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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배신당한 쿠르드족이 터키군의 공격에서 살아남기 위해 ‘과거의 원수’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정권과 손을 잡았다. 미국과 사이가 좋지 않은 러시아와도 협상을 체결했다. 알자지라 등은 시리아 정부군이 14일 오전 유프라테스강 동부의 거점 도시인 텔타메르, 아인이사, 락까 등에 진입했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정부군이 이 지역에 진입한 것이 5년 만이라고 전했다.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후 지속됐던 ‘정부군과 러시아 연합’ 대 ‘반군, 쿠르드족, 미국 연합’의 대결 구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쿠르드자치정부는 13일 시리아 정부군 및 러시아와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시리아 정부도 성명을 내고 “터키의 공격에 맞서 싸우겠다”고 밝혔다. 쿠르드족은 2014년 1월 자치정부 수립을 선포하고 중앙정부와 맞서 왔다. 하지만 미국의 시리아 철군 및 터키군의 공습으로 위기에 몰리자 정부군과 손을 잡았다. 민병대인 인민수비대(YPG)를 주축으로 한 쿠르드군은 그간 터키의 대규모 공습 및 포격에 쩔쩔맸다. 이에 맞설 전투기와 중화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리아 정부군은 물론이고 아사드 정권을 배후에서 적극 지지하는 러시아군의 무기 지원을 받으면 이 열세를 상당 부분 만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쿠르드족이 주축인 시리아민주군(SDF)의 마즐룸 코바니 압디 총사령관은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 기고에서 “러시아, 아사드 정부와 함께 가면 고통스러운 타협을 해야 한다. 그러나 타협과 (터키군에 의한) 인종청소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기꺼이 사람들을 살리는 타협을 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터키군은 7일부터 이날까지 시리아 북부 마을 42곳을 점령하고 쿠르드 민병대원 440명을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쿠르드족이 관리하던 이슬람국가(IS) 포로수용소에서는 포로 785명이 탈출했다. 터키군의 공격으로 감시가 느슨해지자마자 탈출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런 사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그는 14일 트위터를 통해 “미국의 개입을 유도하기 위해 쿠르드족이 IS 포로를 풀어줄지도 모른다. 우리가 중동의 혼란에 빠져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우리가 그곳에 머무르기를 바란다”고 주장했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13일 CBS 인터뷰에서 “미군은 서로 대치하고 있는 2개 군대 사이에 갇혀 있다”며 “지난밤 대통령이 시리아 북부에서의 철군을 지시했다. 1000여 명의 병력이 최대한 신속하고 안전하게 철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터키 국경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전투에 개입하지 않은 건 매우 영리한 일”이란 트윗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허풍과 안이한 태도가 터키의 시리아 공격을 촉발시켰다는 비판도 거세다. 미 인터넷 매체 액시오스는 그의 취임 첫해인 2017년부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시리아 개입을 시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저지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같은 해 에르도안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도 트럼프 대통령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도 좋다. 그 대신 도움을 구하진 말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 조유라 기자}
미국에 배신당한 쿠르드족이 터키군의 공격에서 살아남기 위해 ‘과거의 원수’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정권과 손을 잡았다. 미국과 사이가 좋지 않은 러시아와도 협상을 체결했다. 알자지라 등은 시리아 정부군이 14일 오전 유프라테스강 동부의 거점 도시인 텔타메르, 아인이사, 락까 등에 진입했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정부군이 이 지역에 진입한 것이 5년 만이라고 전했다.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후 지속됐던 ‘정부군과 러시아 연합’ 대 ‘반군, 쿠르드족, 미국 연합’의 대결 구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쿠르드자치정부는 13일 시리아 정부군 및 러시아와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시리아 정부도 성명을 내고 “터키의 공격에 맞서 싸우겠다”고 밝혔다. 쿠르드족은 2014년 1월 자치정부 수립을 선포하고 중앙정부와 맞서 왔다. 하지만 미국의 시리아 철군 및 터키군의 공습으로 위기에 몰리자 정부군과 손을 잡았다. 민병대인 인민수비대(YPG)를 주축으로 한 쿠르드군은 그간 터키의 대규모 공습 및 포격에 쩔쩔맸다. 이에 맞설 전투기와 중화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리아 정부군은 물론이고 아사드 정권을 배후에서 적극 지지하는 러시아군의 무기 지원을 받으면 이 열세를 상당 부분 만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쿠르드족이 주축인 시리아민주군(SDF)의 마즐룸 코바니 압디 총사령관은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 기고에서 “러시아, 아사드 정부와 함께 가면 고통스러운 타협을 해야 한다. 그러나 타협과 (터키군에 의한) 인종청소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기꺼이 사람들을 살리는 타협을 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터키군은 7일부터 이날까지 시리아 북부 마을 42곳을 점령하고 쿠르드 민병대원 440명을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쿠르드족이 관리하던 이슬람국가(IS) 포로수용소에서는 포로 785명이 탈출했다. 터키군의 공격으로 감시가 느슨해지자마자 탈출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런 사태에도 아랑곳하지 앉고 있다. 그는 14일 트위터를 통해 “미국의 개입을 유도하기 위해 쿠르드족이 IS 포로를 풀어줄지도 모른다. 우리가 중동의 혼란에 빠져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우리가 그곳에 머무르기를 바란다”고 주장했다. 로이터통신은 미군 외에도 시리아 안정화를 위해 머무르던 미국 외교팀이 이미 철수했다고 전했다. AFP통신도 이날 미 당국자를 인용해 “시리아 북부에 주둔하는 모든 미군 병력이 시리아를 떠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 당국자는 “150명의 소수 병력만 시리아 남부에 남긴 채 약 1000여 명이 시리아를 떠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13일 CBS 인터뷰에서 “미군은 서로 대치하고 있는 2개 군대 사이에 갇혀 있다”며 “지난밤 대통령이 시리아 북부에서의 철군을 지시했다. 1000여 명의 병력이 최대한 신속하고 안전하게 철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터키 국경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전투에 개입하지 않은 건 매우 영리한 일”이란 트윗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허풍과 안이한 태도가 터키의 시리아 공격을 촉발시켰다는 비판도 거세다. 미 인터넷 매체 액시오스는 그의 취임 첫해인 2017년부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시리아 개입을 시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저지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같은 해 에르도안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도 트럼프 대통령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도 좋다. 그 대신 도움을 구하진 말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카이로=이세형특파원 turtle@donga.com이윤태 기자 oldsport@donga.com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11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의 킹파드국제경기장. 잠깐 눈앞에선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 온 듯한 착각이 일었다. 이미 오전부터 주변은 ‘사랑해요’ ‘뽀뽀해줘요’ 같은 한글 손팻말이 물결처럼 떠다녔다. 무리 옆을 스칠 때마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라며 앳된 목소리의 한국어도 쏟아졌다. 단지 ‘아바야’(이슬람 전통 검은 망토)와 ‘히잡’을 입었을 뿐.○ “BTS도 한국도 너무 좋아요” 이날 저녁 스타디움에선 현지는 물론 한류사(史)에서도 큰 이정표를 세울 엄청난 콘서트가 열렸다. 방탄소년단(BTS)의 월드투어 ‘LOVE YOURSELF: SPEAK YOURSELF’였다. 이 공연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사상 첫 해외 가수의 스타디움 콘서트 허용이란 기록도 세웠다. 역사적 공연답게 오후 1시경(현지 시간)부터 주변은 축제 분위기였다. 섭씨 35도를 넘는 뜨거운 날씨에 아직 공연이 6시간가량 남았지만 아랑곳없었다. 아랍 ‘아미(BTS 팬클럽)’들은 끊임없이 멤버들의 이름을 외쳤다. 잠깐 스타디움 내부에서 공연을 준비하는 오디오테스트 소리만 흘러나와도 ‘까악’ 함성이 터져 나왔다. ‘떼창’ 역시 멈추질 않았다. 그들에겐 취재차 방문한 국내 언론마저 ‘셀럽’이었다. 단지 BTS와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환영합니다” “한국에서 왔나요”라며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먼저 붙잡고 “인터뷰하고 싶다”고도 했다. 함께 사진을 찍자는 요청도 많았다. 괜한 걱정에 “사진이나 영상이 언론에 나가도 되느냐”고 했더니, 바로 매무새를 가다듬고 포즈를 취했다. 중서부 항만도시 지다에서 어머니와 동생, 친구들과 공연을 보러 온 대학생 셰터 씨는 한국말로 “우리 엄마는 아줌마 아미예요”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케이팝과 한국 드라마가 너무 좋아 한국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면서 “듣는 건 꽤 하는데 말하는 건 아직 어렵다”며 수줍어했다. 또 다른 대학생 나즈드 씨는 “BTS는 물론 한국 대중문화가 인기다 보니 한국 제품에도 관심이 많다”며 “한국 화장품은 요즘 사우디 여성에게 최고 인기”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한류, 새로운 역사의 한 꼭지로 저녁 무렵 드디어 펼쳐진 방탄소년단 무대는 압도적 열기를 뿜어냈다. BTS에게도 이날 공연은 중동지역에서 처음 가진 단독 공연. 첫 곡 ‘Dionysus’로 포문을 연 뒤, 약 3시간에 걸쳐 ‘Not Today’ ‘작은 것들을 위한 시(Boy With Luv)’ ‘IDOL’ ‘FAKE LOVE’ 등 24곡을 선보였다. 3만여 관객들은 BTS 공식 응원봉을 흔들면서 뜨거운 박수와 한국어 떼창으로 화답했다. 멤버들이 아랍어 인사를 전할 때는 스타디움이 무너질 듯 함성이 넘쳐흘렀다. 이날 공연은 이슬람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에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았다. 1987년 개장한 킹파드국제경기장은 주로 축구나 육상 경기가 열리는 남성들의 전유 공간이었다. 지난해 처음 여성의 축구장 입장을 허락한 이곳이, 대다수 여성 관객으로 채워지며 ‘새로운 자유의 색채’로 물든 셈이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열기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아미들은 좀 더 BTS를, 한국을 알고 싶어 했다. “리야드에 하루빨리 한국문화원이 생겼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국내 연세어학당을 다녔던 대학생 후사 씨는 지인들과 모임을 만들어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단다. 그는 “한국 역사나 문화를 배우려는 이가 늘고 있다. 하지만 대학의 관련 수업이나 한국어학원 등이 없어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방탄소년단은 공연 뒤 소속사를 통해 “오랫동안 기다려준 팬들을 위한 축제의 자리다. 믿기지 않는 이 순간을 만들어준 아미에게 감사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멤버들은 “먼 곳에서 큰 사랑과 응원을 주는 걸 잘 알고 있다. 오늘 무대를 잊지 않고 영원히 간직하겠다. 공연을 생중계로 함께 즐겨준 세계 팬들에게도 감사드린다”고 했다. 방탄소년단은 이달 26, 27, 29일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에서 공연을 갖는다. 지난해 8월부터 세계를 돌며 연 ‘LOVE YOURSELF’ 순회공연의 마지막 무대다.리야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 임희윤 기자}

터키의 시리아 북동부 쿠르드족 거점 지역에 대한 군사작전을 사실상 묵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대(對)터키 경제 제재’ 가능성을 꺼냈다. 미국이 동맹이던 쿠르드족을 버렸다는 비판과 인명 피해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급히 경고를 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터키는 쿠르드족 공격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11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터키가 군사작전을 진행하며 인종·종교적 소수집단을 겨냥할 경우 미 재무부에 터키 정부 관계자들을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행정명령에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제재를 활용하지 않기를 희망하지만 필요하다면 터키 경제를 끝장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구체적인 제재 내용이나 적용 시점 등을 밝히진 않았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가 겉으로만 터키의 쿠르드족에 대한 공격을 막으려는 모습을 보인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워싱턴 보수단체 행사에서 시리아 미군 철군 결정에 대해 “미국은 무한한 전쟁을 할 수 없다”며 자신의 결정이 옳았음을 거듭 강변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군사작전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는 이날 “(군사작전을) 멈추라는 협박이 좌우에서 들어오고 있지만 우리는 절대 안 멈출 것”이라며 “우리 국경에서 32km 떨어진 곳(터키가 주장하는 ‘안전지대’)까지 테러리스트들을 몰아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터키의 시리아 쿠르드족 거점 지역에 대한 공격은 강화되고 있다. 터키군은 12일 쿠르드 민병대(YPG) 459명을 무력화(사살·생포 등)시켰다고 밝혔다. 영국에 본부를 둔 시리아인권관측소(SOHR)에 따르면 이날까지 쿠르드족이 주축인 시리아민주군(SDF) 대원 81명이 전사했으며, 민간인 30여 명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터키의 쿠르드족 공격이 지속되면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단체인 이슬람국가(IS)의 영향력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지난해 말 물러난 제임스 매티스 전 미 국방장관은 12일 NBC 인터뷰에서 “IS가 세력을 되찾지 못하도록 압박을 지속하지 않으면 IS가 재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13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쿠르드 보안군이 지키던 시리아 북부 아인이사의 IS 조직원 친인척 억류 캠프에서 785명이 탈출했다. 쿠르드 당국은 이날 성명에서 친(親)터키계 용병들이 해당 캠프를 포격했으며 이후 캠프 내 ‘IS 세력’이 경비원들을 공격해 도주했다고 전했다. 이 가운데 터키의 쿠르드족 공격을 둘러싼 국제사회 입장도 갈리고 있다.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은 터키에 대한 무기 수출 중단을 발표했다. 아랍권 국가 동맹체인 아랍연맹도 터키에 대한 제재를 요구했다. 하지만 11일 AFP통신에 따르면 터키의 시리아 북동부 쿠르드족 지역 군사행동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채택하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계획은 러시아와 중국 등의 반대로 무산됐다. 한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2일 인터뷰에서 “러시아도 시리아 정부가 더는 군사적 지원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경우 즉각 병력을 빼낼 것”이라며 “시리아에 불법적으로 주둔하는 외국군은 모두 즉각 철수하라”고 촉구했다. 러시아는 최근 시리아를 중심으로 중동 지역에서의 영향력 키우기에 나서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중동 정책을 반대해왔다.카이로=이세형 turtle@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

터키의 시리아 북동부 쿠르드족 거점 지역에 대한 군사 작전을 사실상 묵인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대(對)터키 경제 제재’ 가능성을 꺼냈다. 미국이 동맹이던 쿠르드족을 버렸다는 비판이 커지자 급히 경고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터키는 군사작전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11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언론 브리핑에서 “터키가 군사 작전을 진행하며 인종·종교적 소수집단을 겨냥할 경우, 미 재무부에 터키 정부 관계자들을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행정명령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제재는 매우 강력할 것이다. 실제로 제재들을 활용하지 않기를 희망하지만 필요하다면 터키 경제를 끝장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므누신 장관은 구체적인 제재 내용이나 조건, 적용 시점 등을 밝히진 않았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가 실질적인 조치 없이 겉으로만 터키의 쿠르드족에 대한 공격을 막으려는 모습을 보인 게 아니냐는 의혹도 함께 제기된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군사작전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는 이날 대테러 관련 회의에서 “(군사작전을) 멈추라는 협박이 들어오고 있지만 우리는 절대 안 멈출 것”이라며 “우리 국경에서 32km 떨어진 곳(터키가 주장하는 ‘안전지대’)까지 테러리스트들을 몰아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터키의 시리아 북동부 쿠르드족 거점 지역에 대한 공격은 강화되고 있다. 터키는 압도적 공군력을 바탕으로 쿠르드족을 맹폭하고, 지상군도 계속 진격하고 있다. 푸아트 옥타이 터키 부통령도 TRT 방송 인터뷰에서 “터키군과 시리아국가군(SNA·친터키 성향 시리아 반군 조직)이 시리아 국경에서부터 8km까지 진격해 들어갔다”고 말했다. 반면 쿠르드 민병대(YPG)는 터키군의 조직적인 화력에는 힘이 달리는 모양새다. 일각에선 터키의 쿠르드족 공격이 지속되면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단체인 이슬람국가(IS)의 영향력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부족한 동맹관’과 ‘시리아 철군’에 불만을 품고 지난해 말 물러난 제임스 매티스 전 미 국방장관은 12일 미 NBC 인터뷰에서 “IS가 세력을 되찾지 못하도록 압박을 지속하지 않으면 IS가 재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군을 도와 IS 가담자 수용 등을 주도적으로 해온 쿠르드족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미 IS 수용 시설 중 일부가 터키군 공습에 파손돼 수용자들이 탈출했고, 현지의 IS 점조직들도 활동을 재개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가운데 터키의 쿠르드족 공격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입장도 갈리고 있다. 11일 AFP통신에 따르면 터키의 시리아 북동부 쿠르드족 지역 군사행동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채택하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계획은 러시아 등의 반대로 무산됐다. AFP통신은 외교관들을 인용해 상임이사국으로 거부권을 가진 러시아가 반대하고 중국도 러시아를 지지하면서 미국이 주도한 성명 채택 절차가 사실상 중단됐다고 전했다. 한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2일 인터뷰에서 “러시아도 시리아 정부가 더는 군사적 지원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경우 즉각 병력을 빼낼 것”이라고 강조하며 “시리아에서 불법적으로 주둔하는 외국군은 모두 즉각 철수하라”고 밝혔다. 그의 이번 발언에 대해 시리아 내 쿠르드 공격에 나선 터키 등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푸틴 대통령은 시리아 주둔군의 철수 문제를 이란과 터키, 미국과 공개적으로 논의해왔다고 덧붙였다. 카이로=이세형특파원 turtle@donga.com뉴욕=박용 특파원parky@donga.com}

11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의 킹파드국제경기장. 잠깐 눈앞에선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 온 듯한 착각이 일었다. 이미 오전부터 주변은 ‘사랑해요’ ‘뽀뽀해줘요’ 같은 한글 푯말에 물결처럼 떠다녔다. 무리 옆을 스칠 때마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라며 앳된 목소리의 한국어도 쏟아졌다. 단지 ‘아바야(이슬람 전통 검은 망토)’와 ‘히잡’을 입었을 뿐.●“BTS도 한국도 너무 좋아요.” 이날 저녁 스타디움에선 현지는 물론 한류사(史)에서도 큰 이정표를 세울 엄청난 콘서트가 열렸다. 방탄소년단(BTS)의 월드투어 ‘LOVE YOURSELF: SPEAK YOURSELF’였다. 이 공연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사상 첫 해외 가수의 스타디움 콘서트 허용이란 기록도 세웠다. 역사적 공연답게 오후 1시경(현지 시간)부터 주변은 축제 분위기였다. 섭씨 35도를 넘는 뜨거운 날씨에 아직 공연이 6시간가량 남았지만 아랑곳없었다. 아랍 ‘아미(BTS 팬클럽)’들은 끊임없이 멤버들의 이름을 외쳤다. 잠깐 스타디움 내부에서 공연을 준비하는 오디오테스트 소리만 흘러나와도 ‘까악’ 함성이 터져 나왔다. ‘떼창’ 역시 멈추질 않았다. 그들에겐 취재 차 방문한 국내 언론마저 ‘셀럽’이었다. 단지 BTS와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환영합니다.” “한국에서 왔나요.”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먼저 붙잡고 “인터뷰하고 싶다”고도 했다. 함께 사진을 찍자는 요청도 많았다. 괜한 걱정에 “사진이나 영상이 언론에 나가도 되느냐”고 했더니, 바로 매무새를 가다듬고 포즈를 취했다. 중서부 항만도시 지다(Jiddah)에서 어머니와 동생, 친구들과 공연을 보러온 대학생 셰터 씨는 한국말로 “우리 엄마는 아줌마 아미에요”라 소개하기도. 그는 “케이팝과 한국드라마가 너무 좋아 한국어 공부도 열심”이라며 “듣는 건 꽤 하는데 말하는 건 아직 어렵다”고 수줍어했다. 또 다른 대학생 나즈드 씨는 “BTS는 물론 한국 대중문화가 인기다보니 한국 제품도 관심 많다”며 “한국 화장품은 요즘 사우디 여성에게 최고 인기”라고 귀띔하기도 했다.●한류, 새로운 역사의 한 꼭지로 저녁 무렵 드디어 펼쳐진 방탄소년단 무대는 압도적 열기를 뿜어냈다. BTS에게도 이날 공연은 중동지역에서 처음 가진 단독공연. 첫 곡 ‘Dionysus’로 포문을 연 뒤, 약 3시간에 걸쳐 ‘Not Today’ ‘작은 것들을 위한 시 (Boy With Luv)’ ‘IDOL’ ‘FAKE LOVE’ 등 24곡을 선보였다. 약 3만여 관객들은 BTS 공식 응원봉을 흔들면서 뜨거운 박수와 한국어 떼창으로 화답했다. 멤버들이 아랍어 인사를 전할 때는 스타디움이 무너질 듯 함성이 넘쳐흘렀다. 이날 공연은 이슬람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에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았다. 1987년 개장한 킹파드국제경기장은 주로 축구나 육상 경기가 열리는 남성들의 전유 공간이었다. 지난해 처음 여성의 축구장 입장을 허락한 이곳이, 대다수 여성 관객으로 채워지며 ‘새로운 자유의 색채’로 물든 셈이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열기는 쉽사리 가라앉질 않았다. 아미들은 좀더 BTS를, 한국을 알고 싶어 했다. “리야드에 하루 빨리 한국문화원이 생겼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국내 연세어학당을 다녔던 대학생 후싸 씨는 지인들과 모임을 만들어 한국어공부를 하고 있단다. 그는 “한국 역사나 문화를 배우려는 이가 늘고 있다. 하지만 대학의 관련 수업이나 한국어학원 등이 없어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방탄소년단은 공연 뒤 소속사를 통해 “오랫동안 기다려준 팬들을 위한 축제의 자리다. 믿기지 않는 이 순간을 만들어준 아미에게 감사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멤버들은 “먼 곳에서 큰 사랑과 응원을 주는 걸 잘 알고 있다. 오늘 무대를 잊지 않고 영원히 간직하겠다. 공연을 생중계로 함께 즐겨준 세계 팬들도 감사드린다”고 했다. 방탄소년단은 이달 26, 27, 29일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에서 공연을 개최한다. 지난해 8월부터 세계를 돌며 연 ‘LOVE YOURSELF’ 순회공연의 마지막 무대다. 리야드=이세형특파원 turtle@donga.com임희윤기자 imi@donga.com}

터키가 9일 쿠르드족 거점인 시리아 북부에서 본격적인 지상전을 시작했다. 9, 10일 이틀에만 민간인 8명을 포함해 최소 30명이 숨졌다. 2011년부터 8년간 이어진 시리아 내전이 터키와 쿠르드족의 전면전이라는 새 국면을 맞았다.○ 네 방향으로 시리아 북부 진입 터키 국방부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터키군과 친터키 성향의 시리아반군 시리아국가군(SNA)이 유프라테스강 동쪽에서 지상전을 시작했다. 공습과 포격을 통해 181개의 공격 목표물을 타격했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 등은 터키 군이 네 갈래로 나눠 시리아에 진입했다고 전했다. 지상군 투입에 앞서 공군은 국경 요충지인 탈아브야드, 라스알아인, 까미슐리, 아인이사, 코바니 등을 집중 포격했다고도 덧붙였다. 이번 작전에 투입된 정확한 군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다. 터키 측은 쿠르드족 공격이 지역 안정 및 평화를 위해서라며 ‘평화의 샘’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작전명까지 붙였다. 국방부는 “이번 작전은 유엔 헌장 51조에서 규정한 자위권, 테러 관련 전투에 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의 틀에서 이뤄지고 있다. 시리아의 영토 보전을 존중할 것”이라며 “공격 목표는 테러리스트와 이들의 무기, 차량, 장비 등이며 민간인, 역사적 건물, 사회 기반시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주의하겠다”고도 주장했다. 터키의 주장과 달리 시리아 내전 감시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SOHR)는 “사상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쿠르드족이 주축인 시리아민주군(SDF)도 “민간인 수십 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이 지역에는 민간인 약 5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겁에 질린 주민들이 탈출을 시작하면서 전 도로가 피란 행렬로 가득 찼다. 군인들의 인명 피해도 크다. 로이터에 따르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10일 별다른 설명 없이 “쿠르드 테러분자 109명을 처단했다”고 밝혔다. 반면 SOHR는 SDF 대원 16명이 숨지고 33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터키 군과 SNA 쪽에서도 6명이 숨졌다. 이날 공격으로 SDF가 관리해 온 이슬람국가(IS) 가담자 수용시설도 큰 피해를 입었다. IS 조직원들이 풀려나면 가뜩이나 불안한 치안이 더 나빠질 것이란 우려가 높다. ○ 국제사회 우려 불구 공세 지속 유엔 안보리는 10일 이 사태에 관한 긴급회의를 개최한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도 우려를 표했다. 아랍연맹도 12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긴급 회동을 갖는다. 영국 독일 프랑스 이집트 등도 일제히 공격 중단을 요구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자국 주재 터키대사를 초치했다. 터키는 국제사회의 반발에도 아랑곳 않고 있다. 터키는 시리아 쿠르드족이 독립을 추진하면 8200만 인구의 약 20%를 차지하는 자국 쿠르드족까지 독립 추진에 나설 것을 극도로 우려한다. 쿠르드노동자당(PKK)은 40여 년 전부터 분리독립을 주창해왔다. 터키 정부는 “시리아 북부 쿠르드 민병대 주축인 인민수비대(YPG)는 PKK의 하부 조직”이라고 주장한다. 장기 집권 피로감과 경제난으로 지지율이 예전 같지 않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지율 상승을 위해서라도 강경 태도를 고수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다른 나라가 우리의 군사 작전을 비판하면 360만 명에 달하는 터키 내 시리아 난민을 유럽으로 보내겠다”는 협박성 발언까지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틀 전과 마찬가지로 “쿠르드족에 피해가 생기면 터키 경제를 쓸어버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리아 주둔 미군의 철수 중단 등 실질적 조치를 내놓지 않아 ‘생색내기’라는 비판이 거세다. 최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조차 “철군 결정을 번복하지 않으면 대통령 임기 중 최대 실수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 이윤태 기자}

4일 오후 10시(현지 시간) 이집트 카이로 도심에 있는 ‘아랍 민주화의 성지’ 타흐리르 광장으로 가는 길은 험했다. 카이로에 파견된 각국 외교관과 주재원의 대표적 거주지인 카이로 남쪽 마아디에서 차로 약 30분 걸리는 광장까지 이동하는 동안 기자가 탄 차는 3번이나 검문을 당했다. 도심에 가까워질수록 경찰 검문은 까다로워졌다. 경찰은 차 안을 들여다보며 ‘도심 어디를 가냐’ ‘가려는 목적이 뭐냐’고 물었다. 20, 30대 현지인 남성들만 탄 차는 도로 바깥쪽에 차를 세우게 한 후 탑승자들을 차에서 내리게 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시위 때문이다. 2주 전(지난달 20, 21일)에 타흐리르 광장과 주변에서 6년 만에 수백 명 넘게 모인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으니… 정부에서 엄청 긴장했다.” 기자를 타흐리르 광장으로 태워 준 이집트인 우버 기사는 수차례 “지금 이집트는 나라 전체가 혼란스럽고, 긴장한 상태”라고 강조했다. 그는 “시위 다음 주말인 지난달 27, 28일에는 경찰이 아예 도심 쪽으로 차들이 이동하는 것을 막다시피 했다. 지하철도 도심 주요 역에 정차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어렵게 도착한 타흐리르 광장 주변은 외견상 평소 주말 모습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경찰이 좀 더 많아 보였지만, 식당과 카페는 대부분 영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타흐리르 광장에서 200∼300m 정도 떨어진 골목에는 전투경찰들을 태운 차량들이 목격됐다. 데모 진압용 최루가스차(페퍼포그)도 대기하고 있었다. 일상복에 경찰 조끼를 입고, 무전기를 든 채 돌아다니는 경찰이 쉽게 눈에 띄었다. 도심에서 시위 취재를 하려면 “매우 조심하라”던 이집트인 지인의 충고가 떠올랐다. “평소에도 경찰이 타흐리르 광장에서 사진 찍는 걸 막을 때가 있는 거 알지? 요즘 같은 시기에는 경찰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의심받을 수 있어. 여기는 한국이 아니야.”○ 감시 사회에서 발생한 6년 만의 시위 군인 출신인 압둘팟타흐 시시 대통령은 2013년 쿠데타를 통해 이집트 최초의 민간인 대통령 무함마드 무르시의 민선 정부를 전복시키고 정권을 잡았다. 시시 대통령이 집권한 뒤 이집트에서는 사실상 시위가 사라졌다. 그는 취임 직후부터 계속 비상사태를 유지했고, 법으로도 시위를 제한해 왔다. 타흐리르 광장에서는 2011년 중동에서 벌어진 ‘아랍의 봄’ 시기에 이집트를 30년간 철권 통치했던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을 끌어내린 시위가 일어났다. 2013년에는 무르시 정부를 무너뜨리려는 군부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하지만 아랍 민주화의 성지라는 이곳도 지난 6년간은 조용했다. 실제 이집트에선 시위를 시도하는 것도 어렵다. 경찰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지 이집트 어디에서건 2, 3명이 한 조가 돼 오가는 경찰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많은 이집트인들은 “나라가 가난해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지 못하니 경찰의 눈을 통해 시위 같은 비상 상황을 감시하려는 의도”라고 꼬집는다. 시시 대통령의 핵심 정적인 무슬림형제단과 민주화 세력 등 반대파에 대한 ‘피의 숙청’도 시위를 펼치기 어렵게 만든 요인이다. 말 그대로 공포감 조성 효과가 크다. 국제인권단체들은 시시 대통령 취임 이후 이집트 법원이 무르시 지지자 1200여 명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휴먼라이츠워치(HRW)와 이집트권리와자유위원회(ECRF) 등은 2017년 이집트 당국의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무분별한 체포와 고문 실태를 지적하는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문제는 민생고와 부패 이처럼 정치적으로 억압된 분위기에서 지난달 20일 늦은 밤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수에즈 등 주요 도시에서 반정부 시위가 동시에 벌어졌다는 건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다. 시위대의 주된 구호도 ‘시시는 떠나라’였다. 이를 두고 이집트에선 “얼마나 서민들의 삶이 힘든지를 잘 보여줬다”는 말이 나온다. 민생고가 시위를 발생케 한 핵심 동력이라는 것. 실제로 국민 3명 중 1명이 하루 평균 1달러를 약간 웃도는 돈으로 생활하는 극빈층일 정도로 이집트 경제는 심각한 상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같은 아랍 산유국들과 달리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도 적다. 제조업 기반도 약하다. 관광산업은 2011년 이후 완전히 침체됐다. 여기에 재정 위기까지 겹쳐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2016년부터 올해까지 총 120억 달러(약 14조3500억 원)의 구제금융을 받고 있다. 현지인들은 “희망이 없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특히 20, 30대의 불만은 극에 달해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이집트 청년실업률은 지난해 32.6%를 기록했다. 명문 카이로대 졸업생 중에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이들이 수두룩하다. 카이로대 출신으로 대학원까지 마친 한 구직자는 “이집트 내 일자리가 워낙 적어 걸프 산유국 쪽에 알아보고 있는데, 이 나라들도 과거와 달리 자국민 중심으로 고용하는 상황이라 취업이 어렵다”고 말했다. 대통령과 군부의 부정부패도 국민을 거리로 나오게 만들었다는 평가가 많다. 스페인에서 망명 중인 모하메드 알리의 폭로가 미친 파장이 컸다. 이집트군과 15년간 거래해 온 건설업자인 알리는 시시 대통령과 군부가 국가적 경제난에도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호화 주택을 짓고 있다며 비난하는 내용 등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시위가 지속되기는 힘들어 민생고와 부패는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인 만큼 향후 시위 발생의 동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시위가 지속될 것에는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시시 대통령의 강경 대응이 주된 이유다. 이집트 정부는 지난달 20, 21일 발생한 시위 뒤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대규모 체포 작전을 펼치고 있다. 현지 시민단체들은 2000명 이상 체포된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과 통신 기능도 떨어뜨렸다. 정부에 비판적인 국민들이 SNS에 활발하게 의견을 올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BBC방송과 미들이스트아이(MEE) 같은 비판적인 언론의 인터넷 사이트도 차단됐다. 한 외교 소식통은 “며칠 전 열린 외교 행사 때 ‘인터넷 속도’가 각국 외교관의 주된 화제였다”고 전했다. 시위를 이끌고 있는 강력한 지도자나 단체가 없다는 것도 지속적인 동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무슬림형제단 등 반정부 단체도 아직은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현실 정치에 대한 비관도 크다. 또 다른 소식통은 “현실적으로 시시 대통령 정도로 안정적으로 나라를 이끌 사람을 찾는 건 어렵다는 여론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이라크와 레바논도 시위로 시끌 변수는 있다. 이라크와 레바논에서도 이집트처럼 경제난과 부정부패에 불만을 품은 국민들의 대규모 시위가 최근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1년 아랍의 봄 사태처럼 중동 전체에서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는 상황이 조성될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이달 이라크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면서 1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슬람교 수니파 극단주의를 추종하는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을 거치며 경제 파탄에 이르자 불만을 가진 청년들이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당초 평화롭게 진행됐던 시위는 이라크 당국이 실탄 사격을 가하며 폭력적으로 변했다. ‘중동의 파리’로 불리는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도 지난달 말부터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국가 부채가 860억 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150%를 넘는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GDP 대비 부채비율이다. 레바논 파운드화의 가치도 계속 폭락해 최근 2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일각에선 역시 심각한 경제난 속에 대선을 치르고 있는 튀니지 등에서도 다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해 정국이 불안해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CNN은 최근의 중동 상황을 두고 시위대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1992년 대선 슬로건처럼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를 외친다고 전했다. 민생고가 중동 국가 국민을 거리로 나오게 만들고 있다는 뜻이다. 이세형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6일 시리아 주둔 미군을 철수시키고 터키의 쿠르드족 탄압을 묵인할 뜻을 밝혔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하루 만에 말을 바꿨다. 그는 7, 8일 양일간 트위터에 각각 “터키가 도를 넘는 조치를 취하면 터키 경제를 완전히 파괴하겠다” “우리가 시리아를 떠나는 과정에 있을지 모르지만 쿠르드족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고 썼다. 탄핵 위기 와중에 소속 공화당조차 시리아 철군을 강도 높게 비판하자 이를 의식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터키 언론은 8일 미군이 터키 접경지인 시리아 북부 텔아비야드와 라스알아인에서 철군을 시작했고, 터키군이 조만간 이 지역에 진입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터키는 시리아 쿠르드족이 자국 쿠르드족과 연합해 분리 독립을 추진할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어 중동 전체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 백악관에서 열린 미일 무역협상 기자회견에서도 “터키와 쿠르드 중 어느 쪽의 편도 들지 않겠다”며 “시리아에는 미군이 50명이 있고 그들이 다치거나 죽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에게도 ‘미국인이 다치면 큰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도 이날 “시리아 북부에서 터키의 (군사) 작전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과 마크 밀리 합참의장도 터키 측에 일방적 군사행동의 위험성을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태가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동맹의 가치에 대한 과소평가, 중동에 대한 이해 부족 등을 보여준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철수는 러시아, 이란, 시리아 정권만 이롭게 한다. 이슬람국가(IS) 및 다른 테러 집단의 위험도도 높인다”고 지적했다. 대통령 측근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조차 “근시안적이고 무책임한 결정”이라고 혹평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쿠르드족이 중심인 시리아 반군 시리아민주군(SDF)은 지금도 약 2만 명의 외국인 IS 가담자를 포로로 관리하고 있다. 미국이 쿠르드족을 버리면 IS 가담자들의 관리도 어려워진다. 미국과 유럽은 IS 가담자들이 풀려나면 본국으로 돌아와 테러를 벌일 가능성을 우려해 왔다. 쿠르드족은 2013년부터 IS 격퇴를 위해 미군과 함께 싸워왔다. IS와의 전쟁에서 숨진 사람만 1만여 명. 이들은 필요할 땐 부리다 효용 가치가 떨어지니 내팽개치는 트럼프식 ‘토사구팽’에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SDF는 7일 “미국은 터키의 군사작전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여러 번 약속했다. 전일 백악관 발표는 SDF의 등에 비수를 꽂는 행위이자 그간 이곳에 구축한 평화와 안보를 모두 파괴할 것”이라고 규탄했다. 가디언은 이미 국경 지역 쿠르드족이 탈출을 시작했다고 전했다.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시리아에 주둔하는 미군을 철수시키고 터키의 쿠르드족 탄압을 묵인할 뜻을 밝혔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거센 비판에 하루 만에 말을 바꿨다. 탄핵 위기 와중에 소속 공화당에서도 시리아 철군을 강도 높게 비판하자 이를 의식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 트위터에 “터키가 도를 넘는 조치를 취하면 터키 경제를 완전히 파괴하고 말살시키겠다. 나는 전에도 그랬다”고 썼다. 그는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미일 무역협정 서명식 기자회견에서도 “터키와 쿠르드 중 어느 쪽의 편도 들지 않겠다”며 “시리아에는 미군이 50명이 있고 그들이 다치거나 죽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에게도 ‘미국인이 다치면 큰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는 이날 대변인 성명을 통해 “시리아 북부에서 터키의 (군사) 작전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과 마크 밀리 합참의장도 터키 측에 일방적 군사 행동의 위험성을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태가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동맹의 가치에 대한 과소평가, 중동에 대한 이해 부족 등을 보여준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시리아에서의 황급한 철수는 러시아, 이란, 시리아 정권만 이롭게 한다. 이슬람국가(IS) 및 다른 테러 집단의 위험도 높인다”고 지적했다. 밋 롬니 상원의원도 “쿠르드 동맹을 버리는 일은 배신”이라고 성토했다. 대통령 측근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조차 “근시안적이고 무책임한 결정”이라고 혹평했다.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 등도 가세했다. 모두 공화당 소속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일했던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은 아예 “대통령의 외교정책은 난장판(shambles)”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등 민주당 인사,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등의 주요 인사들도 잇따라 우려를 표시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쿠르드족이 중심인 시리아 반군 시리아민주군(SDF)은 지금도 약 2만 명의 외국인 IS 가담자들을 포로로 관리하고 있다. 미국이 쿠르드족을 버리면 IS 가담자들의 관리도 어려워진다. 미국과 유럽은 IS 가담자들이 풀려나면 본국으로 돌아와 테러 행위를 벌일 가능성을 우려해왔다. 트럼프 행정부의 ‘주적’ 이란도 시리아에서 군사기지 건설을 비롯해 다양한 군사, 정치활동을 펼치고 있다. 따라서 시리아에서 갑자기 물러나면 이란에 대한 견제도 어려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쿠르드족은 미국을 강력 규탄했다. SDF는 이날 “미국은 이 지역에서 터키의 군사작전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여러 번 약속했다. 전일 백악관 발표는 SDF의 등에 비수를 꽂는 행위이자 그간 이곳에 구축한 평화와 안보를 모두 파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가디언은 이미 국경 지역 쿠르드족이 탈출을 시작했다고 시작됐다고도 전했다.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지난해 10월 2일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관에서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당시 60세·사진)가 살해됐다. 그가 미국 워싱턴포스트(WP) 등 해외 유명 언론에 활발히 글을 실은 저명한 언론인이었고, 살해 장소가 사우디 국내가 아닌 타국이라는 점에서 충격이 컸다. 서구 각국에서는 “21세기에 이런 식의 보복 살인이 웬 말이냐” “사우디가 겉으로만 개혁·개방을 강조하면서 부족국가 수준의 전근대성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살해 배후로 지목받은 사우디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34)가 겉으로는 ‘개혁 군주’ 이미지를 내세우지만 정적(政敵) 탄압에만 골몰하는 ‘냉혹한 독재자’란 비난이 거셌다. 사망 1년이 지났지만 그의 죽음은 여전히 많은 의문을 남기고 있다.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도 ‘사우디 정부 관계자들이 약혼녀 하티즈 젠기즈와의 결혼에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 이스탄불 총영사관을 찾은 카슈끄지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했다’는 것뿐이다. 사우디 당국은 이 사실조차 처음에는 완강히 부인했다. 터키 정부의 집요한 압박과 전 세계적 비난 여론이 커지자 마지못해 살해 사실만 인정했다. 무함마드 왕세자의 개입 여부 및 살해 지시 상황, 살해 방법, 시신 처리 등에 관해서는 아직도 설만 분분하다. 왕세자가 어떤 형태로든 사건에 개입했을 것이란 추측이 많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결정적 증거는 드러나지 않았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지난달 29일 방송된 미 CBS ‘60분’과의 인터뷰에서 “사우디 정치 지도자로서 책임은 인정한다. 다만 (살해) 지시는 절대 안 내렸다”고 주장했다. 유족들이 무함마드 왕세자와 사우디 정부를 비판하지 않는 것도 특이한 점으로 꼽힌다. CNN은 4월 정부가 네 명의 자녀에게 총 400만 달러(약 48억 원) 상당의 주택을 제공했고, 매월 꾸준한 보상금도 지급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돈으로 유족 반발을 무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각에선 유부남이었던 카슈끄지가 학회 행사에서 만난 24세 연하 약혼녀 젠기즈와 사랑에 빠졌다는 점도 석연치 않다고 보고 있다. 그가 젠기즈를 만나지 않았다면 이혼을 결심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위험 지대’인 사우디 공관에 들어갈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우디 정부가 카슈끄지를 공관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이른바 ‘미인계’를 쓴 것 아니냐는 의혹도 여전히 남아 있다. 시신의 향방도 오리무중이다. 시신을 토막 낸 후 화학약품을 이용해 완전히 다 녹였다는 설, 총영사관 관저 정원의 불가마에서 태웠다는 설 등이 난무한다. 카슈끄지가 살해당하기 오래전부터 사우디 당국으로부터 위협을 받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살해 약 한 달 전 그를 만났다는 중동의 한 대학교수는 기자에게 “당시 카슈끄지가 ‘이제 과거처럼 활발한 정부 비판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갈수록 부담이 커진다’고 했다. 이미 상당한 정도의 살해 위협에 시달렸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여전히 사건은 미궁에 빠져 있다.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한국에서도 ‘미래투자이니셔티브(Future Investment Initiative·FII)’ 행사가 유명한가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올해 FII에 참석할까요?”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의 리츠칼턴 호텔에서 열린 ‘사우디 관광산업 소개 및 관련 투자 설명회’. 이곳에서 만난 한 정부 관계자는 기자가 한국인임을 알고 삼성전자가 이달 29∼31일에 열리는 제3회 FII에 참가하는지부터 물었다. “잘 모르겠다”고 답하자 그는 “이 부회장이 꼭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막의 다보스 포럼’으로 불리는 FII는 2017년부터 매년 10월 말 사우디 정부가 개최하는 대형 행사다.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34)가 주도하고 있다. 첫 행사와 지난해 두 번째 행사 모두 서구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사우디 정부는 2017년 첫 행사에서 홍해 인근 사막 및 산악 지대에 서울의 약 44배(2만6500km²)인 첨단 미래형 도시 ‘네옴(NEOM)’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말 행사를 앞두고는 대형 악재가 터졌다. 같은 달 2일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살해됐다. 무함마드 왕세자 배후설이 제기된 이 사건의 잔혹함에 전 세계가 충격을 금치 못했다. 미국 구글과 차량공유업체 우버, 미디어회사 바이아컴 최고경영자(CEO), 로스앤젤레스타임스 소유주 등 참가를 약속했던 세계적 유명인사들도 줄줄이 등을 돌렸다. 결국 반쪽짜리 행사로 전락했다. 올해 FII는 지난해와 달리 성공으로 이끌겠다는 사우디 정부의 의지가 강하다. 사우디 정부가 기업공개(IPO) 계획을 밝힌 국영 정유사 아람코의 상장 작업에 참여하기 위해 미국 JP모건, 영국 HSBC, 러시아 국부펀드 등 각국 금융업체가 앞다퉈 몰려들고 있다.○ “사막의 다보스포럼에 복귀한 월스트리트” “월스트리트가 카슈끄지 살해 1년 만에 ‘사막의 다보스 포럼’으로 돌아왔다.” 워싱턴포스트(WP)는 올해 FII에 미 월가의 유명 금융회사 및 정·관계 고위 인사가 대거 참석할 것이라고 최근 보도했다. 카슈끄지 살해 배후에 사우디 정부와 무함마드 왕세자가 있음을 비난하기 위해 대대적인 참석 거부가 벌어졌던 지난해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라고 전했다. 전체 참석자 명단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참석을 약속한 일부 회사들이 소개됐다. 미 최대은행 JP모건, 씨티그룹, 블랙록 자산운용, 영국 HSBC 같은 세계적 금융회사들이 참가를 확정한 상태다. HSBC 최고경영자(CEO)인 노엘 퀸, 블랙록 CEO 래리 핑크가 행사장을 찾는다. 러시아 국부펀드, 중국, 인도, 아랍에미리트(UAE), 일부 유럽 국가의 고위 인사들도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WP는 “150명 이상의 각국 대기업 임원이 참석하며 이 중 40명 이상이 미국 기업 관계자”라고 전했다. 미 정계 고위 인사 가운데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의 참석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의 중동정책을 관장하고 있는 쿠슈너 고문은 무함마드 왕세자와 친분이 두텁다. 둘은 평소에도 자주 문자로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로 알려졌다. 불과 1년 만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크리스천 코츠 울릭슨 미 라이스대 베이커공공정책연구소 연구원은 “사우디는 여전히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이며 막대한 부를 지니고 있다. 많은 투자자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진단했다.○ ‘아람코 잡기’의 절호 기회 중동 전문가들은 이번 FII 핵심 의제로 아람코 IPO를 거론한다. 세계 최대 비상장회사인 아람코는 지난해 매출 3559억 달러(약 429조5713억 원), 순이익 1111억 달러(약 134조977억 원)를 자랑하는 초대형 우량 기업이다. 사우디 측은 아람코의 기업 가치를 2조 달러(약 2414조 원), 각국 금융업계 관계자들은 이보다는 5000억 달러(약 603조5000억 원)가 적은 1조5000억 달러(약 1810조5000억 원) 정도로 보고 있다. 사우디 정부는 지난해 정부 내 이견, 카슈끄지 살해 후폭풍 등으로 잠시 중단했던 아람코 상장 작업을 최근 개시했다. 지난달에는 무함마드 왕세자의 최측근 겸 사우디국부펀드(PIF)를 이끌어왔던 금융 전문가 야시르 루마이얀을 새 아람코 회장으로 임명했다. 루마이얀은 과거 세계 에너지 회사에 주로 투자하는 등 보수적 행보를 이어왔던 PIF의 체질 변화를 이끌어낸 인물이다. 그의 재임 기간에 PIF는 미 차량공유업체 우버, 전기차 업체 테슬라, 일본 소프트뱅크 등 해외 유명 정보기술(IT) 기업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 현지에선 무함마드 왕세자가 칼리드 팔리흐 전 아람코 회장 체제에서 IPO 속도가 지지부진한 것에 불만을 품고 인사를 단행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아람코는 1일 웹사이트를 통해 “내년 회계연도에 주주들에게 총 750억 달러(약 90조 원)를 배당하겠다”며 ‘파격 배당’을 약속했다. 또 “내년부터 2024년까지 총배당금이 750억 달러 이하로 떨어지면 지분 100%를 가지고 있는 사우디 정부가 아니라 주주들이 배당금 지급 우선순위를 차지할 것”이라고도 했다. 하루 전에는 “생산량이 지난달 14일 드론 피격 전 수준을 회복했다”고도 밝혔다. 상장을 앞두고 각종 우려를 불식시켜 투자자들을 유치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현지 소식통은 4일 “사우디 정·재계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고위 인사들과 접촉하는 데 FII만큼 좋은 기회도 없을 것”이라며 “각국 금융사들의 FII에 대한 관심은 행사가 임박할수록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PIF 투자자금 유치, 사우디가 리야드에 조성하고 있는 금융 중심 상업지구 ‘킹압둘라 금융지구(KAFD)’ 건설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아마존, 구글 등 IT 기업들은 냉담 카슈끄지 사태의 ‘후폭풍’이 완전히 지나간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리콘밸리의 유명 IT 기업들은 여전히 이 행사에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올해에도 구글과 우버의 참석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중·장기 경제사회 발전 전략인 ‘비전 2030’을 통해 IT, 신재생에너지, 인공지능(AI) 같은 첨단 과학기술 기반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강조해 왔다. 이를 감안하면 세계적 IT 기업의 FII 외면은 사우디로선 가장 뼈아픈 대목이다. 미 워싱턴의 싱크탱크 아랍걸프국가연구소의 로버트 모길니키 연구원은 “사우디가 경제개혁의 핵심을 IT 산업 발전에 놓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IT 대기업의 불참은 FII 행사 취지를 약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카슈끄지는 사망 전 WP 중동 문제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WP 소유주 겸 세계 최고 부호인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창업주는 직원을 죽인 사우디에 극도의 반감을 보이고 있다. 그는 2일 카슈끄지 살해 1주년을 맞아 살해 장소인 터키 이스탄불을 찾았다. 사우디 총영사관 인근에서 열린 1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고인의 약혼녀 하티제 젠기즈도 위로했다. WP는 사우디와 함께 100조 원 규모의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를 조성하는 등 다양한 협력을 펼쳐온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참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손 회장은 지난해 FII 기간에 사우디에 머물렀지만 이 행사에는 불참했다. 사우디는 최근 한국 미국 독일 일본 등 49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온라인 관광비자 발급을 허가하는 관광개방 정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세계적 호텔·관광 및 엔터테인먼트 기업들 역시 사우디의 빈약한 관광 인프라 등을 이유로 FII 참가에 소극적이다.○ 부적절한 행사 장소 선정 사우디 측의 부적절한 장소 선정도 FII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키운다고 지적한다. 행사가 열리는 리츠칼턴 호텔(인근 킹압둘아지즈 국제콘퍼런스센터도 행사장임)은 무함마드 왕세자가 2017년 11월 사우디 정·재계 고위 인사 수십 명을 감금했던 장소다. 왕실 최고 부자인 알 왈리드 빈 탈랄 왕자(64) 등은 이 호텔에 무려 3개월간 억류됐다. 재산의 상당 부분을 사우디 정부에 헌납하고, 왕실에 충성 서약까지 한 뒤에야 풀려났다. 사우디 정부는 이들 인사가 부정부패에 연루됐기에 억류했다고 주장했다. 서구에서는 이를 “재산 강탈 및 정적(政敵) 제거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이후 중동에서 리츠칼턴 호텔의 이미지는 급속도로 추락했다. 일부 중동 국가에서는 자국에 초정하는 해외 인사들이 감옥을 연상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이들이 묵는 호텔에서 암묵적으로 리츠칼턴 호텔을 제외했을 정도다. 최근 사우디의 관광개방 정책 취재를 위해 리츠칼턴 호텔을 찾았던 외신 기자 중 상당수는 “FII가 리츠칼턴에서 열린다는 사실은 국가 이미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반응했다. 한 외신 기자는 “리츠칼턴 호텔에서 FII가 열리면 누구나 2017년 11월의 고위 인사 감금 및 카슈끄지 사태를 떠올리지 않겠느냐”며 “FII의 핵심 목표가 사우디라는 나라와 무함마드 왕세자라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만드는 데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면 이곳을 행사장으로 정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꼬집었다.리야드·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연정 구성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2일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베니 간츠 청백당 대표는 이날 오후 예정됐던 네타냐후 총리와의 만남을 취소했다. 청백당은 “총리가 이끄는 리쿠드당과의 권력 분점 합의에 관심이 없다. 만남을 해야 할 기본 조건이 전혀 갖춰지지 않았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리쿠드당은 지난달 29일에도 청백당과의 연정을 위한 대화에 실패했다. 이에 네타냐후 총리가 “간츠 대표를 직접 만나겠다”고 밝혔지만 역시 무위에 그쳤다. 간츠 대표는 총선 전부터 네타냐후 총리의 부패 혐의를 비판하며 리쿠드당과의 연정에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 다급해진 네타냐후 총리는 3일 이번 총선에서 8석을 얻어 ‘킹메이커’로 꼽히는 극우 ‘이스라엘 베이테누당’의 아비그도르 리베에르만 대표와도 만난다. 하지만 둘의 사이가 워낙 나빠 연정 구성이 가능할지 회의적이라는 시각이 많다. 리에베르만 대표는 네타냐후 내각에서 한때 국방장관을 지냈지만 정부가 팔레스타인 강경파 하마스와의 대화를 추진하자 반발해 사표를 던졌다 그는 4월 총선에서도 리쿠드당과 연정을 논의했지만 군소정당 합류 여부 및 초정통파 유대교 신자의 군복무 등을 놓고 네타냐후 총리와 큰 이견을 보였다. 당시 베이테누당이 연정 합류를 거부해 네타냐후 총리는 전체 120석의 과반인 61석에 단 1석을 채우지 못했다. 결국 지난달 19일 총선이 다시 치러졌다. 9월 총선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리쿠드당은 31석을 얻었다. 1위 청백당(32석)보다 1석이 적다. 그러나 레우벤 리블린 대통령으로부터 연정 우선권을 부여받아 현재 동분서주하고 있다. 연정 구성권을 얻은 정당은 42일 안에 연정을 마련해야 한다. 네타냐후 총리가 기간 안에 연정 구성에 실패하면 간츠 청백당 대표가 자격을 얻는다.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지난달 29일 사우디아라비아 제2도시 지다와 이슬람교 성지 메카 및 메디나를 잇는 ‘하라마인’ 고속철도 역사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11명이 부상을 입었고 정확한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사우디 영문매체 아랍뉴스 등에 따르면 이번 불은 지다 역에서 낮 12시 35분경 발생했다. 역사 지붕 부분을 중심으로 검은 연기가 높이 치솟았고, 건물 주변도 연기로 온통 뒤덮였다. 시 당국은 헬리콥터를 동원해 공중 진화에 나섰지만 불길은 12시간 만에야 겨우 잡혔다. 총길이 450km의 하라마인은 중동 최초의 고속철이다. 2009년 3월부터 약 73억 달러(약 8조8000억 원)를 투입해 지난해 9월 개통했다. 사우디 내에서는 개혁·개방 및 현대화의 상징으로도 여겨진다. 전 세계 이슬람교 신자들에게는 성지 순례(하지)의 편의성을 높인다는 이유로 호평을 받았다. 이슬람 최대 종교행사인 하지를 위해 매년 200만 명이 지다 공항을 통해 입국한다. 이 대규모 인원이 지다에서 메카 및 메디나로 이동할 때마다 대중교통 부족으로 도시 전체가 극심한 혼잡을 겪었다. 사우디는 이번 화재를 국가 재난으로 여기고 있다. 지난달 14일 국영 석유사 아람코의 석유시설 피격에 이어 15일 만에 또 국가 기간시설이 크게 훼손됐기 때문이다. 특히 이틀 전 사우디가 전 세계 49개국을 대상으로 온라인 관광 비자 발급 등 대대적인 관광 개방 정책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도 상당한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7일 사우디 관광당국은 “2030년까지 연간 약 1억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겠다”고 밝혔다.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현재 세계에선 영국을 포함해 스웨덴, 카타르, 부탄, 태국, 네덜란드, 덴마크 등 29개국이 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 모두 “세상이 달라진 21세기에도 왕실은 존재 가치가 있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다. 가장 파격적인 행보를 드러낸 곳은 스웨덴이다. 스웨덴 왕실은 호화롭고 권위적인 모습 대신 이웃 같은 이미지를 각인시키려고 노력한다. 아직도 아들에게만 왕위를 물려주는 많은 나라 왕실과 달리 40년 전인 1979년 이미 ‘성 중립적’ 왕위 계승을 천명했다. 1남 2녀를 둔 칼 구스타프 16세 국왕의 후계자는 장녀 빅토리아(42)다. 국왕의 세 자녀는 모두 평민과 결혼했다. 빅토리아 왕세녀는 솔직한 언행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20대 때 자신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아 우울증과 섭식장애를 앓았다고 고백했다. 헬스 트레이너인 다니엘 베스틀링(46)과의 결혼도 화제를 모았다. 둘은 2012년 첫딸 에스텔 공주를 낳은 후 6개월씩 번갈아가며 육아휴직을 썼다. 일각에서는 계급제에 대한 대중의 반발과 이질감을 누그러뜨리려 일부러 21세기 왕실 구성원들이 평민과 결혼하고 있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미국인, 이혼녀, 흑백 혼혈, 연상인 메건 마클(38)과 결혼한 영국의 해리 왕손(35)도 이에 해당한다. 중동 왕실은 돈으로 국민 불만을 잠재운다. 세계 최대 천연가스 수출국인 카타르는 지난해 구매력평가(PPP)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약 12만8000달러(약 1억5300만 원·IMF)로 세계 1위다.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국왕(39)의 부친인 하마드 전 국왕(67)은 천연가스 유전을 본격 개발하고 의료, 교육, 예술, 스포츠 등 산업 다각화에 나섰다. 과거엔 진주 채취가 고작이던 가난한 어업국을 세계 최고 부국(富國)으로 만들었다. 카타르 인구 약 260만 명 중 카타르 국적을 가진 소위 ‘카타리’는 30만 명에 불과하다. 이들은 국가로부터 무상 의료 및 교육을 제공받고 각종 보조금 혜택도 누린다. 특히 카타르에서 사업을 하는 외국 기업이나 개인은 반드시 카타리를 일종의 사외이사인 ‘스폰서’로 고용해야 한다. 일도 안 하면서 매년 자문료 명목으로 적게는 수백만 원, 많게는 억대의 돈을 받는다. 일각에서는 카타리 1인의 연 수입이 최소 20만 달러(약 2억4000만 원)가 넘을 것으로 추정한다. 빈둥빈둥 놀아도 생계에 지장이 없는 구조다. 힘들고 고된 육체노동 업무는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필리핀 등에서 온 230만 명의 이민자가 대신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등 걸프만 수니파 왕정국의 상황도 비슷하다. 2006년 26세에 왕위에 오른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 부탄 국왕(39)은 스스로 절대군주제를 없앴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공부한 그는 대관식 때 부탄을 입헌군주제 국가로 바꾸겠다고 공언했고 2008년 총선 실시로 권력을 총리에게 넘겼다. 왕족끼리 결혼하던 관례를 깨고 2011년 평민 제트순 페마(29)와 결혼했다. 페마 왕비는 국민을 직접 만나고 싶다는 이유로 외국 신혼여행을 포기했다. 부부는 4일간 부탄을 도보로 누볐다. 두 사람은 이후에도 소박한 생활 태도로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다. 최지선 aurinko@donga.com /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70·사진)가 차기 총리 후보로 다시 지명돼 5선 연임 기회를 잡았다.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이 25일 네타냐후 총리에게 연정 우선권을 주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로서 역대 이스라엘 총리 중 가장 긴 13년 6개월 간 재임한 네타냐후 총리는 자신이 세운 총리 활동 기간 기록을 경신해 나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이날 뉴욕타임스(NYT)와 예루살렘포스트 등에 따르면 17일 치러진 이스라엘 총선 최종 개표 결과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리쿠드당은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 120석 중 32석을 확보해 청백당(33석)에 제1당 자리를 빼앗겼다. 그러나 연정 구성 상황에서 리쿠드당이 중심이 된 우파 진영이 55석으로 청백당 주도 중도 진영(54석)을 앞섬에 따라 네타냐후 총리는 연정 우선권을 부여받을 수 있었다. 네타냐후 총리는 42일 안에 과반 이상인 61석을 확보해야 한다. 가까스로 기회를 잡았지만 네타냐후 총리의 연임에는 큰 어려움이 따를 전망이다. 일단 이번 총선에서 8석을 확보해 ‘킹메이커’가 된 극우정당 ‘이스라엘 베이테누당’의 아비그도르 리베에르만 대표는 네타냐후 총리와 간츠 대표 중 누구도 지지하지 않는 상황. 이 당은 올 4월 총선에서도 초정통파 유대교인들의 군복무 면제를 반대하며 리쿠드당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네타냐후 총리는 1석이 부족해 연정을 못 꾸렸다. 청백당과의 대연정도 간츠 대표가 “검찰 기소 위기를 맞이한 부패 지도자와 연정할 수 없다”고 반대하고 있어 쉽지 않다. 네타냐후 총리는 최근 총리직을 번갈아 맡는 조건으로 청백당에 대연정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일각에선 벌써부터 네타냐후 총리가 결국 연정에 실패하고 간츠 대표에게 기회가 주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만약 네타냐후 총리가 연정에 성공할 경우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시설 피격과 미국-이란 갈등으로 인한 호르무즈해협의 불안 등으로 혼란스러운 중동정세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네타냐후 총리가 자신의 트레이드로마크로 여겨온 팔레스타인과 이란에 대한 초강경 정책을 계속 이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총선 직전에도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한 뒤 강제로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유대인 정착촌을 이스라엘 영토로 편입하겠다고 밝혀 국제적인 논란을 키웠다. 친이란 성향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이라크 민병대를 대상으로 한 무인기(드론) 공격도 감행했다. 특히 친분이 깊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사위이며 유대인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을 이용해 더욱 강경한 대이란 정책 마련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많다. 카이로=이세형특파원 turtle@donga.com}

21일(현지 시간) 오후 1시 사우디아라비아의 제2도시인 지다의 킹압둘아지즈 국제공항.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비전 2030’이란 문구가 곳곳에서 보였다. 공항 실내에는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사진과 함께 비전 2030 문구를 담은 선전물들이 붙어 있었다. 입국 심사, 보안 검사, 안내를 담당하는 공항 직원들은 가슴에 비전 2030 배지를 달고 있었다. 공항 환경미화원 중 일부는 비전 2030 문구가 적힌 모자를 쓰고 있었다. 비전 2030은 ‘미스터 에브리싱’으로 불리는 무함마드 왕세자가 직접 기획해 2016년에 발표한 중·장기 경제·사회 발전 전략이다. 석유 의존도 줄이기와 관광산업 육성 같은 다양한 개혁·개방 정책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사우디를 현대적이고 국제적인 국가로 변화시키겠다는 게 비전 2030의 목표다.○ 본격적인 사우디 관광 시대 개막 “사우디는 진짜 달라지고 있다. 관광산업을 살펴보면 최근 수년간의 변화가 지난 수십 년 동안 나타난 변화보다 훨씬 크다는 걸 잘 알 수 있다.” 지다에서 관광 사업을 하며 대학 관광학과의 겸임교수로도 활동 중인 사미르 코모사니 씨는 비전 2030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목소리를 높였다. 사우디의 관광산업은 경천동지할 수준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27일 발표 예정인 50여 개국 국민들에 대한 온라인 관광비자 발급 정책은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무슬림의 성지 순례(메카와 메디나 방문)를 위한 비자 외에는 사실상 관광비자가 없었던 나라였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사우디 역사상 최초로 관광비자를 도입한 것이다. 지금까지 사우디는 업무용 혹은 가족방문용 비자만 외국인들에게 제한적으로 발급해 왔다. 코모사니 씨는 “외국인의 자유로운 방문을 허용하는 것만큼 큰 개방도 없지 않으냐”며 “사우디 사회가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사우디는 이 같은 관광 문호 개방을 통해 2030년 연간 약 1억 명의 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이다. 지난해 프랑스를 찾은 관광객(약 9000만 명)을 웃도는 목표를 세운 것. 현재는 성지 순례자 약 1200만 명을 중심으로 총 1600만 명 정도가 매년 사우디를 찾고 있다. 사우디 정부와 관광업계는 한국 미국 영국 일본 중국 등 11개국을 관광객 유치 중점 국가로 선정해 더욱 적극적으로 관련 마케팅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이번 관광비자 정식 도입을 앞두고 사우디가 온라인에서 펼친 마케팅도 눈길을 끌었다. 구체적인 설명 없이 홍해의 파란색 바다 위에 떠 있는 군도(群島) 사진에 ‘여기는 몰디브가 아닙니다(This is not the Maldives)’란 메시지를 담은 홍보물을 퍼뜨렸는데 적잖은 화제가 됐다.○ 관광객 유치 최전선에 있는 공항의 변신 사우디 관광산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변화가 가장 잘 드러난 곳으로 공항이 꼽힌다. 외국인 관광객이 처음 사우디를 경험하는 곳인 만큼 최대한 좋은 이미지를 주는 방식으로 공항 환경을 바꾸겠다는 방침이다. 킹압둘아지즈 국제공항은 입국심사 담당 공무원에 대한 친절도 평가를 1년 반 전부터 시작했다. 입국심사 과정에서 담당자가 얼마나 친절했는지를 평가하는 전자기기가 심사대 옆에 놓여 있어 △웃는 얼굴 △무표정한 얼굴 △찡그린 얼굴 모양의 버튼 중 하나를 누를 수 있다. 사우디 안팎에선 이 나라 국제공항의 입국심사가 워낙 오래 걸리고 공무원들도 불친절하다는 평가가 많은 것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 많다. 공항 관계자는 “비전 2030에서 관광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공항도 바뀌기 시작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솔직히 이런 제도가 도입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지로 선정된 고대 유적지 ‘마다인 살레’와 독특한 사막의 자연 풍광을 갖추고 있는 사우디 북서부 도시 알울라 공항은 방문객이 도착할 때마다 공항 전체가 시끌벅적해진다. 방문객들이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건물로 들어오면 전통 음악 연주를 중심으로 한 환영 공연과 함께 기념품, 음료수, 초콜릿 등을 나눠 주는 이벤트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기자가 알울라를 방문한 24일은 국경일(23일) 바로 다음 날이라 더욱 화려한 환영 행사가 열렸다. 전통 의상을 입은 어린이들도 나와서 방문객을 맞았다. 현지 주민 투르키 씨는 “아랍의 전통적인 환대 문화를 보여주고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시도”라며 “온 도시가 관광산업 키우기에 공을 들이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빠르게 궤도에 올릴 수 있는 신(新)산업 사우디가 관광산업에 특히 힘을 쏟는 데는 무함마드 왕세자가 비전 2030을 통해 특히 강조하는 △산업 다각화 △국가 브랜드 향상 △일자리 창출 등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최적의 분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기술(IT)과 신재생에너지같이 사우디가 국가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는 비(非)석유 분야의 첨단 산업을 육성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자리 잡고 있다. 사우디 현지 소식통은 “IT, 신재생에너지, 바이오 같은 분야에 아무리 파격적인 투자를 한다고 해도 쉽게 결과가 나오겠느냐”며 “하지만 관광산업의 경우 성지 순례를 기본으로 고대 유적지, 홍해와 사막의 뛰어난 자연 경관, 상업시설이 풍부한 대도시 등 성공 요인을 모두 갖추고 있어 조금만 투자해도 곧바로 궤도에 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석유와 공공부문 외에 젊은층을 위한 일자리가 부족한 것도 사우디가 관광산업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사우디 관광·국가유적위원회(SCTH)는 2030년까지 100만 개 정도의 새로운 일자리가 관광산업 활성화로 창출될 것을 기대한다. 현재 국내총생산(GDP)에서 3%를 차지하는 관광산업이 2030년에는 10%까지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관광산업에 대한 젊은층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대학 관광 관련 학과에는 해마다 지원자가 늘어나고 있다. 사우디 명문대 중 하나인 킹압둘아지즈대는 이런 기류 속에서 관광학과를 관광대학으로 확대·개편했다. 사우디 여성으로는 네 번째로 정식 관광 가이드가 된 마샬리 씨는 “학생들에게 점점 더 매력적인 직업으로 인정받고 있다”며 “성인 중에는 다른 업종에서 일하다 관광업으로 옮기려는 사람이 꽤 많다”고 말했다. 고교 영어 교사로 활동하다 관광 가이드로 전직한 이브라힘 씨는 사우디 정부의 관광 인력에 대한 투자를 큰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가이드들에게 수개월간 미국과 유럽의 관광산업 강국에서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며 “알울라 지역의 경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식으로 교육 과정을 밟은 관광 가이드가 10여 명이었지만, 지금은 30여 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국가 정세 불안정이 최대 과제 관광산업 대국을 목표로 육성에 나섰지만 기대 못지않게 우려도 크다. 최근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석유 생산시설이 공격을 받은 것처럼 주변국과의 갈등이 발생하면 갑작스럽게 국가 정세가 불안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강한 보수 이슬람교 이미지도 탈피해야 할 단점이다. 지금도 사우디는 외국인 여성들도 아바야(목 아래 몸 전체를 가리는 검은 천)를 착용하게 한다.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오만처럼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를 보이는 인근 나라들과의 경쟁이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이 나라들은 사우디가 금기시하는 음주도 허용한다. 특히 UAE와 카타르는 각각 ‘엑스포 2020’과 ‘2022년 월드컵’을 유치해 관광지로서의 명성을 높이고 있다. 일각에선 관광비자를 받은 외국인들이 사우디 현지에서 물의를 일으킬 경우 갑작스럽게 정책이 바뀔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이미 관광산업이 궤도에 오른 나라들과 달리 외국인과 접촉이 적었던 만큼 관광객의 약간의 일탈로도 사회 분위기가 급격히 냉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전체적인 관광산업이 성공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라며 “사우디 정부가 얼마나 인내심을 갖고 안정적으로 정책을 운용하느냐가 향후 이 나라의 관광산업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다·알울라·리야드에서 이세형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시설 피격 이후 미국과 이란의 긴장이 높아진 가운데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사진)이 23일부터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평화를 위한 협력 방안을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22일 이란 영문 테헤란타임스에 따르면 로하니 대통령은 이날 테헤란에서 열린 ‘이란-이라크전 39주년 기념 군 열병식’에 참석해 “올해 유엔 총회에서 ‘희망의 동맹’이란 슬로건이 담긴 ‘호르무즈 평화 구상’을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르무즈 평화 구상은 미국이 이란의 군사적 위협을 막는다는 이유로 동맹국과 함께 ‘호르무즈 호위 연합’으로 불리는 군사 동맹체를 만드는 것에 대응하려는 목적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로하니 대통령은 “외국 군대(사실상 미군을 의미)의 주둔은 항해와 석유 유통과 관련된 안보에 위험하다”며 “우리가 가려는 길은 지역 국가들과 통합 및 협력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들(미국)이 진정으로 지역의 안전을 도모한다면 전투기와 폭탄 같은 위험한 무기를 가져오지 말아야 한다”며 “그들은 이 지역에서 멀리 떨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로하니 대통령의 호르무즈 평화 구상 제안과 관련해 “들어보겠다. 나는 항상 열려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14일 사우디아라비아의 핵심 석유시설 공격을 감행한 대상으로 이란을 꼽고 있다. 또 20일에는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에 미사일 방공망 강화를 위해 수백 명의 미군을 추가 파병하기로 했다. 최근 미국과 사우디는 이란이 공격의 배후라는 증거를 계속 공개하고 있다. 무기 전문가들은 사우디 아브까이끄와 쿠라이스 석유시설 등 피격 현장에서 회수한 위성항법시스템(GPS)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고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2일 보도했다. GPS 자료가 복원된다면 공격에 사용된 무기의 출처와 비행경로 등을 규명하는 스모킹 건(범죄를 입증하는 결정적 단서)이 될 가능성이 있다. WSJ는 또 피해를 입은 시설들이 이전과 같은 정상 수준으로 복귀하는 데까지 최대 8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번 공격의 여파로 사우디에서는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의 6%에 달하는 570만 배럴의 원유 생산이 감소했다. 한편 이번 드론 공격을 자신들의 소행이라 주장한 예멘 후티 반군의 일부 지도자들은 이란이 추가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이 이란을 후티 반군의 배후로 지목하는 가운데 나온 것으로,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란과 후티 반군 사이에 금이 갔다는 신호라고 WSJ는 분석했다.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사진)이 23일부터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평화를 위한 협력 방안을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22일 이란 영문매체 테헤란타임스에 따르면 로하니 대통령은 이날 테헤란에서 열린 ‘이란-이라크전 39주년 기념 군 열병식’에 참석해 “올해 유엔 총회에서 ‘희망의 동맹’이란 슬로건이 담긴 ‘호르무즈 평화 구상’을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르무즈 평화 구상은 미국이 이란의 군사적 위협을 막는다는 이유로 동맹국과 함께 ‘호르무즈 호위 연합’으로 불리는 군사 동맹체를 만드는 것에 대응하려는 목적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로하니 대통령은 “외국 군대(사실상 미군을 의미)의 주둔은 항해와 석유 유통과 관련된 안보에 위험하다”며 “우리가 가려는 길은 지역 국가들과 통합 및 협력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들(미국)이 진정으로 지역의 안전을 도모한다면 전투기와 폭탄 같은 위험한 무기를 가져오지 말아야 한다”며 “그들은 이 지역에서 멀리 떨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14일 사우디아라비아의 핵심 석유시설 공격을 감행한 대상으로 이란을 꼽고 있다. 또 20일에는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에 미사일 방공망 강화를 위해 수백 명의 미군을 추가 파병하기로 했다. 이란 안팎에선 미국과 이란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발표될 로하니 대통령의 호르무즈 평화 구상은 관심은 끌겠지만 지지를 이끌어내는 건 불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일단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 위치한 주변 국가들은 사우디와 UAE를 비롯해 대부분 미국을 우방으로 여기는 나라들이다. 또 최근 미국과 사우디가 이란이 석유시설에 대한 공격을 시도했다는 증거를 계속 공개하고 있다. 가디언은 “로하니 대통령의 제안이 인기를 끌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로하니 대통령의 호르무즈 평화 구상 제안과 관련해 “들어보겠다. 나는 항상 열려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란 파스통신 등은 7월 19일 이란에 나포돼 억류돼 있던 영국 유조선 ‘스테나 임페로호’가 조만간 석방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나포 당시 이 유조선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 어선과 충돌했는데도 구조하지 않고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끈 채 역방향으로 도주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아랍에미리트(UAE)에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예배 시설이 동시에 갖춰진 종교 단지가 2022년 세워진다. 22일 UAE 영문매체인 ‘더 내셔널’에 따르면 아부다비 사디야트섬에 마련될 이 종교 단지는 ‘아브라함 가족의 집(Abrahamic Family House)’으로 불릴 예정이다. 세 종교에서 모두 아브라함(이슬람교에선 이브라힘이라 호칭)을 ‘믿음의 아버지’ 혹은 ‘첫 번째 예언자’로 여기기 때문이다. UAE 당국이 아브라함 가족의 집을 세우기로 결정한 이유는 종교 간 이해와 포용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종교 간 화합과 평등을 강조하기 위해 세 종교의 예배 시설은 모두 같은 높이로 설계됐다. 각 종교의 상징성을 감안해 기독교 교회는 해가 뜨는 동쪽, 이슬람교 모스크는 메카, 유대교 사원은 예루살렘 방향으로 세워질 예정이다. 또 종교 단지 중앙에는 세 종교의 예배시설로 이어지는 정원도 조성될 예정이다. 정원은 세 종교의 뿌리가 같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브라함 가족의 집 설계를 담당한 영국의 유명 건축가 데이비드 아드제이 경은 “세 종교를 한 가지 형태로 갖춘 건축물은 한 번도 없었다”며 “각 종교의 독특함을 살리면서도 이것이 (정원을 통해) 하나로 이어져 있는 건축물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UAE는 이슬람교를 국교로 삼고 있는 나라 중 사회 분위기가 자유로운 편이고, 비(非)무슬림을 위한 종교 시설도 잘 갖춰놓은 편이다. 하지만 UAE에서는 타종교에 대한 선교활동은 엄격히 금지돼 있다. 이에 따라 아브라함 가족의 집 설립 자체가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UAE 안팎에서는 올해 2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UAE 방문이 이 같은 변화를 불러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교황으로는 역사상 처음으로 아라비아 반도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슬람교 수니파 신학의 총본산인 이집트 알아즈하르의 대이맘 셰이크 아흐메드 엘타예브와 ‘인간 박애 선언’에 서명했다. 또 두 사람은 종교 간 화합, 선의, 평화 도모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