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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인문대 교수 14인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문학 철학 역사학 언어학 등의 측면에서 고찰했다.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이 발달하고 인간의 독특한 요소라고 생각됐던 영혼 감정 자유의지가 유전공학에서는 단지 물질적 알고리즘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상황에서 각 분야 교수들이 인간의 정체성, 영혼과 의식, 욕망과 좌절, 본성과 자격 등 4가지 범주로 나누어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의 답을 찾아간다. 인간이 기계나 인공지능과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무엇인지, 인간의 독립성을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꿈, 이상을 통해 동물과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고찰한다. 이 밖에 인간의 욕망과 관계된 부(富)와 성(性)을 통해 인간 행복의 조건에 대해 분석하고 도덕성의 본질과 본성, 법적 주체로서의 인간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논의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페르미’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수많은 물리학 용어를 비롯해 미국 국립 연구소인 페르미랩, 나사(NASA)에서 2008년 발사한 페르미 감마선 우주 망원경까지. 1938년 노벨상을 수상한 이탈리아계 미국인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의 이름을 딴 용어들만 봐도 ‘물리학의 교황’이라 불리는 그의 명성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인간 페르미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 저자는 2006년 자신의 아버지가 남긴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페르미에 대한 글을 보고 전기를 써 보기로 결심한다. 페르미는 미국의 원자폭탄 실험인 ‘맨해튼 프로젝트’와 수소폭탄 제조 실험에도 참여하게 된다. 저자는 가족 및 동료 등을 인터뷰해 당시 학자로서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그가 어떤 모습으로 실험에 참여했는지를 촘촘하게 그렸다. 물리학자의 전기인 만큼 물리학 용어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다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일본이 독도 영유권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한국을 압박하는 동시에 일본 내부 단속을 위한 카드일 뿐이다. 아베 신조 총리가 결단을 내릴 가능성은 낮다.” 한일 관계 전문가인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양학부 교수는 일본이 2012년부터 독도 문제를 ICJ에 제소하겠다며 한국을 압박하고 있지만 결국 미일동맹 관계 때문에 실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호사카 교수는 16일 열리는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하계 학술회의 ‘동북아 국제질서 속의 해양전략과 영토문제’의 발제문에서 일본이 ICJ에 독도 문제를 가져갈 경우 오히려 한국의 실효 지배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고, 중국과 분쟁 중인 센카쿠 열도와 비교해 이중적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국제적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15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일본이 실효 지배하는 센카쿠 열도에 대해서는 ‘중국과 영토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ICJ 제소 의사가 전혀 없지만, 한국이 ‘일본과 영토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는 독도에 대해서만 일방적으로 제소를 한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아베 총리는 한국과 일본 간 분쟁을 원치 않는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한다. 만약 ICJ에 제소할 경우 독도 문제의 현상 유지를 바라는 미국을 실망시킬 수 있다. 확고한 미일동맹을 표방하는 아베 총리가 결단을 내릴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 정부의 ICJ 제소 주장은 독도 영유권을 강하게 주장하는 극우 정치인들을 달래기 위한 내부용 카드라는 주장도 덧붙였다. 마루야마 다쓰야(丸山達也) 일본 시마네(島根)현 지사는 6일 일본 정부에 ICJ 제소를 포함해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의 날’을 정부 공식 행사로 격상시켜 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호사카 교수는 “일본 정부가 국내 여론을 의식해 제소 강행 입장을 거듭 밝히고는 있지만, 정확한 시점은 모호하게 흐리는 전략을 지속적으로 취할 것”이라고 했다. 호사카 교수는 발제문에서도 이같이 전망했다. 앞서 일본이 14일 각의(국무회의)에서 채택한 올해 방위백서에서도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억지 주장을 16년째 반복하고는 있지만, 정작 득보다 실이 더 많아 ICJ 제소를 실행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탁현민 대통령의전비서관의 측근이 설립한 신생 공연기획사가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등 정부 행사 용역을 집중 수주한 것으로 나타나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탁 비서관이 의전비서관으로 청와대에 복귀한 올해 5월 이후에도 이 업체가 청와대 관련 문화 콘텐츠 컨설팅까지 맡으면서 일각에선 특혜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탁 비서관의 측근으로 알려진 이모 씨(35)와 장모 씨(34)가 2016년 말 설립한 공연기획사 ‘노바운더리’는 2017년 8월 17일 ‘문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비롯해 지난달 25일 ‘6·25 한국전쟁 70주년 기념식’까지 2년 10개월 동안 20여 건의 청와대 및 정부 행사 용역을 수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바운더리는 탁 비서관이 대통령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 근무하기 시작한 2017년 5월까지 정부 행사 관련 실적이 없는 업체였는데 이후 2018년 9억5600만 원, 2019년 20억 원가량의 매출을 올렸다. 이 씨와 장 씨는 ‘탁현민 프로덕션’ 소속 조연출 출신이다. 이 업체는 탁 비서관이 급을 높여 청와대로 복귀한 직후인 6월 5일 한국관광공사와 ‘청와대 사랑채 문화 콘텐츠 확충 컨설팅’이라는 이름으로 조형물 설치 관련 용역 수의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청와대 사랑채에 상징적인 조형물을 설치하는 사업과 관련한 컨설팅 용역까지 도맡은 것. 청와대 관광홍보관인 청와대 사랑채 운영을 맡고 있는 관광공사 관계자는 “계약 금액이 220만 원 정도로 규모가 크지 않아 수의계약으로 진행했다”며 “서울 마포구의 A업체로부터 추천을 받았다”고 말했다. 2009년 12월 설립된 A업체는 관광공사의 청계천 사옥 리모델링 컨설팅을 맡았던 광고대행사다. A업체에서 2016년 10월까지 일했던 직원 B 씨는 이후 노바운더리로 옮겨 일하고 있다. B 씨는 2017년 8월 20일 ‘국민인수위원회 대국민 보고대회’를 맡아 진행한 당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노바운더리 #청와대행사전문??’이라는 글을 게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공연·홍보기획 업계는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한 홍보기획사 관계자는 “실적 증빙을 할 수 없는 신생 업체가 수의계약으로 대통령 참석 행사를 따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에서 “해당 기획사가 청와대로부터 수주(수의계약)한 행사는 총 3건이 전부고, 3건의 계약으로 받은 금액은 8900만 원”이라며 “이 업체보다 더 많은 행사를 수주했던 다른 기획사들이 많다”고 밝혔다. 이어 “대통령 일정 및 참석 행사의 경우 1급 보안 사안으로 긴급 행사의 경우 기일이 소요되는 공모 형식을 밟기는 애초에 불가능하다”며 “대통령 행사에서 수의계약은 그래서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강 대변인은 또 “대기업이나 대형 기획사만이 정부 행사를 수주해야 한다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며 “청와대 행사에 참여하는 기획사에 정말로 필요한 것은 창의성과 전문성”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업체는 청와대와 직접 수의계약을 맺은 3건 외에 각 부처에서 진행한 대통령 참석 행사와 관련해 대형 기획사의 하청을 받는 형식으로 여러 건의 행사를 진행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미래통합당 최형두 원내대변인은 “국회 운영위원회를 열어 이 업체에 청와대 예산이 집중됐는지, 청와대에서 의도적으로 일감을 몰아줬는지 등을 철저히 입증할 것”이라며 “이 업체가 탁 비서관이 실소유한 회사인지도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의당 김동균 부대변인은 “권력으로 인한 혜택이 반영된 것이 아닌지 충분히 의심해볼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한편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의 한 건물 지하 1층에 있는 노바운더리 측은 14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할 말이 없다”고 답했다.박효목 tree624@donga.com·최고야·한성희 기자}

독자 눈에 잘 띄도록 작은 광고판 역할을 하는 책 띠지가 다양해지고 있다. 광고 카피를 적는 데 그치지 않고 표지 디자인의 하나로 심미적 기능을 담당하기도 한다. 책을 눈에 띄게 하는 게 띠지의 존재 이유다. 표지가 흰색일 땐 과감한 형광색 띠지를 사용하고, 코팅이 돼 반질반질한 표지에는 거친 종이 질감의 띠지를 사용하는 등 시각과 촉각을 다 자극할 수 있어야 한다. 표지의 3분의 1 정도를 가리는 가로 띠지가 일반적인데 최근에는 3분의 2를 띠지로 덮어 제2의 표지처럼 보이게 하는 등 변주도 다양하다. 책의 절반을 세로로 덮는 띠지를 쓴다거나, 아예 제목을 표지 하단에 넣고 띠지는 맨 위로 끌어올리는 과감한 디자인도 있다. 표지 디자인을 구상할 때부터 띠지 디자인까지 고민하는 경우도 많다. 책표지 디자이너인 석윤이 씨는 13일 “표지 디자인이 강조되다 보니 출판사 로고를 아예 빼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 띠지 역할이 더 중요해진다”며 “띠지에는 표지에 넣지 못한 카피 문구를 마음껏 사용하되 감각적인 접근이 필수”라고 말했다. 출판사가 띠지 디자인을 다양화하려 노력하는 데는 가성비가 좋은 마케팅 수단이라는 이유도 있다. 작은 종이로 책의 일부만 덮기 때문에 쇄당 30만∼40만 원의 인쇄 비용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마케팅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 또 표지에 ‘작가상 수상’ ‘영화화 결정’ ‘오랜만의 장편소설’ 같은 직접적인 광고 문구를 새겨 넣기는 어렵지만 띠지에는 노골적 광고가 가능하다. 20세기 초 띠지가 처음 도입된 것으로 알려진 프랑스에서도 수상 작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광고 수단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띠지를 계륵으로 여기는 분위기도 있다. 띠지를 ‘거치적거리는 존재’로 인식하는 독자가 적지 않고 책이 광고로 덮이는 것을 꺼리는 경우도 많아서다. 띠지를 거의 쓰지 않는 출판사도 있다.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는 “띠지는 포기하기 어려운 광고판이 맞다”면서도 “상업성에 거부감을 갖는 독자들에게는 쉽게 버려지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출판 디자이너이기도 한 알마 안지미 대표도 “굳이 띠지가 아니어도 다른 방법으로 홍보할 수 있다”며 “책 출간 이후 수상한 경우 등에 한해서만 예외적으로 띠지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웬만한 직장인이 1년 꼬박 일해야 버는 연봉을 동영상 업로드 한 번에 벌고도 남는 꼬마 유튜버를 보고 있노라면 맥이 탁 풀리곤 한다. 노동의 신성함, 땀으로 실현되는 정의는 유튜브라는 생태계에선 그다지 힘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이런 생각은 저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유튜브 관련 소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우리가 왜, 어떻게 이 ‘생태계’를 비판적으로 뜯어봐야 하는지 각종 논문과 연구 결과 등의 근거를 가지고 냉철하게 접근했다. “유튜브는 동물원에서 시작됐으니 과연 파티족(파티 애니멀·party animal)이 우글거리는 플랫폼답다.” 저자는 유튜브의 탄생 과정을 빗대 유튜버를 가리켜 ‘파티 애니멀’이라고 부른다. 2005년 당시 25세의 이민자 자베드 카림이 미국 샌디에이고 한 동물원에 있는 코끼리 앞에서 19초짜리 엉성한 동영상을 찍어 ‘동물원의 나’라는 제목으로 홈페이지에 올린 게 유튜브의 시작이었던 것을 빗댄 표현이다. 시작은 이같이 미약했으나 결과는 창대하다는 말 이상이다. 현재(이 책이 출간된 2019년 현재) 유튜브에 하루 업로드되는 영상은 분량으로 따져 총 57만6000시간이다. 지금까지 올라온 모든 영상을 다 보려면 어림잡아 8069년이 걸린다고 한다. ‘동물원의 나’ 이후 15년. 우리는 수십∼수백만 구독자를 거느린 ‘관종(관심종자)’ 유튜버들이 수영장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지르거나, 시체를 찾아 폐허를 전전하는 영상 등을 보게 됐다. 구독자 수를 올리기 위해 남자친구에게 두께 3.8cm짜리 책을 가슴에 대고 있게 하고 그 위에 총을 쐈다가 과실치사로 실형을 산 여성 유튜버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이 같은 유튜버의 현실을 꾸준히 비판하던 저자는 1000만 구독자를 거느린 유명 유튜버 케이시 나이스탯에게 ‘공개 저격’당하며 유명해졌다.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리는 96%는 충분한 돈을 벌지 못하고 빈곤층을 겨우 벗어나는 정도의 벌이를 한다’는 저자의 블룸버그 기고에 나이스탯이 5분 22초짜리 유튜브 영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해당 영상은 조회수 200만을 넘어섰고, 저자는 ‘유튜버의 표현의 자유를 돈벌이 수단으로 표현했다’는 글로벌한 항의와 협박을 받았다고 한다. 이 책은 유튜브의 지나친 상업성과 자극적 소재 외에도 구글이 제공하는 동영상 추천 알고리즘도 돌아보게 한다. 저자에 따르면 구글이 연령, 거주지, 성별, 과거 검색 기록 등을 토대로 관심사를 유추해 관련 영상을 끝없이 제공하는 ‘추천 영상 시스템’ 도입 이후 사용자들이 유튜브에 머무는 시간은 이전보다 20배 늘었다. 유튜브에 머물수록 광고에 노출되는 시간은 길어지고 구글의 수입은 늘어나는 구조다.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콘텐츠가 무분별하게 유통되면서 가짜뉴스의 생산 및 확산지가 되는 현상도 비판적으로 접근했다. 유튜버에 대한 냉소적인 비판만 담은 것은 아니다. 인터넷 발달로 동영상 콘텐츠가 급격히 소비되면서 구글이 경쟁자이던 유튜브를 왜 사들였는지, 남미와 유럽에 지사를 세우면서 어떻게 세력을 확장했는지, 조회수와 비례한 광고수익 구조 도입 이후 유의미한 변화는 무엇이었는지 등을 짚은 부분은 흥미롭다. 책을 읽다 보면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책 곳곳의 QR코드를 통해 사례로 든 동영상 클립을 바로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내가 만일’로 유명한 가수 안치환(54)이 7일 진보 집권세력을 비판하는 가사를 담은 신곡 ‘아이러니’를 발표했다. 86세대의 정서를 담은 노래를 여럿 부른 대표적 민중가수인 그는 진보 진영을 적나라하게 꼬집었다. 안 씨가 작사, 작곡한 아이러니는 진보 권력 집단을 ‘기회주의자’ ‘싸구려 천지’로 묘사했다. ‘일 푼의 깜냥도 아닌 것이 눈 어둔 권력에 알랑대니, 콩고물의 완장을 차셨네. 진보의 힘 자신을 키웠다네’, ‘꺼져라! 기회주의자여’ 등 진보 진영에 대한 분노를 담았다. ‘끼리끼리 모여 환장해 춤추네’ ‘쩔어 사는 서글픈 관종’ 등 과격한 표현도 있다. 후렴구의 ‘아이러니 왜이러니 죽 쒀서 개줬니, 아이러니 다이러니 다를 게 없잖니’에는 정권이 교체됐지만 기대와 다르게 가고 있는 현실에 대한 한탄도 담고 있다. 안 씨는 신곡 기획 의도를 설명하는 글에서 자신의 3집 앨범에 수록된 ‘자유’ 가사의 출처가 된 김남주 시인의 시를 인용했다. ‘사람들은 맨날 겉으로는 소리 높여 자유여! 해방이여! 통일이여! 외치면서 속으론 제 잇속만 차리네’라는 구절이다. 안 씨는 “(당시에) 그 노래를 부르고 나니 선배라는 자가 나를 따로 부르더니 ‘왜 우리를 욕하는 내용의 노래를 부르느냐’고 훈계조로 말했다. 김남주 시인을 만나 그 이야기를 하니 ‘그 노래를 듣고 부끄러워해야 할 놈은 부끄러워야 한다’고 했다. 나는 부끄러워하며 맘껏 부르고 다녔다”고 했다. 아이러니를 듣고 ‘부끄러워할 놈’은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어 안 씨는 “권력은 탐하는 자의 것이지만 너무 뻔뻔하다. 예나 지금이나 기회주의자들의 생명력은 가히 놀라울 따름이다. 시민의 힘, 진보의 힘은 누굴 위한 것인가? 아이러니다”라고 밝혔다. 또 “세월은 흘렀고 우리들의 낯은 두꺼워졌다. 그날의 순수는 나이 들고 늙었다. 어떤 순수는 무뎌지고 음흉해졌다. 밥벌이라는 숭고함의 더께에 눌려 수치심이 마비되었다”고 덧붙였다. 앞서 안 씨는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 국민의 분노를 담은 노래 ‘권력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을 발표했다. 2018년에는 제주 4·3사건 70주년을 기념해 당시 아픔을 주제로 한 ‘4월 동백’을 선보였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토지문화재단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7일 취약계층 문예창작활동 지원을 위한 협약식을 열었다. 토지문화재단은 재단이 있는 강원 원주시의 취약계층 청소년을 대상으로 문화예술 창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LH는 비용 등을 지원한다. LH는 토지문화재단이 매년 토지를 소재로 한 작품을 선정해 시상하는데 사회공헌기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LH는 1996년 박경리 작가의 원주 소재 집을 보존하기 위해 박경리문학공원을 조성했고, 같은 해 토지문화관 건립비 40억 원을 지원해 토지문화재단이 설립됐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대형 소속사를 나와 1인 연예기획사를 차리는 연예인처럼 작가가 직접 차린 출판사가 늘고 있다. 지명도가 있는 작가가 ‘팬덤’을 기반으로 기획 편집 디자인 등을 하고 싶은 대로 해보는 일종의 실험실이기도 하다. 소설가 김영하 씨는 올 4월 아내인 장은수 씨가 대표인 출판사 ‘복복서가’를 통해 이탈리아 시칠리아 지역 여행기 겸 에세이집인 ‘오래 준비해온 대답’을 출간했다. 복복서가는 대형 단행본 출판사인 문학동네와 합자해 세운 출판사로 작가는 기획자로 참여하고 있다. 사실상 작가가 기획하는 독립출판사인 셈이다. 책의 기획, 편집은 작가의 취향에 맞춰 제작되고 전문가 손길이 필요한 마케팅, 디자인, 유통은 문학동네에서 협업하는 구조다. 복복서가는 작가 부부가 선정한 해외 작가들의 책도 번역 출간할 계획이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이하 지방시), ‘대리사회’ 같은 사회 고발성 저서로 이름이 알려진 김민섭 씨는 1인 출판사 ‘정미소’를 운영하고 있다. 지방대 시간강사로 지내다 생계를 위해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김 씨는 시간강사 처우의 부조리함을 담은 ‘지방시’를 낸 뒤 대학을 떠나야 했다. 이후 대리운전을 하며 ‘대리사회’를 펴낸 뒤 정미소를 만들었다. 김 씨가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담은 첫 책을 내고 인생이 바뀌었던 것처럼 ‘젊은 작가의 첫 책을 응원한다’는 모토를 가진 정미소의 행보는 좀 더 실험적이다. 김 씨는 “소수자가 가진 힘은 폭로, 고발에서 나온다. 소수자의 담담한 삶의 기록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콘셉트가 확실하다 보니 투고도 많이 온다”고 했다. 지난해 9월에는 입시 현실에 처한 고3 학생이 답답한 수험생의 삶을 쓴 ‘삼파장 형광등 아래서’라는 책을 냈다. 에세이 정기구독 서비스 ‘일간 이슬아’로 이름을 알린 이슬아 씨는 출판사 ‘헤엄’을 운영한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 ‘심신 단련’ ‘깨끗한 존경’ 등 일간 이슬아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에세이, 산문 등을 다시 손봐서 책으로 엮었다. 일간 이슬아 구독자들이 책도 사는 경우가 많다. 글을 모니터로 보는 게 아니라 종이로 소장하고 싶은 이들이 많다고 한다. 마니아층이 두 가지 버전으로 글을 소비하는 셈이다. 이 같은 출판사는 작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점이 최대 장점이자, 단점으로 꼽힌다. 이 씨는 “기성 출판사와 일할 땐 제목, 디자인 등 당대 인기 저서의 유행을 따라가는 경향이 많다”며 “기존 출판사에선 통과되지 못할 아이디어 등을 시도해 볼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인쇄 방법, 종이 골라 발주 넣기 등 저술 이외 책 내는 데 필요한 모든 과정을 새로 배우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다행히 교정, 표지 디자인, 마케팅, 유통 등은 외주가 가능한 상태여서 이 씨 같은 독립출판사는 외주를 준다. 기존 출판계와의 묘한 긴장 관계도 있다. 김민섭 씨는 “처음 출판사를 차린다고 할 때 ‘인세 10% 받는 게 부족하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작가 출판사’에 대해 “온라인화로 책 유통에 대한 부담이 줄었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발달로 홍보 같은 출판사 역할이 줄어들었다”면서도 “장기적으로 작가의 문학적 역량이 다른 곳에 소모되는 것은 긍정적이지 않다. 출판사들이 작가에게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대만의 문화비평가이자 작가인 탕누어는 명예, 부(富), 권력이라는 세 가지 가치에 대해 문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마르케스, 보르헤스, 발자크는 물론 애덤 스미스, 토크빌, 마르크스 등의 통찰력을 끌어온다. 저자는 부와 권력에 대해 냉혹한 평가를 내놓는다. “분수도 모르고 질서도 안 지키며 충성스럽지도 않은 부가 전 지구적으로 날뛰는 것에 대해 인류는 제어의 힘을 상실했다”고 한탄한다. 심지어 ‘동물성’까지 갖고 있는 권력은 커질수록 욕망이 증가하고 향락에 이끌릴 수 있다고 말한다. 반면 저자는 명예의 가치에 집중한다. 인간이 자기성찰과 반성을 할 수 있고 생물학적 본능에 끌려가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은 명예 때문이라는 것. 결국 이 모든 고찰은 ‘책읽기’라는 행위로 귀결된다. 독자가 착실하게 판단해 ‘훌륭한 것(명예로운 것)’을 생각해낸 이(작가)에게 박수를 보내줄 것을 기대한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고려를 대표하는 나전칠기 유물인 ‘고려 나전국화넝쿨무늬합’이 일본에서 돌아왔다. 전 세계에 3점뿐인 고려시대 모자합(母子盒·큰 합 속에 작은 합이 들어간 형태의 합) 중 하나다. 국내 처음으로 모자합 형태의 나전합을 보유하게 됐다. 문화재청은 2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통해 지난해 12월 일본에서 매입해 들여온 나전합을 언론에 공개했다. 길이 10cm, 무게 50g의 손바닥보다 작은 나전합으로 큰 합(모합)에 들어가는 자합(子盒)이다. 중앙의 꽃 모양이나 원형의 합을 주변에서 감싸는 동일한 자합 4개 가운데 하나로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같은 모양의 나전합 2점은 각각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일본 교토의 한 사찰에서 소장하고 있다. 모합의 중앙에 놓는 자합 2점까지 포함하면 세계에는 5개의 온전한 고려시대 나전합이 남아있다. 이 나전합은 일본의 개인 갤러리에서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지난해 2월부터 설득에 나서 12월 들여왔다. 2006년 9월∼2008년 8월 국립중앙박물관의 ‘나전칠기―천년을 이어온 빛’ 특별전을 통해 국내에 공개됐다. 2018년부터 재단 측에서 본격적으로 환수를 추진했다. 최응천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은 “일본에 고려 나전칠기 10여 점이 남아 있지만 대부분 국가지정문화재여서 이번 나전합만 매입을 통한 환수가 가능했다”며 “만약 구매 결정이 미뤄졌다면 일본에서 문화재로 지정할 수도 있었던 긴박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환수된 나전합은 전복패와 대모(玳瑁·바다거북 등껍질), 금속선 등을 이용해 국화꽃과 넝쿨무늬를 새겨 넣은 것이 특징이다. 뚜껑 무늬에서 가운데 큰 꽃무늬는 고려 나전칠기 대표적 기법인 대모복채법(玳瑁伏彩法)이 사용됐다. 대모를 아주 얇게 갈아 반투명 상태의 판으로 만든 다음 안쪽에 물감을 칠해 색이 은은하게 비치도록 하는 기법이다. 자합 테두리에 촘촘히 박은 동그라미 장식은 전복패로 만들었다. 고려 때 송나라 사신 서긍은 ‘고려도경’에서 나전칠기에 대해 “지극히 정교하고 솜씨가 세밀하여 가히 귀하다”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고려 나전칠기 유물은 소재의 특성상 습기 등에 의한 파손 위험이 높아 대부분 유실된 것으로 알려졌다. 모자합 형태 등 전 세계에 남은 나전칠기는 파손품을 포함해 22점뿐이다. 완성품은 15점에 불과하며 대부분 미국, 일본이 보유하고 있다. 이번 환수로 기존 ‘나전국화넝쿨무늬불자’ ‘나전경함’과 함께 모두 3점의 고려 나전칠기 유물을 국내에 보유하게 됐다. 돌아온 나전합은 12월 22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의 ‘고대의 빛깔, 옻칠’ 특별전에서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영화 ‘기생충’의 배우와 제작진이 미국 아카데미 회원으로 초청받았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주최하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는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2020년 신입 회원 초청자 명단 819명을 발표했다. 기생충에 출연한 배우 중에는 최우식 조여정 이정은 박소담 장혜진이 포함됐다. 제작진 가운데는 양진모 편집감독, 정재일 음악감독, 최세연 의상감독, 이하준 미술감독, 최태영 음향감독, 곽신애 프로듀서, 한진원 작가가 이름을 올렸다. 초청받은 당사자들이 수락하면 아카데미상 투표권을 가진 회원으로 활동한다. 기생충 관계자들 외에도 세월호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부재의 기억’의 이승준 감독과 디즈니 ‘겨울왕국’ ‘모아나’에 참여한 이현민 애니메이션 슈퍼바이저도 이번 신입 회원 명단에 포함됐다.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는 2015년부터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당시 임권택 감독, 배우 최민식도 회원으로 위촉했다. 2016년에는 박찬욱 이창동 김소영 감독과 배우 이병헌이 추가로 위촉되면서 현재까지 아카데미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 영화인은 약 40명이 됐다. 앞서 아카데미는 다양한 문화권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인들로 회원을 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2020년까지 여성, 소수인종 회원을 기존의 두 배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올해 신규 회원 819명 가운데 여성은 45%, 소수 인종은 36%를 차지했다. 이에 따라 전체 회원 가운데 여성 회원은 2015년 1446명에서 2020년 3179명으로 늘었고 같은 기간 소수 인종은 554명에 불과했지만 1787명으로 증가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7세기 신라를 대표하는 조각상인 경주 남산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사진)이 보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1일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을 비롯해 합천 해인사 원당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과 복장(腹藏)유물, 복장전적(典籍), 공주 갑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사보살입상과 복장유물, 복장전적 등 5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밝혔다.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은 경주 남산 계곡의 지류인 장창곡 정상 부근 석실에 있던 불상으로 삼국시대 미륵신앙의 상징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 불상은 가운데 의자에 앉은(의좌상·倚坐像) 본존 미륵불과 양옆에서 보좌하는 협시보살로 구성됐다. 의좌상은 우리나라 의좌상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원당암 보광전에 보관된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은 15세기 조선 초기 불상 양식의 특징을 뚜렷하게 반영하고 있다. 불상을 제작할 때 가슴 부분에 넣은 보화(寶華)나 서책 등을 의미하는 복장유물 23점과 복장전적인 불경 29첩도 함께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사보살입상은 1617년 제작한 7존 불상으로 임진왜란 이후 조성된 7존 불상 중 가장 오래됐다. 입상에서 발견된 복장유물과 복장전적도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29일 여야는 원 구성 협상 타결 직전까지 갔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누가 차지하느냐를 놓고 싸우다 결국 등을 돌렸다. 더불어민주당은 앞서 21대 국회 단독 개원, 6개 상임위원장 단독 선출, 미래통합당 의원 강제 상임위 배정에 이어 남은 상임위원장 자리를 싹쓸이하게 됐다. 여당의 상임위원장 독식은 민주화 이후 치러진 1988년 13대 국회 이후 32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 법사위원장 합의 불발… 원 구성 최종 결렬이날 오전 박병석 국회의장과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회동을 가질 때까지만 해도 타결의 기대감이 묻어났다. 하지만 한민수 국회의장 공보수석비서관은 35분 정도 이뤄진 회동 후 브리핑에서 “전날 사실상 협상 초안까지 만들었으나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밝혔다. 민주당에 따르면 전날 의견 접근을 이뤘던 여야 합의문 초안에는 전체 상임위원장을 11 대 7로 나누되 △후반기 법사위원장은 2022년 대선에서 승리한 집권당이 우선 선택권을 갖고 △체계·자구심사권 등 법사위 제도 개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국정조사 △한명숙 전 총리 사건 관련 법사위 청문회 등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또 이날 상임위원장 선출과 3차 추경의 6월 임시국회 회기 내 처리, 30일 개원식 개최 등도 담겨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여야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국정조사와 한 전 총리 사건 관련 청문회 등으로 타협점을 찾는 듯했으나 결국 법사위원장 자리가 문제였다. 박 의장은 상반기 국회 2년은 민주당이, 대선 직후인 하반기 2년은 당시 집권당이 맡자고 중재안을 냈고 민주당은 이를 받아들였다. 차기 대선에 자신감이 있는 민주당이 결과적으로 21대 국회 4년 내내 법사위원장을 맡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통합당은 상반기엔 민주당, 하반기엔 통합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자고 제안했지만 민주당은 이를 거절했다. 당내에 강경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주 원내대표는 하반기 법사위원장이라도 가져와 이를 마지노선으로 의원들을 설득해 보겠다는 계획이었지만 민주당의 거부로 협상 여지가 사라진 것. 주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에 “역사는 2020년 6월 29일, 33년 전 전두환 정권이 국민에 무릎 꿇었던 그날(과 같은 날), 문재인 정권이 몰락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고 기록할 것”이라며 “‘너희가 다음 대선을 이길 수 있으면 그때 가져 가봐’라는 비아냥거림으로 들려 엄청난 모욕감을 느꼈다. 의장실 탁자를 엎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했다. ○ 21대 국회 출발부터 ‘삐걱’… 협치 전망 ‘깜깜’민주당은 원 구성 협상에 대한 반발로 통합당과 국민의당 의원들이 빠진 가운데 이날 오후 본회의를 열고 정보위원장을 제외한 11개 상임위원장을 선출했다. 민주당이 15일 법사위원장 등 6개 상임위원장을 독자 선출한 지 2주 만에 또 한 번 상임위원장 단독 선출을 강행한 것. 야당 국회 부의장의 동의가 있어야 선출 가능한 정보위원장 1석도 추후 민주당이 가져간다면 민주당은 18개 상임위원장을 전부 갖는다. 또 박 의장은 통합당 의원을 임의로 상임위에 강제 배정했다. 상임위원장 독식을 강행하면서 민주당은 “통합당 김종인 비대위원장 때문에 협상이 결렬됐다”며 화살을 돌렸다. 이해찬 대표는 “저쪽은 (창구) 일원화가 되지 않은 것 같다”며, 주 원내대표를 향해서는 “산사에 다니시는 분들은 사리가 안 생기는데 여당 원내대표의 몸에는 사리가 생겼다”고 했다. 김영진 원내수석부대표도 “김 위원장이 과도하게 원내 진행되는 사안에 대해 개입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통합당에서는 “의회 치욕의 날”이라며 “삼권분립이라는 헌법정신은 사라지고 어명(御命)만 남았다”는 분노의 목소리가 나왔다. 주 원내대표는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 규탄대회에서 “민주당의 총선 승리로 인한 저 희희낙락과 일방 독주를 국민들이 막아 달라”고 호소했다. 통합당 배준영 대변인은 협상 결렬이 김 위원장 탓이라는 민주당의 주장에 대해서는 “김 위원장 개입설은 심각한 허위 사실이다. 민주당의 사실 호도가 지나쳤다”고 비판했다. 특히 통합당 의원들은 상임위원 강제 배정을 강하게 문제 삼았다. 최형두 통합당 원내대변인은 의원총회 도중 기자들과 만나 “국회의장과 여당은 103명의 통합당 의원을 강제로 상임위에 배정했다”며 “국회를 청와대 출장소로 전락시킨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양보 없이 통합당의 의사를 관철시킬 수 있는 방법은 전무(全無)하다는 것이 재확인됐다는 자조도 나왔다. 최고야 best@donga.com·황형준 기자}

29일 더불어민주당이 범여권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를 열고 11개 상임위원장 선출을 강행한 결과 상임위원장을 했던 의원이 또 위원장이 되거나, 관례를 깨고 재선 의원이 선출되는 등 이변이 생겨났다. 장관 출신 의원이 해당 부처를 담당하는 상임위원장이 된 경우도 있다. 20대 국회 하반기 기획재정위원장을 지낸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예산결산특별위원장에 선출됐다. 보통 상임위원장을 한 차례 지내면 다른 다선 의원에게 양보하는 경우가 많지만, 정 의원은 이례적으로 두 번 연속 위원장을 맡게 된 것.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추경안 처리의 시급성과 중요성을 고려해 중도 성향에 중량감 있는 정 의원을 발탁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노사 갈등 등 첨예한 현안이 많아 비교적 비인기 상임위로 통하는 환경노동위원장에는 재선인 송옥주 의원이 선출됐다. 3선 이상이 상임위원장을 맡는 게 여야 관례로 통했지만, 민주당이 17개 상임위를 독식하면서 재선 의원에게까지 기회가 돌아간 것이다. 심지어 국회의 감시를 받았던 정부 부처 장관 출신 의원이 해당 부처 소관 상임위원장으로 간 경우도 속출했다. 문재인 정부 초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낸 도종환 의원은 문체부를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을 맡게 됐다. 지난해 8월까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지낸 이개호 의원도 농식품부를 담당하는 상임위인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여성가족부 장관 출신인 진선미 의원은 국토교통위원장을 맡았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던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29일 게시글을 지웠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을 지낸 조 교수의 글이 화제가 되자 친문(친문재인) 강성 지지층이 ‘반역자’라며 거친 비판을 쏟아낸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조 교수는 28일 페이스북에 ‘슬기로운 전세생활’이라는 글을 올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특히 조 교수는 이 글에서 문 대통령 최측근 인사의 전언이라며 “‘일본처럼 우리도 집값이 폭락할 테니 집을 사지 말고 기다리라’고 문 대통령이 말씀하셨다고 한다”며 “문 대통령의 부동산 인식이 정확한지 점검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일부 친문 지지층은 “어디 일국의 대통령께 무례한 언사로 까 내리려는가” “벼슬 안 줘서 섭섭한 거냐” “반역자가 되는 것이 노통(노무현 대통령) 앞에 부끄럽지 않은가”라며 온라인에서 맹비난을 쏟아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하고 한국판 뉴딜 추진을 위해 편성된 역대 최대 규모의 3차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이 졸속 처리될 처지에 놓였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다음 달 3일까지 3차 추경을 처리하겠다고 공언하면서 35조3000억 원짜리 추경안 심사 기간이 길어야 나흘에 불과해 곳곳에서 ‘부실 추경’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박 의장은 29일 여야 원내대표와의 회동을 마친 뒤 “3차 추경안은 이번 회기 내에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29일 본회의에서 원 구성이 마무리되면 곧바로 상임위별로 추경 심사에 돌입해 6월 임시국회 회기가 끝나는 3일까지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추경안을 심사할 시간은 나흘 남짓. 앞서 예결위 상정부터 본회의 통과까지 1차 추경(11조7000억 원)은 7일, 2차 추경(12조2000억 원)은 역대 최단 기간인 3일 만에 통과됐다. 역대 최대 규모인 3차 추경이 역대 두 번째로 짧은 심사 기간을 거쳐 처리되는 셈이다. 특히 3차 추경은 저소득층 현금 지원을 골자로 한 1차 추경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2차 추경보다 훨씬 복잡하게 구성돼 있다.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공공일자리 55만 개 공급과 실업급여 확대, 5조1000억 원 규모의 한국판 뉴딜 등 굵직한 예산이 제대로 된 심사 없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이에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28일 페이스북에 올린 ‘국민은 설명을 원한다’는 글에서 “‘7월 3일까지 3차 추경안을 처리하라’는 입법부에 내린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여당 원내대표, 국회의장까지 안절부절 종종걸음”이라고 비판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차지하기 위한 여야의 ‘치킨 게임’이 주요 국가적 사업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고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조동주 djc@donga.com·최고야 기자}

청와대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임명 수순 밟기에 대해 미래통합당은 28일 “사법 장악 의도”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에 청와대는 “법이 정한 절차를 따르는 것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우리 당은 많은 위헌적 요소 때문에 공수처 출범에 동의할 수 없다”며 “국회의 견제를 받지 않는 괴물 사법기구가 대통령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상황을 방치할 수 없다”고 했다. 배준영 대변인은 전날 논평에서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기한 내에 야당이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을 지정하지 않으면 다른 교섭단체가 추천위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낸 것에 대해 “야당의 공수처장 비토권마저 무력화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법률적으로 보장된 견제 권한마저 막으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이에 청와대는 “법이 정한 절차를 국회가 지켜 달라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공수처 출범 시한은 (청와대가) 못 박은 게 아니고 (법에) 못 박혀 있다”고 말했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공포 후 6개월이 경과된 날로부터 출범하도록 되어 있다. 공수처법은 1월 14일 통과됐기 때문에 출범은 다음 달 15일이라는 것이다. “사법 장악 의도”라는 야당의 주장에 대해서는 “(야당) 스스로를 폄하하는 주장”이라고 했다. 강 대변인은 “공수처법을 제정한 것도, 시행일을 정한 것도 국회이고, 공수처장 후보 추천권도 국회에 있다”고 했다. 통합당 김은혜 대변인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추천위원회 구성 등 후속 법안까지 강행하려는 청와대가 ‘법대로’를 주장한다면, 우리 당은 삼권분립을 규정한 ‘헌법대로’를 주장할 것”이라고 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21대 국회 원 구성 협상이 늦어지면서 35조3000억 원 규모의 ‘슈퍼 추경’에 대한 국회 심사는 어느 때보다 졸속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민주당은 6월 임시국회 회기가 끝나기 전인 다음 달 3일로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마지노선을 못 박았지만, 원 구성 협상 파행으로 여야의 추경 심사 진행 수준은 ‘제로’다. 역대 최대 추경의 ‘날림 공사’가 불 보듯 뻔한 상황. 국회의 ‘협치’ 실종으로 ‘포스트 코로나’를 위한 한국판 뉴딜 사업 등 주요 국가적 사업이 졸속으로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29일 국회 상임위원회 구성을 강행하고 30일부터 종합 정책질의를 시작해 본격적인 추경 심사에 나설 방침이다. 민주당 계산대로 6월 임시국회 회기(7월 4일) 내인 다음 달 3일 추경 처리를 끝낸다면 국회에 주어진 심사 시간은 나흘 정도. 앞서 1, 2차 추경은 국회에 넘어온 이후 각각 12, 14일 만에 통과됐다. 여야가 순수하게 추경을 심사한 기간은 각각 7일, 3일에 불과해 당시에도 졸속 심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1, 2차 추경 규모가 각각 11조7000억 원, 12조2000억 원으로 3차 추경보다 규모가 작았던 것을 감안하면 이번 추경 심사는 어느 때보다 부실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국회 예산정책처도 추경 분석 보고서에서 “단기 일자리 사업이 과도하고, 한국판 뉴딜 사업은 목적이 모호하다”며 국회 심의 과정에서 보완할 필요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여야는 추경 심사는 뒤로한 채 이날도 서로를 향해 ‘네 탓’ 공방을 벌이며 으르렁거리기만 했다. 28일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에 “제1야당 원내대표인 저는 오늘까지 행정부로부터 3차 추경에 대해 한 번도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며 “현안이 생기면 여야정 협의체를 가동하고, 언제든지 저를 만나겠다던 대통령의 구두 약속은 부도어음이 됐다”고 했다. 이에 민주당 송갑석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주 원내대표가 설명을 피해 다닌 건 아닌지 되돌아보길 바란다”며 “사찰로 잠적했던 주 원내대표를 경제부총리가 찾으러 다닐 수는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조속한 추경 심사’를 앞세운 민주당의 원 구성 압박에 통합당도 “추경 발목 잡기”라는 비판에는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주 원내대표가 “35조 원 규모 예산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도 구성 안 된 국회에서 닷새 만에 통과되는 것은 안 된다”며 ‘선(先) 원 구성, 후(後) 추경 심사’ 기조를 거듭 강조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단 통합당은 정상적으로 원 구성이 이뤄진다면 일자리 예산 등을 꼼꼼히 손보겠다는 기조다. 통합당 이종배 정책위의장은 “8조9000억 원이 편성된 고용안전망 강화 사업은 5, 6개월짜리 단기 일자리를 양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의원실에 따르면 해당 사업에는 각 부처 등의 데이터베이스 구축요원, 모니터링·조사요원, 각종 보조인력 등 데이터 수집과 입력, 전수조사를 담당하는 월 급여 130만∼200만 원 상당의 단기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또 통합당 김예지 의원은 코로나19 확산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공연·전시, 숙박 등 할인 쿠폰을 지급하는 데 편성된 문화체육관광부 예산(716억 원)은 방역을 강화하고 있는 정부 지침과 상충되기 때문에 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저는 6·25전쟁 통에 할머니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총살당하는 광경을 겪은 사람이다. 6·25전쟁이라는 기억이 아주 악몽처럼 남아있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23일 당에서 주관한 납북자 가족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전쟁 중 북한군에게 가족이 납치된 피해자들을 위로하던 중에 비극적이었던 자신의 가족사를 꺼낸 것이다. 김 위원장 측근들에 따르면 6·25전쟁 발발 당시 10세였던 김 위원장은 어머니처럼 따랐던 친할머니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했다고 한다. 당시 김 위원장은 조부이자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街人) 김병로 선생 없이 할머니와 광주로 피란을 떠났다. 김병로 선생은 국가 주요 인사들을 부산으로 피란시키는 길에 가족들을 동반할 수 있었지만 “내 가족들을 챙기느라 다른 사람들의 피란 기회를 빼앗을 순 없다”며 가족을 두고 떠났다. 김 위원장은 이 과정에서 할머니를 잃었다. 북한군은 할머니가 김 선생의 부인이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 잔혹하게 총살하고 길가에 시신을 버렸다. 본보기 차원에서 남한 정부 요직 인사의 가족을 즉각 살해한 것. 시신을 수습하는 자는 똑같이 총살하겠다는 북한군의 엄포 탓에 할머니의 시신은 열흘 넘도록 길가에 방치됐다고 한다. 당시 열 살 소년이었던 김 위원장이 전쟁 당시 상황을 ‘악몽 같았다’고 회고한 이유다. 김 위원장은 25일 인천상륙작전 기념관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6·25전쟁이야말로 근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일”이라며 “내 나이 11세 때 3개월 동안 공산 치하에 살면서 과연 대한민국 정부가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했다”고 회상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