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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한 ‘우리 이니’가 터프한 푸틴에게 “연배도 비슷하고 성장 과정도 비슷하고 기질도 닮은 점이 많아서 많이 통한다고 느낀다”고 했다. 지지자들은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다. 굳이 찾자면 비슷한 점이 없진 않겠지만 인권변호사 출신 문재인 대통령의 기질이 소련 정보기관 출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닮았을 것 같지가 않다. “북한에 원유 수출 않겠다”는 동의를 얻어내고 싶었던 간절함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1907년 고종의 밀사 이준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로 갔다. 1897년 정유(丁酉)년 음력 9월 17일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기까지 러시아공사관은 1년간 ‘망명처’를 제공해 해양세력 일본의 팽창을 견제했다. 어쩌면 문 대통령은 중국 대신에 같은 대륙세력인 러시아가 북한 김정은을 제어해줄 것으로 믿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북한만 핵을 포기한다면, 우리 철도와 시베리아 열차 연결을 시작으로 한반도는 다시 ‘유라시아 대륙과 해양을 이어주는 통로’가 될 것이라고 문 대통령은 6일 신(新)북방정책의 비전을 발표했다. 귀국한 대통령이 8일 “현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라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완료에 대한 입장을 내놓았다. 국민에게 밝힌 것이라지만 중국과 한편이 돼 쌍중단(雙中斷·북한 도발과 한미 연합 군사훈련 동시 중단) 쌍궤병행(雙軌竝行·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평화체제 협상 동시 추진), 북한의 요구를 그대로 읊은 러시아에 대놓고 한 입장 표명으로 보인다. 이제라도 문 대통령이 중-러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났다면 그야말로 전화위복이다. 한반도를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각축장으로 해석해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의 극찬을 받았던 책이 배기찬 당시 비서관이 쓴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였다. 이번 대선에서 문캠프의 안보상황단에 참여했고 유럽연합(EU) 특사로도 뽑혔던 그는 “패권국가의 동향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민족의 흥망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00여 년 전 고종은 패권도전국 러시아에 의지해 실패를 자초했다. 그때 패권국 영국의 동맹으로, 지금은 미국의 동맹으로 알뜰히 국익을 확보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다시 유라시아 패권을 꿈꾸는 러시아를 미국이 경제 제재하는 상황에 한-러 경제협력은 한미동맹 균열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고 배 특사가 진언은 안 했는지 의문이다. 사드 문제도 문 대통령은 민족사, 문명사 차원에서 봐야 한다고 대담집에서 밝혔다. 구한말 한반도를 놓고 해양세력 일본이 대륙세력 중국 및 러시아와 청일전쟁(1894년) 러일전쟁(1904년)을 일으켰듯이 사드는 해양세력 미국과 대륙세력 중국-러시아의 충돌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사드 배치를 연기시킨 진짜 이유다. 문캠프의 상임고문이었던 한완상 전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도 2016년 한 기독교 잡지에서 “사드로 인해 한반도가 화약고가 될까 걱정스럽다”고 구체적인 반미사관(史觀)을 드러냈다. 일본보다 더 큰 해양세력인 미국이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참전한 대륙세력 소련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지도 위에 38선을 그어 한반도가 분단됐다며 “학교에서 이런 역사적 사실을 안 가르치니 우리 민족은 억울한 분단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산다”고 했다. 그럼 소련이 한반도 전체를 점령해 김일성 왕조국가를 세웠어야 억울하지 않겠단 말인가. 한반도가 대륙과 바다에서 끊임없이 도전을 받아왔다는 ‘반도의 숙명론’은 제국주의 일본이 이용한 식민사관이기도 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2007년까지 127회의 전쟁을 분석한 경희대 지상현 교수의 2013년 논문에 따르면 ‘반도국이 비(非)반도국에 잦은 침략을 당한다’는 건 역사적 사실과도 어긋난다. 무엇보다 중국과 러시아의 전체주의적, 팽창주의적 속성을 꿰뚫고 미국과 동맹을 맺어 대한민국을 대륙지향 국가에서 개방과 개혁의 해양세력으로 문명사적 대전환을 이룩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혜안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핵전략은 10년 전과 무섭게 달라졌는데도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에 전면 퍼주기를 약속한 2007년 10·4선언 같은 ‘고장 난 레코드판’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대륙세력의 땅이었던 한국을 대륙에 돌려주고 남중국해를 차지하는 밀약을 중국과 맺을지도 모를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지자를 배반하는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면서 “대통령으로서 회피할 수 없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의 안보에 관해선 문 대통령도 후손에 죄짓지 않을 선택을 해주기 바란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청와대 사람들은 좋겠다. 매일 야근을 하더라도 9급 공무원만 될 수 있으면 원이 없겠다는 청춘이 줄을 섰는데, 연차휴가 잘 쓰고 매주 수요일 ‘가정의 날’ 칼퇴근 할수록 성과점수를 더 준다니 ‘헤븐(heaven·천국) 조선’이 거긴가 싶다. 지난 주말 여당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소통, 탈권위, 공정 등 가치의 문제는 우리가 잘할 수 있고 원래부터 우위에 있었으며 DNA도 강점”이라고 했다. 진보적 가치로 뭉친 사람들은 이슬만 먹고 살 줄 알았다. 다주택자들을 투기세력 취급하며 “사는 집 아니면 파시라”더니 청와대 핵심 참모진 14명 중 절반이 집이 두 채 이상이다. 재산도 평균이 19억7892만 원으로 박근혜 정부 때의 첫 참모진(10명·평균 18억2574만 원)보다 부자다. 이명박(MB) 대통령 퇴임 직후 공개된 청와대 고위직 11명의 평균(20억5000만 원)과 별 차이도 안 난다. 청와대 첫 인사 때 재산 평균치가 35억 원이어서 ‘강부자(강남부자) 정권’으로 낙인찍힌 MB 사람들만 억울할 판이다. 문재인 청와대의 부(富)를 폄훼할 생각은 없다. 재산 형성 과정에서 불법이나 부도덕한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재산의 많고 적음으로 비난받아선 안 된다고 본다. 믿기 싫은 일이지만 인류 역사에서 부의 집중, 불평등의 증가는 지극히 전형적인 현상이었다. 역사학자 윌 듀런트가 “부의 집중은 (다른 인자들이 동일하다면) 도덕과 법이 허용하는 경제적 자유에 비례하고, 최고의 자유를 허용하는 민주주의는 부의 집중을 가속화한다”고 ‘역사의 교훈’에 썼을 정도다. 그렇다면 외려 우리나라의 경제적 자유와 민주주의 만발에 춤을 출 일이다. 가난한 이들의 불만과 수적 강세가 임계점에 달하면 역사에서 부를 재분배하는 정권, 또는 가난을 재분배하는 혁명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부를 재분배하는 정권을 자임한다. “한국의 불평등의 근원은 재산의 격차보다는 소득의 격차”라며 재벌 대기업을 주범으로 지목한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의 일갈대로(그가 53억7000만 원 상당의 주식을 포함해 93억 원의 재산을 공개한 사실은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 초대기업과 부자 증세, 재정 확대를 통해 부를 재분배하는 ‘소득 중심 성장’으로 양극화가 제발 극복되기를 바란다. 다만 대통령이 ‘촛불 혁명’을 강조할 때마다 가난을 재분배하는 혁명으로 끝나지 않을까 우려스럽긴 하다. 석기시대부터 최근 역사를 통틀어 평화적이고 점진적이며 모두가 동의하는 방식으로 부를 재분배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고 미국 스탠퍼드대 월터 샤이델 교수는 최근 저서 ‘위대한 평등주의자: 폭력과 불평등의 역사’에서 지적했다. 불평등을 죽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전쟁으로 부를 파괴하거나 아니면 100년 전 볼셰비키 혁명처럼 피를 봐야만 한다는 것이다. 샤이델이 이런 파국적 결말 없이 평등을 이룩한 모범사례로 우리나라를 꼽는 대목에서 나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한국전쟁 전에 농민들이 북한 공산주의에 흔들릴 것을 우려해 평화적으로 농지개혁을 한 결과였다며 그는 ‘엘리트 계층이 솔선수범하는 개혁’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을 지낸 주대환도 우리나라 건국과 동시에 이뤄진 농지개혁 덕분에 우리는 평등이라는 DNA를 갖게 됐다고 ‘시민을 위한 한국현대사’에서 강조한다. 농림부 장관을 죽산 조봉암에게 맡긴 이승만 초대 대통령, ‘유상몰수 유상분배’이되 소작농들이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유리한 조건을 주고 지주들은 국채를 받도록(결국 6·25전쟁으로 거의 휴지 조각이 됐다) 명분보다 실질 위주로 설계한 죽산, 그리고 농지개혁을 대세로 받아들여 중소 지주들까지 따르게 이끈 당시 최대 지주이자 한민당의 실질적 오너인 인촌 김성수 등이 오늘의 한국 경제 토대를 다졌다는 분석이다. 진보의 가치가 아무리 우월하다고 해도 우리는 역사 앞에 겸손할 필요가 있다. 청와대 오찬 자리에서 문희상 의원이 “잘하고 있을 때 조심해야 한다”며 교만을 경계한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청와대를 비롯한 진보세력이 모범을 보일 것은 연차휴가, 칼퇴근의 꽃놀이가 아니라 공무원연금 같은 특권이라도 내려놓는 희생적 자세다. 잘나갈 때 조심하지 않았던 자유한국당은 지금껏 기득권을 누려온 보수세력과 함께 상속세 제대로 내기 운동이라도 벌였으면 한다. 엄혹했던 시절 건국의 주역들도 해냈던 일을 지금 훨씬 잘살고 있는 후손들이 못 할 리 없다.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서울 불바다’ 같은 북의 위협을 우리는 공갈로 친다. 불바다에 비하면 미국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는 별것도 아닌 듯한데 북한은 덜컥 괌 포위공격을 예고해 버렸다. 우리에겐 익숙해진 지금의 북핵 위기가 미국에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래 가장 심각한 위기라는 지적이다. 엉클 샘의 턱밑에 소련 탄도미사일을 배치해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던 쿠바 사태처럼 엄중한 상황이라는 거다. 진단은 같지만 미국도 좌파냐 우파냐에 따라 해법이 다르다는 건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민주당 소속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 국방장관을 지낸 리언 패네타는 11일 “그 레토릭이 상황에 기름을 붓고 있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했다. 미국은 현재 외교적 막후채널을 통해 대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게 CNN 보도다. 그런데 트럼프 때문에 북한이나 남한이 오판해 미국을 한반도 전쟁으로 끌어들일까 우려스럽다고 패네타는 걱정했다. 공화당 소속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 유엔 대사를 지낸 존 볼턴은 북한 김정은을 비난한다. “뭘 결정하려는지 미국이 확신할 수 없다는 게 군사행동을 취해야 할 이유”라며 대북(對北) 공격은 빠를수록 좋다고 했다. 지난 25년간 대화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자는 민주당 때문에 이 지경까지 왔다는 비판도 빼놓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쿠바 위기를 언급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주로 대화를 통한 해결을 주장하는 진보적 인사들이다. 그만큼 위중해서라기보다 막후채널에 주목한다. 1962년 10월 쿠바에 소련이 핵미사일기지를 건설한다는 보고를 받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 공습을 외치는 군부 강경파를 물리치고 비밀협상으로 해결책을 찾았다는 것이다. 당시엔 미국이 소련을 굴복시킨 것으로 보였지만 그건 거죽일 뿐이다. 소련이 쿠바 미사일을 철수하는 보상으로 터키와 이탈리아에 배치된 미군의 주피터 핵미사일을 철수해 주는 비밀협약의 존재가 확인된 건 1989년 케네디 스피치라이터의 증언을 통해서였다.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는 “쿠바 위기를 종식시킨 역사의 교훈을 우리나라 대북정책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1년 전 칼럼에 썼다. 최근 정의당 김종대 의원도 “쿠바 위기는 막후대화채널을 통한 빅딜로 풀렸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또는 한국이 중국이나 북한과의 막후채널을 통해 북핵 폐기도 아닌 동결과 평화협정, 이에 따른 주한미군 철수를 주고받는 빅딜이 필요하다는 소리로 들린다. 한미동맹도 시대에 따라 조정돼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핵을 지닌 북한과 평화체제를 이루는 것이 더 정의롭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때 케네디는 동맹을 배신하는 일임을 알면서도 대(對)소련 방어를 위해 설치했던 핵미사일 철수를 터키 정부와 논의하지 않았다. 1963년 4월 군사적 가치가 없어졌다며 미사일을 철수한 이듬해 앙카라의 소련대사관에서 미-소 비밀협상이 존재했다는 정보가 유출됐지만 두 나라는 한사코 부인했다. 터키의 뿌리 깊은 반미 감정은 쿠바 사태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럼프도 11일 언급을 거부했던 ‘막후채널’의 존재가 목에 걸린 가시 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미 백악관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과 통화하고 단계별 조치들을 긴밀하고 투명하게 공조한다는 약속을 재확인했다고 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단계를 말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지금 막후채널이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 중국과의 비밀협상으로 북핵 동결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철수 정도가 아니라 한미동맹 해제를 맞바꾸는 것은 아닌지, 주한미군을 철수하면서 다른 이유를 대면 어떻게 할 것인지 모골이 송연하다. 비밀협상만 쿠바의 교훈이 아니다.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2012년 포린어페어스에 쓴 ‘쿠바 미사일 위기 50년’에서 “전쟁, 심지어 핵전쟁을 각오하지 않으면 적에게 또 당한다”고 강조했다. 북에서 핵도발을 할 때마다 “그래도 대화…”를 외치며 퍼주지 못해 안달하는 이른바 민주정부를 그들이 어떻게 볼지 뻔하다. 볼턴이 주장하듯 김정은은 이러다 미국에 공격받고 죽겠다는 위기감이 턱에 받쳐야 북핵 해결을 논의하는 테이블로 나올까 말까다. 전쟁을 원하는 한국인은 없다. 그러나 전쟁을 각오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터키처럼 배신당하고, 북한의 인질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어떤 쿠바식 해결을 원하는가.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6·25 때 주먹밥도 아니고, 황태절임을 먹으면서 ‘고난 극복’의 메시지를 알아낼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28일 대통령과 기업인들의 만찬을 기획한 청와대도 그게 걱정됐던 모양이다. ‘셰프님 말씀’ 식순에 따라 등장한 임지호 셰프는 “황태가 추운 겨울에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만들어진 재료”라며 “사는 게 다 어렵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서로 화합했으면 좋겠다”고 심오한 의미를 설명했다. “오호, 우리 셰프님은 음식 하나하나마다 다 뜻이 담긴 거예요?” 반색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보며, 요리사 섭외를 비롯해 행사를 진행한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은 모든 어려움이 녹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가 여성 비하 책을 썼다는 이유로 해임 요구가 거세다. 맞아 죽을 각오로 말한다면, 탁현민이 10년 전 에세이집에서 무슨 표절을 한 것도 아니고 야한 성의식을 글로 표현했다고 공직 박탈을 당해야 하는지 나는 의문이다. 도덕성을 코에 걸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 성의식 비뚤어진 행정관이 웬 말이냐는 비난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인사청문회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도덕성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수준임이 드러났다. 양성평등 정신에 어긋나는 책이라지만 탁현민은 일부 내용이 허구이고, 반성하고 있다고 수차 해명한 바 있다. 과거의 음심(淫心)과 표현이 마음엔 안 들지만 사상 검열을 금지한 헌법정신과 맞는지는 따져볼 일이다. 당연히 문 대통령도 탁현민을 해임할 생각은 없는 듯하다. 2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선 전날 치른 ‘100대 국정과제 정책콘서트’를 언급하며 “전달도 아주 산뜻한 방식으로 됐다”고 이례적 극찬을 했다. 글로벌 지식강연 테드(TED)처럼 발표자들의 시선과 손동작까지 세심하게 연출한 탁현민에게 공개리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이처럼 탁월한 연출력을 가졌기에 탁현민은 청와대에 있어선 안 된다고 나는 본다. 쇼에 신경쓰느라 본질은 놓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금쪽같은 시간에 몇 번씩 리허설을 시킨 것은 이 정부 들어 첫 청와대 생중계행사여서라고 치자. 하지만 그 시간은 100대 국정과제 선정이 제대로 됐는지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고민했어야 할 시간이다. 북한이 문 대통령의 대화 제의는 들은 체도 않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쏴대는데 국정목표 다섯 번째인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무슨 수로 실현할 건지, 대체 경제통일을 할 특단의 방법은 있는지 발표자는 설명하지 않았다. 청와대 영빈관을 메운 관계자들도 탁현민이 연출했던 문재인의 자서전 ‘운명’ 출간 기념 북콘서트(2011년)나 ‘나는 꼼수다 콘서트’(2012년)의 청중처럼 박수 치며 감탄했을 뿐이다. ‘촌스러운 선거캠페인’을 바꿔보겠다는 탁현민의 욕심을,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공연 기획·연출을 통해 세상에 기여하려는 충정을 이해한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뒤 다신 안 볼 것 같았던 후보들을 호프집에 앉히고는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달라”며 화기애애한 장면을 찍은 뉴스를 보면, 탁현민의 연출력에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다. 대통령이 후보였을 때부터 누구를 만나 어떻게 악수할 건지 세세하게 장면을 만들고 메시지를 날리며 감동을 자아낸 사람이 탁현민이라는 정평이다. 그러나 2015년 미국 찰스턴 총격사건의 희생자 추도식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나직하게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른 것은 연출이 아니었다. 오바마의 사전 귀띔에 아내와 측근들이 반대했는데도 진정 부르고 싶어 불렀기에 감동을 준 것이다. 탁현민이 더는 대통령 곁에 있어선 안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황태절임에서 메시지와 감동을 전달하려는 판에 대통령이 와이셔츠 차림의 수석들과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들고 청와대를 산책하는 모습은, 5·18기념식에서의 눈물은, 유가족과의 따뜻한 포옹은 연출이 아니었는지 더럭 의심스러워진다. 모든 정치적 행사를 드라마처럼 연출했던 히틀러나 괴벨스 얘기는 꺼내기도 싫다. 문 대통령의 진정성은 연출이 드러나지 않아야, 아니 없어야 국민에게 전달된다. 탁현민 없이는 ‘친구 같은 대통령’의 이미지가 나오지 않는다면, 이미지가 잘못됐거나 청와대가 잘못됐다는 얘기다. 2012년 총선 직전 ‘나꼼수 막말 파문’이 터졌을 때도 당시 문 후보는 김용민 후보를 싸고돌아 정치적 판단을 의심받은 적이 있다. 나꼼수를 기획해 민주당 총선 패배에 일조했던 탁현민은 대통령을 위해서라도 청와대를 떠나는 게 도리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한 공시족(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 카페에 들렀다 혈압이 오르는 경험을 했다. 40대 초반이라는 고양시 8급 공무원이 “야근하다 잠 와서 30분 동안 모든 질문 답함”이라며 ‘자유수다’를 시작한 것이 평일인 13일 오후 8시 36분. 야근이 많은가, 동사무소와 시청 중 어디가 더 편한가…주로 이런 질문에 야근 안 많고 요새 눈치 안 보는 분위기다, 사기업 경험이 있어 둘 다(동사무소와 시청) 편했다… 한가한 문답끝에 공무원이 퇴장한 시각이 오후 10시 56분이었다. 그가 친절하게 알려준 9급 공무원 야근비가 시간당 8000원이다. 소상공인들이 경악을 하는 최저임금 시급 7530원보다 많다. 오후 9시도 안 돼 졸린다며 인터넷 수다나 떨다 내가 낸 피 같은 세금으로 야근수당 챙기는 공무원도 있는데, 새 정부는 1만2000명이나 더 뽑겠다며 시험 치는 비용만 80억 원을 추경에 포함시켰다. 우리 집도 청년 백수가 있어 ‘일자리 대통령’을 자임한 문재인 대통령의 일자리 우선 정책에 쌍수 들어 환영하는 바다. 그러나 ‘혈세로 공공 일자리 81만 개’는 당장의 역효과뿐 아니라 나라와 후손에 두고두고 부담을 안긴다는 점에서 나는 반대다. 우선 첫 단추부터 잘못됐다. 대선 후보 시절 문 대통령은 “공공 부문 일자리가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1.3%에 비해 우리는 7.6%밖에 안 된다”며 OECD 평균의 반으로만 높여도 일자리 81만 개가 나온다고 공약 1호를 설명했다. 그러나 13일 OECD가 발표한 ‘한눈에 보는 정부 2017’에 따르면 한국의 공공 일자리 비중은 7.6% 그대로지만 OECD 평균은 18.1%(2015년 기준)로 줄었다. 대선 캠프가 ‘한눈에 보는 정부 2015’를 놓고 공약을 짰다는데 2년간 다른 나라들은 공공 개혁에 박차를 가했던 거다. 더 눈여겨봐야 할 점은 일본의 공공 일자리 비중이 6%이고 독일도 10.6%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그러고도 정부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일본 36%, 독일 55%로 우리의 24%보다 높다(OECD 평균 42%). OECD 평균과 정확히 일치하는 18%의 공공 일자리를 완비한 그리스의 서비스 만족도가 13%에 불과하다는 건 공공 일자리 확대와 정부 능력은 별개임을 입증한다. 공공 부문 확대가 민간 고용의 마중물이 되는 것도 아니다. 특히 공공 부문에 성과주의와 직무 기반 노동구조가 갖춰지지 않을 경우 민간 일자리를 잡아먹을 뿐이라고 경제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공공 일자리 1개 생길 때 민간 일자리 1.5개가 감소한다는 연구도 있다. 당장 웬만한 기업에서 간신히 마음잡고 일하던 청년들이 노량진 공시학원과 신림동 공시촌으로 진격하고 있다. 그리스와 멕시코 등 6개국만 빼고 OECD 회원국마다 성과연동급제를 활용 중인데 이 정부는 거꾸로 가는 형국이다. “불평등과 양극화 등 국가 위기의 근본 원인은 바로 좋은 일자리의 부족”이라는 대통령의 인식에 동의한다. 우리나라 소득 상위 10%(월 416만 원)가 전체 소득의 거의 절반을 차지해 미국 다음으로 불평등하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이런 불평등의 근본 원인이 대기업에 있다고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은 저서 ‘왜 분노해야 하는가’에 썼다. 이른바 진보 학자들이 공(公)귀족에 대해선 한마디도 않는 건 비겁하다고 본다. 공공노조가 속한 민노총 조합원의 2016년 월평균 임금총액이 420만 원, 올해 공무원 기준소득월액 평균은 무려 510만 원이다. 혈세로 봉급 받는 이들 상위 10%의 금밥통 세력이 성과 걱정, 해고 걱정 없이 봉건적 특권을 누리겠다는 대(對)국민 갑질이 한국 경제의 근본적 문제인 것이다. 일자리 격차를 줄이겠다고? 대통령부터 공무원 임금 자진 삭감하시라. 2017년 공무원 인건비 33조4000억 원에서 20%만 삭감해도 6조6800억 원이 생긴다. 이번 추경의 절반 규모니 비정규직, 중소기업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 지원은 너끈할 터다. 차제에 1400조 원 국가 부채의 주범인 공무원연금도 국민연금과 통합·개혁하면 사회 통합은 물론 공시족 쏠림 현상도 차차 잦아들 게 틀림없다. 문제는 ‘5대 비리 인사 배제 원칙’ 빼고는 대선 공약을 신성불가침처럼 아는 문 대통령이 공약 1호를 바꿀 수 있느냐다. 규제프리존 같은 규제 개혁으로 바꾸면 세금 안 들이고도 민간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지만 신의 직장에서 노니는 브라만(사제계급)에게는 규제가 성배(聖杯)다. 종교 같은 이념 때문에 성배는 못 건드리고, 민노총 한국노총의 크샤트리아(무사계급)는 ‘대선 빚’ 무서워 못 건드린다면 문 대통령은 나머지 국민을 수드라(피정복민)로 만든 한국판 카스트제 대통령으로 기억될지 모를 일이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도검(刀劍) 마니아들은 다마스커스 검을 안다. 중세 유럽 때 십자군 기사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는 무슬림 전사들의 ‘악마의 칼’이다. 17세기까지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집중 생산된 특유의 줄무늬가 있는 칼인데 지금도 제조법을 모른다고 한다. 시리아의 독재자 바샤르 알 아사드는 다마스커스 검 아닌 북한서 배워 만든 화학무기로 아이들까지 죽음으로 몰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6일 시진핑 중국 주석과 국빈 만찬 중 시리아를 폭격한 것은 ‘다음 차례는 북한’이라는 메시지였다. 그래도 통하지 않자 미국은 지난주 대북(對北) 거래은행인 중국의 단둥은행을 ‘자금세탁 우려 기관’으로 지정했다. 중국에 대한 트럼프의 전략적 인내도 거의 끝났다는 의미다. 중국은 분노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놀랐을 것 같다. 2005년 북핵 해법에 합의한 9·19공동성명 직후 미 재무부가 중국계 방코델타아시아(BDA)를 단둥은행처럼 묶는 바람에 북한이 파투 낸 역사가 있다. 이 때문인지 한미 공동성명엔 문 대통령이 주장한 ‘단계적 북핵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문 대통령이 언론 발표에서 “두 정상은 단계적이고 포괄적인 접근을 바탕으로 북핵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고 했을 뿐이다. 트럼프는 되레 북핵에 ‘확실한 대응’이 필요하다며 “북한 정권이 우리 훌륭한 오토 웜비어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전 세계가 목격했다”고 북의 인권유린을 거칠게 비판했다. 세습독재에 대량살상무기(WMD) 보유, 중국계 은행에서 무기거래 자금세탁, 심지어 인권범죄까지 시리아의 아사드와 북한 김정은은 난형난제(難兄難弟)다. 2014년 북한과 시리아의 인권침해 유엔보고서를 비교한 아산정책연구원은 북한의 행태가 더 심각하다고 했다. 시리아 정부는 자국민 살해, 고문, 강간, 임의구금, 강제실종 등의 비인도적 행위를 저질렀지만 북한은 여기에 몰살, 집단노예화, 강제이주, 박해까지 인종격리 정책을 제외한 모든 반인도적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는 거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거둔 가장 큰 성과가 북한의 끔찍한 인권침해에 대한 양국의 관심과 의지라고 나는 본다. 한미 공동성명은 ‘트럼프가 한반도 평화통일 환경 조성에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지지했다’는 문장 다음에 ‘양 정상은 북한 인권침해에 깊이 우려했고, 트럼프는 인도주의적 사안을 포함한 문제들에 대한 남북 간 대화를 재개하려는 문 대통령의 열망을 지지했다’고 명시했다. 2007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해 문재인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 북에 물어보자고 했네, 안 했네를 놓고 공방이 벌어진 것이 대선 직전까지였다.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는 2010년 한 강연에서 북한에 인권과 민주주의 개념이 들어서기 위해선 시민사회가, 시장이, 개혁·개방이 있어야 한다며 결국 외부 위협이 없을 때 개혁·개방도 가능하다고 했다. 인권을 거론하면 북한이 내정간섭이자 체제 붕괴 의도로 간주하므로 체제 보장부터 해주든가 아예 입을 닫아야 한다는 게 이른바 진보의 주장이다. 북한인권법은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발의 11년 만인 지난해 간신히 국회를 통과하고도 아직까지 북한인권재단을 출범시키지도 못했다. 문 대통령은 독일 통일의 주역 헬무트 콜 전 총리의 서거에 “정권이 바뀌어도 동방정책을 (뒤집지 않고) 유지해 통일을 이끌었다”고 애도했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그 못지않은 독일 통일의 동력이 서독의 인권 정책이었다. 보수 정치인인 콜은 물론이고 서독의 정치인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동방정책의 화해협력 시기에도 국내외에서 동독 인권 상황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1987년 동독의 에리히 호네커 국가평의회 의장이 서독을 방문했을 때 콜이 면전에서 인권을 거론했을 정도다. 동독의 인권유린을 낱낱이 기록하는 잘츠기터 기록보존소 설립을 본격적으로 제언한 이는 훗날 동방정책의 구현자인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 당시 서베를린 시장이었다. 단계적이든 포괄적이든 문 대통령이 북에 손을 내밀 때는 북한의 인권문제를 반드시 제기하기 바란다. 학교 다니는 아이들까지 노예노동을 해야 하는 북한의 인권상황이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대통령이 ‘남북 경제공동체’를 탄생시킨들 무슨 의미가 있는가. 문샤인 정책이 자칫 핵 폐기는커녕 김정은만 배불린 뒤 핵폭탄으로 돌아올까 걱정스럽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열 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경선에서 3명 중 3등을 한 사람이다. 그가 2015년 혁신위원장을 맡아 만든 혁신안에 대해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바보 같은 룰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공개 망신을 줬다. 그러고도 민주당은 작년 4·13총선에서 제1당이 됐다. ‘진짜 진보’ 김상곤이 더 끼어들 자리는 없는 듯했다. 그가 교육대통령으로 찬란하게 부활했다. 석·박사 논문 표절 의혹이 선명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할 게 분명하다. “누가 진정으로 문재인을 지킨 사람이냐”고 그의 오랜 학문적 동지인 강남훈 한신대 교수가 했던 지지 선언을 대통령은 흘려듣지 않았다. 아무도 안 한다는 혁신위원장을 맡아 당시 문 대표에게 쏟아질 포탄을 온몸으로 막았고, 소속 의원들의 기득권과 함께 자신의 의원 출마 의욕까지 내다버려 ‘문재인 대선길’에 주단을 깔아준 이가 김상곤이었다. 그렇다면 표절 문제에 매달리는 건 시간이 아깝다. 차라리 그가 만든 교육 공약을 들여다보면서 뒤바뀔 세상에 대해 준비를 하는 게 낫다. 핵심은 교육의 국가 책임 강화다. 정부가 책임지고 교육 잘하겠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보며 공부만 잘하면 뭐하느냐고, 나는 혼자 가슴을 쳤다. 사람이 할 일을 인공지능(AI)이 다 해준다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 시험점수 1점 아등바등 올리는 것보다는 싫은 친구와도 잘 협력할 수 있는 소통과 연대의 능력, 공공성을 길러주는 민주적 자치공동체가 경기도 혁신학교라면 전국화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외고, 자사고 같은 교육 수요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없애고 혁신학교로 단일화하는 건 교육독재다. 대학 서열 완화를 위해 국공립대 공동운영-네트워크 구축과 사립대 공영형 전환을 한다는 것도 혁명적이다. 민주당 공약집엔 ‘공영형 사립대 전환 및 육성’ 달랑 한 줄이지만 비리 사학에 공익이사를 보내 정부책임형 사립대학으로 바꾸자는 논문을 강 교수가 2011년 발표한 바 있다. 베네수엘라에서 죽은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도입한 ‘자치대학’ 정책과 흡사하다는 사실은 더 충격적이다. 왜 하필 극심한 정치·경제 위기에 빠져 있는 베네수엘라냐고? 2009년 경기도교육감 선거에 나서기 전 김상곤한신대 교수는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 총장이었다. 2007년 강 교수와 함께 베네수엘라를 방문해 민중학교 활동가들을 만나는 등 연구를 했고, 그해 이 나라가 언급된 ‘사회주의’ 이행(연대사회 건설) 12대 강령 시안 발표회에서 사회를 맡은 전력이 있다. 노동자, 민중이 ‘주인’ 되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강령1은 그냥 시안이라고 치자. 하지만 ‘사회적 개인의 전면 발달을 돕는 교육혁명’이라는 강령11에서 학생들의 사회정치적 활동을 대대적으로 장려하고 민중자치 교육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대목에선 혁신학교의 기운이 느껴진다. “나랏돈에 의존하는 대학을 개별 법인/자연인의 사유물로 방치할 이유가 없다”는 설명도 사립대 공영화 공약으로 이어지는 논리다. 2000년대 초반 석유 값이 치솟을 때 차베스는 ‘21세기 사회주의’가 신자유주의의 대안이라며 베네수엘라를 진정한 사람 사는 세상으로 만들 태세였다. 교육은 국가의 책임이니 무상교육 무상급식은 당연했다. 특히 대학 교육이 사회 변혁의 기반이라며 2003년 대학 무상교육, 2007년 무시험 입학을 시작했고 2009년 교육법은 ‘자치대학’에 부패 같은 문제가 터지면 교수 학생 직원 노동자 졸업생 등 모든 구성원이 참여해 바로잡도록 했다. 그 결과 베네수엘라의 대학 등록률이 2000년 28.3%에서 2009년 78.1%로 치솟은 건 맞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와 유가 폭락으로 교직원 임금이 동결되면서 교육의 질은 떨어졌고, 협동조합 등에서 만드는 공공부문 일자리도 바닥을 드러냈다. 대학교육이 공공선이라고 주장했던 차베스 집권 14년간 연평균 실업률은 11.6%로 남미 평균(9.5%)보다 높다. 그런데도 베네수엘라가 선거로 집권하고 개헌으로 사회주의 변혁에 성공했다며 모델로 삼는다면 나라가 뒤집힐 일이다. 청문회에서 수십 년 전 김상곤의 석·박사 논문 표절 여부를 묻는 것은 한가롭다. 또 색깔론이냐는 역공세에 넘어가서도 안 된다. 대한민국과 미래를 추락시킬 것이 뻔한 교육 공약이 왜 베네수엘라와 비슷한지, 2008년 전태일 대학 졸업식 때 총장 말씀대로 사회주의적 대안들을 모색하는 것인지 철저히 따져야 한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한때 ‘알부남’이라는 말이 유행이었다. 대선을 1년여 앞둔 1996년 말 ‘야당 투사’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온건보수 이미지로 변신하면서 그 말을 썼다. “내가 알부남이에요.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 결과적으로 ‘DJ의 알부남 프로젝트’는 성공했다. 하지만 이후 몇몇 까칠한 정치인들의 “나도 알부남” 주장은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세상엔 알고 보면 부드럽지 않은 남자 없고, 알고 보면 누구나 불쌍한 측면이 있다. 다만 굳이 알아보고 싶지 않거나 알 필요가 없을 뿐이다. 문재인 정부가 첫 조각(組閣)으로 발표한 3명의 후보가 ‘5대 비리인사 배제’ 원칙을 어긴 데 대해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알부남식 사과를 했다. “빵 한 조각, 닭 한 마리에 얽힌 사연이 다 다르듯이 관련 사실에 대한 내용 또한 들여다보면 성격이 아주 다르다”는 거다. 당연하다. 알면 달리 보인다. 그래서 일처리에서 공정하지 못하게 안면을 보거나 정실관계를 이용할 때 ‘사(私)를 쓰다/보다/두다’라는 관용구를 쓴다. 국정을 사사화(私事化)한 죄로 직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마당에 새 정부가 그 ‘삿된 들여다봄’의 관행 또는 적폐를 이어가자는 건 빵과 닭을 등장시킨 비유만큼이나 황당하다. 빵 한 조각은 장발장의 억울함을 연상케 하기 위해서라고 치고, 닭 한 마리는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밀기’도 봐줘야 한다는 의미인가? 대한민국 어린이법제처 홈페이지에는 “교육, 부동산, 공무원시험 등 위장전입 사유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결국은 남보다 많은 혜택과 이익을 얻고자 한 행위이기 때문에 사회정의 차원에서 결코 간과해선 안 될 것”이라고 적혀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전인 2012년 작성된 내용이다. 국정 역사 교과서 폐지하듯 어린이법제처를 없애거나 “개인마다 사유를 들여다보고 간과할 건 간과해야 한다”고 고쳐주기 바란다. 문 대통령의 첫 조각은 두고두고 새 정부에 부담이 될 공산이 크다. 인사 원칙을 어긴 것 자체보다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한 잘못된 대처 때문이다. 비서실장이 사과랍시고 인사에 사(私)를 동원하도록 종용한 것도 문제지만 대통령 말의 신뢰를 떨어뜨린 건 더 큰 문제다.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세금 탈루, 논문 표절의 5대 비리인사 공직 배제 원칙은 누가 강요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2012년 대선 때부터 스스로 약속한 것이다. 심지어 3월 26일 대전MBC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토론 때는 최성 예비후보가 “5대 비리 관련자 철저히 검증해 새 정부는 혁신적 정부임을 보일 의지가 있느냐”고 묻자 문 대통령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 그 원칙 확실히 지키겠다”고 맹세를 했다. 자신의 말에 강박관념이 있다는 대통령이 그러고도 딴소리를 하는데 1년 후 개헌 약속은 믿어도 되나 모르겠다. 물론 인수위원회도 없이 새 정부가 출범한 사정을 모를 국민은 없다. 그럼에도 5대 비리는 문 대통령이 촛불시위 때 ‘가짜 보수’를 공격할 때마다 언급한 전가의 보도라는 데 문제의 엄중함이 있다. 문 대통령은 “국가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반칙을 하면서 특권만 누리는 세력은 진짜 보수가 아니다. 이들이 안보를 잘할 수 있겠나”라며 진보의 도덕성과 우월함을 역설했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은 가짜 보수로 내각을 꾸려 새로운 대한민국이 추구한다는 첫째 비전인 공정국가를 포기하겠다는 것인지 모골이 송연해질 판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벌써 박근혜 정부의 오류를 닮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검색해 봐도 문 대통령은 5월 29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말한 것처럼 “제가 공약한 것은 그야말로 원칙이고, 실제 적용에선 구체적 기준이 필요하다”고 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저의 노력이 허탈한 일이 됐다”며 “공약을 후퇴시키겠다는 뜻이 아니다”라고 강변을 하니, 노무현 정부 때 법무장관을 지낸 천정배 국민의당 의원이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잘못을 인정하지도, 시정하지도 않는 황소고집까지 따라갈까 겁난다. 그럼에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를 구하기 위해 ‘2005년 7월 이전 위장전입 무죄’로 인사 기준을 정한다면 도리가 없다. 민주당은 지금까지 부도덕하다고 매도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인사들에게 정신적 사면과 함께 심심한 사죄를 전해야 할 것이다. ‘반(反)특권 공정사회’로 가는 첫발을 진창길로 시작하겠다면 그 역시 문재인 정부의 운명이다. 단, 앞으로 혼자 깨끗한 척은 말아줬으면 한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대표였던 노혜경 시인이 ‘문재인을 잘못 봤다’는 고백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내가 본 문재인은 소극적이고 낯가리고 권력의지 없고…대통령이 되면 나무 위에서 흔들리다 떨어질 것 같은 사람”이었는데 지금 전혀 다른 사람으로 나타났다는 거다. “국민의 마음을 그는 읽는다. 흡사 안테나처럼. 흡사 시인처럼”이라는 건 일국의 대통령에게 최고의 찬사다. 나도 문재인 대통령을 잘못 본 것 같다. 선하고 성실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 못 하는 훌륭한 인품이라는 말은 익히 들었지만 리더에게 꼭 필요한 사자의 심장(용맹)과 여우의 두뇌(간교)까지 갖췄을지 의심을 했다. 2004년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을 지낸 운동권 이론가 주대환도 “정치 안 하려고 하는 문재인을 ‘다 알아서 해드릴 테니 걱정 마세요’ 하면서 끌어낼 수 있는 것이 민주당 내 486의 힘”이고 문재인은 얼굴 마담이라고 했다. 그런데 아니다. 여우다. 문 대통령은 취임 당일 호남 총리에, 486이지만 친문(친문재인) 아닌 젊은 비서실장을 발표해 친문 패권주의를 의심하는 민심을 무장해제시켜 버렸다. 심지어 사자의 모습도 보인다. 이름만으로도 검찰 개혁을 예고하는 조국 민정수석, 재벌 개혁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호명해 검찰과 재계를 충격에 빠뜨린 것이다. ‘적폐 청산’을 요구한 지지층의 10년 묵은 체증을 뚫어준 건 물론이다.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다가 검찰을 떠나야 했거나 좌천된 ‘칼잡이’들을 반부패비서관과 서울중앙지검장 자리로 부른 것도 무림을 떨게 만드는 고수의 경지다. 2012년 대선에서 낙선한 지 6개월 뒤 기자들과의 산행 때 “분노가 치민다”고 했던 뒤끝이 작렬하고 있다는 의미다. ‘임을 위한 행진곡’도 막았던 보훈처장의 사표를 제일 먼저 수리한 것, 헌법재판소에서도 가장 왼쪽의 재판관을 소장에 임명한 것도 국가유공자 선정이나 사법지형의 대대적 변화를 짐작하게 하는 포석이다. 외교부 배타적 순혈주의 개혁을 겨냥해선 첫 여성 외교부 장관을 내정해 아얏 소리도 못 나오게 해버렸다. 이런 노회한 정치력이 절치부심으로 가능할까. 2011년 ‘문재인의 운명’에는 노무현 정부 첫 조각 때 이미 ‘개혁적 인사들로 일거에 내각과 청와대의 대세를 장악해야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김대중 정부 때도 한두 명씩 개혁인사를 발탁했더니 못 견디더라는 거다. 그럼에도 노 정부 때는 사회 분야를 제외하곤 인재풀이 모자라 경제 안보 국방 외교에선 개혁인사를 못 했다고 그는 가슴을 쳤다. 개혁성은 철철 넘치되 인사청문회에선 딱히 시비 걸기 어려운 장관들로 내각을 채워서는 지지율이 펄펄 나는 집권 초반 ‘적폐 청산’을 해내겠다고 문 대통령은 위장 취업자처럼 이를 악물었을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재집권에 실패한 이유가 성과를 거두지 못해서가 아니라 ‘특권동맹의 방해’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다면 말이다. 더미래연구소의 ‘2017 집권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특히 검찰은 야권과 화해 무드가 조성될 때마다 이상하리만치 정확한 타이밍에 전격 수사를 단행해 김대중 정부에 부담을 줬다. 관료와 국정원, 검경이 제자리로 돌아가도록 놓아준 바람에 권위의 위기를 맞은 불행한 대통령이 노무현이었다. 언론도 그들의 눈에는 기득권 집단에 속한다. 보고서는 “민주적 진보적 사회경제 구조를 정착시키는 데 기득권 집단의 도전에 직면한다면 싸워서 굴복시키든지, 양보를 받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수적 가치를 지키지 못한 보수 정부 아래서 정권의 도구로 전락한 검찰, 갑질의 대명사로 낙인찍힌 재벌 등의 적폐 청산은 필요하다. 그러나 보고서가 지적했듯 재분배를 가능하게 하는 성장 없이는 어떤 개혁도 성공하기 어렵다. 박근혜 정부가 여지없이 무너진 큰 이유도 민생경제가 흔들려서다. 특히나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환율의 적절한 관리 없이는 수출도, 성장도, 물론 ‘소득중심 성장’이라는 이름의 분배도 불가능하다. 아무리 새 정부가 남북대화와 한반도 평화협정을 원하더라도 한미동맹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자존심이 없을 리 없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보통국가화라는 일생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미일동맹에 올인했다. 환율조작국 걱정 없이 엔화를 찍어내 경제부터 살려놔야 국민적 지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문 대통령에게는 국민의 마음을 읽는 공감능력이 있다. ‘바보 노무현’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무엇이 더 중요한지 우선순위부터 제대로 정해야 한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해외 언론만 보면 한국의 대통령선거는 이미 끝난 것 같다. 대선은 분명 9일인데 미국의 주요 매체는 물론이고 지구 반대편 뉴질랜드헤럴드라는 신문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승리를 기정사실처럼 쏟아낸다. 대한민국 최초의 정책쇼핑몰을 내건 ‘문재인1번가’에서도 “세계가 진짜를 알아본다”며 타임, 워싱턴포스트, 무디스 기사를 e메일로 보내왔다. ‘워싱턴포스트―자주적 외교노선을 탈 수 있는 지도자’라는 홍보물의 원문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곳곳이 지뢰밭이었다. ‘문재인 후보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관련 이슈에서 상당 부분 입장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양국의 동맹 관계에는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했다’고 소개했지만 기사 전체의 느낌은 다르다. 문재인이 대선 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서둘러 배치된 점을 언급하면서 ‘미국의 행동은 워싱턴에 대한 한국인의 믿음을 훼손하고 안보동맹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는 내용도 있어 어느 쪽이 한미동맹을 흔들지 걱정될 정도다. ‘무디스―국가신용등급을 올릴 수 있는 경제대통령’이라는 홍보물엔 의도적 왜곡도 엿보인다. ‘무디스는 한국이 북한과 효과적으로 대화를 재개한다면 국가신용등급에 긍정적 효과를 끼칠 것으로 판단한다’고 번역해놨으나 바로 뒤 ‘하지만 이것(대화 재개)은 우리의 기본 시나리오가 아니다’라는 부분은 번역하지 않았다. 무디스가 대화 재개 가능성을 높게 안 본다는 대목을 쏙 빼놓은 거다. 이번 한국 대선은 7일(현지 시간) 치러진 프랑스 대선과 함께 글로벌 함의를 지닌다고 뉴스위크는 분석했다. 트럼프가 마침내 북핵을 끝장내겠다고 결기를 드러낸 상황인 데다 지난해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와 미국 대선을 휩쓴 포퓰리즘 열풍이 한국까지 상륙할지를 가늠하는 무대여서다. 외국 주요 매체들은 친(親)유럽연합, 세계화와 자유주의, 시장개혁 성향의 중도파 에마뉘엘 마크롱의 당선을 예측하며 안도감을 내비치고 있다. 트럼프 출현이 반면교사가 돼 ‘프랑스 퍼스트’를 외친 포퓰리스트 마린 르펜을 막고 있다는 얘기다. 그 트럼프가 한국에선 ‘국익 우선’을 강조한 문재인의 당선 가능성을 높였고(파이낸셜타임스), 바로 그 매체들이 문재인에 대해선 불안감을 감추지 않는다는 건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일이다. 문재인은 노무현 정부에서 복무해 북핵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는데도(월스트리트저널) 햇볕정책으로 돌아갈 방침이어서 트럼프의 두통거리가 될 것(뉴스위크)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트럼프가 좋아한다는 폭스뉴스는 심지어 “미국과 중국이 북한을 압박해도 한국이 협력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동맹을 대신해 핵무장한 미친놈과 벼랑 끝까지 가자고 미국인들을 확신시키긴 어렵다고 일갈했다. ‘꼬마 난입사건’ 생중계로 유명 인사가 된 로버트 켈리 부산대 교수가 “화해정책이 한국을 글로벌 아웃라이어로 만들 수 있다”고 한 경고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6년 북한의 첫 핵실험 뒤 미국이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 제재안을 통과시켰으나 한국이 뒷다리를 잡고 중국이 화낼까 두려워 실패했다는 게 헤리티지재단 브루스 클링너의 지적이다. 문재인은 ‘이명박·박근혜의 북핵 대응은 완전 실패’라고 주장하지만 햇볕정책 10년간 북으로 흘러간 현금이 북한 정권을 살렸음을 부인하진 못할 것이다. 이란이 손들고 협상에 나오기까지 세컨더리 보이콧 3년이 걸렸다. 개성공단을 열어놓은 채 다른 나라에 대북제재를 촉구할 순 없다. 그런데도 개성공단 20배 확대부터 강조하는 문재인을 북한은 쌍수 들고 환영할 것이 분명하다. 15년 전 ‘반미면 어떠냐’고 했던 노무현 대통령 당선 뒤 미국은 미군 1만2500명 감축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새 대통령이 사드 배치를 재검토하거나 방위비 분담을 문제 삼는다면 미군 전격 철수가 단행될 가능성도 무시하기 어렵다. 그래서 전시작전권을 회수해 자주국방해야 한다고? 분수 모르는 외교·안보 정책이 바로 적폐다. 중국과의 관계를 리셋하면 된다고? 르펜이 러시아와 관계 개선하자는 것과 비슷한 소리 아닌가. 그래도 다행인 건 대선의 진짜 투표가 내일이라는 사실이다. 영국 BBC는 문재인이 대통령 되면 망명해야 한다는 탈북자들을 소개하며 한국의 대선이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고 했다. 바라건대 문재인이 바뀔 수 없다면 외교 안보 브레인이라도 바꿨으면 한다. 아니면 유권자들이 생각을 바꾸든지.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5년 전 “문재인과 이념적 갭을 느꼈다”고 말했다. 2012년 11월 말 “이제 (야권) 단일후보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라고 선언한 지 열흘쯤 지나 자문그룹과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다. “특히 TV토론을 하면서 이념 차이를 많이 느꼈다”면서 안철수 자신은 합리적 보수이고 온건 진보인데, 문 후보는 자신이 알던 그 후보가 아니더라고 했다. 그 후 지금까지 안철수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이념에 대해 말한 적도, 공개적으로 질문한 적도 없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존중해서인지, 오찬 사흘 뒤 국민소통자문단장 등이 “자신과 이념적 편차가 있다고 했던 후보를 적극 지원하기로 손잡는 것을 보고 안 전 후보의 정치적 장래에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는 성명을 날렸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대체 어디서 이념 차이를 느꼈는지 궁금해 후보 사퇴 이틀 전에 열렸던 ‘후보 단일화를 위한 TV토론’을 찾아봤다.역시 두 사람이 격하게 부딪친 건 대북(對北) 공약이었다. 대통령 취임 첫해 남북정상회담, 금강산관광 무조건 재개 같은 문재인의 공약에 대해 안철수는 “국민의 공감 없는 회담은 남남갈등이 생길 수 있다” “대화를 통해 관광객 보호 확약을 받은 뒤 재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야말로 상식적인 얘기다. 그러나 문재인은 “남북관계 개선을 말하면서 전제조건을 다는 것은 이명박 정부와 다를 바 없다”며 거칠게 반박했다. 요즘 정치용어로 치면 적폐세력이라는 공격이다. 당시 문재인의 말을 뜯어보면 대선 재수(再修)를 하는 동안 달라진 게 거의 없음을 알 수 있다. 특히 2007년 10·4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애착이 두드러진다. 좋은 합의가 많았는데도 임기 말이어서 이행을 못했으니 대통령 취임 첫해 남북정상회담을 해야 한다는 거다. ‘취임하면 북한 먼저 가겠다’는 이번 공약과 비슷하다. 정상회담 준비위원장으로 의제와 공동성명, 합의문 등을 총괄적으로 준비한 사람이 문재인이었다. 그는 2011년 자서전 ‘운명’에서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에 해당한다”면서도 “우리가 추진하고자 했던 의제들이 대부분 합의문에 담겨 있어 만세삼창이라도 하고 싶었다”고 했다. 2012년 대선 직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논란이 일어났던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도 10·4선언 합의 사안이었다. 어제 문재인이 밝힌 ‘한반도 비핵화 구상’에는 “해양자원 공동 이용으로 서해안 동해안 어민들 피해를 막겠다”는 비슷한 내용이 또 들어 있다. 어제 TV토론에서 문재인은 ‘북한인권결의안 북한에 물어보고…’ 파문을 제2의 NLL 공작이라고 규정했다. 대선 뒤 ‘터무니없는 사실’로 밝혀졌는데 또 되풀이한다는 거다. 그렇지 않다. 2013년 6월 24일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전격 공개해 “NLL은 바꿔야 한다”는 노무현 발언을 확인해준 바 있다. 이번에 대선 후보로 나온 그는 “그 합의를 이행했다면 북한 잠수함이 인천 앞바다까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다”며 핵심적 역할을 했던 문재인도 책임이 있다고 했다. 안철수는 문재인의 이념이 무엇인지 따져 물어야 한다. 대체 왜 문재인은 우리 국민의 생명과 부담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실상 반대부터 국가보안법 폐지, 그리고 평화협정 체결까지 북한과 거의 같은 주장을 하는지 국민은 알아야겠다. 특히 인권변호사 출신임을 자부하는 문재인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과 10·4 선언을 환영하면서, 북한에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심각한 인권 침해가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는 점에 우려를 표명’한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해 왜 자꾸 딴소리를 하는지 납득되지 않는다. 안철수는 5년 전 문재인과의 이념 차이를 알면서도 유권자에게는 문재인을 찍으라고 했던 전과(前過)를 속죄하기 위해서도 문재인의 이념을 국민 앞에 밝혀내야만 한다. 어제 문재인이 지긋지긋하다는 듯 말했던 ‘색깔론’ ‘종북몰이’가 아니다. 그놈의 이념 때문에 사람의 가치관이 정해지고 정당의 정책이 달라지는 것이다. 공안검사 출신인 방송문화진흥회 고영주 이사장은 노무현에 대해 ‘변형된 공산주의자라고 봤다’는 취지로 말하며 “만약 그런 이념을 가졌는지 국민 모두가 알았다면 대통령이 안 됐을 수도 있다”고 했다. 적어도 대통령이 될 사람이라면 자신의 이념 지향성을 숨김없이 밝힐 책무가 있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국민은 ‘노무현 시즌 2’를 바라지 않는다.” “불통하고 군림하는 제왕적 대통령을 선택하겠는가.” 18대 대통령을 뽑는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2012년 11월 27일,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상대를 이렇게 비난했다. 유세 첫날부터 네거티브 공세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지금 보니 박 전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예견은 무섭게 맞아떨어졌다. “유신독재 세력의 잔재를 대표하는 박 후보가 민주주의를 할 수 있겠느냐”는 말도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1번만 찍어 온 보수 유권자 중에는 “박근혜가 돼도 걱정”이라면서도 안보관이 불안한 문재인보다 낫다며 투표장에 간 사람이 적지 않았다. 물론 박 후보는 “100%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고 문 후보는 “(후보 단일화로 물러난) 안철수의 새 정치를 실천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걱정스러운 것이다. 점쟁이가 잘되는 것은 못 맞혀도 잘못되는 것은 귀신같이 맞히는 것처럼 정치적 공격수는 상대의 가장 치명적인 부분을 귀신같이 안다. 박근혜는 사라졌지만 문 후보는 ‘스스로 폐족이라던 실패한 정권의 최고 핵심 실세’ 그대로다. 문재인이 19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박근혜 측의 예언대로 노무현 시즌 2가 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다짐과는 거꾸로 간 끝에 탄핵까지 당한 데는 유신공주처럼 타고난 기질 탓이 크다고 나는 본다. 기질은 변하지 않는 법이어서 과거를 보면 미래를 알 수 있다. 환경 변화나 죽을 만큼의 역경, 연기 또는 연출을 통해 성격이 달라질 순 있지만 단련(鍛鍊)되지 않은 인격은 도로 기질에 점령당한다. 성공한 대통령이 많은 미국에선 정책이나 인사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도 대통령의 용기와 정직성 같은 기질과 성격은 바꿀 수 없다며 ‘성격이 최고다(Character Above All)’ 같은 연구 결과가 쏟아진다.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도 후보들의 기질에 관심이 집중됐다. 대선 사흘 전, 위기 때 누가 더 좋은 판단력을 보이겠느냐는 갤럽 조사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꼽은 유권자가 훨씬 많았으나 예상을 뒤엎고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역시나 트럼프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옆에 두고 시리아 폭격을 하는 식으로 자신의 예측 불가능성을 입증했다. 이처럼 여론조사는 틀릴 수 있어도 기질을 알면 어떤 대통령이 될지 예측이 가능하다. 문제는 치열한 검증이다.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기질로 정직성, 도덕성, 타협 능력 등이 꼽히는데 이는 과거의 행적을 들춰내는 네거티브 형식을 띨 수밖에 없다. 자기주도성이 부족하고 세상을 못 믿었던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최태민의 ‘최’자만 나와도 “천벌 받을 일”이라며 부르르 떠는 바람에 검증이 불가능했지만 이번에도 대충 넘겨서는 비슷한 과거가 반복될 수 있다. 문재인은 어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정 경험, 정책, 세력이 다 준비된 후보”라고 했다. 적폐청산을 내건 그 국정 경험, 정책, 세력은 노무현 정권 거의 그대로다. 노무현 서거 뒤에도 정치를 원치 않았던 정치 혐오 기질인 그가 대선에 두 번이나 도전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친노(친노무현) 세력의 도구로서 그들의 못다 한 꿈을 이뤄야 한다는 책무감 때문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5년 전 친노 패권 세력의 조직적 낙마 작전에 밀려 문재인의 ‘불쏘시개’ 노릇을 했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이제는 그의 상대다. 당시 박근혜의 아킬레스건을 기막히게 지적했던 문재인 측처럼 이번에 안철수 측에서 지적하는 “남자 박근혜” “과거에 발이 묶인 패권세력”이라는 말도 다 겪어 보고 하는 얘기일 터다. 안철수에 대해 문재인은 “국정 경험도 없고 40석 소수 정당의 후보로는 국정 운영이 불안하다고 국민들은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안철수에게도 ‘사회적 불편감’이 있어 양보라는 명목으로 번번이 철수(撤收)했지만 명예욕과 자신이 정한 행동 방침을 고수하는 강박적 기질 때문에 낙선하면 또 나올 것이라고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최명기는 진단했다. 4차 산업혁명을 향한 대비를 내건 안철수가 대통령이 된다면 어떤 미래를 열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적어도 1970년대 유신이나 1980년대 운동권시대로 돌아가는 게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이번 대선은 익숙한 과거 대(對) 불확실한 미래의 선택이 될 것이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5년 전 정부는 우리의 경제 미래가 미국이나 유럽 아닌 중국에 있다고 선언했다. 현 정부 외교정책도 아시아 중심이다. 그런데 아시아 세기가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났다고 주장하는 전문가가 있다. 무슨 소린가.” 9일 호주 국영방송 ABC라디오는 ‘아시아 세기의 종언(The End of the Asian Century)’을 쓴 미국기업연구소(AEI) 마이클 오슬린 연구원과 인터뷰를 이렇게 시작했다. 미국 예일대 역사학 교수를 지낸 오슬린이 올 초 미국서 출간한 이 책을 놓고 ‘중국이 21세기를 지배한다고? 다시 생각하시오’ 같은 기사가 미국 보수 매체를 중심으로 쏟아진다. 헤리티지재단 강연과 미 의회 청문회가 이어지는 등 외교가에서도 관심을 갖는 눈치다.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 책을 폈다가 ‘서문; 아무도 못 본 아시아’부터 머리끝이 쭈뼛 서고 말았다. 판문점 제3땅굴 견학 체험으로 시작하는데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의 이름이 비무장지대라는 것은 아시아 전체를 은유한다”고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가 ‘서구의 쇠퇴와 아시아, 특히 중국의 부상(浮上)’을 불가피한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실상이 달라졌다는 분석이다. 장밋빛 표면을 들추면 다섯 가지 시한폭탄이 째깍거리는데 중국을 겨냥해 쓴 저자의 의도와 달리 제일 위험한 나라는 한국이었다. 첫째 리스크는 실패한 경제개혁이다. 중국은 2015년 여름 증권시장 폭락으로 국가자본주의의 한계를 드러냈다. 일본은 아베노믹스로 경제가 부활했다곤 해도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개혁하지 못해 기업이 한껏 투자를 못하는 상황이다. 한국 정부는 중국과 일본의 맹점을 다 안고 있는 데다 한국만의 특수한 재벌 문제까지 걸려 있다. 이로 인한 저성장과 소득 양극화는 두 번째 리스크인 고령화·저출산의 인구 문제와 맞물려 세 번째 리스크, 정치적 불안정으로 이어진다. 한국은 청년실업에 노후불안의 사회적 불만까지 겹치는 바람에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블랙 스완’ 현상, 대통령 탄핵 사태까지 맞고 말았다. 가장 치명적인 건 네 번째 리스크, 전쟁 가능성이다. 지난달 미 하원 청문회에서 중국의 남중국해 분쟁을 위험지역으로 거론했던 오슬린은 이달 호주 방송에선 “현재 가장 크고 급박한 위험은 북핵”이라고 했다. 결국 미국이 중국을 끌어들여 북핵을 폐기하고 동맹들과 함께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지키는 길밖에 없다. 아시아엔 유럽연합(EU) 같은 지역공동체기구가 없기 때문이다(이것이 다섯 번째 리스크다). 문제는 북핵을 이고 있으면서도 중국의 겁박을 받는 한국이 북한을 전략적 자산으로 여기는 중국과 과연 맞설 수 있느냐다. 최근 포린어페어지 인터넷판에 소개된 ‘전쟁에 임하는 트럼프의 비전’처럼 미국과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충돌하고, 북한이 미 본토까지 닿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도발한다면 한국의 차기 정부는 어느 편에 설 것인지 섬뜩하다.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놓고 열강들이 치열한 수 싸움을 벌일 때 우리는 무지와 회피, 방관과 억측에 빠져 있던 구한말 역사는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밖에선 지정학적 대격변이 벌어지고 있는데 안에선 적폐 청산이냐 대연정이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냐 연기냐, 심지어 대통령에 당선되면 북한을 먼저 갈 것이냐 수준에서 맴도는 대선 국면에 억장이 무너질 뿐이다. 야권의 유력 주자가 미국에 노(No) 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건지를 놓고 오보 논쟁이 오갔지만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야말로 미국에 반대할 줄 알았던 리더였다. 그럼에도 국제정세에 대한 통찰력이 있고, 무엇보다 국익을 확보할 줄 알았기에 우리는 대한민국을 세우고 한미상호방위조약 속에 지금까지 전쟁 없이 살 수 있었다. 차라리 경제나 사회가 불안한 건 견딜 수 있다. 대통령 당선 뒤 미국부터 방문하는 건 책봉받는 식이고, 실향민 아버지 산소에 가서 소주 한잔 올리며 “북한이 핵을 포기했다”가 아니라 “남북이 다시 만나게 됐다”고 말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 것이며, 인권변호사 출신이면서 유엔 인권결의안에 찬성할 것인지 말 것인지 북한에 알아보자고 했다는 대선 주자는 국익과 이념, 자파의 패권 중 어디에 복무하는지가 궁금한 것이다. 이대로라면 ‘아시아의 세기’는 시작도 전에 끝난다. 한국은 그 끝을 앞당기는 방아쇠가 될 수도 있다. 이번에는 제발 무능하고 고집 센 대통령은 나오지 말아야 한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결국 승복 발언은 없었다. 헌정사상 초유의 탄핵심판을 통한 대통령 파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은 헌재 결정 이틀 만에 청와대를 떠나며 침묵보다 못 한 폭탄을 던졌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는 무서운 시한폭탄이다. 불복 투쟁 독려라고는 믿고 싶지 않다. 그가 받은 충격이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일 것이다. 남들이 ‘비선 실세’라고 부르는 최순실의 잘못을 몰랐던 것만 제외하곤 모든 건 선의였고 애국심이었다.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고, 탄핵은 기각될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었던 게 분명하다. 2012년 말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았던 국민도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러나 태극기를 내려놓고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말조차 하지 않은 건 지지자들 가슴에 불을 지르는 일이다. 다른 건 몰라도 그의 애국심만큼은 의심하지 않았지만 나라를 걱정한다면 이럴 순 없다. “헌재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건 체제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13년 전 제 입으로 말했던 박근혜다. 당장 북한 김정은을 만난다고 발표해도 나라를 팔아먹진 않을 사람으로 믿기에 2012년 대선 때 최순실의 존재를 알았더라도 야당 후보 아닌 박정희-육영수의 딸을 찍었을 거라는 국민이 적지 않다. 정권이 바뀌면 안보도 흔들릴까 봐 태극기를 들고 나오는 것을 순전히 자신에 대한 지지로 안다면 착각이다. 그러고 보면 박근혜는 잘못을 인정한 적이 없다. 세월호 참사 때 떠밀리듯 대(對)국민 사과를 한 것을 빼고는 국회가 마비되는 국회선진화법을 통과시키고도, 공직기강을 무력화시킨 세종시 원안을 밀어붙이고도 반성한 적이 없다. 특히 최순실 일가와 관련해선 눈꽃처럼 결백하다. 2002년 한 인터뷰에선 “육영재단 이사장을 물러날 때 동생과 직원들이 최태민(최순실의 부친)의 전횡을 지적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육영재단이 얼마나 잘되고 있었는데 나쁜 일 한 게 있었겠느냐”고 반문했을 정도다. 대통령 탄핵을 초래한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박근혜의 인식은 그때 육영재단과 다르지 않다. 헌재가 ‘최순실의 사익 추구에 대통령이 관여하고 지원했다’고 판단했음에도 그는 “진실은 밝혀진다”고 사실상 불복을 선언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검증 때 최태민에 대해 구체적 증거자료를 놓고 묻는데도 한사코 부인했던 것과 똑같다. “증거가 있는 건 인정해야 신뢰감을 줄 것 아니냐”던 그때의 개탄이 다시 나올 판이다. 숱한 증인들이 있는데도 단호하게 그런 사실이 없다는 박근혜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 사실을 은폐하고, 은폐를 지적하는 국회와 언론을 거꾸로 비난한 헌법·법률 위배 행위가 중대한 탄핵 사유라는 헌재를 부정하란 말인가. 나는 박근혜가 거짓말을 한다고 보진 않는다. 거짓말이란 ‘사실’과 다른 말로 상대를 속이는 것인데 그는 그런 ‘사실’ 자체가 없다고 믿는 것 같다. 최순실의 마술에 걸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머리를 쥐어뜯은 끝에 나는 결론을 내렸다. 박근혜가 정치인 롤모델로 꼽았던 엘리자베스 1세 영국 여왕(1533∼1603)을 떠올리고 나서다. 여왕을 처음 본 런던 시민들은 깜짝 놀라 “맙소사! 여왕이 여자라니!” 외쳤다고 한다. 맙소사, 박근혜는 여왕이었던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불행을 겪어 봐서 남을 배려할 줄 알고, 관용으로 국정을 이끌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2012년 말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자신은 남을 배려할 줄 몰랐다. 서출인 엘리자베스는 어렵게 왕좌를 얻은 까닭에 통찰력 있는 참모들을 모아 더 큰 영국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의 딸이었던 박근혜는 엘리자베스보다 태어날 때부터 왕관을 쓰고 태어나 그걸 자기 머리카락처럼 느끼는 메리 스튜어트 스코틀랜드 여왕과 더 닮았다. 우연이 역사를 좌우한다면 운명을 좌우하는 건 천성이다. 여왕으로 나서 자랐으니 법도 우습다. 그래서 메리 스튜어트는 엘리자베스 암살 기도 혐의로 영국의 법정에 섰을 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조차 모조리 부정했다. 군주는 절대 오류를 범하지 않으니 자신이 잘못한 사실조차 기억에서 없애버리고는 왕도 재판을 받을 수 있고 처형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보여준 여왕이 됐다. ‘박정희 신화’를 못 잊어 독재자의 딸을 여왕으로 뽑은 것은 국민이었다. 그가 헌재를 부정함으로써 일말의 안타까움도 갖지 않을 수 있게 됐다. 박근혜와 함께 한 시대가 갔다. 이제 여왕, 아니 왕 같은 대통령은 다신 이 땅에 나타나지 못할 것이다.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100년 전 세계를 바꿔놓은 볼셰비키 혁명도 레닌의 귀환이 불발됐다면 없었을지 모른다. 오스트리아 지식인 슈테판 츠바이크가 ‘광기와 우연의 역사’에서 소개한 얘기다. 1917년 2월(러시아 구력·舊曆) 러시아 차르에 대항한 궁중반란이 일어났을 때 레닌은 스위스에 발이 묶여 있었다. 반드시 돌아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정부를 세우기 위해 그는 적대국인 독일과 협상했고, 결국 성공했다. 레닌의 어떤 순간을 광기로, 또는 우연으로 봤는지 츠바이크는 적시하지 않았다. 역사를 보는 시각에 따라 또 시점에 따라 다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 원고가 담긴 태블릿PC가 보도된 2016년 10월부터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이 나오는 2017년 3월까지의 대한민국 역사 또한 광기와 우연 아니고는 일어나라고 해도 일어나기 힘든 일들이 적지 않았다. 대통령 비선 실세 최순실의 취미가 대통령 연설문 고치기라는 폭로도 그중 하나다. 최순실의 측근이었던 고영태가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강아지 때문에 최순실과 싸우지 않았다면, 그래서 언론에 제보하지 않았다면 최순실의 국정 농단은 지금껏 그냥 덮여 있을 공산이 크다. 그 뒤 토요일마다 이어진 탄핵 촉구 촛불시위를 어떤 이들은 집단이성, 시민정신, 명예혁명으로 보지만 다른 이들은 사기꾼과 검찰, 언론에 속아서 벌어진 광기나 우연으로 본다. ‘근거가 약하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은 2008년 광우병시위와 유사하다고 했다. MBC의 의도적이고 부정확한 광우병 괴담 프로그램으로 촉발돼 집단광기로 폭발한 광우병시위가 진짜 촛불시위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지, 뉴욕타임스가 사이비종교 같다(cultlike)고 표현한 태극기시위와 유사한 건 아닌지 이젠 말하기도 겁난다. 나와 견해가 다르면 적, 아니면 바보 또는 종북 좌빨로 모는 광기의 분위기 때문이다. 누가 맞는지 시시비비를 따져 공동체의 분란을 해소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법의 존재 이유다. 정치제도의 발전도 종종 우발적, 우연적 사태에 좌우된다. 저마다 진실을 주장하는 ‘포스트 진실’의 시대, 우리에게 헌법재판소가 있어 참 다행이다 싶다. 작년 12월 국회가 박 대통령을 탄핵소추하지 않았더라면 “대통령 물러나라”는 외침은 지금쯤 더 크고 거칠어졌을 게 틀림없다. 법과 제도에 따라 우리는 탄핵 절차를 밟았고, 이제 헌재의 결정대로 따르면 이 참담한 사태도 끝나는 거다. 적잖은 이들이 탄핵 이후를 걱정하지만 광기와 우연의 역사가 축복이 될 수도 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사적(私的) 인정(人情)에 의한 정치(patrimonialism·가산제)를 넘어서는 것이 정치 발전이고, 권력이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것이 정치 후퇴라고 했다. 이번 사태를 겪고도 사적 측근에 의존하는 정치인은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대통령이 다신 나올 수 없게 된다면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다. 마침 대통령 측 김평우 변호사가 “무조건 헌재 결정에 승복해야 된다고 한다는데 지금이 조선 시대냐”라고 주장했다. 말씀 한번 잘하셨다. 조선 시대가 아니니까 승복하라는 거다. 임금도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법치주의이고, 대통령마다 법을 어겨 불행한 결말을 맞은 것이 우리나라다. 아무리 인정하기 싫은 헌재 결정이 나와도 대통령부터 차기 대선 주자들까지 마음으로부터 승복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2004년 5월 14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 헌재에서 기각됐을 때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고 그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헌재 결정을 겸허히 받아들이지 않은 쪽은 오히려 노무현이었다. 다음 날 발표한 ‘업무 복귀에 즈음하여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에는 눈을 씻고 봐도 헌법과 법률 위반에 대한 사과가 없다. ‘탄핵에 이르는 사유가 아니었다 할지라도 정치적 도의적 책임’은 있다며 대선자금과 측근의 과오만 자신의 허물이라고 사죄했을 뿐이다. 당시 헌재는 “노 대통령이 일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파면할 만큼 중대한 위반은 아니다”라고 탄핵을 기각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은 국민 모두에 대한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이므로 대통령 스스로 법을 준수하지 않는다면 누구에게도 법의 준수를 요구할 수 없다”고 분명히 경고했다. 그때 헌재가 엄격한 결정을 내렸다면, 대통령이 ‘그놈의 헌법’ 운운하지 않았다면, 헌법을 가벼이 여기는 대통령이 나올 수 있었을까.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언론 출신 선배 중에도 ‘태극기집회’에 참석하는 분들이 꽤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니라, 또는 대통령도 대통령이지만 대한민국이 무너질까 봐 걱정돼서 대통령 탄핵 반대를 외친다고 굳이 설명한다. “언론이 너무 한다”는 한마디도 빼놓지 않는다. 존중한다. 그럼에도 가슴이 꽉 막히는 이유는 선배들 고언을 인정하기 어려운 대목이 자꾸 드러나기 때문이다. 11일 태극기집회엔 ‘기획폭로의 희생자’라는 K스포츠재단 정동춘 이사장이 등장했다. 서울대 체육학 석·박사 출신의 스포츠 전문가가 국정 농단 한쪽에서 쓰레기 취급을 받는 게 너무 억울해 미칠 것 같다고 했다.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이 단골 마사지센터장을 K스포츠재단 이사장으로 앉혔다는 작년 9월 한겨레신문 보도가 그 억울함의 원천인 건 맞다. 언론인 출신이 운영하는 인터넷매체도 이 기사가 “세계 언론 사상 최악의 집단 날조”라고 비난했다. 1월 9일 청문회에선 정동춘이 마사지숍 아니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국회의원들이 마사지만 강조했다고 세세하게 소개했다. 그러나 이 기사엔 결정적인 부분이 빠졌다. “마사지 안 했다”는 정동춘의 증언에 이혜훈 의원이 “좋다. 그 숍에 뭐든지 간에 일주일에 몇 번 정도 최순실 씨가 왔느냐”고 묻자 2010년 8월부터 2016년까지 한 달에 몇 번씩 찾아왔다고 답한 대목이다. 의원들의 추궁에 정동춘이 결국 단골인 최순실의 추천으로 (물론 청와대의 검증을 거쳐) 이사장이 됐음을 인정했음에도 정작 이 사실 보도는 쏙 빼고는 언론 날조를 탓한 셈이다. 정동춘은 태극기집회에서도 최순실과의 인연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국정 농단 사건은 일개 고영태란 사람이 최순실과 함께 사익 추구를 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불거진 것”이라고 강조했을 뿐이다. 고영태처럼 유흥업소 경력이 있으면 내부 고발할 자격도 없고, 서울대 박사의 말은 무조건 신뢰받아야 한다는 발상은 이젠 버려야 할 기득권 세계의 의식구조 아닌가. 신속 탄핵을 외치는 촛불집회의 대통령 처형 퍼포먼스나 ‘정권교체 아닌 체제교체’ ‘사회주의가 답이다’ 문구를 보면 섬뜩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계엄령이 답’이라며 성조기를 흔드는 태극기집회도 섬뜩한 건 마찬가지다. 이 자리에서 친박(친박근혜)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은 “박 대통령이 무너지면 대한민국 안보가 무너진다”고 외쳤다. 실제로 박 대통령이 탄핵당하면 ‘안보불안 세력’에 나라가 넘어간다고 믿는 보수층이 적지 않다. 아직도 1970년대에 살고 있는 듯한 박 대통령을 제왕적 군주로 떠받들었던 친박 의원들이 반성은커녕 기세등등해진 이유도 이들 친박 보수층의 안보불안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남북대화와 주변 정세의 급변하는 사태에 대처한다’는 명분으로 추진했지만 실제로는 안보불안 대처, 또는 안보불안을 이용한 장기집권을 위해 유신독재를 자행했던 박정희 정권과 뭐가 다른지 의심스럽다. 친박 보수가 진짜 무너질까 두려워하는 건 박근혜 없는 자신들의 미래라고 봐야 한다. 개인의 자유와 책임, 공동체에 대한 헌신과 애국심이라는 보수의 가치보다 박근혜와 찍은 사진이나 의리, 박정희-육영수에 대한 향수를 이용해 금배지를 다는 데 급급한 웰빙정당이 새누리당이었다. 그러니 주목받는 대선 주자가 나올 리 없다. 이들이 이제는 우리 머리 위에 버티고 있는 북한을 이용해 반칙과 특권의 보수(保守) 기득권을 천년만년 누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일말의 보수(補修)도 하지 않은 이들이 ‘공안검사 출신의 남자 박근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박근혜 대안으로 미는 것도, 이를 은근히 즐기는 황 권한대행도 친박 보수의 무책임성에 기여하긴 마찬가지다. 잘하면 TK(대구경북) 의원들은 새누리당이 개명할 자유한국당이라는 당명의 극우보수 꼴통당으로 살아남겠지만 박근혜 지키려다 국민에게 버려지고, 심지어 안보도 무너질 수 있다는 건 왜 모르는지 안타깝다. 지금 “불출마한다”고 명확히 밝히지 않는 황 권한대행은 보수가 망하는 데 일조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한 달여 뒤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은 “시중에서 이런 얘기가 돈다”며 출마설을 전하는 한덕수 국무조정실장 말을 “국가를 책임지고 관리할 권한대행이 누구한테 맡기고 입후보를 한단 말이냐”고 단칼에 물리친 전력이 있다. 이런 빈틈없는 위기관리 없이 어떻게 감히 ‘황교안 대망론’을 꿈꾼단 말인가.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살아 있다면 올해 100세인 존 F 케네디는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강조한 대통령이었다. ‘미국 우선주의’ 도널드 트럼프와 정반대다. 케네디도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해결하기 1년 반 전 쿠바 피그스 만 침공 때는 처절하게 실패했다. 그 이유가 미국 최고 똑똑이들의 ‘집단사고’ 때문만이 아니라 향정신성 약물 남용 탓이라는 지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케네디가 평생 시달린 애디슨병이 바로 작년 12월 ‘최순실 국정 농단 청문회’에서 언급된 부신기능저하증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부신기능저하증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맞느냐.”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의 질문에 김상만 전 대통령 자문의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맞을 공산이 크다고 나는 본다. ‘만성피로 해결사 부신을 고치자’라는 저서로, 태반주사 등을 이용한 부신기능 치료로 이름난 의사가 김상만이어서다. 케네디는 젊고 건강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위해 병을 숨긴 채 개인 주치의로부터 향정신성 약물 치료를 받았다. 사람 심리는 비슷한지 마약류인 암페타민을 공급하는 뽕닥터(Dr. Feelgood)로부터 ‘비선 치료’까지 받았다. 1961년 피그스 만 작전과 소련 흐루쇼프와의 빈 정상회담을 망친 것도 이런 비정상적 약물 때문이라는 게 ‘광기의 리더십’을 쓴 미국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나시르 가에미의 분석이다. “만약 대통령이 부신기능저하증에 걸려 있다면 의식이나 판단력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느냐.” 김 의원의 질문에 이병석 전 대통령 주치의는 “정도에 따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하고 말을 빙빙 돌렸다. 부신기능이 떨어지면 만성피로, 복통, 구토는 물론이고 잠을 자도 개운치 않고, 늘 불안하고, 뭘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증상 등이 나타난다. 김상만은 스트레스를 피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며 “충고만 하려는 사람처럼, 만나면 기분이 좋지 않은 사람과는 만남도 자제하라”고 TV프로에서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니 당연하다. 박 대통령은 대면보고나 정치인들과의 만남을 극도로 삼간 채 관저에서 ‘근무’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래도 미국에는, 케네디에게는 ‘의료 쿠데타’라는 반전이 있었다. 1961년 가을 백악관 주치의인 해군제독 조지 버클리가 양식 있는 의사들과 손잡고 개인 주치의와 비선 의사를 몰아낸 것이다. 합리적 치료를 통해 몇 달 만에 대통령이 ‘엑설런트’ 상태로 바뀌면서 미국의 운명도 달라질 수 있었다고 역사학자 로버트 댈릭도 평가했다. 이처럼 중요한 대통령의 진료 문제가 세월호 참사 전후의 성형수술 여부에만 쏠리는 것을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다. 나이를 먹어도 여자는 여자이고, 미를 추구하는 건 여자의 ‘사생활’이어서가 아니다. 휘트니 휴스턴 사망 시 체내에서 검출된 자낙스를 비롯해 ‘박근혜 청와대’에 들어간 향정신성의약품과 의료용 마약이 무려 3124정이고, 이 중 2504정이 사용된 사실이 드러났다. 박영수 특검은 “주치의 허가 없이 약물을 청와대 안으로 반입했다면 국가 안보를 해치는 내부의 간첩으로 볼 수 있다”고까지 했다. 그런데도 ‘의료 쿠데타’는커녕 향정신성 마약류 약품의 사용자 공개를 거부한 육군 중령인 청와대 의무실장을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이 1일 자청한 기자간담회에서 “너무나 피곤하면 의료 거기서 알아서 처방하는 거지 거기에 무슨 약이 들어가는지 알 수는 없지 않으냐”며 “의료진에서 이상한 약, 그런 건 썼다고 생각 안 한다”고, 누가 묻지도 않은 답변을 한 것도 기이하다. 최순실이 주사 아줌마를 불러 피로해소 주사를 놓는다면서 육체적 정신적 의존성을 낳는 페치딘 같은 마약류를 섞었을지 알 수 없다는 의사들도 있다. 대통령이 늘 몽롱한 상태로 판단력이 떨어져 있어야 최순실 자신의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부신기능저하증이라면 진짜 부신기능이 떨어진 것인지, 이상한 약을 마구 투약했기 때문인지도 규명해야 할 일이다. 그림 동화 ‘라푼젤’에는 마녀에 의해 탑 속에 갇혀 사는 소녀가 나온다. 상상력을 발휘하자면, 박 대통령은 믿었던 최순실에 의해 청와대 관저에 갇혀 산 피해자일지 모른다. 하긴 최순실 없는 지금도 별로 달라진 게 없는 대통령을 보면 진짜 피해자는 국민이라는 생각이 든다. 블랙리스트 같은 건 알지도 못한다니, 혹시 졸피뎀 영향에 자신이 한 일을 기억도 못하는 게 아닌지 궁금하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신문사가 광화문 한복판에 있어 토요일마다 애국시민들을 본다. 발광다이오드(LED) 촛불을 든 쪽과 태극기를 든 쪽은 표정부터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는 촛불 쪽은 밝다. 이제 나라가 바로잡힐 수 있다는 희망에 찬 것 같다. 반면 탄핵 반대를 외치는 태극기 쪽은 나라가 망할 것 같은 비장한 얼굴이다. 나라 생각하는 마음은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가 다르지 않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태극기 쪽 발언을 들으면 불편하다(물론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 석방 요구는 더 불편하다). 팩트를 신성시한다는 점에서 존경해 마지않는 조갑제닷컴의 조갑제 대표가 7일 청계천 집회에선 이런 발언을 했다. “조중동과 한겨레, 그리고 북한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까지 한목소리로 박근혜 대통령을 몰아세운다. 언론이 한목소리를 내니 검찰, 특검이 따라오고 정치까지 휩쓸려 간다. 언론 독재다.” 조 대표 같은 보수층이 분노하는 표면적 이유는 언론 오보에 박 대통령이 마녀사냥을 당한다는 거다. 백번 양보해 작년 10월 24일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보도’에 의문이 있고, 최순실의 태블릿PC가 아니라고 치자. 그러나 바로 다음 날 “취임 후 일정 기간 (최 씨의) 의견을 들은 적도 있다”는 말로 사실상 최순실의 국정 개입을 시인한 사람이 박 대통령이었다. 이후 최순실이 수석비서관회의를 열어라 말아라 했던 사실이 드러나는 등 박 대통령은 참담하리만큼 국민의 신임을 배신했다. 헌법재판소가 2004년 ‘탄핵이 필요한 중대한 법 위반’으로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여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했을 때’를 명시한 것과 지남철처럼 들어맞는다. 그럼에도 일부 보수층은 “최순실한테 물어보는 게 북한 김정일한테 물어보는 것보다 낫다”며 분노하고 있다. 2007년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기권’ 표결에 앞서 북측의 의견을 물은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대통령비서실장이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더 나쁜데 왜 박 대통령만 탄핵을 당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최순실이 좌지우지한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업 돈을 내게 한 것보다 2000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북한에 4억5000만 달러를 퍼준 것이 더 국익을 해쳤다는 주장도 뜨겁다. 측근 비리로 따져도 역대 대통령 측근 비리의 규모, 정도, 기간이 훨씬 무겁다며 억울해한다. 맞는 얘기다. 그러나 과거 대통령이 더 나빴는데 왜 박 대통령만 탄핵하느냐는 지적은 남들도 다 교통위반 했는데 왜 나만 딱지 떼느냐는 말과 똑같다. 헌법이 보장하는 ‘법 앞에 평등’은 합법의 평등이지 불법의 평등을 의미하지 않는다. 헌재도 “헌법상 평등은 불법의 평등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2014헌바372). ‘불법의 평등’을 요구하는 일부 보수층의 주장이 치명적인 것은 앞으로 어느 대통령이 어떤 헌법과 법률 위배 행위를 해도 박 대통령과 견줘 보곤 탄핵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국민의식과 국내외 환경은 놀랍게 바뀌었는데도 이들 보수층만 과거를 기준으로 삼아 나라가 한 단계 도약할 길을 막는 것이 경악스럽다.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중히 여기면서 헌정질서와 애국심을 강조하는 이념이 보수주의다. 박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헌법도 무시할 작정이라면 자칭 ‘애국 보수’라는 말은 하지도 말아야 한다. 이제야 전 국민이 헌법정신과 법치의 엄중함을 절감하게 됐는데 국정의 사사화(私事化)가 별일 아니라니, 언제까지 우리 아이들이 헌정유린과 정경유착이 판치는 ‘실패 국가’에서 살아야 한단 말인가. 7일 서울 태극기 시위가 주최 측 추산 102만 명(경찰 추산 3만7000명)으로 광화문 촛불시위 60만 명(경찰 추산 2만4000명)을 능가한 큰 이유는 차기 대통령으로 갈수록 유력해지는 문재인 때문일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한미 동맹보다 대북 관계와 중국을 중시하는 그의 안보관을 믿을 수 없고, 이석기 석방을 외치며 촛불시위를 주최하는 세력의 진의가 불안하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박 대통령이 잘했다는 건 아니라는 보수층에서까지 탄핵소추를 찜찜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재인이 진정 나라에 희망을 주려면 이런 보수층의 불안에 답해야 한다.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서라도 세계에서 유례없는 안보 위기 속의 대한민국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진심으로, 자신의 머리로 고민해야 한다. 불법의 평등보다 더 용납할 수 없는 것은 체제의 평등, 남북의 평등을 믿는 듯한 문재인 진영의 인식체계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믿기 힘든 일이지만, 그리고 웃어도 할 수 없지만 240년 전 병신년(丙申年)에 즉위한 정조는 박근혜 대통령과 공통점이 꽤 있다. 첫째 만기친람(萬機親覽)이다. 온갖 정사를 임금이 친히 보살핀다는 이 말에 가장 어울리는 조선 국왕이 정조였다. 보고서 읽기를 좋아했고, “작은 일에 너무 신경 쓰면 큰일에 소홀해지기 쉽다”는 상소문까지 받았다. 지금이야 박 대통령이 서면보고만 받은 이유가 비선 실세 최순실한테 보내기 위해서였나 싶지만 국장급 인사까지 챙기는 대통령의 업무 행태도 만기친람으로 표현됐다. ‘의리’를 강조한 것도 비슷하다. 박 대통령은 의리가 없으면 인간도 아니라며 배신의 정치를 증오했다. “의리 지키니까 이렇게 대접받잖아”라고 확인한 이가 최순실이다. 정조는 의리를 국정철학으로 놓고 시의(時議·특정 시기의 공의)에 따라 자신이 판단했다. 인재 등용의 탕평책도 영조가 무당파적 탕평책을 쓴 데 비해 정조는 옳고 그름을 가려 쓰는 준론탕평(峻論蕩平)으로 달랐다. 공적 제도 무력화도 기막힌 공통점이다. 좌의정 심환지에게 몰래 보냈다 2009년 공개된 정조의 어찰에는 정치 현안의 막후 조정과 신하를 ‘호래자식’이라고 욕하는 내용도 있다. 박 대통령처럼 최순실과 국정을 사사화(私事化)했다고 탄핵받진 않았지만 정조가 겉으론 공론을 중시하면서 사관(史官)의 붓을 속여 의리의 공정성을 허약하게 만들었다는 게 이경구 한림대 교수의 분석이다. 정조는 우주와 세상의 이치를 도통해 모든 개천을 비추는 달빛 같은 군주(萬川明月主人翁)가 됐다고 자부했기에 이 모든 것을 해냈을 것이다. 아버지 박정희의 후광, 또는 온 우주의 기운으로 청와대에 입성한 박 대통령도 대통령제 개헌론까지 불러온 제왕적 대통령이었다. 2013년 청와대 첫 송년만찬에서 “오로지 국민이 북극성”이라고 했다지만 혹시 ‘수많은 별들이 북극성을 에워싸고 돌아가는 것처럼’ 국왕 중심의 정치판을 짜려고 했던 정조실록을 거꾸로 인용한 건 아닌지 의심증이 생긴다. 발음하기도 민망한 병신년을 보내며 정조를 떠올리는 건 일종의 속죄의식 때문이다. 정조가 즉위한 1776년, 미국이 건국하고 영국에선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나온 그해 우리도 ‘개혁군주’를 맞았다고 올 초 나는 글을 썼다. 그랬던 우리나라가 1800년 정조 서거 뒤 망국으로 치닫게 된 것은 진보좌파 주장대로 북학파 같은 개혁세력이 보수반동세력에 밀려나서가 아니라, 정조가 기른 그 개혁파가 기득권 세력이 되면서 관념과 특권, 향락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운동권 ‘86그룹’의 타락을 지적했다. 올해가 가기 전 정조를 들여다보다 새롭게 발견한 역사가 있다. 드라마에선 백성과 절절히 교감하는 듯했던 정조가 결코 개혁군주라고 하긴 어렵다는 사실이다. 중국과 유럽의 격차가 확실해지면서 유럽 중심의 시스템이 뿌리를 내린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의 대분기(Great Divergence), 일본도 중국과 통상하며 부국강병을 달성한 이 중요한 시기에 정조는 이미 망한 명나라와 성리학에 매달려 왕권을 강화하는 거꾸로 개혁을 한 것이다. 문체반정이 단적인 예다. 이덕일 같은 역사학자는 노론의 천주교 탄압 요구를 물리치기 위한 작은 사건이라고 주장했으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것 이상의 수구반동은 없다. 사도세자의 묘를 옮긴 화성에 북학을 활용한 성곽을 쌓고 제도 개혁의 신도시를 만들려 했다지만 신해통공처럼 도루묵된 개혁을 보면 믿기 어렵다. 정조 서거 뒤 터진 삼정문란이나 민란은 민생을 외면한 채 화성 축성에 매달렸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런데도 정조는 서거 1년 전 12월 25일 “한 해의 공과를 따져 보아야 하는데… 나는 아직도 퍼뜩 깨달아지는 점이 있지를 않으니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라고, 탄핵을 당하고도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우리 대통령과 똑같은 표현을 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기업의 팔을 비틀어 기이한 재단과 창조혁신 관련 사업을 짜냈던 박 대통령은 자신이 여왕이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는지도 궁금하다. 1979년 10월 27일 화성복원기념식에 참석 예정이었던 박정희 대통령이 전날 서거한 것은 역사의 묘한 우연이라 치자. 그래도 박정희는 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비전을 제시했던 대통령이었다. 아버지가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며 일으켜 세운 대한민국을 처참하게 주저앉힌 박 대통령은 그 죄를 어떻게 씻을 참인가.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어제 국회를 방문해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국회와 긴밀한 협의를 통해 국정이 안정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 의장도 “마침 정치권에서 (여야정) 국정협의체를 제안해 민생을 살리고자 하는데 잘 검토해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소추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 권한대행과 국회의장이 협조를 약속하는 모습은 국민의 불안감을 덜어주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국회 주도권을 쥔 야권의 태도를 보면 제대로 협조가 이뤄질 것 같지가 않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어제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황 권한대행을 계속 ‘총리’로 지칭하며 “황 총리는 대통령 탄핵 소추 가결과 함께 사실상 정치적 불신임을 받은 상태”라고 말했다. 헌법과도, 사실관계도 맞지 않는 억지 발언이다. 헌법은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총리가 권한을 대행한다고 명시했다. 추 대표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 때 고건 총리가 권한대행을 맡았던 사실을 잊었는가. 더구나 거국내각 구성을 거부해 ‘황교안 체제’를 유지시킨 건 야당이었다. 민주당이 “얌전히 국회의 뜻을 받들라”며 황 권한대행을 상대로 군기를 잡으려는 데 박수칠 국민은 많지 않다. 야당이 황 권한대행의 국정 운영을 발목 잡아 나라를 망할 정도로 만들어야 차기 대선에 유리할 것으로 믿는다면 국민의 불행이다. 이번 기회에 야당이 국정을 제대로 이끌 수 있다는 리더십을 보여줘야 신뢰를 얻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황 권한대행도 20, 21일 국회 대정부질문 출석에 대해 “헌법상 대통령은 출석 대상이 아니고 대통령 권한대행이 출석한 전례도 없다”고 고집할 것이 아니라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나서주면 좋겠다. 지금 국민은 황 권한대행이 어떻게 국정을 이끌고 갈 것인지 궁금해하고 있다. 국무총리도 겸하는 행정부 책임자 자격으로 국회에 나가 국민을 대신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는 형태로 국정 운영의 기조를 밝히면 될 것이다. 같은 당 우상호 원내대표가 “국회를 무시하면서 몰락의 길을 갔던 박 대통령의 전철을 따르지 않길 바란다”고 말한 것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행정부 수반이 적극적으로 국회를 찾고, 여야 의원들을 만나 협조를 구하는 것이 20대 국회를 여소야대로 만든 총선 민의이고, 협치다. 여당 원내대표의 부재로 당장 가동하기는 어렵지만 여야가 합의한 여야정 협의체 운영에도 황 권한대행은 적극성을 보였으면 한다. 야권이 여당을 뺀 야 3당 대표와 황 권한대행의 회동을 제의한 것도 형식에 다소 문제가 있지만 마다할 이유가 없다. 지금 황 권한대행 처지에서 야권의 협조 없이는 국정을 꾸려 나가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비상시국이면 황 권한대행도, 국회도 비상하게 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