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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현자가 아닐지도, 어쩌면 우자이거나 광인일지도 모른다.하지만 자기계발서에서 길 잃었던 내 우문에는 현답을 내놨다.“석두냐? 네가 바뀌어야 할 문제를 왜 남에게 묻냐” 라고.“확실하게 믿는가.믿는다면 공부하고,공부했으면 증명하라.증명해야 네 것이며,네 것이면 세상에 베풀라.”누덕누덕 기운 남자의 두루마기가 바람에 펄럭였다. 둘둘 천을 괴어 머리 위로 올린 팻말이 내게 호통을 친다. 배낭에는 어딘가 잘못된 피카츄와 큼직한 리트리버 강아지, 아이언맨 건틀릿 주먹인형이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건대 로데오거리와 캠퍼스를 오가는 명랑한 20대들과는 사뭇 다른 세계에서 튀어나온 듯한 사람. 그에게서 나는 눈을 뗄 수가 없다.주말 건대입구역에는 현자가 있다?두툼하고 네모진 글자들이 팻말 위에서 바리톤으로 왕왕 댔다. 의도를 짐작하기 어려운 단어들만 가득하다. 팻말 가장자리에도 작은 글씨들이 둘러쳐져 있다.“‘어쩌라구’ 듣지 말라. 인생의 패배자처럼 보인다.왜 남에게 ‘어쩌라구’ 묻는가. 석두냐.”‘석두냐, 왜 네 일을 남에게 묻는가, 돌대가리냐… ’ 그의 글씨가 내 안에서 메아리쳤다. 지난번 영화를 보러 왔을 때도, 그보다 더 전에 백화점에 가던 날에도 남자는 저 자리에 있었다. 팻말의 내용은 매번 달라지지만, 누더기 차림새는 그대로다.그는 누구에게 말하는 것일까. 언제까지 저 자리에 서있는 것일까? 다행히 횡단보도의 녹색 불이 켜져 나는 메아리에서 벗어났다. 궁금한 것은 다음 기회로, 일단은 목적지인 영화관을 향해 총총 발걸음을 옮겼다. 3년 전 일이다. 이후엔 그를 더 마주치지 못했고, 질문들은 깊은 곳에 묻혀 잊혔다. 그러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 피드를 쭉쭉 넘기다가 불현듯 스크롤을 멈췄다. 익숙한 바로 그 팻말이었다. “인생은 모두 부업일 뿐….”주변 간판이나 홍보물로 보아 2015년 말 즈음, 2호선 홍대입구역 앞에서 찍힌 것으로 보였다. 영감을 주는 문구나 사진을 공유하는 계정에 2월 초 올라온 이 사진엔 3만5000개의 ‘좋아요’가 달렸다.“존멋” “개쩐다” “개힙하다”와 같은 직설적 감탄사가 넘실대는 와중에 “대한민국에서 환생한 하이데거”와 같은 댓글도 공감을 얻었다. 그가 사이비 종교인이라는 의혹도 있었다. 갑자기 발동이 걸린 나는 그의 어록(?)들을 온라인 공간에서 하나둘씩 수집해냈다. 그는 화양동을 벗어나 신촌과 종로, 강남까지 훑고 다닌 모양이었다. 공부와 관련된 문구 중에서도 가장 기막혔던 것은 나 역시 건대 앞을 지나다 본 적 있는 이 문장이다.“니가 부처나 예수라면 나 같은 놈 구원하겠냐. 공부해 스스로 구원해야 가장 완벽한 구원이다.”● 나는 자기계발서 읽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내가 처음으로 읽은 자기계발서는 스티븐 코비의 명작을 아들이 청소년 버전으로 다시 쓴 ‘성공하는 10대들의 7가지 습관’이었다. 그 책을 닳도록 읽었다. 역경을 딛고 성공하는 또래들의 사례들을 보고 또 볼 때마다 나 역시 역경을 넘어서는 데 성공하는 것만 같았다.성인이 된 뒤에도 한동안은 자기계발서를 읽었다. 명쾌한 가르침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사례. 읽는 것만으로도 내가 더 나은 사람으로 계발되고 있다는 자기최면에 빠졌다.시간이 꽤 지난 뒤에야 가장 중요한 문제를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실은 그냥 책상머리나 이불 바닥에서 책장을 넘기고 있었을 뿐, 새로운 도전에 나서지도 역경을 넘어서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이론엔 빠삭해졌지만 정작 나 자신의 행동은 계발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퇴근 후 시간이 남으면 참새 방앗간처럼 회사 앞 교보문고의 종합 베스트셀러 코너를 들러보곤 한다. 자기계발서는 언제나 선반마다 적어도 한 권씩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자기 최면에라도 빠지고픈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걸까, 철저히 내 입장에서만 생각해본다.작년 이맘때, 서점가를 장악했던 ‘세이노의 가르침’을 읽어본 적이 있다. 출판사가 대놓고 전자책을 무료로 공개한 것이 궁금증을 부채질해서다. 홀연히 나타난 익명의 선지자가 미물들에게 기꺼이 내려주시는 공짜 샘물처럼 보였다.막상 읽어보니 “당신 삶은 당신의 것이다” 류의 독설 모음집이었다. ‘그럼 그렇지’ 하면서도 인내심으로 스크롤을 내렸다. “이 멍청한 놈들아. 이제 내 말을 믿어라” 같은 문장들에서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그래 놓고선 얼마 전 베스트셀러 코너를 또 들렀다. 요새는 ‘일류의 조건’이란 책이 새로, 아니, 18년 만에 복간돼 다시 인기인 모양이었다. 소개를 훑어보니 결국 “열심히 배우고 연습해서 숙달하면 성공한다”라는 내용이다. 머리로는 얼추 다 아는, 익숙하고 유익한 교훈이다. 나는 이런 것에 살짝 지친 지가 오래됐다. 좀 더 정확히는, 매번 머리로만 알고 멈춰버리는 나 자신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사람은 무엇에 감응하는 것일까그랬던 나를, 우연히 소환된 ‘건대입구역 현자’의 기억이 강타했다. 공부하는 것을 넘어, 증명하는 것마저 넘어, 네 것으로 만든 그것을 세상에 베풀어야 한다고,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 떡 버티고 시위하던 모습이 불현듯 떠오른 것이다. 유독 그날의 모습이 그토록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나의 마음속 깊은 곳이 제대로 찔렸기 때문일 것이다.“석두야”를 외치는 누더기 현자에게는 감응하면서, “멍청한 놈아”를 외치는 세이노에게는 왜 코웃음을 쳤냐고 묻는다면 나도 명확히 말하긴 어렵다. 그는 어쩌면 우자(愚者)이거나 광인(狂人)일지도 모른다. 그가 누구더러 보라고 대로변에서 묵직한 글자들을 이고 지고 서 있는지도 알 수 없다.다만 자기계발서에서 자기 계발의 답을 찾고자 해왔던 나는, 그의 글자들에서 우문의 현답을 발견한 것 같다. 머리로 알고 있는 것들을 자꾸 ‘머리로만’ ‘책으로만’ 다시 확인하지 말라는 것 말이다. 오래된 진리나 잘 정립된 이론, 멋들어진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갑자기 마주친 뜬금없는 글자들에 마음이 움직일 때가 있는 법이다. ‘뚜벅이’인 나는 시내를 돌아다니며 별 목적 없이 그런 것들을 수집하기를 좋아한다.온라인에서 발굴해낸 그의 문구를 몇 가지 더 공유한다. ‘자기만의 우문현답’의 실마리를 누군가는 찾기를 기원하며.[소소칼럼]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소소한 취향을 이야기하는 가벼운 글입니다. 소박하고 다정한 감정이 우리에게서 소실되지 않도록, 마음이 끌리는 작은 일을 기억하면서 4명의 기자가 돌아가며 씁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마천루 도시’이자 광역권 인구가 약 2000만 명에 이르는 미국 최대 도시 뉴욕 일대에 5일 규모 4.8 지진이 발생했다. 대표 명물 ‘자유의 여신상’은 물론이고 맨해튼의 초고층 빌딩들이 강하게 흔들리는 모습이 현지 소셜미디어에 속속 올라왔다. 비슷하거나 더 강한 지진이 몇 주 내에 뒤따를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이날 오전 10시 23분경 발생한 이번 지진의 진원은 뉴욕시에서 서쪽으로 약 60km 떨어진 뉴저지주 헌터든카운티였다. 진원의 깊이는 4.7km였다. 뉴저지주에서 발생한 지진으로는 1884년 규모 5.0의 지진 후 240년 만에 가장 강력했다고 CNN방송은 전했다. 북동쪽으로 350km 이상 떨어진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도 흔들림이 감지됐다. 구체적으로 어느 단층이 이번 지진을 유발했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태평양판’과 ‘북미판’이 만나는 경계에 인접해 있는 미 서부에서는 지진이 잦지만, 동부의 지각 변동은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던 터라 이번 지진 발생이 이례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진 당시 ‘자유의 여신상’에 설치된 웹캠을 통해 전해진 실시간 영상에는 화면이 심하게 흔들리는 모습이 담겼다. 뉴욕 퀸스의 JF케네디 국제공항, 뉴저지주 뉴어크의 리버티 국제공항 등 일대 공항에서는 잠시 항공기 이착륙을 정지했다가 곧 재개했다. 뉴욕을 대표하는 맨해튼의 초고층 빌딩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도 “난 괜찮아(I AM FINE)”라는 글이 올라왔다. 지진에 따른 피해는 일부 건물이 손상되는 정도에 그쳤다. 다만 앞으로 여진이 뒤따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아직 안심하기는 어렵다. 미 지질조사국(USGS)은 한 달 안에 규모 4.0 이상의 여진이 발생할 확률을 16%로 예상했다. 과거 사례를 토대로 분석하면 향후 1주일간 규모 2.0 이상 여진이 최대 27건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고층 빌딩들은 대부분 내진 설계가 의무화된 1995년 이후에 지어졌기 때문에 규모 6.5 이상의 강진이 닥치지 않는 이상 안전하다. 하지만 20만 채에 이르는 주택 상당수는 지진에 취약하다고 지적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주요 인사들이 잇달아 기준금리 인상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미국의 3월 고용시장이 월가 예상을 웃도는 호조를 보이고 소비자물가 상승 압력이 쉽게 가라앉지 않으면서 시장 일각에서 기대했던 6월 금리 인하 가능성이 줄어들고 오히려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이에 한국의 금리인하 시점도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연준 인사들 “되레 금리 인상해야 할 수도” 미 경제매체 CNBC 등에 따르면 미셸 보먼 연준 이사는 5일(현지 시간) 연준의 정책 결정을 감시하는 ‘그림자 공개시장위원회’ 회의에서 “필요시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준이 물가 상승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는 ‘매파’ 성향 인사로 꼽히는 그는 “기준금리를 너무 이른 시점에, 또는 너무 빠른 속도로 인하하면 물가가 반등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지난 두 달간의 인플레이션 수치는 (물가 상승률) 하락세가 고르지 않거나 느려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아직은 금리를 인하할 시점이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로리 로건 댈러스 연은 총재는 같은 날 연설에서 “물가상승률 둔화가 멈출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며 “현재의 위험에 비춰 생각하면 금리 인하를 생각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고 말했다.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도 4일 “인플레이션이 지금처럼 계속 횡보한다면 금리를 내릴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금리를 인상해야 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당초 월가에서는 연준이 올해 3차례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5일 미 노동부가 발표한 3월 고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비농업 부문 일자리는 전월 대비 30만3000건 늘었다. 월가 예상치 20만 건은 물론이고 2월(27만 건)보다도 많았다. 3월 실업률 역시 3.8%로 2월(3.9%)보다 낮았다. 고금리에도 노동시장이 호조를 보이면서 임금 인상에 따른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시장은 10일 발표되는 미국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도 주시하고 있다. 물가지표마저 상승세를 보인다면 시장의 6월 금리인하 기대감은 더 꺾일 수밖에 없다. 블룸버그는 “대다수 정책 입안자들은 올해 금리 인하가 두 차례를 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 한은 조기 금리 인하 어려워질 수도 연준의 통화정책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한국은행의 금리인하 시점이 지연될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 한국도 최근 들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고, 국제유가도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한은은 지난해 2월부터 9차례 연속 금리를 동결해 왔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해 말 시장에서 연준이 연내 6차례까지 금리를 인하할 거란 기대가 커졌을 때와는 상황이 달라졌다”며 “한은이 국내 경기보다는 다시 연준의 통화 정책 등 대외 요인에 더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물가가 여전히 불안정한 상황에서 한은은 미국과 금리 차가 더 나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의 금리인하 시기가 6월에서 8월 이후로 늦춰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연준이 올해 금리인하를 시작할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인하를 시작하더라도 문제될 건 없다”고 말했다.신아형 기자 abro@donga.com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마천루 도시’이자 광역권 인구가 약 2000만 명에 이르는 미국 최대 도시 뉴욕 일대에 5일 규모 4.8 지진이 발생했다. 대표 명물 ‘자유의 여신상’은 물론 맨해튼의 초고층 빌딩들이 강하게 흔들리는 모습이 현지 소셜미디어에 속속 올라왔다. 비슷하거나 더 강한 지진이 몇 주 내에 뒤따를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이날 오전 10시 23분경 발생한 이번 지진의 진원은 뉴욕시에서 서쪽으로 약 60km 떨어진 뉴저지주 헌터돈카운티였다. 진원의 깊이는 4.7㎞였다. 뉴저지주에서 발생한 지진으로는 1884년 규모 5.0의 지진 후 240년 만에 가장 강력했다고 CNN방송은 전했다. 북동쪽으로 350km 이상 떨어진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도 흔들림이 감지됐다.구체적으로 어느 단층이 이번 지진을 유발했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태평양판’과 ‘북미판’이 만나는 경계에 인접해있는 미 서부에서는 지진이 잦지만, 동부의 지각 변동은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던 터라 이번 지진 발생이 이례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지진 당시 ‘자유의 여신상’에 설치된 웹캠을 통해 전해진 실시간 영상에는 화면이 심하게 흔들리는 모습이 담겼다. 뉴욕 퀸스의 JF케네디 국제공항, 뉴저지주 뉴어크의 리버티 국제공항 등 일대 공항에서는 잠시 항공기 이착륙을 정지했다가 곧 재개했다. 뉴욕을 대표하는 맨해튼의 초고층 빌딩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도 “난 괜찮아(I AM FINE)”라는 글이 올라왔다.지진에 따른 피해는 일부 건물이 손상되는 정도에 그쳤다. 다만 앞으로 여진이 뒤따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아직 안심하기는 어렵다. 미 지질조사국(USGS)은 한 달 안에 규모 4.0 이상의 여진이 발생할 확률을 16%로 예상했다. 과거 사례를 토대로 분석하면, 향후 1주일간 규모 2.0 이상 여진이 최대 27건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고층 빌딩들은 대부분 내진 설계가 의무화된 1995년 이후에 지어졌기 때문에 규모 6.5 이상의 강진이 닥치지 않는 이상 안전하다. 하지만 20만 채에 이르는 주택 상당수는 지진에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IS-K(호라산)’의 3월 러시아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로 이슬람과 러시아의 뿌리 깊은 갈등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양측은 제정 러시아의 남진(南進) 정책에 따른 오스만튀르크 제국과의 영토 및 종교 갈등, 옛 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의 이슬람 탄압,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체첸 분리독립 시도 진압 등으로 오랫동안 극한 대립을 해왔다. ‘유일신’ 이슬람 신앙과 사회주의 ‘무신론’ 간의 세계관 차이 또한 상당하다. 역사, 종교, 사상적 갈등에 따른 양측 대립이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제정 러시아는 19세기 후반 오스만튀르크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현재의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영토를 넓혔다. 러시아가 이슬람이 뿌리 내린 중앙아시아에 기독교 분파인 러시아 정교까지 전파하려 하자 영토 및 종교 갈등이 가속화했다. 1922∼1952년 스탈린의 공포 통치는 이슬람권 전반의 반(反)러시아 감정을 고조시켰다. 당시 소련 인구의 약 4분의 1이 무슬림이었지만 스탈린은 자신보다 알라신을 숭배하는 이들을 독재의 방해 요인으로 여기고 잔혹하게 탄압했다. 스탈린은 무슬림이 많은 캅카스의 체첸 주민 40만 명을 1944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당시 최소 10만 명이 객사했다. 이슬람 사원(모스크) 철거, 이슬람 신학교 폐쇄, 무슬림 성직자 숙청 등도 단행했다. 또한 중앙아시아를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이른바 ‘스탄’ 국가 5곳으로 쪼갰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10년간 점령한 것도 이슬람권의 분노를 키웠다. 소련 붕괴 후 중앙아시아 일대에는 경제난, 이념적 공백 속에 급진적인 이슬람 원리주의가 발호했다. 특히 가난한 젊은이들이 이에 매료됐다. 모스크바 테러 용의자 4명이 타지키스탄 출신이라는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세진 한양대 러시아학과 교수는 “중앙아시아 내 이슬람은 단순한 종교를 넘어 러시아에 대한 저항수단의 성격이 강하다”고 진단했다. 1999년 말 집권한 푸틴 대통령도 무슬림을 탄압했다. 당시 그는 체첸의 분리독립 시도를 잔혹하게 탄압하며 체첸 수도 그로즈니를 사실상 폐허로 만들었다. 분노한 체첸 반군은 2002년 모스크바 극장 인질 사건, 2004년엔 체첸 인근 북(北)오세티야 초등학교 인질 사건 등 대형 테러로 끈질기게 저항했다. 특히 푸틴 대통령이 2015년 시리아 내전 당시 IS-K의 모(母)조직 IS를 사실상 몰락시키는 데 기여하면서 양측은 철천지원수가 됐다. 시아파 국가인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2011년 내전 발발 후 IS 등 수니파 세력을 탄압했다. 중동 내 영향력 확대를 노린 푸틴 대통령은 아사드 대통령의 후원자를 자처하면서 자국군과 무기를 대거 지원했다. 러시아는 최근 들어서는 다종교 정책을 내세우며 변화를 과시해왔다. 2015년 9월 모스크바에 세계 최대의 모스크가 들어섰고, 2020년 ‘러시아 민족 통합의 날’(11월 4일)’에는 푸틴 대통령이 탁상에 성경과 꾸란, 토라(유대교 율법)를 모두 올려놓은 모습을 공개했다. 하지만 두 세력 간 해묵은 갈등이 지난달 모스크바 테러로 다시 터져나오며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른 상태다. 푸틴 정권이 테러 직후 일부 용의자의 귀를 자르고 신체를 고문하는 장면을 공개한 것은 이슬람권의 추가 분노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러시아가 최근 중동에서 군사적, 정치적 영향력을 확장하는 것에 반감을 가진 이슬람 무장세력이 결집하고 있다”고 진단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김윤진 기자 kyj@donga.com}

“초기 탐지결과: 매우 의심스러움(Highly Suspicious).”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흑인 청년들에게 둘러싸인 채 환하게 미소를 짓는 한 장의 사진. 하지만 비영리단체 ‘트루미디어’ 웹사이트에 이 이미지를 업로드하자, 3초 만에 선명한 붉은색 테두리가 생기며 경고 문구가 떴다. 해당 사진이 생성형 인공지능(AI) 도구로 만들어진 ‘가짜’일 가능성이 짙다는 뜻이다. 11월 미 대선을 7개월가량 앞둔 상황에서 트루미디어가 최근 논란이 뜨거운 AI 딥페이크를 판별할 수 있는 서비스를 무료로 홈페이지에 2일 공개했다. 현재는 상업적 목적이 없는 정부기관이나 비영리단체, 언론 등에 이용을 승인하고 있다. 트루미디어는 트럼프 전 대통령 사진을 가짜로 판별하고 약 50초 뒤엔 그렇게 평가한 근거 8가지도 알려줬다. ‘AI 이미지 생성 도구 활용 가능성’ 항목은 “100% 확실”, ‘명도·색상 정보로 분석한 조작 가능성’ 항목은 “88% 확실” 등이다. 트루미디어를 이끄는 이는 미국 AI 연구의 선구자로 꼽히는 앨런AI연구소 창립자 오렌 에치오니 워싱턴대 교수다. 그는 “언론사의 인력은 줄어들고 제작 시간은 갈수록 촉박해지고 있는데, 허위정보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개발 이유를 설명했다. 동아일보 기자가 사용 승인을 받아 실험해본 결과 트루미디어 서비스는 AI로 만들어진 사진은 물론 영상들도 잘 판별해냈다. 인종은 물론 언어도 별다른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2022년 한국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홍보용으로 제작했던 ‘AI 윤석열’ 영상은 3초 만에 “매우 의심스러움”이라는 초기 탐지결과를 내놓았다. ‘고급 음성 합성’ 항목에선 93%, ‘얼굴 합성’ 항목에선 79%의 가능성으로 만들어진 영상이라고 알아맞혔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2일 게시된 충남 공주시 공주의료원 방문 사진을 올렸더니, 연두색 테두리와 함께 “AI 조작 가능성 희박”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조작 이미지 빅데이터로 학습한 AI 탐지’ 항목에선 32% 확률로 ‘불분명’하다고 판단했지만, 나머지 7개 항목은 모두 ‘조작증거 없음’이라고 했다. 트루미디어는 해당 서비스의 정확도가 90%에 이른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약점도 분명했다. 생성형 AI 도구로 제작하지 않고, 실제 촬영한 사진을 편집 프로그램으로 조작한 경우엔 오류가 드러나기도 했다. 최근 포토샵 조작이 밝혀졌던 영국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빈의 가족 사진으로 실험했더니 “AI 조작 가능성 희박”이라고 나왔다. AI를 이용하지 않았단 건 맞지만, 조작을 잡아내진 못한 것이다. 에치오니 교수는 2일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아무리 최고의 도구라도 100% 확실하게 답할 순 없다”며 “선거를 앞두고 잘못된 정보의 쓰나미를 보게 될 가능성이 높아 겁이 난다”고 했다. 허위 정보를 막으려면 규제당국과 기술기업들의 협력이 갈수록 필요하단 점도 강조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1998년 설립 후 지금까지 검색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해 온 구글이 검색 부문의 일부 유료화를 검토하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3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특히 인공지능(AI) 기반 기능을 적용하는 프리미엄 검색 서비스를 도입해 이를 유료화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구글은 현재 웹사이트에서 “우리의 핵심 목표는 전 세계의 정보를 체계화해 모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주요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 대신 대부분의 수익은 광고로 창출한다. 검색 결과에 광고 링크를 연동하는 방식이 주를 이룬다. 구글의 광고 매출은 지난해 1750억 달러(약 235조 원)로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AI 개발 경쟁 속에서 오픈AI가 2022년 출시한 생성형 AI 모델 ‘챗GPT’가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자 구글은 기존의 광고 수익 모델이 위협받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자사의 AI 모델 ‘제미나이’의 유료 버전이 포함된 ‘구글원’ 유료 멤버십에 검색 기능을 추가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다만 AI 검색 기능의 유료화 시기 등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은 AI 검색을 유료화하더라도 기존의 검색 서비스는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뜻을 밝혔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초기 탐지결과: 매우 의심스러움”4일 비영리단체 ’트루미디어‘의 웹사이트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흑인 청년들에게 둘러싸인 채 미소짓는 이미지를 업로드하자 3초 만에 선명한 붉은색 테두리에 경고문구가 떴다. 이 사진이 생성형 인공지능(AI) 도구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의미다. 약 50초 뒤에는 “매우 의심스러움”이라는 최종 결과와 함께 8가지 평가 근거가 제시됐다. ’미드저니‘ 등 이미지 생성 도구 활용 가능성‘에는 “100% 확실”, ’명도나 색상 테스트‘에는 “88% 확실”과 같은 부연설명이 붙었다. 미국 대선을 약 7개월 앞둔 2일(현지시간) 트루미디어는 AI 딥페이크 이미지와 영상을 탐지해낼 수 있는 서비스를 웹사이트에 공개했다. 전 세계 언론과 비영리단체, 정부기관 등에 자체 승인을 거쳐 무료로 제공하는 서비스다. 직접 콘텐츠를 업로드하거나 소셜미디어의 URL을 입력하는 것만으로도 몇 분 만에 딥페이크 조작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다. 트루미디어는 “최고 수준의 기술기업과 학술기관 등과 협력해 만들어진 전례없는 탐지 도구”라고 소개했다. 이 단체를 이끄는 인물은 미국 AI 연구의 선구자로 꼽히는 앨런AI연구소의 창립자이자 워싱턴대 교수인 오렌 에치오니 박사다. 그는 “언론사의 인력은 줄고 제작 시간은 점점 촉박해지고 있는데 가짜뉴스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라며 “크고 작은 언론사들이 딥페이크의 확산을 식별하고 중단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개발 이유를 설명했다. 동아일보 기자가 이 웹사이트에 사용승인을 받아 직접 시험해본 결과, AI로 만들어진 사진은 물론 영상에 대해서도 상당한 분석력을 보였다. 인물의 인종이나 언어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평가 기준은 콘텐츠에 따라 7가지 안팎이었다. 202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이 홍보용으로 제작한 ’AI 윤석열‘ 영상을 업로드하자 3초 만에 “매우 의심스러움”이라는 초기 탐지결과를 내렸다. ‘고급 음성합성’ 항목에선 93%, ‘얼굴 합성’ 항목에선 79%의 신뢰도로 조작된 영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미 워털루대가 최근 연구에 사용했던 중년 남성의 AI 생성 이미지에 대해서도 1초 만에 ‘매우 의심’이라는 판정을 내놨다. 반면 윤 대통령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2일 게시된 충남 공주시 공주의료원 방문 사진에 대해서는 연두색 테두리와 함께 “AI 조작 가능성 희박”이라는 결과를 내놨다. ‘조작 이미지 빅데이터로 학습한 AI 탐지’ 항목에서는 32% 확률로 ‘불분명’이라는 판단이 나왔지만, 나머지 항목에서는 모두 ‘조작증거 없음’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지난달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촬영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유세 사진에 대해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트루미디어는 이 서비스의 정확도를 90%라고 주장했지만, 일부 한계도 발견됐다. 생성형 AI 도구로 제작한 콘텐츠가 아닌, 실제 촬영 사진을 편집 프로그램으로 조작한 경우는 잘 잡아내지 못했다. 기자가 포토샵으로 색감을 보정한 개인 사진을 올리자 27초 뒤 노란색 테두리와 함께 “불분명: 원본일 수도, 조작됐을 수도”라는 결과가 나타났다. 포토샵으로 조작한 것이 드러나면서 전세계적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영국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빈의 사진에 대해선 “AI 조작 가능성 희박”이라는 잘못된 결과가 나왔다. 에치오니 교수는 2일 미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아무리 최고의 도구라도 100% 확실하게 답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선거를 앞두고 잘못된 정보의 쓰나미를 보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겁이 난다”며 “궁극적으로는 정부 규제 기관이 AI와 소셜미디어, 웹브라우저 등을 통제하는 거대 기술 기업들과 광범위하게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바이든피바다 닷컴.’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잠정 후보로 정한 야당 공화당이 경쟁자인 조 바이든 대통령을 공격하기 위해 이런 이름의 웹사이트를 2일 개설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관용적인 이민 정책이 불법 이민자 급증을 불러와 미국을 범죄가 득실대는 ‘피바다(bloodbath)’로 만들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한국 등 미국 밖에서는 이 웹사이트에 접속할 수 없어 사이트 내부 게시물을 볼 수 없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같은 날 경합주지만 집권 민주당 지지세가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 북부 미시간주, 위스콘신주를 찾아 불법 이민자를 또 ‘동물(animal)’로 칭했다. 같은 날 바이든 대통령은 공화당 지지세가 강한 남부 플로리다주의 진보 성향 유권자를 공략했다. 그는 하루 전 플로리다 주 대법원이 임신 6주 차부터 중절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린 것을 두고 “터무니없다”고 비판했다. 두 전·현직 대통령이 각각 상대방 텃밭의 표심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가운데 이날 발표된 월스트리트저널(WSJ) 여론조사에서는 주요 경합주 7곳 중 6곳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을 소폭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러스트벨트서 “국경은 피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쇠락한 공업지대(러스트벨트)로 꼽히는 두 주를 찾아 이민 정책 등에 관한 과격한 언사를 쏟아냈다. 그는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에서 “지금까지 이런 국경 피바다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불법 이민자를 “인간이 아닌 동물”이라고 말하는 등 6차례나 ‘동물’을 언급했다고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전했다. 지난달에도 자신이 올 대선에서 패하면 ‘피바다’가 벌어질 것이라고 말해 “폭력을 조장하고 대선 불복 의사를 밝혔다”는 비판을 받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민주당 성향이 강한 이 지역 자동차 노조의 표심을 잡기 위해 “재집권하면 임기 첫날 ‘전기차 보조금 폐기’ 행정명령에 서명할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미 지역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보조금을 주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전기차를 우대하면서 내연자동차 노동자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는 뜻이다. 공화당 내 일부 친(親)트럼프 성향 하원의원 6명은 수도 워싱턴의 덜레스 국제공항의 이름을 트럼프 국제공항으로 바꾸겠다는 법안까지 발의했다. 이 공항은 1950년대 존 덜레스 국무장관의 이름을 땄다. 발의를 주도한 가이 레션탈러 의원은 “(트럼프는) 내 생애 최고의 대통령”이라는 낯간지러운 이유까지 댔다. 다만 당내에서조차 지지 여론이 높지 않아 의회 통과 가능성은 낮다.● 바이든, ‘낙태권’으로 플로리다 겨냥 바이든 대통령은 주지사의 소속 정당, 주의회 다수당이 모두 공화당인 플로리다 주 대법원이 임신 초기인 6주 차부터 중절을 금하는 결정을 내리자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2일 성명을 통해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여성의 의료 접근권을 박탈하는 더 극단적인 법안을 만들도록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재집권하면 2022년 6월 연방대법원이 폐기한 낙태권을 행정명령 등을 통해 복원하겠다는 뜻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플로리다가 미 50개 주 중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인단 보유 수가 세 번째로 많고, 2012년 대선을 마지막으로 민주당 대선 후보가 승리한 적이 없다는 점을 들어 각별한 공을 들이고 있다. WSJ 조사에 따르면 7개 경합주의 여론조사 결과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애리조나, 조지아, 네바다, 노스캐롤라이나 등 6개 주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을 양자, 다자 대결 모두에서 2∼8%포인트 차로 앞섰다. 오직 위스콘신주에서만 바이든 대통령이 다자 대결에서 3%포인트 차로 앞섰다. 양자 대결에서는 지지율이 같았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거듭된 민형사 소송에 따른 사법 위기와 이에 따른 법률 비용으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사진)이 자산 압류 위기에서 벗어났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일 1억7500만 달러(약 2400억 원)에 이르는 공탁금을 뉴욕 맨해튼 항소법원에 납부했다. 그는 이 돈과 같은 액수의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다. 인수자는 캘리포니아주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 보험사 ‘나이트 보험그룹’이다. 순자산이 74억 달러에 달하는 이 회사의 돈 행키 회장(80)은 블룸버그통신 인터뷰에서 과거 대선 때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투표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가족회사 트럼프그룹의 자산 가치를 부풀려 허위 대출을 받은 혐의로 지난달 민사 소송 1심에서 벌금 4억6400만 달러를 부과받았다. 항소법원은 공탁금이 과하다는 트럼프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지난달 25일 공탁금을 3분의 1 수준으로 줄여줬다. 이날 공탁금을 납부하면서 그는 골프장 등 부동산, 자동차, 개인 비행기 등의 압류를 면했다. 그가 만든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은 지난달 26일 나스닥 시장에 우회 상장한 뒤 주가가 연일 급등했다. 하지만 모회사 ‘트럼프 미디어 & 테크놀로지 그룹(TMTG)’이 지난해 6000만 달러에 가까운 순손실을 입었다고 1일 공시하면서 주가가 21% 이상 떨어졌다. 최대 주주인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 금융 당국의 규정에 따라 상장 6개월 후에야 지분을 처분할 수 있다. 15일부터는 2016년 대선 전 트럼프그룹의 문서를 조작해 성추문 입막음 용도의 돈을 준 혐의에 대한 형사 재판도 시작된다. 1일 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이 재판을 주관하는 후안 머천 판사와 그 가족을 비난하지 말라는 2차 ‘함구령’을 내렸다. 지난달 26일 법원 직원 등을 비난하지 말라는 1차 함구령 후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트루스소셜에 머천 판사의 딸을 거론하며 “광적인 트럼프 혐오자”라고 비난하자 대상을 확대한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해에도 함구령을 위반해 두 차례 벌금을 부과받은 바 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수도 런던을 포함해 영국 중남부를 가로지르는 ‘잉글랜드의 젖줄’ 템스강이 배설물로 뒤덮여 망신을 사고 있다. 195년 전통을 자랑하는 ‘옥스브리지(옥스퍼드 대 케임브리지)’ 조정 경기 참가자들에게 “튀는 물도 조심하라”며 입수 금지 조치가 내려졌을 정도다. 환경단체 리버 액션은 지난달 29일 “대회 구간에서 시료를 채취해 수질을 검사했더니 대장균 검출량이 평균 2863CFU(세균수 단위), 최고 9801CFU에 이르러 허용치의 최고 10배에 육박했다”고 발표했다. BBC방송에 따르면 템스강은 배설물 등으로 냄새도 참기 어려울 정도다. 이날 열린 조정 경기에서 진 옥스퍼드대의 레너드 젱킨스 선수는 기자회견에서 “경기 전 미리 구토를 하고 왔다”며 “강물에 ‘똥’만 좀 적었어도 나았을 것 같다”고 불평했다. 원래 옥스브리지는 우승팀이 강물에 뛰어들며 자축하는 게 전통이지만, 올해는 입수를 금지시켰다. 경기 중 노를 젓다가 튀는 물에 닿지 않게 주의하라는 경계령도 내려졌다. 템스강 똥물 사태는 수도 회사들이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하수를 장기간 대량으로 내보내며 벌어졌다. 영국 환경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미처리 하수가 370만 시간 동안 방출됐는데 이는 모니터링을 시작한 201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2022년(175만 시간)과 비교해도 두 배가 넘는다. 영국은 빗물과 하수가 같은 관으로 흐르기 때문에 홍수 땐 역류를 막기 위해 하수를 일부 유출하도록 설계돼 있다. 환경단체는 “하수 유출은 아주 이례적인 경우에만 허용돼야 하는데 마구잡이로 내보낸다”고 비난했다. 영국 정부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신속한 조치를 촉구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수도 회사들은 마거릿 대처 총리 시절인 1989년 민영화된 뒤 설비투자나 서비스 개선보다 주주 배당을 위한 수익 증대에만 골몰해 왔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1위 업체인 ‘템스워터’도 사모펀드와 해외연금기관 등이 소유하고 있으며, 지난해 부채가 140억 파운드(약 24조 원)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템스워터는 최근 자구책으로 수도 요금 최대 40% 인상안 등을 내놓아 더욱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수도 런던을 포함해 영국 중남부를 가로지르는 ‘잉글랜드의 젖줄’ 템스강이 배설물로 뒤덮여 망신을 사고 있다. 195년 전통을 자랑하는 ‘옥스브리지(옥스퍼드 대 케임브리지)’ 조정 경기 참가자들에게 “튀는 물도 조심하라”며 입수금지 조치가 내려졌을 정도다. 환경단체 리버 액션은 29일 “대회 구간에서 시료를 채취해 수질을 검사했더니 대장균 검출량이 평균 2863CFU(세균수 단위), 최고 9801CFU에 이르러 허용치의 최고 10배에 육박했다”고 발표했다. 영국 환경청의 해수욕장 대장균 허용기준은 100ml당 1000CFU 미만이다.BBC방송에 따르면 템스강은 배설물 등으로 냄새도 참기 어려울 정도다. 이날 열린 조정경기에서 진 옥스퍼드대의 리어내도 젠킨스 선수는 기자회견에서 “경기 전 미리 구토를 하고 왔다”며 “강물에 ‘똥’만 좀 적었어도 나았을 것 같다”고 불평했다. 원래 옥스브리지는 우승팀이 강물에 뛰어들며 자축하는 게 전통이지만, 올해는 입수를 금지시켰다. 경기 중 노를 젓다가 튀는 물에 닿지 않게 주의하라는 경계령도 내려졌다.템스강 똥물 사태는 수도 회사들이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하수를 장기간 대량으로 내보내며 벌어졌다. 영국 환경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미처리 하수가 370만 시간 동안 방출돼, 모니터링을 시작한 201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2022년(175만 시간)과 비교해도 두 배가 넘는다. 영국은 빗물과 하수가 같은 관으로 흐르기 때문에, 홍수 땐 역류를 막기 위해 하수를 일부 유출하도록 설계돼있다. 환경단체는 “하수 유출은 아주 이례적일 경우만 허용돼야 하는데 마구잡이로 내보낸다”고 비난했다. 영국 정부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신속한 조치를 촉구했다.하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영국 수도 회사들은 마거릿 대처 총리 시절인 1989년 민영화된 뒤, 설비투자나 서비스 개선보다 주주 배당을 위한 수익 증대에만 골몰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1위 업체인 ‘템스워터’도 사모펀드와 해외연금기관 등이 소유하고 있으며, 지난해 부채가 140억 파운드(약 24조 원)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템스워터는 최근 자구책으로 수도요금 최대 40% 인상안 등을 내놓아 더욱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가상화폐의 왕’에서 ‘사기꾼’으로 전락한 미국 가상화폐 거래소 ‘FTX’의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32)가 고객 자금 수십억 달러를 빼돌린 혐의 등으로 기소된 지 약 15개 월만인 28일(현지시간) 징역 25년형을 선고받았다. 110억2000만 달러(약 14조 원)에 달하는 재산에 대한 몰수 명령도 내려졌다. 이번 사태가 가상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 등 또 다른 가상화폐 관련 범죄자들에게도 처벌 참고치가 될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진단했다.이날 뉴욕 남부 연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서 루이스 캐플런 판사는 “뱅크먼프리드는 미래에 아주 나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며 “그 위험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고 25년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앞서 검찰이 구형한 징역 40∼50년보다는 짧지만, 최근 미국의 화이트칼라 범죄자들이 받은 형량 중에선 가장 긴 편이다.뱅크먼프리드는 항소할 뜻을 밝혔다. 이날 최후 진술에서도 “내가 내린 결정은 나쁜 결정이었지만 이기적이지는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FTX에 투자한 사람들이 대부분 자금을 회수했다고 했다. 캐플런 판사는 “끔찍한 범죄를 후회하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부모 모두 스탠퍼드대 교수인 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뱅크먼프리드는 매사추세츠공대(MIT)를 졸업하고 월가에 입문했다. 투자회사 알라메다리서치를 설립한 후 2019년 FTX까지 만들었다. 2022년 10월 그가 FTX 돈을 횡령해 알라메다의 기존 부채를 갚고, 바하마 등에 호화 부동산을 구입한 혐의가 드러났다. 한때 기업 가치가 320억 달러에 달했던 FTX는 같은 해 11월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고전 경제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비합리적 의사결정 행태를 연구하는 학문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의 창시자로 꼽히는 대니얼 카너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27일(현지 시간) 별세했다. 향년 90세. 심리학자인 그는 비(非)경제학자 출신으로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며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2011년 출간된 저서 ‘생각에 관한 생각(원제 Thinking, Fast and Slow)’ 역시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카너먼 교수는 기존 경제학과 심리학이 신봉한 ‘호모 이코노미쿠스’, 즉 인간은 항상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존재라는 명제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즉 인간이 합리적 존재라면 1달러를 벌었을 때 느끼는 기쁨과 1달러를 잃었을 때 느끼는 괴로움이 똑같아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을 잃었을 때 훨씬 큰 괴로움을 느끼고 이로 인해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처럼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 ‘손실 회피(loss aversion)’, ‘휴리스틱(heuristic)’ 같은 행동경제학의 주요 개념은 인간이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비합리적인 존재임을 증명하는 근거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이런 내용을 담아 1979년 그가 발표한 ‘전망 이론’은 학계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사회 전반을 크게 변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겸 또 다른 행동경제학계 베스트셀러 ‘넛지’의 저자 리처드 탈러 시카고대 교수는 카너먼의 연구 성과를 두고 “지구가 둥글다는 발견에 견줄 만하다”고 극찬했다. 워싱턴포스트(WP) 역시 각국 정부의 정책 평가, 질병 진단 방식, 야구계의 선수 모집 방식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고 동조했다.카너먼 교수는 1934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리투아니아계 유대인 이민자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유년 시절 프랑스 파리에 거주했고 당시 나치 독일의 유대계 탄압을 피해 생활하며 인간 심리에 관심을 가졌다. 이스라엘 히브리대,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에서 심리학을 공부했고 1993년부터 프린스턴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세계적인 팝페라 테너 임형주 씨(38·사진)가 “영국왕립예술학회(RSA)가 발행하는 유력 학술지 RSA 저널에 소개됐다”고 소속사 디지엔콤이 26일 밝혔다. 1783년 창간된 RSA 저널은 3개월마다 발행되는 권위 있는 학술지다. RSA 저널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가입이 승인된 전 세계의 신입 석학회원 중에 임 씨를 포함해 다섯 명을 집중 조명했다. 저널은 그를 “팝페라 가수이자 이탈리아 로마시립예술대 성악과 석좌교수”라고 소개하며 “오랜 기간 대학적십자사,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등 국제 자선기구 친선대사로 활약했다”고도 설명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의 전속 통역사 다카오 나오(高尾直)가 일본의 대미(對美) 외교를 위해 전진 배치될 것이라고 로이터통신 등이 25일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1월 미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일본 정부가 이미 트럼프 전 대통령과 안면이 있는 다카오의 활용 범위를 넓히려 한다는 것이다. 그는 아베 전 총리와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8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저인 미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만났을 때도 통역을 맡았다. 다카오는 현재 주중 일본대사관에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네 명의 소식통은 일본 외무성이 그를 주미 일본대사관으로 보내기를 원한다고 로이터에 전했다. 다카오는 과거 아베 전 총리가 영어권 국가의 정상을 만나거나 해당 나라를 찾을 때마다 동행했다. 특히 ‘골프 애호가’인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아베 전 총리를 자신이 운전하는 골프 카트에 직접 태우고 친분을 과시했다. 이에 관해 매슈 포틴저 전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당시 다카오가 역시 골프 카트 뒷자리에 앉아 아베 전 총리의 빠른 일본어를 영어로 잘 옮겨줬다. 그래서 두 정상의 언어 장벽은 없었다”고 호평했다. 이런 다카오를 중용하려는 것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친(親)트럼프’ 인물을 적극 발굴해 활용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현재 중국 견제를 골자로 하는 보호무역 강화를 공약하고, 주일미군 유지를 위한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는 등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에 대비하려는 것이다. 최근 일본 정계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뜻하는 ‘토람푸’의 ‘토라(虎·호랑이)’를 딴 여러 신조어도 유행하고 있다. ‘모시(もし·혹시) 토라’, ‘호보(ほぼ·거의) 토라’ 등을 넘어 ‘모우(もう·이미) 토라’라는 표현까지 나오는 등 트럼프 재집권에 대한 대비가 구체화하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11월 대선을 앞두고 미국 사회에서 낙태권을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가운데, 미 연방대법원에서 ‘먹는 낙태약’의 허용 여부를 결정짓는 세기의 재판이 본격 시작됐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26일 먹는 낙태약 ‘미페프리스톤’(사진) 처방을 규제하는 구두 변론을 시작으로, 미 대선의 주요 쟁점 중 하나인 낙태권에 결정적인 이정표가 될 재판이 열린다”고 전했다. 연방대법원이 2022년 6월에 임신 24주까지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1973년)을 뒤집은 이래 낙태와 관련된 사안을 심리하는 건 처음이다. 미페프리스톤은 2000년 미 식품의약국(FDA)의 사용 승인을 받은 경구 낙태약이다. 2021년 투약자의 사망률이 0.00027%였을 정도로 부작용도 적다.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무효로 만든 뒤에도, 이 약은 여전히 미 전역에서 원격 처방을 받아 배송받을 수 있다. 이에 같은 해 11월 낙태 반대론자들은 텍사스주 연방지방법원에 “미페프리스톤의 의약품 허가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해 이듬해 승소했다. 2심 격인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제5연방항소법원도 미페프리스톤 사용조건을 기존 ‘임신 10주’ 이내에서 ‘7주’ 이내로 줄이고 원격 처방도 금지했다. 이에 반발한 법무부와 제약업체가 상고해 연방대법원이 최종 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WSJ는 “이번 재판의 결과가 여성들에게 미칠 영향은 낙태권 폐지 판결보다도 치명적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낙태권 폐지 판결은 낙태 허용 여부를 주별로 판단할 수 있게 만들었다. 현재 낙태를 전면 금지한 주는 14곳뿐이다. 하지만 낙태약 사용 자체를 제한하면 전국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미국은 약품을 통한 낙태의 비중이 전체의 약 3분의 2에 이른다. 또 연방대법원 심리의 핵심 쟁점은 FDA가 미페프리스톤의 처방을 더 엄격하게 규제했어야 했는가이다. 이 때문에 재판 결과에 따라 FDA의 신뢰도가 정치에 휘둘려 흔들릴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현재 연방대법원은 대법관 9명 중 6명이 보수 성향이다. 텍사스대 로스쿨의 엘리자베스 세퍼 교수는 “FDA는 절대적(gold standard)인 전문성을 통해 미 제약업의 중심을 지켜왔다”며 “중요한 정책들이 소송을 통해 결정될 수 있다는 여지를 주게 된다”고 지적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도 “만일 사법기관이 규제기관의 기술적 평가를 뒤집는 결론을 내린다면, 앞으로 누구라도 도덕적 이유나 음모론 등으로 FDA를 고소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짚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중남미 왜 ‘갱단 무법천지’ 됐나 갱단 폭력에 휩싸인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가 살인, 약탈, 방화가 판치는 무법천지로 변했다. 에콰도르, 아르헨티나 등도 갱단 폭력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중남미의 고질적 경제난과 양극화, 정치권의 부패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매일 사람이 죽고 시체가 불타는 모습을 본다.”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에 사는 유사프 알오마리 씨가 18일 호주 ABC방송에 전한 현지 상황이다. 아이티는 2010년 강진으로 국가 인프라가 파괴된 후 국제원조에 의지해 왔다. 이 와중에 2021년 7월 조브넬 모이즈 당시 대통령이 괴한 총격으로 숨진 후 고질적 정정 불안이 심화했다. 특히 지난달 말부터 시작된 갱단 폭력으로 국가 전체가 사실상 마비됐다. 이로 인해 살인, 약탈, 방화 등이 빈번해지면서 거리 곳곳에 시체가 즐비하다. 에콰도르,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대부분 국가 또한 급격한 치안 악화와 정정 불안에 직면해 있다. 중남미 전체의 이런 모습은 극심한 경제난 및 양극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서구 열강의 오랜 식민지배로 중남미 백인과 비(非)백인 간에는 해소하기 어려운 경제적 불평등이 고착화했다. 이로 인해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 서민들이 주로 택한 생계 수단이 바로 ‘마약’이다. ‘고질적 경제난→마약 범죄 기승→치안 약화→정정 불안 심화’의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산 채 화형하는 갱 두목, 아이티 장악 인구 약 1160만 명의 아이티는 2022년 세계은행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748달러(약 227만 원)에 불과한 최빈국이다. 2021년 7월 모이즈 당시 대통령은 전직 군인 등으로 구성된 콜롬비아 용병들에게 암살됐다. 아리엘 앙리 당시 총리는 과도정부 수반으로 새 정부 구성을 약속했지만, 최근까지 선거를 치르지 못해 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유지했다. 앙리 총리는 이달 1일부터 자국 경찰을 파견해 치안 유지를 도와주겠다는 아프리카 케냐를 방문해 지원을 호소하고 있었다. 하지만 총리가 나라를 비운 틈을 타 포르토프랭스의 갱단 연합 ‘G9’의 수장 지미 셰리지에(47)가 공항과 도로를 점령하고 4000여 명의 교도소 재소자까지 탈출시켜 사실상 국가를 장악했다. 11일 앙리 전 총리는 귀국하지도 못한 채 푸에르토리코에서 사퇴했다. 셰리지에는 사람을 산 채로 불태우는 잔혹함으로 악명 높다. ‘바비큐’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셰리지에가 아이티를 장악한 후 최소 1만5000명이 집을 잃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인구 약 3분의 1에 달하는 400만 명 이상이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고 13일 밝혔다. 도시 전역의 식량, 연료, 물 공급도 막혔다. 생필품 품귀도 극심해 식수 등의 가격은 자고 나면 천정부지로 오른다. 곳곳에서 몸값을 노린 납치도 빈번하다. 현재 아이티 전체 병원의 60%는 전기 및 의료품 부족으로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 한 의사는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갱단이 병원 내 엑스레이 시설은 물론 창문까지 가져갔다”고 토로했다. 구호단체 유니세프 또한 인공호흡기 등 신생아와 산모를 위한 필수품을 담은 컨테이너 등도 포르토프랭스의 무장단체에 약탈당했다고 16일 밝혔다. 잔혹한 갱단들은 경쟁 관계에 있는 갱단을 살려줬다는 이유로 일부 의사마저 공공연하게 살해했다. 현재 포르토프랭스에서만 200여 개 갱단이 활개 치지만, 아이티 전체 경찰 수는 채 1000명도 되지 않는다. 최근엔 은퇴한 경찰과 군인을 주축으로 조직된 민간 자경단이 ‘마체테(벌목도)’ 등을 들고 도시 곳곳을 순찰해 갱단과의 추가 마찰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21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셰리지에와 긴밀하게 협력했던 또 다른 갱단 ‘델마스95’의 수괴 티 그레그 또한 숨진 채 발견됐다.● 지도자, 갱단 이용해 정권 유지 아이티 갱단은 수십 년간 여러 정권과 결탁하며 각종 불법 행위를 자행했다. 특히 1957년부터 1986년까지 29년간 장기 집권한 독재자 프랑수아 뒤발리에 전 대통령과 아들 장클로드 전 대통령 부자(父子)는 개인 군사조직을 꾸려 반대파를 탄압함으로써 오늘날 비극의 씨앗을 뿌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후 지도자도 크게 다르지 않다. 1990년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군부 쿠데타로 해외 도피했던 장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전 대통령 또한 미국 등 외세 도움으로 귀국해 재집권하는 과정에서 군대를 해산하고 갱단을 이용해 정권을 유지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 정규 군경의 영향력과 위상이 급락했다. 이태혁 부산외국어대 중남미지역원 교수는 “아이티는 ‘국민’은 있지만 ‘국가’는 없는 나라”라며 “갱들이 권력을 전유하고 기성 정치권이 이 갱단에 기생하는 구조”라고 진단했다. 이번 폭력 사태를 주도한 G9 역시 모이즈 정권 당시 집권당 PHTK로부터 자금, 무기, 경찰복, 정부 차량까지 제공받는 대가로 반정부 세력을 탄압했다. 로버트 패튼 미 버지니아대 교수는 AP통신에 “최근 3년간 주요 갱단이 약탈, 인신매매, 마약 밀매, 소형무기 밀수 등으로 많은 돈을 모았다”며 “정치권 통제를 벗어나 갱단이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진단했다. 2010년 아이티를 강타한 대지진도 사회 분열과 갈등을 증폭시키는 데 한몫했다. 당시 최소 30만 명이 숨지자 국제사회의 원조가 쏟아졌지만 중앙정부 기능 약화, 부패 등으로 국민들이 구호물자를 제대로 보급받지 못했다. 주요 갱단들은 이 구호물품을 독식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사회 불안을 조장했다. 지진 대응을 위해 파견됐던 유엔구호군은 각종 성범죄 등에 연루돼 쫓겨나듯 철수했다. 그 틈새를 메꾼 갱단은 자신들의 각종 범죄를 ‘사업화’하며 급격히 세를 불렸다. 손혜현 고려대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소 연구교수는 “최빈국 아이티의 유일한 수입원이 국제 원조였는데 그 운영이 극도로 불투명하고 부패해 사회 분열을 심화시켰다”고 지적했다. 2016년 이후 8년 넘게 아이티에선 선거가 한 번도 치러지지 못했다. 원래대로라면 2020년 1월 4년 임기인 하원 119석 전체, 6년 임기인 상원 30석 중 20석에 대한 선거가 치러져야 했지만 정정 불안 등으로 불발됐다. 2023년 1월에는 나머지 상원의원 10명의 임기까지 만료됐다. 국민을 대표할 입법부 기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사퇴한 앙리 총리를 대신할 과도정부 구성이 원활하게 이뤄질지도 미지수다. G9을 이끄는 셰리지에는 과도정부에 참여해 자신이 직접 정권을 잡겠다는 뜻까지 내비치고 있다.● ‘마약 통로’ 에콰도르, 아르헨도 갱단 난립 이웃 나라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에콰도르의 도널드 트럼프’로 불리는 1987년생 우파 지도자 다니엘 노보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세계 최연소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하지만 주요 갱단 ‘로스 초네로스’와의 대립으로 정상적인 국정 수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로스 초네로스는 최근 에콰도르에서 급증한 각종 강력 범죄의 배후로 꼽힌다. 멕시코를 기반으로 전 세계 곳곳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계적 마약 밀매 조직 ‘시날로아 카르텔’과 긴밀히 협력하며 중남미산 마약을 미국, 유럽 등으로 수출하고 있다. 다른 갱단 또한 브라질, 알바니아 범죄 조직 등과 연계하며 각종 범죄를 자행하고 있다. 로스 초네로스의 수장 호세 아돌포 마시아스는 살인, 강도, 마약 밀매 등으로 징역 3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올 1월 7일 최대 도시 과야킬 감옥에서 탈옥했다. 분노한 노보아 대통령이 이들을 ‘테러 집단’으로 지정하고 군대를 통해 진압할 뜻을 밝히자 거세게 저항하며 정부와 맞서고 있다. 마시아스 탈옥 이틀 후인 1월 9일 과야킬의 TC텔레비시온 방송국에는 10여 명의 무장 괴한이 침입했다. 두건과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린 이들은 생방송 중인 뉴스 스튜디오에 난입했고 총과 수류탄 등 무기로 방송 진행자와 스태프들을 위협했다. 노보아 대통령을 향해 “우리 일에 개입하지 말라”는 경고도 보냈다. 이런 상황이 약 15분간 여과 없이 생중계됐다. 이후 당국과 로스 초네로스의 대립으로 최소 10여 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부상당했다. 과거 중남미 대표 관광국가였던 에콰도르는 기존 마약 범죄가 심했던 멕시코, 콜롬비아 등에서 마약 단속이 심해지자 최근 각종 범죄 조직으로부터 신(新)마약기지로 각광받고 있다. 일종의 ‘풍선 효과’다.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에 따르면 2023년 유럽에서 압수된 코카인의 4분의 1이 에콰도르에서 나온 것으로 드러났다. 살인도 판치고 있다. 2023년 기준 에콰도르의 살인율은 인구 10만 명당 약 45명으로 2016년에 비해 약 9배 급증했다. 지난해 대선에서 노보아 대통령과 경쟁했던 페르난도 비야비센시오 대통령 후보 또한 선거 유세 도중 살해됐다. 마약 카르텔 척결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그를 눈엣가시로 여긴 일부 마약 조직이 살해 배후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코르도바에 이은 3대 도시 겸 산타페주 주도(州都) 로사리오의 상황도 비슷하다. 세계적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 좌파 혁명가 체 게바라의 고향으로 유명한 이곳은 볼리비아, 브라질, 파라과이 등에서 유럽과 아시아로 향하는 마약 이동의 주요 통로다. 마약 갱단에 의한 폭력 사태가 빈번해 2022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살인이 22건으로 전국 평균보다 약 5배 높다. 앞서 5일 파블로 코코시오니 산타페주 법무장관은 소셜미디어에 반바지만 입고 빼곡히 포개져 앉은 재소자들의 사진을 공개하며 갱단 엄벌 의지를 천명했다. 이에 반발한 갱단은 불특정 주민을 대상으로 ‘본보기성 살인’을 자행했다. 이 여파로 택시 운전사, 버스 기사, 주유소 직원 등 최소 4명이 총에 맞아 숨졌다. 모두 범죄 조직과 연루되지 않은 평범한 시민이었다. 로사리오 도심을 관통하는 큰길에 “무고한 주민, 택시와 버스 기사, 환경 미화원, 상인들의 죽음이 이어질 것”이란 무시무시한 글이 적힌 협박성 현수막도 나붙었다. 파트리시아 불리치 치안장관은 11일 로사리오를 직접 찾아 “이곳을 마약 밀매 집단의 손 안에 두지 않을 것”이라며 강력 대응을 천명했다. 이어 지난해 12월 집권한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은 연방경찰과 군 병력을 로사리오에 투입하기로 했다. 범죄자들을 추가로 잡아넣기 위해 대규모 교도소 건립 또한 서두르기로 했다.● 갱단 확장 토양은 ‘극심한 경제난’ 중남미의 이 같은 치안 불안은 극심한 경제난과 관련이 깊다. 유엔은 지난해 중남미 인구 전체의 약 29%인 약 1억8100만 명이 빈곤층이라고 추정했다. 또한 UNODC에 따르면 2020년 중남미의 코카인 생산량은 1982t으로, 2014년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마약으로 큰돈을 번 주요 범죄 조직이 정규 군경보다 강력한 무기로 무장하는 일도 잦다. 교도소는 갱단 범죄의 소굴로 전락했다. 재소자들은 교도관과 결탁해 마약 밀매 등의 범죄를 저지르는가 하면 새로운 갱단원을 모집하기도 한다. 베네수엘라에선 지난해 9월 탈옥한 갱단 두목이 교도소에 미니 동물원, 수영장, 나이트클럽, 야구장까지 마련하는 등 호화 수감 생활을 즐긴 것으로 드러났다. 각국 범죄 조직이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는 점도 사태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손혜현 교수는 “단일 정부의 노력만으론 초국가적인 집단으로 성장한 범죄 조직을 소탕하기에 무리가 있다. 국가 간 협력과 공조가 절실하다”고 주문했다.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김윤진 기자 kyj@donga.com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이젠 (부지가 얼마나 큰지) 더는 계산하지도 않습니다.”(사가르 아다니 아다니그린에너지리미티드 전무) 인도의 파키스탄 접경지역인 북서부 구자라트주. 광활한 벌판에 태양광 패널과 풍력 발전기가 끝도 없이 깔려 있다. 부지 면적이 726km²로 서울시(605km²)보다 넓은 수준. 세계 최대 인구 대국인 인도가 2026년 완공을 목표로 세계 최대 규모의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조성하고 있다. 지난달 14일 일부 가동을 시작한 카브다 재생에너지 발전소는 인도 ‘청정에너지 기업’ 아다니그린에너지리미티드(AGEL)의 작품이다. AGEL에서 이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아다니 전무(30·사진)는 2022년 세계 3위 부호(富豪)에도 올랐던 억만장자 가우탐 아다니 아다니그룹 회장의 조카다. 아다니그룹이 인도 최대 석탄수입업체인 걸 감안하면 삼촌이 화석연료를 팔아 모은 돈으로 조카가 청정에너지 사업을 벌이는 셈이다. 카브다 발전소는 약 200억 달러(약 26조 원)가 들어가는 막대한 사업이다. 예정대로 완공되면 발전용량은 30GW(기가와트)에 이른다. 약 1600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이다. 아다니 전무는 20일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야생동물이나 초목, 사람도 없는 거대한 황야에 발전소보다 좋은 대안은 없다”고 말했다. AGEL이 이런 거대한 ‘베팅’에 나선 건 인도가 인구 1위를 바탕으로 중국을 제치고 ‘세계의 공장’으로 발돋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2년 인도는 총 에너지 소비량은 세계 3위였지만,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은 아직 세계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다. 에너지 수요가 늘어날 여지가 무궁무진하단 뜻이다. 실제로 인도의 에너지 수요는 2000년 이후 20년간 두 배로 뛰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도 2070년까지 인도의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다만 인도는 여전히 전력 생산원의 약 70%를 석탄이 차지하고 있다. AGEL의 모기업 아다니그룹도 탄광 사업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때문에 일각에선 아다니그룹이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통해 ‘그린워싱(Greenwashing·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기업이 친환경 이미지를 내세우는 행위)’을 시도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아다니 전무는 이에 대해 “만약 인도가 중국이나 유럽, 미국처럼 (에너지를 소비하며) 산다면 지구의 기후 미래는 매우 암울해질 것”이라며 발전소 설립의 정당성을 설파했다. 하지만 그룹의 화석연료 투자에는 “인도인들이 중산층으로 발전하지 못하게 막을 순 없다”며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6·25전쟁을 기억하는 건 우리의 의무입니다.” 찰스 3세 영국 국왕(76)이 19일(현지 시간) 6·25전쟁에서 싸웠던 영국 참전용사들을 런던 버킹엄궁으로 초청해 경의를 표했다. 지난해 11월 찰스 3세가 런던 한인타운을 방문했을 때 한 참전용사가 “영국에서 6·25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에 가려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 뒤 마련된 자리였다. 영국은 6·25전쟁 당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8만1084명의 병력을 파병해 1106명이 전사했다. 영국 왕실은 이날 “찰스 3세의 동생인 앤 공주와 제수인 소피 에든버러 공작부인이 참전용사 약 80명과 가족, 주영 한국대사관 및 영국 재향군인회 관계자 등 약 200명을 직접 맞이했다”고 전했다. 찰스 3세는 앤 공주가 대독한 연설문에서 “약 70년 전의 복무에 경의를 표하고, 중요한 역사적 이정표를 기념하기 위해 여러분들을 버킹엄궁에 초청하는 게 개인적인 소망이었다”며 “여러분의 희생은 시대를 관통해 울려 퍼질 것”이라고 칭송했다. 지난달 암 투병 사실을 공개한 찰스 3세는 본행사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행사 전에 참전용사 4명과 별도로 환담하는 자리를 가졌다. 찰스 3세는 전날 소셜미디어에 “서거했다”는 허위 정보가 퍼져 큰 혼란이 벌어진 뒤 하루 만에 모습을 공개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