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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1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를 통해 ‘포스트 하노이’ 구상을 어느 정도 완성했다. 대미·대남 협상 조직에 변화를 두면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상 돌파구를 찾는 동시에 자력갱생을 통해 미국 주도의 제재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것을 성과로 보여주겠다는 것. 특히 김 위원장이 핵심 대미 라인들을 국무위원회에 결집시키고,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까지 국무위원회 산하로 옮긴 것으로 분석됐다.○ 대미 협상, 통전부에서 국무위로 최룡해는 우리의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차지한 데 이어 새로 신설된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오르며 명실상부한 2인자가 됐다. 다만 권력 집중을 우려해 맡아왔던 당 조직지도부장 직책은 리만건 당 부위원장에게 넘겼을 가능성이 나온다. 최룡해는 11일 김 위원장의 국무위원장 재추대 연설에 나서 “최고영도자 동지를 따르는 길에 우리 조국의 존엄과 영예, 무궁한 발전과 찬란한 미래가 있다”며 충성 맹세를 했다. 관심을 끄는 것은 그동안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에서 평양을 지켰던 최룡해가 대미 협상 전면에 나서느냐다. 그가 2인자가 된 국무위원회엔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리용호 외무상,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상 위원)에 ‘김정은 집사’ 김창선 부장, 김혁철 대미특별대표까지 있다. 하노이 결렬 이후 경질설까지 돌았던 김영철을 견제하거나 역할에 따라선 협상 바통을 이어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당 중앙위 위원-국무위원-외무성 제1부상까지 휩쓴 최선희의 역할은 대폭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김영철의 거친 화법을 불편해했던 미국으로서는 최룡해를 더 선호할 수 있다. 과거 중국, 러시아 특사 경험이 있는 최룡해가 대미 특사로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여기에 내각 아래 있던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국무위원회 산하 조직으로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고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최고인민회의 분석 보고서’를 통해 밝혔다. 대미 실무는 외무성, 대남 실무는 조평통에 맡기지만 이를 국무위원회 아래 넣으면서 김 위원장이 직접 세세히 챙기겠다는 것이다. ○ 시 주석 “北 사회주의 사업 새로운 역사 단계” 김 위원장은 10일 당 전원회의에서 ‘자력갱생’을 투쟁 노선으로 강조하면서 경제의 새 사령탑인 내각총리에 김재룡 자강도 당 위원장을 내세웠다. 김재룡은 중앙 정치에선 낯선 ‘지방 토박이 관리’로 산간 오지인 자강도를 관리하다가 자력갱생 실무 지휘봉을 잡게 됐다. 자강도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 자체적으로 경제난을 타개한 ‘강계 정신’으로 유명한 곳이어서 제재 장기전에 대비해 당시 노하우 전파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12일 김 위원장에게 축전을 보내 국무위원장에 재추대된 것을 축하하며 “북한의 경제사회 발전이 끊임없이 새로운 성과를 얻었으며 사회주의 사업은 새로운 역사 단계에 진입했다. 중국과 북한은 끈끈한 이웃 나라”라고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축전을 보내 “양자 및 지역 현안들과 관련 (김 위원장과) 공조할 준비가 돼 있음을 확인하고 싶다”고 밝혔다고 타스통신이 전했다. 황인찬 hic@donga.com·주성하 기자}

“김영철은 이제 빠져, 최룡해가 외무성 데리고 해봐”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차 1일 회의가 11일 마무리되면서 숨 가쁘게 이어져 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4월 행보도 일단락을 맺게 됐다. 4월 초에 보여준 김 위원장의 행보를 자세히 분석해 보면, 북한이 발표하는 공식 성명과는 달리 김정은의 진짜 속마음이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다.● 통전부 중심 대미협상, 국무위 중심으로 11일 제14기 1차 1일 회의에선 북한의 지도부 개편이 다뤄졌다. 가장 눈길을 끈 부분은 대미협상 라인을 새롭게 정비하고 크게 힘을 실어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북미 협상은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주도해 왔다.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나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 등도 회담에 등장하긴 했지만, 김 부장의 영향력이 가장 컸다. 즉 김정은을 둘러싼 대미협상 라인 중 김영철의 입김이 가장 셌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번 최고인민회의를 계기로 김정은은 통전부가 주도해 온 북미 협상을 국무위원회 차원에서 다루겠다는 의지와 함께 정통 외교 라인인 외무성에 힘을 실어줬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는 최룡해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임명과 최선희의 국무위원 선임이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북한을 대외적으로 대표하며, 대외 외교를 책임지는 자리다. 지금까지 이 자리를 91세인 김영남이 차지하고 있었다. 고령의 김영남은 대미협상에서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젊은 최룡해가 상임위원장이 되면서 앞으로 그의 외교활동이 대단히 활발해지는 것은 물론, 김영철이 맡았던 대미 특사도 최룡해가 직접 넘겨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미 강경파인 김영철보다 상대적 온건파인 최룡해가 북미협상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것은 교착상태인 북미회담에 새로운 변수가 된다. 최룡해는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직에도 임명되어 국무위원들인 리수용 당중앙위원회 국제부장,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리용호 외무상, 최선희 외무성 부상 등을 지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최선희는 부상급에 불과하지만 이번 회의에서 상도 임명되지 못하는 국무위원이 됐다. 이는 김정은이 외무성 라인 중심의 대미협상파에 엄청난 힘을 실어준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한편으론 하노이 회담 이후 최선희에 대한 신뢰가 더욱 커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시에 향후 북미협상의 주역은 통전부 중심에서 외무성 중심으로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인선 결과는 김정은이 여전히 북미회담의 성공과 대북제재 해제에 올인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말로는 “자력갱생”, 마음은 “제재해제” 김정은은 최고인민회의 전날인 10일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자력갱생’을 25번이나 직접 언급했다. 그는 “제재로 굴복시킬 수 있다고 오판한 적대세력에게 타격을 줘야 한다”며 “자력갱생을 번영의 보검으로 틀어쥐고, 총돌격전, 총결사전을 과감히 벌이는 것이 4차 전원회의의 기본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은 대북제재가 언제 해제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김정은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다. 즉 원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택할 수밖에 없는 유일한 카드가 자력갱생인 것이다. 하지만 자력갱생은 북한 주민들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수없이 들었던 말이기 때문에 내부를 단속하게 해 결집시키는 효력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4월 초에 집중적으로 이뤄진 김정은의 집중 경제 시찰은 ‘비둘기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는 속담을 떠올리게 한다. 김정은은 4일 양강도 삼지연군 건설현장을 방문으로 올해 첫 경제시찰을 시작한데 이어, 6일 강원도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와 평안남도 양덕온천관광지구를 방문했다. 8일에는 개업을 앞둔 평양 대성백화점을 찾았다. 대북 제재가 해제돼야 성공할 수 있다는 곳만 찾아다닌 것이다. 삼지연과 원산, 양덕은 모두 대북 제재가 해제돼야 외부인들이 들어갈 수 있는 관광단지다. 수입산 판매가 위주인 대성백화점도 대북제재가 유지되는 한 절대로 잘 나갈 수 없는 곳이다. 이런 곳들만 찾아다녔다는 것은 김정은이 겉으로는 자력갱생을 외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져 있음을 인식하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대북제재를 풀면 내부의 관광 및 상업 인프라가 바로 받쳐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볼 때 4월의 김정은의 행보는, 그가 여전히 대북제재 해제를 위한 추가 협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2017년 2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남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베트남 여성 도안티흐엉(31)이 다음 달 초 석방된다. 말레이시아 법원은 1일 흐엉에게 3년 4개월 형을 선고했는데 그가 이미 2년 넘게 수감 생활을 한 데다 통상적인 감형 절차까지 고려해 다음 달 풀려나게 됐다. 흐엉과 함께 김정남 살해에 동참한 인도네시아인 시티 아이샤(27)는 지난달 석방돼 본국으로 돌아갔다.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던 김정남 살해 사건은 주범을 밝히지 못한 채 결국 흐지부지 끝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 사건이 북한의 소행임은 누구나 안다. 북한 공작원들은 흐엉과 아이샤의 손에 각기 다른 화학물질을 묻혀 김정남의 얼굴에 바르게 했다. 따로 있으면 독성이 없는 이 물질들은 섞이는 순간 맹독성 독극물 VX로 변한다. 그래서 먼저 화학물질을 바른 아이샤는 멀쩡했지만, 두 번째 화학물질을 바른 흐엉은 독극물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흐엉이 곧바로 화장실에서 손을 씻었지만 구토 증세를 보인 이유다. 재빠르게 대처하지 않았다면 흐엉도 현장에서 죽었을 것이다. 북한은 VX처럼 두세 가지 물질이 섞이기 전까지는 독성을 띠지 않는 이원화, 삼원화 형태의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이 독극물들은 북한에서 정치범 등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통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아직도 그 실체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이 한창이던 몇 년 전 나는 북한 현직 과학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는 “생화학무기는 북이 가장 숨기고 싶은 것이자 세계가 가장 모르는 분야”라며 “핵을 내놓아도 생화학무기를 내놓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또 “핵무기는 사찰이 가능할지 몰라도 화학무기는 사찰이 불가능하다”고도 했다. 그 이후에도 여러 북한 출신 관련 전문가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북한 생화학무기의 실체에 접근하지 못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화학무기의 특수한 제조 과정이 걸림돌이다. 화학무기는 각각 무해한 화학물질을 만든 뒤 특수 제작한 폭탄이나 포탄에 넣어 보관한다. 이것이 폭발해 물질이 섞이는 순간 살상무기가 된다. 따라서 화학무기는 화학 공식을 만드는 개발자만 진실을 파악할 뿐 생산자들은 자신이 화학무기용 물질을 만든다는 사실조차 알기 어렵다. 반면 핵무기는 개발자나 현장 생산자 등이 모두 핵무기를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 화학무기 생산의 중추는 화학산업 연구의 핵심인 과학원 산하 함흥분원으로 추정된다. 함흥분원에는 화학공학연구소, 화학실험기구연구소, 화학재료연구소, 유기화학연구소, 무기화학연구소, 분석화학연구소 등 10개의 직속 연구소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함흥분원 옆에는 국방과학원 소속인 화학재료연구소가 있으며, 자강도 강계에도 화학 관련 연구시설이 있다. 이 중 어디에서 화학무기가 설계되고 만들어지는지를 특정하기는 쉽지 않다. 화학무기 연구소와 생산 라인이 같이 있다는 점도 북한 화학무기의 실체를 알기 어렵게 만든다. 특정 물질이 개발되면 필요한 양만 생산하고 해당 생산라인은 멈춰진다. 만들어진 물질은 화학무기를 운용하는 부대에서 직접 수령해 무기화한다. 미사일 운영 특수부대인 ‘전략군’처럼 화학무기 운영 전담 부대도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생물무기 개발의 목표는 한국군의 전투력 상실에 있다고 한다. 특히 장염을 일으키는 생물무기가 이미 여러 종이 생산됐다는 증언도 있다. 탄저균처럼 치명적 균도 연구를 끝낸 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화학무기를 수출까지 한다. 대표적으로 시리아 정부군이 사용한 화학무기엔 북한의 기술이 사용됐다. 지난해 2월 발행된 유엔의 비공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1990년대부터 시리아의 화학무기 생산을 지원했고 기술자들도 파견했다. 미국 국방정보국 한국 담당 연구원이었던 브루스 벡톨은 2007년에 사린가스와 VX로 채워진 탄두가 실수로 폭발하면서 북한 및 이란 지원단과 시리아 기술자들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북한의 생화학무기는 김정남 암살을 계기로 반짝 조명됐지만 다시 수면 아래로 묻히게 됐다. 어쩌면 김정은 정권이 존재하는 한 영영 베일에 감춰질지도 모른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최근 간식 시장에서 젤리 판매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젤리명가 오리온이 파우치형 곤약젤리 신제품 ‘닥터유 젤리’를 출시했다. 5년 전 690억 원대 규모였던 젤리 시장이 지난해 2000억 원대로 급성장하는 것에 발맞춘 행보다. 닥터유 젤리는 오리온이 곤약젤리 영역에 새롭게 도전하는 만큼 ‘마이구미’, ‘젤리데이’, ‘젤리밥’ 등으로 30년 가까이 축적한 젤리 노하우를 모두 아낌없이 담아낸 제품이다. 특히 1년 6개월의 개발 기간에 1500번이 넘는 배합과 실험을 거쳐 기존 곤약젤리 제품들과는 다른 ‘살아있는 탱글한 식감’을 극대화했다. 또 생물 기준 30%에 달하는 포도, 복숭아 과즙을 넣어 잘 익은 과일의 진한 맛을 그대로 살렸다. 특히 닥터유 브랜드 고유의 영양설계를 바탕으로 비타민C의 1일 영양성분 기준치를 100% 충족시킬 수 있게 했다. 오리온은 젤리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았던 1990년대 초부터 차별화된 제품을 출시해 젤리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마이구미 포도’, ‘마이구미 복숭아’, ‘마이구미 딸기’ 등 마이구미 브랜드를 비롯해 아이들 타깃 펀 콘셉트의 ‘왕꿈틀이’, 고래밥 해양 생물 캐릭터를 활용한 ‘젤리밥’, 성인 여성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젤리데이’, 신맛을 강조한 ‘아이셔 젤리’ 등으로 30년 가까이 ‘젤리명가’의 위상을 이어가고 있다. 오리온 관계자는 “닥터유 젤리는 기존 곤약젤리와의 차별화를 위해 식감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기능성까지 더한 것이 특징”이라며 “맛, 영양 등 제품 하나도 꼼꼼하게 따지며 나를 위해 소비하는 ‘미코노미족’(Me와 Economy의 합성어)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식이섬유와 수분으로 구성된 곤약은 포만감이 높고 변비 예방 효과가 탁월하다고 알려져 최근 들어 다이어트 간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 때문에 곤약을 활용해 국수에서 장조림까지 다양한 식품이 등장하고 있다. 이 중 젤리처럼 부드럽게 먹을 수 있는 간식과 결합한 제품들이 제일 인기가 있다. 곤약젤리는 설탕을 넣지 않았지만 충분히 단맛을 낼 뿐만 아니라 비타민과 같은 영양소도 풍부해 어린이들에게도 인기 만점이다. 또 칼로리가 낮으면서 쉽게 포만감을 느끼게 하고, 포만감 효과를 오랫동안 지속하게 해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 GS25에 따르면 사탕 매출이 일년 중 가장 높은 화이트데이 행사 기간(3월 1∼15일)에도 젤리 매출 비율은 60%로 사탕 매출 비율(40%)을 넘어섰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저 넓은 들판에 파랗게 새봄이 왔어요/가로등 그늘 밑에도 새봄이 왔어요/모두들 좋아서 이렇게 신바람 났는데/아이야 우리 손잡고 꽃구경 가자꾸나….(하략)’ 한국 포크음악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가수 이정선(68)이 1979년 발매한 4집 앨범(‘이정선 4’)에 수록된 곡 ‘봄’의 일부다. 산과 들에는 초록 새싹이 움틀 준비를 하고 있다. 콘크리트로 뒤덮인 도심에도 붉고 노란 꽃들이 수줍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꺼칠하던 가로수들도 푸른빛을 내며 생기를 되찾고 있다. 이제 따스한 봄볕을 맞으며 거리로 나설 때가 됐다. ‘한국관광공사’의 관광안내 사이트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소개한 도보여행 추천코스를 중심으로 봄에 걷기 좋은 길들을 소개한다.○ 도심 한복판에 찾아든 봄 절기상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춘분(春分)인 17일 서울 도심은 선선한 봄 날씨였다. ‘사라진 성곽길’로 소개된 광화문 일대를 걸어봤다. 서울의 옛 성곽들은 상당수 사라졌지만 길은 남았고 봄의 정취를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광화문광장을 출발해 서대문 방향으로 5분쯤 걷다 보면 서울역사박물관이 다가선다. 다양한 석상과 옛 전차 등 전시물을 지나자 박물관 본관에서 진행 중인 다양한 전시행사가 눈길을 끈다. 그 옆 아담한 고궁에 ‘흥화문(興化門)’ 현판이 보인다. 조선시대 광해군이 1618년 세운 경덕궁(현재 경희궁) 정문이다. 궁 안으로는 넓은 잔디밭과 울창한 나무숲이 펼쳐져 있다. 경희궁 인근 강북삼성병원 뒤편에는 백범 김구 선생이 1949년 피살된 ‘경교장’이 자리를 잡고 있다. 1938년 지어진 이 건물은 김구 선생이 1945년 중국에서 돌아와 서거할 때까지 집무실 겸 숙소로 사용하던 곳이다. 강북삼성병원 건너편에는 연인들의 명소로 꼽히는 정동길이 있다. 편도 1차로에 이화여고, 예원학교, 작은 카페, 식당 등이 있어 구경하며 걷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덕수궁 돌담길을 끼고 걷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을 들러도 좋다. 전시회를 보지 않더라도 미술관 주변의 멋진 조형물과 숲만으로도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옛 추억을 되새겨도 좋다. 이처럼 도심 속에서 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는 인천 중구 산책길, 대전 유성구 공부길, 부산 시간여행길 등을 꼽을 수 있다. 한국관광공사 김명주 홍보팀장은 “도보여행 추천코스 17곳은 누리꾼들의 조회수가 가장 많은 곳들로 선정됐다”며 “앞으로는 많은 국내 관광객이 여가시간을 보다 쾌적하게 지낼 수 있도록 잘 알려지지 않은 유망 관광지를 발굴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호수와 들녘을 뒤덮은 봄 최근 기온이 올라가면서 불청객 미세먼지에 고통받는 이들이 많이 찾는 곳이 있다. 강원 강릉시 경포호다. 특히 4월이 되면 경포호 주변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상춘객들을 유혹한다. 1960년 경포해수욕장이 개장하면서 조성된 벚꽃길은 수령 100년을 헤아리는 10여 그루의 벚나무도 있어 볼거리를 제공한다. 여기에 조선 후기 양반집인 선교장과 관동팔경(關東八景) 가운데 하나인 경포대, 참소리축음기&에디슨박물관 등도 모두 경포호를 둘러본 뒤 찾아볼 만한 곳들이다. 소설 ‘토지’의 주인공이 돼 봄을 맞는 일도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다. 경남 하동군 악양면 일대를 둘러보면 된다. 평사리공원부터 드라마 토지를 촬영한 세트장, 평사리문학관에 이르는 4.5km를 걷다보면 서희, 길상, 최치수 등 소설 속 등장인물이 걷고 먹고 마시며 잠자던 공간을 마주할 수 있다. 전남 영암군 군서면에는 2200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마을이 있다. 월출산(月出山)의 서쪽 자락에 위치한 구림전통한옥마을(왕인박사마을)이다. 많은 역사적 설화와 인물을 배출한 곳으로 12개의 누각과 정자, 전통가옥, 돌담, 고목나무 등이 옛날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이곳에서 시작해 죽정서원∼왕인박사유적지∼성기동국민관광지를 걷다 보면 먼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경험하는 시간여행도 가능하다. 이 밖에 경기 남양주시 팔당역 주변길이나 강원 고성군의 문화산책길, 경북 상주시의 느림보산책길, 경남 밀양시의 바람길, 전남 장흥군의 유치자연휴양림, 제주의 올레길 등을 걷다 보면 물아일체의 상태에서 봄에 안길 수 있다. ○ 골목길로 파고든 봄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위치한 홍익대라는 이름에서 시끌벅적한 이미지만 떠올린다면 아직 이 거리를 완전히 정복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홍익대 번화가에서 5분만 더 걸어가면 문화와 예술이 공존하고, 개성 넘치는 카페와 펍, 레스토랑이 구석구석 숨어 있는 골목길들을 만날 수 있다. 발 가는 대로 걷다 보면 이 골목이 저 골목 같고, 저 골목이 이 골목 같은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골목 곳곳에 숨어 있는 조용한 명당을 찾는 재미에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이 거리의 대표적 이색공간인 윤스칼라에서는 한류 드라마의 대표작인 윤수호 감독의 사계절 시리즈 ‘가을동화’ ‘겨울연가’ ‘여름향기’ ‘봄의 왈츠’에서 사용한 소품과 현장 사진, 드라마 세트 등을 볼 수 있다. 숲속 같은 분위기에서 맛있는 커피 한잔도 가능하다. 비영리 갤러리인 대안공간 루프에선 유망한 젊은 작가들의 전시를 만날 수 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색다른 볼거리를 찾고 싶다면 불쑥 들러도 된다. 루프 앞에는 비보이 전용극장도 있다. 상수동 이색거리에서 여유를 만끽했다면 다시 홍대입구역 쪽으로 몇 골목 걸어보자. 홍대 걷고 싶은 거리, 홍대 예술의 거리, 홍대 클럽거리 등이 즐비하다. 세상은 다시 분주해진다. 골목길이지만 전혀 다른 느낌을 찾는다면 경북 군위군 부계면 한밤마을 돌담길이 추천 1순위이다. 번잡한 도시의 골목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다. 이 밖에 경북 경주시와 경남 통영시에서도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골목길 경험이 가능하다.황태훈 beetlez@donga.com·주성하 기자}

북한에 김정은의 이름이 붙은 대학이 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이 대학은 김정은국방종합대학(김정은국방대)으로 국방 과학 인재들을 양성하는 곳이다. 2016년 6월 13일 이 대학을 방문한 김정은은 “국방종합대학의 기본 임무는 동방의 핵대국을 빛내어 나가는 기둥감을 훌륭히 키워내는 것”이라며 “우리나라에서 제일 실력 있는 대학, 대학 위의 대학, 세계 일류급의 대학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돌아갈 때 김정은은 대학 명칭 앞에 자기 이름을 붙이도록 허락했다. 북한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이름을 쓰는 대학이 각각 3개, 2개가 있다.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일성군사종합대학, 김일성정치군사대학은 당·정·군의 중추적 간부들을 양성하는 최고 대학이다. 김정일 시대에는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이 생겼지만, 이는 대학이라기보다는 대남 공작원 비밀 훈련소에 가깝다. 김정일 사망 1년 뒤 김정은은 보안(경찰)간부 양성 대학을 김정일인민보안대학이라고 명명했다. 김정은의 이름을 딴 대학은 국방대가 처음이다. 겸손을 내세우며 자기 생일도 공휴일로 지정하지 않는 김정은이 자기 이름을 쓰게 허락했다는 것은 국방 과학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웅변처럼 보여준다. 20여 년 전 사망한 김일성보다 살아있는 권력인 김정은의 끗발이 더 센 것은 당연한 일이다. 평양시 용성구역 중이동에 있는 김정은국방대의 대외명은 852군부대이다. 학생들도 군복을 입고 다니며 증명서엔 852군부대 학생으로 돼 있다. 이곳엔 각 지역 수재 학교인 1고등 최우수 졸업생을 중심으로 최고의 이공계 인재들을 최우선으로 뽑을 권리가 있다. 다른 특혜도 많다. 김정은이 수백 채의 최신식 아파트를 지어 교직원들에게 선물로 주고, 학생들을 졸업 전 노동당에 입당시킨 게 대표적이다. 학생들은 “김일성대는 저리 가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5년제 과정을 마친 졸업생들은 상위(중위와 대위 사이) 계급을 받고 군에 가거나 국방과학원이나 각 군수공장에 배치된다. 김정은국방대의 제1학부는 로켓공학부이다. 북한 로켓의 아버지로 불리는 김국태를 위시해 최고의 미사일 개발자들이 교수진이다. 국방대는 1963년 6월 13일 문을 열었다. 주요 임무는 미사일 개발이었다. 1960년대 후반 국방대는 강계공업대학으로 이름을 바꾸고, 자강도 강계로 이전했다가 1990년대 다시 평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2016년 김정은국방대가 됐다.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는 김정은국방대 인재들이 핵심 역할을 했다. 액체연료 엔진부터 고체연료 엔진 제작 실험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이들이 주도했고, 실험 도중 난관에 부닥칠 때마다 이들은 자체로 해결하거나 러시아 기술을 베껴서 극복해 나갔다. 김정은국방대 바로 옆엔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산음동 ICBM 조립공장이 있다. 미사일 설계와 조립이 한 세트처럼 맞물려 있다. 김일성대조차도 늘 정전 속에서 살고 있지만, 김정은국방대는 단 10분만 전기가 꺼져도 큰 사고로 여겨지고 비상이 걸린다. 북한이 2012년 12월 인공위성 발사라고 주장하는 ‘은하 3호’ 로켓 발사를 성공한 뒤 강일웅 국방대학장이 주석단 아래 1-1번 좌석에 앉기도 했다. 중장(한국군 소장) 편제인 학장에겐 상상도 못했던 엄청난 특혜였다. 김정은국방대에는 8개 이상의 학부가 있다. 각 학부에는 전자공학부, 금속공학부, 화학재료공학부 등의 이름이 붙어 있지만, 외부에는 숫자만 공개된다. 가령 323조는 3학부 2학년 3반이란 뜻이다. 국방대는 김정은의 이름이 붙기 전까지 3000∼4000명의 학생이 공부했다. 하지만 이후 학과가 10개 이상으로 늘었고 학생 수 역시 증가했다는 증언이 있다. 최근 김정은국방대에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드론이나 로봇과 같은 인공지능(AI) 관련 무기를 연구하는 학부가 새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다. 윤리가 안중에 없는 북한이기에 몇 년 뒤 어떤 괴물 무기가 나올지 알 수 없다. 집권 초기 5년 내내 쏘고 터뜨리는 데에만 집착한 김정은의 행보를 보면 국방대에 자기 이름을 붙인 것은 너무 잘 이해가 된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김정은은 “경제 발전보다 더 절박한 일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말이 신뢰를 얻자면 머잖아 김정은경제종합대학 정도는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미 정상회담을 열흘쯤 앞둔 때, 북한이 이번 회담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내부 움직임 두 가지가 포착됐다. 첫 번째는 2월 중순 대외 무역 기관과 회사들에 대한 전면적 조사였다. 처벌하기 위한 조사는 아니었다. 각 회사들의 매출액과 거래 품목, 해외 바이어 등을 파악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북한 내부 관계자는 “제재 와중에 난립했던 작은 회사들은 정리하고 주요 무역 자원을 국가가 틀어쥐겠다는 의미였다”며 “북-미 회담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주요 제재가 해제될 상황을 대비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같은 시기에 내려진 두 번째 조치는 해외 체류 4년 이상 외교관과 무역일꾼들에게 떨어진 귀국명령이었다. 지난해 11월 망명 후 잠적한 조성길 이탈리아 주재 북한대사관 대사 대리 부부가 빌미가 됐다. 북한은 떠들썩한 탈북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해외 체류자 철수나 임시 귀국 조치를 취했다. 따라서 이번 일이 새로운 일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결코 단순한 조치는 아니었다. 그동안 지속된 대북 제재로 북한 해외 인력의 상당수가 귀국하면서 해외에 남은 무역일꾼들에 대한 의존도가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베테랑들에 대한 철수 조치는 그만큼 믿는 구석이 있다는 의미였다. 김정은이 열차 여행을 선택한 것도 나쁘지 않은 징후였다. 그가 비행기와 열차 중 불편한 열차 여행을 고른 것은 개인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북한에선 김정은에게 열차에서 왕복 130시간 넘게 불편을 감수하고, 평양을 닷새 넘게 추가로 비워야 하는 무리한 일정을 요구할 만한 간부가 없다. 김정은은 열차를 타고 베트남을 가면서 중국의 발전상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을 것이다. 중국 대륙을 3박 4일간 둘러보며 김정은은 북한의 미래를 이모저모 꿈꿨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기대는 허망하게 무너졌다. 김정일이 준비해 간 보따리를 유일한 구매자였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미국식 거래 계산법에 대해서 굉장히 의아함을 느끼고 계시고 생각이 좀 달라지신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김정은의 심기를 전달했다. 언론에 공식적으로 밝힌 내용이 이 정도라면 실제로는 김정은이 크게 대노했다는 뜻이다. 이제 김정은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미국식 거래 계산법을 공부하거나 신년사에서 밝힌 대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어떤 결심을 해도 말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 그의 심정으로는 새로운 길을 찾아 미국에 본때를 보여주고 싶을 것이다. 굴레 벗은 망아지처럼 온갖 실험과 도발로 국제정치 상황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핵 기술을 외국에 팔겠다고 선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선택은 목숨까지 내걸어야 하는 위험한 도박이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북한의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중단을 자신의 최대 치적으로 선전하고, 김정은에게 온갖 찬사를 보내왔다. 따라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최대 치적이 최대 수모로 바뀌는 상황을 방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재선을 위해서라면 이라크처럼 북한을 공격할 수도 있다. 새로운 길을 위해 북한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를 계산하기란 쉽지 않은 문제다. 다만 지금 같은 강력한 제재가 지속된다면 북한은 머지않아 ‘제2의 고난의 행군’에 들어가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 경우 체제 붕괴로 이어지진 않겠지만, 김정은의 권위는 북한 인민으로부터 버림받을 수 있다. 고난의 행군 시절을 스위스에서 보낸 김정은은 곳곳에서 시체가 나뒹굴던 참혹함을 다 알지 못한다. 김정은은 17세 무렵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에게 “우리는 매일 이렇게 제트스키, 승마를 즐기는데 일반 인민은 뭘 하는가. 유럽과 일본에 가면 식량과 상품이 쌓여 있는데 북한에 돌아와 보면 아무것도 없다”며 고민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김정은의 마음 한구석에 아직도 당시의 고뇌가 남아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핵을 움켜쥐고 있는 한, 북한 인민이 제트스키와 승마를 즐기며 살 수 있는 날은 절대 오지 않는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김정은이 “외국인들이 보면 비웃겠다”고 한마디 했나 보다. 이달 들어 평양시내 아파트들이 1층 방범용 쇠살창을 떼어내느라 어수선하다. 방범창 철거가 간단해 보이지만 속내를 보면 복잡하다. 무엇보다 치안이 문제다. 이걸 떼면 베란다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베란다에 김치도 놔두고, 물품도 둘 수 있지만 쇠살창이 없으면 누가 몰래 가져가도 어쩔 수가 없다. 1층 베란다가 뚫리면 2, 3층도 도난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평양의 아파트 거주민 모두가 이번 조치에 불만을 감추지 않는 이유다. 평양에는 수만 명으로 추정되는 도둑 후보들이 득실거린다. 각종 공사가 진행되면서 지방에서 공사인력으로 차출된 군인들과 돌격대다. 이들은 평양에 들어와 천막을 치고 사는데 밤만 되면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거리를 배회한다. 아파트에 폐쇄회로(CC)TV가 있는 것도 아니고, 늘 정전이라 암흑 속에서 살다 보니 도둑질하기에 십상이다. 게다가 평양에선 일반적으로 도둑질에 대해 처벌이 경미하다. 지방에서 강제로 끌려온 군인들이 배가 고파 훔쳐 먹었다고 하면 처벌하기도 애매하다. 이런 것까지 감옥에 보내면 감옥이 넘쳐날 수밖에 없다. 군대에서 쫓아내면 너도나도 도둑질에 나설 것이다. 그냥 부대에 통보해 정치적 처벌을 요구하는 수밖에 없는데, 부대에 돌아가면 다 같은 처지라 “바보처럼 들켰느냐”는 비웃음을 받는 정도에 그친다. 결국 자기 집을 지키는 책임은 평양 사람들의 몫이다. 서울처럼 치안이 발달한 도시에서도 방범창이 없으면 불안한데 평양은 오죽하겠는가. 남쪽에선 방범창이 없어도 베란다 창문만 잘 잠그면 된다. 하지만 평양은 베란다에 창문을 설치하는 게 금지돼 있다. 김정일의 ‘유훈’ 때문이다. 평양 사진을 보면 대다수 베란다가 휑한 것도 이런 이유다. 창문을 막으면 난방 효과도 있고, 베란다를 창고로 쓸 수 있지만 평양에선 안 된다. 평양 베란다의 수난사는 제법 길다. 15년 전쯤 갑자기 모든 베란다를 다 막으라는 지시가 떨어진 적도 있다. 당시 사람들은 “갑자기 웬 인민을 위한 지시냐”며 감지덕지한 마음에 급히 창문을 막았다. 누구는 유리로, 누구는 비닐로 막았다. 그런데 제각각 창문이 보기 싫었는지 2011년 남포의 대안친선유리공장에서 생산된 유리를 팔 테니 그것으로 막으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능력이 안 되면 당장 단층집으로 이사 가라는 협박까지 나왔다. 주어진 며칠 안에 평양시민들은 유리를 사야 했고, 대안공장 유리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당시 집안의 가보인 TV를 팔아 유리를 산 집도 많다. 지시대로 유리를 설치한 지 며칠도 지나지 않아 이번엔 무조건 당일로 베란다 창문을 모두 떼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때 평양의 민심은 부글부글 끓었다. 당의 방침이니 대놓고 항의할 수도 없어 베란다 유리를 망치로 사정없이 깨뜨린 사람도 여럿이었다. 베란다 유리를 뗐다 붙였다 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사람들이 추락사하기도 했다. 지시가 오락가락한 이유는 단순했다. 베란다 창문 설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던 시점에 공장 시찰을 나갔던 김정일이 “토끼장처럼 보이니 다 떼라. 외국인들이 평양에 와보고 얼마나 비웃겠느냐”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단층집으로 내쫓는다는 협박에 급히 창문을 설치하다 보니 누구는 통유리로, 누구는 값싼 작은 유리로 조각조각 막아야 했다. 창틀에 대한 규정도 없어 누구는 알루미늄 틀을 쓰고, 누구는 나무로 급히 만들어야 했다. 그 결과 토끼장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베란다 창틀 철거 지시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다만 김정은 시대엔 통일된 창을 설치할 수 있는 대로변 아파트에만 베란다 창문이 허용됐다. 이건 돈 많은 사람들만 베란다에 창문을 달 수 있다는 뜻이다. 평양은 또 한 번 춥고 어두운 긴 겨울을 이겨냈다. 반짝 좋아진 듯했던 평양의 전기 사정은 지난해 초겨울에 접어들며 또다시 악화돼 몇 시간밖에 불이 들어오지 않을 정도다. 재작년 보안성이 몰래 중국에서 밀수해 온 10만 kW 발전기 2대가 다시 고장 났을 가능성이 크다. 외국인을 의식해 방범창까지 떼어낸 평양을 뒤로 하고 김정은은 이달 말 베트남에 날아가 역사적 북-미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김정은이 이번 기회에 전 세계의 시선을 제대로 의식하길 바란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고리타분하고 현실세계와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평가받던 철학이 비즈니스와 결합해 다시 돌아왔다. 불확실한 시대에 불분명한 문제들과 싸워야 하는 것이 현대인의 숙명이라면, 철학은 이들에게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깊이 있게 통찰하고 해석하는 데 필요한 열쇠를 준다. 특히 경영의 가장 큰 화두가 혁신인 기업의 입장에서 철학은 눈앞에 닥친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하는 생각의 기술을 알려준다. 저자 야마구치 슈는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선 미학미술사를 공부해 경영에 관한 정식 교육은 전혀 받지 못했지만, 철학을 무기로 세계 1위 경영·인사 컨설팅 기업 콘페리헤이그룹의 시니어 파트너가 됐다. 그는 본질을 꿰뚫고 최적의 솔루션을 찾아내는 철학적 사고법이야말로 현대인의 가장 큰 무기라고 주장한다. 그는 비즈니스 현장에서 유용하게 사용하는 50가지 사상과 철학을 담아 신간을 출간했다. 이 책은 일본 아마존 인문·교양 베스트셀러에 올랐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이달 27, 28일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개최된다. 회담지로 낙점된 베트남은 미국과 북한에 있어 서로 다른 시각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국가다. 북한의 시각에서 베트남은 ‘혈맹의 국가’에서 ‘배신의 국가’로, 다시 ‘따라 배워야 할 국가’로 자리 잡았다. 미국에 베트남은 ‘패전당한 국가’에서 ‘친구의 국가’로 바뀌었고, 이제는 ‘북한의 표본이 될 국가’로 다가섰다.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50여 년 전 베트남 상공에서 미군과 북한군은 생명을 내건 전투를 벌였다. 당시 북한이 베트남 전쟁을 사회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의 전쟁으로 규정하고, 수백 명의 지원군을 파견하면서 펼쳐진 상황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혈맹이었던 북한과 베트남이 ‘애증의 역사’를 갖게 된 이유는 뭘까.○ “하노이 상공을 평양 하늘처럼 사수하라” 지난해 9월 9일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뜻밖의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베트남전 참전 공군 종대가 사상 처음으로 등장해 김일성광장을 행진한 것이다. 북한 조선중앙TV는 “비엣남(베트남)전쟁에 참가하여 수적·기술적 우세를 자랑하던 적의 공중 비적들을 무자비하게 박살내어 조선인민군의 본때를 남김없이 보여준 공군 종대가 나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베트남 참전 사실을 숨기던 북한이 외부에 이를 당당히 공개한 것이다. 북한은 베트남전 초기 무기 10만 정, 군복 100만 벌 등 물자를 지원했다. 이후 전쟁이 본격화되자 1966년 말부터 공군과 공병부대를 ‘지원군’이란 이름으로 파병해 북베트남군을 지원했다. 공군력에서 열세에 몰린 북베트남은 소련과 중국에 먼저 조종사 파견을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북한만 1개 비행연대 규모에 해당하는 조종사 60명, 정비사 50명 이상을 보냈다. 조종사들이 수시로 순환근무를 했던 것을 감안하면 베트남전 기간 연인원 1000명가량의 북한 공군 병력이 참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베트남에 파병된 북한 조종사들은 황해도 황주 주둔 203비행연대 소속이었다. 베트남 공군복장으로 참전한 북한 조종사들은 하노이 주변 비행장에 주둔했다. 당시 김일성 수상은 “하노이 상공을 평양 하늘처럼 사수하라”고 지시했다. 북한은 또 공병부대를 파견해 북베트남 당 중앙위원회와 국방부가 들어갈 갱도를 건설했고, 약 100명의 심리전 부대도 파견해 한국군 전투지역에서 활약했다.○ ‘혈맹에서 배반자로, 다시 동반자로?’ 피로 맺어진 북한과 베트남 관계는 1975년 베트남 통일 후 식어갔다. 1978년 12월 베트남이 인근 캄보디아를 침공하자 북한은 “무력침공은 국제법 위반임과 동시에 사회주의에 대한 배신”이라고 비난했다. 이후 양국은 평양과 하노이에서 각각 대사관을 철수했다. 김일성은 베트남군에 의해 쫓겨난 노로돔 시아누크 캄보디아 국왕을 평양으로 데려와 1991년 귀국할 때까지 돌봤다. 1979년 2월 중국이 베트남을 침공했을 때에도 북한은 중국 편에 섰다. 북한과 베트남은 1984년 외교관계를 복원했지만, 이후에도 가까워질 기회를 좀처럼 찾지 못했다. 1986년 베트남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도이머이’ 개혁 정책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1992년 베트남이 한국과 수교하고 이어 1995년 미국과 수교한 것도 북한의 시각에선 배신이었다. 2004년 베트남이 자국에 입국한 탈북자 468명을 한국으로 한꺼번에 보냈을 때도 북한은 강력히 반발했다. 양국 관계는 2007년을 기점으로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이해 베트남에서 호찌민 주석 이후 처음으로 농득마인 총비서가 북한을 찾았고, 양국 우호관계를 발전시키자는 데 합의했다. 베트남을 통한 탈북자들의 한국행 루트도 막혔다. 현재 베트남은 공산당 체제를 유지하면서 개혁개방을 이루고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성공함으로써 북한이 배우고 싶은 ‘롤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베트남 국빈방문 일정을 소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정은 시대 북한과 베트남이 과거 ‘혈맹과 배반’의 역사를 넘어 ‘동반자’의 역사를 다시 쓸 수 있을지 주목된다.호찌민=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장면1. 2월의 뜨거운 햇볕에 달아오른 베트남 호찌민 시내 도로 옆에 낯익은 광고판이 눈에 들어왔다. 베트남 국기를 바탕으로 노동계급을 상징하는 노동자가 있고, 그 뒤로 농민, 군인, 체육인, 지식인을 상징하는 사람들이 서 있는 그림이었다. 북한 노동당이 가장 많이 쓰는 선전화와 구도가 판박이였다. 밑에 적힌 베트남어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북한이라면 저 밑에 “당의 기치 따라 사회주의 혁명의 승리를 향하여 앞으로”라는 구호가 적혀 있을 것이다. 선전화를 보는 순간 ‘베트남이 공산당 국가구나’라는 생각을 새삼 떠올렸다. 강력한 붉은색을 바탕으로 그려진 선전화는 시내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베트남의 국부 호찌민 전 주석이 선전화 속에서 인자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고, 선전화의 대다수가 계급적 화합과 충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밑에 적힌 베트남어만 아니라면 북한 선전화라고 해도 전혀 차이점이 없어 보였다. #장면2. 베트남에서 규모가 제일 큰 ‘호찌민 전쟁기념관’에서 북한 황해남도 신천군에 있는 ‘신천박물관’을 떠올렸다. 기념관 입구에 전시된 미군 전투기와 탱크를 볼 때만 해도 승전국 전쟁 기념관이기에 북베트남군이 승리한 기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념관에는 전쟁으로 인한 끔찍한 참상들만이 전시돼 있었다. 학살의 기록을 담은 사진과 전시물들을 보면서 ‘신천박물관’을 떠올렸다. 기념관 측은 전시 의도에 대해 “미군을 고발하기 위해 전시한 것이 아니라 전쟁이 인간을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세상 사람들이 깨닫게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철저히 미군의 잔혹성에 치를 떨도록 기획한 신천박물관과 다른 점이었다. 북한도 북-미 관계를 정상화한 뒤 신천박물관에 “증오가 아닌 기억을 위한 것”이라는 설명문을 새로 붙이게 될지 모른다. #장면3. 관광지 해변에서 택시 운전사는 노선이 표시된 구글맵을 꺼내 보여주는데도 태연히 방향과 반대로 차를 몰고 갔다. 영어로 설명해도 못 알아듣는 척이다. “스톱”이라고 외치자 ‘그럼 차를 돌릴까’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머리를 끄덕이자 왔던 길로 돌아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갔다. 이 택시 운전사를 보면서 외국 기업들이 들어가는 족족 사기를 당해 결국 짐을 싸고 나오는 북한을 떠올렸다. 외국 기업에 대한 북한의 호의는 차에 오를 때까지다. 전 세계가 신뢰할 수 있는 사회주의라는, 중국과 베트남도 이루지 못한 일을 북한은 과연 이뤄낼 수 있을까.호찌민=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장면1 설 연휴를 맞아 찾은 호치민시. 2월의 뜨거운 햇볕에 달아오른 시내 도로 옆에 낮 익은 광고판이 눈에 들어왔다. 베트남 공산당기를 바탕으로 노동계급을 상징하는 노동자가 있고, 그 뒤로 농민, 군인, 체육인, 지식인을 상징하는 사람들이 서 있는 그림이었다. 북한 노동당이 가장 많이 쓰는 선전화와 구도가 판박이었다. 밑에 적힌 베트남어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북한이라면 저 밑에 “당의 기치 따라 사회주의 혁명의 승리를 향하여 앞으로”라는 구호가 적혀 있을 것이다. 선전화를 보는 순간 “베트남이 공산당 국가구나”라는 생각을 새삼 떠올렸다. 강력한 붉은색을 바탕으로 그려진 선전화는 시내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베트남의 국부 호치민 전 주석이 선전화 속에서 인자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고, 선전화의 대다수가 계급적 화합과 충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밑에 적힌 베트남어만 아니라면 북한 선전화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어 보였다.#장면2 베트남에서 규모가 제일 큰 ‘호치민전쟁기념관’에서 북한 황해남도 신천군에 있는 ‘신천박물관’을 떠올렸다. 기념관 입구에 전시된 미군 전투기와 탱크를 볼 때만 해도 승전국 전쟁 기념관이기에 북베트남군이 승리한 기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념관에는 전쟁으로 인한 끔찍한 참상들만이 전시돼 있었다. 학살의 기록을 담은 사진과 전시물들을 보면서 ‘신천박물관’을 떠올렸다. 기념관 측은 전시 의도에 대해 “미군을 고발하기 위해 전시한 것이 아니라 전쟁이 인간을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세상 사람들이 깨닫게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철저히 미군의 잔혹성에 치를 떨도록 기획한 신천박물관과 다른 점이었다. 북한도 북미 관계를 정상화한 뒤 신천박물관에 “증오가 아닌 기억을 위한 것”라는 설명문을 새로 붙이게 될지 모른다.#장면3 관광지 해변에서 택시 기사는 노선이 표시된 구글맵을 꺼내 보여주는데도 태연히 방향과 반대로 차를 몰고 갔다. 영어로 설명해도 못 알아듣는 척이다. “스톱”이라고 외치자 ‘그럼 차를 돌릴까’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머리를 끄덕이자 왔던 길로 돌아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갔다. 이 택시운전사를 보면서 외국 기업들이 들어가는 족족 사기를 당해 결국 짐을 싸고 나오는 북한을 떠올렸다. 외국기업에 대한 북한의 호의는 차에 오를 때까지다. 전 세계가 신뢰할 수 있는 사회주의라는, 중국과 베트남도 이루지 못한 일을 북한은 과연 이뤄낼 수 있을까. ▼ 北에게 베트남은 ‘혈맹의 국가→배신의 국가→배워야 할 국가’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이달 27, 28일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개최된다. 회담지로 낙점된 베트남은 미국과 북한에 있어 서로 다른 시각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국가다. 북한의 시각에서 베트남은 ‘혈맹의 국가’에서 ‘배신의 국가’로, 다시 ‘따라 배워야 할 국가’로 자리 잡았다. 미국에게 베트남은 ‘패전당한 국가’에서 ‘친구의 국가’로 바뀌었고, 이제는 ‘북한의 표본이 될 국가’로 다가섰다.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50여 년 전 베트남 상공에서 미군과 북한군은 생명을 내건 전투를 벌였다. 당시 북한이 베트남 전쟁을 사회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의 전쟁으로 규정하고, 수백 명의 지원군을 파견하면서 펼쳐진 상황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혈맹이었던 북한과 베트남의 ‘애증의 역사’를 갖게 된 이유는 뭘까.●“하노이 상공을 평양 하늘처럼 사수하라” 지난해 9월 9일 북한 정권수립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뜻밖의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베트남전 참전 공군 종대가 사상 처음으로 등장해 김일성광장을 행진한 것이다. 북한 조선중앙TV는 “비엣남(베트남) 전쟁에 참가하여 수적·기술적 우세를 자랑하던 적의 공중 비적들을 무자비하게 박살내어 조선인민군의 본때를 남김없이 보여준 공군 종대가 나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베트남 참전 사실을 숨기던 북한이 외부에 이를 당당히 공개한 것이다. 북한은 베트남전 초기 무기 10만정, 군복 100만 벌 등 물자를 지원했다. 이후 전쟁이 본격화하자 1966년 말부터 공군과 공병부대를 ‘지원군’이란 이름으로 파병해 북베트남군을 지원했다. 공군력에서 열세에 몰린 북베트남은 소련과 중국에 먼저 조종사 파견을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북한만 1개 비행연대 규모에 해당하는 조종사 60명, 정비사 50명 이상을 보냈다. 조종사들이 수시로 순환근무를 했던 것을 감안하면 베트남전 기간 연인원 약 1000명가량의 북한 공군 병력이 참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베트남에 파병된 북한 조종사들은 황해도 황주 주둔 203비행연대 소속이었다. 베트남 공군복장으로 참전한 북한 조종사들은 하노이 주변 비행장에 주둔했다. 당시 김일성 수상은 “하노이 상공을 평양 하늘처럼 사수하라”고 지시했다. 공중전은 주로 하노이 상공과 인근 항구도시 하이퐁 해상에서 벌어졌다. 북한 공군은 시속 1000㎞ 미그 17기로 시속 2000㎞가 넘는 미국 최신예 전폭기 F-105를 상대했다. 1967년 5월 28일 북한 미그 17기 8대가 하노이 상공에서 미군 전투기 32대와 싸워 12대를 격추했는데 북한군 피해는 전무했다. ‘하노이 공중전’으로 알려진 그 전투였다. 1983년 귀순한 북한군 조종사 이웅평 상위는 “베트남전에서 북한군 조종사 67명이 전사했다”고 말했다. 공중전이 주로 해상에서 진행된 까닭에 대다수 전사자들은 베트남 해상에 떨어져 산화했다. 림장안 부연대장을 포함해 시신이 있는 전사자 14명은 하노이 북부 박장성에 묻혔다. 북한은 또 공병부대를 파견해 북베트남 당 중앙위원회와 국방부가 들어갈 갱도를 건설했고, 약 100명의 심리전 부대도 파견해 한국군 전투지역에서 활약했다.●‘혈맹에서 배반자로, 다시 동반자로?’ 피로 맺어진 북한과 베트남 관계는 1975년 베트남 통일 후 식어갔다. 1978년 12월 베트남이 인근 캄보디아를 침공하자 북한은 “무력침공은 국제법 위반임과 동시에 사회주의에 대한 배신”이라고 비난했다. 이후 양국은 평양과 하노이에서 각각 대사관을 철수했다. 김일성은 베트남군에 의해 쫓겨난 노로돔 시하누크 캄보디아 국왕을 평양으로 데려와 1991년 귀국할 때까지 돌봤다. 1979년 2월 중국이 베트남을 침공했을 때에도 북한은 중국 편에 섰다. 북한과 베트남은 1984년 외교관계를 복원했지만, 이후에도 가까워질 기회를 좀처럼 찾지 못했다. 1986년 베트남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도이모이’ 개혁 정책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1992년 베트남이 한국과 수교하고 이어 1995년 미국과 수교한 것도 북한의 시각에선 배신이었다. 1999년 탈북한 홍순경 전 태국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는 “북한과 베트남 사이엔 별로 왕래도 없었다”며 “북한으로선 베트남에 섭섭한 것이 꽤 있었다”고 말했다. 2004년 베트남이 자국에 입국한 탈북자 468명을 한국으로 한꺼번에 보냈을 때도 북한은 강력히 반발했다. 양국 관계는 2007년을 기점으로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이해 베트남에서 호치민 주석 이후 처음으로 농 득 마잉 총비서가 북한을 찾았고, 양국 우호관계를 발전시키자는데 합의했다. 베트남을 통한 탈북자들의 한국행 루트도 막혔다. 현재 베트남은 공산당 체제를 유지하면서 개혁개방을 이루고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성공함으로써 북한이 배우고 싶은 ‘롤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2차 북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베트남 국빈방문 일정을 소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정은 시대 북한과 베트남이 과거의 ‘혈맹과 배반’의 역사를 넘어 ‘동반자’의 역사를 다시 쓸 수 있을지 주목된다. 호치민=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Q. 일본 아사히신문이 북한 청진 장마당의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아사히신문은 자본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시장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생존싸움을 벌이는 주민과 북한 지도층 간의 거리가 벌어질 수 있다는 예측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 전문가의 생각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핵개발로 조성된 대외 제재 국면이 김정은 체제의 내구성에 어떤 영향을 줄지 궁금합니다.-차지현 연세대 경제학과 14학번(아산서원 14기)A. 북한 내부 소식통들의 전언에 따르면 2017년 8월부터 시작된 유엔 제재의 효과는 약 1년 뒤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북한 내 부동산의 극적 하락입니다. 북한은 사회주의를 표방하지만 이미 집을 사고파는 세상이 된지 오랩니다. 그래서 북한 간부들을 포함한 권력층들은 축적한 돈을 집을 사놓는데 많이 썼습니다. 하지만 요즘 평양을 보면 자고 나면 집값이 뚝뚝 떨어집니다. 불과 반년 만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2019년 2월 현재 몇 달 전 고점 대비 반값, 많게는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1998년 한국의 외환위기 상황을 연상케 해, 북한판 외환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재작년 8월 북한의 3대 돈줄인 석탄·수산물 수출과 의류 임가공을 꽁꽁 틀어막는 유엔의 강력한 대북 제재가 시작된 뒤 1년 정도는 잘 버티는가 싶었는데 결국 터질 것이 터진 것입니다. 최근 몇 년간 가장 핫한 지역으로 부상하던 평양역 뒤편 평천구역의 150m²짜리 새 아파트의 호가는 1만5000달러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골조만 세우고 분양해도 순식간에 팔리던 아파트가 반년 만에 실내마감까지 끝내고도 3분의 1 수준으로 추락했습니다. 이런 상황의 주원인은 대북 제재입니다. 수출이 꽁꽁 막히자 달러도 씨가 말랐습니다. 북한 권력층의 최대 돈줄은 수출입 과정에서 이면계약을 통해 챙기는 달러입니다. 가령 석탄의 국제 시세가 t당 100달러면 수출시 장부에 70달러로 적어 보고하고 나머지 30달러를 숨기는 식입니다. 이를 통해 매년 국가 무역에서 증발한 수십억 달러가 평양의 부동산과 사치품 구매에 쓰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평양에 새 아파트가 많이 공급된 것도 가격 폭락을 부추겼습니다. 최근 수천 채씩 분양된 미래과학자거리나 여명거리는 새 발의 피입니다. 돈주들이 투자한 소규모 건축물이나 재개발 등을 통해 지어진 아파트는 훨씬 많습니다. 이처럼 공급은 늘어났는데 돈줄이 꽉 막히니 가격이 폭락하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20년 동안 꾸준히 상승하던 평양 부동산은 한순간에 10년 이상의 상승 폭을 반납했습니다. 이 정도면 돈 냄새를 기막히게 맡는 ‘돈주’들이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고 헐값에 매물들을 사들일 만한데 지금은 그런 움직임도 없습니다. 권력층부터 부동산의 대폭락으로 주머니가 비었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서 돈주는 곧 권력을 가진 간부들입니다. 요새 한국도 부동산 가격 하락과 거래 절벽으로 시끄러운데 만약 평양처럼 서울 집값이 반값이 된다면 당장 나라가 망할 것처럼 여론이 들끓고, 광화문은 시위대로 넘쳐날 가능성이 크겠죠. 하지만 아직 평양은 잠잠해 보입니다. 반항할 수 없는 북한 체제의 속성 때문으로 봅니다. 지방의 충격은 더 큽니다. 여기도 겉으론 평온해 보입니다. 마치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초기 수십만 명이 굶어죽어도 밖에서 몰랐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북한 사람들이 집값 폭락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북한 사람들도 인생 최대의 목표가 집 한 채 마련인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겉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질 않을 뿐이죠. 여기에다 북한 당국이 새해가 밝자마자 세도와 관료주의를 없앤다고 간부들을 죄고 있는 것도 불만을 사고 있습니다. 이번 조치는 뇌물 받는 간부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국가에서 아무것도 보장해 주지 않는 북한에서 뇌물은 곧 월급이고, 승진에 대한 보상으로 여겨진다는 점입니다. 권력으로 달러와 부동산을 축적해 온 간부들 사이에서 “핵무기 집착으로 경제 망치고, 왜 우리 옆구리를 차냐”는 불만이 공공연하게 나돌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부동산 가격 폭락과 뇌물 근절 캠페인은 결과적으로 김정은 정권의 안정성을 크게 위협할 수밖에 없습니다. 집값 폭락에 비례해 등을 돌리는 곳이 바로 북한 체제 수호의 핵심 보루인 평양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선 간부들의 주머니에 달러가 채워져야만 합니다. 부동산의 대폭락은 매우 심상치 않은 징조입니다. 올해 계속 가다가는 북한에서 큰 일이 터질지 모릅니다. 당연히 급격히 경제가 악화되면 북한의 내구성은 급격히 약화되고, 간부들부터 “김정은을 믿고 있다가 우리가 굶어죽게 생겼다”고 원망할 것입니다. 물론 사소한 반항도 처형으로 이어지는 북한의 특성상 당장 봉기가 일어나긴 어렵겠지만, 인민의 마음 속에서 김정은에 대한 충실성은 곧 떠나게 될 것입니다. 집값이 순식간에 반값, 3분의 1로 주저앉으면, 다음 수순은 북한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났던 자영업자들이 망하고, 이들이 장악했던 소비, 유통, 물류가 스톱이 되게 됩니다. 지금처럼 대북제재가 계속되면 북한의 2019년은 매우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는 해가 됩니다. 다시 아사자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한국은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에서 돈이라도 빌려왔지만, 북한이 돈을 꿔올 만한 곳이 없다는 점입니다. 결국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미국이 제재를 풀도록 만드는 것이겠죠.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반드시 국제사회가 환영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한 것은 “반드시 막힌 돈줄을 풀겠다”고 내부에 던진 약속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현 상황에서 김정은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쓸 수 있는 카드는 많지 않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북미 회담의 성과를 추동하는 가장 큰 힘은 바로 이렇게 악화되고 있는 북한 내부 상황에서 나옵니다. 급격히 악화되는 민심을 하루빨리 달래야 하는 김정은은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반드시 성과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과거처럼 더 버티기 어렵고, 미국에 많은 양보를 해야 할 것으로 전망됩니다.주성하기자 zsh75@donga.com}

요즘 평양이 심상치 않다. 자고 나면 집값이 뚝뚝 떨어진다. 벌써 몇 달 전 고점 대비 반값, 많게는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1998년 한국의 외환위기 상황을 연상케 해, 북한판 외환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재작년 8월 북한의 3대 돈줄인 석탄·수산물 수출과 의류 임가공을 꽁꽁 틀어막는 유엔의 강력한 대북 제재가 시작된 뒤 1년 정도는 잘 버티는가 싶었는데 결국 터질 것이 터진 것이다. 최근 몇 년간 가장 핫한 지역으로 부상하던 평양역 뒤편 평천구역의 150m²짜리 새 아파트의 호가는 1만500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골조만 세우고 분양해도 순식간에 팔리던 아파트가 반년 만에 실내마감까지 끝내고도 3분의 1 수준으로 추락했다. 이런 상황의 주원인은 대북 제재다. 수출이 꽁꽁 막히자 달러도 씨가 말랐다. 북한 권력층의 최대 돈줄은 수출입 과정에서 이면계약을 통해 챙기는 달러다. 가령 석탄의 국제 시세가 t당 100달러면 수출시 장부에 70달러로 적어 보고하고 나머지 30달러를 숨기는 식이다. 이를 통해 매년 국가 무역에서 증발한 수십억 달러가 평양의 부동산과 사치품 구매에 쓰인다. 최근 몇 년 동안 평양에 새 아파트가 많이 공급된 것도 가격 폭락을 부추겼다. 최근 수천 채씩 분양된 미래과학자거리나 여명거리는 새 발의 피다. 돈주들이 투자한 소규모 건축물이나 재개발 등을 통해 지어진 아파트는 훨씬 많다. 이처럼 공급은 늘어났는데 돈줄이 꽉 막히니 가격이 폭락하는 건 당연하다. 20년 동안 꾸준히 상승하던 평양 부동산은 한순간에 10년 이상의 상승 폭을 반납했다. 이 정도면 돈 냄새를 기막히게 맡는 ‘돈주’들이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고 헐값에 매물들을 사들일 만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움직임도 없다. 주머니가 비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돈주는 곧 권력을 가진 간부들이다. 요새 한국도 부동산 가격 하락과 거래 절벽으로 시끄럽다. 만약 평양처럼 서울 집값이 반값이 된다면 당장 나라가 망할 것처럼 여론이 들끓고, 광화문은 시위대로 넘쳐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평양은 잠잠하다. 지방의 충격도 클 텐데, 겉으론 평온해 보인다. 마치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초기 수십만 명이 굶어죽어도 밖에서 몰랐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내가 살다 온 곳임에도 “북한이 저렇게 무서운 곳이었구나”를 새삼 느낀다. 그렇다고 북한 사람들이 집값 폭락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북한 사람들도 인생 최대의 목표가 집 한 채 마련인 경우가 많다. 다만 겉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질 않을 뿐이다. 여기에다 북한 당국이 새해가 밝자마자 세도와 관료주의를 없앤다고 간부들을 죄고 있는 것도 불만을 사고 있다. 이번 조치는 뇌물 받는 간부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뜻이다. 문제는 국가에서 아무것도 보장해 주지 않는 북한에서 뇌물은 곧 월급이고, 승진에 대한 보상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권력으로 달러와 부동산을 축적해 온 간부들 사이에서 “핵무기 집착으로 경제 망치고, 왜 우리 옆구리를 차냐”는 불만이 공공연하게 나돌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부동산 가격 폭락과 뇌물 근절 캠페인은 결과적으로 김정은 정권의 안정성을 크게 위협할 수밖에 없다. 집값 폭락에 비례해 등을 돌리는 곳이 바로 북한 체제 수호의 핵심 보루인 평양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를 막기 위해선 간부들의 주머니에 달러가 채워져야만 한다. 문제는 북한이 돈을 꿔올 만한 곳이 없다는 점이다. 결국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유엔이 제재를 풀도록 만드는 것이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반드시 국제사회가 환영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한 것은 “반드시 막힌 돈줄을 풀겠다”고 내부에 던진 약속이나 마찬가지다. 현 상황에서 김정은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쓸 수 있는 카드는 많지 않다. 급격히 악화되는 민심을 하루빨리 달래야 하는 김정은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어떤 행보를 보일지 벌써 궁금하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2008년 7월 11일 금강산에서 관광객 박왕자 씨(53)를 쏜 북한 군인은 여성 해안포 부대 소속 열아홉 살 여군이었다. 입대 2년 차 초급병사였는데, 북한 병사의 7단계 계급 중 밑에서 두 번째인 신병이었다. 그는 잠복근무 중이던 오전 5시경 잠복지 인근에 접근한 박 씨에게 여러 발의 실탄을 발사했다. 북한군 잠복근무 수칙은 실탄 발사까지 4단계를 거친다. 먼저 “섯, 누구얏!” 하고 소리치고 서지 않으면 “안 서면 쏜다”고 경고한다. 불응하면 공포탄을 먼저 쏘고, 그래도 서지 않으면 실탄을 발사한다. 박 씨는 첫 단계에서 뒤돌아 뛰기 시작했는데, 신참 여군은 4단계까지 빠르게 진행한 뒤 두 발을 명중시켰다. 후방이라면 잠복근무 때 실탄을 휴대하지 않지만 금강산 인근 해안은 종종 이곳을 경유해 탈북하는 사람들이 있어 경계가 엄중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사건 이후 남북은 서로 상대에게 잘못이 있으니 사과하라며 기싸움을 벌였다. 남측은 이틀 뒤인 13일 관광지구 내 인원을 모두 철수시켰고, 금강산 관광은 그렇게 끝났다. 이후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는 많다. 당시 북한 대남일꾼들이 일을 수습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동안, 북한군 총정치국 간부부 표창과에선 여군을 어떻게 포상할지를 놓고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당시 중앙당에서 표창하라는 지시가 직접 내려왔던 것. 사건의 심각성을 감안할 때 김정일이 직접 “여군이 규정대로 한 것은 상을 줄 일이다”라고 결정했을 가능성이 높다. 표창과에선 포상 수준을 놓고 영웅 칭호와 김일성 청년영예상, 일반훈장 등을 검토하다 결국 국기훈장 1급으로 결정했다. 민간인을 죽였으니 영웅 칭호는 과하지만 노동당의 지시이니 낮은 포상을 할 수도 없었다. 국기훈장 1급은 수십 종의 북한 훈장 중 네 번째에 해당하는 비교적 높은 레벨로, 열아홉 살짜리가 받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해당 여군은 이후 각급 부대로 순회강연도 했다. 이런 훈장을 받고 전군의 모범으로 강연까지 하면 대개 제대를 하지 못하고 군에 머물러 있을 가능성이 크다. 올해 서른 살이 됐을 이 여군은 지금쯤 대대장 정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에서 강원도 주둔 부대는 ‘알농(알짜 농민)’의 자식들만 간다고 알려졌다. 근무 환경이 제일 열악해 가난한 집 자식들만 간다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대대장까지 진급했으면 ‘팔자를 고친 셈’이어서 다른 군인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2019년에 금강산 관광이 재개된다면 제2의 한국 관광객 피살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박 씨 피살 사건은 햇볕정책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이를 계기로 남북관계는 악화 일로를 걸었다. 이 사건은 북한 내부에도 적잖은 변화를 가져왔다. 사실 제한된 지역에서만 이뤄지는 금강산 관광이 북한 주민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었다. 그 대신 연간 5000만 달러로 추정되는 관광 수익은 고스란히 노동당 자금으로 들어갔다. 금강산 관광에 이어 개성 관광까지 끊기게 되자 북한 당국은 다른 수익원을 고민해야 했고, 결국 그해 12월 이집트 통신회사 ‘오라스콤’을 끌어들여 휴대전화 사업을 시작했다. 중국에서 100달러 미만의 싼 부품을 사다 조립한 휴대전화를 주민에게 300달러 이상에 팔았다. 2013년까지 휴대전화가 해마다 100만 대 이상씩 늘어나면서 북한 당국도 매년 2억 달러 이상 벌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으로 남북관계가 단절된 와중에 북한 지도부의 든든한 돈줄이 됐다. 그 대신 북한 주민은 휴대전화를 쓰는 자유를 얻었다. 강력한 유엔의 대북제재로 돈줄이 막힌 지난해에도 북한 당국은 그동안 금지했던 외국영화 등을 주민에게 팔아 돈을 벌었다. 이는 대북제재의 한계와 효과를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다. 대북제재로 돈줄을 말려 북한 지도부를 굴복시키긴 어렵다. 그들에겐 아직도 팔 것이 많다. 가령 주택의 사적 소유를 허가해 거래 수수료를 챙겨도 당분간 몇 년 동안은 해마다 수억 달러씩은 챙길 수 있다. 새해 들어 금강산 관광 재개가 다시금 화두가 되고 있다. 우리는 평화와 교류를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외부에서 다시 돈이 들어가면 북한의 대내 통치가 어떻게 변할지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모르는 척해서는 안 된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2008년 7월 11일 금강산에서 관광객 박왕자 씨(53)를 쏜 북한 군인은 여성 해안포 부대 소속 19살 여군이었다. 입대 2년차 초급병사였는데, 북한 병사의 7단계 계급 중 밑에서 두 번째인 신병이었다. 그는 잠복근무 중이던 오전 5시경 잠복지 인근에 접근한 박 씨에게 여러 발의 실탄을 발사했다. 북한군 잠복근무 수칙은 실탄 발사까지 4단계를 거친다. 먼저 “섯, 누구얏!”하고 소리치고 서지 않으면 “안서면 쏜다”고 경고한다. 불응하면 공포탄을 먼저 쏘고, 그래도 서지 않으면 실탄을 발사한다. 박 씨는 첫 단계에서 뒤돌아 뛰기 시작했는데, 신참 여군은 4단계까지 빠르게 진행한 뒤 두 발을 명중시켰다. 후방이라면 잠복근무 때 실탄을 휴대하지 않지만 금강산 인근 해안은 종종 이곳을 경유해 탈북하는 사람들이 있어 경계가 엄중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사건 이후 남북은 서로 상대에게 잘못이 있으니 사과하라며 기싸움을 벌였다. 남측은 이틀 뒤인 13일 관광지구 내 인원을 모두 철수시켰고, 금강산 관광은 그렇게 끝났다. 이후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는 많다. 당시 북한 대남일꾼들이 일을 수습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동안, 북한군 총정치국 간부부 표창과에선 여군을 어떻게 포상할지를 놓고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당시 중앙당에서 표창하라는 지시가 직접 내려왔던 것. 사건의 심각성을 감안할 때 김정일이 직접 “여군이 규정대로 한 것은 상을 줄 일이다”고 결정했을 가능성이 높다. 표창과에선 포상 수준을 놓고 영웅 칭호와 김일성 청년영예상, 일반훈장 등을 검토하다 결국 국기훈장 1급으로 결정했다. 민간인을 죽였으니 영웅 칭호는 과하지만 노동당의 지시이니 낮은 포상을 할 수도 없었다. 국기훈장 1급은 수십 종의 북한 훈장 중 네 번째에 해당하는 비교적 높은 레벨로, 19살짜리가 받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해당 여군은 이후 각급 부대로 순회강연도 했다. 이런 훈장을 받고 전군의 모범으로 강연까지 하면 대개 제대를 하지 못하고 군에 머물러 있을 가능성이 크다. 올해 30살이 됐을 이 여군은 지금쯤 대대장 정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에서 강원도 주둔 부대는 ‘알농(알짜 농민)’의 자식들만 간다고 알려졌다. 근무 환경이 제일 열악해 가난한 집 자식들만 간다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대대장까지 진급했으면 ‘팔자를 고친 셈’이어서 다른 군인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2019년에 금강산 관광이 재개된다면 제2의 한국 관광객 피살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박 씨 피살 사건은 햇볕정책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이를 계기로 남북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이 사건은 북한 내부에도 적잖은 변화를 가져왔다. 사실 제한된 지역에서만 이뤄지는 금강산 관광이 북한주민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었다. 대신 연간 5000만 달러로 추정되는 관광 수익은 고스란히 노동당 자금으로 들어갔다. 금강산 관광에 이어 개성 관광까지 끊기게 되자 북한 당국은 다른 수익원을 고민해야 했고, 결국 그해 12월 이집트 통신회사 ‘오라스콤’을 끌어들여 휴대전화 사업을 시작했다. 중국에서 100달러 미만의 싼 부품을 사다 조립한 휴대전화를 주민에게 300달러 이상에 팔았다. 2013년까지 휴대전화가 해마다 100만 대 이상씩 늘어나면서 북한 당국도 매년 2억 달러 이상 벌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으로 남북관계가 단절된 와중에 북한 지도부의 든든한 돈줄이 됐다. 대신 북한 주민은 휴대전화를 쓰는 자유를 얻었다. 강력한 유엔의 대북제재로 돈줄이 막힌 지난해에도 북한 당국은 그동안 금지했던 외국영화 등을 주민에게 팔아 돈을 벌었다. 이는 대북제재의 한계와 효과를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다. 대북 제재로 돈줄을 말려 북한 지도부를 굴복시키긴 어렵다. 그들에겐 아직도 팔 것이 많다. 가령 주택의 사적 소유를 허가해 거래 수수료를 챙겨도 당분간 몇 년 동안은 해마다 수 억 달러씩은 챙길 수 있다. 새해 들어 금강산 관광 재개가 다시금 화두가 되고 있다. 우리는 평화와 교류를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외부에서 다시 돈이 들어가면 북한의 대내 통치가 어떻게 변할지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모르는 척 해서는 안 된다.주성하기자 zsh75@donga.com}

연초부터 통일부 출입기자단 소속 기자 70여 명이 해킹을 당했다. 지난해 말에는 경북 하나센터에서 탈북민 997명의 이름과 생년월일 등이 담긴 명단이 해킹으로 유출됐다. 이들 해킹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정부 부처나 전문가를 사칭한 이메일에 악성코드를 심은 문서나 링크를 걸어놓는 ‘스피어 피싱(spear phishing)’에 당했다는 점이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국회의원, 국립외교원 교수 등 명망 있는 인사의 이메일 계정을 도용하거나 ‘국가안보실 비서관 강연 원고’, ‘북-중 관계 전망 관련 설문’ 등 받는 사람이 관심을 가질 만한 제목의 가짜 문서를 첨부해 해당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최근의 해킹 시도는 외교 안보 분야 당국자와 전문가들을 타깃으로 특히 활개를 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소행이 유력해 보인다. 지난해 북한이 대북 제재에 따른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젊은 정보기술(IT) 인재들을 대거 중국에 파견하면서 해킹이 빈번해졌다는 점도 이런 분석에 힘을 실어준다.○ 해킹 담당 정찰총국의 실체 현재 북한에서 사이버전을 담당하는 부대는 두 곳이다. 하나는 정찰총국이고 다른 하나는 군 소속 적군와해공작국(적공국)이다. 과거에는 노동당 작전부도 해킹부대를 운영했지만, 2009년 초 노동당과 군에서 운영하던 대남·해외 공작 기구가 통합되면서 모두 정찰총국으로 넘어갔다. 해킹은 주로 정찰총국이 수행한다. 적공국은 정보자료 수집보다는 인터넷을 통한 심리전과 외화벌이에 주력한다.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정찰총국 소속 해커는 300명 수준, 적공국 소속은 100여 명으로 파악된다. 모두 합쳐 500명을 넘지 않기 때문에 국내 언론이 주장하는 규모(3000∼7000명)보다는 인원이 적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3년 군 간부들에게 “사이버전은 핵, 미사일과 함께 인민군대의 무자비한 타격 능력을 담보하는 만능의 보검”이라고 강조하면서 북한의 해킹 역량은 크게 강화됐다. 이때부터 정찰총국은 최고의 수재학교인 금성학원 컴퓨터반 출신들을 뽑아 김일성대와 김책공업대에서 2년 반 동안 공부시킨 뒤, 이 중 매년 10∼20명을 선발했다. 금성학원 컴퓨터반 졸업생은 한 해에 300∼400명 배출되는데, 이 중 5% 정도를 뽑은 셈이다. 금성학원 출신들은 어릴 때부터 코딩을 익혔고, 일반인에 비해 새로운 지식을 배우거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속도가 매우 빠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찰총국은 한국과 미국의 국방 관련 분야 등에 설치된 고도의 보안 시스템을 뚫고 들어가 비밀을 탈취하는 것을 최우선 임무로 삼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정찰총국은 인재난으로 고충을 겪고 있다. 북한의 뛰어난 IT 인재들이 열심히 해킹해도 돈을 벌 수 없다며 정찰총국을 기피하고 있어서다. 그 대신 이들은 돈벌이가 가능한 외화벌이 업체에 몰리고 있다. 그 결과 현재 정찰총국에는 군 복무 경력과 노동당 입당을 목표로 하는 실력 수준이 낮은 인력이 태반이다. 다만 고난도의 해킹이라도 전문가 3, 4명이면 가능하기에 고급 인력이 적다고 해서 정찰총국의 능력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는 게 IT 전문가들의 평가다. 최근 북한 소행으로 추정되는 해킹 공격 방식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초식 동물들이 물을 마시러 샘에 모이길 기다렸다가 덮치는 맹수처럼 외교안보 관계자들이 자주 갈 만한 웹사이트에 악성코드를 심어놓고 방문자 PC를 감염시키는 ‘워터링 홀’(물웅덩이)이나 소프트웨어 개발자 PC를 해킹해 프로그램 설계 때부터 악성 코드를 숨겨놓는 ‘서플라이 체인 어택’(공급망 공격)이 대표적이다. 문종현 이스트시큐리티 이사는 “2017년 탈북자나 대북단체 관계자들 앞으로 돈을 송금했다거나 수혈이 필요하다는 제목의 메일이 발송됐는데, 첨부 파일이나 링크 없이 메일을 열기만 하면 바로 감염되는 크로스 사이트 스크립팅(XSS) 공격이었다”면서 “기존 스피어 피싱이 재래식 무기라면 XSS는 기존 보안 수칙으로는 막을 수 없는 핵무기급 공격”이라고 소개했다.○ 해커로 돌변 가능한 외화벌이 전사들 북한의 해킹 역량은 정찰총국 소속 인력만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 북한이 해외에 파견한 IT 인력들도 당국의 지시가 있거나, 돈을 벌 수 있다면 언제든 해커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소식통은 “디도스 공격이나 해킹 메일 작성은 고난도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해외에 파견돼 있는 북한 IT 인력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지난해 9월 북한 IT 인력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된 중국 옌볜(延邊)의 ‘실버스타(은성)’의 정성화 대표(49)는 북한 IT 관련 외화벌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소식통에 따르면 그는 해외 파견 IT 인력의 최고 실세였다. 그가 해외에 데리고 나온 인력만 300명이 넘고 매년 북한에 송금하는 돈은 수백만 달러에 이른다. 그가 거느린 IT 팀들은 미국과 유럽, 호주, 중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주문을 받아 프로그램 제작이나 사이트 개설 및 관리, 제품 복제 등으로 돈을 번다. 북한 인력들은 저렴한 가격에 비해 실력이 좋고, 빨리 결과물을 만들어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중국에 파견 나오는 팀을 북한에선 ‘대표단’이라고 부른다. 대표단은 소속 기관별로 1년씩 상주하는 팀도 있고, 몇 달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북한으로 돌아가는 팀도 있다. 각 팀은 보통 5∼7명으로 꾸려지며,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고 작업에 몰두한다. 식료품 구입이나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잠깐 밖에 나올 때도 도주를 막기 위해 2인조로 행동한다. 이들은 미국이나 유럽의 주문을 받으면 시간대를 그곳으로 맞춰놓고 잠도 자지 않고 작업한다. 이런 식으로 1인당 한 달에 1000∼5000달러씩 벌어들이는데, 작으면 5∼10%, 많으면 20% 정도를 개인이 받는다. 북한 소식통은 “북한 내에서 가장 고급 인력으로 인정받는 인도 유학생 출신의 IT 기술자들은 매달 2만∼4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이들은 주로 미국을 대상으로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IT 외화벌이의 전성시대 지난해 군수공업을 담당한 2경제위원회에 소속돼 313총국으로 명칭을 바꾼 조선컴퓨터센터(KCC)는 2017년 1000만 달러(약 112억 원)를 당 자금으로 바쳤다. 이에 고무된 김 위원장은 노동당과 무력부, 보안성, 보위성 등의 각급 내각 기관도 중국에 IT 인력을 파견해 돈을 벌어올 것을 요구했다. IT에 의한 외화벌이를 대북 제재를 뚫는 새로운 외화벌이 방식으로 채택한 셈이다. 그 결과 현재 중국에는 1000명이 넘는 북한 IT 인재들이 파견 나와 매년 수천만 달러씩 벌어들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에서 IT 관련 외화벌이를 하다 탈북해 한국에 온 한 탈북자는 10일 “연락되는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니 지금 파견된 인력 규모가 10년 전에 비해 5∼6배 늘었다”고 말했다. 엄격한 대북 제재 속에서도 중국에 파견되는 인력 규모는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그는 “지금 북한은 IT를 통한 외화벌이의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며 그 이유를 세 가지로 분석했다. 우선 IT 관련 외화벌이 사업의 노하우가 쌓였다. 어디서 주문을 따고 금액은 어느 정도 받아야 하는지 등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중국의 핀테크(fintech·금융과 정보기술의 결합) 혁명으로 사업 환경이 바뀐 것도 영향을 미쳤다. 10년 전만 해도 중국에서 IT 사업을 수주하려면 사업체가 있고, 계약서를 작성하고, 현지인 명의의 통장을 확보하는 사전 조건을 갖춰야만 가능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인을 내세우지 않고는 사업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제는 핀테크 혁명으로 북한 인력이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계약을 할 수 있다. 송금도 휴대전화로 쉽게 이뤄진다. 상대방에게 북한 인력임을 드러내지 않고도 원하는 거래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한 인력의 질적 향상을 꼽을 수 있다. 숙련된 IT 인력이 많아지고 사업이 계속되면서 노하우가 전수된 결과 전문 인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가격이 싸고, 속도가 빠르며, 만든 제품의 품질이 좋기 때문에 이들은 전 세계에서 일감을 닥치는 대로 빨아들이고 있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오늘도 그들은 일감을 수주하기 위해 인터넷의 바다를 배회하고 있다.○ 외부의 지원이 북한 해킹 능력 키워 사실 북한의 IT 역량을 키운 결정적인 요인은 외부의 지원이다. 북한에서 해킹을 제일 먼저 시작한 부서는 노동당 작전부이다. 작전부는 1990년대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 구소련의 암호 해독 전문가들을 비밀리에 데려왔다. 이어 최고 수재 10명을 뽑아 평양 모란봉구역 소재의 모란대에서 교육시킨 게 북한 해킹 인력의 씨앗이 됐다. 북한 IT 인력의 해외 진출은 2000년 삼성전자가 대북 사업의 일환으로 중국 베이징(北京)에 설립한 KCC 지부에 10명의 소프트웨어 인력을 파견하면서 본격화됐다. 삼성전자는 2004년까지 300만 달러 이상을 북한 인력을 이용한 소프트웨어 개발에 투자했고, 이때 해외에 나와 활동했던 인물들이 현재 북한 IT 관련 분야의 핵심 인력으로 활동 중이다. 북한 IT 업계의 거두 정성화 대표도 당시 삼성과 합작해 바둑 프로그램을 개발하던 인물이다. 북한은 예전에는 IT 분야에서 금성학원 졸업생들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남북이 2009년 공동으로 설립한 평양과학기술대 졸업생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들은 웹, 모바일, 데스크톱, 크랙(복사 방지나 등록기술 등이 적용된 상용 소프트웨어의 비밀을 풀어서 불법으로 복제하거나 파괴하는 것) 등 전문 분야를 갖고 연구와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2, 3년간 북한 내부의 인터넷 환경이 좋아진 것도 IT 역량의 급성장을 가능하게 했다. 현재 북한에는 정찰총국이나 적공국은 물론이고 노동당과 국무위원회, 보위성, 김일성대, 김책공대, 과학원 등에 수백 회선의 인터넷망이 깔려 있고 매년 회선이 빠르게 늘어난다.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내부에서 자료를 내려받는 속도가 중국보다 빠르다. 과거 북한에서 IT를 통한 외화벌이를 하려면 중국에 나와야만 가능했다. 또 중국에서도 같은 팀 중 몇 명만 인터넷 접속이 허용됐다. 하지만 지금은 대다수 IT 인력들에게 북한 내에서도 인터넷 접속을 허용하고 있다. 다만 감시 프로그램을 깔아 어느 사이트에 접속했는지를 파악하기 때문에 한국 사이트 등 민감한 사이트엔 접속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북한 IT 인력은 가급적이면 해외에 나오려 애쓴다. 부업을 해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소식통은 “정찰총국 해커들도 예외는 아니다”라며 “이들은 국가로부터 인정받을 만한 해킹 실적을 쌓은 뒤 나머지 시간엔 미국 유럽 등으로부터 IT 관련 사업을 수주해 자기 주머니를 채우고 있다”고 전했다.주성하 zsh75@donga.com·신동진 기자}

연초부터 통일부 출입기자단 소속 기자 70여 명이 해킹을 당했다. 지난해 말에는 경북 하나센터에서 탈북민 997명의 이름과 생년월일 등이 담긴 명단이 해킹으로 유출됐다. 이들 해킹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정부 부처나 전문가를 사칭한 이메일에 악성코드를 심은 문서나 링크를 걸어놓는 ‘스피어 피싱(spear phishing)’에 당했다는 점이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국회의원, 국립외교원 교수 등 명망 있는 인사의 이메일 계정을 도용하거나 ‘국가안보실 비서관 강연 원고’, ‘북-중 관계 전망 관련 설문’ 등 받는 사람이 관심을 가질 만한 제목의 가짜 문서를 첨부해 해당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최근의 해킹 시도는 외교 안보 분야 당국자와 전문가들을 타깃으로 특히 활개를 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소행이 유력해 보인다. 지난해 북한이 대북 제재에 따른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젊은 정보기술(IT) 인재들을 대거 중국에 파견하면서 해킹이 빈번해졌다는 점도 이런 분석에 힘을 실어준다.● 해킹 담당 정찰총국의 실체 현재 북한에서 사이버전을 담당하는 부대는 두 곳이다. 하나는 정찰총국이고 다른 하나는 군 소속 적군와해공작국(적공국)이다. 과거에는 노동당 작전부도 해킹부대를 운영했지만, 2009년 초 노동당과 군에서 운영하던 대남·해외 공작 기구가 통합되면서 모두 정찰총국으로 넘어갔다. 해킹은 주로 정찰총국이 수행한다. 적공국은 정보자료 수집보다는 인터넷을 통한 심리전과 외화벌이에 주력한다.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정찰총국 소속 해커는 300명 수준, 적공국 소속은 100여 명으로 파악된다. 모두 합쳐 500명을 넘지 않기 때문에 국내 언론이 주장하는 규모(3000~7000명)보다는 인원이 적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3년 군 간부들에게 “사이버전은 핵, 미사일과 함께 인민군대의 무자비한 타격 능력을 담보하는 만능의 보검”이라고 강조하면서 북한의 해킹 역량은 크게 강화됐다. 이때부터 정찰총국은 최고의 수재학교인 금성학원 컴퓨터반 출신들을 뽑아 김일성대와 김책공업대학에서 2년 반 동안 공부시킨 뒤, 이 중 매년 10~20명을 선발했다. 금성학원 컴퓨터반 졸업생은 한 해에 300~400명 배출되는데, 이 중 5% 정도를 뽑은 셈이다. 금성학원 출신들은 어릴 때부터 코딩을 익혔고, 일반인에 비해 새로운 지식을 배우거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속도가 매우 빠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찰총국은 한국과 미국의 국방 관련 분야 등에 설치된 고도의 보안 시스템을 뚫고 들어가 비밀을 탈취하는 것을 최우선 임무로 삼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정찰총국은 인재난으로 고충을 겪고 있다. 북한의 뛰어난 IT 인재들이 열심히 해킹해도 돈을 벌 수 없다며 정찰총국을 기피하고 있어서다. 그 대신 이들은 돈벌이가 가능한 외화벌이 업체에 몰리고 있다. 그 결과 현재 정찰총국에는 군 복무 경력과 노동당 입당을 목표로 하는 실력 수준이 낮은 인력이 태반이다. 다만 고난도의 해킹이라도 전문가 3, 4명이면 가능하기에 고급 인력이 적다고 해서 정찰총국의 능력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는 게 IT 전문가들의 평가다. 최근 북한 소행으로 추정되는 해킹 공격 방식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초식 동물들이 물을 마시러 샘에 모이길 기다렸다가 덮치는 맹수처럼 외교안보 관계자들이 자주 갈 만한 웹사이트에 악성코드를 심어놓고 방문자 PC를 감염시키는 ‘워터링 홀’(물웅덩이)이나 소프트웨어 개발자 PC를 해킹해 프로그램 설계 때부터 악성 코드를 숨겨놓는 ‘서플라이 체인 어택’(공급망 공격)이 대표적이다. 문종현 이스트시큐리티 이사는 “2017년 탈북자나 대북단체 관계자들 앞으로 돈을 송금했다거나 수혈이 필요하다는 제목의 메일이 발송됐는데, 첨부 파일이나 링크 없이 메일을 열기만 하면 바로 감염되는 크로스 사이트 스크립팅(XSS) 공격이었다”면서 “기존 스피어 피싱이 재래식 무기라면 XSS는 기존 보안 수칙으로는 막을 수 없는 핵무기급 공격”이라고 소개했다.● 해커로 돌변 가능한 외화벌이 전사들 북한의 해킹 역량은 정찰총국 소속 인력만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 북한이 해외에 파견한 IT 인력들도 당국의 지시가 있거나, 돈을 벌 수 있다면 언제든 해커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소식통은 “디도스 공격이나 해킹 메일 작성은 고난도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해외에 파견돼 있는 북한 IT 인력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지난해 9월 북한 IT 인력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된 중국 옌볜(延邊)의 ‘실버스타(은성)’의 정성화 대표(49)는 북한 IT 관련 외화벌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소식통에 따르면 그는 해외 파견 IT 인력의 최고 실세였다. 그가 해외에 데리고 나온 인력만 300명이 넘고 매년 북한에 송금하는 돈은 수백만 달러에 이른다. 그가 거느린 IT 팀들은 미국과 유럽, 호주, 중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주문을 받아 프로그램 제작이나 사이트 개설 및 관리, 제품 복제 등으로 돈을 번다. 북한 인력들은 저렴한 가격에 비해 실력이 좋고, 빨리 결과물을 만들어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중국에 파견 나오는 팀을 북한에선 ‘대표단’이라고 부른다. 대표단은 소속 기관별로 1년씩 상주하는 팀도 있고, 몇 달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북한으로 돌아가는 팀도 있다. 각 팀은 보통 5~7명으로 꾸려지며,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고 작업에 몰두한다. 식료품 구입이나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잠깐 밖에 나올 때도 도주를 막기 위해 2인조로 행동한다. 이들은 미국이나 유럽의 주문을 받으면 시간대를 그곳으로 맞춰놓고 잠도 자지 않고 작업한다. 이런 식으로 1인당 한 달에 1000~5000달러씩 벌어들이는데, 작으면 5~10%, 많으면 20% 정도를 개인이 받는다. 북한 소식통은 “북한 내에서 가장 고급 인력으로 인정받는 인도 유학생 출신의 IT 기술자들은 매달 2만~4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이들은 주로 미국을 대상으로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IT 외화벌이의 전성시대 지난해 군수공업을 담당한 2경제위원회에 소속돼 313총국으로 명칭을 바꾼 조선컴퓨터센터(KCC)는 2017년 1000만 달러(약 112억 원)를 당 자금으로 바쳤다. 이에 고무된 김 위원장은 노동당과 무력부, 보안성, 보위성 등의 각급 내각 기관도 중국에 IT 인력을 파견해 돈을 벌어올 것을 요구했다. IT에 의한 외화벌이를 대북 제재를 뚫는 새로운 외화벌이 방식으로 채택한 셈이다. 그 결과 현재 중국에는 1000명이 넘는 북한 IT 인재들이 파견 나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에서 IT 관련 외화벌이를 하다 탈북해 한국에 온 한 탈북자는 10일 “연락되는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니 지금 파견된 인력 규모는 10년 전에 비해 5~6배 늘었다”고 말했다. 엄격한 대북 제재 속에서도 중국에 파견되는 인력 규모는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그는 “지금 북한은 IT를 통한 외화벌이의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며 그 이유를 세 가지로 분석했다. 우선 IT 관련 외화벌이 사업의 노하우가 쌓였다. 어디서 주문을 따고 금액은 어느 정도 받아야 하는지 등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중국의 핀테크(fintech·금융과 정보기술의 결합) 혁명으로 사업 환경이 바뀐 것도 영향을 미쳤다. 10년 전만 해도 중국에서 IT 사업을 수주하려면 사업체가 있고, 계약서를 작성하고, 현지인 명의의 통장을 확보하는 사전 조건을 갖춰야만 가능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인을 내세우지 않고는 사업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제는 핀테크 혁명으로 북한 인력이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계약을 할 수 있다. 송금도 휴대전화로 쉽게 이뤄진다. 상대방에게 북한 인력임을 드러내지 않고도 원하는 거래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한 인력의 질적 향상을 꼽을 수 있다. 숙련된 IT 인력이 많아지고 사업이 계속되면서 노하우가 전수된 결과 전문 인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가격이 싸고, 속도가 빠르며, 만든 제품의 품질이 좋기 때문에 이들은 전 세계에서 일감을 닥치는 대로 빨아들이고 있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오늘도 그들은 일감을 수주하기 위해 인터넷의 바다를 배회하고 있다.● 외부의 지원이 북한 해킹 능력 키워 사실 북한의 IT 역량을 키운 결정적인 요인은 외부의 지원이다. 북한에서 해킹을 제일 먼저 시작한 부서는 노동당 작전부이다. 작전부는 1990년대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 구소련의 암호 해독 전문가들을 비밀리에 데려왔다. 이어 최고 수재 10명을 뽑아 평양 모란봉구역 소재의 모란대학에서 교육시킨 게 북한 해킹 인력의 씨앗이 됐다. 북한 IT 인력의 해외 진출은 2000년 삼성전자가 대북 사업의 일환으로 중국 베이징(北京)에 설립한 KCC 지부에 10명의 소프트웨어 인력을 파견하면서 본격화됐다. 삼성전자는 2004년까지 300만 달러 이상을 북한 인력을 이용한 소프트웨어 개발에 투자했고, 이때 해외에 나와 활동했던 인물들이 현재 북한 IT 관련 분야의 핵심 인력으로 활동 중이다. 북한 IT 업계의 거두 정성화 대표도 당시 삼성과 합작해 바둑 프로그램을 개발하던 인물이다. 북한은 예전에는 IT 분야에서 금성학원 졸업생들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남북이 2009년 공동으로 설립한 평양과학기술대 졸업생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들은 웹, 모바일, 데스크톱, 크랙(복사 방지나 등록기술 등이 적용된 상용 소프트웨어의 비밀을 풀어서 불법으로 복제하거나 파괴하는 것) 등 전문 분야를 갖고 연구와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2, 3년간 북한 내부의 인터넷 환경이 좋아진 것도 IT 역량의 급성장을 가능하게 했다. 현재 북한에는 정찰총국이나 적공국은 물론이고 노동당과 국무위원회, 보위성, 김일성대, 김책공대, 과학원 등에 수백 회선의 인터넷망이 깔려 있고 매년 회선이 빠르게 늘어난다.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내부에서 자료를 내려받는 속도가 중국보다 빠르다. 과거 북한에서 IT를 통한 외화벌이를 하려면 중국에 나와야만 가능했다. 또 중국에서도 같은 팀 중 몇 명만 인터넷 접속이 허용됐다. 하지만 지금은 대다수 IT 인력들에게 북한 내에서도 인터넷 접속을 허용하고 있다. 다만 감시 프로그램을 깔아 어느 사이트에 접속했는지를 파악하기 때문에 한국 사이트 등 민감한 사이트엔 접속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북한 IT 인력은 가급적이면 해외에 나오려 애쓴다. 부업을 해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소식통은 “정찰총국 해커들도 예외는 아니다”라며 “이들은 국가로부터 인정받을 만한 해킹 실적을 쌓은 뒤 나머지 시간엔 IT 관련 사업을 수주해 자기 주머니를 채우고 있다”고 전했다. 주성하기자 zsh75@donga.com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매년 1월 1일이면 북한 김정은의 신년사 분석이 언론의 톱뉴스가 되는 대한민국에서 참 오랫동안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나도 김정은의 신년사는 1면에 나가고, 우리 대통령의 신년사는 박스 처리되는 상황에 적응된 것도 같다. 그런데 북한의 신년사를 30년 넘게 공부해 왔던 내 시각에서 볼 때, 이건 많은 품을 들여 분석할 필요가 전혀 없다. 원래 북한 신년사야 과장되고 거창한 문장과 추상적인 목표 제시로 가득 차 있는 것이고, 그해 말에 돌아보면 역시 말뿐이었음을 새삼 알 수 있다. 오히려 신년사와 그해 상황이 정반대로 전개된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오랫동안 북한 신년사를 지켜봤던 경험으로 볼 때 굳이 이걸 분석하려면 쭉 훑어 내려가다 ‘이건 북한에서 김정은만 결정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몇 문장만 추려내면 된다. 그런 문장들은 아래에서 써서 올린 신년사를 읽어보다 김정은이 직접 추가해 넣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올해 신년사는 그 어느 때보다 김정은의 입김이 많이 들어간 것이 느껴진다. 가령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겠다는 것은 김정은의 결심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앞으로도 언제든 또다시 미국 대통령과 마주 앉을 준비가 되어 있으며 반드시 국제사회가 환영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라는 말도 김정은이 아니고선 넣을 수 없는 문장이다. 미국이 제재와 압박을 계속하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뜻도 김정은의 고심의 결과일 것이다. 그렇게 쭉 보다 보니 결론적으로 올해 신년사는 그 어느 때보다 힘이 잔뜩 실린 것이 느껴진다. 사실 전문가들은 작년 신년사가 남북관계의 전환점이 됐다고 분석하지만, 그때로 돌아가면 김정은은 당장 몇 달 뒤부터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다 예측하지 못했다. 지난해 신년사에선 “남조선에서 열리는 겨울철 올림픽 경기대회에 우리는 대표단 파견을 포함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고만 언급했다. 딱 거기까지였다. 북-미 관계는 예측하지 못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못했고, 오히려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으며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는 것, 이는 결코 위협이 아닌 현실임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핵탄두들과 탄도로케트(로켓)들을 대량생산하여 실전배치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해 나가야 하며, 즉시적인 핵 반격 작전 태세를 항상 유지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이 말은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가 급진전하면서 지켜지지 않았고 오히려 그 반대가 됐다. 김정은이 직접 한 말도 지켜지지 않는 판에, 이번 신년사를 놓고 또 올해 상황이 어떨 것이라느니 하는 분석들도 별로 기대할 것은 못 된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지난해 신년사는 한국에 대표단을 파견하겠다는 김정은의 말 한마디밖에 건질 것이 없다. 거기서 바로 격변의 2018년이 시작됐다. 올해 신년사에선 오히려 작년보다 건질 말이 없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는 북-미 관계가 진전되고, 제재가 풀리지 않고선 이뤄질 수 없다는 것쯤은 김정은도 알 것이다. 그러니 이건 그냥 던진 말이라고 보면 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다시 마주 앉으면 많이 양보하겠지만,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할 수 없이 약속을 깨겠다는 것도 당연한 말이다. 나는 올해 신년사에서 김정은의 고심을 보았다. 직접 추가해 넣은 문장마다 나가자니 자기 뜻만으로는 되지 않고, 돌아가자니 엄청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부담감이 역력히 드러나고 있다. 말로 한계가 있으니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북한 사상 처음으로 집무실 소파에 앉아 발표한 모습은 큰 파격도 감수하겠다는 결단을 드러냈다. 올해 어떻게 상황이 흘러갈지는 지금 신년사만 봐선 판단할 수 없다. 다만 김정은은 지난해 보인 모습보다 올해 더 파격적인 장면을 연출할 결의가 서 있다는 것은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올해 역시 남북 관계는 긍정적으로 흘러갈 가능성에 무게를 두게 된다. 다만 현재 공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가 있다. 전진 패스를 할지, 뒤로 돌릴지, 아니면 슛을 할지는 그가 결심해야 한다. 천성적인 승부사 트럼프 대통령이 골 욕심을 내길 기대한다. 물론 그가 슛을 해도 골이 될지 헛발질이 될지 역시 지금은 알 수 없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이 5월 26일 판문점 북측 지역 판문각에서 가진 2차 남북 정상회담 때 방명록에 남긴 글이다. 북한 체제를 확실히 인정할 테니 안심하고 함께 교류와 협력을 하자는 명백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1차 남북 정상회담의 하이라이트인 판문점 도보다리 밀담에서도 문 대통령은 김정은의 불안감 해소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을 것 같다. 만약 방명록에 ‘평화와 번영’ 대신에 ‘통일’이란 단어를 썼다면, 매우 어색한 문장이 됐을 듯싶다. 왜냐하면 한반도 통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나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갈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상과 체제가 다른 상황에서 통일은 이뤄질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북에 사상과 체제를 양보할 생각이 조금도 없고, 북한 역시 그렇다. 결국 통일은 둘 중 하나가 사라져야 궁극적으로 완성될 수 있다. 엄청난 열세인 김정은의 처지에선 통일은 죽음과 연관되는 단어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상대와 만나 공존과 상생을 약속했는데, 이를 담당할 주무부서의 이름이 통일부인 것은 아이러니하다. 공존과 통일은 반대의 뜻이다. 그런 점에서 통일부도 명칭 변경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가령 남북교류협력부로 할 수도 있고, 남북관계부라고 할 수도 있다. 이는 크게 세 가지 점에서 필요한 일이다. 첫째는 시대정신에 맞기 때문이다. 통일은 김정은만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남쪽에서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외치던 세대가 사라져가고 있다. 그 대신 남북이 교류하고 협력하다가 나중에 여건이 되면 통일을 하자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 기자 역시 통일은 소리쳐 외칠수록 멀어진다고 생각한다. 굳이 상대를 자극하며 만날 필요는 없다. 통일부는 통일이 된 뒤 만들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둘째는 통일부의 장기적 미래를 위해서이다. 통일부는 정부 부처라고 하기엔 인원과 예산이 너무 적다. 10년 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사라질 뻔하기도 했는데, 보수 정권 10년 동안 크게 위축됐다. 지난해 예산은 정부 전체 예산 중 겨우 0.1% 정도인 약 4600억 원 수준. 서울의 여느 구청 예산보다도 적다.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2200억 원은 남북협력기금으로 쌓아둔 것이고, 424억 원은 인건비이다. 나머지 사업비 약 1900억 원 중에 70% 이상을 탈북자와 북한 인권 관련 항목에 지출했다. 탈북자 업무가 없었다면, 통일부는 돈 쓸 데도 거의 없다는 뜻이다. 통일부는 내년에 예산 1조 원 시대를 열려 하지만, 그래 봐야 내년 정부 예산 470조 원의 ‘몇백 분의 1’이다. 통일부가 돈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일을 한다고 하기도 어렵다. 요즘 남북 협력 사업이 많아지고 있지만 통일부는 약방의 감초 역할을 주로 하는 것 같다. 지금처럼 가면 군사 관련은 국방부가, 철도 도로 연결은 국토교통부가 하는 식으로 주요 협력 사업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회담 지원 백업 부처로 전락할지도 모르겠다. 조직을 새로 정비하고 남북 관계 주도권을 장기적으로 확보할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셋째는 탈북자와 북한 인권을 위해서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보수 정권 시절 탈북자 정착 및 북한 인권 업무는 통일부 존치를 좌우할 중요한 일이었지만, 요즘엔 짊어지고 있기엔 무거운 짐이 된 듯하다. 통일부가 북한하고 친해지면서 탈북자 정착과 북한 인권 개선까지 한다는 것은 심히 모순이다. 결국 하나는 버려야 하는데, 답은 정해져 있다. 올해 북한인권재단 예산이 108억 원에서 8억 원으로 준 것이 대표적 사례다. 탈북자도 통일부에 인질처럼 잡혀 있고 싶지 않다. 남북 교류협력 시대엔 탈북자와 북한 인권 업무는 행정안전부나 법무부 등 다른 부처로 분산시키는 것이 맞다. 통일부 이름을 바꾸면 명분이 생긴다. 통일부일 때는 탈북자와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루는 것이 당연했지만, 교류협력부가 되면 당연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통일부의 북한 상대는 통일전선부다. 이 역시 매우 시대착오적인 이름이다. 다음 남북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정신에 맞춰 두 부처를 동시에 개명해 보자고 제안한다면 북한도 선뜻 찬성할 듯하다. 새 술이라면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