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완준

윤완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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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부장을 거쳐 정치부장으로 있습니다. 베이징 특파원을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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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6-03-19~2026-04-18
칼럼100%
  • [남북대화 급물살]‘박정희 유산’ 앞세워 유화 메시지

    북한이 6일 남북 당국 간 대화를 제의하면서 “6·15공동선언 발표 13주년 남북 공동행사뿐만 아니라 7·4공동성명 발표 41주년을 남북이 공동으로 기념하자”고 한 점이 눈에 띈다. 북한은 “남북 민간단체들과 함께 당국이 참가해 6·15공동선언과 7·4공동성명 발표일을 공동으로 기념하면 의의가 크고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7·4공동성명은 1972년 박정희 정부 때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3원칙에 합의한 것으로, 남북 당국 최초의 합의다. 북한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산을 존중하겠다는 유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이 2002년 5월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에게 7·4공동성명의 의미를 여러 차례 강조한 점도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전성훈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북한의 의도는 7·4공동성명 정신보다는 6·15공동선언을 남북 당국 간 대화에 끌어들여 한국에 관련 합의를 지키라고 하면서 금강산관광 재개와 5·24조치 해제를 요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7·4공동성명을 미끼로 6·15공동선언 기념행사 개최를 유인한 뒤 행사에 참석한 남측 민간단체 등을 활용하거나 남북 당국 간 회담에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합의한 6·15선언, 10·4선언에 포함된 남북경제협력 관련 합의를 지키라고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 7·4남북공동성명 ::1972년 7월 4일 이후락 당시 한국 중앙정보부장과 김영주 북한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이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한 공동성명.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3대 통일원칙을 제시했다. 또 상호 중상, 비방, 무력도발 중지, 다방면에 걸친 교류 실현에 합의했다. 이를 추진하기 위해 남북조절위원회가 구성됐다. 그러나 이 성명은 남북 정권의 권력 강화에 이용됐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2013-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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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朴대통령 지휘로 라오스 탈북자들 대사관 이송작전

    박근혜 대통령의 지휘로 4일 라오스에 있는 탈북자 18명을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저로 이송하는 작전이 펼쳐진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및 대북 소식통은 6일 “박 대통령이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 있는 안가(安家·한국 정부가 탈북자들을 보호하는 은신처)에 머물던 탈북자 18명을 모두 대사관저로 이동시키도록 지시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이 청와대 내 지하 벙커인 국가안보실 예하 위기관리상황실에서 자리를 지키며 이송 상황을 지휘했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은 18명 중 마지막 1명이 대사관저에 안전하게 도착하는 걸 확인할 때까지 위기관리상황실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과 함께 외교안보 주요 당국자들이 벙커를 지켰으며 첩보작전을 방불케 했다는 후문이다. 주라오스 한국대사관과 정부 관계자들이 안가에 머물던 탈북자들을 대사관저로 인솔했으며, 18명을 한꺼번에 옮기지 않고 소규모 그룹으로 나눠 이동시키느라 이송 시간이 하루 종일 걸렸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한국 정부가 이송 작전의 보안을 유지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지하 벙커를 떠나지 않고 탈북자들의 이송을 직접 확인하며 지휘한 건 이례적인 일이다. 박 대통령은 탈북 청소년 9명이 라오스에서 강제추방돼 북한 당국에 의해 평양으로 압송되는 사태가 일어나자 당시 정부의 대응에 문제가 없었는지 점검하면서 외교안보 당국자들에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라오스를 비롯해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머물고 있는 탈북자들의 상황을 보고받는 과정에서 라오스의 안가에 18명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러면서 “현재 라오스의 상황을 고려할 때 안가도 안전하지 않다”며 “탈북자들을 대사관저로 이동시킬 것”을 직접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 朴대통령, 18명 이송 끝날때까지 靑벙커 지켜 ▼안가에 있는 탈북자들을 모두 대사관저로 옮긴 것도 이례적이다. 통상 탈북자들은 안가에 머물다 한국으로 향하며 대사관저로 옮기는 경우는 환자나 아기인 경우에 한정된다고 한다.이처럼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선 데는 비슷한 사태가 재발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3일 “라오스에서 탈북 청소년 9명이 강제로 북송된, 정말 안타깝고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고 강조했다. 라오스 정부는 “10대 미성년자의 정치적 망명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인신매매에 대응한 것”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렇듯 라오스 당국이 탈북자의 한국행에 비협조적인 상황에서 또다시 탈북자들이 라오스 당국에 체포되는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라오스를 경유하는 탈북 루트가 막히지 않도록 라오스 당국에 외교적 노력을 벌이는 것과 별도로 탈북자도 한국 국민인 만큼 국민의 신변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박 대통령의 인식이 작용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주라오스 대사관은 라오스 당국과의 비공식 신사협정에 따라 중국을 거쳐 라오스로 들어간 탈북자들을 안가에서 보호하고 있다. 탈북자들이 라오스 등을 거쳐 한국으로 탈출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주라오스 한국대사관 내에 탈북자들이 한국행 때까지 머물 공간을 마련했으나 탈북자가 늘어나면서 이 공간만으로 수용이 어려워지자 별도의 안가를 마련한 것이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2013-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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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공안에 맞아 앞니 부러지고 머리엔 피고름

    강제 북송된 탈북 청소년 9명 중 한 명인 정광영(20)은 2010년 12월 중국 지린(吉林) 성 창바이(長白) 현의 쓰레기 더미에서 꽃제비들과 함께 살았다. 중국 공안에게 매를 맞아 앞니가 부러졌다. 공안의 총부리가 머리를 짓이겨 정수리 왼쪽에 피고름이 가득했다. 이 9명의 탈북을 도운 주모 선교사는 박선영 물망초재단 이사장에게 “짜낸 피고름이 한 대접이었다”고 전했다. 2011년 3월 주 선교사가 다시 찾았을 때 광영은 혼자였다. 모두 북송됐다고 했다. 주 선교사를 붙들고 애원했다.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광영은 중국 단둥(丹東)의 은신처에서 생활하면서 몰라보게 밝아졌다. 다시는 굶지 않으려는 듯 늘 식판에 수북이 밥을 담았다. 주 선교사와 처음 만났을 때 장국화(17·여)의 양손과 두 발은 동상으로 부르트고 갈라져 있었다. 단둥 생활 1년 만에 상처는 깨끗이 사라졌다. 박선영 이사장은 4일 주 선교사의 증언을 토대로 탈북 청소년 9명 중 유일하게 함흥 출신인 백영원(20)을 제외한 꽃제비 출신 8명의 참혹했던 시절 등을 소개했다. 문철(23)은 고아원에서 자랐고 3번을 탈북했다. 심성이 착해 꽃제비 시절 훔치거나 주워온 걸 다른 친구들에게 나눠줬다. 동상으로 오른쪽 발가락을 전부 잃었다. 문철과 함께 생활한 류광혁(19)은 지능이 낮은 편이라 문철의 도움이 없었으면 굶어 죽었을 것이라고 한다. 류철용(16)은 아버지도 꽃제비였다. 철용이 훔쳐오거나 주워오는 물건을 다 뺏고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를 피해 탈북했다. 노정연(15·여)은 인신매매로 중국에 팔려가 성적 착취까지 당했다. ‘노애지’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는데 애교가 많아 붙은 별명이었다. 박 이사장은 국제적 관심인물로 떠오른 백영원에 대해선 “다른 아이들에 비해 키가 크고 피부가 하얬고 그림을 무척 잘 그렸다”고 전했다. 한편 흐엉 세인 라오스 외교부 공보담당 부국장은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판단능력이 미숙한 10대의 어린 학생들이 정치적 망명을 요청한 건 인정할 수 없다”며 “인신매매에 대응한 것”이라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에 대해 박 이사장은 “9명의 강제 북송을 자유의사 없는 미성년자의 인신매매 사건으로 호도해 자신들의 비인도적 강제 추방을 정당화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윤완준 기자·워싱턴=정미경 특파원 zeitung@donga.com}

    • 201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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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북 9명 강제북송 파문]“대사관, 탈북청소년 9명 언론에 알리지 말라고 했다”

    김희태 북한인권개선모임 사무국장은 3일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이 탈북 청소년 9명이 라오스 당국에 억류된 이후 탈북을 도운 주모 선교사에게 ‘언론과 외부에 이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김 사무국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국대사관은 라오스 당국과의 협력이 원활히 되고 있으니 조용히 있으면 한국대사관에 탈북 청소년들의 신병이 인도될 것이라고 했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도와 달라”는 요청에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라오스 북부 우돔사이에서 탈북 청소년들이 체포된 10일부터 그렇게 요구했다고 한다”며 “언론에 알리면 라오스 당국이 북한의 입장을 고려해 북한으로 보낼 가능성이 있다는 뜻인데 결국 알리지 않았기에 북송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김 국장은 이날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한국대사관이 그동안 탈북자를 외면하고 방치한 사례가 많다”며 그 사례들을 공개했다.○ 북한인권단체와 외교부의 공방전으로 비화 2006년 11월 19일엔 탈북 청소년 3명이 라오스 당국에 체포됐으나 한국대사관이 외면해 5개월간 수도 비엔티안의 감옥에 수감돼 있었다고 김 국장은 주장했다. 2006년 6월엔 김 국장이 탈북자들과 라오스 감옥에 수감된 뒤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의 영사에게 알리며 도움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고 한국대사관이 라오스 경찰에 자신을 석방하지 말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2011년엔 탈북 여성과 중국인 남성 사이에서 태어난 이진주 군(11)이 엄마와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라오스 당국에 체포됐고 대사관이 도와주지 않아 중국으로 강제 송환됐다고 주장했다. 이 사연은 동아일보 2011년 12월 6일자에도 보도된 바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정베드로 북한정의연대 대표는 “얼마 전 주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영사관으로 탈북한 북한 벌목공들이 담을 넘었지만 영사관에 의해 쫓겨났고 탈북자는 미국에 난민 신청을 해 미국으로 갔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 뒤 영사관이 담 높이를 4m 올리고 철조망을 설치했다고 한다. 탈북을 막는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공개된 사례들을 일일이 반박하며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태경 의원은 “외교부가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지만 북한과 라오스가 긴밀한 협조를 했고 북한의 탈북자 정책이 강화되는 추세가 있었음에도 이에 대응하지 못하고 기존 매뉴얼대로, 타성대로 했던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 “의문의 백영원은 북한의 관심 인물일 가능성” 하 의원은 특히 탈북 청소년 중 이번 속전속결 북송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백영원(20)에 대해 “유일하게 꽃제비 출신이 아니어서 일본 납북 여성의 아들이 아니더라도 다른 고위급 자제와 연관되는 등 북한 정부가 관심을 가질 인물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 주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위원들이 한국에 온다”며 “유엔과 국제사회에서 ‘북송된 탈북 청소년들을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있게 해 주라’는 판결 등이 나오면 북한이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한하는 COI 위원은 세르비아 인권운동가 출신의 소냐 비세르코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베드로 대표는 “북송된 청소년들이 올해 성탄절은 꿈에 그리던 자유를 얻어 보내길 기원하는 마음에서 4일 오후 8시 서울 청계천에서 ‘SAVE MY FRIENDS BEFORE CHRISTMAS’ 촛불집회를 연다”고 밝혔다. 한편 대북 매체인 자유북한방송은 이날 ‘평양 소식통’과의 통화 내용이라며 “북송된 9명은 지난달 29일 평양 근처 순안초대소에 격리 수용된 채 교육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탈북 청소년들이 체포돼 긴급 호송된 것은 김정은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라오스 주재 북한대사관과 외무성 관계자들이 9명의 체포 소식을 지난달 19일 김정은에게 직접 보고하자 다음 날 ‘그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신병을 인도 받으라’고 대사관에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자유북한방송에 따르면 이 소식통은 “김정은의 지시로 국가안전보위부에서 파견된 요원 2명과 현지 보위원, 대사관 직원 2명 등 총 5명의 관계자가 특별 임무 수행에 착수했다”고 주장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2013-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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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정부, 북송 비행기 뜬 뒤에야 아이들 신원 파악 나섰다

    정부가 탈북 청소년 9명이 지난달 27일 라오스에서 강제 추방된 이후에야 이들의 신원 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9명 중 납북 일본인의 아들이 있을 수 있다’는 첩보 등을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안팎에서는 “이들 9명에 대한 신원 파악에 좀더 일찍 나섰다면 그런 첩보들의 진위 확인을 위해서라도 이들의 신병 인도를 라오스 정부에 보다 적극적으로 요구했을 것”이란 자성과 비판이 함께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2일 “탈북 청소년들이 추방된 뒤 명단을 확보하고 정보망을 동원해 이들 9명의 신원 파악을 시작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정보수집 활동인 휴민트, 북한 통신 감청 등의 정보망이 가동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관계자는 “송환 전에 알았다면 정부의 대응 자체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인권 단체들은 “라오스에 억류됐을 때 주(駐)라오스 한국대사관이 이들에 대한 접근과 신원 파악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다. 그것은 정부의 당연한 책무”라고 말했다. 그랬다면 북송된 탈북 청소년 중 유일하게 꽃제비(일정한 거주지 없이 먹을 것을 찾아다니는 떠돌이)가 아닌 백영원(20)에 대해 확인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지적도 있다. 백영원은 △8명의 꽃제비와 달리 북-중 접경지역인 양강도 혜산시 출신이 아니라 동해안의 함경남도 함흥에서 왔고 △올해 2월에야 합류했으며 △‘남한의 가족을 꼭 찾으라’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탈북했다고 한다. 북한이 이례적으로 속전속결로 이들 9명을 비행기로 북송시킨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일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이들의 탈북을 도운 주모 선교사와 만난 한 인사는 “이 청년이 ‘나이 차(일곱 살 차)가 많이 나는 누나가 있다’고 했으며 어머니에 대한 얘기를 하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고 전했다. 발에 심한 동상이 걸렸던 백영원은 “두만강을 건너 함께 탈북하던 친구가 얼어죽었다”고 전했다고 한다. 사단법인 물망초의 박선영 이사장(전 국회의원)은 “북송된 탈북 청소년들은 저마다 탈북하기까지 생사를 넘나든 가슴 아픈 이야기를 갖고 있다”며 “북송됐다고 이들을 잊어서는 결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들 9명 중 가장 나이가 어린 노애지(15·여)는 2년 전 13세 때 중국인에게 납치돼 중국으로 팔려갔다. 노예처럼 부려졌고 성적 학대까지 받았다고 한다. 이번이 세 번째 탈북이었는데 자유를 눈앞에 두고 다시 사지로 끌려간 것이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과 북한인권개선모임은 3일 ‘라오스 한국대사관의 무사안일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연다. 이에 대해 외교부 측은 “라오스 당국이 우리의 영사면담 요청을 거부한 상황에서 탈북 청소년들을 만나기 위해 접근했다가 상황이 악화될 것을 우려했다”고 해명했다. 한편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1일 ‘국제아동절’을 맞아 어린이 11명의 편지에 일일이 친필 답장을 보냈다고 북한 매체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한 대북소식통은 “9명의 청소년을 강제 북송해놓고 마치 어린이를 챙기는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처럼 선전하는 것이야말로 김정은과 북한의 실상”이라고 비판했다. 윤완준·이정은 기자 zeitung@donga.com}

    • 2013-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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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사회, 北 군사용 전용 막으려 ‘식량’ 대신 ‘영양 지원’

    지난해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대북 식량지원을 맞바꾸는 ‘2·29합의’에 따라 대북 지원을 계획했다. 그런데 그 명칭이 생소했다. 식량 지원이 아니라 ‘영양 지원(nutritional assistance)’이었다. 지원의 취지가 영·유아와 임신부, 노인 등 취약계층의 빈약한 영양 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것임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의도였다. 더 중요한 건 쌀처럼 군사용으로 전용될 우려가 높은 알곡 형태의 식량을 지원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북한은 쌀 지원을 선호한다. 미국의 영양 지원 계획은 북한의 4월 장거리 로켓 발사로 ‘2·29합의’가 파기되면서 무산됐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따라 실행할 예정인 대북 인도적 지원의 품목도 영양 지원 형태”라고 말했다. 쌀이나 옥수수 등을 대신하는 영양 지원은 영양강화식품을 제공하는 걸 말한다. 유니세프 등 국제구호기관들은 북한을 비롯해 빈국의 취약계층에 과자나 죽, 분말 형태의 다양한 영양식품을 지원하고 있다. 영양 비스킷은 영·유아가 쉽게 먹을 수 있도록 과자 형태로 만든 것이다.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도록 미네랄과 비타민을 충분히 넣은 고단백 식품이다. 이유식이나 죽 등에 넣어 먹을 수 있도록 분말 형태로 된 영양식품도 있다. 유니세프는 ‘복합미량영양소(Multiple Micro-nutrient)’라는 이름으로 비타민 요오드 철분 등을 넣은 영양식을 지원한다. 조리할 필요 없이 포장을 뜯어 바로 먹을 수 있도록 크림이나 죽 형태로 된 영양실조 치료식도 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201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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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늦게 합류한 함흥 청년은 꽃제비 아니다”

    한국 정보당국이 북송된 탈북자 9명 중 일본인 납북 피해자 여성의 아들이 있는 것 같다는 첩보의 진위 파악에 나선 가운데 이들 중 1명은 꽃제비(일정한 거주지 없이 먹을 것을 찾아다니는 떠돌이)가 아닌 20세 청년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9명의 탈북을 도운 주모 씨는 29일 밤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20세의 탈북 남성은 꽃제비들과 다른 북한 지역에서 왔으며 어머니로부터 ‘가족을 꼭 찾으라’는 말을 듣고 탈북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30일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꽃제비들이 북-중 접경지역인 양강도 혜산시 출신인 것과 달리 이 남성은 접경지역에서 한참 떨어진 동해안의 함경남도 함흥에서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름이 백영원으로 알려진 이 탈북 청년은 주 씨와 중국에서 6개월∼3년을 같이 생활한 꽃제비 8명과 달리 올해 2월에야 주 씨와 처음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소식통은 “정보 당국이 북송된 탈북자 9명 중 ‘함흥을 거쳐 온, 일본인 납치 피해자 여성의 아들이 있다’는 첩보를 확인하고 있는데 이 20세 청년이 함흥 출신이어서 주목된다”며 “이 청년의 어머니가 그 일본인 여성일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자들 사이에서도 “9명 중 1명의 어머니가 일본인”이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 그러나 주 씨는 “청년의 어머니가 일본인이라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고 했다. 다른 외교소식통은 “문제의 청년이 다른 의미의 요인(要人)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교도통신과 NHK 등 일본 언론은 일본인 납북 여성의 아들이 북송된 9명에 포함돼 있다면 그 어머니는 1977년 돗토리(鳥取) 현 요나고(米子) 시의 자택을 나간 뒤 행방불명된 마쓰모토 교코(松本京子)일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30일 “관계국과 연락을 취하면서 외교 루트를 통해 사실 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27일 강제 북송된 탈북자 9명은 원래 12명으로 이뤄진 탈북 그룹의 일원이었고 이 중 3명은 올 2월 이미 미국에 입국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의 탈북을 도와온 수잰 숄티 북한자유연합 대표는 29일(현지 시간)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고 “12명 중 미국행을 희망한 3명은 지난해 태국을 거쳐 올해 미국에 들어와 현재 캘리포니아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숄티 대표는 또 북송된 9명의 명단을 공개하며 “앞으로 국제 무대에서 이들의 구출 문제를 적극 이슈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은 북한 당국에 북송된 9명의 안전 보장을 요구했다. 마르주키 다루스만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30일(현지 시간) 북한 당국이 대부분 고아로 알려진 9명의 탈북 청소년을 제대로 보호할지 우려된다며 이같이 밝혔다.윤완준 기자·워싱턴=정미경 특파원·도쿄=배극인 특파원 zeitung@donga.com◇숄티 대표가 공개한 북송 탈북자 9명 명단 △문철(23) △정광영(20) △백영원(20) △류광혁(19) △박광혁(18) △이광혁(18) △류철룡(16) △장국화(16) △노애지(15)}

    • 201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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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일간 구조요청 묵살 한국대사관 “최선을 다했다” 어이없는 해명

    탈북 청소년 9명이 라오스에서 추방돼 강제 북송된 사건에 대해 외교부와 주(駐)라오스 한국대사관은 “최선을 다했으나 라오스와 북한의 대응이 너무 이례적이었다”고 해명한다. 그러나 한국대사관이 안이한 태도로 “기다리라”며 구조요청을 묵살한 데다 북한의 북송 공작에 속수무책이었다는 점에서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들 9명의 탈북을 도왔던 선교사 주모 씨는 29일 밤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0일 라오스 경찰에 체포된 이후 27일 (9명이) 라오스에서 강제 추방당할 때까지 무려 18일간 한국대사관 관계자 누구도 만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한국대사관에 ‘도와 달라’고 요청할 때마다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해 들었다”고 강조했다. “도청이 되니 전화하지 말라”거나 “다 된 밥에 코 빠뜨리지 말라”는 얘기까지 들었다고 했다. 주 씨가 대사관 직원을 처음 만난 건 이미 9명이 강제 추방된 뒤인 27일 오후였다고 한다. 주 씨는 “대사관 직원은 내가 계속 요청했던 아내의 갑상샘 질환 약을 전달해 주러 왔다. 그때까지도 (대사관 측은) 9명의 추방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 측은 “대사관 직원들이 이민국 앞에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사건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 씨는 “비엔티안 이민국에 있을 때 동료 선교사가 김밥을 주러 오는 등 3차례나 면회가 허용됐는데도 대사관 측은 ‘면회가 안 된다’고만 변명하는 걸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민국 앞에 상주했다면서 북한 측의 ‘이례적인’ 공작에 대해 왜 몰랐는지도 의문이다. 주 씨는 “아이들이 잡혀간 다음 날인 28일에야 대사관 직원이 ‘지금까지 누가 어떻게 조사했느냐’를 묻더라. 한국대사관이 아무것도 모르고 방치하는 동안 아이들이 북한 요원들 앞에서 ‘우리는 한국에 갈 것’이라고 털어놓은 셈”이라고 말했다. 탈북지원단체 관계자들은 △탈북 청소년들이 비엔티안 이민국으로 옮겨온 직후에는 자유로운 외출이 가능했는데 이때 대사관이 별도의 장소에서라도 면담하지 않은 걸 이해할 수 없고 △북한의 ‘공작’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무사안일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또 △주 씨가 ‘북한 사람들이 아이들을 조사하는 것 같다’고 여러 차례 위험 신호를 보냈는데도 결과적으로 무시한 점 △라오스 측이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북한에 협조하는 동안 한국-라오스 간 외교 채널은 먹통 상태였다는 점 등도 책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건태 주라오스 한국대사는 30일 동아일보와의 국제통화에서 “얼마나 민감한 문제인데 우리가 그들을 만나기 위해 시도하지 않았겠나. 상식적으로 판단해 달라”고 해명했다. 주 씨는 “28일에야 이 대사를 처음 만났고 한국대사관에 도착한 뒤엔 내 얘기를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볼 일이 있다’며 떠나버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대사는 “당시 이 문제로 온 사방에서 나를 찾았다. 더이상 코멘트하지 않겠다”며 전화를 먼저 끊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201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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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제비 아닌 청년, 北 북송작전 主타깃 가능성

    북송된 탈북자 9명 중 유일하게 꽃제비 출신이 아닌 함흥 출신 20세의 남성에게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청년이 일본인 납북 피해자 마쓰모토 교코(松本京子·65) 씨의 아들일 개연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외교소식통들은 “한국 정보당국은 아직도 이 청년이 마쓰모토 씨의 아들인지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어쨌든 이 청년이 이번 강제 북송 사건의 미스터리를 풀 핵심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즉, 북한이 속전속결로 비행기편을 이용해 이들 9명을 북한으로 데려간 건 이 청년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유일하게 꽃제비 출신이 아닌 20세 청년의 정체는? 이 청년은 9명의 탈북을 도운 선교사 주모 씨에게 “북한에 있는 어머니가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만난 적 있는 남한의 가족을 꼭 찾아라’고 해 탈북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주 씨는 “탈북 과정에서 9명에게 ‘지금은 거짓말을 해도 좋다. 서울에 도착한 다음 사실대로 말하라’고 주지시켰다”고 했다. 한 대북 소식통은 “그 청년이 납북 일본인의 아들인지, 어떤 특수한 신분의 소유자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이 소식통은 “‘남한에 부모 가족이 있다’는 이 청년의 말이 사실이더라도 납북된 일본인 마쓰모토 씨의 아들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북한이 역시 피랍됐던 일본인 요코다 메구미(田めぐみ) 씨의 경우처럼 일본 여성을 납북된 한국 남성과 결혼하게 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즉, 이 청년의 가족이 실제로 한국에도 있을 가능성이 여전히 있는 것이다. 주 씨에 따르면 탈북자 9명은 20일 라오스 구금시설에서 북한 말투를 쓰는 조사관으로부터 1명씩 1차 조사를 받았다. 주 씨는 “24일 조사관들이 다시 찾아와 2차 조사를 하면서 청소년들의 독사진을 찍고 자필 서명까지 받았으며 사흘 만인 27일 강제 추방됐다”고 말했다. 다른 대북소식통은 “1차 조사 내용이 북한 당국에 보고된 뒤 이들을 속전속결로 북송해야 할 ‘어떤 이유’가 생겼고 이를 위해 여권과 단체여행비자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한국 정보당국의 ‘일본인 여성의 아들이 9명 중에 있는 것 같다’는 첩보도 라오스 이민국의 조사 과정에서 새어 나왔을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납북자 문제는 북-일 관계의 뇌관 이번 북송 탈북자 중 일본인 납북자의 자녀가 포함된 게 사실이라면 외교적 파장이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북한과 일본 관계를 급랭시키는 소재가 될 수 있다. 정부 당국자는 “북송된 1명의 신원이 납북된 일본 여성의 자녀로 확인될 경우 현재 진행 중인 북-일 교섭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 당국에 의한 일본인 납치는 1977년부터 1983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남파 간첩을 일본인 신분으로 위장시키거나 일본어 교육을 시키기 위한 교관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1987년 KAL 858기를 폭파한 김현희 씨가 자신에게 일본어를 가르친 이은혜라는 인물이 납북된 일본인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라고 증언하면서 국제적인 관심사로 주목받았다. ‘모략극’이라고 치부하던 북한은 1991년 북-일 수교 교섭이 시작되고 11년이 지난 2002년 북-일 정상회담에서 비로소 납북 사실을 시인했다. 이후 북-일 논의는 탄력을 받아 2차 정상회담으로 이어졌고 북한은 호의를 표시하려고 2004년 11월 메구미 씨의 유골도 반환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DNA 검사 결과 가짜로 판명되면서 양국 관계는 급속히 얼어붙었다. 지난해 말 집권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재임 중 납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하고 납북자 문제와 관련해 북한 측에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납치범 인도를 요구하고 있다. 5월 이지마 이사오(飯島勳) 내각관방 참여(총리자문역)를 북한에 보내 협상을 시도했다. 납북 피해자의 아들이 북송된 사실이 밝혀진다면 향후 북한과의 교섭에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규슈대 특임교수는 “지금까지 추가 납치 피해자와 관련해 확실한 정보가 없어 북한에 제대로 요구하지 못했던 측면이 있는 만큼 사실 확인이 급선무”라며 “향후 북-일 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현재로서는 예상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조숭호·윤완준 기자, 도쿄=배극인 특파원 shcho@donga.com}

    • 201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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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북송 꽃제비중 납북 일본인 아들 있다”

    한국 정보당국이 강제 북송된 ‘꽃제비’ 출신 탈북 청소년 9명 중 일본 정부가 납북 피해자로 인정한 여성의 아들이 있는 것 같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진위를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29일 알려졌다. 외교부는 이날 “탈북자 9명이 28일 고려항공을 이용해 평양으로 북송된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혀 본보의 단독 보도를 공식 확인했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정보 당국은 1970년대에 실종돼 2006년 일본 정부가 납북자로 공식 인정한 일본인 여성(당시 29세)의 아들이 라오스에서 강제 추방된 탈북자 중에 있었다는 첩보를 파악하고 이번 사건의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사실관계 확인을 하고 있다. 이 소식통은 “그 납북 일본인 여성에게 20대 중반의 아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탈북 청소년 9명 중 23세의 M 씨가 그 아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첩보가 사실로 확인되면 일본인 납북 사실을 부정해온 북한이 납북자 문제를 은폐하려고 전례 없이 항공편까지 이용해 탈북자들을 전격 강제 송환했을 가능성이 커 국제적 파장이 예상된다. 이에 대해 외교부 측은 “이번에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속전속결로 강제 북송이 진행된 것은 과거 일반 탈북자 사례와 크게 다르다”며 “탈북자 중 관심을 끌 인사가 있다는 의심을 하고 있지만 아직 정확한 신원을 파악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이들 9명의 탈북을 돕다가 함께 라오스 정부에 구금됐던 한국인 선교사 주모 씨 부부(미국 영주권자)는 29일 한국에 들어왔다. 주 씨는 본보 기자에게 “라오스 정부가 마지막 순간까지 한국으로 보내준다고 아이들을 속였다”며 “북한 외교관에게 신병을 넘긴 27일까지도 ‘한국행 비행기를 타러 간다’고 (거짓으로) 말했다”고 주장했다. 탈북이 진행되는 동안 주 씨를 도와 한국에서 베이스캠프 역할을 했던 안모 씨는 “라오스 경찰에 구금된 당일부터 한국대사관에 협조를 요청했으나 대사관에서는 북송되는 날까지 면회 한번 오지 않았다”며 한국 정부의 안일한 대응을 강하게 비판했다. 한편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이날 한 조찬강연회에서 “북한은 과거처럼 관(官)과 민(民)을 분리시켜 스멀스멀 들어와 문제를 어물쩍 넘기려 한다.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수를 써야지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수를) 쓰면 우리를 핫바지로 보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1면에 1만2000여 자에 달하는 장문의 논설을 싣고 “제국주의와의 대결에서 최후승리는 강력한 핵무력에 의해서만 담보된다”며 “고귀한 핵보검을 더욱 억세게 틀어쥐고 반제대결전을 과감히 벌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윤완준·조숭호 기자 zeitung@donga.com}

    • 2013-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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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안감에 탈출하려했지만 한국대사관이 말려”

    “중국에서 3년을 같이 산 아이도 있어요. 한 여자아이는 이번에 잡혀가면 4번째 북송된 겁니다. 라오스 이민국에 있을 때 내가 탈진해 링거를 맞으니까 걱정하며 밤을 새워주던 아이들인데….” 꽃제비 탈북자 9명을 돕다가 라오스에서 구금됐던 선교사 주모 씨는 1시간 내내 하염없이 울었다. 동아일보와의 단독인터뷰는 29일 서울 시내 모처에서 진행됐다. 그는 28일 저녁 라오스 이민국에서 추방돼 29일 새벽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그의 인터뷰로 사건을 재구성해봤다. ○ 한국대사관 “탈북자라고 말하라”라고 안내해 5월 10일. 10여 일 동안 중국 대륙을 횡단한 뒤 라오스 북부 우돔사이에 도착하자마자 경찰 불심검문에 걸렸다. 주 씨 부부와 탈북 청소년 9명 등 11명이었다. ‘신분을 밝히라’는 경찰 요구에 주 씨가 “한국에서 온 관광객이다”고 답하자 경찰은 ‘알선 여행사를 전화로 연결하라’고 재차 요구했다. 주 씨는 한국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고 담당자가 경찰과 직접 통화했다. 대사관 관계자는 “이미 북한에서 온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으니 경찰에 협조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고 그대로 따랐다. 경찰은 3번이나 “진짜 북한에서 왔느냐”고 물을 만큼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탈북자들이 미성년자여서 인신매매범으로 오해받을 수 있어 불법 입국 사실을 솔직히 말하는 게 낫다고 안내했다”고 해명했다. “체포 이후부터 서울의 어머니와 현지의 내가 하루 수백 통의 전화와 문자 메시지를 한국대사관에 보냈다. 그때마다 대사관은 ‘우돔사이는 너무 멀어서 못 간다’는 답이었다. 내게는 ‘도청이 될 수 있으니 전화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주 씨) 닷새가 지나자 우돔사이 이민국은 ‘한국대사관으로 데려가겠다’며 이송경비를 지불하라고 요구했다. 1500달러(약 170만 원)를 줬다. 하지만 도착한 곳은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 이민국.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두 번째 북한 요원 방문 때 상황 급변” 5월 20일 한국말을 쓰는 남자 2명이 이민국으로 찾아와 탈북자를 1명씩 조사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조사를 받은 아이들이 “2명이 북한 말을 쓰는 데다 ‘최근 탈북자들이 한국에 갔다가 살기 어려워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는데 너희는 왜 한국으로 가려느냐’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한국대사관에 이 사실을 알렸으나 “이민국이 진짜 탈북의사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떠보는 거니까 겁먹지 말라”는 설명이 돌아왔다. 22일 주 씨가 불안해하며 “여기서 한국, 미국대사관이 가까우니 탈출을 시도하면 어떠냐”고 물었으나 대사관은 위험하다며 만류했다. “16일 수도 비엔티안으로 온 이후 이민국에서 조사를 받으면서도 아이들과 우리 부부는 매일 외출할 수 있었다. 자유롭게 사먹고 자유롭게 시내를 다녔다. 매일 30분 거리의 미국대사관 근처까지 갔고 걸어서 1시간 반∼2시간 거리인 한국대사관까지 가는 방법을 매일 숙지했다.” 금요일인 24일 남자 2명이 다시 이민국에 나타나 탈북자의 자필 사인을 받아갔다. 이민국은 9명의 외부 출입과 면담을 전면 불허하는 등 태도가 급변했다. 외교부도 “‘한국에 신병을 인도하겠다’던 라오스 정부가 23일경부터 ‘시간이 필요하다’며 태도를 바꿨다”고 말했다. 23일 전후로 북한의 공식적인 신병인도 요청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우리는 이민국 3층에서 먹고 자고 했고 2, 3층에서 조사를 받았다. 3층 미팅룸에 누가 오면 1층으로 우리를 몰아넣었다. 아이들 증명사진을 찍고, 자필 사인을 받아간 것이 북한대사관이 아이들의 여권을 만드는 과정임을 뒤늦게 알게 됐다.” 27일 이민국은 “한국으로 데려다 주겠다”며 아이들을 나오라고 했다. 주 씨 부부는 별도로 억류됐다. 창문으로 차가 떠나는 모습을 본 주 씨가 한국대사관에 “아이들을 빼돌렸다”고 신고하자 그때서야 대사관 직원이 이민국에 모습을 드러냈다. 외교부는 “억류 사실이 파악된 10일부터 영사 접견을 요구했으나 라오스 정부가 허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 씨는 “라오스는 현지의 내 지인에게는 3차례나 면담을 허용했고 23일까지는 태도가 온건했다. 한국 정부의 무사안일한 대응이 낳은 참사”라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신속함이 이례적’이라는 말만 하는데 내가 느낀 건 한국 정부가 우리에게 이렇게 무관심한 게 더 이례적으로 느껴졌다. ‘최선을 다했으니 잘못 없다’는 말만 하지 말고 ‘결과적으로 이렇게 돼 미안하다’는 위로의 말부터 건네야 하는 것 아니냐.”○ 납북 일본인 확인 땐 북-일관계 충격파 한편 강제 북송된 탈북 청소년 9명 중 일본 정부가 납북 피해자로 인정한 여성의 아들이 있었다는 한국 정보당국의 첩보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일본 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파가 예상된다. 이지마 이사오(飯島勳) 내각관방 참여(총리자문역)를 최근 북한에 보내 납북자 문제 해결과 북-일 국교정상화 협상을 모색하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권도 일본 내 여론의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 아베 총리는 29일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일본인 납치는) 부친(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한 일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기본적으로 납치 행위와 관계가 없다. 새로운 시대의 지도자로서 올바른 일을 한다는 결단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납치 문제의 휘발성을 의식한 발언인 셈이다. 북한은 결국 탈북자 문제에다 일본인 납북자 문제까지 이슈화될 수 있는 불씨를 조기에 진화하기 위해 치밀하고도 신속하게 탈북 청소년들을 압송했다는 관측이 가능하다. 북한은 북한 외교관도 잘 이용하지 못하는 항공편으로 중국을 경유할 단체여행비자와 북한 여권까지 갖춰 탈북 청소년들을 ‘합법적인 북한 여행객’ 신분으로 탈바꿈시키는 행정적 외교적 준비를 완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중국 당국도 이들의 북송에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 정부 관계자가 전했다.윤완준·조숭호 기자 zeitung@donga.com}

    • 2013-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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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안부문제 중재위 회부를”vs“실익없어… 외교적 해결 먼저”

    2011년 8월 헌법재판소는 한국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방치한 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그 이유는 1965년 체결된 한일협정이 규정한 ‘양국 간 협정을 둘러싸고 분쟁이 일어났을 때 외교 경로를 통해 해결하고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중재위원회 결정에 따른다’는 조항을 외면했다는 것이다. 협정 제3조 2항에 따르면 중재위는 한국인 1명, 일본인 1명, 한일 양국이 합의한 제3국인 1명 등 총 3명으로 구성된다. 이 헌재 결정에 따라 한국 정부는 2011년 두 차례 일본에 분쟁 절차에 따라 우선 ‘외교 경로를 통한 협의에 응하라’는 문서를 보냈다. 일본은 “한일협정 체결로 (한국의 일본에 대한) 모든 청구권이 소멸된 만큼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도 없다”는 기존 태도를 유지하며 아무런 응답이 없다. 더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29일 외교부에 “헌재 결정에 따른 한일 양자 협의 추진 이후의 후속 조치를 취하라”고 촉구하는 공개질의서를 보낸다. 더 늦기 전에 중재위 구성을 일본에 통보하라는 것이다. ○ 외교부는 “중재위 카드 전에 외교적 해결 먼저” 외교부 관계자는 “언제 중재위 회부를 일본에 통보할지 검토 중”이라면서도 “외교 경로를 통한 해결 노력이 더는 어렵다는 결단을 내릴 시점이 언제인지 판단하기는 무척 어렵다”고 말했다. 외교부의 고민은 중재위가 구성되더라도 중재위는 위안부 문제가 한일협정에서 해결됐는지 여부만 가린다는 점이다. 일본의 법적 책임을 인정받아야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또 중재위는 상대국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일본이 중재위 구성을 거부할 경우 실효성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외교부는 중재위 구성은 최후의 카드로 남겨 두고 외교적 노력을 통해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도록 하는 해결책을 찾아보겠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법적 책임을 전혀 인정하고 있지 않고, 이와 관련한 어떤 협상도 시작도 못 해봤다는 게 외교부의 딜레마다. 외교부 논리대로 해도 해결은 힘들다는 얘기다.○ 정대협과 피해자들은 “한국 정부의 진정성 의심”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온 정대협과 피해자들은 “일본 지도자들의 위안부 관련 망언 등 일본의 우경화가 점점 더 심해지는 만큼 중재위 회부를 통한 강력한 압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한다. 최봉태 변호사는 “일본 정부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도 한국 정부가 법적 권한마저 행사하지 않으면서 위안부 피해자들이 정부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미향 정대협 대표는 “설사 일본 정부가 중재위 회부를 거부해 무산되더라도 그로 인해 정치적 부담을 지고 국제 사회의 비판을 받는 것은 일본 정부”라며 “왜 그 부담을 벌써부터 한국 정부가 걱정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이들은 중재위 회부를 해도 그와 별도로 외교부가 중시하는 근본 해결을 위한 외교적 협의는 충분히 계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교부의 한일청구권협정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한 대학교수는 “새 정부 들어와 100일이 다 돼 가지만 한일청구권협정과 관련한 자문단 회의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며 “새 정부가 이 문제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자문위원인 내가 궁금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새 정부가 헌재 판결에 따른 후속 조치를 어떻게 진행할지 분명히 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2013-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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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동대상 성범죄자 집주소 공개 시행령 통과

    앞으로 아동이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전과자의 구체적인 집주소까지 공개된다. 정부는 28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이런 내용의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심의, 의결했다. 개정안은 현재 읍-면-동 단위로만 표기하는 성범죄자의 주소를 도로명과 건물번호까지 구체적으로 공개하도록 의무화했다. 신상정보 공개 범위에는 과거 성폭력 범죄의 죄명과 횟수, 전자발찌 부착 여부와 부착 기간이 새로 포함된다. 개정안은 청소년이 출입할 수 있는 게임 제공업소와 노래연습장을 성범죄자의 취업 제한 시설로 추가하는 내용도 담았다.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4대 국정기조 가운데 하나인 ‘문화융성’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을 문화융성위원회 설치 근거를 담은 규정안도 통과시켰다. 어린이집 보육환경을 점검할 ‘부모 모니터링단’ 설치 방안에 관한 영유아보육법 개정 공포안 등도 통과시켰다. 정부는 또 화재 예방을 위해 건축물의 용도변경을 허가하기 전 소방본부장이나 소방서장의 동의를 받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의 ‘소방시설 설치 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 장애인과 저소득층을 위한 요금감면 서비스 대상에 롱텀에볼루션(LTE) 통신기술과 와이브로(WiBro·고속 휴대인터넷)를 추가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개정안도 처리했다. 정부는 이날 법률공포안 24건, 법률안 7건, 대통령령안 27건, 일반안건 2건, 보고안건 3건을 심의, 의결했다.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 2013-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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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 라오스 추방 사실 뒤늦게 알아

    탈북자 인권단체들은 “‘탈북 청소년들의 강제 북송’이란 비극은 인도주의적 정신을 저버린 라오스와 중국 정부의 책임이 크지만 이를 막지 못한 한국 정부도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탈북자 문제에 우호적이던 라오스 정부가 이례적으로 북한에 협조하는 상황 변화를 간파하지 못하고 안이한 대처로 뒤통수를 맞았다는 것이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주라오스 한국대사관과 한국 정부는 10일 탈북 청소년들이 라오스 정부에 억류된 뒤 신병 인도를 요청했다. 탈북 청소년들은 16일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의 이민국으로 이송돼 조사관 2명에게서 조사를 받았다. 라오스 정부 측은 20일까지도 “탈북 청소년들을 한국대사관으로 보내주겠다”고 했지만 23일 갑자기 “시간이 더 필요하니 기다려 달라”며 태도를 바꿨다. 결국 27일 ‘탈북 청소년들을 강제 추방했다’고 충격적 결정을 대사관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대사관 측은 탈북 청소년 9명이 추방된 뒤에야 북한대사관이 깊게 개입한 사실을 깨달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27일 저녁 윤병세 외교부 장관 주재로 서울 본부에서 대책회의가 열리고 태스크포스(TF)가 구성돼 밤을 새우며 대응책을 마련했지만 결국 ‘뒷북 대응’이란 비판만 받게 된 셈이다. 정부는 28일 오전 “이들의 강제 북송을 막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지만 이날 오후 1시경 탈북 청소년 9명은 중국 베이징 공항에서 평양행 고려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서울의 한 외교소식통은 “한국 정부가 28일 오전까지도 탈북 청소년 9명의 강제 북송이 진행되는 사실을 몰랐다면 정보력과 대중(對中) 외교력 모두 문제 아니냐”고 지적했다. 정부 일각에서는 한국 측에 탈북 청소년들을 인도하겠다던 라오스가 갑자기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상한 태도를 보인 23일경이 이번 사건의 변곡점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그때 한국 정부가 상황을 긴밀히 파악해 적극 대처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2013-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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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 비자 2014년부터 총 90일 면제

    내년부터 한국 국민이 비자 없이도 총 90일간 러시아에 머물 수 있게 된다. 외교부는 24일 “서울에서 열린 한-러 영사국장 회의에서 양국 간 일반여권 사증(비자)면제협정 문안을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양국 국민은 상대국을 60일간 비자 없이 방문할 수 있다. 또 180일 한도에서 총 90일까지 비자 없이도 체류할 수 있도록 했다. 즉 한국 국민이 러시아에 입국한 뒤 60일을 머물다 잠깐 출국한 뒤 재입국하면 30일을 더 머물 수 있다는 것이다. 한-러 간 비자면제협정이 타결된 건 처음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러시아는 다른 나라와는 대부분 비자 면제 기간을 30일로 제한하고 있어 한국과 총 90일 면제협정을 맺은 것은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2013-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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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핵-미사일은 전혀 언급 않고… “대화위해 적극 행동”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특사 최룡해 북한군 총정치국장이 24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6자회담’ 카드를 내놓음에 따라 한반도 정세가 대치국면에서 대화국면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룡해가 거론한 ‘적극적 행동’은 비핵화 논의에 협조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시 주석이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했음에도 최룡해가 비핵화에 대해선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실제 대화 복귀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을 것으로 한국 정부는 보고 있다.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한국 정부의 전방위 외교, 즉 코리아 이니셔티브 디플로머시(KI-디플로머시)가 절실한 시점이 온 것이다.○ “6자회담 복귀 의사 밝힌 건 긍정적” 최룡해는 시 주석에게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하면서 ‘6자회담 등 다양한 형식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관련 문제를 ‘적극적인 행동으로’ 해결하길 원한다고 밝혔다.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김정은의 친서엔 더 구체적인 대화 복귀 약속이 담겼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김정은이 시 주석에게 대화 복귀를 약속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핵보유국을 자처하면서 비핵화 회담엔 나서지 않겠다고 주장해 온 상황에서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정은이 비핵화 협상인 6자회담의 장으로 돌아올 ‘적극적 행동 의사’를 밝힌 건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실제적 행동을 통해 한반도의 긴장 국면을 완화해야 한다”는 압박을 수용한 셈이어서 중국의 위신은 일단 살았다. 시 주석은 다음 달 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미중 정상회담과 다음 달 말 박근혜 대통령과의 한중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메신저, 비핵화의 중재자, 6자회담 의장국임을 강조하면서 북한의 대화 복귀 의사를 전하고 6자회담 재개를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그리고리 로그비노프 6자회담 차석대사는 이날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며 환영 의사를 나타냈다. 북-중-러가 한국과 미국에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을 압박하는 전선을 형성하는 모양새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비핵화 강조한 시진핑에 입 다문 최룡해 그러나 정부 고위 관계자는 “최룡해가 하지 않은 말도 주목해야 한다”며 “시 주석이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했음에도 최룡해는 비핵화를 하겠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사외교로 북-중 간 불협화음을 봉합하는 모양을 취하긴 했지만 비핵화를 둘러싸고 이견을 노출했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3차 핵실험 이후 중국까지 북한을 압박하자 고립 위기에 처한 북한의 립서비스일 수도 있다. 정부의 다른 당국자는 “북한은 비핵화 회담 이탈과 복귀를 협상 카드로 이용해 왔다”며 “이번에도 6자회담 복귀를 카드로 활용해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한 전략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북-미 간 ‘2·29합의’ 파기 이후 북한에 극도로 실망한 미국은 대화 복귀에 보상은 없으며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진정성 있는 행동을 취해야 대화가 가능하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한국, 전방위 외교가 필요하다 결국 공은 한국과 미국에 넘어온 셈이다. 북한의 대화 복귀 의사를 환영하는 중국 러시아와 북한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한국 미국 사이에 이견이 노출되면서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중국이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의사를 적극 평가해줌에 따라 한미 양국은 중국에 강력한 대북 제재를 유지해 달라고 요구하기 어려워졌다. 북한이 이렇게 중국을 다시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한미중 공조를 분열시키고 분란을 야기하면서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노림수로 특사외교를 펼쳤을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대화는 재개되지 않고 제재만 약화된다면 이것이야말로 북한이 노리는 시간벌기를 통한 핵 보유 굳히기 전략이 되는 셈이다.○ 애 먹인 중국, 군복 벗은 최룡해 중국은 이번 특사단을 맞는 과정에서 홀대까지는 아니더라도 환대하지는 않겠다는 점을 보여줬다. 우선 최룡해와 시 주석 간 만남이 24일 당일까지도 최종 확정이 안 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최룡해는 이날 오전에 잠깐 중앙군사위원회 판창룽(范長龍) 부주석을 만난 것을 빼고는 내내 숙소인 댜오위타이(釣魚臺)에 머물며 오후 3시 넘어서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예방이 불발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돌았다. 이 과정에서 오후 5시 출발로 예정됐던 고려항공 특별기는 7시로 연기됐지만 이마저도 제때 출발하지 못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 측이 고의로 애를 먹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시 주석을 만나러 인민대회당에 나온 최룡해는 그동안 입었던 군복 대신에 북한 인민복을 입고 나왔다. 최룡해가 전날 상무위원 가운데 서열 3위이자 한반도통인 장더장(張德江) 대신 외교·안보와 거의 상관이 없는 류윈산(서열 5위)을 만난 것도 중국의 북한 길들이기 일환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윤완준 기자·베이징=고기정 특파원 zeitung@donga.com}

    • 2013-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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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강경파 김격식 총참모장으로 승격

    최근 북한 인민무력부장(한국의 국방장관)에서 물러난 김격식(75·사진)이 북한군 총참모장(한국의 합참의장)에 임명된 것으로 22일 확인됐다. 김격식은 2010년 황해도 일대를 담당하는 4군단장으로 재임하며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을 주도했던 북한 군부의 대표적 강경파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이날 최룡해 북한군 총정치국장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특사로 중국으로 출발할 때 나온 환송 인사를 소개하면서 이런 사실을 보도했다. 김격식은 인민무력부장에 오른 지 7개월 만에 부장 자리를 장정남에게 내준 것으로 13일 확인돼 ‘군부 세대교체 과정에서 해임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있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 군부의 영향력 서열은 총정치국장 총참모장 인민무력부장 순이기 때문에 김격식이 승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위원은 “4월 30일자 노동신문 보도 이후 사라진 현영철 전 총참모장은 군대 지휘 역량의 한계를 드러내 군단장으로 강등된 것으로 파악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강경파인 김격식의 총참모장 기용으로 북한의 대남 군사 강경 기조가 계속될 것으로 분석했다.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은 체제 1년여 만에 군부 교체가 지나치게 잦은 배경과 이유에 대해 정부 당국은 예의 주시하고 있다. 총참모장은 이영호→현영철에 이어 김격식으로 교체됐고, 인민무력부장도 김영춘→김정각→김격식→장정남 순으로 수개월 간격으로 바뀌었다. 김정일 사망 이후 자리 변동이 없는 핵심 요직은 총정치국장(최룡해)이 사실상 유일하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201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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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최서면 원장, 尹외교에 ‘1958년 日사죄 회견문’ 건넨 뜻은

    20일 오후 1시 반경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 1층 로비. 외교부 관계자들에게 한일문제에 대한 조언을 해주기 위해 들어서던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85)이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우연히 마주쳤다. 최 원장은 반갑게 인사를 건넨 뒤 불쑥 A4용지 5장을 윤 장관에게 건네며 “꼭 한번 읽어보라”고 당부했다. 윤 장관은 “잘 알겠다”고 대답했다. 최 원장은 이 장면을 목격한 기자에게 “최근 과거사에 대한 왜곡과 망언을 일삼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마땅히 부끄러워할 내용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한일 문제의 대표적 권위자인 최 원장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베를 보면 (나치의) 히틀러가 떠오른다”며 아베 총리의 역사 왜곡을 통렬하게 비판한 바 있다. 최 원장이 윤 장관에게 전한 글은 아베 신조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가 총리 재임 시절인 1958년 일제 식민통치를 사죄하기 위해 한국에 특사로 보낸 야쓰기 가즈오(矢次一夫)의 방한 기자회견 전문이었다. 야쓰기는 일본 정부 최초의 사과(謝過) 사절이었다. 야쓰기는 그해 5월 21일 회견에서 “기시 총리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한국에 범했던 과오를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다. 총리는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진정으로 노력해 왔다. 이런 노력을 앞으로도 계속하겠다는 기시 총리의 결심을 이승만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당시 가장 주목받은 건 회견 마지막 대목이었다. “기시 총리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우연히도 동향(同鄕)인 까닭에 그의 선배인 이토가 저지른 과오를 씻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제의 조선 침략을 주도한 장본인으로서, 안중근 의사의 의거로 피격돼 사망했다. 최 원장이 건넨 글엔 주일·주미 대사를 지낸 고 김동조 전 외무부 장관의 회고도 함께 담겼다. 김 전 장관은 야쓰기 방한 당시 외무부 차관이었다. 이 회고에 따르면 야쓰기가 이 대통령을 만나 한 얘기는 더 극적이다. 야쓰기는 1958년 5월 19일 이 대통령에게 기시의 친서를 전하면서 “일본의 한국 합병은 과오였다. 기시 총리와 동향인 이토 히로부미가 한국을 침략하고 한국민을 불행하게 한 것은 커다란 잘못이기 때문에 반성한다”고 말했다. 야쓰기는 이 대통령을 만나기 전 한국 정부 관계자들에게 “일본인들은 (사죄할 때) 도게자(土下座·땅에 꿇어앉아 납작 엎드려 절하는 것)를 하는데 그렇게 하는 게 좋겠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럴 필요까지 없다”는 말을 들은 뒤에야 그는 머리를 90도까지 숙이고 있다가 이 대통령이 가까이 와서야 일어서서 손을 내밀었다고 김 전 장관은 회고했다. 최 원장은 기시가 야쓰기를 통해 고향(야마구치 현) 선배인 이토 히로부미의 잘못을 사죄하고 반성한 것에 특히 주목했다. “일본 정부 차원의 공적 사죄와 함께 개인 차원의 사적 사죄까지 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기시 자신도 A급 전범 용의자였다가 3년간 수형생활을 한 뒤 불기소 석방돼 정계에 복귀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최 원장은 “오늘날의 한국인, 일본인 모두 이런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아베 총리는 외할아버지가 (야쓰기 회견문을 통해 밝힌) 한국에 사죄하고자 한 정신을 반역하지 말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2013-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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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킹 美북한인권특사 방한 돌연 취소 왜?

    19∼23일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었던 로버트 킹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특사(사진)가 18일(현지 시간) 출국 직전 일정을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국무부가 전날 ‘킹 특사가 19∼25일 한국과 일본을 방문한다’고 공식 브리핑까지 한 상태에서 돌연 일정을 취소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외교부는 19일 “방한이 마지막 순간에 취소된 것은 순전히 행정적인(purely administrative) 사유로 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19일 오전 주한 미대사관 측이 ‘로지스티컬’(logistical·수송이나 병참과 관련)한 문제로 취소됐다고 알려왔다”며 “킹 특사가 비행기를 타기 직전 문제가 생겨 방한이 어려워진 상황을 알고 당황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방한 계획에서 행정적 착오나 실수가 발생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방한 일정을 연기할 수 있음에도 일정을 아예 취소한 데는 다른 곡절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킹 특사는 박근혜정부 출범 뒤 처음 방한해 대북 인도적 지원 등에 대해 협의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킹 특사가 북한에 대한 적대범죄 혐의로 15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은 케네스 배(배준호) 씨 석방과 관련해 북한과 접촉해야 하는 상황 등 중대한 현안이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2013-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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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의 ‘숨바꼭질 도발’… 7월까지 군사적 긴장 이어갈 듯

    북한이 18, 19일 단거리발사체 4발을 잇달아 쏜 것을 놓고 자신들이 주장하는 ‘전승절’(7월 27일·정전협정 60주년 기념일)까지 군사적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군부의 의도된 도발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장거리 로켓 발사, 3차 핵실험,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 위협으로 이어지던 일련의 도발 수위를 감안할 때 유화 국면 전환을 위한 탐색 차원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피하면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저강도 도발’이라는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제반 정황으로 볼 때 북한이 도발 정도를 더 높일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 군사적 기만술… 한미 대응태세 파악 목적도 부처님오신날 연휴 기간 이틀에 걸쳐 이뤄진 동해안 발사에서 북한은 지난해 말 장거리로켓(은하 3호) 발사와 올해 2월 3차 핵실험 때 사용한 기만전술을 재연했다. 동해 인근으로 배치했던 무수단 중거리미사일의 철수 징후를 노출시켜 한국과 국제사회의 경계가 느슨해진 틈을 노렸다. 실제 미국과 일본은 무수단 미사일 철수 움직임이 포착되자 한반도 인근에 배치했던 이지스 구축함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등 일부 대북감시 태세를 완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국과 미국의 이동식 미사일발사차량(TEL) 대응 능력을 떠보려는 노림수도 포함된 것으로 군은 보고 있다. 군 관계자는 “한미 군 당국이 구축 중인 ‘킬체인’(Kill Chain·북한 전역의 차량탑재 탄도미사일을 30분 내 탐지해 파괴할 수 있는 체제)의 능력과 추진 실태를 파악하려는 목적도 깔린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북한이 신형 방사포의 실전 배치에 앞서 최종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시험발사를 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 일본 특사 귀국 다음 날 발사 왜? 북한의 발사 시점을 두고 의아하다는 반응이 많다. 18일은 이지마 이사오(飯島勳) 일본 내각관방 참여(총리자문역)가 3박 4일간의 방북 일정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다음 날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특사인 외교사절이 돌아가자마자 일본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발사체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양운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경제 개발을 위해 외자 도입이 절실한 북한이 일본과 협상을 깰 의도는 없을 것”이라며 “지속될 회담을 앞두고 몸값 올리기 차원에서 정례 훈련으로 위장할 수 있는 단거리발사체를 쏜 것”이라고 말했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북한은 이번 발사를 통해 일본에 이지마 참여의 방북 허용에 걸맞은 ‘성의표시’를 하라는 전술적 압박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연구위원은 “일본과의 전술적인 접근이 성과를 낸다면 북한은 핵과 미사일 등 전략적인 문제로 의제와 상대를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과거처럼 북한이 단거리발사체를 쏜 뒤 장거리로켓 발사나 핵실험으로 도발 수위를 끌어올릴 경우 그런 의도는 관철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 개성공단 회담 제의에 군부 반응? 한국의 개성공단 실무회담 제의에 대한 북한 군부의 거부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통일부가 도발행위 중단과 남북대화 수용을 촉구한 직후에 추가 발사가 이뤄진 점이 이런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김형석 통일부 대변인은 19일 오후 2시 성명을 내고 “북한이 유도탄을 발사하는 등 도발행동을 멈추지 않고 있음을 개탄스럽게 생각하며 우리와 국제사회에 대해 책임 있게 행동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또 북한이 개성공단 입주기업에 팩스를 보내 완제품 및 원·부자재 반출 일정까지 구체적으로 밝혔다고 거듭 주장하는 것에 대해 “사실왜곡이며 우리 내부에 논란을 야기하고자 하는 행위”라면서 “북한이 진정 협의할 뜻이 있다면 당국 간 회담에 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이날 통일부 성명이 나온 뒤 2시간도 지나지 않아 추가 발사를 단행했다. 조숭호·윤완준 기자·윤상호 군사전문기자 shcho@donga.com}

    • 2013-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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