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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별 평균점수가 B0(평균 3.0) 또는 그 이하가 되도록 평가(해 달라).” 경희대가 학기 도중 전체 교수와 강사들에게 학점 평균을 일정 점수 이하로 맞출 것을 요구해 학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각 대학이 취업전선 등에서 모교 출신 학생들이 좋은 결과를 얻도록 후한 성적을 줘 전체 평점이 오르는 ‘학점 인플레이션’ 현상 때문에 이런 조치가 내려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교수의 고유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경희대 교무처는 지난달 27일 각 단과대를 통해 학내 전체 교수와 강사들에게 ‘2014학년도 2학기 성적평가 협조 요청’이라는 공문을 배포했다. 올 2학기부터 상대평가, 절대평가 과목을 막론하고 대부분 강의(일부 실험, 실습, 실기 강의 제외)의 평균점수가 B0(평점 3.0) 또는 그 이하가 되도록 협조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대학 측은 협조 요청의 배경으로 학점 인플레이션에 따른 행정적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들었다. 교무처 관계자는 “대학의 엄정한 학사관리가 요구되는 가운데 우리 대학의 최근 학점관리 현황은 최하위 수준이었다”며 “차후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입학정원 감축 등의 불이익이 우려돼 공문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다른 대학과 비교해 학점이 상대적으로 높아 교육부로부터 학점관리 부문에서 낮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A, B, C등급별 비율이 있는 여느 대학과 달리 경희대는 학칙상 ‘B+ 이상 40%’로 평가 기준이 단순해 비교적 학점 인플레이션의 우려가 높다는 설명이 나온다. 경희대의 조치에 대해 대학가에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그동안 대학 사회에서 교수들이 학생들의 취업이 용이하도록 학점을 후하게 주는 ‘학점 인플레이션’은 꾸준히 지적돼온 문제다. 대학정보 공시 사이트인 ‘대학알리미’의 지난해 졸업생 성적분포 비율에 따르면 전국 4년제 일반대에서 평점이 80점(B학점) 이상인 학생이 전체의 91.13%에 이를 정도다. 하지만 제도 적용의 당사자인 학생, 교수 사회는 반발하는 상황이다. 성적 평가라는 교수 고유의 권한을 대학이 일방적으로 침해했다는 입장이다. 47대 총학생회 준비위원회(내년도 출범)는 8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성적평가 협조요청을 철회하라는 입장을 밝혔다. ‘강좌별 성적평가 결과를 인사 및 재임용 등의 자료로 활용’이라는 공문 속 문구를 두고도 강제성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대학의 한 교수는 “인사, 재임용에 참고하겠다는 것은 실질적인 강제 조치”라며 “자율성을 중시하는 대학 교육의 전제가 무너지는 것 같아 주변 교수들이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대학 측은 “높은 평점을 주는 일부 교수에게 형평성을 맞춰 달라는 의미”라며 “인사 조치와 관련해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세워지지 않았다”고 밝혔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서울대 현직 교수가 처음으로 성추행 혐의로 구속됐다. 서울북부지법 윤태식 부장판사는 3일 20대 인턴과 여학생 등 4명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혐의(상습 강제추행)로 서울대 수리과학부 강석진 교수(53)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윤 부장판사는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강 교수는 올해 7월 서울 한강유원지에서 다른 대학 출신의 20대 여성 인턴 A 씨의 신체 일부를 만진 혐의 등을 받고 있다. 또 다수의 여학생들에게 “여친 잘 잤니. 너 보고 싶다” “말로만 마음으로만 좋아하지 말고 행동으로 실천으로 좋아해주길” “넌 내 0순위 애인” “배부르고 행복하게 해줄게” 등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오전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강 교수는 “혐의 사실을 대부분 인정한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 교수는 이날 성동구치소에 수감됐다. 한편 강원대는 여학생들을 상습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A 교수(62)를 춘천경찰서에 고발했다고 3일 밝혔다. 강원대는 지난달 27일자로 A 교수를 면직 처리했지만 이로 인해 징계를 피하게 되자 ‘봐주기 논란’이란 비판 여론이 뜨거웠다. 강원대는 서울대 성추행 교수가 구속되자 형사고발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강홍구 windup@donga.com / 춘천=이인모 기자}
‘정윤회 동향’ 문건의 작성자인 박모 경정(48)은 검찰의 압수수색이 시작되기 7시간여 전인 3일 오전 2시경 취재진을 따돌리고 급히 자택을 빠져나갔다. 서울 노원구 하계동 자택에 머물러 있던 박 경정은 부인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간 뒤 미리 불러놓은 콜택시를 타고 홀로 나갔다. 검은 정장 차림에 서류 가방 하나를 든 상태로 뛰어가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 문이 채 닫히기 전에 그의 부인이 집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취재진을 가로막아 박 경정은 취재진의 추적을 따돌릴 수 있었다. 박 경정은 이날 취재진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수많은 취재 차량과 기자들 때문에 다른 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다. 이해해 달라”는 뜻을 전했다. 박 경정은 집을 빠져나간 뒤 검찰 조사에 대비해 변호사를 만나 대책을 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경정의 변호인으로는 대검찰청 강력과장과 전주지검 차장을 지낸 정윤기 변호사(56)가 선임됐다. 정 변호사는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박 경정은 4일 오전 9시 30분에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을 것”이라며 “포토라인에도 서겠다. 당당하게 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문건 유출자가 박 경정이 아닌 제3자일 가능성에 대해 “박 경정이 ‘짚이는 데가 있다’고 말했는데 검찰 조사 때 말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박 경정은 4일에는 우선 명예훼손 혐의를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 출석해 조사를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건의 작성 경위와 신빙성에 대해 먼저 조사받는다는 뜻이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국제학술대회 준비를 돕던 20대 인턴과 재직 학교 여학생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혐의(상습 강제추행)로 1일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된 서울대 수리과학부 K 교수(53)와 관련해 2일 서울대 분위기는 하루 종일 뒤숭숭했다. 1946년 서울대 개교 이후 현직 교수에게 성추행 혐의로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재영 서울대 협력부처장은 2일 본보 기자와 만나 "수사가 빠르게 진행됐다"며 "영장이 청구될 정도로 K 교수의 혐의가 크다는 데 충격을 감출 수 없다"고 밝혔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북부지검 형사 3부(부장검사 윤중기)는 "K 교수가 여러 명에게 범행을 저질러 죄질이 무겁고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 청구 이유를 밝혔다. 서울대에 따르면 K 교수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된 것 자체가 서울대 내부 징계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검찰이 K 교수를 기소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김 부처장은 "서울대 인사규정 상 교수에 대한 기소가 확정되면 수업, 연구 등 모든 활동을 중지하는 '직위해제' 조치를 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직, 파면 등 중징계 역시 징계위원회만 거치면 확정할 수 있다. 검찰은 지난달 26일 성추행 피해 학생들이 모여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구성하자 K 교수와 피해 학생 중 일부를 수차례 불러 수사했다. 검찰 관계자는 "일부 학생을 상대로 강 교수가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한 게 드러났고 성폭행까지 이르진 않았다"고 밝혔다. 신체접촉 피해가 확인된 학생 수는 10명 내외. 수사 과정에서 K 교수는 혐의를 모두 시인하진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K 교수의 영장실질심사는 3일 오전 서울 북부지법에서 열린다. K 교수에게 구속 영장이 청구됐다는 소식에 서울대 학생들은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김해미루 서울대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 의장은 "검찰이 제대로 된 수사를 벌여 피해자들의 아픔을 치료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피해자 비대위 역시 e메일을 통해 "K 교수가 구속되면 보복 가능성에 위협을 느낀 피해자가 안심할 수 있다"며 "속히 구속영장이 발부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반면 서울대 교수들의 분위기는 매우 무거웠다. 이정재 서울대 교수협의회장은 "(K 교수 사건은) 교수가 학생과의 관계에서 절대 넘어선 안 될 선을 넘었기 때문에 일어났다"며 "반면교사로 삼아 교수와 학생 간 '갑을 관계' 해소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한 교수(62)의 성추행 의혹이 일자 사표를 즉시 수리해서 학내 논란이 일었던 강원대 관계자는 "K 교수가 구속되면 우리 학교 여론도 더 악화될 것 같다"며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하지만 법정 공방과는 별개로 서울대 내부 조사는 난항이 지속될 전망이다. 사건 당사자인 K 교수가 사건이 알려진 지난달 중순부터 '두문불출'하고 학교와도 연락이 잘 안되는 상태다. 피해 학생들 역시 "신변 보호가 잘 안될 것 같다"며 서울대 인권센터 조사에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서울대의 한 관계자는 "K 교수가 차라리 구속되면 서면으로라도 K교수에 대한 조사를 더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강홍구기자 windup@donga.com이철호기자 irontiger@donga.com}
검찰이 여학생 상습 성추행 혐의로 물의를 빚은 서울대 교수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서울북부지검 형사 3부(부장검사 윤중기)는 20대 여성 인턴과 재직 학교 여학생을 성추행한 혐의(상습 성추행)로 서울대 수리과학부 K 교수(53)의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1일 밝혔다. K 교수는 7월 28일 서울 한강공원의 한 벤치에서 여성 인턴에게 “내 무릎 위에 앉으라”고 말하며 가슴을 만진 혐의로 경찰에 고소됐다. 경찰은 11월 3일 K 교수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K 교수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해당 인턴뿐 아니라 여러 여학생을 성추행한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한편 서울대는 1일 K 교수의 사표를 반려하기로 했다. 백승학 서울대 교무부처장은 “현재 진행 중인 인권센터 조사 등 관련 절차를 모두 거친 뒤 K 교수의 거취를 정하기로 했다”며 “징계를 하기 위해선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고 밝혔다. K 교수는 지난달 26일 대리인을 통해 학교에 사표를 낸 상태다. 당초 서울대는 해외 출장 중이던 성낙인 총장이 귀국한 1일 K 교수의 사표를 수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사표 수리 시 인권센터의 성추행 진상조사가 중단되고 K 교수의 퇴직금과 연금이 보전된다”는 교무처 관계자의 말이 전해지자 철저한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학생들의 요구가 빗발쳤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정윤회 동향 보고서’의 작성자로 지목된 박모 경정(48)은 1일 보고서 작성 여부와 유출 경로와 관련해 “드릴 말씀이 없다. 검찰 수사에서 밝힐 것”이라고 거듭 말했다. 그러면서 해당 문건이 ‘청와대 내에서 유출됐다’는 일부 보도는 강하게 부인했다. 이날은 박 경정이 지난달 27일 휴가를 갔다가 5일 만에 경찰서에 정상 출근하는 날이었다. 그는 경찰서에 모인 취재진 앞에서 “(언론에) 문건 복사를 했다고 한 적도, 도난당했다고 말한 적도 없다. 그저 내가 유출하지 않았다고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정보1분실에 문건을 가져다 두었다는 의혹은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장 재직 때 짐을 옮겨두었을 뿐 청와대에서 들고 나온 문건은 없다”고 다시 한 번 주장했다. 이어 “진실을 밝히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사무실에 출근했다가 취재진이 떠나지 않자 오전 9시경 다시 이틀간(1, 2일) 휴가를 내고 귀가했다. 오전 10시경에는 개인차량을 몰고 집에서 나와 경기 남양주시까지 갔다가 1시간 만에 돌아오기도 했다. 박 경정은 “내가 관련된 문제 때문에 직원들의 업무에 지장이 있을 것이란 걱정이 들어 고민하다 다시 휴가를 냈다. 나는 떳떳하기 때문에 오늘부터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하려고 나왔는데 (취재진 때문에) 상황이 이렇게 됐다”고 밝혔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정윤회 동향 보고서의 작성자로 지목된 박모 경정(48)은 보고서 유출 의혹에 대해 “내가 유출하지 않았다”고 거듭 주장했다. 30일 서울 노원구 자택 앞에서 만난 박 경정은 “나는 결백하다. (서울지방경찰청 정보분실로) 가지고 나간 게 없다. 하늘을 우러러 맹세코 (유출한 적) 없다. 내 모든 것을 다 걸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경정은 보고서 유출 여부를 제외한 다른 내용에 대해서는 명쾌한 해명을 내놓지 않아 의혹을 더했다. 보고서 유출 경로 등을 묻는 질문에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는 “검찰에 소환되면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솔직히 다 말하겠다”고 했다. 1일 경찰서로 정상 출근하는지를 묻자 “난 죄인이 아니다. 정상 출근할 것”이라고 답했다. 박 경정은 이번 파문이 확산되기 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보고서 작성 때문에 인사 불이익을 겪었다는 ‘강경 발언’을 하기도 했다. 3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는 “문고리 3인방(이재만 대통령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을 일컫는 말) 때문에 인사상 불이익을 겪었다. 문고리 3인방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17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는 “내 좌우명이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조영민 채널A기자}

#25일 오후 10시경 경남 통영시 광도면의 한 모텔 “아까 전화 드린 ○○○입니다. 601호로 오세요.” 40여 분 뒤 벨이 울렸다. A 씨(24·여)가 들어오자 기다리던 B 형사가 15만 원을 건넸다. A 씨는 말없이 곧장 샤워실로 들어갔고, B 형사는 눈치를 살피며 휴대전화를 꺼내 ‘도착’이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잠시 후 남성 3명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들은 경남지방경찰청 풍속단속팀과 통영경찰서 생활질서계 소속팀 형사로 구성된 특별단속반. “성매매하러 오신 거죠?”라는 질문에 A 씨는 “옷 입고 나갈 테니 잠시 밖에서 기다려 주세요”라고 답했다. 단속반은 방문을 살짝 열어놓고 문고리를 잡은 채 대기했다. 당시 현장에는 여경이 동행하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 5분 뒤 조용하던 방 안에서 다급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단속반이 급히 뛰어갔지만 한 발 늦었다. 약 12m 높이(6층) 창문에서 뛰어내린 A 씨는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과다 출혈 등으로 26일 오전 3시 37분 숨졌다. 경찰의 ‘함정 단속’으로 성매매 여성이 사망한 사건을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특히 성매매 용의자가 여성이라는 점을 미리 알고도 여경을 대동하지 않은 데다 탈출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일부 누리꾼은 “경찰이 자신들의 실적을 올리려다 여성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무리한 함정 단속’이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찰청 생활안전국 관계자는 “범행 의사가 없는 사람에게 범죄를 유도하는 건 불법이지만 이번 사건에선 숨진 여성이 처음부터 성을 팔려는 의사가 있었다”면서 “이러한 ‘기회제공형’ 수사는 ‘범의(犯意)유발형’ 수사와 달리 법원에서도 합법적인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기회제공형 수사란 범죄를 저지를 의사를 이미 가진 사람에게 범행 기회를 준 뒤 예상대로 범죄를 저지르면 검거하는 것을 말한다. 성매매 함정수사는 주로 여기에 포함될 때가 많다. 이는 수사기관이 범행을 저지르도록 지속적으로 유도해 검거하는 범의유발형 수사와 구분된다. 경찰은 특히 마약 범죄 수사처럼 개인 간에 은밀하게 이뤄지는 범행을 적발하기 위해선 기회제공형 함정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마약 공급처를 캐기 위해서는 실제 마약을 구입하는 것처럼 위장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꼽힌다. 마약 투약자를 검거하더라도 공급자를 모르는 경우가 많거나 알고도 입을 다물 때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부산의 한 마약 전담 수사경찰관은 “블로그 등 인터넷에 ‘짝대기 하나 사실 분’ ‘커피 한잔 사실 분’이란 마약 관련 은어가 게재되면 연락을 취해 접촉을 시도하는 게 마약 수사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마약 공급책들은 거래를 약속하고도 접촉 전까지 장소를 여러 번 바꾸거나 차량을 이용해 아예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아 수사에 어려운 점이 많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함정수사까지 허용되지 않으면 마약사범 단속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일부 함정수사의 불가피성은 인정하더라도 오남용을 막기 위한 가이드라인이 빨리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구체적 행동 지침을 정하지 못한 상태다. 함정수사와 관련한 구체적인 법조항이 없기 때문에 그동안 이와 관련한 법원 판례들이 기준이 돼 왔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과)는 “최근 온라인상에서도 은밀하게 이뤄지는 성매매가 많아 이런 범죄를 캐기 위해서는 함정수사의 필요성이 높은 건 사실”이라며 “다만, 함정수사의 개념을 좀 더 명확히 하고,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를 법으로 규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강성명 smkang@donga.com·강홍구 기자}

전국 대부분의 대학이 총학생회 선거에 들어갔다. 그러나 조용하다 못해 썰렁한 분위기다. 갈수록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총학 선거의 관심도 덩달아 줄고 있었지만 올해는 주요 대학들마저 파행 위기에 놓일 정도다. 투표율이 개표 기준을 넘지 못하는가 하면 아예 후보조차 내지 못한 학교도 있다. 또 일부 대학에서는 부정선거 시비로 갈등이 불거지는 등 기성 정치판과 다름없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그들만의 리그’ 학생들의 무관심으로 투표율 하락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서울대에서는 17일부터 나흘간 투표가 실시됐다. 최종 투표율은 36.5%. 개표 기준인 50%에 크게 못 미쳤다. 결국 21일부터 26일까지(주말 제외) 추가 투표를 실시했지만 투표율은 46.9%로 절반을 넘기지 못해 선거가 무산됐다. 학내에서는 “예상했던 결과”라는 반응이 많다. 올해 이경환 전 총학생회장이 학사경고 누적(네 차례)으로 제명된 상태에서 이번에 유일하게 출마한 선거운동본부가 전 학생회를 계승하겠다며 같은 선거본부 이름(디테일)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최종 투표율이 50%를 넘지 못해 내년 3, 4월경 재투표를 한다. 한국외국어대에서는 이달 12일까지 후보 등록 기간이었으나 단 한 명도 학생회장 후보로 출마하지 않았다. 추가 입후보자도 없어 결국 선거는 내년 4월로 연기됐다. 한국외국어대에서는 후보 미등록, 투표율 미달 등으로 제때 총학생회가 출범하지 못하고 다음 해로 넘어간 게 벌써 4년째에 이른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집단적 공동체의식 약화와 학생들의 개인주의화가 지금의 위기를 불러왔다”며 “학생회가 정통성을 잃으면 등록금 등의 이슈에서 학교와의 대화 창구가 상실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설명했다.○ 기성 정치판과 ‘판박이’ 부정선거 시비, 자격 미달 논란 등 기성 정치판에서 보던 이슈들을 올해는 대학 선거판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려대에서는 당초 12월 3일부터 사흘간 투표를 실시할 예정이었으나 일주일 미뤄졌다. 지난해 선거 때 부정이 있었던 사실이 이달 초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선거 때 당선된 선거본부 측이 홍보물 제작 기준(1만 부)을 어기는 등 학생회칙 일부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문제가 된 총학생회장단은 퇴진 의사를 밝혔지만 해당 학생회와 같은 정치적 성향의 학생들이 이번 선거에 출마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반대 대자보가 게시되는 등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이달 중순 동국대에서는 일부 단과대 학생회장들이 특정 선거본부의 현수막 2개를 훼손했고 한 후보자의 시험 부정행위 의혹이 제기됐다. 한양대 에리카캠퍼스(경기 안산시)에서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며 후보 간 고발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너도나도 “안전한 캠퍼스” 올해는 세월호 참사 여파로 대학가에도 ‘안전 공약’이 대거 등장했다. 서울대 ‘디테일’ 선거본부는 △건물별 마스터키 도어 록 설치 △재난 문자발송 시스템 구축 △경고방송 시스템 구축 등을 내걸었다. 올해 8월 화재사고가 났던 서울대 공대 건물에 안전대피용 설치하겠다는 공약도 있다. 올해 3월 백양로 공사현장에서 가스가 누출됐던 연세대에서는 선거에 출마한 두 후보 측 모두 안전 공약을 집중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시너지’ 선거본부는 “학생들이 참여하는 행사 때 책임자 안전교육을 반드시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내년 초 신입생을 대상으로 하는 오리엔테이션 행사에 앞서 미리 학생 대표자들에게 시설 교통 보험 등과 관련된 교육을 시키겠다는 것. ‘더블유’ 선거본부는 신축 중인 건물의 안전검사자료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한편 기숙사길 가로등 증설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경희대 ‘오늘의 경희’ 선거본부 역시 학생들이 학내 안전이 우려되는 곳을 찍어 총학 페이스북에 올리면 학생회장단이 직접 상태를 점검하는 ‘경희 파파라치’ 제도 도입을 약속했다.강홍구 windup@donga.com·이철호 기자}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자 길 위로 파란 빛이 올라왔다. 지표면에 설치된 직경 10cm짜리 조명에서 나오는 빛이다. 서울 용산구 효창원로 86길에는 이런 조명이 2m 간격으로 300m에 걸쳐 이어져 있다. 밤에는 마치 비행기 착륙을 앞두고 일제히 표지등을 켠 공항 활주로를 연상케 한다. 이곳은 숙명여대 기숙사로 이어지는 길이라 늦은 시간까지 여학생들의 통행이 잦다. 그러나 후미진 뒷골목이라 취객들이 다니는 한밤중에 무서움을 호소하는 학생이 많았다. 올해 4월 용산경찰서는 용산구청과 함께 이곳에 ‘발광형 표지등’ 150개를 설치했다. 태양열을 통해 에너지를 모은 뒤 어두워지면 자동으로 작동되는 표지등이다. 개당 가격은 4만 원. 들인 돈은 전체 600만 원에 불과하지만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숙명여대 무용학과 이승은 씨(20·여)는 “파란 조명이 있으니 확실히 덜 무섭다”며 “골목길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아지면서 나쁜 사람들이 와도 어떻게 행동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학생들의 귀갓길 분위기를 바꾼 것은 바로 ‘범죄예방디자인(CPTED·셉테드)’ 효과다. 셉테드는 범죄 예방에 디자인 개념을 반영한 것. 도시나 주거환경을 바꿔 사람들의 통행을 늘리는 등 폐쇄적 공간을 개방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범죄 감시 효과가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범죄율 감소로 이어진다. 미국 등 해외에서 시작됐는데 국내에서도 그 효과가 확인되고 있다. 원룸과 다세대주택이 밀집한 서울 동작구 성대로 14길의 별칭은 ‘거울길’. 9월 초 450m 거리에 있는 건물 30곳의 현관에 거울 같은 효과가 나는 ‘미러시트(반사필름)’가 부착됐다. 성인 여성의 평균 키를 감안해 160cm 정도 높이에 30cm 너비의 미러시트가 빠짐없이 붙었다. 귀가하는 여성을 뒤따라가 현관문을 열 때 덮치는 범죄를 막기 위해서다. 뒤에 있는 범죄자를 미리 발견해 신고나 대피의 시간을 벌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주민 진성숙 씨(54·여)는 “이 골목에선 오토바이 날치기가 빈번했다”며 “효과는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미러시트를) 설치한 뒤 경찰이 주의 깊게 보는 지역이라는 이미지가 생겼다”고 했다. 빈집털이가 잦았던 서울 도봉구 주택가는 올해 3월부터 ‘도둑고양이’가 지키고 있다. 도둑고양이는 형광페인트의 일종으로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오직 자외선 검출기로만 확인할 수 있다. 도봉구 총 201개 지역 1938가구에 도둑고양이가 칠해져 있다. 절도범이 담벼락이나 가스배관을 타고 침입하다 옷이나 신체에 묻으면 3, 4개월간 지워지지 않는다. 가격도 국산 제품은 10가구 정도에 칠할 수 있는 분량(100mL)이 1만5000원으로 저렴한 편이다. 지금까지 도둑고양이가 칠해진 주택에서는 단 한 건의 빈집털이도 발생하지 않았다. 특히 ‘도둑고양이가 있다’는 현수막과 표지판을 붙이면서 주변 지역에서도 덩달아 빈집털이가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3∼9월 도봉구에서 발생한 빈집털이는 233건이었으나 올해는 같은 기간 128건으로 45%나 줄었다. 1998년 만들어진 서울 강동구 올림픽로 천호공원은 높은 석축과 무성한 나뭇가지 때문에 밖에서는 안쪽 상황을 잘 보기 어려웠다. 밤마다 청소년들이 술판을 벌였고 가끔 도박판이 벌어져 경찰 출동이 끊이지 않던 곳이다. 올해 4월 시야를 가로막았던 석축을 제거하고 나뭇가지도 말끔히 정리하면서 밖에서도 내부 상황을 볼 수 있게 됐다. 깔끔한 디자인의 벤치와 다양한 형태의 화분도 배치돼 가족들이 모여 사진을 찍을 정도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 결과 공원 내에서 폭행과 도박으로 적발된 건수가 지난해 1∼10월 대비 38.4% 감소했다. 경찰은 범죄예방대책에 셉테드 개념을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효과가 입증된 방안을 확대 시행하기 위해 셉테드 표준설계안 마련을 검토 중”이라며 “지방자치단체, 관련 전문가와 함께 조만간 논의기구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셉테드(CPTED·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 ::범죄예방환경디자인의 줄인 말. 도시환경 설계를 통해 범죄를 사전에 방지하는 선진국형 범죄 예방 기법. 유리창이 깨진 집이 범죄의 표적이 된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을 기반으로 1990년대 미국 뉴욕 경찰이 범죄 단속에 적용해 성과를 냈다.이건혁 gun@donga.com·강홍구·황성호 기자}

대형 계약(?)이 이뤄지는 연말 FA(Free Agent·자유계약선수) 시장이 열렸습니다. 수십억 원의 큰돈이 오가는 프로야구 선수 이적 시장을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젊은 솔로들에겐 이보다 더 피부에 와 닿는 시장이 없습니다. 자의든 혹은 타의든. 자유롭게 홀로 지내던 솔로들은 이 시즌이 되면 너 나 할 것 없이 주변 친구들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기 시작합니다. 크리스마스에다 연말연시로 이어지는 대목을 따뜻하게 보내기 위해선 하루라도 빨리 소개팅, 미팅 상대를 구해야 할 테니까요. 구인광고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이어졌습니다. 페이스북 뉴스피드를 내려보는데 한 여성이 올린 글이 눈에 띄었습니다. ‘네트워크 FA 시장’이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었습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여동생의 소개팅 상대를 구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야 더이상 소개팅을 해달라는 카톡(메시지)이 오지 않을 것 같다. 살려 달라”며 투정을 섞었지만 그는 소개팅 주선자로서의 역할을 꽤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나이, 키, 직업 같은 기본 신상을 빼곡히 담은 것은 물론이고 “오랜 시간을 봐온 사람으로서 봤을 때 가급적이면 연애경험 많은 연상이 어울릴 것 같다”는 깨알 팁도 한 줄 추가했습니다. 아는 동생의 사진을 올리고 계정을 태그하는 일도 빼먹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면 메이저리그 스카우트가 울고 갈 정도의 선수 소개 실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한 남성이 “셀프 추천 가능한가요?”라는 댓글을 달며 도전의 뜻을 밝혔습니다. “주변에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는 글도 달렸습니다. 사진이 공개된 주인공이 댓글을 달며 수면으로 나타나자 남성 5명이 ‘좋아요’를 누르며 화답했습니다. 이걸로 끝난 게 아닙니다. “그래서 제 소개팅은 언젠가요?”라며 또 다른 소개팅을 부탁하는 민원도 이어졌습니다. 한 뼘 남짓한 스마트폰 화면에 담긴 SNS 공간은 순식간에 소개팅을 하는 레스토랑, 카페로 변했습니다. 지난달부터 시작된 건국대와 동덕여대 총학생회가 실시한 미팅 이벤트도 SNS상에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위한 100:100 미팅’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벤트는 같은 성별의 4명으로 구성된 1팀이 자신들이 원하는 스타일, 전공 등을 적어 보내면 주최 측이 어울릴 것 같은 이성 팀을 연결해 카카오톡으로 미팅 장소에 대한 힌트를 주는 방식입니다. 이 행사는 원래 건국대 학생회가 자체적으로 구상했다고 합니다. 남성이 몰리면서 전체 지원자의 90%에까지 이르자 난항을 겪었지요. 이 소식을 들은 동덕여대가 동참하면서 숨통을 틔웠습니다. 성비가 맞게 됐다는 소식이 퍼져 지원자도 늘어났습니다. 애초 남성 100명, 여성 100명으로 계획했던 참가 인원을 각각 220명으로 늘려야 할 정도였습니다. 특히 이성 팀을 만나 인증샷을 찍으면 선착순 2개 팀에 한해 5만 원의 데이트 비용을 지원해 준다는 내용이 전해지자 경쟁 아닌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SNS가 있기에 가능한 즐거움들입니다. 대화명을 단서로 상대방의 모습을 상상하던 PC통신 시대의 만남은 어느새 간단한 터치 몇 번으로 상대방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받아보는 만남으로 변했습니다. 혹자는 과거의 설렘과 두근거림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기발한 아이디어가 통통 튀는 지금의 만남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올해에는 솔로대첩을 뛰어넘는 또 어떤 이벤트가 SNS에 등장할지 벌써부터 사뭇 기대가 됩니다. FA가 자신이 원하는 계약을 맺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고대하던 자유계약의 기회를 좋은 때를 놓쳐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 선수도 적지 않습니다. 연말이라는 좋은 때를 만난 주변의 많은 FA 또한 이번 기회를 통해 원하는 성과를 거두기를 바라봅니다. 아, 그전에 문득 마음의 소리가 들려오네요. “네 코가 석 자”라고.강홍구 사회부 기자 windup@donga.com}

지난달 3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 있던 누군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버블시티(Burble City)’에 메시지 하나를 띄웠다. 관악캠퍼스 자연과학대 건물에서 불산이 누출됐다는 소식이었다. 익명의 사용자가 올린 글은 반경 1.5km 안에 있던 애플리케이션(앱) 사용자 전원에게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같은 학교 공대 건물에서 연구하던 앱 개발자들 또한 이 메시지를 받고는 급하게 사실 여부를 수소문했다. 스타트업 버블시티의 노건일 팀장(29)은 “불산 누출은 냉장고의 냉매가스가 유출된 해프닝으로 일단락됐지만 버블시티의 특징이 잘 드러난 사례였다”며 “친구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기존 서비스와 달리 위치를 기반으로 하는 SNS의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서울대 공대 공간정보연구실 소속 대학원생 8명으로 구성된 스타트업 버블시티는 2년여의 연구 기간을 거쳐 업체와 같은 이름의 SNS를 17일 공식 론칭했다. 공간정보의 전문가로서 그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겠다는 취지에서다. 실제로 이 앱은 타임라인 형식으로 위에서 아래로 메시지를 보여주는 많은 SNS와 달리 사용자가 본인의 위치 위에 메시지를 띄우는 식으로 돼 있다. 간단하게 말해 지도 위에 메시지가 실시간으로 뜨는 식이다. 위치 기반이 버블시티의 큰 콘셉트라면 핵심은 익명 서비스다. 이름 등 최소한의 개인 정보를 입력해야 가입이 되는 다른 SNS와 달리 버블시티는 단지 e메일 주소만 있으면 가입이 가능하다. 로그인하기 위해 필요한 e메일 주소마저도 다른 사용자가 확인할 수 없다. 개인의 신상에 대한 추적이 전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최근 화제가 됐던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처럼 미리 지정한 시간(최소 1시간, 최대 4주)이 지나면 자동으로 메시지가 사라지는 기능도 제공하고 있다. 노 팀장은 “메시지가 터지면(사라지면) 업체 데이터베이스에서도 사라지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복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앱 이름에 넣은 버블은 지껄이다(Burble)는 의미와 함께 거품(Bubble)처럼 메시지가 터진다는 중의적인 의미라고도 덧붙였다. 버블시티는 17일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위치기반 서비스 사업 신고를 마치면서 공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현재 접속 사용자는 200명에 불과할 정도로 사업은 걸음마를 떼는 수준이지만 목표는 원대했다. “세계 1등 위치 기반 SNS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답했다. 앱에 구글맵을 활용하고 7월 법인을 미국에 세운 것 또한 세계무대를 공략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설명했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소주 한 병에 제초제를 섞어 그대로 삼켰다. 유일하게 남은 재산인 갤로퍼 차량 운전석에 앉아 삶의 마지막을 기다렸다. 30, 40분이 지나자 심한 구토가 났다. 행인의 신고로 경기 고양시의 한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위세척에 화장실을 오가며 사흘을 병원에서 보낸 뒤 그에게는 69만 원이 적힌 치료비 청구서가 전달됐다. “돈 없어서 죽으려던 사람 살려놓고는 돈 내라 하느냐”고 병원 관계자에게 하소연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생활고에 극단적인 선택 18일 서울 도봉구의 한 고시원 단칸방에서 만난 김영근 씨(66)는 올해 6월 8일, 경기 양주시의 한 다리 밑에서 자살을 시도하던 순간을 회상했다. 이후 김 씨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위기가정 지원사업’의 도움으로 현재 5m² 남짓한 고시원 단칸방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됐다. 노령연금(월 20만 원)과 이달부터 들어오는 기초생활수급비(월 13만 원)가 현재 그를 지탱해주는 수단이다. 그도 한때는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건설 노무직, 택시기사 등을 하며 아들 하나, 딸 둘을 길러냈다. 2004년에는 사업을 하는 큰아들을 도우러 미국 조지아 주로 건너갔다. 그러나 가족과의 불화가 이어지면서 2007년 결국 혼자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다. 김 씨는 “큰딸의 접수로 귀국하자마자 정신병원에 4개월간 입원해 있었다. 혼자서도 잘 지낼 거라는 자신감이 이때 많이 꺾였다”고 했다. 퇴원 이후, 김 씨는 지인을 통해 경기 안산시의 한 절에서 살았다. 사찰생활에 익숙해지기 위해 머리도 밀고 관도(觀道)라는 법명도 정했다. 길을 찾겠다는 의미였지만 막상 본인의 먹고살 길조차 찾기 어려웠다. 눈칫밥을 견디다 못해 이곳저곳 절을 옮겨 다녔다. 떠돌이 생활도 쉽지만은 않았다. 그 사이 그는 중풍을 앓았고 치아는 오른쪽 아래 소구치(송곳니 바로 뒤편의 치아) 하나만이 남았다. 이후 한 달여를 차에서만 지낼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리던 김 씨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됐다.○ 다음 달 방값부터 걱정 지원사업의 도움으로 삶의 의지를 되찾았지만 김 씨에겐 아직도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 현재 받고 있는 지역 복지관의 금전적인 지원도 이달로 기간이 끝나 당장 다음 달부터 방값을 내기가 어려워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거주지가 명확해지자 그동안 내지 못한 세금 고지서도 줄줄이 들어왔다. ‘60대면 아직 젊다’는 생각에 주유소 아르바이트, 전단 돌리기 아르바이트 등에 지원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중풍을 앓아 왼쪽 거동이 불편한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한 달에 20만 원을 받는 복지회관 청소 아르바이트도 내년 4월이나 돼야 순번이 돌아온다고 했다. 구청에서 지원하는 노인의 집에 들어갈 계획이었지만 임대주택을 구해 나가기로 한 사람이 사정이 생기면서 여의치 않게 됐다. 가족에게 받은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았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최근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위해 구청에 갔다가 큰딸이 미국에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김 씨는 “하지 말아야 할 나쁜 생각을 한 적도 많다”며 “내가 (자식) 교육을 잘못한 걸 누굴 나무랄 수 있겠느냐”는 말을 되풀이했다. ‘가족이 원망스럽지 않으냐’는 질문에 김 씨는 “점심식사를 하려면 오전 11시 30분까지 복지관에 가야 한다”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기가정 지원사업 신청 문의는 중앙위기가정지원 콜센터(1899-7472)로, 후원 문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콜센터(080-890-1212)로 하면 된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서울지방경찰청 경제범죄특별수사대는 부동산 거래 고객이 납부를 의뢰한 지방세 대금을 신용불량자 등에게 빌려주고 높은 이자를 받아 가로챈 혐의(대부업법 위반 등)로 무등록 대부업자 이모 씨(42) 등 3명을 구속하고 22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18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 등은 2013년 1월부터 이달 초까지 법무사 사무실을 통해 납부 의뢰받은 부동산 취득·등록세 대금 200여억 원을 카드 연체자 등 1500여 명에게 빌려주고 법정 기준(연 39%)보다 훨씬 높은 이자(연 1만 %)를 받은 혐의다. 이런 수법으로 얻은 부당이익은 70억 원에 이른다. 이들은 지방세를 신용카드로 납부할 때 본인 확인을 거치지 않는다는 허점을 노렸다. 이들은 고객들이 부동산 거래 때 법무사 사무실에 낸 현금으로 카드 연체 등 급전이 필요한 사람에게 빌려줬다. 이어 해당 카드의 사용정지가 해제되면 지방세를 결제했다. 부동산을 매매하면서 고객들이 대신 납부해 달라고 맡긴 현금으로 불법 대부업을 한 것이다. 이자 수입으로 생긴 부당이득은 대부업체 67%, 법무사 16.5%, 중간브로커 16.5% 정도씩 나눠 가졌다. 이 씨는 번 돈을 재규어 BMW 등 고급 외제차량을 사거나 마카오 등지에서 도박을 하는 데 썼다. 경찰 관계자는 “물건을 재판매해서 현금을 유통했던 기존 카드깡과 달리 세금을 물건처럼 이용한 신종 카드깡 사건”이라며 “지방세 수납 과정에서 본인 여부를 확인하도록 각 지자체에 요청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근로시간을 단축해 삶의 질은 개선하되 임금 삭감은 안 된다.”(노동계) “법정 근로시간을 줄이면 인건비 부담으로 도산하는 기업이 속출할 것이다.”(재계) 2000년 5월 당시 최선정 노동부 장관이 “법정 근로시간을 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하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히자 노사는 찬반 공방을 벌였다. 논쟁은 종교계에까지 번졌다. 불교계는 “산사(山寺) 순례생활을 하는 신도가 늘 것”이라며 환영했지만 기독교계는 “주말에 여행을 가는 등 교회에 오는 신도가 줄어든다”며 반대했다. 나라 전체가 3년 넘게 홍역을 앓은 끝에 2003년 8월 ‘주5일 근무제(주5일제)’의 근거가 된 정부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그리고 2004년 7월, 마침내 주5일제가 시행됐다. 정부는 근로자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문화 관광 레저 등 새로운 내수산업이 발전할 것으로 기대했다. 근로시간이 줄면 추가 고용이 5.2% 증가할 거라는 장밋빛 전망도 나왔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주5일제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2005년 레저시장 규모는 37조9815억 원으로 전년(34조5140억 원)에 비해 10.5% 증가했다. 전해 ―0.1%로 뒷걸음질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이후 레저시장 규모는 꾸준히 커져 지난해 57조1813억 원 규모에 이르렀다. 2004년과 비교하면 65.7%나 높아진 수치다. 주5일제가 시행된 지 10년.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취업자의 주당 근로시간은 2003년 49.1시간에서 지난해는 43.1시간으로 6시간이나 줄었다. 근로문화도 오랜 시간 일하는 ‘양’ 중심에서 정해진 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일하는 ‘질’ 중심으로 탈바꿈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 카피가 실감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주5일제가 대한민국 사회에 불러온 변화를 구석구석 살펴봤다. ▼ 회식은 木요일, 동창회는 金요일… 주말은 가족과 ▼레저의 재발견유흥가 대목 ‘金-土’서 ‘木-金’으로… 가족 단위 나들이 크게 늘어2014년 캠핑인구 300만명 예상… 4년만에 5배로 크게 늘어“신토불이!” 2000년대 초 한 TV 예능프로그램 ‘천생연분’의 진행자 강호동이 오프닝 때마다 이렇게 외쳤다. ‘우리 게 소중한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신나는 토요일 불타는 이 밤”의 줄임말이다. 당시 토요일 밤은 일주일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직장인 회식이 많았던 금요일과 함께 토요일은 유흥가의 대목이었다. 지금은 어떨까. 일주일 내내 손꼽아 기다리던 ‘신나는 토요일’은 ‘불타는 금요일(불금)’에 자리를 내줬다. 직장인의 회식자리는 자연스럽게 금요일에서 목요일로 당겨졌다. 주말에 이틀을 온전히 쉴 수 있게 되면서 1박 2일, 2박 3일로 떠나는 캠핑이 여가활동의 대세로 자리 잡았다. 주 5일근무제 시행 10년이 가져온 변화다.목요일은 ‘회식 데이’ 6일(목) 오후 7시경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BBQ종로관철점. 제너시스BBQ 본사 직원 6명이 모였다. 이날은 한 달에 두 번 열리는 ‘호프(Hope)데이’다. 주로 3년차 이하 주니어급 직원들의 소통을 위해 만든 자리다. 호프데이 회식은 언제나 목요일에 열린다. 금요일 회식은 10년 이상 회사를 다닌 고참들의 추억 속에만 남아있다. 제너시스BBQ 운용본부 선한성 주임(30)은 “지금은 목요일 회식이 대세”라며 “금요일에 정상근무를 하다 보니 회식 자리도 길지 않고 술도 덜 마시는 게 목요일 회식의 특징이다”라고 전했다. 식당과 술집의 풍경도 바뀌었다. 1996년부터 서울 광화문에서 한식당을 운영해온 김시영 씨(55)는 “딱 금요일 점심까지만 손님이 많다”며 “금요일 단체회식 예약을 받아도 막상 오는 손님을 보면 예약한 숫자보다 적을 때가 다반사”라고 말했다. 요즘 택시기사들이 가장 바쁜 날도 목요일이다. 2년째 택시를 몰고 있는 김모 씨(59)는 “지난해 택시비가 인상된 뒤 전체적으로 손님이 줄었지만 그나마 목요일에는 돈을 좀 번다”며 “목요일 밤에는 직장인이 많은 여의도와 강남에서 수입이 특히 짭짤하다”고 전했다.뜨거운 ‘불금’ 7일(금) 오후 6시경 서울 강남구 지하철 3호선 신사역 8번 출구 앞. 이제 막 퇴근한 직장인들의 발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들이 향하는 곳은 가로수길. 오후 7시경 일대 식당마다 사람들이 들어차기 시작하더니 8시를 넘자 대부분 식당에서 빈 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한 족발가게에서 만난 30대 남성 직장인 3명은 일주일의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날리려는 듯 와이셔츠 단추까지 풀어헤친 채 건배를 했다. 용산구 이태원도 ‘불금(불타는 금요일)’이 낳은 명소 가운데 한 곳이다. 매주 금요일 밤 이태원역 2번 출구로 나와 골목으로 걸어가면 나오는 세계음식 문화거리는 20, 30대 직장인들과 외국인들로 넘쳐난다. 근처 경리단길, 해방촌도 불금이면 뜨겁게 달아오르는 명소가 됐다. 광화문 근처 회사의 4년차 직장인 전모 씨(27·여)는 “불금에는 직장 동료보다 친구들을 만나 즐긴다. 회사 근처에 약속을 잡으면 혹시라도 직장상사와 마주칠 수 있어 부담스럽다. 기왕이면 분위기 좋은 카페, 술집이 몰려 있는 이태원이나 가로수길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가로수길에 일본식 선술집을 낸 최모 씨(33·여)는 “금요일 저녁이면 평소보다 3배 이상의 손님이 몰린다”며 “금요일 장사는 토요일 오전 4시 넘어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주말은 ‘가족 데이’ 주5일제가 시행되면서 가장 큰 특수를 누리는 곳은 레저업계다. 이틀간의 휴일이 주어지면서 선택의 폭이 넓어진 덕분이다. 여가활동의 대세로 자리 잡은 것은 바로 ‘캠핑’.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0년 60만 명이었던 캠핑인구가 올해 3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1박 2일’ ‘아빠. 어디가’처럼 짧은 여행을 소재로 한 TV 예능프로그램은 시청률 보증수표가 됐다. 석영준 대한캠핑협회 사무총장은 “과거 캠핑족들이 주로 40대 남성이었다면 최근에는 가족 단위 캠핑족이 대부분으로 캠핑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8일 오후 취재진이 찾은 경기 가평군 자라섬 캠핑장에도 가족 단위 캠핑객이 대부분이었다. 이곳은 서울에서 멀지 않고 면적이 넓어 대표적인 가족 친화형 캠핑장으로 불린다. 이날도 아이는 폴대를 들고 아빠는 망치를 두드리며 텐트를 설치하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캠핑장 내 설치된 100여 개의 텐트 중에서 커플족의 텐트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캠핑 2년차인 이상원 씨(40) 가족은 이제 한 달에 두세 번 짐을 꾸려 떠날 정도로 캠핑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이날도 온 가족이 힘을 합쳐 텐트를 설치한 뒤 작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 씨의 아내인 박정선 씨(40)는 “콘도나 펜션으로 휴가를 떠나면 (집에 있는 것처럼) TV만 보다 오는 경우가 많았다”며 “캠핑은 자연 속에서 가족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직장인과 가족의 문화를 바꿔놓은 ‘주 5일제의 힘’이었다. ▼ 근무시간 줄었지만… 기업 생산성은 되레 높아졌다 ▼근로의 재발견법정근로 週 44시간서 40시간으로… 연공서열 대신 직급 파괴 늘고현장 출장은 화상회의로 대체… 양보다 질 ‘똑똑한 근무’ 확산SK텔레콤은 2007년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직급서열을 파괴한 ‘매니저 제도’를 도입했다.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으로 나뉘던 직급을 폐지하고 ‘매니저’라는 호칭으로 바꿨다. 수직적 서열에 따른 경직된 조직문화를 업무 중심의 수평적 문화로 바꿔 보자는 취지였다. 이 회사는 능력 위주로 선발한 팀장이 각 업무를 책임지면서 업무 효율화까지 꾀했다. SK텔레콤이 이런 변화에 나선 건 10년 전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한 게 결정적이었다. 업무시간이 줄면서 보다 효율적으로 조직을 운영해야 할 상황이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기존의 연공서열 중심의 조직으로는 과거와 같은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장기 근로’에서 ‘효율적 근로’로 주5일제가 시행된 지 10년이 되면서 국내 대기업의 조직문화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업무시간이 주44시간에서 주40시간으로 줄어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일해야 하는 현실적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이 때문에 매니저 제도 같은 다양한 인사 시스템뿐 아니라 정보통신기술(ICT)을 적극 활용하는 ‘스마트워크’ 시스템도 일반화됐다. 예컨대 해외 출장 업무가 발생해도 반드시 현장을 방문할 필요가 없으면 화상회의나 콘퍼런스 콜(여러 명이 동시에 하는 전화회의)로 진행하는 기업이 부쩍 늘었다. 주5일제 도입 전에는 한국경영자총협회를 중심으로 한 재계의 우려가 많았다. 재계는 “주5일제 도입은 단순한 근로시간의 단축이 아닌, 나라 전체의 근무일수가 하루 줄어드는 대단히 크고 근본적인 변화”라며 “기업 생산성 저하 문제 등 사회적 비용이 매우 크다”고 걱정했다. 또 “근로시간 단축으로 소득이 줄고 자유시간이 늘어난 근로자들은 줄어든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다른 직업을 갖거나 파트타임 자리를 알아봐야 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신규 고용창출은 물론이고 삶의 질 향상도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스마트워크가 보편화되면서 기업의 생산성은 떨어지지 않았다. 원격기술을 활용해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업무 시스템이 일터에서의 근무시간을 줄였다. 다만 실질적인 근로시간은 줄이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기업의 한 직원은 “쉬는 날에도 스마트폰으로 간단한 업무 처리가 가능해 업무와 관련한 연락이 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영세기업에 주5일제는 ‘그림의 떡’ 다만 중소기업의 경우 주5일제로 인한 영향은 업종과 규모에 따라 편차가 있다. 제도가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업종과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행된 탓이다. 주5일제 도입 당시에는 중소기업이 더 큰 피해를 볼 거라는 분석도 나왔다.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기업인 126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주5일제 시행으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은 9% 정도 늘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중소기업중앙회가 182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인건비 복리후생비 등 제반 비용이 평균 20% 상승하고, 제품 단가도 16% 정도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이때 대기업에 비해 자금과 인력이 충분치 않은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은 추가 인력을 고용해서라도 생산량을 달성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하루 생산량을 늘리자고 추가 인원을 뽑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중소기업의 구인난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런 일부 중소기업의 걱정은 기우에 그쳤다. 부품소재 전문 중소기업인 SJ테크의 경우 2006년 매출액이 주5일제 도입 이전에 비해 50% 이상 늘었다. 유창근 SJ테크 대표는 “2004년 개성공단에 입주해 생산기지로 활용하고 국내 본사 인력의 자기 계발을 지원하면서 관리와 기술개발 역량을 끌어올린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주5일제를 비판적으로 보는 중소기업도 있다. 건설 장비를 제조하는 중소기업인 B사는 직원 복지와 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기대하며 주5일제를 앞장서 시행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오히려 직원들이 노는 시간만 늘어난 게 아닌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이 회사의 김모 대표는 “주5일제에는 찬성하지만 아직 한국 사회가 제도의 취지를 충분히 살릴 만큼 성숙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규모가 작은 영세기업에 주5일제는 먼 나라 얘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인력이 충분하지 않은 데다 생산량이 유동적이어서 주5일 근무를 보장해 주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주5일 근무로 부족해진 일손을 메우려면 사람을 더 뽑거나 설비를 새로 들여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직원이 50여 명인 대구의 한 중소 금속기계 제조업체에 다니는 이모 씨는 “지금도 2주에 한 번만 주5일 근무를 한다”며 “애초부터 대기업을 위한 제도였다”고 푸념했다. 근로조건이 열악한 회사의 사무직은 생산직보다 주5일 근무에 따른 불만이 더 크다. 생산직은 주말에 출근하면 수당을 받지만 연봉제인 사무직은 아무런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샘물 evey@donga.com·강홍구·임우선·최고야·정세진·김호경·김창덕 기자}
13일 치러진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는 한 남자 수험생이 학교 위치를 착각해 여자 수험생들 사이에서 ‘청일점’ 시험을 치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날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서울지역 고교를 졸업한 재수생 홍모 군(19)은 시험을 보기 위해 경기 광명시에 있는 광문고를 찾았다. 그러나 이 시험장은 여학생들을 위한 곳. 시험장 관리본부가 확인한 결과, 홍 군의 실제 시험장은 서울 강동구에 있는 광문고였다. 홍 군이 학교 이름만 보고 시험장 위치를 착각한 것이었다. 도교육청 수능 종합상황실은 입실 완료시간이 10여 분 남은 상황에서 홍 군이 제시간에 서울 광문고로 이동할 수 없다고 판단해 광명 광문고에서 시험을 보도록 했다. 홍 군은 여학생들 틈에서 1교시 시험을 치른 뒤, 2교시부터 감독관이 있는 별도의 교실에서 홀로 시험을 봤다. 이번 수능에서는 10년 만에 소년원 시험이 부활하기도 했다. 올해 처음으로 수능시험장으로 지정된 경기 의왕시 서울소년원 고봉중고등학교에서는 소년원생 23명이 시험을 치렀다. 생활관에 머물던 원생들은 시험 시간에 맞춰 교육관인 고봉중고 건물 1층 시험실에 입실했다. 고시장 안팎에는 감독관 8명 등 본부요원 23명이 있었고 다른 시험장과 마찬가지로 지역 경찰 2명도 배치됐다. 지난해까지 10명 미만이 수능 응시를 희망했던 서울소년원은 올해부터 수능 준비반을 만들어가며 진학교육에 힘썼다. 소년원 수능시험장 지정은 2004년 안산예술종합학교(현재 폐교) 지정 이후 1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서울 중구 이화외고 앞에서는 깜빡 잊고 시계를 가져오지 않은 여자 수험생 10여 명이 인근 편의점을 돌며 일명 ‘수능시계’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또 자녀가 시계를 가져오지 않은 한 학부모는 학교 근처에서 교통정리를 하던 경찰관에게 시계를 빌려 자녀에게 건네기도 했다. 이 학부모는 경찰관에게 연신 “고맙다”고 인사하며 연락처를 받아갔다. 강원 원주시에서는 수험표를 두고 와 시험을 포기하려던 수험생 김모 양(18)을 경찰관이 설득해 시험관리본부에서 수험표를 재발급해 시험장에 들어가게 한 일도 있었다. 서울 은평구 은평고에서는 이번 수능 최고령 수험생인 조희옥 씨(81·여)가 시험을 치러 화제가 됐다. 현재 일성여고 3학년에 재학 중인 조 씨는 일제강점기 당시 봉제공장에 다니며 생계를 유지하느라 학업의 꿈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강홍구 windup@donga.com·황성호 기자}

《 통상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는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 수학, 영어가 어렵게 나왔지만 올해는 두 과목 모두 쉽게 출제됐다. 특히 자연계 수험생이 치는 수학 B형까지 쉽게 나온 건 이례적이다. 사회·과학탐구는 지난해 수능에 이어 선택과목마다 난이도 격차가 여전했다. 과목 난이도에 따른 입시 유불리를 방지하기 위해 교육부와 평가원은 선택과목 난이도 격차를 줄이겠다고 했지만 입시전문가들은 “과목별 1등급 구분점수 차이가 커 수학 변별력이 떨어지는 자연계열의 경우 과학탐구 선택과목이 입시 결과를 결정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 국어, EBS교재 내용 응용 많아… 칸트 철학 지문에 곤혹주로 문과생이 보는 B형은 지난해 수능보다 어렵게 출제됐다. 주로 이과생이 보는 A형도 지난해 난이도와 비슷하거나 약간 어려웠다. 9월 모의평가보다는 상당히 어렵게 출제됐다. 9월 모의평가 국어의 만점자 비율은 A형이 4.19%, B형이 5.34%로 매우 쉬웠다. 김희동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장은 “9월 모의평가의 영향으로 수험생들의 체감 난도는 더욱 어렵게 느껴졌을 것”이라며 “1등급 컷은 9월 모의평가에 비해 A형은 2∼3점, B형은 5∼6점 정도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진건의 소설 ‘무영탑’은 시험지 한 면을 다 차지할 정도로 긴 지문이 제시되는 등 문학 지문들의 길이가 다소 길어 독해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는 점도 전반적인 난도를 높였다. 조영혜 서울과학고 교사는 “국어 B형의 EBS 연계율 70%는 맞지만 EBS 지문에 나온 개념과 논지를 확장한 내용이라 정작 수험생들은 연계성을 많이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험생이 특히 어려움을 느낀 문항은 A, B형 공통으로 출제된 ‘칸트의 취미 판단 이론’을 소재로 한 예술 지문, A형의 현대시(정지용의 조찬)와 현대수필(이태준의 파초)을 복합한 문항, B형의 고전시가(정철의 관동별곡)와 현대수필(최익현의 유한라산기)을 복합한 문항들이다. 임성호 하늘교육 대표이사는 “EBS 지문이 심하게 변형돼 특히 국어 B형은 만점자가 0.1%로 추정된다”며 “2012학년도 수능 이후 가장 어렵게 출제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수학, 고난도 문제 줄어… 한 문제만 틀려도 2등급 될듯A, B형 모두 지난해 수능에 비해 쉽게 출제됐다. 9월 모의평가와 비교해 A형은 쉽게 출제됐고 B형도 비슷하거나 쉽게 출제됐다. 전반적으로 6월 모의평가 난이도와 비슷해 한두 문제만 틀리면 2등급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A형은 거의 해마다 출제됐던 빈칸 채우기, 도형의 등비수열 합의 활용 문제가 출제되지 않았다. B형은 기존 기출문제와 비슷한 문제가 많이 보여 수험생들이 평이하게 느꼈을 것으로 입시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조만기 경기 양평고 교사는 “최상위권 변별 문제가 A형은 3개, B형은 4개 정도 나와야 하지만 올해 수능은 어려운 문제 개수가 각각 2, 3개로 줄었다”며 “난도가 높은 4점짜리 문제도 EBS 연계 문제가 많아 수험생에게 익숙했다”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쉬운 수능 기조를 따랐으나 상위권 변별을 위한 고난도 문항의 난도는 여전히 높았다. B형의 경우 지수함수에서 미분 가능한 함수를 구하는 30번 문항이 어렵게 출제돼 만점 여부를 가릴 것으로 전망된다. 남윤곤 메가스터디 입시전략연구소장은 “B형은 30번 문항 때문에 만점자 비율이 지난해 수능(936명·0.58%)과 9월 모의평가(781명·0.52%)보다 다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 영어, 빈칸 추론 감소… 만점자비율 4% 역대 최고 전망영어는 교육부 예고대로 6, 9월 모의평가에 이어 수능에서도 쉬웠다. 만점자 비율도 4% 전후로 역대 수능 중 최고 수준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영어 난도가 유난히 낮아진 배경에는 수험생들이 가장 까다롭게 여기는 빈칸 추론 문제가 지난해 7문항에서 4문항으로 줄어든 데다, 모두 EBS와 연계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혜남 서울 문일고 교사는 “지난해 영어 B형이 어려웠던 이유가 빈칸 추론 문제 7개 중 3개가 EBS 비연계였기 때문”이라며 “빈칸 추론 문제가 변별력을 가리는 척도인데 이번 통합형 영어는 상위권을 변별하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6, 9월 모의평가에서 영어 1등급을 받은 재수생 정태서 씨(19)는 “6월 모의평가보다는 어렵고 9월 모의평가보다는 쉬워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야 1등급이 나올 것 같다”며 “모든 수험생이 예상했던 대로 상위권에서 다투려면 영어 1등급은 기본이어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과탐, 자연계 선택과목따라 1등급 최대 7점 차이탐구영역의 선택과목별 1등급 구분점수는 과학탐구의 경우 최대 7점, 사회탐구는 최대 6점이 차이 날 것이라고 입시전문가들은 예상한다. 문제가 쉬우면 1등급 구분점수가 높고 표준점수는 낮아진다. 반대로 문제가 어려우면 1등급 구분점수는 내려가고 표준점수는 높아져 표준점수를 반영하는 대학에 지원할 때 유불리가 갈린다. 과학탐구의 경우 올해 자연계열 입시의 최대 변수로 떠오르면서 선택과목 간 표준점수 격차가 가장 민감한 사안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생명과학Ⅱ는 지난해보다 매우 어려워 1등급 구분점수가 40점으로 추정되는 반면 물리Ⅰ,Ⅱ는 지난해 난이도와 비슷해 47점으로 추정돼 격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탐구는 전반적으로 지난해 수능과 비슷하거나 어려웠다. 지난해 쉽게 출제된 생활과 윤리, 한국사는 약간 어렵게 출제됐다. 오종운 이투스청솔 평가이사는 “어렵게 나온 윤리와 사상은 1등급 구분점수가 44점으로 추정되는 반면에 세계사는 지난해에 이어 쉽게 출제돼 50점 만점을 받아야 1등급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전주영 aimhigh@donga.com·강홍구·황성호 기자}
보건당국의 허술한 검사 규정을 악용해 기준 이상의 유해성분이 들어간 불량 한약재를 대량 유통시킨 제조·판매업체가 검찰에 적발됐다. 서울북부지검 형사6부(부장 이용일)는 카드뮴, 납, 이산화황 등의 성분이 유통 기준에 비해 최대 111배 이상 검출된 한약재를 정상 제품인 것처럼 속여 유통시킨 혐의(약사법 위반)로 국내 최대 한약재 제조·판매업체 동경종합상사의 대표이사 김모 씨(56), 생산본부장 남모 씨(41), 영업본부장 이모 씨(41) 등 3명을 구속하는 등 총 13명을 기소했다고 12일 밝혔다. 이들은 2012년 1월부터 올 10월까지 1만6000회에 걸쳐 맥문동, 천궁, 구기자 등 불량 한약재 263개 품목을 65억 원어치(총 58만2000kg) 유통시켰다. 이들은 제조 과정에서 일부 유통 기준에 맞지 않는 약재가 만들어져 발생하는 손실을 줄이기 위해 불량 한약재를 유통시켰다. 식품업체와 달리 한약재 제조업체는 자체적으로 품질 검사를 실시해 부적합한 결과가 나와도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보건당국에 보고할 의무가 없다는 점을 악용해 시험성적서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불량 한약재를 정상 제품인 양 속였다. 실제로 이 회사가 제조한 맥문동은 이산화황의 성분 수치가 3340ppm으로 유통기준(30ppm)의 111배 수준이었음에도 정상 제품으로 유통됐다. 시험성적서에는 1ppm이라고 기재했다. 외떡잎식물인 맥문동은 소염·진해·거담제 및 강심제로 사용되는 약재다. 동경종합상사는 대표이사, 생산본부장, 영업본부장을 비롯해 영업팀장까지 참석하는 ‘전략경영위원회’를 정기적으로 열어가며 범행을 모의했다. 형사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생산본부장인 남 씨가 책임을 지기로 사전에 대응 방침을 정해놓기도 했다. 이들은 범행 사실 적발 시 행정처분을 받지 않기 위해 영세 제약회사 4곳의 제품인 것처럼 불량 한약재를 유통했다. M제약, J제약 등 영세 제약회사들은 포장지 제공 명목으로 건네는 수천만 원을 받기 위해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4곳 중 폐업한 한 곳을 제외한 나머지 3개 업체 대표들도 이번에 함께 기소됐다. 앞서 식약처는 지난달 동경종합상사 등 4개 업체가 제조 판매한 모든 한약재의 사용을 잠정적으로 중지하도록 조치했으며 검찰은 해당 업체를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 관계자는 “약사법상 자체품질검사 제도가 개선되도록 식약처에 관련 자료를 제공하고 자체품질검사 시험성적서를 조작하는 경우 형사 처벌받을 수 있도록 법무부에 입법 건의했다”고 밝혔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2012년 2월 동해 해상 침투훈련에 투입된 해군 고속단정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엔진에서 시작된 불은 선체로 번졌고 배 위에서 훈련하던 특수전단 요원 10여 명은 불을 피해 바다로 몸을 던졌다. 구조를 위해 해군 예인선이 출동할 정도로 상황이 긴박했지만 이 화재사고는 군 내부에 단순 냉각기 고장으로 보고됐다. 같은 해 9월 경기 평택시 인근 해상에서 발생한 고속단정 화재도 마찬가지였다. 해군에서 이런 사고와 은폐가 발생한 것은 납품비리 때문이었다. 2009년부터 해군에 고속단정 13척을 납품해온 W업체는 수익을 높이기 위해 중고, 불량 부품이 들어간 배 5척을 군에 넘겼다. 방위사업청, 국방기술품질원, 해군을 거치는 납품 절차에서도 비리가 가능했던 것은 W업체의 부당거래 때문이었다. W업체 대표 김모 씨(61)는 퇴직 후 재취업을 미끼로 군과 방위사업청 관계자를 포섭했다. 2011년 7월 해군에서 퇴직한 후 입사한 이모 씨(54)를 통해 군과 국방기술품질원 관계자 5명에게 불량 부품 납품을 눈감아 달라며 뇌물 3500만 원을 건넸다. 현역 해군 준장 김모 씨(56)는 화재로 손실된 엔진 4대를 구매할 때 W업체 이 씨의 부탁을 받고 경쟁 입찰 규정을 무시한 채 수의계약으로 4억7000만 원에 W업체의 제품을 샀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업체, 방위사업청, 국방기술품질원 관계자, 전직 군인 등 1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사기, 뇌물공여 혐의로 다음 주 김 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할 예정이다. 직무유기 혐의를 받고 있는 김 준장을 비롯한 현역 해군 11명(직무유기, 직권남용 등 혐의)의 혐의 내용을 국방부 조사본부에 통보할 계획이다. 해군 관계자는 “경찰에서 밝힌 일부 장교의 비리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어 법적 대응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강홍구 windup@donga.com·정성택 기자}

“그저 푹 쉬라고 했다. 그 외에 할 말이 뭐가 있겠나.” 9일 오후 경기 수원시 팔달구 자택에서 본보 기자와 만난 배성서 씨(70)는 아들 케네스 배(한국명 배준호) 씨와 통화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배 씨는 프로야구단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 이글스)의 초대 감독 출신 야구인. 배 씨는 아들이 풀려난 것에 대해 “특사만 가면 아들이 나오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고 담담하게 말하면서도 3년 전 아들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을 어루만졌다. “어제 동네 기원에 있는데 아내로부터 ‘준호가 (북한에서 나와) 괌으로 가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갑자기 뒷목이 뻣뻣해졌다. 울컥했다.” 준호 씨는 별다른 말썽 없이 잘 자라준 맏아들이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7, 8년 전 선교활동을 위해 중국으로 갔다. 아들과 중국 단둥에서 만난 며느리는 북한을 오가며 한복 사업을 했다. 아들이 북한을 오가는 일도 잦아졌다. 평안북도 영변 출신인 아버지 배 씨의 영향도 있었다. 배 씨는 “‘나는 이북을 잘 안다. 그래서 더욱 이북에 가지 말라’고 몇 차례 아들에게 충고했다. 그런데도 괜찮다고 하더니 결과적으로 이렇게 고생을 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TV 화면을 통해 아들의 모습을 확인한 배 씨는 “살도 20kg 넘게 빠지고 병원도 자주 오갔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겉모습은 예전과 크게 달라보이진 않았다”며 “평양에 있는 스웨덴 대사관을 통해 꾸준히 당뇨약을 보낸 게 효과가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배 씨는 전날 아들의 석방 소식이 전해진 뒤 지인들의 축하 인사를 받느라 눈도 못 붙였다고 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 교회 지인들이 마련한 축하 자리에 참석한다며 일어섰다. 그는 이르면 이번 주말 아들을 만나러 미국행 비행기에 오를 예정이다. 아들을 만나면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묻자 배 씨는 “‘다시는 북한 근처에 가지 말라’고 하겠다. 아마 본인도 (경험을 했으니) 알아서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수원=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