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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 다니는 50대 김중섭(가명) 씨는 최근 고수익 투자처를 소개한다는 텔레그램 투자 리딩방에 초대됐다. 비상장 주식을 싸게 살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다른 회원들이 인증한 투자 계약서에는 법무법인(로펌)의 이름뿐 아니라 워터마크(불법복제 방지 무늬)까지 새겨져 있었다. 검색해 보니 실존하는 로펌이었다. 진짜 계약서라고 철석같이 믿은 김 씨는 기대에 부풀어 노후자금 3200만 원을 송금했다. 하지만 투자를 권유한 업체는 돌연 잠적했다. 당황한 김 씨가 계약서에 적힌 로펌에 연락해 보니 “해당 투자와 전혀 관련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김 씨는 그제야 ‘속았다’ 싶었지만 이미 대화방은 사라진 후였다. 김 씨는 “실제 로펌 이름이 적혀 있는 등 감쪽같아 사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로펌 도용한 ‘간 큰’ 투자 사기 일당 11일 서울 강남경찰서는 로펌의 이름을 도용해 투자자로부터 돈을 받은 뒤 잠적한 투자업체를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로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법무법인이 김 씨 등 사기 피해자로부터 연락을 받고 사기업체를 지난달 24일 고발한 데 따른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로펌까지 도용하는 투자 리딩방 사기는 흔치 않아서 엄정히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고수익을 약속한 뒤 돈만 챙겨 달아나는 투자 리딩방 사기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로펌과 변호사가 관여한 것처럼 속이는 업체까지 등장해 피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명 연예인이나 전직 고위 공직자 등을 허위로 내세운 투자 사기가 빈발하며 경각심이 커지자 아예 법률 전문가로 속이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 로펌이 공증한 것처럼 서류를 정교하게 꾸민 수법도 나왔다. 영등포경찰서는 지난달 한 투자 리딩방 업체에 사문서위조 혐의를 적용해 추적하고 있다. 리당방 업체는 투자자 1명당 입회비 명목으로 250만∼1000만 원을 받고 ‘수익이 나지 않으면 돌려주겠다’면서 이를 법무법인 T사가 공증한 것처럼 지급보증서를 꾸며 배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법무법인은 실존하지만 해당 투자와는 무관한 곳이었다. 소속 변호사는 “리딩방에 168명이나 가입했다고 한다”며 “피해자가 더 많을 것으로 보고 법적 대응을 위해 사례를 수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채팅방 투자 권유는 전부 가짜라고 봐야” 도용당한 로펌들은 홈페이지에 팝업 안내창을 띄우거나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투자 리딩방 가입을 권유하지 않습니다. 속지 마세요”라는 문구를 게시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한 법률사무소의 서모 변호사는 의뢰인의 제보를 받고서야 자신의 사진이 투자 사기 업체에 1년 넘게 도용된 걸 알았다. 법률사무소 홈페이지에 있는 서 변호사 사진을 가져다가 가상의 애널리스트 ‘이가은’을 만들고, 해당 프로필로 1년 넘게 주식 리딩방을 운영한 것이다. 로펌 공식 홈페이지에서 바로 프로필을 확인할 수 있는 변호사의 이름을 도용하는 건 ‘설마 이것도 가짜겠냐’는 피해자의 심리적 허점을 노린 수법이면서, 그만큼 사기범들이 ‘잡히지 않을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이 투자자 모집에 주로 악용하는 보안 메신저 텔레그램은 본사가 해외에 있고 수사기관의 요청에도 피의자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추적하기 쉽지 않다. 어렵사리 일부 가담자를 특정해도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특성 탓에 피해액을 돌려받기는 더 어렵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경찰에 신고된 투자 리딩방 피해액은 2970억 원에 달한다. 수사당국은 로펌 등을 앞세워 고수익을 보장한다며 채팅방에서 투자자를 모집하면 일단 의심부터 하라고 조언한다. 특히 딥페이크(이미지 조작)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는 만큼 정교해 보이는 공문서도 믿어선 안 되고 꼭 발급처에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개인적으로 오는 투자 권유는 전부 가짜라고 생각하는 게 안전하다”고 말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음대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 1회당 최대 70만 원을 받고 불법 성악 과외를 제공하고, 학부모와 브로커에게 명품백과 금품을 받은 현직 음대 교수들이 무더기로 검찰에 넘겨졌다. ‘음대 입시 비리’를 수사해 온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는 학원법 위반, 청탁금지법 위반, 업무방해 등 혐의로 현직 대학교수 14명과 입시 브로커 1명, 학부모 2명 등 17명을 5일 검찰에 송치했다고 10일 밝혔다. 교수들이 입시 브로커와 공모해 불법 성악 과외를 한 건 총 244차례로 교습비만 1억3000만 원 상당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학원법상 학교에 소속된 교원은 과외 교습을 할 수 없다. 경찰 조사 결과 적발된 교수 중에서 서울대 음대 실기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교수는 3명, 숙명여대 심사위원 참여 교수 1명, 경희대 등 2개 대학 심사위원 참여 교수는 1명이었다. 이들 교수 5명은 자신이 불법 레슨한 수험생에게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에겐 대학 입시 업무를 방해한 혐의(업무방해)가 적용됐다. 특히 숙명여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교수는 수험생 2명에게 집중 과외 교습을 하고 학부모로부터 현금과 명품 핸드백 등을 받아 청탁금지법도 위반한 것으로 조사돼 유일하게 구속 송치됐다. 입시 브로커는 2021년 1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서울 강남구, 서초구 음악 연습실을 대관해 총 679회에 달하는 불법 성악 과외 교습을 했다. 학생들은 1회 교습에 최대 70만 원을 낸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지난해부터 구속된 대학교수의 집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입시 브로커가 교수들에게 수험생들이 지원한 대학명과 실기고사 조 배정 순번을 알려주며 노골적으로 청탁한 사실이 드러났다. 해당 교수들은 발성과 목소리, 조 배정 순번 등으로 자신이 가르쳤던 수험생을 찾아내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교육부에 비리를 저지른 대학교수들은 입시 심사위원이나 국내 콩쿠르 대회 위원 자격을 제한하는 등의 행정 조치를 건의했다”고 밝혔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음대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 1회당 최대 70만 원을 받고 불법 성악 과외를 제공하고, 학부모와 브로커에게 명품백과 금품을 받은 현직 음대 교수들이 무더기로 검찰에 넘겨졌다.‘음대 입시 비리’를 수사해 온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는 학원법 위반, 청탁금지법 위반, 업무방해 등 혐의로 현직 대학교수 14명과 입시 브로커 1명, 학부모 2명 등 17명을 5일 검찰에 송치했다고 10일 밝혔다. 교수들이 입시 브로커와 공모해 불법 성악 과외를 한 건 총 244차례로 교습비만 1억3000만 원 상당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학원법상 학교에 소속된 교원은 과외 교습을 할 수 없다.경찰 조사 결과 적발된 교수 중에서 서울대 음대 실기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교수는 3명, 숙명여대 심사위원 참여 교수 1명, 경희대 등 2개 대학 심사위원 참여 교수는 1명이었다. 이들 교수 5명은 자신이 불법 레슨한 수험생에게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에겐 대학교 입시업무를 방해한 혐의(업무방해)가 적용됐다. 이들은 심사 전 ‘응시자 중 지인 등 특수관계자가 없다’, ‘과외 교습을 한 사실이 없다’ 등의 내용이 적힌 서약서를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특히 숙명여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교수는 수험생 2명에게 집중 과외 교습을 하고 학부모로부터 현금과 명품 핸드백 등을 받아 청탁금지법도 위반한 것으로 조사돼 유일하게 구속 송치됐다. 입시 브로커는 2021년 1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서울 강남구, 서초구 일대 음악 연습실을 대관해 총 679회에 달하는 불법 성악 과외 교습을 했다. 학생들은 1회 교습에 최대 70만 원을 낸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지난해부터 입시 브로커의 자택과 음악 연습실, 구속된 대학교수의 집무실, 입시비리 피해 대학 입학처 등 16곳을 3차례에 걸쳐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입시 브로커가 교수들에게 수험생들이 지원한 대학명과 실기고사 조 배정 순번을 알려주며 노골적으로 청탁한 사실이 드러났다. 해당 교수들은 발성과 목소리, 조 배정 순번 등으로 자신이 가르쳤던 수험생을 찾아내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불법 교습으로 학원법 위반 처벌을 받더라도 처벌 수위가 약한 상황”이라며 “교육부에 비리를 저지른 대학교수들은 입시 심사위원이나 국내 콩쿠르 대회 위원 자격을 제한하는 등의 행정 조치를 건의했다”고 밝혔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남편의 친구에게 4년간 1억5000만 원을 빼앗은 40대 여성이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서울북부지법 형사9단독(부장판사 인형준)은 사기 혐의로 기소된 최모 씨(42)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고 7일 밝혔다. 최 씨는 존재하지 않는 재력가를 아는 것처럼 꾸며 남편 친구인 피해자에게 접근해 총 96차례에 걸쳐 1억5378만 원을 송금받았다.2017년 8월 최 씨는 남편을 통해 피해자에게 전화를 건 뒤 “부산의 한 재력가가 세금 문제로 계좌가 압류돼 일시적인 자금난을 겪고 있으니, 자신을 통해 돈을 빌려주면 한 달 뒤 2배로 돌려주겠다”고 거짓말을 했다.하지만 부산의 재력가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이었다. 재판부는 “최 씨가 별다른 재산이나 수입이 없었고 다액의 채무를 부담하고 있었으므로 갚을 의사나 능력이 전혀 없었다”고 판단했다. 한편 재판부는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편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남편이 재력가가 가상 인물인지 몰랐다고 일관되게 진술한 점, 2020년 2월 이후 피해자와의 카카오톡 대화는 모두 최 씨 단독으로 이뤄진 점 등에 비춰 공모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숲이 아니라 꼭 테마파크에 놀러 온 것 같아요.” 강원 춘천시 삼한골 상류에 있는 국립춘천숲체원에서 만난 최예솔 양(10)과 최 양의 아버지는 알록달록 색깔이 칠해져 있는 9m 높이의 실외 암벽장을 바라보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달 22일 찾은 이곳엔 단체 탐방객 20여 명이 무리 지어 숲해설가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마치 놀이동산을 방불케 할 정도로 활기찬 이곳은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군사시설로 일반인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곳이었다. 그러다 2015년 자연휴양림으로 지정되면서 즐길 거리를 갖춘 이른바 ‘레저숲’으로 거듭났다. 수풀과 계곡, 바위 등 숲에 있는 자연환경을 원형 그대로 활용해 레저나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숲을 뜻한다. 산림청은 2018년부터 이곳에 숲을 활용한 레포츠 시설을 조성해 2021년 문을 열었고, 지난해 5만2000명이 방문하는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했다.● 첩보부대 훈련장에서 레저숲으로 숲체원 부지는 육군 첩보부대(HID) 요원들이 1970년대부터 2014년까지 실제로 훈련했던 장소다. 도심과 멀리 떨어져 있진 않지만 민간인 출입을 통제해 숲 일대를 훈련장으로 활용했다. 그러다 2018년부터 도시민의 여가 수요를 반영해 실내외 암벽등반장과 글램핑장 등 다양한 산림레포츠 특화시설을 갖춘 레저숲으로 다시 태어났다. 과거 사격 훈련과 고지 점령 훈련, 유격 훈련이 이뤄진 실제 공간이 지금은 산림레포츠 체험 시설로 바뀌었다. 철거하지 않은 군사훈련용 막타워(모형탑)도 곳곳에 남아 있다. 축구장 300개가 넘는 335ha 규모의 숲체원 곳곳엔 6m 높이의 나무 타기 시설을 비롯해 산악자전거(MTB)를 탈 수 있는 코스, 5m 높이의 로프코스를 즐길 수 있는 모험숲, 놀이터를 갖춘 유아숲 등의 시설이 들어서 있었다. 이 같은 숲 체험 시설만 10개가 넘는다. 2시간 안팎에 걸쳐 계곡이나 숲길을 트레킹할 수 있는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명상과 ‘불멍’, 해먹 체험 등 다양한 산림교육 콘텐츠도 인기를 끌고 있다. 캠핑할 수 있는 글램핑 시설과 단체 숙박시설도 갖춰 1박 이상 머물며 프로그램을 즐길 수도 있다. 김보영 국립춘천숲체원 주임은 “주로 학교나 기관에서 오는 단체 탐방객이 많다”며 “60대 이상 어르신 단체도 종종 방문하는데 남녀노소 원하는 방식대로 숲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스트레스 해소 등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방문객 수도 크게 늘고 있다. 시범 운영을 시작한 2020년 3800여 명에서 2021년 2만6000명, 2022년 4만3000명, 지난해 5만2000명까지 3년 만에 13배가량 급증했다. 통상 3시간 이상 머무르기 때문에 생활인구로 산정돼 지역 활성화에 이바지하고 있다. 춘천시 국립용화산자연휴양림은 1박에 1만5000원이라는 저렴한 비용으로 야영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이름났다. 이런 숲체원이나 휴양림을 포함한 전국의 산림교육센터는 총 23곳에 이른다. 2017년 17만 명 안팎이었던 방문객 수는 지난해 약 53만 명으로 급증했다.● 치유하며 모험·체험 즐기는 숲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야외 활동이 늘어나면서 체험시설을 갖춘 숲을 찾는 이들뿐만 아니라 산악 마라톤이나 트레킹 등 산에서 모험과 체험을 즐기려는 동호인도 증가했다. 암벽 등반이나 산악 승마, 자전거, 패러글라이딩 등이 대표적인 산림레포츠다. 전국 산림레포츠 동호인은 2014년 23만 명에서 2020년 50만9000명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여기에 발맞춰 맞춤형 프로그램도 새로 생겨나고 있다. 경북 영주시에선 2030세대를 겨냥한 ‘알프스 챌린지’ 트레킹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소백산 비로봉과 연화봉 등을 등반하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인증하면 영주시의 ‘소백 3봉 챌린지’를 완성할 수 있다. 등산 인플루언서와 함께 챌린지형 산림 치유 트레킹도 참여할 수 있다. 산악 마라톤을 즐기는 이도 늘고 있다.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서 험난한 비포장 산길을 달려야 하지만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풍경을 만끽하며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게 묘미다. 지리산 화대종주와 설악산 공룡능선, 제주 한라산 능선 코스가 대표적이다. 2021년 산림청 통계에 따르면 이러한 레저활동이나 치유 프로그램 등 연간 산림휴양 경험률은 79.2%로, 경험자의 97.1%는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인식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준순 강원대 산림경영학과 교수는 “삶의 질이 핵심 가치인 시대에 숲은 최고의 놀이터”라며 “청소년기부터 다양한 종목의 산림 레포츠 등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 취약 계층도 접할 수 있게 레저숲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도 우울감도 숲에서 모두 잊어요”無장애숲으로 이동약자 등 배려시각장애인 위한 오디오 숲해설우울감 치유 힐링캠프도 운영최근 국내 레저숲에 조성된 산림레포츠 시설은 휠체어를 탄 이동 약자나 시·청각 장애인, 노약자 등이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즐길 수 있는 ‘무장애숲’을 표방하고 있다. 강원 춘천시에 있는 국립춘천숲체원은 지난달 14일 SK 행복나눔재단과 함께 청년 장애인 직업훈련생 및 관계자 28명을 초청해 산림레포츠 체험을 지원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은 9m 높이 실외 암벽장을 도르래와 밧줄을 활용한 ‘어댑티브 클라이밍’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휠체어에 올라탄 채 암벽을 오를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법이다. 암벽 아래에서는 “할 수 있어요!”라고 소리치며 응원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처럼 휠체어를 타고 산림레포츠를 체험할 수 있어 이곳은 국내에서 유일한 ‘배려숲’으로 불린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무장애 나눔 숲길도 1km 추가로 조성할 계획이다. 김경포 국립춘천숲체원 산림레포츠팀장은 “장애인들이 산림레포츠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땅치 않은데 끝까지 암벽을 오르는 모습을 보면 정말 뿌듯하다”며 “몸과 정신 건강뿐만 아니라 자신감까지 얻어 갈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춘천숲체원은 2021년 개원 이후 매년 장애인을 위한 ‘나눔숲 캠프’를 열고 시각 장애인을 위한 오디오 숲해설 등 장애 유형별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올해는 장애인과 이들의 부모, 형제자매, 사회복지사, 특수교사, 돌봄 종사자의 스트레스 회복을 돕는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산림교육 대상자와 프로그램도 다양화하고 있다. 경북 영주시에 있는 국립산림치유원은 반려동물과 이별 후 정신적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겪는 ‘펫로스 증후군’ 가족을 대상으로 ‘내맘 쓰담 힐링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숲속에서 명상하거나 반려동물과의 추억을 간직하는 나무 액자 만들기 활동 등이 진행된다. 이 밖에도 한국 생활에 고립감을 느끼는 외국인 원어민 교사, 외국인 근로자, 유학생 등에게 심신 회복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영주 소백산 자락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숲 치유 프로그램, 한국 전통 다례를 배우는 다도 체험 등이 주요 활동이다. 산림청은 지난해 10월 엄마 배 속부터 유아, 청년, 장년, 노년에 이르기까지 생애 주기별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산림 시설을 대폭 확충하기로 했다. 산림복지 소외계층과 보행 약자를 위한 무장애 나눔 길 등 기반 시설을 늘리고 사회적 약자에게 제공하는 산림복지서비스이용권도 지속해서 확충할 계획이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지난해 12월 경복궁 낙서를 사주한 총책 강모 씨(30)가 31일 검찰에 넘겨졌다. 강 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불법 사이트 8개의 광고 수익을 끌어올리기 위해 낙서 마케팅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이 과정에서 국보 1호 숭례문까지 낙서 표적으로 삼았던 사실이 파악됐다.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31일 경복궁 낙서 사건 브리핑을 열고 강 씨를 포함해 총 8명을 붙잡았다고 밝혔다. 이날 송치된 강 씨에게는 문화재보호법 위반, 성폭력처벌법 위반, 청소년성보호법 위반 등 혐의가 적용됐다. 강 씨의 지시를 받고 실제로 낙서한 10대 2명과 중간에서 범행 대금을 전달한 조모(19) 씨도 함께 송치됐다.강 씨는 지난해 12월 16일 텔레그램에서 만난 미성년자들에게 경복궁 영추문, 국립고궁박물관, 서울경찰청 담장에 자신이 운영하는 불법 사이트 주소를 낙서하도록 지시했다. 범행 당일에는 벤츠 승용차를 타고 범행 현장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구체적으로 지시했다.강 씨는 전과 8범으로 불법 사이트 운영 외 직업은 없었다. 사기 혐의로 징역형을 살고 지난해 3월 출소한 뒤에는 10월부터 불법 사이트 8개를 운영했다. 영화 등 저작물 2368개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불법 촬영물이 이곳에서 유통됐다. 1건당 500만 ~1000만 원을 받고 배너 광고를 올려 약 2억5000만 원 수익을 냈는데, 광고 단가를 올리기 위해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 해당 사이트들은 현재 폐쇄된 상태다.수사기관 추적을 피하기 위해 해외 클라우드 서비스만 이용해 불법 사이트를 운영했고 텔레그램을 통해 알게 된 일면식 없는 사람들을 공범으로 끌어들였다. 올해 2월경에는 텔레그램 대화방 등에 ‘총책이 긴급 체포됐다’는 허위 소문을 퍼뜨려 수사에 혼선을 주려고 하기도 했다. 5월부터는 연고가 없는 전남 여수의 한 숙박업소에서 도피 생활을 이어오다 결국 검거됐다. 태국, 일본 등으로 해외 도피를 계획하기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경복궁 낙서 이틀 전엔 국보 1호 숭례문에도 낙서를 시도한 사실이 드러났다. 텔레그램을 통해 만난 15세 미성년자에게 숭례문과 광화문 세종대왕상에 낙서하라고 지시했지만 겁을 먹은 해당 남학생이 중도에 포기하면서 미수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한편 강 씨가 28일 경찰 조사를 받던 중 도주한 것과 관련해 경찰은 당시 강 씨가 수갑을 차고 있었지만 키 180㎝에 몸무게 59㎏의 마른 체구를 이용해 수갑에서 강하게 손을 뺐다고 설명했다. 약 2시간 만에 다시 붙잡힌 강 씨는 ‘최소 징역 12년형은 선고받을 것 같다는 생각에 도주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내년도 의대 대입전형 시행계획이 발표된 30일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전국 6곳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이 자리에서 “국가 예산으로 빨갱이 짓을 하고 있다”, “나치시대 게슈타포나 했던 일” 등 원색적 표현으로 정부를 비판했다. 의협은 다음 달 동네병원과 의대 교수 등이 동참하는 집단행동을 할 계획이다. 의협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대한문 앞을 포함해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전주 등에서 ‘대한민국정부 한국의료 사망선고’를 주제로 촛불집회를 열고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 강행을 규탄했다. 임 회장은 이날 오후 9시부터 열린 대한문 앞 집회 개회사에서 “이 사태의 본질은 정부가 일으킨 의료 농단, 돌팔이 만들겠다는 교육 농단, 암 환자 고려장, 어르신들 돈 많이 드는 진료는 못 받게 해 일찍 죽게 하겠다는 의료 고려장”이라며 “이걸 의료개혁이라고 포장해 국민들을 세뇌하는 건 빨갱이들이나 하던 짓인데 정부가 예산을 들여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정부가 계속 나라 망하는 길로 가겠다면 의사들은 잘못 인도하는 자들을 끌어내리는 일의 선봉에 서겠다”며 탄핵 운동 동참 가능성도 시사했다. 의협은 전날 내부 회의에서 6월 중 동네병원이 동참하는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다만 구체적인 파업 시기와 방식 등은 추후 결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총파업을 하더라도 참여율이 어느 정도 될지는 미지수란 지적이 나온다. 의협은 2020년 정부가 의대 증원을 추진할 때도 총파업에 돌입했지만 동네병원 동참 비율은 10∼20%에 불과했다. 의협은 이날 집회에서 “정부가 한국 의료를 죽였다”며 대한민국 의료 심폐소생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한편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지금은 의사들이 의료 사망선고 집회를 할 때가 아니라 의료를 살리기 위해 진료 정상화와 대화에 나서야 할 때”라고 비판했다.여근호 기자 yeoroot@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북한이 대규모 ‘오물 테러’를 감행했다. 거름과 쓰레기가 담긴 대형 풍선을 28일 밤부터 이틀 동안 260여 개나 날려 보낸 것. 단기간에 이 정도 규모로 풍선 테러를 감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오물이 담긴 풍선들은 서울 도심과 전북, 경북 등 한국 전역을 파고들었다. 용산 대통령실에서 불과 4.5km 떨어진 정부서울청사와 외교부 청사 옥상에도 풍선이 떨어졌다. 요격이 힘든 대형 풍선에 폭탄, 생화학무기 등이 실려 있었다면 인명 피해가 속출하고 대규모 혼란이 일어날 수 있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북한은 29일 새벽 서해상에선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교란 공격도 감행했다. 동시 공격으로 혼란을 증폭시키려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군에 따르면 대형 풍선들은 28일 밤부터 휴전선 이남 경기·강원 접경지역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로 날아들었다. 이후 29일까지 서울 마포구와 구로구, 영등포구 등 수도권은 물론이고 강원과 경남, 전북 등으로도 날아갔다. 풍선은 휴전선에서 250km 넘게 떨어진 경남 거창군 위천면의 한 논에서도 발견됐다. 전북 무주군과 충남 계룡시에 낙하한 풍선 주변에선 화약이 발견돼 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군 관계자는 “하루 기준 역대 최대 규모의 대남 풍선이 날아든 것”이라고 밝혔다. 풍선과 오물이 담긴 비닐봉지 연결부엔 ‘자동 폭파 타이머’가 설치된 것으로 전해졌다. 동력 장치는 없었지만 풍향과 비행 시간을 계산해 대통령실과 정부서울청사 등 주요 표적에 오물을 살포하려 한 의도로 보인다. 앞서 2016년엔 북한이 서울로 날린 대형 풍선에서 큰 물체가 떨어져 차량과 주택 지붕이 파손된 바 있다. 군은 화생방대응신속팀(CRRT)과 폭발물처리반(EOD)을 출동시켜 지상에 떨어진 80여 개를 수거했고, 관련 기관에서 정밀 분석을 하고 있다. 우리 군은 “반인륜적이고 저급한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라고 북한에 경고했다. 이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밤에 담화를 내고 “저 한국것들의 눈깔에는 북으로 날아가는 풍선은 안 보이고 남으로 날아오는 풍선만 보였을까”라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 인민이 살포하는 오물짝들을 ‘표현의 자유 보장’을 부르짖는 자유민주주의 귀신들에게 보내는 진정 어린 ‘성의의 선물’로 정히 여기고 계속계속 주워 담아야 할 것”이라며 추가 살포 가능성도 시사했다.北 풍선에 자동폭파 타이머… 정부청사 등 표적 테러 우려도 [北 ‘오물 풍선 테러’]목표지역 상공서 폭파되게 설정… 대남 심리전 부대가 조직적 살포저비용으로 혼란 극대화 효과… “생화학 공격땐 대규모 인명피해” 북한이 28, 29일 이틀에 걸쳐 한국 전역으로 날려보낸 260여 개의 대형 풍선 아래에는 거름으로 추정되는 시커먼 색의 오물과 각종 쓰레기가 담긴 비닐봉지가 달려 있었다. 앞서 2016∼2017년 북한이 서울 도심에 날린 대형 풍선에 들어 있던 대남 전단(삐라)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군은 전했다. 군 관계자는 “휴전선 인근이 아닌 더 북쪽의 여러 곳에서 북한군 대남 심리전 전담 부대가 조직적으로 날려 보낸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풍선과 오물 적재물의 연결부에는 목표 예상 지역 상공에서 터지도록 설정한 ‘자동폭파 타이머’가 설치돼 있었다.● 서울에 10여 개, 2개는 정부 핵심 건물에 2016∼2017년 북한은 연간 1000개가량의 대형 풍선을 남쪽으로 날려보냈다. 하지만 이번엔 단 이틀(28일 밤∼29일 오후)에 걸쳐 260여 개에 달하는 ‘오물 풍선’을 동시다발로 보냈다. 상부 지시에 따라 철저히 사전에 기획해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진행한 도발로 우리 군은 보고 있다. 북한의 대형 풍선은 지름 3∼4m 크기로 자체 동력기관은 없다. 그 대신 풍향과 풍속에 맞춰서 날려 보내면 기류를 따라 목표 지역 상공에 도달한 뒤 자동폭파 타이머가 작동해 오물 등을 투척하도록 제작됐다. 군 소식통은 “바람을 고려해 북한 서부지역에서 날려 보내면 부채꼴 모양으로 쫙 퍼져서 한국 전역으로 날아들 수 있다”고 했다. 대형 풍선이 접경 지역뿐 아니라 경남 지역까지 비행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오물 풍선은 서울 도심 곳곳에서 발견됐다. 경찰은 이날 오후 1시 반경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옥상에 “이상한 물체가 있다”는 경비원 신고를 받고 출동해 발견한 풍선을 군에 인계했다. 앞서 오전 4시경엔 외교부 청사 인근 거리에서도 풍선이 발견됐다. 260여 개의 풍선 중 서울에는 10여 개가 살포됐는데, 그중 2개가 10시간도 안 되는 간격으로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정부서울청사와 외교부 청사에 잇달아 떨어진 것. 두 곳 모두 정부 핵심 기관 건물이다. 휴전선으로부터 250km 넘게 떨어진 경남 거창군 위천면의 논에서도 풍선이 포착됐다. 경찰과 소방이 출동해 풍선 2개에 매달린 비닐 봉투를 수거해 보니 그 안에는 페트병과 종이 쓰레기 등이 담겨 있었다. 전북 무주군과 충남 계룡시에서 떨어진 풍선 주변에서는 화약이 발견돼 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오전 5시 45분경 무주군 무주읍 내도리에서 오물 풍선이 전깃줄에 걸린 채 발견돼 경찰과 군이 접근 통제선을 설치한 채 이를 수거했는데, 소량의 화약 성분이 묻어 있었던 것. 경찰과 군 관계자는 이 성분을 분석 중이다. ● “생화학무기 실으면 대형 인명 피해 우려” 드론, 전투기 등 첨단 무기와 비교해 극히 조잡하지만 대형 풍선(기구)은 심리전의 최적화된 수단이다. 지상을 월경해 상대국 영공을 휘젓고 다니면서 비방 공작과 정찰 임무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초 중국 정찰풍선이 미국 본토 곳곳에서 발견되자 미 공군 전투기가 미사일을 쏴 격추하는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사회 혼란 야기 등 대남 충격 효과도 크다. 북한의 ‘오물 풍선’이 전국 곳곳에서 발견되자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서 등에 신고가 빗발쳤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비행 중이거나 지상에 떨어진 오물 풍선의 사진을 올리면서 충격과 불안을 호소하는 글이 쏟아졌다. 군 관계자는 “핵·미사일 도발 비용과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낮은 비용으로 대남 충격 및 도발 효과의 극대화를 노린 것”이라고 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연구센터장(예비역 육군 준장)은 “북한이 군사 도발 목적을 위해 풍선에 폭탄이나 생화학무기를 실을 경우 대규모 인명 손실과 사회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북한의 심리전 파상 공세에 맞대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선 과거 철거했던 대북 전광판이나 확성기 등을 휴전선 일대에 재설치하는 방안 등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거창=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

“사람 손을 타지 않고 550년이라는 세월이 만들어 낸 우리 숲의 본모습입니다.” 이봉우 광릉숲보전센터장은 9일 일반인 출입이 통제된 경기 포천시 광릉숲 안에 있는 생태연구타워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755ha(헥타르) 규모의 천연림 핵심구역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축구장 1000개가 넘는 광활한 숲에 바람이 일자 마치 초록색 파도가 일렁이는 듯했다. 광릉숲은 1468년 조선 세조대왕릉의 부속림으로 지정된 이래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다. 소리봉과 죽엽산 일대에 있는 광릉숲 핵심구역은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해 556년 동안 훼손이나 인위적 간섭 없이 자연 그대로의 숲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연구용 시설물과 숲길인 임도(林道)뿐이다. 그러다 보니 동식물과 곤충의 생태계가 촘촘해 생물다양성의 터전일 뿐만 아니라 숲의 성장 과정이 남아 있어 학술적으로 가치가 높다. 이 센터장은 “숲 전체가 하나의 연구실”이라며 “현재 생물다양성 목록화, 인공림 자연 회복성, 천연기념물 복원 등 다양한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생물다양성의 보물창고 이곳은 2010년 6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등재됐다. 전 세계적으로도 748곳뿐이다. 국내에는 광릉을 포함해 설악산, 제주, 강원 등 9곳이 생물권보존지역으로 지정됐다. 광릉숲에서 관찰 기록된 자생 생물은 곤충 3932종, 식물 946종, 고등균류 694종, 조류 187종 등을 포함해 모두 6251종에 이른다. 광릉숲은 ‘K원시림’으로 국내 숲 발전 방향의 기준점 역할을 한다. 출입 통제 속에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온대 중부 일반 산지 식생’(해발 800m 이하)이 자연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 숲의 식생 변화 가운데 안정기에 접어든 온대 활엽수 극상림(極相林)을 이루고 있다. 556년이 응축된 숲의 정보는 훼손된 숲 복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해가 중천에 뜬 9일 정오에도 숲 안은 온통 그늘졌다. 이곳에서 접한 수령 250년 넘은 갈참나무의 몸통은 성인 3명이 팔을 벌리고 안아도 넘칠 만큼 웅장했다. 썩어서 쓰러진 나무에서는 버섯과 곤충, 이끼류 등이 둥지를 틀어 작은 생태계가 꾸려졌다. 김아영 국립수목원 임업연구사는 “다양한 생물이 어울려 살아서 병충해 약을 뿌리지 않아도 숲 스스로 건강을 유지한다”라고 했다. 국내에서 해발 800m 이하 일반 산지는 대부분 농업이나 땔감용, 인공림 등으로 쓰이며 온전한 모습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광릉숲은 서어나무와 졸참나무 등 활엽수림을 중심으로 저해발 산지 식생의 본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조용찬 국립수목원 임업연구사는 “광릉숲은 봉우리, 능선, 사면, 하천 범람원 등 모든 환경이 연결돼 상호작용하면서 생물다양성의 보물창고가 됐다”면서 “숲을 조성할 때 답안지로 활용할 수 있는 정보 저장고”라고 평가했다. 생태계에서 자연적으로 자라 가슴높이의 몸통 둘레가 3m 이상 자란 나무를 ‘큰 나무(산림유존목)’라고 한다. 전국에 837그루가 있는데 광릉숲에만 18그루가 있다. 광릉숲 천연림을 대표하는 식생은 서어나무와 졸참나무다. 서어나무는 풀, 작은 나무, 침엽수, 활엽수 단계로 이어지는 숲 식생의 변화 과정에서 가장 마지막 단계에 나타나 우위를 점해 ‘숲의 지배자’로 불린다. 이 덕분에 주로 말라서 죽은 서어나무에서 서식하는 천연기념물 제218호인 장수하늘소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광릉숲에서만 살고 있다. 이 밖에 하늘다람쥐, 황조롱이, 까막딱따구리 등 천연기념물 19종(조류 17, 포유류 1, 곤충 1종)이 산다.● 기후변화 대응할 숲의 기준으로 광릉숲의 촘촘한 생태계는 학술적으로 가치가 크다. 이곳의 연구 결과는 미래 K숲의 기준이 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광릉숲의 각종 생태 정보들을 통해 숲의 자연성 회복 과정과 변화 속도를 파악해 미래 인공림을 만들 때 천연림과 비슷한 생태계를 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광릉숲은 직접적인 탄소저감 효과와 더불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건강한 후대 숲을 양성하는 기준이 된다. 국립수목원이 발행한 광릉숲 시험림 보고서에 따르면 1ha 면적에 서어나무, 갈참나무 등 30개 종의 나무가 자란 것으로 조사됐다. 연간 이산화탄소 저장량은 1ha당 639.2t(2022년 기준)으로 파악됐다. 연간 1만5000km 주행한 승용차 266대가 내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638.4t과 비슷한 수준이다.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후대 광릉숲을 만들기 위한 작업도 진행 중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올해 강원, 충남, 경북, 전북, 인천, 대구, 부산 등 24개 지역 56ha에 대해 산림복원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절반은 비무장지대(DMZ) 일대 복원사업이지만, 산림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작업도 있다. 예를 들어 대구 남구 수목원에서는 희귀식물로 지정된 가침박달나무 복원이 한창이다. 2000년 9월 300그루가 자생하던 가침박달나무는 현재 50그루밖에 남지 않은 상태다. 남성현 산림청장은 “산림은 보전과 이용이 균형을 이뤄야 지속 가능한 자원으로 경쟁력이 있다”며 “생태계가 두터운 광릉숲은 연구 대상이자 멸종 위기종의 마지막 안식처로서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곤충 왕국 광릉숲, 장수하늘소 멸종 막을 최후의 보루” 식생 풍부하고 고목 등 환경 조성매년 15마리 자연방생 ‘복원 작업’ 광릉숲의 또 다른 이름은 ‘곤충 왕국’이다.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에 보고된 곤충은 총 2만710종이다. 이 가운데 19%인 3932종이 광릉숲에 산다. 전국에 있는 곤충 5종 중에서 1종이 이곳에 사는 셈이다. 식생이 풍부해 나무가 다양하고, 나무가 죽어 고목이 되면 그 안에 곤충이 모일 수 있는 환경 덕분이다. 광릉숲을 대표하는 곤충인 장수하늘소는 최근 5년 동안 야생에서 총 30마리가 발견됐다. 2020년에 만든 산림곤충스마트사육동에서는 장수하늘소 복원작업이 한창이다. 자연에서는 부화하려면 최대 7년이 걸리지만, 사육동에서는 16개월이면 성충이 된다. 연간 500여 마리 개체수를 유지하고 매년 15마리 정도를 자연에 돌려보낸다. 몸에는 소형 위치추적기를 달아 2∼3주 정도 움직임을 파악한다. 지난해에는 방생한 암컷과 야생 수컷이 교미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김일권 국립수목원 임업연구사는 “장수하늘소는 중남미에도 분포해 지구 형성 초기 판게아 대륙이 갈라졌다는 증거가 되는 중요한 곤충”이라며 “광릉숲은 장수하늘소 절멸을 막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라고 했다. 광릉숲에서 처음 발견돼 이름에 ‘광릉’이 붙은 곤충도 있다. 2017년 3월 서어나무 고사목에서 광릉왕맵시방아벌레 10여 마리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견됐다. 맵시방아벌레류는 서어나무에서 성충 상태로 겨울을 나는데, 그동안 일본 산간 지역에서 발견돼 일본 특산종으로 알려졌다가 국내 서식이 확인됐다. 맵시방아벌레는 소나무재선충병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 유충을 잡아먹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릉왕모기는 다른 모기에 비해 몸집 크기가 두 배 이상 크다. 애벌레(장구벌레)는 나무구멍이나 지표면의 고인 물에 서식하며 다른 모기의 유충을 잡아먹고 자라 ‘모기를 먹는 모기’로 유명하다. 초록하늘소는 1986년 광릉 채집 기록 이후 29년 만인 2016년에 다시 발견됐다. 이처럼 광릉숲에는 환경부에서 지정한 멸종위기종 281종 가운데 21종이 서식한다. 조류 6종, 곤충류 6종, 포유류 4종, 파충류 2종, 양서류, 육상식물, 고등균류(버섯) 각 1종씩이다. 산림 생태계 안정에 필요하고 학술적 가치가 높아 우선 보호해야 하는 특별산림보호대상 53종 가운데 광릉골무꽃, 참작약 등 식물 2종과 노란달걀버섯, 산호침버섯, 연기색만가닥버섯, 잎새버섯, 자흑색불로초, 차가버섯 등 버섯 6종이 광릉숲에서 자란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도 북한이 날려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풍선이 발견된 것으로 확인됐다.경찰은 이날 오후 1시 반경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옥상에 “이상한 물체가 있다”는 경비원 신고를 받고 출동해 북한이 살포한 것으로 추정되는 풍선을 발견했다. 경찰은 현장 초동 조치 후 군에 인계했다. 오전 4시경에는 외교부 청사 인근 거리에서도 풍선이 발견됐다. 순찰 중이던 경찰이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정부서울청사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오물 풍선은 이날 서울 도심 곳곳에서 발견됐다. 종로소방서에 따르면 낮 와룡공원과 북촌 등 2곳에서 전단이 발견됐다. 낮 12시 13분경 와룡공원에 전단이 뿌려져 있다는 신고를 받은 소방은 출동 과정에서 북촌에서도 도로를 따라 뿌려진 전단을 발견하고 수거했다.풍선은 군사분계선으로부터 거리가 250km가 넘는 경남 거창군 위천면의 한 논에서도 이날 오전 5시 반경 발견됐다. 경찰과 소방이 출동해 풍선 2개에 매달린 비닐봉지를 수거해보니 그 안에는 페트병과 종이 쓰레기 등이 담겨 있었다. 경북 영천시 대전동에서는 한 포도밭 주인이 오전 7시 40분경 ‘쿵’ 하는 소리를 듣고 나가 비닐하우스 시설 일부가 오물 풍선에 깔려 파손된 것을 발견했다.전북 무주군과 충남 계룡시에서 발견된 풍선 주변에서는 화약이 발견돼 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오전 5시 45분경 무주군 무주읍 내도리에서 오물 풍선이 전깃줄에 걸린 채 발견돼 경찰과 군이 접근 통제선을 설치한 채 이를 수거했는데, 소량의 화약 성분이 묻어있었던 것. 경찰과 군 관계자는 “성분을 분석 중이다”라고 말했다. 충남 계룡시 두마면의 한 도로에서 오전 3시 5분경 발견된 풍선과 봉투에서는 담배꽁초와 쓰레기와 함께 화약을 점화하는 데 사용되는 뇌관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군 관계자는 “현장에선 뇌관으로 추정했지만, 수거 이후 확인한 결과 위험 물질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송유근 기자 big@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거창=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무주=박영민 기자 minpress@donga.com영천=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계룡=이정훈 기자 jh89@donga.com}
28일 방한한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의 숙소인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는 온종일 주요 재계 인사들의 발길이 몰렸다. 이날 간담회가 진행된 오후 1시경 소공동 롯데호텔은 입구부터 경찰과 보안요원 10여 명이 배치된 채 삼엄한 경비가 이뤄졌다. 정문 앞엔 외부 촬영 방지 등 보안을 위한 흰 천막이 설치됐고, 호텔 내부에는 보안용 게이트를 설치한 후 출입자를 대상으로 검문에 나서기도 했다. 무함마드 대통령이 국내에 머무는 숙소는 롯데호텔서울 신관인 이그제큐티브타워 32층 로열 스위트룸이다. 로열 스위트룸은 460.8㎡(약 140평) 넓이에 하루 이용료는 3000만 원 정도로 롯데호텔 중에서도 소공동점과 시그니엘 잠실점에만 있는 최상위 객실이다. 각국 정치 지도자와 정·재계 인사, 스포츠 스타 등 국내외 VVIP를 위한 객실로 국빈 방문 시 사용된다.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축구 선수 데이비드 베컴 등이 해당 객실을 사용했다. 2022년 11월 방한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도 이곳에 머물렀다. 이들이 숙소로 롯데호텔을 택한 이유로는 서울 단일 호텔 중 가장 많은 객실(1015실)을 갖췄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그제큐티브타워와 메인타워, 두 동으로 구분되어 일반 투숙객과 동선 분리가 가능하다는 의전상의 장점도 있다. 행사 관계자는 “무함마드 대통령과 동행한 UAE 정·재계 인사 등 사절단은 메인타워와 이그제큐티브타워로 나뉘어 투숙하며 상당수는 주류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는 고급 객실을 이용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호텔 출입문 주차장에는 경찰특공대 장갑차도 1대 배치됐다. 일반적인 집회시위 때는 동원되지 않는 차종으로 귀빈 행사 등에 동원된다. 2022년 빈 살만 왕세자 일행이 롯데호텔에 투숙할 때도 동원된 바 있다.송진호 기자 jino@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 7개 정당이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채 상병 특검법’ 재의결을 주장하며 주말 장외집회를 열고 여권을 향한 압박 수위를 끌어올렸다. 이에 여당은 “떼쓰기 정치”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25일 서울역 앞에서 열린 ‘해병대원 특검법 거부 규탄 및 통과 촉구 범국민대회’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에도 한계가 있다”며 “투표로 심판해도 정신을 못 차리고, 반성하지 않고, 역사와 국민에게 저항한다면 이제 국민의 힘으로 그들을 억압해서 항복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표는 해병대를 상징하는 붉은 티셔츠를 입고 참석했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도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본인과 자신의 핵심 측근들이 수사받을까 겁난 것 외에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다”며 “윤 대통령은 너무 비겁하고 얍삽하다”고 했다. 이날 장외집회에는 양당 외에도 정의당, 새로운미래, 기본소득당, 진보당, 사회민주당 등이 참석했다. 이날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2만 명(경찰 추산 9000명)이 참석했다. 개혁신당은 “누구보다 특검법 처리에 진심이지만 거리 정치라는 방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며 참석하지 않았다. 이에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대규모 장외집회까지 열어가며 사법 방해행위를 자행하겠다고 선언한다”고 반발했다. 국민의힘 정광재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안타까운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무도함을 넘어 급기야 국회를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며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용납되지 않을 ‘대통령 탄핵 바람몰이’로 국정 동력을 약화하고 국가의 혼란을 의도적으로 불러일으키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대변인은 “자신들의 지지층 결집을 위한 불쏘시개로 사건을 이용하는 비정한 정치를 반복하겠다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채 상병 사고 경위 수사와 관련된 이른바 ‘VIP(윤 대통령) 격노설’과 관련한 여야 공방도 이어졌다. 국민의힘 성일종 사무총장은 이날 “대통령이 문제가 있다고 격노하면 안 되나. 격노한 게 죄인가”라고 주장했다. 이에 민주당 강유정 원내대변인은 “대통령의 격노가 수사 방향을 바꾸었다면 그 격노는 죄”라고 반박했다.윤명진 기자 mjlight@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음주 뺑소니 사고를 낸 뒤 사건 은폐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 트로트 가수 김호중 씨(33·구속)가 정작 음주운전 혐의는 피해 갈 수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김 씨가 9일 오후 음주운전한 사실을 시인했지만 사고가 발생한 지 17시간이 지난 뒤에야 경찰 조사를 받다 보니 음주운전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혈중 알코올 농도 측정 등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은 확보한 진술 등을 토대로 사고 당시 김 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를 최대한 정확하게 추정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뺑소니 교통사고 5건 중 1건은 음주운전 26일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뺑소니 교통사고는 총 6677건 발생했다. 하루 평균 18건씩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5268건(78.9%)만 검거됐고 이 중에서 음주운전 뺑소니는 1077건(20.4%)에 달한다. 이 때문에 뺑소니 사고 수사의 핵심은 운전자의 음주운전 여부를 어떻게 입증하느냐다.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혐의가 성립하려면 사고 발생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3% 이상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뺑소니를 내고 달아난 용의자를 뒤늦게 붙잡더라도 반나절만 지나면 체내 알코올이 상당 부분 분해되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혐의를 입증하는 데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 수사기관은 조사 당시 진술, 술을 마신 장소 안팎의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을 종합해 정확한 음주량을 파악한 뒤, 알코올 분해값 등을 토대로 혈중 알코올 농도를 역산하는 ‘위드마크 공식’을 적용해 음주운전 혐의를 입증하려고 한다. 하지만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가 많다. 대법원은 2021년 9월 “혈중 알코올 농도 계산에 관해선 개인의 체질, 술의 종류, 음주 속도, 위장에 있는 음식의 정도 등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평균으로 쉽게 단정해선 안 된다”며 위드마크 공식에 따른 음주 추정 수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올해 1월부터 이달까지 전국에서 법원이 직접적으로 위드마크의 증거능력을 언급한 판결 13건 중 8건이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 재판부는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알려진 신빙성 있는 통계자료가 없다”고 이유를 밝혔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음주 대사체’ 검출 여부를 의뢰해 최대 72시간 전까지 음주했는지 입증하기도 한다. 하지만 수원지법은 2021년 9월 “혈액에서 음주 판단 기준치 이상의 음주 대사체 물질이 검출됐으나, 사고 발생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3% 이상이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김 씨 사건에서도 국과수가 김 씨의 소변 검사를 토대로 음주 판단 기준 이상의 음주 대사체가 검출됐다는 소견을 내놨지만 실제 김 씨의 음주운전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직접 증거가 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음주량 몰라도 정황 증거로 유죄 판단 미국에선 국내와 달리 혈중 알코올 농도를 직접 현장에서 측정하지 않지만 사고 전후의 운전 행태, 운전자의 발음, 냄새, 걸음걸이 등을 종합하고 현장 음주 테스트를 진행해 영상으로 촬영한다. 운전자는 경찰관의 지시에 따라 ‘선을 따라 9걸음 걸어갔다가 돌아오기’ ‘한 발을 15cm 이상 들고 30초 이상 버티기’ 등을 수행하며 이를 촬영한 영상은 재판 과정에서 정황 증거로 사용된다. 국내에서도 혈중 알코올 농도와 상관없이 약물 등의 영향으로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였다는 정황이 충분하면 특정범죄가중법상 위험운전치사상 혐의를 적용해 처벌할 수 있다. 올 3월 대전지법은 “술 냄새가 나고 횡설수설했다”는 경찰관 진술 등을 토대로 위험운전치상 혐의를 인정하고 유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판단 기준이 없다 보니 명확한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수사 기법을 다양화해 음주운전을 하면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사실을 인식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음주 뺑소니 사고를 낸 뒤 사건 은폐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 트로트 가수 김호중 씨(33·구속)가 정작 음주운전 혐의는 피해갈 수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김 씨가 9일 오후 음주운전한 사실을 시인했지만 사고가 발생한 지 17시간이 지난 뒤에야 경찰 조사를 받다 보니 음주운전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혈중 알코올 농도 측정 등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은 확보한 진술 등을 토대로 사고 당시 김 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를 최대한 정확하게 추정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뺑소니 교통사고 5건 중 1건은 음주운전26일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뺑소니 교통사고는 총 6677건 발생했다. 하루 평균 18건씩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5268건(78.9%)만 검거됐고 이 중에서 음주운전 뺑소니는 1077건(20.4%)에 달한다.이 때문에 뺑소니 사고 수사의 핵심은 운전자의 음주운전 여부를 어떻게 입증하느냐다.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혐의가 성립하려면 사고 발생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3% 이상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뺑소니를 내고 달아난 용의자를 뒤늦게 붙잡더라도 반나절만 지나면 체내 알코올이 상당 부분 분해되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혐의를 입증하는 데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수사기관은 조사 당시 진술, 술을 마신 장소 안팎의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을 종합해 정확한 음주량을 파악한 뒤, 알코올 분해값 등을 토대로 혈중 알코올 농도를 역산하는 ‘위드마크 공식’을 적용해 음주운전 혐의를 입증하려고 한다. 하지만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가 많다.대법원은 2021년 9월 “혈중 알코올 농도 계산에 관해선 개인의 체질, 술의 종류, 음주 속도, 위장에 있는 음식의 정도 등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평균으로 쉽게 단정해선 안 된다”며 위드마크 공식에 따른 음주 추정 수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올해 1월부터 이달까지 전국에서 법원이 직접적으로 위드마크의 증거능력을 언급한 판결 13건 중 8건이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 재판부는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알려진 신빙성 있는 통계자료가 없다”고 이유를 밝혔다.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음주 대사체’ 검출 여부를 의뢰해 최대 72시간 전까지 음주했는지 입증하기도 한다. 하지만 수원지법은 2021년 9월 “혈액에서 음주 판단 기준치 이상의 음주 대사체 물질이 검출됐으나, 사고 발생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3% 이상이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김 씨 사건에서도 국과수가 김 씨의 소변 검사를 토대로 음주 판단 기준 이상의 음주 대사체가 검출됐다는 소견을 내놨지만 실제 김 씨의 음주운전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직접 증거가 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음주량 몰라도 정황 증거로 유죄 판단미국에선 국내와 달리 혈중 알코올 농도를 직접 현장에서 측정하지 않지만 사고 전후의 운전 행태, 운전자의 발음, 냄새, 걸음걸이 등을 종합하고 현장 음주 테스트를 진행해 영상으로 촬영한다. 운전자는 경찰관의 지시에 따라 ‘선을 따라 9걸음 걸어갔다가 돌아오기’ ‘한 발을 15cm 이상 들고 30초 이상 버티기’ 등을 수행하며 이를 촬영한 영상은 재판 과정에서 정황 증거로 사용된다.국내에서도 혈중 알코올 농도와 상관없이 약물 등의 영향으로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였다는 정황이 충분하면 특정범죄가중법상 위험운전치사상 혐의를 적용해 처벌할 수 있다. 올 3월 대전지법은 “술 냄새가 나고 횡설수설했다”는 경찰관 진술 등을 토대로 위험운전치상 혐의를 인정하고 유죄를 선고했다.하지만 구체적인 판단 기준이 없다 보니 명확한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수사 기법을 다양화해 음주운전을 하면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사실을 인식시켜야 한다”고 말했다.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구 경복궁 담장에 스프레이 낙서를 지시한 주범이 5개월 만에 붙잡혔다.23일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임모 군(18) 등에게 ‘300만 원을 주겠다’며 경복궁 낙서를 지시한 혐의로 30세 남성을 전날 체포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23일 이 남성에게 문화재 손상과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배포 등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경찰에 따르면 이 남성은 임 군 등에게 보안 메신저 텔레그램으로 접근해 ‘영화꽁(공)짜 윌○○티비’ 등 자신이 운영하는 특정 사이트 홍보 문구를 그리라고 요구했다. 그는 여러 불법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성착취물도 유포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이트 운영 외 다른 직업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국가유산청은 경복궁 담장 낙서를 복구하기 위한 비용을 약 1억5000만 원으로 추산하고 다음 달에 이 남성 등에게 해당 비용을 청구하는 소송을 내기로 했다. 임 군의 낙서를 모방해 경복궁에 2차 낙서를 한 설모 씨(28)는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 재판을 받고 있다. 임 군은 소년범이라는 이유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인구 1200명 남짓 사는 작은 마을에 매년 숲을 보겠다고 1만 명씩 오니 ‘효자 숲’이죠.” 지난달 30일 강원 양구군 해안면 ‘비무장지대(DMZ) 펀치볼 숲길’ 근처에서 만난 이 지역 토박이 주민이자 숲밥 운영자 중 한 명인 박옥근 대표(63)는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국내 최북단 민간인통제선 내 유일한 숲길이다. DMZ와 백두대간 생태축이 교차하는 분지 형태의 특수 지형이다. 화채그릇(Punch Bowl·펀치볼)을 닮았다고 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역사적, 생태적으로 관광 가치가 높은 숲길로 입소문이 나면서 탐방객이 몰리기 시작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연평균 방문객이 1만 명에 이른다. 2022년 기준 양구군 일대와 같은 국내 산촌의 89.5%는 인구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양구군은 DMZ 숲길로 인구소멸 위기의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DMZ 숲길은 강원도 지역경제에 연간 약 63억 원의 직간접적 파급효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운영 관리비와 숲길 등산지도사 인건비 등에 필요한 예산 3억3700만 원 대비 19배가량의 경제적 효과를 내는 셈이다.● ‘숲밥’으로 연간 매출 5800만 원 올려 DMZ 펀치볼 숲길에는 길목마다 발길을 멈추고 꽃을 유심히 바라보는 탐방객이 많았다. 탐방객 원명옥 씨(68)는 “발길이 뜸해서 그런지 다른 곳에서 못 본 야생화가 많이 피었다”고 했다. 이날 오전 원 씨를 비롯한 탐방객 38명은 숲 해설가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연둣빛 봄옷으로 갈아입은 숲을 만끽했다. 이곳은 지금도 미확인 지뢰가 남아 있어 숲길 등산지도사가 동행해야만 탐방할 수 있다. 하루 탐방객도 200명으로 제한된다. 그 대신 금강초롱 등 희귀식물과 산양, 삵 같은 야생동물을 볼 수 있다. 숲길은 DMZ 인근 민간인통제구역이라는 한계 탓에 개발이 제한됐던 이곳 주민들에게 알짜배기 관광 수입원이 됐다. 특히 탐방 코스 중간에 출장 뷔페 형식으로 제공되는 ‘13찬 숲밥’은 DMZ 숲길의 대표 먹거리이자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숲밥은 사단법인 DMZ 펀치볼 숲길이 해안면 2, 3개 농가와 계약을 맺고 판매한다. 연평균 5800만 원에 달하는 전체 매출액의 5%는 법인에 가고 나머지는 숲밥을 제공한 주민 수익으로 돌아간다. 판매 가격은 1만 원에 불과하지만 이를 기회로 농수산물 택배 판매 활로를 확보했다고 한다. 박 대표는 “숲밥 먹으러 1년에 5번 찾아온 손님도 있을 정도라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있다”고 했다. 산림청은 DMZ 숲길처럼 경관이 아름답고 생태적 가치가 우수한 숲 가운데 지역사회의 발전 자산으로 육성 가능성이 있는 숲을 ‘100대 명품 숲’으로 지난해 지정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산촌 지역에 있는 강원 인제군 자작나무숲, 전남 장성군 편백숲은 매년 각각 336억 원, 274억 원의 지역경제 파급효과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 인구소멸 지역이 매년 30만 명 찾는 관광지로 강원 인제군 자작나무숲은 지역 인구 3만여 명의 10배가 넘는 32만 명이 연평균 방문할 정도로 관광객이 몰린다. 자작나무숲은 줄기와 잎이 하얗게 반짝이는 모습이 마치 눈이 내린 것처럼 보여 이국적인 풍취를 자아낸다. 관련 프로그램도 풍성하다. 자작나무숲 작은 음악회, 숲속 음악회에는 매년 1000여 명이 참여한다. 어린이가 있는 가족 단위 방문객은 유아 숲 체험원에서 숲속 교실, 인디언집 등 자연을 주제로 다양한 체험 활동을 즐길 수 있다. 사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기 위해 재방문율이 높고 주말에는 평균 1690명 넘게 찾는 명소다. 자작나무숲이 지역의 대표 관광자원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방문객 대부분 숲 한 곳만 방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춘천, 양구 등 인근에 있는 다른 지역을 찾는 것도 지역경제에 청신호다. 다만 전문가들은 관광 숲 수목 보호를 위한 휴식 시간을 적절히 확보해야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인제 자작나무숲은 국립공원 및 산림청 국유림 중에서도 면적(6ha) 대비 방문객 밀도가 높은 수준이다. 방문객이 집중되는 구역을 중심으로 토양 답압(踏壓·밟는 압력) 피해나 자작나무 껍질 훼손 등이 발생하고 있다. 김준순 강원대 산림경영학과 교수는 “자연의 활용과 보전은 균형을 이뤄야 한다”며 “장기적 관점에서 관리하지 않으면 ‘명품 숲’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강원 평창군 ‘봉평 잣나무숲’은 고로쇠나무 수액 채취, 잣송이 줍기 등 다양한 체험 활동과 숲속 야영장으로 이름났다. 2012년 한국관광공사에서 ‘잣나무와 트레킹 코스가 어울리는 가볼 만한 장소’로 선정되기도 했다. 제주 서귀포시 호근동 ‘치유의 숲’은 60년 이상 된 삼나무와 편백 숲길을 따라 한라산의 다양한 식생을 관찰할 수 있다. 차룽치유밥상 등 지역 상생 사업으로 일자리 창출과 소득 증대 효과도 거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각 지역의 특색을 살린 ‘킬러 콘텐츠’가 숲과 함께 어우러져야 침체한 지역사회를 되살린다고 입을 모았다. 그 숲에 가야만 볼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는 핵심 콘텐츠가 있어야 두고두고 찾는 명소가 된다는 설명이다. 경남 거창군 ‘거창 북상 잣나무숲’은 1973년부터 산림녹화에 힘쓴 모범 독림가(篤林家)가 육성한 숲이다. 임업 노하우와 경험담을 산림 분야 대학생 등에게 전파하는 현장 학습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남 장흥군은 편백숲에 치유의 숲과 숙박 및 체험시설을 조성한 덕에 장흥군 인구 3만6000명의 18배가 넘는 연간 방문객 67만 명을 유치하고 있다. 박병배 충남대 산림환경자원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숲을 잘 찾아갈 수 있도록 ‘100대 명품 숲’ 각각의 특색을 잘 큐레이션해야 하고, 지금의 아름다운 숲이 되기까지 과정을 이야기로 잘 풀어내면 ‘이것 때문에 여기 와야겠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사업가들이 귀농·귀촌해서 산림관광 활성화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파격적으로 지원해줘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예를 들어 국내 숲 관광지 중에는 강원 인제군 곰배령 야생화 단지처럼 왕복으로 오가는 교통이 불편한 경우가 많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을 원래 머물던 지역으로 운송해주는 서비스 등을 도입해 일자리 등을 새로 만들자는 취지다. 김준순 강원대 산림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숲 해설가, 숲 유치원, 숲 초등학교, 탐방객에 대한 도시락 제공 등 숲을 매개로 하는 사업 아이템이 무궁무진하게 많아졌다”며 “지역 주민들이 숲 공간을 경제 활동과 연계된 하나의 활동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

북한 해킹 조직이 대법원 전산망을 해킹해 개인정보가 담긴 문서를 대거 빼낸 데 이어 국방부까지 북한 사이버 공격에 노출된 것으로 파악됐다. 20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청 안보수사국은 최근 국방부 고위공무원과 장성 등 100여 명의 개인 e메일 해킹 피해를 파악하고 조사에 착수했다. 차관급을 포함한 3급 이상 고위공무원과 합참 본부장급 장성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군 고위직 100명 이상이 조직적으로 해킹 피해를 본 것은 처음이다. 경찰은 이번 공격이 라자루스와 안다리엘, 킴수키 등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조직 중 한 곳의 소행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해줄 수 없다. 이제 수사를 시작한 단계”라고 밝혔다. 앞서 우리 군 무기 체계의 핵심 부품을 생산하는 국내 방산업체가 기술 상당수를 북한에 탈취당한 것이 드러났는데, 경찰은 이번 군 고위직 해킹 피해가 방산업체 해킹과 연관된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 해킹 조직은 악성코드 등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수년 치에 달하는 부품 관련 정보를 해당 업체로부터 탈취했다. 그간 대형 방산업체를 주요 표적으로 했다면 주요 기술을 보유한 중소 방산업체까지 표적으로 삼은 것. 앞서 라자루스가 2021년 6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법원행정처 전산망에 악성코드를 심어 1014GB(기가바이트)에 달하는 자료를 외부로 빼돌린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서울의 한 중학교 2학년 김수연(가명) 양은 지난해 9월 고등학생 오빠와 만나기 시작했다. 교제 초부터 남자친구는 김 양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릴 사진을 자신이 직접 고를 정도로 간섭이 심했다. 자신과 함께 있지 않을 때 올라온 SNS 게시물을 추궁했고 이전 연애에 대해 캐묻거나 폭언과 폭력도 행사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김 양이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까지 했다. 이런 ‘교제폭력’은 올 3월 김 양의 교사가 경찰에 신고할 때까지 반년 넘게 이어졌다. 최근 의대생 살인범 등 교제폭력 관련 강력 사건이 이어지는 가운데 10대 청소년의 교제폭력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청에 따르면 10대 교제폭력 가해자는 2016년 277명에서 2023년 534명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경찰은 2022년부터 훈방·즉결심판 가해자를 제외하고 형사입건한 가해자만 통계를 내고 있어 실제 사건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고부터 막막한 10대 교제폭력 10대의 교제폭력은 ‘학생이 무슨 연애’라는 인식 탓에 피해 사실을 알리기가 쉽지 않다. 김 양 사건도 다른 주제로 교사가 상담을 하다가 교제폭력 정황이 파악됐다. 박예림 한국여성의전화 정책팀장은 “어른에게 알릴 때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고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나에 대해 실망할까 봐’, ‘10대로서 하지 말아야 할 걸 한 것 같아서’라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특히 성범죄를 당하고도 부모에게 알려지는 걸 꺼려 신고를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경찰 수사가 시작되면 부모 등 법정대리인에게 의무적으로 통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청소년 인권보호단체 탁틴내일 이현숙 대표는 “부모에게 알리는 역할을 아동복지전담기관이나 변호사 등이 맡게 해 적절한 법률 조력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신고를 머뭇거리는 사이 교제폭력이 ‘디지털 성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물리적인 폭력뿐 아니라 교제 당시 함께 찍은 사진이나 영상 등을 유포하겠다는 협박을 당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함경진 서울시립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 부장은 “(교제를 하며) 긴밀하고 가까운 ‘폐쇄적 관계’에서는 디지털 성범죄가 더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쉬쉬하지 말고 매뉴얼 만들어야” 10대 가해자는 형사처벌도 어렵다. 지속적인 스토킹 행위가 없다면 스토킹처벌법으로 처벌할 수 없고, 교제 당시 이뤄진 폭력과 협박 등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가해자가 10대라면 경찰이 훈방으로 처리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달 경남 거제에서 20세 남성이 동갑내기 전 여자친구를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에서도 이들이 고등학생 때부터 3년여 교제하는 동안 접수된 폭력 신고만 11건에 달했다. 하지만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뜻을 밝혀 종결되거나 경찰에 ‘발생 보고’만 됐다. 전문가들은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도 상담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일선 학교에서 학생 간 교제를 쉬쉬할 게 아니라 ‘데이트 폭력’ 관련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함 부장은 “뭘 잘못했는지 모르니까, 혹은 알면서도 ‘나한테 무슨 불이익이 있겠어’ 싶으니까 (폭력을) 계속하는 것”이라며 “청소년기에 제대로 된 상담과 교육이 이뤄져야 이후 성인이 돼서 일어날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해외 조직원들의 마약 밀반입을 도운 혐의를 받는 인천국제공항 세관 직원 중 1명이 경찰 압수수색 전 휴대전화를 수차례 초기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15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최근 세관 직원 A 씨의 휴대전화를 압수해 분석한 결과 이미 여러 차례 초기화해 과거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A 씨는 자기 휴대전화를 초기화한 뒤 사설 포렌식 업체에 찾아가 복구가 가능한지 알아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애초 “사생활과 관련된 영상이 있다”는 이유로 휴대전화를 초기화했다고 진술했다가 최근 조사에서 “주요 인사에 대한 의전 영상이 있어 초기화했다”고 말을 바꿨다. 경찰은 A 씨의 휴대전화에 마약 밀반입과 관련된 자료가 있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 중이다. 경찰은 지난해 한국인과 말레이시아인, 중국인 등으로 구성된 국제 마약 조직을 검거해 수사하는 과정에서 ‘세관 직원들이 마약 조직원을 도왔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수사를 확대해 왔다. 현재 피의자로 입건된 세관 직원은 7명으로, 마약 조직원이 탄 항공기가 일제 검사를 받지 않을 수 있게 돕거나 조직원을 택시 승차장으로 안내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조직이 숨겨 들여오려던 필로폰은 총 74kg으로, 약 246만 명이 한 번에 투약할 분량이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손준영 기자 ha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