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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휴전 협상이 재개된 이래 사흘만에 가자 지구 공습으로 약 200여 명이 숨졌다. 양측이 공습과 인질 교환을 협상 카드로 적극 활용하다 보니, 휴전을 앞두고 대립이 격화되고 사상자도 늘어나는 역설이 드러나고 있다. 5일(현지 시간) 로이터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가자지구 보건부와 하마스 측 등은 이스라엘 측과 휴전 협상이 재개된 3일부터 5일까지 사흘간 총 184명이 숨졌다. 중동권 매체 알자지라는 현지 취재 보도를 통해 같은 기간 팔레스타인인이 200명 넘게 숨졌다며 피해 규모가 알려진 것보다 크다고 보도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이스라엘군 공습은 시장과 대피소 등에서도 이뤄졌다. 해당 매체는 현지 사상자 대부분은 어린이와 여성이라고 보도했다. 반면 이스라엘군 측은 주말 기간중 가자지구 내 하마스 본부원들 약 수십 명 제거했다는 입장을 내놨다. 주말 공습은 중부와 알부레지 난민촌과 북부 자발리야에 집중됐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 협상이 3일 카타르 도하에서 재개됐음에도 극한 대립이 이어지는 모습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이번 휴전 협상은 카타르, 이집트, 미국의 중재 하에 카타르 도하에서 간접 협상의 방식으로 재개됐다. 그러나 양측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해법을 찾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에 따르면, 하마스는 이번 협상에서 이스라엘 측에 영구적인 휴전을 요구하고 있다. 인질 석방 합의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군을 철수하고 안전 보장해달라는 의사를 전달한 것이다. 하마스 측은 이스라엘이 이에 응할 경우, 인질 교환 협상에서 가자지구에 억류된 인질 34명을 우선 석방할 방침이다. 하마스 관계자는 로이터에 “석방 대상엔 여성, 어린이, 노인, 환자가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사망자 시신까지 포함해 반환 인질 숫자를 채울지 여부 등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반면 이스라엘은 생존 인질부터 석방할 것을 요구해왔다. 반면 이스라엘은 이번 전쟁을 통해 하마스 통치를 종식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매체 알하다스는 5일 이스라엘 관계자를 인용해 하마스 지도부가 통치권을 포기해야 협상에 응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내 통치 중립기구 등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팔레스타인 자치 영향력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하마스 측은 공습부터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인질 상태 확인에 일주일 가량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인질이 가자지구 내 여러 지역에 산개돼 있어 바로 석방 대상자 명단을 제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 측은 “하마스로부터 석방 대상자에 대한 명단을 받지 못했다”라고 선을 그었다. 석방자 명단을 제출했다는 입장에 대해 심리전으로 일축한 것이다. 가자지구 전쟁은 2023년 10월에 시작됐다. 하마스가 이스라엘 인질 251명을 납치한 뒤 이스라엘군이 이에 대응했고, 이후 가자지구 내 폭격이 이어지며 양측 민간인 피해자가 늘어왔다. 이스라엘 측은 현재 가자지구에 남아 있는 인질은 96명이며, 이중 62명이 생존자일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2023년 10월 이래 현재까지 최소 4만5805명 팔레스타인인이 숨지고, 10만9064명 다쳤다고 밝혔다. 임현석 기자 lhs@donga.com}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를 추종하는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가 본거지인 시리아와 이라크에서는 사실상 와해됐지만, 온라인 점조직을 통해 세계 각지에서 ‘자발적 테러범’을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텔레그램과 온라인 동영상 공유 등을 통해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고, 정치·경제 여건에 대한 불만이 많은 이른바 ‘외톨이 늑대’들에 의한 테러를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다.4일 CNN과 워싱턴포스트(WP) 등은 최근 IS 추종자를 자처한 ‘외톨이 늑대’들에 의한 테러가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새해 첫날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번화가에서 4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차량 테러 역시 미국인 IS 추종자가 벌인 것으로 잠정 결론이 난 가운데 수사 당국은 용의자가 어떤 경로로 IS를 접촉했는지 조사 중이다. 용의자는 테러 전 IS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메시지를 동영상으로 남겼다.WP는 IS와 뚜렷한 접점이 없었던 미국인이 IS를 추종하며 뉴올리언스 테러에 나섰다는 점에서 지난해 8월 미국 유명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 공연장을 겨냥한 테러 모의와 유사하다고 봤다. 당시 공연장 폭탄 테러를 준비하던 오스트리아 국적의 베란 알리지(19)는 생활고 등으로 우울증을 앓았고, 온라인 중독 증세를 보인 것으로 조사됐다. 공연장 테러 모의 용의자는 온라인을 통해 IS 영상을 접한 뒤 이들을 추종하기 시작했다. 이후 텔레그램 등을 통해 IS 조직원과 접촉하기도 했다. 또 IS 관계자가 용의자에게 충성 맹세를 동영상으로 보내 줄 것을 요구하며 사린 가스를 주고받는 방법 등을 논의하다가 적발됐다. IS는 주기적으로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테러 행위를 담은 영상을 다크웹을 통해 공유하고 있다. 미국 CNN에 따르면 IS는 최근 종교적 이념에 동조할 것을 요구하기보다 생활고 등을 겪는 개인을 상대로 세상에 대한 복수심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증오심에 찬 개인이 불특정 다수에 대한 테러를 유도하는 메시지에 쉽게 넘어갈 수 있어서다. IS는 지난해 1월 성명을 통해 “군대보다 시민을, 다른 것보다 회당과 교회 같은 종교적 목표물을 먼저 공격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뉴올리언스 차량 테러 용의자 샴수드딘 자바르(42) 역시 사업 실패와 두 차례에 걸친 이혼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범행 당시 픽업트럭에 IS 깃발을 달고 돌진했다. IS는 한때 이라크와 시리아 영토의 3분의 1을 차지했으나 2019년 미군 등에 의해 패퇴하며 본거지에서 세력이 크게 약화됐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시리아 내전에서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이 무너지고 과도정부가 들어서는 혼란기를 겪고 있어 IS 잔존 세력이 다시 발호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임현석 기자 lhs@donga.com}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본거지인 시리아에서 사실상 무너졌지만, 온라인 점조직을 통해 세계 각지에서 ‘자발적 테러범’을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텔래그램과 온라인 동영상 공유 등을 통해 이른바 ‘외로운 늑대’들에 의한 테러를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다.4일 CNN과 워싱턴포스트(WP) 등은 최근 IS를 자처한 ‘외로운 늑대’ 테러가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새해 첫날 미국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번화가에서 4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차량 테러는 미국인 IS 추종자가 벌인 것으로 잠정 결론이 난 가운데 수사당국은 용의자가 어떤 경로로 IS를 접촉했는지 조사 중이다. 용의자는 테러 전 IS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메시지를 동영상으로 남겼다.WP는 IS와 접점이 없는 미국인이 뉴올리언스 테러에 나섰다는 점에서 지난해 8월 미국 유명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 공연장을 겨냥한 테러 모의와 유사하다고 봤다. 당시 공연장 폭탄 테러를 준비하던 오스트리아 국적의 베런 알리지(19)는 생활고 등으로 우울증을 앓았으며, 온라인 중독 증세를 보인 것으로 조사됐다. 공연장 테러 모의 용의자는 온라인을 통해 IS 영상을 접한 뒤 이들을 추종하기 시작했다. 이후 텔레그램 등을 통해 IS 조직원과 접촉하기도 했다. 이후 IS 관계자가 용의자에게 충성 맹세를 동영상으로 보내줄 것을 요구하며 사린 가스를 주고받는 방법 등을 논의하다 적발됐다. IS는 주기적으로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테러 행위를 담은 영상을 다크웹을 통해 공유하고 있다.미국 CNN에 따르면 IS는 최근 종교적 이념에 동조할 것을 요구하기보다 생활고 등을 겪는 개인을 상대로 세상에 대한 복수심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증오심에 찬 개인이 불특정 다수에 대한 테러를 유도하는 메시지에 쉽게 넘어갈 수 있어서다. IS는 지난해 1월 성명을 통해 “군대보다 시민을, 다른 것보다 회당과 교회 같은 종교적 목표물을 먼저 공격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발신했다.뉴올리언스 차량 테러 용의자 샴수드 딘 자바르(42) 역시 사업 실패와 두 차례에 걸친 이혼 등으로 경제적 압박을 받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범행 당시 픽업트럭에 IS 깃발을 달고 돌진했다.IS는 한때 이라크와 시리아 영토의 3분의 1을 차지했으나, 2019년 미군 등에 의해 패퇴하며 본거지에서 세력이 크게 약화됐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시리아 내전에서 알 아사드 정권이 무너지고 과도정부가 들어서는 혼란기를 겪고 있어 IS 잔존 세력이 다시 발호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임현석 기자 lhs@donga.com}

2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앞둔 미국 사회가 새해 첫날부터 잇달아 발생한 두 건의 테러 추정 사건으로 안보 불안에 휩싸였다. 1일 남부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서는 퇴역 군인 샴수드딘 자바르(42·사진)가 자행한 차량 및 총기 테러로 최소 15명이 숨지고 35명이 부상당했다. 같은 날 서부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트럼프 호텔 앞에서도 전기차가 폭발해 1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을 입었다. 미국 사회는 테러 현장에서 경찰에 사살된 자바르가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를 추종한 정황에 경악하고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 아프가니스탄 파병까지 다녀온 전직 군인이 무고한 시민을 대거 희생시켰기 때문이다. IS는 2014년 6월 시리아와 이라크 영토 약 3분의 1을 점령하고 국가 수립을 선포했다. 2017년까지 극단적 이슬람주의에 기반한 잔혹한 통치로 악명을 떨쳤으나 쿠르드족 민병대와 미군 등의 공격으로 2019년경 사실상 와해됐단 평가를 받았다. 다만, 최근 53년의 세습독재가 반군에 의해 막을 내린 시리아 정세가 불안해지며 IS 잔당들이 다시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었다. 현재 미국에선 뉴올리언스와 라스베이거스 사건이 연계됐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용된 차량이 모두 ‘투로(Turo)’라는 차량 공유 앱을 통해 빌린 차였기 때문이다. 수사 당국도 두 사건의 연계 여부 및 추가 테러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의 안보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IS에 영감, 단독 범행 아닌 듯”CNN,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자바르는 미 중부시간 오전 3시 15분경 흰색 포드 F-150 전기 픽업트럭을 몰고 뉴올리언스 버번가에서 새해맞이를 즐기던 시민들에게 돌진했다. 차량에서 내린 후 총기도 난사했다. 과거 본인이 올린 유튜브 영상 등에 따르면 자바르는 텍사스주 보몬트에서 나고 자랐다. 2007∼2020년 육군에서 복무하며 아프간에 파병됐고 다수의 훈장도 받았지만 음주운전 여파로 제대했다. 컨설팅사인 딜로이트에서 근무했지만 두 번의 이혼과 사업 실패 등으로 경제난에 시달렸다. 자바르가 테러에 사용한 트럭에는 IS를 상징하는 깃발이 걸려 있었다.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자바르는 테러 몇 시간 전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행동이 “IS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내용의 영상을 올렸다. 그가 공유 숙박업소를 빌려 사제 폭탄(IED)을 제조한 정황도 드러났다. 또 이슬람교로 개종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당국은 이번 테러가 조직적 범행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WP는 당국이 테러 현장 인근에서 최소 3명의 남성과 여성 1명이 폭발물을 설치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조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AP통신도 원격폭발용 두 개의 폭탄을 포함해 여러 개의 즉석 폭발물이 현장 일대에서 발견됐다고 전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테러 직후 트루스소셜에 “(불법 이민) 범죄자들이 미국 범죄자보다 훨씬 더 나쁘다고 말한 게 사실로 밝혀졌다”며 용의자가 불법 이민자일 것으로 단정했다. 자바르의 신원이 확인된 후 틀린 주장으로 판명 났지만 그가 취임 직후 어떤 식으로든 반(反)이민 정책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와 테슬라…정치 테러 주목”뉴올리언스 테러 약 5시간 후인 미 서부시간 오전 8시 40분경 라스베이거스의 트럼프 호텔 입구에서는 테슬라의 전기 픽업트럭 ‘사이버트럭’이 폭발했다. 사고 차량은 2024년형 신형으로 호텔 앞에서 갑자기 연기가 피어올랐고 그 직후 큰 폭발이 뒤따랐다. 사망자는 해당 차량에 탑승하고 있었고, 당국은 아직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 차량 뒤편에선 불꽃놀이용 박격포, 가스통, 캠프 연료통 등도 발견됐다. 당국은 폭발 장소가 트럼프 당선인 일가가 소유한 호텔이며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또한 당선인의 최측근인 일론 머스크라는 점에서 정치 테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머스크는 X를 통해 차량 폭발이 “테러 행위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또 뉴올리언스 테러와도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고 썼다.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임현석 기자 lhs@donga.com}

사우디아라비아가 1일(현지 시간) 53년간 세습 독재를 이어온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축출한 시리아 과도 정부 외교 사절단을 자국으로 초청해 맞이했다. 이는 국제사회 인정을 갈망하는 시리아 과도정부 외교 당국의 첫 번째 해외 방문이다. 사우디가 역내 패권을 놓고 갈등 중인 ‘앙숙’ 이란의 시리아내 영향력을 차단하는 움직임에 착수함과 동시에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아랍 맹주’로서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알자지라방송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시리아 과도정부 고위급 대표단이 사우디 수도 리야드를 방문했다. 시리아 과도정부 대표단은 아사드 하산 알시바니 외교장관, 무르하프 아부 카스라 국방장관, 아나스 카타브 정보부 수장이 참여했다. 사우디 측에선 왈리드 알쿠라이지 사우디 외교차관이 공항까지 직접 나와 과도정부 대표단을 맞았다. 시리아 국영 SANA 통신도 외교부 소식통을 인용 대표단이 “첫 공식 외국 방문은 사우디 정부 초청을 받아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알시바니 장관은 자신의 X를 통해 “이번 방문은 파이살 빈 파르한 사우디 외교장관 초청을 받아 이뤄졌다”라고 밝혔다. 그는 사우디에 도착한 직후에도 같은 채널을 통해 “자유 시리아의 역사상 첫 번째 외국 방문을 통해 양국 간의 오랜 역사에 걸맞는 새 관계를 맺고, 밝은 페이지를 열어가길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시리아는 2011년 발생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당시 아사드 정권이 강경 진압하면서 국제사회 제재를 받기 시작했다. 특히 아사드 정권은 화학무기 등을 사용해 반정부 세력을 진압했고, ‘아랍판 유엔’으로 불리는 아랍연맹(Arab League·AL)에서는 시리아를 퇴출시켰다. 2023년부터 아랍연맹 정상회의에 아사드 전 대통령이 참석하며 다시 국제 사회 복귀 시동을 걸었으나, 지난해 12월 하야트타흐리르알샴(HTS)이 주축이 된 반군이 아사드 정권을 축출했다. HTS는 과거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알카에다와 연계됐다는 의혹을 받아, 미국에 의해 테러단체로 지정돼 있다. 시리아 과도정부는 아랍권 지지를 바탕으로 국제사회 제재를 풀어보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사우디가 시리아 과도정부의 국제사회 진입을 위한 적극적인 행보에 나선 것이어서 배경이 주목된다. 그간 아사드 정권이 이란과 러시아 지원을 받아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사우디가 과도정부를 통해 시리아에서의 영향력을 키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를 통해 오랜 앙숙 이란과 시리아의 밀착 고리를 느슨하게 만드는 전략이라는 것. 그간 이란은 이스라엘, 레바논, 튀르키예, 이라크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지중해도 접하고 있는 시리아를 전략적 요충지로 활용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격으로 레바논내 친이란 무장단체인 헤즈볼라가 사실상 와해된 상태다. 시리아의 친이란 무장단체들 역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영향력이 크게 약화됐다.한편 시리아 과도정부는 아랍권의 지지가 필요하고 아사드 정권과의 차별화를 위해서 의식적으로 이란과 거리두기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시리아가 손을 내밀고, 사우디가 화답하는 외교가 이뤄진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행정부 2기를 앞두고 양측 외교 관계가 급물살을 탄 점도 의미심장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이란 제재 고삐를 쥘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사우디가 시리아와의 밀착을 통해 아랍 맹주로서 역내 외교적 영향력을 과시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훗날 사우디가 유럽 내 시리아 난민 귀환 문제를 풀어갈 중재자로 역할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최근 사우디는 이란과 대립각을 이어가고 있다. 1일 사우디 내무부는 최근 이란 국적 마약사범 6명을 처형했다고 밝혔다. 사우디 국영 SPA통신 등에 따르면, 사우디는 날짜를 밝히지 않았으나 농축 대마를 사우디에 밀반입한 혐의를 받는 이란 마약사범 사형을 집행했다. 이란 매체 테헤란타임스는 이날 이란 외교부가 사우디 대사를 초치하고 “외국인에 대한 사형은 국제법 위반”이라며 항의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해당 사형 소식에 대해 이란 외교부 측은 사우디 측에 “용납할 수 없는 처사”라고 항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양국은 2016년 사우디가 시아파 성직자를 처형하면서 단교했다가, 2023년 중국 중재로 다시 국교를 재개한 상황이다. 임현석 기자 lhs@donga.com}

2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앞둔 미국 사회가 새해 첫날부터 잇달아 발생한 두 건의 테러 추정 사건으로 안보 불안에 휩싸였다. 1일 남부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서는 퇴역 군인 샴수드딘 자바르(42)가 자행한 차량 및 총기 테러로 최소 15명이 숨지고 35명이 부상당했다. 같은 날 서부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트럼프 호텔 앞에서도 전기차가 폭발해 1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을 입었다.미국 사회는 테러 현장에서 경찰에 사살된 자바르가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를 추종한 정황에 경악하고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 아프가니스탄 파병까지 다녀온 전직 군인이 무고한 시민을 대거 희생시켰기 때문이다. IS는 2014년 6월 시리아와 이라크 영토 약 3분의 1을 점령하고 국가 수립을 선포했다. 2017년까지 잔혹한 통치로 악명을 떨쳤으나 쿠르드족 민병대와 미군 등의 공격으로 2019년경 사실상 와해됐단 평가를 받았다. 다만, 최근 53년의 세습독재가 반군에 의해 막을 내린 시리아 정세가 불안해지며 IS 잔당들이 다시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었다. 현재 미국에선 뉴올리언스와 라스베이거스 사건이 연계됐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용된 차량이 모두 ‘투로(Turo)’라는 차량공유 앱을 통해 빌린 차였기 때문이다. 수사 당국도 두 사건의 연계 여부 및 추가 테러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의 안보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IS에 영감, 단독 범행 아닌 듯”CNN,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자바르는 미 중부시간 오전 3시 15분경 흰색 포드 F-150 전기 픽업트럭을 몰고 뉴올리언스 버번가에서 새해맞이를 즐기던 시민들에게 돌진했다. 차량에서 내린 후 총기도 난사했다. 과거 본인이 올린 유튜브 영상 등에 따르면 자바르는 텍사스주 보몬트에서 나고 자랐다. 2007~2020년 육군에서 복무하며 아프간에 파병됐고 다수의 훈장도 땄지만 음주 운전 여파로 제대했다. 컨설팅사인 딜로이트에서 근무했지만 두 번의 이혼과 사업 실패 등으로 경제난에 시달렸다. 자바르가 테러에 사용한 트럭에는 IS를 상징하는 깃발이 걸려 있었다.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자바르는 테러 몇 시간 전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행동이 “IS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내용의 영상을 올렸다. 그가 공유 숙박업소를 빌려 사제 폭탄(IED)을 제조한 정황도 드러났다. 또 이슬람교로 개종했다는 증언도 나왔다.당국은 이번 테러가 조직적 범행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WP는 당국이 테러 현장 인근에서 최소 3명의 남성과 여성 1명이 폭발물을 설치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조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AP통신도 원격폭발용 두 개의 폭탄을 포함해 여러 개의 즉석 폭발물이 현장 일대에서 발견됐다고 전했다.트럼프 당선인은 테러 직후 트루스소셜에 “(불법 이민) 범죄자들이 미국 범죄자보다 훨씬 더 나쁘다고 말한 게 사실로 밝혀졌다”며 용의자가 불법 이민자일 것으로 단정했다. 자바르의 신원이 확인된 후 틀린 주장으로 판명났지만 그가 취임 직후 어떤 식으로든 반(反)이민 정책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와 테슬라…정치 테러 주목”뉴올리언스 테러 약 5시간 후인 미 서부시간 오전 8시 40분 경 라스베이거스의 트럼프 호텔 입구에서는 테슬라의 전기 픽업트럭 ‘사이버트럭’이 폭발했다. 사고 차량은 2024년형 신형으로 호텔 앞에서 갑자기 연기가 피어올랐고 직후 큰 폭발이 뒤따랐다. 사망자는 해당 차량에 탑승하고 있었고, 당국은 아직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 차량 뒤편에선 불꽃놀이용 박격포, 가스통, 캠프 연료통 등도 발견됐다.당국은 폭발 장소가 트럼프 당선인 일가가 소유한 호텔이며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또한 당선인의 최측근인 일론 머스크라는 점에서 정치 테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경찰 측은 “사건이 트럼프 호텔 앞에서 발생했고, 사고 차량이 테슬라 트럭이며, 머스크가 트럼프 당선인과 협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우려할 지점이 있다”고 했다. 머스크는 X를 통해 차량 폭발이 “테러 행위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또 뉴올리언스 테러와도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고 썼다.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임현석 기자 lhs@donga.com}

새해 첫날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서 차량 돌진으로 40여 명의 사상자를 낸 테러 용의자는 미 육군에서 복무한 이력이 있는 미국 시민권자로 확인됐다. 불법 이민자일 것이란 일각의 추측은 빗나간 것이다. 용의자가 최근 이슬람교로 개종했으며,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IS)를 추종했다는 증언도 나온다.1일(현지 시간) CNN에 따르면 이번 테러 용의자는 미국 텍사스 출신 시민권자 샴수드딘 자바르(42)다. 자바르는 이날 오전 3시 15분께 뉴올리언스의 프렌치 쿼터 버번 스트리트에 픽업트럭을 몰고 돌진해 최소 10명이 숨지고, 35명이 다쳤다. 용의자는 이후 차량에서 내려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다가 숨졌다. 용의자가 몰던 차량에서 ISIS 깃발과 무기, 사제 급조폭발물 등이 발견됐다.CNN은 현직 관리를 인용해 자바르가 미 육군에서 2006~2015년까지 10년간 근무했다고 전했다. 용의자는 복무 당시엔 미 육군 인사부와 IT부를 거쳤으며, 2009년 2월~2010년 1월 아프가니스탄에 근무한 이력도 확인됐다. 군 전역후 조지아주립대에 진학해 2017년 컴퓨터공학 학위를 받았다. 용의자는 2019년 부동산 중개업 자격증을 취득해 텍사스, 조지아주 일대에서 중개업체를 차리기도 했다.용의자는 주변에 사업 성과를 자랑했으나 실제로는 두 차례 이혼과 사업 실패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것으로 알려졌다. 첫 번째 부인과 아이 두명의 양육비를 두고 법정 다툼을 벌였으며, 2022년 1월 두 번째 이혼 당시엔 당시 주택 대출 연체액이 2만7000달러(약 4000만 원)를 넘겼다는 증언도 나왔다. 중개업 사업도 이 무렵 2만8000달러(약 4100만 원) 적자를 냈고, 신용카드 연체액도 1만6000달러(약 2300만 원)에 달했다고 한다. 또 용의자는 2002년 절도, 2005년엔 무면허 운전 전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미 수사당국은 자바의 범행 동기에 대해 조사중이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용의자가 최근 범행 전 녹화한 영상을 확보해 분석에 들어갔다. 용의자는 해당 영상을 통해 꿈에서 영감을 받아 ISIS에 합류했다고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용의자가 최근 이슬람교로 개종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용의자 전 부인의 남편 드웨인 마시는 뉴욕타임스(NYT)에 “용의자가 육군을 정상적으로 제대한 뒤 최근 이슬람 교인으로 개종했다. 최근 머리를 자르는 등 비정상적인 행위를 해 자녀와의 만남을 차단했다”고 밝혔다. 용의자는 첫 번째 부인 사이에 15살과 20살의 딸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임현석 기자 lhs@donga.com}

무안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와 관련해 해외 언론과 전문가들은 활주로 끝에 설치된 ‘콘크리트 둔덕’ 구조물이 공항 설계상 이례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통상 해외 공항에선 충돌에 대비해 활주로 가까이에 단단한 구조물을 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30일(현지 시간) 전직 항공기 조종사 더그 모스는 워싱턴포스트(WP)에 “공항의 레이아웃(구조물 설계)이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활주로를 완전히 평탄하게 만들려면 비용이 많이 드는 만큼 약간의 경사는 드물지 않고 특이한 공항 설계도 많이 봐왔으나 이번(무안공항)이 최악”이라며 “공항 설계는 여객기가 활주로를 벗어나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무안공항 활주로 끝의 경사면과 로컬라이저(착륙 유도 안전시설)의 수평을 맞추기 위한 구조물(콘크리트 둔덕)을 세울 때 충돌 가능성에 대비했어야 함을 지적한 것이다. 무안공항 활주로의 끝부분에서 264m 떨어진 지점에 설치된 로컬라이저 안테나는 활주로 끝단과 높이를 맞추기 위해 2m가량 솟아 있다. 사고 여객기는 동체로 활주로에 내린 뒤 시속 200km가 넘는 속도로 경사면을 질주하다가 솟아오른 둔덕에 부딪치며 폭발했다. 미국 비영리단체인 항공안전재단 하산 샤히디 회장도 같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공항 내) 구조물 배치는 국제 표준에 따라 결정된다. 조사관들은 구조물이 규정을 준수했는지를 알고 싶어 할 것”이라며 “활주로 근처의 물체들은 (항공기와) 충돌 시 부서지기 쉬운 물체여야 한다”고 말했다. 48년 경력의 조종사로 사고기와 동일 기종인 보잉 737-800을 운항한 경험이 있는 크리스 킹스우드는 영국 BBC 인터뷰를 통해 “활주로에서 일정 거리와 범위 내에 있는 장애물은 부서지기 쉬워야 한다. 항공기와 충돌하면 부서져야 하기 때문”이라며 “딱딱한 소재로 만든 게 이상하고, 확실히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독일 루프트한자항공 조종사인 크리스티안 베케르트는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보통 활주로 끝에 그런 콘크리트 구조물 벽을 세우진 않는다”고 했다. 한편 영국 항공전문매체 플라이트 인터내셔널 매거진의 데이비드 리어마운트 편집자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한국 당국에 대한 질문’이란 제목의 글을 게재하고 “활주로 끝 바로 너머에 있던 장애물(콘크리트 둔덕)은 무엇이며, 왜 거기에 있었는지 규명되어야 한다”고 했다. 또 “(동체) 착륙이 대규모 사망자가 나온 원인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콘크리트 둔덕 때문에 대형 참사가 났다고 진단한 것이다.임현석 기자 lhs@donga.com}

“카터는 신(神)과 국민의 겸손한 종(從)이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9일(현지 시간) 별세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이렇게 추모했다. 향후 30일간 미 국내외 관공서에 조기를 게양하고 내년 1월 9일을 ‘국가 애도일’로 정해 그를 추모하기로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또한 “카터는 모든 미국인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우리 모두는 그에게 감사의 빚을 지고 있다”고 애도했다.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등 주요 언론도 그에 관한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정치적 양극화와 이념 대립이 심한 미국 사회 전반에서 이처럼 카터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열기가 뜨거운 것은 그가 퇴임 후 더 빛난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1977년 1월부터 1981년 1월까지 39대 미 대통령으로 활동했던 카터 전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했다. 정치인으로는 젊은 나이인 57세에 ‘백수’가 된 것이다. 하지만 세계를 돌며 민주주의, 인권, 평화, 기아 퇴치 등에 헌신하는 바람직한 ‘인생 2막’을 열었다. 이제는 누구나 그를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가장 성공한 전직 대통령’으로 부른다.● 美 대통령이 된 ‘땅콩 농부’ 카터 전 대통령은 1924년 조지아주 플레인스에서 태어났다.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땅콩 농장을 운영하던 부친의 가업을 물려받았다. 1946년 결혼한 부인 로절린 여사와의 사이에 3남 1녀를 뒀다. 지난해 11월 로절린 여사가 사망할 때까지 77년간 해로했다. 둘은 가장 긴 결혼 생활을 유지한 미국 대통령 부부다. 부인의 추모 예배 당시 “당신을 볼 때마다 나는 다시 사랑에 빠진다”는 신혼 시절 편지도 공개했다. 연방 상하원 의원 경력이 없고 조지아 주지사만 지낸 그는 워싱턴 정계의 아웃사이더였다. 이런 그가 세계 최고 권력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베트남전과 워터게이트 사건을 겪은 국민들에게 ‘정직’, ‘상식’ 같은 보통 사람의 가치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대선 유세 당시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라고 강조한 것은 ‘정치인 카터’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재임 중 주요 성과로 중동 평화협상 중재, 중국과의 관계 개선(데탕트) 등이 꼽힌다. 1978년 그는 미 대통령 별장이 있는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평화 협상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중재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은 전쟁으로 잠시 점령했던 시나이반도를 이집트에 돌려줬고, 한 해 뒤 이집트는 아랍국 최초로 이스라엘과 수교했다. 하지만 오일쇼크 여파로 집권 초 6.5%였던 소비자물가가 3년 후 13.5%로 치솟자 민심이 돌아섰다.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당시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은 수도 테헤란의 주이란 미국대사관에 미국인 52명을 444일간 억류했다. 최강대국의 명성에 치명타를 입힌 이 사건으로 ‘강한 미국’과 ‘경제 성장’을 강조한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에게 백악관을 내줬다.● 세계 누비며 평화 중재한 ‘미스터 픽스 잇’ 자연인이 된 그는 1982년 비영리재단 ‘카터센터’를 설립했다. 이를 통해 세계 곳곳을 돌며 민주주의, 인권, 기아 퇴치에 앞장섰다. 특히 저소득층의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개선해주는 ‘해비탯(사랑의 집 짓기)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017년에는 93세 고령으로 캐나다 매니토바주 위니펙에서 집 짓기 자원봉사를 하던 중 탈수증으로 쓰러졌다. 그는 해비탯 재단과 함께 전 세계 14개국에서 4447채 이상의 주택을 건설, 수리했다. 집을 지으며 환하게 웃는 모습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외교 협상 막후에서 해결사 겸 중재자로도 나섰다. 북한, 수단, 아이티, 세르비아, 보스니아 등 분쟁지에서도 ‘평화 중재자’로 활약했다. 덕분에 ‘사태를 정리한다’는 뜻의 ‘미스터 픽스 잇(Mr. Fix it)’으로 불렸다. 말년에는 흑색종 투병 등으로 대부분을 플레인스 자택에서 보냈다. 지난해 2월부터 호스피스 돌봄 치료를 받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내년 1월 초 수도 워싱턴 의회에서 거행될 장례 행사에서 직접 추도사를 낭독하기로 했다. 미 대통령의 국장은 2018년 타계한 조지 H 부시 전 대통령 이후 7년 만이다. 워싱턴=신진우 특파원 niceshin@donga.com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임현석 기자 lhs@donga.com}

미국 뉴욕의 출판사 코드힐 프레스가 지난달 한국 근대 시인 윤곤강(1911~1950)의 영역시집 ‘윤곤강 선집: 1937-1948’(Yoon Gon-Gang Selected Poems: 1937-1948)을 출간했다고 최근 밝혔다. 이는 윤곤강문학기념사업회가 2021년부터 추진해 온 시인의 업적 선양 사업의 일환이다.이번 영역시집은 윤곤강 시집 6권에서 선별된 80편의 시를 담고 있다. 번역은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하인즈 인수 펭클(Heinz Insu Fenkl) 뉴욕 주립대 교수가 맡았다. 펭클 교수는 번역 후기에서 “영어로 번역된 윤곤강의 시는 주제와 이미지에서 낭만주의 시인들을 연상시키지만, 월트 휘트먼의 열정적인 에너지와 진지함도 내포되어 있다”고 평했다.코드힐 프레스는 그동안 김광균, 김후란, 신달자 등 한국 근대 시인들의 영역시집을 출간해 왔다. 이번 윤곤강 영역시집의 출간으로 한국 근대시에 대한 소개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윤 시인은 1911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1931년 동경 유학 당시 문예지 ‘비판’에 첫 시를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이듬해 다수의 평론과 시론을 발표하며 평론가로도 활동했다. 생전에 총 6권의 시집을 냈다.임현석 기자 lhs@donga.com}

경남 창원에 사는 한부모 가정 중학생 이서준 군(13·가명)은 골수암을 앓는 어머니를 돌본다. 어머니 정경희 씨(가명)가 골수암 진단을 받은 것은 2년 전이다. 처음엔 감기가 오래간다고만 생각했다. 몸을 움직이기 어려운 수준까지 이르러서야 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연고가 없는 서울에서 2개월이나 병원 입원 신세를 졌다. 식당 조리와 청소 일을 전전하던 정 씨는 생계가 끊겼다. 갑작스레 병원비를 마련해야 하는 탓에 정 씨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돈을 빌렸다. 그 이후로 졸지에 1500만 원 빚이 생겼다.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보니, 당장 갚을 길이 없다.현재 정 씨는 집 밖을 나가기도 어려워한다. 빌라 건물 4층으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조금만 걸으려고 해도 숨이 차고 눈앞이 어지러워진다. 지금 보다 병세가 심해지면 부산에 있는 대형 병원 신세를 져야만 한다. 그러나 치료비와 간병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탓에 쉽사리 입원 결정을 하지도 못한다. 이 군은 돈이 없어서 어머니가 제때 병원에 가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다. 하지만 당장 생계 전선에 나설 수도 없다. 이 군은 중학교 1학년. 방과 후 또래들이 모여서 어울리는 모습을 지나쳐서 곧장 집으로 향한다. 기력이 없다시피 한 어머니를 대신해 밥상을 차리는 일도 이 군이 한다. 몸이 불편한 어머니가 하는 심부름을 하기 위해 되도록 함께 집 밖으로 잘 나가지 못하게 됐다.어머니는 불가피하게 아이에게 부탁하면서도, 평범한 일상과는 다소 어긋나 보이는 아들의 모습이 안쓰럽다고 했다. 정 씨는 병이 빨리 완치돼야 한다며 “아이를 데리고 놀이공원에 한 번 데려가 본 적이 없기 때문에”라고 말했다. “남들 다하는 평범한 일들을 아들에게도 해주고 싶어요” 정 씨는 자신의 꿈이라고 했다. 그러나 당장 학업을 이어가는 것도 힘겹다. 현재 이들 가족은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이다.이 군처럼 중증질환이나 장애가 있는 가족을 돌보는 13~34세 청소년이나 청년을 흔히 ‘가족돌봄청년’, 또 다른 표현으로는 ‘영 케어러’라고 한다. 돌봄 노동으로 인해 미래 설계를 하지 못한다. 청소년부터 돌봄을 시작하는 경우, 생계에 대한 책임까지도 길게 짊어지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가족돌봄청년 규모가 18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복지 사각지대 된 청소년 돌봄…정책 지원과 기부 문화 활성화 필요돌봄 부담은 이 군처럼 청소년기 혹은 그 이전에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삶, 진로 설계를 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들 가족돌봄 청년에 대한 실태를 되도록 조기에 확인하고 지원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계속되지만, 현재 가정돌봄청년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정확한 현황 파악도 되지 않고 있다. 대상자 확인을 통해 기존 복지 정책에 대한 안내 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필요한 예산과 지원 정책에 대한 수립도 보다 정교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정부는 내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선 ‘영 케어러’ 통계를 확인키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8월부터 시범사업을 벌여 인천, 울산, 충북, 전북 등 네 곳에 ‘청년미래센터’를 열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족돌봄청년이 온라인(www.mohw2030.co.kr)으로 지원을 신청할 수 있게끔 했다. 센터를 통해 가족돌봄청년은 연간 200만 원의 자기돌봄비와 가족 돌봄 및 의료, 심리지원 등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해당 제도는 2026년께나 전국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현재로선 읍면동 센터에 도움을 요청해 일상돌봄 등 보건복지부 서비스를 연계받아야 한다. 다만 서비스가 아픈 가족 지원에 집중하다 보니, 돌봄청년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 등의 지원은 빠져 있다는 지적이 있다.제도적 지원이 자리잡기 전까지는 지자체 지원이나 기부, 후원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기부금 모금과 후원단체 중 한 곳인 대한적십자사는 가족돌봄청년과 기초생활수급자 등을 대상으로 한 결식아동 지원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동아일보와 대한적십자사는 후원하는 돌봄 청소년인 이서준 군에 대한 기부 캠페인(아래 첫 번째 링크)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아울러 결식 아동을 돕기 위한 후원(두 번째 링크)를 통해서 이어갑니다. 모금액은 기부금품법에 의해 관리되며 사용 내역은 대한적십자사 기부금품 모집 및 지출명세를 통해 공개됩니다.공동기획 가족돌봄 서준이 돕기공동기획 결식아동 돕기임현석 기자 lhs@donga.com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을 때, 거기 걸맞는 성공에 만족하면서 살아라.”‘피터의 원리 : 무능한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이유’ 中어느 조직에나 저 자리까지 어떻게 승진해서 올라갔는지 의문이 들 만큼 무능한 사람이 있다. 어떻게 저 사람이 저 자리에 있는지 궁금한가? 이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경영 이론이 바로 ‘피터의 법칙’(또는 피터의 원리)이다.미국 컬럼비아대 로런스 피터 교수는 1969년 수백 건의 조직 내 무능력 케이스를 연구했다. 이를 토대로 “조직원들은 자신의 무능력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승진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힌다. 보통 조직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면 더 높은 직급으로 올라간다. 문제는 능력을 인정받았던 분야와 승진해서 새로 맡는 업무가 대부분 다르다는 점이다. 보통 승진하면 실무자가 관리자가 된다. 관리자는 또 작은 팀 단위부터 큰 규모 부서까지 맡게 된다. 실무자가 예전엔 자기 일만 잘하면 됐지만, 관리자는 다르다. 업무를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일을 종합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조직 내 불만이 고조되지 않게 조율하는 업무도 더해진다. 직급이 높아질수록 업무 범위는 넓어지고, 이전엔 없었던 과제를 맡아야 한다. 스테이지마다 요구되는 역량이 다른 것이다. 그러니 이전에 잘했다고 새로 맡은 일도 잘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 이론에 따르면, 조직 내 위계가 높은 자리일수록 그와 같은 부담이 커진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지금은 무능해 보이는 관리자도 한때 조직에서 ‘에이스’라고 불렸던 실무자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게임 회사에서 유능한 IT 개발자가 인사권자인 회장에게 발탁돼서 부사장이 됐다가, 과금 체계를 엉망으로 뒤흔들어서 회사를 위기에 내몬 사례를 들은 적이 있다. 한때 승진을 거듭하던 검사도 안다. 이걸 정치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이전 성과를 토대로 사실상의 인사권자인 국민의 선택을 받아서 더 높은 선출직 지위에 올랐는데, 새로운 직분에 적응하지 못한 채…. 경영 이론 얘기로 돌아가자. 피터의 법칙을 유념한다면, 인사권자는 직원을 발탁할 때 이전 경험이나 성과보다는 앞으로 맡을 업무에 적합한지를 따지는 게 더 중요하다. 이전 지위에서 뚝심이 필요했더라도, 더 높은 지위에선 정치적인 조율 감각이 더 중요하다면 당연히 그런 사람을 발탁해야 한다. 로런스 피터는 해당 이론을 주창한 책에서 구성원 역시 자기 능력을 알았다면, 더 높은 자리를 탐내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 마음이 어디 쉬울까. 그러나 누구나 반드시 어디쯤에서 멈춰 선다. 은퇴한 다음엔 누구나 동네 호프집에 들러서 친구들과 술이나 한잔 기울이고, 예전 이야기를 주워섬기다가 취해서 돌아간다. 보통 그렇게들 산다. 그런 삶엔 수습할 일도 없을 것이다. 해가 내려갈 쯤, 편의점 앞 비어 있는 파라솔 의자를 보다가 든 생각이다.임현석 기자 lhs@donga.com}

이이안 군(8·가명)은 희귀난치병을 두 개나 앓고 있다.첫 번째 진단은 두 살 때였다. 어머니 김은주 씨(가명)는 아이가 오랫동안 눈을 마주치지 못하자, 병원을 여러 곳 찾은 뒤에야 생소한 병 이름을 듣게 됐다. 가족삼출유리체망막병증. 선천적으로 망막이 떨어져나가는 병이다.● 2년 새 두 번 진단, 희귀질환 버티는 이안이병명을 알았을 땐 이미 망막이 절반가량 떨어져 있었다. 오른쪽 눈은 처음엔 실명으로 진단받을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다. 급하게 레이저 수술을 몇 차례나 받았지만, 잦은 수술에도 완치가 되는 병은 아니다. 병세가 나빠지진 않는지 꾸준히 관찰해야 하다 보니 주기적으로 병원에 들른다.특수 렌즈로 만든 안경을 써야만 겨우 0.1의 시력이 나온다. 시야가 좁은 탓에 침대에서 일어나서 자주 떨어지고, 계단을 올라가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안경이 없으면 얼굴 앞까지 붙이다시피 가져간 휴대전화 글씨만 알아차린다.이마저도 안경을 1년에 두 세 번씩 맞춰야 하는데 한 번 맞출 때마다 렌즈 가격만 100만~150만 원이 든다. 국내에서 생산하지 못해 해외 수입에 의존하는 특수 렌즈이기 때문이다. 희귀난치병이라 의료보험을 통한 치료비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아이는 망막 질환 치료를 받기에도 빠듯한 와중에 모야모야병 진단도 받았다. 은주 씨는 어느날 아이가 화장실에 가려고 새벽에 일어났다가 왼쪽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급가헤 응급실에 데려갔다. MRI를 찍은 뒤에 이 병을 알게 됐다. 네 살 때였다. 모야모야병은 특별한 원인 없이 뇌에 피를 공급하는 동맥이 서서히 좁아지는 병이다. 뇌 혈관이 막히면, 피를 공급받는 부위가 손상된다. 작은 몸집을 한 아이는 뇌 수술을 세 군데나 받아야 했다. 모야모야병 탓에 아이는 시야가 사라지면서 갑작스레 쓰러질 때가 있다. 최근에도 네 번이나 쓰러졌다. 은주 씨는 그때마다 놀라서 병원 응급실을 찾는다. 은주 씨는 아이가 일어나자마자 몸 한쪽을 불편해하거나 넘어지진 않았는지 들어가서 살피는 일과로 하루를 시작한다.● 마음까지 스며들어간 아픔 은주 씨는 최근 들어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아이는 낮아지는 시력 탓에 학교에 들어간 뒤에 의기소침해졌다. 아이는 다른 아이들 것과 다른 큰글씨 책을 보고, 축구에 끼지 못한 채 다른 아이들을 지켜만 본다. 그러다가 자신의 병이 어떤 의미인지 인지하게 된 것이다. 은주 씨는 레고 블록 맞추는 법을 가르쳐주려고 했다가 아이로부터 “나는 못 할 거야”라고 들었다. 아이 마음 속에서 어둠이 커져가는 것이다.올해 병원에 들렀다가 은주 씨는 또 다시 놀랐다. 의사는 아이의 눈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고 했다. 은주 씨는 치료 시기가 특히 중요하다는 말도 들었다. 아이 실명을 피하기 위해 내년 초에 다시 치료에 들어가야 한다. 은주 씨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웹툰작가라는 꿈을 이어갈 수 있기만을 기도한다. 그런 마음으로 다음 치료를 기다리고 있다.그 와중에 덤프트럭을 운전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는 아버지 이중후 씨(가명)는 2021년부터 일하던 곳에서 사기를 당해 급여 4000만 원을 떼였다. 소송도 해봤지만 사업체 명의가 바뀐 뒤여서 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 사장도 저희 아이가 아픈 걸 알고 있었어요.” 은주 씨는 말했다.지원 사각지대에 놓인 소아 희귀난치질환 환자소아 희귀난치성 질환 치료의 경우, 복지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이들 환자를 위한 산정 특례라는 제도가 있다다.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등록이 먼저 이뤄져야 하고, 이후 각자 아이에 대한 장애 정도를 판단해 특례 대상인지 확인받는 절차를 거친다.즉 정부가 인정하는 희귀난치병에 해당하고 환자가 질환 산정 특례 인정을 받아야 치료비를 10%로 경감 내지는 면제받을 수 있다.은주 씨 가족은 가족삼출유리체망막병증으로 특례 산정을 신청했지만 정부 심사에서 탈락했다. 시력이 남아 있는 아이의 질환 중증도가 낮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당장 아이의 시력이 실명 수준은 아니라고 해도, 망막과 시력 상황에 따라서 언제든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또한 현 제도는 치료에 적기가 있다는 점은 간과된다. 급하게 막대한 수술비가 들어갈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 보니 가족은 다음 치료를 앞두고 초조할 수밖에 없다.아이가 앓는 모야모야병의 경우, 산정 특례를 받았다. 그러나 이 역시 치료비에 국한된다. 마비와 관련된 재활은 별개다. 은주 씨는 몸을 잘 쓰지 못하고, 낮은 시력에 익숙해져야 할 아이 재활을 위한 치료도 받았으면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선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없고, 비교적 비용이 저렴한 공공 재활센터는 몇 개월씩 기다려도 자리가 나지 않는다. 다행히 공공 재활센터에 등록한다고 하더라도, 워낙 대기인원이 많다보니 수업을 길게 들을 수 없다.소아 희귀난치병과 관련해 의료 사각지대 논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제도가 보완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제대로 된 지원 제도가 마련되기까지, 사각지대에 놓인 환아와 가족들은 기부에 의존하며 버티고 있는 현실이다.동아일보와 대한적십자사는 소아 희귀난치병 환자인 이이안 군을 후원하는 기부 캠페인(아래 링크)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모금액은 기부금품법에 의해 관리되며 사용 내역은 대한적십자사 기부금품 모집 및 지출명세를 통해 공개됩니다.▶후원하기임현석 기자 lhs@donga.com}

2004년 11월 12일. 임요환과 홍진호가 에버 2004 온게임넷 스타리그 4강전에서 맞붙었다. 올해 이달로 딱 20년이 됐다.임요환은 일꾼을 동원해 상대 앞마당에 벙커를 짓고 초반에 압박하는 전술, 벙커링을 통해 5판 3선승제 승부에서 필요한 승수를 내리 따내면서 결승에 오른다. 홍진호는 승부추가 기울어진 가운데서도 첫 경기 14분을 버티면서 분투하지만, 이후 2·3경기는 4분여 만에 내리 내준다. 3회 연속 벙커링, 흔히 ‘삼연벙’으로 오늘날 회자된다.● 삼연벙이 던진 질문 2001 코카콜라배부터 쌓아온 두 선수의 라이벌 서사가 허망했다. 당시 논란도 컸다. 둘의 합(合)을 보고 싶어 했던 당시 팬들은 상대를 빠르게 봉쇄하는 임요환의 최적화 전략이 지나치게 승패에만 연연했다며 비판했다. 반면 프로의 세계에서 승부에 집착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냐는 반박도 비등했다. 분명한 것은 당시 저그로선 최적화 수준이 높은 테란의 전략을 막기 어려웠다는 점(초반 일꾼 동원 벙커링을 극복한 것은 저그도 최적화 수준이 높아진 다음)이다. 그날 게임은 팬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게임이란 무엇인가? 스타크래프트란 결국 가장 빠른 시간대에 상대를 초살하는 최적화로 수렴되는 것인가? 그동안 양자가 경합하는 가운데서 발생하는 창의적 해법과, 이로 인해 생기는 미학(독창적이던 박용욱과 강민, 홍진호의 경기에서 우린 이런 인상을 받았다)이란 무엇이었나? 분투에서 느껴지는 비감, 양자의 합에서 드러나는 예술성은 무엇이었나? 모두 착시였나? 삼연벙 이후로도 게임은 진화를 거듭한다. 저그가 최적화를 하는 과정에서 테란은 벙커링이라는 답지 대신 ‘원배럭 더블’ 전략의 효율성을 다듬는 과정으로 나아간다. 게임은 궁극의 최적화를 향해갔다. 이를테면 저그는 저그대로 빠른 뮤탈리스크 전략으로 최적화한다. 진화라는 점에서 프로토스도 마찬가지다. 그러다가 결국 3종족 모두 패러다임이 고정된다. 벙커링 이후 20년이 흘렀다. 이제 게임은 정해진 길, 공식에 철저하다. 현 스타크래프트 최강자로 최근 개인 리그를 3연패 한 ‘철벽’ 저그 김민철의 경우 이와 같은 최적화에 관한 한 빈틈이 없다. 그것이 이 시대의 미학이다. 악랄했던 박용욱의 프로브와 홍진호식 폭풍 저그, 조정현식 대나무 테란의 독창성에서 아름다움을 느꼈다면, 이제 게임을 보는 이들은 승리 공식에서 한치의 벗어나지 않는 철저함에서 미감을 느낀다. 이전과는 달라진 감상법이다. 기점을 거슬러 올라가면 분기점은 그날의 벙커링이었다. 벙커링이 아니었더라도 최적화의 시대가 도래했을 것이다. 다만 그날의 벙커링은 일꾼 정찰 시점과 병력 동원 시점을 초 같이 계산해서 진출하는 최적화의 절대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남았다. 그것이 삼연벙이다. ● 그러나 다시, 삼연벙이란 무엇인가 스타크래프트를 보는 이들이 20년 전 느낀 감정을 이제 온 세상이 느낀다. AI 때문이다. 바둑기사 이세돌은 이달 1일 서울대에서 열린 특별 강연에서 “예술엔 정답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신을 일컬어 바둑을 예술이라고 배운 마지막 세대라고 하면서다. 한없이 승률이 높은 수만을 찾고, 이를 의심하지 않는 AI 바둑은 예술이 아니라는 것. 그는 승패가 바둑의 전부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말했다. “승패가 결정된다고 해도 그 순간 끝난 게 아니다.”그러나 삼연벙 이래 스타크래프트에선, 게임을 예술로 보는 시각을 ‘아마추어리즘’으로 분류한다. 만약 한판의 게임이(혹은 대국이) 예술이라고 하더라도, 승패를 떠나서 어떤 가치를 지닌단 말인가. 삼연벙 이후 그 질문은 내 머릿속을 떠난 적이 없다. 오랫동안 그 답을 찾아 헤맸으나, 찾지 못했다. 머릿속에서 이세돌은 되풀이한다. 예술엔 정답이 없다고. 그렇다면 나에게 스스로 다시 묻는다. 삶이란 예술인가, 게임인가. 최적화를 향한 진화, 공식 정립으로 나아갈 게임의 운명을 예감하면서, 나는 2004년 11월 12일 방송이 끝난 뒤에도 그 채널을 한참 더 봤다. 아버지가 “게임 좀 그만 보고, 잠이나 자라”고 할 때도 나는 오랫동안 영상을 찾아보면서, 게임을 돌이키고 또 돌이켰다. 제발 좀 자라. 아버지가 내 등을 때리면서 하소연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나는 그 의미를 다 알고 있으면서도, 확정하지 않은 채로 여전히 속에 대고 묻는다. 삼연벙이란 무엇인가. 그 질문을 던지는 동안 지금도 불필요한 것을 곱씹고 매달린다. 결함을 안은 인간으로서, 불가피하다. 그렇게 존재한다. 벌써 20년이 지났던가.[소소칼럼]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소소한 취향을 이야기하는 가벼운 글입니다. 소박하고 다정한 감정이 우리에게서 소실되지 않도록, 마음이 끌리는 작은 일을 기억하면서 기자들이 돌아가며 씁니다.임현석 기자 lhs@donga.com}

배우 이영애 씨(사진)가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됐던 사할린 동포와 형편이 어려운 독립 운동가 후손을 위해 써달라며 동아일보-대한적십자사 디지털콘텐츠 공동기획 프로젝트 ‘동행’에 2000만 원을 기부했다.5일 대한적십자사 등에 따르면 이 씨는 “일제 강점기 때 일어난 희생과 고통을 입은 분들에게 써달라”며 9월초 사할린 동포 돕기 캠페인과 독립운동가 후손 돕기 캠페인에 각각 1000만 원을 기부했다. 이 씨 측 관계자는 “우리가 어려운 시기에 돌보지 못했던 분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드리고 싶다는 의미”라며 “앞으로 계속 지원을 약속하며 2000만 원을 우선 기부했다”라고 설명했다. 이 씨는 일제 강점기 피해자, 독립 운동가와 그 후손의 생활상에 더 많은 사회적 관심이 이뤄지면 좋겠다는 뜻도 전달해왔다.이 씨는 8월말 지인에게 ‘동행’ 시리즈에서 귀국 사할린 동포 지원과 관련된 기사를 보내오며 기부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8월 보도됐던 사할린 강제동원 피해자 등에 대한 지원 부족 문제를 다룬 ‘깊은 상처 안고 돌아온 고국, 따뜻한 희망의 한끼’() 기사다. 이후 수년간 단칸방을 전전해온 독립 운동가의 후손을 다룬 기사 ‘천석꾼 가세 기울었어도, 독립운동 아버지 원망은 이제 안 해요’() 기사를 본 뒤에도 기부 의사를 밝혔다.이 씨는 독립 유공자와 참전 용사와 관련된 기관 등에 꾸준한 기부를 이어오고 있다. 올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천안함재단에 5000만 원을, 8월 광복절을 맞아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1억 원을 기부했다.동아일보와 대한적십자사는 독립운동가 후손을 지원하는 기부 캠페인(아래 링크)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모금액은 기부금품법에 의해 관리되며 사용 내역은 대한적십자사 기부금품 모집 및 지출명세를 통해 공개됩니다.▶후원하기임현석 기자 lhs@donga.com}

지난해 2월 6일, 튀르키예 동남부 가지안테프에서는 규모 7.8, 연이어 카흐라만마라쉬에서 규모 7.5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사망자는 무려 5만 명, 부상자도 11만 명에 달했습니다. 워낙 피해가 큰 탓에 21세기 최악의 재난 중 하나라는 말이 나왔죠. 전문가들은 참상을 극복하는 데만 10년, 혹은 그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합니다. 지진 발생 후, 한국에서는 슬픔에 빠진 튀르키예를 도우려는 움직임이 크게 일었습니다. 대한적십자사는 급히 성금을 모았고요. 애초 200억 원을 모금 목표로 세웠으나, 이를 훌쩍 뛰어넘는 400억 원 성금이 마련됐습니다. 6·25 전쟁 당시 파병했던 우리나라에 반대로 도움의 손길을 받게 된 것이죠.한국에서 모인 성금은 지진 피해 복구 현장에서 식량, 보건, 생계 등 다양한 분야에 지원됐습니다. 특히 지진 피해자들의 임시 숙소로 쓰이는 카르만마라쉬 지역 ‘우정의 마을’ 운영 자금으로 쓰입니다. 적십자사는 지역 내 소상공인의 피해 복구에도 힘을 썼습니다. 취약계층과 더불어 소규모·중소 자영업자에게 13억4000만 원의 현금을 지급하였고, 총 428개의 업체가 지원을 받았습니다. 동아일보는 현장을 찾아 당시의 참상과 함께, 한국 국민의 성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살펴봤습니다.한국으로부터 지진 피해 지원을 받은 튀르키예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유튜브()를 통해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동아일보와 대한적십자사는 지난해 큰 지진 피해를 입은 튀르키예와 시리아 지역 내 임시 거주처 등을 지원하기 위한 후원 캠페인을 펼치고 있습니다. 모금액은 기부금품법에 의해 관리되며 사용 내역은 대한적십자사 기부금품 모집 및 지출명세를 통해 공개됩니다. 아래 링크와 QR코드를 통해 지원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가지안테프=임현석 기자 lhs@donga.com}

불가리아는 튀르키예과 국경을 맞댄 곳으로, 흔히 유럽의 관문으로 불리죠. 긴 내전을 겪는 시리아 난민들이 인근 국가가 아닌 곳을 향할 때 먼저 찾게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지난달 찾은 불가리아 하르만리 난민 센터. 불가리아 동쪽 끝에 위치한 이곳에는 약 1000여명의 난민이 살고 있습니다. 주로 대규모 난민이 발생한 시리아와는 1000km 넘는 곳이지만, 육로로 이어진 난민센터 중 이슬람권인 튀르키예를 제외하면 유럽권에서는 가장 가깝습니다. 대한적십자사와 함께 최대 규모의 난민 센터인 이곳을 방문했습니다. 난민들은 이곳에서 난민 자격을 인정받는 심사를 받습니다. 이때 더 나은 경제적 기회를 찾아 자발적으로 온 이주자는 난민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난민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적 집단의 구성원 신분, 정치적 견해 등으로 인해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어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 이들은 심사를 마치기 전까지 이곳에서 머무릅니다.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불가리아 내에서만 체류할 수 있습니다. 통상 6개월이지만, 2년까지도 걸립니다. 난민 센터에 처음 들어와 신분 등록을 위한 절차를 밟는 동안 8평 남짓한 공간에서 스무 명 넘는 인원이 대기하기도 합니다. 의료 지원 등은 NGO 단체 등을 통해 지원 받습니다.흔히 경제적 이주자들이 모이는 서유럽과는 달리, 이곳 난민 센터에는 실제로 장기화하는 시리아 내전 탓에 가족을 잃고, 고향과 멀어진 이들이 많았습니다. 가족을 잃은 이들이 많다 보니 아이를 혼자 길러야 하는 ‘독신모’가 된 이들을 위한 숙소만 한 동 따로 있을 정도였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난민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껴왔다고 했습니다. 난민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인권과 인류애라는 보편적 가치 또한 포기할 수 없으므로, 우리의 고민은 깊어집니다. 현장에서 만난 난민들의 목소리. 유튜브()를 통해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동아일보와 대한적십자사는 실제로 박해와 위협을 받아 고국을 떠나 본국을 떠나온 사람들,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길 희망하는 난민들을 돕기 위한 후원 캠페인을 펼치고 있습니다. 모금액은 기부금품법에 의해 관리되며 사용 내역은 대한적십자사 기부금품 모집 및 지출명세를 통해 공개됩니다. 아래 링크와 QR코드를 통해 지원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하르만리=임현석 기자 lhs@donga.com}

신곡 ‘아파트’를 듣다가 몇 가지 새로 알게 됐다. 첫 번째, 아파트라는 술자리 게임이 있다. 노래 가사는 그에 착안했다. 나는 그런 게임 모른다. 후배에게 물었다. “그럼 ‘당연하지’ 같은 건가? 가수 김종국 있잖아. 그 옛날에….” 그러자 그의 눈빛엔 언제 적 ‘당연하지’냐는 빈축이 담긴다. 사무실 자리로 돌아가 귀에 이어폰을 꼈다. 유튜브로 검색해서 무슨 게임인지 알아본다. 랜덤 게임. 랜덤 게임…. 두 번째, 아파트는 콩글리시다. 중간에 R 발음을 넣어 혀를 안쪽으로 유순하게 말면서 ‘아파ㄹ-트-먼트’(Apartment)라고 해야 뜻이 통한다. 해외 특파원으로 아파트먼트에 1년 살았는데, 몰랐다. 몰랐는데도, 그땐 아‧파‧트라고 끊어 말한 적이 없긴 하다. 굳이 따지자면, 아파트는 욕망과 결부된 재화라면 아파트먼트는 주거 형태를 일컫는 단어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려나 깊게 따질 일은 아니다. 이 노래는 아파트의 사회적 의미와는 별 관련이 없다. 랜덤 게임, 랜덤 게임…. 입과 귀에 착 감기는 리듬일 뿐이다. 노래는 한국적인 맥락을 이질적인 영어 가사에 가져다 놓는다. 그러면서 가수 본인의 자의식과 배경을 영리하게 드러낸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단어가 영어 가사 속에서 생경하게 맞부딪치자, 누구든 아파트라는 단어가 새롭게 느껴질 지경이 된다. 그러다가 노래가 창의적이면서도, 편안하다는 인상이 함께 전달된다. 이 노래를 들을 때, 한국인을 포함한 전세계인이 비슷하게 받는 느낌이다. 여럿 모이는 술자리 게임에서 리듬감을 만들어내기 위해 박자에 정확하게 맞물리는 단정한 3음절, 초성에 ㅍ-ㅌ 파열음이 맞물리면서 만들어내는 어감이 입안에 굴리기 좋다는 건 술자리 게임에 끼어본 적 없는, 나도 알겠다. 그러나 이게 전 세계 어디서든 통하는 상품이자, 즐길 만한 음악적 잠재성이 있다고 하는 건 다른 차원이다. 어지간한 자기 확신 없이는 밀어붙일 수 없었을 것이다. 로제의 자기 확신을 뒷받침했던 건 우선은 예술가적 직관일 것이다. 그동안 로제의 음악뿐 아니라 디자인 작품도 소개되면서, 예술가로서의 미감이 진작부터 예사롭지 않았다는 평가도 나오는 모양이다. 이처럼 타고난 직관에 걸그룹 블랙핑크의 멤버로서 수년간 대중의 취향과 발맞춰온 가운데 쌓아간 자신감도 있었을 것이다. 성공 공식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자기 취향을 더할 수 있는 균형 감각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아파트의 흥행은 탁월한 잠재성을 지닌 개인 예술가를 발굴하고, 그 재능을 위축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육성해 온 창작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결합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엔터테인먼트라는 업(業)의 본질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덕분에, 예술가를 산업 부속물로 여기지 않고, 그들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진화했다고 생각해도 될까. 그리고 그 결과물은 지금 확신에 차서 결과로 입증한, 솔로 로제라고 말이다.정말 그렇게 생각해도 괜찮다면, 엔터업에 종사하며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 자기가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해야하는지 아는 사람들이 업의 본질을 지켜나가려고 하는 이유도 이해가 간다. 아파트 덕분에 새롭게 이해하게 된 일 중 하나다. “That’s what I’m on, yeah.” (로제·브루노 마스, APT 中)임현석 기자 lhs@donga.com}

1956년 초, 스물다섯 튀르키예군 부사관 한 명이 전쟁 뒤 폐허가 된 한국 땅에 내렸다. 유엔군이 6·25 전쟁 후 남아서 전후 복구 작업과 대북 감시 업무를 수행할 때다. 그는 한국에 파견 보낼 인력을 모집하자 자원했다. 한국은 세계인의 눈에 여전히 전쟁 불씨가 남은 곳이었다. 그는 세 살 딸과 두 살 아들을 두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손녀 두이구 니한 아자르 씨(32)가 말했다.“튀르키예 또한 투쟁 끝에 자유를 얻은 나라니까. 한국의 자유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참군인이기도 하셨다. 파견도 당연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셨을 것이다.”그 군인, 故 무자페르 아자르 씨는 1956년 2월부터 1년 5개월가량 한국에서 근무했다. 차량 정비 업무였다. 유엔군 일원으로 한국인들에게 관련 기술을 전수하면서. 폐허가 된 한국의 재건을 도왔다.손녀에게서 사진으로 본 할아버지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군인의 손녀는 대한적십자사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재건복구지원단에서 일하고 있다. 올해 1월 정식으로 채용됐다. 기자가 지난달 23일 지진 상흔이 남아 있는 튀르키예 동남부 가지안테프 지역을 찾았을 때 만났다. 지난해 규모 7.8 지진이 일어나 5만 명 넘게 숨진 지역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을 돕던 할아버지, 한국의 도움을 받아 튀르키예 복구를 돕는 손녀.한국 재건 도운 할아버지, 튀르키예 돕는 대한적십자사 직원 손녀 -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다.“대한적십자사에서 일한다고 알렸더니, 아버지가 놀라더라. 할아버지로부터 한국 얘길 많이 듣곤 하셨는데, 이젠 딸까지 한국과 인연이 생겼으니까. 아버지가 운명적이라고 하더라. 아예 남편도 한국에서 찾으라고 한다.(웃음)”- 할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나?“할아버지는 군대에서 차량 정비를 맡았던 군인이자 기술자였다. 내게도 무언가 늘 가르쳐주려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페인트로 벽 칠하는 법이라든지, 물건을 고치는 법이라든지. 남자아이 말고도 손녀인 내게도 말이다. 할아버지가 손자·손녀 중 가장 어린 나를 아껴주셨던 것 같다. 나도 그런 할아버지를 사랑했다. 엄격하면서도 자상하신 분이었다. 할아버지는 10여 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늘 그립다.”- 할아버지는 한국을 어떻게 기억하던가?“할아버지는 한국 사람들이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셨다. 전쟁 중에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라고. 한국 사람들은 정말 성실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래서 더 한국 사람들을 돕고 싶어하셨다. 군대에서 사귄 한국인 친구와 같이 사진을 찍고 사진 뒤에 이름을 적어놓기도 할 만큼 한국을 애틋하게 생각하셨다.”- 몹시 혼란스러웠을 때인데.“그런 말씀도 했다. 한국에서 전쟁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폭탄이 터지고 길거리 싸움이 벌어졌고, 갈등이 많다고 말이다. 한국에 도착하기까지 튀르키예로부터 배를 타고 두세 달이 걸릴 만큼 먼 곳이라고 말씀하셨던 기억도 난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튀르키예 군인들이 타고온 배를 수리하기 위해 애썼던 한국 사람들의 모습을 기억하더라.”그는 한국에서 복무 중에 튀르키예에 있는 아내에게 편지와 사진을 보내곤 했다. 사진 뒤엔 그날 상황이 담긴 메모도 종종 적었다. ‘1956년 7월 26일 목요일 아침 경보가 울리자 철수’. 한국이 위협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을 때다. 한국은 전쟁 후에도 유엔군의 도움 손길을 바랐다. 튀르키예군은 1966년까지 한국에 주둔했다.- 그때와는 한국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도 아셨나?“언젠가 할아버지가 TV로 서울의 발전상을 보신 적이 있는데 ‘저기가 한국이라니 믿을 수 없어’라고 말씀하셨다. 한국이 그만큼 정말 많이 발전하고, 달라진 것이다.”- 가족과 한국의 인연이 깊다. 대한적십자사에선 어떻게 일하게 됐나?“지난해 큰 지진이 난 후, 국제적십자사연맹(IFRC)에서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로 먼저 일했다. 그러다가 튀르키예를 지원하러 온 한국 분들을 만났는데 그때 대한적십자사에 일자리가 났다고 들었다. 그 자리가 가족과의 인연 때문에 더 관심이 가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한국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으니까. 대한적십자사가 튀르키예 국민들을 돕겠다는 점도 그렇고.”대한적십자사는 지난해 지진 이후 이재민 돕기 성금으로 402억 원을 모았다. 당초 200억 원을 목표로 했는데, 예상보다 두 배가 더 모인 것이다. 사망자 5만 명 이상, 부상자 11만 명 이상, 이재민은 2300만 명에 달할 만큼 극심한 피해를 남긴 최악의 자연재해에 인도주의의 손길을 내민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다. 한국인이 이재민 돕기에 진심이었던 이유는 또 있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어려운 시기 한국을 도와준 데 대해 보답하려는 마음을 담아 성금을 보낸다고 말씀하신 기부자도 많았다”고 전했다.워낙 큰 구호금이 모인 만큼 대한적십자사는 지원 활동을 챙기고 점검할 현지 행정 직원이 필요했다. 이미 국제적십자사연맹(IFRC)에서 같은 직무로 일해본 경험이 있는 아자르 씨가 적격이었다.채용 면접 때 한국과의 인연을 밝혔다면 도움이 됐을 텐데, 아자르 씨는 할아버지가 6‧25에 참전했다는 사실을 밝히진 않았다고 한다. 당시 면접을 맡았던 김재율 대한적십자사 국제협력팀장(당시 튀르키예 대표단장)은 채용 후에야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었다. 김 팀장은 “그런 사연이 있었느냐”며 깜짝 놀랐다고 한다.“피해 현장, 사람 살던 곳이라 믿을 수 없을 정도”- 지진이 일어난 날 어땠는지 기억하나?“두 번째 지진(규모 7.5)은 집이 있는 앙카라에서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지진 피해 소식과 상황을 TV로 들었다. 피해가 무려 11개 주에 걸쳐 일어났다. 지진 피해자들이 물도 전기도 없는 곳에서 버티면서 잘 곳도 찾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괴롭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마 다른 튀르키예 사람들도 다 그랬을 것이다.”- 지진 피해 현장도 찾았을 텐데“지진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방법을 찾았고 지난해 3월 국제적십자연맹에 직원으로 합류했다. 피해가 일어난 곳을 찾아가 보니, 폐허와 잔해뿐이었다. ‘여기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살던 곳이 맞나’라고 묻게 되더라. 사람 살던 곳이라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황폐하더라. 지진이 일어나던 순간과 폐허로 변해버린 곳을 찾았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말하기가 힘들 정도다. 나를 비롯해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특히 큰 충격을 받았다. 아직도 다 회복이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모인 성금이 도움이 됐을까.“물론 그렇다. 성금 덕분에 대규모 임시주거시설을 마련할 수 있었다. 대규모 급식 시설과 위생 관련 시설을 짓고 차량 지원도 이뤄졌다. 1000개 컨테이너로 설비를 갖춘 ‘우정의 마을’도 만들었다. 큰 피해를 본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데에도 쓰이고 있다. 정말 피해자들에게 큰 도움이 됐다. 컨테이너 숙소가 정식 집은 아니지만 그래도 필요한 가구나 시설이 갖춰져 있어서 겨울과 여름을 버틸 수 있는 곳이다.”우정의 마을은 튀르키예 지진 피해가 특히 컸던 카르만마라쉬 파잘직 지역에 세워졌다. 컨테이너 숙소 한 동은 4인 가구 기준으로 제작됐으며, 국내 가전제품과 가구로 채워졌으며 생필품과 식료품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 성금 지원을 받은 분들은 어떤 말씀을 하시나?“우정의 마을에서 머무는 분들은 한국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 덕분에 여기 있을 수 있다고도 말한다. 한국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 것을 알고 감사한 마음을 우리에게 늘 전하고 있다. 한국 성금 지원을 받고 고마워하는 분들을 보면, 우리가 정말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니, 성금을 낸 분들이나 대한적십자사 분들이나 모두 보람을 느낄 법하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이곳 우리 아이들은 한국인이 건넨 도움을 기억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마치 우리 세대가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것처럼.”- 한국이 전쟁으로 어렵던 시기, 튀르키예가 도움을 줬다. 튀르키예 재건은 한국이 돕는다. 각별한 인연이다.“한국은 튀르키예가 힘들 때 잊지 않고 기억해줬다. 튀르키예가 한국을 도울 땐 이런 보상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 분들은 아마 보답해야 한다고 느꼈던 게 아닐까. 오랜 세월이 지나도 형제애는 남는다.”- 한국과 함께 피해자들을 돕는 과정에서 어떤 느낌을 받나?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한국에서 받은 도움 덕분에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어려운 시기에 서로 돕고 있는데, 미래에 좋은 날도 같이 누렸으면 좋겠다.”인터뷰가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마지막 대답을 듣는 동안에 바람이 불었고, 그 탓에 녹화 용도로 쓰던 스마트폰 촬영 삼각대가 쓰러졌다. 내가 잠시 인터뷰를 멈추고 스마트폰을 바로 세우려고 하자 아자르 씨가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그거 삼성 아니죠? 삼성이면 그렇게 금방 쓰러지질 않을 텐데. 삼성 쓰세요.” 아자르 씨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흔들어 보였다.동아일보와 대한적십자사는 지난해 큰 지진 피해를 입은 튀르키예와 시리아 지역 내 임시 거주처 등을 지원하기 위한 후원 캠페인을 펼치고 있습니다. 모금액은 기부금품법에 의해 관리되며 사용 내역은 대한적십자사 기부금품 모집 및 지출명세를 통해 공개됩니다. 아래 링크와 QR코드를 통해 지원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가지안테프=임현석 기자 lhs@donga.com}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1989)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2008) 속 신념에 차서 쉴 새 없이 떠드는 조커 캐릭터의 인기는 가히 컬트적이다. 이들 시리즈를 거쳐 아예 배트맨을 제치고 주인공 자리를 꿰차기까지 한다. ‘조커’(2019)를 거쳐, 최근작 ‘조커: 폴리 아 되’(2024)가 그 인기를 입증하는 작품이다.배트맨 원작 영화 시리즈 명대사를 찾아보면, 조커 지분이 더 높다. 시리즈 최고 명대사를 꼽으면 빠지지 않는 “왜 그리 심각해?”와 “너는 나를 완성시켜”(다크 나이트), “난 내 삶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뭣 같은 코미디였어” (조커) 같은 대사가 모두 이 악당 입을 통해 나왔다. 스크린을 뚫고 나와서 밈(meme)으로 승화된 대사들이다.위 명대사에 비하면 다소 약할지 몰라도, 조커 최고 명대사로 팀 버튼의 ‘배트맨’(1989) 속 한 장면에서 나온 대사를 꼽는 이도 적잖다. 조커(잭 니컬슨)가 부하들과 함께 영화 배경 중 한 곳인 플루겔하임이라는 가상 박물관에서 온갖 예술품들을 난도질하다가, 한 작품 앞에서만큼은 부하를 멈춰 세우며 말한다.“이건 마음에 들어, 밥. 건들지 마.”(I kinda like this one, Bob. Leave it.)조커가 멈춰 세운 작품은 영국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1909~1992)의 ‘고깃덩어리와 인물’(1954). 조커가 기존 예술을 모욕하는 와중에도 왜 이 작품만큼은 남겨두었을까. 시리즈 팬들 사이에선 다양한 해석이 있다. 우선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이 영화 상영 당시에도 생존 인물이기 때문에 그랬다는 시각. 조커와 부하들이 마음 놓고 파괴한 작품들은 렘브란트 판 레인(직물조합 위원회, 자화상),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저울을 든 여인) 같은 작품들이다. 특히 역사적 인물로 미국 1달러 지폐에 그려진 조지 워싱턴 초상화를 두고서 조커가 중의적인 의미로 ‘1달러짜리’라고 낮춰 말하는 장면과 대조되기에 나온 해석이다.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어딘가 흡족하지 않다.그보다는 팀 버튼의 조커를 현대 개념미술가에 대한 비유로 보는 팬들 시각 쪽이 더 흥미롭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극중의 예술 박물관, 조커 패거리는 붐박스를 들고 경쾌한 프린스 음악을 틀어놓은 채로 기존 작품 위에 물감을 끼얹고 낙서를 새긴다. 이 키치한 액션 페인팅이 조커가 완성된 작품의 고정된 의미를 거부하고, 이보다 표출 자체를 더 우위에 두는 현대 예술의 제스처라는 것이다.이런 관점이라면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화에 담긴 엄숙성을 비틀고 패러디한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에서 조커가 매력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신성은커녕 한낱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인간 존재에 대한 냉소에서 조커 자신의 모습이 비쳐 옹호했다는 해석이 가능해 보인다. (프랜시스 베이컨 해당 작품에 대한 설명은 동아일보 칼럼 로.)팀 버튼의 조커 재해석과 박물관 난동 장면이 워낙 많은 이들의 뇌리에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장면은 다른 배트맨 & 조커 작품에서 오마주 된다. 지금도 해석이 새로 나오는 팀 버튼 영화 속 장면과 대사 덕분에, 그 이후의 조커 캐릭터 해석에도 탄력이 붙게 됐다. (공교롭게도 놀란 감독 역시 프랜시스 베이컨 작품에 매료돼 있었기에, 자신 작품 속 조커 이미지를 베이컨 작품에서 따온다.)감독마다 조커 해석을 겹겹이 내놓고, 관객 또한 자신만의 해석을 통해 조커의 의미를 확장한다. 조커 영화를 보는 이 독특한 재미가 이 장면과 대사에서 비롯됐다. 창작자를 벗어나서 의미가 재창조된다.그 파괴적 제스처 때문만 아니라, 재창조라는 관점 때문에라도 ‘박물관’ 씬과 대사는 더 할 수 없이 현대적으로 읽히게 됐다. 신작 ‘폴리 아 되’에서 조커의 예술성도 기존 작품(팀 버튼, 크리스토퍼 놀란 실사 영화 시리즈, 만화 시리즈 등)의 오마주를 통해 표출된다. 시리즈의 팬들은 이번 작품에선 어떤 과거 조커를 인용했는지 살펴보고 있다. 지금 보니 1989년 작 조커의, 즉흥적이면서도 기존 작품을 의식하는 제스처는 캐릭터의 운명을 암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기 인용과 임의성에 이끌려갈 현대성의 향방까지도. 임현석 기자 l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