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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피안에게 올림픽은 “내 시곗바늘이 도는 이유”(쇼트트랙 심석희·21·한국체대)다. 올림픽만 바라보고 몸과 마음을 단련해온 선수들은 평창의 빙판과 눈밭에서 질주하고 날아다니며 반전과 감동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역사를 쓰고 있다. 승리의 환호와 패배의 탄식 사이 명언도 쏟아진다. 명승부와 함께 오랫동안 기억될 평창 어록이다. 온갖 부상으로 수술대에 일곱 차례 올랐던 임효준(22·한국체대)에겐 첫 올림픽을 위해 특별한 주문이 필요했다. 그가 인스타그램에 올려둔 주문은 “ne doubt ye nought(의심하지 말라)”. 정강이뼈와 손목에 이어 허리까지 부러졌지만 죽도록 연습해 ‘의심’을 없애고 개막식 다음 날인 10일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다. 쇼트트랙 에이스 최민정(20)은 13일 여자 500m 결승선을 2위로 통과하고도 실격당했다. 펑펑 울던 ‘얼음공주’는 “남은 경기에선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가던 길 마저 가자.” 그는 17일 1500m 경기를 압도했고 시상대의 가장 높은 곳에 섰다. 스켈레톤 황제 마르틴스 두쿠르스(34·라트비아)의 8년 장기집권을 끝장낸 윤성빈(24·강원도청)의 16일 우승 소감은 평창 겨울올림픽 이후를 위한 또 다른 주문이다. “한국 스켈레톤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싶다.” 황제와 여제들이 줄줄이 신예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스노보드 노장 숀 화이트(32·미국)는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남자 결선에서 아찔한 점프를 뽐낸 띠동갑 히라노 아유무(20·일본)를 더욱 아찔한 필살기로 누르고 세 번째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일곱 살 때부터 후원사가 붙었던 타고난 스노보더는 지난해 10월 점프하다 추락해 얼굴을 62바늘이나 꿰맸다. 가족은 “더 이상 실력을 입증할 필요도 없고, 돈도 많이 벌었다”며 평창행을 말렸지만 그는 이를 갈았다. “거울을 볼 때마다 흉터를 보았고, 그 상처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그는 흉터를 새겨준 그 회전기술로 2014 소치 올림픽 노메달의 수모를 딛고 평창에서 전설이 됐다. 쿼드러플 점프를 6번이나 뛰는 점프 괴물 네이선 천(19·미국)을 멀리 따돌리고 우승한 피겨 왕자 하뉴 유즈루(24·일본)도 “다친 발목이 고맙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점프 착지 중 넘어져 오른쪽 발목 인대를 다친 그는 이번 대회에서 불필요한 기술을 자제하고 연기의 완성도에 집중한 결과 66년 만의 남자 싱글 2연패라는 기적을 썼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의 전형이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면 금메달을 딸 수 없었을 것이다.” 모든 올림피안의 목표가 메달은 아니다. 소치 금메달 2개를 포함해 쇼트트랙에서 메달 5개를 따낸 박승희(26)는 평창에서는 종목을 바꿨다. 마지막 올림픽 무대로 ‘쇼트트랙의 정상이 아닌 스피드스케이팅의 밑바닥’을 택한 것이다. 그는 “무모한 도전을 응원해줘 고맙다”며 ‘N포세대’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20대여! On Fire!” 22일 46세 생일을 맞는 독일의 클라우디아 페히슈타인은 이번이 일곱 번째 올림픽이다. 그는 역대 올림픽에서 금 5개를 포함해 모두 9개의 메달을 모았다. 평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0m에 함께 출전한 선수 17명 가운데 9명은 그가 1992 알베르빌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을 때 태어나지도 않았다. ‘이제 쉴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이 평창에서도 나왔다. “나보다 어린 선수들을 꺾었다. 내 또래 중 누구도 나보다 빠르지 않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또 메달을 딸 기회가 생길지도. 2022 베이징 올림픽에 나가느냐고? 못 할 것도 없지!”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끝이 없다. 자고 일어나면 성폭력 고발 운동 ‘미투(#MeToo)’ 최신 사례가 세계 곳곳에서 업데이트된다. 미국에선 영화 ‘킬빌’로 유명한 여배우 우마 서먼의 폭로가 추가됐다. 그는 뉴욕타임스 여성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와의 인터뷰에서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에게 “나도 당했다”며 “총알도 아까운 인간”이라고 했다. 한국에선 용감한 여검사들의 연쇄 폭로를 계기로 최영미 시인의 ‘미투’ 시(詩)가 뒤늦게 주목받고 있다. 그는 지난해 말 출간된 계간지 황해문화에 게재한 시 ‘괴물’에서 ‘100권의 시집을 낸 노털상 후보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지도록’ 당한 사실을 폭로했다. 그는 “페미니즘에 관한 시를 써 달라는 청탁을 받고, 한국 문단의 가장 중요한 이 문제를 쓰지 않으면 작가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국적과 민관(民官),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의 차이도 없다. 매달 첫째 주 목요일 아침 비행을 앞두고, 여직원 골프대회 뒤풀이 도중에 그랬다니 밤낮의 구분도 없다. 장소? 가리지 않는다. 극도의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대통령 해외 순방길에, 곡소리 나는 상가에서 그런 일을 당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그런데 피해자의 사회경제적인 ‘계급’은 가리는 걸까. 미투를 외치는 이들은 유명인이거나 검사 같은 ‘센 언니’, 혹은 번듯한 대기업 직원들이다. 그들의 일터에 유독 덜떨어진 늑대들이 많아서? 권인숙 법무부 성희롱·성범죄대책위원장은 방송 인터뷰에서 통계상 성범죄 발생 건수가 높은 건 그만큼 피해자 구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범죄 사실이 더 많이 드러나기 때문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느 조직에나 성범죄는 일어난다. 중요한 것은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제도와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 조직에서나 일어나는 범죄라면 유독 영세 사업장에서 미투의 외침이 들리지 않는 건 위험 신호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전체 여성 근로자(373만 명) 가운데 30인 미만 규모의 회사에 다니는 여성이 172만 명(46.1%)으로 절반에 가깝다. 300인 이상 대기업에 다니는 비율은 15.5%(57만7000명)에 불과하다(2016년 기준). ‘미투’라 외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것이다. 이들의 일터엔 유명무실하다는 성범죄 피해구제 시스템조차 없다. 억울함을 호소할 곳도 없고, 호소했어도 무지막지한 뒷감당을 걱정해야 한다. 달려와 도와줄 변호사 친구도 없다. 모바일 앱이나 ‘○○단체’ 또는 ‘○○계’로 묶여 연대할 수 없는 고립된 약자들이다. 이들의 가해자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공무원, 해마다 ‘노털상 후보’에 오르는 문인, 대형 로펌의 대표처럼 잃을 게 많은 갑보다는 매니저, 지배인, 작업반장이라는 평범한 직함으로 불리는, 을에게 갑질하는 을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해자도 피해자도 주목을 끌지 못한다. 가해자가 카지노 재벌이든 프랜차이즈 점장이든 성범죄는 성범죄인데 말이다. 미투 캠페인의 확산 속도에 놀란 정부와 국회가 대책위원회를 만드느라 바쁘다. 다들 진상 규명과 관계자 처벌, 성폭력 문제 근절, 성범죄 없는 일터 만들기를 약속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초중고교에서 페미니즘 교육을 의무화하자는 청원도 올라왔다. 이에 동의한 사람이 20만 명을 넘었으니 청와대의 공식 답변도 곧 나올 것이다. 어떤 대책을 세우든 미투의 외침만 따라가서는 안 된다. 침묵하는 이들에게도 귀 기울여야 모두를 위한 해결책을 들을 수 있다.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페이스북의 고민이 깊다. 러시아가 페이스북을 통해 미국 대선에 개입한 사실을 확인한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는 새해 “페북을 뜯어고치겠다”고 약속했다. 22일엔 회사 블로그 포스트를 통해 가짜 뉴스, 확증편향, 정치적 혐오 발언 등등의 문제를 나열한 후 “소셜미디어는 민주주의를 훼손할 수 있다”는 내부 인사의 반성문도 공개했다. 문제는, 뭐가 문제인지는 알겠는데 답은 모른다는 것. 그래서 “시가총액 5000억 달러 회사가 답을 내놔야지 물어보면 어떻게 하느냐”는 비아냥거림을 감수하면서도 함께 해답을 찾자며 ‘소셜미디어와 민주주의’를 주제로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블로그 연재를 시작했다. 이 중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글이 눈길을 끈다. 그는 페이스북의 개인화된 뉴스 서비스가 문제의 근원이라고 지적했다. 매월 20억 명에게 뉴스를 전파하는 페이스북 뉴스피드는 ‘너에게 가장 의미 있는(relevant) 이야기’를 제공한다는 점을 내세운다. 페이스북이 단기간에 세계 최대 뉴스 플랫폼으로 성장한 비결은 사용자 개개인의 관심사와 취향을 고려한 맞춤형 뉴스 전달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스타인 교수는 “개인화된 뉴스는 민주주의 관점에서는 악몽”이라며 뉴스 플랫폼이 민주주의에 기여하려면 ‘세런디피티(serendipity·뜻밖의 발견)’가 중요하다고 했다. 평소엔 관심이 없던 분야의 뉴스, 개인의 정치적 성향에 반대되는 의견들과 우연히 마주치는 기회를 갖는 것, 이것이 민주주의의 핵심 조건이라는 것이다. 보기 싫은 뉴스, 듣기 싫은 견해와의 뜻밖의 만남을 차단해주는 맞춤형 알고리즘은 가짜 뉴스를 퍼뜨리기 좋은 토양이다. 가짜 뉴스는, 그걸 사실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골라 뿌려진다. 사람들은 입맛에 맞는 뉴스를, 진짜든 가짜든, 끼리끼리 돌려보며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고, 편협하거나 잘못된 시각에 갇혀, 사회 양극화를 초래한다. 한국도 지난해 19대 대선 당시 성인 남녀 76.3%가 온라인에서 가짜 뉴스를 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카카오톡이나 라인 같은 모바일 메신저가 39.7%,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포함한 소셜미디어가 27.7%였다.(한국언론진흥재단, 성인 남녀 1000여 명 대상 조사 결과) 노성종 싱가포르경영대 교수팀이 지난해 대선에서 ‘가짜 뉴스 효과’(가짜 뉴스에 노출+이를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 못 하는 상황)를 분석한 결과는 흥미롭다.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선거 정보를 접할수록, 소셜미디어에서 정치적 이견을 회피하는 성향이 강할수록 가짜 뉴스 효과가 높았다. 정치 지식이 많은 유권자들에게 오히려 가짜 뉴스의 효과가 높게 나타났다는 분석 결과는 무섭다. 해외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한 다른 연구들에서도 분별력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맞는 가짜 정보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는 분석 결과가 종종 확인된다. 기존의 신념을 유지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지적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이 민주주의를 위해 수익성 좋은 맞춤형 알고리즘을 버릴지는 미지수다. 기사 임의배치 논란을 피하기 바쁜 네이버가 인공지능을 활용한 맞춤형 뉴스 서비스를 포기할 겨를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뉴스 편식은 개인의 정보 영양 불균형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다. 페이스북이 답을 찾을 때까지 기다릴 게 아니다. 소셜미디어 사랑방에서 나와 우리 사회에 중요한 이슈를 만나고, 나를 화나게 만드는 견해들과 부대껴야 한다. 맛집 체험 같은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일이면 몰라도 뉴스는 그러면 안 된다. 끼리끼리만 돌려보는 소셜 뉴스에 반대한다.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여자 상사와 남자 상사 중 누구랑 일할 때 더 편한가요? 전 같은 여자보다 남자 상사가 더 편하네요.” “저도 홍일점으로 일할 때가 좋았어요. 여자는 시기 질투가 너무 심해요.” “상사든 부하 직원이든 여자랑 일하는 게 더 피곤해요. 저도 여자지만 여자들이 더 무섭습니다.” ‘여자 상사’를 주제로 인터넷 여성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물들이다. 가끔 “멋진 여자 사수도 많다”는 반론이 제기되지만 여자 상사 논쟁은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일방적인 결론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여자의 적은 진짜 여자임을 실증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논문 제목도 ‘여자의 적은 여자인가?: 상사 성별이 여성 근로자의 노동시장 성과에 미치는 영향 분석’이다. 정한나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이 최근 발표한 이 논문에 따르면 직속 상사가 여성인 경우 여성 근로자의 직장 내 스트레스 정도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자 상사는 사원과 대리직급 여직원들의 승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연구자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07년부터 100명 이상 기업에 근무하는 대리급 이상 여성 2361명과 남성 1017명을 추적 조사한 자료를 분석해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 같은 자료를 토대로 지난해 발표된 또 다른 논문에서는 상위 직급의 승진(차장→부장, 부장→임원)에서도 상사가 여성일 경우 여성 부하직원들이 남성에 비해 불이익을 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 직원들은 여성 상사를 만나면 승진할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여직원은 여성 상사가 승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황성수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 ‘남녀 관리자의 승진 요인 분석: 승진에 미치는 변인의 성별 차이를 중심으로’). 여자들이 여자 상사 밑에서 승진하기 힘든 이유를 연구자들은 ‘여왕벌 신드롬’으로 설명한다. 여왕벌 신드롬의 사전적 의미는 조직에서 인정받는 여성은 나 하나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성향이다. ‘유리천장’을 깨고 고위직에 오른 유능한 여성들은 부하 여직원들에게도 그만큼 까다로운 평가 기준을 적용한다. 남성 위주의 조직에서 힘겹게 승진의 사다리를 오르는 동안 여성들은 경쟁적이고 권력 지향적인 남성적 리더십을 생존술로 몸에 익힌다. 여직원들은 고위직에 있는 여자 선배가 조직 문화를 여성 친화적으로 바꿔주길 기대하지만 남자보다 더 남자 같은 여자 선배를 보고 실망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황 부연구위원은 “소수로서 눈에 쉽게 띄어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여성 관리자는 열등한 가치인 여성성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다른 여성들을 대변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니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결론짓기 전에 ‘원인의 원인’을 따져보자. 여자들이 여자 상사 밑에서 스트레스받고 승진도 못 하는 이유가 여왕벌의 권력 독점욕 때문이라면, 여왕벌은 왜 그런 독점욕을 갖게 됐을까. 왜 우리 여자 상사는 군대 갔다 온 남자보다 더 무섭게 군대식으로 부서를 운영할까.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가 지난해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발표한 유리천장지수 순위에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 대상 29개 국가 중 꼴찌였다. 여왕벌은 이런 환경에서 태어난다. 남녀 간 임금 격차를 줄이고, 승진의 기회를 고르게 부여하며, 관계지향적인 여성 리더십이 존중받는 기업 문화를 만들면 ‘이 벌집의 여왕벌은 나 하나’라는 여왕벌 현상도 사라질 것이다.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니다.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아이들이 생기니 밖에서 뺨 한 대 맞는 것쯤은 이제 괜찮아요.” 채널A 육아 프로그램 ‘아빠본색’(수요일 오후 9시 30분)에 새로 합류한 가수 박지헌 씨(40)는 12세 아들부터 두 돌 안 된 딸까지 3남 2녀를 키우는 다둥이 아빠다. 곧 막내딸이 태어나면 6남매가 된다. 진행자가 “(아이가 많은데) 돈벌이는 괜찮은 거냐”고 묻자 “무대를 가리지 않는다”며 비유적으로 뺨 맞는 얘기를 한 것이다. 신혼부부 10쌍 중 4쌍이 아이를 낳지 않는다. 나라 밖으로도 주요 7개국(G7) 정상들 중 4명이 무자식이다(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뺨 맞는 고단함을 감수하며 다둥이를 키우는 그에게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추석에 전화를 걸어 “저출산 시대에 모범 가정이 돼 달라”고 당부했다. 조산기가 있는 아내의 입원 후 ‘독박 육아’ 중인 그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나요. “저 혼자선 도저히 감당이 안 돼 어머니가 오셨어요. 도우미는 쓰지 않아요. 셋째 낳고 3개월간 아주머니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요. 몸은 편했는데 육아에 소홀해지고 아이들은 자기 방 청소하는 걸 제 일이 아니라고 여기게 되더군요. 이건 아니지 싶어 그 후론 도우미 없이 살아요.” ―요즘은 하나 키우기도 힘든 세상이죠. “아이가 한둘일 때 힘들지, 많으면 오히려 덜 힘들어요. 우린 셋째 낳고 가장 힘들었어요. 넷째(큰딸) 때부터 달라졌죠. 삶의 판이 교체되는 느낌이랄까. 예전엔 아이를 30분만 돌봐도 피곤했는데 지금은 일주일 내내 아이들과 붙어 지내도 재미있어요. 제가 아이들과 잘 지내니 아내도 좋아하고, 아내와 제가 사이가 좋으니 그걸 보는 아이들도 안정감을 느끼죠.” ―그래도 아이 여섯은 좀…. “다둥이 키우기란 아주 큰 레고를 조립하는 것과 비슷해요. 전체 그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스케일이 큰 레고 조립은 처음엔 엄두가 안 나지만 만들다 보면 조그만 레고 조립과는 차원이 다른 기막힌 재미가 있어요.” ―방송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숨만 쉬고 사는 데도 월 800만 원이 든다’고 하셨죠. “계산해 보니 월 300만∼400만 원으로도 살 수 있겠더라고요. 지금보다 돈을 못 벌어서 못 입고 못 먹고 해외여행을 못 가도 아이들은 포기할 수 없어요. 사람을, 생명을 사랑하는 행위, 이게 본질이고 이게 더 많이 누리는 삶이니까요.” ―남자들이 육아를 힘들어하는 이유는 사회적인 성취감을 느낄 수 없어서라고 합니다. “보컬그룹 V.O.S 멤버로 29세부터 31세까지 최고의 인기를 누렸어요. 제가 최고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행복하지 않았어요. 이렇게 명확한 행복을 느낀 건 5년 전 육아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예요.” ―유안진 시인은 ‘자식이 부모를 키워주지, 평생이 걸리지만 부모 되게 해주지’라고 썼습니다. “맞아요. 아이를 키우면서 삶에서 뭐가 중요한지 보이기 시작했어요. 공부한다고 보이는 게 아니죠.” ―육아가 끝나면 대학 입시와 취업 같은 더 힘든 고비가 찾아옵니다. 그래서 더더욱 아이 낳을 엄두를 못 냅니다. 아이들이 어떤 사람으로 자라길 원하나요. “꼭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업을 가져야 행복한 걸까요. 저는 아이들이 자기가 사는 시대를 사랑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사람이 성공하려고 태어나는 건 아니잖아요.”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중국에 간 대통령을 취재하던 한국 기자들이 중국 경호원들에게 폭행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청와대 기자단을 해체하라는 민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수행 기자단이 보여준 행태는 청와대의 지향점과 노력을 따르기에 역부족”이라는 이유에서다. 사실관계가 확인되기도 전에 맞을 짓을 했을 것이라고 단정한 이들은 정당한 취재 활동에 대한 부당한 폭력임이 밝혀진 뒤에도 “외교 성과를 망가뜨리고 나라 망신까지 시킨 기자를 징계하라”는 주장을 거두지 않고 있다. 좋아하는 정치인에 관한 일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편들고 싸우는 이들을 제이슨 브레넌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정치철학)는 ‘훌리건(Hooligan)’이라고 했다. 그는 저서 ‘민주주의에 반대한다(Against Democracy)’에서 민주사회의 시민을 세 부류로 나눴다. 정치에 무관심한 ‘호빗(Hobbit)’, 정치적 지식수준이 높고 분별력 있는 ‘벌컨(Vulcan)’, 그리고 자신의 정치 성향에 맞춰 정보를 편식하고 반론을 묵살하는 훌리건이다. 훌리건이 축구장에서 난동을 부리듯 정치적 훌리건은 다양한 사람들이 숙의를 통해 합의를 이뤄내는 민주주의 경기장을 훼방 놓는다. 정치적 광팬들에게 객관적 사실이나 이성적인 판단은 중요하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의 극성 지지자인 ‘문빠’들에게는 ‘반문질(문재인에 반대하는 행동)’이 곧 적폐다. 해외 순방 중인 대통령을 취재하던 기자가 폭행당하는 건 “이적 행위”다. “일 잘하는 행정관(탁현민)의 경질에만 관심 있는”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해임해야 마땅하다. 안희정 충남지사도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논쟁을 거부해선 안 된다”는 뻔한 소리를 했다가 적폐세력이 됐다. 정치적 훌리건들이 한쪽에만 있을 리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인용 결정이 내려진 날 헌법재판소 앞에서 취재하던 내외신 기자들은 그 지지자들로부터 집단 구타를 당했다. 문 대통령의 방중 행사에 한류 스타들이 참여하자 ‘박사모’ 게시판엔 “박근혜 님은 연예인 대동이 필요 없는 한류 대스타”라는 글이 올라왔다. 훌리건들은 이성적인 대화를 가로막고 정치적 극단화를 조장한다.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는 사람들, 문재인을 ‘문재앙’으로 고쳐 부르며 “박근혜 대통령은 무죄”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큰 목소리에 작지만 합리적인 견해는 묻혀버리는 것이다. 이들에게 정치는 공동체의 목표를 실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숭배의 대상이다. 데이비드 브룩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지난달 칼럼 ‘정치가 당신의 우상이 될 때’에서 “요즘 사람들에게 정파성이란 특정 정당의 정치 철학이나 정책에 관한 지지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가족 종교 공동체의 유대관계가 사라져 어느 곳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 사람들이 정치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정치를 우상화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브룩스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정치를 제자리로 돌려놓고 공동체를 복원하자는 제안을 했다. 민주사회 시민들의 대부분은 호빗이거나 훌리건이라고 진단한 브레넌 교수의 해법은 좀 더 극단적이다. 그는 돌팔이에게 환자를 맡기지 않듯 책임 있는 투표 행위를 할 수 없는 유권자들에게는 투표권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자신의 정치적 자유를 누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공격해 공론장을 무너뜨리는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은 하고 있나. 반대편에 문자 폭탄을 던지는 행위를 “경쟁을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으로 해석하는 수준으로는 민주주의의 적인 훌리건들의 난동을 막을 수 없다.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퇴직한 차관 가운데 테니스를 잘 치는 이가 있다. 그는 공무원 테니스 동호회원 시절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가 있었다”고 했다. 고건 전 총리(79)다. “공격은 안 하고 수비만 하니 이길 수가 있어야지요. 참 멋없는 양반이죠.” 테니스 코트에서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던 그는 정치인은 될 수 없는, 뼛속까지 안정적인 행정가였나 보다. 이 멋없는 양반은 공직생활 30년간 장관 세 번, 서울시장 두 번, 총리 두 번,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내며 ‘몽돌’ 정치인들이 두서없이 던져놓은 과제를 차분히 풀어내는 ‘받침대’ 역할을 했다. 그 성공의 기록이 얼마 전에 나온 ‘고건 회고록’이다. 멋없는 양반답게 ‘뒷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심심한 글이지만 12년 만에 가장 큰 장(중앙과 지방 공무원 합쳐 2만4000여 명 증원)이 서 들떠 있는 ‘공시족’이라면 밑줄 치며 읽어볼 만하다. ①왜 공무원이 되려 하나=대졸 미취업자 10명 중 7명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공무원 ‘되려는’ 이가 많다. 하지만 공무원 ‘하려는’ 이는 드물다. 소명의식이 없다는 뜻이다. 그는 ‘군수가 되어 한 고을을 책임지고 잘 살게 만들고 싶어’ 고등고시를 준비했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는데 감천까지는 못 해도 감민(感民)은 하자, 이게 좌우명이었다. ②물먹을 때 잘해야=박정희 정권 때 야당 의원을 아버지로 둔 탓에 첫 발령지인 내무부에서 3년 반 동안 보직 없는 사무관 생활을 했다. 그는 지방행정에 관한 해외 서적을 읽고 기획안도 만들어가며 이 시기를 견뎠다. 중앙부처의 정책이 지방 현장에서 어떻게 집행되는지도 눈여겨봤다. 이때 공부가 ‘행정 9단’으로 커가는 밑천이 됐다. ③청렴은 스펙이다=37세에 최연소 전남도지사로 임명되자 아버지는 “남의 돈 받지 말라”며 친척들에게 돈을 모아 매월 도지사 월급의 3배가 되는 돈을 판공비로 부쳐줬다. 공직을 떠나 박봉마저 못 받을 때는 동네 주민들이 쌀을 걷어다 준 적도 있다. 관행이던 전별금을 마다할 정도로 털릴 먼지 없게 처신한 덕에 대통령이 6번 바뀌는 동안 다치지 않고 소신껏 일할 수 있었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지자이렴(智者利廉)이라고 했다. 지혜로운 자는 청렴함을 이롭게 여긴다. ④내가 해도 불륜이다=공직을 떠나 있던 20년을 포함해 50년을 공인으로 살았는데 아내와 세 아들도 긴장하며 살았다. 지방 발령을 받은 공무원들은 자녀 교육을 위해 두 집 살림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는 전남도지사로 발령받자 서울사대부중에 다니던 아들을 광주 학교로 전학시켰다. 1998년 민선 서울시장 시절 전자시스템을 보급했는데 컴퓨터 관련 벤처사업을 하는 큰아들은 시청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했다. 2003년 노무현 정부 때 여소야대 국회의 총리 인사청문회를 말짱히 통과한 비결이다. 명예 아마 5단인 그는 바둑 용어인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내 말을 먼저 살리고 남의 말을 잡아라)’를 응용해 ‘아성연후(我省然後)’라는 경구를 새겼다. ‘내로남불’은 잊어라. 남을 비판하기 전에 나부터 돌아보자. ⑤코드가 아니라 주파수 맞추기=코드는 닫힌 채널, 주파수는 누구나 참여해 소통하는 열린 채널이다. 아랫사람보다는 윗사람과 주파수 맞추기가 어려운 법. 항명할 수밖에 없는 순간도 온다. 그는 7번 사표를 썼다. “정권은 권력이기 때문에 임기가 있지만 행정은 봉사여서 임기가 없다. 헌법 7조에 ‘공무원은 국민에 대해 책임진다’고 나온다. 공무원은 이것만 지키면 된다.” 그가 행정가로서 ‘이기는’ 삶을 살아온 비결이다.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포항 지진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대학수학능력시험에 관한 의견이 많이 올라온다. 수능 연기 찬반 청원과 함께 ‘수능 연기로 추가 등록한 독서실비 지원하라’ ‘포항 수험생 특별전형 도입하라’ ‘레드벨벳 컴백도 일주일 연기해 달라’는 다양한 민원이 줄을 잇는다. 수능 연기에 관한 내용을 제외하면 가장 많이 제기되는 민원이 수능 절대평가 하지 말고 학생부종합전형을 축소하라는 청원이다. 수능 절대평가 전환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하지만 “수능의 변별력을 낮춘다고? 못 미더운 학종을 늘리겠다는 거냐”며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여권에서도 “학생들이 가장 걱정하는 게 학종인데, 이 얘기는 안 하고 무슨 수능 절대평가냐”고 반발하는 바람에 수능 개편은 내년 6월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둔 상태다. 수능과 학종을 둘러싼 혼란은 노무현 정부의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논란과 닮은꼴이다. 2007년 도입된 로스쿨 제도는 노 정부 사법개혁의 핵심이었는데, 21세기에 걸맞은 국제적인 감각과 창의성이 뛰어난 법조인을 기르자는 취지였다. 2008년 입학사정관제로 시작해 2013년 학종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대학입시에서 정성평가를 강화해온 배경에도 창의적 융합적 인재를 기르자는 목표가 자리한다. 하지만 두 제도 모두 의도와는 달리 ‘금수저를 위한 제도’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비난을 받는다. 로스쿨은 입학부터 졸업 후 로펌 취업까지 부모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가 좌우한다는 뜻에서 ‘돈스쿨’로 불린다. “고졸과 서민의 법조인 진출을 막는 로스쿨 제도는 위헌”이라는 소송도 제기됐다. 내신성적과 비교과 활동을 두루 평가하는 학종도 ‘상류층 전형’이라며 공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문재인 대선 캠프의 교육공약 입안에 관여한 이범 교육평론가는 “금수저가 몇백만 원짜리 컨설팅을 받아 좋은 학생부를 만드는 게 공공연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얼마 전엔 서울대 공대 교수가 논문에 아들을 공저자로 올려 같은 학부에 입학시킨 사실이 들통나 사표를 쓰기도 했다. 학종과 로스쿨이 교육 이념에 맞는 인재를 양성하는지도 의문이다. 신평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저서 ‘로스쿨 교수를 위한 로스쿨’에서 영미법계의 로스쿨 제도는 대륙법계를 따르는 한국에 ‘맞지 않는 옷’이라며 “로스쿨이 길러낸 얼치기 변호사들로 국민들까지 피해를 보게 생겼다”고 ‘양심선언’을 했다. 학종은 ‘개척하는 지성’이 아니라 ‘똑똑한 양떼’를 뽑는 전형이다. 착한 학생부 만들려면 고교생이 되자마자 지원 학과를 정해 ‘전공 적합성’이 높은 독서 동아리 봉사활동을 하고 교내 대회 수상 실적을 쌓아야 한다. 학생이 소화하기에 벅찬 학생부용 스케줄을 짜고 관리하려면 “엄마 말 듣지 말라”는 염재호 고려대 총장의 말은 안 듣는 게 좋다. 학생부와 추천서를 써주는 교사에게 찍혀도 끝이다. 역사학과에 가고 싶었지만 막판에 법대를 택했다는, 술 마시고 담배 피우다 정학을 맞았다는 문 대통령은 학종 시대였다면 대학 못 갔다. 꿈 찾아 방황하고 권위에 도전하는 학생을 응원하기는커녕 주홍글씨로 낙인찍는 전형이 교육적인가. 서민을 위한다는 정부가 금수저를 돕는다고 비난받는 건 아이러니다. 로스쿨 제도가 실패한다면 개인과 정권의 불행으로 끝나지 않는다. 법률 서비스 질의 하락은 국가적 재앙이다. 대학 입시제도도 마찬가지다.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를 기르고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는 일은 ‘성적으로 줄 세우기는 악(惡)이고 정성평가는 선(善)’이라는 단순한 공식으론 절대 풀 수 없는 고차방정식이다.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궁금하다. 문재인 정부가 장차관급 인재를 고르는 과정 말이다. ‘시중에 도는 구설’ 때문에 사퇴한 김기정(국가안보실 2차장)을 시작으로 ‘허위 혼인신고’ 안경환(법무부 장관)과 ‘주식 요정’ 이유정(헌법재판관)을 포함해 7명이 낙마했다. 10일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절세(節稅)미남’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까지 넘어지면 8명이 된다. 같은 실패를 반복하는 건 앞선 실패에서 못 배우기 때문인가. 아니면 안 배우기 때문인가. 늦었지만 청와대는 인사 알고리즘을 뜯어봐야 한다. 알고리즘은 무언가를 결정할 때 따르는 방법이다. 네이버의 뉴스 배치가 알고리즘의 결과물이고, 인간을 움직이는 것도 생화학적 알고리즘이다. 데이터과학자인 캐시 오닐 박사는 저서 ‘대량살상수학무기’에서 좋은 알고리즘의 특징으로 투명성, 방대한 데이터, 피드백 시스템을 꼽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야구의 ‘머니볼’이다. 오직 공개된 경기 데이터에만 의존해 선수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승률을 높이는 방식이다. 이에 따르면 청와대의 인사 알고리즘은 나쁜 알고리즘의 전형이다. 좋은 알고리즘은 목표와 작동 방식이 투명하게 공개되는데 청와대 인사 시스템은 블랙박스다. 공직 인사의 목표는 무엇인가. 후보자는 어떤 기준에 따라 누가 고르나. 추려진 후보들의 검증은 어떻게 하나. ‘식품의약품안전을 책임질 수장은?’이라는 질문에 ‘약사 출신 대통령 측근 류영진’이란 답도 틀렸지만 풀이 과정이 생략된 건 더 큰 문제다.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사퇴할 때 “누가 추천했느냐”는 질문이 나왔지만 청와대는 “그게 중요하냐”며 답하지 않았다. 인사추천실명제는 대선 공약이었다. 머니볼에서는 선수들의 기량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방대한 데이터를 사용한다. 청와대의 인재풀이 바닥났다는데 혹시 반쪽짜리는 아닌가. 직무 수행능력과 직결되는 데이터를 근거로 판단하는가. ‘캠코더’(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 항목엔 어느 정도의 가중치를 부여하나. 인터넷 검색만 해도 나오는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의 창조론 신봉은 왜 빠뜨렸나. 마지막으로 피드백 시스템이다. 머니볼에서는 알고리즘의 예측치와 실제 결과를 비교해 어디가 어떻게 잘못됐는지 확인하고 수정한다. 청와대는 6월 안경환 후보자의 사퇴 후 인사추천위원회를 가동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도 조대엽(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박기영, 이유정 사태가 터졌다. 9월 이유정 낙마 후엔 인사자문위원회가 설치됐지만 박성진, 홍종학의 지명을 막지 못했다. 피드백 시스템이 고장 난 건가, 아니면 속으론 “야당의 땡깡 탓”이라고 성내면서 고치는 시늉만 한 건가. 오닐 박사는 나쁜 알고리즘이 진짜 나쁜 이유가 확장성 때문이라고 했다. 청와대의 엉터리 알고리즘은 공공기관장 인사 알고리즘까지 전염시키고 있다. 7일 취임한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국민의 노후자금 600조 원을 책임져야 하지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활동 4년이 관련 경력의 전부다. 기관장 자리가 비어 있거나 올해 임기가 끝나는 공공기관이 100개가 넘는다. 2012년 대선에서 지자마자 차기 집권을 준비했다는 정부에서 웬 인사 참사인가. ‘어차피 캠코더, 낙하산 인사 할 건데 인사의 목표나 방법론을 고민해서 뭐 하게?’라고 생각한 건 아닌가. 과거의 잘못을 쓸어내는 일 못지않게 새로운 제도와 문화를 정착시키는 일도 중요하다. 정부는 “영업비밀”이라며 감출 생각 말고 착한 인사 알고리즘부터 만들어 공개하라. 인사혁신처까지 따로 둔 정부가 ‘내로남불’이 인사 알고리즘이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요즘 중국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디지털 레닌주의’가 주목받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계획경제 시대로 회귀하고, 정치적으로는 이념으로 무장한 소수가 독재한다는 전망을 담은 용어다. 마오쩌둥(毛澤東)의 실패 후 집권한 덩샤오핑(鄧小平)이 탈이념적 개혁개방 노선을 천명한 것이 1978년. 그로부터 40년이 지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이념 색채가 짙은 계획경제를 시도했던 마오의 시대로 돌아가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이런 분석의 배경에는 정보기술(IT)이 있다. 그래서 ‘디지털’ 레닌주의다. 빅데이터와 계획경제는 흥미로운 논쟁거리다. 계획경제 하면 생필품을 사려고 길게 늘어선 줄이 떠오른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활동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시대다. 관료 몇 명이 앉아 무엇을 얼마나 생산할지, 값은 어떻게 매길지 결정해도 시장의 비효율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게 계획경제가 부활한다는 쪽 주장이다. 중국 IT 공룡 알리바바의 마윈(馬雲) 회장은 지난해 “빅데이터는 엑스레이 같은 역할을 한다. 시장을 예측하고 계획하는 것이 가능해져 향후 30년간 계획경제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계획경제가 시장경제를 밀어내고 승자가 될지는 미지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달 4일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과 그걸 적절히 활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며 △소비자의 수요 데이터만으로 공급을 결정하는 체계로는 아이폰처럼 소비자가 생각지도 못했던 상품을 만들어내는 혁신이 일어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빅데이터와 정치에 관한 전망이다. ‘디지털 레닌주의’라는 용어를 만든 독일의 중국 전문가 제바스티안 하일만은 중국 정부가 구축하고 있는 ‘사회 신용 시스템’에 주목했다. 소셜미디어의 정치적 게시물, 법규 위반 기록, 세금 체납 여부 같은 데이터를 수집해 사람들을 통제하는 도구로 활용하려는 프로젝트다. 18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상하이의 IT 기업은 공안국과 함께 얼굴 인식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준비 중이다. 완성되면 14억 중국인의 얼굴을 3초 안에 스크린해 모든 정보를 탈탈 털 수 있다. 인터넷 검열은 이미 일상이다. 이런 중국을 빅브러더 사회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온라인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은 페이스북과 구글을 통한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이 사실로 드러나 뒤집어졌다. 옥스퍼드 인터넷 연구소는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지 조사 중이다. 한국의 대선 기간에 터진 가짜 뉴스 논란과 국가정보원의 댓글부대를 통한 여론조작 사건은 또 어떤가. 시바 바이디어나선 미국 버지니아대 교수(언론학)는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세계의 민주주의가 인터넷을 통해 공격받고 있다. 21세기 소셜미디어 정보전쟁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이 첫 사망자가 됐다”고 한탄했다. 10년 전만 해도 IT는 독재국가엔 위협이, 민주화엔 촉진제가 될 줄 알았다. 예상과 달리 IT는 독재국가엔 요긴한 통치 도구가, 민주국가엔 악몽이 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관심사나 정치 성향을 특정해 교묘히 가짜 정보를 흘려 불을 지르는 일은 너무도 쉽고 싸다. 누구를 탓할까. 페이스북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이유는 내가 자발적으로 시시콜콜 일상을 공유하고 입맛에 맞는 콘텐츠를 편식하며 ‘좋아요’를 누른 덕분이다.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저서 ‘호모 데우스’에서 “잘못하면 조지 오웰이 상상한 경찰국가로 돌아갈 것”이라며 “개인은 빅브러더에 의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조용히 붕괴할 것”이라고 했다. 무서운 디지털 민주주의의 역설이다.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채널A 낚시예능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목요일 오후 11시)가 화제다. 연예계 낚시광들이 낚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도시어부’는 방송 5회 만인 지난주 시청률 3.916%로 동시간대 종합편성채널 시청률 1위에 올랐다(닐슨코리아). 낚시예능의 선전은 이례적이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지난해 바다낚시를 즐긴 사람은 343만 명, 전체 낚시 인구는 700만 명이 넘으며 해마다 증가 추세다. 하지만 낚시예능은 지상파에서도 성공한 전례가 없다. 조용한 낚시와 떠들썩한 예능은 상극이다. 더구나 ‘도시어부’는 출연자들조차 “이렇게 안 잡혀서야 시청률이 나오겠나” 하고 걱정할 정도로 고기를 못 잡는다. 그런데 시청자 게시판을 보면 “못 잡아서 더 재밌다”는 의견들이 많다. 낚시의 실상을 꾸밈없이 보여줘 좋다는 것이다. ‘도시어부’의 고정 출연자는 모두 3명. 이덕화(65)는 낚시 경력 55년인 ‘낚시 무사’이고 30년 경력의 이경규(57)는 ‘낚시 도사’, 래퍼 마이크로닷(24)은 6세 때부터 낚싯대를 잡은 ‘낚시 영재’다. 셋의 낚시 경력을 합하면 100년이 넘는다. 하지만 이들이 한 회분 방송을 위해 10∼12시간 배를 타며 잡는 고기는 5마리 내외다. 하도 낚싯배를 타 ‘땅멀미’를 하는 셋과 달리 귀밑에 멀미약을 붙이고도 3시간마다 토하는 카메라맨 9명은 “고기를 섭외하고 싶을 지경”이라며 괴로워한다. 강호의 고수라도 잡는 날보다 못 잡는 날이 훨씬 많은 법, 그게 낚시다. 실력으로 치자면 이덕화가 으뜸이다. 무게 170kg에 3m짜리 상어도 낚아본 대물 낚시의 달인이다. 그런 고수가 붕어 낚시를 주로 해온 이경규의 어복(魚福)을 못 이긴다. 이경규는 미끼에게 물리고 폼도 어설프지만 ‘꽝’은 없다. 광어든 문어든 ‘던지면 무는’ 그를 동료들은 “용왕이 고기를 꽂아준다”며 용왕의 아들이라고 부른다. 이덕화가 30년간 다녔다는 전북 부안군 왕포로 떠난 날. 이경규가 처음 본 바다에서 씨알 좋은 민어를 건져 올리는 동안 조기 200마리를 장담했던 이덕화는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길에서 넘어지는 법. 실력만큼 노력만큼 얻는 것도 아니다. 그게 낚시다. 방송에선 시원하게 낚아 올리는 순간보다 초조하게 입질을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길다. 이럴 땐 다양한 핑곗거리를 찾는다. “물때가 아니다” “다음 달이 제철이다” “해뜨기 전에 나왔어야 했다” “선장이 포인트를 모른다”…. 진짜 안 무는 날이면 “누가 여길 오자고 했느냐” “어제까지만 해도 참돔 6짜(60cm)가 나왔던 곳”이라며 입씨름도 벌인다. 속으로는 다들 안다. 무는 건 고기 마음이라는 걸. 바다가 내어준 만큼 잡는 것, 그게 낚시다. 출조길은 늘 설레고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아쉽다. 그래도 다음 회에선 어김없이 “오늘은 느낌이 좋다”며 포인트로 향한다. 팔뚝만 한 고기가 낚싯대를 끌고 가는, 드물게 찾아오는 손맛을 기다리고 기다린다. 낚시광 소설가 헤밍웨이에게 퓰리처상과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노인과 바다’의 노련한 낚시꾼 산티아고도 집채만 한 청새치를 잡아 올리기까지 84일을 기다리지 않았던가. 목숨 걸고 잡은 청새치를 상어에게 다 뜯기고 결국 빈 배로 돌아온 산티아고는 승산 없는 게임을 접을 생각이 없는 듯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할 수는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개인적으론 이덕화의 말이 더 와 닿는다. “매일 많이 잡고 매일 꽝 맞으면 누가 낚시를 하겠어. 그래도 하다 보면 한 방이 있잖아.” ‘도시어부’는 낚시예능이 아니라 낚시다큐, 아니 인생극장이다.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요즘 독일 사내아이들은 “남자도 총리가 될 수 있나요?”라고 묻는다고 한다. 유럽 최강국인 독일의 총리는 13년째 앙겔라 메르켈(63)이다.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인 그가 24일 총선에서 4연임에 성공하면 재임 기간은 16년으로 늘어난다. 독일 최장수 총리인 헬무트 콜과 같은 기록이다. 그런데 독일 여성들의 반응은 떨떠름하다. 여성 총리 덕을 보기는커녕 그의 집권기에 여권 수준은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세계경제포럼의 성 격차 지수 나라별 순위에서 독일은 그가 집권한 이듬해인 2006년 5위였으나 2016년엔 13위로 떨어졌다. 뉴욕타임스는 “독일에선 남자 총리를 상상하기 어렵듯 여자 최고경영자(CEO)를 상상하는 일도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여성들은 메르켈 총리가 페미니스트라고 공언하지 않는 것도 불만이다. 그는 올 4월 주요 20개국(G20) 여성경제정상회의에서 ‘당신은 페미니스트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페미니즘의 취지에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개인적으론 그 배지(페미니스트)를 달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요즘 세상에 “난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고 할 정신 나간 정치인이 있을까. 놀란 사회자는 참석자들에게 “페미니스트인 사람들은 손들어 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딸 이방카도,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 총재도 손을 들었지만 메르켈 총리는 끝까지 가만히 있었다. 혹자는 메르켈 총리가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활발했던 동독 출신이어서 여성 문제에 무신경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그는 무심한 게 아니라 실용적인 쪽이다. 1990년 기독민주당에 입당한 그는 멘토였던 콜 총리의 ‘마이 걸’이라는 애칭을 참고 들었다. 스스로 교묘하게 퍼뜨리고 다닌다는 비난도 들었다. 동독의 신교도 여성으로서 서독의 가톨릭 남성 정당에서 뿌리내리기가 절실하던 초짜 시절이다. 2005년 총선에선 “내가 당선되면 양성평등의 자극제가 될 것”이라며 페미니즘에 호소했다.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카드가 먹히던 때다. 그땐 외모도 꾸미고 다녔다. 드디어 1인자 자리에 올라 국정을 책임지게 된 후로는 늘 똑같은 머리 모양에 바지 정장을 입는다. 독일의 젠더 역사학자인 우테 프레베르트는 “메르켈은 웃지도, 여자 티도 내지 않는다. 남자 흉내를 내는 것도 아니다. 젠더 중립적”이라고 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중성화는 1인자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대통령제와 달리 다양한 정치 세력과 연정해야 하는 의원내각제에 잘 먹히는 전략 같다. 중도우파인 메르켈 총리는 낮은 자세로 진보적인 사회민주당 및 녹색당과 정책을 조율해 가며 최악의 금융위기를 포함한 국내외 난제들을 해결해 왔다. 그의 조용한 리더십에 대해 BBC뉴스는 “문제를 수동적으로 해결만 할 뿐 새로운 비전이나 정책을 제시하는 모험을 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수비형이 공격형보다 시원한 맛은 없어도 실점이 없는 법. 메르켈 총리는 집권 12년간 지지율이 46%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다(독일 공영방송 ARD 조사).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 메르켈 총리의 성공은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하며 미국 대선에 도전했던 힐러리 클린턴의 실패와 비교된다. 메르켈은 정체성 정치의 덫에 빠지지 않고 실용주의 전략으로 장기집권하고 있다. 여당에서 메르켈 외에 대안이 없는 것이 우연일까. 후계자를 키우지 않는 마키아벨리스트의 면모를 그는 포커페이스에 용케도 숨겨 왔다. 클린턴은 졌지만 ‘유리천장’ 연설로 기억된다. 메르켈 총리는 여성 문제에 소홀했던 정치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동시에 가장 오래 살아남았던 여성 정치인으로 기록될 것이다.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최근 종영한 채널A ‘하트시그널’은 미혼 남녀들의 짝짓기 프로그램이다. 자유로운 청춘은 물론이고 군대 간 남자들도 생활관에 모여 본다는 인기 예능인데, 시청률을 견인한 것은 20대가 아니라 30, 40대 남녀였다. ‘○○맘’ ‘△△아지매’ 같은 주부들의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이거 보느라 밤에 젖병도 안 씻고 잤다” “결혼 전 연애 감정이 되살아나 맥주 한 캔 더 땄다”는 시청 소감이 이어졌다. 이들은 출연자와 함께 두근대고, 상심하고, 질투하며 새삼 깨달았다. “이게 얼마 만에 느껴보는 설렘이냐.” 한국의 부부는 로맨스와 거리가 멀다. 지난해 라이나생명과 강동우 성의학연구소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부부의 36.1%는 성관계가 월 1회 이하인 섹스리스 커플이다. 국가별 통계는 없지만 이 정도면 일본과 함께 ‘침실에서 불꽃이 튀지 않는 나라’ 1, 2위를 다투는 수준이라고 한다. 일본가족계획협회가 올해 밸런타인데이에 발표한 일본 섹스리스 커플은 47.2%였다. 잠자리를 식히는 냉매제로는 자녀 문제에 올인 하는 가정 문화와 함께 맞벌이 부부의 증가가 지목된다. 하지만 옛날 동서독 주부들의 성생활을 비교 연구한 결과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가난한 동독의 워킹맘들이 온갖 가전제품을 들여놓고 사는 서독의 전업맘보다 오르가슴을 두 배 많이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유럽 전문가인 크리스틴 고드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사회주의 여성들이 더 나은 성생활을 누렸다”고 소개했다. 엄혹한 공산 정권하에서 살았던 여성들은 “고단했지만 내 삶은 로맨스로 가득 찼었다”고 추억한 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그 딸들은 “퇴근 후엔 남편과 좀비처럼 앉아 TV만 본다. 아이 가질 엄두를 못 낸다”고 하소연한다는 것이다. 고드시 교수는 동유럽 모녀 세대 간 성생활 격차의 원인을 성 격차(gender gap)에서 찾는다. 여성 해방이 주요 과제였던 사회주의는 성 평등 정책에서 앞서갔다. 옛 소련이 여성 참정권을 허용한 때가 미국보다 3년 빠른 1917년이다. 전후 여성 노동력이 절실했던 사회주의 정부는 공공 세탁소와 식당, 어린이집을 운영했다. 출산 휴가를 다녀와도 일자리 사라질 걱정이 없었고, 초등학교에선 남녀가 평등하다고 가르쳤다. 1952년 체코 성의학자들은 여성 오르가슴을 연구하기 시작해 1962년 대규모 회의를 개최했는데 이들이 내린 결론은 이렇다. “남성이 가사와 육아에 참여하지 않는 한 좋은 섹스는 없다.” 저출산 문제를 겪고 있는 자본주의 국가들은 뒤늦게 성 격차와의 관계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못사는 나라들의 경우 성 평등 수준이 낮을수록 출산율이 높지만, 선진국에서는 성 평등 수준이 높을수록, 다시 말해 여성을 차별하지 않는 나라에서 출산율도 높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것이 ‘페미니스트 패러독스’다. 세계경제포럼이 지난해 발표한 성 격차 지수 나라별 순위에서 116위와 111위로 하위권을 차지한 한국과 일본이 대표적인 섹스리스, 저출산 국가인 점도 이 이론을 뒷받침한다. 하트시그널을 본 워킹맘은 “죽도록 사랑한 사람이 결혼 후 맞벌이, 독박 육아 살림에 죽일 놈이 돼가는 건 우짤까요”라고 한탄했다. 집 안에서 부부간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는 한, 집 밖에서 경제 참여와 정치적 권한의 남녀 간 불평등이 바로잡히지 않는 한 설레는 로맨스도 출산도 없다. 부부의 내밀한 잠자리 사정이 정부와 무관하지 않은 이유다. 여성을 만족시켜야 유능한 정부다.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안 자르는 게 아니라 못 자르는 것”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여성 비하 논란의 주인공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 말이다. 셔츠 차림의 청와대 커피타임부터 5·18 유가족 안아주기까지 사람들을 웃고 울린 문재인 대통령의 이벤트는 모두 그의 솜씨다. 김정숙 여사의 친근한 ‘정숙 씨’ 이미지도 그의 기획이다. 2012년 대선 때 평범한 주부였던 김 여사를 끌어내 가수 이은미, 방송인 김제동, 배우 손숙 같은 문화계 인사들과의 인터뷰집을 기획 출간했는데, 책 이름이 ‘정숙씨, 세상과 바람나다’였다. “대통령의 지지율은 탁현민 덕분”이라고 하니 청와대의 나영석 PD라고 해야 할까. 이벤트 정치는 대통령제 국가에서 활발하다. 대중적인 지지율에 기대어 껄끄러운 의회를 견제하고픈 욕구를 채워주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라디오, 존 F 케네디는 TV, 버락 오바마는 SNS 대통령으로 불리며 국정 운영을 주도했다. ‘셀피 찍는 오바마’ ‘비서에게 우산 씌워주는 오바마’ 등 365일 홍보물이 쏟아져 “선거운동의 일상화”라는 지적까지 받았다. 한국의 경우 노무현 정부를 기점으로 대통령의 리더십이 국회 중심의 ‘입법적 리더십’에서 국민과의 직접 소통에 의존하는 ‘대중적 리더십’으로 옮겨갔다고 김혁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교수가 분석했다. 감성적 이미지 정치와 유사 언론매체인 ‘국정브리핑’을 통한 대국민 홍보에 주력했던 때다. 김 교수는 이승만부터 이명박까지 역대 대통령의 국회 연설문 116개와 대국민 담화문 120개를 분석했는데, 노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은 22개로 박정희 대통령(31개) 다음으로 많았고, 단어 수도 다른 대통령들의 배가 넘었다. “존경하는 국회의장과 국회의원 여러분”으로 시작하던 국회 연설문은 노 대통령 때부터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국회의장과 국회의원 여러분”으로 바뀌었다. 정책 관련 내용은 국회 연설에 담던 관행도 바뀌어 대국민 담화와 국회 연설의 내용이 비슷해졌다. 하지만 김 교수는 “대중적 리더십이 입법적 리더십을 대체할 수는 없다. 성공적인 국회 없이 대통령의 성공은 태생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여소야대의 국면에만 해당되는 말일까. 박현석 KAIST 교수(정치학)는 1990년대 이후 대통령과 국회의 갈등과 타협 과정을 분석한 논문에서 제왕적 리더십은 김영삼 대통령이 마지막이었다고 했다. 여소야대 국면이었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뿐만 아니라 여대야소의 이명박 정부에서도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를 중심으로 여당마저 반기를 들어 국회와 타협이라는 과제를 비켜 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문바마’ 문 대통령의 롤 모델인 오바마 대통령이 레임덕 없이 임기를 마쳤던 비결도 국민뿐만 아니라 의회와의 부단한 소통 노력이었다. 그는 야당 의원들과의 위스키 소통, 스테이크 대화, 전화 릴레이로 상하원 모두 여소야대인 험한 정국에서 국정 운영의 돌파구를 찾아냈다. 누가 뭐라 하건 탁 행정관이 잘릴 일은 당분간 없을 것 같다. 문 대통령은 20일 국민인수위원회 대국민 보고대회에서 ‘간접민주주의 말고 직접민주주의’라면서 이벤트 정치를 이어갈 것임을 확인했다. 탁 행정관이 유능한 정치 이벤트 기획자라는 평가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이니’(문 대통령) ‘쑤기’(김 여사) 캐릭터의 힘만으로 100대 국정과제 이행을 위해 필요하다는 법률 465개를 제·개정할 수는 없다.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어려운 이름이다. 1980년 5월의 광주를 목숨 걸고 찍은 독일 방송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씨(1937∼2016) 말이다. 학창시절 ‘광주 비디오’를 보고 놀란 적은 있지만 그 이름은 기억에 없다. 그의 광주 취재기를 다룬 영화 ‘택시 운전사’를 보고도 쉽게 외워지지 않았다. 왜 이름도 낯선 독일 기자였을까. 해외 학계에서는 5·18민주화운동과 1989년 중국 톈안먼(天安門) 사태의 비교 연구가 활발하다. 모두 정부의 삼엄한 언론 통제로 외신에 의존했던 사건이다. 학자들은 동아시아에서 벌어진 쌍둥이 같은 사태를 왜 미국 언론은 다르게 보도했는가에 주목했다. 톈안먼은 글로벌 톱뉴스였고 광주는 그렇지 않았다. 중국과 한국의 위상이 달라서? 학자들은 다른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우선 1989년 베이징에는 외신 기자 1000여 명이 몰려와 있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역사적인 중국 방문(5월 14일)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반면 1980년 5월 광주를 찾은 외신 기자는 극소수였다. CNN은 개국 전이었고 서울 지국을 둔 방송사도 드물었다. 제임스 라슨 한국뉴욕주립대 부총장은 CBS와 ABC 보도를 분석한 논문에서 “1970년대 미국 언론에 비친 한국은 늘 학생들이 데모하는 나라였다. 그래서 기자들은 광주사태 초기 익숙한 시위 장면에 주목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현장 기자 숫자의 차이는 보도 내용에도 영향을 주었다. 톈안먼 광장에 있던 외신 기자들은 시위대의 목소리를 주로 전했다. 김성태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가 해외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가 톈안먼 보도에서 인용한 취재원의 32.2%가 시위 참가자들이었다. 중국 정부 관계자 인용 비율은 16%에 그쳤다. 보도 내용도 시위대에 우호적이었다. 톈안먼 집회는 ‘민주화 시위’였고, 무력 진압은 ‘학살’이었다. 반면 광주에 접근하지 못한 외신의 경우 한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한 비율이 45.2%, 시위 참가자들 인용은 12%에 불과했다. 광주 사태는 ‘소요(turmoil)’ 혹은 ‘폭동(riot)’이었고, 무력 진압에 대해선 ‘학살’(48.3%)보다는 ‘통제(control)’나 ‘대응(react)’이라고 표현한 비율(51.7%)이 높았다. 국제뉴스의 경우 언론의 논조가 자국 정부의 정책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이론(인덱싱·indexing 이론)도 확인됐다. 톈안먼 사건 다음 날인 6월 5일 조지 부시 대통령은 무력진압을 성토했지만 지미 카터 대통령은 광주에 대해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5월 23일에야 국무부 대변인이 “안정과 질서 회복을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에 중국은 잠재적인 위협이지만 한국은 공산주의 확산을 막는 동맹이었다. 라슨 부총장은 “TV 보도량이 적을수록 정책 결정자들은 공적 담론을 형성하는 데 더 큰 힘을 발휘한다”고 결론 내렸다. 힌츠페터 씨는 광주 시위를 정부의 ‘폭동’ 프레임에 의존하지 않고 ‘민중 봉기(Volksaufstand)’로 규정했다. 톈안먼을 감정적으로, 광주는 건조하게 보도했던 미국 언론과 달리 그는 대체로 제3자의 시선을 유지했다. 한반도와 이해관계가 별로 없는 독일 기자이기 때문이었을까. 워싱턴포스트 기자로 톈안먼 사태를 취재했던 리처드 하우드 씨는 사망자 수조차 정확하게 보도하지 못함을 자책하며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받는 언론도 진실을 향해 나가며 비틀거린다”고 했다. 때로 넘어지더라도 진실 규명을 위한 필수조건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언론이다. 어렵게 외운 이름 힌츠페터 씨의 광주 취재기에서 새삼 그걸 절감했다.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모든 게 촛불 때문이다. 사드를 배치하면 안 되는 이유도, 전교조를 합법화하는 명분도 ‘촛불혁명’이다. 내란선동죄인을 풀어줘야 하고, 자격 미달의 장관 후보자를 임명해야 하는 까닭도 촛불혁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란다. 농민당에서는 ‘농업대개혁은 촛불혁명의 요구’라는 논평을 내놨다. 민노총은 “촛불 덕 본 정부에 노동자들은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한다. 정부는 원전 건설 중단과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처럼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촛불정신 계승’을 내세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취임사에서 “문재인 정부의 공직자들은 촛불혁명의 명령을 받드는 국정과제의 도구들”이라고 했지만 이쯤 되면 촛불혁명이 정부의 도구가 아닌가 싶다. 진보 정부와 단체들이 억지 주장을 당당하게 하는 이유는 누적인원 1600만 명이 참가했던 2016년 촛불집회의 주역이라는 착각 때문이다. 하지만 진보 단체가 반미 구호를 내세워 주도했던 ‘효순이 미선이 사건’ 촛불집회(2002년), 광우병 집회(2008년), 한미 FTA 집회(2011년)와 2016년의 촛불은 달랐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공저 ‘양손잡이 민주주의’(후마니타스)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낸 힘은 두 가지, 시민 집회의 힘과 보수 정부의 여당이 야당 주도의 탄핵 추진에 동참한 것”이라며 이는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 현실에서 보기 어려운 ‘양손잡이 민주화’가 현실화된 결과”라고 평가했다. 두 가지 힘 가운데 ‘시민 집회의 힘’만 따져도 진보가 온전히 ‘소유권’을 주장하기는 힘들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팀이 여러 설문조사와 집회 참가자들의 면접조사를 망라해 펴낸 ‘탄핵 광장의 안과 밖’(책담)에 따르면 23.9%의 국민들이 촛불집회에 참가했는데, 진보 성향의 사람들 중 참가 비율은 39.1%, ‘보수’ 17.3%, ‘중도’ 19.4%였다. 이들이 집회에 참가한 이유는 “정치적 냉소와 외면으로 어이없는 국정 농단 사태를 방치했다는 반성, 국민으로서 정치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애국심” 때문이었다. 세대와 이념의 차이를 접어두고 사심 없이 한마음으로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에겐 ‘촛불특혜’ ‘촛불청구서’ 운운하며 민원을 하는 것도, 외눈박이 정책을 불도저식으로 추진하면서 ‘촛불정부’를 마패처럼 내미는 것도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촛불혁명이 이어받았다는 5·18민주화운동도 비슷한 홍역을 치렀다. 선거 때가 되면 ‘5·18 정신의 계승자는 누구인가’라는 논쟁이 벌어졌다. 광주비엔날레를 세계적 문화 행사로 키워낸 이용우 전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는 이 행사가 20주년을 맞은 2014년 물러나면서 “‘5·18 때 무엇을 했느냐’고 따지고 광주정신의 갑을 논쟁을 하는 이들이 있다. 광주정신을 사유화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광주정신을 1980년대 광주에만 묶어두면 ‘광주정신의 세계화’가 어렵다는 얘기였다. 5·18이 광주만의 아픈 역사가 아니라 한국 민주화의 밑거름, 나아가 세계 민주주의와 인권의 보편적 상징이 된 것은 광주 시민들의 희생과 함께 이를 기리고 실천하는 모두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가 주목했던 2016년의 촛불집회에 대해 박원순 서울시장은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 등재 신청을 하고 노벨평화상 수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이던 4월 “서울시와 함께 촛불시민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해 수상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러려면 촛불정신을 자신들만의 전유물로 삼아 어떤 반대의 목소리도 무력화하는 마법의 지팡이로 휘두르려는 욕심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스물다섯. 도시의 젊은이들은 취업용 스펙 관리에 매달려 있을 나이다. 농촌의 흙수저 박상봉 씨는 일찌감치 한국농수산대학을 졸업하고 강원 정선에 땅 1만1900m²(약 3600평)를 빌려 곤드레와 약초 농사를 짓는다. 연매출 1억2000만 원에 순소득은 6000만∼7000만 원. 땅 한 평 물려받지 않고 맨손으로 거둬들인 소출이다. 그는 지난달 30일 방송된 채널A ‘유쾌한 삼촌―착한 농부를 찾아서’(금 오후 8시 20분)의 주인공이었다. 방송에는 같은 대학 10학번 동기들인 정우진, 최동녘 씨도 나왔는데 작물이 달라 농번기가 겹치지 않는 세 친구는 품앗이 농사를 짓는다. ‘N포 세대’와 달리 연애도 취업도 무엇도 포기하지 않고 농업이라는 블루오션에 뛰어든 청년 창업농들을 전화로 만났다. ▽박=농사를 짓는 집안이어서 다른 길은 생각하지 않았어요. 전공은 채소학이고요. ▽정=조직에 얽매이는 게 싫었어요. 전공(과수학)을 살려 경북 상주에서 감나무를 키우고 있습니다. 곶감 5만 개를 말려 얻는 순소득이 3000만∼4000만 원이에요. 올해는 10만 개가 목표입니다. ▽최=입학은 채소학과로 했는데 집에서 하는 사과 농사를 유기농으로 해보기로 마음먹고 4학년 때 과수학을 공부했어요. 연간 순소득은 6000만∼7000만 원, 올해는 우박 때문에 걱정이에요. ―학비가 무료인 데다 영농후계자로 병역특례 혜택도 받았네요. ▽박=덕분에 일을 일찍 시작해 동네 친구들보다 많이 벌어요. ▽정=남 밑에서 일하지 않는다는 게 가장 좋아요. 제 사업이니 제가 사장입니다. ▽최=도시에선 이 사업 해볼까 생각하면 이미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너무나 많죠. 농촌에선 무엇을 생각해도 시작 단계예요. ―그래서 블루오션이군요. 하지만 많은 젊은이가 농촌을 기피합니다. ▽최=젊은 나이에 농촌에서 산다는 건 힘든 일이에요. 저도 애슐리(패밀리 레스토랑) 가고 싶죠. 여긴 치킨도 양념과 프라이드 딱 2종류예요. 월급은 매월 받지만 농사는 한 해의 산물이어서 잘못됐을 때 좌절감이 커요. ▽정=육체적으로 진짜 힘들어요. 셋이서 약속했죠. 아내는 다른 일을 하게 하자고. ▽박=농사는 날씨에 달려 있는데 그건 신의 영역이죠. 공산품과 달리 농산물은 가격이 폭락할 수도 있고요. ―청년농업인 직불금제 등 젊은 농촌을 만들기 위해 여러 지원책이 나오고 있습니다. ▽최=아무리 지원을 해줘도 결국 개인 역량이 중요해요. ▽정=투정하고 싶지 않아요. 스스로 이겨내려 합니다. ―기후변화와 세계 인구의 증가세를 감안하면 농업은 유망 산업이라고 합니다. 인구학자인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딸을 농고에 보내겠다고 했는데요. ▽최=흙에서 작물을 키워내는 일, 이건 인공지능(AI)이 할 수 없죠. 제 사과는 무농약 유기농 저탄소 사과예요. 이걸 사먹는 것만으로도 지구를 살린 셈이 되는 겁니다. ▽박=부모 세대는 전통 농법을 따르지만 저는 대학에서 배운 걸 토대로 새로운 시도를 해요. 제 방식대로 밀고 나가 소비자들이 찾는 농산물을 만들어내는 것, 그게 제 자부심입니다. ―훗날 자녀가 농사를 짓겠다고 한다면…. ▽정=부모님은 제가 농대 가는 걸 달가워하지 않으셨지만 저는 도와줄 겁니다. ▽최=절 보고 자란 자식이 농사를요? 그건 제가 성공한 농부라는 뜻이잖아요!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서울에 가로형 랜드마크가 새로 생겼다. 서울역 고가를 재활용해 지난달 개장한 공중 산책로 ‘서울로 7017’이다. 랜드마크 하면 멀리서도 보이는 아찔한 고층빌딩을 떠올리기 쉽지만 환경과 공유가 화두인 요즘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나지막이 누운 랜드마크가 주목받는 추세다. 서울로 7017은 철거가 아닌 재생, 차로 대신 보행로, 수직이 아닌 수평적이라는 점에서 도시 재개발의 시대정신을 구현한 듯 보인다. 하지만 산책로를 찾는 사람들에게 신기함 이상의 감흥을 줄지는 의문이다. 그건 새 길에 얽힌 스토리가 없기 때문이다.서울로 7017의 모델인 뉴욕의 ‘하이라인’은 완공되기까지의 과정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다. 하이라인은 맨해튼을 관통해 지상 9m 높이에 건설된 화물열차 선로였다. 뉴욕시는 도심의 흉물이 된 선로를 철거하기로 하고 1999년 공청회를 열었는데 뜻밖에도 철거를 위한 공청회에서 보존의 싹이 텄다. 행사에 참석했던 청년 둘이 ‘철거하기엔 아깝다’며 보존 운동을 해보자고 의기투합한 것이다. 그들은 크고 작은 모임을 열어 지지자를 불리고 자금을 모았다. 뉴욕시의 철거 결정을 무효화하는 소송을 내고, 철거보다 공원화가 수익성이 좋다는 연구 결과로 공무원들의 지지를 얻어냈다. 인근에 부동산이 있어 보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다른 곳에 개발권을 보장하는 묘수로 설득했다. 2001년 9·11테러는 하이라인 보존 운동에도 위기였다. 하지만 뉴욕 시민들은 낡은 선로 살리기에 동참하며 정서적인 상실감을 치유했다. 우여곡절 끝에 10년 후인 2009년 6월 하이라인 공원이 기적같이 완성되자 뉴욕 시민 1000여 명이 ‘내가 하이라인을 살렸다’는 배지를 달고 “뉴욕에선 꿈이 이뤄진다”며 기뻐했다. 풀뿌리 시민운동으로 완성된 하이라인과 달리 서울로 7017은 정부가 주도한 하향식 개발 계획이다. 하이라인 살리기는 숙의의 연속이었다.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보존한다면 무엇으로 활용할까. 비용은 어떻게 충당하고 운영은 누가 하나. 하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4년 9월 서울역 고가 공원화를 발표한 후 600억 원짜리 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돼 마무리까지 3년도 걸리지 않았다. 서울로 7017을 설계한 네덜란드의 비니 마스 씨는 국내 언론에 “(박 시장이) 오래 기다릴 수 없다. 실행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누차 당부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스피드에 놀랐다”고 했다. 그는 해외에서는 10년 정도 걸렸을 것이라며 “정해진 시간 안에 만들기 위해 놓친 부분이 꽤 있다”고도 했다. ‘놀라운 스피드’ 탓에 서울시민이 놓친 부분은 외국인 디자이너가 느낀 아쉬움에 비할 바가 아니다. 서울로 7017을 보며 “내가 살렸다”고 자부심을 가질 사람이 몇이나 될까. 들러리가 된 시민들은 “이명박은 청계천, 박원순은 서울로” 하면서 박 시장의 대권 행보를 궁금해할 뿐이다. 재생은 신축보다 어렵다. 이해관계가 더 복잡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민들은 이견을 조율해 합의를 이뤄내는 소중한 배움의 기회도 잃어버린 셈이다. 도시의 경쟁력은 그럴듯한 랜드마크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그것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이 동네 주민들의 생활의 일부가 되고, 랜드마크의 완성이 개개인에게도 성취감을 줄 때 살기 좋고 남 보기에도 매력적인 도시가 된다. 세금이야 얼마가 들건 임기 안에 번듯한 랜드마크 하나 지어 이름 석 자를 남기고 싶어 하는 정치인들에게 하이라인의 주인공들이 남긴 말을 전해주고 싶다. “(공공 프로젝트는) 성공의 공을 많은 사람들에게 넘겨주면 줄수록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된다.”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어느 퍼스트레이디도 이름으로 불린 적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유쾌한 정숙 씨’ ‘친절한 정숙 씨’ ‘소녀감성 정숙 씨’로 불린다. 2012년 여름엔 ‘어쩌면 퍼스트레이디 정숙씨 세상과 바람나다’를 펴냈는데, 출간 기념 콘서트에서 “남편 뒤에 다소곳하게만 있기에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대통령 부인은 청와대에서 선출되거나 임명되지 않은 유일한 존재다. 김 여사는 법적인 한계와 뒤에 서지 않겠다는 소신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한다. 이승만 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를 제외하고 역대 영부인들 가운데 청와대 시절을 기록으로 남긴 이는 두 사람이다. 이순자 여사의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와 ‘이희호 자서전 동행’에는 수습 기간도 없이 줄타기를 해야 하는 김 여사에게 도움이 될 만한 대목이 곳곳에 나온다. ①영부인 활동은 영부인 예산 범위 안에서=이순자 여사는 새세대육영회와 새세대심장재단의 설립이 “대통령 부인이기에 가능했다”며 ‘청와대 시절의 보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두 단체는 훗날 전두환 일가의 부정축재 창구로 비난받았다. 이희호 여사도 “대통령 부인이 단체를 만들어 봉사활동을 하는 데 부정적인 시각이 많더라”고 적었다. 그가 주도했던 ‘사랑의 간식 나누기’ 행사는 아이디어만 좋으면 정부나 기업에 손 벌리지 않아도 됨을 보여준다. 그는 봉지를 뜯지 않은 기내식들이 그대로 버려진다는 사실을 알고 항공사와 관세청, 식약처의 협조를 얻어 이를 전국의 공부방 어린이들에게 간식으로 나눠줬다. ②옷 브랜드를 공개하라=이희호 여사는 1998년 관저에서 넘어져 고관절이 부러진 뒤로는 치맛자락이 밟힐까 봐 두려워 한복을 입지 않았다. 그의 단골 의상실이 ‘라스포사’였다. 1999년 대기업 회장 부인이 장관 부인들에게 라스포사 옷을 사줬다는 ‘옷로비 의혹 사건’은 특검에서 무혐의로 결론이 났지만 이 여사가 이곳 단골임이 알려지면서 국민의 정부는 도덕적으로 치명상을 입었다. 이 여사가 처음부터 라스포사를 애용한다고 공개했더라면 어땠을까. ③개인의 일상도 중요하다=이순자 여사는 둘째 아들 재용 씨가 고3이 되자 남편과 번갈아 가며 공부방을 지켰다. 저녁식사 후 오후 9시까지는 전두환 전 대통령, 그 다음은 이 여사 차례였다. 청와대란 “가족의 일상이 국가의 일상에 노출된 채 일희일비하며 살아야 하는 곳”이다. 사적 일상을 챙기는 대통령은 공적 업무에만 매몰된 이보다 균형감과 친근감을 준다. ④친인척 눈빛을 감시하라=집권 이듬해인 1981년 시댁을 찾은 이순자 여사는 눈빛이 확 달라져 버린 친척들을 보고 무서웠다. 평생 농사만 짓고 살던 순박한 이들에게 고급 차를 탄 사람들이 접근해 “회장으로 모시겠다”며 굽실거렸다. 이후 권력형 비리 사건이 줄줄이 터졌다. 이희호 여사는 42세에 제왕절개로 낳은 막내 홍걸 씨가 ‘최규선 게이트’로, 한 달 후엔 둘째 홍업 씨가 ‘이용호 게이트’로 구속되자 무릎을 꿇었다. “주여, 저의 기도가 부족했습니까? 저희가 교만했나요?” ⑤정상엔 키 작은 나무가 자란다=백담사 시절 설악산 대청봉에 오른 이순자 여사는 놀랐다. 정상의 나무들이 모두 기어가는 듯 누워 있더란다. 그는 “나무건 사람이건 몸을 낮추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곳이 정상이다. 삶의 정상은 겸손한 자만이 머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곳에서 일행을 날려버릴 듯 세찬 바람을 맞고는 이렇게 탄식했다. “산의 정상은 그 누구도 오래 머물게 하지 않았다. 아아, 우리는 청와대라는 권력의 정상에서 내려오는 ‘하산의 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던가.”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3일 ‘블랙아웃’이 시작된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이날부터 투표가 끝날 때까지 6일간 실시된 선거 여론조사 결과는 발표할 수 없다. 그런데 후보들의 지지율 변화를 모르는 깜깜이 선거 국면에 들어가는 건 유권자들만이다. 발표를 못 할 뿐이지 조사는 할 수 있기 때문에 대선 후보들과 조사 기관은 막바지 판세를 훤히 들여다본다. 선거 여론조사 금지 규정의 역사는 자유당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8년 의원 선거법에 선거 결과를 예상하는 인기투표 금지 조항이 들어갔다. 집권 자유당은 지지율이 하향세였고, 야당인 민주당은 인기투표 결과가 정권의 입맛대로 조작될까 봐 두려웠다. 대선의 경우 1987년 대통령선거법에 모의투표 금지 조항이 마련됐다. 1992년 이 규정이 조사 결과 ‘공표 금지’로 바뀌면서 지금과 같은 후보와 유권자 간 정보 불균형이 시작됐다.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이어졌지만 이 조항은 2005년 개정된 공직선거법에도 살아남았다. 공표 금지 시작 시점이 ‘선거일 공고일부터’에서 ‘선거일 전 6일부터’로 단축됐을 뿐이다. 선거 여론조사 결과 공표를 금지하는 이유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1999년 이 규정에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부정확한 여론조사 결과 공표로 선거의 공정성을 해칠 가능성이 있고 △될 사람을 밀어주는 ‘밴드왜건’ 효과, 안 될 사람에게 동정표를 주는 ‘언더도그’ 효과가 나타나 선거 결과를 왜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여론조사를 믿을 수 없고, 여론조사가 제대로 이뤄졌더라도 그 결과가 유권자들을 좌우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여론조사의 신뢰도가 문제라면 신뢰도를 높이면 된다. 엉터리 여론조사를 골라내는 제도적 그물망은 촘촘해졌다. 2014년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신설돼 여론조사를 심사한다. 위원회 홈페이지에 가면 여론조사 심의 결과와 인용하면 안 되는 여론조사들이 다 나온다. 여론조사 결과에 영향을 받는 게 왜 나쁜지는 모르겠지만, 밴드왜건이나 언더도그 효과가 입증된 것도 아니다. ‘나는 아닌데 다른 사람은 여론조사 결과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제3자 효과가 확인됐다는 연구들은 있다. 인터넷 시대에 정보를 막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프랑스에서 1주일간 선거 여론조사 결과 공표를 금지했던 시절 프랑스 여론조사 기관의 자료를 스위스에서 사들여 인터넷에 공개한 적이 있다. 20년 전인 1998년 얘기다. 언론에서 믿을 만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못하는 동안 소셜미디어에서는 조작된 판세 분석 숫자들이 분주히 오고갈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이버선거범죄대응센터는 지난달 25일까지 네이버 밴드와 페이스북 등에 유포된 이번 대선의 불법 여론조사 결과 9327건을 적발했다. 1985년 벨기에 선거 때 그러했듯 다수가 엉터리 숫자들 틈에서 허우적대는 동안 누군가는 과학적인 데이터로 주식시장에서 돈을 벌 것이다. 벌써부터 문재인 테마주, 안철수 테마주가 TV토론 결과에 따라 널뛰고 있다. 미국 영국 일본을 포함한 40여 개국엔 선거 여론조사 결과 공표 제한이 없다(세계여론조사협회 2012년). 프랑스와 벨기에도 제한 규정을 폐지했다. 중앙선관위는 지난해 6월 공표 금지 기간을 선거일 전날부터 투표 마감 시간까지로 단축하는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6일간 유권자만 블랙아웃’ 규정은 그대로다. 유권자들의 올바른 선택을 돕기 위해서? 익명을 요구한 여론조사 전문가가 귀띔했다. “국회의원들이 반대한다. 1등을 제외한 모두가 여론조사 결과 공표를 싫어한다”고.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