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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애와 양희영이 파리 올림픽으로 가는 마지막 동아줄을 잡을 수 있을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세 번째 메이저대회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이 20일부터 나흘간 미국 워싱턴주 서매미시 사할리 컨트리클럽(파71)에서 열린다. 이번 대회가 끝나고 24일 발표되는 세계 랭킹에 따라 파리 올림픽 골프에 출전하는 여자 선수들이 결정된다. 남녀 선수 각 60명이 출전하는 올림픽 골프에는 나라별로 세계 랭킹 상위 두 명이 참가한다. 다만 랭킹 15위 안에 드는 선수가 두 명을 넘을 때는 최대 네 명까지 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 올림픽 골프가 부활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와 2021년 도쿄 대회 여자부 경기는 한국 선수가 네 명씩 참가했다. 현재 한국 선수 중에는 고진영이 7위로 랭킹이 가장 높고 김효주가 12위로 두 번째다. 두 선수는 사실상 올림픽 티켓을 확보한 상태다. 그다음 순위인 신지애(24위)나 양희영(25위)이 올림픽에 출전하려면 이번 대회에서 최소 준우승은 해야 한다. 골프 세계 랭킹은 최근 2년간 대회에서 쌓은 포인트를 출전 횟수로 나눈 평균 포인트로 정한다. 현재 15위 리디아 고(뉴질랜드)는 3.97점이고 신지애는 3.25점, 양희영은 3.19점이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해 랭킹 포인트 100점을 받으면 신지애나 양희영 모두 파리행 티켓을 받을 수 있다. 준우승(60점)을 했을 때는 우승자 랭킹을 따져봐야 한다. 37위 김세영(2.39점)도 우승하면 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 LPGA투어가 시즌 15개 대회를 치르는 동안 한 번도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한 한국 선수들이 첫 우승을 신고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한국 선수들은 2000년 이후 24년 만에 가장 긴 개막 후 무승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2000년에는 박지은(은퇴)이 16번째 대회인 캐시아일랜드 그린스닷컴 클래식에서 첫 승을 따냈다. 전인지가 2년 전 이 대회 정상을 차지한 뒤로는 한국 선수가 LPGA투어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적도 없다. 전인지까지 이 대회에서 한국 선수는 총 9번 우승했으며 올해 대회에는 21명이 참가해 10번째 우승에 도전한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1999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파인허스트 리조트 앤드 컨트리클럽 2번 코스(파70)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메이저대회 US오픈 챔피언은 페인 스튜어트(1957∼1999)였다. 스튜어트는 대회 최종 라운드 마지막 18번홀에서 4.5m 파 퍼트를 성공시키며 필 미컬슨(미국)을 한 타 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그 대회를 포함해 메이저대회 3승을 거둔 스튜어트는 약 4개월 뒤 비행기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2번 코스 클럽하우스 앞엔 스튜어트가 파 퍼트에 성공한 뒤 보여준 세리머니 동작을 형상화한 동상이 세워졌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17일 같은 곳에서 열린 제124회 US오픈에서는 비슷한 장면이 나왔다. 이날 브라이슨 디섐보(미국)는 최종 라운드 18번홀에서 1.2m 파 퍼트를 홀에 떨어뜨린 뒤 주먹을 공중에 내지르는 챔피언 세리머니로 우승을 자축했다. TV 중계 카메라가 디섐보를 향하자 그는 모자를 벗어 모자 뒤편에 붙어 있던 작은 핀을 가리키며 이렇게 소리쳤다. “페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디섐보의 마음속 영웅은 그렇게 이번 대회 내내 그와 함께했다. 디섐보는 그린을 벗어나면서 다시 한번 하늘을 향해 손짓했다. 스튜어트와 2년 전 작고한 아버지가 하늘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처럼. 현지 시간 6월 16일이던 이날은 ‘아버지의 날’이기도 했다. 디섐보는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 2개, 보기 3개로 한 타를 잃었지만 최종 합계 6언더파 274타를 기록하며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를 1타 차로 제치고 대회 정상에 올랐다. 우승 상금은 430만 달러(약 59억4000만 원)다. 2020년 US오픈 우승자인 디섐보는 4년 만에 US오픈을 제패했다. PGA투어에서 8승을 거둔 뒤 사우디아라비아 자본이 지원하는 LIV 골프로 이적한 디섐보는 LIV 선수로는 두 번째로 메이저대회 챔피언이 됐다. LIV로 옮긴 브룩스 켑카(미국)가 지난해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적이 있다. 매킬로이에 한 타 앞선 채 오른 18번홀(파4)에서 디섐보는 위기를 맞았다. 티샷이 왼쪽으로 크게 휘어 잔디가 없는 곳에 떨어졌다. 세컨드샷은 그린에서 멀리 떨어진 벙커에 빠졌다. 하지만 55도 웨지를 꺼낸 디섐보는 부드러운 스윙으로 세 번째 벙커샷을 핀 1.2m 거리에 떨어뜨린 뒤 파를 세이브했다. 디섐보 스스로 “내 인생 최고의 샷”이라고 평가한 벙커샷이었다. 우승 순간 디섐보는 스튜어트를 떠올렸다. PGA투어에서 뛰던 생전의 스튜어트를 따라 헌팅캡을 썼던 디섐보는 “스튜어트를 따라 서던메소디스트대에 입학했다. 헌팅캡도 그를 따라 썼다”며 “스튜어트를 위해 이곳에서 꼭 우승하고 싶었다. 내 가슴속엔 아버지와 스튜어트가 함께했다”고 말했다. 4라운드 한때 디섐보에게 두 타 앞선 단독 선두로 나섰던 매킬로이는 막판 4개 홀에서 세 차례 보기로 무너졌다. 18번홀을 포함해 마지막 세 홀 중 두 홀에서 1m 남짓한 짧은 퍼트를 놓쳤다. 18번홀 파 퍼트에 성공했으면 승부를 연장으로 이어갈 수 있었다. 매킬로이는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준우승을 했다. 한국 선수 중에서는 김주형이 공동 26위(6오버파 286타)로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다음 달 개막하는 파리 올림픽 출전 티켓 두 장은 김주형과 안병훈이 차지하게 됐다. 김주형은 이번 대회 직후 발표된 세계 랭킹에서 26위에 오르며 처음으로 올림픽에 나가게 됐다. 안병훈은 이번 대회에서 컷 탈락했지만 세계 랭킹 27위로 한국 선수 중 두 번째로 높은 랭킹을 지켜 올림픽 출전권을 손에 넣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이후 두 번째 올림픽 참가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프로야구 롯데와 한화 등에서 77승을 거둔 문동환 상우고 감독(52)은 아마추어 야구 시절 당대 최고의 오른손 투수였다. 최고 시속 150km대의 강속구에 정교한 제구력을 갖춘 그는 연세대에 다니던 1994년 아마 야구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하지만 ‘제2의 선동열’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그의 고교 시절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부산 출신인 그가 진학한 학교가 지금은 야구부가 해체된 동래고였기 때문이다. 동래고에서 그는 ‘외로운 에이스’였다. 전국 대회 예선이 10경기라 치면 그는 8, 9경기를 완투했다. 경남고와 부산고 등 쟁쟁한 팀들과의 지역 예선에서 한두 점을 내주면 경기는 그걸로 끝이었다. 당시 그의 목표는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 대회에 한 번이라도 출전하는 것이었다. 상우고 상황도 비슷하다. 경기 의정부에 있는 상우고는 창단한 지 약 10년밖에 되지 않은 신생팀이다 보니 좋은 선수들을 받기가 쉽지 않다. 문 감독이 처음 지휘봉을 잡은 2019년만 해도 상우고는 1년에 1, 2승을 하는 팀이었다. 콜드게임만 면해도 다행이었다. 요즘엔 1년에 10승 가까이 올린다. 2022년도 프로야구 드래프트에서는 투수 신정환이 삼성으로부터 2차 지명도 받았다. 문 감독은 “우리 선수들의 열정과 노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며 “내가 더 잘해야 한다. 아직 밟아보지 못한 전국대회 16강을 향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롯데와 한화는 최근 몇 년간 약팀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1999년 그는 롯데의 에이스로 17승을 거두며 팀을 한국시리즈에 진출시켰다. 이후 팔꿈치 부상 등으로 선수 생명이 위기에 빠졌다가 한화에서 재기했다. 한화에서 포크볼을 익힌 그는 2006년 16승을 기록하며 팀을 또 한 번 한국시리즈에 올려놨다. 지금도 두 팀을 응원한다는 그는 “언젠가는 두 팀이 1999년처럼 다시 한번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었으면 좋겠다”며 “영원한 강팀도, 영원한 약팀도 없다. 두 팀은 물론 상우고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가 아쉬워하는 시기는 부활에 성공한 2006년이다. 그해 그는 189이닝을 소화했는데 200이닝을 욕심낸 게 문제가 됐다. 허리 부상을 당한 그는 2009년을 마지막으로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 문 감독은 “잘될 때의 욕심이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선수는 아프지 않아야 자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며 “일반인들도 마찬가지다. 운동할 때 절대 무리해선 안 된다. 욕심을 부리다간 오히려 역효과를 보기 십상”이라고 했다. 그는 예전처럼 몸에 무리가 갈 수 있는 운동은 하지 않는다. 틈날 때마다 집 근처 중랑천을 걷고, 선수들이 친 공을 외야에서 모으면서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다. 어깨 상태가 괜찮을 때는 가끔 배팅볼도 던진다. 야수들에겐 내야 펑고를 치면서 땀을 흘린다. 그는 “더 많은 제자로부터 ‘저 프로 갑니다’ 하는 전화를 받고 싶다. 많은 유망주가 오고 싶어 하는 학교로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상우고는 지난달 5월 17일 열린 제78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1회전에서 서울컨벤션고에 0-5로 완패했다. 0-3으로 끌려가던 9회초 2점 홈런을 맞고 무너졌다. 그리 낯설지 않은 1회전 탈락. 하지만 선수 시절 ‘외로운 에이스’로 불렸던 문동환 상우고 감독(52)은 희망을 얘기했다. 문 감독은 “비록 졌지만 전력이 좋은 서울컨벤션고를 상대로 9회까지 잘 버텼다”며 “전국대회 경험이 많지 않은 우리 선수들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당당히 전국 무대에서도 좋은 경기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 감독이 2019년 지휘봉을 잡기 전까지 상우고는 1년에 1승이나 2승에 머물던 팀이었다. 콜드게임만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요즘엔 주말리그를 포함해 1년에 10승 가까이 올린다. 만년 약체라는 편견을 서서히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문 감독의 목표는 우승도, 4강도 아닌 전국대회 16강이다. 누군가에겐 무척 쉬워 보일 수 있는 16강이 문 감독과 상우고의 1차 목표다. 경기 의정부에 위치한 상우고는 창단한 지 약 10년밖에 되지 않은 신생팀이다 보니 중학교 때 잘했던 선수들이 선호하지 않는다. 대부분 유망주들은 일명 야구 명문교 진학을 원한다. 상우고에 입학한 선수들은 패배의식에 젖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서서히 실력을 쌓아 한두 경기씩 이기다 보니 점점 끈끈한 팀이 되고 있다. 상우고는 선수층이 두텁지 않다. 1, 2학년들도 실력과 열정만 있으면 주전으로 뛸 수 있다. 1~3학년은 모두 같은 훈련을 소화한다. 문 감독은 “우린 선수들이 정말 착한데다 열심히 노력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는 데 대해 미안한 마음이 크다”며 “결국 내가 더 잘해야 한다. 꿈을 찾아 우리 학교를 찾아온 선수들은 좋은 선수로 키워내야 한다. 지금 1, 2학년들이 잘 성장한다면 내년에는 전국대회 16강을 노려볼 만 하다”고 말했다. 문 감독은 아마야구 시절 최고의 오른손 투수였다. ‘제2의 선동열’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아마 무대를 평정했다. 연세대 재학 시절엔 각종 대회 우수 투수상을 휩쓸었고, 1994년엔 아마야구 최우수선수(MVP)에도 뽑혔다. 국가대표에도 단골로 뽑혔다. 하지만 천하의 문동환도 고교 때의 성적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부산 출신인 그가 지역 야구 명문교인 경남고나 부산고, 부산상고(현 개성고)가 아닌 지금은 해체된 동래고로 진학했기 때문이다. 동래고에서 그는 ‘외로운 에이스’였다. 전국대회 예선이 10경기라 치면 그는 8, 9경기 완투를 했다. 쟁쟁한 팀들과의 대결에서 한두 점을 내주면 경기는 그걸로 끝이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고교 팀들이 출전하는 봉황기를 빼고는 서울에서 열린 전국대회에 출전한 적이 없다. 문 감독은 “상우고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 고교 때 생각이 많이 난다. 그래서 더 잘 가르쳐 보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고 했다. 연세대에 진학한 후 그는 새로운 세상을 봤다. 그가 한두 점을 줘도 이길 수 있는 팀에 온 곳이다. 1년 후배 임선동이 들어온 후엔 더 많이 이겼다. 프로 입단 후에도 그의 야구 인생은 롤러코스터 그 자체였다. 아마야구 현대 피닉스에 입단한 후 우여곡절 끝에 1997년에 그를 1차 지명한 롯데에 입단했지만 2승 5패 평균자책점 4.85의 부진을 보였다. 계약이 늦어지면서 제대로 훈련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년 차이던 1998년 12승을 거두며 다시 에이스의 모습을 되찾았고 1999년에는 17승 4패 평균자책점 3.28의 빼어난 성적을 올렸다. 그해 그는 200이닝 가까운 189와 3분의1이닝을 소화했다. 1999년은 롯데가 가장 야구를 잘했던 해 중 하나다. 박정태, 임수혁 등이 버틴 야수진과 박석진, 박보현 등이 포진한 투수진이 모두 좋았다. 그해 롯데는 드림리그 1위로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다. 비록 한국시리즈에서 한화에 1승 4패로 패하긴 했지만 삼성과 7차전까지 치른 플레이오프는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포스트시즌 경기로 평가받는다. 문 감독은 “작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LG를 보면서 1999년 롯데 생각이 많이 났다. 모든 팀원이 하나가 돼 승리를 향해 매진하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이후 팔꿈치 부상 등으로 부진에 빠졌던 그가 다시 한번 일어났던 팀은 바로 한화였다. 당시 롯데는 정수근을 두산에서 자유계약선수(FA)로 영입하면서 문동환을 보상 선수로 보냈는데, 두산은 곧바로 한화 포수 채상병과 그를 트레이드했다. 왕년의 에이스가 축구공처럼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는 신세가 된 것이다. 한화 첫 시즌이던 2004년 그는 4승을 거두는 동안 15패를 당했다. 그의 영입에 두 팔을 걷었던 유승안 당시 감독에게 너무 미안해 차마 얼굴을 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유 감독은 “올 한 해를 보고 널 데려온 게 아니다. 내년 이후에 잘해주면 된다”고 말했다. 따뜻한 그 말 한마디가 다시 그를 일으켜 세웠다. 2005년 10승 투수로 거듭난 그는 34세이던 2006년 16승 9패, 평균자책점 3.05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최일언 코치에게서 배운 포크볼이 원동력이 됐다. 그해는 ‘괴물 투수’ 류현진이 신인으로 한화에 입단한 해다. 류현진과 문동환의 원투펀치를 앞세운 한화는 그해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문 감독은 “구대성, 정민철 등 베테랑부터 류현진 등 어린 선수들까지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잘해준 시즌이었다. 비록 우승은 놓쳤지만 잘되는 팀의 전형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해는 그가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한 해이기도 하다. 2차례나 완봉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하면서 그는 무려 189이닝을 소화했다. 내심 200이닝을 돌파하고 싶다는 욕심을 낸 게 문제였다. 이후 그는 허리 부상에 시달리며 2009년을 마지막으로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 문 감독은 “잘 될 때의 욕심이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선수는 아프지 않아야 자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데 순간적인 욕심에 그걸 잊었다”며 “일반인들도 마찬가지다. 운동을 할때 절대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욕심부리다간 오히려 역효과를 보기 십상”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야구 인생에서 황금기를 보낸 롯데와 한화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다. 그는 “저녁에 TV로 두 팀의 경기를 종종 챙겨 본다. 두 팀 모두 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만년 하위 팀 이미지가 굳어져 버린 롯데와 한화에서 모두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던 그는 “1999년 한국시리즈에서 내가 롯데 선발 투수로 한화를 상대했었다. 당시 한화 타선을 도저히 막을 수 없을 정도로 막강했다”며 “1999년 그때처럼 언젠가는 두 팀이 다시 한 번 한국시리즈에서 맞붙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현재 그는 가족과 떨어져 혼자 생활하고 있다. 학교 근처에 집을 구해 혼자 살고 있는 그에게는 학생들 및 코치들과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예전처럼 몸에 무리가 갈 수 있는 운동은 많이 하지 않는다. 집 근처 중랑천을 틈날 때마다 걷고, 선수들이 친 공을 외야에서 모으면서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다. 가끔 어깨 상태가 괜찮을 때는 배팅볼도 던진다. 처음 와서는 1시간씩 배팅볼을 던졌지만 요즘엔 큰 마음 먹고 한 번씩 공을 던진다. 야수들에게는 내야 펑고를 치면서 땀을 흘리곤 한다. 문 감독은 “동래고 시절 선수층이 얇아서 내가 4번 타자였다. 부산 구덕야구장에서 홈런을 친 적도 있는 홈런 타자 출신”이라며 웃었다. 고교 야구 지도자가 된 후 지금까지 한 명의 프로 선수를 배출했다. 2022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4라운드로 삼성 유니폼을 입은 투수 신정환이 주인공이다. 그는 “더 많은 제자들로부터 ‘저 프로 갑니다’라는 전화를 받고 싶다”며 “좋은 선수들을 많이 배출해 중학교를 졸업한 유망주들이 오고 싶은 학교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우승 역시 그의 로망이다. 그는 선수 시절 뛰어난 실력에 비해 유독 우승 운이 없었다. 1999년 롯데와 2006년 한화에서도 모두 준우승이 최고 성적이었다. 그는 “두산 코치 시절 팀이 우승했지만 당시 2군에 있어 그라운드에서 우승의 감격을 함께하진 못했다”며 “고교에서든 프로에서든 언젠가 한 번 우승하는 꿈을 꾸며 매일 열심히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올 시즌 프로야구에서는 15일까지 모두 652개의 홈런이 나왔다. 그중 타구를 가장 멀리 보낸 선수는 NC의 외국인 타자 맷 데이비슨(33)이다. 오른손 타자 데이비슨은 15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4-4로 맞선 9회말 상대 사이드암 투수 양현의 투심 패스트볼을 받아쳐 가운데 담장 밖으로 날려 보내는 끝내기 2점 홈런을 터뜨렸다. 데이비슨의 방망이가 돌자마자 창원구장 안방 팬들이 만세를 불렀을 정도로 잘 맞은 타구는 관중석 상단을 때렸고 비거리는 140m로 측정됐다. 올 시즌 프로야구 최장거리 홈런이었다. 비거리 140m짜리 홈런은 지난해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2022시즌엔 3명의 타자가 한 차례씩 기록했다. 2021년에는 김현수(LG)가 유일하게 140m짜리 홈런을 쳤다. 이날 데이비슨은 3-4로 뒤진 7회말엔 삼성의 4번째 투수 이승현을 상대로 오른쪽 담장을 넘기는 동점 솔로포도 쏘아 올렸다. 하루에 홈런 2개를 추가한 데이비슨은 가장 먼저 시즌 20홈런 고지를 밟았다. 키 190cm, 몸무게 104kg인 데이비슨은 올해 NC에 입단할 때부터 ‘파워 하나만큼은 압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데이비슨은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시카고 화이트삭스 소속이던 2017년과 2018년 각각 26홈런과 20홈런을 기록하며 장타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타격 정확도가 떨어지는 게 문제였다. 지난해 일본프로야구 히로시마에서 뛰면서 홈런 19개를 쳤지만 타율은 0.210에 그쳤다. 볼넷 22개를 얻는 동안 삼진은 120개나 당했다. 거포가 필요했던 NC는 데이비슨이 히로시마와의 재계약에 실패하자 곧바로 손을 내밀었다. 일본 프로야구에 비해 투수들의 제구력이 떨어지는 국내에선 장타력과 함께 타격 정확도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15일 현재 데이비슨의 타율은 0.285(228타수 65안타)다. 데이비슨이 친 20개 홈런 중 타구 비거리 130m 이상의 대형 홈런은 6개로 이 부문 1위다. 135m 이상 날아간 홈런도 4개나 된다. 올해 타구 비거리 135m 이상을 기록한 타자는 모두 9명이다. 데이비슨을 제외한 8명은 한 번씩만 135m 이상 날아가는 홈런을 쳤다. 데이비슨은 이날 현재 51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OPS(출루율+장타율)는 0.956으로 6위다. 데이비슨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고 있다. 결과도 기쁘지만 내가 원하던 스윙을 한 것에 만족한다”며 “정규시즌 144경기는 긴 여정이다. 앞으로 계속 좋은 타격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나이를 거꾸로 먹는 KIA 베테랑 타자 최형우(40)가 이틀 만에 한 경기 6안타 경기를 이어가며 통산 1600타점을 돌파했다. 최형우는 14일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KT와의 방문경기에 4번 지명타자로 출전해 홈런 1개 포함 5타수 4안타 6타점의 맹타를 휘둘렀다. 최형우의 화끈한 방망이를 발판삼아 KIA는 KT를 11-1로 대파하고 선두 자리를 굳게 지켰다. 전날까지 개인 통산 1598타점을 기록 중이던 최형우는 1회초 2사 1루에서 KT 선발 윌리엄 쿠에바스를 상대로 오른쪽 담장을 넘기는 장쾌한 투런 홈런을 쏘아 올렸다. 통산 타점 1위를 질주하고 있는 최형우는 이 홈런으로 2타점을 더하며 KBO리그 최초로 1600타점을 달성했다. 최형우의 방망이는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4-0으로 앞선 2회초 1사 만루에서 다시 타석에 들어선 최형우는 쿠에바스를 상대로 우중간을 꿰뚫은 우중간 싹쓸이 2루타를 때려냈다. 최형우는 3회초에도 좌전 적시타로 1타점을 보태며 이날 하루 6타점을 기록했다. 최형우는 이틀 전인 12일 SSG전에서도 6타수 3안타 6타점을 기록한 바 있다. 62타점째를 기록한 최형우는 KT 강백호(59개)을 제치고 타점 부문 단독 1위로 올라섰다. KIA 새 외국인 투수 캠 알드레드는 5회까지 삼진 7개를 뽑으며 5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KT 타선을 꽁꽁 묶으며 KBO리그 첫 승을 신고했다. 알드레드는 한국 무대 첫 등판이었던 8일 두산전에서 3이닝 6실점으로 부진했지만 두 경기만에 첫 승을 따냈다. 이범호 KIA 감독은 경기 후 “알드레드의 호투와 최형우의 6타점 활약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며 “최형우는 1회 결승 투런 홈런을 기록하는 등 매 타석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KT 선발 쿠에바스는 2이닝 동안 6안타와 볼넷 7개로 8실점으로 무너졌다. 삼성은 창원 방문경기에서 홈런 공방전 끝에 NC를 7-4로 꺾고 5연승을 달렸다. 삼성은 1회말 맷 데이비슨에게 선제 2점 홈런을 맞아 선취점을 내줬지만 2회 전병우의 희생플라이로 한 점을 따라붙은 뒤 4회초 윤정빈이 입단 7년 만에 첫 홈런을 터뜨리며 2-2 동점을 만들었다. 4회말 NC 권희동의 솔로 홈런으로 다시 한 점을 뒤진 삼성은 5회초 이재현의 좌월 투런홈런을 날려 다시 경기를 뒤집었다. 6회 NC 손아섭의 솔로홈런으로 다시 동점이 됐지만 삼성은 7회 구자욱의 재역전 2루타로 다시 한 점을 앞섰다. 구자욱은 9회초에도 2타점 2루타를 날려 승부를 갈랐다.잠실에서는 LG가 롯데를 5-3으로 따돌리고 최근 4연패에서 벗어났다. LG는 1회초 먼저 2점을 내줬지만 2회말 1사 만루에서 박해민의 쌀쓸이 우중간 3루타로 경기를 뒤집은 뒤 신민재의 적시타로 4-2로 앞섰다. 3-4로 쫓긴 8회말에는 문보경이 좌월 솔로포를 터뜨려 상대의 추격 의지를 꺾었다. LG 선발 디트릭 엔스는 6이닝 5피안타 3실점으로 시즌 8승(2패)째를 거두며 다승 부문 단독 1위로 올라섰다. 두산은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키움과의 경기에서 외국인 타자 헨리 라모스의 결승 홈런에 힘입어 6-4로 승리했다. 선두 KIA, 2위 LG, 3위 삼성, 4위 두산이 이날 모두 승리하며 상위권 4팀은 승차 1경기의 살얼음같은 순위 싸움을 이어갔다. 대전에서는 SSG가 장단 15안타를 몰아치며 한화를 11-4로 꺾었다. SSG 3번 타자로 나선 추신수는 1회 좌중월 솔로 홈런을 포함해 3타수 3안타 3타점으로 공격을 이끌었다. 한편 이날 잠실과 대전 경기에서 만원 관중을 기록하며 KBO리그는 340경기 만에 100경기 매진을 달성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내셔널 타이틀 대회인 DB그룹 제38회 한국여자오픈 골프 대회에서 무더기 기권이 쏟아지며 대회 역대 최다 기권 기록을 새로 썼다. 14일 충북 음성군 레인보우힐스 컨트리클럽(파72)에서 열린 대회 2라운드에서는 무려 12명의 기권 선수가 나왔다. 신보민 최예림 정세빈 마다솜 손예빈 조아연 홍예은 등 7명은 2라운드 때 아예 출발도 하지 않았고 이제영 김가영 김세은 정지민 송민교 등 5명은 라운드 도중 기권을 선언했다. 13일 열린 1라운드 때도 이정민이 부상 때문에 출발하지 못했고 이수진 신유진 김해림 이율린 등 4명이 라운드 중 짐을 쌌다. 17명 기권은 대회는 물론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최다 기록이다. 종전 기록은 2021년의 15명이었다. 2022년 6명으로 줄었던 기권 선수는 지난해에는 14명으로 다시 늘어난 뒤 올해는 역대 최다 기록을 썼다. 대회가 열리는 레인보우힐스 컨트리클럽은 총 길이가 6756야드로 길고, 코스도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올해 대회는 무더위 속에 치러지고 있어 기권 선수가 더 늘었다. 최근 KLPGA투어에서는 무더기 기권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지난달 E1 채리티 오픈 때도 2라운드에서 8명이 한꺼번에 기권하며 논란이 됐다. 부상 등의 이유로 경기를 계속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지만 성적 부진을 기권으로 피하려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고의성이 확실하지 않은 이상 기권을 제지할 규정도 딱히 없다. 첫날 거리 측정기 사용으로 실격된 전우리를 포함해 18명의 선수가 경기를 마치지 못한 가운데, 노승희가 2라운드 현재 중간 합계 8언더파 136타로 단독 선두에 올라 있다. 2라운드에서 4타를 줄인 김민별은 5언더파 139타로 2위에 자리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이 정도면 올해 연봉 값을 다 한 것 아닐까요?” 삼성의 푸른색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박병호(38)의 활약에 대해 한 수도권 프로야구 구단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KT에서 뛰던 박병호는 지난달 28일 동갑내기 왼손 타자 오재일과 일대일 트레이드로 삼성으로 이적했다. 2022년 KT와 3년 30억 원에 계약한 박병호는 그해 35홈런을 터뜨리며 홈런왕을 차지했으나 지난해 18홈런에 그쳤다. 연봉 7억 원을 받기로 한 올해는 44경기에서 홈런을 3개밖에 때리지 못했다. 타율도 0.198에 그쳤다. 하지만 삼성으로 옮긴 뒤 그는 예전 ‘해결사’의 모습을 되찾았다. 이적 후 첫 경기인 지난달 29일 키움전부터 홈런포를 가동했다. 비록 팀은 패했지만 박병호로서는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는 한 방이었다. 박병호는 이후 홈런 4개를 추가했는데 이 4경기에서 삼성은 모두 승리했다. 박병호는 13일 경기에서는 한국프로야구 통산 388번째 홈런이자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미네소타에서 친 홈런 12개를 더해 한미 프로야구 개인 통산 400번째 홈런을 치기도 했다. 박병호는 삼성 이적 후 이날까지 14경기에 나와 타율 0.280, 5홈런, 12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삼성도 박병호가 합류한 뒤 9승 5패(승률 0.643)를 기록하며 선두 경쟁을 벌이게 됐다. 그러면서 박병호의 연봉이 아깝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삼성이 KT로 보낸 오재일의 올해 연봉이 5억 원이라 삼성은 2억 원만 더 부담하면 된다. 등번호 59인 박병호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찾는 관중도 점점 늘고 있다. 삼성 마케팅팀 관계자는 “우리 팀에 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지만 벌써 몇백 장이 팔렸다”고 전했다. 박병호는 구단 유튜브 채널 ‘라이온즈TV’에 출연해 “경기 중에 내 유니폼을 입고 응원해주시는 팬을 봤는데 너무 고맙고 기뻤다. 내 유니폼을 산 걸 후회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박진만 삼성 감독은 “박병호, 베테랑 마무리 오승환(42) 등과 함께 뛴다는 건 젊은 선수들에게도 좋은 기회다. 우리 팀 선수들이 많이 보고 배우며 성장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프로야구 노시환(한화)은 지난해 31홈런으로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시즌 30홈런 이상을 기록한 건 노시환뿐이었다. 2022년에도 30홈런 이상을 날린 건 박병호(35홈런) 한 명밖에 없었다. 올해는 11일 현재 18홈런으로 이 부문 공동 선두인 강백호, 로하스(이상 KT), 최정(SSG)이 40홈런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다. 세 선수를 포함해 총 10명이 30홈런 페이스다. 이날까지 이번 시즌 325경기를 치르는 동안 나온 홈런은 총 605개로 지난해 326경기 소화 시점까지 나온 홈런 397개보다 1.5배 이상 많다. 타율도 ‘타고투저’를 가리키고 있다. 타자들의 전체 타율은 지난해 0.258에서 0.275로 2푼 가까이 상승했다. 지난해 3할 타율로 시즌을 마친 타자는 14명이었는데 올해는 이날까지 23명이 3할 타율을 기록 중이다. 리그 전체 OPS(출루율+장타율)도 지난해 같은 기간 0.700에서 올해 0.764로 올랐다. 여기에 도루도 445개에서 597개로 늘었다. 현장에서 타고투저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되는 건 공인구 반발력이다. 올 시범경기 때부터 “타구가 생각보다 멀리 간다”고 말하는 타자가 많았다. 엉덩이가 빠진 상태에서 친 타구가 담장을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3월 말 공인구 수시 검사 결과 공인구 평균 반발계수는 0.4203으로 측정됐다고 발표했다. 합격 기준(0.4034∼0.4234) 상단이었다. 반발계수가 높으면 타구가 더 멀리 날아가고 속도도 빨라진다. 4월 말 검사에서는 0.4149로 반발계수가 내려왔지만 선수들의 의견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KBO는 “인위적인 반발계수 조정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KBO가 올해 처음 도입한 볼·스트라이크 자동 판정 시스템(ABS)이 타자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장성호 KBSN 해설위원은 “ABS가 꼭짓점 부분과 상하 스트라이크는 잘 잡아 주는 반면에 좌우로는 상당히 타이트하다”며 “KBO리그 투수들 중 좌우에 걸칠 정도로 정교하게 제구하는 선수가 그리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ABS 도입 후 카운트가 몰리기 전 적극적인 스윙을 하는 타자가 많아졌다. 인플레이 타구가 많이 나오면서 타율도 올라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타자들의 득세 속에 투수들은 예전에 비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리그 전체 평균자책점은 지난해 같은 기간 3.99에서 올해 4.79로 올랐다. 아직 시즌 중반이긴 하지만 2점대 이하 평균자책점을 기록 중인 투수는 KIA 외국인 투수 네일(1.82)이 유일하다. 지난해엔 6명의 투수가 2점대 평균자책점으로 시즌을 마쳤다. 또 지난해 이맘때는 NC 페디(11승)와 LG 플럿코(10승)가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했지만 올해는 7승이 최다승이다. 수년 동안 리그를 대표하는 외국인 에이스로 활약했던 두산 알칸타라(1승 2패 평균자책점 3.94)와 LG 켈리(3승 6패 평균자책점 5.06) 등은 예전만 못하다. 외국인 투수만 부진한 것도 아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왼손 트로이카 한화 류현진(4승 4패 평균자책점 4.09), SSG 김광현(4승 4패 평균자책점 4.92), KIA 양현종(4승 3패 평균자책점 3.44)도 전성기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한화와 두산이 맞붙은 11일 서울 잠실구장에는 야구팬들과 취재진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2008 베이징 여름 올림픽에서 한국 야구 대표팀의 9전 전승 금메달을 이끌었던 김경문 한화 감독(66)과 이승엽 두산 감독(48)이 사령탑으로 처음 맞붙는 경기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특별함을 넘어선다. 베이징 올림픽 당시 김 감독은 한국 야구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고 있었고, ‘국민타자’로 활약하던 이 감독은 대표팀의 4번 타자를 맡고 있었다. 이 감독은 당시 극심한 부담에 타격 페이스가 흐트러지며 8강까지 23타수 3안타(타율 0.130)의 부진을 보였다. 대표팀 안팎에서 비난이 쏟아졌지만 김 감독은 끝까지 이 감독을 4번 타자로 내세웠다. 그리고 이 감독은 믿음에 보답이라도 하듯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역전 투런 홈런을 쏘아 올렸다. 이 감독은 쿠바와의 결승전에서도 2점 홈런을 날리며 금메달의 일등공신이 됐다. 경기 시작 약 3시간 전 김 감독과 한화 선수단이 잠실구장에 도착하면서 두 사람의 만남이 이뤄졌다. 연장자인 김 감독이 먼저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이 감독은 더 깊이 고개를 숙이며 김 감독을 맞았다. 선수 생활은 물론 감독 생활도 두산에서 시작했던 김 감독은 애제자인 두산 포수 양의지(37)의 어깨를 두드리며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이 감독은 이후 취재진과 만나 “김경문 감독님께는 항상 감사한 마음뿐이다. 감독으로서 맞대결하는 광경은 항상 상상하고 있었다. 김 감독님께서 언제든 복귀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기대감이 있었는데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이제는 상대팀이니까 우리 팀을 위해 100% 집중하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김 감독은 “이 감독과 사령탑으로 맞대결을 벌일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옛날 생각이 나서 반가웠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지만 베이징 올림픽 우승은 잊히지 않는다”며 “현장을 떠나 있을 때도 젊은 감독들이 잘하는 부분은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감독은 이제 감독 2년차 인데도 팀을 잘 이끌고 있다. 우리 한화도 다른 팀들에 밀리지 않고 좋은 경기를 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훈훈했던 만남이 끝나고 경기가 시작되자 두 감독은 양보 없는 지략 대결을 펼쳤다. 이날 승리를 가져간 팀은 한화였다. 한화는 선발 투수 하이메 바리야의 6이닝 1실점 호투에 집중력 있게 터진 타선을 앞세워 두산을 6-1로 꺾었다. 한화는 5월 한 달간 4승 무패 평균자책점 1.48을 기록한 두산 에이스 곽빈을 무너뜨리며 의미 있는 승리를 거뒀다. 펠릭스 페냐의 대체 선수로 한화 유니폼을 입은 바리아는 이날 최고 시속 153km의 패스트볼과 최고 141km에 이르는 고속 슬라이더를 앞세워 두산 타선을 6이닝 3피안타 1볼넷 2탈삼진 1실점으로 틀어 막았다. KBO리그 첫 등판이었던 5일 KT전에서 4이닝 4피안타 2실점 4탈삼진의 무난한 투구를 했던 바리야는 두 번째 등판에서 첫 승을 따냈다. 3회 장진혁의 희생플라이로 선취점을 얻은 한화는 4회 노시환, 채은성, 최재훈이 각각 2루타 1개씩을 터뜨리며 2점을 보탰다. 3-1로 쫓긴 6회에는 이도윤의 적시타와 황영묵의 밀어내기 볼넷, 장진혁의 적시타로 3점을 더 달아나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이날 승리로 김 감독은 900승 고지에 올랐다. 이달 초 한화 감독으로 부임하기 전까지 두산과 NC 등에서 896승을 기록했던 김 감독은 4~6일 열린 KT와의 3연전을 모두 쓸어 담으며 899승에 도달했다. 하지만 제자인 강인권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NC와의 주말 3연전에서 2패 1무를 기록하며 대기록 달성을 이번 주로 미뤘다. 그렇지만 또 다른 제자 이 감독과의 첫 대결에서 승리하며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6번째로 900승 달성 감독이 됐다. 김 감독에 앞서 900승 이상을 거둔 감독들은 김응용 전 감독(1554승), 김성근 전 감독(1388승), 김인식 전 감독(978승), 김재박 전 감독(936승), 강병철 전 감독(914승) 등이 있다. 김 감독은 경기 후 “내 개인 기록은 별 의미가 없다. 우리 한화가 5위 팀과 더 가까워질 수 있게, 매 경기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대구에서 선두 LG를 6-4로 꺾고 홈 5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당초 LG 선발로 예고됐던 최원태가 옆구리 부상으로 마운드에 오르지 못하면서 LG는 불펜 투수들로 경기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어수선한 상황 탓인지 LG 수비진은 이날 5개의 실책을 범하며 자멸했다. 삼성은 경기 후반 5-4로 쫓겼으나 8회말 김동진의 쐐기 솔로 홈런으로 스코어를 벌렸다. NC는 창원에서 KT의 추격을 8-6으로 뿌리치고 5월 11일부터 이어온 창원 안방경기 11연패에서 벗어났다. NC는 1-3으로 뒤진 2회말 김휘집, 박민우, 박건우의 홈런 3방으로 경기를 뒤집었다. 5-4로 쫓긴 4회말에는 KT 우익수 강백호와 유격수 김상수의 실책을 틈타 3점을 더 달아났다. 키움은 부산 원정에서 롯데를 5-2로 꺾었고, SSG는 연장 10회말 신인 박지환의 끝내기 안타로 KIA에 7-6으로 승리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남자 골프 세계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2021∼2022시즌에 1404만6910달러(약 193억 원)를 벌어 단일 시즌 최다 상금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1년 만인 2022∼2023시즌엔 우승과 준우승 각각 두 차례를 포함해 톱10에 모두 17번 들며 2101만4342달러(약 289억 원)를 벌어 PGA투어 역대 최초로 시즌 총상금 2000만 달러 시대를 열었다. 셰플러는 10일 미국 오하이오주 더블린의 뮤어필드 빌리지 골프클럽(파72)에서 끝난 PGA투어 메모리얼 토너먼트에서 최종 합계 8언더파 280타로 우승했다. 이 대회는 총상금 2000만 달러가 걸린 시그니처 대회(특급 대회)였다. 우승 상금 400만 달러(약 55억 원)를 더한 셰플러는 올 시즌 상금을 2402만4553달러(약 331억 원)로 늘리며 지난해 자신의 기록을 또 넘어섰다. 이번 시즌 PGA투어 상금 2위에 올라 있는 잰더 쇼플리(미국·1159만7071달러)의 2배가 넘는다. 올해 셰플러는 13개 대회에 출전해 우승 5번, 준우승 2번을 포함해 모두 12차례 톱10에 들었다. 특히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과 RBC 헤리티지 등 특급 대회에서만 3승을 거뒀다.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와 ‘제5의 메이저’로 불리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도 제패했다. 셰플러는 이번 시즌에 총상금 3000만 달러를 넘길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13일부터 시즌 세 번째 메이저 대회인 US오픈, 20일부터는 시즌 마지막 특급 대회인 트래블러스 챔피언십이 열린다. 7월 열리는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 디오픈, 8월 중순 이후 펼쳐지는 플레이오프에도 적지 않은 상금이 걸려 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축구 국가대표를 지낸 이영표(47)는 올해 3월 자신의 버킷리스트 하나를 이뤘다. 2024 서울마라톤 겸 제94회 동아마라톤에서 풀코스(42.195km)에 처음 도전해 완주한 것이다. 3시간 57분 만에 골인해 ‘서브4’(4시간 이내 완주)도 달성했다. 이 대회에선 모두 1만8000여 명이 풀코스를 뛰었다. 이영표는 그중 7400번째로 골인했다. 그는 “나 같은 축구 선수 출신도 훈련 없이는 완주 못 하는 게 마라톤이다. 반면 체력이 아무리 약해도 제대로 준비하면 완주할 수 있다”며 “아무나 할 수 없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마라톤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선수 은퇴 후 그는 한동안 달리기를 멈췄다. “선수 시절 내내 극한까지 나 자신을 밀어붙이면서 뛰었기에 더 그러고 싶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그가 다시 달리기 시작한 건 가수 션을 만나고 나서였다. 그는 “(달리기 마니아인) 션 형님과 함께 뛰면서 달리기는 기분 좋을 만큼 뛰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선수 때 힘들기만 했던 달리기가 이제는 재미있는 취미가 됐다. ‘언노운 크루’라는 러닝 크루도 만들었다. 축구 선수 출신으로는 그와 조원희가, 연예인으로는 이시영 임시완 박보검 양동근 윤세아 등이 크루에 가입했다. 언노운 크루는 단순히 달리는 것을 넘어 세상에 선한 영향을 끼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매년 광복절에 81.5km를 달리는 815런을 통해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보금자리 지원 기금을 모으는 게 대표적이다. 이영표는 “달리기는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건강에도 좋다”며 “마음만 먹으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다. 운동화만 있으면 되니 비용도 크게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크루 멤버들과 일주일에 두세 차례 아침마다 5∼10km가량을 달린다. 틈틈이 자전거도 탄다. 로드 바이크를 타고 경기 남양주시 팔당까지 왕복 40km를 다녀오기도 하고, 실내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그는 “달리기를 많이 하면 허벅지 등 다리 근육이 빠진다. 빠진 근육을 채워주는 게 바로 자전거”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그는 테니스와 배드민턴, 골프도 즐긴다. 프로축구 팀 강원FC 대표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등을 지낸 그는 요즘 한 지상파 방송의 축구 해설위원과 축구 예능 프로그램 출연, 축구사랑나눔재단 이사, 스포츠선교회 이사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대학과 기업 등에 특강도 종종 나간다. 그가 가장 관심을 두는 분야는 여전히 축구 행정이다. 그는 “유럽에서 선수 생활을 하면서 행정을 잘하면 축구가 더 발전하는 모습을 봤다”며 “좋은 지도자분들은 이미 많이 계신다. 나는 행정을 하는 사람으로 한국 축구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선수 생활의 마지막 2년을 스포츠 비즈니스가 발달한 캐나다 밴쿠버에서 한 것도 같은 이유다. 그는 “돈과 명예를 좇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며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헌재 스포츠전문기자 uni@donga.com}

‘초롱이’라는 별명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 축구 국가대표 이영표(47)는 올해 3월 자신의 버킷리스트 하나를 이뤘다. 2024 서울마라톤 겸 제94회 동아마라톤에서 첫 풀코스(42.195km)에 도전해 완주한 것이다. 3시간 57분 만에 골인해 목표했던 ‘서브4(4시간 이내 완주)’도 성공했다. 이 대회에선 모두 1만8000명이 풀코스를 뛰었다. 이영표는 그중 7400번째로 골인했다. 그보다 앞서 결승선을 통과한 여성 마라토너도 1000명이 넘었다. 그는 “먹고 뛰는 게 일이었던 나 같은 축구 선수 출신도 훈련 없이는 완주 못 하는 게 마라톤이다. 반면 아무리 체력이 약한 사람도 준비만 제대로 하면 완주할 수 있다”며 “아무나 할 수 없지만 반대로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마라톤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선수 시절 그는 악착같은 플레이로 유명했다. 작은 키의 핸디캡을 남들보다 한 발 더 뛰어서 만회하려 했다. 그는 “선수 시절 내내 나 자신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면서 뛰었다”고 했다. 그랬기에 은퇴 후 그는 자연스럽게 뛰는 것을 멀리했다. 그가 다시 달리기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은퇴 후 스포츠 양말 사업을 할 때였다. 사업차 연예계의 달리기 마니아로 유명한 가수 션을 만난 게 계기였다. 그는 “션 형님은 당시에도 항상 뛰고 있었다. 언젠가 같이 한 번 뛰자고 하길래 10km를 함께 뛰었다. 오랜만에 뛰어서인지 너무 힘들기만 했다”고 했다. 반면 뛰는 게 일상인 션의 표정은 편안하기 그지없었다. 다음 만남 때 다시 함께 10km를 뛰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션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러다 한순간 깨달음이 왔다. “달리기는 기분이 좋은 상태도 기분 좋을 만큼만 뛰면 된다”는 것을. 어느샌가 그는 달리기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선수 때는 그렇게 힘들기만 했던 달리기가 이제는 뛰고 나면 상쾌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무엇보다 달리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다. 그는 션과 ‘언노운 크루’라는 러닝 크루를 만들었다. 축구 선수 출신으로는 그와 조원희가, 연예인으로는 이시영 임시완 박보검 양동근 윤세아 등이 크루에 가입했다. 언노운 크루는 단순히 달리는 것을 넘어 세상에 선한 영향을 끼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매년 광복절에 81.5km를 달리는 815런을 통해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보금자리를 지원하기 위한 기금을 모으는 게 대표적이다. 이영표는 “달리기는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건강에도 좋은 스포츠다. 아마도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스포츠가 아닐까 싶다”라며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다. 운동화만 있으면 되니 비용도 크게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영표가 처음부터 풀코스를 뛰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2019년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땐 10km 마라톤에 가끔 나가는 정도였다. 그러다 하프 마라톤을 뛰게 됐고, 마침내 풀코스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는 “풀코스 마라톤은 준비하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다. 2021년부터 2년간은 프로축구 강원FC 대표이사로 일하면서 좀처럼 준비할 기회가 없었다. 작년 말부터 다시 풀코스를 착실히 준비했다”고 했다. 첫 풀코스 출전이다 보니 시행착오도 있었다. 수분 섭취가 중요하다는 말을 듣고 출발 전 물을 너무 많이 마신 게 문제였다. 결국 5km 정도 달리다가 인근 카페의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이 때문에 시간을 많이 잡아먹어 서브4가 위태로워 질 뻔했다. 하지만 두 명의 페이스 메이커가 그를 도왔다. 힘들 때는 옆에서 같이 뛰어줬고, 보급이 필요할 때는 물과 에너지 젤 등을 가져다줬다. 그는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곤 하는데 이번 대회를 통해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인생도, 마라톤도 주변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그분들은 나를 위해 자신들의 속도를 줄여서 뛰었다.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서브4는 물론 완주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도움을 받고, 또 도움을 주는 게 삶의 본질인 것 같다”고 했다. 원래 그는 풀코스 한 번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레이스를 통해 마음을 바꿨다. 이영표는 “페이스 메이커 분들의 도움을 받아 목표를 이뤘으니 이제는 내가 누군가의 페이스 메이커로 보답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며 “서브4의 페이스 메이커를 하려면 3시간 30분대는 끊어줘야 한다. 착실히 실력을 쌓아서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런 이유로 그는 요즘 뛰고 또 뛴다. 언노운 크루 멤버들과 일주일에 2, 3차례는 아침마다 5~10km 가량을 달린다. 틈틈이 자전거도 탄다. 로드 바이크를 타고 경기 팔당까지 왕복 40km를 다녀올 때도 있고, 실내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그는 “달리기를 많이 하면 다리과 허벅지 근육이 빠진다. 그 빠진 근육을 채워주는 게 바로 사이클”이라며 “모든 건강의 척도는 허벅지란 말이 있지 않나. 허벅지 근력 강화에는 사이클만한 운동이 없다”고 했다. 이 밖에도 그의 일상은 각종 운동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테니스와 배드민턴, 골프도 즐긴다. 선수 시절 말엽 캐나다 밴쿠버 화이트캡스에서 뛸 당시부터 그는 종종 테니스를 치곤 했다. 요즘에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실내 체육관에서 동호인들과 배드민턴으로 땀을 흘리곤 한다. 지인들과는 가끔 골프를 치는데 평균 스코어는 80대 중반이다. 예전 캐나다에 있을 때는 싱글도 여러 차례 기록한 적이 있다. 은퇴한 축구 선수들끼리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공도 찬다. 하지만 여전히 메인 운동은 러닝과 근력 운동이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러닝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일주일에 2, 3차례는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근육 운동을 한다. 오랜 시간 하기보다는 10분, 20분을 하더라도 집중해서 한다. 강원FC 대표,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등을 지낸 그는 요즘 한 지상파 방송의 축구해설위원과 축구 예능 프로그램 출연, 축구사랑나눔재단 이사, 스포츠선교회 이사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대학교나 일반 회사에 특강도 종종 나간다. 그가 여전히 가장 관심 있는 분야는 축구 행정이다. 그는 “선수 은퇴 후 지도자가 돼 후배들에게 기술과 노하우를 전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유럽에 진출해 경험을 하다 보니 행정을 잘하면 축구가 더 발전하는 모습을 봤다”며 “후배들이 마음 놓고 축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 좋은 지도자분들은 이미 많이 계신다. 나는 행정을 하는 사람으로 한국 축구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선수 생활의 마지막 2년을 스포츠 비즈니스가 발달한 캐나다 밴쿠버에서 한 것도 같은 이유다. 그는 밴쿠버 화이트캡스에서 은퇴한 후에도 5년간 팀의 앰배서더로 활동하며 구단 운영 등을 꾸준히 배웠다. 그는 돈과 명예를 쫓으며 살고 싶진 않다고 했다. 그가 추구하는 삶은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사랑받는 삶이다. 이영표는 “예전의 나는 성공하는 게 인생 목표였다. 원하는 것을 가지면 행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은퇴 후 엄청난 허무감에 시달리기도 했다”며 “몇 해 전 어느 날 쌀쌀한 날씨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바닐라 라테를 마시다가 문득 행복하다고 느꼈다. 마침 옆에는 사랑하는 아내도 있었다. 행복이라는 파랑새는 먼 곳에 있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지인 중에 다른 사람의 임종을 함께 해주시는 목사님이 있다. 그분이 ‘죽기 전 돈과 명예, 권력을 얘기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주변 사람을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한 걸 아쉬워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라고 하시더라. 나도 그 말씀을 새기면서 남은 인생을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캐디 출신 챔피언’ 전가람(29)이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최고 역사의 KPGA 선수권대회 정상에 올랐다. 전가람은 9일 경남 양산 A-ONE 컨트리클럽(파71)에서 열린 대회 최종 라운드에서 6언더파 65타를 쳤다. 최종 합계 17언더파 267타를 기록한 전가람은 공동 2위 김홍택, 배상문, 이대한을 세 타 차로 제쳤다. 2019년 휴온스 엘라비에 셀레브러티 프로암 이후 5년 만이자 투어 통산 세 번째 우승이다. 올해 67회째인 이 대회는 KPGA가 단독 주관하는 대회 중 총상금(16억 원)이 가장 많다. 이번 우승으로 상금 3억2000만 원을 받은 전가람은 시즌 상금 랭킹 2위(3억7781만 원)로 올라섰다. 전가람은 KPGA투어 5년 시드와 KPGA 선수권대회 평생 출전권도 챙겼다. 전가람은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13년 KPGA 정회원이 됐다. 하지만 당시 아버지가 하던 사업이 기울어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다. 퀄리파잉 스쿨에도 탈락하면서 골프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돈을 벌어야 했던 그는 치킨 배달을 하다가 경기 포천에 있는 골프장 몽베르 컨트리클럽에서 캐디로 일하기도 했다. 2016년 투어에 다시 뛰어든 그는 2018년 몽베르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DB손해보험 프로미 오픈에서 데뷔 첫 우승을 했다. 2019년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한 그는 2020년 시즌을 마치고 군에 입대해 출입국관리소 교도대원으로 복무했다. 지난 시즌 복귀한 그는 준우승을 두 차례 하며 경기력을 입증했다. 올해도 파운더스컵 공동 8위, 데상트코리아 매치플레이 7위 등 톱10에 두 번 들었다. 이번 대회에서 줄곧 선두권을 유지했던 그는 최종 라운드 9번홀(파5) 버디로 공동 선두에 합류했고, 10번홀(파4) 버디로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13번(파5), 14번홀(파4) 연속 버디로 선두를 지킨 그는 마지막 18번홀(파4)에서 12m짜리 긴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며 우승을 자축했다. 올해 12월 결혼하는 전가람은 “약혼자가 골프를 모른다. 하루빨리 우승을 선물하고 싶었다. 상금은 신혼집을 마련하는 데 쓰겠다”며 “우승 상금보다 5년 시드가 더 값지다. 내친김에 제네시스 대상도 한번 받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박민지(26)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최초로 단일 대회 4연패를 달성했다. 박민지는 9일 강원 양양 설해원의 더 레전드 코스(파72)에서 열린 KLPGA투어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즈 최종 3라운드에서 버디 3개, 보기 1개로 2언더파 70타를 쳤다. 최종 합계 13언더파 203타를 기록한 박민지는 공동 2위 이제영, 전예성, 최예림을 세 타 차로 제치고 시즌 처음이자 KLPGA투어 통산 19번째 우승을 했다. 박민지는 2021년부터 올해까지 이 대회 4연속 우승으로 KLPGA투어 새 역사를 썼다. 고 구옥희, 박세리, 강수연, 김해림, 박민지가 남겼던 단일 대회 3연속 우승이 종전 최다 기록이다. 2022, 2023년 이 대회에서 1라운드부터 최종 라운드까지 선두를 지키며 정상에 오른 박민지는 올해도 라운드 내내 선두 자리를 내주지 않고 3년 연속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거뒀다. 우승 상금 2억1600만 원을 받은 그는 KLPGA투어 최초로 통산 상금 60억 원(60억4878만 원)을 넘겼다. 박민지는 이번 대회 상금 전부를 어린이와 홀몸노인 등을 위해 기부하기로 했다. 박민지는 이날 전반 9개 홀에선 타수를 줄이지 못했다. 후반 첫 홀인 10번홀(파4)에선 첫 보기를 하며 전예성과 이제영에게 공동 선두를 내줬다. 하지만 11번홀(파3)에서 첫 버디를 잡으며 다시 단독 선두에 올랐고, 14번홀(파5)에선 7m에 가까운 긴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며 승기를 잡았다. 마지막 18번홀(파5)에서도 버디로 대기록을 자축했다. 2021, 2022년 두 해 연속 6승씩 거두며 2년 연속 상금왕에 올랐던 박민지는 작년 6월 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 이후 약 1년간 우승이 없었다. 지난해 말부터는 머리 쪽 신경통 증세로 고생했고, 이 때문에 올 시즌 초반 잠시 휴식기를 갖기도 했다. 박민지는 “머리를 칼로 쑤시는 것처럼 통증이 심했다. 바람 부는 날 밖에 나갔을 땐 통증이 심해 ‘앞으로 평생 야외에 못 나가는 것 아닌가’ ‘골프는커녕 살 수는 있을까’ 싶었다”며 “그래도 지금은 통증이 없는 시기인 것 같다. 무통기가 오래갈 수 있도록 가능한 한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긍정적인 생각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박민지는 또 “원래는 통산 20승을 하면 우승 상금을 기부하려고 했는데 이 대회 4연패 기록 달성을 뜻깊게 하기 위해 기부를 결심했다”며 “우승할 수 있었던 건 나 혼자 힘이 아니고 하늘이 도와줬기 때문이어서 기부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픈데도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더라”며 “병원과 어린이, 홀몸노인을 위해 기부할 계획”이라고 했다. 박민지는 “내가 경기를 뛰기 힘들었던 시절에 캐디 오빠(전병권 씨)한테 ‘다른 선수한테 가라’고 했는데, 오빠가 ‘네가 경기에 못 나와도 너와 함께하겠다’고 말해줬다”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우승 상금은 기부했지만 박민지는 상금보다 많은 3억 원의 특별 포상금을 받았다. 이번 대회 후원사 셀트리온은 대회 개막 직전 박민지의 4연패에 특별 포상금 3억 원을 걸었다. 포상금은 상금 순위 등 KLPGA투어 공식 기록엔 반영되지 않는다. 구옥희와 신지애가 보유한 KLPGA투어 최다승(20승)에 1승만 남긴 박민지는 “퍼트 연습을 좀 더 하면 이른 시일 안에 20승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안에 꼭 이루고 싶다”며 “내년 이 대회에서도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선두 KIA가 롯데전 5연패에서 벗어났다. KIA는 6일 롯데와의 광주 안방경기에서 에이스 양현종의 퀄리티 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투구, 3자책점 이하)와 김선빈의 결승타 등에 힘입어 5-4로 역전승했다. KIA는 3연패에서 벗어나며 선두를 지켰다. ‘대투수’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양현종은 이날 6이닝 5피안타 1볼넷 3실점으로 잘 던졌다. 전날까지 통산 1998탈삼진을 기록 중이던 양현종은 이날 5개의 탈삼진을 추가하며 송진우(은퇴)에 이어 한국 프로야구 역대 두 번째로 2000탈삼진 고지에 올랐다. 2회초 김민성을 상대로 헛스윙 삼진을 잡은 게 2000번째 탈삼진이었다. 36세 3개월 5일에 2000탈삼진을 달성한 양현종은 송진우(당시 42세 3개월 21일)의 기록을 약 6년이나 앞당겼다. 공교롭게도 송진우의 2000탈삼진도 정확히 16년 전인 2008년 6월 6일에 나왔다. 통산 2003탈삼진을 기록한 양현종은 송진우가 갖고 있는 통산 최다 탈삼진(2048개)에 45개 차로 다가섰다. 이날 양현종은 3-3이던 7회초 교체돼 승수를 추가하지는 못했다. KIA 김선빈은 1-3으로 뒤진 6회말 왼쪽 담장을 넘기는 동점 투런 홈런을 쏘아 올렸다. KIA는 8회초 손호영에게 솔로 홈런을 허용해 다시 3-4로 뒤졌지만 8회말 김도영의 솔로포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계속된 1사 2루 기회에서 타석에 선 김선빈은 우전 적시타로 역전승을 이끌었다. 한화는 이날 수원 방문경기에서 KT를 6-0으로 물리치고 김경문 감독 부임 이후 3연승을 달렸다. 1-0으로 불안한 리드를 하던 한화는 9회초에 5점을 뽑으면서 승부를 갈랐다. 지난달 25일 SSG전 이후 12일 만에 선발로 등판한 한화 류현진은 6이닝을 5피안타 무실점으로 막고 시즌 4승(4패)째를 거뒀다. 류현진은 6회말까지 던졌는데 한화 타선이 7회초에 1점을 뽑아 승리 투수가 됐다. 두산은 NC를 8-4로 꺾고 3연승했다. SSG는 삼성을 4-0으로, LG는 키움을 8-4로 눌렀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올림픽이 다가올수록 점점 예전의 ‘태릉선수촌’ 느낌이 난다. 나는 희망적인 모습을 많이 보고 있다.” 파리 올림픽에 출전할 국가대표들이 모여 훈련 중인 충북 진천선수촌의 총책임자 장재근 선수촌장(62)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묻어났다. 7월 26일(현지 시간) 개막하는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진천선수촌에서 만난 장 촌장은 “한국의 이번 올림픽 예상 성적을 두고 많은 분이 걱정하지만 이곳 진천선수촌의 분위기는 다르다. 예전에 선수들이 젊음과 꿈을 묻고 좋은 결과를 얻었던 태릉선수촌 특유의 기운이 하루가 다르게 솟아나고 있다”고 했다. 파리 올림픽에 참가하는 한국 선수는 141∼145명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1976년 몬트리올 대회 50명 이후 가장 적은 숫자다. 여자 핸드볼을 제외한 모든 단체 구기 종목이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부터 2021년 도쿄 대회까지 이어 온 200명대가 무너졌다. 대한체육회는 양궁과 펜싱, 태권도 등에서 5, 6개 정도의 금메달을 딸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올림픽이 다가오면서 사격, 유도, 배드민턴 등 각 종목에서 희망적인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김예지는 지난달 국제사격연맹(ISSF) 사격월드컵 여자 25m 권총에서 세계기록으로 금메달을 땄다. 금지현도 같은 대회 여자 10m 공기소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달 유도 세계선수권대회에선 김민종이 남자 100kg 초과급, 허미미가 여자 57kg급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무릎 부상으로 주춤했던 여자 단식 세계랭킹 1위 안세영은 2일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싱가포르 오픈 여자 단식 결승에서 세계랭킹 2위 천위페이(중국)를 꺾고 대회 2연패에 성공했다. 장 촌장은 “파리 올림픽에서도 어느 종목의 어떤 선수가 예상 밖의 금메달을 딸지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지난달 장 촌장은 각 종목 지도자들과 함께 파리 올림픽 기간에 한국 선수들이 베이스캠프로 삼을 퐁텐블로의 캄프 귀네메르에 다녀왔다. 이곳은 프랑스의 군사 스포츠 시설인데 대한체육회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현지 적응을 돕기 위해 베이스캠프를 만들었다. 한국이 올림픽 개최지 현지에 캠프를 두는 건 2012년 런던 대회 이후 12년 만이다. 장 촌장은 “현지 캠프에선 태권도와 펜싱, 배드민턴, 유도, 수영 선수들이 적응 훈련을 하게 된다. 태권도 경기 매트는 현지에서 빌리기로 했고, 배드민턴 선수들은 한국 매트가 더 편하다고 해 여기서 가져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진천선수촌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조리사와 영양사 등 16명도 현지에 합류한다. 이들은 한식 위주의 식사를 준비하고 삼각김밥 등 간편식과 도시락도 만든다. 국물을 좋아하는 선수들을 위해선 한우 곰탕을 한국에서 고아 파리로 공수할 예정이다. 장 촌장은 “한우 뼈는 프랑스에 반입이 안 되지만 얼린 국물을 가져가는 건 가능하다고 하더라. 곰탕을 팩에 넣은 뒤 얼려서 가져갈 예정”이라며 “경기를 앞둔 선수들은 긴장감에 밥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곰탕은 먹기 간편하고 든든한 한 끼 식사도 된다”고 했다. 지난해 3월 부임한 장 촌장은 태릉선수촌 시절의 새벽운동(주 4회)과 산악훈련(주 1회)을 부활시켰다. 시대에 뒤떨어진 훈련 아니냐는 비난도 있지만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효과가 더 크다고 했다. 장 촌장은 “선수촌은 국민이 낸 귀한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마음대로 훈련할 것 같으면 밖에서 자율적으로 하면 된다”며 “선수촌에 들어왔으면 기본적인 룰과 규칙을 지키는 게 당연하다. 처음엔 어색해하던 선수들이 이제는 새벽운동 때 종목이 다른 선수한테도 인사하면서 깔깔 웃는다. 그렇게 ‘원 팀’이 돼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선수들에게 ‘나라를 위해 뛴다’는 말 같은 건 하지 말라고 한다. 운동도 메달도 다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시상대 위에 서면 애국가가 흘러나오는 순간 나도 모르게 뭉클해지며 애국자가 된다. 국가대표, 태극마크라는 건 바로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진천=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신명주 명주병원(경기 용인시) 병원장(53)이 제31대 대한사격연맹 회장으로 당선됐다. 신 신임 회장은 연맹 회장 선거에 단독 출마했으며 연맹 정관 규정에 따른 후보자 심사 절차를 거쳐 회장 당선인으로 결정됐다. 신 회장은 대한체육회 인준 절차를 밟은 후 임기를 시작하게 된다. 신 회장은 “사격인들과의 폭넓은 소통과 늘 열려있는 자세로 사명감을 가지고 연맹의 중장기적인 발전의 동행인이자 버팀목으로 사격인들과 늘 함께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또 “50여 일 앞으로 다가온 2024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 사격의 위상이 높아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 또 대내외적인 소통을 우선으로 하며 발전기금 조성과 브랜드화를 통해 재정자립을 도모하고 사격이 공정, 상식, 원칙을 실천하는 선도적인 단체로 평가받도록 부단한 쇄신의 노력으로 연맹을 이끌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신 회장은 대한병원장협의회 정책이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 부교수, ㈜위즈바이오솔루션 사외이사, 서울아산병원 진료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2021년부터 최근까지는 대한하키협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 에이스로 활약했던 윤석민(38)은 어깨 부상으로 33세에 은퇴한 뒤 좌절감과 상실감에 빠졌다. 밤에 잠들기 위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매일 소주 한두 병을 마셔야 겨우 잠을 잘 수 있었다. 다음 날 늦게 일어나서는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 게임을 했다.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았고 사람들도 거의 만나지 않았다.방황하던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선수 시절 가끔 즐기던 골프였다. 한 지인이 그를 필드로 불러냈다. 시니어 프로 골퍼로 활동하던 동반자들은 ‘일파만파’(첫 홀을 모두 파로 적어주는 것), 멀리건과 컨시드도 없이 골프 규칙에 따라 철저하게 스코어를 적었다. 스트레스를 풀러 나왔던 그는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 곳에선 뜨거운 감정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본 ‘승부욕’이었다.그날 이후 그는 하루하루를 골프로 불태우기 시작했다. 뭔가 집중할 게 생기자 잡념도 사라졌다. 그렇게 1년을 지내자 실력은 일취월장했고, 주변에선 그에게 프로 도전을 권했다. 프로의 벽은 높았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그는 6차례나 프로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연속된 낙방이었다. 인생의 새 목표를 찾은 윤석민은 “골프 대회장에 가면 마운드에 섰을 때처럼 설레는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매번 탈락했지만 너무 신나고 재미있었다”고 했다.윤석민은 올 초 7번째 도전 만에 마침내 프로 테스트를 통과했다. 경기가 열린 날은 비가 오고 바람도 세게 불었는데 그는 바뀐 환경에 맞게 낮은 탄도 샷과 슬라이스 샷 등을 구사하며 공동 20위를 했다.골프로 삶의 활력을 찾은 그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프로 골퍼 자격으로 각종 이벤트 대회나 프로암 등에 나서고 있다. 본업인 야구 해설위원으로도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도 얼굴을 내밀고, 유튜브 활동도 한다. 몸이 한창 망가졌을 때 시속 100km의 공도 제대로 던지지 못했던 그는 최근 한 사회인 야구 대회 마운드에 올라 최고 시속 136km를 찍었다.오랫동안 건강하게 활동하기 위해 그는 자기 관리에도 열심이다. 가능한 한 소식하려고 하고 틈나는 대로 걷는다. 바쁜 스케줄 탓에 운동할 시간이 많지 않지만 끊임없이 몸을 움직인다. 야구인이자 골프인인 그는 “두 종목 모두 끝이 없는 게 매력”이라고 했다. 그는 “야구를 잘하던 선수도 한순간 삐끗하면 2군에 내려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 골프도 ‘오늘은 되는구나’ 싶다가도 내일 안 되기 일쑤다. 야구와 골프도 인생처럼 무너지지 않게 항상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그는 주말 골퍼들에게도 꾸준함을 강조했다. 윤석민은 “한두 번의 레슨이나 연습으로는 실력이 늘지 않는다. 한 달이든 두 달이든 시간을 들여 꾸준히 몸에 익혀야 한다. 쉽게 되는 건 세상에 없다”고 말했다.이헌재 스포츠전문기자 uni@donga.com}

2011년 12월 경기도 한 골프장에서는 한국 프로야구 최고 투수들 간의 세기의 골프 대결이 펼쳐졌다. 국가대표 오른손 에이스 윤석민(38·당시 KIA)과 ‘괴물 투수’ 류현진(37·한화)이 골프로 맞붙은 것이다. 당시 구력이 1년 정도였던 윤석민은 80대 후반의 평균 스코어를 치고 있었다. 반면 류현진은 정식으로 레슨을 받은 지 한 달 정도밖에 안 된 초보였다. 이게 겨우 100타를 깬 수준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류현진의 판정승이었다. 윤석민은 자기 타수에 맞게 89타를 쳤는데 류현진이 라이프 베스트(라베)인 88타를 기록한 것이다. 드라이버와 아이언샷에서는 윤석민이 월등히 앞섰다. 하지만 손 감각이 탁월한 류현진은 퍼팅에 강했다.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현재 류현진은 여전히 한화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오르고 있다. 2013년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 진출해 지난해까지 11시즌 동안 78승 48패 평균자책점 3.27을 기록한 류현진은 올 시즌을 앞두고 친정팀 한화로 복귀했다. 윤석민의 인생은 더 드라마틱하게 바뀌었다. 2019년 KIA에서 은퇴한 그는 올해 4월 열린 2024 제1차 KPGA 프로 선발전을 통과해 ‘프로 골퍼’가 됐다. 절친한 선후배 사이인 둘은 요즘도 가끔 동반 라운드를 한다. 골프 실력 차이는 이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벌어졌지만 내기에서는 여전히 류현진이 강하다고 한다. 윤석민은 “이상하게 (류)현진이랑만 치면 꼬이는 것 같다. 반면 현진이가 나랑만 치면 자기 실력 이상을 발휘한다”며 웃었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윤석민은 류현진과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에이스로 활약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9전 전승 우승에 큰 역할을 했고, 2011년 KIA의 한국시리즈 우승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해 그는 다승(17승), 평균자책점(2.45), 탈삼진(178개) 등에서 모두 1위에 오르며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야구 선수 생활의 끝이 다소 아쉬웠다.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다가 돌아온 2015년 30세이브를 거두며 부활했지만 이후 어깨 부상이 심해지며 추락을 거듭했다. 2018년에는 승리 없이 8패 11세이브페 평균자책점 6.75로 부진했고, 이듬해 유니폼을 벗었다. 33살의 비교적 이른 나이에 은퇴한 후 그는 엄청난 좌절감과 상실감에 빠졌다. TV를 통해 동료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보는 것 자체가 괴로움이었다. 밤에 잠들기 위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매일 소주 1, 2병을 먹어야 겨우 잠을 잘 수 있었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는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 게임을 했다.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았고, 사람들도 거의 만나지 않았다. 방황하던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다름 아닌 골프였다. 폐인처럼 지내는 그를 안타깝게 여긴 한 지인이 그를 필드로 불러냈다. 동반자들은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었다. 겉보기와 달리 그들은 모두 골프에 진심이 사람들이었다. 의사와 사업 등을 하는 이들은 생업을 하는 틈틈이 시니어 프로 골퍼로도 활동하고 있었다. 첫 라운드에서 그는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일파만파(첫 홀을 모두 파로 적어주는 것)’도 없었고, 멀리건도 없었고, 컨시드도 없었다. 모든 스코어를 골프 규칙에 따라 엄격히 적어야 했다. 스트레스를 풀러 나왔던 그는 오히려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 곳에서 뜨거운 감정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감정의 정체는 실로 오랜만에 느껴본 ‘승부욕’이라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 그는 하루하루를 골프로 불태우기 시작했다. 뭔가 집중할 게 생기자 잡념도 사라졌다. 그렇게 1년을 지내고 나자 그의 실력은 일취월장했고, 주변에서는 그에게 프로 도전을 권했다. 프로의 벽은 높았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그는 6차례나 프로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연속된 낙방이었다. 6번의 도전 중 5번은 예선 탈락이었다. 2022년 가을 테스트 때 딱 한 번 본선에 올랐지만 역시 통과는 하지 못했다. 윤석민은 “대회장에 가면 마운드서 섰을 때처럼 설레는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매번 탈락했지만 너무 신나고 재미있었다”며 “프로 도전을 하면서 많은 프로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골프 유튜브도 운영하면서 소중한 원 포인트 레슨도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지난해엔 프로 테스트에 한 번도 응시하지 않았다. 처음 프로에 도전할 때 3년만 도전해 보자고 마음먹었고, 6번의 도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그는 한 야구 프로그램의 해설위원으로, 또 예능인으로 방송 출연 등을 하면서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모처럼 두 아이의 아빠 노릇도 했다. 그러다 올해 4월 뜻밖의 기회가 왔다. 1~3월 슬럼프를 보낸 그는 샷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4월 마침 시간이 비어 프로 테스트에 응했다. 경기가 열린 날은 비가 왔고, 바람도 세게 불었다. 이런 환경이 오히려 그에게 도움이 됐다. 야구 선수 시절부터 그는 상황에 따라 변화를 주는 데 능했다. 다른 선수들이 허둥거리는 동안 그는 바뀐 환경에 맞게 낮은 탄도 샷과 슬라이스 샷 등을 구사했다. 그날 그는 ‘6전 7기’ 끝에 공동 20위로 합격했다. 윤석민은 “너무 행복한 순간이었다. 목표를 세우고,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목표를 이룬다는 건 정말 뜻깊은 일”이라며 “야구에서 은퇴한 후 힘든 시간을 겪었지만 골프를 통해 새 목표를 찾을 수 있었다. 인생이라는 게 너무 신기하면서도 재미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KPGA SK텔레콤 채리티 오픈에서 그는 한국 남자 골프의 레전드인 최경주(54)와 만났다. 최경주는 “야구 선수 출신이 뒤늦게 골프 프로가 됐다니 정말 대단하다. 이왕 이 길로 들어선 김에 1부에서 뛸 수 있는 투어 프로(정회원)까지 도전해 보라”고 덕담을 건넸다. 하지만 윤석민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하루종일 골프에만 매달려도 투어 프로 되는 게 쉽지 않다. 지금처럼 방송 활동 등 생업을 하면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당분간은 야구와 골프 등을 넘나들며 다양하게 활동하고 싶다. 그리고 향후 다시 목표를 잡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2021년과 2022년에 아마추어 신분으로 출전했던 두 차례의 KPGA 투어에서 모두 컷 탈락했다. 2부 투어인 KPGA 챌린지투어 예선에도 7회 출전해 모두 탈락했다. 이제 이름 앞에 ‘프로’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지만 윤석민에게 야구는 여전히 마음의 고향이다. 그는 지금도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종종 팬들과 만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모처럼 마운드에 올라 직접 공을 던지기도 했다. 은퇴 후 한참 몸이 망가졌을 때 시속 100km의 공도 제대로 던지지 못했던 그는 골프 등을 통해 회복된 몸으로 최고 시속 136km의 공을 뿌리며 여전한 클래스를 과시했다. 그는 “두 아들이 야구보다는 축구를 더 좋아한다”며 “선수 생활을 할 땐 아이들이 어려서 내가 야구 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보여주려 정말 이를 악물어 던져봤다”며 웃었다. 오랫동안 건강하게 활동하기 위해 그는 건강관리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가능한 한 소식하려고 하고 틈나는 대로 많이 걸으려 한다. 한 번 산책을 나가면 최소 1시간 이상은 걷는다. 야구와 골프의 매력에 대해 묻자 그는 “두 종목 모두 끝이 없는 게 매력”라고 답했다. 조금만 방심하면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기에 항상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야구를 잘했던 선수도 한순간 삐끗하면 2군에 내려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 골프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 ‘됐다’ 싶다가도 내일 안 되는 게 골프다. 우리네 인생처럼 야구도 골프도 항상 무너지지 않게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주말 골퍼들에게도 ‘꾸준함’을 강조했다. 윤석민 ‘프로’는 “많은 아마추어 분들이 한두 번 레슨을 받고 일주일 정도 연습하면 뭔가 달라질 것으로 생각한다”며 “그래서는 실력이 좀처럼 늘지 않는다. 배운 걸 한 달이던 두 달이던 시간을 들여 꾸준히 몸에 익혀야 한다. 뭐든지 쉽게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