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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법원행정처’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판사가 사법농단 재판을 맡을 경우에만 공정한 재판이 우려된다고 여긴다면 오산이다. 검찰 수사에도 불구하고 실체가 불분명한 블랙리스트를 들고나와 사태를 키운 국제인권법연구회와 관련된 판사가 재판을 맡을 경우에도 재판이 공정하겠느냐는 우려가 있다. 더 나아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이었을 뿐 아니라 그 전신인 우리법연구회 회장이었던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공정한 재판이 가능하겠느냐는 의문도 가능하다. 다만 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자기 맘에 맞는 재판부에 대한 요구를 자제하는 것이 사법의 독립을 존중하는 자세다. 더불어민주당이 구상하고 있는 사법농단 특별재판부는 1, 2심 재판만 특별재판부에 맡기고 최종 판결은 대법원이 한다는 것이다. 1, 2심은 사실심을 책임지고 그중 2심은 사실심의 최종심이다. 대법원 재판은 법률심의 최종심일 뿐이다. 국민은 헌법이 예정한 절차대로 사실심과 법률심을 모두 받을 권리가 있다. 1, 2심을 특별재판부에 맡기는 것은 국민에게서 헌법상의 사실심 절차를 박탈하는 것이다. 물론 대법원이 법률심만 맡는 게 아니라 주요한 사실의 확정도 다루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특별재판부가 1, 2심을 다루건, 통상의 재판부가 1, 2심을 다루건 어차피 대법원으로 사건이 올라올 수밖에 없을 텐데 1, 2심만 특별재판부에 맡기는 것은 법적으로 실효적인 의미가 없다. 단지 자기 맘에 맞는 판사들로 1, 2심을 구성해 그 재판 결과로 대법원 재판을 압박하려는 꼼수일 뿐이다. 권력 분립에 입각한 국가에서 국가의 일관성을 최종적으로 보장하는 곳은 사법부다. 국회는 다수당이 바뀌면 바뀌고 정부는 수반이 바뀌면 바뀌지만 사법부는 그런 식으로는 바뀌지 않는다. 사법부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고 하지만 바로 선출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탄핵에 의하지 않으면 함부로 바꿀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일관성의 토대가 된다. 사법부가 일관성을 보장하는 한에서만 집권세력이 누가 되든 받아들여질 수 있다. 특별재판부는 그 일관성을 중단시킴으로써 국가를 단절시킨다. 특별재판부를 만들고 싶으면 반민특위처럼 헌법적 근거부터 마련하거나 5·16처럼 자칭 혁명부터 하는 것이 그나마 제정신일 것이다. 사법농단 의혹에 대해 법원 자체 조사위는 3차례 조사 끝에 사법권 남용은 부적절하지만 죄는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 판단을 유보한 것은 김 대법원장이다. 그에 대해 법원 조사위의 결론에 맞춰 사태를 봉합했어야 했으며 그러지 못해 전례 없는 사법부 불신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있다. 그런 비판은 사법농단 압수수색영장이 90% 가까이 기각되고 있는데도 김 대법원장은 팔짱만 끼고 있다는 비판과 똑같이 사법농단의 원인인 관료적 사고방식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김 대법원장이 법원 조사위의 결론을 유보시킨 것은 법원 내부의 결론만으로 법원 외부를 설득하기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보고 싶다. 검찰 수사를 거쳐 법원 안에서만이 아니라 법원 밖에서도 수긍할 최소한의 공감대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었다. 달리 말하면 안에서 밖으로 나갔다 다시 안으로 돌아오는 변증(辨證)적 과정이 필요했다. 그렇게 해야만 즉자(卽自)적 결론은 그 유치함을 극복하고 대자(對自)적 결론으로 성숙해진다. 다만 변증적 과정에서 출발점과 종착점은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 최종적 판단권이 법원으로 돌아오지 않고 엉뚱하게 특별재판부로 귀속되는 것은 법원에 타율(他律)을 강제하는 것으로, 검찰 수사를 받기로 하면서 본래 의도한 성숙한 자율(自律)의 추구로부터 이탈이 된다. 최종적 판단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사법부에 맡겨야 한다. 아마도 죽이 될 가능성이 높겠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 법원 내에서는 이 사건을 보는 다양한 시각이 있다. 그 시각들이 버무려져 하나의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어떻게 버무려질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법관이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한다고 할 때 그 양심은 단순한 개인의 양심이 아니라 법관공동체의 양심이라고 한다. 그런 양심은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선험적으로 요구되는 것일지 모른다. 그런 양심은 나의 주관에도 없고 너의 주관에도 없다. 주관들이 버무려져 얻어지는 상호주관적 결론, 그것을 사후적으로 법관공동체의 양심이라고 부르는 것인지 모른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등 미국 민주당 주요 인사들에게 폭탄 소포가 배달됐다는 보도는 ‘유너바머’와 ‘탄저균 봉투’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기술문명을 혐오하던 수학 천재 시어도어 카진스키는 1978∼1995년 16차례나 소포 폭탄을 과학기술 종사자들에게 보내 3명을 죽이고 20여 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그는 발각되기 전까지 언론에서 ‘유너바머’로 불렸다. 2001년에는 ABC방송 등 언론사와 의회에 치명적 탄저균이 묻은 봉투 우편물이 배달돼 5명이 사망했다. 처음에는 알카에다가 배후로 지목됐지만, 미 육군 전염병연구소에서 근무한 생물학자 브루스 이빈스의 반사회적 범죄로 밝혀졌다. ▷이번 폭탄 소포는 모두 10건이 발견됐다. 그중에는 영화배우 로버트 드니로에게 보내진 소포도 있다. 드니로는 6월 토니상 시상식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알파벳 F로 시작되는 욕설을 하는 등 반(反)트럼프 목소리를 높여 왔다. 그는 1962년 영화 ‘택시 드라이버’에서 사회를 바로잡겠다는 영웅주의적 망상에 사로잡혀 대통령 후보를 암살할 계획을 세우는 주인공 역할을 맡았는데 이번 사건은 그 관계가 역전된 느낌이다. ▷폭탄은 다행히 터지지 않았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당파적 색채가 짙은 표적으로 인해 다음 달 6일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은 발칵 뒤집혔다. 폭탄에는 개봉과 동시에 터지는 부비트랩 같은 건 없었다. 실제 폭발까지 의도한 것인지 단지 공포심만 불러일으키려 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 때문에 논란은 더 커졌다. 민주당은 극우 보수주의자의 소행이라 주장하고 공화당은 민주당 열성 지지자의 자작극을 의심하고 있다. ▷현재까지 미국 여론조사의 추세를 보면 중간선거 결과 공화당 우위의 하원이 민주당 우위로 바뀔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온다. 그렇게 되면 트럼프의 일방적인 대내외 정책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그럴 경우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외교 분야 중 하나가 한반도 관련이다. 누가 폭탄 소포를 보냈는지의 수사 결과와 미국 민심의 향배에 우리로서도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1990년대만 해도 다문화(multiculture)를 활용해 다문화국가, 다문화사회란 말은 썼어도 다문화가정이란 말은 잘 쓰지 않았다. 이런 의미로서의 다문화란 말은 2003년 시민단체 30여 개로 구성된 건강시민연대에서 국제결혼 부부나 혼혈아 대신 다문화가정으로 부르자고 제안하면서부터 언론에서 점차 쓰이기 시작했다. ▷볼테르, 루소 등 프랑스 위인들의 무덤인 팡테옹에 올 7월 안치된 시몬 베유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로 1970년대 여성 낙태 합법화에 기여한 저명한 여성 정치인이다. 그가 1970년대 파리 시내 동북부의 벨빌 지역을 방문했다가 너무나 많은 이민자들의 모습에 “이곳은 파리가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놀랐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경기 안산시 원곡동 혹은 서울 대림동이나 가리봉동의 외국인 실태는 지금이야 많이 알려졌지만 10년 전에 그곳을 찾았다면 우리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파리 시민도 의식하지 못하는 속도로 파리가 달라졌듯이 우리의 다문화 상황도 그렇다. ▷얼마 전 서울 대림동 대동초등학교의 올해 신입생 72명 전원이 다문화가정 자녀라는 보도가 나왔다. 전교생을 기준으로 보면 10명 중 8명이 다문화가정 자녀다. 절대 다수는 중국동포의 자녀다. 중국 동포의 대동초 선호와 한국 학부모의 대동초 기피가 맞물린 현상이다. 다문화가 그 정도로 깊어졌나 해서 놀랍기도 하지만 한국인 일색인 것이 다문화가 아닌 것처럼 중국동포 일색인 것도 다문화가 아닐뿐더러 오히려 다문화사회 특유의 고립화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LG와 함께하는 동아 다문화상’ 시상식이 어제 열렸다. 올해 8년째다. 중국 출신 여성으로 한국인과 결혼해 이주여성 사회 적응 매니저로 활동하는 천즈 씨 가족이 다문화가족상 대상을 받았다. 우리 속의 타자(他者)와 어떻게 공존할 것이냐는 글로벌시대 인류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윤리적 과제이기도 하다. 공존이 혼란으로 흐르지 않고 시너지가 되도록 모두 더 노력해야 한다. 다문화란 말이 더 이상 쓰이지 않는 다문화사회가 진정한 다문화사회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독일 분단 시절, 베를린의 연합군 점령구역에서 소련 점령구역으로 넘어가는 곳에 있던 검문소 중 하나가 찰리검문소다. 찰리검문소는 알파검문소나 브라보검문소와 달리 외국인과 외교관에게 열린 유일한 통로여서 국제적으로 유명했다. 찰리검문소에는 달랑 부스 하나가 놓여있었지만 동독 쪽으로는 통행 차단 막대와 지그재그로 놓인 콘크리트 장벽, 감시탑 주변에 차량과 승객을 수색하는 넓은 구역이 있어 동서의 모습이 크게 달랐다. ▷남북한 사이에는 휴전선에서 각각 2km의 땅이 비무장지대(DMZ)로 설정돼 있다. DMZ 내에 남북한 군인이 대면해 경계를 서는 유일한 곳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이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북한군으로 분장한 송강호가 한국군으로 분장한 이병헌에게 “(군사분계선 너머로) 구림자 넘어왔어, 조심하라우”라고 말하는 것으로 설정할 만큼 가까이 마주보고 있다. 과거 찰리검문소처럼 분단의 긴장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JSA는 휴전협상 장소로 만들어졌다. 협상 당사자는 유엔군사령부와 북한군이었기 때문에 경비도 유엔사와 북한군이 맡았다. 그러나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이후 군사분계선을 표시하는 높이 5cm, 너비 50cm의 콘크리트 경계선이 생기면서 남측의 실제 경비는 한국군이 맡고 지휘만 유엔사가 하게 됐다. 정전협정 위반 사안이 발생하면 북한군과 유엔사가 군사정전위원회에서 마주 앉는다. 북한군은 1991년 유엔사가 한국군 장성을 유엔사 정전위 수석대표로 임명하자 참석을 거부하는 등 한국군 북한군 유엔사 3자가 참여하는 협의에 강한 거부감을 보여왔다. ▷17일 JSA에서 한국군 북한군 유엔사 장교들이 테이블을 삼각형 모양으로 배치하고 둘러앉아 JSA 비무장화를 논의했다. 3자 협의는 정전협정 체결 이후 55년 만에 처음이다. JSA에서 초소가 철수되고 형식적인 군사분계선마저 철거되면 JSA 내에서는 남북으로 자유로이 오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분단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이 평화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으로 바뀔 수도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김대중 정부가 200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북을 추진할 당시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겸 천주교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장을 맡고 있던 강우일 주교(현 제주교구장)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교황 방문은 해당국에서의 교회의 존재를 전제한다. 교회에는 신자와 사제가 있어야 하는데, 북한 교회에는 신자만 있고 사제가 없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고 실제 방북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내가 들은 바로는 내년 봄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북한을 방문하고 싶어하신다”고 말한 그제,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장인 정세덕 신부와 통화했다. 서울대교구장은 평양교구장 대리를 겸임하고 있고 교황이 방북하면 서울대교구장이 평양에 가서 교황을 맞아야 한다. 교황이 방북을 고려한다면 그 조건을 검토하는 임무는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의 몫이다. 정 신부는 교황의 방북 조건에 대한 검토도, 검토에 대한 주문도 없었다고 말했다. ―2000년 이후 교황 방문의 전제조건이 바뀐 것인가. “아니다. 교황의 모든 방문은 그때나 지금이나 사목 방문(pastoral visit)이다. 북한에는 사제도 없고 수도자도 없다. 서울대교구장으로 처음 평양교구장 대리를 맡은 김수환 추기경 이후 정진석 추기경, 또 현재 염수정 추기경까지 누구도 북한에 정상적인 신앙생활이 이뤄지는 교회가 있다고 확인한 적이 없다.” ―이 대표가 한 말은 뭔가. “정치적 입장에서 애드벌룬을 띄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전제조건은 안 되지만 교황이 예외적으로 방북할 순 없나. “북한 정권이 매우 전향적으로 종교의 자유, 신앙의 자유, 선교의 자유를 허용하겠다고 약속하고 보장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교황이 방북한다고 해도 의미가 없고 그런 의미 없는 방북은 교황이 하지 않을 것이다.” ―교황은 중국 방문을 오래전부터 희망해왔다. 최근 중국 정부와 주교 임명에 대해 타협도 했다. 내년쯤 중국을 방문한다면 북한을 함께 방문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중국의 독자적 주교 임명을 사실상 인정했다고 해서 중국 교회를 온전히 인정한 것은 아니다. 교황의 방문을 위해서는 최소한 선교와 사목 활동의 자유가 보장돼야 하는데, 중국 교회는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북한에는 그나마 중국 수준의 교회도 없다.” ―일반 언론은 교황 방북 추진을 떠들썩하게 전하는데 가톨릭 언론은 왜 이리 조용한가. “교황 방북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침묵으로 전하는 게 아니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내일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하고 김정은의 방북 초청을 전달할 예정이다. 교황이 초청에 응하는 것이 교황의 프로토콜상 어렵다는 사실을 청와대가 알았다면 문 대통령이 교황을 알현한 뒤 김정은의 방북 초청 사실과 교황의 답변을 함께 전해야지, 평양회담 직후도 아니고 유럽 순방 직전에 뒤늦게 김정은의 제의를 떠들썩하게 밝힌 연유는 무엇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청와대가 교황 방북의 특별한 조건을 과연 알아보기나 한 것인지 의문까지 든다. 이유가 없지 않다. 청와대는 지난해에도 가톨릭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적이 있다. 청와대를 향한 낙태 청원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신중절에 대해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는 사실과 다른 답변을 했다가 천주교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 결국 사과했다. 천주교가 그 속의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드물게 일치하는 의제가 낙태 반대임을 알았다면 그런 엉뚱한 답변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79년과 1983년 조국 폴란드를 방문하고 동유럽 공산권 몰락에 큰 공헌을 했다. 그것은 동유럽 국가에는 공산 치하에서도 진정한 교회가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북을 결정한다면 인간의 예상을 뛰어넘는 하느님의 놀라운 축복이 될 것이다. 문 대통령도 그런 축복을 끌어내는 기적 같은 일을 해낸 데 대해 칭송을 받아야 한다. 교황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에 진정한 교회가 들어설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 그것이야말로 모두가 기뻐할 일이다. 내가 창피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내 예상이 틀리길 바란다. 그러나 김정은에게 비핵화보다 더 허용하기 어려운 것이 신앙의 자유다. 신앙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국제형사경찰기구 인터폴의 수장인 중국인 멍훙웨이 총재가 중국 도착 이후 사라졌다. 인터폴 본부는 프랑스 리옹에 있다. 남편을 따라 프랑스에 거주하는 멍 총재의 부인이 프랑스 경찰당국에 신고하면서 그의 실종 소식이 알려졌다. 멍 총재 부인은 “중국에서 남편의 목숨을 거론하는 협박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며 “남편이 지난달 20일 프랑스를 떠나 스톡홀름을 거쳐 베이징에 도착한 뒤 행방이 묘연하다”고 밝혔다. ▷프랑스와 홍콩의 몇몇 언론은 익명의 정보 소식통을 인용해 “멍 총재가 공항에 내리자마자 어디론가 끌려갔다”며 “부패 의혹으로 중국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앞서 중국의 인기 여배우 판빙빙은 무려 4개월 넘게 언론의 추적에서 사라져 그의 실종을 둘러싸고 사망설 감금설 망명설 등 온갖 소문이 난무했다. 판빙빙은 이달 3일에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탈세를 사과한다’는 강요받은 듯한 글을 올리며 부패 의혹으로 조사를 받았음을 시사했다. ▷중국 재벌 밍톈그룹의 샤오젠화 회장은 지난해 1월 홍콩에 갔다가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 납치돼 사라진 뒤 아직도 생사가 불분명하다. 부패에 연루된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 당국은 그가 어떤 혐의로 어디서 조사를 받고 있는지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2002년에는 판빙빙 사건과 유사하게 류샤오칭이라는 인기 여배우가 탈세 혐의로 체포돼 베이징의 한 감옥에서 422일간 지내다가 풀려난 적이 있다. ▷감시와 무단 연행·연금은 권위주의 국가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영국의 마그나카르타 이래 민주주의는 인신(人身)의 자유를 요구하는 데서 시작한다. 문명사회에서 누군가를 체포할 때 그 사실을 가족이나 친구에게 알리고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최소한의 인권이다. 갑작스러운 실종은 가족이나 친지들의 애간장을 태우고 죽음과 같은 최후의 상황을 상정하게 하는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인터폴 수장과 그 가족까지도 그런 불안과 공포에 시달려야 하는 나라에서 이름도 없는 인민들에게 가해지는 공안 권력의 위압이 어떠할지 가히 짐작이 간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중국산 폐쇄회로(CC)TV의 주요 시설 사용을 금지하는 새로운 국방수권법(NDAA)이 8월 미국 의회를 통과해 관심을 끌었다. 중국산 CCTV는 정보를 빼내는 ‘백도어’(보안 구멍)가 심어져 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국방수권법은 중국의 특정 회사 이름까지 적시했는데 CCTV와 그 핵심 부품인 IP카메라의 세계 시장점유율 1, 2위를 차지하는 하이크비전과 다화(다후아)가 포함됐다. ▷중국산 CCTV의 의심스러운 백도어가 실제 발각된 나라 중 한 곳이 다름 아닌 우리나라다. 2015년 KAIST 시스템보안연구실과 보안업체 NSHC는 중국에서 수입한 CCTV 2개에 숨겨진 백도어를 발견해 정부에 신고했다. 백도어는 암호화 기법까지 적용해 몰래 심어져 있었다. 이 백도어에는 중국에 위치한 클라우드 서버에서만 접근이 가능했다고 한다. ▷국내 주요 기관에 얼마나 많은 중국산 CCTV가 설치돼 있는지 정부가 밝히지 않아 알 수는 없다. 올 국정감사 자료에서 정부과천청사가 하이크비전 CCTV의 최대 수주처인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과천청사에 설치된 328기의 약 50%에 해당하는 155기가 하이크비전 제품이다. 그중 정보통신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건물에는 59기 중 무려 86%인 51기가 하이크비전 제품이다. 국가보안시설인 원자력발전소에도 하이크비전 제품이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전체에 현재 1억7600만 대 정도의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고 그중 안면인식 같은 첨단 기술을 이용한 인공지능(AI) CCTV도 2000만 대나 된다. 중국이 CCTV를 통해 범죄 혐의자를 추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민 전체를 감시하는 것도 큰 문제이지만 수출한 CCTV를 통해 외국의 국가 기밀이나 산업 정보를 빼낸다면 그 역시 큰 문제다. 우리나라가 중국산 CCTV에 대해 미국처럼 주요 시설 사용 금지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것은 중국의 무역 보복을 우려해서라고 한다. 우리는 중국을 상대로 함부로 펀치를 날리기 어렵겠지만 철저한 보안성 검사를 통해 중국도 꼼짝 못 할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스탈린은 1952년 분할 점령 상태의 독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른바 ‘평화노트(Peace Note)’란 걸 제안한다. 독일과의 사이에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키고 독일을 통일된 중립국으로 만들되 상호 군대를 철수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서구의 지도자들은 소련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북대서양 동맹을 통해 서독을 서구로 포섭하려는 모든 시도가 차질을 빚을 것이고 한번 차질을 빚자마자 다시 북대서양 동맹을 향한 모멘텀(momentum)을 되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거부했다. 당시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공산당이 의회 의석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했다. 이 분포는 194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쿠데타 직전에 공산당이 차지한 의석과 비슷한 비율이다. 이들 서구 공산당은 북대서양 동맹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었다. 독일에서도 사회민주당은 기독교민주당 총리인 아데나워가 각별한 결단력으로 추진하는 친서방 정책에 반대하면서 ‘우리 민족끼리(Wir sind ein Volk)’를 외치며 중립화를 주장하고 있었다. 이 사건은 외교에서 모멘텀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그 모멘텀을 깨기 위해 외교의 상대방이 얼마나 집요하게 노력하는지를 보여주는 비근한 예일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주 미국 방문 때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군사훈련을 중단한 것, 언제든지 재개할 수 있다.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다. 제재를 완화하는 한이 있더라도 북한이 속일 경우, 약속을 어길 경우, 제재를 다시 강화하면 그만이다”라고 말했다. 단순한 수사로 들리지 않는다. 그것이 사안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으려는 시도라고 아무리 긍정적으로 해석하려 노력해 봐도 가벼움에 대한 우려를 지울 수 없다. 그의 ‘아니면 그만’이라는 발언에서는 외교에서 타이밍(timing)이나 모멘텀의 중요성에 대한 고려가 느껴지지 않는다. 유엔이 북한이 압박을 느낄 만한 대북제재의 모멘텀을 쌓는 데 수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미 중국과 러시아가 김정은의 말뿐인 비핵화 약속만 믿고 제재를 완화하기 위한 공세를 펴고 있다. 핵과 미사일 실험은 누가 봐도 명확한 도발인데도 대북제재의 모멘텀을 쌓는 데 상당히 긴 시간이 걸렸다. 비핵화는 모든 군축 회담과 마찬가지로 복잡한 기술적 문제로 변해 오리무중(五里霧中)이 되기 쉽다. 헨리 키신저 같은 외교학자는 군축은 극소수의 사람만 이해하는 난해한(esoteric)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다. 1년, 3년이 아니라 더 긴 과정이 될지도 모를 비핵화를 놓고 제재를 강화할 모멘텀을 다시 쌓기는 쉽지 않다. 문 대통령의 말처럼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중단된 군사훈련을 재개할 수도 있고 종전선언을 취소할 수도 있다. 그래야만 한다. 그러나 중단된 군사훈련을 재개하고 종전선언을 취소할 경우 상황은 전과 똑같은 데로 돌아왔을 뿐인데도 큰소리를 칠 권리가 북한에 넘어가는 역전이 발생한다. 이런 것이 선후(先後)의 미묘함이다. 북한은 이 인터뷰 후에 ‘비핵화가 종전선언의 대가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아니면 그만’인 종전선언 따위로는 비핵화의 대가가 될 수 없다는 논리가 그럴듯해졌다. 한 발 더 들어가서 따져보면 남북한 지도자가 ‘미국은 북한에는 불가역(不可逆)적인 것을 요구하면서 스스로는 종전선언 같은 가역적인 것도 못 해주는가’라는 인식을 공유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그래서 문 대통령의 말이 단순한 수사로만 들리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같은 인터뷰에서 김정은을 솔직 담백한 인물이라고 평했다. 그런 평가도 립서비스로만 들리지 않는다. 그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고 확신한다는 근거는 김정은의 말뿐이다. 확신의 근거가 김정은의 말밖에 없기 때문에 김정은은 솔직 담백한 인물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공산주의자들은 말을 계산하고 하는 게 버릇이 된 사람들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향한 립서비스에 흥분하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들은 생래적으로 압박을 받을 때만 움직이는 유형이다.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립서비스가 아니라 압박이다. 유화정책은 압박할 때보다 더 냉철한 현실주의에 토대를 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뮌헨 회담의 영국 체임벌린 총리처럼 기만에 농락당하는 우스운 꼴이 될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지난해 1인 가구가 2000년에 비해 2.5배가량 늘어 전체 가구의 28.6%를 차지했다. 모든 연령대에서 1인 가구가 크게 늘었지만 비율로 보면 1인 가구 가운데 34세 이하 1인 가구의 비율이 줄어든 반면 35세 이상 1인 가구의 비율은 늘어난 사실이 흥미롭다. 25∼34세 비율은 51.9%에서 38.0%로 13.9%포인트 감소한 반면 35∼44세 비율은 17.5%에서 24.3%로 6.8%포인트, 45세 이상 비율은 5.5%에서 19.5%로 14.0%포인트 증가했다. ▷국어사전에서는 중년을 마흔 안팎의 나이로 정의한다. 40세 이상 1인 가구는 크게 세 가지 부류로 분류할 수 있다. 아예 결혼적령기를 놓쳐 결혼하지 않았거나 이혼한 뒤 혼자 사는 두 부류의 중년층과 자녀를 모두 출가시킨 뒤 배우자와 사별한 노년층이다. 40세 이상에서 미혼 이혼 사별 모두 크게 증가했다. 고령화 현상으로 노년에 혼자되는 거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마흔 무렵은 이대로 외롭게 늙어 버리는 것이 아닐까 불안감을 떨쳐버리기 어려운 나이다. ▷만혼(晩婚)으로 30대 싱글은 흔해졌다. 이제 40대 싱글은 돼야 주변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듯하다. 인기 TV 프로그램 ‘불타는 청춘’에 등장하는 ‘나홀로족’은 주로 40대다. 가수 김광석이 ‘서른 즈음에’서 노래한 청춘을 떠나보내는 안타까움을 이제 ‘마흔 즈음에’로 바꿔야 할지 모른다. 40대 싱글을 향한 조명은 연장된 젊음에 대한 예찬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더는 붙잡을 수 없는 젊음에 대한 안타까움이기도 하다. ▷여성의 건강 상태가 좋아져 40대 초반까지는 아직 둘 사이에 아이가 있는 가정의 꿈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45세가 넘어가면 상황은 급속히 달라진다. 건강학으로 보면 중년은 45세 무렵부터라고도 할 수 있다. 중년에 자발적 독거를 택한 것이라면 문제가 덜하지만 비자발적 독거는 우울증, 알코올의존증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 사이에 낀 고독한 중년의 문제에도 사회가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방탄소년단(BTS)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이어 팝음악의 본고장 미국을 강타했다는 점에서 한류에서도 특히 두드러진 현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특정 곡을 중심으로 한 일회성 인기였다면 BTS는 곡을 넘어 그룹 자체에 인기가 집중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 주목할 만하다. 소녀시대나 원더걸스 같은 걸그룹의 미국 진출도 과거 관심을 끌긴 했지만 오늘날 보이그룹 BTS가 얻고 있는 인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BTS가 24일 유엔에서 연설까지 했다.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의 청년세대를 위한 ‘세대를 뛰어넘어(Generation Unlimited)’ 행사장에서다. 멤버들이 모두 나와 늘어선 가운데 리더 RM(본명 김남준)이 대표로 6분여간 영어로 연설했다. 주제는 ‘자신을 사랑하라’였다. BTS가 올해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한 두 앨범이 ‘러브 유어셀프(LOVE YOURSELF)’라는 주제의 시리즈 앨범이다. BTS는 그 앨범의 성공에 힘입어 유니세프와 손잡고 세계 아동·청소년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자신을 사랑하라’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연설에는 “사람들이 BTS는 희망이 없다고 말했을 때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며 그러나 남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함으로써 절망을 극복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BTS는 SM, YG, JYP 같은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소속된 그룹이 아니지만 유튜브에서 얻은 인기로 출발해 세계적 성공을 일궈냄으로써 인터넷 시대의 젊은 세대에게 희망과 용기를 줬다. ▷전 세계의 BTS 팬들은 피부색이 어떻든, 외모가 어떻든 BTS의 최근 인기곡 ‘아이돌’의 영어로 된 후렴구 ‘넌 내가 날 사랑하는 걸 막지 못해(You can‘t stop me lovin’ myself)’라고 외치며 노래한다. 그렇게 노래하다 보면 누구라도 어느새 자신을 사랑하게 될 것 같다. RM은 “우리 스스로 어떻게 삶을 바꿀 수 있을까. 우리 스스로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자긍심의 소중함을 일깨운 연설이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최근 30회로 끝난 동아일보 창간기획 시리즈 ‘새로 쓰는 우리 예절 신예기’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그중에서도 “아버지는 생전 술은 안 좋아하고 커피를 좋아해서 조상 제사 때마다 ‘커피와 바나나만 올려 달라’고 하셨는데 남의 눈 때문에 못 했었다. 이번 제사엔 한번 해보고 싶다”는 댓글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제사는 조상이 돌아가신 날 지내는 기일(忌日) 제사만 있었지 명절 차례는 없었는데 근대에 들어와 일제강점기 때부터 명절 차례가 생겼다. 퇴계 이황의 집안처럼 전통 있는 집안에서는 기일 제사에 충실하려고 하지 명절 차례는 지내지 않는다고 한다. 명절 차례가 기일 제사에 더해 또 다른 부담을 더하는 것이라면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 ▷집성촌을 이뤄 살던 농촌사회에서는 기일이면 가족이 다 모일 수 있었으나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은 국가적 공휴일인 명절에나 모일 수 있게 됐다. 차례를 단순히 조상에게 절을 올리는 것으로만 보지 않고 후손들이 차례를 위해 준비한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화목을 도모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요새는 더 많은 후손들이 모일 수 있는 명절 차례가 더 의미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다만 명절에 며느리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시댁 가서 바닥에 주저앉아 다리가 저리도록 전 부치는 일이라고 한다. 상 차리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주고받을 바에야 치킨을 시켜 나눠 먹더라도 가족이 화목하게 지내는 게 명절 차례를 지내는 본래 정신이다. ▷남자들은 TV나 보면서 놀고 있는데 그 옆에서 여자들만 음식 장만에 애쓰는 모습은 명절이면 여지없이 드러나는 남녀 차별의 전근대성이다. 명절에 시가와 처가를 다 들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우선순위는 시가인 것이 현실이다. 페미니스트 여성도 남편의 동생들을 도련님이나 아가씨라고 불러야 하는 언어적 관행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예의만큼 본래 정신을 잃고 형식만 남기 쉬운 것도 없다. 박제화되기 쉬운 예의를 어떻게 시대정신과 조화시켜 갈 것인가. 늘 새롭게 써가야 할 신예기의 과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바다의 부표(浮漂)는 단순한 식별수단에서 기상관측용까지 다양한 목적에 쓰인다. 배와 갈매기와 하늘의 구름밖에 그릴 게 없는 망망한 바다에서 화가들이 사랑한 이색적 소재이기도 하다. 이 정겨운 오브제가 전쟁에 긴히 쓰이게 된 것은 잠수함이 처음 사용된 제2차 세계대전부터다. 잠수함의 접근을 사전에 탐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중음파탐지기(소나)를 장착한 부표도 대잠항공기를 통해 바다에 뿌려지기 시작했다. ▷한국은 어제 3000t급 잠수함 1호인 ‘안창호함’ 진수식을 가졌다. 그런데 중국이 올해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과 이어도 근해에 8개의 부표를 설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2014년 백령도 서쪽 공해상에 첫 부표가 발견된 이후 갑작스럽게 부표가 늘어났다. 부표에는 중국해양관측부표라고 표시돼 있지만 이들 중 4개는 우리 해군의 공해상 작전 구역에 설치돼 있어 한미의 잠수함 기동을 감시할 수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해양 관측을 가장한 군사용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중국 군용기가 지난달 29일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해 강릉 동쪽 상공까지 비행했다. 올해만 5번째 침범이다. 중국 군용기의 KADIZ 진입은 2013년 동중국해에 선포한 자국의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한 이후 급증했다. 중국은 당시 일본 센카쿠 열도와 한국 이어도 상공을 포함한 새로운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했다. 중국 군용기의 KADIZ 무단 진입은 초기에는 이어도 남서쪽 구역에 집중됐으나 지난해부터 과감히 대한해협을 거쳐 동해까지 올라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도 동시에 무단 진입하게 된다. ▷중국의 계속되는 KADIZ·JADIZ 무단 진입과 서해상에 군사용으로 쓰일 수 있는 부표의 설치는 중국이 하늘과 바다에서 한일 방향의 정찰 및 작전 능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만이 아니라 동해상에서 러시아의 KADIZ·JADIZ 무단 진입도 종종 벌어지고 있다. 육상에서는 체감하기 어렵지만 높은 하늘과 먼바다에서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은 해가 갈수록 고조되는 느낌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판문점에서 처음 만난 4월 27일, 난 독일에 있었다. 남북 정상의 만남은 독일 언론에도 크게 보도됐다. 몇몇 신문에는 문 대통령이 김정은의 손에 이끌려 군사분계선을 넘는 뒷모습이 찍힌 사진이 1면에 실렸다. 며칠 머문 것도 아닌데 한 번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주유를 하다 상점 주인으로부터, 또 한 번은 출국하면서 공항 보안검색요원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축하의 인사를 받기도 했다. 당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슈투트가르트 인근에서 건실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울리히 레너 사장과 나눈 대화였다. 그도 대부분의 독일인과 마찬가지로 남북 정상의 만남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는 식의 통일에 가까워진 것으로 해석했다. 다만 “왜 너희 한국인들은 통일을 하려 하냐”고 물었던 것이 특이했다. 그러면서 그는 독일이 갑작스러운 통일로 얼마나 큰 경제적 고통을 겪었는지 설명했다. 난 남북 정상의 만남이 꼭 통일에 가까워진 것으로 볼 수 없음을 그에게 설명했다. 진보 진영에서 가까운 시일 내 통일의 꿈은 접은 지 오래다. 말로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하지만 실은 남북이 일단 경제적 또는 문화적 교류에 집중하고 정치적 통일은 미뤄두자는 것이다. 백낙청 씨는 최근 ‘창작과 비평’에서 진보 진영이 통일은 제쳐두고 평화만 말해도 되는 것인가 묻기도 했다. 지난 10년간 통일이란 화두는 오히려 보수 진영의 것이 돼 이명박 정부는 ‘도둑같이 찾아올 통일’에 대비하자고 했고 박근혜 정부는 ‘통일대박’을 외치기도 했다. 레너 사장은 오해를 하고 있었지만 남북이 큰 경제적 격차를 지닌 채 통일할 경우에 대한 우려는 자신이 사업가로서 겪은 통일의 실제 체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도둑같이 찾아올 통일’은 오히려 걱정이다. ‘통일’은 대박은커녕 쪽박이 아니면 다행이다. 지금 국민들 사이에 퍼져나가고 있는 남북경협에 대한 환상도 걱정스럽다. 정치적 통일을 이루기 전에 남북이 경제적인 격차를 더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통일에 따른 고통을 줄이는 길이다. 그것이 레너 사장이 내게 해주고 싶었던 말의 핵심이다. 남북경협에 찬성하지만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판문점선언은 3개 부문으로 이뤄져 있다. 비핵화란 말은 3번째 부문에서도 1항 불가침합의, 2항 군축, 3항 평화협정이 거론된 다음인 맨 마지막 4항에서 거론된다. 전체적으로 비핵화는 마지못해 거론된 느낌이다. 문 대통령 쪽에서는 그렇게나마 비핵화를 넣은 것이 다행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남북 정상이 이 시점에 만나서 이런 선언을 하게 된 비핵화라는 동기가 흐릿한 데다 평화협정 체결 등 미국과 보조를 맞춰야 하는 여러 사안이 들어 있다. 대통령은 국회의 비준 없이 독자적으로 외교 행위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국회 비준은 요구했는데 비준을 받지 못할 경우 그것을 무효로 하는 것을 전제한다. 판문점선언의 경우는 비준을 받지 못할 경우 무효가 되는지 불분명하다. 문 대통령은 무효가 된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판문점선언은 그 비준 여부를 두고 국회와 대통령이 상호 대등한 관계에 서있지 않고 따라서 비준의 요건을 갖춘 사안이라고 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이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을 추진하는 것은 판문점선언에 언급된 10·4선언의 이행 등과 관련한 예산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부는 어제 비준동의안을 제출하면서 약 4700억 원에 이르는 비용 추계서를 첨부했다. 이것은 내년에만 필요한 예산이고 연도별로 모두 얼마의 예산이 필요한지는 알 수 없어 국회가 가부(可否) 판단을 하기 어렵게 돼 있다. 10·4선언 이행에는 최소 수조 원이 들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그 정도 규모의 사업안은 판문점선언에 부속해서가 아니라 따로 만들어 국회의 동의를 구하는 게 옳다. 자유한국당도 반대만 해서는 안 된다. 비핵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남북경협을 할 수 없다는 태도는 융통성이 부족하다. 일괄적이 아닌 한 비핵화가 먼저냐 남북경협이 먼저냐는 의미 없는 논란이다. 비핵화가 단계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면 비핵화의 단계마다 남북경협의 진전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양쪽 다 단계적이라면 비핵화의 보상으로 남북경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남북경협이 비핵화를 선도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1950년 6·25전쟁 발발 후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했던 국군은 인천상륙작전에 힘입어 서울을 수복하고 평양을 탈환했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1951년 1·4후퇴를 겪게 된다. 1951년 7월 휴전회담의 개시로 전쟁은 제한된 공세로 전환된다. 이때부터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 고지쟁탈전이고 그중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가 백마고지 전투다. ▷“백마고지는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신명리에 위치한 해발 395m의 야산으로 전쟁 전에는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던 무명고지에 불과했으나 전선이 고착되면서부터 철의 삼각지 좌견부를 감제하는 중요 지형지물로 유명하다. 명칭의 유래는 전쟁 중 포격에 의해 수목이 다 쓰러져버리고 난 후의 형상이 누워 있는 백마처럼 보였기 때문에 백마고지가 됐다는 설과 당시 참전했던 어느 연대의 부연대장이 외신기자에게 ‘화이트 호스 힐(white horse hill)’이라고 대답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백마고지역(驛)에 쓰여 있는 명칭의 유래 설명이다. ▷백마고지에서는 국군 제9사단과 중공군 제38군 사이에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10일간 7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싸움이 벌어졌다고 하니 얼마나 치열한 공방전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6·25전쟁에서 단일 전투로는 가장 많은 27만 발의 포탄이 사용됐다. 중공군 1만3000명이 죽었고 아군은 3000명이 희생됐다. 제9사단은 이 전투의 승리로 나중에 백마부대로 불리게 됐고 그 용맹성을 인정받아 1966년 맹호부대(오늘날 수도기계화사단)에 이어 파월부대로 선정됐다. ▷남북한은 비무장지대(DMZ) 내 백마고지 격전지에서의 공동 유해 발굴에 의견을 모으고 이번 주 군 장성급 회담에서 확정할 계획이다. DMZ 내에 6·25전쟁 때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장소에서의 공동 유해 발굴은 의미가 적지 않다. 백마고지역에서 북쪽으로 더 가면 ‘철마는 달리고 싶다’로 유명한 월정리역이 있다. 경원선 철로는 여기서 끊겨 있다. 유해 발굴 작업이 계기가 돼 인근 지뢰를 제거하고 철마를 더 달리게 하는 작업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으면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진정한 권력은 공포다(Real power is fear).” 한비자(韓非子)나 마키아벨리가 했을 법한 이 말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 기자인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WP) 부편집인과의 인터뷰에서 했다. 정확히는 “진정한 권력은, 나는 이 단어를 쓰고 싶지 않지만, 공포다”이다. 그 발언의 ‘공포’란 단어가 우드워드가 최근 낸 신간의 제목이 됐다. ▷중국 영화 ‘영웅’을 보면 진시황이 자객 형가에게 황급히 쫓기는데도 근위병들이 명령이 없어 단 위로 오르지 못하고 단 아래서 부동자세로 서 있는 장면이 나온다. 진시황의 명령에 따르지 않을 때의 공포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겠지만 지금 백악관은 공포의 집이라고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 당국자가 5일 뉴욕타임스에 자신을 트럼프에 맞서는 ‘레지스탕스’라고 소개하며 익명의 칼럼을 써서 트럼프 행정부를 고발한 희한한 일도 벌어졌다. ▷신간 ‘공포’에는 게리 콘 백악관 전 국가경제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를 폐기하기 위해 서명하려 했던 서한을 대통령의 책상에서 몰래 훔쳐 나왔는데도 대통령은 서한이 없어진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한미 FTA를 폐기하려고 했다는 사실 자체보다도 한 국가를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 생각이 슈퍼파워 미국의 대통령 머릿속에 충동적으로 일었다 잊혀진다는 게 더 충격적이다. 공포는 단순히 무서워서라기보다는 힘을 가진 자의 예측 불가능성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을 존 켈리 전 백악관 비서실장은 ‘바보’라고 불렀고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초등학교 5∼6학년 수준’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 수준에서 주한미군 주둔의 필요성 같은, 미국 대통령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사안에 의문을 표시하니 참모들은 기가 막힐 따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이 대북 선제타격 준비를 지시하고 무력시위를 벌이다가 순식간에 방향을 틀어 김정은을 치켜세우며 협상하니, 한반도에 평화가 다가온다고 기뻐하는 것이 맞는가. 우리를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책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의 나이는 ‘만 14세도 채 되지 않은(she‘s not even fourteen)’ 것으로 나온다. ‘춘향전’에서 춘향은 이팔청춘(二八靑春)으로 만 나이로 따지면 14세나 15세다. 청소년 개념이 희박하던 시절에는 어린이가 어느새 어른이 되고 사랑의 주인공도 된다. 하지만 현대로 올수록 청소년다운 사랑의 범주가 따로 생기고 줄리엣이나 춘향 식의 사랑은 더 나이 많은 어른의 것이 된다. ▷형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성인의 나이는 북유럽 국가에서는 만 15세, 한국 일본 독일 같은 전형적인 대륙법 국가에는 만 14세, 프랑스에서는 만 13세 이상으로 줄리엣이나 춘향이 사랑의 주인공이 된 나이와 비슷하다. 대개 18∼20세인 민법상 성인의 나이보다 훨씬 빠르다. 사랑과 범죄는 애증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증폭된 것일 뿐 감정에 기초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감정적으로는 그 나이에 성인이나 다름없이 격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가 어제 형법상 성인의 나이를 만 13세로 내리는 입법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만 13세와 만 14세 사이에 신체나 의식의 어떤 근본적 차이가 있어서 만 13세로 내리는 게 옳은지, 아니면 만 14세를 유지하는 게 옳은지 명쾌한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다만 만 7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제에서 중학교 입학 나이가 보통 만 13세니까 만 13세부터 처벌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 학교폭력과 관련해서는 설득력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청소년 범죄에 대한 대응이 형법상의 처벌이냐 소년법상의 보호처분이냐의 양자택일에 머물러서는 근본적 해법이 되지 못한다. 만 10세부터 만 14세 미만의 촉법(觸法) 청소년에게는 소년법상의 보호처분만 할 수 있는데 그동안 보호처분이 보호에만 치중한 나머지 그 나이에 맞는 적절한 처벌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소년법 자체가 어린이와 성인만 알던 형사법에 청소년의 개념을 도입한 것이긴 하지만 어리면서도 벌써 성인이나 다름없는 청소년에 맞춰 더 세분화된 처벌과 교화의 방식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권력분립의 개념을 근원에서부터 살펴보면 외교에 특별한 위치가 부여된 사실을 알 수 있다. 권력분립을 처음 언급한 영국 정치철학자 로크는 권력을 입법 행정 사법의 삼권으로 나누지 않고 입법 행정 연합(외교)권으로 나눈다. 사법시험 준비하며 달달 외운 박제화된 권력분립 개념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외교에는 ‘한목소리 원칙(one voice principle)’이란 게 있다. 행정부 내에서 서로 다른 부처가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건 말할 것도 없고 행정부를 넘어 국가적으로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뜻이다. 1828년 과테말라가 어느 국가에 속하는지 논란이 됐을 때 랜실롯 섀드웰이라는 영국 대법원장이 “영국 외무성이 과테말라를 스페인 영토라고 선언했는데 영국 법원이 과테말라는 스페인의 영토가 아니라고 해서는 안 된다”며 이 원칙을 천명한 이후 외교의 주요 원칙으로 통하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과 관련해 재판거래 의혹이 제기된 재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면서 검찰이 유독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이 왜 하필이면 일제강점기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 관련 재판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외교에서의 ‘한목소리 원칙’을 고려하면 한일 간 외교적 마찰을 빚을 수도 있는 사안을 놓고 정부와 법원이 협의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미국이 강제징용 피해보상과 관련해 ‘한목소리 원칙’을 적용한 사례가 있다. 200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과거 적국(敵國)에 의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강제 노역한 피해자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허용한 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 따라 일본에 강제 징용된 한국인과 중국인이 캘리포니아주 법정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 소송에서 미국 국무부는 “각 주(州)가 대통령이 표명한 국가 전체의 외교 정책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부담을 부과할 자유를 지닌다면 대통령의 외교적 레버리지(leverage)를 심각하게 제약함으로써 외국 정부와 교섭할 권한을 침해한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결국 그 법은 위헌 판정을 받았다. 외교적으로 한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제대로 된 나라라면 당연히 하는 일이다. 강제징용은 위안부 문제와는 달리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포함돼 정부 간 배상이 이뤄졌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입장이다. 문재인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이 점에서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일본은 1965년 협정으로 일본 정부의 배상 의무만이 아니라 민간 기업의 배상 의무까지 사라졌다고 본다. 한국이 일본 기업의 배상 의무가 남아 있다고 할 경우 그렇지 않아도 위안부 문제로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한일관계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문재인 정부를 제외하고 과거 모든 정부가 우려했던 것이다. 2012년 한국 대법원의 한 소부(小部)가 일본 기업들이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 9명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사건을 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당시 대법원 판결은 옳았는지 옳지 않았는지를 떠나 한국 정부가 취해온 애매모호한 입장이란 선(線)을 넘어서 외교에서의 ‘한목소리 원칙’을 깬 측면이 있다. 한국 법원이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면 통쾌하기는 하겠지만 손익은 따져봐야 한다. 일본 법원이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 의무를 부인하는 상황에서 한국 법원이 손해배상 책임을 부과한다고 한들 일본에서 집행할 방법은 없다. 결국 한국 내 일본 기업의 자산을 한국 정부가 압류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이 초래할 외교적 손실은 압류의 실익보다 클 수 있다. 영화 ‘군함도’에서 보듯 사지(死地)로까지 몰렸던 강제징용 피해자의 고통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리스 신화의 괴물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사이를 항해해야 하는 냉엄한 외교적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법원과 협의해 재상고심 재판을 가능한 한 연기하는 방식으로 재판의 확정을 미룬 것은 대법원의 파기환송 뒤에 그나마 대통령의 외교적 레버리지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완곡한 방식의 대응이었다고 본다. 가타부타 결정하지 않고 미루기만 하는 방식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재판거래로 몰아가는 것은 무리한 측면이 있다. 이 대목은 외교의 현실을 고려한 보다 융통성 있는 권력분립 개념을 적용할 곳이 아닐까 싶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청와대는 얼마 전 ‘제주 난민 수용 반대 청원’이 일자 난민 신청 절차를 없앨 수는 없다며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도 일제의 박해를 피해 중국으로 건너간 정치적 난민이 수립한 망명정부였다”고 답했다. 그때 문재인 정부가 왜 내년을 건국 100주년으로 기념하려 하는지 비로소 짐작이 갔다. 임시정부와 망명정부의 차이를 모르거나 그 차이를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광균의 시 ‘추일서정’의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라는 구절을 통해 우리는 일찍이 폴란드 망명정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 폴란드에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의 침공을 받기 전 제2공화국이라는 민주 정부가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치 독일에 쫓겨나 해외로 옮겨간 폴란드 제2공화국 정부는 스스로를 망명정부라고 부를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1948년까지 제국(帝國)의 정부, 즉 대한제국 정부는 있었어도 민국(民國)의 정부, 대한민국 정부는 없었다. 그때까지 조선인은 한 번도 민국의 대표들을 자기 손으로 뽑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자들은 너무나 당연히 스스로를 임시정부라고 부르고 임시라는 수식이 필요 없는 정부의 건설, 즉 건국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것이다. 폴란드 망명정부는 과거 정식 정부였기 때문에 육군만도 10만이 넘었고 해군까지 보유한 채 나치 독일과 싸웠다. 그럼에도 소련의 공산 괴뢰정권이 폴란드를 차지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으니 분함이야 오죽했을까. 폴란드 망명정부는 1990년 폴란드가 민주화될 때까지 영국에 남아 있었다. 레흐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노조에 의해 괴뢰정권이 무너지고 폴란드 제3공화국이 세워지자 폴란드 망명정부는 제2공화국의 국새를 바웬사 대통령에게 넘겨주고 자진 해산했다. 문재인 정부는 오늘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주년을 광복절 73주년으로 덮어씌워 건성건성 지나간다. 북한은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70주년을 맞는 9월 9일 성대한 기념식을 계획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내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건국 100주년으로 기념하고자 하는 것이 정말 민족 화합의 견지에서였다면 먼저 북한 김정은에게 제안하고 화답을 받아내는 것이 논리적 귀결이다. 그러고 나서 국민에게 호소를 해도 호소를 해야 한다. 그러나 나온 결과는 고작 3·1운동 100주년을 같이 기념한다는 것이었다. 건국 100주년은 고사하고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조차도 북한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제안이다. 북한의 ‘조선력사’는 임시정부의 행태를 독립을 구걸하러 다닌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의 사대주의 망동으로 규정한다. 해방 정국에서 임시정부를 누구보다 배척한 것이 김일성의 북조선노동당과 박헌영의 남조선노동당 세력이었다.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는 바로 이 공산주의자들의 임시정부 배척 노선을 따르다가 실패하고 말았다. 사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것도 북한으로서는 내키지 않는 일일 것이다. 3·1 인민봉기는 김일성이 주도했다는 헛소리는 집어치우더라도 북한은 3·1운동의 대부분은 비폭력·무저항주의로 인해 실패했다고 보고 그 결과로 태어난 부르주아적 임시정부 역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고 본다. 나는 박근혜 정권 시절 칼럼을 통해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만들려는 일부 우파의 시도를 비판한 적이 있다. 건국절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날이 아니다. 그렇다면 없는 것이 있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다. 과거의 한 시점을 반드시 건국의 기점으로 잡아야 한다면 1948년 8월 15일이 가장 유력한 후보다. 그러나 건국절이 국민 통합에 기여하기보다는 국론 분열만 조장한다면 굳이 건국절을 만들 필요가 없고, 나아가 미래에 북한까지 포함하는 한반도에서 더 큰 의미의 ‘네이션 빌딩(nation-building)’을 위해 유보해 두자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건국 100주년을 들고나온 것은 ‘네가 건국 70주년이라 하니 나는 건국 100주년이라 하겠다’는 유치한 발상이다. 건국 70주년도, 건국 100주년도 그만뒀으면 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는 임시정부에 합당한 평가를 하고 대한민국 정부에는 정부에 합당한 평가를 하면 된다. 올해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주년을 축하하고 내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축하하면 될 일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유럽에서 터키계 이민자는 중동·북아프리카 출신의 이슬람권 이민자 중에서 비교적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내가 아는 프랑스인은 터키인을 같은 백인인 러시아인보다 더 친밀하게 느낀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독재로 터키의 이미지가 악화되고 있다. 그는 세 번 총리를 연임한 뒤 자신이 바꾼 대통령 중심제 헌법에 따라 2014년 대통령에 당선되고 올 6월 다시 대선에서 이겼다. ▷중근동(中近東)에서 이란과 터키는 각각 샤와 파샤라고 불린 세속군주의 지배하에서 20세기 초 서구식 근대화의 맛을 본 대표적 국가다. 하지만 이란은 1979년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주도하는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에 장악됐고 터키는 에르도안 집권 이후 이란 정도는 아니지만 원리주의로 기울고 있다. 그것이 국내적으로는 독재로, 국외적으로는 반(反)서방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반발하는 내부 세력도 만만치 않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0일 터키산 알루미늄과 철강에 2배의 관세를 부과해 터키 리라화의 가치가 20%가량 폭락했다. 그럼에도 에르도안 대통령이 미국에 대한 공격적 태도를 거둬들이지 않자 터키발 경제위기 공포로 어제 글로벌 금융시장이 출렁거렸다. 터키의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총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에 불과해 여파가 크지 않으리라는 전망도 있지만 1990년대 멕시코발 위기와는 달리 미국이 위기 해결을 도우려 하지 않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1947년 냉전의 시작을 알린 트루먼 독트린은 그리스와 터키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나왔다. 독일 엘베강의 동쪽에서 한반도의 북쪽까지 유라시아가 붉게 물들 때 두 나라는 서구 쪽 자유진영의 변방에 위치한 약한 고리였다. 그리스는 복지로 퍼주기를 하다 유럽연합(EU) 퇴출 위기를 겪었고, 터키는 러시아 및 이란과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트럼프의 물불 안 가리는 펀치가 미국이 군사기지를 둔 터키에도 날아갔다. 동아시아 쪽 자유진영의 변방 국가이며 미군 기지가 있는 한국에도 경우에 따라선 그 펀치가 날아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중국이 산아제한을 위해 실시한 한 자녀 정책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2014년부터다. 이해 부부 중 한 명이 독자(獨子)일 경우 부부가 자녀를 둘까지 낳을 수 있는 정책을 도입했다. 이듬해 중국 사회과학원이 나라가 출산율 함정에 빠지기 직전이라고 경고하자 중국 정부는 2016년부터 조건 없는 두 자녀 정책에 들어갔다. 그때 중국 가정이 한 자녀만을 낳아 소황제(小皇帝)처럼 떠받들며 키우던 시절이 끝나간다는 얘기가 화제가 됐다. ▷중국 정부가 내년 9월부터는 두 자녀 정책마저 포기하고 세 자녀 출산을 허용하거나 아예 산아제한 정책 자체를 폐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공개된 내년 돼지띠 해의 신년 우표에 암수 부모 돼지가 아기 돼지 3마리를 거느린 모습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전망대로라면 불과 3년도 안 돼 두 자녀 정책에서 세 자녀 정책으로 넘어가는 셈이다. ▷중국의 한 자녀 정책은 1979년 무렵 시작됐다. 1980년대생인 바링허우(八零後)와 1990년대생인 주링허우(九零後)는 오늘날 결혼적령기의 20, 30대로 성장했다. 2000년대생인 링링허우(零零後)는 채 성인이 되지 않았다. 2014년부터 한 자녀 정책이 무너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소황제 시대는 사실상 링링허우를 끝으로 마감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소황제들에게 세 자녀 시대가 열린다. ▷소황제 시대는 비인륜적 낙태의 시대이기도 하다. 의도치 않게 두 번째 아이를 가지면 정부에 의해 강제 낙태를 당하는 슬픈 일도 적지 않았다. 부모들은 한 자녀밖에 낳을 수 없자 미리 태아 성별검사를 해서 딸로 밝혀지면 스스로 지웠다. 결과적으로 극심한 남초현상이 일어나 소황제는 결혼 자체가 쉽지 않다. 어렵게 결혼한 소황제는 세 자녀를 낳는 것이 허용돼도 키울 능력이 없다. 부모들이 소황제를 애지중지 키우면서 자녀 육아·교육비를 워낙 올려놓은 탓이다. 이 모든 것이 중국의 출산율 증대를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30년 넘게 출산을 인위적으로 막아온 정책이 낳은 심대한 후유증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