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훈

전승훈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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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라는 정글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합니다. 도시를 산책하고 탐사하는 즐거움을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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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5-06-28~2025-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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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침체 여파로 NCSI 점수 2년 연속 하락세

    2024년 국가 고객만족도(NCSI) 점수가 또다시 떨어졌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하락이다. 기업의 적극적인 고객 중심 경영 노력에도, 국내외 어려운 경기 상황과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고객 심리가 커진 때문으로 풀이된다. NCSI는 한국생산성본부와 미국 미시간대, 조선일보가 공동 주관하고 산업통상자원부가 후원해 1998년부터 매년 작성, 발표한다. 올해는 국내 80개 업종 309개 기업(대학)과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30일 생산성본부에 따르면 올해 NCSI는 78.0점으로 지난해(78.2점)에 비해 0.2점 떨어졌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를 제외하고 NCSI는 2010년 이후 지난해까지 꾸준한 상승세였다. 하지만 지난해에 전년(78.4점)보다 하락했고 올해도 반전을 이루지 못했다. 올해 NCSI 최고점은 세브란스병원(84점)이 차지했다. 이어 삼성물산, 삼성전자서비스,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이 83점으로 공동 2위에 올랐다. 또 LG전자, 고려대안암병원, 삼성서울병원, 아주대학교병원, 영남이공대학교가 82점을 받아 공동 3위에 랭크됐다. 전년 대비 1위 기업이 변동된 업종이 16개, 공동 1위로 나타난 업종이 16개였다.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음을 방증하는 결과로 풀이된다. 업종별 NCSI 점수에서는 전자부품 애프터서비스(AS)가 83점으로 1등을 차지했다. 병원(82점)이 뒤를 이었고 대형승용차 대형항공(FSC) 세탁기 준대형승용차(81점) 등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반면에 쓰레기 수거는 74점을 기록해 가장 만족도가 낮은 업종으로 조사됐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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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글진흥원, 2024 공공문장 바로 쓰기 대상 수상자 선정

    우리글진흥원(원장 손수호)은 23일 ‘2024년 공공문장 바로 쓰기’ 대상 수상자로 천창수 울산광역시교육청 교육감(교육 부문)을 비롯해 김영욱 부산진구청장(문화 부문), 박동식 사천시장(관광 부문), 신상진 성남시장(소통 부문)을 선정했다.이 상은 바르고 쉬운 공공문장을 일선 행정에 구현한 공공기관을 응원하기 위해 공익법인 우리글진흥원이 2013년 제정해 매년 시상하고 있다. 수상자들은 시민이 읽는 각종 안내문 등을 알기 쉽고 정확한 글로 선보이고 공직자 국어 능력 향상에 애쓰는 등 공공문장 바로 쓰기에 모범을 보인 공적을 인정받았다.또 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공공문장 바로 쓰기 공모전’에서는 진주시 평거동 행정복지센터 김소영 팀장이 우수상을 차지했다. 공공문장 바로 쓰기 시민운동 대상은 정준영 씨(서울대 의학과 본과 2년)가 차지했다. 정 씨는 ‘솔샘이라 불린 곳’을 ‘불리운’으로 적은 국립공원관리공단 리플릿, ‘단 한 번의 부정 승차’라고 적을 문안에 쉼표를 잘못 붙여 ‘단,’으로 쓴 서울교통공사 플래카드, ‘지역환경교육센터로서’를 ‘-로써’로 잘못 표기한 서울 서대문구청의 리플릿 등 15건을 바로잡았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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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흥 밤하늘, 너와 함께 보고 싶다[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야경이다.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 코나의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노래처럼 조명 불빛이 어른거리는 밤 풍경은 여행자를 설레게 한다. 새롭게 떠오르는 밤하늘 여행의 메카는 전남 고흥이다. 소록대교 야경이 바라보이는 녹동항에서는 드론쇼와 바다불꽃축제가 펼쳐진다. 국내 최초의 우주센터인 나로우주센터와 우주천문과학관에서 별빛을 바라보며 검고 푸른 우주의 낯선 행성으로 여행을 떠나 보자. ● 별빛 따라 우주과학 여행 한반도의 서남부에 있는 고흥은 고흥반도와 230개의 섬들이 펼쳐져 있다. 고흥반도와 내나로도∼외나로도를 잇는 나로대교는 우주로 가는 다리다. 구불구불 산모퉁이를 돌 때마다 다도해의 그림 같은 섬과 바다 풍경이 펼쳐졌다 사라지곤 한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과 함께 맹활약했던 흥양수군의 본거지가 바로 이곳이다.땅도 끝나고 섬도 끝나갈 무렵, 대한민국 첫 번째이자 세계 13번째 우주센터인 나로우주센터가 나타났다. 2013년 나로호, 2022년 누리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된 역사적 현장이다. 먼저 우주과학관이 손님을 맞는다. 로켓 발사체 엔진과 인공위성, 무중력 우주 체험을 할 수 있는 이곳에선 연구원 박사들이 관람객들에게 우주과학에 대해 해설해 준다. 나로우주센터의 부지는 550만 m². 축구장 700개의 크기다. 해안 절벽을 따라 발사대 시스템, 발사체 추적과 통제센터, 발사체 조립동 등 최첨단 시설이 숨어 있다. 우주과학관을 제외하고는 평상시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는 보안 시설이다. 그러나 한 달에 한 번 전남관광재단과 코레일관광개발이 협력하는 ‘고흥, 별빛 따라 떠나는 우주과학 여행 열차’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발사 통제동, 발사대 시스템, 발사체 보관동 등 보안 구역까지 견학할 수 있다. 관람객들은 먼저 우주센터 발사 통제동에서 송병철 책임연구원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우주탐사 여정에 대한 브리핑을 받았다. 나로호, 누리호 발사 당시 카운트다운을 하고, 1, 2단 로켓과 페어링 분리, 인공위성 궤도 진입을 추적하던 수많은 과학자들이 가슴 졸이고, 안타까워하고, 환호하고, 박수 치던 바로 그 장소다. 다음 찾아간 곳은 나로호 발사대. 발사대 옆에는 초록색 엄빌리컬 타워가 우뚝 서 있고, 붉은색 하얀색 페인트칠이 돼 있는 피뢰침이 사방에서 호위하고 있었다. 발사체는 이곳에서 기립장치를 이용해 똑바로 세워진 후 ‘탯줄(Umbilical·엄빌리컬)’ 같은 수많은 케이블로 타워와 연결돼 각종 고압가스, 연료, 산화제를 주입받는다. 그래서 발사체는 흔히 ‘깡통’, 엄빌리컬 타워는 ‘주유소’라는 애칭으로 불린다고 한다. 발사대 아래에는 지하 3층 규모의 발사동 건물이 숨어 있다. 연면적 8900m²(약 2700평)에 각종 설비들이 거미줄처럼 얽힌 방에 구비돼 있는 곳이다. 송 책임연구원은 “처음에 내려가는 연구원들은 길을 잃을 정도로 복잡한 시스템의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2009년 세계 13번째 우주센터로 지어진 나로우주센터의 후보지는 경남, 경북, 전남, 제주 등 11개 지역이었다고 한다. 송 책임연구원에 따르면 로켓 발사 각도와 궤도 추적의 용이성, 주민들의 동의를 얻는 과정에서 수많은 난관을 겪어야 했다. 결국은 사람이 가장 적은 외딴섬인 외나로도로 결정됐다. 초기엔 도로도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수많은 건설자재와 로켓 장비를 대부분 바다를 통해 배로 날라왔다고 한다. 고흥의 우주과학여행은 우주천문과학관으로 이어진다. 국내 최대급 800mm 주망원경을 비롯해 6개의 보조망원경을 갖춘 천문대다. 망원경을 통해 겨울철 별자리뿐 아니라 달과 목성, 토성의 고리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60석 규모의 천체투영실에서는 지름 10m의 원형 돔 공간에서 약 30분간 천문 영상을 보여주며 별자리를 해설해 준다. 영화 ‘라라랜드’에서 두 주인공이 춤을 추며 날아올랐던 미국 로스앤젤레스 그리피스 천문대의 돔 상영관과 비슷한 분위기다. 천체망원경을 통해 별을 보는 것도 좋지만 휴대전화 천체사진 촬영 모드를 이용해 밤하늘을 직접 찍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별 사진을 찍을 때는 천체망원경과 돔 건물을 배경으로 넣으면 더욱 실감나는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장어 요리와 전복, 문어 등 신선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고흥 녹동항도 야경 명소다. 녹동항 바다정원 아치형 다리에서는 매주 토요일 밤 소록대교 야경을 배경으로 1500대의 드론을 이용한 공연이 펼쳐진다. 올해 4월부터 11월까지 총 38회에 걸쳐 펼쳐진 드론쇼를 보기 위해 24만여 명이 찾아왔다. 바다정원 옆 미디어돔에는 해저와 우주를 탐사하는 돔 상영관과 가상현실(VR) 체험관이 있는데, 외벽에 펼쳐지는 미디어아트도 볼만하다. ● 겨울 고흥의 맛 참꼬막, 굴, 유자, 커피 “참꼬막을 탁 까면 눈물이 글썽글썽해서, 눈물을 흘릴 것처럼 보여요. 찬 바람이 부는 겨울에 살짝 데쳐서 먹는 참꼬막 맛은 정말 기가 막힙니다.” 고흥 남양면 우도마을로 가는 길에 문화관광해설사는 겨울의 별미인 참꼬막을 ‘눈물이 글썽글썽’한 맛이라고 표현했다. 살짝 데쳐 물기가 살아 있어 조개의 반짝이는 검은 속살을 일컫는 현지인의 감성이다. 육지에서 1.3km 떨어진 섬인 우도는 하루에 두 번 물이 빠지고, 바닷길이 열려야 드나들 수 있는 섬이었다. 그런데 올해 4월 국내 최장 연륙 인도교인 ‘우도 레인보우교’가 생겼다. 무지갯빛으로 칠해진 다리 위를 걸으면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고, 푸른 바다 위로 윤슬이 별처럼 부서진다. 물이 빠지면 다리 아래쪽 노둣길을 걷는다. 뻘 속의 망둥이와 게, 꼬막 등 다양한 생물을 만날 수 있는 길이다. 고흥의 겨울 별미는 꼬막뿐이 아니다. 추운 겨울 감기 예방에 좋은 따뜻하고 상큼한 유자차 한잔이 나를 위로해 준다. 연평균 기온이 13도 이상이 되는 곳에서만 자라는 유자는 전남 고흥, 완도, 진도, 경남 거제, 통영 등 남해안 일대에서 재배된다. 그중에서도 고흥은 전국 유자 생산량의 60∼70%를 차지하는 유자의 고장이다. 고흥의 유자 농장 중에는 유자를 수확하고, 유자청과 유자차 만들기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많다. 두원면 고유한관광농원의 비닐하우스에 들어서니 레몬꽃 향기만큼 상큼한 유자향이 온몸을 감쌌다. 나무마다 지름 4∼8cm의 둥그런 공 모양의 밝은 노랑 빛깔 유자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농장 한쪽의 에덴식품 공장에서는 유자청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유자를 껍질째 얇게 썰고, 설탕을 넣어 버무려 빈 병에 담는 과정이다. 소정의 비용을 낸 체험자들은 이 병을 집으로 가져가 1주일 정도 숙성을 거쳐 유자차로 마실 수 있다. 고흥에는 국내 최초의 커피 재배 하우스인 ‘산티아고 커피농장’도 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쿠바에서 가져온 ‘크리스털 마운틴 아라비카’ 커피나무가 자라고 있다. 커피나무에 재스민 향이 나는 눈송이처럼 하얀 꽃이 피고, 초록색 커피체리 열매가 빨갛게 익어가는 모습은 신기하기만 하다. 산티아고 커피농장을 운영하는 김철웅 바리스타의 대표 커피 상품은 ‘유자와인커피’다. 고흥의 특산물인 유자청과 커피체리를 함께 발효시켜 만든다. 유자의 향이 침투된 커피 생두를 볶아서 더치커피 방식으로 내리고, 다시 발효시켜 와인처럼 만든다. 유자 막걸리처럼 발효된 향이 확 밀려오는 첫맛에 이어 구수하고 진한 커피 향이 이어지는, 세상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독특한 커피다. 이곳에서는 ‘커피 드립백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다. 드립백 봉투에 산티아고 농장 커피를 10g씩 담고 밀봉한 후 집에 가져가는 체험이다. ● 가볼 만한 곳=고흥분청문화박물관에서는 화가 천경자(1924∼2015)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이 31일까지 열리고 있다. 고흥 출신인 천경자 화가의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하얀 모자를 쓴 ‘길례언니’를 비롯해 머리에 꽃을 꽂은 여인들의 그림이 이어진다. 천 화백의 원래 이름은 옥자였는데, 일본 유학 시절부터 ‘경자(鏡子)’라는 이름을 썼다. ‘거울을 보는 여자’라는 이름처럼 그는 평생을 거울을 보듯이 자화상을 그렸다. 타이티, 베트남, 인도, 프랑스 등 세계 여행을 다니면서 그린 드로잉 작품에서도 화가의 숨결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글·사진 고흥=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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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막골 체험-논길 자전거 여행… 농촌 매력 알린 크리에이투어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송미령)와 한국농어촌공사(사장 이병호)는 11일 서울 중구 청파로 서울 LW컨벤션센터에서 ‘2024 농촌 크리에이투어 지원사업 성과공유회’를 열었다. 농촌의 매력을 새롭게 조명해 방문객에게 특별한 체험을 선사하는 ‘농촌 크리에이투어(CREATOUR) 지원사업’은 올해 처음 시작된 사업으로 전국 20개 시군에서 진행됐다. 지역 주민과 로컬 크리에이터, 여행 전문가가 힘을 합쳐 창의적인 여행상품을 개발해 농촌 관광객이 30% 이상 증가됐으며, 만족도(4.6점, 5점 척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나 농촌관광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 잡았다. 이날 성과공유회에서는 지역의 자원과 문화를 재해석하고 창의적으로 활용해 농촌관광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우수사례 4곳이 소개됐다. 대외협력 부문 우수 공동협의체로 선정된 ‘원주 사색(思索)’은 강원 원주를 대표하는 4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사부작사부작’ 걷는 여행이다. 꽃길을 따라 걸으며 감성에 젖기도 하고, 숲길을 걸으며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프로그램이다. 철길은 추억의 한 페이지를 떠올리게 했으며, 뮤지엄 투어는 자연과 예술의 조화 속에서 휴식을 선사했고, 성황림 숲 체험, 전통주 강의 등 농촌의 매력을 전달하는 콘텐츠가 도시민에게 감동으로 다가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강원 평창의 ‘플레이 어울림픽 평창’은 자기주도적 활동 부문 우수 공동협의체로 선정됐다. 평창은 지역의 체험·휴양마을을 네트워킹한 여행상품을 선보였다. 웰컴투 동막골로 유명한 미탄면 율치리의 영화 체험, 대관령 양떼 목장, 송어 잡기, 래프팅 등 지역 자원을 활용한 콘텐츠와 지역 주민의 주도적인 관광 개발로 농촌관광의 새로운 발전 모델을 제시했다. 사업비전 부문에서는 전북 무주의 ‘무주 1614’가 선정됐다. 1614는 덕유산 향적봉의 해발 고도를 나타내는 숫자. 덕유산의 상징성을 활용해 지역 관광자원을 고도화하고 중간 지원조직의 역할을 통해 협력 기반의 체류형 관광을 발전시켰으며 농촌관광 전문여행사를 설립하고 마을 주민과 협력하며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충남 홍성의 ‘따르릉 홍성 유기논길’은 지역자원 해석 부문 우수 공동협의체로 선정됐다. 전기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논길을 지나는 여행으로 숨 가쁘게 지내온 일상에 ‘쉼터’를 제공한 프로그램이다. 여행객들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지역 농산물을 수확하고, 들판이 보이는 카페에서 지역 특산물로 만든 빵과 케이크를 맛보기도 한다. 시골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숙소에서의 하룻밤은 ‘힐링’ 그 자체였다는 후기를 얻었다. 농식품부 김고은 농촌경제과장은 “농촌 크리에이투어 지원사업은 지역의 고유한 자원을 창의적으로 활용해 농촌관광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중요한 정책 사업”이라며 “앞으로도 농촌이 지속 가능한 관광지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역 공동체와 전문가 간의 협력을 강화하고, 농촌관광이 지역경제 활성화와 문화적 가치 창출에 기여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농촌 크리에이투어 지원사업’은 농촌과 외부 전문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농촌관광 상품을 개발하고 정착시켜 지역의 경제적·사회적 가치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6일에는 2025년도 농촌 크리에이투어 지원사업 대상 시군 20곳도 선정됐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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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처의 땅… 신라의 숨결[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경북 경주 남산은 자연 속 박물관이다. 금오봉과 고위봉의 두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 40여 개의 계곡과 산줄기로 이뤄진 남산 곳곳에 신라시대 100여 곳의 절터, 80여 구의 석불, 60여 기의 석탑이 자리 잡고 있다. 그야말로 부처님의 땅 ‘불국토(佛國土)’다. 내년 10월 말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경주. 남산에 올라 신라인의 숨결을 느끼고 왔다. ● 남산 위의 저 소나무 경주에도 남산이 있다는 말을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마련이다. 그럼 애국가에 나오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는 서울인가, 경주인가. 실제로 경주 남산의 능선에도 구부러지고 뒤틀리며 자라는 전형적인 한국의 소나무들이 많다.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경주 삼릉의 솔숲을 보고 혹자는 “소나무들이 사교댄스를 추고 있는 무도회장에 들어온 기분”이라 말할 정도다. 경주 통일전 부근 염불사지에서 남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동네나 산길이나 굴러다니는 돌들은 모두 석탑 부재고, 바위에 새겨진 것은 마애불이다. 산 입구에서 물이나 김밥이라도 사려고 했는데, 주변에 아무런 가게가 없다. 점심 도시락도 없이 산행을 잘 마칠 수 있을까. 호젓한 솔숲을 걷기 시작한 지 한 시간쯤 흘렀을까. 대나무숲으로 둘러싸인 계단길에 빗자루질을 한 흔적이 선명했다. 이 산속에 누가 계단을 쓸었을까. 약수터 위 대안당(大安堂) 마루에 잠시 걸터앉아 쉬었다가 칠불암(七佛庵)에 도착했다.경주 남산의 수많은 문화재 중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된 ‘경주남산칠불암마애불상군(慶州南山七佛庵磨崖佛像群)’이 눈앞에 나타났다. 절벽 바위에 아미타삼존불이 새겨져 있고, 그 앞 육면체 바위에는 동서남북 4개 면에 사방불(四方佛)이 모셔져 있다. 삼존불과 사방불을 합쳐서 ‘칠불암’이 된 셈이다. 한 시대에 한 명의 부처만 존재한다는 개념에서 사방불은 모든 공간에 부처가 존재한다는 신앙으로 바뀌는 시기에 많이 만들어졌다. 부처는 동서남북 사방은 물론이고 6방, 8방에도 존재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시공간을 넘어 모든 세계에 존재한다는 개념을 보여주는 마애불이다. 구름이 걷히고 따스한 햇살이 비칠 때마다 더욱 또렷해지는 마애불의 얼굴 표정과 미소를 감상하고 있는데 암자 종무소에서 “식사하세요∼”라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웬 떡인가! 김밥을 준비하지 못해 하루 종일 굶으며 남산을 돌아다닐 생각을 했었는데, 너무나 반가운 소리였다. 암자 안으로 들어가니 감자 수제비 한 그릇이 빈속뿐 아니라 마음까지 꽉 채워준다. 부처님의 자비가 현현하는 순간이다. 댓돌 한쪽에 작은 커피 자판기까지 있어 공짜 커피도 마실 수 있었다. 감사한 마음에 얼마 안 되지만 주머니에 있던 현금을 복전함에 넣고 왔다. 칠불암에는 눈이 맑고 푸른 비구니 스님이 계셨다. 12년 전 체코에서 숭산 스님의 책을 읽고 출가를 결심하고, 한국에 온 휴정 스님이다. 경북 청도 운문사에서 공부하고, 경주에 온 지 어느새 10년이 넘었다고 했다. 한국말을 정말 잘하는 휴정 스님은 마애불에 대해서도 깊은 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는 “칠불암 불상군 터는 오랫동안 숲에 가려져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지역 주민들에 의해 발견됐다”고 설명해 주었다. 칠불암에서는 템플스테이도 많이 진행하는데, 외국인들이 특히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칠불암 우측 대숲을 지나 다소 가파른 계단을 따라 200m 정도 오르면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이 나온다. 널찍한 경주 평야의 풍광이 시원하게 펼쳐진 벼랑 끝 바위다. 맞은편 토함산의 연봉들도 기운차게 흘러간다. 손에 용화 꽃가지를 들고, 머리에는 삼면보관(三面寶冠)을 쓰고 있는 미륵보살이다. 아래쪽에는 동글동글한 구름 모양이 새겨져 있다. 그야말로 남산 자락 구름 위에 앉아 있는 미륵보살상이다. ● 용장골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 경주 남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금오봉(468m)과 고위봉(494m)이다. 두 봉우리 사이에 남산에서 가장 크고 깊은 골짜기인 용장계곡이 펼쳐진다. 이곳에는 22곳의 절터와 11개의 석탑 유적지가 있다. 칠불암에서 용장계곡으로 넘어가는 삼화령 고갯길에는 억새가 하늘하늘 빛난다. 고갯길 정상에는 커다란 바위 위가 지름 2m 크기 연꽃 모양으로 장식돼 있는 연화대좌가 있다. 신라 경덕왕 때 안민가와 찬기파랑가를 지은 충담 스님이 해마다 3월 3일과 9월 9일에 차를 공양했다는 남산 삼화령 미륵세존이 있던 자리다.연화대좌에서 내려다보니 고위봉과 태봉, 열반재, 용장골, 이무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예전에 몽골 초원에 있는 테렐지 국립공원에 갔을 때 산 중턱 사원에서 초원 계곡에 있는 거대한 거북바위를 바라봤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연화대좌에서도 우주의 에너지가 집중되는 장소의 느낌을 받았다. 삼화령에서 용장계곡으로 내려가는 능선에 용장곡 3층 석탑이 푸른 하늘 위에 우뚝 서 있다. 탑의 높이는 4.5m에 불과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높은 탑’으로 불린다. 해발 400m 절벽 자연 바위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남산 전체를 기단으로 삼은 탑의 높이는 444.5m나 된다.용장곡 3층 석탑에서 아래쪽으로 10m쯤 내려오면 마애여래좌상과 삼륜대좌 석불좌상을 만나게 된다. 불상의 눈동자까지 보이는 보물급 마애여래좌상의 품격도 대단하다고 느꼈는데, 뒤를 돌아보는 순간 더욱 놀라운 불상과 마주하게 됐다. 높이 4.65m의 대좌부터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신기한 모습이다. 불상을 받치는 대좌가 시루떡도 아니고, 도넛도 아닐진대 세 개의 둥근 바퀴 모양의 돌이 탑처럼 쌓아 올려져 있다. 이른바 ‘삼륜대좌불(三輪臺座佛)’이다.그 위에 모셔진 석조여래좌상은 얼굴이 없다. 어느 시대 목이 잘린 불상의 몸에 새겨진 아름다운 옷 주름은 더욱더 처연한 슬픔을 느끼게 한다. ‘삼국유사’에는 용장사에 살던 대현 스님이 불상 주위를 돌며 기도하면 불상도 그를 따라 얼굴을 돌렸다고 한다. 바로 이 불상의 삼륜대좌 바퀴가 360도로 돌아가면서 기도하는 스님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용장사는 조선시대 생육신 김시습(1435∼1493)이 1462년 27세의 나이에 머물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인 ‘금오신화’를 썼던 곳이기도 하다. 용장골 계곡에는 설잠교가 놓여 있다. ‘눈 쌓인 봉우리’라는 뜻의 설잠(雪岑)은 매월당 김시습의 법호다. 금오신화는 조선의 금서(禁書)였다. 그가 쓴 소설의 주인공 이름은 ‘양생’ ‘이생’ ‘홍생’으로 ‘양 생원’ ‘이 생원’의 준말이다. ‘5세 신동’으로 불릴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졌으면서도, 산천을 유람하며 거짓 미치광이로 살았던 자신의 신세와 비슷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셈이다. 남산 열암곡에는 ‘5cm의 기적’으로 불리는 마애불이 있다. 600년 전 발생한 지진으로 쓰러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마애불은 엎어진 불상의 얼굴과 바닥 사이에 불과 5cm의 틈밖에 없다. 암벽에서 떨어졌는데도 오똑하게 솟은 부처의 콧날이 그대로였다. 이후 1200년 가까이 자연스레 파묻혀 있던 덕분에 마애불은 통일신라시대 마애불 중 가장 완벽한 얼굴을 온전히 지킬 수 있었다. 이 불상을 세우자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쓰러져서도 얼굴 원형이 완전하게 보존된 기적의 불상을 보고자 하는 수많은 관람객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가볼 만한 곳=경주 동남산 기슭에 있는 ‘경북천년숲정원’은 2023년 경북에서 1호이자 국내 5번째 지방정원으로 지정됐다. 입구에서 가까운 메타세쿼이아 숲길의 실개천 위에는 외나무다리가 있다. 그곳에 서 있으면 실개천에 모습이 비치기 때문에 거울숲으로 불린다. 초겨울까지 단풍이 남아 있는 이곳엔 연인들끼리 인증샷을 남기려는 젊은이들로 긴 줄이 서 있다. 경주의 야경 명소로는 월성(사적 16호)을 휘감아 흐르는 남천 위에 세운 월정교를 꼽을 수 있다. 웅장한 2층 문루와 곧게 뻗은 회랑이 조명에 빛나는 월정교는 특히 달이 뜨는 날에 운치를 더한다.글·사진 경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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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흑백요리사’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전통 장맛을 찾아 떠나는 여행 [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최근 방영된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에서는 미슐랭 스타 셰프들이 한국의 전통장(고추장, 된장, 간장)를 주제로 기발한 음식을 선보였다. 세계인들도 우리나라 음식 맛의 정수인 장(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12월에는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는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최종 등재는 12월2~7일 파라과이에서 열리는 제19차 무형유산위원회에서 결정된다. 담양과 순창의 장담그기 명인들을 찾아 ‘K미식 장벨트 기차여행’을 떠났다. ● 담양 죽염으로 담그는 간장과 된장 전남 담양군 창평면에 있는 대숲을 지나 솔숲으로 둘러싸인 마당에 들어서니 장엄한 광경이 펼쳐졌다. 1200여 개의 항아리가 사열을 하듯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기와집 툇마루엔 늙은 호박이 놓여 있고, 빨간 고추가 장독대에 어우러져 가을을 느끼게 했다. 대한민국식품명인 제35호(진장) 기순도 할머니가 항아리 하나를 열고 표주박으로 간장을 퍼올렸다. 먹물처럼 짙은 간장 위로 푸른하늘이 비쳤다. “집안에서 10대 째 지켜온 씨간장입니다. 370년이 넘은 씨간장이예요.“ 기 명인은 스물네살 때 담양 장흥 고씨 양진재 종가의 10대 종부로 시집온 후 50년이 넘도록 장을 담가왔다. 제사나 명절에만 조금씩 꺼내 쓰는 씨간장은 간장이 아니라 ‘약’으로 불린다. 수분이 날아가 양이 줄어들면 2~3년에 한번 씩 ‘진장(5년 넘게 숙성한 간장)’을 부어 양을 유지한다고 한다. 기 명인이 간장 종지에 씨간장을 약간 따라주었다. 수저에 묻혀 살짝 혀에 댔더니 오래된 간장이 온 몸의 미각세포를 자극한다. 기 명인은 ”씨간장을 드셨으니 오늘 저녁에 속이 좀 편안하실 겁니다“라고 말한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서 ‘독도새우’와 함께 기 명인의 370년 된 씨간장으로 구운 ‘한우갈비구이’가 화제를 모았다. 프랑스 AFP통신, 영국 데일리메일 등은 “미국보다 더 오래된 간장이 메뉴로 제공됐다”고 소개했다. 2021년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 초청됐을 때도 그는 370년 작은 항아리에 종가의 씨간장을 담아 가져갔다. 유네스코 측은 이 씨간장을 금고에 보관할 정도로 예우했다고 한다. 항아리 구경을 마친 후에 체험장에서 기 명인으로부터 장담그기와 장가르기를 배웠다. 이 집에서는 특이하게 메주에 ‘죽염수’를 붓고 대나무를 태워 만든 숯과 고추, 대추를 넣어서 담근다. “보통은 메주에 소금을 넣어서 만들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더 깊은 맛을 내기 위해 죽염수를 넣어줍니다.” 명인이 만드는 장맛의 토대는 바로 죽염(竹鹽)이었다. 담양의 3년 이상 자란 왕대를 잘라 간수를 뺀 천일염을 넣고 소나무 장작불에서 구워내 만드는 것이 죽염이다. 죽염에 지하 150m에서 퍼올린 암반수를 섞은 죽염수로 담근 간장과 된장은 짜지 않고 감칠맛이 난다. 숯은 정화작용을 하고, 고추는 곰팡이를 방지하고, 대추는 달짝지근한 맛을 내는 역할을 한다. “메주는 국산 콩을 동짓달에 끓여서, 섣달에 발효를 시켜서 만듭니다. 정월은 장을 담가야 가장 맛있어요. 매년 장을 담글 때는 지금도 좋은 날을 받아서 목욕재개하고, 기도하고 시작합니다. 부디 장맛이 변하지 않도록,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것이죠.” 장을 담그고 상온에서 2~3개월 숙성한 뒤에는 ‘장 가르기’를 할 때가 온다. 이번에는 장 가르기를 체험할 시간. 병 속에서 잘 발표돼 까만색으로 변한 죽염수를 따라내는 것이다. 이 간장을 그대로 사용하면 ‘청장’(1년 이내 숙성)이고, 달여서 색깔과 향을 더 깊게 만들어주면 ‘중간장’(1~3년 숙성), 항아리에서 5년 이상 숙성시켜 만드는 것이 ‘진장’이다. “왜 장가르기를 하는거죠?” 도시에서만 자라 온 기자가 무심코 던진 질문이었다. “장을 갈라서 담아줘야 메주는 된장이 되고, 까만 액체는 간장이 되지요.” 아, 그렇구나! 메주로 된장을 만드는 것은 알았지만, 하나의 메주에서 동시에 간장도 나오고 된장도 만들어진다는 것을 처음 알게된 것이다. “간장과 된장이 함께 나오는 건 우리 문화의 특징입니다. 중국이나 일본은 된장은 된장대로, 간장은 간장대로 따로 만듭니다. 왜냐하면 메주가 없이 콩으로 발효를 시키기 때문에 한가지 밖에 만들 수가 없지요.“ (기순도 명인) 간장을 따라낸 후에는 병 속에 남은 메주를 잘 긁어낸다. 비닐장갑을 낀 손과 나무 수저로 메주를 잘게 부수면 된장이 된다. 된장을 담은 병(450g)과 간장을 담은 병(300ml)에 이름과 날짜를 써서 라벨을 붙인다. 체험 참가자들은 이 병을 집으로 가져가서 2~3개월간 상온에서 숙성 후 맛있는 장이 된다고 한다. 체험이 끝난 후에는 된장, 간장으로 만든 음식을 맛볼 차례다. 된장으로 맑은 된장국을 끓이고, 명인이 직접 담은 ‘간장 김치’를 맛본다. 전라도식 김치에는 젓갈이 많이 들어가는데, 간장과 고춧가루로만 담은 김치는 깔끔하면서도 깊은 맛이 난다. 담양의 명품은 사시사철 푸른 대나무 사이로 청량한 바람이 스치는 울창한 대나무 숲이다. 담양 삼다리 대나무 숲 속에는 단풍도 떨어지는 가을인데 하얀색 꽃이 피어 있다. 귀하디 귀한 이 꽃은 바로 ‘차 꽃’이다. 차나무는 봄에 새순을 따서 차를 만드는데, 꽃은 가을에서 초겨울인 10월~11월에 꽃을 피운다. 삼다리 내다마을에 있는 찻집 명가혜에서 차 꽃을 띄운 차를 만났다. 매화꽃이나 국화꽃, 연꽃을 띄워서 향기와 함께 마시는 차는 마셔봤지만, 차꽃을 띄워서 마시는 차는 담양에서 처음 마신다. 담양에서는 대나무 숲 속에서 차나무가 자생한다. 대나무의 잎에서 떨어지는 댓잎 이슬을 먹고 자란다고 해서 ‘죽로차(竹露茶)’로 불린다. 이 곳에서는 죽순껍데기를 덖고 비벼서 만든 ‘죽신 황금차’도 맛볼 수 있다. 담양 삼다리 죽세공품 판매점 ‘담다’ 2층에서는 버선금줄 만들기 체험도 한다. 기순도 명인의 항아리에도 흰색 버선 모양의 종이가 거꾸로 붙여져 있었다. 단지 안에 든 발효 음식에 방해되는 액귀(厄鬼)를 쫏아 낸다는 뜻의 민속이다. 버선을 거꾸로 붙이는 이유는 나쁜 병균들이 버선을 타고 올라가다가 버선코의 끝부분에서 더는 올라가지 못하고 소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순창 고추장 민속마을 전북 순창은 고추장으로 유명한 고을이다. 관광지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숨은 비경과 맛집이 많아 여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슬로시티(Slow City)’라고 불리는 듯하다. 국내 최초로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강천산(剛泉山) 계곡은 기암괴석과 병풍폭포, 용소 등 크고 작은 폭포가 즐비해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곳. 진한 붉은색 단풍 빛이 오래간다는 ‘애기단풍’이 한창이었다. 강천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섬진강과 영산강을 만드는 뿌리가 된다고 한다. 계곡에 놓여 있는 ‘송음교(松蔭橋)’의 기둥과 난간은 메주를 새끼줄로 엮은 모양이라 이 곳이 ‘순창 고추장’의 고장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아미산 자락에 있는 순창고추장민속마을은 군내 곳곳에 흩어져 있는 고추장 제조 장인을 모아 1994~1997년 계획적으로 조성한 마을이다. 이곳의 ‘순창장본가’에서 강순옥 식품명인(64호·순창고추장)과 함께 고추장을 만들기 체험에 도전했다. 메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체험장에서 강 명인은 메줏가루와 고춧가루, 찹쌀, 소금, 조청 등 고추장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를 하나하나 설명했다. 순창에서는 고추장을 담글 때 네모난 메주가 아니라 도넛처럼 가운데가 뻥뚫린 동그란 모양의 ‘떡메주‘(고추장 전용 메주)를 사용한다. 체험에는 고추장 만들기 뿐 아니라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에 소개된 ‘고추장 버터’ 만들기도 있다. 버터 30g에 고추장과 꿀·쪽파·말린 마늘 조각 등을 취향에 맞게 넣어서 ‘나만의 이색 버터’를 만드는 것. 같은 재료인데도 만든 사람마다 전부 다른 맛이 나오는 게 신기했다. 바게트 빵에 고추장 버터를 발라서 먹으니 동서양이 섞인 오묘한 맛이 난다. 외국인은 버터 맛을 좋아할 것이고, 한국인은 매콤하면서도 달콤한 꿀맛에 반해버리는 특제소스다. 이렇게 장을 담근 후 최종 완성까지는 발효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나라 전통장을 대표적인 ‘슬로 푸드(Slow Food)’라고 부른다. 이 ‘시간’을 책임지는 도구가 바로 옹기다. 장은 옹기 항아리에서 발효되고, 숙성되면서 최종적으로 완성된다. 순창옹기체험관을 찾아 대한민국 향토명품 장인 권운주 도예가로부터 옹기만드는 법을 배웠다. 물레 위에 흙을 올려놓고 그릇을 빚어 보는 시간이다. 체험을 마친 뒤 결과물인 그릇을 구운 후 택배로 집으로 보내준다. 권 도예가의 시범을 보면서 물레질을 해보았다. 예전에 작은 컵은 만들어본 적이 있지만, 큰 항아리에는 도전해본 적이 없었다. 배는 불룩하고 주둥이는 좁아지는 항아리를 만들려고 했지만, 결국은 울퉁불퉁 손자국이 남은 화분 비슷한 것이 만들어졌다. 어찌됐든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그릇이 탄생한 것으로 만족했다. 섭씨 1200도의 고열의 불에 한번 구워내는 옹기 항아리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통기성(通氣性)’이다. 옹기는 물은 통과하지 못하지만, 공기는 통과시키는 그릇이다. 그래서 옹기 항아리는 ‘숨을 쉰다‘고 말한다. 도자기는 순도 높은 고령토로 빚어 고온의 가마에서 두 번 굽기 때문에 빈틈이 거의 없다. 반면 옹기는 잡티가 많이 포함돼 있는 질흙으로 만든다. 그래서 굽는 과정에서 흙에 들어 있는 유기물질로 인해 미세한 기공이 생긴다. 이 미세한 기공이 항아리 안과 밖을 단절시키지 않고, 소통시켜주는 작용을 한다. 이런 옹기 덕분에 우리나라는 발효음식이 발달할 수 있었다. 우리 어머니들이 정한수를 떠놓고 기도했던 곳도 장독대였다. 간장이나 된장은 몇 년씩 두고 먹는 음식의 기본 재료였기 때문이다. 장맛이 변하면 집안에 우환이 생기고, 장독대가 깨지는 것은 집안이 망하는 것을 상징했다. 그래서 장을 담글 때 좋은 날을 택일해 목욕재계했고, 장이 익어갈 때면 독에 솔가지와 고추, 숯을 새끼줄로 엮어 걸어두고, 흰 버선을 거꾸로 붙여 부정을 막았다. 이렇게 장독이 영험한 힘을 갖게 된 것은 옹기로 만든 그릇에서 익는 장과 술, 식초 등 발효식품이 제대로 익기 위해서는 사람의 힘만이 아니라 옹기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담양의 기순도 명인과 순창의 강순옥 명인도 다음달 2일 파라과이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기념해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 코레일관광개발은 함께 ‘K-미식 장 벨트 기차여행’ 상품을 만들었다. 담양의 고려전통식품 기순도 명인과 함께 전통 장담그기 체험, 담양 삼다리 내다마을에서 버선금줄만들기와 죽로차 체험, 순창장본가 강순옥 명인과 함께 고추장 담그기체험, 순창 무형문화재 청자기능보유 이수자 권운주 선생과 함께 하는 옹기체험을 하는 미식여행이다. ●맛집= 순창에서는 미슐랭 스타 유현수 셰프가 고추장, 간장, 된장 3가지 소스를 이용해 개발한 ‘순창 삼합’이 화제다. 삼합이란 원래 삼겹살 수육과 홍어를 묵은김치에 싸먹는 음식. ‘순창삼합’은 고추장으로 매콤달콤하게 맛을 낸 ‘섬진강 고추장 장어튀김’, 숙성된 간장으로 절인 ‘순창 씨간장김치’, 구수한 청국장 소스를 얹은 ‘순창 청국장 수육’으로 구성됐다. 내륙지방이라 홍어대신 섬진강 장어를 내세운 게 흥미롭다. 그런데 오히려 주인공은 재료 위에 듬뿍 발라져 있는 전통소스 3총사다. 느끼한 장어 튀김을 순창고추장이 매콤달콤하게 잡아주고, 수육 위에 올라가 있는 청국장 소스는 고급진 느낌이다. 수십년 묵은 명가의 씨간장으로 담은 묵은 김치로 싸먹으면 모든 음식이 마침내 조화를 이룬다. 담양의 대표음식은 떡갈비. 1963년부터 담양 전통의 ‘가리구이’를 팔아온 덕인관에서 떡갈비를 맛보았다. 가리구이는 갈비구이의 순우리말이라고. 덕인관의 한우떡갈비는 120년 숙성한 씨 간장을 사용하며, 12시간 이상 숙성시켜 감칠맛이 대단했다. 궁중음식이었던 떡갈비는 갈비에 붙은 살을 떼어 내 수십 차례 칼집을 넣어 다지고 양념하여 동그랗게 빚은 후 갈비뼈에 얹어 석쇠에 구운 요리. 아무리 맛이 있어도 임금이 체통을 벗어던진 채 갈비를 손에 들고 뜯을 수 없어 젓가락으로 집어 먹을 수 있게 만들게 됐다고 한다. 대마도 정벌 후 일본에 다녀오면서 외교관으로 활약했던 노송당 송희경(1376~1446) 선생이 조정을 떠나 담양에 정착해 궁중의 진미 중 하나를 전한 것이 담양 떡갈비다. 담양 떡갈비는 조선시대 어른들이 먹기 편하도록 만들었다고 하여 ‘효갈비’로도 불렸다고 한다. 담양·순천=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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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도하는 마음으로… 370년 묵은 행운, 씨간장[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최근 방영된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에서는 스타 셰프들이 한국의 전통장(고추장, 된장, 간장)을 주제로 기발한 음식을 선보였다. 우리나라 음식 맛의 정수인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가 예고되고 있다. 최종 등재는 12월 2∼7일 파라과이에서 열리는 제19차 무형유산위원회에서 결정된다. 담양과 순창의 장 담그기 명인들을 찾아 ‘K미식 장벨트 기차여행’을 떠났다.● 담양 죽염으로 담그는 전통장전남 담양군 창평면에 있는 대숲을 지나 마당에 들어서니 1200여 개의 항아리가 장엄하게 펼쳐졌다. 대한민국식품명인 제35호(진장) 기순도 할머니의 보물단지들이다. 기 명인이 항아리 뚜껑을 열고 표주박으로 간장을 퍼올리자 먹물처럼 새까만 간장 위로 푸른 하늘이 반짝였다. “집안에서 10대째 종부들이 지켜온 간장입니다. 370년이 넘은 씨간장이에요.”기 명인은 스물네 살 때 담양 장흥 고씨 양진재 종가의 종부로 시집온 후 50년이 넘도록 장을 담가 왔다. 제사나 명절 등 특별한 날에만 조금씩 꺼내 쓰는 씨간장은 2∼3년에 한 번씩 ‘진장(5년 넘게 숙성한 간장)’을 부어 양을 유지한다. 기 명인이 따라준 씨간장을 혀끝으로 살짝 맛보았더니 온몸의 미각세포를 일깨운다. 그는 “씨간장은 약입니다. 오늘 저녁에 속이 좀 편안하실 겁니다”라고 말했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 시 국빈 만찬에서 ‘독도새우’와 함께 기 명인의 370년 된 씨간장으로 구운 ‘한우갈비구이’가 화제를 모았다. AFP통신, 데일리메일 등은 “미국보다 더 오래된 간장이 메뉴로 제공됐다”고 소개했다. 기 명인은 2021년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 초청됐을 때도 작은 항아리에 씨간장을 담아 갔다. 유네스코 측은 이 씨간장을 금고에 보관할 정도로 예우했다. 기 명인으로부터 장 담그기를 배우는 시간도 가졌다. 메주에 ‘죽염수’를 붓고 대나무를 태워 만든 숯과 고추, 대추를 넣어서 담그는 시범을 보여주었다. 이 집의 장맛의 토대는 바로 ‘죽염(竹鹽)’으로, 담양의 3년 이상 자란 왕대를 잘라 천일염을 넣고 소나무 장작불에서 구워내 만든다. 죽염에 지하 150m 암반수를 섞은 죽염수로 담근 간장과 된장은 짜지 않고 감칠맛이 난다. “메주는 콩을 동짓달에 끓여서, 섣달에 발효를 시킵니다. 정월엔 장을 담그지요. 좋은 날을 받아서 장을 담글 때는 항상 목욕재계하고, 기도하고 시작합니다.” 상온에서 2∼3개월 숙성한 뒤에는 ‘장 가르기’를 할 때가 온다. 병 속에서 잘 발효돼 짙은 색으로 변한 죽염수를 따라 내는 것이다. “왜 장 가르기를 하는 거죠?” “장을 갈라서 담아줘야 메주는 된장이 되고, 액체는 간장이 되지요.” 아, 그렇구나! 메주로 된장을 만드는 것은 알았지만, 하나의 메주에서 동시에 간장도 나오고 된장도 만들어진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이다. “간장과 된장이 함께 나오는 건 우리 문화의 특징입니다. 중국이나 일본은 된장은 된장대로, 간장은 간장대로 따로 만듭니다. 왜냐하면 메주가 없이 콩으로 발효를 시키기 때문에 한 가지밖에 만들 수가 없지요.”(기순도 명인) 간장을 따라 낸 후에는 병 속에 남은 메주를 긁어내 잘게 부수면 된장이 된다. 된장을 담은 병(450g)과 간장을 담은 병(300mlL에 이름과 날짜를 써서 라벨을 붙인다. 체험 참가자들은 이 병을 집으로 가져가 숙성 후 먹을 수 있다. 담양의 명품은 사시사철 푸른 대나무 사이로 청량한 바람이 스치는 울창한 대나무 숲이다. 담양 삼다리 대나무 숲 속에는 가을인데 하얀색 꽃이 피어 있다. 귀하디 귀한 이 꽃은 바로 ‘차 꽃’이다. 차나무는 봄에 새순을 따서 차를 만드는데, 꽃은 가을에서 초겨울인 10∼11월에 꽃을 피운다. 삼다리 내다마을에 있는 찻집 명가혜에서 차 꽃을 띄운 차를 만났다. 매화꽃이나 국화꽃, 연꽃을 띄운 차는 마셔봤지만, 차꽃을 띄워서 마시는 차는 처음이다. 담양에서는 대나무 숲속에서 차나무가 자생한다. 댓잎 이슬을 먹고 자란다고 해서 ‘죽로차(竹露茶)’다. 명가혜에서는 죽순 껍데기를 덖고 비벼서 만든 ‘죽신 황금차’도 맛볼 수 있다.담양 삼다리 죽세공품 판매점 ‘담다’ 2층에서는 버선금줄 만들기 체험도 한다. 기순도 명인의 항아리에도 흰색 버선 모양의 종이가 거꾸로 붙어 있었다. 버선을 거꾸로 붙이는 이유는 나쁜 병균들이 버선을 타고 올라가다가 버선코의 끝부분에서 더는 올라가지 못하고 소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순창 고추장 민속마을 전북 순창의 강천산(剛泉山) 계곡은 기암괴석과 병풍폭포, 용소 등 크고 작은 폭포가 즐비해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곳. 진한 붉은색 단풍 빛이 가장 오래간다는 ‘애기단풍’이 한창이었다. 계곡에 놓여 있는 ‘송음교(松蔭橋)’의 기둥과 난간은 메주를 새끼줄로 엮은 모양이라 이곳이 ‘순창 고추장’의 본향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아미산 자락에 있는 순창고추장민속마을은 군내 곳곳에 흩어져 있는 고추장 제조 장인을 모아 1994∼1997년 계획적으로 조성한 마을이다. 이곳의 ‘순창장본가’에서 강순옥 식품명인(64호·순창고추장)과 함께 고추장 담그기에 도전했다. 강 명인은 “순창에서는 고추장을 담글 때 네모난 메주가 아니라 도넛처럼 가운데가 뻥 뚫린 동그란 모양의 ‘떡메주’(고추장 전용 메주)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고추장 만들기뿐 아니라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에 소개된 ‘고추장 버터’ 만들기 체험도 있어 외국인들에게도 인기다. 버터 30g에 고추장과 꿀, 쪽파, 말린 마늘 조각 등을 취향에 맞게 넣어서 ‘나만의 이색 버터’를 만드는 것. 바게트 빵에 고추장 버터를 발라서 먹으니 동서양이 섞인 오묘한 맛이 난다. 외국인은 버터 맛을 좋아할 것이고, 한국인은 매콤하면서도 달콤한 꿀맛에 반해버리는 특제 소스다. 이렇게 장을 담근 후 최종 완성까지는 발효와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나라 전통장은 대표적인 ‘슬로 푸드(Slow Food)’다. 이 ‘시간’을 책임지는 도구가 바로 옹기다. 순창옹기체험관을 찾아 대한민국 향토명품 장인 권운주 도예가로부터 옹기 만드는 법을 배웠다. 물레 위에 흙을 올려놓고 그릇을 빚어 보는 시간이다. 체험을 마친 뒤 결과물인 그릇을 구운 후 택배로 집으로 보내준다. 섭씨 1200도의 고열의 불에 한 번 구워내는 옹기 항아리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통기성(通氣性)이다. 옹기는 물은 통과하지 못하지만, 공기는 통과시키는 그릇이다. 그래서 옹기 항아리는 ‘숨을 쉰다’고 말한다. 도자기는 순도 높은 흙으로 빚어 고온의 가마에서 두 번 굽기 때문에 빈틈이 거의 없다. 반면 옹기는 잡티가 많이 포함돼 있는 질흙으로 만든다. 그래서 굽는 과정에서 유기물질로 인해 미세한 기공이 생긴다. 이 미세한 기공 덕분에 항아리는 숨을 쉬고, 옹기 덕분에 우리나라는 발효 음식이 발달할 수 있었다. 담양의 기순도 명인과 순창의 강순옥 명인도 다음 달 2일 파라과이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기념해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 코레일관광개발은 함께 담양과 순창의 명인들로부터 장 담그기를 배우고 음식을 맛보는 ‘K-미식 장 벨트 기차여행’ 코스를 만들었다.● 맛집=순창에서는 미슐랭 스타 유현수 셰프가 고추장, 간장, 된장 3가지 소스를 이용해 개발한 ‘순창 삼합’이 화제다. 삼합이란 원래 삼겹살 수육과 홍어를 묵은김치에 싸먹는 음식. 순창삼합은 고추장 양념을 한 ‘섬진강 고추장 장어튀김’, 숙성된 간장으로 절인 ‘순창 씨간장김치’, 구수한 청국장 소스를 얹은 ‘순창 청국장 수육’으로 구성됐다. 내륙 지방이라 홍어 대신 섬진강 장어를 내세운 게 흥미롭다. 그런데 오히려 주인공은 재료 위에 듬뿍 발라져 있는 전통소스 3총사다. 느끼한 장어 튀김을 순창고추장이 매콤달콤하게 잡아주고, 수십 년 묵은 명가의 씨간장으로 담은 김치로 싸먹으면 모든 음식이 마침내 조화를 이룬다.글·사진 담양·순창=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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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가 주목하는 ‘힙한 아이템’… K한복 날다

    “K팝 아티스트들이 입은 한복이 글로벌한 주목을 받으면서, 젊은층에게 한복이 단순한 전통의상이 아니라 패션 트렌드를 반영하는 ‘힙한 아이템’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장동광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장·사진) 최근 tvN 드라마 ‘정년이’가 큰 인기를 끌면서 주인공인 김태리(정년이 역)가 입고 나오는 1950년대 한복 의상도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주연 배우 김태리는 올해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공진원)의 ‘한복 웨이브(Hanbok Wave)’ 사업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한복 웨이브는 ‘한복 분야 한류 연계 협업 콘텐츠 기획 개발’ 사업으로, 2022년 피겨 스타 김연아, 2023년 가수 겸 배우 수지 등 한류 스타와 한복 브랜드 디자이너들이 협업해 한복 의상을 기획 개발하는 프로젝트다. 김태리도 6월부터 공모를 통해 선정된 한복스튜디오 혜온, 리슬, 오르디자인하우스, 주식회사 한복생활 등 4개 업체 디자이너들과 함께 직접 한복 디자인을 개발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한복은 12월에 국내외 전광판과 패션잡지 화보로 공개한다. 하이라이트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 24일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에서 한복 패션 영상을 송출하는 순간. 맨해튼 거리에서 한류 스타가 입은 총천연색 한복 패션 영상은 매년 세계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아 왔다. “한류 붐에 따라 한식, 한옥도 관심이 많지만 한복은 쉽게 이동 가능하고, 시각적인 효과가 커 ‘K컬처’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죠. 특히 BTS, 블랙핑크, 뉴진스 등 K팝 스타들도 즐겨 입기 때문에 국내외 젊은 세대들에게 스타일리시한 패션 아이템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올 8월 공진원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개최한 한복 박람회 ‘한복상점’에는 나흘간 4만여 명의 관람객이 몰려들었다. MZ세대 관람객이 대거 몰려들면서 한복상점은 전년 대비 61% 상승한 19억 원의 매출을 달성해 큰 화제를 모았다. 짙은 회색 두루마기에 뿔테 안경을 쓴 한복 패션을 즐겨 하는 장 원장은 지난해 취임 이후 ‘한복의 일상화’ ‘한복의 대중화’를 내걸고 한복 문화 확산 캠페인을 벌여 왔다. 이를 위해 한복문화주간, 한복상점, 한복 곱게 입기 영상 콘텐츠 제작, 지역 한복문화창작소 조성 등 다양한 사업을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펼쳐 왔다. 그는 “한복이 특별한 날만 입는 이벤트성 의상이라는 인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이 ‘한복 근무복 디자인 개발’ 사업이다. 공진원은 직종별로 350여 가지의 한복 근무복 디자인을 개발해 왔다. 신라복 한복 디자인을 근무복으로 도입한 경주 화백컨벤션뷰로를 비롯해 현재까지 총 43곳이 한복 근무복을 도입했다. “현재 한복을 입으면 궁궐에 무료 입장을 해줍니다. 앞으로는 국립국악원 공연장,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등에서 한복 입은 관객에겐 입장료 50% 할인 혜택을 주는 등 한복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을 해가면 좋겠습니다. 몇 년 전에 대통령과 장관들이 한복을 입고 국무회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요. 국회도 1년에 한 번 ‘한복의 날’을 정해서 한복을 입은 국회의원들이 품격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 한복 대중화에 큰 도움이 될 듯합니다.” 요즘 한복은 국제 무대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외교수단이다. 2024 파리 올림픽 기간에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린 한복패션쇼에는 국내 주요 한복 디자이너 7인이 만든 한복을 프랑스 모델들이 입고 나와 파리 시민들에게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또한 10월 베트남 호찌민에서 열린 ‘2024 한-베트남 우호 문화의 날’ 행사에서는 한복과 베트남 아오자이 등 양국 전통 의상을 소개하는 패션쇼가 열리기도 했다. 내년이면 공진원 한복진흥센터가 10주년을 맞는다. 장 원장은 “올해 9월 전통문화산업진흥법이 시행됨에 따라 한복, 한지, 한식 등을 총망라한 페스티벌과 한복 문화에 대한 역사적 이론적 담론을 모색하는 학술포럼도 내년에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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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iT 서울 2024’ 이달 26∼27일 개최… 글로벌 여행 테크·마케팅 학술대회

    여행 기술 기업 타이드스퀘어와 WiT가 공동 주관하는 글로벌 여행 테크·마케팅 학술대회인 ‘WiT 서울 2024’가 26∼27일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앰배서더서울 호텔에서 열린다. 올해 주제는 ‘넥스트 제너레이션(Next Generation)’으로 차세대 여행 콘텐츠에 대한 토론이 진행된다. 대한항공, 마이리얼트립, 아고다, 하나투어, 아마존 웹 서비스, 클룩, 포커스라이트, 시리움 등 여행 기업 50여 곳이 참여한다. WiT서울과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가 협력한 ‘K-트래블 테크 서밋’도 열린다. 인공지능(AI) 기술과 산업을 융합한 ‘AI시티’ 정책포럼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문진석 의원이 주최하고 도시·투자 콘텐츠 전문미디어인 시티타임스가 주관한다. AI 기술들이 실제 신도시 건설 계획과 정책에 반영되는 과정에 대해 논의한다. 에어뉴질랜드는 뉴질랜드의 농구 스타 스티븐 애덤스가 출연하는 기내 안전 비디오 ‘Every Point Counts’를 14일 공개했다. 주인공뿐 아니라 코미디언 톰 세인즈버리, 스포츠 방송인 앤드루 멀리건, 틱톡 스타 테오 셰이크스, 스티븐의 누나이자 올림픽 전설인 데임 발레리 애덤스 등 뉴질랜드 출신 스타들이 다수 출연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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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년이’ 김태리 한복, 연말 뉴욕 타임스퀘어에[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K팝 아티스트들이 입은 한복이 글로벌한 주목을 받으면서, 젊은 층에게 한복이 단순한 전통의상이 아니라 패션 트렌드를 반영하는 ‘힙한 아이템’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장동광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장) 최근 tvN 드라마 ‘정년이’가 큰 인기를 끌면서 주인공인 김태리(정년이 역)가 입고 나오는 1950년대 한복의상도 큰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짧지만 하려했던 여성국극(국악극)의 전성기를 그린 이 드라마에서 한복은 단순한 의상을 넘어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개화기 이후 서양 문물의 유입과 구호물자로 수입된 다양한 원단이 사용되면서, 정년이가 입고 다니는 체크무늬 저고리를 비롯해 레이스와 꽃무늬가 달린 치마, 버선, 물방울 무늬 저고리 등 색다른 스타일의 한복이 나타나던 시기였다. 또한 한국전쟁 이후 의복의 실용성을 중시하게 되면서 저고리의 길이는 짧아지고, 소매가 좁아지는 등 입기 편하고 활동하기 편한 디자인으로 변화하게 됐다. ‘정년이’의 주연 배우 김태리는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고애신, 영화 ‘외계+인’에서 영화 이안 역을 맡았을 때도 다채로운 한복의 맵씨를 뽐내왔다. 또한 올해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공진원)의 ‘한복 웨이브(Hanbok Wave)’ 사업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한복 웨이브는 ‘한복분야 한류연계 협업콘텐츠 기획 개발’ 사업으로, 2022년 피겨 스타 김연아, 2023년 가수 겸 배우 수지 등 한류 스타와 한복 브랜드 디자이너들이 협업해 한복 의상을 기획개발하는 프로젝트다. 앞서 김연아는 달항아리와 비슷한 곡선의 우아한 핑크색 한복을 입은 화보를 공개했고, 수지는 스타일리쉬한 한복 패션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김태리도 6월부터 공모를 통해 선정된 한복스튜디오 혜온, 리슬, 오르디자인하우스, 주식회사 한복생활 등 4개 업체 디자이너들과 함께 직접 한복디자인을 개발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한복은 12월에 국내외 전광판과 패션 잡지 화보로 공개한다. 하이라이트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24일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서 한류스타가 한복을 입고 촬영한 영상을 송출하는 순간. 맨해튼 거리에서 연말에 펼쳐지는 한류스타가 입은 총천연색 한복 패션 영상은 매년 세계인들의 눈길을 사로 잡아왔다. “한류붐이 일면서 세계적으로 한국의 전통문화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한식이나 한옥도 관심이 많지만, 옮겨다니기가 쉽지 않아요. 그러나 한복은 패션쇼를 통해서나, 길거리 의상을 통해서도 쉽게 볼 수 있어 시각적인 효과가 큽니다. BTS, 블랙핑크, 뉴진스 등 K팝 스타들도 입었던 한복은 ‘K컬쳐’의 아이콘이 됐습니다. 외국인들 뿐 아니라 국내 MZ세대들에게도 한복은 스타일리쉬한 잇템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8월 공진원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개최한 한복박람회 ‘한복상점’에는 나흘간 4만 여명의 관람객들이 몰려들었다. 젊은 세대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한복상점은 전년 대비 61% 상승한 19억원의 매출을 달성해 패션업계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한복의 매력은 곡선의 미학이 아닐까요. 달항아리를 닮은 치마, 기와집 처마처럼 5도 정도 살짝 하늘로 향해 구부러진 버선코가 바로 그것입니다. 또한 한복은 원피스 형태의 중국 치파오, 일본 기모노과 달리 상의, 하의가 나눠져 있는 구조인데요. 천연염색한 다양한 컬러로 배색할 수 있어 훨씬 화려합니다. 동정, 깃 하나하나를 다른 색깔로 만들어 액센트를 주기도 하고, 장신구 노리개로 변화를 줍니다.“ 짙은 회색 두루마기 한복에 뿔테안경을 쓴 한복 패션을 즐겨 하는 장 원장은 지난해 취임 이후 ‘한복의 일상화 ’한복의 대중화‘를 내걸고 한복문화 확산 캠페인을 벌여왔다. 이를 위해 한복문화주간, 한복상점, 한복 곱게 입기 영상 콘텐츠 제작, 전통한복 입기 체험 프로그램 운영, 지역 한복문화창작소 조성 등 다양한 사업을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펼쳐왔다. 장 원장은 ”한복이 특별한 날만 입는 이벤트성 의상이라는 인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공진원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서 진행하는 사업이 ’한복 근무복 디자인 개발‘ 사업이다. “직장인들이 근무하는 환경에서도 편리하게 입을 수 있도록 디자인한 한복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한복 근무복은 좀더 차분한 마음으로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하고, 고객을 응대할 때에도 정중하고 친근한 분위기가 형성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공진원은 2020년 문화예술업, 2021년 관광숙박업, 2022년 운송 및 여가서비스업, 2023년 매장판매와 상품대여직 등이 입을 수 있는 350여 가지의 한복 근무복 디자인을 개발해왔다. 신라복 한복 디자인을 근무복으로 도입한 경주 화백컨벤션뷰로를 비롯해 현재까지 총 43곳이 한복 근무복을 도입했다. ”현재 한복을 입으면 궁궐에 무료입장을 해줍니다. 앞으로는 국립국악원 공연장, 서울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등에서 한복을 입고 오면 입장료 30~50% 할인 혜택을 주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한복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을 해가면 좋겠습니다. 외국에서는 오페라 공연에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오지 않습니까. 2021년에 대통령과 장관들이 한복을 입고 국무회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요. 국회도 개원식이나 1년에 한번 정도 ’한복의 날‘을 정해서 국회의원들이 한복을 입고 품격있는 회의를 하면, 한복 대중화에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요즘 한복은 국제 외교무대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외교수단이다. 지난 7월에 열린 2024 파리올림픽 기간 동안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린 한복패션쇼에는 국내 주요 한복디자이너 7인이 만든 한복을 프랑스 모델들이 입고 나와 IOC 스포츠 인사와 패션관계자들에게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또한 지난 10월 베트남 호치민에서 열린 ’2024 한-베 우호 문화의 날‘ 행사에서는 한복과 베트남 아오자이 등 양국 전통의상을 소개하는 패션쇼가 열렸다. ”우리 전통 한복과 베트남 아오자이를 번갈아 입고 나오는 패션쇼였는데, 너무나 반응이 좋았습니다. 한-베 우호 문화행사를 보고 필리핀, 인도네시아에서도 양국 전통의상을소개하는 비슷한 행사를 기획하고 싶어하네요. 해외교류 외교무대나 재외 한국문화원에서 한국문화를 홍보하기에는 한복만큼 좋은 아이템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년이면 공진원 한복진흥센터가 10주년을 맞는다. 공진원은 한복진흥정책을 총괄하는 기관으로서 한복 기술자 양성교육을 하는 한복 마름방과 지역 한복문화 창작소 등을 크게 확충해나가고 있다. ”올해 9월에 전통문화산업진흥법이 시행됐습니다. 한복과 한지, 한식 등 전통문화를 진흥하는 페스티벌을 내년에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왜 일상적으로 한복을 입는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학술적인 뒷받침을 할 수 있는 포럼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복이 왜 좋은 것인지, 우리 시대에 한복이 다시 부각되는 이유, K컬쳐란 과연 무엇인가를 찾는 이론적, 역사적인 담론을 만들고, 한복을 대중화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 나가는 작업을 해나갈 예정입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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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류 문명이 시루떡처럼 쌓여 있는 해가 뜨는 땅[전승훈의 아트로드]

    튀르키에 여행이라고 하면 이스탄불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비잔틴제국과 오스만제국의 중심지였던 이스탄불도 아름답지만,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가 있는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고대 문명의 시원을 찾아가는 여행도 색다르다. 선사시대 차탈회위크 유적지부터 히타이트(청동기), 프리기아(철기), 알렉산더 제국, 로마 제국, 셀주크 투르크, 오스만 제국까지 그리스 로마 문명,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이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여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해가 뜨는 땅’이란 뜻의 아나톨리아반도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여행을 떠났다. ●황금손 미다스왕의 도시, 고르디온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에서 남서쪽으로 94km 떨어진 평원. 기원전 9~3세기 경 고대 프리기아 왕국의 수도였던 고르디온에는 부드러운 곡선의 봉우리가 울퉁불퉁 솟아 있다. 마치 경주 대릉원처럼 130여 개의 왕과 귀족들의 고분 유적이 흩어져 있는 모습이다.   지난해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고르디온은 신화 속 이야기가 넘쳐나는 동네다. ‘황금손’과 ‘당나귀 귀’로 유명한 미다스 왕이 신화 속 인물이 아니라 실존하는 왕이었다니! 고르디온에서 가장 큰 미다스 고분(높이 53m, 직경 300m)에 들어갈 때 무척 흥분됐다. 무덤 입구 철제로 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돌로 벽을 쌓은 좁고 긴 통로가 이어진다. 영화 ‘인디애나 존스’에서 나올 법한 긴 복도를 걸어가자 통나무를 쌓아서 만든 묘실이 나타났다. 석실 고분이 아니라 아름드리 향나무로 외벽을 쌓은 목곽분이다. 나무로 짠 널방이 무려 2700년 동안이나 썩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에 입이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았다. 미다스 고분의 묘실(길이 6.2m, 폭 5.15m, 높이 3.25m)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 목재 건축물이다.  기원전 740년 경에 조성된 이 무덤을 1957년 발굴했을 때 60~65세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됐다. 유골의 주인공은 미다스 왕이 아니라, 아버지 고르디우스의 무덤이라는 설도 있다. 관 옆에는 9개의 나무로 만든 테이블 위에 접시와 그릇 등이 놓여져 있었다. 앙카라에 있는 아나톨리아문명박물관에서 이 곳에서 발견된 ‘미다스왕의 두개골’과 화려한 장식이 새겨진 나무 테이블과 칸막이 유물을 볼 수 있었다.  미다스 고분 앞에는 고르디온 박물관이 있다. 고르디온 박물관 입구에는 말을 타고 칼을 든 알렉산더 대왕과 앞에 미로처럼 얽힌 고르디우스 매듭 그림이 붙어 있다. 알렉산더가 고르디온에 도착한 것은 기원전 333년이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막힌 문제를 단칼에 해결하는 ‘발상의 전환’을 뜻하기도 한다.  신화 속 이야기인 줄 알았던 고르디우스와 미다스 왕의 전설은 1950년대 미국 펜실베니아대 발굴팀의 연구로 역사적 사실로 드러났다. 30년간 2헥타르 이상의 고르디온 성채와 무덤을 발굴하자 다양한 유물이 쏟아졌다. 기원전 10~9세기에 지어진 초기 프리기아 왕국의 성채의 석조 건축물에서는 화려한 색상과 패턴화된 모자이크 벽돌로 꾸며진 바닥이 발견됐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벽돌 모자이크 장식이라고 한다. 이 모자이크는 고르디온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프리기아는 아나톨리아반도에서 3200년 전에 히타이트 제국이 소멸한 뒤, 기원전 12세기부터 7세기 경까지 역사의 전면에서 활약한 왕국이다. 서양인들은 그리스 신화를 통해 소아시아(아나톨리아)에서 번영을 이끌었던 미다스를 ‘황금에 눈먼 탐욕주의자’ ‘당나귀 귀가 된 어리석은 왕’이라고 조롱해왔다. 그러나 실제로 미다스는 프리기아 왕국의 황금기를 이끈 왕이었다. 서양인들은 칭기즈칸, 아틸라, 티무르와 같은 아시아의 영웅들을 문명을 파괴하는 약탈자, 도살자, 흡혈귀로 묘사했던 것과 비슷하다.  미다스 왕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라는 전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아폴로 신의 저주를 받아 당나귀 귀로 변한 임금의 비밀을 이발사만 알고 있었다. 그는 말하고 싶은 것을 참을 수 없어 땅을 파고 외쳤다고 한다. 그러자 땅에서 자라는 갈대들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이같은 전설은 신라시대 경문왕도 비슷한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전해온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는 곳이 ‘갈대밭’이 아니라 ‘대나무 숲’이라는 점만 다르다. 그래서 직장내 비밀 이야기를 익명으로 외치는 커뮤니티 공간에 ‘대나무숲’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소아시아의 미다스왕과 신라시대 경문왕이 똑같은 ‘당나귀 귀’ 전설을 가진 것에 대해 일부에서는 프리기아 왕국이 이민자들이 동방으로 망명한 것이 아니냐는 가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튀르키예 민족이 동방의 초원지대에서 아나톨리아 반도 방향으로 이동해왔다는 이야기는 많은데, 거꾸로 프리기아 왕국 이민자들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왔다는 역사적 교류설은 흥미롭기만 하다.    고대 프리기아 왕국에서 해방된 노예가 쓸 수 있었던 빨간색 모자는 서양문화에서 자유와 해방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올해 7월 열렸던 2024 파리올림픽의 마스코트가 바로 이 빨간색 ‘프리기아 모자’였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외젠 들라크루아의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서도 앞장선 여성(마리안느)이 이 모자를 쓰고 있다. 프리기아 모자는 프랑스 대혁명 당시 자유와 해방을 꿈꾸는 시민군의 상징으로 쓰였다. 프리기아 모자는 만화 스머프에서 파파 스머프가 쓰고 나오기도 한다.●이슬람과 기독교 성지가 곳곳에 일반적으로 이슬람 사원(모스크)는 중앙에 커다란 돔이 있고, 주변에 뾰족한 첨탑이 여러개 서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러한 돔 형식의 모스크는 오스만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뒤 비잔틴제국의 스타일을 받아들인 것이라 한다. 그런데 지난해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으로 등재한 12~14세기에 건축된 5개의 튀르키예 이슬람 사원의 분위기는 무척 달랐다. 앙카라, 시브리히사르, 아피온카라히사르에 있는 모스크를 방문했는데, 모두 돔이 없고 사각형 건물에 평평한 지붕을 갖고 있다. 내부로 들어가면 지붕을 나무 기둥으로 떠받친 목조 건물이다. 기둥은 지리산 구례 화엄사 구층암의 자연주의 모과나무 기둥처럼 울퉁불퉁한 나무결을 그대로 살렸다. 기둥 위아랫 부분에는 고대 로마시대의 신전에 쓰였던 화려한 문양의 대리석을 끼워놓기도 했다. 튀르키예 현지 관광가이드 아이발라 괵수 씨는 “섬세한 나무 조각이 잘 보존돼 있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며 “튀르키예의 뿌리가 동아시아라는 걸 보여주는 모스크”이라고 말했다.    앙카라에서 남서쪽으로 25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아피온카라히사르(아피온)에는 히타이트족이 쌓은 201m 높이의 거대한 바위 성채가 도시전체를 내려다본다. 1071년 이곳에 도착한 셀주크는 화산암 꼭대기에 있는 요새의 이름을 따서 이 도시의 이름을 ‘카라 히사르’(검은색 성)라고 지었다.아피온은 강과 샘물, 온천이 유명한 도시다. 지금도 시내에는 수많은 온천이 관광객을 맞는다. 비옥하고 평활한 토지 덕분에 이곳은 각종 농업과 음식문화가 발달했다. 2019년에는 ’유니스코 미식 창의도시‘로 지정됐으며, 음식축제로도 유명하다. 아피온에서 가장 유명한 작물은 바로 아편. 아피온이라는 지명도 아편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모르핀 제주 등에 활용되는 양귀비(아편) 재배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아피온 시내에서 외곽으로 약 23km 정도 가면 프리기안 계곡 입구에 ‘아야지니Ayazini)’라는 동굴 마을이 나온다. 튀르키예의 유명 관광지인 카파도키아처럼 바위를 파서 주거지, 무덤, 교회 등으로 쓰였다고 한다. 아야지니 동굴 마을의 입구의 성모 마리아 교회는 자연 암반을 파서 만든 교회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니 창문과 아치 출입구를 통해 빛이 쏟아져내려오는 모습은 신성한 느낌을 준다. 빛 그림자 앞에 서서 역광으로 사진을 찍으면 인생샷이 나온다. 이 곳에는 ‘인류 최초의 아파트’라고 이름붙여진 집단 거주지도 있다. 튼튼한 기반암을 깎아서 만든 동굴이 계단으로 이어져 여러층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이슬람 국가인 튀르키예에는 기독교 성지도 많이 남아 있다. 동로마제국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13년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은 기독교의 중심지가 됐다. 비잔틴 제국(동로마 제국) 치하에서 기독교 문화가 꽃핀 곳도 바로 튀르키예다. 튀르키예 지역에서는 325년 니케아 공의회를 비롯해 287년까지 모두 7차례의 공의회가 열리기도 했다.  특히 아나톨리아 반도에는 예수의 제자였던 바오로가 선교 여행을 떠났던 흔적도 남아 있어 성지순례를 오는 기독교인들도 많다. 사도 바오로는 세차례 선교여행을 통해 지중해 동부지역인 안티오크, 이코니온, 루스드라, 데르베, 피시디아 안티오크, 에베소, 필립비, 데살로니카, 베뢰아, 아테네, 고린도 등에서 복음을 전했다.  튀르키예 중부의 인구 2만5000명의 소도시 얄바츠에서 동쪽으로 약 3.2km 떨어진 곳에는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Antiochia in Pisidia)가 있다. 성문 유적을 지나면 로마대로 주변에 야외극장이 바라다보이는 곳에 비잔틴 제국시절인 325년 지어져 사도 바오로에게 봉헌됐던 성 바오로 대성당 유적이 있다. 사도 바오로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유대교 회당이 있던 바로 그 곳이다. 원형 예배당에는 돌로 만든 제대와 나무 의자가 놓여 있었다.  신약성서 사도행전 13장에 따르면 바오로는 설교 후 이방인들에게는 환대를 받았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철저히 배척을 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바오로 일행은 ‘발의 먼지를 털어버리고’ 120km 사막길을 걸어 이코니온으로 떠났다.  바오로가 도착한 ‘이코니온’은 현재 코냐(Konya)로 불리는 도시다. 수도 앙카라에서 남쪽으로 250km 떨어진 코냐는 로마제국 당시 시리아에서 에페소와 로마에 이르는 대로가 지나가는 바람에 상업도시로 발전했다. 현재도 인구 140만 명으로 튀르키예에서 7번째로 큰 내륙의 중심도시다.    코냐 근교의 실레(Sille) 마을에는 기독교를 공인했던 콘스탄티누스 1세의 어머니인 성녀 헬레나가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가던 도중 327년에 세웠다는 성당이 있다.헬레나의 이름을 따 ‘아야 엘레니(성 헬레나)’ 성당이라고 불린다.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13년 기독교를 공인하고, 종교의 자유를 선포한 밀라노 칙령을 내리게 된 것은 어머니 헬레나의 역할이 컸다.   11세기 말 셀주크 투르크 왕조의 수도로 번성했던 ​코냐는 튀르키예에서 이슬람 색채가 가장 강한 도시이기도 하다. 사상가이자 시인었던 무함메드 젤랄루딘 루미(1207-1273)가 창시한 이슬람 신비주의 종파인 메블라나 교단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냐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는 루미의 무덤이 있는 메블라나 박물관이다. 에머랄드 빛 타일로 덮인 탑이 돔 위에 우뚝솟아 있는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면 금박으로 수를 놓은 천으로 덮인 관(棺)들이 있다. 메블라나 교단의 역대 스승들의 무덤이다. 맨 안쪽에 있는 가장 크고 중후한 관이 메블라나 루미의 관이다. 메블라나 박물관 뜰에는 흥미로운 분수가 하나 놓여 있다. 물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흐르는 동안 1-2-3-2-1개의 접시에 담기면서 흐르도록 설계돼 있다. 가이드 괵수 씨는 “사람의 일생을 비유한 접시 분수”라고 설명한다. 처음에는 혼자서 태어났다가(1), 사랑을 해서 결혼을 하고(2), 가족을 이뤄 자식을 낳고(3), 자식이 독립하면 다시 부부끼리 살고(2), 결국에는 혼자서 죽음을 맞는다(1)는 이야기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인연을 만들지만, 결국엔 홀로 왔다가 홀로 가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싶다. 루미는 어려운 코란 경전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세마(Sema)’라는 독특한 회전 춤을 통해 신과 일체감을 이루면서 이슬람의 오묘한 진리를 체득할 수 있는 수련 방법을 만들었다. 남자들이 하얀 옷을 펄럭이며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는 ‘세마’는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코냐의 IRFA(문명연구센터)에서 감상한 세마 의식은 무대 위에서 마치 하얀 꽃이 피어나는 듯했다. 대나무 피리인 네이(Ney) 반주에 맞춘 춤은 후반부로 가까워질 수록 빨라진다. 우리나라 농악도 굿거리 장단에서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로 점점 빨라지듯 비슷하다. 회전 속도가 빨라질수록 신과 더 가까워진다고 믿으며, 마침내 신과의 합일에 다가선다는 것. 여러개의 하얀 치마가 태양계의 행성처럼, 빙글빙글 팽이처럼 돌아가며 어지러운 원을 만들어내는데 수행자도, 보는 이도 무아지경에 빠져들게 했다. ● 인류 문명의 시원, 아나톨리아 반도 일반적으로 고대문명은 약 6000년전 경부터 메소포타미아(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이집트(나일강), 인디아(인더스강), 중국(황허) 등 4개의 거대한 강 주변 비옥한 땅에서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튀르키예 아나톨리아 지방 남부에서 약 9500년 전 신석기시대 대규모 주거지인 차탈회위크(Çatalhöyük) 유적지가 발견돼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2012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차탈회위크는 코냐에서 동남쪽으로 52km 떨어진 언덕 위에 형성된 ‘인류 최초의 계획도시’다. 발굴된 18개 지층을 분석해보면 차탈회위크에서는 약 9500년전부터 천년넘는 세월 동안 최소 2000명에서 1만 명이 함께 살았다고 한다. 입구에는 당시 주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진흙집들을 복원해놓았다. 벌집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진흙집들은 집과 집 사이에 지나다닐만한 거리나 골목이 없다. 차탈회위크 주민들은 지붕에 구멍을 뚫어 사다리를 이용해, 지붕위로 나아가 옆집 지붕 위로 걸어다녔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로세로 2~4미터, 높이 3미터 가량의 집 안에 들어가보면 창고와 부엌, 거실이 있고, 정교한 벽화로 꾸며져 있다. 집마다 북쪽 벽에 뿔달린 황소의 머리를 걸고, 흙벽을 채색해 장식했다. 벽에는 별과 태양계, 사람과 여신, 사냥장면 등이 묘사돼 있다. 이 유적지에서도 농업과 다산을 상징하는 여신상 ‘키벨레(Kibele)’가 발견됐다. 이 여신상도 앙카라의 아나톨리아문명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흙으로 만든 집이라 평균 70년 정도면 수명이 다해 새로 지어야 했다. 당시 사람들은 벽을 허무는 대신 흙으로 공간을 메우고, 그 위에 같은 구조로 새 집을 올렸다고 한다. 오랜 세월을 두고 그렇게 쌓아올린 집들이 무려 18층이나 돼 높이가 지표면에서 21m나 상승했다고 한다. 주거지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시신을 집 안에 매장했던 풍습이다. 그러나 차탈회위크에서는 마을의 공동시설이나 종교시설이 발견되지 않아 본격적인 도시라고 볼 수는 없다는 해석도 나온다. 그런데 차탈회위크에서 513km 떨어진 아나톨리아 동남부 괴베클리 테페에서는 1만1500년 전 돌기둥이 100개가 넘는 대규모 종교 건축물 유적지가 발굴돼 세계 문명사를 다시 써야 할 판이다. 학계에 더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아나톨리아반도가 인류 문명의 시원(始原)을 찾아가는 여행지로 꼽히는 이유다. ●앙카라 가볼만한 곳=튀르키예의 수도 앙카라를 튀르키예의 행정수도 정도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나톨리아 반도의 고대문명이 살아 숨쉬고 있는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다. 앙카라 칼레시(앙카라성) 성벽에는 로마시대 라틴어가 쓰여진 돌이 수두룩하고, 성채 위 붉게 물드는 노을에서는 청춘 남녀가 사랑을 고백한다. 하마뫼뉘 거리에선 오스만제국 스타일의 주택을 개조한 카페에서 튀르키예식 커피점을 보기도 한다. 앙카라의 현지인 맛집 울루다으(Uludag) 레스토랑에서는 ’이스켄데르 케밥‘이 시그니처 메뉴다. ‘이스켄데르(iskender)’는 알렉산더 대왕의 튀르키예식 발음. 양념한 양고기와 쇠고기를 섞어서 빙글빙글 도는 기계에서 구운 뒤 얇게 썰어내 먹는 케밥이다. 3층 창밖으로는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가 보인다. 투명한 잔에 담긴 붉은색 홍차 안에 모스크를 담아서 사진을 찍어봤다. 튀르키예 현지 분위기가 물씬 나는 앵글이다. 아나톨리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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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굴 교회로 빛이… 잊지 못할 홀리 모먼트[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튀르키예 여행이라고 하면 이스탄불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비잔틴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중심지였던 이스탄불도 아름답지만,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가 있는 아나톨리아반도에서 고대 문명의 시원을 찾아가는 여행도 색다르다. 선사시대 차탈회위크 유적지부터 히타이트(청동기), 프리기아(철기), 알렉산더 제국, 로마 제국, 셀주크 튀르크, 오스만 제국까지 그리스 로마 문명,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이 시루떡처럼 쌓여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해가 뜨는 땅’이란 뜻의 아나톨리아반도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여행을 떠났다. ● 황금손 미다스 왕의 도시, 고르디온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에서 남서쪽으로 94km 떨어진 평원. 기원전 9∼3세기경 고대 프리기아 왕국의 수도였던 고르디온에는 부드러운 곡선의 봉우리가 울퉁불퉁 솟아 있다. 마치 경주 대릉원처럼 130여 개의 왕과 귀족들의 고분 유적이 흩어져 있는 모습이다.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고르디온은 신화 속 이야기가 넘쳐나는 동네다. ‘황금손’과 ‘당나귀 귀’로 유명한 미다스 왕이 신화 속 인물이 아니라 실존하는 왕이었다니! 고르디온에서 가장 큰 미다스 고분(높이 53m)에 들어갈 때 무척 흥분됐다. 무덤 입구 철제로 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 나올 법한 돌로 쌓은 좁고 긴 통로가 나타난다. 복도 끝에 묘실이 나타났다. 아름드리 향나무로 외벽을 쌓은 목곽분이다. 나무로 짠 널방이 무려 2700년 동안이나 썩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기원전 740년경에 조성된 이 무덤을 1957년 발굴했을 때 60∼65세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됐다. 유골의 주인공은 미다스 왕이 아니라, 아버지 고르디우스의 무덤이라는 설도 있다. 앙카라에 있는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에서 이곳에서 발견된 ‘미다스 왕의 두개골’과 화려한 장식이 새겨진 나무 테이블 유물을 볼 수 있었다. 미다스 고분 앞에는 고르디온 박물관이 있다. 고르디온 박물관 입구에는 말을 타고 칼을 든 알렉산더 대왕이 앞에 미로처럼 얽힌 고르디우스 매듭을 단칼에 베어버리는 그림이 붙어 있다. 알렉산더가 고르디온에 도착한 것은 기원전 333년이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막힌 문제를 쾌도난마로 해결하는 발상의 전환을 뜻하기도 한다. 신화 속 이야기인 줄 알았던 고르디우스와 미다스 왕의 전설은 1950년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발굴팀의 연구로 역사적 사실로 드러났다. 30년간 2ha(헥타르) 이상의 고르디온 성채와 무덤을 발굴하자 다양한 유물이 쏟아졌다. 고대 프리기아 왕국에서 해방된 노예가 썼던 빨간색 모자는 서양 문화에서 자유와 해방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 7월 파리 올림픽의 마스코트가 바로 이 빨간색 ‘프리기아 모자’였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그림에서도 시민군 앞에 선 여성이 이 모자를 쓰고 있다. ● 이슬람과 기독교 성지가 곳곳에 이슬람 사원(모스크)은 일반적으로 중앙에 커다란 돔이 있고, 주변에 뾰족한 첨탑이 여러 개 서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러한 돔 형식의 모스크는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뒤 비잔틴 제국의 스타일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으로 등재한 13∼14세기에 건축된 5개의 튀르키예 이슬람 사원의 분위기는 무척 달랐다. 앙카라, 시브리히사르, 아피온카라히사르에 있는 모스크를 방문했는데, 모두 돔이 없고 낮고 평평한 사각형 목조 건물이었다. 내부는 여러 개의 나무 기둥이 서 있는데, 지리산 구례 화엄사 구층암의 모과나무 기둥처럼 울퉁불퉁한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 있는 자연주의 기둥이었다. 기둥 위아래 부분에는 고대 로마 시대의 신전에 쓰였던 화려한 문양의 대리석을 끼워 놓기도 했다. 튀르키예 현지 관광가이드 아이발라 괵수 씨는 “섬세한 목조 세공이 잘 보존돼 있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고 말했다. 아피온 시내에서 외곽으로 23km 정도 가면 프리기안 계곡 입구에 ‘아야지니’라는 동굴 마을이 나온다. 튀르키예의 유명 관광지인 카파도키아처럼 바위를 파서 주거지, 무덤, 교회 등으로 썼다고 한다.동굴 마을에 있는 성모 마리아 교회는 자연 암반을 파서 만든 교회다. 동굴 내부로 들어가니 창문과 아치 출입구를 통해 빛이 쏟아져 내려와 신성한 느낌을 준다. 교회 옆에는 ‘인류 최초의 아파트’로 불리는 동굴 마을 집단 거주지도 있다. 이처럼 이슬람 국가인 튀르키예에는 기독교 성지도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예수의 제자였던 바오로의 선교여행 흔적을 따라 성지순례를 오는 기독교인들도 많다. 아나톨리아 중부 소도시 얄바츠에서 동쪽으로 약 3.2km 떨어진 곳에는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가 있다. 이곳에는 325년에 지어진 성 바오로 대성당 유적이 있는데, 사도 바오로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유대교 회당 터 위에 세운 성당이다. 신약성서 사도행전 13장에 따르면 바오로는 설교 후 유대인들에게 배척을 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바오로 일행은 120km 사막길을 걸어 이코니온으로 떠났다. 바오로가 도착한 이코니온은 현재 코니아(Konya)로 불리는 도시다. 코니아 근교의 실레(Sille) 마을에는 기독교를 공인했던 콘스탄티누스 1세의 어머니인 성녀 헬레나가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가던 도중 327년에 세웠다는 성당이 있다. 헬레나의 이름을 따 아야 엘레니(성 헬레나) 성당이라고 불린다. 11세기 말 셀주크 튀르크 왕조의 수도로 번성했던 코니아는 튀르키예에서 이슬람 색채가 가장 강한 도시이기도 하다. 무함메드 잘랄루딘 루미(1207∼1273)가 창시한 이슬람 신비주의 종파인 메블라나 교단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루미의 무덤이 있는 메블라나 박물관은 코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다. 루미는 어려운 코란(꾸란) 경전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세마(Sema)라는 독특한 회전 춤을 통해 신과 일체감을 이루면서 이슬람의 진리를 체득할 수 있는 수련 방법을 만들었다. 남자들이 하얀 옷을 펄럭이며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는 세마는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코니아의 IRFA(문명연구센터)에서 감상한 세마 의식은 무대 위에서 마치 하얀 꽃이 피어나는 듯했다. 대나무 피리인 네이(Ney) 반주에 맞춘 춤은 후반부로 가까워질수록 빨라진다. 여러 개의 하얀 치마가 태양계의 행성처럼, 빙글빙글 팽이처럼 돌아가며 어지러운 원을 만들어내는데 수행자도, 보는 이도 무아지경에 빠져들게 했다. ● 인류 문명의 시원, 아나톨리아반도 일반적으로 고대문명은 약 6000년 전부터 메소포타미아(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이집트(나일강), 인디아(인더스강), 중국(황허강) 등 4개의 거대한 강 주변 비옥한 땅에서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튀르키예 아나톨리아 지방 남부에서 약 9500년 전 신석기시대 대규모 주거지인 차탈회위크 유적지가 발견돼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2012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차탈회위크는 코니아에서 동남쪽으로 52km 떨어진 언덕 위에 형성된 ‘인류 최초의 계획도시’다. 차탈회위크에서는 1000년 넘는 세월 동안 5000∼8000명이 함께 살았다고 한다. 입구에는 당시 다닥다닥 붙여 지은 진흙집들을 복원해 놓았다. 창고와 부엌, 거실로 나뉜 집 벽에는 별과 태양계, 사람과 여신, 사냥 장면 등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특이한 점은 시신을 집 안에 매장했던 풍습. 농업과 다산을 상징하는 여신상 키벨레(Kibele)도 발굴돼 앙카라의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차탈회위크도 놀라운데 아나톨리아 동남부 괴베클리 테페에서는 1만2000년 전 돌기둥이 100개가 넘는 대규모 종교 건축물 유적지가 발굴돼 세계 문명사를 다시 써야 할 판이다. 아나톨리아반도는 인류 문명의 시원(始原)을 찾아가는 여행지인 셈이다. ● 가볼 만한 곳=튀르키예의 수도 앙카라의 현지인 맛집 울루다으 레스토랑에서는 ‘이스켄데르 케밥’이 시그니처 메뉴다. 이스켄데르(iskender)는 알렉산더 대왕의 튀르키예식 발음. 3층 창가에 서서 붉은색 홍차 안에 모스크를 담아서 사진을 찍어 봤다. 튀르키예 현지 분위기가 물씬 나는 앵글이다 .글·사진 아나톨리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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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란색 바다에 황금빛 비가 내린다” [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은행나무는 침엽수일까요. 활엽수일까요?”5일 오후 경기 용인 에버랜드 정문에서 차로 약 10분 거리인 신원리 향수산. 14만여 제곱미터(4.4만평) 부지에 은행나무 약 3만 그루가 심어져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은행나무 군락지다. 숲 전체의 땅바닥이 온통 노란색 단풍이 바다를 이루고 있고, 바람이 불 때마다 황금빛 비가 쏟아져 내리는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식물 유튜브 ‘꽃바람 이박사’를 운영하고 있는 이준규 에버랜드 식물컨텐츠그룹장은 잎이 넓은 은행나무를 활엽수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은행나무는 침엽수”라고 대답했다.“은행잎을 들고 하늘에 한번 비춰보세요. 세로로 가는 선들이 보이죠? 원래 침엽수였는데 사이가 붙어서 넓은 잎모양처럼 보이는 것입니다.”현존하는 식물 중 ‘살아있는 화석’으로 취급받는 은행나무는 오직 1종 1속 1과 1목 1강 1문만이 존재하는 희귀한 식물이다. 생물이 지구상에서 오래동안 생존하기 위해서는 종다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은행나무는 전세계에 한가지 종만 존재하는 것이다.“1970년대에 산림녹화를 위해 이 곳에 밤, 복숭아, 호두, 은행 등 유실수 나무를 심었습니다. 1979년 겨울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기록적 한파에 수만그루가 동해(凍害)를 입어 고사했고, 은행나무만 살아남았죠. 그래서 밤나무 고사 지역에 은행나무 3만주를 집중적으로 심었고, 그래서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거대한 은행나무숲이 탄생했습니다.”향수산 자락에 오밀조밀 뿌리 내린 수많은 은행나무들은 햇볕을 더 받기 위해 서로 경쟁이라도 하는 듯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나간 모습이다. 약 5km에 이르는 트레킹 코스를 통해 은행나무숲길을 천천히 돌아볼 수 있고, 중간중간 앉아 쉴 수 있는 나무의자와 명상장, 그래고 숲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도 있다.은행나무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목록에서 ‘멸종위기종(EN, Endangered)’으로 지정돼 있다. 종자로 후손을 퍼뜨리는 은행나무는 새나 다람쥐 같은 동물들이 은행 열매를 먹지 않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서식지가 확대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 일본, 중국 등 유교문화권에서만 은행나무가 흔하고 세계적으로는 멸종위기종인 셈이다.에버랜드는 자연 그대로의 아름답고 비밀스러운 모습을 간직한 은행나무숲을 일반에 거의 공개하지 않고 관리만 해왔다. 그러나 2022년부터 향수산 일대에 잔디광장, 명상돔, 생태연못, 전망대 등이 갖춰진 프라이빗 명품숲 ‘포레스트 캠프’를 조성해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했다.다양한 트레킹 코스 뿐만 아니라 은행나무숲 속에서 해먹에 누워 휴식을 취하거나 전문 강사와 함께 명상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숲 치유 프로그램도 시범 운영중이다. 현재까지는 주로 신입사원 교육이나 기업 기념 행사, 고객 초청 이벤트 등 단체예약 중심으로 개방되고 있다. 올 가을에는 개인 신청자도 참여할 수 있는 ‘비밀의 은행나무숲’ 산책 프로그램을 이달 10일까지 시범 운영하고 있다. 은행나무 숲 치유 체험과 함께 인근 호암미술관 관람도 포함돼 있어 인기가 높다. 매주 금토일에 하루 3회(회당 최대 30명) 참여할 수 있는데, 18일 에버랜드 홈페이지에서 진행된 참가자 모집은 오픈런이 벌어져 2분만에 마감됐다고 한다.에버랜드 관계자는 “국내 여가문화와 인구구조의 변화 트렌드 속에서 오직 에버랜드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차별화된 콘텐츠와 체험 프로그램을 더욱 확대해 고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용인=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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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이상 부여에서 꽃은 떨어지지 않으리[전승훈의 아트로드]

    부여는 1500년 전 백제의 마지막 수도가 있던 도시다. 538년 백제 성왕은 공주에서 부여로 도읍을 옮기면서 고조선의 적장자 부여를 계승한 유일한 나라라는 뜻으로 ‘남부여’라는 이름을 붙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도시 부여를 체험하는 색다른 여행을 떠나보자. ●백마강 하늘엔 열기구, 강물엔 수륙양용차 “이 강 이름은 원래 금강인데, 부여군을 지나는 16km 구간을 백마강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잠시 후에 백마강으로 입수하도록 하겠습니다!“ 코스모스가 가득 피어 있는 백마강 둔치에는 은빛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백제’라고 쓰여진 깃발이 나부끼는 강변을 달리는 백마강 수륙양용버스 안 스피커에서 갑자가 스펙터클한 음악이 터져나왔다. “우와~” “오~!”하는 승객들의 함성과 함께 버스는 백마강 푸른 물에 첨벙! 하얀색 물보라가 유리창까지 튀어올랐다. 버스 뒷쪽에 붙어 있는 프로펠러가 돌기 시작하자 버스는 배로 급변신한다. 버스가 물살을 가르자 백마강엔 거대한 파도가 일어난다. 수륙양용버스는 배처럼 ‘V자형’ 용골이 없어 바닥이 평평하다. 그래서 배의 수평균형을 맞추는 시간을 잠시 갖는다. 승무원의 안내에 따라 왼쪽 좌석에 있던 승객 한명이 오른쪽으로 옮기니 좌우균형을 맞춘다. 수륙양용버스는 곧바로 부소산성 방향으로 항해한다. 해발 106m의 부소산성은 평소에는 사비성의 후원이지만, 전쟁시에는 피난민들이 몰려드는 최후의 방어선이었다. 백제가 멸망할 때도 낙화암에서 수많은 백성들이 멸망해가는 나라와 함께 몸을 던졌다. 절벽에는 조선시대 우암 송시열이 쓴 붉은 ‘낙화암(落花巖)’ 글씨가 선명하다. 버스는 백마강 상류로 유턴해 백제가 나라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귀족회의를 열었던 정사암(政事巖) 부근까지 올라간다. 계백장군의 말 안장을 모티브로 세워진 금강의 ‘백제보’도 보인다. 백마강에 황포돗배 유람선도 있지만, 수륙양용버스(3만원)는 국내에서 백마강에서만 운행되는 이색적인 교통수단이라 가족단위 관광객에게 인기가 높다. 국내업체가 제작했다는 수륙양용버스의 핸들은 두 개다. 육상을 달릴 때는 정면에 있는 핸들로 운전하고, 물에 들어가면 오른쪽에 있는 선박용 키를 잡고 배를 몬다. 운전자는 대형버스와 선박 면허 2개를 모두 갖고 있어야 한다. 백마강의 평균 수심은 약 5m. 수상에 들어갔을 때 버스는 앞쪽은 1.2m, 뒤쪽은 1.4m가 물에 잠긴다. 뒤쪽에 수상엔진이 있어 무거워 앞쪽이 약간 들려 있는 상태에서 떠간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지나가는 행인들이 버스가 물에 빠져 떠내려가고 있다고 신고도 많이 했다고. 백마강교 밑에서 2대의 수륙양용버스가 교차했다. 경적소리 대신 ‘부우웅~’ 뱃고동 소리를 내며 신호를 하자 양쪽 승객들이 서로 손을 흔들어준다. 백마강에 오후의 햇살이 비쳐 황금빛으로 빛난다. 백마강 강물에 수륙양용차가 다닌다면, 하늘에서는 열기구가 떠다닌다. 백마강 상공을 7~8km 비행하며 낙화암, 궁남지 등을 구경하며 30~50분 정도 비행하는 ‘부여하늘날기(Skybanner)’. 서울 여의도 공원에 줄에 매달려 최대 130m 높이까지 올라가는 계류형 열기구가 있지만, 백마강에선 진짜 바람을 타고 자유비행하는 열기구가 운행된다. 튀르키예 카파도키아나 호주 멜버른에서 볼 수 있는 바로 그 열기구다. 열기구를 타기 위해 오전 6시반에 백마강 캠핑장에 도착했다. 둔치에 7층 건물 높이의 대형 열기구가 바람이 빠진채 누워 있었다. 약 20~30분 동안 풍선의 입구 쪽에 대형 선풍기로 바람을 집어 넣고, 가스불을 켜서 공기를 데우는 작업을 한 끝에 풍선은 서서히 일어서기 시작했다. “빨리 타세요. 풍선 날아가요. 빨리 타세요~!” 열기구를 줄에 매어 붙잡고 있던 직원들이 소리쳤다. 풍선 속에 데워진 공기가 팽창하면서 금방이라도 떠오르려고 들썩이고 있었다. 탑승용 바구니 한쪽의 벽면에 발을 디디며 힘겹게 올라탔다. 밧줄을 놓자 열기구는 백마강 위로 두둥실 떠오른다. ‘인간 드론’이 된 느낌이었다. 드론을 날릴 때 휴대폰 화면으로 보였던 장면을 내 눈으로 보고 있었다. 유유히 흘러가는 금강, 구름과 산, 논밭과 골프장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고요하다는 것. 엔진이나 모터소리도 없이 산들산들 날아가는 열기구에서는 새소리 바람소리만 들렸다. 가끔씩 열기구 상승을 위해 가스불을 켜는 소리를 빼곤. 우리가 탄 열기구는 산을 넘고, 롯데스카이힐부여CC 골프장 그린을 지나 주차장에 안착했다. 백마강 열기구는 구름 낀 날엔 운해 위로 날기도 한다. 바람이 쎄거나 날씨가 안좋으면 결항이 잦고, 비싼 가격(1인당 18만원)은 단점. 그래도 해외에서만 즐길 수 있는 열기구를 탈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장소라 평생 한번은 타볼만 한 경험이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도시 부여코레일관광개발은 유네스코세계유산 도시인 부여와 공주를 여행할 수 있는 기차여행 코스를 내놓고 있다. 템플스테이와, 휴양림, 캠핑장, 수륙양용버스, 열기구 등을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그 중에서 꼭 빠질 수 없는 것이 국립부여박물관과 정림사지, 부소산성, 왕릉원, 궁남지 등 백제의 화려했던 사비시대 유적지 탐방이다.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사진이나 복제품으로만 보던 백제금동대향로의 실체를 마주하니 온 몸이 전율할 듯 감동이 밀려온다. 금동대향로 속에는 1500년 전 백제의 산천과 계곡, 강과 바다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높이 61.8cm, 무게 11.85g의 대향로 꼭대기엔 봉황새가 앉아 있고, 그 밑에는 5명의 악사가 피리를 불고, 북을 치고, 거문고와 비파를 연주하고 있다. 부드러운 곡선의 산과 계곡엔 호랑이와 멧돼지, 사슴, 코끼리, 원숭이와 상상의 동물들이 뛰어놀고, 도인이 산으로 걸어들어간다. 아랫쪽에는 연꽃과 수중생물이 살고 있고, 용이 향로를 받치고 있다. 용에서 나온 입김이 연꽃을 피워내고, 그위에 세상이 펼쳐지는 불교의 연화화생(蓮華和生)과 도교의 세계관이 결합된 작품이다. 16세기 플랑드르 화가 브뤼겔의 풍속화처럼 백제가 3D 입체로 구현돼 있는 듯하다. 스마트폰 줌렌즈를 사용해서 금동대향로의 부분 부분을 확대해서 살펴보며 숨은그림 찾기 놀이를 하다보면 한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부여 왕릉원에 가면 능산리 사찰유적지 바닥에 금동대향로가 발견됐던 당시의 모습을 볼 수있다. 진흙 속에서 뚜껑이 분리된 채 발견됐던 향로가 유리 진열장 속 묻혀 있다. 백제가 멸망하는 순간에도 땅을 파고 보물을 숨겨놓았던 이의 마음이 떠올라 가슴이 아련하다. 사비성의 중심부 왕궁의 사찰이었던 정림사지에서는 주민들이 그저 ‘백제탑’이라고 부르는 5층석탑이 있다. 높이 8.33m의 장중한 화강암 돌로 만든 탑인데, 나무로 깎은 듯 세련된 모습이다. 살짝 들려진 지붕선은 어깨만 살짝, 손가락만 살짝 움직였을 뿐인데 제대로 그루브를 살리고, 바이브를 타는 고수의 춤선을 보는 듯하다. 백제의 미(美로) 알려진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의 경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니 탑신부에 누군가 새겨놓은 수많은 글자들이 있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남긴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이다. 서기 660년 당 고종이 신라 문무왕과 힘을 합쳐 백제를 쳐서 사비성을 함락시켰다는 내용이다. 석탑은 비록 적군이 새겨넣은 주홍글씨로 온 몸을 둘렀지만, 사찰이 불타는 가운데도 살아남아 1500년 전 백제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다. 시조시인 가람 이병기가 ”비록 백제는 망하였으나 이 예술품만은 아니 망하였다“고 했던 것처럼, ●가볼만한 곳=롯데리조트 부여 ‘백상원(百想園)’은 백제 ‘산수문전(山水紋塼)’에서 모티브를 따온 유선형 곡선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충남 부여 궁남지 부근에 있는 찻집 ‘백제향’에서는 연꽃차와 대추차를 마실 수 있다. 지난 여름 수확했다 냉장고에 얼려놓았던 연꽃 위에 따뜻한 찻물을 부어가며, 한잎한잎 정성스레 연꽃을 피워낸다. 연꽃차는 화려하게 피어난 연꽃을 눈으로 먼저 즐기고, 은은한 연꽃향을 코로 즐기고, 다음에 입으로 차를 마신다. 부여=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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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이상 부여에서 꽃은 떨어지지 않으리[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부여는 1500년 전 백제의 마지막 수도가 있던 도시다. 538년 백제 성왕은 공주(웅진)에서 부여(사비)로 도읍을 옮기면서 고조선의 적장자 부여를 계승한 유일한 나라라는 뜻으로 ‘남부여’라는 이름을 붙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도시 부여를 체험하는 색다른 여행을 떠나 보자. ● 백마강 하늘엔 열기구, 강물엔 수륙양용차 “이 강 이름은 원래 금강인데, 부여군을 지나는 16km 구간을 백마강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잠시 후에 백마강으로 입수하도록 하겠습니다!” 코스모스가 가득 피어 있는 백마강 둔치에는 은빛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백제’라고 쓰여진 깃발이 나부끼는 강변을 달리는 백마강 수륙양용버스 안 스피커에서 갑자기 스펙터클한 음악이 터져 나왔다. “우와∼” “오∼!” 하는 승객들의 함성과 함께 버스는 백마강 푸른 물에 첨벙! 하얀색 물보라가 유리창까지 튀어올랐다. 버스 뒤쪽에 붙어 있는 프로펠러가 돌기 시작하자 버스는 배로 급변신한다. 버스가 물살을 가르자 백마강엔 거대한 파도가 일어난다. 수륙양용버스는 배처럼 ‘V자형’ 용골이 없어 바닥이 평평하다. 그래서 배의 수평 균형을 맞추는 시간을 잠시 갖는다. 승무원의 안내에 따라 왼쪽 좌석에 있던 승객 한 명이 오른쪽으로 옮겨 좌우 균형을 맞춘다. 수륙양용버스는 곧바로 부소산성 방향으로 항해한다. 해발 106m의 부소산성은 평소에는 사비성의 후원이지만, 전쟁 시에는 피란민들이 몰려드는 최후의 방어선이었다. 백제가 멸망할 때도 낙화암에서 수많은 백성들이 멸망해 가는 나라와 함께 몸을 던졌다. 절벽에는 조선시대 우암 송시열이 쓴 붉은 ‘낙화암(落花巖)’ 글씨가 선명하다. 버스는 백마강 상류로 유턴해 백제가 나라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귀족회의를 열었던 정사암(政事巖) 부근까지 올라간다. 계백 장군의 말 안장을 모티브로 세워진 금강의 ‘백제보’도 보인다.백마강에 황포돛배 유람선도 있지만, 수륙양용버스(3만 원)는 국내에서 백마강에서만 운행되는 이색적인 교통수단이라 가족 단위 관광객에게 인기가 높다. 국내 업체가 제작했다는 수륙양용버스의 핸들은 두 개다. 육상을 달릴 때는 정면에 있는 핸들로 운전하고, 물에 들어가면 오른쪽에 있는 선박용 키를 잡고 배를 몬다. 운전자는 대형버스와 선박 면허 2개를 모두 갖고 있어야 한다. 백마강의 평균 수심은 약 5m. 수상에 들어갔을 때 버스는 앞쪽 1.2m, 뒤쪽 1.4m가 물에 잠긴다. 뒤쪽에 수상엔진이 있어 무거워 앞쪽이 약간 들려 있는 상태에서 떠간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지나가는 행인들이 버스가 물에 빠져 떠내려가고 있다는 신고도 많이 했다고. 백마강교 밑에서 2대의 수륙양용버스가 교차했다. 경적소리 대신 ‘부우웅∼’ 뱃고동 소리를 내며 신호를 하자 양쪽 승객들이 서로 손을 흔들어 준다. 백마강에 오후의 햇살이 비쳐 황금빛으로 빛난다. 백마강 강물에 수륙양용차가 다닌다면, 하늘에서는 열기구가 떠다닌다. 백마강 상공을 7∼8km 비행하며 낙화암, 궁남지 등을 구경하며 30∼50분 정도 비행하는 ‘부여하늘날기(Skybanner)’. 서울 여의도 공원에 줄에 매달려 최대 130m 높이까지 올라가는 계류형 열기구가 있지만, 백마강에선 진짜 바람을 타고 자유비행하는 열기구가 운행된다. 튀르키예 카파도키아나 호주 멜버른에서 볼 수 있는 바로 그 열기구다. 열기구를 타기 위해 오전 6시 반에 백마강 캠핑장에 도착했다. 둔치에 7층 건물 높이의 대형 열기구가 바람이 빠진 채 누워 있었다. 20∼30분 동안 풍선의 입구 쪽에 대형 선풍기로 바람을 집어 넣고, 가스불을 켜서 공기를 데우는 작업을 한 끝에 풍선은 서서히 일어서기 시작했다. “빨리 타세요. 풍선 날아가요. 빨리 타세요∼!” 열기구를 줄에 매어 붙잡고 있던 직원들이 소리쳤다. 풍선 속에 데워진 공기가 팽창하면서 금방이라도 떠오를 듯 들썩이고 있었다. 탑승용 바구니 한쪽의 벽면에 발을 디디며 힘겹게 올라탔다. 밧줄을 놓자 열기구는 백마강 위로 두둥실 떠오른다. ‘인간 드론’이 된 느낌이었다. 드론을 날릴 때 휴대전화 화면으로 보였던 장면을 내 눈으로 보고 있었다. 유유히 흘러가는 금강, 구름과 산, 논밭과 골프장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고요하다는 것. 엔진이나 모터소리도 없이 산들산들 날아가는 열기구에서는 새소리 바람소리만 들렸다. 가끔씩 열기구 상승을 위해 가스불을 켜는 소리를 빼곤. 우리가 탄 열기구는 산을 넘고, 롯데스카이힐부여CC 골프장 그린을 지나 주차장에 안착했다. 백마강 열기구는 구름 낀 날엔 운해 위로 날기도 한다. 바람이 세거나 날씨가 안 좋으면 결항이 잦고, 비싼 가격(1인당 18만 원)은 단점. 그래도 해외에서만 즐길 수 있는 열기구를 탈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장소라 평생 한 번은 타볼 만한 경험이었다. ● 유네스코 세계유산 도시 부여 코레일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도시인 부여와 공주를 여행할 수 있는 기차여행 코스를 내놓고 있다. 템플스테이와 휴양림, 캠핑장, 수륙양용버스, 열기구 등을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그중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국립부여박물관과 정림사지, 부소산성, 왕릉원, 궁남지 등 백제의 화려했던 사비시대 유적지 탐방이다.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사진이나 복제품으로만 보던 백제금동대향로의 실체를 마주하니 온몸이 전율할 듯 감동이 밀려온다. 금동대향로 속에 1500년 전 백제의 산천과 계곡, 강과 바다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높이 61.8cm, 무게 11.8kg의 대향로 꼭대기엔 봉황새가 앉아 있고, 그 밑에는 5명의 악사가 피리를 불고, 북을 치고, 거문고와 비파를 연주하고 있다. 부드러운 곡선의 산과 계곡엔 호랑이와 멧돼지, 사슴, 코끼리, 원숭이와 상상의 동물들이 뛰어놀고, 도인이 산으로 걸어 들어간다. 아래쪽에는 연꽃과 수중생물이 살고 있고, 용이 향로를 받치고 있다. 용에서 나온 입김이 연꽃을 피워 내고, 그 위에 세상이 펼쳐지는 불교의 연화화생(蓮華化生)과 도교의 세계관이 결합된 작품이다. 16세기 플랑드르 화가 브뤼헐의 풍속화처럼 백제가 3D 입체로 구현돼 있는 듯하다. 스마트폰 줌렌즈를 사용해서 금동대향로의 부분 부분을 확대해서 살펴보며 숨은그림 찾기 놀이를 하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부여 왕릉원에 가면 능산리 사찰유적지 바닥에서 금동대향로가 발견됐던 당시의 모습을 볼 수있다. 진흙 속에서 뚜껑이 분리된 채 발견됐던 향로가 유리 진열장 속에 묻혀 있다. 백제가 멸망하는 순간에도 땅을 파고 보물을 숨겨 놓았던 이의 마음이 떠올라 가슴이 아련하다. 사비성의 중심부 왕궁의 사찰이었던 정림사지에는 주민들이 그저 ‘백제탑’이라고 부르는 5층석탑이 있다. 높이 8.33m의 장중한 화강암 돌로 만든 탑인데, 나무로 깎은 듯 세련된 모습이다. 살짝 들려진 지붕선은 어깨만 살짝, 손가락만 살짝 움직였을 뿐인데 제대로 그루브를 살리고, 바이브를 타는 고수의 춤선을 보는 듯하다. 백제의 미(美)로 알려진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의 경지를 제대로 보여 준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니 탑신부에 누군가 새겨 놓은 수많은 글자들이 있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남긴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이다. 서기 660년 당 고종이 신라 문무왕과 힘을 합쳐 백제를 쳐서 사비성을 함락시켰다는 내용이다. 석탑은 비록 적군이 새겨 넣은 주홍글씨로 온몸을 둘렀지만, 사찰이 불타는 가운데서도 살아남아 1500년 전 백제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다. 시조시인 가람 이병기가 “비록 백제는 망하였으나 이 예술품만은 아니 망하였다”고 했던 것처럼. ● 가볼 만한 곳=롯데리조트 부여 ‘백상원(百想園)’은 백제 ‘산수문전(山水紋塼)’에서 모티브를 따온 유선형 곡선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부여 궁남지 부근에 있는 찻집 ‘백제향’에서는 연꽃차와 대추차를 마실 수 있다. 지난여름 수확했다 냉장고에 얼려 놓았던 연꽃 위에 따뜻한 찻물을 부어 가며 한 잎 한 잎 정성스레 연꽃을 피워 낸다. 연꽃차는 화려하게 피어난 연꽃을 눈으로 먼저 즐기고, 은은한 연꽃향을 코로 즐기고, 다음에 입으로 차를 마신다.글·사진 부여=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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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DP 지붕 위를 걸어볼 수 있다고요?[전승훈의 아트로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곡선이 참 아름다운 건물입니다. 유에프오(UFO) 같기도 하고, 인체의 장기 같기도 하고, 숨쉬는 고래상어나 문어 같기도 합니다. 밤이 되면 다채로운 조명쇼가 펼쳐지기도 하죠. 패션 지망생들은 이 곳에서 화보촬영을 많이 하고,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도 인증샷을 찍는 명소입니다.DDP는 유선형 건물로, 알루미늄 패널이 가득 붙어 있어 있습니다. 이런 미끈미끈 둥그런 지붕 위를 걸어다닌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죠. 그런데 서울시가 DDP 개관 10주년을 맞아 지난 25일 건물 지붕을 시민들에게 개방했습니다. 다음달 17일까지 시범운영되는 ‘DDP 루프탑 투어’입니다. 기존에도 DDP 건축투어는 상설로 진행되고 있었는데요. 루프탑 투어는 기존 DDP 실내외 공간투어를 넘어 비정형 알루미늄 패널과 사막식물 ‘세덤’으로 이뤄진 DDP의 숨겨진 공간이었던 지붕 정원까지 올라가볼 수 있는 투어입니다. 2014년 개관한 DDP는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이기도 한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마지막 작품 ‘환유의 풍경’입니다. 크기와 형태가 모두 다른 4만5000여장의 알루미늄 패널로 구성된 건축물이죠. 동대문의 역동성을 상징하는 ‘기둥없는 곡선’으로 설계됐습니다. 현재까지 누적 방문객 1억명을 넘어선 서울 관광의 핫플레이스입니다. 루프탑 바로 아래까지 가보니 알루미늄 패널이 붙어 있는 천장 구조물이 어떻게 지탱되고 있는 지를 알겠더군요. 이런 모양의 수많은 파이프로 트러스 구조를 만들어 지붕의 하중을 분산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루프탑 투어를 시작하기 전에는 할 일이 많습니다. 먼저 안전서약서에 서명을 하고, 기념 촬영을 할 때 들고 있을 수건에 펜으로 문구를 적습니다. ‘Visit Seoul Again!’을 비롯해 자신이 원하는 축하, 사랑, 합격 등을 기원하는 문구를 적기도 합니다. 그리고 안전용 고리를 달 수 있는 하네스를 착용하고, 안전헬멧을 씁니다. 참여자들은 글로벌 시험인증기관인 독일 DEKRA 인증을 획득한 안전시스템으로 이동하게 되는데요. 참가자는 10명이지만 앞뒤로, 중간에 안전요원들이 5~6명이 동행합니다.매뉴얼에 따라 투어가 진행되는데요. 서울시는 투어에 앞서 중부소방서·대한산업안전협회 등 안전전문가의 점검과 지붕 구조안전성 검토 등 9개월간 철저히 준비했다고 하네요. DDP 지붕 위에 올라가면 남산부터 동대문까지 탁트인 전망을 볼 수 있습니다. 주변의 패션 상가와 함께 어우러지는 DDP의 곡선이 낯선 느낌을 주는 이국적 풍경입니다. 서울에서도 이런 앵글의 사진이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에 찾아오게 될 해외 관광홍보를 위해서라면 DDP의 옥상도 개방할 수도 있다”고 오래 전부터 이야기해왔습니다. 굳이 서울시가 서울의 관광을 직접 홍보하지 않더라도, DDP에 올라온 외국인들이 찍은 사진이 SNS를 통해 전세계로 퍼지면서 자연스럽게 서울의 아름다운 건축과 역사, 문화가 홍보될 것이라는 이야기죠. 오 시장은 간담회에서 “아름답고, 재미와 흥미가 넘치는 관광 포인트를 많이 만들어놓은 것이 서울시의 역할”이라며 “전국민이 인플루언서인 시대에 좋은 포인트가 많으면 홍보는 저절로 이뤄진다”고 말했습니다. 지붕 위에 올라가면 몸에 착용한 하네스에 안전고리를 걸고, DDP지붕 위에 설치된 강철 철사 줄에 연결합니다. 지붕은 경사가 져 있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고리를 거는 것이죠. 안전 로프에 고정돼 있는 고리는 참가자들이 자의적으로 풀기 어렵게 돼 있습니다. 안전로프에 연결된 줄은 3m까지 늘어납니다. 자동으로 늘었다 줄었다 하는 반려견 산책줄과 동일한 원리인데요. 순간 내가 DDP에 매달려 있는 반려견이 된 느낌이 듭니다. 이 줄을 믿고 마음 놓고 사진을 찍고, 포즈도 취해봅니다. 호주 시드니의 명물인 하버브릿지를 올라가는 투어를 할 때도 이런 안전장치를 합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철제 구조물에 몸을 안전하게 고정하며 이동하는 장치죠. 투어는 DDP 지붕 일부 총 280m를 30여분간 직접 걷고 즐기는 코스입니다. 이날 투어 참가자 중에는 네덜란드에서 온 여성과 프랑스에서 온 남성이 함께 했는데요. “서울의 이색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너무나 재밌는 탐험”이라고 말했습니다. 올해 시범운영 후 내년에는 코스를 확대하고, 다양하게 개발해 봄(5월)과 가을(9~10월) 시즌에 DDP 정식 콘텐츠로 유료로 운영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DDP지붕 위에 걷는 부분은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는 미끄럼방지 패널을 붙여놓았습니다. 또한 밟는 부분에는 파이프가 지나가는지 더 딱딱하더군요. 반면 지나가는 길로 지정되지 않은 부분은 좀 얇아서 체중이 꽤 나가는 사람은 바닥이 약간씩 들어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시범운영 기간 중에는 금, 토, 일 사흘 동안 하루 두번(오후 1시 30분‧3시 30분) 총 24회가 진행된다고 합니다. 만 18세~70세 성인이면 참여할 수 있습니다. 단, 몸무게는 100kg 미만으로 제한됩니다. 1회당 투어 인원은 안전을 고려해 10명으로 한정했습니다. 투어 할 때 기념수건을 제공해주는데요. 투어 관계자들이 지붕 위에서 수건을 들고 인생샷을 찍어 줍니다. 시범 기간 중 투어 참여자는 약 220명입니다. 이중 120여명은 미리 사연을 보낸 사람 중에서 선정됐습니다. 또한 파리올림픽·전국체전 서울시 선수단, 디자이너, 동대문 지역상인 등을 초청해 진행합니다. 100명은 선착순으로 접수 받았는데 수만명이 몰리는 오픈런으로 벌써 끝났다고 하네요. 지난 25일 투어 첫날에는 결혼, 창업 등 특별한 사연을 보낸 1088명 중 선발된 시민 20명과 함께했다고 합니다. 참가자 중에는 아이 초등학교 입학에 맞춰 늦깎이 대학생이 된 엄마, 한국문화와 서울 매력에 푹 빠진 외국인 유학생, DDP 취업박람회에서 처음 만나 앞으로 인생을 함께 설계 중인 예비부부 등이 있었다고 하네요. DDP 지붕탐험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는데요. 바로 DDP 지붕 위에도 정원이 있다는 점입니다. 저렇게 뜨거운 햇살이 내려쬐는 얄루미늄 패널 위 지붕 위에서 식물이 살 수 있을까? 사막식물인 ‘세럼’이 심어져 있습니다. 물을 많이 주지 않아도 살 수 있는 다육식물 종류라고 하네요. 봄이나 여름에는 다른 종류의 꽃도 피기도 하는데요. 지금은 가을이라 갈색 빛깔의 지붕입니다. 지붕 위 정원에서 보면 옛 동대문 운동장 시절의 유물이 남아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야간경기에 경기장을 밝혀주던 조명탑입니다. 남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을 청계천과 연결시켜주던 이간수문도 보입니다. 루프탑 투어 전에는 평소 가볼 수 없는 DDP의 숨은 공간을 투어합니다. 이날 가본 곳은 DDP의 난방, 공조, 쿨링, 환기 등을 담당하는 기반시설 공간이었는데요. 이런 공간인데도 깔끔하게 잘 정돈이 돼 있더군요. 알루미늄 패널로 덮인 DDP의 경우 창문도 없는데, 어떻게 공기가 들어오고 나가는지 궁금했는데요. 일부 패널 중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고 나가고 하네요. 설비를 위한 공간에는 이렇게 구멍이 숭숭 뚫린 패널이 있네요. 지붕에 있는 패널 중에는 태양열 발전판으로 사용되는 패널도 있다고 합니다. 서울시와 서울디자인재단은 “10주년을 맞아 진행하는 DDP 루프탑 투어는 서울 도심의 매력을 한눈에 감상 할 수 있는 서울시의 또다른 매력 콘텐츠”라고 말했습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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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의 향취에 가슴 뭉클, 만발한 국화향에 마음 흠뻑

    “국화 꽃향기 맡으면서 가을 정취를 느끼고 싶어 왔습니다.” 전북 익산시 어양동 중앙체육공원 일대에서는 형형색색의 국화꽃 향기 가득한 ‘제21회 익산 천만송이 국화축제’가 다음 달 3일까지 열린다. 1000만 송이 국화가 피어나는 이 축제는 2004년부터 익산을 상징하는 대표 행사가 됐다. 익산은 마한-백제 역사 유적의 도시이며 백제 30대 무왕(600∼641년)의 천도지로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처럼 사적과 유물이 많다. 천만송이 국화축제는 중앙체육공원, 신흥근린공원, 미륵사지, 익산역 등 네 곳에서 열리고 있다. 불로장수를 상징하는 상서로운 영초(靈草)인 국화는 익산을 상징하는 시화(市花)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미륵사지는 무왕이 세운 동양 최대, 최고의 국가 사찰인 미륵사 터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무왕과 선화공주가 용화산 밑 큰 연못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하자 사찰을 짓고 싶다는 부인의 청을 받아들여 연못을 메운 후 미륵사를 지었다고 전한다. 천만송이 국화축제에 맞춰 ‘익산 국화축제와 백제문화 역사기행 농촌 크리에이투어(CREATOUR) 열차’ 상품이 운영되기도 했다. 서울역에서 출발한 이 열차는 익산역에 도착한 후 미륵사지 석탑과 50년 만에 민간에 개방된 ‘아가페 정원’, 미륵산 지역에서 황토백이 날씬이 고구마 수확 체험(1인당 3kg), 천만송이 국화축제 관람, ‘이상한 교도소’ 세트장을 관람하는 코스의 여행 상품. 특별열차 기차여행은 이달 3∼5일 ‘백제고도 익산 마한문화대전’ 당시에도 각각 400명의 관광객을 모집하기도 했다. 익산은 100년의 철도 역사를 지닌 교통과 물류의 중심 도시다. 익산역 광장에도 유라시아 대륙횡단 철도 기관차 모양의 국화 작품이 세워졌다. 익산시는 농촌 테마형 관광상품인 농촌 크리에이투어 관광상품으로도 인기를 얻고 있다. 올 7월부터 운영하는 이 테마형 농촌관광 상품에 6000여 명이 참여했고, 지역 주요 축제와 연계한 농촌관광에도 관광객 1000여 명을 유치했다. ‘K투어 촌스런 기차여행’ ‘고즈넉한 휴식과 힐링의 시간’ ‘익산에서 즐기는 추억 촌캉스+호캉스 찐투어’처럼 특화된 콘텐츠 여행상품 판매로 76개 팀 2647명이 익산을 찾았다. 30일 현재 예약된 팀도 56개 팀 1941명에 이른다. 익산의 농촌테마형 상품은 △달콤 시원 멜론과 시(時)의 만남 △산 멍! 바람 멍! 시간 멍! 느림 여행 △인스타 핫플레이스 생명놀이터 △K투어 촌스런 기차여행 △고즈넉한 휴식과 힐링의 시간 등 모두 10개로 농촌문화 체험뿐만 아니라 배움, 재미, 휴식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됐다. 익산시 함열읍 다송리 ‘다송 무지개 매화마을’은 이른바 논캉스와 촌캉스로 유명한 곳. 와야, 방교, 박전, 상마, 소지, 대지, 매교 7개 마을이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모인 농촌 체험휴양마을이다. 특히 반려견과 함께 숙박이 가능한 글램핑과 반려견 놀이터가 있어 반려견과 함께하는 농촌 여행 메카로 떠올랐다. 올 3월 익산시 최초 반려동물 페스티벌 ‘댕스티벌’이 이곳에서 열리기도 했다. 2만6500㎡(약 8000평) 대지에는 숙박과 체험이 가능한 시설, 반려견 놀이터, 야외 쉼터, 카페가 있다. 반려견 놀이터는 한번에 100마리까지 놀 수 있을 만큼 넓고 반려견 텐트 숙박시설도 있다. 다송리 특산품인 고구마를 재료로 고구마빵 만들기, 고구마 수확 체험, 반려견 수제 간식 만들기도 할 수 있다. 농촌 크리에이투어는 전국 20개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더 자세한 정보는 웰촌에서 확인할 수 있다.익산=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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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예의 나라 정체성, K판타지아 프로젝트로 되살릴 것”

    “K팝과 영화, 드라마에서 시작한 한류가 공예, 한식, 한복, 문학 등 한국의 전통과 현대문화에 대한 폭넓은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류의 근원인 ‘한국성(韓國性)’의 정체와 맥을 찾는 ‘K판타지아 프로젝트’가 필요한 시기입니다.”장동광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장(사진)은 옛 서울역 역사를 개조한 ‘문화역서울284’에서 ‘K판타지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 첫 번째 기획전시로 동양화, 서양화와 문학 등 장르 간 경계 없이 활동해 온 통섭의 예술가 김병종 서울대 명예교수의 작업을 아카이브 형식으로 보여주는 ‘생명광시곡, 김병종’ 전시회가 24일까지 열리고 있다. “현재 서울에 근대문화유적 중 명동성당 본당, 한국은행 본점 등 100년 넘는 건축물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1925년 준공한 서울역은 내년 100년을 맞습니다. 제가 40여 년 전 철도청에 근무할 당시 출퇴근을 했던 인연이 있기도 합니다. 이곳을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이나 일본의 도쿄역을 리노베이션한 ‘도쿄 스테이션 갤러리’처럼 복합문화공간으로 발전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서울대 공예과를 졸업한 장 원장은 안양문화예술재단에서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를 기획 진행했고, 한국도자재단 상임이사로 경기도자비엔날레를 이끄는 등 30여 년간 시각예술 분야에서 일해온 현장 전문가. 지난해 7월 제5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원장으로 취임했다.공진원은 공예주간, 공예트렌드페어, 한식문화 홍보, 한복 진흥, 한지 분야 육성 지원, KCDF갤러리 운영, 문화역서울284 운영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해 왔다. “제 임기 동안 기관 의제를 설정했는데 올해는 ‘차이의 만남’, 내년도는 ‘한국성의 맥’, 그다음 해에는 ‘공예의 미래상’으로 설정했습니다. 한국적 공예, 디자인의 원형성을 모색하고 세계인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협력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기관의 정기 간행물인 ‘공예문화’ 계간지 특집기사는 영문을 병기해 세계인들과 소통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북촌에 있는 ‘한지문화산업센터’를 ‘한지가헌’이라는 한지문화홍보관으로 리뉴얼하고, 인사동 ‘KCDF 갤러리’도 ‘한국공예문화의 중심…공예가헌, Craft House’로 개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21세기 공예 진흥에 대한 방안은…. “인공지능(AI)과 기술 융합의 ‘통섭의 시대’를 맞아 금속, 도자, 목칠, 섬유, 유리, 가죽 등 재료와 기술로 분파돼 있는 공예장르 구분이 혁파돼야 합니다. 내년 20주년이 되는 ‘공예트렌드페어’를 작가 중심에서 갤러리 중심으로, 개인 생산에서 협업 생산, 브랜드 가치 창출을 위한 길드적 연합 생산 시스템을 구축해 하이엔드 공예품, 생활 우수 공예품, 문화 산업으로서의 공예품 유통을 체계화하고자 합니다.” ―현재 가장 시급한 공진원의 현안은 무엇인가요. “한국 현대 공예를 체계적으로 진흥할 수 있는 ‘국립공예미술관’ 설립이 절실합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공예의 나라’였습니다. 실제로 고대부터 근대까지 자랑스러운 공예 유물들이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에 잘 보존돼 연구·전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20세기 이후 현대 공예는 방치돼 있다시피 합니다. 영국 런던의 ‘V&A 뮤지엄’, 프랑스 파리의 ‘장식미술관’, 일본 가나자와 ‘국립공예관’처럼 현대의 공예 유산을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미술관이 필요합니다. 한국 디자인의 원류는 공예에서 발원합니다. 국립디자인박물관도 중요하지만, 하루빨리 국립공예미술관을 설립해 한국 공예의 동시대성이 살아 있음을 선포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의 비전은….“내년이면 공진원 설립 25주년을 맞습니다. 내년 의제가 ‘한국성의 맥’을 찾는 것인데, 서울역 개장 100주년 기념전과 동북아 예술과 역사, 철도와 근대문화를 결합한 자체 기획전을 준비 중입니다. 공예, 공공디자인, 한복, 한지 진흥 사업도 국제적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고, ‘올해의 공예상’에 ‘공예이론가상’을 신설해 ‘공예콜로키움’과 함께 국제적 수준으로 키울 예정입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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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숲 속에 부는 바람, 들판엔 금빛 송홧가루[전승훈의 아트로드]

    ​옛 서울역은 80년 동안 서울의 관문으로 교통과 교류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2004년 KTX 신역사가 생기며 옛 서울역은 문을 닫았다. 그리고 2년여의 공사 끝에 2011년 ‘문화역서울284’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284는 옛 서울역의 사적(史蹟) 번호. 이 곳에서는 현재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원장 장동광)이 주최하는 ‘K판타지아 프로젝트’의 첫번째 기획전시회인 ‘생명광시곡, 김병종’이 10월24일까지 열리고 있다. 올해부터 매년 한번씩 열리는 ‘K판타지아 프로젝트’는 한류(K컬쳐)가 전세적으로 확산되는 시대를 맞아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을 탐구하는 특별기획. 첫 전시는 ‘화첩기행’으로 잘 알려진 작가 김병종(서울대 명예교수)의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아트 아카이브 형식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동양화에 뿌리를 둔 김 작가는 서양화, 미술과 문학 등 장르 간 경계가 없이 활동해온 통섭의 예술가다. 전시장에는 김 작가의 회화, 문학, 지필묵, 오브제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광시곡이 연주되듯 펼쳐진다. 역사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중앙로비에 시원한 푸른색 대나무숲이 펼쳐진다. 김병종 작가의 신작인 ‘풍죽(風竹)’이다. 문인화 사군자 중의 하나인 대나무를 초록색이 아닌 푸른색으로 그려 새벽녘 어스름한 안개 속 대숲처럼 청명한 기운이 느껴진다. 풍죽 연작은 1,2등석 대합실에도 전시돼 있다. 김 작가는 연작을 그릴 때 화면을 분할해서 이어붙이는 방식으로 그리기 때문에, 공간의 특성에 맞게 적절하게 이어붙여 전시를 할 수 있다. 서울역의 대합실 공간에 맞게 각을 주어서 둘러싸게 만드니 더욱 대숲의 한 가운데 들어온 듯한 아늑함이 느껴진다. 김 작가는 전통적인 대나무 그림처럼 줄기와 가지는 그리지 않고 댓잎만 그렸다. 그래서 전통 수묵화의 댓잎이 추상화된 현대미술에 가까워졌다. 수많은 댓잎들이 이리저리 중첩된 모습을 보고 있으면 “솨~아”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림이 아니라 소리를 담고 싶어 그린 그림”이라는 해설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로비 옆 3등 대합실 공간에서는 ‘동심의 기억’ 전시가 이어진다. 황금빛 송홧가루(소나무의 꽃가루)가 온세상을 덮는 ‘송화분분(松花粉粉)’ 시리즈다. 작가의 고향인 지리산 자락의 남원에서는 봄철이면 송홧가루가 날려 온 산천이 노랗게 변하는 모습을 그린 환상적인 작품이다. 곤충을 이용해 수분을 하는 꽃과 달리 소나무는 바람을 이용해 수분하는 풍매화. 소나무는 봄철이면 대량의 꽃가루를 먼 곳으로 날려 수분을 시도한다. 봄날에 송홧가루가 날리면 시골집 마루와 장독대는 누렇게 되고, 바람이 세게 불면 앞산 숭홧가루가 뿌옇게 동네를 가로질러 날아다닌다. 생명의 대이동이다. 송홧가루는 봄철의 지리산 계곡과 폭포, 바위, 숲 속에도 날린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 앞산과 뒷산이 교접하는 관능과 몽환의 세상을 만들어낸다. 송홧가루를 뒤집어 쓴 황금 닭도 보인다. 생명의 노래는 ‘어락(魚樂)도’로 이어진다. 계곡에서 물고기를 잡고 놀던 시절의 행복감을 표현한 작품이다. 아이는 아예 물고기를 타고 논다. 물고기 위에 벌렁 드러눕는가 하면, 거꾸로 물구나무를 서서 곡예를 부리기도 한다. 제주에서 스킨스쿠버와 물질을 배웠던 기자에게 어락도는 크게 공감이 가는 그림이었다. 물 속에서 만나는 물고기들은 다이버를 커다란 물고기로 인식해서인지, 가까이 다가가도 잘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호기심어린 몸짓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2악장 ‘덧없는 꽃’은 김병종 작가의 또다른 대표주제인 ‘화홍산수(花紅山水)’도를 전시하고 있다. 화홍산수란 ‘꽃(花)이 산하(山水)를 붉게 만든다’는 뜻이다. 동백인지, 장미인지 알 수 없는 붉은색 꽃잎은 원초적인 생명 그 자체를 상징하고 있다. 꽃잎의 중앙에는 검은색 먹물이 번져 깊은 심연을 이루고 있고, 꽃잎은 붉은색 방울을 흘리고 있다. 꽃의 관능적인 생명력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붉은색 꽃잎의 주변으로 날짐승과 물고기, 호랑이와 곤충들이 날아다닌다. 화홍산수는 전통적인 의미의 산수화는 아니다. 그러나 단순한 선에서 우리의 산수풍경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리산의 계곡물에는 오리들이 떠다니고,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나무 위에는 닭이 한마리 올라가 홰를 치고 있다. 옛 서울역사의 복도에 화홍산수 그림이 전시돼 있다. 서측복도에 전시돼 있는 화홍산수. 3악장 ‘감추어진 샘’은 숲의 테마 연작을 통해 작가의 수묵과 수제 닥종이를 이용한 실험적 시도를 살펴볼 수 있다. 가로 9.6m, 세로 1.9m의 압도적 크기를 자랑하는 ‘생명의 노래-숲은 잠들지 않는다’(2003)는 작가가 직접 만든 닥나무 원료인 ‘닥판’이라는 바탕에 숲 속의 밤 풍경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큰 붓질로 그린 선들은 이리 저리 얽히며 자라는 나무들이고, 거친 붓질은 솔잎을 표현했다. 그 사이로 새가 날아다니고, 나비가 날고, 들짐승이 숨어 있다. 무서운 밤의 숲 속에 숨어 있는 해학적인 짐승들의 모습은 우리 전통 민화를 연상케한다. 이 그림은 닥나무 섬유와 한약재 등을 섞어 만든 화면이 채 마르기 전에 큰 붓을 휘둘러 그렸다고 한다. 그래서 붓의 움직임과 방향이 또렷하게 남아 있는 새로운 방식의 수묵화가 탄생했다. 지리산 자락 남원에서 태어난 김 작가에게 ‘숲’은 그의 유년기를 위로해 준 넉넉한 품이었다. 작가는 어릴 적 서늘하고 검은 숲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하는데, ‘12세의 자화상’은 특히 어두워 보인다. 12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슬픔과 외로움을 겪고 있던 소년이 숲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있는 모습이다. 1998년작 수류화개(水流花開)는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다’는 뜻. 박스로 쓰이는 가로 4m 골판지에 먹과 물감으로 그린 작품이다. 2012년 작 상선약수(上善若水)는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말이다. 이 작품도 골판지에 그렸다. 김병종 작가는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으로 등단하기도 했고, ‘화첩기행’을 비롯한 많은 저서를 펴냈고, 에세이와 시나리오, 희곡을 쓰기도 했다. 그는 ‘글 쓰는 화가’로 일간지에 칼럼을 꾸준히 기고해오기도 했다. 전시장에는 작가의 붓과 벼루, 도장, 한지, 달항아리, 원고지 등도 전시돼 있다. 김병종 화백이 그린 ‘서울역으로 가는 야간열차의 추억’. 야간열차를 탄 승객들의 고단한 삶이 그대로 느껴진다. 한층 올라가면 마지막 4악장이 펼쳐진다. 1990년대 말부터 연재한 문학과 미술의 대장정인 ‘화첩기행’ ‘시화기행’에 담긴 삽화 80여 점과 글이 전시돼 있다. 김 화백의 ‘화첩기행’은 단순한 풍경을 넘어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까지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전시의 마지막 순서에는 김병종 작가의 대표작인 ‘바보예수(Jesus, the Fool)’ 연작이 나온다. 1980년대 후반 이 작품이 발표됐을 때 국내에서는 ‘신성모독’이라고 종교계의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독일, 프랑스 등 해외에서 오히려 큰 반향을 일으켜서 호응을 얻었던 작품이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도 스스로를 ‘바보’라고 칭하고, 자신의 자화상 그림에 ‘바보야’라고 쓰기도 했다. 신림동 난곡의 판자촌, 가난한 이들과 함께 있는 바보 예수.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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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름이 폭포수처럼 흐르는 ‘마터호른제색도’[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스위스 서남부 발레주에 있는 체르마트는 해발고도 1620m에 있는 산골 리조트마을이다. 마을 주변에는 4000m급 알프스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그 중에서도 사계절 눈덮인 마터호른(4478m)이 거인처럼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가을이 오는 알프스를 트레킹할 수 있는 최적의 출발 장소이자 베이스캠프다. ●수네가 5대호수 트레킹 스위스 알프스를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트레킹이다. 천천히 걸으며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소의 워낭소리를 들으면 그렇게 평화로울 수 없다. 알프스 산에서는 방목하는 소들이 어디로 가는지 쉽게 알기 위해 방울을 채운다. 가을이 되면 눈이 내리기 전에 산 위에서 방목했던 소들이 산에서 내려오고, 체르마트 마을에는 봄부터 여름까지 수고했던 목동들을 위로하는 ‘목동축제(Shepherd Festival)’가 열린다. 알프스 등반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체르마트 마을에는 가을을 맞아 클래식 음악회와 축제를 알리는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체르마트에서 유명한 트레킹 코스는 3곳이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해발 3883m)인 ‘마테호른 빙하 파라다이스’에 올라가 빙하 트레일을 즐기거나,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서 리펠호수까지 걷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기 있는 코스는 수네가 전망대로 올라가 5개 산정호수를 찾아다니는 트레킹이다.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로고로 쓰인 마테호른 봉우리가 수정처럼 맑은 호수에 비친 모습은 알프스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체르마트 5대 호수 트레킹(5 lakes Trekking)을 위해 케이블 철도를 탔다. 땅속 터널을 45도 각도로 상승하는 철도를 타니 10분 만에 ‘수네가 파라다이스’(2288m)역에 도착했다. 마테호른을 정면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한 테라스다. 그런데…. 비와 구름에 가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전망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고민을 했다. 비오는 날씨에 트레킹을 해? 말어? 옆에서 감자칩에 맥주를 마시고 있던 네덜란드 여행객이 어제 맑은 날씨에 트레킹한 사진을 보여준다. 순간 부러움이 부글부글. 그래 일단 출발하자! 마테호른을 볼 수 없다하더라도, 대자연의 품에 안겨 걷는 것만으로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이리라. 다시 곤돌라를 타고 블라우헤르트(2571m)까지 올라간다. 길목마다 5개 호수 트레킹을 알리는 노란색 표지판이 있어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드디어 첫 번째 호수인 슈텔리제(Stellisee)가 나타났다. 수많은 초콜릿 광고에서 마테호른을 비추는 포토제닉한 사진으로 유명한 전설의 호수다. 그런데 구름낀 날씨 탓에 하늘도 호수도 모두 곰탕이다. 거의 1시간을 기다렸을가. 아무래도 구름이 열리지 않을 것 같아 다음 호수로 출발했다. 알프스 3000~4000미터급 준봉들 사이로 쉴새 없이 흘러가는 구름이들이 폭포수처럼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가 눈 앞에서 살아움직이는 듯한 장면이다. 제색도의 ‘제(霽)’는 비나 눈이 그친 후 날씨가 쾌청해진다는 뜻. 온종일 비가 내린 후 습기 머금은 산이 더욱 청명해보이는 느낌이다. 한참 걷고 있는데 드디어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이어서 거인같은 마테호른이 두둥! ‘마터호른제색도’가 진짜로 눈 앞에 펼쳐졌다. 언젠가 백두산 천지에 갔을 때도 그랬다. 잔뜩 내려앉은 비구름에 싸여 천지는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 속으로 간절히 빌고, 기도하길 30분이 지났을까. 그 정성에 감동을 받았는지, 구름이 서서히 열리고 천지가 개벽했다. 처음부터 맑은 날씨에 만나는 천지보다, 구름 속에서 한꺼풀씩 벗겨지며 나타나는 천지는 더 신비스러운 모습이었다. 알프스에서구름을 뚫고 신선처럼 나타난 마터호른은 좌선하고 있는 미륵불처럼 보였다. 마터호른을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생각이 나났다. 슈텔리제로 돌아가자! 호수에 비친 마테호른을 찍어야 할 것이 아닌가! 언제 다시 구름에 갇힐지 모르니 서둘러야 했다. 그러나 해발 2500미터 가량의 산길에서 오르막길을 되돌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공기 중 산소가 부족해 숨이 턱턱 차올랐다. 호수로 돌아오니 드디어 보였다. 크리스탈처럼 맑은 호수에 마터호른이 장엄하게 담겨 있었다. 거의 2시간을 기다린 끝의 만남. 날이 흐려 흑백사진같은 느낌이 깊은 침묵에 빠져들게 했다. 야생화가 피어 있는 알프스의 구름 속을 부지런히 걷다보니 그린지 호수(2334m), 그륀호수(2300m), 에머랄드빛 모스예 호수(2148m)가 나타났다. 마지막 호수 라이호수(2232m)에 도착해 바위에 걸터 앉아 쉬었다. 수네가 파라다이스 전망대 바로 아래에 있는 이 호수에서도 마테호른이 비치지 않는가. 굳이 3시간을 걷지 않았어도 될 일이었지만, 알프스 구름 속의 산책의 경험은 다시 얻기 어려우리라. 마테호른은 알프스 4000m급 고봉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등정됐을 만큼 난공불락의 봉우리였다고 한다. 8년 동안 15개 팀이 마테호른에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1865년 7월14일. 영국 등반가 에드워드 윔퍼의 등반팀이 마테호른을 세계 최초로 정복하면서 체르마트는 알프스 등반의 베이스캠프 리조트 마을로 유명해졌다. 체르마트 시내 생모리스 교구 주교좌 성당 앞에는 마테호른 박물관이 있다. 마테호른 등반과 관련된 수많은 컬렉션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윔퍼 등반팀이 사용했던 끊어진 로프다. 당시 등반대는 하신길에 낙석에 맞아 7명을 묶은 로프가 끊어지면서, 4명이 1000m 아래 빙하로 떨어져 목숨을 잃었던 슬픈 사연을 담은 유물이다. 알프스 환경보호를 위해 체르마트에는 자동차가 처음 발명된 1885년 이래 자동차의 진입이 허락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대신 1988년 최초의 마을 내 공공 전기버스가 운행을 시작했다. 그래서 체르마트에 방문할 경우 렌터카는 5km 떨어진 아랫마을 태쉬(Täsch)에 주차를 하고, 12분이 소요되는 산악열차를 타고 와야 한다. 체르마트 숙소에서 머물 때 가장 매력적인 곳은 바로 베란다다. 시내 어느 곳에서도 4478m급 마테호른 봉우리가 보이기 때문이다. 해질녘 베란다에 앉아서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체르마트 맥주(Zermatt Bier)를 한잔했다. 해가 저물며 빛에 따라, 바람과 구름에 따라 변화하는 마테호른의 모습은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 야구 축구 생중계보다도 더 흥미진진했다. ●골든패스 산악열차타고 빙하 트레킹 알프스를 즐기는 또하나의 방법은 산악열차 여행이다. 클래식한 디자인의 열차는 지붕까지 이어지는 넓은 유리창을 갖췄다. 열차가 달리면 알프스의 봉우리와 호수, 초록빛 들판, 전나무 숲 속에 지어진 샬레(스위스 전통가옥)가 3D 입체화면으로 다가온다. 몽트뢰에서 인터라켄 오스트까지 이어지는 3시간 여 구간의 ‘골든패스(GoldenPass)’ 파노라마 열차. 레만호부터 베르네제 알프스의 황금빛 가을의 정취를 제대로 느껴볼 수 있는 산악기차 여행이다. 열차를 타면서 한가지 궁금증이 일었다. 스위스 산 속의 초원은 어떻게 그렇게 깨끗해보일까? 우리나라 같으면 잡초도 우거지고, 억새가 흔들리고, 잡목과 넝쿨도 우거져 있을텐데. 스위스 산 속 들판은 잔디를 심어놓은 골프장의 페어웨이처럼 산뜻하다. 소가 풀을 다 뜯어먹어서일까? 그렇다고 저렇게 깔끔할 수 있을까. 자세히 보니 커다란 풀깎는 기계가 경사진 산비탈을 다니고 있었다. 깎은 풀더미는 겨울철 소들의 사료로 쓰기 위해 트럭에 실려 보관창고로 가는 모습도 보인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스위스 농촌의 평화로운 모습은, 절대로 자연적으로 된 것이 아니었다. 스위스의 경관을 중요시하는 농업은, 주민과 공무원의 철저한 관리 속에 이뤄지는 ‘관광인프라’이기도 하다. 몽트뢰에서 골든패스 파노라마 열차를 타고 약 2시간. 그슈타트역에서 내렸다. 콜 뒤 피용에 있는 케이블카를 타고 ‘글래시어(Glacier) 3000’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레만호 지역에 있는 알프스 산으로 빙하 위를 트레킹할 수 있는 명소다.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도착하니 스위스 출신의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역에 도착한다. 그는 국내에서도 경기 화성시 남양읍에 지은 ‘남양성모성지대성당’을 설계한 것으로 친숙한 건축가다. 케이블카 역 뒷편 계단을 오르면 두개의 산봉우리를 잇는 강철 현수교인 ‘티쏘 피크 워크(Peak Walk by Tissot)’가 있다. 길이 107m, 너비 80cm의 출렁다리를 걷다보면, 알프산를 넘어오는 바람에 온 몸이 흔들린다. 거센 바람에 날아갈까봐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도 힘들다. 다리를 건너 전망대에 서니 눈 덮인 24개 이상의 4000m급 알프스 봉우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아이거, 융프라우, 마테호른, 그랑 콩뱅은 물론 저 멀리 프랑스 몽블랑까지…. 전망대 아래쪽 평원에는 빙하가 펼쳐진다. 푸른 하늘색과 하얀 빙하가 어우러지는 색다른 트레킹 코스다. 이 곳 빙하에는 크레바스가 없어서 안전하다. 5월부터 9월까지 ‘알파인 코스터(총 1km)’가 운행되기도 한다. 최대 시속 40km로 질주하며, 520° 회전과 급커브와 웨이브, 6m나 솟구치기도 해 아이들과 함께 신나게 즐길 수 있는 빙하 속 놀이기구다. 실제로 걸어본 빙하 평원의 곳곳에는 얼음이 녹아서 흘러내리는 도랑물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수천만년 동안 녹지 않는 빙하지대로 유명했던 ‘글래시어 3000’의 얼음도 기후변화로 거의 다 녹아내리기 직전이다. 빙하 끝까지 다녀오는 2시간 코스를 완주하려면 방수가 되는 튼튼한 등산화가 필요했다. 산 정상 케이블카 역에는 르 카르노제 카페가 있다. 알프스 연봉을 바라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산 위에서 마시는 따뜻한 핫초코 한잔은 빙하 바람에 떨었던 몸을 녹여주는 특효약이다. 체르마트(스위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4-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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