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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은 결코 제가 피해자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하지 않았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25일 김종철 전 대표의 성추행과 사퇴 사실을 발표한 당의 긴급 기자회견 직후 입장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번 사태의 피해자인 장 의원은 “이번 사건을 겪으며 깊이 깨달은 것들이 있다”며 “어떤 여성이라도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장애인운동가인 장 의원은 지난해 4·15총선을 앞두고 정의당에 영입돼 비례대표 2번으로 당선됐다. 장 의원은 “함께 젠더 폭력근절을 외쳐왔던 정치적 동지이자 마음 깊이 신뢰하던 우리 당의 대표로부터 저의 평등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훼손당하는 충격과 고통은 실로 컸다”며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고 공개적인 책임을 묻기로 마음먹은 것은 이것이 저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회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자, 제가 깊이 사랑하며 몸담고 있는 정의당과 우리 사회를 위하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장 의원과 정의당은 김 전 대표에 대한 고소, 고발 등 법적 조치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2013년 법 개정에 따라 성범죄는 피해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처벌이 가능해 수사기관이 사건을 인지하거나 제3자 고발이 접수되면 경찰 수사가 개시될 수 있다. 다만 피해자가 진술하지 않으면 혐의 입증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장 의원 측은 피해 진술과 관련한 경찰의 문의에 “현재로서는 그럴 의사가 없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박민우 minwoo@donga.com·권기범 기자}
회사의 내부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부당 거래한 혐의(자본시장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진 이유정 전 헌법재판관 후보자(53)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남부지법 형사6단독 김진철 부장판사는 22일 “취득한 정보가 정확성을 갖췄다거나 구체화됐다고 보기 어렵고, 투자자의 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보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이 전 후보자는 2013년 장외 매입했던 내츄럴엔도텍 주식의 주가가 2015년 4월 ‘가짜 백수오’ 논란으로 하락하자, 해당 회사를 대리하던 변호사들로부터 주가가 더 떨어질 것이란 정보를 입수하고 보유 주식을 팔아 약 8100만 원의 손실을 피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유흥업소에 대한 집합금지 조치가 장기화하면서 단속을 피해 몰래 영업하는 업소들이 크게 늘고 있다. 전국에서 보름 가까이 300명이 넘는 업주와 고객 등이 단속에 적발됐다. 경찰청은 “4일부터 17일까지 전국에서 유흥주점과 단란주점, 감성주점 등을 대상으로 감염병예방법 위반 여부를 살피는 합동점검을 벌인 결과, 모두 43건에 348명을 적발했다. 이 가운데 집합금지 명령을 위반한 296명에 대해서는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19일 밝혔다. 합동점검에 적발된 사례들을 보면 겉으로는 문을 잠그고 내부에서 몰래 영업을 하다 걸린 업소가 많다. 16일 오전 2시경 서울 송파구에 있는 유흥주점 세 곳도 문을 걸어 잠그고 사전에 예약한 고객들만 받으며 영업을 하고 있었다. 이날 경찰은 현장에서 업주와 고객 등 60여 명을 적발해 입건했다. 서울 강남구에서는 일반음식점도 적발됐다. 이 업소는 일반음식점으로 신고해 놓고 음향과 특수조명 등을 설치한 뒤 예약 손님을 받고 무허가로 클럽식 영업을 이어갔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방역 지침을 어긴 52명에 대해서도 각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해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집합금지 지침에 반발해 영업 강행 의사를 밝혔던 광주 지역 유흥업소 700여 곳은 입장을 바꿔 월말까지 방역 지침을 지키기로 했다. 다만 항의 차원에서 간판 불을 켜두는 ‘점등 시위’는 이어간다. 광주시는 “18일 밤 유흥업소 대표들과 논의한 결과, 영업 의사를 철회하고 방역 지침을 준수하기로 합의했다. 21일 예고했던 항의 집회도 취소했다”고 19일 밝혔다. 그 대신 광주시는 생계 곤란을 호소하는 유흥업소들의 입장을 정부에 전달하고 방역수칙 완화를 건의할 방침이다. 한 유흥업소 업주는 “가게 월세도 내지 못해 명도 소송을 당한 업소가 수십 곳에 이른다. 피해가 점점 커지면서 모두 공멸할 위기”라고 호소했다.권기범 kaki@donga.com / 광주=이형주 기자}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해자와 가족들이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의 사퇴와 공개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피해자 측은 “피소 사실이 여성단체와 남 의원 등을 거쳐 유출된 것에 책임을 져라”라며 김영순 전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와 임순영 전 서울시 젠더특보의 공개 사과도 함께 요구했다. 피해자 A 씨와 가족들은 18일 피해자지원단체 및 공동변호인단을 통해 ‘책임 촉구를 위한 입장문’을 내고 “남 의원 등 3인으로 인해 7월에 (피소 사실이 유출되는) 참담함이 발생했다. 오늘까지 그 괴로움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책임지는 행동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피해자 측은 특히 남 의원에 대해 강한 비난을 쏟아냈다. A 씨는 “고소장을 접수시키기도 전에 고소 사실이 알려질 수 있다는 사실이 다시 생각해도 끔찍하다”며 “잘못에 책임지는 행동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A 씨 아버지는 “남 의원은 국민 앞에 사죄하고 의원직을 즉시 내려놓기 바란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30일 서울북부지검이 공개한 수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7월 피해자 변호인이 여성단체에 지원 요청을 하자, 이를 알게 된 김 전 대표가 남 의원에게 동향을 전달했다. 이후 남 의원은 임 전 특보에게 전화해 “불미스러운 얘기가 돌고 있는 것 같다”고 물었다. 이후 임 전 특보는 박 전 시장에게 이를 전했다. 피해자 가족들은 A 씨에 대한 2차 가해를 멈춰 달라고도 호소했다. 법원이 14일 박 전 시장의 성추행 내용을 공개했는데도 피해자에 대한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A 씨의 어머니는 “딸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죽으면 (성추행 사실이) 인정될까’라고 말한다. 모든 비밀번호를 알려주며 만일을 위해 기억하고 있으라고 했다”며 “우리는 단지 사실을 인정하고 못 지켜줘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A 씨 동생도 “2차 가해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누나의 신상이 포함된 정보나 사진이 노출되지 않았는지 수시로 검색한다”고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신년 기자회견에서 박 전 시장 사건에 대해 “피해자의 피해 사실에 대해서도 대단히 안타깝고, 이른바 2차 피해가 주장되는 상황도 안타깝게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박 전 시장이 왜 그런 행동을 했으며,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하는 부분도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해자와 가족들이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의 사퇴와 공개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피해자 측은 “피소 사실이 여성단체와 남 의원 등을 거쳐 유출된 것에 책임을 져라”라며 김영순 전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와 임순영 전 서울시 젠더특보의 공개 사과도 함께 요구했다. 피해자 A 씨와 가족들은 18일 피해자지원단체 및 공동변호인단을 통해 ‘책임 촉구를 위한 입장문’을 내고 “남 의원 등 3인으로 인해 7월에 (피소 사실이 유출되는) 참담함이 발생했다. 오늘까지 그 괴로움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책임지는 행동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피해자 측은 특히 남 의원에 대해 강한 비난을 쏟아냈다. A 씨는 “고소장을 접수시키기도 전에 고소 사실이 알려질 수 있다는 사실이 다시 생각해도 끔찍하다”며 “잘못에 책임지는 행동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A 씨 아버지는 “남 의원은 국민 앞에 사죄하고 의원직을 즉시 내려놓기 바란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30일 서울북부지검이 공개한 수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7월 피해자 변호인이 여성단체에 지원 요청을 하자, 이를 알게 된 김 전 대표가 남 의원에게 동향을 전달했다. 이후 남 의원은 임 전 특보에게 전화해 “불미스러운 얘기가 돌고 있는 것 같다”고 물었다. 이후 임 전 특보는 박 전 시장에게 이를 전했다. 피해자 가족들은 A 씨에 대한 2차 가해를 멈춰 달라고도 호소했다. 법원이 14일 박 전 시장의 성추행 내용을 공개했는데도 피해자에 대한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A 씨의 어머니는 “딸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죽으면 (성추행 사실이) 인정될까’라고 말한다. 모든 비밀번호를 알려주며 만일을 위해 기억하고 있으라고 했다”며 “우리는 단지 사실을 인정하고 못 지켜줘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A 씨 동생도 “2차 가해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누나의 신상이 포함된 정보나 사진이 노출되지 않았는지 수시로 검색한다”고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신년 기자회견에서 박 전 시장 사건에 대해 “피해자의 피해 사실에 대해서도 대단히 안타깝고, 이른바 2차 피해가 주장되는 상황도 안타깝게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박 전 시장이 왜 그런 행동을 했으며,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하는 부분도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서울대 졸업장, 탄탄한 일자리, 고액 연봉…. 한때 남들이 우러러보는 스펙을 좇았지만, 어릴 적 품었던 자기만의 꿈에 도전해 ‘영꿈(Young+꿈) 통장’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청년들이 있다. 배우 프로필을 100번 넘게 돌려 99번 거절당하고, 6번 도전한 스페인 축구단 입단에서 5번 실패했지만 결국 이뤄낸 짜릿한 성취로 꿈에게 진 빚을 갚는 사람들을 만났다.》 “서울대 나와서 왜 연기를 해요?” 2018년 3월에 있었던 한 독립영화 오디션장. 막 연기를 마친 김재은 씨(28)를 지켜보던 한 영화 관계자는 심드렁하게 툭 내뱉었다. 연기에 대한 평가도 없이, 그게 어떤 상처가 되는지도 모르는 한마디. 재은 씨는 한참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진심을 몰라주는 것만큼 서러운 일이 없거든요. 그저 제 연기를 보여주고 싶은 건데, 누군가는 다른 조건들에만 관심을 갖죠. 연기에 도전할 때마다 자주 그런 상처를 받아요. 어떤 이들은 가진 자의 배부른 소리라고도 하지만, 꿈은 누가 대신 꿔주는 게 아니잖아요.” 남들이 뭐라 하든 자기만의 ‘영꿈(Young+꿈) 통장’을 가진 청년들은 곧잘 이런 벽에 부딪힌다. “왜 그 좋은 걸 마다해?” 조건을 박차고 나와 꿈에 투자하는 이들은 때론 괴짜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영꿈 통장은 눈앞의 ‘수익률’을 생각하며 만드는 게 아니다. 통장을 개설하는 것 자체, 그 도전하는 과정이 청년들이 꾸는 꿈이다.○ 진심을 채워가는 꿈의 통장 재은 씨가 연기자의 길에 들어선 건 스물세 살이 되던 2016년. 유치원 때부터 맘속에서만 품고 있던 ‘워너비(wannabe)’의 세상에 도전하기로 했다. 물론 주위에서 반대가 엄청났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아르바이트와 인턴 생활을 하며 모았던 돈을 몽땅 연기학원에 쏟아부었다. 2017년엔 아예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1평짜리 연습실도 빌렸다. 전력투구를 위한 투자였다. 차근차근 정열을 쏟아부으면 지금은 마이너스인 영꿈 통장이 플러스로 바뀌리라.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제 영꿈 통장은 해질 대로 해진 노트 한 권이에요. 표를 만들고 날짜와 함께 그날 연습할 배역을 적어뒀죠. 연습 때마다 까만 동그라미를 하나씩 칠했어요. 이 노트 한 권을 채우는 데 거의 1년이 걸렸네요. 제 꿈을 향한 노력이 고스란히 담겼어요.” 노력은 결국 길을 터줬다. 2018년 가을, 재은 씨는 한 독립영화에서 3분 동안 중국어 독백 장면을 찍었다. 어려운 중국어 대사를 오디션에서 깔끔하게 소화해냈다. 현장에서도 “감정 표현이 좋았다”는 칭찬을 받았다. 늦깎이 연기자 재은 씨의 영꿈 통장에 가능성이 비치던 순간이었다. 아직도 재은 씨의 영꿈 통장은 현재진행형이다. 소규모 영화와 연극 수십 편에 출연하며 커리어를 쌓고 있다. 이젠 학교만 물어본 뒤 기회를 주지 않던 시절은 벗어난 셈이다. “당장 10만 원, 100만 원이 제 인생에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면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는 회사에 들어갔겠죠. 물론 그것도 성취감이 있지만 제가 꿈꾸는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죠. 영꿈 통장에 근사한 연봉을 채우진 못했지만 제 ‘진심’을 입금했어요.” ○ 연봉은 제로라도 마음만은 부자 축구선수 구성은 씨(28). 웬만큼 축구에 해박한 이들에게도 낯선 이름이다. 일단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면 다들 깜짝 놀란다. 그런데 소속팀 이름을 대면 다들 이상한 사람 쳐다보듯 한다. ‘우니온 엘리파(C. D. Union Elipa).’ 레알 마드리드 같은 1부 리그가 아닌 6부 리그 축구팀이다. 사실 성은 씨는 ‘축구 선수를 경험해본 적 없었던’ 축구선수다. 평범한 대학생이던 그는 아마추어임에도 남다른 실력으로 국내 K3리그(당시 4부 리그)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그저 “제대로 도전해보고 싶다”는 각오뿐이었다. 입단까진 성공했지만 수준 차라는 벽만 여실히 절감했다. 그는 군대에 갔다. 하지만 그는 휴면계좌로 잠들어 있던 영꿈 통장을 한시도 잊지 못했다. 어린 시절 2002년 한일 월드컵의 감동은 언제나 그를 들썩거리게 했다. 차범근축구교실에서 배운 게 다지만 무모한 꿈이라도 상관없었다. 전역한 뒤 그 무모함을 갈아 넣을 마이너스통장을 발견했다. 2018년 당시 스페인 7부 리그에 한국인으로만 구성된 ‘꿈 FC’를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다. 택배기사, 기간제 교사 등 다양한 이들이 모였다. 연봉은 없다. 성은 씨도 무작정 스페인으로 건너가 1년 동안 선수로 뛰었다. 2019년엔 본격적으로 영꿈 통장을 만들었다. 제대로 스페인 지역 리그 선수가 되겠다는 게 목표였다. 5전 6기 끝에 소속 팀을 찾았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국내에 와 있는 동안 방출됐다. 통장엔 잔액도 없이 마이너스만 늘어갔지만 성은 씨는 개의치 않았다. 지난해 8월 다시 스페인으로 건너가 입단 테스트에 도전했다. 그렇게 찾은 소속 팀이 현재의 우니온 엘리파다. 지금도 성은 씨는 버는 돈이 거의 없다. 스페인은 3부 리그 이상은 올라가야 주급이라도 나온다. 그나마 유튜브에서 자신의 일상을 소개한 것이 호응을 얻어 그 수익으로 생활비를 충당한다. 하지만 그의 꿈을 응원하는 수백 개의 댓글은 그에겐 통장 이자만큼이나 소중하다. “더 잘해서 더 높은 리그에 도전해보고 싶죠. 현실적으로 4, 5부 리그만 올라가도 정말 기쁠 것 같아요. 이렇게 도전하는 자체로도 ‘뭐든 인생에 얻는 게 있을 거야’란 자신감이 있습니다. 유튜브를 통해 불어난 팬들은 엄청난 수익이고요.”○ 꿈을 잃으면 어떤 일도 즐겁지 않아 여섯 살 때부터 이어가던 피아니스트라는 ‘영꿈 통장’. 하지만 김수진 씨(34)는 고교 2학년 때 그 통장을 해지했다. 지극히 뻔하고 현실적인 이유였다.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못했다. 모아뒀던 악보를 다 버리고 2005년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피아노는 취미가 됐다. 하지만 꿈을 잃은 청년에게 길고 긴 방황이 찾아왔다. 대학을 졸업해도 흔들리는 건 마찬가지였다. 2011년 첫 직장에 들어간 뒤 2년 동안 이직만 여러 차례. 채워지지 않는 뭔가로 가슴이 뻥 뚫려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문화단체 사무국에서 일하다 예술인들을 마주하며 깨달았다. ‘내 꿈은 피아노구나.’ “음대를 가려고 정말 죽을 듯이 노력했어요. 레슨비를 벌려고 하루 6시간씩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을 한 푼도 안 썼어요. 거의 10년 만에 다시 피아노를 치니 손가락이 다 굳어 정말 애먹었죠. 하지만 일하고 밥 먹고 자는 시간 말곤 오로지 연습만 했어요.” 수진 씨는 2012년 기적처럼 음대에 합격했다. 합격한 뒤엔 더 미친 듯이 정열을 쏟아부었다. 오전 5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연습만 하는 일이 평범한 일상이 됐다. 해지했던 영꿈 통장은 다시 살아나 부풀어 올랐다. 석사 과정을 마친 수진 씨는 현재 예술경영박사 과정까지 밟고 있다. “피아노를 다시 할 수 있어 행복해요. 그것뿐이에요. 안 했으면 평생 후회했겠죠.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진다’는 생각으로 간절하게 원하고 노력했어요. 꿈꾸던 삶을 살 수 있어 만족스러워요. 정식 연주자가 되지 못해도 좋아요. 제 영꿈 통장은 ‘무엇이 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며 사는가’예요.”○ 습생이에서 스타 인플루언서로 소셜미디어에서 수많은 팔로어를 거느린 허영주 씨(29)는 10년 전엔 ‘습생이’이라 불렸다. 습생이란 연예기획사 아이돌 연습생을 낮춰 부르는 말이다. 오랜 노력 끝에 데뷔도 했다. 스무 살때 ‘더 씨야’란 걸그룹 멤버였다. 데뷔만 하면 스타가 될 줄 알았던 꿈은 금방 깨졌다. 대중의 반응은 냉담했다. 습생이 때만큼 연습하고 연습했지만 무대에 설 기회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몇 년간 습생이로 부은 ‘영꿈 통장’이 드디어 황금 알을 낳을 줄 알았건만. 이자는커녕 원금 회수조차 어려운 통장이 돼버렸다. “매일 ‘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라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남 탓만 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했어요. 누군가가 키워주지 않아서 이런 거라고 신세 한탄을 하고 있는 게 잘못이란 걸 깨달았죠.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었죠. ‘댐에 물을 채우는 시간을 갖자.’ 성공 말고 성장에 투자해보자. 그게 목표이자 꿈이어야 한다고요.” 영주 씨는 남이 관리해주길 바랐던 통장을 다시 자기 품으로 찾아왔다. 자기만의 장점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소속사와 계약이 끝난 뒤 동생 정주 씨와 함께 ‘듀자매’란 그룹을 결성했다. 아직 대중가수로서 뭔가를 이루진 못했지만 지금 그들은 ‘틱톡’ 팔로어가 550만 명이 넘는다. 국내에서 틱톡 팔로어 순위 20위 안팎일 정도의 ‘인플루언서’가 됐다. 이젠 수입도 꽤 커졌다. “당연히 수입이 생긴 것도 고맙죠. 하지만 ‘나 스스로 우뚝 섰다’라는 자부심이 더 소중해요. 고난의 시간을 겪으며 쌓은 노력이 이제 행복이란 이름으로 영꿈 통장에 쌓이는 거죠.” “1년간 책 100권보다 매일 2장씩 읽기 목표로… 소소한 도전이 자신을 키워”위기 때 ‘진로적응성’ 높이는 법 ‘3포 세대’ ‘N포 세대’도 옛말이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터진 뒤엔 그냥 다 포기해야 한다. 이 시대 청년들은 불안을 일상으로 품고 지낸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게 꿈이다. 영꿈 통장을 마련해 엎치락뒤치락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두려움과 역경에도 청년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도전과 실패를 통해 자기를 발견하는 과정”을 높이 샀다. 양은주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영꿈 통장을 만들어가는 청년들의 모습이 난관 극복의 효과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라며 “위기에 굴하지 않고 도전했던 경험이 나중에 찾아올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해주는 레이더 같은 역할을 한다”고 했다. 진로 상담 분야에 ‘진로적응성’이란 용어가 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어떤 도전이건 위기를 겪기 마련이다. 하지만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상황을 곱씹어가는 것 자체로 인간은 자신을 조금씩 깨달아간다. 이런 과정에서 자신의 미래에 대한 관심과 통제력, 확신을 갖는 능력이 진로적응성이다. 청년의 영꿈 통장은 이런 진로적응성을 담는 그릇이어야 한다. 이런 진로적응성은 ‘작은 도전’을 해결해보는 경험을 통해 키워 나갈 수 있다. 처음부터 너무 큰 도전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목적보다는 가능성의 폭을 열어놓는 것만으로도 영꿈 통장은 커질 수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소소한 도전’을 추천했다. 예를 들어 독서라는 목표를 세웠을 때 “1년 동안 책 100권을 읽어야지” 같은 거창한 목표는 오히려 실패할 확률이 높다. “매일 책 두 페이지씩 읽겠다”는 가벼운 도전을 통해 성취감을 매일 맛보는 게 중요하다. 그 결과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며 무기력을 극복하고 꿈도 발견할 수 있다. 심리학이나 정신건강 분야에서는 사건 사고 등으로 생긴 트라우마를 극복한 뒤 개인적인 역량과 삶에 대한 만족도가 이전보다 크게 향상되는 현상을 ‘외상 후 성장’이라고 부른다. 도전과 실패의 경험은 상처로 남지만 이를 극복해 아물고 딱지가 떨어지면 더 단단하고 건강한 새살이 돋아난다. 조용래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회적 여건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걸 인정하고 적응하면서 내면의 긍정적 변화를 겪게 되기도 한다”며 “도전을 계속하고 성취를 이루는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을 믿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 특별취재팀 ::▽팀장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강승현 신희철 이소연 김태성 이청아(이상 사회부) 전채은(문화부) 신지환(경제부) 기자}

금고에 있던 현금 145억여 원이 사라졌다는 논란이 일었던 제주 복합리조트 제주신화월드 랜딩카지노의 또 다른 금고에서 81억 원이 넘는 현금이 발견됐다. 지난해 말 행적을 감춘 말레이시아 국적의 여직원과 관련된 제주 모처에서도 20억 원 이상의 현금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지방경찰청은 “랜딩카지노에서 145억6000만 원이 사라졌다는 고소장을 접수한 뒤 카지노 금고를 확인한 결과 5만 원권 지폐로 81억5000만 원을 찾았다”고 13일 밝혔다. 경찰은 해당 현금이 랜딩카지노의 VIP 물품 보관소에 있는 개인 사물함 형태의 금고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 경찰 관계자는 “145억 원이 사라졌다는 고객 금고와는 다른 금고”라며 “사라졌다던 현금의 일부인지, 아니면 다른 돈인지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 돈과 별개로 카지노 자금을 담당해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돼온 말레이시아 여성(55)과 연관된 제주의 한 장소에서도 현금 20억 원 이상이 발견됐다. 역시 5만 원권 지폐로 수백 장을 한 다발씩 묶어뒀다고 한다. 당초 이 현금이 발견된 곳은 해당 직원의 숙소로 알려졌으나, 경찰은 “여직원이 살던 거주지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지난해 말 중동 지역으로 출국한 것으로 알려진 해당 직원은 제주신화월드 개장 때부터 임원급으로 근무해 왔다. 경찰은 여직원이 돈을 빼돌리는 과정에 관여한 공범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한 중국계 남성을 특정해 뒤를 쫓고 있다. 현재 이 남성은 국내에 체류하고 있으며, 이미 출국금지 조치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제주를 벗어나 서울이나 인천 쪽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한 카지노업계 관계자는 “빼돌린 거금을 해외로 직접 가져갈 수 없으니 중국계 범죄조직을 통해 ‘환치기’해 해외로 밀반출하려고 해당 남성이 국내에 머물고 있었을 수도 있다”며 “국내에서 원화로 조직에 주면 수수료를 떼고 제3국에 있는 여직원에게 외화로 바꿔 전달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랜딩카지노 측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처음엔 현금 발견에 대해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다가, 경찰이 사실을 밝혔는데도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또 카지노 측은 수사 의뢰 당시 피해 금액을 145억 원으로 적시했으나, 처음 경찰에 자문을 요청할 때는 훨씬 작은 액수로 얘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카지노의 한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는 돈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확인했다. 다만 구체적으로 누군지는 알려줄 수 없다”고 답했다. 2018년 개장한 제주신화월드는 홍콩 상장법인 랜딩인터내셔널이 100% 지분을 투자했다. 랜딩인터내셔널 최대 주주인 중국인 양즈후이(仰智慧) 회장은 2018년 8월 캄보디아 프놈펜 공항에서 중국 보안당국에 체포됐다가 석방된 뒤 경영에서 배제된 것으로 전해졌다. 말레이시아 여직원은 양 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졌다. 제주지역 카지노업계 관계자는 “이 현금은 양 회장이 마련해 놓은 비자금이거나 카지노 VIP가 맡겨 놓은 돈일 수 있다”며 “현재 중국에서는 반부패 관련 수사 활동을 강하게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 만약 금고의 현금 소유자가 중국인 카지노 VIP라면 경찰이 수사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제주=임재영 jy788@donga.com / 권기범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누적 확진자만 500명이 넘는 집단 감염으로 번진 경북 상주시 BTJ열방센터와 관련해 진단 검사에 비협조적인 방문자들에 대해 경찰이 강경 대응하기로 했다. 역학조사 방해 혐의를 받는 센터 관계자 2명에 대해선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며, 검사에 불응하는 이들은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입건할 예정이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현재 연락이 닿지 않거나 검사를 거부하는 BTJ열방센터 방문자의 소재 확인을 위해 8602명으로 꾸려진 신속대응팀을 동원했다”고 12일 밝혔다.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27일부터 12월 27일까지 한 달 동안 BTJ열방센터를 방문한 사람은 모두 2797명이다. 이 가운데 67%인 1873명이 아직 검사를 받지 않았다. 먼저 신속대응팀은 연락이 닿지 않는 방문자의 주소지를 직접 방문해 거주 여부를 확인한다. 직접 만나지 못할 땐 소재를 파악해 방역당국과 연결해준다. 전국적으로 신속대응팀이 동원되는 건 지난해 8월 광복절 서울 광화문 집회 참가자에 대한 소재 파악 이후 처음이다. 경북 상주경찰서는 11일 역학조사를 방해한 혐의로 BTJ열방센터 관계자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국수본 관계자는 “센터 방문자 상당수가 방역당국의 연락을 받지 않거나 방문 사실을 부인해 역학조사를 방해한 것으로 보인다”며 “진단 검사 명령에 불응하면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BTJ열방센터 관련 누적 확진자는 12일 0시 기준 576명에 이른다. 아직 전체 방문자의 33%만 검사를 받은 상황이라 확진자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방대본에 따르면 진단 검사 대상인 센터 방문자 2797명 가운데 지금까지 126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확진자 가운데 53명은 9개 시도, 27개 종교시설 및 모임에서 450명에게 추가 감염을 일으켰다. 대전 7곳, 충북 6곳, 광주 5곳 등이다.권기범 kaki@donga.com·김소민 기자}

경찰 수사를 총괄 지휘하는 국가수사본부의 초대 본부장에 전직 경찰 간부 2명과 현직 변호사 3명이 지원했다. 전직 경찰은 백승호 전 경찰대학장(57·사법연수원 23기)과 이세민 전 경찰청 수사기획관(60·경찰대 1기), 현직 변호사는 이정렬 전 부장판사(52·23기)와 이창환 변호사(54·29기), 김지영 변호사(49·32기)다. 전남지방경찰청장 등을 거쳐 치안정감으로 승진한 백 전 학장은 지난해 1월부터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국수본부장은 경찰청장(치안총감) 다음으로 높은 치안정감급이다. 최근 지명된 김진욱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 후보자(54)도 김앤장 법률사무소 출신이다. 경찰대 1기 출신으로 경무관까지 지낸 이 전 기획관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 등이 불거졌을 당시 수사를 담당했다가 좌천된 이력이 있다. 이 전 부장판사는 2011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가카새끼 짬뽕’ 등의 게시물을 올려 논란을 빚었다. 2013년에는 자신이 살던 아파트 주민과 층간소음 문제로 다툼을 벌여 벌금 100만 원을 선고받고, 판사직에서 사퇴했다. 이 전력으로 변호사단체로부터 변호사 등록이 금지돼 사무장으로 활동하다가 최근에 변호사로 등록했다. 이 변호사는 열린민주당 최강욱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변호를 맡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교육이사 등을 지낸 김 변호사는 주로 기업 자문과 소송, 단체소송 등을 맡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찰은 지난해 말 국수본부장을 외부에서 채용하기로 결정하고 1일 ‘국수본부장 경력 경쟁 채용 시험 계획’을 공고해 11일 오후 6시까지 서류를 접수했다. 경찰청은 서류심사와 신체검사, 종합심사 등을 거쳐 경찰청장이 최종 후보자 1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최종 임명한다. 경찰청은 다음 달까지 국수본부장 선발을 마무리할 예정이지만 후보자 5명 중 어떤 사람도 추천하지 않는 ‘적격자 없음’도 나올 수 있다. 적격자가 없다고 판단되면 관련 규정상 내부 승진으로 국수본부장을 발탁할 수 있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우리(레티널)는 증강현실(AR) 광학 렌즈를 개발하는 회사다. 최근까지도 많은 변화와 발전을 거듭했다. 지난해 12월 20억 원의 투자를 추가로 유치했다. 2016년 설립 이래 총 68억 원 규모의 투자를 받았다. 적어도 올해에는 자금 걱정 없이 기술 개발에 매진할 수 있게 됐다. 8∼11일(현지 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9’에도 다녀왔다. 스타트업 전시관인 유레카 파크에서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최신 AR 광학 렌즈인 ‘핀 미러(PinMR)’를 선보였다. 시야각을 80도 이상으로 확보한 데모도 공개했다. 올해로 세 번째 참가하는 만큼 현장의 관심은 더욱 뜨거웠다. 행사 중 기자간담회도 처음 열었다. 잠재력이 있는 스타트업이라고 해도 매출이 없으면 투자를 받기 어렵다. 특히 국내에서 한 투자자로부터 10억 원 이상을 유치하는 일은 흔치 않다. 우리 같은 스타트업이 초청을 받아 CES에서 기자간담회를 여는 일도 드물다. 나(김재혁·레티널 대표·29)와 동료들은 그 원동력이 ‘기술력’이라고 생각한다. 간이침대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열정으로 이뤄낸 결과다. 좋은 기술 앞에 자존심 같은 건 없는 걸까. 지난해 CES와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이후 해외 유수 기업 관계자들이 “레티널 제품을 보고 싶다”며 한국으로 찾아왔다. 기술적인 세부 내용을 물어보거나 수천 장의 사진을 찍어갔다. 그중 일부는 나중에 우리 제품을 베낀 제품을 가져와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기업도 제대로 동작하는 제품을 만들지 못했다. 우리 기술은 내부적인 역량과 경험이 없이 단시간에 베끼기 어렵다. 안일하게 생각했다면 해외 유명 기업에 기술을 빼앗겼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기술력이 핵심 경쟁력인 테크 스타트업이라면 적절한 시점에 특허를 출원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국내에 10여 건의 특허를 출원했다. 이 중 5건이 등록됐다. 해외에서도 출원 중이다. 제대로 된 특허를 출원하려면 전문가와 손을 잡는 게 좋다. 마지막으로 쓴소리를 하려 한다. 사실 한국의 스타트업 창업 인프라는 대단하다. 창업을 마음먹으면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이 ‘귀찮아서 지원 신청을 못할 정도’로 많다. 초기 운영비용의 절반 가까이를 지원금으로 충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문제는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다음 단계로 도약해야 하는 경우다. 이때부터는 규제가 스타트업의 발목을 잡는다. 스타트업이 성장하려면 실리콘밸리식 투자 방식인 미국의 ‘SAFE(Simple Agreement for Future Equity·미래지분계약)’가 필요하다. 투자자가 먼저 투자를 하고 난 뒤 미래에 지분을 취득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조건부 지분인수 계약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벤처투자 촉진 법률안이 지난해 11월 국회에 제출됐지만 아직 진전이 없다. 기업 규모가 커지면 “차라리 미국 법인을 내는 게 더 유리하다”는 권유가 나오는 것이 한국이다. 외국으로 나가는 사람도 있다. 투자자들이 능력 있는 스타트업에 마음껏 투자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통해 시장에도 활기가 도는 선순환 구조를 기대해본다.정리=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우리(레티널)는 증강현실(AR) 광학 렌즈를 개발하는 회사다. 최근까지도 많은 변화와 발전을 거듭했다. 지난해 12월 20억 원의 투자를 추가로 유치했다. 2016년 설립 이래 총 68억 원 규모의 투자를 받았다. 적어도 올해에는 자금 걱정 없이 기술 개발에 매진할 수 있게 됐다. 8~11일(현지 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9’에도 다녀왔다. 스타트업 전시관인 유레카 파크에서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최신 AR 광학 렌즈인 ‘핀 미러(PinMR)’를 선보였다. 시야각을 80도 이상으로 확보한 데모도 공개했다. 올해로 세 번째 참가하는 만큼 현장의 관심은 더욱 뜨거웠다. 행사 중 기자간담회도 처음 열었다. 잠재력이 있는 스타트업이라고 해도 매출이 없으면 투자를 받기 어렵다. 특히 국내에서 한 투자자로부터 10억 원 이상을 유치하는 일은 흔치 않다. 우리 같은 스타트업이 초청을 받아 CES에서 기자간담회를 여는 일도 드물다. 나(김재혁·레티널 대표·29)와 우리 동료들은 그 원동력이 ‘기술력’이라고 생각한다. 간이침대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열정으로 이뤄낸 결과다. 좋은 기술 앞에 자존심 같은 건 없는 걸까. 지난해 CES와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이후 해외 유수 기업 관계자들이 “레티널 제품을 보고 싶다”며 한국으로 찾아왔다. 기술적인 세부 내용을 물어보거나 수천 장의 사진을 찍어갔다. 그중 일부는 나중에 우리 제품을 베낀 제품을 가져와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기업도 제대로 동작하는 제품을 만들지 못했다. 우리 기술은 내부적인 역량과 경험이 없이 단시간에 베끼기 어렵다. 안일하게 생각했다면 해외 유명 기업에 기술을 빼앗겼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기술력이 핵심 경쟁력인 테크 스타트업이라면 적절한 시점에 특허를 출원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국내에 10여 건의 특허를 출원했다. 이 중 5건이 등록됐다. 해외에서도 출원 중이다. 제대로 된 특허를 출원하려면 전문가와 손을 잡는 게 좋다. 마지막으로 쓴소리를 하려 한다. 사실 한국의 스타트업 창업 인프라는 대단하다. 창업을 마음먹으면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이 ‘귀찮아서 지원 신청을 못할 정도’로 많다. 초기 운영비용의 절반 가까이를 지원금으로 충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문제는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다음 단계로 도약해야 하는 경우다. 이때부터는 규제가 스타트업의 발목을 잡는다. 스타트업이 성장하려면 실리콘밸리식 투자 방식인 미국의 ‘SAFE(Simple Agreement for Future Equity·미래지분계약)’가 필요하다. 투자자가 먼저 투자를 하고 난 뒤 미래에 지분을 취득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조건부 지분인수 계약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벤처투자 촉진 법률안이 지난해 11월 국회에 제출됐지만 아직 진전이 없다. 기업 규모가 커지면 “차라리 미국 법인을 내는 게 더 유리하다”는 권유가 나오는 것이 한국이다. 외국으로 나가는 사람도 있다. 투자자들이 능력 있는 스타트업에 마음껏 투자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통해 시장에도 활기가 도는 선순환 구조를 기대해본다.정리=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27일 오후 서울 중구 광희동2가 건물 신축 현장. 그저 지상 4층짜리 건물 같은데 가림막 너머로 보이는 외관이 독특했다. 솔방울을 연상케 하는 회색 역삼각형이다.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짤 때 쓰는 깔때기를 여러 개 겹쳐 놓은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작업이 한창인 내부도 여느 매장처럼 꾸며지는 1층을 빼고는 평범함과 거리가 있었다. 2, 3층에는 언뜻 봐서는 정체를 알기 어려운 각종 대형 장비들이 파란색 비닐에 싸여 있었다. 이곳은 도심에서 참기름과 들기름을 생산하는 스타트업 쿠엔즈버킷 새 사옥. 비닐 속 기계는 업체 대표 박정용 씨(49)가 독일 업체와 손잡고 개발한 기름을 짜내는 착유(搾油) 설비다. “창업 후 6년간의 생산 노하우를 바탕으로 기존에는 수평 방식이던 착유 장비를 수직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좁은 대지 면적에도 장비를 설치할 수 있도록 개선한 겁니다. 땅값이 비싼 도심에서는 필수적인 과정이었습니다.” 쿠엔즈버킷 신사옥은 제조·생산 시설뿐만 아니라 매장과 문화공간을 한데 모은 형태로 짓고 있다. 1층에서는 제품을 판매하고 4층은 요리 강습 등을 할 수 있는 요리체험장으로 꾸민다. 옥상은 문화공간으로 조성한다. 제조와 판매를 한곳에서 가능하게 해 유통 단계를 최소화하고 제품 신선도를 확보하면서 외국인 관광객 유치 효과까지 보겠다는 전략이다. 2013년 강남 역삼동에서 시작한 쿠엔즈버킷은 참깨나 들깨도 커피 원두나 와인용 포도처럼 섬세한 식품이라고 주장한다. 국내 한 농가와 계약을 맺고 품종부터 품질 검사까지 마친 참깨와 들깨를 가져다 만든다. 기름을 짜내는 방식도 다르다. 기계 압착 이전 맷돌로 짜내던 방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는 취지 아래 올리브유를 만들 때 쓰는 저온 압착 방식을 개량했다. ‘로스팅’과 ‘필터링’이 다르다 보니 처음 맛보는 참기름, 들기름 맛이 난다. 창업 초기에는 하루 한두 병을 파는 정도였지만 차츰 입소문이 나면서 국내 주요 백화점과 홍콩 수입 식료품 판매점 ‘시티슈퍼’, 미슐랭 3스타 등급을 자랑하는 미국 뉴욕의 레스토랑에도 공급하고 있다. 올해 매출은 20억 원에 육박한다. 박 대표는 “인구 증가 등으로 도시가 외곽으로 점점 팽창하면서 ‘동네 두부집’ ‘동네 어묵집’으로 대표되는 가게들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자신만의 전통을 지녔던 동네 가게들이 도시 바깥으로 아예 밀려나게 됐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식품의 품질과 다양성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지금, 도심의 식품 제조업체들도 이에 부응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박 대표는 “일본의 동네공장(町工場·마치코바) 시스템을 연구해 보니 도심에서도 전통이 흐트러지지 않는 가게가 적지 않았다. 특히 도심 양조장 등을 보며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단가나 생산량에 집중하기보다는 고유의 특성을 가진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 눈높이와 취향을 만족시켜야 도심 제조업이 부흥할 수 있다는 것. 서울시 소공인 지원정책도 박 대표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한 패션·봉제 업체의 상품에 ‘메이드 인 서울’ 브랜드를 부여해 부가가치를 높인다는 계획이 대표적이다. 박 대표는 “우리가 만든 기름이 ‘도심 방앗간 제품’으로 자리 잡게 되면 제품뿐만 아니라 ‘도심 공장’ 방식도 수출할 수 있다고 본다. 도심에서 소비자와 함께 호흡하며 성공을 거두고 싶다”고 말했다.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서울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의 양대 노조로 구성된 공동교섭단이 26일 총파업을 예고하고 공사와 밤샘 협상을 벌였다. 파업을 하게 되면 2017년 5월 서울교통공사가 통합 출범한 이후 첫 파업이 된다. 노조와 공사는 26일 오후 3시부터 서울 성동구 서울교통공사 스마트상황실에서 밤늦도록 협상을 벌였다. 공동교섭단은 임금 인상과 10대 핵심요구안 등을 요구해 왔다. 2017년도 총액 대비 임금을 7.1% 인상하고, 노동시간을 현재 월 165.8시간에서 150시간으로 줄여 달라는 등 모두 148건의 요구를 했다. 임금피크제 폐지, 정년 연장, 서울∼평양 지하철 교류 추진 등의 요구도 했다. 공사는 이 가운데 107건에 대해 지난달 수용 불가 의사를 밝혔고, 공동교섭단은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65.1%의 찬성률이 나오자 파업 절차에 돌입했다. 지난해 서울교통공사는 522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2016년보다 1900억 원가량 늘어난 것이다. 반면 인건비는 2016년 1조1314억 원에서 지난해 1조2911억 원으로 늘어났다. 공사 측은 파업이 실제로 이뤄질 것에 대비해 필요 인원 1만6900여 명의 85% 수준인 1만4107명의 인력을 확보했다. 필수공익사업장인 지하철의 특성상 파업에 동참할 수 없는 필수 유지 인력 5780명, 협력업체 직원 등으로 구성된 대체 인력이 8327명이다. 오전 7∼9시를 비롯해 출퇴근 시간대는 평소와 똑같이 지하철이 운행되며, 낮에는 평소 운행량의 80% 수준이 가동된다. 공동교섭단은 2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섭이 최종 결렬되면 27일 주간 근무자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서울시가 북부간선도로 위에 인공대지를 만들어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구상을 밝혔다. 도심의 빈 공간에는 청년 창업 공간과 결합한 새로운 개념의 공공주택이 지어진다. 호텔과 사무실 건물을 청년주택, 공유주택으로 탈바꿈시키는 계획도 추진된다. 서울시는 이런 내용을 담은 ‘주택공급 5대 혁신방안’과 ‘8만 호 추가 공급 세부계획’을 26일 발표했다. 19일 국토교통부와 합동으로 발표했던 ‘2차 수도권 주택공급 계획 및 수도권 광역교통망 개선 방안’에 포함된 서울 공공주택 8만 채 공급 계획을 구체화한 것이다. 합동 발표 때 나온 2만5000여 채 공급 계획에 서울시가 자체적으로 5만5000여 채를 공급하는 내용이다. 서울시는 “양적 공급에 치중했던 공공주택 정책의 패러다임과 원칙을 대전환하겠다”며 새로운 형태의 공공주택 모델을 다양하게 제시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임대주택 단지만을 짓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티 시설, 창업시설 등을 함께 조성하겠다. 생각지도 못한 공간에 주택을 지어 도시 공간을 재창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것이 북부간선도로 위에 지어질 1000채 규모의 공공주택이다. 서울 중랑구 신내동 신내나들목(IC)과 중랑나들목 구간에 2만5000m² 크기의 인공대지를 구축한 뒤 그 위로 공공주택과 공원, 문화체육시설을 조성한다는 것. 박 시장이 지난해 12월 프랑스 파리를 찾았을 때 접했던 ‘레앵방테 파리(R´einventer Paris)’의 개념을 서울에 도입한 것이다. 레앵방테 파리는 도심 내 유휴부지에 혁신적 건축물을 도입하겠다며 파리가 2014년부터 추진해온 프로젝트다. ‘경의선 숲길’의 끝 부분인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542-105번지 일대(약 4414m²)와 서울 은평구 증산빗물펌프장(증산동 238-4번지 일대 약 5575m²) 부지에는 각각 300채 규모의 청년 특화 공공주택이 조성된다. 청년지원시설, 청년창업 공간 등이 각각 함께 들어선다. 도심 업무용 빌딩의 공실을 주거 용도로 전환해 청년과 신혼부부 등에게 공급하기 위한 시범사업도 시작된다. 종로구 숭인동에 있는 지하 3층, 지상 18층 규모의 베니키아 프리미어 동대문 호텔과 용산구의 지상 4층 업무용 빌딩 두 곳에서 추진 중이다. 호텔은 청년주택으로 바꿔 255채를 공급한다. 업무용 빌딩은 일부 공실을 1인가구를 위한 공유주택(200채)으로 재단장한다. 서울시는 또 한시적 규제 완화를 통해 도심형 주택을 만들어 3만5000채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도심과 역세권 건물의 용적률을 상향해주는 대신 상향분의 50%를 공공주택으로 공급하도록 하겠다는 것. 상업지역 주거비율과 준주거지역에서 임대주택 5752채 및 분양주택 1만1058채를, 역세권에서 임대주택 5600채와 분양주택 1만2000채를 각각 이런 방식으로 공급한다. 저층 주거지 활성화를 통해 1만6000채를, 정비사업 및 노후 임대단지를 활용해 4600채를 공급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서울시는 2022년까지 8만 채를 모두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민간 건물이나 빈집 등을 활용하는 계획을 실행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박 시장은 “공급 위치와 장소, 규모까지 밝힌 것은 공급할 자신이 있다는 것”이라며 “(임대주택 건립에 대한) 주민들의 반대도 설득할 수 있는 혁신적인 공급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 측정이 더욱 정밀해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하기 위한 대기오염 측정소를 51곳에서 56곳으로 확대했다고 25일 밝혔다. 서울 대기오염측정망을 운영하는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은 최근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에 도로변측정소 1곳을 신설하고, 송파 성동 서대문 마포에 도시대기측정소를 4곳 늘렸다. 이로써 서울시는 대기측정소 25곳, 도로변대기측정소 15곳, 도시배경 및 입체측정소 10곳, 이동 측정 차량 6대를 보유하게 됐다. 기존(51개)보다 5개 늘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실생활에 유용한 미세먼지 정보를 더욱 정확하게 받아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새로 늘어난 4곳 중 2곳은 공원 내에 위치한 측정소를 주거지로 옮긴 것이고, 나머지 2곳은 측정 장소가 지상 20m 이상이었던 것을 20m 이하로 이전한 것이다. 장소는 전문가의 적정성 평가, 시민 의견 수렴 등을 거쳐 정했다. 당초 운영되던 4곳은 주요 장비를 유지해 각각 녹지 지역 미세먼지 농도 측정용, 대기오염물질 수직 이동 관찰용 입체 측정소로 쓴다. 서울시는 또 롯데물산과 협의해 잠실 롯데월드타워 530m 높이에서 측정된 미세먼지 입체 관측 자료를 앞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측정된 대기오염물질 정보는 1시간 단위로 서울시 대기환경정보시스템에서 공개된다.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서울 서초구는 20일 서초구의회 본회의에서 6499억 원 규모의 2019년도 예산안이 통과됐다고 25일 밝혔다. 앞서 서초구는 올해보다 14.2% 늘어난 내년도 예산안을 구의회에 제출했다. 새해 예산안은 일반회계 총 예산의 42%인 2500억여 원을 복지 분야에 투자하는 등이 골자였다. 구의회는 당초 서초구가 편성했던 예산안 중 85건의 사업에 손을 대 이 중 22개 사업에 대한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서초청년센터 설립 및 운영(16억 원), 명달공원 바닥분수 조성(9억 원), 지능형 주차관리시스템 구축(5억 원) 사업 등이다. 또 26건은 예산을 줄였다. 골목길 개선사업 예산은 30%, 어번 캔버스 조성 사업은 42%, 양재 공영주차장 설계 용역비는 86.7%가 줄었다. 구의회가 의결한 예산안 규모는 서초구가 구의회에 제출한 것과 규모는 같지만 삭감된 비용은 예비비로 편성됐다. 이에 따라 조은희 서초구청장의 주민 생활밀착형 사업과 청년 일자리 사업 추진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업 축소와 취소가 불가피하게 됐다. 구의회의 새해 예산 삭감액(126억 원)은 2010년 이후 최근 9년간 평균 삭감 조정액(38억 원)의 약 3배에 해당하는 규모이고, 지난해 조정액(16억 원)의 약 8배에 이르는 큰 금액이라고 서초구는 밝혔다. 예상보다 큰 폭으로 사업비가 삭감되자 서초구는 당혹해하면서 새해 사업 추진을 우려하고 있다. 서초구는 “지난해 행정안전부가 주관한 지방자치단체 재정 분석 평가에서 서울 25개 자치구 중 유일하게 최우수등급인 ‘가’ 등급을 받았고, 4년 연속 행정안전부의 지방재정개혁 우수 자치단체로 선정될 만큼 예산절감과 재정 운용을 잘 하고 있는데도 의회가 획일적으로 사업비를 줄인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서초구 관계자는 “자체 검증과 전문가, 시민 참여를 통해 새해 예산을 편성했는데 주민참여 예산과 생활밀착형 사업 예산 등이 삭감돼 걱정이다”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의원들을 설득하는 노력을 더욱 기울여 나가는 한편 의회가 승인한 예산을 주어진 여건에서 살뜰하게 집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집=사무실.’ 대부분 스타트업이 그렇듯 나(김재혁·28·레티널 대표)와 정훈이(하정훈·28·레티널 기술책임자)도 그랬다. 만나서 얘기해야 할 때는 내가 다니던 한양대 앞 카페를 사무실처럼 드나들었다. 일이 진척될수록 자료가 늘어났고,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카페는 한계가 있었다. 대학 내 공간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생겼지만, 다른 사람들과 같이 쓰는 일종의 공유 형태이다 보니 ‘보안 유지’가 되질 않았다. 요즘 스타트업들이 보금자리로 선호하는 ‘공유 오피스’ 형태의 사무실에 우리가 입주한 건 2017년 초다. 장비를 두고 안정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는 연구개발용 사무실은 66m²(약 20평) 규모에 임대비가 100만 원 정도인 한양대에 마련하고, 우리는 강남으로 향했다. 기술 스타트업 육성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네이버에서 서울 강남구 ‘D2 스타트업 팩토리’ 입주를 권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육성을 돕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1년간 임대료가 0원이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둘러보면 대기업들이 스타트업을 위해 운영하는 이런 프로그램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D2 팩토리 입주 제한 기간인 1년이 넘어 우리는 올해 중순 새로운 공유 오피스를 찾기 시작했다. 우리는 향후 투자 유치와 스타트업 종사자들과의 네트워킹 필요성 등을 고려해 강남에 남기로 했다. 우리의 선택 조건은 ‘접근성이 좋을 것’ ‘다른 곳보다 1인당 공간이 넓을 것’이었다. 1인당(책상 하나당) 40만 원대면서 책상 크기도 넓은 지금의 사무실을 택했다. 공유 오피스 중에는 운영업체 쪽에서 입주자를 위한 콘퍼런스나 네트워크 행사를 열어주는 곳이 많다. 우리는 가장 만족스러운 곳을 찾기 위해 강남 일대 공유 오피스를 샅샅이 뒤졌다. 회사의 틀이 갖춰질수록 더욱 고민되는 대목이 있었다. ‘동료 구하기’다. 스타트업 구성원 한 명 한 명은 곧 회사의 역량을 좌우하는 핵심 전력을 의미한다. 선발 과정이 대기업보다 훨씬 신중해야 했다. 그런데 우리는 인턴까지 합해 직원이 10명이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선발’을 해본 적이 없다. 우리가 하는 일을 좋아하고 회사의 미래를 신뢰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들었기 때문이다. 2015년 우리 아이디어를 인터넷 블로그에 올리자 ‘재미있는 아이디어’라며 연락해 오는 사람이 많았다. 자원봉사를 하는 마음으로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 조언도 아낌없이 해주었다. 우리가 조금씩 성장하면서 이분들이 자연스럽게 레티널에 합류하게 됐다. 해외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다니다 우리의 ‘비전’을 믿고 합류해 준 분도 있다. 모든 직원이 사실상 회사를 같이 창업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지금도 같은 목표를 향해 순항 중이다. 사무실 입주와 직원 구하기는 스타트업을 키워나가는 과정에서 누구나 겪는다. 다음 회에는 ‘최고 난도’라고 할 수 있는 투자 유치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정리=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건물 붕괴 우려로 13일 0시부터 ‘사용 제한’ 명령이 내려진 대종빌딩에 대해 서울 강남구 등이 본격적인 후속 조치에 착수했다. 정밀 안전진단이 끝날 때까지는 약 2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 강남구는 13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브리핑을 열고 “정문 출입문을 폐쇄하고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승강기도 비상용 1대만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건물주 대표, 센구조연구소, 강남구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긴급 보강 안전진단 등을 위한 협의가 이날 오전 9시부터 시작됐다.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의 기둥 인근에 ‘잭 서포트(건물 등의 변형 균열 붕괴를 막기 위한 지지대)’를 설치하는 작업은 16일까지 끝내기로 했다. 건물 관리인원도 현재 24명인 것을 최소한으로 줄이도록 조정한다. 건물 사용 제한으로 13일부터 출입이 금지됐지만 이날 오후까지도 사무실 짐을 빼는 관계자들이 쉴 새 없이 건물을 드나들었다. 본보 취재진이 13일 오전 11~12시 약 1시간 동안 살펴본 결과 폐쇄된 정문 대신 후문을 통해 드나든 이는 17명이나 됐다. 마음이 급한 입주자들은 이사업체를 부르기도 했다. “철저히 통제 중”이라는 설명과는 달리 출입도 비교적 자유로웠다. 사람들은 구 관계자들에게 소속 등을 밝힌 뒤 출입 명부에 이름을 적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별 다른 신원 확인 절차는 없었다. 강남구 관계자는 “사무실 짐을 급하게 빼야 해서 사유 등을 기재하고 들어갈 수 있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남구는 인근 주민센터를 입주자들과 건물주가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관내 공유 사무실을 입주자들이 임시로 이용할 수 있는지 확인 중이다. 그러나 입주자들은 대응 속도가 늦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무역회사를 운영하는 김모 씨(61)는 “수억 원이 오가는 투자가 진행 중인데 무작정 사무실부터 빼라고 한다. 외국에서 바이어가 왔는데 사무실이 없어서 커피숍으로 모셨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입주 업체 직원 A 씨는 “강남구가 회의를 하라고 마련해 준 장소도 자꾸 바뀌어서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김정훈 기자 hun@donga.com}
하루에 179명의 아기가 태어나고, 147쌍의 부부가 탄생하는 곳. 777만 명이 지하철을 타고, 420만 명이 버스를 타는 곳…. 서울시가 지난해 통계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서울의 하루다. 서울시는 이런 내용이 포함된 20개 분야 340항목의 통계를 담은 ‘2018 서울통계연보’를 12일 발간하고, 서울열린데이터광장과 서울전자책(e북) 홈페이지를 통해 시민에게 공개했다. 1961년부터 나온 ‘서울통계연보’는 올해로 58번째 발간이다. 자료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으로 서울 인구는 1012만5000명으로 2016년보다 7만9478명 줄었다. 구체적으로 보면 고령화와 저출산 분위기가 더욱 확연해진다. 평균 연령은 41.6세로 0.5세 높아졌고, 65세 이상 인구는 136만5000명으로 6만4249명 늘었다. 반면 어린이집 보육 아동 수는 23만5000명(지난해 말 기준)으로 2000명 줄었다. 학령인구(만 6∼21세)는 144만 명으로 5년 전보다 31만 명 줄었다. 지난해 하루 평균 출생자 수는 179명으로 2016년(206명) 이후 처음으로 200명 아래로 떨어졌다. 교통사고 사망자 수, 범죄 건수, 화재 발생 건수 등은 일제히 줄었다. 하루 평균 0.94명이 서울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 하루 평균 877건의 범죄가 발생해 937건이었던 2016년보다 크게 줄었다. 일일 화재 발생 건수는 2016년(17.6건)까지 해마다 조금씩 늘었지만 지난해에는 16.4건으로 감소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5년 전(2012년)보다 전체적으로 7.6% 올랐다. 담배(77.5%)를 비롯해 계란(51.6%), 쇠고기(33.7%) 등이 크게 올랐다. 휘발유(―22.8%), 도시가스(―19.0%), 쌀(―12.7%) 등은 하락했다.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건물 붕괴 우려가 제기된 서울 강남구 삼성동 대종빌딩이 13일 0시부터 출입이 금지되는 ‘사용 제한 건물’로 지정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11일 오후 8시 이곳을 방문해 퇴거 조치 지시를 한 지 약 28시간 만이다. 하지만 건물 입주자 중 상당수는 “11일까지 구체적인 안내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해 당국이 빠르고 적절하게 대처했는지를 두고 논란이 되고 있다. 1991년 준공된 이 건물은 지상 15층 규모의 업무용 오피스텔이다. 동아일보 취재진이 11일 오후 10시부터 12일 오전 1시까지 빌딩 내부를 둘러보면서 만난 경비원과 입주 업체 직원 등은 “서울시와 강남구로부터 퇴거와 관련된 안내를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경비원 A 씨는 “서울시 측에서 건물 밖으로 나가라는 말이 없었다. 공문 등 문서가 내려온 것도 없다”고 했다. 이 빌딩에 입주해 있는 한 업체 직원은 “전화나 문자로 건물 안전에 대해 공지를 받은 게 없다. 건물 엘리베이터 앞에 붙어 있던 안내문이 전부”라고 말했다. 10일 붙은 이 안내문은 “안전진단 중이니 결과가 나올 때까지 최소 근무자만 상주시킬 것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건물의 지하 1층에 있는 단란주점은 12일 오전 1시까지 영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내부 룸을 제외한 홀에서만 15명의 손님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주점 직원들은 “박 시장이 왔다 가고 나서 언론 보도를 보고 건물 상황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강남구는 12일 오전 9시 40분경 이 건물을 재난 예방을 위해 안전관리가 필요한 ‘3종 시설물’로 지정해 고시했다. 그리고 오전 10시 39분 긴급안전조치 명령을 내려 건물 사용을 13일 0시부터 금지하도록 했다. 하지만 건물 입주자들에게는 건물 붕괴 우려 상황이 빨리 전파되지 않았다. 언론 보도를 접한 입주자들은 12일 오전부터 급하게 짐을 빼거나 임시 사무실을 구하면서 혼란스러워했다. 금융업 종사자인 도모 씨(35)는 “사전 예고도 없이 하루아침에 빌딩에서 쫓겨났다”고 말했다. 강남구의 주민 설명회는 12일 오후 2시에 열렸다. 조치가 늦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강남구 관계자는 “11일은 밤늦은 시간이라 입주자를 불러 모으기도 쉽지 않았고, 행정 절차에 맞춰 수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건물 붕괴 우려로 퇴거 조치를 하려면 전문가 진단에 따른 E등급 판정 확정, 3종 시설물 지정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강남구가 행정 절차를 밟는 데 시간이 걸린 것은 맞지만 11일 밤에 박 시장의 퇴거 조치 지시 직후 건물 관리인이나 입주자에게 상황이라도 빨리 알려야 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준공된 지 30년도 되지 않은 건물이 붕괴 위험에 처하자 부실시공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강남구 관계자는 “전문가 진단 결과 건물의 (내력) 성능이 80%로 지어졌다고 했다. 여기에 철근 상태나 시멘트의 견고함도 부족해 현재 50% 이하로 내력이 떨어진 상태”라고 말했다. 권기범 kaki@donga.com·김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