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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6시 독일 베를린 남부에 있는 한 허름한 공항 격납고. 옛 동독 시절인 1923년 문을 열었던 이 국제공항의 옛 이름은 ‘템펠호프 공항’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베를린을 방어하는 독일 공군의 본거지 역할을 했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공산주의에 맞서는 상징물이기도 했다. 또 독일 분단 후인 1948년 소련이 서베를린을 봉쇄했을 때는 미국 주도의 서방 연합군이 서베를린 시민을 위해 수십만 t의 식량과 연료를 수송한 ‘베를린 공수작전’의 중심지였다. 통독 후인 2008년 10월 베를린 시는 남동부에 새 공항을 준비하면서 템펠호프 공항을 폐쇄하고 공원으로 바꿔 시민들에게 돌려줬다.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던 이곳이 최근에는 난민수용소로 변했다. 지난달 중순부터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 36개 국가에서 유입된 난민 2200명이 옛 비행기 격납고였던 3곳에 천막, 대형 칸막이를 치고 생활하고 있다. 베를린 시는 갑작스럽게 넘친 난민을 수용하기 위해 이곳 외에도 옛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의 본부 건물, 대형 전시장 ‘메세 베를린’, 고교 체육관 등을 수용소로 쓰고 있었다. 이 중 먼저 찾은 곳은 템펠호프 시민공원. 옛 격납고가 있던 건물 앞에서는 보안요원 4명이 삼엄하게 출입자를 통제하고 있었다. 난민 신분증을 제시해야 안에 들어갈 수 있다. 독일 정부는 민간 난민전문 관리업체 ‘타마자’에 템펠호프 공항 난민수용소의 운영을 위탁하고 있었다. 난민 관리업체 직원 45명이 난민수용소 운영을 책임지고, 케이터링 업체 직원 50명이 난민들의 식사를 맡고 있었다. 보안요원 76명은 크고 작은 비상 상황에 대비해 항상 대기하고 있다고 한다. 의료진도 24시간 대기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격납고 3곳 중 한 곳에는 대형 천막 75동이 놓여 있었다. 나머지 2곳에는 대형 칸막이가 세워졌다. 천막 안에는 2층 침대가 배치됐고 모두 12명이 함께 지냈다. 텐트는 독일연방군에서 설치했다고 한다. 베를린 시는 수용소가 만들어진 지 한 달여가 지난 7일 현재 난민 1명당 생활비로 1인당 109유로(약 14만 원)를 지급했다. 난민들을 위한 별도 샤워시설이 있었지만 수용소 전체가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등 열악한 환경이라는 것이 한눈에 봐도 여실히 느껴졌다. 하지만 분위기는 밝고 희망이 넘쳤다. 위험한 조국을 목숨 걸고 탈출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독일이라는 새로운 나라에서 펼쳐질 새 삶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시리아 출신 대학생이라는 아마르 사이드(20)는 “레바논, 터키, 그리스, 마케도니아 등 무려 10개국을 거쳐 한 달 만에 가까스로 독일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미래가 불안하지 않냐’는 질문에는 “전혀 불안하지 않다”며 “지금 독일어를 배우고 있는데 이곳에서 반드시 새로운 삶을 시작하리라 확신한다”고 답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주변에 아랍계 난민 청년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갑자기 기자에게 ‘출입 통제가 너무 심하다’는 등 각종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서자 이동 화장실과 샤워실이 보였다. 다른 수용 공간 2곳에는 성인 남자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커다란 칸막이가 설치돼 있었다. 천막처럼 역시 2층 침대를 배치하고 10명 안팎의 난민이 함께 잠을 잔다. 천막엔 난민 가족들이 입주했고 칸막이는 혼자 들어온 사람들이 차지했다. 난민들 사이에선 간혹 불협화음도 발생한다. 지난달 29일 난민들끼리 흉기를 동원한 패싸움을 벌여 수십 명이 다치고 24명이 체포됐다. 두 번째 방문지인 베를린 서부에 있는 ‘메세 베를린’을 찾은 것은 이튿날인 8일 오전 10시. 이곳은 본래 각종 박람회와 전시회 등이 열리는 대형 전시장이었다. 이곳 26동 등 3곳에 2000명 정도가 수용된 난민수용소가 마련돼 있다. 전시장으로 들어서자 기다란 탁자와 의자가 보였다. 식당으로 쓰이는 곳이었다. 배식 시간이 아니었지만 마땅히 할 일이 없는 난민들은 의자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성인 남성의 오른팔에는 파란색 띠가 채워져 있었다. 혼자 유럽으로 들어온 난민들에게 채워진 표시물이었다. 어제 들렀던 템펠호프 난민수용소에서 배식 줄을 서던 난민들이 집단 난투극을 벌이기도 했다는 소식에 돌출 행동을 하는 난민들을 적발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라크에서 아내와 자녀 4명을 데리고 탈출했다는 나자르 알마미(39)는 휠체어를 밀고 있었다. 그는 “폭격으로 큰아이가 다리를 크게 다쳤다”며 “독일 땅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는다 해도 앞으로 뭘 먹고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독일에 체류 중인 난민 100만 명 중 70% 이상이 선진국 독일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해 고국을 등진 젊은 남성들로 집계된다. 난민들은 1951년 7월 체결된 제네바 조약에 따라 난민 지위를 법적으로 인정받을 때까지 수용소 생활을 해야 한다. 지위를 인정받으면 독일에 체류할 수 있고 합법적으로 취업해 돈을 벌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 출신 아타울라 크넨잔(18)은 친구들에게 8000달러(약 940만 원)를 빌려 난민 브로커에게 주고 부모와 형제를 남겨둔 채 독일로 들어온 경우다. 그는 “좁은 보트를 타는 등 큰 위험을 감수했지만 독일에서의 새로운 삶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베를린=이유종 기자 pen@donga.com}
대통령이나 총리라는 자리는 분명 한 개인에게 큰 특권이지만 자리의 무게감으로 수명이 3년 가까이 줄어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하버드대 의과대학의 아누팜 제나 박사팀이 1722∼2015년 미국, 영국, 독일 등 17개 국가에서 대통령과 총리를 지낸 정상 279명과 선거에서 패해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후보에 머문 261명을 비교한 결과 각국 지도자의 수명이 2.7년 더 짧았다고 AP통신이 15일 보도했다. 제나 박사는 “각국 지도자들은 노화가 더 빨랐다”며 “국가 중대사가 건강한 식사, 운동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심리적인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패스트푸드를 즐기는 등 건강한 식사를 하지 못했으며 이런 식습관은 ‘식사 스트레스’로 이어졌다. 제나 박사는 “세계가 평화로웠다면 그의 생활방식도 달랐을 것”이라고 전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최근 자신보다 10세나 젊은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에게 정상의 자리가 사람을 빨리 늙게 만든다고 말하면서 흰머리를 피하려면 염색해야 한다고 충고했다.이유종 기자 pen@donga.com}
‘대통령, 총리’라는 자리는 분명 한 개인에게 큰 특권이지만 자리의 무게감으로 수명이 3년 가까이 줄어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하버드대 의과대학의 아누팜 제나 박사팀이 1722~2015년 미국, 영국, 독일 등 17개 국가에서 대통령과 총리를 지낸 정상 279명과 선거에서 패해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후보에 머문 261명을 비교한 결과 각국 지도자의 수명이 2.7년 더 짧았다고 AP통신이 15일 보도했다. 제나 박사는 “각국 지도자들은 노화가 더 빨랐다”며 “국가 중대사가 건강한 식사, 운동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심리적인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패스트푸드를 즐기는 등 건강한 식사를 하지 못했으며 이런 식습관은 ‘식사 스트레스’로 이어졌다. 제나 박사는 “세계가 평화로웠다면 그의 생활방식도 달랐을 것”이라고 전했다. 퇴임 이후 심장 수술을 받은 클린턴 전 대통령은 체중이 줄었고 심장병을 고치기 위해 엄격한 채식주의자로 변신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최근 자신보다 10살이나 젊은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에게 정상의 자리가 사람을 빨리 늙게 만든다고 말하면서 흰 머리를 피하려면 염색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제나 박사는 “트뤼도 총리처럼 날씬하고 운동을 즐기는 사람은 노화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말했다고 AP는 전했다.이유종기자 pen@donga.com}

똠얌꿍은 지중해식 생선스튜 ‘부야베스’, 상어 지느러미 요리 ‘샥스핀’과 함께 세계 3대 수프로 꼽힌다. 시큼하고 매콤하며 독특한 향신료 냄새가 나는 묘한 맛이다. 그런데 이 수프가 태국 정부의 태국음식 세계화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태국 정부는 먼저 매운 맛에 익숙지 않은 외국인들을 겨냥해 똠얌꿍 맛을 맵지 않게 제공하도록 현지 음식점들에 조언했다. 그러면서도 시큼하고 향이 강한 태국음식의 특징은 살리도록 유도했다. 그 결과 서구인들도 별다른 거리낌 없이 이 음식을 즐기게 됐다. 똠얌꿍의 인기를 타고 태국음식은 어느덧 이탈리아 프랑스 중국과 함께 세계 4대 음식에 오를 정도로 성장했다. 대표적 농산물 수출국인 태국은 일찌감치 자국 음식 세계화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태국음식이 해외에서 애용되면 식자재 수출도 자연스럽게 늘 것이라고도 봤다. 사실 태국 음식은 베트남전쟁 당시 휴양지를 찾은 미군에게 알려진 정도였다. 1999년 태국 문화부의 조사 결과 자국을 찾은 외국인들은 똠얌꿍을 포함해 카레요리 ‘깽 끼요 완 까이’, 볶음 쌀국수 ‘팟타이’를 좋아했다. 태국 정부는 2001년 태국음식세계화본부를 세우고 길거리 음식까지 모아 표준화, 매뉴얼화에 주력했다. 대중화에 성공한 음식은 부유층부터 파고들었다는 점을 고려해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심은 뒤 부유층부터 중산층으로 확산시키는 전략도 폈다. 그 결과 2002년 400곳에 불과하던 해외 태국 음식점은 2015년 1만5000곳으로 늘었다. 그렇지만 태국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브랜드 파워를 유지하려면 부단한 품질 관리가 필요했다. 태국 정부는 2007년 해외 유명 태국식당을 인증하는 ‘타이 실렉트(Thai Select)’ 제도를 추진했다. 음식 맛뿐만 아니라 인테리어, 서비스, 푸드 스타일링, 자선 활동까지 암행 점검을 실시해 인증서를 부여한 것이다. 이렇게 인증된 음식점도 3년마다 평가를 다시 받게 했다. 현재 세계 태국음식점의 10% 이하인 1264곳만이 이 인증을 받았다. 한국 정부는 2010년 한식 재단을 세우고 초대 이사장에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출신 인사를 앉혔다. 대통령 부인도 한식 세계화에 팔을 걷었다. 하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1만 곳을 웃도는 해외 한식당은 대부분 현지 코리아타운에서 한국 관광객들을 상대로 영업하고 있다. 외국인 입맛을 배려한 현지화 작업도 더디다. 물론 일부 한식당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한식에 익숙한 외국인은 여전히 많지 않다. 예산 탓할 일도 아니다. 태국 정부의 음식 세계화 예산은 거론하기 힘들 정도로 적은 액수이다. 대신 정권이 바뀌어도 꾸준하게 사업을 이어갔다. 태국음식이 해외에 퍼지면서 이 나라 식자재 수출도 연간 약 2조 원에 이르고 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으로 잔뜩 움츠러든 농가에 한식 식자재 수출은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 태국의 노하우를 한 수 배워야 할 때다.이유종 국제부 기자 pen@donga.com}
미국과 중국이 불법 해커 등 사이버 범죄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한 장관급 회담을 처음으로 열고 핫라인 설치 등에 합의했다. 중국 관영 차이나데일리는 궈성쿤(郭聲琨) 중국 공안부장이 1일 미국 워싱턴에서 로레타 린치 미국 법무장관, 제이 존슨 국토안보부 장관 등과 회담을 갖고 사이버 범죄 대응 방안에 합의했다고 2일 보도했다. 이번 장관급 회담은 9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진행된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이번 회담에서 앞으로 함께 대응할 사이버 범죄의 범위를 정하고 사이버 테러에도 함께 대처하기로 했다. 양국이 협력할 사안에는 중국 해커의 소행으로 보이는 미국 연방인사관리처(OPM)의 자료 유출 사건도 포함됐다. OPM 해킹은 조사를 통해 중국 정부가 지원한 해커의 공격이 아니라 일반적인 범죄사건으로 밝혀졌다고 차이나데일리는 전했다. 6월 발생한 OPM 해킹으로 전·현직 공무원과 공무원 가족들의 신상정보가 대량으로 유출됐으며 미국은 해킹 배후에 중국 정부가 관련돼 있다고 의심해 왔다. 양국은 사이버 범죄 공동 대응을 위한 핫라인 설치에도 합의했다. 또 사이버 범죄 대응과 관련해 직원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프로그램에도 의견을 모았다. 궈 공안부장은 회담에서 “사이버 범죄 대응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강조했다.이유종 기자 pen@donga.com}

프랑스 파리 테러범 중 유일한 생존자인 살라 압데슬람(26·사진)이 이미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시리아로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CNN은 지난달 30일 복수의 프랑스 정보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압데슬람이 시리아로 달아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시리아에는 파리 테러를 저지른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점령 지역들이 있다. 만일 압데슬람의 시리아 도주가 사실이라면 유럽 수사기관의 무능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테러 이후 프랑스 벨기에 독일 등 유럽 경찰들은 압데슬람에 대해 긴급 수배를 내리고 검거 작전을 펼쳐왔다. 벨기에 정보당국은 CNN에 압데슬람이 시리아로 향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그가 시리아에 도착했다는 확실한 흔적은 아직 없다고 밝혔다. 에리크 판데르 시프트 벨기에 연방검사는 “만약 CNN이 (압데슬람의 시리아 도주)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이를 입증해야 한다”며 “우리는 압데슬람을 열심히 추적 중”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와 벨기에 수사당국은 압데슬람의 시리아 도주와 관련해서 물증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그의 행방을 쫓고 있다. 벨기에 출신으로 프랑스 국적을 가진 압데슬람은 테러 직후 벨기에로 들어갔으나 이후 대대적인 검거작전에도 불구하고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압데슬람이 추가 테러를 모의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벨기에 수사당국은 지난달 21∼26일 브뤼셀에 최고 등급의 테러 경보를 발령하고 체포를 시도했으나 그를 놓친 바 있다.이유종 기자 pen@donga.com}
프랑스 파리 테러, 말리 호텔 인질극, 러시아 여객기 추락 등 최근 발생한 극단 테러의 근본 원인이 경제와 기후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테러를 방지하려면 경제 문제 해결이 더 중요하다고 22일 보도했다. WSJ는 유럽에서 성장한 가난한 이슬람 청년들이 급진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일자리 등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해야 테러 위협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불행히도 유럽 경제는 그리 밝지 못하다. BBC방송은 영국 공공정책연구소(IPPR)의 최신 보고서를 인용해 유럽이 영원한 경기침체에 빠질 수도 있다고 23일 보도했다. WSJ는 잠시 반짝했던 프랑스 경제가 파리 테러 이후 관광객 감소 등으로 다시 둔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극단 테러 원인 중 하나가 기후변화에 따른 심각한 가뭄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실제 중동 지역은 기후변화로 2006∼2011년 심각한 가뭄이 발생했다. 게다가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독재, 내전 등으로 정치 불안이 이어지면서 상황은 더 나빠졌다. 결국 시리아 국민 대부분은 전쟁 위협에 시달렸고 이들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로 변모하거나 난민으로 전락했다.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세계 최강 군사강국들이 엄청난 화력의 최신예 무기들로 이슬람국가(IS)에 대한 공세를 펴고 있지만 지상군 없이는 안 된다는 여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존 매케인 미국 상원 군사위원장은 19일(현지 시간) “미 지상군 1만 명을 투입하라”고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그는 방송 ‘프랑스24’와의 인터뷰에서 “공습만으로는 IS를 격퇴할 수 없다”며 “IS를 격퇴하려면 아랍 주요 국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프랑스 등 동맹군과 더불어 미 지상군 1만 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상군 투입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 온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강력한 압박으로 풀이된다. 오바마 정부에서 국무장관을 맡았던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 힐러리 클린턴도 입장이 바뀌고 있다. 그는 당초 미국의 지상군 파병에 일단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지상군의 역할 확대는 필요하다는 쪽으로 선회했다. 클린턴은 이날 뉴욕 미국외교협회 연설에서 “IS를 격퇴하려면 더 많은 지상군이 필요하다. 공습과 지상군을 효과적으로 결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IS는 유전(油田)이라는 자체 돈줄을 갖고 있는 전무후무한 테러조직인 만큼 돈줄을 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IS의 석유 판매를 막아 막대한 자금이 IS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방법들을 보다 강하게 추진한다고 밝혔다. 애슈턴 카터 미 국방부 장관은 19일 MSNBC방송에 출연해 “최근 시리아 IS 공습에 나선 미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IS 소유의 석유 트럭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연합군은 16일 A-10 공격기를 동원해 동부 도시 아부카말 인근 IS 기지를 공습해 IS의 석유 트럭 116대를 파괴했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 같은 공습으로 IS의 원유 생산이 급감하고 있다고 현지 주민들의 말을 인용해 19일 보도했다. 한편 IS의 위협에 대응하는 국제사회의 공조는 빨라지고 있다. 네덜란드 마르크 뤼터 총리도 “시리아 공습에 기여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밝혀 시리아 공습에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했다.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온라인을 이용하는 대원들을 통해 IS 내부 정보가 외부에 유출되는 상황을 막으려고 보안 기술을 가르치는 ‘24시간 온라인 상담데스크(help desk)’까지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NBC방송은 16일 미 육군 대테러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IS 고위 대원 5, 6명이 항상 대기하면서 대원들이 각국 정보기관의 해킹을 피하는 통신 암호 기술 등을 알려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온라인 상담 데스크들은 특히 보안에 소홀하기 쉬운 신입 대원들을 집중 관리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해킹 방지 ‘5대 가이드라인’까지 만들어 대원들에게 배포했다. 5대 가이드라인에는 ‘메신저에서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지 말 것’ ‘트위터 계정과 같은 이름으로 e메일 주소를 만들지 말 것’ 등 기본적인 해킹 방지 기술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7일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리처드 버 미국 상원 정보위원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파리 테러범들이 정보를 암호로 바꾼 뒤 수신자가 해독해야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단 대 단(End-to-end) 암호화’ 기술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시리아 등 30개 국가에 통신 지점을 설치해 직통으로 연락한다. 영국의 디지털 수사 전문가인 피터 소머 씨는 이날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IS는 잘 알려지지 않은 통신회사의 시스템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또 IS는 소셜미디어의 메신저를 ‘매우 안전’ ‘안전’ ‘보통’ ‘불안전’ 등 4등급으로 나눠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일런트서클, 레드폰, 시그널 등을 ‘매우 안전’으로 꼽았고 텔레그램, 위크르, 스리마, 슈어스폿은 ‘안전’ 등급으로 분류했다. 커버미, BBM, 아이메시지, 페이스타임, 행아웃, 페이스북 메신저는 ‘보통’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카카오톡과 라인, 위챗, 와츠앱 등에는 ‘불안전’ 등급을 매겼다. 한편 영국 일간 가디언 등 주요 외신은 17일 IS와의 전쟁을 선포한 국제 해킹 그룹 ‘어나니머스’가 IS 관련 트위터 계정 5500개 이상을 폐쇄시켰다고 보도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이날 어나니머스가 유럽 지역 IS 대원 모집인의 이름, 컴퓨터 인터넷주소(IP주소) 등의 구체적인 정보를 누출시켰다고 보도했다. 이번 사이버 공격은 16일 가면을 쓴 어나니머스 대변인이 유튜브에서 IS를 겨냥해 대량 사이버 공격을 예고한 직후 이뤄졌다.이유종 기자 pen@donga.com}

11월 8일 미얀마 총선에서 민주화운동의 기수 아웅 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제1야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승을 거두면서 반세기에 걸친 군부 독재가 종식될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 군부 독재를 경험했던 한국과 칠레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000달러를 넘었을 때 민주화가 가파르게 진행됐다. 소득이 너무 적으면 저항할 생각조차 생기지 않지만,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아지면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살아난다는 건 정치학의 기본 가설 중 하나다. 최근 미얀마는 연 8%대 높은 성장률을 보이면서 꾸준히 발전해왔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구매력평가지수(PPP) 기준으로 올해 미얀마의 1인당 GDP가 5164달러(약 599만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미얀마에 민주정권이 들어서면 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수치 여사의 미래가 보이는 것처럼 순탄하지만은 않다.‘대통령 위의 존재’미얀마 헌법에 따르면 NLD가 과반 의석을 확보해도 수치 여사는 대통령에 출마할 수 없다. 군사정부(군정)는 2008년 미얀마 헌법을 고쳐 남편과 자녀가 외국 국적인 국민의 대통령 후보 출마를 금지했다. 수치 여사를 겨냥한 조치다. 수치 여사는 영국인 학자와 결혼해 영국 국적의 아들 둘을 두고 있다. 이 때문에 수치 여사는 ‘대통령 위의 존재’로 국정을 이끌겠다고 밝혔다. 수치 여사는 총선 후 영국 BBC 방송과 첫 언론 인터뷰에서 “내가 실질적 대통령으로 모든 결정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만모한 싱 전 총리를 내세워 2004년부터 10년간 인도를 실질적으로 통치해온 소냐 간디 전 인도 국민회의당 대표의 사례처럼, 수치 여사가 내년 대통령선거(대선)에서 자신의 대리인을 NLD 후보로 내세우는 방법이 유력하다고 전망한다. 군 최고사령관 출신으로 수치 여사를 오랫동안 보좌해온 틴 우(88) NLD 명예의장, NLD 최고 전략가로 꼽히는 윈 흐테인(73) 중앙집행위원 등이 유력 후보로 꼽힌다. 사실상 수렴청정인 이런 방법은 헌법 위반 논란을 부를 수 있다. 수치 여사는 “이 문제에 대해 개방적 태도를 취하고 국민과 소통하면 다 잘 될 것”이라고만 말했다.수치 여사가 배후에서 수렴청정을 해도 군부 힘을 무시할 수는 없다. 내년 2~3월 중 치를 대선에서 군부와 상원, 하원은 각 1명씩 후보를 내세울 수 있다.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대통령에 선출되고 나머지는 부통령을 맡는다. 만약 수치 여사가 자신을 대리할 대선후보를 내세워도 군부의 지지를 받는 최소 1명의 부통령과 함께 정국을 이끌어야 한다. 게다가 개헌이 가능한 3분의 2 이상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면 미얀마 정국은 개헌 논의로 시끄러워질 공산이 크다. 군부가 이미 25% 의석을 차지하고 있어 현 여당은 8.3% 의석만 차지해도 개헌 저지가 가능하다.또 군부는 현행법에 따라 국방, 내무, 국경경비 등 3개 핵심 요직 지명권을 보유하며 국가 위기상황이라고 판단될 때 정부를 장악할 권한도 갖고 있다. 군부는 이번 선거 결과를 수용하겠다고 밝혔지만, 군정 시절인 1990년 치른 총선에서 NLD가 압도적 승리를 거뒀지만 묵살하기도 했다. 수치 여사가 향후 헌법 개정과 군부개혁에 나선다면 뒷짐을 지고 있던 군부 태도가 돌변할 가능성이 있다.미얀마 역사학자 탄트 민우는 미국 ‘뉴욕타임스(NYT)’를 통해 “NLD는 압도적 승리를 거두겠지만 군부와 불안정한 권력 분담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며 “정치뿐 아니라 금융, 경제 등 전반에 걸쳐 있는 중앙집권적 군부의 영향력은 상당한 도전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을 직감한 듯 수치 여사는 11월 11일 하원의원에 당선하자 즉시 테인 세인 대통령과 육군참모총장, 국회의장 등 3명에게 대화를 제안했다.수치 여사가 직접 국정을 이끌면 수면 아래 있던 민주화 투사에 대한 비판이 고개를 들 수도 있다. 1988년 이후 27년간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수치 여사는 누가 뭐래도 미얀마 민주화를 이끈 최대 주인공이다. 그러나 비폭력 저항과 인권 투쟁의 상징인 수치 여사의 정치적 역량에 대한 평가는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2012년 보궐선거로 하원에 들어가면서 ‘야심에 사로잡힌 현실 정치인’이라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한 게 대표적이다.비판의 큰 줄기는 수치 여사가 자신이 이끄는 NLD의 정치적 입지 확대를 목적으로 군부와 협력하고 로힝야족 등 소수민족의 인권 등에는 애써 눈감고 있다는 것이다. 남서부 라킨 주에 거주하는 로힝야족 130만 명은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민족이라고 불릴 정도로 오랜 기간 차별을 받아왔다. 라킨 주에서는 2012년 불교 민족주의자들과 로힝야족 무슬림 사이에 충돌이 발생해 20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난민 14만 명이 발생했다. 온전한 시민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로힝야족은 이번 총선에서도 공민권을 박탈당하는 등 완전히 배제됐다. 수치 여사는 이와 관련해 아직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아 어떤 식으로든 해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1988년 8월 반군부독재 시민혁명을 일으킨 대학생 세대와 연대가 이뤄지지 않은 것도 풀어야 할 과제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당시 시위에 참가한 유명 반체제 인사 중 상당수가 NLD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탈락했다. 수치 여사의 폐쇄성이 감지되는 부분이다.‘정치인 수치’에 대한 비난 목소리도그동안 수치 여사에 대한 공개적 비판은 금기시돼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미얀마 칼럼니스트 우 시투 아웅 민은 8월 NYT와 인터뷰에서 “(그의 독재적인 정치 결정 스타일로 인해) 그를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을 적으로 만들고 있다”며 “그는 전략적 사고가 부족하고, 똑똑한 정치인 축에는 들지 못한다”고 비판했다.경제성장과 관련한 수치 여사의 능력에도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NLD가 공약으로 내세운 경제정책을 제대로 이행할 능력이 있는지가 그 핵심이다. NLD는 그간 현 정부의 개방정책을 이어가겠다고 밝혔고 이번 총선에서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 공기업 민영화, 조세 시스템 개혁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수치 여사의 경제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일례로 수치 여사는 지난해 미얀마를 방문한 미국 자동차업체 대표단에게 갑작스레 사업모델을 바꿀 것을 제안해 주변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해외 석유기업 경영진에게는 미얀마 국영석유기업과 협력하지 말라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 기업 사이에서는 이미 수치 여사가 미얀마의 경제성장을 이끌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얘기마저 나온다.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 잡기도 필요하다. 민주화 기수인 수치 여사는 미국으로부터 상당 부분 도움을 받은 반면 미얀마 군부는 중국과 가까웠다. 하지만 야당 지도자가 아니라 통치자로 구실이 바뀐다면 국익을 위해 이들 강대국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 잡기가 필수적이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는 미얀마가 이번 총선을 계기로 이전과 달리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 관계를 개선한다면 전략적 공간과 자원을 모두 잃을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유종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pen@donga.com}
올해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대형 테러는 파리 20개 구 중 11구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89명이 숨진 바타클랑 극장을 포함해 13일 테러에서만 5곳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미국 유력지 뉴욕타임스(NYT)는 15일 파리 11구가 고급스럽고 다양한 문화가 녹은 ‘부르주아의 친밀감’이 느껴지는 동네로 자유분방한 토박이들이 사는 뉴욕 맨해튼의 ‘이스트빌리지’와 비슷한 곳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NYT 기자가 11구에서 만난 파리인들은 이번 테러를 “파리지앵의 삶에 대한 모독행위”라고 입을 모았다. 1월 발생한 시사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의 사무실도 파리 11구에 자리를 잡고 있다. 바타클랑 극장뿐만 아니라 카페 본비에르도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있다. 이번 테러는 올 1월 무장 괴한들의 총기 난사로 17명이 숨진 샤를리 에브도의 충격을 서서히 잊고 점차 안정을 되찾는 시민들에게 더 큰 분노를 안겨줬다. 영화감독이자 블로거인 마이 후아 씨는 “이곳이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려는 사람들도 북적이기 때문에 테러리스트들이 다시 노렸다”며 “그들은 샤를리 에브도 사건 이후에도 프랑스인들이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생물공학 분야에서 일하는 파리지앵 뱅자맹 하디다 씨(27)는 이번 테러로 19명이 숨진 술집 ‘벨 에키프’와 같은 파리11구 샤론 가 카페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었다. 그는 “젊은이들이 금요일 밤에 자유를 만끽하려고 이곳에 온다. 테러리스트들은 무방비 상태의 시민들을 공격했다”며 “인생의 즐거움을 향한 공격”이라고 말했다. 파리 11구는 수제화점, 아방가르드 갤러리, 레코드 가게, 레스토랑, 카페, 유대교 예배당 등이 모인 젊음의 거리다. 물질적 풍요와 문화적 풍요를 함께 누리려는 좌파 인사들인 ‘보보스’를 대변하는 곳이다. 하지만 부유한 사람들만 사는 곳이 아니라 다른 지역보다 훨씬 오래됐으며 저렴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전대미문의 6곳 동시다발 테러로 문화도시 파리는 삽시간에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변했다. 생존자들은 “도살장 같았다” “도처가 피바다였다”며 당시 처참한 상황을 전했다. 3개 팀으로 나뉜 테러범들은 거의 같은 시간대에 작전을 감행했다. 사전에 치밀한 계획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테러였다.○ 축구 경기장 세 차례 폭발 대참사의 출발점은 파리 동북쪽 외곽 생드니에 있는 축구장 ‘스타드 드 프랑스’였다. 마치 한일전처럼 프랑스인의 관심이 높은 독일과의 친선 축구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도 일찌감치 귀빈석에 자리를 잡았다. 전반전 시작 후 20분쯤 지난 오후 9시 20분경 경기장 밖에서 첫 번째 폭발음이 들렸다. 자살폭탄 조끼를 입은 테러범 1명이 경기장 입구에서 이뤄진 몸수색에서 발각되자마자 자살폭탄을 감행하면서 난 폭발음이었다. 올랑드 대통령은 이 사실을 경호팀으로부터 긴급 보고받고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안전지대로 몸을 피했다. 3분 후쯤 경기장 밖에서 또 한 번의 폭발음이 들렸다. 또 다른 테러범 한 명이 터뜨린 것으로 파악되나 정확한 경위는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고 30분 후쯤 경기장 인근 맥도널드 매장 주변에서 세 번째 폭발음이 터졌다. 이 폭발들로 행인 1명이 사망하고 테러범 3명이 자폭했다. ○ 술집 식당 연쇄 총격 경기장의 첫 번째 폭발과 거의 같은 시간. 경기장에서 남쪽으로 16km 정도 떨어진 자동차로 20분 거리의 파리 도심 10구(區)와 11구에서는 연쇄 총격 소리가 이어졌다. 시작은 10구 알리베르 가의 술집 ‘카리용’ 바였다. 오후 9시 25분쯤 차에서 내린 남성 두 명이 마스크도 쓰지 않고 평범한 복장을 하고 식당으로 걸어갔다. 누가 봐도 식당에서 밥을 먹기 위해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들은 식당 앞에서 AK-47 소총을 꺼내 들고 난사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술집 맞은편 캄보디아 식당 ‘프티 캉보주’에서도 총격이 울렸다. 두 곳에서 민간인 15명이 사망했다. 여기서 식사를 하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아가트 모로 씨(24)는 “175cm가량의 건장한 남성 두 명이 AK-47 소총을 쏘아대기 시작했다”며 “그들은 얼굴은 북아프리카 타입이었지만 수염도 기르지 않았고 옷차림도 정숙한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이로부터 다시 총성이 울린 곳은 ‘프티 캉보주’에서 2.4km 떨어진, 자동차로 7분 거리의 11구 샤론 가에 있는 술집 ‘벨 에키프’ 바였다. 테러범들이 식당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던 손님들에게 난사해 19명이 숨졌다. 동시에 여기서 좀 떨어진 퐁텐 오 루아 가의 피자집 ‘카사 노스트라’ 야외 테이블에서 식사하던 손님들도 총격을 받아 5명이 사망했다. 용의자 1명은 11구 볼테르 가의 식당 ‘콩투아르 볼테르’에서 자폭했다.○ “15초 마다 한명씩 죽였다” 오후 9시 40분쯤 울린 마지막 총성은 가장 처참하고 잔혹한 테러가 일어난 11구 볼테르 가에 있는 공연장 ‘바타클랑’이었다. 1월 테러가 발생했던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에서부터 500m가량 떨어진 이곳에서는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 록밴드 ‘이글스 오브 데스메탈(EODM)’ 공연으로 좌석 1500석이 꽉 차 있었다. 공연 45분을 넘기면서 무대가 뜨거운 열기로 달아오를 즈음 검은 옷을 입은 테러범 3명이 무대를 덮쳤다. 이들은 허공에 대고 총을 쏘아대며 프랑스어로 “너희 대통령 올랑드의 잘못이다. 프랑스는 시리아에 개입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소리를 질렀다. “신(알라)은 위대하다. 시리아를 위해”라는 아랍말도 터져 나왔다. 테러범들은 초반에는 관객들을 모아놓고 위협만 하다 두 시간가량 지난 뒤부터 학살극을 벌였는데 이는 축구장 테러가 실패하는 등 여타 테러 장소에서 기대한 만큼 사상자가 나오지 않자 단행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테러범들은 14일 0시 30분부터 10∼15분 동안 인질들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시작했다고 BBC방송은 전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인질들은 “테러범들이 ‘움직이면 쏜다’고 했다. 실제로 휴대전화가 울리거나 움직임이 포착된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다. 종교와 국적을 물은 뒤 15초마다 한 명꼴로 인간 사냥을 하듯 죽였다”고 증언했다. 겁에 질린 일부 관객들은 피바다가 된 객석에 엎드려 죽은 척을 하거나 스피커 뒤에 숨기도 했다. 칠레 국적인 다비드 괴팅거 씨(23)는 “테러범이 총을 겨누고 프랑스 사람인지를 물어봤다”며 “내가 ‘아니다’고 했더니 살려줬다”고 말했다. 프랑스 경찰이 진입한 것은 테러범들의 총기 난사 직후인 0시 45분쯤. 사망자는 89명에 달했다. 용의자 2명은 자폭했고 1명은 사살됐다. 정미경 mickey@donga.com·이유종 기자}

지구에서 39광년(약 370조 km) 떨어진 곳에서 금성을 빼닮은 행성이 발견됐다. 새로 발견된 행성은 크기, 대기권 형성, 질량 등에서 금성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 금성의 ‘쌍둥이 격’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이 행성은 지구와 닮은 점도 상당해 과학자들이 행성의 생명체 거주 가능성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AP통신과 CNN,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은 이 소식을 주요 뉴스로 전하며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행성 발견이 될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11일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카블리천체물리학우주연구소의 재커리 버타톰프슨 박사팀이 올해 5월 칠레 천문대에서 대형 천체망원경을 이용해 행성을 발견했다며 ‘글리제1132b(GJ1132b)’로 명명했다. 버타톰프슨 박사는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학센터의 데이비드 샤르보노 연구원 등과 함께 글리제1132b의 연구 결과를 11일 과학학술지 네이처를 통해 공개했다. 글리제1132b 행성은 태양의 5분의 1 크기인 적색 항성 ‘글리제1132’ 주위를 1.6일마다 한 바퀴씩 돈다. 행성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해 항성 주위를 도는 별이고, 항성은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별을 가리킨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다. 글리제1132b는 글리제1132와는 약 225만 km 떨어져 있다. 태양과 지구가 약 1억5000만 km 떨어진 것을 감안할 때 매우 가까운 거리다. 지구가 태양에서 받는 열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글리제1132에서 받을 수밖에 없다. 표면온도는 230도에 달할 정도로 매우 뜨겁다. 이 행성은 표면온도가 높아 물이 없으며 생명체가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다만 금성처럼 대기권은 존재한다. 표면온도가 높아 인간이 살기 어렵다는 점에서 금성(약 470도)과 닮았다. 버타톰프슨 박사는 MIT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뜨거운 행성에 수십억 년간 대기가 존재했다면 그것은 궁극적으로 생명이 존재할 만한 온도의 행성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리제1132b는 지구보다 1.2배 정도 더 커서 지름이 약 1만4800km에 이른다. 질량은 1.6배 정도 더 무겁다. 주성분은 바위와 철로 구성돼 있다. 또 지구에서 39광년 떨어져 있어 지금까지 발견된 지구와 비슷하다고 추정되는 행성들보다 훨씬 가깝다. 지구와 비슷하다고 추정되는 행성들은 대개 수백에서 수천 광년 떨어져 있다. 이 행성은 지구, 금성(지구의 0.95배)과 비슷한 점이 많아 과학자들이 행성의 생명체 존재 가능성을 연구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뎅∼.’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아뇨네에서 묵직하지만 청아한 종소리가 울렸다. 마리넬리 형제가 새로 제작한 종을 시험 삼아 치는 소리다. 마리넬리 가문은 11세기부터 교회 종을 만들기 시작해 무려 1000년 동안이나 교황청에 납품해 오고 있다. 피사의 사탑과 뉴욕 유엔 본부에도 걸려 있다. 형제는 직원 10명과 함께 전통 방식으로 연간 50개의 종을 만들고 있는데 심금을 울린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탈리아에는 마리넬리 같은 장인기업이 140만 개나 존재한다. 95%는 종업원이 10명 미만이다. 이탈리아는 약 290만 명이 이런 기업에서 일하며 국내총생산(GDP)의 12%를 차지한다. 마리넬리는 끊임없이 종소리를 연구한다. 종 형태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기 때문에 장인들은 음악과 디자인까지 배우며 최고의 종소리를 추구한다. 기술 전수도 생존의 주요 요소다. 어린 시절 마리넬리 형제에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주조 공장이 놀이터였다. 자연스럽게 벽돌 제작, 목수, 디자인, 조각, 판매 등의 일을 배우며 가업을 이어받았다. 자녀들도 나폴리미술아카데미 등에 다니며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3만7000여 기업이 문을 닫는 불황이 닥쳤을 때에도 마리넬리는 고객층을 다양하게 넓히는 것으로 활로를 찾았다. 교회 종에 안주하지 않고 직접 세계시장을 누빈 것. 그 결과 고객층을 일본의 삿포로스포츠센터까지 넓힐 수 있었다. 현재 매출액 중 수출 비중은 20%에 달한다. 불과 10년 전보다 4배 늘었다. 이탈리아 장인들은 중세 유럽의 길드와 같은 동업자 조직을 운영하며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일감도 분배한다. 생산시설을 확장하지 않아도 협업만으로 대량 주문을 받을 수 있다. 이탈리아에는 전국에 걸쳐 72곳에 장인기업 클러스터가 조성돼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가업승계 장인기업이 순조롭게 이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일정 요건을 갖추면 상속세를 면제해 주는 식이다. 금융기관들도 장인기업들이 공방 현대화, 증설 등을 추진할 때엔 저리에 돈을 빌려주고 있다. 이런 지원책으로 소규모의 장인기업들이 높은 기술력을 무기로 대기업과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었다. 장인이 사라진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 장인의 기술은 모든 산업 기술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뿌리가 부실하면 국가 산업은 제대로 성장하기 어렵다. 또 장인기업이 모인 동네 공장부터 살아나야 지역 일자리가 창출되고 중산층도 튼실해진다. 장인기업은 가족이 구성원이라 기업 가치관과 비전이 쉽게 공유돼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하다. 국가 경제 기여도가 적지 않다. 국민 소득이 늘면 명품 수요도 늘어난다. 고급스러운 장인의 기술이 사라지기 전에 이제 가업으로 이어가는 장인기업을 본격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근면성, 끈기, 도전정신이 강한 한국인에게 오랜 시간 이어가야 하는 장인의 업(業)은 해볼 만한 과제다.이유종 국제부 기자 pen@donga.com}
아웅산 수지 여사가 이끄는 미얀마 제1야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지지자들은 9일 아침 일찍부터 승리가 점쳐진다는 소식이 흘러나오자 당사(黨舍)로 몰려들어 환호했다. 당사 일대는 온통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도 9일 성명을 내고 “수십 년간 미얀마 국민이 보여준 용기와 희생이 결실을 맺었다”고 밝혔다.○ 축제 분위기 미얀마 AFP통신에 따르면 지지자들은 옛 수도 양곤의 NLD 당사 앞에 모여 수지 여사의 이름을 연호하는 등 승리를 확신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최종 개표 결과가 나오려면 15일은 되어야 한다고 했지만 미얀마 국민들은 이번 총선이 진정한 변화의 시작이 될 것이라며 낙관하는 목소리가 높다. 가판대에서 신문을 파는 산 윈 씨(40)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NLD가 이기고 있다니 정말 기쁘다. 선거 결과에 대한 대략적인 윤곽이 나오려면 며칠 더 걸리겠지만 그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택시 운전사 툰 킨 씨도 “세상이 변할 것이다. 수지 여사가 최선을 다해 국가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엔지니어 감독관을 하다가 은퇴를 했다는 조 윈 씨(67)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미얀마 군부가 처음 쿠데타를 일으켰던 1962년에 나는 고등학생이었다”며 “주변에서 투표하지 말라는 압력을 받긴 했지만 내가 던진 한 표가 세상을 바꾸는 데 한몫할 것이라는 생각에 NLD 후보를 찍었고 결과는 정말 감격스럽다”고 했다. 부모 남동생 3명과 함께 투표장을 찾은 텟 나잉 씨(23)는 “우리 가족은 모두 수지 여사의 열렬한 지지자들이다. 여사가 이긴다면 정말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27년간의 민주화 운동 ‘가시밭길’ 끝에 총선 승리를 이끌 것으로 유력시되는 수지 여사는 9일 오후 당사 발코니에 나와 환호하는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우리 후보들을 축하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내가 말하지 않아도 여러분은 모두 결과를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승리를 언급했다. 아직 최종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해서인지 여사는 “패한 후보는 승리한 후보를 인정해야 하지만 패한 후보를 자극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며 지지자들에게 “각자 집으로 돌아가 결과를 기다려 달라. 결과가 나오면 차분하게 이를 받아들이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수지 ‘지도자 꿈’ 성큼 9일 양곤 시내의 신문가판대에 진열된 조간신문 1면에는 일제히 야당 지도자 수지 여사의 사진이 실렸다고 CNN이 보도했다. 집권당 정부가 발행하는 일간 ‘미얀마의 새 빛’도 9일자 1면의 3분의 2를 할애해 ‘새로운 시대의 새벽, 수백만 명이 역사적 선거에 투표’라는 제목을 뽑고 ‘양곤이 유권자의 열망으로 활기에 넘치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AP통신은 “집권당 정부가 발행하는 신문에서 이런 지면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미얀마가 얼마나 바뀌고 있는지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얀마 선관위는 당초 9일 오전 9시에 투표 결과 집계 1차 발표를 하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오후 4시, 6시로 발표를 계속 미뤘다. 미얀마 현지에선 집권당과 군부가 어떤 방식으로 선거 패배를 수습하고 이후 정국을 운용할지에 대한 정치 협상 시나리오를 짜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흘러나왔다. 최종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만약 NLD 측 주장대로 선출직 의석 491석의 70% 이상을 얻는다면 단독 집권이 가능하고 군부 지배도 막을 내리게 된다. NLD는 이번 총선에서 단독정부 수립을 위해 필요한 상하원 과반수 의석 확보를 내심 목표로 세웠다. 그 마지노선이 선출직 의석 중 67% 확보였다. 애초 군부가 25%를 자동으로 가져가는 현 시스템에서 67% 의석 확보는 ‘불가능한 희망’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많았으나 뚜껑을 열어 보니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그만큼 미얀마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염원이 컸다는 점을 보여준 셈이다.○ “대통령 위의 존재가 되겠다” 미얀마 대선은 간접선거다. 상원과 하원 그리고 군부가 각자 후보를 내고, 이 중 한 사람을 의회에서 대통령으로 선출하기 때문에 의회 과반수 확보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하지만 수지 여사는 대선에 출마하지 못한다. 미얀마 헌법은 배우자가 외국인이거나 외국인 자녀를 둔 사람에 대해 대선 출마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총선 전 NLD 측은 이 조항의 개정을 끊임없이 요구했지만 집권세력은 거부했다. NLD가 과반 확보에 성공한다 해도 수지 여사 말고 다른 대통령 후보를 내세워야 할 것으로 보인다. 수지 여사는 5일 자택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가진 자리에서 “내가 직접 대통령이 되지는 못하지만 막후에서 대통령 이상으로 권력을 휘두르며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겠다”며 “내가 대통령 위의 존재가 돼선 안 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만약 여사의 행동이 현실화될 경우 법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편 KOTRA는 9일 NLD가 집권에 성공하면 경제 개혁 개방에 가속이 붙어 국내 기업의 진출 여건이 개선될 것이라며 그동안 선거로 인해 지연돼 온 각종 경제입법들이 시행되며 우리 기업의 진출 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이설 snow@donga.com·이유종 기자}
‘꽃’이 ‘총’을 이겼다.25년 만에 처음 치러진 자유총선거 개표가 진행 중인 미얀마에서 9일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자 ‘민주화의 꽃’ 아웅산 수지 여사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승리가 확실시되고 있다. 1962년 군부 쿠데타 이후 53년간 군정이 이어지고 있는 미얀마 역사에 새 이정표가 세워질 것으로 보인다. NLD는 이날 오후 8시 반(현지 시간·한국 시간 오후 11시)까지 개표가 완료된 상·하원 의석 36석 중 35석을 차지했다. 특히 NLD는 개표가 끝난 하원 의석 32석을 모두 석권했다. 여기엔 옛 수도 양곤의 지역구도 포함됐다. 지방의 4석 중 3석도 NLD가 챙겼다. NLD는 선출직 의석의 67% 이상을 얻어 상·하원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하면 단독 집권하게 된다. 이날 선거관리위원회 발표를 앞두고 NLD는 “전체 의석의 70% 이상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는 자체 전망치를 발표했다. 현지 언론 일레븐미디어그룹도 출구조사에서 응답자의 90%가 NLD를 택했다고 9일 보도했다. 미얀마타임스도 초반 집계에서 집권당인 통합단결발전당(USDP)이 텃밭인 행정수도 네피도에서까지 밀리고 있으며 거물 여당 정치인들이 곳곳에서 고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테 우 USDP 의장대리도 이날 로이터통신에 “우리가 졌다”며 “선거 결과는 기탄없이 수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USDP 대표를 지낸 투라 슈웨 만 하원 의장도 이날 오전 11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축하합니다(Congratulations)!’라는 메시지를 올리며 패배를 시인했다.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이번 총선으로 군부 독재가 끝날 수는 없겠지만 야당이 의회에 대거 진출해 미얀마도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한번 해보았으면 합니다.” 반세기 이상 군부가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미얀마에서 8일 25년 만에 자유 공정선거를 표방한 총선이 치러진 데 대해 국민이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제대로 ‘한 표’를 행사하자” AP통신 등에 따르면 미얀마 전역에 설치된 4만500여 개의 투표소에서 이날 오전 6시부터 오후 4시까지 상하원 의원 498명 등을 뽑는 투표가 진행됐다. 오전 8시를 넘기면서부터는 유권자들의 참여가 크게 늘어나 어떤 투표소에선 1000명 이상이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했다. 미얀마 전통 의상인 롱지를 입은 남녀도 있었고 아이들과 함께 가족이 투표하러 온 사람도 적지 않았다. 양곤에서는 보라색 투표 인주가 묻은 새끼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밝은 표정을 짓는 시민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손가락에 묻은 보라색 인주는 이미 투표를 마쳤다는 의미로 민주화에 대한 강한 열망을 보여준다. 투표소 앞에는 선거 관리를 위해 특별히 교육받은 특수경찰 3∼5명이 배치됐으나 폭력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으며 유권자들도 편하고 밝은 표정이었다고 현지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번 선거는 특히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기수이자 상징인 아웅산 수지 여사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1990년 이후 처음 참여하는 총선이어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수지 여사는 이날 오전 양곤 자택 인근 바한 구 투표소에 나와 미소를 지으며 유권자들에게 인사한 뒤 투표를 마쳤다. 기자들이 투표를 마친 여사에게 “소감이 어떠냐” “(당신이 이끌고 있는 야당이) 승리할 것 같으냐”고 질문 공세를 퍼부었지만 여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미소를 머금은 채 사라졌다. ○ 91개 정당, 후보 6000여 명 이번 선거는 당초 하원의원 330명과 상원 168명 등 상하원 의원 498명, 주 및 지역의회 의원 644명, 민족대표 29명 등 총 1171명을 뽑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반군과의 분쟁, 홍수 등으로 7개 선거구에서 투표가 취소돼 상하원 491명의 의원을 뽑을 예정이다. 선거에는 모두 91개 정당이 참여해 후보 6000여 명을 냈으며, 무소속 후보가 310명 출마해 모두 6300여 명이 입후보했다. 이렇게 정당과 후보가 난립하다 보니 집권당인 통합단결발전당(USDP)과 NLD 외에는 정당과 후보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유권자가 대다수다. USDP도 1130여 명, NLD도 1150여 명을 입후보시켰다. 유권자는 전체 인구 약 5300만 명 중 3500여만 명이다. 시민들은 이번 선거가 1990년 총선 이후 25년 만에 처음으로 누구라도 출마하고 싶은 사람은 자유롭게 정당에 가입해 후보가 될 수 있는 자유 총선거이다 보니 선거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온마르 씨(38·여)는 AP와의 인터뷰에서 “투표하러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돼 어젯밤에 한숨도 못 잤다”고 했다. 정치 불안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30대 후반의 한 택시운전사는 “야당이 이기면 군부가 불복해 정치 불안이 조성될 수 있고, 여당이 이기면 민주주의 진영의 불만이 커져 사회가 오히려 혼란스러워질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이런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미얀마의 개혁개방을 이끌고 있는 테인 세인 대통령은 8일 TV 방송에 나와 “선거 결과를 존중할 것인지에 대한 우려가 있다고 들었다”며 “정부와 군은 자유 공정 선거의 결과를 존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얀마 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 결과를 9, 10일 1차로 발표하고 검표를 거쳐 11월 중순 최종 결과를 공표한다.○ 야당의 대거 의회 진출만으로도 정치 지형도 바꿔 군부 독재 국가인 미얀마는 1990년 총선 때 가택 연금된 상태에서 수지 여사가 이끄는 NLD가 492석 중 392석을 얻는 압승을 거뒀지만 군부가 무효 선언을 했다. 군부는 2010년 다시 총선을 실시했으나 정부는 수지 여사의 출마를 불허했고 NLD는 부정, 관권 선거를 이유로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번 총선에선 NLD가 얼마나 의석을 확보하느냐가 최대 관심사다. 역사학자 탄트 미인트우는 “이번 선거는 미얀마가 민주화로 가느냐, 현 체제에서 머무를 것이냐를 보여주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했다. 현지 정치 전문가들은 USDP의 우세를 점치는 여론과 NLD, USDP 모두 과반 확보가 쉽지 않다는 여론이 있지만 NLD가 과반 확보에 실패하더라도 의회에 대거 진출한다면 미얀마 정치 지형도에 큰 변화가 올 것으로 보고 있다. NLD가 집권하면 1962년 네윈의 군부 쿠데타 이후 반세기가량 지속된 군부 지배가 막을 내린다. 하지만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의석의 25%가 무조건 군부의 몫으로 배정되기 때문에 이런 결과는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군부가 확보한 166석에다 집권 USDP가 선거에서 163석만 확보하면 군부와 USDP는 과반 의석을 확보하게 된다. 군부와 USDP가 과반 의석을 확보하면 테인 세인 현 대통령이 차기 대선 후보로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미얀마에서는 또 정권 인수 여부와 무관하게 국방장관, 내무장관, 국경안보장관 등 주요 장관은 군부의 몫으로 할당된다. AP는 “미얀마에서는 군부의 지지 없이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NLD가 과반 의석을 확보해도 수지 여사는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미얀마 헌법은 배우자와 자녀가 외국 국적인 국민의 대통령 후보 출마를 금지하고 있다. 수지 여사는 영국인 학자와 결혼해 영국 국적의 아들 2명을 두고 있다.이유종 기자 pen@donga.com}

브라질 현지 은행에서 대낮에 포스코건설 협력업체의 한인 직원이 괴한의 총에 맞아 숨졌다. 4일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세아라 주 카우카이아 시 소재 현지 은행에서 돈을 찾던 포스코건설 협력업체 직원 노모 씨(39)가 이날 오후 3시 무장 강도의 총에 맞아 숨졌다. 포스코건설은 브라질 북동부에서 제철소를 짓고 있다. 노 씨는 당시 다른 한국인 1명과 함께 회삿돈 18만 헤알(약 5400만 원)을 찾고 있었다. 이들은 현금을 가방 2개에 나눠 담고 사설경비업체의 무장 경비원 3명의 보호를 받으며 은행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때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무장 강도 3명이 노 씨의 현금 가방을 빼앗으려고 했고 노 씨가 저항하자 총을 쐈다. 강도들은 노 씨의 현금 가방 2개 중 1개를 빼앗아 달아났다. 은행 밖으로 도주한 강도들은 대기하던 차량에 현금 가방을 전달하고 자신들은 주차한 오토바이를 타고 달아났다. 은행 경비원들이 도주하는 강도들에게 두 번이나 총을 쐈으나 모두 빗나갔다. 하지만 강도들은 도주하다 긴급 출동한 경찰에게 붙잡혔고 경찰 수사에서 범행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경찰은 숨진 노 씨가 빼앗기지 않은 가방에서 7만 헤알(약 2100만 원)을 확인했으며 나머지 돈이 실린 공범 차량을 추적하고 있다. 포스코건설 관계자는 “브라질법인 등이 후속조치 지원반을 편성해 사건 수습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정면 대결로 4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제3차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의(ADMM-Plus)에서 공동선언문 채택이 무산되는 등 양국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AP통신과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들은 확대회의 마지막 날인 5일로 예정된 공동선언문 조인식이 취소됐다고 4일 보도했다. 아세안 10개국과 한국 미국 중국 등 8개국이 참여하는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의에서 공동선언문이 채택되지 못한 것은 2010년 확대회의 출범 이후 처음이다. 의장국인 말레이시아 정부 관계자는 “미국과 중국이 공동선언문에 ‘남중국해 분쟁 당사국 행동수칙(COC)’의 제정 문제를 반영할 것인지를 놓고 갈등을 노출했다”고 밝혔다. 말레이시아가 작성한 공동선언문 초안에는 “아세안 회원국과 중국이 ‘남중국해 분쟁 당사국 행동선언(DOC)’의 전면적이고 실질적인 이행과 COC의 조기 결론을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이 담겼으나 중국은 남중국해 자체를 언급하는 데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남중국해 분쟁과 관련해 당사국 해결을 원칙으로 내세우며 다자회의에서 논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미국은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표현을 담을 것을 요구했다.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일본 필리핀 등과 연합전선을 구축했지만 캄보디아 등이 중국을 지지하는 등 각국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로이터통신은 미 국방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중국이 남중국해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도록 로비를 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중국은 유감을 표명하며 사실상 미국과 일본을 겨냥해 기존 합의를 무시하고 회의에서 논의되지 않은 내용을 선언문에 넣으려고 했다고 비난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이날 카터 장관과 창완취안(常萬全) 중국 국방부장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본회의 연설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는 남중국해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함께 항행과 상공 비행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중국을 방문 중인 해리 해리스 미 태평양사령관은 3일 베이징대 스탠퍼드센터 강연에서 “미군은 국제법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언제 어디서든 작전을 수행할 것이며 남중국해도 예외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중국군의 2인자 격인 판창룽(范長龍)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은 해리스 사령관을 만난 자리에서 “잘못된 짓과 위험한 행동을 중단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한편 한국과 중국은 양국 국방부 간 핫라인을 조속히 개통하기로 했다. 한 장관은 이날 창 부장과 양자회담을 갖고 양국 국방·군사교류 협력 방안에 관한 의견을 교환했다. 한 장관은 양자회담 이후 “양국 국방부 간 직통전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를 조속히 개통할 수 있도록 하자고 의견을 교환했다. 중국 측에 우발적 충돌사고를 막기 위해 양국 해군과 공군에 핫라인 각 1개 선을 증설하자고 제안했다”고 전했다. 한중 양국은 2008년 11월 해군과 공군의 사단 및 작전사령부급 부대에서 직통전화를 설치해 운용하고 있다. 해군 2함대는 중국 최초의 항공모함 랴오닝함이 배치된 칭다오의 북해함대사령부의 작전처와 핫라인을 구축했고 공군 중앙방공통제소는 중국 지난군구 방공센터와 핫라인을 설치해 둔 상태다. 해군은 월 1회, 공군은 주 1회 통신망을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 국방부 간 핫라인 개통에 따라 군사교류도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 장관은 이날 창 부장과의 회담에서 현재 진행 중인 국방군사 교류를 심화하기로 의견을 모았다.이유종 pen@donga.com·정성택 기자}

성인 여성 모습의 ‘로봇 여배우’가 주연을 맡은 영화가 처음으로 나왔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2일 ‘제미노이드 F’라는 이름의 안드로이드(인간처럼 생긴 로봇)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 ‘사요나라’가 21일 일본에서 개봉된다고 보도했다. 영화 사요나라는 2011년 3월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제미노이드 F는 끝까지 자신의 주인 곁을 지키는 로봇 레오나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제미노이드 F는 로봇과학자로 유명한 이시구로 히로시 오사카대 교수가 만든 것으로 하얀색 고무 피부와 생머리를 가진 여성 로봇. 가격은 약 1억2600만 원에 이른다. 미소를 짓거나 얼굴을 찡그리는 등 표정 연기가 가능하다. 또한 입을 움직여 말을 하거나 노래를 부를 수도 있다. 좀 떨어진 거리에서 보면 실제 여성으로 착각할 수 있을 정도로 외모가 사람과 흡사하다. 다만 걸을 수는 없어서 영화에선 휠체어를 타고 등장한다. 노트북을 통해 원격조종으로 연기를 펼친다. 현재까지 영화에 로봇이 출연한 사례는 매우 많다. 하지만 대부분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해 로봇 이미지를 만들거나 배우가 분장해서 로봇 역할을 해냈다. 데일리메일은 안드로이드가 직접 출연한 영화는 처음이라고 전했다. 제미노이드 F는 이미 연극에서 연기 실력을 쌓은 6년 차 경력 배우다. 2010년 극작가 겸 연출가 히라타 오리자의 동명 연극 사요나라에 출연했고 2013년에는 내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영화 사요나라를 만든 후카다 고지 감독은 최근 도쿄국제영화제에서 “일반 배우와 작업하는 것보다 제미노이드 F와 작업하는 게 더 쉬웠다”면서 “밥을 먹거나 수면을 취하지 않아도 되고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이유종 기자 pe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