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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돌이 프로기사 톱 5와의 대결에서 4연승을 거두고 마지막으로 랭킹 1위(2018년 12월 기준) 신진서 9단과 만났다. 한돌은 4연승 과정에서 초반에 우세를 굳혔다. 신 9단으로선 초반에 대등하게 둘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백 10은 인공지능(AI)이 좋아하는 수법. 백 16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좌하 귀 정석은 신민준 9단과의 1국에서도 나왔다. 수순 중 흑 11로는 참고 1도 1, 3으로 두어 천천히 두는 것도 호각이다. 백 12로도 참고 2도처럼 둘 수 있다. 실전은 가장 복잡한 변화다. 흑 17부터 1국 때와 달라졌다. 1국에선 신민준 9단이 A로 뒀다. 백의 다음 수는 절대의 한 수다. 어느 곳일까. <한게임바둑·한국기원 제공>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최근 중국 푸저우시에서 열린 인공지능 바둑대회 결승전에서 한국 ‘바둑이’가 중국 ‘싱전(星陣·Golaxy)’에게 져 준우승을 차지했다. 싱전과 바둑이 모두 프로기사를 이길 만한 실력을 갖고 있다. 한돌이 국내 정상급 프로를 이기는 것도 이젠 당연한 일이 돼 버렸다. 이 바둑의 결과는 백 2집 반 승이었다. 백이 막판에 필요 없는 수를 여러 번 뒀지만 승리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던 셈이다. 이 바둑에서 가장 인상적인 수는 참고도 백 4. 박정환 9단이 불리한 형세를 뒤집기 위해 결행한 흑 1, 3의 승부수를 가볍게 방어하는 맥점이었다. 이후로도 박 9단이 계속 흔들기를 시도했으나 한돌은 한 치의 허점도 보이지 않았다. 212·218·237=200, 215·221=201, 220=185, 223·276=51, 236=60, 251·257·262=97, 254·260=94, 258=245, 259=123. 280수 끝 백 2집 반 승. <한게임바둑·한국기원 제공>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좌하 귀 패는 승부와 무관하다. 백은 패를 하지 않고 그냥 끝내기만 해도 낙승할 수 있다. 사실 흑 13의 팻감은 백이 받지 않아도 된다. 백이 손을 빼 참고 1도 흑 1, 3으로 둬도 백 8까지 수가 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백은 만사 튼튼하게 둔다. 백의 여유로운 태도는 백 22의 가일수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곳 역시 수가 나는 자리는 아니다. 백 24와 흑 25는 맞보기의 곳. 흑 33으로 파호한 수로 참고 2도 흑 1로 두면 어떻게 될까. 수상전이 일어나는데 백 10까지 흑을 잡는다. 백 38도 확실한 가일수. 백은 이번 보에서만 이런 식의 손해 보는 가일수를 2번이나 했으나 형세는 변동 없다. 이후 수순은 총보. 18·37=◎, 21=15, 36=○. <한게임바둑·한국기원 제공>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전보에서 패싸움으로 대형 바꿔치기가 일어났다. 상변은 백이, 우변은 흑이 차지한 상황. 이 결과는 흑이 좀 만회한 것 같다는 평가가 있었는데 흑 93이 도마에 올랐다. 여기서는 무조건 참고도 흑 1로 밀어야 했다. 거의 선수의 의미가 있는 곳. 백 2, 4로 나와 끊는 것은 흑 11까지 별다른 수가 없다. 따라서 93은 그저 흑 한 점을 살린 작은 끝내기에 불과하다. 이 기회를 놓치자 잽싸게 백 94로 상변을 보강하면서 승부가 사실상 기울었다. 흑 99로 좌하 귀를 살자고 했을 때 한돌은 바로 패를 결행한다. 하지만 이내 마음이 바뀌었는지 백 102, 108을 두며 패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흑 111로 마지막까지 버티는 박정환 9단. 만약 흑 111 대신 패를 이으면 백이 A를 선수하고 B로 중앙 두 점을 끊어 잡아 낙승의 길로 접어든다. 흑이 살지 않고 버티자 백 112(100의 곳)로 따내 패가 재개됐다. <한게임바둑·한국기원 제공>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흑의 공격을 묵묵히 받아내던 백이 드디어 ◎의 역습을 감행했다. 이 수로 상변과 중앙 흑이 분단의 아픔을 겪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흑 81이 최선의 응수인데 흑 87까지 외길 수순으로 큰 패가 났다. 무난히 판을 마무리할 것 같았던 한돌이 공연히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건 아닐까. 아니다. 한돌은 분명 확실한 계산을 하고 있다. 흑 89가 현재 가장 크고 유일한 팻감이다. 패를 하지 않고 참고도 흑 1로 잇는 수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백 4로 패를 해소할 때 흑 5로 귀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백 6이면 중앙 흑 대마가 살기 어렵다. 백 ◎가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는 건 이렇게 중앙 흑 대마가 상변과 끊기면 집 모양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백은 팻감을 받지 않고 90으로 패를 해소하면서 상변을 모조리 삼켰다. 흑은 91로 우변에 죽었던 흑을 살리며 거꾸로 백 돌을 잡았다. 이 바꿔치기의 결과는? <한게임바둑·한국기원 제공>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흑 ●는 필사적인 공격이지만 힘에 부치는 모습이다. 백은 쉽게 66으로 붙여놓고 죽죽 밀어 72까지 탈출로를 열었다. 이어 백 74, 76으로 흑의 사정권을 유유히 벗어났다. 죽을힘을 다해 버텨온 흑으로선 허망한 노릇이다. 그래도 박정환 9단은 흑 77로 덫을 놓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만약 백이 참고 1도 1로 나가면 자칫 곡소리가 날 수도 있다. 흑 10까지 대마가 다시 흑의 포위망에 걸려들기 때문이다. 백은 여기서 참고 2도처럼 두면 제일 쉽다. 백 5로 대마가 무사 귀환한다. 백 승리의 그림이다. 하지만 한돌의 생각은 좀 달랐다. 백 78을 선수한 뒤 80으로 흑을 끊고자 한다. 유리해서 은인자중하던 백이 역습에 나선 것이다. 여기서 승부를 내겠다는 뜻일까. <한게임바둑·한국기원 제공>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 ◎ 때 63의 곳으로 물러서는 것은 전보 참고도에서 보여줬듯 쉽게 지는 길이다. 그래서 박정환 9단은 흑 55로 끼워 최대한 버티고 나섰다. 질 땐 지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승부사의 근성이다. 흑 59 역시 같은 의미의 버티기. 그냥 참고 1도 흑 1에 두면 백 8까지 백으로선 편안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지금 흑은 백 좌변과 좌상 귀를 살려주면 곧 패배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미생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다. 백 62, 64로 흑 넉 점을 잡자 집 차이가 더 벌어졌다. 그렇다면 흑 65의 공격은 필수. 여기서 뭔가 얻어내야 한다. 흑 65 대신 참고 2도처럼 귀를 잡으러 가는 것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백 14까지 백이 살아간다. <한게임바둑·한국기원 제공>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 ◎로 끊을 때, 흑이 참고 1도 흑 1, 3으로 두는 것은 앉아서 지는 길이다. 백 10까지 흑의 포위망을 알기 쉽게 벗어난다. 사실 좌상 귀에서 그냥 살아버릴 수도 있다. 박정환 9단은 흑 43으로 힘겹게 버틴다. 이 수도 여의치 않지만 희망지수가 참고 1도보다는 높다. 또 흑 43은 노림수를 품고 있다. 바로 흑 47, 49로 나와서 끊는 수. 흑의 모양도 허술하지만 이렇게 끊어서 백을 갈라놔야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이런 장면에서 실력이 나온다. 상대가 한껏 버티면서 도발할 때 얼마나 깔끔하게 정리해 내는지가 중요하다. 백 54가 그와 같은 수. 참고 2도 흑 1로 받아달라는 것이다. 그럼 백 2, 4로 연결한 뒤 6으로 귀의 백을 살린다. 박 9단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한게임바둑·한국기원 제공>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좌상 귀에서 백은 34까지 평범하게 응수한다. 부자 몸조심을 하는 형국이다. 흑이 평소처럼 참고 1도 1로 두면 백 2, 4로 좌상 귀를 얼른 살아버린다. 흑에게는 내일이 없는 그림이다. 이 같은 흐름을 꿰뚫고 있는 박정환 9단은 흑 37로 좌상 백을 압박한다. 작은 실마리라도 잡으려는 것이다. 흑이 까칠하게 나오자 백은 일단 40으로 좌상 귀부터 지킨다. 이곳에 집모양을 만들어야 타개가 쉽다. 그런데 ‘돌격 앞으로’를 외치던 흑이 갑자기 41로 후진 기어를 넣는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참고 2도 흑 1로 붙여 괴롭혀 볼 상황 아니었을까. 물론 백 10까지 되면 대마 공격이 쉽지 않지만 실전처럼 백 42로 끊어 확실히 타개하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한게임바둑·한국기원 제공>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 ◎가 좋은 수라는 건 이 수가 상변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백 22까지는 외길인데 흑 23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 흑으로선 괴롭다. 불리한 형세를 따라가려면 참고 1도 흑 1로 가르는 수가 성립해야 한다. 하지만 백 2로 젖히면 흑 3, 5로 받아야 하는데 자체로 백이 쏠쏠하게 이득을 보게 된다. 이미 실리에서 뒤져 있는 흑은 이 그림을 선택하기 어렵다. 백 26이 놓이자 반상에서 빈 곳은 좌상 귀와 중앙만 남았다. 만약 형세가 팽팽했다면 참고 2도 흑 1∼7로 두는 것도 훌륭해 보인다. 중앙이 흑의 세력권으로 변해 제법 큰 집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 그러나 형세를 비관적으로 본 박정환 9단은 흑 29의 양걸침으로 변화를 꾀했다. <한게임바둑·한국기원 제공>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 ◎에 흑은 반발할 수 없다. 흑 9로 곱게 잇는 것이 정수. 그러자 백은 12까지 우변 흑을 손에 넣었다. 흑이 우변에서 어물쩡거리다가 우상 귀마저 빼앗기면 큰일이다. 그래서 일단 흑 13으로 우상 귀를 안정시켰다. 여기까지 결과를 보면 백은 우변 흑 석 점을 잡고, 중앙을 두텁게 했다. 흑은 우상 귀를 지키고 백 다섯 점을 추가로 잡았다. 이 같은 바꿔치기의 이해득실은 흑도 나쁘지 않은데, 그 이전에 백이 유리했기 때문에 형세는 변함이 없다. 흑의 강공을 백이 선방한 셈이다. 백 14 때 덜컥 참고도 흑 1로 나가는 건 실착. 흑이 백 두 점을 잡을 수는 있지만 백 4로 중앙이 통째로 백 집이 될 확률이 높다. 이건 흑이 앉아서 지는 꼴이다. 그래서 흑 15, 17로 반발한 것은 승부 호흡상 당연한데, 한돌은 엉뚱하게 백 18로 붙인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런 수가 상대의 신경을 긁는 수다. <한게임바둑·한국기원 제공>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 ◎에 대해 직접 응수하는 것이 곤란하다고 본 박 9단은 흑 99로 단수해 제 갈 길을 가겠다고 나섰다. 백 100으로 나오는 것이 타이밍 좋은 응수타진. 참고 1도 흑 1로 막으면 백 2로 끊어둔 뒤, 백 4로 둔다. 백 8까지 우변 흑이 빈사 상태에 빠진다. 흑 101로 받는 박 9단의 손길에는 고민의 흔적이 엿보인다. 차라리 참고 2도 흑 1로 빵따냄을 하는 것이 속 편하긴 하다. 그러면 백 2로 귀의 석 점이 잡혀 실리로 크게 손해를 본다. 그래서 흑 101로 우상 백을 먼저 건드리는 식으로 나아간 것. 백은 102로 우변 쪽을 버리고 중앙에서 주도권을 확실히 잡는 것으로 변신했다. 흑백 모두 상대의 의도대로 안 해주고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백 108이 또 한 번의 응수타진. <한게임바둑·한국기원 제공>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 ◎로 뻗자 공격이 쉽게 될 돌이 아니다. 흑도 약점이 많아서다. 그러나 백 ◎로는 참고 1도처럼 좌하 귀 흑을 확실히 잡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박정환 9단은 흑 93으로 우상 백부터 건드려 본다. 백의 움직임에 따라 대응책을 마련할 작정이다. 백은 94의 눈목자 행마로 가볍게 뛰어나간다. 어찌 보면 우변 백이 아니라 흑이 공격을 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박 9단은 여기서 마음을 다잡는다. 평범한 수로는 형세를 뒤집을 수 없다는 것. 흑 95, 97로 우지끈 끊어 버렸다. 백의 응수가 쉽지 않겠다 했는데 백 98이 ‘한돌’의 기량을 보여주는 수. 교묘한 응수타진이다. 참고 2도 흑 1로 받는 것이 보통인데 백 10까지 무난히 탈출해 흑이 곤란하다. 그렇다면 흑의 다음 수는? <한게임바둑·한국기원 제공>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흑 ●에 대해선 보통 젖힌다거나 해서 반사적으로 손이 나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계산으로 무장한 인공지능(AI)에겐 그런 회로가 없다. 냉정하게 백 76으로 우상 귀 3.3에 뛰어든다. 우상 귀가 지금 가장 크다는 판단이다. 백 76에 대해 참고 1도 흑 1로 막는 것이 상식적이다. 우변에 큰 모양을 만드는 것이 커 보이기 때문. 하지만 한돌만큼 계산력이 뛰어난 박정환 9단은 흑 77로 막고 87까지 귀를 차지했다. 큰 모양보다는 작아도 확실한 실리가 소중하다고 본 것이다. 백 88은 두터운 자리. 간명하게 처리하고 싶다면 참고 2도 백 1, 3으로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흑 89로 젖혀 일단락됐나 싶었는데 백 92로 백 한 점을 움직인다. 단순한 응수타진일까, 일전을 불사하는 것일까. <한게임바둑·한국기원 제공>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동아일보가 눈에 최루탄이 박힌 김주열 군 사진을 실었어요. 그걸 본 학생들은 ‘도저히 가만있을 수 없다’며 시위를 하자고 결의했습니다. 동아일보가 4·19혁명 촉발에 크게 일조한 것이니 지금도 책임의식을 느껴야 합니다.(웃음)” 1960년 4·19혁명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이던 유인학(80) 4·19혁명공로자회 회장은 그때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유 회장이 언급한 사진은 1960년 4월 14일자 동아일보에 실렸다. 김군 시신 사진은 물론, 최루탄이 어떻게 박혔는지를 보여주는 그림까지 실은 것. 유 회장의 말대로 이 한 장의 사진은 학생과 시민들의 분노를 샀고, 서울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다. “당시 우리나라 인구가 2900만 명이었는데, 450만 명이 참여했으니 대략 전 인구의 15%에 해당합니다. 그만큼 역사적인 혁명입니다.” 유 회장은 2016년 고(故)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에 이어 4·19혁명공로자회 회장으로 취임한 직후부터 “4·19혁명을 세계 4대 혁명의 하나로 격상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혀왔다. 개념이 생소한 ‘4대 혁명’이 낯설게 들릴 수 있지만 그의 차분한 설명을 들으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유 회장은 세계사 흐름을 바꾼 혁명으로 영국 명예혁명(1688), 미국 독립혁명(1776), 프랑스 혁명(1789), 러시아 소비에트 혁명(1917), 중국 사회주의 혁명(1949)을 들었다.세계 4대 혁명으로 기념해야“러시아와 중국은 혁명 후 민주주의를 이룩하지 못했으니 세계 4대 민주혁명에는 들어갈 수 없어요. 영국 명예혁명은 법에 의한 통치, 미국 독립혁명은 식민지 해방과 민주공화국 수립, 프랑스 혁명은 인간 평등과 시민정의 확립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4·19혁명은 어떤 의미가 있느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국 가운데 민주화와 산업화를 유일하게 이끌어낸 혁명이라는 점에서 세계 많은 국가의 모범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비기독교권 국가에서는 자력으로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룩한 나라가 없죠.” 유 회장은 한양대 법대 교수를 지내면서 법제사와 법철학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그래서 4·19혁명의 의미에 대한 남다른 분석을 이끌어낸 것. 4·19혁명에 그런 의미를 부여한 근거에 대해 유 회장은 자세한 설명을 이어갔다. “4·19혁명 세대는 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새로 탄생한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후진을 탈피하고 선진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책임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시위에만 그친 것은 아니었다. 이들 세대는 산업화의 역군이었다. “우리나라의 산업화는 철강, 조선, 건설, 자동차 등 제조업에서 비롯됐는데, 해당 분야 기업체에서 4·19혁명 세대가 공채 1세대입니다. 1960년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8달러였습니다. 40년 뒤 4·19혁명 세대가 정년퇴직하던 2000년에는 2만9830달러였습니다. 민주화의 주역들이 산업화의 역군이었던 것은 참으로 보기 드문 일이죠.” 그는 한국처럼 민주화는 성공했는데 산업화를 제대로 못 하고 포퓰리즘에 젖어 몰락한 국가들로 남미의 여러 나라를 꼽았다. 그는 특히 북한과 세계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할 때 4·19정신을 되살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반도는 동북아의 출입구 같은 곳입니다. 북한, 중국, 러시아에 둘러싸인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갖추고, 경제적으로 부강해야 휘둘리지 않습니다.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라고도 부를 수 없죠. 특정 가문이 이끄는 가부장적, 폐쇄적, 강압적 독재 국가입니다. 중국은 G2로서 미국과 경제력, 군사력을 다투고 있지만 민주주의 국가는 아니고요. 러시아는 민주주의도 아니고 쇠락하고 있는 국가입니다. 숙명적으로 같이 가야 할 이들에 맞서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세계 상위권의 경제력을 지켜야 하고, 그를 위해 민주화와 산업화를 가능하게 한 4·19정신을 되새기는 것이 필요합니다.”서울에 4·19 기념 조형물 만들었으면그러나 젊은 세대에게 4·19혁명에 대한 기억은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다. 벌써 10여 년 전 설문조사에서 대학생의 4분의 1이 4·19혁명 자체를 모른다고 답했다. 유 회장도 이런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특히 서울 시내에 변변한 기념 조형물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서울에는 강북구 수유동에 있는 국립4·19민주묘지가 거의 유일합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시위에 대해 기념 조형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아쉬워요. 서울은 한성백제, 조선, 그리고 대한민국이 수도로 삼은 1000년 고도인데 역사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없습니다. 4대 혁명 추진을 계기로 서울에 의미 있는 조형물을 만들어보려 합니다.” 유 회장이 지목한 4·19혁명 조형물의 위치는 광화문 동아미디어센터 바로 옆에 있는 청계광장. 현재 그곳에는 미국 팝아트 작가 클라스 올든버그 등이 만든 ‘스프링’이 있다. 2006년 청계천 복원 기념으로 세운 것. “미술적으로는 의미가 있어도 서울을 대표하는 조형물은 아닙니다. 2020년 60주년을 기념해 이곳에 청계천 바닥에서부터 41.9m 높이의 탑을 세우면 어떨까 합니다. 청계천 바닥과 지표 사이에는 전시관을 세웁니다. 지표 위의 탑은 사방에 4개의 보조 기둥과 1개의 메인 기둥을 세우고, 맨 꼭대기에는 9개의 등을 달려고 합니다. 9개의 등은 LED(발광다이오드) 조명으로 꺼지지 않게 하고요.” 그는 이곳을 세계적인 민주화 성지이자 서울을 대표하는 새로운 관광명소로 만들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관광객들이 이 기념탑 앞에서 4·19혁명을 비롯해 모든 민주화운동을 기리며 경건하게 꽃을 바치는 장소가 됐으면 합니다” 그에게 4·19정신을 바탕으로 요즘 현실에 대해 한마디 해달라고 요청했다. “제발 진영논리와 자기 이익 때문에 모든 것을 재단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진영논리에 빠져 과도하게 촛불을 켜는 것이나, 과도하게 태극기를 흔드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이 화합하는 길이 대한민국이 사는 길입니다.”4·19 서울 한복판서 대규모 기념행사4·19민주혁명회, 4·19혁명희생자유족회, 4·19혁명공로자회는 올해 4·19혁명 59주년을 기념해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에 축제마당을 마련하고 기념식과 행진을 진행한다. 이번 행사는 4월 19일 낮 12시부터 ‘4·19혁명 세계 4대 민주혁명 대행진:민주화·산업화 융합의 대축제’라는 이름으로 치러진다. 정세균 전 국회의장, 이주영·주승용 국회부의장 등 여야 국회의장단, 박원순 서울시장,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등 내빈을 비롯해 1만여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행사다. 우선 식전행사로 ‘7080 콘서트’ ‘열린 음악회’를 연다. 오후 2시엔 내년 60주년을 앞두고 4·19혁명 홍보를 위한 전국 투어 출정식을 갖는다. ‘팔도품바’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돌 예정이다. 이어 서울광장에서 광화문광장까지 대행진을 펼친다. 행진은 취타대와 군악대를 앞세워 4대 혁명 주체인 한국, 영국, 미국, 프랑스 대표단과 4·19혁명 단체, 민주화 단체, 산업화 단체, 시민사회단체, 대학교, 고교, 일반 시민 순으로 이뤄진다. 오후 4시에는 4·19기념식을 개최한다. 타악그룹 티안의 난타 공연, 수원대·율곡고의 취타대 공연, 아리랑무용단의 부채춤과 농악을 오픈행사로 선보인 뒤 개회식이 열린다. 엔딩 공연으로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가 펼쳐진다. 이어 정영숙 한식 명인이 주도해 2019명분의 비빔밥을 만들어 참가자와 시민이 함께 나눠 먹는 ‘비빔밥 대축제’, 아이돌그룹과 김수희, 구창모 등이 출연해 케이팝(K-pop)을 열창하는 ‘광화문 이끌림’, 특별 기념공연으로 박명수 등이 DJ를 보며 모든 참가자가 동참하는 ‘EDM 공연’을 잇따라 연다. 유인학 4·19혁명공로자회 회장은 “서울 광화문 등 도심 한복판에 행사장을 마련한 것은 이곳에서 유일하게 유혈 사태를 빚은 시위가 4·19이기 때문”이라며 “여야,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 어르신과 젊은이, 한국과 세계가 모두 어울려 한마음이 되는 축제가 되게 하겠다”고 말했다.유인학은…● 1939년 전남 영암 생● 광주고, 전남대 법대 졸● 전남대 법학석사, 동국대 법학박사● 미주리주립대 대학원 정치학박사● 한양대 법대 교수● 13, 14대 국회의원(영암)● 한국조폐공사 사장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사활에 밝은 사람들은 백 ◎로 먹여친 수에 대해 직감적으로 따내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 참고 1도를 보면 백 8까지 양자충으로 귀의 흑이 잡힌다. 따라서 흑 61로 패 모양을 만드는 것이 최선. 한돌은 즉각 좌하귀를 건드리지 않고, 백 62, 64로 하변 흑의 삶을 강요한다. 흑은 67의 날카로운 수를 둔 뒤 69까지 안형을 확보했다. 흑 69 대신 참고 2도 흑 1로 끼우는 묘수가 있다. 이 묘수로 흑은 우하 백 넉 점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백 8이 오면 백의 자세가 너무 두터워져 흑이 이득을 본 것인지 불확실하다. 한돌은 백 70으로 흑 한 점을 따내며 흑에게 가일수를 요구한다. 좌하귀는 흑이 먼저 보강해도 패가 나는 곳. 그래서 박정환 9단은 좌하귀를 내버려두고 흑 75로 우변 개척에 나섰다. <한게임바둑·한국기원 제공>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아무래도 흑 ●로 바로 끊어간 것이 과했다. 참고 1도와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다. 흑 1, 3으로 백이 ‘가’를 두도록 유도하는 것이 유연하고 멀리 내다보는 진행이다. 흑 ●로 국면이 급해졌는데 흑이 더 피곤한 느낌이다. 백 46은 강수. 만약 평범하게 참고 2도 백 1을 두면 흑 2부터 8까지 회돌이 치며 하변을 넘어가는 수가 있다. 흑이 만족스러운 그림이다. 백 46은 좌하 귀 흑의 생사도 엿보고 있다. 이어 백은 52까지 한껏 비상하며 자세를 잡았다. 백 58은 자체로도 크지만, 귀의 흑을 잡으러 가는 수단이 있어 선수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박정환 9단은 여기서 물러서면 뒤처진다고 보고 흑 59로 반격했다. 백 60으로 먹여쳤는데, 귀의 사활은 어떻게 되는 걸까. <한게임바둑·한국기원 제공>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흑은 우하귀에 먼저 손을 대지 않고 참고 1도 흑 1, 3으로 두는 방법도 있었다. 백 4로 받는다면 자체로 이득이다. 만약 백 4를 두지 않는다면 흑 ‘가’로 미는 수가 너무 좋다. 우하귀 정석은 요즘 많이 쓰는 정석이다. 백 22로 얼마 전까진 참고 2도 백 1로 잡는 정석이 유행했다. 흑 10까지 외길 수순(백 5=●). 너무 많이 반상에 나온 탓인지 요즘은 약간 시들해졌다. 한돌은 우하귀에서 손을 빼고 백 24, 26을 두는 진행이 더 좋다고 계산한다. 흑도 우하귀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고 좌상귀로 걸친다. 한돌은 백 28로 끊어 여기서 전단을 구한다. 흑이 하변에서 31로 한 칸 멀리 뛰자 백은 즉각 32로 갈라친다. 이 바둑 첫 번째 전투가 시작된다.<한게임바둑·한국기원 제공>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올 초 이 대국을 둘 당시에는 신진서 9단이 한국 랭킹 1위였다. 그래서 박정환 9단이 랭킹 2위로서 한돌과의 대국에 먼저 나서게 됐다. 현재는 박 9단이 2월과 3월 각각 하세배와 월드바둑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다시 랭킹 1위에 올랐다. 흑을 잡은 박정환 9단은 흑 5로 일찌감치 3·3에 침입한다. 요즘 흔한 포석이다. 백은 어디로 막아야 할까. 한돌은 백 6으로 막았는데, 요즘은 참고도 백 1로 막는 수가 더 많이 두어진다. 백 3으로 간명하게 처리하고 5로 발 빠르게 우상 귀에 걸치는 것이 포인트. 흑 9를 눈여겨볼 만하다. 이전에 한돌과 둔 프로기사들이 3·3 침입 이후 변화를 구하다가 한돌의 신수에 걸려 초반부터 형세가 나빠졌다. 박 9단은 이를 감안해 가장 쉬운 진행을 택한 것. 백 12의 3·3침입 후 백 18까지 좌하 귀와 똑같은 진행이 이뤄졌다. 여기서 흑의 다음 수가 이 판의 골격을 결정하는데 박 9단의 선택은 흑 19였다. <한게임바둑·한국기원 제공>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이번 바둑도 1국 신민준 9단, 2국 이동훈 9단 대국처럼 한돌의 완승이었다. 한돌이 마지막 수인 246으로 자기 집을 메웠다. 그래도 백이 반 집을 남긴다는 것이다. 김지석 9단은 이 바둑에서 인간적인 실수를 많이 했다. 참고도를 보자. 흑 1 때 한돌은 백 2라는 신수를 내놓았다. 귀의 실리를 차지해서 백이 좋다는 것이다. 이때 흑 25가 백 두 점의 준동을 막고 흑의 두터움을 살리는 당연한 보강처럼 보였지만 백에게 우상을 빼앗겨 실리에서 뒤지게 됐다. 흑 63이나 89, 91도 마찬가지. 인간들이 선호하는 이 수들이 전체 국면 흐름에서 반 박자씩 뒤지게 만든 주범이었다. 인공지능(AI)의 바둑은 이토록 민감하다. 한돌의 실력은 알파고의 은퇴 이후 최강으로 꼽히는 중국의 줴이에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39=19, 163 171 177=55, 168 174=62, 194=97, 202=137, 224=35, 231=160, 240=149, 241=36. 246수 끝 백 불계승. <한게임바둑·한국기원 제공>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