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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편의점이 생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엉뚱하게도 야간통행금지 해제였다. 1945년 광복 이후 37년간이나 지속된 야간 통금이 1982년 1월 5일 풀렸다. 재빠르게 몇몇 자생적 편의점들이 문을 열었으나 동네 구멍가게에 익숙했던 상점 문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폐업했다. 몇 년의 시행착오 끝에 본격적인 프랜차이즈 형태의 편의점인 세븐일레븐 사업이 한국에 도입된 것이 30년 전인 1988년이다. 준비 기간을 거쳐 올림픽선수촌점이 이듬해인 1989년 5월 문을 열었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으로 전국 편의점 점포 수는 4만192개다. 2011년에 약 2만 개였던 점포 수가 7년 만에 2배로 늘었다. 요즘은 어디를 가도 편의점 간판이 안 보이는 곳이 없다. 지난해 기준으로 편의점 총매출은 22조 원가량. 유통 업태 가운데 2011년 이후 매출이 매년 두 자릿수 이상 증가한 것은 편의점밖에 없다. 미국 일본 등도 편의점 사업은 국민소득 증가와 비례해 왔다. ▷편의점이 한국에서 급속도로 증가한 또 다른 주요 원인은 1인 가구와 맞벌이 급증이다. 2016년 기준으로 1인 가구가 27.9%, 2인 가구가 26.2%로 1, 2인 가구가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큰 시장에 가서 한꺼번에 장을 봐 집에서 밥을 해먹는 가정이 줄었다는 뜻이다. 인기 품목은 예나 지금이나 컵라면, 삼각김밥, 소주, 컵밥, 도시락, 생수 등이다. 정신없이 바쁜 현대인 혹은 ‘나 홀로족’의 씁쓸한 일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근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내보내고 주인 부부가 직접 일하는 곳이 늘고 있다. 시급이 오를 것으로 기대했던 알바생들은 그나마 괜찮은 일자리를 잃고, 주인은 주인대로 새벽까지 고생이다. 여기에다 이달 16일 서울 롯데월드타워 31층에 무인결제 점포 ‘세븐일레븐 시그니처’가 개점했다. 무인점포는 앞으로 더 늘어갈 추세다. 업체나 고객은 편해질지 모르겠지만 점점 불편해지는 일자리가 걱정이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며칠 전에 중학교 1학년 딸아이가 한국은 세계에서 몇 번째로 잘사는 나라냐고 물었다. 11위(국내총생산 기준)쯤 된다고 했더니 그렇게 높은 줄 몰랐다면서 어떻게 해서 잘살게 됐냐고 되물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약간 당황스럽기도 하고 국가발전전략이니 지도자가 어떠니 설명해 봐야 못 알아들을 것 같기도 해서, 우리나라 학생이 세계에서 공부를 제일 많이 했고 근로자들이 일을 제일 열심히 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게 이제는 한국이 세계 최장 근로시간 국가라는 오명으로 다가왔다. 동시에 장시간 노동에 브레이크를 밟을 때가 됐다는 사회적 공감대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거창하게 말하면 산업혁명 이후 세계 노동운동의 역사는 근로시간 단축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올해 1월 주당 법정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한꺼번에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 통과를 두고 노동계 출신인 홍영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은 ‘역사적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역사적 사건이 현실에서 안착하는 길은 첩첩산중이다. 요즘 삐걱거리는 최저임금 인상 추진 과정과 너무 비슷하다. 둘 다 가장 강력한 수위로 일단 저질렀다. 당장 생기는 부작용은 나랏돈으로 땜질 처방한다. 그래도 문제가 있으면 그때 가서 차후 보완조치를 한다는 프로세스가 서로 닮은꼴이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다. 근로시간 단축 개정안 가운데 연장근로시간, 탄력근로제 등 몇 개 조항은 미국 일본 독일 수준을 넘을 정도로 엄격하다. 미국 등 많은 나라에서는 연장근로시간 상한 자체가 없거나 노사가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돼 있다. 구글 등 실리콘밸리 기업의 사무실에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 이유다. 앞으로 한국에서 특별한 사정이 생겨 몇 달 늦게까지 일을 시키고 대신 일 끝나고 그만큼 쉬라고 했다가는 경영자가 감옥에 가는 수가 있다. 땜질 처방도 비슷하다. 지난주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일자리 함께하기 지원사업’이란 명목으로 2022년까지 4700억 원의 기금을 투입하기로 했다. 최저임금 부작용 처방용 ‘일자리 안정자금’과 유사하다. 개선방안으로 탄력근로제에 대해 2022년까지 운용해 본 다음 찾겠다고 개정안에 정해 두었다. 요즘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조정하느라 부산을 떠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보완책을 마련할 거라면 늦지 않아야 한다. 일과 삶을 균형 있게 누리겠다는 이른바 ‘워라밸’을 선호하는 직장인들도 대다수는 차라리 돈을 좀 적게 받더라도 내 시간을 많이 갖자는 것이지, 월급은 월급대로 받으면서 일은 적게 하자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최근 한국노총은 각 단위 노조에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해 줄어드는 수당을 임금으로 보전받을 수 있도록 노사 협상을 진행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민노총 역시 ‘임금 삭감 없는 근로시간 단축’이 올 하투(夏鬪)에서 제시한 주요 가이드라인 중 하나다. 임도 보고 뽕도 딸 수 있는 묘수로 찾은 게 투쟁이라면 전체적으로 잃는 게 더 많을 것이다. 수십 년간 숨 가쁘게 달려온 초고속 성장은 성과와 함께 그늘도 드리웠다. 이제 시대에 맞게 방향 전환 혹은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어차피 장기 저성장 시대에 대비해야 할 때다. 그래도 그 방법이 급회전이나 급정거가 돼서는 안 된다. 국민들을 냉탕 온탕의 실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는 일이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한때 ‘고∼뤠’라는 유행어를 퍼뜨린 ‘비상대책위원회’라는 TV 개그 코너가 있었다. 급한 사건이 벌어졌는데 여러 곳에서 모인 위원들이 전혀 엉뚱한 소리를 하다가 사태를 망친다는 내용이다. 물론 가상의 이야기지만 이런 코미디 같은 위원회가 556개나 되는 정부 산하 위원회 가운데 적지 않다. 우선 규제개혁위원회다. 지난주 보편요금제가 규개위를 통과했다. 민간기업인 SK텔레콤에 특정 상품을 강제로 만들게 하고 품질과 가격은 정부가 정하겠다는 제도다. 규제 중에서도 최저급인 가격 통제다. 대통령 공약 이행 차원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적어도 규개위에서는 제동을 걸든지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든지 해야 정상이다. 위원회 구성이 문제였다. 전체 위원 24명 가운데 민간위원이 16명, 국무총리를 포함해 정부위원이 8명이다. 대부분이 교수인 민간위원도 총리실, 청와대가 정한다. 정부가 원하면 어떤 규제든 통과시킬 수 있는 구조다.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는 격이다. 이 위원회가 규제개혁이란 이름에 걸맞은 기능을 하려면 전원 혹은 절대 다수를 민간위원으로 바꾸어야 한다. 규제를 신설하고 유지하는 데 절차적 정당성만 부여할 바에는 차라리 없는 게 나을 듯싶다. 최저임금위원회도 비슷한 맥락이다. 사용자, 근로자, 공익위원이 각각 9명씩 27명이다. 사용자와 근로자는 늘 부딪친다. 그러니 정부가 위촉하는 공익위원의 뜻대로 대부분 결정된다. 노동부는 이달 11일 새로 임명한 공익위원 9명 전원을 친노동 성향으로 분류되는 인물들로 교체했다. 앞으로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으로 가는 길에 어수봉 전 위원장 같은 걸림돌은 더 이상 없어 보인다. 현 정부 업무지시 1호로 탄생한 일자리위원회는 간판형에 속한다. 위원장은 대통령이지만 실제로는 부위원장이 운영한다. 국세청장 출신 이용섭 초대 부위원장은 취임한 지 1년도 안 돼 광주시장 선거에 출마한다고 사퇴했다. 후임 이목희 부위원장은 청춘을 노동운동에 바친 정치인 출신이다. 일자리 만들기보다 지키기를 더 잘할 것 같은 경력이다. 일선 부처에서는 시어머니 노릇만 안 해도 다행이라는 표정들이다. 이름이 거창한 대통령직속 위원회들이 대부분 비슷한 사정이다. 부처 산하 위원회와는 위치가 다르긴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왜 위원회라는 명칭을 달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되는 행정기관이다. 위원회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다양한 의견과 토론을 합의로 결정하자는 취지에서 생긴 시스템이다. 김상조 위원장은 대기업에 대해 누구보다 뚜렷한 소신을 가지고 있다. 최근 10대 그룹 경영자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삼성그룹 지배구조에 대해서는) 경제개혁연대 소장 시절에 작성한 보고서에 모든 이슈가 다 나와 있다”며 “삼성 측에도 전달했다”고 했다. 공정위 상임·비상임위원 9명 중 6명이 공정위 간부 출신이다. 나머지가 정부연구기관, 판사 검사 출신 변호사 1명씩이다. 이런 상황에서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 위원회’가 아니면 더 이상하다. 너무 큰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는 말처럼 너무 황당하면 오히려 당연한 것처럼 보일 수가 있다. 그런 위원회 가운데 최근 화제가 된 몇 개만 예로 들었다. 실제로는 구성에서 운영까지 이보다 훨씬 황당한 거수기형, 면피형, 구색형 위원회가 수두룩하다. 제대로 운영하든지 아니면 일제 정리해야 위원회 공화국이란 놀림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아르헨티나는 소를 팔아 세계 5위 경제대국이 되었던 나라다. 1900년 전후 냉동선이 발명됐다. 비슷한 시기 발명된 철조망을 팜파스라는 대평원 위에 쳐놓고 소를 풀어 놓으면 소는 절로 먹고 자랐고 때마침 개발 붐을 탄 철도망을 통해 유럽과 미국에 수출됐다. 냉동선, 철조망, 철도 등 3대 발명품이 아르헨티나의 소를 요즘 한국의 반도체 같은 수출 블루칩으로 만들었다. 이탈리아에서 부자 나라 아르헨티나로 가정부살이를 떠난 엄마를 찾아 나선 주인공 마르코의 눈물겨운 동화 ‘엄마 찾아 삼만리’의 시대적 배경이 그 당시다. ▷아르헨티나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기 위한 협상을 8일 시작했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자 아르헨티나에 있던 달러화가 빠져나가 페소화 가치가 최악 수준으로 떨어지고 주가도 폭락했기 때문이다. 불과 20일 전 27.5%였던 금리가 40%로 올랐는데도 달러 이탈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터키 브라질 등도 비슷한 추세여서 신흥국 6월 위기설도 불거지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국가부도 위기는 1982년, 2001년, 2014년에 이어 벌써 4번째다. 충격이 있을 때마다 IMF 구제금융의 단골손님이 된 것은 경제 체질이 허약하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는 경제가 좋을 때 선진 공업국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농산물 수출국가에 머물러왔다. 농장주들에게 편중된 부(富)의 불균형은 사회적 갈등의 불씨로 작용했고 정부는 과도한 복지로 노동자와 하위층의 민심을 달랬다.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Don‘t Cry For Me Argentina)’의 주인공 에바 페론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1997년 “펀더멘털은 튼튼하다”고 하다가 IMF 구제금융을 받은 전력이 있다. 지금은 외환보유액 등 그때보다 체질이 좋아진 것은 틀림없다. 이번 위기설에도 한국은 큰 피해가 없을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하지만 요즘처럼 정부가 효과 없는 사업들에 예산을 펑펑 쏟아붓고 기업들 때리기에 나선다면 언제 또 아르헨티나의 길을 걸을지 모를 일이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2월 13일 한국GM은 5월 말까지 군산공장을 폐쇄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명색이 2대 주주인 KDB산업은행에는 불과 하루 전에 통보했다. 그리고 2월 말까지 의미 있는 진전이 없다면 다음 단계에 대한 중대 결정을 내리겠다고 했다. 만족할 만한 정부의 지원, 노조 양보가 없으면 인천 창원공장들도 폐쇄할 수 있다는 내용을 시사한 최후통첩이었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고 있는 정치권, 김동연 경제부총리, 이동걸 산은 회장, 노조 누구도 “그래, 갈 데까지 가보자”는 말만큼은 절대 할 수 없다는 걸 GM 측은 간파하고 있었다. 그때 게임은 이미 끝났다고 봐야 한다. 이후 진행된 협상은 정해진 수순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산은은 당초 5000억 원을 넣기로 했다가 3000억 원을 늘려 8000억 원을 신규 출자하기로 했다. GM 본사는 36억 달러(약 3조8600억 원)의 신규 자금을 넣기로 했는데 8억 달러가 출자다. 나머지 28억 달러는 이자를 받아가는 대출이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산은의 주식은 휴지조각이 된다. GM의 대출은 채권으로 남는다. 산은이 당초에 세운 ‘같은 대출, 같은 투자조건’ 원칙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산은이 GM에 일방적으로 몰린 협상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 비판에 대한 반박이 이 회장의 ‘가성비론’이다. 8000억 원을 더 투입해 한국GM 공장 1만5000명을 포함한 협력업체 등 15만 명 이상의 일자리와 지역경제를 10년간 지켜낼 ‘철수 비토권’을 확보했다면 투입가격 대비 높은 성과라는 주장이다. 2015년 이후에만 7조 원이나 신규 자금을 투입하고도 회생이 불투명한 대우조선해양과 비교해보라는 것이다. 이번 협상은 말하자면 100대 맞을 것을 50대 맞게 된 걸 가지고 안도해야 하는 우스꽝스러운 협상이다.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면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국가 간이든, 개인 간이든 어쩔 수 없는 현실적 상황이 언제나 불평등 조약, 불공정 계약을 만들어왔다. 30주나 뉴욕타임스 집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협상의 법칙’(허브 코헨)을 보면 세탁기 가격 흥정에서 테러범 인질 협상까지 협상을 결정짓는 3대 요소는 힘, 정보, 시간이라고 한다. 이번 협상에서 한국 측은 모두에서 절대 열세였다. 상대가 돌아갈 비행기 시간만 알아낸다면 절반은 이기고 들어간다는 게 협상의 정설이다. 협상 마감을 불과 한 달 남짓 앞두고 산은이 회계법인을 통해 한국GM을 실사하기 시작했는데 짧은 기간에 충분한 정보를 접했다고 보기 어렵다. GM이 언젠가는 한국에서 철수하리라는 게 많은 전문가의 견해다. 10년 내에 적어도 한 번은 심각하게 철수설이 제기될 것으로 본다. 이 기간에 2번의 대선과 그만큼의 총선과 지방선거가 있다. 비토권이 사라지는 10년 뒤에는 말할 것도 없다. 수익성을 중시하는 GM 본사 전략, 미래 자동차를 둘러싼 글로벌 경쟁과 구세대 자동차의 조립공장에 불과한 한국GM 공장의 사정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고임금 저생산성 구조가 수년 새 크게 변하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언제 날아올지 모를 제2의 최후통첩에 대비한 전략을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GM 협상의 치욕을 잊지 말자’는 각오부터 다져야 할 것 같다. 언제까지 바짓가랑이 붙잡기 위해 수천억 원씩 국민 세금을 쏟아부을 건가.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1905년 을사늑약 보름 전 의정부 참찬에 발탁된 보재(溥齋) 이상설은 늑약이 아직 고종 황제의 비준 절차를 거치지 않아 효력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차라리 황제가 죽음으로써 이를 폐기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그의 기개는 높았다. 그는 1907년 이준 이위종과 함께 고종의 밀사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파견돼 열강 대표를 상대로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호소했다. 그러나 제국주의 시대 약소국 특사에게 돌아온 것은 멸시와 냉담뿐. 이 사건을 빌미로 일제는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군대를 해산한 뒤 1910년 강제합병으로 치닫는다. ▷궐석재판에서 일제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이상설은 간도, 하와이, 상하이를 거쳐 블라디보스토크로 옮겨 다니며 독립운동을 벌였다. 조국의 군대 해산을 바라본 안중근 역시 망명길에 올라 간도를 거쳐 1909년 의병활동을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왔다. 두 애국독립투사의 만남은 필연이었다.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는 뤼순 감옥에서 이상설에 대해 “재사로서 법률에 밝고 필산(筆算)과 영어, 일본어, 러시아어에 능통하다. … 애국심이 강하고… 동양평화주의를 친절한 마음으로 실천하는 사람이다”라고 평을 남겼다. ▷최근 일본과 러시아 극동문서보관소에서 ‘일제 스파이의 대부’로 불리던 식민지 조선의 첫 헌병대장 아카시 모토지로의 비밀 보고서가 발견됐다. 이 보고서는 “안응칠(안중근 의사)의 정신적 스승이자 사건 배후는 이상설” “안응칠이 가장 존숭(尊崇)하는 이가 이상설”이라고 언급했다.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고 했는데 바로 이런 경우다. ▷유학자였지만 이상설은 화장하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망국의 신하로 묻힐 조국이 없고 제사도 받을 수 없다는 뜻이었을까. 요즘 밖으로는 구한말을 연상시킬 만큼 나라가 긴박하고 안에서는 혼돈이 드러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선생의 기개와 애국심이 그리워진다. 22일이 선생의 101주기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2일 달러당 원화 환율이 심리적 마지노선이라던 달러당 1060원 선이 무너져 3년 5개월 만에 최저인 1056원까지 떨어졌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달 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에 대해 “평가절하와 환율 조작을 금지하는 조항에 대한 합의가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는 내용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환율 시장에서는 이 문구가 앞으로 한국 외환당국의 운신을 제한할 수 있다고 받아들였다. 이를 두고 신(新)플라자합의, 제2의 플라자합의, 한국판 플라자합의, 트럼플라자(Trump+Plaza)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1985년 9월 22일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주요 5개국(G5) 재무장관이 뉴욕 플라자호텔에 모였다. 합의 내용은 “달러화 가치를 내릴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하고 대외 불균형 축소를 위해 재정 통화정책에 공조한다”는 단 두 줄이다. 이 영향으로 달러당 260엔대였던 것이 1987년 말에는 122엔대, 1995년 4월에는 79.75엔까지 떨어졌다.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불린 일본 경제 비극의 출발점이 바로 플라자합의다. 일본의 한 대학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 패배와 맞먹을 만큼 충격적”이라고 평가했다. ▷합의에 서명하고 돌아온 당시 다케시타 노보루 대장상은 “미국이 일본에 항복했다”고 했다. 강한 엔이 약한 달러를 이겼다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는데 나중에 실수였다고 인정했다. 당시 총리였던 나카소네 야스히로는 “엔화 환율이 10∼15% 정도 떨어지고 이는 견딜 수 있는 수준이라고 판단했다”고 회고했다. 미일 안보 문제도 얽혀 있어 그 정도는 양보해야 했다는 해명이었다. ▷환율 이면합의설과 관련해 정부는 “환율 문제와 한미 FTA는 전혀 관련 없는 사항”이라며 “별도 논의는 해오고 있다”고 해명했다. 만에 하나 우리의 환율주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소지가 있는 문구에 합의했거나 앞으로 한다면 그 당국자는 한국 경제를 망친 주범으로 기록될지도 모르겠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한 정부의 이념은 구체적으로 재정, 즉 나라 살림을 어떻게 꾸려 나가야 하는지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은 큰 정부다. 국가가 적극 나서서 복지도 늘리고 일자리도 늘리고 심지어는 민간 기업의 임금까지 정부가 주겠다고 한다. “일자리는 기업만 늘린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대통령의 발언이 많은 것을 요약해 준다. 큰 정부에는 큰돈이 필요하다. 법인세를 올렸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현금이 없으면 빚을 내야 한다. 앞으로 계속 국가부채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난달 정부가 2017년 국가부채를 발표했다. 국가부채 규모는 항목을 잡기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한다. 중앙과 지방정부의 빚에 국책은행 국영방송 등 비영리 공공기관의 부채를 더한 일반정부부채가 717조5000억 원이었다. 국내총생산(GDP)의 45% 정도다. 2016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12%에 비해 절반이 안 된다. 일본(217%), 미국(106%), 독일(76%)에 비해 한참 낮다. 이 대목에서 청와대와 여당 정치인들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얼마든지 여력이 있으니 예산 지출을 더 늘리자는 주장이다.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기업도 부채 비율이 낮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기업을 키우려면 빚을 끌어다 설비를 들이고 사람도 더 뽑아야 한다. 정부도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지출을 늘려 결과적으로 나라 살림을 넉넉히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 문제는 지출의 쓰임새와 빚이 늘어나는 속도다. 청년실업의 급한 불을 끄자는 심정은 이해가 간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청년에게 3년간 매년 1000만 원씩 현금으로 주는 것도 황당한데, 재직 근로자들과 역차별이 생긴다는 불만이 나오자 재직 근로자들에게도 월급을 보전해 준다고 한다. 그러면 3년 뒤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최저임금을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올렸다가 해고 등 부작용이 곳곳에서 터지니 정부가 임금의 일부를 주겠다고 한다. 땜빵도 이런 땜빵 정책이 없다. 2000∼2016년 한국의 국가부채 연평균 증가 속도(11.6%)가 32개국 가운데 4번째다. 3%대인 일본 독일이나 재정 위기를 겪은 스페인(7.0%) 그리스(4.9%) 이탈리아(3.4%)보다 훨씬 빠른 속도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저출산·고령화 속도만큼이나 여기에 들어갈 연금 등 복지 수요 증가 속도도 빨라 세계 최고다. 이런 마당에 줄여도 시원찮을 공무원 수를 정부는 임기 내 17만 명 더 늘리겠다고 한다. 이렇게 외상으로 잡아먹은 소 값은 다음 세대에게 빚으로 고스란히 돌아간다. 현 세대의 몰염치다. 한국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에는 언제 어디서 어떤 유탄이 날아올지 모른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의 첫 발사도 해외에서 터졌다. 점점 격해지는 미중 무역전쟁의 불똥이 언제 한국으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다. 외환위기 당시 나라가 부도 직전인데 정부는 “한국 경제는 펀더멘털이 튼튼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요즘 “재정이 아직 건전하다”는 말이 당시 펀더멘털 타령과 겹쳐 들린다. 좋은 살림꾼은 푼돈을 모아 생긴 목돈을 잘 굴려 더 큰 돈을 만들고 살림을 키운다. 그렇게 해서 한국 경제가 힘들게 여기까지 왔다. 반대로 나쁜 살림꾼은 어렵게 쌓인 목돈을 당장 먹기에는 곶감이 달다는 식으로 한 푼 두 푼 빼먹다가 살림을 거덜 낸다. 베네수엘라 그리스 등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이유다. 대한민국은 어느 길로 갈 것인가. 기로에 놓여 있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지금 대한민국에서 거대한 경제실험이 벌어지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적어도 한국의 주류 경제학계에서는 이단아 취급을 받는 이론이다. 정부 정책에 관심이 많은 경제학 교수를 최근 만났더니 그래도 고마운 점이 있다고 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학술 논문의 좋은 소재를 제공한다는 말이었다. 지금의 실험이 그만큼 파격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졸지에 실험장 된 한국경제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정책은 최저임금, 비정규직 전환, 근로시간 단축 등이다. 이런 정책들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이나 그 회사 노동자에게는 큰 영향이 없다. 폐쇄 직전에 있는 한국GM 군산공장 노동자도 1년 연봉이 평균 8700만 원이다. 근로시간 단축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현장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잔업 특근이 줄어들어 집으로 가져갈 돈이 적어진다며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마저 있다. 정책의 혜택은 기존 저임금 근로자 수백만 명에게 주로 집중될 것이다. 동시에 죽어나는 영세사업주도 많다. 직원 열댓 명으로 겨우겨우 꾸려 나가는 영세 제조업체나 주방 아줌마, 옌볜 종업원 몇 명으로 장사하는 식당, 아르바이트생이 종업원의 전부인 편의점 주인들 대부분이다. 이 실험의 최전선은 불행히도 한계선상에 있는 사업주 대(對) 바닥층 근로자 사이에 형성돼 있다. 이제 정책 집행 초기다. 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가 관심이다. 직원 해고로 대응하는 사업장도 있을 것이고, 오른 최저임금을 주면서 끌고 가는 곳도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더 이상 기업 못 하겠다며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곳이 늘어날 수 있다. 특히 임금이 오르고 정규직이 된 근로자들이 소비를 늘려 얼마나 경제가 살아날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정부의 기대대로 임금이 올라 소비가 늘고, 투자와 생산이 늘어, 다시 소득이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로 흐를 수도 있다. 아니면 고용만 줄고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더 고착시켜 한국경제를 저성장의 늪에 빠뜨릴 수도 있다. 아직은 속단하기 어렵다. 다만 경제학계의 주류는 비관적인 전망으로 가파르게 기울고 있다. 이달 초 강원대에서 열린 경제학공동학술대회에서는 “소득주도 성장 같은 잘못된 개념에 집착하는 청와대 참모진” “이러다가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된다” 등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발표가 쏟아져 나왔다. 반대 논리는 소수로 묻혀 버렸다. 브레이크 밟아야 할 때다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았으니 공약대로 정책을 펴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게 또 민주주의다. 이왕 실험은 시작됐으니 실패의 리스크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한국은 영세 자영업자 비율이 선진국에 비해 너무 높고, 근로시간이 길다. 이 정도의 최저임금 인상폭, 근로시간 단축에도 견디지 못할 사업장들은 이참에 문 닫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장기적으로 검토 못할 방안도 아니다. 그런 의도가 아니라면 이미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현장의 아우성을 듣고 충격을 줄여야 한다. 운전석에 앉은 대통령과 청와대 경제 브레인들이 방향을 틀 생각이 없다면 이쯤에서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길게 본다면 지금처럼 서두를 이유가 없다. 그게 실험의 실패 위험을 줄이고, 졸지에 실험 대상이 된 국민을 덜 불안하게 하는 최소한의 방안이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다는 취지로 추진하는 각종 ‘빈곤의 경제’가 현실을 무시한 채 이념에 치우쳐 대한민국 전체를 가난하게 만드는 ‘경제의 빈곤’으로 흐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노인네, 늙으면 죽어야지’ ‘노처녀, 시집 안 간다’ ‘장사꾼, 밑지고 판다’. 흔히들 말하는 대한민국 3대 거짓말이다. 이제 ‘대통령, 규제 풀겠다’는 말도 하나 추가하게 생겼다. 1970, 80년대에는 정부 규제라는 개념이 별로 없었다. 초년병 기자로 경제부처를 출입하던 90년대 초반 이후 정부가 나서 규제를 풀겠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정부는 규제개혁을 외치고 현장에서는 규제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한다.수십 년째 ‘안 돼 공화국’ 그동안 용어도 다양한 변천을 겪어왔다. 처음에는 탈규제(Deregula-tion)라는 말이 유행했다가 규제완화, 규제개혁, 규제철폐, 규제혁신, 규제혁파로 점점 수위를 높여왔다. 다그친다고 관료들이 규제 푸는 작업에 나설까. 관료들이 규정을 전향적으로 해석하고 집행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큰 틀에서는 의회가 만들어 준 법률에 따라 집행한다. 규제는 공무원 존재의 이유인 동시에 권한의 원천이다. 공무원에게 포기 작업을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포기하라는 꼴이다. 그러다 보니 ‘신용카드 가입 시 필수 동의 항목을 6개에서 2개로 줄였다’는 게 규제완화 백서에 주요 개선 사례로 등장하게 된다. 비상상비약 슈퍼마켓 판매, 의사·간호사 증원 확대, 원격 진료,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카풀 앱 등은 정부도 인정하는 핵심 규제 리스트 중 일부다. 대부분 국회가 법으로 풀어야 한다. 국회의원들도 사석에서 만나면 “규제 이대로 가다가는 대한민국 미래는 없다. 중국보다 더 심하다”라며 열을 올린다. 그러다가 소관 상임위나 지역구에 관련된 아이템이라면 표정이 싹 바뀐다. 수십 년간 줄기차게 떠들어도 큰 규제가 안 풀리는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핑계 없는 무덤 없듯이 꼬리표 없는 규제 없다. 그 꼬리표는 대부분이 이해관계와 그에 얽힌 ‘표’다. 규제와 관련해 국회를 믿을 수 없는 이유다. 추가로 더 안 만들면 다행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규제혁신의 가장 큰 이해당사자는 국민이고 국민의 입장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옳은 지적이다. 문제는 말이 아니라 실천이다. 표 혹은 지지율과 맞바꿀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방법이 있긴 있다. 국민들 인식에 확실히 남을 만한 규제를 단 한 건이라도 푸는 것이다. 그것으로 ‘혁명적 규제혁파’ 의지를 실천으로 먼저 보여준 다음에 다른 규제들도 하나씩 부숴나가면 된다. 우버 택시로 첫발을 뗄 수도 있다. 비교적 새로운 기술·서비스 분야이고, 중국도 하고 있는 사업이다. 택시업계라는 강력한 이해관계자들이 버티고 있지만 규제혁신의 혜택을 국민들이 폭넓게 받을 수 있는 사안이다. 총리·장관으론 어림없어 대통령이 듣기 좋은 말만 할 게 아니라 욕먹을 각오를 하고 앞장서야 한다. 청와대 수석들은 뒤에서 지적만 하는 평론가 집단이 아니다. 여야 의원들에게 협조를 구하고, 자치단체장과 협상도 해야 한다. 택시운전사, 의사, 약사 등 이해집단도 설득해야 한다. 죄송한 말이지만 임명직 총리, 부총리, 장관 정도로는 이익집단의 철옹성을 깨기엔 어림도 없다. 비정규직 제로화, 최저임금 1만 원, 강남 집값 잡기, 적폐청산에서 보여준 무모할 정도의 결기와 실천력을 정작 가장 큰 이해당사자가 국민인 규제혁신에서 발휘할 용의는 없는가. 토론회, 발표회 같은 립 서비스는 ‘이제 마이 무따, 고마해라’.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봄, 보유세 인상이 막 거론되기 시작하던 무렵이다. 당시 재정경제부 세제실의 한 간부가 “세금 올리는 게 쉽지 않을 텐데요”라며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 부가가치세 도입 때문에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게 세제실 사람들”이라고 했다. 보유세, 집값잡는 수단 전락 1977년 정부가 부가가치세를 도입하자 자영업자, 상인들의 불만이 높아졌다. 당시 전국에서 자영업자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 부산과 마산이었다. 학생들만 하던 반정부 시위에 시민들이 가담하기 시작했고 민심 이반의 현장을 목격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총을 빼들었다는 설명이었다.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세금 올리는 데는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그런 세제실을 관장하는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청와대와 여당에 등 떠밀려 보유세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여러 매체와 가진 인터뷰를 보면 보유세 인상 자체는 기정사실이고 적용 대상, 인상 폭과 시기를 두고 고심하고 있는 것 같다. 세금이라고 절대 불변이란 법은 없다. 쓰임새가 생기고, 과세형평을 위해서라면 조정할 수 있다. 문제는 보유세 인상이 분양가 상한제처럼 강남 집값 잡는 통제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집값 잡으려고 세금을 동원하는 것은 물량 수급 조절이나 금융 정책에 비하면 하지하(下之下) 대책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엊그제 청와대에서 열린 규제혁신 토론회에서 규제를 혁명적으로 혁파하겠다고 강조했다. 일단 허가를 해주고 사후에 관리하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도입하겠다고 했다. 모두 옳은 지적이고 제대로 된 방향이다. 하지만 개별 인허가 규제의 폐해는 정부가 직접 물건값을 매기는 가격 규제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시장원리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보이지 않는 손’ 대신 정부의 ‘보이는 손’이 너무 자주 등장하고 손놀림이 거칠다. 최저임금뿐만 아니라 카드사업자 팔을 비틀어 강제로 수수료를 낮추게 하는 것도 가격통제다. 비정규직을 강제로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임금에 대한 규제다. 내일부터 실시되는 상가 임대료 인상률 인하 조치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가 인상률 상한을 현행 9%에서 5%로 뚝 떨어뜨리면 당장은 세 들어 장사하는 자영업자들이 좋아할 수 있다. 길게 보면 스토리가 달라진다. 돈 안 되는 상가임대업을 하겠다는 사업자가 줄어들 게 뻔하다. 임대로 나온 가게가 드물게 되면 결국 일부 상인들은 가게를 못 구하거나 상한선보다 웃돈을 주고서라도 들어가야 한다. 공상소설이 아니다. 경제학 교과서는 “폭격 외에 도시를 가장 확실하게 파괴할 수 있는 방법이 임대료 규제”라고 가르치고 있다. 집값 빵값 임금까지 국가가 다 정했다가 망해버린 나라가 사회주의 소련, 마오쩌둥(毛澤東)의 중국이다. 중국은 덩샤오핑(鄧小平) 시대에 들어 시장원리로 기울면서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해 이제는 미국과 어깨를 겨룰 만큼 초강대국으로 성장했다. 베네수엘라는 이런 흐름에 역주행하다 나라 경제가 거덜 난 경우다. 가격통제가 가장 큰 규제 가진 자들이 좀 더 희생해서 약자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자는 취지에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취지가 좋다고 결과까지 좋은 것은 아니다. 많은 역사적 경험이다. 소득주도 성장의 정치적 구호가 사람중심 경제이고, 동원된 수단들은 대부분 가격통제 정책이다. 자칫하면 사람중심 경제가 사람 잡는 경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일부 강남 고급 아파트 값 오름세가 광풍(狂風) 수준이다. 자고 나면 1억 원씩 오르고, 압구정동 대치동 반포 등 강남 일대 부동산중개업소에는 번호표를 들고 매물 나오기만 기다리는 대기자들이 줄지어 있다고 한다. 한 채 나오면 순서대로 한 채 채가는 식이다. 몽둥이로는 못 때려잡는다 정부의 서슬 퍼런 엄포에도 불구하고 이들 아파트 값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이유는 많다. 금리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무엇보다 그동안 경제가 발전하면서 돈 가진 사람이 많아졌다. 그보다 자식들을 좋은 여건 속에서 공부시켜 좋은 대학 보내고 싶고, 병원 백화점 체육시설이 많으며 바둑판처럼 교통이 뚫려 있어 생활하기 편한 곳에서 살고 싶어 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이 주범이라면 주범이다. 예컨대 작년 6월 자사고 특목고 폐지 방침이 발표된 이후 가장 집값이 많이 오른 곳 가운데 하나가 사교육 1번지 대치동에 있는 R아파트다. 우연찮게도 김상곤 교육부 장관이 오래전부터 보유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욕구를 특별세무조사, 특별사법경찰의 몽둥이로 때려잡겠다는 발상 자체가 난센스다. 겁주기식 부동산투기 일제단속도 이미 학습이 끝난 메뉴다. 분당신도시가 분양될 무렵인 1990년대 초반 당시 건설부 직원과 취재차 특별단속 현장에 함께 나간 적이 있다. 단속 정보가 새나갔는지 중개업자들은 대부분 잠적해버리고 어쩌다 문을 열고 있던 중개업소 사장으로부터는 “거래가 뚝 끊겨 요즘 개미 새끼 한 마리 없다”는 대답만 들은 기억이 생생하다. 꼭 강남 집값을 잡고 싶으면 이 지역이 가진 희소성을 해소해야 한다. 수요를 다른 곳으로 돌려 결과적으로 강남 집값의 하락을 유도하는 게 최선이다. 그게 강남 집값에 대한 진짜 복수다. 또 그래야 ‘여차하면 강남 집값도 폭락할 수 있구나’라는 진정한 의미의 학습효과를 줄 수 있다. 이 원리를 시장은 알고 있다. 실제로 보금자리주택이 보급되는 몇 년간 강남 집값은 조용했다. KB국민은행 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임기 초 2월과 임기 말 2월을 비교한 강남 아파트 값은 노무현 정부 67%, 이명박 정부 ―6.5%, 박근혜 정부 11.5%였다. 그런데도 이 정부 들어 발표되는 정책들을 보면 대부분이 수요억제책이다. 고급 아파트에 고춧가루를 확 뿌려 가치를 떨어뜨리고 결국 가격을 낮추겠다는 발상이다. 초과이익 환수, 거래 제한, 보유세 인상 등이 같은 맥락이다. 노무현 정부 때 “강남이 불패(不敗)면 대통령도 불패(不敗)다”라며 내놓았던 정책의 재판이다. 이제는 좀 더 넓고 길게 봐야 한다. 가진 자에 대한 분노와 정의감을 갖고 집값 때려잡기에 나서면 또 한 번의 패배 기록을 더할 뿐이다.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공공임대주택의 양을 늘리고 질을 높이는 데 더 많은 예산과 자원을 투입하는 게 옳은 방향이다. 주택 격차를 줄여야 한다면 높은 것을 굳이 끌어내릴 것이 아니라 낮은 것을 끌어올려 격차를 줄이고 위화감을 줄여 나가야 한다. 넓고 긴 주택정책 필요 수단들은 좀 더 세련되고 정교해져야 한다. 판자촌 철거 반대 운동을 하던 김수현 대통령사회수석비서관은 주택정책에서 한발 물러나고 청계천 무허가 판잣집 출신이면서 정책 경험이 풍부한 김동연 경제부총리에게 맡기는 게 현실적인 차선책쯤은 될 것 같다. 김 수석이 2011년 ‘부동산은 끝났다’는 제목의 책을 낸 적이 있다. 거기에는 ‘참여정부는 왜 집값을 못 잡았나?’라며 실패를 인정하는 대목도 있다.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부동산이 아니라 부동산 정책이 끝난다.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 KT&G는 세월호 사고 피해 성금 15억 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탁했다고 17일 밝혔다. 성금은 임직원들이 기부한 ‘상상펀드’ 7억5000만 원에 회사 측에서 같은 금액을 매칭해 조성했다. ■ 오비맥주는 본사인 AB인베브와 함께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 지원을 돕기 위해 임직원이 마련한 성금 10억2135만 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탁했다. 전달된 기부금은 세월호 사고 피해자 가족 지원 및 사회안전 인프라 구축 등에 사용될 예정이다.}

다음 달 1일 중국의 관광진흥법인 ‘여유법(旅游法)’ 개정안의 발효를 앞두고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를 대상으로 하는 국내 여행사들에 비상등이 켜졌다. 개정안의 취지는 ‘비합리적인 저가상품을 없앤다’는 것인데, 중소 여행사들이 충분히 대처할 시간을 갖지 못해 ‘출혈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12일 여행업계와 한국관광공사 등에 따르면 개정된 중국의 관광진흥법은 한국 관광업계의 최대 고객인 중국여행객 유치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직접 영향을 미치는 조항은 크게 네 가지다. △비합리적인 저가 여행상품을 만들거나 쇼핑 또는 별도 요금의 여행항목을 만들어 수수료를 받을 수 없다 △관광객에게 서비스 요금을 요구하거나 별도로 요금을 내야 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하도록 강요하지 못한다 △구체적인 쇼핑장소를 지정하거나 여행 일정을 임의로 변경해서는 안 된다 △중국 여행사는 중국인 관광객을 한국으로 보낼 때 지불하는 ‘지상경비(숙박·교통·시설이용료 등 중국 여행사가 한국의 현지여행사에 지급하는 금액)’를 원가 이상으로 지불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국내 여행사들은 원가보다 싼 여행상품으로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해 쇼핑센터나 각종 옵션 판매를 통해 수익을 얻던 기존 운영방식을 크게 바꿔야 할 처지에 놓였다. 국내 여행사의 한 임원은 “언젠가는 고쳐야 할 잘못된 관행이지만 충분히 대비하는 시간을 갖지 못한 채 당장 10월 초 중국 관광 황금시즌을 맞아야 하기 때문에 타격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법 개정과 관련해 중국 여행사와 가격협상을 벌이고 있는 A여행사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제주 3일, 서울 2일짜리 4박5일 여행상품은 원가가 27만∼28만 원이지만 중국 여행사 측은 한국 측에 지불하는 금액으로 17만 원 정도를 제시하며 가격을 깎고 있다. 지금까지 중국 여행사는 이 여행사에 6만∼7만 원 정도를 받고 있었다. A여행사 관계자는 “개정법은 원가 이상의 지상경비를 주도록 정하고 있지만, 한국과 중국 여행사가 짬짜미로 계약서상 원가를 축소하는 방식을 쓴다면 얼마든지 편법 운영이 가능하다”면서 “회사를 계속 운영하려면 최소한 10만 원 정도를 다른 방식으로 벌어들여야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국여행업협회 관계자도 “이 법이 시행되더라도 중국 여행사와 한국 여행사가 암암리에 하는 뒷거래까지 통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가를 모두 보전해주진 못하지만 중국인이 구매하는 한국 여행상품의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어 중국 관광객들의 수는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여행사들은 한국 여행 상품 가격을 50∼60%가량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 영향으로 모두투어를 통해 10월 중 한국을 찾을 중국인 관광객 예약자 수는 1000여 명으로 작년 같은 달의 3분의 1에 그치고 있다. 한 여행사 대표는 “70% 이상의 고객 모집률 감소를 각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뀐 법에 적응하지 못해 아예 상품을 내놓지 못한 여행사들도 나오고 있다. 롯데관광 관계자는 “원래대로라면 이미 10월 상품이 나왔어야 했는데 추석 이후로 계획이 미뤄졌다”며 “현지에서 고객 모집이 잘 안 된다는 하소연이 늘고 있지만 다른 업체의 눈치를 보느라 쉽게 상품 구성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이 관광산업이 선진화되는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이라는 의견도 있다. 함승희 KDB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우리나라도 해외여행 시장이 성장하던 초창기 여러 업체가 난립했다 사라지는 현상을 겪었다”며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여유법(旅游法) ::총 10장 112조로 이뤄진 중국의 관광진흥법. 중국 내외를 여행하는 중국인 관광객의 권익을 보호하고 중국 관광산업의 건강한 발전을 촉진하는 것이 목적이다.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는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 단독 행동이 아니라,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 김계원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과 사전에 모의했다는 주장이 다시 제기됐다. 전두환 당시 합수본부장 비서실장이었던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대표는 8일 채널 A 시사대담프로그램 '김광현의 탕탕평평'에 출연해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재규 정승화가 한 패였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허 대표는 "김재규 정승화 김계원 씨는 서로가 인정하지 안했지만 우리는(전두환 합수본부장 등)은 모의했다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허 대표는 "정승화가 죄가 없다면(시해에 가담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정승화 총장은 담 너머에서 김재규와 식사하는 것을 알고 스탠바이하고 있었다. 시해를 한 다음 김재규가 왔을 때 피도 묻어있고, 맨발로 왔는데 (정승화는) 김재규를 따라서 같이 차를 타고 육군본부 벙커에 와서 국방장관에 보고도 않고 독단으로 부대 점검하고 출동 준비를 했다. 아무도 모른 상태에서 비상각의에서 (정승화로)계엄사령관을 덜컥 임명해 버렸다. 그러다 김재규가 잡혔다. 나중에 보니까 (정승화가) 혐의자이더라. 정승화는 이미 (계엄하에서 계엄사령관이라는) 절대 권력자가 되어버렸고, 그래서 수사가 어려워졌고, 12.12사태가 일어난 거다."고 설명했다. 허 대표는 또 육군참모총장이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시해된 사실을 체계를 밟아 국방부 장관, 총리에게 보고를 해야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건만으로도 군법 회의감이라고 말했다. 또 '5.18에 대해 유족에게 사과할 마음이 없느냐'는 질문에 "12.12든 5.18이든 '역사바로세우기'(김영삼 정부에서 실시된 5공 인사들에 대한 재판) 라는 정치적 재판은 끝났지만, 역사적 재판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진실 공방이 팽팽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누구도 사과할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허 대표는 "우리는(5공 인사들은) 감옥소 가고 연금 몰수 당하고 온갖 수모를 당했다. 그리고 전두환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사과를 했고, 대표가 일단 사과를 하면 사과를 한 것이다. 그러나 진심으로 사과를 하는 수가 있고, 어쩔 수 없이 사과를 할 수가 있는데..."라고 말해 딱 부러지게 '어쩔 수 없이 사과를 한 것이다'고는 하지 않았지만 그 의미가 많이 담겨있었다. 허 대표는 전두환 대통령 비자금에 대해서는 이미 털만큼 털었으니 김영삼이나 김대중이 얼마나 받았느냐를 조사하는 게 어떻냐고 되물었다. 허 대표는 YS가 3000억원을 받았다고 하고, 줬다는 증인이 살아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허 대표는 경제민주화에 대해 강한 의심을 표시했다. 경제민주화는 한국의 좌파들이 남한의 자유주의 체제를 위협하기 위해 우파에 심어놓은 '트로이 목마'였다는 것. 허 대표는 "경제민주화를 헌법에 넣은 김종인 씨가 작년 11월에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라는 냈는데, 그 때 2013년 체제로 가려면 경제민주화로 가야한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허 대표는 "좌파의 대부격인 백낙청씨가 주장한 2013년체제는 2012년 총선 대선에서 (좌파가) 이길 가능성이 있다. 이기면 정권을 잡고 2013년부터 남북 연합을 해서 6.15선언에 있는대로 우선 분단체제를 깨뜨린 다음 평화체제로 가고 궁극적으로 민족통일로 가야한다는 게 백낙청씨가 주장하는 2013년 체제다. 김종인 씨가 2013년 체제로 가려면 경제민주화로 가야한다고 했는데 . 남한의 자유주의 체제를 위협하기 위한 트로이목마라고 본다."고 말했다. "지금은 경제민주화 이슈가 조용한데 야당이 전열을 정비하고 나면 이념 세력, 재야 세력등 총단결해서 이걸(경제민주화)를 고리로 들고 나올 것이다"고 전망했다. 주장한 장본인(김종인)이 2013년 체제를 들고 나왔다면 경제민주화는 체제를 위협하는 이슈라고 거듭 강조했다.김광현 기자kkh@donga.com}
동아일보 종합편성채널 컨소시엄에는 세계 각지에 나가 있는 해외교포도 다수 참여했다. 90년 전통의 동아일보가 그동안 보여온 정통 저널리즘에 대한 신뢰와 새로 탄생할 방송사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해외교포들은 2012년부터 주어지는 해외교포 참정권과 관련해 모국의 새로운 방송 출현에 높은 관심을 보였으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폭넓게 수렴해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세계 해외교포 방송사 가운데 가장 큰 방송사인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라디오코리아가 주주로 참여했다. 또 미국 중부지역에서 가장 큰 한인방송사를 운영하고 있는 시카고의 KBC TV도 컨소시엄에 주주로 참여했다. KBC TV의 배건재 회장은 여러 개의 방송 주파수와 은행을 소유하고 있으며, 중부지역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한인 기업인으로 꼽힌다. 일본에서는 지상파방송 프로그램, 영화 콘텐츠 등을 기획 제작해온 리라이더스가 주주로 참여했다. 이 주주들은 앞으로 ‘채널A’(가칭)가 제작할 보도, 드라마 등 동영상 콘텐츠를 해당 한인사회를 중심으로 해당 지역에 유통하고, 교포들의 소식을 전달하는 등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할 예정이다. 이 밖에 중국 미국 일본 카자흐스탄 지역의 해외교포들이 개인 자격으로 주주로 참여해 동아일보 컨소시엄을 더욱 빛냈다.김광현 기자 kkh@donga.com}

한국지방신문협회(한신협)가 22일 동아일보가 준비 중인 동아 종편에 합류하기로 함에 따라 한국 언론사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는 평가다. 각 지역 대표 신문사의 참여는 신문과 방송 융합 콘텐츠의 시너지를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앙과 지역 언론사 간 상생 협력 모델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한국 미디어산업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1년여 논의 끝에 동아 종편 선택 한신협은 종편 파트너를 선정하기까지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다. 1년여 전 종편 실무TF팀을 구성한 한신협은 수차례 실무TF팀 및 사장단 회의를 거치며 의견을 수렴했다. 지난달에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등 5개 종편 예비사업자로부터 협력방안에 관한 프레젠테이션을 받기도 했다. 이어 지난달 28일, 이달 11일 잇달아 사장단 회의를 연 데 이어 22일 사장단 회의에서 무기명 투표를 실시해 동아일보를 종편 파트너로 최종 선택했다. 한신협이 종편 파트너를 고르는 과정에서 고려한 세 가지 원칙은 △9개 회원사의 행동 통일 △파트너의 사풍(社風) △예비사업자의 종편 선정 가능성이었다. 한신협이 장고(長考) 끝에 동아일보를 파트너로 선택한 것은 대한민국의 헌법과 민주주의, 시장경제질서를 수호하는 데 앞장서 온 동아일보의 정통성을 평가하는 한편 신뢰와 성실을 바탕으로 하는 사풍을 높이 산 결과라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한신협 김종렬 회장(부산일보 사장)은 “회원사마다 입장이 다르고 여러 종편 예비사업자와의 특수한 관계도 있지만 오늘 9개 회사가 공동으로 동아 종편에 참여하는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며 “오랫동안 많은 연구와 고민을 한 끝에 좋은 결과가 도출된 만큼 앞으로 양측 간에 긴밀하게 협조해 신문 방송 겸영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해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중앙과 지역 언론의 대연합 이번 연합으로 동아 종편은 지역 신문사들로부터 전문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지역 밀착형 콘텐츠를 제공받고 지역 신문사는 방송이라는 새로운 매체로 확장하는 기회를 갖는 윈윈 전략 모델이 마련됐다. 종편은 매체 특성상 전국 동시방송이기 때문에 지역 신문사와 동아 종편이 만든 지역 밀착형 프로그램이 해당 지역에 제한되지 않고 전국으로 방송된다. 이는 각 지역이 경쟁력을 갖춘 상품이나 행사, 축제 등을 전국에 알릴 수 있는 창구를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동아 종편은 동아미디어그룹 내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는 동아미디어아카데미의 방송 인력 교육을 한신협 회원사로 확대해 지역 신문사들의 방송 역량을 키우는 데도 기여할 계획이다. 한신협과 동아 종편은 방송 협력을 바탕으로 온라인, 모바일 등 뉴미디어에서도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지역 밀착형 뉴스 및 프로그램의 공동제작 한신협과 동아 종편의 콘텐츠 협력 방안 중 특히 눈에 띄는 점은 보도 분야다. 한신협 회원사들은 수십 년 동안 해당 지역의 대표적인 신문사로 자리매김해 온 만큼 해당 지역의 여론을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으며 뛰어난 지역 취재 역량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양측은 지역 뉴스를 공동으로 제작하기로 하고 이를 위해 지국 스튜디오를 공동으로 설치해 함께 운영하기로 했다. 동아 종편은 지역 소식을 충분히 다뤄 지역 여론이 소외되지 않고 전달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한신협 회원사는 지역 뉴스나 특집 보도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지역 역사 탐방이나 우리고장 축제 등 지역색이 짙은 콘텐츠 역시 동아 종편과 공동으로 기획, 제작하기로 했다. 양측은 세계적인 행사를 지역에 유치하거나 연예인 공개 오디션, 기능인 대회를 개최하는 등 다각도로 협력 방안을 진행할 계획이다.대전=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한국지방신문협회(한신협) ::2003년 3월 전국의 광역자치단체를 대표하는 신문사가 지방언론 활성화를 위해 결성한 단체다. 자칫 소외되기 쉬운 지방 여론을 한 목소리로 수렴하자는 취지에서 출범했다. 당초 강원일보 경남신문 경인일보 광주일보 대전일보 매일신문 부산일보 전북일보 제주일보 충청일보(가나다순) 등 10개사로 출범했으나 현재는 충청일보가 빠진 9개사로 운영되고 있다. 각 사의 발행인과 편집국장이 각각 분기별 회의를 열어 지방신문의 현안과 공동제작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한신협은 또 대선이나 총선처럼 전국적 대응이 필요한 사안이나 올림픽, 월드컵 등 대형 국제스포츠행사가 있으면 공동 취재망을 구성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9개사가 각 지역의 여론을 수렴해 대형 유통회사의 지방 진출 움직임과 관련한 공동 기획기사를 싣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