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지난해 11월 6일 이용구 법무부 차관에게 폭행을 당한 택시 운전사 A 씨가 “당시 상황이 찍힌 블랙박스 영상에 택시가 이동하는 모습이 담겼다”고 31일 밝혔다. 이 영상을 폭행 사건 닷새 뒤인 지난해 11월 11일 서울서초경찰서 B 경사에게 보여줬을 때 B 경사가 “다시 수사해야 하나”라고 혼잣말을 했다고도 주장했다. A 씨는 오전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이 차관의 폭행 장면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에 대해 설명하며 “당시 차량을 갓길로 대기 위해 2~3m 움직일 때의 모습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블랙박스 업체에서 확인한 영상을 A 씨가 휴대전화로 찍은 37초 분량의 이 영상에서는 택시 바깥의 풍경이 보이지는 않는다고 한다. 다만 택시 내부로 비친 불빛 등을 근거로 차량이 움직이는 것이 추정 가능한 것으로 전해졌다. A 씨는 “움직이면 차 안에서도 (멈춘 것과) 다른 게 보이잖느냐. 내부에서도 (택시가) 슥 움직이는 게 보인다”고 했다. 검찰은 해당 영상을 이 차관의 폭행이 운행 중 이뤄졌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핵심 단서로 보고 수사를 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A 씨를 불러 조사할 때 해당 영상을 A 씨와 함께 면밀히 살핀 것으로 전해졌다. 영상을 확인하고도 이 차관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을 적용해 입건조차 하지 않고 내사 종결한 경찰의 결정이 타당했느냐는 영상 속에 주행 중 폭행 장면이 담겼느냐에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다. A 씨에 따르면 영상에는 이 차관이 멱살을 잡고 욕설하는 모습과 함께 차량이 이동하는 모습이 모두 담겼다고 한다. 다만 차가 움직인 시점은 “폭행이 이뤄진 이후”라고 설명했다. A 씨는 “이 차관이 ‘택시기사입니다’라고 하자 이 차관이 멱살을 잡았던 손을 슬며시 놓았는데, 이 때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서 차를 한 쪽으로 댄 것”이라고 했다. A 씨는 지난해 11월 11일 경찰 출석 당시 B 경사가 “(폭행 영상을) 못 본 걸로 하겠다”고 하기 전 혼잣말로 “다시 수사해야 하나”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경찰 (진상조사단) 에도 B 경사의 혼잣말에 대해 진술했다”고 말했다. 반면 B 경사는 경찰 진상조사단에 “‘못 본 걸로 하자’고 한 적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1조6000억 원대의 환매 중단 사태를 일으킨 라임자산운용(라임)의 펀드 운영 및 판매 사기 혐의로 기소된 이종필 전 부사장(43·수감 중)이 1심에서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오상용)는 29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수재 및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부사장에게 징역 15년과 벌금 40억 원, 추징금 14억4096만 원을 선고했다.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대학 음대 실기평가에서 전산 오류로 합격자와 불합격자가 뒤바뀌었다. 대학 측이 뒤늦게 정정에 나섰지만 논란이 일고 있다. 연세대는 29일 “음악대학 피아노과 정시모집 1차 예심에서 전산 오류 때문에 합격자 20명에게 불합격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연세대는 25, 26일 피아노과에 지원한 101명의 수험생을 대상으로 1차 예심을 치렀고, 27일 41명에게 합격 사실을 알렸다. 다음 날 2차 본심까지 마친 뒤에야 대학 측은 1차 예심 결과에서 전산 오류가 있었고, 20명의 합격자와 불합격자가 뒤바뀐 사실을 알아챘다. 모집인원(20명)의 2배수를 선발하는 예심 과정에서 절반 가까운 인원을 전산 오류로 잘못 합격시킨 것이다. 뒤늦게 대학 측은 원래 합격했어야 할 20명의 학생에게 ‘30일 2차 본심을 받으러 오라’고 통보했다. 또 합격자로 잘못 분류돼 2차 본심을 치른 20명에 대해서는 불합격 처리했다. 연세대 관계자는 “검증 방법과 절차 강화 같은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연세대는 다음 달 7일 최종 합격자 20명을 발표할 예정이다.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대학 음대 실기평가에서 전산 오류로 합격자와 불합격자가 뒤바뀌었다. 대학 측이 뒤늦게 정정에 나섰지만 논란이 일고 있다. 연세대는 29일 “음악대학 피아노과 정시모집 1차 예심에서 전산 오류 때문에 합격자 20명에게 불합격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연세대는 25, 26일 피아노과에 지원한 101명의 수험생을 대상으로 1차 예심를 치렀고, 27일 41명에게 합격 사실을 알렸다. 다음 날 2차 본심까지 마친 뒤에서야 대학 측은 1차 예심 결과에서 전산 오류가 있었고, 20명의 합격자와 불합격자가 뒤바뀐 사실을 알아챘다. 모집인원(20명)의 2배수를 선발하는 예심 과정에서 절반 가까운 인원을 전산 오류로 잘못 합격시킨 것이다. 뒤늦게 대학 측은 원래 합격했어야 할 20명의 학생들에게 ‘30일 2차 본심을 받으러 오라’고 통보했다. 또 합격자로 잘못 분류돼 2차 본심을 치른 20명에 대해서는 불합격 처리했다. 연세대 관계자는 “검증 방법과 절차 강화 같은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연세대는 다음달 7일 최종 합격자 20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 수험생 학부모는 “학생들이 10년 이상 시험을 준비했을텐데 전산오류라고는 하지만 대학 측의 일 처리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비판했다. 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필로폰을 투약했는데… 자수하러 왔습니다.” 23일 오후 4시 반경 청와대 앞길에 택시 한 대가 멈춰 섰다. 30대 남성이 비틀대며 차에서 내리더니 교통초소로 다가갔다. 해당 남성은 근무 중이던 경찰에게 다가가 횡설수설 마약을 투약했노라 털어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경찰이 그의 소매를 걷어보니 실제로 팔에 주사를 놓은 자국이 여럿이었다. 소지한 가방에도 필로폰 등이 들어 있었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마약을 투약했다고 자수한 A 씨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23일 긴급 체포해 수사하고 있다”고 28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탈북민인 A 씨는 23일 낮 서울 강남 모처에서 필로폰과 대마초, 주사기 8개 등을 지닌 채 택시에 탑승했다. 그리고 곧장 청와대 인근 초소까지 와서 마약을 투약했다고 자백을 한 것이다. 경찰 조사 결과 A 씨는 마약 투약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미 두 차례나 마약 전과가 있었다. 23일도 마약 전과로 복역하고 출소한 지 5일밖에 되지 않은 날이었다. A 씨는 이날도 마약 간이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였다. 경찰은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정밀 감정을 의뢰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A 씨는 약 10년 전 탈북해 한국에서 지내온 것으로 안다”며 “조사에서 ‘출소하고 나서 일자리도 없고 답답한 마음에 청와대로 갔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A 씨가 마약 운반이나 판매 등에 연루되진 않았는지 추가로 조사해나갈 방침이다.김태성기자 kts5710@donga.com지민구기자 warum@donga.com}
지난해 11월 6일 이용구 법무부 차관에게 폭행을 당한 택시운전사 A 씨가 28일 “이 차관이 경찰이 사건을 내사 종결한 이후 내게 ‘고맙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 왔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11월 8일 자택 인근에서 이 차관을 만나 합의한 이후 이 차관과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해온 A 씨의 기존 주장과는 다른 것이다. A 씨는 내사 종결 이후 이 차관이 자신의 신분을 처음 알려왔다고도 했다. A 씨는 “내사 종결 이후 고맙다고 연락해 왔을 때 (이 차관이) 변호사라고 밝혀 (신분을) 처음 알았다”고 했다. 다만 “법무부 법무실장이었다는 사실은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서울 서초경찰서가 이 차관을 입건하지 않고 내사 종결한 과정을 조사하고 있는 경찰 진상조사단은 25일 A 씨를 불러 조사했다. 진상조사단은 A 씨에게 지난해 11월 11일 서초경찰서의 B 경사에게 영상을 보여주자 ‘못 본 걸로 하겠다’라고 말한 것이 맞는지 물었고 A 씨로부터 폭행 장면이 담긴 영상을 제출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A 씨는 “검찰 조사와 마찬가지로 (B 경사가 그렇게 말했다고) 똑같이 말했다”면서 “영상을 지우기 전 지인에게 전송했던 적이 있다. 이번에 영상을 지인으로부터 다시 받아 경찰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택시 운전사 A 씨를 폭행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을 복원했던 블랙박스 판매업체 대표 B 씨는 26일 “서울서초경찰서 C 경사와 통화했을 때 택시 기사의 휴대전화를 확인해 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B 씨의 말대로라면 C 경사는 영상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차관을 입건조차 하지 않고 사건을 내사 종결한 것이다. B 씨는 전날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이동언)의 조사를 받은 데 이어 26일 오전 9시 반부터 약 1시간 30분 동안 업체 인근의 한 사무실에서 4명으로 구성된 서울경찰청 진상조사단의 조사를 받았다. B 씨는 두 번의 조사에서 이 차관의 폭행 사건 사흘 뒤인 지난해 11월 9일 C 경사와 두 차례 통화했을 때 ‘휴대전화로 촬영한 블랙박스 영상’의 존재를 알렸다고 진술했다. 첫 번째 통화 때는 “택시 기사가 휴대전화로 영상을 촬영하고 가지고 갔다”고 했고, 두 번째 통화에서 C 경사가 “A 씨가 내용이 없다고 한다”고 하자 재차 “휴대전화를 확인해보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A 씨가 휴대전화로 블랙박스 영상을 촬영한 과정 등에 대해서도 검찰과 경찰에서 상세히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C 경사는 B 씨의 전화를 받고도 영상을 확보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10일 서울서초경찰서 형사과장은 당시 서장에게 구두로 “내사 종결하겠다”라고 보고했고, 서장은 이를 승인했다. 하루 뒤인 11일 C 경사는 A 씨에게서 영상의 존재를 확인했지만 “못 본 걸로 하겠다”고 말했고, 사건은 그 다음 날인 12일 내사 종결됐다. C 경사는 ‘영상을 보고도 묵인했다’는 논란이 시작된 뒤 경찰 관계자에게 “영상을 봤지만 진술과 차이가 없었고 정차 중인 것으로 보여 별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는 취지로 답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응형 yesbro@donga.com·김태성 기자}

“경찰한테 먼저 (폭행 영상을) ‘못 본 걸로 하자’고 말할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되겠어요.” 지난해 11월 6일 이용구 법무부 차관에게 폭행을 당했던 택시 운전사 A 씨는 25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서울 서초경찰서 B 경사가 폭행 당시 상황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하고도 ‘못 본 걸로 하겠다’고 말했다”는 자신의 주장을 재확인했다. 이는 서울경찰청이 24일 “일부 사실로 확인됐다”며 B 경사가 영상을 봤다는 것만 인정하고, ‘못 본 걸로 하겠다’는 말은 인정하지 않은 것을 반박한 것이다. A 씨는 또 “지난해 11월 11일 경찰서에 갔을 때 B 경사가 내가 보여준 영상을 확인한 뒤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이 차관이 폭행했을 당시 택시가 운행 모드(D)였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A 씨는 “잠깐 있었던 게 아니기 때문에 주차(P) 상태였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차관은 25일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면서 ‘(택시가) 운행 중이 아니었다고 지금도 확신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렇게 나오는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 차관은 “경찰 고위층과 연락한 적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13명 규모의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서초경찰서가 이 차관을 입건하지 않고 내사 종결한 과정을 조사하고 있다. 국가수사본부장 직무대리인 최승렬 경찰청 수사국장은 25일 기자간담회에서 “(영상과 관련해 이전 설명의) 일부가 사실이 아닌 것이 확인됐기 때문에 상당히 송구하다”며 사과했다. 앞서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28일 “블랙박스 영상이 녹화가 안 됐고, 블랙박스 업체에서도 녹화된 게 없다고 했다”고 밝혔지만 최근 두 가지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다만 최 국장은 “B 경사가 영상을 봤다는 사실 자체를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법 개정으로) 수사와 관련해 내가 답하는 것은 제한돼 있다. 진상조사 결과에 따라 엄정 조치한다는 데 동의한다”고만 하고, 유감 표명은 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이동언)는 지난해 11월 9일 B 경사에게 “A 씨가 영상을 가져갔다”고 밝힌 블랙박스 업체 관계자를 25일 불러 조사했다.김태성 kts5710@donga.com·조응형·유원모 기자}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폭파하겠다.” 25일 오후 112에 접수된 문자메시지 한 통으로 경찰과 국회가 발칵 뒤집혔다. 이날 오후 5시 45분경 국회를 폭파하겠다는 협박이 담긴 글에 경찰과 소방대원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로 대거 출동했다. 이날 동원한 소방차량만 20대가 넘었다. 하지만 이날 소동은 어이없게 결론 났다. 알고 보니 한 고교생이 장난으로 보낸 문자였기 때문이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이날 오후 6시 20분경 문자 발신자 위치를 추적한 결과, 서울 모처에서 고교생 A 군이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신병을 확보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 군은 해당 문자를 부모와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중에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장난 문자로 국회의사당 주변에는 소방대원 83명과 지구대 경찰까지 투입돼 폭발물을 수색했다. 경찰은 A 군을 현재 경범죄처벌법상 허위신고죄로 입건한 상태다. 죄가 인정되면 6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경찰한테 먼저 (폭행 영상을) ‘못 본 걸로 하자’고 말할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되겠어요.” 지난해 11월 6일 이용구 법무부 차관에게 폭행을 당했던 택시 운전사 A 씨는 25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서울 서초경찰서 B 경사가 폭행 당시 상황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하고도 ‘못 본 걸로 하겠다’고 말했다”는 자신의 주장을 재확인했다. 이는 서울경찰청이 24일 “일부 사실로 확인됐다”며 B 경사가 영상을 봤다는 것만 인정하고, ‘못 본 걸로 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A 씨는 또 “지난해 11월 11일 경찰서에 갔을 때 B 경사가 자신이 보여준 영상을 확인한 뒤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이 차관이 폭행했을 당시 택시가 운행 모드(D)였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A 씨는 “잠깐 있었던 게 아니기 때문에 주차(P) 상태였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차관은 25일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면서 “(택시가) 운행 중이 아니었다고 지금도 확신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렇게 나오는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 차관은 “경찰 고위층과 연락한 적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13명 규모의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서울서초경찰서가 이 차관을 입건하지 않고 내사 종결한 과정을 조사하고 있다. 국가수사본부장 직무대리인 최승렬 경찰청 수사국장은 25일 기자간담회에서 “(영상과 관련해 이전 설명의) 일부가 사실이 아닌 것이 확인됐기 때문에 상당히 송구하다”며 사과했다. 앞서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28일 “블랙박스 영상이 녹화 안됐고, 블랙박스 업체에서도 녹화된 게 없다고 했다”고 밝혔지만 최근 두 가지 모두 거짓말로 밝혀졌다. 다만 최 국장은 “B 경사가 영상을 봤다는 사실 자체를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법 개정으로) 수사와 관련해 내가 답하는 것은 제한돼 있다. 진상조사 결과에 따라 엄정 조치한다는 데 동의한다”고만 하고, 유감 표명은 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이동언)는 지난해 11월 9일 B 경사에게 “A 씨가 영상을 가져갔다”고 밝힌 블랙박스 업체 관계자를 25일 불러 조사했다. 김태성기자 kts5710@donga.com조응형기자 yesbro@donga.com}
지난해 11월 6일 이용구 법무부 차관에게 폭행을 당한 택시운전사 A 씨가 “이 차관에게 폭행 당시 상황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을 전송하자 이 차관이 지워 달라고 권유했다”고 24일 밝혔다. A 씨는 이날 오후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이 차관의 영상 삭제 권유 여부에 대해 “맞다”고 답했다. 앞서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A 씨는 “폭행당한 다음 날 이 차관에게 폭행 당시 영상을 보냈더니 ‘감사하고 죄송하다’는 답이 돌아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한 이 차관은 다음 날 택시운전사와 만나 합의했다. A 씨는 “합의 후 이 차관이 ‘영상을 지우는 것이 어떠세요’라고 했다. 내가 ‘안 지운다. 다른 사람한테 안 보여 주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A 씨는 지난해 11월 11일 이 영상을 이 차관 폭행 사건을 수사한 서울서초경찰서 B 경사에게 보여줬는데 B 경사는 “못 본 걸로 하겠다”고 한 뒤 그 다음 날 내사 종결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청은 지난해 12월 28일 블랙박스 영상이 녹화되지 않았고, 블랙박스 업체도 녹화된 게 없다는 점을 근거로 이 차관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을 적용하지 않고 내사 종결했으며 규정상 잘못된 부분이 없다고 밝혔다. B 경사는 감찰을 받고 24일 대기발령 조치됐고 경찰은 13명의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내사종결 과정을 재조사하고 있다. 이 차관은 입장문을 내고 “택시운전사의 진술을 가지고 진위 공방을 벌이는 것 자체가 택시운전사에게 또 다른 고통을 줄 우려가 크고, 특히 그런 태도는 공직자가 취할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조응형 yesbro@donga.com·김태성 기자}

“블랙박스 영상이 녹화가 안 됐다. 블랙박스 업체에서도 녹화된 게 없다고 들었다.” 지난해 12월 28일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기자간담회에서 택시기사 A 씨를 폭행한 이용구 법무부 차관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운전 중 폭행’ 혐의를 적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폭행 당시 영상이 없어 진상 파악이 안 되고, A 씨가 처벌불원서를 제출해 경찰은 피해자 의사에 반해 처벌할 수 없는 형법을 적용해 이 차관을 입건하지 않고 내사 종결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A 씨가 경찰에게 영상을 보여줬고 블랙박스 업체도 경찰에게 영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린 것으로 24일 밝혀졌다. 경찰은 이 차관 사건을 담당한 서울 서초경찰서 B 경사가 거짓말을 했다며 대기발령 조치하고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내사종결 과정을 재조사하고 있다. ○ 경찰, 폭행 영상 직접 보고도 다음 날 내사종결 내사종결 하루 전인 지난해 11월 11일 B 경사는 경찰서를 방문한 A 씨가 블랙박스 업체에서 휴대전화로 촬영한 30초 분량의 영상을 직접 봤다. A 씨는 폭행 사건 발생 당일인 11월 6일 파출소 조사에서 영상이 재생되지 않자 다음 날 서울 성동구의 한 블랙박스 업체를 방문해 SD카드를 건네 영상을 확인했다. 이 차관이 A 씨의 목덜미를 잡고 폭행하며 욕설을 하는 내용의 영상이 나왔고 A 씨는 이를 자신의 휴대전화로 촬영했다. B 경사는 해당 영상을 보고 “블랙박스 영상은 못 본 걸로 하겠다”고 말했고 그 다음 날 이 차관을 내사종결했다. 하지만 경찰이 특가법상 ‘운전 중 폭행’ 혐의를 적용했다면 이 차관에 대한 처분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다. 특가법은 피해자의 처벌 여부와 관계없이 수사를 해야 한다. 특히 영상 내용이나 영상이 찍힌 시간 등을 역추적하면 택시가 일반도로를 주행 중이었는지 등 결정적인 증거를 찾을 수 있었다. A 씨가 B 경사에게 블랙박스 영상을 보여줬다고 주장한 23일 경찰은 B 경사를 감찰했고, 뒤늦게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당시 서초경찰서의 지휘 라인 등까지 철저하게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사건 발생 79일 만이다.○ “영상 있다” 말 들은 다음 날 서장이 내사종결 승인 B 경사는 지난해 11월 9일 블랙박스 업체와 통화하면서 영상의 존재를 처음 인지했다. 이날 처벌불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경찰서를 방문한 A 씨에게서 SD카드를 받았지만 영상을 재생할 수 없었다. B 경사는 영상 재생 방법을 문의하기 위해 블랙박스 업체에 전화를 걸었고, 업체 관계자가 “A 씨가 영상을 가져갔다”고 말했다. B 경사는 영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당시 서초경찰서장은 내사종결을 승인했다. 서초서 형사과장은 지난해 11월 10일 “변호사가 택시기사를 폭행한 사건이 있는데 현장 상황과 피해자 진술, 관련 판례 등을 토대로 내사종결하겠다”고 구두 보고했고 서장은 “의견대로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이 차관 “블랙박스 영상 지워 달라” 제안 이 차관은 사건 발생 당일 영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합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 발생 다음 날인 11월 7일 이 차관은 A 씨에게 사과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고, 통화가 끝난 뒤 A 씨는 반성하라는 의미로 자신이 찍은 영상을 이 차관에게 보냈다고 한다. 이 차관은 해당 영상을 본 후 “감사하고 죄송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튿날 A 씨 자택 근처에서 A 씨를 만나 합의한 이 차관은 “영상을 지우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A 씨는 “지우지 않겠다. 그 대신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검찰은 A 씨가 삭제한 영상을 최근 복원했으며, 블랙박스 업체 관계자에게 출석을 요구했다. 이 차관은 “블랙박스 영상은 이 사건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며, 어떤 경위에서건 수사기관에 제출된 것은 다행”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조응형 yesbro@donga.com·김태성 기자}

지난해 11월 6일 이용구 법무부 차관에게 폭행을 당한 택시운전사 A 씨가 “이 차관에게 폭행 당시 상황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을 전송하자 이 차관이 지워 달라고 권유했다”고 24일 밝혔다. A 씨는 이날 오후 동아일보와 만나 이 차관의 블랙박스 영상 삭제 권유 여부에 대해 ‘맞다’고 답했다. 앞서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A 씨는 “폭행당한 다음 날 이 차관에게 폭행 당시 영상을 보냈더니 ‘감사하고 죄송하다’는 답이 돌아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블랙박스 업체에서 해당 장면을 휴대전화로 찍은 30초 분량의 영상에는 이 차관이 A 씨의 목덜미를 잡고 욕설을 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한 이 차관은 다음 날 택시운전사와 만나 합의했다. A 씨는 “합의 후 이 차관이 ‘영상을 지우는 것이 어떠세요’라고 했다. 내가 ‘안 지운다. 다른 사람한테 안 보여 주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A 씨는 지난해 11월 11일 이 영상을 이 차관 폭행 사건을 수사한 서울서초경찰서 B 경사에게 보여줬는데 B 경사는 “못 본 걸로 하겠다”고 한 뒤 그 다음 날 내사 종결했다고 주장했다. B 경사는 이틀 전 블랙박스 업체 관계자로부터 “A 씨가 영상을 가져갔다”는 말도 들었다고 한다. 경찰청은 지난해 12월 28일 블랙박스 영상이 녹화되지 않았고, 블랙박스 업체도 녹화된 게 없다는 점을 근거로 이 차관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을 적용하지 않고 내사 종결했으며 규정상 잘못된 부분이 없다고 밝혔다. B 경사는 감찰을 받고 24일 대기발령 조치됐고 경찰은 13명의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내사종결 과정을 재조사하고 있다. 이 차관은 입장문을 내고 “택시운전사의 진술을 가지고 진위 공방을 벌이는 것 자체가 택시운전사에게 또 다른 고통을 줄 우려가 크고, 특히 그런 태도는 공직자가 취할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조응형기자 yesbro@donga.com김태성기자 kts5710@donga.com}

“흡연하는 모양새가 폐쇄회로(CC)TV 영상과 똑같네.” 6일 밤 경기 안양에 있는 한 빌라 앞. 이틀 전 모바일 채팅으로 만난 여성을 성폭행하고 사라진 남성을 잡기 위해 잠복하고 있던 경찰의 눈에 한 남성이 들어왔다. 범행 현장 인근에서 확보한 CCTV 영상과 차림새도 비슷했지만 무엇보다 담배 피우는 습관이 닮아있었다. 경기 안양동안경찰서는 “4일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강간)를 받고 있는 A 씨(23)가 10일 구속 수감됐다”고 18일 밝혔다. 이달 초 A 씨는 한 모바일 채팅 앱에서 알게 된 여성을 4일 안양에 있는 건물 계단에서 만나 폭행한 뒤 성폭행까지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현장에 출동했으나 단서가 많지 않았다. A 씨가 범행 내내 마스크를 착용해 얼굴 생김새를 구별하기 어려웠다. A 씨는 피해자와 익명 채팅으로 대화했는데, 범행 직후 이 채팅 계정을 탈퇴해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남은 대화 기록도 자동으로 지워졌다고 한다. 이 채팅 앱은 대화가 끝나면 대화 기록이 자동으로 삭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영상에 담긴 A 씨의 독특한 흡연 습관이 덜미를 잡히는 단서가 됐다. 담배를 피울 때 꼭 90도 인사하듯 허리를 숙이고 침을 뱉었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경찰은 A 씨의 범행 장소와 도주 경로 인근에 있는 CCTV 약 40개를 분석해 A 씨의 거주지를 추정했다. 이후 3일간 잠복한 끝에 A 씨를 붙잡았다. 당초 A 씨는 경찰에 “사건 당일 퇴근한 뒤 근처 편의점에 들른 것 외엔 집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거주지 CCTV에 출퇴근 장면이 잡히지 않은 데다, 편의점에 거래 기록도 없었다고 한다. 결국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피해자와 만났던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합의하에 이뤄진 관계였다며 성폭행 혐의를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은 10일 A 씨에 대해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경찰 관계자는 “요즘 마스크를 많이 쓰다 보니 얼굴 인식이 쉽지 않은데, A 씨는 특이한 흡연 습관으로 특정이 가능했다”며 “증거물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가 나오는 대로 검찰에 넘기겠다”고 전했다.안양=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내일부터 헬스장 운영합니다. 샤워장 이용 가능합니다.” 직장인 A 씨는 회원으로 가입한 서울 종로구의 한 피트니스센터(헬스장)로부터 17일 영업 재개를 알리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모든 헬스장에서 ‘샤워 금지’인 줄 알았던 A 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18일 점심시간을 이용해 헬스장을 찾은 A 씨는 운동 후 같은 건물 내 목욕탕에서 몸을 씻고 나왔다. 헬스장과 함께 있지만 별도의 목욕탕업으로 등록된 곳이기 때문이다. 현재 목욕탕은 땀을 내는 시설인 사우나(한증막)를 제외하면 정상 운영이 가능하다. 수영장이 함께 있는 헬스장도 마찬가지다. 방역당국은 실내체육시설 중 수영장에 대해선 샤워 금지 규정의 예외를 인정했다. 그러다 보니 헬스장과 수영장을 모두 갖춘 대형 체육시설에선 헬스장 이용객이 샤워시설을 이용해도 제지하기가 어렵다. 서울 강남구의 한 헬스장은 “우리는 수영장이 있어서 헬스장 이용 후 샤워가 가능하다”며 “수영장 등록을 추가로 할 필요도 없다”고 홍보했다. 목욕탕이 별도 시설처럼 운영되는 호텔 피트니스센터 일부도 비슷한 상황으로 알려졌다. 이런 방식의 헬스장 운영이 ‘지침 위반’은 아니라는 게 방역당국의 설명이다. 목욕탕과 수영장이 헬스장과 별도 시설로 등록된 곳인 만큼 헬스장 회원이 이들 시설의 샤워장을 쓰는 건 업주의 재량이라는 이유다. 중앙사고수습본부 관계자는 “8m²당 1명, 음식 섭취 금지 지침만 지킨다면 실내체육시설 이용객이 옆 목욕탕을 이용하는 걸 막을 근거는 없다”고 했다. 다만 샤워시설을 운영할 수 없는 헬스장 사이에선 “방역 기준이 자의적”이라는 불만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이지운 easy@donga.com·김태성 기자}

“PC방 업계는 더는 소상공인, 자영업자만의 고통을 강제하는 방역 정책에 동의할 수 없다.” 수도권에 있는 PC방 약 500곳이 18일부터 정부의 방역 조치에 불복해 오후 9시 이후에도 영업하는 ‘오픈 시위’에 나서기로 했다. 한국인터넷콘텐츠서비스협동조합은 이날 “전 재산을 투자해 생업을 이어가는 PC방 사업주들은 이미 한계에 이르렀다”며 “일단 수도권의 조합 소속 PC방 약 500곳에 18일부터 야간 영업 재개를 요청했고, 다른 PC방의 동참을 요청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는 18일 0시부터 일부 업종을 대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집합금지 및 운영제한 조치를 다소 완화했다. 하지만 여전히 집합금지 대상인 유흥업소나 그다지 형편이 나아지지 않은 PC방과 노래방 등은 집단 반발하고 있다. 다만 매장 내 취식이 가능해진 카페와 영업을 재개한 피트니스센터 등은 오랜만에 활기가 돌고 있다. 이날 오후 2시경 서울 종로구의 한 코인노래방은 방 31개 가운데 1개에만 고객이 있었다. 사장 A 씨는 “일단 문은 열었지만 오후 9시에 문을 닫으면 손님의 80% 이상을 못 받는 셈”이라며 “단식 투쟁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한숨지었다. 한국코인노래연습장협회에 소속된 47개 업소는 18일 “과학적 근거 없이 고위험시설로 지정해 부당한 집합금지를 당했다”며 서울시를 상대로 손실보상 청구 소송을 냈다. 전국 유흥업소 업주들도 방역지침 연장에 반발해 집단행동에 나섰다. 한국유흥업중앙회 관계자는 “전국 회원들에게 18일부터 가게 문은 닫은 채 간판 불을 밝히는 점등 시위에 동참해 달라고 공지했다”고 전했다. 중앙회 광주시지부 소속 일부 유흥업소는 방역당국에 항의하기 위해 18일 오후 6시부터 영업을 강행했다. 반면 두 달여 만에 매장 손님을 받은 카페는 활기가 돌았다. 18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한 카페 출입문에 ‘거리 두기 제한 완화로 매장 이용 가능’이라는 팻말이 걸렸다. 사장 이후곤 씨(39)와 직원들은 커피를 내리느라 분주했지만 표정은 무척 밝았다. 이 씨는 “지난주보다 손님이 2배는 늘었다”면서 “한 손님이 ‘사장님 좋으시겠다’며 덕담해줬다”며 웃어 보였다. 종로구에 있는 한 카페에서는 직원이 붐비는 매장 안을 돌아다니며 정부 권고에 따라 “1시간 넘게 계시진 않았느냐”고 확인하는 광경도 보였다. 한숨을 돌린 몇몇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는 본사에 대해 담아뒀던 불만을 쏟아내기도 했다. 한 프랜차이즈 커피숍 업주인 신모 씨(46)는 “업주들이 힘겨워하는 동안 본사가 도와준 건 하나도 없다”며 “고통 분담 차원에서 원재료 값을 조금만 낮춰줬어도 그리 서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달여 만에 문을 연 피트니스센터 등도 오전부터 활기를 띠었다. 서울 강서구의 한 피트니스센터에서 마스크를 쓴 채 땀을 흘리던 유모 씨(45)는 “드디어 답답한 집을 탈출해 운동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다만 해당 헬스장 직원은 “면적당 인원 제한 탓에 퇴근 시간대에 주로 이용하는 직장인들은 계속 회원권을 정지 상태로 유지하겠다는 고객이 많다”고 했다.김태성 kts5710@donga.com·박종민 기자}

전직 국세청 공무원과 함께 유사수신업체를 차려놓고 ‘앵무새 분양’ ‘봉안당 분양’ 등의 사업에 투자하라고 속여 약 100억 원을 챙긴 전직 은행원이 재판에 넘겨졌다. 용의자는 2017년 해외로 도피했다가 지난해 12월에야 국내로 송환됐다. 경찰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로 유사수신업체 W사 대표이사인 A 씨(50)가 구속 수감됐다”고 18일 밝혔다. 검찰의 공소장과 피해자 모임에 따르면 은행원 출신 A 씨는 2016년 5월경부터 W사에서 이 회사의 회장직을 맡은 전 국세청 공무원 B 씨(63)와 사기 행각을 벌인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500만 원을 내야 가입할 수 있는 폐쇄형 소셜미디어를 운영하면서 회원들에게 “최대 연 125% 수익률을 보장하겠다”며 동물테마파크나 봉안당 분양 등에 투자하라고 꼬드겼다. 피해자모임 측은 “30대부터 60대까지 300명이 넘는 이들이 가입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W사는 제대로 투자한 사업이 없었다고 한다. 새로 투자를 받으면 이전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주는 ‘돌려 막기’ 방식으로 자금을 운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7년 6월 자금 운용이 한계에 이르자 A 씨는 해외로 도주했다. 외국으로 나간 A 씨는 초반에 필리핀 마닐라 인근에 있는 고급 거주지에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의 적색수배를 받고 여권이 무효화된 뒤에는 아랍에미리트(UAE)와 터키, 아르메니아, 조지아 등을 떠돌았다. 2019년 7월 조지아에서 붙잡힌 A 씨는 법무부의 범죄인인도청구 절차를 통해 지난해 12월 13일 국내로 송환됐다.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는 우선 A 씨가 투자자 20명에게서 96억5900만 원을 가로챈 혐의를 적용해 6일 구속 기소했다. 피해자모임 측은 “전체 피해액은 이보다 훨씬 많다. 3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지민구 warum@donga.com·김태성 기자}

“그동안 죽을 맛이었는데, 다시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죠.”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익선동에 있는 한 커피숍. 아직 고객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사장 허춘범 씨(68)와 직원 2명은 가게를 청소하느라 분주했다. 허 씨도 노란 고무장갑을 끼고 직접 나섰다. 한참 동안 먼지가 쌓였던 테이블을 닦아내고, 그새 시들어버렸던 화분들도 옮겼다. 허 씨는 “손님들이 매장에 앉지 못하게 된 뒤로 매출이 80% 이상 떨어졌다”며 “방역수칙을 잘 지키며 손님들은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18일 0시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를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일부 시설에 대한 집합금지 및 운영제한 조치는 다소 완화해 자영업자들은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방역수칙 준수가 전제지만 조건부 운영이 가능해진 카페나 피트니스센터 등은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오후 9시 영업을 기대했던 주점이나 노래방 등은 실망감을 표출하며 반발 움직임을 이어갔다.○ “영업 재개는 다행이나, 실효는 떨어져” 지난해 11월 24일부터 매장 내 취식이 금지됐던 수도권 카페들은 방역조치 완화에 오랜만에 활기가 돌고 있다.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수연 씨(46)는 “오늘 의자와 탁자에 꼈던 거미줄을 털어냈다”며 “방역수칙도 더 꼼꼼히 지킬 생각이다. 테이블 간격도 더 넓히겠다”고 했다. 방역수칙을 어기고 ‘오픈 시위’를 강행하며 자영업자 반발에 불씨를 댕겼던 피트니스센터 등 실내체육시설도 정부 조치에 반색했다. 구로구에 있는 한 피트니스센터 측은 “솔직히 백화점이나 스키장 등은 그대로 두면서 왜 우리만 문을 닫아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늦게나마 영업을 풀어줘서 다행”이라고 전했다. 다만 애매한 허용 기준이 운영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우려도 있었다. 특히 오후 9시 이후 영업제한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았다. 박주형 필라테스사업자연맹 대표는 “주 이용층인 직장인들은 대부분 퇴근 시간 이후에 온다. 이럴 경우 대략 오후 7∼9시 2시간 정도에 몰릴 수 있어 난감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8일부터 집합금지 대상이었던 수도권 학원 및 교습소 등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영업 조건이었던 ‘동시간대 9인 이하’에서 ‘8m²당 1명 또는 좌석 두 칸 띄우기’로 완화됐기 때문이다. 한 학원 관계자는 “기존 조건은 작은 규모의 동네학원 말고는 맞추기가 어려워 사실상 문을 열 수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대형학원 등에서는 조건 완화 시점이 늦어지며 실효성이 떨어진단 볼멘소리도 나왔다. 예를 들어, 인기강좌는 한번에 200명 이상 참석하기도 하는데, 조건을 지켜가며 대면강의가 불가능하다. 한 대형학원 측은 “게다가 이미 방학이 시작된 지 오래라 방학프로그램들은 학생 상당수가 취소를 해버린 상태”라며 아쉬워했다.○ “정부에 협조한 대가가 이거냐” 불만 이번 조치에서 오후 9시 이후 영업을 기대했던 업종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일반음식점이나 주점, 노래방 등은 “달라진 게 없어 매출 증가를 기대하기 힘들다”며 속상해했다. 서울 용산구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박모 씨는 “집단행동을 한 업종만 풀어줬다는 의심이 강하게 든다. 주점들도 피트니스센터처럼 집회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김시동 코인노래연습장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은 “노래방은 실질적인 영업이 오후 7시 이후에 벌어지는데 2시간 가지고 월세는커녕 인건비나 건지겠느냐”고 한탄했다. 집합금지가 그대로 유지된 유흥업소 업주들은 반발 강도가 더 세다. 한국유흥음식점중앙회 관계자는 “당장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운 영세 업주들이 걱정”이라며 “정부 방침에 장기간 협조해왔는데 계속 희생만 강요한다”고 분개했다. 광주광역시 유흥업소들은 집단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 광주시지부에 소속된 유흥업소 약 700곳은 18일 광주시청을 항의 방문하고 방역수칙과 관계없이 영업을 재개하기로 했다. 단속에 적발돼 벌금이 부과되면 회원들이 함께 납부하는 방식도 고려 중이다. 지부 관계자는 “우리는 10개월 동안 6개월 이상 영업을 하지 못했다”며 “굶어 죽으나 단속에 걸려 죽으나 매한가지”라고 말했다.김태성 kts5710@donga.com / 광주=이형주 / 최예나 기자}

“그동안 죽을 맛이었는데, 다시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죠.”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익선동에 있는 한 커피숍. 아직 고객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사장 허춘범 씨(68)와 직원 2명은 가게를 청소하느라 분주했다. 추운 날씨에도 직원들은 매장 밖 창틀을 닦고, 입구를 빗자루로 쓸었다. 허 씨도 노란 고무장갑을 끼고 직접 나섰다. 한참동안 먼지가 쌓였던 테이블을 닦아내고, 그새 시들어버렸던 화분들도 옮겼다. 허 씨는 “손님들이 매장에 앉지 못하게 된 뒤로 매출이 80% 이상 떨어졌었다”며 “방역수칙을 잘 지키며 손님들은 잘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18일 0시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일부 시설에 대한 집합금지 및 운영제한 조치는 다소 완화해 자영업자들은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방역수칙 준수가 전제지만 조건부 운영이 가능해진 카페나 피트니스센터 등은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오후 9시 영업을 기대했던 주점이나 노래방 등은 실망감을 표출하며 반발 움직임을 이어갔다.●“영업 재개는 다행이나, 실효는 떨어져”지난해 11월 24일부터 매장 내 취식이 금지됐던 수도권 카페들은 방역조치 완화에 오랜만에 활기가 돌고 있다.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수연 씨(46)는 “오늘 의자와 탁자에 꼈던 거미줄을 털어냈다”며 “방역수칙도 더 꼼꼼히 지킬 생각이다. 테이블 간격도 더 넓히겠다”고 했다. 방역수칙을 어기고 ‘오픈 시위’를 강행하며 자영업자 반발에 불씨를 당겼던 피트니스센터 등 실내체육시설도 정부 조치에 반색했다. 구로구에 있는 한 피트니스센터 측은 “솔직히 백화점이나 스키장 등은 그대로 두면서 왜 우리만 문을 닫아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늦게나마 영업을 풀어줘서 다행”이라고 전했다. 다만 애매한 허용 기준이 운영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우려도 있었다. 특히 오후 9시 이후 영업제한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았다. 박주형 필라테스사업자연맹 대표는 “주 이용 층인 직장인들은 대부분 퇴근 시간 이후에 온다. 이럴 경우 대략 오후 7~9시 2시간 정도에 몰릴 수 있어 난감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8일부터 집합금지 대상이었던 수도권 학원 및 교습소 등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영업 조건이었던 ‘동시간대 9인 이하’에서 ‘8㎡당 1명 또는 좌석 두 칸 띄우기’로 완화됐기 때문이다. 한 학원 관계자는 “기존 조건은 작은 규모의 동네학원 말고는 맞추기가 어려워 사실상 문을 열수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대형학원 등에서는 조건 완화가 시점이 늦어지며 실효성이 떨어진단 볼멘소리도 나왔다. 예를 들어, 인기강좌는 한번에 200명 이상 참석하기도 하는데, 조건을 지켜가며 대면강의가 불가능하다. 한 대형학원 측은 “게다가 이미 방학이 시작된 지 오래라 방학프로그램들은 학생 상당수가 이미 취소를 해버린 상태”라며 아쉬워했다.●“정부에 협조한 대가가 이거냐” 불만이번 조치에서 오후 9시 이후 영업을 기대했던 업종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일반음식점이나 주점, 노래방 등은 “달라진 게 없어 매출 증가를 기대하기 힘들다”며 속상해했다. 서울 용산구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박모 씨는 “집단행동을 한 업종만 풀어줬다는 의심이 강하게 든다. 주점들도 피트니스센터처럼 집회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김시동 코인노래연습장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은 “노래방은 실질적인 영업이 오후 7시 이후에 벌어지는데 2시간 가지고 월세는커녕 인건비나 건지겠느냐”고 한탄했다. 집합금지가 그대로 유지된 유흥업소 업주들은 반발 강도가 더 세다. 한국유흥음식점중앙회 관계자는 “당장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운 영세 업주들이 걱정”이라며 “정부 방침에 장기간 협조해왔는데 계속 희생만 강요한다”고 분개했다. 광주광역시 유흥업소들은 집단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 광주시지부에 소속된 유흥업소 약 700곳은 18일 광주시청을 항의 방문하고 방역수칙과 관계없이 영업을 재개하기로 했다. 단속에 적발돼 벌금이 부과되면 회원들이 함께 납부하는 방식도 고려 중이다. 지부 관계자는 “우리는 10개월 동안 6개월 이상 영업을 하지 못했다”며 “굶어 죽으나 단속에 걸려 죽나 매한가지”라고 말했다. 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서울대 졸업장, 탄탄한 일자리, 고액 연봉…. 한때 남들이 우러러보는 스펙을 좇았지만, 어릴 적 품었던 자기만의 꿈에 도전해 ‘영꿈(Young+꿈) 통장’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청년들이 있다. 배우 프로필을 100번 넘게 돌려 99번 거절당하고, 6번 도전한 스페인 축구단 입단에서 5번 실패했지만 결국 이뤄낸 짜릿한 성취로 꿈에게 진 빚을 갚는 사람들을 만났다.》 “서울대 나와서 왜 연기를 해요?” 2018년 3월에 있었던 한 독립영화 오디션장. 막 연기를 마친 김재은 씨(28)를 지켜보던 한 영화 관계자는 심드렁하게 툭 내뱉었다. 연기에 대한 평가도 없이, 그게 어떤 상처가 되는지도 모르는 한마디. 재은 씨는 한참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진심을 몰라주는 것만큼 서러운 일이 없거든요. 그저 제 연기를 보여주고 싶은 건데, 누군가는 다른 조건들에만 관심을 갖죠. 연기에 도전할 때마다 자주 그런 상처를 받아요. 어떤 이들은 가진 자의 배부른 소리라고도 하지만, 꿈은 누가 대신 꿔주는 게 아니잖아요.” 남들이 뭐라 하든 자기만의 ‘영꿈(Young+꿈) 통장’을 가진 청년들은 곧잘 이런 벽에 부딪힌다. “왜 그 좋은 걸 마다해?” 조건을 박차고 나와 꿈에 투자하는 이들은 때론 괴짜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영꿈 통장은 눈앞의 ‘수익률’을 생각하며 만드는 게 아니다. 통장을 개설하는 것 자체, 그 도전하는 과정이 청년들이 꾸는 꿈이다.○ 진심을 채워가는 꿈의 통장 재은 씨가 연기자의 길에 들어선 건 스물세 살이 되던 2016년. 유치원 때부터 맘속에서만 품고 있던 ‘워너비(wannabe)’의 세상에 도전하기로 했다. 물론 주위에서 반대가 엄청났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아르바이트와 인턴 생활을 하며 모았던 돈을 몽땅 연기학원에 쏟아부었다. 2017년엔 아예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1평짜리 연습실도 빌렸다. 전력투구를 위한 투자였다. 차근차근 정열을 쏟아부으면 지금은 마이너스인 영꿈 통장이 플러스로 바뀌리라.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제 영꿈 통장은 해질 대로 해진 노트 한 권이에요. 표를 만들고 날짜와 함께 그날 연습할 배역을 적어뒀죠. 연습 때마다 까만 동그라미를 하나씩 칠했어요. 이 노트 한 권을 채우는 데 거의 1년이 걸렸네요. 제 꿈을 향한 노력이 고스란히 담겼어요.” 노력은 결국 길을 터줬다. 2018년 가을, 재은 씨는 한 독립영화에서 3분 동안 중국어 독백 장면을 찍었다. 어려운 중국어 대사를 오디션에서 깔끔하게 소화해냈다. 현장에서도 “감정 표현이 좋았다”는 칭찬을 받았다. 늦깎이 연기자 재은 씨의 영꿈 통장에 가능성이 비치던 순간이었다. 아직도 재은 씨의 영꿈 통장은 현재진행형이다. 소규모 영화와 연극 수십 편에 출연하며 커리어를 쌓고 있다. 이젠 학교만 물어본 뒤 기회를 주지 않던 시절은 벗어난 셈이다. “당장 10만 원, 100만 원이 제 인생에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면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는 회사에 들어갔겠죠. 물론 그것도 성취감이 있지만 제가 꿈꾸는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죠. 영꿈 통장에 근사한 연봉을 채우진 못했지만 제 ‘진심’을 입금했어요.” ○ 연봉은 제로라도 마음만은 부자 축구선수 구성은 씨(28). 웬만큼 축구에 해박한 이들에게도 낯선 이름이다. 일단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면 다들 깜짝 놀란다. 그런데 소속팀 이름을 대면 다들 이상한 사람 쳐다보듯 한다. ‘우니온 엘리파(C. D. Union Elipa).’ 레알 마드리드 같은 1부 리그가 아닌 6부 리그 축구팀이다. 사실 성은 씨는 ‘축구 선수를 경험해본 적 없었던’ 축구선수다. 평범한 대학생이던 그는 아마추어임에도 남다른 실력으로 국내 K3리그(당시 4부 리그)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그저 “제대로 도전해보고 싶다”는 각오뿐이었다. 입단까진 성공했지만 수준 차라는 벽만 여실히 절감했다. 그는 군대에 갔다. 하지만 그는 휴면계좌로 잠들어 있던 영꿈 통장을 한시도 잊지 못했다. 어린 시절 2002년 한일 월드컵의 감동은 언제나 그를 들썩거리게 했다. 차범근축구교실에서 배운 게 다지만 무모한 꿈이라도 상관없었다. 전역한 뒤 그 무모함을 갈아 넣을 마이너스통장을 발견했다. 2018년 당시 스페인 7부 리그에 한국인으로만 구성된 ‘꿈 FC’를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다. 택배기사, 기간제 교사 등 다양한 이들이 모였다. 연봉은 없다. 성은 씨도 무작정 스페인으로 건너가 1년 동안 선수로 뛰었다. 2019년엔 본격적으로 영꿈 통장을 만들었다. 제대로 스페인 지역 리그 선수가 되겠다는 게 목표였다. 5전 6기 끝에 소속 팀을 찾았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국내에 와 있는 동안 방출됐다. 통장엔 잔액도 없이 마이너스만 늘어갔지만 성은 씨는 개의치 않았다. 지난해 8월 다시 스페인으로 건너가 입단 테스트에 도전했다. 그렇게 찾은 소속 팀이 현재의 우니온 엘리파다. 지금도 성은 씨는 버는 돈이 거의 없다. 스페인은 3부 리그 이상은 올라가야 주급이라도 나온다. 그나마 유튜브에서 자신의 일상을 소개한 것이 호응을 얻어 그 수익으로 생활비를 충당한다. 하지만 그의 꿈을 응원하는 수백 개의 댓글은 그에겐 통장 이자만큼이나 소중하다. “더 잘해서 더 높은 리그에 도전해보고 싶죠. 현실적으로 4, 5부 리그만 올라가도 정말 기쁠 것 같아요. 이렇게 도전하는 자체로도 ‘뭐든 인생에 얻는 게 있을 거야’란 자신감이 있습니다. 유튜브를 통해 불어난 팬들은 엄청난 수익이고요.”○ 꿈을 잃으면 어떤 일도 즐겁지 않아 여섯 살 때부터 이어가던 피아니스트라는 ‘영꿈 통장’. 하지만 김수진 씨(34)는 고교 2학년 때 그 통장을 해지했다. 지극히 뻔하고 현실적인 이유였다.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못했다. 모아뒀던 악보를 다 버리고 2005년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피아노는 취미가 됐다. 하지만 꿈을 잃은 청년에게 길고 긴 방황이 찾아왔다. 대학을 졸업해도 흔들리는 건 마찬가지였다. 2011년 첫 직장에 들어간 뒤 2년 동안 이직만 여러 차례. 채워지지 않는 뭔가로 가슴이 뻥 뚫려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문화단체 사무국에서 일하다 예술인들을 마주하며 깨달았다. ‘내 꿈은 피아노구나.’ “음대를 가려고 정말 죽을 듯이 노력했어요. 레슨비를 벌려고 하루 6시간씩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을 한 푼도 안 썼어요. 거의 10년 만에 다시 피아노를 치니 손가락이 다 굳어 정말 애먹었죠. 하지만 일하고 밥 먹고 자는 시간 말곤 오로지 연습만 했어요.” 수진 씨는 2012년 기적처럼 음대에 합격했다. 합격한 뒤엔 더 미친 듯이 정열을 쏟아부었다. 오전 5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연습만 하는 일이 평범한 일상이 됐다. 해지했던 영꿈 통장은 다시 살아나 부풀어 올랐다. 석사 과정을 마친 수진 씨는 현재 예술경영박사 과정까지 밟고 있다. “피아노를 다시 할 수 있어 행복해요. 그것뿐이에요. 안 했으면 평생 후회했겠죠.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진다’는 생각으로 간절하게 원하고 노력했어요. 꿈꾸던 삶을 살 수 있어 만족스러워요. 정식 연주자가 되지 못해도 좋아요. 제 영꿈 통장은 ‘무엇이 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며 사는가’예요.”○ 습생이에서 스타 인플루언서로 소셜미디어에서 수많은 팔로어를 거느린 허영주 씨(29)는 10년 전엔 ‘습생이’이라 불렸다. 습생이란 연예기획사 아이돌 연습생을 낮춰 부르는 말이다. 오랜 노력 끝에 데뷔도 했다. 스무 살때 ‘더 씨야’란 걸그룹 멤버였다. 데뷔만 하면 스타가 될 줄 알았던 꿈은 금방 깨졌다. 대중의 반응은 냉담했다. 습생이 때만큼 연습하고 연습했지만 무대에 설 기회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몇 년간 습생이로 부은 ‘영꿈 통장’이 드디어 황금 알을 낳을 줄 알았건만. 이자는커녕 원금 회수조차 어려운 통장이 돼버렸다. “매일 ‘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라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남 탓만 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했어요. 누군가가 키워주지 않아서 이런 거라고 신세 한탄을 하고 있는 게 잘못이란 걸 깨달았죠.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었죠. ‘댐에 물을 채우는 시간을 갖자.’ 성공 말고 성장에 투자해보자. 그게 목표이자 꿈이어야 한다고요.” 영주 씨는 남이 관리해주길 바랐던 통장을 다시 자기 품으로 찾아왔다. 자기만의 장점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소속사와 계약이 끝난 뒤 동생 정주 씨와 함께 ‘듀자매’란 그룹을 결성했다. 아직 대중가수로서 뭔가를 이루진 못했지만 지금 그들은 ‘틱톡’ 팔로어가 550만 명이 넘는다. 국내에서 틱톡 팔로어 순위 20위 안팎일 정도의 ‘인플루언서’가 됐다. 이젠 수입도 꽤 커졌다. “당연히 수입이 생긴 것도 고맙죠. 하지만 ‘나 스스로 우뚝 섰다’라는 자부심이 더 소중해요. 고난의 시간을 겪으며 쌓은 노력이 이제 행복이란 이름으로 영꿈 통장에 쌓이는 거죠.” “1년간 책 100권보다 매일 2장씩 읽기 목표로… 소소한 도전이 자신을 키워”위기 때 ‘진로적응성’ 높이는 법 ‘3포 세대’ ‘N포 세대’도 옛말이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터진 뒤엔 그냥 다 포기해야 한다. 이 시대 청년들은 불안을 일상으로 품고 지낸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게 꿈이다. 영꿈 통장을 마련해 엎치락뒤치락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두려움과 역경에도 청년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도전과 실패를 통해 자기를 발견하는 과정”을 높이 샀다. 양은주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영꿈 통장을 만들어가는 청년들의 모습이 난관 극복의 효과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라며 “위기에 굴하지 않고 도전했던 경험이 나중에 찾아올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해주는 레이더 같은 역할을 한다”고 했다. 진로 상담 분야에 ‘진로적응성’이란 용어가 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어떤 도전이건 위기를 겪기 마련이다. 하지만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상황을 곱씹어가는 것 자체로 인간은 자신을 조금씩 깨달아간다. 이런 과정에서 자신의 미래에 대한 관심과 통제력, 확신을 갖는 능력이 진로적응성이다. 청년의 영꿈 통장은 이런 진로적응성을 담는 그릇이어야 한다. 이런 진로적응성은 ‘작은 도전’을 해결해보는 경험을 통해 키워 나갈 수 있다. 처음부터 너무 큰 도전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목적보다는 가능성의 폭을 열어놓는 것만으로도 영꿈 통장은 커질 수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소소한 도전’을 추천했다. 예를 들어 독서라는 목표를 세웠을 때 “1년 동안 책 100권을 읽어야지” 같은 거창한 목표는 오히려 실패할 확률이 높다. “매일 책 두 페이지씩 읽겠다”는 가벼운 도전을 통해 성취감을 매일 맛보는 게 중요하다. 그 결과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며 무기력을 극복하고 꿈도 발견할 수 있다. 심리학이나 정신건강 분야에서는 사건 사고 등으로 생긴 트라우마를 극복한 뒤 개인적인 역량과 삶에 대한 만족도가 이전보다 크게 향상되는 현상을 ‘외상 후 성장’이라고 부른다. 도전과 실패의 경험은 상처로 남지만 이를 극복해 아물고 딱지가 떨어지면 더 단단하고 건강한 새살이 돋아난다. 조용래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회적 여건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걸 인정하고 적응하면서 내면의 긍정적 변화를 겪게 되기도 한다”며 “도전을 계속하고 성취를 이루는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을 믿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 특별취재팀 ::▽팀장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강승현 신희철 이소연 김태성 이청아(이상 사회부) 전채은(문화부) 신지환(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