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환

정양환 부장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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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양환 기자입니다.

ray@donga.com

취재분야

2025-11-06~2025-12-06
칼럼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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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경제3%
국제인물3%
여행3%
  • [정양환 기자의 억지로 쓰는 문화수다]음흉한 늑대가 ‘父子有親’ 표상이라니…

    《문화적 소양 없다. 깊이나 식견도 결여.그저 ‘짬밥’이 좀 찼을 뿐.근데도 칼럼 쓰라 다그치는 데스크가 밉다.허나 어쩌랴, 뭔가 짜내 봐야지.그냥저냥 찔러보고 얼기설기 엮을 밖에.고해하노니 깜냥 확 떨어진다.무관심을 지향하는 어설픈 수다.》(동아일보 6월 14일자 A6면) “늑대다, 늑대가 나타났다!” 무섭다. 원래도 두려웠지만 요샌 정말 겁난다. 거짓이면, 그놈의 양치기 두들겨 패련다. 한 지인은 테러 공포에 해외휴가도 취소했다던가. 자생적 테러리스트를 일컫는 외로운 늑대(lone wolf). 그래, 잃을 거 없는 외톨이라니 더 찔끔할 수밖에. 헌데 외로운 늑대, 실은 피해자 입장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가해자들이 지들 멋있는 척 ‘×폼’ 잡으며 지었다. 1990년대 미국 백인우월주의자들이 혼자나 몇몇이 활동하는 폭력세력을 비호하며 처음 썼단다. 이런, 금수만도 못한 것들이. 진짜다. 늑대로선 무지 억울하다. 얘들은 마구잡이 폭력을 가하는 짐승이 아니란다. 국내 유일의 늑대 사파리가 있는 ‘대전오월드’ 동물관리팀장인 이일범 박사 얘길 들어보자. “늑대만큼 오해받는 동물도 없을 겁니다. 웬만하면 민가 쪽은 오지도 않아요. 러시아 샤라토프 늑대연구소에 따르면 굶주린 겨울에도 병들거나 노쇠한 가축만 건드립니다. 농민들은 ‘늑대가 (건강하게) 솎아준다’고 오히려 좋아해요. 현지에선 이로운 동물로 여길 정돕니다.” 어라, 이건 또 과한데. 테러범급은 아닐지언정 솔직히 이미지는 별로잖아. 옆자리 여성 동료도 “늑대? 징그러워”라며 인상을 구겼다. 쳇, ‘늑대의 유혹’ 강동원이나 ‘늑대소년’ 송중기라도 그렇더냐. 하여튼 높은 점수 주긴 힘들다. 늑대의 구린 이미지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우리도 ‘빨간 모자’ 같은 서양동화에 세뇌당했나. 야심 차게 동물민속학자인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에게 전화를 넣었다. “늑대는 민속학적으로 한반도에서 어떤 위상을 갖고 있나요?” “전 십이지(十二支) 전공이라 잘 모릅니다만.” 허걱. 그래도 관장님은 좋은 분. ‘한국문화 상징사전’이란 걸 소개해줬다. 여기에 보면 늑대는 다양한 면모를 지녔다. 확실히 늑대는 위험한 맹수다. 예로부터 험한 산세를 자주 ‘늑대고개’라 부른 건 이 때문일 터. 반면 유교에선 부자유친(父子有親)의 표상이기도 했다. ‘늑대는 3대가 가까이 지내며, 힘없는 할아비를 극진히 돌본다. 늑대는 가족 사랑이 크다.’ 하나 더. ‘늑대=호색한’ 이미지는 어디서 왔을까. 요건 일제강점기에 굳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엔 욕정에 사로잡힌 파계승을 늑대라 불렀던 풍습이 전해진다. 말은 부드러우나 속내는 흉악한, 겉과 속이 다른 이를 ‘법의(法衣) 걸친 늑대’라 했다. 이쯤에서 가설을 세워보자. 늑대는 피붙이를 중히 여긴다며? 그럼 외로운 늑대는 조악한 상상력의 산물이란 말인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늑대는 가족 유대감이 무척 강해요. 새끼들도 함께 보호하고 키우죠. 그런데 꼭 무리에 ‘왕따’가 한 마리씩 생겨요. 같이 생활하나 대우를 못 받는. 그놈들은 갈수록 식탐이 늘고 거칠어지죠.”(이 박사) 아, 이걸 어쩌나. 늑대나 인간이나. 따돌림은 만병의 근원인 것을. 그나저나, 쿠오바디스(Quo Vadis). 이 칼럼은 어디로 가나이까. 아우우우. 참, 누구(a.k.a. 임희윤)처럼 배경음악은 ‘에어울프’로.#01 Cairns & LeVay ‘Airwolf Themes’(1984년)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6-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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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송광고공사, 프레스센터를 돈벌이 수단 삼지말라”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 위치한 한국프레스센터의 관리 문제 등을 둘러싸고 한국언론진흥재단(언론재단) 등 언론단체와 한국방송광고공사(코바코)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한국신문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등 11개 언론단체는 8일 공동성명을 내고 “코바코는 한국프레스센터를 관리 운영하는 언론재단에 임대료와 관리운영권을 내놓으라는 주장을 즉각 철회하라”며 “코바코는 한국 언론의 공익시설인 한국프레스센터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지 말라”고 밝혔다. 코바코는 지난달 28일 언론재단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관리권 관련 부당이익금(157억여 원) 반환’을 청구하는 민사조정을 신청한 바 있다. 1985년 공익자금으로 건립된 한국프레스센터는 현재 코바코와 서울신문이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언론단체들은 “1984년 당시 코바코가 직접 작성한 ‘한국언론회관(한국프레스센터) 운영계획’엔 언론재단이 한국프레스센터를 관리 운영하도록 명시돼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프레스센터 관련 갈등은 2012년 미디어렙법이 제정돼 코바코가 무자본 특수법인에서 주식회사형 공기업(공영미디어렙)으로 바뀌면서 비롯됐다. 이때 ‘(한국프레스센터와 남한강수련원 등) 코바코 소유 자산 관리권은 방송통신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 기획재정부가 협의해서 결정하라’고 명시했다. 이후 언론계는 한국프레스센터 등의 언론계 환원을 촉구해 왔으나 3개 부처가 2013년까지도 해법 마련에 실패했다. 언론재단 경영기획실은 “코바코가 같은 해 12월 언론재단에 한국프레스센터 관리위탁 계약의 해지를 통보한 뒤 언론재단의 무단 점유를 주장하고 나섰다”며 “2015년 위탁수수료 납부 등 협의안을 제시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코바코 측은 “한국프레스센터 관리와 세금 납부로 연간 30억 원을 부담하는데 언론재단은 9개 층을 무상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국회 국정감사나 정부 감사에서 이 문제가 계속 지적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 같은 분쟁이 최근 몇 년간 코바코의 경영 상황이 악화되면서 한국프레스센터 수익을 통해 손실을 줄이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언론단체 관계자는 “코바코가 정상적인 자구책은 마련하지 않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경영난을 타개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안민호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한국프레스센터는 국민의 세금으로 저널리즘이라는 공익을 목적으로 세워진 공익 자산”이라며 “정부는 산하 공공기관들이 다투도록 내버려둘 게 아니라 직접 나서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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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라인의 신종인류… 넷카마를 조심하라

    《 “내공(등급점수) 100 겁니다. ‘넷카마’ 구별법 좀 알려주세요.” (N 포털사이트에서) 넷카마? 얼핏 무슨 말인지 짐작도 안 가는 이 용어가 최근 사이버공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넷카마란 ‘온라인이나 모바일에서 여성인 척 활동하는 남성’을 일컫는 은어. 인터넷의 넷과 여장을 즐기는 남성을 일컫는 일본어 오카마(おかま)를 합쳐 만들었다. 초기엔 소수 취향의 독특한 문화로 가벼이 여겨졌으나, 최근엔 이를 악용해 금품을 갈취하는 범죄행위까지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한 포털사이트에는 ‘넷카마 주의보’ ‘넷카마 대처법’ 등 관련 글이 현재 1600건이 넘게 올라와 있다. “애교 가득한 말투에 속아 게임머니(현금화가 가능한 가상화폐)를 숱하게 잃었다” “금전이나 노출 등 지나친 요구를 하면 일단 의심해 보라”며 피해를 호소한 누리꾼이 많다. 얼마 전 인터넷방송계에서 시끌시끌했던 ‘H의 넷카마 방송’은 이런 문화의 심각성을 드러낸 대표적 사례다. 여성스러운 목소리를 지닌 한 인기 남성 BJ(인터넷방송 개인운영자)가 주로 중년 남성을 대상으로 20대 젊은 여성인 척하며 사기를 치는 내용이다. 온갖 외설스러운 행태를 요구하는가 하면, 별풍선(유료 아이템) 등 상당한 금전적 이득도 취했다. 게다가 이런 방송을 ‘딸 있는 멍청한 유부남 꼬드기기’ ‘XX 유부남 가정 파탄내기’ 등 자극적 제목을 달아 또 다른 방송에 내보내기까지 했다. 당시 대화 창에는 청소년, 심지어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누리꾼들도 들어와 감상 평을 쏟아냈다. ‘H의…’는 선정적이란 이유로 방송정지를 당했지만, 영상은 여전히 유튜브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꼭 금품 갈취가 아니라도 넷카마는 현행법을 어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 ‘△△△ 노출녀’로 유명해진 A 씨(26)는 실제로는 한 부대에서 근무하던 남성 직업군인으로 밝혀져 큰 충격을 줬다. 20대 여성이라며 아름다운 여성 사진을 걸어놓아 숱한 남성의 관심을 모으며 한때 팔로어가 1만6000여 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점점 수위가 세지더니 적나라한 사진을 마구 올리다 결국 음란물 유포,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 관계자는 “A 씨는 갈수록 커지는 누리꾼들의 관심에 도취해 나중엔 멈출 수가 없었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일부 넷카마의 삐뚤어진 행태는 자기만족 차원에서 넷카마로 활동하던 이들에게도 역피해를 주고 있다. 한모 씨(22)는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남성 중심적인 세태가 싫어서 넷카마가 된 경우. 그는 성소수자도 아니고 외설적인 취미도 없다. 하지만 한 씨는 “남성 누리꾼들의 욕설과 음담패설, 편향적인 시각이 싫어서 넷카마로 변신했다”며 “하지만 최근 넷카마 논란이 커지며 일방적으로 범죄 집단으로 매도되는 게 억울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비정상적인 넷카마의 출현을 원초적인 애정결핍과 사이버 시대가 빚어낸 관음증적 욕망이 결합한 결과라고 분석하고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칭찬에 인색한 경쟁사회다 보니 익명성이 보장된 공간에서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에 그치지 않고 타인을 속이는 기만행위로 확장된다는 데 있다. 연세대 의대의 남궁기 교수는 “자신의 정체는 감춘 채 상대의 반응을 살피는 일종의 관음증적 경향”이라면서 “타인을 속이며 얻는 쾌감을 제어하지 못하다 범죄로 빠져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양환 ray@donga.com·이지훈 기자}

    • 201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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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글의 청순녀 vs 섬뜩한 악녀’ 뭐가 됐든 끌려

    지난달 29일 선보인 영화 ‘레전드 오브 타잔’. 극장을 찾은 관객이라면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묘한 기운을 마주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영적 체험은 예고편부터 본편으로 이어진다. 그렇다, 배우 마고 로비 얘기다. ‘레전드 오브 타잔’은 워너브러더스코리아가 배급사. ‘수어사이드 스쿼드’(다음 달 4일 개봉)도 같은 회사니 예고편 트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이 두 작품, 여주인공이 같다. 그래, 다시 말하지만 마고 로비다. 같은 배운데 역할은 극을 달린다. ‘레전드…’에선 타잔의 영원한 그녀 제인 역을 맡았다. 청순하나 야무지고, 고전적인데 산뜻하다. 반면 ‘수어사이드…’에선 배트맨 숙적인 조커의 연인 ‘돌+아이’ 할리퀸으로 분했다. 섬뜩한데 매혹적이고, 괴기하나 짜릿하다. 최근 세계에서 가장 핫한 여배우로 주목받는 그는 어떻게 이런 야누스적 매력을 뿜어낼 수 있었을까. 겨우 26세 나이에. 그녀라면 언제든 대화할 준비를 갖춘 김봉석 영화평론가와 ‘지극히 사심 가득한’ 인물 상찬(賞讚)을 벌여봤다. ▽정양환=일단 한마디. 그녀는 정말 예쁘다(feat. 여보, 사랑해). ▽김봉석=이런 여배우가 있었나 싶다. 성숙한 매력이 차고 넘치는데, 이웃집 소녀 같은 친근함도 지녔다. ▽정=옆집에? 설마. 호주에서 태어나 마침 데뷔는 2010년 자국 드라마 ‘네이버스(이웃들)’. 처음 맡은 역이 자유로운 영혼의 양성애자였단다. ▽김=빵 뜬 건 2014년 국내에 개봉한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부터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첫사랑 나오미로 나왔지. 비중 없는 역할인데 보는 이의 눈을 사로잡았다. ▽정=올 누드 연기 탓인가. 뉴욕타임스(NYT)와 만나 “정말 싫었지만 마틴 스코세이지 영화인데 누가 몸을 사리냐”며 요즘 한국 유행어로 반문했더라. ‘뭣이 중헌디(What outweighs what?)’라고. ▽김=자신의 가치를 올릴 줄 아는 영리한 배우다. ‘레전드…’를 봐도 그렇다. 원래 타잔에서 제인은 ‘민폐녀’다. 위험할 때마다 타잔이 구해줘야 하는. 허나 마고의 제인은 달랐다. 진취적 에너지가 가득하다. 타잔보다 더 인상적이다. ▽정=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도 “밋밋한 영화에서 단 하나의 볼거리”라고 했더라. 연기력도 “(호주 출신인데) 미국 영국 발음이 자유자재”라며 칭찬했다. 우리로 치면 전라도 태생이 경상 제주 사투리까지 능청스레 하는 거지. ▽김=‘수어사이드…’도 마찬가지다. 사실 할리퀸은 DC코믹스의 메인 캐릭터가 아니다. 지적인 박사였다가 조커에게 현혹당해 미치광이로 변하는 주변인물이다. 그런데 예고편만으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요즘 먹히는 ‘걸 크러시(girl crush·동성인 여성도 반하는 이미지)’를 제대로 구현해냈다. ▽정=동일 인물 맞나 싶다. 일각에선 그의 등장으로 ‘할리우드 1990년생 4대 천왕’이 완성됐다고 하더라. ‘헝거 게임’ 제니퍼 로런스와 ‘해리 포터’ 에마 왓슨, ‘트와일라잇’ 크리스틴 스튜어트. 그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김=허나 제대로 4대 천왕이 되려면 ‘수어사이드…’의 성패가 매우 중요하겠다. 3명은 영화사에 남을 초대박 시리즈를 남겼다. 할리퀸 단독 영화도 나온다던데 지켜볼 필요가 있다. ▽정=미 연예잡지를 훑어보니 셋은 자산이 7000만 달러(약 808억 원) 안팎이다. 시리즈 마지막 출연료는 편당 1250만∼1500만 달러. 로비는 순자산 800만 달러에, 아직 편당 100만 달러 아래라더라. 그것도 우린 후들거리지만. 곧 그녀도 그 반열로 가겠지? ▽김=다만 다소 진지한 성격이 걸린다. 지금도 사치스러운 삶은 싫다며 친구 넷이랑 런던의 작은 아파트에서 살더라. 털털해서 더 좋긴 한데, 왠지 톱스타의 행보를 거부하는 듯. ▽정=NYT 인터뷰에서도 “스턴트맨이 꿈이었지만 시간을 되돌릴 순 없다”고 말했다. 다음 작품은 직접 프로덕션을 차려 ‘토냐 하딩’을 연기한단다. 1990년대 인기 피겨스케이팅 선수였다가 라이벌 폭행을 사주했던 ‘은반의 악녀’ 말이다. 참 유별난 행보다. 잘되면 오스카도 거머쥔 로런스처럼 되지 않겠나. ▽김=두고 보면 알겠지. 현재 가장 눈에 띄는 ‘모든 걸 갖춘’ 배우임은 확실하다. ▽정=물 떠놓고 치성이라도 드릴까. ▽김=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게 연예인 걱정이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6-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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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맨 인 컬처]음모론보다 더 무서운건, 음모론이 통하는 사회신뢰의 균열

    《 에이전트5(김윤종 기자)가 ‘사라졌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비상사태가 벌어졌다. 최신 워키토키는 “앞으로 함께할 수…”에서 끊긴 채 먹통. 그렇게 말렸건만. 머나먼 행성 ‘망원동’(이름마저 멀어 보인다!) 탐사를 떠나더니. 에이전트41(김배중)은 은하계 CGV에서 겪었던 수많은 외계 생명체가 떠올라 식은땀이 흘렀다. 이대로 넋 놓고 있을 수는 없을 터. 에이전트41은 ‘콘클라베’를 소집했다. 숙취로 장기휴업 중이던 에이전트7(임희윤)도 참석했다. 게다가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에이전트2(정양환)와 23(이서현), 31(장선희)까지. 오랜 탁상공론 끝에,드디어 굴뚝에 연기를 피워 올렸다. “우리는 에이전트5가 알 수 없는 세력의 공격을 받았음을 천명….” 그런데 갑자기 까똑 까똑. 휴대전화를 울리는 긴급 알림 메시지. ‘배우 A 씨, 가수 B 씨와 한강에서 치맥 즐겨.’ 뭐야, 에이전트5의 실종은 이대로 묻히는 건가. 끄응, 에이전트2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음모야….” 》○ 음모론, 그 달콤 쌉싸래한 유혹 지구 한반도라는 땅에서 음모론은 더이상 음모가 아니다. 상당수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 최근엔 쉴 새 없이 터지는 연예계 사건 사고가 더욱 부채질했다. 수많은 누리꾼이 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을 정도. 대표적인 것만 봐도 아래와 같다. ① 가수 조영남의 대작(代作) 논란=직전에 터진 어버이연합 배후 지원설 묻힘. ② 박유천 성폭행 논란(지난달 10일)=△정부의 전기 가스 단계적 민영화 암시(14일) △방위사업청 KF-16 개량 사업비 100억 원 손실(16일) △존 리 전 옥시 대표 영장 기각(17일) ③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 불륜설(지난달 21일)=△정부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같은 날) △검찰 정운호 게이트 전관예우 없음 결론(20일 발표) 심지어 지난달 26일 안타깝게 저세상으로 떠난 배우 김성민에 대한 뉴스마저 음모론으로 보는 시각까지 등장했다. 허나 이는 에이전트들의 양심상 다루지 않겠다. 설문조사 결과는 더욱 충격이었다. 조사업체 엠브레인의 도움을 얻어 지난달 24일부터 나흘간 20∼50세 남녀 200명씩 400명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표 참조). 응답자 가운데 무려 74.5%가 음모론을 ‘사실이라고 믿는다’고 대답했다. 특히 남성(66.5%)보다 여성(82.5%)들의 확신이 컸다. 연령별로는 20대(68%), 50대(67%)보다 30대(80%)와 40대(83%)가 더 음모론을 믿는 경향이 컸다. 알 만한 사람들이…. 도대체 이들은 왜 이리도 경도된 것일까. 지나가던 지구인 하나를 붙잡고 따져봤다. “박유천이나 김민희 사건을 봐요. 포털사이트에 수많은 관련 기사가 쏟아지며 다른 이슈는 눈에 들어오지 않잖아요. 게다가 방송 메인 뉴스마저 대문짝만 하게 다루니 ‘뭔가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들죠. 평소 연예 기사에 이렇게 오버했던가요? 한번 묻힌 다른 사건을 따로 검색해서 찾아볼 사람은 많지 않거든요.”(20대 대학원생 송모 씨) ○ 음모론은 사회적 불신이 빚어낸 현상 사실 지구에 음모론이 뿌리내린 지는 오래됐다. 해외 요원들에 따르면 1962년에 대표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할리우드 스타 메릴린 먼로가 사망했을 때 미 중앙정보국(CIA) 개입설이 파다했다. CIA 내부 비밀 폭로를 덮기 위해 그의 죽음을 이용했다는 루머다. 국내에서도 2011년 가수 서태지의 결혼 및 이혼 보도는 BBK 비리 의혹과 맞물렸고, 지난해 한류스타 배용준의 결혼식은 고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사건과 시기가 겹쳤다. 하지만 왜 루머 수준이었던 음모론은 갈수록 힘을 얻고 있을까. 지구인 전문가들은 이를 사회적 신뢰에 균열이 생긴 징후라고 입을 모았다. “이 사회에 깊숙이 침투한 ‘진영 정치’가 음모론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끼리끼리 어울리며 보고 싶은 면만 보는 문화가 형성된 거죠. 사회적 신뢰가 바닥에 떨어지니 주위 사람에게서 얻는 정보만 믿는 겁니다.”(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공적 제도에 대한 신뢰가 근본부터 무너졌습니다. 정부 등 권력기관이 특정 사건이나 현안에 대해 명쾌한 결론을 보여주지 못하는 게 원인이라고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그들만큼 사회적 ‘영향력’은 있지만 ‘권력’은 없는 연예인으로 쉽게 눈을 돌리는 거죠.”(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음모론은 실체가 없다. 허나 현실을 좀먹는 힘은 강력하다. 어쩌면 음모론은 뭐 하나 속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는 세태를 향한 소리 없는 울분의 표출은 아닐는지. 그나저나 에이전트5는 그의 부재가 쏟아지는 기사에 묻혀버린 건 알고 있을까. 하지만 상념도 잠시. 콘클라베가 끝난 뒤 귀환하던 요원들은 뭔가 묘한 기운을 내뿜는 빛줄기에 눈살을 찌푸리는데….(다음 회에 계속) 정양환 ray@donga.com·김배중 기자}

    • 201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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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굳건히 유지했던 석학의 삶

    자, 솔직해지자. 이 책은 볼 사람만 볼 책이다. ‘사랑의 기술’ ‘자유로부터의 도피’ ‘소유나 존재냐’…. 에리히 프롬(1900∼1980)의 수많은 명저를 좋아한다면 흔쾌히 집어들 터. 허나 누군지 관심 없거나 그의 책을 어릴 적 교양필수서적으로 억지로 읽었다면…. 과감히 지나가시라. 그래도 오해는 풀고 가자. 이 책,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좀 과장하면 프롬 책보다 쉽다. 세계적 석학의 잠언은 아무래도 몽롱해지기 마련. 허나 평전은 소설가인 옮긴이 덕분인지, 꼼꼼하게 추적한 지은이 덕분인지 말끔하고 순탄하게 읽히는 맛을 지녔다. 게다가 프롬은 그의 저작만큼 생애도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사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비관이나 절망에 빠지기 쉬운 시기였다. 20세기 초 독일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히틀러와 세계대전을 목도했고, 냉전시대 핵 위협과 혼탁한 자본주의도 겪었다. 게다가 가정 환경과 독특한 사상 때문에 프롬은 저자가 “감정의 삼각형”이라 불렀던 두 꼭짓점에 우울과 소외를 크게 간직하고 있었다. 그의 저작들에서 왠지 모를 쓸쓸함이 묻어났던 건 이런 연유였을 개연성이 높다. 허나 프롬은 또 하나의 꼭짓점에 ‘활기’를 지녔기에 중심축을 바로 세웠다. 다소 조증(躁症)의 경향을 보이기도 했지만 “때로는 신중함 따위는 던져버리고 활기찬 존재의 상태를 유지하는” 에너지로 인간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유지했다. 그의 다양한 학문적 세계관이 결국 ‘사랑’으로 귀결됐던 건 인본주의에 대한 희망을 놓치지 않았던 활기 때문이 아닐는지. “인간 실존의 모든 고난에 단 하나의 만족할 만한 대답은 바로 사랑이다.” 이젠 감정이 메말랐단 표현도 진부해졌지만 ‘All you need is love’(비틀스·1967년)를 어찌 부정하겠나.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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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현 前수석-김시곤 KBS 前보도국장 세월호 보도관련 녹취록 공개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이정현 당시 대통령홍보수석(현 새누리당 의원)이 김시곤 KBS 보도국장(현 KBS방송문화연구소 근무)에게 전화를 걸어 뉴스의 수정이나 삭제를 요청하는 녹취파일이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과 민주언론시민연합 등은 3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녹취파일을 공개한 뒤 “당시 청와대가 KBS 보도에 직접 개입한 증거”라며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주장했다. 이날 공개된 파일은 2014년 4월 21일과 30일 오후 9∼10시경 두 사람이 통화한 내용을 담고 있다. 공개된 분량은 각각 7분 24초와 4분 29초. 이 홍보수석은 “지금 이런 시점에서 정부와 해경을 두들겨 패서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겠냐”며 KBS의 해경 비판 논조에 대한 불만을 나타났다. 특히 “하필이면 (대통령이) KBS를 오늘 봤다”며 “너무 어렵다. 한 번만 도와 달라”고 말했다. 이 홍보수석은 또 “(KBS 보도가) 과장이 심하다. 앞으로 정부를 비난할 시간이 있을 테니 지금 며칠만 기다려 달라”, “(보도를) 아예 그냥 다른 걸로 대체를 해주든지 아니면 한 번만 다시 찍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 녹취록은 김 전 국장 측이 언론노조 등에 공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주언 전 KBS 이사는 “김 전 국장의 허락을 받아 이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김 국장은 세월호 희생자를 교통사고 피해자에 비유해 논란을 불렀으며 이후 “길환영 사장이 청와대의 뜻이라며 (내게) 사표를 종용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한편 KBS 관계자는 “녹취록은 양자간에 벌어진 일이라 회사 차원에서 언급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파일 공개 논란은) 이유를 막론하고 내 불찰”이라며 “해경이 주축이 돼 한 생명이라도 구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선(先)구조 후(後)조치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는 간절한 호소였는데 지금 와서 보니 지나쳤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그는 “김 전 국장과는 평소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 격식 없이 통화하고 지내던 사이였다”고 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이서현·강경석 기자}

    • 201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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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뮤지컬]“영화 팬도 뮤지컬 팬도 모두 모두 모여라”

    최근 한국 영화계는 솔직히 영화제가 차고 넘친다. 전국 곳곳에서 크고 작은 영화제가 100개 이상 열린다. 새로운 영화제 소식을 들어도 심드렁한 게 당연지사. 하지만 다음 달 6일 개막하는 ‘제1회 충무로뮤지컬영화제’는 눈여겨봐도 좋을 만하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뮤지컬영화를 테마로 삼은 신선함을 갖춘 데다 지난해 프리페스티벌을 거치며 관객 1만여 명을 끌어들여 충분한 검증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11일까지 충무아트센터를 비롯해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명동예술극장 야외광장 등 서울 중구 일대에서 열리는 이번 영화제는 사실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적잖았다. 음악영화도 아니고 뮤지컬영화로 한정 지으면 장기적으로 작품 선정도 녹록지 않을 거란 우려였다. 하지만 충무로뮤지컬영화제가 차린 밥상을 들여다보면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 “뮤지컬영화란 장르적 국한이 아닌 영화와 뮤지컬의 다양한 조우”라는 김홍준 예술감독의 말처럼, 오히려 영화 팬과 뮤지컬 팬을 모두 끌어들일 수 있는 외연의 확장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총 10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영화제는 ‘라스트 파이브 이어즈’ ‘메이드 인 헝가리’ 등 다양한 뮤지컬영화와 ‘볼쇼이 바빌론’ ‘오디션’ 등 뮤지컬 관련 다큐멘터리를 망라해 29편의 영화를 마련했다. 그 가운데 ‘트윈 픽스(twin picks)’와 ‘충무로 리와인드’는 영화제 취지에 걸맞게 영화와 뮤지컬의 마리아주(mariage·결합 혹은 결혼)’가 돋보이는 섹션이다. 트윈 픽스는 같은 뮤지컬을 영화와 공연실황으로 둘 다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국내에서도 많은 팬을 거느린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는 1973년 노먼 주이슨 감독의 영화와 2012년 영국에서 펼쳐진 공연실황으로 만날 수 있다. 특히 공연실황은 원작자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제작 40주년을 맞아 다시 한번 연출로 참여했다. 역시 인기 뮤지컬인 ‘빌리 엘리어트’도 2000년 영화와 2014년 공연실황을 모두 상영한다. 충무로 리와인드도 인상적이다. 1956년 한국 뮤지컬영화의 시조로 꼽히는 ‘청춘쌍곡선’은 영화도 보고 이를 재해석한 뮤지컬쇼도 함께 선보인다. 1934년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 변사 공연, 사운드가 소실된 1957년 작 ‘이국정원’의 라이브 더빙 쇼도 기대가 크다. 영화제를 열고 닫을 개막작과 폐막작으로는 스페인 출신 거장인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의 ‘아르헨티나’(2015년)와 퀸시 존스가 음악 감독을 맡았던 ‘마법사’(1978년)가 관객들을 맞이한다. 아르헨티나 음악의 풍부하고 미세한 선율을 감상하고, 영원한 슈퍼스타 마이클 잭슨과 다이애나 로스를 스크린으로 만날 기회는 놓치면 아쉽다. 02-2230-6666∼9, 홈페이지 chimff.co.kr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6-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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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점령지 팔레스타인, 그곳에도 일상은 흐른다

    어라? 이 책은 첫 장을 여는 순간 당황스러움이 몰려온다. 머리말 목차도 없이 곧장 본문으로 들어가다니. 허나 잠깐 낯섦을 견디고 페이지를 넘겨보시라. 저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 진짜 검(劍)은 미사여구가 오히려 거치적거리는 법. 꺼내 보면 아니까. 이 책은 제목처럼 인권변호사인 저자가 조국 팔레스타인의 생활을 써내려간 일기다. 때문에 다소 신변잡기적인 대목이 많은데, 이게 훨씬 더 강렬하다. 그저 인상 평가에 그쳤던 팔레스타인의 속살을 날것 그대로 마주할 수 있다. 뭣보다 인상적인 건 여기도 사람 사는 데란 걸 느끼는 순간이다. 열정 넘치는 젊은이부터 성실한 직장인까지 여러 군상이 ‘일상’을 영위한다. 허구한 날 테러가 끊이지 않아 공포만이 가득할 거란 외부의 편견을 비웃기라도 하듯. 하긴 서울에서 멀지 않은 땅에 철조망이 길게 드리워진 우리네 삶을 떠올리면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허나 그 일상 속에 잘금잘금 묻어나는 ‘점령지’의 고단함은 그 어떤 유혈낭자함보다 참혹하다. 약속에 늦지 않으려면 검문소를 피할 우회로를 알아둬야 하는 인생. 그건 삶의 지혜가 주는 편리함이 아닌 절망이 주는 익숙함일 뿐. 그런 상처 속에서도 희망이란 꽃을 품고 사는 이의 얘기를 어찌 허투루 넘길 수 있을까. 담담해서 더 아린 그들의 아픔을.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6-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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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닥치고 파괴-엉성한 줄거리… 20년전 1편 빼다 박아

    20년 만에 돌아온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22일 개봉). 어떠냐고 묻는다면 답은 간명하다. “1편이 좋았다면 2편도 재밌게 보실 거예요.” 1996년 첫 편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느닷없이 외계인이 백악관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같은 미국의 상징을 깡그리 때려 부수다니. 전 세계에서 8억 달러(현재 환율로 약 9200억 원)가 넘는 수익을 거둔 게 ‘아메리카 초토화’에 열광한 반미(反美)주의자들 덕분이란 농담도 돌았다. 국내서도 92만여 명(서울 기준)이 관람하며 그해 흥행 1위에 올랐다. 욕도 먹었다. 부수는 거 말곤 줄거리가 앙상했다. 이음새가 헐렁한 건 둘째. 대통령이 전투기 몰고 외계인이랑 싸우니 말 다했지 뭐. 주제는 ‘람보’보다 더한 ‘팍스아메리카나’. ‘광고가 본편보다 낫다’고도 했다. 그런 뜻에서 2편은 놀랍다. “이렇게 닮을 수가!” ‘활동 재개(resurgence)’란 부제처럼 그 모습 그대로 돌아왔다. 쌍권총 카우보이가 차림새는 똑같은데 광선총을 쏘는 차이랄까. 줄거리도 엇비슷하다. 스무 해 전 외계인이 또 찾아왔다. 역시 다 때려죽이고 정복하려고. 물론 당시 습득한 외계 기술을 바탕으로 지구도 상당한 준비 태세. 허나 다 소용없다. 속편답게 더 크고 더 센 놈들이 왔으니.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지구. 또 여기저기서 영웅들이 기어 나온다. 혹평이 많지만 흥행에는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1편을 즐겼던 이들이 좋아할 ‘레시피’ 그대로 만들었으니. ‘투모로우’(2004년) ‘2012’(2009년)를 연출한 독일 출신 롤란트 에머리히 감독의 파괴 본능도 여전하다. 좀 엉성하면 어때, 주구장창 신나게 갈기는데. 농담 슬쩍 섞어주다 가족이 최고라고 몇 번 되새긴다. 그렇게 큰 우주선 몰고 와서 외계인 여왕은 왜 홀로 내려 싸우는지 따지지 말자. 타깃도 명확하다. ‘1편 본 분들 다시 오세요’다. 상당수 출연진이 다시 나오는 데다(윌 스미스는 사진만 등장), 전편을 안 봤으면 이해 못할 대화가 오간다. 살짝 안쓰러운 대목도 있다. 전편에서는 무조건 자기들(미국)만 최고라더니 이젠 중국도 ‘따봉’이란다. 우주전투기를 모는 절세미녀(앤절라 베이비)에 달 방어기지 대장도 중국인이다. 달에서 마시는 우유조차 ‘메이드 인 차이나’.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2014년)만큼은 아니지만 중국을 향한 읍소가 짙게 배어 있다. 그래, 자존심이 어디 밥 먹여주나. ★★☆(별 5개 만점)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6-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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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컬 ‘해밀턴’ 토니상 휩쓸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가 브로드웨이의 영광을 온몸으로 거머쥐다.” 미국 10달러 지폐에도 얼굴이 실린 정치가 알렉산더 해밀턴(1755∼1804)을 다룬 뮤지컬 ‘해밀턴’이 제70회 토니상을 휩쓸었다. 12일(현지 시간) 뉴욕 비컨극장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뮤지컬 부문 최우수작품상과 남우주연상 등을 받으며 11관왕에 올랐다. ‘해밀턴’의 완승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지난해 8월 막을 올린 뒤 줄곧 매진 행렬을 이어간 최고 인기 작품이기 때문. 암표는 물론이고 위조 표까지 나왔을 정도다. 자칫 고루할 수 있는 역사물을 강렬하고 산뜻한 힙합으로 풀어내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지난달 동아일보가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한국에 들여오고 싶은 해외 뮤지컬’ 2위를 차지했다. 역대 최다인 1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기대됐던 최다 부문 수상은 실패로 돌아갔다. 여우주연상 등을 놓치며 타이기록 달성도 이루지 못했다. 2001년을 강타했던 뮤지컬 ‘프로듀서스’가 세운 12관왕이 역대 최다 수상이다. 70회를 맞아 흥겨운 축제가 됐어야 할 시상식 분위기는 무거웠다. 같은 날 새벽 올랜도에서 벌어진 총기 테러 참극의 슬픔이 무대를 짓눌렀다. 시상식에 참가한 이들은 모두 가슴에 회색 리본을 달고 조의를 표했다. 사회 분위기를 고려해 ‘해밀턴’ 축하 공연도 원래 극에서 주요하게 쓰이는 소총 소품을 아예 빼고 진행했다. 시상식을 진행한 배우 제임스 코든은 개막 무대에 올라 “잔혹한 참사를 당한 모든 이에게 우리의 마음을 보낸다”며 위로를 표했다. 연극 부문에서는 추수감사절에 모인 평범한 미 중산층 가족의 속내를 들여다본 작품 ‘더 휴먼스’가 최우수작품상 등 4관왕에 올랐다. 1976년 영화 ‘킹콩’의 여주인공으로 데뷔한 원로배우 제시카 랭(76)은 유진 오닐의 극본으로 유명한 연극 ‘밤으로의 긴 여로’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랭은 2번의 오스카상을 비롯해 숱한 에미상과 골든글로브상을 받았지만 토니는 이번이 처음이다. 랭은 “마침내 오랜 꿈이 이뤄졌지만 이렇게 슬픈 날 큰 행복이 찾아왔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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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쿨쿨… 쪽쪽… 안방이 아닙니다

    “아니, 젊은 놈이 어디서 계속 담배질이야?” 길거리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지난달 초 서울 종로구의 한 영화관. 20대 청춘의 방황을 그린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서 A 씨(31·회사원)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뒷좌석에 앉은 한 50대 남성이 “15세 관람가라더니 애들 보기 안 좋다”며 음주나 흡연 장면에서 끊임없이 불만을 쏟아 낸 것. 참다못한 옆 관객이 “조용히 좀 하자”고 했더니 “내 입 갖고 말도 못 하느냐”고 오히려 역정을 냈다. 결국 당사자는 영화 중반쯤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지만 주위 관객들은 이미 기분을 잡친 상태였다. 영화관은 안방이 아니다. 물론 극장은 재밌으면 웃고 슬프면 울며 다른 관객들과 함께 공감하는 재미가 있다. 그러나 돈을 내고 문화상품을 향유하러 온 타인을 방해하는 행위는 이해받기 어렵다. 무엇보다 관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은 잡담으로 인한 소란. 올 1∼3월 멀티플렉스 CGV에 접수된 민원들을 들여다보면 이렇다. “아빠와 어린 딸이 15분 넘게 떠들었다. 쉴 새 없이 물어보는 애는 둘째 치고 넙죽넙죽 대답하는 아빠가 더 얄미웠다.”(2015년 3월) “한 커플이 스포츠 중계라도 하듯 끊임없이 영화 평을 해 댔다. 눈치를 줬더니 ‘재수 없다’는 소리가 들렸다.”(2월) “중년 남성 2명이 뒤늦게 들어와선 계속 무슨 내용이냐며 서로 떠들어 댔다. 자기 집처럼 목소리도 낮추질 않았다.”(3월) ‘무(無)매너’는 이뿐 아니다. 컴컴한 극장을 찾은 연인들이 영화 관람을 하는 게 아니라 민망한 애정 행각에 집중해 주변에 민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영화 보러 온 건 지 1만8000원 주고 애정 행각하러 온 건지 모르겠다”며 눈살을 찌푸리는 블로그 후기도 종종 올라온다. 최근 CGV에서는 영화를 보다가 코를 심하게 골며 졸아서 옆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는 민원도 있었다. 영화관에선 음식물 반입을 허용하고 있긴 하지만, 음식물 씹는 소리나 포장지를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지나쳐 관람에 방해가 된다는 의견도 있다. 양쪽에 앉은 사람이 제각기 영화관 의자 팔걸이를 차지해 정작 자신이 팔 놓을 데가 없었다며 옆 사람도 생각해 줬으면 한다는 민원도 나왔다. 이런 불편은 극장 쪽에서도 제어하기가 쉽지 않다. 관객들에게 방해가 될까 봐 직원을 상영관에 상주시킬 수도 없기 때문이다. CGV 관계자는 “언젠간 나도 똑같은 피해를 볼 수 있단 생각으로 관객들이 서로 배려하는 것만이 최선의 길”이라고 당부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5-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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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떠들고…코골고…극장 ‘무(無)매너 손님, 혹시 나도?

    “아니, 젊은 놈이 어디서 계속 담배질이야?” 길거리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지난달 초 서울 종로구의 한 영화관. 20대 청춘의 방황을 그린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서 A씨(31·회사원)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뒷좌석에 앉은 한 50대 남성이 “15세 관람가라더니 애들 보기 안 좋다”며 음주나 흡연 장면에서 끊임없이 불만을 쏟아낸 것. 참다못한 옆 관객이 “조용히 좀 하자”고 했더니 “내 입 갖고 말도 못 하냐”고 오히려 역정을 냈다. 결국 당사자는 영화 중반쯤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지만 주위 관객들은 이미 기분을 잡친 상태였다. 영화관은 안방이 아니다. 물론 극장은 재밌으면 웃고 슬프면 울며 다른 관객들과 함께 공감하는 재미가 있다. 그러나 돈을 내고 문화상품을 향유하러 온 타인을 방해하는 행위는 이해받기 어렵다. 무엇보다 관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은 잡담으로 인한 소란. 올 1~3월 멀티플렉스 CGV에 접수된 민원들을 들여다보면 이렇다. “아빠와 어린 딸이 15분 넘게 떠들었다. 쉴 새 없이 물어보는 애는 둘째 치고 넙죽넙죽 대답하는 아빠가 더 얄미웠다.”(2015년 3월) “한 커플이 스포츠중계라도 하듯 끊임없이 영화 평을 해댔다. 눈치를 줬더니 ‘재수 없다’는 소리가 들렸다.”(2월) “중년 남성 2명이 뒤늦게 들어와선 계속 무슨 내용이냐며 서로 떠들어댔다. 자기 집처럼 목소리도 낮추질 않았다.”(3월) ‘무(無)매너’는 이뿐 아니다. 컴컴한 극장을 찾은 연인들이 영화 관람을 하는 게 아니라 민망한 애정 행각에 집중해 주변에 민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영화 보러 온 건 지 1만9000원 주고 애정 행각하러 온 건지 모르겠다”며 눈살을 찌푸리는 블로그 후기도 종종 올라온다. 최근 CGV에서는 영화를 보다가 코를 심하게 굴며 졸아서 옆 사람에 피해를 준다는 민원도 있었다. 영화관에선 음식물 반입을 허용하고 있긴 하지만, 음식물 씹는 소리나 포장지를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지나쳐 관람에 방해가 된다는 의견도 있다. 양쪽에 앉은 사람이 제각기 영화관 의자 팔걸이를 차지해 정작 자신이 팔 놓을 데가 없었다며 옆 사람도 생각해줬으면 한다는 민원도 나왔다. 이런 불편은 극장 쪽에서도 제어하기가 쉽지 않다. 관객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직원을 상영관에 상주시킬 수도 없기 때문이다. CGV 관계자는 “언젠간 나도 똑같은 피해를 입을 수 있단 생각으로 관객들이 서로 배려하는 것만이 최선의 길”이라고 당부했다.정양환기자 ray@donga.com}

    • 2015-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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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머리 ‘못’ 박힌 퀸카… 좌충우돌 사랑얘기… 부담없이 키득키득

    미국 인디애나 주의 작은 마을에 사는 앨리스(제시카 비엘)는 동네 최고의 퀸카. 경찰 남자친구 스콧(제임스 마스든)의 프러포즈를 받다가 머리에 못이 박히는 사고를 당한다. 의료보험이 없어 수술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앨리스는 충동조절장애로 점점 이상해지고…. 우연히 TV에서 “시민들을 돕겠다”는 하원의원 하워드(제이크 질런홀)의 말에 혹해 도움을 요청하러 워싱턴으로 향한다. 그런데 막상 만나본 하워드는 신참 의원이라 당 실세에 휘둘리는 처지. 허나 묘하게 얽힌 앨리스와 하워드는 충동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고 만다. 7일 개봉하는 ‘엑시덴탈 러브’는 골 때리는 영화다. 설정도 황당하고 전개도 당황스럽다. 개연성은 신경도 안 쓴다. 로맨틱 코미디라더니 막상 사랑은 극 흐름상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다. 그런데, 웃긴다. 사실 이 작품을 연출한 이가 데이비드 러셀 감독이란 걸 안다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파이터’(2010년) ‘실버라이닝 플레이북’(2012년) ‘아메리칸 허슬’(2014년) 등 그의 전작은 언제나 그랬다. 궁상맞고 지질한 캐릭터들이 어수룩한 몸 개그와 쫄깃한 말장난을 쉴 새 없이 쏟아냈다. ‘엑시덴탈 러브’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이번엔 훨씬 정치 풍자가 짙어졌다. 전작 역시 미국 정치판에 대한 야유가 꽤나 묻어났지만 이번 작품은 더욱 직설적이다. 정치인들은 사리사욕에만 눈이 벌겋고, 막상 국민에게 필요한 법안은 관심도 없다.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면 걸스카우트조차도 이용하며, 방해가 되면 어린아이들도 중상모략으로 괴롭힌다. 그런 그들에게 맞서는 방법? 주인공들도 꾀를 부려 정치인을 속일 수밖에. ‘엑시덴탈 러브’의 약점은 여기에 있다. B급 ‘병맛’(병신 같은 맛·황당하고 어이없는 재미를 뜻하는 인터넷 신조어) 코드로 정치 개그를 풀어놓은 건 좋은데 너무 가다 보니 공감대가 무너진다. 너도나도 권모술수를 써대니 결국 정의를 실현했는데도 통쾌하질 않다. 하지만 의미 부여에는 신경 쓰지 말고 아무 부담 없이 키득거리고 싶다면 이만 한 작품도 없다. 특히 그간 묵직한 연기를 선보였던 질런홀, 가수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아내인 ‘할리우드 여신’ 비엘이 이토록 망가진 모습을 보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하나 더. 100% 이해할 수 있건 없건, 미국이나 한국이나 정치인 ‘까는’ 재미는 언제나 참 야무지다. 15세 이상 관람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5-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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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요일에 만난 사람]영화사가 영화학교 세운 이유는… “투자죠!”

    4월 29일 오후, 경기 파주출판단지에서 마주한 영화제작사 ‘명필름’ 신사옥은 일단 위용이 엄청났다.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베이지색 건물은 지상 4층, 지하 2층에 연면적만 7941m²(약 2400평). 심재명 대표(52)는 “일을 진행하며 조금씩 욕심내다 보니 사이즈가 커졌다”며 “사재도 출연했지만 상당 부분 은행 빚”이라며 웃었다. 전체 식구가 17명뿐인 명필름을 위한 공간이라면 말도 안 되는 규모. 실은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아 명필름은 파주사옥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영화인재를 양성하는 ‘명필름영화학교’와 시민들에게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제공하는 ‘명필름아트센터’를 만든 것. 30일은 학교 및 센터의 개관식이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강산이 두 번 바뀔 동안 한국 영화계를 지켜온 명필름. 영화 제작도 바쁠 텐데 심 대표는 또 어떤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영화사가 학교와 문화센터를 세운 건 처음입니다. “2010년 15주년 행사 때 나온 아이디어였어요. (남편인) 이은 명필름 공동 대표가 ‘명필름의 성과는 한두 사람의 공이 아니라 모든 한국 영화인과 관객 덕분’이라며 이를 함께 공유할 길을 찾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때부터 문화재단 설립 등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했죠. 열정만으로 시작해 20년 동안 쌓은 노하우를 새로운 인재에게 전하는 건 학교가 제격이라고 봤습니다. 아울러 영화는 관객 없이 존재할 수 없는 문화산업이잖아요.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영화관과 공연장, 전시장을 갖춘 문화센터도 자연스럽게 떠올랐어요.” ―그게 마음먹는다고 되는 사업은 아니잖습니까. “영화와 동떨어진 분야였다면 쉽지 않았겠죠. 하지만 학교나 센터 모두 한국 영화계를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는 취지에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동참해줬습니다. 승 건축가도 단순한 건물이 아닌 ‘도시 속의 영화도시’를 세운다는 심정을 담았다고 얘기하더군요. 우리가 사랑하는 영화를 통한 상생을 꿈꿨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어요. 명필름은 창립 때부터 가장 중요시 여긴 덕목이 ‘항상성(恒常性)’이었습니다. 늘 초심을 유지하면서 꾸준히 한발씩 내딛는 거죠. 이 대표랑 농담 삼아 파주 이전을 ‘명필름 4.0의 출발’이라고 불렀어요. 파격적인 변화가 아니라 지금껏 해온 일의 연장선에 있는 겁니다.” ―4.0이란 표현이 인상적인데, 명필름의 1∼3기는 어떤 20년이었나요. “1995년 창립하고 ‘코르셋’을 시작으로 다양한 작품을 내놓았던 2003년까지가 1기라 할 수 있죠. 영화 마케터로 일하다 이 대표와 결혼하며 영화사를 차렸는데, 운이 따랐는지 성과도 나쁘지 않았고요. 2004∼2007년이 2기입니다. 강제규필름과 합병해 투자배급사 ‘MK픽쳐스’를 만들었죠. 돌아보면 그땐 제작을 넘어 다양한 비즈니스를 모색했던 시기였어요. 이후 ‘서촌 시절’이 3기입니다. 벌였던 일들을 정리하고 다시 영화 제작이란 본업에 충실했죠.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부터 현재 상영 중인 ‘화장’까지. 말하고 보니 꽤 거창한데요. 그저 영화가 좋아서 일하다 보니 자연스레 지금까지 이어진 겁니다.” ―우문(愚問)이지만 어떤 작품이 기억에 남으십니까. “뻔한 대답이지만 우리에게 작품은 자식입니다.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있나요. 이래저래 관여한 작품이 모두 36편인데요. ‘공동경비구역 JSA’ ‘마당을 나온 암탉’ ‘건축학개론’…. 다 추억도 다르고 기억도 다릅니다. 아쉬운 작품이라면 역시 첫 영화였던 ‘코르셋’이겠네요. 경험이 일천하다 보니 모든 게 부족했습니다. 감독은 물론이고 배우, 스태프 모두에게 미안했습니다. 꼭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작품이 작품성과 상업성 모두 반응이 약할 때가 제일 속상하죠.” ―최근작인 ‘카트’ ‘화장’은 평단의 호평을 받았지만 흥행은 아쉬웠습니다. “일단 제작자로선 참여한 분들에게 제대로 된 성과를 돌려주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카트’(약 81만 명)는 좀 의아한 부분도 있어요. 첫 주에 42만 명이 들었는데 갑자기 관객이 뚝 떨어졌어요. 보통 첫 주 관객의 3배 이상은 드는 게 영화계 통념이거든요. 많은 영화계 분들도 대기업 위주의 시장구조에 짓눌렸단 의구심을 가지더군요. 그런 걸 떠나서 최근에 너무 영화적 가치, 주제의식 이런 거에 경도됐던 건 아닌지 스스로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제작자는 상업성을 더욱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입장이니까요.” 이 대목은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명필름은 2013년 케이퍼필름(대표작 ‘도둑들’), 주피터필름(‘관상’) 등 9개 제작사와 함께 투자배급사 ‘리틀빅픽쳐스’를 세웠다. 기존 대기업 중심의 배급구조를 개선하자는 취지. 그런데 내놓는 작품마다 작품성과 별개로 흥행에 쓴맛을 봤다. 특히 지난해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삼거리픽쳐스)은 독과점 시장구조에 피해를 입었단 논란의 중심에 섰다. ‘카트’와 ‘화장’ 역시 리틀빅픽쳐스가 배급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또 명필름의 색깔이잖습니까. “물론이죠. 반성한다는 게 뜯어고친단 뜻은 아니죠. 명필름은 첨부터 청개구리 같은 면이 있었어요. ‘카트’ 제작도 주변에선 말리는 이가 적지 않았죠. 하지만 선입견 때문에 좋은 작품을 외면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바람난 가족’은 완성될 때까지도 투자를 못 받았어요. 여기저기 돈 꿔서 겨우 맞췄죠. 영화 제작이란 게 그런 신념이 없으면 버틸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현실을 도외시한단 뜻은 아닙니다. 다만 상업성과 작품성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으려 노력해왔어요.” ―20년 전과 지금은 영화계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대기업의 유입이 가장 큰 요인이었죠. 장단점이 극명하게 갈렸어요. 분명 영화산업 규모가 커지고 제작환경도 효율적으로 나아졌습니다. 투명해진 점도 긍정적이고요. 그런데 철저하게 돈의 논리로만 움직입니다. 명필름 초기엔 영화라는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에 대한 존중이 컸습니다. 지금은 투자 마인드만 활개를 칩니다. 질적으론 하향 평준화됐단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스크린 독과점과 같은 지적은 몇 년째 지속되는데 딱히 나아지질 않습니다. “어벤져스를 보세요. 상영횟수 점유율이 70∼80%에 이릅니다. 멀티플렉스에 관이 몇 개인데 모두 같은 영화를 걸고 있어요. 갈수록 자본의 논리가 더 기세등등해지고 있습니다. 이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죠. 해결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정부가 나서 법적인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영화계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쉽진 않을 거예요. 다만 최근 리틀빅픽쳐스를 비롯해 대안 배급사들이 생겨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라고 봅니다.” ―명필름 20주년인데 너무 거대담론만 물어봤네요. “하하, 그러게요. 근데 따지고 보면 우리만 축하할 건 아닙니다. 부산국제영화제랑 영화사 ‘씨네2000’도 동갑내기예요. 강우석 감독의 ‘시네마서비스’도 지난해 20주년이었을 겁니다.(공식적으론 1995년 설립해 올해 20주년이다.) 당시 영화계엔 재능 있는 인력들이 쏟아지던 시절이었죠. 명필름도 그중 하나일 뿐이에요. 앞으로가 더 문제겠죠. 솔직히 말할까요. 명필름에 학교나 아트센터 설립은 대단한 사회 환원이 아닙니다. 영화계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야 우리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일종의 투자인 셈이죠. 영화로 일군 터전을 바탕으로 영화를 통해 공존을 지향하는 거라고나 할까요. 영화는 여전히 우리에게 꿈이니까요.”▼작품 제작비-학비-숙식 무료… 2015년 10월 2기생 모집▼명필름영화학교와 아트센터는 4월 30일 경기 파주시 회동길 명필름 사옥에서 개관식을 가진 ‘명필름아트센터’와 ‘명필름영화학교’는 영화를 매개로 한 복합영상문화공간이라 부를 수 있다.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은 영화제작사 명필름이 파주출판도시 속 ‘영화도시’를 모토로 시민들에게 다양한 즐길거리를 제공한다. 아트센터는 영화관과 공연장, 예술전시장으로 구성됐다. 지하 1층 영화관은 170석 소규모이긴 하나 디지털4K 영사시스템과 돌비 애트모스 3차원(3D) 사운드 시스템을 도입했다. 개관 기념으로 1일부터 20일까지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을 하루 2회(오전 10시 반, 오후 1시 반) 무료 상영한다.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 ‘화장’도 교차 상영하며, 21일 개봉작 ‘산다’도 상영할 계획이다. 지상 2, 3층에는 250석 규모의 다목적 공연장이 들어섰다. 뮤지컬, 콘서트는 물론이고 강연이나 파티도 열 수 있다. 명필름이 첫 번째로 제작하는 뮤지컬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7월에 선보일 예정이다. 4층 전시장 ‘아트랩’은 재능 있는 작가들의 전시공간으로 쓰인다. 1일부터 새로운 가구를 체험하는 ‘조립식: 레이어 세트 플레이’와 영상과 음악의 교차점을 구현한 ‘크로싱 웨이브스(Crossing Waves)’ 전시회를 만날 수 있다. 1층엔 영화 건축 디자인 전문서적을 구비한 북 카페도 마련했다. ‘의식과 재능을 겸비한 참다운 영화인재 양성’을 기치로 내건 명필름영화학교는 현재 1기생 10명 선발을 마친 상태다. 해마다 △극영화 연출(2명) △다큐멘터리 연출(1명) △제작(1명) △연기(2명) △미술·촬영·편집·사운드(각 1명) 부문을 모집한다. 교육 기간은 2년으로 다양한 영화이론 및 인문 교육과 제작수업을 병행한다. 정지영(‘부러진 화살’) 이준익(‘왕의 남자’) 이용주 감독(‘건축학개론’), 이은 대표, 배우 문소리 등이 객원교수로 참여한다. 작품 제작비는 물론이고 학비와 기숙사를 포함한 숙식을 무상으로 제공한다. 내년 2기생은 올해 10월 5∼12일 입학원서를 접수한다. 명필름문화재단 홈페이지(www.myungfilm.org) 참고.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5-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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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인의 초인, 충무공한테 덤빈다

    23일 선보인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개봉 7일 만에 400만 명을 돌파했다. 일단 승승장구하는 분위기다. 개봉 전에는 1000만 클럽 가입은 기정사실이고 심지어 지난해 역대 흥행 1위에 오른 ‘명량’(약 1761만 명)을 넘볼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개봉 후 CGV와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자료를 분석한 결과는 ‘그렇지 않다’. 누적 관객수는 물론이고 좌석점유율에서 명량에 훨씬 뒤진다.○ 초인 8명의 공습? 장군에겐 12척이… 아무리 초인들이라도 성웅은 버거운 걸까. 어벤져스는 개봉 첫날에는 62만 명을 모아 명량이 개봉 당일(지난해 7월 30일) 세운 개봉일 최다 관객 기록 68만 명에 근접했다. 하지만 첫 주말 누적 관객 수는 344만 명에 그쳐 명량의 476만 명에 미치지 못했다. 두 영화의 격차는 개봉 2주 차에 더 벌어지고 있다. 명량은 평일인 월요일(8월 4일)에도 99만 명이 들면서 전날인 일요일(약 126만 명)에 비해 22%가량 줄었다. 반면 어벤져스는 월요일(27일) 29만여 명에 그쳐 전날(약 101만 명)보다 70% 이상 빠졌다. 한 영화제작자는 “명량은 가장 관객이 많은 여름방학기간 성수기에 개봉돼 12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넘어섰는데, 그 기세를 지금 어벤져스에 기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좌석점유율도 차이를 보인다. 명량은 최고 87.9%(지난해 8월 2일)를 정점으로 개봉 3주 차까지도 60%를 넘나드는 괴력을 보였다. 허나 어벤져스는 개봉주 주말인 25일(63.7%)에만 60%를 넘겼고 27일 18.3%, 28일 16.2%로 추락했다. 이 추세라면 ‘명량’은 이미 멀어졌고 역대 외화 1위인 ‘아바타’(1330만 명)를 넘어설 것인지에 더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입소문과 SNS 반응은 긍정적, 관건은 황금연휴 영화 흥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입소문이다. 영화를 본 관객의 평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타고 순식간에 퍼진다. 27일 CGV가 어벤져스를 보고 극장을 나서는 564명에게 받은 소감은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스토리 전개와 액션이 뛰어나다”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 “마블 팬이라면 꼭 봐야 한다”라는 응답이 주를 이뤘다. 개봉 전 1개월 동안 살펴본 ‘바이럴 키워드’(SNS에 등장하는 영화 관련어)도 긍정적이다. 어벤져스는 ‘개봉’(9168개)이 1위를 차지했고 ‘좋다’(6291개·2위) ‘기대하다’(5693개·3위) 등 긍정적 키워드가 뒤를 이었다. ‘한국’(2960개)은 12위로 예상보다 큰 흥행변수는 아닌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1000만 영화에 등극한 ‘국제시장’도 ‘좋다’ ‘아버지’, 명량 역시 ‘이순신’ ‘좋다’ 등이 높은 순위에 올랐다. 배급사는 다음 달 1∼5일 연휴에 기대를 걸고 있다. 5일 동안 중장년층이 자녀들과 함께 얼마나 보러 오느냐에 따라 어벤져스의 운명도 갈릴것으로 전망된다. CGV 관계자는 “이번 주 평일은 학교 중간고사여서 부진했다고 본다”며 “결국 중장년층이 얼마나 받쳐주느냐로 판가름날 것 같다”고 말했다. 흥행과 별개로 어벤져스는 스크린 독과점 논란도 다시 불붙였다. 25일 어벤져스 상영횟수는 전국 1만 회를 넘기며 상영점유율이 68.2%에 이르렀다. 명량은 1일 최다 관객 기록(약 126만 명)을 세웠던 지난해 8월 2일도 52.1%였다. 실제로 서울 종로구의 한 영화관은 28일 전체 상영횟수 25회 가운데 19회(76%)가 어벤져스였다. 그나마 다른 작품은 오전 9시나 오후 11시 이후였다. SNS에선 “초인들이 지구는 몰라도 한국 극장은 확실히 점령했다”는 비아냥거림도 나오고 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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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여성 누아르의 새 지평 활짝… 29일 개봉 ‘차이나타운’의 투톱 히어로

    《 어쩌면 진짜 초인들은 차이나타운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29일 개봉하는 영화 ‘차이나타운’은 독특한 지점에 선 작품이다. 국내 최초로 여배우 2명이 중심을 잡은 본격 누아르이면서도, 극장을 나서면 수많은 상념을 헤매다 ‘가족’이 떠오른다. 연출을 맡은 한준희 감독의 데뷔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줄거리만 보면 전형적이고 단출하다. 차이나타운 암흑가에서 자라난 일영(김고은)과 모두가 ‘엄마’라 부르는 보스(김혜수)가 우연한 일로 갈등을 빚으며 파국으로 치닫는 스토리. 허나 감독은 피로 얼룩진 밑바닥 세계를 잿빛 그리스 비극으로 빚어냈고, 배우들은 무대 위 뿌연 먼지를 거둬내고 단단한 현실에 작품을 곧추세웠다. 22일 두 슈퍼히어로 김혜수 김고은을 만나 봤다. 》▼“이 정도면 확실히 변신했죠?”… 범죄조직 보스 냉혹한 ‘엄마’, 김혜수▼시나리오 부담 처음엔 여러번 거절… 김고은, 한마디로 하면 ‘좋은 배우’―냉혹한 범죄조직 보스를 연기했다. “처음엔 여러 번 거절했다. 시나리오는 강렬했지만 부담이 컸다. 수정 대본을 보내도 일부러 안 봤다. 도전의식 생길까봐. 근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읽고 있는 게 아닌가. 또 스스로 빠져든 거지. 게다가 감독의 한마디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게 마지막 연출이 되더라도 자기 첫 영화는 차이나타운’이라고. 그렇게 인생을 거는데 어떻게 더 거부하겠나.” ―외모도 완전히 망가뜨려 더 힘들었겠다. “또 그건 아니다. 결정한 뒤부턴 너무 신났다. 백발에 기미 가득한 얼굴, 살은 뒤룩뒤룩 찌고 ‘배바지’ 입은 여성 보스. 진짜 변신이 뭔지 보여줄 기회가 어디 흔한가. 첫 야외촬영 때 김혜수 보러 온 시민들이 날 몰라보더라, 하하. 엄마는 이런 외양이 아니고선 설명되지 않는 캐릭터다. 그걸 제대로 표현하고자 노력하는 건 배우의 당연한 의무 아닌가.” ―엄마는 섬뜩하면서도 처연한 슬픔이 감돈다. “영화 ‘차이나타운’이 그린 세계는 극단적이다. 평소 만날 일이 없는. 엄마는 그걸 온몸으로 새긴 인물이다. 길에서 우연히 엄마를 마주친다고 상상해 보자. 그저 쳐다볼 뿐인데 온몸이 얼어버리지 않을까. 허나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가족이 산다. 그 버텨 온 세월이 다양한 감정의 중층을 만들어냈다고 본다.” ―김고은과의 호흡은…. “딱 한마디면 충분하다. 좋은 배우다. 연기자로서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더라. 좋은 얼굴에 깨끗한 감정에 영민한 두뇌까지. 이런 배우가 발굴돼 관객 앞에 설 수 있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차이나타운’은 그에게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이미 지금도 놀라울 정도로 훌륭하지만 더 빛을 발할 날이 분명히 온다.” ―작품이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됐다. “그거야 감독 덕분이지. 물론 칭찬 받고 상도 받으면 기분이야 좋다. 하지만 그건 이미 제 몫이 아니다. 배우는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연기할 때 가장 행복하다. 그 밖의 일은 무심해진다. 물론 연기자로서 아쉬운 평가를 받으면 언제나 가슴에 새긴다. 아직도 배울 게 많고 도전할 게 많다. 삶이 그러하듯이.”▼“어벤져스와는 두번째 맞대결”… 바깥세상이 궁금했던 소녀 ‘일영’, 김고은▼잔인하지만 따스함이 스민 영화… 김혜수 선배가 중심 잘 잡아줘―영화가 잔인한데 묘한 따스함을 지녔다. “그게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였다. 지하철 보관함 10번에서 발견돼 이름이 일영인 이 아이는 차이나타운이 세상의 전부다. 딱 한 번 바깥세상을 궁금해 하며 돌이킬 수 없는 삶으로 나아간다. 시나리오를 읽으며 울컥울컥했던 기분이 지금도 남아 있다. 사실 그런 인생을 어찌 알겠나. 하지만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을 깊이 건드렸다. 범죄세계다 보니 잔인한 장면도 있지만 기본적으론 사랑에 대한 영화라고 봤다.” ―일영을 흔들었던 석현(박보검)에 대한 사랑인가. “아니다. 그건 일종의 호기심이다. 자신이 몰랐던 세상에 대한. 영화에서도 엄마가 묻는다. ‘걔 어디가 좋았느냐’고. 일영의 대답은 ‘친절해서’. 냉혹함밖에 몰랐기에 겨우 한 줌의 친절함이 그렇게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다. 오히려 일영의 사랑은 차이나타운으로 향한다. 그에게 조직은 가족이다. 평생 살아왔고 돌아갈 곳이라곤 거기뿐이니까.” ―김혜수와의 호흡은 어땠나. “지금도 혜수 선배를 만나면 스타를 바라보는 팬이 된다. 데뷔 4년차인데 여전히 신기하고 쑥스럽다. 대스타라 긴장도 컸는데 현장에서 만난 선배는 상상 이상이었다. 따뜻하고 소탈하고 배려 깊고…. 스스로 행운아란 생각을 많이 했다. 여배우가 극을 이끄는 누아르는 한국시장에서 여전히 쉽지 않은 도전이다. 선배가 중심 잡고 엄마를 연기해줘서 이만큼이라도 따라갈 수 있었다.” ―데뷔작 ‘은교’(2012년)부터 강렬한 역할을 주로 맡았다. “이젠 정. 말. 멜로 하고 싶습니다! 아, 물론 ‘차이나타운’에도 멜로가 있다, 흐흐. 예전부터 밝고 단순한 사랑 얘기 노래를 불렀다. 풋풋하고 설레는 감정도, 깊고 내밀한 관계도 다 좋다. 차이나타운처럼 처음 접한 시나리오와 완성된 영화가 주는 느낌이 같은 작품이라면 언제든 오케이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과 경쟁한다. “뭐, 여러 번 겪어 덤덤하다. ‘은교’ 개봉 다음 날 ‘어벤져스’가 걸렸고, 지난해 ‘몬스터’는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랑 겹쳤다. 미국 초인하고 맞붙는 게 팔자인가 보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5-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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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이나타운’ 김고은 “현장서 만난 ‘엄마’ 김혜수는 상상 이상”

    어쩌면 진짜 초인들은 차이나타운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29일 개봉하는 영화 ‘차이나타운’은 독특한 지점에 선 작품이다. 국내 최초로 여배우 2명이 중심을 잡은 본격 느와르이면서도, 극장을 나서면 수많은 상념을 헤매다 ‘가족’이 떠오른다. 연출을 맡은 한준희 감독의 데뷔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줄거리만 보면 전형적이고 단출하다. 차이나타운 암흑가에서 자라난 일영(김고은)과 모두가 ‘엄마’라 부르는 보스(김혜수)가 우연한 일로 갈등을 빚으며 파국으로 치닫는 스토리. 허나 감독은 피로 얼룩진 밑바닥 세계를 잿빛 그리스 비극으로 빚어냈고, 배우들은 무대 위 뿌연 먼지를 거둬내고 단단한 현실에 작품을 곧추 세웠다. 22일 두 슈퍼히어로 김혜수 김고은을 만나봤다. ○ 김혜수 인터뷰 -냉혹한 범죄조직 보스를 연기했다. “처음엔 여러 번 거절했다. 시나리오는 강렬했지만 부담이 컸다. 수정대본을 보내도 일부러 안 봤다. 도전의식 생길까봐. 근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읽고 있는 게 아닌가. 또 스스로 빠져든 거지. 게다가 감독의 한 마디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게 마지막 연출이 되더라도 자기 첫 영화는 차이나타운’이라고. 그렇게 인생을 거는데 어떻게 더 거부하겠나.” -외모도 완전히 망가뜨려 더 힘들었겠다. “또 그건 아니다. 결정한 뒤부턴 너무 신났다. 백발에 기미 가득한 얼굴, 살은 뒤룩뒤룩 찌고 ‘배바지’ 입은 여성보스. 진짜 변신이 뭔지 보여줄 기회가 어디 흔한가. 첫 야외촬영 때 김혜수 보러온 시민들이 날 몰라보더라, 하하. 엄마는 이런 외양이 아니고선 설명되지 않는 캐릭터다. 그걸 제대로 표현하고자 노력하는 건 배우의 당연한 의무 아닌가.” -엄마는 섬뜩하면서도 처연한 슬픔이 감돈다. “영화 차이나타운이 그린 세계는 극단적이다. 평소 만날 일이 없는. 엄마는 그걸 온몸으로 새긴 인물이다. 길에서 우연히 엄마를 마주친다고 상상해보자. 그저 쳐다볼 뿐인데 온몸이 얼어버리지 않을까. 허나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가족이 산다. 그 버텨온 세월이 다양한 감정의 중층을 만들어냈다고 본다.” -김고은과의 호흡은. “딱 한 마디면 충분하다. 좋은 배우다. 연기자로서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더라. 좋은 얼굴에 깨끗한 감정에 영민한 두뇌까지. 이런 배우가 발굴돼 관객 앞에 설 수 있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차이나타운’은 그에게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이미 지금도 놀라울 정도로 훌륭하지만 더 빛을 발할 날이 분명히 온다.” -작품이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됐다. “그거야 감독 덕분이지. 물론 칭찬 받고 상도 받으면 기분이야 좋다. 하지만 그건 이미 제 몫이 아니다. 배우는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연기할 때 가장 행복하다. 그 밖의 일은 무심해진다. 물론 연기자로서 아쉬운 평가를 받으면 언제나 가슴에 새긴다. 아직도 배울 게 많고 도전할 게 많다. 삶이 그러하듯이.” ○ 김고은 인터뷰-영화가 잔인한데 묘한 따스함을 지녔다. “그게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였다. 지하철 보관함 10번에서 발견돼 이름이 일영인 이 아이는 차이나타운이 세상의 전부다. 딱 한번 바깥세상을 궁금해 하며 돌이킬 수 없는 삶으로 나아간다. 시나리오를 읽으며 울컥울컥했던 기분이 지금도 남아있다. 사실 그런 인생을 어찌 알겠나. 하지만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을 깊이 건드렸다. 범죄세계다 보니 잔인한 장면도 있지만 기본적으론 사랑에 대한 영화라고 봤다.” -일영을 흔들었던 석현(박보검)에 대한 사랑인가. “아니다. 그건 일종의 호기심이다. 자신이 몰랐던 세상에 대한. 영화에서도 엄마가 묻는다. ‘걔 어디가 좋았냐’고. 일영의 대답은 ‘친절해서.’ 냉혹함 밖에 몰랐기에 겨우 한 줌의 친절함이 그렇게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다. 오히려 일영의 사랑은 차이나타운으로 향한다. 그에게 조직은 가족이다. 평생 살아왔고 돌아갈 곳이라곤 거기뿐이니까.” -김혜수와의 호흡은 어땠나. “지금도 혜수 선배를 만나면 스타를 바라보는 팬이 된다. 데뷔 4년차인데 여전히 신기하고 쑥스럽다. 대스타라 긴장도 컸는데 현장에서 만난 선배는 상상 이상이었다. 따뜻하고 소탈하고 배려 깊고…. 스스로 행운아란 생각을 많이 했다. 여배우가 극을 이끄는 느와르는 한국시장에서 여전히 쉽지 않은 도전이다. 선배가 중심 잡고 엄마를 연기해줘서 이만큼이라도 따라갈 수 있었다.” -데뷔작 ‘은교’(2012년)부터 강렬한 역할을 주로 맡았다. “이젠 정. 말. 멜로 하고 싶습니다! 아, 물론 ‘차이나타운’에도 멜로가 있다, 흐흐. 예전부터 밝고 단순한 사랑 얘기 노래를 불렀다. 풋풋하고 설레는 감정도, 깊고 내밀한 관계도 다 좋다. 차이나타운처럼 처음 접한 시나리오와 완성된 영화가 주는 느낌이 같은 작품이라면 언제든 오케이다.”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과 경쟁한다. “뭐, 여러 번 겪어 덤덤하다. ‘은교’ 개봉 다음날 ‘어벤져스’가 걸렸고, 지난해 ‘몬스터’는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랑 겹쳤다. 미국 초인하고 맞붙는 게 팔자인가 보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5-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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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대 모은 한국 장면 8분 남짓… 한강 빼곤 홍보효과 “글쎄”

    《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개봉을 앞두고 주위에서 가장 많은 질문은 두 가지였다. “재밌어?” “한국 (장면이) 얼마나 나와?” 21일 드디어 공식 시사회가 열려 이젠 답할 수 있다. “음…, 너무 기대하지 않는다면.” “대략 8분쯤.” 23일 시작되는 초인들의 진격을 한반도는 어떻게 맞이할까. 》 ○ 미래도시? ‘그냥’ 서울이 나온다. 지난해 3월 국내 촬영을 앞둔 마블 측은 한국을 “첨단 도시의 모습과 수려한 자연을 함께 갖춘 나라”라고 칭찬했다. 근데 어벤져스2에 나온 서울은 그냥 서울이었다. 일단 한국 분량은 러닝타임 141분 가운데 10분 20초 남짓. 이도 닥터 헬렌 조(수현)의 연구소로 설정된 스튜디오 촬영(3, 4분)을 빼면 실제 한국 촬영 장면은 7, 8분 정도 노출된다. 전혀 서울 지하철을 닮지 않은 지하철 내부 격투 장면을 포함해서. 당초 20분가량 될 것이라던 것과는 달랐다. 시간은 둘째 치고 어디서 ‘자랑스러운 서울의 풍광’을 찾아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질 않았다.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번스)와 블랙 위도(스칼릿 조핸슨)가 도심을 질주하며 화려한 액션을 보여주는 동안 서울은 그냥 스쳐 지나간다. 한글만 아니라면 여느 서양인 눈엔 그저 아시아의 수많은 도시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1조 원의 홍보 효과를 창출한다는 건 어떤 셈법으로 나온 건지 또다시 궁금해진다. 그나마 위안거리라면 한강이다. 호크아이(제러미 레너)가 모는 어벤져스 전투기 ‘퀸젯’ 아래로 시원스레 흘러가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유일한 한국인 출연자 닥터 조는 어떨까. 조연보다는 인상적인 단역에 가깝지만 매력은 있다. 영어가 뒷받침된 연기도 나쁘지 않거니와 세계적인 유전공학자란 설정이 꽤나 어울리는 스마트한 분위기를 지녔다. 그 덕분인지 닥터 조의 연구소로 등장한 세빛섬도 평소 보던 모습과 달리 있어 보인다. 뭣보다 어벤져스2에서 사상 최고의 적인 울트론(제임스 스페이더)과 맞서 싸우는 데 가장 중요한 존재가 이 세빛섬에서 탄생한다. 진짜 어벤져스2가 우리에게 안겨준 선물은 따로 있다. 살다 보니 무감각해졌지만 스크린 속 서울은, 참 뿌옇다. 촬영 시기(지난해 4월 초) 탓도 있겠으나 황사라도 뒤덮인 듯 색감이 무미건조하다. 우중충한 건물에 온갖 간판으로 뒤엉킨 골목. 고맙다, 초인들. 덕분에 우리가 어떤 도시에 사는지 다시 느끼게 해줬다.○ 진짜 최강의 적은 다음 기회에 21일 오후 어벤져스2의 예매율은 94.2%. 2011년 ‘트랜스포머3’가 개봉 전날 세웠던 역대 최고 예매율 기록(94.6%) 돌파를 눈앞에 뒀다. 현재까지 예매한 관객만 봐도 67만 명이 넘는다. 워낙 관심이 많다 보니 영화 줄거리도 알려질 만큼 알려졌다. 3년 만에 모인 어벤져스는 동유럽 가상의 나라 소코비아의 악당들을 습격하며 시작된다. 1편에서 토르(크리스 헴스워스)의 동생 로키가 지녔던 창을 되찾기 위한 것. 이 과정에서 만난 쌍둥이 초능력자 퀵실버(에런 존슨)와 스칼릿 위치(엘리자베스 올슨)는 웬일인지 아이언맨인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창을 가져가도록 내버려둔다. 스타크는 ‘헐크’ 브루스 배너 박사(마크 러펄로)와 함께 이 창을 이용해 인공지능 평화유지프로그램 ‘울트론’을 만들려 시도한다. 그러나 울트론은 그들의 예상과 달리 인간에게 증오를 품게 되는데…. 미국 영화 전문 사이트 IMDb에 따르면 어벤져스2의 제작비는 2억5000만 달러(약 2700억 원)로 추정된다. 막대한 비용만큼이나 어벤져스2의 전투 장면은 화려하다. 후반부 울트론에 맞선 초인 연합의 싸움도 근사하지만, 스칼릿 위치에게 세뇌당한 헐크와 ‘헐크 버스터’로 무장한 아이언맨과의 일대일 매치는 쫄깃하다. 주로 아이언맨이 쏟아내는 개그도 1편 못지않다. 그러나 짜임새는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겨우 2시간 분량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 했던 탓일까. 코스요리를 먹는데 먹던 음식을 억지로 치우고 디저트를 받아 든 기분이 여러 차례 든다. 특히 울트론은 사상 최강의 적이라더니 왜 이리 무력한지. 다음 편에 또 다른 ‘진짜’ 최강의 적을 내놓기 위한 포석이라는 느낌밖에 들지 않는다. 최근 조스 웨던 감독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더이상 어벤져스 연출은 맡지 않겠다”고 말했다. 어쩌면 우린 그 이유를 영화를 보면서 깨달을지도 모르겠다.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영화 ‘인터스텔라’에서)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5-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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