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환

정양환 부장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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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양환 기자입니다.

ray@donga.com

취재분야

2025-11-05~202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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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혁명 이전부터 돌아본 러시아와 소련 100년사

    ‘두둥.’ 솔직해지자. ‘소련’과 관련해 읽은 책 몇 권 안 된다. 그나마 옛 중역본들, 안 그래도 ‘…스키’ 이름 지명이 헷갈리는데 문장까지 어려워 더 헤맸다. 그런데 2013년 어둠을 뚫고 한 줄기 빛이 도달했으니. 이름 하여 ‘속삭이는 사회’(교양인). 스탈린 시대 내밀한 가족사를 촘촘히 엮은 걸작이었다. 2권짜리 두툼한 책이건만 어찌 그리 감동적인지. 꼭 읽어보시라. 참고로 그해 동아일보가 뽑은 ‘올해의 책 10’에도 들었다. 두둥 하고 북을 울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런던대 교수인 저자는 러시아 현대사의 권위자인건 둘째 치고 글을 참 잘 쓴다. 그런 그가 속삭이는 사회에 이어 다시 한 번 러시아 100년사(史)를 정리해준다니 어찌 아니 기쁠쏘냐. 찐득한 침 묻혀 가며 페이지를 넘겼다. 저자가 밝힌 대로, 그간 러시아혁명은 1917년 전후에만 초점이 맞춰진 감이 없지 않다. 스탈린 시대 등 다른 시대도 그냥 당대로만 취급되고 설명됐다. 하지만 러시아혁명은 따로국밥이 아니다. 한 세기를 관통하는 전체 흐름에서 봐야 한다. 이를 위해 볼셰비키 세대와 스탈린 엘리트 세대, 1960년대 세대의 부침과 상호작용을 따져보는 건 흥미로운 작업이다. 다만 기대가 컸던 탓일까. 아무래도 ‘속삭이는…’이 줬던 전율엔 미치지 못한다. 100년을 한 권에 욱여넣다 보니, 살짝 교과서 요점정리를 마주한 기분도 든다. 하지만 아무리 소품이라도 장인의 솜씨야 어디 가겠나. 읽어 두면 어디 가서 이쪽 화제가 나왔을 때, 꽤나 통찰력 있는 척 폼 잡을 수 있겠다. 뭐, 그것도 분명 ‘좋은’ 책의 효용가치니까.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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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룸/정양환]밥상머리 정치

    지난해 국내에 출간된 미국 그래픽노블 ‘겟 지로(Get Jiro·시공사)’는 얘기 자체가 골 때렸다. 가까운 미래에 요리사가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된다는 설정이었다. 모든 게 넘쳐흐르다 보니 결국 원초적인 식욕(食慾)이 세상을 지배하게 됐다는 식이다. 요리사가 정치 경제를 쥐고 흔드는지라, 식사 예절을 문제 삼아 칼부림을 해도 뭐라 하는 이가 없다. 글쓴이가 유명 셰프라는데 평소 테이블 매너 없는 손님한테 꽤나 스트레스 받았나 보다. 요리가 정치까지 주무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둘의 관계가 심상찮은 건 틀림없다. 노자(老子)가 그랬단다. “나라를 다스리는 건 생선을 요리하는 것과 같다”고. 갸우뚱. ‘깜냥’ 떨어지면 비린내가 난다는 뜻일까. 하여튼 국제정치에선 음식을 둘러싼 이런저런 후일담이 적잖이 쏟아진다. 차이쯔창(蔡子强) 홍콩중문대 교수가 쓴 ‘정치인의 식탁’(애플북스)이란 책을 보면 요리는 상당히 요긴한 정치 수단이 되기도 한다. 특히 격변의 20세기엔 이런 능력이 출중했던 이들이 많았다.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와 소련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1879∼1953)이 대표적인 경우다. 루스벨트의 요리 정치는 ‘핫도그 외교’가 최고로 꼽힌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을 앞두고 영국 왕실을 자국에 초대했다. 그런데 의전이라면 어디서도 최고로 받았을 양반들을 모셔다 놓고, 잔디밭에 끌고 가 핫도그를 나눠먹었다. 당연히 양국 언론은 “무례의 극치”라며 비난했다. 하지만 이는 영국에 반감이 컸던 국민을 달래려 각본대로 움직인 ‘쇼’였다. 서민 가족처럼 친근한 이미지를 연출해 “우리가 남이가”란 인식을 자연스레 심어줬다. 그런 고수였던 루스벨트도 스탈린에겐 당한 적이 있다. 한반도도 무관치 않은 1945년 얄타회담 때였다.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의 수행비서 존 마틴에 따르면 캐비아와 버터, 감귤 등 귀하디귀한 음식이 “기관총이 불을 뿜듯” 쏟아져 나왔다. 당시 캐비아 최대 생산국이던 소련은 이를 전면 수출 금지시키고 자국에만 공급하던 시절이었다. 의도는 명확했다. “이 귀한 걸 우린 맘껏 즐긴다”는 과시와 “이리 풍족하니 아쉬울 게 없다”는 허세였다. 스탈린은 결과에 매우 만족하며 모스크바로 돌아갔단다. 그만한 역사적 방점을 찍은 건 아니겠지만, 요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방한 만찬에 오른 ‘독도새우’도 반향이 크다. 굳이 도화새우란 공식 명칭을 놔두고 독도새우라 부른 청와대 메시지는 자명하다. 문외한의 외국인도 “한국엔 독도란 맛난 새우가 나는 섬이 있나 보다”라며 고개를 끄덕였을지 모른다. 루스벨트와 스탈린처럼 정치인의 식탁은 한두 가지 포석만 염두에 두진 않는다. 이번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일본엔 ‘대사 각하의 요리사’란 만화가 있다. 주베트남 일본대사의 관저 셰프가 요리로 복잡한 외교관계의 실타래를 푸는 데 기여한다는 내용이다. 그중에 일본 매실장아찌와 베트남 메에(타마린드)를 절묘하게 배합해 양국 관계자의 입맛을 사로잡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청와대 만찬 주제도 ‘함께 갑시다(We go together)’였다. 만화에선 밥상머리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이를 하수(下手)로 본다. 일본은 남의 잔칫상 갖고 붉으락푸르락하기 전에, 뭘 해결하고 뭘 받아들여야 함께 갈 수 있는지 다시금 되돌아볼 때다. 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

    • 2017-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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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비행기]마블이 창조한 영화속 또다른 세계

    최근 영화 ‘토르: 라그나로크’를 봤다. 요즘 마블과 디즈니는 정말 뭘 해도 되는 ‘집안’인가 보다. 초인 종합선물세트인 ‘어벤져스’야 큰 성공을 거뒀지만, 사실 토르와 헐크는 좀 어정쩡했다. 각각의 솔로 무비들은 그리 두드러지질 않았고. 근데 둘의 조합이 이리 근사할 줄이야. 국내에서도 개봉 11일 만에 300만 명을 돌파하며 승승장구다. 영화 속 대사 가운데 “아스가르드는 장소(땅)가 아니라 백성이 있는 곳이다”란 말이 나온다. 북유럽 신화에서 유래한 아스가르드는 ‘천둥의 신’ 토르와 같은 신이 사는 나라를 일컫는다. 벌써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꽤 회자되는데, ‘속지주의냐 속인주의냐’는 깜찍한 논박도 불거졌다. 영화가 끝난 뒤 극장 풍경을 바라보며 다시금 이 말을 곱씹었다. 이제 마블 영화 팬들은 웬만하면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도 자리를 뜨지 않는다. 재밌는 쿠키 영상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마블이 창조한 영화 속 세계를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 부른다. 그 세상이 어디쯤인지 이제 아무도 묻지 않는다. 백성이 어디 있는지 다들 아니까.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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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화와 인내가 평화의 길로 이끌어”

    “한반도는 예로부터 거룩한 순교자들이 많았던 땅입니다. 그 희생과 화해의 정신을 이어받아 남북한이 평화를 이루길 기도합니다.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같은 혈육이 함께할 수 있는 사랑의 잔치가 열리길 바랍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가 주최한 ‘2017 한반도평화나눔포럼’에 참석한 중남미 가톨릭 지도자들이 한반도의 평화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엘살바도르 산살바도르 대교구의 그레고리오 로사 차베스 추기경과 멕시코 모렐리아 대교구의 카를로스 가르피아스 메를로스 대주교, 아르헨티나 주교회의의 비센테 에스페체 질 정의평화위원은 7일 오전 서울 중구 천주교서울대교구청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평화 정착을 위해선 ‘대화’와 ‘인내’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올해 엘살바도르 역사상 처음으로 추기경에 임명된 차베스 추기경은 1970∼90년대 내전 종식에 결정적 기여를 했던 인물이다. 2015년 복자로 시복된 오스카르 로메로 대주교(1917∼1980)의 최측근으로 당시 군사정권과 반군의 협상을 이끌어 1992년 평화협정을 성사시켰다. 차베스 추기경은 “돌이켜보면 처음엔 사막에 홀로 떨어진 듯 막막했지만 참고 견디며 꾸준히 대화하면서 상황은 조금씩 바뀌어갔다”며 “정치인과 외세가 힘겨루기에 빠지면 결국 희생을 치르는 건 백성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또 추기경은 “과거를 기억하지 않으면 미래도 없다”며 “한국인 역시 역사를 제대로 배우고 진심으로 평화를 향해 전력을 기울여야 목적을 이룰 수 있다”고 당부했다. 메를로스 대주교 역시 마약 카르텔 등으로 고초를 겪는 멕시코 사례를 들려줬다. 그는 “2010년부터 가톨릭 전체가 힘을 모아 평화 정착 운동을 펼치고 있다”며 “크게 △평화기도 운동 △평화 교육제도 마련 △사회적 네트워크 및 플랫폼 구축 △폭력 피해자 치유 프로그램 개설 △청년 평화 프로그램 운영 등을 골자로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질 위원은 “남미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무기가 없는 비핵화 대륙”이라며 “남북한 정부 역시 핵무기는 평화나 공존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기 바란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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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석 신부 “두 종교 문법은 달라도 삶의 기술 본질은 같아”

    가톨릭 신부이자 불교철학 박사인 이영석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교수가 쓴 ‘예수처럼 부처처럼―성경과 무문관의 우연한 만남’(성바오로·사진)이 최근 출간됐다. 이 신부는 미국 버클리 예수회신학대를 졸업한 신부이면서도 동국대에서 불교철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예수처럼…’은 성경과 중국 송나라 무문혜개 선사가 쓴 ‘무문관’을 함께 연구한 결과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 신부는 “두 종교의 문법은 서로 다르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삶의 기술’에 대해서는 공통점이 많다”며 “핵심은 헛된 망심(妄心)이 아니라 진실한 진심(眞心)에 있다”고 강조했다. 1만8000원.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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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정 조계종 총무원장 취임 법회 “불교다운 불교, 대탕평 펼칠 것”

    “불교를 불교답게 만들고, 종단의 사회적 역량을 강화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노력하겠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35대 총무원장으로 선출된 설정 스님의 취임 법회가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와 우정국로 특설무대에서 개최됐다. 설정 총무원장은 취임사에서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려면 화쟁(和諍·대립을 벗어나 소통을 통해 통합을 지향하는 불교 사상)과 중도 사상이 필요하다”며 “여러 문제로 갈등했던 분들과 대화합을 이루기 위한 방안을 강구해 실행에 옮기겠다”고 약속했다. 설정 스님은 또 “선거 과정에서 비판이 제기되며 종도와 국민에게 불안과 걱정을 끼쳐드린 것은 모두 저의 부덕과 불찰에서 비롯됐다”며 “다름은 틀림의 기준이 될 수 없으므로 대탕평(大蕩平) 정책을 펼쳐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수행 가풍과 승풍(僧風) 진작, 대중공사에 기초한 종단 쇄신 등을 핵심으로 한 10가지 정책 기조도 밝혔다. 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는 축사를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언제나 서로 다른 종교인들의 우정 어린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며 “설정 총무원장이 ‘잘하고 있는 건 더 잘하고, 고칠 것은 고치고, 바꿀 것은 과감히 바꾼다’는 약속대로 나아가면 한국 불교가 우리 사회와 민족을 위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덕담했다. 조계종의 입법기구인 중앙종회 의장 원행 스님은 “고희(古稀)를 넘긴 설정 스님이 종단의 중책을 맡은 것은 불교다운 불교, 존경받는 불교, 신심 나는 불교를 위함”이라고 말했다. 이날 법회에는 한은숙 원불교 교정원장과 한국이슬람중앙회 이주화 이맘 등 이웃 종교인을 비롯해 정세균 국회의장, 정갑윤 홍문표 의원 등 국회 정각회 회원, 하승창 대통령사회혁신수석비서관, 나종민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김종진 문화재청장 등 약 1만5000명이 참석했다. 법회에 참석한 마크 내퍼 주한 미국대사 대리는 설정 스님에게 직접 꽃다발을 건네며 합장을 올리기도 했다. 덕숭총림(수덕사) 방장이던 설정 스님은 지난달 12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치러진 선거에서 73.4%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임기는 4년이다. 충남 예산에서 출생한 설정 스님은 덕숭총림 3대 방장을 지낸 원담 스님을 은사로 14세에 출가했으며 1994∼1998년 중앙종회 의장을 지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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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승 “아쉬움도 미련도 없다”

    대한불교조계종 제34대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사진)이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퇴임 법회를 가졌다. 자승 스님은 퇴임사에서 “종단의 안정과 화합, 발전은 총무원장 개인의 능력이 아닌 종단 집행부와 중앙종회, 교구본사와 사찰 등 모두의 합심과 원력으로 이뤄진다”며 “부덕함도 부족함도 모두가 잘 메워주었기에 아쉬움도 미련도 없다”고 밝혔다. 스님은 또 “차기 총무원장으로 훌륭한 분을 모셨으니 더 나은 종단의 역사를 선명하게 새겨나가게 될 것”이라며 “늘 그래왔듯 종단을 위한 희생정신으로 봉사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2009년 제33대 총무원장으로 취임했던 자승 스님은 2013년 재선에 성공하며 8년 동안 총무원장으로 조계종을 이끌었다. 1994년 종단 개혁 이후 연임한 총무원장은 처음이었다. 31일 공식 임기가 끝나는 스님은 다음 달 강원 인제군 백담사로 가서 12월 2일부터 3개월 동안 외부 출입을 일절 금하는 무문관(無門關) 수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12일 선거에서 제35대 총무원장으로 선출된 설정 스님은 다음 달 1일 취임 법회를 가진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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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의 한국교회, 루터가 봤다면 통탄할 것”

    “마르틴 루터(1483∼1546)가 이 땅에 온다면, 통탄할 일이 많을 겁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뼈를 깎는 심정으로 개혁에 나서야 합니다. 당대 로마교황청에서 봤듯이 종교가 타락하면 부패한 정권보다 추잡해집니다.” 최근 국내에선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다양한 포럼이나 기념예배 등이 쏟아진다. 루터 관련 신간도 10여 권이 나왔다. 개신교 쪽에선 소강석 새에덴교회 담임목사의 행보가 눈에 띈다. 개신교 연합체인 ‘종교개혁500주년성령대회’ 대회장을 맡아 8일 신도 5000여 명이 참석한 성령대회, 15일 기념예배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25일 경기 용인시 새에덴교회에서 만난 그는 평소 달변과 달리 말을 무척 신중하게 골랐다. 소 목사는 “평생 다시 오지 않을 기념비적인 날인 건 틀림없지만, 현재 한국 교회에 닥친 위기에 대한 고민이 더 크다”고 말했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주는 가장 큰 메시지는 무엇인가. “용기다. 권위와 제도에 맞설 수 있는 종교적 믿음. 알다시피 그가 살던 중세는 교황청이 무소불위의 힘을 지녔다. 그런데 일개 수도사가 반기를 들었다. 루터도 인간이다. 수많은 회유와 협박을 받았다. 흔들리고 좌절하기도 했다. 소신을 밝힌 것도 대단하지만, 역경을 이겨내고 신앙을 지킨 점이 더 위대하다. 루터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서 서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큰 기념일인데 이벤트가 많지 않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루터는 ‘오직 성경, 오직 믿음’을 강조했다. 화려한 겉치레를 싫어하고 지양했다. 후대가 흥청망청할 수 있겠는가. 신실한 학술대회와 예배에 무게중심을 뒀다. 둘째, 한국 교회가 처한 환경을 고려했다. 몇 년 전부터 500주년을 준비했는데, 지난해부터 나라에 큰 격변이 있지 않았나. 내실을 기해야지 경거망동할 때가 아니다. 개신교 내부에서도 심각하게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루터가 통탄했을 것’이란 말과 같은 맥락인가. “맞다. 특히 한국 교회 분열은 적폐 중의 적폐다. 다양한 입장과 의견이 존재할 순 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선 모두 하나일 뿐이다. 요즘처럼 종교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을 때 ‘연합과 일체’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종교인 과세 이슈도 좀 더 정치한 접근이 필요하다. 자꾸 오해를 만드는 상황이 안타깝다. 우리 교회는 오래전부터 성실하게 납세해왔다. 정부도 교회도 머리를 맞대고 좀 더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종교개혁 500주년 뒤 한국 교회가 걸어가야 할 길은…. “지난해 한국 개신교는 사회복지에 약 8000억 원을 썼다. 그런데도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는다. 억울한 면도 있지만, 왜 이런 처지가 됐는지 반성해야 한다. 어쩌면 한국 사회와 마찬가지로 성장일변도에 매달렸던 건 아닐까. 한국 교회도 하루빨리 패러다임을 바꿔야 살아남는다. 더 이상 개혁을 주저하다간 공룡의 몰락을 겪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다. 개혁의 키워드는 ‘투명성’과 ‘도덕성’이다. 지금 한국 교회가 루터의 시대정신에 목말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용인=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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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트레스엔 장사없다, 성격부터 바꿔라”

    “스트레스 안 받는 성격이다? 절대 건강에 좋은 게 아닙니다. 스트레스를 이겨내며 자연스러운 에너지가 생성돼야 합니다.” 듣다보면 문화강좌 행복전도사 같기도 하다. 하지만 18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만난 변광호 박사(75)는 미국 워싱턴주립대와 이화여대, 가톨릭대 의대 교수 등을 역임하고, 1980년대 국내에 처음으로 스트레스 면역학을 소개한 학자다. 그가 최근 ‘E형 인간 성격의 재발견’(불광출판사)이란 독특한 책을 펴냈다. 심신의학계는 성격을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완벽을 추구하는 A형과 매사에 낙관적인 B형, 착하디착한 C형, 세상에 적대적인 D형. 변 박사는 “스트레스를 통해 오히려 심신을 강화하는 ‘E형 인간’도 있다는 걸 새로이 찾아냈다”고 주장한다. 그가 볼 때 E형 인간은 위기를 긍정적 기회로 여긴다. 이타적이며 삶에 감사할 줄 안다. 뭣보다 부부 가족 친구와 대화를 많이 한다. 변 박사는 “자신의 성격이 A∼D 가운데 어떤지 파악해 E형 인간이 되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를 위한 간단한 실행법이 ‘333 정수법’이다. 생각을 멈추고 3분 동안 복식호흡을 하고, 또 3분 동안 자신의 장단점을 받아들이는 시간을 갖는다. 다시 3분 동안 호흡하며 개선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변 박사는 “불교 명상과 비슷하지만 각자 자신에 맞게 편안한 시간을 갖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변 박사는 다음 달 이런 주장을 담은 논문 ‘스트레스 회복탄력성을 지닌 새로운 E타입 성격’을 대한스트레스학회지에 게재한다. 내년 국제심신의학회 학술대회에서도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건강하고 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마음의 운동’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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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비행기]초심을 잃어버린 건가

    주말 밤 진짜 오랜만에 대학 친구 집에 모였다. 와이프가 아이들과 여행을 간 덕에 집이 비었다나. 배 나온 중년들이 모여 봤자 할 일은 뻔할 뻔자. 고기 구워 술 마시고, 잡다한 수다 떨다 포커 치고. 결국 다 돌려주는 돈, 뭘 그리 열 냈는지. 또 한 번 행운의 찬스(?)를 기약하며 새벽녘에 헤어졌다. 그런데 24일 출근길에 웹툰을 보다 살짝 놀랐다. 네이버 ‘가우스전자 시즌3’에서 그날 밤 얘기했던 ‘초심(初心)’을 다룬 게 아닌가. “취직 준비할 때는 그렇게 회사에 들어가고 싶어 했는데…” “회사 생활에 치여서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하다”부터 “다시 한번 열심히 달려볼까”까지. 뭐,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할 만한 얘기건만. 얼마 안 돼 마주하니 기분이 묘했다. 다만 작가도 말했듯 초심도 어느 시점,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확확 달라진다. 엉뚱하게 10대 때 초심은 뭐였는지 떠올려봤다. 무조건 신나게 노는 것. 그럼 난 초심을 잃어버린 건가. 사전엔 ‘초심(焦心·마음을 졸여서 태움)’이란 단어도 있다. 쌀쌀한 가을, 좁쌀만 한 맘만 더 쪼그라든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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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룸/정양환]오목 볼록 별의 사랑

    다행스럽게도, 여섯 살 아들은 읽고 쓰는 걸 좋아한다. 그래봤자 초콜릿과 도널드 덕이 최상위 포식자긴 하다. 어쨌든 아빠한테 “왜 매일 휴대전화만 보느냐”며 타박도 한다. 그런 아이가 아끼는 동화 가운데 ‘오목 볼록 별 이야기’란 게 있다. 미야케 야스코란 일본 작가가 쓴 이 그림책은 국내에 10년 전 출간됐다. 멀고 먼 우주, 땅콩처럼 생긴 별에 오목 나라와 볼록 나라가 있다. 두 국민은 딱 하나 손 모양이 다르다. 이름처럼 볼록 쪽은 동그라니 볼록하고, 오목네는 넓적하니 오목하다. 그게 그리 못마땅했는지 언제나 서로 헐뜯으며 업신여긴다. 최근 독일에 다녀오며 묘하게 이 책이 자주 떠올랐다. 1517년 10월 31일 ‘95개 논제’를 발표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역사 현장을 찾는 출장이었다. 로마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나뉘는 역사적 순간의 흔적을 더듬으며, 불경스럽게도 ‘손만 다른’ 별나라 사람들이 눈앞을 맴돌았다. 특히 보름스에서. 실은 주입식 교육의 폐해인지 종교개혁 하면 먼저 선악구도가 머리에 그려진다. ‘부패한 교황’ 대 ‘용기 있는 수도사’랄까. 보름스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다. 1521년 신성로마제국 제국회의에 불려나간 루터가 서슬 퍼런 분위기에 맞서 자신의 신념을 당당히 밝혔던 곳. 옛 주교궁 자리였던 공원에서 마주한 ‘루터의 신발’은 왠지 오목 나라 체취가 묻어났다. 그런데 현장에선 다소 색다른 얘길 들었다. 올해 이 청동신발이 만들어진 게 가톨릭의 ‘배려’ 덕이란다. 사실 이 공원은 보름스대성당 옆에 붙어있다. 관계자는 “독일에선 법적으로 가톨릭 건축물 인근에 타 종교 설치물을 세울 수 없다”고 귀띔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성당 측에서 루터의 가치를 존중해 대승적으로 이를 수용했다. 개신교 역시 ‘과하지 않게’ 소담한 기념물로 조성했다. 지난주 나온 ‘루터―신의 제국을 무너트린 종교개혁의 정치학’도 평소 선입견을 깨뜨리는 책이었다. 2010년 ‘탐욕의 지배’로 유명한 독일 역사가 폴커 라인하르트는 지금까지 종교개혁은 개신교 자료로만 접근하는 경향이 강했다고 지적한다. 전체를 보려면 바티칸 사료 역시 함께 살펴봐야 한다. 오랜 연구 끝에 저자는 “종교개혁은 비텐베르크와 로마, 독일과 이탈리아 두 극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천사와 악마의 대결’이 아니라, 양측 모두 나름의 이유와 명분을 가지고 있었단 주장이다. 하나 짚고 넘어갈 건 있다. 당시 교황청이 훌륭했단 뜻은 아니다. 부정이 심각했고, 개혁은 시급했다. 하지만 자체적으로도 변혁의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루터 역시 초기엔 ‘혁명가’가 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인쇄술이란 강력한 미디어 원군이 없었다면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쳤을 수도 있다. 그런다고 루터의 위대함이 흠집 나는 건 결코 아니지만. 오목 볼록 별은 어찌 됐을까. 으르렁대던 사람들은 하나의 사건을 겪은 뒤 마음을 고쳐먹는다. 높은 데서 발을 헛디딘 볼록 어린이의 손을 오목 어른이 잡아 구했다. 그제야 상대의 손이 자신과 맞춤이란 걸 깨달은 것이다. 다름은 서로의 약점을 채워준다. 그 차이가 지닌 아름다움을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읽고 배운다. 어른도 다 안다고? 알면서도 못 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멍청이다.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

    • 2017-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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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판 받았던 곳에 ‘루터의 신발像’… 종교개혁 큰 걸음

    “제 양심은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어떤 것도 철회할 수 없습니다. 양심에 불복하는 건 옳지도 안전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 제가 여기 서 있나이다.” 19세기 영국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은 1521년 마르틴 루터(1483∼1546)가 독일 보름스에서 천명했던 이 말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했다. “그가 당시 입장을 번복했다면 프랑스혁명도 미국도 없었다.” 두 나라엔 기분 나쁠 소리겠지만, 그만큼 루터의 신념은 칠흑 같던 중세를 찢고 타올랐던 근대의 횃불이었다. 동아일보는 ‘종교개혁 500주년’(31일)을 앞두고 비텐베르크와 아이제나흐에 이어 보름스와 아이슬레벤을 찾았다. 루터가 태어나고 세상을 떠난 아이슬레벤과 제국회의가 열렸던 보름스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 아이슬레벤―그는 떠났을지라도 인구 약 2만4000명(2006년 기준)의 작고 아담한 아이슬레벤. 공식 지명에는 ‘루터슈타트(Lutherstadt·루터의 도시)’가 달려 있다. 구석구석 건물과 돌바닥에 루터의 상징인 ‘장미 문양’이 박혀 있다. 여기서 나고 자란 루카스 버켈 씨(54)는 “시민들은 루터의 도시에 산다는 자부심이 크다”고 말했다. 후미진 골목 벽화에도 루터가 그려져 있다. 장난감 가게에서는 500주년에 맞춰 출시된 루터 플레이모빌을 어린이들이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루터의 생가(生家)와 사가(死家)는 걸어서 10여 분 거리. 생가 입구엔 덴마크 동화작가인 안데르센(1805∼1875)의 시가 새겨져 있다. 전시관 관계자는 “1831년 방문해 동화 집필의 큰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루터는 생후 1년 뒤 다른 도시로 떠났는데, 영적 기운은 머문 시간과 상관없나 보다. 목관(木棺)이 전시된 사가 2층 창밖으론 성 안드레아스 교회가 보였다. 1546년 고향에 온 루터는 2월 15일(일부에선 14일이라고 주장) 여기서 ‘마지막 설교’를 펼쳤다. 그리고 18일,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이후 평생의 동지였던 필리프 멜란히톤은 짤막한 글 하나를 영전에 바쳤다. “비록 그는 숨졌을지라도…, 루터는 여기 살아 있다.” ○ 보름스―나무로 변한 지팡이 이곳을 방문한 이들은 두 가지에 놀란다. 역사적 현장인데 의외로 루터 흔적이 적다. 게다가 14세기 완공된 보름스대성당 덕에 가톨릭 방문객이 훨씬 많다. 루터가 신성로마제국에 심문받은 주교궁도 지금은 오붓한 공원으로 바뀌었다. 1689년 프랑스군 침공 때 무너졌다. 재판 장소엔 크지 않은 기념 조형물뿐. 올해 종교개혁의 큰 발걸음을 뜻하는 ‘루터의 신발’이 새로 만들어졌다. 워낙 커서, 모두들 발을 넣고 사진을 찍는다. 루터의 족적은 누구라도 품는단 의미일까.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1868년 세운 ‘루터 동상’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 목회자는 “훗날 독일 황제가 된 빌헬름 1세도 제막식에 참여했다”며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루터 동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를 중심으로 종교개혁자들이 둘러싼 풍채가 꽤나 장엄하다. 서쪽 동네에는 흥미로운 사연의 ‘루터의 나무’가 있다. 제국회의 때 두 할머니가 다퉜는데, 루터를 응원한 이가 “그가 옳으면 여기서 싹이 날 것”이라고 했단다. 훗날 땅에 꽂은 지팡이가 자랐단다. 야사일 뿐이겠지만, 당시 이 도시엔 루터 지지자가 1만4000여 명이나 몰려들었다. 그때 보름스 인구는 겨우 7000명이었다. 진짜 기적은 나무로 변한 지팡이가 아니다. 절대세력에 맞섰던 한 선지자의 용기가 일깨운 민중의 각성이었다.  ▼ “한국교회의 개혁, 루터가 답이다” ▼ ‘종교개혁의 불꽃…’ 출간 김현배 목사“오늘날 교회의 개혁과 부흥의 답은 루터에서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졌다면 진리로 돌아갈 때입니다.” 지난달 독일에서 만난 김현배 베를린비전교회 목사(사진)는 종교개혁 500주년의 ‘무게’를 강조했다. 그는 올해 5월 ‘종교개혁의 불꽃 마틴 루터’를 출간했다. ―본질적으로 루터는 누구인가. “단순히 종교개혁자가 아니다. 신학자 번역가 목회자 교육자 등 여러 모습을 지녔다. 또 다른 종교개혁자 멜란히톤은 루터를 종종 사도 바울과 비교했다. 복음을 위한 열정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고집도 세고 때로 폭발적인 분노도 드러냈다. 그랬기에 타협하지 않고 진리에 목숨을 바쳤다.” ―올해 독일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여러 500주년 기념행사가 열린다. “500주년은 숫자에 불과하다. 루터는 죽어서 귀신이 되더라도 하나님이 없는 성직자를 괴롭힐 것이라고 했다. 이런 정신이 잘 전해지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지금 교회에 가장 큰 고민은 뭐라고 보나. “유럽을 보면 현재 교회의 영적 쇠퇴가 심각하다. 독일에서 저명한 디트머 루츠 목사는 최근 ‘독일은 스스로 경작해 추수하기 불가능한 선교지가 됐다’고 한탄했다. 한국 교회도 세속화와 윤리의식 부재를 반성해야 이런 절망을 겪지 않을 것이다.”  아이슬레벤·보름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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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인들이여, 명상으로 나를 지키자

    “이 생에 수행하지 않으면 언제 또다시 수행하리오.” 국내의 대표적인 명상 수행자인 각산 스님(57·세계명상센터 참불선원장·사진)이 주최하는 ‘명상 힐링 캠프’가 26일부터 강원 인제군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열린다. 참불선원은 17일 “부처가 행했던 성불 명상법인 초기 불교 수행과 본래 부처를 체험할 수 있는 간화선 통합수행을 3박 4일 동안 개최한다”고 밝혔다. 2013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4회를 맞는 이 캠프는 해마다 2000명 이상이 참가하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에는 세계 불교계의 대표적 수행자들인 아잔 브람(호주)과 아잔 간하(태국), 심도 선사(대만) 등 2000여 명이 참여해 ‘세계명상대전’이란 이름으로 강원 정선군 하이원리조트에서 열렸다. 올해는 보다 수준 높은 집중 수행을 위해 참가 인원을 500명으로 제한했다. 경남 합천군 해인사에서 보광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각산 스님은 해인사 승가대를 졸업한 뒤 미얀마의 파 욱 사야도와 아잔 브람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태국과 미얀마 스리랑카 호주 중국 인도 등 전 세계 곳곳에서 10여 년간 정진했다. 국내에서는 여러 차례 국제적 명상 대전을 개최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특히 이번 캠프는 스님이 직접 명상 지도를 맡아 꼼꼼히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각산 스님에 따르면 명상 수행은 스트레스가 심한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정신 건강 훈련이다. 스님은 “쉽게 명상에 대해 평가하지만 ‘국자가 국 속에 있으면 국 맛을 모르듯’ 직접 몸으로 체험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며 “오로지 참선만이 욕망과 존재, 미혹으로부터 대(大)자유를 얻을 수 있는 법”이라고 말했다. 이번 캠프는 3박 4일 집중 수행을 하기 위해 참가자들에게 엄격한 준수 사항을 요구한다. 음주나 흡연은 물론 휴대전화 사용도 안 되며 묵언(默言) 수행을 원칙으로 한다. 귀걸이나 반지 같은 귀금속 착용이나 짙은 화장, 향수도 금지된다. 참가 인원은 선착순 마감, 참가비는 9만 원(숙식비 19만 원 별도)이다. 캠프를 마치면 사단법인 한국명상지도자협회 명상지도사 이수 시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자세한 사항은 참불선원()이나 BBS불교방송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1577-3696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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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5개 논제’ 새겨진 청동門… “믿음 태동한 성지” 세계인 북적

    《 1517년 10월 31일. 이달 31일은 개신교는 물론이고 세계 종교사(史)에서 손에 꼽을 만한 뜻깊은 날이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1483∼1546)가 로마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를 정면으로 반박한 ‘95개 논제’를 천명한 지 딱 500년이 되기 때문. 루터의 개혁은 “중세에서 근대로 나아가는, 종교를 넘어 사회와 세상을 뒤바꾼” (미국 종교학자 어윈 루처) 마중물로 평가받는다. 동아일보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루터의 자취가 가득한 독일의 4개 도시를 찾았다. 16세기 한 수도사의 외침은 500년이 지난 지금 21세기엔 어떤 울림으로 다가올까. 》 ○ 비텐베르크-개혁의 물꼬가 터지다 지난달 26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새벽안개를 헤치고 약 460km를 달려 마주한 비텐베르크는 역시 루터의 도시였다. 원래 정식 지명도 ‘루터슈타트(Lutherstadt·루터의 도시) 비텐베르크’인 이곳은 평일 오전인데도 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이들로 북적였다. 미국의 성지순례 일행인 제니 리들리 씨(62)는 “평생의 믿음이 태동한 성지(holy land)를 드디어 찾아 너무 행복하다”며 “루터의 용기로 평신도도 하나님을 가까이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종교개혁이 오롯이 루터의 힘만으로 이뤄졌다고 보긴 힘들다. 체코 신학자 얀 후스(1369∼1415)를 비롯한 선대의 노력이 켜켜이 쌓여 루터에 이르렀다. 실제로 후스는 처형 직전 “거위(체코어로 ‘후스’)를 요리해도 100년 안에 백조가 일어나 승리한다”고 예언했다. 루터가 이곳 ‘성 교회’ 대문에 써 붙였던 95개 논제는 힘찬 백조의 날갯짓이었다. 지금은 논제가 새겨진 청동 문으로 변한 교회 안엔 제단 앞에 루터의 묘도 있다. 평생의 협력자였던 필리프 멜란히톤(1497∼1560)과 함께. 멜란히톤은 종교개혁의 주요 핵심 인물이지만 온화한 성품 탓에 전면에 나서는 걸 꺼려했다. 두 사람은 당시 사제의 전유물이던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데 매진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묘지석엔 ‘마르틴 루터 여기 잠들다’가 라틴어로 쓰여 있다. 교회에서 걸어서 10여 분 거리인 박물관 ‘루터하우스’도 역시 방문객으로 북적였다. 당시 루터가 속한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이 현대에 와서 바뀐 모습이다. 루터가 번역한 1534년 판본 독일어 성경과 초상화 등 귀중한 유물들을 만날 수 있다. 최근 박물관은 1525년 루터와 결혼한 카타리나 폰 보라(1499∼1552) 전시실을 따로 개장했다. 루터하우스 측은 “루터가 갖은 박해로 벌이가 시원찮을 때, 농장과 공방을 경영하며 남편을 뒷받침한 부인의 공이 컸다”고 설명했다.○ 아이제나흐-잉크로 악마와 싸우다 다음 날 찾은 아이제나흐는 실은 루터가 종교개혁의 기치를 든 뒤 1521년 10개월 정도밖에 머무르지 않았다. 당시 루터는 보름스 제국의회가 교황청에 항거한 그에게 추방령을 내려 도망자 신세였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루터는 이곳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최고의 역사적 업적을 남겼다. 그해 9월 완성해 ‘9월 성경’으로 불리는 독일어 신약성서를 완역한 것이다. 구텐베르크 인쇄술 덕에 전국으로 퍼진 성경은 종교개혁 확산의 결정적 도화선이었다. 평지에서 400m가량을 올라간 바위산 위에 세워진 성은 주위에 전시된 대포 탓인지 왠지 ‘요새’의 풍모를 지녔다. 자신을 고립시키는 세상을 향해 성서란 무기를 곧추세운 루터의 의지가 배었기 때문일까. 전시관 관계자는 “당시 루터는 책을 쓰다 악마를 마주해 잉크병을 던졌다고 전해진다”고 귀띔했다. 진짜 악마가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으나, 신앙심으로 무장한 펜 하나가 서슬 퍼런 제국의 총칼을 꺾는 순간이었다.   ▼ “1년 내내 기념전-콘서트… 방문객 벌써 작년의 倍” ▼“복잡할 것 없습니다. 루터의 가르침은 ‘오직 믿음으로’란 한마디로 모든 게 설명됩니다.” 지난달 26일 만난 독일 비텐베르크 루터하우스의 베냐민 하셀호른 총괄매니저(사진)는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말투였다. 베를린 훔볼트대 신학박사인 그는 “루터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구원에 이른다는 혁명적 인식의 전환을 인류에게 선사했다”고 평가했다. ―루터의 주장은 지금도 유효한가. “물론이다. 오직 믿음, 오직 은총, 오직 성경. 그때나 지금이나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나. 물론 세부적 가치나 해석은 세월이 흐르며 조금씩 바뀌었다. 그러나 루터는 신을 대신해 면죄부를 파는 교황청의 가치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신 앞에 선 한 인간이란 ‘단독자’ 개념을 세웠다. 이는 근대는 물론이고 현대 문명의 기반과도 직결된다. 개인의 탄생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종교 인구는 줄어들고 있다.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비텐베르크에서도 전체 인구의 15% 정도만 교회에 다닐 정도다. 종교개혁 500년이 흐르며 개신교 역시 ‘고인 물’이 되진 않았는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때다. 하지만 루터가 신앙으로 역경을 이겨냈듯, 결국은 믿음만이 우리의 돌파구다. 이곳엔 한국인 순례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루터의 영성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500주년을 맞은 현지 분위기는 어떤가. “교회는 물론이고 정부도 적극적이다. 이곳을 비롯해 독일 곳곳에서 기념 전시와 콘서트가 1년 내내 이어지고 있다. 비텐베르크는 해마다 약 20만 명이 방문하는데, 올해는 벌써 두 배가량 찾아왔다. 다만 젊은층에서 관심이 높지 않은 건 이곳에서도 큰 고민거리다. 끊임없이 변화에 목마른 모습을 보여야 하는 이유다. 루터가 현재에 안주했다면 개혁이 가당하기나 했겠나.”  비텐베르크·아이제나흐=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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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룸/정양환]해에게서 소녀에게

    2009년 1월, 꽤나 추웠던 날이다. 가요 담당 기자가 된 뒤 운 좋게 데뷔 1년쯤 된 걸그룹과 만날 기회가 생겼다. 나름 첫 앨범도 뜨거웠던 팀인지라 신나서 달려갔지만, 약간 첫인상이 실망스러웠다. 10대라 그런지 딱딱한 모범답안만 내놓아 재미가 없었다고나 할까. 게다가 아직 점심 무렵인데 연일 스케줄이 빡빡했는지 살짝 지쳐 보이기까지 했다. 뭔가 더 끌어내지 못하는 능력 부족을 자책하다가 반전이 일어난 건 ‘음악’ 얘기에 집중하면서부터였다. 퀭하던 눈빛이 반짝반짝 되살아나더니 2집에 담은 노력과 애정을 마구 쏟아냈다. ‘디어 맘(엄마에게)’이란 노래를 녹음하며 모두 펑펑 울었던 일화, 곧 출산을 앞둔 큰언니에게 들려주고 싶단 속내까지. 그때 문득 깨달았다. 아, 이래서 이 친구들을 좋아하나 보다. 음악과 함께할 때 가장 빛나는구나. 그들은 ‘소녀시대’였다. 어쩌면 우리는 더 이상 소녀시대를 볼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건 말건 상관없는 분은 ‘시 유 어게인’. 소속사는 10일 멤버인 수영과 티파니, 서현은 재계약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앞서 떠난 제시카까지 전체 9명 가운데 4명이 빠지는 셈. 5인조 소녀시대라. 나름 운치야 있겠지만, 기존에 알던 소녀시대는 아니다. 한국 걸그룹의 상징 같던 존재다 보니 국내외 반향도 크다. 태국 등 일부 국가에선 소녀시대 옛 앨범들이 주르륵 순위 차트를 점령하는 일도 벌어졌단다. 한 해외 한류전문 매체는 ‘결별(break up) 소식에 분노에 휩싸인 팬들’을 다룬 기사도 내보냈다. 미국 빌보드는 “10주년 기념앨범을 낸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아 더 충격이 거셌다”고 분석했다. 다만 다들, 하나 주목하지 않는 게 있다. 어쨌든 그들은 10년을 버텼다. 뭐, 억지로 가수 활동했단 얘긴 아니다. 어지간해선 꿈도 못 꿀 돈과 명예도 따랐을 테고. 하지만 이 땅에서 지금까진 어떤 걸그룹도 강산이 바뀌는 걸 누리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 데뷔했던 원더걸스도 올해 1월 결국 10주년을 코앞에 두고 해체했으니. 어쩌면 앞으로도 한참은 보지 못할 기록을 소녀시대는 세웠다. 역시 오래 버티는 게 장땡이란 허망한 소린 하고 싶지 않다. 10년이란 시간은 그들을 ‘소녀’라 부르기도 겸연쩍게 만들었다. 처음에야 다들 고교생이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한국 나이로 스물아홉. 내년이면 서른이다. 그들도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와 닿으리라 생각하니…. 세월 참. “우리만 그런 건 아니지만, 국내 연예계는 여성 뮤지션이 살아남기 쉽지 않은 정글입니다. 특히 아이돌에겐 10대, 많아야 20대 초반 이미지를 유지하길 암묵적으로 강요하죠. 그런데 소녀시대는 뭔가를 뛰어넘었습니다. 사탕발림 애교 부리는 수준을 벗어나 ‘당당한 카리스마’로 승부해 정상을 지켰다고나 할까요. 물론 기획사 전략도 작용했겠지만, 그건 아무나 이룰 수 있는 게 아니죠.”(아이돌 전문 비평 웹진 ‘아이돌로지’의 미묘 편집장) 이제 소녀시대는 ‘따로 또 같이’ 새로운 길을 간다. 그 앞에 뭐가 있건 한국 걸그룹사(史)는 그들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그 추웠던 날, 리더인 태연은 이렇게 얘기했다. “처음 시작했던 순간을 잊지 말자고 수십 번씩 함께 다짐했어요. (새해에) 무언가 새로 준비하는 분이 많을 텐데, 저희와 힘차게 출발하잔 마음을 담았습니다.” 그 바람, 그대로 돌려드린다. 당신들 인생은 이제 막 해가 떠올랐다고. 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

    • 2017-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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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대박나는 상품… 누가, 어떻게 만들까

    대박 나고 싶다. 누군들 안 그럴까만, 자본주의는 확실히 그런 욕망을 부추기는 경향이 짙다. 갈수록 복잡한 세상. 분야를 막론하고 히트 상품을 만들 ‘비결’이 있다면 당연히 궁금할 터. 미국 시사월간지 부편집장인 저자가 그걸 파헤쳤다니 당연히 관심이 쏠린다. 근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절대 책을 허투루 썼단 얘긴 아니다. 실은 굉장히 재밌다. 미술이나 방송, 영화 같은 문화 콘텐츠를 중심으로 다뤄 접근하기 쉽다. 심리학 경제학 등 다양한 방면을 훑은 취재력도 돋보인다. 깔끔하게 속도감을 장착한 문장력까지. 그래서 더 뼈저리게 깨닫는다. 대박의 길은 정말 험하구나. 예를 들어, ‘현대 산업디자인의 아버지’ 레이먼드 로위(1893∼1986)를 보자. 널리 알려진 코카콜라 병을 비롯해 빌딩 자동차 우주선까지 그가 손댄 디자인은 대다수가 히트 쳤다. 하지만 그 바닥은, 젊은 청춘을 쪽잠 자가며 디자인에만 매진한 열정으로 단단히 다져놓았기에 가능했다. 그렇게 얻은 그의 성공 철학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진보적인” 상품이다. 말이야 쉽지, 그건 깊은 경험에서 우러나지 않으면 공염불에 불과하다. 여기에 시대성이라 에둘렀지만 운도 좀 따라줘야 한다. 역시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뜻에서 이 책은 ‘지금 당장’ 성공에 목마른 이에겐 딱히 권유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하고 박차고 일어서고자 할 때 읽으면 딱 좋겠다. 전혀 자기계발서가 아닌데 왠지 모르게 에너지를 전하는 매력을 지녔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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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단 안팎 위중한 시기… 공심으로 일로매진”

    “마부정제(馬不停蹄·달리는 말은 발굽을 멈추지 않는다)의 뜻을 거울삼아 종단 발전을 위해 쉼 없이 진력하겠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35대 총무원장으로 선출된 설정 스님은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종단을 운영하는 데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공심으로 일로매진(一路邁進·한길로 곧장 거침없이 나아감)하겠다”고 말했다. 조계종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당선증을 받은 뒤 곧장 회견장을 찾은 설정 스님은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으로 소감과 포부를 밝혔다. 설정 스님은 “지금은 교단 안팎으로 매우 위중한 시기로 전쟁의 위협이 고조되고 정치권은 분열의 모습으로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다”며 “종단 역시 지속적 불교 개혁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과 갈등이 상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불교다운 불교, 존경받는 불교, 신심(信心) 나는 불교를 만들어야 한다는 종도의 발원을 잘 알고 있다”며 “조고각하(照顧脚下·발밑을 잘 살펴 작은 일도 방심하거나 자만하지 않음)하며 종도의 뜻을 살피고 헤아릴 테니 모두가 뜻과 지혜를 모은다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번 선거에서 설정 스님의 당선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다. 1955년 혜원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1961년 동산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은 스님은 종단의 신망이 두터운 원로다. 게다가 선거인단에 대한 영향력이 압도적인 자승 원장 집행부가 적극적으로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4명이 출마했던 선거는 전 포교원장인 혜총 스님과 전 봉은사 주지 원학 스님이 중도 사퇴하며 안국선원장 수불 스님과 2파전으로 치러졌다. 수불 스님은 82표를 얻어 분전했으나 설정 스님이 234표(무효 3표)를 얻어 세가 크게 기울었다. 설정 스님은 선거 기간 제기됐던 여러 의혹도 모두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스님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지 깔끔하게 소명하겠다”며 “그것들이 소명되지 않고서는 (총무원장으로서) 종단의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스님은 자신의 신변 문제와 관련한 의혹을 보도한 교계 언론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고 1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낸 상태다. 또 마곡사 금권선거 논란 등 종단을 둘러싼 추문에 대해서도 “승려들이 진실하고 청정해야 사부대중이 신뢰하고 따르지 않겠느냐”며 “종도 및 스님들과 함께 논의해 의혹이 생기지 않도록 정리하겠다”고 약속했다. 조계종 총무원장은 본·말사 주지 임명권과 총무원 예산 집행권, 종단 소속 사찰의 재산 감독 및 처분 승인권 등 종단 전체를 총괄하는 권한을 지닌다. 앞서 2009년 33대 총무원장으로 선출됐던 자승 스님(63)은 2013년 연임에 성공해 8년 동안 재임했다. 설정 스님은 18일 조계종 최고 의결기구인 원로회의의 인준을 거친 뒤 31일부터 공식적인 임기가 시작된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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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계종 새 총무원장에 설정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제35대 총무원장으로 덕숭총림(수덕사) 방장인 설정 스님(75·사진)이 선출됐다. 조계종은 12일 “설정 스님이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치러진 선거에서 선거인단 319명 가운데 234표를 얻어 총무원장에 당선됐다”고 발표했다. 설정 스님은 득표율 약 73.4%로 절반을 넘겨 결선투표 없이 차기 총무원장으로 결정됐다. 임기는 4년이다. 충남 예산에서 출생한 설정 스님은 덕숭총림 3대 방장을 지낸 원담 스님을 은사로 14세에 출가했으며 1994∼1998년 종단의 국회 격인 중앙종회 의장을 지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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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비행기]경구 투여? 먹으란 소리 같긴 한데…

    “식후에 경구 투여하십시오.” 꿀 같은 연휴. 애꿎게 목감기가 찾아왔다. 딱히 병원 찾긴 그렇고. 마침 문을 연 약국에서 기침약을 샀다. 뻔한 알약, 하루 3번 2알씩. 근데 우연히 읽은 복용법에 살짝 멍했다. ‘경구 투여.’ 먹으란 소리 같긴 한데. 설마 딴 데 넣으란 건 아니겠지? 혹시나 해서 휴대전화 음성비서에게 물어봤다. 대답은 “연락처에 경구란 사람은 없다”란다. 또 당황했다. 학교 선배 이름인데 왜 없지. 어쨌든 국어사전 끝자락에 쓰인 경구(經口) 뜻은 이랬다. ‘약이나 세균 따위가 입을 통하여 몸 안으로 들어감.’ 그럼 투여는 또 뭐야. ‘역전앞’도 아니고. 이번 연휴 마지막을 장식한 건 한글날. 평소 한글 사랑에 열 올릴 깜냥도 못 된다. 하지만 이런 전문가나 알아들을 표현, 이젠 좀 사라지면 좋겠다. 최근 행정안전부는 제세동기(除細動器) 같은 몇몇 용어를 심장충격기 등으로 순화한다고 발표했다. 다행이긴 해도 어디 그것뿐이랴. 진짜 할 일 가운데 하나는 어려운 말도 쉽게 풀어 모두 알아먹게 하는 거다. 세종대왕께선 분명 그러자고 한글을 만드셨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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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룸/정양환]클럽가입 전상서

    “우와, ‘밀레니엄’이다.” 이게 웬일이람. 씩 미소가 번졌다. 뜸했던 친구의 ‘까똑’이 이런 기분일까. 19일 발행한 소설 ‘밀레니엄 시리즈’를 마주한 흥분은 꽤나 옹골찼다. 읽은 사람은 안다. 스티그 라르손. 일면식도 없는 스웨덴 소설가의 요절이 얼마나 헛헛했는지. 2005∼2007년 나온 3권의 범죄스릴러는 그만큼 끝내줬다. 한때 국내에선 절판됐던 이 소설이 다시 번듯해져 돌아오다니. 유족과 출판사가 선임한 작가가 바통을 이어받았다는 새로운 4권까지 함께. 무작정 꾐에 넘어가려는 찰나. 책 띠지에 야릇한 문장 하나가 눈에 콱 박힌다. “1억 부 클럽 진입을 앞둔….” ‘1억 부 클럽?’ 오호라, 그런 게 있어. 지구 곳곳에서 그렇게나 많이 봤다니. 그럼 그 클럽에 가입한 영광의 얼굴은 도대체 누굴까. 괜히 감질나서 인터넷을 쑤셔댔다.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등에 따르면 역시 이 클럽의 ‘회장’은 성경이다. 학자들은 지금까지 최소 5억 부 이상 찍었으리라 추산한다. 다만 1964년 출간된 마오쩌둥(毛澤東)의 ‘마오 주석 어록’이 6억5000만 부로 성경을 앞질렀단 주장도 있다. 소설에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약 5억 부로 압도적인 1위. 동양권에선 ‘홍루몽’이 1억 부를 넘겼다. 참고로 테두리 바깥이나 약 4000만 권이 팔린 한국책도 리스트에 있다. ‘수학의 정석’이다. 작가로 치면 영국 추리소설가 애거사 크리스티(1890∼1976)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 대표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포함해 85권이 거의 히트하며 총 20억 부 이상 팔렸다. 단일 시리즈 역시 영국이 우승컵을 차지했다. 1997년부터 세상을 들썩였던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는 지금까지 5억1000만 부가 나갔다. 재밌긴 한데, 뭔가 영 석연찮다. 아무리 뒤져봐도 ‘1억 부 클럽’이란 명칭이 없는 거다. 판매량이 나오니 1억 부 기준으로 가르면 되긴 한데…. 또 엉덩이가 들썩거려 한 출판사에 전화를 넣어 봤다. “저희가 알기로 그런 클럽은 없습니다. 오래전부터 관행적으로 ‘국내에서’ 쓰는 말이에요. 굳이 따지면 거짓말인 거죠. 하지만 한국 독자들이 워낙 그런 거에 관심이 많다 보니. 일종의 마케팅 기법이랄까요. ‘3대 기타리스트’ 뭐 이런 거처럼.” 젠장, 뒤통수가 띵했다. 분하긴 한데 대꾸할 말이 없다. 그놈의 클럽 뭐시기에 더 혹한 게 사실이니. 얼마 전 보도됐던 ‘제주도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사건도 마찬가지 아닌가. 세계 7대 귀여운 강아지 같은 걸 뽑은 단체한테 혈세 170억 원을 썼다. 왜 이 모양인지. “낙심할 건 없습니다. 워낙 한국인은 ‘평판’을 중시하거든요. 과하긴 해도,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발전시킨 기질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젠 균형감을 찾을 필요가 있죠. 타인의 시선, 특히 서양의 잣대에 너무 휘둘려요. ‘경제 규모 세계 10위’가 삶의 질을 보장하진 않는다는 건 이제 다들 알잖아요?”(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 그래, 이젠 좀 편해지자. 외국인한테 ‘두 유 라이크 김치(요즘은 치맥)’도 그만 하자. 그럼 대놓고 싫다 그러겠나. 어차피 밀레니엄은 모르고 봐도 좋았다. 1억 부 클럽이건 말건. 아무리 팔린들 내가 감흥 없으면 뭔 소용인가. 파랑새는 우리 곁에 있다. 굳이 ‘공인 인증’받지 않아도. 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

    • 2017-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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