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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가 김소라(41) 씨는 중학교 1학년인 아들과 3년 전부터 해마다 겨울이면 사이판에서 한 달 살기를 한다. 현지 사립학교도 보내긴 하지만 공부보다는 삶의 경험에 초점을 맞췄다. 방과 후 바닷가에서 수영하는 데 취미를 붙인 아들은 스킨스쿠버 자격증도 땄다. 두 사람의 한 달 체류비용은 항공권까지 포함해 400여만 원이 든다. 김 씨는 “평소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대신 1년간 알뜰살뜰 돈을 모았다”며 “평생 한곳에서 정착민으로 사는 시대가 아니지 않느냐. 다양한 경험을 하며 안목을 넓히는 게 아이의 인생에 훨씬 값지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 경험을 최근 ‘아이랑 놀며 살며 배우며 사이판 한 달 살기’란 책으로 펴냈다. 요즘 30, 40대 젊은 주부들 사이에서 김 씨처럼 아이를 동반한 해외 한달 살기가 인기를 끌고 있다. ‘한달 살기’는 2010년 전후부터 대도시에 살던 가족이 제주 등 국내 지방에서 새로운 삶을 체험하는 문화가 유행했다. 그 뒤 한동안 영어를 배울 목적으로 자녀를 데리고 해외로 떠나는 ‘외국 한달 살기’가 성황을 이뤘다. 최근에는 단순히 교육 목적이 아니라 ‘아이와의 인생 체험’을 위해 떠나는 한달 살기가 늘고 있다. ‘한달 살기’의 3.0 진화 버전인 셈이다. 국내 서점가에도 엇비슷한 주제의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런던X파리에서 아이들과 한 달 살기’(성안북스) ‘지형이의 벤쿠버 그림 여행: 벤쿠버에서 한달 살기’(북랩) 등 지역도 다양하다. 주부들이 주로 활동하는 맘 카페나 블로그에는 관련 문의와 후기가 넘친다. 한달 살기 3.0은 유학이나 이민보다 비용이 훨씬 저렴하고 리스크가 낮은 게 장점. 주로 엄마가 함께 가는데 서로가 만족할만한 프로그램을 찾으려 노력한다. 꼭 방학만 고집하지도 않는다. 굳이 학교를 다니려고 떠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주부 김지현(40) 씨는 올해 1학기 도중에 초교 6학년, 1학년 남매를 데리고 파리와 런던에서 ‘한달 살기’에 도전했다. 아이들은 별도의 교육기관에 등록하지도 않았다. 미술관이나 박물관 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동네 공원이나 카페에서 하고픈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김 씨는 “처음엔 아빠가 없어 안전 문제 등으로 걱정도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엄마와 아이 모두 만족감이 컸다”며 “큰 아이는 앞으로 파리에서 공부해 파티셰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됐다”고 말했다. 물론 여전히 ‘한달 살기’는 쉽지 않은 도전이다. 하지만 최근 숙박공유나 저가항공이 보편화되면서 비용부담이 줄어들며 더욱 확산됐다. 여러 가정의 엄마들이 함께 체류하며 총비용을 낮추기도 한다. 김소라 씨는 “어학원 등을 통하지 않고 경험자들의 블로그 등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면 상당한 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삶의 질과 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욜로(You Only Live Once) 문화’의 확산도 ‘한달 살기 3.0’ 흥행에 영향을 미쳤다. 부모들도 정형화된 공부나 스펙 쌓기보다 견문을 넓히는 걸 중시하기 시작했다. 김남조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제도교육을 얽매이지 않는 부모의 가치관도 변했고 체험학습을 용인해주는 등 사회분위기와 교육제도 변화도 한몫했다”며 “한곳에서 ‘더 깊게’ ‘더 다양하게’ 경험하려는 욕구가 커진 만큼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여행 문화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뜨는 한달 살기 도시와 패턴 한 달 살 도시를 정할 때 우선 고려 요소는 단연 체류비다. 따라서 요즘 사람들이 많이 찾는 한 달 살기 도시는 주로 물가가 저렴한 동남아에 몰려 있다. 필리핀 세부, 태국의 치앙마이나 방콕, 베트남 나트랑, 인도네시아 발리, 말레이시아의 콸라룸푸르나 조호바루 등이다. 최근 퇴사한 남가영 씨(31)는 발리에서 30일간 머물렀다. 남 씨는 “섬이 크고 지역마다 콘셉트가 뚜렷해 스쿠버다이빙, 서핑, 요가, 명상 등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다”며 “일부 숙소는 아침식사 포함 2~3만원이면 1박이 가능한 데다 오래 묵을수록 숙박비를 깎아주기도 한다. 대자연에 둘러싸여 요가를 하는 느낌은 한국에서 맛보기 힘들다”고 했다. 직장인 이인규 씨(32)는 2016년부터 매년 한 번, 3주짜리 여행을 하고 있다. 미주와 유럽도 일정과 숙소를 잘 잡으면 적당한 가격에 갈 수 있다는 게 이 씨의 말이다. 2016년엔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 작년엔 쿠바 아바나와 미국 뉴올리언스를 묶어 일정을 짰다. 다음달에는 추석연휴를 활용해 조지아로 3주간 떠나기로 했다. 이 씨는 “낯선 도시에 가면 3일째까지는 관광객처럼 지내지만 열흘이 지나면 현지에 사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그것이 좋다”면서 “벌써 내년 달력을 보며 3주간 머물 도시를 고르고 있다”고 했다. 박선희 기자teller@donga.com임희윤 기자 imi@donga.com}

구성이 재미있다. 커다란 동물들은 큰 책에 소개한다. 조그만 동물들이 사는 곳은 책 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책 안에 모아뒀다. 코끼리, 고래 등 큰 몸만큼이나 많이 먹어야 하는 동물들은 마음껏 움직이기 좋은 대평원이나 드넓은 바다에 산다. 작은 동물들은 어떨까. 물벼룩, 초파리처럼 가깝게는 우리 집 근처에도 있고 몸길이가 10cm에 불과한 남아프리카 반점거북처럼 아주 건조한 먼 곳에 사는 동물도 있다. 동물들의 크기별 특성에 맞춘 구성을 통해 생물의 다양성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유령나무, 빵나무, 목졸라나무, 무지개나무, 소시지 나무…. 정말 이런 이름의 나무들이 있는 걸까. 상상 속 나무를 떠올리게 하는 이 재미있는 별명들은 작가가 각 나무의 특성, 생김새에 맞춰 지은 것들이다. 예를 들어 ‘걷는 나무’의 실제 이름은 붉은 맹그로브. 습지에 사는데 강물이 바다로 흐르는 결에 맞춰 조금씩 움직인다. 몇 달 동안 물 위를 떠다니다 멀리 다른 바닷가에 뿌리를 내리는 나무의 특색에 꼭 맞춘 이름. 식물의 특색과 개성을 재미있는 별명에 맞춰 학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나 유명인의 열애설이 터질 때마다 회자되는 것 중 하나가 ‘성지글’이다.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 현 상황을 정확히 예견했던 글이 뒤늦게 관심을 받는 것을 뜻한다. 게시될 당시만 해도 신빙성을 의심받던 글들은 그제야 누리꾼들의 ‘성지순례’ 행렬을 불러일으킨다. 예술 작품도 이런 역할을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메르스가 터지기 2년 전인 2013년 개봉했던 영화 ‘감기’는 감염자 확산, 정부의 안일한 대처와 맞물리며 메르스로 인한 혼란을 예고했다는 평을 받았다. 인수공통전염병이 확산되며 무정부 상태로 전락한 도시를 그려낸 정유정 작가의 베스트셀러 ‘28’ 역시 같은 시기에 출간됐다. 간호사 출신 작가의 꼼꼼한 취재 끝에 나온 상상력이었겠지만, 당시 사람들이 느꼈던 무질서와 공포감을 실감나게 예견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에도 여러 창작물이 화제가 됐다. 영화 ‘내부자들’(2015년) ‘아수라’(2016년)에 묘사된 거대 권력과 기업의 유착, 은밀한 뒷거래는 개봉 당시만 해도 영화적 과장법 정도로 치부됐다. 하지만 실제로는 현실이 더 영화 같다는 충격을 줬다. 드라마 ‘밀회’(2014년)도 빼놓을 수 없다. 실력이 부족한데도 어머니의 영향력으로 명문대에 들어가 학점 특혜를 받는 극 중 여학생은 몇 년 뒤 폭로된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 사건과 놀랍게 일치해 재조명됐다. 작가들의 이런 예측 신공은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얼마 전 국민연금 개편 자문안이 공개되자 여론이 그야말로 들끓었다. 뜨끔한 정부가 확정안이 아니라고 진화에 나섰을 만큼, 기금 고갈을 막기 위해 지급 시기를 68세로 상향 조정하는 안에 대한 거부감은 거셌다. 온라인에는 ‘아예 사망 이후 지급하라’거나 ‘차라리 100세까지 살면 몇 억 준다고 해라’는 등의 조롱이 넘쳤다. 이런 반응은 현재 상황을 미리 예견한 듯한 소설을 떠올리게 했다. 올해 5월 출간된 박형서 작가의 장편 ‘당신의 노후’다. 이 소설은 국민연금공단이 기금 고갈을 막기 위해 비밀 조직을 꾸리고 연금 수령 대상자들을 암살하는 가까운 미래를 다룬다. 공단에 낸 금액보다 많은 돈을 수급하는 노인들을 ‘적색리스트’로 분류해 암살하고 사고사로 위장하는 것이다. 출간 때만 해도 ‘황당하지만 재미있는 상상력’ 정도의 평이 나왔지만 이제 와 보니 마치 국민연금에 대한 현재의 불신을 정확히 반영해 쓴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소설이지만 소설 같지 않다”는 독자평이 나온다. 신기나 예지력이 아니더라도 통찰력에 기반한 작가들의 상상력은 실제 일어날 일을 흡사하게 맞힌다. 예술은 아직 뉴스로 다뤄지진 않지만 언제든 폭발 가능한 모순과 부조리에 주목하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연금 문제도 그렇다. 기금 고갈이 당면한 현실이라는데 국가는 땜질식 처방만 한다. 최악의 경우 무슨 일인들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을까. 설마 국가가 ‘암살TF’(?)를 조직하는 일이야 일어나지 않겠지만, 이런 발칙한 상상까지도 가능케 하는 국민의 불안감에 당국자들은 좀 더 면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 박선희 문화부 기자 teller@donga.com}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나 유명인의 열애설이 터질 때마다 회자 되는 것 중 하나가 ‘성지글’이다.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 현 상황을 정확히 예견했던 글이 뒤늦게 관심을 받는 것을 뜻한다. 게시될 당시만 해도 신빙성을 의심받던 글들은 그제야 누리꾼들의 ‘성지순례’ 행렬을 불러일으킨다. 예술작품도 이런 역할을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메르스가 터지기 2년 전인 2013년 개봉했던 영화 ‘감기’는 감염자 확산, 정부의 안일한 대처와 맞물리며 메르스로 인한 혼란을 예고했다는 평을 받았다. 인수공통전염병이 확산되며 무정부 상태로 전락한 도시를 그려낸 정유정 작가의 베스트셀러 ‘28’ 역시 같은 시기에 출간됐다. 간호사 출신 작가의 꼼꼼한 취재 끝에 나온 상상력이었겠지만, 당시 사람들이 느꼈던 무질서와 공포감을 실감나게 예견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에도 여러 창작물이 화제가 됐다. 영화 ‘내부자들’(2015) ‘아수라’(2016)에 묘사된 거대 권력과 기업의 유착, 은밀한 뒷거래는 개봉 당시만 해도 영화적 과장법 정도로 치부됐다. 하지만 실제로는 현실이 더 영화 같다는 충격을 줬다. 드라마 ‘밀회’(2014)도 빼놓을 수 없다. 실력이 부족한데도 어머니의 영향력으로 명문대에 들어가 학점특혜를 받는 극중 여학생은 몇 년 뒤 폭로된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 사건과 놀랍게 일치해 재조명됐다. 작가들의 이런 예측신공은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얼마 전 국민연금 개편 자문안이 공개되자 여론이 그야말로 들끓었다. 뜨끔한 정부가 확정안이 아니라고 진화에 나섰을 만큼, 기금고갈을 막기 위해 지급시기를 68세로 상향 조정하는 안에 대한 거부감은 거셌다. 온라인에는 ‘아예 사망 이후 지급하라’거나 ‘차라리 100세까지 살면 몇 억 준다고 해라’는 등의 조롱이 넘쳤다. 이런 반응은 현재 상황을 미리 예견한 듯한 소설을 떠올리게 했다. 올해 5월 출간된 박형서 작가의 장편 ‘당신의 노후’다. 이 소설은 국민연금공단이 기금고갈을 막기 위해 비밀 조직을 꾸리고 연금 수령대상자들을 암살하는 가까운 미래를 다룬다. 공단에 낸 금액보다 많은 돈을 수급하는 노인들을 ‘적색리스트’로 분류해 암살하고 사고사로 위장하는 것이다. 출간 때만 해도 ‘황당하지만 재미있는 상상력’ 정도의 평이 나왔지만 이제와 보니 마치 국민연금에 대한 현재의 불신을 정확히 반영해 쓴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소설이지만 소설 같지 않다”는 독자평이 나온다. 신기나 예지력이 아니더라도 통찰력에 기반 한 작가들의 상상력은 실제 일어날 일을 흡사하게 맞춘다. 예술은 아직 뉴스로 다뤄지진 않지만 언제든 폭발 가능한 모순과 부조리에 주목하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연금 문제도 그렇다. 기금 고갈이 당면한 현실이라는데 국가는 땜질식 처방만 한다. 최악의 경우 무슨 일인들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을까. 설마 국가가 ‘암살TF’(?)를 조직하는 일이야 일어나지 않겠지만, 이런 발칙한 상상까지도 가능케 하는 국민의 불안감에 당국자들은 좀더 면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 박선희 기자teller@donga.com}

5년 만에 군(軍) 창작 뮤지컬이 돌아온다. 대한민국 국군 창설 70주년을 맞아 육군이 선보이는 뮤지컬 ‘신흥무관학교’다. 육군 측은 “국군 창설 70주년과 내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선보일 의미 있는 문화 콘텐츠를 찾다가 우리 군의 뿌리가 된 신흥무관학교를 조명하게 됐다”고 말했다. 군 복무 중인 배우 지창욱 강하늘, 인피니트 멤버인 가수 성규 등 스타들이 대거 출연해 눈길을 끈다.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 6월 국외독립기지 건설을 위해 신흥강습소란 이름으로 처음 출발한 뒤 봉오동전투, 청산리전투에서 혁혁한 활약을 한 졸업생들을 배출해냈다. 작품은 1907년부터 1920년까지 역사적 흐름을 따라가지만, 잘 알려진 사건에 집중하기보다는 혼란과 격변의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을 깊이 있게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지창욱은 신흥무관학교의 뛰어난 학생 동규 역을, 배우 강하늘은 신흥무관학교에서 훌륭한 독립군으로 성장하는 팔도 역을 연기한다. 성규는 일본 육군사관학교 졸업 뒤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이끌어간 장군 지청천 역으로 무대에 오른다. 전 재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해 무관학교를 설립한 선각자들, 각지에서 찾아온 무관과 수많은 투사들의 사연도 생생히 그려낸다는 각오다. 그동안 육군이 창작한 뮤지컬로는 2008년 ‘마인’, 2010년 ‘생명의 항해’, 2013년 ‘더 프라미스’ 등이 있었다. 통념과 달리 군 창작 뮤지컬은 완성도 면에서 호평을 받아왔다. 대형 제작사 등이 참여해 창작물로서의 가치를 높였다. 이번에도 뮤지컬 ‘헤드윅’ 등으로 유명한 쇼노트가 제작을 맡았다. 이희준 작가와 김동연 연출가, 오필영 무대디자이너 등 주목받는 제작진이 대거 합류했다. 김동연 연출가는 “역사적 인물을 다루지만 무겁게만 흐르지 않도록 생명력을 추가했다”며 “무대에서 봤을 때도 매력 있는 인물들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9월 9∼22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7만5000∼9만5000원.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1장 노래부터 다시 갑니다! 선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밤새 달려 도착했을 때야. 서울역의 새벽 분위기와 설렘을 최대한 흡수하며 표현해 줘.” 배우들이 벗어둔 신발로 입구가 가득 찬 서울 대학로의 작은 연습실. 연출팀 신호에 따라 오프닝 송 ‘6시 9분, 서울역’을 부르는 선녀(장혜민)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희뿌연 하늘, 이슬 머금은 바람… 뜬눈에 새고 달려왔네… 이른 아침, 이 낯선 도시에….” 7일 찾아간 극단 학전의 ‘지하철 1호선’ 연습실은 바깥 폭염보다도 뜨거운 열기가 가득했다. 10년 만의 재공연을 위해 85 대 1이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발된 배우들이기 때문일까. 능청맞게 연기를 펼치다가도 한 장면씩 점검할 때면 눈빛부터 달라졌다. ‘제비’ 역을 맡은 김태영은 “학전은 말 그대로 ‘배움의 밭’이자 동경의 장소이다 보니 더 몰입하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연출진 역시 작은 동작 하나까지 꼼꼼히 수정하며 긴장감을 높였다. “잠깐, 여기서 동선이 엉키는 걸 해결하고 가자. 삐끼는 계단 앞까지 오고, ‘문디’는 어느 쪽에서 나올 거지? 선녀는 노선도를 본다든가 하며 뭔가를 하고 있어야 해.” ‘지하철 1호선’은 한국 뮤지컬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힌다. 1994년부터 15년간 4000회를 공연하며 70만여 관객을 웃기고 울렸다. 독일 극작가 폴커 루트비히의 ‘1호선’을 각색한 작품으로 옌볜(延邊) 출신 선녀의 눈을 통해 서민들의 삶을 생생히 그려냈다. 원작자가 ‘최고의 번안작’이라 극찬했고, 배우 김윤석, 설경구, 황정민, 조승우 등을 대거 배출했다. 2021년 학전 30주년을 앞두고 10년 만에 100회 한정으로 재공연을 결정했다. ‘지하철 1호선’은 배우에겐 만만치 않은 작품이다. 출연자 11명이 90개 배역을 소화해야 하는 데다 ‘원 캐스트’라 엄청난 체력과 순발력이 요구된다. 하지만 배우들은 열정이 넘쳤다. 연출가 김민기 학전 대표가 연습시간을 하루 8시간 내로 제한했는데, 몰래 따로 모여 연습할 정도란다. 배우 장혜민은 “하나의 목표로 똘똘 뭉친 순수한 동료들을 보면 정말 ‘학전 스타일’이란 게 있긴 있구나 싶다”며 “워낙 출중한 선배들이 많이 거쳐 간 작품이라 책임감이 크다”고 말했다. 오랜만의 재공연이지만 각본은 외환위기 상황이 담긴 1999년 버전을 그대로 쓴다. 1995년 2회 오디션 배우 출신인 김은영 조연출은 “명작은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성이 존재한다고 믿는다”며 “힘들어도 꿈이 있던 그 시절에 관객들도 호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우들도 대부분 20, 30대지만 “서울 풍경은 달라졌어도 삶의 애환은 동일하다”고 확신했다. 다만 음악과 안무는 요즘 분위기에 맞게 새롭게 다듬었다. 또 배우 장현성, 방은진 등 ‘지하철 1호선’에 출연했던 스타 수십 명이 게스트로 깜짝 출연할 예정이다. “문 닫히고 차 떠난다. 뒤로 물러서! 뒤차를 타래. 또 밀려났고 기다려야만 하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문 바깥까지 들리는 배우들의 힘찬 노랫소리가 다시 달릴 ‘지하철 1호선’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9월 8일∼12월 30일 서울 종로구 학전블루소극장. 6만 원.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뮤지컬을 시작한 지 얼마 안돼 많이 떨었는데도 이렇게 큰 상을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더 노력하고 발전해 한국 뮤지컬계를 빛내겠습니다.” 서울 동작구 중앙대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20일 열린 제2회 동아뮤지컬콩쿠르 시상식에서 3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대학·일반부 금상을 받은 이현지 씨(20·경북여고 졸업)는 울먹이며 소감을 밝혔다. 동아일보사가 주최하고 채널A, 중앙대가 후원한 이번 콩쿠르에서 이 씨는 뮤지컬 ‘레베카’의 대표넘버 ‘레베카’를 열정적으로 소화해 호평을 받았다. 뮤지컬 ‘14층 소녀’로 재기발랄한 무대를 펼쳐 고등부 금상을 수상한 표바하 양(17·서울공연예고 3년)은 지난해 고등부 장려상을 수상한 뒤 재도전해 금상을 거머쥐었다. 중등부 금상은 최주은(12·창덕중 1년), 송연우 양(14·대방중 3년)이 공동수상했다. 심사위원은 강필석 뮤지컬 배우, 김민정 경복대 교수, 왕용범 뮤지컬 연출가, 이성준 단국대 교수, 최광일 두비컴 대표가 맡았다. 심사위원들은 “참가자들의 빼어난 기량에 한국 뮤지컬의 미래가 밝다는 걸 확인했다”며 “동아뮤지컬콩쿠르를 통해 뮤지컬계의 인재를 체계적으로 발굴하는 좋은 기회가 마련된 것을 환영한다”고 입을 모았다. 시상은 김순덕 동아일보 논설주간이 맡았다. 애정 어린 당부도 잊지 않았다. 왕용범 연출가는 “기량과 표현력은 날로 발전하는데 정작 인성이 부족해 무대에서 견디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며 “실력도 중요하지만 경쟁보다는 화합하고 협력할 줄 아는 배우가 되는 데 더 투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1회 대회 때 대학·일반부 금상을 수상한 임효원 씨가 당시 수상곡이었던 뮤지컬 서편제 여주인공 송화의 넘버 ‘원망’으로 수상자들을 축하했다. 사회는 황승경 뮤지컬 칼럼니스트 겸 음악감독이 맡았다. 심사위원 명단과 본선 채점표는 동아닷컴에서 24일부터 확인할 수 있다. 대학·일반부 금상 수상자인 이현지 씨는 22일 채널A ‘김현욱의 굿모닝’에 출연해 수상 소감과 포부에 대해 이야기할 예정이다. 다음은 수상자 명단 ▽대학·일반부 △금상 이현지(경북여고 졸업) △은상 양정현(명지대 3년) △공동 동상 함윤형(명지전문대 1년) △공동 동상 신혁수(서울예대 3년) △장려상 장윤석(안양대 1년) 권서현(단국대 4년) 박영주(중앙대 3년) 최성아(서울예대 3년) 채다영(단국대 2년) 박직찬(한세대 1년) 이미령(전주예고 졸업) 송창근(성결대 3년) 김소리(서울예대 3년) ▽고등부 △금상 표바하(서울공연예고 3년) △은상 황지현(안양예고 3년) △동상 최지우(내서여고 3년) △장려상 이준형(계원예고 3년) 정재백(국립전통예고 2년) 황성재(한림연예예고 3년) 이찬진(안양예고 3년) 김미주(국립전통예고 2년) 류다휘(서울공연예고 3년) 허재원(휘경여고 2년) 박효은(국립전통예고 2년) 손병효(국립전통예고 2년) 장현(국립전통예고 2년) ▽중등부 △공동 금상 최주은(창덕중 1년) △공동 금상 송연우(대방중 3년) △동상 이소희(금정중 3년) △장려상 윤소민(연희중 1년) 송준하(어진중 2년) 김예빈(익산부천중 2년) 박다혜(상계제일중 3년)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덥다고 찬 음료를 계속 마시다 열이 나고 만 건이. 간호하던 엄마가 조는 사이 개구리 한 마리가 나타난다. 바로 건이의 비밀 친구다. 엄마가 떠놓은 물에 몸을 적신 개구리가 건이의 뜨거운 이마에 누워 열을 식혀준다. 그래도 열이 가라앉지 않자, 개구리는 친구들을 데려와 밤새 건이를 돌봐준다. 온 동네 개구리들이 출동해 애쓴 덕분에 시원하게 잠드는 건이. 고열로 고생하는 아이를 밤새 노심초사 돌본 경험이 있다면 공감할 수 있는 그림책이다. 물수건을 적시느라 엉망이 된 방에서 엄마 손을 잡고 곤히 잠든 아이의 모습에 미소가 절로 나온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아이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들여다보는 스마트폰은 부모들의 골칫거리가 됐다. 스마트폰 없이도 흥미롭게 놀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답은 간단하다. 심심할 틈을 주지 않으면 된다. 마시멜로로 만든 투석기, 알루미늄으로 외계인 모자 만들기, 립싱크 대결과 애완 돌멩이 키우기…. 거창한 도구 없이 집에 있는 물건들을 활용해 놀 수 있는 100가지 팁을 담았다. 스마트폰을 보지 말라고 잔소리하기 전에 아이들이 흥미를 가질 놀이를 먼저 제안한다면 창의력과 문제 해결 능력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이게 왜 위력이 아닙니까!” “안희정은 사과하라.” 14일 오전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법원을 나서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53)를 향해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대책위) 여성들이 소리쳤다. 피해 당사자인 김지은 씨(33)와 미투(#MeToo·나도 당했다) 폭로자들은 이번 판결에 강력히 반발했다. 문화계와 여성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김 씨는 판결 직후 대책위를 통해 입장문을 발표했다. 변호를 맡고 있는 장윤정 변호사가 대신 읽은 입장문에서 김 씨는 “무섭고 어둡고 추웠던 긴 밤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무서웠고 두려웠다. 침묵과 거짓으로 진실을 짓밟으려던 사람들과 피고인의 반성 없는 태도에 지독히도 아프고 괴로웠다”고 소회를 전했다. 이어 “이 부당한 결과에 주저앉지 않겠다. 굳건히 살고 살아서, 안희정의 범죄 행위를 법적으로 증명하겠다. 끝까지 함께해 달라”고 강조했다. 김 씨는 “재판정에서 피해자다움과 정조를 말씀하실 때 결과는 이미 예견됐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미리 예고됐던 결과”라며 심리 과정에서 재판부의 부적절한 언행이 있었다는 주장도 했다. 대책위도 기자회견에서 “성폭력을 인지하고, 사회에 알리기까지 수백 번 고민할 피해자들에게 이번 판결은 침묵에 대한 강요가 될 것”이라고 성토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사법부의 책임을 입법부로 미룬 것”이라며 현행 법체계에서 안 전 지사를 처벌하기 어렵다고 밝힌 재판부를 비판했다. 정혜선 변호사도 “강제적 강간죄 요건을 완화해 해석하는 최근 동향에 역행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오후에도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항의 시위가 이어졌다. 오후 6시 반경 ‘안희정 무죄판결에 분노한 항의행동’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정당·여성단체 관계자 등 시민 500여 명은 ‘안희정 무죄 선고한 사법부 유죄’라고 적힌 현수막을 걸고 재판부의 판단을 규탄했다.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도 오후 7시경 무죄 선고에 항의하는 문화제를 개최했다 미투 관련 첫 판결에서 무죄 판결이 나자 미투 폭로자들은 크게 실망했다. 2월 문단 내 성폭력 경험 사실을 폭로한 최영미 시인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나도 충격을 받았다. 나를 포함한 다른 미투 사건에 이 판결이 영향을 주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연극계 미투에 동참했던 A 씨는 “너무 안타깝다. 권력형 성폭행을 용기 내 고발하는 분들이 더 주저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권력형 미투가 권력 때문에 무마되고 주저앉을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명인 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는 “사법부가 원론적으로 법률에 적시된 대로만 판결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전향적이거나 시대에 맞는 판단이라고 보긴 힘들다”며 “문단에서 계속해서 2차 가해가 벌어지고 있다”고 걱정했다. 박민정 소설가는 “이번 판결이 절망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싸우겠다”고 했다. 여성계의 시각은 엇갈렸다. 이명숙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대표변호사는 “지위나 권력이 작용하는 범위를 어디까지 보느냐에 대한 해석이 문제가 되는 부분”이라며 “재판부는 입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했지만 판례를 바꿔야 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합리적 판결이라는 견해도 있었다. 노영희 대한변호사협회 변호사는 “김 씨 측이 안 전 지사의 범죄사실에 대한 입증이 부족했고, 주장이 모순되거나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볼 만한 부분이 있다”며 “법리에 충실한 법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진희 대한법률구조공단 변호사는 “피해자에게 유리한 증언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재판부가 엄격하게 판단을 한 것 같다”며 “현행 법체계에서만 유무죄를 판단해야 하는 재판부가 한계를 마주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자현 zion37@donga.com·조윤경·박선희 기자}

“윌리 인(in)!” 9일 서울 강남구의 한 연습실. 연출가의 사인이 떨어지자 묵직한 가방을 든 배우 전무송 씨(77·윌리 로먼 역)가 침대에 누워 있는 아내 린다(박순천)를 향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아서 밀러(1915∼2005) 원작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실제 공연처럼 이어서 연습하는 중이었다. 실적, 경기 걱정에 자식에 대한 염려로 가득 찬 예순 셋의 세일즈맨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데뷔 55년 차인 전 씨는 수차례 윌리 역을 맡았다. 하지만 이번은 더 각별하다고 했다. 원로 연극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늘푸른연극제’의 개막작인 데다, 그의 실제 가족이 총출동해 함께 극을 만들기 때문이다. 사위 김진만 씨가 연출가, 딸 전현아 씨가 예술감독이고 아들 비프 역은 실제 아들인 배우 전진우 씨가 맡았다. 그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실제 ‘가족극’으로 만들고 있다”며 웃었다. ―개막작을 맡은 소회는…. “연극인은 연극할 때 제일 행복한 법이다. 소위 ‘원로’라 불리는 배우들이 꾸준히 활동하는 것이 후배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수락했다. 지금 어렵고 힘들어도 ‘언젠가 저 선배들처럼 되겠지’ 하고 느끼게끔 하고 싶다.” ―윌리 역은 7번째다. 얼마나 각별한 작품인가. “창작극도 좋지만 옛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작품을 올리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극단 성좌의 권오일 연출가(1931∼2008)가 1984년에 처음 윌리 로먼 역을 맡겼다.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해 ‘이 작품 한 번만 더 하자’고 하셨는데 그러지 못해 섭섭했다. 후배들이 만들어준 자리인 만큼 올해 10주기를 맞은 선생님을 기리며 이 작품을 택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어쩌면 이번이 내 마지막 ‘세일즈맨의 죽음’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40대에 연기한 윌리와 70대인 지금의 윌리는 어떻게 다른가. “첫 무대 때 대본을 읽어보니 내 아버지와 윌리가 똑같더라. 자식에 대한 그 대단한 바람, 자부심…. 당시에는 아버지에 대해 상상하며 연기했다. 지금은 연기가 아니라 이야기하는 것 같다. 우리 아들(비프 역)도 마흔이 다 돼 연극한다고 저러고 있고.(웃음) 이 역을 많이 해봐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알면 표현은 그냥 나온다. 아서 밀러가 원했던 윌리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관객들이 어떤 걸 느끼길 기대하나. “세상 아버지들 다 똑같은 마음 아닌가. 자식도 마찬가지다. 부모에 대한 바람, 갈등, 실망…. 다들 엉킨 것들이 있다. 들여다보면 결국 욕심 때문이다. 모든 윌리 같은 아버지, 비프 같은 아들들이 이 작품을 보고 당신들이 원하는 진짜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다.” ―아들, 딸, 사위가 합심해 무대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는 소감은…. “실은 아내에게 ‘우리 가문을 일으켜 줘’라고 고백했다. 몸에 뭐가 올라오는 것 같아 사랑한단 말은 차마 못 하고…. 지금 보니 이게 가문이지 뭔가. 이런 걸 원했던 것 같다.” ―공연문화가 어떻게 발전해 가길 바라나. “생색내기 지원뿐인데 그것만 바라보는 처지도 불쌍하다. 예술가가 마음껏 창조할 수 있는 환경이 먼저다. 자기 목적을 위해 비열하게 예술가들을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이념을 앞서 가는 게 예술이다.” 17∼26일 서울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3만 원.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지은 김중미 작가의 신작 동화집. 가난한 사람들의 보금자리 꽃섬에 둥지를 튼 길고양이 노랑이 이야기를 다룬 표제작 ‘꽃섬 고양이’를 포함해 네 편의 동화가 실렸다. 보육원 출신 수민이의 든든한 친구가 돼 주는 개 하양이가 등장하는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와 산동네로 팔려간 잡종 개 이야기인 ‘안녕, 백곰’ 등 사회의 가장 낮은 위치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 주변에서 그들보다 더 취약하게 버티고 있는 동물들을 그려냈다. 길 위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의 애환, 희망의 목소리가 공존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재밌게 놀고 있는데 목욕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엄마. 화가 난 엄지는 가출을 감행한다. 집을 나와 미로 같은 길을 걸으며 수많은 동물 친구를 만난다. 소, 돼지, 너구리, 원숭이…. 친구들 안내에 따라서 터널로 들어간 엄지는 자동차와 케이블카를 타거나 징검다리를 건너며 모험을 떠난다. 마침내 기차와 배까지 갈아탄 뒤 도착한 곳은 고래 뱃속. 이곳에선 동물들의 멋진 음악회가 열린다.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펠리컨을 타고 집으로 돌아온 엄지의 기분은 최고. 보이는 모든 것이 상상의 세계가 되는 즐거움을 일러준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여름방학과 바캉스 시즌을 맞아 가족단위 관객을 겨냥한 맞춤형 공연들이 풍성하게 마련됐다. 서울 예술의전당은 9월 2일까지 CJ 토월극장, 자유소극장에서 발레극부터 인형극까지 다채로운 연극 4편을 공연하는 ‘어린이 가족 페스티벌’을 연다. 발레극 ‘똥방이와 리나’, 물체놀이 극 ‘평강공주와 온달바보’는 36개월 이상이면 관람할 수 있도록 해 가족 관객을 위한 선택의 폭을 넓혔다. 덴마크 극단 메리디아노의 ‘빅토리아의 100번째 생일’과 일본의 인형극단 무수비좌의 ‘피노키오’는 영상과 그림자극, 마임과 서커스 등을 더해 화려한 볼거리로 어린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한국어 더빙으로 어린이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피노키오’는 31일 공연 관람자를 대상(선착순)으로 배우들과 함께하는 백 스테이지 투어도 준비했다.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어린이 클래식 공연으로 12일까지 체임버홀에서 ‘베토벤의 비밀 노트’를 선보인다. ‘음악의 신’으로 불렸던 천재 작곡가 베토벤의 음악으로 어린이들의 감성과 상상력을 한껏 자극하는 클래식 놀이극이다. 마포문화재단과 공상집단 뚱딴지도 17∼31일 마포아트센터 플레이맥에서 가족음악극 ‘이솝우화’를 선보인다. 이솝우화 중 총 13편을 사계절 테마에 맞춰 풀어냈다. 배우들이 연기를 하면서 직접 북과 장구, 꽹과리, 징, 바라 등 다양한 전통 악기를 연주한다. 학전은 2004년 초연한 뒤 올해로 14년째 공연하는 어린이 무대 대표작 ‘우리는 친구다’를 24일부터 다음 달 25일까지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공연한다.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간 남매가 사고뭉치 친구를 만나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을 라이브 음악과 함께 그려낸 작품이다. 공연 첫 주 프리뷰 기간에는 최대 35% 할인된 가격으로 예매할 수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국내에서 올라가는 공연에는 몇 가지 법칙이 있다. 그중 하나가 평일 저녁 공연은 오후 8시에 시작한다는 것이다. 뮤지컬, 연극, 무용 등 분야를 막론하고 예외가 드물다. 관람 시간이 인터미션(막간 휴식 시간)을 포함해 3시간 이상인 경우엔 오후 11시가 넘어서야 공연이 끝난다. 일부 관객은 자정을 지나 날짜가 바뀐 뒤 집에 도착하기도 한다. 귀가까지 감안하면 확실히 부담스러운 시간대다. 그런데도 약속이나 한 듯 오후 8시를 고수하는 이유가 뭘까. 관계자들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공연 시작 시간이 오후 7시 반인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지각하는 관객들이 골칫거리였다. 평일 저녁 ‘칼퇴근’을 하고 여유 있게 도착하는 관객들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당연히 공연 진행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들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도착할 시간을 찾다 보니 자연스레 오후 8시로 늦춰졌단 설명이다. 비슷한 이유로 한국에선 주로 월요일 공연을 쉬고 평일 낮 공연은 거의 운영하지 않는다. 찾는 관객이 없기 때문이다. 티켓 가격이 최대 15만 원까지 하는 공연장의 주 관객은 소득이 있고 문화생활 욕구가 있는 성인 직장인들이다. 그런데 각종 회의와 주간 일정으로 심리적 물리적으로 가장 고단한 날이 월요일이니 관객이 적을 수밖에 없다. 평일 낮 시간을 빼기는 더 어렵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틈새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일부러 월요일 공연을 시도한 곳도 있었지만 신통치 않았다”며 “평일 낮 공연 역시 연휴나 휴가철에 한해 예외적으로 운영한다”고 말했다. 재밌는 건 이것이 무척 ‘한국적’인 현상이란 점이다. 공연 문화가 발달한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나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는 극장마다 평일 오후 2∼3시 공연이 마련돼 있다. 저녁 공연 역시 오후 7시에서 7시 반 사이에 시작한다. 휴무도 극장에 따라 제각각이라 미리 확인해야 한다. 관광객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두 도시 모두 자율출퇴근제 등 근무 형태 유연화가 정착됐단 공통점이 있다. 모든 관객이 ‘올빼미족’이 될 필요가 없단 뜻이다. 일본만 해도 공연 시간이 우리보다 빠르고 다양하다. 다양한 시간대 공연을 선택할 수 있는 이들이 더 많다는 뜻이다. 보다 많은 이들이 접근하기 좋은 시간에 다양한 공연이 올라가야 관객층이 늘어나고 문화산업도 살아난다. 요즘 공연업계에도 ‘주 52시간 근무’ 시행이 긍정적 영향을 미칠 거란 기대가 나온다. 하지만 실제 공연산업 부흥으로 이어지려면 눈치 보지 않고 퇴근하는 수준 이상의 근로문화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이제 막 ‘정시 퇴근 준수’로 첫발을 떼는 수준이지만, 언젠가 오후 7시 공연도 관객으로 가득 차는 서울의 풍경을 기대해 본다. 박선희 문화부 기자 teller@donga.com}

가설무대 한편엔 책상, 의료용 침대와 파티용품 등 소품이 놓여 있었다. 편한 운동복 차림인 배우들은 피아노 반주에 맞춰 진지한 표정으로 리허설을 시작했다. 마틸다 역을 맡은 양 갈래 머리의 아역들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를 내뱉자 연습실 전체가 울렸다. 최근 방문한 서울 중구 남산창작센터에선 국내 초연인,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를 강타한 뮤지컬 ‘마틸다’ 연습이 한창이었다. 명문 극단인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가 ‘레미제라블’ 다음으로 선택한 작품. 비영어권 최초로 한국 공연을 준비하며 해외 전문가들도 대거 합류했다. 마틸다 엄마인 ‘미시즈 웜우드’ 역을 맡은 배우 최정원은 “세계 최정상 극단에서 섭외한 전문가들의 지도를 받으며 연습하는 과정이 정말 즐겁다”고 말했다. 예리한 눈으로 배우를 살피는 전문가 가운데엔 톰 호지슨 안무감독(45)도 있다. ‘빌리 엘리어트’ ‘캣츠’ 등 대형 뮤지컬 안무를 도맡아온 안무가다. 그는 현장에서 ‘터미네이터’란 별명으로 불린다. 지치지 않는 체력과 열정으로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아서란다. 천재 소녀 마틸다의 성장기를 그려낸 이 작품은 성인과 아역 배우들이 어우러진 스펙터클한 안무가 많아 까다롭고 정교하기로 소문났다. 능청맞은 연기를 선보이던 아역들도 “과격한 안무가 많아 춤이 가장 어렵다”고 푸념했다. ―기존에 작업했던 ‘캣츠’ ‘빌리 엘리어트’와 ‘마틸다’의 안무는 어떻게 다른가. “안무감독 입장이 반영될 수밖에 없지만, 이야기를 비현실적 환상의 층위로 추진력 있게 끌고 가려면 안무가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반적인 뮤지컬과 다르다. 스텝 하나마다 스토리를 전달하기 위해 짰기 때문에 쉽게 흘러가거나 추기 편안한 춤이 절대 아니다. 아역들에게 기대하는 안무 수준이 성인 배우와 동일하다. 아역이 출연하는 뮤지컬 가운데 난도가 가장 높다고 볼 수 있다.” ―안무 지도를 하며 가장 자주 하는 잔소리가 있다면…. “공통적으로 가장 자주 하는 말이 있긴 하다. 아마 ‘원 모어 타임(한 번 더)’이지 않을까. 물론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 걸 다들 알지만. 연습실에서의 시간은 제작 과정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까다롭고 꼼꼼히 지도해서 배우가 잠재력의 최대치를 끌어내길 바라는 마음에 더 집요해진다.” ‘마틸다’는 공연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와 안무 연습만 하루 6시간씩 하는 강행군을 펼치고 있다. 호지슨 감독은 “특히 아역들은 경험 편차가 심해 누구 하나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끔 배려해야 한다”며 “아이들이 지칠 때까지 연습하면서도 즐겁다고 느끼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작품의 하이라이트로 꼽는 장면은…. “학교 정문을 배경으로 한 ‘스쿨 송’ 장면이다. 문을 타고 올라가면서 하는 안무인데 블록을 끼워가며 클라이밍을 해야 해 굉장히 높은 기술과 정교한 호흡을 필요로 한다. 그 밖에도 재밌는 장면이 많다. 마틸다의 교장인 미스 트런치불이 등장하는 장면은 놀라움을 선사한다. 실제 공연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자세한 설명은 비밀로 남겨두겠다.” ―공연을 좀 더 즐기기 위한 팁을 준다면…. “로알드 달의 원작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미리 발을 들여 본다면 훨씬 즐거울 것이다. 오리지널 안무가인 피터 달링도 안무를 짤 때 이 작품에 수록된 뾰족하고 그로테스크한 일러스트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원작의 마술적 세계가 얼마나 아름답게 무대에 올려졌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9월 8일∼내년 2월 10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 6만∼14만 원.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소극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신선하다. 전형적인 무대가 아닌 방송국 스튜디오를 떠올리게 만든다. 표를 받고 자리를 안내해주는 이들까지 극단 스태프인지, 배우인지, 방송 준비를 앞둔 AD인지 아리송하다. 테이크아웃 컵을 하나씩 들고 등장하는 배우들은 영락없이 생방송을 앞둔 패널 같다. 관객들을 훑어보며 잘 부탁한다고 인사를 건네고, 잡담을 나누기도 한다. 졸지에 방송 토론에 참여한 방청객으로 무대의 일부가 돼버린 관객의 기대감은 한층 높아진다. 공연 시작부터 색다른 즐거움을 주는 연극 ‘신인류의 백분토론’은 올해 3년째를 맞는 작품이다. 독특한 콘셉트 덕에 자연스레 입소문이 나며 대학로 인기작으로 자리매김했다. 가벼운 분위기로 포문을 열지만 토론 주제는 의외로 심오하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무엇이 되어, 어디로 가는가?’ 폴 고갱(1848∼1903)의 작품 제목에서 따온 ‘인류의 기원’이란 주제를 놓고, 패널 여섯 명이 ‘창조론 대 진화론’ 진영으로 나뉘어 팽팽한 설전을 벌인다. 각 분야 전문가로 분한 배우들의 속사포 대사를 통해 진화생물학과 종교철학, 천문학, 인지과학 등의 최신 연구 성과가 쏟아진다. 하지만 무겁거나 지루하지 않다. 다양한 영상자료와 함께 쉽게 풀어낸 지식들이 배우들의 열연과 맞물려 자연스레 흡수된다. ‘할렐루야, 아멘’을 외치며 진화론을 공격하는 개신교 분자생물학자와 ‘종교야말로 과학의 발전을 가로막는 사회악’이라고 보는 냉소적인 진화생물학자의 대치 등 인물 간 갈등이 고조될수록 폭소는 오히려 크게 터진다. 특히 마지막 반전은 토론의 흐름을 따라가느라 과연 어느 쪽 의견이 더 타당한가에 매몰돼 있던 관객들의 허를 찌른다. 인류의 기원에 대한 논쟁이 인류의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무엇을 진리라고 믿든, 인간은 늘 보고 싶은 것만 보다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닐까. 100분간 펼쳐지는 지적 유희에 뇌가 ‘섹시’해질 뿐 아니라 마지막 반전으로 가슴까지 묵직해진다. 유쾌하면서도 세련된 지적 탐사에 목마른 이들을 물론이고 청소년들이 보기에도 안성맞춤이다. 19일까지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전석 4만 원. ★★★☆(★ 다섯 개 만점)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말썽쟁이 강아지였던 짱구. 할머니를 비롯한 가족, 이웃의 사랑까지 듬뿍 받으며 15년을 함께 지낸 반려견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자꾸 약해지더니 결국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가족은 입 밖에 내지 않지만 짱구의 빈자리가 너무 슬프다. 특히 할머니는 부쩍 말수가 줄었다. 짱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웃의 말에도 차마 사실을 얘기할 수 없다. 짱구가 천국에서 가족을 기다리며 행복하게 지낼 거란 믿음만이 유일한 위안이 될 뿐. 반려동물의 죽음으로 인한 가족의 충격과 아픔, 그리고 그 상처를 조금씩 치유하고 극복해가는 과정을 담담히 그려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세 살이 될 때까지 말 한마디 못해 자폐증 진단을 받은 아이. 하지만 동물의 마음을 읽는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 생각이 말 대신 사진으로 떠오르는 아이는 고통받는 가축을 보며 동병상련을 느낀다. 가축이 더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농장 환경을 만들어주는 데 몰두하기 시작한 이 아이가, 바로 자라서 동물 복지에 앞장서는 세계적 동물학자인 템플 그랜딘 미국 콜로라도주립대 교수다. 남과 다른 자신만의 재능을 꽃피운 동물학자의 성공담을 통해 아이들이 각자의 개성과 결대로 배우고 도전하도록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