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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이제 불을 들어올려 주세요. 플래카드는 내려 주시고요.”23일 오후 8시 일본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구 총리관저 앞. 약 5000명의 시민들이 주최 측의 요청에 따라 일제히 발광다이오드(LED) 촛불과 플래시를 점등한 휴대전화 등을 치켜들었다. 순식간에 관저 앞은 촛불바다가 됐다. 한국에서 역사를 바꾼 촛불시위가 일본에 처음 상륙하는 순간이었다. 시민들은 주위를 둘러보며 “스고이(멋지다)”, “키레이(예쁘다)” 등 감탄사를 연발했다. 촛불시위를 기획한 오쿠다 아키(奧田愛基·26) 씨는 “정말 멋진 광경이다. 역사적인 장면이 될지 모르니 기자분들도 사진을 잘 찍어 달라”고 했다. 시민들은 촛불을 흔들며 구호를 외쳤다. “아베 총리는 거짓말을 멈춰라”, “총리를 그만둬라.”, “(총리 부인) 아키에는 국회에 나와라.” 오쿠다 씨는 2015년 안보법제 반대 시위를 주도했던 실즈(SEALDs·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 긴급행동)의 중심인물로 모리토모(森友)학원 스캔들이 본격화된 후 관저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는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촛불시위를 결심한 후 LED 촛불 3000개를 준비했다. 또 트위터를 통해서도 “촛불이나 라이트를 들고 모여 달라”고 호소했다. 이 호소에 응한 이들은 자발적으로 촛불을 준비했다. 관저 앞에서 만난 쓰노이 덴코 씨는 “한국에서는 촛불이 정권을 바꿨다. 멋지고 비폭력적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어 지인들과 자비로 2000개의 촛불을 사 왔다”고 말했다. 야광봉 500개를 가져온 호토 히로시(56) 씨는 “해외에 사는 이가 자신은 참가하지 못하니 대신 나눠 달라고 해서 가져왔다”고 말했다. 이날 시위에 참석한 시민들은 비가 조금씩 내리는 와중에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사임’, ‘내각 총사퇴’ 등이 써진 플래카드를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복지 관계 일을 한다고 밝힌 노나카 도시히로(52) 씨는 “아베 정권이 끝장날 때까지 시위에 나오겠다”고 했다. 관저 앞 데모는 재무성이 문서조작을 인정한 12일 1000여 명으로 시작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날은 수천 명이 국회와 관저 앞에서 목소리를 높여 모리토모 학원 스캔들이 재점화된 이후 가장 큰 규모였다. 지역도 오사카(大阪) 삿포로(札幌) 등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관저 앞 시위와 지지율 하락으로 코너에 몰린 아베 총리는 이날 각의(국무회의)에서 “이번 일로 행정 전체의 신뢰가 손상된 것은 통한의 극치”라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국유지 헐값 매각 당시 이재국장으로 사건의 핵심 인물인 사가와 노부히사(佐川宣壽) 전 국세청 장관이 27일 국회에 출석할 예정이어서 그의 증언에 따라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설상가상으로 국유지를 헐값에 분양받아 스캔들의 중심에 있는 가고이케 야스노리(籠池泰典) 모리토모학원 전 이사장은 23일 구치소에서 야당 국회의원들을 만나 “국유지 매각 협상에 대해 아키에(昭惠) 여사에게 하나하나 보고했다”고 폭로했다. 이에 따라 아키에 여사를 국회에 불러야 한다는 야당의 요구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19일 저녁 일본 도쿄(東京) 지요다구. 참의원 의원회관에서 중의원 의원회관으로 이어지는 약 300m의 보도에는 ‘아베 사임’ ‘내각 총사퇴’ 등의 플래카드를 든 시위대가 가득했다. 지난주부터 급속히 확산 중인 반(反)아베 시위였다. 언뜻 봐도 2000명 가까이 돼 보였다. 인파를 헤치며 나가는데 낯익은 이름이 들렸다. 마이크를 잡은 남성은 “이웃 나라 한국은 박근혜 대통령을 국민이 끌어내렸다. 우리도 시민의 힘으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물러나게 하자. 20만 명이 국회를 포위하자”며 열변을 토했다. 일본의 평화인권 운동가 후쿠야마 신고(福山眞劫) 씨였다. 그는 “작년, 재작년 서울에 갔을 때 촛불시위의 에너지를 직접 느꼈다”며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이날 시위에서 연사들은 “박근혜처럼 아베도 감옥에 보내자”, “일본에서도 촛불혁명을 이루자”고 외쳤고, 참가자들은 “그러자”고 호응했다. 한국 기자라면 다들 반색했다. 매일 시위에 온다는 40대 주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많은 한국인들이 응원 메시지를 보내주고 있다. 큰 힘이 된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실제로 한국 누리꾼들은 ‘#RegaindemocracyJP(일본의 민주주의를 되찾자)’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일본의 시위를 응원하는 글을 인터넷에 퍼뜨리고 있다. 아베 신조 기념 초등학교를 짓겠다며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를 내세워 국유지를 헐값에 사들인 모리토모(森友)학원, 이를 감추려 공문서에서 아키에 여사의 이름을 지운 재무성의 문서 조작 등. 이런 행태들에서 박 전 대통령의 측근 비리와 이에 가담한 공직자들의 모습을 떠올린 것이다. 일본은 열차·비행기가 지연돼도 항의하는 사람 한 명 없는 나라다. ‘법과 원칙’에 따라 공평하게, 최선을 다해 일을 처리한다는 사회적 신뢰 때문이다. 관저 앞 시위와 30% 안팎까지 떨어진 내각 지지율은 그 오랜 신뢰가 배신당한 결과다. 돌이켜 보면 아베 정권에선 유난히 법과 원칙이 왜곡된 경우가 많았다. 방위성은 지난해 초 남수단에 파견된 육상자위대의 일일보고 문서를 폐기했다고 밝혔다가 나중에 발견되는 바람에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당시 방위상이 사임했다. 가케(加計)학원 스캔들 때는 문부과학성이 ‘총리의 의향’을 언급한 문서를 숨겼다가 전직 사무차관의 폭로 후 재조사해 14건을 찾아냈다. 올 초엔 후생노동성이 ‘없다’고 단언했던 재량노동제 자료가 창고에서 나왔다. 정권에 불리한 자료라면 일단 은폐하고 보는 일이 반복되자 참다못한 국민들이 거리로 나온 것이다. 시위대의 분노가 아베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기자는 2015년 안보법 제정·개정 때 12만 명(경찰 추산 3만 명)이 국회를 에워싼 모습을 지켜봤다. 하지만 여당은 법안을 강행 처리했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거리 시민의 힘으로 권력을 끌어내린 경험이 없는 일본의 한계를 실감했다. 이번에는 다를까. 아직까지 시위 규모는 크지 않고, 아베 총리는 강행 돌파할 태세다. 3년 전 시위의 주역이었던 학생단체 실즈의 전 리더 오쿠다 아키(奧田愛基) 씨는 최근 SNS에서 “촛불 3000개를 준비했다”며 한국을 본뜬 대규모 촛불시위를 제안했다. 만약 관저 앞에 촛불의 바다가 펼쳐지면 아베 총리는 어떤 생각을 할까. 시위대는 ‘한국도 대통령을 몰아내기까지 상당 기간이 걸렸다’며 장기전을 준비 중이다. 시간이 얼마 걸리든 일본의 촛불민심이 최고권력자를 끌어내린다면, 그야말로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다.장원재 도쿄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올해 1월 일본에서 발생한 580억 엔(약 5860억 원·당시 시가 기준) 규모의 사상 최대 가상통화 도난 사건을 둘러싼 사이버 추격전이 해커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경찰 수사가 난관을 겪고 있어 범인의 정체와 사라진 가상통화의 행방이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가상통화 도난이 완전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규제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NEM 재단 “도난 가상통화 추적 종료” 선언 가상통화 뉴이코노미무브먼트(NEM)를 발행한 싱가포르의 NEM 재단은 20일 홈페이지를 통해 “18일부터 도난당한 가상통화의 추적 표시를 비활성화했다”고 밝혔다. 간단히 말해 추적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따로 이유를 설명하진 않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유출된 NEM의 60%인 350억 엔(약 3540억 원)가량이 이미 다른 가상통화로 교환돼 더 이상의 추적은 효과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전했다. 재단은 1월 26일 사건 발생 직후 ‘모자이크’라는 특수 기술을 이용해 유출된 NEM에 ‘장물’ 표시를 붙이고 실시간 추적 시스템을 가동했다. 또 전 세계 가상통화 거래소에 도난품을 취급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사건 발생 이틀 뒤 제프 맥도널드 재단 부사장은 인터뷰에서 “도난당한 가상통화의 소재를 모두 파악했으며, 훔친 가상통화로는 달러는 물론이고 다른 어떤 가상통화와도 못 바꿀 것”이라고 자신했다. 훔친 가상통화를 계좌 수십 개로 쪼개며 시간을 벌던 해커는 지난달 7일 익명성이 매우 높은 ‘다크웹’에 영문 사이트를 열고 ‘대량의 NEM을 할인해 비트코인 등 다른 가상통화와 교환하겠다’고 공지했다. 다수의 소액 거래가 빈번하게 이뤄질 경우 감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스템의 약점을 노린 것이다. 거래 후 전자태그가 다시 붙을 때까지 3분가량 걸리는데 빠르게 거래를 거듭하는 방식으로 포위망을 빠져나갔다. 결과적으로 장물인지 모르고 거래했다가 나중에 전자태그가 따라붙은 선의의 피해자도 생겨났다. 그 사이 재단과 경찰은 유출된 NEM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파악했으면서도 포위망에서 벗어나는 걸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가상통화 거래는 익명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계좌를 알아도 계좌 주인을 파악할 수 없다. 블록체인 기술은 한번 거래하면 돌이킬 수 없어서 거래를 취소할 수도 없고, 비밀 키를 모르면 몰수할 수도 없다. 해커 측은 이후 아예 태그를 제거하는 기술도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범인 잡을 가능성 제로에 가까워” 일본 경시청은 100명 규모의 수사본부를 꾸려 유출 경위와 사라진 NEM의 행방을 수사 중이다. 하지만 단서가 극히 부족해 범인 추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금까지 밝혀낸 것은 해외 서버를 경유한 해커가 e메일을 통해 직원의 컴퓨터에 바이러스를 심었고, 이후 원격조종을 통해 송금에 필요한 비밀 키를 빼냈다는 정도다. 수사에 진전이 없다 보니 경찰 안팎에선 벌써부터 ‘범인을 잡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는 말이 나온다. 한국 국가정보원이 지난달 5일 “해킹이 북한의 소행으로 추정된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선 내각 사이버보안센터에서 조사 중이다. 경찰은 고객 자금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책임을 물어 코인체크의 와다 고이치로(和田晃一良) 사장을 입건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코인체크는 12일 피해자 26만 명에게 460억 엔(약 4650억 원)을 보상했다. ‘보상을 피하려고 폐업할 것’이라던 세간의 예상을 깬 것이다. 그럼에도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월 4조 엔(약 40조 원)어치의 가상통화를 취급하면서 매달 수백억∼수천억 원을 벌었던 거래소가 기초적인 보안관리도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경찰과 발행단체, 회사가 총력전을 폈지만 범인도, 도난품도 감쪽같이 사라지면서 앞으로 가상통화 해킹 시도가 더 활발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일본 금융청은 8일 가상통화 거래소 2곳에 업무정지 명령을, 7곳에 업무개선 명령을 내리는 등 단속의 고삐를 죄고 있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관련 규제가 논의되면서 앞으로 전 세계적으로 규제가 강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 때문에 최근 새로 계좌를 개설하는 이들이 현저히 줄면서 한때 ‘가상통화 대국’으로 불렸던 일본의 가상통화 업계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와 주오(中央)대가 고양이 수혈에 사용할 수 있는 인공혈액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지금은 고양이를 수술할 때 수혈이 필요하면 다른 고양이의 혈액을 사용해야 했는데 채혈 후 보관 가능 기간이 수일에 불과해 수급을 맞추기 어려웠다. 20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주오대 고마쓰 데루유키(小松晃之) 교수 연구팀과 JAXA는 국제우주정거장(ISS) 내 일본 실험시설을 활용해 인공혈액 성분을 합성했다. 연구팀은 먼저 무중력 상태에서 단백질 결정이 쉽게 만들어진다는 점에 착안해 ISS 내 시설에서 고양이 혈액에 포함된 ‘혈청 알부민’을 결정화했다. 그리고 그 구조를 파악한 후 합성을 통해 인공혈액 성분을 만들어 냈다. 이 신문은 “(개발한 인공혈액은) 혈액형에 따른 차이도 없어 (어떤 고양이에도) 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분말 형태로 저장할 수 있어 장기간 보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연구팀은 이 같은 연구 결과를 19일 영국왕립화학회 학술지 전자판에 게재했다. JAXA는 “혈액 부족 문제를 해결할 혁신적인 발명”이라며 “앞으로 동물 수혈 치료에 크게 공헌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앞으로 추가 실험을 통해 안전성을 확인한 후 실용화에 나설 방침이다. 또 현재 진행 중인 개 인공혈액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 펫푸드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일본 전역에는 953만 마리의 반려묘가 있다. 이는 전년 대비 2.3% 늘어난 것으로, 협회가 1994년 조사를 시작한 후 처음으로 반려견(892만 마리)을 앞섰다. 가족구조의 변화 등이 원인으로 분석된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한국은 제가 살아가는 원동력입니다.” 17일 일본 도쿄(東京) 스기나미(杉병)구의 자택에서 만난 마쓰우라 아유미(松浦步美·18) 양은 “한국을 알기 전에는 혼자 옷을 입고, 혼자 화장실에 가고, 혼자 목욕을 하는 등 다른 사람에게 당연한 일상생활을 연습하느라 몸도 마음도 힘들었다. 그런데 한국을 만난 후 삶이 완전히 바뀌고, 매일 행복해졌다”고 말했다.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로 한 번도 걸어 본 적이 없는 그는 9년 전 외조부모의 권유로 드라마 ‘대장금’을 보고 한국에 푹 빠졌다. 그는 “한복과 머리스타일이 너무 예뻐서 놀랐다. 이후 어머니 언니와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팬이 됐다”며 웃었다. 드라마와 영화를 보며 한국을 동경하던 마쓰우라 양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머니 언니와 함께 처음으로 서울을 찾았다. 그는 “2012년 독도 문제로 한일 관계가 안 좋았다. 괜찮을까 걱정했는데 지하철을 탈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달려와 휠체어를 들어줬다. 너나없이 도와주려 나서는 모습을 보고 감동했다”고 돌이켰다. 독학으로 한국어를 익힌 마쓰우라 양은 사극을 보고 조선 왕조에 관심을 갖게 돼 관련 책 수십 권을 독파했다. 2년 전 학교 잡지에 광해군을 주제로 한 글을 썼을 정도다. 애독서로는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을 꼽았다. 한국 관련 모임에 나가며 한국인 친구도 생겼다. 어머니인 지요(智世) 씨는 “딸이 한국어와 한국 역사를 공부하면서 자주 웃게 됐고,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마쓰우라 양은 “지금까지 한국에 5번 갔는데 휠체어 때문에 불편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들 자기 일처럼 도와주셔서 감동의 연속”이라며 “관광지에선 과자 같은 걸 주면서 ‘힘내라’고 응원해 주는 이들도 많다”고 고마워했다. 지난해엔 광해군 유배지였던 제주도에 다녀왔다. 마쓰우라 양은 지난해 9월 주일 한국문화원이 주최한 작문 대회에 출전해 일본어 에세이 부문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그는 ‘내가 느낀 한국’이라는 수상작에서 “한국은 사랑이 넘치고, 인정이 있고, 매우 친절한 사람이 많은 나라다. 그리고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나라”라고 썼다. 지난달 한국문화원 주최로 열린 스피치 대회에선 교복 차림으로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올라가 연설했다. 그는 한국을 접하고 바뀐 자신의 삶에 대해 설명한 뒤 “장애가 있다고 변명하는 대신 노력해서 꿈을 이루겠다. 놓인 자리에서 나 자신만이 피울 수 있는 꽃을 피우겠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이날 연설로, 주최 측이 제시한 사진을 보고 스피치를 하는 포토 메시지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마쓰우라 양은 “긴장했는데 많은 분이 오셔서 감동했다고 말해주셨다. 꼭 안아주신 분도 있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고교 2학년인 마쓰우라 양의 꿈은 대학에서 한국어를 공부해 통·번역 분야에서 활약하는 것이다. 그는 “언니도 한국을 좋아해 지금은 한국어를 배우러 서울에 갔다”며 “세 모녀가 모이면 드라마, 영화, 케이팝 등 한국 얘기로 화제가 끊이지 않는다”고 자랑했다. 마쓰우라 양은 “한일 관계가 나쁘면 내 일처럼 마음이 아프다”며 “한국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는 일본인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저처럼 한국의 모든 걸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한국인들에게 꼭 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최근 일본 재계에서 인공지능(AI)과 로봇을 활용해 필요 인력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젊은층 인구 감소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맞물리면서 일손 부족이 심화되자 해법으로 첨단 기술에 주목하는 것이다. 17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최대 통신사 NTT그룹의 자회사 NTT니시니혼은 2023년까지 250개 업무에 AI를 도입해 수천 명의 업무를 대체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먼저 이달 말까지 콜센터 등 60개의 업무에 AI를 시범 도입하고 효과를 지켜보면서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이 회사의 직원은 비정규직을 포함해 5만 명에 이른다. 신문은 “NTT니시니혼은 단카이(團塊) 세대(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난 세대)의 퇴직 후 신규 채용을 줄여 최근 10년 동안 인원을 40% 줄였다. 앞으로도 자연감소가 예상되는 만큼 AI를 도입해 업무를 유지하고 생산성을 높이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인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나가사키(長崎)현의 테마파크 하우스텐보스를 운영하는 여행사 HIS도 같은 날 “3년 안에 로봇과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해 직원을 1200명에서 800명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이미 테마파크 내에 운영하는 ‘이상한 호텔’에 200대 이상의 로봇을 배치해 144개 객실을 단 7명의 종업원이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이 호텔의 종업원 수는 다른 호텔들의 4분의 1 수준. 본업인 여행업에서도 AI를 활용해 현재 3000명이 넘는 상담직원 수를 줄일 방침이다. 금융권에도 첨단 기술을 활용한 인력 절감 움직임이 거세다. 3대 메가뱅크(대형은행) 중 하나인 미즈호은행을 거느린 미즈호 파이낸셜그룹은 지난해 AI 등을 활용해 10년 동안 직원 3분의 1을 줄이겠다고 선포했다. 나머지 메가뱅크를 거느린 미쓰비시UFJ 파이낸셜그룹과 미쓰이스미토모 파이낸셜그룹도 지난해 4000∼9500명의 업무량을 AI 등으로 대체하겠다고 밝혔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미국이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 1000억 달러(약 107조 원) 감축을 목표로 중국을 압박하고, 이에 반발한 중국이 보복을 거론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이 시작한 보호무역 전쟁이 한층 격화되고 있다. 이미 중국산 철강에 높은 관세를 부과한 미국은 중국의 무역흑자가 줄지 않으면 가전제품, 신발, 의류 등에 추가로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제재 조치도 검토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4일 보도했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14일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주 트위터에 올린 ‘중국이 무역흑자를 10억 달러 줄이기를 원한다’는 글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그것은 (10억 달러가 아니라) 1000억 달러를 잘못 쓴 것”이라고 밝혔다. WSJ는 미 행정부 관리들이 이달 초 워싱턴을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경제 책사 류허(劉鶴)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에게도 같은 요구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4일 트위터를 통해 “우리나라를 상대로 만연한 불공정 무역 관행을 눈감아 줄 수 없다”는 글을 올려 무역전쟁을 계속할 것임을 천명했다. 지난해 미국의 대중국 무역적자는 3752억 달러(약 401조 원)로 2016년 3470억 달러에 비해 8% 늘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발생한 7087억 달러의 무역적자 이후 최대 적자 규모다. 미국의 압박에 중국도 격앙되고 있다.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5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어떠한 국가가 일방적으로 자국의 행동 준칙을 부과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만약 서로 원치 않은 상황이 발생하면 중국은 자신의 권익을 수호할 의지가 있다”고 말해 보복 조치 가능성을 시사했다. 관영 환추(環球)시보도 이날 “중국은 미국과 대등하게, 과도하지는 않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타격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한국산 철강 등에 고관세를 부과하자 이에 발맞춰 일본도 한국과 중국에서 수입하는 일부 철강 제품에 반(反)덤핑 관세를 매기며 보호무역 전쟁에 가세했다. 아사히신문은 15일 “재무성이 전날 심의회를 열고 ‘한국과 중국 기업이 일본 기업에 손해를 주고 있는 것이 인정된다’며 5년간 반덤핑 관세 부과를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14일 미주리주의 한 정치자금 모금 행사장 연설에서 “우리는 (한국과) 매우 큰 규모의 무역적자가 있는데도 그들을 보호해주고 있다”며 “우리는 무역에서 돈을 잃고, 군대(주한미군)에서도 돈을 잃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 동맹들은 자기 자신만을 걱정하고 우리(미국)를 걱정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지금 한국과 북한 사이에 3만2000명의 미군 병사가 주둔해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발언에 대해 한국과의 무역협상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꺼내들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불공정하다고 비난해왔다.주성하 zsh75@donga.com·한기재 기자 / 도쿄=장원재 특파원}
중국은 갑작스러운 미국 국무장관 교체가 미중 관계와 북-미 대화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4일 정례 브리핑에서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경질되고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국무장관에 내정된 데 대해 “중미 관계 발전에 영향을 받지 않기를 바란다”며 “북-미 간 대화 의사 등 한반도 정세에 긍정적인 변화가 이어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 자매지 환추(環球)시보는 이날 사설을 통해 “폼페이오는 CIA 국장 때 ‘미국 정보활동에 대한 중국의 위협이 러시아보다 작지 않다’는 발언을 했다”며 “폼페이오의 임명은 중미 관계에 불확실성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폼페이오 내정자가 중국을 미국의 전략적 경쟁자로 보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표적 강경파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자국과 잘 소통했던 틸러슨 장관의 갑작스러운 경질 소식에 당혹스러워하면서도 후임자인 폼페이오 내정자에 대한 정보 수집에 나섰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상은 이날 “(틸러슨은) 신뢰하면서 서로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는 상대였다.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 문제의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다. 후임자와 가능한 한 빨리 만나 의견 교환을 하고 싶다”고 말해 조만간 방미할 뜻을 밝혔다.베이징=윤완준 zeitung@donga.com / 도쿄=장원재 특파원}

일본 정부가 저출산 고령화 대책의 일환으로 현재 만 20세인 민법상 성인 연령을 만 18세로 낮추기로 했다. 14일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전날 각의(국무회의)를 열고 성인 연령을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한 민법 개정안을 의결해 국회에 제출했다. 가미카와 요코(上川陽子) 법무상은 “저출산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상황에서 청년층의 적극적인 사회 진출을 촉진하고, 이에 대한 자각을 높이는 정책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계획대로 2022년 4월부터 시행되면 일본의 성인 기준 연령은 1876년 이후 146년 만에 낮아지게 된다. 법이 개정되면 만 18, 19세도 은행에서 대출을 받거나 신용카드를 만들 수 있다. 또 자동차나 휴대전화 구입 등의 계약 행위도 가능하고 부모 동의 없이도 결혼할 수 있게 된다. 이번 결정에는 주요 선진국의 성인 기준이 만 18세인 사실이 영향을 미쳤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은 물론 미국도 대부분의 주에서 성인 연령 기준이 만 18세”라고 전했다. 한국은 2013년 7월부터 만 19세 기준을 적용 중이다. 다만 이번 민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음주와 흡연 그리고 경마 등 도박성 행위 가능 연령은 만 20세 이상인 현행 기준이 그대로 유지된다. 또 소년법 적용 기준을 현행 만 20세 미만에서 만 18세 미만으로 낮추는 문제는 더 논의하기로 했다. 일각에선 성인 연령 기준을 낮추면 무분별하게 대출을 받거나 악덕상술에 휘말려 고가의 상품을 구입하는 일이 늘어나는 등의 사회적 부작용이 생길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런 우려를 감안해 소비자 보호 대책을 강화할 방침이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일본 정부가 한반도를 둘러싼 대화 국면에서 자국만 소외되는 ‘저팬 패싱’ 논란을 불식하기 위해 북-일 정상회담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14일 북-일 정상회담에 대한 질문을 받고 “‘핵·미사일과 일본인 납치 문제의 포괄적 해결을 위해 무엇이 가장 효과적인지’라는 관점에서 앞으로 다양한 대응을 검토하고 싶다”며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요미우리신문은 이날 “정부가 북-일 정상회담 개최를 모색 중”이라며 “어떤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 신중하게 확인한 후 구체적인 조정에 들어갈 방침”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북한과 미국이 직접 대화를 나누는 상황에서 북한이 일본의 대화 제의에 응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많다. 2002년과 2004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을 때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부르는 등 북-미 관계가 냉랭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당시) 북한은 일본에 미국과의 중개 역할과 경제 협력을 기대했다”며 “북한이 원하던 미국과의 직접 대화가 현실화한 상황인 만큼 (지금은) 일본과의 협의를 재개할 인센티브(유인)가 작용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3일 “비핵화를 전제로 북한과 대화한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앞으로 한국과 긴밀히 협력하고 싶다”고 밝혔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는 등 빠르게 전개되고 있는 최근 한반도 대화 분위기에서 일본만 소외되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예정 시간 훌쩍 넘기며 높은 관심 아베 총리는 이날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구 총리관저에서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만나 “최근 남북 관계의 진전,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변화의 움직임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의 리더십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관련 설명을 위해 일본을 방문한 서 원장은 “아베 총리가 남북·북-미 정상회담의 성과가 나도록 모든 협력을 하겠다고 말했다”며 이같이 전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면담에서 “북한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말을 실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핵·미사일 문제와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이 일본의 기본 방침”이라며 납북 일본인 문제를 남북 대화 과정에서 다뤄줄 것을 요청했다. 서 원장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직접 비핵화 의지를 밝힌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라며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된 한반도 평화의 물결이 좋은 흐름으로 이어지려면 한일 간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문 대통령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또 “이런 흐름은 아베 총리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하는 좋은 분위기에서 시작됐다”며 감사의 뜻을 전달했다. 청와대는 이날 서면 브리핑을 통해 아베 총리가 서 원장에게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큰 담판을 해야 하는 만큼 이 기회를 단순히 시간벌기용으로 이용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가 북한의 대화 의지에 진정성이 있다고 평가한 대목이다. 이날 면담은 이례적인 일의 연속이었다. 당초 15분으로 예정됐으나 아베 총리가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의 진의, 북-일 관계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지 등을 세세히 물어 예정 시간의 4배가 넘는 1시간 5분으로 길어졌다. 서 원장은 5, 6일 대북특사단의 일원으로 방북해 김정은을 만났고, 8∼11일에는 워싱턴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대화 희망 메시지를 전달했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상,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국가안전보장국장,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노가미 고타로(野上浩太郞) 관방 부장관 등 아베 정권의 실세가 9명이나 배석한 것도 일본 측의 높은 관심을 반영한 것이다. 교도통신은 “일본 정부가 (서 원장의 설명을 들은 이후) 새로운 대북 정책 검토에 착수했다”며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염두에 두고 북-일 정상회담의 실현 가능성을 살피는 방향”이라고 전했다. 관저 소식통은 “납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김정은과의 직접 대화가 불가결하다”며 북-일 정상회담 추진 의지를 드러냈다. 성사되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004년 정상회담 이후 14년 만이 된다. 서 원장에 대한 일본 측의 의전도 남달랐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을 만날 때 자신만 높은 소파에 앉아 상대방을 내려다봐 결례 논란이 일었다. 이번에는 자신의 의자와 동일한, 높고 화려한 의자를 서 원장에게 제공해 의자 차별 논란을 피했다. ○ 정의용 실장은 러시아 외교장관 만나 전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면담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오후(현지 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을 만났다. 정 실장은 방북·방미 결과를 설명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신북방경제 등 남북 경제공동체를 위한 러시아와의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당초 추진했던 정 실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면담은 성사되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러시아 대선(18일)이 임박해 푸틴 대통령을 직접 만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 실장은 모스크바 방문을 끝으로 15일 귀국할 예정이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 문병기 기자}

아베 신조(安倍晋三·사진) 일본 총리는 9일 오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기자들을 만나 “북한이 비핵화를 전제로 (미국과) 대화하기로 한 변화를 평가한다”며 “이는 미일, 한미일, 국제사회가 함께 고도의 압력을 가한 성과”라고 밝혔다. 또 “(북한이) 핵·미사일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폐기를 위한 구체적 행동을 취할 때까지 최대한 압력을 가한다는 미일의 입장은 흔들림이 없다”며 여전히 대북 압박 기조를 강조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을 만난 뒤 정 실장의 북-미 정상회담에 관한 발표가 있기 직전인 오전 8시 50분 아베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내용을 설명했다. 30분간의 통화 말미에 아베 총리는 4월 초 미국에서 미일 정상회담을 갖자고 제의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였다. 아베 총리는 5월 북-미 정상회담 전에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대북전략을 조율하겠다는 생각이다.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핵 포기) 방향으로 북한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면서도 “북한의 실제 행동을 제대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가 북-미 대화 성사를 ‘평가한다’고 밝혔지만 일본 정부는 당황한 기색이다. 외무성 간부는 북-미 대화 소식이 전해진 후 교도통신에 “전개 속도가 좀 빠르다”고 말했다. 이 통신은 “총리 관저와 외무성에서는 북한의 대화 노선이 국제사회에서 평가받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특히 남북 및 북-미 대화가 일본이 배제된 채 추진되면서 한반도 문제에서 일본이 소외되는 ‘저팬 패싱’에 대한 우려가 크다. 일본이 배제되면 아베 정권의 중점 과제인 납북 일본인 문제 해결도 어려워진다. 일본으로서 최악의 상황은 북-미 협상의 결과 북한의 핵·미사일이 지금 상태로 동결되는 것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일본을 겨냥한 중·단거리 미사일은 이미 배치된 상태여서 안보 불안이 해소되지 않은 채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당분간 일본은 북-미 대화에 일본의 이해가 반영되도록 노력할 방침이다. 다음 주 미국을 방문하는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상은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을 만나 일본의 입장을 설명한다. 제재 해제를 바라는 북한에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수용 등의 조건도 내걸 것으로 예상된다. 고노 외상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북한의 구체적 조치가 없으면 경제제재와 군사 압력은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외무성은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특사단 방북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12일 일본을 방문한다”고 밝혔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다음 달 남북 정상회담 개최가 확정되고 북-미 대화 가능성이 타진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 중국은 북-미 간 직접 대화를 통한 해결을 촉구했다. 일본은 정상회담 개최만으로 북한에 대가를 제공해선 안 된다며 대북 압박 유지를 강조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8일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평창) 겨울올림픽 기간 북한은 새로운 핵과 미사일 실험을 중단했고 한국과 미국도 북한을 겨냥한 군사 훈련을 중단했다”며 “이는 중국이 제기한 쌍중단(雙中斷·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 제의가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기본적인 조건을 조성하는 데 좋은 처방이었음을 입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현재 한반도 문제의 해결은 정확한 방향을 위해 중요한 한 걸음을 내디뎠다”며 “각국이 적극 호응하고 협력해 대화와 해결의 궤도로 복귀시켜야 하는 것이 다음 관건”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북-미 양측이 대화와 접촉을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 한반도 상황에 대해선 ‘빙동삼척 비일일지한(氷凍三尺 非一日之寒·얼음이 석 자나 언 것은 하루 추위에 다 언 것이 아니다)’이란 고사성어를 인용하면서 “터널의 끝에 서광이 비치고 있지만 앞길은 순조롭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강조해온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이날 “(북한이) 대화에 응했다고 해서 (대북) 제재를 완화하거나 (북한에) 대가를 주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이날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대화를 위한 대화는 의미가 없다”며 “관계국과 연계해 북한의 정책을 바꾸기 위해 온갖 방법으로 압력을 최대한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다음 주 일본을 방문하는 것과 관련해선 “한국 정부의 발표 때 분명하지 않았던 점에 대해 설명을 듣고 깊은 의견 교환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 내부에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아들이는 등 구체적인 정책 변화 없이는 북한을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미국의 대표적 대북 강경파인 존 볼턴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도 6일(현지 시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북한은 오로지 운반 가능한 핵무기를 손에 넣는 데만 진지하다. 북한이 결승선을 몇 미터 남겨놓고 왜 멈추겠느냐”며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했다. 그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협상 대상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북한은 세계 최고의 사기꾼들”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베이징=윤완준 zeitung@donga.com / 도쿄=장원재 특파원}

지난달 20일 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 요코하마(橫濱)의 대형 서점. 매장 한편에 ‘새로운 한국 문학’이라는 간판과 함께 30여 종의 책이 전시돼 있었다. 박경리의 ‘토지’부터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의 ‘채식주의자’,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 등 국내 유명 작가들의 소설이 포함돼 있었다. 이 서점의 사쿠라이 노부오(櫻井信夫) 점장은 “지난해 7월 특설 코너를 만들면서 한두 달만 두려고 했는데 책이 계속 팔려 나가 지금까지 연장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일본에선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에 이어 한국 문학이 주목받고 있다. 젊은 작가의 작품을 시리즈로 내는 출판사가 등장했고, 언론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으며 저변을 넓히고 있다. 그동안 일본에선 한국 문학이 식민지, 한국전쟁, 민주화운동 등 무거운 주제를 주로 다루는 것으로 인식돼 독자층이 넓지 않았다. ‘한국 문학의 선물’ 시리즈를 펴내는 쇼분샤의 사이토 노리타카(齊藤典貴) 편집대표는 “한국의 젊은 작가들은 스타일이 자유로우면서도 세월호 참사 같은 시대적 공기를 작품 안에 담아내는 것이 매력적”이라고 분석했다. 최신 한국 문학을 일본에 본격적으로 소개하기 시작한 곳은 한국 책 전문 출판사 쿠온이다. 2011년 ‘채식주의자’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새로운 한국문학’ 시리즈 17권을 냈다. 김승복 쿠온 대표는 “한국 문학은 좋은 작품이 많아도 그동안 번역출판이 많이 안 됐다. 최근 시인 사이토 마리코 씨가 번역한 박민규의 소설집 ‘카스테라’가 제1회 일본 번역대상을 받는 등 실력 있는 번역가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올해 제4회 번역대상 후보 18편 중 한국 소설이 3편이나 된다. 쿠온에서 진행 중인 번역 콩쿠르에는 응모자가 212명이나 몰렸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강원도 출신 작가의 책을 모여 읽는 등 독자 모임도 활성화되고 있다. 지난달 20일 모임에 참석한 이시카와 게이카(石川圭花) 씨는 “한국 문학은 저항문학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읽어 보니 달랐다. 최근 한강과 박민규에게 빠져 있다”고 했다. 소설 ‘토지’의 배경인 경남 하동과 ‘소년이 온다’의 배경이 된 광주를 둘러보는 등 문학투어 행사도 열린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도쿄신문 등 일간지에도 연이어 한국 문학 특집 기사가 게재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6일 “번역으로 유명한 출판사들이 최근 한국 소설을 연달아 출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출판사의 한국 소설 번역은 2016년 15권에서 2017년 23권으로 늘었다.요코하마·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일본은 5일 하루 한국의 대북 특별사절단 파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봤다.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대북 특사단 관련 질문을 받고 “특사를 포함한 대북 대응에 있어 과거 대화가 비핵화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교훈을 충분히 감안해 대응해야 한다”며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상은 특사단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만났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열심히 특사를 불러들인 것은 제재가 그만큼 효과를 거뒀다는 것”이라며 “미소(微笑) 외교에 눈을 빼앗겨서는 안 되며 북한은 확실한 비핵화를 향해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중국 정부는 특사단의 방북에 “환영과 지지”를 표시하면서 북-미 간 비핵화 협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특사단이 방북해 북한과 (한반도) 관련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며 “이번 방문이 긍정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남북 관계 개선의 노력이 한반도 비핵화와 장기적인 평화 실현의 공동 노력으로 확대되기를 바란다”며 “중국도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쿄=장원재 peacechaos@donga.com /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인구 감소와 고령화의 직격탄을 맞은 일본이 점차 ‘외국인 없이는 안 돌아가는 나라’가 되고 있다. 지방에선 외국인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소멸 위기를 극복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NHK는 기초자치단체(시구정촌) 1741곳의 인구 변화를 자체 분석한 결과 최근 4년 동안 지자체 83%에서 일본인 인구가 줄어든 반면 75%에서는 거주 외국인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고 5일 전했다. 거주 외국인 수 자체는 도쿄(東京) 오사카(大阪) 등 대도시가 많았지만 증가율이 높은 곳은 지방이었다. 가장 증가율이 높은 나가사키(長崎)현은 2013∼2017년 거주 외국인이 59.7% 증가했다. 오키나와현(51.1%), 미야기현(37.4%) 등도 증가율이 높은 편이었다. 지방에서 외국인이 증가한 것은 일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 실습생을 적극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NHK는 “전국 각지의 모든 업종에서 이미 외국인은 없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특히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농어촌에서 외국인 의존도가 높다. 굴 양식으로 유명한 히로시마(廣島)현의 경우 20, 30대 어민 중 절반 이상인 52.6%가 외국인이다. 특히 인구 감소가 본격화된 2010∼2015년에 외국인 어업 종사자가 4배로 급증했다. 외국인 없이는 굴 채취업 유지가 어려울 정도다. 인구 감소의 위기를 외국인 유치로 해결하려는 지자체도 나타나고 있다. 시마네(島根)현 이즈모(出雲)시는 전자회사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늘자 2016년 거주 외국인의 30% 이상을 정착시킨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그리고 외국인 상담 직원을 채용하는 등 공을 들였다. 그 결과 최근 4년 동안 900명의 일본인이 줄어들 때 1100명의 외국인이 늘며 인구 유지에 성공했다. 일본에 사는 외국인 수는 지난해 6월 기준 인구의 2%에 맞먹는 247만 명으로 사상 최대였다. 앞으로 외국인에 대한 의존도는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진동이 느껴지면 식탁 다리를 꽉 잡으세요.” ‘지진체험차’ 안내를 맡은 소방관이 말했다. 잠시 후 진도 7(일본의 최고 진도, 한국 기준으로 10∼12)의 진동이 밀려 왔다. 바닥이 무너질 듯해 재빨리 자세를 낮췄다. 흔들림은 20초간 이어졌는데, 체감 시간은 그 몇 배나 됐다. 1월 말 도쿄의 한 공원에선 외국인 거주자를 위한 방재훈련이 열렸다. 48년 만에 최강 한파가 온 날이었지만 각국 대사관 관계자와 유학생 230여 명이 체육관을 메웠다. 취재와 체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을 때 주저 없이 체험을 고른 것엔 이유가 있었다. 기자는 2년 전 구마모토 호텔에서 진도 6강(한국 기준으로는 9)의 지진을 체험했다. 책상 아래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침대가 롤러코스터처럼 흔들려 엄두를 못 냈다. 나중에 복도 세탁실의 벽걸이 건조기가 바닥에 떨어진 걸 보고 모골이 송연했다. 직원 안내로 로비에서 쪽잠을 자면서 집이라면 제대로 대처할 수 있었을까 자문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일본에서 지내면 재해는 일상이 된다. 그런 만큼 무감각해지기도 쉽다. TV에서 지진 속보가 나와도 진도 3∼4 정도(한국 기준으로 5∼6)면 그러려니 하고 만다. 대피 요령을 담은 책자가 왔을 때도 대충 훑어보기만 했다. 듣는 게 있으니 지진이 났을 때 엘리베이터를 타면 안 된다는 정도는 알게 된다. 하지만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다르다는 걸 구마모토에서 절실히 느꼈다. 그러고도 바쁘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다 특파원 임기가 끝나기 전 한번은 제대로 훈련을 받아야겠다 싶어 훈련장을 찾은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 화재, 지진 등이 연달아 발생한 것도 참가 이유가 됐다. 이날 반나절 동안 무너진 건물에서의 환자 이송법, 의식불명 환자 대처법, 국지 호우 발생 시 대응 요령, 피난소 생활 요령 등을 배웠다. 유사 시 대비 훈련을 제대로 받은 건 제대 후 15년 만이었는데 세월과 함께 달라진 게 적지 않았다. 스마트폰 기상레이더 앱으로 구름의 움직임을 관측하면 집중호우가 언제 어디에 내릴지 알 수 있었다. 대피할 때 의사소통이 안 되면 통역 앱을 활용하라고 했다. 감염 우려가 있으니 의식불명 환자에게 인공호흡을 하지 말라고 했던 것도 의외였다. 그 대신 심장마사지를 하고 자동심장충격기(AED)를 활용하라고 했다. 훈련을 마치니 비상식량과 참고자료를 한 가득 안겨줬다. 함께 훈련을 받은 한국인 주부는 “일본에 온 지 4년 됐지만 훈련은 처음”이라며 “가족을 지킬 자신이 생겼다”고 했다. 방재훈련은 100번 보는 것보다 한 번 체험하는 게 낫다는 것에도 의견이 일치했다. 나중에 기자가 지진을 체험하는 모습이 NHK뉴스에 나온 걸 알게 됐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눈 감고 오만상을 쓰는 모습을 알아본 사람은 다행히 없었다. 실전 같은 훈련을 ‘우아하게’ 할 순 없는 법이다. 지난달 포항에서 지진이 난 뒤 통보까지 7분이나 걸린 게 논란이 됐다. 그런데 빠른 통보만큼 중요한 게 민간의 대처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이날 주최 측은 “1995년 한신대지진 때 묻히거나 갇힌 사람 중 97.5%가 스스로 빠져나오거나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살았다”며 “자신을 스스로 구하는 자조(自助)와 이웃끼리 돕는 공조(共助)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훈련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국가와 지자체의 역할이라면, 적극 참여해 자신과 이웃을 지킬 능력을 키우는 것은 시민의 몫이라는 걸 실감했다. 장원재 도쿄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8일(현지 시간) 칠레에서 호주 브루나이 캐나다 칠레 일본 말레이시아 멕시코 뉴질랜드 페루 싱가포르 베트남 등 11개국(영문 알파벳순)이 모여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공식 서명한다. 지난해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탈퇴를 선언했을 때만 해도 폐기가 유력했던 TPP는 일본 등의 끈질긴 노력으로 부활했고, 중국 견제를 위해 트럼프 행정부까지 복귀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상황이 됐다. 자칫 한국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트럼프가 팽개친 TPP, 아베가 기사회생시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016년 11월 미국 뉴욕에서 트럼프 당시 당선자를 만났을 때 TPP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맞서기 위해 미일이 손잡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자유무역을 주도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선거 기간에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 재앙 같은 협정”이라며 TPP를 비판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듬해 1월 취임과 동시에 TPP에서 탈퇴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TPP 같은) 다자협상 대신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양자무역협상에 주력하겠다”고 강조해 왔다. 미국은 TPP 가입국(미국 포함 12개국 기준)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60% 이상을 차지했다. 이 때문에 미국 없는 TPP는 유명무실하며 조만간 폐기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미국 없이는 참가국 전체 GDP의 85% 이상 비준이라는 발효 요건도 불가능했다. KOTRA는 당시 “TPP 무산은 기정사실”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싱가포르는 중국이 주도하는 RCEP 협상에 주력하겠다고 했고, 캐나다 말레이시아 등은 양자협상으로 돌아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일본을 필두로 호주 뉴질랜드 등은 포기하지 않고 ‘미국을 빼고라도 진행하자’며 의기투합했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를 선언한 날 맬컴 턴불 호주 총리와 전화하며 “TPP를 살리자”고 다짐했다. 자유무역협정(FTA) 후진국이었던 일본은 쌀 시장 개방 결단까지 내리고 국회 비준까지 마친 다음이어서 물러설 곳이 없었다. 아베 총리에게 TPP는 인구 감소로 인한 시장 축소를 만회할 아베노믹스의 핵심이었다. 중국 주도의 역내 경제 질서에 대항할 ‘비장의 카드’이기도 했다. 호주와 뉴질랜드도 낙농업 분야 시장 확대를 위해 TPP에 적극적이었다. 결국 미국을 제외한 11개국은 지난해 5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모여 ‘2017년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까지 협상을 마무리 짓자’고 합의하면서 반전의 계기를 만들었다. TPP 부활에는 남은 11개국 GDP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일본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아베 총리는 관계국 정상들과 릴레이 회담을 갖고 동분서주하며 불씨를 살렸고, 고비 때마다 직접 정상들과 통화하며 돌파구를 찾았다. 막판에 캐나다가 외국 영화 규제 강화를 주장하며 협정 수정을 요구했을 때 아베 총리는 나머지 국가들과 긴밀하게 조율하며 대(對)캐나다 포위망을 결성해 양보를 이끌어 냈다.○ 미국 돌아올 길 열어둔 TPP, 8일 칠레서 서명 지난해 11월 베트남 다낭에 모인 TPP 11개국의 통상장관들은 1000개 이상의 전체 항목 중에서 미국과 관련된 항목을 동결(시행 보류)하기로 하고 큰 틀에서 합의했다. 의약품 개발 데이터 보호기간 등 미국이 강하게 주장해 온 22개 항목을 동결했고, 미국이 복귀하면 그 해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기존 TPP 협정의 내용을 최대한 유지했고 대신 명칭만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으로 변경했다. CPTPP는 8일 칠레의 수도인 산티아고에서 공식 서명된다. 이후 각국의 비준 절차를 거치게 되는데 과반수인 6개국이 비준하면 발효된다. 참가국들은 내년 발효를 목표로 하고 있다. 협정이 발효되면 일본은 모든 무역 품목의 95%, 나머지 10개국은 99% 이상 관세가 철폐된다. 또 세계 GDP의 13%, 교역량의 15%를 차지하는 거대 경제권이 탄생한다. 당초 미국이 포함됐을 때 세계 GDP의 38%, 교역량의 26%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던 것과 비교하면 규모는 줄었다. 하지만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자유무역의 불씨를 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는 평가다. 일본은 지난해 유럽연합(EU)과 경제동반자협정(EPA)에 이어 메가 FTA를 성사시키며 자유무역의 가치를 지키는 선봉에 선 모양새가 됐다. 미국은 최근 TPP에 복귀할 수 있다는 신호를 연이어 보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 1월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 참석해 “더 나은 협상으로 조건이 좋아진다면 TPP를 다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턴불 호주 총리와의 정상회담 직후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비슷한 발언을 했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도 지난달 27일 “재가입과 관련한 고위급 대화가 시작됐다”고 했다.○ 역내 공급망 구축, 한국 기업에는 불리 일본 등 참가국들은 언제든 미국이 복귀하면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협정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무역 질서를 주도한다는 목적에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협상’을 조건으로 내거는 것에 대해선 부정적 기류가 강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특유의 강경한 태도로 나머지 참가국에 대폭 양보를 강요할 경우 간신히 지킨 TPP의 틀 자체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가 올 1월 국회에서 미국의 복귀를 환영하면서도 “합의는 유리 세공같이 (정교하게) 이뤄졌다. 재협상은 매우 어렵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TPP 참가국 사이에선 미국이 올 11월 중간선거 이후 본격적으로 TPP 복귀 수순에 돌입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국이 TPP에 참여하면 일본 기업이 말레이시아산(産) 부품으로 베트남에서 제품을 만들어 미국에 수출할 때도 특혜 관세를 적용받을 수 있다. 시간이 갈수록 TPP 회원국 사이에서 역내 공급망이 구축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한국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는 한미 FTA 재협상을 언급하며 한국에 대해 무역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데 그 결과에 따라 한국 측의 피해는 더 커질 수 있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미국 할리우드의 거물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과 한국의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 화려한 경력에서 공통점을 찾기 힘든 두 사람이지만 연결고리가 하나 있다. 한미 양국을 각각 뒤흔들고 있는 ‘미투(#MeToo) 운동’의 진원(震源)이라는 점이다. 와인스틴은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촉발된 미투 캠페인의 핵심 타깃이었다. 안 전 검찰국장은 그로부터 100일을 조금 넘긴 올해 1월 말 시작돼 문화예술계 등을 강타하고 있는 한국판 미투의 도화선이었다. 양국의 미투 운동은 권력이나 특정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남성 ‘갑’을 상대로 ‘을’의 위치에 있는 여성이 피해 사실을 대중에게 알리고 법에 호소하는 등의 기본 구조는 비슷하다. 다만 미투 운동이 본격화되는 양상과 이를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 등에서는 적잖은 차이가 있다. 여기에 미국은 해당 분야에서 정상급 인지도를 갖고 있는 인사들이 주도하는 반면 한국에선 상대적으로 인지도 높은 인사들이 나서기를 꺼린다. 법률적인 환경과 문화적인 배경의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투의 진원, 미국은 할리우드 vs 한국은 검찰 미국의 미투 운동은 2006년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양상으로 확대된 결정적인 계기는 미국 뉴욕타임스가 지난해 10월 와인스틴이 여배우와 여직원들을 상대로 갖가지 성추행 및 성희롱을 한 사실을 보도하면서부터다. 이후 앤젤리나 졸리, 귀네스 팰트로, 애슐리 저드 등 세계적인 스타 여배우들이 성추행을 당한 과거를 털어놓으며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로 미투 운동이 확산됐다. 한국의 미투 운동은 2016년 문화예술계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당시에는 관련 분야의 관심을 촉구하는 수준에 머물면서 ‘찻잔 속 태풍’에 그쳤다. 현재와 같은 폭발력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서지현 검사의 폭로’다. 술 취한 검찰 고위 간부로부터 상갓집에서 원하지 않는 신체 접촉을 당했고, 이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려 하자 보복성 인사 조치를 당했다는 서 검사의 폭로 이후 미투 운동은 한국 사회 전반에서 들불처럼 번졌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검찰은 사법정의를 실천하는 게 목적인 국가기관인 만큼 윤리 수준에서도 국민들의 기대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며 “(문화예술계처럼 대중적인 관심이 늘 집중되는 분야는 아니지만) 검찰 내 고위 인사가 성추행을 저질렀고, 피해자가 이를 방송에서 자세히 밝힌 건 사회적으로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는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다양한 권력 남용과 불공정 수사 의혹 등으로 검찰이란 조직 자체에 대한 불신과 반감이 쌓여 있었던 점도 배경으로 작용했다. ○ 미국은 정상급 스타가 주도하지만 한국은 아직… 미투 운동을 주도하는 인사들의 면면도 차이가 있다. 미국에선 와인스틴이 배우와 회사 직원 등 주변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추행과 성희롱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졸리, 팰트로, 저드 등 글로벌 스타들이 앞장섰다. 이들은 과거 자신이 당했던 피해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나아가 조직적인 미투 운동 지지 움직임을 펼쳤다. 한국에선 아직까지는 정상급 스타나 유명 인사들이 나서기를 꺼리고 있다. 고은 씨의 성추문을 폭로한 최영미 시인 정도가 그나마 대중적으로 익숙한 이름이다. 문화예술계 안팎에서는 여성의 사회적 위상이 높지 않았던 과거에 성희롱과 성추행이 더 심하고 훨씬 많았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공공연한 비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유명 여성 문화예술인들이 미투 운동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선 한국이 아직까지 성폭력과 여성 지위 향상 같은 이슈를 자유롭게 논의하기 어려운 분위기임을 방증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유명 인사들의 경우 자칫 자신이 갖고 있는 특권이나 지위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길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에선 연예인들이 어떤 정치적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을 지지하는 연대가 존재하고 이어 사회적인 목소리가 만들어지는 문화가 형성돼 있다는 지적이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국의 경우 양성평등과 차별 방지에 대한 교육이나 논의의 역사가 길다”며 “한국에 비해 여성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 때문에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도 적다”고 말했다. 이어 “정상급의 여자 배우들이 할리우드 권력자(와인스틴)를 대상으로 정면 대결을 펼칠 수 있다는 것도 사회적으로 이런 문제 제기를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한국 미투 운동의 걸림돌, ‘명예훼손법’ 한미 양국의 미투 운동이 다르게 진행되는 이유 중 하나는 피해자들의 대응 태도에서 비롯됐다. 미국은 소송 등에 적극 나서는 반면 한국은 당사자 사과를 요구하는 수준에 머무는 등 소극적인 대응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차이는 국내에만 있는 법률적인 제약이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허위사실이 아닌 진실을 폭로해도 처벌받을 수 있도록 한 형법 제307조(‘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발목을 잡고 있다. 이 법은 공개적으로 사실을 밝혀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비방할 목적이 더해진 경우 정보통신망법 제70조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도 있다. 결국 피해자들이 성폭력 사실을 알리고 싶어도 이런 법들에 저촉돼 역고소를 당할까 봐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피해자 발언의 사실 여부와 명예훼손의 조각 사유인 공익은 그 성격과 기준이 불분명한데 공개적인 폭로는 명예훼손 구성 요건에 분명히 해당해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은 1964년 명예훼손 처벌법을 위헌 처분한 ‘개리슨 대 루이지애나’ 사건 이후 대부분 주에서 명예훼손 처벌 조항을 폐지했다. 매사추세츠주, 미네소타주, 몬태나주, 뉴햄프셔주 등 4개 주만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그만큼 피해자들이 자유롭게 대응할 수 있다는 의미다.○ 미투 운동, 일반으로 확대 중 미국의 미투 운동은 유명 여성인사들 중심에서 일반인들로 확대되는 추세다. ‘타임스 업(Time‘s Up·한 시대가 끝났다)’ 단체 결성이 대표적인 사례다. 올해 1월 1일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각계 여성 300여 명이 모여 결성한 타임스 업은 문화예술계뿐만 아니라 블루칼라와 저소득층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 방지와 지원 활동도 활발하다. 타임스 업에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물론이고 법조계 인사들도 참여하고 있다. 특히 법조계에선 자원봉사 형태로 무료 법률 상담을 해준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건이라 법적 대응에 나서기 어려운 피해자들을 돕는 데도 적극적이다. 필요할 경우 소송비 지원 같은 활동도 가능하다. 현재까지 마련된 기금 규모도 2000만 달러(약 216억 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 교수는 “미국의 경우 여성 성폭력에 대응하는 문화가 강한 데다 최근 유명인들까지 적극적으로 나서는 상황이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관련 움직임이 확장되기 용이한 여건”이라며 “당분간 미투 움직임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한국에서도 앞으로 미투 운동은 법조계, 문화계를 넘어 일반 직장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의 익명 게시판에는 이미 직장 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글이 수백 건 올라와 있다. “직장 상사가 좋은 노래라며 보내온 뮤직비디오를 틀어보니 낯 뜨거운 영상이 튀어나왔다”거나 “회식할 때 내 허벅지를 주무르더니 다음 날 딸 같아서 그랬다고 말하더라”는 식이다. 하지만 미국처럼 조직화되지 못하고 개인의 고발 단계에 머물러 있다. 한편 최근 확산 일로에 있는 미투 운동의 실상을 접하면서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적잖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성폭력이 만연해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가해자의 잘못된 과시욕과 피해자의 피해의식, 방관자의 무관심 등이 깔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석정호 연세대 의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많은 가해자들이 피해자의 심리를 왜곡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들이 변화에 대한 믿음을 갖기 시작하면서 성희롱을 쉬쉬하던 일반 기업에서도 ‘작은 미투 운동’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관대했던 佛, 길거리서 집적대면 과징금 12만 원▼성폭력 고발 목표 같지만 나라마다 상황 제각각현재 미투 운동은 전 세계적인 사회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양상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 프랑스는 그동안 남성들의 유혹에 관대해 상대적으로 성에 대해 자유롭다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말 이후 프랑스 전역에서 미투 운동을 지지하며 남성들의 성희롱을 규탄하는 여성들의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성의 40% 이상이 동의하지 않은 신체적 접촉이나 성희롱 발언을 경험했고, 심지어 10%는 성폭행을 당한 경험도 있다는 충격적인 조사가 계속해서 공개됐다. 이에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는 성희롱과 추행을 바로잡겠다며 낯선 여성에게 외설적인 발언을 하거나 길을 막거나 쫓아가는 이른바 ‘캣콜링(cat-calling)’ 행위에 90유로(약 12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영국은 정치권에서 미투 운동이 태풍급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장관이나 의원의 여성 비서진이 성추행을 당했다는 폭로가 이어지면서 테리사 메이 내각이 휘청거릴 정도다. 메이 총리의 정치적 동지로 국무조정실장 겸 수석비서 역할을 한 데이미언 그린 영국 부총리가 컴퓨터에 음란물이 들어 있고 여성 활동가의 무릎을 만졌다는 의혹에 결국 물러났다. 마이클 팰런 국방장관은 2002년 여기자를 성희롱한 사건으로 사임했고, 마크 가니에이 국제통상부 각외장관(수석차관)은 여비서에게 성인용품 가게에서 전동 자위기구 두 개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킨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에 영국 의회는 비서진이 성희롱 사실을 편하게 고발할 수 있는 기구를 마련하고, 성희롱이나 괴롭힘을 가한 사실이 드러나는 의원은 의원직을 박탈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영국 의회 행동지침을 마련 중이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미투 운동이 진행 중이지만 파장은 다른 선진 외국에 비해서 ‘찻잔 속 태풍’ 수준이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이토 시오리(伊藤詩織) 씨가 지난해 5월 실명으로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폭로하면서 일본판 미투 운동은 시작됐다. 이토 씨는 2015년 4월 취업 상담을 위해 야마구치 노리유키(山口敬之) 당시 TBS 워싱턴 지국장을 만났다가 성폭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처녀냐’고 묻는 등 상식 이하의 태도를 보이거나 야마구치 지국장을 불기소 처분하는 등 기대를 밑도는 반응으로 일관했다. 이에 이토 씨는 ‘블랙박스’라는 책을 내고 주일 특파원협회에서 기자회견을 열며 전면전에 나섰다. 현재 야마구치 전 지국장을 상대로 1000만 엔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후 작가이자 블로거인 하추 씨가 광고 대기업 덴쓰에서 일할 당시 밤에 선배 사원의 집에 불려갔다는 등의 피해를 고백했고, 연출가인 이치하라 미키야(市原幹也) 씨가 과거 자신의 성추행 사실을 고백하고 사죄했다. 하지만 한국이나 미국처럼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양상은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에서는 2015년 후생노동성 조사에서 일하는 여성의 3분의 1이 성추행 피해를 경험한 적이 있을 정도로 선진국치고는 아직 성추행에 대한 의식이 낮은 편이다. 화합을 강조하며 내부 폭로를 막는 사회적 분위기도 미투 운동의 확산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이세형 turtle@donga.com·이설·김상훈 기자·파리=동정민 ditto@donga.com/도쿄=장원재 특파원}
일본 정부가 한중일 3국 정상회의를 5월 초 도쿄(東京)에서 열자고 한국과 중국에 제안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1일 보도했다. 성사되면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후 첫 방일이 된다. 다만 한국은 정상회의 개최에 동의했으나 중국이 유보적인 태도를 보여 성사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고 신문은 전했다. 한중일 정상회의는 2008년 이후 3개국을 돌면서 6차례 개최됐다. 가장 최근에는 2015년 11월 서울에서 열렸다. 이후 일본에서 열릴 차례였지만 중국 측의 소극적인 자세와 한일관계 냉각, 한국의 대통령 탄핵 정국 등을 이유로 계속 미뤄져 왔다. 일본은 구체적으로 골든위크 연휴(4월 28일∼5월 6일)가 끝난 직후에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방안을 한국과 중국에 제시했다고 한다. 신문은 “한국은 응할 의향을 보이고 있지만, 중국이 답변을 유보하고 있다”고 전했다. 성사되면 중국 측 참석자인 리커창(李克强) 총리로서도 첫 방일이 된다. 일본은 한중일 정상회의를 연 후 중일 평화우호조약 체결 40주년인 올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방중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답방을 성사시키며 본격적인 중일관계 개선에 나설 방침이다. 이를 위해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상이 1월 중국을 방문해 리 총리를 만나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을 요청한 바 있다. 고노 외상은 당시 “매우 전향적인 답변을 들었다”고 밝혔다. NHK에 따르면 당시 리 총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가 끝나는 3월 중순 이후 가능한 한 빠른 시일에 한중일 정상회의를 열 수 있도록 조정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의 방일이 성사되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으로 냉각된 한일관계가 풀리는 것에도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