하다가 내 연주의 실마리가 풀리기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두 가지 일 모두 쉽지 않다. 학생들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강 교수는 “교육도 심사도 주관적인 일이라 어깨가 무겁다. 하지만 무대 위 참가자들은 심사위원보다 몇 배는 더 마음이 무거울 것”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세계 주요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17세 때 샌프란시스코 교향악단재단 및 워싱턴의 메리웨더 포스트 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았다. 세계 3대 바이올린 콩쿠르인 몬트리올 콩쿠르, 런던 칼 플레시 콩쿠르, 브뤼셀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를 차례로 휩쓸었다. “콩쿠르에 참가하는 후배들이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과정에서 느낀 성취와 음악적 성장에 집중했으면 좋겠습니다. 무대 위에서 평가받는 순간이 전부는 아니니까요.” 그는 “기교는 완벽한데 감동이 부족한 연주를 종종 경험한다”며 “조급해하지 말고 직간접 경험을 통해 자기 세계를 키워라. 그러면 생명력 있는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