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어린이날 하루 전 몸을 가누기도 힘든 강풍이 불었다.철제 구조물이 떨어져 도로에 나뒹구는 위험한 현장.인명 피해를 막으려고 출동한 소방관 남편이 바람에 날아온 구조물에 머리를 다쳐 세상을 떠났다.100일 된 딸과 아내 박현숙이 남겨졌다.그녀는 눈물을 참아냈다. 대신 발버둥 쳤다.그저 평범하게, 남들과 다르지 않게 딸을 키우고 싶다.사고가 발생한 지 정확히 6년이 되는 날이었다. 박현숙은 원주 시내의 한 플라워카페에 도착했다. 분홍색 스웨터에 하얀 운동화, 밝은 고동색의 단발머리. 밝고 환한 카페 분위기와 현숙의 모습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코로나19 백신도 다 맞았는데, 마스크 벗어도 괜찮죠?”현숙이 마스크를 내리며 물었다. 분홍빛의 입술 화장과 옅은 볼 터치가 눈에 들어왔다.“궁금한 거는 편하게 물어보세요. 다 물어보셔도 돼요.”간단한 소개가 오가고 몇 개의 질문과 답이 이어졌다. 현숙은 기자가 질문을 빙빙 돌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 같았다.“제가…. 뭔가 이상해 보이죠?”침묵이 이어졌다. 기자는 대답할 단어를 고르지 못했다.“보통 소방관의 유가족이면 눈물 흘리고, 좀 어두울 것 같은데…. 그렇죠?”현숙이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건너편 공원에서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에 푸른 나뭇잎이 흔들렸다. 그녀가 유리잔을 들어 남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모두 비워냈다. 분홍 립스틱이 유리잔에 묻어났다. 분홍색이 희미해진 입술은 두어 번 달싹였다. 현숙이 나지막이 말을 이어갔다.“근데 그건 모르실 거예요. 이렇게 지낼 수 있을 때까지 진짜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거센 바람이 불어닥쳤다휘이이잉.창문 너머로 바람 부는 소리가 들렸다. 침대에 누워 있던 현숙이 오른팔을 뻗어 옆자리를 쓸어보았다. 야간 근무를 나간 남편은 자리에 없었다.아직 어두운 밤이었다. 별안간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 잠이 든 소윤이 그 소리에 깰까 놀란 현숙은 부리나케 전화를 받았다. 소윤 아빠였다.“형수님, 허승민 부장님이 크게 다치셨거든요. 지금 당장 병원에 와보셔야 할 것 같아요.”분명 소윤 아빠 번호였는데 휴대전화에선 낯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새벽 2시에 걸려온 전화에 다급한 말투. 현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현숙은 다시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머리가 멍한 상태였지만 분주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오빠에게 먼저 병원에 가달라고 부탁했다. 동서에겐 집으로 와서 소윤을 돌봐 달라고 했다.시동생이 모는 차를 타고 현숙은 병원으로 향했다. 바깥은 여전히 강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빗방울도 떨어져 운전석 시야를 가렸다. 집에서 태백병원까지는 15분이 걸렸다.현숙의 입이 바짝 타들어 갔다. 그때 전화 벨 소리가 또다시 울렸다. 먼저 병원에 가달라고 부탁했던 오빠였다. 전화를 받자마자 오빠는 울먹였다. 현숙은 상황을 물어볼 용기를 내지 못했다. 전화기 너머로 흐느끼는 소리만 들렸다.‘아, 큰일 났구나. 끝이구나.’병원에 도착하기 전 현숙은 마음의 준비를 시작했다. 응급실에 누워 있는 남편. 눈은 감았지만 심장은 쿵쿵거리며 뛰고 있었다. 의사들에게 남편을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남편을 구급차와 헬기에 태우고 서울에 있는 대형 병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도 의사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뇌사였다. 현숙은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채 태백으로 돌아왔다.정신없는 하루가 지났다. 다음 날은 5월 5일, 어린이날이었다. 현숙은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남편을 보며 빌었다.“소윤 아빠, 오늘 어린이날이야. 당신이 오늘 떠나면 우리 소윤이는 어린이날이 없는 거잖아. 오늘만큼은 버텨 줘요. 제발.”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이기적인가 싶었다. 그래도 이날만큼은 아니었으면 했다.“저기, 황지동에 사는 소방관 있잖아. 재작년에 결혼한…. 크게 다쳐서 입원했다던데?”오정미는 동네 사람들이 떠드는 얘기를 헛소문으로 여겼다. 그런데 친구 현숙에게선 아무 연락이 없었다. 불안했다.정미는 아침 일찍 승민이 입원해 있다는 태백병원으로 향했다.‘진짜 소윤 아빠면 어떡하지. 현숙을 만나면 뭐라 하지.’신호 대기를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정미의 눈앞에 낯익은 차량이 보였다. 현숙의 차였다. 평소 같았으면 경적이라도 울렸을 텐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의 뒤를 무심코 따랐다. 병원 주차장에 들어온 현숙이 정미를 발견했다. 곧이어 눈물이 터졌다. 둘은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눈가에 눈물을 가득 머금은 현숙이 먼저 입을 뗐다.“나 때문이야. 내 팔자가 세서 소윤 아빠한테 이런 일이 생긴 거 아닐까?”현숙은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쏟아냈다. 정미는 올라오는 감정을 억누르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현숙이 정미 앞에서 흘린 처음이자 마지막 눈물이었다.승민을 데려간 건 바람이었다. 그날 태백에선 몸을 가누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었다. 바람을 뚫고 승민과 동료 소방관들이 출동했다. 3층 연립주택을 덮고 있던 강판 지붕이 강풍 탓에 뜯겨 나갔다는 신고였다.거대한 구조물이 연립주택 주변 도로를 나뒹굴었다. 나이가 지긋한 주민들이 불안해했다. 강판이 또 한 번 바람에 날려 주택을 덮치면 사람이 다칠 수도 있었지만 현장을 수습할 인원이 부족했다. 결국 구급차를 운전하던 승민까지 나섰다. 그때 연립주택 지붕에 남아 있던 구조물 일부가 갑자기 날아왔다. 하필이면 승민의 머리 위였다. 헬멧도 그를 지켜주진 못했다. 불과 10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현숙은 사고 장면이 담긴 영상을 보지 않았다. 한 주민이 “그저 감사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어 가슴이 아프다”는 글을 소방서 홈페이지에 올렸지만, 현숙은 읽지 못했다.며칠이 지나도 승민은 눈을 뜨지 못했다. 낮에 승민을 보러 병원에 갔다가, 밤에는 소윤을 재우러 집에 오는 생활이 이어졌다. 시어머니가 먼저 말을 꺼냈다.“이 아이의 생이 여기까지면, 연명치료고 뭐고 더 할 것 없이 여기서 끝내자. 긴 병에는 장사가 없다.”현숙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시어머니의 말은 이상하리만치 차분했다.“어머니, 그래도…. 뭐라도 더 해야죠.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죠.”현숙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지만 시어머니는 단호했다.“계속 이 아이가 누워 있으면… 네가 소윤이 데리고 어떻게 병원 왔다 갔다 하면서 살아갈 거냐. 결국 너희만 힘들어진다.”젊은 시절 남편을 여의고 호떡 장사를 하며 삼남매를 홀로 키운 시어머니.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손으로 아들의 연명치료 중단을 제안했다. 남편에 이어 장남까지 먼저 떠나보내는 시어머니의 심정을 현숙은 감히 헤아릴 수 없었다.“떠날 운명이면, 그냥 떠나도록 해주는 게 맞다.”감정을 꾹꾹 누른 시어머니에게 현숙은 더는 대꾸하지 못했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었는데,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딸이 태어난 지 100일 만에 남편을 떠나보내야 하는 자신의 운명이 참으로 가혹하단 생각이 들었다.현숙은 처음으로 아이를 안고 남편이 있는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소윤에게 아픈 아빠의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딸아이가 이 순간을 기억하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슬픈 기억을 남겨주고 싶지는 않았다.마흔이 넘은 나이에 아이를 얻은 승민은 누구보다도 소윤을 사랑했다. 소윤의 출생 예정일을 1월 19일로 통보받았을 때 ”역시 소방관 딸“이라며 웃던 남편. 소윤이 침을 흘리면 웃으며 그것을 받아먹던 소윤 아빠. 딸아이의 첫 옹알이도, 첫 뒤집기도 모두 승민과 함께였다. 사고 전날에도 승민은 119센터로 출근하기 직전까지 소윤을 품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현숙은 눈을 감고 있는 승민을 바라보았다. 소윤은 그녀의 품 안에서 입을 달싹거리며 옹알이를 했다. 현숙은 지그시 승민의 손을 잡았다.‘소윤 아빠, 날씨가 참 좋다? 소윤이 유모차 태우고 당신이랑 공원 놀러 가고 싶은데. 이제는 진짜 같이할 수가 없네….’5월 12일 오전 8시 12분. 승민은 현숙과 소윤의 곁을 영원히 떠났다.살기 위해 흘리지 않은 눈물승민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뉴스에서 나왔다. 승민과 현숙 사이에 100일 된 딸이 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다른 이들이 소윤을 동정하는 게 현숙은 싫었다. 빈소를 꾸리기 전, 현숙은 어린이집 직장 동료이자 친구인 김진영에게 소윤을 부탁했다.“진영아, 장례식장에 소윤이 데리고 오지 말아 줘.”현숙이 알리지 않았는데도 장례식장에는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카메라를 든 기자들은 빈소에 머물렀다. 현숙과 다른 가족들이 울며 슬퍼하는 모습을 열심히 담았다.승민의 영정 사진 앞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현숙의 귀에 기자들이 하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들은 소윤을 찾고 있었다.“갓난아이가 있다고 들었는데, 왜 안 보이지?”현숙은 진영에게 다시 전화해 재차 당부했다.“진영아, 소윤이 절대로 장례식장에 데리고 오지 말아 줘.”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진영은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아이를 동정하지 않았으면 하는 현숙의 마음을. 진영은 ”알겠다“며 현숙을 안심시켰다.검정 정복을 입은 승민의 동료들도 다녀갔다. 그들은 빈소에 들어서자마자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현숙이 먼저 그들을 달래기 시작했다.“울지 말자. 우리 울지 말아요. 나 너무 힘들다.”다른 소방관들은 빈소 안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길 나누고 있었다. 직원들이 상주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는 그녀를 불렀다.“제수씨, 이리 오세요.“ ”형수님, 한잔 드세요.”현숙이 그들 옆으로 가 맥주 한 캔을 집었다.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켜는 순간 동료들 뒤로 같은 옷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승민의 얼굴이 보였다.‘소윤 아빠, 당신 왜 거기에 있어. 바보같이 왜 당신이 그 위험한 곳에 갔어.’다들 승민더러 영웅이라고 불렀다. 현숙은 그곳에 왜 승민이 있었는지 화가 날 뿐이었다. 허무했다. 맥주의 뒷맛은 시원하지 않고 씁쓸했다. 눈물이 치밀어 올랐지만, 꾹 눌러냈다. 그 누구도 자신을 동정하지 않았으면 했다.승민의 발인 날. 진영은 소윤을 데리고 승민의 마지막 길을 따라갔다. 아빠가 떠나는 마지막 모습을 소윤이가 제 눈으로 봤으면 했다. 진영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창문을 통해 멀찌감치 운구 행렬을 지켜봤다. 소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진영의 품에 안겨 칭얼거리기만 했다.이날 승민은 121번째 순직 소방관으로 국립대전현충원 묘역에 안장됐다. 그 후로도 6년간 27명의 소방관이 세상을 떠나 이곳에 묻혔다.냉정하고 단단해 보였던 시어머니는, 정작 아들을 떠나보낸 뒤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수십 년 운영하던 호떡 가게도 문을 닫았다. 가끔 현숙을 대신해 소윤을 돌봐주는 것이 일상의 전부였다. 남편에 이어 아들을 보낸 시어머니의 가슴은 타다 못해 아예 문드러졌다.“어머님, 이제 밖에 좀 나가 보세요. 장사도 다시 시작하셔야죠.”이번엔 현숙이 먼저 말을 꺼냈다.“바깥에서 다른 사람 마주치기 싫다. 장사도 이제 더는 안 하련다.”“어머님, 우리가 허승민 소방관 가족이라는 사실은 이 태백 사람들이 다 아는데요. 평생 피하고만 살 수는 없잖아요. 어차피 들을 이야기면 얼른 듣고 끝내도록 해요.”생각보다 시어머니는 완강했다. 더는 말을 잇지 않고 품에 안은 소윤의 몸만 토닥였다. 그래도 현숙은 고집을 꺾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어두운 옷을 입고 다니면 동네 사람들이 아들 먼저 떠나보내서 그런 거라고 말할 거예요. 저희, 깔끔하고 밝게 하고 다녀요. 특히 전 소윤이한테 슬픈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요.”영결식이 끝나고 며칠 지나지 않아 현숙은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유모차를 끌고 동네를 다녔다. 현숙을 알아본 이웃들이 말을 걸었다.“아휴, 소윤 엄마 괜찮아요?“ ”소윤 아빠는 잘 보내드렸어요?”예상했던 질문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현숙은 답했다.“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이제 소윤이 씩씩하게 잘 키우려고요.”하루는 소윤을 안고 아파트 앞 놀이터에 앉아 있었다. 꼬마 아이들이 다가와 현숙에게 말을 걸었다.“아줌마, 여기 사는 소방관 아저씨가 죽었다는데 혹시 아줌마도 얘기 들으셨어요?”‘아,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현숙은 작게 숨을 들이쉰 뒤 말했다.“어어, 그래 알아. 나도 그 얘기 들은 것 같아.”현숙이 씩씩하게 다니려 해도, 누군가는 뒤에서 쑥덕거렸다.“남편 보낸 지 얼마나 됐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네.” “연금, 보상금 받았으니 이제 시댁이랑은 인연 끊는 거 아냐?”시댁 식구들도 처음엔 그녀를 조심스러워했다. 그럴 때마다 현숙은 “소윤이 이 집 아이예요. 손주고 조카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속으로는 ‘내 딸도 이 집 핏줄이야’라고 되뇌었다. 소윤에겐 아빠가 없다는 상처 외에 다른 큰 흠이나 구김이 없으면 했다. 그래서 현숙은 승민이 세상을 떠나기 전보다 더 자주 시댁에 들렀다.가끔 우울한 감정이 치밀어 올라오면 술이 생각났다. 그렇다고 외식을 하거나 밖에서 술을 마실 수는 없었다. 누군가가 그 모습을 보고 “남편 떠나보내고도 잘 지낸다”고, “먹고살 만한가 보다”라고 손가락질을 할 것 같았다. 소윤과 둘이 있는 집에서 술을 마시는 건 더더욱 싫었다. 그래서 현숙은 술이 생각날 때마다 시어머니를 찾았다.“어머님, 막걸리 한잔만 같이해 주시면 안 될까요?”남편을 잃고 시어머니에게 술을 권하는 며느리라니. 현숙은 스스로 생각해도 철이 없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그게 현숙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떠나간 남편이 떠오르고, 소윤을 키우며 아등바등 버텨내는 삶에서 잠시나마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구멍이었다. 복잡한 며느리의 마음을 알아챈 시어머니는 현숙의 부탁에 응했다. 둘은 그렇게 종종 막걸리를 마셨다.평소 이런저런 생각으로 밤잠을 설쳤던 현숙도 술 몇 모금 마시다 보면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아침이 밝아오면, 현숙은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몸과 마음이 힘들어도, 소윤이 앞에선 절대 약한 모습이나 우는 얼굴은 보이지 않을 거야. 단단하게 살아갈 거야. 슬픔에 빠진 채로 지낼 수 없어. 보란 듯이 잘 살 거야.’외면했던 회색빛 삶플라워카페에 앉아 있는 현숙의 뒤로는 색색의 꽃들이 놓여 있었다. 빨간 카네이션과 노란 튤립에 분홍 카네이션까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앞두고 있던 5월 4일이라 많은 손님이 꽃을 사러 왔다. 꽃이 심긴 곳을 등지고 앉은 현숙은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6년 전 이야기를 풀어내던 현숙은 잠시 슬픈 눈을 보이다가 금세 웃어 보이며 아무렇지 않은 듯이 대화를 이어갔다.“소윤 아빠가 떠나고… 한 2년간 그랬네요. 괜찮은 척, 발버둥을 쳤어요. 사실 우리 집 벽지, 그리고 내 방의 천장. 저를 둘러싼 모든 공간은 온통 회색빛으로만 보였거든요.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거죠.”현숙이 텅 빈 유리잔을 조심스럽게 매만지며 회색빛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 ‘히어로콘텐츠팀’을 런칭하며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디 오리지널’은 디지털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참신한 기사를 모은 사이트입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순직 소방관·경찰·군인들이 세상에 남기고 간 물건들을 모은 특별한 추모 공간, ‘그들은 가족이었습니다(https://original.donga.com/2022/hero-memorial)’ 기사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기사 취재 : 김예윤 이소정 이기욱 기자▽프로젝트 기획 : 위은지 기자▽사진 취재 : 홍진환 송은석 기자▽편집 : 이승건 기자▽그래픽 : 김충민 기자▽사이트 개발 :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 신성일 인턴▽사이트 디자인 : 김소연 인턴히어로콘텐츠팀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산화(散花). 어떤 대상이나 목적을 위하여 목숨을 바침.소방관 경찰관 군인 등 제복 공무원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몸을 던졌을 때 우리는 ‘산화했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산화한 이들을 ‘영웅’으로 추앙한다.떠나간 영웅을 기리고 남겨진 가족을 보듬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했는가.순직 경찰관의 아내 알마 재닛 모야.순직 소방관의 아내 박현숙.이들의 시선을 따라 미국과 한국의 서로 다른 추모의 모습을 관찰했다.검은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알마 재닛 모야가 손에 쥔 종이와 눈앞의 벽을 번갈아 봤다. “여보, 어디 있어? 얼른 나와야지.” 바람이 가볍게 불었다. 벽에 새겨진 이름들 위로 나뭇잎 그림자가 일렁였다. 손가락으로 한 줄 한 줄 훑어 내려가던 알마의 눈이 한곳에 멈췄다. 가장 아랫줄에 새겨진 ‘헥터 모야’. 원피스 자락을 가다듬으며 쪼그려 앉은 그녀가 남편의 이름을 쓰다듬었다. 미국 순직 경찰 추모 행사 ‘폴리스위크’ 나흘째인 5월 15일. 많은 사람이 워싱턴 한가운데 추모의 벽(Memorial Wall)에서 가족의 이름을 찾고 있었다.○ 남겨진 사람들의 곁미 뉴저지주 뉴어크시 경찰관 헥터는 지난해 1월 알마 곁을 떠났다. 코로나19가 무섭게 퍼질 때였다. 지역을 순찰하며 많은 시민을 만나던 남편은 바이러스를 피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두 딸과 아내를 두고 눈을 감았다. 56세가 되던 해였다. 남편의 이름을 한참 어루만지던 알마가 휴대전화를 꺼냈다. 사진 속 남편은 제복을 입은 채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 살 아래 남편은 장난치는 것을 좋아했다. “여보, 여전히 너무 귀엽네.” 사진첩을 뒤적거리던 알마의 손가락이 한 사진에서 멈췄다. 헥터와 함께 사진에 담겨 있는 한 동료의 얼굴. 추모의 벽에서 그녀와 함께 헥터를 찾던 경찰관, 로버트 무어였다. 사진첩을 넘길 때마다 로버트와 헥터가 함께한 사진이 몇 장씩 이어졌다. “로버트, 당신은 늘 헥터와 함께 있었네요.” 그녀가 웃으며 로버트에게 말을 건넸다. 곁에 선 로버트가 말없이 미소 지었다. 알마는 사진 속 남편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두 사람이 무척 닮았다고 알마는 생각했다. “남편과 친했던 동료랑 있으니 마음이 조금 놓여요. 당신이 아니었다면 폴리스위크에 올 용기도 내지 못했을 거예요.” 몸을 일으킨 알마가 찬찬히 걸음을 옮겼다. 곡선으로 이어진 회색 추모벽에는 순직 경찰관 2만3000여 명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이름 위아래로는 언젠가 찍었을 가족사진과 손편지들이 코팅돼 붙어 있었다. 로버트는 그녀와 걸음을 맞추며 곁을 지켰다. 사흘 전 로널드 레이건 공항에 도착한 알마는 마중 나온 이를 보고 반가움을 감추지 않았다. 낯선 공항에 낯익은 얼굴. 알마 가족과 종종 저녁을 함께했던 남편의 동료 로버트였다. 남편을 잃고 워싱턴에 오게 된 자신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할 사람이었다. 로버트는 순직 경찰 추모 행사 동안 알마를 에스코트하는 임무를 받았다. 뉴어크시 경찰은 헥터와 절친했던 동료 로버트가 6일 동안 알마 옆을 지켜주도록 했다. 경찰 바이크 60대 에스코트… 함께 모여 영웅 기억하는 美2022년 5월 워싱턴, ‘내셔널 폴리스 위크’폴리스 위크 행사를 주관하는 순직 경찰관 지원 단체 ‘COPS(Concerns of Police Survivors)’는 각 지역 경찰서와 협조해 유가족을 에스코트할 경찰관을 정한다.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고인과의 인연이나 관계다. 유가족들이 같이 다닐 경찰관을 직접 고를 수도 있다. 알마는 자신의 캐리어를 대신 끌어주는 로버트를 따라 유가족 전용 게이트로 향했다. 공항 밖에는 대형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유가족들이 모두 올라타고 버스가 출발하자 앞뒤로 60여 대의 경찰 바이크가 호위하기 시작했다. 빨간빛과 파란빛에 둘러싸인 유가족 버스가 지나가자 길거리의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손을 흔들었다. 목적지는 워싱턴 외곽의 힐턴 호텔. 알마를 포함한 순직 경찰관의 가족들이 폴리스위크 기간 묵을 장소였다.○ 6년 만에 처음 참석한 추모식박현숙은 전화를 받고 망설였다. 태백소방서에서 연락이 온 건 추모식 열흘 전. 현숙은 6년 전 남편이 떠난 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진행되는 순직 소방관 추모식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평일 낮에 열리는 추모식. 멀기도 했지만 어린 딸을 데리고 참석할 엄두가 안 났다. 추모식은 현충일을 사흘 앞둔 금요일 오전 11시였다. 올해는 유가족 오찬간담회도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그녀도 추모식에 참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현숙은 시어머니에게 딸아이를 맡기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강원 원주에서 현충원까진 2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행사 30분 전 소방관 묘역에 도착하자 정복을 입은 소방관 20여 명이 추모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소방서별로 유가족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 3, 4명씩이 행사에 참석했다. 현숙과 친분이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현숙은 홀로 남편 묘비 앞에 섰다. ‘지방소방위 허승민.’ 현충원에 올 때까진 괜찮았다. 묘비에 새겨진 남편의 이름을 보자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 그녀는 가방에서 조용히 물티슈를 꺼내 묘비 겉면을 닦았다. 먼지와 꽃가루가 새까맣게 묻어 나왔다. 새 물티슈를 꺼내 닦은 곳을 또 닦았다. 정복을 입은 소방관 4명이 다가와 현숙과 눈을 마주쳤다. 태백소방서 직원들이었다. 이들은 2명씩 현숙의 왼쪽과 오른쪽에 섰다. 낯선 공기와 침묵이 이들을 감쌌다. 한 직원이 먼저 입을 뗐다. “제수씨, 이쪽으로 더 가까이….” “여기, 잠깐 와서 사진 좀 찍어줘.” 상급자가 지시하자 직원 한 명이 왼쪽 대각선에 섰다. 그가 휴대전화를 들어 올리고 몇 발자국 뒤로 움직였다. 묘비 앞에 선 현숙과 직원들이 한 프레임에 들어왔다. “일동 차렷, 묵념.” 찰칵, 찰칵, 찰칵. 현숙과 직원들이 고개를 숙이자 촬영음이 계속 이어졌다. 어색한 분위기를 견디다 못한 현숙이 먼저 말을 꺼냈다. “현충원에 올 때마다 소방관 묘역에 묘비가 늘어나는 것 같아요.” “참, 어떻게 드릴 말씀이….” 그때 묘역 뒤편에서 마이크를 든 강원소방본부 직원이 안내 방송을 시작했다. “이제 곧 순직 소방관 추모식을 진행할 예정이니 각 소방서 직원들은 분향단 앞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현숙과 나란히 서 있던 직원들이 한 명씩 흩어져 분향단 앞으로 향했다. 홀로 남겨진 현숙이 승민의 묘비를 응시하다 천천히 뒤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떠나간 이의 이름을 부르다석양에 하늘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유가족들이 경찰 추모 주간의 상징인 붉은 장미를 들고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 내셔널몰 안으로 들어왔다. 알마는 로버트와 팔짱을 끼고 입장했다. 제복 차림의 경찰들은 팔을 내밀고 길을 안내했다. 어느새 짙은 어둠이 찾아왔다. 단상 위에 파란 옷을 입은 여성이 올랐다. COPS의 회장이었다. “제 아들은 근무 중 총격을 당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이야기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가 생각나네요. 캄캄한 밤하늘은 제 안의 어둠 같았고, 밝은 촛불은 아들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각자의 아픔이 담긴 촛불이 함께 모여 어두운 밤을 밝혔죠.” 연설이 끝날 때쯤 한 직원이 회장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연단 위 두 사람이 맞잡은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녀가 말을 이어갔다. “왼손을 들어 옆 사람의 손을 잡아 보세요.” 그녀가 주변을 둘러봤다. 다들 눈치만 볼 뿐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인 거 알아요. 괜찮아요. 당신한테 필요한 일이에요.” 희미한 웃음소리가 퍼졌다. 쭈뼛쭈뼛하던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기 시작했다. 알마도 살며시 손을 내밀어 옆 사람의 손을 잡았다. “앨라배마주입니다. 제이슨 린 바이스, 리처드 웬들 험프리….” 지난해 순직한 경찰관 이름이 호명되기 시작했다. 뉴저지주에서 22년간 경찰로 근무했던 알마 남편의 이름은 한참 뒤에나 나올 듯했다. 그래도 그녀는 떠난 모든 이들의 이름을 귀 기울여 들었다. 30분쯤 지났을 무렵. 짧은 종이 울리더니 뉴저지주 차례임을 알렸다. 알마와 주변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뉴저지주입니다. 에드워드 C 재먼드론, 매슈 D 러주카스, 헥터 모야.” 알마가 그토록 기다리던 이름이 내셔널몰에 울려 퍼졌다. 그녀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팸플릿에 적힌 명단을 짚어 내려가던 주변 사람들도 헥터의 이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619명의 경찰관 이름이 모두 호명됐다. 65분이 걸렸다. 부슬비는 잦아들었다. 그때 단상에서부터 촛불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앞에서 뒤로, 옆에서 옆으로, 사람을 타고 촛불이 이어졌다. 이렇게 이어진 노란 불빛이 어둠에 휩싸였던 내셔널몰을 밝혔다. 수천 개의 촛불이 떠오르자 사회자가 단상에 올라 마지막으로 외쳤다. “오늘 밤 우리가 함께 부른 이들의 이름과 이야기, 기억은 언제나 밝게 타오를 겁니다.” 다른 이의 어깨에 기대어 눈물 흘리는 사람. 처음 보는 사람을 끌어안고 다독이는 사람. 조용히 손을 맞잡은 사람. 알마는 더는 그들이 낯설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지금 어떤 마음인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깊은 위로와 공감. 알마는 이 감정을 평생 잊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사진 좀 찍어줘… 일동 묵념”, 또다시 홀로 남겨지는 한국2022년 6월 3일 대전현충원, 강원소방본부 추모식○ 놓쳐버린 영웅의 이름“추모 행사는 국민의례, 소방인에 대한 묵념, 헌화 및 분향, 참배 등의 순서로 진행하겠습니다.” 현숙을 포함한 순직 소방관 가족 9명은 안내 방송에 따라 현충원 소방관 묘역 분향단 앞에 모였다. 강한 햇볕에 현숙의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손등으로 땀을 닦아낸 현숙이 옆을 바라봤다. 같은 강원 지역에서 순직 사고를 경험해 추모 행사에서 종종 만나 낯이 익은 사람들. 5년 전 강릉 석란정 화재 당시 순직한 이영욱 소방경의 아내 이연숙, 이호현 소방교의 아버지 이광수였다. 유가족들은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하얀 국화를 올리고, 향을 피웠다. “2016년 5월 태백 강풍 현장 긴급 구조 활동 중 순직하신 고 허승민 대원의 유가족께서 헌화하시고 분향하시겠습니다.” 마지막 차례였던 현숙의 순서가 끝났다. 사회자는 다음 식순을 안내하려 했다. 그때 소방본부 직원이 사회자에게 다가가 급히 속삭였다. “한 분을 빼고 넘어가셨어요.” 대기 장소엔 광수가 홀로 서 있었다. 다른 가족들이 모두 헌화와 분향을 마친 상태에서 광수는 이름이 불리기만 기다렸다.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사회자가 광수와 순직한 그의 아들을 호명했다. 광수가 분향단에 흰 국화 한 송이를 놓았다. 표정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저 손을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광수는 먼 허공을 바라봤다. “이제부터 유가족과 참석하신 직원들께서 자율적으로 묘역을 참배하시면 되겠습니다.” 소방본부의 추모식이 모두 끝났다. 13분이 걸렸다. 한자리에 모였던 순직 소방관 가족들도 묘비 앞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현숙은 다시 남편의 묘비 앞에 섰다. 그녀의 곁으로 조금 전에 만났던 직원들이 주춤주춤 다가왔다. 날씨가 맑다는 얘기가 오고 간 뒤 더 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현숙이 먼저 입을 뗐다. “옛날에 사고 났을 때는… 남은 가족들만 힘든 줄 알았거든요. 이제는 아, 같이 일하셨던 분들도 참 힘드셨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현숙의 이야기를 들은 직원 중 한 명이 눈을 꾹 감았다 떴다. “가족분들이 제일 힘드시죠. 저희야 직장이고, 직업이고 하니까….” 이 말을 끝으로 대화는 끊겼다. 현숙은 장갑을 낀 손을 만지작거렸다. 휴대전화 벨소리가 정적을 깼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던 직원은 전화기를 들고 멀찍이 걸어갔다. 하얀 면장갑을 낀 현숙은 묘비 앞 투명 아크릴 상자에 쌓인 먼지를 닦아냈다. 곧이어 소방서별로 모여 달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추모식에 참석한 관용차의 주유비 처리 절차 등을 안내했다. 현숙은 연숙, 광수 등 다른 가족들과 묘역 한쪽에 있었다. 그 앞으로 복지 업무를 담당한다는 소방본부 직원이 다가왔다. 직원은 현숙에게 말을 건네려다가 묘역을 힐끗 쳐다봤다. 현숙에게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뭔가 기억이 나지 않는 듯했다. “태백소방서 허….” 직원이 잠시 말을 더듬자 현숙이 나지막이 남편의 이름을 알려줬다. “허승민요.” “아, 네네. 허승민 소방위님.”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순직 소방관이 한두 명도 아닌데 어떻게 일일이 기억하겠나. 직원은 “언제든 불편한 것이 있으면 소방본부 측으로 연락을 달라”고 했다. 현숙은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웃을 수 없는 가정의 달소방본부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현숙은 근처 쌈밥집으로 이동했다. 직원들이 앉는 테이블이 있었고, 안면이 있는 유가족들끼리 다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조금 뒤 다른 단체 손님들이 몰려들자 식당은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어색한 분위기도 소음에 묻혀졌다. 조용히 밥술을 뜨던 현숙이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원들도 옷매무시를 급히 정리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날씨도 더운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직원들이 조용히 허리를 굽혔다.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최선의 인사였다고, 현숙은 생각했다. 모두가 뿔뿔이 흩어지자 현숙과 연숙은 근처 카페로 이동했다. 현숙이 먼저 말을 뗐다. “소방본부에서 오찬간담회라고 하길래 이런저런 이야기라도 좀 나눌 줄 알았는데요.” “아니, 내 말이. 이렇게 따로 앉아서 밥만 먹는 자리였으면 가지도 않았을 거야.” 연숙이 수긍했다. “모여서 같이 한다는 게…” “과자랑 물 나눠 준다는 거였어.” 말을 주고받던 현숙과 연숙의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 입에서 픽,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현숙과 연숙은 이날 처음으로 소리 내 웃었다. 현숙은 고개를 돌려 카페 밖 풍경을 바라봤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른 하늘이었다. 남편의 사고가 난 5월 4일. 그가 현숙과 딸의 곁을 영영 떠난 5월 12일. 그리고 6월 6일 현충일까지. 날이 화창해지는 이맘때가 되면 마음 한편에 자리를 잡은 그늘도 짙어졌다. 어린이날이면 아빠 엄마와 함께 놀러 다니는 아이들이 눈에 띄었고, 어버이날에는 딸아이가 유치원에서 만들어 온 카네이션이 신경 쓰였다. 매년 찾아오는 5월과 6월은 그녀의 마음을 복잡하게 했다. 이렇게 또 가정의 달이 지나갔다. 원주에서 대전현충원까지 왕복 4시간이 넘는 거리. 남편이 잠든 현충원 묘역에 머문 시간은 30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이유는 없었다. 잠시 상념에 빠져 있던 현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 ‘히어로콘텐츠팀’을 런칭하며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디 오리지널’은 디지털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참신한 기사를 모은 사이트입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순직 소방관·경찰·군인들이 세상에 남기고 간 물건들을 모은 특별한 추모 공간, ‘그들은 가족이었습니다(’ 기사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기사 취재 : 김예윤 이소정 이기욱 기자▽프로젝트 기획 : 위은지 기자▽사진 취재 : 홍진환 기자▽편집 : 이승건 기자▽그래픽 : 김충민 기자▽사이트 개발 :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 신성일 인턴▽사이트 디자인 : 김소연 인턴히어로콘텐츠팀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산화(散花). 어떤 대상이나 목적을 위하여 목숨을 바침.소방관 경찰관 군인 등 제복 공무원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몸을 던졌을 때 우리는 ‘산화했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산화한 이들을 ‘영웅’으로 추앙한다.떠나간 영웅을 기리고 남겨진 가족을 보듬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했는가.순직 경찰관의 아내 알마 재닛 모야.순직 소방관의 아내 박현숙.이들의 시선을 따라 미국과 한국의 서로 다른 추모의 모습을 관찰했다.검은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알마 재닛 모야가 손에 쥔 종이와 눈앞의 벽을 번갈아 봤다. “여보, 어디 있어? 얼른 나와야지.”바람이 가볍게 불었다. 벽에 새겨진 이름들 위로 나뭇잎 그림자가 일렁였다. 손가락으로 한 줄 한 줄 훑어 내려가던 알마의 눈이 한곳에 멈췄다. 가장 아랫줄에 새겨진 ‘헥터 모야’. 원피스 자락을 가다듬으며 쪼그려 앉은 그녀가 남편의 이름을 쓰다듬었다.미국 순직 경찰 추모 행사 ‘폴리스위크’ 나흘째인 5월 15일. 많은 사람들이 워싱턴 한가운데 추모의 벽(Memorial Wall)에서 가족의 이름을 찾고 있었다.●남겨진 사람들의 곁미국 뉴저지주 뉴어크시 경찰관 헥터는 지난해 1월 알마 곁을 떠났다. 코로나19가 무섭게 퍼질 때였다. 지역을 순찰하며 사람들을 마주하던 남편은 바이러스를 피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두 딸과 아내를 두고 눈을 감았다. 56세가 되던 해였다.남편의 이름을 한참 어루만지던 알마가 휴대전화를 꺼냈다. 사진 속 남편은 제복을 입은 채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 살 아래 남편은 장난치는 것을 좋아했다.“여보, 여전히 너무 귀엽네.”사진첩을 뒤적거리던 알마의 손가락이 한 사진에서 멈췄다. 헥터와 함께 사진에 담겨있는 한 동료의 얼굴. 추모의 벽에서 그녀와 함께 헥터를 찾던 경찰관, 로버트 무어였다. 사진첩을 넘길 때마다 로버트와 헥터가 함께한 사진이 몇 장씩 이어졌다.“로버트, 당신은 늘 헥터와 함께 있었네요.”그녀가 웃으며 로버트에게 말을 건넸다. 곁에 선 로버트가 말없이 미소 지었다. 알마는 사진 속 남편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두 사람이 무척 닮았다고 알마는 생각했다.“남편이 친했던 동료랑 있으니 마음이 조금 놓여요. 당신이 아니었다면 폴리스위크에 올 용기도 내지 못했을 거예요.”몸을 일으킨 알마가 찬찬히 걸음을 옮겼다. 곡선으로 이어진 회색 추모벽에는 순직 경찰관 2만3000여 명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이름 위아래로는 언젠가 찍었을 가족사진과 손편지들이 코팅돼 붙어 있었다. 로버트는 그녀와 걸음을 맞추며 곁을 지켰다.사흘 전 로널드 레이건 공항에 도착한 알마는 마중 나온 이를 보고 반가움을 감추지 않았다. 낯선 공항에 낯익은 얼굴. 알마 가족과 종종 저녁을 함께했던 남편의 동료 로버트였다. 남편을 잃고 워싱턴에 오게 된 자신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할 사람이었다.로버트는 순직 경찰 추모 행사 동안 알마를 에스코트하는 임무를 받았다. 뉴어크시 경찰은 헥터와 가장 절친했던 동료 로버트가 6일 동안 알마 옆을 지켜주도록 했다. 폴리스위크 행사를 주관하는 순직 경찰관 지원 단체 ‘COPS(Concerns of Police Survivors)’는 각 지역 경찰서와 협조해 유가족을 에스코트할 경찰관을 정한다.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고인과의 인연이나 관계다. 유가족들이 같이 다닐 경찰관을 직접 고를 수도 있다.알마는 자신의 캐리어를 대신 끌어주는 로버트를 따라 유가족 전용 게이트로 향했다. 공항 밖에는 대형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유가족들이 모두 올라타고 버스가 출발하자 앞뒤로 60여 대의 경찰 바이크가 호위하기 시작했다. 빨간빛과 파란빛에 둘러싸인 유가족 버스가 지나가자 길거리의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손을 흔들었다. 목적지는 워싱턴 외곽의 힐턴호텔. 알마를 포함한 순직 경찰관의 가족들이 폴리스위크 기간 묵을 장소였다.박현숙은 전화를 받고 망설였다. 태백소방서에서 연락이 온 건 추모식 열흘 전. 현숙은 6년 전 남편이 떠난 후 대전현충원에서 진행되는 순직 소방관 추모식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평일 낮에 열리는 추모식. 멀기도 했지만 어린 딸을 데리고 참석할 엄두가 안 났다.추모식은 현충일을 사흘 앞둔 금요일 오전 11시였다. 올해는 유가족 오찬간담회도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그녀도 추모식에 참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현숙은 시어머니에게 딸아이를 맡기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강원 원주에서 현충원까진 2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행사 30분 전 소방관 묘역에 도착하자 정복을 입은 소방관 20여 명이 추모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소방서별로 유가족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 3, 4명씩 행사에 참석했다. 현숙과 친분이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현숙은 홀로 남편 묘비 앞에 섰다.‘지방소방위 허승민.’현충원에 올 때까진 괜찮았다. 묘비에 새겨진 남편의 이름을 보자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 그녀는 가방에서 조용히 물티슈를 꺼내 묘비 겉면을 닦았다. 먼지와 꽃가루가 새까맣게 묻어 나왔다. 새 물티슈를 꺼내 닦은 곳을 또 닦았다.정복을 입은 소방관 4명이 다가와 현숙과 눈을 마주쳤다. 태백소방서 직원들이었다. 이들은 2명씩 현숙의 왼쪽과 오른쪽에 섰다. 낯선 공기와 침묵이 이들을 감쌌다. 한 직원이 먼저 입을 뗐다.“제수씨, 이쪽으로 더 가까이….”“여기, 잠깐 와서 사진 좀 찍어줘.”상급자가 지시하자 직원 한 명이 왼쪽 대각선에 섰다. 그가 휴대전화를 들어 올리고 몇 발자국 뒤로 움직였다. 묘비 앞에 선 현숙과 직원들이 한 프레임에 들어왔다.“일동 차렷, 묵념.”찰칵, 찰칵, 찰칵. 현숙과 직원들이 고개를 숙이자 촬영음이 계속 이어졌다. 어색한 분위기를 견디다 못한 현숙이 먼저 말을 꺼냈다.“현충원에 올 때마다 소방관 묘역에 묘비가 늘어나는 것 같아요.”“참, 어떻게 드릴 말씀이….”그때 묘역 뒤편에서 마이크를 든 소방본부 직원이 안내 방송을 시작했다.“이제 곧 순직 소방관 추모식을 진행할 예정이니 각 소방서 직원들은 분향단 앞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현숙과 나란히 서 있던 직원들이 한 명씩 흩어져 분향단 앞으로 향했다. 홀로 남겨진 현숙이 승민의 묘비를 응시하다 천천히 뒤편으로 걸음을 옮겼다.●떠나간 이의 이름을 부르다석양에 하늘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유가족들이 경찰 추모 주간의 상징인 붉은 장미를 들고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 내셔널몰 안으로 들어왔다. 알마는 로버트와 팔짱을 끼고 입장했다. 제복 차림의 경찰들은 팔을 내밀고 길을 안내했다.어느새 짙은 어둠이 찾아왔다. 단상 위에 파란 옷을 입은 여성이 올랐다. COPS의 회장이었다.“제 아들은 근무 중 총격을 당해 세상을 떠났습니다.”그녀의 이야기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이곳에 처음 왔을 때가 생각나네요. 캄캄한 밤하늘은 제 안의 어둠 같았고, 밝은 촛불은 아들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각자의 아픔이 담긴 촛불이 함께 모여 어두운 밤을 밝혔죠.”연설이 끝날 때쯤 한 직원이 회장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연단 위 두 사람이 맞잡은 손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그녀가 말을 이어갔다.“왼손을 들어 옆 사람의 손을 잡아보세요.”그녀가 주변을 둘러봤다. 다들 눈치만 볼 뿐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처음 보는 사람인 거 알아요. 괜찮아요. 당신한테 필요한 일이에요.”희미한 웃음소리가 퍼졌다. 쭈뼛쭈뼛하던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기 시작했다. 알마도 살며시 손을 내밀어 옆 사람의 손을 잡았다.“앨라배마주입니다. 제이슨 린 바이스, 리처드 웬들 험프리….”지난해 순직한 경찰관 이름이 호명되기 시작했다. 뉴저지주에서 22년간 경찰로 근무했던 알마 남편의 이름은 한참 뒤에나 나올 듯했다. 그래도 그녀는 떠난 모든 이들의 이름을 귀 기울여 들었다. 30분쯤 지났을 무렵. 짧은 종이 울리더니 뉴저지주 차례임을 알렸다. 알마와 주변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뉴저지주입니다. 에드워드 C 재먼드론, 매슈 D 러주카스, 헥터 모야.”알마가 그토록 기다리던 이름이 내셔널몰에 울려 퍼졌다. 그녀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팸플릿에 적힌 명단을 짚어 내려가던 주변 사람들도 헥터의 이름을 바라보고 있었다.드디어 619명의 경찰관 이름이 모두 호명됐다. 65분이 걸렸다. 부슬비는 잦아들었다. 그때 단상에서부터 촛불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앞에서 뒤로, 옆에서 옆으로, 사람을 타고 촛불이 이어졌다. 이렇게 이어진 노란 불빛이 어둠에 휩싸였던 내셔널몰을 밝혔다. 수천 개의 촛불이 떠오르자 사회자가 단상에 올라 마지막으로 외쳤다.“오늘 밤 우리가 함께 부른 이들의 이름과 이야기, 기억은 언제나 밝게 타오를 겁니다.”다른 이의 어깨에 기대어 눈물 흘리는 사람. 처음 보는 사람을 끌어안고 다독이는 사람. 조용히 손을 맞잡은 사람. 알마는 더는 그들이 낯설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지금 어떤 마음인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깊은 위로와 공감. 알마는 이 감정을 평생 잊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추모 행사는 국민의례, 소방인에 대한 묵념, 헌화 및 분향, 참배 등의 순서로 진행하겠습니다.”현숙을 포함한 순직 소방관 가족 9명은 안내 방송에 따라 현충원 소방관 묘역 분향단 앞에 모였다. 강한 햇볕에 현숙의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손등으로 땀을 닦아낸 현숙이 옆을 바라봤다. 같은 강원 지역에서 순직 사고를 경험해 추모행사에서 종종 만나 낯이 익은 사람들. 5년 전 강릉 석란정 화재 당시 순직한 이영욱 소방경의 아내 이연숙, 이호현 소방교의 아버지 이광수였다.유가족들은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하얀 국화를 올리고, 향을 피웠다.“2016년 5월 태백 강풍 현장 긴급 구조 활동 중 순직하신 고 허승민 대원의 유가족께서 헌화하시고 분향하시겠습니다.”마지막 차례였던 현숙의 순서가 끝났다. 사회자는 다음 식순을 안내하려 했다. 그때 소방본부 직원이 사회자에게 다가가 급히 속삭였다.“한 분을 빼고 넘어가셨어요.”대기 장소엔 광수가 홀로 서 있었다. 다른 가족들이 모두 헌화와 분향을 마친 상태에서 광수는 이름이 불리기만 기다렸다.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사회자가 광수와 순직한 그의 아들을 호명했다.광수가 분향단에 흰 국화 한 송이를 놓았다. 표정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저 손을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광수는 먼 허공을 바라봤다.“이제부터 유가족과 참석하신 직원들께서 자율적으로 묘역을 참배하시면 되겠습니다.”소방본부의 추모식이 모두 끝났다. 13분이 걸렸다. 한자리에 모였던 순직 소방관 가족들도 묘비 앞으로 뿔뿔이 흩어졌다.현숙은 다시 남편의 묘비 앞에 섰다. 그녀의 곁으로 조금 전에 만났던 직원들이 주춤주춤 다가왔다. 날씨가 맑다는 얘기가 오고 간 뒤 더 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현숙이 먼저 입을 뗐다.“옛날에 사고 났을 때는… 남은 가족들만 힘든 줄 알았거든요. 이제는 아, 같이 일하셨던 분들도 참 힘드셨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현숙의 이야기를 들은 직원 중 한 명이 눈을 꾹 감았다 떴다.“가족분들이 제일 힘드시죠. 저희야 직장이고, 직업이고 하니까….”이 말을 끝으로 대화는 끊겼다. 현숙은 장갑을 낀 손을 만지작거렸다. 휴대전화 벨소리가 정적을 깼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던 직원은 전화기를 들고 멀찍이 걸어갔다. 하얀 면장갑을 낀 현숙은 묘비 앞 투명 아크릴 상자에 쌓인 먼지를 닦아냈다.곧이어 소방서별로 모여 달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추모식에 참석한 관용차의 주유비 처리 절차 등을 안내했다.현숙은 연숙, 광수 등 다른 가족들과 묘역 한쪽에 있었다. 그 앞으로 복지 업무를 담당한다는 소방본부 직원이 다가왔다. 직원은 현숙에게 말을 건네려다가 묘역을 힐끗 쳐다봤다. 현숙에게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뭔가 기억이 나지 않는 듯했다.“태백소방서 허….”직원이 잠시 말을 더듬자 현숙이 나지막이 남편의 이름을 알려줬다.“허승민요.”“아 네네. 허승민 소방위님.”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순직 소방관이 한두 명도 아닌데 어떻게 일일이 기억하겠나. 직원은 “언제든 불편한 것이 있으면 소방본부 측으로 연락을 달라”고 했다. 현숙은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웃을 수 없는 가정의 달소방본부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현숙은 근처 쌈밥집으로 이동했다. 직원들이 앉는 테이블이 있었고, 안면이 있는 유가족들끼리 다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조금 뒤 다른 단체 손님들이 몰려들자 식당은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어색한 분위기도 소음에 묻혀졌다.조용히 밥술을 뜨던 현숙이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원들도 옷매무새를 급히 정리하고는 밖으로 나왔다.“날씨도 더운데 고생 많으셨습니다.”직원들이 조용히 허리를 굽혔다.“정말 고생 많으셨어요.”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최선의 인사였다고, 현숙은 생각했다. 모두가 뿔뿔이 흩어지자 현숙과 연숙은 근처 카페로 이동했다. 현숙이 먼저 말을 뗐다.“소방본부에서 오찬 간담회라고 하길래 이런저런 이야기라도 좀 나눌 줄 알았는데요.”“아니, 내 말이. 이렇게 따로 앉아서 밥만 먹는 자리였으면 가지도 않았을 거야.”연숙이 수긍했다.“모여서 같이 한다는 게…”“과자랑 물 나눠준다는 거였어.”말을 주고받던 현숙과 연숙의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 입에서 픽, 웃음이 새어 나왔다.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현숙과 연숙은 이날 처음으로 소리 내 웃었다. 현숙은 고개를 돌려 카페 밖 풍경을 바라봤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른 하늘이었다. 남편의 사고가 난 5월 4일. 그가 현숙과 딸의 곁을 영영 떠난 5월 12일. 그리고 6월 6일 현충일까지. 날이 화창해지는 이맘때가 되면 마음 한편에 자리를 잡은 그늘도 짙어졌다. 어린이날이면 아빠 엄마와 함께 놀러 다니는 아이들이 눈에 띄었고, 어버이날에는 딸아이가 유치원에서 만들어온 카네이션이 신경 쓰였다. 매년 찾아오는 5월과 6월은 그녀의 마음을 복잡하게 했다.이렇게 또 가정의 달이 지나갔다. 원주에서 대전 현충원까지 왕복 4시간이 넘는 거리. 남편이 잠든 현충원 묘역에 머문 시간은 30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이유는 없었다. 잠시 상념에 빠져 있던 현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 ‘히어로콘텐츠팀’을 런칭하며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디 오리지널’은 디지털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참신한 기사를 모은 사이트입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순직 소방관·경찰·군인들이 세상에 남기고 간 물건들을 모은 특별한 추모 공간, ‘그들은 가족이었습니다(’ 기사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기사 취재 : 지민구 김예윤 이소정 이기욱 기자▽프로젝트 기획 : 위은지 기자▽사진 취재 : 홍진환 기자▽그래픽 : 김충민 기자▽사이트 개발 :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 신성일 인턴▽사이트 디자인 : 김소연 인턴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차량과 발전소 등에서 화석연료 사용을 중단하는 탄소중립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감소하면서 미세먼지도 줄어들 것이란 예측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친환경 차량이나 암모니아 등을 활용하는 발전소에서도 또 다른 대기오염 물질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정부와 산하 출연연구기관들은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미세먼지가 새로 발생할 수 있는 영역을 사전에 예측해 공동으로 대응하는 연구개발(R&D)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전기차에서 나오는 미세먼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기계연구원에 따르면 배터리와 각종 전자식 부품을 장착한 전기차는 일반적으로 기존 내연기관 차량보다 무겁다. 이 때문에 이른바 ‘비배기 미세먼지’가 20%가량 더 발생한다. 타이어와 도로의 마찰 강도가 높아지면서 니켈과 타이어 제조에 들어가는 중금속 등 인체에 좋지 않은 미세먼지의 배출량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전기차가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아 배기구에서 탄소 물질을 내뿜지 않더라도 다른 경로로 대기오염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독일에선 내연기관 차량 규제를 강화하고 전기차 비중이 늘어나면서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80% 감소하더라도 비배기 미세먼지는 오히려 30% 이상 증가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과기정통부와 기계연구원은 전기차 등 친환경차에 부품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비배기 미세먼지를 줄이는 기술 개발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전기차의 배터리 밑과 타이어 뒤쪽 등에 미세먼지 물질을 자동으로 빨아들이거나 끌어당기는 기술을 개발한다면 보행자에게 노출되는 미세먼지 양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등에선 차량에 필터를 부착해 미세먼지 물질을 걸러내는 연구가 이뤄지기도 했지만 자동차 업계에선 비효율적인 기술로 보고 있다. 비배기 미세먼지가 비교적 입자가 큰 만큼 필터를 자주 교체해야 하는 탓이다. 기계연구원 등은 사업 타당성 조사를 거쳐 예산을 확보하면 내년부터 5년 동안 전기차의 비배기 미세먼지 감축 장치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을 진행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우상희 기계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해외 상황을 보면 2030년경에는 비배기 미세먼지 관련 규제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 산하 연구기관에서 선제적으로 이에 대응하기 위한 연구개발을 진행하면 국내 완성차, 차량 부품 업체도 더 쉽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탄소 연료도 대기오염 우려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석탄, 석유를 대체할 발전 연료로는 암모니아 등이 있다. 암모니아는 연소할 때 대기오염의 원인이 되는 탄소 물질이 거의 나오지 않는 데다 수소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높은 온도(영하 34도)에서도 액화 상태로 보관할 수 있어 활용 가치가 높은 대체 연료로 꼽힌다. 다만 암모니아가 연소할 때는 미세먼지 2차 생성의 원인 물질인 질소산화물이 나온다. 국내 조선 3사와 엔진 업체 등도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 강화 흐름에 대비하기 위해 암모니아 연료로 움직이는 선박 개발을 추진하면서도 이 같은 문제를 먼저 해결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암모니아 연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HSD엔진(옛 두산엔진)은 새로운 기술 개발을 준비하고 있다. 촉매 장치를 통해 암모니아 연료의 연소 과정에서 나오는 대기오염 물질을 걸러내는 형태를 고려하고 있다. HSD엔진 관계자는 “암모니아 연료의 연소 과정에서 발생하는 질소산화물 등의 대기오염 물질 처리 기술은 선박 엔진뿐만 아니라 발전소에서도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와 산하 출연연구기관은 앞으로 기업과의 협업을 통한 미세먼지 저감 기술 연구개발 사업을 확대할 예정이다. 연구기관이 선행 연구를 진행해 기업에 기술을 이전해 주거나 초기 개발 단계부터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방식 등이 거론되고 있다. 윤석진 KIST 원장은 “대기오염 분야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환경 규제가 갈수록 늘어나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한 각 국가의 핵심 기술 선점 경쟁도 치열한 상황”이라며 “민간에서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원천, 선행 연구를 공적 연구기관이 주도하면서 중장기적으로 기업과 협업하면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는 성과가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이사회 의장이 15년 만에 회사 등기이사직을 내려놓고 글로벌 사업에 주력하기로 했다. 그동안 ‘내수 기업’으로 불렸던 카카오의 꼬리표를 떼기 위해 김 의장이 직접 해외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취지다. 김 의장은 14일 사내 게시판에 “카카오 이사회 의장직(사내이사)을 내려놓기로 했다”고 밝혔다. 카카오의 전신인 아이위랩을 창업한 2007년 이후로 김 의장은 줄곧 사내이사를 맡아 경영 활동을 이어왔는데, 이사회에서 완전히 빠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카카오의 미래 사업 발굴을 위한 미래이니셔티브센터 공동센터장직만 유지하기로 했다. 회사의 최대주주이자 창업자인 김 의장이 이사회에서 물러나는 것은 카카오의 글로벌 사업 전략을 총괄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플랫폼 기업의 골목상권 침해, 수수료 인상 논란이 불거졌을 때 카카오는 매출에서 차지하는 해외 사업 비중이 10% 안팎에 불과해 내수 시장에만 집중한다는 비판도 동시에 받았다. 김 의장은 “카카오가 한국이라는 시작점을 넘어 해외 시장이라는 땅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강력한 요구”라며 “이러한 ‘비욘드 코리아’ 임무를 달성하기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김 의장을 중심으로 한 해외 사업 확장 전략의 핵심 역할은 카카오픽코마(옛 카카오재팬)가 맡는다. 카카오픽코마는 2016년 만화 강국인 일본 시장에서 디지털 만화 플랫폼 ‘픽코마’를 출시한 뒤 5년 만인 지난해 1위 업체로 올라섰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프랑스 시장 진출을 선언했고 현지 콘텐츠 서비스 출시를 앞두고 있다. 김 의장도 2017년부터 주요 사업 자회사 중에선 유일하게 카카오픽코마의 사내이사로 경영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김재용 카카오픽코마 대표는 지난달 17일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투자 등 굵직한 (글로벌) 전략과 관련해 브라이언(김 의장)이 더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장이 등기이사직을 내려놓기로 결정하면서 카카오는 홍은택 부회장을 신임 사내이사로 내정했다. 김성수 부회장과 카카오 공동체얼라인먼트센터(CAC)를 공동으로 이끄는 홍 부회장은 29일 정기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선임될 예정이다. 새로운 이사회 의장은 아직 확정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카카오는 앞으로 글로벌 사업을 이끄는 김 의장을 포함해 4명의 최고위급 경영진을 중심으로 한 의사결정체계를 확립했다. 남궁훈 카카오 대표 내정자가 메타버스(3차원 가상현실) 등 모바일을 넘어선 미래 신사업을 발굴하는 일에 주력하고 김성수 부회장이 계열사 간 조율에, 홍 부회장은 사회공헌 활동에 집중하는 것이다. 네이버도 리더십을 재편하고 ‘글로벌 사업 확장’을 선언했다. 네이버는 14일 정기주총과 이사회에서 최수연 신임 대표를 최고경영자(CEO)로 공식 선임했다. 최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제2의 라인, 웹툰, 제페토 서비스를 내놓겠다”고 밝혔다. 글로벌 시장을 아우르는 새로운 네이버 플랫폼 서비스를 출시하겠다는 포부다. 최 대표는 이날 경기 성남시 네이버 본사에서 취재진과 만나 “네이버는 검색 외에도 전자상거래, 콘텐츠, 핀테크 등의 사업을 대부분 보유하고 있어 해외 빅테크와 비교해 봐도 장점이 있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는 앞서 2018년 사내이사에서 물러난 뒤 해외 사업 발굴과 투자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해외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카카오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고 글로벌 확장 업무를 맡겠습니다.”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이사회 의장이 14일 사내 게시판을 통해 회사 사내이사직을 사임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사회에서 빠지기로 한 만큼 자연스럽게 의장 역할도 맡지 않는 것이다. 김 의장이 등기이사직을 맡지 않는 것은 카카오의 전신인 아이위랩을 창업한 2007년 이후 15년 만에 처음이다. 김 의장은 앞으로 카카오픽코마(옛 카카오픽코마)의 사내이사로서 일본, 유럽 등 글로벌 사업 확대에 주력할 예정이다. 김재용 대표가 이끄는 카카오픽코마는 2016년 일본에서 디지털 만화 플랫폼 서비스를 출시한 뒤 5년 만에 시장 1위에 오르는 등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를 낸 핵심 계열사로 꼽힌다. 이달 중에는 프랑스에서 디지털 만화 플랫폼 서비스 ‘픽코마’를 출시할 예정이다. 김 의장은 2015년 일본에서 김 대표를 만나 일본 사업 총괄 역할을 맡겼고 2017년부터는 카카오픽코마의 이사회에 합류하는 등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김 대표는 지난달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투자 등 카카오픽코마의 굵직한 전략과 관련해 브라이언(김 의장)이 앞으로 더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장을 중심으로 북미, 인도, 동남아시아 지역에선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웹소설, 실시간 동영상 등의 콘텐츠 플랫폼으로 적극적으로 시장 공략에 나선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2024년까지 글로벌 거래액을 기존 대비 3배 이상 성장시킨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카카오 사정에 밝은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카카오픽코마,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 각 계열사의 글로벌 사업이 중복된다는 지적이 나왔던 것이 사실”이라며 “김 의장이 전면에 나서기로 한 만큼 이러한 문제는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카카오는 지난해 플랫폼 서비스의 골목상권 침해, 수수료 인상 논란이 불거지면서 내수 매출 비중이 높다는 점도 비판을 받아왔다. 이후 남궁훈 미래이니셔티브 센터장을 신임 카카오 대표이사로 내정하면서 글로벌 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카카오는 김 의장을 대신할 새로운 사내이사로 공동체얼라인먼트센터(CAC)를 이끌고 있는 홍은택 부회장을 내정했다. 29일 열리는 정기주주총회에서 홍 센터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다. 김 의장이 사내이사직을 내려놓으면서 국내 IT 산업을 대표하는 네이버와 카카오의 창업자는 모두 회사 이사회를 떠나게 됐다.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는 2018년 사내이사직에서 사임하고 글로벌 투자 기회 발굴에 주력하고 있다.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LG유플러스는 서강대와 메타버스(3차원 가상현실) 기반 대학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13일 밝혔다. LG유플러스는 서강대 메타버스전문대학원과 가상 사무실, 화상 강의 등의 서비스를 대학 강의에 활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교육 효과도 실증할 예정이다. 또 서강대가 전 세계 예수회 산하 대학과 교육 협력을 추진할 수 있도록 기술과 서비스를 고도화할 계획이다. 서강대 측은 대학원에 별도의 메타버스 기술 개발 연구실을 설치해 연구 활동을 이어가기로 했다. 황현식 LG유플러스 대표는 “일회성 행사로 메타버스를 활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학생 등이 실제 가치를 체감할 수 있는 교육 서비스를 계속 제공할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고 말했다.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KT는 중고 스마트폰 서비스 ‘민트폰’에서 단말기를 구입한 뒤 1년 내 반납하면 세금을 제외한 전액을 환급하는 상품을 내놓았다고 13일 밝혔다. 민트폰은 자원 재활용 활성화를 위해 KT와 중고 거래 플랫폼 번개장터가 지난해 8월 시작한 서비스다. 예를 들어 상품 가입자가 중고 ‘아이폰 11 64GB(기가바이트)’ 모델을 60만5000원에 구매한 뒤 1년 뒤 파손이나 손상 없이 반납하면 부가세 5만5000원을 뺀 55만 원을 돌려주는 방식이다. KT 관계자는 “영업직, 택배 기사 등이 업무용 ‘세컨드폰’으로 활용하기 좋은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KT는 이번 서비스 개편을 통해 가입자들이 온라인 민트폰 페이지에서 중고 스마트폰을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온라인에서 요금제와 실제 부담액 등을 확인하고 신청하면 대리점 전화 상담을 거쳐 구매를 확정할 수 있다.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구글이 클라우드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미국 사이버 보안 업체를 54억 달러(약 6조6700억 원)에 인수한다. 사이버 보안은 클라우드 사업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에 클라우드 1, 2위인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MS)를 추격하기 위한 행보로 보인다. 구글은 8일(현지 시간) “사이버 보안 기업 맨디언트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MS 등 미국의 다른 빅테크(대형 기술기업)도 맨디언트 인수전에 뛰어들었지만 구글이 최종 매수자로 결정됐다. 구글은 맨디언트의 인수 절차를 연내 마무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맨디언트는 구글의 클라우드 사업 부문에 편입될 예정이다. 맨디언트는 2004년 미 공군 출신인 케빈 맨디아 최고경영자(CEO) 등이 설립한 업체로 중국 정부의 사이버 공격 행위를 규명하는 보고서를 2013년 발간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현재 300여 명의 전문가가 사이버 공격을 감지, 분석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구글의 이번 인수합병(M&A) 거래액은 역대 두 번째 규모다. 구글이 거액을 들여 맨디언트 인수에 나선 것은 수익 다각화에 필요한 클라우드 사업 부문의 보안 기술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LG유플러스는 농협중앙회의 금융 애플리케이션(앱) ‘NH콕뱅크’를 통한 알뜰폰 가입자가 서비스 출시 6개월 만에 1만2000명을 넘어섰다고 9일 밝혔다. NH콕뱅크에선 지난해 9월부터 LG유플러스의 통신망을 임차해 알뜰폰 사업을 하는 ‘이야기모바일’의 요금제 가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NH콕뱅크를 통한 알뜰폰 가입 고객의 약 62%는 20, 30대 청년층으로 나타났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농협과 금융, 통신을 연계한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등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경북·강원 지역 산불 피해 복구와 이재민 돕기를 위한 기업·기업인들의 지원이 8일에도 이어졌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10억 원 규모의 개인 보유 회사 주식을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기부하기로 했다. 카카오의 기부금 플랫폼인 ‘카카오같이가치’에는 4일부터 닷새간 59만 명 이상의 이용자가 참여해 12억 원의 재난 기부금이 모였다. 네이버도 전국재해구호협회에 성금 15억 원을 기탁한다. 네이버는 기부포털 ‘해피빈’에서도 여러 구호 단체와 산불 피해 지원을 위한 모금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CJ그룹과 KT&G, 셀트리온은 각각 성금 5억 원을 전국재해구호협회를 통해 긴급 지원한다. 게임사 엔씨소프트와 넷마블(계열사 코웨이 포함)도 각각 5억 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SM엔터테인먼트는 5억 원을, JYP엔터테인먼트는 3억 원을 각각 기부했다. 에쓰오일과 한라그룹은 성금 3억 원을, 아모레퍼시픽그룹과 한국앤컴퍼니도 성금 2억 원을 각각 전달했다. 한일현대시멘트는 1억 원의 성금을 영월군청에 전달했고, NS홈쇼핑은 성금 3000만 원을 기부했다. 금융권도 지원에 나섰다. 교보생명은 2억 원, 한국수출입은행과 삼정KPMG는 1억 원을 각각 기부했다. 신용보증기금은 피해를 본 중소기업에 최대 5억 원 규모 운전자금 특례보증을 지원한다. 신용회복위원회는 피해를 입은 개인에게 원금의 최대 70%를 감면해주고 산불로 폐업한 개인사업자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최대 5년간 채무 상환을 유예해주기로 했다. 롯데카드 등 카드사들은 피해사실 확인서를 제출한 고객에게 신용카드 결제대금을 최대 6개월간 청구 유예하기로 했다. 공기업도 힘을 보탰다. 한국전력은 전력그룹사와 공동으로 재난구호금 10억 원을 전국재해구호협회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산불 피해 주민에 대한 긴급 주거지원과 별도로 이재민 지원을 위해 2억 원을 전국재해구호협회에 8일 기부했다. 한국부동산원도 성금 5000만 원을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탁했다. 구호물품 지원도 이어졌다. CJ온스타일은 4억 원 상당의 침구류 1740여 개 등을 제공할 예정이다. LX홀딩스 및 5개 계열사는 바닥재 등 5억 원 상당 인테리어 자재를 전국재해구호협회에 전달하기로 했다. 대상그룹은 3000만 원 상당의 김치를 포함해 1억8000만 원을 기부했다.곽도영 기자 now@donga.com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대형 정보기술(IT) 기업이 디지털 플랫폼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경영 체계 개편에 나섰다. 이사회에 리스크 관리 전담 임원을 합류시키고,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경영 자문을 맡기는 등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택시 호출 애플리케이션(앱) ‘카카오T’를 운영하는 카카오모빌리티는 7일 “사회적 책임 강화를 위해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한 ‘상생자문위원회’와 ‘모빌리티투명성위원회’가 발족해 활동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상생자문위에는 11명, 모빌리티투명성위에는 7명의 민간 전문가가 각각 참여한다. 상생자문위는 카카오모빌리티와 택시·대리운전 기사의 상생안 자문에 응하고 이용자들을 대변해 카카오T 서비스의 불편사항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모빌리티투명성위는 인공지능(AI) 등 기술 관점에서 택시 배차 시스템과 데이터 처리 과정의 신뢰성을 검증할 예정이다. 이들 위원회는 주기적으로 회의를 진행하고 논의한 내용을 공개 보고서 등의 형태로 발표하기로 했다. 카카오모빌리티 측은 “위원회의 독립적인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최고경영자(CEO) 직속 기구로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지난해 카카오T의 유료 택시 호출 서비스 이용료를 최대 5000원으로 인상하는 가격 정책을 냈다가 업계와 이용자들의 반발을 샀다. 인상 조치를 철회한 뒤에도 플랫폼 독점의 부작용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언급되며 국회의 플랫폼 규제 논의로 이어졌다. 당시 카카오모빌리티는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발족해 논의 내용을 경영 전략에 반영하겠다는 계획을 국회에 제시한 바 있다.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네이버와 카카오 본사도 핵심 의사 결정 기구인 이사회의 구성에 변화를 주기로 했다. 네이버는 14일 경기 성남시 본사에서 여는 정기주주총회에 최수연 대표 내정자와 채선주 최고커뮤니케이션책임자(CCO)를 사내이사로 추천하는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다. 채 CCO는 2000년부터 네이버에서 홍보, 대관, 정책, 마케팅 업무를 담당해왔다. 네이버가 그동안 대표 외의 사내이사로 재무나 사업운영 부문의 책임자를 선임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결정이다. 채 CCO는 이사회에 참여해 친환경, 사회공헌, 지배구조 개선 등 ‘ESG 경영’ 관점에서 회사의 의사 결정에 관여할 예정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최 내정자가 회사의 사업 전반을 조율하고 새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역할을 맡는다면, 채 CCO는 이 과정에서 발생할 사회적 이슈 등을 판단해 이사회에 적극적으로 전달하는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카오 이사회에도 리스크 관리 전문가가 합류한다. 카카오는 29일 제주 본사에서 열릴 정기주총에서 대표 내정자인 남궁훈 미래이니셔티브 센터장과 자회사 카카오엔터테인먼트를 이끄는 김성수 대표를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의결할 계획이다. CJ ENM 출신인 김 대표가 플랫폼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 경영 의식 강화를 위해 이사회에서 역할을 맡아줄 것을 기대한 인선이다. 김 대표는 카카오 계열사의 사업 전략을 조율하고 사회 공헌 방안을 실행할 공동체얼라인먼트센터(CAC)도 이끌고 있다. 카카오 관계자는 “플랫폼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여러 이슈를 김 대표 중심으로 이사회와 CAC에서 면밀히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도한 과금 시스템으로 이용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은 국내 대형 게임사들도 사회적 논란에 대응하기 위한 외부 인사를 영입하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정교화 넷플릭스코리아 정책법무 총괄을 사외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엔씨소프트 측은 “IT 분야의 리스크 관리 전문가인 정 총괄의 합류로 이사회의 전문성과 다양성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네이버의 자회사 네이버제트는 메타버스(3차원 가상현실) 플랫폼 ‘제페토’에서 JYP엔터테인먼트의 신인 걸그룹 엔믹스(NMIXX)의 행사를 진행했다고 7일 밝혔다. 네이버제트는 제페토에 엔믹스의 연습실을 그대로 구현해 이용자들이 멤버 설윤, 배이 등과 사진(셀피)을 찍고 함께 안무 연습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엔믹스의 음악과 패션 등의 콘텐츠도 마련했다. 이용자들은 엔믹스의 데뷔 음원에 맞춰 메타버스 속 가상 캐릭터(아바타)로 안무를 수행하는 영상을 직접 제작해 공유할 수도 있다. 지난달 첫 음원을 내고 데뷔한 엔믹스는 공식 활동 초기부터 메타버스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제페토에 마련한 엔믹스의 가상공간에는 엿새간 100만 명의 이용자가 방문했고 팬들이 직접 제작한 메타버스 관련 콘텐츠도 60만 개에 달했다. 2018년 8월 선보인 제페토는 최근 글로벌 가입자 3억 명을 돌파했으며 월간 실사용자 수(MAU)도 2000만 명을 넘어섰다. 가입자 대부분은 10, 20대인 ‘Z세대’다. 네이버제트 측은 “Z세대 이용자들이 아이돌 그룹의 콘텐츠를 즐기는 것에서 나아가 직접 콘텐츠를 만들고 공유하는 ‘팬덤 문화’가 더 확산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카카오가 러시아 침공으로 어려움을 겪는 우크라이나 아동 구호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유니세프에 가상화폐 등 46억 원 상당을 기부한다. 카카오는 4일 “가상화폐 클레이(KLAY) 300만 개(약 42억 원)를 국제아동 구호 기구인 유니세프에 기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클레이는 카카오 자회사인 그라운드X가 발행한 가상화폐로 바이낸스 등 글로벌 주요 가상 자산 거래소에 상장돼 있다. 카카오는 사회공헌 플랫폼 ‘카카오같이가치’에서 일반 이용자들로부터 모금한 기부금 4억3000만 원도 유니세프에 전달할 예정이다. 15만 명이 넘는 이용자가 참여했다. 카카오는 또 7일부터 카카오메이커스를 통해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은 옷과 스마트폰 케이스를 판매해 수익금 전액도 기부할 예정이다.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항의해 세계 각국이 ‘러시아 보이콧’에 나선 가운데 애플 나이키 보잉 포드 엑손모빌 등 글로벌 기업도 속속 러시아에서 발을 빼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자리에서 쫓아내는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고, 회의에 참석한 각국 외교관이 공개적으로 러시아에 등을 돌리는 일도 벌어졌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1일(현지 시간) 국정연설에서 “모든 러시아발 항공기에 미 영공을 닫는다. 러시아를 더 고립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미 유나이티드항공 또한 러시아 비행을 중단한다. 앞서 유럽연합(EU)과 캐나다 역시 러시아발 항공기의 입국을 금지하는 등 서방 대부분이 러시아에 하늘길을 닫았다. 애플은 이날 러시아에서 아이폰 등의 판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폭력의 결과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하겠다”고 했다. 결제 서비스 ‘애플페이’를 제한하고 앱스토어에서 러시아투데이(RT), 스푸트니크뉴스 등 러시아 관영매체 앱도 내려받을 수 없도록 했다. 나이키 역시 러시아 내 판매 중단을 선언했다. 글로벌 빅테크들은 러시아 국영매체의 채널을 차단했다. 구글은 이날 “유럽 전역에서 러시아 매체에 연결된 유튜브 채널을 차단한다”고 밝혔다. 러시아 매체가 유튜브 광고 등으로 수익을 내지 못하도록 조치한 것이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운용하는 메타플랫폼도 EU의 모든 국가에서 해당 매체에 접근할 수 없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으로 추정되는 악성 소프트웨어를 발견해 우크라이나에 알렸다. 메타플랫폼은 러시아 해커를 적발하고 계정을 차단했다. 세계 1, 2위 해운사인 MSC와 머스크 또한 러시아로 입출항하는 화물 서비스를 모두 중단했다. 미 자동차 기업 포드는 러시아에서 합작 공장 3곳의 가동을 중단한다고 통보했다. 미 항공기 제조업체 보잉과 오토바이 브랜드 할리데이비슨, 스웨덴 자동차 업체 볼보 등도 러시아 사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미 석유업체 엑손모빌도 러시아 유전에서 단계적으로 철수하기로 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러시아 최대 은행 스베르방크의 유럽 지사 영업을 금지했다. 마스터카드와 비자카드 또한 러시아 금융사와의 결제망을 차단하거나 제재 명단에 오른 러시아 기관 및 개인을 차단했다. 이날 프랑스 밀랍인형 박물관 ‘그레뱅뮤지엄’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인형의 목과 몸통을 분리한 뒤 전시실에서 빼 창고로 옮겼다고 밝혔다. 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 고위급 회의에 참석한 100여 명의 각국 외교관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의 화상 연설이 시작되자 일제히 등을 돌리고 회의장을 빠져나가는 방식으로 러시아를 규탄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인권이사회 회의에서 러시아의 이사국 자격 박탈을 제안했다. 미 의회 또한 러시아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자리에서 쫓아내는 결의안을 추진 중이다.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푸틴이 ‘유럽의 통일’을 만들었다”며 유럽의 고질병으로 꼽히던 내부 분열이 러시아 침공을 계기로 해소됐다고 진단했다. 세계은행(WB)과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날 공동 성명을 내고 우크라이나에 30억 달러(약 3조6000억 원)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미 숙박 공유업체 에어비앤비는 우크라이나를 떠난 난민 10만 명에게 무료로 임시 숙소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김성모 기자 mo@donga.com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창업자인 김정주 NXC 이사를 떠나보낸 넥슨은 당분간 한미일 각국 법인을 이끄는 대표 3인의 집단 경영 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2일 NXC에 따르면 지주회사인 NXC 이재교 대표와 일본 넥슨 본사의 오언 머호니 대표, 게임 개발을 총괄하는 넥슨코리아의 이정현 대표는 각각 사내 메시지를 내고 고인을 추모하면서 조직을 안정적으로 추스르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이정현 대표는 “넥슨 경영진은 김 이사의 뜻을 이어가 더욱 사랑받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당장 경영 공백 우려는 적지만 김 이사가 그룹 신사업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온 만큼 글로벌 사업 전략과 투자 유치 등에선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넥슨의 지배구조에는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김 이사는 NXC 지분 67.49%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나머지 지분은 배우자인 유정현 NXC 감사(29.43%)와 두 딸, 가족 관계 회사가 갖고 있다. 지분은 모두 가족에게 상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상속세만 수조 원에 달할 것으로 보여 일부 지분 매각은 불가피하다. 넥슨 사정에 밝은 게임업계 관계자는 “김 이사가 생전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넘기지 않겠다고 밝혀온 만큼 넥슨 매각설이 재차 불거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넥슨 창업자 김정주 NXC 이사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고 두 시간여가 흐른 1일 오후 10시,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 이용자들이 게임 안에서 모였다. 장소는 게임 안에 구현된 공간인 ‘부여성’ 남쪽 흉가 앞이었다. ‘바람의 나라’ 서비스 초기인 1996년부터 있었던 공간이다. 바람의 나라는 김 이사가 1994년 넥슨을 창업하면서 개발한 세계 최초의 다중 접속 온라인 게임이다. 넥슨을 키워낸 대표작이다. 게임 속에서 온라인 추모식을 연 이용자들은 채팅창에 “게임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어린 시절 추억을 만들어준 분,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등의 메시지를 올리고 국화 아이템을 내려놓기도 했다. 한국 벤처업계 대표 주자 중 한 명인 김 이사가 별세했다는 소식에 온라인 게임을 비롯해 곳곳에서 추모 메시지가 줄을 이었다. 2011년부터 김 이사와 인연을 이어온 푸르메재단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푸르메재활센터와 서울 마포구 상암동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 고인을 추모하는 공간을 마련했다. 김 이사는 2013년 국내 최초의 아동 재활병원인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위해 넥슨코리아 등과 함께 200억 원을 기부했다.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는 “기부에 그치지 않고 가족이 직접 5개월 동안 자원봉사를 하면서 병원을 챙길 정도로 누구보다 장애 어린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셨던 분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보기술(IT) 업계와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들은 ‘은둔의 경영자’로 불렸던 김 이사가 투자자 또는 조언자로 자신을 도왔던 일화를 쏟아냈다. 온라인 교육 사이트 ‘이투스’ 창업자 김문수 스마투스 대표는 1일 밤 자신의 페이스북에 2011년 김 이사로부터 초기 투자를 받은 경험을 소개했다. 김 대표는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 아이패드로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한참 후 고개를 들어 보니 JJ(업계에서 김 이사를 친근하게 부르던 호칭)가 옆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몇 주 뒤 두 번째 만난 자리에서 계약서도 없이 보통주(보통주 매입)로 10억 원의 투자를 얼떨결에 받았다”고 회고했다. 넥슨 출신으로 ‘아기상어’를 제작한 김민석 더핑크퐁컴퍼니 대표도 “모든 면에서 (김 이사가) 인생의 롤모델이었다”며 “2013년 첫 투자를 받고 100배로 불려 드리기로 했던 목표가 눈앞에 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게임업계 동료인 방준혁 넷마블 창업자는 2일 “작년 제주도에서 만났을 때 산악자전거를 막 마치고 들어오는 건강한 모습과 환한 얼굴이 아직 떠오르는데 갑작스러운 비보에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다”며 김 이사의 명복을 빌었다. 한편 주호놀룰루 총영사관 측은 2일 “하와이 현지 시간으로 지난달 28일 현지 경찰을 통해 김정주 이사가 27일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고 밝혔다. 홍석인 주호놀룰루 총영사는 “김 이사가 하와이를 종종 찾았었고, 휴양 및 사업 구상 목적으로 왔다는 말을 교민들에게 전했다고 한다”고 했다. 김 이사의 사망과 관련 수사 당국은 “타살 혐의나 (수사를 위한) 국제 공조가 필요 없는 상황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유가족들은 2일 넥슨 측을 통해 조용히 장례 절차를 밟으며 국내에 빈소를 마련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김도형 기자 dodo@donga.com·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김기윤 기자 pep@donga.com}

“KT는 통신회사가 아니라 디지털 플랫폼 기업입니다. 고도화한 인공지능(AI) 기술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겁니다.” KT가 망 설비를 기반으로 한 기존 통신 사업에서 나아가 종합 디지털 서비스 플랫폼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했다. 구현모 KT 대표(사진)는 1일(현지 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고 있는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2’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러한 사업 전략을 밝혔다. 구 대표는 “KT는 과거 15년 이상 매출 15조 원을 밑도는 등 이익은 내더라도 성장하지 않는 기업이란 평가를 받은 게 사실”이라며 “새로운 디지털 영역으로 운동장을 넓혀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다”고 했다. KT가 기대하고 있는 미래 성장 동력은 AI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디지털 전환 등의 기업 간 거래(B2B) 시장이다. 이날 간담회에서 구 대표는 임직원 200여 명이 1년간 개발한 AI 무인 통화 비서 서비스를 대표적인 B2B 혁신 사업으로 꼽았다. AI 기술 고도화를 위해 KT는 조만간 KAIST와 연구소도 설립해 공동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구 대표는 “AI로 돈을 몇백억 원 규모로 벌고 있는 기업은 KT밖에 없다”며 “이 기술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신사업) 가능성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데이터센터(IDC)와 클라우드 분야에선 글로벌 시장 진출을 겨냥하고 있다. 다른 글로벌 통신사와의 협업을 통해 IDC가 필요한 아시아 국가에서 신규 사업을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KT는 지난달 메가존클라우드에 1300억 원을 투자하고 IDC와 클라우드 담당 사업부를 별도 법인으로 분사하기로 결정하는 등 관련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콘텐츠 시장에서의 글로벌 성과도 기대하고 있다. 계열사 스튜디오지니에서 제작한 콘텐츠 중 일부를 넷플릭스 등 유명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에 공급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사업 분야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올해 인수합병(M&A)보다는 국내외 기업과의 사업 제휴를 중점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많은 자금을 투입하는 것보다는 내실 있게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취지다. 그 대신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 분야는 앞으로도 과감하게 정리할 예정이다. 구 대표는 “지난해 정리한 사업 분야의 매출을 합치면 연간 900억 원 규모는 된다”며 “(외형 성장보다는) 똘똘한 분야를 선택해 이익을 내는 것에 집중하는 전략”이라고 강조했다.바르셀로나=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창업자인 김정주 NXC 이사를 떠나보낸 넥슨은 당분간 한미일 각국의 법인을 이끄는 경영진이 공동으로 의사 결정을 하는 집단 경영 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고인이 표면적으로는 넥슨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인수합병(M&A)이나 인재 영입 분야에서 역할을 맡아왔던 만큼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사업 전략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 이사는 지난해 7월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의 대표이사에서 16년 만에 물러나며 이사직만 맡아 왔다. 현재는 NXC 브랜드홍보본부장을 역임한 이재교 대표가 새로 선임돼 넥슨 계열사의 사업과 투자 전략을 전반적으로 조율하고 있다. 게임 개발을 총괄하는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는 2018년부터 회사를 이끌고 있고 일본 넥슨 본사의 오웬 마호니 대표도 8년 간 임기를 이어왔다. 미국에선 김 이사와 마호니 대표가 영입한 엔터테인먼트 전문가 반 다이크 수석부사장과 알렉스 이오실레비치 최고투자책임자(CIO)가 활동하고 있다. 이 대표는 1일 사내 게시판에 추모 글을 올리며 “넥슨의 경영진은 김 이사의 뜻을 이어 받아 더 사랑 받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넥슨의 지배구조도 큰 변화가 생길 예정이다. NXC의 최대주주인 김 이사의 지분(64.95%)이 부인 유정현 감사와 딸 2명에게 상속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넥슨 사정에 밝은 게임업계 관계자는 “유족들의 선택에 따라 넥슨 매각설이 재차 불거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이나 소셜미디어에선 러시아 매체의 채널이 사실상 차단됐다. 구글은 1일(현지 시간) 공식 블로그를 통해 “유럽 전역에서 러시아 관영 러시아타임스(RT)와 스푸트니크통신에 연결된 유튜브 채널을 차단한다”고 밝혔다. 러시아 관영 매체가 유튜브에서 콘텐츠를 올려 수익을 내거나 디지털 광고를 할 수 없도록 조치하는 것이다. 구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영상 수천 개도 삭제했다. 구글은 임직원들과 1500만 달러(약 180억 원) 규모의 현금과 물품을 우크라이나 구호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직접 기부한다는 내용도 공개했다. 구글은 “(러시아에 대해) 필요에 따라 더 많은 조치를 할 수도 있다”며 추가 제재 가능성도 언급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플랫폼의 닉 클레그 사장은 이날 “유럽연합(EU) 모든 국가에서 이용자들이 RT와 스푸트니크통신에 접근할 수 없도록 제한할 것”이라고 했다. 메타는 RT와 스푸트니크통신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계정을 각각 강등 조치해 이용자들에게 러시아 매체의 게시글이 추천 콘텐츠로 뜨지 않도록 했다. 검색을 통한 노출도 제한했다.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