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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최고위원은 여러 차례 막말 논란을 빚었다. 2012년 새해의 사자성어로 ‘명박박명’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렸다. 미인박명(美人薄命)에 빗대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빨리 죽으라는 저주의 말을 퍼부은 것이다. 2013년에는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을 비판하면서 ‘바뀐 애는 방 빼, 바꾼 애들은 감빵(감방)으로’라는 글을 올렸다. 박근혜 대통령을 ‘박근혜’와 비슷한 ‘바뀐 애’라고 비하해 부르면서 물러나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는 어제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주승용 최고위원에게 “사퇴할 것처럼 공갈치는 게 더 문제”라고 비죽거렸다. 주 위원이 4·29 재·보궐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려다 번복한 것을 공격한 것이다. 화가 난 주 위원은 문재인 대표가 말리는 것도 뿌리치고 나가 사퇴 의사를 밝혔다. 문 대표는 정 위원에게 사과할 것을 주문했으나 정 위원이 “사과할 이유가 없다”고 거부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뒤숭숭한 새정치연합이 하루 종일 막말 소동으로 어수선했다. ▷정치인의 수준은 곧 말의 수준이다. 정치인이 신랄한 비판을 하고 싶다면 위트를 사용할 수도 있다. 촌스러웠던 소련 서기장 흐루쇼프도 ‘정치인은 강이 없는 곳에도 다리를 놓아준다’ 같은 멋진 말을 할 줄 알았다. 정 위원이 말로만 사퇴를 떠든 주 위원을 비판하고 싶었다면 ‘사퇴는 말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고 비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공갈’ 같은 거친 표현은 한판 붙겠다는 생각이 없으면 누군가의 면전에서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정 위원은 문 대표가 2월 취임 직후 첫 일정으로 국립서울현충원의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자 “독일이 유대인의 학살을 사과했다고 유대인이 히틀러 묘소를 참배할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두 전 대통령이 독재를 하긴 했지만 유대인 600만 명 이상을 죽인 히틀러에 비유한 것은 균형감이 없다. 당시 새누리당은 정 위원을 ‘최고위원 아닌 최악위원’이라고 비꼬았다. 최고위원다운 말의 품격을 갖추라는 것 자체가 정 위원에게는 무리일까.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공무원연금 개혁은 국회 본회의 통과 여부와 상관없이 실패다. 그럼 노동개혁은 성공할 것인가. 공공부문, 금융, 교육 개혁은 또 어떨 것인가. 장담할 수 없다. 쟁점 안건은 모두 여야 합의로 처리하도록 한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이 나라는 개혁이 불가능한 나라가 됐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개혁이란 기득권층의 반발을 부르기 마련이다. 그런 개혁이 합의로 가능하다는 생각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사회학에서 사회를 보는 두 가지 상반된 시각이 있다. 사회가 합의로 돌아간다는 통합 모형은 탤컷 파슨스 같은 보수적 학자들의 주장이다. 개혁적 학자들은 사회는 일부 구성원들이 다른 구성원들을 강제하는 것에 바탕을 둔다는 갈등 모형을 택한다. 다만 그 강제가 소수가 다수에게 강제하는 것이면 권위주의이고, 다수가 소수에게 강제하는 것이면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합의의 비민주적 대가 합의가 과반을 넘어 일치에 접근할수록 합의에 걸리는 시간은 길어지고 비용은 늘어난다. ‘불어 터진 국수’란 비판은 다름 아니라 합의에 걸린 과도한 시간을 말한다. 더 큰 문제는 비용, 바로 합의를 위한 흥정에 드는 비용이다. 공무원연금 개혁 합의는 그 자체로도 초라하지만 뒷문으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국민연금 수정안을 끌어들였다. 사실 합의는 단지 시간이 걸려 성사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걸리는 흥정 끝에 결국 대가를 지불하기 때문에 성사되는 것이다. 그 대가가 주로 법안 연계 처리다. 이런 방식으로 50% 지지도 얻지 못하는 비(非)민주적 안건이 민주적 안건에 섞여 관철된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의원은 정부와 여당에서 누리과정 예산 집행을 위한 지방재정법 개정을 요구하자 이를 통과시켜 주는 대가로 광역의원 유급보좌관 신설안을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서 통과시켰다. 지방의원은 ‘무보수 명예직’으로 출발했지만 2006년부터는 연 수천만 원씩 의정비를 받고 있다. 지방의원은 국회의원과 달리 겸직도 제한 없이 가능하다. 그런 마당에 유급 보좌관까지 둔다는 데 동의할 사람은 별로 없다. 더러운 법안 연계 처리는 이제 상습적이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여야 합의가 소수가 다수에게 의사를 강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국회선진화법의 미끼를 던진 것은 새정치연합이지만 그걸 덥석 문 것은 새누리당 쇄신파들이다. 그러나 궁극적 책임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이들의 행동을 뒤에서 바라보기만 하고 제동을 걸지 않은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다고 할 것이다. 지금 박 대통령은 국회를 비판하기에 앞서 자기 자신을 비판해야 하고, 새누리당은 새정치연합을 비판하기에 앞서 스스로를 비판해야 한다.단순 과반으로 돌아가야 여야 합의가 민주주의를 보장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민주주의를 저해한다는 게 드러나고 있다. 소수자의 보호가 특별히 요구되는 사안이 아닌 한, 단순 과반이 민주주의를 가장 확실히 보장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거의 모든 나라의 국회가 단순 과반을 의결 방식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개혁 불가능 국가에서 벗어나려면 이 단순 과반의 민주주의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길이 막혀 있다. 건너올 수는 있었는데 건너갈 수는 없다. 여야 합의를 만든 것은 단순 과반의 의결로 가능했지만 단순 과반으로 되돌리는 것은 여야 합의의 의결로만 가능하다. 국회 스스로 그런 의결을 할 가능성은 없다. 헌법재판소는 되돌릴 수 있을까. 쉽지 않다. 빠져나올 길이 보이지 않는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 여류 작가는 보지도 못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드는 대목들이 있다. 그런 시오노가 현대 남성 중에서 으뜸으로 꼽는 이는 미국 배우 게리 쿠퍼다. 잘생기고 교양 있는 데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서부의 사나이 역할을 누구보다 멋지게 소화한 배우다. 미국이 세계의 선망을 받던 시절, 멋진 미국 남자의 이미지 그 자체라고나 할까. ▷시오노는 아베 신조의 열렬한 지지자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고대 로마에 빗대기 좋아하는 그의 상상력은 간혹 황당해서, 카이사르에서 아우구스투스로의 승계가 팍스 로마나의 시대를 열었듯이 고이즈미 준이치로에서 아베 신조로의 총리 승계가 일본을 구할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고 했다. 그도 아베가 직구만 던질 줄 알았지 변화구는 던질 줄 모른다는 데는 불만이다. ▷아베 총리가 미국 상·하원 연설에서 에이브러햄 링컨과 게리 쿠퍼를 언급했다.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두 사람을 언급해 환심을 사려는 것이지만 두 사람 다 아베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아베는 시오노와는 달리 쿠퍼와 동시대를 살았다고 보기 어렵다. 쿠퍼가 죽었을 때 아베는 고작 일곱 살이었다. 그는 미국 유학시절 하숙집 여주인이 사별한 남편에 대해 ‘쿠퍼보다 잘생겼다’고 자랑한 사실을 인용했을 뿐이다. 쿠퍼를 좋아하는지 어떤지는 말하지 않았다. ▷영화 ‘하이 눈’에서 쿠퍼가 분(扮)한 보안관 윌 케인은 결혼하기 위해 은퇴하고 마을을 떠나려는 순간 자신이 감옥에 보낸 악당이 마을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계획을 바꿔 마을에 남아 목숨을 건 결투를 벌인다. 케인 보안관은 양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의 표상이다. ‘하이 눈’을 보고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어떻게 아베처럼 행동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나의 의문이다. 케인 보안관이라면 말로만 무라야마와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고 하면서 끝까지 사죄하지 않는 따위의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외교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동맹이다. 우리나라는 천 년간 동맹국을 스스로 선택해본 적이 없다. 이것이 지금까지도 한국에 외교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이유다. 삼국시대만 해도 나당(羅唐)연합이니 백왜(百倭)연합이니 하는 게 있었으나 이후로는 주로 중국과의 조공 관계가 이어졌다. 중국도 전국시대에 합종연횡(合從連衡) 같은 치열한 외교가 있었으나 진시황의 천하통일 이후 바뀌기 시작했다. 중국과 주변국은 오랫동안 외교를 잊고 살았다. 중국이 서양과 접촉해 아편전쟁을 당한 것은 외교를 잊은 채 조공만 고집했기 때문이다. 일본만 중화의 세계에서 떨어져 번(藩)으로 나뉘어 자기들끼리 경쟁하면서 동맹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런 일본도 개국 이후 열강에 끼는 과정에서 러시아가 주도한 삼국 간섭에 호되게 당한 뒤, 러일전쟁에서 영일동맹으로 러시아에 보복하면서 동맹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한국엔 낯선 동맹 경험 조선은 개국 이후 일본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동맹을 경험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또 광복과 동시에 한반도 북쪽은 소련, 남쪽은 미국과의 동맹의 틀 속에 사실상 강제로 편입됐다. 그러고 나서 중국의 부상과 함께 천 년 만에 처음으로 우리에게 동맹의 선택지(選擇肢)가 주어졌다. 일본은 우리와 달리 동맹의 경험이 풍부한 나라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방미를 미일의 ‘신(新)밀월관계’ 정도로 보는 것은 핵심을 찌르지 못한다. 신밀월관계는 1980년대 나카소네 야스히로-로널드 레이건과 20년의 격차를 둔 고이즈미 준이치로-조지 W 부시의 관계에나 적절한 표현이다. 아베가 한 것은 미일동맹의 성격을 바꾸는 질적인 변화다. 아베의 궁극적 목표는 일본 미국 호주의 동맹에 인도를 끼워 넣는 ‘민주적 다이아몬드 동맹(democratic security diamond)’이다. 미국 하와이에서 시작해 연결하면 다이아몬드가 그려지는 네 나라가 민주주의를 공동 가치로 중국에 맞선다는 것이다. 중국은 대국(大國)이고 앞으로 더 큰 대국이 될 것이지만 주변국이 포위하면 일본이 싸워볼 만한 상대다. 전 세계를 관리하는 데 점점 더 힘이 부치는 미국으로서도 바라는 바다. ‘민주적 다이아몬드 동맹’ 구상에 한국은 들어 있지 않다. 일본의 생각은 한국이 들어와 주면 좋지만 들어오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최근 들어 일본은 한국과의 가치 공유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중국과 가까워진 한국이 들어오면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드러내기 시작했다.투키디데스를 읽어라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국 우선순위에서 일본에 밀린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이런 냉엄한 현실이 서운하지만 그렇다고 중국과의 동맹으로 함부로 기울 수도 없다. 중국은 여전히 반(反)중국 세력에 비하면 큰 차이로 열세다.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기운다고 우세를 열세로, 열세를 우세로 바꿀 수 있는 균형자도 아니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보면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생존을 위한 동맹이 눈물겹다. 동맹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은 경쟁하는 양쪽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행복한 상황이 아니다. 진정한 외교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헛소리를 하는 것이다. 동맹은 이기는 동맹에 서야 하고 이기는 동맹에 서기 위해 때론 억울함을 감수해야 한다. 최소한 왕따가 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외교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논설위원 pisong@donga.com}

이탈리아 호화유람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는 2012년 질리오 섬 부근에서 좌초해 승객 32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프란체스코 스케티노 선장은 승객을 버려둔 채 탈출했다가 기소됐다. 이탈리아 법원은 올 3월 스케티노 선장에게 징역 16년 1개월을 선고했다. 외신에 따르면 그에게 적용된 죄목은 살인(murder)이 아니라 고의성이 없는 과실치사(manslaughter)다. ▷어제 세월호 이준석 선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1심에서 인정되지 않았던 살인죄가 적용됐다. 재판부는 “이 선장의 행위는 고층빌딩 화재 현장에서 책임자가 먼저 헬기를 타고 탈출하거나 유일한 야간 당직의사가 병원에서 빠져나가는 것과 같다”며 이 선장이 탈출 전 승객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은 데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봤다. 1심에서 유기치사상 등 죄목으로 징역 36년을 선고받았던 이 선장의 형량은 무기징역으로 높아졌다. ▷참사가 대형이라도 살인죄가 적용되는 것은 이례적이다. 법률가에 따라서는 ‘1심 판결이 옳다’ ‘항소심 판결이 옳다’ 의견이 갈린다. 1970년 326명이 희생된 남영호 침몰 사고에서 선장이 살인죄로 기소됐지만 무죄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배가 화물 과적이 심하긴 하지만 선장 스스로 그 배에 탔는데 살인의 고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남영호는 당시 세 번의 파도를 맞고 순식간에 배가 뒤집어져 선장이 승객을 구조할 시간이 없었던 반면 세월호는 사고 후 배가 80도 이상 기울기까지 1시간 20분의 시간이 있었다. ▷우리나라 형법에서 살인죄는 살인죄 하나뿐이다. 독일만 해도 살인을 모살(謀殺·Mord)과 고살(故殺·Totschlag)로 구별한다. 모살은 계획적인 살인을 말하고, 고살은 충동 등 다른 요인이 개입된 우발적인 살인을 말한다. 미국에서 1급 살인과 2급 살인을 구별하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 형법 체계가 현대 사회의 대형 참사를 예방하는 데 적합하지 않게 돼 있다. 애매모호한 미필적 고의를 남용하기보다는 살인죄를 좀더 세분할 필요성이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한명숙 전 총리와 이완구 전 총리를 비교한다면 양쪽 다 화를 낼지 모르겠다. 한 전 총리는 첫 여성 총리였고 이 전 총리는 충청권 대선주자로 오르내렸으니 양쪽 다 자부심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받았다는 불법 정치자금의 액수는 9억 원 대 3000만 원으로 한 전 총리 쪽이 훨씬 많다. 그렇지만 9억 원은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되지 않았고 3000만 원은 검찰이 아직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정치인 출신 총리가 많지 않은 터에 두 사람 다 정치인 출신으로 총리가 됐고 또 총리를 지낸 사람으로서는 드물게 불법 정치자금 수수에 연루됐다. 한 전 총리는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서는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 한 전 총리같이 민주화 운동의 전력을 자랑하는 사람이 뇌물을 받았다고 믿고 싶지 않다. 다만 정치자금은 좀 다른 측면이 있다. 두 사람 다 학자나 관료 출신이 아니라 국회의원과 시도지사에 출마한 정치인이다 보니 불법 정치자금의 유혹에서 자유롭기는 어렵겠다 싶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그제 “새정치민주연합이 부정부패로 새누리당을 비판할 자격이 있느냐”며 한 전 총리가 불법 정치자금으로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사실을 꼬집었다. 자살한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폭로로 시작된 정치권 다툼에 애먼 한 전 총리까지 불려 나왔다. 하지만 결국 새정치연합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 반대하는 것이야 새정치연합의 자유지만 인준 표결 자체를 막고 있으니 ‘한명숙 구하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한 전 총리에 대한 2심 유죄 판결이 내려진 것은 2013년 9월이다. 그때로부터 1년 7개월이 지났다. 기소된 때로부터 따지면 4년 9개월이다. 그 사이 한 전 총리의 19대 국회의원 임기는 3년이 지나갔다. 이러다가 내년 임기가 끝날 무렵에나 대법원 판결이 나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연착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새정치연합은 박 후보자 인준 표결에 협조하고 대법원도 궐원을 채우게 되면 정치권 눈치 보지 말고 신속하게 판결을 내려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역사상 가장 많은 비용을 들여 인양한 선박은 2012년 이탈리아 질리오 섬 해안에서 좌초한 코스타 콩코르디아호로 기록됐다. 10억 유로(약 1조1615억 원)가 들었다. 예인과 폐선 비용을 빼고 인양 비용만 그렇다. 그러나 누구도 이 인양 작업에 대해 왈가불가하지 않았다. 비용을 선주가 댔기 때문이다. 세월호의 경우 인양 비용은 전액 세금으로 부담해야 한다. 국가가 지금까지 세월호 실종자 수색 작업 등에 쓴 비용이 1800억 원인 반면 현재 법무부가 동결한 세월호 선주 유병언 씨 일가의 재산은 겨우 1282억 원이다. 1282억 원을 전액 환수한다 해도 이미 쓴 비용 1800억 원도 회수하지 못한다.선주의 돈, 국민의 돈 콩코르디아호의 인양 비용은 5억 유로로 예상됐으나 실제로는 2배까지 늘었다. 정부는 어제 세월호 인양에 1000억∼1500억 원이 든다고 밝혔다. 앞서 2000억 원 얘기가 흘러 나왔기 때문에 1500억 원은 마사지한 느낌이 드는 숫자다. 어찌됐건 남은 9명의 실종자를 수습하는 데 드는 비용이 앞서 295명의 실종자를 수습하는 데 든 비용을 넘어설 수도 있는 상황이다. 비용은 그렇다 치더라도 남은 유해를 수습할 수 있다는 보장은 있는가. 콩코르디아호는 섬에 인접한 낮고 잔잔한 바다에 거의 온전한 상태로 반쯤 잠겨 있다가 1년 8개월 만에 인양됐는데도 최종 남은 실종자 2명 중 1명의 일부 유해만 간신히 찾을 수 있었다. 세월호는 붕괴가 진행 중인 채로 조류가 거센 바다 한가운데 잠겨 있다. 인양 작업이 계획대로 된다 해도 침몰로부터 2년 반쯤 지난 시점에 인양이 이뤄진다. 인양 자체의 기술적 불확실성도 크지만 인양 시점에 어떤 유해가 얼마나 남아 있을지도 알 수 없다. 비용이 얼마가 들어가건 온정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온정이 필요할 때와 냉정을 찾아야 할 때를 구별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탈무드에 ‘한 생명을 구한 자는 세상을 구한 것’이란 말이 있다. 생명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한 생명이라도 온 세상과 맞먹는 가치를 지닌다. 지금 냉정한 말을 하고 있는 나를 포함해 모두 세월호 침몰 직후에는 배 속에서 한 사람이라도 살려낼 수 있다면 1500억 원이 아니라 15조 원을 써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오히려 맹골수도의 위험한 인양 환경을 고려하면 인양을 하지 않는 것이 새로운 희생을 막는 길이다.중립성 잃은 인양결정 콩코르디아호는 유해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인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섬 바로 옆에 물 밖으로 우현을 드러내고 기울어진 거대한 배를 놔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1조 원을 넘게 들여서도 인양할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는 인양하면 좋지만 꼭 인양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다. 인양 비용을 누가 대느냐, 인양의 목적은 얼마나 달성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종 인양 결정에 앞서 인양을 기정사실화함으로써 전문가 집단의 중립적 결정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례적이었다. 박인용 국가안전처 장관은 세금 1500억 원 쓰는 일을 마치 커피 값 1500원 결제하는 일처럼 물은 시중의 여론조사 결과로, 당초 약속한 공론 수렴 과정을 대체했다. ‘1500억 원+α’는 세월호 인양 비용이라기보다는 합리적 결정을 내릴 수도 없고, 그 결정을 국민 설득을 통해 밀고 나갈 능력도 없는 무능한 정부의 생존비용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잘 만들어진 비극은 비극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지 않고 내부에서 끌어낸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가 뛰어난 것은 오셀로의 의심이 오셀로의 비극을 낳은 구조로 돼 있기 때문이다.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로 박근혜 대통령 측이 처한 예상치 못한 곤경도 이런 구조를 갖고 있다. 이완구 총리가 사정(司正)의 팡파르를 울렸을 때 느닷없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박 대통령이 팡파르까지 울리며 사정에 나서는 걸 원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 총리가 자신이 익숙한 흘러간 정권의 방식으로 사정을 포장해 내놓은 것은 확실하다. 난 ‘이완구는 총리감이 아니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사정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사정을 외칠 때만 해도 한 편의 소극(笑劇)이었다. 칼날이 거꾸로 이 총리와 박 대통령을 겨누면서 그것은 웃지 못할 비극으로 바뀌었다. 성공에 예정된 실패오셀로는 베네치아의 무어인 용병이었다. 그는 무어인의 자질로 위대한 장군이 됐지만 무어인이었기에 갖는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것이 아내를 의심한 비극의 씨앗이었다. 박 대통령에게는 대통령의 딸로 살아온 삶이 성공의 원인이자 지금 처한 곤경의 원인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정치판에 들어왔으나 그 후광에 눈이 부셔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정치는 아무리 아껴 써도 돈이 들어가는 분야인데 그에게만 돈을 써야 돌아가는 현실의 정치판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돈에 대해서는 ‘고귀한’ 보스는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으니 측근들이 각자 모아서 쓸 수밖에 없었다. 측근들은 그것이 진정한 충성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박 대통령도 영리한 사람이니까 측근들이 부정한 돈을 받는 것은 아닌가 의심은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돈은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고 측근들도 알아듣는 시늉을 했으니 믿었던 것이다. 정확히는 믿어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벌거벗은 임금님도 자신이 옷을 입지 않았음을 알았다. 신하들이 다 옷을 입었다고 하니까 입었다고 믿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박 대통령은 ‘나야말로 돈에 대해서는 깨끗한 사람’이 됐다. 잘 만들어진 비극에서는 성공의 정점에서 실패가 시작된다. 박 대통령은 집권 3년 차를 맞아 세월호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경제 활성화와 부패 척결에 시동을 걸었다. 앞의 것 하나도 어려운데 두 가지를 다 하겠다는 것은 좋게 보면 자신감의 표현이고 나쁘게 보면 의욕 과잉이다. 거기서 운명은 예상과 다른 경로로 진행해 성 회장을 불러들이고 비극이 시작됐다. 대통령의 딸인 박 대통령이 아는 정치판과 자수성가한 성 회장이 아는 정치판은 완전히 딴판이었다. 두 관점이 부닥치고 진실의 순간이 다가왔다.대통령이 자초한 레임덕 성 회장의 메모와 인터뷰 내용이 다 맞다고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일부는 똥물을 퍼붓는 심정으로 끼워 넣은 허위일 수도 있다. 문제는 검찰 수사로는 메모와 인터뷰 내용의 진위를 가릴 수 없다는 점이다. 정치자금은 교묘하게 주고받는 것이라 주고받은 사실이 있다 하더라도 사법적으로 입증하기 쉽지 않다. 그게 입증되지 않는다고 해도 사람들은 돈이 오간 사실이 없다고 믿지 않는다. 망자(亡者)가 죽음에서 돌아와 자신의 메모를 철회해 주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게 망자의 메모가 갖는 비극적 성격이다. 정면 돌파한다 해도 극복할 수 없다. 박 대통령 자신이 원인을 제공한 사정발(發) 레임덕이 이미 시작됐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난 일본 역사교과서 2권을 갖고 있다. 1997년 짓쿄(實敎) 출판사의 고등학교용 교과서와 2001년 후쇼샤(扶桑社)의 중학교용 교과서다. 앞의 것은 역사교과서 논란이 일기 이전의 책이고 뒤의 것은 역사교과서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로 그 책이다. 그러나 두 책 모두 독도를 언급하지 않았다. 지금 상황은 딴판이다. 일본의 모든 역사교과서에 ‘독도는 1905년 일본 시마네 현에 편입됐다’ 같은 기술이 들어갔거나 들어간다. 일본인들은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변곡점(變曲點)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본의 독도 명기 작업은 그전부터 시작됐다. 이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없었어도 그 작업은 차근차근 진행됐을 것이다. 전략에 말려든 대통령 방문 사실을 말하자면 일본이 2005년부터 ‘독도의 날’을 정하면서 도발 수위를 꾸준히 높여왔기 때문에 이 전 대통령이 참지 못하고 독도를 방문했다. 문제는 일본 쪽에서 볼 때 그의 독도 방문이 자신들의 도발로 한국이 반응하리라 기대한 것 이상이었다는 점이다. 잘못은 독도에 갔다는 사실이 아니라 일본의 시나리오에 딱 들어맞는 행동을 해줬다는 것이다. 독도는 위안부와 달리 ‘조용한 외교’로 계속 갔어야 했다. ‘조용한 외교’를 했더라도 독도 도발을 막지는 못했을 것이다. 자기 나라 교과서에 자기가 넣겠다는데 무슨 수로 막겠는가. 그러나 독도는 일본의 모든 교과서가 ‘일본 땅’이라고 해도 일본 땅이 되지 않는다. 독도는 역사적으로 한국에 속했고 한국이 실효지배하고 있다. 독도에서 우리는 더 얻을 게 없고 일본은 더 잃은 게 없다는 게 ‘조용한 외교’의 근거다. 우리가 일관된 노선을 지키지 못하는 사이 일본은 일로매진(一路邁進)해 일단 자국 내에서 분쟁지역화에 성공했다. 조용한 외교는 가만있는 외교가 아니다. 논리적으로 조곤조곤 설명하면 될 것을 요란하게 맞대응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독도는 사정을 알면 알수록 한국 땅이 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일본근대사상비판’을 쓴 사상가 고야스 노부쿠니(子安宣邦)는 “일본에서 다케시마 연표는 러일전쟁의 역사를 구성하는 일 없이 1905년만을 떼어낸 채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말로 일본 쪽 주장의 약점을 집어냈다. 러일전쟁의 틀에서 일본의 독도 편입을 본다면 제국주의적 침탈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조용한 외교’ 확고히 지켜야 우리가 다시 2012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엎질러진 물을 담을 수는 없다. 다만 일본이 모든 교과서에 독도를 명기하기로 했으니 우리도 입도지원시설을 짓자는 식의 대응은 하지 말자. 그냥 무시해 버리자. 그리고 우리가 꼭 필요할 때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우리 땅에서 하자. 대통령까지 독도를 다녀왔는데 못할 게 뭐가 있는가. 좋게 보면 이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우리 마음속의 한계 같은 것을 깨버린 측면도 없지 않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조바심으로 망치고 있는 독도의 경관이다. 일본이 도발할 때마다 독도에 덕지덕지 시설을 지어 난민촌처럼 만들지 말자. 독도를 자연에 가까운 상태로 세계에 보여주는 것이 우리가 독도의 주인답게 독도를 스마트하게 관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진짜 독도전은 세계를 상대로 하는 것이다. 주인다운 위엄을 가지고 독도를 다루는 것이 진짜 독도전에서 독도를 제대로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57)는 유수호 전 의원의 아들로 아버지처럼 대구를 기반으로 한 의원이다. 남경필 경기도 지사(50)는 경기 수원에서 아버지 남평우 전 의원의 지역구를 물려받았다. 김세연 새누리당 정책위 부의장(43)은 부산에서 아버지 김진재 전 의원의 지역구에 출마해 국회에 입성했다. 부자를 합치면 각각 국회의원 5선, 7선, 7선이다. 이들은 공통점이 많다. 아버지들이 모두 보수 정당에 속했고 아들들도 그 계보를 잇는 보수 정당 소속이다. 어린 시절을 유복하게 보냈고 자신의 노력보다는 아버지의 후광으로 정치권에 진입했다. 중요한 공통점 하나를 더 들자면 지금 보수 정당 내에서 상대적으로 중도 성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남 지사와 김 의원은 국회선진화법 처리에 앞장섰다. 유 원내대표는 김영란법 처리에 앞장섰다.집안의 실용적 정서가 중도로 나는 이들의 중도 성향이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정치하는 걸 곁에서 지켜보면서 배운 오랜 경험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보수적인 아버지와 중도적인 아들의 차이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작용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보다는 보수든, 중도든, 무엇이든 시대의 대세를 좇아 선거에서 이기는 게 최선이라는 정치가 집안 특유의 실용적 정서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시대는 중도를 원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중도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그 중도는 원칙 없는 중도여서는 안 된다. 국회선진화법 식의 합의 정치는 어느 나라에도 없다. 영국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마거릿 대처 총리 이전까지를 합의의 시대라고 부르지만 그때의 합의는 여야가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한 것이지 다수결의 원칙을 저버리고 한 것이 아니다. 김영란법은 꼭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민간 언론인을 공직자처럼 취급한 김영란법은, 그 법의 국회 통과 직후 1주일간 해외에 나가 자기 발언의 정치적 계산을 하고 돌아온 김영란 씨가 뭐라고 말했든 위헌이다. 언론인은 김영란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두려운 것은 야당의 법사위원장이 위헌을 외치는데 여당의 원내대표라는 사람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처리해 버리는 그 행태다. 이스태블리시먼트(establishment)라는 말이 있다. 흔히 ‘기성체제’로 번역되는 이 말은 보수든 진보든 어느 한쪽의 체제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립하는 세력이 교묘히 결합해 하나의 기득권을 형성하는 상황을 표현한다. 기득권 지키는 중도 안 된다 법안 처리 의결정족수를 5분의 3으로 높인 국회선진화법은 정치에서 이스태블리시먼트의 형성을 뜻한다. 이 체제에서는 치열하게 싸워 1등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2등이 돼도 밀려날 가능성이 줄어든다면 그것이야말로 아버지 대부터 지켜야 할 기득권이 있는 정치인 2세들이 원하는 체제다. 사회가 대립하며 크게 흔들리는 것은 이들의 기득권 유지를 불안하게 할 뿐이다. 이것이 이들이 의식하든 않든 중도를 지향하는 이유다. 그런 체제를 만들 수 있다면 다수결의 원칙을 허물어도, 공적-사적 영역의 구별 같은 건 무시해 버려도 상관없는 것이다. 유 원내대표가 박근혜 정권의 청와대 비서관들을 ‘얼라들’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시류에 편승해 간단히 무시해 버리는 정치인 2세들이야말로 우리 정치를 망칠 ‘얼라들’이다. 중도는 원칙을 무시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원칙을 지키되 그것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보여 줄 때 가능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박근혜 대통령이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의 장례식에 참석해 조문록에 영어로 기록을 남겼다. 머릿속에 정리해 두었던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TV로 보면 일단 즉석에서 쓰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세 문장을 썼는데 ‘한국 국민들은 (리 전 총리의 죽음에 대한) 모든 싱가포르 국민들의 애도에 뜻을 같이한다’는 의미로 쓴 마지막 문장 ‘The Korean people join all of Singapore in mourning his loss’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his loss’는 싱가포르 국민이 리 전 총리를 잃은 게 아니라 리 전 총리 자신이 무엇인가를 잃었다는 느낌을 준다. 영어를 일상어로 쓰는 몇몇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어색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그냥 쉽게 his death나 his passing으로 쓰는게 mourn이라는 동사와 자연스럽게 어울릴 것 같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영어 뉴스를 보면 ‘리콴유 씨를 잃은 걸 애도하다(mourn the loss of Mr. Lee Kuan Yew)’란 표현이 많이 나온다. 영문법에 따르면 ‘the loss of Mr Lee Kuan Yew’는 ‘his loss’로 바꿔 쓸 수 있다. his 같은 소유형용사는 의미상 주어로도, 목적어로도 쓰이기 때문에 굳이 그렇게 쓴다면 못 쓸 바도 아니다. 실제 관용적으로 그런 표현이 많이 쓰인다. ▷박 대통령은 영애(令愛) 시절부터 영어를 잘했다. 1979년 리 전 총리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만찬에서 영어 통역을 했을 정도다. ‘his loss’ 같은 관용적 표현은 영어에 익숙하지 않으면 쉽지 않은 표현이다. 실제 리콴유 전 총리에 대한 조문에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등도 같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홍가혜 씨가 세월호 참사 당시 민간 잠수부를 사칭한 사람이 된 것은 방송작가가 “민간 잠수부냐”고 물어서 “네”라고 답한 것이 발단이었다. 홍 씨는 자신이 민간인인데 잠수를 할 줄 아니까 무심코 민간 잠수부라고 답했을 뿐이다. 홍 씨가 방송 인터뷰에서 한 “세월호 안의 생존자들과 교신했다”는 등의 말은 다른 잠수부들로부터 전해 들은 것을 허위라는 인식 없이 전했을 뿐이다. 해양경찰청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홍 씨가 올해 1월 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이유다. ▷홍 씨는 과거에도 유명 아이돌 가수의 사촌언니를 사칭했다는 등 상습적 거짓말쟁이임을 주장하는 보도들이 잇따라 나왔으나 재판 과정에서 사실무근으로 확인됐다. 홍 씨는 무죄 선고를 받은 후 “10분의 방송 인터뷰가 내가 살아온 인생 27년을 바꿔놓았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홍 씨는 구속돼 101일간 수감생활을 했고 인터넷 등에서 심한 비난에 시달렸다. ▷홍 씨의 복수가 시작됐다. 자신을 향한 비난성 댓글을 올린 인터넷 이용자 800여 명을 모욕 혐의로 무더기로 고소했다. 고소장이 대거 접수돼 일선 경찰서와 검찰청의 업무가 차질을 빚을 정도다. 고소 취하를 조건으로 당사자 간 합의도 이뤄지고 있다. 철없는 자녀들이 올린 댓글에 부모들이 합의에 나서기도 한다. 합의금은 적어도 200만 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800명에게 200만 원씩만 받아도 16억 원이다. ▷홍 씨는 확신에 차서 “사람 소리 듣고, 갑판 벽 하나 사이를 두고 신호도 확인했고 대화도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앞뒤를 들어보면 다른 잠수부들의 증언을 전하는 것이다. 홍 씨를 처벌하려면 증언 자체가 허위임을 입증해야 하는데 당시 세월호 내부 상황은 하늘만이 알고 있어 입증이 불가능하다. 판사가 홍 씨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피고인의 행동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죄는 홍 씨의 진실을 밝힌 게 아니라 거짓을 밝히지 못한 것이다. 홍 씨도 억울한 점이 없진 않겠지만 고소 남발은 자제하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유머러스하게 한 말이 분위기를 썰렁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대한민국의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번 해보세요. 다 어디 갔냐고. 다 ‘중동 갔다’고”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도 그렇다. 19일 청와대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한 말이다. 그날 아침신문에 청년실업률이 사상 최고라는 기사가 실렸다. 중동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흥분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청년들 일자리를 걱정해서 한 말이었겠지만 중동 근무의 어려움에 대한 공감이 담겨 있는 것 같지 않아 듣기 거북했다. ▷그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서울 신림동 고시촌의 한 카페에서 청년들과 모임을 가졌다. 일부 청년단체 회원들이 영화 ‘친구’의 대사 “니가 가라, 하와이”를 패러디한 팻말 “청년들을 중동으로 보내라니, 니가 가라”를 들고 구호를 외쳤다. 1970년대 건설근로자들은 가족과 떨어져 술 오락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중동에서 사막의 열기와 싸우며 돈을 벌었다. 그 시절 청와대에서 살았던 박 대통령이 ‘중동 가라’는 말을 할 때는 근로자 가족들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한 번 정도는 생각해 봤어야 한다. ▷박 대통령은 1월 신년기자회견에서 ‘대면보고가 너무 없다’는 기자의 비판에 배석한 장관들을 돌아보며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을 던져 웃음을 끌어냈다. 그러고는 기자를 향해 “청와대 출입하시면서 내용을 너무 모르시네요”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기자의 날 선 질문을 유머로 받아넘겼다고 찬사를 보낸 이도 있었지만 그때 장관들이 웃는 것 말고 무슨 반응을 보일 수 있었을까. ▷박 대통령도 자신이 유머를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수첩에 재미난 말을 써가지고 다니면서 들려주곤 했다. 썰렁한 유머여도 나름대로 애쓰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즉흥적인 유머는 공감 능력의 소산이다. 전개되는 상황을 짧은 시간에 파악하고 미묘한 균열의 선을 파고들어가 웃음을 끌어내는 것이다. 효과적인 유머를 하고 싶다면 공감 능력부터 키우라고 말하고 싶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나도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루소의 이념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프랑스 특파원 시절 캠핑을 간혹 했다. 유럽의 여름은 건조한 데다 해가 길어 캠핑하기에 그만이다. 가격도 싸지만 자연에서 고기 굽고 와인 한잔 하면서 느긋한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 좋다. 그래도 텐트 생활은 불편하다. 새벽의 텐트 속은 한여름이라도 춥다. 밤중에 화장실이라도 가려면 정말 귀찮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동터 오는 아침의 기운을 느껴봤다면 캠핑의 매력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나도 은퇴한 뒤에 캠핑장이나 차려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돌아왔을 때 한국에도 캠핑 열기가 불고 있었다. 캠핑이 하고 싶어 인터넷에서 캠핑장을 찾아봤다. 공영 캠핑장은 연락하는 곳마다 예약이 차서 포기하고 결국 사설 캠핑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예약을 했다. 찾아가 보니 민박집 넓은 마당에 텐트를 치도록 해놓고 장사하는 곳이었다. 캠핑 한번 제대로 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그냥 돌아왔다. 5, 6년 전 일이다. 지난 주말 사고가 난 인천 강화군 캠핑장도 민박집이 있고 앞마당에 텐트를 칠 수 있도록 돼 있었다. 다만 다른 점은 이미 텐트가 쳐져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그동안 급속히 늘어난 이른바 글램핑장이다. 캠핑장으로만 제공하면 1박에 1만∼3만 원을 받지만 텐트를 쳐놓고 제공하면 1박에 10만 원도 넘게 받는다고 하니 웬만하면 다 글램핑장으로 바뀌었겠다 싶었다. 글램핑이라고 하니까 과거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생각난다. 사막에서 텐트 치고 생활하는 유목민인 베두인족 출신의 카다피는 외국 순방 때도 텐트 생활을 선호했다. 카다피가 프랑스 파리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엘리제궁 정원에 텐트를 치고 묵어 화제가 됐다. 이런 게 진짜 ‘호화로운 캠핑(glamorous camping)’인 글램핑이라고 할 수 있다. 글램핑은 과거 귀족이 하인들을 동원해 텐트를 쳐놓고 자연을 즐기던 것을 모방하면서 시작됐다. 캠핑은 돈 없는 서민, 글램핑은 부유층이 시작한 것으로 계통 자체가 다르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에 성행하는 글램핑은 스스로 텐트를 칠 필요가 없다는 점이 글램핑과 같을 뿐 캠핑을 약간 업그레이드한 것에 불과하다. 글램핑을 흉내 낸다고 TV 냉장고 선풍기 컴퓨터까지 다 들여놓았는데, 정작 진짜 글램핑은 자연친화적인 성격을 중시하기 때문에 이런 시설이 거의 없다. 한마디로 짝퉁 글램핑이다. 불에 잘 견디는 텐트는 어디에도 없다. 텐트 속으로는 손전등 정도나 갖고 들어간다는 것이 상식이다. 텐트 안에 온갖 가전제품을 들여놓고 방치하면 기온차가 심한 야외에서는 이슬이 맺혀 누전이나 합선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예측 가능하다. 안전을 담당하는 공무원이라면 짝퉁 글램핑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할 때 이런 위험성을 본능적으로 느껴야 한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다 돼가고 국민안전처가 출범한 지도 넉 달이 넘었다. 안전처의 촉각에 짝퉁 글램핑의 위험성이 감지되지 않았다면 ‘안전 한국’을 만든다는 막대한 사명을 띠고 출발한 안전처는 실패한 것이다. 안전처는 캠핑장은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이라고 떠넘긴다. 그런 소관 타령은 캠핑이 짝퉁 글램핑으로 변질돼 숙박시설의 규제를 피하면서 사실상의 숙박시설로 운영된 점을 무시한 것이다. 사고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더 잘 터지기 마련이다. 안전은 이 정권이 좋아하는 중앙집권적인 방식으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뒷북 수준을 절대 넘어설 수 없다. 현장을 누비는 말단의 공무원들이 새로운 위험요소를 감지하고 반응할 수 있는 분권적 구조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우리나라는 법관이 변호사 개업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선진국은 그렇지 않다. 선진국의 법관들은 정년 근무를 원칙으로 삼고 중도 퇴직 자체를 잘 하지 않는다. 법관이 정치나 행정으로 외도하는 것은 더 생각하기 어렵다. 선진국 의회에 변호사 출신은 많아도 법관 출신은 거의 없다. 우리 국회에는 법관 출신이 수두룩하다. 대법관 출신은 총리 자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법관에 대한 상이 잘못 정립돼 있다. ▷한국에 정년까지 근무하는 법관이 거의 없는 것은 전관예우(前官禮遇)가 있어서다. 고법 부장판사가 못 될 것 같으면 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대법관이 못 될 것 같으면 고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옷을 벗는다. ‘용퇴’로 포장하긴 하지만 전관예우를 받을 차례가 온 것이다. 그래도 과거에는 대법관만큼은 변호사 개업을 자제하는 풍토가 있었다. 대법관은 종착지로 여겼지 전관예우를 위한 경유지로는 여기지 않았다. ▷언제부터인지 전관예우의 꽃이 대법관 출신으로 바뀌었다. 상고사건이 늘어나면서 대법관 1명이 한 해 처리하는 사건이 3000건이 넘는다. 대부분 사건은 대법관이 훑어보지도 못한 채 재판연구관들 선에서 걸러져 기각된다. 대법관이 한 번이라도 사건을 훑어보려면 상고이유서에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이름이 올라 있어야 한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수는 얼마 되지 않는데 그 도장을 서로 받으려 하니 도장 값이 3000만∼5000만 원에 이른다고 한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차한성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을 불허해 논란이 일고 있다. 대법관 출신에게도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법률에 근거가 없는 개업 불허는 잘못이다. 하지만 도장 하나 찍어주는 것만으로 수천만 원씩 버는 구조를 뻔히 아는데 대법관 출신이 당연한 듯이 변호사 개업에 나서는 것은 보기에 민망하다. 대법관 정도 되면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책무)가 있어야 한다. 변호사 개업을 하더라도 옛 동료나 후배에게 부담을 주는 소송사건은 수임을 자제하는 것이 법 이전의 도리일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류젠차오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가 얼마 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이 된 나경원 의원을 16일 예방한 자리에서 “미인이시다”고 말해 외교적 결례가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그는 “중국에서도 미인에게 관심이 많고 미인이 인기가 많다”는 말을 덧붙였다. 서시 양귀비로부터 장청에 이르기까지 미인이라면 정신을 못 차린 중국 정치인 얘기를 잘 알기에 그가 우리 국회의 외교 수장에게 던진 찬사가 때와 장소를 가린 절제된 말인지 의문이 든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했다가 만찬장에서 날씨가 서늘해지자 시진핑 주석의 부인 펑리위안 여사의 어깨에 손수 담요를 둘러주어 구설에 올랐다. 이 장면은 중국 관영 중국중앙(CC)TV를 통해 생중계됐으나 이후 중국 당국의 검열로 인터넷 포털에서 삭제됐다. 중국인에게는 그 얼마 전 부인과 이혼한 푸틴 대통령이 미녀 가수 출신의 펑 여사에게 수작을 거는 것처럼 느껴졌던 모양이다.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지난달 애슈턴 카터 신임 국방장관 취임 선서식에서 카터 장관의 부인 스테퍼니 씨의 어깨를 30초가량 주무르며 귓속말을 했다. 카터 장관이 연설 도중 몇 차례 아름다운 부인이 있는 쪽을 돌아봤지만 바이든 부통령의 스킨십은 멈출 줄 몰랐다. 바이든 부통령은 그저 친숙함의 표현이었다고 주장했지만 그 장면을 TV로 본 여론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에티켓은 미묘한 데가 있다. 미묘하니까 규칙이 아니라 에티켓이다. 한마디로 결례다 아니다 말하기 어려운 게 많다. 그러나 결례인지 아닌지 논란이 되면 그것으로 에티켓은 실패다. 우리나라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중국보다 못한 나라지만 그렇다고 일로 여성을 만날 때 미인인지 아닌지로 인사를 시작하지는 않는다. ‘미인’이 여성을 향한 찬사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 찬사는 여성을 미모로 우선 판단한다는 느낌을 준다. 에티켓은 모자라도 안 되지만 지나쳐도 안 된다. 과공(過恭)이 비례(非禮)이듯 과찬(過讚)도 비례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의 ‘두뇌’로 불렸던 자크 아탈리 씨를 2007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마하트마 간디의 전기와 카를 마르크스의 전기를 책으로 냈다. 두 인물을 비교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마르크스는 서구에서 시작된 자본주의적 세계화의 위험을 간파했던 첫 사상가였고 간디는 서구의 바깥에서, 세계화로 초래된 식민 지배 문제에 ‘비폭력’이라는 예상외의 방식으로 응답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상호보완적이다.”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맞은편 의회광장에 14일 간디의 동상이 세워졌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제막식에서 “이 동상은 ‘세계 정치’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 가운데 한 명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과거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동시대 인물이었던 간디에 대해 “영국 변호사 자격을 가진, 반쯤 벌거벗은 선동꾼이 총독청 계단에서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놀랍고 역겹다”고 비하하고 인도의 독립에 반대했다. 이제 처칠과 간디의 동상이 나란히 의회광장에 서 있다. ▷정작 서구인이었던 마르크스는 세계사적 불평등을 폭력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간디는 그 불평등을 몸소 겪은 식민지 사람이었음에도 비폭력을 들고 나왔다. 간디의 사상은 비슷한 식민 지배를 겪은 우리도 이해하기 힘들다. 다만 간디의 비폭력은 순응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불평등과 싸우기 위해 폭력 이외의 모든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고 그 핵심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어제 방송된 일본 NHK와의 인터뷰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대국(大局)적인 미래지향 비전’을 강조했다. ‘전체 맥락에서 본다’는 대국은 일본 정치인들이 즐겨 쓰는 말이지만 정작 한중일 관계를 대국적으로 보는 능력이 가장 떨어지는 것이 요새 일본 정치인들이다. 대국은 캐머런 총리가 말한 ‘세계 정치’와도 울림이 비슷하다. 간디도 위대하지만 인도와의 양국 관계를 넘어 세계사적 맥락에서 간디를 인정한 영국도 옹졸하지 않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한강은 서울 한가운데를 흐르고 대동강은 평양 한가운데를 흐른다.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정책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가 어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주최의 토론회에서 “북한의 현 정권을 인정하고 박정희식 ‘개발독재’ 비전을 이식해 ‘대동강의 기적’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노하우를 김정은 독재 정권에 전수하면 북한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말은 그럴듯한데 나이브하다. ▷좌 교수는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장 출신이다. 보수적인 시장경제학자의 발언을 누구보다도 반긴 것은 진보 진영이다. 박정희 독재를 히틀러 독재에 비교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던 진보 진영이지만 박정희 개발독재 노하우를 김정은에게 전수하자는 데는 박수를 보냈다. 이것은 비판만 하던 박정희 개발독재의 성과를 은연중에 인정한 것이긴 하지만 잘못된 전제를 깔고 있다. ‘박정희나 김정은은 다 비슷한 독재자이고 박정희가 한 것을 김정은이라고 못하겠느냐’는 것인데 사실 진보 진영 스스로도 믿지 못할 전제다. ▷라인 강의 기적을 일으켰던 독일은 통일 후 옛 동독 지역에서 엘베 강의 기적을 일으켰다. 오염 물질만 가득했던 엘베 강이 정화되고 엘베 강가의 드레스덴은 현대적인 공업도시로 거듭났다. 그러나 엘베 강의 기적은 동독 독재자 에리히 호네커가 사라졌을 때 가능했다. 개발독재는 말 그대로 경제 개발을 위한 방편으로서의 독재를 의미한다. 이런 독재를 김씨 왕조를 지키는 것이 최우선 목표일 수밖에 없는 김정은의 3대 세습 독재에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월북 작가 이태준의 일제강점기 말 단편소설에 ‘패강랭(浿江冷)’이 있다. 패강은 대동강의 옛 이름이니까 ‘대동강이 얼다’는 뜻이다. 소설은 평양을 배경으로 당시의 암울한 상황을 얼어붙은 대동강이라는 은유적인 제목으로 표현했다. ‘우수 경칩에는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말이 있다. 대동강은 결빙 기간이 길어 뒤늦게 물이 풀린다는 뜻이다. 분단 70년이 흘렀다. 대동강의 기적을 볼 수 있으려면 대동강 물이 먼저 풀려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난 대학 시절 신촌 우리마당에 태평소를 배우러 다닌 적이 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칼로 찌른 김기종 씨가 운영자로 있었다. 태평소 강습이 끝난 뒤 종종 뒤풀이 자리가 있었고, 김 씨는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았지만 자주 동석해 얘기를 나눴다. 그는 단소 하나 제대로 불지 못하는 실기맹(盲)이었다. 그렇다고 뛰어난 이론가도 아니었다. 말은 감정이 앞서 산만했으며 논리라는 것도 맹목적 ‘우리 것’ 주의에 가까웠다. 그가 남다른 점은 열정이었다. 다만 온갖 우리 것에 대한 관심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벌여놓고는 수습은 잘하지 못했다. 그를 다시 본 것은 기자가 되고 나서다. 예전 친분으로 문화 행사 관련 보도를 간혹 요청받았다. 그중에서 그가 재현을 위해 뛰어다니던 애오개본산대놀이가 기억난다. 그런 사이 우리마당은 문을 닫았다. 아마도 운영난이었을 것이다. 그는 본래 운영 같은 것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고는 정말 오랜만인 지난해 그가 신문사로 연락을 해왔다. 개량한복은 예전과 같았으나 수염을 기르고 헌팅캡을 쓴 게 달라졌다. 처음엔 눈치를 못 챘으나 손에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운 심한 화상이 있는 걸 보고는 놀랐다. 분신을 시도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옷으로 가린 곳의 상태는 어떠한지 물어보지 못했다. 그는 2007년 노무현 정권 말기에 청와대 앞에서 분신을 시도했다. 우리마당은 1980년대 군사정권에서 민주화 운동의 모임 장소로도 종종 이용됐다. 우리마당은 1988년 정체불명의 괴한들로부터 습격당한 적이 있다. 그는 ‘노무현의 민주 정권’이 진상을 밝히지 못하면 영원히 묻히고 만다면서 분신으로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다행히 경찰의 제지로 목숨을 건졌다. 그는 지난해 네이버 카페에 ‘우리마당 30주년 소식’이란 글을 올렸다. “우리마당에서의 제 노력에 대해 일반 사회에 존재하는 표창, 아니 감사장 하나 마련되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오히려 따돌림 당하고 이를 극복하려고 자랑하듯이 옛일들을 떠들어보면 왜 옛날얘기를 하느냐고, 오히려 핀잔을 받는 것이 제가 당하는 현실입니다.” 그의 좌절감이 느껴진다. 울분도 깔려 있다. 다른 글에서는 우리마당을 거쳐 가 진보 정권에서 총리 장관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들에 대한 원망도 눈에 띈다. 자신에게 보상은커녕 표창 하나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마당은 1988년 피습 사건 이후에도 정상적으로 운영됐고, 더 이상 열정으로 끌어가는 게 한계에 이르렀을 때야 문을 닫았다. 지난해 그와 헤어진 후 우리마당통일문화연구소로부터 정기적으로 이메일을 받았다. 휴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를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그의 외세 배격 자주통일론은 맹목적 ‘우리 것’ 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다. 과거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의 집에서 친북 서적이 나올 수 있고 그의 발언 중에 친북 발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배후세력이 있다면 그 배후세력은 가장 부적합한 사람을 실행자로 택한 것이다. 리퍼트 대사 사건은 배후세력을 포함해서 모든 가능성을 조사해야 한다. 다만 아무리 엄중한 사건이라도 틀을 미리 정해놓고 꿰맞추려 해서는 안 된다. 그가 집에서 쓰던 과도를 들고 돌진한 것에서는 마르크스 레닌주의 혁명가의 주도면밀한 실행보다는 도스토옙스키 소설 속 주인공의 정신적 광기가 느껴졌다. 사실 현대의 많은 암살 혹은 암살 기도 사건이 정신적 문제를 가진 사람에게서 비롯됐다. 이런 경우도 이념이 작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때 이념은 광기를 표출하는 통로가 될 뿐이다. 공안적 사고방식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고 올바른 대책도 나올 수 없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월마트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회사다. 대표적인 저임금 기업으로 비판받는 월마트가 4월부터 시간당 최저임금을 연방 최저임금인 7.25달러보다 많은 9달러로 올리고 내년 2월에는 10달러로 올린다고 지난달 밝혔다. 케인스주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2일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월마트의 보이는 손(Walmart‘s visible hand)’이 소득불평등을 완화시키고 중산층 형성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올 1월 신년 국정연설에서 “1만5000달러(약 1647만 원)로 한 해 동안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해보라”며 최저임금 인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월마트가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기조에 앞장서 호응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보이지 않은 손(invisible hand)에 강조점을 둔 분석도 만만치 않다. 미국 경기가 회복하면서 기업들 사이에 노동자 구하기 경쟁이 치열해지자 월마트가 선수를 쳤다는 것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4일 “최저임금을 지난해 7% 올렸는데 올해는 더 빠른 속도로 올리겠다”고 말하고 기업 측에 근로자 임금 인상도 독촉했다. 한국 정부도 미국 정부처럼 해보겠으니 우리나라 기업도 월마트처럼 해보라는 것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최 부총리의 발언이 있은 바로 다음 날 올해 적정 임금인상률을 1.6% 이내로 제시했다. 적정 임금인상률을 제시하기 시작한 1970년대 중반 이후 최저치였다. ▷회복세가 역력한 미국 경제와 달리 우리 경제는 아직 암중모색이다. 대기업은 임금을 올려도 버틸 여력이 있겠지만 순이익도 나지 않는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에 임금을 올리도록 압박하면 오히려 고용을 줄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임금 인상으로 정부가 기대하는 소비 및 투자 진작 효과가 나타나기는커녕 상황이 더 나빠지기 쉽다. 우리 사정에 맞는 적절한 임금 인상의 수준을 고민해야지 미국을 무비판적으로 따라 하다가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