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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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재영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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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6-01-11~2026-02-10
칼럼100%
  • [횡설수설/김재영]‘특혜 의혹’ 뺀 국토부의 양평고속도 맹탕 감사

    갑작스러운 노선 변경으로 김건희 여사 일가 특혜 논란에 휘말렸던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과 관련해 용역 관리가 부실했다는 국토교통부 자체 감사 결과가 나왔다. 용역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업체에 돈을 지불했고, 자료 일부를 고의로 삭제해 국회에 제출한 사실도 드러났다. 국토부 공무원과 한국도로공사 직원 등 7명에 대해 징계 등의 처분이 내려졌다. 2023년 9월 국회에서 자체 감사를 요구한 지 1년 6개월 만에 나온 결론이지만 뭔가 찜찜하다. 노선을 누가, 왜, 어떤 근거와 절차로 바꿨을까에 대한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서울∼양평 고속도로는 2017년 첫 계획 단계부터 2021년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 조사까지 줄곧 양평군 양서면이 종점이었다. 그러다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22년 3월 29일 노선에 대한 타당성 조사가 시작됐는데, 두 달 뒤 용역업체는 양평군 강상면을 종점으로 하는 대안을 제시했고 국토부가 이를 받아들였다. 강상면 일대에 김 여사 일가가 4만여 m²의 땅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특혜 의혹이 제기됐다. ▷국토부 자체 감사 결과를 보면 용역 감독 부서인 국토부 도로정책과는 용역업체가 편익 산정, 경제적 타당성 분석, 종합평가 등을 하지 않았는데도 “용역 100%가 준공됐다”고 날인한 뒤 대금 18억6000만 원 전액을 지급했다. 과업수행계획서와 월간진도보고서 등의 자료를 기한 안에 제출받아야 하는데도 이를 요구하지 않았다. 1조9000억 원 규모의 국책사업에 대한 관리가 깜깜이 수준이었다는 것인데, 단순히 부주의나 실수로 치부하긴 어렵다. ▷고의로 핵심 자료를 누락한 것도 확인됐다. 국토부는 2023년 7월 국회에 용역업체가 작성한 38쪽짜리 과업수행계획서를 제출했는데, 이 중 ‘종점부 위치 변경 검토’ 내용이 담긴 4쪽 분량을 통째로 들어내고 쪽 번호도 다시 매겼다. 당시 국토부는 ‘실무진 실수’라고 해명했지만, 감사 과정에서 담당자는 “문서에 용역과 무관한 오타가 있어 신뢰성 문제가 생길 것 같아 삭제했다”고 했다. 당시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의혹 해소를 위해 모든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한다”고 했는데, 실무자가 임의로 훼손하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 남는다. ▷사실 이번 감사는 출발부터 결과를 기대하긴 힘들었다. 노선 변경 과정의 위법행위는 처음부터 들여다보지 않았다. 박상우 현 국토부 장관은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특혜와 외압은 없었다. 그 부분에 대해 확실한 신념이 있다”고 했다. “(대안 노선은) 기술자적 양심을 가지고 찾은 것”이라고도 했다. 장관이 이렇게 확신하는데 다른 내부 결론이 나오긴 어렵다. 의혹에 대한 진실은 외부의 시선으로 검증할 수밖에 없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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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트럼프 ‘관세 폭격’의 역설

    미국 증시의 달콤한 허니문이 끝났다. 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거침없이 올랐던 미국 S&P500지수와 나스닥 지수는 4개월 만에 당선 직후 수준으로 돌아갔다. 주식과 가상자산에 끼어 있던 ‘트럼프 버블’이 꺼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전쟁을 선포하고 각국이 보복관세로 맞불을 놓으면서 투자 심리가 급격하게 위축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한동안 글로벌 자금은 미국으로 몰려들었다. 미국 증시, 가상자산, 달러 등이 일제히 치솟았다. 감세와 규제 완화 등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약속한 ‘미국의 번영’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취임 후 1년 동안 S&P500지수가 24% 올랐던 트럼프 1기 때의 경험도 생생했다. 관세전쟁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지만 1기 때처럼 협상 카드로 활용할 것이란 예상이 우세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블러핑이 아니라 진짜였다.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상대국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상처를 주고 있다. 관세 부과에 따른 물가 상승 압력이 거세져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경기 침체) 위험을 키울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부과가 미국 기업과 일자리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정작 미국 기업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미국 자동차 업체 포드의 짐 팔리 최고경영자(CEO)는 “관세는 미국 자동차 산업에 전례 없는 타격을 입힐 것”이라고 했다. ▷미국 관세 공격의 주요 표적인 중국은 정작 태연한 모습이다. 올해 들어 5%가량 하락한 미국 나스닥 지수와 달리 중국판 나스닥으로 불리는 홍콩 항셍테크 지수는 30% 가까이 올랐다. 미국 빅테크에 대한 관심이 주춤해진 대신 인공지능(AI) 딥시크 등을 앞세운 ‘레드 테크 M7’이나 ‘테리픽 10’ 등 중국 기술주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중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촨젠궈(川建國)’ 동지라고 부르며 환호할 정도다. 트럼프(川普·촨푸)가 중국을 때리면서 오히려 제2의 건국을 돕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끊임없이 관세 예고와 수정 조치가 계속되면서 미 증시는 극도의 피로감에 싸여 있다. 투자자들이 가장 기피하는 게 불확실성인데, 관세전쟁이 어디까지 확산될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다.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도 “관세는 전쟁 행위”라며 “시간이 가면 관세는 상품에 매기는 세금이 된다”고 트럼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다. 적을 겨냥하는 사진을 둥근 전봇대에 말아 붙이면 총부리가 내 등을 향한다는 반전광고처럼, 전 세계를 상대로 한 트럼프의 관세전쟁이 오히려 미국 경제를 되치는 부메랑이 되고 있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5-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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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지난주 한 일 5가지 보고해. 답장 안 하면 사직 간주할 것”

    “지난주에 한 일을 5가지로 정리해서 보내라.” 지난 주말 휴식을 취하던 230만 미국 연방정부 직원들은 갑자기 이런 내용의 e메일을 받고 술렁였다. 일부 공무원들은 정부를 사칭한 ‘피싱 메일’로 오해했다. 메일의 발신처는 연방정부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인사관리처, 배후에는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DOGE) 수장 겸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있었다. 머스크는 “답장하지 않으면 사직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했다. ▷메일을 보낸 이유에 대해 머스크는 진짜 근무를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수준의 ‘기본적인 맥박 검사’라고 했다. “공무원 상당수는 일을 너무 안 해서 e메일조차 확인하지 않는다”고 했다. 최소한의 성실성까지 의심받은 직원들은 즉각 반발했다. 연방수사국(FBI), 국가정보국(DNI), 국방부, 국무부 등 기밀을 다루는 부서는 회신을 거부했다. 공무원 노조인 미국공무원연맹(AFGE) 등은 위법한 지시라며 인사관리처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천재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라고 머스크를 추켜세웠다. 더 공격적으로 하라고 주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애니메이션 캐릭터 ‘스펀지밥’을 활용한 풍자 게시물을 올렸다. 캐릭터들에게 지난주에 한 일 5가지를 적어보라 한 것인데 내용은 이렇다. ‘트럼프와 일론 때문에 울었다’ ‘사무실에 간신히 한 번 갔다’ ‘e메일 몇 개 읽었다’…. 많은 공무원들이 사무실에 가서 머스크가 보낸 e메일을 읽은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고 비꼰 것이다. ▷정부 효율화와 예산 절감을 명분으로 추진하는 연방정부 개혁은 트럼프 대통령과 머스크의 합작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때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은 관료들에 대한 불만이 컸고, 머스크는 트위터(현 X)를 인수하며 직원 80%를 잘라냈던 경험이 있다. 400여 개 연방기구를 4분의 1로 줄이고, 연방정부 예산의 약 30%인 2조 달러를 감축하는 게 목표다. 이미 7만5000명의 자진 퇴사를 받아냈고, 근무 기간 1년 미만의 수습 직원 22만 명에 대한 해고 조치에 들어갔다. ▷머스크는 공화당 정치 행사장에서 전기톱을 치켜들고 “관료주의를 썰어버리겠다”고 외쳤다. 이 같은 머스크식 개혁에 대해 공공영역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급진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핵무기 관리·감독 기관 직원들을 해고했다가 뒤늦게 필수 인력인 것을 알고 부랴부랴 취소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공직사회의 비대화와 비효율, 복지부동으로 개혁이 시급한 한국으로선 미국의 단호한 결단이 부럽기도 하다. 남들은 개혁하겠다고 전기톱까지 휘두르는데 우리는 여태 커터칼 한번 제대로 쥐어본 적이 없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5-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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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트럼플레이션이 부른 美 ‘둠 스펜딩’ 바람

    한때 ‘인생은 한 번뿐’이라며 ‘욜로(YOLO)’와 플렉스(Flex·과시형 소비)를 외치던 유행은 한풀 꺾였다. 경기 불황과 소비 침체가 길어지면서 ‘필요한 것은 하나뿐’이라며 실용적 소비를 중시하는 ‘요노(YONO)’가 새롭게 떠올랐다. ‘무지출 챌린지’ 등 극단적인 절약도 유행한다. 하지만 미국은 딴 세상이다. 생필품과 고가의 가전제품, 자동차를 구매하려는 행렬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미국 소비자들의 ‘탕진 소비’는 즐거움이라기보다 공포에 가깝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터트리고 있는 ‘관세 폭탄’으로 물가가 크게 오를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다. 미 신용카드 정보공유업체 크레디트카드닷컴이 미국 거주자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응답자의 22%는 평소보다 더 많은 물품을 구매하고 있다고 했다. 아직은 아니지만 조만간 사재기하겠다는 답변도 20%였다. 소비를 위해 빚을 늘리고 있다는 사람도 많았다. 이 같은 사재기에 대해 ‘파멸적 소비(Doom Spending)’라는 우려의 표현이 나오고 있다. ▷‘파멸적 소비’는 경제 불안, 지정학적 긴장, 미래에 대한 비관 등으로 충동적이거나 무분별하게 소비하는 현상을 말한다. 현재 미 국민들의 불안감은 전시의 공황 상태에 가깝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 월마트 등 대형 소매업체에서 화장지 등 생활필수품의 재고가 급격히 줄었다. ‘관세 폭탄’이 단순한 엄포가 아닌 현실임이 확인되면서 사재기 품목은 진공청소기 TV 오디오 등의 가전제품과 자동차 등으로 확대됐다. ▷미국인들의 사재기 열풍은 멕시코산 아보카도와 방울토마토, 유럽산 와인, 중국산 의류와 장난감 등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관세 때문에 미국인들의 올해 가구당 지출이 평균 830달러(약 120만 원)가량 늘어날 것이란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류 인플루엔자(H5N1) 확산으로 달걀값까지 폭등하면서 소비자들의 주름살이 더 깊어졌다. 달걀 절도가 성행하고, 차라리 닭을 키우겠다는 사람들이 늘며 암탉과 닭장을 빌려주는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던 미국의 초라한 모습이다. ▷패닉에 빠진 사재기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관세가 현실화하기 전에 원자재를 확보하려는 기업 수요 때문에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다. 금값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찍으면서 골드바는 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다.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불안 심리로 소비를 늘리면 실제로 물가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른바 ‘자기충족적 예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소비자 개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파멸과 종말의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5-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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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백악관 “현대제철을 보라”… 관세 홍보에 거론된 韓 기업들

    “관세의 효과가 뭐냐고? 한국의 현대제철을 보라.” 미국 백악관이 ‘철강·알루미늄 25% 관세 부과’의 당위성을 설명하며 현대제철을 예로 들었다. 11일 백악관은 보도 참고자료에서 “도널드 트럼프 1기 때 철강·알루미늄 관세로 미국 전역에서 투자 붐이 일어났다”며 “최근엔 현대제철이 미국에 제철소 건설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발표가 있었다”고 했다. 백악관은 2일에도 설명자료를 내고 현대차, 현대제철, 삼성전자, LG전자 등의 미국 투자 사례를 언급했다. ▷백악관이 한국 기업들을 홍보에 동원한 것은 관세가 미국 경제와 소비자들에게 타격을 줄 것이란 비판에 반박하기 위해서다. “관세가 미국 내 생산을 늘리고 더 많은 일자리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압박작전이기도 하다. 2017년 2월 트럼프 대통령은 ‘삼성이 미국에 가전공장을 세울 것’이라는 미국 현지 보도가 나오자 즉각 트위터에 “생큐 삼성”이라고 올렸다. 투자가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결국 4개월 뒤 삼성전자는 공장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철강 관세 폭풍에 국내 철강업계는 비상이 걸린 상태다. 가뜩이나 건설 경기 침체와 중국산 철강재의 저가 공세로 실적이 부진한 때여서 충격이 더 크다. 지금까진 한국산 철강 제품이 미국산보다 20%가량 저렴했는데, 관세가 부과되면 오히려 더 비싸져 가격경쟁력을 잃게 된다. 철강사들은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 현지 투자를 고민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10조 원가량을 투자해 미국 남부에 자동차용 강판을 생산하는 제철소를 지을 예정이다. 포스코 역시 현지 합작 법인 설립, 제철소 인수 등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무관세 효과만 노리고 미국 내에 제철소를 세우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실적이 좋지 않은 상황에 수조 원의 막대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것부터 부담이다. 기업들이 국내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하면 국내 생산이 감소해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무시할 수 없다. 기껏 현지 생산을 늘려도 US스틸이 미국 정부의 지원과 일본의 투자에 힘입어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을 확대하면 미국에서 한국산 철강의 입지는 더 좁아진다. ▷관세 폭풍이 거세지만 한국은 이미 슬기롭게 극복해 본 경험이 있다. 트럼프 1기 당시 기민한 외교전을 통해 철강 수입 쿼터제를 수용하는 대신 무관세 혜택을 얻는 데 성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때 한국산 세탁기에 고율 관세를 부과한 것을 성공 사례로 들고 있지만, 사실 최후의 승자는 현지 생산을 늘리고 품질로 미국 소비자를 사로잡은 한국 가전이었다. 이번 미국의 공세에도 움츠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여전히 틈새는 있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5-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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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텔레그램 첫 수사 협조… 숨을 곳은 없다

    “절대 잡히지 않는다.” 최근 경찰에 검거된 사이버 성폭력 범죄집단, 자칭 ‘자경단’의 총책은 평소 조직원들에게 이렇게 장담했다고 한다. 경찰을 상대로는 “수사하러 헛고생하지 말고 푹 쉬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2020년부터 5년 가까이 가스라이팅, 강간치상 등으로 234명의 피해자를 성착취해 온 대담한 범죄자들의 믿을 구석은 바로 온라인 메신저 텔레그램이었다. 국내 수사기관에 비협조적인 해외 메신저를 이용하면 수사망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경찰이 23일 공개한 ‘자경단 사건’은 텔레그램이 국내 수사기관에 관련 자료를 넘겨 수사가 이뤄진 첫 사례다. 2023년 12월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텔레그램 측을 지속적으로 설득한 끝에 지난해 9월 사건과 관련된 데이터를 제공받았고 10월부터 공식적인 수사 협조 체제를 구축했다. 그동안 텔레그램은 각국 정부의 범죄 수사 협조 요청에 대해 사생활 보호를 들어 외면해 왔지만,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8월 프랑스에서 체포된 이후 방침을 바꿨다. 정부는 앞으로 마약 유통망 적발을 위해서도 텔레그램 측과 공조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텔레그램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건 2014년부터다. 당시 카카오톡 압수수색 논란 등으로 사이버 검열 우려가 커지자 많은 사람들이 텔레그램으로 ‘메신저 망명’에 나섰다. 해외에서 서버를 운영하고 있고 보안성이 우수하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시작은 자유를 위한 탈출이었는지 모르지만, 시간이 갈수록 텔레그램은 마약 성범죄 테러 사기 등 각종 범죄가 모의, 거래되는 어둠의 통로가 됐다. 텔레그램을 악용한 2020년 ‘n번방’ 사건은 사회적 공분을 자아냈다. ▷대화가 밖으로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정치인들도 텔레그램을 즐겨 이용한다. 국회에서 의원들이 텔레그램 앱을 사용하는 모습이 종종 카메라에 잡힌다. 2022년 윤석열 대통령과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텔레그램 대화에서 포착된 ‘체리따봉’ 이모티콘이 유명하다.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직후에는 용산 대통령실 참모들의 ‘텔레그램 갈아엎기’가 러시를 이뤘다. 텔레그램을 탈퇴했다가 재가입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도 텔레그램 계정을 지웠다. ▷텔레그램 대화 내용을 지우고, 계정을 탈퇴한다고 해도 흔적이 고스란히 남는다. 당초 텔레그램 측은 수사 협조 요청을 거부하며 ‘대화가 남아 있지 않고 철저히 암호화돼 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이유를 댔지만, 정보 제공이 일부 가능하다고 입장을 바꿨다. 텔레그램의 보안정책이 언제 또 바뀔지는 아무도 모른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영원한 은신처란 결코 있을 수 없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5-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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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영끌’의 눈물… ‘이자 역습’에 줄줄이 경매

    2018년 처음 등장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은 저금리와 집값 급등이 함께하던 시절 보편적인 투자기법이 됐다. ‘서울 집값은 오늘이 가장 싸다’고 했고, ‘대출은 빚이 아니라 투자’라 했다. 주택담보대출은 물론이고 신용대출, 회사 대출, 퇴직연금 등 노후자금까지 있는 대로 탈탈 털어 집 사는 데 쓸어 넣었다. 대출 상환 걱정은 없었다. 처음엔 이자만 내다가 집값 오르면 팔면 그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경기 침체와 고금리가 닥치면서 빚의 역습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법원에 따르면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린 채무자가 원금이나 이자를 3개월 이상 갚지 못해 임의경매로 넘어간 부동산(건물·토지·집합건물)이 지난해 13만9874건에 달했다. 2023년보다는 30%가량 늘었고, 2022년과 비교하면 배 이상이 됐다. 집값 하락으로 ‘하우스푸어’가 사회적 문제가 됐던 2013년 이후 11년 만에 가장 많다. 최근엔 압구정동, 대치동 등 서울 강남권에서도 빚을 갚지 못해 경매로 넘어가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임의경매가 늘어난 것은 2020년 이후 뜨거웠던 ‘영끌’ 열풍의 후폭풍이다. 집을 산 후 한동안 저금리가 계속되고 집값이 올랐지만 2022년부터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제로금리의 시대가 끝나 전 세계가 기준금리를 끌어올리기 시작했고 국내 대출금리도 함께 올랐다. 고삐 풀린 듯 오르기만 하던 집값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대출금 부담이 커져 손절하려고 해도 거래가 위축되면서 팔기도 쉽지 않았고, 결국 경매로 넘어간 경우가 많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영끌족들 중에선 조금만 더 버텨보자는 분위기가 강했다. 집값은 다시 오르기 시작했고 조만간 미국에서 큰 폭의 금리인하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대출 규제, 경기 침체에 탄핵 정국까지 겹치며 주택 시장이 다시 얼어붙었다.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높아지며 금리가 내려가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된 것도 악재다. 이런 상황에서 2020년부터 5년간 낮은 수준의 고정금리를 적용받다가 올해부터 고금리의 변동금리로 전환되는 사람들이 많아 이자 부담이 더 커지게 됐다. ▷영끌 대출의 문제는 빚에 허덕이는 매수자들의 한숨에 그치지 않는다. 대출금 상환 부담에 이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소비와 내수 침체가 더 깊어질 수 있고 금융권 부실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영끌족들은 파국에 이르기 전에 적극적으로 부채 조정에 나서야 한다. 내 집 마련을 고민하는 사람들도 영끌족들의 눈물을 반면교사 삼아 무리한 대출을 삼가야 한다. 우리 사회가 빚의 무서움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5-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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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美도 홀린 K뷰티… 프랑스 제치고 美 수입시장 첫 1위

    올해 5월 미국의 유명 흑인 뷰티 크리에이터는 유튜브 영상에서 한국의 쿠션 파운데이션을 바르면서 “내 피부톤에 딱 맞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 유튜버가 한국 파운데이션 색상이 너무 밝아 아쉽다고 하자 한국 화장품 회사에서 어두운 톤을 개발해 선물한 것이다. 흑인 피부에 딱 맞는 파운데이션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순식간에 화제가 됐다. 한국 제품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아마존 뷰티 카테고리에서 판매량 1위에 올랐다. ▷K뷰티의 강렬한 향기가 미국 시장도 홀리고 있다. 한국 화장품은 미국에서 지난해 1∼10월 2조 원어치 팔렸는데, 수입 화장품 시장 점유율 22%로 사상 처음 1위에 올랐다. 그동안 북미 수입 뷰티 시장을 양분하던 프랑스와 캐나다를 상당한 격차로 제쳤다. 미국 소비자들로부터 가성비가 좋다는 호평을 받으며 판매량이 급성장했다. 실제 최근 아마존에서 팔리는 뷰티 제품의 상위 목록에는 한국 제품이 대거 포진해 있다. ▷K뷰티는 2010년대 대기업을 중심으로 중국 시장에서 1차 전성기를 맞았다. 최근의 K뷰티 2차 전성기는 미국, 일본은 물론이고 전 세계 다양한 국가에서 중소·인디 브랜드가 주도하는 게 특징이다. 수출 제품 10개 중 7개가 중소·인디 브랜드 제품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온라인 채널이 확대되면서 중소기업이 해외를 직접 공략하기에 유리한 조건이 조성됐다. 영화 드라마 음악 등 K컬처 덕분에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 ▷자본력이 약한 인디 브랜드가 미국 등 세계 시장을 휘저을 수 있었던 데는 ‘한국의 TSMC’로 불리는 한국콜마와 코스맥스 등 제조자개발생산(ODM) 기업의 존재가 결정적이었다. 자체 생산시설이 없어도 좋은 기획 아이디어만 있으면 ODM 업체를 통해 빠르게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다. 반도체로 치면 인디 브랜드가 반도체 설계(팹리스), ODM 업체가 위탁생산(파운드리)을 맡은 셈이다. 이렇게 출시된 다양한 제품은 올리브영 등 플랫폼을 통해 팔려 나갔다. 기획, 생산, 유통의 한국식 ‘화장품 생태계’가 제대로 구축된 것이다. ▷고객의 취향과 수요에 즉각 대응하는 ‘빨리빨리’도 K뷰티만의 경쟁력이다. 한 국내 화장품 브랜드는 동양인 피부톤에 맞는 5가지 색상의 쿠션을 생산하다가 다양한 인종의 미국 시장을 노리고 색상을 30가지로 늘렸다. 한국 회사들은 에어쿠션, 마스크팩, 스틱 파운데이션, 뷰티 기기 등 새로운 제품도 끊임없이 선보였다. 다만 인디 브랜드가 급증하면서 단기 기획과 마케팅에만 치우치고 있다는 점은 걱정이다. 고품질 화장품을 위한 원천 기술 확보 등 꾸준한 연구개발도 함께 이뤄져야 장기 수출 효자품목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5-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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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재영]정치가 거덜 낸 경제… 이제 기댈 곳은 기업뿐

    대규모 조직과 회사도 단 ‘한 명’ 때문에 순식간에 망가질 수 있다. 233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영국 베어링스 은행이 그랬다. 손실을 은폐하며 무모하게 거래하던 직원 ‘한 명’ 때문에 1995년 파산했다. ‘팻핑거’ 같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거짓을 거짓으로 덮다가 일을 키웠다. 하물며 그 ‘한 명’이 한 나라의 리더라면….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하던 윤석열 대통령의 거듭된 오판과 욕심으로 휘청이고 있다. 비상계엄의 무모한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뒤에도 안개는 좀처럼 걷히지 않는다. 경제사령탑이 대통령, 국무총리 직무에 더해 재난 총괄까지 맡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데, 초인이 아닌 이상 경제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드라마 ‘지정생존자’처럼 대행의 대행의 순서가 어디까지 밀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당분간은 정치에 뭔가를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새해 첫날이지만 기대와 희망보다 불안과 좌절이 짓누른다.정치 실종에 자력구제 나선 기업들 새해 사업 계획을 준비하는 기업들은 ‘시계 제로’ 상태다. 보호주의가 득세하고 첨단산업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상황에서 홀로 광야에 내던져진 꼴이다.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경제 외교와 산업 정책이 중요한 시점에 무정부 상태가 돼 버렸다. “가장 필요할 때 우리를 대변할 정부가 없다. 우리는 인질로 잡혀 있다”고 외신에 호소한 한 대기업 관계자의 말은 처절하게 들린다. 경제가 어렵다는 말이 하루 이틀이 아니어서 식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지금이야말로 진짜 위기다. 천장을 뚫고 올라선 원-달러 환율은 1500원을 넘보고 있다. 지난해 주식시장은 남들이 20, 30%씩 오를 때 홀로 10% 가까이 뒷걸음질쳤다. 소비심리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악이고, 기업경기는 부정적 전망이 역대 최장인 34개월 연속 이어지고 있다. 8년 전 탄핵 때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이란 비빌 언덕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10대 주력산업 모두 하나같이 위태롭다. 정치 불안으로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한 프랑스가 남의 일이 아니다. 정부와 정치에 기댈 수 없는 기업들은 ‘경제 외교관’을 자임하며 한국 경제를 지키려 자력구제에 나서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한국무역협회 등 경제단체들은 세계 각국에서 서한을 보내 “한국 경제는 건재하며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맨 처음 만난 것도 한국 정부 인사가 아닌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었다. 그는 트럼프 당선인 앞에서 “한국은 저력 있는 나라이니 믿고 기다려 달라”고 했다.다시 한 번 ‘기업가 정신’ 불 지필 때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서 안정에 방점을 두면서도 미래 성장을 위한 준비도 단단히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로봇 전문기업을 자회사로 편입하고 미래로봇추진단을 신설하며 로봇 경쟁에 참전을 선언했다. 현대차그룹은 처음으로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를 선임하는 등 트럼프 2기 대응을 위한 진용을 새로 꾸렸다. 4대 그룹은 지난해 불확실한 경영 환경 속에서도 영업이익을 웃도는 규모로 인공지능(AI)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에 선제적으로 투자했다. 비주력사업을 매각해 자금을 확보하고, 미래성장동력을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고 있다. 조선, 에너지, 원전, 방산 등의 산업에서 새로운 기회를 엿보고 있다. 과거 외환위기, 금융위기, 코로나19 등 미증유의 국난을 이겨 온 데는 수출을 앞세워 세계 시장을 열어 온 기업들의 역할이 컸다. 절망과 폐허에서 희망의 싹을 틔울 수 있었던 건 도전과 혁신의 기업가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단체장들이 올해 신년사에서 하나같이 기업가 정신을 재점화하겠다고 각오를 다진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아직은 깜깜해 보이지만 기업이 앞장서 끌고 국민이 함께 밀면 지금의 위기도 보란 듯이 극복할 수 있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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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비상계엄이 소환한 야간 통행금지의 기억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비상계엄 포고령 초안을 자신이 작성했다고 26일 변호인단을 통해 주장했다. 그러면서 당초 포고령 초안엔 국민 통행금지 조항이 있었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이를 삭제했다고 했다. 국민 생활의 불편과 경제 활동 등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국회에 경종을 울린다’는 목적의 ‘경고성 계엄’임을 강조해 윤 대통령을 비호하려는 의도겠지만, 위헌·위법적인 포고령을 대통령이 직접 검토, 수정했다는 사실만 확인됐을 뿐이다. ▷비상계엄 선포 당시 뉴스 화면 아래 ‘오후 11시 이후 통행 시 불심검문·체포’라는 자막을 합성한 사진이 온라인에서 확산했다. 계엄을 경험한 장년층들은 웃어넘길 수 없었다. 야간 통금 강화는 시위 금지, 대학 휴교 등과 함께 과거 계엄 포고령의 단골 조항이었기 때문이다. 예전 문건을 베껴 쓴 티가 나는 이번 포고령에도 통금이 포함될 가능성은 높아 보였다. 윤 대통령이 통금 조항을 뺐다면 국민을 배려한 게 아니라 국민의 분노를 두려워했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 말에 폐지됐다가 일제강점기에 부활한 야간 통행 금지는 광복 이후엔 1945년 9월 미 군정 포고령 1호로 시작돼 6·25전쟁과 군사정권 등을 거치면서 계속됐다. 적용 시간과 지역에 변화는 있었지만 대체로 자정에서 오전 4시였다. 오후 10시가 되면 라디오에선 귀가 종용 방송이 나왔고, 자정이면 사이렌 소리와 방범대원들의 호각소리가 거리에 요란했다. 야간 통금은 1982년 1월 5일 36년 4개월 만에야 해제됐는데, 서울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국가 이미지를 의식한 조치였다. ▷통금 시간이 다가오면 막차 버스를 타기 위해 마음이 급해졌다. 택시를 잡는 사람들은 ‘따블’과 ‘따따블’도 불사했다. 통금에 걸리면 파출소로 끌려가는 곤욕을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즉결심판을 받고 벌금을 낸 후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집에 가지 못해 숙직실에서 잠을 청한 직장인, 단속을 피해 손을 잡고 달린 연인, 술집 문을 걸어 잠그고 밤새 술잔을 기울인 술꾼 등 장년층 이상에겐 그 시절 추억 하나쯤은 있으리라. 크리스마스 이브 등에 잠깐 통금이 해제되면 거리마다 젊은이들이 쏟아져 나와 밤을 즐기기도 했다. ▷야간 통금 해제가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은 컸다. 온전히 ‘24시간 시대’가 열리면서 편의점 등 24시간 문을 여는 가게도 생겼다. 서비스 부문의 고용이 늘어나고 소비심리가 살아나는 등 경제효과도 적잖았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온전한 이동의 자유를 되찾은 것이 가장 큰 효과였다. 40여 년 만에 국민의 밤 시간과 자유를 다시 빼앗겠다는 발상을 했던 계엄 세력은 얼마나 후진적인가. 해외의 시선을 의식해 통금을 해제한 군사정권보다도 퇴행적으로 보인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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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무능한 명령… 실제 전투였다면 다 죽었을 것”

    테러범이 장악한 버스 앞을 무장차량이 가로막았다. 대원들은 해머로 유리창을 깨고 경사로를 만든 뒤 순식간에 버스 안으로 뛰어들어 테러범을 체포했다. 불과 30초. 대원들의 눈엔 망설임이 없었다. 6월 공개된 대테러 작전 훈련에서 육군특수전사령부 707특수임무단은 ‘특전사 중의 특전사’로 불릴 만큼 믿음직했다. 하지만 3일 밤 TV 속에선 정반대였다. 뭘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9일 김현태 707특임단장은 기자회견을 갖고 “전투에서 이런 무능한 명령을 내렸다면 전원 사망했을 것”이라면서 “부대원들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이용당한 피해자”라며 울먹였다. 김 단장은 비상계엄 선포 직후인 3일 오후 10시 30분경 특전사령관으로부터 국회 본청과 국회의원 회관을 봉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했다. 국회 구조를 몰라 ‘건물 출입문만 잠그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내비게이션 앱인 티맵으로 국회 본청 건물과 헬기가 착륙할 운동장 위치를 확인한 게 작전 준비의 전부였다. ▷오후 11시 50분경 헬기에서 내려다보니 상황은 전혀 달랐다. 국회의사당은 너무 커서 소수 인원으론 통제가 불가능했다. 후문으로 갔더니 자동 유리문이어서 잠금이 어려웠다. 정문으로 가니 이미 기자들과 국회 관계자들이 몰려 있었다. 그제야 창문을 깨고 들어가 안쪽에서 문을 잠그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아무런 준비도 계획도 없던, 무엇을 위해 하는지조차 모르는 작전. 부대원들은 “우리가 여기서 지금 뭐하는 짓이지”라고 웅성거렸다. ▷무능하고 사악한 지휘관은 적보다 무섭다. 건국 이후 평시 작전 중 가장 많은 군인이 희생된 것은 1982년 2월 제주도에서였다. 707특임대대 47명, 그리고 공군 장병 6명을 태운 C-123 수송기가 한라산 계곡에 추락해 전원 사망했다. 현장에선 기상 악화로 이륙하기 어렵다고 보고했지만 위에선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지시만 반복했다. 군은 ‘대침투작전 중 순직’이라고 발표했지만 사실은 달랐다. 제주공항 활주로 준공식을 위해 제주도를 찾을 예정이던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경호가 목적이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은 707특임단이 국회를 봉쇄해 계엄 해제 요구안의 가결을 막고, 방첩사령부와 특수정보부대(HID)가 주요 인사를 체포·구금하는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간단한 작전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의 작전은 게임이 아니었다. ‘제복 입은 시민’인 장병들은 그들의 장기말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무능한 지휘관들의 작전은 실패했지만 최정예부대의 명예와 자존심은 짓밟혔다. 졸지에 계엄군이 됐던 장병들의 상처는 누가 치유해줄 수 있을까.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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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트럼프는 왕이 아니다”

    백악관과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행보는 거침없었다. 취임 첫날부터 강하게 밀어붙이려는 듯 역대 정부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로 ‘충성파’ 인사들을 주요 요직에 지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법무장관으로 지명했던 맷 게이츠 전 연방 하원의원이 자진 사퇴하면서 처음으로 제동이 걸렸다. 견제는 진영 내부에서 나왔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는 왕이 아니다”라고 논평했다. ▷게이츠 전 의원은 법무장관 지명 전부터 미성년자 성매수 등 각종 의혹에 휩싸였지만 트럼프 당선인의 신뢰는 굳건했다. 하지만 각료 인준 권한을 가진 상원에서 부정적 분위기가 퍼졌다. 트럼프 당선인이 상원의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지지를 당부했지만 인준에 필요한 표를 확보하지 못했고, 결국 게이츠 전 의원에게 자진사퇴를 종용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위세 등등한 당선인 신분임에도 상원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미국에선 대통령이 장차관, 연방판사, 대사, 군 장성 등 1200여 고위 공직자를 임명할 땐 상원에서 과반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공화당은 상원 100석 가운데 53석을 확보했지만, 단 4표만 이탈해도 과반이 깨진다. 뉴욕타임스는 최소 4명의 의원이 게이츠 전 의원의 인선에 반대했다고 전했다. 여성인 리사 머카우스키, 수전 콜린스 의원은 트럼프 1기 때 대통령 탄핵소추에도 찬성표를 던졌다. 공화당의 전통 노선을 상징하는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와 기후위기 회의론과 싸워 온 존 커티스 당선인도 부정적이었다. ‘보편관세’에 공개적으로 반대해 온 존 슌 의원이 차기 상원 원내대표로 당선된 것도 의미심장하다. 외교, 무역 등 사안에 따라 상원이 트럼프 2기 행정부를 막아설 가능성이 있다.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이던 트럼프 1기 때도 상원은 수차례 대통령의 독주를 제지했다. 임기 초인 2017년 ‘오바마 케어 폐지’ 법안이 공화당 의원 6명의 반대로 무산됐다. 2019년 3월엔 예멘 내전에서 미군의 개입을 중단하는 결의안과 국경 장벽 건설을 위한 비상사태 선포를 무력화하는 내용의 결의안이 연이어 상원에서 가결됐다. 공화당 상원의원들의 ‘반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미국 상원(Senate)의 명칭은 고대 로마 공화정에서 집정관을 견제한 원로원(元老院·Senatus)에서 따왔다. 임기가 6년으로 긴 상원의원들은 소속 정당의 방침이나 여론의 눈치를 덜 보고 ‘국가 지도자(statesman)’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노련한 참모들인 ‘어른들의 축’이 과도한 트럼피즘을 견제했던 트럼프 1기와 달리 젊은 충성파들로만 채워진 트럼프 2기에서, 상원이 미국 민주주의를 지킬 어른의 역할을 해낼지 주목된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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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공직사회 벌써 복지부동 만연

    최근 공직 사회는 상시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용산’과 가까운 곳일수록 더욱 그렇다. 에이스 공무원들의 승진 코스였던 대통령실이나 국회 파견은 손을 드는 사람이 없다. 되레 몸이 아프다는 등 갖은 핑계를 대며 손사래를 친다. 자칫 ‘순장조’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이른바 ‘대왕고래 프로젝트’(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 사업)를 추진할 산업통상자원부 태스크포스(TF)도 지원자가 없어 애를 먹고 있다. 시추해도 성과가 없을 경우 정권이 바뀌면 곤경에 처할 수 있어서다. ▷정부·여당 지지율이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공직 사회에서는 복지부동, 보신주의가 팽배해 있다. 이제 겨우 임기 반환점을 돌았건만 분위기는 벌써 임기 말이다. 4대 개혁 등 정부의 핵심 정책에 전혀 힘이 실리지 않는다. 용산에서 업무 지시가 내려오면 공무원들은 절차상 문제가 없는지부터 따진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정책 담당자들이 감사, 수사로 탈탈 털리는 것을 본 학습효과다. 책임 면피를 위한 대비는 일상화됐다. 윗사람 지시를 녹음하고, 보고서는 누구 지시로 수정했는지 표시해 둔다. ▷‘어차피 뭘 해도 안 된다’는 자괴감도 크다. 공무원은 법률로 일하는데, 아무리 정책을 열심히 만들어도 여소야대 국회에서 통과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정책을 내놓으라고만 할 뿐 정치적 실타래를 풀어 정책의 추진동력을 높일 노력은 제대로 하지 않는다. 야당은 정부의 발목을 잡고, 정부는 거부권으로 응수하는 멱살잡기 식 국정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니 일을 안 해도 티가 나지 않는다.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엇박자, 부실 논란에 휩싸인 것도 공직사회의 힘을 빼고 있다. 연구개발(R&D) 투자 축소 논란 등에서 보듯 대통령이 불쑥 언급하면서 설익은 정책을 내놨다가 여론이 안 좋으면 180도 뒤집는 일이 반복됐다. ‘가계부채 관리’와 ‘서민 지원 확대’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라는 모순된 지시 속에 주택 대출 정책은 오락가락했다. 정부의 정책 철학과 방향성이 모호하니 부처 간 긴밀한 업무 협조는 사라지고 각자도생의 이기주의가 확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은 구조개혁이 지지부진하다며 연말까지 성과를 내라고 닦달하고 있다. 갑자기 임기 후반부의 우선 국정목표로 ‘양극화 해소’를 제시한 뒤 정책을 가져오라고 다그친다. 하지만 몰아붙이기만 한다고 해서 좋은 정책이 나오고 느슨한 공직 기강이 잡히는 건 아니다. 적당히 하는 시늉만 하다가 일이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대통령부터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 국민 신뢰를 회복하고 정치를 복원하지 못한다면 바짝 엎드린 공무원들을 일으켜 세우긴 쉽지 않을 것같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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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가 만난 사람]“‘낙하산 인사’ 왜 문제냐고요? 연 수조 원이 사라집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정부와 공공부문 인사와 관련해 어김없이 신조어가 등장한다. 연예인 이름을 활용한 작명이 많았다. 이명박 정부에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이 있었다면, 박근혜 정부 땐 ‘성시경’(성균관대·고시·경기고)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에선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로 변주되더니, 윤석열 정부에선 다시 ‘박보검’(이명박계·보수·검찰)이 소환됐다. 매 정부마다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늘 반복되는 낙하산 인사, 코드 인사의 별칭이다.2008년 서울대에 교환 학생으로 와 있던 24세의 독일 대학생 다비드 쇤헤어에겐 이런 현상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명박(MB) 정부 출범 직후여서 ‘고소영’ ‘S라인’(서울시 라인) 같은 신조어가 오르내렸는데, 인사의 키워드가 이렇게 회자되는 것을 독일에선 보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독일에선 한국의 대통령처럼 특정인이 폭넓게 인사권을 행사하지도 않았기에 인사가 큰 이슈가 되지도 않았다고 했다.이후 영국에서 재무금융학 박사 과정을 밟던 쇤헤어는 논문 주제를 고민하다가 한국에서 접했던 기묘한 키워드를 다시 떠올렸다. 한국의 ‘낙하산 인사(parachute appointments)’에 대해 실증적으로 분석해 보기로 했다. 이 논문이 주목받으면서 그는 2016년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됐다. 지난해 9월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다시 한국에 들어온 그를 13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본사에서 만났다.》● “공기업 낙하산, 연간 GDP 0.41% 손실” 쇤헤어 교수의 박사 논문 제목은 ‘정치적 인맥과 배분 왜곡’이다. 그는 “MB 정부의 낙하산 인사들이 연줄로 얽힌 기업들의 업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체계적으로 연구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고려대와 현대건설을 키워드로 공기업 인사의 영향을 추적했다. MB 취임 이후 42개 대표 공기업에서 고려대 또는 현대건설 출신 사장이 3명에서 12명으로 급증했다. 낙하산 인사의 영향은 정치적 연줄과 학맥을 기반으로 공기업 하위직으로, 민간기업으로 낙수효과처럼 번졌다. 쇤헤어 교수는 “‘MB 네트워크’에 힘입어 공기업을 장악한 사장과 임원들이 같은 네트워크에 있는 민간기업에 조달 계약을 더 많이 할당하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했다. 이 같은 현상은 민간 은행에서도 확인됐다. ‘민간 부문으로 확장된 정치적 보은과 정실인사’라는 논문에서 쇤헤어 교수는 은행을 장악한 MB 인맥이 같은 네트워크에 있는 기업들의 여신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분석했다. 그는 “MB 당선 이후 민간 은행들도 고려대 출신의 최고경영자(CEO)와 임원을 대거 선임했고, 고려대 출신 임원들이 있는 기업에 더 많은 대출을 해주기 시작했다”고 했다. 쇤헤어 교수의 관심은 낙하산 인사 자체는 아니었다. 그는 “사람들이 일상 경험을 통해 인지하고 있는 낙하산 인사의 폐해가 얼마나 강력하고 널리 퍼져 있는지, 어떤 사회적 비효율을 가져오는지 확인하는 게 연구의 목적”이라고 했다. 쇤헤어 교수는 “MB 네트워크의 공기업이 같은 네트워크의 기업에 할당한 계약의 결과를 분석해 보니 비용 증가, 공사 부실, 공기 지연 같은 부작용이 더 많이 발생했음을 확인했다”며 “이에 따른 국가적 손실은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0.41%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했다. MB 네트워크와 같은 연줄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고 가정하면 경제적 손실은 연간 GDP의 1.08%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분석 기간인 2008∼2011년 전체를 따지면 60조 원에 이르는 엄청난 손실이다. 은행에서도 같은 네트워크의 임원이 있는 회사에 대출을 해준 경우 일반적인 대출 회수율보다 2.84%포인트 낮았다. 낙하산 인사가 은행에 손실을 끼치고 금융 부실을 키운 것이다. 쇤헤어 교수는 “연구의 목적은 특정 정부나 인물, 네트워크를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었다”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실 상당히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했다. 한국에서도 정부가 바뀔 때마다 공공기관 주요 요직에 자기 사람을 꽂아 넣었고, 민간에서도 정치적 연줄을 기대한 코드 맞추기 인사가 이어졌다. 그는 “이 같은 정치적, 사회적 인맥은 비즈니스 거래를 왜곡해 경제적 자원 배분에서 거대한 왜곡을 발생시키고, 결과적으로 경제 성장과 사회 복지를 저해할 수 있다”며 “전문성 없는 정치적 인사가 횡행하면 사회 전체적으로도 능력과 실적에 기반한 인센티브 체계가 붕괴될 것”이라고 했다. 낙하산 인사의 문제를 해소할 해법은 뭘까. 쇤헤어 교수는 “낙하산 인사는 지지에 대한 보상과 향후 정치 과정에서의 동맹을 확보하기 위해 발생한다”며 “한국처럼 임명권이 한 사람에게 집중된 시스템에서는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부가 특정 인사들을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줄이고, 전문성과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을 만들어 독립적 기구를 통해 공기업 사장을 임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독일의 경우 독립 기구를 통해 공공기관장을 임명하고 정부에선 인사에 개입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제도 효율성 높이면 한국 잠재력 충분” 쇤헤어 교수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대에서 공부하다가 2008년 교환학생으로 6개월간 서울대에서 공부했다. “일본 교토대와 서울대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한국행을 결정했는데 돌이켜보면 인생을 바꾼 선택이었다”고 했다. 학자로서의 출발점이 된 박사 논문의 아이디어를 얻은 것도 행운이었지만, 평생의 반려도 한국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독일어-한국어 언어 교환을 위해 만난 서울대 법대 여학생과 장거리 연애 끝에 2016년 결혼했다. 지난해 한국으로 오기로 결심한 것도 복직하는 아내와 한국에서 함께 있기 위해서였다. 쇤헤어 교수는 “한국에서 1년 넘게 살아보니 독일과 비슷하게 불필요한 관료주의와 행정적 비효율성이 생산성을 저해하는 부분이 많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프린스턴대에선 온라인에서 차량 등록번호만 입력하면 교직원 주차등록이 끝났는데, 한국에선 차량 리스 계약서, 가족관계 증명서 등을 요구해 등록에 한 달이 걸렸다고 했다. 질보다는 양을 강조하는 분위기도 눈에 띄었다. 그는 “교수의 정년 심사 기준에서 논문이 출간된 학술지의 수준과 관계없이 논문 편수만으로 심사가 진행되는데 올림픽 금메달과 동네 운동회 우승을 동일하게 취급한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제도는 비효율적인 것 같은데 일은 어떻게든 굴러간다는 것이었다. 그는 “미국 같으면 사실 이렇게 제도가 복잡하면 아무도 해결하지 못했을 텐데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개개인의 효율성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이런 면에선 한국의 잠재력이 상당히 높다고 평가했다. “제도적 비효율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으니 제도만 개선된다면 한국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모국인 독일 경제가 흔들리고 있는 데 대해 쇤헤어 교수는 “예견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용기가 부족했던 것 같다”고 진단했다. 강력한 제조업 기반에 안주하면서 4차 산업혁명으로의 이행에 뒤처졌고, 중국과의 경쟁 심화, 에너지 비용 상승 등의 영향으로 고통스럽게 탈산업화 과정을 겪게 됐다고 했다. 그는 “독일의 과도한 관료주의가 변화와 적응을 느리고 비효율적으로 만들고 있으며 독일이 겪고 있는 구조적 문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도 독일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쇤헤어 교수는 “제조업이 강한 한국도 산업구조 고도화를 위한 전환을 잘 준비해야 할 것”이라며 “한국이 경제적으로 다음 단계로 도약하려면 관료주의를 타파하고 규제 개혁을 통해 투자를 저해하는 비효율적 시스템을 해소해야 한다”고 했다. 쇤헤어 교수는 한국에 대한 애정을 갖고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한국의 기업회생 제도에 대해 연구했고, 신용회복 프로그램이 채무자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정치적 네트워크와 정실주의에 대해서도 더 연구해 볼 생각이다. 그는 “한국 관련 데이터를 활용해 한국에서 흥미가 있을 만한 주제들을 연구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면서 “아직은 한국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순 없지만 2, 3년 뒤엔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더 깊이 있는 답변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다비드 쇤헤어 교수△1984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출생△200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대 졸업△2016년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 재무금융학 박사△2016∼2023년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조교수△2023년∼서울대 경영대학 부교수△연구논문 ‘엘리트 집단의 지대추구’(2018년), ‘정치적 인맥과 배분 왜곡’(2019년), ‘인맥의 부상: 민간 부문으로 확장된 정치적 보은과 정실인사’(2022년)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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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김도 연어도 육지에서 키우는 ‘씨팜’ 시대

    한국에는 세계 시장 점유율 70%를 자랑하는 절대 강자 품목이 있다. 메모리 반도체부터 떠올리겠지만 수출 효자로 주목받고 있는 김 역시 그렇다. 동아시아를 제외하곤 ‘검은 종이(black paper)’ 취급을 받던 김은 최근 들어선 ‘슈퍼푸드’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해 김 수출액은 처음으로 연간 1조 원을 넘어섰고, 올해는 벌써 9월에 수출 1조 원을 달성했다. 급증하는 수요에 맞춰 공급을 늘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 중이다. ▷국내 물김의 연간 생산량은 50만∼60만 t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생산량을 늘리기가 만만치 않다. 근해엔 김 양식장을 추가로 설치할 해역이 마땅치 않다. 기후변화로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면서 수확량이 감소하는 것도 걱정이다. 이미 일본은 김 생산량이 반토막 났는데 남의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수온이 낮은 먼바다에서 김 양식이 가능한지 연구 중이다. 아예 밭에서 채소를 키우듯 뭍에서 김을 양식하는 육상 양식도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 육상 양식은 바다와 비슷한 환경의 양식장을 육지에 만들어 원초를 키우는 방식이다. 해상에서는 수온이 5∼15도인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만 수확할 수 있지만 육지에선 사계절 가능하다. 기후변화 걱정도 없고 김에 생기는 기생병 질병인 갯병도 예방할 수 있다. 국립수산과학원과 풀무원은 충북 오송에서 김 육상 양식을 위한 실증 실험을 하고 있다. ‘바이오리액터’라고 부르는 부피 9㎥의 수조 3개에서 매달 10kg의 김을 생산하고 있다. 이 밖에도 광물 성분이 풍부하고 수온이 안정적인 제주도 용암해수를 활용하는 등 땅에서 김을 키우기 위한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육상 양식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는 것은 김뿐이 아니다. 수산물 수입액 1위인 연어를 실내 양식장에서 키우려는 연구도 한창이다. 부산시수산자원연구소는 최근 대서양 연어 양식에 성공했고, 앞으로 연간 약 500t의 연어를 생산할 계획이다. 충남 당진에선 벼를 키우던 간척지에 연어 양식장을 조성해 양식을 시작했다. 10마리 중 9마리를 수입에 의존하는 새우도 요즘엔 수조에서 키우고 있다. 미생물로 수질을 정화하는 ‘바이오플록’ 기술을 활용한다. ▷해산물을 육상, 특히 실내에서 양식하려면 각종 첨단 기술이 필요하다. 수온과 염도를 실시간 확인하고 스마트폰으로 원격조종하는 스마트 양식 시스템을 구축한다. 수질 센서, 영상분석 장비, 자동 먹이 공급 장치 등 첨단 장비들과 유기적으로 연동된다. 노동집약적 산업인 어업을 첨단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는 것이다. 바다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씨팜(Sea Farm)’의 꿈이 바다는 물론 육지에서도 영글고 있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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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김재영]정작 “돌 맞아도 가야” 할 구조개혁은…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좌고우면하지 않고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고 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의 ‘빈손’ 회동 다음 날 나온 발언이어서 김건희 여사 관련 논란에 대해 지금처럼 그대로 가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흔들림 없이 개혁 과제를 추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했다. 대통령실 설명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지금껏 정부가 구조개혁을 추진해 온 과정을 보면 “돌 맞아도 간다”는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윤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줄곧 연금, 의료, 교육, 노동의 4대 개혁을 강조해 왔다. 발언 빈도만 보면 4대 개혁 전도사라 부를 만하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저항이 있더라도” “선거에서 지더라도”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발언은 자못 비장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임기 반환점을 앞둔 지금까지 손에 잡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구체적인 실행 전략 없이 구조개혁의 당위성만 설파하는 데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양보-뚝심-소통 없는 말뿐인 구조개혁 “돌 맞아도 간다”는 건 손해를 감수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 정부의 개혁에선 정치적 희생과 양보가 보이지 않는다. 선거에 지더라도 재정 건전성을 지키겠다고 했지만 올해 4월 총선을 앞두고 다급해지자 20여 차례 민생토론회를 통해 수십 조원의 선심성 약속을 쏟아냈다.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 ‘주 69시간’ 프레임에 걸려 여론이 안 좋아지자 황급히 거둬들였다. 취임 초엔 시급한 구조개혁을 위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전시 연합 내각 모델까지 거론하더니 야당과의 타협과 협치에는 아예 손을 놓아버렸다. “돌 맞아도 간다”는 건 뚝심 있게 추진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 정부는 각종 정책에서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다. 부동산·가계대출 정책이 대표적이다. 대출은 조였다 풀었다 반복했고, 이자는 시장 상황과 반대로 올려라 내려라 했다. 고금리의 유리한 환경 속에서 집값과 가계부채를 잡기는커녕 들쑤셔 놓기만 했다. ‘샤워실의 바보’ 같은 정책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정부가 장기 개혁 과제를 흔들림 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국민들이 믿기는 어렵다. 물론 흔들림 없이 추진하는 개혁도 있다. 의료개혁이다. 하지만 뚝심이라기보다는 아집에 가까웠다. 의료개혁은 공감대가 컸고 여론도 우호적이었지만 ‘의대 증원 2000명’을 고집스럽게 밀어붙이느라 고립을 자초했다. 처음엔 반대가 크더라도 소통과 설득을 통해 접점을 넓혀가는 게 개혁의 과정인데 정반대로 진행됐다. 비판과 저항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개혁을 하고 있다. 밀리면 안 된다”고 착각하는 듯하다. 돌을 맞는 것은 개혁의 과정이지 목표가 아니다.IMF “개혁 성공의 요체는 정치 신뢰” 국제통화기금(IMF)은 22일 내놓은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1996∼2023년 76개국의 상품·노동시장 개혁 사례를 분석해 개혁 성공의 조건을 추렸다. 결론은 정부와 제도에 대한 신뢰, 소통, 그리고 참여가 핵심이었다. 변화의 필요성과 정책 효과에 대해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정책 설계 초기부터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보장하며, 구조개혁의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한 대책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29일 국무회의에서 “구조개혁 없이는 민생도 없고 국가의 미래도 없다”며 연내에 4대 개혁 과제의 성과를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의만 말고 대통령령으로 바꿀 수 있는 것들부터 빠르게 바꾸라”고 다그쳤다. 하지만 구조개혁은 자판기에서 물건 뽑듯 뚝딱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구조개혁의 추진 동력을 높이려면 우선 정치적 신뢰부터 회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부터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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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도로 위 폭탄’ 마약 운전, 음주 운전보다 처벌 수위 낮다니

    차선을 넘나들며 아찔한 곡예 운전을 하는 차량을 본다면 음주운전 말고 이것도 의심해봐야 한다. 한국이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닌 현실에서 운전자가 약물에 취해 있을 수 있다는 건 억측이 아니라 합리적 추측이다. 지난달 28일 새벽 서울 강남구의 유흥가 주변 도로에서 경찰이 국내 최초로 ‘약물 운전 단속’을 시행했다. 검사키트에 침을 뱉으면 마약 및 약물 11종에 대한 양성 여부를 10분 안에 알 수 있다고 한다. ▷약물 운전에 대한 경각심이 커진 것은 지난해 8월 이른바 ‘롤스로이스남 사건’의 충격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역에서 약물에 취한 20대 남성 신모 씨가 롤스로이스 차량을 몰고 인도로 돌진해 20대 여성을 치어 숨지게 했다. 올해 4월엔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선 필로폰을 투약한 20대 벤츠 운전자가 오토바이를 추돌해 50대 배달노동자가 숨졌다. 마약류 및 약물 운전에 따른 운전면허 취소자는 2019년엔 57명에서 지난해 113명으로 크게 늘었다. ▷약물 운전은 환각, 환청 때문에 대형 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지만 음주 운전에 비해 처벌 수위가 훨씬 낮다. 도로교통법에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의 운전 금지’ 조항이 별도로 있다. 혈중 알코올 농도에 따라 차등 처벌하는데, 0.2% 이상이면 2년 이상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상습 음주운전자에 대한 가중 처벌도 가능하다. 반면 약물 운전은 ‘과로한 때 등의 운전 금지’ 조항에 포함돼 규정돼 있을 뿐이며, 처벌 수위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그친다. ▷경찰의 음주 측정 요구에 불응하면 형사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약물 운전에 대해서는 동공 변화, 흥분, 말더듬 등의 징후가 명확해도 운전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경찰이 검사를 할 수 없다. 7월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에 대해 경찰이 마약 검사를 요구했지만 불응해 그냥 귀가 조치했다. 이 운전자는 2시간 뒤 또 사고를 냈고 이번엔 검사를 해보니 향정신성 약물 성분이 검출됐다. 검사를 강제할 수 있었다면 적어도 두 번째 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 ▷음주운전에는 혈중 알코올 농도라는 기준이 있지만, 약물이 운전자의 상태에 미친 영향을 측정하는 기준이 없다. 합법적인 의료용 약물이라도 투약 후 얼마 동안 운전하면 안 되는지 가이드라인이 없다. 영국과 독일은 약물 투약 후 24시간 동안 운전하지 못하게 하고, 프랑스는 투약 당일에 운전을 금지한다. 날로 늘어나는 약물 운전이 ‘도로 위 시한폭탄’이 되지 않도록 제대로 된 기준을 세워 엄하게 단속하고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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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저출산·입시 해법까지 내놓는 한은 총재?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한국은행과 재정·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의 관계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다. 과거 한은은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의식해 정부와의 교류를 꺼려왔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좀 다르다. 지난달 30일 역대 총재 중 처음으로 기재부를 방문해 ‘정책 공조’를 강조했다. 교육, 복지 등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엔 대학 입시 문제를 거론해 논쟁의 불을 지폈다. 기재부와의 미팅 직후 “성적순 대학 진학이 공정한 것은 아니다”라며 8월 말 한은이 보고서에서 제안한 ‘상위권 대학 지역 비례 선발제’를 다시 거론했다. 올해 들어 한은은 ‘BOK 이슈노트’라는 형식을 빌려 논쟁적 이슈를 적극 제기하고 있다. 3월엔 돌봄 비용을 낮추기 위해 돌봄 서비스의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자고 했고, 6월엔 한국의 의식주 비용이 높다며 농산물 수입 확대를 제안했다. ▷통화정책을 다루는 한은이 입시경쟁 문제에 주목하는 논리는 이렇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한 과도한 교육열이 서울 쏠림과 집값 급등, 저출산 등으로 이어지고, 이는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낮춰 금융 불안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한은의 관심 영역이 아닌 곳이 없다. “자녀를 낳으면 정년을 연장해 주자”는 내부 기고문도 있었고, 비수도권 거점 도시를 중심으로 균형 발전의 패러다임을 전환하자는 등의 수도권 집중 완화 방안도 제시됐다. ▷이 총재는 취임 이후 통화정책만으론 장기 저성장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구조개혁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구조개혁의 당위성을 설파하는 수준을 넘어 한은이 직접 해법을 찾으려는 모양새다. 문제는 금융 분야에 특화된 한은이 내놓는 각종 해법이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데 있다. 주요 대학 신입생 선발인원을 지역별 인구비례로 할당하자는 정책을 교육부가 내놨다면 입시 현장을 모르는 획일적인 규제라는 비판이 들끓지 않았을까. 우리 사회의 복잡다단한 문제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내듯 단칼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작 금리와 가계부채에 대한 한은의 해법은 모호하기만 하다. 금리를 올려야 할 때 제대로 올리지 못하더니, 이제 내려야 할 땐 내리지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 한은으로선 정부 탓을 하고 싶겠지만 한은 총재 역시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F4회의)’의 멤버인 만큼 자유롭다고 할 순 없다. 이 때문에 한은이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두고 ‘구조적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며 금리정책 실패의 책임에서 회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은이 집중해야 할 본연의 역할은 ‘모든 문제 연구’가 아니라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이지 않을까.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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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1열로 세우면 지구 12바퀴, 현대차 생산 1억 대 돌파

    현대자동차가 누적 차량 생산 1억 대를 달성했다. 1968년 미국 포드 차량 조립을 시작으로 자동차 생산에 발을 내디딘 지 56년 만이다. 현대차에 앞서 1억 대를 생산한 업체는 미국의 GM과 포드, 일본의 도요타 닛산 혼다, 독일 폭스바겐 등 6곳뿐이다. 모두 100년 안팎의 역사를 자랑하는 업체들로, ‘1억 대 클럽’에 가입하기까지 60∼70년씩 걸렸는데 현대차가 최단기간 입성에 성공했다. ▷1억 대라고 하면 쉽게 감이 오지 않는다. 현대차에서 가장 많이 생산한 베스트셀링카 아반떼(전장 4710mm) 기준으로 한 줄로 늘어세우면 지구 둘레를 약 11.8바퀴 돌 수 있다. 엄청난 성과지만 출발은 소박했다. 1968년 11월 울산공장에서 1호 차량인 1600cc급 준중형 세단 ‘코티나’를 만들기 시작해 그해 533대를 생산했다. 기술이랄 것도 없었다. 부품 국산화율은 21%에 불과했고, 사실상 볼트와 너트를 끼워 맞추는 수준이었다. ▷현대차는 조립 생산에 만족하지 않고 1975년 첫 독자 모델인 ‘포니’를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 포니는 이듬해 한국 승용차 최초로 에콰도르 등 해외에 수출을 시작했다. 1986년엔 ‘포니 엑셀’로 자동차 본고장인 미국 땅을 밟았다. 1991년 국내 첫 독자 엔진인 ‘알파엔진’ 개발에 성공했고, 1994년엔 플랫폼 엔진 변속기까지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한 ‘엑센트’를 선보였다. 1996년 글로벌 1000만 대 생산을 달성했고, 이후 2013년 5000만 대, 2019년 8000만 대, 2022년 9000만 대로 가속페달을 밟았다. ▷현대차는 판매 대수 기준 세계 3위의 빅메이커로 우뚝 섰다. 스승들은 진작에 뛰어넘었다. 현대차에 처음 조립을 맡겼던 포드를 2010년 글로벌 생산량에서 제쳤고, 엔진과 변속기를 얻어 썼던 일본 미쓰비시는 아득히 넘어섰다. 경쟁사들이 주춤할 때 멈추지 않았다. 코로나19 당시 GM과 포드는 공장 가동을 멈췄지만 현대차는 생산을 유지해 점유율을 높였다. 도요타와 폭스바겐이 중국에 대한 높은 의존도로 생산에 발목이 묶여 있을 때 현대차는 미국, 인도 등 신시장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현대차 2억 대 시대로의 출발을 알린 1억1번째 생산 차량은 전기차 ‘아이오닉 5’였다.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을 상징한다. 미래차 시장에서 승리하려면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을 돌파하고 저가 공세를 앞세운 중국의 추격을 뿌리쳐야 한다. 최근 중국은 댓글부대를 동원해 “흉기차(현대차·기아를 비하하는 표현) 누가 타냐”는 식의 악성 인지전까지 펼치고 있다. 승리의 필살기는 여전히 품질과 신뢰다. 56년 전 첫 차를 만들던 마음 그대로 열정과 도전정신도 날카롭게 벼려야 할 것이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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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김재영]고향 떠나 상경한 청년들 “돈은 더 벌어도 덜 행복”

    한국의 인구 이동, 특히 청년들의 이동은 수도권으로의 일방통행이다. ‘인서울’ 대학 진학을 통해 상경한 청년들은 학업을 마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지방에서 대학을 나온 청년들도 일자리를 찾아 다시 수도권으로 몰린다. 매년 10만 명의 청년이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향한다. 수도권으로 떠난 청년들이 비수도권에 남은 청년들보다 돈은 많이 벌지만 행복감은 더 낮고 ‘번아웃’(소진) 경험이 높다는 분석이 나왔다. ▷통계청이 26일 발간한 ‘통계플러스 가을호’를 보면 19∼34세의 비수도권 출신 청년 가운데 수도권으로 떠난 청년의 연평균 소득은 2022년 기준 2743만 원으로, 비수도권에 남은 청년(2034만 원)보다 709만 원(34.9%) 더 많았다. 청년 인구 대비 취업자 비중도 수도권으로 간 청년(72.5%)이 지역에 남은 청년(66.4%)보다 높았다. 1000대 기업 본사의 73.6%가 밀집해 기회가 더 많은 수도권으로의 이동이 취업과 소득을 위해서는 ‘합리적’ 선택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삶의 질을 보면 정반대였다. 수도권으로 떠난 청년이 느끼는 행복감은 10점 만점에 6.76점으로 비수도권에 남은 청년(6.92점)보다 낮았다. ‘최근 1년간 번아웃됐다고 느낀 적이 있다’고 답한 수도권 이동 청년은 42.0%로, 비수도권 잔류 청년보다 12.3%포인트 높았다. 수도권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청년들은 건강이 더 나빴고, 더 좁은 집에 살았다. 더 오래 일했고 통근 시간도 길었다. 높은 주거비 부담 때문에 빚도 더 많았다. 낯선 환경에서 느꼈을 두려움과 외로움은 통계 숫자론 담아낼 수 없다. ▷숨막히는 환경을 벗어나 가족과 친구가 있는 지방으로 돌아가려 해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두렵다. 가장 먼저 발목을 잡는 건 역시 일자리다. 지방에 살아본 청년들은 공무원 말곤 마땅한 사무직군의 정규직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일자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교통, 교육, 주거, 의료, 문화, 쇼핑 등의 인프라도 수도권에 비해 부족하다. 청년들을 지방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선 일자리와 인프라가 한곳에 모인 ‘도시 거점화’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청년들 앞에 놓인 현실은 축구장 반쪽에서 열리는 축구 경기 같다. 한쪽에선 공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몸싸움 속에 부상자가 속출하는데, 이를 지켜보는 반대쪽에선 그저 공을 만져볼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만으로도 부러울 뿐이다. 청년들이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계속 공부하고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번아웃과 열패감, 수도권 집중과 지역 소멸이 공존하는 마이너스 게임을 이젠 그만할 때가 됐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2024-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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