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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드라마에서 들었던 가방입니다. 낙찰 받을 분 손들어 주세요.” 이달 14일과 15일 서울 여의도 IFC몰 앞 잔디광장.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에도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다. 쇼핑하면서 기부하는 ‘2018 러브플리마켓’ 방문객들이었다. 국제구호개발기구 ‘굿네이버스’가 모델 겸 굿네이버스 홍보대사인 변정수 씨가 이끄는 재능기부 ‘위프렌즈(wefriends)’와 함께한 나눔 바자회였다. 이날 바자회에는 패션 잡화 식음료 인테리어 등 다양한 분야의 브랜드 150여 곳이 참가했다. 특히 스타들의 애장품 경매 행사는 방문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변 씨 외에도 가수 이승기 황혜영, 야구선수 박찬호 홍성흔 이용규, 배우 이서진 전인화 김수미 이보영 지성 배종옥 황정음 등이 물품을 기증했다. 특히 박찬호는 직접 사인한 사인볼 20개를 기부할 정도로 적극성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김희진 씨는 “필요한 물건을 저렴하게 사고 기부도 할 수 있어 뜻깊은 행사였다. 먹거리도 함께 판매해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참여 소감을 밝혔다. 올해 6회째를 맞은 이 행사는 그동안 다양한 소외 아동들을 후원해 왔다. 특히 이번 바자회를 통해 모은 사전기부금 및 판매 수익금의 일부인 약 1억 7000만 원은 선천성·특발성 심장질환 및 급성 백혈병 어린이 환자들의 의료비와 생계비 지원에 사용될 예정이다. 변 씨는 “나눔은 나눌수록 채워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함께하는 모든 분들이 진정으로 ‘좋은 이웃’(굿네이버스)이 되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03년부터 굿네이버스 홍보대사로 활동해 왔다. 매년 국내는 물론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필리핀 등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가족과 함께 해외봉사를 정기적으로 실천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과거 인터뷰를 통해 그는 “처음엔 더운 날씨에 힘들어하는 아이들도 봉사를 당연한 일로 여기게 됐다. 첫째는 영어를 잘하니 미술수업을 진행하고 남편은 이것저것 수리를 하곤 한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양진옥 굿네이버스 회장은 “굿네이버스와 오랜 시간 뜻을 같이해 온 변정수 굿네이버스 홍보대사와 함께 국내 환아를 도울 수 있는 러브플리마켓을 진행하게 되어 기쁘다”며 “러브플리마켓을 통해 모인 소중한 수익금은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서비스를 통해 의료, 빈곤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국내 환아들에게 지원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굿네이버스는 스타와 팬의 참여로 새로운 기부문화를 만들고 지구촌 아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기 위해 영상 채널 ‘굿네이버스 TV’를 운영 중이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온라인 패션몰 ‘스타일 난다’를 6000억 원대에 매각한 김소희 대표, 자신을 내세운 뷰티 브랜드로 22세에 1조 원대 부자가 된 미국 모델 카일리 제너, 연예인급 팬덤을 거느리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대도서관’, ‘밴쯔’, ‘씬님’…. 최근 성공 신화의 주인공 대부분은 인플루언서(Influencer).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활동하는 1인 미디어를 뜻한다. 일반인으로 시작해 이후 부와 인기를 거머쥐게 된 이들의 스토리는 ‘계층 이동 사다리’가 무너진 지금 현실에서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이 때문에 인플루언서를 꿈꾸는 이들도 늘고 있지만 문제도 적지 않다. 일부 인플루언서의 무책임한 언행이나 검증되지 않은 물건 판매로 사회적 피해가 이어지고 있는 것. 인플루언서 세계의 명암을 들여다봤다.○ 귀하신 몸, 인플루언서 ‘추석 전 금요일엔 한복을 입혀주세요.’ 김윤주 씨(38)는 아이 유치원에서 온 안내문을 읽고 인스타그램에 접속했다. 즐겨 찾는 ‘셀럽’들의 계정에 들어가니 앙증맞은 아기 한복 사진이 떴다. 계정 3, 4개를 훑은 뒤 딸과 똑 닮은 모델 사진이 걸린 곳에서 한복을 샀다. 예전에 김 씨는 검색은 인터넷, 쇼핑은 ‘쿠팡’ 등 소셜커머스에서 했지만 요즘은 모두 인스타그램에서 한다. 육아 정보, 예쁜 아동복, 맛집, 화장법, 시댁 흉…. 필요한 모든 정보가 그 안에 다 있었다. “매일같이 그들의 일상을 접하다 보니 어느 순간 친구처럼 느껴졌어요. 댓글로 고민도 나누니까요. 오래 봐온 만큼 그가 권하는 물건도 믿고 사게 되죠.” 셀럽형 인플루언서의 무기는 친근함이다. 보고 듣고 먹고 즐기는 일상을 전시해 팔로어를 확보한 뒤, 스스로를 브랜드화하거나 제품을 판매한다. 대학원생 김선민 씨(25)는 “연예인은 아니지만 빼어난 감각과 럭셔리한 일상을 자랑하는 이들의 일상을 보다 보면 팬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블로그에서 시작해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으로 영역을 확장한 인플루언서는 수없이 많다. 이 가운데 메가(팔로어 100만 명 이상), 매크로(10만∼100만 명), 나노(1만∼10만 명) 인플루언서는 준연예인급 팬덤을 거느린다. 이사배, 포니, 씬님, 헤이지니, 대도서관, 밴쯔 등 메가 인플루언서들은 연예인처럼 소속사에서 관리한다. 개인마다 다르지만 보통 계약 기간은 3년, 수익 배분은 6 대 4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업의 마케팅 채널도 이들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메가 인플루언서들은 캠페인당 5000만 원 이상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 동영상 인스타그램 게재와 게시물 서너 건, 행사 참석 등을 묶어서 계약한다. 한 유통업체 인플루언서 마케터는 “인플루언서를 팔로잉하는 일명 ‘추종자’들은 충성도가 높아 홍보 효과가 좋다. 대부분 기업이 이들을 전문으로 관리하는 마케터를 두고 있다”고 공개했다. 일부 유통업체는 인플루언서와 손잡고 직접 미디어 채널을 운영하기도 한다. CJ오쇼핑의 모바일 전용 생방송 채널 ‘쇼크라이브’, LF몰의 ‘냐온’, 소셜커머스 업체 티몬의 ‘티비온’이 대표적이다. 롯데홈쇼핑은 아카데미를 열고 인플루언서를 직접 육성할 계획도 세웠다. 이동규 롯데홈쇼핑 홍보팀장은 “기존 인플루언서는 비용이 부담스럽고 리스크도 크다. 참신한 새내기 인플루언서를 발굴해 20, 30대 소비자를 끌어오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우리 언니? 82피플? “명품 비슷한 제품을 팔아서 진짜 명품 사고, 차도 사고, 집도 사고. 그러면서 매일 우는 소리 하며 위로해 달라니 눈꼴 시릴 수밖에요.” SNS에서 물건을 파는 셀럽을 마켓 크리에이터라고 부른다. 최근 5년간 급성장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추종자들은 유행 아이템을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어 편리하다며 편을 든다. 반면 온갖 스토리를 갖다 붙여 물건을 파는 ‘반짝 상인’이라는 뜻에서 ‘82피플(빨리(82) 변하는 아이템을 파는 사람)’이라는 오명도 얻었다. 직장인 서모 씨는 “좋은 판매자도 있겠지만 옷부터 간장게장까지 돈 되는 모든 것을 파는 모습은 장사꾼 그 자체다. 진심이라며 늘어놓는 일상도 결국 물건을 팔기 위한 수순 같다”며 비판했다. 20대 직장인 이모 씨는 “솔직한 후기를 작성했더니 ‘악플러’로 차단당했다. 물건 팔기 전엔 예쁜 동생이라더니 졸지에 악플러가 됐다”며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이들에 대한 반감은 최근 파인애플 식초 사태로 불이 붙었다. 한 업체에서 판매한 파인애플 식초를 먹고 하혈 등 부작용을 겪은 이들이 항의를 하자 업체가 이들을 악플러로 몰아간 것. 인플루언서를 대상으로 한 무분별한 광고 경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6일 공정거래위원회는 광고주로부터 협찬받은 제품을 직접 사서 사용한 것처럼 후기를 올리는 마케팅 수법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화장품, 대체 의약품, 다이어트 제품, 소형 가전제품 등에 대한 리뷰를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미국에선 연방거래위원회(FTC)의 방침에 따라 광고성 게시물을 올릴 땐 해시태그 #ad #sponsored를 붙여 광고임을 알려야 한다. 공정위도 2016년 광고 명시 방침을 내렸으나 소속사에 속한 인플루언서들만 이를 따르는 실정이다.○ 1%의 성공 신화 누구나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는 시대지만 그 과정이 쉽진 않다. SNS 셀럽들은 자신들의 일이 화려하거나 쉽지만은 않다고 토로한다. 뷰티 인플루언서인 ‘쏭냥’ 송지혜 씨(28)는 인플루언서가 되는 법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올리면 되는 것 아니냐”, “부업으로 도전하고 싶다”는 내용이 주다. 그는 “팔로어 1만 명 이상을 목표로 한다면 확실한 정체성과 각오를 갖고 뛰어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플루언서는 넘쳐나고 콘텐츠 아이디어는 고갈되다 보니 뒤처지지 않으려고 매일같이 유행어를 공부하며 미래를 고민해야 한다. 이 일은 쉬우면서도 위험하다. 자유로운 건 시간뿐”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인플루언서는 나다움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셀럽분들은 실제로 만나면 흥이 많고 당당하다. 실제 그 생활을 즐겨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플루언서 마켓은 갈수록 각박해지고 있다. 과거 수익과 관계없이 붙던 광고료는 구독자와 동영상 시청 시간 등 기준이 까다로워졌다. 유튜브는 시청시간 4000시간이 넘어야 광고를 붙일 수 있는 자격을 준다. 한 게임 인플루언서는 “게임은 비교적 일찍 인플루언서 시장이 형성돼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처음엔 조건 없이 게임계 셀럽 ‘모시기 전쟁’을 했는데 지금은 조건이 까다롭다. 다른 분야도 비슷한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다른 의견도 있다. 송지혜 씨는 “조회 수 340만을 기록한 국내 유튜브 동영상도 있다. 이건 해외에서도 많이 본다는 건데, 실제 해외 시장을 준비하는 인플루언서가 적지 않다. 업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주장했다. 인플루언서를 준비하는 이들은 공모전과 학원을 찾거나 관련 서적을 독학하면서 SNS 스타를 꿈꾼다. 대부분 얼굴이 알려진 셀럽형 인플루언서를 꿈꾸지만, 마케터형 인플루언서도 있다. 개인 신상을 드러내지 않고 페이지를 내세워 활동하는 이들이다. 부업으로 게임 전문 페이지를 운영하다가 전업해 관련 회사까지 세운 손유종 위드공감 대표(30)는 “마케터형 인플루언서의 경쟁력은 개인의 매력이 아닌 전문성이다. 대중이 관심을 가질 만한 정보를 제공하되 운영자 신분은 철저히 숨긴다”고 말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온라인 패션몰 ‘스타일 난다’를 6000억 원대에 매각한 김소희 대표, 자신을 내세운 뷰티 브랜드로 22세에 1조원 대 부자가 된 미국 모델 카일리 제너, 연예인급 팬덤을 거느리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대도서관’, ‘벤쯔’, ‘씬님’…. 최근 성공신화의 주인공 대부분은 인플루언서(Influencer·온라인 마케팅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활동하는 1인 미디어를 뜻한다. 일반인에서 ‘조회수 1’의 흑역사를 딛고 부와 인기를 거머쥔 이들의 스토리는 ‘계층 이동사다리’가 무너진 현실에서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이 때문에 인플루언서를 꿈꾸는 이들도 늘고 있지만 문제도 적지 않다. 일부 인플루언서의 무책임한 언행이나 검증되지 않은 물건 판매로 사회적 피해가 이어지고 있는 것.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광고임을 알리지 않은 인스타그램의 제품 후기에 칼을 빼들기도 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늘리는 업체도 우후죽순 등장하고 있다. 뉴미디어를 타고 유통채널을 통째로 삼킨 인플루언서 세계의 명암을 들여다봤다. ● 귀하신 몸, 인플루언서 ‘추석 전 금요일엔 한복을 입혀주세요.’ 공기업에 다니는 김윤주 씨(38)는 유치원에서 온 안내문을 읽고 인스타그램에 접속했다. 즐겨 찾는 셀럽들의 계정에 들어가니 앙증맞은 아기 한복 사진이 떴다. 계정 3, 4개를 훑은 뒤 딸과 똑 닮은 모델 사진이 걸린 곳에서 한복을 샀다. 예전에 김 씨는 검색은 인터넷, 쇼핑은 ‘쿠팡’ 등 소셜커머스에서 했다. 하지만 요즘은 모두 인스타그램에서 한다. 초기에는 처한 상황이나 취향이 비슷한 셀럽들의 일상을 엿보는 즐거움이 컸다. 육아 정보, 예쁜 아동복, 맛집, 화장법, 시댁흉…. 필요한 모든 정보가 그 안에 다 있었다. “매일같이 그들의 일상을 접하다보니 어느 순간 친구처럼 느껴졌어요. 댓글로 고민도 나누니까요. 오래 봐온 만큼 그가 권하는 물건도 믿고 사게 되죠.” 셀럽형 인플루언서의 무기는 친근함이다. 보고 듣고 먹고 즐기는 일상을 전시해 팔로워를 확보한 뒤 스스로를 브랜드화하거나 제품을 판매한다. 셀럽과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일부 팔로워는 충성고객이 된다. 대학원생 손지혜 씨(25)는 “연예인은 아니지만 빼어난 감각과 럭셔리한 일상을 자랑하는 이들의 일상은 드라마보다 재미있다. 팬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블로그에서 시작해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으로 영역을 확장한 인플루언서는 셀 수 없이 많다. 이 가운데 메가(팔로워 100만 명 이상), 매크로(10만~100만 명), 나노(1만~10만 명) 인플루언서는 준 연예인급 팬덤을 거느린다. 이사배, 포니, 씬님, 헤이지니, 대도서관, 벤쯔 등 메가 인플루언서들은 연예인처럼 소속사에서 관리한다. 개인마다 다르지만 보통 계약 기간은 3년, 수익배분은 6대 4 전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업의 마케팅 채널도 이들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매가 인플루언서들은 캠페인 당 5000만 원 이상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 동영상 인스타그램 게재와 게시물 3, 4건, 행사 참석 등을 묶어서 계약 한다. 한 유통업체 인플루언서 마케터는 “인플루언서를 팔로잉하는 일명 ‘추종자’들은 충성도가 높아 홍보효과가 좋다. 대부분 기업이 이들을 전문으로 관리하는 마케터를 두고 있다”고 귀띔했다. 일부 유통업체는 인플루언서와 손잡고 직접 미디어 채널을 운영하기도 한다. CJ오쇼핑의 모바일 전용 생방송 채널 ‘쇼크라이브’, LF몰의 ‘냐온’, 소셜커머스 업체 티몬의 ‘티비온’이 대표적이다. 롯데홈쇼핑은 아카데미를 열고 인플루언서를 직접 육성할 계획도 세웠다. 이동규 롯데홈쇼핑 홍보팀장은 “기존 인플루언서는 비용이 부담스럽고 리스크도 크다. 참신한 새내기 인플루언서를 발굴해 20, 30대 소비자를 끌어오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우리 언니? 82피플? “명품 비슷한 제품을 팔아서 진짜 명품 사고, 차도 사고, 집도 사고. 그러면서 매일 우는 소리하며 위로해달라니 눈꼴 시릴 수밖에요.” SNS에서 물건을 파는 셀럽을 마켓 크리에이터라고 부른다. 최근 5년간 급성장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추종자들은 유행 아이템을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어 편리하다며 편을 든다. 반면 온갖 스토리를 갖다 붙여 물건을 파는 ‘반짝 상인’이라는 뜻에서 ‘82피플(빨리(82) 변하는 아이템을 파는(82) 사람)’이라는 오명도 얻었다. 직장인 서모 씨는 “좋은 판매자도 있겠지만 옷부터 간장게장까지 돈 되는 모든 것을 파는 모습은 장사꾼 그 자체다. 진심이라며 늘어놓는 일상도 결국 물건을 팔기 위한 수순같다”며 비판했다. 20대 직장인 이모 씨는 “솔직한 후기를 작성했더니 ‘악플러’로 차단당했다. 물건 팔기 전엔 예쁜 동생이라더니 졸지에 악플러가 됐다”며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이들에 대한 반감은 최근 파인애플 식초 사태로 불이 붙었다. 한 업체에서 판매한 파인애플 식초를 먹고 하혈 등 부작용을 겪은 이들이 항의를 하자 업체가 이들을 악플러로 몰아간 것.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전문성 없이 의학 지식을 남발하거나 제품의 효용을 과장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일부 셀러들이 소통을 한다며 선을 넘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인프루언서를 대상으로 한 무분별한 광고 경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6일 공정거래위원회는 광고주로부터 협찬받은 제품을 직접 사서 사용한 것처럼 후기를 올리는 마케팅 수법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화장품, 대체의약품, 다이어트제품, 소형 가전제품 등에 대한 리뷰를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미국에선 연방거래위원회(FTC)의 방침에 따라 광고성 게시물을 올릴 땐 해시태그 #ad #sponsored를 붙여 광고임을 알려야 한다. 공정위도 2016년 광고 명시 방침을 내렸으나 소속사에 속한 인플루언서들만 이를 따르는 실정이다. ● 1%의 성공신화 누구나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는 시대지만 그 과정이 쉽진 않다. SNS 셀럽들은 자신들의 일이 화려하거나 쉽지만은 않다고 토로한다. 뷰티 인플루언서인 ‘쏭냥’ 송지혜 씨는 인플루언서 되는 법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올리면 되는 것 아니냐”, “부업으로 도전하고 싶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는 “팔로워 1만 이상을 목표로 한다면 확실한 정체성과 각오를 갖고 뛰어들어야 한다”고 귀띔했다. 그는 이어 “인플루언서는 넘쳐나고 컨텐츠 아이디어는 고갈되고 늘 경쟁력 있는 아이디어를 고민해요.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으려 매일같이 유행어를 공부하며 미래를 고민하죠. 이 일은 쉬우면서도 위험해요. 방송을 보는 분들께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아 말과 행동이 늘 조심스러워요. 자유로운 건 시간뿐입니다”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인플루언서는 나다움을 잃지 않는 것이 성공비결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셀럽분들은 실제로 만나면 흥이 많고 당당하다. 실제 그 생활을 즐겨야 성공할 수 있다. 셀럽처럼 보이고 싶은 이들은 다른 이의 시선이 불편해 오래 못 간다”고 거듭 강조했다. 업계에 따르면 인플루언서 마켓은 갈수록 각박해지고 있다. 과거 수익과 관계없이 붙던 광고료는 구독자와 동영상 시청 시간 등 기준이 까다로워졌다. 유튜브는 시청시간 4000시간이 넘어야 광고를 붙일 수 있는 자격을 준다. 한 게임 인플루언서는 “게임은 비교적 일찍 인플루언서 시장이 형성돼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처음엔 조건 없이 게임계 셀럽 ‘모시기 전쟁’을 했는데 지금은 조건이 까다롭다. 다른 분야도 시장이 포화되면 비슷한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며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다른 의견도 있다. 송지혜 씨는 “조회수 340만을 기록한 국내 유튜브 동영상도 있다. 이건 해외에서도 많이 본다는 건데, 실제 해외 시장을 준비하는 인플루언서들이 적지 않다. 업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주장했다. 인플루언서를 준비하는 이들은 공모전과 학원을 찾거나 관련 서적을 독학하면서 SNS 스타를 꿈꾼다. 대부분 얼굴이 알려진 셀럽형 인플루언서를 꿈꾸지만, 마케터형 인플루언서도 있다. 개인 신상을 드러내지 않고 페이지를 내세워 활동하는 이들이다. 부업으로 게임 전문 페이지를 운영하다가 전업해 관련 회사까지 세운 손유종 위드공감 대표(30)는 “마케터형 인플루언서의 경쟁력은 개인의 매력이 아닌 전문성이다. 대중이 관심 가질 만한 정보를 제공하되 운영자 신분은 철저히 숨긴다”고 전했다. 지난해 연 수익 1억 원을 기록한 10대 마케터형 인플루언서는 “청소년 주부 직장인 등 얼굴을 알리고 활동하기 힘든 이들이 마케터형 인플루언서로 주로 활동한다”고 말했다. 평생 월급을 모아도 전셋집을 구하기 힘든 현실에서 인플루언서를 상류사회로 가는 고속티켓으로 여기는 분위기도 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인플루언서의 성공에는 우연적인 요소가 많이 작용하는데 불학실한 부분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뛰어드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며 보다 신중해질 것을 당부했다. 한 20대 취업준비생은 “메이크업을 좋아해 뷰티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다. 행여 이름을 알리지 못하더라도 준비한 시간은 줄길 수 있을 테니 도전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열정적인 연주 매너와 록 스타 같은 옷차림, 길게 풀어 헤친 파마머리…. ‘21세기의 파가니니’라 불리는 세르비아 태생 바이올리니스트 네만야 라두로비치(33)가 10월 9일 오후 5시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첫 내한공연을 갖는다. e메일로 만난 그는 “2년 전 한국의 클럽 무대에 잠깐 오른 이후 다시 올 날을 손꼽아 기대했다. 열정적인 한국 관객과의 만남을 기대한다”고 했다. 라두로비치는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일곱 살 때 처음 찾은 음악학교에서 그를 눈여겨본 은사의 추천으로 바이올린을 들었다. 14세에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 뒤 2006년 지휘자 정명훈이 이끄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추면서 이름을 알렸다. 프랑스의 권위 있는 음악상인 ‘음악의 승리상’도 받았다. 그는 실력 외에도 틀을 벗어난 연주 매너와 외모로 유명하다. 모든 무대에 가죽 재킷과 부츠 등 개성 있는 그만의 스타일로 등장한다. 이 때문에 실력이 아닌 다른 요소로 명성을 얻으려 한다는 뾰족한 시선이 날아들기도 한다. “정장을 입고 무대에 섰을 땐 내가 펭귄처럼 우스꽝스럽게 느껴졌어요. 무대에서는 온전한 나 자신이 아니면 연주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그래서 느끼는 대로, 원하는 대로 헤어스타일을 표현하고 옷을 입습니다.” ‘나다움’은 무대 밖에서도 1순위로 지켜야 할 가치다. 그는 종종 재미있는 연주 동영상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다. 그 가운데 팝그룹 ‘아바’의 ‘Gimme! Gimme! Gimme!’를 동료들과 어깨춤 추며 연주하는 영상이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는 록, 전통음악, 팝, 재즈, 블루스도 즐겨 듣는다. “클래식 외에도 다양한 음악을 가까이 합니다. 요즘은 아름답고 강렬한 인디언 음악에 빠져 있죠. 음악은 장르에 관계없이 다채로운 감정을 선물한다는 점에서 하나로 연결된 유기체라고 생각합니다.” 라두로비치는 솔리스트뿐 아니라 앙상블 활동도 활발히 한다. 현악 오중주인 ‘데블스 스릴’과 현악 오케스트라인 ‘더블 센스’를 이끌고 있다. 그는 “만족스러운 앙상블이 나올 때 더 완벽한 솔리스트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번 공연에서 그는 1800년대 중후반에 활동한 프랑스 작곡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가장조’, 드뷔시의 ‘바이올린 소나타 사단조’, 라벨의 ‘치간’, 쇼송의 ‘시’ 등이다. 그는 “소품곡들은 개성이 뚜렷해 비교하며 감상하기에 좋을 것이다. 소나타는 프로그램 전체의 중심을 잡는 기둥 역할을 하는데, 프랑크에서 드뷔시로 이어지는 두 개의 소나타가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살피면 흥미로울 것”이라고 했다. 4만∼10만 원. 이설 기자 snow@donga.com}

“몰라서 다행이다. 상처는 우리 부모들이 안고 가마.”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서진학교) 설립을 둘러싼 갈등은 해당 지역에 한방병원을 유치하는 등의 조건을 내세워 일단락됐다. 부모들은 “나쁜 선례를 남겼다”며 ‘조건부 설립’ 합의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무릎 꿇기 눈물의 호소’ 이후 1년은 장애 아이들의 특수교육 문제를 화두로 던졌다. 더불어 사는 사회로 가는 첫걸음은 관심과 이해다. 이들의 애환은 특수학교 한 곳이 설립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무릎 꿇은 엄마 등 장애 아이를 둔 엄마와 아빠 10여 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 “‘평생 껌딱지’ 돌보려면 부모가 무너지지 말아야 해” 아이는 첫돌 전부터 원 돌리기에 집착했다. 공, 접시, 자동차 바퀴…. 아이는 동그란 물건을 솜씨 좋게 돌린 뒤 넋 놓고 바라보곤 했다. 그저 아이의 특성이라 여기고 또래에 비해 집중력이 뛰어나다는 생각도 잠깐 해봤다. 두 돌쯤이었나. 한 TV 저녁 뉴스에서 자폐아의 특성에 대한 보도를 봤다. ‘보통 유아들은 자동차를 일렬로 세운 뒤 바퀴를 굴려 달리게 한다. 자폐아는 자동차를 뒤집은 뒤 바퀴가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가슴이 철렁했다. 서둘러 병원을 찾았다. 자폐 2급 진단을 받았다. 며칠간 날벼락을 맞은 쇼크 상태로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냈다. 두 달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장애 판정을 받은 엄마들은 대개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절망과 희망 사이를 오가다 현실을 받아들인 뒤에는 치료법을 찾는 데 목을 맨다. 비교적 빨리 마음을 수습한 줄 알았는데 6세 때 재검에서 발달장애 1급 판정을 받고 2차 쇼크가 왔다. 사실 지적장애와 자폐증 등을 아우르는 발달장애 아동은 유아기에는 다른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때문에 많은 부모가 아이의 장애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 치료를 통해 개선될 거라는 희망을 붙들고 좋다는 건 다 시도한다. 언어, 놀이, 특수체육, 인지, 그룹인지, 그룹음악…. 아이가 8세인 지금 한 달 치료교육비는 250만 원이다. 통합어린이집을 다녀온 뒤 월 30만∼70만 원짜리 수업 7개를 듣는다. 지출이 큰 편이지만 예전에 비하면 훨씬 줄었다. 매월 400만∼500만 원 정도 쓴 적도 있다. 여유가 있어서 교육에 ‘올인’하는 건 아니다. 지능과 사회성이 조금이라도 개선되지 않을까. 어느 날 마치 거짓말처럼 다른 평범한 아이들이 쓰는 언어로 말을 걸어주진 않을까 하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거다. 장애 판정을 받은 뒤 인터넷에서 ‘자폐’를 검색했다. 수천만 원짜리 산소탱크를 이용한 고압산소치료, 머리카락을 채취해 부족한 체내 성분을 검사한 뒤 필요한 성분을 집중 공급하는 생의학치료, 한 번에 수십만 원씩 하는 청각·지각 훈련…. 반신반의하면서도 검증되지 않은 치료에 홀린 듯 지갑을 열기도 한다. 이런저런 치료를 하며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선배 엄마’들을 만났다. “이건 마라톤이다. 처음부터 진을 빼면 나중엔 엄마도 아이도 지쳐. 이제 두 살배기인 아이를 평생 돌보려면 부모가 무너지지 않고 몸과 마음이 버티는 것이 중요해.” 선배들의 조언은 비슷했다. 치료에 집착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지나치면 후회할 거라고 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검증된 놀이치료 위주로 알아봤다. 유아교육처럼 눈높이 교육을 하면 발달장애인이 보이는 공격적 행동인 ‘도전적 행동’이 개선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복지기관과 큰 병원, 알려진 센터의 프로그램은 대기 기간이 기본 1, 2년이었다. 통합어린이집도 집 근처엔 자리가 없어 1시간 반 거리를 3년간 통학했다.○ 발달장애인 가족으로 산다는 건 선배 엄마들이 한목소리로 강조하는 대목이 또 있다. 비장애인 형제자매에게도 관심을 나눠주란 것이다. 22세 발달장애 1급 딸(둘째)을 둔 A 씨는 큰딸이 중학생 때 하도 반항해 ‘같이 죽자’고 했더니 ‘난 안 죽어. 엄마만 죽어. 그리고 엄마가 죽어도 동생은 안 돌볼 거야’라고 했단다. B 씨는 막내아들이 3세 때부터 여덟 살이나 많은 발달장애 1급 큰누나에게 모든 걸 양보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C 씨는 세 남매를 같은 초등학교에 보냈는데 장애인 형제자매를 뒀다고 친구들이 놀려대며 따돌린 이야기를 들려줬다. D 씨는 “19세 다운증후군인 큰딸보다 17세 둘째가 더 속을 썩인다. 비장애인 자녀가 키우기 더 힘들다”고 했다. 사연은 이렇다. “첫째는 장애아라서, 셋째는 늦둥이라서 관심을 쏟았지. 둘째는 뭐든 혼자하고 얌전하고 눈에 안 띄고. 늘 관심 밖이었어. 한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내가 둘째에게 엄마 노릇을 했나’ 싶더라고. 그걸 깨달았을 때 둘째는 이미 내게 마음을 닫은 상태였어.” 뒤늦은 후회에 D 씨는 둘째와 함께 가족상담을 시작했다. “‘됐어’ ‘필요 없어’ ‘괜찮아’ 세 마디만 하던 아이가 요즘은 ‘싫어’ ‘뭐 해줘’ 하는데 너무 고마워.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가정불화도 적지 않다. 일반화할 순 없지만 아빠는 엄마에 비해 장애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경향을 보인다. 남편이 참여하는 ‘장애 아동 아빠 자조모임’에서 아빠들의 스트레스 요인을 조사한 결과 1위 경제적 문제, 2위 아내의 무관심, 3위 불안한 아이의 미래, 4위 비장애 자녀가 방치되는 상황 순이었다. 13세 발달장애 2급 딸을 둔 E 씨는 남편이 처음에 ‘자신 없다’며 힘들어해 부부관계가 악화된 케이스다. 둘째를 낳은 뒤에야 남편은 첫째에게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첫째가 그걸 아는지 아직도 아빠에게 잘 가지 않는다고 했다. 중학생 발달장애 1급 아들을 둔 40대 F 씨는 시댁 문제로 불화를 겪었다. 그는 “매일같이 임신 기간에 뭘 잘못했나 자책하는 내게 시어머니가 ‘너 때문에 아이가 잘못됐다’는 식으로 말씀하셨다. 서운한 마음에 남편과 다투는 일도 잦아진다. 이 시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혼하는 부부도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가장 힘 빠지는 순간은 모든 노력이 헛된 것처럼 느껴질 때다. 아이가 냉동실 물건을 다 꺼내 바닥이 김칫국물로 흥건할 때, 뾰족한 물건을 집어던져 다른 자녀의 눈가가 찢어졌을 때, 죽을힘을 다해 한 보 나아간 줄 알았는데 원점으로 돌아갔을 때. 이럴 땐 나도 모르게 울컥한다. 장애아를 둔 일가족 자살 소식을 접할 때면 이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가슴이 아프다.○ “주저앉기보다 열심히 뛸게” 보통 발달장애 아이는 8세가 돼도 입학을 1, 2년 미룬다. 지능지수가 많이 낮지 않아도 늦게 입학시키기도 한다. 그사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2018 특수교육 통계’에 따르면 올해 전국 유치원·초중고교에 재학 중인 발달장애 학생은 7만1253명으로 처음 7만 명을 넘겼다. 2014년 6만6363명, 2015년 6만7374명, 2016년 6만7731명, 지난해 6만9528명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장애 아이를 둔 부모들은 유아기엔 치료와 교육에 정신이 없다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현실의 불합리에 눈뜨기 시작한다. 규정상으로만 보면 발달장애 학생은 일반학교나 특수학교 가운데 원하는 곳을 택해 교육받을 권리를 갖는다. 하지만 현실에서 ‘선택할 권리’는 없다. 특수학교는 턱없이 부족하고 통합교육을 하는 일반학교는 경쟁이 치열하다. 부모들은 교사의 역량에 민감하다. 아이들의 표현력이 부족해 알게 모르게 학교생활에서 신체적 정서적 학대를 받기 때문이다. 표현력이 부족하다고 편견 학대를 느끼지도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다른 아이들처럼 대응하지 못할 뿐이다. 이 때문에 학교 가 있는 동안 교사가 부모의 눈이 되어 주기를 기대한다. 훌륭한 교사가 있다는 소문이 나면 해당 일반학교 근처로 이사를 가거나 전입신고만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1년 전 학교를 짓게 해달라며 부모들이 무릎을 꿇어 짓게 된 서진학교는 이제 막 삽을 떴을 뿐인데 벌써 전입신고가 늘고 있다고 한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비장애 아동 부모와 우리의 처지가 비슷한 것 같아.” 발달장애 부모 모임에서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비장애 아동이 ‘엄마 껌딱지’인 시기는 유아기 무렵이 전부다. 우리 아이들은 평생을 엄마 껌딱지로 산다. 표현이 서투른 발달장애 유아들은 물리적 정서적 학대에 쉽게 노출된다. G 씨는 일반 중학교에 다니던 다운증후군 딸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가슴을 쳤다. 딸은 언젠가부터 ‘학교에 가기 싫다’는 이야기를 자주 꺼냈다. 면역력이 떨어져 자주 아팠고, 급기야 어느 날 기절까지 했다. 의사는 “아이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고 했지만 아이는 말이 없었다. “알고 보니 학대를 당했더라고. 일반 반에서는 도우미 친구가, 도움반(발달장애 아동 학급)에서는 체구가 큰 다른 발달장애 친구가 꼬집고 때렸대. 다른 친구가 일러주지 않았으면 모를 뻔했지. 더 원통한 건 선생님도 알면서 이를 묵인했다는 거야.” G 씨는 당장 전학이 가능한 특수학교를 수소문했지만 거주지인 강서구 특수학교엔 자리가 없었다. 통학 가능한 거리의 일반학교도 상황은 비슷했다. H 씨는 18세 아들의 친구들에게 학교생활에 대해 종종 묻는다. 누군가 아이를 괴롭힌다고 귀띔하면 교사와 상담하는데, 그럴 때 돌아오는 반응은 80%가 ‘아이들은 거짓말을 잘한다’는 거다. 그는 “아이를 괴롭히는 친구들보다 학교 관계자들에게 상처받을 때가 더 많다. 통합반이 생긴 2007년 이후 학교생활을 한 젊은 교사들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적은 것 같다”고 했다. 사회의 따가운 시선은 익숙하다. 키 180cm로 겉으로는 성인이 다 된 아이가 지하철에서 옆 사람의 치마를 들쳐 경찰서에 가거나 공공장소에서 괴성을 질러 ‘자식교육 똑바로 하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다. ‘장애가 유전되는 것 아니냐’며 비장애인 형제자매의 혼사가 깨지는 일도 있다. 지적장애 딸을 둔 부모는 아이가 ‘나쁜 일’을 겪을까 노심초사한다. 마음고생이 심할 때는 아이들이 사회적 편견과 배제를 이해하지 못해 예민하게 느끼지 못하는 것이 차라리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G 씨는 무릎 꿇은 날 몰래 눈물을 훔치던 자신의 어깨를 해맑게 토닥이던 딸에게 이렇게 읊조렸다고 한다. ‘몰라서 다행이다. 상처는 우리 부모의 몫이다.’ 하지만 주저앉을 시간이 없다. 교육 공간을 확보하고 사회 인식을 개선하고, 지원 제도를 늘리기 위해 부지런히 뛰어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분단 현실이 지속될수록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휘자 정명훈(65)은 남북 간 화합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의지를 강하게 나타냈다.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3일 열린 ‘도이체그라모폰(DG) 설립 120주년 기념 콘서트’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최근 북한과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지만 북한과의 심리적 거리감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라며 “일부는 통일이 경제적으로 무익하고 불필요하다고 여긴다”고 말했다. 이어 “음악인으로서 남북이 하나 되는 일(통일)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어 ‘원코리아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고 밝혔다. DG는 세계적인 독일 클래식 음반사이다. 정치적인 상황으로 인해 남북 합동 공연을 실행하지 못한 적이 많았다. 그는 “남북이 함께 공연하려면 작은 일이라도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오케스트라 활동으로 얻은 수익금을 북한 어린이들에게 기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명훈은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2일 열린 두 번째 원코리아 오케스트라 평화 콘서트에서 북측 성악가를 초청하려 했지만 불발됐다. 원코리아 오케스트라는 남북한 교류를 목적으로 국내외 오케스트라 전·현직 단원 20여 명이 모인 교향악단이다. 지난해 8월 열린 첫 번째 무대에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함께했다. 당시 실황 음반이 최근 발매되기도 했다. 정명훈과 조성진은 12월 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DG 12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도 호흡을 맞춘다. 서울시립교향악단과의 협연으로 이날 조성진이 모차르트 피아노 콘체르토 20번을, 하루 뒤인 7일엔 바이올리니스트 아네조피 무터가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 g단조 등을 연주한다. 정명훈은 “약 11년 전 당시 13세이던 조성진 군의 연주를 처음 들었는데 그처럼 재주가 뛰어난 연주자를 본 적이 없다”며 “자녀가 잘 성장하면 부모의 마음이 흐뭇한 것처럼 음악가의 가장 큰 기쁨은 후배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이라고 말했다. 조성진은 “모차르트 피아노 콘체르토는 2011년 1월 정명훈 선생님이 지휘한 서울시향과 협연했던 곡”이라며 “7년 만에 선생님과 함께 이 곡을 다시 연주하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2015년까지 이끌었던 서울시향과의 재회에 대해 정명훈은 “음악감독으로 일하던 때보다 마음이 한결 가볍다. 옛 친구를 다시 만난 느낌”이라며 “과거엔 약간의 부담을 안고 자녀를 대하던 부모의 마음이었다면 이번엔 귀엽기만 한 손주를 대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대한민국에 취미생활 시대가 열렸다. ‘소확행’ ‘워라밸’ 트렌드가 취미 시장에 지핀 군불이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다. 학원 문화센터 등 오프라인 시장에 ‘프립(Frip)’ ‘2교시’ ‘소모임’ 등 온라인 플랫폼이 가세해 취미 산업은 날로 커지는 추세다. 놀아본 적이 없어 남는 시간을 멀뚱하게 흘려보내는 사람들이 참가할 만한 활동이 적지 않다. ○ 부담 없이 체험하는 ‘1일 수업’ 온라인 커뮤니티 중심의 모임 문화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요즘 취향 공동체는 예전 모임과 다르다. 취미 종류가 더 세분화·전문화되고 1일 모임, 학기 모임, 정규 모임 등 형식도 다양해졌다. 최근 취미 시장에서 약진하는 형태는 단연 ‘원데이클래스’, 즉 1일 수업이다. 1일 수업을 소개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립은 20대, 30대 ‘취미 인구’에 힘입어 성장세가 가파르다. 백화점 문화센터와 학원, 각종 공방들도 1일 수업을 도입하고 있다. 직장인 김아현 씨(28)는 2년 전부터 쿠킹클래스, 메이크업 강의, 온라인 마케팅, 핫요가, 수제맥주 만들기 등 30여 종류의 1일 수업을 경험했다. 그가 꼽는 1일 수업의 매력은 다양한 취미를 가볍게 체험할 수 있다는 것. 김 씨는 “정규강좌를 덜컥 신청했다가 작심삼일에 무너지곤 한다. 하루만 수업을 듣는 원데이클래스는 나와 취미활동 간 궁합을 살필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1일 수업 마니아인 양수경 씨(30)는 지난달부터 모임 강사 격인 ‘호스트’까지 겸하고 있다. 한강에서 캠핑을 하며 친목을 다지는 수업을 5번 진행했다. 간단한 먹거리와 질문지를 준비해 회원들 간 소통을 돕는다. 주야 교대근무를 서는 그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활동을 같이할 지인을 모으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캠핑 호스트로 나서게 됐다”고 했다. ‘정모(정기 모임의 준말)’와 달리 1일 수업엔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다. 오프라인 모임이지만 온라인을 기반으로 해 ‘스펙’보다 취향과 경험 중심으로 인간관계를 맺게 된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양 씨는 “인간관계, 진로 등 또래의 관심사를 나누다 보면 금세 친해진다. 만남에 지속성이 없어서 그런지 오히려 고민을 털어놓기에도 좋다”고 했다. 모두가 1일 수업에 만족하는 건 아니다. 3년 차 학원 강사인 이모 씨는 “6차례 정도 수업에 참여했는데 편차가 컸다. ‘스마트폰 사진 강의’는 굉장히 유용했던 반면 한 강의는 모임의 취지가 불분명해 시간과 돈만 낭비한 기분이었다”고 했다. 박아름 프립 마케팅 팀장에 따르면 야간 하이킹, 요가, 외국어 강의 등이 특히 인기가 많다. 참가자 모두 반말로 진행하는 ‘수평어 모임’도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감정소모 ‘NO’… 취미에 집중하기 좋은 ‘학기모임’ 3개월 단위로 운영되는 학기제 모임도 인기다. 화장품 회사에 다니는 남경수 씨(36)는 지난달부터 직장인 취미 공유 플랫폼인 ‘2교시’에서 디제잉 수업을 듣는다. 1일 수업인 디제잉 스팟모임이 마음에 들어 같은 강사가 진행하는 학기모임을 신청했다. 매주 10여 명이 음악기기를 갖춘 강남의 사무실에 모여 전문 강사에게 디제잉을 배운다. 남 씨는 “동호회나 학원에 가면 기존 멤버들 사이에 끼지 못해 서먹할 때가 있다. 학기모임은 모두가 어색하게 시작해 공통 관심사를 나누며 빠르게 친해질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6년 전 직장인 사교모임에서 출발한 2교시는 직장인 기반 취미모임을 표방한다. 전문 강사와 ‘모임장’이 모임을 이끌며, 회사원 자영업자 프리랜서 등 직장인만 활동이 가능하다. ‘복싱 다이어트’, ‘와인 교실’, ‘한 잔 마시면서 그리는 마셔그려’, ‘독립영화 함께 보는 크랭크 인’ 등 다양한 취미와 자기계발 모임이 개설돼 있다. 2교시의 차별점은 체계적인 관리. 이훈석 2교시 공동대표(33)는 “강사와 모임장 모두 면담을 거쳐 선발한다. 또 회원들 간 원활한 소통과 활동을 위해 대학생은 안 되고 직장인만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같은 취미를 가진 직장인이 모이다 보니 인맥도 쉽게 형성된다. 수도권 대학 교직원으로 일하는 김지민 씨는 “직장 업무가 다소 정적이라 인맥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2교시 모임을 통해 회계사, 의사, 광고인 등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과 어울리며 에너지를 얻는다”고 했다. 이렇게 형성된 인맥은 본업에 긍정적 영향을 주기도 한다.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는 최모 씨는 과거 본업과 관계없는 취미는 무용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최근 요가 모임에서 만난 지인의 도움으로 이직에 성공한 뒤 생각을 바꿨다. 그는 “취미에 몰두하면 머리가 맑아지고 아이디어도 더 풍부해진다. 무엇보다 의외의 순간에 ‘취미친구’로부터 결정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 읽고 대화하는 ‘독서모임’ 독서는 취미 시장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독서모임을 위한 플랫폼 ‘트레바리’ 회원수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고, 골목마다 들어서는 독립서점 열풍도 수년째 지속되고 있다. 대형 서점과 출판계도 오프라인 모임을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트레바리는 강제성을 지닌 유료 독서모임이다. 3개월 단위로 운영되며 독후감을 제출한 뒤 정기적으로 모여서 독서토론을 한다. 2015년 9월 4개로 출발해 현재는 모임 180여 개, 회원 3000여 명 규모로 성장했다. 창업 분야의 독서모임에 참가한 30대 직장인 조모 씨는 “전문가가 이끄는 모임과 회원끼리 운영하는 모임 등 2가지 버전으로 운영된다. 서로의 신상보다 관심사와 경험을 중심으로 분위기가 형성돼 유익했다”고 했다. 독립서점이 진행하는 모임도 활발하다. 저자 강연은 물론 강독 모임, 필사(筆寫) 모임 등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최인아 전 제일기획 부사장이 운영하는 강남구의 ‘최인아 책방’, 종로구와 마포구의 ‘북바이북’, 아나운서 김소영·오상진 부부가 연 마포구의 ‘당인리 책발전소’ 등에서는 독서모임, 전시, 북토크 등 문화행사가 정기적으로 열린다. 마포구의 ‘퇴근길 책 한권’과 ‘책바’에서는 술을 곁들여 책을 즐길 수 있다. 서대문구의 ‘순화동천’, 종로구의 ‘카페에무’는 직장인을 겨냥한 프로그램이 종종 열린다. ○ 유튜브와 함께하는 ‘독학취미생활’ 육아 등의 이유로 혹은 그냥 집이 좋아서 외출을 꺼리는 이들은 책과 유튜브를 활용하면 된다. ‘다취미 증후군’을 앓고 있는 40대 직장인 홍기석 씨는 학원 한 번 다니지 않고 커피, 사진, 목공, 철공 등을 섭렵했다. 비결은 책과 유튜브. 최근 목공에 빠져 있다는 그는 “책으로 기초지식을 익힌 뒤 DIY가 발달한 미국 유튜브를 보면서 공구 사용법, 안전지식 등을 배웠다. 공방에 다니는 것보다 저렴한 데다 시간도 절약돼 ‘독학취미’를 선호한다”고 했다. 좋아서 시작한 취미는 제2의 직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대기업에 다니는 장모 씨는 1년 전부터 스시 장인에게 생선회 뜨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일식조리학원에는 겸업으로 배우는 이들이 드물어 친구와 함께 주말마다 개인교습을 받는다. 그는 “스시를 워낙 좋아하는데 가격이 사악해 직접 회 뜨는 법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한데 하다 보니 향후 제2의 직업으로 삼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대한민국에 취미생활 시대가 열리고 있다. ‘소확행’ ‘워라밸’ 트렌드가 취미 시장에 지핀 군불이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다. 학원 문화센터 등 오프라인 시장에 ‘프립(Frip)’ ‘2교시’ ‘소모임’ 등 온라인 플랫폼이 가세해 취미 산업은 날로 커지고 있다. 놀아본 적이 없어 남는 시간을 멀뚱하게 흘려보내는 사람들이 참가할 만한 것들이 주변에 널려 있다. # 부담 없이 체험하는 ‘1일 수업’ 온라인 커뮤니티 중심의 모임 문화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요즘 취향 공동체는 예전 모임과 다르다. 취미 종류가 더 세분화·전문화되고 1일 모임, 학기 모임, 정규 모임 등 형식도 다양해졌다. 최근 취미 시장에서 약진하는 형태는 단연 ‘원데이 클래스’, 즉 1일 수업이다. 1일 수업을 소개하는 어플리케이션 프립은 20대, 30대 ‘취미 인구’에 힘입어 성장세가 가파르다. 백화점 문화센터와 학원, 각종 공방들도 1일 수업을 도입하고 있다. 직장인 김아현(28) 씨는 2년 전부터 쿠킹클래스, 메이크업 강의, 온라인 마케팅, 핫요가, 수제맥주 만들기 등 30여 종류의 1일 수업을 경험했다. 그가 꼽는 1일 수업의 매력은 다양한 취미를 가볍게 체험할 수 있다는 것. 김 씨는 “정규강좌를 덜컥 신청했다가 작심삼일에 무너지곤 한다. 하루만 수업을 듣는 원데이클래스는 나와 취미활동 간 궁합을 살필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1일 수업 마니아인 양수경(30) 씨는 지난달부터 모임 강사 격인 ‘호스트’까지 겸하고 있다. 한강에서 캠핑을 하며 친목을 다지는 수업을 5번 진행했다. 간단한 먹거리와 질문지를 준비해 회원들 간 소통을 돕는다. 주야 교대근무를 서는 그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활동을 같이할 지인을 모으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캠핑 호스트로 나서게 됐다”고 했다. 정기적으로 모이는 ‘정모(정기 모임의 준말)’와 달리 1일 수업엔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다. 오프라인 모임이지만 온라인을 기반으로 해 ‘스펙’보다 취향과 경험 중심으로 인간관계를 맺게 된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양 씨는 “인간관계, 진로 등 또래의 관심사를 나누다보면 금세 친해진다. 만남에 지속성이 없어서 그런지 오히려 고민을 털어놓기에도 좋다”고 했다. 모두가 1일 수업에 만족하는 건 아니다. 3년차 학원 강사인 이모 씨는 “6차례 정도 수업에 참여했는데 편차가 컸다. ‘스마트폰 사진 강의’는 굉장히 유용했던 반면 한 강의는 모임의 취지가 불분명해 시간과 돈만 낭비한 기분이었다”고 했다. 박아름 프립 마케팅 팀장에 따르면 야간 하이킹, 요가, 외국어 강의 등이 특히 인기가 많다. 참가자 모두 반말로 진행하는 ‘수평어 모임’도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감정소모 ‘NO’…취미에 집중하기 좋은 ‘학기모임’ 3개월 단위로 운영되는 학기제 모임도 인기다. 화장품 회사에 다니는 남경수 씨(36)는 지난달부터 직장인 취미 공유 플랫폼인 ‘2교시’에서 디제잉 수업을 듣는다. 1일 수업인 디제잉 스팟모임이 마음에 들어 같은 강사가 진행하는 학기모임을 신청했다. 매주 10여 명이 음악기기를 갖춘 강남의 사무실에 모여 전문 강사에게 디제잉을 배운다. 남 씨는 “동호회나 학원에 가면 기존 멤버들 사이에 끼지 못해 서먹할 때가 있다. 학기모임은 모두가 어색하게 시작해 공통 관심사를 나누며 빠르게 친해질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6년 전 직장인 사교모임에서 출발한 2교시는 직장인 기반 취미모임을 표방한다. 전문 강사와 ‘모임장’이 모임을 이끌며, 회사원 자영업자 프리랜서 등 직장인만 활동이 가능하다. ‘복싱 다이어트’, ‘와인 교실’, ‘한 잔 마시면서 그리는 마셔그려’, ‘독립영화 함께보는 크랭크 인’ 등 다양한 취미와 자기계발 모임이 개설돼 있다. 2교시의 차별점은 체계적인 관리. 이훈석(33) 2교시 공동대표는 “강사와 모임장 모두 면담을 거쳐 선발한다. 또 회원들 간 원활한 소통과 활동을 위해 대학생은 안되고 직장인만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같은 취미를 가진 직장인이 모이다보니 인맥도 쉽게 형성된다. 수도권 대학 교직원으로 일하는 김지민 씨는 “직장 업무가 다소 정적이라 인맥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2교시 모임을 통해 회계사, 의사, 광고인 등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과 어울리며 에너지를 얻는다”고 했다. 이렇게 형성된 인맥은 본업에 긍정적 영향을 주기도 한다.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는 최모 씨는 과거 본업과 관계없는 취미는 무용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최근 요가 모임에서 만난 지인의 도움으로 이직에 성공한 뒤 생각을 바꿨다. 그는 “취미에 몰두하면 머리가 맑아지고 아이디어도 더 풍부해진다. 무엇보다 의외의 순간에 ‘취미친구’로부터 결정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 읽고 대화하는 ‘독서모임’ 독서는 취미 시장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독서모임을 위한 플랫폼 ‘트레바리’ 회원수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고, 골목마다 들어서는 독립서점 열풍도 수년 째 지속되고 있다. 대형 서점과 출판계도 오프라인 모임을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트레바리는 강제성을 지닌 유료 독서모임이다. 3개월 단위로 운영되며 독후감을 제출한 뒤 정기적으로 모여서 독서토론을 한다. 2015년 9월 4개로 출발해 현재는 모임 180여 개, 회원 3000여 명 규모로 성장했다. 창업 분야의 독서모임에 참가한 30대 직장인 조모 씨는 “전문가가 이끄는 모임과 회원끼리 운영하는 모임 등 2가지 버전으로 운영된다. 서로의 신상보다 관심사와 경험을 중심으로 분위기가 형성돼 유익했다”고 했다. 독립서점이 진행하는 모임도 활발하다. 저자 강연은 물론 강독 모임, 필사(筆寫) 모임 등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최인아 전 제일기획 부사장이 운영하는 강남구의 ‘최인아 책방’, 종로구와 마포구의 ‘북바이북’, 아나운서 김소영·오상진 부부가 연 마포구의 ‘당인리 책발전소’ 등에서는 독서모임, 전시, 북토크 등 문화행사가 정기적으로 열린다. 마포구의 ‘퇴근길 책 한권’과 ‘책바’에서는 술을 곁들여 책을 즐길 수 있다. 서대문구의 ‘순화동천’, 종로구의 ‘카페에무’는 직장인을 겨냥한 프로그램이 종종 열린다. # 유튜브와 함께하는 ‘독학취미생활’ 육아 등의 이유로 혹은 그냥 집이 좋아서 외출을 꺼리는 이들은 책과 유튜브를 활용하면 된다. ‘다취미 증후군’을 앍고 있는 40대 직장인 홍기석 씨는 학원 한번 다니지 않고 커피, 사진, 목공, 철공 등을 섭렵했다. 비결은 책과 유튜브. 최근 목공에 빠져 있다는 그는 “책으로 기초지식을 익힌 뒤 DIY가 발달한 미국 유튜브를 보면서 공구 사용법, 안전지식 등을 배웠다. 공방에 다니는 것보다 저렴한 데다 시간도 절약돼 ‘독학취미’를 선호한다”고 했다. 좋아서 시작한 취미는 제2의 직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대기업에 다니는 장모 씨는 1년 전부터 스시 장인에게 생선회 뜨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일식조리학원에는 겸업으로 배우는 이들이 드물어 친구와 함께 주말마다 개인교습을 받는다. 그는 “스시를 워낙 좋아하는데 가격이 사악해 직접 회 뜨는 법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한데 하다보니 향후 제2의 직업으로 삼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영화상류사회(사진)감독 변혁. 출연 박해일, 수애. 청소년 관람불가. 29일 개봉.욕망의 민낯 그린 블랙 코미디. ★★☆ (★ 5개 만점)서치감독 아니시 차간티. 출연 존 조, 데브라 메싱. 12세 관람가. 29일 개봉.컴퓨터 모니터만으로 설명되는 개인의 일상. ★★★★ ■ 공연뮤지컬 지하철 1호선(사진) 그때 그 시절 서울 풍경을 담은 객차가 다시 달린다. 9월 8일∼12월 30일 서울 종로구 학전블루소극장. 6만 원. ♥♥♥(두근지수 ♥ 5개 만점)연극 ‘아라비안나이트’무더운 여름날, 마법에 걸린 아파트에서 일어난 기묘한 이야기.9월 4∼16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3만 원. ♥♥♥ ■ 클래식오페라 ‘코지 판 투테’(사진)젊은 감각으로 무장한 모차르트의 3대 희극 오페라.9월 6∼9일 평일 오후 7시 반, 주말 오후 4시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1만∼15만 원. 가을을 앞둔 날씨에 어울리는 연애 사기 소동. ♥♥♥서울시향 2018 리오넬 브랭기에의 프로코피예프피아니스트 문지영이 라벨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다.9월 7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만∼7만 원. 1920년대 파리의 정취를 담은 클래식 공연. ♥♥♥ ■ 콘서트엘리 골딩(사진)유튜브 조회수 17억 회를 기록한 ‘Love Me Like You Do’를 부른 영국 싱어송라이터. 9월 6일 오후 8시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8만8000∼9만9000원.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어바웃 타임’…. 영화에 어울리는 극적인 노래들. ♥♥♥♥에이치얼랏모던 록, 펑크 록, 헤비메탈을 교배해내는 뜨거운 그룹. 9월 1일 오후 7시 서울 플랫폼창동61 레드박스. 2만 원. 멜로디와 에너지의 황금비율. ♥♥♥♥}

“엉뚱하면서도 듣는 이를 즐겁게 하는 곡입니다. UFO(미확인비행물체)에 대해 전해지는 이야기와 이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을 다루고 있죠.” 스코틀랜드 태생 타악기 거장 콜린 커리(42)가 9년 만에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한다. 30일 ‘서울시향 2018 영웅의 생애’ 무대에서 마이클 도허티의 ‘타악기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UFO’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영웅의 생애’를 연주한다. 최근 e메일로 만난 그는 아시아에서 초연하는 ‘UFO’에 대해 “14가지의 타악기를 두들기면서 UFO의 이미지를 소리로 그려낸다. 아이러니와 유머, 독특한 에너지를 담은 멋진 작품이다”라고 했다. 6세 때 처음 드럼을 접한 커리는 미국의 재즈 드러머 버디 리치(1917∼1987)와 드러머 진 크루파(1909∼1973)의 연주를 보며 타악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2000년 로열 필하모닉 소사이어티 영 아티스트 어워드를 시작으로 각종 연주자상을 휩쓸며 독보적인 타악기 연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커리는 “타악기는 누구나 한 번쯤 연주해 보고 싶다고 느끼게끔 한다. 또 비주얼적인 면이 강하고 리드미컬해서 청중과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고 타악기의 매력을 설명했다. 오케스트라에서 타악기는 주류는 아니다. 뒤편에서 이따금 한 방을 날리는 ‘신 스틸러’에 가깝다. 20세기 들어 현대음악의 성장과 함께 타악기는 존재감을 더했고, 스트라빈스키와 슈토크하우젠 등 작곡가에 힘입어 영역을 넓혔다. 타악기 연주자에게 중요한 자질은 뭘까. “타악기 연주자는 시간에 대한 정확한 감각이 필수적입니다. 또 소리와 방향성 색감에 대해 정확히 인지해야 하죠. 그래야 다른 악기와 어우러져 협주곡 실내악을 연주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다양한 작품을 타악기 중심으로 편곡했다. 타악기 입문용 곡으로 커리는 스티브 라이시의 ‘드러밍’과 스코틀랜드 출신 작곡가인 제임스 맥밀런의 ‘타악기 협주곡 2번’을 추천했다. 30일 오후 8시 서울 롯데콘서트홀. 1만∼7만 원. 이설 기자 snow@donga.com}

‘향후 싱가포르는 무엇을 발판으로 도약할 것인가.’ ‘아시아의 허브’로 무역·관광·금융을 바탕으로 비약적 성장을 이룬 싱가포르는 10여 년 전부터 ‘다음 먹거리’를 찾는 데 골몰했다. 정부와 사회 각계각층 인사들이 치열한 토론을 통해 찾아낸 결론은 ‘스마트네이션’.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는 2014년 스마트네이션을 새로운 국가비전으로 선포했다. 스마트네이션은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상용화해 인간의 편리를 극대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는 총리 산하에 ‘스마트네이션 프로그램 오피스(SNPO)’를 두고 교통 생활 에너지 수도 등 영역의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미래를 여는 핵심 키워드인 스마트네이션을 실현하는 데 대학이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대학인 난양이공대(NTU)와 싱가포르국립대(NUS)를 탐방했다. 스마트캠퍼스 추진하는 NTU 14일 찾은 싱가포르 서북부의 난양이공대(NTU)에선 운전자가 없는 버스가 캠퍼스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 로보틱스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의 집약체인 자율주행버스였다. NTU의 스마트기술 실험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에어컨 없이 바람의 드나듦을 활용한 크레센트 홀 등 대부분 빌딩은 첨단 시스템을 구축해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했다. 수브라 수레시 NTU 총장은 “국가 시스템을 바꾸기에 앞서 NTU 캠퍼스에서 테스트를 하고 있다. 스마트네이션을 구현하기 전 스마트캠퍼스를 통해 완성도를 높일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대학과 기업의 연구진이 에너지효율, 자율주행, 재생에너지, 로봇 등 기술을 공동 연구하고 있다. SNPO와 함께 스마트네이션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민간 정보통신회사인 싱텔도 NTU 싱가포르국립대(NUS) 등과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공동 연구를 진행한다. 스마트네이션 테스트베드는 NTU를 비롯해 10여 군데에 이른다. NTU는 친환경 빌딩과 자율주행차 등을 통해 2020년까지 에너지 사용량을 지금보다 35% 감축하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수레시 총장은 “싱가포르는 규모가 작아서 혁신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또 고위 공무원과 교수의 연봉이 높아 뛰어난 인재가 많다”고 했다. 대학, 산업과 국가 혁신의 밑거름 되다 15일 찾아간 NUS 캠퍼스의 스타트업 지원 공간 ‘행어(Hangar·격납고)’. NUS 산하 NUS엔터프라이즈가 운영하는 이곳은 창업 희망자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는 창업 지원공간이다. NUS는 행어 외에도 ‘싱가포르 스타트업의 본산’으로도 불리는 ‘Blk71’ 등 두 곳의 스타트업 지원센터를 운영 중이다. 대학이 창업 지원을 통해 산업과 국가 혁신에 적극 기여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NTU도 스타트업 지원센터 ‘NTU 이노베이션(NTUitive)’를 두고 있다. 창업에 관심 있는 학생들에게 컨설팅, 사무 공간, 인턴십 프로그램 등을 지원한다. 특히 인문대생에게 창업가 마인드를 가르치는 ‘르네상스 엔지니어 프로그램(REP)’은 세계에서 벤치마킹할 정도로 명성이 높다. 공대 내의 ‘이노베이션 개라지’에서는 중장비 기계를 이용해 아이디어를 실제 제품화할 수 있다. ‘하울리오(HAULIO)’의 세바스찬 션 대표는 졸업한 뒤에도 종종 행어를 찾는다. 하울리오는 기업 간 물류시스템을 통합해 효율성을 높이는 플랫폼을 공급하는 스타트업으로 5년 만에 직원이 15명으로 늘었다. 션 대표는 NUS가 운영하는 해외 인턴 프로그램에 참가한 것이 창업의 계기가 됐다. 창업가 양성을 위해 2002년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6∼12개월간 미국 유럽 아시아 전역의 스타트업 기업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션 대표는 “인턴을 하면서 문제해결 능력과 창업현장에서 필요한 모든 기술을 익힐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는 스마트네이션 실현을 위해 다양한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2008년 ‘혁신·기업을 위한 국가 기초 사업’ 프로젝트를 통해 벤처 활성화에 나섰다. 릴리 챈 NUS엔터프라이즈 대표는 “싱가포르는 지난 30년간 다국적 기업을 유치해 경제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외국 기업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는 위기감이 있다. 스타트업을 통해 싱가포르 기업을 키우고 다음 세대를 위한 산업군을 형성하는 게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대학과 정부의 적극적인 스타트업 지원책으로 싱가포르에서는 최근 기업가치 1조 원이 넘는 유니콘 기업도 여럿 탄생했다. 동남아의 우버로 불리는 ‘그랩(Grab)’, 동남아 지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라자’, 미국 나스닥에서 8억 달러 이상의 몸값을 자랑하는 게임개발업체 ‘시(Sea)’가 대표적이다. 페이잘 압둘 라만 NTU 대외협력수석부장은 “관광 금융 무역에 더해 스타트업도 싱가포르 경제를 견인하는 중요한 축으로 성장했다. 벤처캐피털의 투자금과 동일한 금액을 정부가 지원하는 매칭펀드 등 정부의 노력과 창업을 독려하는 대학의 움직임이 맞물려 이룬 성과”라고 말했다. 싱가포르=이설 기자 snow@donga.com}

‘#요리스타그램’에 이어 ‘#그릇스타그램’의 인기가 뜨겁다. 요리에 대한 관심이 그릇으로 옮아갔다. 그릇 열풍의 배경엔 자존감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깔려 있다. 혹자는 “라면도 멋진 식기에 담아 정승같이 먹으면 내가 귀해지는 느낌을 받는다”라고 했다. 정말 그럴까. 설거지와 뒷정리가 귀찮아 신문지 깔고 냄비 통째 밥을 먹기도 하는 기자가 ‘집에서 근사하게 한 끼 먹기’에 도전해 봤다. Step1. 시작은 소박하게 집에서 레스토랑 분위기를 내려면? 요리도 요리지만 핵심은 테이블 세팅이다. 숟가락 젓가락 그릇 매트 등 테이블 웨어를 어떻게 놓느냐에 따라 식탁의 품격이 좌우된다. 필요한 준비물은 뭔지, 그릇을 사야 하는지, 요리 맛이 떨어져도 상관없는지 등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다. “있는 그릇을 활용하다가 취향과 필요에 따라 그릇을 구매하세요. 그릇 배치, 음식을 담는 방식, 소품 활용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식탁을 만들 수 있거든요.” 덴마크 도자기 브랜드 ‘한국로얄 코펜하겐’ 관계자는 시작은 소박하게 하라고 권했다. 취향을 따지지 않고 욕심껏 구매한 그릇은 대개 애물단지가 되어 낡아버린다고 했다. 부엌 장을 뒤져 보니 잊고 지낸 그릇이 꽤 많았다. 처음 할 일은 콘셉트를 정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의 사진과 카페의 플레이팅을 충분히 관찰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다 보면 취향과 안목이 생기고 모방을 거듭하면 창의력이 샘솟을 거라고 했다. 인스타그램에서 #그릇스타그램을 검색하니 17만8500여 개의 게시물이 떴다. 나무 소반에 흰색 그릇을 옹기종이 얹은 정갈한 밥상, 체리와 무화과로 꾸민 과일 접시, 나무 쟁반에 무심하게 놓인 햄버거…. 하나같이 황홀하되 저마다 개성이 뚜렷했다. 서울 종로에 있는 공예품 편집매장 ‘코지홈’ 박지나 대표는 “‘홈스토랑(홈+레스토랑)’에 정답은 없다. 자유롭게 상상력과 창의력을 펼치면 된다”고 했다. Step2. ‘흰색’ ‘겹치기’ ‘센터피스’를 기억하라 도전하고픈 밥상이 많았지만 요리 실력, 활용 가능한 그릇, 식탁 분위기를 고려해 한식 밥상에 도전하기로 했다. 우선 식탁보와 테이블 매트를 새로 사긴 부담스러워 조각보가 깔린 나무식탁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기로 했다. 미역국과 생선구이에 어울릴 만한 생활자기풍의 그릇을 집히는 대로 꺼냈다. 콘셉트가 서지 않을 땐 그릇을 펼쳐 놓고 조합을 해보면 도움이 된다. 전문가들은 미학적인 측면에서 △흰색과 여백이 있는 그릇을 사용하면 실패할 확률이 적다 △그릇을 여러 개 겹쳐 놓으면 식탁의 품격이 올라간다 △모양과 높낮이가 다른 그릇을 섞어서 배치하라 △화병, 양초, 주전자 등 정중앙에 오브제를 놓으면 식탁에 생기가 돈다 △음식은 그릇에 모자란 듯 담아라 △‘혼밥’은 나무 쟁반 또는 나무 소반을 활용하라 등의 팁을 줬다. ‘흰색+나무’ ‘도마+그릇’ ‘밑접시+그릇’ 공식에 맞춰 한식 밥상을 차려냈다. 퇴근길에 주워온 풀을 접시 한 귀퉁이에 얹으니 식탁이 화사해졌다. 아이들 밥상은 기발한 캐릭터 밥상으로 인스타그램에서 화제인 ‘이니테이블’을 참고해 곰돌이 모양으로 꾸몄다. ‘그릇은 보고, 쥐고, 맛보고, 느끼는 공감각적 사물이다. 그릇이 맛을 좌우한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Step3. 후퇴 없는 ‘개미지옥’ 지난해 시작된 그릇시장의 지각 변동은 올해 들어 본격화됐다. ‘주 52시간’ ‘소확행’ ‘가치소비’ 등의 영향으로 20, 30대는 물론이고 남성까지 그릇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다. 국내 도자기 브랜드 ‘이도’의 홍보마케팅실 김민정 주임은 “요리에 대한 관심이 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그릇스타그램’이 유행하면서 20, 30대 소비자가 늘었다. 최근 시작한 온라인 쇼핑몰의 주 고객도 20, 30대”라고 했다. 구매 방식도 다양해졌다. 과거 그릇은 짝과 열을 맞춘 세트 구매가 일반적이었다. 요즘은 개별 구매를 선호한다. 한식과 양식은 물론이고 유럽, 동아시아, 남미 등의 에스닉 푸드까지 집에서 요리하는 트렌드에 맞춰 그릇을 구매한다. 브랜드 층위도 다채로워졌다. 전통 강자로는 덴마크 왕실 도자기 브랜드인 로얄 코펜하겐이 꼽힌다. 243년의 역사, 왕실 브랜드, 순록의 배털로 만든 붓으로 그린 장인들의 수작업 등 다양한 스토리로 마니아층이 두껍다. 에르메스리빙, 빌레로이앤보흐, 웨지우드, 로얄알버트 등 프리미엄 라인과 덴비, 이딸라, 포트메리온 같은 중간 라인 브랜드가 있다. 국내 브랜드인 ‘광주요’와 ‘이도’ 등은 자연주의 바람을 타고 인기를 끌고 있다. ‘코지홈’과 ‘숙희’ ‘챕터원에디트’ 등 편집매장을 찾는 발길도 늘었다. ‘김성훈도자기’ ‘김석빈도자기’ ‘지승민의 공기’ ‘화소반’ 등 개인 작가의 아틀리에숍도 입지를 넓히고 있다. 여러 감각이 어우러지면 먹는 즐거움은 배가된다. 그래서 흔히 ‘홈스토랑’ 세계에 입성한 뒤에는 후퇴가 없다고 한다. ‘생활명품’ 저자 윤광준 씨는 “내용(음식)과 형식(그릇)이 맞아야 뭐든 극대화된다. 글로벌화로 인해 세련된 식탁 감각이 보편화됐고, 앞으론 와인잔을 고르듯 요리별로 그릇을 고르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요리스타그램’에 이어 ‘#그릇스타그램’의 인기가 뜨겁다. 요리에 대한 관심이 그릇으로 옮겨 붙었다. 그릇 열풍의 배경엔 음식 담는 도구 이상의 자존감이 깔려 있다. “라면도 멋진 식기에 담아 정승같이 먹으면 내가 귀해지는 느낌을 받는다”는 말도 있다. 정말 그럴까. 설거지와 뒷정리가 귀찮아 신문지 깔고 냄비 통째 밥을 먹기도 하는 기자가 ‘집에서 근사하게 한 끼 먹기’에 도전해 봤다. Step1. 시작은 소박하게 집에서 레스토랑 분위기를 내려면? 요리도 요리지만 핵심은 테이블 세팅이다. 숟가락 젓가락 그릇 매트 등 테이블 웨어를 어떻게 놓느냐에 따라 식탁의 품격이 좌우된다. 필요한 준비물은 뭔지, 그릇을 사야 하는지, 요리 맛이 떨어져도 상관없는지 등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다. “있는 그릇을 활용하다가 취향과 필요에 따라 그릇을 구매 하세요. 그릇 배치, 음식을 담는 방식, 소품 활용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식탁을 만들 수 있거든요.” 덴마크 도자기 브랜드 ‘한국로얄 코펜하겐’ 관계자는 시작은 소박하게 하라고 권했다. 취향을 따지지 않고 욕심껏 구매한 그릇은 대개 애물단지가 되어 낡아버린다고 했다. 부엌 장을 뒤지보니 있는지도 모르는 그릇이 꽤 많았다. 처음 할 일은 컨셉트를 정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소셜네트워크(SNS) 등의 사진과 카페의 플레이팅을 충분히 관찰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다보면 취향과 안목이 생기고 모방을 거듭하면 창의력이 샘솟을 거라고 했다. 인스타그램에서 #그릇스타그램을 검색하니 17만8500여 개의 게시물이 떴다. 나무 소반에 흰색그릇을 옹기종이 얹은 정갈한 밥상, 체리와 무화과로 꾸민 과일 접시, 나무쟁반에 무심하게 놓인 햄버거…. 하나같이 황홀하되 저마다 개성이 뚜렷했다. 서울 종로에 있는 공예품 편집매장 ‘코지홈’ 박지나 대표는 “‘홈스토랑(홈+레스토랑)’에 정답은 없다. 자유롭게 상상력과 독창력을 펼치면 된다”고 했다. Step2. ‘흰색’, ‘겹치기’, ‘센터피스’를 기억하라 도전하고픈 밥상이 많았지만 요리실력, 활용 가능한 그릇, 식탁 분위기를 고려해 한식 밥상에 도전하기로 했다. 우선 식탁보와 테이블 매트를 새로 사긴 부담스러워 조각보가 깔린 나무식탁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기로 했다. 미역국과 생선구이에 어울릴 만한 생활자기 풍의 그릇을 집히는 대로 꺼냈다. 컨셉이 서지 않을 땐 그릇을 펼쳐놓고 조합을 해보면 도움이 된다. 전문가들은 미학적 측면에서 △흰색과 여백이 있는 그릇을 사용하면 실패할 확률이 적다 △그릇을 여러 개 겹쳐 놓으면 식탁의 품격이 올라간다 △모양과 높낮이가 다른 그릇을 섞어서 배치하라 △화병, 양초, 주전자 등 정중앙에 오브제를 놓으면 식탁에 생기가 돈다 △음식은 그릇에 모자란 듯 담아라 △‘혼밥’ 은 나무쟁반 또는 나무소반을 활용하라 등의 팁을 줬다. ‘흰색+나무’, ‘도마+그릇’, ‘밑접시+그릇’ 공식에 맞춰 한식 밥상을 차려냈다. 퇴근길에 주워온 풀을 접시 한 귀퉁이에 얹으니 식탁이 화사해졌다. 아이들 밥상은 기발한 캐릭터 밥상으로 인스타그램에서 화제인 ‘이니테이블’을 참고해 곰돌이 모양으로 꾸몄다. ‘그릇은 보고 쥐고 맛보고 느끼는 공감각적 사물이다. ’그릇이 맛을 좌우한다‘는 말은 나올만하다. Step3. 후퇴 없는 ‘개미지옥’ 지난해 시작된 그릇시장의 지각변동은 올해 들어 본격화됐다. ’주 52시간‘, ’소확행‘, ’가치소비‘ 등의 영향으로 20대, 30대는 물론 남성까지 그릇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다. 국내 도자기 브랜드 ’이도‘의 홍보마케팅실 김민정 주임은 “요리에 대한 관심이 늘고 SNS에서 ’그릇스타그램‘이 유행하면서 20대, 30대 소비자가 늘었다. 최근 시작한 온라인 쇼핑몰의 주 고객도 20대, 30대”라고 했다. 구매 방식도 다양해졌다. 과거 그릇은 짝과 열을 맞춘 세트 구매가 일반적이었다. 요즘은 개별구매를 선호한다. 한식과 양식은 물론 유럽, 동아시아, 남미 등의 에스닉 푸드까지 집에서 요리하는 트렌드에 맞춰 그릇을 구매한다. 브랜드 층위도 다채로워졌다. 전통 강자로는 덴마크 왕실 도자기 브랜드인 로얄코펜하겐이 꼽힌다. 243년의 역사, 왕실 브랜드, 순록의 배털로 만든 붓으로 그린 장인들의 수작업 등의 스토리로 마니아층이 두텁다. 에르메스리빙, 빌레로이앤보흐, 웨지우드, 로얄알버트 등 프리미엄 라인과 덴비, 이딸라, 포트메리온 같은 중간 라인 브랜드가 있다. 국내 브랜드인 ’광주요‘와 ’이도‘ 등은 자연주의 바람을 타고 인기를 끌고 있다. ’코지홈‘과 ’숙희‘, ’챕터원에디트‘ 등 편집매장을 찾는 발길도 늘었다. ’김성훈도자기‘, ’김석빈도자기‘, ’지승민의 공기‘, ’화소반‘ 등 개인작가의 아뜰리에 숍도 입지를 넓히고 있다. 여러 감각이 어우러지면 먹는 즐거움은 배가된다. 그래서 흔히 ’홈스토랑‘ 세계에 입성한 뒤에는 후퇴가 없다고 한다. ’생활명품‘ 저자 윤광준 씨는 “내용(음식)과 형식(그릇)이 맞아야 뭐든 극대화된다. 글로벌화로 인해 세련된 식탁 감각이 보편화됐고, 앞으론 와인잔을 고르듯 요리별로 그릇을 고르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사회 이슈를 공연과 결합한 다큐·갈라콘서트를 선보여온 코리아아르츠그룹이 23일 오후 8시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울림Ⅱ’를 선보인다. 한국의 아픈 근현대사를 담은 ‘울림Ⅰ’(2015)에 이어 두 번째다. 하만택 코리아아르츠그룹 대표(48·사진)는 “‘울림Ⅱ’는 소방관 경찰 환경미화원의 이야기로, 평온한 일상은 이들의 헌신 덕분이라는 점을 일깨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큐·갈라콘서트는 하 대표가 고안한 장르. 화재진압 영상을 배경으로 공연하거나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행위예술을 선보인다. 하 대표는 “감전 사고로 두 팔을 잃은 석창우 화백이 의수로 붓글씨를 쓰는 영상을 준비했다. 안전의 중요성이 전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민안전진흥원과 공동 주최한 이번 공연에는 바리톤 고성현, 소프라노 김영미, 대금연주자 전지현이 출연한다. 4만∼12만 원. 이설 기자 snow@donga.com}

“그 순간 그 연주자가 들려주는 그 곡은 한 번뿐이잖아요. 모든 무대의 무게가 같을 수밖에요.” 대다수 연주자가 ‘다음 공연’을 가장 중요한 무대로 꼽는다. 늘 완벽을 추구한다는 건데, 피아니스트 선우예권(29·사진)의 시선은 오히려 관객을 향해 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어쩌면 누군가에겐 단 한 번의 클래식 공연일지 모른다”며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기 위해 공연 전후에는 집에 머물며 에너지를 아낀다”고 했다. 그는 대기만성형 피아니스트로 통한다. 비교적 늦은 초등학교 2학년 때 피아노를 시작해 예원학교와 서울예고, 미국 커티스음악원, 줄리아드음악원, 매니스음대를 거쳤다. 지난해 서른을 앞두고 늦깎이로 미국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황금기를 맞았다. TV 예능프로그램 출연으로 인지도가 더욱 높아졌다. “개인에 대한 관심이 클래식으로 이어져 기쁩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아이 같은 마음으로 연주를 이어가는 일이에요. 좋아하는 곡을 협연자와 같은 감정으로 연주할 때 특히 환희를 느낍니다.” 선우예권은 올 하반기 굵직한 무대를 앞뒀다. 11월 ‘러시아 음악의 차르’인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이끄는 뮌헨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협연한다. 이달 15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의 ‘스타즈 온 스테이지’에서는 ‘절친’ 피아니스트 임동혁과 호흡을 맞춘다. “뮌헨필과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해요. 선 굵고 진한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러시아 레퍼토리를 잘 소화하는 편인데, 게르기예프와 어떤 순간을 경험할지 기대가 큽니다.” 천천히 기량을 다져온 그의 단골 멘트는 “배울 게 많다”. 동료나 후배에게서도 본받을 점을 찾는다. 작은 음악적 배움이 큰 성장을 이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임동혁에게선 뜨거운 열정을, 피아니스트 김선욱에게선 전체를 직조하는 안목을 배우고 싶단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더운데 땀 뻘뻘 흘리며 옮겨 다닐 필요 없다. ‘카페+식당+갤러리+공연장+아카데미’가 한군데 있는 복합문화공간에 가면 된다. 이런 곳은 최근 도심에 흥미로운 공간 디자인과 뚜렷한 취향으로 무장하고 도심에 속속 들어서고 있다. ‘동네 문화 리조트’라고 할 수 있는 곳에 한번 들어가면 한나절은 훌쩍 지나간다. # 한남동 ‘사운즈 한남’, 복합문화공간의 끝판왕?“행인들이 지나가다가 ‘스윽’ 들어오도록 설계했습니다.” 건축가의 의도는 잘 맞아떨어진 듯했다. 9일 오전 찾은 서울 용산구 대사관로의 ‘사운즈 한남 어반 리조트’. 평일 오전임에도 생수통을 든 조깅복 차림의 외국인 여성, 유모차를 끌고 나온 ‘라테파파’, 정장 복장의 여성 등으로 북적댔다. 인스타그램 인증사진 폭발에 ‘힙스터’들이 줄 선다는 ‘뜨는 명소’다웠다. 조수용 카카오 공동대표가 세운 디자인·컨설팅 회사 ‘JOH’가 올해 4월 선보인 공간이다. 다섯 개의 건물에 JOH가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과 문화를 정성껏 담았다. 건물 1, 2층에 입점한 상점 상당수는 JOH가 운영하는 브랜드다. 한식당 ‘일호식’, 레스토랑 ‘세컨드키친’, 카페 ‘콰르텟’, 서점 ‘스틸북스’ 등이다. 가나아트센터의 전시관인 ‘가나아트 한남’, 세계 3대 경매사인 ‘필립스’의 한국사무소, 뷰티 브랜드 ‘이솝’, 안경점 ‘오르오르’, 꽃집 ‘브루니아 플라워’ 등도 있다. 건물 4개 층을 통째로 쓰는 ‘스틸북스’에선 저자나 명사를 초청해 강연도 종종 연다. 앞으로 앞마당 격인 중앙정원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곳에는 가족 단위 방문객도 많다. 중앙과 2층에 아담한 정원이 있는 데다 공간이 미로처럼 설계돼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 회현동 ‘피크닉’, 수준 높은 전시로 감성 충전 서울 중구 퇴계로6가길에 자리한 ‘피크닉’의 정문은 개방형 주차장이다. 주차장과 커다란 느티나무를 지나 내리막길을 따라가면 주황빛 건물이 나온다. 1970년대 지어진 제약회사 건물을 리모델링한 공간이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하는 방문객 상당수는 회현역 쪽 후문으로 들어온다. 전시기획사 글린트가 운영하는 피크닉의 공간 디자인은 지루하지 않다. 복도, 창문, 텃밭, 테라스, 루프톱, 지하 등이 결합돼 개미굴을 탐험하는 듯한 재미를 준다. 내부는 하얗게 단장하되 촌스러운 1970년대 일부 바닥재는 그대로 살렸다. 지하 1층∼지상 4층 건물엔 전시 공간, 카페 ‘피크닉’, 서래마을에서 옮겨온 레스토랑 ‘제로 콤플렉스’, 디자이너 상품을 판매하는 ‘키오스크×키오스크’가 자리한다.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작물을 키우는 텃밭과 루프톱 라운지도 있다. 하나로 이어진 기다란 테이블과 샹들리에가 인상적인 카페 피크닉은 오후 6시 이후엔 타파스 바인 ‘바 피크닉’으로 변신한다. 지하부터 루프톱까지 이어지는 전시관에서는 10월 14일까지 ‘류이치 사카모토: Life, Life’가 열린다. 음악가뿐 아니라 사회활동가인 그의 면모를 담은 기획전이다. 맨 위층에는 사카모토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 평창동 ‘수애뇨339’, 문턱 낮은 문화 사랑방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비탈길을 오르다 보면 눈부시게 하얀 건물이 나온다. 평창길 339에 자리한 문화예술공간 ‘수애뇨339’다. 종로에서 출생한 김창환 씨(79)가 가족과 20년 넘게 거주하던 곳이 동네 문화사랑방으로 변했다. 지난해 문을 연 이곳은 각지에서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명소가 됐다. 사실상 1층인 지하 1층 카페에 들어섰다. 북한산 자락이 훤히 내다보이는 전경에 한 번, 테이블 개념 없이 하나로 탁 트인 내부 공간에 또 한 번 설렜다. 수애뇨는 지하 1층과 지상 2층 등 모두 3개 층으로 이뤄졌다. 지하 1층엔 카페 겸 공연장, 1층엔 전시장, 2층엔 대관 가능한 모임 공간이 자리한다. 이곳의 시그너처 공간은 지하 1층의 ‘푹 꺼진 직사각형’이다. 바닥 면보다 45cm가 낮은 이곳에선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열린다. 운영은 김 씨의 4남매 중 세 딸이 맡고 있다. 악기를 전공한 첫째 딸과 막내딸이 공연을, 둘째 딸은 미술 전시를 기획한다. 공연은 매월 마지막 주에 열리고, 미술 기획전은 수시로 열린다. 이달에는 피아니스트 김재원이 이끄는 ‘클럽M’이 23일 무대에 선다. 수애뇨의 철학은 ‘문턱이 낮은 문화공간’. 커피와 샌드위치 먹으러 왔다가 격조 있는 예술을 만나는 공간을 꿈꾼다. 스페인어로 ‘꿈, 쉼’을 뜻하는 수애뇨(수에뇨)에서 쉬면서 꿈꾸고, 그러다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하는 게 김 씨 가족의 바람이다. # 한남동 ‘사유’, 가성비 갑 서울 용산구 한남동 ‘사유’는 무엇보다 가성비가 뛰어나다. 1층에서 음료를 주문하면 의상 편집숍인 2층을 제외한 모든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 5개 층은 콘셉트가 모두 다르다. 지하 1층은 새로운 브랜드를 소개하는 팝업스토어 겸 공연 공간, 1층은 클럽 분위기 카페, 2층은 의상 편집숍, 3층은 미디어아트 카페, 4층은 갤러리 카페, 5층은 루프톱이다. 지난해 8월 문을 연 사유는 전시와 공연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휴가철을 맞아 8월 12일까지 오키나와 관광청과 손잡고 ‘사유오키나와’를 선보인다. 3층 미디어아트 카페에선 오키나와 수족관 속 물고기 떼가 헤엄치고 있었고, 4층 갤러리 카페엔 관련 이미지가 걸려 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어느 날 아주 고급스러운 찻주전자를 선물 받았어요. ‘김정일’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더군요.” 이탈리아 지휘자 마르코 보에미(60·사진)가 호수 빛 눈동자를 반짝이며 오래전 기억을 꺼냈다. 그는 10년 전쯤 북한 평양에 다섯 번 다녀왔다. 인연은 한 통의 전화로부터 시작됐다. 자신을 주로마 북한대사관 직원이라 소개한 상대방은 완벽한 이탈리아어로 “중국 친구로부터 당신을 소개 받았다. 평양에서 마스터클래스를 맡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평창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평양에서 교류했던 음악인들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고 있다. 분단 상황이지만 평양과 가까운 서울에서 공연하게 돼 기쁘다”고 했다. 그는 8, 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서 서울콘서트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평양에 갈 때마다 그는 2, 3주씩 머물며 연주자들과 교류했다. 음대생이나 연주자, 평양교향악단과 호흡을 맞췄는데 기대 이상의 실력에 놀랐다고 한다. 특히 한 남성 피아니스트의 재능은 북한에 가둬두기 아까울 정도였단다. 하지만 성악가들은 노래에 감정을 담는 게 부족해 많은 지도를 필요로 했다. “당시 북한 성악가들의 연습 환경은 그리 좋지 않았어요. 악보 하나 없이 녹음테이프에 의지해 곡을 외워 부를 정도였죠. 그 모습이 안쓰러워 한번은 악보를 여러 장 구해다 줬는데, 누군가 ‘김정일 위원장이 악보를 살펴본 뒤 다시 돌려줬다’고 하더군요.” 4세 때 피아노를 시작한 보에미는 26세에 지휘자로 전향했다. 법학 박사학위를 받고 각종 스포츠를 섭렵한 자신을 ‘호기심 천국’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사랑의 묘약’ 첫 번째 공연은 한국인 성악가들과, 두 번째 공연은 이탈리아 성악가들과 무대에 오른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지구 전체가 폭염으로 들끓고 있다. 여행으로 뜨거워진 몸과 마음을 달래려는 이들도 늘고 있다. 갑자기 떠나고 싶을 땐 가까운 곳부터 찾는 경우가 많다. 한국 중국 일본, 동아시아 3국을 오가는 관광객이 연간 1500만 명을 넘는 이유다. 성수기 휴가철을 맞으면 ‘한중일 3국 관광대전’도 더욱 치열해진다.○ “비슷한 비용이면 일본” 서울에 사는 직장인 김지형 씨는 일본 여행만 20여 차례 다녀왔다. 10만 원 전후의 항공권으로 하루 이틀 동안 식도락을 즐기다 온다. 그는 “거리와 비용 면에서 일본은 국내 여행지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20대 중국인 직장인 판포 씨는 틈만 나면 여행정보 사이트 ‘마펑워(馬蜂窩)’에서 후기를 읽는다. 그는 “엔화 약세가 지속된 뒤로는 한국보다 일본을 선호한다. 같은 한자권 국가라 다니기도 훨씬 편하다”고 했다. 일본의 관광 경쟁력의 단면을 보여준다. 일본의 관광산업 성장세는 무서울 정도다. 지난 한 해 외국인 관광객이 3000만 명을 돌파했고, 올해엔 4000만 명에 근접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일본이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가장 큰 요인은 엔화 약세와 저비용항공사(LCC)의 노선 확대다. 2012년 초 100엔당 1500원 가까이 올랐던 엔화는 현재 1000원 정도다. 환율 요인만으로 50% 가격이 하락한 셈이다. LCC 노선 확대로 항공권 가격도 크게 내려 여행에서 가장 큰 변수 중 하나인 항공권 가격 부담이 크게 줄었다. ‘소확행’ ‘나홀로’ 등 여행 트렌드와 일본이 잘 맞아떨어진다는 의견도 있다. 일본의 소도시는 지역축제가 활발하고 노포(老鋪·대를 이어 운영되는 점포)가 많다. 오유라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원은 “일본은 지방마다 개성이 뚜렷하고 옛 정취가 잘 남아 있어 다양한 경험을 추구하는 요즘 여행 트렌드와 잘 맞는다”고 말했다. 한국과 중국 관광객 모두 ‘같은 가격이면 일본’이란 생각을 하지만 비교 대상은 다르다. 한국은 국내 여행과 비교하고, 중국은 한국 여행과 비교하는 경향을 띤다. 국내에선 오키나와와 제주, 강원도와 홋카이도를 놓고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중국의 해외여행을 주도하는 2030세대는 국내보다 한국과 일본 등 근거리 해외를 선호한다. 조홍준 한국관광공사 중국팀장은 “한국은 ‘한 번에 모두 둘러볼 수 있는 곳’이란 인상이 강한 반면 일본은 전 국토가 관광지라 중국관광객이 일본을 더 많이 찾을수록 방문지역이 확대되는 특성이 있다”고 말했다. ○ 한국과 일본의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 유치 경쟁 유커는 2014년 1억 명을 처음 돌파한 뒤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폭풍 성장한 유커는 한국으로 몰려들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방사선 피폭 우려 등이 가시지 않은 일본 대신 가깝고 안전하고 저렴한 한국을 택한 것이다. 유커 증가에 힘입어 한국은 2012년 ‘1000만 관광대국’ 문을 일본보다 먼저 열었다. 당시 방한한 외국인 관광객은 1114만 명으로 일본의 836만 명을 앞섰다. 하지만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갈등으로 인한 한한령(限韓令)으로 한국 관광은 직격탄을 맞았다. 그 사이 일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강력한 관광객 유치 정책 등에 힘입어 관광대국으로 발돋움했다. 5년 새 뒤바뀐 셈이다. 김현주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은 “관광산업은 쉽게 타격받고 회복도 빠르다. 특히 구전효과의 영향이 막강해 위기 상황이 해소되면 금세 수요를 회복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휴가와 방학을 맞은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다. 서울시는 민간 메이크업 업체와 협력해 ‘한류 스타 메이크업 클래스’를 월 2회 운영한다. 민간에서 운영하는 ‘소녀시대 메이크업 따라하기’류의 서비스에서 힌트를 얻어 무료로 메이크업 방법을 알려준다. 케이푸드 쿠킹클래스도 인기 있다. ‘CJ더키친’에서 열리는 ‘한류드라마 속 케이푸드 쿠킹클래스’에 참여하면 드라마에 나온 한국 음식 조리법을 영어로 배울 수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올해 6월 도쿄에서 한국관광페스티벌을 열고 새롭게 뜨는 국내 여행지를 홍보했다. 6월 일본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시작한 셔틀버스도 있다. 서울과 부산에서 강릉 평창 문경 등을 당일 왕복하며 일본어가 가능한 가이드가 동행한다. 공사 관계자는 “일부 지역에 편중된 관광객을 분산하기 위한 정책으로 반응이 좋은 편”이라고 했다. 도시와 지방 간 해외여행 격차가 큰 일본의 지방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백제 워킹 페스트’ 사업도 있다. 첫 해외 여행지는 한국으로 떠나자는 뜻으로 반응이 좋은 편이라고 한다.○ ‘일본의 2세대 한류 팬을 잡고, 사드 파고를 넘고’ 한한령 ‘펀치’를 맞고 휘청이던 한국 관광산업엔 최근 청신호가 켜졌다. 올 상반기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722만 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6.9% 늘었다. 케이팝에 빠진 일본의 2세대 한류 팬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지난해 동기 대비 18%나 늘어난 것이 주요인이다. 같은 기간 중국 관광객이 3.7% 줄어든 것과 대비된다. 지난 2년간 얼어붙은 한중 간 관광 교류는 해빙 조짐을 보이고 있다. 베이징(北京) 등 일부 지역에선 한국행 단체관광을 허용하고 있다. 개별 관광객도 늘어나는 추세를 보인다. 정부 입장과 달리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한국인 관광객 모객을 위한 마케팅 전쟁도 뜨겁다고 한다. 사드 보복에 대한 맞대응으로 주춤하던 한국인 관광객의 중국행도 늘고 있다. 베이징, 상하이(上海), 항저우(杭州), 쑤저우(蘇州) 등은 물론이고 중서부 내륙까지 방문 지역도 넓어졌다. 관광업계 관계자들은 근거리 관광 경쟁력의 핵심은 재방문율이라고 입을 모았다. 외국인 관광객의 발걸음은 서울 부산 제주에 집중돼 있다. 강원과 경기를 찾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서울 부산 제주 등 제한된 지역을 방문하고 돌아간다. 여행 목적과 국가별 관광객 구성의 편중도 해결해야 한다. 한국을 향한 여행 목적은 국적을 불문하고 쇼핑과 식도락에 집중돼 있다. 자연히 2030여성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찾는다. 관광객 구성도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심해 이번 사드 보복 사태를 맞아 관광산업 전체가 휘청거렸다. 전문가들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지역 관광 경쟁력 강화에서 찾는다. 지역 관광 상품을 발굴해 서울과 식도락·쇼핑 일색인 관광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이 오래전부터 지역 콘텐츠를 활용한 관광 상품을 개발한 것은 좋은 예다. 사이타마현의 애니메이션 명소 순례 프로그램과 야마구치현의 코난 미스터리 투어가 대표적이다. 중국인들의 해외여행도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인 관광객의 마음을 사려면 ‘주링허우(90後·1990년대 출생자)’, ‘링링허우(00後·2000년대 출생자)’ 등 신세대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누구보다 트렌드에 민감한 이들은 관광 책자보다 관광정보 사이트의 후기에 따라 여정을 짠다. 신세대가 관광에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유심히 살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지구 전체가 폭염으로 들끓고 있다. 여행으로 뜨거워진 몸과 마음을 달래려는 이들도 늘고 있다. 마음이 동해 갑자기 떠나고 싶을 땐 가까운 곳부터 찾게 되는 법. 한국 중국 일본, 동아시아 3국을 오가는 관광객이 연간 1500만 명이 넘는 이유다. 휴가철을 맞아 후끈 달아오른 ‘한중일 3국 관광대전’을 들여다봤다.● “비슷한 비용이면 일본” 사례 1. 서울에 사는 직장인 김지형 씨는 일본 여행만 20여 차례 다녀온 일본여행 마니아다. 10만 원 전후의 항공권을 이용해 하루 이틀간 식도락을 즐기곤 한다. 그는 “거리와 비용 면에서 일본은 국내 여행지처럼 느껴진다. 출국 수속이 다소 오래 걸리는 점을 제외하곤 국내 여행보다 멀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사례 2. 해외여행을 즐기는 20대 중국인 직장인 판포 씨는 틈만 나면 여행정보사이트 ‘마펑워’에 들어가 여행후기를 읽는다. 한국도 여러 차례 다녀왔으나 엔화 약세 현상이 이어진 뒤로는 일본을 선호한다. 그는 “한국이 더 가깝지만 비용이 비슷하면 일본을 선호한다. 같은 한자권 국가라 다니기에도 훨씬 편하다”고 했다. 현 시점에서 ‘관광 우등국’은 단연 일본이다. 일본의 관광산업 성장세는 눈부시다 못해 무서울 정도다. 지난해 연 방문 외국인 관광객 3000만 명을 돌파했고, 올해엔 4000만 명에 근접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일본이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가장 큰 요인은 엔화 약세와 저비용항공사(LCC)의 노선 확대가 꼽힌다. 2012년 초 100엔당 1500원 가까이 올랐던 엔화는 현재 1000원 정도다. 환율 요인만으로 50% 가격이 하락한 셈이다. LCC 노선 확대로 항공권 가격도 크게 내려 여행에서 가장 큰 변수 중 하나인 항공권 가격 부담이 크게 줄었다. 한국과 중국 관광객이 ‘같은 가격이면 일본’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비교 대상은 약간 다르다. 한국은 국내 여행과 비교하고, 중국은 한국 여행과 비교하는 경향을 띤다고 한다. 오유라 한국관광문화연구원 연구원은 “오키나와와 제주, 강원도와 홋카이도를 놓고 고민하는 국내 여행객이 많아졌다”고 했다. 반면 조홍준 한국관광공사 중국팀장은 “중국의 2030세대들은 국내보다 해외여행을 선호하는데 한국과 일본 두 곳을 놓고 비교한다”며 “한국은 한 번 다녀오면 또 갈 곳이 있나라는 인상이 강한 반면 일본은 전 국토가 관광지라 재방문하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일본의 소도시는 지역축제가 활발하고 노포가 많아 고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골목길 탐방으로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 한국과 일본의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 유치 경쟁 중국은 2014년 해외로 가는 관광객이 1억 명을 처음 돌파한 뒤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해외 각국의 유커 유치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한국과 일본은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이다. ’1000만 관광대국‘ 문은 2012년 한국이 먼저 열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중국 해외 관광객을 적극 끌어들인 결과다. 유커 수요에 힘입어 2012년 한국의 외국인 관광객이 1114만 명으로 일본의 836만 명을 앞섰다. 김현주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은 회복세가 상대적으로 빨랐고 일본은 동일본 대지진 등 악재가 잇따랐다. 해외여행에 눈뜬 중국인들이 가깝고 안전한 한국에 몰려 일본보다 먼저 외국인 관광객 1000만 명 고지에 올라섰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5년이 채 지나지 않아 상황은 역전됐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강력한 관광객 유치 정책이 흐름을 뒤바꿨다. 도쿄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까지 외국인 관광객 4000만 명 유치를 목표로 내걸고 각종 정책을 쏟아냈다. 한국이 중국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으로 단체관광이 금지된 반사이익까지 겹쳐 유커의 일본 관광은 날개를 달았다. ● ’일본의 2세대 한류 팬을 잡고, 사드 파고를 넘고‘ 한한령(限韓令·중국 내 한류 제한령) ’펀치‘를 맞고 휘청이던 한국 관광산업엔 최근 청신호가 켜졌다. 올 상반기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722만 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6.9%가 늘었다. 케이팝에 빠진 일본의 2세대 한류 팬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지난해 동기 대비 18%나 늘어난 것이 주요인이다. 같은 기간 중국인 관광객이 3.7% 줄어든 것과 대비된다. ’2030세대‘ 여성이 대부분인 한국 방문 일본 관광객들은 ’소녀시대 메이크업 따라하기‘, ’케이팝 명곡 녹음하기‘ 등 고가의 체험 프로그램에도 기꺼이 지갑을 연다는 후문이다. 이상우 관광공사 일본팀 차장은 “일본은 밖으로 나가는 관광 인원이 줄어들어 20대는 정부가 해외여행을 독려할 정도다. 한국으로 오는 관광객이 늘어난 것은 고무적”이라고 했다. 개별 관광객이 늘고 베이징(北京) 등 한국행 단체관광을 허용하는 지역도 늘고 있다. 사드 갈등의 여진이 가시지 않았지만 해빙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김현주 연구위원은 “관광산업은 쉽게 타격받고 회복도 빠르다. 특히 구전 효과가 막강해 위기 상황이 해소되면 금세 수요를 회복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사드 한한령 등으로 인한 감정의 앙금이 있어도 양국의 노력에 따라 반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드 보복에 대한 맞대응으로 주춤하던 한국인 관광객의 중국 방문도 늘고 있다. 베이징 상하이(上海) 항저우(杭州) 쑤저우(蘇州) 등은 물론 중서부 내륙까지 가는 관광객도 늘고 있다. ● 다시 오고 싶은 한국 만들려면 “근거리 관광 경쟁력의 핵심은 재방문율입니다. 재방문을 유도하려면 다양한 관광 상품 개발이 절실합니다.” 관광업계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강조했다. 외국인 관광객의 발걸음은 서울 부산 제주에 집중돼 있다. 강원과 경기를 찾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서울 부산 제주 등 제한된 지역을 방문하고 돌아간다. 일본과 중국 관광객 사이에선 “한국은 한 번 가면 충분하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여행 목적과 국가별 관광객 구성의 편중도 해결해야 한다. 한국을 향한 여행 목적은 국적 불문하고 쇼핑과 식도락에 집중돼 있다. 자연히 2030여성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찾는다. 관광객 구성도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심해 이번 사드 보복 사태를 맞아 관광산업 전체가 휘청거렸다. 전문가들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지역 강화에서 찾는다. 지역 관광 상품을 발굴해 서울과 식도락·쇼핑 일색인 관광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이 오래전부터 지역 콘텐츠를 활용한 관광 상품을 개발한 것은 좋은 예다. 사이타마현의 애니메이션 명소 순례 프로그램과 야마구치현의 코난미스터리 투어가 대표적이다. 이상우 차장은 “특색 있는 지역 스토리 발굴을 독려해 일본 관광객을 한국으로 유인하기 위한 ’코리아 퍼스트‘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해외여행 비율이 낮은 중국 시장은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중국 관광객의 마음을 사려면 ’주링허우‘(90後·1990년대 출생자), ’링링허우‘(00後·2000년대 출생자) 등 신세대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누구보다 트렌드에 민감한 이들은 관광 책자보다 관광정보 사이트의 후기에 따라 여정을 짠다. 신세대가 관광에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유심히 살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베토벤, 드뷔시, 스트라빈스키…. 다가올 공연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얼른 출근하고 싶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33·사진)은 이직을 앞두고 있다. 7년간 일한 프랑스 ‘페이드라루아르 국립오케스트라’ 악장에서 ‘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악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합격 통보를 받은 건 올 4월, 첫 출근일은 다음 달 24일이다. 그는 “11월 예정 공연까지 공부하고 있다”며 “‘끼인 시간’은 조금 이상하다. 빨리 단원들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변화를 앞두고 그는 긴장보다 설렘이 앞선다고 했다. 처음부터 여유로웠던 건 아니다. 그가 페이드라루아르 국립오케스트라 악장에 선발된 2011년. 지역에선 작은 소동이 일었다. 누군가 ‘꼭 동양인 여성을 악장 자리에 앉혀야 하느냐’며 항의한 사실이 지역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다. 그는 “첫 직장이라 모든 게 낯설었고 은근한 텃세도 겪었다. 이제는 유럽 어딜 가나 한국인 단원과 악장을 만날 수 있어 반갑고 기쁘다”고 했다. 모처럼 맞은 자유시간이지만 휴식은 없다. 밤낮으로 공연 곡의 총보를 끼고 현악기 활을 올릴지 내릴지 고민한다. 곡 해석이 막히면 여러 버전의 연주를 반복해 듣는다. 그래도 아리송하면 둘도 없는 음악적 동지에게 조언을 구한다. 페이드라루아르 국립오케스트라 악장이자 최근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악장으로 선발된 남편 쥘리앵 슐만(33)이다. “사내 커플이라 집에선 음악 이야기를 일부러 안 해요. 하지만 현대음악 초연 곡처럼 답이 없을 땐 슬그머니 이야기를 꺼내죠. 수다를 떨다 보면 어느 순간 실타래가 ‘탁’ 풀리거든요.” 그가 꼽은 악장의 장점은 연주자의 다양한 맛을 누릴 수 있다는 것. 당분간 악장 역할에 충실하면서 ‘트리오제이드’와 솔리스트 활동을 이어가는 게 목표다. 박지윤과 슐만은 다음 달 14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더 클래식: 바흐’로 국내 관객들과 만난다. 피아니스트 원재연도 함께하며, 2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등을 연주한다. 1만∼3만 원. 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