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이헌재 부장

동아일보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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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중요하지 않은, 하지만 누군가에겐 재미있을지도 모를 스포츠의 뒷담화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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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6-05-16~2026-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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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석희-안현수, 지상 최강 ‘어깨동무’

    만약 여자 쇼트트랙이 없었다면 소치 겨울올림픽은 한국 선수단에 재앙과도 같은 대회가 됐을 것이다. 대회 초반 메달 기근과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안(안현수) ‘후폭풍’으로 고전하던 한국 선수단의 분위기를 극적으로 뒤집은 게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이었다. 그 여자 대표팀이 세계선수권에서 다시 한 번 세계 최강임을 확인시켰다. 일등공신은 ‘차세대 쇼트트랙 여왕’ 심석희(17·세화여고)다. 심석희는 17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2014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1000m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심석희는 3000m 슈퍼파이널에서도 1위에 올라 종합 포인트 102점으로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심석희는 여자 1500m에서도 우승하는 등 대회 3관왕에 올랐다. 한국 선수가 세계선수권대회 여자부 종합 우승을 차지한 것은 2011년 조해리(28·고양시청) 이후 3년 만이다. 소치 올림픽 2관왕(1000m, 3000m계주)인 박승희(22·화성시청·사진)는 종합 2위에 올랐다. 남자부에서는 소치 올림픽 3관왕인 러시아 빅토르 안(안현수)이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빅토르 안은 종합 포인트 63점으로 J R 셀스키(미국·55점)를 제쳤다. 한국 대표로 뛰던 2003∼2007년 5년 연속 우승을 차지한 이후 7년 만의 정상 복귀다. 1500m와 500m에서 모두 4위에 그친 빅토르 안은 이날 1000m에서 정상에 올랐고, 3000m 슈퍼파이널에서는 3위로 13점을 추가했다. 금메달은 한 개밖에 따지 못했지만 전 종목에서 고른 활약을 보인 덕분에 종합 우승의 주인공이 됐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1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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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현수 논란’ 전명규 부회장 사퇴

    대한빙상경기연맹이 대대적인 혁신에 나서기로 했다. 지난달 소치 겨울올림픽에서의 성적 부진과 내부 운영 문제 등으로 논란을 빚었던 연맹 측은 17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조직 운영, 선수 선발, 평창 올림픽 준비 등 모든 분야에서 근본적인 혁신 방안을 도출해 내기 위해 ‘평창 대비 빙상발전위원회’를 출범시켰다”고 발표했다. 또 연맹 운영에 큰 영향력을 발휘해온 것으로 지목돼 온 전명규 부회장(사진)은 소치 올림픽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고 밝혔다. 소치 올림픽에서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은 ‘노 메달’의 수모를 겪었다. 반면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안(안현수)이 금메달 3개를 따면서 빙상연맹은 일반 국민은 물론 정치권으로부터도 강한 비난을 받았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안 선수의 귀화가 체육계 저변에 깔려 있는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연맹 측은 올림픽 이후 자구책 마련에 고심해 왔다. 빙상계, 학계, 법조계, 언론계 및 타 경기단체 관계자 등 11명으로 구성된 빙상발전위원회는 조직·운영·혁신, 쇼트트랙 대표 선발 방식 개선, 평창 올림픽 준비 강화 등을 목표로 모든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제도 및 운영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1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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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느님” “상느님”

    ‘빙속 여제’ 이상화(25·서울시청)와 ‘피겨 여왕’ 김연아(24)의 만남은 훈훈했다. 12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열린 코카콜라 체육대상 시상식. 둘은 등장할 때부터 남다른 패션 감각으로 주변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상화는 검은색 시스루 원피스를 입고 나타나 건강미와 함께 섹시미를 뽐냈다. 김연아도 검은색 상의에 나풀거리는 치마 차림으로 산뜻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날 공동으로 최우수선수상을 받은 두 선수는 같은 좌석에 앉아 행사 내내 이야기꽃을 피웠다. 수상을 위해 단상 위에 올라선 둘은 서로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상화는 김연아에 대해 “피겨스케이팅은 아름다움을 겨루는 종목이다. 김연아를 보면 ‘연느님’ (연아와 하느님의 합성어)이란 말이 떠오른다. 여신 같은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김연아는 “몇 차례 스피드스케이팅장에서 스케이트를 타본 일이 있는데 너무 힘들더라. 체격 조건의 불리함과 힘든 훈련을 이겨낸 것이 존경스럽다”라고 말한 뒤 “밴쿠버 올림픽에 이어 소치까지 금메달을 땄으니 ‘상느님’(이상화와 하느님의 합성어)?”이라고 답해 폭소를 자아냈다. 향후 계획에 대해 두 선수는 모두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이상화는 “일단은 쉬고 싶다. (평창 올림픽에서의 3연패 도전은) 차차 생각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먼 미래보다는 다가올 날부터 신경 쓰고 싶다. 여름 훈련까지 잘 쉬고 아픈 부위를 잘 치료한 뒤 다음 시즌을 준비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연아도 “앞으로 어떻게, 뭘 하며 살지 고민하고 있다. 일단 계획 없이 휴식을 취할 것”이라며 “지금 5월 아이스쇼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선수로서의 부담을 덜었으니까 즐겁게 생활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열애설이 불거진 김연아는 남자 친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14-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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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풀너풀 너클볼, 한국도 너울너울?

    8일 마산구장에서 열린 롯데와 NC의 시범경기 4회말에 인상적인 장면이 나왔다. 타석에 선 NC 나성범은 5구째에 헛스윙 삼진을 당했는데 롯데 포수 강민호가 이 공을 놓쳤다. 나성범은 그 틈을 타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으로 1루로 출루했다. 강민호는 경기 후 “주자가 있을 때 이 공을 던지라고 하기 힘들 것 같다. 우선 내가 공을 잡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고 했다. 강민호가 말한 이 공은 ‘마구 중의 마구’로 꼽히는 너클볼이다. 이날 롯데 선발 투수로 등판한 옥스프링은 7개의 너클볼을 던졌다. 3회말 에릭 테임즈를 상대로 너클볼 3개를 던져 좌익수 뜬공으로 잡아냈고, 4회 나성범에게는 5개 중 4개가 너클볼이었다. 옥스프링뿐 아니다. SK 투수 채병용과 삼성 투수 배영수도 너클볼을 실전용으로 가다듬고 있다. 그동안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는 선수들이 정복하지 못한 마지막 구종이 바로 너클볼이다. ○ 왜 너클볼인가 너클볼은 검지와 중지의 손톱 끝을 공에 대고 밀듯이 던지는 구종이다. 투수에 따라 약지까지 세 손가락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 공은 회전을 하지 않고 타자 앞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그래서 궤적을 그릴 수가 없다. 던지는 투수는 물론이고 받는 포수도 어디로 갈지 모른다. 매력적이면서도 위험한 구종인 이유다. 어깨나 팔꿈치에 엄청난 무리가 가는 다른 구종에 비해 너클볼은 그리 많은 힘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나이 든 투수들이나 구위가 예전 같지 않은 투수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구종이기도 하다. 최근 너클볼로 큰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선수는 메이저리그 토론토에서 뛰는 R A 디키다. 평범한 투수였던 디키는 너클볼을 자기 공으로 만들면서 단번에 수준급 투수가 됐다. 38세이던 2012시즌에는 너클볼 하나로 20승(6패)을 거두며 너클볼러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너클볼을 던진 투수는 1982년 OB(현 두산)의 에이스였던 박철순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느린 커브와 큰 차이가 없었고 오히려 장타를 허용하기 일쑤였다. 옥스프링, 채병용, 배영수도 너클볼 전문 투수로 전향을 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너클볼은 비장의 무기가 될 수 있다. ○ ‘그림의 떡’ 너클볼러 전문 너클볼러가 되고자 했던 국내 선수로는 장정석 넥센 매니저와 김경태 SK 재활군 코치 등을 꼽을 수 있다. 2003년 KIA에서 외야수로 뛰던 장 매니저는 너클볼 투수로 변신을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그는 “제구가 문제였다. 공의 움직임은 좋았지만 마음먹은 대로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없었다”고 했다. 너클볼 투수가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손톱이 강해야 한다. 김 코치는 “너클볼을 연습하면서 검지와 중지 손톱이 여러 차례 부러졌고 손톱 안에는 항상 멍이 들어 있었다. 손톱이 약한 투수는 몇 번만 던져도 손톱이 깨지기 일쑤”라고 했다. 너클볼은 적당한 스피드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타자들에겐 좋은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공의 궤적은 일정하지 않을지 몰라도 타자의 몸쪽 또는 바깥쪽 등으로 방향은 조절해서 던질 줄 알아야 한다. 코칭스태프도 위기 상황에서 너클볼 투수를 믿고 내보낼 수 있어야 한다. 김 코치는 “한국 투수들도 구위로만 보면 언제든 성공할 수 있다. 결국 너클볼러가 자리 잡을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라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14-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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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아온 프로야구… 부담없이 즐기자 ‘3월의 보너스’

    봄이 왔다. 스프링캠프를 마친 프로야구도 돌아왔다. 겨우내 야구에 굶주렸던 팬들은 꽃샘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8일 개막한 프로야구 시범경기 8경기에 6만7300명의 관중이 찾았다. 단 이틀, 불과 8경기를 치렀지만 각 팀엔 희망과 꿈이 넘쳐난다. 열성 야구팬이 아니면 이름도 잘 모를 강지광(넥센), 백창수(LG), 김회성(한화), 강한울(KIA) 등의 이름이 연일 신문과 인터넷을 장식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중 한 시즌 내내 1군 무대에 남아 있을 선수는 과연 얼마나 될까. 결론적으로 시범경기는 말 그대로 ‘시범’일 뿐이다. 2000년대 초반 롯데에 우드라는 외국인 선수가 있었다. 시범경기 때 우드의 방망이 솜씨는 입이 떡 벌어질 만했다. 과장을 좀 보태 방망이만 휘두르면 안타였다. 그렇지만 우드는 35경기에 출장해 타율 0.255를 기록한 뒤 쓸쓸히 퇴출되고 말았다. 외국인 선수가 그럴진대 국내 신인급 선수야 말할 나위가 없다. 스프링캠프와 캠프 기간에 치른 연습경기를 통해 모든 팀이 선발 로테이션을 비롯한 주전 선수들의 구성은 이미 거의 끝내 놨다. 눈에 드러나는 성적은 말 그대로 참고 사항이다. 경기에 나서는 주전급 선수들은 컨디션 조절이 목표다. 투수들은 캠프 기간 갈고 닦은 구위를 점검하고, 야수들은 부상을 당하지 않는 선에서 실전 감각을 익히려 애쓴다. 감독이나 코치들이 눈여겨보는 것은 시즌 중 주전 선수들이 부상 등으로 전력에서 이탈했을 때 1군에 올라올 수 있는 신진급 선수들이다. 팀별로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26명의 1군 엔트리에서 비어 있는 자리는 2, 3개에 불과하다. 그나마 주전이 아니라 백업이다. 하지만 이 기회를 잡으려는 선수들의 경쟁이 바로 시범경기의 하이라이트다. 이들 가운데 개막전 엔트리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선수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코칭스태프의 눈도장을 받기에 이때보다 더 좋은 때는 없다. 홈런일 수도 있고, 빠른 발일 수도 있고, 수비 센스일 수도 있다. 몸을 아끼지 않는 허슬플레이나 부상을 참고 뛰는 근성일 수도 있다. 이때 남긴 강렬한 인상은 그 선수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 야구는 1, 2년 하고 말 게 아니다. 2군이든 3군이든 참고 기다리면 기회는 온다. 2군 감독 출신으로 지난해 LG를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킨 김기태 LG 감독은 말했다. “스프링캠프를 통해 백창수, 최승준, 박용근 등이 많이 좋아졌다. 그렇다고 이들 모두가 1군에서 뛰기는 힘들다. 하지만 감독은 스프링캠프에서 좋아진 선수를 뚜렷하게 기억한다. 개막전 엔트리에 들지 못하고 2군으로 간다 해도 2군에서 올린 보고서를 유심히 살펴본다.” 팬들도 다르지 않다. 시범경기 동안 신인선수들의 활약을 유심히 지켜보는 것은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그들이 미래의 스타들이기 때문이다. 마음속으로 점찍었던 선수가 올 시즌 바로 1군에 올라와 맹활약을 펼친다면 금상첨화다. 그게 아니라면 마음 편히 프로야구의 재미를 만끽하면 된다. 프로야구 시범경기는 23일까지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후 1시에 열린다. 더욱 기쁘게도 관람은 모두 무료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14-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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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인 있어요” 연아의 연인은 아이스하키 상무팀 김원중

    ‘피겨 여왕’ 김연아(24)가 사랑에 빠졌다. 김연아의 매니지먼트사인 올댓스포츠는 6일 보도자료를 통해 “김연아가 아이스하키 선수 김원중(30·대명 상무)과 교제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이날 한 온라인 연예매체는 김연아가 김원중과 데이트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 여러 장을 공개했다. 김연아의 열애 상대인 김원중은 남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에이스 공격수로 2012년 상무에 입대해 군복무 중이다. ○ 사랑에 빠진 김연아 김연아가 아이스하키 선수와 열애 중이라는 소문은 2년 전 처음 돌기 시작했고 지난해 다시 한 번 불거졌었다. 그러나 당시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측이 이 사실을 강력 부인하면서 잠잠해졌다. 고려대 동문인 둘이 가까워지게 된 것은 김연아가 선수 복귀를 선언한 2012년 여름 이후다. 김연아는 이때부터 소치 올림픽을 위해 서울 태릉빙상장에서 본격적인 훈련을 했다. 이 무렵 상무 아이스하키 팀이 창단됐다. 상무는 따로 빙상장이 없어 태릉빙상장을 훈련장으로 삼았다. 훈련 시간은 서로 달랐지만 오가면서 얼굴을 마주칠 때가 적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됐다. 김원중이 외출이나 외박을 나올 때 주로 데이트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지인은 “태릉 인근 고깃집에서 밥을 먹을 때가 많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한강 둔치 등을 거닐기도 했다. 여느 연인들의 데이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했다. 생일과 크리스마스이브 때는 보통 연인들처럼 기념일을 챙겼다. 지난해 김연아가 오른 발등 부상으로 힘들어 할 때도 김원중의 존재가 큰 힘이 됐다. 열애설이 이날 처음 보도된 뒤 김연아 측은 선뜻 열애 사실을 인정했다. 올댓스포츠 관계자는 “딱히 감출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 (열애를 인정하는) 보도자료를 내게 됐다”고 말했다. ○ 김연아의 남자 김원중은 누구 김연아의 남자 친구인 김원중은 실력은 물론이고 외모도 출중하다. 키 180cm에 다부진 체격을 자랑한다. 경복고와 고려대를 졸업한 뒤 2006년 안양 한라에 입단해 주 공격수로 자리를 잡았다. 한국보다 일본 팬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으며 ‘꽃미남 스케이터’란 별명도 갖고 있다. 안양 한라 관계자는 “처음 입단할 때는 특급 선수가 아니었지만 피나는 노력을 통해 최고의 자리에 섰다. 윗사람들에게는 깍듯하고 후배들로부터는 존경받는 선수”라고 평가했다. 대명 상무 관계자도 “과묵하고 까칠한 듯하면서도 다정한 면이 있다. 경기나 훈련 때 빙판 위에서는 더없이 진지하지만 휴식을 취할 때면 장난꾸러기가 되기도 한다.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소신 있는 발언도 많이 해 따르는 후배가 많다”고 전했다. 김연아는 이상형에 대해 “센 척하는 남자와 수다스러운 남자는 좋아하지 않는다. 남자라도 힘든 일 있으면 나한테 기댈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는데 과묵하면서도 다정다감한 김원중은 이에 잘 부합한다. 국가대표 1조의 공격수로 뛰는 김원중은 2012년 폴란드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디비전1 B그룹 경기에서 팀 내 최다인 5골을 터뜨려 우승에 기여했다. 올 시즌 아시아리그에서는 25골(8위)과 24어시스트로 공격 포인트 16위에 오르며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다. 아이스하키 선수들은 대개 부잣집 자제라는 선입견이 있지만 김원중은 평범한 집안 출신이다. 아버지는 회사원이며 누나는 안양 한라의 프런트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14-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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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빙판의 우생순, 동생들의 기적

    지난달 소치 겨울올림픽을 통해 국민적인 관심을 모은 한국 여자 컬링이 또 하나의 쾌거를 이뤘다.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첫 은메달을 따낸 것이다. 스킵 김경애(20)와 김선영(21·이상 경북체육회), 김지현(18·의성여고), 오은진(21·의성스포츠클럽), 구영은(19·의성여고)으로 구성된 여자 주니어 대표팀은 5일 스위스 플림스에서 열린 2014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 결승에서 캐나다에 4-6으로 패하면서 은메달을 차지했다. 컬링 도입이 20년밖에 되지 않은 한국이 주니어와 시니어를 통틀어 세계선수권대회 결승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종전까지는 2004년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남자 대표팀과 2012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여자 대표팀이 각각 4위에 오른 것이 최고 성적이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경기였다. 김경석 코치가 이끈 한국은 6엔드까지 3-2로 앞서며 캐나다를 압박했다. 하지만 7엔드에서 2점을 내줘 역전을 허용한 데 이어 후공을 잡은 8엔드에서도 2점을 더 내주며 초반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그렇지만 소치 올림픽에서 대표팀이 3승을 거둔 데 이어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마저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치며 4년 뒤 평창 겨울올림픽에서의 메달 가능성을 밝혔다. 한국은 예선에서 캐나다와 스코틀랜드, 스위스 등 강국을 연달아 꺾으며 7승 2패로 풀 리그 1위에 올랐고 준결승에서는 예선에서 패배를 안긴 스웨덴을 이기기도 했다. 국내 등록 선수가 600여 명에 불과하고 전용 컬링 경기장이 두 곳(서울 태릉, 경북 의성)밖에 없는 한국 컬링으로서는 기적이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성과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14-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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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연아 “스케이트 꼴보기 싫지만 놓지는 않을것”

    ‘피겨 여왕’이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김연아(24)의 표정은 홀가분해 보였다. 4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타임스퀘어 특설무대에서 열린 ‘E1과 함께하는 김연아 선수 귀국 환영회’에 참석한 김연아는 밝은 얼굴로 팬들과 만났다. 행사 시작과 함께 약 50분간 진행된 토크쇼 형식의 자리에서 김연아는 선수 생활의 마지막 무대였던 소치 겨울올림픽을 마친 소회와 뒷이야기, 앞으로의 계획 등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김연아는 소치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모두 무결점 연기를 펼쳤지만 개최국의 신예 아델리나 소트니코바(러시아)에게 밀려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이후 ‘판정 논란’이 전 세계적으로 벌어졌고 이날 자리에서도 판정 문제는 주된 화제가 됐다. 그동안 “결과에 전혀 미련이 없다”고 말해 왔던 김연아는 이날도 초연한 모습이었다. 그는 “어이는 없었지만 나는 끝났다는 것이 좋았다. 결과를 되새긴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회 전에는 금메달이 간절하지 않다고 늘 말했으면서도 ‘나도 사람이기에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아쉽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경기를 마치고 나니 그만큼 간절하지 않았다는 것이 느껴지더라”고 털어놨다. 점수 발표 후 백스테이지에서 흘린 눈물에 대해서는 “쇼트프로그램을 마친 뒤에도 밤에 침대에 누워서 이 시간이 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울컥했다. 참아 왔던 힘든 것이 터진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은퇴 소감을 묻는 질문에는 “스케이트가 꼴 보기 싫은 지는 오래된 것 같다. 이젠 할 만큼 했다 싶어서 아무런 미련이 없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동안 자신이 펼친 최고의 무대로는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모두 ‘클린(무결점) 연기’를 펼친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과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그리고 소치 올림픽을 꼽았다. 김연아가 그리는 미래는 어떤 것일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도전에 대해 김연아는 “IOC 선수위원 선거에 나갈 자격은 갖췄지만 100% 된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으로 더 생각해 봐야 하지만, 아직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당분간 경기와 훈련의 긴장감에서 벗어나 편히 지내는 것만으로 행복하다”며 10년 후의 청사진을 묻는 질문에는 “나는 피겨스케이팅을 빼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지도자를 하든, 다른 일을 하든 피겨스케이팅을 놓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1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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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치 2관왕 박승희 ‘4억 대박’

    올림픽 금메달은 가문의 영광이다. 금메달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지만 금메달에는 적지 않은 금전적 보상도 뒤따른다. 그런 점에서 소치 겨울올림픽 2관왕에 오른 박승희(22·화성시청)는 명예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집안을 일으킨 ‘효녀’라고 할 수 있다. 박승희는 3일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소치 올림픽 메달리스트 포상금 수여식에서 김재열 회장으로부터 6250만 원을 받았다. 여자 1000m 금메달 포상금이 3000만 원, 계주 금메달 포상금이 2250만 원, 500m 동메달 포상금이 1000만 원이었다. 정부 포상금도 기다리고 있다. 대한체육회와 문화체육관광부는 포상금 규모 산정 작업을 벌이고 있는데 최소한 2012년 런던 여름올림픽 수준의 대우를 계획하고 있다. 당시 지급액은 금메달 6000만 원, 은메달은 3000만 원, 동메달은 1800만 원이었다. 박승희는 개인전 금메달과 단체전 금메달(개인전 금메달의 75%), 동메달이 한 개씩 있기 때문에 이를 합산하면 1억2300만 원이 된다. 이와 별개로 소속팀 화성시청은 8500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기로 했고, 에쓰오일도 2000만 원을 내놓기로 했다. 순수 포상금만 3억 원에 육박한다. 여기에 매달 100만 원씩 연금이 지급되고, 체육연금 한도점수(110점)를 넘기면서 일시금으로 받게 되는 체육연금 일시금도 1억 원이 넘는다. 박승희는 이번 소치 올림픽에 언니 박승주(24), 동생 박세영(21·이상 단국대)과 함께 출전했다. 세 자녀를 모두 국가대표로 키우면서 박진호-이옥경 씨 부부는 상당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어머니 이 씨는 최근 TV에 출연해 “금전적인 면이 제일 힘든 부분이었다. 세 아이가 갑자기 장비를 사게 될 때는 일단 한 아이가 양보를 해야 하는 경우 마음이 많이 아프고 힘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세 아이가 모두 올림픽에 출전한 데다 박승희가 많은 메달을 따면서 그간의 고생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됐다. 박승희는 “포상금이 들어오면 일단 열심히 모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연맹은 자체 포상 규정에 따라 쇼트트랙에서 금, 은, 동메달을 1개씩 획득한 심석희(17·세화여고)에게는 4750만 원,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2연패를 달성한 이상화(25·서울시청)에게는 3000만 원을 수여했다.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김연아(24)는 1500만 원을 받았다. 조해리와 김아랑, 공상정 등 여자 쇼트트랙 계주 멤버들은 각각 2250만 원, 이승훈 주형준 김철민 등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팀 추월 선수들은 1125만 원씩을 받았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1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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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냥 뛰어도 대회新, 이제야 쉬는 이승훈

    “일단 잠을 푹 자고 싶어요.”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의 간판 이승훈(26·대한항공·사진)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다. 지난달 소치 겨울올림픽에 출전한 71명의 한국 선수 가운데 이승훈은 가장 길고 힘든 일정을 소화했다. 그 긴 여정의 끝은 ‘해피 엔딩’이었다. 개막 이튿날인 2월 8일 남자 5000m에 출전했고, 18일에는 남자 1만 m에 나섰다. 그리고 폐막을 하루 앞둔 22일 주형준-김철민 등과 함께 남자 팀 추월에 출전했다. 과정도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았다. 스스로 “욕심이 난다”고 했던 5000m에서는 12위로 처지며 큰 좌절을 맛봤고, 1만 m에서는 4위로 골인하며 아쉽게 메달을 놓쳤다. 하지만 팀 추월에서 값진 은메달을 수확하며 다시 웃을 수 있었다. 소치 올림픽 출전 선수들과 함께 25일 귀국한 그의 앞에는 겨울체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심신이 지쳐 있던 그는 22일 팀 추월 이후에는 한 번도 스케이트화를 신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동안 훈련에 익숙해져 있던 몸이 먼저 반응했다. 지난달 27일 열린 겨울체전 남자 일반부 5000m에서 그는 6분35초92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대회 신기록이었다. 폐막일인 1일 출전한 남자 일반부 1500m에서는 역시 대회신기록인 1분48초89로 골인하며 2관왕에 올랐다. 이승훈은 2일 전화 통화에서 “소치 올림픽 이후 한 번도 훈련을 하지 않았다. 그냥 쉬었다가 경기 전 가볍게 몸을 풀고 탔는데 나도 깜짝 놀랄 정도로 기록이 잘 나왔다”며 웃었다. 그는 “앞으로 한 달간은 푹 쉬고 싶다. 친구도 만나고 여행도 다닐 생각이다. 그리고 다음 달부터 4년 뒤 열리는 평창 올림픽을 향해 다시 훈련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편 1일 끝난 제95회 겨울체전은 경기도의 13연패로 막을 내렸다. 경기도는 금메달 99개, 은메달 73개, 동메달 71개를 따내 종합점수 1373.5점으로 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13년 연속 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겨울체전 최우수선수(MVP)에는 크로스컨트리 스키 4관왕에 오른 조용진(18·황지고)이 선정됐다. 단국대에 입학하는 조용진은 이번 대회에서 크로스컨트리 스키 남자 고등부 클래식 10km, 40km 계주, 프리 15km, 복합을 차례로 휩쓸었다. 조용진은 지난해 겨울체전에서도 같은 네 종목에서 모두 금메달을 차지해 4관왕에 올랐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1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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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연재 동 동 동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20·연세대·사진)가 2014시즌 첫 대회인 모스크바 그랑프리에서 3개의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첫 대회부터 쾌조의 출발을 보여 9월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서의 금메달 전망도 밝아졌다. 손연재는 2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대회 둘째 날 종목별 결선 후프에서 17.516점을 받았다. 루트비히 민쿠스(오스트리아)의 발레곡 ‘돈키호테’에 맞춰 발랄한 연기를 선보인 손연재는 마르가리타 마문(18.766점), 야나 쿠드랍체바(18.383점·이상 러시아)에 이어 3위에 올랐다. 손연재는 이어 열린 곤봉과 리본에서도 각각 17.816점과 17.666점을 받아 동메달 2개를 추가했다. 볼 종목에서는 17.633점을 받아 4위에 올랐다. 손연재는 지난해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에서 3개의 금메달(후프, 곤봉, 개인종합)을 딴 적이 있지만 전 세계 선수들이 출전한 국제대회에서 3개의 메달을 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대회는 국제체조연맹(FIG) 주관 대회는 아니다. 하지만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종합 우승자인 쿠드랍체바를 비롯해 마문, 알렉산드라 메르쿨로바 등 리듬체조 강국 러시아 선수들이 대거 출전해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손연재는 아시아경기를 대비해 4종목 모두 난도를 높인 새 프로그램을 준비했는데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손연재는 전날 열린 개인종합에서는 후프(16.583점)-볼(17.383점)-곤봉(17.900점)-리본(17.200점) 합계 69.066점을 받아 6위에 자리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1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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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봉 고작 100만달러, 풋내기에 열광하는 ML

    세계 최고의 무대 메이저리그에서는 1억 달러를 넘는 대형 계약을 흔히 볼 수 있다. 추신수도 지난해 말 자유계약선수(FA) 자격으로 텍사스와 7년간 1억3000만 달러(약 1388억 원)에 계약했다. 그런 메이저리그에서 ‘단돈’ 100만 달러(약 10억7000만 원)짜리 계약이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주인공은 LA 에인절스의 외야수 마이크 트라우트(23·사진)다. 야후스포츠와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은 27일 에인절스와 트라우트가 1년 100만 달러 계약에 합의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액수 자체만 보면 보잘것없다. 이 계약이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초대형 계약의 전주곡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에는 억만장자가 즐비하지만 연봉조정신청 자격을 갖게 되는 풀타임 3년차 이하 선수들은 예외 없이 박봉에 시달린다. 풀타임 2년차이던 지난해 트라우트는 타율 0.323에 27홈런, 97타점이란 빼어난 성적을 거뒀다. 득점(109개)과 볼넷(110개)은 아메리칸리그 1위였다. 도루도 33개나 했다. 그렇지만 그의 지난해 연봉은 메이저리그 최소 연봉을 약간 웃도는 51만 달러(약 5억4000만 원)에 불과했다. 그가 올해 받게 될 100만 달러는 연봉조정신청 자격이 없는 선수가 받는 역대 최고액이다. 종전 기록은 앨버트 푸홀스(2003년)와 라이언 하워드(2007)가 받은 90만 달러였다. 트라우트의 몸값은 연봉조정신청 자격을 갖추는 올 시즌 이후부터 급상승할 것이 확실시된다. 이미 현지에서는 에인절스 구단이 6년간 1억5000만 달러(약 1602억 원)짜리 계약을 제시했다는 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트라우트로서는 급할 게 없다. 풀타임 6시즌인 2017년까지 뛰고 나면 그는 FA가 된다.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수 있다. 공수주를 두루 갖춘 그는 알렉스 로드리게스(뉴욕 양키스)가 갖고 있는 역대 메이저리그 최고액 계약 기록(10년간 2억7500만 달러)도 넘을 수 있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실력과 잠재력은 이미 메이저리그 최정상급이다. 베이스볼 레퍼런스가 평가한 지난해 그의 승리기여도(WAR)는 9.2로 메이저리그 전체 선수를 통틀어 1위였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14-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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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의 눈/이헌재]男 쇼트트랙도 춤추게 하자

    여름올림픽의 양궁과 겨울올림픽의 쇼트트랙 선수들에게 태극마크는 무한한 영광인 동시에 큰 부담이다. 흔히 두 종목에서는 올림픽 메달을 따는 것보다 국가대표 되는 게 더 어렵다고 한다. 은메달을 따고도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인다. 외국 사람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 만한 장면이다. 이들이 느끼는 금메달 강박증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24일 막을 내린 소치 겨울올림픽에서 남자 쇼트트랙 선수들은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 금메달은커녕 동메달 한 개도 목에 걸지 못했다. 선수들의 아픔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대회 전부터 이들은 환영받지 못했다.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빅토르 안·29)의 그늘에 가렸다. 안현수가 한국 빙상계 파벌 싸움의 희생양으로 귀화했다는 오해가 널리 퍼지면서 그 화살이 애꿎은 한국 선수들에게 향했다. 낙타가 바늘구멍 지나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대표선발전을 통과했지만 이들은 역대 국민들의 성원을 가장 받지 못하는 국가대표였다. 대회 기간에 안현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며 승승장구하자 이들의 상처는 더 깊어졌다. 반드시 금메달을 따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해졌고, 조급함은 무리한 플레이를 낳았다. 실격과 실수가 잇따랐다. 오죽했으면 안현수가 “후배 선수들이 무슨 죄가 있나. 다들 열심히 한 선수들이다. 내 성적과 한국 선수들의 성적이 맞물려 비교되는 게 나도 많이 힘들었다”고 말했을까. 안현수가 공식 기자회견에서 밝힌 귀화 이유는 운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2008년 무릎 부상 이후 안현수에게 가장 필요했던 건 그의 재기를 기다려 줄 수 있는 인내였다. 한국은 기다리지 못했고 러시아는 기다렸다. 그 결과 안현수는 금메달 3개와 동메달 1개를 따내며 러시아의 종합 1위에 기여했다. 한국 쇼트트랙이 ‘세계 최강’이던 시대는 지났다. 많은 한국인 지도자가 외국에 진출하면서 한국만의 노하우는 이미 없어진 지 오래다. 힘 좋고 체격 좋은 외국 선수들은 한국 지도자들을 통해 한국만 갖고 있던 장점을 스펀지처럼 흡수한다. 안현수의 경우처럼 지금 우리 선수들에게 필요한 것도 기다림이다. 옆에서 지켜본 남자 쇼트트랙 선수들은 정말 눈물겨울 만큼 열심히 노력했다.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땀을 흘렸다. 이들에 대한 비난은 ‘제2의 안현수’를 낳을 수 있다. 이들에게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또 그간의 노력에 대해서는 따뜻한 격려를 받아야 한다. 25일 이들은 선수단 본진과 함께 입국한다. 메달리스트들의 뒤에 가려 있을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따뜻한 박수다.소치=이헌재·스포츠부 uni@donga.com}

    • 201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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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열 선수단장 “선수선발 공정성 더 강화 빙상강국 위상 되찾을 것”

    “경기장에서 항상 당당하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선수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소치 겨울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단을 이끈 김재열 단장(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은 폐막식을 앞둔 23일 러시아 소치 시내 코리아하우스에서 대회 결산 기자회견을 가졌다. 금메달 3개,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 등 8개의 메달을 딴 한국은 종합 13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다음은 김 단장과의 일문일답. ―대회를 총평하자면…. “금메달 4개로 톱10에 진입하겠다는 목표 달성에 실패해 밤낮으로 열심히 응원해 주신 국민께 죄송하다. 하지만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항상 당당하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비활성화 종목에서 가능성을 보인 것도 고무적이다. 올림픽에 처음 나선 컬링은 3승(6패)을 거뒀고, 스켈리턴의 윤성빈은 입문 2년 만에 16위에 올랐다. 모굴스키의 최재우는 한국 스키 역사상 처음으로 12명이 겨루는 본선에 진출했다.” ―가장 인상적인 경기와 아쉬웠던 경기를 꼽자면…. “단장으로서 모든 경기가 중요했고 인상적이었다. 최재우는 본선에서 스타트가 좋았는데 약간 실수가 나온 게 아쉬웠다. 어린 선수니까 토비 도슨 코치와 4년간 열심히 준비하면 평창에서는 시상대에 설 수 있을 것이다. 컬링은 정말 흥미로웠고 한국인이 잘할 수 있는 경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 쇼트트랙 박승희에게는 감동했다. 500m 경기에서 선두로 달리다가 상대 선수의 반칙으로 동메달에 그쳐 안타까운 마음에 말을 걸었더니 ‘지나간 것 가지고 얘기해 뭐하겠느냐. 다 잊고 다음 경기에 집중하겠다’고 하더라. 존경스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대회 기간 빙상연맹에 대한 질타의 목소리가 높았다. “연맹 회장으로서 소통을 잘못한 부분이 있고 더 잘할 수 있는 부분도 충분히 있었다. 선수 선발의 공정성 제고 등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다시 빙상 강국의 위상을 회복할 최선의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할 것이다.” ―김연아의 판정 논란과 관련해 빨리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비판 여론도 있다. “우선 김연아 선수가 자랑스럽다. 은메달을 받고도 성숙한 모습을 보여 ‘괜히 김연아가 아니구나’ 싶었다. 이의 제기와 관련해서는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의 규정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했다. 앞으로도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겠다. 이의 제기에 관한 ISU 규정이 까다롭다. 충분히 이에 대해 숙지해 왔고 적합한 대응을 해나갈 것이다.” ―평창 올림픽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느낀 점을 말해 달라. “경기력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노력을 해야 쇼트트랙 강국의 위상을 지키고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스케이팅에서 선전할 수 있다고 느꼈다. 이번에 스피드스케이팅을 네덜란드가 독식했다. 예전부터 잘했던 장거리뿐 아니라 단거리도 석권했다. 이번에 네덜란드 빙상연맹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우리가 강한 쇼트트랙과 네덜란드가 강한 스피드스케이팅을 서로 교류할 방법을 고민할 것이다. 소치 올림픽은 막을 내리지만 동시에 평창 올림픽을 준비해야 한다. 육성해야 할 종목의 선수들과 젊은 선수들에게 계속 관심을 가져줄 것을 부탁드린다.”소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1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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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미묘한 때… IOC위원장, 연아와 비밀회동

    2014 소치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편파 판정에 대해 전 세계에서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올림픽을 주관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23일(현지 시간) 김연아(24)와 비밀 회동을 가졌다. 특히 이날 회동은 IOC 위원장의 요청으로 극비리에 이뤄진 만남이어서 회동 내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IOC 관계자 등에 따르면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독일)은 23일 소치 올림픽 기간 동안 자신을 포함해 IOC 위원들의 숙소와 집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래디슨블루호텔에서 김연아와 20분간 비밀 회동을 가졌다. 국제 스포츠계의 최고 권력자인 IOC 위원장이 선수 개인을 초청해 따로 만남을 가진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보통 선수들은 IOC 위원장은 고사하고 IOC 위원도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이 국제 스포츠계의 현실이다.김연아는 그동안 인터뷰를 통해 "(판정에) 억울하거나 속상한 마음은 없다"고 밝혔는데 이날도 같은 취지의 의견을 바흐 위원장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만남에서 바흐 IOC 위원장은 김연아에게 유스올림픽 홍보대사를 맡아 줄 것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연아는 2011년 제1회 겨울 유스올림픽을 앞두고 홍보대사를 지낸 적이 있다. 그러나 선수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았던 당시와 달리 김연아는 소치 겨울올림픽을 마지막으로 현역을 은퇴하고 스포츠 행정가로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유스올림픽 홍보대사는 김연아에게 매력적인 카드다.특히 IOC 선수위원을 목표로 하고 있는 김연아에게 바흐 IOC 위원장은 든든한 후원자가 될 수 있다. IOC 선수위원은 당해 연도 올림픽이나 직전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이 동료 선수들의 투표로 선출된다. 김연아는 2018년 평창 올림픽 때 IOC 선수위원 후보로 출마할 수 있다. 그런데 IOC 위원장은 지역과 성별, 종목 배려를 위해 최대 7명까지 IOC 선수위원을 지명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바흐 IOC 위원장이 마음만 먹는다면 김연아를 IOC 선수위원으로 지명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펜싱 금메달리스트인 바흐 IOC 위원장은 첫 선수 출신 IOC 위원장이다.소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1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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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치]“올림픽 뛰고 싶어 귀화… 연맹 파벌싸움 탓 아니다”

    “예전에 파벌이란 게 있긴 했지만 러시아 귀화를 결정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다. 러시아에 온 것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쇼트트랙을 하고 싶어서였다. 이 문제로 더이상 시끄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소치 겨울올림픽 대회 중반인 13일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29)에 대해 “안 선수의 귀화가 체육계 저변에 깔려 있는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이 사건을 재조사하기로 한 가운데 당사자인 안현수가 스스로 답을 내놨다. 22일(한국 시간)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500m와 5000m 계주를 석권한 직후였다. 안현수는 15일 1000m에서 딴 금메달을 합쳐 이번 대회 3관왕에 올랐다.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던 안현수는 그간의 논란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심경을 밝혔다. 한국 쇼트트랙 내의 파벌 싸움이 그를 귀화로 내몰았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버지(안기원 씨)가 내가 실제로 하지 않은 얘기까지 너무 많이 말씀하셨다. 그 때문에 나와는 의견충돌까지 있었다. 아버지가 나를 아끼는 마음에 그러셨겠지만 그런 말 때문에 내가 피해를 보는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안기원 씨는 그동안 여러 차례 안현수의 귀화는 한국 빙상계의 파벌 싸움 때문이었고, 안현수는 제대로 된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고 주장해 왔다. 안현수는 그 말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안현수는 “2008년 무릎 부상을 당했고 그 후 1년간 4번이나 수술을 받았다. 이 때문에 밴쿠버 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2009년 대표선발전에 한 달밖에 운동을 못하고 나갔다. 하지만 내게만 특혜를 줘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러시아에 온 것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쇼트트랙을 하고 싶어서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올림픽 들어 한국 선수들과 부딪치는 기사들이 많이 나가는 상황이 굉장히 아쉬웠다. 내 성적과 한국 선수들의 성적이 맞물리는 게 내게도 많이 힘들었다. 후배 선수들이 무슨 죄가 있나. 다들 열심히 한 선수들이다. 후배들도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러시아 귀화 과정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털어놨다. 그는 “2008년에 좋은 대우를 받고 성남시청에 입단했다. 그런데 입단 한 달 후 바로 부상을 당하게 되는 바람에 저를 영입한 성남시청에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성남시청은 저와의 계약이 끝나는 해에 해체됐다. 한국 내 다른 팀에 가고 싶었지만 자리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올림픽을 다시 한 번 뛰고 싶었다.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모든 걸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처음 러시아에 올 때는 귀화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온 것은 아니었다. 귀화를 결정하게 된 것에는 저를 믿어준 것에 대한 게 가장 컸던 것 같다. 처음 와서 1, 2년간은 정말 힘들었다. 부상에서 회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적응 문제도 있었다. 그래도 러시아가 나를 믿어주고 인정해줬기에 러시아 귀화를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회 내내 연인으로 화제를 모았던 우나리 씨(30)에 대해서는 “저희는 결혼식만 올리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상 부부관계다. 한국에서 혼인 신고도 했다. 그래서 더욱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내가 한 결정 때문에 그 사람이 힘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소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1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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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림픽 뛰고 싶어 귀화…연맹 파벌싸움 탓 아니다”

    "예전에 파벌이란 게 있긴 했지만 러시아 귀화를 결정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다. 러시아에 온 것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쇼트트랙을 하고 싶어서였다. 이 문제로 더 이상 한국에서 시끄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소치 겨울올림픽 대회 중반인 13일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29·러시아명 빅토르 안)에 대해 "안 선수의 귀화가 체육계 저변에 깔려 있는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이 사건을 재조사하기로 한 가운데 당사자인 안현수가 스스로 답을 내놨다. 22일(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500m와 5000m 계주를 석권한 직후였다. 안현수는 15일 1000m에서 딴 금메달을 합쳐 이번 대회 3관왕에 올랐다. 그 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던 안현수는 그 간의 논란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심경을 밝혔다. 한국 쇼트트랙 내의 파벌 싸움이 그를 귀화로 내몰았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버지(안기원 씨)가 내가 실제로 하지 않은 얘기까지 너무 많이 말씀하셨다. 그 때문에 나와는 의견충돌까지 있었다. 아버지가 나를 아끼는 마음에 그러셨겠지만 그런 말 때문에 내가 피해를 보는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안기원 씨는 그 동안 여러 차례 안현수의 귀화는 한국 빙상계의 파벌 싸움 때문이었고, 안현수는 제대로 된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고 주장해 왔다. 안현수는 그 말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안현수는 "2008년 무릎 부상을 당했고 그 후 1년 간 4번이나 수술을 받았다. 이 때문에 밴쿠버 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2009년 대표선발전에 한 달 밖에 운동을 못하고 나갔다. 하지만 내게만 특혜를 줘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러시아에 온 것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쇼트트랙을 하고 싶어서였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올림픽 들어 한국 선수들과 부딪치는 기사들이 많이 나가는 상황이 굉장히 아쉬웠다. 내 성적과 한국 선수들의 성적이 맞물리는 게 내게도 많이 힘들었다. 후배 선수들이 무슨 죄가 있나. 다들 열심히 한 선수들이다. 후배들도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러시아 귀화 과정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털어놨다. 그는 "2008년에 좋은 대우를 받고 성남시청에 입단했다. 그런데 입단 한 달 후 바로 부상을 당하게 되는 바람에 저를 영입한 성남시청에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성남시청은 저와의 계약이 끝나는 해에 해체됐다. 한국 내 다른 팀에 가고 싶었지만 자리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올림픽을 다시 한 번 뛰고 싶었다.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모든 걸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처음 러시아에 올 때는 귀화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온 것은 아니었다. 귀화를 결정하게 된 것에는 저를 믿어준 것에 대한 게 가장 컸던 것 같다. 처음 와서 1, 2년 간은 정말 힘들었다. 부상에서 회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적응 문제도 있었다. 그래도 러시아가 나를 믿어주고 인정해줬기에 러시아 귀화를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회 내내 연인으로 화제를 모았던 우나리 씨(30)에 대해서는 "저희는 결혼식만 올리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상 부부관계다. 한국에서 혼인 신고도 했다. 그래서 더욱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내가 한 결정 때문에 그 사람이 힘들지 않기를 바랐다"고 말했다.소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1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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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치]숙적 10년, 찡한 이별

    소치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이 열린 20일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 전날 쇼트프로그램에서 최악의 연기로 16위에 그쳤던 아사다 마오(24·일본)는 이날 프리스케이팅에서 주무기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키는 등 올 시즌 최고의 연기를 펼쳤다. 142.71점을 받은 아사다는 연기를 마친 뒤 감격에 겨워 빙판에서 눈물을 쏟았다. 같은 시간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김연아(24)는 그 광경을 TV로 지켜봤다. 21일 소치 시내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연아는 “아사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사다가 눈물을 흘릴 때 나도 울컥했다”고 말했다. 김연아와 아사다는 평생의 라이벌이다. 같은 해에 태어난 둘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10년간 치열한 경쟁을 펼쳐 왔다. 언젠가 김연아가 “참 징한 인연이다. 아사다도 아마 비슷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주니어 시절만 해도 아사다가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2008∼2009시즌부터 김연아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었다. 그 시즌 첫 맞대결이었던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아사다에 밀려 2위를 한 김연아는 4대륙선수권대회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잇달아 우승을 차지하며 ‘피겨 여왕’의 자리에 올랐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은 그 정점이었다. 아사다는 무려 3차례나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켰지만 우승은 세계기록(228.56점)을 작성한 김연아의 차지였다. 둘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라이벌이었다. 아사다는 “김연아가 없었다면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선의의 경쟁이 나에게 자극이 됐다”고 했다. 김연아도 “아사다가 없었으면 나도 이 정도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소치 올림픽은 10년간의 라이벌전을 마무리 짓는 무대였다. 김연아는 은메달을 차지했고, 쇼트프로그램에서 부진했던 아사다는 6위(198.22점)에 올랐다. 김연아는 20일 기자회견에서 “아사다와는 정말 오랜 시간 동안 비교당하면서 경쟁을 했다. 피겨 역사상 우리 둘만큼 그렇게 꾸준히 경쟁했던 경우는 없을 것 같다. 아사다가 그동안 여러모로 고생이 많았던 것 같다”고 했다. 전날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을 지나던 아사다에게도 김연아와의 오랜 대결이 끝나는 감회를 물었더니 똑같은 대답이 나왔다. “서로의 존재가 있었기에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 이번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떠나는 김연아 선수에게 그동안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은퇴하는 김연아와 달리 아사다는 세계선수권까지 출전한 뒤 향후 진로를 결정할 예정이다.소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14-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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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요판 커버스토리]“금메달, 더 간절한 사람에게 갔나봐”… 여왕은 쿨했다

    4년 전 밴쿠버 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을 완벽하게 마친 뒤 김연아(24)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평생의 꿈이었던 올림픽 금메달에 다가섰다는 기쁨의 눈물이었다. 소치 겨울올림픽 프리스케이팅이 열린 20일(현지 시간). ‘아디오스 노니노’의 탱고 선율에 맞춰 김연아는 혼신의 힘을 다한 연기를 펼쳤다. 또 한 번의 클린(무결점) 연기였다. 이번에는 눈물 대신 미소를 지었다. 모든 사람이 완벽한 연기를 펼친 ‘여왕’의 금메달을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전광판에 뜬 점수는 144.19점이었다. 전날 쇼트프로그램과 합쳐 219.11점. 은메달이었다. 그런데도 김연아는 웃었다. 믹스트 존(공동취재구역) 인터뷰에서도, 플라워 세리머니에서도 웃음을 지었다. 가슴 시린 웃음이었다. 하지만 선수 라커룸으로 돌아가던 중 김연아는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김연아가 남몰래 우는 모습은 미국의 올림픽 주관 방송사인 NBC 카메라에 잡혔다. 아쉬움과 후련함, 자랑스러움이 뒤섞인 눈물이었다. 경기 이튿날인 21일 소치 시내 코리아하우스 기자회견에 나타난 김연아는 다시 웃는 얼굴이었다. 초연한 모습이 오히려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김연아는 “일단 모든 게 끝이 나서 너무 홀가분하다.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둘 다 큰 실수 없이 마쳤다. 그동안 고생한 만큼 팬 여러분께 다 보여드린 것 같아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언론, 그리고 피겨 전설들이 판정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렇지만 정작 김연아 자신은 담담했다. 그는 “점수에 대해서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피겨는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받아들여야 한다. 금메달을 따러 온 게 아니다. 출전 자체에 의의가 있었다”고 했다. 그는 또 “엄마와도 카톡으로 ‘너무 열 받지 말자고, 다 끝났으니까 자유를 즐기자’ 그런 얘기를 했다. ‘하늘이 저보다 더 간절한 사람한테 금메달 줬다고 생각하자’고 얘기했다”고도 했다. 김연아는 “(나에게) 100점 만점에 120점을 주고 싶다”고 했다. 그간의 힘든 과정을 잘 이겨낸 스스로에 대한 칭찬이었다. 김연아는 또 “밴쿠버 대회 때는 금메달을 준다면 목숨을 내놓을 수 있을 정도로 간절했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는 그런 목표의식이 없었다. 동기 부여가 없었다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김연아는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을까. 김연아는 “앞으로의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일단 모든 게 잘 끝났기 때문에 휴식을 취해야 할 것 같다. 놀고 있기만 할 것 같진 않다. 한국에서 이런저런 바쁜 일이 생길 것 같다. 여유를 갖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겠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에 대해서도 앞으로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소치=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2014-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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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치]연아, 포에버!

    언젠가는 그를 넘어설 스타가 나올 것이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그의 환상적인 연기를 직접 볼 수 있었던 우리는 그래서 행복했다. 2014년 2월 21일(한국 시간). ‘피겨 여왕’은 러시아 소치의 궁전(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을 마지막으로 링크를 떠났다. 그리고 살아있는 전설이 됐다. 2000년대 세계 여자 피겨는 ‘여왕’ 김연아(24)의 시대였다. 김연아가 2010년 밴쿠버 대회 쇼트프로그램에서 기록한 78.50점과 프리스케이팅 점수 150.06, 합계 점수 228.56점은 4년이 지난 요즘도 여전히 세계 신기록이다. 김연아의 경쟁자는 자신뿐이었다. 2009년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김연아는 합계 점수 207.71점을 기록하며 여자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200점을 돌파했다. 이후 자신의 기록을 여러 차례 넘긴 것을 포함해 세계 기록을 11차례나 경신했다. 여자 선수로는 최초의 그랜드슬램(겨울올림픽, 세계선수권, 4대륙선수권,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을 달성했다. 2006년 12월 그랑프리 파이널에서의 우승을 시작으로 2009년 2월 4대륙선수권 우승, 2009년 3월 세계선수권 우승, 2010년 2월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까지 4년 만에 이룬 대기록이다. ▼ 행복했다 연아야, 고마웠다 연아야 ▼김연아가 펼친 기술들은 전 세계 피겨 선수들의 기준이 됐다. ‘점프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김연아의 점프는 러시아, 미국 등에서 어린 선수들을 위한 교본이 됐다. 심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국제심판 세미나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선수가 바로 김연아다. 한 국제심판은 “언젠가 심판들이 모여 김연아의 점프를 만점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결론 낸 적이 있다”고 전했다.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는 게 쉽지는 않았다. 피겨 강국들은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보이지 않게 김연아를 견제했다. 국제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석연찮은 판정을 받아온 것도 그런 이유다. 2008년 11월 중국에서 열린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김연아는 완벽한 점프를 뛰었지만 심판들은 두 개의 점프에 이상이 있다고 지적했다. 2009년 12월 일본에서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김연아는 편파 판정 탓에 기권까지 생각했다. 밴쿠버 올림픽 때는 김연아가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메달 색깔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럴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서 김연아는 무결점 연기를 펼쳐야 했다. 그리고 김연아는 혼신의 힘을 다한 연기를 통해 자신의 완벽을 증명했다. 소치 겨울올림픽 개막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전설적인 피겨 선수로 올림픽 3연패를 이룩한 여자 싱글의 소냐 헤니(노르웨이), 페어의 이리나 로드니나(러시아)와 함께 김연아를 꼽았다. 김연아는 유일한 현역 선수였다. ○ 변화의 아이콘 한국 피겨스케이팅은 김연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김연아가 나타난 이후 피겨는 한국의 국민 스포츠가 됐다. 온 국민의 김연아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며 함께 웃고 함께 울었다. 지금도 인근 빙상장에 가면 ‘제2의 김연아’를 꿈꾸며 얼음판을 지치는 어린 여자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모두 김연아가 바꿔 놓은 풍경이다. 피겨스케이팅만이 아니다. 비인기 종목 선수에게 “어떤 선수가 되고 싶은가요”라고 물으면 많은 선수들은 “김연아 같은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한다. 나이, 성별, 종목과 관계없다. 한국 사이클의 전설인 조호성(40·서울시청)은 언젠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보다 16세 어린 김연아를 롤 모델로 꼽았다. 그는 “피겨스케이팅처럼 사이클이 국민들에게 힘을 주고,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도록 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그 꿈을 향해 조호성은 불혹을 넘긴 요즘도 페달을 밟고 있다. 손연재(20·연세대)도 리듬체조의 김연아를 꿈꿨다. 손연재는 중학생 시절 인터뷰에서 “연아 언니처럼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많은 사람들에게 ‘리듬체조도 정말 재미있는 종목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후 손연재는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 동메달을 땄고,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한국 선수 역대 최고 성적인 5위를 기록하며 스타가 됐다. 손연재를 통해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리듬체조를 좋아하게 됐다. 이 모든 게 김연아로부터 시작된 즐겁고 놀라운 변화다.○ 용기와 희망의 아이콘 대한민국에서 김연아 같은 선수가 나온 것은 기적이나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 김연아는 마음 놓고 훈련할 빙상장이 없어 하루에도 2∼3곳을 돌아다니며 훈련을 해야 했다. 그나마 낮은 일반 대관 시간이라 훈련을 하려면 새벽이나 밤늦은 시간에 해야 했다. 열악한 환경을 이겨낸 것은 타고난 신체와 눈물겨운 노력이었다. 한창 건강할 10대 중반부터 김연아는 발과 허리, 등에 부상을 안고 살았다. 너무 많은 점프를 하느라 특히 오른발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오른 발등 부상으로 예정됐던 그랑프리 시리즈에도 나가지 못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김연아는 단순히 한 명의 운동선수가 아니다. 김연아는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피겨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에 피겨의 꽃을 피운 김연아를 보면서 국민들은 용기와 희망을 얻었다. 밤늦은 시간까지 TV 앞에 모여앉아 김연아를 응원하는 것은 그를 통해 무한한 기쁨과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은 그 하이라이트였다. 그해 2월 26일 푸른색 드레스를 입고 프리스케이팅에 나선 김연아는 관객은 물론 심판들까지 매료시켰다. 연기가 끝난 직후 그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시상대 위에 올라 애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그는 다시 끝없는 눈물을 흘렸다. TV를 지켜보던 국민들도 함께 웃다가 울었다. 그런 김연아가 이제 스케이트화를 벗는다. 마지막 올림픽의 메달 색깔은 이미 중요한 게 아니다. 김연아가 우리 국민들에게 준 기쁨과 행복은 그 무엇과도 바꾸기 힘든 것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김연아와 동시대를 살아서 행복했다”고. 안녕 김연아, 고마웠다 김연아.소치=이헌재 uni@donga.com / 김동욱 기자※프리스케이팅 경기 결과는 dongA.com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201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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