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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공포증’ 호소하는 MZ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비대면 메신저에 익숙해진 청년들이 ‘콜포비아(전화공포증)’를 호소하고 있다. 전화는 물론 ‘말하기’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학원가를 찾은 이들의 사연을 들어봤다.》#. 회사원 김명수 씨(34)는 휴대전화 벨이 울리며 상사의 이름이 뜨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평소에는 회사 업무가 아니라면 누군가와 전화를 주고받을 일이 별로 없다. 가족, 친구들과는 주로 카카오톡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이야기를 나눈다. 김 씨는 “업무 전화 통화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는데, 입사하고 나니 상사부터 고객까지 전화로 응대하는 게 기본이었다”며 “전화를 받는 게 두렵다는 걸 회사에 다니면서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올 초부터 공공기관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대학생 A 씨(27)는 지난해 12월 말 출근이 확정되자 “기본적인 전화 에티켓이라도 배워 둬야 할 것 같다”며 부랴부랴 서울 강남구의 한 스피치학원에 등록했다. A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심각했을 당시 대학이 비대면 수업을 한 탓에 면접 준비 강의나 대면 스피치 강좌를 수강하지 못했다. 첫 출근을 앞둔 A 씨는 “앞으로 상사에게 전화로 보고할 일이 많을 것 같은데,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대면 전환되자 수면 위로 드러난 ‘콜포비아’최근 코로나19 사태가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으로 접어들면서 비대면에서 대면 생활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신입사원 연수나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 등도 속속 재개되는 가운데 ‘말하기’에 대한 두려움에 스피치학원을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특히 일부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사회적 교류가 줄어들었던 팬데믹 기간 ‘콜포비아(Call Phobia·전화 공포증)’가 생겼다는 이들도 꽤 된다. 구인구직 포털 알바천국이 지난해 9월 콜포비아와 관련해 MZ세대 2735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29.9%가 ‘콜포비아를 겪고 있다’고 답했다. ‘가장 선호하는 소통 방식’으로는 응답자의 61.4%가 문자나 SNS와 같은 텍스트를 꼽았다. 반면 전화 소통(18.1%)은 대면 소통(18.5%)보다도 낮은 3위를 차지했다. 이에 따라 전문가와 수강생을 연결하는 온라인 플랫폼 등에는 전화 스피치 강의가 성행하고 있다. 특히 스피치학원에는 MZ세대가 적지 않다고 한다. 서울 마포구 U스피치학원의 신유아 원장은 “전체 수강생의 4분의 1가량은 전화 대화에 어려움을 겪는 20, 30대”라며 “이제는 상담을 받으러 온 이들에게 ‘전화로 말하는 건 어떤지’라는 물음을 기본으로 던질 정도”라고 했다. 상대적으로 젊은층에서 콜포비아를 호소하는 이들이 많은 것은 코로나19 탓으로 풀이된다. 코로나19가 심각했던 기간에 대학에 입학한 이들은 비대면 수업이 전면적으로 실시되면서 동기, 선후배와 얼굴을 직접 보며 제대로 교류하지 못했다. 직장에 취업한 이들 역시 올해 2, 3년 차가 됐다고 해도 재택근무를 하며 메신저를 통한 의사소통에 익숙해진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해 12월 말 마포구의 스피치학원을 찾은 이모 씨(21)도 그런 경우다. 이 씨는 “고등학생 때는 교내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상을 탔을 정도로 말하기에 자신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2020년 대학 입학과 동시에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달라졌다. 고향을 떠나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서울에 온 이 씨는 대학 기숙사에서 룸메이트도 없이 홀로 지냈는데 대학 동아리 활동 등 대면 활동도 거의 중단돼 대인 관계가 많이 위축됐다고 한다. 이 씨는 “3년 동안 대학 강의를 대부분 비대면으로 들은 데다 기숙사에서 혼자 지내는 날이 많아지면서 한마디도 하지 않고 일주일을 보내는 때가 늘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택배나 배달 전화를 받는 일조차 꺼려진다”고 털어놨다. 신 원장은 “과거에는 대학이나 직장에서 직접 부딪치며 자연스럽게 전화나 대면으로 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했다면 지난 3년 동안에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상화하면서 이런 기회가 사라졌던 것”이라고 했다.●비대면 메신저가 ‘소통 뉴노멀’ 돼 일부 청년들의 콜포비아는 문제라기보다는 의사소통 수단의 변화에 따른 현상일 뿐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SNS가 점점 더 일상을 파고드는 현실에서 전화가 익숙지 않은 이들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는 얘기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전화 통화를 꺼리는 건 청년들의 잘못이 아닌 메신저 플랫폼 다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최근 회사에 입사하기 시작한 2000년대생들은 가정에서조차 유선전화기를 본 적 없는 첫 세대”라며 “이들에게 전화는 ‘스마트폰’을 뜻한다. 전화는 유일한 원거리 대화 수단이 아니라 문자나 SNS와 같은 여러 소통 수단 중 하나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고령층이 디지털기기를 이용한 소통을 어려워하는 것처럼 젊은 세대가 전화 통화를 낯설어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얘기다. 실제 알바천국이 지난해 9월 발표한 MZ세대 콜포비아 실태 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6.6%는 “문자, 메신저 등 텍스트 소통에 익숙해지다 보니 전화 통화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이 교수는 “진짜 문제는 지난 3년 동안 코로나19 확산으로 직장과 학교마저 온라인 비대면으로 전환하면서 젊은 세대가 전화나 대면 등 육성 커뮤니케이션에 적응할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제공받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일부 기업들은 전화 통화에 익숙하지 않은 ‘코로나 세대’의 입사에 맞춰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전화 받는 법 정도는 신입사원이 이미 아는 기본 에티켓’이라고 여겼던 데서 변화하고 있는 것. 지난달 16일 진행된 SK이노베이션의 신입사원 연수에서는 “모르는 사람과 전화로 얘기할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내 또는 사외 분들과 전화로 대화할 때는 어떤 점에 유의해야 할까요”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고 한다. 이에 회사는 비즈니스 매너 교육 과정에 전화 에티켓을 추가했다. 전문 강사가 업무 전화 상황을 재현하면서 “전화를 걸거나 받을 때에는 본인 소속과 이름을 밝히고 용건을 말해야 하고, 전화를 걸 땐 상대가 통화 가능한 상황인지를 묻는 게 예의”라고 가르쳤다. 이 회사는 지난달 말부터 사내 상담센터에서 대면 업무 전환으로 인한 어려움이 없는지 관련 상담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대인 커뮤니케이션 교육 강화해야” 학교에서 전화 통화를 포함한 대인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해 8월 박희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가 강의하는 ‘대인 커뮤니케이션’ 강좌에는 대기자만 150명이 몰렸다. 코로나19 확산 후 2년 반 만에 대면으로 진행되는 커뮤니케이션 강좌가 열리자 수강신청 대란이 벌어진 것이다. 박희선 교수는 “10년 동안 강의하면서 수강 인원 35명인 이 수업의 대기자 수가 150명을 넘긴 건 처음이었다”며 “대면 생활로 바뀌면서 대인 커뮤니케이션을 배워야 할 필요성은 커진 반면 관련 강의는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비대면 소통이 뉴 노멀(New normal)이 된 지금 대면 적응을 위해 교육기관이 ‘커뮤니케이션’ 강좌를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중고교에서도 관련 교육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동귀 교수는 “‘노 마스크’로 얼굴을 맞대며 살아야 하는 대면 생활로 전환되고 있지만 이미 지난 3년 동안의 비대면 메신저 중심 소통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며 “초중고교 정규 교육과정에도 대면 커뮤니케이션 강의를 열어 학생들의 적응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핵가족화가 일반화된 오늘날 어린이와 청소년이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과 소통할 경험이 적은 만큼 커뮤니케이션 교육의 필요성은 더욱 크다”고 덧붙였다. 기업에서는 젊은 세대에게 익숙한 대화 방식과 소통 플랫폼을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희선 교수는 “전화나 대면 커뮤니케이션은 여전히 중요한 소통 수단이지만 중요한 건 세대 간 양방향 소통”이라며 “젊은 세대만 기성세대에 맞출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도 요즘 청년들이 쓰는 메신저나 소통법을 익히며 서로 맞춰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다른 사람과 전화하는 목소리 녹음해 모니터링 해보세요” 스피치-커뮤니케이션 전문가 3명이 추천하는 ‘콜포비아 극복법’ 전화 상황 재현하는 연습 필요핵심내용 요약 메모하는 습관을 ‘콜포비아’를 이겨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피치·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와 박희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신유아 U스피치 원장이 구체적인 방법을 제안했다. 신 원장은 콜포비아를 호소하는 수강생들에게 가장 먼저 “다른 사람과 전화하는 내 목소리를 녹음해 모니터링을 해 보라”고 조언한다. 통화 내용을 돌아보면서 스스로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게 변화의 시작일 수 있다는 것. 그는 “전화 통화로 말하다 보면 평소 대화할 때와는 다르게 목소리가 작아진다거나 말끝이 짧아지는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며 “나도 몰랐던 전화 습관을 파악하려면 모니터링은 필수”라고 말했다. 전화 상황을 재현하는 연습도 필요하다. 이 교수는 “요즘 청년들은 나이가 많고 직급이 높은 상사와 대화할 때 쓰는 표현에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며 “가족이나 친구처럼 가까운 사람들과 다양한 전화 상황을 재현해 보면서 필요한 단어나 표현을 익히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전화를 걸고 받는 일에 익숙해졌다면 그 다음은 전화 통화에서 핵심 내용을 요약해 메모하는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미리 대본을 적어 두는 것은 추천하지 않았다. 상황에 맞는 대응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통화 중 떠오르는 핵심 키워드 2, 3가지를 간략하게 메모하면서 다음에 이어 나갈 주제를 미리 생각해두다 보면 업무 전화도 쉽게 이해하며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기성세대 중 일부가 권위적인 방식으로 전화를 한다며 이런 태도는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 교수는 “콜포비아를 겪고 있는 사람이 스스로 노력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거나 전화 통화를 어려워하는 이들을 다그치는 건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지난해 9월 강원 삼척시 정라동에 완공된 ‘이사부독도기념관’은 베일에 싸인 듯 주변 경관 속에 숨어 있다. 512년 신라장군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하기 위해 출항했다는 설이 있는 정라동 일대는 앞으로는 육향산, 뒤로는 폐조선소로 둘러싸여 있다. 삼척항과 고작 500m 떨어져 있지만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삼척시가 2017년 국제건축설계 공모를 냈을 때 과제는 2가지였다. ‘꽉 막힌 경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리고 ‘독도 기념관으로서의 역사성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22개국 72개 팀이 응모한 공모에서 뽑힌 심플렉스 건축사사무소의 설계도면은 심사위원단으로부터 “경관의 한계를 극복했을 뿐 아니라 육향산과의 관계를 시(詩)적으로 설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념관에서 지난달 31일 만난 심플렉스 건축사사무소 송상헌 대표(45)와 박정환 대표(44·홍익대 건축학부 교수)는 “대지가 처한 상황을 한계가 아니라 땅의 역사라고 여겼다. 오히려 바다 경관을 직접적으로 끌어들일 수 없었기에 다른 방식의 바다를 상상할 수 있었다”고 했다. 기념관 입구 관광안내센터에서 한 층을 내려간 뒤 물이 흐르는 길목 옆 영토수호기념관으로 들어서면 전면 유리창 너머로 육향산 하부 암반과 잔잔한 1m 깊이의 못이 보인다. 육향산은 마치 바다 위에 떠오른 섬과 같은 모습이다. 4개 동으로 나뉜 건물에는 모두 육향산을 바라보는 전면 유리창이 설치돼 관람객들은 기념관 어디서든 섬의 이미지를 마주할 수 있다. 박 대표는 “신라 시대 육향산 일대는 섬이었다”며 “근대 들어 매립된 부지 일부를 약 4m가량 파서 과거의 경관을 되돌리는 한편 바다 위에 떠오른 독도의 이미지를 표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땅의 역사를 경관 자체로 드러내고 싶었다”는 것이다. 건축이 설계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공사 중이던 2019년 초 관광안내센터 부지 주변에서 1520년 지어진 삼척포진성(三陟浦鎭城) 성벽 일부가 확인됐다. 추가 매장문화재 조사를 위해 1년 가까이 공사가 중단됐을 뿐 아니라 성벽이 출토된 곳에서 20m 이내에는 건물을 지을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못의 면적은 줄이고 건물 위치도 바꿔야 했다. 박 대표는 “처음 설계도와는 달라졌지만 이조차도 이 공간이 가지고 있는 역사의 일부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새로운 착상이 떠올랐다. ‘삼척포진성의 성벽처럼 돌을 쌓아 옹벽을 세우면 어떨까.’ 송 대표는 “삼척포진성 성벽 일부가 발견된 관광안내센터 앞에서 육향산 하부 경관까지 이어지는 길목에 ‘막돌 쌓기’ 방식으로 옹벽을 세워 공간의 역사성을 더했다”고 설명했다. 착공 5년 만에 완공된 기념관은 이르면 올 상반기 중 관람객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건축가들은 이곳이 어떻게 쓰이길 바랄까. 송 대표는 “1만4115㎡(약 4270평)에 이르는 거대한 대지를 관광안내센터와 영토수호기념관, 독도체험공간, 복합휴게공간 등 4개 동으로 나눠 설계한 건 각각의 건물이 유연하게 다른 용도로 쓰이길 바랐기 때문”이라고 했다.“한 건물에서는 독도 전시, 다른 건물에서는 미술 전시, 광장에선 음악 공연, 휴게공간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역사 강연이 펼쳐지는 상상을 합니다. 복합문화공간이 부족한 삼척시에서 이곳이 다채로운 쓰임새로 채워지길 바랍니다.”(박 교수)삼척=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강원 삼척시 정라동 일대에 지난해 9월 완공된 ‘이사부독도기념관(이하 기념관)’은 베일에 싸인 듯 주변 경관 속에 숨어 있다. 512년 신라장군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하기 위해 출항했다는 설이 있는 정라동 일대는 앞으로는 육향산, 뒤로는 폐조선소와 공장 건물로 둘러싸여 있다. 삼척항과 고작 500m 떨어져 있지만 바다를 볼 수 없는 구조다. 삼척시가 2017년 7월 기념관을 짓는 국제건축설계 공모를 냈을 때 건축가들에게는 두 가지 과제가 주어졌다. 이토록 꽉 막힌 경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리고 독도 기념관으로서의 역사적인 의미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22개국 72개 팀이 응모한 공모전에서 1등으로 뽑힌 심플렉스 건축사사무소의 설계도면은 심사위원장이었던 프랑스 건축가 로랑 살로몽으로부터 “경관의 한계를 극복했을 뿐 아니라 육향산과의 관계를 시(詩)적으로 설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달 31일 기념관에서 만난 심플렉스 건축사사무소 송상헌 대표(45)와 박정환 대표(44˙홍익대 건축학부 교수)는 “대지가 처한 상황을 한계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조차도 땅의 역사라고 여겼다. 오히려 바다 경관을 직접적으로 가져올 수 없었기에 다른 방식의 바다를 상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기념관 입구에 지어진 관광안내센터로 들어서서 계단 한 층을 내려가면 1m 깊이의 못이 나온다. 물이 흐르는 길목 바로 옆에 세워진 영토수호기념관으로 들어서면 전면에 난 유리창 너머로 깎아지른 육향산 하부 암반과 그 아래 잔잔한 못이 보인다. 육향산은 마치 바다 위 떠오른 섬과 같은 모습이다. 박 대표는 “육향산 일대는 신라장군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하기 위해 출항했을 당시 섬이었던 곳”이라며 “매립된 부지를 약 4m가량 파 내려 과거의 경관으로 되돌리면서 바다 위에 떠오른 독도의 이미지를 표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땅의 역사를 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경관 자체로 드러내고 싶었다”는 것. 4개 동으로 나뉜 건축물 내부에 육향산을 바라보는 전면 유리창을 낸 것도 관람객들이 건물 내외부를 자유롭게 거닐며 어디서든 섬의 이미지를 마주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모든 일이 설계대로 순탄하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2019년 초 관광안내센터 부지 주변에서 1520년 지어진 삼척포진성(三陟浦鎭城) 성벽 일부가 확인됐다. 매장문화재가 발굴되면서 추가 조사를 위해 1년 가까이 공사가 중단됐을 뿐 아니라 매장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성벽이 출토된 곳에서 20m 이내에 건물을 지을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못의 면적이 줄고 건물 위치를 바꿔야 했다. 박 대표는 “처음 설계 의도와는 달라졌지만 이조차도 이 공간이 가지고 있는 역사의 일부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생각을 바꾸자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다. ‘삼척포진성의 성벽처럼 돌을 쌓아 올린 옹벽을 세우면 어떨까.’ 송 대표는 “삼척포진성 성벽 일부가 발견된 관광안내센터 앞에서 육향산 하부 경관까지 이어지는 길목에 ‘막돌 쌓기’ 방식으로 옹벽을 세워 공간의 역사성을 더했다”고 설명했다. 설계도면을 수정하는 예상하지 못한 변수를 만났지만 이마저도 건축물에 역사 한 페이지를 더한 셈이다. 착공 5년 만에 지어진 기념관은 이제 건축가의 손을 떠나 이르면 올 상반기 중 관람객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이들은 이곳이 어떻게 쓰이길 바랄까. 송 대표는 “우리가 14,115㎡에 이르는 거대한 대지를 관광안내센터와 영토수호기념관, 독도체험 공간, 복합휴게공간 등 4개 동으로 나뉜 건축물로 설계한 건 각각의 건물이 유연하게 다른 용도로 쓰이길 바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한 건물에서는 독도 전시, 다른 건물에서는 미술 전시, 광장에선 음악 공연, 휴게공간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역사 강연이 펼쳐지는 상상을 합니다. 복합문화공간이 부족한 삼척시에서 이곳이 다채로운 쓰임새로 채워지길 바라요.” (박 교수)삼척=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아버지의 손길을 거치면 죽은 동물이 살아나는 것 같았어요. 마치 아버지가 손끝으로 생명을 불어넣는 듯했죠.”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자연문화재연구실의 오정우 연구원(39)은 어릴 적 박제사인 아버지 오동세 국립중앙과학관 자연사연구실 연구원(63)이 꼭 마술사 같았다고 했다. 아버지의 손길이 닿으면 죽었던 새가 다시 날개를 활짝 펼쳤다. 20대 중반이 된 정우 씨가 박제를 배우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딱 잘라 “하지 말라”고 했다. 당시까지도 사냥당한 동물을 불법으로 박제한다는 인식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부자(父子)가 함께 박제사로 일한다. 대전 서구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자연문화재연구실에서 지난달 27일 만난 부자는 “우리는 한국 자연사의 한 페이지를 만들고 있다”며 웃었다. 오동세 씨는 40년 경력의 박제사로 2000년 도입된 국가공인 ‘문화재수리기능자 박제 및 표본 제작공’ 자격증을 1호로 취득했다. 2007년 만들어진 문화재청 천연기념물센터에서 2017년까지 박제사로 일했다. 지금은 정우 씨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문화재청의 유일한 박제사로 일하며 사고사하거나 자연사한 천연기념물 사체를 박제하고 있다. 문화재청 천연기념물센터 전시실과 수장고에 있는 천연기념물 표본 550여 점은 모두 이 부자가 만든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을 잘 만들어야 한다. 그럼 보이는 곳은 자연스럽게 모양이 나오게 돼 있다”고 가르쳤다. 동물 사체는 몸속의 지방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으면 박제를 만들어도 얼마 못 가 표면이 변색되거나 봉제선 사이로 지방이 흘러나온다. 아들은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사체의 속을 말끔히 정리하는 데만 제작 시간의 3분의 2를 투입한다. 조류는 깃털 하나라도 틀어지면 날개가 가지런하게 접히지 않기에 하나하나 제 위치에 맞게 배치한다. 아버지는 또 “동물의 습성을 연구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장면을 연출하라”고 강조했다. 이날 연구실에는 정우 씨가 최근 건조 작업 중인 천연기념물 매 암수 한 쌍의 표본이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날개를 활짝 편 수컷이 오른발에 움켜쥔 먹이를 바로 아래 날아오는 암컷의 왼발에 건네는 역동적인 찰나를 재현한 것이다. “매는 수컷이 사냥한 먹이를 공중에서 암컷에게 발 사이로 전해주는 습성을 지녔어요. 박제로 동물의 생생한 습성을 보여주고 싶어서 실제 동물 사진을 붙여놓고 똑같이 만들곤 합니다.”(정우 씨) 박제사 한 명이 1년에 만들 수 있는 박제는 많아야 50개 정도다. 그래서 표본이 없는 종 위주로 먼저 작업을 한다. 최근에는 201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경주개 동경이 표본을 만들고 있다. 정우 씨는 “후세에 물려줘야 하는 역사 자료라는 생각으로 털끝 하나까지 정확하게 보여주려 노력한다”고 했다. 정우 씨는 울릉도와 독도 일대에 서식하는 흑비둘기 표본을 만든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2019년 6월 천연기념물 생태 환경을 살피기 위해 찾아간 울릉도에서 1968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흑비둘기 사체를 구했다. 냉동고 없는 배를 타는 동안 혹시라도 사체가 부패할까 봐 2박 3일 동안 사체를 얼음 팩으로 감싸 연구실까지 가져왔다. 문화재청에 흑비둘기 표본은 그가 만든 1점뿐이다. “일주일간 공들여 만든 표본의 깃털에서 오묘한 무지갯빛이 반짝였어요. ‘만약 멸종되더라도 아이들이 이 귀한 자연유산을 만날 수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럴 때 보람을 느낍니다.”(정우 씨)대전=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아버지의 손길을 거치면 죽은 동물이 살아났어요. 마치 아버지가 손끝으로 생명을 불어넣는 듯했죠.” 어릴 적 아버지는 꼭 ‘마법사’ 같았다. 그의 손길이 닿으면 죽은 새가 다시 살아나 날개를 활짝 펼쳤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자연문화재연구실에서 천연기념물의 사체를 박제하는 오정우 실무관(39)의 꿈은 아버지처럼 박제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의 아버지 오동세 국립중앙과학관 자연사연구실 실무관(63)은 40년 박제 경력을 자랑할 뿐 아니라 2000년 국내 처음 도입된 ‘국가공인 문화재수리기능자 박제표본 자격증’을 1호로 취득한 전문 박제사로 손꼽힌다. 2007년 대전 서구에 문화재청 천연기념물센터가 건립될 때부터 2017년까지 문화재청에서 박제사로 근무했다. 2012년부터 그 자리를 아들이 잇고 있다. 국내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물의 사체를 박제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국가공인 자격증을 취득한 전문 박제사는 54명. 전문 학원이나 교육과정 없이 도제식으로 소수에게만 전해진다. 이마저도 기관에 소속돼 실제 활동하는 박제사는 10명 내외. 이들 부자야말로 천연기념물인 셈이다. 현재 문화재청 천연기념물센터 전시실과 수장고에 있는 천연기념물 표본 550여 점은 모두 이들 부자의 손끝에서 ‘다시 살아났다.’ 이들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사고사하거나 자연사한 천연기념물 사체를 수거해 새 생명을 불어넣는다. 27일 대전 서구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자연문화재연구실에서 만난 이들은 “우리는 한국 자연사의 한 페이지를 만들고 있다”며 웃었다. “아이들에게 한반도에 이런 천연기념물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일이잖아요. 동물의 털끝 하나까지 섬세하고 정확하게 보여줘야죠.” (아들 오 실무관) 아버지는 자신의 뒤를 이은 아들에게 늘 “겉모습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속을 처리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아버지 오 실무관은 “동물의 내장과 지방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으면 얼마 못가 표면이 변색되거나 봉제선 사이로 지방이 흘러나오기 마련”이라고 강조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배운 대로 표본 하나를 만들 때마다 약 이틀 동안 사체의 속을 온전히 제거하고 동물의 깃털이나 털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데 쓴다. “동물의 습성을 관찰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장면을 연출하라”는 것 역시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수한 가르침이다. 이날 연구실에는 아들 오 실무관이 최근 작업하는 천연기념물 매 암수 한 쌍 표본이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날개를 활짝 편 수컷이 오른발에 움켜 쥔 먹이를 바로 아래 날아오는 암컷의 왼발에 건네는 역동적인 찰나를 재현한 것이다. “매는 수컷이 새끼에게 줄 먹이를 사냥해 암컷에게 공중에서 발 사이로 직접 전해주는 ‘공중급식’ 습성을 지녔어요. 살아 있는 동물의 습성을 보여주고 싶어서 실제 동물 사진을 붙여놓고 똑같이 만들곤 합니다.” (아들 오 실무관) 아버지에 뒤를 이어 문화재청의 유일한 박제사가 된 오 실무관은 “문화재청에 단 1점뿐인 흑비둘기 표본을 만든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2019년 6월 천연기념물 생태 환경을 둘러보기 위해 찾아간 울릉도에서 흑비둘기 사체를 발견한 것. 울릉도와 독도 일대에 서식하는 흑비둘기는 1968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초여름 가져간 짐도 버거웠지만 그가 차마 사체를 버려두고 올 수 없었던 이유다. “혹시라도 사체가 훼손될까 2박 3일 출장 내내 얼음 팩으로 돌돌 말아 이고 지고 연구실까지 가져왔어요. 일주일간 공들여 만든 표본의 깃털에서는 오묘한 무지갯빛이 반짝였습니다. 언젠가 멸종되더라도 아이들이 이 귀한 자연유산을 만날 수 있겠구나…. 고생한 보람이 있었죠.”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어떻게 번역할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영국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햄릿’은 번역본만 200권이 넘는데, 그중에서도 한국 독자들에게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널리 알려진 이 독백은 동일한 문장으로 번역된 적이 거의 없는 번역계의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번역가들 사이에 경쟁이 붙으면서 원문의 구조나 뜻과 거리가 먼 번역이 나오기도 했다. 영문학자로 ‘노인과 바다’(민음사)를 비롯해 30종이 넘는 명작을 번역한 김욱동 서강대 영문학부 명예교수(75)는 최근 펴낸 ‘번역가의 길’(연암서가)에서 “(원문과 멀어진) 온갖 번역이 난무하는 건 기존 번역과 다르게 독창적으로 번역하려는 의욕이 빚어낸 오류”라고 지적했다. 최근 전화 인터뷰에서 김 교수는 “읽기 쉽게 번역하려 할수록 원문과는 멀어진다”며 “번역가가 갖춰야 할 덕목은 독창성이 아니라 성실성”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낯설면 낯선 대로 외국 문학을 그대로 전할 필요가 있다”며 “독자들에게 이국의 낯선 세계를 보여주는 것 역시 번역가의 책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남녀가 평등한 번역을 위해서는 과감해지기도 한다. ‘여교사’처럼 특정 직업에서 성별을 드러내는 표현은 원문을 훼손하더라도 그냥 ‘교사’로 번역한다. 이미 직업을 나타낼 때는 인물이 남성인지 여성인지가 중요하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아내’라는 표현에도 “어원상 여성을 집 안에 있는 사람으로 보는 편견이 담겨 있다”고 보고 번역할 때 ‘부인’이라는 단어를 쓴다. 김 교수는 “단어 하나를 바꾸는 것이 보이지 않는 가부장적 질서를 무너뜨리는 초석이 될 수 있다”며 “번역가는 그럴 책무가 있다”고 했다. 이어 김 교수는 “번역에도 유통기한이 있다”고 강조했다. 작품을 10년에 한 번씩은 새롭게 번역해야 한다는 것. 그는 2008년 번역해 출간한 ‘앵무새 죽이기’를 2015년 다시 번역해 내기도 했다. “시대에 따라 언어도 변할뿐더러 독자의 감수성도 변합니다. 변화하는 시대의 감수성까지 옮길 줄 아는 번역가가 좋은 번역가죠.”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어떻게 번역할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영국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햄릿’은 일제강점기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번역본만 200여 권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한국 독자들에게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널리 알려진 이 독백은 현재까지 동일한 문장으로 번역된 적 없는 번역계의 난제였다. 번역 경쟁이 붙으면서 원문의 문법 구조나 뜻과 멀어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영문학자이자 번역가로 ‘노인과 바다’(민음사), ‘위대한 개츠비’(민음사), ‘앵무새 죽이기’(열린책들) 등 30권이 넘는 명저를 번역한 김욱동 서강대 영문학부 명예교수(75·사진)는 최근 펴낸 ‘번역가의 길’(연암서가)에서 “온갖 번역이 난무하는 건 기존 번역과 다르게 독창적으로 번역하려는 의욕이 빚어낸 오류”라고 지적했다. 그는 20일 전화 인터뷰에서 “읽기 쉽게 하거나 다른 번역본과 다르게 번역하려 할수록 원문과 멀어진다. 번역가가 갖춰야 할 덕목은 독창성이 아니라 성실성”이라고 강조했다.“저도 한때는 독창성이나 가독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생각이 바뀌었어요. 낯설면 낯선 그대로, 외국 문학을 그대로 전달하는 작업도 필요다는 걸요. 독자들에게 이국의 낯선 세계를 보여주는 것 역시 번역가의 책무이니까요.” 다만 그는 성이 평등한 번역을 위해 과감해지기도 한다. 김 명예교수는 “우리가 무심코 써왔던 단어가 사실은 가부장적인 사회를 지탱해왔다”며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단어 하나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가부장적 질서를 무너뜨리는 초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 문학 작품을 번역하며 ‘여교사’처럼 특정 직업에서 성별을 드러내는 표현은 원문을 훼손하더라도 그냥 ‘교사’로 번역한다. “이제 직업을 나타낼 때 그가 남성인지 여성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사용하는 ‘아내’라는 표현에는 “어원 상 여성을 집 안에 있는 사람으로 보는 성 편견이 담겨 있다”고 보고 대신 ‘부인’이라는 단어를 쓴다.“무심결에 써온 단어에 의존하면 안 됩니다. 좋은 번역가라면 가치중립적이라고 여겨왔던 단어의 어원까지 찾아보고, 그 단어에 담긴 가부장주의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번역가에게는 보이지 않는 가부장 질서를 무너뜨릴 책무가 있으니까요.” 그는 “번역에도 유통기한이 있다”고 주장한다. 적어도 10년에 한 번씩은 새롭게 번역해야 한다는 것. 실제로 그는 2008년 완역해 출간한 ‘앵무새 죽이기’를 2015년 다시 번역해 출간했다. 최근까지도 이전에 번역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작품들을 다시 손보고 있다. 김 명예교수는 “시대에 따라 언어도 변할뿐더러 독자의 감수성도 변한다”며 “변화하는 시대의 감수성까지 옮길 줄 아는 번역가가 좋은 번역가”라고 말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가족 6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신고자는 아이들의 친부. “전 부인이 며칠째 연락을 받지 않는다”는 신고를 받고 집으로 출동한 경찰이 맞닥뜨린 현장은 참혹했다. 바닥에는 어린아이 넷과 어머니, 동거 남성이 온몸에 선홍색 시반을 띤 채 쓰러져 있었다. 친모가 이별을 고하자 동거하던 남성이 계획범죄를 저질렀을 것이라는 친부의 진술로 사건은 타살로 결론이 나는 분위기였다. 일가족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부검 소견이 발표되자 이웃들 사이에서는 동거하던 남성이 고의로 가스를 누출시켰다는 소문이 돌았다. 독일 법의학자로 “죽은 자의 몸과 주변에는 진실을 밝힐 ‘키보드’가 숨어 있다”고 믿는 저자는 떠도는 소문과 침묵의 현장 속에서 사건의 진실을 추적한다. 조사 결과 이들 가족이 숨지기 몇 주 전 입주한 이 주택은 보일러 계량기가 6년 동안 납으로 봉해져 있었다. 이전 세입자가 관리비를 체납하자 집주인이 보일러에 땜질을 해버린 것. 가스 배기관은 누더기 천과 신문지로 꽉 막혀 있었다. 한겨울 배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찬바람을 막아보려 이전 세입자가 한 일이었다. 집주인은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온 뒤 부랴부랴 보일러 땜납을 제거했지만 배기관은 청소하지 않았다. 집주인의 관리 부실이 사인이었던 것이다. 추적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저자는 해마다 독일에서 2000명가량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한다는 통계를 덧붙인다. ‘만일 집집마다 일산화탄소 탐지기가 설치돼 있다면 이들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저자의 물음은 난방 관리 부실로 인한 소리 없는 죽음이 사회적 타살임을 밝힌다. 저자가 담아낸 다양한 사건 현장에서 죽은 자는 온몸으로 진실을 말하고 있다. 책에는 토막살인, 강간, 의료 조작 등 참혹한 사건이 여럿 나오지만 진실을 좇는 과정은 묘한 위안을 준다. 저자는 “사망자가 평소에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해도, 그가 피해를 당했는지 아닌지 검증하는 마지막 단계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원장 김준희)이 ‘올해의 그림책 대상’을 신설한다. 진흥원은 “올해 하반기 권위 있는 그림책 부문 상을 제정해 한국을 대표하는 시상식으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26일 밝혔다. 장관상과 진흥원상을 수여하며 상금은 총 1억 원이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현존하는 유일한 한국 전통 칸가마(내부가 여러 개로 나뉜 봉우리 모양의 가마)가 국가 문화재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경북도 민속문화재인 ‘문경 관음리 망댕이 가마 및 부속시설’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 예고한다”고 26일 밝혔다. 1863년 처음 지어진 이 가마는 주변에 디딜방아와 모래흙을 정제하기 위한 구덩이인 땅두멍, 도공이 생활했던 부속시설 등이 잘 보존돼 있어 조선시대 후기 요업사의 중요 유적으로 꼽힌다. 특히 가마 축조자부터 후손까지 8대에 걸쳐 문경 지역에서 사기(沙器)를 만들며 전통 도예 가문의 명맥을 이어와 더욱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노래는 늘 인류의 역사와 함께했다. 언어 이전에 소리가 먼저 인간의 마음에 닿았다. 세상을 떠난 망자를 위해 구슬피 우는 곡소리, 첫사랑에게 바치는 풀피리 소리, 전의를 다지는 전쟁터에서 전사들이 발을 구르는 소리…. 원초적인 이들 멜로디는 초기 인류에게서 ‘유대’를 만들어내는 마법을 부렸다. 신경과학자이자 음반 프로듀서인 저자는 “초기 인류 사이에서 강력한 유대를 만들어낸 것은 조화로운 노래였고, 그 유대 덕분에 거대한 문명과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장구한 세월을 거치며 세계 곳곳 수많은 사람이 만든 노래는 인간에게 우정, 기쁨, 위로, 지식, 종교, 사랑이라는 6가지 세상을 빚어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선조들이 일하던 낮 시간과 잠 못 이루던 밤 시간을 채워주었던 문명의 사운드트랙에 관한 이야기를 다룰 뿐 아니라 노래가 인간 뇌에 미치는 신경과학적 변화를 풍부하게 담았다. 저자는 “인간이 지구상 다른 종과 구분되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음악”이라고 말한다. 새나 돌고래도 그들만의 언어인 정교한 신호체계를 갖췄고, 침팬지도 인간처럼 도구를 쓸 줄 안다. 체계적인 사회를 구성하는 일은 개미도 해낸다. 그런데 인간은 쉽게 해내지만 동물들은 잘 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 바로 ‘관계의 부호화(Encoding)’다. 서로 다른 것을 구별하고 더 크고 중요한 무언가를 선택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인지 처리 방식으로, 이 능력 덕분에 인간은 옥타브 체계를 이해할 수 있고 노랫말을 짓는다. 음악이 있었기에 문명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그는 캐나다 출신 역사가 윌리엄 맥닐의 말을 인용해 “무거운 바위를 들어올릴 때 근력의 사용이 서로 율동적으로 조화되지 않았다면 이집트 피라미드는 건설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피라미드뿐일까. 세계 모든 문명은 노동요를 갖고 있다. 노래는 동기를 부여하고 흥을 돋우기도 하지만 좀 더 과학적인 이유도 있다. 함께 노래를 부를 때 분비되는 신경화학물질 옥시토신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대감을 확립하는 데 관여한다. 응원가, 애국가, 교가, 군가는 신경과학적으로도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슬플 때 더 슬픈 발라드가 필요한 데도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 슬픈 음악을 들을 때 흘리는 눈물에는 프로락틴이란 호르몬이 담겨 있다. 프로락틴은 기쁨의 눈물이나 하품할 때 흘러나오는 눈물에서는 나오지 않고 오직 슬픔의 눈물에서만 나온다. 이 호르몬은 정신적 상처를 지닌 이들에게 새로운 일을 받아들여 새 시작을 할 수 있게 돕는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슬픈 음악은 상처 입은 이들에게 ‘가상의 슬픔’을 선사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치유의 힘을 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저자는 노래가 만들어낸 최고의 마법은 단연 사랑이라고 강조한다. 책에는 저자의 다채로운 플레이리스트가 담겼다. 그중 그는 아일랜드 싱어송라이터 마이크 스콧의 ‘모두 안으로 들여(Bring ′Em All In)’를 가장 완벽한 사랑 노래로 꼽았다. 노랫말이 소외된 모든 이들에게 마음을 열고 그들을 끌어안으려는 의지를 담고 있어서다. ‘모두 안으로 들여/어둠에서 온 것들도 들여/그늘에서 온 것도 들여, 그들을 빛 속에 세워.’ “다른 이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결함투성이 인류를 위해 노래를 만들어 찬양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것”이라는 저자의 음악 예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인간은 음악을 만들고, 음악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왔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무당이 의사 노릇을 하던 시절이었다. “귀신이 붙어서 아프다”는 미신이 팽배했던 어린 시절, 장티푸스로 가장 친한 친구를 잃었다. 만약 동네에 전문의가 있었다면 친구를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여성 의사로서 국내 최초로 의료법인 길병원을 설립한 이길여 가천대 총장이 의사를 꿈꾸게 된 이유다. 동아일보 기자를 지낸 김충식 가천대 특임부총장이 2년간 이 총장을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광복과 분단을 모두 겪은 이 총장의 생애가 촘촘하게 담겼다. 여자라는 이유로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았던 이 총장은 집안 어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서울대 의예과에 합격했다. 꿈을 이루기 위해 6·25전쟁 때도 방공호에 들어가 밤낮없이 공부했다. 1964년 미국으로 유학도 떠났다. “미국에 남아 달라”는 미국 퀸스종합병원의 부탁은 물론이고 당시 연애하던 한국인 유학생의 청혼을 모두 뒤로한 채 1968년 고국으로 향했다. 가난한 조국의 환자에게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1978년 국내 여성 의사 최초로 길병원이라는 의료법인을 설립한 그는 무료 검진을 실시했다. 1980년 인천 길병원에 무료 자궁암 조기 진단센터를 설치했다. 검진 대상도 저소득층 여성뿐 아니라 30세 이상 모든 여성을 아울렀다. 그는 인천에 이어 경기 양평군과 강원 철원군에 길병원을 세운 이유에 대해 “그곳 주민들의 애타는 청원을 뿌리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두 지역은 병원 운영에 적자가 날까봐 정부도 엄두를 못 내던 곳이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여력이 있어서 한 일이 아니라 마음으로 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늘 사람을 생각했다는 그의 철학 때문일까. “나는 공익 경영이니 윤리 경영이니 하는 전문적인 용어는 모른다. 다만 사랑으로 경영했을 뿐”이라는 답변에서 당당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노래는 늘 인류의 역사와 함께했다. 언어 이전에 소리가 먼저 인간의 마음에 닿았다. 세상을 떠난 망자를 위해 구슬피 우는 곡소리, 첫사랑에게 바치는 풀피리 소리, 전의를 다지는 전쟁터에서 전사들이 발을 구르는 소리…. 원초적인 이들 멜로디는 초기 인류에게서 ‘유대’를 만들어내는 마법을 부렸다. 신경과학자이자 음반 프로듀서인 저자가 12일 출간한 ‘노래하는 뇌’(와이즈베리)는 “초기 인류 사이에서 강력한 유대를 만들어낸 것은 조화로운 노래였고, 그 유대 덕분에 거대한 문명과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장구한 세월을 거치며 세계 곳곳 수많은 사람이 만든 노래는 인간에게 우정, 기쁨, 위로, 지식, 종교, 사랑이라는 6가지 세상을 빚어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선조들이 일하던 낮 시간과 잠 못 이루던 밤 시간을 채워주었던 문명의 사운드트랙에 관한 이야기를 다룰 뿐 아니라 노래가 인간 뇌에 미치는 신경과학적 변화를 풍부하게 담았다.저자는 “인간이 지구상 다른 종과 구분되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음악”이라고 말한다. 새나 돌고래도 그들만의 언어인 정교한 신호체계를 갖췄고, 침팬지도 인간처럼 도구를 쓸 줄 안다. 체계적인 사회를 구성하는 일은 개미도 해낸다. 그런데 인간은 쉽게 해내지만 동물들은 잘 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 바로 ‘관계의 부호화(Encoding)’다. 서로 다른 것을 구별하고 더 크고 중요한 무언가를 선택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인지처리방식으로, 이 능력 덕분에 인간은 옥타브 체계를 이해할 수 있고 노랫말을 짓는다.음악이 있었기에 문명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그는 캐나다 출신 역사가 윌리엄 맥닐의 말을 인용해 “무거운 바위를 들어올릴 때 근력의 사용이 서로 율동적으로 조화되지 않았다면 이집트 피라미드는 건설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비단 피라미드뿐일까. 세계 모든 문명은 노동요를 갖고 있다. 노래는 동기를 부여하고 흥을 돋우기도 하지만 좀 더 과학적인 이유도 있다. 함께 노래를 부를 때 분비되는 신경화학물질 옥시토신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대감을 확립하는 데 관여한다. 응원가, 애국가, 교가, 군가는 신경과학적으로도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슬플 때 더 슬픈 발라드가 필요한 데도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 슬픈 음악을 들을 때 흘리는 눈물에는 프로락틴이란 호르몬이 담겨 있다. 프로락틴은 기쁨의 눈물이나 하품할 때 흘러나오는 눈물에서는 나오지 않고 오직 슬픔의 눈물에서만 나온다. 이 호르몬은 정신적 상처를 지닌 이들에게 새로운 일을 받아들여 새 시작을 할 수 있게 돕는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슬픈 음악은 상처 입은 이들에게 ‘가상의 슬픔’을 선사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치유의 힘을 주는 것이다.무엇보다 저자는 노래가 만들어낸 최고의 마법은 단연 사랑이라고 강조한다. 책에는 저자의 다채로운 플레이리스트가 담겼다. 그중 그는 아일랜드 싱어송라이터 마이크 스콧의 ‘모두 안으로 들여(Bring ‘Em All In)’를 가장 완벽한 사랑 노래로 꼽았다. 노랫말이 소외된 모든 이들에게 마음을 열고 그들을 끌어안으려는 의지를 담고 있어서다. ‘모두 안으로 들여/어둠에서 온 것들도 들여/그늘에서 온 것도 들여, 그들을 빛 속에 세워.’ “다른 이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결함투성이 인류를 위해 노래를 만들어 찬양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것”이라는 저자의 음악 예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인간은 음악을 만들고, 음악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왔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설 연휴 청와대와 고궁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문화재청은 21∼24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일대에서 ‘청와대, 설레는 설’ 행사를 연다. 이 기간 매일 오후 1시 반경 춘추관 2층에서 청와대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는 전문가들의 토크콘서트가 열린다. 오후 3시부터는 청와대 정문 등 야외에서 사물놀이를 비롯한 전통예술 공연을 40분 동안 선보인다. 4대 궁궐인 서울 경복궁 창경궁 창덕궁 덕수궁을 포함해 종묘, 조선왕릉 등 22곳은 21∼24일 무료 개방한다. 평소 예약제로 운영되는 종묘는 이 기간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설 연휴 동안 매일 오전 10시 20분과 오후 2시 20분 광화문 뒤편 동수문장청에서 불행을 막고 행운이 깃들기를 바라는 세화(歲畵)를 나눠 준다”고 밝혔다. ‘경복궁 수문장 모자를 쓴 호랑이’ 그림과 가정의 화목을 상징하는 토끼 두 마리가 그려진 ‘쌍토도’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도 21일 낮 12시∼오후 4시 박물관 야외 광장에서 ‘설맞이 한마당’ 행사를 연다. 전통예술 공연과 ‘계묘년 토끼 연하장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윷놀이, 제기차기 등 민속놀이 체험은 가족 단위로 20개 팀을 선착순으로 접수한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쥐뿔도 모르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사람에게 쓰는 이 표현은 설화(說話)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사람으로 변한 쥐가 남편 행세를 하는 ‘쥐둔갑 설화’에서 쥐의 정체가 탄로 나자 진짜 남편이 아내를 타박한다. “쥐뿔도 몰랐냐”고. 이 말은 오늘날에도 우리가 자주 쓰는 표현으로 ‘살아 있다’. 설화가 우리 문화 깊숙이 자리한다는 증거다. 설화는 대대로 전승하는 장인(匠人)은 없지만 할머니에게서 손주에게로, 부모에게서 자녀에게로 전한다. 문화재청이 내년부터 신화와 전설, 민담을 포괄하는 설화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한다. 이재필 문화재청 무형문화재과장은 “보이지 않게 우리 공동체를 지탱해 온 설화를 재조명하기 위해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9∼12월 사단법인 무형문화연구원과 함께 설화의 문화재 지정 가치를 검토하는 기초조사를 했다. 무형문화연구원은 1980∼1992년 전국의 설화를 채록한 ‘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총 82권) 등에 실린 이야기 1만여 편을 분석했다. 그리고 △역사성 △학술성 △예술성 △대표성 △사회문화적 가치 △재현 가능성 등 6가지 문화재 지정 기준에서 5가지 이상을 충족한 설화 142편(신화 31편, 전설 48편, 민담 63편)을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추천목록’으로 선정했다. 국민이 익히 아는 단군신화와 바보온달, 선녀와 나무꾼, 콩쥐팥쥐 이야기 등이 포함됐다. 지정 예비 추천목록에는 628편을 선정했다. 연구를 맡은 박현숙 춘천교대 아동문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는 “설화는 한국 문화를 지탱하는 사상”이라고 말했다. 문자가 널리 사용되지 않았던 고대부터 설화가 민족의 정체성을 만들고 사상을 전파했다고 분석한다. 설화에는 통치 이념이 담기기도 했다. 하늘의 신인 해모수와 강의 신 하백의 딸 유화 사이에서 태어난 주몽이 고구려를 세우는 주몽신화가 대표적이다. 이 이야기에는 하늘을 숭배하던 북방계 유목민족이 강 일대에 정착해 농경공동체로 변모하는 과정이 담겼다. 주몽신화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동국여지승람 등 사료로 전해져 역사성도 확인된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려면 세대 간 끊임없이 전수되는 ‘재현 가능성’이라는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설화는 K콘텐츠로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있기에 이를 가뿐히 충족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번 조사에서 추천목록에 오른 ‘오세암’은 현대에 더욱 유명해졌다. 겨울철 홀로 남겨진 아이가 관음의 보살핌을 받아 목숨을 구하고 득도한다는 내용으로, 본래 강원 지역에서 전해져 내려왔다. 정채봉 작가(1946∼2001)가 이 설화를 바탕으로 쓴 동명의 동화를 1980년대 발표해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며 프랑스에도 번역 출간됐다. 2003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오세암’도 인기를 얻었다. 이 밖에도 무속신화를 바탕으로 한 주호민 작가의 웹툰 ‘신과 함께’, 도깨비와 저승사자 삼신할매가 나오는 드라마 ‘도깨비’(2016년), ‘선녀와 나무꾼’을 모티브로 한 드라마 ‘계룡선녀전’(2018년) 등 설화는 K콘텐츠의 원천이 되고 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기준에 부합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앞서 야쿠트 민족의 영웅 서사시 ‘올론호’ 등 구전 종목 여러 건이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지정된 바 있다. 박 교수는 “우리 설화 역시 세대에 걸쳐 전승되고 공동체에서 끊임없이 재창조된다는 점에서 무형문화유산 기준에 부합한다”고 했다. 연구 자문을 맡은 신동흔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권선징악 같은 보편적인 주제를 담은 설화는 국경을 넘어 인류를 묶는 힘을 지녔기에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서울 강남구 장디자인아트에서 나안나(36), 이영욱(32), 임준성(28) 등 국내외 20, 30대 젊은 작가 8인의 그룹전시 ‘Otherworld’가 열리고 있다. 다음 달 4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나온 직관적인 사유를 개성 있게 표현한 작품을 선보인다. 나안나 작가는 물고기를 그린 ‘초상화’(2022년·사진)를 선보인다. 그는 “조선시대 민화에서 다산과 풍요를 상징할 정도로 의미 있게 여겨졌던 물고기가 현재는 먹을거리로만 치부되고 있다”며 “이 작품은 존재가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죽음들에 대한 기록”이라고 했다. 시치 작가(34)의 ‘우주: Cosmos’(2022년)는 우주를 품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담았다. 무료.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빅뱅 멤버 태양(35)과 방탄소년단(BTS) 멤버 지민(28)이 협업한 노래 ‘바이브(VIBE)’가 13일 발매 즉시 글로벌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아이튠스의 ‘월드와이드’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태양의 소속사 더블랙레이블이 15일 밝혔다. 지민이 피처링한 태양의 새 디지털 싱글 ‘바이브’는 태양이 2017년 발표한 정규 3집 ‘화이트 나이트’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솔로곡이다. 태양이 작사와 작곡에 참여했으며 지민이 피처링과 작곡에 힘을 보탰다. 두 사람이 함께 등장한 뮤직비디오는 15일 기준 유튜브 조회수 3197만 회를 기록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이수지 작가의 작품에서) 굉장한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글 없는 그림책을 보는 독자들에게 자율성을 갖게 해주는 것 같아 놀라워요.” “(백희나 작가의 작품이) 각 페이지마다 지닌 완결성은 제가 늘 반성하는 부분이에요.” 한국 그림책의 대표 작가인 백희나(52), 이수지(49)가 만나 서로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들은 한국아동청소년문학학회가 14일 서울 서초구 서울교대에서 주최한 ‘어린이날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세계 속의 한국 그림책: 이야기는 어디서 시작하는가’를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두 작가가 대담을 한 건 처음이다. 이 작가는 지난해 한국인 최초로 ‘어린이책의 노벨 문학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수상했다. 백 작가는 세계적인 아동문학상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상을 2020년 한국인으로는 처음 받았다. 백 작가는 “아이들은 책을 차례대로 읽지 않고 확 펼치기도 해, 장면마다 완결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백 작가는 캐릭터 인형과 소품을 직접 만들고 사진으로 촬영해 각 장면을 입체적이면서도 생생하게 구현한다. ‘구름빵’(2004년), ‘장수탕 선녀님’(2012년), ‘달 샤베트’(2014년), ‘알사탕’(2017년)은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작가는 “다양한 요소가 쌓여 이야기를 전달하는 효과에 집중하는 편”이라고 했다. 현실과 거울, 해변과 바다, 실체와 그림자 등 경계를 통해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경계 그림책 3부작 ‘거울 속으로’(2003년), ‘파도야 놀자’(2008년), ‘그림자 놀이’(2010년)가 대표적이다. 두 작가는 서로에 대해 “창작 방식은 달라도 동시대 작가여서 좋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성격유형검사(MBTI) 결과마저 완전히 다르다”며 웃었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이 작가는 “그림의 힘이 밀고 가는 이야기가 담긴 그림책이라는 매체에 재미를 느꼈다”고 했다. 캐릭터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백 작가는 “많은 인력과 자원, 기술이 필요한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의 한계에 부딪혀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그림책에 끌렸다”고 말했다. 이들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세계의 민담에 관심이 많은 이 작가는 “그림책 작가 15명이 모여 옛이야기를 우리 관점에서 살펴보며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 작가는 “바비 같은 인형으로 연속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자유로움을 추구하기 위한 모험”이라고 했다. 이어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영웅 캐릭터도 만들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한국에서 불법적으로 반출됐을 가능성이 높은 묘지석(墓誌石·고인의 행적을 기록해 묘에 묻는 돌이나 도자기판)이 우리 박물관에 있어요.” 지난해 12월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으로 이런 e메일이 왔다. 한국 컬렉션을 대거 소장하고 있는 해외 한 박물관의 학예연구사가 해외 소재 한국문화재의 존재를 알려온 것. 묘지석은 원래 고인과 함께 무덤에 묻혀 있어야 할 유물이다. 이 연구사는 “묘지석의 반출 경위를 함께 조사해 보고, 불법성이 드러날 경우 한국 반환을 논의해보자”고 제안했다. 비슷한 일은 지난해 2월에도 있었다.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이 조선 후기 무신 이기하(1646∼1718)의 묘지석 18점을 자진 반환한 것. 이 미술관은 해당 유물의 불법 반출 여부가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선뜻 반환을 결정했다. “후손들을 위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마땅하다”는 게 이유였다. “유교 문화가 뿌리 깊은 한국으로서는 조상의 묘지석이 해외에 반출돼 있는 것을 용인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4, 5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나치 시대 약탈 문화재 반환하는 독일 과거에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외국 박물관에 연락해 “한국 컬렉션을 조사하고 싶다”고 밝혀도 날 선 반응만 하기 일쑤였다. 재단이 유물 반출의 불법성 여부를 조사해 반환을 요구할까 봐 꺼렸던 것이다. 소장한 한국 문화재를 일절 공개하지 않는 곳도 있었다. 1970년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일하던 고 박병선 박사(1923∼2011)가 파리 국립도서관 별관 창고에서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내 공개하자 “비밀을 발설했다”는 이유로 사직을 권고당한 일은 널리 알려져 있다. 최근 변화의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차미애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실태조사부장은 “외국 박물관이나 연구기관이 자국에 있는 한국 문화재에 대한 연구 조사를 진행하자고 먼저 제안하고 있다”며 “문화재를 약탈했던 각국 소장처가 앞장서 반환을 검토하는 사례가 세계적으로도 늘고 있다”고 했다. 이 같은 변화는 독일이 이끌고 있다. 나치 시대(1933∼1945년) 유대인 소장자로부터 약탈한 문화재에 대해 자성하며 반환에 나선 것. 2000년대 초부터 독일분실미술품재단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에게서 약탈한 문화재의 출처에 대한 연구를 벌이고 있다. 출처 연구는 해당 문화재가 만들어진 시점부터 현재까지 소유권 변화 내력과 수집 정보를 모두 추적하는 것을 일컫는다. 재단은 이 과정에서 드러난 약탈 여부 등 문화재의 불법 반출 정보까지 ‘분실미술품 데이터베이스’에 낱낱이 공개하고 있다. 뉘른베르크 게르만국립박물관은 2014∼2018년 이 재단의 지원을 받아 박물관이 나치 시대에 입수한 유물 1200여 점에 대한 연구를 벌였다. 유물 중 약 10%의 출처를 새로 밝혀낸 박물관은 약탈한 것으로 입증된 33점을 원소장자에게 돌려주기 위해 절차를 밟고 있다. 프랑스도 동참했다. 2021년 3월 프랑스 문화부는 파리 오르세미술관이 소장하던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걸작 ‘나무 아래 핀 장미’(1905년)를 원소장자인 유대인 가문 후손에게 돌려줬다. 1938년 오스트리아의 유대인 여성 노라 스티아스니가 이 그림을 나치에 강제로 헐값에 팔아야 했던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로즐린 바슐로나르캥 프랑스 문화장관은 반환 당시 “이번 결정은 정의에 대한 우리의 결의를 보여준다”고 했다.● 식민지배 자성 속 출처 연구 확산 나치 약탈 문화재에 대한 반성은 제국주의 시절 서구 열강들이 식민지에서 약탈한 문화재를 반환하는 움직임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베닌 청동’ 컬렉션을 둘러싼 유럽의 대응이 대표적이다. 이 컬렉션은 1897년 영국군이 현 나이지리아 일대에 있던 베닌왕국을 점령해 왕궁에서 약탈한 유물이다. 독일 로텐바움세계문화예술박물관은 영국, 프랑스 등 세계 각국 기관과 협업해 영국군에 약탈된 뒤 세계로 흩어진 베닌 청동 유물에 대한 연구를 벌였다. 독일은 2021년 4월 “식민지 과거를 재조명하고 해결해야 할 역사적·도덕적 책임이 있다”며 독일 내 베닌 청동 1130여 점의 소유권을 모두 나이지리아 정부에 넘겼다. 지난해 8월 영국 런던 호니먼박물관도 베닌 청동 컬렉션 72점의 소유권을 나이지리아 정부에 이양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도 베닌 청동 29점의 소유권을 모두 넘겼다. 교황청도 문화재 반환에 합류했다. 지난해 12월 교황청은 바티칸박물관이 소장한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조각품 3점을 그리스 정교회에 반환하기로 결정했다. 교황청은 “진리의 세계적인 길을 따르려는 교황의 진정한 열망의 구체적인 표시”라고 설명했다. 문화재 반환에 회의적이던 영국 역시 19세기 초 떼어가 런던 영국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파르테논 신전의 부속물 ‘엘긴 마블스’를 그리스에 반환하는 논의에 착수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 독일 등 세계 12개국 300여 개 기관이 약탈 문화재에 대한 출처 연구를 벌이고 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무렵 불법 반출돼 경매 시장에 나온 유물을 대량 소장한 미국 박물관들이 최근 출처 연구에 적극 나서면서 약탈 문화재에 대한 윤리적 성찰은 더욱 확산하고 있다.● “해외 소재 문화재 출처 연구 확대돼야” 문화재 반환은 국외 소재 문화재가 22만9655점(15일 기준)에 달하는 우리에게는 다행스러운 움직임이다. 한국은 조선 말 외세의 침입과 일제강점, 6·25전쟁을 겪으며 수많은 문화재가 해외로 반출됐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15일 현재 문화재 반출이 확인된 국가와 문화재 수는 일본 9만5622점, 미국 6만5241점, 독일 1만4286점, 영국 1만2804점이다. 이 밖에도 중국, 러시아, 이스라엘 등 모두 27개국에 달한다. 우리 정부도 세계 각국의 기관과 협업해 한국 문화재의 반출 경로를 분석하는 데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올해부터 미국 다트머스대,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학대학(SOAS)과 협업해 스미스소니언박물관과 보스턴미술관, 영국박물관 등이 소장한 한국 문화재의 출처 연구를 벌인다. 독일에 있는 한국 문화재에 대한 출처 연구도 준비하고 있다. 일본, 미국 다음으로 한국 문화재를 많이 소장하고 있는 독일은 박물관들이 협업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한다. 재단 관계자는 “향후 5년간 개항기와 대한제국 시기 국외로 넘어간 문화재를 대상으로 연구를 벌이고, 추후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시기로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연구에는 꾸준한 지원이 필수적이다. 독일분실미술품재단은 유대인으로부터 약탈한 문화재의 출처 연구 지원에 2008년부터 연간 150억 원가량을 투입했다. 베닌 청동 컬렉션 반환 역시 소장 기관들과 나이지리아 정부 등으로 2010년 결성된 ‘베닌 대화 그룹’이 10년 넘게 연구와 논의를 한 끝에 최근에야 결실을 맺었다. 한국은 이제 시작 단계다. 한국 문화재를 소장한 외국 기관과 지속적으로 함께 연구하고 신뢰를 쌓을 필요가 있다. 수십 년을 내다보며 문화재 환수를 위한 장기전을 벌이려면 충분한 예산과 인력이 필수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이소연 문화부 기자 always99@donga.com}

1416년 여름 독일 장크트갈렌 수도원의 서가. 먼지 쌓인 장서가 가득한 이곳에서 이탈리아 피렌체의 필경사 포조 브라촐리니(1380∼1459)가 ‘보물’을 찾고 있었다. 혹시 중세 암흑기를 거치며 자취를 감춘 고대 그리스·로마의 명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때 운명처럼 ‘웅변가교육(Institutio Oratoria)’을 만났다. 고대 로마 수사학자 쿠인틸리아누스가 연설 이론을 12권으로 집대성한 책으로, 500년간 자취를 감췄던 보물이었다. 그는 32일 만에 전권을 필사해 피렌체로 책을 들여왔다. 잠들었던 고대의 지혜는 이렇게 깨어났다.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 빈치, 마키아벨리…. 15세기 르네상스라고 하면 이 같은 이름들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사람 이전에 ‘책’이 있었다. 영국의 역사 저술가인 저자는 15세기 피렌체에서 활동했던 필경사와 서적상 등 ‘책 파수꾼’의 이야기를 통해 르네상스 부흥사를 추적한다. 그중 중요한 인물은 피렌체의 서적상 베스파시아노 다 비스티치(1422∼1498). 그는 모든 책을 손수 필사해 발간하던 시절 1000권이 넘는 고대 명저를 판매해 ‘세계 서적상의 왕’으로 불렸다. 11세 때부터 서점 조수로 일을 배운 그는 피렌체의 귀족 메디치가의 대리인으로 유럽 수도원에서 막대한 양의 필사본을 사들였다. 시뇨리아 광장 인근에 있던 그의 서점은 지식인들이 매일 토론을 벌이는 만남의 장이었다. 저자는 “책을 모으고, 지키고, 퍼뜨린 이들이 있었기에 르네상스가 도래했다”고 강조한다.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고 메디치 가문이 정치적 혼란을 겪을 때에도 굳건했던 다 비스티치의 서점 자리에는 현재 피자 가게가 들어서 있다. 16세기 초 유럽 전역에 255개가 넘는 인쇄소가 생겨나며 고서를 필사하는 서점들은 하나둘 사라졌다. 하지만 15세기 ‘책 사냥꾼’이 다시 찾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은 무지를 밝히는 등대처럼 여전히 빛나고 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