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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국가에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나 여성 총리는 대부분 권력자였던 아버지의 후광으로 대통령이나 총리가 됐다. 인도의 인디라 간디 전 총리, 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 인도네시아의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전 대통령, 미얀마의 실권자 아웅산 수지, 방글라데시의 셰이크 하시나 총리가 그렇다. 반면 서양에서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인 마거릿 대처나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은 이런 식의 배경이 없다. 2012년 대선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 당선된 것은 여성의 유리천장 깨기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한국이 상당히 민주화가 됐다고는 하나 여전히 민주주의의 수입국인 아시아 국가들의 낙후된 정서를 알게 모르게 공유했음을 의미한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기업에서 돈을 거두고 기업에 민원을 하는 것쯤은 영애 시절부터 청와대에서 보던, 별거 아닌 것이었는지 모른다. 어쩔 수 없는 권력자의 딸이었다. 박 대통령의 탄핵 과정에서 ‘대통령의 2선 후퇴’와 ‘즉각 하야’를 놓고 빚어진 혼란 역시 아시아적 정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위법 혐의를 받는 대통령에 대해서는 미국만이 아니라 브라질처럼 선진국이라고 말할 수 없는 나라까지도 탄핵으로 퇴출시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우리만 처음에는 야당이, 나중에는 여당이 나서 ‘대통령 2선 후퇴’라는, 헌법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길을 모색하다 결국 항거할 수 없는 헌법의 힘에 의해 탄핵의 길로 이끌려 갔다. 몇몇 원로들은 박 대통령이 마지막 애국심을 발휘해 즉각 하야해야 한다는 자못 도덕적인 호소를 했지만 대통령의 즉각 하야는 한다고 해도 말려야 할 일이다. 미국과 브라질 같은 나라는 대통령 궐위(闕位) 시 부통령이 대통령의 남은 임기를 채운다. 이런 나라에서는 대통령이 즉각 하야한다고 해서 정치 일정에 아무런 혼선이 없다. 그러나 부통령이 없는 우리 정치 체제에서 대통령이 탄핵심판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 의도야 무엇이든 그나마 혼선을 줄이는 길이다. 대통령 탄핵이란 위법에 오염(汚染)된 대통령을 집어내 제거하는 것이지 정권에 대한 심판이 아니다. 부통령이 대통령의 남은 임기를 채우건 권한대행이 임시로 대신하건 정권 심판은 선거 때까지 연기된다. 박 대통령을 끌어내렸으니 황교안 국무총리도 끌어내리자는 소리나, 국무회의장에 들어가 “왜 당신들은 누구 하나 사퇴하지 않느냐”고 따진 박원순 서울시장의 행동은 탄핵에 대한 이해 부족을 드러내는 아시아적인 현상이다. 황 대통령 권한대행은 총리가 아니라 대통령처럼, 장관들은 더 장관답게 행동하는 것이 대통령 없는 국가를 지키는 방법이다. 최순실의 비선 활동은 청와대 참모들도 다 알고 친박계 의원들도 다 알았으니 동반 책임을 지라는 것도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비서실장에게조차 최순실에 대해 솔직한 얘기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원종 전 비서실장이 “최순실이 청와대를 들락날락한다는 것은 중세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국회에서 답변했을 때 박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하며 그 얘기를 듣고 있었을까. 김기춘 전 비서실장도 기껏해야 희미하게밖에는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무섭다면 그런 게 무서운 진실이다. 국회의 탄핵소추안은 탄핵으로 책임을 물어야 할 것과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을 죄다 쓸어 담아 놓았다. 닉슨 때 미국 하원 법사위는 수개월간의 검토 끝에 닉슨의 3개 혐의(사법방해, 권력남용, 의회모독)를 추려낸 뒤 각각의 혐의를 놓고 하루 하나씩 표결에 부쳐 사흘에 걸쳐 본회의에 상정할 혐의를 결정했다. 우리 국회는 무려 5개의 위헌 혐의, 8개의 위법 혐의를 법사위 검토 한 번 거치지 않고 확정했다. 혐의는 쌓으면 쌓을수록 좋다는 식의 사고가 얼마나 어리석은지는 헌법재판소의 검토 기간만 불필요하게 늘렸다는 데서 드러난다. 국회의 탄핵소추안을 쥐어짜면 박 대통령이 최순실의 이익을 위해 기업을 압박했느냐가 핵심으로 남는다. 이것만이라도 혐의가 입증된다면 대통령은 탄핵되고도 남는다. 추상적인 혐의를 아무리 모은다고 해서 무슨 혐의가 되지 않는다. 헌재는 정밀 타격하듯 콤팩트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탄핵다운 탄핵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발성 박수 거수 기립 표결은 일반적인 투표와 달리 비밀이 보장되진 않지만 간단히 찬반을 따져볼 수 있어 많이 이용된다. 발성이나 박수 표결은 찬성 측과 반대 측 중에서 소리가 큰 쪽이 이기는 표결이다. 하지만 압도적 차이가 나지 않을 경우 어느 쪽이 우세한지 구별하기 힘들다. 거수나 기립 표결은 일일이 찬반을 셀 수 있어 발성이나 박수 표결보다 훨씬 정확하다. 그리고 거수보다는 기립이 더 의식성(儀式性)이 강해 국회만 해도 예전엔 기립 표결이 원칙이었다. ▷일상에서는 거수 표결이 가장 많이 이용된다. 회사에서는 상사가 부하 직원들에게 찬반 의사를 종종 거수로 묻는다. 그러나 부하 직원이 상사들을 앞에 놓고 거수해 보라고는 하지 않는다. 상하관계를 떠나 연소자와 연장자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손을 드는 행위(거수)나 일어서는 행위(기립)가 별것 아니긴 하지만 그것도 능동적인 움직임이기 때문에 연소자가 연장자에게 주문할 때는 무례하다고 느껴지는 면이 있다. ▷그제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장에서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기업 총수 9명을 쭉 앉혀놓고 전국경제인연합회 해체에 반대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고 주문했다. 총수들은 처음에는 어색해서 쭈뼛쭈뼛 눈치를 보더니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먼저 손을 들자 몇몇이 따라 들었다. 어제 신문을 보니 동아일보를 비롯해 조선, 중앙, 한겨레신문이 대기업 총수들이 안 의원의 ‘강요’에 따라 거수하는 사진을 1면에 실었다. 그제 국정조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던 모양이다. ▷안 의원은 50세다.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은 78세, 손경식 CJ 회장은 77세, 구본무 LG 회장은 71세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 3명은 60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빼고는 모두 연장자다. 군대 신병교육대에서 새파랗게 나이 어린 조교가 나이 든 신참병들의 군기를 잡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전경련 해체 여부가 정말 궁금하면 한 사람씩 따로 물어보는 수고 정도는 하는 게 기본적인 예의다. 28년 전 일해재단 청문회에서도 이런 무례한 장면은 없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를 지낸 배리 골드워터 상원의원 등이 1974년 8월 7일 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방문해 “의회에서 당신에 대한 지지는 사라졌다”고 말했다. 하원 본회의의 탄핵소추 의결을 앞둔 상황이었다. 닉슨은 이틀 뒤인 8월 9일 사임을 발표했다. 새누리당 친박계 중진 의원들이 그제 박근혜 대통령에게 요구한 사임이 일견 미국 공화당 중진 의원들이 닉슨에게 요구한 사임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큰 차이가 있다. 미국 공화당 중진 의원들이 닉슨에게 요구한 것은 즉각적인 사임이고, 새누리당 중진 의원들이 박 대통령에게 요구한 것은 이른바 ‘질서 있는 퇴진’이다. 박 대통령은 어제 자신의 진퇴와 임기를 국회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질서 있는 퇴진’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말로만 질서이지 실제로는 혼란이 시작됐다. 여야는 우선 대통령의 사임 시점을 합의해야 한다. 가능한 한 사임을 앞당기고 싶은 쪽이 있고 가능한 한 늦추고 싶은 쪽이 있다. 차기 대선에서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사임을 가능한 한 앞당기고 싶을 것이고 적절한 대선 후보가 없는 새누리당이나 유력한 대선 후보의 지지도가 낮은 국민의당은 가능한 한 사임을 늦추고 싶을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등 현직 지방자치단체장이 대선에 출마하려면 선거법을 바꾸지 않는 한 최소한 3개월이 보장돼야 한다. 3개월이란 시간은 사실상 대통령을 탄핵 절차에 따라 퇴출시키는 데 필요한 시간과 엇비슷하다. 여야는 국회 추천 총리에 대해서도 합의해야 한다. 지금 결정되는 총리는 차기 대선 과정에서 사실상의 국가수반 역할을 맡는다. 당마다 자기한테 유리한 후보를 추천하고자 할 것이기 때문에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박 대통령의 어제 발표를 탄핵을 모면하려는 꼼수로 규정하고 탄핵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발표로 새누리당의 비박계 일부가 탄핵소추에 찬성하지 않을 가능성이 생겼다. 비박계가 전원 가담하지 않으면 야당만으로는 탄핵소추 의결에 필요한 3분의 2를 채우지 못할 수 있다. 그동안 야권으로서는 탄핵소추가 의결되면 박 대통령의 권한을 즉각 정지시킬 수 있어서 좋고, 부결되면 국민의 분노를 부를 것이기 때문에 좋은 꽃놀이패였다. 반대로 여권으로서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결정으로, 탄핵소추가 부결된다고 해서 박 대통령이나 새누리당이 받게 될 후폭풍도 크게 염려할 필요가 없어졌다. 탄핵소추가 부결되면 야권은 어쩔 수 없이 박 대통령이 제안한 ‘질서 있는 퇴진’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고 상황은 여야가 대통령의 사임 시점과 국회 추천 총리를 놓고 고심해야 하는 알고리즘의 첫 단계로 돌아온다. 탄핵소추가 통과돼도 박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될 뿐 상황이 크게 바뀔 것 같지 않다. 어제 특검 후보가 결정됐다. 앞으로 있을 특검 수사나 국정조사도 박 대통령이 버텨야 기세가 오르는데 어제 결정으로 맥이 빠질 수밖에 없다. 여야가 질서 있는 퇴진에 박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포함시킬 것인가. 예측하기 어렵다. 대통령 사면이 포함되면 특검 수사는 의미가 축소된다. 물론 여야가 합의해도 사면은 안 될 수 있다. 그래서 박 대통령이 퇴임 후 기소되면 법원에서 유무죄를 다투게 된다. 탄핵 공방을 벌일 때야 ‘제3자 뇌물죄’니 하며 마구 질러댈 수 있었지만 법원에서 유무죄를 다투게 되면 특검 수사도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의 결정은 신의 한 수였다. 물론 그 신의 한 수는 대통령직을 사실상 포기한 대가로 둘 수 있었던 값비싼 신의 한 수다. 당장 야권에서는 대통령이 왜 스스로 사임 일자를 정하지 않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야권이 ‘질서 있는 퇴진’을 감당할 자신이 없음을 내비친 것이다. 여야는 어찌 됐든 앞으로 대통령의 진퇴와 임기를 놓고 합의해야 한다. 국회가 그토록 주장해 왔던 합의 정치의 장(場)이 주어졌다. 국회가 처음으로 사실상 대통령 없는 정치를 하게 된다. 잘하면 국민이 내각제로 가도 좋다는 신호를 보내겠지만 사소한 것 하나도 합의하지 못하고 싸우기만 하면 그래도 대통령제가 낫다는 평가가 나올 것이다. 여야는 공 대신 골칫거리를 넘겨받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피델 카스트로 하면 카키색 군복을 입고 턱수염을 기르고 아바나 시가를 물고 있는 모습이 트레이드마크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카스트로의 리더십이 턱수염에서 나온다고 믿은 나머지 턱수염을 잘라버릴 계획을 세운 적도 있다. 스포츠맨인 그는 다른 쿠바인들처럼 열렬한 야구광이었다. 북한 김일성의 취미는 뭐였나. 총 쏘기? 잘 떠오르지 않는다. 둘 다 독재자였지만 김일성은 경외심으로 체제를 유지했고 카스트로는 친근감으로 체제를 유지했다. ▷김일성은 가는 곳마다 자신의 동상을 세웠지만 쿠바에는 어디에도 카스트로의 동상은 없다. 그 대신 베레모를 쓴 체 게바라의 동상이 있다. 쿠바는 가톨릭의 전통이 깊어 권력자의 우상화가 쉽지 않았던 것일까. 다만 게바라와 카스트로는 가톨릭의 성부 성자 성령 삼위(三位)일체처럼 이위(二位)일체였다. 이상주의자 게바라는 현실주의자 카스트로 덕분에 불멸을 얻었고 현실주의자 카스트로는 이상주의자 게바라 덕분에 90세 천수를 누렸다. ▷카스트로는 체제에 불만을 가진 주민에게 갈 테면 가라는 식으로 나왔다. 1980년 몇몇 쿠바인이 아바나의 페루대사관 정문을 트럭으로 부수고 들어가 망명을 요청한 이후 12만5000명이 쿠바를 떠났다. 카스트로가 마리엘 항구를 개방하고 나가고 싶으면 나가라고 하자 미국은 오히려 항구를 봉쇄하라고 압력을 넣어야 했다. 1994년 경제위기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카스트로는 김일성과 달리 체제에 가해지는 압력을 눌러서가 아니라 풀어서 조절할 줄 알았다. 그것이 쿠바를 북한보다는 덜 공포스러워 보이게 만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카스트로를 ‘야만적 독재자’라고 불렀다. 그러면 김일성 일가를 어떤 독재자라고 부를까. 카스트로는 쿠바를 개미에, 미국을 코끼리에 비유하면서 “개미는 코끼리가 결심할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국가의 처지를 한탄한 적이 있다. 카스트로 생전에 그 개미가 코끼리의 코앞에서 57년간 살아남았다. 기적 같은 일이지만 우리가 북한을 떠올리면 썩 기분 좋은 기적은 아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최근 일각에서 정치적 해법(解法)으로 제기하는 ‘헌법 71조 대통령 권한대행 수용’은 반(反)헌법적이다 못해 억지에 가깝다. 헌법 71조는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事故)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가 그 권한을 대행한다’고 돼 있다. 박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된 상황을 사고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도대체 이런 견해를 몇 명의 헌법학자가 지지할지 모르겠으나 다수설(多數說)이 될 수는 없다. 헌법은 대통령이 탄핵소추를 당하면 국무총리가 권한을 대행하도록 하고 있다. 이것은 탄핵소추를 사고로 본다는 의미다. 뒤집어 보면 탄핵소추 전 수사 단계는 사고에 이르기 전 단계로, 사고가 아니라는 의미다. 미국 대통령은 탄핵소추를 당해도 정상적으로 업무를 본다. 말할 것도 없이 수사를 받을 때도 정상적으로 업무를 본다. 리처드 닉슨도, 빌 클린턴도 그랬다. 대통령의 실질적 2선 후퇴 주장 역시 반헌법적이다. 당장 대통령은 군 통수권 등 국가원수의 자격에 부여된 권한을 총리에게 양보할 수 없다. 행정을 말하자면 국회가 결정한 총리가 들어선다 해도 총리는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命)을 받도록 돼 있다. 대통령은 명시적으로 2선 후퇴를 선언하는 순간 스스로 위헌 상황을 초래한다. 다만 대통령이 총리에게 암묵적으로 총리의 뜻에 반하는 명을 내리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가능할 수 있겠다. 이것이 아마도 박근혜 대통령이 위헌적 상황을 피하면서 양보할 수 있는 2선 후퇴의 최대치다. 그러나 그 경우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 대통령을 뭣 때문에 월급을 주고 청와대의 막대한 인력과 예산을 지원하면서 놔두는가. 탄핵하라는 요구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차라리 하야 주장은 헌법적이다. 누구든 대통령이 하야하라고 주장할 수 있다. 대통령이 그 주장에 귀를 기울여 자진 하야하면 헌법이고 말고 할 것도 없는 일이 된다. 그래서 대통령 2선 후퇴나 대통령 권한대행 같은 반헌법적 주장을 할 바에야 하야 주장을 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대통령의 실질적 2선 후퇴를 주장하다가 하야 주장으로 돌아선 것은 그동안 대통령을 봐준 것이 아니라 뒤늦게 논리적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제 대통령 권한대행이니 설레발을 치면서 하야 주장을 숨기고 있는 위선적인 논평가들만 남았다. 다만 하야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대통령의 권리다. 대통령이 스스로 생각해 봐서 ‘고의로’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여기면 검찰이나 특검의 수사 결과와 상관없이 지금이라도 당장 하야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수사 결과가 나오더라도 대통령이 범죄의 ‘고의’와 ‘심각성’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여긴다면 하야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이런 대통령을 국민이 용납할 수 없다면 탄핵 절차를 밟아야 한다. 지금은 1987년 6·10항쟁 같은 상황이 아니다. 6·10 당시 서울과 서울 인근 군부대는 연일 충정훈련이라는 시위진압훈련을 하고 있었고 투입될 지역에 대한 도상(圖上)연습까지 끝낸 상태였다. 총칼의 위협을 무릅쓰고 거리로 뛰쳐나온 100만 명은 민의를 대변하는 100만 명이었다. 그들이 청와대 문을 부수고 들어가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끌어내린다고 해도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여론이 분분한 오늘날, 주말 시위 100만 명의 하야 함성은 아무리 자발적 참여자가 많다 해도 무작위 추출된 1000명의 여론조사보다도 민의를 더 정확히 대변하지 못한다. 하야와 탄핵을 분리한 여론조사에서 하야가 절반을 넘긴 적도 아직 없다. 그런데도 민의 운운하며 차벽을 뚫고 청와대로 쳐들어가 박 대통령을 끌어내린다면 그런 반헌법적 상황을 나부터 가만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다. 당시 내가 쓴, 박근혜도 문재인도 아닌 제3후보를 지지하는 수편의 칼럼이 그걸 증명할 것이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박 대통령의 문화융성, 국정교과서 정책에 누구보다 명확한 논조로 반대하는 글을 썼다. 그러나 박 대통령을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박 대통령은 헌법적 절차에 따라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다. 이런 대통령을 퇴진시키는 것도 헌법적 절차를 따라야 한다. 선출만 아니라 퇴출도 제대로 해야 민주 국가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샤머니즘이라는 용어가 종교 분석이 아니라 정치 분석의 키워드가 되고 있는 시기에 박승주 국민안전처 장관 후보자가 올 5월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열린 굿판에 참석한 것으로 밝혀졌다. 개인을 위한 굿판은 아니고 ‘대한민국과 환(桓)민족 구국(救國) 천제(天祭) 재현’이라는 행사의 일부로 벌어진 굿판이었다. 박 후보자는 이 행사를 주최한 정신문화예술인총연합회의 부총재 자격으로 참석했다. ▷정신문화예술인총연합회의 총재는 안소정 씨다. 하늘빛명상연구원장이라고 한다. 박 후보자는 2013년 펴낸 ‘사랑은 위함이다’라는 책에서 안 씨를 자신의 스승이라고 밝혔다. 안 씨의 하늘빛명상은 환단고기(桓檀古記)류의 사상과 국선도 식의 명상을 결합한 것으로 보인다. 안 씨가 재현하고자 한 것은 고구려의 동맹이나 부여의 영고 등 제천행사였으나 실제로는 재현이라고 부르기에도 조잡한 수준이었다. 사물놀이 지신밟기 등 식전행사를 시작으로 천제, 기도명상, 국태민안(國泰民安) 기원굿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박 후보자는 ‘사랑은 위함이다’란 책에서 “안 원장 밑에서 명상 공부를 할 때 이 지구 땅에 47회나 다른 모습으로 왔었다”고 자신의 전생을 언급했다. 또 “명상을 하는데 상투를 하고 흰 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났는데 동학농민운동 지도자 전봉준 장군이었다”며 “그가 내게 조선 말기 왕의 일기인 일성록(日省錄)을 건넸다”고 썼다. 굿을 하건 명상을 하건 자유지만 이런 황당한 얘기를 하는 사람에게 국민의 안전을 맡긴다는 게 께름칙하다. ▷박 후보자는 한국시민자원봉사회 이사장이다. 한국시민자원봉사회는 옛 행정자치부의 인가를 받아 만들어진 비영리 단체다. 그가 행자부 관료이던 1995년 설립 때부터 이 단체를 맡았다. 시민자원봉사와 천제 재현은 기묘한 결합이다. 박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에서 여성가족부 차관을 맡았고, 같이 노 정부에서 일했던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안전처 장관으로 제청했다. 국민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은 굿이 아니라 전문가적 식견인데, 박 후보자는 방재 관련 부서에서 일한 경험이 전무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렸다고 알려져 있지만 확정되지 않은 작품 중에 ‘아름다운 공주(La Bella Principessa)’가 있다. 2010년 영국 옥스퍼드대 미술사 명예교수 마틴 켐프는 이 작품이 다빈치 것임을 고증하는 긴 책을 써서 거의 다빈치 것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영국의 위작 화가 숀 그린헐이 2015년 회고록에서 ‘아름다운 공주’는 1978년 자신이 그린 것으로 모델은 슈퍼마켓 계산대 여종업원이었다고 주장해 위작 논란에 휘말렸다. ▷다빈치가 무덤에서 살아 돌아와 ‘아름다운 공주’를 보면 뭐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천경자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미인도가 1991년 처음 전시됐을 때 본인 스스로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미술관은 감정 절차를 거쳐 진품이라고 반박했다. 그런데 1996년 검찰에서 수사를 받던 위작 화가 권춘식 씨가 이 미인도를 자신이 위작했다고 자백하면서 다시 긴 위작 논란에 빠졌다. ▷프랑스의 ‘뤼미에르 테크놀로지’는 루브르 미술관에 소장된 다빈치 그림 ‘모나리자’를 분석해 그림 아래 숨겨진 밑그림을 밝혀내는 개가를 올린 회사다. 이 회사의 창립자 파스칼 코트는 ‘아름다운 공주’에 대해 1978년 그려진 게 아니라 최소한 250년은 된 작품이라고 주장해 진품 쪽에 무게를 실어줬다. 이 회사가 천경자의 미인도에 대해 천경자의 다른 작품과 비교해 진품일 확률이 0.0002%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상 위작 결론을 낸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체면이 땅에 떨어질 위기에 처했다. 위작이 미술계를 혼탁하게 하는 건 틀림없지만 한편으로는 안이한 작품 수집과 감정 체계에 긴장을 불어넣는 메기 효과가 없는 건 아니다. 1930년대 등장한 산드로 보티첼리의 ‘베일 쓴 성모’를 미술계의 권위자들은 진짜 보티첼리의 작품으로 찬탄했지만 당시 20대의 미술학도로 나중에 저명한 미술사학자가 된 케네스 클라크는 “어딘지 1920년대 영화배우 같은 분위기가 난다”며 위작임을 간파했다. 그런 눈썰미가 우리 미술계에도 필요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대통령은 내란 외환의 죄를 제외하고는 재임 중 형사 소추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위법 행위에 연루됐는데 가만둘 수는 없다. 그 위법 행위가 대통령의 정당성을 심각히 훼손한 경우 헌법이 예정한 절차가 탄핵이다. 대통령을 기소해서 처벌하는 것은 재임 후에 하더라도 당장은 대통령직에서 쫓아내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독단이 정치의 세월호 사태를 빚었다. 또 다른 독단을 막기 위한 청와대참모와 내각의 인적 쇄신은 꼭 필요한 조치이지만 그것으론 부족하다. 최순실이라는 비선은 김현철이라는 비선과는 다르다. 김현철의 비선 활동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묵인이 아니라 무지 아래서 이뤄졌다. 최순실의 비선 활동은 박 대통령 자신에서 비롯됐다. 참모와 각료들이 최순실의 비선활동을 알았다 한들 대통령이 허용하거나 묵인한 비선활동을 어떻게 하겠는가.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은 대통령 자신이다.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하고 있다. 이 수사가 대통령 주변 인물만 기소하고 마는 수사라면 의미가 없다. 수사가 의미가 있으려면 최종적 책임자인 대통령을 향해야 한다. 대통령을 강제 수사할 순 없지만 임의수사나 주변인을 통한 간접수사는 할 수 있다. 대통령을 형사 소추할 수 없으므로 수사 결과는 대통령을 형사 소추할 근거는 되지 못하지만 탄핵 소추할 근거는 된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그제 “대통령은 총리에게 국정의 전권을 주고, 국회가 총리를 추천해야 한다”며 “새 총리의 제청으로 새 내각이 구성되면 대통령은 국정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야권에 권력을 이양하라는 요구나 마찬가지로 헌법의 근거 없이 통치권을 가져가겠다는 발상이다. 대통령에게 하야란 말만 안 했지 하야 주장이나 다름없다. 이런 식의 거국내각으로 허수아비 신세가 된 대통령을 둬서 뭣하겠는가. 그럴 바엔 탄핵절차를 거쳐 새 대통령을 뽑는 게 낫다. 국민은 대통령의 하야를 거론할 표현의 자유가 있다. 그러나 정치인은 함부로 대통령의 하야를 거론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정말 크다면 정치권은 그 목소리를 헌법에 맞게 탄핵절차로 소화해야 한다. 탄핵절차 자체가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이라고 하는 것은 억지다. 민주당의 주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 소추됐을 때 그런 억지를 부렸다. 탄핵이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탄핵을 건너뛰어 대통령에게 사실상 하야나 다름없는 요구를 하는 것이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이다. 새누리당도 탄핵을 금기어 취급해서는 안 된다. 모 아니면 도인 탄핵절차에 이르기 전에 다양한 정치적 해법을 모색하려는 노력은 중요하지만 그런 노력이 실패할 경우 결국 탄핵절차에 이를 수밖에 없다. 탄핵절차는 이중적인 측면이 있다. 한편으로는 현 대통령을 쫓아내 새 대통령을 뽑는 길을 열고, 다른 한편으로는 탄핵에 이르지 못할 경우 현 대통령에게 다시 정당성을 부여한다.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도청 사건으로 탄핵 소추된 뒤 탄핵이 예상되자 표결 전에 사임했다. 반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인턴과의 부적절한 성관계로 탄핵 소추됐으나 탄핵을 모면하고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쳤다. 노 전 대통령도 탄핵을 모면하고 임기를 마쳤다. 민주당이 사실상 하야 요구를 하면서 탄핵을 입밖에 올리지 못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탄핵절차가 노 전 대통령에게처럼 박 대통령에게도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될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탄핵으로 인한 국정 혼란을 지나치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 노 전 대통령이 탄핵 소추됐을 때 당시 고건 총리가 성공적으로 대리 대통령 임무를 수행했다. 책임총리, 책임총리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진짜 책임총리다. 미국에서도 대통령이 탄핵되거나 암살된 뒤 집권한 부통령이 거의 대부분 성공적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다만 박 대통령을 탄핵절차에 부치기로 한다면 탄핵 소추가 될 때까지는 박 대통령에게 대통령제에 걸맞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민들은 그 사이 냉각기를 갖고 어디까지가 불법적 국정 농단이고 어디까지가 정상적 국정 수행인지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을 탄핵하지 않고 여야가 해결책을 찾으면 가장 좋다. 다만 반(反)헌법적 거국내각 구성을 할 바에야 탄핵절차를 밟는 것이 낫다는 게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까지 받을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가 쓴 노래의 가사들은 문학상은 아닐지라도 문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는 사실이다. 고작 ‘Blowin' in the wind’나 ‘Knocking on heaven's door’나 듣고 딜런을 안다고 해선 안 된다. 물론 이런 간단한 곡에서도 ‘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대답은 바람 속에 불고 있다)’ 같은 문장은 ‘The wind is blowin'(바람이 불고 있다)’이라는 진부한 문장을 비틀고 그 대답은 듣는 사람의 판단에 맡김으로써 충분히 시적이다. 딜런의 음악가로서의 소질은 동시대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에게 훨씬 못 미친다. 작곡자이자 지휘자인 레너드 번스타인은 매카트니의 ‘She's leaving home’은 클래식의 현악 4중주곡을 뛰어넘는다는 찬사를 보냈다. 딜런의 곡은 대부분 단조로운 코드 진행을 반복한다. 가령 ‘Knocking on heaven's door’는 ‘G-D-Am-G-D-C’의 무한 반복이다. 그의 곡은 가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몇몇 곡을 빼고는 썩 들을 만한 곡이 못 된다. 시인 딜런의 모습은 ‘The times they are a-changin'’ 같은 긴 가사의 곡에서 더 잘 찾을 수 있다. 이 곡의 가사는 스티브 잡스가 절망에 처할 때마다 되뇌면서 스스로 용기를 북돋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펜으로 예언하는 작가와 비평가들이여/눈을 크게 뜨라/수레바퀴는 아직 돌고 있다. 섣불리 논하지 말고/섣불리 규정하지 말라/지금의 패자들이 나중에 승자가 될 것이니/시대가 변하고 있으므로.’ 가사의 마지막은 성경의 유명한 구절을 멋지게 차용하고 있다. ‘처음 된 자가 나중 될 것이니/시대가 변하고 있으므로.’ 노래의 가사는 노래 없이 읽어봐야 시라고 할 만한지 알 수 있다. 김민기는 고교 시절 함께 물놀이를 갔다가 죽은 친구를 안타까워하며 이렇게 노래했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그 깊은 바다 속에 고요히 잠기면/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이것은 그 자체로 시다. 김민기는 여기에 멜로디를 실어 시를 직접 쓴 시인의 느낌으로 시를 노래했다. 이것이야말로 시인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사람의, 함부로 따라할 수 없는 재능이다. 고은의 시가 딜런보다 못하겠는가. 딜런에게 주어진 상이 무슨 의미가 있다면 시와 음악의 융합에 바치는 찬사일 것이다. 딜런이 단순히 시를 잘 쓰고, 음악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했다고 해서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그 이상의 정신, 시인의 정신이 있었다. 1960년대 미국 저항문화를 상징할 단 한 사람을 꼽으라면 딜런이다. 그러나 그는 환호하는 사람들 속에서 구속받고 있다고 느꼈다. 그에게 저항은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로일 때나 의미 있는 것이지 정치적으로 조직될 때는 진부한 선동일 뿐이었다. 그는 1966년 인기 절정의 시기에 돌연 공연 현장에서 사라졌다. 딜런에 대한 노벨 문학상 수여는 문학의 완고한 경계가 허물어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라고 김민기 같은 이에게 문학상을 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의 ‘늙은 군인의 노래’나 ‘상록수’ 같은 노래도 시적인 가사를 갖고 있다. 예술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사회적이라는 말은 여기서도 통한다. ‘늙은 군인의 노래’는 정년퇴임하는 선임하사를 위해, ‘상록수’는 동료 직원들의 합동결혼식을 위해 만든 곡이지만 시위에서 널리 불려 한국의 저항문화를 대표하는 곡이 됐다. 그는 알고 보면 ‘공장의 불빛’에서 ‘지하철 1호선’까지 음악극을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만 문학의 영역을 계속 좁게 묶어둘 게 아니다. 요새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뛰어들고 있는 웹툰은 어떤가. 소설이 아니라 웹툰이 TV 드라마와 영화의 원작이 되는 시대다. 치열한 작가 정신만 있다면 웹툰의 말풍선이 소설이나 희곡보다 훌륭한 문학이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딜런과 김민기의 노래가 시와 음악의 융합이라면 웹툰은 산문과 그림의 융합이다. 문학상 심사위원들은 더 바빠져야 한다. 펜으로 예언하는 자들이여 눈을 크게 뜨자. 시대가 변하고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월가를 점거하라(Occupy Wall Street)”란 말로 우리에게 익숙해진 occupy는 군사 용어로는 점령이지만 시위 용어로는 점거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서구에서 민주주의 혁명이 퍼져 나갈 때 시위대는 바리케이드를 치고 싸웠지 점거 같은 건 할 수도 없었다. 점거는 시위가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용인되고 나서의 일이다. 미국 자동차회사 GM의 노동자들이 1936년 미시간 주 플린트의 공장에서 연좌농성을 한 것이 점거의 시작이라고 한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점거는 불법이라고 본다. ▷대학 건물 점거는 1968년 전 세계적인 학생운동에서 두드러졌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프랑스 낭테르대, 일본 도쿄대 등으로 대학 점거 농성이 번져 갔다. 우리나라에서는 1986년 건국대 도서관 점거 농성이 사회적 관심을 끈 최초의 대학 점거 농성이었다. 시위가 과격화한 1980년대에 들어서도 1984년까지는 경찰이 대학에 상주하고 있어서 점거 농성은 드물었고 시위라고 하면 화염병과 돌멩이를 던지는 바리케이드전(戰)식 시위가 주를 이뤘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학 점거 농성은 점차 정치적인 것에서 학생 생활과 관련된 것으로 변해 갔다. 이것도 유행처럼 확 일어났다가 잠잠해지는 패턴이 있는 듯하다. 2000년대 초반에는 등록금 인상 반대를 외치며 총장실이나 본부를 점거해 농성을 벌인 대학이 많았다. 올해는 여름방학 전에 이화여대 학생들이 고졸 직장인을 위한 대학 신설에 반대해 시작한 대학본부 점거 농성이 동국대 등으로 번지더니 10일부터는 서울대 학생들이 시흥캠퍼스 신설에 반대해 대학본부를 점거했다. ▷점거는 그것이 불법인 것을 떠나 대학에는 어울리지 않는 시위 방식이다. 소통 부재의 원인이 대학본부 측에 있는지 학생회 측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대학의 주인은 교수만도 아니고 학생만도 아니다. 대학만은 억지이더라도 소리만 크게 지르거나 끝까지 버티기만 하면 이긴다고 여기는 사회를 닮아가서는 안 된다. 토론해서 지는 쪽이 깨끗이 물러설 줄도 알아야 대학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바보야, 문제는 정치다’도 틀렸고 ‘바보야, 문제는 경제다’도 틀렸다. 지금 우리나라는 돈 많고 지위 높은 상류층이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 oblige·높은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외면하기 때문에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한 것이라고 원로 사회학자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79)가 일갈했다.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저서 ‘특혜와 책임’을 통해서다. 역사의 동력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뿐 모든 국민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매달릴 필요도 없다. 상층(上層), 즉 부를 생산하는 기업가와 자원을 배분하는 고위직이 문제라고 송 교수는 지적했다. 고위직도 위세 고위직과 위신 고위직으로 나뉜다. 위세 고위직은 국회의원, 고위 관료, 고위 법조인, 장성급 이상 군인과 경무관 이상의 경찰을 말한다. 위신 고위직은 소위 말하는 저명인사들인데 위엄과 신뢰로 먹고사는 대학교수, 언론인, 의료인이 포함된다. ―민주화는 성공했는데 그 이후 성공했다는 정권이 없다. 정치의 실패는 왜 반복되는가. “더 이상 정치로 나라를 일으킬 수가 없다. 우리나라 정치도 포퓰리즘으로, 다른 나라보다 더한 포퓰리즘으로 흘러가고 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표를 얻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국민도 등록금 반값으로 해주고 청년수당을 주겠다는 사람에게 표를 준다. 한국은 포퓰리즘에 저성장과 복지 확대가 결합하는 ‘치명적 3결합의 시대’에 있다. 헌법을 바꾸고 좋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으면 정치가 잘될 것이라는 기대는 오산이다. 앞으로 역사의 동력은 고위직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밖에 없다. 이들 고위직이 예전처럼 목숨을 걸고 모든 열정을 쏟아서 소명의식을 갖고 일하는 것 말고는 동력이 없다.” ―일류 대학 나오고 고시에 합격해서 고위직에 오른 사람들이 부패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가 학교 다니던 1950년대는 절대 절망의 시대였다. 교수가 되기 전 기자 생활을 하던 1960년대 초 봄이면 보릿고개를 취재했다. 못 먹어서 얼굴이 누렇게 떠 죽어가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 속에서 1960년대, 70년대를 거쳐 80년대까지 정부에 들어왔던 고위직들은 국민이 안 굶어 죽는 나라를 만들어 보겠다는 확고한 국가관, 엄격한 기강,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면서 배가 부르게 되자 어떻게 하면 높은 자리에 올라가 볼까, 어떻게 하면 많이 벌까, 어떻게 하면 책임 안 지는 일을 해볼까만 궁리한다. 고위직이 거의 다 그렇게 돼 버렸다. 나라를 위한다는 생각, 공익에 열정을 다한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이것이 사라지니까 부패가 오고 그 끝자리에 김영란법이 온 것이다.” ―우리 상층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왜 없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내면화할 시간이 없었다. 내면화는 뼈와 살이 되는 것, 몸에 배는 것, 체질이 되는 것이다. 내면화돼 있으면 무의식중에 행동해도 과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서양의 상류층이 중시하는 게 절제(temperance)다. 우리는 그것이 안 된다. 할아버지와 그 윗대부터 여러 대에 걸쳐 내려온 상층을 누대(累代)상층이라고 해서 당대(當代)상층과 구별할 수 있다. 서구의 누대상층은 절제심에다 용기를 갖고 있다. 잘못된 것을 보면 참지 못하고, 그렇다고 함부로 나서지도 않는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핵심은 결국 ‘희생’이다. 희생의 내용은 첫째 목숨희생, 둘째 기득권희생, 셋째 타인에 대한 배려와 양보 헌신이다. 그러려면 문화와 윤리의 내면화, 즉 체질화가 필요하다. 그래서 가풍이 중요한 것이다. 당대상층을 졸부(猝富)라고 한다. 졸부의 졸자에는 개 견(犬)자가 붙어 있다. ‘갑자기 졸’자다. 논어에 졸부귀불상(猝富貴不祥)이라는 말이 있다. 갑자기 부유해지거나 갑가지 귀한 몸이 되면 상서롭지 못하다는 말이다. 우리는 졸부가 많다.”SKY 나와야 성공한다는 건 착각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중요한 것은 가풍. 영어로 family discipline이다. 아버지가 갑질하는 것만 본 자식은 갑질을 하게 돼 있다. 1980년대 초 미국에 1년간 방문교수로 갔다. 그때 우리 애들이 고등학교에 다녔다. 미국 학교는 어떻게 가르치는지 궁금해서 교사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교사는 가르치는 게 간단하다고 말하더라. 신상 카드가 있어 부모의 직업, 학력, 나이를 적는다. 우리는 그런 걸 기록을 못하게 하지만 그들은 아주 상세히 적는다. 신상 카드 밑에 절반은 가풍을 적는다. 애가 문제가 있으면 가풍을 보면 문제가 뭐고 어떻게 지도할 수 있는지 안다. 가족은 원초집단(primary group)이고 학교는 2차 집단(secondary group)일 뿐이다. 쇳덩이가 금덩이 될 수 없다. 자식은 부모 앞에서가 아니라 부모 뒤에서 큰다는 말이 있다. 나이 들어서 엄마 안 닮은 딸이 있는가 보라.” ―우리는 왜 가풍에 관심이 없나. “부모들을 모아 놓고 가풍 강의를 20년 했다. 한 인간의 사회적 성공에 기여하는 세 가지 집단에 가족, 학교, 직장이 있다. 부모들에게 자녀를 성공시키는 데 가장 핵심적인 집단이 뭐냐고 물으면 학교라고 대답한다. 가족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왜 학교냐’고 물으면 우리 사회가 학벌 사회라서 그렇다고 대답한다. ‘우리가 왜 학벌 사회냐’고 물으면 우리는 스카이(SKY) 대학, 즉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나와야 성공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서울대를 나와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 %나 될 것 같으냐고 물으면 적게 20%, 많이는 90%라는 답이 나온다. 그러나 사회적 성공을 사회에 대한 기여도와 사회로부터 받는 존경심으로 정의할 때 실제로 서울대 출신의 성공률은 2%도 안 되고 좀 더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도 5%밖에 안 된다. 나머지 95%는 지방대학, 심지어 고등학교 졸업자다. 내가 1950년대 후반에 서울대 정치학과를 다녔다. 당시는 정치의 시대라 정치학과가 법대나 상대보다 점수가 높았다. 뛰어난 인재가 모인 곳이 정치학과이고 동기 중에는 고건 전 총리, 아웅산 사태 때 사망한 서석준 전 장관 같은 이들도 있지만 동기 전체를 볼 때 성공한 사람은 15%에 불과하다.”교육부가 없어져야 대학이 산다 ―학교가 가풍을 바꿀 수도 있지 않은가.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가 있는 한 제대로 된 학교 교육이 이뤄질 수 없다. 미국에도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같은 명문대가 있고 잘하는데 우리나라는 왜 안 되는가 묻는다. 국가에서 교육에 관여하기 때문에 안 된다. 국가는 가능한 한 많은 규제를 만들어 공직자가 힘을 발휘하려고 하는 곳이다. 교육부부터 없애야 한다. 이웃 나라 일본도 문부과학성을 없애자는 얘기를 한다. 얼마 전 게이오대 총장를 만났더니 ‘당신들은 일본 것은 다 없애려고 하면서 일본식 교육은 왜 없애지 못하는가. 우리도 문부성을 없애려고 하는데 잘 안 된다. 한국부터 솔선수범해서 없애 보라’고 말하더라. 교육은 미국식으로, 유럽식으로 가야 한다. 학교에 맡기고 지역사회에 맡겨야 한다. 교육의 다원화 다양화 자율화가 일어나야 한다. 국가가 교육을 관장하면 절대 제대로 교육이 안 된다.” ―우리 대학의 문제는 무엇인가. “과거 서울대에 문리대가 있을 때는 그래도 나았다. 문리대는 교양과목(Liberal Arts & Science)을 가르치는 곳이다. 하버드 등 세계 모든 명문대는 문리대가 있다. 서울대는 문리대 없애고 인문대 자연대 사회대로 쪼갰다. 왜 쪼개겠는가. 보직을 하나라도 더 만들려고 한 것이다.”고위직 잘하면 북핵걱정 안해도 돼 ―류성룡에 관한 책을 여러 권을 낸 이유는…. “내 전공이 정치사회학이고 리더십에 관심이 많았다. 조선에 리더십을 연구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보니까 조선에 인물이 정말 없더라. 겨우 셋이 있는데 첫째가 류성룡이고 다음에 송시열, 대원군 이하응이다. 송시열과 이하응은 부정적인 측면이 있는 리더십이고, 나라를 구한 리더십은 류성룡밖에 없다. 조정 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순신을 육군에서 수군으로 바꿔 정육품에서 정삼품으로 일곱 계단 승진시킨 사람이 바로 류성룡이다. 짚 속에서 자다 치질에 걸려 온갖 고생하면서도 나랏일을 봤다. 명나라 장수에게 당한 수모도 나라를 위한다는 일념으로 참아냈다. 그가 없었다면 한강 이남은 일본 말 쓰고, 이북은 중국 말 쓰는 곳이 되고 조선은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북핵 위기를 임진왜란 위기에 비교하기도 한다. “북핵에 대해 위기감을 갖는 것은 좋다. 그렇다고 북한이 제멋대로 핵을 쏠 수 있는 것처럼 여길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는 미국에서 핵 억지력을 제공받고 사드도 배치할 계획이다. 일본에는 X밴드 레이더가 있고 괌도 잘돼 있다. 북한은 이미 나라로서는 끝났다. 국가는 도덕공동체인데 도둑 강도를 막으라고 만들어 놓은 국가가 밀수 밀매를 하고, 마약을 재배하고, 위조지폐를 만들고, 외국인을 납치하고, 자기 국민을 노예로 만든다. 남아있는 것은 몸은 마비되고 숨만 할딱거리는 정권밖에 없다. 남한은 남한대로 2% 정도 성장을 계속해 가고 고위직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하면 절대 걱정할 것은 없다. 국민 의식이 다 바뀔 필요도 없다. 고위직만 제 할 일을 다 하면 된다.” ―‘헬조선’이란 말이 유행인데…. “지식인이나 언론의 생리가 비판적이다 보니 그런 얘기를 하지만 실제로는 지금처럼 살기 좋은 한국은 없다. 외국에서 보면 한국처럼 편리하며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나라가 별로 없다. 외국인들은 너희처럼 잘살면서 무슨 헬(지옥) 같은 소리 하느냐고 그런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개그맨들은 자기들끼리 ‘짠다’는 말을 종종 한다. 개그맨들은 개그의 소재를 실제 경험에서 많이 얻지만 그런 경험만으로는 한계가 있기에 때로는 있지도 않은 경험을 실제 있었던 것처럼 짜내서 웃기기도 한다. 김제동이 방위병으로 복무할 때 장성들이 모인 한 행사에서 사회를 보면서 어느 4성 장군의 아내를 아주머니로 불렀다가 13일 동안 영창에 수감됐다는 얘기도 알고 보니 웃자고 짜낸 얘기였다. ▷개그가 웃기는 것은 우리 자신도 모르게 빠져드는 일상 속의 비합리적이거나 비논리적인 면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개그는 웃음의 가면을 쓴 비판이다. 비판인 이상 허위냐 사실이냐가 문제가 될 수 있다. 개그맨이 자신이나 친한 동료를 웃음의 소재로 삼는다면 허위든 사실이든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그 개그맨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편을 웃음의 소재로 삼을 땐 얘기가 달라진다. 사실에 기초했다면 풍자라고 해서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지만 허위에 기초할 때는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 영미법에서 이것을 명예훼손성 유머(defamatory humor)라고 한다. ▷군이 상명하복의 조직이다 보니 일반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웃기는 일이 많다. 여기서 웃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비합리적인 것을 말한다. 김제동이 정말 장군의 아내를 아주머니로 불렀다가 영창에 갔다면 그야말로 웃기는 일이다. 군대 갔다 온 남자치고 군대에서 웃기는 일 한두 가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얘기려니 하고 웃었는데 사실이 아니었다. ▷김제동은 자신의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 증인 채택 논란이 일자 “웃자고 한 얘기를 죽자고 달려들면 답이 없다”고 받아쳤다. “방위가 퇴근 후 남아 회식 사회 본 것 자체가 군법 위배다. 국감장에서 얘기하면 골치 아파질 것”이라고 협박하듯 말했다. 웃자고 한 거짓 얘기보다 웃자고 한 얘기가 거짓으로 드러났을 때 보인 태도가 더 개그맨답지 못하다. 진짜 일류 개그맨이라면 짜낸 얘기임이 드러났을 때 깨끗이 ‘미안하다’고 하지 딴지 같은 건 걸지 않았을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이언 톰린슨은 영국 런던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2009년 시위를 진압하던 경찰의 곤봉에 맞아 사망한 사람이다. 톰린슨은 당시 47세로 런던의 금융 중심지 시티오브런던 근처의 신문가판대 판매상이었다. 그는 퇴근길 시위대 때문에 경찰 봉쇄선에 갇히게 됐다. 그는 그날도 술을 꽤 마셨다. 그를 시위대로 착각한 경관이 허벅지를 곤봉으로 가격했다. 그는 쓰러졌다가 곧 사망했다. 나는 당시 런던 회담을 취재하다 이 사건을 접했고 이후에도 어떤 결론이 나는가 지켜봤다. 영국 검찰은 경관이 불필요한 무력을 행사했다며 과실치사(manslaughter)로 기소했다. 그러나 법원은 경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톰린슨은 알코올의존증으로 간질환 외에 다리 마비 증상이 있었다. 경관은 그의 나쁜 건강상태를 알 수 없었다는 것이 무죄 선고 이유였다. 다만 런던 경찰은 그에게 직무수행에 적합하지 않은 ‘중대한 비행(gross misconduct)’이 있다고 봐서 파면했다. 영국인 중에 톰린슨이 경관의 곤봉에 맞는 동영상을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대로의 인과관계와 부검을 통해 본 법의학적 인과관계는 좀 달랐다. 3차례 부검이 실시됐다. 세 부검의 사이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원인 불명 사망사건의 사인(死因)을 조사하는 법정에 넘겨졌다. 법정에서 “톰린슨은 심각한 간질환을 앓아 왔고 그 때문에 내부 출혈이 생겼을 때 취약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경관은 이 결론에 따라 정식 재판에 넘겨졌지만, 역시 같은 결론에 따라 무죄 선고를 받았다. 부검 결과는 기소에서도 선고에서도 중요했다. 백남기 씨는 지난해 11월 서울 도심 ‘민중 총궐기’ 시위에서 차벽을 뚫겠다고 경찰차에 밧줄을 묶고 그 밧줄을 잡아당기며 경찰이 쏘는 물대포에 맞서 버티던 중 변을 당했다. 317일간 의식불명 상태에 있다 가족의 거부로 합병증 치료를 받지 못해 죽은 백 씨의 사망진단서에 서울대병원이 ‘병사(病死)’로 기재한 게 옳은지 아닌지는 의료인들의 기술적인 논란일 뿐이다. 백 씨가 물대포를 맞고 사망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다. 다만 지난해 백 씨의 나이는 70세였다. 요새 경로당에서 70세는 노인 축에 끼지도 못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경로당에나 해당한다. 시위대의 쇠파이프와 각목, 경찰의 물대포가 난무하는 시위 현장은 건장한 청장년은 몰라도 70세가 서 있을 자리는 아니다. 법은 자초한 위험까지 보호하지 않는다. 경찰이 물대포 사용 준칙을 제대로 지켰는지 따져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겠지만 백 씨는 경찰에 전혀 위협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는데도 곤봉에 맞아 사망한 톰린슨과는 다르다. 톰린슨이 사망할 때 런던 경찰은 영국식 차벽인 코랄링(corralling)이라는 시위 진압 방식을 사용했다. 코랄은 가축 우리라는 뜻이다. 시위대를 일정 구역에 가두고 단 한 곳의 출구만 열어둔다. 그곳으로 나가려면 사진을 찍고 이름과 주소를 대야 한다. 사방에 친 경찰 봉쇄선을 힘으로 돌파하려는 시도에는 가차 없는 곤봉이 가해진다. 당시 시위대에서 곤봉에 맞아 머리에 철철 피를 흘리는 사람을 여럿 봤다. 사인이 분명해 보여도 법적 다툼이 된 사망은 부검이 필수적이다. 백 씨 사망이 법적 다툼이 된 것은 바로 유족이 경찰 지도부를 살인미수로 고발하고 국가 배상을 청구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법적 다툼으로 만들어놓고 부검을 하지 말자는 건 모순이다. 유족이 경찰 부검을 신뢰할 수 없으면 경찰 부검 이후 따로 부검을 해서 그 결과를 제출하든가 해야지 경찰 부검 자체를 거부하는 건 설득력이 없다. 한 법관은 부검영장 발부를 거부하다 마지못해 영장을 발부하면서 유족과 협의하라는 조건을 달았다. 경찰이 영장 없이도 유족을 설득해서 부검을 할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다. 그러나 영장은 설득이 안 됐을 때를 대비한 강제수사의 수단이다. 유족과 협의하라는 건 임의수사를 하라는 것이다. 임의수사를 할 것 같으면 영장은 왜 필요한가. 영장의 개념에 반하는 영장을 영장이랍시고 발부하는 법관까지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사인을 갖고 논란을 벌이면 부검의 필요성은 더 커진다. 남들 다 하는 절차를 갖고 시비를 걸면 그 의도만 의심받는다. 절차는 절차대로 밟고 책임은 책임대로 묻자.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2007년)라는 일본 영화가 있다. ‘쉘 위 댄스’를 만든 수오 마사유키의 작품이다. 지하철 성추행범으로 오인받아 체포된 남자 주인공이 결백을 주장하며 법정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다.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의 첫 번째 변호인이 그에게 형사 기소사건에서 유죄 판결이 내려질 확률은 99.9%라며 차라리 죄를 인정하고 벌금형을 받자고 권유하는 장면이 나온다. 99.9%는 영화 속에나 나오는 수치가 아니라 실제 수치다. ▷영화 속 1심 판사는 자기 직을 걸지 않고는 검사의 기소를 뒤집을 수 없는 것으로 여긴다. 그가 무죄 판결을 내렸는데 상급심에서 뒤집어지면 그는 옷을 벗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1심 판사가 도저히 아니다 싶어 무죄 판결을 내리고, 그것이 상급심에서 받아들여지면 이번에는 기소한 검사가 옷을 벗어야 한다. 너무 심해서 탈이긴 하지만 기소든 재판이든 직(職)을 걸고 한다는 잇쇼켄메이(一生懸命)의 정신은 본받을 만하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판검사는 ‘아니면 말고’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어제 항소심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메모와 녹음 파일 중 이 전 총리와 관련된 부분은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를 배제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똑같은 증거를 1심 재판부는 정반대로 판단했다. 판단이 달라진 이론도 뭐도 없다. 그냥 그렇게 본다는 것이다. 이래서 한국의 형사판결은 연구할 가치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 달 전까지 총리였던 사람을 기소했는데 무죄 판결이 나면 기소한 검사는 일본 같으면 옷을 벗을 것이다. 총리를 유죄 판결했는데 항소심에서 뒤집히면 1심 판사도 옷을 벗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패소한 검사나 판결이 뒤집힌 판사가 승승장구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항소심 판결은 또 대법원에서 뒤집히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이러니 누가 기소에 승복하고 판결에 승복하겠는가.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할리우드의 미녀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1963년 미남 배우 리처드 버턴과 영화 ‘클레오파트라’를 찍다 사랑에 빠져 각자 배우자를 버리고 결혼하는 바람에 교황청에서 야단까지 맞았다. 오늘날 그들에 버금가는 완벽한 미남 배우와 미녀 배우의 만남은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 브래드 피트와 앤젤리나 졸리 정도가 아닐까. 크루즈는 키드먼과 결혼해 10년 살다 2000년 헤어졌다. 피트는 최근 졸리와 12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졸리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섹시한 데다 지적이며 실천적인 여배우다. 졸리의 벌에 쏘인 것 같은 두툼한 입술은 커크 더글러스의 뺨, 베티 데이비스의 눈에 버금가는 시대에 남을 매력 요소로 꼽힌다. 졸리는 몸에 문신을 많이 새긴 것으로 유명한데 문신 중에는 라틴어로 된 ‘나를 키운 그것이 나를 망하게 하리라’는 경구도 있다. 졸리는 유엔난민기구의 특사로 16년째 활동하고 있다. 유방암 예방을 위해 2012년 양쪽 유방의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고 이를 당당하게 공개했다. ▷피트는 프랑스 여배우 마리옹 코티야르와 사랑에 빠져 졸리와 헤어졌다는 얘기가 있지만 확인된 것은 아니다. 피트는 졸리와 살기 전에는 여배우 제니퍼 애니스턴의 남편이었다. 미남 배우라고 다 바람기가 많은 것은 아니다. 서부의 사나이, ‘하이 눈’의 게리 쿠퍼는 32년간 한 여배우와 같이 산 모범 남편이었다.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가트를 미남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이 멋진 배우는 여배우 로런 버콜과 결혼하고 충실한 남편이 됐다. ▷졸리는 결혼 전 입양해 키우던 아이 외에 피트와의 사이에 낳은 아이 3명, 그리고 결혼 중 입양한 아이 2명 등 모두 6명의 자녀가 있다. 입양아는 캄보디아 에티오피아 베트남 태생이다. 졸리는 아이들을 촬영장에 데리고 다닐 정도로 가족에 대한 사랑이 유별났다. 졸리는 모든 아이들에 대한 양육권을 주장했다. 6명의 어린 자녀를 달고 사는 이혼 여배우는 할리우드에 거의 없던 일인지라 이 여배우가 보여줄 향후 모습이 자못 궁금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고통스러운 후회의 시간이다. 우리는 왜 북한의 핵 보유를 막지 못했을까. 길을 잃었을 때는 높은 데 올라 먼 곳을 살펴봐야 한다. 노태우 대통령은 19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했다. 우리 쪽 미군의 전술핵무기는 놔두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만을 반대하기는 어렵다는 비핵화의 논리는 그럴듯하다. 비핵화 선언으로 북한의 핵 사찰 거부 명분이 약화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2년 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을 했을 때 비핵화 선언의 일방성이 가진 허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비핵화 선언에 외교안보수석도, 국가안전기획부장도, 국방부 장관을 포함한 어느 각료도 반대하지 않았다고 노태우의 회고록에 나온다. 모두 북방외교의 성과에 취해 북방외교가 초래한 북한의 고립이 더욱 핵에 집착하게 한 사실을 무시했다. 당시 북한은 핵무기가 없었고 남한에는 핵무기가 있었다. 지금 북한은 핵무기가 있고 남한은 없다. 기막힌 역전이다. 북한의 NPT 탈퇴는 김영삼 대통령 취임 한 달 후 일어났다. 김영삼은 가장 중요한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그는 1994년 빌 클린턴 행정부의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이 영변 원자로에 대한 폭격을 검토했을 때 반대했다. 이후 제네바 합의의 실패, 6자회담의 실패, 유엔 안보리 제재의 실패를 돌아보면 북핵을 저지할 유일한 방법은 협상도 제재도 아니고 폭격이었다. 한국이 희생을 감수할 마음이 없음이 분명해졌을 때 그 방법은 메뉴에서 사라졌다. 미국은 이라크는 대량살상무기(WMD)가 있다는 의혹만으로 공격했지만 북한은 보란 듯이 WMD 실험을 해도 공격하지 않는다. 극동은 중동과 달리 미국에서 심리적으로 멀다. 한국이 하자고 해도 주저할 판에 한국이 하지 말자는데 나설 이유가 없다. 1994년 제네바 합의는 핵무기의 문제를 전력공급의 문제로 치환한 기만적인 것으로, 실패하게 돼 있었다. 그런데도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제네바 합의를 믿고 감상적인 남북 정상회담에 매달렸다. 김대중이 2000년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을 때 등 뒤에서 북핵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었다. 2006년 북한의 첫 번째 핵실험 다음 날 노무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들을 초청해 조언을 구했다. 김대중 회고록에 따르면 김영삼은 “노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의 정책을 계승해 포용정책을 펴다가 이런 상황을 초래했다”고 비난했고 김대중은 “북한 핵실험은 조지 W 부시 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실패한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둘 다 틀렸다. 김대중 노무현의 햇볕정책이 없었더라도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했을 것이고, 공화당 부시 대신 민주당 고어나 케리가 당선됐더라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막지 못했을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이 북한을 제어해 주리라는 헛된 기대에 9년 세월을 허비하며 최종적으로 실패했다. 핵무기는 김씨 세습정권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의 대통령들은 김씨 세습정권의 존립을 보장할 것은 핵무기 외에는 없다는 단순 명백한 사실을 자주 잊어버렸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주한 미대사관 전문(電文)에 따르면 김영삼 대통령은 2008년 미국대사와의 대화에서 “돌아보면 1994년 미국의 폭격을 허락하는 것이 나을 뻔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정말 1994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미군의 폭격을 허락할까. 웬만해서는 북한의 핵 보유를 막을 수 없었는데 웬만한 이상의 노력을 할 자세는 그때나 지금이나, 대통령도 국민도 돼 있지 않다. 우리는 1994년 폭격을 반대했을 때 언젠가 다가올 북핵과의 불안한 공존을 선택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북핵이 현실화했다. 우리 앞에는 다모클레스의 칼을 머리 위에 둔 초(超)불안의 시대가 놓여 있다. 그러나 결국 우리 스스로 선택한 불안이다. 그 불안을 가학적이거나 피학적으로 섣불리 해소하려 하지 말자. 북이 핵을 가진 이제 와서 예방폭격을 하자는 식이어서도 안 되고, 굴종적으로 평화를 사자는 식이어서도 안 된다. 핵무기의 주 용도는 억지력이다. 북한도 핵무기를 실제 써서 스스로를 위기로 몰고 갈 이유가 없다. 김정은이 제 목숨 하나는 귀하게 여길 정도로 정상 상태이길 기도하되 당당히 맞서 북한 세습체제에 균열이 초래될 때까지 더 강한 스트레스를 가해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서울대 인근에는 광장서점이란 곳이 있다. 1978년 이해찬 의원이 이 서점을 열었다. 처음에는 사회과학 서적을 많이 팔았지만 1980년대 중반부터는 주로 고시책을 파는 곳이 됐다. 신림동 고시촌에서 값비싼 고시책까지도 할인 한 푼 안 해주고 팔아 수익을 올린 덕분에 많은 서점이 명멸하는 과정에서도 광장서점만은 계속 번창해 아직도 건재하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한때 이 서점의 직원으로 일했고 나중에는 이 의원의 보좌관이 됐다. ▷유 전 장관이 한 TV 프로그램에서 “세월호 사고 당시 대통령 일정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다 알 거라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이 우 수석에게 약점이 잡혀 우 수석을 경질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가 고발당했다. 제3자가 고발까지 할 발언은 아니지만 세월호 사고 당시 우 수석은 민정수석은 고사하고 민정비서관도 아닌 변호사였다. 나중에 민정수석이 돼 세월호 당시 일을 뒤늦게 알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먼저 그 사실이 증명돼야 한다. 정치적 상상력을 과시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장관까지 지낸 사람으로서는 경솔한 발언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어제 무소속인 이 의원의 입당을 허용하기로 했다. 지역구가 세종시인 이 의원은 4월 총선에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친노(친노무현) 인사 물갈이 차원에서 공천에서 탈락시키는 바람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예상했던 대로 김 위원장이 물러나고 추미애 대표 체제가 되자 복당이 결정됐다. 얼마 전 이 의원은 자택 근처에서 퇴비 냄새가 난다고 ‘호통 민원’을 해 세종시 부시장이 출동하고 난리가 났다. ▷친노 인사라도 이해찬 유시민류와 안희정 이광재류가 느낌이 다르다. 더 나이가 많은 이해찬 유시민 쪽이 똑똑하지만 포용력이 부족하다. 교육부총리와 국무총리 시절 이 의원은 권위적인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유 전 장관도 나아졌다고 하지만 ‘싸가지 있는 말도 싸가지 없게 하는’ 물이 아직도 덜 빠졌다. 이 의원보다 일곱 살 적은 유 전 장관의 나이가 57세다. 둘 다 사소한 데 날을 세울 나이는 지나지 않았나.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건국을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보는 측은 망명정부(government in exile)와 임시정부(provisional government)의 엄연한 차이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망명정부는 원래 있던 정부가 외국으로 옮겨간 것이지만 임시정부는 정부가 생기기 전의 말 그대로 임시정부다. 헌법 전문에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라고 돼 있다. 임시정부의 법통은 나라의 혼이라고 해보자. 혼은 있으되 살이 없던 나라가 1945년 광복으로 살(국민과 영토)을 얻고 1948년 주권을 찾았으니 비로소 건국됐다고 함이 상식에 부합하는 헌법 해석이다. 건국을 1919년으로 보는 측은 이승만을 폄하하면서도 이승만과 그의 정부가 1948년에 ‘대한민국 30년’이란 연호를 사용한 사실을 들어 반대편을 공격한다. 그러나 이승만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기도 하지만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기도 하다. 임시정부에서 탄핵됐음에도 자신의 정통성을 임시정부까지 연결하고 싶었던 사람이다. 이승만식 연호는 결국 독재로 이어진 그의 개인적 야망을 반영한 것일 뿐이다. 이승만과 달리 후대의 대통령들은 모두 건국 시점을 1948년으로 봤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조차도 의식적으로 억지를 부리지 않을 때는 1948년 건국설에 저도 모르게 동조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제2건국’이라는 분수를 모르는 욕심을 부리다가 1998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건국 50년’이란 표현을 썼다. 한국 현대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것으로 본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3년과 2007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1948년 “민주공화국을 세웠다” “이 나라를 건설했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민주공화국을 말하면서 국민이 선거로 뽑지도 않은 임시정부를 건국이라고 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 이승만이든 김구든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비판받아야 한다. 만약 꼭 건국절을 만들어야 한다면 그날은 1948년 8월 15일이다. 그럼에도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만들겠다는 새누리당의 시도에는 찬성할 수 없다. 실은 건국을 1919년으로 보는 측도 그때 건국이 시작됐다고 여길 뿐이고 다만 그 완성이 1948년이 아니라 미래의 어느 날(통일)이라고 본다. 이런 견해에는 대체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깔려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건국이 1948년에 이뤄졌다는 것도 헌법 정신에 부합하지는 않는다. 헌법은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 전체로 규정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한반도 전체의 민주공화국 수립을 위한 결정적 전진이었지만 온전한 건국에는 이르지 못했다. 건국이 언제냐는 시점을 놓고 논란을 벌이다 보면 건국이란 말의 참된 의미를 놓치기 쉽다. 미국은 긴 세월에 걸쳐 50개 주로 확장됐기 때문에 언제 건국됐느냐를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미국이란 나라가 건국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여전히 네이션빌딩(nation building)을 언급한다. 그는 “최근 다시 불거진 흑백갈등은 미국이 여전히 네이션빌딩의 과정에 있음을 보여준다” “낙후된 사회기반시설, 비효율적인 공교육 체제를 개선하는 것도 네이션빌딩이다”라고 말한다. 현대 국가는 국민국가(nation-state)다. 국민이 아무리 노력해도 신분이든 가난이든 어떤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라는 영토와 주권이 있어도 제대로 된 국가가 아니다. 국민이 상당한 정도의 일체감을 가질 때까지 네이션빌딩은 계속돼야 한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정착과 경제개발로 한반도 남쪽에서나마 네이션빌딩의 토대를 마련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한민국도 여전히 네이션빌딩의 과정에 있다. 저성장과 양극화라는 새로운 난제를 풀지 못하면 이 국가는 해체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언젠가 맞게 될 통일조차도 네이션빌딩의 완성이 아니라 더 큰 네이션빌딩의 시작이다. 건국절 제정 시도는 네이션빌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불필요한 논란만 초래한다. 미국에는 독립기념일이 있고 프랑스에는 혁명기념일이 있지만 건국절은 없다. 제대로 된 나라치고 건국절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통일 후에라도 광복절과 통일기념일이 있으면 되지 건국절은 없어도 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김형준 부장검사(예금보험공사 파견)가 고교 동창 사업가 김모 씨에게서 수사 무마 대가로 1500만 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나와 대검찰청이 2일 감찰에 착수했다. 올해 4월 60억 원대 사기 혐의로 고소된 김 씨는 서울서부지검에 “김 부장의 스폰서였고, 1500만 원을 김 부장에게 빌려줬으나 받지 못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김 부장검사는 김 씨로부터 도움을 요청받자 4월 서부지검 수사 담당 검사 및 부장검사와 식사자리까지 마련했다. 김 부장검사는 김 씨에게 빌린 돈을 갚았다고 주장하지만 당당히 갚을 돈이라면 왜 올 2월과 3월 술집 종업원 계좌와 A 변호사의 부인 계좌를 통해 돈을 받았는지 의문이 생긴다. 그보다는 사업하는 동창이 검사 동창에게 수시로 향응·접대를 하는 ‘스폰서’ 역할을 했고,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방패막이가 돼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서부지검은 자체 조사 결과 실제 청탁이 오간 것은 없다고 밝혔으나 이 역시 석연치 않다. 김 부장검사가 괜히 담당 검사와 식사자리를 마련하고, 6월경 또 개별 접촉을 가졌겠느냐 말이다. 대검찰청이 5월에 서부지검으로부터 김 부장검사의 비위를 보고받고도 석 달이나 감찰 착수를 미룬 것도 납득되지 않는다. 대검은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더 명확히 조사할 것을 지시했고, 서부지검에서 2일 상세한 보고를 해서 감찰에 착수했다고 해명했지만 군색하다. 적당히 깔아뭉개려다가 지난달 영장이 청구된 김 씨가 ‘스폰서 검사’를 폭로하고 다니자 부랴부랴 감찰에 착수한 게 아닌가. 김 부장검사는 검사 출신인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외동사위다. 대검이 검찰 대선배인 박 전 의장을 의식해 감찰에 소극적이었을 가능성도 크다. 스폰서 검사는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만큼이나 고질적인 비리다. 2010년 스폰서 검사 사건 때문에 특임검사제가 도입됐고 천성관 당시 검찰총장 후보자는 낙마했다. 그런데도 스폰서 문화가 남아있다니 지난달 31일 대검이 발표한 ‘법조비리 근절 및 청렴 강화 방안’이 무색해진다. 이번 감찰도 돈을 준 사람의 폭로가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김수남 검찰총장이 관련 보고를 못 받았다면 ‘바지저고리 총장’이고, 알고도 감찰을 미적거렸다면 개혁 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란 말의 창시자는 프랑스의 생시몽이다. 그는 개인주의에 반대해 사회주의란 말을 사용했다. 후에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에 반대해 공산주의란 말을 사용했을 때 이전의 사회주의는 유토피아적 공산주의로 격하됐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사회주의는 공산주의의 마중물로서 의미가 있다. ▷북한 조선노동당이 1946년 제1차 당 대회 이후 채택한 당 규약에는 공산주의란 말도 사회주의란 말도 없었다. ‘부강한 민주주의적 조선독립국가 건설’이 목표였다. 북한 정권을 수립한 뒤 처음 열린 1956년 제3차 당 대회 이후에서야 마르크스-레닌주의와 함께 공산주의 사회주의란 말이 당 규약에 등장했다. 1970년 제5차 당 대회 이후 김일성 주체사상이 당 규약에 등장했지만 어디까지나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나란히 함께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2010년 제3차 당 대표자 회의를 통해 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당 규약에서 삭제했다. 이로써 김일성 주체사상이 유일지도사상이 됐다. 김정은은 2012년 제4차 당 대표자 회의를 통해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새로운 유일지도사상으로 삼았다. ▷북한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이 최근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으로 이름을 바꿨다.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의 전신은 사로청으로 불리던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이다. 북한 사회단체 및 조직 중 유일하게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명칭에 쓰고 있는 조직에서 사회주의란 말이 사라졌다. 김일성-김정일주의가 있는데 따로 공산주의든 사회주의든 무슨 주의를 들먹이는 것 자체를 불손하다고 보는 것일 수 있다. ▷북한은 정권의 2인자인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이 김정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대화하고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절대 왕조보다 더한 체제다. 김일성 주체사상이 당 규약에 등장할 때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조선 현실에 맞게 창조적으로 적용한 것이라는 설명이라도 달렸다. 그러나 김일성-김정일주의가 무슨 다른 주의에 의해 정당화돼야 한다면 그 자체가 최고존엄에 대한 모독이다. 갈수록 심해지는 체제 자폐증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