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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영 선배가 롤모델이에요. 경기를 차분하게 풀어가는 모습을 닮고 싶어요.” 수줍어하는 듯한 목소리였지만 단단한 의지와 함께 자신감이 느껴졌다. 국내 여자 아마추어 골프 최강자 이효송(15·마산제일여중3)이 ‘제2의 고진영’(사진)을 향한 첫발을 내딛는다. 이효송은 21일부터 사흘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폰독인다 골프장에서 열리는 아시아골프리더스포럼(AGLF) 시몬느 아시아퍼시픽컵에 출전한다. 국가대항전 성격을 지닌 이 대회엔 세계적인 선수들이 대거 나선다. 참가가 확정된 58명 중 올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최저 타수 1위인 아타야 티띠꾼(태국), LPGA투어 통산 6승의 하타오카 나사(일본) 등이 포함돼 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신인왕 김민별과 이 부문 3위 황유민 등도 출전한다. 올해 2승을 포함해 KLPGA투어 통산 8승을 기록 중인 이다연, 통산 6승의 이소영도 출전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 대회는 개인전과 함께 2명이 한 팀을 이뤄 치르는 단체전도 진행한다. 개인전에는 55만 달러(약 7억1000만 원), 단체전엔 20만 달러(약 2억6000만 원)의 상금이 걸려 있다. 이효송은 “세계적인 선수가 많이 나오는 만큼 배운다는 자세로 치고 싶다”며 “10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세계아마추어 팀선수권대회 단체전에서 두 살 위 (김)민솔 언니와 함께 금메달을 땄다. 이번 대회 단체전에서도 언니와 한 팀을 이뤄 잘해 보고 싶다”고 했다. 이효송은 한국 아마추어 골프계에선 이미 이름난 강자다. 6월 국내 최고 권위의 강민구배 한국 여자 아마추어 골프선수권대회에서 2연패를 달성했다. 최종 라운드에서는 10언더파를 몰아치며 최종 합계 19언더파 269타로 한 라운드 최소타와 대회 최소타 기록을 모두 새로 썼다. 이 대회에서 두 번 우승한 것도 정일미(1989, 1993년) 이후 30년 만이었다. 이효송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했고 지금까지 개인전 우승 트로피 43개를 모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골프 영재’의 모습을 자랑하기도 했다. 당시 비거리 230m의 드라이버샷과 정교한 아이언샷, 정확한 퍼팅으로 박수를 받았다. 할아버지 이승배 씨는 이효송이 초등학생 때 훈련할 곳이 마땅치 않자 밭으로 쓰던 집 앞마당을 미니 골프장으로 만들어 주는 등 정성을 쏟았다. 그린뿐 아니라 벙커까지 갖춘 이곳에서 이효송은 쇼트게임과 퍼팅을 연마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제2의 박인비’로 불렸던 이효송은 전인지 박성현 등 세계 무대에서 성공한 선배들의 뒤를 따르는 게 목표다. 그는 “박인비 프로님은 포커페이스가 너무 멋있고, 전인지 프로님은 웃는 얼굴이 너무 예뻐 좋아했다”며 “박성현 프로님이 2017년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는 걸 보고 나도 큰 무대에서 뛰어보고 싶다는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최근 롤모델은 여자 골프 역대 최장 기간 세계랭킹 1위 기록(163주)을 갖고 있는 고진영이다. 이효송은 “아직은 부족한 게 많다. 쇼트게임과 퍼터를 보완해야 하고 멘털도 더 강해져야 한다”며 “KLPGA투어에서 우승을 많이 해 이름을 남긴 뒤 LPGA투어로 가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싶다”고 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2016년 세계레슬링연맹(UWW)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박장순 삼성생명 감독(55)은 한국 레슬링의 전설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레슬링 남자 자유형 68kg급 은메달을 시작으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74kg급 금메달,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같은 종목에서 은메달을 추가했다. 한국 투기 종목 선수 가운데 올림픽 3연속 결승 진출은 박 감독이 유일하다. 그런 박 감독을 가장 괴롭힌 건 ‘체중 조절’이었다. 1990년 초 유럽 투어 때는 아무리 해도 살이 빠지지 않자 자신의 코를 주먹으로 때려 코피를 낸 적도 있다. 단 1g이라도 줄여보려 한 것이다. 그는 “대회가 열린 러시아 시베리아는 밤에 영하 40도까지 내려갔다. 흐르는 쌍코피를 휴지로 틀어막고 운동장을 뛰고 또 뛰었다. 그만큼 간절했고, 그만큼 힘들었다”고 했다. 결국 체중을 맞춘 그는 그 대회에서 우승했다. 그해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후 체급을 74kg급으로 올렸다. 그리고 5전 6기 끝에 해당 체급 최강자이던 케네스 먼데이(미국)를 꺾고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은퇴한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74kg의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 먹는 만큼 운동을 한다. 그는 “아이들에게 시범을 보이려면 항상 준비돼 있어야 한다. 선수들과 똑같이 일주일에 두세 번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다”고 했다. 선수 시절 그는 ‘줄 타고 오르기’의 장인이었다. 11m 높이의 줄을 한 번에 10번씩 오르내렸다. 그걸로는 성이 차지 않아 15kg 원반을 달고 줄타기를 하기도 했다. 그가 잘하지 못했던 건 달리기였다. 당시 태릉선수촌에 입촌한 선수들은 불암산 정상까지 뛰어오르곤 했는데 그는 레슬링 선수 중 꼴찌를 도맡아 했다. 다시는 쳐다보기도 싫을 것 같지만 그는 요즘도 집이 있는 남양주 별내에서 불암산까지 등산을 한다. 그는 “선수 때는 불암산 산신령님이 우리를 지켜준다고 생각하면서 운동을 했다. 요즘도 옛날 생각을 하며 불암산에 오르곤 한다”고 했다. 쉬는 날엔 아내와 함께 종종 여행을 떠난다. 최근에도 강원도 강릉과 양양을 다녀왔다. 그는 “평일에 선수들을 열심히 지도한 뒤 휴일엔 모든 걸 비우고 재충전을 한다”며 “선수들에게도 운동할 때는 최선을 다하고, 쉴 때는 화끈하게 쉬고 오라고 한다”고 했다. 그는 ‘복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복근에 힘이 떨어지면 몸 전체가 처진다는 것. 그는 “굳이 피트니스센터에서 복근 운동을 할 필요는 없다. 소파 위에서나 방석을 깔고 앉아 엉덩이를 붙인 채 발을 반복해서 들어 올리는 가벼운 동작으로도 충분하다”며 “한 달만 꾸준히 하면 복근을 통해 에너지가 생기고, 굽어 있던 어깨가 펴지는 게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바닥에 엎드린 채로 양손과 양발을 들어 올리는 동작도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좋다”고 덧붙였다. 아버지 같은 지도자가 되려는 그의 인생 최종 목표는 선수촌장이다. 그는 “선수로서, 또 지도자로서 행복한 인생을 보냈다. 언젠가는 선수촌장으로 내가 살아온 인생과 노하우를 후배 선수들과 함께 나누는 꿈을 꾼다. 그날을 위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헌재 스포츠전문기자 uni@donga.com}

어느 종목이건 태극마크를 단 선수들의 훈련량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 동료 선수들조차 안쓰럽게 쳐다보는 종목이 하나 있다. 바로 레슬링이다. 레슬링 선수들은 쉴 새 없이 뛰고, 구르고, 기구를 들고, 상대를 메친다. 태릉선수촌 시절 레슬링은 가장 먼저 운동을 시작해 가장 늦게 끝나는 종목이었다. 안 그래도 힘든 레슬링 선수들을 더 괴롭히는 건 ‘체중 조절’이다. 힘을 쓸려면 많이 먹어야 한다. 그런데 체중 종목인 레슬링은 잘 먹으면서도 자기 체급의 체중을 정확히 맞춰야 한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박장순 삼성생명 감독(55)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체중 조절을 잘 이용해 한국 격투기 종목 선수로는 유일하게 올림픽 3개 대회 연속 결승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박 감독은 1988년 서울 올림픽 레슬링 남자 자유형 68kg급에서 은메달을 땄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선 74kg급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같은 종목 은메달을 수확했다. 레슬링 그랜드슬램(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 금메달)을 달성한 그는 2016년 세계레슬링연맹(UWW)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어린 시절 그는 체구가 작은 편이었다. 원래 씨름 선수였지만 몸집이 작아 레슬링으로 전향했다. 대전체고를 졸업한 그는 경량급인 56kg급 선수로 한국체대에 입학했다. 그런데 서울에 올라오니 피자, 치킨 등을 평소 보지 못했던 음식들이 차고 넘쳤다. 박 감독은 “얼마나 맛있는 게 많던지 밥을 세 공기씩 먹었다. 몸무게가 10kg 이상 늘고, 키도 10cm이상 컸다. 잠자고 있던 몸속의 힘이 살아나는 게 느껴졌다”고 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엔 68kg급으로 출전했다. 당시 그는 앞만 보고 뛰었다. 대회 전 어느 날 선수촌에서 그는 러닝으로 몸을 풀고 있는데 옆에 한 흑인 선수가 같이 뛰고 있더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선수는 당대 최고의 육상 스타 칼 루이스(미국)였다. 그는 “사실 올림픽이 그렇게 큰 대회인 줄 몰랐다. 칼 루이스가 누군지도 몰랐다. 매트 위에선 상대 선수가 누구든 힘과 패기로 밀어붙였다”고 했다. 은메달을 딴 후 그는 남자 74kg급 경기를 보러 갔다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화려한 기술로 매트를 평정하던 케네스 먼데이(미국)가 금메달을 따는 걸 눈앞에서 본 것이다. 마음 속에선 “저 선수와 한번 붙어보고 싶다”는 불길이 솟아올랐다. 당장 74kg으로 체급을 올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체급을 올린 결정적인 계기가 된 건 1990년 초 열린 유럽 투어였다. 첫 대회가 열린 러시아에서 그는 체중 조절에 애를 먹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살이 빠지지 않았다. 절망한 그는 화장실에서 자신의 코를 주먹으로 때려 코피를 냈다. 그렇게 단 1g이라도 줄여보려 한 것이다. 이 모습을 본 당시 코치는 “자신을 괴롭히지 말고 그냥 운동장을 뛰라”고 했다. 그는 “러시아 시베리아는 밤에 영하 40도까지 내려갔다. 흐르는 쌍코피를 휴지로 틀어막고 운동장을 뛰고 또 뛰었다. 그만큼 간절했고, 그만큼 힘들었다”고 했다. 어떻게든 체중을 맞춘 그는 그 대회 금메달을 땄다. 우승을 한 건 좋았지만 1m도 넘는 대형 트로피를 받은 게 또 다른 문제였다. 이후 프랑스와 터키, 미국 등을 돌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동을 거듭할 때마다 트로피는 한두 군데씩 부서지기 시작했고, 한국에 오기 전 그는 신주단지처럼 모시던 트로피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해 베이징 아시아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후 그는 체급을 74kg급으로 올렸다. 74kg급에서 만난 ‘우상’ 케네스 먼데이와의 대결은 연전연패였다. 첫 만남에서 폴로 패했다. 이후에도 좀처럼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나마 고무적이었던 건 맞대결이 거듭될수록 점수 차가 좁혀졌다는 거였다. 5번째 대결에서는 팽팽한 대결 끝에 연장전에서 패했다. 그는 오기가 생겼다. 먼데이를 이기기 위해 바르셀로나 올림픽 3개월 전부터는 친구도 만나지 않고, 외출도 하지 않으며 수도승처럼 살았다. 진인사대천명이라 했던가. 그는 운명처럼 올림픽 결승에서 먼데이를 다시 만났다. 그가 세운 작전은 ‘버티기’였다. 작전은 성공이었다. 경기 종료 15초를 남기고 그는 태클을 시도해 먼데이를 쓰러뜨렸다. 1-0 승리였다. 5전 6기 끝에 꿈을 이룬 순간이었다. 박 감독은 “여전히 먼데이를 존경한다. 먼데이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나도 있을 수 있었다”며 “지금도 그를 생각하면 고마운 마음이 크다. 내 인생을 바꿔준 선수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 감독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같은 종목에서 은메달을 따고 은퇴한 후 국가대표 트레이너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삼성생명 레슬링단 감독이 됐고,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선 국가대표 감독을 맡기도 했다. 74kg급 선수로 은퇴한 그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74kg의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 지도하는 선수들과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함께 훈련한다. 그는 “순간 스피드만큼은 지금도 자신 있다. 스피드가 있으면 기술이 완벽하지 않아도 경기를 주도해 나갈 수 있다”며 아이들에게 시범을 보이려면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체중이 더 늘지 않게 몸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했다. 타고난 장사였던 박 감독은 선수 시절 레슬링 선수들이 많이 하는 ‘줄 타고 오르기’의 장인이었다. 11m 높이의 줄을 한 번에 10번씩 오르내렸다. 그걸로는 성이 차지 않아 15kg 원반을 발에 매고 줄타기를 하기도 했다. 그는 “나뿐 아니라 레슬링 국가대표 선수라면 대부분 서울에서 부산까지 줄을 탔을 것”이라며 웃었다. 그가 잘하지 못했던 건 달리기였다. 당시 태릉선수촌에 입촌한 선수들은 불암산 정상까지 뛰어오르곤 했는데 그는 레슬링 선수 중 꼴찌를 도맡아 했다. 다시는 쳐다보지도 싫을 것 같지만 그는 요즘도 가끔 집이 있는 남양주 별내에서 불암산까지 등산을 하곤 한다. 그는 “선수 때는 불암산 산신령님이 우리를 지켜준다고 생각하면서 운동을 했다. 요즘도 가끔 불암산 등산을 하며 불암사에 들르곤 한다”고 했다. 쉬는 날엔 아내와 함께 여행을 떠나곤 한다. 최근에도 강원도 강릉과 양양을 다녀왔다. 그는 “평일에 열심히 선수들을 지도한 뒤 휴일에는 마음을 비우고 재충전을 한다”며 “선수들에게도 운동할 때는 최선을 다하고, 쉴 때는 화끈하게 쉬고 오라고 한다”고 했다.그는 일반인들에게 ‘복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성별과 나이를 떠나 복근에 힘이 떨어지면 몸 전체가 처진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굳이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기구를 들며 복근 운동을 할 필요는 없다. 집에서 소파 위에서나 방석을 깔고 앉아 엉덩이를 붙인 채 발을 반복해서 들어 올리는 가벼운 동작으로도 충분하다”며 “TV를 볼 때든, 쉴 때든 이렇게 한 달 만 꾸준히 하면 복근을 통해 에너지가 생기고, 굽어 있던 어깨가 펴지는 게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바닥에 엎드린 채로 양손과 양발을 들어 올리는 동작도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아주 좋다”고 덧붙였다. 20년 가까이 삼성생명 감독을 맡고있는 그는 침체에 빠진 한국 레슬링 자유형의 미래를 여자 레슬링에서 찾고 있다. 삼성생명은 2021년 여자 자유형 레슬링팀을 창단했고, 소속 선수 천미란이 4월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 여자 자유형 50㎏급에서 동메달을 따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4위에 오른 천미란은 내년 파리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박장순은 “일본은 여자 레슬링 강국이다. 우리도 못할 게 없다. 좋은 선수들을 잘 키워 새로운 메달밭으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 같은 지도자가 되려는 그의 인생 최종 목표는 선수촌장이다. 대한체육회 이사도 맡고 있는 그는 “선수로서, 또 지도자로서 행복한 인생을 보냈다. 언젠가는 선수촌장으로 내가 살아온 인생과 노하우를 후배 선수들과 함께 나누는 꿈을 꾼다. 그날을 위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추추 트레인’ 추신수(41·SSG)가 프로 24번째 시즌인 내년을 마지막으로 선수 유니폼을 벗는다. 추신수는 14일 “올 시즌이 끝난 뒤 은퇴와 선수 생활 연장을 두고 가족과 함께 고민을 많이 했다”며 “2001년부터 미국과 한국에서 야구를 해 온 현역 생활의 마침표를 찍어야 할 시점이 왔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내년은 성적도 중요하지만 팀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퓨처스(2군) 팀에서 후배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면서 나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는 등 팀에 공헌하고 싶다”고 했다. 추신수는 내년에 프로야구 최저 연봉인 3000만 원에 계약하고 이 돈을 전부 기부하기로 했다. 추신수는 내년 연봉을 한 푼도 안 받으려고 했지만 한국야구위원회(KBO) 규정상 그럴 수가 없어 구단에 먼저 최저 연봉을 제안했다. SSG 구단은 “추신수의 최저 연봉 계약은 구단 운영에 대한 깊은 배려”라며 “구단은 샐러리캡(연봉 총액 상한선)과 자유계약선수(FA) 영입 등에 운용의 폭을 넓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SSG도 추신수의 행보에 의미를 더하고자 기부에 동참하기로 했다. 올해 17억 원을 받았던 추신수의 연봉 삭감액은 16억7000만 원이다. 이는 한국 프로야구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삭감액이다. 추신수의 초등학교 친구인 이대호(전 롯데)가 2020년 25억 원에서 2021년 8억 원으로 17억 원이 깎인 게 역대 최고 연봉 삭감 기록으로 남아 있다. 추신수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뛰던 2013년 텍사스와 7년 1억3000만 달러(약 1686억 원)에 계약하는 등 한국 야구 선수 중 가장 많은 돈을 벌었다. 텍사스에서 뛴 마지막 해인 2020년에도 2100만 달러(약 272억 원)의 연봉을 받았다. 내년에 리그 최저 연봉 선수가 될 추신수는 팀 지휘봉을 새로 잡은 이숭용 감독의 요청에 따라 선수 생활 마지막 시즌에 SSG 주장도 맡기로 했다. 이 감독은 “풍부한 경험과 리더십을 갖춘 추신수는 선수들한테서 많은 존경을 받고 있다”며 추신수에게 주장 자리를 제안했고, 추신수가 이를 받아들였다. 은퇴를 앞둔 선수가 주장을 맡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추신수는 SSG 유니폼을 입은 세 시즌 동안 선수단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야구장 시설 개선 등과 관련해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해엔 팀 통합 우승의 주역이 됐다. 한국에서 뛴 지난 세 시즌 동안 타율 0.260(1252타수 325안타), 49홈런, 168타점, 46도루의 성적을 남겼다. 부산고 졸업 후 2001년 시애틀에 입단한 추신수는 마이너리그 생활을 거쳐 2005년 빅리그에 데뷔했다. 이후 2020년까지 16시즌 동안 MLB 1652경기에 나와 타율 0.275(6087타수 1671안타), 218홈런, 782타점, 157도루를 기록했다. 2018년에는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내년 시즌 4안타를 더하면 한미 통산 2000안타를 채운다. MLB에서 뛸 때부터 통 큰 기부를 하곤 했던 추신수는 내년에도 기부 활동을 이어간다. 그는 2021년 SSG와 계약했을 때도 연봉 27억 원 중 10억 원을 기부했다. SSG 저연봉 선수에게 야구용품을 후원하고, 부산고 등 모교와 SSG 연고지 인천에 있는 학교 야구부에도 기부금을 전달하는 등 최근 3년간 24억 원 이상을 쾌척했다. 내년에도 기부 활동과 함께 다양한 팬 서비스를 약속한 추신수는 “마지막 시즌인 만큼 그동안 응원해 주신 팬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홈, 원정 관계없이 뜻깊은 추억을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바람의 손자’ 이정후(25·키움)가 아시아 야수 포스팅(비공개 경쟁 입찰) 역대 최고액을 받으며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 입성한다. 이정후를 품은 팀은 월드시리즈 8회 우승에 빛나는 내셔널리그(NL) 서부지구 명문 구단 샌프란시스코다. MLB닷컴과 애슬레틱 등 미국 현지 매체는 “이정후가 샌프란시스코와 6년 1억1300만 달러(약 1490억 원)짜리 입단 계약에 합의했다”며 “이정후는 1억1300만 달러 전체를 보장받는다. 또 4년 뒤 옵트아웃(구단과 선수 합의로 계약 파기) 권리도 행사할 수 있다”고 13일 보도했다. 선수가 옵트아웃 권리를 행사하면 바로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몸값을 끌어올릴 수 있다. 메디컬 테스트 등 마무리 절차가 남아 있어 샌프란시스코 구단과 이정후 측 모두 공식 발표를 하지는 않은 상태다. 이번 계약은 총액과 연평균 금액(1883만 달러·약 248억 원) 모두 예측을 뛰어넘는다. 당초에는 계약 기간 4∼6년에 총액 6000만∼9000만 달러의 계약이 유력하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이정후는 단숨에 1억 달러 이상의 ‘대박’을 터뜨렸다. 이전까지 MLB에서 1억 달러가 넘는 계약을 따낸 한국 선수는 추신수(41·SSG)뿐이었다. 추신수는 2013년 텍사스와 7년간 1억3000만 달러에 FA 계약을 맺었다. 그동안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MLB에 진출한 야수 가운데도 1억 달러가 넘는 계약을 한 선수는 없었다. 이정후 전까지는 일본인 외야수 요시다 마사타카(30)가 지난해 보스턴과 5년 9000만 달러(약 1186억 원)에 계약한 게 최고 기록이었다. 2022년 한국프로야구 정규 시즌 최우수선수(MVP)인 이정후의 정교한 타격은 일찌감치 MLB 팀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정후는 2017년 키움 입단 후 올해까지 7시즌 동안 역대 1위에 해당하는 통산 타율 0.340을 남겼다. 통산 삼진(304개)보다 볼넷(383개)이 많다는 점도 높게 평가받았다. 수준급의 중견수 수비 실력과 젊은 나이 역시 장점으로 꼽혔다. 여기에 뉴욕 양키스와 샌디에이고 등 ‘빅 마켓’ 팀의 영입 경쟁까지 이어지면서 이정후의 몸값이 뛰어올랐다. 이정후가 올해 7월 발목 부상을 당한 뒤에도 MLB 팀들의 관심은 줄어들지 않았다. 특히 중견수 보강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던 샌프란시스코는 이정후에게 적극적으로 ‘러브 콜’을 보냈다. 피트 퍼텔러 샌프란시스코 단장이 10월 서울 고척스카이돔을 찾아 이정후의 타격을 직접 관찰하기도 했다. 현지 언론들은 이정후가 당장 내년부터 샌프란시스코의 주전 중견수 겸 1번 타자로 나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정후가 샌프란시스코에 입단하면서 키움 시절 동료이자 절친한 선배인 김하성(28·샌디에이고)과는 상대 팀으로 만나게 됐다. 이정후의 MLB 데뷔전부터 두 선수가 만날 것으로 보인다. 샌프란시스코는 내년 3월 29일부터 4월 1일까지 열리는 샌디에이고 방문 4연전으로 시즌을 시작한다. 이후에도 두 팀은 4월 6∼8일(샌프란시스코), 9월 7∼9일(샌디에이고), 9월 14∼16일(샌프란시스코)에 걸쳐 총 13차례 맞대결을 벌인다. 이정후는 10년 7억 달러 계약으로 LA 다저스에 입단한 오타니 쇼헤이(29)와 ‘미니 한일전’도 치른다. 역시 NL 서부지구 소속인 다저스도 샌프란시스코와 한 시즌에 13차례 맞붙는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올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인 LG 유격수 오지환이 포지션별 최고 선수에게 주는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하며 화룡점정 했다. 오지환은 1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2023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2년 연속으로 유격수 부문 ‘황금장갑’ 주인공이 됐다. 오지환은 전체 유효표 291표 중 154표(득표율 52.9%)를 얻어 KIA 박찬호(120표·41.2%)를 34표 차로 제쳤다. 지명타자를 포함한 10개 포지션 가운데 가장 적은 표 차로 황급장갑 주인이 갈린 포지션이 유격수였다. 정규시즌 성적으로는 두 선수의 우열을 가리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지환은 타율 0.268, 8홈런, 62타점, 65득점, 16도루를 기록했고, 박찬호는 타율 0.301, 3홈런, 52타점, 73득점, 30도루의 성적을 올렸다. 앞서 두 선수는 올해 신설된 수비상도 공동으로 수상했다. 하지만 오지환에게는 LG를 29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우승 ‘프리미엄’이 더해졌다. 한국시리즈가 끝난 뒤 골든글러브 투표가 진행됐다. 오지환은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9회초에 역전 결승 3점 홈런을 치고 난 뒤 찍힌 사진으로 이날 골든포토상도 받았다. 오스틴(1루수)과 홍창기(외야수)를 포함해 LG는 10개 팀 가운데 NC와 함께 가장 많은 3명의 골든글러버를 배출했다. 오지환은 “2023년은 내게 최고의 한 해인 것 같다. 팀이 29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걸 하게 됐는데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내년에도 통합우승으로 LG 왕조를 만들어 보겠다”고 말했다. 박찬호는 “2등의 품격을 보여 드리기 위해 참석했다. 언젠가는 꼭 수상자로 다시 참석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두산의 안방마님 양의지는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차지하며 개인 통산 9번째 수상의 기쁨을 누렸다. 포수로 8번, 지명타자로 1번 골든글러브를 받은 양의지는 소속팀 두산의 이승엽 감독이 보유한 골든글러브 역대 최다 수상 기록(10회)에 1개 차로 다가섰다. 6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받은 양의지는 김동수 서울고 감독(7회)을 넘어 포수 부문 최다 수상 신기록도 새로 썼다. 투수 3관왕(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을 차지한 NC 외국인 선수 페디는 투수 부문, 홈런과 타점 2관왕에 오른 한화 노시환은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받았다. 타격왕과 최다안타왕을 차지한 NC 손아섭은 지명타자 부문을 수상하며 개인 통산 6번째 황금장갑을 수집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임보미 기자 bom@donga.com}

오타니 쇼헤이(29)는 15세이던 고교 1학년 때 자기계발과 관련된 장단기 계획표를 만들었다. 일본 프로야구 8개 구단으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겠다는 핵심 목표를 한가운데 적었고 이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세부 목표와 실행 계획을 빼곡하게 채워 넣었다. 남달랐던 건 야구뿐만 아니라 ‘인성(人性)’과 ‘운(運)’에 관한 내용도 빼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간성’ 항목엔 감사와 배려, 예의, 사랑받는 인간이 되자 등을 적었다. ‘운’을 얻기 위해서는 인사, 긍정적인 사고, 청소, 쓰레기 줍기, 책 읽기 등을 해야 한다고 썼다. 오타니는 이런 계획을 실천하며 ‘구도자’처럼 야구에만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 최고 레벨의 선수들이 모인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도 몸값이 가장 비싼 선수가 됐다. 2018년부터 LA 에인절스에서 6시즌을 뛴 뒤 자유계약선수(FA)가 된 일본인 선수 오타니는 10일 내셔널리그 명문 구단 LA 다저스와 10년 총액 7억 달러(약 9200억 원) 계약에 합의했다. MLB 역사상 최초로 5억 달러를 넘길 것으로 예상됐던 그의 몸값은 6억 달러를 넘어 단숨에 7억 달러 시대를 열어젖혔다. 오타니의 이번 계약은 총액 기준으로 종전 최고인 마이크 트라우트(32·에인절스)의 12년 4억2650만 달러(약 5630억 원)를 훌쩍 뛰어넘었다. 북미 프로스포츠 사상 최고액 계약이던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캔자스시티의 쿼터백 패트릭 머홈스(28)의 10년 4억5000만 달러(약 5940억 원)도 제쳤다. MLB.com과 야후스포츠 등은 “오타니의 계약은 스포츠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계약”이라고 전했다. 오타니는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인터 마이애미)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FC바르셀로나(스페인)와 맺었던 5년 6억7400만 달러(약 8897억 원) 계약을 총액 기준으로는 넘어섰다. 야후스포츠에 따르면 오타니의 10년간 평균 연봉 7000만 달러(약 924억 원)는 신시내티(6750만 달러), 캔자스시티(6720만 달러), 피츠버그(4920만 달러), 오클랜드(3390만 달러) 등 MLB 일부 구단 전체 연봉보다 많다. 총액 1조 원에 가까운 돈을 받게 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지만 오타니는 이번 계약에서도 구단을 배려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MLB닷컴과 디애슬레틱 등 미국 현지 매체는 “계약 기간인 10년 동안 오타니가 받게 될 돈은 7억 달러에 많이 못 미칠 것이다. 연봉의 상당액을 계약 기간이 끝난 뒤에 받는 ‘유례없는 지급 유예(unprecedented deferrals)’를 오타니가 먼저 다저스 구단에 제안했다”고 전했다. 총액 7억 달러 중 절반 이상이 계약 기간이 끝난 뒤 지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MLB에선 연봉 지급 유예가 드문 일이 아니지만 선수가 먼저 지급 유예를 제안한 사례는 찾기 힘들다. 이에 따라 다저스는 ‘슈퍼스타’ 오타니를 영입하고도 자금 운영에 대한 압박을 덜 받게 되면서 추가 전력 보강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에인절스에서 뛴 6시즌 동안 한 번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던 오타니도 다저스의 전력 보강을 절실히 바라고 있다. 아직 미국에서 우승을 해보지 못한 오타니는 그동안 “이기고 싶다”고 줄곧 말해 왔다. 베이브 루스(1895∼1948) 이후 약 100년 만에 투타 겸업 스타로 떠오른 오타니는 일본프로야구 니혼햄을 거쳐 2018년 미국 무대를 밟았다. MLB 데뷔 첫해부터 투수로 10경기 4승 2패 평균자책점 3.31, 타자로 타율 0.285, 22홈런 61타점 10도루를 기록하며 아메리칸리그(AL) 신인상을 차지했다. 2021년에 이어 올해도 만장일치로 AL 최우수선수(MVP)로 뽑히며 일본을 넘어 세계 야구의 중심 MLB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됐다. MLB 6시즌 동안 투수론 38승 19패 평균자책점 3.01을, 타자로는 타율 0.274, 171홈런 437타점 428득점 86도루의 성적을 남겼다. 오타니는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에인절스와 함께한 6년은 내 마음속에 영원히 새겨질 것”이라며 “다저스에서도 항상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최고의 모습을 보여드릴 것을 다짐한다”며 떠나는 팀과 새로 몸담을 팀 모두를 향해 인사를 남겼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2000년대 초반 ‘전국구 에이스’로 활약했던 손민한(48)은 롯데 자이언츠의 상징과 같은 선수였다. 당시 롯데는 매년 하위권을 전전하며 암흑기에 빠져 있었지만 손민한만큼은 롯데 팬들의 답답한 가슴을 씻어주곤 했다. 손민한은 2005년엔 18승 7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2.46의 빼어난 성적으로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그해에도 롯데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면서 손민한은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가을 잔치’에 나가지 못한 팀 출신의 MVP가 됐다. 국제대회의 단골손님이기도 했던 그는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당시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최고 타자이던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삼구삼진으로 잡아내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솔직히 무서웠다. 로드리게스가 타석에 들어서자 타석이 꽉 차는 느낌이었다. 어디에 던져도 홈런을 맞을 것 같았다”고 했다. 그래서 도망치듯 세 개 연속 바깥쪽으로 빠지는 체인지업을 던졌는데 로드리게스는 세 번 연속 헛스윙을 했다. 그는 “어쨌든 평생의 자랑이 됐다. 미국에 얼마나 스타가 많았던지 한국 선수들은 경기에서 이기자마자 단체로 미국 팀 라커룸으로 달려가 미국 선수들의 사인을 받았다”며 웃었다. 한국프로야구에서 123승을 거두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손민한은 NC 코치를 거쳐 올해 부경고 투수코치로 부임했다. 어린 선수들과 함께하는 건 그에겐 즐거움이자 새로운 도전이다. 손민한은 “어떤 일이든 즐거워야 한다. 학생 야구는 더더욱 즐거워야 한다. 선수들이 마음껏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려 하고 있다”고 했다. 선수들을 잘 키워 ‘언더도그의 반란’을 일으키는 게 그의 목표다. NC에서 선수 생활을 마친 뒤 그는 구단 및 경남도교육청과 함께 3년간 ‘손민한과 놀자’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도 있다. 경남 지역 내 초중고교를 돌며 아이들과 야구로 놀아주는 행사로 그는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3년이었다”고 했다. 고교 지도자가 되면서 그는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프로 선수와 코치 때는 식사와 수면이 불규칙했지만 지금은 삼시 세끼를 착실히 챙겨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선수 시절 그는 먹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아마추어 때는 조금이라도 더 몸을 키우기 위해, 프로 선수 때는 더 힘을 쓰기 위해 먹고 싶지 않아도 억지로 먹어야 했다. 그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건 학교 급식이다. 그는 “영양분이 충분하고 신선한 채소도 많이 나온다. 학생들은 크게 좋아하지 않는 것 같지만 내겐 급식이 최고의 식사”라며 웃었다. 그는 급식을 먹고 선수들과 함께 그라운드를 뛰고, 공을 던진다. 소식과 꾸준한 운동으로 그는 여전히 탄탄한 몸을 유지하고 있다. 취미로는 당구를 즐긴다. 지인들과 함께 일주일에 한두 차례 당구장에 간다. 그는 “사각 당구대 안에 무궁무진한 수가 있다. 칠 때마다 즐겁고 새롭다”며 “함께 하는 사람들과 대화도 많이 나눈다. 인생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고 말했다. 롯데에 대한 애정도 여전하다. 그는 “암흑기 시절에도 힘들다기보다는 고마운 마음이 훨씬 컸다”며 “‘명장’ 김태형 감독님이 오셨으니 롯데는 훨씬 좋은 팀이 돼 한국시리즈 우승에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헌재 스포츠전문기자 uni@donga.com}

2000년대 초반 한국 프로야구에는 세 명의 신(神)들이 그라운드를 호령했다. ‘양신’ 양준혁과 ‘종범신’ 이종범, 그리고 ‘민한신’ 손민한이었다. 야구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세 사람은 팬들 사이에서 ‘야구의 신’ 대접을 받았다. 셋 중 유일한 투수였던 손민한은 ‘전국구 에이스’였다. 소속팀 롯데는 거의 매년 하위권을 맴돌았지만 손민한만큼은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좋은 투수였다. 연패를 거듭하던 롯데는 손민한이 선발 등판한 경기에서만 1승을 거두고 다시 연패에 빠지곤 했다.2005년 손민한은 18승 7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2.46의 빼어난 성적으로 다승과 평균자책점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그해에도 롯데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는데 손민한은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가을 잔치’에 나가지 못한 팀 출신의 MVP가 됐다. 손민한은 “1년 다 같이 고생하고 혼자 상을 받은 게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모든 야구 선수들이 선망하는 최고의 상이지만 내게는 동시에 슬픈 상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올해 LG 트윈스가 29년 만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면서 롯데는 프로야구 10개 팀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우승하지 못한 팀으로 새삼 주목받고 있다. 롯데의 마지막 우승은 1992년이었다. 이후 오랫동안 지속된 암흑기 속에서 손민한의 피칭만이 롯데 팬들의 답답한 마음을 씻어주곤 했다. 손민한은 공을 쉽게 던지는 투수였다. 상대 타자를 윽박지르는 강속구 투수는 아니었지만 공격적인 투구로 경기를 주도했다. 이는 투구에 대한 손민한의 접근법에서 기인한다. 그는 “투구는 100% 타이밍이다. 아무리 공이 빨라도 정타를 맞으면 점수를 준다. 나는 어디까지나 방망이 중심에만 맞지 않겠다는 마음을 갖고 공을 던졌다”고 했다.그에겐 강민호(현 삼성)라는 훌륭한 파트너가 있었다. 강민호 역시 공격적인 볼 배합으로 경기를 빠르게 이끌어가는 포수였다. 손민한은 “많은 포수들이 타자가 못 치게끔 사인을 낸다. 하지만 나도 민호도 타자가 방망이를 내게 만들자는 주의였다. 다만 정확하게만 맞지 않으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두려움 없는 투구로 그는 롯데와 NC에서 뛰며 123승을 거뒀다. 하지만 항상 당당했던 손민한도 마운드 위에서 쫄았던 경험이 있다. 2006년 열린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미국과의 대결이었다. 당시 미국은 알렉스 로드리게스, 켄 그리피 주니어, 데릭 지터 등 최고의 선수들로 ‘드림팀’을 꾸렸다.지금도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명장면 중 하나는 손민한인 당시 메이저리그 최고 스타였던 로드리게스를 삼구삼진으로 잡아낸 것이다. 손민한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솔직히 무서웠다. 로드리게스가 타석에 들어서자 타석이 꽉 차는 느낌이었다. 덩치도 좋지, 방망이도 길지, 어디에 던져도 다 칠 것만 같았다. 잘못하면 타구가 나한테 날아올지도 모른다는 공포감마저 들었다.”그래서 그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도망가는’ 피칭을 했다. 패스트볼이 아닌 바깥쪽으로 빠지는 체인지업을 세 개 연속 던진 것이다. 만만한 공으로 여겼던 로드리게스는 세 번 연속 크게 헛스윙을 하면서 삼구삼진을 당했다. 손민한은 “의도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평생의 자랑이다. 당시 미국팀에 스타플레이어가 얼마나 많았던지 한국 선수들은 경기에서 이기자마자 단체로 미국 팀 라커룸으로 달려가 사인을 받았다”며 웃었다.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손민한은 2015년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마흔의 나이에 NC에서 11승을 거둔 뒤 박수를 받으며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이후 NC 투수 코치를 맡으며 2020년에는 난생 처음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춰보기도 했다. 그는 “선수 때 우승했다면 더 기뻤겠지만 현장에서 우승이란 걸 경험하니 너무 감격스러웠다. 당시는 코로나 유행기라 많은 관중들 앞에서 우승의 기쁨을 누리진 못했다. 그래도 내 야구 인생의 유일한 우승인 것으로 만족한다. 우승 반지는 가보로 잘 모셔두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그는 부산에 위치한 부경고 투수코치로 부임했다. NC 시절 함께 코치로 일했던 채종범 감독의 권유에 다시 유니폼을 입었다. 어린 선수들과 함께 하는 건 그에겐 즐거움이자 새로운 도전이다. 부경고는 올해 전국대회에서 별다른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착실히 선수들을 키워 ‘언더독의 반란’을 일으켜 보는 게 그의 목표다. 손민한은 “어떤 일이든 즐거워야 한다. 학생 야구는 더더욱 즐거워야 한다. 프로든 아마든 지도자라면 무엇보다 선수들이 마음껏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게 맞다”며 “현재는 우리 팀 선수층이 두텁지 않아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기본기를 충실이 쌓아 올리다 보면 내후년쯤에는 누구도 무시못할 팀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래부터 그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걸 좋아했다. NC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한 후 그는 구단 및 경남 교육청과 함께 3년간 ‘손민한과 놀자’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경남 지역 내 초중고교들 돌며 아이들과 야구로 놀아주는 행사였다. 그는 “도내 곳곳 안 가본 데가 없다. 정식 코치가 되면서 그만두게 됐지만 하는 내내 큰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학생 지도자가 되면서 그는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프로 선수와 코치 때는 식사와 수면이 불규칙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아침에 일어나 삼시세끼를 착실히 챙겨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원래부터 먹는 데 대한 욕심에 크게 없었던 그는 선수 시절 먹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아마추어 때는 조금이라도 더 몸을 키우기 위해, 프로 선수 때는 더 힘을 쓰기 위해 먹고 싶지 않아도 억지로 먹어야 했다. 지금은 자신의 양만큼만 먹어도 되니 속이 편하다고 했다. 그는 “주변에서 왜 이렇게 적게 먹느냐고 할 정도로 양이 적은 편이다. 속이 더부룩한 느낌을 좋아하지 않는다. 체질적으로 소식이 맞는 것 같다”고 했다. 그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건 학교에서 나오는 급식이다. 저녁 훈련 전 급식으로 저녁을 먹는다는 그는 “칼로리가 충분하고 신선한 야채도 많이 나온다. 학생들은 크게 좋아하지 않는 것 같지만 내겐 급식이 최고의 식사”라며 웃었다. 그는 여전히 선수들과 함께 그라운드를 뛰고, 공을 던진다. 한 때 낚시를 좋아했던 그는 요즘엔 취미로 당구를 즐긴다. 지인들과 함께 일주일에 한두 차례 스리쿠션(삼구) 당구를 친다. 그는 “크지 않은 사각 당구대 안에 무궁무진한 수가 있다. 공을 맞힐 수 있는 수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게 매력이다. 당구는 칠 때마다 즐겁고 새롭다”며 “함께 하는 사람들과 대화도 많이 나눈다. 인생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고 말했다. 몇해 전에는 부산에서 열린 아마추어 대회에도 출전한 적이 있다. 야구에선 ‘천하의 손민한’이었지만 당구 대회에선 1회전에서 탈락했다. 그는 “한국시리즈보다 더 떨었던 것 같다. 너무 긴장을 많이 해서 제대로 한 번 쳐보지도 못하고 바로 떨어졌다. 그날 이후 대회엔 나가지 않고 있다”며 했다. 손민한은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소중하다”며 “현재는 아마추어 지도자로 선수들을 잘 키우는 것만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다시 프로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롯데의 암흑기를 홀로 지탱했던 그는 야구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 했던 롯데에 대한 애정도 여전히 갖고 있다. 그는 “더 좋은 팀에 있는 게 좋지 않았겠느냐는 사람들도 있지만 롯데는 내게 기회의 팀이었다. 암흑기 시절에도 힘들다기보다는 고마운 마음이 훨씬 컸다”며 “‘명장’인 김태형 감독님이 오셨으니 내년에 롯데는 훨씬 좋은 팀이 될 것이다. 1년 정도 감독님의 야구 색깔을 입힌 뒤 내후년쯤에는 한국시리즈 우승에도 도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이번 시즌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다승왕 욘 람(29·스페인)이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가 후원하는 LIV 골프로 이적한다. 소문으로만 돌던 람의 LIV 이적설이 현실이 되자 PGA투어는 충격에 빠졌다. 람은 8일 미국 폭스TV와의 인터뷰를 통해 “LIV 골프에 합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내년 2월 멕시코에서 열리는 LIV 골프 마야코바 대회부터 출전할 예정이다. 올해 PGA투어에서 메이저대회 마스터스를 포함해 4차례 우승한 람은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등과 함께 PGA투어를 대표해 온 스타다. 남자 골프 세계 랭킹 1위인 스코티 셰플러(미국), 매킬로이 등과 PGA투어 ‘올해의 선수’ 최종 후보 5명에도 이름이 올라 있다. 람은 지난해 출범한 LIV 골프에 대해 줄곧 부정적인 견해를 밝혀 왔다. LIV 골프가 막대한 ‘오일머니’를 앞세워 필 미컬슨, 더스틴 존슨, 브라이슨 디섐보(이상 미국) 등을 데려갈 때 그는 “돈 때문에 골프를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4라운드 72홀 대회인 PGA투어와 달리 LIV 골프가 3라운드 54홀 대회를 치르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이랬던 람이 “LIV에 합류하게 된 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이적 사실을 알리자 PGA투어는 충격과 배신감에 빠졌다. 람은 ‘오일머니’ 공세에 결국 생각을 바꿨다. 람은 “LIV 골프의 성장과 혁신에 관심이 많았다. 누가 들어도 솔깃할 금액을 제시해 계약하게 됐다”고 했다. 현지 매체마다 추산액에 차이가 있지만 람은 적어도 3억 달러(약 3925억 원), 많게는 최대 6억 달러(약 7850억 원)의 계약금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컬슨이 LIV 골프로 옮기면서 받은 2억 달러를 훌쩍 뛰어넘는 액수다. 존슨과 디섐보는 각각 1억5000만 달러를 받았다. 2016년 PGA투어에 데뷔한 람은 올해까지 메이저대회 우승 2차례를 포함해 통산 11승을 거뒀고 누적 상금은 5155만 달러(약 674억 원)를 기록했다. 람은 LIV 골프 이적으로 그동안 벌어들인 총상금의 최대 11배가 넘는 돈을 손에 쥐게 됐다. 람의 이적은 PGA투어와 LIV 골프의 합병 논의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두 단체는 통합하기로 올해 6월 합의했다. 앞으로 통합 관련 논의 과정에서 LIV 골프 측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골프에서 드라이버 300야드(약 275m)는 ‘장타자’의 기준이었다. 올해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 300야드 이상 장타자는 모두 98명이었다. 하지만 2028년부터는 300야드 벽을 넘는 골퍼는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세계 골프의 규칙과 골프 장비 성능 등에 관한 룰을 정하는 미국골프협회(USGA)와 영국왕립골프협회(R&A)가 골프공 비거리 성능을 제한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두 단체는 지금 쓰이고 있는 골프공 비거리를 줄이기 위해 새로운 성능 규정을 정하고 2028년부터 시행한다고 7일 발표했다. 새 규정에 따르면 시속 125마일(약 201km)의 스윙 스피드로 때렸을 때 비거리 317야드를 넘어가는 공은 규정 위반이 된다. 현재 프로 선수들이 쓰고 있는 공 대부분이 규정 위반에 해당한다. 2028년부터 새 규정을 적용받는 골프공을 사용할 경우 PGA투어 선수들의 비거리는 대략 9∼11야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남자 선수들에 비해 스윙 스피드가 느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선수들은 평균 5∼7야드 정도 드라이브 거리가 짧아지게 된다. USGA, R&A 두 단체는 당초 아마추어 선수들에겐 새 규정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가 입장을 바꿔 2030년부터 아마추어들에게도 적용하기로 했다. 이럴 경우 남자 주말 골퍼들은 드라이브 비거리가 3∼5야드, 여자 골퍼들은 1∼3야드 덜 나가게 된다. 새 골프공 규정을 두고 골프계에선 찬반 의견이 갈리고 있다. 찬성하는 쪽은 골프의 미래를 생각하면 골프공 성능을 줄이는 게 맞는다고 주장한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와 장타자 골퍼인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등이 대표적인 찬성파다. 골프공 비거리 증가에 따른 문제점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골프공 비거리 증가에 따라 골프장 코스 길이가 길어졌고 경기 시간도 늘었다. 골퍼들이 디테일한 기술로 승부를 걸기보다는 비거리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다양한 클럽을 사용한 전략적인 코스 공략이 사라졌다. 이 때문에 승부의 박진감이 사라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마이크 완 USGA 대표는 “너무 급진적인 정책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지만 반대로 너무 소극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 바꾸지 않으면 골프의 미래가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장타가 줄어들면 골프의 재미와 매력이 사라진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키건 브래들리(미국)는 “비거리가 조금이라도 덜 나간다는 건 주말 골퍼들에겐 재앙과 같다. 골프 흥행에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했다. 현역 선수 중 세계 최고 장타자로 평가받는 브라이슨 디섐보(미국)는 “더 멀리 치기 위해 노력하는 선수들에게 큰 핸디캡이다. 골프공 비거리 제한은 끔찍한 일”이라고 했다. 골프공 제조 회사들은 향후 추이를 살피며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지금까지는 프로 선수가 쓰는 공을 주말 골퍼도 똑같이 사용했지만 앞으로는 프로용과 주말골퍼용을 따로 만들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골퍼는 새 규정을 따르지 않아도 불이익을 받지는 않는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골프 통합 플랫폼 ‘쇼골프’가 해외 골프장 인수를 통해 사업 다각화에 나선다. 쇼골프는 일본 100대 기업에 속하는 다이와증권그룹으로부터 일본 규슈 가고시마에 있는 사츠마(사쓰마)골프리조트를 인수해 직접 운영할 계획이라고 5일 밝혔다. 쇼골프는 앞서 7월 국내 최대 골프 부킹 플랫폼인 XGOLF를 합병했다. 대규모 복합 리조트 단지인 사츠마골프리조트는 축구장 약 195개 넓이의 125만 ㎡ 부지에 18홀 골프장과 70개 객실,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국내 기업이 인수한 일본 내 골프리조트 가운데 최대 규모다. 제주도보다 남쪽에 있는 이 골프장은 한겨울에도 평균 기온이 5∼12도여서 사계절 내내 골프 라운드가 가능하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대회 ‘교세라 레이디스오픈’을 유치한 적이 있을 정도로 코스 상태도 좋다. 부대시설로는 3300㎡ 규모의 개폐식 수영장과 천연 온천수를 사용한 노천탕, 테니스 코트 6개, 한국과 일본의 프로축구 팀들이 전지훈련 장소로 사용했던 천연잔디축구장 등이 있다. 사우나, 레스토랑, 탁구장, 요가 스튜디오, 세미나실 등도 갖췄다. 조성준 쇼골프 대표(사진)는 “은퇴한 분들이나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합리적인 가격에 편안하게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한다”며 “이 리조트를 시작으로 2025년까지 일본 내 5개 이상의 골프리조트 인수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또 “장기적으로는 케이팝 콘서트를 여는 등 골프를 넘어서는 문화 공간으로 발전시킬 생각”이라고 했다. 쇼골프는 사츠마골프리조트 인수와 함께 창립 회원권을 선보인다. ‘레드’ ‘레드플러스’ ‘블랙’으로 구성된 평생 회원권 금액과 혜택 안내, 구매 문의는 XGOLF를 통해 가능하다. XGOLF와 연계해 골프장과 리조트의 당일 예약 서비스도 제공할 예정이다. 조 대표는 “본격적인 사업 다각화는 이제 시작이다. 2025년 기업공개(IPO)를 목표로 계속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발목 수술 이후 8개월 만에 필드로 돌아온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8·미국)가 4라운드 72홀을 완주하며 내년 시즌 경기력에 대한 기대를 키웠다. 우즈는 4일 바하마 뉴프로비던스의 올버니 골프코스(파72)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이벤트 대회 ‘히어로 월드 챌린지’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 5개, 보기 3개, 더블보기 1개로 이븐파 72타를 쳤다. 최종 합계 이븐파 288타를 기록한 우즈는 출전 선수 20명 중 18위로 대회를 마쳤다. 20언더파 268타를 친 스코티 셰플러(미국)가 우승을 차지했다. ‘골프 황제’의 이름값을 감안하면 좋은 성적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즈는 2월 PGA투어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 이후 10개월 만에 4라운드 72홀을 완주하며 내년 시즌을 기대케 했다. 우즈는 4월 열린 메이저대회 마스터스 3라운드 도중 발목 통증으로 기권한 뒤 수술대에 올랐다. 가장 고무적인 것은 드라이브샷이었다. 우즈는 이번 대회에서 연일 300야드 이상의 장타를 뿜어댔다.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는 304.9야드로 20명 중 8위였다. 우즈는 “이번 주에 가장 좋았던 건 드라이브샷이었다. 볼 스피드가 빨라지고, 공이 드라이버의 페이스 정면에 맞는 걸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좀 더 다듬을 필요는 있지만 내가 예전에 했던 골프가 멀지 않은 것 같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복귀전을 성공적으로 치른 우즈는 세계랭킹도 430계단이나 껑충 뛰었다. 대회에 나서지 못하는 바람에 지난주 1328위까지 떨어졌던 랭킹이 4일 발표에선 898위로 올랐다. 내년에는 한 달에 한 대회씩 출전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우즈는 16일 개막하는 이벤트 대회 PNC 챔피언십에도 아들 찰리와 함께 참가할 예정이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LIV 골프에 가면 필 미컬슨(미국)과,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선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와 붙어보고 싶네요.” 올해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에서 제네시스 대상을 받은 함정우(29)의 목소리엔 설렘이 가득했다. 함정우는 3일 LIV 골프 프로모션이 열리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로 떠났다. 8∼10일 열리는 이 대회가 끝나면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PGA투어 퀄리파잉(Q) 스쿨에 도전한다. 지난주 경기 용인 해솔리아 골프연습장에서 만난 그는 “한국에서 대상을 받았으니 이젠 외국의 센 선수들과 대결해 보고 싶다”며 “꿈에 그리던 해외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서른을 앞둔 나이에 그가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건 제네시스 대상이 결정적이었다. 함정우는 대상과 함께 상금 1억 원, PGA투어 Q스쿨 최종전 직행 자격, DP월드투어(옛 유럽투어) 1년 시드 등을 부상으로 받았다. DP월드투어 시드에 주요 경기 출전권은 보장돼 있지 않다. 대상 상금 1억 원을 경비로 쓰면서 해외 무대를 노크하는 이유다. LIV 골프 프로모션은 사흘간 4라운드를 치러 상위 3명에게 내년 LIV 리그 출전 자격을 준다. 함정우는 “쇼트게임이 좋은 미컬슨은 LIV 골프의 간판선수”라며 “나도 한국에서는 쇼트 게임이 좋다는 말을 들었다. 미컬슨과 꼭 한번 쳐보고 싶다”고 했다. 15∼18일 나흘간 미국에서 열리는 PGA투어 Q스쿨 최종전에서는 상위 5위 이내에 들어야 내년 시즌 PGA투어 출전권을 얻는다. 함정우는 “PGA투어에서 정상급 선수가 된 임성재 등과 함께 라운드를 하면서 ‘PGA투어는 수준이 다르구나’ 하는 걸 새삼 느꼈다”며 “PGA투어에서도 최정상에 있는 매킬로이 같은 선수는 얼마나 잘 치는지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PGA투어는 코스 세팅이 까다롭다. 함정우는 어려운 코스에서 성적이 좋았다. 함정우는 10월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했다. 이 대회 호스트이자 PGA투어에서 뛰는 한국 선수들의 맏형인 최경주는 “코스 난이도가 PGA투어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2년 전 같은 대회에서도 정상에 오른 함정우는 “내 플레이가 공격적이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어려운 코스에서 인내력 있게 플레이하는 건 자신 있다”고 했다. 함정우는 지난해 3월 국가대표 동료이자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회원인 강예린(29)과 결혼했다. 그리고 올해 초 딸 소율을 얻었다. 올해 전반기 부진했던 그를 일으켜 세운 것도 가족이었다. 아내의 권유로 시작한 달리기가 결정적이었다. 평소 땀이 많아 달리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는 그는 “7, 8월 여름 휴식기 때 아내의 권유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혼자 하라고 했으면 못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내가 ‘여기서 멈추면 예선 탈락하는 거야’라고 하면서 5km 정도를 옆에서 함께 뛰어줬다”고 말했다. 정신력도 좋아졌다. 그는 “예전엔 경기 막판 샷이 흔들리면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쳤다. 그래서 후반에 무너지곤 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나머지 홀에서 한 타라도 아끼자’는 생각으로 친다. 딸 생각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함정우는 “특별히 잘하는 게 없는 게 단점이다. 하지만 딱히 못하는 것도 없다. 그게 장점이다. 나 자신을 믿고 어느 투어든 합격해 자리를 잡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용인=이헌재 기자 uni@donga.com}

1973년 4월 10일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는 한국 스포츠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인 일이 일어났다. 제32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여자 대표팀이 세계 최강 중공(현 중국), 직전 대회 우승팀 일본 등을 모두 꺾고 우승한 것이다. 19세 여고생 이에리사(69·이에리사휴먼스포츠 대표)는 단체전 단식에서 19전 전승을 거두며 한국 구기 종목 사상 첫 단체전 금메달을 이끌었다. 사라예보의 전설이 탄생한 지 올해로 50년이 됐다. 국내외에서 각종 기념대회가 열리는 가운데 이 대표는 9월 강원 평창에서 개최된 아시아탁구선수권 대회 기간에 중고교생 탁구 후배들을 위해 장학금 1억 원을 기부했다. 그는 “만약 사라예보가 없었다면, 그리고 탁구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라며 “사라예보 50주년을 맞아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까 하다가 중고등 연맹에 기부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중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가 된 후 세계적인 선수가 됐다”고 했다. 사라예보 이후 그는 여성 스포츠인으로 ‘최초’의 기록을 계속 썼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한국 탁구 역사상 첫 여성 감독으로 양영자-현정화 조의 여자 복식 금메달을 이끌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는 김경아의 여자 단식 동메달을 도왔다. 2002년 용인대 사회체육과 교수를 거쳐 2005년에는 여성 최초로 태릉선수촌장이 됐다. 2012년에는 경기인 출신으로 처음 국회의원(비례)이 됐다. 그는 “태릉선수촌장을 할 때 장미란(역도), 박태환(수영), 김연아(피겨) 등 세계적인 선수들과 함께했다. 난 정말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국회의원직을 마친 뒤 그는 2017년 이에리사휴먼스포츠를 설립해 체육인들의 복지와 유소년 선수 지원에 앞장서고 있다. 향후 한국 스포츠의 주인공이 될 유소년 선수들을 위한 탁구대회를 열고, 형편이 어려운 유망주에게는 ‘꿈나무 장학금’을 지급한다. 체육계의 숨은 공로자를 찾아 ‘휴먼 어워드’ 상도 준다. 사라예보 당시 앳된 소녀였던 그는 어느덧 일흔을 앞둔 나이가 됐다. 하지만 꾸준한 건강 관리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걸어서 30∼40분 정도인 어지간한 거리는 차를 이용하지 않고 걸어 다닌다. 시내를 나갈 때도 자동차보다는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한다. 그는 “자동차를 타고 가면 주차 등으로 인해 오히려 시간에 쫓기게 된다”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건강에 도움 되는 건 물론 마음의 여유도 생긴다”고 했다. 그는 산책도 종종 하면서 하루 1만 보 이상을 꾸준히 걷는다. 평소 규칙적인 생활과 몸을 많이 움직이는 습관도 건강 유지에 큰 도움이 된다. 틈틈이 스트레칭이나 가벼운 맨몸 운동으로 유연성과 근력을 유지한다. 그는 “잘 때가 아니면 누워 있지 않으려 한다. 식사 후 그릇도 한 번에 옮기지 않고 여러 번에 걸쳐 옮기면서 몸을 바쁘게 움직인다”고 했다. 그는 “체육인으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앞으로도 후배들이 본받고 싶은 선배의 모습으로 살아가려 한다”고 말했다. 이헌재 스포츠전문기자 uni@donga.com}

지난 9월 강원 평창에서 열린 평창아시아탁구선수권 대회 기간 중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사라예보의 전설’ 이에리사 전 국회의원(69·현 이에리사휴먼스포츠 대표)가 중·고등학생 탁구 후배들을 위해 장학금 1억 원을 기부한 것이다. 올해는 사라예보의 전설이 탄생한 지 정확히 50주년이 되는 해다. 1973년 4월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열린 제32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여자 대표팀은 세계 최강 중공(현 중국), 직전 대회 우승팀 일본을 모두 꺾고 우승했다. 한국 구기 종목 역사상 첫 단체전 세계 제패였다. 그 중심에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이에리사가 있었다. 19세 소녀 이에리사는 단체전 단식에서 19전 전승을 기록하며 대회 최우수선수로 뽑혔다. 1억 원이란 큰돈을 선뜻 내놓은 것은 탁구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이에리사는 “만약 사라예보가 없었다면, 그리고 탁구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라며 “사라예보 50주년을 맞아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까 하다가 중고 연맹에 기부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중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가 된 후 세계적인 선수가 됐다.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돈이 많아서 통 큰 기부를 한 건 아니다. 그는 평소 검소하게 생활한다. 만남의 자리에 입고 나온 가죽 재킷도 30년째 입고 있는 옷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알뜰하면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다. 절약해서 돈을 모았다”며 “화려하진 않아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었던 주변의 도움이 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가 탁구로 처음 도움을 받은 건 동네 오빠들이었다. 초등학생 때 싸구려 탁구채로 벽치기로 하던 그는 학교 특별활동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탁구 선수의 길로 들어섰다. 그가 다닌 초등학교 근처에는 중학교 남자 탁구부가 있었는데 그 학교 선수들이 그에겐 훌륭한 파트너가 돼 주었다. 그는 “중학교 탁구부에 가서 심부름을 해주면 오빠들이 대신 탁구를 쳐 주곤 했다”며 “물을 떠 오라면 떠 오고, 노래를 부르라면 노래도 불렀다”고 했다. 그가 출전한 첫 공식 대회는 1966년 전남 목포에서 열린 종별선수권대회였다. 당시 대회에 출전한 여자 초등학생은 그를 포함해 단 두 명. 그가 승리하면서 생애 첫 금메달을 땄다. 돌이켜보면 그의 금메달 행진이 시작된 중요한 경기였다. 남자 선수들과의 훈련을 통해 그는 ‘드라이브’의 효과를 일찌감치 깨달을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여자 선수들은 탁구공을 회전을 걸어서 치는 드라이브를 치지 않았다. 세계적인 수준의 중국과 일본 선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중3때 대표팀에 들어온 후 그는 천영석 당시 코치(이후 대한탁구협회장 역임)에게 “남자 선수들처럼 드라이브를 치고 싶다”고 요청했다. 요즘은 남녀 선수 가릴 것 없이 일상화되어 있는 드라이브 스트로크는 체력이 많이 필요하고, 정교함이 떨어질 수 있다며 여자 선수들에게는 위험한 기술로 여겨지던 때다. 천 코치는 선뜻 이를 받아들였고 공을 들여 그를 지도했다. 이에리사는 나름대로도 노력을 많이 했다. 정규 훈련이 끝난 뒤 일주일에 한 두 번 성인 선수였던 오빠들을 상대로 극비 훈련을 했다. 그는 “조금이라도 더 잘해보려고 일본 탁구 잡지를 돈을 주고 번역을 시킨 뒤 내 탁구일지에 정리하기도 했다”며 “그렇게 내 것이 된 드라이브 기술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고 했다. 그는 강력한 드라이브를 앞세워 1969년부터 1975년까지 종합탁구선수권대회 7연패를 기록했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사라예보의 첫 구기 단체전 우승 이후 그는 여성 스포츠인으로 ‘최초’의 기록들을 계속 써 내려갔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한국 탁구 역사상 첫 여성 감독으로 양영자-현정화 조의 여자복식 금메달을 이끌었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는 김경아의 여자단식 동메달도 조련했다. 2002년 용인대 사회체육과 교수를 거쳐 2005년에는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태릉선수촌장이 됐다. 2012년에는 스포츠인 출신 첫 국회의원으로 당선(비례)되기도 했다. 그는 “태릉선수촌장을 할 때 장미란(역도), 박태환(수영). 김연아(피겨) 등 세계적인 선수들과 함께 할 수 있었으니 난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한국 선수단 총감독으로 참가한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은 금메달 13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8개로 종합 메달 순위 7위라는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다. 현재 그는 2017년 설립한 이에리사휴먼스포츠라는 비영리법인의 대표를 맡고 있다. 체육인들의 복지와 유소년 선수 지원, 화려함 뒤에서 묵묵히 한국 체육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단체다. 그는 “체육인들은 화려한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적지 않은 전현직 선수들의 힘들고 어렵게 지낸다”며 “그런 사람들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주춧돌을 놓기 위한 단체”라고 설명했다. 9월에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몇 년간 열지 못했던 주니어탁구대회도 개최했다. 그는 “대회에 출전한 200여 명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은 상장과 기념품을 줬다. 실력이 모자라는 아이에겐 페어플레이상을 줘 동기부여를 이끌어내고자 했다”며 “스포츠를 통해 스스로 강해질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배려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단체는 유소년 선수들에게는 ‘꿈나무 장학금’을 지급하고, 숨은 체육계의 공로자들에게는 ‘휴먼 어워드’를 시상한다. 2020년 2회 수상자는 40년 가까이 국가대표 선수들을 위해 헌신한 신승철 진천국가대표선수촌 검식사였고, 작년 3회 수상자는 10년 넘게 후배들과 함께 달려온 임계숙 KT 하키단 감독이었다. 사라예보 당시 앳된 19세 소녀였던 그는 이제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하지만 꾸준한 건강 관리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걷기가 생활화되어 있다. 걸어서 30~40분 정도 걸리는 어지간한 거리는 차를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다닌다. 시내를 나갈 때도 자동차보다는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한다. 그는 “자동차를 이용하면 주차 등으로 인해 오히려 시간에 쫓기게 된다”며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면 건강은 물론 마음에도 훨씬 여유가 생긴다”고 했다. 집이 있는 서울 강남구 자곡동에서 양재천으로 이어지는 길로 산책도 종종 한다. 그런 식으로 하루에 1만보~1만2000보 가량을 꾸준히 걷는다. 최근 들어서는 가까운 후배들과 골프 라운드도 가끔씩 나간다. 그는 “탁구공을 치던 감각이 있으니 엉뚱하게 치진 않는 편”이라며 “스코어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좋은 공기 마시며 좋은 사람들과 밥 먹는 재미가 크다”고 했다. 골프장에서도 가능한 한 카트를 타지 않고 걸어서 다닌다. 평소 과식을 하지 않는 그는 평소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몸을 많이 움직인다. 따로 웨이트 트레이닝 등을 하는 대신 틈나는 대로 스트레칭이나 가벼운 맨몸 운동을 통해 유연성과 근력을 유지한다. 그는 “잘 때가 아니면 누워있지 않으려 한다. 몸을 최대한 움직이며 괴롭히는 편”이라며 “식사 후 그릇도 한 번에 옮기지 않고 여러 번에 걸쳐 옮기면서 몸을 움직인다”고 했다. 그는 “나름 체육인으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어느 자리에서는 당당하고 반듯하게 보이려 노력했다”며 “앞으로도 후배들에게 닮고 싶은 선배의 모습으로 남는 삶을 살고자 한다”고 말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프로야구 ‘오른손 거포’ 양석환(32·사진)이 총액 최대 78억 원을 받는 조건으로 두산에 계속 남기로 했다. 올해 프로야구 자유계약선수(FA) 시장 최고 몸값 기록이다. 두산은 30일 내야수 FA 양석환과 ‘4+2년’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첫 4년 계약은 최대 65억 원(계약금 20억 원, 연봉 총액 39억 원, 인센티브 6억 원) 규모다. 4년 후에는 구단과 선수의 합의로 2년 총액 13억 원에 계약을 연장할 수 있다. 이전까지는 롯데를 떠나 한화와 계약한 안치홍이 72억 원에 역시 4+2년 계약을 맺은 게 올해 FA 시장 최고액이었다. 두산 구단 관계자는 “양석환은 (국내에서 외야가 가장 넓은)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면서도 3년 연속 20개 이상의 홈런을 기록했다”며 “그라운드 위에서는 물론이고 더그아웃 리더 역할까지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2021시즌 개막을 앞두고 LG에서 두산으로 트레이드된 양석환은 그해 홈런 28개를 날렸고 지난해에도 부상을 이겨내고 20홈런을 기록했다. 올해도 팀에서 가장 많은 21개의 홈런을 때렸다. 양석환은 “두산 유니폼을 입으면서 야구 인생이 다시 시작됐다. FA 계약은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중심 타자로서, 선배로서 책임감을 갖겠다”고 말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경쟁이다.” 올해 4월 마스터스 이후 7개월 만에 필드로 돌아오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8·미국·사진)가 여전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우즈는 자신의 재단이 주최하는 이벤트 대회인 ‘히어로 월드 챌린지’ 개막을 이틀 앞둔 29일 대회장인 바하마 올버니 골프코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나는 경쟁을 사랑한다. 언젠가는 우승할 수 없는 날이 오겠지만 그때가 되면 도망치지 않고 천천히 걸어서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타이거 우즈 재단이 초청한 세계 톱 랭커 20명이 출전하는 이 대회는 총상금 450만 달러(약 58억 원)를 걸고 나흘 동안 열린다. 우즈는 12월 1일 오전 1시 52분 저스틴 토머스(미국)와 1라운드를 시작한다. 마스터스 3라운드 도중 오른 발목 통증으로 기권한 우즈는 “한동안 경기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플레이가 예전 같지 않다”면서도 “그래도 부상 부위 통증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내년 시즌 일정에 대해서는 “한 달에 한 번 대회에 나가는 게 최고의 시나리오다. (2월 열리는)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이 첫 대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즈는 3월에는 ‘제5의 메이저대회’로 불리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도 출전할 계획이다. 메이저대회 15승을 포함해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통산 82승을 기록 중인 우즈는 이전에도 부상과 복귀를 여러 차례 반복해 왔다. 히어로 월드 챌린지를 복귀 무대로 종종 선택하곤 했던 그는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나도 이번 대회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 무척 궁금하다”며 “이번 주가 향후 내 골프의 방향을 알 수 있는 ‘큰 도약’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회가 끝난 뒤 우즈는 12월 16, 17일 열리는 이벤트 대회인 PNC 챔피언십에도 아들 찰리와 함께 출전할 예정이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이제 LG 트윈스 팬들은 더 이상 ‘1994’가 아니라 ‘2023’이라는 숫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구광모 프로야구 LG 구단주는 29년 만의 통합 우승을 기념하는 축하 행사에서 이렇게 말하며 일본 오키나와 전통 소주 ‘아와모리’가 든 술잔을 들었다. 이 술은 구본무 LG 초대 구단주가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 후 ‘다음번 우승 때 축배를 들자’며 마련한 술이었다. 2018년 세상을 떠난 구본무 구단주는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지만 하늘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며 자신의 술잔을 들고 있었을 것이다. 많은 LG 팬들의 ‘야구 시계’는 1994년에 머물러 있었다. 그해 LG는 1990년 창단 첫 우승에 이어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LG 신바람 야구의 시대였고, LG의 줄무늬 유니폼은 가장 많은 선수들이 입고 싶어 하는 옷이었다.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LG가 1994년 이후 세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때까지 30년 가까운 시간이 걸리리라는 것을.》● 10년의 암흑기1990년대 최고 인기 팀이었던 LG는 2000년대 초반까지 강팀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1990년부터 2002년까지 5차례나 한국시리즈에 진출했고 상위권 싸움을 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마지막으로 암흑기에 빠져들었다. 2003년부터 2012년까지 10년간 LG는 단 한 번도 ‘가을 잔치’ 무대를 밟지 못했다. 비밀번호 같은 ‘6668587667’이 10년간 팀 순위였다. 최하위도 2번이나 했다. 구단의 지원이 모자랐던 건 아니다. 필요한 선수가 있으면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꾸준히 선수들을 영입했다. 팬들의 열정적인 응원도 여전했다. 하지만 10년간의 ‘암흑기’ 내내 LG는 조급증에 빠져 있었다. 당장 성적을 내야 했기에 유망주를 꾸준히 기용하지 못했다. 성장할 기회를 찾지 못한 유망주들은 줄줄이 도태됐다. 당시 LG는 ‘유망주의 무덤’으로 불렸다. 이 선수들이 다른 팀으로 이적한 뒤 잠재력을 폭발시키면서 ‘탈G 효과’라는 말도 생겼다. 성적이 나지 않을수록 조급함은 더해졌고, 이는 성장을 방해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이 기간에 이순철 감독을 시작으로 양승호, 김재박, 박종훈, 김기태 감독으로 사령탑이 계속 바뀌었다. LG 감독 자리 앞에는 ‘독이 든 성배’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 10년의 준비기암흑기를 뚫고 포스트시즌 진출을 다시 이뤄낸 건 김기태 감독 시절이던 2013년이었다. 그해 LG는 정규시즌 2위로 11년 만에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았다. 차명석 현 LG 단장은 투수코치로 팀 평균자책점 1위(3.72)라는 성과를 냈다. 그즈음 LG는 선수 육성에도 본격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다. 2014년 7월 경기 이천시에 문을 연 LG챔피언스파크가 선수들을 위한 요람이었다. 두 면의 야구장과 실내 수비 훈련이 가능한 실내 돔 연습장까지 갖춘 이 시설은 최고의 설비를 갖췄다는 평을 들었다. 메인 야구장에는 안방인 서울 잠실구장과 똑같은 천연잔디를 깔았고, 펜스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사용되는 것과 같은 재질을 썼다. LG 유망주들은 이곳에서 오롯이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2010년대 중반이 되면서 LG는 ‘유망주의 무덤’이라는 오명을 씻을 수 있었다. 올해 한국시리즈에서 맹활약한 문보경(내야수), 홍창기, 문성주(이상 외야수) 등이 이곳에서 실력을 키웠다. 투수 가운데서는 고우석, 이정용, 정우영 등 LG가 스카우트해 키운 유망주가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LG의 두꺼운 선수층은 나머지 9개 팀의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화수분 야구’로 불렸던 두산 관계자들도 몇 해 전부터 “우리보다 LG에 좋은 선수들이 더 많이 자라고 있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2019년 차명석 단장 부임 후 LG는 육성과 성적을 동시에 노리는 팀이 됐다. LG는 그해부터 올해까지 5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우승을 노크했다. 지난해엔 팀 창단 최다승(87승)을 거두며 정규시즌 2위를 차지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키움에 1승 3패로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 구슬 서 말을 꿴 ‘염갈량’올해부터 LG 지휘봉을 잡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염경엽 감독은 “이런 팀 감독을 맡은 것 자체가 행운”이라고 했다. 그는 “선수단 구성이 우승을 바라볼 수 있는 전력이었다. 그동안 좋은 선수를 많이 키웠고, 필요한 포지션에는 기량이 검증된 FA를 데려왔다”고 했다. 남은 건 선수들이 ‘이기는 맛’을 느끼는 거였다. 지난해까지의 LG는 좋은 전력에도 불구하고 한 번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곤 했다. 염 감독은 시즌 전부터 선수단을 향해 공격적인 야구를 주문했다. “망설임과 두려움은 나의 적이다”라고 쓴 문구를 라커룸 위 통로에도 붙였다. 선수들은 시즌을 치를수록 자신감이 붙었다. 지고 있어도 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올해 LG가 정규시즌에서 거둔 87승 가운데 42승이 역전승이었다. LG는 연승은 길게 끌고 가고, 연패는 짧게 끝내는 팀이 됐다. LG는 6월 27일 선두로 올라선 뒤 끝까지 1위 자리를 지키며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뀐 순간8일 열린 KT와의 한국시리즈(7전 4승제) 2차전은 올해 LG 야구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1차전을 먼저 내준 LG는 이날 2차전에서 선발투수 최원태의 난조로 1회부터 4점을 먼저 내줬다. 1회부터 불펜을 가동한 LG는 이후 7명의 구원 투수를 차례로 마운드에 올렸다. 이정용-정우영-김진성-백승현-유영찬-함덕주-고우석이 이어 던진 LG 불펜은 8과 3분의 2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투수진이 버티는 사이 추격을 이어가던 LG는 8회에 터진 박동원의 투런 홈런으로 경기를 5-4로 뒤집었다. 이날 경기를 통해 LG는 두꺼운 선수층과 두려움 없는 야구를 다시 한 번 과시했다. 다른 팀에 2, 3명밖에 없는 투수 필승조가 LG에는 7명이나 있었고, 타자들은 언제든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집중력을 발휘했다. 포수 박동원은 “투수 7명의 스타일이 다 다르고, 던지는 변화구도 다 다르다. 타자 입장에선 계속 새로운 투수를 만나다 보니 공략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염 감독은 “만약 2차전을 내줬다면 우승이 멀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2차전 역전승을 통해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었다”고 했다. LG는 이후 3∼5차전을 모두 잡아내며 우승을 확정 지었다. ● ‘LG 왕조’ 시대 열리나올해 압도적인 전력을 자랑한 LG는 내년 이후에도 강팀으로 군림할 가능성이 크다. 전체적으로 선수층 연령대가 높지 않은 데다 우승 경험까지 쌓았기 때문이다.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 뽑힌 오지환은 “앞으로 올해 함께했던 선수들과 LG 왕조 시대를 열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염 감독 역시 “최근 LG가 밟아온 시스템적인 부분을 업그레이드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간다면 올해 우승이 왕조를 향한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변수도 적지 않다. 올해 뒷문을 책임졌던 마무리 투수 고우석이 포스팅(비공개 경쟁 입찰) 시스템을 거쳐 MLB 진출을 노리고 있다. 재계약이 확정된 외국인 투수 켈리도 올 시즌엔 예전 같은 구위는 아니었다. 야수진에서도 새로운 얼굴들이 나와 활력을 더해야 한다. 1994년 LG의 우승 포수였던 김동수 서울고 감독은 “타선에 30대 베테랑 선수들이 적지 않다. 자라나는 선수들이 언제든 이들을 대체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어야 꾸준히 정상을 노리는 강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헌재 스포츠부 기자 uni@donga.com}

장충고 왼손 투수 황준서(18)와 영등포공고 미드필더 손승민(18)이 2023 퓨처스 스타대상 야구와 축구 부문 대상을 각각 차지했다.황준서와 손승민은 2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빌딩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양대 종목 대상 트로피를 받았다. 2학년이었던 지난해부터 고교 무대를 휩쓴 대형 유망주 황준서는 올해 최고 시속 140km 후반대의 빠른 공과 다양한 변화구를 앞세워 6승 2패 평균자책점 2.16으로 활약했다. 고교 최대어로 꼽힌 그는 9월에 열린 2024 한국야구위원회(KBO) 프로야구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한화의 지명을 받았다.축구 부문 대상을 차지한 손승민은 올해 영등포공고의 6관왕 위업을 이끈 고교 최고의 미드필더다. 손승민은 공격과 수비를 조율하는 ‘필드의 사령관’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수상의 주인공이 됐다. 박지환(세광고) 배찬승(대구고) 한지윤(경기상고)은 야구 부문 스타상, 정마호(신평고) 강주혁(오산고) 김현민(영등포공고)은 축구 부문 스타상을 받았다.대상 수상자는 각 300만 원 상당 스포츠용품 교환권을, 스타상 수상자는 각 100만 원 상당의 스포츠용품 교환권을 받았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