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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연안여객선에 대한 안전 점검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국제여객선에서 사고가 잇달아 발생해 승객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8일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이날 낮 12시 9분경 충남 태안군 근흥면 격렬비열도 인근 해상에서 중국 장쑤(江蘇) 성 롄윈(連雲) 항을 출발해 평택항으로 오던 1만5000t급 카페리 CK-스타호의 좌현 엔진이 고장 났다. CK-스타호는 우현 엔진 1개만 이용해 10노트로 항해하면서 사고 사실을 평택해양경찰서에 신고했다. 평택해경은 300t급 경비함 2척과 4만 t급 예인선 1척을 긴급 출동시킨 뒤 카페리와 같이 움직이도록 했다. 카페리는 도착 예정 시간보다 5시간여 늦은 오후 9시가 넘어 평택항에 들어왔다. 정원이 728명인 이 카페리에는 한중 단체관광객 458명과 선장과 승무원 48명 등 703명이 탑승했다. 화물은 컨테이너를 최대 192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까지 적재할 수 있는데 138TEU가 실렸다. 다행히 이 사고로 다친 사람은 없었다. 세월호 영향으로 혼란이 우려됐지만 배에 진동이나 흔들림 같은 이상 현상이 나타나지 않아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승객들은 “고장난 지 약 15분 뒤 이를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왔고 승무원들이 자세히 상황을 설명했다”고 설명했다. 중국인 승객 저우원(周文·34·여) 씨는 “얼마 전 한국의 배(세월호) 사고 생각이 나서 조금 무섭기는 했다”며 “그러나 별다른 충격이 없고 안내방송이 잘 나와 큰 불편 없이 왔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29일에도 인천과 중국을 오가는 자옥란호가 롄윈 항에서 출항한 뒤 기관 고장으로 귀항했다. 현재 자옥란호는 27일까지 휴항 신고를 낸 상태다. 이들 국제여객선의 잦은 고장은 대부분 건조된 지 20년을 넘긴 노후 선박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인천∼중국 국제여객선 10척의 평균 선령은 21년이나 된다. 화동명주호(인천∼스다오)와 대인호(인천∼다롄)의 선령은 26년이다. CK-스타호와 자옥란호는 선령이 각각 25년, 19년이다. 평택∼중국 여객선 4척의 평균 선령도 24년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연안 여객선의 경우 선령을 30년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한중 국제여객선은 특별한 제한이 없다.인천=황금천 kchwang@donga.com / 평택=이건혁백연상 기자}

2일 오후 3시 30분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전동차 추돌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사고를 막을 기회가 최소 3차례나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서울메트로 직원들이 안이하게 대응하면서 결국 249명이 다치는 사고로 이어졌다. 이번 사고도 세월호 참사처럼 전형적인 인재(人災)였다. 서울지방경찰청 열차사고 수사본부가 6일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사고원인으로 지목한 것은 △신호체계 오류 △종합관제센터 과실 △기관사 과실 등 3가지다. 경찰과 서울메트로에 따르면 사고 당일 오전 1시 30분경 서울메트로 신호팀 직원은 2호선 신당∼상왕십리역 구간의 신호체계에 오류가 발생한 사실을 확인하고 신호관리소장에게 보고했다. 현장을 책임지는 신호관리소장은 ‘모니터 고장’으로 여기고 재확인을 지시했을 뿐 상부에는 보고하지 않았다. 서울메트로 측은 3일 “사고 발생 나흘 전에 오류가 발생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사고 직후에야 이를 파악했다”고 발표했는데 사후에조차 정확한 사실 파악도 되지 않았던 셈이다. 종합관제센터 역시 사고 예방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사고 당일 관제센터에는 4명이 근무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두 전동차의 간격이 좁혀진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열차 지연은 출퇴근 시간에 자주 있는 일이라 사고 열차를 집중적으로 살펴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사고 당시 상왕십리역 전동차 배차 간격은 6분으로 출퇴근 시간대(2∼3분)에 비해 길었다. 운행상황판만 꼼꼼하게 지켜봤더라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 관제센터 근무자들은 뒤늦게 앞 열차에 무전으로 ‘정상 운행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추돌사고 직후에 연락을 취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앞에 있던 전동차 기관사의 대응도 기민하지 못했다. 앞 전동차(2258)는 상왕십리역 승강장에서 1분 30초가량 정차하다가 다시 출발하는 순간 뒤에 오던 전동차(2260)에 들이받혔다. 보통 정차시간이 30초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1분이나 더 늦게 출발한 셈이다. 당시 스크린도어가 제대로 닫히지 않아 여러 차례 열고 닫기를 반복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스크린도어의 오작동 원인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지연 시간이 길어지면 관제실에 연락해 후속전동차 등에 상황을 알렸어야 했지만, 앞 전동차 기관사는 이를 보고하지 않았다. 서울메트로 측은 “지연 운행 시 관제센터에 몇 초 내에 보고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통상적인 출입문 개폐 오류라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사고 직후 안내 방송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진술이 엇갈리고 있다. 경찰은 선행 열차 기관사가 방송 장치가 고장 나 방송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반면 서울메트로 측은 객실 내에 3회 방송을 실시했다고 주장했다. 피해 승객들 사이에서도 안내방송을 들었다는 증언과 듣지 못했다는 증언이 엇갈린다. 제때 안내방송을 했는지, 했다면 어떤 내용으로 했는지는 전동차 블랙박스를 분석해야 확인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6일 오전 서울메트로 본사 신호기계실과 신호체계 변경 작업을 진행한 민간업체 사무실 등을 추가로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신호체계 오류 발생 사실이 정확히 어느 선까지 보고됐는지 확인할 방침이다. 또 서울메트로와 민간업체의 계약서, 공문 등을 검토해 계약부터 신호체계 변경까지 전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를 정밀조사하기로 했다.이건혁 gun@donga.com·장선희 기자}

2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전동차 추돌사고가 나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힘이 또 한 번 발휘됐다. 사고 현장에 있던 시민들은 SNS에 글과 사진을 올려 사고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파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의 영향으로 사고 이후 대피 방송 여부와 승객들의 행동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트위터 아이디 @bya***를 쓰는 한 승객은 이날 오후 3시 44분경 “2호선 지하철 뿌서짐 탈출중”이라는 트윗과 함께 파손된 차량 사진을 올렸다. 이어 승객들의 부상 상황과 지하철 터널을 따라 탈출하는 사진을 실시간 트윗으로 올렸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전동차 내부 바닥에 묻은 혈흔을 촬영해 올리기도 했다. 서울교통정보센터도 사고 발생 20분 후 트위터(아이디 @seoultopis)를 통해 상왕십리역 인근 도로의 폐쇄회로(CC)TV 사진을 올리며 사고 발생과 교통 혼잡 상황을 보여줬다. 트위터 이용자들이 사고 관련 소식을 리트윗하면서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지하철 객차에서 탈출한 승객들이 어두운 지하철 통로를 걸어서 대피하는 사진이 트위터에 올라오자 누리꾼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사고 직후 대피하라는 안내 방송이 없었다는 글이 올라오자 세월호 침몰 참사 때 승객들이 “선내에서 기다리라”는 안내방송을 믿고 대피하지 않았다가 희생됐다는 사실을 연상하는 반응이 많았다. 서울메트로 측이 “대피방송을 했다”고 설명한 내용도 올라왔지만 목격자마다 말이 달라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세월호 사고가 난 지 16일 만에 또다시 대중교통에서 사고가 나자 “이제 어떤 교통수단을 믿고 타야 하느냐”는 반응도 이어졌다.이건혁 기자 gun@donga.com}
지하철 2호선 전동차 추돌사고의 영향으로 사고 현장인 상왕십리역 주변에는 교통 혼잡이 빚어졌다. 2일 오후 3시 반경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차와 구급차, 경찰차 등이 몰려들면서 일대 도로는 마비됐다. 사고 현장에는 소방인력과 경찰, 구청직원 등 213명이 투입됐으며 구급차와 소방차 등 58대가 동원됐다고 소방당국은 밝혔다. 부상 정도가 심하지 않은 승객들이 한꺼번에 지하철역 밖으로 나와 버스와 택시를 타기 위해 몰리면서 혼잡이 더해졌다. 사고 직후 경찰은 상왕십리역 근처 도로를 수신호로 통제하고 긴급 차량과 대중교통 중심으로 통행을 제한했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지하철 2호선 운행이 중단된 을지로입구역부터 성수역까지 9개 지하철역 근처도 교통 혼잡을 빚었다. 교통 정체로 버스는 만원이었고 택시를 잡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서울시는 교통난을 해소하기 위해 사고 현장 근처를 지나는 33개 노선에 대해 67대의 예비차를 운행하고 개인택시 부제도 전면 해제했다.이건혁 기자 gun@donga.com}

세월호 참사 발생 17일째인 2일. 세월호가 침몰한 사고 지점에는 부표 2개가 덩그러니 떠 있다. 바로 옆에 정박한 바지선 ‘언딘리베로호’ 위에는 실종자 수색작업에 투입될 잠수사들이 물결치는 바다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조류가 가장 강하다는 사리의 마지막 날. 고갈된 체력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바닷속 환경 때문에 베테랑 잠수사들도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다. 사고 직후 바다를 찾은 민간 잠수사 권용 해난구조대(SSU) 전우회 부회장은 “조류 1노트(시속 1.8km) 이상이면 잠수가 불가능한데 이곳은 반나절을 제외하고 늘 4∼5노트 이상의 조류가 흐르는 위험한 지역”이라고 말했다. 거기에 40m 안팎의 수심에서 작업하다 보니 잠수병의 위험도 도사린다. 1일과 2일에는 민간 잠수사 2명이 잠수병 증세로 의식을 잃기도 했다. 그럼에도 잠수사들은 인명을 구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바다에 다시 몸을 던진다. 이번 사고 현장에서 민간 잠수사의 활약이 많은 주목을 받았다. 생계를 제쳐두고 한걸음에 사고 현장에 달려온 이들, 민간 잠수사의 세계를 살펴본다.진도로 달려온 민간 잠수사들 해경에 따르면 지난달 29일까지 바닷속 수색작업은 413차례 진행됐다. 이 중 민간 잠수사가 투입된 수색작업은 14차례이다. 여기에 투입된 민간 잠수사는 연인원 기준 27명에 불과하다. 실제로 바다 밑에 들어가 시신을 수습하고 가이드라인을 설치한 민간 잠수사는 이처럼 소수에 불과하다. 다른 민간 잠수사들은 배를 몰거나 장비를 설치하는 등의 작업을 통해 구조작업에 참여한다. 이번에도 하루에 적게는 12명(지난달 25일)에서 많게는 297명(지난달 19일)이 헌신적으로 작업을 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국내 민간 잠수사는 약 8000명. 국가기술자격법에서 인정하는 공인 잠수사는 잠수산업기사와 잠수기능사로 각각 603명, 4862명이 있다. 홍성훈 한국잠수협회 사무국장은 “이 자격이 있어야 수중용접이나 수중폭파, 구조 및 선박 인양 등을 하는 전문건설업 허가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민간 잠수업체는 450여 곳으로 추정된다. 스쿠버 자격증을 취득한 민간 잠수사는 4000명 정도로 해수부는 추산한다. 국내 한국잠수협회, 대한수중·핀수영협회 등이나 미국 수중지도자협회(NAUI), 국제스쿠버학교(SSI) 등 민간단체들에서 스쿠버 자격증을 발급한다.수중용접은 잠수사의 몫 최상진 씨(47)는 1994년부터 현대중공업에서 잠수사로 근무하고 있다. 선박 동력 장치에 붙어 있는 따개비를 제거하고 도장 상태를 점검한다. 독에 물이 새지 않는지 점검하고 선박 용접 및 수리도 한다. 최 씨는 “겨울에 섭씨 7∼9도 찬물에서 밤까지 작업을 하다 보면 힘에 부쳐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나’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현대중공업그룹에는 11명의 잠수사가 있다. 스쿠버 강사였던 이주헌 씨(39)는 스쿠버가 ‘돈이 드는 레저’인 만큼 경기에 따라 부침이 심해 아예 잠수기능사 자격을 따고 건설회사에 취직했다. 교각을 건설할 때 수중에서 콘크리트를 붓거나 방파제 바닥을 평평하게 만드는 작업, 케이블 점검 등을 한다. 이 씨는 7년 전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아찔한 경험을 했다. 해양조사장비를 설치하러 바닷속으로 25m쯤 내려갔을 때 장비에 이상이 생겨 공기 공급이 차단됐다. 그는 “‘이제 죽는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지내온 인생이 영화처럼 스쳐지나갔다”며 “정신을 잃을 때쯤 공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정준상 서울산업잠수학원장은 “잠수사들은 수가 많지 않고 특수한 일을 하다 보니 월급이 600만 원가량으로 높은 편”이라며 “경력과 해양학, 토목학, 컴퓨터설계 등 전문지식이 더해지면 1000만 원을 넘기도 한다”고 말했다.“더 일찍 꺼내주지 못해 미안해” 김형춘 대표(50)는 1990년대 구난 및 수중공사 업체인 대한수중개발을 차린 이후 물속에서 건진 시신만 100여 구, 배에서 구출한 사람은 7명이다. 1990년대 말 김 대표는 전남 병풍도 인근에서 전복된 어선에서 누군가가 벽을 때리는 소리를 들었다. 선원 한 명이 에어포켓 덕분에 목숨을 잃지 않았다. 나머지 3, 4명은 이미 실종됐다. 배 안에서 김 대표는 기름을 뒤집어쓴 50대 남성을 발견했다. 김 대표는 “그가 육지에 나와 한 첫마디는 ‘담배 한 대 피우고 싶다’였다”며 “내연녀를 차에 태운 뒤 차를 바다에 빠뜨려 살해한 남성의 연락을 받아 시신을 꺼내온 씁쓸한 경험도 했다”고 전했다. 박희준 씨(48)는 경기 남양주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면서 부업으로 스쿠버를 가르치고 인명구조 봉사활동을 한다. 17일에는 참사 현장에서 가이드라인 설치를 도왔다. 그는 2008년 강원 정선 계곡에서 실종됐던 남자 중학생의 시신을 수습했다. 박 씨는 “5m 수심 돌 사이에 끼어 있던 시신을 꺼내면서 ‘좀더 일찍 꺼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내내 속으로 되뇌었다”고 말했다.납덩이 메고 조개 잡는 머구리 ‘머구리’는 바다에서 조개나 멍게, 해삼 등을 채취하는 잠수사, 그리고 그들이 쓰는 투구같이 생긴 헬멧을 의미한다. ‘잠수하다’라는 뜻의 일본어 ‘모구루’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수협 50년사’에는 1932년 머구리에 공기통을 연결한 일본 잠수사들이 제주도에서 조업을 하자 해녀들이 제주도사(현재의 제주도지사)에게 항의한 사건이 나온다. 이 시기 머구리가 국내에 도입된 것이다. 박명호 씨(49)는 ‘탈북 머구리’다. 강원 고성군 인근 바다에서 문어 해삼 멍게 미역 등을 채취한다. 그는 함경남도에서 17세부터 40세까지 군인이었다. 식사가 부실해 스스로 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해 먹었다. 2006년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탈북한 뒤로는 머구리로 일하고 있다. 그는 “잠수를 하려고 양쪽 신발에 납덩어리를 7kg씩, 앞뒤 허리에 10kg씩, 어깨에 7kg를 메고 바다에 들어간다”며 “위험한 일이다 보니 머구리 10명 중 5명은 포기하고 3명은 죽고 1명은 아프고 1명만 성공한다는 말도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채취한 해산물은 선장과 선원이 20%씩, 잠수사가 35∼40%, 나머지를 선주가 가져간다고 한다.감압병은 생명에 위협 잠수사들이 흔히 겪는 직업병은 감압(減壓)병이다. 물속에서 호흡장비를 통해 전달받은 공기 중 산소는 자연스럽게 배출되지만 질소는 체내 지방과 혈액에 녹는다. 위로 올라올 때 3m마다 1분 이상 머물러 체내 압력을 서서히 낮춰야 질소가 빠져나간다. 그러나 갑자기 나오면 질소가 팽창해 혈액 속에 공기방울을 만든다. 이 방울이 혈액순환을 막으면 근육통이 오고 심하면 근육이 마비된다. 뇌로 가면 뇌졸중, 폐로 가면 폐색전증이 생긴다. 차원철 삼성서울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구조작업을 할 땐 가능한 한 긴 시간을 수중에 머물고 한계에 다다랐을 때 급하게 올라오다 보니 충분히 감압을 하지 못하고 올라오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잠수사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도 시달린다. 물속에서 훼손된 시신, 유가족들의 오열하는 모습을 마주하면서다. 심민영 국립서울병원 심리적외상지원팀장은 “구조작업에 투입되는 잠수사들은 가족 다음으로 3차 피해자”라며 “성격이 예민해지고 급해지는 게 대표적인 증상”이라고 말했다. 안전사고도 일어난다. 수중공사 전문업체 SU수중산업개발의 박병수 대표(36)는 “지난달 말에도 인천 한 화력발전소에서 잠수사 1명이 사망했다”며 “사업을 발주한 업체에서 안전장비를 정하다 보니 잠수사는 장비가 충분치 않더라도 돈을 벌려면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우려했다. ▼ 잠수를 돕는 장비들 ▼감압체임버, 체내 질소 거품 빼줘… 한 대에 1억 기체압축기, 배 위에서 머구리에게 공기 공급잠수를 하기 위해선 많은 장비가 필요하다. 현재 선체 수색에 투입된 잠수사들은 감압병을 예방하기 위해 ‘기압조절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일명 ‘감압체임버’로 불리는 이 장비는 잠수사 체내에 쌓인 질소 공기방울을 빼는 장비다. 이 장비에 들어가면 우선 산소공급 마스크를 쓴다. 감압병 증상에 따라 조절하지만 최대 18m까지 잠수한 것처럼 장비 내 기압을 높인다. 몸 전체의 압력을 높여 혈액 속에서 공기방울로 기화한 질소를 다시 혈액에 녹이는 것이다. 이때 산소를 흡입하면 호흡으로 질소가 체외로 빠진다. 차주홍 한국산업잠수기술인협회 회장은 “증상에 따라 2시간 15분에서 46시간까지도 치료를 받는다”며 “가격이 1억 원까지 하는 고가라 국내에 구비한 곳이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번 구조현장에서 주목을 받은 장비로는 ‘컴프레서’라고도 불리는 ‘기체압축기’가 있다. 해경이 “군경 잠수사들이 공기통을 어깨에 메고 물에 들어가는 것과 달리 민간 장비를 사용하면 잠수시간이 더 길어진다”고 말한 장비다. 기체압축기는 호스를 통해 통상 20기압으로 압축된 공기를 잠수사에게 보내준다. 이론적으로는 무한대로 수중작업이 가능하다. 이 장비를 사용한 방식을 ‘표면 공급식 잠수’라고 한다. 일명 ‘머구리’ 잠수사들이 쓰는 장비다. 등에 메는 휴대용 공기통을 사용한 ‘스쿠버 잠수’보다 잠수시간이 훨씬 길지만 이번 사고처럼 선체 같은 복잡한 구조물 속에서는 활용이 힘들다. 공기 공급 호스가 꼬이거나 파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조현장 투입을 놓고 논란의 대상이 됐다가 결국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 ‘잠수종(다이빙벨)’은 2∼4명이 들어갈 수 있는 종 모양의 구조물이다. 컵을 수조에 거꾸로 넣을 때 컵 속의 공기 때문에 물이 컵에 다 들어차지 않는 것처럼 잠수종에 호스로 계속 공기를 공급해 물속에서 잠수사들이 숨쉴 수 있는 구조다. 바닷속에서 잠수사들의 휴식처 역할을 한다. 또 종의 양옆 부분이 터져 있어 잠수사들이 물속에서 들락거리기에 편하다. 그러나 언제나 사용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차 회장은 “이번 사고가 발생한 맹골수도처럼 조류가 거세면 잠수종을 매단 선박이 흔들리면서 잠수사가 위험에 처하거나 기존 해오던 작업을 방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강유현 yhkang@donga.com·황태호진도=이건혁 기자}
2003년 2월 대구 지하철 참사 때 23세 딸과 21세 아들을 한꺼번에 잃은 김창윤 씨(59). 그는 매년 5월이면 지독한 몸살을 앓는다. 어버이날(5월 8일)을 맞아 ‘부모님 사랑합니다’라며 해맑게 웃던 아들딸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김 씨는 “5월만 되면 어쩔 수 없다. 어린이날 어버이날같이 이런저런 날이 다가오면 하늘로 보낸 두 아이 생각이 많이 난다”고 말했다. 모임에서 지인들이 어버이날 받은 선물 이야기를 하며 자랑이라도 하면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5월에는 유난히 결혼식도 많아 청첩장을 연이어 받으면 김 씨의 고통은 배가 된다. 그는 “두 녀석이 살아있었다면 지금쯤 결혼해서 손주도 안겨줬을 거란 생각에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며 슬퍼했다. 김 씨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도 5월이면 떠나보낸 가족 생각에 훨씬 힘이 들 것”이라고 걱정했다. 5월은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성년의날(19일)이 몰려 있는 ‘가정의 달’이다. 그러나 사건 사고 등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잔인한 달이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축하와 감사를 나누고 이를 기념하는 각종 행사를 지켜볼수록 쓰라린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일이나 생일 명절 성탄절 등을 맞았을 때 피해자의 가족들이 평소보다 더 우울해지고 슬퍼지는 심리적 증상을 의학적으로 ‘애니버서리 리액션’이라고 부른다.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는 5월이 돼도 실종자를 언제 모두 찾을지 모르는 상태다. 가족들이 애니버서리 리액션을 더 심각하게 겪을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특히 스승과 제자를 동시에 잃은 단원고 학생과 교사들은 고통 유발의 원인을 하나 더 안고 있는 셈이다.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있는 실종자 가족들은 “피자를 보면 이걸 좋아했던 자식이 생각난다”거나 “바다를 보면 물에 아직 있을 아이가 생각난다”는 등 주변의 모든 것에서 자녀의 흔적을 찾고 있다. 경기 안산에서 이미 자녀의 장례를 치른 학부모들은 “단원고 근처에 가거나 교복만 봐도 잃어버린 자녀가 생각나 슬픔이 더욱 커진다”고 하소연한다. 가족의 생일이나 기념일에는 이런 아픔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남궁기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교수는 “감정을 지속적으로 공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은 공감한다는 것이고 ‘내 편’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므로 아주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족들이 느끼는 상실감을 삶의 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 활동도 효과적인 해법이다. 박은진 일산백병원 신경정신의학과 교수는 “상실감을 건전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줄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며 “추모 행사나 자원봉사 등에 참여하는 것도 감정을 추스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세월호 침몰과 비슷한 사고를 겪은 사람들 중에는 이런 방식으로 아픔을 극복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4년 전 천안함 폭침 때 아들 형제를 잃은 유족들은 올해 4월부터 공개적으로 단체 봉사활동에 나섰다. 아들(고 장철희 일병)을 잃은 아버지 장병일 씨는 “죽은 아들만 그리워하며 살 수 없는 것 아니냐”며 “과거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기에 같은 아픔을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함께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애니버서리 리액션 (anniversary reaction·기념일 반응) ::사건 사고 등으로 갑작스럽게 가족을 잃은 사람이 고인의 기일이나 생일 때 평소보다 더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는 현상. 어린이날 어버이날 성탄절 등 가족과 함께하는 기념일에도 같은 심리상태에 빠지기 쉽다.이건혁 gun@donga.com·권오혁·강은지 기자}
#1. 금융사 팀장인 강인자 씨(49·여)는 26일 집에 들어온 아들을 자기도 모르게 꼭 안았다. 취업이 늦어진 강 씨의 아들(26)은 약 2주간 지방에서 직장을 구하러 다니다 돌아온 참이었다. 강 씨는 아들에게 “엄마는 언제나 네가 먼저다. 취업 안 돼도 괜찮으니 건강하게만 있어 달라”며 마음을 전했다.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고백에 아들도 “엄마 사랑해요”라고 답했다. 강 씨는 “같은 부서에 세월호 침몰 사고로 조카를 잃은 동료가 있어서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자식의 존재만으로도 마냥 고마워서 꼭 그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2. 인천에 사는 이병철 씨(58)는 요즘 세월호 침몰 참사 뉴스를 지켜보며 자주 외아들에게 전화를 건다. 아들(31)은 몇 년 전 취직해 서울에서 혼자 자취 중이다. 이 씨는 “아들이 2002년 대학에 입학한 뒤로 쭉 집을 떠나 혼자 살았다”며 “일이 바빠 좀처럼 통화를 잘 못하고 지냈는데 이번 사건이 터지고 나서 내가 전화를 자주 하고 문자도 보낸다”고 말했다. 이 씨는 “가족이 우리 부부와 아들, 세 명뿐인데 새삼스레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게 됐다”며 “앞으로 좀 더 자주 얼굴도 보고 밥도 먹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 국민의 의식까지 바꿔가고 있다. 바쁜 일상과 학업에 쫓겨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데 인색했던 부모와 자녀 모두 가족의 소중함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감정 표현이 서툰 부모들도 아이들을 자주 껴안고 ‘사랑한다’는 문자를 수시로 보낸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가 가족관계를 공고히 다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16일 세월호 사고 후 자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했다는 부모들의 고백이 이어지고 있다. 대기업 이모 부장(49)은 “얼마 전 회식을 하다 말고 아들에게 전화해 ‘공부 못해도 좋으니 건강하게만 자라 달라’고 했다. 공부 못한다고 구박하기만 했던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고 말했다. 학부모 10명을 인터뷰했더니 모두 세월호 사고 이후 자녀와 가족의 안전에 관심이 늘었고, 자녀에게 ‘애정 표현’을 해봤다고 답했다. 자녀들도 부모의 높아진 관심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안산에 사는 윤소현 양(16)은 “부모님께서 세월호 사고 이후 ‘항상 조심하고, 건강해라’며 말을 많이 거시는데 평소 표현을 잘하던 분들이 아니라 더 뭉클하다. 가족들한테 정말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기업에서는 단체행사나 야유회를 취소하고 직원들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하는 분위기다. 대기업 노사문화를 담당하는 이모 과장(38)은 “세월호 사고 이후 회사에서는 직원들이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회사 단위의 행사나 회식, 주말 근무 등을 자제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인들은 감정 표현이 약하다고 알려져 있다. 2012년 미국 갤럽이 전 세계 151개국을 대상으로 감정지수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21번째로 감정이 무딘 국가로 나타났다. 이웃인 중국(60위), 일본(80위)보다도 감정 교류가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 오윤자 경희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한국인들은 가족같이 가까운 관계일수록 애정, 사랑과 같은 긍정적 감정을 교류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가족의 가치에 대한 사회의 의식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오 교수는 “세월호 사고를 거치면서 가족이 소중한 존재라는 의식이 사람들 사이에 자리 잡았고 그것이 의사소통 과정에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개인을 넘어 사회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교육과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진성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무엇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지 많은 사람들이 깨달은 만큼 가족을 비롯해 우리가 중시해야 하는 가치관을 다시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이건혁 gun@donga.com·이은택 기자}

배가 기울었다. 괜찮아지겠거니 했는데 더욱 가팔라졌다. 최덕하 군(17·사망)은 세월호 4층 객실에 있다가 배가 기울자 복도로 뛰쳐나왔다. 최 군의 담임선생님인 남윤철 씨(35·사망)도 복도에 있었다. 당황한 학생들이 복도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남 씨는 흔들리는 배 안에서 한 손으로 난간을 쥔 채 중심을 잡으며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던졌다. 최 군은 떨리는 손으로 휴대전화를 켜고 119를 눌렀다. “119상황실입니다.” 전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오자 자신도 모르게 “살려주세요”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최 군은 “여기 배인데 배가 침몰하는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때가 오전 8시 52분. 이는 세월호가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보낸 첫 신고보다 3분 앞선 시각이다. 급한 마음에 최 군은 “타고 가는 배가요. 타고 가는 배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전남소방본부 119상황실에서 “선생님을 바꿔 달라”고 하자 최 군은 남 씨에게 전화를 건넸다. 남 씨는 “여기 배가 침몰했어요”라고 다급하게 말하고 휴대전화를 최 군에게 돌려준 뒤 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어 최 군은 119상황실, 목포해경과 3자 통화를 한 뒤 전화를 끊었다. 4분 25초 동안 급박한 상황을 설명한 최 군은 세월호 침몰을 알린 최초 신고자였다. 해경은 최 군의 신고전화를 받고 구조선과 헬기 등을 보내 승객 174명을 구조했다. 생사가 확인되지 않아 주위를 안타깝게 했던 최 군은 사고 발생 8일째인 23일 오후 세월호 선미 부근에서 발견됐다. 최 군의 부모는 최 군의 신체 특징과 소지품을 통해 발견된 시신이 최 군임을 확인했다. DNA 검사를 이용한 신원확인 절차가 진행된 뒤 최 군의 시신은 장례식장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최 군의 어머니는 전화통화에서 “지금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며 비통해했다. 어이없게도 최 군의 신고를 받고 해경이 출동시킨 구조선에 가장 먼저 탄 사람들은 배에서 도망친 기관장과 기관원 7명이었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최초의 구조선에 7명의 기관부원만 탔으며 선장은 다른 배를 타고 사고 현장에서 빠져나왔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 기관장은 조타실에서 선박 밖으로 이동하고 기관부원들은 3층으로 옮겨가 최초로 세월호에 도착한 해경정에 기관장을 포함한 기관부원 7명만 올랐다. 조타실에 있던 승무원들도 이후에 도착한 해경정을 타고 승객들을 내버려 둔 채 세월호에서 빠져나왔다. 선장은 2번째 구조선에 탄 것으로 알려졌다. 최 군은 생사의 기로에서 침몰 사실을 처음 세상에 알렸지만 그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조선에는 최 군이 아닌 선원들이 탄 것이다. 앞서 최 군의 담임선생님인 남 씨는 갑판까지 올라갔지만 아이들을 더 구하겠다며 선내로 들어갔다가 사고 당일인 16일 숨진 채 발견됐다. 단원고 생존자인 한모 군(17)은 “선생님이 ‘침착하라’고 아이들을 다독였다. 선생님이 우리를 위에 데려다주고 남은 학생들을 위해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갔다”고 말했다.진도=이건혁 기자 gun@donga.com}
“아들아, 빨리 일어나. 어서 집에 가야 할 거 아니냐”라고 절규하는 아버지. “우리 아들, 왜 이렇게 차가워. 엄마한테 눈 좀 뜨고 말 좀 해보라”며 통곡하는 어머니. 20일 오전 3시 전남 진도군 팽목항의 임시 시신안치소. 경기 안산 단원고 남학생 2명의 부모가 자식의 시신을 확인한 순간 주위는 울음바다로 변했다. 임시 시신안치소가 설치된 주말 내내 팽목항은 살아 돌아올 거라 믿었던 자식이 싸늘한 주검으로 변했음을 확인하는 통곡의 자리였다. 19일 설치된 임시 시신안치소는 실종자 가족들이 1차적으로 신원을 직접 확인하고 있다. 현장에서 확인된 시신은 가족과 연락한 뒤 전남지역 병원으로 이송돼 사망 선고를 받는다. 신원 불명인 시신은 인근 병원 영안실로 옮겨진다. 이날 오후 8시경, 10대 여성 시신 3구가 안치됐다. 잠시 후 수십 명의 실종자 가족이 모여들었다. 해양경찰청 과학수사팀 관계자가 모두 여성이라고 하자 일부 학부모는 “쌍꺼풀이 있느냐? 머리 길이는 얼마나 되느냐? 신발은 뭘 신었느냐?”며 자녀의 특징을 이야기했다. 일부 어머니는 남편과 손을 맞잡거나, 두 손을 모은 채 안치소의 하얀 천막 뒤를 응시했다. 그러나 이들 시신의 부모는 확인되지 않았다. 안치소를 다녀온 한 여성은 “물에 빠진 시신을 처음 봤는데 덤덤했다. 지치고 지쳐서 감정마저 메마른 것 같다”며 흐느꼈다. 앞선 오전 3시에는 10대 남성 시신 3구가 항구에 도착했다. 선착장에는 밤을 새우며 실종된 자녀를 확인하겠다는 50여 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들은 “얼굴 특징이나 복장만 들어서는 잘 모르겠다. 직접 봐야 안다”며 극도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장례지도사가 시신을 정리한 뒤 실종자 부모들이 안치소 안으로 들어가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잠시 후 한 학부모는 “OO아”라고 아들의 이름을 외치며 통곡했다. 이날 오전 9시 30분경부터 다시 시신 13구에 대한 신원 확인이 진행됐다. 소지품을 통해 자녀의 죽음을 전해들은 부모들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최○○, 고○○, 이○○ 가족 분들 나오세요”라는 말을 듣고 하얀 천막 안으로 들어간 학부모들은 “우리 자식 살려놓으라”며 오열했다. 천막 밖에 있던 한 단원고 학생 아버지는 통곡의 현장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실종된 자녀를 확인하려는 발길은 계속됐다. 시신 옆에는 고인이 마지막으로 갖고 있던 물건과 수학여행 용돈으로 받은 것으로 보이는 지폐 몇 장이 놓여 있었다. 한 학생 아버지는 하얀 천이 덮인 아들의 머리맡에 주저앉은 채 “아들아, 이제 집에 가자”고 나지막이 말했다. 옆에 있던 어머니는 뻣뻣해진 아들의 손을 붙잡으며 “손 좀 펴봐”라고 애원했다. 애끓는 기다림이 물거품이 되어 버린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한 한 유족은 충격으로 임시 시신안치소 옆에 마련된 현장 응급 의료소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 “너 없이 나 혼자 어떻게 살라고…”라는 어머니의 외침이 계속해서 의료소 밖까지 터져 나왔다. 한 아버지는 폴리스라인이 설치된 길을 따라 밖으로 나오며 “내가 대한민국 떠난다”고 외쳤다. 주말에 팽목항을 거쳐 간 시신은 20여 구. 자녀를 확인하고 통곡 소리가 커질 때마다 주위 사람들도 눈물을 훔쳤다. 아직도 자녀를 찾지 못한 한 실종자 가족은 자리를 뜨며 “아직도 우리 아이가 살아있다고 믿고 싶다”고 말했다.진도=이건혁 gun@donga.com·진도=박희창 기자}

진도 여객선 침몰사고 나흘째를 맞은 19일 오후 11시 48분. 가라앉은 세월호 4층 중앙의 한 격실 유리창이 ‘쩡’ 하고 깨지는 소리가 바닷속에 울려 퍼졌다. 민간 잠수요원이 손에 쥔 손도끼가 단단해만 보이던 세월호의 유리창을 가른 것이다. 유리창 안쪽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이 배에 탔던 경기 안산 단원고 남학생 3명이 짙은 어둠 속에서 떠다니고 있었다. 격실 내부로 진입한 잠수요원들이 학생의 몸을 밀어냈다. 학생들은 모두 구명조끼를 입은 채여서 유리창 밖으로 나오자 ‘둥실’ 하고 떠올랐다. 잠수요원들은 학생들이 바닷속을 떠돌지 않도록 서둘러 몸을 붙잡았다. 이날 민관군 합동 구조팀은 유리창을 깨고 처음으로 선체 내부에 있던 시신을 수습하는 데 성공했다. 잠수조의 산소공급관을 해상에서 관리하면서 학생들의 시신을 수습했던 해병대 출신 민간 잠수부 이모 씨(30)는 20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학생들은 유리창 쪽에 모여 있었다. 창문은 생각보다 쉽게 깨졌다”는 잠수조의 말을 전했다. 그는 또 “어두워서 바로 형태를 구분하지는 못했지만 학생들의 시신은 크게 훼손된 곳은 없었다”고 말했다. 19일 낮까지만 해도 수색은 난항을 겪었다. 구조팀은 함정 192척과 항공기 31대를 동원해 해상 수색을 했지만 강한 조류와 강풍 등 기상 악화로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잠수팀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수색에 참여한 민간 잠수부 황장복 씨(47)는 “5m 정도만 내려가도 조류 때문에 수경이 벗겨지고 산소호흡기도 밀려나갈 정도”라며 “물살이 너무 세서, 가지고 내려간 장비를 놓칠 뻔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악화된 여건으로 인해 민간 잠수부 77명은 아예 수색에 참여하지 못하고 이날 오후 2시 10분 해경3012함에서 내려야 했다. 선체 수색작업에 속도가 붙은 것은 잠수부들을 세월호로 인도하는 가이드라인이 5개로 늘어난 20일부터였다. 가이드라인은 세월호 선체의 측면 중앙 부위에 1개, 선수 부분에 2개 등 모두 5개가 설치됐다. 이 가이드라인을 타고 잠수한 요원들은 20일에만 선내에 있던 시신 16구를 선체 밖으로 꺼내 수면 위로 올려 보냈다. 안타깝게도 생존자는 없었다. 해경 관계자는 “여러 개의 루트가 개척되면서 여러 팀이 다발적으로 잠수해 무작위적으로 실종자를 발견하고 있다”면서도 “한 명의 실종자가 발견돼도 그 뒤에 몇 명이 있는지는 전혀 모른다”고 말했다. 구조팀은 선체와 해상에서 20일에만 22구의 시신을 수습했다. 잠수부들은 선체 4층 객실 복도 진입에도 성공해 방들을 하나씩 확인했다. 해경은 승객들이 많이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 수색을 집중할 예정이다. 시신 수습과 달리 선내에 생존해 있을 수 있는 승객들의 연명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올리려는 노력은 빛을 보지 못했다. 선체 내부에 살아 있을 수 있는 실종자를 위해 세월호에 공기를 주입하는 작업은 19일 오전 중단된 채 20일까지 재개되지 못했다. 18일 세월호 조타실 등에 연결돼 선체 내로 공기를 주입하던 호스에 문제가 발생한 것. 해경 관계자는 “세월호가 선수까지 침몰되고 위치마저 바뀌면서 호스에 이상이 생겼다”며 “처음 것보다 용량이 더 큰 에어 콤프레셔가 대형 크레인에 있어서 다시 공기 주입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진도=이건혁 gun@donga.com·조종엽 기자}

진도 여객선 피해자 가족들이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보좌관들이 팽목항 피해자 가족지원 상황실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다고 오해해 이 장관을 상황실에 가두고 사과를 요구하는 일이 벌어졌다. 20일 오후 6시 10분경 실종자 가족들은 이 장관과 동행한 직원이 상황실을 배경으로 손가락을 ‘브이(V)’자 모양으로 한 채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가족들은 장관의 사과를 요구하며 이 장관을 현재 임시 상황실로 쓰이는 팽목항 1층 매표소에 가두고 출입을 막았다. 하지만 이들은 이 장관과 관계가 없는 안전행정부 직원들로 확인됐으며 이 장관은 오후 8시 20분경 팽목항을 떠났다. 이와 관련해 안전행정부는 오후 9시 30분경 사진 촬영으로 물의를 빚은 감사관 송모 국장의 직위를 박탈하고 대기발령 조치했다. 이 장관은 오후 6시경 구조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팽목항을 방문했으나 5분 만에 자리를 떠 피해자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거센 항의를 받고 있었다.진도=배준우 jjoonn@donga.com·이건혁 기자}
민간 잠수업체의 세월호 수색 능력이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해군이 가진 장비가 민간 잠수업체의 장비보다 훨씬 뛰어난 것이 많지만 해군 장비는 구조나 수색작업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먼저 군·경 특수요원들의 잠수 방법은 산소 실린더를 등에 메고 들어간 뒤 공기탱크를 이용해 호흡하는 방식으로 일반 스쿠버다이빙과 같다. 해경에 따르면 200기압 용량 산소통을 멘 해경 잠수부의 잠수 시간은 보통 20∼30분 정도이나 수심에 따라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이에 비해 민간업체에서는 표면공급식 잠수 장비를 사용한다. 이것은 공기를 고압 호스로 잠수부들에게 공급해 호흡하면서 오랜 시간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 표면공급식을 통해서는 최대 1, 2시간까지 잠수할 수 있다. 또 민간업체에서 사용하는 장비는 해저에서 공사를 하는 데 적합하도록 개조했기 때문에 훨씬 간편하다. 장비의 무게만 해도 군·경 장비와 비교해 7, 8배가량 가볍다. 군은 이런 장비를 전문으로 다루는 업체와 계약을 하고 어려운 수색작업을 의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간업체에는 경력이 풍부한 잠수 전문가들도 많다. 해경 특공대와 해군 특수부대 등도 정예요원으로 명성이 자자하지만 민간 잠수부들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 특수부대를 전역한 후 산업현장에서도 10∼30년가량 일해 전문성이 더 뛰어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에 대해 고명석 해경 장비기술국장은 “군·경 잠수능력은 민간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며 “수중에 얼마나 오래 있느냐의 차이다. 이는 장비 특성의 차이지 능력의 차이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세월호 수색에 참여하고 있는 민간 잠수부들은 따로 보수를 받지 않고 구조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진도 현장에 도착해 민간 잠수부 구조팀 신청을 하고, 바다로 출발하기 전 해경에 명단 제출을 하면 사고 현장에 나갈 수는 있으나 작업 환경의 제약 등으로 참여는 제한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백연상 baek@donga.com / 진도=이건혁 기자}

아침부터 잔뜩 찌푸린 하늘은 빗방울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전남 진도 해역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지 이틀째인 17일 진도군 팽목항. 사고가 난 16일 오후 8시경 팽목항을 찾았던 200여 명의 실종자 가족들은 대부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아빠 왔어, 아빠 왔다고, 아들!” “아이고 우리 민지, 엄마가 여기까지 왔다.” 가족들은 바다를 향해 애끊는 목소리로 자식들의 이름을 불렀다. 조금이라도 사고 현장 가까운 곳에 다가가려고 애썼다. “우리 아이가 저 추운 데 있는데 부모가 따뜻해서 뭐 하겠냐”며 식사나 따뜻한 음료를 거절하는 부모들도 눈에 띄었다. 오전 7시 반경 팽목항에서는 실종자 가족 200여 명을 태운 선박이 구조작업이 진행되는 사고 해역으로 출발했다. 자리가 모자라 배에 오르지 못한 가족들은 발만 동동 구르며 떠나가는 배를 바라봤다. 해가 뜨면 곧장 구조 소식이 들릴까 기대했던 가족들은 오히려 사망자가 늘어났다는 소식을 접하자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비바람과 거센 조류에 구조가 중단됐다는 소식에 일부 가족은 “배에 산소부터 넣어 달라” “당장 배랑 헬기를 띄워 구하러 가라”고 해경에 요구했다. 실종자의 생존 가능성이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으로 언급될 때마다 실종자 가족들의 요구는 거세졌다. 정부와 경찰 관계자는 실종자 가족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구조시간을 최대한 앞당기려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확인되지 않은 생존자 명단이 팽목항에 퍼지자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있던 실종자 가족들은 “아이고 내 딸아, 네가 아직 살아있구나. 엄마가 왔다”며 곳곳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해당 메시지와 명단은 이후 경찰 수사 결과 사실이 아니었던 것으로 판명됐다. 오후 1시경 실종자 가족을 태운 선박이 되돌아오자 항구의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학부모 2명은 바다에서 시신이 떠오르는 걸 봤다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주변에서 불안에 떨던 피해자 가족들은 하나둘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바닷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텐트 안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지만 항구를 벗어날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실종자 전하영 양의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통화했던 딸의 목소리가 계속 생각난다. 며칠 밤이 되더라도 계속 기다릴 것”이라며 눈물을 훔쳤다.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군실내체육관에서도 가족들의 애타는 기다림이 이어졌다. 오전 6시경 100여 명의 실종자 가족들이 추가로 팽목항으로 이동하며 체육관의 분위기는 잠시 가라앉았다. 밤새 오열하던 가족들도 하나둘 지쳐 체육관 바닥에 누워 잠이 들었다. 그러나 오전 7시경 해양경찰청 관계자가 “오전 5시 40분부터 20분 간격으로 총 4차례 입수한 결과 선내 진입에 실패했다”는 수색 결과를 발표하자 이들은 “어제부터 되는 게 하나도 없다”며 답답한 마음을 드러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실종자 가족들은 마음을 다스리려는 모습을 보였다. 한 학부모가 학부모 대표자들을 뽑아 정부와 경찰 방침에 조직적으로 대응하자고 목소리를 높이자 다른 학부모는 “빨리 아이를 찾아야지, 싸우지 말자. 제발 대책을 강구해 보자”며 흥분한 가족들을 다독였다. 조카를 잃어버린 지모 씨(47)는 “나나, 여기 있는 모두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며 “서로를 위해 힘을 합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망자가 계속 확인되면서 가족들의 불안은 커져 갔다. 사망자 이름이 호명될 때는 “악” 하는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오후 9시를 넘어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신 2구를 발견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이곳에서도 바로 소식을 듣고 싶다. 숨기지 말아 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가족들은 “우리가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 제발 산소라도 투입하자”고 거듭 요구했다.진도=이건혁 gun@donga.com·배준우 기자▽사회부 서정보 김상수 황태훈 차장 진도=이형주 조종엽 강은지 이건혁 배준우 기자 목포=정승호 차장, 조동주 박성진 여인선 기자 인천=박희제 차준호 황금천 차장 안산=남경현 차장, 김수연 서동일 김성모 홍정수 기자 이성호 신광영 이은택 박희창 장선희 손효주 조건희 백연상 주애진 곽도영 권오혁 기자 ▽정치부 윤상호 군사전문기자▽산업부 강홍구 기자 ▽경제부 박재명 기자▽사진부 진도=이훈구 차장, 박영철 홍진환 기자▽뉴스디자인팀 권기령 김원중 기자}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의 실종자가 277명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17일 오전 1시 현재 공식집계에 따르면 승객 대부분을 차지한 학생 325명 중 76명이 구조된 반면에 승무원 33명은 절반이 넘는 20명이 구조됐다. 이 때문에 사고 전후 여객선 측이 구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관실에 있던 승무원들과 선장이 선체를 탈출했고, 실제 구조에 나선 승무원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져 책임 논란은 더욱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사고 여객선의 선장과 승무원들이 비상시 대응 매뉴얼을 제대로 지켰는지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생존자들은 배에 한 차례 강한 충격이 전해진 후에도 “나오지 말라” “움직이지 말라”는 안내 방송만 반복됐다고 입을 모았다. 승객 임모 씨(59)는 “한참 후에 구명조끼를 입으라고 방송만 했지, (구명조끼가)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설명도 하지 않았다. 내가 보이는 대로 모아서 밖으로 다 던졌다”고 말했다. 30분가량이 지난 뒤 일부 선실 안에 물이 차기 시작하자 승객들은 갑판과 선실 밖으로 뛰어나왔다. 하지만 천장이 높고 270명이 수용되는 4층 대형 객실을 포함해 일부 객실에서 배가 기울고 물이 차면서 안에 있던 학생들이 출입구에 미처 닿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아비규환 속에서 승객들이 서로 구조에 나선 가운데 당국의 구조는 더디기만 했다. 화물기사 김모 씨(50)는 “학생들이 유리벽을 두드리며 살려달라고 하는데 해경은 헬리콥터 두 대 띄워놓고 한두 명씩 끌어올리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대형 여객선 사고 발생 시 최초 구조에 필수적인 구명정은 아예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세월호에는 바닷물에 닿으면 자동으로 펼쳐지는 구명벌(둥근 형태의 구명보트)이 좌우로 23대씩 총 46대가 있었으나 1대밖에 펼쳐지지 않았다. 평상시에 구명벌의 성능 점검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하다. 더욱 한심한 것은 16일 오후 5시 40분경 인천항 연안 여객터미널 사고대책본부 3차 브리핑에서 청해진해운 측은 “현재 구명정이 몇 대가 있었는지, 실제로 운항이 됐는지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선사 측은 사고 선박 탑승자 수도 당초 477명에서 462명으로 수정했다가 다시 475명이라고 정정하는 등 혼선을 빚었다. 이 밖에 침수 이후 전력 공급이 끊겨 어두운 선실에서 대피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지적과 신고가 늦어져 구조가 지연됐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사고 승객 가족들은 사고 선박이 완전히 침몰할 때까지 2시간가량 대피할 시간이 있었던 상황에서 탑승자의 3분의 2에 가까운 280여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것에 분노를 표출했다. 해경은 여객선 측의 구조 활동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조사할 예정이다.곽도영 now@donga.com / 진도=이건혁 기자}

11일 오전 11시 40분경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가스충전소. 쏘나타 승용차 운전자 정모 씨(57)는 기계식 자동세차를 마치고 출발을 알리는 초록 신호등이 켜지자 자동변속기의 기어를 중립(N)에서 주행(D)으로 바꿨다. 그 순간 자동차는 갑자기 고삐 풀린 말처럼 앞으로 달려 나갔다. 계기반의 눈금은 순식간에 시속 30∼40km까지 치솟았다. 차량은 세차장 맞은편 휴게실로 돌진했다. 이 사고로 휴게실 안에 쉬고 있던 정모 씨(64)가 사망하고 택시 운전사 2명이 크게 다쳤다. 사고 차량 운전자 정 씨는 “변속기를 작동할 때 분명히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다. 가속 페달은 밟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자동차가 스스로 급발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씨는 운전경력이 27년에 이르는 베테랑이다. 사고 차량은 2012년 12월 25일 점검 때 브레이크와 엔진 모두 ‘적합’ 판정을 받았다. 차량 자체적으로 급발진한 것인지 운전자의 과실인지는 여전히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 끊이지 않는 ‘급발진 의심’ 사고 지난달 19일 19명의 사상자(사망 3명, 부상 16명)가 발생한 서울 송파 버스 추돌사고의 원인을 놓고서도 급발진 의혹이 불거졌다. 경찰은 1차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첫 번째 추돌의 원인을 ‘사고를 낸 버스 운전사(사망)의 졸음운전’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결정적인 두 번째 추돌 사고가 발생할 때까지 1.2km 구간을 시속 60∼70km로 질주한 부분은 여전히 의혹이 남는다. 사고 당시 블랙박스 영상에는 버스 운전사가 1분 넘게 필사적으로 핸들을 붙잡고 다른 차들과 부딪히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담겨 있었기 때문. 운전사가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을 착각한 채 주행하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운전사의 경력 역시 20년에 이른다.○ 의혹 규명 노력에도 밝혀진 것 없어 최근 이 같은 급발진 의심 사고가 급증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09년까지 급발진 의심 신고는 총 18건에 불과했으나 최근 4년간 337건이나 접수됐다. 문제는 신고된 사례가 모두 ‘의심이 간다’는 것일 뿐 최종적으로 급발진으로 확인된 건 한 번도 없다는 데 있다. 방배동 가스충전소 사고에 대해 경찰은 “급발진 여부를 판단하려면 차량이 사고 직후 상태에서 아무 변동 없이 그대로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고 차량은 사고 직후 계속 이동을 했고 기어 변경도 했기 때문에 정확한 판독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급발진 사고 규명의 가장 중요한 장치로 꼽히는 자동차 사고기록장치(EDR) 분석에도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이 장치에는 급발진 사고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인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밟았는지 여부가 담겨 있지 않다. EDR에 담긴 운행 정보를 확인하는 것도 쉽지 않다. 2012년 사고차량 운전자가 원하면 차를 만든 업체가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법안 개정안이 공포됐으나 3년의 유예기간을 뒀기 때문이다. 급발진 의혹을 규명하려는 노력은 민간 부문에서 끈질기게 이어졌다. 지난해 5월 국토교통부의 급발진 재현 실험에 참여한 김영일 아주자동차대 교수는 “급발진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전자제어장치(ECU)에 물을 붓거나 수증기를 넣는 등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해 봤지만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 급발진은 아직 밝혀진 게 없는 미스터리여서 기업과 정부, 연구원의 합동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전미과학자협회와 미 항공우주국(NASA)까지 동원해 원인 규명에 나선 상태다.○ 급발진 의혹 언제쯤 풀릴까? 이런 가운데 대표적인 국내 자동차 전문가인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가 조만간 급발진 원인을 규명할 새로운 연구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그는 동아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5, 6월쯤 급발진이 발생하는 과정을 증명하는 새로운 보고서를 내겠다”고 말했다. 앞서 김 교수는 지난해 5월 “급발진 사고는 브레이크에 장착된 진공 배력 장치 때문”이라며 “이 장치에 의해 연료 파이프라인이 순간적으로 진공 상태가 되었다가 순간적으로 압력이 치솟아 연료가 대량으로 분사되면서 급발진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기술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가설”이라고 반박했다. 외국에서도 급발진은 아직 명확하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미국 법무부는 지난달 일본 도요타자동차에 대해 약 1조3000억 원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했다. 이는 급발진을 예방할 수 있는 안전 정보 공개와 개선 조치가 충분치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국내의 경우 아직 자동차 급발진을 인정한 조치나 판례가 없다. 김 교수는 “미국에서도 30년 넘게 급발진 문제가 제기됐지만 그 이유가 확인되지 않았다”며 “얼마 전 미국의 한 자동차 전문가가 자동차 소프트웨어 시스템에 버그가 있다고 지적했는데 도요타 측에서 이를 제대로 해명하지 못해 벌금이 부과된 것이다”라고 말했다.이건혁 gun@donga.com·김성모·박성진 기자}
“기부금 5억 원을 내겠습니다.” 지난달 25일 오전 인천 계양구에 있는 경인교대 대외협력처 사무실에 평범한 복장에 발음이 또렷하지 않은 한 노인이 찾아왔다. 자신을 ‘84세 임모 씨’라고 소개한 노인은 후학 양성에 써달라며 거액의 기부를 제안했다. 노인은 이 돈이 인천 강화군 인삼밭을 처분해 생긴 것이며 “언론에는 절대로 알리지 말고 기부 행사도 필요 없고 부인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만들어 달라” 등 구체적인 요구를 덧붙였다. 학교 관계자들은 노인을 모시고 교내 견학을 하고 기부 절차를 설명하는 등 극진히 대접했다. 한 시간 넘는 면담을 마치고 추후 기탁을 약속한 노인은 “지금 현금이 없어서 그러니 교통비로 5만 원만 빌려 달라”고 부탁했다. 학교 관계자는 아무런 의심 없이 돈을 줬으나 얼마 뒤 노인과 연락이 두절됐다. 알려준 휴대전화 번호도 엉뚱한 것이었다. 학교 관계자는 노인이 알려준 주소인 경기 양주시로 찾아갔으나 그곳에는 논밭만 펼쳐져 있었다. 해당 면사무소 관계자는 “다른 대학에서도 임모 노인을 찾는 문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대학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졌지만 해당 대학들은 피해 금액이 적어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은 것이다. 경인교대 관계자는 “이제는 기부금을 주겠다는 선의의 제안도 일단 의심하게 됐다”며 씁쓸해했다.이건혁 기자 gun@donga.com}

6일 서울 강남대로 일대가 ‘영화 속 세트장’으로 바뀌었다. 이날 오전 4시 반 강남대로에서 시작된 ‘어벤져스2’ 촬영 현장에는 열혈 팬들이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젊은이는 물론이고 외국인, 가족 단위 구경꾼들이 영화 촬영 현장을 지켜봤다. ‘어벤져스’의 팬이라는 최동훈 군(14·학생)은 “흥분된 탓에 잠을 설쳤다. 꼭 주인공을 만나 사인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강남대로가 내려다보이는 커피전문점의 창가 쪽 좌석은 어벤져스의 팬들이 모두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이 일대 커피전문점들은 ‘어벤져스 특수’에 대비해 오전 4시부터 문을 열었다. 인근 건물 3층에서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정영호 씨(44)는 “원래 일요일은 휴무인데 오늘은 ‘어벤져스’ 촬영 때문에 손님이 몰릴 것으로 생각해 일부러 나왔다. 평소보다 매출이 2배 이상 많다”고 밝혔다. 강남대로변 아이스크림 전문점을 운영하는 정정은 씨(34)도 “새벽이라 손님이 있을까 반신반의했는데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다. 어벤져스가 우리 상인들에게 효자가 됐다”며 즐거워했다. 날이 밝으면서 강남대로에서는 추격전 촬영을 위한 리허설이 시작됐다. 음식점이 몰려 있는 인근 골목에서는 오토바이가 등장하는 장면이 촬영됐다. 시민들은 사진을 찍기 위해 연신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여섯 살 아들과 함께 구경 나온 김동현 씨(37·서울 서초구)는 “강남은 마포대교보다 촬영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 더 좋다”고 말했다. 영화제작사 측은 시민들과 마찰이 일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사진을 찍는 시민을 제지할 때도 “영화에 시민들이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는 모습이 나오면 재촬영을 해야 한다”며 양해를 구했다. 영화 관계자 무전기로는 ‘시민들과 마찰을 일으키지 말라’는 주의사항이 계속 흘러나왔다. 일부 외국인 스태프는 함께 사진을 찍자는 시민들의 요청에 흔쾌히 응하기도 했다. 이날 촬영 현장은 도심 속 축제 같은 분위기였다. ‘어벤져스’에 출연하는 주연급 배우가 대부분 불참한 데다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장면이 계속됐음에도 시민들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서울에서 촬영된다는 게 흥미롭다는 표정이었다. 일부 시민은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등 영화 속 캐릭터 의상을 입고 나와 주위의 시선을 받기도 했다. 이날 촬영은 오후 2시 40분경 마무리됐다. 강남대로를 지나는 일부 버스가 우회 운행되는 등 통제됐지만 교통대란이나 혼란은 없었다.이건혁 gun@donga.com·홍정수·박성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