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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등을 돌며 노숙생활을 하던 A 씨(31)가 인천 연수구의 번듯한 연립주택 지하방에서 살게 된 건 B 씨(33)의 달콤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1000만 원을 벌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은 A 씨는 그곳에서 3개월간 노숙인 8명과 합숙하며 교육을 받았다. 실체도 없는 회사의 사업 내용은 물론이고 자신의 월급, 회사 주소, 전화번호까지 가짜 정보를 달달 외워야 했다. B 씨는 노숙인들의 명의를 이용해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금을 타낼 때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이런 교육을 했다. 한 노숙인이 심사에서 회사의 전화번호를 대지 못해 10번이나 대출을 거부당하자 아예 합숙소를 차린 것이다. B 씨 일당은 노숙인 명의를 빌려 2011년 1월부터 올 4월까지 207차례에 걸쳐 75억여 원을 가로챘다. 국토교통부 기금으로 조성된 근로자서민주택전세자금 33억7800만 원을 받아냈고 제2금융권 등에서 41억5900만 원을 챙겼다. 대출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실체가 없는 회사 18개를 만들어 노숙인을 고용한 것처럼 속였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범행을 주도한 B 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노숙인 A 씨 등 20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12일 밝혔다. 경찰은 돈의 사용처를 확인하는 한편 노숙인 모집책 등 공범 40여 명을 쫓고 있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뚜르르!’ 전화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수화기 너머로 한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목소리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느껴졌다. 간간이 울먹임도 더해졌다. “사채업자는 몇 명인가요? 돈은 언제부터 얼마를 빌렸어요? 전화나 문자로 주고받은 내용을 저장했나요?” 그녀를 향한 그의 질문은 시종일관 침착했다. 다급한 듯 그녀의 말이 빨라져도 그의 질문은 흔들림 없이 또박또박 이어졌다. 오른쪽 턱 밑에 수화기를 낀 채 그는 빈 종이에 그녀의 말을 빠짐없이 적어 내려갔다. 그는 이날 하루 비슷한 내용의 전화를 열 통 가까이 받았다. 대부분 사채 때문에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의 ‘마지막 하소연’이었다.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송태경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 사무처장(49)이 사무실을 비울 수 없는 이유다. 송 처장에게 전화를 걸어온 30대 여성 A 씨도 마찬가지. A 씨는 올해 2월 생활비가 급해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렸다고 했다. ‘그깟 100만 원, 잠시 빌렸다 갚으면 되지’라는 생각에 사채에 손을 댔지만 돈을 갚는 게 쉽지 않았다. 3개월 뒤 A 씨는 결국 같은 사채업자에게 다시 손을 벌렸다. 사채업자는 선이자를 떼고 기존 빚의 이자까지 요구했다. 이자는 처음의 두 배인 40%까지 올랐다. 사채업자의 장부에는 200만 원이 적혔지만 A 씨가 손에 쥔 것은 120만 원뿐이었다. 결국 돈을 빌려 돈을 갚는 생활이 반복됐다. 그때마다 사채업자의 빚 독촉은 심해졌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 “집으로 찾아가 가족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했다.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던 A 씨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민생연대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A 씨 같은 사람들에게 송 처장이 강조하는 메시지는 ‘용기’다. 그는 20분 가까운 통화 내내 ‘피하지 말고 마주 설 수 있는 방법’을 설명했다. 마침내 A 씨는 “사채업자를 직접 만나 거래 사실 관계를 녹음하겠다”고 답했다. 송 처장은 이마저도 불안한 듯 “(사채업자를) 고소할 수 있겠어요? 반드시 (대화 내용을) 녹음해야 합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A 씨의 다짐을 받았다.그의 등 뒤에 붙은 유서 한 통과 편지 한 장 본보는 불법 사채·대부업 피해자들을 상대로 무료 상담을 해주는 송 처장과 올해 8, 9월에 세 차례 만났다. 송 처장의 상담 일정이 워낙 빡빡해 한 번 만남에 긴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첫 인터뷰는 상담이 마무리된 8월 중순 오후 7시경, 나머지 두 번은 평일 점심시간에 맞춰 서울 영등포구 민생연대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15m² 남짓한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면 책상 뒤 벽면에 붙은 두 장의 A4 용지가 눈에 띈다. 한 장은 상담자로부터 받은 감사편지, 다른 한 장은 사채업자의 협박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포기한 30대 여성 B 씨가 죽기 전 남편에게 남긴 유서 사본이었다. ‘미안하다는 말하기조차 부끄럽다. 자기한테 너무 미안하고…. (중략) 이제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인 것 같아.’ 송 처장은 5년 전 B 씨와 통화했던 순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했다. B 씨는 급히 돈이 필요하다는 친정어머니를 위해 대부업체에서 600여만 원을 빌렸다. 그렇게 한두 번 빌린 빚이 어느새 3000만 원으로 불었다. “빚진 사실을 가족에게 알렸느냐”는 송 처장의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던 B 씨는 “아직 알리지 않았다. 그래서 고민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아기가 갑자기 우니 잠시 후 다시 전화를 걸겠다”며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송 처장이 B 씨와 나눈 처음이자 마지막 통화였다. 한 달쯤 지났을까. 송 처장은 B 씨의 남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B 씨는 북한강변에서 변시체로 발견됐다. 경찰은 B 씨가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수배 중이었다고 했다. 순간 “빚이 3000만 원으로 불었다”던 B 씨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B 씨의 남편은 아내의 메모를 보고 연락했다며 송 처장에게 유서 사본을 건넸다. 송 처장은 “유난히 곱던 B 씨의 목소리가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다. 목소리의 여운까지 아직도 선명하다”고 말했다. 5년 전 이야기를 하던 송 처장의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채 피해 상담을 하며 극단적인 상황을 여러 차례 겪었지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다는 자책감이 그에게는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반대로 송 처장 덕분에 “다시 인생을 살아갈 기회를 얻었다”는 이도 적지 않다. 올해 초 그는 발신인 이름이 없는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처장님을 만나기 전에는 내 목숨이 (살아 있어도) 살아 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아직 해결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살 것 같습니다. 장사도 잘하고 있습니다. 부디 건강 지키시어 나같이 힘든 사람들의 히망(희망)이 돼주세요.” 발신인은 편지와 함께 5만 원권 20장을 보내왔다.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직접 상담한 송 처장은 곧 C 씨의 얼굴을 떠올렸다. 수심이 가득한 그의 얼굴이 생각나 차마 돈을 받을 수 없었다. 송 처장은 “돈 대신 마음만 받겠다”며 거절했지만 C 씨는 막무가내였다. “처장님이 괜한 돈 걱정을 하지 않아야 나 같은 사람들을 더 구제할 것 아니냐”라며 도리어 송 처장을 나무랐다. 결국 100만 원은 민생연대 활동경비에 쓰였다.경제학 가르치던 대학 강사에서 사채 피해 전문가로 송 처장의 사무실 책장은 자본론, 경제학노트 등 경제학 서적들로 가득했다. 그는 1990년대 잘나가는 대학 강사였다. 그의 경제학 강의는 인기가 많았다. 돈도 아쉬움 없이 벌었다. 그러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맞았다. 경제가 어려워졌지만 그의 강의를 찾는 이는 오히려 늘었다. 그러나 사회에는 명예퇴직자, 해고자가 넘쳐났다. 불법 사채에 손을 댔다 독촉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는 사람이 속출했다. 그는 더이상 한가롭게 강단에 서 있을 수만은 없었다. 송 처장은 1998년 국민승리21의 실업대책운동본부를 시작으로 2000년부터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에서 사채 피해자들을 도왔다. 이후 진보신당이 분당해 나가는 등 민주노동당이 분열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자 2008년 “정치 세력 간 갈등 속에서 정작 중요한 서민들의 삶이 소외됐다”며 당을 박차고 나와 민생연대를 출범시켰다. 지금도 민생연대에 접수되는 상담의 대부분을 그가 맡고 있다. 피해자들이 금융감독원 등 공공기관을 찾는 대신 ‘빽 없고 돈 없는’ 민생연대에 도움을 요청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송 처장은 “불법 사채에 손을 댄 사람들은 자신이 잘못된 돈에 손을 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공공기관에 가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 한다”고 설명했다. 법정이자율을 적용하면 원금까지 다 갚고 남은 사람들도 “아직 갚을 돈이 남았네요?”라는 사채업자의 한마디에 마치 죽을죄라도 지은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송 처장은 하루에 한 명 정도 사무실에서 직접 상담한다. 장기간 사채를 빌려 쓴 사람일수록 채무관계가 거미줄처럼 복잡하기 때문에 한 건 이상 상담하기가 쉽지 않다. 적게는 5건, 많게는 20건 이상 걸려오는 전화 상담도 꽤 시간이 걸린다. 피해 상담은 △정확한 채무 내용을 정리한 뒤 △채권자의 협박에 대한 대응책을 알려주고 △고소 등 법률적 대처를 안내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첫 번째 단계인 채무 내용을 정리하는 데만 4, 5시간이 걸린다. 반복적으로 사채 돌려 막기를 한 경우는 정리조차 쉽지 않다. 송 처장은 “사정이 급해 불법 사채를 쓴 사람일수록 계약 조건을 꼼꼼히 따져 보지도 않은 채 일단 서명부터 하는 경우가 많다”며 “심지어 누구에게 돈을 빌렸는지도 정확히 모른 채 빚 독촉에 시달리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대부업자 ‘추 부장’에게 돈을 빌려온 주부 변모 씨가 이런 경우였다. 변 씨는 2010년부터 4년 가까이 추 부장에게 돈을 빌렸지만 실제 그가 누구인지는 전혀 몰랐다. 송 처장이 변 씨의 부탁을 받아 추 부장의 신원을 추적한 결과 추 부장의 실제 성은 최 씨였다. 채무 계약이 얼마나 허술하게 이뤄지는지 보여주는 사례였다.“채무자에게도 사회적 책임이 있다” 송 처장은 올해 6월까지 2년간 ‘여의도 밥’을 먹었다. 2012년 6월 최재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민생정치 실험의 하나로 사채 피해 전문가인 그를 보좌관으로 채용한 것. 의원 보좌에 신경을 쓰는 다른 직원들과 달리 그는 피해자 상담에만 집중했다. 제도 개선을 위한 연구와 여론 형성에 각별한 신경을 썼다. 그래서 송 처장은 국회에서 ‘스페셜 보좌관’으로 불리기도 했다. 국회에서 그가 구제한 사채·대부업 피해자는 총 1005명. 같은 기간 민생연대에서 일할 때보다 갑절 이상의 사람들을 구제했다. 그러나 아쉬움도 컸다. 송 처장은 “불법 사채 문제를 기대보다 크게 이슈화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2년 만에 민생연대로 돌아왔지만 사회는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사채 피해자들은 여전히 도움을 줄 누군가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불법 사채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방법이 없냐고 그에게 물었다. “비정상적인 고리대가 유지되는 한 쉽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2002년 연 66%였던 대부업체 법정 최고 금리는 올 4월 34.9%까지 낮아졌지만 이 역시 여전히 높다는 거였다. 송 처장은 “12∼14세기 유럽 주요 도시국가들의 법정 최고 금리는 연 20% 미만이었다”며 “우리의 법정 금리 또한 시장 평균 금리보다 다소 높은 20%대로 조정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민생연대 사무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과거 그의 상담을 받은 20대 여성 김모 씨였다. 송 처장을 만난 뒤 불법 사채의 그늘에서 거의 벗어난 김 씨는 “취업에 성공했다”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송 처장은 담담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빚을 지고 살 수도 있어요. 살면서 손 안 벌리기가 어디 쉽나요. 중요한 건 멈춰야 할 때 멈출 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채무자에게도 사회적, 도의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김 씨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마치 사회생활 경험이 길지 않은 기자에게 하는 충고처럼 들렸다. 그 속에서 “과거와 같은 잘못된 선택을 하지 말라”는 따뜻한 응원의 목소리도 느껴졌다. 송 처장에게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지금 이 순간 불법 사채를 쓰려고 고민하는 누군가를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이 기사를 내 달라”고 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모습이었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OO대학 축제 마지막 날 밤 11시경 △△동아리 주점에서 본 여학생을 찾습니다. 키는 160∼165cm에 이마가 보이게 머리를 뒤로 묶었습니다. 꼭 좀 찾고 싶습니다.” 대학 축제가 한창이던 최근 며칠간 제 페이스북 타임라인은 이처럼 ‘그때 그 사람’을 찾는 글로 도배됐습니다. 축제 때 우연히 마주친 이상형에게 미처 전화번호조차 묻지 못한 청춘남녀들이 늦게나마 그, 그녀를 찾아보겠다며 마음을 담아 SNS에 글을 올린 겁니다. 그 용기가 반가워 ‘좋아요’를 누르려는데 문득 글을 올린 ‘OO대학교 대신 전해드립니다’라는 사용자 이름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사람을 찾아주는 흥신소 계정이라도 있는 걸까요? ‘대신 전해드립니다.’ 최근 들어 SNS상에서 자주 눈에 띄는 페이지입니다. 대신 전해준다는 이름 그대로 이 페이지는 사용자들이 개인적으로 메시지를 보내면 이를 공유해 다른 사용자들에게 전달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직접 밝히기 힘든 이야기 또는 널리 알리고 싶은 이야기가 페이지의 이름을 타고 타임라인으로 퍼지게 됩니다. 마치 라디오 DJ 같다고 할까요? 페이지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고등학교, 대학 소식을 대신 전해주는 학교 페이지부터 서울 노원구처럼 특정 지역의 소식을 전하는 페이지도 있습니다. 현재 페이스북에서만 420여 개의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지가 검색되고 있습니다. 유사한 것으로 ‘OOO 대나무숲’이라는 이름이 붙은 페이지도 검색됐습니다. 그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한 사연을 속 시원히 이야기하라는 의미이겠죠.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지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막강했습니다. 실제로 OO학과 단발머리 여학생을 찾는다는 글에는 친구들이 등장해 해당 학생을 태그함으로써 여자 주인공이 수면 위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모든 글이 낭만적인 결과를 만든 건 아니었습니다. 구구절절한 사연에도 불구하고 댓글 하나 없는 글에는 괜히 처연한 마음이 들어 저도 모르게 ‘좋아요’를 선물했습니다. 물론 그때 그 사람을 찾는 역할만 하는 건 아닙니다. 일례로 올 8월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었던 부산 북구 덕천동의 경우 ‘덕천동 대신 전해드립니다’가 실시간으로 침수 피해 상황을 전해 적게나마 피해를 줄였습니다. ‘성균관대 대신 전해드립니다’에서는 한 학생이 지갑을 잃어버린 사연을 올렸다가 약 6시간 만에 ‘지갑을 주워 건물 로비에 맡겨 놨다’는 답변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 밖에도 강의 평가는 어떤지, 서비스 좋은 동네 미용실의 위치는 어디인지 등을 묻는 다양한 사연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나같이 SNS가 우리의 일상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들이었습니다. 일상의 사연들을 옮겨놓은 이 페이지들을 보면서 저는 문득 ‘사이버 망명’ 이슈가 떠올랐습니다. 사이버 망명은 지난달 18일 검찰이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수사팀’ 신설을 밝힌 직후 국내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 이용자들이 독일의 ‘텔레그램’으로 갈아타는 현상을 말합니다. 수사당국은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지 않으면 대화내용을 확보할 수 없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한번 불이 붙은 불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때마침 트위터가 미국 정부의 사찰 정보 요구 현황 자료를 공개하도록 법원에 소송을 냈다는 사실은 도리어 걱정을 부채질하게 합니다. SNS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사람일수록 뒤가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을 겁니다. 임금의 비밀을 지켜야 했던 복두장(옛날 왕이나 벼슬아치가 머리에 쓰는 복두를 만드는 사람)은 결국 아무도 없는 대나무 숲으로 가야했습니다. 사이버 명예훼손은 이미 공론화된 사회 문제지만 자칫 외양간 고치려다 소를 잃는 것은 아닐지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개방과 소통의 공간이라던 SNS가 딱따구리마냥 남 이야기만 ‘대신 전하는 곳’이 되지 않기를 바라봅니다.강홍구 사회부 기자 windup@donga.com}
버스 운전사들이 지적 수준이 낮은 20대 여성을 여고생 시절부터 수년간 성폭행했다는 고소장이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경기지방경찰청 성폭력특별수사대는 올 6월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A 씨(23·여)가 B 씨(57) 등 경기 안성시 모 운수업체 소속 40, 50대 버스 운전사 4명으로부터 수차례 성폭행 당했다는 내용의 고소장이 들어와 수사하고 있다고 9일 밝혔다. 고소장에는 B 씨 등 4명이 A 씨가 고등학교 3학년 때인 2008년 봄부터 2011년 가을까지 수차례에 걸쳐 성폭행하거나 추행한 혐의(성폭력특별법 위반)가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지인의 도움을 통해 고소장을 냈다. 그는 최근 장애인 지원단체의 도움을 받아 지적장애 등급 평가를 신청해놓은 상태다. 경찰은 여성아동 지원기관의 의뢰로 지난달 병원 정신과에서 A 씨의 심리평가검사를 실시한 결과 10세 수준의 정신 지체가 나왔다고 밝혔다. 안성시에 거주하는 A 씨는 평소 버스를 이용하면서 피고소인들을 알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A 씨는 주로 피고소인들의 차량이나 집 등에서 적게는 1차례, 많게는 4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현재 B 씨 등 2명은 경찰 조사에서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졌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학교 친구들에게서 들은 ‘시망’이라는 단어를 ‘시험 망했다’는 뜻인 줄 알고 사용했다가 선배로부터 혼난 적이 있어요. 알고 보니 ‘시× 망했다’는 뜻이더라고요. 한국어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이런 줄임말을 가려 쓰기 정말 힘듭니다.”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아몽 마틴 씨(24)가 말을 마치자 다른 학생들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 있다”며 맞장구를 쳤다. 피부색과 생김새가 다른 이들은 600년 전통의 성균관대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성대생들이다. 본보와 성균관대는 한글날(9일)을 앞둔 3일, 교내 600주년 기념관에서 ‘외국인 학생들이 보는 한국어파괴현상’을 주제로 대담을 마련했다. 코트디부아르 콜롬비아 미국 일본 중국 이스라엘 대만 싱가포르 등 세계 각지에서 모인 8명의 외국인 학생들은 국어에 대한 한국인들의 애정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2시간여 이어진 대담은 한국어로 진행됐다.○ 신조어 사용이 한국어 파괴 가속화 대담에 참여한 외국인 학생들은 “킹(King) 세종이 슬퍼할 일을 더이상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글의 창제자인 세종대왕이 슬퍼할 정도로 한국어 파괴 현상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국어 기념일(한글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어 파괴가 문제가 되는 건 선뜻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들은 PC·스마트폰으로 인해 인터넷 용어, 신조어 사용이 늘면서 한국어 파괴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날 모인 외국인 학생들은 ‘썸타다’(영어 ‘something’의 변형 한글 표기와 우리말 동사 ‘타다’가 합쳐진 신조어로 호감 가는 상대와 정식 교제에 앞서 핑크빛 감정을 주고받는 행위를 뜻함)와 ‘멘붕(멘털 붕괴)’ 등 최근 국내에서 유행하는 신조어에 익숙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진행자로 대담에 참여한 한국인 김다솔 씨(24·여)가 “‘버카충’이 ‘버스카드충전’의 줄임말”이라고 설명하자 다들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아몽 씨는 “신조어의 경우 대개 비속어가 많아 문제”라고 지적했다. 6일 독서·논술교육업체인 한우리독서토론논술이 학부모 47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중학생 학부모의 47.6%, 고등학생 학부모의 53.8%가 “PC·모바일로 인해 자녀가 잘못된 언어를 사용하게 됐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기기 활용에 따른 한국어 파괴가 단순히 외국인들의 ‘기우’가 아닌 실제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이야기다.○ “언어는 언어일 뿐, 멋 부리는 패션 아냐” 외국인 학생들은 잦은 외국어 사용도 한국어 파괴 현상의 원인으로 꼽았다. 실제로 성균관대 외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한국인의 국어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이유’를 묻자 응답자의 46.9%가 ‘습관처럼 외국어를 섞어 쓰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중국인 류양 씨(25)는 “언어의 세계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지만 그 와중에도 중국은 스마트폰을 ‘즈넝서우지(智能手机)’라고 하는 등 고유의 표현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몽 씨는 “아이스크림을 ‘얼음보숭이’라고 표현하는 북한의 자세가 차라리 나은 것 같다”며 “언어는 (소통의 도구인) 언어일 뿐, 멋을 부리는 패션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이스라엘인 마얀 마수드 씨(29·여)는 “세계화 과정에서도 히브리어는 오른쪽에서 왼쪽 쓰기를 고수하고 있다”며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언어일수록 이를 지키려는 노력이 몇 배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4일 북한 최고위급 인사 3명의 방남을 두고 국내 탈북자들의 반응은 기대와 우려로 엇갈렸다. 2007년 11월 남북총리회담 이후 7년여 만에 현직 총리가 북한 고위급 인사를 만나는 등 모처럼 남북 간 대화 국면이 조성된 데 대해 탈북자들은 “과거부터 반복돼온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는 분석부터 “(북한의) 통일정책의 변화를 보여주는 근거”라는 등 다양한 해석을 내놨다. 5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은 “김정은(북한 국방위원회 제1국방위원장)이 이번 아시아경기의 성과를 본인의 업적으로 만들기 위해 최고위급 인사를 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 의원은 김일성종합대 출신으로 이 학교 경제학부 상급교원(교수)으로 재직하다 1994년 귀순했다. 그는 “선대에 비해 경륜이나 우상화된 사례가 부족한 김 위원장이 좋은 성적을 거둔, 그것도 적진에서 열린 아시아경기에 최측근을 보내 개인의 업적으로 만들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이 경호원을 대동하고 ‘김정은 전용기’를 이용한 것 역시 “김정은의 업적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고위급 인사의 방남을 통해) 북한이 진일보했다”면서도 “실질적인 진일보가 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탈북자 출신의 전문가들은 특히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의 방남에 주목했다. 황 정치국장은 그동안 김정은 체제의 핵심 인물로 꼽혀 왔다. 강명도 경민대 북한학과 교수는 “최룡해(노동당 비서), 김양건(통일전선부장)과는 달리 북한은 이례적으로 황 총정치국장에게 대통령급의 경호를 붙였다”며 “북한 야전군을 대표하는 그를 요란하게 한국에 보낸 것은 대화의 물꼬를 트는 동시에 북한 체제의 견고함을 보여주려는 계획된 이벤트”라고 진단했다. 안찬일 세계북한센터 소장은 “황 총정치국장이 군복을 입고 폐막식 무대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 북한은 이번 방문을 통해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체제 과시에 목적을 둔 만큼 이번 방남을 침소봉대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획기적인 안을 갖고 온 것도 아니고, 오기 전에 밝힌 것처럼 북한 체육선수들을 격려하고 폐막식에 참여한 것밖에 없을 뿐”이라며 지나친 의미 부여를 경계했다. 이번 방남이 남북 간 화해 국면을 만드는 데 일조할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지난해 탈북한 고경호 씨(45)는 “북한의 통일정책에 변화가 생긴 것 아니겠느냐”며 “통일을 위한 대화가 마련되는 중요한 기회가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탈북자 A 씨(57)는 “쇼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지만 이번 방남은 분명 의미가 있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김정은이 보낸 메시지가 있지 않을까”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최근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김정은 건강 이상설’에 대해서는 탈북자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김광진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방문연구원은 “김정은으로부터 직접적인 지시나 공인이 없었으면 이번 방문이 힘들었을 것”이라며 “건강에 큰 이상이 없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성민 대표는 “예고 없이 최고위급의 방남을 진행한 점으로 볼 때 김정은 건강 이상 등 내부 문제를 숨기기 위한 전략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강홍구 windup@donga.com·황성호 기자}

"여러분의 선배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는 이야기를 드리면서 앞으로 후배 여러분은 세계를 무대로 여러 분야에서 전문가로서 경쟁력을 쌓아나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15분간의 연설을 마친 그는 모교 후배들 앞에서 끝내 눈물을 흘렸다. 짙은 회색 양복에 노타이 차림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78)은 단상에서 자리로 돌아와 앉자마자 이내 손수건으로 굵은 눈물을 닦아냈다. 왼쪽 가슴에는 모교 후배가 준 노란 꽃이 달려 있었다. 연세대 경제학과 56학번인 김 전 회장은 2일 서울 연세대 대우관(김우중기념관) 각당헌에서 열린 '상대 창립 100주년(2015년) 기념 특강'에서 모교 후배들을 만나 "제2의 창업세대가 돼 달라"는 당부를 전했다. 김우중기념관은 김 전 회장이 기부금을 보태 1996년 지어졌다. 그가 모교인 연세대에서 공개 강연을 한 것은 처음이다. 그는 "좋은 기업이 많이 생겨야 경제도 크고 국가도 강성해진다"며 "비록 저는 세계경영을 완성하지 못했지만 저 대신 여러분이 더 큰 꿈을 완성해준다면 더 없이 기쁜 일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전 회장은 후배 세대들의 세계경영 정신을 고양하기 위해 전국 대학생·대학원생 중 3명을 선발해 베트남, 미얀마, 인도네시아의 경영현장을 함께 둘러보는 멘토링 프로그램을 실시할 계획이다. '자신만만하게 세계를 품자'를 주제로 열린 이날 강연에서 그는 선진국이 되기 위한 방안으로 △강한 제조업을 토대로 하고 △크고 안정된 시장을 확보하고 △세계 일원으로 활동하기 위한 자신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우그룹 해체 과정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은 "외환위기 당시 그 원인을 기업에 돌리고 잘못된 구조조정을 시행하면서 지금의 어려움이 비롯됐다"며 "자신감을 잃고 국제통화기금(IMF)이 하라는 대로 따라 하다보니 우리 경제에 많은 불이익을 가져왔다"고 주장했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에서 수억원 대의 최고급 스포츠카 람보르기니가 가로수와 부딪혀 전부 불에 타는 사고가 발생했다. 서울 강남경찰서와 강남소방서 등에 따르면 29일 오전 4시 19분경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학동사거리에서 청담사거리로 가는 방향 도로에서 이모 씨(28)가 몰던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차량이 가로수를 들이받은 뒤 불이 나 2분 만에 진화됐다. 이 사고로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이 차가 모두 불에 타 1억3000만 원(소방서 추산) 상당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이번에 사고가 난 차량은 람보르기니 중에서도 2007년식 무르시엘라고 모델로 당시 판매가는 4~5억 원대 수준이다. 재산 피해 규모 1억3000만 원은 차량의 연식 등을 감안해 소방서 측이 추산한 금액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이 씨가 운전을 하던 중 차량이 빗길에 미끄러져 가로수를 받은 뒤 변형된 차체에서 기름이 새어 나와 불이 번진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운전자 이 씨는 화재가 발생한 뒤 빨리 대피해 다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측은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1차 조사한 결과 이 씨가 음주 운전을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했다"고 밝혔다.강홍구기자 windup@donga.com}
고가의 외제 차량을 이용해 고의로 추돌사고를 낸 뒤 수억 원 대의 보험금을 가로챈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해 1월부터 올 2월까지 서울 동부·북부간선도로 등에서 벤츠, BMW, 인피니티 등 외제 대포차량 20대를 활용해 총 25차례 고의 사고를 낸 뒤 수리비 등의 명목으로 보험사 9곳에서 보험금 6억 원을 타낸 혐의(사기)로 송모 씨(25)를 구속하고 김모 씨(26) 등 7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송 씨는 고가의 외제차량과 추돌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상대 보험회사 측에서 주로 차량수리 대신 예상 수리비를 현금으로 제공하려 한다는 점을 악용해 이 같은 범행을 계획했다. 저렴한 가격에 외제차를 구할 수 있는데다 신분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포차량을 활용했다. 특정 인물이 반복해서 사고를 낼 경우 보험회사가 의심할 것을 우려해 송 씨는 호스트바, PC방 등에서 운전 70만 원, 차량 동승 30만 원의 일당을 주는 대가로 20~30대 무직자, 유흥업 종사자, 대학생 등을 공범으로 끌어 모았다. 일당은 차량 두 대를 활용해 약속 신호에 따라 한 대가 급하게 차선을 바꾸면 나머지 차량이 급정거해 뒤에서 오던 차량과 충돌하는 방식으로 사고를 유발했다. 수리 견적을 높이기 위해 추돌 시 의도적으로 운전대를 돌려 차량 측면까지 파손시켰다. 이 같은 수법으로 벌어들인 6억 원은 대부분 유흥비로 탕진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사고로 인상된 피해자들의 보험금을 되돌려 놓고 송 씨 등에게 지급된 보험금을 환수하도록 보험사에 통보했다고 밝혔다.강홍구기자 windup@donga.com}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문화재 매매업자를 통해 지석(誌石) 수백 점을 구입해 이를 경기 성남시 수장고에 은닉해 온 혐의(문화재보호법상 취득 은닉)로 서울 소재 모 사립박물관장 권모 씨(73)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28일 밝혔다. 무덤에 묻는 지석은 죽은 자의 신분과 일대기 등이 기록돼 있어 당대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 꼽힌다. 이번에 회수한 지석 558점은 전국 93개 묘지에서 발견된 것으로 대부분이 조선시대 것이다. 권 씨는 2003년 6∼8월 문화재 매매업자 조모(65), 김모 씨(64)를 통해 두 차례에 걸쳐 총 3300만 원을 주고 지석 379점을 샀다. 또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에게서도 179점을 구입해 총 558점의 지석을 올 6월까지 타인 명의로 된 수장고에 숨겼다. 권 씨는 경찰 조사에서 “연구 목적으로 취득했다. 장물인지 몰랐다”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경찰은 해당 지석들이 전시 등 학술적 용도로 쓰인 적이 없는 데다 문화재 전문가인 권 씨가 땅속에 묻힌 지석이 도굴품인지 몰랐을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그를 검거했다. 조, 김 씨는 문화재보호법상 장물알선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지만 공소시효(당시 7년)가 지나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국사교과서에서 그 소녀가 사라졌습니다. 함께 되찾아주세요.” 28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서울역 앞. 바쁘게 움직이는 행인들 사이로 A4용지 크기의 전단을 든 여성 7명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광고 전단을 나눠주겠거니 하고 시선을 피하던 행인들도 “9월 28일은 유관순 열사의 순국일”이라며 목청을 높이는 이들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애초 이날 나눠주기로 한 전단 400여 부는 30여 분 만에 동이 났다. 전단을 나눠준 여성들은 역대 ‘유관순횃불상’ 수상자 등으로 구성된 유관순횃불회 회원들이다. 유관순횃불상은 동아일보와 충남도, 이화여고가 2001년 공동 제정한 유관순상의 일부로 2003년부터 매년 고교 1학년 여학생에게 주어진다. 자체 정기 워크숍을 제외하고는 외부 활동을 한 적 없는 횃불회 회원들이 유 열사의 순국일에 맞춰 한자리에 모이게 된 건 최근 이슈가 된 일부 국사교과서의 유 열사 누락 논란 때문이다. 지난해 검인정 심사를 통과한 고교 교과서 8종 중 4종이 유 열사의 내용을 빠뜨린 것과 관련해 참가자들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부분에 논란을 제기한 셈”이라고 입을 모았다. 행사에 참가한 오지원 씨(21·여·학생)는 “항일독립운동을 한 것이 명백하고 행적에 대해 어떤 애매한 부분도 없는 유 열사가 논란의 경계에 서게 된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행사를 계획한 조혜진 씨(25·여·학생)는 “최근 심화되고 있는 이념 대립이 유 열사를 희생양으로 만든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이념 갈등을 의식한 듯 횃불회 회원들은 이날 행사에서 최대한 정치적 색채를 배제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조 씨는 “애초 계획했던 광화문광장 대신 효창공원 앞에서 행사를 시작하고 서명운동 대신 서울역 앞에서 전단 배포만 한 것도 (정치적 행사라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횃불회는 앞으로 매년 순국일에 맞춰 순국일 알리기 행사를 열고 성금도 기부할 계획이다. 한편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는 충남 천안시와 함께 이날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 열사 추모각에서 ‘순국 94주기 추모제’를 열었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지난해 64세로 생을 마감한 김태촌 씨가 두목일 때 ‘범서방파’는 조양은 씨의 ‘양은이파’, 이동재 씨의 ‘OB파’와 함께 전국 3대 폭력조직으로 꼽혔다. 김 씨가 1986년 인천 뉴송도호텔 나이트클럽 사장 피습사건에 연루돼 수감생활을 하면서 범서방파의 세력은 약화되는 듯했다. 1990년에는 간부급 조직원 대다수가 구속돼 범서방파가 사실상 와해됐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에 따르면 김 씨의 후계자 격인 현 두목 김모 씨(48)와 부두목 김모 씨(47)는 김태촌 씨의 출소 시점인 2009년 11월에 맞춰 조직 폭력 세계 주도권 탈환을 목적으로 조직 재건에 주력했다. 이들은 신규 조직원을 대거 영입한 뒤 다른 조직과의 싸움에 대비해 합숙 생활을 시켰고 규율을 어긴 조직원은 서열대로 줄을 세운 뒤 야구방망이로 폭행했다. 범서방파는 지난해 1월 김태촌 씨 사망으로 또다시 결집력이 약화될 위기를 맞았지만 호남권 폭력 조직과 손을 잡고 부동산 투자나 대부업 등 합법을 가장해 조직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위력을 유지해왔다. 여기에 각종 부동산 분쟁에 개입하고 보호비 명목으로 유흥가에서 금품을 뜯어내기도 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범서방파 부두목 김 씨 등 간부 8명을 구속하고 5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1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09년 11월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 앞에서 부산 최대 폭력조직 ‘칠성파’와 이권을 두고 집단 패싸움을 벌이려다 경찰에 적발됐다. 경찰은 이때부터 수사를 벌여 올해 2월부터 8월까지 순차적으로 범서방파 일당을 검거했다. 경찰은 두목 김 씨 등 도주한 범서방파 폭력배 18명을 추적하고 있다.정윤철 trigger@donga.com·강홍구 기자}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집행부 전원이 ‘대리운전 기사 폭행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지만 이들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쉬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동료가 폭행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대리기사들은 “우리 직업을 무시하는 풍조와 ‘시간이 돈’인 대리기사의 현실을 모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이번 사건 피해자인 대리기사 이모 씨(52)는 17일 새벽 세월호 유가족 일행의 호출을 받고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 갔다가 출발시간이 지연되면서 시비가 붙어 집단폭행을 당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이 씨는 본보 기자와 만나 “30분 정도 대기했다. 밤 12시 정도면 대리기사들은 가장 일을 많이 해야 할 시간이다. 집이 부천인데 (세월호 유가족 대리운전하면) 여의도에서 안산까지 가야 했다. 그 시간에 안산을 가면 1시가 넘을 것 같고, 그러면 부천으로 다시 오기 어려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못가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의 한 대리운전업체와 계약돼 있다는 대리기사 김모 씨(43)는 “일반인은 대리기사에게 ‘30분’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모른다. 그 시간이면 경우에 따라 2건의 대리운전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씨에 따르면 대리기사는 대부분 생계가 어렵거나 직장 월급이 변변치 않아 아르바이트를 뛰는 사람들이다. 이 때문에 ‘하룻밤 동안 무조건 많은 손님을 모셔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린다는 게 김 씨의 설명이다. 그는 “새벽시간 때는 한창 손님이 몰릴 때다.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낸 이 씨가 인격적 대우도 못 받고 폭행까지 당했으니 한탄스럽다”고 말했다. 대리기사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이번 사건에 연루된 새정치민주연합 김현 의원과 유족들을 성토하는 글이 연달아 올라오고 있다. 한 대리기사는 “너무 화가 나서 광화문 광장(세월호 유가족 농성장)을 찾아가 ‘대리기사를 개×으로 보냐’고 외치고 왔다”는 글을 올렸다. 또 다른 대리기사는 “전국 대리기사들이 뭉쳐서 항의해야 한다”며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한 연대를 제안했다. 대리기사가 아닌 일부 누리꾼도 피해자의 입장을 옹호하면서 철저한 진상 조사를 촉구했다. 네이버 사용자 ‘kdy6****’은 “대리기사 특별법을 제정해서 이들(대리기사들)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비꼬았다. 다음 사용자 ‘rive*****’는 “무서워서 세월호 유족 옆에 못가겠다. 무소불위”라며 폭행에 가담한 일부 유족을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피해자 이 씨는 18일 오전 2시경 한 대리기사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자신의 진술에 한 치의 거짓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 씨는 “수많은 대리기사님들이 참으로 어렵고 힘들게 사는데 나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길 바란다”며 “정치적인 것은 전혀 모른다. 그저 진실이 밝혀져 나를 도와준 분들에게 조금의 피해도 없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현재의 심경에 대해서는 “몸도 마음도 지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동료 대리기사들이 올려주신 글을 읽고 있으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적었다.정윤철 trigger@donga.com·강홍구 기자}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집행부 전원이 '대리운전 기사 폭행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지만 이들을 향한 날선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동료가 폭행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대리기사들은 "우리 직업을 무시하는 풍조와 '시간이 돈'인 대리기사의 현실을 모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이번 사건 피해자인 대리기사 이모 씨(52)는 17일 새벽 세월호 유가족 일행의 호출을 받고 여의도 한 음식점에 갔다가 출발시간 지연과 관련해 시비가 붙어 집단폭행을 당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이 씨는 본보 기자와 만나 "30분 정도 대기했다. 밤 12시 정도면 대리기사들은 가장 일을 많이 해야 할 시간이다. 집이 부천인데 (세월호 유가족 대리운전하면) 여의도에서 안산까지 가야 했다. 그 시간에 안산 내려가면 한 시가 넘을 것 같고, 그러면 부천으로 다시 오기 어려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못가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의 한 대리운전업체 소속인 대리기사 김모 씨(43)는 "일반인들은 대리기사에게 있어서 '30분'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모른다. 그 시간이면 경우에 따라 두 건의 대리운전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씨에 따르면 대리기사는 대부분 생계가 어렵거나 직장 월급이 변변치 못해 아르바이트를 뛰는 사람들이다. 이 때문에 '하룻밤 동안 무조건 많은 손님을 모셔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린다는 게 김 씨의 설명이다. 그는 "새벽 시간 때는 한창 손님이 몰릴 때다.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낸 이 씨가 인격적 대우도 못 받고 폭행까지 당했으니 한탄스럽다"고 말했다. 대리기사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이번 사건에 연루된 새정치민주연합 김현 의원과 유족들을 성토하는 글이 연달아 올라오고 있다. 한 대리기사는 "너무 화가 나서 광화문 광장(세월호 유가족 농성장)을 찾아가 '대리기사를 개X으로 보냐'고 외치고 왔다"는 글을 올렸다. 또 다른 대리기사는 "전국 대리기사들이 뭉쳐서 항의해야 한다"며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한 연대를 제안했다. 대리기사가 아닌 일부 누리꾼들도 피해자의 입장을 옹호하면서 철저한 진상 조사를 촉구했다. 네이버 사용자 'kdy6****'은 "대리기사 특별법을 제정해서 이들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 사용자 'rive*****'는 "무서워서 세월호 유족 옆에 못가겠다. 무소불위"라며 폭행에 가담한 일부 유족을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피해자 이 씨는 18일 오전 2시경 한 대리기사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자신의 진술에 한 치의 거짓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 씨는 "수많은 대리기사님들이 참으로 어렵고 힘들게 사는데 나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길 바란다"며 "정치적인 것은 전혀 모른다. 그저 진실이 밝혀져 나를 도와준 분들에게 조금의 피해도 없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현재 자신의 심경에 대해서는 "몸도 마음도 지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동료 대리기사들이 올려주신 글을 읽고 있으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밝혔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서울의 한 대학에 다니는 신모 씨(22·여)는 이달 1일 학교 온라인 커뮤니티 토론게시판에 한 건의 글을 올렸다. 교내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을 비난하는 내용의 글이었다. "흡연구역이 있음에도 금연구역에서 흡연하는 건 뻔뻔한 행동"이라는 신 씨의 글에 다양한 댓글들이 줄지어 달렸다. 신 씨의 학과 선배인 백모 씨(26)도 댓글 행렬에 동참했다. 평소 담배를 피우는 그는 "흡연구역을 지키고 싶지만 그 숫자가 너무 적은데다 금연구역 자체도 학교가 일방적으로 설정한 것"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엇갈린 주장을 펴는 신 씨와 백 씨는 댓글에 댓글을 달며 서로를 반박했다. 애초 논쟁으로 시작된 두 사람의 댓글 다툼은 어느새 감정싸움으로 바뀌었다. 상대방의 실명을 공개했고 "평소에는 말도 못 걸더니 인터넷에서는 말을 잘한다"며 상대방을 비하하기까지 했다. 결국 "더 이상 관심갖지 않겠다"는 말이 나오고서야 댓글 다툼은 마무리됐다. 그러나 한 번 불붙은 감정싸움은 결국 캠퍼스 생활로까지 번졌다. 17일 학교 중앙도서관 앞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같은 문제에 대해 다시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다. 백 씨는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신 씨를 때리고 밀쳐 전치 2주의 부상을 입혔다. 서울 혜화경찰서는 백 씨를 폭행 혐의로 불구속입건했다고 18일 밝혔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원회 임원진 등 일부 유가족이 대리운전 기사와 시비가 붙어 폭력을 행사한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 유가족들은 자신들도 폭행을 당해 부상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본보 취재팀은 피해자인 대리기사와 목격자를 직접 만나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들어봤다.○ 폭언 시비에 이어 집단 폭행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원회 김병권 위원장과 김형기 수석부위원장 등 유가족 5명은 16일 오후 9시 반부터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별관 뒤쪽에 있는 한 일식집에서 김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함께 세꼬시에 소주, 맥주를 먹었다. 이들은 경기 안산으로 가는 대리기사를 불렀다. 대리기사 이모 씨(52)는 밤 12시쯤 도착했다. 하지만 식당 앞에서 일행들이 대화를 계속 하며 움직일 생각을 안 해 30분 정도 기다리다가 “다른 기사를 불러주십쇼”라고 했고, 그 일로 시비가 붙었다. 대리기사 이 씨는 김 의원이 “소속이 어디냐, 얼마나 기다렸다고 그러냐”고 몰아붙였다고 했다. 이 씨가 “대리기사도 사람인데 인격적 대우를 해 달라”고 했더니 김 의원이 “아, 나 국회의원이야”라며 명함을 건넸다. 이어 김 의원이 이 씨에게 명함을 달라고 했고 이 씨가 없다고 했더니 일행이 “의원님 앞에서 버릇없다”고 제지했다. 이 씨가 “국회의원이면 굽실거려야 하나. 국회의원이 뭔데?”라고 목소리를 높이자 수행원이 “야, 너 국정원 직원이지?”라며 이 씨의 얼굴을 휴대전화로 촬영하며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를 본 세월호 유가족들이 다가와 이 씨의 멱살을 잡고 “뭐야, 이 ××”라며 주먹을 휘둘렀다고 했다. 17일 오전 경기 부천시 한 정형외과에서 본보 기자와 만났을 때 이 씨가 입은 와이셔츠 맨 위 단추는 뜯겨 있었고 안쪽에 피도 조금 묻어 있었다. 목엔 빨갛게 긁힌 흔적이 선명했다. 이 씨는 전치 2주의 진단서를 받았다. 이 씨가 폭행을 당한 과정은 이를 목격하고 경찰에 신고한 노모 씨(35), 김모 씨(35)와의 인터뷰 내용과도 일치한다. 두 사람도 말리는 과정에서 유족들에게 얼굴을 맞고 티셔츠 앞쪽이 찢어지는 등 피해를 봤다고 했다. 목격자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주먹과 무릎으로 이 씨의 허리를 때렸고 이 씨가 넘어지자 발로 찼다”고 했다. 경찰이 확보한 폐쇄회로(CC)TV에도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의 멱살을 잡고 몰고 가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김 의원 측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세월호 특별법 관련 진행 상황을 공유하고 대책회의를 하기 위해 집행부와 식사를 하며 술을 마셨다”고 했다. 대리기사에 대해선 “이야기가 잘 안 풀려 신분을 밝혔고 기다리게 한 건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했다”고 해명했다. 그는 “폭행 상황은 당시 다른 사람과 통화를 하느라 잘 못 봤다”며 “난 김 위원장을 말렸다”고 했다.○ 세월호 유가족 “죄송하고 부끄러워” 신고를 받고 경찰이 도착했을 땐 폭행이 멈춘 상황이었다. 경찰이 임의동행을 요구했지만 유가족들은 “우리도 폭행당했다. 치료가 필요하다”고 거부했다. 인근의 여의도성모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중상자가 아니라 입원이 불가하다”는 답을 듣고 오전 4시 반경 경기 안산 한도병원으로 이송됐다. 김병권 위원장은 왼쪽 팔, 김형기 부위원장은 치아를 다쳤다고 주장하는 상태다. 그러나 대리기사 이 씨와 목격자들은 “김 부위원장이 맞아서 다친 게 아니라 혼자 헛발질을 해 넘어지면서 얼굴을 다쳤다”고 반박했다. 이 씨도 “당시 휴대전화로 영상을 찍는 사람이 많았다. (쌍방 폭행 여부는) 확인하면 다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17일 유가족들이 입원한 안산 한도병원 2인실 일반병실엔 일반인의 면회가 제한된 채 하루 종일 대책위 관계자들이 오갔다. 전화를 하고 서로 회의를 하는 등 분주한 분위기였다. 폭행 사실이 알려지자 다른 유가족들은 격앙된 분위기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퇴 결정을 내린 한 임원은 이날 긴급회의 후 “이제 공인으로 봐야 하는데 신중했어야 했다. (폭행은) 잘못한 거다”라고 말했다. 단원고 유가족 A 씨는 “부끄럽고 화가 나 견딜 수가 없다. 우리가 술 먹고 폭력 휘두르는 사람들이 됐다”며 “유가족의 진정한 의지를 대변할 집행부가 들어서길 바란다”고 했다. 대리기사 이 씨는 세월호 가족대책위에 ‘실망했다’고 했다. 이 씨는 “세월호 성금도 내고 경기 안산시의 분향소도 갔다 왔고, 울기도 했다. 일반 사람에게 맞은 것보다 더 가슴이 아프다”며 울분을 토했다. 또 김현 의원에 대해 “김 의원이 처음에 내가 가겠다는 걸 붙잡고 시비만 걸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경찰은 “추후 일방 폭행인지 쌍방 폭행인지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강홍구 windup@donga.com·박성진 / 안산=황성호 기자}
숙명여대 작곡과 재학생과 졸업생으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가 ‘제자에게 막말을 했다’고 해임을 요구한 해당 교수 2명이 16일 음악대학 교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대위의 주장을 반박하고 나섰다. A 교수는 “학생들이 당시 상황과 관계없이 특정 단어만 나열해 폭언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과 다르다. (비대위가 밝힌) ‘곡을 못 쓰는 이유가 뭐냐. 밤일 나가냐?’는 등의 발언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B 교수는 개인 실습 지도가 소홀했다는 지적에 “다양한 악기가 등장하는 관현악 작곡 수업은 한 번에 진도를 많이 나가기 어렵다. 그런 제자들의 애로사항을 감안해 실습을 나눠서 했을 뿐이며 규정된 시간을 대부분 지켰다”고 해명했다. 성적 조작 의혹 역시 직접 채점표를 공개하며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일본이 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1993년 ‘고노 담화’ 공식 발표에 앞서 총리부 소속 고위 관료들을 한국으로 보내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직접 듣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21년 만에 처음 공개됐다. 고노 담화는 1993년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이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한 담화로 한일 외교관계의 기반 중 하나다. 최근 일본 우익세력을 중심으로 고노 담화를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당시 영상이 공개됨으로써 향후 일본 정부의 대처에 관심이 모아진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는 1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9층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증언 청취 영상 중 일부를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16분 59초 길이의 영상에는 1993년 7월 26일부터 5일 동안 당시 일본 총리부 소속 심의관 2명과 인권위원, 통역 등 일본 측 관계자 5명이 유족회 사무실에서 윤순만 할머니와 고 김복선 할머니 등을 만나 증언을 듣는 모습이 담겨 있다. 당시 일본 관계자들이 만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총 16명으로 그중 14명이 별세했다. 공개된 영상에서 윤 할머니는 13세 때 충북 영동에서 부산, 일본 시모노세키 등을 거쳐 오사카로 간 과정을 털어놨다. 그는 “오사카의 깊은 산골로 들어가니 종군위안부 기숙사가 있었다”며 “지하부대, 가스부대(소속 군인들)가 많이 왔다”고 회상했다. 영상 속 윤 할머니는 당시 일본군이 비틀었다며 왼쪽 팔꿈치 부분을 보여주기도 했다. 양순임 유족회장은 “일본 정부의 요청으로 21년간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으나 최근 일본 정부가 고노 담화는 증거가 없는 한일 정부의 정치적 입장으로 발표된 것이라고 진실을 왜곡해 영상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유족회는 향후 증언청취 과정 등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증거들을 묶어 백서로 발간하고 유엔 등에 보낼 계획이다. 나머지 영상은 일본 정부의 반응에 따라 공개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전국 120개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와 직원 등 2000여 명이 제약회사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은 정황이 경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그러나 이 중 11명(0.4%)만 불구속 입건됐고 나머지는 처벌 대상에서 제외돼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일고 있다. 이는 의약품 리베이트 수수 사건 때 형사입건 기준이 ‘300만 원 이상’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의 행정처분 기준도 의료인이 300만 원 이상의 금품을 리베이트로 받았을 때에만 최소 자격정지 2개월의 처분이 내려진다. 리베이트 액수가 300만 원 미만이면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는 셈이다. 15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따르면 태평양제약은 2011년 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영업사원을 통해 전국 120개 병원의 의료진 2810명에게 1692차례에 걸쳐 9억4000만 원 상당의 리베이트를 제공해 약사법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태평양제약 측은 현행 약사법상 ‘의약품 제품설명회를 열 때 의사 1인당 최대 10만 원 상당의 식·음료 제공이 가능하다’는 점을 악용했다. 제품설명회를 연 것처럼 꾸민 뒤 의사들의 회식비를 대신 내주거나 미리 섭외한 식당에서 ‘카드깡’ 방식으로 현금을 마련해 건넸다. 일부 의사가 냉장고 노트북컴퓨터 등 업무와 무관한 물품을 요구하자 판촉물 구입비로 처리했다. 앞서 태평양제약은 의사들에게 상품권을 제공했다가 2011년 7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7억63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적이 있다. 경찰은 태평양제약 대표 안모 씨(56) 등 2명과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의료법 위반)로 의사 박모 씨(51), 구매담당자 옥모 씨(47) 등 중소병원 관계자 11명을 각각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관계자는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가 소속된 병원에까지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는 등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일본이 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 공식 발표에 앞서 총리부 소속 고위관료들을 한국으로 보내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직접 듣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21년 만에 처음 공개됐다. 고노 담화는 1993년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이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한 담화로 한일 외교관계의 기반 중 하나다. 최근 일본 우익세력을 중심으로 고노 담화를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같은 영상이 공개됨으로써 향후 일본 정부의 대처에 관심이 모아진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는 1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9층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증언 청취 영상 중 일부를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16분 59초 길이의 영상에는 1993년 7월 26일부터 5일 동안 당시 일본 총리부 소속 심의관 2명과 인권위원, 통역 등 일본 측 관계자 5명이 유족회 용산 사무실에서 윤순만 할머니와 고(故) 김복선 할머니 등을 만나 증언을 듣는 모습이 담겨 있다. 당시 일본 관계자들이 만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총 16명으로 현재 그 중 14명이 숨졌다. 공개 영상 속에서 윤 할머니는 13세 당시 충북 영동에서 부산, 일본 시모노세키 등을 거쳐 오사카로 간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는 "오사카 깊은 산골로 들어가니 종군위안부 기숙사가 있었다"며 "지하부대, 가스부대(소속 군인)가 많이 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영상 속 윤 할머니는 당시 일본군이 비틀었다며 왼쪽 팔꿈치 부분을 보여주기도 했다. 양순임 유족회 회장은 "일본 정부의 요청으로 21년간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으나 최근 일본 정부가 고노 담화는 증거가 없는 한·일 정부의 정치적 입장으로 발표된 것이라고 진실을 왜곡해 영상을 공개했다"고 설명했다. 유족회는 향후 증언청취 과정 등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증거들을 묶어 백서로 발간하고 유엔 등에 보낼 계획이다. 나머지 영상은 일본 정부의 반응에 따라 공개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