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영]위기의 민주주의, 부활하는 레닌주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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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요즘 중국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디지털 레닌주의’가 주목받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계획경제 시대로 회귀하고, 정치적으로는 이념으로 무장한 소수가 독재한다는 전망을 담은 용어다. 마오쩌둥(毛澤東)의 실패 후 집권한 덩샤오핑(鄧小平)이 탈이념적 개혁개방 노선을 천명한 것이 1978년. 그로부터 40년이 지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이념 색채가 짙은 계획경제를 시도했던 마오의 시대로 돌아가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이런 분석의 배경에는 정보기술(IT)이 있다. 그래서 ‘디지털’ 레닌주의다.

빅데이터와 계획경제는 흥미로운 논쟁거리다. 계획경제 하면 생필품을 사려고 길게 늘어선 줄이 떠오른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활동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시대다. 관료 몇 명이 앉아 무엇을 얼마나 생산할지, 값은 어떻게 매길지 결정해도 시장의 비효율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게 계획경제가 부활한다는 쪽 주장이다. 중국 IT 공룡 알리바바의 마윈(馬雲) 회장은 지난해 “빅데이터는 엑스레이 같은 역할을 한다. 시장을 예측하고 계획하는 것이 가능해져 향후 30년간 계획경제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계획경제가 시장경제를 밀어내고 승자가 될지는 미지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달 4일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과 그걸 적절히 활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며 △소비자의 수요 데이터만으로 공급을 결정하는 체계로는 아이폰처럼 소비자가 생각지도 못했던 상품을 만들어내는 혁신이 일어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빅데이터와 정치에 관한 전망이다. ‘디지털 레닌주의’라는 용어를 만든 독일의 중국 전문가 제바스티안 하일만은 중국 정부가 구축하고 있는 ‘사회 신용 시스템’에 주목했다. 소셜미디어의 정치적 게시물, 법규 위반 기록, 세금 체납 여부 같은 데이터를 수집해 사람들을 통제하는 도구로 활용하려는 프로젝트다. 18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상하이의 IT 기업은 공안국과 함께 얼굴 인식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준비 중이다. 완성되면 14억 중국인의 얼굴을 3초 안에 스크린해 모든 정보를 탈탈 털 수 있다. 인터넷 검열은 이미 일상이다.

이런 중국을 빅브러더 사회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온라인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은 페이스북과 구글을 통한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이 사실로 드러나 뒤집어졌다. 옥스퍼드 인터넷 연구소는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지 조사 중이다. 한국의 대선 기간에 터진 가짜 뉴스 논란과 국가정보원의 댓글부대를 통한 여론조작 사건은 또 어떤가. 시바 바이디어나선 미국 버지니아대 교수(언론학)는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세계의 민주주의가 인터넷을 통해 공격받고 있다. 21세기 소셜미디어 정보전쟁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이 첫 사망자가 됐다”고 한탄했다.

10년 전만 해도 IT는 독재국가엔 위협이, 민주화엔 촉진제가 될 줄 알았다. 예상과 달리 IT는 독재국가엔 요긴한 통치 도구가, 민주국가엔 악몽이 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관심사나 정치 성향을 특정해 교묘히 가짜 정보를 흘려 불을 지르는 일은 너무도 쉽고 싸다. 누구를 탓할까. 페이스북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이유는 내가 자발적으로 시시콜콜 일상을 공유하고 입맛에 맞는 콘텐츠를 편식하며 ‘좋아요’를 누른 덕분이다.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저서 ‘호모 데우스’에서 “잘못하면 조지 오웰이 상상한 경찰국가로 돌아갈 것”이라며 “개인은 빅브러더에 의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조용히 붕괴할 것”이라고 했다. 무서운 디지털 민주주의의 역설이다.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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