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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인터넷전문은행 은산분리 규제 완화에 이어 규제혁신 2탄으로 추진 중인 데이터 규제 완화가 다시 한번 여당 문턱에 걸렸다. 비공개 당정청 협의에서 가명정보(개인정보에서 이름, 주민번호 등 누구의 정보인지 식별할 수 있는 정보를 삭제한 것)를 당사자 동의 없이 활용하는 것을 어디까지 허용할지 등에 대해 일부 여당 의원이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개인정보보호법을 개정해 가명정보를 정보주체(개인)의 사전 동의 없이도 시장조사와 상품개발, 마케팅 등 ‘상업적 목적’에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규제 완화 효과가 있다는 입장이다. 개인정보보호 규제를 풀어서 데이터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것. 반면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홍익표 의원 등 일부 여당 의원은 유럽연합(EU)의 일반개인정보보호규정(GDPR) 수준에서 가명정보 활용을 제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GDPR는 △통계 작성 △연구 △공익적 기록 보존 등에 한해 가명정보를 당사자의 사전 동의 없이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정보주체가 본인의 정보를 삭제할 수 있는 ‘잊혀질 권리’도 담고 있다. 시민단체가 가명정보 활용 허용의 전제조건으로 요구 중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보위) 권한 강화에 대해서도 당정은 이견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기존에 행정안전부와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에 흩어져 있던 개인정보보호 업무 대부분을 개보위로 넘기기로 교통정리를 끝낸 상태다. 하지만 여당 내에서는 정부의 개보위 강화안이 미흡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 이재정 의원은 “금융위는 일부 업무만 개보위에 넘기려 하고 있다.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상운 sukim@donga.com·박효목 기자}

심각한 노인 빈곤율을 감안해 국민 노후생활을 관장할 연금청(가칭)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은 25일 국무조정실 국정감사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노인 빈곤율을 기록하는 상황에서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선 국민 노후생활을 통합 관리하기 위한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6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의 빈곤율은 48.6%로 OECD 평균(12.4%)의 4배에 달한다. 연금 소득대체율이 39.3%에 불과하고 사적연금 가입률도 24%에 그치는 등 다른 나라에 비해 노후대비가 취약한 탓이다. 연금자산 수익률이 낮은 것도 문제라고 김 의원은 지적했다. 2017년 기준 국민연금 평균수익률은 7.3%이며 퇴직연금도 수익률이 1.9%에 그쳤다. 현재 국민연금은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공단, 군인연금은 국방부 보건복지관실, 공무원연금은 행정안전부 산하 공무원연금공단, 사학연금은 교육부 산하 사학연금공단이 각각 관리하고 있다. 김 의원은 “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무총리실 산하에 연금청을 설치해 통합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해외에도 연금청 설치 사례가 있다. 통합관리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유럽 대륙의 강자 프랑스가 18세기 들어 영국에 압도당한 배경에는 공공재정 부패와 낭비가 한몫했다. 미국 역사학자 폴 케네디는 저서 ‘강대국의 흥망’에서 “영국에서는 정부 지출과 국가부채 증가가 산업투자에 손상을 주지 않은 반면, 프랑스는 돈을 가진 사람들이 사업 투자보다 관직을 사도록 부추겼다”고 썼다. 사들인 관직으로 공공재정을 흥청망청 낭비하고 사익을 추구하는 데 프랑스 지배층이 탐닉했다는 것이다. 결과는 프랑스의 몰락이었다. 1689∼1815년 영국과 프랑스가 벌인 7차례의 큰 전쟁에서 영국은 매번 승리했다. 영국은 효율적인 공공재정 관리를 앞세워 유럽 금융시장에서 낮은 금리로 전쟁비용을 조달해 국가부채에 허덕이던 프랑스를 눌렀다. 300년 전 프랑스 얘기를 지금 꺼내는 것은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 비리와 국가재정 낭비가 화두로 떠올라서다. 이른바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공기관이 노조와 결탁해 친인척을 무기계약직으로 채용한 뒤 정규직으로 전환한 행태는 관직을 매수해 공공재정을 유용한 18세기 프랑스의 부패상을 연상시킨다. 정년이 보장되는 공공기관 임직원들의 봉급은 대부분 혈세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권의 상황 인식은 그리 심각한 것 같지 않다. 청년실업과 맞물려 국민적 공분이 커지자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정의당과 민주평화당은 자유한국당의 국정조사 요구에 동참했다. 하지만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감사원 감사 결과를 지켜보자며 반대하다 뒤늦게 “국정조사 수용을 검토하겠다”고 물러섰다. 김태년 정책위의장은 23일 당 회의에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을 비리의 온상인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데 이는 이명박 정부 때 시작해 박근혜 정부에서도 계속 추진한 일”이라고도 했다.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발생한 비효율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민주평화당 윤영일 의원의 국감 자료에 따르면 인천공항공사는 보안, 환경미화, 교통관리 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위해 자회사 2개를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특수경비업 허가를 별도로 받아야 하는 현행법 때문에 자회사 한 개를 추가로 세워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자회사가 늘면 당연히 관리비용은 늘 수밖에 없다. 이처럼 예상 밖 비효율이 발생하자 정규직 전환 비율을 축소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민주당 박완주 의원에 따르면 농협중앙회는 4728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나, 추진 과정에서 목표 인원이 당초 계획의 40.5%(1917명)로 줄었다. 비효율적이고 부패한 공공재정 집행에 대한 야권과 언론의 쓴소리를 여권은 ‘정치 공세’로 몰아붙일 일이 아니라 귀를 기울여야 한다. 케네디는 “18세기 영국의 우위는 공공재정에 대한 의회 통제에서 비롯됐다”고 했었다. 국회가 바로 서야 공공재정도 바로 설 수 있다. 김상운 정치부 기자 sukim@donga.com}

지난달 18∼20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방북했던 특별수행원들이 한 달여 만인 23일 뒤풀이 성격의 모임을 가졌다. 이날 오후 7시부터 2시간가량 서울 광화문의 한정식집에서 진행된 모임에는 당시 방북했던 51명의 특별수행원 가운데 26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경협, 평양공동선언 비준 등과 같은 ‘무거운’ 주제들보다는 평양 소회 등이 주로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모임 후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밥 먹고 막걸리 한잔씩 하면서 삼삼오오 모여서 북한 갔던 것 회상하면서 얘기했다”고 했다. 이날 모임을 제안한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는 “오늘 모임은 친목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식사 중 30분가량 평양냉면 이야기만 했다”고 했다. 참석자들은 “단순한 친목 모임”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재계에서는 기업인들의 부담감이 적지 않았다는 관측도 나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주요 그룹 총수는 불참했다. 한 4대 그룹 관계자는 “총수가 모임에 참석할 경우 그룹 차원에서 대북사업에 나선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었다”고 총수의 불참 배경을 밝혔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모임 후 기자들에게 “경제인들이 압박을 느낀 것은 아니다”라면서 “내년 1월에 또 모임을 갖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날 재계에서는 신한용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 한무경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이재웅 쏘카 대표 등이 식당을 찾았다. 정계에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이 참석했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안영배 한국관광공사 사장, 차범근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도 참여했다. 김상운 sukim@donga.com·변종국 기자}

“한반도 위기 요인을 없애 우리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평양공동선언과 남북 군사 분야 합의서 비준의 효과를 이렇게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평양공동선언을 비준했다. 모체 격인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 동의가 여전히 불투명한 가운데 야당의 반발을 무릅쓰고 후속 합의인 평양공동선언과 군사 분야 합의서 비준을 강행하는 ‘속도전’에 나선 것. 이 때문에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지연 가능성에도 청와대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연내 방한을 추진하는 것은 물론이고 남북협력 확대를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서울선언’ 채택과 남북경협 확대 위한 포석 문 대통령의 비준으로 평양공동선언은 이르면 이번 주중 관보 게재로 공포돼 법적 효력을 갖게 된다. 남북 정상 합의 중 처음으로 법제화되는 것이다. 군사 분야 합의서는 북한과 문건 교환 이후 공포된다. 왜 문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서명한 지 한 달여 만에 평양공동선언을 전격적으로 비준했을까. 실제로 이날 결정은 정권교체 후에도 ‘불가역적인 남북 합의’를 구축하겠다는 평소 의지와는 온도 차가 있다. 남북관계발전법에 따르면 국회 동의를 얻지 않고 비준된 남북합의는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언제든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다. 여기에 야당의 반발로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 동의는 더 어려워졌다. 이 때문에 평양공동선언의 전격 비준은 남북협력 확대를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청와대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내년으로 늦춰지더라도 김 위원장의 연내 답방은 예정대로 추진한다는 방침. 특히 김 위원장 답방 기간 군사적 긴장 완화와 남북협력 확대를 통한 ‘서울선언’을 채택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선 사실상 ‘종전’에 대한 남북 간 합의를 담은 평양공동선언과 군사 분야 합의를 법제화해 근거를 튼튼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 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평양공동선언 비준에 대해 “남북관계의 발전과 군사적 긴장 완화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더 쉽게 만들어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증진하는 길”이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남북 경제협력 확대를 위한 포석이라는 관측도 많다. 유럽 순방 기간 국제사회에 대북제재 완화 요구를 공식화했지만 현재까지 부정적 반응이 많아 일단 국내 기업 참여 등 경협 확대를 위한 국내법적 토대를 마련하려 했다는 것이다.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들은 남북 경제특구 조성 등 ‘민족 경제의 균형발전’ 합의를 담은 평양공동선언의 이행 가속화를 요구하고 있다.○ 법제처 “판문점선언 전제한 것” 하지만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동의안이 아직 계류 중인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평양공동선언을 전격 비준한 데 대해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은 “국회 무시”, “오만과 독선”이라고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 내에서도 국회 동의를 받지 않은 이유에 대해 설명이 엇갈린다. 청와대와 주무 부처인 통일부는 평양공동선언 이행에 들어가는 재정 부담이 없는 데다 판문점선언과 별개의 독자적 선언이기 때문에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 통과 전 비준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법제처는 평양공동선언이 판문점선언의 이행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핵심 이유로 내걸었다. 법제처 관계자는 “판문점선언이 국회 비준 동의를 받는다는 전제하에 평양공동선언은 국회 동의가 필요 없다고 해석한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김영석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남북관계발전법은 재정적 부담과 입법사항으로 국회 비준 동의 요건을 정하고 있다. 두 선언이 반드시 같이 가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반면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군사 분야 합의서는 주권 제약의 입법 사항이 있기 때문에 국회 비준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관계발전법 제정 작업을 주도한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은 “판문점선언이나 평양공동선언은 정치적 선언”이라며 “모두 국회 비준 동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애초에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 동의를 추진한 것 자체가 법리적으로 맞지 않는 정치적 이벤트라는 것이다.문병기 weappon@donga.com·신나리·김상운 기자}

남북이 철도 도로 연결과 현대화를 위한 착공식을 11월 말∼12월 초 갖기로 합의하면서 경제협력의 기관차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없지 않다. 건설업체와 철도 차량 제작 업체 등 관련 업계는 남북경협 특수(特需)가 나타날 것이라는 희망 섞인 분석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도 많고 갈 길도 멀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남북한 철도를 잇는 기술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북한 내 철도 부설을 둘러싼 관련 당사국 간 이해도 복잡하기 때문. 더욱이 철도 도로 연결은 북한의 비핵화 및 제재 완화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점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관련 협상 진행의 추이도 중요하다.○ 남북 철도 연결? 도처에 도사린 기술적 걸림돌 북한 철도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선로 폭이 1435nm인 표준궤를 쓴다. 일본이 강점기에 표준궤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남북 철도를 연결하는 데 있어 선로를 바꿀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전력공급 시스템은 다르다. 한국이 2만5000V 교류를 쓰는 반면 북한은 3000V 직류를 사용한다. 호환 장치를 달지 않으면 남북 철도 연결은 불가능하다. 물론 디젤 기관차를 활용하면 기존 선로를 이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전철의 효율이 높은 만큼 장기적으로 전력공급시스템은 통일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북한은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발전소와 변전소를 확충해야 하는 것도 추가적인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신호 체계 통일도 필요하다. 아날로그 방식인 북한 신호 체계를 한국과 같은 디지털로 전환해야 장기적으로 고속철도를 부설할 때 혼란을 막을 수 있다. 박정준 한국철도기술연구원 미래혁신전략실장은 “전력공급시스템이나 설계 기준, 신호 체계, 각종 기술 용어 등은 차이가 많아 남북 간 협의를 통해 통일을 해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관련국들 ‘동상이몽(同床異夢)’ 남북 철도 연결이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유라시아 철도의 완성이라는 점에서 남북한은 물론 중국이나 러시아 등 주변 국가들까지 이권을 위해 뛰어들면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과 러시아는 2014년 10월 ‘북한 철도 현대화 사업(일명 포베다 프로젝트)’ 계약을 체결했다. 향후 20년간 노후화된 북한 철도 3500km(북한 전체 철도 노선의 70%)의 레일과 터널, 교량을 현대화하는 사업이다. 총사업비만 250억 달러(약 27조5000억 원)에 이른다. 러시아는 철도 현대화를 해주는 조건으로 희토류 채굴을 허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사는 러시아 건설업체인 모스토빅이 맡고 있다. 계약 체결 당시 관련 업계에서는 러시아가 유럽과 극동을 잇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의 연결을 염두에 두고 사전 정지 작업에 들어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남북 철도가 연결될 때를 대비해 북측 노선에 대한 기득권을 주장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얘기다. TSR가 남북을 잇는 철도망과 연결되면 한국은 물론 일본의 물동량까지 흡수할 수 있어 수익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으로서는 자칫 잘못하면 남북 철도 연결 비용만 부담하고 사업 주도권은 러시아에 빼앗길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남북이 경의선 고속철도를 건설하면 중국횡단철도(TCR)와 연결시키는 조건으로 중국형 고속철도 모델을 고집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차관 제공을 빌미로 북한을 움직이면 ‘재주는 한국이 넘고, 실리는 중국 왕서방이 챙기는’ 상황도 나올 수 있다. 남북 간에도 철도 현대화에 대한 ‘온도 차이’가 있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경제성이 높은 경의선 고속철도 건설에 관심이 높다. 반면 북한은 경의선뿐 아니라 북한 전역의 철도 노선 및 도로 현대화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구체적인 협상이 진행되면 디테일에서 이견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진장원 한국교통대 교통정책학과 교수는 “향후 수익 배분 구조에서 한국 측에 가중치를 두게 하는 등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남북 철도 연결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유라시아 대륙으로 이어지는 물류 동맥이 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도로는 약간 다르다. 북한 도로 현대화는 한국이 누릴 수 있는 경제적 효과가 크지 않아 사업비 확보가 쉽지 않은 데다 일부에서는 유사시 북한군이 대규모로 이동할 수 있게 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송진흡 jinhup@donga.com·김상운 기자}

남북이 철도·도로 연결과 현대화를 위한 착공식을 11월 말~12월 초 갖기로 합의하면서 경제협력의 기관차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없지 않다. 건설업체와 철도 차량 제작 업체 등 관련 업계는 남북경협 특수(特需)가 나타날 것이라는 희망 섞인 분석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도 많고 갈 길도 멀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난관은 남북한 철도를 잇는 기술적인 어려움 뿐만 아니라 북한내 철도 부설을 둘러싼 관련 당사국간 이해도 복잡하다. 더욱이 철도 도로 연결은 북한의 비핵화 및 제재 완화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점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관련 협상 진행의 추이도 중요하다. ● 남북 철도 연결? 도처에 도사린 기술적 걸림돌 북한 철도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선로 폭이 1435㎜인 표준궤를 쓴다. 일본이 강점기에 표준궤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남북 철도를 연결하는 데 있어 선로를 바꿀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전력공급 시스템은 다르다. 한국이 2만5000V 교류를 쓰는 반면 북한은 3000V 직류를 사용한다. 호환 장치를 달지 않으면 남북 철도 연결은 불가능하다. 물론 디젤 기관차를 활용하면 기존 선로를 이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전철의 효율이 높은 만큼 장기적으로 전력공급시스템은 통일시켜야한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북한은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발전소와 변전소를 확충해야 하는 것도 추가적인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신호 체계 통일도 필요하다. 아날로그 방식인 북한 신호 체계를 한국과 같은 디지털로 전환해야 장기적으로 고속철도를 부설할 때 혼란을 막을 수 있다. 박정준 한국철도기술연구원 미래혁신전략실장은 “남북 모두 일제 강점기에 채택한 표준궤를 사용하고 있어 (하드웨어) 연결에는 큰 문제점은 없다”며 “하지만 전력공급시스템이나 설계 기준, 신호 체계, 각종 기술 용어 등은 차이가 많아 남북 간 협의를 통해 통일을 해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관련국들 ‘동상이몽(同床異夢)’ 남북 철도 연결이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유라시아 철도의 완성이라는 점에서 남북한은 물론 중국이나 러시아 등 주변 국가들까지 이권을 위해 뛰어들면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과 러시아는 2014년 10월 ‘북한 철도 현대화 사업(일명 포베다 프로젝트)’ 계약을 체결했다. 향후 20년 간 노후화된 북한 철도 3500㎞(북한 전체 철도 노선의 70%)의 레일과 터널, 교량을 현대화하는 사업이다. 총 사업비만 250억 달러(약 27조5000억 원)에 이른다. 러시아는 철도 현대화를 해주는 조건으로 희토류 채굴을 허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사는 러시아 건설업체인 모스토빅이 맡고 있다. 계약 체결 당시 관련 업계에서는 러시아가 유럽과 극동을 잇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과의 연결을 염두에 두고 사전 정지 작업에 들어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남북 철도가 연결될 때를 대비해 북측 노선에 대한 기득권을 주장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얘기다. TSR이 남북을 잇는 철도망과 연결되면 한국은 물론 일본의 물동량까지 흡수할 수 있어 수익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으로서는 자칫 잘못하면 남북 철도 연결 비용만 부담하고 사업 주도권은 러시아에게 빼앗길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남북이 경의선 고속철도를 건설하면 중국횡단철도(TCR)와 연결시키는 조건으로 중국형 고속철도 모델을 고집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차관 제공을 빌미로 북한을 움직이면 ‘재주는 한국이 넘고, 실리는 중국 왕서방이 챙기는’ 상황도 나올 수 있다. 남북 간에도 철도 현대화에 대한 ‘온도 차이’가 있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경제성이 높은 경의선 고속철도 건설에 관심이 높다. 반면 북한은 경의선 뿐 아니라 전국의 철도 노선 및 도로 현대화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구체적인 협상이 진행되면 디테일에서 이견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진장원 한국교통대 교통정책학과 교수는 “러시아나 중국은 남북 철도가 연결되면 TSR이나 TCR 수익성이 좋아진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향후 수익 배분 구조에서 한국 측에 가중치를 두게 하는 등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남북 철도 연결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유라시아 대륙으로 이어지는 물류 동맥이 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도로는 약간 다르다. 북한 도로 현대화는 한국이 누릴 수 있는 경제적 효과가 크지 않아 사업비 확보가 쉽지 않은데다 일부에서는 유사시 북한군이 대규모로 이동할 수 있게 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 사업비용 조달은 어떻게? ▼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의 또 다른 쟁점은 사업비용 조달 문제다. 2012년 국토교통부가 잠정 집계한 남북 통합교통망 구축 비용은 사업 방식에 따라 22조~33조 원에 달했다. 수년이 흘러 인건비나 각종 건자재 비용 상승을 고려하면 이 보다 더 늘어난다. 일부 도로 및 철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철도를 고속철도로 건설하면 비용은 100조 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예측도 내놓고 있다. 비용이 큰 것 못지 않게 사업 비용을 어떻게 조달할 지에 대한 방안들은 뚜렷하지 않다. 북한의 경제 사정을 감안할 때 북한이 부담할 몫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결국 외부에서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이 북한에 경협 차관을 제공하는 방식도 거론된다. 다만 북한은 현재 9억3294만 달러에 이르는 기존 차관도 갚지 않고 있어 추가 차관 제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금융권이나 건설업계에서는 남북이 공동으로 해외에서 차관을 들여올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횡단철도(TCR), 시베리아횡단철도(TSR) 등 유라시아 철도망과 경의선을 연결시키는 데 관심이 많은 중국이나 러시아는 공동 개발을 조건으로 차관을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 국내외 금융권에서는 경의선 고속철도화 사업의 경우 사업성이 좋아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 금융기관이 투자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물론 이는 북한의 비핵화 협상이 원만히 진행돼 유엔 제재가 풀리는 등 ‘정치적 리스크’가 해소됐을 때를 전제로 한 시나리오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북한의 지하자원 개발권을 넘겨받는 조건으로 사업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북한이 러시아에 희토류 채굴권을 주는 조건으로 철도 현대화를 추진하는 ‘포베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한 것과 비슷한 유형이다.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심재철 의원은 (국정감사위원석이 아닌) 증인석에 서야 한다.”(더불어민주당 김경협 의원) “(심 의원을 국감위원에서 배제하려면) 본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전례가 없어 사무처에 유권 해석을 의뢰하겠다.”(정성호 국회 기획재정위원장) 16일 국회 기재위의 재정정보원 국정감사에서는 여당 소속인 상임위원장과 같은 당 의원들이 서로 고성을 주고받는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민주당 의원들이 청와대 업무추진비 사용 기록을 열람·공개한 심 의원을 국감위원에서 뺄 것을 요구하자 정 위원장이 막아선 것이다. 민주당 강병원 의원은 “국감법에 따라 이해관계가 있으면 (감사위원에서) 빠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정정보원의 상급기관인 기획재정부와 심 의원이 자료 유출 문제로 서로를 검찰에 맞고발한 상황이므로 심 의원이 국감위원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정 위원장은 “강 의원의 독단적인 해석인 것 같다. 저는 공정하게 (법을) 해석하려 한다”고 맞섰다. 여당 의원들의 끈질긴 심 의원 제척 요구에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국감위원 사퇴 요구는 정당한 의정활동을 방해하는 일”이라며 반발했다. 한국당 권성동 의원은 “고소된 것만으로 (감사위원직을) 제척하라는 것은 국회법 정신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논란 당사자인 심 의원은 “국가기밀 탈취라고 하는데 몇 급 비밀이냐. 전혀 국가기밀이 아니며 뻥 뚫려 있는 것을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양당 의원들이 서로 소리를 지르고 삿대질을 주고받는 바람에 감사는 두 차례나 중단됐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나가서 좀 싸우세요. 국감 좀 하게”라고 불평할 정도였다. 결국 이날 예정된 한국수출입은행, 한국투자공사 등에 대한 정책금융 질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이날 청와대는 심 의원이 추가로 제기한 업무추진비 남용 의혹에 대해 해명을 내놓았다. 심 의원은 전날 “지난해 12월 영흥도 낚시어선 전복 사고 당시 1차 곱창집, 2차 맥줏집에서 동일한 카드로 업무추진비를 사용했다. ‘중국 순방 준비로 관계자들이 식사를 했다’는 청와대 해명은 명백한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동일 부서의 두개 팀이 같은 카드를 쓴 것”이라고 밝혔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미국 재무부가 국내 은행들을 접촉해 대북제재 이행 상황을 점검한 일과 관련해 금융감독원이 10일 시중은행들에 ‘미국의 대북제재를 충실히 이행하라’고 통보한 사실이 확인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대북제재가 느슨해질 것을 경계하자 금융 당국이 서둘러 수습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12일 오전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감원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본보가 이날 보도한 미 재무부가 국내 은행들에 제재 준수를 요청한 일에 대해 질의를 쏟아냈다. 이에 윤석헌 금감원장은 “유엔 안보리 결의와 미국 독자제재 사항을 충분히 이행할 것을 10일 금융정보분석원(FIU)과 함께 은행들에 당부했다”고 밝혔다. 한국당 김선동 의원은 이에 대해 “10일 회의는 금융 당국이 은행 준법감시인들을 부른 일종의 대책회의였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통상 준법감시인 회의는 열리면 공개하는데 이때는 안 했다. 내부적으로 민감한 문제가 얘기됐고 국민들에게 알려지는 게 부담스러웠던 것”이라며 “대북 유화정책에 대한 한미 이견을 감추려고 한다. 금강산 지점 재개소 등을 논의하지 않았냐”고 추궁했다. 윤 원장은 “보고받은 바가 없다”고 답했다. 미 재무부가 콘퍼런스콜(전화 회의)을 국내 은행들에 요청한 배경과 금융 당국의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윤 원장은 “유엔과 미국의 대북제재가 유효하다는 걸 그쪽(미 재무부)에서 강조했고 (은행들은) 경협 관련 모니터링 조치로 이해했다고 한다”고 답했다. 이어 “국내 은행들은 ‘유엔 제재 등을 이미 숙지해서 이행하고 있고 앞으로도 준수하겠다’고 답변했다. 미국 측의 오해가 풀렸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야당 의원들은 “윤 원장이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한때 정회를 요구하는 등 반발했다. 한국당 성일종 의원은 “대북제재 위반으로 미국 정부가 국내 금융기관에 금융제재를 가하면 과거 방코델타아시아(BDA)처럼 은행 폐쇄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어마어마한 사태가 일어나면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이 벌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2005년 9월 마카오 BDA를 북한의 돈세탁 창구로 지목하자 BDA에서는 뱅크런이 일어났다. 마카오 정부는 BDA 계좌를 전부 동결했고 이 일로 북한은 2700만 달러가량의 통치자금이 묶여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피가 얼어붙는 느낌”이라고 했을 정도로 큰 압박을 받았다. 한국당 측의 정회 요청이 이어지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민병두 정무위원장은 “국민들의 우려가 있을 수 있으니 미 재무부가 (대북제재 위반) 예방 차원에서 연락한 것인지 아니면 경고 차원에서 한 건지 금감원장이 파악할 필요가 있다”며 중재에 나섰다. 이날 오후 회의에서 윤 원장은 “미국에서 보안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금감원이 배경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답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1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5·24 대북제재 조치 해제를 구체적으로 검토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전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5·24조치 해제 검토’ 발언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직접 제동을 걸면서 논란이 확산되자 주무 부처 장관이 진화에 나선 것이다. 여야는 이날 국감에서 강 장관 발언을 언급하며 5·24조치 해제에 대한 정부 입장을 수차례 물었다. 이에 조 장관은 “구체적으로 검토한 적이 없다”며 “다만 남북 교류협력 사업을 하면서 남북관계를 개선 발전시키는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부도 유연한 조치를 취했다”고 했다. 야당은 강 장관의 발언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그들은 우리 승인 없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사실을 거론하며 한미 공조 균열을 지적했다. 자유한국당 김무성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 발언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경고”라고 주장했다. 5·24조치 해제를 위한 선결 조건을 묻자 조 장관은 “제재 조치의 원인이 된 천안함 폭침 사건 관련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북한에 천안함 폭침 책임을 추궁할 필요가 있지 않냐는 민주평화당 천정배 의원의 질의엔 “앞으로 남북 간에 정리될 필요가 있는 부분”이라고 했다. 야당 의원들은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에 조 장관은 “결코 실현될 수 없고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조 장관은 이어 “경제협력이 본격화될 시기를 대비해 경제 시찰을 북측과 협의하고 있다”면서 “개성공단 현장 점검은 (공단) 재개와 별개로 북측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김상운 sukim@donga.com·홍정수 기자}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공기관 32곳의 출장비 횡령건수가 최근 10년간 약 8000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전력 자회사의 한 직원은 허위 출장보고를 올려 359차례에 걸쳐 1500만 원을 타낸 것으로 드러났다. 공공기관의 허술한 내부관리가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훈 의원에 따르면 산업부 산하 공공기관 32곳에서 2008년 이후 10년간 총 7980건의 허위 출장이 적발됐다. 이에 따라 부당하게 지급된 출장비는 6억9560만 원이었다. 출장비 횡령이 가장 잦았던 기관은 한국전력공사로 적발 건수가 3064건이었다. 이어 한국수력원자력(1744건) 한전KDN(828건) 전기안전공사(614건)가 뒤를 이었다. 전력 공기업들에서 출장비 부정수급이 가장 심각했던 셈이다. 강원랜드는 횡령 건수가 6건으로 적었지만 횡령금액은 1억860만 원으로 4위를 기록해 건당 횡령액이 가장 컸다. 한전KDN 지방지사의 한 차장급 간부는 2014년 12월부터 2015년 10월까지 359차례에 걸쳐 약 1500만 원의 출장비를 빼돌렸다가 뒤늦게 적발됐다. 한국전력 지방지사의 한 부장은 218차례에 걸쳐 허위로 근거리 출장을 신청해 1300만 원가량의 출장비를 부당하게 타간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매출액이 약 60조 원에 달하는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은 2012년 이후 2016년 한 해를 제외하고는 매년 300∼400건가량의 출장비 횡령이 지속적으로 일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올해는 9월 중순까지 1088건의 횡령이 일어나 적발건수가 지난해(374건)의 약 3배 수준으로 급증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올해 들어 대북정책 주무부처인 통일부에 대한 사이버 공격 시도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탈북자 정보나 남북회담 전략 등을 노리는 ‘시스템 정보 수집’ 시도 건수가 지난해보다 12배나 늘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병석 의원이 통일부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통일부 전산망에 대한 사이버 공격 시도 탐지 건수는 올해 1∼8월 435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47건)에 비해 76% 증가했다. 이 중 내부 전산망에 있는 문건을 확보하기 위해 보안 취약점을 알아보는 ‘시스템 정보 수집’ 시도 건수가 올 1∼8월 14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배 급증했다. 또 통일부 직원들의 개인정보 탈취를 목적으로 이들을 피싱사이트로 유도하는 공격 수법인 ‘유해 IP 접속’ 시도는 134건으로 지난해보다 4배 늘었다. 통일부는 현재까지 외부로 유출된 자료는 없다고 밝혔다. 사이버 공격을 시도한 인터넷주소(IP주소)를 국가별로 보면 한국(160건) 중국(99건) 미국(39건) 홍콩(50건) 러시아(12건) 순으로 나타났다. 미국 지역 IP주소는 지난해 56건에서 올해 39건으로 줄어든 반면, 중국과 홍콩을 합친 IP주소는 같은 기간 79건에서 149건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다만 IP주소를 우회해 사이버 공격을 시도했을 수 있어 실제 ‘공격 진원지’와는 차이가 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대남 정보에 관심이 높은 북한이 중국 등의 IP주소를 경유해 우회 공격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통일부 관계자는 “올 들어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수차례의 고위급 회담을 거치면서 북측이 남측의 회담 전략을 파악하기 위해 사이버 공격을 적극적으로 시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앞서 미국 사이버 보안업체 파이어아이는 “북한이 한국 공공기관과 군사시설, 민간기업을 대상으로 사이버 공격을 가하고 있는데 특히 지난해부터는 일본 베트남 중동 등에도 해커를 심는 ‘글로벌 공격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통일부를 상대로 한 사이버 공격은 2015년 172건, 2016년 260건, 2017년 336건으로 증가세였고, 올해 8월까지 이미 435건으로 급증한 상태라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의원은 “통일부 전산망에는 남북회담 전략과 탈북민 개인정보 등 민감한 정보가 다수 보관돼 있는 만큼 사이버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보안시스템 구축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Quo usque tandem abutere, Catilina, patientia nostra?(카틸리나여, 그대는 얼마나 더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할 텐가?) 기원전 63년 11월 7일 로마 정치가이자 시인인 키케로가 원로원에서 동료 정치인 카틸리나를 탄핵하며 남긴 연설문은 서구 고전문학 교과서에 수록돼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나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도 ‘Quo usque tandem’을 자기 연설에 곧잘 인용했다. 그만큼 ‘카틸리나 음모 사건’이 시대를 초월한 메시지와 고민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국가안보를 위해 시민의 기본권을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느냐다. 키케로는 카틸리나가 집정관인 자신을 암살하고 로마공화정을 전복시킬 계획을 세웠다면서 ‘비상대권’ 발령을 요청했다. 원로원 승인을 받은 키케로는 반란 가담자로 지목된 인사들을 재판도 없이 처형했다. 카틸리나도 토벌군과의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카틸리나의 패배 직후 키케로는 국가를 구했다는 의미에서 ‘파테르 파트리아이(국부)’라는 존칭을 받았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로마시민은 누구나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반발에 부닥쳐 기원전 58년 키케로는 로마에서 추방됐다. 어찌 보면 국가안보를 지키려는 불가피한 기본권 침해로 보이지만 역사는 단순하지 않다. 로마사 대가인 메리 비어드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저서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에서 역(逆)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미천한 가문 출신으로 지지 기반이 약했던 키케로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집정관 선거에서 경쟁자였던 카틸리나의 음모를 국가안보 위기로 실제보다 과장했다는 것이다. 최근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제기한 청와대 업무추진비 부정사용 의혹 논란에서도 국가안보 위협 주장이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심 의원이 내려받은 자료들 가운데 대통령 경호처의 통신장비 구입 명세가 포함돼 있다며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반국가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 의원과 보좌진을 검찰에 고발한 기획재정부는 남북 정상회담 식자재 업체정보를 예로 들면서 “국가 안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료”라고 주장했다. 온갖 국가 중대사를 총괄하는 청와대 특성상 관련 정보가 적에 들어가면 국가안보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여권 주장도 일리는 있다. 또 청와대 반박에서 일부 드러났듯 영수증에 찍힌 ‘이자카야’ ‘펍’ 등이 일반음식점인데 주점으로 오인된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통신장비나 식자재 구입 명세가 제3자에게 유출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현재까지 공개된 업무추진비 자료만으로 검찰이 야당 의원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여당 일각에서 “구속 수사”를 운운하는 것은 과도해 보인다. 청와대 업무추진비 자료는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일정 부분 공개될 필요가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키케로가 추방형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왔을 때 그의 자택은 이미 헐렸고 그 자리에 리베르타스(Libertas) 여신을 위한 신전이 들어서 있었다. 리베르타스는 자유, 곧 시민의 권리를 상징한다. 고용쇼크와 비핵화 등 산적한 국정현안을 논의해야 할 정치권이 소모적 논란에서 벗어나 국가안보와 시민의 권리 사이에서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기 바란다. 김상운 정치부 기자 sukim@donga.com}
9월 고용동향 취업자 증가 폭이 마이너스로 주저앉을 수 있다고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언급했다. 또 최저임금 인상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지역별 차등 적용을 검토 중이라는 사실도 밝혔다. 김 부총리는 2일 경제부문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9월 고용동향을 묻는 자유한국당 김광림 의원의 질문에 “8월보다 녹록지 않다. 9월 고용동향에서 취업자 수가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답했다. 8월 고용동향에서 취업자 수가 3000명 증가에 그쳐 ‘고용쇼크’를 낳은 데 이어 9월엔 취업자 수가 아예 줄어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 부총리는 정부가 올해 취업자 수 증가 목표를 32만 명으로 잡은 것과 관련해 “금년 상반기에 일자리가 14만 개 늘었다. (32만 명은) 의욕적으로 잡은 목표인데 달성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용실적에 대해 경제 운용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국민에게 면목 없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고용쇼크를 낳은 정책 요인을 묻는 바른미래당 김성식 의원의 질문에 김 부총리는 “8월 고용실적에서 가장 가슴 아픈 통계 중 하나가 서비스직에서 일자리가 줄어든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민감 업종에 미치는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최저임금 인상이나 근로시간 단축 정책을 현실에 맞게 수정하는 방안도 거론됐다. 김 부총리는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인상하는 속도 조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근로시간 단축도 탄력근무제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좀 더 길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특히 재계가 요구하는 최저임금 업종별, 지역별 차등 적용에 대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업종별 차등화를 논의했는데 부결됐다. 지역별 차별화는 내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단일한 최저임금제를 부분적으로나마 수정할지 전문가 검토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현재까지 다수가 납득할 만한 대안을 찾지 못해 단일임금제로 간 것”이라며 당장의 정책 변화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 이 총리는 “탄력 근로시간제 확대나 업종별 특수성을 감안한 약간의 예외 인정은 연내에 해결되기를 바란다”며 정책 수정 가능성을 시사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정책 사이에 균형이 필요함을 언급하며 이례적으로 “과거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에서 계승할 점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뒷받침하려면 규제 완화 등 혁신성장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홍 원내대표는 2일 서울 중구 장충동 반얀트리호텔에서 열린 한국경제 밀레니엄포럼 강연에서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가운데) 어디에 전략적으로 집중할 것인지, 정책 선후 문제가 중요하다. 신중하게 정책을 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노대래 전 공정거래위원장이 양극화 해소와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정책 사이의 균형을 지적하자 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규제혁신 대표 법안으로 꼽히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뜻도 분명히 했다. 홍 원내대표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원격진료가 논쟁이 됐고 보건 의료계의 반대로 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어느 정도 합의가 이뤄져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은산분리 규제 완화법(인터넷전문은행특별법)에 대해선 “이 법 하나를 갖고 금융산업이 발전하고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충격이라도 줘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에서 통과시켰다”고 말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청와대 업무추진비(업추비) 사용 기록을 입수해 공개한 것을 두고 야당과 정부 여당 간 갈등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2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그 정점을 찍을 태세다. 업추비 공개 논란이 한쪽이 손을 들어야 끝나는 ‘치킨게임’ 양상으로 번지면서 지금이라도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정치력이 아쉽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심 의원은 2일 대정부질문에서 한국당의 마지막 주자로 나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앞에서 문제의 정부 예산 시스템에 접속해 예산·결산 자료를 다운로드하는 방법을 시연하겠다고 공언했다. 기재부 산하 한국재정정보원의 재정분석시스템(OLAP)에서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면 청와대 업추비 사용 기록 등 관련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페이지로 접속할 수 있다는 게 심 의원의 주장인데, 이를 재연하면서 정부 여당의 불법 열람 주장을 반박하겠다는 것. 심 의원은 청와대 업추비 사용 기록 가운데 새로운 내용을 추가 폭로할 예정이다. 한국당 지도부도 검찰의 심 의원 수사를 ‘야당 탄압’으로 규정하고 대대적 지원사격에 나섰다. 김병준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은 1일 “도대체 (청와대가 해명한) 직무의 기준이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청와대 반박이 귀에 거슬리는 게 많다”고 비판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횃불을 들고 몰려다니는, 완장 찬 모순적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심 의원과 보좌진을 검찰에 고발한 기재부는 “심 의원이 남북 정상회담 식자재 업체 정보 등 국가 안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심 의원 측이 열람 및 다운로드한 자료에 해외 대사관 경비업체 운영비, 해경 함정 및 항공기 자산 취득비, 대통령비서실 식자재 공급 업체 비용 등이 포함됐다는 것. 윤태식 기재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유출된 자료에는 업추비 외에도 통일외교, 치안, 보안장비, 개인정보 등과 관련한 항목이 있다”며 “(이런 정보가) 누출되면 테러나 고위직 위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또 심 의원이 부정 사용 의혹을 제기한 청와대 업추비 명세에 대해서는 감사원에 투명성 검증을 위한 감사를 청구했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문이 열렸다고 아무 물건이나 들고 나와도 되나. 법을 위반해 얻은 자료로 정치행위를 하는 건 옳지 않다”며 “그런 행위는 의원으로서 신분 보장을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심 의원의 폭로는)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반국가 행위”라고 비판했고 박범계 의원은 이날 라디오방송에서 “재정정보원의 전산망을 뚫기 위해 보좌진이 특별한 교육을 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업추비 논란은 안 그래도 갈 길 먼 국회의 발목을 잡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고 국정감사 계획서 채택을 논의하려 했으나 여당이 심 의원의 기재위원 사퇴를 거듭 주장하면서 여야가 격돌해 결국 파행됐다. 민주당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심 의원과 보좌진 3명을 증인으로 세워 정보 유출의 위법성을 따지겠다고 벼르고 있다. 최고야 best@donga.com·김상운 / 세종=송충현 기자}
더불어민주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소속 국회의원과 시민단체 관계자 등 150명 규모의 방북단이 10·4선언 11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러 평양을 방문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달 평양 방문 때처럼 이번에도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불참하기로 했다. 10·4선언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채택됐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1일 기자간담회에서 통일부와 노무현재단 주관의 민관 공동 행사인 10·4선언 기념식 참석을 위해 4∼6일 항공편으로 방북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방북 요청에 대해) 한국당은 깊이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바른미래당과 평화당은 가기로 하고 명단을 곧 제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대표의 말과 달리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불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특히 바른미래당은 “민주당에 방북 불참 의사를 확실히 밝혔다. 이 대표가 왜 그런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바른미래당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방북 여부를 두고 토론했지만 “노무현재단 주관 행사에 국회가 나설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여당은 방북단을 당초 200∼250명 규모로 계획했지만, 북측이 2차 남북 정상회담 직후여서 행사 준비에 여력이 없다고 알려와 참가 인원을 줄였다. 방북단에는 방송인 김미화, 가수 안치환 등 문화예술계 인사와 학계 인사들도 포함된다.김상운 sukim@donga.com·최고야 기자}

“문재인 정부의 지난 1년여를 감시하고 견제할 국정감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고 해서 여당이 잃을 건 없다.” 28일 더불어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제기한 청와대 업무추진비 논란으로 10월 정기국회가 파행할 가능성에 대해 묻자 이렇게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예산안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원안 그대로 상정될 수밖에 없다. 정부 여당은 오히려 환영할 일 아니냐”고 되물었다.○ 국회 파행에 뒷전으로 밀리는 민생 현안 다음 달 10일 시작하는 국회 국정감사는 지난해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 대해 국회가 본격적인 첫 검증을 하는 무대다. 야당은 특히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인상을 ‘세금 폭탄’이라고 비난하며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강하게 문제 삼을 것임을 예고해 왔다. 하지만 종부세를 주관하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심 의원을 둘러싼 여야 공방으로 한동안 열리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기재위 소속 여당 의원들은 심 의원이 기재위원을 사퇴하지 않으면 기재위의 모든 의사일정을 거부하겠다는 자세다. 반면 야당은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기재위에 출석시켜 긴급 현안질의를 하자고 요구했다. 기재위 한국당 간사인 추경호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부동산 세제 개편안과 예산 논의에 앞서 현안질의가 먼저다”라고 강조했다. 다른 상임위로도 불똥이 튈 조짐이다. 여당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국정감사에 심 의원을 증인으로 세워 심 의원의 자료 열람 및 입수가 정보통신망법을 위반했는지 따질 방침이다. 이 문제로 과방위가 파행하면 통신요금 인하나 탈원전 같은 현안 논의는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 이 밖에 국민연금 개혁 등 민생 현안도 표류할 소지가 있다. 정치권은 여야의 정쟁이 확전 양상으로 치닫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당은 다음 주 대정부 질문과 국정감사에서 청와대 업무추진비 의혹을 쟁점화하기로 내부 방침을 세웠다. 이를 위해 2일 경제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는 당초 질문자가 아니었던 심 의원을 투입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고질적 국감 파행 개선해야” 전문가들은 여야가 이번 사태로 전체 국정감사 일정을 파행시키는 악습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조진만 덕성여대 교수(정치학)는 “국민들은 부동산 문제나 고용 악화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을 원한다. 청와대 업무추진비 명세 논란으로 정기국회를 파행시키는 것은 정치권 전체에 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교수(정치학)는 “공천권에 매인 의원들이 당의 정파적 입장에 동조하면서 갈등을 증폭시키는 경향이 있다”며 공천 제도를 포함한 당의 의사결정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심 의원은 이날 청와대 업무추진비 내용을 추가 공개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청와대 관계자들이 내부 회의를 한 뒤 회의 수당으로 1인당 30만∼315만 원씩, 총 2억5000만 원가량을 받아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며 반박했다. 윤영찬 대통령국민소통수석은 “인수위원회도 없이 출범한 청와대로서는 당장 업무를 수행할 방법이 없어 해당 분야 민간인 전문가로 정책자문단을 구성해 자문 횟수에 따라 정식으로 자문료를 줬다”고 밝혔다. 청와대 정식 직원으로 임용되기까지 한 달이 넘게 걸리는 만큼 민간인 신분에 준해 수당을 지급한 것이며, 올 5월 감사원 감사에서도 ‘적합’ 판단을 받았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박효목 tree624@donga.com·홍정수·김상운 기자}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의 청와대 업무추진비 사용 기록 공개 논란이 여야 전면전으로 비화하면서 당장 처리해야 할 현안이 산적한 정기국회가 자칫 공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부동산대책과 고용문제, 국민연금 개혁, 북한 비핵화 논의 등이 소모적 정쟁의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심 의원은 28일 자료를 추가 공개하며 “지난해 6월부터 올 2월까지 청와대 비서관 등 13명이 1인당 30만∼315만 원씩 회의 수당을 부당하게 지급받았다”며 공세를 이어갔다. 청와대는 “인수위원회 없이 대선 다음 날 곧바로 정부가 출범해 초기에 한해 (청와대 직원) 정식 임용에 앞서 정책자문위원 자격으로 월급 대신 최소한의 수당을 준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여야가 정면충돌하면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종합부동산세(종부세)법과 소득세법 개정안 논의는 시작도 못한 채 중단됐다. 이날 여당 기재위 위원들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심 의원의 기재위원 사임을 요구했다. 기획재정부와 심 의원이 서로를 검찰에 고발한 상황에서 심 의원이 기재부를 감사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더불어민주당은 심 의원이 사임하지 않으면 국정감사를 비롯한 기재위 일정을 보이콧하기로 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민주당은 심 의원과 심 의원 보좌진의 국감 증인 신청을 추진할 방침이다. 한국당도 이에 맞서 다음 달 2일 국회 경제 분야 대정부 질의에 심 의원을 질의자로 내세워 맞불 작전을 펴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이에 따라 정부 정책의 잘잘못을 따져야 할 대정부 질의도 ‘심재철 논란’에 매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김상운 sukim@donga.com·최우열 기자}

여야는 10월 정기국회에서도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인상과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동의를 놓고 격돌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안보 분야에서 핵심 이슈인 데다 각 당의 정치철학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지점인 만큼 여야가 한동안 대치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의 9·13부동산대책을 뒷받침하는 종부세법 개정안을 다음 달 초순 의원입법으로 내놓는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정우 의원이 대표발의에 나설 예정이다. 정부 발표대로 조정대상지역 2주택 이상 보유자에 대해 종부세율을 최고 3.2% 중과하는 방안 등이 포함된다. 이와 함께 주택 전매에 따른 가격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에서 실거주 요건을 강화한 소득세법 개정안도 김 의원이 발의한다. 여당은 종부세 과세 대상이 전체 주택 보유자의 1.7%에 불과한 만큼 여론의 지지를 자신하고 있다. 김 의원은 2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추석 민심을 현장에서 확인해 보니 종부세 인상이 세금 폭탄이라는 야당 주장이 전혀 먹히고 있지 않았다. 야당도 무작정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양질의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게 우선”이라며 정부 여당의 종부세 인상에 반대하고 있다. 이보다는 서울 도심 내 재건축·재개발 지역의 과도한 층고 제한과 용적률 규제를 정상화해야 주택 공급이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 기재위 한국당 간사인 추경호 의원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과거에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이미 드러난 종부세를 특정 지역과 계층에 한정해 높이는 접근 방식으로는 시장을 안정시키기 어렵다”며 “보유세를 일부 강화해야 한다면 매물이 나올 수 있도록 거래 부담을 함께 낮추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바른미래당도 정부 여당의 종부세 개정안에 비판적이다. 채이배 의원은 1가구 1주택자에 대한 종부세 면제 등을 규정한 종부세 개정안을 앞서 발의했다.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와 거래세 인하를 통해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도 제출했다. 종부세 인상을 놓고 이처럼 여야 이견이 팽팽히 맞서면서 여당 일각에서는 종부세법과 소득세법 개정안 등을 ‘예산 부수법안’으로 지정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르면 예산 부수법안은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 하루 전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다. 국회 기재위를 우회해 본회의에서 처리를 시도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야당의 극심한 반발을 낳을 수 있는 만큼 여당 내에서도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김정우 의원은 “예산 부수법안 지정은 야당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에 섣불리 언급할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다음 달 1일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을 계기로 여야의 판문점선언 비준동의 논란도 ‘10월 국회’의 변수로 꼽힌다. 여권은 2차 북-미 정상회담까지 이어질 평화 무드를 바탕으로 판문점선언 비준동의를 야당에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판문점선언은 국회 비준동의 대상이 아니라는 한국당 입장에 막혀 1차 관문인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통과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비준동의에 부정적이던 바른미래당이 여론 흐름을 주시하며 입장 변화를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는 26일 기자간담회에서 “일련의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에 대해 국민들이 상당한 환호를 보내는 게 사실이다. 비핵화 진전이 가시화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 남북군사합의서를 포괄적으로 비준 동의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김상운 sukim@donga.com·홍정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